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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동일 계명대 석좌교수 퇴임

    우리 문학계를 대표하는 석학인 조동일(70·서울대 명예교수 겸임) 계명대 석좌교수가 최근 퇴임식 및 출판 기념회를 갖고 38년에 이르는 교직 생활을 마무리했다고 24일 밝혔다. 조 교수는 이날 퇴임행사에서 2004년 9월부터 퇴임까지 계명대에서 5년간 강의한 내용을 모은 ‘세계·지방화 시대의 한국학’ 시리즈 10권 완간을 자축했다. 그는 또 후학을 위해 고문헌과 국문학 서적 6700여권, 해외 수집자료 18상자 등 평생 모은 장서와 연구자료를 계명대에 기증했다. 대학 측은 조 교수의 업적을 기려 ‘계명출판문화특별상’을 수여했다. 그의 학문에 대한 열정과 뜻을 잇기 위해 도서관 내 별도의 공간에 설치한 ‘동일문고’를 개장, 기증자료를 비치했다. 조 교수는 “1968년 교수로서 처음 부임한 계명대에서 다시 퇴임을 맞게 됐다.”면서 “내 학문의 처음과 끝인 계명대에 모든 자료를 기증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1939년 경북 영양에서 태어난 조 교수는 62년 서울대 불문과에 이어 66년 서울대 국문과를 졸업한 뒤 76년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68년 계명대를 시작으로 영남대(1977~1981), 한국학대학원(1981~1987), 서울대(1987~2004) 등지에서 교수를 역임했다. 2004년 서울대 퇴임 뒤 계명대 석좌교수로 재직하며 서울과 대구를 오가며 한국문학 연구에 매진해 왔다. 대구 한찬규기자 cghan@seoul.co.kr
  • 추억의 올드카 공개수배

    추억의 올드카 공개수배

    ‘추억의 올드카(Old Car)를 수배합니다.’ 현대·기아차가 ‘자동차 역사 지키기’에 힘을 쏟고 있다. 역대 생산 모델을 빠짐없이 수집하고 이를 보존할 수 있는 대규모 전시관도 새로 마련한다. 현대·기아차는 24일 경기도 화성 남양종합기술연구소 내 부지에 ‘현대·기아차 역대 차량 전시관’을 신축하고 있으며 10월 완공한다고 밝혔다. 전시관에는 한 시대를 풍미했던 차량 20여대를 전시할 예정이다. 협력업체 관계자나 국내외 방문객들에게 공개된다. 현재 현대차 울산공장과 기아차 소하리공장에 차량 홍보관이 마련돼 있으나 공간이 좁아 10대 이상 전시하기 어렵다. 할 수 없이 남양연구소에 포니, 브리사, 봉고 등 현대차와 기아차가 만든 차량이 모델별로 각각 110여대(58종)와 80여대(39종)를 보관하고 있다. 하지만 보유하지 못한 희귀 모델이 여전히 있고, 원형 상태가 아니거나 파손돼 전시용으로 부적합한 차량이 적지 않다. 이에 따라 현대·기아차는 당시 기아산업이 만든 최초의 국산 화물차 K-360 삼륜트럭(1962년 1월∼69년 12월), 현대차의 첫 번째 승용차인 코티나(68년 11월∼71년 9월) 등 8개 차종을 우선 수집 대상으로 꼽고 ‘올드카 동호회’ 등을 통해 구매에 나섰다. 현대·기아차 관계자는 “역대 차량을 수집하는 데 그치지 않고 대한민국 자동차 기술의 역사를 보존하고 공유하기 위한 취지”라고 설명했다. GM대우는 군산공장 홍보관에 누비라, 레조 등 양산차와 조이스터(대우제작) 등 컨셉트카 21대를 전시하고 있다. GM대우는 전신인 대우자동차, 새한자동차, 신진자동차 시절 생산한 로열시리즈, 제미니 등 차량은 거의 보관하지 못하고 있으나 수집 여력을 높일 방침이다. 쌍용차도 코란도 등 역대 차량 보관에 다소 미흡한 상황이다.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서울신문 다른기사 보러가기] 대입 수시모집 전형 주의할 점은 한·미 어린이 국산 애니 ‘뚜바뚜바’ 동시에 본다 서울 마포대교 아래 ‘색공원’ 시민안전 ‘빨간불’ 덜 뽑는 공공기관 더 뽑는 대기업 “은나노 입자, 폐와 간에 치명적” ‘통장이 뭐길래’ 지자체 임기제한 추진에 시끌 경기 앞지르는 자산 급등 거품 논란 ‘휴대전화료 인하’ 이통사 저울질
  • 역대 ‘비키니 여신’ TOP 10은?

    역대 ‘비키니 여신’ TOP 10은?

    ‘007 시리즈’ 초대 본드걸 우슬라 안드레스가 영국 여성들이 뽑은 ‘역대 최고의 비키니 여신’(bikini goddesses)으로 선정됐다. 영국 여성 1000명이 참여한 ‘비키니 여신’ 투표에서 스위스 출신 배우 우슬라 안드레스는 007 시리즈 첫 번째 영화 ‘닥터노’(Dr. No)의 명장면으로 꼽히는 해변 비키니신으로 1위에 올랐다. 1962년 영화 ‘007 닥터노’에서 당시 26세였던 우슬라 안드레스가 비키니에 칼을 찬 채 바다에서 걸어나오는 장면은 이후 시리즈에서 꾸준히 변주될 만큼 깊은 인상을 남겼다. 2위는 오랜 기간 여성들이 가장 부러워하는 몸매를 가진 배우로 손꼽혀 온 영국 배우 켈리 브룩이 차지했고 프랑스 배우 브리짓 바르도가 3위로 뒤를 이었다. 할 베리와 메간 폭스는 각각 5위와 8위에 올라 할리우드 섹시 스타의 명성을 지켰다. 제시카 알바도 10위로 간신히 순위에 포함됐다. 이번 투표는 비키니가 할리우드에서 붐을 일으킨 지 60년 된 해를 기념해 여성 면도기 업체 ‘질레트 비너스’가 진행했다. 1946년 프랑스 패션쇼에서 발표된 비키니는 1949년 할리우드 스타들 사이에 유행하면서 널리 알려졌다. 다음은 ‘역대 비키니 여신 TOP 10’ 투표 결과. 1. 우슬라 안드레스 URSULA ANDRESS 2. 켈리 브룩 KELLY BROOK Brook-ing good ... Kelly 3. 브리짓 바르도 BRIGITTE BARDOT 4. 헬렌 미렌 HELEN MIRREN 5. 할 베리 HALLE BERRY 6. 마일린 클라스 MYLEENE KLASS 7. 엘 맥퍼슨 ELLE MACPHERSON 8. 메간 폭스 MEGAN FOX 9. 지젤 번천 GISELE BUNDCHEN 10. 제시카 알바 JESSICA ALBA 박성조기자 voicechord@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222Km 도로 건설에 47년 걸린 코스타리카

    222Km 도로 건설에 47년 걸린 코스타리카

    장장 반세기. 47년 동안 진행된 도로건설공사가 드디어 끝나게 된 나라가 있어 화제다. 중미의 코스타리카가 바로 그곳. 1900년대 중반에 공사가 시작됐지만 세기가 바뀐 지금에야 완공을 기대할 수 있게 된 도로는 코스타리카가 야심차게 준비했던 ‘남부해안도로’다. 코스타리카 남부 도시를 연결하면서 주변국인 니카라과와 파나마의 교통까지 빠르고 원활하게 한다는 목적으로 1962년 착공됐다. 도로는 길지 않다. 총 길이는 222Km다. 올해 공사가 끝난다면 1년에 4.723Km씩 길이 놓인 셈이다. 하루 0.0129Km 꼴이다. 늦어도 2-3년이면 후딱 해치울 수 있는 공사였지만 그간 탈도 많고 사고도 많았다. 공사는 난항에 빠져 거북이걸음을 했다. 시공사 선정 공개입찰에 참여했다가 탈락한 건설회사들이 “부정이 있었다.”며 소송을 걸어 공사가 중단되는가 하면 토지배상금 재원이 부족해 공사가 차질을 빚기도 했다. 땅을 내어주게 된 주민들이 배상금이 적다며 도로공사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여 공사가 중단되기도 하고 각종 부정부패 스캔들이 겹쳐서 발생하기도 했다. 더딘 공사로 완공은 멀어만 보이는 가운데 코스타리카에선 정권이 12번 바뀌었다. 코스타리카 정부의 공공사업-교통부 장관은 최근 인터뷰에서 “현재 공사를 맡고 있는 건설회사들이 공기를 앞당기고 있다.”며 “2010년 완공계획이었지만 연내 공사가 끝날 게 확실시 된다.”고 말했다. 그는 “(11번이나 새 정부가 출범하면서도 공사를 끝내지 못했지만) 현 정부는 결코 포기하지 않았으며 차기 정부에 숙제를 남기지도 않게 됐다.”며 “과거에 발생했던 잡음과 문제 없이 무사히 공사를 마치게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지 언론은 “현 정부가 ‘승전가’를 부를 충분한 이유가 있다.”며 “이변이 없는 한 연내 공사가 마무리될 것”이라고 전했다. 사진=페레스셀레돈 서울신문 나우뉴스 남미통신원 임석훈 juanlimmx@naver.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인도 영토분쟁지 개발선언에 中 발끈

