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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년생 큰 욕심은 금물이다. 48년생 분주한 하루가 되겠다. 60년생 서둘러 행운을 잡아라. 72년생 복 충만하고 신수 좋다. 84년생 자만 말고 최선 다하라. 37년생 생각지 못한 행운 얻는다. 49년생 모든 일에 신중 기하라. 61년생 있는 그대로 보여 주어라. 73년생 일찍 귀가하면 기쁜 일. 85년생 마무리에 신경 써라. 38년생 일 처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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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남권 지하철역 35곳 생길 때… 구로 등 7개구엔 한 곳도 없었다

    강남권 지하철역 35곳 생길 때… 구로 등 7개구엔 한 곳도 없었다

    강남 업무시설 집중 감안해도 편중 심해교통 좋으면 시간적 편익 커 집값도 올라 90년대 후 새 지하철역 32% 강남4구에치중된 역세권 수혜… 동남권 ‘부의 쏠림’ 경제성 비중 큰 예타에 강남 집중 가속화“정부, 지역균형개발 중대하게 고려해야”서울 노원구에 사는 회계사 정모(29)씨는 지난달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해 회사 근처인 당산역 오피스텔로 이사했다. 직장을 가진 이후 2년여간 매일 2시간 40분씩을 출퇴근하는 데 쓰다 보니 몸과 마음이 지친 탓이다. 정씨는 집앞에서 버스로 10여분 떨어진 노원역에서 4호선을 탄 후 5호선 동대문역사공원에서 환승해 여의도까지 갔다. 서울시 인구밀도 최상위권인 상계5동에 있는 상계역을 지나는 4호선은 항상 서울 중심부로 출근하는 사람들로 꽉 차 진이 빠지곤 했다. 정씨는 “여름에는 땀냄새와 열기까지 더해 힘들었다”며 “2년간 출퇴근 고통을 겪다 보니 강북은 버린 도시라는 생각마저 들었다”고 말했다. 13일 서울신문이 박상혁 더불어민주당의원으로부터 입수한 서울시와 한국철도공사(코레일)가 운영하는 서울 370개 지하철역과 지난 30년간 신규 개통 지역을 5년 단위로 분석한 결과 강남 3구가 포함된 동남권(강남·서초·송파·강동) 지하철역 수는 총 94개로 자치구당 23.5개꼴에 달했다. 4개 자치구가 서울의 전체 지하철역 중 25.4%를 점유했다. 정씨가 사는 노원구의 지하철역 개수는 17개(환승역 중복집계)다. 반면 지난해 기준 인구수(노원 52만 7032명, 강남 54만 4055명)와 인구밀도(㎢당 노원 1만 4872명, 강남 1만 3773명)가 거의 비슷한 강남구에는 33개 지하철역이 몰려 있다. 강북이 차별받고 있다는 볼멘소리가 근거 없는 건 아닌 셈이다. 강남과 강북 간 격차는 권역별 지하철역 분석에서도 드러난다. 성동·광진·동대문·중랑·성북·강북·도봉·노원 등 8개 지역구가 포함된 동북권에는 100개의 지하철역이 있지만 자치구당 12.5개에 불과하다. 서북권(은평·서대문·마포)은 41개로 자치구당 13.7개, 서남권(강서·양천·영등포·구로·금천·동작·관악)은 81개로 자치구당 11.6개다. 임병철 부동산114 연구원은 “강남에 업무시설이 집중돼 있으니 교통이 집중되는 것이 맞지만 형평성을 따지자면 너무 강남에만 치중된 상황”이라고 말했다.교통 수단 중 지하철은 중요한 위상을 차지한다. 버스는 도로 교통 상황에 따라 유동적이어서 통근 거리가 길수록 도착 시간의 불확실성이 크다. 지하철은 장거리 이동에도 도착이 예측 가능하다. 황기연 홍익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지하철은 정시성을 보장한다는 점에서 직장인들의 통근 편익이 크다”면서 “교통이 좋다는 것은 그만큼 시간적 편익이 크다는 의미로, 해당 지역의 가치가 올라가 집값도 오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지하철역 편중의 수혜를 입은 대표적 지역이 강남이다. 이 같은 격차는 누가 초래한 것일까. 정부는 1960년대 서울의 폭발적인 인구 증가와 강북에 몰린 도심 기능을 분산시키고자 불모지였던 강남 개발에 착수했다. 주거 이전 촉진을 위한 과세 면제부터 명문고 이전 등 중앙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과 특혜에 힘입어 강남은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이 중 핵심적인 건 지하철 2호선, 한남대교와 강남고속터미널 등 교통 인프라다. 특히 1980~1984년 강남, 강북 등 서울을 순회하는 지하철 2호선 개통은 역세권 중심의 강남 개발에 불을 붙였다. 이후 서울 4대문 안 도심과 강남을 연결하는 3호선을 비롯해 1990년대까지 4~8호선이 개통된다. 강남구 다음으로 지하철역이 많은 송파구는 1996년 이후 14개의 지하철역이 신설됐다. 서울 지하철 노선의 ‘강남 쏠림’ 현상도 확인됐다. 1990년 이후 현재까지 서울에 신규 개통된 지하철역은 235개다. 이를 자치구별로 5년 단위로 쪼개 분석한 결과 강남4구 지역에만 76개가 개설됐다. 전체 32.3%다. 2000년 이후에도 동남권을 지나는 9호선과 신분당선 노선의 35개 지하철역이 새로 생겼다. ‘모든 길은 강남으로 통한다’는 말이 과언이 아닌 것이다. 서울 서북권에 신설된 지하철역은 2001년 이후 단 3개다. 서남권의 경우 21개 지하철역이 개통됐지만 개화에서 신논현역까지 연결된 9호선이 포함된 수치다. 동북권에 생긴 20개역 중 8개는 두 량짜리 단거리 경전철인 우이신설선이다. 광진구, 구로구, 금천구, 노원구, 은평구, 도봉구, 서대문구에는 2001년 이후 새로 생긴 지하철역이 없다. 강남 교통 집중 현상의 배경에는 1999년 도입된 예비타당성(예타) 제도가 있다. 도로·철도 관련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에 대한 우선순위, 적정 투자 시기, 재원 조달 방법 등 타당성을 검증해 국가 예산 낭비를 막는 제도가 역설적으로 ‘강남공화국’을 만든 주역이다. 유정훈 아주대 교통시스템공학과 교수는 “외국에서는 참고 지표 정도인 예타가 국내에서 절대적인 기준이 됐다”며 “정치권의 압력을 피할 수 있는 긍정적 측면도 있지만 경제성이 낮더라도 정책적으로 필요한 사업들이 배제됐다”고 했다. 경제성(BC) 평가가 핵심인 예타는 수익성과 유동인구 측면에서 유리한 강남이 포함된 사업들을 통과시켰다. 강남과 성남·분당, 수원·광교를 연결하는 신분당선은 2001년 예타를 통과한 뒤 2011년 개통됐다. 2015년 개통한 신논현~종합운동장 9호선 구간도 2005년 예타를 통과한 사업이다. 예타 제도가 강남 집중 현상을 가속화시킨 셈이다. 강경우 한양대 교통물류공학과 교수는 “강남은 무엇을 해도 경제성이 있다고 나오니 강남공화국 현상이 강화될 수밖에 없다”면서 “정부가 지역균형발전 측면을 중대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송수연·이태권 기자 songsy@seoul.co.kr 탐사기획부-안동환 부장, 박재홍·송수연·고혜지·이태권 기자
  • [단독] 이유 있는 통근 격차… 서울 지하철역 25% ‘강남 쏠림’

    [단독] 이유 있는 통근 격차… 서울 지하철역 25% ‘강남 쏠림’

    강남·서초·송파·강동 區당 23.5개꼴인구 비슷한 노원 17개 vs 강남 33개서울 노원구에 사는 회계사 정모(29)씨는 지난달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해 회사 근처인 당산역 오피스텔로 이사했다. 직장을 가진 이후 2년여간 매일 2시간 40분씩을 출퇴근하는 데 쓰다 보니 몸과 마음이 지친 탓이다. 정씨는 집앞에서 버스로 10여분 떨어진 노원역에서 4호선을 탄 후 5호선 동대문역사공원에서 환승해 여의도까지 갔다. 서울시 인구밀도 최상위권인 상계5동에 있는 상계역을 지나는 4호선은 항상 서울 중심부로 출근하는 사람들로 꽉 차 진이 빠지곤 했다. 정씨는 “여름에는 땀냄새와 열기까지 더해 힘들었다”며 “2년간 출퇴근 고통을 겪다 보니 강북은 버린 도시라는 생각마저 들었다”고 말했다. 13일 서울신문이 박상혁 더불어민주당의원으로부터 입수한 서울시와 한국철도공사(코레일)가 운영하는 서울 370개 지하철역과 지난 30년간 신규 개통 지역을 5년 단위로 분석한 결과 강남 3구가 포함된 동남권(강남·서초·송파·강동) 지하철역 수는 총 94개로 자치구당 23.5개꼴에 달했다. 4개 자치구가 서울의 전체 지하철역 중 25.4%를 점유했다. 정씨가 사는 노원구의 지하철역 개수는 17개(환승역 중복집계)다. 반면 지난해 기준 인구수(노원 52만 7032명, 강남 54만 4055명)와 인구밀도(㎢당 노원 1만 4872명, 강남 1만 3773명)가 거의 비슷한 강남구에는 33개 지하철역이 몰려 있다. 강북이 차별받고 있다는 볼멘소리가 근거 없는 건 아닌 셈이다. 강남과 강북 간 격차는 권역별 지하철역 분석에서도 드러난다. 성동·광진·동대문·중랑·성북·강북·도봉·노원 등 8개 지역구가 포함된 동북권에는 100개의 지하철역이 있지만 자치구당 12.5개에 불과하다. 서북권(은평·서대문·마포)은 41개로 자치구당 13.7개, 서남권(강서·양천·영등포·구로·금천·동작·관악)은 81개로 자치구당 11.6개다. 임병철 부동산114 연구원은 “강남에 업무시설이 집중돼 있으니 교통이 집중되는 것이 맞지만 형평성을 따지자면 너무 강남에만 치중된 상황”이라고 말했다.교통 수단 중 지하철은 중요한 위상을 차지한다. 버스는 도로 교통 상황에 따라 유동적이어서 통근 거리가 길수록 도착 시간의 불확실성이 크다. 지하철은 장거리 이동에도 도착이 예측 가능하다. 황기연 홍익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지하철은 정시성을 보장한다는 점에서 직장인들의 통근 편익이 크다”면서 “교통이 좋다는 것은 그만큼 시간적 편익이 크다는 의미로, 해당 지역의 가치가 올라가 집값도 오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지하철역 편중의 수혜를 입은 대표적 지역이 강남이다. 이 같은 격차는 누가 초래한 것일까. 정부는 1960년대 서울의 폭발적인 인구 증가와 강북에 몰린 도심 기능을 분산시키고자 불모지였던 강남 개발에 착수했다. 주거 이전 촉진을 위한 과세 면제부터 명문고 이전 등 중앙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과 특혜에 힘입어 강남은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이 중 핵심적인 건 지하철 2호선, 한남대교와 강남고속터미널 등 교통 인프라다. 특히 1980~1984년 강남, 강북 등 서울을 순회하는 지하철 2호선 개통은 역세권 중심의 강남 개발에 불을 붙였다. 이후 서울 4대문 안 도심과 강남을 연결하는 3호선을 비롯해 1990년대까지 4~8호선이 개통된다. 강남구 다음으로 지하철역이 많은 송파구는 1996년 이후 14개의 지하철역이 신설됐다. 서울 지하철 노선의 ‘강남 쏠림’ 현상도 확인됐다. 1990년 이후 현재까지 서울에 신규 개통된 지하철역은 235개다. 이를 자치구별로 5년 단위로 쪼개 분석한 결과 강남4구 지역에만 76개가 개설됐다. 전체 32.3%다. 2000년 이후에도 동남권을 지나는 9호선과 신분당선 노선의 35개 지하철역이 새로 생겼다. ‘모든 길은 강남으로 통한다’는 말이 과언이 아닌 것이다. 서울 서북권에 신설된 지하철역은 2001년 이후 단 3개다. 서남권의 경우 21개 지하철역이 개통됐지만 개화에서 신논현역까지 연결된 9호선이 포함된 수치다. 동북권에 생긴 20개역 중 8개는 두 량짜리 단거리 경전철인 우이신설선이다. 광진구, 구로구, 금천구, 노원구, 은평구, 도봉구, 서대문구에는 2001년 이후 새로 생긴 지하철역이 없다. 강남 교통 집중 현상의 배경에는 1999년 도입된 예비타당성(예타) 제도가 있다. 도로·철도 관련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에 대한 우선순위, 적정 투자 시기, 재원 조달 방법 등 타당성을 검증해 국가 예산 낭비를 막는 제도가 역설적으로 ‘강남공화국’을 만든 주역이다. 유정훈 아주대 교통시스템공학과 교수는 “외국에서는 참고 지표 정도인 예타가 국내에서 절대적인 기준이 됐다”며 “정치권의 압력을 피할 수 있는 긍정적 측면도 있지만 경제성이 낮더라도 정책적으로 필요한 사업들이 배제됐다”고 했다. 경제성(BC) 평가가 핵심인 예타는 수익성과 유동인구 측면에서 유리한 강남이 포함된 사업들을 통과시켰다. 강남과 성남·분당, 수원·광교를 연결하는 신분당선은 2001년 예타를 통과한 뒤 2011년 개통됐다. 2015년 개통한 신논현~종합운동장 9호선 구간도 2005년 예타를 통과한 사업이다. 예타 제도가 강남 집중 현상을 가속화시킨 셈이다. 강경우 한양대 교통물류공학과 교수는 “강남은 무엇을 해도 경제성이 있다고 나오니 강남공화국 현상이 강화될 수밖에 없다”면서 “정부가 지역균형발전 측면을 중대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송수연·이태권 기자 songsy@seoul.co.kr 탐사기획부-안동환 부장, 박재홍·송수연·고혜지·이태권 기자
  • 강남권 지하철역 35곳 생길 때… 구로 등 7개구엔 한 곳도 없었다

