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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의 대표기업] (7) 기아자동차

    [한국의 대표기업] (7) 기아자동차

    ‘효시(嚆矢)’라는 수식어는 그 대상을 개척자의 반열에 올리며 역사의 주인공으로 만들어준다. 무수한 ‘최초’의 기록을 보유한 기아차가 국내 자동차 산업에서 갖는 존재감이 바로 그렇다.1980년대까지 발전기를 거쳐 97년 찾아온 부도와 외환위기, 이듬해 현대차에 피인수, 그리고 오늘날 글로벌 기업으로 재도약하기까지 기아차의 63년 영고성쇠(榮枯盛衰)는 한국 산업사 그 자체다. 기아차의 모태는 1944년 학산 김철호(1905∼1973) 회장이 세운 자전거 부품회사 ‘경성정공’이었다. 경성정공은 전쟁 때인 52년 ‘기아산업’으로 이름을 바꾸고 부산에서 자전거 조립을 시작했다. 그해 최초의 국산 자전거 ‘3000리호’가 나왔다. 기아산업은 전쟁이 끝난 뒤 자동차 제조로 사업영역을 넓혔고,62년 최초의 국산 승용차인 ‘K-360’(삼륜차)을 만들어 내기에 이른다. 73년에는 경기도 시흥 소하리에 국내 최초의 일관생산형 종합 자동차공장을 세운다. 그해 국내 최초의 가솔린 엔진을 만들었고 74년에는 최초의 국산 자동차 ‘브리사’를 내놓는다. 이후 기아차는 미니버스 ‘봉고’(81년), 소형차 ‘프라이드’(86년) 등으로 착실히 국내 자동차 산업을 이끌어왔다. 그러나 97년 7월 내수부진과 과도한 부채 등으로 도산의 비운을 맞는다. ●현대차 새주인 맞으며 회생 전기 기아차는 98년 10월 국제입찰을 통해 현대차를 새 주인으로 맞으면서 회생의 전기를 마련한다. 현대차·현대모비스와 함께 현대·기아차그룹의 3각축을 형성하며 빠르게 안정을 찾아갔다.98년 매출 4조 5107억원(36만 6558대)에 6조 6496억원 적자였던 경영실적은 이듬해 매출 7조 3906억원(67만 9951대)에 488억원 흑자로 돌아섰다. 여기에는 99년 취임하면서 기아차와 사실상 자동차 총수로서의 출발을 같이 했던 정몽구 회장의 ‘품질경영’과 ‘글로벌경영’의 힘이 컸다. 정 회장 취임 이후 기아차는 생산, 영업, 애프터서비스 등 부문별로 나뉘어 있던 품질 관련 기능을 묶어 품질총괄본부를 발족시키는 등 품질향상에 총력을 기울였다. 그 덕에 기아차의 신차품질 지수는 2001년부터 급속도로 개선돼 올 4월에는 미국 시장조사기관 JD파워의 신차품질조사(IQS)에서 37개 브랜드 중 12위(전년 24위)를 했다. 럭셔리 브랜드를 제외한 일반 브랜드 23개사 중에서는 6위였다. ●중국형 ‘프라이드´ 등 현지특화 역점 글로벌경영을 통한 세계 주요 거점지역 현지 생산체제도 확고히 구축해 나갔다. 중국 둥펑웨다(東風悅達)기아의 옌청공장 43만대, 슬로바키아 질리나공장 30만대 등 현재 73만대의 해외생산 능력을 갖추고 있으며,2009년 30만대 규모의 미국 조지아 공장이 완공되면 글로벌 생산능력이 국내 135만대, 해외 103만대 등 총 240만대 수준으로 늘어난다. 지난해 기아차는 전체 판매의 76% 이상이 수출이었지만 해외생산은 9% 수준에 머물렀다. 해외생산이 빠르게 늘어나면서 부품·원자재의 현지조달 확대 등 글로벌 경영의 효과가 빠르게 가시화할 것으로 보인다. ‘씨드’를 비롯해 중국형 ‘아반떼’,‘쎄라토’,‘프라이드’ 등 현지 특화제품 개발에도 역점을 두고 있다. 슬로바키아 질리나공장에서 만드는 씨드는 유럽에서 디자인·생산·판매가 모두 이뤄지는 첫 유럽 전략형 차종이다. 한국차 최초로 ‘유럽 신차평가 프로그램’에서 별 다섯개 최고등급을 받았다. 유럽 내 ‘올해의 차’에서는 준중형 모델 1위를 차지했다. 기아차는 내년 초 럭셔리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모하비’를 비롯해 2009년까지 준대형 세단 VG(프로젝트명), 준중형 세단 TD, 중형 SUV AM 등 4종의 차를 선보이며 고급화에 시동을 건다. 올해 기아차는 내수 32만 4000대, 수출 121만 6000대 등 154만대를 판매해 18조 2780억원의 매출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김태균기자 windsea@seoul.co.kr ■ 브랜드 경영 즐거운 질주 지난달 8,9일 이틀간 서울 양재동 기아차 본사 직원들은 전원 붉은 색조의 캐주얼 복장으로 출근했다.‘기아차 브랜드 드레스 코드’ 경연을 위해서였다. 이 경연은 회사가 직원들을 대상으로 개최한 ‘브랜드 데이’ 행사 중 하나였다. 회사 로고 색깔인 ‘레드(red)’를 포인트로 브랜드의 역동성을 잘 형상화한 직원들에게 휴대전화, 백화점 상품권 등 선물을 줬다.‘브랜드 데이’는 직원들이 실생활 체험을 통해 브랜드를 감성적으로 이해하자는 뜻에서 올해 처음으로 기획됐다. 기아차가 ‘브랜드 경영’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브랜드 경영은 ‘디자인 경영’과 함께 소비자들의 기아차에 대한 인식을 획기적으로 전환시킬 이미지 경영의 양대 축이다. 기아차는 자동차 제조 기술에서는 얼추 세계적인 수준에 근접했지만 아직 브랜드 파워는 많이 떨어진다. 이는 현대차를 비롯한 한국 자동차업계 공통의 고민이기도 하다. 기아차는 ‘즐겁고 활력을 주는(The power to surprise)’이란 문구를 브랜드 도약의 슬로건으로 채택했다. 브랜드 매뉴얼과 홍보영상 제작, 브랜드 헌장 채택, 딜러시설 표준화, 브랜드위원회 운영, 글로벌 브랜드 파워 측정, 제품·디자인 아이덴티티 도출 등 그동안 다양한 노력을 벌여왔다. 올해부터는 ‘브랜드 목표관리 시스템’을 운용하고 있다. 주요 국가의 지역별·부문별로 평가지표를 설정하고 목표를 부여해 브랜드를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것이다. 정기적으로 실적을 평가해 원인을 분석하고 대응방안도 마련하고 있다. 기아차 관계자는 13일 “글로벌 브랜드의 무한경쟁 속에 양적·질적 성장을 동시에 달성, 톱 브랜드로 도약하기 위해 가장 시급한 것이 브랜드 파워”라면서 “어떻게 효율적으로 ‘KIA’(기아)를 전세계 소비자들에게 각인시킬 수 있느냐에 지속가능 성장의 성패가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말했다. 김태균기자 windsea@seoul.co.kr ■ 향후 전망 지난달 8,9일 이틀간 서울 양재동 기아차 본사 직원들은 전원 붉은 색조의 캐주얼 복장으로 출근했다.‘기아차 브랜드 드레스 코드’ 경연을 위해서였다. 이 경연은 회사가 직원들을 대상으로 개최한 ‘브랜드 데이’ 행사 중 하나였다. 회사 로고 색깔인 ‘레드(red)’를 포인트로 브랜드의 역동성을 잘 형상화한 직원들에게 휴대전화, 백화점 상품권 등 선물을 줬다.‘브랜드 데이’는 직원들이 실생활 체험을 통해 브랜드를 감성적으로 이해하자는 뜻에서 올해 처음으로 기획됐다. 기아차가 ‘브랜드 경영’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브랜드 경영은 ‘디자인 경영’과 함께 소비자들의 기아차에 대한 인식을 획기적으로 전환시킬 이미지 경영의 양대 축이다. 기아차는 자동차 제조 기술에서는 얼추 세계적인 수준에 근접했지만 아직 브랜드 파워는 많이 떨어진다. 이는 현대차를 비롯한 한국 자동차업계 공통의 고민이기도 하다. 기아차는 ‘즐겁고 활력을 주는(The power to surprise)’이란 문구를 브랜드 도약의 슬로건으로 채택했다. 브랜드 매뉴얼과 홍보영상 제작, 브랜드 헌장 채택, 딜러시설 표준화, 브랜드위원회 운영, 글로벌 브랜드 파워 측정, 제품·디자인 아이덴티티 도출 등 그동안 다양한 노력을 벌여왔다. 올해부터는 ‘브랜드 목표관리 시스템’을 운용하고 있다. 주요 국가의 지역별·부문별로 평가지표를 설정하고 목표를 부여해 브랜드를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것이다. 정기적으로 실적을 평가해 원인을 분석하고 대응방안도 마련하고 있다. 기아차 관계자는 13일 “글로벌 브랜드의 무한경쟁 속에 양적·질적 성장을 동시에 달성, 톱 브랜드로 도약하기 위해 가장 시급한 것이 브랜드 파워”라면서 “어떻게 효율적으로 ‘KIA’(기아)를 전세계 소비자들에게 각인시킬 수 있느냐에 지속가능 성장의 성패가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말했다. 김태균기자 windsea@seoul.co.kr
  • ‘산불’ 공연예술무대 휩쓸다