    인도 영토분쟁지 개발선언에 中 발끈

    │베이징 박홍환특파원│“더 이상 국제사회에 도움을 요청하지 않고, 변경지역을 독자개발하겠다.” 인도가 중국과의 영토분쟁 지역인 아루나찰 프라데시주에 대한 독자개발을 선언했다. 중국은 인도가 티베트 땅 불법 점유를 기정사실화하려 한다며 발끈하고 나섰다. 이달 초 1년여만에 국경회담을 재개, 영토분쟁 해결을 위해 공동노력키로 합의한 지 불과 한 달도 안돼 중국과 인도 양국 사이에 또 다시 소모적인 비난전이 가열될 전망이다. 인도의 소마나할리 말리이아 크리시나 외무장관은 18일 “인도 정부는 앞으로 자체 자금만으로 ‘민감 지역’을 개발키로 했다.”며 “인도 정부는 그럴 능력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 크리시나 장관의 발언은 아시아개발은행(ADB)의 차관을 통해 접경지역을 개발하려던 계획이 중국측의 집요한 반대로 무산된 데 대한 불만의 표출로 해석된다. 실제 그는 “국제기금은 불확정적인 요소가 있고, 부가조건을 필요로 하게 마련”이라면서 “(이 문제와 관련해서는)더 이상 국제기구에 지원을 요청하지 않겠다.”고 우회적으로 ADB와 중국을 비난했다. 인도는 당초 빈곤퇴치 프로그램의 하나로 ADB로부터 29억달러(약 3조 6000억원)의 차관을 제공받아 이 가운데 6000만달러로 아루나찰 프라데시주의 인프라 시설을 확충할 계획이었지만 중국측의 반대로 프로그램 자체가 보류된 상태이다. 중국은 인도가 국경협상 대상지역에서 제외시키기 위해 아루나찰 지역에 대한 대대적인 개발을 시도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아루나찰 프라데시주에 대한 인도의 독자개발 방침이 알려지자 중국 내 여론이 들끓고 있다. 아직 중국 정부의 공식 논평이 나오지 않고 있는 가운데 네티즌들은 “인도 정부가 중국 영토의 불법점유를 영구화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정부는 강력한 대응에 나서라.”고 강경발언을 쏟아냈다. 중국은 인도가 원래 티베트 땅이었던 남동부 지역(인도 아루나찰 프라데시주) 9만㎢와 중부 지역 2000㎢를 강점하고 있다는 입장이고, 인도는 북서부 카슈미르 지역(중국 신장위구르자치구 악사이친) 3만 3000㎢를 중국 측이 불법 점령하고 있다고 주장해왔다. 수십년째 이어져온 양국간 국경분쟁으로 1962년 전쟁도 불사했고, 현재까지도 지루한 협상이 계속되고 있다. stinger@seoul.co.kr
  • [김대중 前대통령 서거] 사선 다섯번 넘어… 민주주의 유토피아 꿈꿨다

    [김대중 前대통령 서거] 사선 다섯번 넘어… 민주주의 유토피아 꿈꿨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인동초’, ‘행동하는 양심’으로 불리며 반세기 한국 정치사를 풍미했다. 한국 정치사에서 ‘3김(金)시대’의 한 축이었던 고인(故人)은 1997년 겨울, 반세기만에 ‘선거혁명’을 통한 정권교체를 이뤘다. 3전4기로 대통령에 당선된 뒤에는 외환위기를 극복했고 2000년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켜 한반도 정세의 패러다임을 바꿨다. 5차례의 죽을 고비와 5년여의 감옥생활, 6년여의 가택연금, 3년의 망명생활 등 고인의 삶은 견디기 어려운 시련으로 점철됐다. 가톨릭 세례명인 ‘토마스 모어’처럼 고행하는 구도자의 삶을 이어온 셈이다. “정이 많은 분이다.” 영원한 비서실장인 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김 전 대통령을 이같이 묘사했다. 말년에도 거의 매일 서울 동교동 자택을 드나든 박 의원은 “지난 1월 민주당 정세균 대표가 방문해 용산참사에 대해 말을 꺼내자 이내 김 전 대통령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면서 “평소에도 드라마 속 (비참한) 사람들을 보며 눈시울을 붉힐 만큼 평소 인정도 많으셨다.”고 전했다. 말년에는 미국의 버락 오바마 행정부 등장과 맞물려 케네디 전 대통령과 관련된 책을 탐독하고 여론주도층을 만나 서민과 비정규직을 위한 사회 안전망, 생산적 복지를 강조했다고 한다. 전남 목포에서 뱃길로 150리. 김 전 대통령은 1924년 매서운 바닷바람을 등진 하의도라는 작은 섬에서 3남2녀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신안군 하의면 후광리에는 지금도 생가터가 남아 있다. ‘후광’(後廣)이라는 호(號)도 여기서 따왔다. 중농의 아들이었던 그는 목포상고(현 전남제일고)에 수석 입학한 수재였지만 반일운동으로 학적부에 ‘시찰계요’라고 적힐 만큼 반골기질을 드러냈다. 1945년 약관의 나이에 ‘건국준비위원회’와 조선 신민당에 입당했지만 8개월 만에 탈당한다. 이어 3단계 통일방안(1972년)과 광주 민주화운동(1980년) 등을 거치면서 색깔론에 휘말렸다. 고인은 1946년 첫 부인 차용애 여사와 가정을 꾸리고 해운회사를 경영, 큰돈을 모은다. 뛰어난 상술로 목포일보를 인수한 뒤 주필을 겸하기도 했다. 자금을 끌어대고 경쟁상대를 꺾으며 사람의 마음을 낚는 장사와 정치는 닮은꼴이다. 1950년 한국전쟁 때는 우익단체 참여를 빌미로 인민군에게 처형될 위기에 몰렸지만 이송 중 극적으로 탈출, 첫 죽음의 고비를 넘긴다. 1954년 3대 민의원 선거에서 목포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하며 본격적으로 정치에 뛰어들었다. 3대를 포함, 4차례 낙선의 쓴잔을 연거푸 마셨다. 1958년 강원도 인제군 민의원 선거 때는 후보등록이 취소됐고, 1959년 보궐선거에선 색깔론에 휘말렸다. 4·19혁명이 일어난 1960년 선거에서도 낙선했다. 1961년 인제군 보궐선거에서 당선의 첫 기쁨을 누린 김 전 대통령. 하지만 사흘 만에 5·16을 맞아 반혁명사건에 연루돼 교도소로 직행한다. 토머스 모어의 교훈은 오히려 고난 극복의 힘이 됐다. “늦어도 100년 뒤면 (토머스 모어처럼) 역사에서 재평가받을 것”이라며 고통을 이겨냈다. 1962년 이희호 여사와 재혼한 고인은 이듬해 목포에서 민주당 후보로 공화당 후보를 제치고 당선됐다. 1964년 5시간20분간 행한 ‘필리버스터’ 발언과 6개월간 13차례 본회의 발언 등은 지금도 기록으로 남아 있다. 1971년 7대 대선은 기회이자 시련의 계기였다. 1970년 45세의 나이에 ‘40대 기수론’의 라이벌 김영삼(YS) 전 대통령을 물리치고 신민당 후보로 나섰지만 이듬해 선거에선 94만표 차로 패배했다. 이후 20년간 혹독한 시련이 밀려왔다. 일본 망명 중인 1973년 ‘김대중 납치사건’을 시작으로 전두환 군사정권까지 55차례의 연금생활, 5년반 동안의 감옥생활, 2차례의 망명생활을 겪었다. 1976년 명동 3·1구국선언으로 구속(긴급조치 9호 위반)됐고, 1981년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으로 사형선고를 받았다. 훗날 고인은 “솔직히 죽는 것이 두려웠지만 영원히 사는 길을 택했다.”고 회고했다. 가톨릭계의 구명운동 덕에 목숨을 건진 고인은 1982년 도미, 두 번째 망명길에 오른다. 한국인권문제연구소와 민주화추진협의회를 이끌며 민주화 운동의 외로운 무게중심이 됐고, ‘인동초’란 별칭도 얻게 된다. 1985년 12대 총선을 앞두고 전격 귀국한 고인은 김포공항에서 연행돼 가택연금에 처해졌다. 하지만 김영삼 전 대통령과 함께 만든 신한민주당이 2·12총선에서 109석을 확보, 1987년 6월 항쟁의 기틀을 마련한다. 사면복권 뒤 1987년 13대 대선에 출사표를 던졌지만 3위에 머무르며 김영삼 전 대통령과의 후보 단일화 실패에 따른 비난에 휩싸였다. 1988년 총선의 평민당 ‘황색 돌풍’으로 일선에 복귀했지만 1992년 12월 대선에서 패배한 뒤 정계은퇴를 선언한다. 고인은 “40여 년의 파란 많았던 정치생활에 사실상 종막을 고한다고 생각하니 감개무량한 심정을 금할 길이 없다.”며 대선 낙선의 소회를 곱씹었다. 막을 내릴 것 같던 정치인생은 영국으로 건너간 지 6개월만에 다시 불꽃을 살렸다. 1993년 귀국해 아태평화재단을 설립했고, 빗발치는 비판 여론을 무릅쓰고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했다. 이듬해 총선에서 제1야당으로 올라서자 대선 4번째 출마를 선언한다. ‘대통령병 환자’라는 비난이 일었지만 단 1.6%포인트의 표차이로 이회창 후보를 누르고 색깔론과 지역감정의 벽을 넘었다. 보수세력인 자민련과의 DJP연합이 힘이 됐지만, 역설적으로 색깔과 지역의 부조화스러운 조합이기도 했다. 고인의 대표 브랜드는 ‘햇볕정책’이다. 반세기 동안 닫혔던 북쪽의 문을 열게 하는 열쇠로, 서독 빌리 브란트 총리의 동방정책과 궤를 같이한다. 이를 바탕으로 이뤄진 역사적 남북정상회담은 한반도가 ‘레드 콤플렉스’를 벗어던지고 탈냉전체제로 진입하는 촉매제가 됐다. 고인을 한반도 유일의 노벨상 수상자로 만든 일대 사건이었고, 퇴임 뒤에도 논쟁이 있는 사안에 대해 비중있게 언급할 수 있는 유일한 지위를 부여했다. 고인은 대통령 임기말 측근들의 비리가 뒤늦게 터진 데다 아들들이 구속되는 등 마음고생도 적지 않았다. 6·15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해 북한과 밀거래한 사실은 안타까운 기록으로 남게 됐다. 또 완벽주의와 제왕학적 리더십은 권위주의적 통치라는 오명도 남겼다. 오상도 허백윤기자 sdoh@seoul.co.kr
  • [지방시대] 성공적 지역축제가 지자체 경쟁력 키워/김도희 울산대 행정학과 교수

