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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회장 방북 13일까지 연장

    북한을 방문 중인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방북일정을 하루 연장하기로 했다. 11일 통일부와 현대아산 등에 따르면 지난 10일 평양에 도착한 현 회장은 12일 귀환할 예정이었으나 13일 귀환하는 것으로 일정을 조정했다. 일정 연장과 관련,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의 면담 일정을 조정하기 위한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북측에 135일째 억류 중인 현대아산 직원 유모씨의 석방과 관련한 협상에 다소 진통이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통일부 관계자는 이날 “현대아산 측이 밤 10시쯤 현 회장의 방북 일정 연장 의사를 밝혀 왔다.”고 밝혔다. 유씨는 이날 한때 석방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망됐다. 이날 오전 경기 파주 도라산 남북출입사무소 관계자들이 유씨 귀환에 대비해 기자회견을 위한 앰프를 설치하는 등 준비작업을 하면서 유씨 석방이 임박했다는 설이 나돌았다. 하지만 현대아산과 북측이 억류사건 발생 재발을 위한 협의를 하는 과정에서 이견이 있어 유씨의 석방이 다소 늦어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 회장은 12일 김정일 위원장을 면담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 회장은 김 위원장과의 면담이 성사될 경우 유모씨 석방 문제를 중점적으로 거론할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현 회장은 금강산 관광 등 현대아산의 대북사업 재개를 위한 협조도 요청할 것으로 전해졌다. 현 회장은 그동안 방북 때마다 김 위원장을 만나 성과물을 도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현 회장이 유씨와 함께 13일 귀환하는, 이른바 ‘클린턴식’ 시나리오가 펼쳐질 것이라는 예상도 나오고 있다. 정부는 현 회장의 평양행에 대해 ‘사업자 차원의 방북’이라고 규정했다. 정부는 현 회장이 특사 자격으로 방북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밝히고 있지만 현 회장이 사실상 특사 역할을 하는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다른기사 보러가기] ☞[뉴스다큐 시선] 설 자리 잃어가는 가판대 ☞면허정지 6만명 15일부터 ‘핸들’ 잡는다 ☞600년 성곽이 117년 교회 눌렀다 ☞“웬 날벼락” 제주 으뜸저축은행 6개월 영업정지 ☞교과서값 오른다 ☞토성의 고리들이 하루 동안 사라진다 ☞해운대 1000만 누가 먼저 찍을까
  • 인간 면역유전자 가진 복제돼지 탄생

    인간 면역유전자 가진 복제돼지 탄생

    인체의 면역기능 유전자를 가진 형질전환 복제 미니 돼지가 국내에서 탄생했다. 농촌진흥청 바이오장기연구단에서 이종(異種) 간 장기이식 때 면역 거부반응을 연구하고 있는 충남대 진동일 교수와 ㈜엠젠은 인간의 면역기능 유전자 가운데 ‘FasL(Fas Ligand)’ 유전자를 발현시킨 형질전환 복제 미니돼지가 지난 5월11일 태어나 90일째 건강하게 자라고 있다고 11일 밝혔다. 연구진은 일반 돼지의 난자에 FasL 유전자가 자리잡은 미니돼지 체세포를 이식, 복제란을 생산하고 이를 체세포와 같은 종의 미니돼지에 다시 이식해 자연 분만으로 형질전환 복제 미니돼지를 탄생시켰다. 이어 유전자 증폭법과 염색체 형광 위치 확인법을 통해 이 돼지가 인체 면역기능 유전자 FasL을 지니고 있음을 확인했다. FasL 유전자를 지닌 돼지의 장기를 사람에게 이식할 경우 인체 거부 반응이 크게 줄어든다. 이는 지난 4월 돼지에게만 존재하는 ‘초급성 거부반응’을 억제한 복제 미니돼지 ‘지노’가 탄생한 데 이어 복제 돼지 기술이 한 발자국 나아간 것으로 농진청은 평가했다. 일반적으로 인체는 다른 종의 장기를 이식받으면 이를 바이러스와 같은 침입자로 인식, 여러 단계의 거부 반응을 일으킨다. 이번 복제돼지는 인체의 면역세포 관련 유전자 가운데 하나를 돼지에게 발현시켜 장기 이식 때 돼지가 아닌 인체의 장기로 인식하도록 유도, 세포 독성 효과를 크게 감소시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바이오장기연구단은 앞으로 지노와 이번 복제돼지의 교배 등을 통해 이종간 장기 이식 거부반응이 최소화된 돼지를 생산할 계획이다. 농진청 관계자는 “돼지를 이용한 장기이식의 임상 적용까지는 효율적인 형질전환 돼지 개발과 무균상태 증식 및 사육, 거부반응 제어, 돼지 장기와 인체의 물리적 적합성 등 해결할 과제가 많다.”면서도 “국내 기술이 세계적 수준에 도달한 만큼, 앞으로 지속적인 연구를 통해 의약과 농업 분야가 동시에 발전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다른기사 보러가기] ☞[뉴스다큐 시선] 설 자리 잃어가는 가판대 ☞면허정지 6만명 15일부터 ‘핸들’ 잡는다 ☞600년 성곽이 117년 교회 눌렀다 ☞“웬 날벼락” 제주 으뜸저축은행 6개월 영업정지 ☞교과서값 오른다 ☞토성의 고리들이 하루 동안 사라진다 ☞해운대 1000만 누가 먼저 찍을까
  • 전주 600살 은행나무 후손 찾았다

    전주 600살 은행나무 후손 찾았다

    국립산림과학원은 5일 전주시 풍남동 한옥마을의 600년생 은행나무 밑동에 자라고 있는 어린 은행나무의 DNA를 비교 분석한 결과 노거수의 뿌리에서 돋아난 ‘맹아묘’로 판정됐다고 밝혔다. 은행나무의 회춘(回春)으로 노거수가 수명을 다하더라도 후손이 전통을 이어갈 수 있게 됐다. 1383년 고려 우왕 9년 학자 최담이 심었다고 전해지는 은행나무는 전주시 지정 보호수 제1호이자 길이름의 유래로 5년 전부터 어린 나무(높이 6m)가 자라고 있어 보존대책 수립을 놓고 고민에 빠졌었다. 이 나무가 노거수의 분신이나 자손이 아니면 다른 곳으로 옮기거나 제거해야 생장에 방해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홍용표 산림과학원 DNA 분석팀장은 “어린 은행나무가 주변에서 날아온 씨앗인지, 노거수의 열매가 떨어져 발아한 것인지 뿌리에서 맹아가 돋아난 것인지 의견이 분분했다.”면서 “노거수와 어린 나무, 주변 은행나무의 DNA 지문을 분석한 결과 노거수와 어린 나무가 완벽히 일치했다.”고 말했다. 정부대전청사 박승기기자 skpark@seoul.co.kr
  • 새달 1일 시민품에 안기는 광화문광장 미리 가보니

    새달 1일 시민품에 안기는 광화문광장 미리 가보니

    서울 광화문광장이 1년 2개월여에 걸친 공사를 마치고 다음달 1일 마침내 시민의 품에 안긴다. 총 길이 550m, 폭 34m 안팎의 광화문 광장(조감도)은 그 규모만으로도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명소로 자리잡을 것으로 보인다. 광장 곳곳에 조선시대부터 현재까지 역사의 흐름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온갖 상징물들이 숨겨져 있다. ●해치·육조거리 토층원형 복원 먼저 지하철 5호선에서 나와 광화문광장으로 이어지는 지하통로에 조성된 ‘해치마당’에 들어서면 서울의 상징인 해치 조형물이 시민들을 맞는다. 해치마당에서는 지난해 9월 발굴돼 벽면에 복원·전시된 가로 5m, 세로 6m 크기의 육조거리 토층 원형을 볼 수 있다. 육조거리는 조선 태조 때 한양 도성을 조성하면서 만든 거리로, 조선시대 도로 공법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해치마당에서 완만한 경사로를 따라 올라가면 그동안 세종로의 상징 역할을 해온 이순신 장군 동상이 위엄을 드러내며 우뚝 서 있다. 동상 주위에는 최고 18m 높이까지 치솟는 분수 200여개와 물 높이 2m의 바닥분수 100여개가 설치돼 장군이 왜적을 물리쳤던 해전을 ‘스토리텔링’ 기법으로 묘사하며, 364개의 발광다이오드(LED) 조명이 화려하고 다양한 분수를 연출한다. 동상에서 광장 좌우를 바라보면 양옆 가장자리로 폭 1m, 길이 365m, 수심 2㎝의 ‘역사 물길’이 흐른다. 동쪽 역사 물길에는 바닥돌에 1392년 조선 건국부터 2008년 현재까지의 역사를 음각으로 새겨 역사의 흐름을 상징적으로 표현했다. 서쪽 물길 바닥은 앞으로 다가올 역사를 담기 위해 빈 칸으로 남겨뒀다. 이순신 장군 동상 뒤로는 새롭게 탄생한 광화문광장이 북악산을 향해 탁 트여 있다. 동상을 지나 경복궁 쪽으로 약 250m만 올라가면 빈 공간이 하나 나온다. 세종문화회관 앞에 자리한 이곳이 바로 광화문광장의 중심이다. 이곳에는 세종대왕 동상이 자리잡게 된다. 홍익대 김영원 교수가 작업 중인 동상은 한글날인 오는 10월9일 제막식과 함께 시민들에게 처음 모습을 드러낼 예정이다. 세종대왕 동상 앞 소형 인공 연못 속에는 해시계·물시계·측우기·혼천의 등이 놓이고, 동상 뒤엔 ‘육진개척’을 보여주는 6개의 열주(줄기둥)가 세워진다. 또 동상 하부와 엘리베이터로 연결되는 지하보도에는 세종대왕의 생애와 업적을 기리는 ‘세종이야기’라는 전시공간이 들어선다. ●10월9일 세종대왕 동상 모습 드러내 세종문화회관과 KT사옥을 연결하는 옛 지하차도에 들어서는 ‘세종이야기’는 한글 창제와 예술, 과학, 기술 등 세종의 위업과 숨겨진 이야기가 담기며 동상 제막과 함께 개관한다. 시는 다음 달 15일까지 시민들을 대상으로 ‘세종이야기’의 공간 구성 배치, 전시 기법, 콘텐츠 등에 대한 아이디어 공모를 실시한다. 이렇듯 광화문광장 중심부에는 재위 기간 동안 문무에 걸쳐 위대한 역사를 남긴 세종대왕의 업적들이 ‘정도 600년’을 훌쩍 뛰어넘어 고스란히 살아 숨쉬게 되는 셈이다. 광화문에 가까워지면 고증을 통해 원래 위치에 복원된 해치상이 나타나고 광화문 바로 앞에는 월대(궁전이나 누각 따위의 앞에 세워 놓은 섬돌)도 볼 수 있다. 광화문광장 준공식은 다음 달 1일 오후 8시에 열린다.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新아시아시대-한국의 도약] “한국의 재도약 시대이념 재창조에 달려 있어”