    강남권 지하철역 35곳 생길 때… 구로 등 7개구엔 한 곳도 없었다

    서울 노원구에 사는 회계사 정모(29)씨는 지난달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해 회사 근처인 당산역 오피스텔로 이사했다. 직장을 가진 이후 2년여간 매일 2시간 40분씩을 출퇴근하는 데 쓰다 보니 몸과 마음이 지친 탓이다. 정씨는 집앞에서 버스로 10여분 떨어진 노원역에서 4호선을 탄 후 5호선 동대문역사공원에서 환승해 여의도까지 갔다. 서울시 인구밀도 최상위권인 상계5동에 있는 상계역을 지나는 4호선은 항상 서울 중심부로 출근하는 사람들로 꽉 차 진이 빠지곤 했다. 정씨는 “여름에는 땀냄새와 열기까지 더해 힘들었다”며 “2년간 출퇴근 고통을 겪다 보니 강북은 버린 도시라는 생각마저 들었다”고 말했다. 13일 서울신문이 박상혁 더불어민주당의원으로부터 입수한 서울시와 한국철도공사(코레일)가 운영하는 서울 370개 지하철역과 지난 30년간 신규 개통 지역을 5년 단위로 분석한 결과 강남 3구가 포함된 동남권(강남·서초·송파·강동) 지하철역 수는 총 94개로 자치구당 23.5개꼴에 달했다. 4개 자치구가 서울의 전체 지하철역 중 25.4%를 점유했다. 정씨가 사는 노원구의 지하철역 개수는 17개(환승역 중복집계)다. 반면 지난해 기준 인구수(노원 52만 7032명, 강남 54만 4055명)와 인구밀도(㎢당 노원 1만 4872명, 강남 1만 3773명)가 거의 비슷한 강남구에는 33개 지하철역이 몰려 있다. 강북이 차별받고 있다는 볼멘소리가 근거 없는 건 아닌 셈이다. 강남과 강북 간 격차는 권역별 지하철역 분석에서도 드러난다. 성동·광진·동대문·중랑·성북·강북·도봉·노원 등 8개 지역구가 포함된 동북권에는 100개의 지하철역이 있지만 자치구당 12.5개에 불과하다. 서북권(은평·서대문·마포)은 41개로 자치구당 13.7개, 서남권(강서·양천·영등포·구로·금천·동작·관악)은 81개로 자치구당 11.6개다. 임병철 부동산114 연구원은 “강남에 업무시설이 집중돼 있으니 교통이 집중되는 것이 맞지만 형평성을 따지자면 너무 강남에만 치중된 상황”이라고 말했다.교통 수단 중 지하철은 중요한 위상을 차지한다. 버스는 도로 교통 상황에 따라 유동적이어서 통근 거리가 길수록 도착 시간의 불확실성이 크다. 지하철은 장거리 이동에도 도착이 예측 가능하다. 황기연 홍익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지하철은 정시성을 보장한다는 점에서 직장인들의 통근 편익이 크다”면서 “교통이 좋다는 것은 그만큼 시간적 편익이 크다는 의미로, 해당 지역의 가치가 올라가 집값도 오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지하철역 편중의 수혜를 입은 대표적 지역이 강남이다. 이 같은 격차는 누가 초래한 것일까. 정부는 1960년대 서울의 폭발적인 인구 증가와 강북에 몰린 도심 기능을 분산시키고자 불모지였던 강남 개발에 착수했다. 주거 이전 촉진을 위한 과세 면제부터 명문고 이전 등 중앙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과 특혜에 힘입어 강남은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이 중 핵심적인 건 지하철 2호선, 한남대교와 강남고속터미널 등 교통 인프라다. 특히 1980~1984년 강남, 강북 등 서울을 순회하는 지하철 2호선 개통은 역세권 중심의 강남 개발에 불을 붙였다. 이후 서울 4대문 안 도심과 강남을 연결하는 3호선을 비롯해 1990년대까지 4~8호선이 개통된다. 강남구 다음으로 지하철역이 많은 송파구는 1996년 이후 14개의 지하철역이 신설됐다. 서울 지하철 노선의 ‘강남 쏠림’ 현상도 확인됐다. 1990년 이후 현재까지 서울에 신규 개통된 지하철역은 235개다. 이를 자치구별로 5년 단위로 쪼개 분석한 결과 강남4구 지역에만 76개가 개설됐다. 전체 32.3%다. 2000년 이후에도 동남권을 지나는 9호선과 신분당선 노선의 35개 지하철역이 새로 생겼다. ‘모든 길은 강남으로 통한다’는 말이 과언이 아닌 것이다. 서울 서북권에 신설된 지하철역은 2001년 이후 단 3개다. 서남권의 경우 21개 지하철역이 개통됐지만 개화에서 신논현역까지 연결된 9호선이 포함된 수치다. 동북권에 생긴 20개역 중 8개는 두 량짜리 단거리 경전철인 우이신설선이다. 광진구, 구로구, 금천구, 노원구, 은평구, 도봉구, 서대문구에는 2001년 이후 새로 생긴 지하철역이 없다. 강남 교통 집중 현상의 배경에는 1999년 도입된 예비타당성(예타) 제도가 있다. 도로·철도 관련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에 대한 우선순위, 적정 투자 시기, 재원 조달 방법 등 타당성을 검증해 국가 예산 낭비를 막는 제도가 역설적으로 ‘강남공화국’을 만든 주역이다. 유정훈 아주대 교통시스템공학과 교수는 “외국에서는 참고 지표 정도인 예타가 국내에서 절대적인 기준이 됐다”며 “정치권의 압력을 피할 수 있는 긍정적 측면도 있지만 경제성이 낮더라도 정책적으로 필요한 사업들이 배제됐다고 했다. 경제성(BC) 평가가 핵심인 예타는 수익성과 유동인구 측면에서 유리한 강남이 포함된 사업들을 통과시켰다. 강남과 성남·분당, 수원·광교를 연결하는 신분당선은 2001년 예타를 통과한 뒤 2011년 개통됐다. 2015년 개통한 신논현~종합운동장 9호선 구간도 2005년 예타를 통과한 사업이다. 예타 제도가 강남 집중 현상을 가속화시킨 셈이다. 강경우 한양대 교통물류공학과 교수는 “강남은 무엇을 해도 경제성이 있다고 나오니 강남공화국 현상이 강화될 수밖에 없다”면서 “정부가 지역균형발전 측면을 중대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송수연·이태권 기자 songsy@seoul.co.kr 탐사기획부-안동환 부장, 박재홍·송수연·고혜지·이태권 기자
  • [씨줄날줄] 베이조스의 우주 여행/김상연 논설위원

    [씨줄날줄] 베이조스의 우주 여행/김상연 논설위원

    인류가 최초로 우주를 비행한 건 지금으로부터 60년 전이다. 옛소련의 유리 가가린은 1961년 4월 12일 우주선 보스토크 1호를 타고 1시간 48분 동안 지구의 상공을 일주했다. 달에 먼저 간 건 미국이었다. 닐 암스트롱은 1969년 인류 최초로 달 표면에 발을 내디뎠지만 절구 찧는 토끼나 계수나무는 발견하지 못했다. 일본은 1990년, 대한민국은 2008년에 우주인을 배출했다. 하지만 이들은 어디까지나 고도의 훈련을 받은 전문 우주인이었고 일반 관광객은 아니었다. 관광으로서의 우주 여행은 먼 미래의 일로만 여겨졌다. 외국의 몇몇 갑부가 천문학적인 비용을 지불하고 우주를 여행했다는 뉴스가 간혹 보도됐으나 일반인에게 체감되지는 않았다. 평범한 일반인도 우주를 여행하는 꿈같은 일이 가능할 것처럼 흥분시킨 사람은 민간 우주 탐사 기업 스페이스X를 세운 일론 머스크(50)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다. 4년 전 머스크는 2024년까지 화성에 인간을 보낼 것이라고 호언장담하면서 비용은 1인당 10만~20만 달러로 설정했다. 그런데 제프 베이조스(57) 아마존 창업자가 다음달 CEO에서 물러난 뒤 우주 여행을 갈 계획이라고 어제 돌연 밝혀 세상을 놀라게 했다. 그는 인스타그램에 “다섯 살 때부터 우주 여행을 꿈꿨다. 7월 20일에 동생과 함께 여행을 떠날 것이다. 가장 위대한 도전을 가장 친한 친구와 함께”라고 썼다. 베이조스는 자신이 2000년 설립한 민간 우주탐사 기업 ‘블루 오리진’의 첫 유인 캡슐을 타고 지구 표면에서 100㎞ 상공에 도착해 우주 풍경을 즐기다가 낙하산으로 지구에 귀환할 계획이다. 선도적 우주 개척자라는 이미지를 가꾼 머스크로서는 한 방 먹은 셈이 됐다. 어떤 사람들은 코로나19 같은 감염병에 허둥대는 등 지구의 비밀도 다 캐내지 못한 인류가 주제넘게 무슨 우주 여행이냐고 냉소한다. 하지만 인류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 모든 문제가 단계별로 전부 해결된 뒤 체계적으로 전진한 건 아니었다. 호모사피엔스는 특유의 호기심과 탐욕을 주체하지 못하고 중구난방으로 진화해 왔다. 어쩌면 이것이 인류의 위대한 특성인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우주를 향한 인류의 도전은 국적을 초월해 경외감을 준다. 하지만 미국의 기업가들을 보면 한편으로 부러운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혁신적 아이디어로 많은 돈을 번 부자들이 재산을 자식에게 물려주거나 현실에 안주하는 대신 커다란 리스크를 안고 인류의 꿈에 도전하기 때문이다. 부동산으로 돈을 벌거나 알량한 정치 권력을 잡느라 좋은 머리를 쓰는 대신 인류의 진보를 향한 꿈에 도전하는 한국의 인재는 없을까. carlos@seoul.co.kr
  • [김대영의 무기 인사이드] ‘수도 서울 지키는 방패부대’ 창설 60주년 육군 수도방위사령부

    [김대영의 무기 인사이드] ‘수도 서울 지키는 방패부대’ 창설 60주년 육군 수도방위사령부

    958만여 명이 살고 있는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 우리 군에는 수도 서울을 지키는 특별한 부대가 있다. 바로 육군 수도방위사령부이다. 지난 6월 1일 육군 수도방위사령부(수방사)가 창설 60주년을 맞았다. 수방사는 1961년 서울시 용산구 후암동에서 육군 수도경비사령부(수경사)로 최초 창설되었다. 이후 1984년 사단급 부대에서 군단급 부대로 개편되면서, 오늘날의 수도방위사령부라는 이름을 갖게 된다. 과거 수경사 시절에는 한강 이북의 수도 일원과 특정경비구역으로 관할 구역이 한정돼 있었지만, 수방사로 개편되면서 한강 이남 지역까지 확대된다. 육군 중장이 지휘하는 수방사의 임무는 크게 네 가지로 분류된다. 수도방위사령부령에 따르면 수도방위, 특정경비구역의 경비, 천재 및 지변 그리고 기타 재해의 경우에 인명 또는 재산을 보호하기 위하여 필요한 지원, 기타 안전 질서의 유지를 위하여 필요한 조치로 알려지고 있다.수방사는 지역방위사단 2개와 1개 여단 그리고 각종 지원 부대들을 두고 있다. 수방사는 육군 미사일 사령부 그리고 제2작전사령부와 함께 유사시 한미연합사령부에 소속되지 않는 부대로 알려져 있다. 우리 군 단독으로 운용하는 부대인 것이다. 또한 수방사 사령관은 국군조직법 제9조 제3항의 규정에 의해, 합동참모의장의 작전지휘 및 감독을 받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육군참모총장의 명을 받아 사령부의 업무를 통할하고 사령부에 예속 또는 배속된 부대를 지휘 및 감독한다.수방사는 60년의 기간 동안 서울 시민과 함께하고, 시민이 필요할 때 지원하는 부대였다. 수방사는 1986년 아시안게임, 1988년 서울올림픽, 2002년 한일월드컵 등의 세계적인 스포츠 행사와 2010년 핵안보정상회의 그리고 G20 정상회의의 성공적인 개최를 지원했다. 하지만 어두운 역사도 있다. 그 동안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군사정변 즉 쿠데타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 부대이기도 하다. 수경사의 모체라고 할 수 있는 제6관구사령부는 5.16 군사정변을 일으켰다. 또한 12.12사태 때는 수경사 예하 부대들이 반란에 동조했고 일부는 진압에 동원되기도 했다.서울시 관악구 남현동에 위치한 수방사는 수도방위와 함께 특정경비구역 즉 청와대의 경비도 맡고 있다. 특히 수방사 예하 제1경비단은 청와대 외곽 경비를 담당하고 있으며, 제1방공여단은 서울 하늘의 든든한 방패로 알려져 있다. 이밖에 제35특공대대는 수방사 직할 특공대로 대테러작전에 특화되어 있다. 제35특공대대에는 우리 군 유일의 여군특수부대인 독거미부대 특수임무중대가 있다. 김대영 군사평론가 kodefkim@naver.com
  • 청춘맨숀 모던보이와 ‘삐-루 ’ 한 잔, 구상·이중섭과 노포 속 추억 한 잔

