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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형형색색 축제로 물드는 서울의 가을] 내일부터 종로는…‘한복자락 날리는 날’

    [형형색색 축제로 물드는 서울의 가을] 내일부터 종로는…‘한복자락 날리는 날’

    오는 23일부터 사흘간 서울 광화문광장을 중심으로 인사동, 무계원, 북촌 등 종로구 일대가 한복의 고운 빛깔로 물든다. 서울 종로구는 23일 오후 5시 광화문광장에서 열리는 개막식을 시작으로 한복과 줄타기 등 전통문화를 즐길 수 있는 ‘2016 종로 한복축제- 한복자락 날리는 날’을 연다고 밝혔다. 600년이 넘는 수도 서울의 역사가 살아 있는 종로에서는 갓을 곱게 쓴 흑인 청년이나 색동 소매자락을 휘날리며 사진을 찍는 백인 여성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종로 한복축제는 젊은층을 중심으로 이는 ‘한복 관광’의 불씨를 지필 전망이다. 한복축제는 개막식에 이어 풍문여고 학생 300명이 참여하는 순종·순정효황후 가례 재현과 한복 뽐내기 대회, 한복퍼레이드와 패션쇼 등이 이어진다. 이번 축제의 정점은 국가무형문화재 제8호 강강술래 예능보유자 김종심, 박종숙씨와 함께 1000여명의 시민들이 국내 최대 규모로 펼치는 ‘신명대(大)강강술래’가 찍는다. 강강술래 이수자뿐만 아니라 진도군립예술단, 사전연습을 한 시민들, 연세·서강·이화·성균관어학당에 다니는 외국학생 등 1000여명이 참여해 은은한 불빛 아래 원을 그리며 하나 되는 아름다운 장관을 연출한다. 특히 광화문광장에서는 한복을 빌려 입을 수 있는 체험행사가 계속 열려 누구나 손쉽게 한복을 입고 세종대로를 걷는 기분을 만끽할 수 있다. 축제기간 동안 한복을 입으면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과 종로구의 21개 박물관을 무료 입장할 수 있다. 특히 축제 이튿날인 24일에는 경복궁 야간개장을 시작해 한복을 입으면 관람인원 제한에 구애받지 않고 달밤에 궁궐 나들이를 즐길 수 있다. 한복사랑 실천음식점 101곳에서도 한복 착용 시 음식값 10%를 깎아준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서울 종로구, 한복축제에서 한복의 참멋 느껴봐요

    서울 종로구, 한복축제에서 한복의 참멋 느껴봐요

    오는 23일부터 사흘간 서울 광화문광장을 중심으로 인사동, 무계원, 북촌 등 종로구 일대가 한복의 고운 빛깔로 물든다. 서울 종로구는 23일 오후 5시 광화문광장에서 열리는 개막식을 시작으로 한복과 줄타기 등 전통문화를 즐길 수 있는 ‘2016 종로 한복축제-한복자락 날리는 날’을 연다고 밝혔다. 600년이 넘는 수도 서울의 역사가 살아있는 종로에서는 갓을 곱게 쓴 흑인 청년이나 색동 소매자락을 휘날리며 사진을 찍는 백인 여성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종로 한복축제는 젊은층을 중심으로 이는 ‘한복 관광’의 불씨를 지필 전망이다. 한복축제는 개막식에 이어 풍문여고 학생 300명이 참여하는 순종·순정효황후 가례 재현과 한복 뽐내기 대회, 한복퍼레이드와 패션쇼 등이 이어진다. 이번 축제의 정점은 국가무형문화재 제8호 강강술래 예능보유자 김종심, 박종숙씨와 함께 1000여명의 시민들이 국내 최대규모로 펼치는 ‘신명大강강술래’가 찍는다. 강강술래 이수자뿐만 아니라 진도군립예술단, 사전연습을 한 시민들, 연세·서강·이화·성균관어학당에 다니는 외국학생 등 1000여명의 참여해 은은한 불빛 아래 원을 그리며 하나 되는 아름다운 장관을 연출한다. 특히 광화문광장에는 한복을 빌려 입을 수 있는 체험행사가 계속 열려 누구나 손쉽게 한복을 입고 세종대로를 걷는 기분을 만끽할 수 있다. 축제기간 동안 한복을 입으면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과 종로구의 21개 박물관 무료입장한다. 특히 축제 이튿날인 24일에는 경복궁 야간개장을 시작해 한복을 입으면 관람인원 제한에 구애받지 않고 달밤에 궁궐 나들이를 즐길 수 있다. 한복사랑 실천음식점 101곳에서도 한복 착용시 음식값 10%를 깎아준다. 김영종 종로구청장은 “올해 처음으로 여는 종로 한복 축제는 앞으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한류문화관광축제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600년 전 ‘인신공양’된 발 잘린 어린이 유골 발견

    '미라 천국' 페루에서 이번에는 ‘인신공양’(人身供養)된 것으로 보이는 유골들이 발견됐다. 최근 미국 조지 메이슨 대학 고고학 연구팀은 페루 수도 리마 북쪽에 위치한 초투나-초르난캅에서 최소 15세기 이전에 묻힌 17개의 무덤을 발굴했다고 발표했다. 잉카문명이 들어서기 전인 프레 잉카(pre-Inca) 시대에 묻힌 이 유골들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는 모두 인신공양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인신공양은 사람의 몸을 신적 존재에게 제물로 바치는 행위나 풍습을 의미한다. 이는 유골의 특이한 상태에서 확인됐다. 총 11구의 성인남녀 유골의 경우 신체에서 인위적인 훼손 흔적이 발견됐다. 특히 총 6구의 어린이 유골도 함께 발견됐으며 이중 2구는 발이 잘린 것으로 확인됐다. 연구팀은 발 잘린 어린이를 무덤을 지키는 일종의 수호신으로 해석했다. 연구를 이끈 하겐 클라우스 박사는 "잉카시대 전과 후로 이루어진 인신공양은 그리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면서 "오랜 시간 전해 내려온 전통으로 이는 당시 사회와 문화를 보여주는 거울과도 같다"고 설명했다. 이어 "전체 무덤들의 중앙에는 높은 신분을 가진 사람이 토기와 조각품과 함께 묻혔다"면서 "무덤가 외곽에는 발 잘린 어린이들이 묻혀 이를 지키는 것으로 수호신 역할을 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우리에게도 잘 알려져 있는 잉카문명은 15세기 부터 16세기 초까지 지금의 페루·볼리비아를 지배한 고대 제국으로 찬란한 문명을 꽃피웠다. 특히 이 지역에서는 유골과 미라가 자주 발견돼 고고학자들에게는 그야말로 보물창고다. 지난 60년 간 현지와 서구 연구팀이 유적지를 중심으로 조사에 나섰으나 현재 약 10% 밖에 발굴하지 못했을 정도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달라이라마 “방한은 정치적 문제… 내년 中변화 기대”

    달라이라마 “방한은 정치적 문제… 내년 中변화 기대”

    2000년에는 정치관계 탓 무산 내년 10월 中당대회 결과 주목 한국 불교계가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인 달라이라마를 한국에 초청했다. 2000년 한 차례 초청했으나 한·중 간 정치적 관계 탓에 방한이 무산된 터라 방한 여부에 불교계 안팎의 관심이 쏠린다. 달라이라마방한추진회(추진회)는 지난달 30일 티베트의 망명정부가 있는 인도 북부 다람살라를 방문, 남걀사원 옆 왕궁 접견실에서 달라이라마에게 공식 방한 초청장을 전달했다. 이 자리에는 금강 스님(추진회 상임대표)을 비롯해 추진회의 진옥(공동대표), 목종(사무총장), 선재·운성·황산(이상 추진위원) 스님이 배석했다. 추진회는 초청장을 전달하면서 “달라이라마 존자가 방한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달라이라마는 “저의 방한에 한국 불자와 시민들의 관심과 기대가 큰 데 대해 감사드린다”며 “한국의 도반과 불자들이 부처님 말씀 공부에 더욱 매진할 것”을 당부했다. 달라이라마는 “아시아에선 일본을 빼곤 어느 나라도 가지 못했다”며 “한국을 비롯해 불교 전통과 역사가 깊은 다른 아시아 국가들을 가지 못하는 건 내가 비구이기 때문인 것 같다”고 농담을 던졌다. 이와 함께 “내가 지금 입고 있는 가사는 2600년 전 부처님이 입던 것과 같은 것이지만 나의 뇌는 젊고, 젊은 마인드를 갖고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달라이라마는 특히 “나의 방한 여부는 중국 정부의 정치적 입장과 관련이 있는 것 같다”며 “내년 10월 중국 공산당 19차 당대회를 계기로 좋은 변화가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귀띔했다. 추진회는 달라이라마에게 해인사 팔만대장경 반야심경 목판본과 목판인경(印經)도 전달했다. 다음은 추진회와 동행한 한국 기자단과의 일문일답. →한국을 방문한다면 누구와 만나고 어디에 가고 싶은가. -만날 사람과 가고 싶은 장소를 특별히 생각한 적은 없다. 추진회의 스케줄대로 따를 뿐이다. 김치를 맛있게 먹고 싶다. →지금 시점에 한국의 불자와 국민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한국인들은 역사적으로 불교와 관계가 깊다. 우선 불자라면 부처님 말씀을 더 배우고 공부하는 데 주력하라고 당부하고 싶다. 불법의 공부와 수행은 일반인 남녀노소가 다 배울 수 있다. 그 바탕은 반야심경이다. 공성과 보리심을 배워 수행으로 삼을 수 있고 그 경험과 체험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되면 한국인 모두가 더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달라이라마 존자님은 인간의 행복은 물질로 채울 수 없다고 강조하신다. 그런데 지금 사람들은 물질에 치우쳐 행복을 잃어 가는 것 같다. 그들에게 줄 수 있는 말씀은 어떤 것인가. -마음의 행불행은 육체적 행불행을 능가한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려 극심한 몸의 고통을 극복해 내는 선수들을 보면 알 수 있다. 특히 젊은이들이 마음과 심리 변화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 불교의 마음공부가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 어릴 때부터 도덕적 분별심을 길러 맑고 밝은 세상을 살 수 있도록 교육해야 한다. →최근 인공지능(AI) 알파고와의 바둑 대국에서 한국 프로 바둑기사가 패해 충격을 안겼다. 인공지능 발달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사람의 지성은 인공지능보다 낫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알파고의 프로그램을 만든 것이지 프로그램이 저절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지 않은가. 인공지능과 영적으로 뛰어난 우리 티베트의 스님들이 대결하면 우리가 이길 것이다(웃음). →아시아는 지금 영토 분쟁과 핵 위협, 전쟁 위험 등 매우 위험한 형국이다. 현실적으로 심각하게 위협받는 평화를 구현하기 위해 어찌해야 하나. -10년, 20년, 30년 내에 지구와 세상이 크게 달라지진 않을 것이다. 그래서 어릴 적부터 자비심을 키우는 교육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남을 위한 배려는 나와 세상 모두에 큰 보탬이 된다. 그렇게 교육받은 아이들이 30~40년쯤 뒤 사회에서 활동하게 되면 사회 발전에 큰 힘이 될 것이다. →과학 발달로 종교의 역할이 예전 같지 않다는 관측이 많다. 미래의 종교는 어떤 역할을 할까. -종교의 목적과 목표는 사랑과 연민이다. 기독교의 하느님이 세상을 창조한 것도 세상에 대한 연민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느님의 자식들도 자비와 연민을 실천해야 한다. 불교는 하느님을 인정하지 않고 조물주가 있지 않다고 보지만 사람의 인식과 활동에 따라 세상이 좌우된다고 여긴다. 그래서 나부터 바른 삶을 살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다람살라(인도)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우사인볼트·톰슨의 나라’ 자메이카의 비밀? ‘타고난 유전자+교육의 선순환’

