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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년 맥주 + 옆집 안주 = 상생 명물”

    “청년 맥주 + 옆집 안주 = 상생 명물”

    성동구 지원에 뚝도시장서 창업…순대·홍어 등 주문해 안주 내놔“전통시장 안에 수제 맥줏집을 창업하고 안주 메뉴를 고민하다가 우연히 옆 가게에서 순대를 시켰어요. 그런데 그 음식이 너무 맛있더라고요. ‘전통시장 대표 음식들을 주문해 우리 가게 안주로 내놓으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스쳤어요. 그때부터 주변 상인들과 함께 순대와 홍어무침, 도가니찜 등 협업 안주를 잇따라 선보여 지역 명물이 됐죠.” 지난해 서울 성수동 뚝도시장(1962년 개장)에 ‘성수제맥주×슈가맨’을 창업한 김성현(36) 사장은 자신이 직접 개발한 ‘상생메뉴’ 탄생 일화를 소개하며 즐겁게 웃었다. 그가 주목받는 건 하루가 다르게 쇠락해 가는 전통시장에 2030 세대가 즐기는 수제 맥줏집을 성공적으로 안착시켰다는 것과 ‘상생메뉴’로 전통시장 전체와 이익을 공유하는 새 모델을 만들었다는 데 있다. 김 사장은 “기존 맥줏집에서 볼 수 없는 색다른 메뉴인 데다 하나하나가 전통시장 대표 음식들이어서 맛도 좋다”면서 “이제는 주변 가게 상인들이 직접 상생메뉴를 개발해 가져오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의 선전 뒤에는 지난해 서울 성동구가 진행한 ‘뚝도시장 청년상인 창업지원사업’이 있었다. 성동구는 중소기업청과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뚝도시장번영회와 함께 시장 내 빈 점포를 활용해 19~39살 청년 창업가의 자립을 도왔다. 현재 뚝도시장에는 김씨와 같은 청년사장 7명이 활동 중이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2017 서울미래유산 그랜드투어] 국가 핵심 기능 집결… 2000년 역사 헤쳐온 ‘한국의 얼굴’

    [2017 서울미래유산 그랜드투어] 국가 핵심 기능 집결… 2000년 역사 헤쳐온 ‘한국의 얼굴’

    서울신문이 서울시 및 (사)서울도시문화연구원과 함께하는 ‘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 제4차 탐사가 지난 17일 광화문광장을 둘러싸고 있는 세종대로의 동쪽과 서쪽을 오가면서 진행됐다. 답사단은 세종문화회관 돌계단을 출발해 세종대왕·충무공 동상~대한민국역사박물관~종로구청~비전~서울역사박물관~경희궁 방공호까지 두 시간의 일정을 빠듯하게 소화했다. 해설을 맡은 이기훈 서울도시문화지도사는 차분하고 진지하게 세종문화회관의 전신 시민회관 화재사건부터 요즘 방영되는 사극 ‘칠일의 왕비’의 주인공 단경왕후 신씨에 이르기까지 흥미진진한 역사의 씨줄과 날줄의 세계로 30여명의 답사단을 끌어들였다.“신이 인간을 창조했고, 인간은 도시를 창조했다”라는 말이 맞는다면 도시는 인간이 만든 최대의 걸작이다. 그중 한국인이 세운 최고의 도시는 서울이다. 서울은 의심할 여지 없는 대한민국의 종주(宗主)도시이자 의사(擬似) 이상향이다. 2000년의 생성사를 가진 기원전의 고도이며, 규모나 영향력 면에서 세계 열 손가락 안에 드는 메갈로폴리스이다. 프랑스의 역사가 토크빌이 “파리는 프랑스 그 자체”라고 표현한 것에 빗대 한때 한국대사관에서 근무한 미국의 정치학자 그레고리 핸드슨은 “서울은 단순히 한국의 최대 도시가 아니라 서울이 곧 한국이다”는 말을 남겼다. 서울올림픽과 월드컵 개최 이후 ‘서울’이라는 도시명은 ‘코리아’라는 국명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빅 브랜드가 됐다. ●정치·행정·사법·문화예술의 원조 역할 수도 서울이 한국의 얼굴이라면 서울의 얼굴은 어디인가? 한국인 열에 여덞, 아홉은 주저 없이 광화문을 꼽을 것이다. 광화문은 경복궁의 정문 광화문을 포함, 국가의 중추기능이 총집결된 수도 서울의 1번지이다. 한국인과 서울사람의 삶과 꿈이 교차하는 역사무대이다. 역사는 발-글-발의 순서로 쓰여진다. 발로 쓴 글을 본 이가 다시 발로 현장을 밟았을 때 비로소 역사는 살아 움직인다. 답사단은 광화문 구석구석을 발로 밟으면서 ‘도시 중의 도시’라고 쓰여진 광화문의 역사를 재확인했다. 광화문은 정치, 행정, 사법, 교육, 언론출판 그리고 대중문화와 예술의 ‘원조’였다. 이 나라 모든 사회담론과 문화현상의 생산지이자 소비처였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식민통치의 본거지화하면서 왜곡된 배치와 구역 조정이 이뤄졌고 현재의 광화문이 이를 이어받은 것이 현실이다. 건국 이후 왕조와 식민시대의 잔재 일소 정책 때문에 국적 불명의 현대화가 진행됐다. 최소한 강점기 이전 대한제국기로의 회복을 시도했어야 했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있다. 비록 행정과 공론이라는 최소한의 핵심 기능만 남았지만 서울이라는 도시를 존재하도록 떠받치는 광화문 뒤 경복궁과 청와대 그리고 백악(북악)의 위엄은 여전하다. 광화문 동쪽 전면부 대한민국역사박물관, 미국대사관, KT빌딩, 교보빌딩이 청진동과 수송동, 종로길로 이어지고 서쪽 전면부 정부청사와 세종문화회관이 도렴동, 당주동, 내수동을 거쳐 새문안과 정동, 서대문까지 펼쳐진다. 이곳을 스쳐간 모든 사람들이 광화문의 주인이다. 서울과 인연을 맺은 사람들의 삶과 추억의 많은 부분이 깃들어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광장으로 뛰쳐나와 ‘대~한~민~국’을 외쳤고, 촛불을 높이 들어 암흑을 밝혔는지도 모른다. ●광화문광장, 삶의 새 방향 제시할 수도 광화문이 재조명되고 있다. 부활이 회자되고 있다. 왕조시대 절대왕권의 상징이었고, 일제강점기와 권위주의 시대 체제의 선전장이었던 곳. 광화문에서 서울역까지 2.2㎞ 구간에 횡단보도가 단 하나도 없던 그 시절, 광화문은 국가독점의 공간이었다. 30년 전 6·10항쟁 때도, 15년 전 미선·효순 추모집회 때도, 9년 전 광우병 파동 때도 광화문사거리는 금역이었다. 제2의 ‘명박산성’이 등장할 수 없는 연원이 있다. ‘민의의 분출지’라는 유전자가 내재된 공간이기 때문이다. 선비와 유생들의 상소 시위지였고, 동학교도들이 교조 최재우의 신원(伸寃)을 요구하면서 사흘 동안 곡을 한 장소였다. 광화문의 조선 개국 당시 지층은 무려 8m 아래에 있다. 1394년 한양천도 이래 지금까지 일어난 모든 사건과 사고가 8m 깊이로 쌓이고 쌓여 현재의 지표를 형성하고 있다는 얘기다. 종로의 4m보다 갑절 깊다. 그만큼 많은 것들이 들어섰고, 덮거나 뜯고, 또 새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광화문의 땅켜는 증언한다. 육조거리는 너비 50m의 보기 드문 한마당이었다. 현재의 광화문광장 자리가 조선시대의 육조거리라고 보면 된다. 왕조의 설계자 정도전이 제일 잘한 일 중 하나가 광화문 앞 광장을 제후국의 상징인 ‘칠궤(七軌)도로’가 아니라 황제의 수레 9개가 지나갈 수 있도록 ‘구궤(九軌)도로’로 만든 일이다. 박정희 정권이 1962년 50m 너비의 세종로를 현재의 100m로 넓힌 것도 그 이상의 평가를 받아 마땅하다. 답사단은 8m 깊이의 광화문에 또 하나의 지층이 생기지 않길 바라는 심정으로 서울역사박물관 방공호 앞에서 이날의 그랜드투어를 마무리했다. 어쩌면 면모를 일신한 광화문광장이 한국인과 서울사람의 삶을 바꿀 방향을 제시할지도 모른다. 인간이 잘 만든 도시가 다시 인간을 만드는 선순환의 원리 때문이다. 노주석 (사)서울도시문화연구원장 사진 김학영 연구위원
  • 故 윤소정의 영결식 “마지막 길조차 쿨하게...황망하다 못해 원망”