    청춘맨숀 모던보이와 ‘삐-루 ’ 한 잔, 구상·이중섭과 노포 속 추억 한 잔

    지난주에 대구를 찾았다. 광역시인 대구에는 많은 명소가 있지만 오로지 ‘힙성로’를 둘러보기 위함이다. 서울에 힙지로(을지로)가 있다면 대구에는 힙성로(북성로)가 있다. 요즘 대구 시민과 관광객에게 인기몰이 중인 북성로 일대를 부르는 별칭이다. 철가루 휘날리던 공구 상가와 토끼굴 같은 한옥 골목이 있던 낡은 원도심이 젊은 셰프와 바리스타, 예술가들이 모여드는 트렌드 중심 거리로 탈바꿈했다.●북성로 공업사 골목… 기술·예술 복합창작 공간으로 탈바꿈 망치나 너트, 혹은 십자와 일자 드라이버에다 드릴까지 갈아 낄 수 있는 근사한 전동공구를 사려고 간 것은 물론 아니다. 쓸 일도 없거니와 무척 화가 났을 때 외엔 이런 걸 찾지도 않는다. 북성로를 찾은 이유는 ‘이곳에 오면 뭔가 기분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느낌’ 때문이었다. 귀에 낯선 이들이 많을 테니 우선 북성로(北城路)가 뭔지 알아보자. 북성로는 대구 한복판의 옛 대구읍성 북쪽 거리를 이른다. 일제강점기에는 일본 상인들이 많이 들어와 상권을 형성하며 순식간에 커졌다. 이 지역을 모토마치(元町)라 불렀다. 혼마치(本町)로 경계를 이룬 길 건너 포정동에도 일본인 거류민이 몰려왔다. 옛 대구읍성이 허물어진 자리에 새로운 중심가 모토마치가 조성되면서 일본인들에 의해 꽤 분주한 상권이 생겨났다. 근대식 극장, 식당, 다방 등 최신 상업 시설이 들어와 거리를 채웠다. 일본 미나카이(三中井) 백화점 조선 1호점도 이곳에 들어섰다. 백화점엔 조선 팔도에 보기 드문 엘리베이터도 있었다.조선인도 그 사이를 비집고 점포를 냈다. 고 이병철 삼성 회장도 이곳에 국수 등 식료품을 팔던 삼성상회를 열며 창업했다. 지금도 그 자리가 보존돼 있다. 늘 돈이 돌던 곳이라 신기한 현대 물품들이 선을 보인 곳이기도 하다. 각지에서 ‘모던보이’와 ‘신여성’이 모여들며 커피와 ‘삐-루’, 댄스 등 신문물을 즐겼다. 요즘으로 따지자면 스타필드 1호점에다 현대명품아울렛, 홍대 클럽가, 이태원 먹자골목이 동시에 한곳에 생긴 것이다. 우현서루 같은 민족교육기관도 들어섰다. 당시 대구에서 활동하던 시인, 소설가 등 문인과 화가, 음악가 등 예술인들도 향촌동과 북성로 일대에 모여 전시회나 발표회를 여는 등 문예의 요람이 되기도 했다. 신문 기사도 쓰고 자기 글도 쓰는 언론인도 모였다. 마치 19세기 프랑스 파리 생제르맹 거리 같았다. 국내 최초 음악감상실인 ‘녹향’(현 대구문학관 지하1층)도 광복 직후인 1946년 이곳에 자리를 틀었다. 구하기 힘든 음반을 들여다 놓고 고급 축음기로 들려줬다. 1950년대 북성로에 공구와 소재, 기계부품 가게가 생겨난 것은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물자를 팔던 거리에서 유래됐다. 이후 대구에 섬유와 식품산업이 발전하며 관련 부품과 소재를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기지창 역할을 담당했다. 자본과 기술이 서울을 넘볼 정도였다. 북성로는 대한민국 산업을 대표하는 공업 거리가 됐고, 한때 “마음만 먹으면 탱크도 만들어 낸다”는 말이 돌았다. 그 기술이 지금은 예술이 됐다. 공구골목 사이로 들어가면 북성로기술예술융합소 ‘모루’가 있다. 장인의 경지에 오른 기술인과 예술인들의 컬래버레이션(이종협업)과 기술 전승을 목적으로 세운 공간이다. 원래 ‘달방’(월세방)을 하던 쪽방여관 건물을 ‘기술×예술’ 복합창작 공간으로 바꿔 놓았다. 북성로의 정체성을 여실히 내보이는 곳이다. 현재는 북성로 1가와 바로 붙은 향촌동이나 교동, 서성로 일대까지 뭉뚱그려 ‘힙성로’라 부른다. MZ세대에겐 좁은 골목길과 낮은 건물, 그리고 그 사이사이에 세련된 카페와 갤러리, 공방, 베이커리, 바(Bar)가 기존 노포와 함께 공존하는 모습이 무척이나 ‘힙’(hip)했던 덕이다. 세련되고 유행에 민감하다는 ‘힙’이다. ●철물점 옆 모퉁이 카페 … 젊은 작가 모이는 문화놀이터 옛 북성로는 ‘아재들’의 거리였다. 평균연령이 마흔을 족히 넘었고 성비는 8대2 정도로 중년 남성 비율이 높았다. 서울로 따지면 영등포구 문래동 일대와 닮아 있었다. 1980년대 초반, 길거리에서 눈만 마주쳐도 싸우자고 덤벼들던 ‘춘추전국’의 시대엔 아마 발걸음조차 딛기 꺼리던 곳이었을 게 분명하다. 대구은행 북성로 지점을 끼고 돌면 온통 철물점이다. 가게마다 트럭들이 ‘스뎅’(스테인리스) 봉과 파이프를 내리고 모터를 싣는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풍경이지만 수창초등학교로 향한 좁은 골목을 들어서니 작은 카메라를 든 젊은 남녀가 셀피를 찍고 있다. 벽면에는 알록달록 벽화가 그려졌고 얼핏 봐도 관광객으로 보이는 여성들도 두셋 돌아다니고 있다. 달달한 블루베리 요거트를 마실 수 있는 모퉁이 카페도 있다. 북성로엔 이처럼 구(舊)와 신(新)이 공존한다. 영신(迎新)하긴 했어도 아직 송구(送舊)하진 않았다. 북성로의 수십년 역사 중 아주 생경한 풍경일 테지만 언젠가부터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있다.갑자기 ‘물’이 바뀐 것은 아니다. 1976년부터 전매청 연초제조창 직원 관사로 사용됐던 수창청춘맨숀은 2016년 문체부 도심 재생 사업에 선정되며 환골탈태했다. 낡은 아파트 숙소의 외벽은 그대로 살리면서 내부를 ‘문화 놀이터’로 만들었다. ‘수창청춘맨숀’으로 명명한 뒤 젊은 작가들이 입주하고 저마다 자신의 창의력을 뽐내는 무대이자 갤러리가 됐다. 얼마 전 유엔이 발표한 연령 구분에 따르면 65세(그것도 만으로)까지 청년이니, 누구든 청춘맨숀에 들러 쉬어 간대도 어색하지 않을 선택이다. 수창청춘맨숀에서 8월 26일까지 ‘미래는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상상하는 것이다’를 전시한다. 이달 매주 토요일 오후 4시에 거리극, 창작국악, 낭독뮤지컬, 다원예술 등을 소재로 수창청춘극장도 열린다. 일본인 상권이 장악한 북성로였지만, 항일애국지사 150명을 배출한 사학 우현서루(友弦書樓)도 있었다. 현재 북성로 대구은행 자리가 바로 우현서루다. 우현서루는 을사늑약 체결 직전인 1904년 이상화 시인의 조부 이동진 선생이 창설한 사학이다. 큰아들 소남 이일우 선생은 1만여권의 서적을 수입해 들여 놓고 매년 젊은 지식인을 뽑아 먹이고 재워 가며 가르쳤다. 1911년 일제에 의해 강제 폐쇄될 때까지 구국 운동의 요람 역할을 했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이상화 시인은 소남의 조카다. 이곳을 거쳐 간 독립지사들의 이름만 들어도 놀란다. 박은식(상해 임시정부 대통령), 이동휘(임시정부 국무총리), 장지연(황성신문 주필), 여운형(조선건국동맹), 김지섭(이중교 폭탄투척 지사) 등이다. 폐쇄 이후엔 훗날 대륜고등학교의 뿌리가 된 교남학원이 들어섰는데 교사가 이상화, 학생이 이육사였다. 건물 밖에 우현서루 이미지를 형상화해 놓았고. 내부에는 유물과 관련자료를 전시하고 있다.●이중섭 드나들던 백록다방 재현한 향촌문화관 북성로에서 중앙로 쪽으로 길을 건너면 오른쪽으로는 포정동, 왼쪽으로는 향촌동이 나온다. 서울에서 충무로나 종로 일부까지 ‘힙지로’라 부르듯, 보통은 포정동, 향촌동, 교동 일부까지 묶어서 ‘힙성로’라 지칭한다. 북성로에 큼직큼직한 산업시설이 많았다면 향촌동 쪽에는 일제강점기부터 자잘한 상업시설이 즐비했다. 꽃자리 다방 등 다방과 술집, 여인숙과 골목 사이엔 주택도 많은 데다 늘 대구역을 오가는 이들이 많아 향촌동 좁은 골목이 인산인해를 이뤘다.현재 힙성로의 힙한 매력은 어쩌면 70여년 전부터 시작된 것일지도 모른다. 동성로와 수성못 주변에 ‘빼앗긴 상권에도 봄은 다시 왔으니까’ 말이다. 향촌문화관에 가면 그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다. 당시 ‘리즈’ 시절을 보냈던 향촌동 풍경이 여러 전시물 형태로 있다. 대구 최초 대중교통 부영버스가 거리에 서 있고 오랜 대폿집과 막걸리집이 있다. 피란을 온 이중섭이 매일같이 드나들며 담배 쌈지에 그림을 그렸던 백록다방(현 갤러리모델 자리), 호수다방, 화월여관(현재 판코리아 성인 콜라텍) 등도 디오라마와 포토존으로 현실 속에 재현해 놓았다. 3, 4층은 대구문학관이다. 시인 구상을 비롯해 현진건, 조지훈, 박두진 등이 대구 향촌동에서 서로 교분을 쌓으며 지냈다. 신상옥, 최은희 등 영화인도 이곳에 있었다. 향촌동 술집 대지바(현재 공사 중)에서 만나 술잔을 기울이며 시구를 나누고, 르네상스 음악감상실(현 판코리아 식당)에서 예술혼을 양육했다. 식민침탈 중에도, 동족상잔의 전쟁 중에도 향촌동은 너른 가슴으로 문학을 잉태하고 예술을 생산했다. “함께 읽고 더불어 크게 웃어주게나.” 향촌동에 살던 시인 구상은 이윤수에게 보낸 편지에 이렇게 썼다. 현재 대구문학관은 대구에서 활동하던 문인들의 육필 원고를 전시 중이다.●‘초토의 시’ 출판기념회 열렸던 꽃자리 다방 1930년대부터 대구 원도심 역할을 톡톡히 해 온 것이 현대에 들어선 오히려 개발을 더디게 했다. 너른 부지가 필요했던 개발 세력은 고불고불한 골목에 낡은 왜식 한옥과 초라한 저층 건물 투성이였던 향촌동과 북성로를 외면했던 것이다. 경상감영 공원이 위치한 포정동부터 향촌문화관까지 향촌동 골목을 둘러보면 화려했던 당시의 영화가 낡은 건물 사이로 투영돼 보인다. 대보백화점, 무궁화백화점 등 당시로선 으리으리한 중대형 유통 시설에다 양화점, 양장점 골목까지 이어지며 ‘대구 멋쟁이’들의 아지트가 되었다.맛 좋은 식당도 즐비했다. 그 유명한 뭉티기(생고기 육회)도 이곳에서 시작했다. 생고기며 불고기, 국숫집, 찌짐(전)집, 만두집, 냉면집, 곰탕집, 돼지국밥집 등이 향촌동 나들이를 나온 손님들로 긴 줄을 드리웠다. 저렴한 여인숙과 여관, 호텔 등도 곳곳을 채우며 영남 중심도시 대구의 숙박 기능을 담당했다. 극장 만경관 옆 사보이호텔은 1980년대 이 지역 랜드마크 역할을 했다. 한때 목욕탕이 딸린 여관으로 바뀌었다가 지금은 새 단장을 하고 다시 그 이름을 지켜 오고 있다. 덕분에 당시 향촌동 식당가의 불빛은 늦은 밤까지 이어져 대구의 뜨거운 밤을 밝히기도 했으나 1980년대 이후 동성로와 반월당, 수성못 인근으로 대구 중심 상권이 옮겨 가면서 ‘구 시내’로 몰락하는 듯했다.향촌동의 이미지는 2010년에 들어 비로소 재해석됐다. 골목 사이로 젊은 예술가들이 들어왔고 노회한 도시를 지키던 터주들은 이를 반겼다. 수제화 골목에는 달달한 디저트를 즐길 수 있는 베이커리와 향긋한 커피를 내리는 커피숍, 북카페 등이 들어왔다. 20·30대 시민과 관광객이 너도나도 향촌동을 찾기 시작했다.공구거리 북성로의 정체성을 재해석해 너트와 스패너 모양 마들렌을 구워 파는 북성로 공구빵(베이커리09)도, 예스러운 분위기를 고스란히 간직한 한옥 카페 퍼센트(%) 14-3, 직접 볶아 내린 커피가 맛있는 카페 향촌도 명소다. 예전 구상의 ‘초토의 시’ 출판기념회가 열렸던 자리를 루프톱 카페로 바꾼 꽃자리 다방, 골목 안 여인숙을 개조한 카페 ‘대화의 장’ 등은 금세 인스타그램 성지로 떠올랐다. 좋은 공간이 하도 많아 힙성로 카페 투어를 다니려면 시애틀 못잖게 ‘잠 못 드는 밤’을 각오해야 한다. 사람들이 몰리다 보니 저렴한 가격에 세련되고 단단한 솜씨의 수제 구두를 살 수 있다는 것이 알려지며 반세기 골목을 지켜 온 구둣방도 덩달아 매출이 올랐다. 공방이 인기를 끌며 그야말로 명실상부한 ‘한국의 밀라노’로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한밤에 북적이는 노포… 3000원에 맛보는 석쇠 불고기 원래 여름에 뜨거운 대구라지만 요즘 대구의 밤도 뜨겁다. 힙성로에 한옥이나 옛 여인숙을 개조한 게스트하우스와 부티크 호텔이 들어서며 맛난 음식에 술 한 잔 걸치는 나이트 라이프를 즐기고 가는 이들이 부쩍 늘었다. 같은 힙성로 구역 내에도 권역은 조금 다르다. 교동 쪽에는 새로 생겨난 현대식 바나 카페가 많고 중앙로를 건너오면 오래된 식당과 주점이 많다.원래부터 유명했던 ‘북성로 돼지불고기’와 ‘북성로 우동’을 필두로, 50년 이상 자리를 지켜 온 노포들에 젊은이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60년 전부터 생고기를 팔던 대폿집 ‘너구리’는 ‘옛날국수’와 합치며 낮엔 국수, 밤에는 술 손님을 받는데 가격이 아주 저렴하다. 넉넉한 양은 냄비 국수(현지에선 국시) 한 그릇에 단돈 2000원. 오리지널 경상도식 진한 멸치육수 국수를 맛볼 수 있다. 3000원을 더 내면 돼지고기를 얇게 저며 간장 양념에 재워 구워 낸 ‘석쇠 불고기’를 ‘반 인분’ 시켜 먹을 수 있다. 반 인분이라니, 얼마나 합리적인가. 무조건 2인분을 시켜야 되는 집이 수두룩한데 말이다. 게다가 소주 반 병도 팔면서 싫은 기색이 없다. 이것만으로도 힙성로의 경쟁력은 충분하지 않은가. 이 일대는 죄다 노포다. 모두가 상상 이상으로 저렴하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한성식당을 찾았다. 한 입 크기로 얇게 저며 내 불맛에 충실한 석쇠갈비와 쿰쿰한 된장찌개와 함께 마지막 금복주 한 잔의 얼큰함을 즐긴 후 숙소로 돌아오는 길. 70여년 전 어느 밤 이 변함없는 골목길을, 화가 이중섭도 시인 구상도 역시 비틀대며 걷고 있었을 것이라 가만 상상해 보니, 무척이나 영광이며 감회가 새롭다. 왜 낡아빠진 원도심 따위가 내게 이토록 확고한 여행 동기를 부여했는지 이제서야 이해할 것 같다. 글 사진 놀고먹기연구소장 demory@naver.com ■힙성로 여행 체크리스트 (지역번호 053) 어떻게 가지? 대구 지하철 1호선 중앙로 역에서 내리면 된다. 2, 3호선 청라언덕 역이나 1, 2호선 반월당 역에서 내려도 그리 멀지 않다. 버스는 대구콘서트하우스 앞이나 경상감영 앞 등의 노선을 타면 된다. 동대구역에선 401번, 909번, 708번, 급행1번 등이 경상감영공원 앞까지 간다. 뭘 먹지? 이 지역에는 노포들이 많다. 국수와 만두는 꼭 챙겨 먹어야 한다. 뭉티기(생고기)를 즐겨 보는 것도 좋다. 대구식 양념장이 색다르다. 좀더 새로운 스타일을 원한다면 동성로로 넘어가면 된다. 다락방만두는 찐교스, 군만두 등이 맛있고 저렴하다. 마산식당은 씨락육국수(시레기 육개장국수)와 돼지국밥이 유명하다. 한성식당은 석쇠갈비와 오뎅탕으로 술안주하기 좋은 곳. 된장찌개도 일품이다. 옛날국수(너구리 본점)는 2000원이란 황송한 가격에 멸치육수 국수를 맛볼 수 있다. 저녁에는 생고기와 간처녑을 먹으러 많이 찾는다. 상주식당은 추어탕으로 유명한 70년 동성로 노포다. 배추를 넣고 시원하게 끓여 낸다. 어디서 잘까? 여인숙을 개조한 게스트하우스가 많다. 모텔도 많지만 조금 낙후된 편. 도보로 이동하기 좋은 리버틴호텔도 있다. 간단한 조식도 준다. 헤븐스토리호텔은 대구역과 가깝다. 중앙로 역과 가까운 2월호텔(동성로점)은 진골목, 약령시 등에 접근하기 편리하다.
  • 추억의 영화관, 시민 품까지 험난한 길

