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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에 쌓인 오해·왜곡 실타래 풀다

    서울에 쌓인 오해·왜곡 실타래 풀다

    서울특별시 vs 서울보통시/노주석 지음/소담출판사/288쪽/2만원 세계사에서 서울처럼 독특한 궤적을 지닌 도시도 흔치 않다. 서울은 200년 이상의 생성사를 가진 고대 도시이며 대한민국의 심장부 노릇을 한 지도 600년이 넘었다. 하지만 식민지와 전쟁의 상흔을 겪었고 개발이라는 명목으로 강제 ‘성형 수술’을 당했으며 누군가에게는 ‘아파트 공화국’으로 불리기도 한다. 서울신문 기자와 논설위원을 거쳐 현재 서울도시문화연구소장으로 있는 저자가 2013년 6월부터 2015년 2월까지 3년에 걸쳐 연재한 ‘노주석의 서울택리지’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이 책은 서울에 대한 오해와 가슴 아픈 왜곡의 역사를 담담하게 그려 낸다. 책은 세간에 알려지지 않은 서울의 민낯을 세상 밖으로 끄집어내 찬찬히 보여 준다. 현재 서울의 지명은 일제를 거치면서 ‘창지 개명’ 되었고 성급한 도시계획 아래 반쪽짜리 지명을 되찾거나 아예 왜곡된 지명 그대로를 안은 채 숨쉬고 있다. 이처럼 과거사를 압축해 보여 주는 지명의 유래에서부터 한성판윤과 서울시장, ‘서울 사수’를 외치면서 서울을 버린 대통령 등 과거에서 현재까지 되풀이되는 서울의 역사를 흥미진진하게 풀어냈다. 아울러 서울을 에워싸고 있는 서울한양도성 성곽과 8개의 대·소문이 한 몸이었다는 사실이 잊혀지고, 복원은커녕 제대로 검증조차 이루어지지 않은 사실 등 굴곡진 서울의 역사도 살펴본다. 저자는 미래세대에게 당당하게 물려줄 유산으로서 서울의 의미와 서울학 및 서울정치학의 연구와 필요성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높인다. 풍부한 역사적 사료와 사진 자료를 통해 서울의 변천사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이은주 기자 erin@seoul.co.kr
  • 600년을 기억하다… 서울을 다시 보다

    600년을 기억하다… 서울을 다시 보다

    한국을 넘어 글로벌 메가시티로 성장한 서울의 과거와 현재를 미술 작품을 통해 한눈에 조감할 수 있는 ‘나는 불꽃이다, 서울’전이 여의도 63 아트미술관에서 열린다. ●조선~현대 역사 흐름 따라 41명의 작품 선봬 조선이 왕도로 삼은 후 6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중심지였던 서울은 대한민국의 수도이자 핵심 공간으로 한국인에게는 꺼지지 않는 불꽃과도 같은 곳이다. 전시는 일어나고, 흔들리며, 다시 타오르는 불꽃의 과정을 서울의 역사적 흐름과 연결해 총 7개 부분으로 나눠 구성했다. 조선 후기의 정선부터 21세기의 미디어 아티스트들까지 41명이 서울이 겪은 각 시기의 고난과 극복, 그리고 그 시기를 회화, 사진, 영상, 설치, 조각 등의 작품을 통해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김기창의 ‘도성도’는 수묵으로 한양의 모습을 부감하는 구도로 그린 그림이다. 산으로 둘러싸인 도성의 중심에 경복궁으로 보이는 건물이 있고 주변에 민가들이 배치돼 있다. 태평성대가 실현된 조선 후기 영·정조 시대에 이르러 불꽃은 더 환히 빛을 낸다. 특히 정선은 진경산수화라는 새로운 전통을 세운 조선 후기의 대표 화가로 인물산수도에서 우리 국토와 그 속에 사는 민족의 풍속을 긍정적 시선으로 바라보며 그 내면의 정신까지 묘사했다. 이이남의 ‘2014 금강내산’은 정선의 금강내산을 재해석한 8분가량의 디지털 미디어아트다. 강기훈은 ‘그때, 그곳에서, 그는… 안중근’에서 일제강점기에 짓밟혔던 대한민국의 인권과 잊혀 가는 독립운동가의 정신을 멍석과 갈대밭 등의 상징을 통해 보여 준다. 광복의 기쁨을 맞아 어둠 속에 살아 있던 작은 불씨가 다시 불꽃을 일으키듯이 광복의 기쁨이 서울을 뒤덮는다. 김기창의 ‘해방’은 해방의 기쁨에 만세를 부르며 환호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단순하지만 힘 있는 선으로 표현하고 있다. ●회화부터 미디어까지 한강의 기적 재조명 전쟁 이후 다시 힘을 모아 한강의 기적을 이뤄 내는 서울은 재건 사업과 함께 인구 증가와 산업화가 급속하게 진행된다. 한국의 전통적 정신을 계승해 현대적으로 발전시킨 김형대의 ‘후광’, 현대사회의 소통 부재와 익명성 등을 일상의 장면을 통해 보여 주는 유근택의 ‘두 사람’, 현대인의 꿈과 희망을 은유적으로 나타낸 민성식의 ‘공사 중’이 출품됐다. 이상원의 ‘the Red’는 2002년 월드컵의 뜨거운 열정과 열기를 보여 주고, 손민광의 ‘불꽃놀이’는 색색의 작은 라벨 용지 조각을 붙이는 방법으로 어둠 속에서 피어나는 불꽃의 모습을 화려하게 표현한다. 전시는 오는 3월 20일까지. (02)789-5663. 함혜리 선임기자 겸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알쏭달쏭+] 무지개는 꼭 ‘빨주노초파남보’여야 할까?

    [알쏭달쏭+] 무지개는 꼭 ‘빨주노초파남보’여야 할까?

    무지개는 행운의 상징이다. 일반적으로 무지개는 ‘빨주노초파남보’로 이뤄진 거대한 띠라고 여기지만, 사실 무지개는 공기중 얼음이나 물방울에 반사되는 태양빛의 각도에 따라 2줄, 3줄 혹은 4줄로 나타나기도 한다고 프랑스의 한 기상학자가 주장했다. 전문가들은 1600년대부터 무지개가 오로지 ‘한줄’ 즉 한 종류에 불과하다고 생각해왔지만, 최근 연구에 따르면 무지개의 종류만 십 여 종에 달할 수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빗방울이나 아주 적은 양의 물안개가 각기 다른 각도의 태양빛과 만나면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새로운 형태의 무지개가 나타난다는 것. 연구를 이끈 프랑스 국립기상연구센터의 기상학자 진 리차드는 “사람들은 무지개가 떠 있는 동안 어떤 형태의 변화도 없다고 생각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면서 "태양빛을 반사하는 물방울(빗방울)은 계속 아래로 떨어지기 때문에 자세히 살펴보면 이에 따라 무지개 형태 역시 변화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연구에 따르면 1차로 발생하는 무지개는 가장 위에 빨강색이, 가장 아래에 보라색이 위치하는데, 이후 물방울 위치 및 빛의 파장에 변화가 생기면 색의 위치가 뒤바뀌면서 새로운 무지개로 보일 수 있다. 또 대기 중 물방울이 많거나 물방울의 크기가 작을 경우 1차 무지개 후에 희미하게 또 하나의 무지개가 나타나기도 하는데, 이를 과잉무지개라고 한다. 이러한 형태가 반복되면 3차, 4차 무지개까지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 리차드 박사의 설명이다. 빛의 파장에 따라 푸른색이나 보라색이 없는 경우, 푸른색과 붉은색만 있는 경우, 오로지 붉은색만 있는 경우 등 다양한 무지개가 나타날 수 있으며, 리차드 박사는 이런 경우를 집합해 총 12가지 형태의 무지개가 나타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리차드 박사는 “해가 뜰때나 해가 질 때, 태양의 빛과 빛의 세기 등에 따라 무지개의 색은 천차만별로 달라진다”면서 “참고로, 만약 과학자들이 태양계 외 행성에서 무지개를 발견한다면 그것은 대기중에 물이 있다는 근거이며, 곧 생명체가 존재할 수 있다는 근거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서울신문이 만난 사람] 잊혀졌던 전통사경의 맥을 잇다… 김경호 한국사경연구회 명예회장

