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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밀양박씨 종중의 600년 된 사당 철거 위기

    밀양박씨 종중의 600년 된 사당 철거 위기

    경기 고양시가 600년 된 밀양박씨 규정공파 두응촌 묘역의 사당 등을 원당1주택재개발사업지구에 포함시켜 강제 철거될 위기에 놓였다. 밀양박씨 대종회 회원 1000여명은 23일 오전 고양시청 앞에 모여 사당인 ‘추원재’ 철거를 강력히 비판하는 항의집회를 열었다. 집회에 앞서 전남 강진 등 전국 각지에서 출발한 대종회원들은 오전 9시 덕양구 주교동 추원재에 집결해 고양시청까지 풍물패를 앞세워 1.5㎞ 거리행진을 벌였다. 집회 도중 박성훈 대종회장 등 3명은 “추원재 철거 결사반대”를 외치며 삭발식을 갖기도 했다. 이들은 결의문에서 “고양시는 두응촌과 추원재의 역사문화적 가치를 인정했음에도 불구하고,밀양박씨 규정공파 대종회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 추원재를 일방적으로 재개발사업지에 포함시켜 철거를 시도하고 있다”며 “고양시의 무책임하고 안이한 행정으로 200만 밀양박씨 성손들은 조상님 앞에 고개를 들지 못하는 치욕스런 지경에 이르렀다”고 탄식했다. 이어 “원당 아파트재개발 사업을 위해 600년 전통의 추원재 철거가 불가피했는지, 다른 방법은 없었는지 고양시에 묻지 않을 수 없다”며 “수 백년간 고양시에서 희로애락을 함께해온 밀양박씨 종중의 의중은 거들떠보지도 않는 고양시의 가혹하고 무책임한 조치를 더이상 묵과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추원재는 고려말 전법판서 겸 상장군을 지낸 박사경 묘가 1400년대 초 조성된 이래 조선 중기까지 약 200년간 56위의 밀양박씨 선조들을 모시는 두응촌 묘역의 사당이다. 200만 밀양박씨 후손들의 교육·문화공간으로도 사용되고 있다. 추원재는 조선 초기에 창건된 뒤 임진왜란,한국전쟁 등 전란으로 소실과 중건을 거듭하면서 1987년 본채(추원재)와 동재(양덕당),서재(신의당),솟을대문(대화문)을 지어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고양시는 1989년 두응촌 묘역 중 낙촌공 박충원(1507~1581) 묘역을 향토유적 제26호로 지정했다. 밀양박씨 대종회는 원당 재개발 사업 초기인 2009년 이후 여러 차례 추원재 존치를 요구하는 의견서를 고양시와 경기도,국토부 등에 제출해 왔다. 원당1구역 재개발사업은 덕양구 주교동 일대 12만385㎡에 26~35층 아파트 17개동 2600여 가구를 짓는 사업이다. 재개발조합은 올해부터 내년까지 이주와 철거를 마치고 2024년 착공한다.
  • [지구를 보다] 기록적인 가뭄에…위성으로 본 바닥 드러낸 세계 유명 강들

    [지구를 보다] 기록적인 가뭄에…위성으로 본 바닥 드러낸 세계 유명 강들

    지구촌이 기록적인 폭염과 가뭄을 겪고있는 가운데 세계의 유명 강 역시 바닥을 드러내며 쩍쩍 말라붙고 있다. 우리나라는 115년 만의 기록적인 폭우로 소중한 생명과 삶터가 희생됐지만 반대로 북미와 유럽, 중국 등은 극심한 폭염과 산불, 가뭄 등으로 속이 까맣게 타들어갔다. 이는 모두 기후변화로 인한 재앙으로 탄소중립 등 전세계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인류가 초래한 위기는 해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최근 미국 CNN은 지구촌 이상기후로 바짝 말라버린 유명 강들의 모습을 위성 사진으로 비교 분석해 보도했다. 이 강들은 독일 라인강, 중국 양쯔강, 미국 미드호, 이탈리아 포강, 프랑스 루아르강, 유럽 10개국에 걸쳐 흐르는 다뉴브강 등으로 모두 전세계적으로 잘 알려져 있다. 불과 1년 전인 지난해 8월과 올해 8월 강의 모습은 위성 사진으로도 극적으로 변한 것이 확인된다.먼저 알프스에서 시작해 독일과 네덜란드를 거쳐 북해로 흘러 '유럽의 동맥'으로 불리는 라인강은 현재 일부 지역의 강바닥이 수면 위로 드러날 정도다. 보도에 따르면 독일 프랑크푸르트 서쪽 카우브 지역의 경우 수위가 32㎝까지 떨어졌다. 해운회사들은 일반적으로 라인강의 기준 수위를 40㎝로 보고있어 대형선박들이 이 지역을 안전하게 통과하기 어렵다. 결과적으로 기록적인 폭염과 가뭄으로 유럽 운송의 동맥마저 말라버리고 있는 것. 이 모습은 위성으로도 확인되는데 지난해와 올해 사진을 보면 군데군데 모래 바닥이 드러난 것이 확인된다.70년 만의 최악의 가뭄을 겪고있는 이탈리아도 마찬가지다. 포강은 길이가 650㎞에 달하는 이탈리아에서 가장 긴 강이지만, 최근 가뭄으로 상당수 지류가 마르면서 농작물이 큰 피해를 보고 있다. 현재 유수량이 평상시의 10분의 1로 떨어졌으며 수위도 평소보다 2m 낮아지면서 옥수수, 쌀 등 농업 생산량이 큰 타격을 받고 있다. 특히 이 과정에서 고대마을의 유적이나 세계 2차대전 중 사용된 불발탄이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는 위성 사진으로도 확인되는데 1년 전과 비해 포강 곳곳이 훨씬 더 많은 바닥이 드러난 것이 보인다.  아시아에서는 중국의 양쯔강도 심각한 상황이다. 60년 만의 폭염과 전국적인 가뭄 경보로 양쯔강 지류는 거북이 등껍질처럼 바짝 말라버렸다. 이 과정에서 600년 전 불상이 발견되는가 하면 세계 최대 옛 석불인 러산대불(樂山大佛)이 전체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이밖에 최악의 가뭄을 겪고있는 북미 최대 인공 호수 미드호도 처음 생긴 1937년 이후 최저 수위를 기록하면서 연이어 인간의 유골이 발견되고 있다. 네바다주와 애리조나주 접경에 있는 미드호는 콜로라도강에 후버댐을 지으면 생긴 길이 190㎞에 달하는 거대 호수로 CNN은 호수의 수위가 현재 전체 용량의 27%에 불과해 지역 내 물 공급이 위협받고 있다고 보도했다.또한 역시 극심한 가뭄으로 몸살을 겪고있는 세르비아의 항구도시 프라호보 인근 다뉴브강에서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침몰했던 독일 군함이 나타나는가 하면, 프랑스 서부 루아로상스 인근을 흐르는 루아르강의 지류는 오랜 가뭄으로 바닥을 드러냈다. 
  • [데스크 시각] 기후 위기, 플랜 B는 없다/이순녀 수석부국장

    [데스크 시각] 기후 위기, 플랜 B는 없다/이순녀 수석부국장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 줄 알았다. 지난 8일 서울을 휩쓴 비는 상상 이상의 공포였다. 115년 만의 기록적인 폭우는 우리 사회 가장 취약한 계층의 안타까운 목숨과 삶터를 삽시간에 빼앗아갔다. 지난 2주간 거대한 비구름이 남하와 북상을 거듭할 때마다 전국 곳곳이 아수라장이 됐다. 폭우가 물러난 자리엔 폭염이 사정 없이 밀고 들어왔다. 자연재해가 어제오늘 일이 아니고, 기후변화로 인한 재난 발생의 경고도 어느 정도 익숙하다고 여겼는데 예상을 뛰어넘는 기후의 역습에 또 한 번 뒤통수가 얼얼해졌다. 나라 밖 사정도 험악하다. 중국은 전례 없는 폭염과 가뭄, 폭우에 때아닌 한여름 폭설까지 들이닥쳤다. 쓰촨, 충칭 등 중남부 일대는 1961년 이래 최장기간 폭염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달 동북부 헤이룽장성 다싱앙린에선 25도 안팎의 기온에도 눈이 내려 적설량이 3㎝에 이르는 이상기후가 나타났다. 수년째 반복돼 온 유럽 지역의 폭염과 가뭄은 올해 더 상황이 악화됐다. 500년 만의 극심한 가뭄으로 독일의 젖줄인 라인강이 쩍쩍 갈라진 바닥을 드러내면서 물류 수송에 비상이 걸렸다. 영국과 프랑스는 물 부족으로 급수 제한 조치까지 내렸다. 최악의 가뭄이 가져다준 뜻밖의 발견도 있다. 스페인 서부 카세레스주의 발데카나스 저수지가 가뭄으로 말라붙으면서 5000년 전 고대 인류가 만든 거석 유적지가 모습을 드러냈고, 중국 쓰촨성 양쯔강 상류 바닥에선 600년 전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불상이 발견됐다. 세르비아 동부의 다뉴브강 수위가 낮아지면서 2차 세계대전 당시 침몰했던 독일 군함도 드러났다. 이상기후가 선물한 유물과 유적이라니, 씁쓸할 따름이다. 사례를 더 거론할 필요도 없이 기후변화는 엄존하는 위기다. 온실가스 배출 감축 목표를 논의한 교토의정서(1997년), 산업화 이전 대비 지구 평균온도 2도 이상 상승을 막도록 온실가스 배출량의 단계적 감축을 결의한 파리기후협약(2016년)에도 불구하고 지난 25년간 지구온난화는 지속돼 왔다. 그리고 필연적으로 그로 인한 극단적인 이상기후 현상은 이전보다 훨씬 자주 우리의 일상을 위협하고 있다. 하지만 이 정도에서 그친다면 차라리 다행이다. ‘2050 거주불능 지구’의 저자 데이비드 월러스 웰즈는 “오늘날 우리가 곳곳에서 목격하는 재난은 미래에 지구온난화가 초래할 재난에 비하면 최상의 시나리오나 다름없다”고 경고한다. 기후변화는 되돌릴 수 없는 비가역적인 변화다. 그래서 지금 당장 전 세계가 탄소 배출을 멈춘다고 해도 상태가 악화하는 것을 늦출 뿐 이전으로 돌아가긴 어렵다. 부인할 수도, 외면할 수도 없는 냉엄한 현실이다. 그런데도 정부와 정치인들은 당장 눈앞의 이익이나 문제 해결에 급급해 시대적 사명에 역행하는 경솔한 선택을 한다. 폭염으로 인한 전력 수요 급증,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야기한 천연가스 등 에너지 수급 위기를 이유로 중국과 유럽 국가들은 탄소 배출의 주범인 화석연료 의존도를 높이고 있다. 독일은 한동안 사용을 중단했던 화력발전소를 재가동하기로 했고, 영국과 네덜란드 등도 석탄 발전을 재개하거나 생산을 늘릴 계획이라고 한다. 탄소 배출 1, 2위 국가인 중국과 미국이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에 따른 갈등의 여파로 지구온난화 대응과 관련한 대화를 중단하기로 한 것도 근시안적인 태도가 아닐 수 없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은 기후 위기에 대한 전 지구적 대응을 촉구하며 “플래닛(행성) B가 없기 때문에 플랜 B도 없다”고 강조했다. 개인이 전기차를 타고, 에너지를 아끼며, 식량 낭비를 줄이는 등 일상에서의 친환경 노력과 더불어 정치적 참여를 통해 기후변화 정책을 강력히 추동해야 하는 이유다.
  • [서울포토] 역대급 가뭄에 양쯔강 바닥서 드러난 600년전 불상

