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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포토] 서인국, 나만 튀어보이게 ‘얼굴 빼꼼~’

    [포토] 서인국, 나만 튀어보이게 ‘얼굴 빼꼼~’

    ‘제50회 대종상영화제’ 레드카펫 행사가 1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홀에서 열렸다. 뮤지컬 배우 선우의 사회로 진행된 레드카펫 행사는 50인조 풀 오케스트라의 웅장한 연주가 더해져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운 열기로 가득했다. 안성기, 이정재, 류승룡, 엄정화, 조민수, 한고은, 한은정, 심이영, 최정원 등 많은 스타들이 레드카펫을 밟았다. 배우 신현준과 하지원의 사회로 진행되는 대종영화제 시상식은 화려한 불꽃축제로 포문을 연다. 또한 장기하와 얼굴들, 아이유, 걸그룹 레이디스 코드 등 가수들의 축하공연이 준비돼 시상식의 열기를 고조시킬 예정이다. 1962년 1회를 시작으로 올해로 50회를 맞이한 대종상영화제는 한국 영화의 질적 향상과 영화 산업의 진흥 도모를 위해 제정된 예술상으로 그간 한국의 영화와 배우들을 알리는 교두보 역할을 해왔다. ‘제50회 대종상영화제’는 오후 10시부터 KBS 2TV를 통해 녹화 중계된다. 문성호PD sungho@seoul.co.kr
  • [포토] ‘제50회 대종상영화제’ 레드카펫 현장-최정원

    [포토] ‘제50회 대종상영화제’ 레드카펫 현장-최정원

    ‘제50회 대종상영화제’ 레드카펫 행사가 1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홀에서 열렸다. 뮤지컬 배우 선우의 사회로 진행된 레드카펫 행사는 50인조 풀 오케스트라의 웅장한 연주가 더해져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운 열기로 가득했다. 안성기, 이정재, 류승룡, 엄정화, 조민수, 한고은, 한은정, 심이영, 최정원 등 많은 스타들이 레드카펫을 밟았다. 배우 신현준과 하지원의 사회로 진행되는 대종영화제 시상식은 화려한 불꽃축제로 포문을 연다. 또한 장기하와 얼굴들, 아이유, 걸그룹 레이디스 코드 등 가수들의 축하공연이 준비돼 시상식의 열기를 고조시킬 예정이다. 1962년 1회를 시작으로 올해로 50회를 맞이한 대종상영화제는 한국 영화의 질적 향상과 영화 산업의 진흥 도모를 위해 제정된 예술상으로 그간 한국의 영화와 배우들을 알리는 교두보 역할을 해왔다. ‘제50회 대종상영화제’는 오후 10시부터 KBS 2TV를 통해 녹화 중계된다. 문성호PD sungho@seoul.co.kr
  • [포토] ‘대종상영화제’ 클라라, ‘시선 사로잡는 패션’

    [포토] ‘대종상영화제’ 클라라, ‘시선 사로잡는 패션’

    ‘제50회 대종상영화제’ 레드카펫 행사가 1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홀에서 열렸다. 뮤지컬 배우 선우의 사회로 진행된 레드카펫 행사는 50인조 풀 오케스트라의 웅장한 연주가 더해져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운 열기로 가득했다. 안성기, 이정재, 류승룡, 엄정화, 조민수, 한고은, 한은정, 심이영, 최정원 등 많은 스타들이 레드카펫을 밟았다. 배우 신현준과 하지원의 사회로 진행되는 대종영화제 시상식은 화려한 불꽃축제로 포문을 연다. 또한 장기하와 얼굴들, 아이유, 걸그룹 레이디스 코드 등 가수들의 축하공연이 준비돼 시상식의 열기를 고조시킬 예정이다. 1962년 1회를 시작으로 올해로 50회를 맞이한 대종상영화제는 한국 영화의 질적 향상과 영화 산업의 진흥 도모를 위해 제정된 예술상으로 그간 한국의 영화와 배우들을 알리는 교두보 역할을 해왔다. ‘제50회 대종상영화제’는 오후 10시부터 KBS 2TV를 통해 녹화 중계된다. 문성호PD sungho@seoul.co.kr
  • [포토] 박민하, 깜찍한 손인사

    [포토] 박민하, 깜찍한 손인사

    ‘제50회 대종상영화제’ 레드카펫 행사가 1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홀에서 열렸다. 뮤지컬 배우 선우의 사회로 진행된 레드카펫 행사는 50인조 풀 오케스트라의 웅장한 연주가 더해져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운 열기로 가득했다. 안성기, 이정재, 류승룡, 엄정화, 조민수, 한고은, 한은정, 심이영, 최정원 등 많은 스타들이 레드카펫을 밟았다. 배우 신현준과 하지원의 사회로 진행되는 대종영화제 시상식은 화려한 불꽃축제로 포문을 연다. 또한 장기하와 얼굴들, 아이유, 걸그룹 레이디스 코드 등 가수들의 축하공연이 준비돼 시상식의 열기를 고조시킬 예정이다. 1962년 1회를 시작으로 올해로 50회를 맞이한 대종상영화제는 한국 영화의 질적 향상과 영화 산업의 진흥 도모를 위해 제정된 예술상으로 그간 한국의 영화와 배우들을 알리는 교두보 역할을 해왔다. ‘제50회 대종상영화제’는 오후 10시부터 KBS 2TV를 통해 녹화 중계된다. 문성호PD sungho@seoul.co.kr
  • [포토] 오윤아 ‘여신 자태’