    [지방시대] 성공적 지역축제가 지자체 경쟁력 키워/김도희 울산대 행정학과 교수

    1962년 울산은 공업단지로 지정돼 주요 산업인 석유화학, 자동차, 조선 등의 기간산업으로 국가경제 발전에 기여해 온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울산은 양적 성장의 중심지로 다른 도시에 비해 경제적 풍요로움의 혜택은 일찍 누렸을지는 모르지만 환경마인드 없이 시작된 산업화전략은 오래 가지 못해 ‘공해도시’라는 오명을 얻게 되었다. 그러나 근래 들어 부단한 노력 덕분에 울산이 ‘친환경 생태도시’로 알려질 만큼 오랜 숙원사업이었던 환경문제를 해결했다. 울산시는 이에 만족하지 않고 ‘문화도시’로 거듭나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로 10월 개막을 앞두고 있는 ‘2009 울산세계옹기엑스포’를 꼽을 수 있다. 자율과 책임이 강조되는 지방자치제가 본격적으로 실시되고 나서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노력은 각 자치단체의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 즉 중앙정부 재정의존형에서 벗어나 자립적인 지역경제를 형성, 확대해 나가는 것이 경쟁력 있는 지방으로 신뢰받는 지방정부로서 일차적인 과제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제도적인 변화에 따른 지방정부에 부여되는 역할의 변화와 함께 ‘삶의 질’이 강조되는 21세기에서 자치단체는 양적인 경제 성장만으로는 지역주민의 행정수요는 물론 다른 자치단체와의 경쟁, 더 나아가서는 국제경쟁력에서도 좋은 결과를 얻기 어렵다. 지방정부가 한정된 자원과 예산으로 양적·질적 욕구를 충족해 나가야 한다는 과제를 안게 되면서 자주재원 확보의 한 수단으로 경영화 사업추진, 지역축제의 성공을 통한 지역경제 활성화에 많은 기대를 모으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성공적인 지역축제가 곧 지방정부 재정확보에 큰 기여를 한다는 사실은 독일 ‘뮌헨의 10월 축제’를 통해서 잘 알 수 있다. ‘뮌헨의 맥주축제’로 명명되는 시민축제로서의 10월 축제는 190여년 동안 지속적으로 시대정신과 시대의 문화상을 반영해오는 축제이다. 10월 축제의 경우 세계 각국으로부터 관광객들이 10월 축제에 참가하기 위해 독일을 방문하고 있는데 이는 축제의 역사성, 뮌헨시민들의 축제에 대한 애정, 그리고 주최 측의 철저한 조직력과 마케팅 전략에서 비롯됐다. 10월 축제가 시작되면 뮌헨시는 경제면에서 활기를 띨 정도로 10월 축제는 주정부에 재정자립도를 높여 주고 있다. 2000년 통계에 의하면 뮌헨 10월 축제는 축제시즌 동안 지구촌 각지에서 평균 600만~700만명의 방문객들이 찾아들며 14억마르크의 경제적 효과를 창출한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울산은 지금껏 다양한 지역축제를 추진해오긴 했지만 성공적인 지역축제로 손꼽을 만한 지역축제가 딱히 없다. 울산을 대표하는 문화예술제로 ‘처용문화제’가 있긴 하나 행사를 통해 거둬들이는 수익금이 전혀 없고, 지역주민조차 적극적인 참여와 관심을 모으지 못하고 있다. 이러다 보니 부산의 국제영화제라든가 광주의 비엔날레, 경주의 문화관광축제, 함평의 나비축제, 보령의 머드축제처럼 전국 규모의 행사는 아직 존재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전국이 아니라 국제 행사를 목적으로 준비 중인 세계옹기문화엑스포만큼은 성공적인 개최로 ‘세계 속의 울산’을 알리는 좋은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것이 울산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간절한 바람이다. 그러기 위해선 앞으로의 준비기간이 얼마 남지는 않았지만 옹기엑스포조직위원회의 탁월한 경영전략과 다각적인 측면에서의 광고 전략을 통한 관람객 유치, 다른 축제와 차별화되면서 옹기문화의 정체성이 살아있는 내실 있는 프로그램의 구성을 통한 옹기엑스포의 성공적인 개최에 만전을 다해야 할 것이다. 김도희 울산대 행정학과 교수
  • [명배우 명무대] 신구의