    [서울포토] 역대급 가뭄에 양쯔강 바닥서 드러난 600년전 불상

    중국에 기록적인 폭염과 가뭄이 계속되면서 양쯔강 바닥에서 600년 전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불상이 발견됐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최근 쓰촨성 충칭시 양쯔강 유역에서 커다란 바위의 가운데 부분을 파낸 뒤 만든 것으로 보이는 불상 3개가 발견됐다고 보도했다. 이 불상들은 연꽃 받침 위로 약 1m 크기의 불상이 있고 양옆으로는 상대적으로 작은 불상 2개가 자리 잡고 있다. 불상은 보존 상태가 매우 양호하고 학술 가치도 높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 1970년대 숨진 등반객 3명 유골…‘가뭄’에 발견되는 것들

    1970년대 숨진 등반객 3명 유골…‘가뭄’에 발견되는 것들

    바닥 드러낸 유럽의 강과 저수지네로 황제 다리 등 유적 드러나 ‘최악의 가뭄’으로 인해 7000년 전 스페인판 ‘스톤헨지’와 청동기 시대 건물터, 로마의 네로 황제가 건설한 다리 등이 발견됐다. 21일 로이터 통신 등에 따르면 스페인 서부 카세레스주 발데카나스 저수지에서는 이달 초 수백개의 선사시대 돌기둥이 신비한 자태를 드러냈다. 스페인판 스톤헨지, 공식적으론 ‘과달페랄의 고인돌’로 불리는 이 유적은 이베리아반도의 건조한 날씨로 저수기 수위가 총량의 28%까지 내려가자 저수지 한쪽에서 그 모습을 완전히 노출했다.7000년 전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이 유물은 1926년 독일 고고학자가 최초로 발견했으나 1963년 프랑코 독재정권 치하에서 농촌 개발 프로젝트로 댐이 만들어지면서 침수됐다. 그 후로 고인돌이 모습을 드러낸 것은 4번밖에 되지 않았다. 30년 전 저수지 건설로 수몰된 아세레도 마을도 옛 모습을 드러내 관광객을 끌고 있다.가뭄 역사 새긴 기근석, 2차대전 침몰 선박, 동물 뼈 등도 발견 엘베강이 흐르는 체코 북부 데친에서는 ‘기근석’이 등장했다. 강바닥이 보일 정도로 강물이 메마를 때 사람들이 이 기근석을 찾아 날짜와 자신들의 이름을 새겼다. 데친의 기근석 위에 새겨진 연도를 보면 1417년과 1473년은 아주 희미하게 남아있지만 1616년, 1707년, 1893년 등은 아직도 분명하게 보인다.독일에서도 라인강이 흐르는 프랑크푸르트 남쪽의 보름스와 레버쿠젠 근처의 라인도르프 등지에서 기근석이 모습을 다시 나타냈다. 이탈리아에서는 포강의 수위가 70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하면서 북서부 피에몬테에서 고대마을의 유적이 나타났다.‘중국 최악 가뭄’ 양쯔강 바닥서 600년 전 불상 드러나 중국도 기록적인 폭염과 가뭄이 계속되면서 강바닥에서 600년 전 불상이 발견되기도 했다. 이날 중국신문망 등에 따르면 최근 러산대불의 받침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러산대불은 평소에는 강 수위가 높아 받침대를 볼 수 없으며 비가 많이 올 때는 발까지 물에 잠기기도 한다. 러산대불이 자리 잡은 지역의 현재 수위는 평년보다 2m 이상 낮은 것으로 전해졌다. 또 양쯔강 바닥에서 600년 전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불상이 발견되기도 했다.이 불상들은 연꽃 받침 위로 약 1m 크기의 불상이 있고 양옆으로는 상대적으로 작은 불상 2개가 자리 잡고 있다. 한편 빙하가 녹고 있는 유럽 산악지역에서는 반세기 넘게 묻혔던 유골 등이 잇달아 발견되고 있다. 스위스 남부 헤셴 빙하 등지에서는 1970∼1980년대에 숨진 것으로 추정되는 등반객 3명의 유골이 수습됐다. 또 세르비아 항구도시 프라호보 인근 다뉴브강에서는 2차 대전 때 탄약과 폭발물이 실린 채로 침몰한 독일 군함 20여척이 발견되기도 했다.
  • [영상] 중국 양쯔강에 잠겨 있던 불상, 가뭄으로 600년 만에 모습 드러내

    [영상] 중국 양쯔강에 잠겨 있던 불상, 가뭄으로 600년 만에 모습 드러내

    중국이 극심한 폭염과 가뭄으로 신음하는 가운데, 양쯔강의 수위가 낮아지면서 수백 년 전 만들어진 불상이 모습을 드러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중국 충칭르바오 등 현지 언론의 17일 보도에 따르면 남서부 양쯔강(창강)에서 600년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불상 3개가 발견됐다.해당 불상은 양쯔강의 수위가 계속된 가뭄으로 150년 만에 최대로 낮아지면서, 강물에 잠겨 있다 세상 밖으로 나온 것이다. 이 중 하나는 거대한 연꽃 받침대 위에 앉아있는 부처를 묘사했으며, 나머지 둘은 이보다 작은 규모다. 해당 불상은 양쯔강 내 암초의 가장 높은 지점에서 발견됐다. 불상 3개 중 가운데에 있는 큰 불상의 높이는 0.95m이며, 각각의 불상은 위쪽 돌을 둥글게 깎은 아치형 돌 안에 만들어졌다. 거대한 돌을 깎아 만들어진 해당 불상들은 보존 상태가 매우 양호하고 학술적 가치도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전문가들은 해당 불상 3개가 명나라 또는 청나라 시대 당시 배를 타고 강을 건너는 사람들의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 제작된 것으로 추정했다. 충칭문화유적고고학연구소의 니우잉빈 연구원은 충칭르바오와 한 인터뷰에서 “불상이 발견된 양쯔강 구역 일대에는 암초와 소용돌이가 많고, 이와 충돌하면서 난파선이 자주 발생했다. 이런 점을 고려했을 때, 아마도 과거 이 지역을 지나는 사람들의 안전을 기원하기 위해 불상을 제작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불상의 위치상 강을 건너는 사람들에게 경로를 안내하거나 현 위치를 알려주는 기능이 있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다만 거대한 불상이 다시는 물에 잠기지 않도록 안전한 지대로 옮겨졌는지 여부는 공개되지 않았다. 양쯔강의 수위가 이전 수준을 회복할 경우를 대비한 후속 조치에 대해서도 언급된 바가 없다. 한편 중국에서는 40도가 넘는 극심한 폭염이 이어지고 있다. 중국 국가기후센터는 17일 최소 138개 시에 대해 위기경보 단계 중 가장 높은 ‘폭염 적색 경보’를 발령했으며, 373개 시에는 그다음 단계인 ‘주황색 경보’를 내렸다. 중국 기상청은 “폭염이 64일째 지속되고 있다. 관측 이래 60년 만의 가장 긴 폭염”이라고 밝혔다.
  • “표절이다” ‘中 한류열풍’ 허난설헌 괴롭힌 그 시비들 [클로저]

    “표절이다” ‘中 한류열풍’ 허난설헌 괴롭힌 그 시비들 [클로저]

