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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울산 대왕암공원 50여년 만에 새단장

    울산 대왕암공원 50여년 만에 새단장

    울산 동구 대왕암공원이 공원으로 지정된 이후 50여년 만에 해양, 휴양, 운동생활, 테마, 등대 등 5개 지구로 개발된다. 16일 울산시에 따르면 대왕암공원(조감도)은 시비 975억 9400만원과 민자 440억 7000만원 등 총 1416억 6400여만원의 사업비를 들여 2015년까지 각종 공원시설을 조성하기로 했다. 대왕암공원은 울창한 해송림 및 기암괴석으로 이뤄져 1962년 5월 공원으로 결정됐으나 그동안 공원조성 계획이 수립되지 않아 방치돼 왔고, 최근에는 공원조성 기본계획에 따라 산책로 정비와 묘지 이장 등을 추진했다. 이에 따라 시는 대왕암공원을 테마광장지구, 운동생활지구, 해양테마지구, 가족휴양지구, 울기등대지구 등 5개 지구로 개발하기로 했다. 해양테마지구에는 해양생태수족관과 스포츠게임센터, 돌고래체험장, 선박을 비롯한 각종 조형물, 공연장 등이 들어서 대왕암공원의 핵심지구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가족휴양지구에는 가족단위로 피크닉과 야영을 즐길 수 있도록 숲속 야영장이 들어서고, 운동생활지구에는 각종 스포츠시설로 조성될 예정이다. 입구 쪽의 테마광장에는 주차장과 상가, 야외공연장 등이, 울기등대지구에는 인공물 대신 자연을 최대한 살려 천혜의 절경을 살려낼 방침이다. 특히 대왕암공원은 각 지구별 시설물 조성 이후 세계 최대 산업시설인 현대중공업과 천혜의 자연경관을 지닌 강동권과 연계할 경우 동해안 해안관광의 한 축을 이룰 것으로 전망된다. 시 관계자는 “보상작업이 끝나면 시비를 투입해 도로와 광장, 산책로, 주차장 등 공원기반시설을 우선 조성하고, 수익이 발생하는 시설을 민자로 유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울산 박정훈기자 jhp@seoul.co.kr
  • [부고] 이상철 전 국민은행장 별세

    이상철(李相哲) 전 국민은행장이 13일 오후 1시 지병으로 별세했다. 73세. 이 전행장은 1960년 농업은행 공채로 입행한 뒤 62년 국민은행 창립 멤버로 옮겨 87년 부행장을 거쳐 88년 국민은행장에 올랐으며 97년 국민신용카드 회장을 마지막으로 금융계를 떠났다. 은행장 재임 때 5조 원에 불과하던 수신액을 15조 원으로 늘리고, 고객 수도 1천만 명 넘게 확보하는 등 국민은행이 리딩뱅크로 발돋움하는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전국은행연합회장을 지내던 96년 금융실명제 조기 정착과 저축증대 공로로 금탑산업훈장을 받았다. 유족으로는 부인 강명자씨와 찬희(CH 인베스트먼트 대표)·수경·태희(방송통신위원회 대변인) 등 2남 1녀가 있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발인은 16일 오전 7시. (02)3410-6917.
  • [열린세상] 오바마와 쿠바/이성형 외교안보연구원 객원 교수·중남미 전문가

    [열린세상] 오바마와 쿠바/이성형 외교안보연구원 객원 교수·중남미 전문가

    오바마 행정부는 선거공약에서 약속한 대로 쿠바를 상대로 한 무역과 여행제한 조치를 풀었다. 이제 쿠바계 미국인은 3년에 한 번 방문할 수 있던 쿠바내 가족을 매년 만날 수 있다. 부시 행정부는 3년에 한 번, 최장 14일, 하루 경비 50달러로 이들의 쿠바 여행을 묶어 두었다. 달러 소득이 카스트로 정부를 이롭게 한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오바마 행정부는 달러를 풀어서 쿠바를 민주화하겠다는 전략을 택했다. 일단 아무런 조건도 달지 않고 여행제한 조치를 풀었다. 티머시 가이트너 재무부 장관은 이 조치가 “보다 바람직한 방법으로 쿠바의 민주적 변화를 촉진하고 국민의 생활을 개선시키려고 우리의 쿠바에 관한 정책을 바꾼 것”이라고 말했다. 새 법은 여행 조건을 1년에 한 번, 체류기간은 원하는 만큼, 하루 경비는 170달러로 정했다. 가족 범위도 직계 존속으로 제한하던 것을 삼촌과 사촌까지 넓혔다. 또 의약품과 식량 수출에 관한 규제도 완화했다. 심지어 이론적으로는 쿠바계가 아닌 미국 시민도 여행을 할 수 있게 됐다. 다만 여행경비 제한 때문에 실현되기 힘들 뿐이다. 케네디 행정부가 여행금지 조치를 취한 1962년 이래 가장 큰 폭의 대 쿠바 개방조치이다. 오바마가 당선된 이래 라울 카스트로 대통령은 대미 관계 개선을 은근히 바랐다. 형님 피델과 달리 그는 경제개혁의 폭을 확대하고 대미 관계가 개선되길 희망했다. 라틴아메리카 국가들도 그의 노력을 지지했다. 쿠바는 다자안보기구인 ‘리오 그룹’에 회원국으로 가입하면서 미주 외교무대로 복귀했다. 올해에 이미 중남미 대통령 8명이 쿠바를 찾았다. 물밑 조율이 시작된 것이다. 가장 중요한 조율사는 브라질의 룰라 대통령이다. 오바마 행정부는 올 4월에 트리니다드토바고에서 개최되는 미주정상회담을 새로운 대화외교를 실험할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한다. 대 쿠바 개방조치로 중남미 국가들에 확실한 메시지를 보여주었다. 브루킹스 연구소의 한 정책보고서는 쿠바의 인권 개선과 민주화를 이야기하기 전에 국교 수립을 선행하라고 권한다. 미국의 수교국 가운데 인권 미달 국가가 많이 있기 때문에 이런 기준을 고집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국교 수립이 오히려 인권 개선과 민주화를 촉진할 것이라고 보고서 작성자들은 주장한다. 이제 공은 쿠바로 넘어갔다. 미국의 대 쿠바 정책 변화가 물 밑에서 진행되자 정작 초조해진 것은 쿠바의 집권층이다. 지난 2월 대통령 취임 1주년을 맞이한 라울 카스트로는 혁명 이후 최대 규모의 물갈이를 실행했다. 각료 12명을 교체한 것이다. 모두 라울 측근들로 대부분 군부에서 충원되었다. 그래서 ‘총참모부 내각’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경제개혁과 대외개방을 정치적 혼란 없이 추진하기 위해서는 단합의 중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 와중에 피델의 심복으로 오랫동안 쿠바 정국의 핵심이던 부대통령 라헤, 총리 페레스 로케가 물러났다. 라헤는 근 20년간 카스트로를 보필했고, 페레스 로케는 카스트로의 개인비서에서 일약 외무부 장관으로 승진하여, 그의 복심으로 불렸다. 두 사람은 국내외에 신망이 높은 정치인으로 모두 차기 대권 후보자로 손꼽혔다. 그들에겐 그동안 쌓은 정치적 자산이 독이 되었다. 권력의 논리는 냉혹했다. 국민에게 인기가 있고, 외국에 지인이 많은 정치적 자산가였기에 라울은 이들을 불편하게 여겼을 것이다. 피델은 이들이 ‘권력의 달콤함’에 빠졌다고 비판했고 동생 라울의 손을 들어주었다. 두 사람은 “저지른 잘못을 시인하고 책임을 통감한다.”는 자술서를 낭독하고 모든 직책에서 물러났다. 제2인자가 불필요한 쿠바식 물갈이의 통과의례이다. 쿠바 정국은 오바마의 개방정책으로 앞으로 큰 격변을 맞이할 가능성이 높다. 이성형 외교안보연구원 객원 교수·중남미 전문가
  • 한국인 재판관 ICC 수장됐다

    한국인 재판관 ICC 수장됐다

    인종청소 등 반(反)인류범죄 및 전범을 단죄하는 세계 유일의 영구적 형사법원인 국제형사재판소(ICC) 수장에 송상현 재판관이 11일 선출됐다. 동료 재판관들의 호선으로 선출된 송 신임 소장은 전임 필립 커시(캐나다)의 뒤를 이어 앞으로 3년 동안 국제형사재판소를 이끌게 된다. 파투마타 뎀벨레 디아라(말리), 한스페터 카울(독일) 부재판소장도 함께 선출됐다. 현재 107개국이 가입한 ICC는 구 유고연방과 아프리카 르완다 내전 등을 겪은 국제사회의 각성 속에 1998년 채택된 ‘로마협약’에 따라 2002년 7월 네덜란드 헤이그에 설립됐다. ICC는 범죄발생 지역이나 범죄인의 국적이 조약 가입국인 경우 자동적으로 관할권을 행사한다. ICC는 설립 이후 수단 다르푸르, 중앙아프리카공화국 내전 등을 조사해 각각 알 바시르 수단 대통령, 장 피에르 벰바 전 DRC 부통령 등에 대한 체포명령을 내리기도 했다. 루이스 모레노 오캄포(아르헨티나) 수석검사가 이끄는 검찰실 관련 이슈를 제외한 재판소 내 운영과 행정을 전적으로 책임지게 될 송 소장은 경기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고, 1962년 행정고시에 합격한 데 이어 1963년 사법고시(16회)까지 합격해 법조인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는 지난 1972년부터 모교에서 교수로도 활동해 왔으며, 국제거래법학회 회장, 한국 법학교수회장 등을 지냈다. ICC는 “동료 재판관들이 ICC 초기부터 활약해 온 신임 송 소장이 법원 운영, 형사소송에서의 ‘증거주의’ 등과 관련, 폭넓은 실무·학문적 경험을 고루 갖춘 점을 높이 평가해 절대 다수의 찬성으로 재판소장으로 선출했다.”고 밝혔다. 외교통상부는 “ICC 소장 선출은 우리나라 출신 재판관이 처음으로 국제재판소 소장이 된 것으로, 국제법 분야에서 우리나라의 위상을 크게 높인 것”이라고 논평했다. 오이석기자 hot@seoul.co.kr
  • 北 1977년 ICAO·1985년 IMO 가입

