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61세
    2026-02-22
    검색기록 지우기
  • 미르
    2026-02-22
    검색기록 지우기
  • 미주
    2026-02-22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906
  • [선택! 역사를 갈랐다] (23) 노론 명문 가문 박지원 vs 남인 몰락 가문 정약용

    [선택! 역사를 갈랐다] (23) 노론 명문 가문 박지원 vs 남인 몰락 가문 정약용

    연암은 아무런 관직도 없이 중국에 갔다. 집안 덕이었다. 건륭제의 칠순 생일을 축하하는 사신단 책임자(정사)로 금성도위 박명원이 임명되었는데 그가 연암의 삼종형(팔촌)이어서 따라갈 수 있었던 것이다. 다산은 중국에 한 번도 가지 못했다. 연암(1737~1805)과 다산(1762~1836)은 모두 영조 시대에 태어났다. 다만 연암이 다산보다 25세 위다. 연암의 집안은 반남 박씨로 노론 명문가로 꼽혔다. 다산의 집안은 압해 정씨로 정치적으로 실세한 남인 몰락 가문이었다. 연암 박지원과 다산 정약용. 두 사람은 대표적인 실학자로 나란히 거론된다. 그런데 두 사람은 같다고 보면 문득 다르고 다르다고 보면 문득 같다. 연암은 당대의 주류 다수파에 속했으면서도 비주류 소수파의 모습이 보인다. 다산은 당대의 비주류 소수파에 속했으면서도 주류 다수파의 모습이 보인다. 연암은 16세에 결혼해 장인의 지도를 받으면서 본격적으로 학업에 임했다. 공부가 늦은 감이 있다. 다산은 어린 시절부터 잘나갔다.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아버지의 지도를 받으면서 일찌감치 학업에 정진했다. 7세에 시를 쓰기 시작하고 10세에 시집을 만들 정도였다. 연암은 몇 차례 과거를 봤지만 이내 단념하고 말았다. 다산은 과거 공부를 열심히 했다. 과거에 합격해 22세에 성균관에 들어갔고 28세에 벼슬길에 나갔다. 과거를 통과하지 않았던 연암은 50세가 넘어서야 정조의 배려와 친구의 천거로 벼슬에 나아갔다. 55세에 첫 지방수령직으로 안의현감에 임명되었다. 지방관 경력을 잠시 비교해보자. 다산은 36세의 나이에 곡산부사로 나갔다. 같은 해에 연암은 61세에 면천군수로, 그 후 64세에 양양부사로 승진되었다. 다산은 30대 부사, 연암은 60대 부사였다. 아무튼 문과에 급제하지 않고도 양양부사에 임명된 사람은 연암이 처음이었다고 한다. ●과거 단념·서얼들과 교류… 연암의 ‘강남 스타일’ 과거를 단념한 연암은 30대였던 1760년대 후반부터 탑골공원 근처에 살면서 홍대용, 이덕무, 유득공, 박제가 등과 교유했다. 주로 노론 출신이라는 점과 이덕무 등이 신분상 천대받은 서얼이라는 점이 주목된다. 이들은 이른바 ‘북학파’ ‘연암그룹’ 또는 ‘백탑시사’ 등으로 불린다. 10대의 다산은 줄곧 둘째 형 정약전과 함께 다녔고 성호 이익의 가르침을 받은 권철신, 이가환 등을 만나고 한국 천주교를 스스로 일으킨 이벽, 이승훈과 어울렸다. 이들은 ‘성호학파’ 또는 ‘기호남인’으로 불린다. 다산은 15세에 결혼한 후 서울 남촌에서 살았다. 연암은 고관대작들이 많이 사는 서울 북촌에 살았으니 요즘으로 치면 연암은 강남, 다산은 강북에 산 셈이다. 두 사람은 문장가, 학자로서 스타일이 사뭇 다르다. 사마천의 ‘사기’를 읽을 때 연암은 사마천의 마음을 읽으라 했다. 다산은 연표를 꼼꼼히 챙기라 했다. 연암은 사물을 제대로 보기 위해 마음을 비우라 했다. 다산은 글을 쓰려면 속을 꽉 채우라 했다. 연암은 시를 별로 남기지 않았는데 다산은 마치 일기 쓰듯 많은 시를 남겼다. 연암은 글쓰기엔 요령이 있다고 가르치는데 다산은 문장학이야말로 유학의 큰 해악이라고 내쳤다. 연암은 문장가, 다산은 학자로서의 면모가 두드러진다. 글쓰기에는 두 방법이 있다고 하는데 은밀하게 감추는 방법과 들춰내 드러내는 방법이 그것이다. 연암의 글은 감추는 방법을 잘 활용했다. 다 읽고 나서도 그의 뜻을 제대로 포착했는지 돌아보게 한다. 다산의 글은 명징하게 드러내는 방법을 주로 했다. 읽노라면 곡진한 느낌을 준다. 연암은 인상파 화가인 듯하고, 다산은 사실주의 작가인 듯하다. 연암은 정조에 의해 당시의 자유분방한 문체를 주도한 죄인으로 지목되었다. 다산은 정조의 우등생이요 모범생이었다. 다산은 정조의 순정한 문체 주장에 적극 동조했다. 다산은 당시 사교라 불린 천주교에 감화돼 적극 동조했다가 나중에 태도를 바꾸어 거리를 두었다. 반성문도 썼다. 연암은 천주교에 대해 부정적이었지만 폭력적 탄압에는 반대했다. 이렇듯 다르다 보니 동시대 인물인데도 두 사람이 만났는지조차 의문스럽다. 나이도 차이나고 사는 동네도 달랐지 않은가. 두 사람을 연결하는 인물로 박제가(1750~1805)를 생각할 수 있다. 그는 규장각 검서관으로 낮에는 규장각에서 다산과 함께 근무했고 저녁에 퇴근하면 연암그룹과 어울렸을 것이다. 박제가를 통해, 또 베스트셀러 작가 연암의 이름이 이미 높았기에 다산은 연암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혹 길 가다 우연히 마주치면 다산이 손위인 연암에게 먼저 인사를 했을 것이다. 인사를 받은 연암은 어떻게 대꾸했을까? 젊은 친구가 누군지 몰라 심드렁하게 인사만 받았을까, 자신보다 품계가 높은 관리라 공손하게 인사를 받았을까. 다산이 18년 유배 기간이 끝날 무렵에 마무리한 ‘경세유표’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실려 있다. “규장각 검서관 박제가가 지은 ‘북학의’ 6권을 보았으며 유신(儒臣) 박지원이 저술한 ‘열하일기’ 20권을 보았다. 그런데 거기에 실린 중국의 기구 이용 제도는 보통 사람이 헤아리기 힘든 것이 많았다.” 다산의 ‘경세유표’는 유가적 이상에 입각한 국정 전반의 제도 개혁안이다. 여기서 다산은 청나라 문물을 배우자는 북학(北學)의 의견에 적극 동조하여 오로지 그것을 직무로 하는 관청을 별도로 설치하자고 제안했다. 이른바 ‘이용감’이었다. 다산은 ‘경세유표’에서 제안한 제도 중 꼭 그대로 시행되길 바라는 열다섯 가지를 꼽았는데 이용감 설치는 그중 하나다. ●저자와 독자 그 이상의 연결고리 ‘열하일기’ 이로 볼 때 두 사람은 ‘열하일기’로 연결되고 있었다. 물론 저자와 독자의 관계였지만. ‘열하일기’는 연암이 중국에 다녀와서 쓴 책이다. 하룻밤에 아홉 번 강을 건너며 깨달음을 얻었다는 ‘일야구도하기’ 또는 유명한 소설 ‘허생전’을 교과서에서 읽었을 텐데 모두 ‘열하일기’에 실려 있다. 그래서 ‘열하일기’를 여행기 또는 문학작품으로만 생각할지 모른다. 그 해 여름, 44세 연암은 붓 두 자루, 먹 하나, 작은 공책 네 권 등 간단한 행장으로 중국을 향했다. 압록강을 눈앞에 두고 자객 형가를 생각했다. 진시황을 죽이러 적국이며 강대국인 진나라로 강을 건너가기 직전의 형가가 하필 떠올랐을까! 연암은 국경을 넘어 살림살이가 넉넉해 보이는 여염집을 보고서는 질투심이 끓어올랐다. 변방의 촌마을이 이 정도라니. 연암은 중국에서 정말 볼 만한 것은 큰 누각이나 성곽이 아니라 깨진 기왓장과 똥거름이라고 했다. 민간의 이용후생을 잘 보여주기 때문이었다. 연암은 도중에 목격한 수레, 벽돌, 목축, 선박 등 여러 제도들을 소개했다. 허구적이고 자폐적인 북벌론의 미몽에서 깨어나 북학을 해야만 북벌도 가능할 터. 대내용 북벌만 강경하게 외칠 뿐 민생은 나아지지 않는 조선 현실에 대한 분노였다. ‘열하일기’를 통해 연암은 여정의 진행에 따라 보고 들은 것들을 전하면서 갖가지 주제를 넘나들었다. 형식 또한 일기 형식으로 시작해 다양한 산문 형식을 시도했다. 이러한 다양한 주제와 형식에도 불구하고 ‘열하일기’ 전체에 흐르는 주제의 하나는 ‘천하의 정세를 살피는 것’이었다. 연암은 사신의 일행이면서 공식 임무가 없었다. 새벽이면 일행보다 먼저 출발해 여기저기 많은 곳을 둘러보려고 했고 저녁이면 몰래 숙소를 벗어나 중국 지식인들과 만나 필담을 나누다 새벽에 들어오곤 했다. 청 황실의 대내외 통제 술책을 간파하면서 지금 태평연월을 누리고 있는 천하가 장차 어찌 될지 변역의 기미를 살폈다. ‘열하일기’는 현실적 존재인 청 왕조를 오랑캐라 외면하고 무시하는 자폐에 대한 질타였다. 다양한 주제를 통해 조선의 식자층 내지 지배층에 고정관념과 좁은 소견에서 벗어나 열린 마음을 갖도록 촉구하는 것이었다. 내 눈으로만 보는 자폐와 남의 눈으로만 보는 자아 상실의 극단은 늘 경계할 병통이다. 또한 천하대세를 전망하고 변역의 기미를 놓치지 않는 예민함은 지금도 절실하다. 아, 아깝다. 또 다른 위대한 저술가 다산은 해외 여행 갈 기회가 한 번도 없었다. 그도 외국에 다녀왔다면 필시 굉장한 저서를 낳았을 터이다. 다산이 유배 18년 동안에 육경사서와 정치·경제·행정·역사·지리·언어·국방·의학 등 다방면에 걸쳐 이룬 저서가 모두 500권이 넘었다는 사실을 상기해보라. 그는 다만 ‘열하일기’를 비롯하여 중국과 일본에 관한 책을 부지런히 찾아 읽었을 뿐이다. 그러나 당대에 큰 반향을 일으킨 연암의 역저 ‘열하일기’는 점차 위축되었다. 그릇된 문체의 본산으로 지목되고 오랑캐 연호를 사용한 원고라는 비난을 들으면서 후손조차 문집 간행을 보류했을 정도다. 나라를 잃은 1911년에 와서야 활자로 간행되었다. 다산의 역저 ‘경세유표’ 등도 빛을 보지 못하다가 조선왕조가 망할 때에 가서야 주목을 받았다. 연암은 문체 문제로, 다산은 천주교 문제로 각각 정조의 지적을 받았지만 두 사람 다 정조에게 능력을 인정받았다. 정조가 죽자 다산은 유배를 가고 연암은 몇 년 후 세상을 떴다. 조선왕조는 망하기 직전인 1910년 다산과 연암에게 시호를 내렸는데 둘 다 ‘문도공’(文度公)이었다. 만시지탄. 그들은 글로써 세상을 바꾸고자 필생의 역저를 남겼다. 그 진가는 뜻있는 독자들에게 달렸다. 김태희(다산연구소 기획실장)
  • [부고] 美 첫 여성 우주인 샐리 라이드 하늘로