    [명배우 명무대] 신구의

    한때 대한민국에서 최고의 지가(地價)를 자랑하던 명동에 연극전용극장이 복원되었다. 원래 이 자리는 일제강점기(1934)에 메이지자(明治座)라는 이름의 영화관이 있던 자리로 건축사무소를 경영하던 이시바시 료스케(石橋良介)가 이 영화관의 주인이었다. 그는 5년 후 1939년에는 단성사를 인수하여 대륙극장으로 개명, 영화전용관으로 운영함으로써 당시 경성(게이죠) 극장가의 대부로 군림하기도 했다. 명동은 조선 시대에 명례방(明禮坊)이라고 불렸는데, 장악원이 있었던지라 넓은 의미에서 예술과 인연이 깊은 곳이다. 일제강점기에 메이지쵸(明治町)로 바뀌고, 그 이름을 따서 메이지자가 들어선 것이다. 지금의 신세계백화점 자리에 있던 일본공사관을 중심으로 일대가 근대식 상가지역으로 개발되어 오늘에 이르기까지 상권을 발전 시켜왔다. 지금은 대체로 중저가 상품이 대종을 이루지만, 아직 일본 관광객이 가장 즐겨 찾는 지역이기도 하다. 이처럼 번화했던 거리인지라 자연히 예술가들이 모여들기도 했다. 이 건물은 1945년 광복 이후 1961년까지 시공관으로 사용되다가, 1962년 국립극장으로 개·보수되면서 좌석이 1,178석에서 820석으로 축소되었는데, 이번 복원 공사를 거치면서 552석으로 조정되었다. 1973년에 국립극장이 장충동으로 신축, 이전되면서 문화공보부가 총무처로부터 이 건물을 임대하여 명동예술극장이라는 이름 아래 극장으로서 계속 활용하였다. 이후 1976년에 신축 비용을 이유로 대한투자금융, 대한투자신탁에 매각되어 사무실로 용도 변경, 1994년 11월, 대한종합금융이 이 건물을 10층 신사옥으로 건립하려는 계획이 밖으로 알려지면서 연극인들을 비롯하여 문화계가 ‘극장 되찾기 운동’을 벌였고, 명동상가번영회는 정부가 이 건물을 구입할 수 있도록 계속하여 경매 유찰을 유도함으로써 결국 2003년 12월에 정부가 매입하면서 5년 공사과정을 거쳐 2009년 5월에 명동예술극장으로 다시 태어났다. 이 극장에서는 최초의 오페라 공연, 최초의 오케스트라 공연, 그리고 신협과 민극이 통합된 최초의 국립극단 공연이 연이었다. 그런가 하면 국립오페라단, 국립국극단(현 국립창극단), 그리고 국립무용단이 1962년에 설치되어 대한민국 최고의 공연예술 수준을 자임했는가 하면, 최고의 인기 대중가수 현인이나 신예 윤복희 등이 그 무대에 서기도 했다. 나아가 1960년대 이후 한국연극계를 지탱해온 대학극 출신의 동인극단들의 활약도 이곳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명동백작’을 자임했던 작가 이봉구가 “우리나라 문화가 다 들어가 있다”고 했다던가? 이러한 배경으로 인해 명동예술극장의 재개관은 단순히 또 하나의 극장 개관과는 다른 특별한 의의를 지니게 되었고, 바로 그 개관 공연이 신구가 주인공을 맡은 <맹진사댁 경사>(오영진 작, 이병훈 연출)이다. <맹진사댁 경사>는 일제강점기인 1942년에 일본어 시나리오로 《국민문학》에 발표된 이래, 같은 해 작가에 의해 희곡으로 개작, 연극으로 초연되었다. 1956년에 <시집가는 날>, 1961년에 <맹진사댁 경사>로 영화화 되기도 하고, 1974년 11월에서는 국립가무단이 뮤지컬로 공연했는가 하면, 서울올림픽이 개최되던 1988년에는 메노티에 의해 오페라로도 작곡되어 공연되기도 했다. 홍현택이 쓴 오페라도 있다. 연극으로는 ‘신협’(1951)과 ‘실험극장’(1969, 1972)을 비롯하여 여러 단체에 의해 무대에 올렸는데, 그 중 실험극장 공연이 단연 오랫동안 수작으로 손꼽혀 왔다. 돈으로 진사 신분을 사들인 맹진사는 외동딸 갑분을 지체 높은 김판서 아들 미언과 결혼시켜 더 높은 신분 상승을 꿈꾼다. 그러나 김판서와 같은 마을에 산다는 손님을 통해 사윗감이 절름발이라는 말을 듣고 딸의 몸종인 입분을 딸로 둔갑시켜 혼례를 치르고자 한다. 당일 도착한 일행 중 신랑이 당당하게 걸어오는 모습을 보고, 맹진사는 친척집으로 보낸 갑분을 급히 불러들이나 신랑과 노망기가 있는 부친의 재촉에 할 수 없이 입분과의 혼례를 치른다. 첫날 밤, 입분이 자신의 신분을 밝히지만, 신랑은 이 모든 사단을 자신이 꾸몄음을 실토하며, 참된 마음을 지닌 사람, 곧 입분이 자신이 찾던 사람이라고 고백한다. 신방의 불이 꺼지자, 맹진사댁 가족들은 망연자실한다. 신구는 1962년에 유치진 선생의 문하생으로서 연극 <소>로 데뷔한 후, 그로부터 본명 신순기 대신 신구라는 예명으로 받아 지금껏 쓰고 있다. 오랠 ‘구’(久)자의 효험인지 그는 오늘날까지 현역으로 47년 동안 꾸준하게 활약하고 있고, 이후로도 그럴 것이다. 데뷔 이래 대체로 진지한 역할 내지 순박한 역할을 맡아오고 있지만, 그의 연기에는 희극적인 계기를 잘 살려내는 묘미가 섞여 있다. 그가 이번에 맡은 맹진사 역은 한편으로는 탐욕적이지만, 바로 그로 인해 희극적인 면모를 드러내야 하는데,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에 그가 주역으로 발탁된 것이 아닐까 싶다. “니들이 게 맛을 알아”라는 광고방송에서 히트한 것에서 보듯이 그의 희극성은 과장되게 꾸미지만 않는다면 자연스럽게 사람들에게 스며들어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미소를 머금게 한다. 유치진의 후원으로 탈춤을 소개하기 위해 하와이동서문화센터에서 1년간 있으면서 현대무용을 익힌 경력도 작용해서인지 그의 연기는 유연성이 높다. 나는 아직도 그가 유치진의 마지막 연출 공연에서 보여준 유연한 몸동작을 어제인 양 기억하고 있다. 그뿐 아니라, 그는 많은 움직임을 요구하는 연출가 김아라나 한태숙과도 무리 없이 호흡을 맞춰낸다. 또한 그는 서울 태생답게 표준어를 훌륭하게 구사할 줄 아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이점에서 그는 같은 서울 태생인 오현경과 맞먹는다. 그가 비록 2지망이지만 성균관대 국어국문학과에 적을 두고 한때 아나운서를 지망했던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 같다. 그는 드라마센터 연극으로부터 출발하여 국립극단의 배우를 거치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TV드라마와 영화를 통해 더 많이 알려졌다. 그러면서 <토마토>라는 영화에서 연기생활 45년 만에 처음으로 주역을 맡았다고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연극을 고향으로 삼고 있고, 언제고 무대로 돌아오고 싶어 한다. 그와의 인터뷰들에서는 의례히 그가 명문 경기고 출신이란 점을 들어 다른 직업을 택했을 가능성이 질문되기도 하지만, 그로서는 관객과의 교감에서 진정한 희열과 기쁨을 느낄 만큼 연극, 아니 연기만이 자신의 천직이라는 신념이 누구보다 강하다. 그가 <하나를 위한 이중주>로 근 10년 만에 무대에 다시 서서 윤석화와 호흡을 맞출 때에나 <숨은 물>에서 노영화 등 비교적 젊은 배우후배들과도 무리 없이 조화를 이룬 것도 연기를 천직으로 삼고자 하는 후배들의 각오를 귀히 여기고 이를 격려하는 심성과 연기에 대한 자부심이 무리 없이 배어 나온다. 신구세대가 함께 작업해야 하는 이번 공연에서도 그의 중심추로서의 무게감이 공연의 성공에 알게 모르게 작용했으리라고 여겨진다. 그가 경기고교 출신들이 만든 화동연우회 회장을 오랫동안 맡아온 것도 단순히 선배라서가 아니라 그만큼 넉넉한 품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 아닐까? 글_ 김문환 서울대교수, 연극평론가
  • 답 안 보이는 中·인도 국경분쟁