    [新아시아시대-한국의 도약] “한국의 재도약 시대이념 재창조에 달려 있어”

    “‘화혼양재(和魂洋才)’와 ‘중체서용(中體西用)’, ‘동도서기(東道西器)’ 중 최고의 가치는 동도서기입니다. 중국이나 일본과는 달리 한국은 ‘한(韓)’을 내세우지 않고도 정체성을 찾았기 때문입니다.” 지난 6일 서울 종로구 명륜동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에서 마주한 미야지마 히로시(宮嶋傳史·61) 교수는 투박한 한국어로 또렷하게 의사를 전달했다. 대학에서 동양사를 전공하며 한국과 인연을 맺은 그는 40년 넘게 한국과 동아시아에 관한 연구를 이어오고 있다. 지한파(知韓派)답게 “현재의 한국사회는 16세기에 형성된 500년 주기의 역사순환과 19세기 말 형성된 100~150년 주기의 순환이 모두 생을 마감하는 대전환기에 놓여 있다.”며 “동도동기(東道東器)와 같은 새로운 시대이념을 만들어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한국사회는 지식인이 방향성을 잃으면서 더 큰 혼란을 겪고 있다.”며 “지식인과 민중의 활발한 현실참여는 유교적 전통의 하나로 한국사회의 발전동력”이라고 분석했다. →구한말 일본은 성공, 중국은 절반의 실패, 한국은 낙오했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외형만 놓고 풀이한 단선적 해석이다. 조선은 중립국가 변신 등 다른 가능성도 열려 있었다. 한국은 선진문명 수용의 오랜 역사를 지녔다. 19세기 유럽문명이 왔을 때 잠시 움츠렸지만 조선 초기만 해도 당시 최첨단이던 중국문명을 200~300년간 점진적으로 꾸준히 받아들여 재창조했다. 일본은 그렇지 못했다. 이런 약점이 오히려 19세기 유럽문명을 받아들일 때 발빠른 대응을 낳았다. 오늘날 중국이나 한국을 실패했다고 보기도 어렵다. →최근 한반도 정세가 19세기 말과 유사하다는 얘기를 듣는다. 근대 이행기를 재점검해 답을 얻어야 한다는 말도 나오는데. -일부 학자마저 역사적 유추를 즐기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단선적 이해는 오히려 역사의 오용을 가져온다. 역사학은 어떻게 시대를 이해하느냐에 대해 여러 얘기를 한다. 미래의 방향을 예측하려면 사회과학과의 협력이 필요하다. →19세기 조선이 중국 중심 조공체제를 버리고 ‘만국공법적’ 질서를 수용했다. 21세기 한국은 냉전질서가 쇠퇴하며 ‘신자유주의적’ 정치·경제 질서를 수용하고 있다. -오늘날과 19세기 상황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19세기에는 신문명을 받아들이면 부국강병할 수 있다는 벤치마킹 모델과 희망이 존재했다. 반면 오늘날 신자유주의라는 시장만능주의는 희망이 없다. 사회가 어떻게 된다는 분명한 목표도 없고, 소수만 성취하고 다수가 패배자가 되는 무한경쟁 상황이다. 19세기 유럽문명이 가졌던 의미와 신자유주의의 비전은 비교할 수 없다. 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다. 비참한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해법은. -새로운 시대 이념이 필요하다. 16세기 동아시아에서 새로운 역사주기가 시작된 것은 사회혼란과 관련이 깊다. 앞서 당나라가 멸망하면서 생긴 혼란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주자학이 생겼다. 원나라가 등장하며 세계 규모의 경제활동도 이뤄졌다. 고대 진·한 시대 이후 두 번째 중국문명이 탄생한 것이다. →답은 주자학의 부활인가. -(웃음) 복고는 아니다. 주자학을 부활시켜야 한다는 얘기도 아니다. 인간의 평등성을 전제로 사회질서를 잡으려던 주자학은 적어도 18세기 말까지 가장 합리적 사상이었다. 이에 입각한 국가·사회체제도 선진적이었다. 그런데 주자학은 동아시아에서 내재적으로 극복되지 않고 버려졌다. 시대에 뒤떨어진 것으로 치부됐지만 근대 이후 오히려 주자학적 뿌리가 깊게 되살아났다. 주자학의 진짜 극복은 미완의 과제이다. 주자학적 전통의 형성과정까지 소급해 선조가 이루지 못한 과제가 무엇인지 살펴보는 게 21세기 동아시아의 공통된 과제이다. →신아시아적 질서는 무엇인가. -주자학은 신아시아적 질서가 될 수 없다. 뭔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야 한다. 나도 새로운 차원에서 공동선이나 인간관계 재창조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주자학적 사회구조가 500년 생을 마감하는 요즘 새 이념이 나오지 않으면 사회 자체가 붕괴될 수 있다. 일본에선 과거 생각지 못했던 끔찍한 범죄가 매년 급증하고 있다. 한국사를 공부하면서 희망을 주는 역사적 유산을 자주 접했다. 이 유산을 제대로 인식하고 앞으로 어디로 가야 한다는 방향을 잡아야 한다. 지금 한국사회는 자긍심을 갖고 발전시킬 자산을 기르지 않고, 자산이 아닌 부분을 오히려 과대 평가하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의 발전전략은. -구한말 일본의 화혼양재, 중국의 중체서용, 조선의 동도서기 가운데 동도서기를 최고의 가치로 본다. 이는 유연한 주체성으로, 국민국가 건설의 표어로는 다소 약하지만 매개적 정체성으로는 상당한 의미를 갖는다. 동도서기라는 구호를 새로운 각도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동도서기가 오늘날 적용가능한가. -동도(東道)란 관념은 16세기 전환기 때 생긴 것이다. 19세기 후반 동도라는 것도 유교·주자학을 중심으로 한 국가사회 체제이다. 조선사회가 갖고 있던 이념을 기초로 국가사회체제를 유지하면서 유럽의 기술문명에 대응하자는 내용이다. 이런 면에서 21세기 한국은 새로운 단계의 동도동기라고 할까, 가장 동양적이며 한국적인 새로운 정신·기술문명을 구성해 21세기에 살아남을 수 있는 방향성을 찾자는 것이다. →오늘날 한국의 강점을 주변국과 비교하면. -19세기 후반까지 보편적 이념을 갖지 못한 일본과 달리 조선은 주자학 등 보편적 문명을 활용, 국가체계를 완성한 경험을 지녔다. 역사적 경험의 차이라고 할까, 한국은 문명주의적 사고방식이 일본보다 강하다. 영어교육이나 유학열풍 등 한국사회는 ‘문명화 신앙’마저 지녔다. 중국의 경우 문명의 중심에 오래 서있어 자아관이 너무 강하다. 중국이 더 팽창해 국제질서에 혼란을 초래할 때 오랜 관계를 맺어온 한국만이 이를 통제할 수 있다. →한국 사회운동을 어떻게 보나. -구한말에도 개화파와 독립협회, 동학운동까지 다양한 움직임이 있었다. 한국은 지금도 (사회운동이) 활발하다. 경험을 지닌 만큼 앞으로도 (긍정적 방향으로) 계속될 것이다. 반면 일본은 거의 사라졌다. 왜 그런 차이가 생겼을까. 한국은 광복 이후 4·19혁명부터 최근 촛불집회까지 시민 스스로 움직였고, 정치를 변화시켰다. 반면 일본은 메이지유신 직후 자유민권운동이 있었지만, 이후 100년간 경험하지 못했다. →한국 지식인의 역할은. -영향력이 예전보다 약해졌다. 자신감 자체도 상실했다.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 헤매고 있다. 특히 뉴라이트 지식인들이 그렇다. 진보진영 연구자도 마찬가지로 근시안적 현실만 보고 있다. 이전 지식인들은 사회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했다. 일면 유교적 전통의 영향으로, 유교적 정치제도와 과거제가 자리잡지 못한 일본에선 보기 힘든 모습이다. 또 동남아에선 지식인의 무게감과 운동의 방향성이 눈에 띄지 않는다. 동남아의 민중운동 자체가 정치적으로 이용당한 느낌마저 든다. →국내 정책결정 과정에서 바뀌어야 할 점은. -앞서 말한 대로 너무 단기적으로 보고 있다. 당면과제만 바라본다. 장기적 마스터플랜 없이 단기적 처방만 찾으면 답이 안 나온다. →역사는 주기적으로 반복되나. -그렇다. 역사의 사이클은 단기, 중기, 장기적으로 몇 가지 추이를 보인다. 공교롭게도 요즘은 그런 복잡한 사이클이 모두 겹치는 중대한 변화의 시기이다. →구체적으로 말해 달라. -19세기 후반은 물론 16세기도 동아시아 역사에 큰 전환기였다. 전자가 100~150년 주기라면 후자는 500~600년 주기이다. 이 생명주기 곡선이 요즘 모두 쇠퇴기에 놓였다. 단적 사례로 동아시아 친족제도를 들 수 있다. 500여년 전 주자학적 통치구조와 함께 형성된 친족제는 사회·문화적 요인과 함께 인구감소로 사라지고 있다. 인구 재생산이 불가능한 탓이다. 전쟁이나 재해를 포함해도 역사상 이처럼 장기적으로 인구가 감소하기는 처음이다. 사회구조 자체가 변화하고 외부에서 노동력과 인구를 충원해야 하는 시대를 맞았다. 오상도기자 sdoh@seoul.co.kr ■미야지마 교수는 일본 교토대에서 동양사를 전공했다. 한국사와 동아시아비교사로 교토대 대학원에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도카이(東海)대, 도쿄도립대 교수를 거쳐 1983년 도쿄대 동양문화연구소 교수로 발탁됐다. 동양문화연구소 최초의 비도쿄대 출신 교수다. 연구소장으로 재직하다 2002년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김치와 된장국을 좋아하는 지한파로, 부인도 한국인이다. 저서로 ‘양반’, ‘조선과 중국:근세 오백년을 가다’, ‘동아시아 근대 이행의 세 갈래’ 등이 있다.
  • 세계 문화예술 올림픽 9월의 제주 달군다