    [포토] 오윤아 ‘여신 자태’

    ‘제50회 대종상영화제’ 레드카펫 행사가 1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홀에서 열렸다. 뮤지컬 배우 선우의 사회로 진행된 레드카펫 행사는 50인조 풀 오케스트라의 웅장한 연주가 더해져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운 열기로 가득했다. 안성기, 이정재, 류승룡, 엄정화, 조민수, 한고은, 한은정, 심이영, 최정원 등 많은 스타들이 레드카펫을 밟았다. 배우 신현준과 하지원의 사회로 진행되는 대종영화제 시상식은 화려한 불꽃축제로 포문을 연다. 또한 장기하와 얼굴들, 아이유, 걸그룹 레이디스 코드 등 가수들의 축하공연이 준비돼 시상식의 열기를 고조시킬 예정이다. 1962년 1회를 시작으로 올해로 50회를 맞이한 대종상영화제는 한국 영화의 질적 향상과 영화 산업의 진흥 도모를 위해 제정된 예술상으로 그간 한국의 영화와 배우들을 알리는 교두보 역할을 해왔다. ‘제50회 대종상영화제’는 오후 10시부터 KBS 2TV를 통해 녹화 중계된다. 문성호PD sungho@seoul.co.kr
  • [포토] 대종상영화제 클라라 반전 드레스 ‘레드카펫 올킬’

    [포토] 대종상영화제 클라라 반전 드레스 ‘레드카펫 올킬’

    ‘제50회 대종상영화제’ 레드카펫 행사가 1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홀에서 열렸다. 뮤지컬 배우 선우의 사회로 진행된 레드카펫 행사는 50인조 풀 오케스트라의 웅장한 연주가 더해져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운 열기로 가득했다. 안성기, 이정재, 류승룡, 엄정화, 조민수, 한고은, 한은정, 심이영, 최정원 등 많은 스타들이 레드카펫을 밟았다. 배우 신현준과 하지원의 사회로 진행되는 대종영화제 시상식은 화려한 불꽃축제로 포문을 연다. 또한 장기하와 얼굴들, 아이유, 걸그룹 레이디스 코드 등 가수들의 축하공연이 준비돼 시상식의 열기를 고조시킬 예정이다. 1962년 1회를 시작으로 올해로 50회를 맞이한 대종상영화제는 한국 영화의 질적 향상과 영화 산업의 진흥 도모를 위해 제정된 예술상으로 그간 한국의 영화와 배우들을 알리는 교두보 역할을 해왔다. ‘제50회 대종상영화제’는 오후 10시부터 KBS 2TV를 통해 녹화 중계된다. 문성호PD sungho@seoul.co.kr
  • [포토] 천민희 ‘과감한 드레스’

    [포토] 천민희 ‘과감한 드레스’

    ‘제50회 대종상영화제’ 레드카펫 행사가 1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홀에서 열렸다. 뮤지컬 배우 선우의 사회로 진행된 레드카펫 행사는 50인조 풀 오케스트라의 웅장한 연주가 더해져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운 열기로 가득했다. 안성기, 이정재, 류승룡, 엄정화, 조민수, 한고은, 한은정, 심이영, 최정원 등 많은 스타들이 레드카펫을 밟았다. 배우 신현준과 하지원의 사회로 진행되는 대종영화제 시상식은 화려한 불꽃축제로 포문을 연다. 또한 장기하와 얼굴들, 아이유, 걸그룹 레이디스 코드 등 가수들의 축하공연이 준비돼 시상식의 열기를 고조시킬 예정이다. 1962년 1회를 시작으로 올해로 50회를 맞이한 대종상영화제는 한국 영화의 질적 향상과 영화 산업의 진흥 도모를 위해 제정된 예술상으로 그간 한국의 영화와 배우들을 알리는 교두보 역할을 해왔다. ‘제50회 대종상영화제’는 오후 10시부터 KBS 2TV를 통해 녹화 중계된다. 문성호PD sungho@seoul.co.kr
  • [포토] ‘제50회 대종상영화제’ 레드카펫 현장-이정재

    [포토] ‘제50회 대종상영화제’ 레드카펫 현장-이정재

    ‘제50회 대종상영화제’ 레드카펫 행사가 1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홀에서 열렸다. 뮤지컬 배우 선우의 사회로 진행된 레드카펫 행사는 50인조 풀 오케스트라의 웅장한 연주가 더해져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운 열기로 가득했다. 안성기, 이정재, 류승룡, 엄정화, 조민수, 한고은, 한은정, 심이영, 최정원 등 많은 스타들이 레드카펫을 밟았다. 배우 신현준과 하지원의 사회로 진행되는 대종영화제 시상식은 화려한 불꽃축제로 포문을 연다. 또한 장기하와 얼굴들, 아이유, 걸그룹 레이디스 코드 등 가수들의 축하공연이 준비돼 시상식의 열기를 고조시킬 예정이다. 1962년 1회를 시작으로 올해로 50회를 맞이한 대종상영화제는 한국 영화의 질적 향상과 영화 산업의 진흥 도모를 위해 제정된 예술상으로 그간 한국의 영화와 배우들을 알리는 교두보 역할을 해왔다. ‘제50회 대종상영화제’는 오후 10시부터 KBS 2TV를 통해 녹화 중계된다. 문성호PD sungho@seoul.co.kr
  • ‘대종상영화제’ 신소율, ‘아름다운 밤입니다’