    │베이징 박홍환특파원│중국과 인도가 7일 거의 1년여만에 국경회담을 재개했지만 국경분쟁 해결의 길은 요원해 보인다. 양국 언론들도 1년여만의 대좌가 무색할 정도로 상대측의 성의 부족을 힐난하고 있다. 다이빙궈(戴秉國) 외교담당 국무위원을 수석대표로 한 중국측 특별대표단은 이날부터 이틀간 인도 뉴델리에서 나라야난 국가안보보좌관을 필두로 한 인도측 대표단과 대화를 시작했다. 중국측 대표단에는 ‘웅변의 달인’으로 불리는 마자오쉬(馬朝旭) 외교부 대변인도 포함돼 있다. 양국은 지난해 9월 베이징에서 제12차 국경회담을 열었지만 별다른 진전을 보지 못했었다. 오히려 최근 1년간은 국경을 사이에 두고 서로 병력을 증강배치하는 등 갈등의 골이 더욱 깊어지는 양상이다. 인도는 국경과 가까운 아삼주 테즈푸르 공군기지에 다목적 전투기인 수호이-30 MKI 비행편대를 배치한 데 이어 아루나찰 프라데시주에도 병력 6만명을 증원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따라 2007년 시작된 합동 군사훈련도 올해는 개최하지 않기로 서로 입장이 정리된 상태다. 총길이 1700㎞에 걸쳐 국경을 맞대고 있는 두 나라는 네팔, 부탄을 제외한 동부와 중·서부에서 수십년간 국경분쟁을 겪고 있다. 중국은 인도가 원래 티베트 땅이었던 남동부 지역(인도 아루나찰 프라데시주) 9만㎢와 중부 지역 2000㎢를 강점하고 있다는 입장이고, 인도는 북서부 카슈미르 지역(중국 신장위구르자치구) 3만 3000㎢를 중국측이 불법 점령하고 있다고 주장해왔다. 1962년에는 전쟁까지 치렀다. 이번 회담의 비관적인 전망은 양국 언론의 보도 태도에서도 명확히 짐작할 수 있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의 자매지인 환구시보(環球時報) 등 중국 언론들은 “인도의 양심 없는 태도가 가장 큰 난관”이라고 인도측 태도 변화를 촉구했다. 인도 언론들도 “양국간에 주민 거주 지역은 교환 대상에서 제외키로 이미 합의했는데도 중국측은 인도인 2만명 이상이 살고 있는 아루나찰 프라데시주의 타왕 지역을 돌려달라고 무리한 요구를 하고 있다.”며 중국측의 약속위반을 지적했다. stinger@seoul.co.kr
  • [씨줄날줄] 무관 노상추/함혜리 논설위원

    경자년(정조 4년·1780년) 4월1일 맑음. “아침 일찍 악공을 불러 가묘에서 제사를 지냈다.허서방네 논을 빌려 연회석을 마련했다. 아침밥이 끝나기도 전에 누가 정자나무 아래 와 앉으며 호신(呼新·막 급제한 사람을 부르는 예)하니 정좌랑이었다.…밤늦게 연회가 끝나고 선산부사는 돌아갔지만 다른 손님들은 모두 머물렀다. 내외 손님들로 온 방이 가득차 나는 잘 곳이 없었다. 오늘 다녀간 사람이 오,륙천에 이르는 듯하다.” 안강노씨 경암공파 12대 손인 조선 후기의 무관 노상추(尙樞·1746∼1829년)가 쓴 일기의 한 부분이다. 노상추의 집안은 월파공 노이익이 영남 유학파를 대표해서 서인들의 횡포를 비난하는 상소문을 올렸다가 노론 영수였던 우암 송시열의 노여움을 사 옥사한 이후 문과 응시가 봉쇄된 상황이었다. 증조부인 노계정이 병조판서까지 지냈지만 이후 급제한 후손이 없던 차에 그가 무과시험에 합격했으니 가문의 경사가 아닐 수 없다. 그것도 10년 도전 끝이었으니 얼마나 기뻤겠는가. 노상추는 무과 급제 후 변방의 진장(鎭將)을 거쳐 국왕 경호대인 금군, 궁궐 수비 책임자인 오위장 등 오랜 무관생활을 이어갔다. 이후 삭주부사 등 지방관을 거쳐 66세이던 1811년 가덕첨사까지 역임했다. 노상추는 긴 일기를 남겼다. 장남이 일찍 세상을 떠난 데 충격을 받은 아버지가 차남 노상추에게 집안의 일기를 작성하도록 한 것은 1762년이다. 그의 나이 18세였다. 이후 82세까지 쓴 일기에는 자신과 가족의 하루 일과부터 30년 넘게 봉직한 군생활의 나날들이 꼼꼼하게 적혀 있다. 조상 제사를 잘 모시지 않는 종손 종옥에 대한 섭섭함, 첫 부임지인 갑산에서 알게 된 관기 석벽(惜壁)에 대한 애틋한 심정도 담았다. 2005년 영인본 출간으로 관심을 모았던 그의 일기를 소재로 ‘68년의 나날들, 조선의 일상사’(문숙자 저·너머북스 펴냄)가 출간됐다. 노상추는 남인 계열로 서인들의 극심한 견제를 받아 큰 벼슬에 오르지 못했고 역사에 남을만한 공을 세우지도 못했다. 하지만 18세기 후반 조선 무반가의 일상을 현미경 들여다보듯이 알 수 있는 것은 그가 남긴 일기 덕분이다. 어찌보면 그게 더 큰 업적일지 모른다.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美 “경기회복 진전”

    미국 2·4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1.0%를 기록해 경기침체 속도가 예상보다 크게 둔화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미 상무부는 1분기 실질GDP 성장률이 전 분기 대비 -6.4%로 당초 집계된 -5.5%보다 부진했다고 31일(현지시간) 발표했다. 그러나 2분기 성장률은 -1.0%로 대폭 둔화돼 당초 전문가들의 예상치인 -1.5%보다 완화됐다. 이 때문에 대공황 이후 최악의 경기침체가 막바지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는 기대감이 짙어졌다. 로버트 기브스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상무부 발표 직후 “불황의 늪에 빠져 있던 경제가 회복의 ‘진전’을 보이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높은 실업률에 대한 경고도 잊지 않았다. 미국내 실업률은 지난 6월 9.5%로 26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미국의 경제성장률은 작년 3분기부터 올해 2분기까지 4분기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이는 1947년 이후 62년 만에 처음이다.부문별로 보면 GDP의 3분의2를 차지하는 소비지출이 2분기 중 1.2% 감소, 예상보다 부진했다. 그러나 정부부문의 지출은 10.9% 증가, 경기부양책의 효과가 GDP 하락폭을 낮추는 데 기여한 것으로 보인다.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현대건설 시공능력 6년만에 1위 복귀

