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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씨줄날줄] 유기농 식품과 유병언/문소영 논설위원

    ‘녹색혁명’(Green Revolution)은 2차 세계대전 이후 폭발적 인구증가로 대규모 식량부족에 직면했던 개발도상국들이 1950~60년대 급격한 농업 증산을 이룬 각종 개혁을 표현하는 단어다. 미국 농학자 노먼 볼로그는 녹색혁명의 선도자였던 덕분에 1970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다수확 품종인 멕시코 밀을 육성해 개발도상국의 식량문제를 해결한 것이다. 그 여러 가지 개혁은 일단 다수확 신품종을 개발해 심고, 대량의 화학비료를 뿌리고, 병충해를 막고자 다량의 비싼 농약을 살포하며, 대규모 관개설비(灌漑設備)를 갖추는 등 ‘효율성’에 초점을 맞춘 근대적 농업기술의 도입이다. 미국 록펠러재단과 포드재단은 1962년에 필리핀에 국제벼연구소(IRRI)를 설립하고, 1966년에 IR-8을 개발했는데 이른바 ‘기적의 볍씨’로 불렸다. 한국 정부는 이 품종을 도입해 ‘통일벼’란 이름의 신품종을 개발, 1974년부터 주력보급 품종으로 지정했다. 60대 이후의 노인들은 ‘통일벼’라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데, 미곡 증산에는 크게 기여했지만, 밥맛이 떨어지고 병충해에 취약해 농약을 대량으로 살포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그 탓에 1970년대 사회문제 중 하나가 ‘농약 잔류 쌀’이었다. 또 대량으로 투입하는 화학비료라는 것은 나트륨, 칼륨, 칼슘, 질소, 인산 등 무기화학물질을 말하는데, 이 역시 지구의 유한한 광물자원 등에서 추출해 자원고갈의 우려가 있다. 다시 말해 ‘녹색혁명’이란 당초의 생명력의 이미지와 달리 자원고갈이나 환경오염 등을 걱정하게 하는 농법이다. 1830년쯤 독일 화학자 유스투스 리비히가 밝힌, 식물 성장은 부족한 영양소가 성장을 제한한다는 ‘최소량의 법칙’을 고려하면 대량 투입된 화학비료 역시 환경오염의 원인이 된다. 최근 화학비료와 농약을 쓰지 않고 퇴비로 키운 농산물이 인기다. 이 유기농작물이 청해진해운의 실질적 소유주로 알려진 유병언씨를 추적하는 단서가 됐다. 유씨의 순천 은신처에 생수와 유기농 마른 과일을 배달하던 사람을 미행한 덕분이다. 그가 검찰의 추적이라는 위험에도 유기농 식습관을 못 바꾼 것이다. 도망치는 유씨와 검거하려는 검찰과의 숨바꼭질은 마치 영화 ‘캐치 미 이프 유 캔’(Catch me, if you can)을 보는 것 같다. 유씨를 비호하고 있는 구원파 측은 금수원에 붙어 있던 “김기춘, 갈 데까지 가보자”와 같은 현수막을 검찰에서 떼어달라고 요청했다고 폭로해 뭔가 말 못할 사정이 있는 듯한 의혹을 자아내려 했다. 현상금 5억원의 세금도 절약할 겸 유씨는 어서 자수해 세월호 침몰의 진상을 소명하고, 책임질 일은 책임지길 바란다. 문소영 논설위원 symun@seoul.co.kr
  • 이학봉 별세 빈소 찾은 전두환 “추징금 언제 낼 거냐” 질문에…조화 보낸 공직자 누구?

    이학봉 별세 빈소 찾은 전두환 “추징금 언제 낼 거냐” 질문에…조화 보낸 공직자 누구?

    ’이학봉 별세’ ‘이학봉 빈소’ ‘전두환 추징금’ ‘전두환 조문’ 이학봉 전 의원의 빈소에 조문을 온 전두환 전 대통령이 1250억원의 추징금 납부에 대해 입을 열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25일 부인 이순자 여사와 함께 이학봉 전 의원의 빈소를 찾아 조문했다. 이날 빈소에는 전두환 전 대통령뿐 아니라 장세동, 박희도, 정호용 씨 등 제 5공화국 인물들이 줄줄이 빈소를 찾아 눈길을 끌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빈소에서 만난 취재진의 추징금 관련 질문에 “나중에 결정되면 얘기하겠다”고 말을 아꼈다. 이날 빈소에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과 김관진 국방부장관도 조화를 보냈다. 이학봉 전 의원은 부산 출신으로 지난 1979년 12·12 군사반란 당시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을 연행하는 등 신군부 핵심세력의 주요 인물로 꼽혔다. 5공 신군부의 핵심 인사였던 이학봉 전 의원은 부산 출신으로, 경남고를 나와 1962년 육사를 18기로 졸업했다. 1979년 전두환 당시 소장이 보안사령관에 부임했을 당시 이학봉 전 의원은 보안사 대공수사과장(중령)이었다. 그해 12·12사태 당시 이학봉 전 의원은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에 대한 연행 계획을 수립해 전 사령관에게 제출했고, 전 사령관이 최규하 대통령에게 정 총장의 연행을 재가받기 위해 청와대에 갔을 때도 동행했다. 5공화국 탄생에 큰 몫을 하기도 했다. 1980년 합동수사본부 수사단장을 맡아 정 총장을 수사했으며, 김대중 내란음모사건과 김종필 부정축재사건 등 5공 권력 창출을 위한 기획을 현장에서 지휘했다. 육군 중장 예편 이후 청와대 민정수석과 전 국가안전기획부 제2차장을 맡았다. 이후 민정당 상임위원을 거쳐 경남 김해에서 13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이학봉 전 의원은 1989년 5공 비리 수사 때 직권남용 혐의로 기소됐다가 징역 1년 6월 집행유예 3년을 선고 받았다. 또 1997년 4월에는 12·12 내란 음모 사건 재판에서 징역 8년을 선고받았지만, 이듬해 8·15 특사에서 사면 복권됐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부고] 뉴욕타임스 기틀 마련 아서 겔브 前 편집국장

    [부고] 뉴욕타임스 기틀 마련 아서 겔브 前 편집국장

    탁월한 뉴스 감각과 저널리즘에 대한 열정으로 뉴욕타임스(NYT)를 오늘날의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아서 겔브 전 NYT 편집국장이 20일(현지시간) 세상을 떠났다. 90세. NYT는 이날 겔브가 뇌졸중 합병증으로 미국 맨해튼의 자택에서 사망했다는 유족의 발언을 전하며 “현대화 시기에 NYT의 기틀을 마련한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겔브는 1924년 3월 체코슬로바키아 이주민 출신 부모 밑에서 태어나 20살이던 1944년 NYT에 원고 심부름꾼으로 입사했다. 이후 문화 전문 기자, 사회 담당 편집장, 편집국장 등을 거치며 1989년 은퇴할 때까지 언론계에 큰 족적을 남겼다. 아내 바버라와 함께 1962년 미국의 유명 극작가 유진 오닐의 전기를 출간하기도 했다. 1967∼1978년 사회 담당 편집장으로 재직하면서는 경찰 부패를 집중적으로 다뤄 뉴욕경찰 개혁의 계기를 마련했다. 그는 오늘날 신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스포츠 먼데이’ ‘사이언스 타임스’ ‘주말’ 등의 분야별 섹션을 처음 NYT에 도입한 인물이기도 하다. 은퇴 뒤에는 NYT 재단 대표 등을 맡았다. 그의 아들 피터 겔브는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단의 총감독이다. 백민경 기자 white@seoul.co.kr
  • [광역단체장 유력후보 분석-대구시장] 권영진 vs 김부겸