    ‘우사인볼트·톰슨의 나라’ 자메이카의 비밀? ‘타고난 유전자+교육의 선순환’

    자메이카가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육상 단거리 금메달을 휩쓸고 있는 가운데, 유독 자메이카에 뛰어난 육상 재원이 나타나는 ‘비결’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우사인 볼트(30)가 19일 남자 100m와 200m를 석권해 3연패를 달성했고 새로운 단거리 여제 일레인 톰프슨(24)이 미국의 견제를 뚫고 여자 100m, 200m 우승을 차지했다. 자메이카 남녀 400m 계주팀이 모두 결승에 올라 있어, 이 종목마저 휩쓸면 올림픽 역사상 최초로 남녀 단거리 3관왕을 동시에 배출하는 역사를 쓴다. 자메이카는 인구 295만명의 작은 나라지만 전 세계 팬들의 눈이 모이는 육상 단거리를 지배하고 있다. 자메이카 육상 단거리는 학자들에게도 흥미로운 연구과제다. 대부분 연구는 ‘타고난 신체에 후천적인 노력을 동반하니 최강이 됐다’는 결론을 내린다. 영국 글래스고 대학과 자메이카 서인도 대학은 2009년 ‘자메이카 단거리 선수들에게는 특별한 DNA가 있다’는 연구 결과를 내놨다. 영국의 식민지로 노예무역 중심지 역할을 했던 자메이카에 1600년대 중반 서아프리카 인구가 대거 유입됐다. 글래스고 대학과 서인도 대학은 200명 이상 자메이카 육상 선수 신체를 조사한 결과 선수의 70%가 액티넨 A 유전자 CC형 타입임을 밝혀냈다. 액티넨 A는 근육을 강화하는 유전자인데 그중에서 CC형 타입은 내부 근육의 구조를 강화하는 특수 단백질을 쉽게 만든다. 또 액티넨 A CC형 타입은 근육의 수축과 이완 작용을 빠르게 한다. 이 작용이 빠를수록 순간적으로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서아프리카 선수들에게도 이 유전자 타입이 자주 발견된다. 볼트와 톰프슨이 보여준 폭발적인 막판 스퍼트도 이 유전자의 영향일 가능성이 있다. 연구진은 “이 유전자 타입을 보인 호주 선수는 30%였다”고 밝혔다. 호주는 육상 단거리 약소국이다. 이 연구는 ‘자메이카에서는 선천적으로 단거리 육상에 적합한 신체를 갖춘 선수가 나올 가능성이 크다’는 걸 보여준다. 영국 노섬브리아대학은 2014년 “자메이카 어린이들이 유럽 아동보다 완벽하게 다리 대칭을 이루고 있다. 특히 좌우 무릎 균형이 좋다”며 “이는 육상에 유리한 조건”이라고 발표하기도 했다. 신체적 특성만이 육상강국 자메이카를 만든 것은 아니다. 재원을 육성하기 위한 선수들의 노력이 큰 몫을 했다. 자메이카가 육상 단거리 최강국으로 떠오른 건 2000년대다. 1990년대에도 뛰어난 자원이 있었지만 해외로 유출됐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100m 금메달리스트 린퍼드 크리스티(영국), 1996년 애틀랜타 100m 우승자 도너번 베일리(캐나다), 약물 복용 파문을 일으켰지만 칼 루이스(미국)와 단거리 최강자 자리를 놓고 경쟁하던 벤 존슨(캐나다)이 자메이카 출신이다. 이들은 다른 나라 국기를 달고 뛰었다. 1960년대 미국에서 육상 유학을 한 데니스 존슨은 자메이카로 돌아와 스프린터 육성학교인 자메이카 공대를 세웠다. 볼트와 톰슨 모두 이 학교 출신이다. 육상 유망주들은 자국에서 교육을 받고 국가대표가 되면서 자메이카 단거리가 성장한다. 그렇게 대표선수가 된 이들은 다시 자메이카에 남아 후배를 가르치고 새로운 유망주가 최신 육상 기술을 전수한다. 또 국가적으로 자주 육상경기를 열어 유망주에게 희망을 품게 한다. 이런 선순환 구조 안에서 ‘제2의 볼트와 톰프슨’이 배출되는 것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주민과 더 가까워진 중구청 로비

    주민과 더 가까워진 중구청 로비

    “구청 로비가 한결 환해졌어요.” 서울 중구청의 얼굴 격인 1층 로비가 새 단장을 했다. 공간을 주민들을 위한 ‘복합 커뮤니티’ 공간으로 탈바꿈한 것. 중구는 지난 12일 최창식 구청장이 참석한 가운데 개관식을 열고 본격적인 운영을 시작했다. 238㎡의 널찍한 공간은 차를 마시면서 책을 볼 수 있는 산뜻한 북카페, 중구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역사전시관, 체험존이 들어섰다. 카페는 주민·직원 누구나 소규모 회의, 모임을 할 수 있는 열린 곳이다. 기존에 구청 별관 4층에 있는 바람에 이용이 저조했던 작은도서관도 이곳으로 옮겨 북카페로 고급화했다. 역사전시관은 중구의 과거와 현재를 각종 사진과 그래픽, 영상으로 한눈에 볼 수 있다. 이순신, 박지원, 이덕형, 이행, 강세황 등 중구에서 태어나거나 활동한 대표적인 인물 24명의 영상, 필적도 모아 놓았다. 한국영화의 메카 충무로가 중구의 한 축임을 감안해 임권택 감독의 작품 100여 편을 디지털북으로 만들었다. 1950~60년대 거리 지도에서 당시 다방, 여관, 음식점, 영화사를 구경하거나 옛 영화 시나리오, 티켓 등 소품을 둘러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이 역사전시관은 주민과 직원들의 아이디어 공모를 통해 탄생했다. 특히 중구의 주요 명소와 역사를 6개 코스로 스토리텔링한 ‘중구로 떠나는 테마여행’ 존은 체험거리다. 한쪽에 중구 옛 모습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포토월을 만들어 타임머신을 타고 옛날 거리로 돌아가 볼 수도 있다. 최창식 구청장은 “중구청은 서울 도심 한가운데 위치해 누구나 편하게 방문할 수 있고, 서울 600년 역사문화를 간직한 중구의 옛 모습을 느낄 수 있다”면서 “구민과 직원들의 관심과 애정으로 동네 명소가 될 수 있게끔 많이 활용해 주시라”고 말했다.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 서울 중구청, 로비에 북카페와 역사전시관 등을 주민과 공유합니다