    현대건설 시공능력 6년만에 1위 복귀

    현대건설이 6년 만에 국내 1위 건설업체 자리를 차지하면서 ‘건설명가’의 자존심을 회복했다. 하지만 현대건설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세계 건설사들과 경쟁하겠다며 ‘글로벌 리더’를 표방했다. 국토해양부는 종합건설업체 1만 2483개, 전문건설업체 4만 6594개를 대상으로 시공능력을 평가한 결과 현대건설이 종합 시공능력평가액 9조 2088억원으로 1위를 차지했다고 30일 밝혔다. 시공능력평가제도는 발주자가 적정한 건설업체를 선정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공사실적·경영상태·기술능력·신인도 등을 종합평가하는 제도로, 조달청의 등급별 유자격자명부제 및 도급하한제의 근거로 활용되고 있다. 현대건설은 일감 수주 확대와 안정적인 경영으로 지난해 3위에서 1위로 올라섰다. 시공능력평가제도가 도입된 1962년 이후 내리 42년 동안 업계 1위를 차지했던 현대건설은 유동성 위기를 겪으면서 2003년 1위를 끝으로 3~4위권으로 밀려났었다. 유동성 위기 이후 취약한 재무구조와 수주 감소 등으로 위상이 추락했던 현대건설은 이후 강력한 구조조정과 기술력, 공격적인 수주로 재기의 발판을 다졌다. 특히 지난해 7조원대의 매출과 65억달러의 해외공사 수주로 업계 1위 자리를 되찾은 데 이어 이번에 시공능력평가까지 1위에 오르면서 명실상부한 ‘건설업계의 맏형’으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올해는 업계 최초로 매출 8조원 돌파도 가능할 전망이다. 현대건설 관계자는 “그동안에도 시공실적과 기술능력면에서는 부동의 1위였던 만큼 시공능력평가 1위 복귀는 당연한 결과”라며 “이제 국내 1, 2위 경쟁보다는 세계 유수의 건설사들과 경쟁하는 글로벌 리더를 지향하겠다.”고 말했다. 시평 2위는 삼성물산(8조 7317억원)이 차지했으며 2006년 이후 지난해까지 1위를 했던 대우건설(8조 2571억원)은 3위로 밀려났다. 이어 GS건설(8조 1366억원), 대림산업(6조 2497억원), 포스코건설(5조 5308억원), 현대산업개발(5조 3640억원), 롯데건설(5조 2528억원) 등은 지난해와 순위변동 없이 4~8위를 했다. 중견업체에서는 ㈜신안이 지난해 144위에서 70위로, 74계단 뛰었다. STX건설은 114위에서 50위로 64계단, 현대엔지니어링은 97위에서 61위로 36계단 상승했다. 부문별로는 공사실적에서 삼성물산이 5년 연속 1위를 차지했다. 경영평가 부문은 현대산업개발, 기술능력과 신인도 평가에서는 현대건설이 각각 1위를 차지했다. 공종별 공사실적은 토목 분야는 현대건설-대우건설-삼성물산, 건축 분야는 삼성물산-현대건설-GS건설 순이다. 토목과 건축을 합친 토건 분야는 현대건설-삼성물산-GS건설 순으로 집계됐다. 산업·환경설비 분야는 두산중공업-GS건설-삼성엔지니어링, 조경 분야는 삼성에버랜드-포스코건설-한진중공업 순이다. 김성곤기자 sunggone@seoul.co.kr
  • 옛술집 ‘사직골 대머리집’ 외상장부 공개했더니

    옛술집 ‘사직골 대머리집’ 외상장부 공개했더니

     끓는 청춘을 식혀줄 막걸리 잔,부침개가 단촐하게 술잔 옆에 자리하고 말만 잘하면 빈 호주머니를 채워 주듯 “다음에 가져 오게.”하던 주인 아저씨의 너털웃음이 있던 골목길 술집들.불과 10여년 전만 해도 서민들이 손쉽게 만날 수 있었던 선술집 모습이다.  1960~70년대 푸짐하면서도 저렴한 메뉴로 사랑을 받았던 서울 광화문의 ‘대머리집’ 외상 장부가 28일 공개됐다.시인 조지훈이 낭만을 얘기하고,진념 전 부총리가 조국을 얘기하던 곳.최불암 등 연기자들이 스타니슬라브스키의 연기론을 안주삼아 술을 마시다 외상을 달고 나가던 ‘사직골 대머리집’이다.정식 상호는 ‘명월옥(明月屋)’.사장이었던 김영덕·이종근씨의 머리숱이 적어 손님들이 붙여 놓은 애칭이다.  이날 공개된 외상장부는 총 3권으로 1950년대 말부터 62년까지 ‘외상 고객’들의 소속 기관·이름·날짜·외상값이 깨알같이 적혀 있다.  서울시청·경제기획원 등 공공기관,서울신문·동양방송 등 언론사,서울대·연세대 등 학교,금융기관에 일하던 사람들이 외상을 ‘긋고’ 갔다.장부에는 300명 정도의 이름이 적혀 있다.’필운동 건달’ 등의 별칭으로 적힌 경우도 더러 있다.  장부에는 반가운 이름도 다수 눈에 띈다.연기자 박근형·백일섭·이순재·최불암·변희봉·오지명이 ‘풋기 연기’를 할 때 이 곳에서 인생을 배워갔고 성우 배한성과 MC 황인용이 삶을 배워가며 외상 장부에 이름을 올렸다.이외에 이경식·진념(전 부총리),조지훈·최일남(문인),이구열(미술평론가),장일남(작곡가),김대벽(사진작가)씨가 서글서글한 눈빛을 돈 대신 건네며 외상술을 마셨다.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은 이가 대부분이기에 손님들의 부탁 한 번이면 인심좋은 주인은 이름과 금액을 외상 장부에 적어놓기만 했다. 끝까지 돈을 갚지 않아 돈을 떼이는 경우도 다반사였지만 그래도 주인장은 싫은 내색 한번 없이 ‘외상 인심’을 베풀었다. 당연히 이곳은 광화문 일대 공무원, 문인, 기자, 방송인, 교수 등의 사랑방이자 정보교환소 역할을 했다.대머리집은 70년 넘게 대를 이어오며 광화문의 터줏대감 역할을 해오다 1978년 인수자를 찾지 못해 문을 닫았다.  외상 장부는 당시 단골이던 극작가 조성현씨가 식당 주인에게 전해받아 보관하던 것들이다.70년 세월과 낭만이 담긴 이 장부는 30일부터 9월 20일까지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열리는 ‘광화문 年歌(연가): 시계를 되돌리다’ 전시회에서 볼 수 있다. 인터넷서울신문 최영훈기자 taiji@seoul.co.kr
  • 진시황 이래 中 황실 성생활 보고서

    진시황 이래 中 황실 성생활 보고서

    중국은 하(夏)왕조가 세워진 이래 1911년 동안 군주제도를 택해 왔고, 진(秦)나라부터 황제제도가 시작됐다. 이런 전제군주 시대를 관통한 통치이념은 유가사상. 유가는 충효를 연구하는 학문이고, 특히 효의 핵심은 대를 잇는 것이기 때문에 자식을 낳지 못하는 것을 가장 큰 불효로 여겼다. 효는 대대로 같은 성을 가진 자들이 나라를 통치해야 하는 황제 가문에서는 더욱 절실하고 중요했다. 중국의 역대 제왕들이 10대 중반부터 성적 쾌락과 여색에 빠져 산 것은 이같은 이념 아래서는 불가피한 선택이었을 수 있다는 해석이 나오기도 한다. ‘황궁의 성’(시앙쓰 지음, 허동현 감수, 강성애 옮김, 미다스북스 펴냄)은 중국 진시황 이래 중국 역대 왕조와 그 왕조를 구성해온 걸출한 황제들의 성생활과 애정행각에 관련된 보고서다. 1962년생인 저자 시앙쓰는 중국 고궁박물관 연구원 및 도서관 부관장으로, 고서에서 황제와 황후의 성생활과 관련된 부분을 모조리 찾아내 책으로 펴냈다. 원래 제목이 ‘후궁의 금지옥엽’이란 점을 감안하면 이 책의 주인공들은 황제라기보다도 이른바 당나라 현종의 양귀비, 한나라 성제의 조비연, 당나라 고종의 측천무후, 한나라 유방의 부인 여치, 청나라 자희태후 등이다. 후궁이란 황후와 비빈들이 거처하던 곳이니 말이다. 하지만 후궁은 부제로 달린 ‘치정과 암투가 빚어낸 밤의 중국사’처럼 한숨과 질투, 배신, 치정, 음모, 살인 등이 난무하는 피비린내 나는 전쟁터였다. 이를테면 진나라 혜제의 가남풍 황후는 불임이었는데, 임신한 궁녀를 보면 날카로운 창으로 사정없이 찔러 죽였다. 측천무후는 자신이 여제가 되기 전 왕 황후를 모함하기 위해 자신이 낳은 딸을 죽여 버리기도 했다. 한나라 혜제는 자신의 조카(장 황후)와 결혼을 했는데, 원래부터 귀여워하던 조카와 잠자리를 끝내 피해, 장 황후는 마흔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처녀였다. 한나라 헌제의 생모 왕씨는 헌제를 낳은 뒤 독살됐다. 선비족들이 세운 북위는 태자를 옹립하기 전에 반드시 생모를 죽여야 한다는 규정도 있었다. 외척의 발호를 막기 위해서였다. 명나라에서는 영종 이전의 비빈들은 왕이 죽으면 순장됐다. 순장되는 날은 차마 눈 뜨고 보지 못했다고 한다. 선종 주첨기는 재위 10년째 되던 해 시녀 곽애를 빈으로 봉했다. 그러나 입궁한 지 20일이 지났을 때 선종이 붕어했다. 부귀영화를 누리지도 못한 채 순장돼야 했던 곽애는 ‘절명사’란 애절한 시를 남겼다. 순장하기 전 비빈들은 진수성찬이 차려진 연회에서 배불리 먹은 뒤 연회가 끝나면 어두운 불빛이 비치는 대전 앞 대들보 밑으로 가 머리를 풀고 목을 매 자살했다. 중국의 어린 황제와 태자는 사춘기에 접어들기 전에 춘궁도(春宮圖)로 불리는 춘화나 환희불(歡喜佛)이라 불리는 조각상 등을 통해 성교육을 받았다는 대목도 재밌다. 때로 태자들은 직접 시녀들과 실습도 했다고 한다. 또한 황궁에서는 강아지와 고양이를 기르면서 동물들의 본능적인 모습을 보여 줬다고 한다. 궁사(宮詞)에 ‘계집종은 매일매일 군왕을 섬긴다.’는 구절이 있는데, 여기서 계집종은 암고양이를 지칭하는 말이었다. 이 책의 미덕은 아주 강한 디테일에 있다. 우리가 거의 모르는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진시황의 출생 비밀이나, 당현종과 양귀비의 숨겨진 사랑 이야기들이 불쑥불쑥 나타난다. 현종은 뚱뚱한 양귀비가 술 취한 모습을 가장 좋아했다. 또 현종은 이지적이고 숙녀였던 매비를 사랑하면서도 양귀비를 안록산의 난이 날 때까지 끊지 못했다. 책 구석구석에서 유교를 통치이념으로 받아들인 조선왕조 500년과 비슷한 대목들이 나타난다. 3만 2000원.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24일 TV 하이라이트]