    허난설헌, 살아서도 죽어서도 오해도교 색채 짙었던 그의 작품들그릇 작은 시대가 이해하기엔 무리“나이 스물일곱 살에 아무런 병도 없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몸을 씻고 옷을 갈아입고서 집안 사람들에게 ‘금년이 바로 3과 9(3X9)의 수에 해당하니 오늘 연꽃이 서리에 맞아 붉게 되었다 하고 눈감았다.” 조선 사대부 시절 중국서 한류열풍을 일으켰던 허난설헌의 죽음에 대한 기록입니다. 허난설헌의 집안이 도교 색채가 강했고, 그의 작품에도 이러한 경향이 반영된 것을 보아 신격화된 기록일 수도 있겠죠. 혹은 자살의 가능성을 암시하는 것이라는 설도 있습니다. 허난설헌은 1563년(명종 18년)양반집안서 ’초희‘라는 이름으로 태어나 27세에 생을 마감했습니다. 400년 전 중국서 오직 실력으로 한류열풍을 일으켰던 허난설헌, 그는 남녀 유별이 엄격했던 조선에서 살아서도 죽어서도 논란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그의 남동생 허균의 다른 자아였을 거라는 주장은 오늘날까지도 진짜인 것처럼 퍼져있기도 하죠. 허난설헌의 작품은 당시 여성 시인들의 작품이 유행하던 중국서 빠르게 퍼졌습니다. 허균이 명나라 사신들과 교류하며 이들에게 조선의 여러 작품을 전파했는데, 이중 허난설헌의 시도 있었죠. 이에 따라 1600년 출판된 ’조선시선‘(오명제)에 그의 시가 소개됐습니다. 이어 ’긍사‘(반지긍), ’명원시귀‘(종성)은 허난설헌의 시가 대부분인 채로 출판되기도 했습니다. 조선 땅서 살아 생전 홀대받았던 허난설헌의 작품이 중국서는 높은 인기를 구가한 것입니다. ● 역수입된 조선 여인의 글 “낭군께선 본래부터 무심하신 분 동접들은 어떤 분들이시기에 이간질이실까?” 허난설헌 남편 김성립의 친구였던 문장가 신흠의 기록입니다. 이에 따르면 허난설헌은 김성립이 기생방에서 놀고 있다던 거짓말에 이렇게 응수하며 술을 보냈다고 합니다. 시대와 어울리지 않는 호방함을 가졌던 허난설헌은 평생을 오해받아야 했습니다. 중국과 일본에 널리 퍼졌던 허난설헌의 작품들이 조선으로 역수입되면서부터입니다. 허균이 역적으로 몰려 죽은 후, 동서 지간이던 이수광은 허난설헌의 시중 일부가 당나라 시인 조당의 시를 베꼈다고 주장했습니다. 또한 ’광한전백옥루상량문‘은 허균이 지은 것이라고 우겼죠. 앞서 허난설헌에 대한 기록을 남겼던 신흠도 허난설헌의 시 중 절반 이상이 표절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들 주장의 상당 부분이 허균의 시를 끼워 넣은 것이라는 맥락이었죠. 즉, 남성만이 시를 지을 수 있다던 당대의 시각을 반영해 논리가 빈약한 주장을 읊었던 것입니다. 허균이 역적으로 몰려 사망한 후라 그와 거리를 두어야 했겠지만, 그 공격 대상이 여성인 허난설헌이 돼야 했고, 오늘날까지 그 주장이 영향을 끼쳐 허균의 작품이라는 설이 도는 것을 보면 씁쓸한 부분이죠. ● 표절, 남동생 작품 주장 허점은 그러나 이러한 주장에는 문제가 있습니다. 허난설헌은 자신을 괴로움을 시로 풀었을 뿐, 활동을 한 적이 없으며, 27세 젊은 나이에 죽으면서 자신의 작품들을 태우라고 유언을 남겼습니다. 무서운 정치란 것이, 이미 죽은 창작자를 한 번 더 죽인 것이죠. 이 때문에 난설헌집의 대다수 작품이 습작이었다는 점이 이러한 논란을 더 부추겼습니다. 그의 작품 대부분이 불탔기에, 허균이 지닌 난설헌집엔 허난설헌 혼자만의 습작품이 있었을 가능성이 있죠. 또한, 당대 중국 시를 가져다 재창조하는 의고시가 유행했던 영향도 있습니다. 또한 그의 작품엔 여성으로서 느끼는 답답함이 한껏 들어가 있어, 허균의 창작품으로 볼 수 없다는 해석도 힘을 얻습니다. ● 후대로 이어진 논란 허난설헌은 이미 혼인한 여인이 다른 남성을 사모했다는 우스운 오해도 받아야 했습니다. 오늘날에야 혼인한 남성, 여성이 당대 유명한 작품에 빠지는 것이 흠이 아니지만 16세기 조선에서 여성이 당나라 시인 번천 두목을 사모했다면, 논란이 될 수 있었습니다. 다만 이 또한 사실이 아니라는 데 무게가 실리고 있죠. 허난설헌의 집안은 허균과 함께 시를 공부할 수 있도록 하고, 자를 가질 수 있게 하는 등 당시로선 깨어있는 집안이었습니다. 허난설헌의 자는 ’경번‘이라고 지어졌는데, 이것이 당나라 시인을 사모해 지은 이름이라는 설이 조선에서 제기된 겁니다. 이 때문에 허난설헌은 되도 않는 오해를 받아야 했죠. 또한, 허균의 기록에 따르면 허난설헌의 호인 난설헌은 그가 직접 지은 것이지만 자는 누가 붙인 것인지 명확하지 않습니다. 즉, 당대의 순리대로 아버지가 지었을 지점이 존재합니다. 또한, 김성립의 주변인들이 당나라 시인과 엮어 김성립을 놀렸던 것에서 이 논란이 시작됐다는 설도 있습니다. 다만 이들이 10대에 결혼했으므로, 이는 어린 장난이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사실인 것처럼 변질된 것이죠. ● 홍대용·박지원조차 치우친 기록 홍대용, 박지원 등 실학자조차 이를 오해해 “저 생에서 두목을 따루고 싶네”라거나 “경번이라는 이름에 대한 추측이 난무하여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된 것은 잘못된 것이다”라는 기록을 남기는 등 답답한 오해가 이어집니다. 다만 경번이라 함은, 도가 사상에 젖어있던 허난설헌이 중국 선여 번고에서 따왔다는 설이 더 유력합니다. 허난설헌은 작품 속에서 도교적 색채를 자주 드러냈고, 유선시를 통해 이를 노래했죠. 도술이 뛰어나며 남편과 관계가 좋았던 그 선녀처럼, 노니고 싶다는 의미였겠죠. 동일시의 대상은 이 선녀였다는 해석이 더 힘을 얻습니다. 중국에선 경번을 이름이나 호로 오해하고 있으며, 후대에 관련된 추측들이 이어집니다. 신사임당과 허난설헌, 강릉서 태어난 이 유사한 여인들의 삶과 그 후 평가는 왜 달랐을까요. 친정에 머무른 시간, 바느질 실력, 여러 차이가 있습니다만 이 또한 무시할 수 없습니다.  신사임당의 아들은 율곡 이이라는 점, 허난설헌의 남동생은 허균이었다는 점이죠. 두 인물의 길은 아주 다릅니다. 정치란, 옛날에도 아주 무서운 것이었죠. 
  • 옥창준 “한반도와 중국 관계 더 긴 호흡에서 살펴보자” [평화연구소의 창]

    옥창준 “한반도와 중국 관계 더 긴 호흡에서 살펴보자” [평화연구소의 창]

    16일자 서울신문 23면 평화연구소의 창에 소개된 옥창준 정치학 박사 인터뷰 가운데 지면에 미처 소개되지 못한 대목이다. 지면 인터뷰 보러가기 https://www.seoul.co.kr/news/newsList.php?section=plan -저자와의 인연은. “2017년, 저자가 라이샤워 강연을 막 마치고 중국과 한국을 연이어 방문했다. 방한했을 때 서울대, 경남대, 한국고등교육재단에서 강연을 했다. 이 때 베스타와 인연이 있는 권헌익 케임브리지대학 교수를 통해 소개받고 인사를 드렸다. 저자의 주저인 ‘냉전의 지구사’를 번역하겠다 직접 말씀드렸는데 흔쾌히 수락해줬다. 그 인연이 이 책 번역으로 이어졌다. ‘냉전의 지구사’를 보며 우리 독자들은 당연히 냉전의 중심인 한반도의 사례가 많이 다뤄졌을 것이라고 기대했는데 정작 한반도 관련이 많이 다뤄지지 않았다. 또 중국을 포함해 동아시아 관련 논의도 의외로 적다. 그렇기에 ‘제국과 의로운 민족’이 앞 책의 보완재가 될 수 있겠다 싶어 번역을 하겠다고 결심했다. 여담이지만 번역을 막 착수했을 때 드라마 조선구마사 폐지 논쟁이 있었고, 책이 출간되기 직전 베이징 동계올림픽 개회식에서의 한복 논쟁, 석연치 않은 판정을 둘러싸고 한중 간의 감정이 격해지기도 했다. 수교 30주년을 맞이하는 시점에 시의적절한 번역서를 출간했다고 생각한다.”-번역하며 가장 힘들었던 점은. “영어로는 참 좋은 책 제목이고 의미심장하기도 한데 제목을 한국어로 적확히 옮기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서양인 학자로서 중국을 포착할 때, ‘Empire’는 자연스럽고 당연하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말 독자의 감각에서 Empire의 번역어인 ‘제국’은 조금 다른 외연을 지닌다고 생각한다. 특히 중국을 바라볼 때 제국, 제국주의보다는 ‘중화’란 표현이 우리들 피부에 좀 더 감각적으로 와 닿는다. 이를 제국으로 표현했을 때 오는 이질감이 있는데, 한글판을 읽는 독자들이 이를 예민하게 의식하면서 독서를 해나가면 좋겠다. 또 영어 단어 ‘Nation’도 마찬가지다. ‘민족’으로 번역했을 때 꼭 민족주의자가 아니더라도 한국 독자들이 자연스럽게 느낄 수밖에 없는 뜨거운 감정이 있다. 아마 저자가 사용한 이 단어의 어감은 우리가 느끼는 감각보다 좀 더 차분할 것이란 점을 의식했으면 한다. 또 저자에게 코리아는 때로는 남과 북을 아우르는 개념이다. 한국인으로선 코리아는 당연히 한국인데 외부자 입장에서는 그게 아니라는 점을 드러내고 싶어 의도적으로 한반도라는 표현을 고집했는데, 번역을 마친 뒤에도 여전히 살짝 어색한 감이 남기도 했다. 독자들의 너른 양해를 바란다.” -국제정치학을 전공하는 이로서 책에 대한 불만이 있었다면. “한국어 자료를 읽을 수 없는데, 기존의 전공인 중국사를 넘어서 한국사까지 연구한다는 생각 자체가 이해가 잘 안 됐다. 그러나 이와 같은 점이 좀 더 글로벌한 시각에서 과감한 주장을 할 수 있는 저자의 장점이라 생각한다. 분명히 자료를 제대로 못 읽고, 자료에서 표현되는 뉘앙스를 제대로 포착하지 못한 대목도 있을 것이다. 과감하게 한중관계 600년사를 그려냈지만, 그려낸 서사가 큰 방향에서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중국 학자들을 만나 중국어로 의견을 교환하고, 중국 학생들도 많이 가르쳤으니 중국 사람들이 바라보는 한반도관이 투영된 것이 아닌가 걱정도 있다. 그런 약점들에도 불구하고, 중국 사람들 입장에서 한반도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생각해보라는 베스타 교수의 지적은 충분히 음미해볼 만하다. 그러니 중국과의 대화를 채우는 것은 우리 정책 결정자들과 연구자들의 몫이다. 한반도 국가와 중국의 관계를 더 긴 호흡에서 생각할 수 있으면 좋겠다. 또 언젠가 중국어판이 나온다면 중국어권 독자들의 반응이 궁금하기도 하다.” -베스타 교수의 말을 빌리자면 중국 입장에서도 정녕 제국이 되고 싶으면 한반도와의 관계가 시금석이 되는 것 같다. 실은 지금 그것이 잘 안되고 있다. 앞으로 우리 외교가 해내야 할 일이기도 한데 우리 국민들의 대중국 감정은 완전히 다르다. 설득해야 하는데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정치권도 완벽히 통제하기 쉽지 않다. “동감이다. 동아시아에 오랫동안 누적돼 온 문제들이 있는데 그 전에는 터놓고 얘기하지 않고 서로 얼버무리며 넘기곤 했던 문제들이 이제는 서로 대등하게 성장한 상황에 평등하게 얘기를 주고받고 있다. 이는 동아시아의 관점에서 보면 사상 첫 경험이 아닐까 한다. 언젠가는 거쳐야 할 지점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다. 처음이라 거칠게 분출하는 경향은 있지만 거쳐야 할 과정인 것 같다.” -지금까지 공부의 초점과 앞으로의 초점은. “국제정치학을 전공한다고 해서 과연 현실 국제정치를 잘 알 수 있느냐는 선문답 같은 질문을 받곤 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으로 박사학위 논문 주제를 냉전 초기 한국 국제정치학의 역사로 잡았다. ‘냉전 국제정치’란 새로운 현상을 당대 지식인들이 어떻게 읽어냈는가 살폈다. 냉전을 ‘열전’으로 경험할 수밖에 없었던 우리 현실에 우리의 눈으로 주체적으로 냉전을 읽어낸다는 것은 역시 쉬운 일이 아니었다. 우리 지식인들은 미국 국제정치학을 수용하면서 극복하고, 또 우리의 현실을 나름대로 해석해내야 하는 삼중고에 시달렸다. 냉전기 한국이란 독특한 장소에서 국제정치를 우리의 눈으로 읽어내려는 시각이 분명 존재했다. 학위논문에서는 주로 냉전 초기를 다뤘지만 앞으로는 시공간을 넓혀나갈 계획이다.
  • “韓은 ‘의로운 나라’란 수사 경계를… 中은 가부장적 책임으로 포장” [평화연구소의 창]