    ICAO는 캐나다 몬트리올에 있는 민간항공 질서·협력을 위한 국제기구다. 우리나라는 1952년, 북한은 1977년에 각각 가입했다. 국제 해상안전 확보와 국제 해운의 차별·제한 철폐 등을 위한 국제기구인 IMO는 영국 런던에 있다. 우리나라는 1962년, 북한은 1985년에 회원국이 됐다. 북한이 ICAO와 IMO에 위성 발사를 위한 준비사업으로 해당 규정들에 따라 비행기와 선박들의 항행 안전에 필요한 자료들을 통보했다고 밝힌 것은 인공위성 등 우주물체를 발사할 경우 회원국으로서 정보를 제공해야 하는 규정에 따른 것이다. ICAO와 IMO는 해당 규정과 부속서를 통해 회원국들이 항공 및 해상안전 위험에 관련된 인공위성 발사 정보를 의무적으로 제공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장거리 미사일 등 군사적 목적의 로켓은 우주물체에 해당되지 않아 정보 제공 대상에서 제외된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야생초 이야기②] 복수초

    [야생초 이야기②] 복수초

    세상엔 아무리 해도 안 되는 일이 얼마든지 있음에도 “하면 된다”는 문구를 벽에 붙여놓고 죽을똥 살똥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 말 속엔 목숨 걸고 시도하면 천우신조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담겨 있다. 또한 자신의 능력을 넘어서는 일을 해낼 수도 있다는 믿음이 배어 있다. 말에는 주술적인 힘이 있기 때문이다. 해가 바뀌면 수첩에 희망의 어휘들을 적어놓고 각오를 새로이 하는 이유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겠다. 그 아주 먼 옛날, 겨울이 채 가기 전, 아직도 추위는 문풍지를 비집고 살을 파고든다. 멱서리에 고구마도 다 떨어져 가고 겨울식량도 바닥이 보이기 시작한다. 새해가 밝았지만 넉넉하지 못한 살림에 아이들에게 넉넉한 웃음 한 번 보여줄 수 없다. 그렇다고 어쩔 것인가? 먹을 것은 부족해도 등이나 따숩게 군불이나 때자. 마른 삭정이를 꺾으러 지게를 짊어지고 산에 들었다. 천지에 아직도 봄기운은 기척도 없는데 이때 마침 바야흐로 녹기 시작하는 잔설을 헤치고 솟아나 샛노랗게 피는 꽃 몇 송이를 보았다고 하자. 신기하게도 이 꽃 주변에는 눈이 녹아 있다. 막 열리기 시작하는 꽃잎은 황금의 잔처럼 생겼다. 꽃잔을 기울이면 노오란 황금물이 주르륵 쏟아질 것처럼 노란 빛을 가득 담고 있다. 펼쳐진 꽃잎은 살얼음이 햇빛에 비추일 때처럼 반짝반짝 날빛이 감돈다. 햇살이 비치기 시작하면 꽃잎은 서서히 벌어지고 그늘이 지기 시작하면 서서히 꽃잎을 닫는다. 꽃잎들이 여인의 옷매무새처럼 정결하다. 아직 봄이 채 오기 전이라 사람들은 이 무슨 조화일까 아연 넋을 잃게 된다. 눈과 얼음을 헤치고 나와 아기의 살결 같은 여린 꽃잎을 피우는 이 꽃을 보면 육신의 고달픔이나 배고픔은 잠시 잊게 될 것이다. 그 옛날 사람들은 맨 처음 이 꽃에게 ‘복수초’라 이름을 붙여주었단다. ‘복수’라 하니 놀라지 말자. 행복과 장수를 뜻하는 ‘福 ·壽’인 것이다. 어찌 아니겠는가? 살아온 날들이 간난고한의 세월일수록 다복과 무병장수가 간절하지 않겠는가? 언어의 주술적인 힘을 여기에 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이 꽃의 다른 이름은 원일화(元日花)라 하는데 새해 벽두의 이른 날에 피는 꽃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가까운 일본에서는 새해가 되면 복수초를 화분에 담아 선물하며 복과 장수를 비는 풍습이 있다 하니 우리와 같은 의미로 이 꽃을 대하는 모양이다. 가장 일반적인 이름인 복수초 말고도 여러 이름을 가지고 있다. 금으로 된 잔과 같이 생겼다 해서 ‘측금잔화’, 눈과 얼음을 헤치고 핀다 하여 ‘눈색이꽃’, 눈 속에 핀 연꽃과 같다 하여 ‘설연화’ 등이 그것이다. 연꽃과 마찬가지로 낮엔 피었다가 밤엔 오므리고 있다. 서양에서는 붉은색 복수초가 있는 모양이다. 그 이름이 아도니스인데,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미소년 아도니스의 피가 묻은 것이라 하여 그렇게 부른단다. 우리나라 전역에 분포하지만 내륙 산간과 해안, 그리고 제주도에 자생하는 복수초는 그 이름과 함께 형태가 조금씩 차이를 보인다. 내륙 산간에 자생하는 복수초가 가장 보편적인 것으로 줄기가 나누어지지 않고 줄기 속이 비어 있다. 꽃이 다른 복수초보다 작다. 꽃이 핀 지 한참이나 되어 잎이 나중에 나오기 시작한다. 꽃받침은 다른 복수초보다 많아 8개이고 꽃잎과 그 길이가 비슷하다. 개복수초라고 불리는 것이 있는데 이것은 꽃과 잎이 같이 피어나거나 잎이 먼저 나온 다음에 꽃이 피기 시작한다. 줄기 속이 꽉 차 있는 것이 다른 복수초와 구분된다. 그렇다고 이를 확인하려고 줄기를 일부러 잘라보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그 이름이 개복수초이면 어떻고 애기복수초이면 또 어떤가, 어쩔 텐가? 개복수초는 우리나라의 해안가에 자생하는 것이 보통이다. 또 다른 특징은 꽃대가 나누어져 두 개 이상 꽃을 피운다. 그래서 가지복수초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제주도엔 세복수초라는 것이 있다. 일명 제주복수초라고도 한다. 육지보다 한참 늦어서 4월이 지나야 잎이 먼저 피기 시작하고 은색이 도는 꽃이 핀다. 이 빛깔 때문에 은빛복수초라 불리기도 한다. 개복수초와 마찬가지로 가지를 치고 여러 개의 꽃이 가지 끝에 핀다. 꽃받침도 개복수초와 마찬가지로 5~6개로 복수초보다 적다. 그러나 줄기는 개복수초와 달리 그 속이 비어있다. 동해안 어디에선가는 12월에도 복수초꽃이 피었다는 소식이 들려오기도 한다. 하지만 대개는 2월에 들어서면서 피게 되는데 복수초가 이렇게 일찍 피는 데는 다 까닭이 있다. 복수초는 큰나무들이 숲을 이룬 습기 많은 땅에 자생한다. 때문에 봄이 되고 여름이 되어 큰 초목들이 활동을 시작하면 햇볕과 영양분을 얻기 어려워진다. 큰 초목들이 햇볕을 가리기 전에 어서 크고 화려한 꽃을 피워 번식을 하고자 하는 것이다. 6월이 되면 복수초는 씨앗을 맺고 시들어서 그 흔적을 감추고 만다. 다른 식물들과의 경쟁을 피하여 이른 봄에 제 활동을 다 마치는 것이다. 복수초는 대부분의 미나리아재비과에 속하는 식물이 그렇듯이 독성을 가지고 있다. 이른 봄 들짐승들에게 뜯어 먹히지 않기 위하여 스스로의 몸에 독을 가지게 된 것은 아닐까? 제 유전자를 자손만대에 전하기 위해서, 아니 살아남기 위해서 터득한 지혜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들짐승들은 다 피해 가는데 사람만이 유독 독초보다 독해서 이를 약으로 쓴단다. ‘아도닌’이라는 성분이 있어 강심작용과 이뇨기능을 도와 가슴 두근거림, 심장쇠약, 신장쇠약 등에 효능을 발휘한다고 한다. 그러나 이를 믿고 함부로 썼다가는 독에 오히려 몸을 상하는 경우가 있다 하니 그런 일은 없어야 하겠다. 하지만 춥다고 잔뜩 움츠린 가슴, 경제가 어렵다고, 되는 일이 없다고 불안하고 불편한 마음에는 분명 효과가 있을 것으로 믿는다. 이 꽃 사진만 보아도 심장이 두근거리지 않는가? 이 복수초를 두고 새봄에는 누구나 복 많이 짓기를, 그리하여 장수하기를 빌어보자. 그것이 간난고한의 세월에 복수하는 길 아니겠는가? 이 정도의 복수라면 아름답지 않겠는가? 글 복효근 시인 ●복효근·1962년 전북 남원 출생. 1991년 계간 《시와시학》 등단. 시집 《당신이 슬플 때 나는 사랑한다》 《버마재비 사랑》 《새에 대한 반성문》 《누우떼가 강을 건너는 법》 등. 1995년 편운문학상 신인상, 2000년 시와시학 젊은 시인상 수상.
  • [新 귀거래사] ‘가문학 권위자’ 이수봉 충북대 명예교수