    “구청 로비가 한결 환해졌어요” 서울 중구청의 얼굴 격인 1층 로비가 새 단장을 했다. 공간을 주민들을 위한 ‘복합 커뮤니티’ 공간으로 탈바꿈한 것. 중구는 지난 12일 최창식 구청장이 참석한 가운데 개관식을 열고 본격적인 운영을 시작했다. 238㎡의 널찍한 공간은 차를 마시면서 책을 볼 수 있는 산뜻한 북카페, 중구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역사전시관, 체험존이 들어섰다. 카페는 주민·직원 누구나 소규모 회의, 모임을 할 수 있는 열린 곳이다. 기존에 구청 별관 4층에 있는 바람에 이용이 저조했던 작은도서관도 이곳으로 옮겨 북카페로 고급화했다. 역사전시관은 중구의 과거와 현재를 각종 사진과 그래픽, 영상으로 한눈에 볼 수 있다. 이순신, 박지원, 이덕형, 이행, 강세황 등 중구에서 태어나거나 활동한 대표적인 인물 24명의 영상, 필적도 모아 놓았다. 한국영화의 메카 충무로가 중구의 한 축임을 감안해 임권택 감독의 작품 100여 편을 디지털북으로 만들었다. 1950~60년대 거리 지도에서 당시 다방, 여관, 음식점, 영화사를 구경하거나 옛 영화 시나리오, 티켓 등 소품을 둘러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이 역사전시관은 주민과 직원들의 아이디어 공모를 통해 탄생했다. 특히 중구의 주요 명소와 역사를 6개 코스로 스토리텔링한 ‘중구로 떠나는 테마여행’ 존은 체험거리다. 한 쪽에 중구 옛 모습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포토월을 만들어 타임머신을 타고 옛날 거리로 돌아가 볼 수도 있다. 최창식 구청장은 “중구청은 서울 도심 한가운데 위치해 누구나 편하게 방문할 수 있고, 서울 600년 역사문화를 간직한 중구의 옛 모습을 느낄 수 있다”면서 “구민과 직원들의 관심과 애정으로 동네 명소가 될 수 있게끔 많이 활용해 주시라”고 말했다.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 6600년 전 ‘세계 최고(最古) 금 공예품’ 발견

    6600년 전 ‘세계 최고(最古) 금 공예품’ 발견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 공예품이 공개돼 눈길을 끌고 있다. 불가리아 남부의 선사시대 유적지에서 출토된 이것은 지름이 4㎜에 불과한 금으로 된 작은 구슬이다. 가운데가 텅 비어있는 형태의 이것은 반지와 유사한 외형을 가지고 있다. 무게는 불과 15센티그램(약 142㎎)에 불과하며, 2주 전 해당 지역의 낡은 집을 철거하던 중 우연히 발견됐다. 현지 고고학자들에 따르면 이 금 공예품은 BC 4600~4500년 전, 지금으로부터 약 6600년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까지 알려진 세계 최고(最古) 공예품은 1972년 불가리아 바르나에서 발견된 금 공예품으로, 신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의 중간시기인 동기시대(copper age)에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번에 발견한 것은 기존에 알려졌던 가장 오래된 금 공예품보다 200년 가량 앞선 것으로 추정된다. 연구를 이끈 불가리아과학아카데미(Bulgaria Academy of Sciences, BAS) 측은 “우리는 이것이 바르나의 금 공예품보다 훨씬 앞서 만들어졌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면서 “이는 매우 중요한 발견이다. 크기는 매우 작지만 역사상 매우 큰 의미를 가진 유물”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이것이 유럽 최초의 도회지이자 오늘날까지 불가리아에서 가장 번성한 도시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불가리아 남부 파자르지크 인근에서 만들어졌으며, 이번에 공개된 금 공예품으로 보아 이 지역이 근대뿐만 아니라 고대에도 매우 높은 문화수준을 자랑했을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이 금 공예품은 파자르지크의 역사박물관에서 전시될 예정이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최영미와 함께 읽는 세계의 명시] 나를 노래한 사포

    [최영미와 함께 읽는 세계의 명시] 나를 노래한 사포

    길가메시 서사시에서 알 수 있듯이 대개 왕이나 영웅의 업적을 찬양하는 목적으로 지어진 게 서사시이다. 사사로운 개인의 감정과 생각을 표현하고 공유한다는 것, 나를 노래한다는 것 자체가 처음엔 혁명이었고 휴머니즘이었다. 최고 권력자만이 아니라 나도 말할 가치가 있다, 나도 왕 못지않게 소중한 존재이니까. 민주주의가 발전했던 그리스에서 말하기를 좋아하는 철학자와 시인들이 인류문화의 꽃을 피웠다. 나는 누구인가를 탐구한다는 점에서 철학자와 서정시인은 서로 닮았다. 위대한 시인들은 다 철학자였다. 서정시를 발전시킨 가장 큰 공로자는 그리스의 여성시인 사포(BC 600?~?)이다. 일상의 언어가 가진 잠재력을 최대한 끌어올린 사포의 시어들은 2500여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현대적이다. 사포는 기원전 600년경에 레스보스 섬의 미틸리니에서 태어났다. 당시 레스보스는 소아시아에 위치한 트로이 그리고 아시리아와 지리적으로 가까워, 동서를 잇는 고대 중개무역의 중심지로 아테네가 부럽지 않을 만큼 부유했으며 문화가 발달했다. 사포와 시를 교환한 알카이오스를 비롯해 그녀를 사모하는 남성들이 여럿이었지만, 사포는 아름다운 외모로 이름을 날리진 않았다. 사포는 키가 작고 남성적인 용모의 소유자였다고 한다. 그녀는 시의 힘으로, 그 누구도 따라오지 못할 언어의 힘으로 사람들을 굴복시켰다. 시인은 무가치한 존재로 공화국에서 추방해야 한다고 주장한 플라톤(BC 427~347)도 사포를 ‘열 번째 뮤즈’라며 찬양했고, 사포의 이미지는 고대 미틸리니에서 주조된 동전에도 새겨져 있다. 고대 그리스에서 시는 눈으로 읽는 글이 아니라 귀로 듣고 즐기는 노래였고, 춤도 곁들여진 종합예술이었다. 시인들은 모두 가수였다. 사포의 시도 노래로 구전되다가 나중에 책으로 엮였다. 사포의 시는 첫 행을 보통 제목으로 사용하는데, 그 첫 행의 번역이 번역자마다 달라서 같은 시인데도 제목이 다르게 붙어 있다. 질투의 시로 알려진 ‘그는 내게 신처럼 보여’(To me he looks godlike)를 감상해 보자. 참으로 번역하기 까다로운 시다. 구글에서 영어로 사포의 ‘Poem of Jealousy’를 검색하면 기원전 50년경의 라틴어 번역본을 비롯해 무려 32개의 번역이 뜨는데, 내가 한글로 옮긴 것은 언젠가 미국을 여행하며 길거리의 서점에서 구입한 작은 책, 뉴본(Sasha Briar Newborn)의 ‘Sappho: The Poems’에 실린 영어 텍스트이다. 그는 내게 신처럼 보여 -사포 그는 내게 신처럼 빛나 보여, 네 앞에 마주앉은 남자, 달콤한 너의 말에 귀 기울이며 너의 매혹적인 웃음이 흩어질 때면 내 가슴이 가늘게 떨리네. 너를 슬쩍 쳐다보기만 해도, 내 혀가 굳어 아무 말도 할 수 없네. 뜨거운 불길에 휩싸여 내 눈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네 내 귀가 둥둥 울리고 땀이 비 오듯 쏟아지고 몸이 떨리네 나는 마른 풀처럼 창백해지고 죽을 것만 같아… (I’m pale as dry grass, and death seems close, familiar-) ** 여기서 시인이 열중하는 상대는 신처럼 빛나는 ‘그’가 아니라, 그와 마주앉은 여인인 ‘너’이다. 너의 마음을 사로잡은 남자인 그를 질투하는 사포의 고백이 처절하다. 동성애를 시어로 표현한 아주 특별한 여성이었던 사포. (사포가 태어난 섬의 이름을 따서 ‘레즈비언’이라는 말이 탄생했다). 사랑에 빠졌을 때 우리 몸에 나타나는 변화를 마치 의사가 환자를 관찰하듯 낱낱이 묘사하여, 눈에 보이는 선명한 이미지로 보여 준 시인은 사포가 아마도 처음이리라. 사포의 시는 서양문학만 아니라 서양문화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사랑의 그 곤란한 깊이를 포착하는 그녀의 열정적이며 때로는 얼음처럼 차가운 시어들은 시대를 뛰어넘어 지금도 우리의 가슴을 울린다. 파피루스에 기록된 그녀의 시들은 세월이 흘러 불에 타고 물에 잠기고, 조각조각 찢어져 완전한 형태가 드물지만 파편으로 남은 시편만으로도 그녀의 천재성을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사포는 악기도 잘 다뤄 새로운 형태의 리라를 디자인했고, 오늘날 기타의 ‘피크’(pick)에 해당하는 채(plectrum)를 발명하기도 했다. 한때 대한민국의 여학교 교실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세계의 명시를 베끼고 그림을 그린 시화집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최근에 서랍을 정리하다 학창시절에 내가 일기장 겸 시화집으로 사용하던 공책에서 사포의 시를 발견했다. 그 옛날, 여고 1학년이었다. 만년필로 또박또박 새겨진 “나는 마른 풀처럼 창백해지고 죽을 것만 같아요”가 삼십년이 지났건만 금방 흘린 피처럼 선명했다. 그래. 그래서 내가…. 사포의 뒤틀린 위트와 아이러니에 매료되지 않았다면, 지금쯤 나는 평범한 주부가 되어 적당히 편안한 중년을 보냈겠지. 너무 이른 나이에 사포에게 세뇌당하지 않았다면 지금보다는 부드러운 시인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감히 ‘나’를 노래하는 모험을 택하지 않고 ‘그’ 혹은 ‘그녀’의 이야기를 아리송하게 심각하게 포장하는 재주를 익혔다면, 비평가들의 칭찬과 상도 뒤따랐으련만. 그러나 나는 ‘나’를 노래하다 안개처럼 사라질 운명인 것을….
  • 1600년 금녀 깨나… 교황, 여성 부제 검토위 설립

