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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나욱의 현대문화 아카이브] 현대의 문화유산 런던 바비칸센터

    [최나욱의 현대문화 아카이브] 현대의 문화유산 런던 바비칸센터

    특정 시대를 기념하는 건물들이 있다. 역사 발전의 비선형성을 주장하는 데이비드 하비의 말처럼 오늘날에는 불가능한 기술이나 재료로 지었거나 기능적으로 그때의 사회문화를 함축하는 것들이다. 왕궁이나 대성당과 같은 건물이 대표적이다. 영국 런던의 바비칸센터는 20세기 후반을 표상한다. 제2차 세계대전으로 폐허가 된 일대를 주거단지, 미술관, 영화관, 극장, 식물원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갖춘 ‘현대의 유토피아’로 만들겠다는 목표로 지은 건물이니 말이다. 비슷한 시기 한국의 개발 과정에서도 살펴볼 수 있듯 이 시대에는 ‘건축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만들겠다’는 이상이 존재했다. 마감까지 전체를 콘크리트로 지어 ‘브루탈리즘’이라는 건축 사조를 대표하는 건물이기도 하다. 기능을 중시해 장식을 배제하고 재료 본연의 모습을 드러내 원초적 느낌을 강조하는 근대 건축의 특징이 극대화된 모습이다. 특유의 울퉁불퉁한 마감은 돌의 표면을 다듬는 ‘부시해머’로 일일이 두드려 만들었다. 작업한 노동자들이 손끝부터 어깨까지 합병증을 떠안은 탓에 더이상 시도되지 않는 공법이다. 엘리자베스 여왕과 마거릿 대처 총리가 참석해 성대한 개장을 알린 이 건물에는 당시의 신기술과 더불어 전쟁 직후 60년대와 70년대의 열악한 사회상이 함께 녹아들어 있다. 복합 문화 공간으로서의 위상도 두드러진다. 이 시기는 영국이 문화중심지의 자리를 두고 미국과 경쟁하고 포스트모던 예술이 발흥하던 격동기였다. 한국에서도 친숙한 세계적인 아트페어 ‘프리즈’가 이 무렵 시작됐으며 데이미언 허스트, 트레이시 에민 등 ‘yBa’라 일컬어지는 영국 현대 예술가들이 활동을 개시했다.이때 바비칸센터는 연출가 이보 판 호버, 작곡가 필립 글래스 등 포스트모던 예술가들의 초기작들이 발표되는 실험 무대로 기능했다. 이러한 전통을 살려 바비칸센터는 지금도 닐스 프람, 료지 이케다 같은 동시대 첨단을 달리는 이들의 무대로 활용되고 있다. 작년 9월에는 안무가 안은미가 한국 무용으로는 처음으로 이곳에서 공연을 선보였다.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상주 공연장으로서 지니는 명성도 작지 않다. 1982년 개관할 당시 공연을 한 이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는 다름 아닌 클라우디오 아바도였다. 카라얀의 뒤를 잇는 거장으로 평가되는 그는 클래식뿐 아니라 현대음악을 레퍼토리에 추가하는 시도를 하곤 했다. 참고로 영국의 클래식 FM은 1992년에 개국했다. 영화가 대중화되는 시기인 만큼 바비칸센터의 극장과 영화관 모두에서 모습을 선보이는 유명 배우와 연출가도 잇따른다. 가령 해리포터 시리즈의 스네이프 교수로 유명한 앨런 릭먼은 셰익스피어 연극을 공연하는 동시에 영화 ‘다이하드’(1988)로 데뷔해 모습을 비추었다. 앤서니 홉킨스, 이언 매켈런 같은 원로 배우부터 벤 위쇼, 베네딕트 컴버배치, 톰 히들스턴 같은 연극에 뿌리를 둔 많은 배우가 심심찮게 공연했으며, 지금까지도 많은 연극과 영화 시사회가 바비칸센터에서 열리고 있다. 오늘날 영화가 전환기를 맞으며 벌어지는 변화상을 여기에 대입해 볼 수 있겠다. 이 같은 급격한 시대 변화를 함축하고 있어서인지 바비칸센터에 대한 런던 사람들의 관심은 남다르다. 브루탈리즘 건축 특유의 미감으로 인해 강한 호불호를 낳는다는 것 또한 일종의 ‘밈’(meme·인터넷 유행)이 돼 있다.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건물로서 좋으나 싫으나 시대를 표상하는 건물이라는 사실에는 이견이 없는 것이다. 지어진 지 아직 반세기가 채 되지 않았지만 2등급 유산으로 지정돼 많은 관리가 이뤄지고 있다. 그중에서도 이곳에 거주하는 주민들이 건물에 갖는 애정은 더욱 각별할 수밖에 없다. 관광지로 유명한 문화 시설이라 이곳의 주거가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이곳에는 무려 140여 가지의 다양한 주거 유형이 존재한다. 우주선, 잠수함, 자동차 등 건축 당시 개발된 최신 기술이 주거마다 적용돼 있으며 건축과 예술에 관심 많은 입주자들이 각기 다른 방식으로 실내를 꾸몄다. 건축 당시의 사회주의 이상을 담아 계급을 드러내는 영국의 여타 건물들과 달리 일관된 외관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전후 소비주의에 따라 고급 주거단지를 만들겠다는 계획 아래 다양한 취향을 담으려는 건축가의 모순된 의도가 공존하는 것이다. 과연 복잡다단한 20세기 후반을 상징하는 건물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점에서 ‘현대의 문화유산’을 목표로 지어진 바비칸센터의 시대적 의미는 확실히 정립된 듯하다. 건축 이후 꾸준히 이곳의 역할을 되새기는 프로그램을 지속해 온 덕분이다. 비슷한 시기부터 가파르게 개발된 한국의 건축문화를 떠올리게 되는 대목이다. 우리의 시대를 함축하고 있는 건물들로는 어떤 게 남아 있는지, 트렌드를 넘어서 시대를 간직하고자 하는 목표를 갖고 있는 건축이 있는지, 그리고 순간의 성패가 아니라 시스템을 갖추고 꾸준히 건축문화를 일구는 자세가 있는지 말이다. 최나욱 작가 겸 건축가
  • 남편 따라 항일운동 투신한 중국인… ‘한국인’ 이숙진으로 잠들다 [대한외국인]