    “韓은 ‘의로운 나라’란 수사 경계를… 中은 가부장적 책임으로 포장” [평화연구소의 창]

    “한국이 대단하고 의로운 나라란 식으로, 이 책이 읽히지 않았으면 좋겠다. 번역하는 내내 이렇게 읽히면 위험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한중 수교 이후 30년의 변화를 오롯이 담아내지 못한 한계도 있다. 외부 관찰자의 시각으로 중국의 정책 담당자들에게 귀를 기울여 쓴 책이란 점을 감안해 우리가 주체적으로 그 속을 채워 나가야 할 것이다.” 지난 2월 출간된 오드 아르네 베스타(62) 미국 예일대 교수의 책 ‘제국과 의로운 민족’(너머북스)은 한국 독자들에게 신선한 자극이 됐다. 명청 시대를 비롯해 한반도와 중국의 600년 관계를 돌아보며 중국은 한반도에 사는 우리를 의로운 민족이라고 여기며 여느 주변국과 구분되는 정체성을 부여했으며 자신들보다 중국을 더 잘 아는 민족으로 여겨 왔다는 것이 이 책의 논지다. 해서 중국은 늘 한반도를 완전히 복속시키지 않고 상대적으로 많은 자율성과 독립을 부여해 왔다는 베스타 교수의 주장은 신선하게, 때로는 충격적으로 들렸다. 지난 6월부터 여러 차례 이메일이나 화상 인터뷰를 요청했으나 답이 오지 않아 평화연구소는 대신 이 책은 물론 그의 전작 ‘냉전의 지구사’를 옮긴 옥창준(35)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박사를 만났다. 이제 막 국제정치학 연구자의 길에 들어선 옥 박사는 번역하며 느꼈던 점들, 베스타 교수가 한국 독자에게 하고 싶었던 말들, 한반도의 미래를 주체적 관점에서 접근하고 연구해야 할 필요성 등을 풀어놓았다. 다음은 일문일답.-저자 베스타 교수를 간략히 소개한다면. “노르웨이 출신의 역사학자로 냉전사(현대사)를 전공하고 있다. 차가운 평화로 경험했던 냉전의 ‘중심’이 아니라 열전으로 경험했던 ‘주변’의 냉전을 통해 전체적인 양상을 포착하려 했다. ‘냉전의 지구사’에 잘 드러나 있다. 사실 베스타의 첫출발은 중국현대사 연구자다. 베스타는 ‘잠 못 이루는 제국’이라는 책에서 중국사를 접근할 때에도 중국만의 역사가 아니라, 중국과 주변의 역동적인 관계를 통해서 중국사를 서술했다. 이런 시선이 자연스럽게 중국이라는 제국과 주변인 한반도가 지닌 역할에 대한 의문으로 이어졌을 것이다.”●한국어판 서문에만 ‘정체성 유지’ 표현 -책의 의미를 짚는다면. “영어판과 달리 한국어판 서문에만 한국이 정체성을 유지했고 중국에 대한 지식이 많았다는 대목이 들어가 있다. 저자의 전략적 서술 같은데 그 대목이 많은 국내 독자들에게 어필한 것 같다. 한국이 대단하고 의로운 나라다, 이렇게 해석되는 것 같아 조금 위험하다는 느낌을 갖는다. 저자의 의도도 아닐 것이고, 한국 사회에서 그렇게만 읽히는 것은 아쉽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확실히 외부자의 시선으로 한국사를 본다는 것에 의미가 있는 것 같다.” -독자 가운데 과연 중국이 몽골이나 티베트, 베트남, 캄보디아를 지배했던 것과 조선을 지배했던 통치 방식에 근본적인 차이가 있느냐고 반문하는 이들이 있다. “중국과 가까운 나라들이 중국 제국이 해체될 때 사라지는 경우나 국체가 흔들리는 예가 많았다. 저자가 가장 인상적으로 강조하는 것은 한반도라는 지역이 중국이 스스로 제국이란 것을 드러내기 위해 독립은 허용했지만 자신의 문화를 받아들여 번성하는 모습을 보여 주는 상징적 가치가 있는 지역이었고, 그런 모습이 여느 지역과는 많이 달랐다는 것이다. 특히 베트남의 상황이 그나마 조선과 많이 비슷해 우리가 비교연구를 해 봐야 할 것 같다. 그런 상징적 가치 때문에라도 중국은 한반도를 자기의 영토로 삼지 않았지만 적당히 내버려 두면서도 문화를 통해 간접적으로 지배하는 전략을 취했다. 중국은 완전히 통치하지 않고 자율성을 부여하면서도 중화세계 안에 묶어 뒀고, 조선 사람들은 나름의 생존 전략을 찾았던 것 같다.”●‘예의의 나라’란 말은 칭찬 아닌 수치 -그런데 지금은 많이 다르지 않나. “책의 저본이 되는 하버드대 라이샤워 강연은 2017년에 행해졌다. 이 책의 제3부는 중국의 고위 외교정책 결정자들과의 인터뷰를 기초로 하고 있어 흥미로운 대목이 많다. 그 뒤 코로나19의 확산과 러시아·우크라니아 전쟁은 세계질서를 근본적으로 뒤흔들고 있다. 일례로 과연 지금도 중국의 전문가들이 정말 내심 한국 중심으로 통일되고 번영하는 한반도를 현 상황보다 낫다고 보고 있을까? 오히려 나는 베스타 교수가 인터뷰한 중국 측 인사들이 이와 같은 레토릭을 통해서 여전히 한반도 통일에 있어 중국의 역할을 강조했다는 느낌을 받는다.” -의로운 민족이란 찬사에 함정이 있다는 뜻인가. “개화파의 비조인 박규수(朴珪壽)는 ‘예의의 나라’라는 말을 칭찬이 아니라 비루하다고 평가하는 기록을 남긴 적이 있다. 세상에 예의가 없는 나라가 어디에 있으며, 중국이 이적(夷狄) 가운데 이런 나라가 있음을 가상히 여겨 칭찬한 수사에 불과하니, 이는 오히려 스스로 자랑할 만한 것이 아니라 수치스럽게 여겨야 할 말이라 본 것이다. 오히려 ‘의로움’은 우리를 가부장적으로 바라보는 중국의 시선이 담겨 있는 말이기도 하기에, 우리가 일정한 경계를 표해야 할 말이다. 거대한 제국 옆에서 오랫동안 독립을 유지해 왔다는 점에서 자신감을 지닐 필요도 분명 있겠지만 그런 ‘국뽕’식 접근보다 앞으로는 한반도 국가가 중국 옆에서 생존할 수 있었던 원동력인 이 의로움의 실질적인 내용을 어떻게 재구성할 수 있을지 진지하게 고민하는 것이 먼저다. 또 이전 시기의 중국·한반도 관계와 달리 현재는 북핵으로 대표되는 한반도 문제가 존재하고, 남한이 미국으로 대표되는 자유 진영 가운데 성장해 왔다는 점에서, 현재 우리가 느끼는 ‘의로움’은 민주주의든 인권이든 오히려 중화민족주의가 강화되고 있는 중국과 충돌할 수 있는 지점이 존재한다. 이런 충돌이 간단치 않을 것이다.” -어떤 해법이 있을 수 있나. “물론 한반도 통일에 있어 중국의 역할이 존재하지만, 북한·러시아·중국의 연계가 강화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우리가 어떤 선택을 내릴지가 중요할 것이다. 상책(上策)이 무엇인지 명확한 답을 내릴 수는 없더라도 지금처럼 애매모호한 자세를 유지하면서 중국과 미국 모두의 신뢰를 받을 수 없는 전략은 하책(下策)임이 분명하다. 이 책은 중국·한반도 관계를 다루지만 결국 중국의 한반도 전략은 세계전략의 하위범주로 이루어질 것임을 파악해야 한다. 한국은 현재 세계질서 속에서 성장해 온 유일무이한 사례이다. 현 질서의 유지냐 타파냐를 양자택일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질서를 어떻게 보수하고 개신(改新)해 나갈 것인지에 대한 스스로의 답을 낼 수 있어야 한다. 그 답이 얼마나 설득력을 얻는지가 앞으로 새로운 세계질서가 등장할 때 한국의 위상을 결정할 것이라고 본다.” ●‘한반도는 中에 무엇인가’ 반문을 -옮긴이의 말을 통해 이 책과 오언 데니의 ‘청한론’(China and Korea), 유길준의 ‘서유견문’ 3권 ‘방국의 권리’를 연결하는 대목도 흥미로웠다. “외부의 시선으로 중국·한반도의 역사적 관계가 흥미로워진다는 것은 세계질서가 변동하고 있는 하나의 상징적 사건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데니의 ‘청한론’을 떠올렸다. 이와 같은 외부의 시선에 대한 21세기 유길준의 응답이 필요하다. 현재 지식인들이나 국민들이 ‘한반도에 중국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만 매몰돼 있는데 ‘한반도는 중국에 무엇인가’라는 다소 낯선 질문에 답을 채워야 한다. 중국이 포용력 있는 지역 강대국, 세계 강대국이 되기 위해서도 한반도인의 동의를 이끌어 내야 한다는 저자의 지적은 의미가 있다. 우리도 새로운 ‘의로움’에 기초해 중국을 끊임없이 설득함으로써, 중국의 미래를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을 지녀야 한다.” 인터뷰 계속 보러가기 https://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220816500003
  • 370년 전 카리브에 침몰한 보물선에서 나온 에메랄드 금목걸이