    [서울신문이 만난 사람] 잊혀졌던 전통사경의 맥을 잇다… 김경호 한국사경연구회 명예회장

    흔히 사경(寫經)은 그저 불교경전을 베껴 쓰는 정도로 인식된다. 하지만 따져 보면 한국의 전통 사경은 세계문화사적으로 탁월한 가치를 요란하게 자랑할 만한 우수한 문화유산이다. 한국사경연구회 명예회장 외길 김경호(54)씨는 조선시대 이후 600년간 명맥이 끊기다시피 한 고려 전통 사경의 우수성에 눈떠 그 원형 복원에 천착해 사는 한국의 독보적 전통 사경 전문가이다. 2002년 한국사경연구회를 만들어 최근까지 이끌면서 잊혀졌던 불모지대의 전통 사경을 힘겹게 국내외에 알려 전통예술의 한 분야로 인식되게 한 주인공이다. →사경은 일반적으로 불교 경전 베껴 쓰기쯤으로 인식되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를 갖나. -사경은 인쇄술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대에는 불교 교리의 전파와 교육의 핵심이었다. 인쇄술이 발달하면서 그런 기능은 점차 인쇄술에 넘어갔고 사경은 공덕을 쌓는 신앙 행위이자 수행의 방편으로 성격이 바뀌었다. 그 일환으로 금자경, 은자경 같은 고귀한 것들이 나오게 됐다. →사경의 문화사적인 가치를 들자면. -한국은 현존 최고의 목판인쇄물(무구정광대다라니경)과 금속활자인쇄물(직지심체요절)을 보유하고 있다. 세계 인쇄문화의 종주국인 셈이다. 인쇄술이 사경을 더 편리하게 하기 위한 방법의 하나로 개발됐으니 세계 문명문화사 속 한국 사경의 가치를 재조명하는 것은 당연하다. 또 하나는 세계 불교문화예술사에서 최고 성취를 이뤘다는 점이다. 고려시대에는 중국에 전문인력을 역수출한 유일한 분야였다. 원(元)의 지배를 받던 시기 중국의 요청으로 여러 차례 고려의 사경전문가들이 100명씩 파견돼 금은자경을 제작해 주고 돌아왔고, 원나라에서 감독관을 보내 금은자대장경을 제작해 갔다. →사경이 그렇게 중요하다면 왜 일반의 관심과 국가적 지원이 일천한가. -사경은 억불숭유정책을 기조로 삼았던 조선왕조 500년 동안 묻혀 있었고 이후에도 최근까지 100년 이상 잊혀졌다. 600년 이상 전통이 단절되었던 탓에 전문 연구자조차 전무하다. 사경 연구에는 불교경전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서예이론 및 실기에 대한 천착이 기본이다. 동양미술사 및 불교미술사, 역사 전반에 관한 깊은 지식과 사경의 역사적 전개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가 선행돼야 한다. 특히 전통문화예술에 대한 인식 부족 탓이 크다. 지금으로선 중요무형문화재 지정도 어려운 실정이다. →국가지정문화재가 되는 게 왜 어렵다는 말인가. -고용노동부에서 전통 기능 중 단절 우려가 있는 종목을 선정, 기능전승자(숙련기술전수자)를 지정해 계승자 육성 차원의 교육비를 한시적(3~5년)으로 지원하는 게 고작이다. 내가 2010년 전통 사경 종목의 유일한 기능전승자로 지정된 게 국가 차원에서 전통 사경 종목을 처음으로 신설한 것이다. 국가중요무형문화재는 지원이 지속적인 데 비해 기능전승자는 지원이 한시적이라는 점에서 크게 주목받지 못한다. 전문 연구자 부족도 문제이다. 전통 사경 연구 학자들이 늘어나 집단적으로 전통 사경의 중요성을 부각시킨다면 국가적 관심과 지원이 증폭되리라고 생각한다. →불교 아닌 다른 종교에서도 사경이 이뤄지나. -넓은 의미의 사경까지 포함할 때 현재 국보·보물로 지정된 문화재만도 200점이 넘는다. 단일 종목으로는 가장 많은 수의 유물이 국가지정문화재로 등록되어 있는 셈이다. 현재 기독교의 성경 필사(사경), 원불교의 교전 사경 등 종교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다양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최소한 300만명 이상이 사경을 한 번쯤 해 본 것으로 관측된다. 그런데 전통 사경에 대한 인식 부족 탓에 과거 찬란했던 전통과 수행으로서의 체계적인 사경은 안 되고 있다. →공적이든 사적이든 지금 전통 사경을 연구하는 단체가 있나. -조사나 연구, 홍보 등 종합적인 활동을 하고 있는 단체는 한국사경연구회가 유일할 것이다. 2~3개 단체가 간헐적으로 전시회를 갖는 등의 활동을 해왔지만 최근 그마저도 중단된 상태이다. 문제는 사경 관련 단체 지도자들이 전통 사경에 대한 연구가 거의 전무한 서예가들이란 점이다. 전통 사경 기법과 동떨어진 금니, 은니를 제각각의 기법으로 사용해 지도하고 있을 뿐이다. 제대로 고려사경의 전통을 계승해 창작 사경을 하는 단체는 한국사경연구회가 유일하다고 할 수 있다. →한국사경연구회는 어떤 단체인가. -2002년 전통 사경 개인전을 계기로 당시 조계종 포교원장 도영 스님, 동국대 역경원장 월운 스님, 동국대박물관장 고 장충식 교수를 고문으로 모시고 한국사경연구회를 발족했다. 초대회장을 맡아 최근까지 이끌어 왔으며 지금 10회째 회원전을 열고 있다. 미국 뉴욕, LA 등 해외전을 3회 열었고 동국대박물관과 뉴욕 플러싱타운홀, LA한국문화원 등 국내외 초대전을 5회 열었다. 회장을 맡아 활동한 14년 동안 한국 전통 사경의 가치와 의의, 예술성에 공감하는 분들이 많이 늘었다. 그 때문인지 원광대 서예학과와 대학원에 사경과목이 개설됐고 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에선 사경전이 3회 열렸다. 고용부 기능전승자 지정이 이뤄졌고 현재 몇몇 공모전에서 사경을 정식 부문으로 채택하고 있다. →사경 작업은 뼈를 깎는 고통의 연속이라고 들었는데. -최고의 사경 작품은 붓끝 0.1㎜, 아니 어쩌면 0.01㎜에 집중한 채로 수백, 수천 시간을 견뎌내야 한다. 눈만 한 번 깜빡여도 선이 삐뚤어지고 숨만 한 번 크게 쉬어도 선이 흔들린다. 금니와 은니를 사용하는 장엄경을 제작할 경우 온도는 최소한 35°C 전후, 습도는 70% 이상이어야 좋다. 습식 사우나 같은 작업실을 생각하면 된다. 높은 온도와 습도의 작업 환경 탓에 어금니가 모두 빠지고 앞니까지 빠지는 경험을 했다. →사경 연구와 작업을 하면서 어떤 점이 가장 힘들었나. -학자도 공식 연구자도 아니기 때문에 사경 유물 조사의 기회가 별로 주어지지 않았고 선행 연구 자료가 너무 부족했다. 특히 재료, 도구 사용법 관련 자료는 전무해 일본 자료와 연구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가장 큰 도움이 된 자료는 고려 사경유물이었다. 고려사경을 직접 조사한 후 실험을 거듭하며 접근해 갔다. 경전의 저본 또한 큰 어려움 중 하나이다. 사경을 하려면 경전의 신뢰할 만한 저본을 여러 종 구해 정밀한 대조 작업을 선행해야 한다. 현재 발행되는 경전은 오·탈자가 너무 많다. 한자 음을 한글로 표기할 때도 통일된 규정이 없다. 그래서 시간이 많이 걸린다. 고려사경의 조사, 연구부터 홍보까지 모든 경비를 자비로 부담해야 했기 때문에 경제적인 어려움도 컸다. →미국을 포함해 오히려 외국에서 전통 사경에 관심이 많다고 하는데. -2005년 뉴욕에 진출해 10년 동안 15회에 걸쳐 한국 전통 사경과 관련한 특강, 전시, 사경법회, 제작시연회, 워크숍 등을 진행해 왔다. 2012년 뉴욕시 랜드마크라는 플러싱타운홀 건립 150주년 기념행사로 한국사경연구회원전이 개최되었는데 이때 뉴욕 퀸즈 자치구 의장은 전시 개막일을 ‘외길 김경호의 날’로 선포했다. 뉴욕시 감사원장, 뉴욕주상원의원, 뉴욕주의회의원, 뉴욕시의회의원 등으로부터 표창장과 뉴욕시민 자격을 인정한다는 성명서를 받기도 했다. 뉴욕타임스는 전시 기간(12주) 내내 연속 보도했고 데일리뉴스는 전면기사로 다뤘다. 이 초대전은 종합문화공간인 타운홀에서 수년 동안 개최한 각종 문화행사 중 가장 성황을 이룬 성공한 행사라는 찬사를 받았고 시민들로부터 정성 어린 선물도 받았다. 한국 전통 사경의 세계화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사경 전문 연구가의 입장에서 어떤 점이 가장 눈에 거슬리나. -고려 전통 사경은 세계사적 의의와 가치를 갖고 있고 최고 성취를 이룬 예술이다. 전통을 계승, 발전시키기 위해 많은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지만 그런 인식을 가진 이들이 많지 않다. 기복적인 불교가 깊이 뿌리박힌 탓이다. 폰트체로 인쇄된 사경본을 펜으로 베껴 쓰는 정도의 하향평준화를 지향해 왔다고 할 수 있다. 사찰에서 사경법회가 빈번하게 열려 대중적인 신앙행위가 되어 가고 있지만 전통과 다른 엉터리 행사가 대부분이다. 전각과 불상에는 엄청난 돈을 들이면서도 핵심인 사경은 주먹구구식으로 사성된 사경이 봉안되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저급한 사경 교재들을 마구잡이로 만들어 팔아 수익만 얻으려는 사경법회가 판치고 있는 것도 문제이다. →국가적 차원에서 신경 써야 할 사경 진흥책이 있다면. -사경 분야 종사자들이 안정되게 창작 활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지원했으면 한다. 고려시대 때 중국을 월등히 추월해 사경을 역수출할 수 있었던 건 국가기관인 사경원 때문이다. 국가적 지원을 통해 많은 사람이 사경으로 성인의 말씀들을 접하고 행한다면 사회적인 화합과 양보의 미덕을 함양할 수 있을 것이다. 무형문화재 지정으로 격을 높이는 것도 한 방법이다. 무형문화재 종목으로 선정된다면 전통 사경의 중요성을 쉽게 알리고 문화적 자부심도 갖게 할 수 있다. →앞으로 계획은. -지난 10년간의 미국 활동을 발판 삼아 뉴욕을 중심으로 프랑스 파리, 영국 런던 등으로 활동 영역을 확장할 계획이다. 성경 사경과 코란 사경 그리고 만다라의 장점을 적극적으로 수용한 작품을 창작해 한국 전통 사경을 세계인들과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세계적인 예술 장르로 발전시키겠다. 불교문화 속에는 인간 정신 활동의 극점인 삼매 속에서 행해지는 아름다운 수행이 있다. 수행 결과로 얻어지는 사경이 고귀하고 아름다운 예술이자 가치 있는 정신세계의 산물임을 인식시키는 데 집중할 계획이다. 그 일환으로 영문 작품집을 편집 중이다. 사경수행의 표준이 될 교본 시리즈(현재 전통 사경 교본 4종과 한지사경본 2종이 발행되었다)와 이론서도 계속 발간할 예정이다. 새로운 작품 서체 개발에도 박차를 가할 것이다. 김성호 선임기자 겸 논설위원 kimus@seoul.co.kr ■ 김경호 한국사경연구회 명예회장은 전북 김제 출생으로 전북대와 동국대대학원에서 국어국문학과 미술사학을 공부한 등단 시인·시조시인 겸 서예가이자 한국 전통 사경의 최고 권위자로 꼽힌다. 어려서부터 서예를 연마하면서 한문에 친숙해졌고 학창 시절 불교학생회를 통해 불교와 인연을 맺어 집중적으로 불교 교리를 공부했다. 경전과 게송들을 세필로 필사하면서 불교 서적을 닥치는 대로 구해 섭렵했으며 고교 시절 선승들의 선문답에 취해 생사를 초탈하는 선승이 되고자 출가하려 3번이나 야간열차를 탔지만 가족들의 만류로 번번이 실패했다. 대학, 대학원 시절 여초 김응현 선생과 국립문화재연구소 박상국 예능민속실장, 동국대 미술사학과 장충식 교수 등의 도움으로 본격적인 고려 전통 사경에 매달리게 됐다. 2002년 첫 사경 개인전을 계기로 한국사경연구회를 창립, 초대 회장을 맡아 지난해 말까지 이끌었으며 국내외 전통 사경 개인전 및 초대전을 15차례 열었다. 특히 미국 LA 카운티미술관, 뉴욕 메트로폴리탄박물관 등의 전통 사경 특강과 전시, 제작시연을 통해 한국 전통 사경의 우수성과 자신의 이름을 널리 알려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유명하다. 예총회장상(1984), 국방부장관상(1988), 교육부장관상(1996)을 받았고 2010년 고용노동부로부터 전통 사경 첫 기능전승자로 지정됐다. 그가 펴낸 사경 개론서 ‘한국의 사경’을 비롯해 ‘전통 사경 교본’ 4종과 ‘한지사경본’ 2종은 사경 연구자, 창작자들에겐 필독서로 꼽힌다.
  • “서울시민이 서울의 역사를 모르고 있다”

    “서울시민이 서울의 역사를 모르고 있다”