    ‘대종상영화제’ 신소율, ‘아름다운 밤입니다’

    ‘제50회 대종상영화제’ 레드카펫 행사가 1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홀에서 열렸다. 뮤지컬 배우 선우의 사회로 진행된 레드카펫 행사는 50인조 풀 오케스트라의 웅장한 연주가 더해져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운 열기로 가득했다. 안성기, 이정재, 류승룡, 엄정화, 조민수, 한고은, 한은정, 심이영, 최정원 등 많은 스타들이 레드카펫을 밟았다. 배우 신현준과 하지원의 사회로 진행되는 대종영화제 시상식은 화려한 불꽃축제로 포문을 연다. 또한 장기하와 얼굴들, 아이유, 걸그룹 레이디스 코드 등 가수들의 축하공연이 준비돼 시상식의 열기를 고조시킬 예정이다. 1962년 1회를 시작으로 올해로 50회를 맞이한 대종상영화제는 한국 영화의 질적 향상과 영화 산업의 진흥 도모를 위해 제정된 예술상으로 그간 한국의 영화와 배우들을 알리는 교두보 역할을 해왔다. ‘제50회 대종상영화제’는 오후 10시부터 KBS 2TV를 통해 녹화 중계된다. 문성호PD sungho@seoul.co.kr
  • [포토] 엄지원 ‘눈에 띄는 미모’

    [포토] 엄지원 ‘눈에 띄는 미모’

    ‘제50회 대종상영화제’ 레드카펫 행사가 1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홀에서 열렸다. 뮤지컬 배우 선우의 사회로 진행된 레드카펫 행사는 50인조 풀 오케스트라의 웅장한 연주가 더해져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운 열기로 가득했다. 안성기, 이정재, 류승룡, 엄정화, 조민수, 한고은, 한은정, 심이영, 최정원 등 많은 스타들이 레드카펫을 밟았다. 배우 신현준과 하지원의 사회로 진행되는 대종영화제 시상식은 화려한 불꽃축제로 포문을 연다. 또한 장기하와 얼굴들, 아이유, 걸그룹 레이디스 코드 등 가수들의 축하공연이 준비돼 시상식의 열기를 고조시킬 예정이다. 1962년 1회를 시작으로 올해로 50회를 맞이한 대종상영화제는 한국 영화의 질적 향상과 영화 산업의 진흥 도모를 위해 제정된 예술상으로 그간 한국의 영화와 배우들을 알리는 교두보 역할을 해왔다. ‘제50회 대종상영화제’는 오후 10시부터 KBS 2TV를 통해 녹화 중계된다. 문성호PD sungho@seoul.co.kr
  • [포토] ‘제50회 대종상영화제’ 레드카펫 현장-신소율

    [포토] ‘제50회 대종상영화제’ 레드카펫 현장-신소율

    ‘제50회 대종상영화제’ 레드카펫 행사가 1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홀에서 열렸다. 뮤지컬 배우 선우의 사회로 진행된 레드카펫 행사는 50인조 풀 오케스트라의 웅장한 연주가 더해져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운 열기로 가득했다. 안성기, 이정재, 류승룡, 엄정화, 조민수, 한고은, 한은정, 심이영, 최정원 등 많은 스타들이 레드카펫을 밟았다. 배우 신현준과 하지원의 사회로 진행되는 대종영화제 시상식은 화려한 불꽃축제로 포문을 연다. 또한 장기하와 얼굴들, 아이유, 걸그룹 레이디스 코드 등 가수들의 축하공연이 준비돼 시상식의 열기를 고조시킬 예정이다. 1962년 1회를 시작으로 올해로 50회를 맞이한 대종상영화제는 한국 영화의 질적 향상과 영화 산업의 진흥 도모를 위해 제정된 예술상으로 그간 한국의 영화와 배우들을 알리는 교두보 역할을 해왔다. ‘제50회 대종상영화제’는 오후 10시부터 KBS 2TV를 통해 녹화 중계된다. 문성호PD sungho@seoul.co.kr
  • [포토] ‘제50회 대종상영화제’ 레드카펫 현장-오윤아

    [포토] ‘제50회 대종상영화제’ 레드카펫 현장-오윤아

    ‘제50회 대종상영화제’ 레드카펫 행사가 1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홀에서 열렸다. 뮤지컬 배우 선우의 사회로 진행된 레드카펫 행사는 50인조 풀 오케스트라의 웅장한 연주가 더해져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운 열기로 가득했다. 안성기, 이정재, 류승룡, 엄정화, 조민수, 한고은, 한은정, 심이영, 최정원 등 많은 스타들이 레드카펫을 밟았다. 배우 신현준과 하지원의 사회로 진행되는 대종영화제 시상식은 화려한 불꽃축제로 포문을 연다. 또한 장기하와 얼굴들, 아이유, 걸그룹 레이디스 코드 등 가수들의 축하공연이 준비돼 시상식의 열기를 고조시킬 예정이다. 1962년 1회를 시작으로 올해로 50회를 맞이한 대종상영화제는 한국 영화의 질적 향상과 영화 산업의 진흥 도모를 위해 제정된 예술상으로 그간 한국의 영화와 배우들을 알리는 교두보 역할을 해왔다. ‘제50회 대종상영화제’는 오후 10시부터 KBS 2TV를 통해 녹화 중계된다. 문성호PD sungho@seoul.co.kr
  • [포토] 황정민-박정민 ‘누구 손이지?’