    차범석(1924∼2006)의 희곡 ‘산불’이 처음 연극무대에 오른 것은 1962년이다. 이진순이 연출을 맡아 국립극단이 현재 문화예술공간으로 되살리는 작업이 벌어지고 있는 서울 명동의 옛 국립극장에서 초연했다. 6·25전쟁의 막바지에 소백산맥 기슭의 산골마을에서 빨치산 남자와 젊은 과부 둘을 중심으로 이데올로기의 허상을 적나라하게 짚어낸 ‘산불’은 이후 한국 사실주의 연극의 대표작으로 무대에 가장 자주 오르는 작품이 됐다. ‘산불’은 1967년 처음 영화로 만들어졌다. 김수용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신영균과 주증녀·도금봉·황정순이 출연해 호평을 받았다. 김수용 감독은 1978년 신성일과 선우용녀·전계현을 기용해 다시 ‘산불’을 찍었다. ‘산불’은 오페라로도 만들어졌다. 정회갑이 작곡한 오페라 ‘산불’은 1998년 국립오페라단이 초연했다. 올해는 가장 극적인 변화를 맞은 해라고 해도 좋을 것 같다.‘산불’을 각색한 뮤지컬 ‘댄싱 섀도우’가 신시뮤지컬컴퍼니에 의해 지난 7월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무대에 올랐다. 그런 ‘산불’이 이번에는 다시 창극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국립창극단이 21일부터 30일까지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공연하는 것이다. ‘산불’이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장르에 미쳤다는 점에서 국립창극단의 공연은 이 작품이 ‘그랜드 슬램’을 달성하는 데 마침표를 찍는 것과 같은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 TV드라마로도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기억하면,‘산불’은 한국문화예술사에서 하나의 콘텐츠가 다양한 장르로 구현되는 이른바 ‘원 소스 멀티 유즈’의 선구적 작품이자, 대표적 작품으로 기록해도 좋을 것 같다. 창극 ‘산불’은 안숙선 명창이 작창하고, 국립창극단의 국가브랜드 ‘청’과 ‘장기전’의 창극본을 맡는 등 창작판소리 분야에서 특출난 공력을 쌓아가고 있는 박성환이 연출한다. 박성환은 “창극이 재래의 유희성과 오락성에 그치지 않고 시대적 담론과 보편적인 감성을 전통적 노래와 서사로 표현하고자 한다.”면서 “대중성 높은 ‘산불’을 우수한 창극 어법에 대입하여 ‘창극 산불’이 명실상부하게 공연장르에서 자리매김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빨치산 규복은 우지용과 객원으로 참여하는 남원시립국악단의 임현빈, 젊은 과부 점례는 김지숙과 박애리, 점례와 규복을 ‘공유’하는 사월은 허애선이 맡는다. 점례의 시어머니 양씨에는 김경숙과 김금미, 양씨와 팽팽한 신경전을 펼치는 사월의 시어머니 최씨에는 유수정이 캐스팅됐다. 안무는 김호동, 지휘는 조용수.2만∼3만원. 평일은 오후 7시30분, 토요일은 오후 4시·7시30분, 일요일은 오후 4시, 월요일 공연은 없다.(02)2280-4115∼6.서동철 문화전문기자dcsuh@seoul.co.kr
  • 세계 최고령 오랑우탄·고릴라 50세 생일 맞아

    최근 독일의 한 동물원에서 세계 최고령 오랑우탄과 고릴라의 생일파티가 열려 화제가 되고 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동물원에 살고 있는 오랑우탄 찰리(Charly)와 고릴라 마츠(Matze)는 지난 6일 50세 생일을 맞아 성대한 파티를 열었다. 찰리와 마츠는 이날로 세계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오랑우탄과 고릴라의 타이틀을 거머쥐게 되었다. 찰리는 1957년 인도네시아 수마트라(Sumatra)섬의 남부에서 태어나 1978년부터 프랑크푸르트 동물원에서 살고 있으며 마츠는 같은 해 태어나 5년 동안 동물 서커스단을 따라 유랑하다가 1962년 프랑크푸르트 동물원에 들어오게 되었다. 동물원 책임자인 캐롤라인 라이프케(Caroline Liefke)는 “찰리와 마츠가 좋아하는 무설탕 케이크을 선물했다.”며 “동물원의 많은 고릴라·오랑우탄 친구들이 함께 케이크을 먹으며 이들의 장수를 축하했다.”고 전했다. 이어 “현재까지 마츠의 새끼는 무려 17마리에 이른다.”고 전한 뒤 ”찰리는 18마리의 새끼가 있으며 현재 찰리의 새끼들은 전세계 동물원에 퍼져 살고 있다.”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현재 이들의 건강상태는 매우 양호하다.”며 “프랑크푸르트 동물원은 찰리와 마츠를 위해 다른 동물들보다 훨씬 더 많은 신경을 쓰고 있다.”고 덧붙였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진실화해위 “간첩 아니다” 결론

    1961년 12월 간첩 혐의로 당국의 조사를 받다 숨진 당시 법무부 검찰국장 위청룡(당시 46세)씨에 대해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간첩이 아니다.”는 진실규명 결정을 내렸다. 진실화해위는 “1950년 위씨 월남 전후 활동과 1961년 국가재건최고회의의 위씨 검찰국장 임명 및 중정 조사 과정 등을 살펴본 결과 위씨가 간첩 활동을 했다는 증거나 정황이 발견되지 않았다.”면서 “이에 따라 최근 60차 전원위원회에서 ‘위씨는 남파 간첩이 아니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3일 밝혔다. 위씨는 1961년 12월24일 간첩 혐의로 중앙정보부(현 국가정보원) 조사를 받던 도중 숨졌다.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는 위씨 사망 17일 뒤인 1962년 1월10일에야 “위씨는 북한 조선노동당에 가입해 검사로 활동하다 간첩 교육을 받고 월남했다.”면서 “북한 간첩과 10여차례 접선해 공작금을 받고 부역자나 간첩을 관대하게 처리한 죄상이 드러나자 자살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진실화해위는 ▲위씨가 민족계열인 조만식 선생과 함께 1945년 평안남도 조선건국준비위원회 예비 각료였던 점 ▲위씨 도움으로 북한 감옥에서 탈출해 월남한 김모 변호사의 생전 회고 ▲위씨의 간첩 혐의 증거가 없고 사망한 지 17일 뒤에야 간첩으로 발표된 점 등을 들어 “위씨는 북한 조선노동당과 관련이 없는 민족주의자”라고 결론지었다. 그러나 진실화해위는 누가 무슨 목적으로 위씨에게 간첩 혐의를 씌웠는지, 또 위씨의 죽음이 자살인지 타살인지 등에 대해서는 “관련 기록이 없고 당시 중정 관계자도 대부분 사망해 확인할 수 없었다.”면서 결론을 유보했다.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 “미얀마 민주주의 위해 햇볕정책 필요”

    “미얀마(버마)의 민주주의를 위해 세계적인 햇볕정책이 필요합니다.” 미얀마 민주화 운동 해외지원단체인 ‘유로버마’의 한 양훼(59) 회장이 3일 서울 마포구 동교동 김대중도서관에서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한 양훼 회장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 7주년을 기념해 4일 열리는 ‘버마 민주화의 밤’을 위해 방문했다. 그는 ‘버마’ 망명정부 수반인 세인 윈의 자문관으로 일하고 있으며,1962년 쿠데타 당시 초대대통령의 아들이다. 한 양훼 회장은 “일부 세력들은 국제형사재판소를 세워 미얀마의 군 장성들을 처벌하기를 바라지만 그들을 처벌해도 권력이 교체되지는 않을 것”이라면서 “처벌보다는 민주화를 위한 근본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국제사회의 처벌 대신 국제사회가 유엔이 제시하는 3자 대화를 지지해줄 것을 제안했다. 그는 “군부·아웅산 수지 여사 중심의 민주화세력·소수민족 세력의 대화를 지원하는 햇볕정책이 군부를 변화시킬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국 정부에 대해서 한 양훼 회장은 “미얀마 군부에 무기를 팔지 말고 교육 등 민간부문을 도와주기 바란다.”고 호소했다. 그는 “한국의 대기업이 지난해 전략물자를 수출하고 무기공장을 설립하려 했다.”면서 “이는 군부가 유엔을 무시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한다.”고 주장했다. 한 양훼 회장은 미얀마에서는 지금도 시위가 계속된다고 전했다. 군부가 언론인을 대부분 체포, 이같은 사실이 국외로 알려지지 않고 있을 뿐이라고 했다.이경주기자 kdlrudwn@seoul.co.kr
  • 황석영·佛 르 클레지오 대담 “전쟁 경험 바탕 작품세계 서로 공감”