    이명희 의원은 시정질문에서 서울시민을 대상으로 한 2000년 역사도시 서울 관련 시민인식도 조사결과를 소개하면서 서울시민의 태반이 서울의 역사를 모르고 있음을 지적하고, 2000년 역사도시 추진을 위해서는 시민 인식의 변화를 유도하여 공감대를 형성할 것을 요청했다. 전문조사기관 ‘월드리서치’에 의뢰하여 설문조사한 결과, 우선 서울의 역사가 몇 년이라고 생각하는지 시민들에게 물었을 때, 과반이 넘는 56%의 시민이 조선왕조 600년의 수도로서 서울을 인식하고 있었으며. 연령별로 살펴보았을 때, 연령이 낮을수록 70년 이라는 응답이, 연령이 높을수록 600년이라는 응답의 비율이 높았다. 서울이 한성백제 이후 2000년 역사도시라는 사실은 서울 시민의 3분의1정도만이 알고 있었으며 들어본 경험이 있다는 응답은 42.5%에 불과했다. 이 의원은 이러한 결과에 대해 조선왕조 이전의 서울의 역사성을 서울시민들이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고 지적하고 조선왕조 이전의 서울의 역사에 대한 교육과 홍보가 부족하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강조했다. 또한 서울시가 시민을 대상으로 서울의 역사를 홍보하고 교육하는 데 적절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느냐는 질문에는 부정적인 평가(40.6%)가 긍정적인 평가(14.5%)보다 휠씬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2000년 역사도시 조성에 역점을 두어야 할 사항에 대해서는 ‘관광마케팅 및 홍보 강화’ 32.4%, ‘주요 지역별 역사 문화 스토리텔링’ 27.8%, ‘시민 교육’ 26.9%, ‘위원회 등 민관협력체 구성’ 5.5%의 순으로 응답했다. 이 의원은 이에 대해 서울시민들이 서울시가 서울의 역사성을 활용할 수 있는 관광문화정책을 수립하고 시행하는 것이 매우 필요하다고 인식하고 있음을 의미한다고 밝혔다. 시민 홍보 및 교육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응답 78.7%로 부정적인 응답 6.8% 보다 월등히 높은 것으로 나타났으며, 서울의 역사를 시민에게 교육하는 방안으로는 ‘서울시가 주도하는 방식’ 54.6%, ‘교육청이 주도하는 방식’ 20.1%, ‘시민단체 등 민간의 자발적 방식’ 19.1%로 ‘서울시가 주도하는 방식’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마지막으로 이 의원은 이러한 설문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박원순 서울시장에게 “4대문 안 조선왕조 600년에만 머물러 있는 현재의 서울의 정체성을, 한성백제 이후 2000년이라는 유구한 역사의 숨결이 살아있는 서울로서 도시경쟁력을 제고시킬 구체적인 비전과 전략을 마련해줄 것”을 촉구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6600년 전 최고(最古) ‘24캐럿 골드’ 액세서리 발견

    6600년 전 최고(最古) ‘24캐럿 골드’ 액세서리 발견

    세계 최초의 ‘블링블링’ 액세서리? 유럽 역사상 가장 오래된 골드 액세서리가 발견돼 학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고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이 22일 보도했다. 고대 그리스 문명보다 약 1500년 앞서는 선사시대 도시인 불가리아의 북동부 프로바디아 지역은 2012년 성벽에 둘러싸인 요새 형태로 발굴된 바 있다. 이후 꾸준히 유물 발굴 작업이 이뤄졌는데, 최근 공개된 유물은 무게 2g의 작은 장신구다. 무려 6600년 전 선사시대 조상이 착용한 것으로 짐작되는 이 작은 장신구는 24캐럿의 금으로 만들어졌으며, 보존상태가 양호하고 디자인이 매우 디테일 해 가치를 더한다. 고고학자들은 이 유물이 발견된 지역인 프로바디아를 통해 금으로 제품을 만들기 시작한 시기와 그 방식 등의 ‘비법’을 알아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유물을 연구중인 불가리아 국립고고학협회의 바실 니코로브 교수는 “이번 금 유물의 발견이 매우 고무적인 이유는 이 유물들의 ‘나이’가 요새 형태의 유적지의 역사에 비해 200~300년 앞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라면서 “24캐럿 금으로 만든 이 유물은 팬던트로 사용됐으며, 사회적 지위가 높은 남성과 여성 모두가 착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유적지가 선사시대 당시 금과 구리를 가공하는 중심 지역이었다. 실제 1972년에도 프로바디아에서 동쪽으로 37㎞ 떨어진 지역에서도 금으로 만든 장신구 수 점이 발견된 바 있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불가리아의 남쪽 전체 지역이 고대 인류가 살았던 거주 지역인 동시에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선사시대의 마을이며, 이 지역에서 발견된 금 장신구 역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를 가진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세종로의 아침] 중국의 비뚤어진 역사관/김규환 국제부 선임기자

    [세종로의 아침] 중국의 비뚤어진 역사관/김규환 국제부 선임기자

    11월 9일은 중국에 ‘매우 뜻깊은 날’이다. 2000년 사마천의 역사기원을 단숨에 1229년이나 앞당긴 ‘하상주연표’를 공식 확정한 날이다. 고고학 등 전문가 170여명이 5년간 천착해 만든 이 연표는 사마천이 엄두도 못 낸 하(夏·기원전 2070~1600년)·상(商·기원전 1600~1046년)·서주(西周·기원전 1046~771년)의 세 왕조 연표를 확정해 신화를 역사로 복원해 냈다. 지금까지 중국사 연대기의 가장 이른 시기는 서주 말의 기원전 841년. 이전의 일은 신화이다. 연표 확정이 핵심인 ‘하상주 단대공정’(斷代工程)이 전설 속의 하·상·주 왕조를 역사로 끌어들인 것이다. 역사시대가 기원전 2070년까지 거슬러 올라가 요·순임금도 역사 속 인물로 변신했다. 하지만 15주년을 맞은 올해까지 관련 유물·유적이 대량 출토됐다는 소식이 없는 데다 중국 내에서도 진위 논란이 식지 않는 걸 보면 사실(史實)에 대한 의문은 여전하다. 문제는 중국의 ‘단대공정’이 단순히 ‘뿌리 찾기 작업’으로만 치부할 수 없다는 데 있다. 이웃 나라의 역사를 송두리째 부정해 버린 까닭이다. 중국의 ‘역사굴기’는 ‘단대공정’과 ‘동북(東北)공정’, 중화문명의 기원을 무려 1만년까지 끌어올리겠다는 ‘탐원(探源)공정’ 등 3대 프로젝트로 진행된다. 이들 공정은 ‘과장과 왜곡’이라는 뒤틀린 모습으로 나타난다. 역사기원을 앞당긴 일은 전자, 고구려사를 중국사에 편입시키는 동북공정은 후자에 속한다. 중국은 단대공정에서 ‘고구려 민족은 기원전 1600~1300년에 은상(殷商)씨족에서 분리됐다’고 강변한다. 고구려가 상나라에서 갈라졌다는 주장이다. 그런데 랴오허(遼河) 유역에서 한국 고대사를 대변하는 기원전 8000~1500년의 빗살무늬토기·비파형동검 등 유물·유적이 대거 발굴됐다. 고조선의 랴오허문명이 중국사의 출발점인 황허(黃河)문명(기원전 4000~2000년)보다 앞섰다는 얘기다. 때문에 중국은 3대 역사 공정을 통해 한국 고대사의 뿌리인 랴오허문명을 중국사에 편입해 고조선과 고구려사, 발해사 등 한민족 문명의 기원을 깡그리 부정해 버린 것이다. 어느 나라든 역사를 미화하는 경향이 있게 마련이지만 이같이 맹목적이지는 않다. 중국의 비뚤어진 역사인식은 오래된 일이 아니다. ‘공자의 춘추필법’, ‘동호(董狐)의 직필’, ‘병필직서’(秉筆直書·직언을 꺼리지 않음) 고사에서 보듯 목숨을 내놓고 팩트(사실) 이상을 추구했다. 그러나 1900년 서양 제국주의에 베이징이 함락당하자 청나라 광서제가 시안(西安)으로 도망간 것을 ‘서쪽으로 사냥갔다’, 신화를 근거로 이어도의 영유권을 주장하는 등 근현대 들어 이 같은 경향이 본격화됐다. 사마천은 기원전 3076~2029년을 다룬 ‘오제본기’(五帝本紀) 후기에서 이렇게 적었다. “학자들이 오제(五帝)에 대해 많이 얘기하지만 아득히 먼 일이다. 상서(尙書)도 요임금 이후만 기록하고 있고, 백가(百家)들이 황제(黃帝)를 많이 얘기하지만 문장이 우아하지도 온당하지도 않아 학자들은 말하기를 꺼린다.” 조상의 역사라 기록은 하지만 믿기는 어렵다는 말이다. 2100여년이 지난 오늘도 사마천을 ‘최고의 역사가’로 추앙하는 것은 이런 연유에서다. khkim@seoul.co.kr
  • 마포, 600년 전통 ‘공민왕 사당제’ 개최

    마포, 600년 전통 ‘공민왕 사당제’ 개최

    음력 10월 1일인 12일 검은빛 제례복을 단정하게 차려입은 30여명의 제관은 공민왕과 노국공주의 초상 앞에 향과 잔을 올렸다. 공민왕 사당제가 열린 마포구 창전동에는 공민왕의 사당이 있다. 고려 말 자주정신이 투철했던 공민왕은 아내인 노국공주와 함께 자주 사당이 있던 자리의 정자를 찾아 시화를 즐겼다고 한다. 조선 초기에는 농산물이 모였던 서강나루에 광흥창이란 창고를 지었으며, 이를 본뜬 광흥당이 공민왕 사당 바로 곁에 있다. 광흥당에서는 외국인을 위한 국악 공연 등이 열린다. 광흥창을 지을 때 서강동에 사는 한 노인의 꿈에 공민왕이 나타나 “여기는 나의 정기가 서린 곳이니 사당을 짓고 봉제하면 번창하리라”고 해 사당이 건립됐다. 제사에 소홀하면 화재가 나는 등 재앙이 따라 공민왕 사당제는 600년 가까이 이어져 왔다. 사당은 2006년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됐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中 큰손에 최고가 경신하는 명화들