    추억의 영화관, 시민 품까지 험난한 길

    인천시, 첫 실내극장 애관극장 매입 검토건물주는 역사적 가치 고려 비싼 값 불러시민단체, 미림극장도 도시재생 활용 제안 제주·강원도 오래된 극장 매입·보존 추진구도심이 침체하고 대형복합상영관 등에 밀리면서 경영난을 겪는 오래된 영화관을 매입해 지역문화예술 관련 중심 시설로 활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건물주는 역사성 등을 고려해 비싼 값을 불러 매입 과정이 순탄치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인천시는 국내 최초 실내극장으로 알려진 애관극장을 사들이는 방안을 검토한다고 2일 밝혔다. 시 관계자는 “시민사회단체들이 126년 된 애관극장의 보존 필요성을 제기해 이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애관극장이 1890년대 활동사진 상설관 ‘협률사’를 계승한 것인지 등을 따져보고 매입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인천시 관계자는 “현재 건물이 1960년대 이후 지어진 것이어서 근현대문화유산으로 보긴 어렵다”고 설명했다.이런 가운데 인천 미림극장도 시가 매입해 원도심 도시문화재생의 앵커(중심) 시설로 활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스페이스빔 등 지역 시민사회단체들은 지난 1일 낸 성명에서 “인천시나 인천도시공사가 미림극장을 매입하고 2030동인천 역전프로젝트의 앵커 문화시설로 활용하는 방안을 모색해 달라”고 했다. 미림극장은 1957년 11월 동구 송현동에 천막을 세워 무성영화를 상영한 것을 시작으로 이후 인천을 대표하는 영화관으로 사랑받았다. 대형 영화관에 밀려 2004년 7월 폐관했다가 2013년 10월 ‘인천시사회적기업협의회’가 노인을 위한 ‘추억극장 미림’으로 재개관해 운영하고 있다. 제주시는 2014년부터 도시재생 취지로 현대극장 건물 매입에 나섰지만 땅 주인이 2명인데다, 거래 가격이 맞지 않아 실현되지 않았다. 2018년에는 동문로 여관 등을 사들여 미술관으로 만든 아라리오 기업이 매입을 시도했으나 불발됐다. 1948년 개관한 제주극장이 있던 곳에 자리잡은 현대극장은 제주 정치·문화사의 기억을 고스란히 품었다. 해방 후엔 정치 집회장소로 활용됐고 1987년 폐업 때까지 공연장, 영화관 등으로 쓰였다. 강원 원주시는 50년 가까이 시민들의 희로애락이 깃든 아카데미극장 매입을 추진하고 있다. 1963년 8월 개관한 이후 원형이 잘 보존된 단관극장이다. 원창묵 원주시장은 지난달 17일 “시민사회 의견을 수렴한 뒤 매입해 문화재생사업의 하나로 상영관·공연장·전시실 등 시민 커뮤니티 공간으로 재현하겠다”고 밝혔다. 성급한 매입으로 예산을 낭비하기도 한다. 경북 경주시는 2011년 1월 고분정비사업구역인 노동동 37번지에 있는 명보극장 토지와 건물을 매입했다. 관광정보센터와 갤러리로 조성한다며 2013년 손질했으나, 특정 작가의 작품 판매 및 전시공간이라는 특혜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문화재청장 허가 없이 개축 및 용도 변경한 사실이 감사원에 적발돼 지난해 철거됐다. 민운기(57) 스페이스빔 대표는 “원도심 주민들의 추억이 깃든 옛 영화관이나 상징물들을 매입해 문화재생사업의 중심시설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종합적인 계획과 ‘감정평가’라는 현실 법의 한계를 넘어서고 보완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글 사진 한상봉 기자 hsb@seoul.co.kr
  • 「서울시의회 부활 30주년」 타임캡슐 수장품 공모전 접수기간 연장

    「서울시의회 부활 30주년」 타임캡슐 수장품 공모전 접수기간 연장

    서울시의회는 더 많은 시민참여를 위해 부활 30주년 기념 타임캡슐 수장품 공모전 접수 신청기간을 당초 5월 31일에서 6월 10일까지 연장한다고 밝혔다.타임캡슐 수장품 공모전은 서울시의회 부활 30주년을 기념하는 타임캡슐에 수장할 서울시의회와 관련된 물품을 공모·접수 받으며, 심사를 거쳐 선정된 30개의 수장품은 오는 7월 8일 서울시의회 부활 30주년 기념식에서 타임캡슐에 봉인되어, 2051년에 개봉될 예정이다. 공모신청은 서울시의회 홈페이지에서 참가양식을 다운로드해서 신청할 수 있으며, 공모전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은 서울시의회 홈페이지(smc.seoul.kr), 서울시의회 부활 30주년 홈페이지(30thsmc.modoo.at), 서울시의회 블로그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타임캡슐 수장품 공모 외에도 그림 및 슬로건 공모를 접수받고 있으며, 그림/슬로건 수상작 작품은 7월 8일 유튜브 온라인생중계로 진행하는 ‘서울시의회 부활 30주년 기념식’ 진행 도중 자막으로 발표할 예정이다. 서노원 서울시의회 사무처장은 “더 많은 시민참여를 위해 공모전접수기간이 연장된 만큼, 서울시의회 추억이 담긴 다양한 수장품이 접수될 수 있도록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바란다”고 전했다. 한편, 서울시의회는 1956년 초대, 1960년에 2대 의회가 개원하였으나, 1961년에 5·16 군사정변으로 인해 지방의회가 강제 해산되면서 긴 공백기를 겪게 되었다. 이후 1987년 전국적 반독재 민주화운동인 6·10 민주항쟁을 통해 시민이 주인 된 풀뿌리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지방선거가 재개돼 1991년 3대 의회가 출범하며 부활하였다. 서울시의회가 중단된 지 30년 그 후, 30주년을 맞이한 역사적 사실 앞에 서울시의회는 시민과 함께 달려온 그동안의 역사를 기념하고, 시민이 함께 참여하는 서울시의회를 만들어 나가기 위한 다양한 기념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마지막 황제 푸이와 다섯 여인

    마지막 황제 푸이와 다섯 여인

    중국에서 황제는 진시황 이래 2100여년간 약 500명에 이른다. ‘마지막 황제 푸이’라는 영화로 잘 알려진 청나라 선통제는 청나라 뿐 아니라 중국 역사의 마지막 황제다. 푸이에 관한 책은 국내에도 여러 종 나와 있다. 다만 그가 세 살에 황제에 오르기 전부터 그의 사후 현재 허베이성 이현의 공원묘지에 잠들기까지를 소개하는 것은 눈에 띄지 않는다. 더욱이 푸이 자신의 자서전 그리고 황제에서 죄수, 평민으로 바뀐 굴곡의 주요 고비를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본 가족과 측근, 태감(환관) 등의 눈을 통해 본 푸이의 인간적인 모습을 담은 것은 없다.푸이는 전범으로 수감되어 있을 때부터 특사를 받아 나온 직후 자신의 과거 행적을 정리한 자서전 ‘나의 전반생’을 남겼다. 그의 황후와 비, 귀인 그리고 평민으로 만난 부인 등 다섯 여인 중 네 번째와 다섯 번째 부인은 푸이와의 궁정 및 결혼 생활, 이혼 등의 경험을 상세히 기록했다. 여기에 가장 오랫동안 푸이를 그림자처럼 동행했던 동생 푸제, 창춘 위만황궁 시절 들어가 푸이와 함께 해 전쟁 포로로 잡혀갔고 소련 극동 옥중에서 ‘황태자’ 책봉까지 받은 조카 위옌, 푸이의 숙부와 황후 완룽의 동생 룬치, 청이 망한 뒤 푸이의 자금성 소조정 시절 푸이를 정신적 물질적으로 ‘서구화’시킨 영국인 스승 레지널드 존스턴 등이 가까이에서 본 푸이의 진면목을 전한다. 특히 푸이가 자금성에서 쫓겨나기 직전 궁에 들어간 뒤 푸이 곁에서 33년간을 있었던 환관(태감) 리궈슝의 증언은 ‘난폭한 황제질을 했던 푸이’를 고발한다. 저자는 문헌 자료를 바탕으로 푸이가 태어난 순친왕부, 황제로 살았던 자금성, 톈진으로 가기 전 머물렀던 베이징의 외교단지 거리 둥자오민샹, 톈진에서 7년을 보냈던 청나라 고관들의 별장 장위안과 징위안, 창춘의 위만황궁, 그의 3번째 황제 퇴위 발표 장소인 지린성 압록강변 마을 다리즈거우, 베이징 혁명공원묘지에서 푸이의 유골이 이장 안치된 허베이성의 화룽능원묘지 등을 둘러보며 지금 중국 땅 곳곳에 남아있는 푸이의 흔적을 전한다. 1967년 ‘마지막 황제’ 푸이가 사망했으나 중국에서 황제의 잔영이 사라지지 않는다. 2012년 11월 시진핑 총서기가 집권한 뒤 2년 뒤 시사주간 타임은 ‘Emperor Xi(시 황제)’라는 커버스토리 기사를 실었다. 미국의 중국 전문가 해리슨 솔즈베리는 1993년 ‘새로운 황제들’이라는 책에서 마오쩌둥과 덩샤오핑이 평등을 이념으로 한 신중국에서 사실상 새로운 황제로 부활했다고 전했다. 중국에서 ‘황제의 시대’는 끝났을까. 이 책은 이런 생각을 떨치지 못한 저자가 ‘먼저 마지막 황제가 어떻게 왔다 갔는지 보자’하고 찾아 나선 기록이다. 푸이가 살았던 시기 중국 대륙은 왕조와 체제가 완전히 바뀐 격변기였다. 청이 신해혁명으로 망하고 중화민국이 들어섰지만 항일 전쟁과 국공 내전이 동시에 전개됐다. 동북에는 10여 년간 일본 괴뢰 만주국이 세워졌다. 장제스를 몰아내고 마오쩌둥의 사회주의 신중국이 들어섰다. 중국에 문화대혁명의 광풍이 불기 시작할 때 푸이는 숨졌다. 시대의 격랑이 푸이 60년 굴곡의 역사에 겹겹이 투영되어 있다. 1부 ‘황혼의 제국’은 청말의 여걸 실세 권력자 자희 태후가 왜 세 살배기 푸이를 황제에 올렸는지, 청나라가 망했는데도 자금성 울타리 안에서 황제 노릇을 했던 푸이 그리고 결국 군벌 전쟁 과정에서 쫓겨나는 과정까지를 다룬다. 2부 ‘괴뢰 황제’는 푸이가 자신을 대륙 침략을 도구로 삼은 일본 제국주의 검은 속내를 꿰뚫지 못하고 미망에 빠져 괴뢰 황제 노릇을 했던 죄악의 기록이다. 그리고 일본이 2차 대전에서 패한 뒤 소련 극동과 신중국의 감옥에서 14년간 죄수 생활을 하며 황제 물을 빼고 개조되는 모습을 전한다. 제3부 ‘베이징 시민 푸이’는 1급 전범 푸이가 베이징 시민으로 돌아와 평민으로 살다간 8년 및 그가 떠난 후 마지막 부인의 삶을 전한다. 푸이는 ‘황제도 포용한 체제’라는 마오쩌둥의 구상에 따라 특사를 받아 석방된 뒤 전국정협 위원까지 지냈다. 문화대혁명의 광풍 속에서 반혁명 분자로 몰렸지만 마오와 저우언라이 총리의 보호 덕에 험한 꼴은 당하지 않았다. 푸이는 일찍이 황제에서 퇴위하고 평범한 시민으로 사망해 그의 유골은 청나라 황제들의 무덤이 모여있는 청서릉에 들어가지 못하고 그 담장 밖 공원묘지에 머물게 된 사연을 전한다. 부록의 푸이 ‘나의 자서전’ 서문에 대해 저자는 ‘죽을죄를 지었다 살아난 퇴임 황제의 반성문’은 이 정도는 되어야 하나 하는 마음으로 읽어 볼 만하다’고 권한다. 반성문은 특사를 받아서 나온 것에 대한 감사와 괴뢰 황제로서의 죄악 등을 반성하고, 자신을 개조시켜 포용한 사회주의 중국에 대한 찬양 등을 담았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시골마을에 왜 도서관 열었냐고? 여기서 머스크 나올 수도 있잖아”

    “시골마을에 왜 도서관 열었냐고? 여기서 머스크 나올 수도 있잖아”