    프란치스코 교황이 1600년간 남성의 전유물이었던 가톨릭 성직 중 부제직을 여성에게 허용하는 문제를 다룰 위원회를 설립했다. 교황청은 2일(현지시간) “프란치스코 교황이 치열한 기도와 충분한 숙고 끝에 여성 부제직 검토 위원회를 발족시키기로 했다”고 밝혔다고 AFP 등이 보도했다. 교황은 남성 성직자 7명, 수녀 2명, 여성 신학 교수 4명 등 총 13명을 위원으로 임명했으며 그중 바티칸 신앙교리성 장관인 루이스 프란치스코 라다리아 페레르 대주교를 위원장으로 선임했다. 다만 위원회의 첫 회의 소집일과 활동 기간은 정해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주교, 사제에 이어 가톨릭 성직 중 가장 낮은 품계인 부제는 미사와 고해성사를 집전할 수 없지만 세례·혼인·장례 예식의 주례, 강론, 교구·교회 행정 보조 등의 역할을 수행한다. 검토위 위원으로 들어간 필리스 자가노 미국 호프스트라대학 교수는 “가톨릭에서 여성은 성직자가 될 수 없기에 교회 내 주요 직책에서 배제된다”며 “여성에게 부제를 서품해 성직에 참여하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교황이 여성 부제를 허용한다면 전 세계를 뒤바꿀 만한 결정을 내리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가톨릭 교회 초기인 기원후 5세기쯤까지만 해도 여성 부제의 존재가 기록에 등장하지만 이후 여성의 부제 서품은 금지됐다. 독일의 발터 카스퍼 추기경은 과거 여성에게 부제를 허용하려는 시도가 모두 좌절된 사실을 언급하며 “이 문제로 교회가 양분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제임스 브레츠케 보스턴대 교수는 “여성 부제가 허용된다면 여성이 사제에 절대 서품될 수 없다는 주장은 약화될 것”이라며 여성 부제 허용 논의가 사제직으로 확대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취임 이후 가톨릭교의 오래된 금기를 깨는 파격 행보를 보여 왔다. 교황은 교회에서 여성이 더욱 많은 역할을 맡아야 한다고 강조하며 올해 부활절 직전 성목요일에 열린 세족식에 관행을 깨고 여성을 참여시킨 바 있다. 지난 9월에는 가톨릭에서 죄인으로 간주되는 낙태한 여성을 사면하는 권한을 한시적으로 사제에게 허용했으며 이혼자와 성소수자를 교회가 포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 [와우! 과학] “마지막 매머드는 5600년 전 ‘갈증’으로 멸종했다”

    [와우! 과학] “마지막 매머드는 5600년 전 ‘갈증’으로 멸종했다”

    한 때 유럽과 아시아, 아메리카 대륙에 이르기까지 지구 곳곳에 살았던 전설의 동물이 있다. 바로 긴 털과 거대한 엄니를 자랑하는 털매머드(woolly mammoth)다. 매머드는 대략 1만 년 전 멸종된 것으로 추정되나 북태평양 베링해의 세인트 폴 섬에 거주한 그룹은 5600년 전까지도 살아남았다. 최근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립대학 연구팀은 지구상에 마지막으로 남았던 세인트 폴 섬 매머드의 멸종이유는 '물'이라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그간 학계에서는 매머드의 멸종 이유를 놓고 다양한 이론이 발표됐다. 이중 가장 대표적인 학설이 당시 인류가 매머드를 사냥해 ‘씨’가 말랐다는 것. 그러나 2000년대 들어 운석 충돌의 영향으로 매머드가 멸종했다는 이론이 학계에서 힘을 얻어왔다. 이 가설을 세운 대표적인 학자가 캘리포니아 대학 제임스 케네트 교수다. 그는 혜성 충돌의 영향으로 지구의 온도가 급격하게 떨어져 매머드를 비롯한 거대 동물 멸종, 인류 문명이 소멸됐다는 이른바 ‘영거 드라이아스기 충돌 이론’(Younger Dryas impact theory)을 펼쳐왔다. 이번 연구팀에 따르면 세인트 폴 섬 매머드의 멸종을 이끈 '범인'은 기후변화다. 지구의 온난화로 해수면이 상승해 매머드의 터전이 서서히 줄어든 것. 특히 매머드가 마실 수 있는 물이 바다로 흘러 들어갔고 반대로 바닷물이 땅으로 올라와 식물에도 악영향을 미쳤다. 결과적으로 마실 수 있는 물이 사라진 매머드는 갈증에 고통을 겪다 비참한 운명을 맞게됐다. 연구를 이끈 러셀 그래험 박사는 "인류가 세인트 폴섬을 발견한 것은 18세기이기 때문에 용의자가 될 수 없다"면서 "섬의 물웅덩이가 한달 만 말라버려도 매머드에게는 치명적이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와 유사한 현상이 오늘날의 섬에서도 확인된다"고 덧붙였다. 이번 연구결과는 ‘미국 국립과학원회보’(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최신호에 실렸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경쾌하게·박력있게·스릴있게…韓·美·日 애니 삼국지

    경쾌하게·박력있게·스릴있게…韓·美·日 애니 삼국지

    여름 극장가는 블록버스터 외에도 가족 관람객을 겨냥한 애니메이션 전쟁이 발발하는 시기다. 7월 마지막주 박스오피스 톱 10 중 ‘도리를 찾아서’, ‘아이스에이지: 지구대충돌’, ‘극장판 요괴워치’, ‘빅’ 등 애니메이션이 네 편이나 차지하고 있다. 8월, 애니메이션 전쟁이 더 뜨거워진다. 굵직굵직한 작품들이 대거 개봉할 예정이다. 한·미·일 대결이 펼쳐지는 것도 관전 포인트. ●북미 극장가 휩쓴 ‘마이펫’·日 ‘코난’ 오늘 개봉 맞불 3일 개봉하는 할리우드 애니메이션 ‘마이펫의 이중생활’(전체 관람가)은 올해 ‘주토피아’, ‘도리를 찾아서’의 흥행 바통을 잇고 있는 작품이다. 최근 SF ‘스타트렉 비욘드’가 개봉하기 전까지 2주간 북미 극장가를 휩쓸었다. ‘슈퍼배드’ 시리즈와 ‘미니언즈’를 선보이며 세계 애니메이션계의 신흥 강자로 떠오른 일루미네이션에서 제작했다. 애완동물들의 일상을 사람이 아닌 동물의 시선으로 그려낸다. 새 입양견 때문에 평화로운 일상에 금이 간 반려견 맥스가 뜻밖의 사고로 주인 곁을 떠나게 된 뒤 동물 친구들과 겪게 되는 모험담이 경쾌하다. 물량 공세를 앞둔 일본 애니메이션 중에는 ‘명탐정 코난: 순흑의 악몽’(12세)이 눈에 띈다. ‘마이펫…’과 같은 날 극장에 걸린다. ‘명탐정 코난’의 20번째 극장판이다. 만화는 아오야마 고쇼가 1994년 처음 잡지에 연재하기 시작해 현재까지 그리고 있으며, 1996년 TV 애니메이션 시리즈가 시작됐다. 극장판은 1997년 첫 편이 나온 뒤 해마다 한 편씩 제작되고 있다. 극장판에서 코난은 할리우드 액션 블록버스터급 모험을 펼친다. 관객 몰이가 큰 작품은 아니지만 마니아층이 탄탄하다. 국내에서는 6번째 극장판 ‘베이커가의 망령’이 2008년 처음 상륙한 뒤 일본색이 짙은 네 작품을 제외하고 19번째 ‘화염의 해바라기’까지 모두 개봉했으며 누적 관객이 430만명에 달한다. ●이성강 감독 ‘카이’ 17일·연상호 감독 ‘서울역’ 18일 개봉 한국 애니메이션 중에는 연상호 감독의 좀비물 ‘서울역’(15세)과 이성강 감독의 판타지 ‘카이: 거울호수의 전설’(전체)이 빅카드다. 18일 개봉하는 ‘서울역’은 연 감독의 첫 실사 영화 ‘부산행’보다 앞선 이야기(프리퀄)를 담고 있다. 공유 부녀가 KTX에 탑승하기 전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의문의 바이러스가 퍼진 서울역에서 평범한 시민들이 생존을 위한 사투를 벌인다. ‘부산행’ 도입부에서 KTX에 돌연 탑승해 바이러스를 전파하는 감염자로 특별 출연한 심은경이 류승룡, 이준과 함께 목소리 연기를 한 점이 흥미롭다. 심은경이 두 작품의 연결고리인 셈이다. 최근 몇 년 새 국내 극장판 애니메이션은 유아용을 제외하곤 줄줄이 흥행에 실패했기 때문에 ‘서울역’이 ‘부산행’의 열기에 힘입어 흥행 열차에 탑승할지 주목된다. ‘서울역’보다 하루 앞선 17일 스크린에 걸리는 ‘카이…’는 2002년 국내 작품으로는 처음으로 세계 최고 애니메이션 축제인 프랑스 안시 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 그랑프리를 수상했던 ‘마리 이야기’의 이성강 감독이 안데르센 동화 ‘눈의 여왕’을 한국적 정서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소년 카이와 눈의 여왕 하탄의 대결이 하이라이트다. 연상호 감독이 제작에 참여한 점이 눈길을 끈다. ●세계 최고 佛안시영화제 석권 ‘보이 앤 더 월드’ 4일·‘리우 2096’ 11일 첫선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을 맞아 브라질 애니메이션을 맛볼 수 있는 색다른 기회도 마련됐다. 안시를 2년 연속 석권했던 작품들이다. 먼저 2014년 그랑프리 수상작 ‘보이 앤 더 월드’(전체)가 4일 개봉한다. 도시로 일자리를 구하러 간 아빠를 찾아 여행을 떠나는 소년의 눈에 비친 어른들의 세계를 동화적인 감성으로 그려내며 한편으론 도시화와 세계화, 자본주의와 미디어의 범람, 인간 소외를 풍자한 수작이다. 11일에는 2013년 그랑프리 수상작인 ‘리우 2096’(19세)이 개봉한다. 영원한 생명을 지닌 인디언 전사와 끊임없이 환생하는 여인의 600년에 걸친 사랑을 그린 대서사 판타지물이다. 1500년대 프랑스·포르투갈 식민 지배, 1800년대 노예제 폐지 투쟁, 1960~70년대 군부 독재 등을 거쳐 2096년 물 부족 사태로 인한 소요까지 실제 역사와 앞으로 일어날 법한 역사까지 만날 수 있다.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인류 역사엔 늘 ‘여성 우정’ 있었다