    中 큰손에 최고가 경신하는 명화들

    이탈리아의 화가 아메데오 모딜리아니(1884~1920)의 유화 작품이 세계 미술품 경매 사상 두 번째 최고가를 기록했다. ●1623억 부른 한국인 신홍규씨 불발 모딜리아니의 ‘누워 있는 나부’가 지난 9일 밤(현지시간) 미국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열띤 응찰 끝에 1억 7040만 5000달러(약 1971억 4154만원·수수료 12% 포함)에 낙찰됐다고 AFP, 로이터통신 등이 10일 보도했다. 예상가인 1억 달러를 훨씬 웃돈 이번 낙찰가는 미술품 경매 사상 2위에 해당한다. 최고가에 낙찰된 회화 작품은 파블로 피카소(1881~1973)의 유화 ‘알제의 여인들’이다. 지난 5월 크리스티 경매에서 1억 7936만 5000달러에 낙찰됐다. 수집가들끼리 경쟁이 붙으며 호가는 금세 1억 달러를 훌쩍 넘었다. 한국인 수집가 신홍규씨가 1억 4000만 달러(약 1623억원)를 부르자 경매장에 잠시 정적이 흘렀다. 그러나 전화 입찰로 1억 7000만 달러 이상 호가가 나오자 신씨는 고개를 내저으며 작품을 포기했다. 이후 작품의 낙찰자는 중국 억만장자 미술품 수집가로 중국 상하이 룽(龍)미술관 설립자인 류이첸(劉益謙·52) 신리이그룹 회장으로 확인됐다고 블룸버그가 보도했다. 택시 운전기사에서 금융투자가, 화학회사 경영주로 변신한 류 회장의 자산은 포브스 집계 기준(2015년) 14억 달러에 이른다. 그는 부인과 함께 중국 고미술품 경매시장의 ‘큰손’으로 통한다. 지난 3월 600년 된 명나라 시대 불교 경전을 1402만 달러에, 작년에는 명나라 시대 청화백자 술잔을 중국 도자기 경매 사상 최고가인 3600만 달러에 사들여 눈길을 끌었다. ●파리 첫 전시 때 외설 논란도 모딜리아니의 최고 걸작으로 꼽히는 ‘누워 있는 나부’는 1917~1918년쯤 캔버스에 그린 유화다. 붉은색 소파 위 파란색 쿠션에 누워 있는 전라의 여인을 담았다. 당시로서는 외설적인 작품이었던 까닭에 프랑스 파리에 처음 전시됐을 때부터 거센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절망한 모딜리아니가 1918년 겨울, 이 작품을 포함한 파리 스튜디오의 모든 작품을 영국 시인 오스버트 시트웰 남매에게 100파운드(현재 기준 약 545만원)를 받고 팔아 버린 일화로 유명하다.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
  • [글로벌 시대] 올해 노벨의학상 논란을 보며/이옥순 인도연구원장

    [글로벌 시대] 올해 노벨의학상 논란을 보며/이옥순 인도연구원장

    2015년 노벨 생리의학상 공동 수상자에는 중국인 과학자 투유유가 포함됐다. 말라리아 특효약 아르테미시닌을 개발해 (1990년대 이후) 말라리아의 퇴치에 큰 공을 세운 덕분이다. 소식에 따르면 투유유는 20년의 오랜 연구 끝에 1600년 전에 나온 중국의 전통 의학서에 언급된 개똥쑥에서 말라리아를 치료할 수 있는 성분을 찾아냈다. 1971년이었다. 하나 1977년 중국어 논문으로 발표된 그 성과가 국경을 넘어 외부 세계에 알려진 건 한참 후였다. 수상 소식을 접한 투유유는 중국 전통 의학 시스템의 우수성이 입증된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 총리는 투유유의 노벨상 수상이 국가로서 중국의 힘과 글로벌 세상에서의 지속적인 부상(浮上)을 반영한다고 애국적 발언을 섞어 축하했다. 그러자 일부 인도인이 투유유의 수상에 이의를 제기했다. 21세기 글로벌 세상의 경제적 라이벌이자 영토와 인구, 고대의 지혜와 전통 등 모든 면에서 중국과 경쟁 구도인 인도는 시간을 두고 전승된 전통 의학의 결과를 투유유 한 사람이나 중국의 공으로 인정하는 노벨위원회의 결정이 옳지 않다고 주장했다. 인도에서도 전통 의학이 오랜 시간을 두고 전수됐고, 고대의 인도 의학서에도 개똥쑥의 유사한 효능이 언급됐다. 특히 1918년에 나온 한 약초 보고서에는 개똥쑥이 말라리아에 효능이 있다고 기록된 걸 증거로 내세웠다. 일부 언론은 아예 올해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말라리아 치료제 아르테미시닌이 인도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문제를 논평한 인도인 학자들은 문화혁명 당시에 연구를 진행한 중국의 투유유가 아르테미시닌의 임상실험을 제대로 했는지에 대해서도 의구심을 나타냈다. 인도 전통 의학에서 힌트를 얻어 유사한 연구를 진행한 인도 연구자들이 세계보건기구의 연구 기준을 준수하느라 결과를 도출하는 데 시간이 걸린 데 비해 큰 정치적 영향력을 업은 중국의 투유유가 예외적 상황에서 연구했으므로 공평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게 인도인 학자와 노벨상 관계자 간의 공방이 여러 차례 이어졌으나 노벨위원회가 이 분야에 대한 인도인의 공헌을 인정하거나 수상자를 바꾸는 이변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 이야기를 여기서 꺼내는 이유는 최근에 개똥쑥 열풍이 한바탕 휩쓸고 지나간 우리나라와도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근대 서구 제국주의의 직간접적 압박으로 대국으로서 패배감과 굴욕감을 경험한 인도와 중국은 물론이거니와 그 제국주의를 수입한 일본의 지배를 받은 우리나라에선 20세기 내내 전통적인 것을 폄하하고, 서구적이며 근대적인 걸 칭송하는 것이 대세였다. 낙후된 과거를 버리고 근대성을 수용하는 것이야말로 인도와 중국이 서구를 이기고 우리나라가 일본을 극복하고 일등국이 되는 유일한 길처럼 여겨진 것이다. 의료 시스템도 마찬가지였다. 전통적인 치료법은 비과학적이라는 이유로 서구의 근대과학과 근대 의료 시스템에 밀려 뒷전으로 물러났다. 예를 들면 수천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인도의 전통적 치유법은 지배자 영국에 의해 미신으로, 미개한 관습으로 무시됐다. 우리 양방과 한방의 갈등도 그 연장선에 있다. 하지만 투유유의 성공 사례는 현대적인 것이 다 좋은 것이 아니듯 전통적인 것이 다 버려야 할 것이 아니라는 걸 잘 보여 준다. 즉 전통적 지혜와 근대적 시스템이 잘 결합한다면 다양한 영역에서 더 유의미한 결과가 나올 수 있는 것이다.
  • [新국토기행] 충북 옥천