    370년 전 카리브에 침몰한 보물선에서 나온 에메랄드 금목걸이

    1656년 1월 4일 카리브해. 지금의 콜롬비아 카르타헤나에서 출항한 스페인 범선 누에스타 세뇨라 데 라스마라비야스(이하 라스마라비야스)는 잔잔한 바다에서 스페인을 향해 물살을 가르고 있었다.  배에는 에콰도르 앞바다에서 암초에 걸려 난파한 또 다른 범선 헤수스 마리아 데 림피아 콘셉시온에서 회수한 보물들이 실려 있었다. 하지만 평온은 잠시. 라스마라비야스는 여기에서 최후를 맞고 만다. 항해오류를 범한 기함 라콘셉시온과 충돌하면서다.  당시 범선에 타고 있던 선원은 650명. 이 가운데 살아남은 사람은 45명뿐이었다. 생존자들은 "충돌 후 곧 배가 완전히 가라앉았다"며 울먹였다. 그로부터 366년이 지난 2022년 라스마라비야스에 실려 있던 보물 중 일부가 카리브해에 있는 영연방의 섬나라 바하마의 해양박물관에서 전시되고 있다.  보물을 건져낸 탐사단 '알렌 익스플로레이션'의 대표 칼 알렌은 "라스마라비야스는 바하마 해양역사의 일부분"이라며 "보물의 의미가 특별해 바하마에서 전시를 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보물선 라스마라비야스는 17~18세기 손을 여러 번 탔다고 한다. 생존자를 통해 침몰 기록이 남아 있어 스페인,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미국 등지에서 보물을 찾아 나선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알렌 익스플로레이션이 보물을 건져낸 건 기적 같은 일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알렌 익스플로레이션은 370년 가까이 해저에 가라앉아 있던 소중한 보물을 여러 점 발견해 건져낼 수 있었다. 가장 가치 있는 보물은 십자가 금목걸이들이다. 중앙에 보석을 박고 산티아고 십자가를 보석 위에 붙인 형상이다.   가운데는 커다란 콜롬비아 에메랄드가 십자가의 받침대 역할을 하고 있고, 주변에는 예수의 12제자를 상징하는 12개 에메랄드가 장식돼 있다.  라스마라비야스에는 1600년대 스페인에서 가장 권위 있는 군대였던 산티아고 기사단의 기사 8명이 타고 있었다. 산티아고 기사단은 특히 해상 무역에 적극적이었다고 한다.  에메랄드와 금으로 만든 보물은 기사들의 소유였거나 어디선가 구해 스페인으로 가져가려 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기사단은 워낙 무역에 밝아 물건의 가치를 알아보는 눈이 남달랐다고 한다. 목걸이에 유독 큰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한편 알렌 익스플로레이션은 "바하마에 대해 우리가 모르고 있는 너무 많지만 분명한 건 카리브해에서 나온 보물들이 바하마 역사와 문화의 일부분이라는 점"이라며 바하마 당국이 허락한다면 해양박물관에 보물들을 영구 전시하고 싶다고 했다.  과거 바하마에는 약 1300년 전 섬으로 이주한 루카얀 원주민들이 살았다. 그들은 유럽 정복자들에 의해 강제로 대륙으로 이주해 지금의 베네수엘라에서 진주 캐기 작업에 동원됐다고 한다. 얼마나 노동이 고달팠는지 5만여 명 원주민들은 30여 년 만에 모두 죽어버렸다. 카리브 해저 보물을 바하마 역사와 문화의 일부라고 알렌 익스플로레이션이 강조하는 이유다.
  • 이종환 서울시의원, 광화문광장 개장 기념식 참석

    이종환 서울시의원, 광화문광장 개장 기념식 참석

    서울특별시의회 이종환 문화체육관광위원장(국민의힘·강북1)은 지난 6일 광화문광장 개장 개막식에 참석해 광화문 광장의 새로운 시작을 축하했다. 무려 1년 9개월 동안 공사 가림막으로 둘러싸여 있었던 광화문광장은 개막일 개장행사 「광화문광장 빛모락」을 시작으로 시민들에게 개방됐다. ‘빛이 모이는 즐거움’이라는 뜻의 ‘빛모락’ 행사는 2시간 30분 동안 ‘빛과 화합’을 주제로 시민 오케스트라, 개장 축하공연, 광화문 600년 역사를 소재로 한 현장 드로잉, 미디어파사드 등의 다양한 프로그램을 선보였다. 이 위원장을 비롯해 서울시의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위원 6명 또한 함께 자리해 “오랜 공사 끝에 광화문광장이 시민들의 휴식처로 돌아간 것에 대단히 환영하는 바”라며, “서울시 관광의 상징으로 자리잡기를 기대한다”라며 개장을 축하했다. 이어, “미래먹거리 산업인 관광산업의 도약을 위해 각 자치구를 대표할 수 있는 상징을 만들고, 관광산업에 대한 투자를 적극적으로 늘려야 할 것”이라고 서울시에 주문했다.
  • ■ 광주신세계 ‘프리미엄 푸드마켓’ 재탄생

    ■ 광주신세계 ‘프리미엄 푸드마켓’ 재탄생

    광주신세계 본관 지하1층이 새로운 맛과 멋이 살아 숨쉬는 ‘프리미엄 푸드마켓’으로 재탄생한다. 광주신세계(대표이사 이동훈)는 올해 최대 핵심 투자사업으로 8년만에 총 공사비 50여억원을 투입해 푸드마켓을 리뉴얼을 마치고 5일 새롭게 선보인다. 이번 푸드마켓 리뉴얼 오픈 기념으로 오는 31일까지 다채로운 행사도 펼친다. 프리미엄 식재료를 엄선해 판매할 예정이다. 이를위해 신세계 직경매 한우의 고품질 양념육 도입과 신선한 과일만을 선보이기 위해 새벽 직송 로컬 과일 코너를 운형해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할 방침이다. 정육코너에서는 ‘지육 숙성실’을 새롭게 선보인다. 소 잡는 날을 지정해 판매한다. 또한 축산물 브랜드경진대회에서 대통령상 3회 수상의 친환경 로컬한우 브랜드인 ‘녹색한우’와 즉석 밀키트 등 다양한 양념육을 판매하는 ‘미트원’, 전북도 남원시 청정 지리산 자락 해발 500m에서 사육한 지리산흑돈 ‘버크셔K’로 만든 샤퀴테리 제품이 판매된다. 농산 코너에서는 화순의 블루벨리, 남원의 캠벨포도, 영암의 무화과 등 ‘신선한 새벽 직송 로컬 과일 코너’를 운영한다. 스마트 팜 브랜드도 입점한다. 스마트 팜은 국내 최다 품종의 스마트 팜 작물 재배사로 엽채류, 향신료, 특수채소 등 40여종의 다수를 운영하고 있다. 수산 코너에서는 가장 신선한 최상의 원물로 현장에서 바로 구워주는 ‘피쉬델리’ 코너를 광주지역에서 최초 운영한다. 또한 신세계 한식연구소와 역량있는 양조장과 함께 연구하여 새롭게 출시한 발효:곳간만의 생탁주와 스파클링 막걸리, 스파클링 약주를 광주에서 처음으로 만나 볼 수 있다 더불어 지역 최초로 600년 역사의 프랑스 샤또데스뚜불롱 올리브오일과 이탈리아에서 100년간 이어온 트러플 전문 브랜드 사비니 타르투피를 새롭게 소개한다. 최택열 광주신세계 식품 팀장은 “이번 푸드마켓 새단장을 맞아 오직 광주신세계에서만 만나 볼 수 있는 이색적이고 다양한 먹거리를 지속적으로 제공할 것”이라며 “이를 통해 지역민들께 새롭고 즐거운 식음문화를 제안해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 웅장한 사자부터 판결문까지… 메소포타미아의 통 큰 방한