    [광역단체장 유력후보 분석-대구시장] 권영진 vs 김부겸

    ■ ‘텃밭 혁신’ 非朴의 실험 권영진 새누리당 대구시장 후보는 TK(대구·경북) 출신이긴 하지만 비박근혜계로 통한다. 그런 그가 이번에 박근혜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인 대구에서 쟁쟁한 친박계 후보들을 제치고 후보로 선출된 것은 그 자체로 ‘반란’이라 할 만하다. 그는 이번 경선에서 ‘변화의 리더십’을 앞세웠고, 이에 변화를 바라는 민심이 호응하면서 파란을 일으킨 것이다. 권 후보는 1962년 경북 안동에서도 40여리 떨어진 남선면 원림리 양지마을에서 태어났다. 50~60가구가 모인 두메산골에서 초등학교 5학년까지 다닌 후 안동 시내로 전학하고, 고등학교는 대구로 진학했다. 어린 시절부터 낯선 유학생활을 겪으면서 자연스레 배짱을 몸에 익혔다. 그는 “촌놈 자존심을 지키려고 친구들과 싸움도 많이 하고 아버지가 학교에 불려오기도 했다”고 어린 시절을 회상한다. 고려대 영문과에 입학한 1980년은 ‘서울의 봄’이 한창이었고 캠퍼스는 민주화 열기로 뜨거웠다. 그 역시 공부보다는 길거리 시위로 최루탄 연기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훨씬 많았다. 친구들이 사회·노동운동에 투신할 무렵 그는 대학원에 진학해 총학생회 초대 학생회장에 당선되면서 전국 대학원 학생회 설립 운동을 주도하게 된다. 하지만 그는 좌파성향으로 흐르는 학생운동에 염증을 느끼게 됐고 국가에 기여할 수 있는 공직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 쪽으로 가치관이 바뀌게 됐다. 그는 1990년 통일부 사무관 공채로 입사해 1992년 남북 총리회담의 남북기본합의서 채택,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 제정 등을 실무적으로 뒷받침했다. 정치권에는 1999년 이회창 당시 한나라당 총재 보좌역으로 입문했다. 그는 원외 신분이었지만 남경필·김영선 의원 등 초선 의원들과 함께 한나라당 소장파 그룹 ‘미래연대’를 결성해 초대 사무총장을 맡는 등 리더십을 보였다. 당시 그가 영입했던 이들 중에 원희룡, 오세훈 등 훗날 쟁쟁한 정치인으로 성장한 이들도 끼어 있었다. 이회창 대통령 후보 보좌역으로 임했던 2002년 대선에서 패배의 고배를 든 뒤 2004년 17대 총선에 출마했지만 탄핵 역풍이 매서웠다. 그는 서울 노원을에서 선전했지만 1.9% 포인트 차이로 석패했다. 2006년 지방선거에서 그는 도약의 계기를 맞는다.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 비서실장으로 선거를 승리로 이끈 이후 서울시 정무부시장으로 변신한 것이다. 사석에서 오 시장이 “정말 비싸게 모셔온 부시장”이라고 농담할 정도로 그는 부시장직을 끝까지 고사했다고 한다. 그러나 막상 부시장직을 맡아서는 자원회수시설 광역화, 용산부지의 자연생태공원 보존 등의 실적을 남겼다. 18대 총선에서 노원을에서 당선된 뒤 초선들의 쇄신 모임인 ‘민본 21’ 간사를 지냈다. 비박계였지만 합리적 성향으로 한나라당 재창당 위기 때 박근혜 대통령과 쇄신파 간 만남을 주도하며 존재감을 각인시킨다. 19대 총선 때 당시 민주당 우원식 후보와의 리턴매치에서 패배했지만 기획력을 인정받아 2012년 대선 때 여의도연구소 상근 부소장에 임명된다. 이후 새누리당 중앙선대위 기획조정단장 등을 맡으며 박 대통령 당선에 기여했다. 지난해 암중모색 시기를 거친 그는 자신에겐 정치적 불모지나 다름없던 대구에서 시장 출마를 선언한 이후 100여일 만에 후보 자리를 꿰차는 저력을 보였다. 권 후보는 자신의 경선 당선에 대해 “변화를 바라는 대구 시민들의 열망이 분출된 결과”라면서 “대구 시민·당원들이 친박·비박을 놓고 선택한 게 아니라 30년 넘게 발전이 지체된 대구를 바꿀 능력을 누가 갖고 있는지를 따져본 결과”라고 주장한다. 비주류인 그의 정치 실험이 성공할지 이번 선거에 관심이 집중되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 ‘불모지 꽃’ 두 번째 도전 김부겸 새정치민주연합 대구시장 후보는 지난 19대 총선에서 대구 수성갑에 출마해 낙선했지만 40%가 넘는 득표율로 기염을 토했다. 야당의 불모지인 대구에서 거둔 의미 있는 성과였다. 그에게 이번 대구시장 선거는 지역주의의 벽을 깨기 위한 두 번째 ‘겁없는’ 도전인 셈이다. 김 후보는 1956년 경북 상주군 상주읍 오대리 산골 마을에서 태어났다. 5대 독자였던 그의 아버지는 할아버지의 성화에 고교 2학년 때 결혼하고 이듬해 김 후보를 낳았다. 그는 대구에서 고등학교까지 마친 뒤 서울대 정치학과에 입학했다. 그의 대학 시절 대부분은 유신 반대 시위, 이에 따른 두 번의 실형과 제적으로 점철됐다. 입학 이듬해인 1977년 유신 반대 시위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제적을 당했고, 1978년에는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징역 1년, 자격정지 1년을 선고받아 실형을 살았다. 1980년 ‘서울의 봄’으로 복학했으나 다시 학생운동 지도부로 활동하다가 5·17 계엄령 위반으로 구속되면서 또다시 제적됐다. 그가 ‘아크로폴리스의 사자후’라는 별명을 얻은 것도 이때쯤이다. 신군부와 학생 간 일촉즉발의 전운이 감도는 가운데 서울대 학내는 재학생과 복학생이 온건파와 강경파 등으로 나뉘어 치열한 노선투쟁을 벌였다. 그는 당시 복학생 대표로 서울대 ‘아크로폴리스 광장’에 모인 1만여명의 학생을 향해 “민주화는 그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조국과 민족의 앞날을 우리 각자가 결단해 열어나가자”는 내용의 연설을 토해냈다. 그의 연설은 학생들이 상호 불신을 털어내고 일체감을 형성하는 데 기여한 명연설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1982년 그는 민주화운동 동지이자 친구인 이용재 목사의 동생 이유미씨와 결혼했고, 딸만 셋을 낳으면서 ‘딸 바보’ 아빠가 됐다. 그의 둘째 딸이 탤런트 윤세인(본명 김지수)이다. 김 후보는 1988년 ‘반(反)지역주의 개혁정당’을 표방한 한겨레민주당 창당에 참여하면서 현실정치에 발을 들였다. 이후 1991년 민주당에 들어갔지만 민주당은 1995년 새정치국민회의 창당으로 분당되면서 ‘꼬마 민주당’으로 세가 약화됐다. 김 후보는 꼬마 민주당에 남아 노무현 전 대통령 등과 함께 3김 청산, 지역주의 극복 등을 외치며 국민통합추진회의(통추) 결성에 참여했다. 그러나 이들은 1997년 대선을 앞두고 ‘DJP(김대중·김종필) 연합’ 참여와 한나라당 합류라는 두 개의 노선으로 갈라섰다. 김 후보는 한나라당 행을 택했고 고(故) 제정구 당시 의원의 지역구인 경기도 군포를 물려받아 16대 총선에서 당선됐다. 김 후보는 이후 한나라당에서 소장 개혁파로 활동하며 국가보안법 폐지와 대북송금특검법안 반대 등을 주장, 당내 강경보수파와 갈등을 빚었다. 그는 결국 2003년 김영춘 전 의원 등과 함께 한나라당을 탈당, 열린우리당 창당에 참여했다. ‘독수리 5형제’라 불린 이들의 합류로 전국 정당을 표방한 열린우리당은 창당의 명분을 얻었지만 그에게는 ‘한나라당 출신’이라는 꼬리표가 붙게 됐다. 경기 군포에서 내리 3선을 한 김 후보가 혹독한 도전을 다시 시작한 것은 19대 총선에서 한나라당 아성인 대구에 출사표를 던지면서다. 김 후보는 당시 “세 개의 벽인 지역주의, 기득권, 과거의 벽을 뛰어넘겠다”면서 민주통합당 간판으로 이한구 새누리당 의원과 맞붙었지만 끝내 지역주의의 벽을 넘지 못했다. 하지만 그가 거둔 40.4%의 득표율은 새누리당의 간담을 서늘케 했다. 김 후보는 지난 3월 대구시장 예비후보 등록을 마친 뒤 “대구에서는 야당 시장의 당선이야말로 대박이 될 것”이라면서 “대구 출신 대통령에 야당 대구시장이라는 하늘이 내리는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고 결기를 드러냈다. 송수연 기자 songsy@seoul.co.kr
  • “힐러리 대선 출마는요” 인터뷰의 여왕 월터스 마지막도 인터뷰였다