    세계 문화예술 올림픽 9월의 제주 달군다

    오는 9월 제주가 전세계 문화예술인들의 불꽃 튀는 경연과 축제로 뜨겁게 달아오를 전망이다. 문화예술올림픽을 표방한 제3회 제주세계델픽대회(조직위원장 이종덕)가 그 무대다. ‘자연과 더불어’를 주제로 9일부터 15일까지 제주문예회관, 신산공원 등지에서 6개 영역 18개 종목 예술경연과 비경연 프로그램 등으로 꾸며진다. 음악, 공연, 시각, 언어, 건축 등 모든 문화예술 장르를 아우르는 보기 드문 총체적 예술제전이자 전통과 현대를 넘나드는 국제적 예술교류의 장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조직위원회 측은 40여개국 1500여명이 참가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델픽대회의 기원은 고대 그리스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대 그리스에는 신에게 바치는 두 가지 제전이 있었다. 하나는 전쟁의 신 제우스를 위한 스포츠 경연인 올림픽(Olympic)이고, 다른 하나는 태양의 신 아폴론에게 바치는 예술제전 델픽(Delpic)이다. 올림픽보다 한 해 앞선 기원전 582년 그리스 성지 델피에서 시작돼 기원후 394년에 막 내린 델픽은 올림픽처럼 4년마다 한 번씩 열렸고 우승자에겐 월계관이 수여됐다. ●6개 영역 18개 종목 40여개국서 1500명 참가 1600년 동안 맥이 끊겼던 델픽대회는 1994년 독일인 크리스티안 키르슈에 의해 현대적으로 부활했다. 18개국이 참여해 국제델픽위원회(IDC)가 출범했고, 6년 준비 끝에 2000년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초대 대회가 열렸다. 2회 대회는 2005년 말레이시아 쿠칭에서 개최됐다. 우리나라는 2005년 이건용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이상만 전 고양문화재단 이사장 등이 주축이 돼 한국델픽위원회(KDC)를 창설했고, 이듬해 IDC총회에서 3회 대회 개최국으로 선정됐다. 현재 IDC 참가국은 36개국이다. 델픽대회의 특징은 경연과 비경연 프로그램이 함께 열린다는 점이다. 경연 프로그램에선 악기, 노래, 연극 등의 기예를 겨뤄 우승자를 가렸던 고대 델픽처럼 각 분야별 참가자들이 예술적 기량에 따라 메달을 수여받는다. 특이한 점은 경연 부문의 종목이 기존 국제 대회와 차별되고, 매 대회마다 채택 종목이 달라진다는 것. 이를테면 올해 ‘음악 및 음향예술’ 분야는 1현·2현 악기, 더블리드 목관악기, 타악기(개인·단체), 아카펠라로 나뉘고, ‘공연예술’은 탈춤, 즉흥무용, 즉흥마임, 그림자연극으로 구분된다. ‘공예디자인·시각예술’ 분야에선 조각, 드로잉, 칼리그라피, 그래픽스토리텔링, 다큐멘터리 제작, 북 아트 종목이 개최된다. ●각국 문화 특성 살린 종목추가 금·은·동메달 수여 대회마다 개최국의 문화적 특성을 살린 종목이 추가되기도 하는데 이번 대회에선 제주도의 환경을 고려한 돌담쌓기가 ‘소통과 사회예술’분야의 종목으로 채택됐다. 각 종목별로 2명 이상의 국내외 심사위원이 평가를 하고, 결과에 따라 금·은·동메달을 수여한다. 경연 참가자들은 각 국가별 위원회의 추천을 받아야 참가할 수 있다. 반면 비경연 프로그램은 말 그대로 축제와 화합의 장이다. 유명 예술가들이 워크숍과 강연을 하는 마에스트로 프로그램과 샤머니즘 축제, 시낭송 축제, 참가 대륙의 날 등 각 나라의 고유한 문화를 엿볼 수 있는 행사들이 다채롭게 열린다. 세계자연유산으로 선정된 제주의 자연경관을 소개하는 제주 사진전과 올레길 걷기 행사 등도 마련된다. 제주세계델픽대회는 정부, 지방자치단체 등과의 협조 미비로 지난해 연말에야 뒤늦게 조직위원회가 구성되고, 지난 5월엔 유홍준 조직위원장이 갑자기 중도사퇴하는 등 적지 않은 혼란을 겪었다. 그러나 이종덕 조직위원장이 6월 초 새로 부임하면서 조직을 정비하고, 본격적인 행사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신선희 전 국립극장장이 예술총감독을 맡았고 김철호 전 국립국악원장, 유희성 서울시뮤지컬단장, 김영준 도시건축 대표 등이 분야별 예술감독으로 참여하고 있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뉴스 다큐 시선]서울 사라지는 골목길 사람들의 애환