    미국 최초의 여성 우주인 샐리 라이드가 23일(현지시간) 미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 자택에서 췌장암으로 사망했다고 AP통신이 보도했다. 61세. AP에 따르면 ‘샐리 라이드 과학 재단’은 웹사이트를 통해 “샐리는 활력과 왕성한 호기심, 지식과 열정, 헌신, 사랑으로 가득 찬 삶을 살았다.”면서 “그녀는 한계를 모르는 정신력의 소유자였다.”고 밝혔다. 라이드는 1983년 6월 18일 미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7호 우주왕복선 챌린저호에 탑승해 우주 공간에 진출했다. 로스앤젤레스에서 태어난 그녀는 스탠퍼드대에서 물리학 박사 학위를 받은 직후인 1978년에 우주인으로 선발돼 미 항공우주국(나사) 지상 요원으로 일하면서 2호, 3호 우주왕복선 통신 담당으로 활동했다. 2개의 통신 위성을 우주 공간에 배치하고 우주 공간에서 약학 실험을 수행하는 임무를 띤 챌린저호에 탑승해 사상 최초로 우주 공간에서 로봇 팔을 작동시켜 위성을 회수한 여성 우주인이 됐다. 라이드는 1984년 다시 우주왕복선을 타고 우주에 나갔다.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
  • [선택! 역사를 갈랐다} (20) 다산 정약용과 풍석 서유구