    “힐러리 대선 출마는요” 인터뷰의 여왕 월터스 마지막도 인터뷰였다

    ‘미국 ABC방송의 살아 있는 전설’이자 ‘인터뷰의 여왕’으로 불리는 바버라 월터스(85)가 16일(현지시간) 방송되는 토크쇼 ‘더 뷰’를 끝으로 50여년의 방송 인생을 마감한다. 월터스는 앞으로 이 프로그램의 총괄책임자로 활동하며 특별 프로에 부정기적으로 출연하겠지만 화면에 매일 등장하지는 않는다고 AP통신이 전했다. 월터스는 15일 진행된 마지막 녹화에서 크림색 재킷과 검은 스커트 차림으로 등장해 청중석을 가득 메운 친구, 동료, 팬들로부터 열렬한 박수를 받았다. 특히 녹화장에는 유명 토크쇼 진행자인 오프라 윈프리와 힐러리 클린턴 전 미 국무장관, 영화배우 우피 골드버그 등도 함께 자리했다. 클린턴 전 장관은 “이런 날이 왔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다”며 아쉬워했지만 월터스는 마지막까지 본분을 잃지 않았다. 클린턴 전 장관에게 “2016년 대선에 출마(run)할 것이냐”고 예외 없이 ‘돌직구’ 질문을 던졌다. 이에 클린턴 전 장관은 “뛰어(run)야죠. 공원 주변을…”이라며 직답을 피했다. 월터스는 끝까지 웃음을 띤 채 “‘안녕’이라는 말 대신 ‘다시 만나자. 조만간 또 보자’고 말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2010년 심장 수술을 한 이후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았던 그는 지난해부터 은퇴 계획을 밝혀 왔다. 월터스는 1962년 NBC ‘투데이쇼’를 통해 데뷔한 후 1976년 ABC로 옮겨 미국 저녁뉴스 사상 첫 여성 앵커가 됐다. 이어 1979년 시사 프로그램 ‘20/20’의 공동 진행자를 맡았다. 한편 월터스는 이날 ABC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일 때문에 너무 바빴다”며 “딸 재키와 더 많은 시간을 보냈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털어놓았다. 재키는 그녀가 수차례 유산한 뒤 입양한 딸로 현재 40대이다. 백민경 기자 white@seoul.co.kr
  • “마릴린 먼로, 로버트 케네디가 살해 사주했다” 주장 나와

    “마릴린 먼로, 로버트 케네디가 살해 사주했다” 주장 나와

    ‘마릴린 먼로’ ‘로버트 케네디’ 유명 영화배우이자 20세기 대표적인 섹스심벌이던 마릴린 먼로가 자살한 것이 아니라 로버트 케네디의 사주로 살해됐다는 주장이 나왔다. 영국 데일리메일 인터넷판은 16일(현지시간) 먼로가 불륜 관계와 집안의 비밀을 폭로할까봐 겁이 난 케네디가 먼로의 정신과의사인 랠프 그린슨을 시켜 독극물을 주사하도록 했다고 신작도서를 인용해 보도했다. 탐사보도 기자이자 먼로 전문가인 제이 마골리스와 논픽션 베스트셀러 작가 리처드 버스킨은 다음달 출간되는 책 ‘마릴린 먼로 살해: 사건 종결’에서 이와같이 주장했다. 이 책에 따르면 로버트 케네디가 관계를 정리하려고 하자 먼로는 기자회견을 열어 그는 물론 형인 존 F.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과의 혼외정사까지 폭로하고 일기장에 써둔 케네디 집안의 비밀을 밝히겠다고 위협했다. 이에 1962년 8월 4일 로버트 케네디는 배우이자 매제인 피터 로퍼드, 로스앤젤레스 경찰 출신 개인 경호원 두 명을 데리고 먼로의 집으로 가서 먼로에게 최면제의 일종인 펜토바르비탈(약품명 넴부탈)을 주사했다. 이어 일기장을 찾아 한참 집을 뒤지던 이들은 약효가 떨어져 먼로가 깰까봐 넴부탈 13∼19알과 진정 작용이 있는 클로랄 산화물 17알을 부숴 추가로 항문으로 주입했다고 작가들은 설명했다. 이들이 떠난 뒤 먼로의 애완견이 짖어대는 소리를 이상하게 여겨 들여다본 가정부가 먼로를 발견하고 구급차를 불렀다. 당시 출동한 구급대원은 “일반적인 약물 과다복용자와는 달리 구토하지 않았고 입에서 약물 냄새도 나지 않았다”면서 먼로가 의식은 없었지만 그때까지 살아있었다고 증언했다. 그러나 갑자기 그린슨이 나타나 자신이 먼로의 담당의라면서 먼로의 가슴에 주사기를 꽂고 갈비뼈를 부술 정도로 거칠게 약물을 주사했다고 이 구급대원은 말했다. 데일리메일은 그린슨이 넴부탈을 투입했다고 전했다. 이후 먼로는 결국 사망했으며 미국 정부는 먼로의 죽음을 자살로 보고 조사를 종결했다고 데일리메일은 전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터키 탄광 폭발 사고 현장서 터키 총리 “이런 사고는 일어나곤 해” 발언에 거센 후폭풍

    ‘터키 탄광 폭발’ ‘터키 탄광사고’ 터키 탄광 폭발 사고로 최소 282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가운데 사고 현장을 방문한 터키 총리가 “이런 사고는 일어나곤 하는 것”이라고 말해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미국 유력지 뉴욕타임스(NYT)를 비롯한 해외 매체에 따르면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총리는 14일(현지시간) 터키 소마탄광 사고 현장을 방문한 자리에서 “탄광에서 (폭발) 사고가 아예 발생하지 않는 것은 불가능하다”라며 이런 견해를 밝혔다. 에르도안 총리는 “’업무상 재해’란 말도 있지 않은가”며 “사고는 다른 작업현장에서도 일어난다”고 했다. 그는 “다른 나라에서도 이런 사고가 없는 일은 아니다”라면서 “영국에선 1862년에 204명이, 1866년엔 361명이, 1894년엔 290명이 죽는 (탄광) 사고가 있었다”고 사례까지 들었다. 이 발언에 기자회견장 근처에 있던 유족 수백 명과 시위대의 분노는 폭발했다. 이들은 에르도안 총리에게 몰려들었고 총리는 결국 경찰에 둘러싸인 채 인근 수퍼마켓으로 피신했다. 화가 풀리지 않은 일부는 총리의 차를 발로 차기도 하고 총리를 향해 ‘살인자’ 또는 ‘도둑놈’이라는 극언까지 퍼부었다. 소마 시내에서도 에르도안 총리가 속한 정의개발당(AKP) 본부로 몰려가 돌로 창문을 깨는 등 시위를 벌였다. 이에 경찰은 최루탄까지 동원해 시위대를 해산시켰다. 프랑스 AFP통신은 에르도안 총리의 발언을 두고 “사고의 심각성을 경시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지적했다. AP통신도 “완전히 감을 상실했다(tone-deaf)”고 꼬집었다. 오는 8월로 예정된 대선의 유력 후보로 꼽히는 에르도안 총리는 그간 터키 탄광업계와 유착 관계에 있다는 의혹이 제기돼 왔다고 AFP는 전했다. 지난달 29일에도 야당인 공화인민당(CHP)이 소마 탄광에 대한 안전 조사를 요구했지만 에르도안 총리의 AKP는 이를 부결시켰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터키 탄광사고 현장서 에르도안 총리 “이런 사고는 일어나곤 하는 것” 발언에 민심 폭발

    ‘터키 탄광사고’ ‘터키 총리’ ‘에르도안 총리’ 터키 탄광사고로 270명이 넘는 인명이 희생된 가운데 폭발사고 현장을 찾은 터키 총리가 “이런 사고는 일어나곤 하는 것”이라고 말해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미국 유력지 뉴욕타임스(NYT)를 비롯한 해외 매체에 따르면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총리는 14일(현지시간) “탄광에서 (폭발) 사고가 아예 발생하지 않는 것은 불가능하다”라며 이런 견해를 밝혔다. 에르도안 총리는 “’업무상 재해’란 말도 있지 않은가”며 “사고는 다른 작업현장에서도 일어난다”고 했다. 그는 “다른 나라에서도 이런 사고가 없는 일은 아니다”라면서 “영국에선 1862년에 204명이, 1866년엔 361명이, 1894년엔 290명이 죽는 (탄광) 사고가 있었다”고 사례까지 들었다. 이 발언에 기자회견장 근처에 있던 유족 수백명과 시위대의 분노는 폭발했다. 이들은 에르도안 총리에게 몰려들었고 총리는 결국 경찰에 둘러싸인 채 인근 수퍼마켓으로 피신했다. 화가 풀리지 않은 일부는 총리의 차를 발로 차기도 하고 총리를 향해 ‘살인자’ 또는 ‘도둑놈’이라는 극언까지 퍼부었다. 소마 시내에서도 에르도안 총리가 속한 정의개발당(AKP) 본부로 몰려가 돌로 창문을 깨는 등 시위를 벌였다. 이에 경찰은 최루탄까지 동원해 시위대를 해산시켰다. 프랑스 AFP통신은 에르도안 총리의 발언을 두고 “사고의 심각성을 경시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지적했다. AP통신도 “완전히 감을 상실했다(tone-deaf)”고 꼬집었다. 오는 8월로 예정된 대선의 유력 후보로 꼽히는 에르도안 총리는 그간 터키 탄광업계와 유착 관계에 있다는 의혹이 제기돼 왔다고 AFP는 전했다. 지난달 29일에도 야당인 공화인민당(CHP)이 소마 탄광에 대한 안전 조사를 요구했지만 에르도안 총리의 AKP는 이를 부결시켰다. 에르도안 총리는 올해 초 현금 은닉, 뇌물 수수를 아들과 논의한 통화 녹음이 유튜브에 공개돼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당시 그는 녹음이 조작이라고 주장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브라질, 월드컵 67승 경신할까…클로제, 호나우두 15골 넘을까