    故 윤소정의 영결식 “마지막 길조차 쿨하게...황망하다 못해 원망”

    배우 故 윤소정의 영결식이 치러졌다. 오늘(20일) 오전 9시 30분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 야외공연장에서 故 윤소정의 영결식이 엄수됐다. 이날 영결식에는 배우 길해연이 추모사를, 그리고 배우 손숙이 조사를 낭독했다. 길해연은 “‘쿨’한 분이셨던 윤소정 선생님은 마지막 가는 길조차 ‘쿨’하게 떠나셨다. 소식을 듣고 슬프고 황망하다 못해 원망스럽기까지 했다”고 슬픔에 잠겼다. 손숙은 “네가 친구여서 든든하고 고마웠다”고 영면에 들어가는 친구를 향한 인사를 건넸다. 이날에는 남편 오현경과 딸 등 고인의 가족을 비롯해 배우 명계남, 손숙, 길해연, 오달수, 양희경, 신소율, 이승준 등이 고인을 추모하기 위해 자리를 함께 했고, 고인의 장례는 대한민국연극인장으로 치러졌다. 고인은 지난 16일 오후 7시 12분 패혈증으로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별세했다. 1961년 연극배우로 데뷔한 윤소정은 1962년 TBS 1기 공채 탤런트로 선발된 뒤 연극 무대와 브라운관, 스크린을 넘나드는 활약을 펼치며 대한민국 대표 여배우로 자리매김했다. 고인의 유해는 서울추모공원에서 화장한 후 천안묘지공원에 안치될 예정이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커버스토리] Goodbye 젊음이여, 안녕…Hello 안녕! 젊은이여

    [커버스토리] Goodbye 젊음이여, 안녕…Hello 안녕! 젊은이여

    공직사회에 세대교체 바람이 불고 있다. 한국전쟁이 끝난 뒤인 1955년부터 1962년까지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가 정년인 만 60세를 맞아 차례대로 대거 은퇴했거나 퇴직하기 때문이다. 올해부터 2022년까지 베이비붐 세대 공무원 7만여명이 현직에서 물러난다. 문재인 정부가 5년간 공공부문 일자리 81만개 창출을 예고하면서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공직사회에 유례가 없는 대규모 물갈이가 예상된다. 베이비붐 세대의 빈자리를 젊은 세대가 속속 메우게 되면 공직 문화도 확 바뀔 전망이다. 18일 인사혁신처, 행정자치부에 따르면 올해부터 2022년까지 명예퇴직이나 정년퇴직으로 물러나는 베이비붐 세대 공무원은 7만 2646명이다. 국가직 공무원이 2만 1212명, 지방직 공무원이 5만 1434명이다. # ‘일벌레’ 였던 그들이 일을 떠나면… 베이비붐 세대의 퇴진은 2015년 55년생 국가직·지방직 공무원 6577명이 공직을 떠나며 시작됐다. 지난해엔 6416명이, 올해는 8129명이 퇴직한다. 2013년 1835명에 불과했던 정년 퇴직자와 비교해 해마다 3~4배 이상이 현직을 떠나고 있다.광역자치단체의 베이비붐 세대 퇴직은 서울시가 2983명으로 가장 많고 부산시 2959명, 대구시가 2498명으로 뒤를 잇는다. 세종특별자치시를 제외한 다른 광역자치단체들도 수백명씩 은퇴한다. 지난해 민간기업의 정년이 60세로 의무화되기 전 기업 정년은 55세였다. 즉, 민간 영역에서 베이비붐 세대 퇴직은 7년 전부터 시작됐다. 그래서 민간기업에서는 현역으로 남은 베이비붐 세대가 거의 없다. 반면 공직사회는 2008년 정년 60세가 의무화됐다. 공직사회의 베이비붐 세대 퇴장은 사실상 우리 사회에서 베이비붐의 전면 퇴진을 의미한다. 베이비붐 세대는 전후 세대의 국가 재건을 이어받은 산업화 세대라는 게 중론이다. 서울시의 한 간부는 “70년대 산업화 이후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까지 오는 데 국가 발전의 엔진 역할을 했다”고 했다. 1987년 공직에 입문해 내년 퇴직을 앞둔 문화재청의 한 간부는 “윗세대인 40년대생은 공직의 기초를 다졌고, 우리는 그걸 토대로 공직 전반이 시스템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행정 체계를 완성했다”고 했다. 박재홍 경상대 사회학과 명예교수는 “베이비붐는 유신체제의 권위주의와 1980년대 민주화라는 이중적 성격의 격동기를 경험한 세대”라며 “굴곡의 현대사를 온몸으로 겪은 우리 사회의 ‘낀 세대’”라고 규정했다. 베이비붐 세대는 ‘일벌레’로도 통한다. 공직에 대거 입문한 만큼 치열하게경쟁 속에서 두각을 드러내고 살아남기 위해 남보다 더 일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외교부 한 간부는 “베이비붐 당시 한해 외무고시 출신(12~15회)을 50명 뽑았다. 그 전후에는 20명 정도 선발했다. 밤새워 일해야 경쟁에서 이길 수 있었다. 일에 몰두해 성과를 인정받은 분들이 장·차관, 차관보 이상을 했거나 하고 있다”고 했다. 1980년 7월 9급 공채로 서울시에 들어가 내년 퇴직하는 한 공무원은 “집과 사무실만 오가며 일에만 매진했다”며 “가정보다는 일을 우선시하는 분위기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뒤처진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그는 “30년 넘게 몸담은 공직을 떠나려고 하니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겁이 난다. 가족은 물론 이웃 주민들과 어떻게 소통하며 지내야 할지도 걱정”이라고 했다. # 내년 ‘58년 개띠’마저 물러나면… 공직사회 세대교체는 ‘58년 개띠’ 공직자들이 모두 물러나는 내년부터 본격화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58년 개띠’의 퇴직을 시작으로 5년간 퇴직자 수가 급증하기 때문이다. 특히 58년 개띠는 베이비붐 세대의 상징이다. 58년을 기점으로 우리나라 출생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 사상 처음으로 90만명을 넘었기 때문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1955년 80만 2342명, 1956년 82만 6454명, 1957년 85만 9056명 등 80만명대를 맴돌던 출생 인구는 1958년 92만 17명을 기록했다. 이후 1959년 97만 9267명, 1960년 100만 6018명 등 출생 인구는 급증했다. ‘사상 첫 90만명 돌파’라는 출생 인구 측면 외에도 58년 개띠들은 격동의 현대사를 온몸으로 헤쳐 온 것으로 평가된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아들 박지만씨가 58년 개띠로, 박씨가 중 3이던 1973년에 서울에서 고교 평준화가 시작돼 ‘특정인을 위한 교육개편’ 논란이 일기도 했다. 또 이들은 대학 시절 유신정권의 몰락과 광주민주화운동, 5공화국의 탄생을 지켜봤다. 그러나 ‘한강의 기적‘의 수혜 세대가 베이비붐 세대인 만큼 산업화 세대의 상징처럼 인식되며, ‘386’이라 부르는 민주화 세대와도 성향에서 차별성을 지녔다. 58년을 시발점으로 출생 인구가 폭증한 만큼 공직사회 퇴직자들도 58년생부터 눈에 띄게 증가했다. 58년생 국가직·지방직 공무원은 내년에 1만 709명이나 퇴직한다. 베이비붐 첫 세대인 55년생 퇴직자(6577명)와 비교하면 62.8%나 증가한 수치다. 2020년 60년생 퇴직자가 1만 3000명을 넘고 2021년 61년생 퇴직자가 1만 3906명으로 정점을 찍는다. # 서울시 내년 58년생 356명 떠나 전국 자치단체별 상황도 비슷하다. 서울시는 내년에 58년생 356명이 물러난다. 2015년 55년생 265명보다 34.3% 늘었다. 2019년 59년생부터 퇴직자가 400명을 넘기 시작, 2022년엔 62년생 487명이 현직을 떠난다. 경기도도 58년생이 112명으로 55년생 75명보다 49.3%, 대구는 286명으로 55년생 167명보다 71.2%, 전남도는 99명으로 55년생 62명보다 59.6% 늘어난다. 전문가들은 베이비붐 세대의 퇴직은 공직 문화의 대전환을 의미한다고 진단했다. 이창원 한성대 행정학과 교수는 “상명하복의 폐쇄적인 군대식 문화에서 민주적이고 개방적인 분위기로 공직사회 체질이 개선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오철호 숭실대 행정학과 교수는 “미국은 40~50%가 ‘스마트 워크’를 하는데 우리는 아직 미미하다. 정보화 기기에 능하고 네트워크상 의견 교환에 친숙한 신세대들이 공직에 진출하면 우리도 ‘스마트 워크’ 협업이 활성화될 것이다. 그러다 보면 부서 간, 기관 간 경계도 자연스레 무너질 것”이라고 했다. 일선 공무원들의 전망도 비슷하다. 부산시의 한 간부는 “컴퓨터, 스마트폰 등을 사용하는 게 일상이 된 신세대들이 공직사회에서 들어오면 가장 큰 폐단인 문서 위주 보고가 줄어들고 신속하고 빠른 의사 결정이 이뤄질 것”이라고 했다. 인천시의 한 6급 주무관은 “요즘 새로 들어온 공무원들은 소위 ‘공시’를 통과해서인지 업무 적응력이 빠르고 밝은 분위기를 이끌어낸다”며 “베이비붐 세대들이 퇴직하면 아무래도 공무원 사회의 권위적인 문화가 줄어들 것”이라고 했다. 농림축산식품부의 한 사무관은 “나이 든 상사보다는 사고방식이 유연하고 의전과 격식을 덜 따지는 젊은 상사와 일하는 게 편하긴 하지만 공직은 경험과 관록이 중요한 만큼 신구 조화가 필요하다”며 “급진적인 세대교체보다는 점진적인 변화가 바람직하다”고 했다. # 16개 시·도 9급 공채 경쟁률 역대 최고 문재인 정부의 공공부문 일자리 확충 정책은 이런 변화를 더욱 가속화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지난 17일 16개 시·도 9급 지방공무원 1만 315명을 뽑는 공채 시험에 지원 서류를 낸 지망생은 22만 501명으로 역대 지방직 공무원 공채 시험 지원자 중 가장 많았다. 평균 경쟁률은 21.4대1을 기록했다. 현 정부는 올 연말까지 4조여원을 투입해 국민안전, 민생 분야 공무원 1만 2000명을 추가 채용한다. 경찰관과 부사관, 군무원 등 중앙 부처 공무원이 4500명이고 사회복지공무원, 소방관, 교사 등 지방 공무원이 7500명이다. 복수의 정부 부처 관계자는 “신규 인력이 한둘만 들어와도 분위기가 바뀌는데, 젊은 공무원들이 많이 들어오면 공직사회 전체에 활기를 불어넣을 것”이라고 했다. 베이비붐 첫 세대 퇴직 이후 세대교체에 따른 변화는 이미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지시와 복종’이라는 수직적 구조가 사라지고 업무와 관련해 허심탄회하게 의견을 주고받는 토론 문화도 뿌리내리고 있다. 부산시는 권위주의 문화가 사라지고 있다. 예전엔 상사의 일방적 지시가 주를 이뤘지만, 지금은 토론이나 합의를 통해 정책 결정이 이뤄지고 있다. 보통 1주일에 3번 하던 저녁 회식도 최근엔 확 줄었다. 부산시의 한 7급 주무관은 “몇 년 전만 해도 상사가 ‘회식도 업무의 연장’이라고 했지만, 요즘은 한 달 전부터 날짜를 조율할 정도로 민주적으로 변했다”고 했다. 이어 “육아휴직이나 연가, 퇴근 등도 상사의 눈치를 보지 않는다”고도 했다. 서울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서울 강병철 기자 bckang@seoul.co.kr 서울 윤수경 기자 yoon@seoul.co.kr 세종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 [씨줄날줄] 고리 1호기의 문화재적 가치/서동철 논설위원