    [선택! 역사를 갈랐다} (20) 다산 정약용과 풍석 서유구

    다산 정약용(1762~1836)은 조선 최고의 스타다. 풍석 서유구(1764~1845)는 조선의 무명스타다. 서로 두 살 터울. 다산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조명했다. 풍석은 너무했다 싶을 정도로 관심을 받지 못했다. 정조의 총애를 받았고, 당대 최고의 엘리트였고, 18년이라는 정치적 유폐기를 거쳤고, 유폐기에 대작을 저술했고, 조선의 융성을 위해 노심초사했고, 남양주에서 생을 마감했으며, 사후 많은 사대부가 추앙했다. 다산만의 얘기라 생각하는가. 풍석도 꼭 그랬다. 그럼에도, 두 위인의 학문적 지향은 전혀 달랐다. 후생들은 결국 다산에게 마음을 기울였고, 풍석은 거의 뒷전이었다. 다산은 풍석의 과거 선배다. 요샛말로 다산은 1789년에 급제한 89학번으로 60명 중 2등, 풍석은 1790년에 급제한 90학번으로 46명 중 24등이었다. 두 사람 모두 직부전시(直赴殿試) 명을 받았다. 이는 여러 절차를 생략하고 곧장 최종 과거에 응시하라는 왕명이다. 이러면 급제는 따 놓은 당상이다. 급제 후 곧장 초계문신이 되었다는 점도 같다. 초계문신은 정조의 최측근 문신 집단이다. 다산의 승진 속도는 풍석보다 빨랐다. 고위직인 정3품 당상관 품계를 5년 먼저 받은 것이다. 정조가 군주이자 학문적 스승을 자처하며 왕권을 강고하게 행사할 때까지, 둘은 겉으로 보기에 같은 쪽을 향하는 듯했다. 다산은 한미한 집안 출신이다. 천주교에 관심을 가지면서 고초를 겪기도 했으나, 정조의 두터운 신임은 여전했다. 이에 반해 풍석은 최대 문벌 중 하나인 대구(달성) 서씨의 후예다. 게다가 진퇴에 신중했기에 큰 반대에 부딪힌 적이 없다. 다산이 ‘문제적 범생’이라면 풍석은 ‘범생’ 그 자체다. ●정약용·서유구 정치적 공백기 18년 정조는 집권 초부터 젊은 문신 양성의 일환으로 ‘경사강의’(經史講義)라는 재교육 프로그램을 시행했다. 이 중 시경(詩經)을 분석하는 ‘시경강의’에 두 사람이 동시에 참여한다. 이 시경강의는 16년 동안 25회에 걸쳐 실시했던 경사강의 중 가장 큰 규모였다. 정조는 590문제를 출제했고, 초계문신에게 40일이 주어졌다. 이로도 모자라 20일을 연장했다는 다산의 고백에서 얼마나 힘든 테스트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정조의 문집 ‘홍재전서’에는 이 중 579개의 문제와 답을 적어두었다. 수험자가 18명이니, 1인당 32문제꼴로 답안이 채택되어야 평균이다. 누구 답변이 가장 많이 채택되었겠는가. 우리의 영웅 다산일 거라 짐작한 독자에게는 미안하다. 풍석이 독보적이다. 풍석의 답안은 총 181개로, 전체의 31.3%다. 시작과 끝 문제의 답안 역시 풍석의 것이었다. 다산의 답안은 117개가 실렸으며 총 20.2%를 차지한다. 다산의 것도 결코 적은 비중은 아니나 풍석의 월등함에 빛이 바랬다. 시경강의는 두 사람에게 큰 이력이었다. 다산은 인생에서 가장 큰 영광의 추억으로 이 시경강의를 들었다. 다음과 같은 정조의 어평(御評)을 두고두고 써먹었다. “백가(百家)의 말을 두루 인용하여 그 출처가 무궁하니, 진실로 평소의 온축이 깊고 넓지 않다면 어찌 이와 같을 수 있으랴.” 자신이 남긴 ‘시경강의’ 서문에는 물론이고, 스스로 쓴 묘지명에도, 가장 존경했던 형 정약전에게도, 아들에게도 그날의 기억을 되풀이했다. 또 자신의 답안이 최고였다고 자랑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작 압도적 수석인 풍석은 이 기억을 되새기지 않았다. “책을 열자 바로 개안하는 느낌이다.”라거나 “근거가 분명하고 충분하며 언어가 알맞고 정연하여 고도의 전문성을 갖춘 이에게서 나온 것임을 알 수 있다.”는 등 총 6군데서 어평을 받았으면서 말이다. 그래도 젊은 시절 풍석은 분명히 경학의 당대 최고 실력자 중 한 사람이었다. 다산은 정조 사후 천주학 타도 바람에 휘말려 귀양살이를 시작한다(1801년). 풍석은 이 바람과 무관하게 승승장구했다. 그러다 5년 뒤 김달순 옥사를 계기로 풍석의 탄탄대로에 탈이 났다. 작은아버지 경기감사 서형수는 유배형을 받고, 재종숙부 영의정 서매수가 정계에서 축출되면서 가세는 급격히 쇠락한다. 연좌의 공포에 휩싸인 풍석의 선택은 귀향이었다. ●정약용, 이상적 통치 목표 ´경학·경세학´ 몰두 억울하게 유배지에 갇힌 다산과 죄 없이 죄인을 자처하며 낙향한 풍석. 과정이 어쨌든 불우한 처지이기는 피차일반이었다. 정치적 공백기 18년. 그러나 여기서부터 이들의 길은 판이하게 갈린다. 다산은 유학의 정통 분야인 경학과 경세학(經世學)에 몰두했다. 조선 유자의 지향점을 요약하면 수기(修己)와 치인(治人). 수기는 자신의 몸과 덕성을 수양하는 일이요, 치인은 백성을 다스리는 일이다. 수기는 치인을 위한 인문학적 토양이고, 치인은 자기 수양의 경세론적 확장이다. 다산은 61세에 자신의 학문을 이렇게 정리했다. “육경(六經)과 사서(四書)로 자기 몸을 닦고 1표(表)와 2서(書)로 천하·국가를 다스리니, 본말을 갖추었다.” 육경과 사서는 경학이고, 수기의 세계다. 경세유표·목민심서·흠흠심서는 경세학이고, 치인의 영역이다. 저술은 경집(經集) 232권, 1표2서를 포함한 문집 260여 권으로 총 500권이 다 된다. 다산의 지향은 조선 제도를 개혁하는 일이었다. 반면 풍석은 파주 장단으로 귀농하고서 경학과 경세학을 철저히 외면했다. 경학을 해봐야 옛 사람의 중언부언이고, 경세학을 해봐야 결국 ‘흙 국’이나 ‘종이 떡’처럼 공허한 말장난에 불과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서 ‘잡학’ 마니아가 된다. 풍석의 잡학은 ‘임원경제지’(林園經濟誌)에 질서 있게 배열되었다. 농학, 천문학, 공학, 수학, 요리학, 의학, 어업, 예술, 상업 등 총 16분야다. 경학과 경세학의 언어를 빌리지 않고서 113권으로 마무리했다. 종류는 다양하지만 주제는 하나다. 시골에서의 자립적인 삶을 위한 지식 체계. 풍석의 지향은 사대부 일상을 개혁하는 일이었다. 풍석은 18년 공백 후 정계에 복귀해 15년간 고위직을 두루 거쳤다. 그 와중에도 시골생활 백과사전 정리를 그치지 않았다. 임원 생활을 대비했고 임원을 동경하기도 했다. 반면 다산은 해배 후 야인으로 머물러야 했다. 그래도 여전히 경학, 경세학 정리와 심화에 몰두했다. 국정 참여의 뜻을 꺾지 않은 듯하다. 묘한 대비가 아닐 수 없다. 다산과 풍석은 일생을 어떻게 정리했을까. 다산은 ‘자찬 묘지명’(1822년, 61세)을, 풍석은 ‘오비거사 생광 자표’(1842년, 79세)라는 다소 긴 이름으로 자신의 묘지명을 썼다. 환갑 때 쓴 다산의 묘지명은 분량이 아주 많다. 주요 개인사를 모두 적었고 저술 체계도 매우 상세히 서술했다. 글자 수가 자그마치 1만 2316자! 내가 아는 자기 묘지명 중 가장 길다. 1000자 내외가 대부분이다. 가슴에 묻어둔 한이 많았던 걸까. 이와 대조적으로 풍석은 평생을 다섯 시기로 구분하여, 그 시기를 모두 허비했다며 반성으로 일관한다. 심지어 40년 가까이 공 들인 ‘임원경제지’ 저술도 인쇄할 뒷심이 없어 낭비였다고 회고한다. 자신을 오비거사(五費居士)로 칭한 이유이기도 하다. 다산의 묘지명은 828자인 풍석의 것보다 무려 15배나 많다. 파란만장으로 말하면 누군들 할 말이 없을까마는, 다산은 거의 회고록 콘셉트이었고, 풍석은 반성문 콘셉트였다. ●서유구, 현실에서 적용되지 않는 지식 외면 다산은 농사를 짓지 않고 농업 원론만 얘기했다. 풍석은 논두렁 밭두렁을 돌아다닌 체험으로 구체적인 농사 기술을 제안했다. 두 사람의 차이는 여기서 비롯된다. 풍석은 입으로만 농사를 짓지 않았고, 글로만 물고기를 잡지 않았다. 그리고 온갖 정보를 조직적으로 정리했다. 그뿐만 아니라 삶의 현장에서 실행되거나 실행되어야 할 선진 기술을 전달하려는 노력이 역력하다. 다산은 스스로 말한다. 자신의 경세학은 “지금의 쓰임에 구애되지 않고 기준을 제시해 우리나라를 새롭게 하려는 연구다.”라고. 당대의 활용보다는 이상적 통치 기준을 만들겠다는 포부다. 하지만, 풍석이 흙으로 끓인 국 즉 토갱(土羹)이요, 종이로 만든 떡 즉 지병(紙餠)이라 비판했던 저술은 바로 이런 거였다. 풍석은 이상을 추구하되 반드시 이 땅의 현실에 적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강박에 가까울 정도의 철저한 현실론을 견지했다. 실현할 수 없는 지식은 ‘토갱지병’이다! 이상적 기준을 제시하고서 현실을 이상으로 밀고가려 했던 다산의 방법론과는 대조적이다. 풍석의 이용후생론은 바로 이런 실용학이었다. 다산 탄신 250주기를 맞아 여기저기서 다산에 대한 찬사가 쏟아지고 있다. ‘조선의 다빈치’라는 평가도 나온다. 그럼에도, 그의 위대성을 유학사상과 정치철학에서 찾으려는 경향은 여전하다. 다산의 저작을 폄하하려는 마음은 없다. 그러나 다산에게서 조선의 모든 잠재성과 가능성을 찾으려는 경향은 지나치다. 풍석의 평생 역작 ‘임원경제지’는 제도적 개혁을 주장하지 않는다. 개혁은 일상에서 일어나야 한다는 게 풍석의 신념이었다. 풍석은 ‘놈팡이 선비’를 제일 혐오했다. “곡식만 축내며 보탬이 안 되는 자 중에 저술하는 선비가 으뜸이다!” 선비들이여, 농업·공업·상업 알기를 똥으로 아는 그 엘리트 의식부터 싹 뜯어고쳐라. 버러지처럼 놀고먹지 마라. 경서를 공부하되 제 식구 먹을거리, 입을거리, 살 곳은 유지하면서 하라. 방 안에 틀어 앉아 공맹과 성리를 논할 시간에 밖에서 바지 걷어붙이고 쟁기질하라! 그물 던져 물고기 잡아라! 짐 지고 나가 장사하라! 몸놀림을 혁신하라. 땀 흘려 일해서 벌어먹는 일을 점점 기피하고, 종일 컴퓨터로 하루를 보내는 일이 사람다운 노동이라고 여기는 우리가 여기서 얻을 힌트는 과연 없는 것일까. 정명현(임원경제연구소 소장)
  • “국민연금·건보 제도개선 나설 것”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국민연금·건강보험 등에 대한 제도 개선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박 장관은 30일 서울 강남구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호텔에서 열린 ‘국제통화기금(IMF) 아시아 지역 재정세미나’ 개막 연설에서 “지난해부터 (저출산·고령화 등) 인구변화 요인 등을 감안한 미래 재정소요를 정확히 산정하기 위해 장기재정전망을 실시하고 있다.”며 “이를 바탕으로 국민연금·건강보험 등 주요 사회제도에 대한 제도 개선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새 복지제도를 도입할 경우에는 일하는 복지, 맞춤형 복지 원칙 하에 성장과 복지의 선순환 구조가 형성되도록 제도를 설계하고 꼭 필요한 사람에게 필요한 혜택이 제공되도록 해 복지로 인한 비효율성을 최소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정부가 변화를 추진 중인 복지제도에 추가 대책이 더해질 전망이다. 현재 60세면 지급되는 국민연금은 내년부터 5년간 61세로 상향된다. 5년마다 1년씩 연장되는 방식으로 2033년 65세까지 지급연령이 올라간다. 보건복지부는 내년 지급연령 첫 상향을 앞두고 연금지급액의 부분 연기, 일정 수준 이상 소득이 있는 경우 연령별 일부 감액에서 소득수준별로 감액하는 내용을 담은 국민연금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한 상태다. 고령자의 근로 유인을 높이고 지급방법을 합리화하기 위해서다. 건강보험 예상수입액의 20%(국고지원금 14%, 담배부담금 6%)를 국고에서 지원하는 제도는 지난해 말 종료 예정이었으나 5년 더 연장됐다. 재정부는 지원액 규모의 예측 가능성을 높이고 건강보험 지출을 효율화할 수 있는 방향으로 지원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전경하기자 lark3@seoul.co.kr
  • [초고령 사회 일본의 그림자] ‘65세 정년 의무화’ 재계 반발