    브라질, 월드컵 67승 경신할까…클로제, 호나우두 15골 넘을까

    이번 대회에 쏟아질 각종 신기록에는 어떠한 것이 있을까. 일단 개최국 브라질의 몫이 될 것이 뻔하다. 우선 초대 브라질대회부터 연속 20번째 출전으로 이미 최다 출전 기록을 세웠고 1958년, 1962년, 1970년, 1994년, 2002년까지 5차례 월드컵 트로피에 입을 맞춰 이번 대회에서 우승하면 6회로 늘릴 수 있다. 브라질은 이와 함께 월드컵 최다 승리(67승), 최다 골(210골) 기록 늘리기에도 도전한다. 호나우두(브라질)가 작성한 개인 통산 최다 득점(15골) 기록이 경신될지도 주목된다. 미로슬라프 클로제(독일)가 2002, 2006, 2010 대회 등 세 차례 본선에서 14골을 터뜨려 가장 근접해 있다. 지난 8일 발표된 예비 엔트리(30명)에 들었지만 최종 엔트리에 들어야 기록 도전에 나설 수 있다. 한 경기 최다 득점(5골)은 1994년 미국 대회에서 올레크 살렌코(러시아)가 카메룬을 상대로 작성한 뒤 20년 동안 깨지지 않았다. 대회 최다 해트트릭(2회)은 산도르 코츠시시(헝가리·1954년), 쥐스트 퐁텐(프랑스·1958년), 게르트 뮐러(독일·1970년), 가브리엘 바티스투타(아르헨티나·1994년, 1998년) 이후 나오지 않았다. 2002년 대회 한국과의 3, 4위 결정전에서 하칸 쉬퀴르(터키)가 세운 최단 시간 득점(10.89초), 4년 뒤 독일과의 4강전에서 알레산드로 델피에로(이탈리아)가 작성한 최장 시간 득점(121분)도 새로 쓰일지 관심을 끈다. 골키퍼의 최다 무실점 기록은 피터 실턴(잉글랜드·1982~1990년)과 파비앵 바르테즈(프랑스·1998~2006년)가 세운 10경기다. 최다 시간 무실점 기록은 1990년 대회에서 왈테르 첸가(이탈리아)가 작성한 517분이다. 바르테즈(1998년)와 잔루이지 부폰(이탈리아·2006년), 이케르 카시야스(스페인·2010년)가 보유한 월드컵 우승국 가운데 최소 실점(2골), 얀 토마스제프스키(폴란드·1974년)와 브래드 프리델(미국·2002년)이 갖고 있는 최다 페널티킥 세이브(선방·2회) 기록도 눈길을 끈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윤소정, 전양자 구원파 전도한 장본인…전양자 “귀한 것 얻었다” 인터뷰

    윤소정, 전양자 구원파 전도한 장본인…전양자 “귀한 것 얻었다” 인터뷰

    배우 윤소정이 최근 구원파의 핵심 인물로 떠오른 배우 전양자를 전도한 것으로 밝혀졌다. MBC ‘리얼스토리 눈’은 지난 12일 ‘금수원의 중심-전양자의 두 얼굴’ 편을 방송했다. 이날 방송에는 전양자와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과의 관계, 전양자가 대표로 있는 금수원 세모그룹 계열사인 노른자쇼핑, 국제영상, 아이원홀딩스 등의 여러 가지 의혹이 집중 조명됐다. 세월호 참사 이후 구원파와 연관된 인물로 떠오른 전양자는 유병언 전 회장의 최측근으로 지난 1987년 오대양 집단 자살 사건으로 사회적 물의를 빚은 구원파의 핵심 신도로 지목됐다. 이날 방송에서는 윤소정이 전양자를 구원파로 인도한 신도임이 밝혀졌으며, 윤소정도 이같은 사실을 인정했다.  과거 전양자 역시 윤소정을 통해 구원파가 신도가 된 사실을 밝힌바 있다. 1991년 8월 한 매체에 실린 전양자 인터뷰에 따르면 전양자는 1977년 부터 구원파 신도가 됐다. 동료배우 윤소정이 같이 성경공부하자고 했고, 전양자는 이를 받아들인 것. 당시 전양자는 “귀한 것을 얻게 됐다. 늦게 결혼에 실패하면서 일부종사를 하지못했다는 죄책감과 좌절감이 컸다. 이때 윤소정의 권유를 받게돼 쉽게 종교에 귀의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윤소정은 TBS 1기 공채 탤런트로 지난 1962년 대뷔한 중견 연기자다. 지난해에는 tvN 드라마 ‘연애조작단 시라노’에서 황여사 역할을 맡아 눈길을 끌었다. 한편 이날 방송 말미에는 영상 자체가 끊긴 뒤 광고로 넘어가 시청자들을 황당하게 했다. 이에 제작진 측은 “방송 중 외부 종합편집 과정에서 기술상 문제가 발생해 프로그램 결론에 해당하는 2분 40초가량의 분량이 방송되지 못했다”며 “깊이 사과드린다. 앞으로 재발방지에 각별히 유의하겠다”고 전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구원파 전양자 전도한 사람은 배우 윤소정…또 다른 구원파 연예인은?

    구원파 전양자 전도한 사람은 배우 윤소정…또 다른 구원파 연예인은?

    배우 윤소정이 최근 구원파의 핵심 인물로 떠오른 배우 전양자를 전도한 것으로 밝혀졌다. MBC ‘리얼스토리 눈’은 지난 12일 ‘금수원의 중심-전양자의 두 얼굴’ 편을 방송했다. 이날 방송에는 전양자와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과의 관계, 전양자가 대표로 있는 금수원 세모그룹 계열사인 노른자쇼핑, 국제영상, 아이원홀딩스 등의 여러 가지 의혹이 집중 조명됐다. 세월호 참사 이후 구원파와 연관된 인물로 떠오른 전양자는 유병언 전 회장의 최측근으로 지난 1987년 오대양 집단 자살 사건으로 사회적 물의를 빚은 구원파의 핵심 신도로 지목됐다. 이날 방송에서는 배우 윤소정(69)이 전양자를 구원파로 인도한 신도임이 밝혀졌으며, 윤소정도 이같은 사실을 인정했다. 윤소정은 TBS 1기 공채 탤런트로 지난 1962년 대뷔한 중견 연기자다. 지난해에는 tvN 드라마 ‘연애조작단 시라노’에서 황여사 역할을 맡아 눈길을 끌었다. 한편 이날 방송 말미에는 영상 자체가 끊긴 뒤 광고로 넘어가 시청자들을 황당하게 했다. 이에 제작진 측은 “방송 중 외부 종합편집 과정에서 기술상 문제가 발생해 프로그램 결론에 해당하는 2분 40초가량의 분량이 방송되지 못했다”며 “깊이 사과드린다. 앞으로 재발방지에 각별히 유의하겠다”고 전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윤소정 “전양자 구원파 인도” 인정…또 다른 구원파 연예인 신도 누구?

    윤소정 “전양자 구원파 인도” 인정…또 다른 구원파 연예인 신도 누구?