    [뉴스 다큐 시선]서울 사라지는 골목길 사람들의 애환

    “성북동 산에 번지가 새로 생기면서/본래 살던 성북동 비둘기만이 번지가 없어졌다/새벽부터 돌 깨는 산울림에 떨다가/가슴에 금이 갔다.” 시인 김광섭은 1968년 ‘성북동 비둘기’라는 시에서 개발의 열풍 속에 파괴돼 가는 인간성을 비둘기에 빗대 표현했다.여기 오랜 삶의 터전을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서울시가 2007년부터 시작한 ‘디자인 서울거리 조성계획’이 서울 전체를 바꾸고 있다. 이 사업은 2007년 대학로, 이태원로 등 10개 지역에 439억원을 투입해 전면 재단장하면서 시작됐다. 그러나 언제나 새로운 것의 이면에는 사라지는 것들이 있고 그 뒤안길에는 사람들의 추억과 삶이 녹아 있다. 철거가 됐거나 이제 곧 철거를 앞두고 있는 서울의 추억을 찾아 그곳을 지키는 사람들의 애환을 들어 봤다. 글 박건형 오달란 유대근 박성국기자 kitsch@seoul.co.kr 동영상 나우뉴스 박성조기자 voicechord@seoul.co.kr 30년 전 서울 성북구 동소문동 일대에는 80여채의 한옥들이 서로 처마를 맞댄 채 줄지어 서 있었다. 집집마다 경쟁하듯 내놓은 화분이 골목을 화사하게 꾸몄다. 대문은 잠겨있는 적이 없었다. 활짝 열린 문 사이로 “영이 엄마, 된장이 다 떨어졌네. 한 숟갈만 퍼줘.” “언니, 나 대파 한 단 사올 동안 우리 애 좀 잠깐 봐 줘요.” 하는 정겨운 대화가 오갔다. 이 동네 14칸짜리 한옥에서 35년째 살고 있는 피터 바돌로뮤(61)가 들려준 이야기다. 간간이 비가 흩뿌리는 지난 13일 저녁 바돌로뮤의 집 대청마루에 앉았다. 마당에 심은 대나무 이파리가 바람에 흔들리며 사각거렸다. 그는 “이렇게 조용하고 아름다운 한옥을 불편하고 낡았으니 부수고 새로 지어야 한다는 사람들을 보면 속이 상한다.”고 푸념했다. 그는 “콘크리트 건물도 수리하지 않으면 30년을 못 간다.”면서 “나도 매년 두 번 지붕에 올라가 깨진 기와를 보수하고 홈통에 쌓인 낙엽을 치우면서 집을 부지런히 가꾼다.”고 말했다. 그의 기와 수리 실력은 동네에 소문이 날 정도로 뛰어나다. 옆집 할머니가 ‘피터씨, 김치 넉넉히 줄 테니 우리집 기와도 손 봐주우.’라며 부탁할 정도라고 자랑했다. 하지만 정겹던 동네 인심은 재개발 광풍이 몰아치면서 사나워졌다. 2004년 이 일대가 동선3구역 주택재개발 정비구역으로 지정되자 개발을 원하는 주민들과 한옥을 지키려는 주민들이 편을 갈라 싸우기 시작했다. 바돌로뮤는 “쥐꼬리만 한 보상금 몇 푼과 평생 지켜온 유일한 자산인 집을 바꾸라고 부추기는 사람들이 안타깝다.”면서 “재개발되면 이 일대에는 삭막한 아파트 4동이 들어서게 될텐데 그 모습은 절대 못 본다.”고 힘주어 말했다. ●정겨웠던 동소문동 한옥마을 정부 중심의 재개발 정책이 일방적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는 “한옥마을의 예술적 가치를 몰라보는 것은 둘째치더라도 멀쩡히 사람이 사는 곳에 테두리를 쳐놓고 건물을 새로 짓겠다고 선포하는 것은 독재와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그가 생각하는 재개발의 근본 취지는 하꼬방(판잣집)처럼 열악한 주거환경을 개선해 살 만한 곳으로 바꾸어 주는 일이다. 서울시는 지난달 정릉 일대를 재개발하면서 개량 한옥 한 채를 남겨 주민들의 자치공간으로 사용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그는 한옥 마을을 단지 구경하고 체험하는 공간으로 만드는 것에 반대한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살지 않는 죽은 공간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의 꿈은 동소문 일대를 제2의 인사동, 제2의 북촌으로 만드는 것이다. 갤러리와 점집, 골동품 가게, 카페와 한옥이 아름답게 어우러진 예술마을을 이웃들과 함께 만들어가고 싶다고 한다. 그는 “그러면 사라질 뻔한 골목에 다시 사람들이 찾아와 북적대지 않겠나.”라고 기대했다. ●삶의 전부인 세운상가는 추억의 공간 같은 날 종로구 장사동 세운1지구 ‘초록띠 공원’. 40여년간 자리를 지켰던 세운 현대상가가 헐리고 대신 들어선 공원 한쪽에는 벼, 옥수수 등을 직접 기를 수 있는 ‘도시농장’(시티-팜·City-Farm)이 조성되고 있다. 모내기 작업 중인 인부들의 모습을 무심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이웅재(59)씨가 한마디 던진다. “서울시민 모두를 위한 일이라는데 터를 지켜온 사람들은 왜 슬퍼해야 하나.” 그는 30년째 세운상가의 전체 7동 중 하나인 세운상가 본관에서 TV와 난로 등을 팔아온 ‘터줏대감’이다. 시는 지난해 5월 남산에서 세운상가와 종묘를 가로질러 북악산까지 연결되는 ‘세운 녹지축’ 조성계획을 발표했고, 1단계 사업을 통해 현대상가터에 ‘초록띠공원’을 만들었다. 오세훈 시장은 지난 5월20일 열린 초록띠공원 준공식에서 “5개월 전 착공 당시 삭막하기만 했던 터가 녹지로 바뀐 걸 보니 감회가 남다르다.”며 흐뭇해했다. 시는 아직 공사가 시작되지 않은 청계천~을지로~퇴계로 구간도 오는 2015년까지 3단계에 걸쳐 완공할 계획이다. 하지만 이를 지켜 보는 이씨등 세운상가 상인들의 반응은 싸늘하기만 하다. 70년대 초 세운상가에 처음 발들여 놓은 이씨는 인생의 절반을 이곳에서 보냈다. 종업원으로 시작해 점포를 얻었고 96년부터 8년간 상인연합회장도 지냈다. 대학생인 아들도 상가에서 장사하며 낳고 길렀으니 “세운상가가 내 삶의 전부”라는 이씨의 말이 과장된 것은 아니다. 그는 “그러나 시가 상인들과 별 상의없이 세운 녹지축계획을 발표하고 지난해부터 공사를 진행하면서 우리의 자존심이 땅에 떨어졌다.”면서 “3개월 영업보상비와 대체상가 등을 마련해 줬지만 몇십년째 이곳에서 일한 상인들에게는 턱없이 부족할 뿐”이라고 불만을 표시했다. 재개발도 좋지만 그동안 터를 지키며 살아온 이들에게 의견을 묻고 배려해 주는 방식으로 진행했다면 모두가 행복하리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시가 철거된 현대상가의 상인들을 위해 대체건물로 지어준 인의동 ‘세운스퀘어’의 정인학(54) 상인연합회장도 “일본 도쿄시는 65년된 전자상가 아키하바라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면서 “그러나 오 시장의 눈에 세운상가는 없애야 할 낡은 건물로밖에 보이지 않는 것 같다.”며 서운해했다. 세운상가 터와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종로1, 2가 뒤쪽 골목에 이어져 있는 피맛골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20여년 간 이곳에서 생선구이집을 해온 대림식당 사장 석송자(67·여)씨는 “자고 나면 가게가 하나씩 없어진다.”면서 “외국인들도 600년 전통의 거리를 왜 없애느냐며 아쉬워하더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80년대 학생운동이 한창일 당시 경찰을 피해 피맛골에 몸을 숨겼던 대학생들이 어느새 40대 중년이 돼 아이들과 이곳을 찾기도 한다.”면서 “서민들의 추억이 서린 공간은 보존해야하는 것 아니냐.”며 안타까운 듯 되물었다. 골목 한쪽에서 35년째 ‘원조 감자탕’집을 운영하고 있는 강옥희(70·여)씨는 “이곳에서 감자탕을 팔며 죽은 남편 대신 3남매를 키웠다.”면서 “재개발 때문에 곧 건물을 비워야 하는데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하다.”고 하소연했다. 사라져 가는 옛 터전들. 그곳을 지켰던 서민들에게 도시개발 계획은 빛보다 그림자였다. “정치하는 사람들 눈에는 문화는 없고 돈만 보이는 것 같아요. 이렇게 독특한 예술촌은 세계 어디에도 없는데 왜 보존할 생각은 못하고 없애지 못해 안달인지 이해할 수가 없어요.” 영등포구 문래동 3가. 낡고 녹슨 소규모 철강소들이 거리를 따라 줄지어 이어졌다. 그중 대부분은 문을 닫고 일부 철강소에서만 쇠 깎는 소리가 들려왔다. 폐허같은 골목길을 따라 들어가니 범상치 않은 그래피티(벽에 낙서처럼 긁거나 스프레이 페인트를 이용해 그리는 그림)와 조형물이 눈에 띄었다. 이 곳은 마니아층에게 ‘문래예술공단’으로 알려져 있다. 대학생 함광일(26)씨는 공단 곳곳을 찾아다니며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함씨는 “이곳이 없어지기 전에 사진기록이라도 남기고 싶어 찾았다.”면서 “문래예술공단은 한국의 몽마르트 언덕과도 같은 곳인데….”라며 아쉬워했다. ●“문래동 3가 예술촌 보존은 안되나요” 문래동3가는 70~80년대 서울의 대표적인 공업지역이었다. 하지만 산업구조가 변하면서 철공소 상인들은 공단을 떠났고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예술가들이 찾아와 빈 공간을 채우기 시작했다. 지금은 70여개의 작업실에 160여명의 예술가들이 모여 창작활동을 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해 서울시의회가 준공업지역인 이곳에 최대 80%까지 아파트를 건립할 수 있도록 조례를 개정하면서 사정은 달라졌다. 이미 예술촌 주변은 아파트와 주상복합 건물이 에워싸고 있었다. 아파트에 둘러싸인 예술촌은 어색하고 초라해 보였다. 이곳의 예술가들은 문래동 3가의 매력을 세가지로 꼽았다. 우선 임대료가 저렴하다. 그래서 요즘도 홍익대 부근에서 활동하던 예술가들도 많이 건너온다고 한다. 주변이 빈 공단이거나 철공소라 작업 중에 발생하는 소음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문래동 3가만의 녹슬고 낡은, 오래된 분위기가 예술적 영감을 자극한다고 입을 모았다. 일러스트레이터인 이소주(33)씨는 “재개발을 하게 되면 건물 주인은 임대료를 올려 입주해 있는 예술가들을 쫓아낼 것”이라면서 “단순히 예술가들의 문제가 아닌 한국 문화계의 위기”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 [뉴스 다큐 시선] 서울 사라지는 골목길 사람들의 애환