    도서관은 시골 마을 산 중턱에 있었다. 지난달 5일 어린이날 이 조그만 도서관을 문 연 사람은 ‘한국 원자력의 대부’로 불리는 장인순(81) 전 한국원자력연구원장이다. 사람이 접근하기도 쉽지 않은 오지 마을에 장 전 원장은 왜 도서관을 만들었을까. 문 연 지 20일이 지난 25일 1호선 국도를 타다 좁은 시골길과 산길을 거쳐 세종시 전의면 유천리 ‘전의 마을 도서관’에 도착해 장 전 원장을 서울신문이 만났다. “시골에 도서관을 왜 만들었느냐”고 묻자 그는 대뜸 “여기서 일론 머스크나 빌 게이츠가 나오지 말란 법이 있느냐”며 “신도시에만 도서관이 많고 여기에는 없어 ‘아이들하고 뭔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마침 10년 전부터 대전 자택 이웃으로 인연을 맺어 수양딸이 된 라연희 ㈜고려전통기술 사장이 회사 2층 150㎡ 정도의 공간을 내줬다. 도검을 만드는 회사로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칼도 이곳 것이라고 장 전 원장은 홍보했다. 장 전 원장은 지난해 팔순을 맞아 쓴 책 ‘여든의 서재’에 적은 ‘책은 세상이며 삶이며 우주이다’, ‘이 하루는 왜 이렇게 소중한가’, ‘나는 내가 모른다는 사실을 안다’는 조선시대 실학자 이덕무와 소크라테스 등이 말한 세 문장을 들면서 “젊었을 때는 못 느꼈던 것들인데 나이 80이 되니까 소중하게 다가온 말들”이라며 “도서관을 만든 것도 아이들에게 이런 생각을 일찍 깨닫도록 해 주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그는 “‘여든의 서재’ 인세 5000만원으로 도서관 책을 구입하고 인테리어 비용을 댔다”고 말했다. 그는 “내가 어릴 적엔 학교에도 도서관이 없었고, 몽당연필에 침 묻혀 가며 글씨를 쓸 정도로 어렵게 공부했기 때문에 이곳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다”면서 “내 고향 마을이 아니어도 노년에 아이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어 날마다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그는 ‘갓김치’로 유명한 전남 여수 돌산 섬마을이 고향이다. ●“책·필기도구 든 가방이 진짜 명품이지” 아치형 도서관 출입구 두 기둥에 ‘2021 왜?’, ‘2121 WHY?’라고 적혀 있다. 장 전 원장은 “‘왜’라는 질문이 인류 역사를 끌어왔다”며 “이 근원적 질문이 바탕인 교육이 백년(2021~2121년)대계여서 그리 썼다”고 설명했다. 벽에 ‘공부는 머리가 아니라 엉덩이로 하는 거야’라는 글도 있다. 그는 “박경리 선생이 소설 ‘토지’ 20권을 쓰는 데도 얼마나 책상에 앉아 있었겠나”라고 웃었다. 도서관에 들어서자 5~6칸 나란히 세워진 책장에 책들이 빼곡히 꽂혀 있고, 그 앞에 모양이 제각각인 책상이 놓여 있다. 삼각형, 사각형, 오각형, 태극 모형, 초승달 모형 등 모양이 다 다르다. 모두 30여명이 앉을 수 있다. 장 전 원장은 “학생들에게 다양성을 보여 주고 심어 주기 위한 것”이라며 “우리 사회가 다양성이 부족하고 존중하지도 않지 않느냐”고 꼬집었다. 의자 색깔도 가지각색이다. 언제든 와서 책을 볼 수 있도록 연중 내내 24시간 개방한다. 장 전 원장은 “맘대로 책을 가져가고 낙서해도 된다. 그래서 대여기록도 하지 않는다”며 “정직성과 자율성을 가르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책 분리도 하지 않았다. 그는 “책을 찾는 노력이 필요하고 서점처럼 책장 넘기며 책을 찾는 재미도 있을 것 같아서”라고 말했다.시골 마을에 도서관이 생기자 학생들이 자주 찾는다. 270여명이 다니는 인근 전의초·중학생이 주요 고객(?)이다. 다만 버스정류장이 1㎞도 넘게 있어 찾아오는 길이 편하지는 않다. 장 전 원장은 “버스정류장에서 택시 타고 오면 돌아가는 택시비까지 내가 다 대준다”며 “문을 연 지 얼마 되지 않고 소문이 덜 나서인지 지불한 택시비는 아직 10만원이 넘지 않는다”고 귀띔했다. 조만간 도서관에서 수학과 물리도 가르치겠다는 장 전원장은 “사람들이 가장 안정적이라고 생각하는 네 다리 달린 책상보다 세 개짜리 책상이 비탈이든 어디든 세울 수 있는지 등 과학 및 수학의 원리를 알려주면 무척 재미있어 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어 그는 “코로나19 시대에도 학생이 부모 손잡고 오면 그렇게 예쁘고 반가울 수가 없다”고 했다. 한번은 자녀와 함께 도서관을 찾아온 어머니에게 “명품 가방이 뭔지 아느냐. 안에 책과 필기도구가 들어 있으면 그게 진짜 명품 가방이다”고 얘기하자 어머니는 “어머, 그런 말은 원장님한테서 처음 들었다”며 웃더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장 전 원장은 “우리 어머니는 내가 우라늄 농축과 관련된 불소학을 배우러 미국으로 유학을 떠날 때 가방에 태극기를 넣어줘 외국 생활 내내 힘이 됐다”면서 “그 어머니를 평생 한번 안아 드린 기억이 없어 지금도 가슴이 아프다”고 했다. 도서관에는 책 9000권이 있다. 인세 5000만원을 초등 필독서 2000권과 중고생 1000권 등 3000권을 구입하는 데 털어넣었다. 국립도서관에서 추천받은 것으로 소설, 수필, 위인전, 만화 등 다양하다. 2005년 원자력연구원장으로 퇴임한 뒤 구입해 읽은 책 4500권을 보탰다. 장 전 원장은 “그 기간이 가장 독서량이 많았을 때로 내가 좋아하는 로버트 프로스트 등 시집 1000여권도 있지만 인문학, 원자력 등 주로 어른 책”이라고 했다. 동네 한 아주머니가 200권을 기증했고, 교수들 여럿도 보내 줬다. 장 전 원장은 2004년 1월 자신이 원자력연구원장(당시는 연구소)으로 있을 때 만든 1호 연구소기업 한국콜마 공장이 전의면에도 있다고 인연을 강조하며 이곳에 도서관을 만들게 됐다고 했다. 원자력 개척 연구진답게 이번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서운함을 드러냈다. 그는 “요즘 문맹은 공부하지 않는 권력자와 공무원”이라며 “산유국도 원전을 만드는데 우리 정치인은 공부를 안 하니까 세상을 못 읽는다”고 꼬집었다. 장 전 원장은 “태양광은 하루의 절반은 빛이 없는 밤이고, 사막 모래바람 불으면 망가지기 때문에 중동 국왕이 ‘할아버지는 낙타 타고, 아버지는 자동차 타고, 나는 비행기 탔으니 아들은 우주선을 타야 하는데 다시 낙타 타게 생겼다’며 원전을 수입한다”고 했다. 장 전 원장은 “도대체 자기 나라는 탈원전하면서 수출이라니, 그 나라 원전을 사려는 국가가 얼마나 되겠나”라고 반문했다. 이어 그는 “원전은 수명이 60년이어서 그동안 핵연료를 팔고, 거액 받고 수리해 주고, 기술자 1000명이 일자리를 얻는 등 부가가치가 어마어마하다”면서 “그런데 탈원전하면 우수 학생이 원자력공학과를 가지 않아 원전 기술이 퇴보한다”고 했다. 2009년 아랍에미리트에 처음 20조원짜리 대용량 원자력을 수출한 뒤 요르단에 연구용 원자로, 사우디아라비아에 스마트원자로 등 세 가지 원자로를 수출한 유일한 국가가 됐다고 장 전 원장은 설명했다. 그는 “과학은 퇴보하는 법이 없고 더 안전해진다. 탈원전은 미스터리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도서관 옆에 화랑·劍박물관 열어 명소로” 장 전 원장은 매일 대전 집에서 직접 차를 몰아 오전 7시 도서관으로 출근한다. 왕복 100㎞ 거리다. 장 전 원장은 “아침 일찍 도서관에 오면 동네 등 하루 6㎞를 천천히 달리고 집에서 아령도 하며 건강을 관리해 먼 거리 차를 모는 것도 크게 힘들지 않다”고 했다. 도서관에 머물면서 회사 기술연구에 기술 조언도 한다. 도서관보다 더 넓은 옆 공간 벽에는 자신이 소장하던 것과 기증받은 미술품 30여점이 걸려 있다. 장 전 원장은 “손님을 기다리는 식당 주인처럼 어린 학생들을 기다리고 찾아오는 아이들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다만 식당 손님과 반대로 여기에 더 오래 머물면서 자신의 꿈을 키워 갔으면 좋겠다”며 “도서관 옆에 구상화·추상화가 섞였다고 이름 붙일 ‘비빔밥 화랑’과 전통 검 제작 회사의 특성을 살린 ‘검박물관’도 추가로 열어 명소로 만들자고 사장과 의기투합했다”고 웃었다. 글 사진 세종 이천열 기자 sky@seoul.co.kr
  • [이종락의 시시콜콜] 순자 의원이 문 대통령 앞에서 울먹인 까닭은

    [이종락의 시시콜콜] 순자 의원이 문 대통령 앞에서 울먹인 까닭은

    문 대통령과 한국계 하원의원 4명과 간담회에서순자 의원 “의원 선서때 한복 입어 감격”“한국인 엄마의 강인함을 본받고 싶어”미국을 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은 현지시간으로 20일 오후 워싱턴 D.C. 국회의사당에서 펠로시 하원의장을 비롯한 하원 지도부와 간담회를 가졌다. 이 자리엔 한국계 하원의원 4명도 모두 참석했다. 민주당 앤디 김 외교위 위원을 비롯해 메릴린 스트릭랜드(한국명 순자), 공화당의 영 김(김영옥) 하원 의원과 미셸 박 스틸(박은주) 하원 의원이 함께했다. 지난 1월 하원 의원 취임선서 때 한복을 입고 참석, 선서를 해 큰 화제가 된 메릴린 의원은 문 대통령 앞에서 울먹이는 표정까지 보였다고 청와대는 밝혔다. 미국 워싱턴주를 대표하는 순자 의원이 왜 울먹였을까. 아마도 자신의 절반인 한국의 대통령을 보면서 질기면서도 강인한 미나리 같았던 그의 삶이 순간 생각났던 건 아니었을까.순자 의원은 1962년 9월 한국인 어머니 김인민씨와 미군인 흑인 아버지 윌리 스트릭랜드 사이에서 태어났다. 1살 반 때 주한미군이었던 아버지가 버지니아주의 포트리 기지로 배치되면서 미국으로 건너왔다. 워싱턴대학에서 경영학을, 클라크애틀랜타대학에서 경영학석사(MBA)를 전공했다. 노던 생명보험사, 스타벅스 등을 거쳐 타코마 시의원으로 선출되며 정계에 입문했다. 2년간의 시의회 경험 뒤 타코마 시장에 당선돼 2010년부터 2018년까지 시장으로 재직했다. 타코마 시장으로는 첫 동양계였으며, 흑인 여성으로 타코마 시장에 당선된 것도 처음이었다. 지난해 11월 하원의원에 당선됨으로써 워싱턴주를 대표하는 첫 흑인 미국인이자, 230년 역사의 의회 역사상 첫 한국계 미국인 여성이 됐다.그는 한국인들도 촌스러워하는 ‘순자’라는 한국 이름을 자랑스러워 한다. 지난해 11월 ‘미국의 소리’(Voice of America)와의 인터뷰에서 “참 재밌는 것이 순자라는 이름은 제가 태어난 시기를 알려주고 있어요. 한국에서 특정 이름이 특정 기간 인기가 있었는데 제 이름이 그렇거든요”라고 말했다. 1960년대 초에 태어난 많은 여자 아이들이 ‘순자’라는 이름을 가졌다는 것을 가리킨다. 순자 의원은 이날 간담회에서도 취임 선서때를 떠올리며 “한복을 입고 의원 선서를 하게 돼 매우 감격적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실제로 의정 활동이나 언론과의 인터뷰때 마다 한국계란 자신의 정체성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정신적 유산을 소중히 여기는 모습을 보여왔다. 그는 타코마 시장 시절인 2016년 워싱턴대학 잡지에 “이 나라에 이민자로 온 엄마의 힘에 대해 생각한다. 나는 그녀의 회복력과 인내력, 강인함을 본받고 싶다”고 말했다. 또 노스웨스트 아시안 위클리와의 인터뷰에서는 자신의 정체성을 절반은 한국인, 절반은 흑인인 여성이라고 규정하며 “학교에서 잘하는 것은 내 부모가 내게 불어넣은 가치였기 때문”이라며 한국인 혈통을 이어 받은 것을 자랑스러워했다.  이종락 논설위원 jrlee@seoul.co.kr
  • [글로벌 In&Out] 재일 러시아 외교관의 심심풀이로 역사 만들기/바실리 V 레베데프 도쿄대 인문사회계연구과 박사과정