    [씨줄날줄] 고리 1호기의 문화재적 가치/서동철 논설위원

    ‘우리나라 최초의 ‘제3의 불’ 원자력발전소 1호기의 준공식이 경남 양산군 장안면 고리 현장에서 성대히 열렸다.’ 1977년 6월 20일 석간신문 기사의 일부다. ‘제3의 불’이나 ‘성대히’라는 표현에서 언론부터가 원전 가동에 적지 않은 기대를 가졌음을 읽을 수 있다. 이날 오전 열린 고리 원전 준공식을 도하 모든 신문이 1면 머리기사로 다뤘다.그런데 인상적인 것은 준공식에 참석한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치사 내용이다. 먼저 “이제 우리나라는 본격적인 원자력 시대로 접어들었으며 과학 기술 면에서도 커다란 전환점을 이룩하게 되었다”고 의미를 부여한 것은 정해진 수순이다. 그런데 다음과 같이 치사를 이어 간다. “기름 한 방울을 아끼고 전기 사용에서도 낭비를 삼가는 알뜰한 생활 태도를 미풍으로 삼으면서, 한편으로는 태양열과 조력·풍력 등 새로운 자원을 연구 개발하는 데 적극적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 원자력발전소의 가동을 우리나라 과학기술 발전의 증거로 내세우기는 하면서도 원전이 영원한 대안이 될 수 없음을 벌써 당시에도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음을 보여 준다. ‘전기를 아껴 쓰면서 이른바 신재생 에너지 개발에 힘을 기울여야 한다’는 치사 내용을 보면 오늘날의 인식과 크게 다르지 않았음을 짐작하게 한다. 우리나라가 이른바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에 눈뜬 것은 생각보다 이르다. 정부는 1956년 당시 문교부 기술교육국에 원자력과를 신설했다. 1958년에는 원자력법이 국회를 통과했고, 이듬해는 원자력법 시행에 따라 대통령 직속 기관으로 장관급 원장의 원자력원을 출범시켰다. 그 산하에는 원자력연구소도 설치했다. 원자력연구소는 출범한 바로 그해 연구용 원자로를 도입한다. 미국 제너럴 어토믹의 ‘트리거 마크Ⅱ’는 1962년 본격 가동을 시작한다. 같은 해 정부는 원자력원에 원자력발전대책위원회를 설치해 원전 건설을 위한 조사 활동에 들어간다. 1967년에는 원자력발전추진위원회를 구성해 ‘10개년 원전개발 계획’을 세웠으니 그 성과가 바로 고리 원전 1호기이다. 고리 1호기가 어젯밤 12시 영구 정지됐다. 이를 계기로 문재인 대통령이 탈(脫)원자력 에너지 로드맵을 발표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한마디로 고리 1호기는 ‘원자력 시대의 상징’이면서 동시에 ‘탈원자력 시대의 상징’이다. 이렇듯 중첩된 의미를 갖는 존재가 우리 역사에 또 있는지 모르겠다. 문화재청은 ‘트리거 마크Ⅱ’를 근대문화유산으로 등록했다. 화천수력발전소도 문화재다. 고리 1호기의 역사적 가치가 그보다 못하지 않을 것이다.
  • 연극·영화계의 큰 별 윤소정 별세

    연극·영화계의 큰 별 윤소정 별세

    배우 윤소정이 16일 별세했다. 향년 73세. 소속사 뽀빠이엔터테인먼트는 “윤소정이 오늘 오후 7시 12분 서울성모병원에서 패혈증으로 세상을 떠났다”며 “고인은 사랑하는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세상과 이별했다. 50여년 간 관객과 시청자를 행복하게 해주고 사랑받았던 고인의 명복을 빌어달라”고 밝혔다. 1944년 영화감독이자 배우였던 고(故) 윤봉춘의 딸로 태어난 윤소정은 1962년 TBS 1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해 연극과 영화, 드라마 등에서 왕성한 활동을 펼쳤다. 대표작으로는 연극 ‘잘자요, 엄마’(2004), ‘강철’(2007), ‘블라인드 터치’(2008), ‘33개의 변주곡’(2010), ‘에이미’(2010·2013), ‘어머니’(2016) 등이 있다. 영화 중에서는 ‘올가미’(1997), ‘이재수의 난’(1999), ‘실제상황’(2000), ‘그대를 사랑합니다’(2011), ‘사랑해! 진영아’(2013) 등이 출연작이다. 드라마에서는 ‘대망’(2002), ‘잘했군 잘했어’(2009), ‘내 딸 꽃님이’(2011), ‘청담동 앨리스’(2012), ‘결혼의 여신’(2013), ‘폭풍의 여자’(2014) 등에서 연기했다. 최근에는 사전제작으로 촬영을 모두 마친 SBS TV ‘엽기적인 그녀’에 자혜대비 역으로 출연했다. 유족으로는 같은 배우인 남편 오현경과 딸 오지혜가 있다.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발인은 오는 20일, 장지는 천안공원묘원이다. 이은주 기자 erin@seoul.co.kr
  • 배우 윤소정, 패혈증으로 16일 별세 “연기 열정 불태운 55년”