    인류 역사엔 늘 ‘여성 우정’ 있었다

    여성의 우정에 관하여/메릴린 옐롬·테리사 도너번 브라운 지음/정지인 옮김/책과함께/424쪽/1만 9500원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은 우정을 인간의 애착 가운데 가장 ‘고귀한 형태’로 보았다. 그런데 이 우정론에서 여성은 예외이다. 당시 시민도, 군인도 아닌 신분 탓에 공적 영역에 참여할 수 없었던 여성들은 우정에서 철저히 배제됐던 것이다. 우정에 관한 한 여성 폄하와 무시는 그리스 철학자들만의 언사에 머물지 않는다. 16세기 프랑스 작가 몽테뉴(1533~1592)는 “보통 여자들이 지닌 능력은 영적 교감을 나누기에 부적합하며, 여자들의 영혼은 그렇게 견고하고 질긴 관계의 압박을 견딜 만큼 튼튼하지 않은 것 같다”고 썼다. ‘나니아 연대기’의 작가 CS 루이스(1898~1963)는 “남자들의 무리에 여자들이 끼어드는 건 우정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현대의 현상에 일조하는 일”이라고 했다. 미국 스탠퍼드대 미셸 클레이만 젠더연구소의 원로학자가 저명한 미국 저술가와 함께 쓴 이 책은 ‘여성의 우정’이란 테마를 문화사의 측면에서 풀어내 흥미롭다. 성서에서 고대 그리스·로마, 계몽주의와 1960년대 여성운동을 거쳐 현대에 이르기까지 우정에 대한 태도 변화를 시대순으로 정리한 게 독특하다. 그 천착에서 건져낸 메시지가 또렷하다. ‘여성의 우정이라는 개념은 인류 역사를 결정한 사회적, 문화적 운동들과 언제나 밀접하게 연결돼 있었다.’ “기원전 600년부터 서기 1600년까지 서구 역사의 첫 20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우정에 관한 거의 모든 기록은 오직 남자들만의 이야기였다.” 우선 성경을 보자. 지은이들이 성서에서 훑어낸 여자들의 우정에 관한 이야기는 “상상력을 발휘해야만 추측이나마 할 수 있을 정도로 희미한 흔적만 있을 뿐”이다. 고대 그리스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시민인 남자들이 아고라에 모여 우정을 쌓는 동안 집에 남아 집안 살림을 도맡아야 했던 여자들에게 우정이 가능했을까. 당시 여자들은 집 밖으로 나가 이웃을 방문하는 시간마저 제한되어 있었다. 그러나 저자들은 역사 속 ‘여성의 우정’을 이렇게 말한다. “존재했으나 보이지 않았다” 실제로 어떤 식으로든 여성들의 우정은 지속되어 왔다는 것이다. 여자들의 우정이 기록으로 남기 시작한 건 여자들 스스로 글을 쓸 수 있게 되고부터이다. 12세기 서부 독일 작은 마을 빙겐의 여수녀원장 힐데가르트 폰 빙엔(1098~1179)은 그 시초로 여겨진다. 힐데가르트는 당시 존경받는 멘토로, 어머니 같은 존재로, 수많은 수녀들을 이끌어주고 열정적인 우정을 나누었다고 한다. 그로부터 시대의 환경과 인식에 따라 우정의 성격도 다양하게 변화했다. 17세기 영국의 문학 서클과 프랑스의 살롱은 여성의 우정에 있어서 전례 없는 변화를 몰고 온 요인이었다. 식민지 미국의 개척기에는 척박한 환경에서 함께 생활을 꾸려나가야 할 필요성이 여성들의 연대를 부추겼으며 다양한 형태의 모임을 만들어냈다고 한다. 특히 19세기 여성참정권 운동의 대표적 인물인 미국 수전 B 앤서니(1820~1906)와 엘리자베스 케이디 스탠턴(1815~1902)의 일생 변치 않은 깊은 우정은 유명하다. 두 사람은 공통의 대의를 향해 나아가는 데 여성들의 연대, 즉 자매애가 얼마나 중요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이 자매애의 가치는 그 이후 페미니스트들에게서 모든 여성을 포괄하는 이상이자 동력이 되었다. 미국 제32대 대통령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영부인 앨리너 루스벨트가 정치적 거물이 될 수 있었던 것도 늘상 곁에서 이끌어주고 희로애락을 함께 한 친구들 덕분이었음을 추적해 도드라진다. 책은 앨리너의 이야기에만 한 장을 할애하고 있다. ‘우정은 남성의 전유물’이란 고정관념이 역전되기 시작한 건 19~20세기 무렵이다. 이 시기 들어서야 비로소 ‘여성이 남성보다 더 남을 배려하고, 다정하고, 애정 깊으며, 따라서 우정에도 더 적합한 존재’라는 생각이 자리잡았다고 한다. 실제로 구글 엔그램(Ngram) 사이트에서 ‘여성의 우정’이란 어구를 검색해보면 350년가량 바닥에 깔려 있다가 19세기 후반에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리는 그래프가 나타난다. 결국 ‘여성의 우정’이 지나온 궤적은 모두 사회구조 때문임을 밝혀낸 저자들은 ‘과거가 현재의 프롤로그’라고 매듭짓는다. “복작거리고 갈등 많은 행성에서 살고 있는 우리는 사용할 수 있는 관계의 도구란 도구는 전부 활용해야 한다. 여성들이 우정에서 구하고 발견한 힘과 지혜는 존엄하고 희망적인 삶과 평화로운 공존으로 미래 세대를 인도해줄 수 있을 것이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서동철 기자의 문화유산 이야기] ‘현대판 서울’ 충주… 고구려·백제·신라 삶이 공존했다

    [서동철 기자의 문화유산 이야기] ‘현대판 서울’ 충주… 고구려·백제·신라 삶이 공존했다

    중원문화권이란 충주를 중심으로 한 충청북도 일대를 가리킨다. 한반도 중심부의 내륙인 이 지역은 고구려·신라·백제가 각축을 벌인 전략적 요충지였다. 그러니 삼국의 문화유산이 두루 남아 있는 것은 당연하다. 삼국의 문화가 남아 있다는 것은 이주한 삼국의 주민들이 자신들이 가져온 문화를 유지한 채 정주(定住)하며 삶을 이어 갔다는 뜻이기도 하다. ●칠금동에서 4세기 백제 철 생산 유적 확인 충주 칠금동에서는 최근 4세기 백제의 철 생산 유적이 확인됐다. 악성(樂聖) 우륵의 전설이 담긴 탄금대 남쪽에서 전형적인 백제의 원형 제련로를 비롯해 불순물을 제거하는 정련로, 철광석 파쇄장 같은 체계적인 철 생산 과정을 엿볼 수 있는 유구를 찾아낸 것이다. 충주는 진천과 더불어 백제의 철 생산 기지였다. 하지만 백제는 이후 중원에서 지배력을 잃는다. 한성백제를 지금의 공주인 웅진으로 천도하게 만든 고구려는 한강 상류의 충주 일대까지 점령한다. 고구려는 한동안 이 지역의 지배력을 행사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때 적지 않은 고구려 사람들이 충주 지역으로 이주한 듯하다. 고구려 조각 양식을 가진 봉황리 햇골산 마애불상군(群)의 존재는 고구려계 주민들이 신라 지배 이후에도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고 살고 있었음을 보여 준다. ●고구려 양식 봉황리 마애불… 주민들 거주 보여줘 봉황리 마애불은 1978년 정영호 교수가 단국대 조사단을 이끌고 처음 조사해 학계에 보고할 때부터 ‘600년 무렵 삼국시대 것’으로 추정했다. 그는 ‘각 보살상의 갸름한 상호(相好)는 고구려 불상의 상호와 유사한 양식이며, 위가 넓고 아래가 좁은 형태의 대좌는 고구려 금동불 대화의 형태를 그대로 옮긴 것’이라고 했다. 충주에서 발견된 ‘고구려 양식 마애불’은 학계의 비상한 관심의 대상이 됐다. 간다라 미술의 탄생 과정을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다.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은 인도 서북부까지 진군하고 곧 물러났지만, 따라왔던 그리스계 주민들이 남아 살면서 그리스 문화를 이식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햇골산 마애불의 존재도 장수왕의 군대는 ‘충주 고구려비’를 남기고 물러갔지만, 고구려 이주민은 마애불을 조성해 신앙생활을 하면서 그대로 눌러살았음을 짐작하게 한다. 고구려계 주민은 충주는 물론 소백산맥의 죽령 남쪽 오늘날의 영주 일대까지 넓게 퍼져 살았던 것 같다. 부석사 창건 설화에는 의상대사를 방해하는 ‘500명 남짓한 도둑의 무리’가 등장하는데, 학계는 이들을 고구려 유민으로 본다. 정확히는 이 지역에 눌러살던 고구려계 주민들이었을 것이다. 부석사 창건은 676년이다. 6세기 말 조성된 고구려계 벽화고분이 풍기에서 부석사로 가는 중간인 순흥 읍내리에서 발견된 것도 같은 이유다. ●신라 ‘제2의 수도’ 국원소경 설치·가야 주민도 이주 신라가 충주 일대의 지배를 공고히 한 것은 진흥왕 시절이다. 진흥왕은 557년 이곳에 국원소경(國原小京)을 설치한다. 훗날 전국에 모두 5개의 소경을 설치한다지만 국원소경은 경주에 이은 사실상의 제2수도였다. 진흥왕은 국원소경에 경주의 귀족과 부호의 자제를 옮겨 살게 했다. 귀족과 부호가 옮겨 살려면 이들에 예속된 적지 않은 사람들도 따라가야 했다. 이주민의 숫자는 적지 않았을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신라가 당시 복속한 가야의 주민들도 충주로 옮겨 살게 했다는 것이다. 가야금으로 대가야연맹의 통합을 이룬 우륵도 이주민 대열에 끼어 있었다. 충주에서 우륵의 존재는 지금도 절대적이다. 탄금대(彈琴臺)는 글자 그대로 우륵이 가야금을 타던 곳이다. 호암동에는 우륵당이 지어져 충주 시립 우륵국악단이 그의 예술 정신을 기리고 있다. 충주에선 해마다 9월 우륵문화제도 열린다. 이렇게 보면 삼국시대 충주는 고구려·백제·신라는 물론 가야 주민들까지 한데 모여 살던 독특한 분위기의 도시였을 것이다. 한반도 전체에서 사람들이 대거 한 도시로 몰려든 것은 20세기 서울 이전에는 충주가 유일하지 않았을까 싶다. 충주는 지금 충청도 땅이지만 충주 사람의 조상은 고구려 출신일 수도, 백제 출신일 수도, 신라 출신일 수도, 가야 출신일 수도 있다니 재미있는 일이다. dcsuh@seoul.co.kr
  • 600년 시흥연꽃 만끽하며 전통소리공연까지 “얼씨구”