    “성북동 산에 번지가 새로 생기면서/본래 살던 성북동 비둘기만이 번지가 없어졌다/새벽부터 돌 깨는 산울림에 떨다가/가슴에 금이 갔다.” 시인 김광섭은 1968년 ‘성북동 비둘기’라는 시에서 개발의 열풍 속에 파괴돼 가는 인간성을 비둘기에 빗대 표현했다.여기 오랜 삶의 터전을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서울시가 2007년부터 시작한 ‘디자인 서울거리 조성계획’이 서울 전체를 바꾸고 있다. 이 사업은 2007년 대학로, 이태원로 등 10개 지역에 439억원을 투입해 전면 재단장하면서 시작됐다. 그러나 언제나 새로운 것의 이면에는 사라지는 것들이 있고 그 뒤안길에는 사람들의 추억과 삶이 녹아 있다. 철거가 됐거나 이제 곧 철거를 앞두고 있는 서울의 추억을 찾아 그곳을 지키는 사람들의 애환을 들어 봤다. 글 박건형 오달란 유대근 박성국기자 kitsch@seoul.co.kr 동영상 나우뉴스 박성조기자 voicechord@seoul.co.kr 30년 전 서울 성북구 동소문동 일대에는 80여채의 한옥들이 서로 처마를 맞댄 채 줄지어 서 있었다. 집집마다 경쟁하듯 내놓은 화분이 골목을 화사하게 꾸몄다. 대문은 잠겨있는 적이 없었다. 활짝 열린 문 사이로 “영이 엄마, 된장이 다 떨어졌네. 한 숟갈만 퍼줘.” “언니, 나 대파 한 단 사올 동안 우리 애 좀 잠깐 봐 줘요.” 하는 정겨운 대화가 오갔다. 이 동네 14칸짜리 한옥에서 35년째 살고 있는 피터 바돌로뮤(61)가 들려준 이야기다. 간간이 비가 흩뿌리는 지난 13일 저녁 바돌로뮤의 집 대청마루에 앉았다. 마당에 심은 대나무 이파리가 바람에 흔들리며 사각거렸다. 그는 “이렇게 조용하고 아름다운 한옥을 불편하고 낡았으니 부수고 새로 지어야 한다는 사람들을 보면 속이 상한다.”고 푸념했다. 그는 “콘크리트 건물도 수리하지 않으면 30년을 못 간다.”면서 “나도 매년 두 번 지붕에 올라가 깨진 기와를 보수하고 홈통에 쌓인 낙엽을 치우면서 집을 부지런히 가꾼다.”고 말했다. 그의 기와 수리 실력은 동네에 소문이 날 정도로 뛰어나다. 옆집 할머니가 ‘피터씨, 김치 넉넉히 줄 테니 우리집 기와도 손 봐주우.’라며 부탁할 정도라고 자랑했다. 하지만 정겹던 동네 인심은 재개발 광풍이 몰아치면서 사나워졌다. 2004년 이 일대가 동선3구역 주택재개발 정비구역으로 지정되자 개발을 원하는 주민들과 한옥을 지키려는 주민들이 편을 갈라 싸우기 시작했다. 바돌로뮤는 “쥐꼬리만 한 보상금 몇 푼과 평생 지켜온 유일한 자산인 집을 바꾸라고 부추기는 사람들이 안타깝다.”면서 “재개발되면 이 일대에는 삭막한 아파트 4동이 들어서게 될텐데 그 모습은 절대 못 본다.”고 힘주어 말했다. ●정겨웠던 동소문동 한옥마을 정부 중심의 재개발 정책이 일방적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는 “한옥마을의 예술적 가치를 몰라보는 것은 둘째치더라도 멀쩡히 사람이 사는 곳에 테두리를 쳐놓고 건물을 새로 짓겠다고 선포하는 것은 독재와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그가 생각하는 재개발의 근본 취지는 하꼬방(판잣집)처럼 열악한 주거환경을 개선해 살 만한 곳으로 바꾸어 주는 일이다. 서울시는 지난달 정릉 일대를 재개발하면서 개량 한옥 한 채를 남겨 주민들의 자치공간으로 사용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그는 한옥 마을을 단지 구경하고 체험하는 공간으로 만드는 것에 반대한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살지 않는 죽은 공간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의 꿈은 동소문 일대를 제2의 인사동, 제2의 북촌으로 만드는 것이다. 갤러리와 점집, 골동품 가게, 카페와 한옥이 아름답게 어우러진 예술마을을 이웃들과 함께 만들어가고 싶다고 한다. 그는 “그러면 사라질 뻔한 골목에 다시 사람들이 찾아와 북적대지 않겠나.”라고 기대했다. ●삶의 전부인 세운상가는 추억의 공간 같은 날 종로구 장사동 세운1지구 ‘초록띠 공원’. 40여년간 자리를 지켰던 세운 현대상가가 헐리고 대신 들어선 공원 한쪽에는 벼, 옥수수 등을 직접 기를 수 있는 ‘도시농장’(시티-팜·City-Farm)이 조성되고 있다. 모내기 작업 중인 인부들의 모습을 무심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이웅재(59)씨가 한마디 던진다. “서울시민 모두를 위한 일이라는데 터를 지켜온 사람들은 왜 슬퍼해야 하나.” 그는 30년째 세운상가의 전체 7동 중 하나인 세운상가 본관에서 TV와 난로 등을 팔아온 ‘터줏대감’이다. 시는 지난해 5월 남산에서 세운상가와 종묘를 가로질러 북악산까지 연결되는 ‘세운 녹지축’ 조성계획을 발표했고, 1단계 사업을 통해 현대상가터에 ‘초록띠공원’을 만들었다. 오세훈 시장은 지난 5월20일 열린 초록띠공원 준공식에서 “5개월 전 착공 당시 삭막하기만 했던 터가 녹지로 바뀐 걸 보니 감회가 남다르다.”며 흐뭇해했다. 시는 아직 공사가 시작되지 않은 청계천~을지로~퇴계로 구간도 오는 2015년까지 3단계에 걸쳐 완공할 계획이다. 하지만 이를 지켜 보는 이씨 등 세운상가 상인들의 반응은 싸늘하기만 하다. 70년대 초 세운상가에 처음 발들여 놓은 이씨는 인생의 절반을 이곳에서 보냈다. 종업원으로 시작해 점포를 얻었고 96년부터 8년간 상인연합회장도 지냈다. 대학생인 아들도 상가에서 장사하며 낳고 길렀으니 “세운상가가 내 삶의 전부”라는 이씨의 말이 과장된 것은 아니다. 그는 “그러나 시가 상인들과 별 상의없이 세운 녹지축계획을 발표하고 지난해부터 공사를 진행하면서 우리의 자존심이 땅에 떨어졌다.”면서 “3개월 영업보상비와 대체상가 등을 마련해 줬지만 몇십년째 이곳에서 일한 상인들에게는 턱없이 부족할 뿐”이라고 불만을 표시했다. 재개발도 좋지만 그동안 터를 지키며 살아온 이들에게 의견을 묻고 배려해 주는 방식으로 진행했다면 모두가 행복하리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시가 철거된 현대상가의 상인들을 위해 대체건물로 지어준 인의동 ‘세운스퀘어’의 정인학(54) 상인연합회장도 “일본 도쿄시는 65년된 전자상가 아키하바라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면서 “그러나 오 시장의 눈에 세운상가는 없애야 할 낡은 건물로밖에 보이지 않는 것 같다.”며 서운해했다. 세운상가 터와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종로1, 2가 뒤쪽 골목에 이어져 있는 피맛골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20여년 간 이곳에서 생선구이집을 해온 대림식당 사장 석송자(67·여)씨는 “자고 나면 가게가 하나씩 없어진다.”면서 “외국인들도 600년 전통의 거리를 왜 없애느냐며 아쉬워하더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80년대 학생운동이 한창일 당시 경찰을 피해 피맛골에 몸을 숨겼던 대학생들이 어느새 40대 중년이 돼 아이들과 이곳을 찾기도 한다.”면서 “서민들의 추억이 서린 공간은 보존해야하는 것 아니냐.”며 안타까운 듯 되물었다. 골목 한쪽에서 35년째 ‘원조 감자탕’집을 운영하고 있는 강옥희(70·여)씨는 “이곳에서 감자탕을 팔며 죽은 남편 대신 3남매를 키웠다.”면서 “재개발 때문에 곧 건물을 비워야 하는데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하다.”고 하소연했다. 사라져 가는 옛 터전들. 그곳을 지켰던 서민들에게 도시개발 계획은 빛보다 그림자였다. “정치하는 사람들 눈에는 문화는 없고 돈만 보이는 것 같아요. 이렇게 독특한 예술촌은 세계 어디에도 없는데 왜 보존할 생각은 못하고 없애지 못해 안달인지 이해할 수가 없어요.” 영등포구 문래동 3가. 낡고 녹슨 소규모 철강소들이 거리를 따라 줄지어 이어졌다. 그중 대부분은 문을 닫고 일부 철강소에서만 쇠 깎는 소리가 들려왔다. 폐허같은 골목길을 따라 들어가니 범상치 않은 그래피티(벽에 낙서처럼 긁거나 스프레이 페인트를 이용해 그리는 그림)와 조형물이 눈에 띄었다. 이 곳은 마니아층에게 ‘문래예술공단’으로 알려져 있다. 대학생 함광일(26)씨는 공단 곳곳을 찾아다니며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함씨는 “이곳이 없어지기 전에 사진기록이라도 남기고 싶어 찾았다.”면서 “문래예술공단은 한국의 몽마르트 언덕과도 같은 곳인데….”라며 아쉬워했다. ●“문래동 3가 예술촌 보존은 안되나요” 문래동3가는 70~80년대 서울의 대표적인 공업지역이었다. 하지만 산업구조가 변하면서 철공소 상인들은 공단을 떠났고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예술가들이 찾아와 빈 공간을 채우기 시작했다. 지금은 70여개의 작업실에 160여명의 예술가들이 모여 창작활동을 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해 서울시의회가 준공업지역인 이곳에 최대 80%까지 아파트를 건립할 수 있도록 조례를 개정하면서 사정은 달라졌다. 이미 예술촌 주변은 아파트와 주상복합 건물이 에워싸고 있었다. 아파트에 둘러싸인 예술촌은 어색하고 초라해 보였다. 이곳의 예술가들은 문래동 3가의 매력을 세가지로 꼽았다. 우선 임대료가 저렴하다. 그래서 요즘도 홍익대 부근에서 활동하던 예술가들도 많이 건너온다고 한다. 주변이 빈 공단이거나 철공소라 작업 중에 발생하는 소음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문래동 3가만의 녹슬고 낡은, 오래된 분위기가 예술적 영감을 자극한다고 입을 모았다. 일러스트레이터인 이소주(33)씨는 “재개발을 하게 되면 건물 주인은 임대료를 올려 입주해 있는 예술가들을 쫓아낼 것”이라면서 “단순히 예술가들의 문제가 아닌 한국 문화계의 위기”라며 한숨을 내쉬었다.@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길섶에서] 미인불패/김종면 논설위원

    고대 그리스의 여성시인 사포는 “예쁘면 다 착하다.”고 했다. ‘착하면 다 예쁘다.’라고 하면 또 모를까, 겉은 눈이 멀게 예쁘지만 속은 두억시니 같은 이들도 한둘이 아닌데 이 레즈비언 시인은 왜 그런 말을 했을까. 그가 살던 기원전 600년 당시에는 그랬나. 아름다움과 착함이 동행하는 것이라면 미인이 넘쳐나는 이 세상은 한결 살 만한 곳이 되었을 텐데…. 하지만 오늘날 예뻐지려는 욕망의 바탕에는 미인불패의 신화가 깔려 있다. 겉모습이 절대적 힘을 발휘하는 것은 사실 동물의 세계에서다. 다윈의 진화론에 따르면 적에게 그대로 노출되고 달아나기에도 거추장스러운 화려한 꽁지깃을 가진 공작새는 벌써 멸종됐어야 했다. 그러나 ‘성적 선택’ 덕분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다윈은 이 아이러니를 “공작새의 깃만 보면 기분이 우울해진다.”는 말로 표백했다. 인간은 공작이 아니다. 며칠 전 미스코리아대회를 보며 사우디아라비아의 ‘미스 품행’ 대회를 떠올렸다. 외모가 아니라 순전히 마음만 보고 미인을 뽑는단다. 마음이 고와야 미인이 다. 김종면 논설위원 jmkim@seoul.co.kr
  • [민선4기-남은 1년 이렇게] 김충용 종로구청장

    [민선4기-남은 1년 이렇게] 김충용 종로구청장

    “영화산업은 사람이 자원인 우리나라에서 가장 촉망받는 분야 중 하나입니다. 그래서 미래의 주역인 청소년들이 일찍부터 영화에 대해 감각을 키우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9일 개막하는 제11회 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의 조직위원장을 맡은 김충용 종로구청장은 이번 영화제의 의미를 이렇게 설명했다. 종로구가 후원하는 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는 ‘성장, 청소년, 가족’을 주제로 한 참여형 영화제로, 청소년과 학부모 약 15만명이 참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온고지신 정신… 전통 살리며 개발 김 구청장은 “출품작수도 지난해 47개국, 646편에서 올해 56개국, 914편으로 크게 늘었다.”면서 “영화 제작실습부터 이론 학습, 재미있는 공연과 체험 프로그램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져 미래의 영화인을 양성하는 주무대가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종로에는 시너스 단성사, 서울극장 등 유서깊은 영화관들이 많이 있을 뿐 아니라, 지난 1월에는 종로 허리우드 극장에 국내 최초 실버영화관이 문을 열어 성공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김 구청장은 “600년 전통의 역사와 문화가 살아 숨쉬는 종로야말로 훌륭한 영화 소재이자 소중한 문화 자원”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김 구청장은 민선 4기의 지난 3년을 돌아보며 ‘온고지신(溫故知新)’이란 말을 가장 먼저 떠올렸다. 종로는 서울의 중심지로서 품격을 지키면서도 낡은 구도심의 이미지를 벗을 수 있도록 도시재개발·재정비 사업을 신중하면서도 신속하게 추진해왔다. 김 구청장은 “무악연립 재건축 사업으로 810가구의 주민들이 새 보금자리를 찾았고, 숭인 4·5구역 재개발사업도 성공적으로 추진돼 700여가구의 입주가 완료됐다.”면서 “무엇보다 종로3가 일대 귀금속 거리가 ‘귀금속 산업뉴타운’으로 지정돼 도약의 발판을 마련한 것이 가장 뜻깊다.”고 밝혔다. ●청운실버센터 건립 노인건강 챙겨 소외계층을 포함한 구민 모두가 행복할 삶을 누릴 수 있는 복지행정도 빼놓을 수 없는 성과. 종로구는 2007년 158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사직동에 종로문화체육센터를 개관했으며, 종로노인종합복지관과 청운실버센터를 건립해 각종 질환으로 고통받는 노인들을 요양·보호하고 있다. 김 구청장은 남은 임기 1년 동안 ‘디자인 서울거리’로 지정된 삼청동과 대학로를 프랑스 몽마르트 언덕과 같이 문화와 예술이 살아있는 거리로 꾸미고, 종로 일대의 노점상 정비에도 힘써 깨끗한 종로 거리를 조성할 계획이다. “종로구 혜화동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한옥 동사무소가 있습니다. 앞으로도 우리의 소중한 전통을 잘 지키면서 도시를 풍요롭게 가꿔나가고 아이들의 교육부터 노인들의 복지까지 걱정 없는 종로를 만들겠습니다.”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1600년 전 성경 필사본 인터넷으로 열람