    황석영·佛 르 클레지오 대담 “전쟁 경험 바탕 작품세계 서로 공감”

    “르 클레지오씨를 몇번 만나 얘기를 나눠보니 성격이나 살아온 곳은 너무 이질적입니다. 하지만 우리 두사람은 토박이의 반대 개념에 해당하는 같은 외방인인 만큼 진한 동질감을 느끼고 있습니다.”(황석영) “황석영씨의 소설은 언제나 감동을 줍니다. 어떻게 소설을 써왔는지, 왜 이런 문제에 집착하게 됐는지…. 아마 유사한 경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겠죠.”(르 클레지오) ●등단도 1960년대로 비슷 한국문학과 프랑스문학의 대표 작가가 마주앉았다.3일 이화여대 국제교육원에서 열린 ‘황석영(64)과 장 마리 구스타브 르 클레지오(67·이화여대 통번역대학원 초빙교수)와의 공개 대담’행사가 그것이다. 두 작가는 서로의 작품세계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나눴다. 한국 최고의 ‘이야기꾼’으로 꼽히는 황석영은 1962년 사상계에 ‘입석부근’이 당선, 문단에 데뷔했다.‘장길산’‘무기의 그늘’ 등을 발표, 주목받았다. 아프리카에서 근무한 영국인 아버지와 프랑스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르 클레지오는 1963년 첫소설 ‘조서(調書)’로 ‘르노도상’을 수상하면서 화려하게 등단했다.‘열병’‘홍수’‘물질적 황홀’등 숱한 화제작을 내놓아 노벨문학상 후보로 꾸준히 거론되고 있다. ●“독일전쟁 겪은 나와 비슷한 경험” 이들 두 작가는 아무래도 어릴 때의 ‘전쟁’이라는 유사한 경험이 인연의 끈으로 작용하면서 서로 호형호제할 정도로 친한 사이로 발전한 것 같다. 황석영은 “르 클레지오씨를 등단도 1960년대로 비슷하고 나보다 세살 위라 형이라고 부른다.”며 “특히 1960∼70년대 르 클레지오의 작품세계의 사변적 변화에 공감한다.”고 말문을 열었다. ●난민의식 공유 이에 르 클레지오는 “황석영씨가 어릴때 6·25전쟁으로 어려운 시절을 보냈으나 글을 쓰고 싶은 욕망으로 가득한 것이, 독일과의 전쟁을 겪은 나와 비슷한 경험을 갖게 된 것이 서로 친밀해지는 계기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이들 두 작가는 대담 도중 대표작인 ‘바리데기’와 ‘아프리카인’을 각자의 모국어로 낭독하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황석영은 르 클레지오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아낸 ‘아프리카인’에 대해 “아버지의 초상이 자세히 나오는데, 가슴이 먹먹할 정도로 감동적이었다.”며 “이는 아무래도 르 클레지오씨의 아버지가 아프리카인도, 유럽인도 아니듯이 나 또한 중국 창춘(長春)에서 태어나 평양을 거쳐 서울 영등포에 정착하는 등 난민(難民)의식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고 지적했다.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03일 TV 하이라이트]

    ●왕과 나(SBS 오후 9시55분) 내시부 정문, 처선은 수백명의 꽃내시, 소환들을 이끌고 상여를 이끌고 들어와서 정한수를 비롯한 내시부 수장들에게 억울하게 저승으로 가게 된 소환의 마지막 길을 열어달라고 부탁한다. 하지만 정한수는 저들의 요구를 들어주면 자신들의 죄를 시인하는 것이니 안 된다고 말하며 저지하라고 명령한다.   ●인간극장 5부작 ‘당신이 딱 좋아’(KBS2 오후 7시30분) 새벽 3시30분 자전거로 아내를 출근시켜 주고, 밤 9시 자전거로 아내와 함께 퇴근하는 남자! 10년 동안 남자의 정성은 단 하루도 변함이 없었다. 광주 양동시장에서 이 부부를 모르면 간첩이다. 원조 닭살부부 박병두(61)씨와 이해님(53)씨가 그들이다.   ●세계 세계인(YTN 오전 10시35분) 미국 네바다주에선 요즘 ‘핵실험기지를 둘러보는 관광’이 화제다.1950년부터 1962년까지 약 1만명이 100여건의 핵실험을 수행했던 곳이지만 지금은 쓰이지 않고 냉전시대의 상징으로만 남아 있다. 관광객들은 전직 직원들로부터 안내를 받는다. 투어 중 꼭 들르는 곳이 핵실험으로 형성된 거대한 구덩이다.   ●역사야 놀자(KBS1 오후 4시35분)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에 자리한 미륵사. 이곳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석탑이자 가장 큰 석탑인 미륵사탑이 있는 곳이다. 미륵사탑은 규모는 물론이고 독특한 생김새까지 일반 석탑과는 전혀 다르다. 이 탑의 원래 모습과 전설, 백제 무왕에 얽힌 사연들을 알아본다.   ●그래도 좋아(MBC 오전 7시50분) 석우는 자신의 마음을 효은에게 고백하고 윤사장에게 효은이 마음을 받아주기만 한다면 효은과 결혼하겠다고 한다. 윤사장은 효은을 눈여겨 봤었는데 마음에 들었다며 허락한다. 서회장은 고민끝에 정희를 찾아가 명지에게 사실을 알리겠다고 한다. 정희는 둘이 받을 충격 때문에 안 되는 일이라고 거부한다.   ●책 읽어주는 여자, 밑줄 긋는 남자(EBS 오후 8시20분) ‘일분 후의 삶’(권기태 지음)은 불시에 닥친 죽음의 위기를 극복하고 인생으로 다시금 초대받은 열두 사람의 감동적인 생존 기록을 담은 실제 이야기다. 열두 명의 생존자들은 고속버스 운전기사, 신인 프로복서, 실습 항해사 등 들꽃같이 살아온 소박한 존재들이었다.
  • 살아있는 로큰롤 유적지 가다

    세계 정상급 뮤지션들의 라이브 음악을 한꺼번에 감상할 수 있는 기회가 왔다. 더구나 좀처럼 접하기 어려웠던 그들의 사적 이야기, 작업 과정 등도 덤으로 들려준다니 ‘횡재’ 수준이다. EBS는 이 12부작 음악 다큐멘터리 ‘애비 로드 라이브’를 29일부터 매주 목요일 밤 12시35분에 방영한다. 방영분마다 평균 3개 팀, 총 38개 팀의 리허설, 레코딩, 인터뷰 등을 촘촘히 담고 있어 포만감이 느껴진다. 배경은 ‘비틀스’‘클리프 리처드’‘핑크 플로이드’ 등 쟁쟁한 뮤지션들이 거쳐간 ‘애비 로드 스튜디오’.1931년 영국 런던의 웨스트민스터 시티에 설립된 이 음악 스튜디오는 로큰롤의 역사에 있어서는 유적지와 같은 곳으로 가치를 평가받고 있다. 특히 1962년에서 1969년 사이에 발표된 비틀스 앨범 대부분이 이곳에서 녹음됐다. 덕분에 지금도 비틀스 팬들이 마치 성지순례를 하듯 이곳을 찾고 있다. 그리고 이제 레드 핫 칠리 페퍼스, 노라 존스, 존 메이어, 자미로콰이, 윈튼 마셜리스 등이 이 스튜디오에서 연주를 펼치고 있다. 어쿠스틱 기타 하나로 훌륭한 연주를 선보이는 숀 콜빈, 스튜디오를 마치 나이트클럽처럼 변모시키는 매시브 어택 등 다양한 장르의 뮤지션이 참여한 만큼 스튜디오는 다채로운 음향으로 채워진다.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 나이는 숫자? 84세 노인, 21세 모델과 재혼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미국의 건축자재업체인 ‘84 럼버’의 조 하디(Joe Hardy)회장이 84세의 나이에 21세의 젊은 아가씨와 재혼할 것으로 알려져 화제다. 이번이 3번째 재혼인 그는 ‘84 럼버’ 이외에도 리조트 사업 등을 꾸려나가고 있는 미국의 억만장자이다. 지난 1월 그의 생일파티에 유명가수 크리스티나 아길레라(Christina Maria Aguilera)가 참석해 축하곡을 부른 것으로도 매우 유명하다. 억만장자의 새 신부로 알려진 다니엘 골든( Danielle Golden)은 올해 21세로 갓 대학을 졸업하고 모델로 활동하고 있는 여성인 것으로 알려졌다. 익명을 요구한 조 하디의 지인은 “처음 골든을 만났을 때는 매우 뚱뚱한 모습이었다.”며 “하디가 지방흡입수술을 하라며 큰 돈을 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지금까지 하디의 부인들은 모두 금발의 미녀였다.”며 “그러나 골든은 머리와 피부색 모두 검다. 도대체 어떻게 하디의 마음을 사로잡았는지 알 수가 없다.”고 전했다. 한편 조 하디는 지난 5월 22살의 어린 신부 크리스틴 조지(Kristen Georgi)를 아내로 맞아 라스베가스에서 화려한 결혼식을 올려 화제가 됐었다. 자신의 딸이 운영하던 스파 리조트 직원 조지를 만나 62년의 나이차를 뛰어넘어 결혼에 골인했지만 100일을 갓 넘기고는 파경을 맞았다. 현재 자신을 명예훼손으로 고발한 두 번째 부인 데비 하디(debbie hardy)와 재판 중에 있는 조 하디는 팔순에 나이에도 쉼 없이 이슈를 만들어 내는 ‘저력’을 발휘하고 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中·印, 62년 국경분쟁이후 첫 군사훈련