    [포토] 황정민-박정민 ‘누구 손이지?’

    ‘제50회 대종상영화제’ 레드카펫 행사가 1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홀에서 열렸다. 뮤지컬 배우 선우의 사회로 진행된 레드카펫 행사는 50인조 풀 오케스트라의 웅장한 연주가 더해져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운 열기로 가득했다. 안성기, 이정재, 류승룡, 엄정화, 조민수, 한고은, 한은정, 심이영, 최정원 등 많은 스타들이 레드카펫을 밟았다. 배우 신현준과 하지원의 사회로 진행되는 대종영화제 시상식은 화려한 불꽃축제로 포문을 연다. 또한 장기하와 얼굴들, 아이유, 걸그룹 레이디스 코드 등 가수들의 축하공연이 준비돼 시상식의 열기를 고조시킬 예정이다. 1962년 1회를 시작으로 올해로 50회를 맞이한 대종상영화제는 한국 영화의 질적 향상과 영화 산업의 진흥 도모를 위해 제정된 예술상으로 그간 한국의 영화와 배우들을 알리는 교두보 역할을 해왔다. ‘제50회 대종상영화제’는 오후 10시부터 KBS 2TV를 통해 녹화 중계된다. 문성호PD sungho@seoul.co.kr
  • [포토] ‘제50회 대종상영화제’ 레드카펫 현장-이세영

    [포토] ‘제50회 대종상영화제’ 레드카펫 현장-이세영

    ‘제50회 대종상영화제’ 레드카펫 행사가 1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홀에서 열렸다. 뮤지컬 배우 선우의 사회로 진행된 레드카펫 행사는 50인조 풀 오케스트라의 웅장한 연주가 더해져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운 열기로 가득했다. 안성기, 이정재, 류승룡, 엄정화, 조민수, 한고은, 한은정, 심이영, 최정원 등 많은 스타들이 레드카펫을 밟았다. 배우 신현준과 하지원의 사회로 진행되는 대종영화제 시상식은 화려한 불꽃축제로 포문을 연다. 또한 장기하와 얼굴들, 아이유, 걸그룹 레이디스 코드 등 가수들의 축하공연이 준비돼 시상식의 열기를 고조시킬 예정이다. 1962년 1회를 시작으로 올해로 50회를 맞이한 대종상영화제는 한국 영화의 질적 향상과 영화 산업의 진흥 도모를 위해 제정된 예술상으로 그간 한국의 영화와 배우들을 알리는 교두보 역할을 해왔다. ‘제50회 대종상영화제’는 오후 10시부터 KBS 2TV를 통해 녹화 중계된다. 문성호PD sungho@seoul.co.kr
  • [노주석 선임기자의 서울택리지] 한강(하)

    [노주석 선임기자의 서울택리지] 한강(하)