    배우 윤소정이 최근 구원파의 핵심 인물로 떠오른 배우 전양자를 전도한 것으로 밝혀졌다. MBC ‘리얼스토리 눈’은 지난 12일 ‘금수원의 중심-전양자의 두 얼굴’ 편을 방송했다. 이날 방송에는 전양자와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과의 관계, 전양자가 대표로 있는 금수원 세모그룹 계열사인 노른자쇼핑, 국제영상, 아이원홀딩스 등의 여러 가지 의혹이 집중 조명됐다. 세월호 참사 이후 구원파와 연관된 인물로 떠오른 전양자는 유병언 전 회장의 최측근으로 지난 1987년 오대양 집단 자살 사건으로 사회적 물의를 빚은 구원파의 핵심 신도로 지목됐다. 이날 방송에서는 윤소정은 전양자를 구원파로 전도했냐는 질문에 “맞다. 꾸준히 연기를 했고 아버지가 배우를 해서 친하다”면서 “노른자 쇼핑 대표가 된 건 몰랐다. 나도 지금 TV를 보고 많이 놀랐다”고 말했다.   과거 전양자 역시 윤소정을 통해 구원파가 신도가 된 사실을 밝힌바 있다. 1991년 8월 한 매체에 실린 전양자 인터뷰에 따르면 전양자는 1977년 부터 구원파 신도가 됐다. 동료배우 윤소정이 같이 성경공부하자고 했고, 전양자는 이를 받아들인 것. 당시 전양자는 “귀한 것을 얻게 됐다. 늦게 결혼에 실패하면서 일부종사를 하지못했다는 죄책감과 좌절감이 컸다. 이때 윤소정의 권유를 받게돼 쉽게 종교에 귀의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윤소정은 TBS 1기 공채 탤런트로 지난 1962년 대뷔한 중견 연기자다. 지난해에는 tvN 드라마 ‘연애조작단 시라노’에서 황여사 역할을 맡아 눈길을 끌었다. 한편 제작진은 구원파 신도로 밝혀진 전양자 외에도 구원파 연예인 신도가 상당하다고 전해 관심을 모았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윤소정, 전양자 ‘구원파 전도’…남편 오현경·딸 오지혜 등 ‘배우 집안’ 출신

    윤소정, 전양자 ‘구원파 전도’…남편 오현경·딸 오지혜 등 ‘배우 집안’ 출신

    배우 윤소정이 최근 구원파의 핵심 인물로 떠오른 배우 전양자를 전도한 것으로 밝혀졌다. MBC ‘리얼스토리 눈’은 지난 12일 ‘금수원의 중심-전양자의 두 얼굴’ 편을 방송했다. 이날 방송에는 전양자와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과의 관계, 전양자가 대표로 있는 금수원 세모그룹 계열사인 노른자쇼핑, 국제영상, 아이원홀딩스 등의 여러 가지 의혹이 집중 조명됐다. 세월호 참사 이후 구원파와 연관된 인물로 떠오른 전양자는 유병언 전 회장의 최측근으로 지난 1987년 오대양 집단 자살 사건으로 사회적 물의를 빚은 구원파의 핵심 신도로 지목됐다. 이날 방송에서는 배우 윤소정이 전양자를 구원파로 인도한 신도임이 밝혀졌다. 윤소정도 자신이 전양자를 전도한 사실을 인정하면서 “(전영자가)대표가 된 것은 몰랐다. 나도 TV 보고 많이 놀랐다”고 말했다. 윤소정은 TBS 1기 공채 탤런트로 지난 1962년 데뷔했다. 지난해에는 tvN 드라마 ‘연애조작단 시라노’에서 황여사 역할을 맡아 눈길을 끌었다. 남편 오현경 역시 1961년 KBS 1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한 원로 배우다. 딸 오지혜도 배우로 활동하면서 영화 ‘남영동 1985’ 등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선보였다. 윤소정은 방송 다음날인 13일 언론을 통해 자신이 더 이상 구원파 신도가 아님을 밝히며 심적 괴로움을 토로했다. 윤소정의 최측근은 “과거 윤소정이 구원파 신도였던 것도 사실이고, 전양자씨와 오랜 친분으로 구원파를 소개했던 것도 사실”이라면서 “‘리얼 스토리 눈’ 제작진이 취재요청을 해왔을 때 지금은 구원파 신도가 아니며 피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에 응했던 것이다. 하지만 방송 내용은 윤소정이 현재 구원파 신도처럼 비쳐졌다. 윤소정이 너무 괴로워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방송 말미에는 영상 자체가 끊긴 뒤 광고로 넘어가 시청자들을 황당하게 했다. 이에 제작진 측은 “방송 중 외부 종합편집 과정에서 기술상 문제가 발생해 프로그램 결론에 해당하는 2분 40초가량의 분량이 방송되지 못했다”며 “깊이 사과드린다. 앞으로 재발방지에 각별히 유의하겠다”고 전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김정은 전용기의 비밀…리설주와 전용기에서 함께

    김정은 전용기의 비밀…리설주와 전용기에서 함께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전용기를 이용한 장면이 처음으로 공개됐다. 북한 노동신문은 10일 김정은이 부인 리설주 등과 ‘조선인민군 항공 및 반항공군 비행지휘관들의 전투비행술경기대회-2014’를 관람했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김정은 부부가 전용기에서 내리는 사진을 1면에 게재했다. 관계당국에 따르면 노동신문에 게재된 전용기는 러시아에서 제작된 일류신(Ilyushin) IL-62로, 북한이 보유한 고려항공 여객기 중에서도 제작연도가 가장 오래된 기종에 속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4발 장거리용 제트 여객기인 IL-62는 최초 취항이 1962년이었고 1993년에 생산이 종료되었다. 북한 외에 소련, 중국, 동독, 폴란드, 헝가리, 루마니아, 불가리아, 쿠바, 베트남 등 주로 옛 공산권 국가에서 널리 쓰였다. 이날 공개된 기체는 전체가 흰색으로 도색된 가운데 동체 앞부분 상단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란 글자와 함께 인공기를 새긴 모습이었다.또 꼬리 날개 쪽에는 붉은색 원 속에 붉은색 왕별을 그린 마크를 새겨 ‘1호기’임을 상징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전용기에서 내린 김정은 부부는 비행장 트랩 앞에 늘어선 인민군 의장대를 사열하기도 했다. 김정은 부부가 의장대를 사열한 장면이 공개된 것도 처음이다. 정부의 한 소식통은 “북한이 김정은이 전용기에서 내리는 장면을 공개한 것은 김정은을 중심으로 북한 권력체제가 공고하다는 것을 대내외에 과시하려는 의도”라고 분석했다. 북한은 지난달 1일에도 김정은이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 답사 행군에 참가한 연합부대 지휘관들을 격려하기 위해 삼지연 비행장에 도착한 뒤 비행기에서 내리는 장면을 공개했으나 당시 비행기는 전용기가 아닌 고려항공이라는 항공사명을 새긴 여객기였다. 앞서 김정은은 지난 3월15일 ‘세스나’로 추정되는 경비행기를 이용해 원산을 방문하기도 했다. 북한은 다음 날 프로그(FROG)-7로 추정되는 단거리 로켓 25발을 발사했다. 김정은은 지난 9일 평양 순안공항에서 이 전용기를 타고 평안남도로 이동해 ‘조선인민군 항공 및 반항공군 비행지휘관들의 전투비행술경기대회-2014’를 관람한 것으로 정보 당국은 파악하고 있다. 이번 대회는 김정은의 지시로 평안남도 온천비행장에서 개최됐으며 대령급 장교들이 참가한 일종의 ‘탑건(Top Gun·최고조종사)’ 선발 대회로 당국은 평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국의 한 관계자는 “이번 대회에 참가한 북한 공군의 ‘비행지휘관’들은 우리의 항공작전(비행) 전대장들로 대령 계급에 해당한다”고 전했다. 우리 공군은 ‘소령’을 탑건으로 선발하고 있다. 북한이 이번 대회에 동원한 작전기는 미그-21·29, 수호이-25 전투기, AN-2 저공침투기 등으로 파악됐다. 특히 북한은 특수부대를 태우고 저공으로 기습침투하는 데 동원되는 AN-2기가 공중에서 소형 공대공 로켓을 발사하는 사진도 공개했다. 김정은은 대회 우승자들(탑건)에게 직접 시상하고 비행지휘관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고 북한 매체는 전했다. 이 대회는 김정은이 지난달 15일 평양에서 전군의 모든 조종사가 참가한 ‘제1차 비행사대회’를 주관한 것에 대한 후속 행사로 분석되고 있다. 군 관계자는 “최근 김정은이 군종별로 기량을 겨루는 대회를 열거나 지휘관 결의대회를 열고 있는 것이 눈에 띈다”면서 “일종의 군기 잡기로 보인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김정은이 최근 공개 행사의 50% 이상을 군부대 방문에 집중하고 있다”면서 “연설에서도 과격한 발언을 하는 등 통치자로서의 위상과 존재감을 부각하려는 의도로 분석된다”고 평가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세월호 침몰] 유씨 추자도 땅 유휴지로 방치