    [新 귀거래사] ‘가문학 권위자’ 이수봉 충북대 명예교수

    우리나라 근대화의 전초 기지인 울산. 바다를 낀 작은 도시였던 울산은 1997년 광역시로 초고속성장했다. 1962년 시로 승격한 지 35년 만이었다. 경향 각지에서 산업 일꾼들이 모여들면서 인구가 110만명에 이르지만 여전히 잠재력이 큰 도시다. 이 과정에서 울산은 대한민국의 ‘산업수도’라는 명성을 얻었다. 정체성의 혼란이란 ‘성장통(成長痛)’도 적잖이 겪고 있다. 현재 울산 인구의 80%가량이 외지 출신이다. 이런 가운데 울산의 정체성을 찾아 들려주는 여든의 노교수가 있다. 5일 울산 울주군 두동면 치술령 아래 작은마을 이전리를 찾았다. 신라 충신 박제상의 유적을 간직한 마을에는 이수봉(80) 충북대 명예교수가 15년 전 정착했다. 그는 국문학사에 ‘가문소설(家門小說)’이라는 한 장르를 발굴·정립한 ‘가문학’의 권위자다. 그는 “울산은 30~40년 된 운좋은 산업도시가 아니라 천년이 넘는 역사와 문화를 지닌 전통도시”라고 자랑했다. ●94년 정년퇴임 후 고향 위한 일 힘쏟기로 그는 1994년 정년퇴임 이후 충북·서울·울산을 오가는 분주한 삶을 보내던 중 고향을 위한 일에 마지막 힘을 쏟기로 결심했다. 첫 시작은 도산서원 원장을 지낸 울산 출신 한학자 박용진(1902~1989년)의 서적을 정리해 알린 것. 그는 울산 북구 박용진의 서가에서 유목(글씨), 간찰(편지), 저서 등 1500종에 달하는 방대한 서적을 다시 정리해 국사편찬위원회에 소개했다. “우리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뭔지 압니까. 바로 ‘뿌리’ 입니다. 뿌리는 오늘의 나를 있게 했고, 내일의 나를 만드는 근본입니다. 그런데 요즘엔 뿌리를 잊고 사는 이들이 많아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울산의 정체성 찾기 운동은 38년간의 교직생활을 통해 쌓은 전문성이 큰 힘이 됐다. 고전문학을 전공한 그는 대학에서 내내 ‘가문’을 가르쳤다. 이런 까닭으로 우리나라의 여러 문중에 대해 해박하다. ●지역 일간지에 연재·요가·등산도 즐겨 2000년부터 지역 일간지에 ‘울산 옛 이야기’와 ‘철 따라 살펴보는 세시순례’ 등을 잇따라 연재하고 있다. 울산 박씨 종가의 서가를 열람하다 ‘부북일기(赴北日記)’를 발견했다. 이는 조선 선조때 울산 출신 무관 부자(父子)의 함경도 회령지역 생활상을 소상히 기록한 일기다. 대한광복회 총사령을 지낸 울산출신의 독립운동가 고헌 박상진(1884~1921년)의 한문 편지도 번역했다. 그가 고향으로 돌아오지 않았으면 쉬 드러나지 않았을 귀중한 사료들이다. “이유야 어떻든 울산 땅에 발을 딛고 사는 사람들은 모두 한 가족입니다. 그러나 상당수가 울산을 제대로 모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울산을 알리기 위해 명문가를 찾고, 서고에 쌓아둔 자료를 뒤지기 시작했습니다.” 요즘은 교통사고로 다친 부인을 간호하고 있다. 마을 노인들과 요가를 배우거나 등산을 즐긴다. 또 짬짬이 텃밭에서 상추와 고추·깨·마늘 등을 심고 가꾸는 재미도 붙였다. 날씨가 풀리면 그동안 생각해 왔던 울산 토박이 12개 성씨의 문집을 만들 계획이다. 자료 수집은 거의 끝났다. 그에 따르면 울산에는 학성 이씨와 송정 박씨, 달성(다전) 서씨 등 12개 성씨가 정착해 번성했다. 그는 서재에 놓인 상패 중 하나를 꺼내 보이면서 “울산시가 별로 한 것도 없는 늙은이에게 문화상까지 줬다.”면서 “남은 힘으로 울산의 뿌리를 더욱 파고들 계획”이라고 말했다. 글ㆍ사진 울산 박정훈기자 jhp@seoul.co.kr ● 이수봉 충북대 명예교수 약력 -1928년 11월25일생 -홍익대 국문과 졸업(1956년) -동아대 대학원 문학박사(1978년) -경북산업대 부교수(1968년) -충북대 사범대 교수(1976년) -충북대 박물관장(1979년) -호서문화연구소 소장(1990년) -문화교육부 문화재감정위원(1993년) -동아시아 고대학회 고문(1999년) -울산시 문화상 수상(2007년)
  • [내고장 이 맛!] 충북 옥천 ‘생선국수’

    [내고장 이 맛!] 충북 옥천 ‘생선국수’

    먹을 게 귀했던 1960년대. 개울에서 물고기를 잡아 내장을 빼낸 뒤 냇물에 씻는다. 고추장 양념을 넣고 끓인다. 푹 익은 고기를 뼈를 발라 먹은 뒤 남은 국물에 국수가락을 풀어 한번 더 끓여 빈속을 채운다. 어린 시절 개울가에서 매운탕 국물에 국수를 넣어 허겁지겁 먹던 그 맛이 생각난다면 충북 옥천의 생선국수를 찾을 일이다. 생선과 국수를 어떻게 같이 먹냐고 하겠지만, 한 번 먹어본 사람은 그 맛을 좀처럼 잊지 못한다. 생선국수를 만드는 법은 비교적 간단하다. 금강이나 대청호에서 잡힌 신선한 민물고기를 찜통에 넣고 중불에서 4~5시간 푹 끓인다. 국물이 뽀얗게 우러나면 채에 걸러 가시를 골라 낸다. 국물에 양념고추장을 풀어 간을 한 뒤 국수를 넣어 또 끓인다. 마지막으로 파·애호박·깻잎·미나리·풋고추 등을 넣고 한번 더 끓이면 생선국수가 완성된다. 후르륵 입속으로 면을 빨아들이면 육수에 녹아든 민물고기 살들이 함께 씹힌다. 생선을 뼈째 푹 우려낸 국물에 국수사리를 넣어 구수하고 담백하다. 단백질·칼슘·지방·비타민이 풍부해 남녀노소에게 모두 좋다. 애주가들에겐 해장국 대용으로 좋다. 그릇째 들고 얼큰한 육수를 쭉 들이켜면 쓰린 속이 편안해진다. 땀이 많은 사람은 생선국수 한 그릇을 비우고 나면 땀을 한 바가지 쏟는다. 보약을 먹은 기분이다. 생선국수로 양이 차지 않을 때는 밥을 말아 먹으면 그만이다. 반찬은 김치나 깍두기 하나면 충분하다. 옥천 생선국수의 원조는 청산면 지전리에 있는 ‘선광집’으로 알려지고 있다. 서금화 할머니(82)가 이 집에서 1962년 생선국수를 시작했다. 1980년 서 할머니가 한 라디오방송에 출연해 소개하면서 유명해졌다. 지금은 아들 이인후(47)씨가 대물림하고 있고, 서 할머니는 계산대를 지키고 있다. 한 그릇에 5000원, 곱배기는 6000원. 옥천 남인우기자 niw7263@seoul.co.kr
  • [열린세상] ‘내 마음의 조지아’/김동률 KDI 언론학 연구위원

    [열린세상] ‘내 마음의 조지아’/김동률 KDI 언론학 연구위원

    미국을 여행하다 보면 자동차 번호판 위쪽에다 한 구절씩 써 붙이고 다니는 것을 보게 된다. 골드러시로 개발된 캘리포니아 번호판에는 ‘골든 스테이트’, 뉴욕은 ‘엠파이어 스테이트’, 아름다운 콜로라도는 ‘컬러풀 콜로라도’라고 적혀 있고 미 독립운동의 진원지였던 뉴햄프셔는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Live free or die)’이라는 무시무시한 글귀가 적혀 있다. 각 주마다 가진 이미지를 극명하게 표시한 낱말로 그 배경을 이해하기가 그리 어렵지 않다. 그러나 조지아 번호판에는 뜬금없이 ‘내 마음의 조지아(Georgia on my mind)’라고 적혀 있다. 남부의 찌는 듯한 더위와 흑인, 목화농장 등등과 함께 떠올릴 때 ‘내 마음의 조지아’라는 구절은 이해가 쉽지 않다. 그러나 한 조사에 따르면 ‘내 마음의 조지아’를 보는 순간 보통 사람들의 경우 열 명 중 아홉 명은 그 슬로건 때문에 조지아를 좋아하고 또 찾아 가고 싶다고 답했다고 한다. 전미 50개 주 가운데 가장 호감을 느끼게 하는 주 이미지이자 슬로건이 바로 이 ‘내 마음의 조지아’라고 한다. 도대체 무슨 연유로 주 상징 표어가 이다지도 간절하고 또 그래서 이 구절 하나로 인해 누구나 한번쯤 찾고 싶은 맘이 드는 것일까. 이쯤에서 눈치챈 독자도 있겠지만 이 구절은 전설적인 재즈가수인 레이 찰스가 부른 노래 제목이다. 레이 찰스는 어릴 때 시력을 잃고,세살 아래 동생 조지아를 잃는 아픔을 겪는다. 죽은 동생 조지아를 그리워하며 부른 노래가 바로 ‘내 마음의 조지아’이다. 그러나 1961년 레이 찰스는 인종차별이 극심한 조지아주에서 자신의 공연을 취소했고, 이에 맞서 조지아주 정부는 레이 찰스를 조지아에서 영구히 추방한다. 비록 1862년 링컨이 노예해방을 했지만 남부는 여전히 흑인들의 무덤. 훗날 흑인민권 운동이 거세어지면서 꼭 18년 후인 1979년 조지아 정부는 레이 찰스의 추방을 주정부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사과한 데 이어 ‘내 마음의 조지아’를 주의 공식 노래, 즉 주가(state song)로 선포했다. 가슴이 짠해 오는 얘기다. 어쨌든 조지아는 주 상징 구절 하나로 가장 기억에 남는 주가 되었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났는가? 이미지의 시대가 왔기 때문이다. 기업은 말할 것도 없고 국가나 도시도 이처럼 느낌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평가 받는 시대다. 시중에 나와 있는 중국 가전상표인 하이얼은 한국은 물론이고 세계시장에서 상당한 성공을 거두고 있다. 한마디로 이름 덕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독일어처럼 들리는 이름 덕분에 독일제라는 인식을 심어 준다. 세계화가 급속히 진전되면서 국가 이미지는 이처럼 가장 현실적이면서도 강력한 경쟁력의 원천으로 작용하고 있다. 하드 파워에서 소프트 파워가 위세를 떨치는 시대로 바뀌었다는 의미다. 2007년말 캔자스 대학에 모인 청중은 로버트 게이츠 미 국방장관의 연설에 귀를 기울였다. 장관은 연설의 대부분을 국가 이미지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데 할애했다. 이라크와의 전쟁에서 얻은 중요한 교훈 중의 하나는 이제 군사적인 성공이 승리의 충분조건이 되지 않는다. 즉 미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세계인들의 느낌이, 이미지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는 것이다. 거리에는 한강 르네상스와 다이내믹 코리아의 물결이 넘친다. 그러나 정작 나부끼는 플래카드를 보고 감동을 느끼는 사람은 많지 않아 보인다. 매력을 느끼게 하는 스토리가 없기 때문이다. 감동 스토리가 없는 구호는 오래 가지 않는다. 성덕대왕 신종, 봉덕사종, 에밀레종 중 어느 종부터 보고 싶으냐는 질문에 수학여행 온 십대들은 입을 모아 합창한다. 에밀레종부터 보고, 시간 남을 경우 나머지 종들을 보러 가자고. 그러나 성덕대왕 신종, 봉덕사종은 에밀레종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김동률 KDI 언론학 연구위원
  • 5만원권 이런 비밀이 숨어있다