    600년 시흥연꽃 만끽하며 전통소리공연까지 “얼씨구”

    600년 이어온 경기 시흥 관곡지에서 전통예술과 어우러진 문화제가 펼쳐진다. 연 지명이 많은 경기 시흥시는 25번째 ‘연성문화제’를 오는 30일부터 이틀간 연꽃테마파크 일대에서 개최한다고 27일 밝혔다. 연꽃이 만개한 관곡지 일대에서 열리는 연성문화제는 조선시대 관료이자 농학자로 알려진 강희맹 선생이 중국 전당지에서 연꽃씨를 가져와 처음 재배한 데서 유래된 축제다. 문화제에서 강 선생 사신행렬이 가장 눈길을 끈다. 강 선생이 행렬 맨 앞에 서고 풍물패와 취타대가 뒤이어 따라간다. 중요무형문화 제29호 서도소리보유자인 이춘목 명창의 특별공연을 빼놓을 수 없다. 평안도와 황해도 민요인 ‘연평도난봉가’를 편곡해 청소년 11명과 함께 퓨전전통소리를 30분 동안 선보인다. 오는 30일 ‘연성의 날’에는 고유제와 청소년문화 한마당, 개막식 및 축하공연이, 31일 ‘민속의 날’에는 시흥민속 어울림 한마당, 시 무형문화유산 시연 등이 펼쳐진다. 최정애 시흥문화원 팀장은 “연꽃이 활짝 필 때 열리는 유일한 전통문화축제가 연성문화제”라며 “‘연성’의 역사를 새롭게 되새겨 시민의 문화향유는 물론 시흥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소중한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명선 기자 mslee@seoul.co.kr
  • 美로 밀반출됐던 2500년 전 마야 유물, 반환 결정

    美로 밀반출됐던 2500년 전 마야 유물, 반환 결정

    2500년 전 찬란한 마야문명의 일부분이었지만 본의 아니게 타향살이를 해야 했던 유물들이 고향으로 돌아간다. 미국이 최고 1000년 전의 것으로 추정되는 마야유물 7점을 과테말라에 돌려주기로 했다고 현지 언론이 보도했다. 유물들은 수십 년 전 과테말라에서 밀반출돼 수집가에 팔린 것들이다. 미국 연방수사국(FBI)은 22일(현지시간) 과테말라에 돌려주기로 한 마야유물 7점을 공개했다. 7점 중 덩치가 큰 4점은 BC 400~600년 사이에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세상과 지하세계의 연결고리를 상징하는 조각물로 추정되는 4점 유물은 과테말라의 엘페루라는 곳에서 누군가 훔쳐 미국으로 빼돌린 것으로 확인됐다. 나머지 3점엔 상형문자가 새겨져 있다. 전문가들은 과테말라 페젝스바툰 지방에 있는 마야신전 외벽에 설치됐던 달력의 일부인 것으로 보고 있다. 상형문자가 새겨진 유물은 최소한 1400년 전의 것으로 추정된다. 유물을 확인한 로스앤젤레스 주재 과테말라 총영사관 관계자는 "공개된 유물은 과테말라 역사와 문화의 한 부분이 맞다"며 "돌려받게 된 유물 1점 1점이 모두 소중한 것"이라고 말했다. 과테말라는 돌려받는 유물을 마야유물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박물관에 영구 전시할 예정이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FBI가 과테말라에서 밀반출된 유물의 존재를 알게 된 건 1970년대다. 과테말라에서 몰래 들여온 유물을 팔던 골동품거래업자가 덜미를 잡히면서 마야유물이 반입된 사실이 확인됐다. 하지만 최근까지 수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유물의 정확한 출처를 확인할 수 없어 장물이라는 사실을 확증하게 어려웠기 때문이라는 게 FBI의 설명이다. FBI 관계자는 "유물을 소장하고 있던 수집가의 측근이 출처를 의심해 확인을 의뢰하면서 유물들이 과테말라의 2개 지방에서 도난됐다는 게 드러났다"며 "장물임이 확인되면서 유물을 돌려주기로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손영식 해외통신원 voniss@naver.com
  • [자치광장] ‘6000년 선사 마을’ 품은 서울/이해식 서울 강동구청장

    [자치광장] ‘6000년 선사 마을’ 품은 서울/이해식 서울 강동구청장

    최근 ‘마을로 돌아가자’는 운동이 일고 있다. 서울의 마을은 언제 어디서 시작되었을까. 마을의 흔적이 생생한 서울 암사동 유적에 주목해야 한다. 1925년 을축년 대홍수 때 처음 드러난 암사동 유적은 여러 차례 발굴조사 결과 선사시대부터 약 40기의 집터가 발견되었다. 현재까지 발굴된 가장 큰 규모이다. 주요 유물로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빗살무늬토기’가 있다. 빗살무늬토기는 전체를 삼등분하여 각기 다른 문양을 그려 넣었는데 손톱무늬, 무지개무늬, 문살무늬, 생선뼈무늬 등 정교하고 아름다운 모양을 뽐내고 있다. 토기 외에도 수렵과 어로 활동을 짐작하게 하는 그물추와 갈판, 갈돌, 돌화살촉, 돌도끼, 긁개, 탄화된 도토리 등도 있다. 신석기 시대인의 생활상을 다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약탈과 전쟁의 도구들 없이 오로지 생활도구들만이 발굴됐다는 사실에서 그 시대가 얼마나 평화로웠을까를 짐작해볼 수 있다. 올해 4월 문화재청과 서울시의 지원으로 재개된 암사동 유적 발굴조사에서는 신석기시대 유구뿐 아니라 옥으로 만든 장신구가 처음으로 출토되었다. 매우 질이 좋은 연옥에다 형태도 정교해서 당시의 미적 수준이 우리의 일반적 인식을 훌쩍 뛰어넘는다. 양양 오산리 유적을 세계 고고학 사전에 올리고 암사동 유적 발굴에도 참여한 바 있는 세라 넬슨은 2002년 ‘영혼의 새’라는 장편소설을 썼다. 한국의 신석기 유적이 배경인 이 소설은 당시 사회가 모계 사회의 종교 공동체였음을 가정하고 있는데, 다양한 생활도구들이 제사의식에 쓰였고 미적인 도구들이 동원되었음을 표현하고 있다. 암사동 유적에서 옥 장신구가 발견된 것은 이 대목에 비추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유적에서 발굴된 유구와 유물들로 우리가 신석기 시대인의 생활상을 모두 알 수는 없다. 좀더 많은 것을 알기 위해 추가적인 발굴도 중요하지만, 오히려 우리의 과제는 상상력을 좀더 발휘하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닐까. 강동구는 암사동 유적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고고학적 성과를 바탕으로 더 흥미로운 문화·예술적인 성과를 축적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올해 10월 어김없이 선사문화축제가 암사동 유적지에서 열린다. 특별히 ‘서울 암사동 유적’의 학술적인 가치 조명을 위한 국제학술회의도 열린다. 고령임에도 넬슨도 온다고 한다. 광대한 상상력의 원천이 잠재된 축제와 학술회의에 많은 분의 참석을 기대한다. 이런 노력으로 서울을 600년 도시에서 한성백제의 2000년을, 더 나아가 선사유적의 6000년을 품은 도시로 부를 수 있는 날을 함께 만들어 가자.
  • [서울 핫 플레이스] 궁산 소악루에 올라 선비의 지조·절개 정선 예술혼 만나다