    웅장한 사자부터 판결문까지… 메소포타미아의 통 큰 방한

    “카리야가 앗슈르-나다에게 에부툼(장기사업대출)으로 빌려준 순은 9와 3분의2마나와 관련해, 상품이 도시로부터 도착했고 앗슈르-타브(카리야의 아들)는 은에 해당 상품을 수령했다. 증인 앗슈르단, 증인 임디-일룸, 증인 부지야.”인류 최초의 문자가 발견된 메소포타미아 문명(기원전 4000년~기원전 600년)의 사람들은 일상의 많은 것을 기록으로 남겼다. 채무 변제 증서는 물론 처방전, 가축 용어 목록, 곱셈표, 판결문 등 기록만 따지면 복잡한 현대 사회를 살아간 사람들 같다. 메소포타미아 문자 기록을 보면 이들에게는 기록을 남기는 것이 놀이였고 기록을 위해 일부러 생활의 사건들을 만든 게 아닐까 싶은 착각이 든다.메소포타미아인들의 기록은 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관 3층에 들어선 ‘메소포타미아실’에서 22일부터 2024년 1월 28일까지 볼 수 있다. ‘메소포타미아, 저 기록의 땅’이란 제목의 이번 전시는 국내에서 메소포타미아 문화유산을 다룬 첫 상설 전시로, 미국 메트로폴리탄박물관과 공동 기획했다. 총 66점을 선보인다. 메소포타미아는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을 끼고 문명을 꽃피웠지만 다른 고대 문명에 비해 생소하다. 21일 언론공개회에 참석한 윤성용 국립중앙박물관장은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최초의 문자를 사용해 그 영향이 현대 사회까지 미치지만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면서 “이런 한계를 극복하고자 전시를 기획했다”고 말했다. 전시는 1부 ‘문화 혁신’, 2부 ‘예술과 정체성’, 3부 ‘제국의 시대’로 구성됐다. 전시관 내부는 사각형의 벽돌을 쌓았던 메소포타미아인들에게 영감을 받아 곳곳이 사각형 구조로 이뤄졌다.이들이 문자 기록을 많이 남길 수 있었던 데는 환경이 큰 영향을 끼쳤다. 양희정 학예연구사는 “메소포타미아는 오늘날 이라크 주변 지역인데, 고온의 날씨라 점토판에 찍어 바깥에 말리면 금방 문서가 완성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쉽게 기록물을 남길 수 있다 보니 메소포타미아인들은 개인 인장을 만들어 일상적으로 쓰기도 했다. 1부의 ‘인장과 날인’ 코너에 가면 누가 더 멋진 인장을 가졌는지 대결을 펼치는 듯한 메소포타미아인들의 흔적을 볼 수 있다. 2부에서는 문자가 점토판을 넘어 왕의 조각상처럼 더 수준 높은 곳에 활용된 것을 볼 수 있다. 3부에서는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대표하는 신-앗슈르 제국과 신-바빌리 제국의 대표적인 예술을 다뤘다. 특히 전시 끝부분의 ‘사자 벽돌 패널’ 2점은 웅장한 자태와 신비로운 색감으로 관람객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이번 전시는 한국고대근동학회와 협력해 통상적으로 알려진 지명과 인명 대신 당시 통용된 원어 발음에 최대한 가깝게 표현했다.
  • 채무 변제에 쓰인 인류 최초의 문자… 메소포타미아가 왔다

    채무 변제에 쓰인 인류 최초의 문자… 메소포타미아가 왔다

    “카리야가 앗슈르-나다에게 에부툼(장기사업대출)으로 빌려준 순은 9와 3분의2마나와 관련해, 상품이 도시로부터 도착했고 앗슈르-타브(카리야의 아들)는 은에 해당 상품을 수령했다. 증인 앗슈르단, 증인 임디-일룸, 증인 부지야.” 인류 최초의 문자가 발견된 메소포타미아 문명(기원전 4000년~기원전 600년)의 사람들은 일상의 많은 것을 기록으로 남겼다. 채무 변제 증서는 물론 처방전, 가축 용어 목록, 곱셈표, 판결문 등 기록만 따지면 복잡한 현대 사회를 살아간 사람들 같다. 메소포타미아 문자 기록을 보면 이들에게는 기록을 남기는 것이 놀이였고 기록을 위해 일부러 생활의 사건들을 만든 게 아닐까 싶은 착각이 든다. 메소포타미아인들의 기록은 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관 3층에 들어선 ‘메소포타미아실’에서 22일부터 2024년 1월 28일까지 볼 수 있다. ‘메소포타미아, 저 기록의 땅’이란 제목의 이번 전시는 국내에서 메소포타미아 문화유산을 다룬 첫 상설 전시로, 미국 메트로폴리탄박물관과 공동 기획했다. 총 66점을 선보인다.메소포타미아는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을 끼고 문명을 꽃피웠지만 다른 고대 문명에 비해 생소하다. 21일 언론공개회에 참석한 윤성용 국립중앙박물관장은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최초의 문자를 사용해 그 영향이 현대 사회까지 미치지만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면서 “이런 한계를 극복하고자 전시를 기획했다”고 말했다. 전시는 1부 ‘문화 혁신’, 2부 ‘예술과 정체성’, 3부 ‘제국의 시대’로 구성됐다. 전시관 내부는 사각형의 벽돌을 쌓았던 메소포타미아인들에게 영감을 받아 곳곳이 사각형 구조로 이뤄졌다. 이들이 문자 기록을 많이 남길 수 있었던 데는 환경이 큰 영향을 끼쳤다. 양희정 학예연구사는 “메소포타미아는 오늘날 이라크 주변 지역인데, 고온의 날씨라 점토판에 찍어 바깥에 말리면 금방 문서가 완성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쉽게 기록물을 남길 수 있다 보니 메소포타미아인들은 개인 인장을 만들어 일상적으로 쓰기도 했다.1부의 ‘인장과 날인’ 코너에 가면 누가 더 멋진 인장을 가졌는지 대결을 펼치는 듯한 메소포타미아인들의 흔적을 볼 수 있다. 인장을 점토판에 굴리면 인장이 가진 문양이 그대로 찍힌다. 점토판 가운데에 계약 내용을 찍고 계약 당사자들이 위아래로 각자의 인장을 찍은 걸 보면, 계약 내용보다 인장 문양이 더 중요했을 것 같다는 상상을 하게 한다. 2부에서는 문자가 점토판을 넘어 왕의 조각상처럼 더 수준 높은 곳에 활용된 것을 볼 수 있다. 2부에 있는 구데아왕(기원전 2150~2125년 재위)의 상에는 관련 정보가 문자로 찍혀 있었다. 당시 오른팔이 튼실해야 왕으로서 인정받을 수 있던 문화 때문에 구데아왕이 오른쪽 어깨를 노출한 것을 보는 재미도 있다.3부에서는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대표하는 신-앗슈르 제국과 신-바빌리 제국의 대표적인 예술을 다뤘다. 특히 전시 끝부분의 ‘사자 벽돌 패널’ 2점은 웅장한 자태와 신비로운 색감으로 관람객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이번 전시는 한국고대근동학회와 협력해 통상적으로 알려진 지명과 인명 대신 당시 통용된 원어 발음에 최대한 가깝게 표현했다. 전시는 무료이며 전시 설명은 8월 16일부터 주중 하루 2회(오후 1시·3시), 주말 3회(오전 11시·오후 1시 30분·3시) 진행된다.
  • 인간과 인공(AI)사이 생존법… 인(仁)에 답이 있다

    인간과 인공(AI)사이 생존법… 인(仁)에 답이 있다

    스마트폰이나 컴퓨터에서 흔히 쓰는 ‘인터페이스’라는 단어의 의미를 찾아본 적이 있는가. ‘서로 다른 두 시스템을 이어 주는 부분. 사용자인 인간과 컴퓨터를 연결하여 주는 장치.’ 매일 쓰는 개념인데도 도무지 와닿지 않는 이 사전적 정의를 ‘시대의 정신’ 이어령 선생은 이렇게 표현한다. “인터페이스란 인간(아날로그)과 컴퓨터(디지털)의 접촉면이다. 찻잔이 뜨거워 만질 수 없을 때 손잡이를 달아 주면 해결된다. 쥘 수 없는 뜨거운 잔과 나 사이의 경계를 사라지게 하는 손잡이가 바로 인터페이스다.” 지난 2월 작고한 이어령 선생이 쓴 ‘너 어떻게 살래’는 이처럼 기계와 생명의 본질을 살피고 그 관계를 살펴보는 책이다. 저자는 생전에 10권 분량의 ‘한국인 이야기’ 시리즈를 구상했는데, 이 책은 한국인의 의미를 돌아본 ‘너 어디에서 왔니’, 젓가락에 담긴 문화 유전자를 조명한 ‘너 누구니’에 이은 세 번째 저작이다. 저자는 2000년대부터 정보화를 주장한 선구자였고, 2016년 바둑 인공지능(AI) 알파고의 등장 이후엔 영면에 들기까지 대부분의 시간을 AI에 대한 원고를 집필하는 데 썼다. 그는 600년 전 코끼리를 처음 본 조선인이 받은 충격에 알파고 쇼크를 비유하는가 하면 “어제까지 AI라고 하면 ‘조류독감’인 줄 알고 알파고라고 하면 무슨 특목고 이름인 줄 알았던 한국인들”이라고 지적한다. 그러나 충격이 다가 아니다. “AI를 인간의 직업을 빼앗거나 인간의 안전을 위협하는 괴물로만 보고 있다. 우리가 지금 알파고 앞에서 무슨 일을 시작해야 하는지 알아야 한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특히 이번 책에서는 서양의 기계론적 사고관으로는 풀 수 없는 인간과 인공 사이 고차원 방정식을 한국인 특유의 생명 의식, 동양의 인(仁) 사상을 통해 설명한다. 유연하고 유쾌한 저자 특유의 문체는 AI를 복잡하고 난해한 과학의 영역에 가둬 두는 대신 우리의 보편적 삶으로 연결시킨다. “우리네 판이란 것은 인간과 기계의 판, 컴퓨터와 로봇, 그 판을 형성하는 거다. 바둑판의 판, 판소리의 판, 단원(김홍도)의 씨름판, 혜원(신윤복)의 ‘단오풍정’ 목욕판에서 ‘따로’와 ‘서로’가 합쳐진다. 서로 다른 것 같지만 죽을 판에서 살 판으로 반전의 꼬부랑 고갯길을 넘어가고, 디지로그에서 합쳐지는 거다.” 
  • 성동, 옛 ‘두모포’서 600년 전 대마도 출정 재현