    5만원권 이런 비밀이 숨어있다

    25일 공개된 새 5만원권의 특징은 ‘최첨단 무기로 무장한 신사임당’으로 요약된다. 47년 만에 부활한 여성 주인공, 잠자리 눈에서 힌트를 얻은 위조방지장치, 선진국 지폐처럼 비쌀수록 길어지는 지폐 길이 등 알고 나면 재미있는 돈 이야기가 풍성하다. ●여성 주인공 47년만에 부활 5만원권의 핵심주제는 ‘여성’이다. 우리나라 지폐에 여성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62년 5월16일이다. 100환권에 한복을 입은 어머니와 아들이 저금통장을 들고 있는 도안이었다. 저축을 장려하기 위해 고안된 이 ‘모자상(母子像) 지폐’는 그러나 그해 6월10일 새 화폐가 나오면서 한 달도 안돼 단명하고 말았다. 그 후로 여성이 지폐에 등장한 것은 이번 5만원권의 신사임당이 처음이다. 500년 전 인물이지만 들고 나온 ‘무기’는 최첨단이다. 특히 청회색 특수필름 띠에 태극무늬를 입힌 ‘부분노출 은선’은 잠자리 눈 원리를 응용했다. 잠자리 눈처럼 오톨도톨한 수만개의 렌즈들이 시선의 움직임과 반대로 움직인다. 새로 발행될 미국의 100달러 지폐에도 적용된 기술이다. 지폐 상단의 고유번호가 오른쪽으로 갈수록 커지는 것도 처음 선보이는 기술이다. 이내황 한은 발권국장은 “고액권인 만큼 위조방지 장치를 대폭 강화했다.”고 설명했다. 길이도 현재 나와 있는 지폐 중 가장 길다. 가로 154㎜로, 1만원권보다 6㎜ 길다. 액면가 순서대로 6㎜씩 길어지게 고안됐다. 1000원권과 비교하면 2㎝(18㎜) 가까이 차이가 나 확연하게 구별된다. 색깔은 ‘따뜻한 색’ 차례여서 황색으로 했다. ●사용 가능 ATM기 적어 초기 불편 일각에선 색상과 숫자가 5000원과 비슷해 혼선 가능성을 우려하기도 한다. 그러나 한은은 “도안 속 인물이 여성이라 쉽게 구별될 것”이라고 일축했다. 유통 초기 불편도 예상된다. 은행들이 비용 부담을 들어 현금 입출금기(ATM) 교체에 소극적이기 때문이다. 5만원권 인식이 가능한 ATM기를 아예 새로 들이면 대당 3300만원, 기존 기기에 인식기능을 추가하면 660만원가량 비용이 든다. 이 때문에 은행들은 점포당 ATM기 1대 정도만 교체 내지 업그레이드시킬 방침이다. 안미현기자 hyun@seoul.co.kr
  • [대한민국 극&극] ‘동물실험실의 평민’ 쥐 vs ‘동물실험실의 귀족’ 원숭이

    [대한민국 극&극] ‘동물실험실의 평민’ 쥐 vs ‘동물실험실의 귀족’ 원숭이

    시베리안허스키종인 ‘라이카’라는 개는 인간보다 먼저 우주여행을 했다. 라이카는 1957년 11월 3일 구소련의 스푸트니크2호에 탑승했다. 불과 몇 시간 만에 사망하기는 했지만 라이카는 생명체가 무중력 상태에서도 온도와 습도 조절을 통해 살아남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환경론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동물실험은 늘고 있다. 사람을 대상으로 실험할 수 없기 때문이다. 생물학 관련 과학적 성과의 첫 번째 단계는 동물에서 시작된다. 수년간의 동물 실험을 통해 생물에 미치는 독성과 효능을 충분히 평가하는 전임상 단계를 거쳐야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이 시작된다. 이 과정에서 한때 각광받았던 신물질의 90% 이상이 사라진다. 수많은 동물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생물마다 특정 물질에 대한 반응이 달라 다양한 동물로 교차실험을 한다. 쥐, 기니피그, 고양이, 개(비글), 소, 토끼 등이 일반적으로 쓰이고 사람과 유전적으로 가장 비슷한 원숭이도 주요한 실험 대상이다. 쥐의 가격은 한마리에 1만원쯤인데 원숭이는 평균 600만원이 넘고 특수한 경우 1억원에 육박하기도 한다. 실험대에 오르는 쥐와 원숭이를 비교해 본다. ■‘동물실험실의 평민’ 쥐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목동리에 있는 오리엔트바이오의 가평센터. 겉으로 보기에는 일반 공장이나 대형 창고처럼 보이지만 이 건물 안에는 쥐가 무려 50만마리나 살고 있다. 국내 최대의 실험용 쥐 공급업체인 오리엔트바이오에서 1년에 출하되는 쥐는 100만마리를 훌쩍 넘는다. 매월 18만마리가량이 태어나 엄격한 검사를 거쳐 10만~12만마리가량 팔린다. 오리엔트바이오측은 마우스(mouse)와 생쥐(rat)를 합쳐 10종류의 실험용 쥐를 보유하고 있다. 마우스는 다 자라면 몸무게가 10~20g 정도, 생쥐는 150~300g 수준으로 실험 목적에 따라 구분해 쓰인다. 하얀색 털에 눈이 빨간 전형적인 마우스 하나의 가격은 6000~1만원, 생쥐는 1만 5000원 정도다. 물론 특이한 유전자를 가졌거나 유전자 조작을 가한 쥐는 수천만원을 호가하기도 하지만, 이곳에서 판매되는 쥐의 95% 이상이 1만원짜리 기본모델이다. 그러나 이 쥐들은 일반 쥐와는 다르다. 유전적으로 안정성이 뛰어나고 바이러스 감염 등이 없어야 전 세계 어느 곳에서나 동등한 실험 결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철저한 관리와 검증이 필수적이다. 오리엔트바이오 역시 전 세계 시장의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미국 ‘찰스리버’사의 쥐를 분양받아 키우고 있다. 관리시스템도 철저하다. 외부는 콘크리트건물과 흡사하지만 안에는 3중으로 갖춰진 필터 공조장치, 워터·에어샤워커튼, 3중 살균실, 4중 필터 급수장치, 온도습도조절장치 등으로 ‘중무장’ 돼 있다. 100% 완전한 실험용 쥐를 공급하기 위한 장치다. 쥐들은 태어나서 4주면 실험실로 팔려나간다. 쥐를 사가는 곳은 제약회사, 병원, 대학, 국공립연구소 등 네 군데 정도다. 생물학도와 의사들은 전공기초 시간에 쥐를 가장 먼저 접하고, 해부와 관리의 기초를 배운다. 얼마나 많은 쥐를 보유하고 있느냐가 그 연구실 수준을 결정하기도 한다. 의과대학 한 곳에서 한 학기에 사용하는 쥐는 평균 500~1000마리지만, 대전 생명공학연구원의 경우 상시 6000마리 수준이다. 국가과학자 1호인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신희섭 박사는 본인의 뇌과학연구실에 무려 1만 5000~2만마리의 쥐를 보유하고 있는 국내 최고의 ‘쥐 부자’다. 전 세계 동물실험의 99%는 쥐를 통해 이뤄진다. 실험실에서 쥐가 많이 사용되는 것은 단지 싸기 때문만은 아니다. 쥐는 새끼를 많이 낳고 주기가 짧아 세대를 거치는 실험에 용이하다. 쥐가 한 번에 낳는 새끼는 5~10마리로 그 새끼가 다시 새끼를 낳기까지 불과 9주밖에 걸리지 않는다. 신약 등의 독성을 검증할 때 후손에 미치는 장기적인 영향을 보기에도 아주 유리하다. 인간에게서는 수백년에 걸쳐 이뤄져야 하는 실험을 1~2년 정도로 단축할 수 있다. 특히 개발비용이 수천억원 단위로 들어가는 신약 개발에서 약간의 용량 투여로 효율적인 독성을 검증할 수 있는 생쥐가 많이 쓰인다. 오리엔트바이오 공현석 부사장은 “실험동물의 몸무게에 비례해 약물을 투여하기 때문에 초창기 독성 실험에서는 쥐 이외의 다른 동물을 생각할 수 없다.”고 밝혔다. 글ㆍ사진 가평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우리 할머니 잘 있었어?” ■‘동물실험실의 귀족’ 원숭이 무균복을 입은 한형윤 연구원이 우리 앞에서 원숭이에게 말을 건넨다. 200마리가 넘는 원숭이 중에 이름을 가진 몇 안 되는 원숭이 ‘할머니’는 2003년 대전 안정성평가연구소 영장류실험실에 들어온 최고참이다. 한 연구원은 “실험용 동물이고, 이곳에 들어오면 죽어서 나가지만 사람을 따르고 영악한 짓을 하는 것을 보면 정이 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안정성평가연구소는 국내 최초이자 유일의 원숭이를 전문 독성, 효능시험에 사용하는 연구소다. 연구실험이 한창일 때는 600마리의 원숭이가 이곳에서 실험에 사용된다. 원숭이 한 마리의 가격은 평균 600만원 정도. 환율이 오르는 데다 원숭이가 멸종위기 동물로 지정돼 쿼터제가 시행되기 때문에 전 세계적으로 수요가 늘어나는 만큼 가격은 계속 오른다. 원숭이 실험에 흔히 사용되는 게잡이원숭이는 캄보디아와 베트남 등지의 길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이곳에서 포획된 원숭이는 중국과 베트남, 일본의 전문 사육소에서 철저한 검증을 거친 후 세계 각국으로 수출된다. 수많은 실험동물을 경험한 한형윤 연구원에게도 원숭이 실험은 신천지다. 지능이 높기 때문에 실험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관리도 까다롭다. 무리생활을 하기 때문에 개별적으로 케이지에 넣어놓으면 스트레스를 받고, 새끼에 대한 반응도 친밀해 어려움이 많다. 특히 워낙 가격이 높다 보니 문제가 생기면 안락사시키는 다른 동물과 달리 수술을 해서 고치기도 한다. 환경론자들은 다른 실험동물에 비해 원숭이에 대해 특히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렇다면 왜 굳이 원숭이를 실험에 써야 할까. 1957년 독일의 제약회사 그뤼넨탈에서 부작용이 없는 수면제를 개발해 내놓았다. 그뤼넨탈은 “감기약조차 마음대로 먹지 못하는 임산부를 위한 최고의 약”이라고 광고했고 50여개국에서 같은 성분을 가진 약이 판매됐다. 불과 1년 후 독일에서 손이 짧은 아이가 탄생하기 시작했고 서독에서만 5000명 이상, 유럽에서만 1만명이 넘는 기형아가 태어났다. 1962년 판매금지된 악마의 약 ‘탈리도마이드’는 동물실험의 효용성을 논하는 데 가장 먼저 거론되는 사례다. 당초 탈리도마이드는 쥐와 고양이, 개 등을 대상으로 한 동물실험에서 큰 부작용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나중에 알려진 사실이지만 탈리도마이드를 투여할 경우 사람과 같은 부작용이 나타나는 것은 일부 토끼와 원숭이뿐이었다. 탈리도마이드 사건 이후 전 세계적으로 쥐 실험에 대한 맹신보다는 다양한 동물에 대한 수요가 급증했다. ‘마법의 탄환’으로 불리는 백혈병 치료제 글리벡의 경우 쥐 실험에서는 독성이 나타났지만 원숭이 실험을 통해 약효가 입증된 특이한 이력을 갖고 있다. 원숭이는 가장 이상적인 실험동물로 꼽힌다. 뇌구조부터 시작해 몸의 말단인 손가락, 발가락까지 인간과 가장 유사하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가임기간과 임신기간까지 인간과 같다. 유전적 동등성이 높다는 것은 부작용과 약효를 거의 100% 믿을 수 있다는 얘기다. 글ㆍ사진 대전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클릭 [극과극 더 보러가기]
  • ‘윤 패밀리’ 속도전