    [글로벌 In&Out] 재일 러시아 외교관의 심심풀이로 역사 만들기/바실리 V 레베데프 도쿄대 인문사회계연구과 박사과정

    160년 전인 1861년, 일본에서 첫 러시아어 교본이 출판되었다. 이 책을 집필한 이반 마호프(1820~1895)는 하코다테 주재 러시아영사관 부속 성당의 보제(輔祭) 겸 영사관 서기로 근무했다. 1855년, 러일화친조약에 따라 일본은 하코다테 등 지역에 러시아영사관의 설립을 허락했다. 1858년, 러시아 외교의 최전선에서 활동하고 싶어 하던 마호프에게 일본 파견 명령이 떨어졌다. 그는 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장행회에서 일기를 잘 쓰겠다는 약속을 하고 미지의 땅인 일본으로 출발했다. 현실은 그의 상상과 많이 달랐다. 유럽 수도에서 근무한 그에게 하코다테는 시골이었다. 1860년, 함께 일본에 파견된 그의 아버지가 건강상의 이유로 귀국한 후 마호프도 귀국원서를 냈으나 거부당했다. 아버지 귀국 후 할 일이 전혀 없던 마호프는 그 이름을 역사에 남길 ‘심심풀이’를 시작한다. 그는 회고록에서 이렇게 서술했다. “나는 오랫동안 심심풀이로 의미가 있는 일을 해볼까 생각해 왔다. 약초 채취는 우리들 중에도 하는 사람이 너무 많고 조개껍데기 수집도 전문가가 많다. 동물 박제 만들기는 생각만 해도 메스껍다. 그래서 문자교본을 써 보기로 했다. 어렵고 재미없는 작업이었지만 결과는 꽤 좋았다. 러시아 문자를 쓰고 일본어 발음을 표기한 종이를 일본인 친구들에게 보여 줬더니 그들은 발음이 너무 정확하다며 교본을 한 권씩 복사해 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붓으로 복사하는 것이 힘들다며 일본에서 책을 인쇄하는 방법과 하코다테 인쇄소 유무에 대해 물었다. 그들은 책 인쇄는 목판인쇄로 진행된다며 제대로 된 인쇄소는 에도(도쿄)나 교토밖에 없다고 했다. 하코다테에 조각가나 인쇄공이 있냐고 묻자 그들은 인쇄공은 게으른 사람이고 조각가는 사찰의 작은 석상을 만드는 사람이라고 대답했다. 나는 ‘하코다테란 아무것도 없는 시골이 아닌가’ 생각했다. 책 쓰는 것을 포기하고 싶었지만 심심해서 어쩔 수 없이 계속하기로 했다. 표지가 드디어 완성됐을 때 지인이 갑자기 조각가를 데리고 왔다. 종이를 자세히 살펴본 조각가가 목판을 만들어 보기로 하고 표지를 가져갔다. 8일이 지나서야 나타난 조각가는 엄청 어렵지만 새길 수 있었다며 목판을 나에게 건네줬다. 글자는 자세히 살펴보면 알아볼 수 있었다. 오류가 있긴 했지만 수정할 수 없는 정도는 아니었다. 다음날 그가 도구를 가져와서 나와 함께 목판을 수정하기 시작했다. 3일 동안 노력한 끝에 목판은 완벽한 상태가 되었다. 목판 제작 기간은 8일로 정하고 가격은 1장에 4분(分)으로 했다. 러시아돈으로 환산하면 정말 싸다. 목판 2장이 완성됐을 때 조각가가 다시 찾아와 글자가 너무 작아서 새길 수 없다고 했다. 내가 더 작은 글자나 새기기 어려운 표지도 잘 새기지 않았느냐고 지적하자 그는 “집사람이 급여가 너무 적다고 한다”고 밝혔다. 목판 1장에 5분으로 합의한 후 나는 목판을 위한 페이지 작성을 계속했다. 8번째 목판이 나왔을 때 조각가는 다시 급여 문제를 제기했다. 나는 급여를 8분까지 늘렸고 시력이 악화돼 정말 못생긴 일본식 안경을 쓰게 된 조작가에게 마지막 페이지에 주키치(重吉)라는 그의 이름을 새기는 것을 허락했다. 책을 인쇄하려 다이키치라는 인쇄공을 찾아갔지만 극히 게으르고 담배와 술밖에 모르는 일본 태만의 화신이라 이야기할 가치가 전혀 없었다. 그 작업방식은 인내심이 있는 사람에게도 고문이었다.” 1861년, 마호프는 교본을 100권 정도 인쇄하고 3권은 하코다테 시장, 부시장, 그 지역의 장군에게 보냈고 나머지는 하코다테 아이들에게 선물했다. “일본 아동을 위해 러시아의 사무라이가 이것을 선물로 올림”이라는 글이 적힌 1권은 ‘러시아의 이로하’라는 이름으로 하코다테지정문화재로서 하코다테시중앙도서관이 보관한다.
  • [서울광장] 문화유산 핵심 가치, ‘진정성’과 ‘접근성’/서동철 논설위원

    [서울광장] 문화유산 핵심 가치, ‘진정성’과 ‘접근성’/서동철 논설위원

    정약용 선생의 강진 유배 시절 거처인 다산초당(茶山草堂)에 오른 사람들은 이름처럼 초가집이 아닌 기와집인 것을 보고는 고개를 갸웃거리게 마련이다. 워낙 많은 사람이 지적을 하니 강진군이 기와를 걷어 내고 초가를 올리겠다고 한 것도 10년이 훨씬 넘는다. 하지만 초당은 여전히 와당(瓦堂)이다. 지금의 모습으로 다시 지은 것이 1957년이라고 한다. 근대문화유산으로 불리는 등록문화재 기준도 50년이라지 않는가. 그렇게 60년 넘는 세월이 흐르며 새로운 역사가 쌓인 지금의 초당도 가치가 없다고 할 수는 없지 않을까. 강진군의 고민도 적지는 않을 것이다. 다산초당만 새로운 역사가 된 것이 아니다. 얼마 전 강진군은 다산초당을 찾는 관광객의 발걸음이 잦아지면서 어지럽게 파헤쳐진 오솔길을 정비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오솔길의 일부가 ‘뿌리의 길’이라 불리게 된 것은 ‘지상에 드러낸 소나무의 뿌리를 무심코 힘껏 밟고 가다가 알았다’로 시작하는 정호승 시인의 같은 제목 작품이 발표된 이후일 것이다. 어디선가는 ‘밟히는 뿌리의 아픔’을 말하는 글도 읽은 적이 있는 듯하다. ‘뿌리의 길’을 어떻게 정비할 것인지도 초당 복원 이상으로 관심을 갖는 사람이 많지 않을까 싶다. 얼마 전 다산초당과 ‘뿌리의 길’에 대해 완전히 다른 접근을 보면서 세상이 얼마나 다양하고, 따라서 마음을 다시 먹어야 할 것도 많은지 새삼 깨닫게 됐다. 우연히 방문한 장애인문화관광센터 블로그에는 다산초당 안내도 있었다. ‘장애인의 여행 욕구를 해소하고 관광 상품을 발굴하여 지역의 역사적, 문화적 가치를 알리고자’ 광주·전남·전북에서 활동하는 단체라고 했다. 초당으로 오르는 길을 소개하는 대목은 이랬다. ‘마을 공터 주차장에서 계단 시작 지점까지 250m 구간은 양호. 하지만 계단에서 초당까지 300m는 계단과 흙길을 이용해야 하므로 휠체어 이동 불가. 경사각이 높거나 노면이 좋지 못하므로 관광 약자가 이동할 때 반드시 동반자와 동행할 것 권유함’이라고 했다. 기능적이고 사무적이어서 감수성과는 거리가 먼 문장이었지만, 다산초당 접근이 아예 차단된 사람들에게는 초가집이니 기와집이니 하는 논란이나 뿌리의 길이니, 뿌리의 아픔이니 하는 표현들이 얼마나 공허하게 들릴까 가슴이 답답해지는 것이었다. 내친김에 고창 선운사도 찾아봤다. 평지 사찰이니 장애인 시각에서는 어떻게 평가하는지 궁금했다. 짐작처럼 ‘진입로는 양호하며, 일부 경사로 있으나 통행에 어려움 없음. 주 출입구인 사천왕문은 턱이 있으며, 보조 출입구로 경사각이 있는 이동로가 있음’이라고 했다. 휠체어 진입이 가능하도록 보조 출입구에 경사로를 만들어 놓았음을 알 수 있다. ‘장애인의 평점’은 별 5개 만점에 별 3개 반이었다. ‘사찰 내부 화장실은 장애인이 이용하기 어렵다’는 대목이 감점 요인인 듯했다. 장애인 화장실이 있는 주차장에서 절은 1㎞나 떨어져 있다. 무엇보다 장애인문화관광센터가 소개하는 관광지에 역사 유적은 거의 없었다. 호남 지역의 무수한 명산대찰 가운데 휠체어 사용자에게 어렵게나마 접근이 허용된 장소는 극소수라는 뜻이다. 경주장애인관광도우미센터의 추천 장소도 무수한 문화유산 가운데 불국사, 첨성대. 월정교, 동궁과 월지, 황룡사터뿐이었다. 석굴암은 ‘주차장에서 절까지는 어렵지 않지만, 본존불이 모셔져 있는 석굴은 계단으로 접근 불가’라고 했다. 이 대목을 읽는 휠체어 이용자들의 마음은 감히 짐작을 하기 어렵다. 그러고 보니 문화체육관광부의 ‘열린 관광 조성 사업’에도 현대적 관광지가 대부분으로 역사문화유산은 손에 꼽을 정도다. 장애인, 고령자, 영유아 동반 가족이 편리하고 안전하게 여행할 수 있도록 ‘무장애 관광지’를 조성하는 사업이라고 했다. 문화유산의 핵심 가치는 말할 것도 없이 진정성이다. 하지만 더 많은 사람이 현장에서 진정성을 체험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것도 중요한 시대정신이 되고 있다. 장애인들의 방문 후기를 읽으며 많은 역사 유적이 지형상 접근이 어렵고 문턱과 계단도 많아 둘러보기 어렵다는 현실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음을 알게 됐다. 모든 문화유산을 예외 없이 방문할 수 있도록 해 달라는 요구가 아니라는 뜻이다. 이제는 문화유산을 다루는 비장애인들이 무엇을 양보할 수 있는지 고민을 시작할 때가 된 것 같다. 휠체어 관광객이 크게 늘어날 노령화 시대에 대응하는 전략이기도 하다. ‘접근성 향상’이 ‘진정성 회복’에 이은 문화재 정책의 새로운 핵심 가치로 떠오르는 것은 시간문제다. sol@seoul.co.kr
  • [장동석의 뉴스 품은 책] BTS부터 트로트까지… 유행가에서 길어올린 철학

    [장동석의 뉴스 품은 책] BTS부터 트로트까지… 유행가에서 길어올린 철학

    방탄소년단(BTS)으로 대표되는 케이팝의 위상은 이제 세계적이다. 케이팝의 현지화 전략도 하나둘 등장하고 있다. CJ ENM은 남미에서 케이팝 아이돌 그룹을 발굴하는 오디션 프로그램을 열 계획이다. 케이팝 스타와 남미 스타가 함께 심사하고, 우승한 그룹은 세계를 무대로 활동할 수 있도록 돕는다. SM엔터테인먼트도 미국 업체와 협력해 아이돌 그룹 NCT의 새 멤버를 발굴하는 오디션 프로그램을 선보인다. 케이팝은 이제 동남아, 남미, 유럽, 미국 등 통하지 않는 곳이 없다. 대중음악평론가 박성건과 인문학자 이호건이 함께 쓴 ‘케이팝 인문학’은 대중가요와 철학이 어떤 접점에서 만날 수 있는지 보여 준다. 저자들은 1950~1960년대 트로트부터 한 시대를 풍미한 대중가요들을 소환하며, 오늘의 케이팝이 성장한 토대를 짚는다. 저자들에 따르면 “그동안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던 한국의 대중가요는 모두가 케이팝”인 셈이다. 확고한 토대 위에서 성장한 BTS를 저자들은 ‘21세기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라고까지 치켜세운다. 멋진 춤과 강력한 사운드, 화려한 퍼포먼스로 승부하는 여느 아이돌 그룹과 달리 BTS는 ‘러브 유어셀프’(Love Yourself) 시리즈를 통해 전 세계 청춘들에게 용기와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기애를 인류애로 확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청춘을 구원하는 하나의 아이콘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트로트 열풍, 그중 김연자의 ‘아모르 파티’에 대한 분석도 흥미롭다. 포크와 발라드 등에 밀려 한동안 숨죽이고 있던 트로트는 1990년대 들어 댄스와 컬래버하며 존재감을 부각했다. 2008년에는 주현미가 노래하고 조PD가 랩을 하며 여러 장르를 섞은 ‘사랑한다’가 발표됐다. 세상에 나온 지 4년 만에 폭발적으로 사랑받은 김연자의 ‘아모르 파티’에 대해서도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사랑하라”를 평생 명제로 껴안고 산 철학자 니체의 운명관이라 소개하기도 한다. 케이팝과 트로트 외에도 발라드와 힙합 등 음악 장르는 물론 친구, 입영 전야, 고향, 커피 등 대중가요의 중요한 소재가 되는 사건과 사물 등을 조명하면서 우리 대중음악의 역사를 개괄한다. 음악의 배경이 된 사회적 혹은 철학적 의미들을 훑으며 하나의 문화사를 완성한다. 각 장마다 언급한 음악들을 들을 수 있는 QR코드를 수록해 읽는 맛에 듣는 맛을 더했다. 출판도시문화재단 문화사업본부장
  • 부산한 비탈길 골목길 하늘길…테스형 경규형 맛있는 이바구