    성동, 옛 ‘두모포’서 600년 전 대마도 출정 재현

    조선시대 군사 출정식이 열렸던 서울 성동구 옥수역 한강공원에서 오는 18일 ‘두모포 페스티벌’이 개최된다. 2019년 두모포 출정 600주년을 기념해 첫 페스티벌이 열린 지 3년 만이다. 8일 성동구에 따르면 두모포라고 불리던 옥수역 한강공원은 세종 원년 대마도 정벌을 이끌었던 군사 출정식이 열렸던 곳이다. 이번 축제에서는 ‘화합과 힐링을 향해 출정하라’라는 주제로 다양한 퍼포먼스와 뮤직 드라마 공연이 펼쳐진다. 각종 공예품을 판매하는 플리마켓도 운영된다. 활과 화포 쏘기 등 전통놀이를 체험할 수 있다. 아울러 600여년 전 군사 출정식을 재연한 ‘취타대 출정퍼레이드’도 볼거리다. 구는 사물놀이와 재담꾼의 아니리(판소리에서 창을 하는 중간중간 가락을 붙이지 않고 얘기하듯 엮어 나가는 사설)를 통해 두모포 출정식을 재구성한다. 10일부터는 ‘여덟 장군’을 형상화한 풍선 아트를 전시해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정원오 성동구청장은 “과거 상왕 태종과 세종의 굳건한 신념이 승리의 역사를 일궈 냈던 것처럼 이번 페스티벌이 코로나19 치유와 힐링의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 [세종로의 아침] 알려주고 싶은 여인들의 뜨락/손원천 문화부 선임기자

    [세종로의 아침] 알려주고 싶은 여인들의 뜨락/손원천 문화부 선임기자

    지난봄, 개인적으로 최대 관심사는 강원 강릉의 ‘율곡매’였다. 언제 수명이 다할지 알 수 없는 늙은 매화다. 나무의 90% 이상이 고사했고, 해마다 피워 올리는 꽃의 양도 줄고 있다. 어쩌면 이번 봄엔 꽃을 볼 수 없을지 모른다는 불길한 생각도 했다. 다행히 꽃잎이 나오기 시작했다는 오죽헌 직원의 말에 안도하긴 했지만, 몇 안 되는 꽃잎이 하룻밤 찬 봄바람에 우수수 떨어지지나 않을까 강릉을 찾기 전까지 매 순간 노심초사였다. 율곡매는 수령이 얼추 600년에 달하는 천연기념물이다. 고사 판정은 이미 받았고, 한때 천연기념물 해제까지 논의됐지만 이번 봄에도 기필코 꽃을 틔워 냈다. 겨우 몇몇 가지에 불과했지만, 모든 나무는 죽기 전까지 꽃을 피운다는 평범한 진리를 율곡매는 올해도 치열하게 증명해 냈다. 그런데 의아하다. 왜 ‘율곡매’일까. 나무의 역사를 보면 세종 22년(1440년) 오죽헌 건립 당시에 식재됐고, 신사임당(1504~1551)과 율곡 이이가 직접 가꿨다고 전한다. 율곡이 오죽헌에 머문 기간은 태어나 6년 정도다. 율곡이 천재였다고는 해도 고사리 같은 손으로 나무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을 것이다. 그보다는 생애 전반부를 강릉에서 보낸 어머니 신사임당이 애면글면 매화나무를 가꿨을 공산이 더 크다. 그렇다면 ‘신사임당매’라 불러야 더 자연스러운 것 아닐까. 허균·허난설헌 생가터에서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조선 최고의 문인 중 한 명으로 꼽히는 난설헌 허초희와 소설 ‘홍길동전’의 저자 허균 남매가 나고 자란 곳이다. 허난설헌의 동상과 시비 등을 세워 기리고는 있지만, 조선의 여인으로 살다 안타깝게 요절한 그의 생애를 느낄 만한 장치가 없어 어딘가 겉도는 듯한 느낌이다. 이 일대에서 가장 인상적인 곳을 꼽으라면 단연 생가터를 에워싼 솔숲이다. 진한 솔향을 품어내는 굵은 노송들이 깊은 평안을 안겨 준다. 이 솔숲을 허난설헌과 함께 산책하는 느낌이 들도록 감성적으로 꾸며보는 것은 어떨까. 필경 허난설헌의 온기는 솔숲 여기저기에 닿았을 테지만 그를 현재로 불러낼 오브제는 어디에도 없다. 그게 못내 아쉽다. 나라 안에 이런 곳이 적지 않다. 일제강점기 국채보상운동에 힘을 보탰다는 대구 기생 앵무의 자취는 아예 없고, ‘여걸 시인’이라 불렸다던 전북 남원의 김삼의당 역시 작은 기념관이 고작이다. 이들을 ‘여성’이 아닌 ‘인재’로 여겼다면 이리 소홀히 대접하지는 않았을 거다. 요즘 우리나라를 부유한 국가로 평가하는 외국 서적을 자주 본다. ‘보이지 않는 중국’은 그중 하나다. 저자는 ‘중립국 함정’에 빠진 중국이 위기를 해결할 롤모델로 한국을 꼽고 있다. 그 동력은 단연 ‘인재’다. 한국은 인재가 전부인 나라다. 인재는 성별을 가리지 않는다. 서로 보완적일 수도 있을 텐데 우리는 어쩐지 다투기만 하는 모양새다. 지난 윤석열 대통령의 취임식 중 한 장면. 누군가 “취임식 공연에 몇 점을 주겠습니까”라고 묻는다면 “저는 드릴 점수가 없습니다”라고 말하고 싶다. 남자 성악가 일색이었기 때문이다. 이들이 못했다는 건 물론 아니다. 다만 인위적 안배는 없었다 해도, 자리에 걸맞은 품격은 부족했다고 생각한다. 이런 대결 구도가 지속돼도 좋을 만큼 우리는 한가하지 않다. 그런 점에서 여성단체들이 선제적으로 역사 속 여성 인재를 발굴하고 선양하는 일에 좀더 나서 줬으면 좋겠다. 올가을엔 꼭 경남 밀양을 찾으려 한다. ‘밀양 검무의 대가’ 기생 운심의 삶이 깃든 곳이다. 벌써 여러 해 겨누고는 있는데, 실행으로 옮기지는 못했다. 올해는 여행자의 감성에 소구할 운심의 이야기가 많이 발굴됐으면 한다. 최소한 그의 생애를 반추할 공간만이라도 좀더 늘었으면 좋겠다.
  • [씨줄날줄] 핀란드의 미래/임병선 논설위원

    [씨줄날줄] 핀란드의 미래/임병선 논설위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고향이기도 한 상트페테르부르크(옛 레닌그라드)에는 핀란드역이 있다. 1917년 4월 16일 레닌이 10년의 망명 생활을 청산하고 스위스, 독일, 스웨덴, 핀란드를 거쳐 이 역에 내려 혁명의 기치를 높이 들었다. 러시아제국에 돌아온 그가 10월 혁명을 이끌어 최초의 사회주의 혁명을 완성하는 과정은 에드먼드 윌슨의 ‘핀란드역으로’에 박진감 넘치게 그려졌다. 러시아와 1340㎞의 국경을 맞대고 있는 핀란드는 스웨덴에 600년, 러시아제국에 100년을 지배당했다. 볼셰비키 혁명을 틈타 독립을 선포했다가 1918년 내전을 겪었다. 소련과 독일제국이 각각 군대를 보냈다. 1934년 핀란드를 침략하지 않겠다고 약조한 소련은 1939년 핀란드를 침공해 이듬해까지 ‘겨울전쟁’을 벌였다. 스탈린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푸틴처럼 손쉽게 핀란드를 장악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으나 저항에 막혔다. 소련은 승리했지만 전력 손실과 위상 추락이 만만찮았고 국제연맹에서 축출됐다. 핀란드는 영토를 떼줬으나 독립은 지켰다. 소련군의 허술함을 보고 나치 독일이 1941년 소련을 침공했다는 것은 역사가들의 일치된 분석이다. 핀란드는 독일의 손을 잡고 1944년 ‘계속전쟁’에 나서 겨울전쟁 때 잃었던 동카렐리야 땅을 되찾고도 레닌그라드 포위에 지원군을 보내 달라는 독일의 요청을 뿌리쳤다. 소련이 대대적 반격에 나서자 이번에는 동맹을 파기하고 총부리를 독일로 돌렸다. 영악하게 나라를 지켜 온 핀란드는 74년간 군사적 중립을 표방했고, 냉전 시기 소련의 일부 내정 간섭으로 위기를 겪기도 했다. 그런 핀란드가 스웨덴과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가입 신청서를 냈다. 핵무장을 포기한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 짓밟히는 것을 보면서 군사동맹인 나토에 합류한 것이다. 서현수 한국교원대 교수는 “핀란드로선 푸틴을 비롯한 러시아 지도부의 합리성을 도저히 신뢰할 수 없는 상황에 내몰려 어쩔 수 없었을 것”이라며 “대통령이 푸틴과 통화하는 등 교감했고, 러시아도 확전할 여력이 없어 핀란드가 나토군을 배치하는 레드라인을 넘지 않으면 관리하는 데 치중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 한은·산은·수은 본점 이전… 위치보다 설립목적 달성이 먼저다[차현진의 銀根한 이야기]

    한은·산은·수은 본점 이전… 위치보다 설립목적 달성이 먼저다[차현진의 銀根한 이야기]