    [新국토기행] 충북 옥천

    충북 남부에 자리잡은 옥천은 자연과 문화가 어우러진 고장이다. 금강과 보청천 등 크고 작은 맑은 물이 흐르며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자랑하고, 정지용 시인의 고향이자 그의 대표작 ‘향수’의 배경이다. 내륙 속 바다 ‘대청호’도 품고 있다. 소백산맥과 노령산맥의 중간에 위치해 동쪽으로 경북 상주시, 서쪽으로 대전시, 남쪽으로 영동군, 북쪽으로 보은군에 인접해 있다. 충북에서는 보은, 영동과 함께 남부 3군으로 불린다. 면적은 537.06㎢로 충북 전체 면적의 7.4%를 차지하고 있다. 9개 읍·면에 인구는 5만 2600여명이다. 300여 농가에서 연간 1400만 그루의 묘목을 생산해 묘목의 고장으로도 불린다. >>볼거리 ●詩 ‘향수’의 배경 된 정지용 생가 1996년 7월 복원된 정지용 시인의 생가는 돌담과 사립문, 초가, 우물, 담벼락, 장독대 등으로 꾸며졌다. 잊혀 가는 고향집 풍경이 정겹게 다가오며 정지용 시인의 어린 시절이 자연스레 그려진다. 생가는 항상 방문을 열어 둔다. 찾는 이들에게 그의 아버지가 한약방을 했음을 가구로 알리기 위해서다. 생가 뒷문으로 나서면 정지용문학관을 만날 수 있다. 정지용의 시문학 세계를 몸과 마음으로 느끼게 해 주는 공간이다. 문학관을 들어서면 전시실로 들어가는 입구 로비에서 밀랍 인형으로 제작된 정지용 시인이 관람객들을 맞이한다. 기념 촬영을 할 수 있는 포토존이다. 전시실은 정지용 시인이 살았던 시대적 상황과 그의 문학세계를 시대·연도별로 정리해놓았다. 정지용 시, 산문집 초간본 등의 원본도 볼 수 있다. 정지용의 시를 낭송해 볼 수 있는 시낭송 체험실도 마련돼 있다. 관람료는 무료다. 김동선 군 문화예술팀장은 “문학을 하는 사람들의 필수 방문지가 됐다”며 “미리 신청을 하면 해설사의 안내를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정지용 시인은 옥천 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에서 영문학을 전공했다. 1927년 발표된 ‘향수’는 일본 유학 당시 고향을 그리며 쓴 시로, 그의 모더니즘 대표작이다. ●둔주봉 눈앞에 펼쳐진 ‘작은 한반도’ 안남면 연주리 둔주봉(해발 382m)에서 바라보는 동이면 청마리 갈마골은 다른 지역의 한반도 지형과 좌우 대칭인 보기 드문 한반도 지형이다. 둔주봉에 올라서면 거짓말처럼 뒤집힌 한반도 지형이 눈앞에 펼쳐진다. 금강이 산기슭을 감싸고 돌아 흐르는 갈마골을 만나려면 안남면사무소부터 걸어서 둔주봉까지 이동해야 한다. 산행 시간은 30분이면 충분하다. 오르막이 급하지 않아 누구나 부담 없이 오를 수 있다. 가는 길은 솔 향기 물씬 풍기는 소나무숲이 인상적이다. 소나무들이 대나무처럼 곧게 자라고 있는 운치 있는 길을 따라 걷다 보면 마음마저 상쾌해진다. 둔주봉 한반도 지형은 1998년부터 알려지기 시작했다. 유명세를 타기 전에는 비좁은 고갯마루에 주차가 가능했으나 지금은 차를 세울 수 없다. 군이 안남면사무소 앞 공터에 마련한 주차장을 이용해야 한다. 주민들은 둔주봉이 둥실둥실해 ‘둥실봉’으로 부른다. ●전통·근대모습 갖춘 육영수 여사 생가 육영수 여사 생가는 1974년 육 여사 서거 후 관리 소홀로 폐가의 길을 걷다가 결국 허물어져 터만 남아 있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옥천군이 복원계획을 세우고 민간이 주체가 된 ‘육영수생가복원추진위원회’가 발족되면서 37억 5000여만원이 투입돼 2011년 복원됐다. 99칸으로 이뤄진 생가는 집주인들이 머물던 안채를 중심으로 위채, 아래채, 사랑채, 정자, 연못, 사당 등으로 꾸며졌다. 한옥에서 1칸은 지붕을 받치고 있는 기둥과 기둥 사이를 말한다. 생가의 총 대지면적은 9181㎡다. 군은 방문객들을 위해 생가 곳곳에 육 여사의 학창 시절을 비롯한 생전 모습들이 담긴 여러 장의 사진을 전시했다. 이 집은 조선 초기인 1600년대 김 정승이 처음 지어 살다가 이후 송 정승, 민 정승 등 삼정승이 살았던 집으로 알려져 있다. ‘삼정승집’이라 불리던 이 집은 육 여사가 태어나기 전인 1918년 부친 육종관이 민 정승의 자손 민영기에게 사들여 고쳐 지으면서 차고를 배치하는 등 전통과 근대의 모습을 모두 갖춘 한옥으로 탈바꿈했다. 강병숙 군 학예사는 “연간 20만여명이 찾으며 옥천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관광지”라며 “문턱을 낮추기 위해 생가에서 문화체험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명품 자전거여행 코스 향수 100리길 향수 100리길은 명품 자전거길로 불린다. 드라이브와 걷기에도 제격이다. 호수의 아름다운 풍광을 즐기며 고향의 푸근함도 느낄 수 있으니 명품으로 불릴 만하다. 방송과 신문에 소개되면서 전국 관광객들의 자전거 여행 단골 코스로 자리잡았다. 향수 100리길은 옥천읍 하계리 정지용 시인의 생가를 시작으로 안내면 장계리 장계관광지~안남면 연주리 배바우도서관~청성면 합금리 금강변~금강휴게소~동이면석탄리 안터마을~정지용 생가로 되돌아오는 50.6㎞ 노선이다. 초급 수준의 자전거 동호인이 평균 시속 10㎞로 쉬지 않고 달리면 4시간 정도 걸린다. 향수 100리길이란 이름은 정지용 시인의 대표작 ‘향수’에서 따왔다. 옥천지역 6개 읍·면을 둘러보는 향수 100리길은 3코스로 구성됐다. 예술문화길로 불리는 1코스 구간에는 정지용 생가, 지용문학관, 정지용의 시문학공원을 조성해 놓은 장계관광지가 있다. 생태탐방길인 2코스는 장계관광지부터 안터마을까지다. 이 구간에는 둔주봉, 금강유원지, 청마리제신탑 등이 자리잡고 있다. 3코스는 역사문화길이다. 안터선사공원, 육영수생가, 옥천향교, 춘추민속관 등 다양한 역사와 문화가 있다. 자전거를 즐겨 타는 이구해(46)씨는 “평지가 많아 초보들이 즐기기 좋고, 금강변의 아름다운 경치도 감상할 수 있어 최고의 자전거코스”라고 극찬했다. ●치유의 숲 장령산 휴양림 옥천군 군서면 금사리에 위치한 장령산 휴양림은 도내 휴양림 중 피톤치드가 가장 많이 배출되는 곳이다. 이는 2011년 충북도보건환경연구원 조사로 확인됐다. 당시 조사 대상 도내 6개 휴양림 가운데 피톤치드의 주성분인 테르펜의 연평균 농도가 698.3pptv로 가장 높았다. 장령산의 피톤치드 농도가 높은 것은 나무 밀집도가 높고 나무 높이가 낮아서다. 또한 피톤치드를 많이 발생하는 소나무, 전나무, 잣나무 등 상록침엽수가 많은 것도 이유다. 나무가 내뿜는 항균물질인 피톤치드는 스트레스 해소, 심폐기능 강화, 살균 등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장령산 휴양림은 현재 콘도미니엄 형태의 객실 17개를 갖춘 산림문화휴양관, 통나무집 18채, 산책로, 물놀이장 등을 갖추고 있다. 군은 올해 15억원의 사업비를 들여 산림문화휴양관 옆 산기슭에 치유의 숲을 조성하고 있다. 이곳에는 편백나무, 느티나무, 화살나무 등 탄소 효과가 뛰어난 나무 500여 그루를 심을 예정이다. >>먹거리 ●옥천 별미 ‘생선국수·도리뱅뱅이’ 옥천은 대청호와 금강이 있어 민물고기 요리가 발달했다. 그 가운데 생선국수와 도리뱅뱅이는 옥천을 대표하는 음식이다. 생선국수는 진한 국물을 자랑한다. 우선 신선한 민물고기를 찜통에 넣고 4~5시간 끓인 뒤 국물이 우러나면 채로 걸러 가시를 골라낸다. 이어 국물에 양념고추장을 풀어 간을 한 뒤 국수와 파, 애호박, 깻잎, 미나리, 풋고추 등을 넣고 한번 더 끓이면 생선국수가 완성된다. 입속으로 면을 빨아들이면 육수에 녹아든 민물고기 살들이 함께 씹힌다. 단백질, 칼슘, 지방, 비타민 등이 풍부해 보양식으로 좋다. 해장국으로도 많이 찾는다. 생선국수 원조는 청산면의 선광집이다. 1962년 생선국수를 시작했다. 청산면에는 생선국수집 6곳이 영업 중이다, 대전 등 인근 지역에서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도리뱅뱅이는 금강에서 잡아온 손가락만 한 크기의 민물생선을 프라이팬에 올려놓고 바싹 튀긴 후 고추장 양념을 바르고 당근, 대파, 고추 등을 얹어 먹는 음식이다. 민물고기 가운데 피라미나 빙어가 주로 사용된다. 민물고기를 냄비에 동그랗게 돌려 조리한다 해서 ‘도리뱅뱅이’라고 부른다. ●전국적으로 유명한 고당도 ‘용운포도’ 옥천 포도는 일조량이 풍부하고 주야간 일교차가 큰 기후조건 등으로 착색이 잘되고 당도가 높다. 4년 연속 국가브랜드상을 받았다. 인도네시아, 뉴질랜드, 베트남, 말레이시아 등지로 한 해 100t 이상이 수출된다. 특히 전국적으로 유명한 동이면 세산리 용운마을 포도는 ‘용운포도’ 또는 ‘세산포도‘라는 명칭으로 많은 인기를 끌고 있다. 옥천에서 포도가 재배되기 시작한 것은 1943년이다. 현재는 시설 포도 주산지다. 시설 포도 재배면적이 전국 2위에 올라 있다. 농가 700여 곳에서 360㏊의 포도를 재배하는데 250㏊가 비닐하우스다. 옥천 포도는 캠벨어리가 주품종으로 70~80% 정도를 차지한다. 7월이면 옥천에서 포도축제가 열린다. 포도 따기 체험, 포도주 시음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마련된다. 2011년부터는 포도와 복숭아축제를 통합 개최하고 있다. 포도는 폴라보노이드, 비타민, 유기산, 미네랄 등을 함유해 항암효과, 동맥경화, 심장병 예방 효과, 당뇨병, 신경통, 다이어트 등에 좋다. ●무침·튀김으로 즐기는 600년 전통 ‘옻’ 옥천은 600년 전통의 참옻 산지다. 금강 상류에 있어 안개, 습도, 토양 등이 옻을 재배하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2005년에는 청성면 등 6개 읍·면 79만 4314㎡가 옻산업특구로 지정됐다. 현재 180여 농가의 86㏊에서 19만여 그루의 옻나무를 재배하고 있다. 군은 해마다 5월에 참옻순축제를 열고 있다. 축제장을 찾으면 옻순무침, 옻오리, 옻순튀김 등 다양한 옻요리를 만나볼 수 있다. 옻에 민감한 사람들을 위해 축제장에는 보건소 직원이 배치되고 알레르기를 예방하는 약도 준비된다. 옻에는 ‘우루시올’이라는 독성 물질이 있다. 그래서 면역력이 약한 사람이 옻과 접촉하면 상상을 초월하는 가려움증을 유발한다. 하지만 옻순은 뛰어난 맛을 자랑한다, 또한 옻은 장에 좋고 기생충을 죽이며 피로를 다스린다고 동의보감에 나온다. 군은 내년까지 옻문화단지를 조성하고 있다. 옻 생육을 알려주는 교육관과 탐방로, 옻가공식품 전시장, 옻순을 이용한 튀김 비빔밥, 부침개 체험공간 등으로 꾸며진다. 옥천 남인우 기자 niw7263@seoul.co.kr
  • 4000년 전 잡곡 직접 재배 유적 발견

    4000년 전 잡곡 직접 재배 유적 발견

    신석기시대의 대규모 취락 유적인 인천 운서동에서 조, 기장 등의 곡물이 눌려 있는 흔적(압흔) 131점이 발견됐다. 곡물의 압흔이 발견된 자료 중 가장 이른 시기의 것으로 확인됐다.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는 2일 “식물고고학을 통한 선사시대 농경화 연구를 진행하며 중앙문화재연구원, 강릉대 박물관과 함께 인천 운서동 유적과 양양 지경리 유적에서 출토된 토기를 조사한 결과 인천 운서동 신석기 전기 곡물 압흔 131점과 양양 지경리 신석기 중기 조, 기장, 들깨 압흔 294점을 확인했다”면서 “이는 서해안에서 시작된 신석기 초기 농경문화가 동해안과 남해안으로 확산됐을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밝혔다. 특히 중부 서해안 지역에서 가장 이른 시기(기원전 4000~3600년)의 대규모 취락 유적인 인천 운서동 유적지에 대한 조사 결과는 초기 농경에서 조, 기장 등의 잡곡을 직접 재배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귀증한 실증 자료로 평가된다. 아울러 양양 지경리 유적에서 확인된 압흔에서는 다른 유적지에서와 달리 기장의 산출량이 조의 약 6배에 달하는 것으로 확인돼 기장 중심의 농경이 발달했음을 알 수 있다. 당시 도토리를 위주로 한 채집 또는 수렵 중심의 생활에서 조, 기장 등의 잡곡 농경이 도입돼 생업의 안정성이 향상되는 등 생업 방식이 크게 변화했음을 보여준다. 연구소 관계자는 “이번에 확인된 조, 기장, 들깨 압흔 대부분은 껍질에 싸인 상태로 탈곡된 후 도정 단계에서 토기에 혼입됐을 가능성이 있으며 이들 모두 가을작물이라는 점에서 추수 이후인 10월을 전후한 시점에 토기가 제작됐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불의에 항거하고 시비 밝힐 기개 갖춰야 선비”

    “불의에 항거하고 시비 밝힐 기개 갖춰야 선비”