    유병언(73) 전 세모그룹 회장의 재산 증식 창구로 의심받고 있는 청초밭영농조합법인 소유의 제주 추자도 농지가 대부분 유휴지로 방치 중인 것으로 드러났다. 제주시는 청초밭영농조합법인이 추자도에 소유하고 있는 50여 필지 중 6필지에 대한 1차 현장 실태조사를 벌여 당초 취득 목적과 다르게 관리 중인 사실을 확인했다고 6일 밝혔다. 청초밭영농조합법인은 2002년 제주시 추자면 신양리 일대 22필지 2만 2100㎡의 밭을 매입했고 현재 사들인 땅만 50여 필지 3만 5000㎡로 늘었다. 공시지가는 1억 9000만원이다. 청초밭영농조합법인은 당시 “경작을 하겠다”며 농지 용도로 취득했지만 현재는 사실상 수풀로 방치된 상태다. 제주시는 9일까지 현지조사와 항공촬영을 한 후 청초밭영농조합법인을 상대로 청문을 실시, 미경작 사유 등을 밝히기로 했다. 시는 정당한 농지 미경작 사유가 없다고 판단되면 1년간 유예기간을 두고 토지 매각이나 원래 목적에 맞게 경작할 수 있도록 조치하기로 했다. 1년간의 유예기간 후에도 농지 처분이나 경작이 없으면 공시지가의 20%를 강제이행금으로 부과할 수 있고 강제처분 명령도 내릴 수 있다. 청초밭영농조합법인이 추자도 땅을 사들이기 전 농지 소유자는 제주에 주소를 둔 박모(77)씨였다. 박씨는 1998년과 1999년 추자면 신양리 일대 땅을 경매로 낙찰받거나 매매하는 등 짧은 기간에 대거 매입했고 곧이어 채권자인 ‘세모케미칼’ 주식회사가 근저당권을 설정했다. 세모케미칼이 근저당권을 설정한 이후 청초밭영농조합법인은 박씨로부터 이 땅을 줄줄이 사들였다. 세모그룹 자회사였던 세모케미칼은 현재 명칭이 ‘아해’로 바뀌었다. 이 때문에 유 전 회장이 부동산 증식을 위해 계열사를 앞세워 근저당권을 먼저 설정한 뒤 영농조합법인을 내세워 땅을 매입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일고 있다. 영농조합법인이 농지를 매입할 경우 취득세의 절반을 감면받을 수 있다. 2001년 6월 서귀포시 표선면에 들어선 청초밭영농조합법인은 설립 당시 등기부에 ‘서울시 용산구 한강로에 있는 기독교복음침례회를 위한 사업을 목표로 설립됐다’고 명시했다. 기독교복음침례회는 유 전 회장과 장인인 고 권신찬 목사가 1962년 설립한 선교단체로 일명 ‘구원파’로 불린다. 청초밭영농조합법인은 서귀포시 표선면 성읍리 일대 918만㎡에 달하는 대규모 목장부지 등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다. 이곳에서 생산된 우유 등은 청해진해운의 지주회사 격인 아이원아이홀딩스가 지분을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경기 안양시 동안구에 주소를 ㈜온나라가 ‘다이아 앤 골드’라는 브랜드로 인터넷 판매 등을 하고 있다. 제주 황경근 기자 kkhwang@seoul.co.kr [정정 및 반론 보도문] 위 기사와 관련해 유병언 전 회장 측은 유 전 회장이 구원파를 설립했고 사실상의 교주라는 내용은 사실과 다르다고 알려왔습니다.
  • [김문이 만난사람] ‘정글만리’ 새달 중국어판 출간하는 소설가 조정래