    배우 윤소정, 패혈증으로 16일 별세 “연기 열정 불태운 55년”

    배우 윤소정이 16일 저녁 7시께 패혈증으로 별세했다. 향년 73세. 윤소정 소속사 뽀빠이 엔터테인먼트는 16일 공식 보도자료를 통해 “윤소정 선생님께서 2017년 6월 16일 19시 12분에 별세하셨다. 사인은 패혈증이다”라고 밝혔다. 소속사는 “고인은 사랑하는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세상과 이별했다”며 “지난 55여 년 동안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시며, 사랑을 받아왔던 고인의 명복을 빌어주시길 바란다”고 전했다. 빈소는 서울 성모병원 장례식장 21호이며, 5일장으로 치러진다. 유족으로는 남편인 연극배우 오현경과 딸 오지혜, 아들 오세호씨가 있다. 연극계 대모로 불리는 윤소정은 1944년 7월 4일생으로, 1961년 연극배우로 데뷔했다. 1962년 TBS 1기 공채 탤런트로 연예계에 진출한 고인은 연극 무대와 스크린, 브라운관을 넘나드는 활약을 펼치며 대한민국 대표 여배우로 자리매김했다. SBS ‘대망’(2002), MBC ‘잘했군 잘했어’(2009), SBS ‘청담동 앨리스’(2012), JTBC ‘판타스틱’(2016) 등의 드라마에 출연했으며, 현재 방영 중인 SBS 사전제작 드라마 ‘엽기적인 그녀’에서 자혜대비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영화 ‘왕의 남자’(2005), ‘결혼식 후에’(2009) 등에 출연했으며, ‘그대를 사랑합니다’(2011)에서는 주연을 맡아 배우 이순재와 황혼로맨스를 펼쳐 많은 관객의 심금을 울렸다. 2016년에는 배우 박근형과 연극 ‘어머니’ ‘아버지’ 무대에 올라 감동을 선사, 후배들의 귀감이 돼왔다. 최근 열린 대학로 연극인들의 축제인 서울연극제에도 참석해 후배들을 격려하기도 했다. 고인은 1980년 제16회 동아연극상, 1983년 제19회 동아연극상을 수상했으며, 1995년 제31회 백상예술대상 인기상, 2001년 제38회 대종상 영화제 여우조연상, 2003년 서울공연예술제 개인연기상, 2007년 제17회 이해랑 연극상, 2010년 제15회 히서연극상 올해의 연극인상, 2010년 제3회 대한민국연극대상 연기상 등을 수상했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배우 윤소정 오늘 오후 별세…향년 73세

    배우 윤소정 오늘 오후 별세…향년 73세

    배우 윤소정이 16일 별세했다. 향년 73세. 소속사 뽀빠이엔터테인먼트에 따르면 윤소정은 이날 오후 서울성모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이며 장례는 5일장으로 치를 예정이다. 발인은 20일이며 장지는 천안공원묘원이다. 영화감독이자 배우였던 고(故) 윤봉춘의 딸이기도 한 윤소정은 1962년 TBS 1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해 주로 연극무대에서 활동했으며 영화와 드라마에도 자주 출연했다.최근에는 사전제작으로 촬영을 모두 마친 SBS TV ‘엽기적인 그녀’에 자혜대비 역으로 출연했다. 유족으로는 같은 배우인 남편 오현경과 딸 지혜씨가 있다. 이범수 기자 bulse46@seoul.co.kr
  • [온라인]배우 윤소정 오늘 오후 별세…향년 73세

    배우 윤소정이 16일 별세했다. 향년 73세. 소속사 뽀빠이엔터테인먼트에 따르면 윤소정은 이날 오후 서울성모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이며 장례는 5일장으로 치를 예정이다.발인은 20일이며 장지는 천안공원묘원이다. 영화감독이자 배우였던 고(故) 윤봉춘의 딸이기도 한 윤소정은 1962년 TBS 1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해 주로 연극무대에서 활동했으며 영화와 드라마에도 자주 출연했다.최근에는 사전제작으로 촬영을 모두 마친 SBS TV ‘엽기적인 그녀’에 자혜대비 역으로 출연했다. 유족으로는 같은 배우인 남편 오현경과 딸 지혜씨가 있다. 이범수 기자 bulse46@seoul.co.kr
  • [온라인]배우 윤소정 오늘 오후 별세…향년 73세

    배우 윤소정이 16일 별세했다. 향년 73세. 소속사 뽀빠이엔터테인먼트에 따르면 윤소정은 이날 오후 서울성모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이며 장례는 5일장으로 치를 예정이다.발인은 20일이며 장지는 천안공원묘원이다. 영화감독이자 배우였던 고(故) 윤봉춘의 딸이기도 한 윤소정은 1962년 TBS 1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해 주로 연극무대에서 활동했으며 영화와 드라마에도 자주 출연했다.최근에는 사전제작으로 촬영을 모두 마친 SBS TV ‘엽기적인 그녀’에 자혜대비 역으로 출연했다. 유족으로는 같은 배우인 남편 오현경과 딸 지혜씨가 있다. 이범수 기자 bulse46@seoul.co.kr
  • 문 대통령, 해수부 차관 강준석 임명…명태 완전양식 성공 이끈 수산전문가

    문 대통령, 해수부 차관 강준석 임명…명태 완전양식 성공 이끈 수산전문가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해양수산부 차관에 강준석(55) 국립수산과학원장을 임명했다.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은 문 대통령이 강 차관을 임명했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이 차관급 인사를 단행한 것은 지난 13일에 이어 이틀만으로, 이로써 현행 정부 직제상 17개 부처 중 21명(복수차관 포함)의 차관을 임명했다. 남은 차관 인사는 미래창조과학부 1차관, 산업통상자원부 2차관이다. 강 차관은 30년간 해양·수산 분야에 몰두한 전문가다. 1962년생으로 경남 함양 출신으로 함양고와 부산수대(부경대 전신) 수산경영과를 졸업, 기술고시 22회로 공직에 들어왔다. 해수부 원양어업담당관과 어업자원국 양식개발과장·어업정책과장, 농림수산식품부 어업자원관·수산정책관, 해수부 국제원양정책관·수산정책실장 등을 역임했다. 세월호 참사 당시 수산정책실장으로 있던 그는 2014년 말 다른 1급 실장들과 일괄 사표를 냈으나 이듬해 해수부 개방형 직위 공개모집을 통해 국립수산과학원장으로 공직에 복귀했다. 수산과학원장 재임 기간에 뱀장어와 명태 완전양식 기술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고 수산과학원은 ‘2016년 최우수 책임운영기관’으로 선정됐다. 완전양식은 수정란에서 부화시켜 기른 새끼 물고기를 어미로 키워 다시 알을 생산하도록 하는 단계까지의 기술로, 특히 명태 완전양식 기술 개발에 성공한 건 우리나라가 처음이다. 뱀장어 완전양식도 성공시켰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주 프랑스 대사관, 미국 국립해양대기청(NOAA) 등에서 근무한 경험도 있어 해양수산 분야의 국제협력 업무에도 밝다는 평가다. 그와 함께 일해본 해수부 관계자는 “평상시 직원들과 격의 없이 소통하는 것을 즐기고 차분하고 합리적인 성격”이라고 전했다. 부인 이은주(53) 씨와 사이에 1남 1녀. △ 경남 함양 △ 함양고 △ 부산수대 수산경영과 △ 영국 헐(Hull)대 대학원 자원경제학 석·박사 △ 기술고시 22회 △ 해수부 원양어업담당관·어업자원국 양식개발과장·어업정책과장 △ 미국 국립해양대기청(NOAA) 파견 △ 농림수산식품부 어업자원관·수산정책관 △ 해수부 국제원양정책관·수산정책실장 △ 해수부 국립수산과학원장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단독] 왜군 순절비가 경북 고령中 교훈비로 둔갑됐다