    “16세기 봉건적 가부장시대를 살았던 퇴계 선생이 20세기 현대사회를 살고 있는 저보다 훨씬 더 남녀귀천(男女貴賤)을 떠나 남을 배려하고 존중하며 자신을 낮추려 노력하셨어요. 처음에는 감동했고, 나중에는 제 모습이 정말 부끄럽고 창피한 마음뿐이었습니다.” 김병일(70) 도산서원 선비문화수련원 이사장은 8년 전인 2007년 도산서원 원장 및 수련원 이사장을 맡았다. 어렴풋이만 알고 있던 퇴계 이황(1501~1570)의 삶을 더욱 꼼꼼히 접하게 됐고 자신의 지난 삶을 돌아보게 됐다. 퇴계에 대한 흠모이자 부끄러움을 회개하는 내적 고해의 시간이었고, 새로운 삶의 전기가 됐다. 당시 김 이사장은 통계청장, 조달청장,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 기획예산처 장관 등 32년의 화려한 공직 생활을 마친 뒤 뒤늦게 시작한 마라톤에 흠뻑 빠져 풀코스, 울트라마라톤 등을 수차례 완주할 정도로 바쁘게 살았다. 그러다 다리를 다치는 바람에 여유가 생긴 것을 계기로 자신의 고향도 아닌 경북 안동 도산서원에 아예 머물면서 선비정신의 요체를 찾고 그것을 현재적 의미로 접목하는 과제에 몰두했다. 최근 저서 ‘선비처럼’(나남 펴냄)을 내놓은 김 이사장을 2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만났다. 그는 “선비정신이라고 하면 흔히들 양반을 떠올리곤 하는데, 단순히 신분 계층의 모습을 드러내는 말이 아니다”라면서 “올바른 마음과 몸가짐으로 의롭지 못한 부귀는 탐하지 않고 불의에는 항거하며 옳고 그름을 분명히 밝히려는 기개를 갖춘 모습이야말로 진짜 선비정신”이라고 말했다. 그는 “선비정신을 한마디로 말하면 모범의 실천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 이사장은 “예컨대 조선왕조가 600년 지속된 것은 세종대왕처럼 훌륭한 임금이 끊이지 않아서가 아니라 작은 마을공동체 등에서 자기 아닌 타인을 존중하고 배려하며, 전시 같은 위기 상황에선 의병 활동을 펼치는 등 모범이 되는 리더십을 실천한 선비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라고 덧붙였다. 선비정신의 강조는 자칫 개인의 삶과는 별 연관 없는, 따분한 얘기로 들릴 수 있다. 또한 체제에 순응하는 예절 바른 인간형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는 현재적 의미 또한 적지 않다고 강조한다. 김 이사장은 “온순하고 예의 바른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옳은지 따지며 옳은 길을 찾아가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각종 ‘갑질’도 선비정신의 부재에서 비롯됐다”면서 “부모가 자식에게, 회사의 상사가 후배에게, 군대의 선임이 후임에게 등 모든 사람 관계에서 남을 배려하고 아끼면 고스란히 협조와 존경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고 각 생활 단위 안에서 기득권을 쥐고 있는 이들의 문제를 지적했다. 2002년 문을 연 도산서원 선비문화수련원은 첫해 200명 남짓만 찾던 곳이었지만 지난해 5만 5000명이 다녀갔고 올해는 방문객이 7만명에 가까울 정도로 사람들의 발길이 부쩍 늘었다. 그가 자부심을 느끼는 대목이다. 교사, 학생들은 무료지만 직장 단위 수련원 교육생에게는 실비 정도를 받는다. “아마 이사회에서는 전직 기획예산처 장관을 수련원 이사장으로 앉히면 예산을 따내는 데 좀 유리하지 않을까 생각했겠죠. 제가 선비답지 않게 제 자랑을 한 꼴이네요. 하하.”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 4000년 전 잡곡 직접 재배 유적 발견

    4000년 전 잡곡 직접 재배 유적 발견

    신석기시대의 대규모 취락 유적인 인천 운서동에서 조, 기장 등의 곡물이 눌려 있는 흔적(압흔) 131점이 발견됐다. 곡물의 압흔이 발견된 자료 중 가장 이른 시기의 것으로 확인됐다.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는 2일 “식물고고학을 통한 선사시대 농경화 연구를 진행하며 중앙문화재연구원, 강릉대 박물관과 함께 인천 운서동 유적과 양양 지경리 유적에서 출토된 토기를 조사한 결과 인천 운서동 신석기 전기 곡물 압흔 131점과 양양 지경리 신석기 중기 조, 기장, 들깨 압흔 294점을 확인했다”면서 “이는 서해안에서 시작된 신석기 초기 농경문화가 동해안과 남해안으로 확산됐을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밝혔다. 특히 중부 서해안 지역에서 가장 이른 시기(기원전 4000~3600년)의 대규모 취락 유적인 인천 운서동 유적지에 대한 조사 결과는 초기 농경에서 조, 기장 등의 잡곡을 직접 재배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귀증한 실증 자료로 평가된다. 아울러 양양 지경리 유적에서 확인된 압흔에서는 다른 유적지에서와 달리 기장의 산출량이 조의 약 6배에 달하는 것으로 확인돼 기장 중심의 농경이 발달했음을 알 수 있다. 당시 도토리를 위주로 한 채집 또는 수렵 중심의 생활에서 조, 기장 등의 잡곡 농경이 도입돼 생업의 안정성이 향상되는 등 생업 방식이 크게 변화했음을 보여준다. 연구소 관계자는 “이번에 확인된 조, 기장, 들깨 압흔 대부분은 껍질에 싸인 상태로 탈곡된 후 도정 단계에서 토기에 혼입됐을 가능성이 있으며 이들 모두 가을작물이라는 점에서 추수 이후인 10월을 전후한 시점에 토기가 제작됐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현대사회 갑질은 선비 정신의 부재에서 비롯”

    “현대사회 갑질은 선비 정신의 부재에서 비롯”

     “16세기 봉건적 가부장시대를 살았던 퇴계 선생이 20세기 현대사회를 살고 있는 저보다 훨씬 더 남녀귀천(男女貴賤)을 떠나 남을 배려하고 존중하며 자신을 낮추려 노력하셨어요. 처음에는 감동했고, 나중에는 제 모습이 정말 부끄럽고 창피한 마음뿐이었습니다.”  김병일(70) 도산서원 선비문화수련원 이사장은 8년 전인 2007년 도산서원 원장 및 수련원 이사장을 맡았다. 어렴풋이만 알고 있던 퇴계 이황(1501~1570)의 삶을 더욱 꼼꼼히 접하게 됐고 자신의 지난 삶을 돌아보게 됐다. 퇴계에 대한 흠모이자 부끄러움을 회개하는 내적 고해의 시간이었고, 새로운 삶의 전기가 됐다. 당시 김 이사장은 통계청장, 조달청장,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 기획예산처 장관 등 32년의 화려한 공직 생활을 마친 뒤 뒤늦게 시작한 마라톤에 흠뻑 빠져 풀코스, 울트라마라톤 등을 수차례 완주할 정도로 바쁘게 살았다. 그러다 다리를 다치는 바람에 여유가 생긴 것을 계기로 자신의 고향도 아닌 경북 안동 도산서원에 아예 머물면서 선비정신의 요체를 찾고 그것을 현재적 의미로 접목하는 과제에 몰두했다.  최근 저서 ‘선비처럼’(나남 펴냄)을 내놓은 김 이사장을 2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만났다. 그는 “선비정신이라고 하면 흔히들 양반을 떠올리곤 하는데, 단순히 신분 계층의 모습을 드러내는 말이 아니다”라면서 “올바른 마음과 몸가짐으로 의롭지 못한 부귀는 탐하지 않고 불의에는 항거하며 옳고 그름을 분명히 밝히려는 기개를 갖춘 모습이야말로 진짜 선비정신”이라고 말했다. 그는 “선비정신을 한마디로 말하면 모범의 실천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 이사장은 “예컨대 조선왕조가 600년 지속된 것은 세종대왕처럼 훌륭한 임금이 끊이지 않아서가 아니라 작은 마을공동체 등에서 자기 아닌 타인을 존중하고 배려하며, 전시 같은 위기 상황에선 의병 활동을 펼치는 등 모범이 되는 리더십을 실천한 선비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라고 덧붙였다.  선비정신의 강조는 자칫 개인의 삶과는 별 연관 없는, 고리타분하고 따분한 얘기로 들릴 수 있다. 또한 체제에 순응하는 예절 바른 인간형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는 현재적 의미 또한 적지 않다고 강조한다.  김 이사장은 “온순하고 예의 바른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옳은지 따지며 옳은 길을 찾아가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각종 ‘갑질’도 선비정신의 부재에서 비롯됐다”면서 “부모가 자식에게, 회사의 상사가 후배에게, 군대의 선임이 후임에게 등 모든 사람 관계에서 남을 배려하고 아끼면 고스란히 협조와 존경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고 각 생활 단위 안에서 기득권을 쥐고 있는 이들의 문제를 지적했다.  2002년 문을 연 도산서원 선비문화수련원은 첫해 200명 남짓만 찾던 곳이었지만 지난해 5만 5000명이 다녀갔고 올해는 방문객이 7만명에 가까울 정도로 사람들의 발길이 부쩍 늘었다. 그가 자부심을 느끼는 대목이다. 교사, 학생들은 무료지만 직장 단위 수련원 교육생에게는 실비 정도를 받는다.  “아마 이사회에서는 전직 기획예산처 장관을 수련원 이사장으로 앉히면 예산을 따내는 데 좀 유리하지 않을까 생각했겠죠. 제가 선비답지 않게 제 자랑을 한 꼴이네요. 하하.”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 상생 공약·이익 환원 통 큰 경쟁…또 불붙은 대기업 ‘면세점 전쟁’

    상생 공약·이익 환원 통 큰 경쟁…또 불붙은 대기업 ‘면세점 전쟁’

    ‘동대문이냐, 남대문이냐.’ 서울 시내 면세점 운영권을 따내고자 4개 대기업이 본격적인 경쟁에 돌입했다. 관전 포인트는 단연코 상생이다. 네 곳 모두 중소기업을 키우고 지역 상인들을 돕는 데 적게는 수백억원에서 많게는 수천억원을 쏟아붓겠다고 나섰다. 면세점 사업에 처음 도전하는 두산그룹은 26일 동대문 미래창조재단을 출범시켰다. 동대문시장을 살리기 위해 두산이 100억원을,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이 개인 재산 100억원을 냈다. 미국 클리블랜드재단처럼 주민 삶의 질을 끌어올리는 게 목표다. 동대문에는 두타, 롯데피트인 등 대형 쇼핑몰 13곳이 있으나 손님이 줄면서 비어 있는 점포가 전체의 30%가 넘었다. 박 회장은 “100여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우리나라 상업의 효시인 동대문 상권이 쇠락하고 있는데 외국인 관광객을 끌어들여야 다시 살릴 수 있다”면서 “이번 재단 출범이 면세점 유치에 도움이 되길 바라지만, 유치에 실패하더라도 동대문에서 출발한 유일한 대기업으로서 지역 경제를 살린다는 차원에서 재단을 계속 운영할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두산은 면세점 특허권을 따내면 영업이익의 10%를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두산은 5년간 면세점 이익을 5000억원으로 보고 있어 총기부금은 500억원으로 예상된다. 같은 날 신세계그룹의 계열사 신세계디에프는 남대문시장의 부활을 예고했다. 성영목 신세계디에프 사장은 “상반기에 신규 면세점 입찰에서 고배를 마시고도 또다시 신세계백화점 본점을 후보지로 내세운 이유는 남대문시장과 명동이 갖는 의미가 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600년 역사의 전통시장 남대문이 계속 퇴락하고 있고 한국을 찾는 외국인의 81%가 명동을 중심으로 관광을 시작하기 때문에 이 일대 상권을 살리려면 면세점만큼 좋은 대안이 없다는 게 신세계 측의 설명이다. 신세계는 남대문시장과 명동의 관광 인프라 개선에 530억원을 투입하는 등 상생 비용을 5년간 2700억원 내놓겠다고 밝혔다. 남대문을 스페인 전통시장 산타카테리나, 터키의 그랜드 바자르처럼 글로벌 명품시장으로 육성할 방안도 내놓았다. 중소기업 브랜드만 파는 전용층을 만들고 중기 매장 면적을 전체의 40%로 늘릴 계획이다. 면세점 후보 기업들이 상생 전략에 집중하는 까닭은 면세점 특허권 심사에서 중요한 평가 대상이기 때문이다. 평점 1000점 가운데 상생 점수는 300~450점이 걸려 있다. 직접적인 관련 항목은 기업이익의 사회 환원과 상생협력을 위한 노력(150점), 중소기업 지원 방안의 적정성(중기 제품 판매실적 및 매장 크기)과 지역경제 발전 기여도(150점) 등 2개다. 지역 관광 인프라 구축을 위한 노력도 주변 환경요소(150점)에 포함된 평가 대상이다. 소공동 본점과 잠실 월드타워점을 지켜야 하는 롯데면세점은 앞서 지난 12일 ‘상생2020’을 발표해 중소 협력사 동반성장펀드(200억원) 등에 1500억원을 쓰겠다고 약속했다. 중기 매장 면적을 2배로 늘리고 중소브랜드 매출을 5년 뒤 4배로 키울 계획이다. 광진구 워커힐과 동대문에 면세점 유치를 추진하는 SK네트웍스는 8400억원의 투자비 가운데 2400억원을 중소 상생을 위해 내놓기로 했다.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김진아 기자 jin@seoul.co.kr
  • [씨줄날줄] 정동야행/이동구 논설위원