    ●모래 위의 욕망 ‘한강의 기적’이란 이름으로…여의도보다 컸던 밤섬 희생되다 “한강개발계획을 세워라. 첫째, 여의도에 제방을 쌓아서 가능한 한 많은 택지를 조성한다. 둘째, 여의도와 마포·영등포를 연결하는 교량을 가설한다. 셋째, 한강을 사이에 두고 남북의 제방도로를 연차적으로 축조함으로써 한강 홍수를 방지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자동차가 고속으로 달릴 수 있도록 한다.” ‘불도저’ 김현옥 서울시장이 여의도 건설을 주축으로 하는 한강개발 3개년계획이라는 것에 착안한 것은 1967년 8월이었다. 서울시 도시계획국장을 지낸 손정목 전 서울시립대 명예교수에 따르면 3월에 기공한 한강연안도로(강변도로)가 모습을 드러내자 재미있는 현상이 김 시장의 눈에 띄었다고 한다. 새로 생기는 도로와 기존 제방 사이에 새로운 택지가 조성됐는데 제방을 종전보다 안으로 들여 쌓은 결과였다. 여의도를 개발하면 엄청난 택지가 생기고 그것을 판 수익금으로 그동안 구상했던 일들을 한꺼번에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김현옥의 머리를 스쳤다. 같은 해 9월 서울시는 한강개발 3개년계획을 수립했다. 주무부서인 건설부와의 협의를 통해 여의도와 영등포 사이에 샛강을 두되 소양강댐이 완공되면 폐쇄해 택지를 더 조성하고, 홍수방지 차원에서 한강 본류의 폭을 1300m로 유지하는 안에 합의했다. 이에 따라 여의도의 총면적은 127만평에서 샛강 면적 등 40만평을 뺀 87만평으로 확정됐다. 여의도 방죽(윤중제)의 높이는 15.5m, 제방 너비는 21m이며, 제방 안에 조성되는 택지는 강바닥에서 13m 높이로 정했다. 총 둘레는 7.6㎞였다. ‘여의도의 몇 배’라는 대한민국 면적의 기준치는 이렇게 해서 만들어졌다. 한강 폭을 1300m로 한다는 건설부와 서울시의 합의는 참으로 교묘했다. 여의도를 개발하되 강물의 흐름에 지장을 주지 않는다는 명분을 내세워 밤섬을 없애버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제방을 쌓으려면 엄청난 골재가 필요한 마당에 코앞 밤섬 폭파로 골재를 얻는 ‘땅 짚고 헤엄치기’였다. 당시 밤섬의 면적은 1만 7393평으로 지금의 40배 크기였다. 어마어마한 골재가 채취됐다. 밤톨처럼 생겼다고 해서 이름 붙은 밤섬(栗島)에는 78가구 443명이 거주하고 있었다. 조선 초기부터 17대를 살아온 마(馬), 판(判), 석(石), 인(印), 선(宣)씨 등 5개 희성 씨의 집성촌이었다. 이들은 토지보상비 838만원과 건물보상비 702만원을 지급받고 마포구 창전동 와우산 기슭의 대지 1000평 연립주택으로 옮겨갔다. 사람들은 이곳을 ‘밤섬 마을’이라고 불렀다. 밤섬은 고려시대 유배지였으며 주민들은 길이 18m짜리 장도릿배와 15m짜리 조깃배, 12m짜리 늘배 등을 만드는 배 목수 일을 주로 했다. ‘배 제작술을 배우려면 밤섬으로 가라’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여의도에 제방을 쌓고 땅을 다지느라 한때 여의도보다 더 컸던 섬이 무참히 희생됐다. 밤섬은 1968년 2월 10일 오후 3시 폭파돼 시야에서 사라졌다. 방죽을 쌓는 와중에 낭보가 날아들었다. 10만평의 부지에 국회의사당이 들어온다는 것이다. 여의도 입주신청 1호였다. 종묘 앞과 남산 등지를 전전하며 터를 구하지 못한 국회가 ‘신천지’ 여의도로 걸어 들어온 것이다. 이호철의 소설 ‘서울은 만원이다’가 신문 연재를 시작한 것이 1966년이었고 1968년 서울인구는 400만명에 이르렀다. 비록 1인당 국민소득은 123달러, 서울에서 가장 높은 건물은 8층(소공동 반도호텔), 차량대수는 2만 5000대(승용차 1만대)에 불과했지만 모든 것이 광적으로 팽창하던 시기였다. 서울의 교통난, 주택난, 급수난을 해결할 요술방망이가 필요했다. ‘한강의 기적’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110일 만에 제방 축조공사가 끝났다. 기적에 가까운 초스피드 공사였다. 홍수가 오기 전 완공이 유일한 목표였고, 생태나 환경은 돌볼 틈이 없었다. 개발연대기의 원초적 불행이었다. 여의도라는 섬은 사실상의 육지가 됐다. 지금 국회가 들어앉은 양말산(羊馬山)은 높이 190m로 양이나 말을 기르던 목축장이었는데 이때 완파돼 평평해졌다. ●모래 위의 도시 차는 지상·보행은 위층… 초현대적 입체도시 꿈꾸었던 여의도 새로 탄생한 하중도시(河中都市) 여의도를 어떻게 조성할 것인가. 남산 국회의사당 현상설계(1959년) 당선자이며, 워커힐호텔(1962년), 세운상가(1966년), 청계고가(1967년) 계획과 설계를 맡았던 건축가 김수근이 또 등장한다. 김수근은 김종필 국무총리, 김현옥 서울시장과 끈끈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건설기술종합 용역업체인 한국종합기술개발공사라는 국영기업체의 부사장을 거쳐 사장으로 재직했다. 건축사무소는 문을 닫고 ‘공간’이라는 건축잡지만 발행했다. ‘문학청년’ 김현옥은 김수근에게 초현대적이며 후세에 길이 남을 예술적 설계를 요구했다. 국회에 이어 사법부와 서울시청이 입주해 여의도를 중심으로 하는 ‘제2의 서울’을 건설한다는 포부였다. 10층 이상의 스카이라인에, 자동차는 지상으로, 보행자는 2층으로 다니는, 지하도나 육교가 없는 초현대적 입체도시를 꾸미겠다고 발표했다. ‘여의도 개발 마스터플랜을 위한 전제와 가설’(공간 1969년 4월호)과 서울시에 제출한 ‘여의도 및 한강연안 개발계획’ 등을 종합해 보면 이 계획을 완성하는 데는 무려 20년이 걸리며 107억원의 서울시 선행투자와 1000억원 이상의 막대한 민간투자가 필요했다. 1968년 당시 서울시의 일반회계 세입은 138억원이었고, 한강개발특별회계의 세입결산액은 11억원이었다. 서울시 재정상황은 직원 봉급주기도 빠듯한 지경이었다. 한마디로 실현불가능한 장밋빛 청사진이었고 실패한 도시계획의 전형이었다. 김수근의 여의도개발계획은 일제강점기 ‘백화점 왕’ 박흥식이 해방 후 재기를 노리며 세웠던 남서울 신도시계획안과 어딘가 닮았다는 느낌을 준다. 둘 다 천재였고, ‘강남시대’를 예견한 시대를 앞선 아이디어를 제시했지만 현실이라는 높은 벽을 넘지 못하고 좌초됐다는 공통점을 가졌다. ●모래 위의 광장 ‘비상용 활주로’ 5·16 광장… 거대한 집회장소 기억 남기다 ‘밤섬의 저주’였나. 밤섬 폭파 후 2년여 흐른 1970년 4월 마포구 창전동 와우아파트가 무너져 33명이 죽고, 39명이 다쳤다. 공교롭게도 밤섬에서 강제이주한 주민들이 사는 밤섬 마을 바로 옆에서 초대형 사고가 터졌다. ‘건설은 나의 종교’를 외치던 김현옥은 물러났다. 같은 해 10월 여의도 한가운데에 12만평 규모의 ‘텅 빈’ 대광장을 만들라는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가 떨어졌다. 여의도계획에 잡혀 있는 상업·업무지구를 동서로 나누라는 허탈한 지시였다. 여의도 입체도시 건설의 꿈이 허물어지는 순간이었다. ‘5·16광장’ 건설로 여의도 계획은 뿌리째 뒤틀렸다. 새로운 계획이 필요했다. 1971년 8월 서울시는 서울시청사를 1976년까지 여의도에 건립하며, 여의도 전역을 미관지구로 지정하고, 통행금지 해제지역으로 지정하며, 여의도를 통과하는 지하철 2호선을 건설한다는 내용의 새로운 여의도종합계획을 발표했다. 김수근보다 더 허황했지만 불가피했다. 투입 예산은 50여억원인데 수입은 국회 제공 부지 10만평을 평당 1만원에 판 10억원이 전부였다. 대법원지구로 예정된 땅 전부와 시청이 들어설 땅 절반에 시범아파트를 지어 팔기로 했다. 후임 양택식 시장을 비롯한 시 간부들이 거리로 나서서 시범아파트를 선전하는 홍보전단을 돌렸다. 분양이 쉽지 않았다. 서울시민들은 110일 만에 급조한 여의도 제방의 안전이 미덥지 못했고 모래섬 위에 사는 것을 꺼렸다. 그러나 극적인 반전이 찾아왔다. 대한민국 최초이자 최고를 내세운 시범아파트가 팔리기 시작한 것이다. 민영아파트도 따라 들어섰고 택지도 덩달아 팔려나갔다. 서울시청 건설예정부지였던 지금의 산업은행 자리도 팔았다. 국회와 방송 3사, 증권거래소 입지가 결정적이었다. 서울시는 투자한 54억원을 뽑고 30억원의 순수익을 올릴 수 있었다. 여의도는 시대를 앞서가는 첨단도시를 포기한 대가로 빈사상태의 서울시 재정난을 회생시켰다. 이 중 10억원이 지하철 건설비로 계상됨으로써 지하철 건설의 역사가 돛을 올렸다. 후에 드러난 일이지만 박 대통령이 의도한 여의도광장 조성은 전시 비상용 활주로 용도였다. 여의도는 1916년 간이비행장이 생긴 이래 1961년 김포공항으로 이전하기 전까지 서울의 국제관문이었다. 공군의 발상지였으며 1971년 성남으로 이전하기 전까지 공군 K16 비행장이었다. 1968년 김신조 일당의 서울 침입, 울진·삼척 무장공비사건 등 안보위기가 겹치면서 여의도는 예상치 못한 운명을 맞았다. 같은 해 북악스카이웨이가 개통되고, 다음 해 서울시민 30만명이 대피할 수 있는 지하대피용 남산1, 2터널이 굴착되는 등 이때부터 일련의 남북체제 대결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1971년 10월 1일. 국군의 날 행사 TV중계를 통해 처음 선보인 여의도와 여의도 광장의 엄청난 규모에 온 국민은 놀랐다. 이후 반공궐기대회와 대통령 유세, 취임식 등이 광장의 주요 용도였다. 1973년 닷새 동안 200만명이 모인 빌리 그레이엄목사 서울전도대회를 시작으로 국풍, 이산가족 찾기, 부처님 오신 날, 천주교 200주년 행사 등이 잇따르면서 매번 집회 참가인원 신기록을 갈아 치웠다. 텅 빈 광장은 소통의 광장이 아니라 ‘아고라포비아’(Agorafobia·광장공포증)를 유발한다는 비판도 따랐다. 1999년 조순 초대 민선 서울시장이 100억원을 들여 광장을 시민공원으로 바꿨다. 여의도와 여의도광장은 한국 현대사의 영욕이 담긴 기억저장소이다. joo@seoul.co.kr
  • 中-印, 대립에서 유대로