    [단독] 왜군 순절비가 경북 고령中 교훈비로 둔갑됐다

    경북 고령의 한 공립학교가 일제강점기에 조선총독이 제작한 왜군(倭軍)의 충절을 기린 순절비를 그 학교의 교훈비로 세워둔 것으로 확인됐다. 이 순절비는 일본이 한반도 남부를 경영했다는 내용을 담은 ‘일본서기’를 출처로 한다. 이에 고령군의 향토사학자들은 “교육 현장에 일제 침략 잔재가 버젓이 자리해서는 안 된다”면서 조속한 철거를 요구하고, 역사교훈의 도구로 쓰자고 제안했다.14일 고령의 원로 향토사학자 등에 따르면 고령군 대가야읍의 고령중학교의 교훈비에는 원래 대가야 멸망 당시 왜군 장수였던 쓰키노기시 이키나가 이곳에서 죽었다는 내용이 새겨져 있었다. 비 앞면의 ‘조이기난순절지(調伊企難殉節址) 남차랑(南次) 서’에서 알 수 있다. 뒷면에는 쓰끼노기시 아내 오오바코의 하이쿠(일본 고유시)가 새겨졌다고 한다. 쓰끼노기시는 일본 학계에서 임나일본부설의 근거로 드는 ‘일본서기’(日本書記)에 등장하는 왜군 장수로, 562년 대가야가 신라의 침략으로 멸망할 당시 출병했다가 전사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이 순절비는 일제강점기인 1939년 미나미 지로(南次) 제7대 조선 총독(1936~41)이 고령 대가야읍 연조리 고령향교 인근 옛 대가야 왕궁터에 ‘임나대가야국성지비’(任那大伽倻國城址碑)와 함께 세웠다. <서울신문 6월 13일자 13면 참조> 이런 기념물은 일본이 한반도 남부를 과거에 경영했으니 일제의 침략이 당연하다고 강조한 것이다.그러다 순절비는 광복이 되자 고령초교 내 대가야시대 우물터 인근으로 옮겨져 돌다리로 사용되었다. 고령중학교의 관계자가 1947년 11월 개교하면서 이 순절비의 앞면을 모두 깍아내고 교훈을 새겨 교정에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 앞면에 ‘굳세고 참되고 부지런하자’라는 교훈을 새겼으나 뒷면의 하이쿠는 대충 지운 탓에 일부가 희미하게 남아있다. 향토사학자들은 “비록 비석의 앞면 글씨는 모두 지워 없어졌지만, 근대기 일제 침략의 흔적을 담고 있는 비석”이라며 “새정 부에서 가야사를 연구한다니, 이 비석을 제자리로 돌려놓고 일제 침략과 역사 왜곡의 교육자료로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임나일본부설은 일제강점기에 한국 침략을 정당화하는 정한론(征韓論)의 역사적 근거로 활용됐지만, 일본 역사학자들은 한·일공동역사연구를 하던 2010년부터 이런 주장을 폐기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고령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씨줄날줄] 밴 클라이번 피아노 콩쿠르/서동철 논설위원

    [씨줄날줄] 밴 클라이번 피아노 콩쿠르/서동철 논설위원

    미국과 소련은 1950년대 우주과학 기술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그런데 1957년 10월 4일 소련은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인 스푸트니크 1호를 쏘아 올린다. 불과 한 달이 지난 11월 3일에는 ‘라이카’라는 이름의 떠돌이 개를 스푸트니크 2호에 태워 지구궤도에 올려놓는 데 성공한다. 가뜩이나 ‘스푸트니크 쇼크’에 빠져 있던 미국에 결정타를 먹인 것이다.미국은 1958년 1월 31일 불과 13.97㎏의 인공위성 익스플로러 1호를 쏘아 체면치레를 했다. 하지만 2월 3일 소련은 1.3t짜리 과학탐사 위성 스푸트니크 3호를 발사한다. 인공위성 발사 기술이란 곧바로 대륙간탄도탄(ICBM) 전용이 가능하다. 인공위성 발사 기술에서 소련의 우위란 곧 새로운 핵탄두 운반 수단의 개발 경쟁에서 미국의 패배를 의미했다. 소련 정부가 주관한 제1회 차이콥스키 국제음악콩쿠르는 피아노를 대상으로 1958년 3월 18일부터 4월 14일까지 모스크바에서 열렸다. 심사위원은 에밀 길렐스 위원장을 비롯해 레프 오보린, 스비야토슬라브 리히터 등 소련 피아니스트가 6명, 영국 작곡가 아서 블리스를 비롯해 이탈리아, 벨기에, 포르투갈, 브라질 등 서방 음악가가 5명이었다. 불가리아, 루마니아, 체코슬로바키아, 헝가리, 폴란드 심사위원은 소련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잘 알려진 대로 미국 피아니스트 밴 클라이번이 우승했다. 두 개의 에피소드가 전하는데, 심사위원의 한 사람인 리히터가 클라이번에게는 100점을 주고 다른 참가자들에게는 모두 0점을 주었다는 전설이 하나다. 다른 하나는 채점 결과 미국인이 압도적 1등을 차지하자 소련 공산당 서기장 니키타 흐루쇼프에게 전화를 걸어 부랴부랴 재가를 받았다는 일화다. 미국 신문들은 ‘음악으로 소련을 눌렀다’고 대서특필했지만, 흐루쇼프는 크게 웃었다는 게 정설이다. ICBM 개발 경쟁에서 승리한 소련의 미국에 대한 여유의 표시였다는 것이다. 클라이번은 축하 음악회에서 앙코르로 소련 가요 ‘모스크바의 밤’을 연주해 전 세계에 유행시키기도 했다. 냉전시대 차이콥스키 콩쿠르란 분명 정치성 짙은 이벤트였다. 미국에서 1962년 시작된 밴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는 이제 차이콥스키 콩쿠르만큼이나 권위를 인정받는다. 엊그제 선우예권이 한국인으로는 처음 우승을 차지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순회 연주 및 음반 발매 기회를 어느 콩쿠르보다 많이 주는 대회로 유명하다. 선우예권이 이런 혜택을 후회 없이 활용해 경력을 쌓았으면 좋겠다. 그렇게 무게 있는 피아니스트로 차근차근 성장하기 바란다.
  • 선우예권 ‘북미의 쇼팽 콩쿠르’ 한국인 첫 우승

    선우예권 ‘북미의 쇼팽 콩쿠르’ 한국인 첫 우승

    “콩쿠르라는 생각은 최대한 접어두고 연주하러 왔다고 마인드 컨트롤을 했어요. 과장하거나 꾸미려 하기보다는 제가 느낀 진실한 감정을 표현하는 데 신경썼습니다.”국내 신진 피아니스트 선우예권(28)이 북미 최고 권위의 미국 밴 클라이번 국제피아노콩쿠르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밴 클라이번 재단은 10일(현지시간) 밤 미 텍사스주 포트워스 베이스퍼포먼스 홀에서 17일간 진행된 제15회 밴 클라이번 콩쿠르의 금메달리스트로 선우예권을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한국인이 이 대회에서 우승한 것은 처음이다. 앞서 2005년 양희원(미국명 조이스 양), 2009년 손열음이 은메달을 땄다. 1962년 시작되어 4년 주기로 열리는 이 콩쿠르는 냉전 시절이던 1958년 소련에서 열린 제1회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우승, 미국의 영웅으로 떠오른 밴 클라이번(1934∼2013)을 기념하는 대회다. 세계 3대 콩쿠르인 쇼팽, 차이콥스키, 퀸 엘리자베스에 버금가는 대회로 ‘북미의 쇼팽 콩쿠르’로 불리며 북미 최고 권위를 자랑하고 있다. 선우예권은 5만 달러(약 5600만원)의 상금과 함께 3년간 미 전역 투어, 음반 발매 등의 지원을 받는다. 지난달 25일 개막한 콩쿠르는 전 세계 290여명이 참가한 대륙별 예선을 거쳐 선발된 15개국 30세 이하 신예 피아니스트 30명이 본선에서 기량을 뽐냈다. 한국에서는 5명이 나가 선우예권과 김다솔, 김홍기가 12명이 겨루는 준결선에 진출했고, 이 중 선우예권이 6명으로 추려진 결선에 올랐다. 9일 밤 결선 무대에서 선우예권은 드보르자크의 피아노 5중주와 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 3번을 연주하며 폭발적인 에너지를 뿜어내 관객 기립 박수와 함께 심사위원단 최고점을 받았다. 수상 직후 선우예권은 “너무 값진 상이라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면서 “앞으로도 좋은 연주, 진실된 음악 들려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라흐마니노프 연주 때는 컨디션이 좋지 않았었다고 덧붙였다. 그는 “감기에 걸려 옷을 여러 겹 껴입고 잠을 자며 열을 빼내려고 했다”며 “심적으로 힘들기도 했는데 (그런 상황 때문에) 좀더 복합적인 감정들을 들려줄 수 있었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다소 늦게 피아노를 시작한 그는 예원학교와 서울예고를 거쳐 미국 커티스음악원, 줄리아드 음대, 뉴욕 매네스 음대에서 수학했다. 세계적 연주자인 리처드 구드와 세이무어 립킨을 사사했으며 현재 독일 하노버 국립음대 연주자 과정을 밟으며 베른트 괴츠케를 사사하고 있다. 윌리엄 카펠 국제피아노콩쿠르(2012), 센다이 국제음악콩쿠르(2013), 스위스 방돔 프라이즈(2014), 인터내셔널 저먼 피아노 어워드(2015)에서 연달아 우승하며 이름을 알렸다. 지난해 금호아트홀 상주 음악가로 선정돼 5차례 리사이틀을 열었다. 오는 12월 20일 서울 예술의전당 IBK챔버홀(600석) 독주회는 이날 우승 소식이 전해지자 순식간에 매진됐다.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선우예권, 한국인 최초 美 반클라이번 콩쿠르 우승…결선무대 기립박수