    |베이징 이지운특파원|중국과 인도가 다음달 윈난(雲南)성에서 양국 각각 100명의 병력이 참가하는 합동 군사훈련을 실시한다고 신화통신이 22일 보도했다. 두 나라는 동중국해에서 간단한 해상훈련을 벌인 적은 있지만 본격적인 지상군 합동훈련은 1962년 양국간 전쟁 이래 45년 만에 처음이다. 인도 국방부 대변인은 “이번 훈련은 양국 관계에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평가했다. 히말라야를 중심으로 3000㎞의 국경을 맞대고 있는 두 나라는 지난 1962년 불분명한 국경선에서 비롯된 분쟁으로 유혈 충돌했다. 이번 훈련은 인도와의 관계 개선으로 미국의 포위 전략에 맞서려는 중국의 의지가 더 크게 반영된 것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앞서 인도는 미국, 호주, 일본, 싱가포르 등과 대규모 합동 군사훈련을 실시한 데 이어 지역 해군력을 확장, 중국을 긴장시키고 있다. 베이징의 한 군사전문가는 “양국 관계가 아직 매끄럽지 않은 상황에서 합동 군사훈련은 서방으로 향하는 인도를 끌어당기기 위한 목적도 크다.”고 지적했다.jj@seoul.co.kr
  • 국산 승용차 단종의 역사

    국산 승용차 단종의 역사

    차들은 세상에 첫 울음을 터뜨릴 때 저마다 ‘베스트셀러 카’를 꿈꾼다. 하지만 모두가 꿈을 이룰 수는 없다. 오랫동안 명성을 이어가는 차들이 있는가 하면 불과 1∼2년 만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차들도 있다. 국산 승용차 고유 모델이 세상에 나온지 햇수로 53년. 국내 승용차의 ‘단종(斷種)의 역사’를 짚어봤다. ●단종 승용차 평균수명 5.7년 서울신문이 18일 한국자동차공업협회 등의 자료를 바탕으로 승용차 모델별 생산·판매 기간을 분석한 결과 1955년 국산 자동차가 처음 등장한 이후 지금까지 나온 차종은 총 150가지였다. 페이스리프트(부분변경) 등을 각각 따로 계산한 것이다. 이를테면 쏘나타-뉴 쏘나타-쏘나타Ⅱ-쏘나타Ⅲ-EF쏘나타-뉴 EF쏘나타 등을 각기 다른 차종으로 봤을 때 그렇다는 얘기다. 이 가운데 단종된 모델은 전체의 80.8%인 110개로 나타났다. 첫 생산부터 생산중단까지의 단종된 차량들의 평균수명은 5.7년이었다.10년 이상 생산된 장수모델은 8종이었고 8∼10년은 12종,4∼8년은 63종이었다.27종은 4년을 못 넘기고 단명했다. 모델명의 영어식 작명이 일반적인 요즘의 어감에서는 영 어색하게 들리는 ‘시발’(55년 출시),‘새나라’(62년),‘신성호’(63년) 등 4종은 1년을 채 못 버텼다. 지금까지 가장 장수한 모델은 27년 9개월의 쌍용 ‘코란도’였다.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이란 말 자체가 없었던 69년 당시 유일한 지프(Jeep)형 SUV로 탄생했던 코란도는 경쟁자 없이 독주를 하다 90년대 들어 현대 ‘산타모’,‘갤로퍼’, 기아 ‘스포티지’가 등장하면서 시장경쟁이 격화되자 96년 7월 단종됐다. 이후 ‘뉴 코란도’로 새롭게 탄생했다. 두번째 장수모델은 현대차의 ‘스텔라’다. 소형차들이 주종이던 1983년 1500∼1800㏄급 엔진에 ‘쐐기형 보디’(앞은 낮고 뒤는 높은 차체)로 출시돼 97년까지 14년간 생산됐다. 스텔라는 세단 승용차 단일모델로는 국내에서 가장 오래 판매됐다. 기아차 ‘프라이드’도 혁신적으로 높은 연비(16.9㎞/ℓ)를 앞세워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14년간 생산된 뒤 단종됐다. 기아차는 2005년 프라이드를 부활시켰다. GM대우 ‘레코드 1900’는 13년, 쌍용 ‘무쏘’는 12년,GM대우 ‘르망’과 ‘로얄살롱’은 각각 11년가량 이름을 유지했다. 기아자동차의 ‘스포티지’는 1992년부터 10년간 이름을 올렸다. 최단명 모델은 63년 등장했다가 반년 만에 사라진 신진자동차 ‘신성호’다. 신진자동차는 GM대우의 전신이다.95년에 나온 현대 ‘마르샤’, 기아 ‘리갈(2002년)’,‘카스타(99년)’,‘엑스트렉(2003년)’은 불과 3년 만에 시장에서 모습을 감췄다.94년도에 나왔던 GM대우의 ‘씨에로’와 쌍용 ‘칼리스타(92년)’는 2년 만에 단종됐다.‘새나라’와 ‘카미나(76년)’는 겨우 1년을 채웠다. 승용차 모델의 장수 여부를 결정하는 데는 고유의 디자인과 성능도 중요하지만 출시되는 시기도 중요하다. 순수 국내 기술로 만든 최초의 스포츠 쿠페 쌍용 ‘칼리스타’는 92년 당시 2000만∼3000만원의 고가로 출시됐지만 ‘사치품 배격’이라는 사회적 분위기에 밀려 2년 만에 생산이 중단됐다. 기아가 내놓은 스포츠카 ‘엘란’도 3년 반을 넘기지 못했다. 외국기업에 인수되는 과정에서 전략적으로 모델을 바꾼 경우도 있다. 쌍용은 2005년 중국 상하이오토모티브그룹에 편입되면서 12년 장수모델 ‘무쏘’를 ‘카이런’으로,‘뉴 코란도’를 ‘액티언’으로 각각 바꿨다. 한국자동차공업협회 관계자는 “인기모델의 경우 계속적인 수요가 있기 때문에 시리즈로 업그레이드해 나갈 수 있지만 인기가 없는 차량은 이윤이 생기지 않아 단종시키는 게 업체로선 유리하다.”고 말했다. ●단종 부품 8년간 보관 의무 차량이 단종돼도 부품은 소비자보험법의 소비자 분쟁 해결기준에 따라 8년간 의무적으로 재고를 보유하도록 돼 있다. 현대·기아차의 경우 122만가지 부품을 보유하고 있는 현대모비스에서 1차적으로 단종 부품을 구한다. 하지만 트렁크 뚜껑이나 문짝 등 덩치가 크고 부품 개발 투자비가 많이 드는 것은 충남 서산의 애프터서비스용 부품 생산전문업체 ‘파텍스’에서 제공받는다. 강주리기자 jurik@seoul.co.kr
  • 헤비급 댄싱퀸 탄생기 뮤지컬 ‘헤어스프레이’

    헤비급 댄싱퀸 탄생기 뮤지컬 ‘헤어스프레이’