    중국이 미·일의 ‘중국 봉쇄’ 전략에 맞서기 위해 ‘주변 강화’ 외교에 나선 가운데 인도와의 관계 개선에도 공을 들이면서 중·인 관계에 모처럼 훈풍이 일고 있다. 리커창(李克强) 총리와 중국을 방문 중인 만모한 싱 인도 총리가 23일 베이징에서 만나 두 나라의 해묵은 과제인 국경 분쟁 해소를 위한 ‘변경안전협약’을 체결했다고 중국 외교부가 이날 밝혔다. 이번 변경안전협약은 두 나라 간 국경 지대 충돌을 방지하기 위한 것으로 각각 상대에 국경 순시 계획을 사전 통보하는 것은 물론 군사 핫라인의 급을 격상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두 나라는 1962년 국경 문제로 전쟁을 치른 이후 지난 4월에도 양국 군이 인도 북부 카슈미르 지역에서 21일간 대치하는 등 크고 작은 충돌을 거듭해 왔다. 1993년부터 국경 안정화 문제와 관련한 협의를 시작했고, 2003년부터는 특별 대표를 임명해 본격적으로 국경 협상을 벌여 왔으나 뚜렷한 진전을 이루지는 못했다. 이번 협약도 국경 문제를 완전히 해소한 것은 아니지만 향후 상호 충돌 방지에 대한 양국의 의지를 확인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는 평이다. 화춘잉(華春塋) 대변인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이번 협약은 양국이 우호 관계 건설에 대한 각자의 결심과 의지를 보여 주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특히 올해는 중국의 ‘영원한 총리’로 추앙받는 저우언라이(周恩來)가 1953년 인도를 방문해 중국의 외교 원칙인 ‘평화 공존 5개항’을 주창한 지 60주년이 되는 해다. 이런 때에 맞춰 1954년 이래 양국 총리가 처음 연내 상호 방문을 하고 변경안전협약을 체결한 것이다. 싱 총리는 24일까지 사흘간의 방문 기간 동안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주최한 연회에 참석했으며, 리 총리와 함께 고궁인 자금성을 참관하는 등 중국 측으로부터 고품격 환대를 받았다. 베이징 주현진 특파원 jhj@seoul.co.kr
  • 김지태 유족 ‘정수장학회 주식반환’ 2심도 패소