    일본 정부가 내년부터 60세에 정년퇴직하는 근로자 중 희망자 전원을 65세까지 재고용하는 것을 의무화하는 고연령자 고용안정법 개정안을 추진하자 재계가 강력 반발하고 있다. 가뜩이나 취업이 어려운 젊은 층의 일자리를 뺏는 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는 등 기대와 불안이 교차하고 있는 실정이다. 정부는 지난 9일 각의에서 개정안을 통과시킨 뒤 현재 국회에 제출해 놓은 상태다. 일본 정부가 기업의 고용연장 의무화라는 칼을 빼든 것은 현재 60세인 연금지급 연령이 2013년부터 61세로 연장되고, 이후 3년마다 1년씩 늦춰져 2025년에는 65세로 조정되기 때문이다. 연금 지급연령을 늦추는 것은 막대한 국민연금 지출로 나랏빚이 늘어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다. 정년퇴직 연령은 그대로 두고 연급 지급 시기만 늦추면 무소득 고령자 문제가 심각해진다. 결국 고용 연장을 의무화하면 청년실업이 악화될 것이란 우려를 무릅쓰고 일본 정부로선 정년 연장을 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일본 내 대다수의 기업은 정년 후 재고용을 희망하는 사원에 대해 건강 상태나 일에 대한 의욕, 인사고과 등을 기준으로 이를 허용하고 있다. 희망자 대부분을 재고용하고 있지만 후생노동성의 지난해 조사에서는 정년을 맞이한 약 43만 5000명 가운데 1.8%에 해당하는 약 7600명이 재취업에 실패했다. 후생노동성은 이번 법 개정을 통해 건강상태나 근무평가 등 고용연장의 단서조항을 아예 없애겠다는 복안이다. 이에 대해 일본 최대 재계단체인 게이단렌은 “65세까지 고용을 강제하는 것은 기업의 고용비용을 증가시켜 오히려 고용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며 반대했다. 대다수 기업들도 일률적으로 전원 재고용을 의무화하면 직장 내 사기가 떨어지고 인건비 부담이 늘어날 수 있다고 호소하고 있다. 도쿄 이종락특파원 jrlee@seoul.co.kr
  • [Weekend inside] 전국 도시철도 지하철역 위탁-직영관리 딜레마

    [Weekend inside] 전국 도시철도 지하철역 위탁-직영관리 딜레마

    “직영이냐, 위탁이냐.” 대전도시철도공사 직원 친·인척들이 무더기로 역무원에 채용된 사실<서울신문 3월 2일 자 12면>이 드러나면서 지하철 역 위탁관리가 주목을 받고 있다. 대구·인천·광주 등도 예산 절감을 위해 일부 역을 위탁관리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의 ‘비정규직 감축’과 ‘비용절감’이란 모순된 정책이 충돌, 딜레마에 빠졌다. ●대전·대구 위탁관리 年2억~40억 절감 9일 대전도시철도공사에 따르면 지하철 1호선 22개 역 중 20개 역을 위탁관리해 연간 40억원을 절감한다. 월급 400만원이 넘는 정규직 대신 140만~150만원에 계약직을 채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공사는 모든 역을 직영하면 인건비가 연간 96억 7380만원에 이르지만 위탁관리하면 57억 5760만원에 그친다. 대전지하철은 연간 적자액이 220억원이다. 대구도 56개 지하철 역 중 14개 역을 위탁 운영한다. 대구도시철도공사는 위탁 역당 연간 3억 2600만원을 지급한다. 직영하면 인건비가 6억 200만원에 이르러 1개 역당 2억 7600만원을 절감한다. 대구는 오는 9월 개통하는 2호선 경산 연장구간 3개 역 중 2곳도 위탁 운영할 계획이다. 광주도 19개 중 시·종점 역 2곳을 제외한 17개 역을 위탁관리한다. 각 지역 도시철도공사는 예산절감뿐 아니라 부담 없는 역무원 관리와 손쉬운 비정규직 구조조정 등을 이유로 위탁관리를 도입했으나 적잖은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낙하산 인사 의혹이다. 대전지하철의 경우 통합역장을 포함한 18명의 위탁 역장 중 절반인 9명이 공사 직원 및 시 공무원 출신이다. 나머지 역장도 군인·경찰 출신으로 기업체 출신은 4명밖에 되지 않는다. 반면 대구는 공사 직원 인사적체 등으로 골머리를 앓는 것으로 알려졌다. 역무원의 전문성도 떨어진다. 개인사업자인 역장이 마음대로 뽑을 수 있기 때문이다. 민간경영기법을 도입한다는 목적과 달리 공사 직원의 부인 등이 업무를 차지하기도 한다. 공사가 이들을 교육하려고 해도 인사권자가 아니다 보니 프로그램 전달 수준에 그친다. 업무의 연속성도 떨어진다. 퇴직 공무원이 맡은 역장은 나이 제한(61세)에 걸려서, 역무원은 역장이 바뀌면서 재계약이 안 되는 경우가 많은 탓이다. 가장 중요한 안전성이 문제가 될 수 있다. ●인사문제·안전성 우려 김용덕 대전도시철도공사 기획홍보팀 차장은 “직영과 위탁관리의 장단점이 있는 데다 정부의 비정규직 감축과 예산 절감이란 상호 모순된 정책 사이에서 어떤 운용방법이 옳은지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러다 보니 정부의 진단도 엇갈린다. 감사원은 2008년 대전도시철도공사가 역 위탁관리로 예산을 절감했다며 공기업 수범사례로 선정했으나 2010년 공기업 선진화조직진단에서는 직영을 권유했다. 대전지하철이 2006년 3월 개통 이후 국내 처음으로 전체 역을 위탁관리하다 지난해 4월 지족역, 지난달 정부청사역을 직영 체제로 바꾼 이유다. 금홍섭 대전참여자치시민연대 사무처장은 “지하철 역 위탁관리는 서비스, 안전관리, 업무능력 등에서 문제가 될 수 있다.”면서 “장기적으로는 직영으로 가야 한다. 공공 부문은 정규직이 맡는 게 맞다.”고 지적했다. 대전 이천열기자·전국종합 sky@seoul.co.kr
  • [씨줄날줄] 세대교체/곽태헌 논설위원