    “자, 다들 신나게 놀아보자!” 꿈도 사랑도 다 잡은 뚱보 소녀 트레이시의 이 한마디에 여기저기서 관객들이 튀어 올랐다.2시간30분간의 흥겨운 시간여행이 끝나자 무대 위 아래는 하나가 됐다. 공연 내내 웃음, 박수, 환호성이 끊이지 않고 크게, 오래도록 울렸다.16일 정식 개막한 국내 초연 뮤지컬 ‘헤어스프레이’의 앞날을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았다. ‘헤어스프레이’는 뚱뚱하고 못생긴 백인 소녀가 강력한 긍정의 힘으로 TV 스타로 올라선다는 자아실현기가 중심 이야기다. 흑백갈등이 정점을 이룬 1962년 미국 볼티모어를 배경으로, 인종차별 문제 등 40년 전 미국의 어두운 현실을 달콤하게 녹였다.1988년 미국에서 영화로 처음 만들어졌으며,2002년 뮤지컬로, 최근에 다시 영화(새달 6일 국내 개봉)로 리메이크되는 등 20년간 끈질긴 생명력을 과시하고 있다. 트레이시의 동화 같은 사랑과 성공이 시공을 초월해 흡입력을 발휘하고 있는 셈. 그 매력 속으로 들어가보자. ●60년대로…눈과 귀가 즐거워 고등학생인 트레이시의 가방에 교과서는 없어도 헤어스프레이는 있다. 공룡 발바닥 만큼 부풀린 머리가 행여 주저 앉을 새라 열심히 헤어스프레이를 뿌려댄다. 화려한 색감의 알록달록한 의상과 케이크처럼 쌓아올린 과장된 머리는 춤의 향연 만큼 볼거리다. 경제적 풍요를 맞은 미국의 60년대를 보여주기 위해 사용된 의상은 600개, 가발은 60개가 넘는다. 뮤지컬의 관건은 음악. 이 점에서 ‘헤어스프레이’는 일단 합격점을 받을 만하다.“새로운 기회가 열리네.”라고 트레이시가 노래하는 첫 곡 ‘굿모닝 볼티모어’에서부터 ‘엄마, 이제 나도 다 컸어’‘종소리 들려’‘우린 운명이야’, 마지막곡 ‘멈출 수 없어’까지 흥겹게 이어지는 뮤지컬 넘버들은 낯설지만 이내 귀를 파고 든다. ●돋보인 무대… 연주는 어디서 하지? 충무아트홀 대극장은 오케스트라 핏(연주자 좌석)이 없다. 그럼 어디 있을까. 무대 뒤편을 자세히 보시라. 전면이 유리로 된 계단식 오케스트라 박스가 서있다. 연주자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보통의 공연과 달리 박칼린 음악 감독을 비롯한 연주단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브로드웨이에서 뮤지컬 ‘아이다’급이었던 이 작품은 국내에서 중규모로 축소됐는데 세트의 압축미가 돋보였다. 객석은 또 하나의 무대. 한참 정신 팔려 있다가 무대 위로 올라가는 배우를 보고 놀라지 마시라. ●못생기고 뚱뚱해… 누가? “진짜 넓다. 앞뒤 장난 아니야.”“못생기고 뚱뚱해서 필요 없으니 쫓아낼 수밖에” 오디션을 보러 간 트레이시를 향해 쏟아지는 얄미운 말들. 하지만 무대 위의 트레이시는 어쩐지 억울해 보인다. 깡마른 체형의 배우 방진의, 뚱녀 변신을 위해 몸통과 다리 부위에 특수 제작된 라텍스 의상을 껴입었으나 역부족이다. 라텍스로 만들었지만 무게는 1㎏ 정도. 빠른 속도로 쉼없이 춤추고 노래해야 하기에 더이상 부피를 늘릴 수 없는 한계가 있다. 저절로 살이 붙기만을 기다려야 할 텐데, 워낙 고난도 무대라 오히려 살이 내릴 지경이라 고민이 크다고. ●쟤 누구니?… 눈에 띄는 조연들 무대 위에서 놀 줄 아는 배우들을 보면 흥겹다. 주·조연·앙상블 할 것 없이 모두 고른 기량을 보였다. 전통적으로 남자 배우가 맡아온 트레이시 엄마 에드나 역의 김명국은 풍부한 표정과 몸놀림으로 우람하지만 귀여운 엄마 역을 완벽하게 소화했다. 가장 호기심을 불러 일으킨 사람은 트레이시의 춤꾼 흑인 친구 스위드로 분한 오승준이다. 그는 처음으로 비중 있는 역을 맡았는데 ‘흑인필’ 가득한 춤사위로 여려차례 관객들의 탄성을 이끌어 냈다. 흑인 3인조 여성 그룹 ‘다이너마이트’로 등장한 배우들은 고음에서 시원하게 터지는 폭발적인 가창력을 선보여 큰 박수갈채를 받았다. 내년 2월17일까지 충무아트홀 대극장(02)577-1987. 박상숙기자 alex@seoul.co.kr
  • 위안부 희생자들 ‘성난 발걸음’ 영국으로

    |파리 이종수특파원|일본군의 만행을 규탄하는 위안부 희생자들의 ‘성난 발걸음’이 벨기에와 네덜란드를 거쳐 영국으로 이어졌다. 국제 앰네스티 운동가들과 함께 영국에 도착한 길원옥 할머니 등 위안부 희생자들은 12일(현지시간) 런던 주재 일본대사관 앞에서 2차대전 당시 일본군의 위안부 만행을 규탄하는 시위를 벌였다. 시위대는 이날 ‘62년이 지나도 정의를 바라고 있다.’는 깃발을 들고 “일본 의회는 위안부 문제에 대해 사과하고 일본 정부는 희생자들에게 배상하라.”고 촉구했다. 또 유럽의회가 추진하고 있는 ‘위안부 동의안’을 지원해 달라는 내용을 담은 포스트카드를 지나가는 이들에게 나눠주면서 일본군의 만행을 고발했다. 행사를 주도한 앰네스티의 아이리스 청은 “이번 시위는 일본 정부가 위안부 문제에 대해 진실을 말하도록 촉구하기 위해 마련한 것”이라며 “서울의 일본대사관 앞에서 정기적 시위를 벌이고 있는 모든 위안부 희생자들과의 연대감을 보여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앞서 길 할머니 등은 지난 6일 유럽의회 청문회에 출석해 일본군의 만행과 자신들이 겪은 참상을 생생히 증언했다. 이어 8일에는 네덜란드 하원을 방문해 자유민주당 의원들을 만나 일본군의 위안부 강제 동원에 대한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와 배상을 촉구하는 공개 서한을 전달했다. vielee@seoul.co.kr
  • 석유 지정학이 파혜친 20세기 세계사의 진실

    미국의 엑손, 모빌, 셰브런, 텍사코, 걸프와 영국계 브리티시석유, 로열더치셸은 이른바 ‘세븐 시스터스’로 불리는 7대 석유 메이저 기업이다. 이들은 1928년 스코틀랜드의 아크너리에서 제3세계 석유자원을 나누어 갖는 이른바 ‘현상유지 협정’을 맺는다. 이후 7개 석유 메이저는 전 세계 석유의 채굴과 정유, 판매에 대한 독점적 권리를 행사한다. 두 나라의 석유 재벌이 세계 석유 시장을 마음대로 주무른 것인데, 배후에 두 나라 정부가 있었음은 물론이다. 이 은밀한 카르텔은 지배력을 깨뜨리려는 위협에는 가차없이 응징을 가하는데 이르렀다. ●석유자주화 앞선 伊 마테이 의문의 죽음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이탈리아는 석유 메이저들로부터 석유를 수입하느라 달러 보유고가 고갈되어 가는 것이 고민이었다.1945년 국영 석유회사의 책임자로 임명된 엔리코 마테이는 자생적 에너지 자원을 만드는데 착수했다. 마테이는 적극적으로 탐사에 나서 석유 매장지와 가스전을 잇따라 찾아냈다. 천연가스를 산업도시인 밀라노와 토리노의 산업도시로 운반하고자 4000㎞에 이르는 가스관을 건설하는 한편 대량생산 체제를 갖추어 낮은 가격에 석유를 공급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석유 메이저들에 마테이가 본격적으로 ‘용서할 수 없는 존재’가 된 것은 1957년이다. 마테이가 석유 메이저들이 아직 ‘배분’하지 않은 이란 지역의 2만 3000㎢를 시추하고 개발할 수 있는 25년 동안의 독점권을 갖는 내용의 협정을 체결한 것이다. 미국과 영국 정부도 석유 메이저들과 같은 생각이었는데, 그냥 놔둔다면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세계 석유 질서’를 완전히 뒤엎을 판이었기 때문이다. 마테이는 1958년에는 소련과 원유를 구매하는 협정을 맺는다. 대금은 현금이 아니라 송유관을 인도하는 형식의 현물로 지불하기로 했다. 소련은 볼가-우랄산맥에서 체코슬로바키아, 폴란드, 헝가리로 이어지는 거대한 송유관망을 건설하겠다는 생각이었다. 막대한 물량의 소련 석유가 동유럽을 거쳐 서유럽으로 공급되는 것을 의미한다. 1962년 9월 마테이가 건설한 제철소가 소련의 송유관 공사에 투입할 대구경 파이프를 생산해 내기 시작했다. 불과 한달이 지난 10월27일, 마테이의 전용비행기는 시칠리아를 이륙하여 밀라노로 가던 도중 공중에서 폭발하고 만다. 한창 정력적으로 일하던 56세의 마테이를 포함한 세 사람의 탑승자가 모두 사망한 것이다. 당시 로마에 주재하던 미 중앙정보국(CIA) 책임자 토머스 카라메신스는 그 직후 조용히 로마를 떠났다. 미국 정부는 ‘마테이 암살’과 관련한 카라메신스의 보고서를 아직 공개하지 않고 있는데, 그 이유는 ‘국가 안보에 관한 사안’이라고만 밝히고 있다. ●20세기 전쟁들 석유에서 비롯됐다 ‘석유 지정학이 파헤친 20세기 세계사의 진실’(윌리엄 엥달 지음, 서미석 옮김, 길 펴냄)은 20세기 역사를 ‘석유의 눈’으로 본다.‘영국과 미국의 세계 지배체제와 그 메커니즘’이라는 부제가 일러 주듯 미국과 영국이 지난 100년 동안 ‘석유 패권’를 통하여 어떻게 세계를 지배했는지 설명한다. 지은이는 30년 동안 석유 지정학을 집요하게 연구한 미국의 저널리스트이자 비주류 경제학자. 그는 20세기에 빚어진 숱한 전쟁들, 예를 들어 두 차례에 걸친 세계대전과 최근의 이라크전쟁은 물론 코소보 사태, 아프리카 내전, 영국과 아르헨티나의 전쟁이 모두 석유에서 비롯되었다고 단언한다. 지은이는 석유 메이저들이 장악한 유전들이 바닥을 드러낼 조짐을 보이자, 워싱턴과 석유 메이저들은 자신들의 요구에 따른다고는 해도 산유국 정권들에 한가롭게 의존만 할 수는 없게 되었다고 설명한다. 이들의 계획은 세계 석유 자산을 직접 통제하는 것이고, 그들은 그것을 ‘중동지역 민주주의의 촉진’이라고 부르고 싶어했다는 것이다. 이것이 지은이가 바라 보는 이라크 전쟁의 실체이다.1만 8000원.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위안부 할머니들 유럽도 울렸다