    선우예권, 한국인 최초 美 반클라이번 콩쿠르 우승…결선무대 기립박수

    피아니스트 선우예권(29)이 55년 역사의 세계적 피아노대회인 미국 반 클라이번 국제피아노콩쿠르 우승자로 선정됐다.반 클라이번 재단과 심사위원단은 10일(현지시간) 미 텍사스 주 포트워스 베이스퍼포먼스 홀에서 17일에 걸친 제15회 반 클라이번 콩쿠르를 폐막하며 선우예권을 1위인 금메달리스트로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앞서 2005년 양희원(미국명 조이스 양)이, 2009년 손열음이 각각 2위에 해당하는 은메달을 수상한 바 있지만 우승은 한국인 최초다. 5월 25일 개막한 올해 대회에서는 대륙별 예선을 거쳐 선발된 15개국의 30세 이하 신예 피아니스트 30명이 기량을 겨뤘다. 한국인 참가자 5명 가운데 선우예권,김다솔,김홍기가 12명이 겨루는 준결선에 진출했고,이중 선우예권이 6명으로 좁혀진 결선까지 올랐다. 선우예권은 준결선에서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30번 Op.109,프로코피예프 피아노 소나타 6번 Op.82,모차르트 피아노협주곡 21번 K.467을 연주했다. 결선에서는 드보르자크 피아노 5중주 Op.81과 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 3번 Op.30을 연주했다. 선우예권은 결선 무대인 9일 밤 피아노 협연의 난곡으로 손꼽히는 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 3번을 폭발적인 에너지로 소화해 관객들의 전원 기립 박수와 환호를 끌어내며 입상에 청신호를 켰다. 다른 피아니스트보다 다소 늦은 초등학교 2학년 때 피아노를 시작한 선우예권은 실력에 비해 국내에는 상대적으로 늦게 알려진 연주자다. 서울예고를 거쳐 미국 커티스음악원,줄리아드 음대에서 수학했고,이어 뉴욕 매네스 음대 최고연주자 과정에서 세계적 피아니스트 리처드 구드를 사사했다. 2015년 독일 피아노 어워드에서 우승한 것 외에도 스위스 ‘방돔 프라이즈’(2014년),센다이 국제음악콩쿠르(2013년),윌리엄 카펠 국제피아노콩쿠르(2012)에서 우승하며 국제무대에 이름을 알렸다. 반 클라이번 콩쿠르는 냉전 시절이던 1958년 소련에서 열린 제1회 차이콥스키 국제콩쿠르에서 우승해 일약 ‘미국의 영웅’으로 떠오른 미국의 피아니스트 반 클라이번(1934-2013)을 기념하는 대회다. 1962년을 시작으로 4년 주기로 열리며 루마니아의 라두 루푸(1966 우승),독일의 크리스티안 차하리아스(1973년 준우승) 등을 입상자로 배출했다. 예심을 통과하더라도 준준결선,준결선(독주·협연),결선(실내악·협연) 등 모두 5번의 무대를 통해 수상자를 까다롭게 가리지만 일단 입상하면 음악가로 성장하는데 적극적인 지원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세계 3대 콩쿠르로 꼽히는 쇼팽 콩쿠르,차이콥스키 콩쿠르,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 견줄만한 권위를 인정받고 있으며,특히 미국을 중심으로 활동하기 희망하는 피아니스트에게는 ‘등용문’의 역할을 하고 있다.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비운의 로렌스… 화약고가 된 중동

    비운의 로렌스… 화약고가 된 중동

    아라비아의 로렌스/스콧 앤더슨 지음/정태영 옮김/글항아리/880쪽/4만원중동의 역사는 고난과 고통의 점철이다. 그 험한 땅에서 계속되는 비극의 씨앗은 제1차 세계대전 종전협정인 파리평화회의와 강화회의라 할 수 있다. 열강들이 전리품을 챙기려 영토를 구획 지은 분할의 야합. 특히 후사인·맥마흔 서한을 비롯해 시리아와 이라크를 각각 차지하기로 합의한 영국·프랑스 간의 이른바 사이크스·피코 협정은 가장 결정적인 분할의 단초다. 이 협정으로 인해 아랍 독립국은 대부분 아라비아 사막의 격오지만 남았고 그렇게 책정된 중동 지도는 여전히 숱한 분쟁을 낳고 있다. 미국의 국제분쟁 전문 기자가 쓴 책은 1차 세계대전 중 중동에서 부닥쳤던 서구의 제국주의적 탐욕과 점령사를 생생하게 파헤친다. 이야기 중심에 네 명의 젊은이를 포진시켰다. 옥스퍼드대를 수석으로 졸업한 고고학자 출신 T E 로렌스(1888~1935)와 카이로 주재 독일대사관의 동양문제보좌관이자 학자인 쿠르트 트뤼퍼, 루마니아 출신의 저명한 농학자이자 열성적인 시온주의자인 아론 아론손, 미국 기업 스탠더드오일사의 정보원 윌리엄 예일이 그들이다.트뤼퍼는 문약한 학자였지만 영국을 향한 복수심을 키워 지하드에 불을 댕기는 비밀 임무를 맡은 인물. 중동에서 활동하는 독일 첩보조직 책임자로 활약한다. 시온주의자인 아론손은 팔레스타인 땅을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빼앗아 유대인 조국을 재건하려 맹활약한다. 영국을 등에 업고자 팔레스타인 복판에서 첩보조직을 꾸려 암약한다. 몰락한 귀족 집안 출신인 예일은 거대 유전을 차지하려는 스탠더드오일의 칙명을 받고 중동에 파견돼 중동 전역을 통틀어 유일한 미국인 정보요원으로 뛴다. 3개 대륙에서 1600만명이 목숨을 잃은 1차 세계대전에서 중동은 중요하지 않은 지역이었다. 로렌스도 “중동 전장의 아랍 문제는 부차적인 문제 중에서도 부차적인 문제”라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계속되는 중동의 고난이 종전협정에 뿌리를 둔 만큼 네 명의 젊은이가 어떻게 나라를 위해 움직였는지를 들여다보는 일은 분명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얽히고설킨 네 명의 젊은이 중 핵심은 당연히 로렌스이다. 로렌스는 지난 20세기 가장 인기 있는 스타이면서도 생의 많은 부분이 베일에 가려져 있다고 한다. 전문가들의 평가도 극적으로 엇갈린다. ‘아랍 독립에 힘쓴, 깨우친 진보주의자’란 평이 있는가 하면 ‘가면을 쓴 제국주의자’라는 비판도 무성하다. ‘희대의 영웅’, ‘사유하는 투쟁가’, ‘제국주의의 하수인’, ‘자기파멸적 몽상가’와 같은 상반된 수식어도 숱하게 따라붙는다. 데이비드 린 감독의 걸작 ‘아라비아의 로렌스’(1962년)는 국내에서 로렌스의 존재를 대중적으로 알 수 있게 해 준 유일한 계기이다. 하지만 자서전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에서 낭만적 감동의 주인공으로 묘사된 것과 다르게 책은 그의 정체를 속속들이 파헤친다. 옥스퍼드대를 수석으로 졸업한 20대 초반의 고고학자 로렌스는 영국 첩보요원으로 중동에 관여하기 시작했다. 고고학 발굴과 탐사를 통해 중동에 정통했던 이력 때문이었다. 로렌스는 오스만 제국을 무너뜨리기 위해 아랍민족운동을 이용했던 영국 정책의 중심인물이었다. 오스만 제국에 아라비아반도의 여러 부족을 통합해 통일된 아랍국가를 세우려던 파이샬 이븐 후세인을 내세워 아랍 반란을 일으켰고 1917년 무렵 홍해 끝부분의 아카바를 장악한 데 이어 이듬해 가을엔 다마스쿠스(현 시리아 수도)를 점령하기에 이른다. ‘아랍의 영웅’으로 추앙받았던 로렌스의 인생과 꿈은 종전과 함께 허무하게 무너졌다. 사이크스·피코 협정에 따라 아랍이 분할된 것이다. 책에서 드러난 로렌스의 행적을 본다면 여전히 평가는 엇갈릴 것으로 보인다. 로렌스는 아랍인들이 목숨 바쳐 싸운 땅을 되찾을 수 있도록 영국의 유력한 정치인들에게 로비를 펼치는가 하면 아랍을 옹호하는 열정적인 칼럼을 수차례 기고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자 결국 로렌스는 전쟁 중 활약상을 인정해 왕이 직접 수여하려던 무공 메달을 거부하기에 이른다. 그의 죽음을 놓고 처칠은 말했다고 한다. “동시대를 살았던 가장 위대한 존재 가운데 한 명이다. 어디서도 그와 같은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이제 아무리 원해도 그와 같은 인물을 다시 만날 수 없을 것 같아 두렵다.” 하지만 중동은 여전히 불안하고 고통받는 땅이다. 처칠의 요란한 찬사와 달리, 옮긴 이의 말이 인상적이다. “어리석고 야만적인 제국주의가 20세기 벽두를 피로 물들이면서 아랍인을, 그리고 로렌스를 희생시킨 뒤 눈물의 씨앗을 심어두고 자취를 감췄다. 그리고 그 슬픔은 현재진행형이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손병석 국토부 1차관…건설·교통·수자원 핵심 보직 섭렵한 브레인