    4·11 총선을 앞두고 여야의 공천 작업이 본격화하고 있다. 70대인 박희태 국회의장과 새누리당 이상득 의원은 불명예스럽게 4·11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고, 같은 70대인 민주통합당 박상천 의원은 명예로운 퇴진을 선택했다. 선거를 앞두고는 자연스럽게 세대교체가 이뤄진다. 공천을 받지 못하거나, 낙선에 따라 타의(他意)로 정계를 떠나는 경우도 있지만 자의(自意)로 물러나는 지혜가 있는 정치인도 많다. 보통 국회의원 선거를 할 때마다 초선의원 비율은 40% 안팎이나 된다. 세대교체를 간접적으로 알 수 있는 지표다. 오는 12월에 실시될 대통령선거를 통해서도 세대교체는 분명하게 이뤄지게 돼 있다. 현재 여론조사상 빅3인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은 50세,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은 60세, 문재인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은 61세다. 빅3 중 누가 대통령에 당선되든 6·25 이후 출생한 첫 대통령이라는 기록을 갖게 된다. 시대흐름을 보면 2017년 대선의 주인공은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가 될 가능성이 사실상 100%다. 한국정치사의 대표적인 세대교체 계기는 1971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나온 ‘40대 기수론’이다. 당시 제1야당인 신민당 김영삼(YS) 의원이 대통령후보를 겨냥, ‘40대 기수론’을 들고나왔다. 김대중(DJ) 전 의원과 이철승 의원이 호응하면서 ‘40대 기수론’은 야당의 세대교체를 가속화시켰다. DJ는 1차 투표에서는 YS에 뒤졌지만 결선투표에서 이철승 의원 지지표를 대거 흡수하면서 대통령후보가 됐다. DJ는 1997년 대선에서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를 꺾고 당선됐다. 당시 나이는 72세. DJ에 5년 앞서 대통령의 꿈을 이뤘던 YS도 70대 초까지는 현직에 있었다. 구상유취(口尙乳臭)하다는 말도 들으면서 40대 기수론을 주창했던 YS와 DJ 모두 70대까지 정치판을 흔든 것은 아이러니다. 정치판이든, 스포츠계든 모든 분야에서의 세대교체는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다소 인위적으로 이뤄질 때에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한국은행의 부총재, 부총재보, 국·실장급 인사를 놓고 말이 많다. 김중수 한은 총재는 보수적인 한은에서는 이례적일 정도로 연공서열이 파괴된 세대교체 인사를 단행했다. 50대 초·중반의 임원은 물론 고참 1급이 맡았던 주요 국장에 2급을 중용하면서 한은이 술렁이고 있다. 분위기 쇄신도 좋고, 세대교체도 좋지만 어느 조직이든 능력이 아닌 나이가 인사의 결정적인 잣대가 되는 것은 곤란하다. 곽태헌 논설위원 tiger@seoul.co.kr
  • 30년째 문구점 운영… 중동서 ‘푸틴’과 CF 촬영

    30년째 문구점 운영… 중동서 ‘푸틴’과 CF 촬영

    전남 장흥에서 태어났다. 올해 61세다. 30년째 장위동에서 도장과 상패, 판촉물 등을 제작하는 문구점을 운영하고 있다. 김정일 위원장과 닮았다는 얘기를 자주 들었고 1995년 김진명 소설이 원작인 영화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에 출연하면서 영화배우로 이름을 알렸다. 이후 영국 BBC 방송, 일본 후지 TV, 미국 CNN, 호주 ABC 방송 등에 출연하면서 ‘짝퉁 김정일’로 화제가 됐다. 지금은 영화배우협회 자문위원, 국방부 홍보영화위원장 등을 맡아 다양한 사회 활동을 하고 있다. 주요 경력으로는 중동지역 5개국 TV광고 및 CF 활동(2005), 가수 싸이 뮤직비디오 출연(2005), MBC 화제집중·KBS전국노래자랑 참가 3회(2006), 일본 카쇼 전자수첩 TV 광고·영국 스카이 TV 출연(2007), SBS 생방송 투데이·SBS 스타킹 출연(2007) 등이 있다. 현재 장위3동 새마을 금고 이사, 장위3동 제4통장, 남인수 선생 기념사업회 운영위원, 성북구 재난 방재단 대표 등을 역임하고 있다.
  • 둘이 합쳐 215세…세계 최장수 부부, 비결은?

    두 사람의 합친 나이가 215세에 달하는 중국 부부가 ‘세계 최장수 부부’ 세계기록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고 광저우 일간지인 양청완바오가 26일 보도했다. 구이저우성 깊은 산골에 사는 양정종·진지펀 부부는 올해 각각 109세·106세에 접어들었다. 두 사람의 나이를 합치면 무려 215세에 달한다. 19세·17세 때 결혼해 89년간 2남4녀를 낳았으며, 큰 아들은 일찍 세상을 떠났다. 둘째 아들은 올해 61세이며 손자 14명, 증손자 10명 등 대식구를 이뤘다. 남편 양씨는 현재 거동이 약간 불편하지만, 두 사람 모두 흔한 노인성 질환도 앓지 않고 건강을 유지하고 있다. 마을 주민들은 “양씨 부부가 말다툼을 하거나 얼굴을 찌푸린 일을 본 적이 없다.”고 ‘증언’한다. 실제로 두 사람은 넉넉지 않은 생활에도 웃음을 잃지 않았으며, 함께 작은 밭을 일구고 적은 음식이라도 나눠먹으려 서로를 위해왔다. 장수 비결을 묻는 질문에 부인 진씨는 “그저 매일 일하고, 가족 모두 화목하며, 살면서 맞닥뜨리는 많은 일에 조급해하지 않고 마음을 편히 가지는 것”이라고 답했다. 부부지간의 애틋함을 언급하자 “남편은 이제 귀도 어둡고 눈도 어두운데, 싸울 일이 어디 있겠냐.”며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이어 “사람이 살아있을 땐 일을 해야하고,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을 때에는 살 수 없는 것”이라며 힘주어 말한 뒤 “지금도 아침 일찍 일어나 집안일과 밭일 등을 소홀히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편 중국노인학회에서는 양씨 부부를 공식적으로 ‘중국 최장수 부부’로 인정하고, 더 나아가 세계 최장수 부부의 기록에도 올릴 계획을 세우고 있다. 학회 관계자는 “최근 영국의 105세·99세 부부가 ‘현존하는 최장수 부부’ 기네스 기록에 도전한다는 소식을 접했다.”면서 “결혼한 지 90년 가까이 된 데다 이들보다 나이가 많은 양씨 부부에게도 기록에 도전할 자격이 있다.”고 말했다. 송혜민기자 huimin0217@seoul.co.kr
  • [특파원 칼럼] 일본 젊은이들 왜 분노하지 않을까/이종락 도쿄특파원

    [특파원 칼럼] 일본 젊은이들 왜 분노하지 않을까/이종락 도쿄특파원

    기자의 사무실은 일본의 입법·사법·행정부가 몰려 있는 도쿄 시내 가스미가세키의 도쿄신문 5층에 있다. 이 신문사 직원들은 만 60세에 은퇴하지만 본인이 원하면 65세까지 일할 수 있다. 물론 급여는 절반으로 깎인다. 그렇다 하더라도 기자 출신 은퇴자들의 연봉이 보통 1500만엔(약 2억 2245만원)에 이르는 점을 감안하면 절반으로 깎여도 61세부터 65세까지 매년 1억 1100만원 이상을 받을 수 있다. 도쿄신문은 한국 언론사와 마찬가지로 매년 노사 간 단체협상을 갖는다. 지난해 노사 간 최대 쟁점은 퇴직 이후 생활자금 지급 문제였다. 노동후생성이 65세 고령 인구가 3000만명에 육박하자 후생연금(한국의 국민연금)의 지급 개시 연령을 68∼70세로 상향 조정하고 있는 것에 대한 대비책이다. 노조는 65세에 은퇴한 뒤 후생연금 지급이 실제로 이뤄지는 시기까지 회사에 생활자금을 지급할 것을 요구했다. 회사가 단호히 거절해 노사 간 합의에는 이르지 못했지만 50줄만 넘으면 아무런 대책 없이 회사를 나가야 하는 우리로서는 입이 딱 벌어지는 얘기다. 일본에서 생활하면서 가장 부러운 대상이 노인들이다. 노인 세대는 고실업에 시달리고 있는 젊은 세대들에 비해 비교적 안정된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고령자들은 후생연금을 비롯해 건강보험, 개호(노인요양서비스)보험, 고령자의료제도, 생활보호제도 등에 가입해 기본적인 생활을 보장받는다. 연금가입자로서 회사를 은퇴한 사람은 아무런 일을 하지 않아도 매달 20만~25만엔(약 296만~370만원) 정도를 받는다. 이처럼 노인들의 삶이 보장된 반면 청년들은 실업률이 11.1%에 달할 정도로 냉혹한 ‘취업 빙하기’를 겪고 있다. 노동후생성과 문부과학성이 이달 초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오는 3월 4년제 대학 졸업 예정자 가운데 직장을 구했다고 답한 비율은 68.8%에 불과했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4.3% 포인트 감소한 것으로, 관련 통계가 시작된 1996년 이래 가장 낮은 수준이다. 그런데도 일본 젊은이들은 분노하지 않는다. 한국에서는 청년실업과 비싼 대학 등록금 등으로 젊은이들이 분노를 폭발시키고 있지만 이들은 잠잠하다. 세계적 이슈가 됐던 ‘월가를 점령하라’는 시위도 도쿄에서는 시민단체 관계자들 위주로 100여명이 모였을 뿐이다. 이를 두고 일본에서는 분노할 줄 모르는 청년층을 개탄하는 의견도 나온다. 현실은 각박하지만 대부분의 젊은이들이 행복하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점이 특이하다. 일본 정부가 최근 실시한 조사에서도 70%의 젊은이는 현재의 생활에 만족한다고 답해 과거 40년간의 조사에서 만족도가 가장 높았다. 이런 현상을 두고 일본의 사회학자인 후루이치 노리토시는 최근 ‘절망의 나라에 행복한 젊은이’라는 책에서 일본 젊은이들의 사고를 잘 분석했다. 후루이치는 “요즘 청년들은 미래가 불안하기 때문에 오히려 현재의 만족스러운 삶에 더 집착한다.”고 주장했다. 장래에 대한 불안감은 있어도 지금의 생활에는 불만이 없다는 얘기다. 세계 최고 전성기를 누렸던 일본에서 자랐기에 자기만족에 취해 온순하게 길들여진 탓이리라. 실제로 명문대 졸업생들은 청년 실업난에도 불구하고 취직할 때 아프리카 등 제3세계권 해외부문이 있는 기업은 꺼리는 경향이 적지 않다고 한다. 최근 일본 내 한국기업 지사에서도 일 잘하는 일본 여직원에게 해외발령을 내렸더니 3일 만에 사표를 냈다는, 우리로선 이해하기 어려운 일도 벌어졌다. 세계 최고의 품질을 자랑하는 게임기와 학용품, 전자제품에 둘러싸여 자라난 이들은 굳이 일본을 떠나 도전을 할 필요가 없는 ‘갈라파고스’에 갇혀 살아왔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설득력 있게 들린다. 오늘의 불만을 분출하며 기성 세대를 심판하는 한국 청년들의 모습이 오히려 부럽다는 일본인들의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혼란스러운 요즘이다. jrlee@seoul.co.kr
  • 연구비 3년단위 지급… 비리땐 R&D참여 10년 제한