    지난 12일 오전 11시 서울 여의도 LG트윈빌딩에서 전·현직 경제 관료들이 반갑게 악수를 나눴다. 윤증현(63) 기획재정부 장관 취임 이후 처음 열린 당정회의(정부와 여당간 정책협의). 임태희 한나라당 정책위 의장을 비롯해 박종근, 배영식, 김광림 의원 등 한나라당 소속 기획재정위원회 위원들이 총출동했다. 전임 강만수 장관 취임 때에는 이런 상견례 자리가 없었다는 점에서 이례적이었다. 윤 장관의 장관 취임을 축하하는 선후배들의 만남이어선지 1시간 20여분 동안 딱딱한 경기 부양책을 논의하는 와중에도 분위기는 매우 밝았다고 참석자들이 전했다. ‘따거(큰 형님)’라는 별명에서 나타나듯, 윤 장관에 대한 경제부처 선·후배들의 신망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임태희(53) 정책위 의장은 행시 10회인 윤 장관보다 14기 아래인 행시 24회로 재무부와 재정경제부 등에서 세제, 금융, 외환, 예산 등을 담당했다. 최경환(54·행시 22회) 수석정책조정위원장도 기획예산처 출신이다. 박종근(72·비고시) 의원은 1962년부터 20년간 경제기획원 내 기획·예산 분야에서 근무했다. 배영식(60·행시 13회) 의원은 재경부 기획관리실장과 신용보증기금 이사장을 지냈다. 김광림(61·행시 14회) 의원은 특허청장과 재경부 차관을 역임한 예산 전문가다. 이종구(59·행시 17회) 의원은 윤 장관이 재경원 금융정책실장을 지낼 때 금융제도담당관으로 함께 일했다. 건설교통부 차관 출신으로 윤 장관과 행시 10회 동기인 강길부(67) 의원도 이날 회의에 참석했다. 김광림 의원은 “경제 회생을 위해 빠른 정책 결정과 집행이 중요한 현 시점에서 윤 장관의 취임으로 정부와 여당의 정책 공조가 순조롭게 이뤄질 수 있는 여건은 어느 때보다 좋다.”면서 “12일 첫 당정회의를 통해 그 가능성을 더욱 봤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긴밀한 당정간 호흡은 중요하지만 이것이 지나치게 일방적이거나 한쪽에 치우친 의사 결정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는 경계론도 나온다. 김태균 이두걸기자 windsea@seoul.co.kr
  • 성북구, 비상경제대책 우수 자치구로

    성북구가 12일 행정안전부로부터 ‘비상경제대책 우수 자치구’로 선정됐다. 요즘 각 지방자치단체마다 민생경기 활성화 대책을 쏟아내고 있는 가운데 전국 246개 시·군·구를 대상으로 한 평가에서 서울지역 25개 자치구 중 유일하게 상을 받았다. 이번 상은 지방 군(郡) 단위의 노력을 더 인정했다는 점에서, 7대 특별·광역시의 자치구로서는 대구 수성구와 서울 성북구뿐이라는 데에도 의미가 있다. 성북구는 넉넉하지 못한 구 살림에도 가용예산을 최대한 어려운 주민을 위해 집중투입했을 뿐만 아니라 행정력의 빈틈을 족집게처럼 찾아내 효율적으로 개선한 점을 높게 평가받았다. 우선 행사비용 등 경상비를 5억원 절감하고 신청사 집기구입 예산 등 10억원을 줄였다. 이번에 상을 받아 나오는 5억원의 인센티브도 전액 저소득주민의 생활안정 대책비로 쓰인다. 민생예산을 조기에 집행하기 위해 구청 사업 입찰공고기간을 7→5일로 줄이고, 조달청에 의뢰하던 계약심사를 자체 심사로 돌렸다. 조달청 의뢰는 공정한 사업심사 등 장점이 있지만 집행 기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에 당장 돈이 필요한 주민을 위해 순발력을 키운 셈이다. 이로써 지난달 말에 이미 사업예산 473억원을 집행했다. 특히 다음달 삼선동5가 신청사에 입주할 때 대규모 이삿짐을 지역에서 활동하는 49개 영세 이사전문업체에 맡기는 세심함을 보였다. 빈 구청사는 당분간 구인·구직을 위한 만남의 장과 지역기업의 작업장으로 활용된다. 재래시장 상품권 이용도 2곳에서 돈암제일·장위골목·길음·석관·석관황금 시장 등 5곳으로 늘렸다. 또 ▲위기 가구 생계비 지원 1240가구 ▲비수급 빈곤층에 대한 민간후원 일자리 1108가구 ▲저소득자녀 장학금 지급 ▲기초생활보장 기준 완화 ▲공공근로 참가자 200→359명 증원 ▲아르바이트생 80→150명 증원 ▲금연·금주 공원지킴이 등 517개 일자리 신설 등 노력을 펼치고 있다. 성북구가 신속하고 빈틈없이 ‘신빈곤층’을 위한 비상경제대책을 진행할 수 있었던 것은 서찬교 구청장의 40년 행정 관록이 견인차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된다. 서 구청장은 1962년 고교를 졸업하자마자 공직에 입문한 뒤 2001년 지방관리관 1급으로 명예롭게 퇴진했다. 김경운기자 kkwoon@seoul.co.kr
  • [문화마당] 너무 낡은 수중문화재 발굴 제도/김창규 한국전통문화학교 문화재 관리학과 교수

    [문화마당] 너무 낡은 수중문화재 발굴 제도/김창규 한국전통문화학교 문화재 관리학과 교수

    세계적으로 300만척이 넘는 난파선이 해저에 흩어져 있는 것으로 추정되며, 자메이카의 포트로열은 1962년 지진으로 도시 전체가 물 속에 잠겼다. 또한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 등대나 흑해의 신석기유적 등 수많은 고대문명의 유적이 해저에 잠겨 있다. 수중은 육상과 달리 산소가 차단되어 유기물질의 문화재들이 오랜 기간 양호한 상태로 보존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지난 1975년 5월 전라남도 신안군 증도면 방축리 앞바다에서 고기잡이를 하던 한 어부의 그물에 옛 도자기 몇 점이 걸렸다. 이것이 우리나라 대규모 수중발굴의 계기를 제공하였다. 1976년부터 약 9년에 걸쳐 문화재청과 해군의 공동작업으로 이루어진 신안 방축리 수중발굴은 중국 무역선 1척, 동전 28t, 도자기 2만 2000여점 등의 유물을 세상에 드러내었다. 2000년대 문화재청 국립해양유물전시관에 의하여 최근까지 이루어진 군산 옥도면 십이동파도, 신안군 안좌도, 태안군 근흥 대섬 및 근흥 마도 수중발굴에서도 고선박 및 엄청난 양의 해저유물이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되어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러한 수중문화재의 발굴은 육상의 토지 또는 건조물에 포장된 매장문화재의 발굴조사에서 요구되는 환경·인력·기술과는 다르다. 수중문화재의 발굴은 해수온도가 10℃ 이하에 이르면 잠수작업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수중문화재가 대거 분포되어 있는 우리나라 서남해안의 경우 5월부터 10월까지 6개월 정도의 작업이 가능하며, 유속이 4노트 이상일 경우 정조 때가 아니면 잠수작업이 불가능하여 밀물과 썰물 시간을 헤아리면 하루 1시간씩 한 번 또는 두 번 정도의 작업이 가능하다. 또한 수중문화재의 발굴은 직접 잠수하는 잠수부와 수중탐사선 등 육상 매장문화재 발굴조사와 다른 인력 및 장비를 요구한다. 특히, 공해 및 배타적 경제수역에 분포되어 있는 수중문화재의 발굴은 인접국과 수중유물에 대한 관할권 분쟁의 가능성이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01년 7월 유네스코 제31차 총회는 수중문화유산보호협약을 채택하였다. 그러나 문화재 발굴인력을 양성하고 있는 우리나라 대학의 경우 육상 매장문화재의 발굴조사 이론·기법을 중심으로 수중고고학의 이론교육에 머물 뿐, 실질적인 수중잠수능력 및 수중탐사선 운용 등에 관한 실무교육은 전무하다. 또한 현행 문화재보호법은 문화재지표조사를 수행하는 전문기관인 문화재지표조사기관의 종류로서 육상지표조사기관과 수중지표조사기관으로 구분하여 해당 기관이 갖추어야 할 기준을 달리 정하고 있을 뿐, 수중문화재에 대해 육상 매장문화재와 동일한 발굴절차 및 보호를 규정하고 있어 문제가 있다. 심지어 문화재보호법의 분법작업 일환으로 제정하고자 2008년 5월16일 입법예고한 매장문화재 보호 및 조사에 관한 법률(안)은 육상 매장문화재와 구분되는 수중문화재를 정의하고 있으나, 그 발굴절차 및 보호에 관하여는 육상 매장문화재와 동일한 규정을 두고 있다. 수중문화재를 직접 발굴하는 업무를 비전공자인 일반 잠수부에 의존하는 지금의 제도는 이제 변화하여야 한다. 따라서 문화재 발굴 전문인력을 양성하는 대학은 수중문화재를 직접 인양·탐사하고 분석할 수 있도록 전문인력을 양성하여야 한다. 또한 육상 매장문화재와 동일한 발굴절차 및 방법을 규정하고 있는 지금의 수중문화재 발굴제도도 이제는 국제규범에 맞도록 제대로 정비되어야 한다. 김창규 한국전통문화학교 문화재 관리학과 교수
  • [월드 이슈] 52년전 투표권 획득 흑인 현주소