    유럽 나라들을 여행하다 보면 특이하게 느껴지는 것이 바로 밤의 적막감이다. 파리의 화려한 샹젤리제 거리를 비롯한 소수의 사례를 제외하면 서구 도시 대부분의 밤은 왠지 두렵기까지 하다. 역사와 종교, 문화적인 배경 때문이라고 한다. 전통적으로 서구인들은 태양을 숭배해 온 반면 달은 음침한 느낌으로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게다가 중세의 기독교 문화가 서양인들이 느끼는 밤을 더욱 공포스럽게 만들었다. 빛은 신이 첫 번째로 창조한 반면 어둠은 악령의 영역으로 간주됐다. 미국 버지니아공대 역사학 교수 로저 에케치는 ‘밤의 문화사’에서 “미국과 유럽 등 서구의 밤은 지옥의 길, 사탄이 지배하는 시간”이라고 했다. 에케치 교수에 따르면 17~18세기 유럽의 도시에서는 실제로 아침마다 간밤에 강물에 버려진 시체를 치워야 했고, 모스크바에서는 밤새 살해된 시신들을 광장에 늘어놓고 가족들이 찾아가게 했다. 그러니 서양인들에게 밤은 오랫동안 공포의 대상으로 잠재돼 있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양 문화권에서는 밤의 고요함은 불안이 아닌 안정을 상징한다. 견우와 직녀가 칠월칠석날 밤에 만나게 한 것이나 달을 보며 계수나무와 방아 찧는 토끼를 상상한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이태백이 달을 보며 술 한잔에 시 한수를 읊조릴 수 있었던 것도 밤과 달이 주는 온화함과 서정적이고 낭만적인 분위기 때문일 것이다. 세계 10대 도시라는 서울은 어떤가. 최근에는 밤을 즐길 수 있는 수준도 한결 달라지고 있다. 1000만 시민들이 뿜어 내는 역동성이 한낮 서울의 특색이라면 600년 역사를 간직한 고궁의 운치와 편안함은 밤의 또 다른 매력이 될 것이다. 오색 단풍이 물들고 있는 시월, 가을밤의 고궁 주변은 연인들에게는 최상의 데이트 코스요, 시민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휴식의 공간이 되고 있다. 창경궁 달빛 아래서 흐르는 해금의 선율은 낯선 외국인들의 심금조차 가만두질 않는다. 오는 29일부터 31일까지 서울 덕수궁과 정동 일대에서 ‘정동야행’(貞洞夜行)이라는 밤 축제가 열린다고 한다. 오색 등이 내걸린 덕수궁 돌담길에서 아름다운 고궁의 가을 정취를 느낄 수 있고 성공회서울주교좌성당에서는 파이프오르간 연주를 들을 수 있다. 더불어 서울팝스오케스트라의 고궁음악회와 창작 뮤지컬 프랑켄슈타인의 갈라쇼 같은 현대적인 공연예술도 함께 즐길 수 있다. 서울을 찾은 관광객과 시민 모두에게 낭만 가득한 ‘10월의 마지막 사흘 밤’으로 기억될 것이다. ‘정동야행’이 홍콩과 싱가포르를 상징하는 ‘홍콩 월컴 유’, ‘매지컬 센토사’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서울의 대표적 밤 문화로 자리매김하기를 기대해 본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재미있고 낭만적인 것은 물론 서울만의 매력이 흘러넘치는 개성을 담아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이동구 논설위원 yidonggu@seoul.co.kr
  • [글로벌 시대] 작은 인도와 ‘코리아 카라반’/이옥순 인도연구원장

    [글로벌 시대] 작은 인도와 ‘코리아 카라반’/이옥순 인도연구원장

    지난주에 인도 동해안에 있는 인구 200만의 대도시 비샤카파트남을 다녀왔다. 행사로 인한 걸음이라 도시를 살펴볼 시간은 없었고, 그저 짬을 내어 박물관을 한 군데 구경한 것이 다였다. 그럼에도 행사에 참여한 많은 사람과 오가는 도시의 풍경에서 감지되는 건 변화에 대한 희구, 즉 경제발전에 대한 열망이었다. 게다가 그곳엔 이미 우리나라의 한 대기업이 진출하여 그 변화의 자락을 이끄는 중이었다. ‘코리아 카라반’은 주인도 한국대사관이 인도와 인연을 맺으려는 우리 경제인들과 함께 ‘이동식마차를 타고 대상(隊商)처럼’ 집합적 인도가 아닌 개별적 인도, 즉 여러 주 지방을 찾아 이동하는 일련의 행사이다. 수도 델리가 중심인 ‘큰 인도’가 아닌 지방의 ‘작은 인도’를 찾아가서 양국 간의 우의를 다지고 나아가 경제협력을 도모하는 것이다. 한국대사가 모두발언에서 ‘비즈니스보다 친선’을 강조하여 박수를 받은 건 그래서였다. 이번에 행사가 열린 비샤카파트남은 동부에 긴 해안선을 가진 안드라프라데시 주에 속한다. 우리 독자들에겐 익숙하지 않지만, 고대에 불교가 아주 성했던 곳으로 역사교과서에도 등장한다. 남아 있는 몇 줄의 기록에 따르면, 8세기에 인도를 방문한 우리나라의 한 승려는 안드라 주의 차기 주도로 내정된 아마라바티의 한 수도원에서 10년간 머물며 산스크리트어와 불법을 배웠다. 양측의 인연은 생각보다 오래된 셈이다. 현재의 경제적 이득이 없을지라도 인연을 맺고 정보를 주고받으며 훗날을 기약하는 이러한 행사는 인도라서 유의미하다. 모든 것이 동질적인 우리나라와 달리 남북한 영토의 17배인 인도는 안드라처럼 인구 5000만이 넘는 주가 10개나 되기 때문이다. 세계 7위의 영토로 인구 대국 세계 1위를 예약한 인도를 하나의 세계로 상대할 수는 없다. 사실 인도는 고대부터 지금까지 모든 것이 복수였다. 즉 다양성이 인도역사의 상수였다. 그런 인도를 하나의 대상(對象)으로 단순하게 판단하는 사람이 우리 주변엔 아직 많다. 인도는 더는 제3세계의 빈곤국이 아니지만, 인도를 여전히 그렇게 오해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굳이 말한다면 인도는 가난한 나라가 아니라 가난한 사람이 많은 나라로 인구가 많기에 가난한 사람이 많을 뿐이다. 따라서 부자대열에 들어가는 사람도 그만큼 많은 인도는 경제적으로도 천차만별의 땅이다. 그들을 한두 마디로 정의하는 건 무지를 넘어 무모한 일이다. 바다로 세계를 향한 항구도시 비샤카파트남에서 느꼈듯이 오늘날의 인도는 이전의 역사에서 종종 그랬듯이 먼지를 만져도 황금이 되는 번영의 시대를 향해 달려간다. 한때 인도가 세계경제의 중심이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지만, 무굴제국이 호령하던 1600년대의 인도는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였다. 1700년대 중반부터 외국의 지배를 받으며 바닥으로 떨어졌던 그 인도가 지난 25년간 예전의 영광을 되찾으려 분투하고 있다. 지금 인도에서는 ‘떠오르는 인도’, ‘메이크 인 인디아’ 등 자신감이 들어간 각종 구호가 춤을 추고 21세기 슈퍼파워가 되려는 열정이 전국 도처에서 묻어난다. 돈과 힘을 과시하는 새로운 인간형도 등장했다. 글로벌세상에서 활약하는 인도인도 엄청나게 많다. 특히 노쇠해 가는 다른 나라들과 달리 꿈을 가진 젊은이들이 많다는 것이 인도의 장점이다. 우리나라도 늦기 전에 역동적인 여러 지방을 주목하는 것이 필요하다. ‘코리아 카라반’이 그 기폭제가 되길 기대한다.
  • 뿌리 아래 송림의 신하…붉은 수피 곤룡포 입고 독야청청