    정부 출연연구소의 우수 연구원 정년을 현재의 61세에서 65세로 늘리고, 비정규직 연구원의 정규직 전환이 추진된다. 연구비 부정 사용자에 대해서는 국가 연구·개발(R&D)사업 참여를 10년간 제한한다. 국가과학기술위원회는 6일 서울 하월곡동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서 이 같은 내용의 올해 업무계획을 이명박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국과위는 올해 핵심 과제로 ▲안정적·미래지향적 연구환경 조성 ▲범부처 차원의 연구사업 기획 ▲효율적 예산 배분·조정체계 구축 ▲연구성과의 질을 높이는 평가제도 선진화 ▲기술창업 지원 강화 등을 제시했다. 구체적으로는 연구비 지급 방식의 변화가 두드러진다. 지금까지 해마다 협약을 통해 연구비를 지급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한번의 협약으로 3년 동안 안정적으로 연구비를 지급하는 ‘그랜트 방식’이 도입된다. 또 현재 61세인 우수 연구원의 정년을 65세까지 연장하기로 했다. 국과위 측은 “심사위원회를 거쳐 각 출연연이 선정하게 되며 올해 최소 70명 이상이 혜택을 받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비정규직 연구원이 많아 연구 몰입도가 떨어진다는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 비정규직 연구원의 정규직 전환도 점진적으로 확대해 나가기로 했다. 연구자들의 자율성을 보장하기 위해 연구비 항목을 기존의 4개(인건비·직접비·위탁연구비·간접비)에서 2개(직접비·간접비)로 줄여 필요에 따라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반면 연구비 부정사용이 적발될 경우 국가 R&D 사업 참여를 10년간 제한하는 등 처벌도 강화했다. 또 전면적 실태조사를 통해 R&D 사업 간 유사·중복 현황을 파악, 명백하게 겹친 사업은 대표사업으로 통합하고, 유사사업은 부처 간 연계를 유도해 한데 묶기로 했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기초수급자 부양의무자 기준 완화

    본인 소득은 없는데도 따로 사는 가족의 수입 때문에 기초생활수급 대상에 들지 못하는 사례를 방지하기 위해 정부가 기초생활수급자 부양 의무자 소득 기준을 6년 만에 완화해 내년 1월부터 시행한다. 보건복지부는 27일 이명박 대통령 주재로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현행 최저생계비의 130% 미만인 기초생활수급자 부양 의무자의 소득 기준을 내년부터 185% 미만으로 완화하는 내용의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시행령 개정안을 의결했다고 밝혔다. 부양 의무자 소득 기준이 완화된 것은 2006년 이후 6년 만이다. 부양 의무자는 가족을 부양할 능력이 있는 자녀나 배우자·부모 등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소득이 없는 61세 노모가 소득이 있는 40세 아들과 따로 살고 있을 경우 아들이 부양 의무자가 된다. 이때 노모가 기초생활수급자로 선정돼 정부의 지원을 받으려면 아들의 소득이 지금까지는 144만원(두 사람 최저생계비 합산액의 130%)을 넘지 않아야 했지만 앞으로는 203만원(〃 185%) 미만으로 조정된다. 이에 따라 본인의 소득이나 재산이 거의 없어 힘들게 생활하면서도 자식 등 부양 의무자 때문에 그동안 기초생활수급자로 선정되지 못했던 극빈층 6만 1000명이 추가로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이를 위해 복지부는 내년에 2191억원의 예산을 배정했다. 복지부는 또 관련 지침도 바꿔 부양 의무자가 받는 ‘실업급여’는 부양 의무자 소득으로 산정하지 않기로 했다. 실업 상태인 부양 의무자가 구직활동을 위해 지원받는 실업급여로 가족을 부양하는 것은 가혹하다는 지적 때문이다. 이 정책으로 2000여명이 추가로 기초생활수급자에 선정될 것으로 보인다. 정현용기자 junghy77@seoul.co.kr
  • 7년 납부후 퇴직때 3년치 선납하면 10년 최소가입기간 인정 ‘연금수급’

    보건복지부의 새해 업무보고는 노후 보장이 불안한 베이비부머 세대(1955~63년생)의 은퇴 이후를 위한 사회안전망 강화로 요약할 수 있다. 국민연금공단에 따르면 전체 베이비부머 758만 2000명 가운데 연금보험료 납부 이력만으로 노후에 연금 수령이 가능한 사람은 256만 7000명으로 33.8%에 불과하다. 더욱이 현재 연금보험료를 납부하는 베이비부머 373만명이 받을 수 있는 연금도 월 45만원에 불과하다. 대응방안 가운데 하나가 내년에 시행될 ‘연금 보험료 5년 선납제’다. 목돈이 생겼을 때 앞으로 내야 할 보험료를 최대 5년치까지 미리 당겨 납부할 수 있도록 했다. 현재는 1년치만 미리 낼 수 있다. 국민연금을 7년간 내고 퇴직했다면 한꺼번에 3년치만 내면 10년의 최소가입기간을 모두 채울 수 있게 돼 연금 수급 시기부터 평생 연금을 받을 수 있다. 추진되는 ‘부분연기연금제’의 취지도 비슷하다. 여유가 있을 때 연금 수령액을 적게 받으면 미래에 더 많이 돌려받을 수 있는 것이다. 61세부터 연금 80만원을 받는 한 남성이 연금 수령액의 절반을 5년간 연기한다고 가정하면 61~65세에는 40만원을 받지만 66세부터는 96만원으로 두배가 넘는 금액을 수령할 수 있다. 복지부는 ‘88만원 세대’로 불리는 20·30대 젊은층 가운데 월 급여 125만원 이하인 저소득근로자 60만명에게는 내년부터 보험료를 지원해 국민연금 가입률을 높여줄 방침이다. 노인층을 위해서는 기초노령연금 수령액을 늘리는 한편 연금 수급자에게 의료비와 전·월세 자금을 돌려주는 제도도 시행된다. 복지부는 흡연과 음주를 억제하고 짜게 먹는 식생활을 개선하는 질병 예방 중심의 정책을 강화하기로 했다. 흡연율 감소를 목표로 2008년 이후 잇따라 법안이 상정된 담뱃갑 경고 그림 삽입을 강력하게 추진해 18대 국회에서 통과되지 않으면 내년 새로 구성되는 19대 국회에서는 자체 법안 입법을 추진할 계획이다. 캐나다에서는 그림 도입 직전인 2000년 흡연율이 24% 수준이었지만, 2001년 22%로 떨어진 뒤 계속 감소하고 있다. 현재 캐나다뿐만 아니라 미국·영국·브라질·홍콩·싱가포르 등 전세계 23개국에서 경고 그림을 넣고 있다. 초·중·고교, 특수학교, 청소년 수련시설, 병의원 등 공중이용시설 내 주류판매 및 음주 금지는 현재 관련 건강증진법 개정안이 국회에 계류돼 있어 복지부의 정책 추진 의지에 관심이 모아질 전망이다. 지난해 기준 37.4%인 고혈압 조절률을 2020년까지 50%로, 29.5%인 당뇨 조절률을 35%까지 끌어올리겠다는 게 복지부의 복안이다. 정현용기자 junghy77@seoul.co.kr
  • 日, 기업 65세까지 재고용 의무화