    ●TV는 사랑을 싣고(KBS1 오후 7시30분) 1962년, 부산 경남상고에 재학 중이었던 한무. 첫사랑의 동생이었던 손일태의 환심을 사기에 여념이 없었던 한무는 단팥죽을 한 달간 사주기도 모자라 초등학생 일태의 방학숙제까지 해줘야 했다. 40여년이 흐른 지금, 코미디언 한무가 첫사랑의 얼굴보다도 더 기억 속에 생생한 악동 손일태를 찾는다. ●VJ특공대(KBS2 오후 9시55분)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여름철, 달아난 입맛 잡는다는 이색 면요리들을 공개한다. 특별한 휴가를 보내고 싶다면 미국으로 떠나보자! 침실, 욕실, 주방 갖추고 텔레비전, 냉장고 등 가전제품 완비! 여기에 무선인터넷까지 가능한 이곳은 다름 아닌 캠핑카. 캠핑의 천국 미국. 황홀한 캠핑의 세계를 소개한다. ●희망특강 파랑새(MBC 오후 6시50분) 미국 땅에서 IT 업계의 신화와 같은 성공으로 아메리칸 드림을 이룬 스티브 김. 2007년 미국 생활을 청산하고 영구 귀국해 장학재단과 사회복지 사업에 연간 20억원을 지원하며 자신의 경험을 전파하기 위해 강사로서의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 제2의 ‘코리안 드림’을 꿈꾸는 스티브 김을 만나본다. ●아침드라마 녹색마차(SBS 오전 8시40분) 정원이를 가진 채로 결혼했다는 지원의 말에 도여사는 둘이 닮았다는 느낌이 드는 게 이상한 기분이 들기는 했다고 한다. 한편 성근은 형모가 못나긴 했어도 이유 없이 설치진 않는다며 갑자기 정하와 널 죽인다고 흥분한 데는 이유가 있을 거라며 무슨 일이냐고 지원에게 묻는데…. ●명의(EBS 오후 9시50분) 서울대 병원의 성숙환 교수를 단장으로 성형외과 민경원 교수, 안과 우세준 교수, 기생충학 교실의 홍성태 교수 등 서울대학교 병원, 보라매 병원과 개원 병원들의 의료진으로 구성된 ‘우즈베키스탄 의료봉사단’. 8박 9일 일정으로 120명의 환자들에게 인술을 베풀고 돌아온 ‘우즈베키스탄 의료봉사단’을 만나본다. ●YTN초대석(YTN 낮 12시35분) 요즘 한반도에선 남해안 끝자락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데 당초 이달 말에서 다소 연기되기는 했지만 우리 기술로 처음 만들어지는 위성 발사체 ‘나로호’의 발사가 초읽기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이번 발사를 총괄 지휘하는 교육과학기술부 김중현 차관에게 나로호 발사 연기 이유 등을 들어본다.
  • [테마 스토리 서울] (5) 명동예술극장

    [테마 스토리 서울] (5) 명동예술극장

    ‘연극계의 대모’ 박정자씨에게 명동예술극장은 ‘친정’ 같은 곳이다. 그는 극단 활동을 하던 친오빠의 도시락을 싸들고 명동예술극장을 드나들며 배우의 꿈을 키웠다. 1962년 연극 ‘페드라’로 데뷔 무대를 가진 박씨는 40년이 지난 지금도 같은 무대에서 관객들을 만나고 있다. 1960~70년대 한국 공연예술의 요람인 명동예술극장에 대한 추억을 갖고 있는 이는 박씨뿐만이 아니다. 당시 명동은 전국의 멋쟁이들이 모여들던 문화예술의 1번지였고, 그 중심에 명동예술극장이 있었다. 유치진, 이해랑, 오태석 등 쟁쟁한 극작가와 연출가는 물론 김진규, 박노식, 백성희 등 당대 최고의 배우들이 이 무대를 거쳐 갔다. 명동예술극장은 1936년 일본인 건축가에 의해 ‘명치좌’란 이름으로 세워졌다. 당시에는 바로크 양식의 3층짜리 석조 건물로 총객석 수는 1178석이었다. 해방 이후 서울시 공공극장이라는 뜻의 ‘시공관’을 비롯해 국립극장, 국립극장 예술극장으로 이름이 바뀌며 오페라, 연극, 무용, 여성국극, 클래식 등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선보였다. 그러나 1973년 국립극장이 장충동으로 이전하고 2년 뒤 대한투자금융에 건물이 매각되면서 한국 문화예술 심장부로서의 기능은 사실상 정지됐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뻔한 명동국립극장을 되살린 이들은 평범한 주변 명동 상가의 상인들과 문화예술인들이었다. 상인들은 1994년 금융회사에서 극장부지에 신사옥을 건립하겠다는 계획을 밝히자 명동 옛 국립극장 되찾기 복원 운동에 돌입했다. 이후 외환위기로 금융회사가 부도 나 건물이 법원 경매에 넘어가자 이들은 정부에 부지를 매입해 건물을 복원시켜 줄 것을 건의했다. 당시 김장환 명동상가번영회장 등은 해당 판사를 직접 찾아가 문화관광부에서 매입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부탁하고, 명동 지역 부동산 40여곳을 일일이 돌아다니며 “다른 곳엔 중개하지 말라.”는 엄포(?)를 놓기도 했다. 이런 노력 덕분에 2004년 5월 정부는 감정가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가격에 부지를 매입했고, 지난 6월5일 약 3년 만의 공사 끝에 마침내 34년 전 모습 그대로 돌아왔다. 명동예술극장은 558석 규모의 연극 전용 중극장으로 건물 외관의 3㎜ 페인트를 벗겨내고 바로크 양식의 외관을 그대로 복원했다. 또 무대와 객석 간 거리를 최대 16m 이내로 좁히고, 배우들의 품에 쏙 들어오는 듯한 말발굽형 객석으로 집중도를 높였다. 50~60대 관객들은 23일 소설가 최인훈의 첫 희곡 작품이자 박정자·정동환 주연의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랴’를 관람하기 위해 객석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찬란한 ‘명동 시대’를 추억하며.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미국 신뢰의 목소리 하늘로 떠나다