    “열세살 때 집앞에서 놀다가 초등학교에 있던 일본군 막사로 끌려갔다. 일본군 두명이 들어와 성폭력을 했다. 저항하자 담뱃불로 목을 지졌다. 목에서 피가 나서 죽는 줄 알았다. 이후 낮에는 청소하고 밥하고, 밤에는 성노리개로 학대당하는 생활이 계속됐다….” 6일 오후(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에 있는 유럽의회 의사당에서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피맺힌 증언이 절절히 이어졌다. 사상 처음으로 유럽의회에서 일본군 위안부 청문회가 열렸다. 한국의 길원옥(79), 네덜란드의 엘렌 판 더 플뢰그(84), 필리핀의 메넨 카스티요(78) 등 세 명의 할머니들은 일제의 만행을 생생하게 고발했다. 이들은 아직도 공식 사과를 안 하고 있는 일본에 유럽 여러 나라들이 압력을 가해달라고 호소했다. 길 할머니는 “열세살 때 고향인 평양에서 돈벌고 기술을 가르쳐 준다기에 철없이 부모에게 알리지 않고 따라갔다.”면서 “막상 가보니 공장이 아니라 다다미 한장 깔린 조그만 방이었다.”고 운을 뗐다. 이어 “곧 군인들이 차례로 들이닥쳐 몹쓸짓을 했고, 울고 소리지른다고 때렸다. 몹쓸 성병을 얻었다는 기막힌 이유로 집에 돌아올 수 있게 됐다.”고 증언했다. 할머니는 이어 “병에서 회복되자 다시 어떤 사람이 와서 기차에 실어 어디론가 데려갔고, 이번엔 조금 더 컸다고 연속해서 군인들을 들여보냈다.”면서 “열여섯살 때 다시 성병에 걸려 일본군 의사가 자궁을 들어냈을 때 속으로 ‘죽었구나’라고 느꼈다.”고 털어놨다. 할머니는 끝으로 “그 아픔과 괴로움은 듣는 것만도 힘들 것이다. 몸이 성한 곳이 없다. 배 수술만 네번을 했다.”면서 “(일본이) 한마디 사과하는 말이 없으니까 여러분 힘을 빌려 죽기 전 소원을 풀어볼까 하고 아픈 몸을 이끌고 여기까지 왔다. 많이 도와달라.”고 흐느꼈다. 엘렌 판 더 플뢰그 할머니는 “열일곱살 때 인도네시아에서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갔다. 당시 얻은 성병은 일본군이 패배한 후 네덜란드로 돌아와서야 고쳤다.”면서 “이후 62년이나 지났지만 일본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항상 거짓말을 하고 진실을 외면하고 있다.”고 분개했다. 열세살 때 일본군에게 끌려가 위안부 생활을 했다는 메넨 카스티요 할머니는 “도움을 요청하러 여기에 왔다.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와 법적 보상이 이뤄져야 한다.”면서 “우리 모두 늙고 죽어가고 있다. 가난하게 살고 있고 먹을 것도 부족하다.”며 도움을 호소했다. 이날 청문회는 국제앰네스티의 주선으로 위안부 피해자들이 유럽 국가를 방문해 위안부 문제의 진실을 이야기하는 ‘스피킹 투어’의 일정 중 하나로 이뤄졌다. 오는 25일 국제 여성폭력 근절의 날에 앞서 런던, 베를린 방문도 예정돼 있다. 이날 청문회엔 유럽의회 의원들과 의회관계자, 인권단체 회원, 언론인 등 50여명이 참석했다. 한편 교도통신은 7일 일본 사이타마현이 히가시마쓰야마시 평화자료관 내 ‘쇼와(昭和)사 연표’ 가운데 ‘종군위안부’란 표현에서 ‘종군’부분을 삭제하고 ‘위안부’로 바꾼 채 8일부터 공개키로 했다고 보도했다.김성수 이재연기자 sskim@seoul.co.kr
  • “현대적 여성대표 아니다” 반발도

    5만원권의 초상인물로 신사임당이 선정됨으로써 47년 만에 여성이 화폐에 다시 등장하게 됐다. 그러나 대표성을 두고 여성단체들이 계속 반대하고 있고,5000원권의 도안모델인 이이와 함께 전세계에 유래가 없는 ‘모자(母子)화폐 모델’이라는 점 때문에 논란이 거세다. 한국은행 이승일 부총재도 5일 “언젠가 화폐의 전면적인 재조정이 있으면 아마 신사임당과 율곡의 모자 문제는 우선적으로 고려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1962년 26일간 ‘모자상’ 지폐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한 이야기지만 화폐발행의 역사에서 여성인물이 등장한 사례는 과거 딱 1차례 있었다.1962년 5월16일 발행된 100환권 지폐에 한복을 입은 어머니와 아들이 저금통장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 등장한 것이다. 저축을 장려하기 위한 취지를 담은 이 지폐는 실명의 위인이 아닌 일반인이 도안의 모델로 채택됐다. 이 ‘모자상(母子像)’ 지폐는 우리나라 화폐 사상 유통기간이 가장 짧았다. 발행된 지 한달이 못된 6월10일 제3차 통화조치로 새로운 화폐가 발행되면서 폐기됐기 때문이다. 모자상 지폐는 희소성이 더해져 사용 흔적이 없는 신권 형태는 수집가들 사이에 1장당 200만원 안팎에 거래되고 있다. ●일부선 선정과정 투명성 문제제기 47년 만에 여성인물이 재등장하게 됐지만, 여성계의 반응은 우호적이지 않다.‘신사임당 반대’ 운동을 펼쳤던 문화미래 이프, 한국여성단체연합 등은 “현대 여성이 살아가는 데 의미를 주는 인물이 뽑혀야 여성계 대표로서 의미가 있다.”고 반대하고 있다. 일부 여성단체측은 “여론 수렴과정에서 여성 인물 중 유관순에 대한 지지도가 가장 높았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결국 신사임당이 선정됐다.”며 선정과정의 투명성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5000원권의 초상인물이 사임당의 아들인 율곡 이이로 결과적으로 모자(母子)가 함께 화폐에 등장하게 됐고,5000원권의 보조 소재도 사임당이 그린 것으로 전해지는 초충도(草蟲圖·풀과 곤충)여서 지폐도안의 통일성이 저해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신사임당은 이름은 인선이고 호가 사임당으로 1504년 강원도 강릉에서 태어난 조선 중기 여류 문인 및 서화가다. 남편 이원수와의 사이에 네 아들과 세 딸을 두었는데 이 중 셋째 아들이 이이로 조선의 대학자가 됐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나이가 많지요, 500살 미녀 에 얽힌 수수께끼