    정수장학회의 전신인 부일장학회 설립자 김지태씨의 유족이 정수장학회를 상대로 낸 주식양도 소송에서 1심에 이어 항소심에서도 패소했다. 1·2심 모두 김씨가 박정희 정권의 강압에 의해 재산을 헌납한 사실을 인정했지만 증여를 원천 무효로 볼 수 없다는 게 법원의 판단이다. 서울고법 민사12부(부장 김창보)는 16일 김씨의 장남 영구(75)씨 등 유족 6명이 국가와 정수장학회를 상대로 낸 주식양도 등 청구소송에서 원심과 같이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재판부는 “5·16 혁명정부가 중앙정보부를 통해 부당한 공권력을 행사해 강압적으로 김씨 재산을 헌납하도록 한 점을 인정한다”면서도 “김씨의 의사 결정 여지가 완전히 박탈된 상태는 아니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구속된 김씨가 수갑이나 포승에 묶이지 않고 자유롭게 부인과 면회한 점, 부산교도소 병동에 특별 대우를 받은 점 등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과거사정리위원회가 진실규명 결정을 한 날로부터 3년이 지난 2010년 6월에야 소송을 제기했으므로 소멸시효가 완성돼 소송이 성립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김씨는 1962년 부정 축재자로 분류돼 재판을 받던 중 문화방송·부산문화방송·부산일보 주식 등을 정권에 증여했다. 당시 검찰은 김씨를 관세법 위반 혐의로 구속기소해 징역 7년을 구형했다. 김씨는 언론 3사 주식을 포기하겠다는 각서를 쓴 뒤에야 공소가 취소돼 풀려났다. 김씨 유족은 과거사정리위원회가 진실규명 결정을 내린 뒤 “정수장학회는 빼앗아간 주식을 반환하고, 반환이 어려우면 국가가 10억원을 배상하라”며 소송을 냈다. 한재희 기자 jh@seoul.co.kr
  • [씨줄날줄] 애물단지 공중전화/손성진 수석논설위원

    한국 최초의 전화는 벨이 전화기를 발명하고 나서 20년이 지난 1896년 덕수궁에 가설되었는데 공무용이었다. 당시 전화는 ‘텔레폰’(telephone)의 음을 딴 ‘덕율풍’(德律風), ‘다리풍’(?釐風)이나 ‘전어기’(傳語機), ‘어화통’(語話筒) 등으로 불렸다. 한국 최초의 공중전화는 언제 생겼을까. 1902년 3월 서울과 인천 사이에 전화가 개통되었는데 교환시설을 갖춘 ‘전화소’라는 관서가 설치됐다. 일반인도 이곳에서 전화를 사용할 수 있었다. 전화소는 1902년 한성·인천·개성에, 이듬해엔 평양·수원·마포·도동(남대문)·시흥(영등포)·경교(서대문) 등 아홉 곳에 설치됐다. 이 전화소를 최초의 공중전화로 볼 수 있겠다. 전화소에는 장리(掌吏)라는 관리가 있어서 교환원 역할을 하면서 요금도 받았다. 말이 들릴락말락하는 거리에 앉아서 통화 내용을 감시하기도 했다. 장리는 저속하거나 불온한 말을 하면 통화를 중단시킬 수 있었다. 외국인 사용자들은 프라이버시 침해라며 항의하기도 했다고 한다. 요금은 서울에서 인천까지 5분에 50전이었고 전화 받을 사람을 불러주는 호출 서비스도 있었는데 거리 1리마다 2전씩 더 내야 했다. 6·25전쟁으로 전화시설이 대부분 파괴되고 1954년 8월 첫 공중전화가 설치되었는데 사람이 지키는 유인(有人) 공중전화였다. 옥외 무인공중전화기는 1962년 7월 1일 첫선을 보였다. 주홍색의 ‘벽괘(壁掛)형’이다. 한 통을 거는 요금은 5원이었다. 이때부터 명실공히 공중전화 시대가 열렸다고 할 수 있다. 공중전화는 그 뒤 변신을 거듭했다. 구멍가게에도 탁상형 공중전화가 있어서 동전을 넣고 전화를 걸 수 있었다. 1971년 DDD라 부르는, 교환원 없이도 걸 수 있는 장거리 직통 전화가 개통되었고 DDD 공중전화도 1977년 등장했다. 휴대전화가 보편화되면서 공중전화는 쇠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1980년 5만 8017대였던 공중전화는 1999년 56만 4054대까지 늘어났다가 지난해 말에는 7만 6783대로 줄었다. 한달에 한명도 사용하지 않는 공중전화가 전국에 200대가 넘는다고 한다. 1990년대 말에는 공중전화 옆에서 휴대전화를 쓰는 행위를 과소비의 전형이라고 욕하기도 했을 만큼 존재의 가치를 인정받았는데 말이다. 공중전화는 한달에 500대꼴로 철거되고 있다. 5년 동안 1700억원의 적자를 보았다고 하니 무조건 비난할 수도 없다. 그래도 공중전화는 휴대전화가 없는 극빈층이나 군인 등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연락 수단이다. 길게 늘어서서 통화 차례를 기다리던 추억 또한 아직 공중전화가 우리에게 소중한 이유다. 손성진 수석논설위원 sonsj@seoul.co.kr
  • 메릴린 먼로도 성형 미인이었다