    [김문이 만난사람] ‘정글만리’ 새달 중국어판 출간하는 소설가 조정래

    그는 한없이 울었다고 했다. 세월호 안에 있는 아이들 생각 때문이다. 우리의 미래를 짊어지고 갈 그 아이들 중에는 베토벤도 있고 모차르트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꿈많은 아이들을 생각하면 도무지 울지 않고는 못 배기겠다고 했다. 서울 강남의 한 커피숍에서 작가 조정래(71)씨와의 만남은 그렇게 시작됐다. 그에게는 작가적 한이 남다르게 많다. 몸부림쳐지도록 장대한 글을 쓴다.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 그리고 최근의 ‘정글만리’만 보더라도 그 한이 켜켜이 배어 있다. 험난하고 처절한 역사를 그려낸다. 작가적 사명감으로 자신과 외롭게 싸우면서 수없이 구슬을 꿰고 또 꿴다. 역사와 세상 앞뒤 면을 특유의 통찰력으로 깊게 파헤치고 넓게 살핀다. 그는 예나 지금이나 200자 원고지에 정성으로 옮긴다. 하루 평균 30장, 글발이 좀 받을 때는 100장까지 달린다. 농부의 호미가 녹슬 겨를이 없듯이 열심히 글 밭고랑을 일구는 지난한 경작을 한다. 그러다 보니 위궤양과 오른팔 마비, 탈장 등으로 병원 신세를 지기도 했다. ‘조정래 문학산맥’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조씨는 올해로 문학 인생 44년이다. 그리고 부인 김초혜 시인은 50년을 맞는다. 부인이 문학적 나이로서는 선배인 셈이다. 둘은 우리나라 원조 캠퍼스 커플이다. 동국대 2학년 때 만나 조씨가 군 복무 시절 “남자가 사랑하는 여자를 지키기 위해서는 결혼하는 것”이라는 감동적인 말을 해 결혼에 골인했다. 지금도 그 사랑을 나누며 둘은 알콩달콩, 닭살 돋도록 잘살고 있다. 조씨는 부인에 대한 얘기가 나오면 “새록새록 피어나는 영혼의 꽃”이라고 표현한다. 뉴스거리가 하나 있다. 조씨의 최근작 ‘정글만리’가 130만부 이상 팔렸고 오는 6월 중국어판으로 출간될 예정이다. 소설 자체가 중국 무대로 했으니 중국에서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다. 중국이라는 나라는 재미있는 책은, 예를 들어 무협지만 하더라도 1억부 이상 팔린다고 하니 귀추가 주목된다. 또 있다. 그의 부인 김씨 또한 오래간만에 책을 출간하는데 중국어판까지 낸다. 김씨가 쓴 원고는 ‘시인 할머니가 손자한테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일러주는 내용이다. ‘행복이’라는 제목으로 국내판은 다음 달에 나오고 중국어판은 오는 9월쯤 발간될 예정이다. 동갑내기 작가 부부가 거의 동시에 중국어판을 낸다는 점에서 관심거리다. 조씨 부부의 문학 인생에서는 뜻깊은 일이 아닐 수 없다. 그와 만난 자리에서 누구나 다 갖고 있는 휴대전화가 왜 없느냐고 했다. 안주머니에서 수첩 하나를 꺼낸다. 첫 장에는 부인, 그리고 두 번째 장에는 손자 사진이 있다. 그리고 다음 장부터 가족이며 친지 등 필요한 전화번호를 적어놨다. 길거리 가다가 꼭 전화할 일이 있으면 지나가던 예쁜 여학생한테 “나 조정래라는 사람인데 휴대전화 잠시만 사용할 수 있느냐”고 하면 얼른 빌려주기 때문에 휴대전화를 굳이 가지고 다니지 않아도 불편함이 없다며 웃는다. 수첩에는 좌우명처럼 여기는 선시들이 적혀 있다. 잠시 들여다본다. ‘눈 덮인 들판을 걸어갈 때 어지러이 걷지 마라/ 오늘 내가 남기는 발자취는/ 뒤에 오는 사람 이정표가 되리니’ 서산대사가 한 말이다. ‘청산은 나보고 말없이 살라 하고/ 창공은 나를 잡고 티없이 살라 하네/ 사랑도 벗어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 가라 하네’ 나옹 선사가 한 말이다. 또 있다. ‘10년을 경영하여 초가삼간 지어내니/ 나 한 칸 달 한 칸 청풍 한 칸에 맡겨두고/ 강산을 들일 데 없으니 둘러두고 보리라’ 송순이 전남 담양에 면앙정을 10년간 짓고 나서 지은 시다. 그는 “얼마나 멋진 말들이냐”고 반문하면서 가끔식 들여다보며 혹시라도 기울어진 마음을 올바로 세운다고 했다. 화제를 ‘정글만리’로 옮겼다. ‘정글만리’가 현재 130만부를 돌파했으니 앞으로 얼마나 더 팔릴 것으로 예상하느냐고 물었다. “아마 150만부 정도 되지 않겠느냐”고 대답했다. 다시 ‘태백산맥’, ‘한강’, ‘아리랑’ 등을 다 합하면 몇 부나 되느냐고 물었다. 1600만부 정도(팔린 것)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조씨는 자신이 펴낸 책들의 인지를 직접 찍는다. 그렇게 많은 분량을 어떻게 찍을까. 그러자 “아주머니들이 대신 찍어주는데 그들에게 일감을 주니 고용창출이 아니냐”며 웃는다. 작가는 많은 독자를 만나는 것이고 그 과정 또한 소중해야 되지 않겠느냐는 얘기도 곁들인다. ‘정글만리’는 언제부터 준비했느냐고 하자 “1990년 ‘아리랑’을 쓰기 위해 처음 만주를 갔을 때 생각하게 됐다”고 말한다. 그 후 중국 관련 서적만 80여권 읽었으며 고시공부 하듯이 중국을 분석했다. 중국을 16차례 다녀오면서 깨알같이 기록한 취재수첩만 해도 90권에 이른다. 중국어판 ‘정글만리’는 청도출판사에서 발간될 예정이다. 중국에서는 짝퉁이 많다고 하는데 ‘해적판 정글만리’가 나오면 어떡하느냐는 질문에 “그것은 기분이 좋은 일이 아니냐. 그만큼 독자들이 늘어나는 일”이라고 했다. 이어 중국에 대한 얘기를 한다. “소련은 몰락했지만 중국은 세계 자본주의가 구해줬지요. 만약 안 그랬으면 중국도 소련처럼 무너졌을 것입니다. 중국은 중국식 자본주의로 굳건히 버티며 경제대국으로 성장했지요. 앞으로 우리나라는 중국을 정확히 봐야 합니다. 중국은 우리가 상상한 것 이상으로 대단한 나라입니다.” 그렇다면 중국 사람들은 한국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그는 중국에서 많은 사람을 만나면서 느낀 점을 세 가지로 요약한다. 첫 번째가 88서울올림픽이다. 처음 올림픽을 유치했을 때 중국의 100분의1도 안 되는 아주 작은 나라에서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깔끔하게 대회를 마무리하는 것을 보고 대단하게 생각했다. 두 번째는 외환위기를 겪었을 때 한국은 이제 망했다고 생각했다는 것. 그런데 금 모으기 등을 하면서 극복해내는 것을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고 한다. 세 번째는 한류와 스포츠. 가수 싸이의 말춤으로 세계를 휩쓰는 것을 보고 감탄해 했고 또한 탁구로 중국과 서로 자웅을 겨루고 양궁으로 올림픽을 연속 제패하는 것을 보고 대단하게 평가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한국 사람들은 부지런히 일을 하고 책임감이 강하며 민족적 자질이 우수한 강소국으로 평가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중국인들은 자대(自大)하는 한국인을 못마땅하게 여긴다고 했다. 즉, 스스로 큰 것처럼 잘난 척하는 한국인들을 싫어한다는 것이다. 그는 “중국인들 앞에서 자대하지 말고 중국을 이성애적으로 겸손하게 대해주면 우리나라에 관광객 1억명은 분명히 찾아올 것”이라고 말한다. 한국에 대해서는 우호적이고 일본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란다. 작년 하반기였다. 일본 아사히 신문에서 ‘세계의 베스트 서적’을 다뤘다. 이때 ‘정글만리’에 대한 서평이 눈길을 끌었다. ‘왜 중국은 좋게 보고 일본은 안 좋게 썼는지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중국이 난징대학살 등에 대해 반성하지 않는 일본을 좋게 보지 않으니 그렇게 다루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중국은 일본에 대해 지난 100년의 굴욕을 극복했으며 자동차나 고속철도 등 마음껏 길을 뚫고 발전해 나가고 있지요. 잠재력 또한 어마어마합니다. 중국은 말 그대로 파도 파도 끝없는 광맥이 나옵니다.” 왜 대하소설만 고집하는지 물었더니 “우리나라는 지난 5000년 동안 크고 작은 외침을 931차례나 받았다. 이것을 다루려면 당연히 대하소설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게다가 요즘처럼 TV와 스마트폰에 매료된 독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으려면 장면이 진지하고 빨리 전환돼야 하기 때문에 문명의 이기와 싸우며 문장 하나하나에 마침표를 치열하게 찍고 있다고 말했다. 석가탄신일을 얼마 앞두고 있어서 출생에 관한 얘기가 자연스럽게 나왔다. 그는 선암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스님이었다. 일본이 한국에 들어와 황국화 정책을 외치면서 승려에게 결혼할 것을 강요했다. 그래서 풍경소리와 목탁소리를 들으며 어머니 뱃속에서 자랐다. 고 3때였다. 아버지가 하늘과 벗 삼아 지내라는 뜻이 담긴 인천(隣天)이라는 법명을 직접 지어주며 출가하라고 엄명했다. 하지만 조씨는 문학을 하겠다며 반기를 들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만해 스님을 거론하며 “출가해서 마음만 있으면 뭐든 크게 이룰 수 있다”고 설득했다. 조씨는 다시 “그분은 100년에 한 번 태어날까 말까 하는 훌륭한 분”이라고 하면서 고집을 부렸다. 대신 동국대로 진학해 불교공부를 하겠다고 했다. 그의 작품에 법일 스님, 공허 스님 등이 등장하는 것도 이런 과정에서 비롯된다. 그의 책상에는 ‘문학의 길’과 ‘길없는 길’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고 바로 옆에는 염주가 놓여 있다. 건강관리는 어떻게 할까. 우선 술을 안 한다. ‘태백산맥’을 시작하면서 딱 끊었다. 매일 7000보 이상 걷는다. 비가 오면 집에서 이 방 저 방을 오고 가며 걷는다. 학생 때 배웠던 보건체조를 꾸준히 한다. 요새는 부인도 보건체조에 동참한다. 식사 시간은 반드시 40분을 지킨다. 이때 조용한 음악을 듣기도 하고 신문 사설을 읽는다. 어떤 작품을 준비하고 있느냐고 물었더니 “하얼빈에서 티베트까지 박물관 루트를 취재해 ‘열하일기’식으로 써볼까 생각 중”이라고 말했다. 소설이란 무엇일까. 그러자 “인생에 대한 총체적 탐구이며 작가는 인문학적 소양이 아주 깊어야 한다”면서 후배작가들에게는 “테크닉 위주로 글을 쓰지 말고 고층빌딩을 쌓듯이 박애, 사랑, 종교 등 모든 분야에 대해 지독하게 공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선임기자 km@seoul.co.kr ■조정래는 1943년 전남 승주군 선암사에서 태어났다. 1953년 벌교로 이사했다. 1962년 서울 보성고를 거쳐 1966년 동국대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1970년 현대문학 ‘누명’으로 데뷔했다. 월간문학 편집장(1973년), 소설문예 발행인(1977년) 등을 지냈다. 1983년 ‘태백산맥’의 집필을 시작해 1986년 ‘태백산맥’ 전10권을 완간했다. 1994년 ‘아리랑’ 전12권, 2001년 ‘한강’ 전10권을 발간했다. 이 밖에 산문집 ‘누구나 홀로 선 나무’(2003년), 조정래 문학전집 전9권, ‘시간의 그늘’ 등 문학지에 소설 50여편을 발표했다. 주요 수상으로는 현대문학상(1981년), 대한민국문학상(1983년), 제1회 동리상(2003년), 제7회 만해대상(2003년). 제11회 현대불교문학상 소설부문(2006년) 등이 있다. 2003년 전북 김제에 ‘아리랑문학관’, 2008년 전남 보성에 ‘태백산맥 문학관’을 개관했다.
  • [무책임한 정부] 해수부의 ‘해피아 지우기’

    해양수산부 관료 출신 낙하산 인사들이 해운사 이익단체의 요직을 꿰차 세월호 등 여객선 안전관리와 감독이 부실할 수밖에 없었다는 책임론이 거세지는 가운데 해수부가 선박 안전운항업무를 독립시키는 방안을 검토하는 등 이른바 ‘해피아’(해수부+마피아) 논란 차단에 애쓰고 있다. 해수부 관료 출신 유관단체 수장들도 줄지어 사퇴하고 있다. 해수부는 27일 “선박운항관리 업무를 해운조합에서 떼어내기로 했다”며 “그동안 여객선의 안전운항을 감독하는 선박운항관리자를 해운조합이 채용하는 구조적 한계로 단속이 엄격하게 이뤄지지 못했다는 지적이 있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해수부는 우선 해운법을 개정해 안전운항관리자를 정부가 직접 채용, 운용하거나 독립된 조직을 신설해 안전업무를 위임하는 방안 등을 검토하고 있다. 운항관리자는 선원에 대한 안전관리교육 실시, 선장이 제출한 출항 전 점검보고서 확인, 여객선의 승선정원 초과 여부 확인, 화물의 적재한도 초과 여부 확인, 구명기구·소화설비 확인 등 선박의 안전운항을 관리·감독하는 자리다. 해운조합은 2100여개 선사를 대표하는 단체로 1962년 출범 이래 12명의 이사장 가운데 10명이 해수부 고위관료 출신으로 ‘해피아의 온상’으로 눈총을 받고 있다. 세월호 침몰 사고 이후 각종 비리 혐의로 해운조합에 대한 수사가 시작된 가운데 주성호 이사장이 사퇴 의사를 밝혔다. 주 이사장은 국토해양부 차관 출신으로 해운조합이 ‘로비창구’로 활용하기 위해 영입했다는 의혹을 받아 왔다. 이에 앞서 지난 25일 선박의 안전검사와 인증을 담당하는 비영리단체인 한국선급(KR)의 전영기 회장도 사의를 표명했다. 세월호 침몰 사고를 계기로 해수부는 여객선 안전강화 대책을 마련 중이다. 비행기록 장치와 비슷한 ‘항해자료기록장치’(VDR) 탑재 의무 범위를 국제노선을 오가는 여객선 및 3000t급 이상 화물선에서 올해 말까지 새로 건조한 여객선과 새로 도입하는 중고선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이미 운항 중인 여객선도 기술적인 검토를 거쳐 탑재를 추진할 예정이다. VDR은 선박의 시간대별 위치와 속력, 타각, 선수 방향, 주기관의 상태, 풍속, 풍향, 관제센터와의 통신 내용, 선교(조타실)에서 오간 대화 등이 기록되는 장치로 선박이 침몰하거나 침수돼도 그 내용이 손상되지 않고, 회수가 쉽도록 위치 발신 기능이 장착돼 있어 선박 사고 때 원인 규명에 유용한 자료로 쓰인다. 해수부는 또 연안여객선의 탑승객 신원 확인 절차를 강화하고자 6월부터는 승선권 발권을 전산화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신분증을 소지하지 않으면 여객선을 탈 수 없게 된다. 7월부터는 차량과 화물에 대해서도 전산발권이 시행된다. 이 같은 내용을 포함한 여객선 안전 혁신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해수부는 다음 달까지 민관 합동 태스크포스를 운영하기로 했다. 해수부 차관을 팀장으로 안전행정부, 해양경찰청, 소방방재청 관계자와 대학, 연구기관, 선박검사 전문기관 등 민간 전문가를 포함해 14명이 참여한다. 세종 류찬희 선임기자 chani@seoul.co.kr 김진아 기자 jin@seoul.co.kr
  • “당장 개혁 안 하면 나라 망한다” 다산의 생생한 경고