    [서울 핫 플레이스] 궁산 소악루에 올라 선비의 지조·절개 정선 예술혼 만나다

    서울 강서구가 새로운 도시로 탈바꿈하고 있다. 마곡지구에 LG·롯데·이랜드 등 50여개 중소·대기업을 유치하며 첨단 연구·개발(R&D) 산업단지를 마련한 게 대표적이다. 지난해 12월 의료관광 특구로 지정된 것을 계기로 관광종합안내센터 건립 등 의료관광 기반 마련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하지만 강서구에는 ‘미래’뿐 아니라 ‘과거’ 역사 유산도 많다. 서울에 있는 유일한 향교인 양천향교부터 조선시대 진경산수화의 대가인 겸재 정선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소악루, 겸재 정선 미술관까지 한꺼번에 둘러볼 수 있으니 말이다. ●서울 유일의 600년 전통 양천향교 강서구 가양동 지하철 9호선 양천향교역에 내려 궁산 근린공원 방향으로 10분 정도 걸으니 단청(목조건물에 여러 가지 빛깔로 무늬를 그린 것)을 입힌 여러 채의 건물이 한눈에 들어온다. 서울에서 단 하나뿐인 향교, 양천향교다. 태종 12년인 1411년에 창건돼 지방 향리들의 자제를 교육하고, 유교의 창시자인 공자를 비롯한 성현들의 제사를 모시는 문묘행사를 담당했다. 수세기 동안 황폐화됐던 양천향교는 1981년 전면 복원됐고, 1990년에는 전통적 가치를 인정받아 서울시 문화재기념물 제8호로 지정됐다. 향교 입구에는 붉은색을 칠한 홍살문이 자리하고 있다. 기둥 사이에는 화살 모양의 뾰족한 나무를 나란히 박아 연결했다. 붉은색은 악귀를 물리치고 화살은 나쁜 액운을 화살로 공격한다는 의미다. 홍살문을 지나니 송덕비들이 눈길을 끈다. 노현송 강서구청장은 “송덕비는 관아나 향교 근처에 현령들의 공덕을 칭송하기 위해 세운 비석들”이라고 설명했다. 외삼문과 내삼문을 지나 대성전·명륜당·전사청·동재·서재까지 둘러보니 조선시대 양천현아(현 강서구 가양동)의 현령이라도 된 듯싶다. 양천향교의 명륜당과 대성전은 구민들을 위한 공간으로 활용 중이다. 명륜당에서는 지역주민과 초·중·고교생을 대상으로 한문과 서예, 사군자 등을 가르친다. 한문교실을 거쳐간 학생 수만 2000여명에 달한다. 봄가을에는 대성전에서 공자의 위패를 모시고 덕을 기리는 행사로 석전제를 개최해 전통문화 계승에 전력을 쏟고 있다. 석전제는 1986년 중요무형문화제 제85호로 지정됐다. ●겸재 정선의 기분을 느껴보자, 소악루 양천향교를 나와 뒷산인 궁산으로 향했다. 조금은 가파른 언덕배기라 숨이 차오른다. 10분 정도 올라가니 고풍스러운 정자 소악루가 자리하고 있다. 소악루에 올라 내려다보는 한강의 풍광이 시원하다. 바람과 함께 그간의 스트레스가 날아가는 듯하다. 소악루는 조선시대 진경산수화의 대가 겸재 정선이 양천 현령으로 부임해 그림을 그렸던 장소로 소악후월, 안현석봉 등의 작품이 유명하다. 아쉽게도 겸재 정선의 손길이 닿아 있는 조선 시대 원 건물은 오래전 화재로 소실된 상태다. 1994년 복원된 현재의 소악루만 자리를 지키고 있다. 다만 복원된 위치는 한강의 조망을 고려하다보니 강서구 가양동 일명 세숫대바위 근처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조선시대 소악루와 조금 달라졌다. 그럼에도 소악루에 올라 오늘의 강서구 일대와 200년 전을 비교해 보며 겸재 정선이 된 듯한 기분을 느끼는 건 놓칠 수 없는 재미 포인트다. ●삼국시대 석성(石城) 양천고성지 내친걸음으로 궁산 정산까지 올라가 봤다. 풀밭으로 변해버린 양천고성지가 보인다. 2만 9370여㎡ 넓이의 옛 성터로 1992년 국가사적 제372호로 지정됐다. 동국여지승람, 대동여지도 등 문헌기록에도 등장하는 곳이다. 양천고성은 행주산성, 오두산성과 더불어 삼국시대부터 한강 어귀를 지키는 주요한 군사 요충지라 중요한 역사적 가치가 있다. 아직 성의 정확한 축조 시기와 형태는 밝혀지지 않은 상태다. 다만 2013년부터 강서구가 한얼문화유산연구원과 함께 3차 시굴 조사(시험적으로 파보는 것)까지 진행해 성곽의 주요 구조물인 치성부(성벽 바깥으로 돌출한 부분), 통일신라 시대 것으로 추정되는 태선문(굵은 금무늬) 기와 조각들을 발굴했다. 새해 첫날에는 많은 주민이 해맞이를 보기 위해 모여들어 소원을 빌기도 한다. ●탐방길의 끝, 겸재정선미술관 탐방을 마치고 돌아가려다 보니 궁산 중턱에 하나의 건물이 눈에 띄었다. 바로 겸재정선미술관이다. 이곳에선 소악후월, 안현석봉, 소악루와 같은 작품을 볼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모형도로 재현해 낸 양천현의 모습도 만나 볼 수 있다. 겸재 정선의 생애를 연대별로 정리한 전시물을 보고 싶다면 겸재전시실을 방문하면 된다. 지적 호기심이 채워지지 않는 방문객들은 미술관에서 진행하는 현장탐방 프로그램을 신청해 전문적인 해설을 들으며 겸재가 걸었던 발자취를 따라가 보는 것도 좋다. 노 구청장은 “겸재 정선 선생 화풍을 체험할 수 있는 겸재정선미술관과 우리의 전통 예절과 멋을 느낄 수 있는 양천향교 등 궁산 일대의 각종 문화유산은 우리 구의 대표적 문화 상품”이라면서 “많은 분들이 이곳을 방문해 역사의 숨결을 느껴보는 기회를 가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범수 기자 bulse46@seoul.co.kr
  • [新국토기행] ‘사통팔달 관광지’ 강원 고성군