    나이가 많지요, 500살 미녀 에 얽힌 수수께끼

    어떤 이는 지난해인 2006년이 모나리자 탄생 500주년이라고 하고 어떤 사람은 그림이 1507년 완성된 것으로 보아 2007년이 500주년이라고 얘기한다. 결코 화려하지 않은 검은 의상을 입고 상반신을 우측의 관객 쪽으로 향하면서도 얼굴은 정면을 바라보며 입가에 신비스런 엷은 미소를 띠고 있는 매력적인 여성의 이 스푸마토(Sfumato)기법의 상반신 유화초상은 역사상 가장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킨 미술작품임에 틀림없다. 눈썹은 면도로 밀었는지 없고 머리엔 잘 보이지 않지만 베일을 쓰고 있다. 환상적인 자연 풍경이 멀리 보이는 테라스에서 난간과 두 개의 원주를 뒤로 한 채 반원형 나무의자에 앉아 왼팔은 의자 팔걸이에 올려놓고 오른 손은 왼손 손목 위에 포개 놓고 있다. 모나리자 때문에 떼돈 번 사나이 얘기부터하자. 오래 전 미국의 흑인 저음가수 낫킹콜이 한국을 다녀간 적이 있다. 그가 지금 세종문화회관 자리에서 공연할 때 그 유명한 노래 ‘모나리자’를 스스로 피아노를 치면서 부르는 것이 아닌가? “모나리자, 모나리자. 그대 이름을 불러본다. 신비한 미소를 띤 부인이여....” 1950년 6월 10일 낫킹콜이 발라드풍의 ‘모나리자’를 불러 이를 모나리자에게 바치자 300만장의 레코드판이 팔려나가는 기적적인 매상을 보여 세상을 놀라게 한 것이다. 이 젊은 날의 멜로디는 지금도 내 귓가에 흐르고 있다. 나의 가라오케에서의 18번의 하나는 바로 이 노래 모나리자가 된 것이다. 모나리자로 큰돈을 챙긴 여인은 당대의 할리우드 스타 줄리아 로버츠이다. 그녀는 2003년 모나리자 이름을 빌린 영화 <모나리자 스마일>에 미국 뉴잉글랜드의 명문 웰즐리 여대에 새로 부임한 미술사 교수로 출연하면서 몸값으로 당시 우리 돈으로 환산 약 2백 80억 원을 챙겼다. 그런데 이 영화는 내용 면에서 모나리자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모나리자의 미소는 무슨 감정을 표현하고 있을까? 2005년 말 화란의 암스테르담 대학과 미국 일리노이 대학연구팀의 감성 인식 컴퓨터를 통한 그림 이미지 공동연구 결과 모나리자의 미소는 인간의 여섯 가지의 감정 표현 중에서 행복 83%, 불쾌함 9%, 두려움 6%, 분노 2%, 무표정 1%로 구성되어 있으며 놀라움은 전혀 없는 것으로 분석되었다. 모나리자는 도대체 누구인가? 모나리자의 정체를 놓고 몇 가지 대조적인 주장이 있다. 1)모나리자를 그린 다빈치가 죽자 그의 전기를 쓴 조르지오 바사리의 주장에 의하면 피렌체의 비단 장사였던 프란체스코 델 조콘도의 부인이라 본다. 그리하여 조콘도의 여성형인 ‘라 조콘다’로 불리기도 한다. 그러나 모나리자 혹은 라 조콘다로 불린 것은 19세기에 와서 이고 그 전에는 ‘한 피렌체부인의 초상’ 혹은 ‘면사포를 쓴 창부’라고 불리기도 했다. 2004년 이태리 학자 쥬세페 팔란티니는 이 모나리자가 1479년 생으로 24세 때 이 화가의 화판 앞에서 포즈를 취하기 시작하였으며 5명의 자녀를 낳고 1542년 63세로 죽어 피렌체의 상오솔라 수도원에 묻혔음을 밝혀낸다. 2) 벨연구소의 슈와르츠 박사는 컴퓨터로 디지털 해상분석을 통하여 얼굴 라인을 대조한 결과 이 그림은 여성화되긴 했으나 화가 레오나르도 다빈치 자신의 초상화라는 주장을 도출하였다. 그렇다면 여장남인으로서 다빈치의 얼굴윤곽을 닮은 가공의 여인이라는 얘기가 아닌가? 3) 미술 감정가 헨리 퓰리처는 다빈치의 후견인이었던 밀라노의 메디치가(家)의 쥴리아노의 부인 프랑카빌라 공작부인일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녀의 애칭도 ‘라 조콘다’였다. 4) 다른 연구가 뤼르센은 그림의 여인은 밀라노 공작의 부인인 아라곤 이사벨라라고 주장하였다. 다빈치는 11년간 밀라노 공작을 위하여 궁정화가로 일하였었다. 다른 유명화가 라파엘이 그린 밀라노 공작부인과도 닮아 있기 때문이다. 모나리자는 어디에 그려져 있는가? 보통 캔버스가 아니라 포플러 나무판에 그려져 있다. 모나리자의 화폭 크기는? 세로 77cm, 가로 53 cm이다. 35인치 텔레비전 화면의 크기와 비슷한 정도이다. 모나리자의 몸값은 얼마짜리인가? 기네스북에 의하면 보험에 든 그림 중에 가장 값비싼 그림이 바로 모나리자라고 한다. 모나리자는 1962년 당시 미국 순회 전시를 위한 보험에 들 때 실제로 1억불로 감정하였다. 이것을 현가(2006년 기준)로 치면 적어도 6억 7천만 달러로 환산할 수 있다. 우리 돈으로 6천억 원 이상의 가치가 있다. 모나리자를 욕보인 남자들은 누구인가? 1) 1956년 신원미상인 사람이 산을 모나리자에 뿌려 그림하반을 심각하게 손상시켰다. 2) 같은 해 12월 30일 남미 볼리비아사람인 우고 비예가스는 모나리자에 돌멩이를 던져 손상을 입혔다. 그 결과 모나리자의 왼쪽 팔꿈치에 상처가 가게 되었다. 이제는 그림에 방탄유리를 씌어 전시 중이다. 3) 1911년 8월 21일 이태리인 빈센초 페루지아라는 루브르미술관 목공 직원은 모나리자를 훔쳤다. 그녀를 납치(?)후 2년간 자기 아파트에 감금하였다가 피렌체의 미술상 알프레도 게리에게 팔았고 이것이 뒤 미쳐 알려지자 우여곡절 끝에 이태리에서 순회전시가 끝나면서 루브르로 되돌아오게 되었다. 페루지오는 나폴레온 시대에 프랑스가 빼앗아간 이태리의 문화유산을 도루 찾아오기 위할 목적으로 훔쳤다고 증언하였으나 실은 아르헨티나의 사기꾼 발피에르노에 고용되었었다. 그는 모사전문 화가 이브 쇼드론에게 모나리자의 모작을 그리게 하여 진품이라고 속이고 미국의 부호 여섯 명에게 각각 팔아치워 큰돈을 챙겼다. 페루지오는 1년 15일 감옥에 있다가 이태리에 대한 애국적인 입장을 참작하여 풀려났다. 이를 사람들은 20세기 최대의 미술품도난 및 사기 사건으로 일컫고 있다. 20세기 최고의 화가 파블로 피카소는 모나리자 때문에 구치소 신세를 졌다? 1911년 모나리자가 도난당했을 때 프랑스의 전위 시인 기욤 아포리넬리라는 사람이 용의자로 체포되었고 그의 친우였던 파블로 피카소도 이어서 체포 구금되었다. 나중 그들은 풀려났지만 피카소는 일생 모나리자의 저주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존 F 케네디 대통령과 마릴린 몬로와 모나리자의 인연은? 1963년 세계적 팝 아티스트 앤디워홀은 현대적 아이콘으로 모나리자를 나염 천에 그려 넣음으로써 그가 즐겨 그린 마릴린 몬로와 함께 자기의 마스코트임을 나타내었다.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1962년 모나리자가 미국 나들이를 했을 때 그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였다. 케네디 대통령이 그 앞에서 포즈를 취함으로써 그와 내연의 관계에 있었다는 마릴린 몬로와는 앤디워홀의 붓끝을 통해 모나리자를 사이에 두고 다시 연계되는 꼴이 되었다고나 할까? 클린턴 대통령과 모나리자의 관계는? 미국의 뉴요커 지는 1999년 2월 8일 모나리자 이미지를 모니카르윈스키와 합성한 그림 ‘모나 모니카’를 표지에 실음으로써 클린턴에게 아픔을 주었다. 모니카르윈스키는 클린턴 대통령 집무실 옆방에서 지퍼게이트라 불리는 오랄 섹스 스캔들의 장본인이다. 살바도르 달리와 모나리자의 콧수염? 1919년 다다이즘화풍의 거장 마르셀 뒤샹이 모나리자의 모습에 콧수염과 염소 턱수염을 단 그림을 발표한바 있으나 이에 한 술 더 떠서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는 1954년 콧수염 달린 자신의 초상화를 모나리자 스타일로 형상화하였다. 글 최정호 한양대 겸임교수, 경영학박사, <CEO여 문화코드를 읽어라>의 저자     월간 <삶과꿈> 2007.09 구독문의:02-319-3791
  • [부고] 히로시마 원자폭탄 투하 美 조종사 티베츠 사망