    지난해 영국의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경제학자인 마리안 베르트랑 교수의 흥미로운 실험을 소개했다. 보스턴과 시카고에 나온 채용광고를 보고 가상의 흑인과 백인의 입사지원서 5000통을 무작위로 보낸 뒤 그 결과를 지켜본 것. 가상 흑인과 백인의 학력 등 이른바 ‘스펙’은 다를 게 없었다. 하지만 결과는 달랐다. 백인의 지원서는 열 군데 가운데 한 군데꼴로 응답이 왔지만 흑인의 지원서는 열다섯 군데 중 한 군데꼴이었다. 이코노미스트는 “이런 차별 때문에 흑인 남성의 임금은 백인 남성의 임금보다 30% 정도 적다.”고 진단했다. 미 상무부에 따르면 백인가구와 흑인가구의 소득격차도 연 2000달러(약 276만원) 이상 벌어졌고 흑인들의 교육기회가 줄어드는 악순환은 반복된다. 흑인에 대한 차별은 보통 ‘유리천장(glass ceiling)’이란 말로 비유되곤 한다. 흑인과 여성 등 사회적 약자들의 고위직 진출을 가로 막는 ‘보이지 않는 장벽’을 뜻하는 이 말은 편견이라는 유리천장에 막혀 더 이상 높은 지위에 올라갈 수 없는 미국 흑인들의 상황을 단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물론 흑인들을 명시적으로 차별하는 법이나 제도는 대부분 폐지됐다. 1862년 노예 해방이 선언됐고 1957년 모든 흑인에게 투표권이 보장됐다. 하지만 베르트랑 교수의 실험에서 알 수 있듯 편견은 실질적인 차별로 이어진다. 최근 미국 국민들은 ‘오바마 신드롬’으로 인종문제가 많이 해소됐다고 믿는다. CNN 리서치가 지난달 흑인과 백인 성인남녀 1245명을 대상으로 한 전화설문 조사에서 흑인들 가운데 69%가 흑인 인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 목사의 꿈이 실현됐다고 답변했다. 이는 지난해 3월에 나온 34%보다 배 이상 높은 것이다. 2009년 2월에 ‘흑인의 달’이란 칭호를 붙일 정도로 미국은 꽤나 들떠 있다. 하지만 아직도 흑인에 대한 유리천장은 ‘현재진행형’이란 비관론도 있다. 미국의 흑인 여성인권 운동가인 말리크 미아는 “오바마가 흑인의 자결권에 대한 해답은 아니다.”면서 “흑인들의 높은 실업률, 열악한 주택과 교육 문제 등 병리현상은 당장 해결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깊게 박힌 인식과 편견의 유리천장을 없애기엔 넘어야 할 산이 너무 많다는 얘기다. 이경원기자 leekw@seoul.co.kr
  • [월드 이슈] 검은 링컨, 링컨을 부활시켰다

    [월드 이슈] 검은 링컨, 링컨을 부활시켰다

    │워싱턴 김균미특파원│버락 오바마라는 미 역사상 첫 흑인 대통령이 탄생한 가운데 오는 12일 맞는 에이브러햄 링컨 전 미국 대통령의 탄생 200주년은 미국인들에게 남다르다. 대공황 이후 경제적으로 가장 어려운 시기를 맞고 있는 미국인은 오바마 대통령에게서 링컨식의 국민통합 리더십을 기대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취임식 준비과정에서부터 취임선서 때 링컨 대통령의 성서를 사용한 것은 물론 정치적 라이벌들을 내각에 기용한 것에 이르기까지 가장 존경한다는 링컨 대통령을 벤치마킹했다. 12일 링컨의 정치적 고향인 일리노이주 스프링필드를 방문, 기념행사에 참석한다. ‘링컨 탄생 200주년 위원회’ 의장인 딕 더빈(일리노이주) 상원의원은 “경제적 도전이 심화되고 있는 가운데 오바마 대통령은 링컨 대통령과 같은 리더십과 용기를 보여줄 것으로 믿는다.”며 링컨 탄생 200주년의 시대적 의미를 강조했다 이날을 전후해 미 전역에서는 링컨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는 각종 행사와 특별전시회가 열린다. 워싱턴의 링컨기념관에서는 로드아일랜드주 대법원장을 지낸 프랭크 윌리엄이 워싱턴 지역 출신 학생들과 함께 링컨의 게티즈버그 연설을 낭송한다. 일리노이주에서도 학생들이 게티즈버그 연설을 집단 낭송할 예정이다. 1865년 링컨이 저격당한 장소인 포드극장은 보수공사를 마치고 링컨 탄생일에 맞춰 11일 재개관, 16일부터는 일반에 공개된다. 포드극장은 1862년 노예해방 선언을 앞두고 5개월 동안 링컨의 개인적, 정치적, 역사적 고민과 결단을 그린 연극을 재개관 기념작으로 공연한다. 워싱턴에서는 링컨 탄생 200주년을 기념해 4월 말까지 스미스소니언 미국사박물관 등에서 각종 전시회와 강연, 공연 등이 마련된다. 링컨 탄생 200주년 기념 1달러짜리 은화와 우표도 이미 나와 판매되고 있다. 링컨에 대한 출판계와 언론계의 재조명 열기도 뜨겁다. 지금까지 발간된 링컨 대통령에 관한 책만 1만 5000권 이상이다. 이달 중 10여권의 책이 이 목록에 더해질 예정이다. 공영방송인 PBS는 ‘링컨 탐구’와 ‘링컨의 암살’을 12일 방영한다. 링컨 탐구는 흑인 노예를 해방시킨 위대한 지도자라는 기존의 1차원적 평가에 도전장을 던진다. 헨리 루이스 게이츠 주니어 하버드대 교수는 위대한 해방자이면서 백인 지상주의자였고, 전사이자 평화주의자였던 복합적인 링컨의 다른 면모들을 부각시켜 논란이 예상된다. 히스토리채널은 대통령의 날인 16일 ‘링컨의 시신을 훔치다’라는 자극적인 제목의 다큐멘터리를 방영할 계획이다. 링컨이 암살된 지 11년 후 시카고 갱단이 그의 시신을 훔쳐 20만달러의 돈을 요구하려 했다는 음모가 처음으로 공개될 예정이어서 주목된다. 이처럼 링컨이 사망한 지 150년 가깝지만 링컨에 대한 이야기는 끊이지 않고 있다. 때문에 링컨에 관한 새로운 이야기를 발굴해 내고, 새로운 관점에서 링컨을 재조명하는 것은 커다란 도전이다. 12일 미 전역에서는 “이 나라는 새로운 자유의 탄생을 맞이하게 될 것이며,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는 영원히 지구상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라는 링컨 대통령의 게티즈버그 연설이 울려퍼질 것이다. kmkim@seoul.co.kr
  • [지방시대] 행정 성과 높이는 뉴 거버넌스/김도희 울산대 행정학 교수

    [지방시대] 행정 성과 높이는 뉴 거버넌스/김도희 울산대 행정학 교수

    ‘삶의 질’을 강조하는 21세기에는 정부의 역할이 양적 성장에만 머물러서는 국민들로부터 능력 있는 정부로 평가받기 힘들다. 우리 정부는 1962년 경제개발5개년계획을 시작으로 70~80년대 경제발전에만 주력하면서 질적 행정수요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했다. 이에 대한 필요성은 1990년대부터 시작됐지만 국민들이 느끼는 질적 행정실현은 불과 몇 년 되지 않았다. 이처럼 양적성장과 함께 질적성장을 병행해 나가야 하는 현시점에서 ‘정부’에 의한 공급방식은 효율적이지 못하다. 하지만 울산시는 이러한 문제점을 빨리 인식하고 새로운 정부운영관리방식인 ‘뉴거버넌스’를 적극 도입해 신뢰받는 정부로 거듭나고 있다. 그렇다면 뉴거버넌스란 무엇인가? 정부는 거버넌스 이론이 행정에 접목되기 전까지 ‘공공성’이 강한 서비스의 경우 당연히 정부에서 제공해야 하는 것으로 인식했고, 영역 안으로 끌어안았다. 그러나 정부 역시 인력이나 재정의 한계 때문에 ‘삶의 질’이 강조된 새로운 업무에 쉽게 대응하지 못했다. 이에 따라 정부와 기업, 시민 모두가 역할분담을 통해 행정수요에 적절히 대응해 나가야 한다는 ‘거버넌스론’이 제기됐다. 뉴거버넌스는 시민사회가 주축이 되어 정부와 기업과의 파트너십을 강조하면서 나온 신개념이다. 울산이 과거 ‘공해도시’의 오명을 벗고 ‘생태도시’로 거듭날 수 있었던 것도 ‘푸른울산 21’이란 거버넌스 방식으로 환경문제에 접근하면서 가능했다. 환경문제의 해결책임이 행정에만 있다고 생각했으면 지금 같은 ‘환경도시 울산’의 이미지를 제고시킬 수 없었을 것이다. ‘푸른울산 21’은 환경오염의 원인을 제공하는 기업인과 환경 관련 시민단체, 공무원 등으로 다양하게 구성돼 환경문제를 논의하고 해결방안을 찾고 있다. 다시 말해 거버넌스적 행정운영을 실현하고 있는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울산은 환경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한 시점에서 ‘문화도시’로서의 면모를 갖추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데, 이 역시 뉴거버넌스 행정방식을 도입해 추진 중에 있다. 시는 울산메세나운동추진위원회를 구성해 기업체와 문화예술단체의 자매결연을 추진, 작품 활동을 지원하는 ‘기업메세나운동’을 벌였다. 이러한 메세나운동은 기업과 문화예술계의 거리를 좁혀 주었을 뿐만 아니라 문화예술계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어 줌으로써 활발한 문화예술 활동의 발판을 마련했다. 하나의 사례를 더 든다면 ‘울산여성포럼’의 활동을 꼽을 수 있다. 울산여성포럼은 지역의 여성 문제를 진단하고 우선 해결돼야 할 과제 등을 행정에 전달했다. 그 결과 여성 친화적인 도시환경 조성 방안이 울산혁신도시 건설계획에 반영되는 성과를 가져왔다. 박맹우 울산시장은 이미 ‘2008년 뉴거버넌스 리더십 메달’을 수상하는 등 거버넌스 행정실천의 성공 가능성을 보여줬다. 주민들의 실생활에 필요한 서비스는 행정기관 주도의 하향식 접근보다 주민, 시민단체, 전문가, 지역의 주민단체, 지자체가 협력할 때 그 성과가 더 높게 나타난다. 즉 살기 좋은 마을 가꾸기 운동, 독거노인돌봄사업, 결혼이민자 가정 사회적응 돕기사업 등의 경우 민간이 중심이 되고 관이 지원자 역할을 할 때 만족도는 훨씬 높아질 것이다. 따라서 정부는 이들이 주체적인 의식을 가지고 민·관협력사업에 참여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뉴거버넌스가 성공적으로 추진되기 위해서는 탄탄한 재원 확보, 주민들이 바라는 서비스의 신속한 발굴보다도 더 중요한 것이 민과 관의 돈독한 신뢰관계 형성이다. 또한 주종이나 수직 관계가 아닌 양자 모두 주체로 참여할 수 있는 대등관계, 수평 관계적 사고 형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김도희 울산대 행정학 교수
  • [엄마와 읽는 동화] 손 큰 할머니의 뜨개질하기/채인선