    [新국토기행] ‘사통팔달 관광지’ 강원 고성군

    미래의 땅, 동해안 최북단 강원 고성군. 남북으로 분단된 유일한 자치단체인 고성이 사통팔달 관광지로 뜨고 있다. 금강산 관광이 중단되고 고기잡이가 시원찮아 어려움이 많았다. 하지만, 최근 서울~속초를 잇는 동서고속화철도 확정 등 교통여건이 좋아져 각광받기 시작했다. 수도권과 1시간대 생활권으로 연결되는 덕분이다. 개발의 손길이 닿지 않아 청정지역으로 남은 자연자원이 미래 관광자원으로 가치가 부각되고 있다. 이제 새로운 꿈과 미래를 품을 수 있다. 인구 2만 9000여명의 고성군은 통일과 환동북아시대의 도래를 꿈꾸며 블루오션이 되었다. 피서철 청정 동해를 끼고, 금강산을 지척에 둔 고성에서 할머니 시골집의 추억이나 고향의 포근함을 더듬으며 더위를 식히면 어떨까. 볼거리 ●국내 유일 북방식 전통 민속마을 ‘왕곡마을’ 국내 유일의 북방식 전통한옥과 초가집 군락 전통 민속마을이다. 역사적, 학술적 가치가 높아 중요민속자료 제235호로 지정됐다. 죽왕면 오봉리에 있는 왕곡마을 형성은 14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려 말 두문동 72현에 속한 함부열이 이성계의 조선 건국에 반대해 간성에 낙향 은거한 데서 연유한다. 이후 후손들이 왕곡마을에 정착한 이후 함씨 후손들이 대대로 이곳에서 집성촌을 이루며 600년 동안 살아왔다. 왕곡마을 가옥은 안방, 도장방, 사랑방, 마루, 부엌이 한 건물 내에 있고 부엌에 가축우리가 붙어 있는 북방식 겹집구조다. 마을 안길과 바로 연결되는 앞마당은 가족의 공동작업 공간 역할을 하면서 타인에게 개방적이지만 높은 담으로 둘러싸인 뒷마당은 여인들의 공간으로 폐쇄적인 특징이 있다. 마을은 둘레가 4㎞에 이르는 석호 송지호와 해발 200m 내외의 다섯 개의 야산에 둘러싸여 외부와 차단된 분지로 이루어져 지난 수백년간 전란과 화마의 피해가 없었던 최고의 길지로 꼽힌다. 6·25 전쟁과 근래 고성지역에서 발생했던 대형 산불 때에도 왕곡마을은 화를 입지 않아 길지임을 입증했다. 최근에는 영화 촬영장으로 유명세를 타고 마을에서 운영하는 민박체험장까지 생겨 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다. 여름 성수기에는 생생마당 공연을 펼쳐 초·중·고 학생단위 가족체험 현장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금강산 봉우리 직접 볼 수 있는 통일전망대 금강산 봉우리들을 육안으로 볼 수 있는 최북단 전망대다. 1983년 개관해 지금까지 약 2000만명의 여행객이 다녀갔다. 금강산 육로 여행의 시발점이 되기도 했으나 금강산 관광객 사망 사건으로 관광이 잠정 중단된 상태다. 금강산을 바라보며 망향의 설움을 달래는 실향민들은 금강산 관광 재개를 무한하게 희망하고 있다. 통일전망대에서는 민족의 명산인 아름다운 금강산을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다. 금강산 최고봉인 비로봉과 일출봉, 채화봉, 옥녀봉, 신선대, 오래전 신선 아홉이 하늘에서 내려와 바둑을 두었다는 구선봉, 푸른 동해를 신비하게 수놓은 해금강, 나무꾼과 선녀의 전설을 담은 감호 등 계절마다 각각의 진풍경을 보여주는 금강산을 감상할 수 있다. 통일전망대 주차장에 있는 6·25 전쟁체험전시관은 통일전망대 방문 때 빼놓지 말고 들러야 할 곳이다. 6·25 전쟁 당시의 모습과 갈 수 없는 금강산의 풍경을 감상하면서 분단의 현실을 느낄 수 있다. 인근에는 DMZ박물관이 있어 통일전망대를 내려오는 길에 함께 들러보는 것도 좋다. 민간인 통제구역 안에 있어 통일안보공원 출입신고서를 작성하고 안보교육을 받아야 한다. ●사명대사 머물던 건봉사 인적이 뜸해 한적한 고찰이지만 여름이면 숲이 무성하고 가을이면 단풍이 아름답다. 설악산 신흥사와 백담사, 양양의 낙산사를 거느렸던 대사찰로 법흥왕 7년(520년)에 신라의 아도화상이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임진왜란 때는 사명대사가 승병들을 훈련했는데 그들이 공양할 쌀을 씻은 물은 개천을 따라 10리를 넘게 흘러갔다는 전설 같은 얘기도 전해진다. 1878년 건봉산에 큰불이 나면서 당시 건봉사의 건물 중 3000칸이 소실되었다. 그 뒤 6·25 전쟁 탓에 완전 폐허가 되었고 지금은 절 입구의 불이문만 남아 있다. 건봉사 불이문은 독특하게 기둥이 4개다. 불이문을 지나면 왼쪽으로 솟대 모양의 돌기둥을 만나게 되는데 높이가 3m로 한때 건봉사의 번창했던 규모를 짐작하게 한다. 이곳 절터와 대웅전 사이 좁은 계곡에는 무지개 모양의 돌다리 능파교가 있다. 돌다리는 건봉사의 수많은 건물터 중 그나마 형상이 제대로 남아 있는 것으로 주위 풍경과 잘 어우러져 아름답다. 건봉사 진신사리탑은 임진왜란 당시 왜군이 불사리와 치아 사리를 약탈해간 것을 사명대사가 일본에 사신으로 다녀오면서 되찾아오고서 세웠다. 이때부터 석가의 치아 사리를 모신 적멸보궁을 만들게 되었다. 임진왜란 때 사명대사에 의해 ‘의승병 봉기처’이기도 했던 것을 기념하기 위한 의승병기념관도 있다. ●산·호수·바다 동시에 보는 송지호오토캠핑장 금강산을 바라보는 송지호오토캠핑장이 각광받고 있다. 캠핑장은 주변에 송지호의 울창한 송림과 동해의 우뚝 선 죽도 그리고 깨끗하고 넓은 백사장을 가진 캠핑장 전용 해수욕장 등 산과 바다 그리고 호수를 한곳에서 동시에 감상하고 체험할 수 있는 우리나라 유일의 캠핑장이다. 캠핑을 하면서 짬짬이 주변의 왕곡마을, 화진포, 통일전망대 등 관광지는 물론 바다낚시와 싱싱한 회를 즐길 수 있는 크고 작은 항·포구들을 둘러보는 여유도 함께할 수 있다. 올여름 새롭게 선보이는 인근 봉수대오토캠핑장은 캠핑데크를 비롯한 캐러밴도 설치해 손님 맞을 준비를 마친 상태다. 해양레포츠를 즐길 수 있는 곳에 있어 한여름 캠핑장을 찾는 관광객에게 시원함을 곱빼기로 선물해 주는 곳이기도 하다. 고성 조한종 기자 bell21@seoul.co.kr 먹거리 ●속도 풀고 체력도 보강하는 물회 물회는 뱃사람들의 음식이었다. 잡은 생선을 즉석에서 회를 떠 채소를 넣고 물을 부어 고추장과 된장을 넣어 간단하게 물 마시듯 후루룩 먹던 음식이 지금은 술 먹은 뒤 속풀이와 체력을 보강하는 스태미너 음식으로 인기다. 최북단 고성 물회는 해산물 총집합 음식이다. 가자미 세꼬시와 오징어, 해삼을 기본으로 전복, 멍게, 새우 등 다양한 해산물이 푸짐하게 들어간다. 여기에 오이, 배, 청양고추, 설탕, 깨 등을 고명으로 얹는다. 커다란 그릇에 담은 물회를 각자 떠먹는 것도 특징이다. 횟감을 다 먹은 후에는 밥이나 국수를 말아 먹는다. 물회가 가장 맛있는 온도는 5~10℃ 사이로 얼음을 넣어 먹으면 맛이 더하다. ●원기회복에 좋은 저도어장 문어 고성군 저도어장에서 생산되는 문어와 해삼, 멍게는 어느 해안에서도 맛볼 수 없는 살아 있는 신선 해물이다. 저도어장은 북한과 접해있는 수역에서 여름 한철 잠시 작업하는 곳이다. 이곳에서는 해마다 해녀들과 연승어선들이 찾아 싱싱한 문어를 건져 올려 시장에 낸다. 청정지역 대형 문어로 살이 깊고 타우린 등 영양이 풍부해 원기회복에 좋다. 도시인들에게 인기다. ●양미리를 담백하게 끓여낸 용어탕 가을에서 겨울까지 고성지역에서 생산되는 양미리를 특화한 용어탕이 인기다. 양미리의 고소한 맛을 담백한 어탕으로 끊여낸다. 양미리는 한류성 어종으로 고성 앞바다에서 늦가을부터 겨울에 잡힌다. 고칼슘 고단백 어종으로 가격대도 저렴해 겨울철 관광객이 많이 찾는 생선 중 하나다. ●고성오대쌀로 빚은 달홀주 고성군이 출시한 고성오대쌀로 빚은 술이 달홀주다. 고구려시대에 고성군의 이름 달홀에서 따왔다. 전통방식으로 그대로 발효시켜 곡주로 만들었다. 화진포 해변에서 옛 성현들을 생각하며 고장에서 생산한 청정 쌀로 빚어낸 시원한 달홀주 한 잔 기울이는 것도 고성을 찾는 재미다. 고성 조한종 기자 bell21@seoul.co.kr
  • [씨줄날줄] ‘서울마당’/구본영 논설고문

    [씨줄날줄] ‘서울마당’/구본영 논설고문

    서구의 도시들은 다중이 모이는 넓은 공간, 즉 광장을 중심으로 발달했다. 그리스 아테네의 아고라가 그 원형이다. 동양권의 도읍에도 마당과 같은 공터는 있었지만 대개 소규모였다. 남사당패가 공연하던 우리네 시골 장터를 떠올려 보라. 르네상스 시대 이래 도시계획가들은 광장을 도시의 중심적 위치에 놓고 설계했다. 이탈리아 로마의 콜론나·시에나의 캄포, 런던의 트래펄가 광장 등이 그렇게 해서 탄생했다. 광장 중심의 도시 공간 구조라는, 구대륙의 전통은 신대륙에서도 계승됐다. ‘빌리지 스톰퍼스’의 경음악으로 더 유명해진 뉴욕의 ‘워싱턴 스퀘어’가 대표적이다. 뮤지컬 영화 ‘에비타’에서 본 아르헨티나의 ‘5월의 광장’도 그랬다. 에비타로 분한 마돈나가 “나를 위해 울지 말아요, 아르헨티나.”(Don’t cry for me, Argentina)란 애절한 노래를 부른 무대가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심장부인 대통령궁 발코니였으니…. 소설가 최인훈은 ‘광장’에서 남북 분단의 현실을 뛰어넘는 유토피아로서 광장을 그렸다. 하지만 유토피아의 어원 자체가 ‘아름답지만 세상에는 없는 곳’이란 뜻이다. 최인훈이 꿈꾸던 이상향과 달리 현실에서의 광장은 역사적으로 늘 불온한 공기가 감도는 곳이었다. 고대 아테네 시민들은 아고라에 모여 도자기 파편에 이름을 적는 방식으로 독재자가 될 소지가 있는 인물들을 추방했다. 소위 ‘도편 추방제’였다. 1989년 민주화를 요구하던 학생·시민들이 탱크를 동원한 중국 군부에 의해 진압된 6·4사건도 베이징 톈안먼 광장에서 일어났다. 몇 년 전 파리를 방문한 적이 있다. 에펠탑에서 샹젤리제 거리를 거쳐 콩코르드 광장까지 걸었던 기억이 난다. 오벨리스크가 서 있는 콩코르드 광장은 평온했다. 아니, 그렇게 느껴졌다. 루이 16세와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 등이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 무시무시한 역사를 갖고 있는 광장이 편안하게 다가온 까닭이 뭐겠나. 양쪽이 차도로 차단돼 보행인의 접근이 어려운 광화문 광장과 달리 쉽게 다가가 쉴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일 듯싶다. 정도(定都) 600년을 넘긴 서울에 작지만 아름다운 시민 광장이 생겨났다. 어제 창간 112주년을 맞은 서울신문사가 세종대로 사옥 앞에 잔디와 거장 이우환의 조형물 등으로 조성한 2600㎡의 공간이다. 시민들이 가까이서 체취를 나누며 생각을 교환하는 작고 정겨운 광장을 만드는 것이 21세기 도시계획의 대세다. 엄청난 군중을 동원하려는 큰 광장은 이미 구시대의 유물일지도 모르겠다. 본사는 시민 공모를 통해 ‘서울마당’이란 이름을 골랐다. 시민들이 삼삼오오 모여 조곤조곤 정담을 나눌 이 쉼터에 우리네 수도 서울의 새로운 스토리가 입혀지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그렇다면 굳이 먼 나라의 넓은 광장을 부러워해야 할 이유도 없다. 누군가 ‘작은 것은 아름답다’고 했다. 구본영 논설고문 kby7@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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