    1945년 8월6일 일본 히로시마에 원자폭탄 ‘리틀 보이’를 투하했던 미국인 조종사 폴 티베츠 예비역 준장이 1일(현지시간) 숨졌다.92세. 티베츠의 손녀 키아는 “할아버지가 3개월여 전부터 건강이 나빠져 이날 별세했다.”고 밝혔다. 그는 62년 전인 45년 8월6일 모친의 이름인 ‘에놀라 게이’로 명명한 애기(愛機)에 맨해튼 프로젝트라는 비밀계획 속에 개발된 우라늄 원자탄을 싣고 히로시마로 날아갔다. 마침내 이날 오전 8시 15분 9.44㎞ 상공에서 히로시마의 일본공군 본부를 겨냥해 원폭을 투하했다.B-29는 당시로서는 4개의 엔진을 단 최신예였다. 그는 자서전 ‘티베츠 이야기’에서 “거대하고 검붉은 버섯구름 띠가 4만 5000피트(13.7㎞) 상공까지 너비 3마일(약 4.9㎞)로 퍼지는 무시무시한 광경을 지켜봤다.”고 회고했다.B-29는 폭격으로 불길이 치솟는 도시 상공을 피해 옆으로 날아갔다고 덧붙였다.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고유가? 난 몰라” 세계에서 가장 작은 자동차

    “고유가? 난 몰라” 세계에서 가장 작은 자동차

    살인적인 고유가가 지속되면서 세계적으로 경차가 큰 인기를 얻고 있다. 그렇다면 세계에서 가장 작고 가벼운 차는 무엇일까? 최근 해외 네티즌들 사이에 ‘가장 작은 차’로 기네스북에 올라있는 한 초소형 자동차가 화제에 올랐다. 영국의 필 엔지니어링(Peel Engineering)사가 만든 삼륜차 ‘PEEL P50’이 바로 그것. 전체 길이 134cm, 폭 99cm에 불과한 P50의 무게는 59.8kg으로 성인 남자 한명 체중보다도 가볍다. 49cc 가솔린 엔진을 장착했으며 3단 변속기어를 사용해 시속 60km까지 속도를 낼 수 있다. 후진은 되지 않지만 필요할 때는 차에서 내려 쇼핑백처럼 차를 끌고 다닐 수 있는 손잡이가 후면에 달려있다. 이 귀여운 자동차는 지난 1962년부터 생산됐지만 실용적이지 못한 성능 때문에 3년간 100대 정도 생산 된 뒤 1965년 단종됐다. 한편 P50을 생산했던 필 엔지니어링사는 이후 ‘필 트리덴트’라는 초소형 2인승 자동차를 내놓기도 했다. P50과 트리덴트는 지난 2004년 세계 소형차 경연대회에서 1위를 수상하며 마니아들 사이에서 세월을 넘은 인기를 끌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박성조 기자 voicechord@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한국의 대표기업] (3) SK 에너지

    [한국의 대표기업] (3) SK 에너지

    1980년 정부의 민영화 방침에 따라 대한석유공사가 시장에 나왔다. 당시 선경(현 SK), 삼성, 남방개발이 치열하게 맞붙었다.2차 오일 쇼크가 전국을 강타했던 때라, 정부는 원유 도입 능력을 으뜸으로 쳤다. 행운의 여신은 선경 편이었다. 최종현 당시 선경그룹 회장(1998년 별세)이 미국 시카고대에 다닐 때 사우디아라비아 왕자와 같은 기숙사를 썼던 것이다. 공적인 사세(社勢)와 사적인 인연까지 더해져 선경은 사우디로부터 일정 수준의 원유 공급을 보장받았다. 결국 석유공사는 선경 품에 안겼다. 오늘날의 SK에너지가 있게 된 시초다. ●두번의 석유파동이 키운 에너지 전문기업의 꿈 그렇다면 최 회장은 왜 정유회사에 손을 뻗쳤을까. 당시 선경은 ‘스마트 학생복’으로 유명한 섬유 전문 그룹이었다. 올해로 입사 22년째인 SK의 한 임원은 1일 당시를 이렇게 회고했다. “화학섬유의 주된 원료가 석유이다 보니 선대 회장(최종현)께서 언제부턴가 ‘석유에서 섬유까지 수직계열화’라는 바람을 갖게 됐다. 여기에 70년대 두번의 석유파동을 겪으면서 석유회사에 대한 꿈이 더 강렬해졌다.” 국내 1호 정유사인 석유공사 인수로 최 회장은 숙원을 이루게됐다. 그룹의 간판이 섬유에서 에너지로 바뀌는 순간이기도 했다. 1983년 최 회장은 또 한번의 결단을 내렸다. 국내 기업으로는 처음으로 해외 유전개발(예멘 마리브 광구)에 뛰어든 것이다.1988년 이 광구에서 처음 석유가 쏟아지자 최 회장은 “자원 확보가 설사 회사에는 큰 이익이 되지 않는다 할지라도 자원이 별로 없는 우리나라에는 국가적 이득”이라며 현지 직원들을 격려했다. ●SKT 제치고 그룹내 시가총액 1위 등극 SK에너지는 지난달 창립 45주년을 맞았다. 모태인 석유공사 설립일(1962년 10월)을 기준으로 해서다. 석유공사는 1980년 선경에 인수되면서 ‘유공’으로 이름을 바꿨다가 1997년 SK㈜를 거쳐 올 7월 SK에너지로 다시 이름을 바꿨다. 그 사이 하루 3만 5000배럴이던 정제량은 84만배럴로 24배 늘었다. 울산공장은 정제량 기준 단일 공장으로는 베네수엘라 국영석유회사(PDVSA)에 이어 세계 두번째로 크다. 예정대로 내년 SK인천정유와의 합병이 마무리되면 하루 정제량 100만배럴 이상(111만 5000배럴)의 매머드급 정유회사가 된다. 정유회사의 경쟁력을 가늠짓는 고도화 설비(질 낮은 벙커C유에서 고부가가치의 휘발유 등을 뽑아내는 장치) 능력도 하루 16만 1000배럴(현재 10만배럴)로 늘어난다. 시련도 있었다. 낙후된 지배구조를 틈타 국제 투기자본이 경영권을 공격해온 것이다.2003년을 떠들썩하게 한 ‘소버린 사태’이다. 그러나 위기는 기회가 됐다. 경영권 방어를 위해 필사적으로 기업 체질을 변화시킨 결과, 재무지표가 눈에 띄게 향상됐다. 2004년 순익이 처음 1조원을 넘어섰다. 이후 3년째 조(兆) 단위 이익을 내고 있다.10조원을 맴돌던 매출은 2005년 마침내 20조원을 돌파했다. 덕분에 주가가 껑충 상승, 1일 종가(20만 4000원) 기준 시가총액이 약 19조원으로 불어났다. SK텔레콤(17조 2537억원)을 제치고 명실상부한 맏형 지위를 굳힌 것이다. ●신헌철 사장,“포스트 석유시대도 준비” 최근 SK에너지의 눈에 띄는 움직임은 해외사업 강화다.“회사의 성장과 생존은 글로벌에 달려 있다.”는 최태원(최종현 회장의 맏아들) 그룹 회장의 강력한 주문과 무관치 않다. 이미 세계 14개국 26개 광구에서 5억 1000만배럴(하루 2만 4000배럴)의 원유를 확보해 놓았다. 우리 국민들이 250일간 쓸 수 있는 엄청난 양이다. 이 양을 2015년까지 10억배럴(하루 10만배럴)로 끌어 올리겠다는 것이 현 경영진의 야심이다. ‘마라톤 최고경영자’로 유명한 신헌철 사장은 “요즘처럼 고유가의 환경 변수에 좌지우지되지 않으려면 자원 확보는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틈날 때마다 강조한다. 수소 등 대체 에너지 개발에도 꾸준히 투자,‘포스트 석유시대’를 향한 대비에도 들어갔다. SK에너지는 국내 기업 가운데 유일하게 세계 100대 석유기업(90위)에 포함됐다. 아시아·태평양지역에서는 4위다. 미래 목표가 몇 위인지 물었다. 돌아오는 홍보 담당 임원의 대답이 걸작이다.“1등도 좋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주변 사회를 어떻게 더불어 행복하게 하느냐이다.” 그룹의 모토인 ‘행복날개’가 떠올랐다. 안미현기자 hyu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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