    [엄마와 읽는 동화] 손 큰 할머니의 뜨개질하기/채인선

    찬바람이 쌔앵쌔앵 몰아치는 겨울날이었어요. 손 큰 할머니네 집에는 숲 속의 작은 동물들이 놀러와 있었어요. 너구리와 여우와 다람쥐였어요. “할머니, 추워요. 이불 더 없어요?” “추운데 뭐 하러 왔어? 제 집에서 겨울잠이나 잘 것이지.” “만두 먹어야죠. 만두 때문에 겨울잠 못 자요.” 할머니는 쯧쯧 하며 혀를 차더니 몸을 일으켰습니다. “가만있거라. 다락에 이불이 더 있는지 한번 봐야겠다.” 다락은 어두컴컴했어요. 할머니는 손으로 더듬더듬 이불을 찾다가 커다란 바구니를 발견했습니다. “흠. 이 안에 뭐가 들었을까? 이불이나 들었으면 좋으련만.” 방에서 기다리고 있는 동물들에게 할머니는 소리쳤어요. “바구니를 내릴 테니 밑에서 받쳐라. 바구니가 엄청나게 크다.” “예, 할머니!” 바구니를 받쳐 들면서 너구리와 여우가 속닥였어요. “이건 보물단지야. 틀림없이 보물이 들어 있을 거야.” “보물이라면 무거울 텐데, 그렇게 무겁지 않은걸?” 그때 다람쥐가 끼어들었어요. “어쩌면 굶어죽은 도깨비가 들어 있을 수도 있어. 그럼 우리를 다 잡아먹을 거야.” 다람쥐의 말에 너구리와 여우는 “이크!” 하며 손을 놓쳤어요. 그랬더니 데구루루 크고 작은 털실뭉치들이 방안 가득 쏟아졌어요. 예전에 할머니가 젊었을 적에 뜨다 만 것들이었죠. 할머니가 신기해하며 중얼거렸어요. “오호, 이것들이구나! 보물이긴 보물이네.” 너구리가 물었어요. “할머니, 이걸로 뭐할 거예요?” 할머니가 털실을 매만지며 대답했어요. “뜨개질해야지.” 다람쥐가 물었어요. “무엇을 짤 거예요? 제 목도리 짤 거예요?” “글쎄다, 알아맞혀 보렴.” 할머니는 빙긋 웃으며 뜨개질 바늘을 찾아들었어요. 밖에서는 여전히 바람이 불어댔어요. 쌔앵쌔앵 덜컹덜컹. 바람소리가 무서워 동물들은 할머니 앞에 바싹 다가앉았어요. 손가락에 실을 감더니 할머니가 바늘을 움직이기 시작했어요. 단단한 실뭉치 하나가 헤실바실 풀어집니다. 얼마 안 있어 실이 다 풀어지고 실 끄트머리가 보였어요. “얘들아, 어서 실을 이어라. 실이 끊어지면 안 돼.” 할머니가 소리치자 바늘 끝만 쳐다보고 있던 동물들이 물었어요. “왜요?” “계속 떠야 하니까.” “아, 그렇구나.” “서둘러라. 어서 실을 이어.” “예, 할머니.” 손이 빠른 여우가 얼른 실을 이었어요. “바로 또 실을 이어야 하니까 미리 준비해 둬. 실이 끊어지면 절대 안 된다고.” “예, 할머니.” 갑자기 할 일이 생긴 동물들은 저희들끼리 열띠게 의논을 했어요. “빨간색 다음에 노란색이 좋단 말이야. 노란색 다음에는 파랑색이 좋고…….” “아니야. 이 노란색 대신 밤색이 나아. 밤색 다음에 노란색을 잇자.” 그러다 말싸움을 했어요. “밤색은 똥색이야. 노란색을 먼저 해.” 눈 깜짝할 사이에 실 뭉치를 하나 없앤 할머니가 동물들에게 재촉했어요. “급해, 급해. 어서 다음 것을 이어! 실이 끊어지면 안 된다고 했지!” “예, 할머니!” 동물들은 말싸움을 그만두고 실 뭉치들을 조르르 줄을 세웠어요. 뭉치가 작은 것들은 미리 끝을 이어두었어요. 점심때가 다가왔어요. 뜨개바늘에서 손을 떼지 않은 채 할머니가 말했어요. “배고프다. 냉장고에서 만두 꺼내 와서 삶아라.” “예, 할머니.” “내 입에다 하나씩 넣어줘.” “예, 할머니.” “물도 줘. 목 마르다.” “예, 할머니.” “아이, 등이 간지럽네. 등 좀 긁어라.” “예, 할머니.” 날이 저물었어요. 할머니가 말했어요. “어둡다. 불 좀 켜라.” “예, 할머니.” “바람 들어온다. 문 좀 잘 닫아라.” “예, 할머니.” “무릎 아프다. 무릎 좀 주물러라.” “예, 할머니.” “화롯불 좀 들쑤셔라. 고구마 다 익었는지 보고.” “예, 할머니.” “고구마 먹고 자라.” “예, 할머니.” 할머니는 뜨개질을 계속 했어요. 한 밤이 지나가고 두 밤이 되었어요. 그 많던 실 뭉치들이 없어지는 대신 할머니의 뜨갯것이 차츰 넓어졌어요. 하지만 그것이 이불인지 목도리인지는 아무도 몰랐죠. 밤이 지나 다시 아침이 되었어요. 할머니는 뜨개질을 멈추지 않았어요. 실을 남김없이 다 쓸 생각이었거든요. 그런 다음 푹 쉬려고 더욱 부지런히 바늘을 움직였던 건데 동물들은 그걸 몰랐어요. 동물들은 실이 자꾸 없어지는 걸 보고 초조했어요. 실을 어서 이으라고, 실이 끊어지면 안 된다고 할머니가 말씀하셨잖아요. 그래서 머리를 짜낸 것이 마을로 실을 구하러 가는 것이었어요. “할머니, 금방 갔다 올게요. 천천히 뜨고 계세요.” “손 큰 할머니라면 엄청 큰 것을 떠야 하는데 실이 모자라면 안 되죠.” “걱정 마세요. 우리가 실을 많이 구해올게요.” 동물들은 이렇게 말하고 마을로 내려갔어요. 할머니는 뜨개질에 열중해서 동물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몰랐어요. 실 구해요. 실. 다락이나 헛간 속에 못 쓰는 실이나 아직 안 쓴 실, 쓰다 만 실이나 나중에 쓰려고 아껴둔 실, 조금씩 보태 주시면 요긴하게 쓰렵니다. 실 구해요. 실. 한 집에 하나씩 주시면 잘 받겠습니다. 실이오, 실. 아무 실이나 다 받아요. 개나리 노란 실, 하늘 파랗다 파란 실, 고추 빨갛다 빨간 실, 깜깜 밤이다 까만 실. 모두모두 주세요. 온갖 실 다 주세요. 망태기를 짊어진 동물들이 마을을 한 바퀴 돌자 사람들이 기특하다며 실 뭉치를 하나씩 던져주었습니다. 순식간에 망태기가 실 뭉치로 가득 찼어요. 으쓱으쓱 신이 난 동물들은 빠른 걸음으로 할머니 집으로 돌아왔어요. 할머니는 깜짝 놀랐어요. 뜨개질을 막 끝내고 막 쉬려던 참이었거든요. 그런데 동물들이 마을에 내려가서 실을 구해왔다니! 더구나 이렇게 많은 실을요. 하지만 어쩌겠어요. “음……. 할 수 없이 더 짜야겠네.” 할머니는 밥을 한꺼번에 많이 지어먹고 뜨개바늘을 다시 집어 들었어요. 그러곤 계속 뜨개질을 했어요. 동물들이 할머니에게 모여들었어요. “할머니, 하품 대신 해드릴까요?” “그래라.” “할머니, 뒷간에 대신 갔다 올까요?” “그래라.” “양치질은요? 대신 해드릴까요?” “그래라.” “할머니, 뭐를 좀 먹고 싶죠? 만두 삶아올까요?” “그래라.” 너구리가 만두를 삶아와 할머니 입에 넣어 주고는 물었어요. “목 마르죠? 물도 드실래요?” “그래라.” “어깨 주물러 드릴까요?” “그래라.” “이리 좀 돌아앉으세요. 등도 긁어드릴게요.” “그래라.” 한 밤이 지나가고 두 밤이 되었어요. 할머니는 여전히 뜨개질을 하고 동물들은 그 옆에서 쿨쿨 잠을 잤어요. 다음날 아침이었어요. 동물들은 드르렁 코고는 소리에 놀라 눈을 떴어요. 그랬더니 주위에 뜨개질 거리가 말끔히 치워져 있고, 할머니가 팔다리를 쭉 뻗은 채 세상 모르고 잠을 자고 있었어요. 동물들은 서로 중얼거렸어요. “이제 할머니가 뜨개질을 다 한 건가?” “그렇다면 무엇을 짰지?” “글쎄 말이야. 무언가 다 짜놓았을 텐데.” 영문을 몰라 방안을 살피는데 몸이 슬슬 더워졌어요. 이마에 땀이 흥건히 배었어요. 동물들이 다시 말을 나누었어요. “왜 이렇게 덥지? 갑자기 한여름이라도 되었나?” “정말 더워 죽겠다. 밖으로 나가자.” “그래그래. 여기 있다가는 만두처럼 삶아지겠어.” 동물들은 할머니가 짜놓은 것을 찾다 말고 밖으로 뛰쳐나왔어요. 그러곤 바로 알게 되었죠. 할머니가 무엇을 완성했는지. 그건 바로 스웨터였어요. 왜 방안이 그렇게 더웠는지도 알게 되었어요. 그 스웨터를 산골집이 입고 있기 때문이었어요. 파랗고 빨갛고 노랗고 푸른 스웨터였어요. 탐스러운 방울도 달려 있고 크고 작은 주머니가 주렁주렁 달려 있는 스웨터였어요. 깨알 같은 꽃도 무더기로 붙어 있는데, 그건 실 한 오라기도 버리지 않고 다 쓰기 위해 만든 것이었어요. “집이 스웨터를 입고 있다니, 정말 웃긴다.” “스웨터가 정말 예쁘다. 개나리 진달래 다 피어 있잖아.” “그런데 정말 크다. 이렇게 큰 스웨터는 처음 보았어. 할머니는 역시 대단해.” 동물들은 손 큰 할머니의 멋진 작품을 앞에 놓고 짝짝짝 박수를 쳤어요. 이제 추워서 덜덜 떨 일은 없겠죠? ●작가의 말 올해는 유난히 겨울이 춥고 긴 것 같습니다. 안팎으로 희망적인 일보다는 마음을 무겁게 하는 일들이 많아서 그런가 봅니다. 이 원고는 ‘손 큰 할머니의 만두 만들기’에 이어지는 작품입니다. 설날이면 만두를 엄청 많이 해서 우리의 이웃, 동물과 나누어 먹는 손 큰 할머니의 넉넉한 인심과 씩씩한 마음이 요즘에 더욱 그리워집니다. 이번에는 할머니가 춥다고 덜덜 떠는 어린 동물들을 위해 아주아주 큰 스웨터를 만들었답니다. 마음이 추울 때 할머니의 스웨터 입은 초가집을 떠올리면서 미소를 지어보면 좋겠습니다. ●약력 ▲1962년 강원도 함백 태생 ▲1985년 성균관대 불어불문과 졸업 ▲1997년 창비주관 제1회 좋은 어린이책 공모상 입상 ▲‘내 짝꿍 최영대’, ‘아름다운 가치 사전’, ‘토끼와 늑대와 호랑이와 담이와’, ‘시카고에 간 김파리’ 등 발표. ▲현재 경기도 용인에서 작은 텃밭을 일구며 가족과 함께 생활.
  • [김문 전문기자 인물 프리즘] ‘음향의 달인’ 김벌래 홍익대 겸임교수