    손병석 국토부 1차관…건설·교통·수자원 핵심 보직 섭렵한 브레인

    손병석 신임 국토교통부 1차관(56)은 국토부 안에서 핵심 보직을 두루 경험한 대표적인 브레인으로 알려져있다.손 차관은 1962년 경남 밀양 출신으로 배재고와 서울대 건축학과를 졸업했다. 기술고시 22회로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다. 국토부 국토정책국장과 수자원국장, 철도국장, 중앙토지수용위원회 상임위원에 이어 기조실장을 거쳤다. 손 차관은 건설과 교통, 수자원, 기획 분야의 주요 보직을 두루 섭렵하며 업무 전문성을 갖춘 기획통으로 통해 일찌감치 국토부 차관 후보 물망에 올랐다. 부하 직원들이 낸 보고서를 한번 보고는 상세한 내용을 머릿속에 넣고 예리한 질문을 쏟아내면서 당혹게 하는 일화로 유명하다. 공대 출신인데 한자 실력도 출중하고 인문학적 소양도 뛰어나다는 평을 받는다. 휴식 시간에도 퀴즈를 풀거나 한자단어를 외우는 것이 취미일 정도로 천성적으로 머리를 쓰는 것을 좋아한다. 성격이 다소 급하고 좀처럼 표정을 숨기지 못하지만 뒤끝은 없다는 평을 받는다. 부인이 조달청 첫 여성국장과 지방청장에 오른 장경순(54) 서울지방조달청장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테슬라 ‘포천 500대 기업’ 올라…62년 만에 車 회사 순위 추가

    전기차업체 테슬라가 미국 대기업을 상징하는 ‘포천 500대 기업’ 반열에 올랐다. 1955년 포천이 500대 기업 순위를 도입한 이후 자동차회사가 추가된 것은 62년 만에 처음이다. 1955년 5개 자동차업체가 이름을 올렸으나 현재 제너럴모터스(GM·8위)와 포드자동차(10위)만 살아남았다. 포천이 7일(현지시간) 선정한 ‘2017년 500대 기업’ 리스트에서 테슬라는 중국에서의 성공을 바탕으로 탁월한 성장세를 보이며 383위에 올랐다. 테슬라는 지난해 70억 달러(약 7조 8652억원)의 매출을 올려 전년보다 73% 성장했다. 지난해 태양광발전업체 솔라시티와 합병한 테슬라는 ‘모델S’와 2015년 말 출시한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모델X’의 순항에 힘입어 가파른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다. 연말 전기차 대중화를 겨냥한 보급형 ‘모델3’ 출시를 앞둔 만큼 매출은 늘어날 전망이다. 이날 테슬라 주가는 전날보다 1.9% 오른 359.65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테슬라의 시가총액도 600억 달러를 돌파하며 GM과 포드를 넘어 미국 1위의 자동차업체로 확고히 자리매김했다.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
  • [함혜리 선임기자의 예술산책] 비움의 경지에서 만족을 배우다