    │워싱턴 김균미특파원│미국의 ‘전설적인 방송 앵커’ 월터 크롱카이트가 17일(현지시간) 뉴욕 자택에서 사망했다. 92세. ‘크롱카이트=미국에서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사람’으로 통할 정도로 1962년부터 1981년까지 CBS TV의 메인 뉴스 앵커였던 그는 객관적인 뉴스 진행으로 미국 국민들의 신뢰와 사랑을 받았다. ●케네디 대통령 암살 등 주요 사건 다뤄 크롱카이트는 2차 세계대전 당시 통신사 기자로 노르망디상륙작전 등을 취재한 것을 시작으로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 암살, 로버트 케네디 상원의원 암살, 마틴 루터 킹 목사 암살, 1960년 민권운동,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의 사임을 몰고 온 워터게이트사건, 베트남전쟁, 아폴로호 달 착륙, 이란 주재 미대사관 인질 사태 등 미국 현대사의 굵직굵직한 사건들을 다룬 미 현대사의 산증인이다. 크롱카이트는 1960년대 초까지만 해도 신문에 밀려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던 TV를 방송 저널리즘으로 발돋움시키는 데 절대적인 기여를 했다. CBS는 1962년 신문 기사를 전달하는 수준에 그쳤던 저녁 메인 뉴스를 15분에서 30분으로 확대하고, 앵커맨이라는 새로운 역할을 만들어 뉴스를 방송의 주요 프로그램으로 발전, 정착시켰다. 미 국민들은 크롱카이트가 진행하는 저녁 뉴스를 통해 세상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알았고, 그가 전하는 뉴스를 있는 그대로 믿었을 정도로 크롱카이트의 영향력은 대단했다. 특히 1968년 미국이 베트남에서 수렁에 빠졌다는 그의 지적은 베트남전 여론을 바꾸는 전환점이 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916년 미주리에서 태어난 크롱카이트는 고등학생 때부터 학보사 편집자로 활약했다. 텍사스대학을 중퇴한 뒤 여러 언론사를 거쳐 1950년 기자로 CBS에 입사했다. ●20년간 CBS 메인 뉴스 진행 이후 20년간 ‘CBS 이브닝 뉴스’를 진행하며 방송 뉴스의 새 장을 썼고, 언론 자체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도를 높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981년 지미 카터 전 대통령으로부터 ‘자유의 메달’을 받았으며 피바디상 등 주요 언론상을 수상했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도 이날 성명을 통해 “미국이 ‘아이콘’을 잃었다.”면서 “크롱카이트는 수십년간 미국에서 가장 신뢰받는 목소리였다.”며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kmkim@seoul.co.kr
  • [한-EU FTA 타결] 작년 무역흑자 184억弗… 中 앞질러

    ‘한국의 넘버2 시장이 완전히 열렸다.’ 13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과 EU 27개 회원국간의 교역 총액은 984억달러로 집계됐다. 1683억달러인 중국에 이어 두번째 교역 상대국이다. 전통적으로 깊은 관계를 유지해온 일본(892억달러)과 미국(847억달러)을 앞선다. 특히 EU는 지난해부터 중국보다 많은 무역흑자를 내는 교역 대상국이기도 하다. 중국 무역흑자는 2007년 190억달러에서 지난해 145억달러로 줄었다. 반면 EU의 흑자 규모는 지난해 184억달러를 기록했다. EU와 중국의 무역흑자를 합해야 대 일본의 무역적자(지난해 327억달러)을 메운다. 양측간 교역 내역을 살펴보면 주력 품목의 집중도는 한국이 EU보다 높다. 한국무역협회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이 EU에 가장 많이 수출한 상품은 선박(100억달러)으로 조사됐다. 한국의 대(對) EU 수출 가운데 17.2%를 차지한다. 이어 무선전화기(75억달러)와 승용차(52억달러), 평판디스플레이(39억달러), 자동차 부품(24억달러) 순이다. 상위 10대 품목의 수출액이 전체 수출의 63.3%에 이른다. 반면 EU는 한국에 가장 많이 수출한 의약품(16억달러)이 전체 대(對) 한국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4%에 불과하다. 이어 반도체 제조용 장비(16억 달러), 자동차 부품과 승용차(각 15억달러), 기타 정밀화학 원료(12억 달러) 등이 뒤따랐다. 상위 10대 품목이 차지하는 비중은 30.7%에 그쳐 수출 품목이 분산돼 있다. 외국인 직접 투자(FDI)에서도 EU는 한국의 ‘최대 고객’이다. 외환위기 이후 한국 투자를 늘린 EU는 지난해 63억 3000만달러를 투자해 미국(13억 3000만달러)과 일본(14억 2000만달러)을 압도했다. 1962년 이후 지난해까지 EU의 누계 투자액은 511억 5000만달러로 미국(403억 3000만달러)이나 일본(219억 5000만달러)을 능가했다. 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 英뮤지션, 2년간 딸꾹질…뇌종양까지

    英뮤지션, 2년간 딸꾹질…뇌종양까지

    2년간 계속되는 딸꾹질 증세로 신음하고 있는 영국의 한 뮤지션이 뇌종양까지 앓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영국 링컨셔 팀벌랜드에 사는 록 뮤지션 크리스토퍼 샌즈(26)는 끊이지 않고 솟아오르는 딸꾹질 증세로 그간 현지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잊을 새도 없이 연거푸 이어지는 딸꾹질 탓에 밤잠은 물론 식사까지 방해를 받는 불안정한 생활을 한지 꼬박 2년이다. 13일 영국 BBC 인터넷판에 따르면 최근 일본 의료진이 그의 뇌간에서 종양을 발견한 것으로 알려졌다. 샌즈의 희귀 증세를 접한 일본의 한 TV 방송이 그를 초청해 현지 의료진의 검사를 받게 한 결과다. 샌즈는 “일본에서 날아온 편지는 목숨을 건지려면 가급적 빨리 치료에 나설 필요가 있다는 내용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상당히 충격적인 결과라 바로 동의했다.”며 “곧 날짜를 정할 예정”이라고 샌즈는 덧붙였다. 이번 주 내로 잉글랜드의 전문의를 찾아 뇌종양 치료에 대한 조언을 구할 것이라는 샌즈는 지난 2006년 12월 처음 딸꾹질을 시작했다. 2주간 끊이질 않던 딸꾹질은 잠시 중단됐지만 4개월 후 다시 재발해 지금껏 그의 곁을 떠나지 않고 있다. 한편 지난 1922년부터 1990년까지 무려 62년 간 멈추지 않은 딸꾹질로 시름을 앓았던 미국의 찰스 오스본은 끝내 치료법을 알아내지 못했다고 BBC가 전했다. 사진=BBC 보도화면 서울신문 나우뉴스 해외음악통신원 고달근@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유명 외국산 게임의 ‘태극기 구애’ 화제

    유명 외국산 게임의 ‘태극기 구애’ 화제

    “C&C4 전차 이미지 속에 태극기가….” 유명 실시간 전략시뮬레이션 게임 ‘커맨드앤컨커’(C&C) 최신작에 등장한 태극기가 화제를 모으고 있다. 발단은 해외 게임업체 EA가 최근 ‘C&C4’의 개발 사실을 알리기 위해 공식 홈페이지를 공개하면서 비롯됐다. 이 홈페이지를 살펴보면 첫 공개된 콘셉트 아트 이미지 속에 태극기가 그려진 것을 볼 수 있다. 이를 접한 국내 게임 이용자들은 “한국이 C&C4에서 중요한 축을 담당할 것 같다.”, “외국 게임에서 태극기를 보니 감동이다.” 등의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일각에서는 ‘스타크래프트2’의 출시를 앞두고 국내시장을 중심으로 실시간 전략시뮬레이션 게임이 활성화 될 조짐을 보이자 이를 노린 전략의 일환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최근 공개된 정보에 따르면 ‘C&C4’는 전작인 3편의 이야기가 끝난 후 15년이 지난 2062년을 배경으로 한다. 실시간 전략시뮬레이션 게임으로 제작됐지만 RPG(모험성장게임) 요소를 강화한 점도 주요 특징이다. 이 때문에 유닛의 경험치 획득과 이를 통한 유닛의 레벨업 작업이 이번 게임 진행의 중요한 열쇠가 될 전망이다. 한편 ‘커맨드앤컨커’는 실시간 전략시뮬레이션 게임 장르의 시초격인 작품으로 1995년 처음 선을 보였다. 사진제공 = C&C4 공식 홈페이지 캡쳐 서울신문NTN 최승진 기자 shaii@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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