    일본 정부가 2013년부터 연금지급 연령을 상향 조정함에 따라 정년 퇴직자에 대해 65세까지 재고용을 의무화할 방침이다. 14일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일본 후생노동성은 연금지급 연령이 60세에서 단계적으로 65세로 상향 조정됨에 따라 정년을 맞은 근로자에 대해 기업체가 65세까지 재고용을 의무화하도록 방침을 정했다. 관련법 개정 등을 통해 남성의 연금지급 개시가 61세로 상향되는 2013년부터 실시할 예정이다. 일본 기업은 대부분 정년이 60세이지만 앞으로 퇴직자가 희망하는 경우 재고용의 형태로 65세까지 일자리가 보장된다. 계약 사원, 기간제 근로자 등도 계약 만료의 시기를 정하지 않는 무기한 고용 형태로 전환할 방침이다. 이에 대해 게이단렌의 요네쿠라 히로마사 회장은 “재고용을 의무화하는 것보다 일하고 싶은 사람이 일하는 장소를 만들어 가는 게 중요하다.”며 신중한 입장을 밝혔다. 도쿄 이종락특파원 jrlee@seoul.co.kr
  • [60대 ‘은퇴후 20년’을 말하다] “퇴직은 삶의 끝? 8만시간의 시작이죠”

    [60대 ‘은퇴후 20년’을 말하다] “퇴직은 삶의 끝? 8만시간의 시작이죠”

    “제 인생, 6만 5000시간이나 남았습니다. 보람 있게 채워야죠. 저는 정년퇴직을 시작이라고 말합니다.” 2002년 40년간 봉직했던 교직을 떠나 61세의 나이로 새 세상에 발을 디뎠던 신정모(70)씨는 “정년 퇴직은 삶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고 강조했다. 은퇴 후 그는 작심하고 인생 2막을 시작했다. 신씨는 우선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고민했다. 40년 교직생활에서 얻은 교육적 경륜, 학교 경영 노하우가 가장 큰 자산이었다. 신씨는 재직했던 초등학교에 강사로 나서 후배들에게 자신의 경험을 되돌려 주었다.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이번에는 ‘숲 해설’에 도전했다. 공원을 찾는 사람들에게 숲과 생태계의 정보를 알려주는 일이었다. 유아원 학습도우미 역할도 자처했다. 그는 ‘가지 못한 길’에 대한 아쉬움도 해소해야겠다고 작정했다. 그는 주저없이 기자직에 도전했다. 그는 전북의 실버뉴스레터에서 취재와 편집 일을 하고 있다. 남는 시간에는 주례로 나서 새롭게 삶을 시작하는 이들을 이끌었다. 현직에 있을 때보다 더 바쁜 나날이었다. 어느덧 고희(古稀)에 접어들었다. 그는 스스로 85세를 삶의 종착역으로 설정했다. 향후 5년은 더 현장에서 뛸 계획이다. 여기에는 교육컨설팅 상담소를 개설하겠다는 포부도 들어 있다. 신씨는 “인생 이모작을 설계할 때는 가장 먼저 무엇을 잘하고 열심히 할 수 있는지를 따지는 게 중요하다.”면서 “목표가 돈이든 사회 공헌이든 의지와 열정만 가지면 정년이 결코 두렵지 않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신씨의 이런 여생 디자인은 보건복지부가 주최한 ‘8만 시간 디자인 공모전’에서 당당히 에세이 부문 최우수상에 선정됐다. 은퇴 후 행복한 노후 사례를 찾는 공모였다. 신씨는 “조금만 시야를 확대하면 ‘퇴직자들이 할 일’이 눈에 보인다. 적극적인 자세만 가지면 품격을 지키면서도 경제적 이익도 얻고, 일의 기쁨을 느낄 수 있는 여지는 많다.”고 귀띔했다. 여기에서 ‘8만 시간’이란 은퇴 후 남은 평균 여생을 시간으로 환산한 것. 한편 이번 공모전 사진 부문에서는 은퇴 후 마라토너가 되겠다고 결심한 김슬규(54)씨의 작품도 최우수상으로 뽑혔다. 시상식은 12일 오후 2시 삼성동 코엑스 콘퍼런스룸에서 열린다. 이영준기자 apple@seoul.co.kr
  • 한반도 최초의 性 희곡 베일 벗다

    한반도 최초의 性 희곡 베일 벗다

    ‘저는 이 따위 여자가 아니랍니다. 달은 지고 등불은 사위어 수놓은 휘장 안으로 불빛은 쓸쓸히 어른거리기도 하고, 제비가 재잘대고 꾀꼬리가 노래하여 비단창이 요랍스럽기도 하군요. 이럴 때 남모를 걱정과 숨겨진 한이 유달리 솟구쳐 오르지요. 하지만 그런 줄 누가 알겠어요’(손으로 고운 뺨을 받치고 말없이 내다본다. 내려간다.) 1840년(헌종 6년)의 일이다. 한국 고전문학사에서 이옥(李鈺)의 ‘동상기’(1791)에 이은 두 번째 희곡 ‘북상기’에 나오는 대목이다. 실로 야릇하기 그지없다. 북상기(北廂記)라 함은 뒤채에서 일어난 일을 말한다. 북상기는 한국판 금병매로 평가되는 본격 에로물로 그 지역적 배경이 강원도 홍천이라 더 애틋하다. 우리나라 최초의 성(性) 희곡으로 19세기 조선 문학의 지형도를 바꾼 작품으로 평가받는 ‘북상기’(동고어초 지음, 안대회·이창숙 옮김, 김영사 펴냄)가 번역 출간됐다. 2007년 고서판매상에서 성균관대 한문학과 안대회 교수에 의해 발굴된 이후 학계와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으며 우리 문학사의 기술 일부를 다시 쓰게 한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아 오다 이번에 세상에 적나라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학자들에 의하면 ‘북상기’는 백화문(白話文)으로 쓰인 흠잡을 데 없는 완벽한 희곡이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희곡의 내용과 묘사가 가히 충격적이라는 것이다. 18세 기생과 61세 선비의 그로테스크한 사랑을 극화했으며 그들이 벌이는 성행위 묘사가 놀랍다. 예를 들면 이렇다. 순옥:(혼자 생각한다)그가 오는 게 되레 좋아. 여기 오기만 하면 그의 혼백을 송두리째 뺏어버려야지!(밤 전투를 치를 준비를 한다) 여기서 순옥은 여주인공이다. 선비 감낙안과 온갖 외설스러운 정사를 몇날 며칠 벌이는 장면이 유별나게 다가온다. 이렇듯 ‘북상기’는 내용과 형식면에서 19세기 중반에 출현한 다른 작품들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우선 조선시대 문학의 영역을 크게 확장시킨 획기적인 작품이라는 평가다. 다른 문학에 비해 초라하기 그지없었던 극문학의 위상을 단숨에 만회한 작품이다. ‘동상기’에 이은 ‘북상기’ 그리고 뒤이어 발굴된 ‘백상루기’로 조선후기 문학사는 세 편의 극본을 소유하게 됐기 때문이다. ‘북상기’는 허구 문학이면서도 기녀의 생활상을 비롯해 19세기 전반 사회상과 사회제도 등을 생생하게 들여다볼 수 있어 흥미를 끈다. 1만 3000원. 김문 편집위원 km@seoul.co.kr
  • 죽은 남편 ‘부활 약속’ 믿은 부인, 시신과 동거

    ”꼭 살아날게. 묻지 말고 기다려줘~” 남편의 황당한 유언을 철썩같이 믿고 시신과 동거한 여자가 중남미 언론에 소개됐다. 콜롬비아 우일다 주 가르손이라는 농촌지역에서 한 여성이 30일 동안 사망한 남편의 시신과 함께 생활했다고 현지 언론이 최근 보도했다. 알바라는 이름의 부인이 사망한 남편을 묻지 않은 건 기적같은 마지막 약속을 굳게 믿은 때문이다. 남편은 61세로 숨을 거두면서 여행을 떠나는 사람처럼 부인에게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했다. ”부활하겠다. 다시 살아서 삶으로 돌아올 테니 매장하지 말고 기다려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부인은 이 말을 믿고 남편의 시신을 집에 보관하며 죽음에서 깨어나길 기다렸다. 황당한 사건은 주민들이 경찰에 신고를 하면서 세상에 드러났다. 남편이 죽었지만 장례식도 치르지 않고, 묻은 곳도 확인되지 않자 주민들이 이상하게 여겨 경찰에 조사를 요청했다. 출동한 경찰은 알바의 집 안방 침대에서 이불로 덮혀 있는 남편의 시신을 발견했다. 시신은 이미 부패를 시작해 악취를 뿜어내고 있었다. 악취로 시신과 동거하기 힘든 상황이었지만 부인이 부활을 믿고 냄새를 참아가며 남편과 함께 생활했다고 현지 언론은 전했다. 남편의 시신을 수습한 장례회사 관계자는 “40년 이상 이 일을 하면서 이런 경우는 처음 본다.”며 “직원들이 황당해 모두 멍한 상태였다.”고 말했다. 한편 부인은 여전히 남편의 부활을 굳게 믿고 있는 듯 “뒷마당에 묻게 부패한 시신을 수습한 뒤 돌려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남미통신원 임석훈 juanlimmx@naver.com
  • 지휘자 vs 단원 파열음 KBS 교향악단 파행 왜