    [함혜리 선임기자의 예술산책] 비움의 경지에서 만족을 배우다

    일본 교토는 ‘천년의 고도’라는 말이 전혀 부끄럽지 않게 긴 역사의 향취를 느낄 수 있는 유적으로 가득하다. 유적의 대부분은 오래된 사찰들이고, 그 대부분이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곳이다. 유명한 교토의 사찰들은 저마다 아름다운 정원을 보유하고 있다. 료안지(龍安寺)의 석정(石庭)은 그중에서도 가장 독특한 아름다움을 지닌 정원으로 꼽힌다.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없고 연못도 없이 오직 크고 작은 돌과 자잘한 백색 자갈로 ‘마른 산수’를 꾸민 이 정원은 선(禪)의 정신을 표현한 추상조형의 극치로 평가받는다. 료안지는 호소카와 가쓰모토가 1450년 건립한 선종 사찰로 금박의 삼층 누각으로 유명한 긴카쿠지(閣寺)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선종사찰에서 주지 스님이 기거하고 손님을 맞이하는 공간을 방장이라고 하는데 료안지 방장 건물의 남쪽 정원에 조성된 것이 이 석정이다.다른 방문객들처럼 료안지 방장으로 가서 신을 벗고 석정 앞 긴 툇마루에 앉아 정원을 바라봤다. 동서 25m, 남북 10m 정도의 장방형 공간을 낮은 흙담으로 둘러싸고 그곳에 흰색의 모래처럼 보이는 아주 자잘한 자갈을 깔아 놓았다. 거기에 크고 작은 돌 15개를 드문드문 배치했다. 기이한 모양도 아닌 돌들이 아무런 의도 없이 자연스럽게 놓였다. 돌 주변으로 이끼가 자라 마치 망망대해에 떠 있는 섬처럼 보인다. 모래를 고르게 펴면서 만들어진 갈퀴 자국이 잔잔한 물결을 연상하게 한다.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완벽한 침묵의 공간이다. ●15세기 조성 추정… 그때도 지금도 파격 료안지의 석정이 언제 조성됐는지는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고 있다. 1467년 오닌의 난 당시 불탄 절을 15세기 말에 복원하고 그 즈음에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할 뿐이다. 료안지 복원은 호소카와 가쓰모토의 아들인 마사모토가 맡아 1488년 방장건물이 완성됐다. 그 후에 석정이 조성됐을 것으로 본다. 그 작업을 소아미라는 화가가 했다는 설과 당시 료안지의 주지였던 도쿠호 젠케쓰가 사찰의 정원을 만드는 전문가 그룹과 함께 만들었다는 설이 있지만 정확하지 않다. 아무튼 석정이 500년 전 꾸며졌을 당시 파격이었을 것인데 지금 봐도 파격적이다. 나지막한 흙담을 그림의 프레임이라고 한다면 지극히 이지적인 추상미술 작품이고, 조형예술로 본다면 돌과 모래를 이용한 설치미술이다. 바람소리와 새소리가 음향이고, 내리쪼이는 햇살은 마치 조명 같다.료안지의 석정은 ‘젠 가든’(Zen Garden)이라는 이름으로 서구의 많은 예술가에게 영감을 안겼다. 대표적인 인물이 전위 음악가 존 케이지(1912~1992)다. 1950년대부터 동양의 선 사상에 심취하면서 공의 개념을 음악으로 실현하고자 했던 그는 1952년 ‘4분 33초’라는 논란의 전위음악을 작곡해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렸다. 케이지는 4분 33초를 초연한 연주자 데이비드 튜더와 전위예술가 오노 요코와 함께 1962년 일본 연주여행을 하던 중 료안지의 석정을 방문했다. 이 정원에서 본 공간의 비어 있음과 침묵의 가치, 자연스러움의 가치에 큰 감동을 받았다. 그는 말년의 10년을 온전히 료안지의 석정에서 받은 영감을 미학적으로 표현하는 데 할애했다. 케이지는 1983년부터 세상을 떠난 1992년까지 170점의 연필 드로잉을 그렸다.‘료안지는 어디에?’라는 제목의 드로잉은 석정에 놓인 돌과 같은 숫자인 15개의 돌 이미지를 테이블에 자연스럽게 배치하고 그 둘레를 따라 드로잉을 한 것이다. 무질서한 듯 보이지만 우연처럼 질서 정연함을 유지한 채 배치된 료안지 석정을 통해 자연 그 자체의 질서를 발견하고 표현을 시도했던 케이지가 세상을 떠나고 그의 추종자들은 2004년 케이지에게 ‘돌의 역할:료안지를 따라서’라는 제목으로 공동 작업을 헌정했다.포스트모더니즘 건축으로 유명한 오스트리아의 건축가 한스 홀라인(1934~2014)은 2000년 베니스비엔날레 건축전에 료안지의 정원을 축소한 모형을 출품했다. 그해의 주제는 ‘덜 미학적인 것이 더 윤리적이다’(Less Aesthetics, More Ethics)로 근대건축의 거장 미스 반데어로에가 단순미를 강조하며 주창했던 ‘적을수록 풍부하다’(Less is More)를 변용한 것이다. 홀라인은 서구 건축에서 윤리적인 것을 찾으려면 단순하고 간결해야 한다는 것을 료안지의 석정을 통해 보여줬다. 일본계 미국인 작가 이사무 노구치(1904~1988)는 뉴욕 체이스맨해튼 은행 광장을 비롯한 여러 공공 프로젝트에 료안지의 석정을 응용한 작품을 보여 주었다. 이처럼 꽃과 나무를 배제하고 돌과 백색 모래만으로 구성된 단순미의 결정판인 석정은 예술가들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석정의 돌이 15개이지만 어느 자리에서건 14개까지만 보인다는 얘기가 있다. 깨달음을 통해서만 15개가 완전하게 보인다는 것이다. 숫자 15를 두고 돌 더미를 수리적으로 보면 황금분할을 의미한다는 등의 해석을 하기도 한다. 믿거나 말거나이지만 석정 자체의 미학을 있는 그대로 느끼는 것을 방해할 뿐이다. 없음(無)과 비어 있음(空)을 조형적으로 표현한 이 정원을 보면서 선사들은 관조의 세계로 빠져들었을 것이다. 료안지를 찾는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지는 이유는 물질만능 시대에 비어 있음의 가치가 더욱 소중해지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료안지의 석정을 감상했으면 방장 건물을 돌아보자. 크게 6개의 공간으로 나뉘는데 거개의 명찰에 있는 방장 건물과 마찬가지로 미닫이문에는 멋진 그림들이 그려져 있다. 메인홀 격인 료안지 방장 건물의 가운데 칸에 그려진 ‘와룡매’가 일품이다. 그 옆방의 미닫이문에 그려진 산수화 속 산세가 낯이 익다. 금강산을 18차례나 다녀왔다는 화가 사스키 가쿠오가 1953년부터 5년에 걸쳐 완성한 ‘금강산’이다. 방장 건물 뒤편으로 돌아오다 보면 뒤뜰에 돌로 만들어진 물확이 있다. 다실로 들어가기 전에 손을 씻는 용도로 만들어진 것인데 웅크려 앉아야 사용할 수 있다. 다실 문을 작게 만들어 들어갈 때 자연히 고개를 숙여 조심스럽게 경의를 표하도록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료안지의 물확은 가운데를 네모로 만들고 사방에 한 글자씩을 써 놓았다. 네모를 입구(口)자로 쳐서 읽어 보니 ‘오유지족’(吾唯知足)이다. 풀어보면 이런 뜻이다. ‘나는 이 정도면 만족함을 알겠노라!’. 그러고 보니 료안지의 방장 입구 12폭 병풍 위에 걸린 작은 현판에도 ‘지족’(知足)이라 쓰여 있다. 모든 괴로움은 욕심에서 나온다. 만족함을 알면 행복은 바로 손안에 있음을 우리는 왜 자꾸 잊을까. ●덴류지·긴카쿠지 정원도 한폭의 산수 교토에서 반드시 가 봐야 할 정원으로 덴류지(天龍寺)의 방장 정원인 조원지가 꼽힌다. 이 절을 세운 무소 소세키(1275~1351) 국사는 난세를 슬기롭게 헤쳐 나간 고승으로 정원 조영에도 뛰어났다고 한다. 불세출의 정원 설계사였던 그는 거주한 사찰마다 훌륭한 정원을 남겼다. 덴류지의 조원지는 마음심(心)자형의 커다란 연못을 조성하고 그 주변으로 산책길을 낸 지천회유식 정원이다. 한쪽 면이 산자락에 바짝 붙어 있어 멀리 아라시야마와 가까이 가메야마의 자연풍광을 그대로 끌어안은 모습이 매우 아름답다. 웅장한 방장 건물 앞의 마루에 조원지를 감상하는 사람들로 가득한 것도 볼거리다. 인공과 자연의 조화가 절묘하게 어우러진 조원지는 한 폭의 산수화 같다. 긴카쿠지(銀閣寺)의 정원도 인상적이다. 반듯하게 다듬어진 동백나무가 줄지어 선 길을 따라 경내로 들어가면 정원이 바로 나온다. 흰 자갈 모래를 깔고 굵은 물결무늬를 만들어 놓은 마당 옆으로 금경지라는 이름의 연못이 있다. 마당 한쪽에는 향월대라는 원추형 돌무지가 솟아 있고 정원 왼쪽으로 연못가에 2층 누각인 은각이 우뚝 솟이 있다. 건물과 나무가 하늘과 함께 연못에 비치는 풍경은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자그마한 다리를 건너면 자연의 순수함을 그대로 간직한 산책로가 이어진다. 내리막길로 접어들면 나무들 아래 진초록 이끼가 카펫처럼 깔려 있어 신비로움을 자아낸다. 은각으로 내려와 이제 다 봤나 싶었는데 초록색 이끼 위에 떨어진 분홍빛 연산홍 꽃잎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 아름다움에 한숨이 새어 나오며 료안지의 물확에서 본 문구가 다시 떠올랐다. ‘오유지족!’ 글 사진 lotus@seoul.co.kr
  • 브라질 축구 레전드 가힌샤의 유해가 사라졌다 뭔일이래

    브라질 축구 레전드 가힌샤의 유해가 사라졌다 뭔일이래

    지난 1983년 세상을 떠난 브라질의 축구 레전드 가힌샤의 유해가 감쪽같이 사라졌다고 가족이 전했다. 그의 딸 호산젤라 산투스는 현지 일간 ‘우 글로부’와의 인터뷰를 통해 49세를 일기로 사망한 부친 유해의 종적을 알 수 없다고 밝혔다. 산토스는 1955년부터 1966년까지 브라질 대표로 50경기에 출전해 1958년과 1962년 월드컵 우승을 이끌어 모두 골든부트를 수상했던 자신의 아버지가 “이런 일을 당할 분이 아니다. 그의 유해가 어디 있는지 모른다는 것은 매우 화나는 일”이라며 “시장님이 능묘를 지어주겠다고 했는데 우선 그부터 찾고 볼 일”이라고 말했다. 조카인 주앙 호고진스키는 10년 전 다른 가족이 숨져 리우데자네이루에서 그리 멀지 않은 마제제 시의 같은 묘지에 묻혔을 때 가힌샤의 유해도 옮겨져 틈새 납골당에 안치됐다고 얘기했다. 하지만 그 역시 이장식에 참석하지 않았고 “가족들은 어떤 공식 문서도 받지 못했다”고 털어놓았다. 마제의 묘지 관리인은 “그가 묻혀 있었다는 확실한 물증이 없다. 그 시신이 발굴됐다는 정보를 갖고 있지만 이를 증명할 어떤 문서도 없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하파엘 투바라우 시장은 가족의 동의를 얻어 묘지를 다시 발굴해 DNA 테스트를 해보자고 제안했다. 이곳에는 가힌샤 이름이 붙여진 묘지가 두 기 있는데 하나는 1983년 사망 직후 만들어져 앞의 다른 가족이 곁에 묻혀 있는 것이고, 두 번째 것은 1985년 세워져 오벨리스크가 표식된 것이 있다. 포르투갈어로 ‘작은 굴뚝새’를 뜻하는 가힌샤는 많은 이들에 의해 역사상 가장 위대한 드리블을 구사한 선수로 기억되고 있다. 하지만 그의 커리어는 지나친 음주 때문에 색이 바랬고 그는 간경화로 세상을 떴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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