    다산 정약용 평전/박석무 지음/민음사/668쪽/3만원 다산은 1762년에 태어나 1836년에 세상을 떠났으니 74년의 인생을 살았다. 그 당시로서는 비교적 장수한 셈이다. 하지만 좀 더 수(壽)를 누렸다면 그만큼 더 많은 금과옥조의 저술을 남겼을 것이다. 괴테가 나이 80이 넘어 ‘파우스트’를 남겼듯 말이다. 다산은 전 생애를 통해 병들고 썩은 세상을 치유하기 위한 방책을 강구하며 500여권의 방대한 저술을 남겼다. 그의 학문 영역은 육경사서(六經四書)를 연구하는 경학(經學)으로부터 세상을 경륜하는 경세학(經世學)에 이르기까지 두루 포괄했다. 다시 말해 역사, 지리, 문학, 과학, 건축, 의학, 약학, 천문, 음악 등 관심이 미치지 않은 분야가 없을 정도로 백과사전적 경지에 이르렀다. 다산은 자신이 살아가던 세상을 온통 부패한 시대라고 규정했다. 그러면서 당장 개혁하지 않으면 나라는 반드시 망한다고 엄중한 경고까지 내렸다. 안전 불감증이 만연한 이 시대에도 충분히 통하고도 남을 메시지다. ‘다산 정약용 평전’은 그래서 새삼 더 가치가 있다. 다산의 학문분야는 넓고 정밀하며 전문성이 높아 정확하게 정리하고 분석해내는 것은 쉬운 작업이 아니다. 이런 점에서 다산 연구에 평생을 바쳐온 저자는 그동안의 연구 결과를 집대성해 실천적 학자로서의 다산을 새로이 조명했다. 인권과 사회보장의 선진적 조치를 강구하며 핍박받는 민중의 애환을 보듬은 목민관이자 학자, 시인이자 경세가였던 그의 면모를 방대한 분량으로 세밀하게 파헤치고 있다. 일생동안 벼슬살이나 학문을 닦고 연구하는 전 과정을 통해 ‘공렴’(公廉)의 의미가 어떠한지 찬찬히 들여다보게 한다. 공정과 청렴만이 나라를 일으킬 수 있는 기본이며 실천에 옮기는 행동만이 학문의 근본 목적이라던 다산의 철학을 오롯이 담고 있다. 김문 선임기자 km@seoul.co.kr
  • 옛 백령병원 예술문화센터로 탈바꿈

    “케네디 대통령의 친구인 부영발(에드워드 모펫) 신부가 미국 의회에서 ‘(한국의) 독재와 인권유린에 반대하지만 그래도 전쟁만은 막아야 한다’고 호소했답니다. 그렇게 미국의 도움으로 서해 5도인 백령도에 1962년 옛 백령병원이 들어섰고, 이후 현대사의 아픔을 함께했지요. 이제 그 짐을 벗어놓고 예술로 분단의 비극을 치유하는 공간으로 거듭날 예정입니다.” 인천아트플랫폼 이승미 관장의 표정에선 단단한 각오가 엿보였다. 2011년부터 3년간 분단 접경지인 인천에서 ‘평화미술프로젝트’를 펼쳐오다 지난해부터 무대를 백령도로 옮긴 터다. 그는 “백령·연평도 인근 NLL(북방한계선)에선 포격이 잇따르고 무인정찰기 사건으로 긴장 국면이 고조됐지만 이곳에서 한반도 전역으로 평화의 메시지를 퍼뜨렸으면 한다”고 기원했다. 50여년간 백령도의 유일한 민간의료시설이었던 옛 백령병원이 주민, 작가들이 함께하는 문화예술 공동체로 탈바꿈한다. 인천문화재단 산하의 인천아트플랫폼은 최근 ‘옛 백령병원 아트프로젝트’ 계획을 공개하고, 올 12월까지 옛 백령병원을 분단의 아픔을 치유하는 복합 예술공간으로 리모델링한다고 밝혔다. 프로젝트에는 모두 20억원의 예산이 투입된다. 아직 소독약 냄새가 채 가시지 않은 지상 2층 규모(연면적 1589㎡)의 병동을 전시장과 공연장, 교육실, 창작스튜디오, 어린이도서관, 지역 커뮤니티를 갖춘 공간으로 꾸민다. 올 7월에는 이종구·이태호·이샤이 가르바즈 등 국내외 작가 50여명이 참여하는 ‘2014 평화미술프로젝트’가 이곳에서 개최된다. 백령병원은 천안함 사건 때 일부 장병의 시신이 안치됐던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지난 2월 연면적 4000㎡ 규모의 새 병원이 들어서면서 은퇴한 상태다. 지금 이곳에선 파일럿 전시인 신태수의 개인전 ‘서해 비경’이 열리고 있다. 백령도에서 개인 미술전이 열리는 건 처음이다. 이 관장은 “신체적 아픔을 보듬던 장소를 정신적 아픔을 보듬는 장소로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선박 검사 봐주기 뒤에 ‘해피아’

    세월호 침몰 사고로 드러난 선박 관리, 검사 체계의 문제점에는 ‘해피아’(해양수산부+마피아)의 병폐도 숨겨져 있었다. 21일 정부와 해운업계 등에 따르면 운항관리를 하는 한국해운조합과 선박 검사를 하는 한국선급에는 해피아 출신이 낙하산으로 가고 있었다. 해수부는 해운조합이 임명한 운항관리자가 해운사의 안전관리 업무를 맡도록 정해놨다. 해운조합은 회장 아래 이사장을 두고 있는데 회장은 선사 출신이, 이사장은 관료 출신이 각각 맡는 게 관행으로 이뤄져 있다. 지난해 9월 취임한 주성호 해운조합 이사장은 해수부 출신으로 국토해양부 2차관을 지냈다. 뿐만 아니라 1962년 이후 이사장을 지낸 12명 가운데 10명이 해수부 및 국토부 관료 출신이다. 세월호의 선박 안전 검사를 맡았던 사단법인 한국선급 역시 해수부 출신이 낙하산으로 가고 있다. 1960년 한국선급이 출범한 이래 전영기 현 회장 등 3명을 제외한 8명의 회장이 해수부 등 관련 기관 출신이다. 이 외에도 어선과 소형 선박의 검사를 대행하는 선박안전기술공단도 국토부 해양교통시설과장 등을 지낸 부원찬 이사장이 2012년부터 취임한 상태다. 이처럼 해수부 고위 관료 출신이 관련 기관으로 가면서 봐주기식 선박 관리, 검사가 이뤄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세월호가 출항 전 점검 보고서에서 탑승 인원과 선원 수, 화물 적재량 등을 엉터리로 보고했지만 해운조합 소속 운항관리자는 이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다. 박근혜 대통령은 21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해운조합에 대해 구조적으로 잘못됐다며 질타해 앞으로 해피아의 낙하산 인사 등에 대한 문책이 이뤄질 전망이다. 김진아 기자 ji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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