    지금으로부터 1600년 전에 필사돼 세계에서 가장 오래 된 성경 중의 하나로 꼽히는 ‘코덱스 시나이티쿠스’를 인터넷을 통해 열람할 수 있게 됐다.  대영도서관은 영국과 독일,이집트와 러시아 기관과 단체들이 협력해 1460쪽에 이르는 이 책의 절반 이상인 800쪽의 이미지를 홈페이지(www.codexsinaiticus.org)에 올려놓았다고 영국 BBC가 6일 전했다.전문가들은 이 성경을 통해 초기 기독교의 발전에 대한 연구가 큰 진전을 이룩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또 성경이 세대를 내려오면서 어떻게 전수됐는지를 보여줄 것이란 기대도 나오고 있다.구약 일부는 빠져 있지만 신약은 온전히 담긴 이 성경은 그리스 문자로 필사된 것이며 1933년 대영도서관이 모금운동까지 펼쳐 러시아국립도서관으로부터 10만파운드에 사들여 화제가 됐다.  대영도서관의 서구 저작물 책임자인 스콧 맥켄드릭 박사는 이 문건을 온라인에 게재함으로써 전세계 다양한 학자들이 문건에 접근,여러 분야에서 연구가 진척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를 표했다.  대영도서관은 온라인 게재를 기념하기 위해 이 문건과 관련된 광범위한 역사적 유물과 문서들도 소개했다.  이 성경은 이집트 시나이 반도의 세인트 캐서린 수도원에서 1500년 동안 온전한 형태로 보존돼 왔다.1844년 처음으로 발견됐지만 앞서 4개국의 대영도서관과,러시아 국립도서관,수도원과 독일 라이프치히 대학 등은 보존 권한을 둘러싸고 갈등을 빚어오다 이번에 협력해 인터넷에 공개하게 된 것.  이 책이 이렇듯 오랜 세월에도 보존 상태가 좋았던 것은 사막의 건조한 기후 덕도 있지만 이슬람 국가들 틈바구니에서 이 기독교 수도원이 마치 섬처럼 남겨져 정복의 손을 덜 탄 것으로 풀이됐다.    인터넷서울신문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서화사 거두 오세창 ‘근묵’ 완역 출간

    서화사 거두 오세창 ‘근묵’ 완역 출간

    한국 근대 서화사의 거두인 위창 오세창(1864~1953)의 ‘근묵(槿墨)’이 66년 만에 완역출간됐다. ‘근묵’은 고려말 정몽주, 길재부터 조선조 정도전, 성삼문, 이황을 비롯해 대한제국 말기 이도영에 이르기까지 1136명의 서간류와 시 등 소품을 모은 글씨첩으로 1943년 완성됐다. 1964년 위창의 유족에게서 ‘근묵’을 양도받아 소장해온 성균관대박물관(소장 조선미)은 29일 “34첩 첩장본의 원본 크기와 질감을 그대로 살려 촬영하고, 알아 보기 힘든 초서를 탈초(정자체로 쓰기)·번역해 전 5권으로 출간했다.”고 밝혔다. 박물관은 1981년과 1995년 두차례 영인본을 낸 적이 있으나 축소 판형에 일부만 출판하는 등 미흡한 점이 많았는데 이번에 전체 실물 크기의 영인본에 한글 번역과 해설을 충실히 덧붙여 서예 전공자뿐 아니라 일반인도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했다. ●“34첩 첩장본 원본 크기·질감 그대로 살려” ‘근묵’은 서예와 전각에 능하고, 고서화 감식에도 탁월했던 위창이 수십년 간 모은 서체의 결과물이다. 이보다 30여년 앞서 나온 위창의 또 다른 필첩 ‘근역서휘’(서울대박물관)와 더불어 600년 서예사를 집대성한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위창은 민족 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3·1운동에 앞장섰다가 투옥되는 등 독립운동가로 활약했고, 해방 이후에는 서울신문 사장을 지내기도 했다. ‘근묵’에 실린 묵적은 서체별로 행서가 595점, 초서가 468점으로 행초서가 대부분이다. 문장별로는 편지가 724점으로 3분의2를 차지하고 있는데, 격식과 제약이 없는 서간의 특성을 보여 주듯 글쓴이의 개성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자유분방한 서체가 눈길을 끈다. 다만 이번 번역 과정에서 박은, 안평대군 등 고려와 조선 초기 몇몇 작가의 필적은 신빙성에 의문이 제기돼 주석을 따로 달았다고 하영휘 가회고문서연구소장이 밝혔다. 서간의 내용을 통해 당시 의식주와 생활상, 감상 등을 들여다 볼 수 있다는 점도 흥미롭다. 추사 김정희는 아내를 잃은 지인에게 쓴 편지에서 “아내는 하루라도 없어서는 안 되는 것으로 차군(대나무)과 같다. 나는 일찍이 이런 상황에 익숙해진 적이 있기 때문에 그 단맛과 쓴맛을 잘 안다.”면서 ‘삿갓을 쓰고 나막신을 신고 산색을 보고 강물 소리를 들으며 방랑하는 것이 제일’이라고 위로한다. 조선 개국 공신 정도전은 한 편지에서 “오랜 침상에 누워 날마다 고통에 신음하고 있어 다시 일어나 사람이 될 가망이 전혀 없다. 사는 것이 정말 괴롭다.”고 하소연했다. 또한 정조가 친척에게 보낸 편지에는 내원에서 재배한 담배가 맛이 좋다는 자랑이 포함돼 있어 당시 창덕궁 후원에서 담배를 재배했음을 짐작하게 한다. ●새달 29일까지 특별 전시회 서간 외에 사제 간, 선후배 간, 친구 간에 전별하면서 지은 시고(詩稿)와 서(序), 기(記), 발(跋) 등의 작품도 대부분 유일한 기록들인 경우가 많아 문학사적인 의미가 크다. 이밖에 시대에 따른 편지지의 변화와 피봉의 형식, 전각의 종류 등 다양한 분야에서 자료적 가치가 높다. 성균관대박물관은 이번 완역출간을 기념해 이날부터 7월29일까지 ‘근묵’ 원본과 영인본, 위창의 글씨 등을 모은 특별전시회를 연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여행가방]

    ●동해 바다 보며 나이스샷! 강원도 양양의 쏠비치 호텔&리조트가 새달 5~6일 ‘해변 장타대회’를 연다. 해변장타대회는 지정된 장소에서 동해 바다를 향해 샷을 날린 뒤 가장 멀리 친 순서대로 순위를 정하는 대회다. 우먼 장타상, 시니어 장타상, 주니어 장타상, 최장타자상을 선정하여 시상한다. 골프채 풀세트와 쏠비치 무료패키지 이용권, 아쿠아이용권, 가전제품, 골프용품 등이 상품으로 준비돼 있다. 문의 (033)670-3617~3619 또는 대명리조트 홈페이지(www.daemyungresort.com).●“튀르키예예 기델림!”(터키로 갑시다) 터키는 한국에서 비행기로 12시간 떨어져 있다. 이슬람국가이면서 지리적으로는 유럽과 아시아를 잇고 있는 동·서 문화의 용광로와 같은 곳이다. 매년 6월이면 그리스 국경에 가까운 터키 북서부 에디르네(Edirne)주에서는 일명 ‘오일 레슬링 대회’로 통하는 ‘크르크 프나르’ 축제가 열린다. 축제 기간은 6월30일부터 7월6일까지다. 600년 전인 오스만튀르크 시절 기원된 오일레슬링은 온몸에 올리브 오일을 바른 뒤 긴 가죽바지만 입고 상대방의 두 어깨를 바닥에 닿게 하면 승리한다. 시간제한은 없다. 대회에서 우승한 천하 장사에게는 오랜 전통에 따라 황금 벨트와 상금이 주어지며, 그 외 입상자들도 소나 양 같은 가축과 옷감 등을 받는다. 관련 문의 터키관광청 한국사무소 (02)336-3030.●내가 직접 뜯은 산나물 냠냠~ 현대성우리조트는 매주 일요일 강원도 횡성군 둔내면 삽교1리 산채마을에서 ‘산채마을 산나물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7월19일까지 진행된다. 산나물에 대한 설명과 곰취, 취나물, 곤드레 등 산나물 뜯기와 가족별로 곤드레 나물밥을 직접 지어먹을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산채마을에서 낚시와 자전거 타기, 산책 등을 편하게 즐길 수 있다. 참가비는 중식 포함, 1만 4000원이며, 한 사람 당 직접 뜯은 산나물 1㎏씩을 가져갈 수 있다. 매주 토요일 저녁 6시까지 홈페이지(www.hdsungwoo.co.kr)에서 접수를 받는다. 문의 (033)340-3000.
  • 신라 중장기병 1600년만에 잠깨다