    메릴린 먼로도 성형 미인이었다

    20세기 최고의 섹스 심벌인 메릴린 먼로(1926~1962)가 성형 미인이었다? 9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은 다음 달 9~10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베벌리힐스에서 열리는 줄리엔 경매에 먼로의 엑스선 촬영 사진 6장과 1950~62년에 작성된 진료 기록이 나올 예정이라고 전했다. 할리우드의 성형외과 의사인 마이클 거딘이 작성한 진료 기록에는 1950년 먼로가 자신의 턱 모양에 대한 불만을 토로해 코에 연골을 삽입하는 등의 성형수술을 받았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경매에 등장하는 엑스선 촬영 사진은 먼로의 얼굴 앞면과 좌우, 코뼈, 입천장 등을 촬영한 것으로, 먼로가 신경안정제를 과다 복용해 36세의 젊은 나이로 사망하기 두 달 전인 1962년 6월 촬영된 것이다. 엑스선 촬영 사진들은 1만 5000~3만 달러 사이에 낙찰될 것으로 예상된다. 줄리엔의 경매사인 마틴 놀란 이사는 “어떤 누구도 먼로가 정말 성형수술을 받았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항상 추측만 무성했다”면서 “사람들은 먼로가 자연 미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 사실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102번째 영화 ‘화장’, 삶에 대한 깊은 사려 담을 것”

    “102번째 영화 ‘화장’, 삶에 대한 깊은 사려 담을 것”

    “잘못되면 욕을 바가지로 먹고 잘하면 칭찬도 받을 수 있는 큰 과제이지만, 열심히 해 보겠습니다.” 올해로 데뷔 50주년을 맞는 영화계의 거장 임권택(77) 감독은 자신의 102번째 영화 ‘화장’을 제작하는 각오를 이렇게 밝혔다. 이 영화는 김훈 작가의 2004년 이상문학상 대상 수상작인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으로 ‘화장(火葬)’과 ‘화장(化粧)’이라는 서로 다른 소재와 의미를 통해 두 여자 사이에서 번민하는 한 중년 남자의 심리를 그리고 있다. 부산국제영화제 첫날인 4일 해운대 신세계문화홀에서 열린 ‘화장’ 제작발표회에 참석한 임 감독은 “‘화장’은 강한 드라마가 있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김훈 선생의 문장이 주는 엄청난 힘과 박진감을 영상으로 담아낸다면 해볼 만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서편제’, ‘천년학’, ‘달빛 길어올리기’ 등의 작품을 통해 판소리, 한지 등 우리나라 전통문화를 스크린에 꾸준히 옮겨온 임 감독은 이번 작품에서는 변화를 예고했다. “이번 영화는 깊은 문화의 뿌리를 바탕으로 삶을 드러내는 영화가 아니라 현대를 살면서 자연스럽게 우러나는 감정과 마음의 결을 찍어 내기 때문에 면모나 형식이 달라질 겁니다. 지금부터 김훈 선생의 미지의 세계에 깊숙이 들어가서 내 색깔을 드러내고 찾아내는 작업을 시작할 겁니다. 저는 영화 촬영을 끝냈을 때 비로소 시나리오도 완성된다는 말을 하곤 하는데, 이번에도 (영화를) 다 찍고 나야 정확한 색깔이 드러날 것 같습니다.” 제작발표회장에는 김훈 작가와 영화에 출연하는 배우 안성기도 함께했다. ‘만다라’(1981년)를 시작으로 임 감독과 일곱 번째 작업을 함께 하게 된 안성기는 “영화 속 주인공 오상무는 나와 실제 나이대도 같다. 지금까지 해 왔던 인물들과 다른 캐릭터로 역동적인 장면이 많아 더 욕심이 생긴다”고 말했다. 김 작가는 “소설 ‘화장’은 생로병사가 한순간에 하나가 돼 전개되는 삶의 모습과 인간의 사랑과 아름다움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품으로 (밖으로) 드러나는 것보다 그렇지 않은 메시지들이 많다”면서 “워낙 영상으로 만들기 어려운 작품이어서 두 거장의 경력과 실력을 믿고 있다”고 말했다. 1962년 ‘두만강아 잘 있거라’를 시작으로 ‘씨받이’, ‘취화선’ 등 숱한 화제작을 만든 임 감독에게 102번째 영화는 어떤 의미일까. “영화란 살아온 세월의 체험이 영상으로 드러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102번째 영화는 젊었을 때의 순발력이나 패기에 미치지는 못 해도, 세상을 살아 내는 것에 대한 깊은 사려가 담긴 작품이 되리라 확신합니다.” 부산 이은주 기자 eri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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