    부산한 비탈길 골목길 하늘길…테스형 경규형 맛있는 이바구

    서울신문은 13일부터 ‘이우석의 미시(微視)여행’을 3주에 한 번 연재합니다. 국내 여행지를 매우 좁게 설정해 현미경처럼 샅샅이 훑어보자는 취지의 코너입니다. 연재를 담당할 이우석 놀고먹기연구소장은 ‘언어유희의 달인’이란 별명을 갖고 있는 여행전문가입니다. 글 곳곳에 심어 놓은 저자 특유의 ‘유머 코드’에 즐겁고 놀라운 경험을 하시게 될 겁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부산에 초량동이 있다. 부산역 바로 앞이다. 서울로 따지면 서울역 앞 청파동, 아니 산비탈로 올라서야 하니 후암동쯤 되겠다. 가파른 건 비슷하다. 생각해 보니 목포역 앞에도 유달산이 있다.(왜 역 앞엔 늘 산이 있을까.) 아무튼 초량에 올라가면 부산 역사를 볼 수 있다. 부산역 역사(驛舍)도 보인다. 지명에 산(山)자가 들어가는 부산의 속살이 초량이다. 목포가 항구라면, 부산은 산이다. 부산은 도시 곳곳이 바다에서 수직으로 치솟은 산들이 빼곡하기 때문이다. 부산 산복도로는 그 산(山)의 배(腹)를 가른다. 천국의 계단(stairway to heaven)이랄까. 고개를 들고 엉덩이는 빼고 하늘을 향한 계단을 딛고 하염없이 걸어야만 오를 수 있던 동네에 차로 오르내릴 하늘길이 생겨났다. 산복도로는 멀리 바다를 내려다볼 수 있는 산을 휘휘 감으며 마을을 가르고 하늘과 땅을 나누고 있다. 약 반세기 전 생겨난 부산의 허리띠 산복도로, 그중에서도 초량의 이야기다. ●왜구 침입 잦던 목초지서 19세기말 개항도시 초량은 부산의 원도심이다. 근대도시 부산이란 곳이 생겨나면서 가장 먼저 발달한 마을이다. 지금이야 대한민국 제2의 도시이자 국제도시로 위용을 당당히 과시하고 있지만 부산은 확실히 조선시대까지는 변방이었다. ‘가마메’란 이름의 부산이 조선 성종 때 부산(釜山)이란 이름으로 문헌에 처음 등장했고 동래(동래, 해운대, 수영 등)와 동평(지금의 부산 도심), 기장현으로 나뉜, 그야말로 촌구석 취급을 당했다. ‘왜구’랬을까? 잦은 왜구의 침입 탓이었다. 16세기 동래도호부로서 경상좌수영과 왜관이 부산포에 설치된 다음에야 부산(사실은 동래)은 뭔가 그럴싸한 도시 기능을 하게 됐다. 조선 후기 들어 조정은 사중면 초량에 왜관과 객사를 세웠고 이곳에서 왜와 외교를 했다. 초량은 그저 교통이 좋은 목초지대일 뿐이었지만 19세기 말 갑자기 주목받았다. 1876년 강화도 조약 이후 개항장에 속했던 까닭이다. 일제(메이드 인 재팬이 아니다)와 청(효녀 아니다)이 들어와 살기 시작했고 이때부터 초량은 국제도시의 이미지를 줄곧 지켜오고 있다. 팽창을 노렸던 일제는 철도와 선박편으로 한반도, 대륙과 연결하기 위해 부산을 주목했고 교통 주거 인프라 등 도시개발을 서둘렀다. 간척을 통해 넓어진 초량 일대는 항만(북항)과 철도를 연결하는 교통과 물류의 중심지가 됐다. 청 역시 중앙부두와 철도 건설로 생겨난 일자리를 찾아온 자국민 ‘쿨리’(苦力)를 위해 청관을 세웠다. 지금도 초량 부산역 앞에는 차이나타운이 남아 과거 조계지 시절의 근대사를 엿볼 수 있다. 처음엔 ‘남의 문화유산답사기’였지만 지금은 우리 역사가 됐다. 한국전쟁은 부산에 인구가 대거 유입되는 엉뚱한 결과를 낳았다. 10만여명에 불과하던 부산에 피란민이 몰려들며 무려 140만명이 모여 사는 대한민국 임시수도가 되니 당장 거주지가 태부족이었다. 산기슭밖에 없었다. 너도 나도 산에 올라가 판잣집을 지었다. 물론 초량 뒷산에도 올라갔다. 하늘까지 층층 이어진 달동네가 생겨나게 된 사건이다.●백제병원·남선창고… 사람·돈 돌던 이바구길 높이 올라가면 그 역사가 자세히 보일까 싶어 초량을 올랐다. 해발 0m 근처인 부산항, 부산역에서부터 400m 남짓한 구봉산으로 오르는 길. 그 옆이 초량(草粱)이다. 부산역에서 길을 건너면 ‘초량 이바구길’이 시작된다. 부산시와 동구청이 부산의 옛 ‘이바구’(이야기의 사투리)를 들으며 시티투어를 하는 관광 코스로 지정했다. 재미나고 놀라운 이야기가 많이 숨어 있다. 지금 하늘을 찌를 듯한 마천루가 득실한 해운대와 비교하자면 낡은 원도심 마을이겠지만 애초 초량은 사람도 돈도 돌던 곳이다. 한국전쟁 전에는 함흥과 원산 바다에서 내려온 배가 초량(그때는 이 일대가 바다였다) 앞에 대고 명태며 고등어를 쏟아냈다. 그래서 이곳에 있던 수산물 창고를 북선(北船) 창고라 불렀다. 선창 일거리만 해도 넘쳐났다. 전국에서 생선 장수들이 몰려들고 청요릿집엔 손님들로 바글바글했다. 전쟁 후 북선 창고는 남선 창고로 이름이 바뀌지만 여전히 대한민국 최대 수산물 유통 중심지 역할을 톡톡히 했다. 일제가 물러가고 미군이 상륙하면서 ‘빠’니 ‘비어-홀’이라고 부르는 술집들이 가득한 ‘텍사스촌’이 초량에 생겨났다. 말하자면 서울 이태원 격이다. 이곳을 통해 나온 달러와 군수물자가 부산 국제시장은 물론 전국을 돌았다.‘이바구길’은 초량 외국인 골목에서부터 출발한다. 차이나타운 아래로 러시아 키릴문자와 필리핀 간판이 가득한 유흥가를 그냥 지나치려고(정말이다) 했지만 이곳에 ‘이바구’가 숨어 있다. 1927년 최용해가 지은 첫 근대식 개인종합병원 구 백제병원(국가등록문화재 제645호)이 초량 외국인 거리에 있다. 김해 출신인 최용해는 일본에서 의대를 나와 일본인 아내와 함께 부산으로 건너왔다. 동양척식회사로부터 돈을 빌려 당시 부산에서 최고 높은 5층 벽돌건물을 짓고 백제병원(그런데 왜 신라병원이 아닐까?)을 열었다. 처음엔 병원이 잘됐지만 돌연 사건이 터졌다. 관리들이 데려온 행려병자 시체를 병원 4층에 보관했던 것이 들통났다. ‘돈 없는 환자가 가서 죽으면 시체를 병원에 두고 표본으로 쓴다’는 소문이 돌았다. 겁을 먹은 환자들이 외면하며 급격히 상황이 어려워졌다. 결국 최용해는 일본으로 야반도주했다. 이후 백제병원은 대형 청요릿집과 예식장 등으로 바뀌었지만 모두 사라졌다. 그나마 여지껏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것은 차라리 다행이다. 현재는 1층에서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건물은 일부 허물어진 역사의 잔흔 그대로이지만 그 안을 채우는 커피향만큼은 세련되고 파릇하다. 부산시는 백제병원을 문화공간으로 운영하고 있다. 한때 부귀영화를 누렸던 남선 창고는 현재는 사라지고 없다. 창고를 가득 채웠던 명태처럼 온데간데없지만 상업과 물류의 지력(地歷)만큼은 여전하다. 우연인지 그 자리엔 현재 할인마트가 생겼는데 옛 창고의 담벼락 일부만 남았다. 1900년대 생겨난 국내 최초의 근대 물류 창고였던 남선창고는 노르웨이 베르겐의 ‘브뤼겐’(한자동맹 중심지)처럼 당시로선 엄청난 규모의 물류조합을 운영하며 명성을 떨쳤다. 전국에 명태를 공급하던 곳이지만 직접 명태를 서울로 공급하는 경원선이 개통되고, 초량 앞바다가 매립된 후 해운 물류 중심이 부산항으로 옮겨가며 몰락의 길을 걸었다. 그 누가 알았으랴, 바다가 사라질 줄은. 상전벽해(桑田碧海)가 반대가 되니 좋은 뜻만은 아닌 듯하다. 여기까지만 평지다. 이제 산길을 올라야 한다. 초량초등학교 담벼락에는 옛 마을의 서정성을 노래한 이야기들이 그려져 있다. 초량초교는 전통이 오랜 곳이다. ‘소크라테스의 아우’인 가수 나훈아와 코미디언 이경규, 음악감독 박칼린이 이 학교를 다녔다. 아, 나훈아의 ‘테스형’은 다른 곳을 나왔다. 아테네 아고라에서 토론을 통해 공부했다. 초량초교 동문 선후배인 이들은 각각 1947년생, 60년생, 67년생이니 시대는 달랐지만 초량의 변화 속 눈앞에 펼쳐진 바다를 내려다보며 꿈과 재능을 키웠을 것이다. 대체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지만 초량에는 ‘명태 눈깔을 빼먹으면 노래를 잘한다’는 말이 전해진다. 남선 창고가 있던 곳이니 예능인을 많이 배출한 것은 우연이 아닐지도 모른다. 노래를 잘 부르는 미래의 가수를 위해 누군가는 눈깔이 없는 명태를 먹었다.●168계단 줄기 삼아 작은 골목 가지처럼 연결 길가에는 1893년 지어진 초량교회가 있다. 일제강점기에 신사 참배 반대를 이유로 죽임을 당했던 주기철 목사가 있었던 교회로 개신교에선 뜻깊은 장소로 알려졌다. 한강 이남 최초의 교회로 무려 130년 가까이 됐다. 초량은 얼마나 신식 문물이 빨리 들어온 곳이었나. 길은 가파르지만 그리 힘들지는 않다. 이따금씩 부는 바닷바람이 땀을 식혀 준다. 제주 올레길처럼 이바구길에는 곳곳에 쉼터가 있다. 쉼터 역시 옛 분위기가 오롯이 남아 있다. 딱 추억 속 ‘점빵’ 풍경이다. ‘이바구 정거장’에선 국수나 음료를 팔고 ‘168 도시락국’에선 시락국밥과 추억의 도시락을 판다. 쉬어 가며 감성도 충전할 수 있다. 168이란 숫자의 의미는 가게에서 나오면 바로 알 수 있다. 하늘까지 뻗었다고 해도 믿을 만큼 높은 계단길이 쉼터 앞에 펼쳐진다. 고개를 끄덕여야 할 만큼 눈에 꽉 들어찬다. 우물가부터 산복도로까지 이어진 계단이 아찔하다. 168개의 계단이다. 페루 마추픽추의 계단과 닮았다.계단을 큰 줄기 삼아 양옆으로 작은 골목이 가지처럼 이어진다. 초량사람들이 물을 긷기 위해 오르내리던 168계단은 초량 마을을 이어 주는 동맥이며 소통의 통로다. 지금은 모노레일이 생겨나 ‘도가니’에게 미안하지 않다. 기계 레일 탓에 정취는 덜하지만 인정은 여전하다. 이곳에서 만나는 이웃들은 어김없이 인사를 나눈다. 관광객들도 인사를 하지 않으면 어색할 만큼 모노레일 캐빈 속 공간은 따스하다. 소통이란 이처럼 자연스러워야 한다. 중간에 내리면 168빵카페가 있다. 고소한 빵과 커피 향에 이끌려 저절로 내리게 된다. 일명 ‘홍신애빵집’이라 불리는 곳이다. 요리연구가 홍신애씨가 차렸다. 홍씨는 초량 여행을 많이 다닌 듯하다. 테라스에 의자를 놓고 갓 구워 낸 빵 조각을 씹는 그 순간이 초량 이바구길 여행의 딱 중간쯤 된다. 영락없는 전망 휴게소 역할이다. 옆길로 새면 김민부 전망대가 나온다. 고교 1학년 때 동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천재 시인 김민부를 기린 이름이다. 그는 이 집에 살았다. 전망대는 실로 근사한 풍경을 간직하고 있다. 푸른빛을 띠는 바다를 두고 아래에 다닥다닥 이어진 작은 집들의 지붕을 통해 ‘부싼 싸람’의 진면목을 내려다볼 수 있다. 그는 지금 보이는 저 바다를 그리며 “일출봉에 해 뜨거든 날 불러주오, 월출봉에 달 뜨거든 날 불러주오”라고 ‘기다리는 마음’을 노래했을 것이다.●블록 쌓아 올리듯… 만화같은 산동네 지붕들 옥상마다 놓인 파란색 물탱크, 허공을 가르는 목욕탕 기둥들 사이로 하늘을 향해 난 계단, 블록을 쌓아 올린 듯 차곡차곡 이어진 집들이 만화 같은 산동네 풍경을 이루고 있다. 우리 집 지붕이 남의 집 마당이 되고 또 우리 마당은 아랫집 지붕으로 이어진 길이 되는 반도체처럼 집약된 집 더미. 전란을 피해 내려와 산에 살기 시작한 사람들, 반세기가 지나니 말씨도 마음씨도 진짜 부산 사람이 되었다. 높이 오르니 부산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가 보였다. 여기서 좀더 오르면 산복도로가 나온다. 수직적인 길로 이뤄진 산동네를 모두 수평으로 꿰는 넓은 신작로. 비행기처럼 높은 길을 달리는 버스는 뒤뚱뒤뚱거리며 부산의 허리를 연결한다. 산복도로 곳곳에 수려한 전망이 펼쳐진다. 산복도로에서 바라본 경치란 도저히 외면할 수 없는 매력이 가득하다. 바다와 항구, 마을과 철도, 교량과 배가 한눈에 들어오는 풍경이란 것은 어디서 또 찾을 수 있을까. 여기다 ‘유치환의 우체통’ 등 곳곳에 깃든 이야깃거리는 서정성과 낭만까지 곁들여 있다. “여봐요, 백신은 맞았나요?” 1년 후 나의 미래로 보내는 편지를 썼다. 과거 추억이 서린 풍경을 바라보며 현실 속 걱정을 함께 적었다. 세상을 내려다보며. 좀더 눈을 가늘게 뜨고 보면 마음속 무엇이 현실에 투영돼 겹쳐 보인다. 산복도로에서 보는 세상은 초고층 마천루 호텔방에서 담는 ‘근사한 풍경’과는 사뭇 다르다. 우체통 앞에선 상상의 나래가 활짝 펴진다. 늘 힘들게 오르내리지만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먼 바다를 바라보며 꿈을 키웠을 어느 이름 모를 초량의 아이를 떠올려 본다. 그 아이는 어떤 감상을 마음속에 쌓아 가며 자랐을까. 부산에 대한 추억이란 것이 전혀 없다 할지라도, 무슨 영화 속 이야기일지라도 상관없다. 연인과, 가족과 함께 이곳 이바구길을 함께 걸으며 초량이 지켜온 반세기의 이야기들을 듣고 살며시 뭔가를 상상해 본다면? 그 포근한 이야기란 차가운 유리투성이 도시의 것보다는 썩 좋을 듯하다. 바다로 열린 청마의 우체통에선 많은 상상들이 미래로 전송되고 있다. 글 사진 놀고먹기연구소장 demory@naver.com■초량 여행 체크리스트 뭘 먹지? 50년 부산 중심지 초량엔 먹거리가 많다. 부산에 사는 이도 부산을 오가는 이도 초량을 찾아 대선 소주잔을 기울여 온 세월이 켜켜이 쌓인 까닭이다. 산복도로에서 더 올라가면 360도 전망의 구봉산 초량공원, 길을 따라 내려오면 돼지불고기를 파는 기사식당 거리와 만난다. 일명 ‘불백거리’인데 값싸고 푸짐한 식사를 즐길 수 있어 택시 기사뿐 아니라 많은 시민과 관광객들이 찾는다. 좀더 내려오면 이름난 초량 돼지갈비 골목도 있다.은근히 잘하는 고깃집이 많은 곳도 부산이다. 그렇다. (서울 사람들이 생각하듯) 부산 사람은 아침에 회를 먹고 점심에 생선구이, 저녁에 곰장어 등 생선만 먹고 살진 않는다. “집이 부산이세요? 그럼 집에 배 있겠네요?” 식으로 사고하는 것에 대해 부산 시민들은 매우 어이없어 한다. 구석구석에는 돼지국밥집, 시락국밥집, 유명한 밀면집도 있다. 전국 민물 양식장에서 ‘부산 갈메기’들을 죄다 쓸어 왔는지 문전성시를 이루는 메기탕집도 있다.168빵카페=부산 동구 영초길 191번길 8-1. (010)9330-8544. 168도시락국=부산 동구 영초길 191. (051)714-2619 소문난불백=부산 동구 초량로 36. (051)464-0846 초량밀면=부산 동구 중앙대로 225. (051)462-1575. 은하갈비=부산 동구 초량중로 86 (051)467-4303. 우리돼지국밥=부산 동구 초량로 27-1번길 (051)468-5623. 초량메기탕=부산 동구 초량로 15. (051)464-3398. 어딜 가지? 초량은 범일동, 보수동, 중앙동 등과 이어진다. 영화 ‘아저씨’ 촬영지로 유명한 범일동 매축지 마을은 좌천역에서 나와 육교를 건너면 된다. 격렬하게 매운 떡볶이와 조방낙지로 유명한 곳도 범일동이다. ‘범죄와의 전쟁’ 촬영지인 중앙로는 부산역 쪽으로 건너면 나온다. 어쩐지 익숙하다 할 거다. 맞은편에는 영화 ‘인정사정 볼 것 없다’에서 등장한 보수동 계단이 있다. 헌책방 거리와 자그마한 카페들이 있어 요모조모 둘러볼 것이 많다. 여행상품은? 반값 할인을 뜻하는 ‘반할부산’은 열차와 연계한 다양한 부산여행상품 ‘진짜부산트레킹’을 판매한다. 원도심투어를 비롯해 흰여울마을과 달맞이고개, 황령산 등 다양한 지역 투어 프로그램이 있다. 1899-2550. 초량 이바구길 투어는 부산여행특공대(busanbustour.co.kr)에서 당일(반나절) 버스투어 상품으로 판매한다. 일정은 오전 9시 50분 부산역 이바구버스 정류소 앞 집결 후 증산전망대, 유치환의 우체통, 초량 168계단&모노레일 탑승, 초량 1941, 초량전통시장(불백골목) 경유 낮 12시 30분 부산역으로 돌아오는 일정이다. 2만원. (051)469-4113.
  • 일기로 되살아난 ‘시민군 대변인’ 윤상원 父子의 삶