    [김문 전문기자 인물 프리즘] ‘음향의 달인’ 김벌래 홍익대 겸임교수

    ‘천재는 단지 실패쟁이일 뿐이다!’ 1960년대초 한국 최초로 ‘음향효과’ 와 ‘효과음’이라는 장르를 개척했다. 이후 줄곧 국내 음향발전을 이끄는 선구자 역할을 했다. 1990년대 초까지 광고, 방송, 공연, 이벤트 분야에서 사용된 각종 효과음 가운데 90% 이상 그의 손을 거쳐 갔을 정도로 독보적이었다. ‘뻥’하는 맥주병 따는 소리, 럭키치약을 광고할 때 풍선을 이용한 뽀드득소리, 비트는 것과 뻥소리를 함께 결합한 박카스 병마개 따는 소리 등 우리의 귀에 익은 수많은 CF효과음 등을 만들어 냈다. 특히 콘돔을 이용해 콜라병마개를 딸 때 ‘펩!’하는 소리를 만들어내 콜라회사로부터 백지수표를 받은 일화는 지금도 전설처럼 회자된다. ●50년 동안 소리 2만여편 만들어 뿐만 아니다. 만화영화 ‘로봇 태권V’ 음향 작업을 진행했고 86아시안 게임, 88서울올림픽, 2002 월드컵 및 대전엑스포, 대통령 취임식 등등 이루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대형 이벤트에서 사운드 연출과 제작을 도맡았다. 이래저래 국내 최고의 ‘사운드 디자이너’이자 ‘소리의 달인’이라는 수식어가 늘 따라다니는 까닭이다. 홍익대 광고홍보학과 김벌래(68) 우대겸임교수.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지만 여전히 현역으로 활동하면서 소리창조의 길을 걷고 있다. 요즘에는 방학기간이어서 틈틈이 기업체나 단체 등의 초청강연에서 ‘보이지 않는 상상력, 소리의 세계’라는 주제로 설파한다. 그러면서 노년의 역작을 하나 만드는데 열정을 쏟고 있다. 다름 아닌 서울시의 상징동물로 정해진 ‘해치(해태)의 소리’를 만드는 것. 상상의 동물인 해치를 한번도 본 적도 없기에 어려움도 많을 터. 과연 어떤 효과음으로 우리를 또 한번 감동시킬지 주목된다. 김 교수의 자택 근처인 서울 강남구 삼성동의 한 커피숍에서 만났다. →해치소리 제작은 잘 진행되는지요. -이달 말까지 만들어야 합니다. 해치가 어떻게 우는지 본 사람도 없고 들은 사람도 없습니다. 어쨌거나 해치가 서울시의 상징이면서 행운과 복을 주는 동물이기에 기분 좋은 소리여야 합니다. 그동안 연구를 많이 했습니다. 비전과 꿈을 담아야 하고…, 딱따구리 소리,금나와라 뚝딱! 도깨비 방망이소리 등도 떠올려 봤고…, ‘어기여차~’ 하는 뱃노래, 우리 가락으로 방향을 정했습니다. →지금까지 2만여편의 소리를 만들었습니다. 그 중 가장 보람으로 여기는 것이라면. -어떻게 해서 2만여편인지 알 수도 없고 외울 수도 없습니다. 어느 날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서 얼마 전 50년 동안 기록한 장부책을 봤더니 해태, 롯데 등에서 일하고 받은 돈들의 기록을 봤지요. 2만편이 조금 넘더군요. 어제 한 소리는 오늘 모두 잊게 돼 있습니다. →소리란 무엇입니까. -‘소리는 이것이다.’라고 말하지 못합니다. 각자 느낌이 다르고 주어진 환경이 다르기에 좋은지 나쁜지 평을 하지 못합니다. 오랜만에 친구와 만난 대포집에서 술 한잔할 때 마침 라디오에서 ‘돌아와요 부산항’ 노래가 흘러 나왔습니다. 이때 ‘저 노래, 볼륨 올려 주세요.’하는사람도 있고, ‘아,재수 없어.아줌마 꺼!’라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소리에는 괜찮은 소리, 쓸모없는 소리가 있지만 저는 다 소중하게 들으려고 합니다. 부부싸움 소리에도 귀를 기울이지요. ●“천재는 단지 실패쟁이일 뿐” →‘소리의 천재’라고 합니다. 최고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질병은 절망이라는 병이고, 가장 큰 죄악은 포기라는 죄이지요. 우리가 실패했을 때 절대 포기하면 안 된다는 점을 항상 기억해야 합니다. 천재는 실패를 많이 한 ‘쟁이’일 뿐입니다. 쟁이라면 다 아는 ‘147/805’법칙이 있습니다. 나를 비롯한 미술가, 음악가, 서예가들은 모두 ‘147/805’법칙을 사용하지요. 에디슨은 전구 하나를 발명하기 위해 147번 실패했으며 무려 22년이 걸렸습니다. 라이트 형제는 비행기를 만들기 위해 805번을 실패한 끝에 거의 30년 만에 32초간 뜨는 비행기를 만들었습니다. 이 법칙의 주인공들이 바로 천재들이지요. 김 교수는 “스필버그의 영화는 거의 90%가 사운드에 있다.”면서 “소리를 만드는 작업은 완성을 위한 시작이 아니라 실패의 시작이다. 나중에 ‘실패’라는 단어가 ‘경험’으로 읽으면 상쾌해진다. 실패를 얼마만큼 많이 하느냐에 따라 좋은 소리, 쓸만한 소리가 나오는 법”이라고 강조했다. 1941년 경기 광주에서 태어난 그는 어릴 적에 어머니와 사별하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방황과 좌절을 딛고 일어선 그는 국립체신고를 나와 체신공무원이 됐다. 하지만 평소의 끼를 버리지 못해 틈틈이 연극일을 하게 됐고 1962년 동아방송으로 전직하면서 본격적으로 음향효과 분야에 뛰어 들었다. 그의 본명은 김평호이지만 32년 전부터 밥벌이의 뜻이 담긴 ‘김벌래’라고 했으며 지금도 만나는 사람마다 ‘신나는 김벌래입니다.’고 인사한다. km@seoul.co.kr 사진 도준석기자 pado@seoul.co.kr
  • 나치 도망자 ‘죽음의 의사’ 하임 92년 사망

    나치 도망자 ‘죽음의 의사’ 하임 92년 사망

    나치 최후의 도망자로 최근까지 칠레 또는 아르헨티나 생존설이 나왔던 아리베르트 하임이 1992년에 이미 사망했다고 독일 공영방송 ZDF가 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오스트리아 출신인 하임은 나치 치하에서 유대인 수용자들에게 마취 없이 수술을 하고 심장에 가솔린을 직접 주입하는 등의 잔혹한 생체 실험을 강행해 ‘죽음의 의사’란 악명을 얻었고 유대인 단체 사이먼 위젠탈 센터의 추적을 받아온 인물.  방송은 하임이 이집트 카이로에서 이름을 숨기고 살아오다 숨을 거뒀으며 그가 머물렀던 호텔에서 여권과 개인 문서들을 확인했다고 전했다.또 하임이 1992년 숨을 거뒀다는 아들의 진술을 포함,여러 사람의 증언을 확보했다고 주장했다.  방송은 또 하임이 이슬람교로 개종했다고 전했다.  사이먼 위젠탈 센터에서 이름높은 나치 전범 추적자인 에프라임 주로프는 방송이 확보했다고 주장하는 문서를 아직 보지 못했지만 만약 그의 죽음이 사실이라면 “경천동지할 일”이라고 말했다고 AP통신은 전했다.  2차대전 종전 뒤에도 그는 서독 지역에서 의사로서 살아왔으며 1962년 경찰이 과거 행적을 추적하기 시작하자 종적을 감췄다. 인터넷서울신문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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