    신라 중장기병 1600년만에 잠깨다

    고구려지역 고분인 평북 용강군의 쌍영총이나 중국 지안현의 서안12호 등의 벽화를 보면 용맹한 모습으로 창을 들고 말을 타는 장수의 모습이 그려져 있는데, 장수도 말도 모두 갑옷으로 중무장을 하고 있다. 삼국사기 기록에는 이들을 고구려 ‘개마(鎧馬)무사’라고 지칭했다. 말하자면 높은 방어력과 기동력을 중심으로 진두에서 적진을 돌파하는 일종의 중장기병(重裝騎兵)인 셈이다. 지금껏 나온 역사 기록이나 고분 벽화 등 자료 중에는 신라의 중장기병 존재를 언급한 것은 없다. 하지만 잘못 알려진 사실에 불호령을 내리듯 1600년 전 신라시대의 중장기병이 오랜 잠을 깨고 모습을 드러냈다. 문화재청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2일 경주 황오동고분군(사적 제41호)내 쪽샘지구를 발굴 조사하는 과정에서 중장기병의 보호장구 및 말에 착용하는 장구류 등이 한꺼번에 나왔다고 밝히고 발굴현장을 공개했다. 황오동 361번지를 중심으로 한 쪽샘지구는 4~6세기 신라 왕족과 귀족들의 집단 묘지이다. 중장기병 유물이 나온 것은 쪽샘지구 53호분 동쪽에 있는 ‘쪽샘지구 C10호묘’. 이 무덤은 주부곽식목곽묘(主副槨式木槨墓·하나의 봉분 속에 2개 나무덧널이 있는 무덤) 형식. 동서 방향으로 땅을 팠고 동쪽에 440㎝×220㎝ 크기의 주곽, 서쪽에 260㎝×220㎝ 크기의 부곽이 자리잡고 있다. 이중 무덤 주인이 묻히는 주곽에서 찰갑(札甲·장수가 입는 비늘식 갑옷)과 마갑(馬甲·말 갑옷) 및 여타 부장품들이 나왔다. 갑옷은 마치 장수가 말을 탄 것처럼 마갑 위에 찰갑이 올려진 채 발견됐다. 연구소에 따르면 주검은 그 위에 안치했을 것으로 보인다. 마갑은 목곽의 바닥에 목·가슴부분, 몸통부분(130㎝×100㎝), 엉덩이 부분이 순서대로 깔려 있다. 그 위로 무덤 주인의 흉갑(胸甲·갑옷 가슴부분)과 배갑(背甲·갑옷 등부분)이 펼쳐져 있다. 갑옷은 이 둘을 옆구리에서 여미게 만든 ‘양당식(?當式)’ 구조. 장수에게 무기가 없을 리 없다. 한쪽에는 장수가 휘둘렀을 석자 길이의 환두대도(環頭大刀·둥근고리자루긴칼)와 녹각병도자(角柄刀子·사슴뿔로 손잡이 한 작은 칼)가 놓여 있다. 그 외 쇠창·쇠도끼 등 무기와 목가리개·어깨 갑옷·팔 보호 갑옷으로 추정되는 다량의 갑옷조각도 출토됐다. 죽은 자를 위한 창고라 할 수 있는 부곽에서는 마주(馬胄·말 얼굴가리개)와 안장틀, 등자, 재갈 등 마구들과 항아리류가 나왔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박종익 실장은 “출토된 토기 형식으로 보아 무덤은 5세기 전반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지금까지 국내에서는 갑옷 및 마갑, 그 부속품들이 단편적으로 소량씩 출토된 적은 있지만 한꺼번에 세트로 나온 적은 없다. 마갑은 1992년 함안 마갑총에서 한번 나온 적이 있지만 출토품의 상태는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나빴다. 갑옷도 판갑(板甲·큰 철판으로 만든 갑옷)은 종종 나왔지만 찰갑이 원형대로 나온 것은 처음이다. 박 실장은 “중장기병 장구류가 마구류와 함께 온전히 발굴된 경우는 해외에서도 없다.”면서 “빠른 시일내 전문가 검토 및 보존 처리를 거치고 공개토록 하겠다.”고 밝혔다. 발굴된 유물은 전문 연구자들의 설명회·토론 과정과 보존처리 등을 거친 뒤 이달 중에 일반에 공개될 예정이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가고 싶은 섬’ 외연도 철제 탐방로가 웬말

    “이러다 ‘가고 싶지 않은 섬’이 되는 게 아닌지 모르겠어요.” 문화체육관광부가 추진 중인 ‘가고 싶은 섬’ 사업이 삐걱거리고 있다. 충남 보령시 오천면 외연도 일부 주민들이 이 사업이 자연친화적으로 추진되지 않고 있다고 제동을 걸어 8월 완공 계획이 차질을 빚게 됐다. 보령시는 이 마을 뒷산에 펼쳐진 천연기념물 136호 상록수림(3만 2295㎡)에 길이 700m 폭 1.4m의 탐방로 데크를 만들다가 일부 주민이 반발, 180m 정도만 깐 채 진척이 안 되자 공사팀을 모두 철수시켰다고 2일 밝혔다. 주민들은 “콘크리트와 철제 데크는 아름다운 자연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반대하고 있다. 데크는 콘크리트 기초 위에 철제를 설치한 뒤 나무를 덮는 형태이다. 이 때문에 탐방로와 함께 설치하려던 1㎞의 해안산책로 및 570m의 등산로 건설사업은 착공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이 사업은 문화부 관광진흥기금 60억원과 지방비 71억원 등 모두 131억원이 투입된다. 외연도는 2007년 전남 청산도·홍도, 경남 매물도 등 3개 섬과 함께 ‘가고 싶은 섬’으로 선정됐고, 가장 빠른 사업 진척도를 보여왔다. 외연도는 충남 서해안 서쪽 맨 끝에 있는 유인도로 183가구 487명의 주민이 있다. 이곳 상록수림은 500~600년 된 동백나무, 후박나무, 팽나무가 군락을 이뤄 1962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다. 보령시 관광과 김재호씨는 “수령이 오래된 동백나무 등이 군락을 이룬 곳은 국내에서 유일한 곳으로 안다.”고 말했다. 연간 관광객은 1만명이 넘는다. 김복수(46) 외연도청년회장은 “탐방로 대신 상록수림 진·출입로를 명확히 표시하고 가파른 곳은 나무 계단을 만들라고 시에 수차례 건의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면서 “이대로라면 탐방로가 오히려 ‘반환경 시설’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주민들은 또 “상록수림이 있는 산은 해발 73m밖에 안되는데 무슨 시설이 필요하냐. 천연기념물 속에 철제를 설치하는 것은 시대 흐름과도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보령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30일 마포나루굿 재현 행사

    매년 단오를 맞아 주민의 안녕과 선박들의 무사항해를 기원하기 위해 열렸던 마포나루굿 재현 행사가 30일 한강시민공원 망원지구에서 열린다.28일 마포구에 따르면 이 행사는 강이나 바다 등에서 물의 신령인 용신을 위한 굿인 ‘배굿’과 선착장 주변에서 지역 수호신을 위해 벌이는 ‘육지굿’으로 나눠 펼쳐진다. 배굿은 한강에 배를 띄워 그 안에 굿청(굿을 치르는 총본부)을 차리고 무녀와 악사들이 용왕을 맞이하러 나가면서 시작된다. 이어 열두 마리의 동물 형상으로 장식된 배가 성산대교 아래 선착장(나루터)에서 출발해 밤섬 주변을 거쳐 다시 선착장으로 돌아오면서 굿이 끝난다. 지역의 번영을 기원하기 위해 벌이는 육지굿은 지역 수호신상 등의 그림을 앞에 두고 무녀와 악사, 주민들이 어울려 신나는 굿거리 한판을 벌이는 형식으로 진행된다.배굿과 육지굿은 오후 2시부터 6시까지 이어진다.본 행사에 앞서 오후 1시에는 주위의 모든 부정을 쫓아내는 ‘부정청배’ 등의 의식이 펼쳐진다. 이 행사의 당주 무당인 호기희(68)씨가 마포지역 무속인 6명과 함께 행사를 진행한다. 당주 악사는 서울시 무형문화재 제33호인 최형근씨가 맡는다.마포나루 굿은 한국전쟁 이후 명맥이 끊어졌다가 한국민속예술원구원 무속위원회 마포지부가 ‘서울 정도 600년 기념사업’의 하나로 마포나루 굿을 발굴한 것을 계기로 다시 빛을 보게 됐다. 신영섭 구청장은 “이번 행사를 통해 마포의 무속문화를 전국에 널리 알리는 것은 물론 구민들이 문화유산에 대한 자긍심과 문화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백민경기자 white@seoul.co.kr
  • [문화행사 알림방]

    15일부터 3기 입주작가 전시회 ●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 15~31일 제3기 입주작가 전시회를 갖는다. ‘간섭-interference’를 주제로 영상미디어, 회화, 조각, 드로잉 등 50여점의 작품이 선보인다. 제1전시장은 도시의 풍경과 이미지를 재해석하는 작품들로 꾸며진다. 제2전시장은 주술적인 색채를 이용한 대형 회화 작품들을 볼 수 있다. 30일에는 작가와 시민들이 함께하는 프로그램 ‘원더풀 아트’가 스튜디오와 인근 공원에서 열린다. 1600년 전 왕인을 만나다 ●왕인박사 체험여행 16일 오후 3시부터 매주 주말마다 전남 영암군 군서면 왕인박사 유적지에서 1600년 전 왕인박사와 함께하는 체험여행이 시작된다. 관광객들은 왕인박사가 일본에 한자와 문물을 전하는 거리행렬에 백제시대 옷을 입고 참가한다. 왕인학당에서는 천자문과 가훈도 쓴다. 무료로 개방되는 인근 영암읍 영암군농업기술센터 장미공원에서 꽃망울을 터뜨린 1만여그루의 장미도 볼 수 있다.
  • “DDP는 소용돌이 치는 물살 이미지 형상화”

    “DDP는 소용돌이 치는 물살 이미지 형상화”

    오세훈 서울시장은 28일 서소문청사에서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 & 파크(DDP)’의 설계자 자하 하디드(58)와 DDP 조성 배경과 건물설계에 반영된 핵심개념 등을 화제로 대담을 가졌다. 하디드의 DDP 설계안은 공원과 건물에 소용돌이치는 물살의 이미지를 형상화했다. 오 시장은 설계안에 대해 “DDP는 세계 최초의 3차원 곡선 형태의 건물”이라며 “고난도의 최첨단 건축기술이 동원돼야 하는 이 건축물은 우리에게 도전과 성취의 상징이 될 것”이라고 기대감을 표시했다. 또 “DDP는 서울성곽 등 500~600년 전 동양 유적과 초현대적 서양 건축물이 한 곳에서 구현돼 시간과 공간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스토리텔링이 가능하다.”며 “서울을 찾는 방문객들이 꼭 한 번 들러야 하는 대표적 랜드마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디드도 이에 “연속적이고 반복적인 것이 주류를 이뤘던 근대와는 달리 개인성, 특수성이 강조되는 현대에는 제품이나 건물의 디자인이 유동성과 개방성을 가져야 한다.”며 “DDP는 이런 특성을 반영해 모든 것이 굉장히 자연스럽게 통합되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동양에선 서양과는 달리 풍경과 자연에 집중하는 특성이 강해 이런 공간 개념에 특히 관심을 갖고 DDP에 주변 지형을 유기적으로 연결해 건물의 일부로 만들고자 했다.”고 말했다. 하디드는 “한국은 이미 발달한 산업국가로 한국만의 고유한 문화가 적용된 고유의 디자인 산업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하디드는 이라크 바그다드 출신의 세계적 건축가로 2004년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받았다. 동대문운동장을 철거한 자리에 들어설 DDP는 지하 3층, 지상 4층 규모로 이날 착공에 들어가 2011년 12월쯤 완공된다. 시는 이 사업에 3755억원을 투입한다.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씨줄날줄] 정약용의 안경/함혜리 논설위원