    21일 오후 8시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KBS교향악단 관계자들은 공연 직전까지 발을 굴렀다. 플루트 객원수석으로 섭외한 필립 윤트(강남대 교수)가 오후 7시 30분부터 서초동의 또 다른 공연장에서 실내악 연주를 마치고 오기로 했기 때문이다. 금요일 밤이라 KBS 측은 연주자가 도착할 때까지 진땀을 빼야 했다. 전날 여의도 KBS홀에서 있었던 공연도 단원들이 한때 거부에 나서 하마터면 ‘펑크’날 뻔했다. 공연의 감동은 여느때만큼 크지 않았다. 국립교향악단의 후신인 KBS교향악단이 국내 최고 자리를 서울시립교향악단에 내준 것은 불과 10년도 안 됐다. 서울시향이 정명훈 예술감독을 영입하면서 ‘탈(脫)아시아’에 성공한 반면 KBS교향악단은 2004년 이후 상임지휘자를 구하지 못했다. KBS 직원보다 3년 긴 만 61세 정년이 보장되는 데다 평균 5300만원의 연봉, 레슨 등 외부활동 규제도 헐거운 터라 ‘철밥통 교향악단’이라는 냉소가 적지 않다. 지난해 7월 함신익 미국 예일대 교수가 상임지휘자에 취임하면서 힘 겨루기가 다시 시작됐다. 1998년 정 예술감독마저 성에 차지 않아 단원들이 쫓아내다시피 했다는 게 KBS 주변의 얘기다. 게다가 함씨는 대전시향 시절 ‘청바지 음악회’ 등으로 “음악적 깊이보다는 퍼포먼스나 쇼맨십을 우선한다.”는 비판도 적지 않았을 만큼 평가가 엇갈리는 인물이다. 지휘자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단원들과, 지휘권을 행사하려는 함씨 간에 갈등이 누적되면서 폭발하기에 이른 것. 한 클래식 기획사 관계자는 “단원들의 모럴해저드가 분명하지만 (함씨의) 임명 과정에 정권 실세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등 루머가 적지 않았던 만큼 예고된 인재(人災)”라고 지적했다. A교향악단 관계자는 “현악기 재배치는 지휘자의 고유 권한이다. 그런 조치들을 설득하지 못하는 운영조직의 전문성 부재가 더 문제”라면서 “지휘자 한 명 바꿔서 될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재숙 KBS시청자사업부장은 “과다한 외부 레슨에 나선 단원들에 대한 징계가 갈등을 촉발한 것 같지만 사실은 현악 파트 재배치가 본질”이라면서 “한해 93억원의 시청료로 운영되는 교향악단 단원들의 지금 같은 행태는 곤란하다.”고 비판했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한국여성 ‘유방암 공포’… 25명 중 1명 발병

    한국여성 ‘유방암 공포’… 25명 중 1명 발병

    우리나라 여성 25명 중 1명은 생애 중 유방암에 걸린다는 보고서가 나왔다. 이 정도의 발병 상황은 다른 암에서는 볼 수 없는 것이어서 국내 여성에게 ‘유방암의 공포’가 현실화되고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한국유방암학회(이사장 박찬흔)가 최근 발표한 유방암 현황 분석자료에 따르면 1996∼2008년 유방암 발생률이 3.5배 이상 증가했다. 특히 중앙암등록사업소가 인구 대비 유방암 환자 수를 분석한 결과 여성의 평균수명을 83세로 봤을 때 유방암 발생률은 25명 중 1명꼴인 4%나 됐다. 이런 가운데 연간 유방암 환자수는 2006년 1만 1275명에서 2008년에는 1만 3859명으로 최근 2년 사이에 무려 23%나 급증했다. 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2002년 대비 유방암 환자 증가율도 우리나라가 91%로 가장 높았다. 2위인 일본의 증가율(31%)과는 무려 60% 포인트나 차이가 났다. 국내 여성 유방암의 가장 큰 특징은 젊은 환자가 많다는 점이다. 연령대별 유방암 발병현황(2008년 기준)을 보면 40대 39.8%, 30대 13.4% 등 40대 이하 환자가 전체 환자의 절반이 넘는 55.7%를 차지했다. 이는 40세 이상의 폐경 후 여성에게 주로 발생하는 미국이나 유럽과 크게 대비되는 발생 추이다. 유방암 환자의 평균연령도 우리나라는 49.8세로 미국의 61세보다 무려 11년 이상 빨랐다. 이런 가운데 국내 유방암 조기진단율이 빠르게 높아지고 있다는 희망적인 분석도 나왔다. 특정 증상이 나타나지 않은 상태에서 검진을 통해 유방암 진단을 받는 경우가 1996년 대비 5배 이상 증가했다. 이 때문에 0∼1기 상태의 조기발견율은 약 2배, 유방보존술 시행 비중은 3배로 높아졌다. 학회는 국내 주요 유방암 발병 요인으로 ▲이른 초경 ▲늦은 폐경 ▲늦은 첫 출산 ▲수유 경험률 감소 등으로 인한 에스트로겐 호르몬 과잉 또는 전체적인 호르몬 불균형 ▲서구형 고지방·고열량 위주의 식생활 등을 꼽았다. 박찬흔 이사장은 “유방암은 수술 후 5년 이내에 재발하는 경우가 92%에 이른다.”면서 “유방암 환자들은 재발방지 치료의 중요성을 새롭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 이사장은 이어 “국내 유방암 발병률이 연간 7%씩 급증하는 등 우려스러운 추이가 나타나고 있다.”면서 “특히 치료 예후가 좋지 않은 30∼40대 젊은 환자가 많은 만큼 30대부터 유방암 조기진단을 생활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심재억 전문기자 jeshim@seoul.co.kr
  • ‘억만장자’ 85세 여공작, 61세 애인과 ‘결혼’

    신분도 나이차도 뛰어넘는 세기의 만남이었다. 스페인 최고 명문귀족이자 억만장자인 알바가문의 마리아 델 로자리오 카예타나 여공작(85)이 수년 간 사랑을 키워온 24세 연하의 하위 공무원 알폰소 디에스(61)와 결국 사랑의 결실을 맺었다. 지난 5일(현지시간) 카예타나 여공작은 스페인 남서부 세빌랴의 15세기에 지어진 성 앞에서 남자친구 알폰소 디에스와 하객 38명을 초대한 결혼식에서 혼인서약을 맺고 정식 부부로 거듭났다고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가 보도했다. 카예타나 여공작은 이날 순백의 드레스가 아닌 연한 분홍색 웨딩드레스를 입었다. 여기에 흰색 파마머리 가발을 써 평소처럼 개성 있는 패션을 마무리했다. 새신랑은 회색 턱시도를 말쑥하게 차려입었다. 둘은 팔짱을 낀 채 성문을 들어서 많은 시민들의 축하를 받았다. 결혼식에 참석했던 하객들에 따르면 카예타나 여공작은 열정적인 플라멩코 춤으로 결혼식을 자축했다. 결혼식 내내 성 앞을 지킨 축하객들은 “여공작은 우리에게 여왕과도 같은 존재”라면서 “사랑을 이뤄낸 용기 있는 모습에 많은 사람들이 감동했다.”고 응원했다. 개인자산이 5조4000억원에 달하는 여공작과 사회안전보장국 하위직 공무원의 결혼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2번의 결혼생활에서 모두 남편을 일찍 여읜 카예타나는 2008년 디에스와 결혼을 추진했다가 스페인 국왕의 반대로 결혼식이 무산된 바 있다. 이후에는 자녀들 6명이 재산분배를 이유로 결혼식을 반대하고 나섰다. 하지만 둘은 반대에 굴하지 않았다. 올해 초 “돈은 원하지 않는다.”면서 디에스가 재산 상속권리를 포기했고, 카예타나 여공작은 올해 초 손주 8명을 포함한 자녀들에게 궁궐과 토지 등 권리를 분배했다. 강경윤기자 newsluv@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