    # ‘기관’ 은행의 탄생 英 민간 투자로 동인도회사 설립 영란은행법 통해 법인 개념 생성 본점을 두고 전국 영업지점 확대금융권이 술렁이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 대선 때 산업은행 부산 이전을 공약으로 제시한 뒤로 이전 대상으로 거론되는 금융기관이 점점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수출입은행에 이어 최근에는 한국은행까지 거론된다. 이들 은행은 잔뜩 긴장한 표정이 역력한 반면 이들 은행을 유치하고픈 지방자치단체들 사이에선 전운마저 감돈다. ‘지역 균형발전’을 위해 나온 아이디어가 오히려 ‘지역갈등’과 정쟁의 기폭제가 될 기미다. 한국은행이건, 산업은행이건, 수출입은행이건 관련 법률에서 본점 위치를 ‘서울시’로 못박고 있다. 그러므로 본점을 옮기려면 국회 의결이 필요하다. 반면 정부조직법에는 정부청사 위치가 명시돼 있지 않다. 왜 그런 차이가 생겼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정부조직은 ‘조직’이고, 국책기관은 ‘기관’이기 때문이다. 너무 싱겁다.조직(organization)은 추상적 지휘체계다. 조직은 사람과 목표만 있으면 되므로 정부조직법에서 장소(청사)를 언급할 필요가 없다. 반면 기관(institution)은 조직에 물적 시설을 더한 개념이다. 책이 없는 도서관이나 망원경이 없는 천문대는 생각할 수 없다. 법인의 경우에는 자본금과 사무실(본점)이 필수다. 그래서 거의 모든 나라의 민·상법에서는 법인 정관에 반드시 자본금과 주된 사무실을 명시하도록 한다. 그런 관행은 17세기에 시작됐다. 스페인이 신대륙을 발견한 뒤 유럽은 식민지 개척 경쟁에 돌입했다. 가톨릭 국가인 스페인은 식민지 개척에 따르는 비용과 위험을 정부가 부담한 반면 개신교 국가인 영국에서는 민간 투자자들이 그것을 부담했다. 그래서 생긴 것이 동인도회사다. 무수히 많은 사람들의 투자금을 모아서 설립한 ‘기관’이다. 그 이전 회사들은 전부 혈연관계로 얽힌 가족기업이었다. 유럽 대륙을 쥐락펴락했던 이탈리아 메디치 가문과 신성로마제국 푸거 가문이 거느리던 기업들은 소수 친인척들이 경영에 대해서 무한책임을 졌다. 그러므로 기업과 사원이 일심동체였다. 굳이 오늘날 법률 개념을 적용하자면 합명회사에 해당한다. 그런데 동인도회사가 접촉하는 식민지들은 미지의 세계였다. 유럽에 비해서 불확실성이 훨씬 커서 투자자들이 선뜻 경영 결과를 책임지려고 하지 않았다. 당연히 자본금 모집이 힘들었다. 그래서 나온 것이 합자회사라는 개념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돈을 모아 세운 합자회사는, 대부분의 투자자들이 각자 투자한 만큼만 책임진다. 그들을 유한책임사원이라 부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영진(무한책임사원)은 반드시 자기 전 재산을 걸고 경영에 대해 무한 책임을 지도록 했다. 거기서 등기임원이라는 개념이 나왔다. 1600년 설립된 영국 동인도회사의 공식 명칭은 ‘동인도로 진출하려는 런던 상인들의 모임과 그 총재’(the Governor and Company of Merchants of London trading into the East Indies)였다. 그 이름이 마치 오늘날 ‘서태지와 아이들’이나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과 비슷하다. 서태지가 빠진 ‘아이들’이나 조용필이 빠진 ‘위대한 탄생’을 생각할 수 없듯이 총재를 뺀 동인도회사는 존재할 수 없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지분을 가진 사람만 총재가 될 수 있었다).나폴레옹 전쟁을 거쳐 1820년에 이르기까지 영국의 합자회사는 동인도회사와 영란은행뿐이었다. 영국 정부가 합자회사 설립을 단 두 개로 옥죈 것은 다분히 종교적인 이유 때문이다. 대부분의 투자자들이 투자 원금까지만 책임을 지는 유한책임사원이라면, 투자자의 인격과 회사의 인격은 다르다는 결론에 이른다. 회사가 투자자로부터 독립된 인격(법인격)을 갖는다는 것은 일종의 신성모독이다. 인격은 조물주가 인간에게만 허락한 것 아닌가! 19세기 영국의 대법관 에드워드 덜로는 “법인은 처벌할 육체도, 비난할 영혼도 없다”며 법인격 개념을 허구라고 비판했다. 당시는 산업혁명이 한창 진행되던 때인데, 그때까지도 법인격이라는 개념이 사회 통념에 거슬렸다는 것을 시사한다. 종교적, 사회적 마찰을 피하려면 법인을 애써 자연인과 비슷하게 만들어야 했다. 법인의 자본금과 주된 사무실을 중시하는 관습은 그렇게 해서 탄생했다. 일종의 의인화다. 1694년 제정된 영란은행법은 납입자본금을 120만 파운드로 한정하고, 그것을 탕진하면 회사의 인격도 사라지도록 했다. 그러니까 회사 자본금은 인간의 영혼에 견줄 수 있다. 그리고 사무실(본점)을 런던에 두고 영업지역을 런던 시내에서 반경 10마일 이내로 제한했다(처음에는 지점이 허용되지 않았다가 1844년 영업지역이 전국으로 확대되면서 지점도 허용됐다). 그러니까 회사 사무실은 인간의 육체에 해당한다. 영란은행은 곧 다른 회사들의 모범이 됐다. 영란은행의 정식 명칭은 ‘영란은행이라는 회사와 그 총재’였는데, 1820년 법인 설립이 자유화되자 ‘○○회사와 그 대표’라는 이름의 합자회사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났다(영란은행은 1946년 국유화됐는데, 그때 이름을 지금처럼 단순하게 고쳤다. 더이상 합자회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영란은행이 유럽 대륙까지 선도한 것은 아니다. 무역과 상업이 더 발달했던 네덜란드는 1602년 동인도회사를 세우면서 주식회사 개념까지 발명했다. 주식회사는 합자회사와 달리 다른 사원의 동의가 없어도 지분을 자유롭게 양도할 수 있다. 물론 주식회사도 자본금과 사무실을 중요한 존립기반으로 삼는다. 그것이 오늘날 각국의 민·상법이나 우리나라 국책기관 설립 법률에서 법인의 본점 소재지(그리고 자본금)를 중요하게 다루는 배경이다. #각국의 국책기관 중앙은행 본점 美 1개·스위스 2개 한은·산은 등 업무 특성 고려해야 본점 이전·균형발전 해법 고심을본점과 관련해서 가장 흥미로운 것은 미국의 중앙은행이다. 연방준비법(연준법)에서는 땅이 3회, 건물이 16회나 언급된다. 그러다 보니 이 법이 도대체 중앙은행법인지, 부동산회사법인지 모를 정도다. 심지어 지점(지역연방준비은행)은 여러 개 건물을 가질 수 있지만 워싱턴DC의 본점(연방준비위원회)은 단 1개 건물만 갖는다는, 시시콜콜한 내용까지 담겨 있다(제10조 제3항). 그 바람에 1974년 본점 별관건물(마틴 빌딩)을 지을 때 연준법 위반이라는 시비가 벌어지기도 했다. 그때 연준 당국은 본관과 별관이 지하로 연결돼 있어 “두 건물은 동일한 주소를 쓰는, 법률상 하나의 건물”이라는 답변을 내놓았다. 터무니없이 군색한 변명이다. 그런 설명대로라면, 지하로 연결된 모든 빌딩들은 1개 건물이라는 말이 아닌가! 스위스국립은행법(제3조)은 정반대다. 베른과 취리히에 본점을 두도록 하고 있어 중앙은행 본점이 2개다. 금융 중심지인 취리히의 규모가 훨씬 크고, 수도 베른에는 총재와 일부 직원들만 근무한다. 불편하다. 그런 불편함을 감수하는 이유는 사회적 통합 때문이다.사회적 통합이나 지역균형발전을 위해서는 한은, 산은, 수은도 본점을 여러 개 두거나 지방으로 옮길 수 있다. 그런데 인간에게 거주지가 제일 중요한 문제가 아니듯이 국책기관에도 본점 위치가 제일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설립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 최우선이다. 업무 특성을 무시한 채 본점만 이전하면, 설립 목적을 달성하지 못할 수 있다. 스키장을 바닷가로 옮기는 것을 생각해 보라. 다시 말해서 지역 균형발전만 생각하다 보면 교각살우(矯角殺牛)의 실수를 저지르기 쉽다. 세종시의 정부청사를 해체하고 정부부처를 전국으로 흩뿌리는 것이 지역 균형발전의 좋은 해법이 아니라면, 국책기관 본점들을 여기저기 흩뿌리는 것도 좋은 해법은 아니다. 새 정부가 조금 더 긴 호흡으로 공약을 살펴보기를 기대한다. 객원논설위원·한국은행 자문역
  • 靑 새달 10일 개방…사전관람 접수 100만 돌파

    靑 새달 10일 개방…사전관람 접수 100만 돌파

    새달 10일 정오 개방되는 청와대 개방 관람 누적 신청자가 100만명을 돌파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청와대 이전 태스크포스(TF)는 “오늘 0시 기준 청와대 관람 누적 신청자는 112만4372명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 개방 첫날 관람 신청자 8만명 넘겨 TF에 따르면 개방 첫날인 새달 10일 관람 신청자는 8만3355명이다. 당일 2만6000명까지 관람할 수 있고 11일부터는 3만9000명까지 가능하다. 청와대 개방 시간은 새달 10일 취임식 당일만 정오부터 오후 8시까지다. 11~21일까지는 오전 7시부터 오후 7시까지 관람할 수 있다. ● 사전 접수·추첨 통해 관람 TF는 지난 27일 오전 10시부터 네이버, 카카오톡, 토스를 통해 관람 사전 접수를 하고 있다. 신청 접수는 ▲개인(1~4명) ▲단체(30~50명) ▲65세 이상 어르신 및 장애인(1~4명)으로 구분해 진행 중이다. 방문자는 추첨을 통해 선정되며 첫날 관람 신청자에 대한 당첨 알림은 새달 2일 오후 2시까지 개별통지된다. 당첨되지 않은 경우에는 새로 원하는 날짜에 재신청할 수 있다. 자세한 내용은 청와대 개방 온라인소통관 ‘청와대, 국민품으로’에서 확인하면 된다. ● “국민 누구나 누릴 공간으로” 앞서 윤한홍 TF 팀장은 25일 언론 브리핑에서 “청와대는 조선시대 500년 그리고 대한민국 건국 이후 74년, 약 600년 동안 닫혀 있던 권력 상징의 공간”이라며 “그 공간이 새달 10일 국민의 품으로 돌아간다”고 밝혔다. 이어 “본관, 영빈관을 비롯해 최고의 정원이라고 불리는 녹지원과 상춘재가 있는 청와대는 국민 누구나 누릴 수 있는 열린 공간으로 재탄생한다”고 했다. 윤 팀장은 “입장 규모와 운영 방식은 국민 여러분의 관심도와 입장객 추이를 고려해 조정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청와대 본관과 대통령 관저 등 건물 내부와 출입 통제 구역은 당장 개방되지 않는다. 향후 주요 기록물과 통신시설, 보안이 필요한 문서 등을 정리한 후 전면 개방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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