    1271년부터 1295년까지 원나라에서 관직을 맡았던 마르코 폴로는 ‘동방견문록’에서 원나라의 늙은 신하들이 거북의 등껍질로 만든 볼록렌즈 안경을 끼고 있다고 썼다. 중국이 안경 발명국이라는 주장의 근거다. 그러나 대부분의 논문들은 안경이 1280년경 베니스의 유리공들에 의해 최초로 제작됐고 수도승들에 의해 중국 원나라까지 전해졌다고 본다. 우리나라에 안경이 처음 소개된 것은 임진왜란을 전후한 시기, 즉 16세기 말로 추정한다. 안경알은 유리가 아닌 수정을 갈아서 만든 것이었는데 대부분 중국에서 들여온 것이었다. 1600년대 초부터는 경주에서 안경이 제작되기 시작했다. 볼록하게 튀어나온 렌즈가 마치 ‘게눈’처럼 생겨서 체신이 안 선다는 이유로 초창기에 안경은 그다지 환영받지 못했다. 18세기 들어 실용성을 중시하는 실학을 연구하는 학자들 사이에서 안경이 보편화되면서 안경은 선비들의 필수품으로 자리잡기 시작한다. 말년의 정조도 안경을 착용했을 정도였다. 정조실록에 보면 정조는 정조 23년(1799년) 7월에 안경을 착용했다는 기록이 있다. 정조는 안경 다리를 비단실로 만들고 테는 옥으로 된 옥안경을 쓴 것으로 전해진다. 정조의 나이는 당시 47세였고 이듬해 세상을 떠났다. 정조를 도와 개혁을 주도했던 다산 정약용(1762∼1836)은 순조가 즉위하면서 생애 최대의 전환기를 맞는다. 소론과 남인 사이의 당쟁이 신유사옥이라는 천주교 탄압사건으로 비화하면서 다산은 천주교인으로 지목받아 유배형을 받는다. 포항 장기에서 1차 유배생활을 마치고 47세에 강진의 귤동에 있는 초가에서 다시 유배생활을 했다. 정약용이 10년 동안 머물면서 역사에 빛나는 학문적 업적을 남긴 곳이 다산초당이다. 전남 강진군이 다산초당에 설치할 새로운 초상화를 공개했다. 한국전통문화학교 김호석 교수가 치밀한 고증을 거쳐 완성한 새 초상화에서 다산은 안경을 끼고 있다. 방대한 독서량과 저술로 인해 시력이 많이 약화됐다는 기록에 근거한 것이라고 한다. 조선후기 최고의 르네상스형 지식인으로 꼽히는 다산이 근엄함을 벗어던진 것은 환영할 일이지만 안경을 쓴 모습이 눈에 익으려면 아무래도 좀 시간이 걸릴 듯하다.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도시와 산] 강화 고려산

    [도시와 산] 강화 고려산

    사람들은 가까이 있는 소중한 것을 제쳐 놓거나 화려함만 찾는 경향이 있다. 산의 경우도 서너 시간 이상 차를 타고 가거나 산세가 수려해야 명산이란 인식이 은연중에 배어 있다. 인천 강화의 고려산은 단군이 하늘에 제사 지냈다는 참성단이 있는 마니산의 역사성에 밀려 강화에서조차 ‘대표산’이란 평가를 받지 못한다. 태산준령과 빼어난 계곡도 없다. 하지만 실상을 보면 달라진다. 인천시내에서는 물론 서울 서부지역에서도 대중교통으로 1시간 거리로 부담없이 찾을 수 있다. 곳곳에 오랜 역사의 자취도 널려 있다. 각종 빛깔의 꽃이 만발해 천자만홍(千紫萬紅)의 진가도 알게 한다. 도심의 번잡함에서 벗어나 ‘느림의 미학’을 함께 즐길 오래 묵은 친구 같은 산이다. 때마침 어디에 내놔도 뒤지지 않는 진달래 군락이 요즘 절정을 이뤄 가는 발걸음이 사뿐할 것이다. ●곳곳이 문화 유적지 고려산은 일반적으로 국화리 마을회관에서 출발, 청련사를 거쳐 정상에 오른다. 도로가 뚫린 청련사까지 1㎞, 이곳부터 정상까지 1.3㎞로 1시간가량 걸린다. 청련사는 고려산의 유래가 담겨 있다. 고구려 장수왕 4년, 인도의 승려 천축조사가 고려산에서 절터를 찾던 중 정상 연못에 핀 다섯 색상의 연꽃을 날려 하얀 꽃이 떨어진 곳에 백련사를 지었다고 한다. 노란 꽃이 떨어진 자리에 황련사, 청색꽃 자리에 청련사, 적색꽃 자리에 적석사, 흑색꽃 자리에 흑련사를 세웠다. 청련사만 조사가 원하는 곳에 떨어지지 못해 원통한 나머지 ‘원통암’이란 암자를 지어 현재 3개의 사찰(백련사·청련사·적석사)과 1개의 암자가 1600년 역사를 이어오고 있다. 정상(해발 436m)에 오르면 북한 송악산과 연백을 비롯해 교동도 일대의 강화 앞바다, 영종도 등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바다와 이어지는 한강, 임진강, 예성강 등도 한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그대로 하산하면 가지 않은 것만 못하다. 서쪽의 낙조봉으로 이어지는 4㎞의 능선길 주변엔 유적지가 산재해 진짜 묘미는 여기서부터다. 능선을 2㎞가량 걸으면 고인돌군(群)이 나타난다. 강화고인돌은 부근리, 삼거리, 오상리 등 고려산 기슭을 따라 130여 기가 분포돼 있다. 부근리에는 길이 7.1m, 높이 2.6m의 우리나라 최대의 북방식 고인돌이 있다. 강화고인돌은 우리나라 고인돌의 평균 고도보다 100~200m 높은 지역에 있어 이채롭다. 특히 고려산 정상 능선길에 있는 21기의 고인돌은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황선국(50·인천 연수동)씨는 “옛날에는 기중기 같은 중장비가 없었는데 어떻게 수톤에 달하는 돌을 이곳으로 옮겼는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향토사학자 양태부(50)씨는 “고려산 기슭에 거주하던 고대인들이 능선에 무덤을 만들었을 것”이라며 “당시에 나름대로 석재를 다루는 기술, 축조와 운반방법 등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이어 고구려 대장군 연개소문이 무술을 연마하고 군사 훈련을 시켰다는 치마대가 나타난다. 연개소문이 말에게 물을 먹였다는 5개 연못인 오련지는 정상과 7~8부 능선에 분포돼 있다. 낙조봉에서 적석사 쪽으로 내려가면 우리나라 3대 낙조 조망대인 낙조대가 나온다. 동해안 정동진의 반대쪽에 있다 해서 ‘정서진’으로도 불린다. 여기서 바라보는 서해 석양은 ‘강화 8경’ 가운데 으뜸으로 꼽힌다. 적석사에는 조선 중기 유명한 서예가인 윤순이 쓴 사적비가 있다. ●진달래 군락의 향연 진달래는 고려산을 찾는 이유 중 하나다. 봄만 되면 정상 앞 비탈에는 잡목이 없이 빽빽하게 들어선 진달래가 군락을 이룬다. 산 정상에서 능선 북사면을 따라 355봉까지 약 1㎞를 연분홍으로 물들이는 향연을 만들어낸다. 등산보다는 진달래 감상이 우선이면 산 뒤편에서 오르는 게 빠르고 편하다. 48번 국도에서 백련사를 거쳐 정상에 이르는 코스다. 축제 기간 찾는 관광객들은 대개 이 길을 택한다. 대신 교통혼잡과 포장도로를 통해 산을 오르는 밋밋함을 감내해야 한다. 올해 진달래축제는 11일 시작돼 20일까지 펼쳐진다. 도시의 복잡함과 스트레스로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주기에 부족함이 없어 매년 10만명 이상이 다녀간다. 글 김학준기자 kimhj@seoul.co.kr 사진 도준석기자 pado@seoul.co.kr ■ 연개소문 메아리 들리나요 고려산에는 만주와 요동을 호령했던 고구려 대장군 연개소문에 대한 민간신앙이 짙게 깔려 있다. 강화 사람들은 연개소문이 고려산에서 태어난 것으로 믿는다. 정통 역사서에는 연개소문이 태어난 연도와 장소가 분명하게 나타나 있지 않다. 연개소문과 고려산의 연관성은 1932년 강화지역 향토사학자 박헌용이 쓴 ‘속수증보강도지’에 언급돼 있다. 이 문헌에 따르면 연개소문은 고려산 시루메봉 밑에서 태어나 무예를 닦았다. 이런 내용은 1993년 부근리에 세워진 ‘대막리지 연개소문 유적비’에도 보인다. 연개소문이 군사들을 훈련시켰다는 치마대와 말에게 물을 먹였다는 5개의 연못인 오련지가 현재 보존돼 있다. 연개소문을 기리기 위한 사찰인 성황사도 고려산 중턱에 있었다고 한다. 향토사학자 양태부씨는 “분명하지 않지만 연개소문과 연관된 사적이 많은 것을 보면 어떤 식으로든 관련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고려산은 옛날부터 강화지역에서 신내림을 받거나 신을 모실 때 찾던 영산(靈山)이다. 이런 연유로 지금도 이곳 주민들은 산신제와 서낭제를 지내고 있다. 이같은 무속신앙 역시 연개소문과 관련이 있다. 산 자락인 고천4리에 자리잡은 ‘고려산 굿당’은 이러한 것을 잘 드러낸다. 다른 굿당들이 대개 삼국지에 나오는 중국 장수 관우를 신으로 모시는 것과는 달리 이곳은 연개소문을 신으로 받든다. 이곳에 있는 산신각은 연개소문을 산신령으로 모신다. 글 김학준기자 kimhj@seoul.co.kr 사진 도준석기자 pad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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