    뿌리 아래 송림의 신하…붉은 수피 곤룡포 입고 독야청청

    이 땅에서 가장 오래 됐다는 금강송을 찾아 가는 길입니다. 이른바 ‘대왕금강송’입니다. 경북 울진의 안일왕산 정상 어름에서 600여년을 살아낸 나무입니다. 나무는, 흔히 상상하듯 훤칠하다거나 기골이 장대한 쪽과는 거리가 멉니다. 주변을 둘러친 ‘왕자 소나무’ 등에 견주면 수형은 외려 뒤져 보입니다. 하지만 대왕금강송은 쉬 범접할 수 없는 기품과 주변을 지배하는 카리스마가 있었습니다. 밤낮으로 바뀌고 변하는 사람의 깜냥으로는 도무지 소나무의 깊이를 가늠조차 할 수 없더군요. 그래서 누구나 소나무처럼 늙길 원하지만 아무나 그처럼 늙지는 못하는 것인가 봅니다. 바다는 길을 밀었다 당겼다, 차는 장단 맞춰 이리 돌고 저리 휜다. 갯가 따라 오보록하게 들어선 집들은 덩달아 들어앉고 나앉고, 빨랫줄에 널린 갯것들은 바닷바람에 퀴퀴한 냄새를 풍겨댄다. 7번 국도 따라 울진 가는 길. 곧게 펴져 옛맛은 덜 하지만, 그래도 넘실대는 바다와 이렇게 나란히 달릴 수 있는 길이 흔하지는 않지 싶다. 울진읍내를 지나 봉화 쪽으로 접어들면 사방은 곧 숲으로 변한다. 여기가 ‘금강송면’이다. 원래 울진군 서면이었는데 지난 4월께 이름을 바꿨다. 금강송 군락지로 얻은 유명세를 관광 분야에도 이용해 보자는 뜻이겠다. 붉은 빛 감도는 수피를 가진 금강송(金剛松)은 색이 붉어 적송(赤松), 늘씬하게 뻗어 미인송(美人松), 봉화의 춘양역에서 운반됐다고 해 춘양목(春陽木), 왕실의 관곽재로 사용돼 황장목(黃腸木) 등으로도 불린다. 붉은 빛 표피는 시간이 흐를수록 딱딱해지며 둥치부터 회색으로 변한다. 나무의 껍질은 점차 육각형으로 갈라지다가 수백년이 지난 후엔 마침내 거북의 등딱지 모양이 된다.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소나무들 중 유난히 곧고 길어 외래종이 아닐까 생각되지만, 우리 땅에서 우리 민족과 함께 호흡해온 토종 소나무다. 알려졌듯, 울진군 ‘금강송면’ 소광리엔 많은 금강송이 자란다. 안일왕산과 샛재 등에 수령 200~300년의 금강송이 8만 그루 정도라고 한다. 예전엔 무시로 출입했으나 2011년부터 예약탐방제로 바뀌어 인터넷을 통해 예약한 사람만 드나들 수 있다. 가장 오랜 세월을 살아낸 나무는 역시 대왕금강송이다. 안내판은 수령이 600년으로 추정된다고 적고 있다. 높이는 14m, 가슴높이 지름은 1.2m, 둘레는 5m쯤 된다. 안일왕산 정상 못 미처 780m 능선에서 서 있다. 대왕금강송을 보려면 안일왕산 등산 코스를 따라 가야 한다. 산림청에서 소광리 일대에 조성한 숲길 가운데 4번째 구간으로 거리는 9.2㎞쯤 된다. 소광2리에서 대왕금강송을 거쳐 장군터까지 간다. 들머리에서 대왕금강송까지는 빠른 걸음으로 두 시간 정도면 족하다. 푹신한 육산의 능선을 따라 가는 길이지만 대왕을 만나러 가는 길이 그리 호락호락하지만은 않다. 간간이 된비알을 만나기도 하니 등산화를 바투 조일 일이다. ‘형제금강송’ 등 제법 기품을 자랑하는 금강송들을 지나고 나면 ‘문지기 노송’이 나온다. 구부정한 모습이 꼭 허리 굽혀 인사하는 듯하다. 대왕금강송까지는 이제 겨우 몇 걸음, 문지기 노송 너머에 있다. 한데 ‘대왕님’께선 뜻밖에 선선히 자태를 드러내지 않으신다. 뭐가 마뜩찮으신 걸까. 비와 안개로도 모자라 바람까지 보내 방문객의 정신을 쏙 빼놓는다. 어렵게 알현한 대왕님의 풍채는 당당했다. 몇 백년 세월의 두께가 고스란히 가슴으로 전해오는 듯하다. 대왕님 앞으로는 응봉산, 중미동봉, 삿갓재 등의 산들이 마루금을 좁히고 서 있다. 그야말로 늠름한 군주의 모습이다. 위쪽에서 내려다 보면 대왕의 모습은 더욱 멋들어지다. 붉은 빛 수피로 ‘곤룡포’ 삼고, 땅 아래로 옹골차게 뿌리를 박았다. 한데 나무 중간쯤의 가지 하나가 잘려 나갔다. 한 사진작가가 보기 싫다며 주민을 시켜 베어낸 것이다. 이뿐 아니다. 사진 구도 설정에 방해가 된다며 아래쪽의 이른바 ‘신하 금강송’도 일부 훼손했다. 자연을 제멋대로 소유하려는 오만한 인간의 톱질 탓에 ‘옥체’가 온전한 형태를 잃고 말았다. 이왕 나선 길, 소광리 금강송 군락지의 몇몇 ‘스타 금강송’은 함께 살펴보는 게 좋겠다. 대왕금강송 등산로 초입의 너삼밭재에서 왼쪽 임도를 따라 오르면, ‘오백년 금강송’과 만날 수 있다. 조선 성종 때 싹이 터 임진왜란, 일제강점기, 6·25전쟁 등 이 땅의 풍파를 모두 지켜본 늙은 소나무다. 둥치는 성인 두 명이 팔 벌려 껴안아도 손이 닿지 않을 정도로 굵다. 시원스레 뻗은 몸매와 이리저리 틀어진 가지가 예사롭지 않다. 임도 좀 더 위의 산자락 중턱엔 ‘못난이 소나무’가 서 있다. 나이는 오백년 금강송과 동갑이다. 체형이 삐뚤빼뚤 굽은 데다 말벌집 등이 달라붙어 ‘피부’ 조차 곱지 않은 탓에 이 같은 이름으로 불린단다. 임도 가장 끝자락엔 ‘미인송’이 서 있다. 이 나무는 굳이 안내판을 보지 않더라도 단박에 알겠다. 군더더기 하나 없이 늘씬한 모양새가 등 쫙 편 모델을 보는 듯하다. 솔숲을 나와 후포 해변으로 들어선다. 여름의 열기 사라진 해변은 희고 밝고 적막하다. 한가위 대목 맞은 포구 앞 재래시장은 장이 서 번다하다. 여기저기 흥정하는 다글다글한 목소리들은 장터를 맴돌다 사라지고, 짭조름한 해산물 향기는 하늘로 바다로 고샅길로 흩어진다. 갯가 언덕엔 전망대가 세워졌다. 갓처럼 생겼다는 ‘갓바위 전망대’다. 높이 올라 보면 전망대의 평면이 대게 형상이라나. 작은 전망대지만 발 아래 전망은 제법 탁 트였다. 벼랑 위엔 하얀 후포등대가 빠꼼히 고개를 내밀었다. 지금은 범상한 생김새지만 올 11월께 등대가 깃든 등기산 공원이 ‘전국 최고의 별빛 조명공간’으로 탈바꿈하고 나면 ‘핵심 스타’로 등극할 예정이다. 등대 아래 늙은 팽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청잣빛 바다를 가슴으로 바짝 끌어안을 수 있는 장소다. 벤치에 앉아 넋 놓고 바다를 보자면, 가슴속 멍울과 상처가 제법 옅어져 있음을 알게 된다. ‘제13회 울진금강송 송이축제’가 10월 2~4일 울진왕피천엑스포공원 일대에서 열린다. 독특한 향과 맛의 울진 송이를 싸게 맛볼 수 있는 기회다. 올해는 특히 체험 프로그램을 대폭 늘리고, 송이 할인 행사를 실시간으로 운영하는 등 프로그램 개편에 힘을 쏟았다. 송이 채취 체험, 소광리 금강소나무 군락지 탐방, 굴구지 은어길 탐방 등 다양한 행사가 준비됐다. 송이와 울진특산품을 함께 맛볼 수 있는 시식코너도 마련됐다. 송이 비빔밥과 송이국, 한우와 어우러진 생송이 맛보기, 금강송 송이주 등 특별 음식들이 준비된다. 또한 축제장을 찾은 관광객을 위해 송이 30~50% 할인 행사도 진행된다. ‘성류문화제’와 ’2015 대한민국 온천대축제’ 등도 함께 개최될 예정이다. 글 사진 울진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여행수첩] (지역번호 063) →가는 길:금강송 숲길을 돌아보려면 탐방 3일 전까지 금강소나무숲길 홈페이지(www.uljintrail.or.kr) 또는 전화(781-7118)로 예약해야 한다. 하루에 80명까지 신청을 받는다. 수도권에서 승용차로 갈 경우 중앙고속도로 영주, 혹은 풍기 나들목으로 나와 36번 국도로 갈아타고 울진 방향으로 가다 소광리 금강송 군락지로 좌회전해 들어간다. 영동고속도로, 동해고속도로를 거쳐 7번 국도를 타고 가는 것도 좋다. 다만 울진읍에서 다시 봉화 방향으로 거슬러 올라야 해 거리는 다소 멀다. →맛집:7~8월 금어기를 지난 붉은 대게(홍게)는 9월 하순께부터 제맛이 들기 시작한다. 후포항의 왕돌회수산(788-4959)은 주인장이 경매사여서 질 좋은 대게와 붉은 대게를 맛볼 수 있다. ‘우럭지리탕’(맑은탕)도 별미다. 천년한우식육식당(783-6818)은 송이와 고기를 함께 구워 먹기에 맞춤한 집이다. 망양정횟집(783-0430)의 해물칼국수도 별미다. 가리비 등 해산물을 듬뿍 넣어 바다의 향을 만끽할 수 있다. →잘 곳:후포항 쪽의 지앤미(788-8885) 모텔이 깔끔한 편이다. 한화리조트 백암온천(787-7001)은 가족 단위 여행객이 온천을 겸해 묵어 가기 좋다. 덕구온천 쪽에선 호텔덕구온천(782-0677)이 규모가 크다.
  • [의정 포커스] “1년여간 1200명 직접 만나… 주민 행복 이끄는 선진의회 될 것”

    [의정 포커스] “1년여간 1200명 직접 만나… 주민 행복 이끄는 선진의회 될 것”

    “진정한 민의(民意)의 대변자로서 구민과 함께 소통하는 의회를 만들겠습니다.” 지난 18일 서울 종로구청 한우리홀에 300여명의 주민이 모였다. 종로구의회의 개원 24주년을 기념하기 위해서다. 김복동 종로구의회 의장을 비롯한 전·현직 구의원들과 김영종 종로구청장, 팜흐우찌 주한 베트남 대사 등이 함께했다. 김 의장과 김 구청장은 검은 한복으로 멋스러움을 뽐냈다. 600년 도시 종로의 전통을 이어가고 한복의 아름다움을 알리고자 지난 2월부터 구의회는 지역행사마다 한복을 착용하고 있다. 이날 행사에서는 개원 이후의 성과보고와 추진방향에 대한 다짐, 의정발전에 공헌한 주민 표창 등이 이어졌다. 꼬마 밸리댄서들의 공연이 흥을 돋웠다. 김 구청장은 “‘작은 것부터 천천히 그러나 제대로’라는 다짐을 민선 5기에 이어 6기에서도 실천 중”이라면서 “창신·숭인 도시재생, 도시비우기 사업 등 모든 것이 집행부의 힘만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종로구의회는 지난해 6월부터 그동안 6차례 ‘주민과의 대화’를 개최했다. 주민의 뜻을 의정활동에 반영하기 위해서다. 지난 6월에는 다양한 외부 의견을 수렴하고자 전문가와 주민들로 구성된 ‘의정 자문위원회’도 운영하기 시작했다. 김 의장은 “그동안 주민과의 대화 등을 통해 약 1200여명의 주민들과 소통하는 등 어느 때보다 활발한 의정활동을 펼쳤다”면서 “나를 포함한 11명의 의원 모두 하나가 되어 주민 행복을 위한 선진의회를 만드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최지숙 기자 truth173@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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