    일기로 되살아난 ‘시민군 대변인’ 윤상원 父子의 삶

    윤상원 열사 내면 담겨 사료적 가치 충분부친 일기엔 아들 누명 벗기는 과정 녹아“오늘 우리는 패배하지만, 역사는 우리를 승리자로 만들 것이다.” 1980년 5월 26일 5·18민주화운동 ‘시민군 대변인’을 맡았던 윤상원 열사가 ‘전남도청 진압 작전’ 하루를 앞두고 내외신 기자들에게 한 말이다. 30세 청년 윤상원이 임박한 죽음을 기꺼이 자신의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비장함이 느껴진다. 다음날인 27일 새벽 윤 열사는 도청 시민군 상황실에서 화상과 총상을 입은 채 주검으로 발견됐다. 권력을 찬탈한 전두환 등 신군부는 그를 한동안 폭도의 우두머리라고 선전했다. 윤 열사의 아버지 윤석동(1927∼2019)씨는 1980년 이후 아들인 상원씨의 누명을 벗기기 위해 삶을 송두리째 바쳤다. 11일 이들 부자의 삶과 이야기를 진솔한 글로 담아낸 ‘윤상원 일기’와 ‘윤석동 일기’가 나란히 출간돼 화제다. 윤상원은 초등학교 시절인 1960년부터 1979년까지 모두 10권의 일기를 썼다. 아버지도 1988년부터 20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20권 분량의 일기를 남겼다. 이번에 발간된 윤상원 부자의 일기는 황광우 작가가 채록·압축해 단행본으로 만들었다. 일기 원본은 한국학호남진흥원에 소장돼 있다. “학교에 가니 종안이가 눈을 맞으며 치우고 있는 것이다. 공부를 잘한다고 해서 사람이 아니다. 봉사하는 일이 가치 있는 일이다.”(윤상원의 중학 시절 일기), “하나님께서 주신 나의 십자가, 꼭 지고 가리라.”(고교 시절) 황광우 작가는 “놀라운 것은 윤상원의 도덕의식이 중학교 시절에 완성태로 나타난다는 것”이라면서 “입시 교육의 병폐 등 사회적 주제를 다룬 글도 다수 수록돼 교사들의 필독서로 추천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황 작가는 “정의를 위해 젊음을 불사른 윤 열사의 내면 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는 사료적 가치도 충분하다”면서 “‘윤상원 일기’는 ‘전태일 일기’와 함께 1970년대를 대표하는 국보급 유물이자 사료로 평가된다”고 했다. 아버지 석동씨의 일기는 총 4부에 걸쳐 1988년부터 20년 동안 아버지로서 아들을 지켜본 감회와 단상, 5월 단체에서의 활동상 등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들 부자의 일기는 1980년대를 살아온 우리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고 있다. 1980년 광주의 그날, 내가 윤상원이었다면 정말 죽을 줄 알면서도 그 자리를 지킬 수 있었을까.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 [영상] 태평양에 살던 고래, 지중해에서 길 잃은 채 발견된 이유

    [영상] 태평양에 살던 고래, 지중해에서 길 잃은 채 발견된 이유

    태평양에 서식하는 새끼 회색고래 한 마리가 지중해에 모습을 드러냈다. 지중해에서 회색고래가 목격된 것은 10여 년 만의 일로, 전문가들은 이 고래가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길을 잃은 것으로 보고 있다. 영국 가디언 등 해외 언론의 10일 보도에 따르면 지난달 30일 육지에서 불과 50m 떨어진 프랑스 남부 해안에서 발견된 회색고래는 태어난 지 15개월 정도로 추정되는 새끼였다. 몸길이 8m 정도의 새끼 회색고래는 지친 기색이 역력했고, 오랫동안 먹이 사냥을 하지 못한 듯 수척한 모습이었다.프랑스 남부에 있는 생물다양성연구기관의 책임자인 에릭 한센은 현지 언론과 한 인터뷰에서 “우리가 이 새끼 고래를 추적하기 시작한 이후로 먹이를 먹는 것을 보지 못했다. 먼 거리를 이동하는 고래에게 필수적인 지방이 많이 줄어든 상태여서 건강이 매우 염려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새끼 회색고래가 캘리포니아에서 태어난 뒤 원서식지로 돌아가다 길을 잃은 것으로 보고 있다. 고래처럼 장거리를 이동하며 서식하는 일부 해양 동물이 지구온난화로 지구 평균기온이 상승하고 얼음이 녹아내리면서 생긴 ‘새로운 길’로 잘못 들어섰다가 길을 잃는 일이 종종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센과 연구진은 “고래가 하루에 80~97㎞를 헤엄쳐 이동하면서 빠르게 스페인 해안으로 접근하고 있다. 이는 아직 어린 새끼고래에게 더욱 큰 혼란을 가져다 줄 수 있다”면서 “현재 새끼 회색고래는 출구를 찾아 나가기 위해 애쓰고 있으며, 일주일 정도면 지브롤터 해협(지중해와 대서양을 연결하는 해협)으로 나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태평양에 서식하는 회색고래가 지중해에서 발견된 것은 2010년 이후 이번이 두 번째다. 전문가들은 “태평양에 서식하는 동물이 북극 해빙으로 인해 베링 해협을 통과할 수 있게 되고, 길을 잃고 지중해까지 들어오는 일은 역대 고래 관찰 역사상 믿기 어려운 일”이라면서 “만년설이 녹으면서 해류도 변화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더욱 자주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고 예측했다. 한편 고래목 귀신고랫과에 속한 회색고래는 멸종위기종으로, 한국에서는 귀신고래, 쇠고래로 불린다. 몸길이 15m, 몸무게 36t까지 자라며, 평균수명은 50~60년, 최대수명 70년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베이 등지에서 서식하는 회색고래들은 기후변화로 인한 먹잇감 부족으로 영양실조에 시달리고 있으며, 실제로 지난달 초에는 약 열흘 동안 회색고래 4마리가 죽은 채 발견돼 당국이 조사에 나서기도 했다. 송현서 기자 huimin0217@seoul.co.kr
  • 조각가·도예가… ‘피카소의 부캐’들과 만나다

    조각가·도예가… ‘피카소의 부캐’들과 만나다

    ‘편지읽기’ ‘피에로 복장…’ 등 회화 ‘기타와 배스병’ 등 조각·도자기피카소미술관 소장품 110점 전시한 남자가 손으로 턱을 괸 채 편지를 읽고 있다. 옆에 앉은 남자는 위로하듯 동료의 등에 팔을 두르고 편지를 함께 들여다보는 중이다. 수심이 깃든 둘의 얼굴이 일란성 쌍둥이처럼 닮았다. 파블로 피카소(1881~1973)가 1921년에 그린 ‘편지읽기’는 1차 세계대전 직후 입체주의에서 신고전주의로 관심을 돌렸던 시기에 제작한 대표작이다. 같은 공간에 걸린 ‘피에로 복장의 폴’(1925)은 피카소의 첫 아들 폴을 모델로 한 사실주의 작품이다. 피카소 팬이 아니라면 “이런 그림도 그렸나” 놀랄 만하다. 한국전쟁의 참상을 소재로 한 ‘한국에서의 학살’ 국내 첫 전시로 관심을 모은 ‘피카소 140주년 특별전’이 피카소의 다양한 예술 세계를 총체적으로 만날 수 있어 주목받고 있다.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지난 1일 개막한 전시는 코로나19 방역 수칙으로 입장 인원이 제한되는 상황에서도 하루 1000명 이상 관객을 불러모으며 순항 중이다. 전시를 주관한 비채아트뮤지엄 전수미 관장은 “‘한국에서의 학살’을 보러 왔다가 신고전주의 화풍의 회화와 조각, 도자기 등 기존에 접하기 어려웠던 피카소의 작품들에 놀라는 관람객들이 많다”고 말했다. 프랑스 파리 국립피카소미술관 소장품 110여점이 소개되는 이번 전시는 190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 피카소의 시기별 작품들을 망라했다. 독특한 화법과 표현방식으로 20세기 거장으로 추앙받는 피카소의 예술 여정이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조각은 회화와 함께 피카소가 초기부터 병행해 온 작업이다. 기타를 해체해 평면에 붙인 ‘기타와 배스병’(1913)은 현대 조각의 시작을 알리는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추정가 800억원으로 이번 전시 출품작 중 최고가다. 1948년 지중해 연안 도자기마을 빌로리스에 정착한 후 새롭게 도전한 도자기 작품들과 1930년에서 1937년까지 제작한 판화 ‘볼라르 연작’ 등은 피카소의 다재다능한 면모를 보여 준다.피카소가 사랑한 여인들을 모델로 한 작품들도 눈길을 끈다. 입체파시대를 함께했던 페르낭드 올리비에, 젊은 나이에 병사한 에바 구엘, 첫 부인인 러시아 발레단 무용수 올가 코클로바, 마흔다섯 살에 만난 열일곱 살의 뮤즈 마리 테레즈 발테르, 피카소의 두 자녀를 낳은 프랑수와즈 질로 등 많은 여성들과의 인연이 시기마다 독창적인 작품을 탄생시켰다. 한편 ‘한국에서의 학살’(1951)은 ‘게르니카’(1937), ‘시체구덩이’(1944~1946)와 더불어 피카소의 3대 반전 예술 작품 중 하나다. 프란시스코 고야와 에두아르 마네의 역사화 구도를 본떠 보편적인 전쟁의 잔혹성을 고발했다. 전시는 8월 29일까지. 이순녀 선임기자 coral@seoul.co.kr
  • 얼굴 너머로 내면 파고든 시대의 초상

    얼굴 너머로 내면 파고든 시대의 초상

    초상화는 정지된 한순간을 포착해 인물의 내면까지 보여 준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단순한 기록을 넘어 한 사람의 인생을 꿰뚫는 통찰이 담겨 있다. 자기 과시의 수단이기도 하지만 때론 감추고 싶은 속내가 은연중 표출되는 게 초상화의 묘미다. 사진이 발명되기 이전 역사 속 인물을 대면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던 초상화가 ‘셀피’(셀프 카메라) 홍수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한 이유다. 500년을 넘나드는 세기의 초상화가 한자리에 모였다. 국립중앙박물관이 해외 문화재 특별전시로 개최하는 ‘시대의 얼굴, 셰익스피어에서 에드 시런까지’에서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초상화 전문 미술관인 영국 국립초상화미술관의 소장품 78점을 처음으로 국내에 들여왔다. 1856년 문을 연 영국 국립초상화미술관은 영국뿐 아니라 세계 역사와 문화에 기여한 인물들의 초상화를 소장하고 있다. 1960년대부터 그림을 넘어 사진까지 범위를 넓혔으며, 백인 상류층 위주에서 다양한 인종과 소수 계층으로 대상을 확대했다. ‘왕족을 제외하고 사후 10년이 지난 인물의 초상화’라는 원칙도 바꿔 생존 유명인의 초상화도 수집한다. 1991년생인 대중 뮤지션 에드 시런의 초상화가 소장 목록에 포함된 배경이다. 전시는 ‘명성’, ‘권력’, ‘사랑과 상실’, ‘혁신´, ‘정체성과 자화상’ 등 5개 주제별로 73명의 작가가 그린 76명의 인생 이야기를 펼친다. 양수미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우리가 잘 모르는 인물이라도 초상화를 마주하면서 교감할 수 있도록 책과 음악 등 다양한 아카이브 공간을 함께 구성했다”고 소개했다. 전시장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인물은 영국이 낳은 최고의 극작가 윌리엄 셰익스피어(1564~1616)다. 셰익스피어 생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유일한 회화 형태의 초상화로, 동시대 배우 겸 화가 존 테일러가 그렸다는 기록이 전한다. 예술성보다는 역사적 가치에 주목해 영국 국립초상화미술관이 맨 처음 소장한 작품이다. 수백년 세월에도 여전히 빛나는 그의 명성을 이 한 장의 그림이 대변한다. 튜더왕조의 마지막 군주 엘리자베스 1세(1533~1603)는 권력과 권위의 표상으로서 자신의 이미지를 극대화한 초상화를 남겼다. 1575년쯤 나무에 유화로 그린 초상화에서 그는 가문의 상징인 붉은 장미를 들고, 순수를 의미하는 진주와 불사조 모양의 장신구로 치장했다.절대왕권이 사라진 현대사회에서 권력은 정치 이외에 사회, 문화적인 영향력으로 영역을 넓혀 왔다. 최연소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인권운동가 말랄라 유사프자이,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실제 주인공인 패션지 ‘보그’ 편집장 애나 윈터, 월드와이드웹(WWW)을 발명한 팀 버너스 리의 초상은 일상적이고 소박하게 변화한 권력의 이미지를 흥미롭게 보여 준다.초상화 본질은 무엇보다 정체성의 투영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자화상은 더 주목할 만하다. 17세기 영국에서 가장 영향력이 컸던 초상화가 안토니 반다이크는 생전에 많은 자화상을 그렸는데, 한 인간이자 예술가로서 정체성에 대한 끊임없는 탐구 정신을 보여 준다. 데이비드 호크니, 루치안 프로이트의 자화상도 마찬가지로 인상적이다. 고전적인 유화에서 사진, 조각, 홀로그램, LCD스크린까지 초상화의 다채로운 변화상을 비교해서 보는 재미도 크다. 그레이슨 페리의 ‘시간의 지도’(2013)는 작가가 인생에서 겪은 감정과 경험을 성곽 도시의 지도 형태로 그린 그림인데 이를 자화상으로 분류해 전시 마지막에 배치한 점도 이채롭다. 초상화의 진화는 어디까지일까. 전시는 8월 15일까지. 이순녀 선임기자 cora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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