    남편 따라 항일운동 투신한 중국인… ‘한국인’ 이숙진으로 잠들다 [대한외국인]

    광복군 창설 앞장선 조성환과 결혼中 현지서 임정요인 돕는 핵심 역할해방 후 국내선 분단·전쟁 홀로 겪어사후 60년… 외국인 첫 효창공원 안장 서울 도봉구 방학동에서 도봉산 중턱으로 산길을 올라가면 혜화동성당에서 신자들을 위해 조성한 방학동 묘원이 나온다. 몇 번이고 헤매다 오솔길을 따라가다 보면 주의 깊게 봐야 눈에 들어오는 조그만 무덤이 있다. 지난 4월 묘원에서 만난 조주현(70)씨는 할머니를 제대로 모시지 못해 마음에 걸린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할머니 이름은 이숙진. 리수전(李淑珍)이라는 중국인으로 1900년 베이징에서 태어나 독립운동가로 한국광복군 창설에 크게 기여한 청사 조성환(1875~1948) 선생과 결혼했다. 조성환은 대한제국 육군무관학교 출신으로 1907년 안창호·양기탁·이동녕 등과 비밀결사인 신민회를 조직해 항일구국운동에 투신했다. 그는 1909년 중국으로 망명해 만주에서 무장투쟁에 참여하고 광복군 양성을 위해 애쓰는 등 해방까지 줄곧 독립운동에 매진했다. 조씨에 따르면 이숙진은 조성환의 비서로 중국어를 가르치며 인연을 맺었다. 외출할 땐 체포에 대비해 부부 행세를 했고, 이숙진이 권총을 몸에 지녔다고 한다.중화민국 주한국대사관에서 발급한 신원증명서에는 두 사람이 1921년 10월 25일 결혼한 것으로 나온다. 이숙진도 임시정부에서 활동했다. 1939년 중국 치장에서 한국국민당 당원으로 활동했고 1940년 6월 충칭에서 한국혁명여성동맹 창립에 참여했다. 정정화·김병인·이헌경 등이 함께한 한국혁명여성동맹은 독립운동가들의 항일운동 지원, 독립운동가 자녀 보육과 교육에 힘썼다. 황선익 국민대 한국역사학과 교수는 18일 “한국인들이 중국에서 독립운동하기가 매우 어려워 현지에서 도와주는 인물이 꼭 필요했을 텐데 이숙진 선생이 그 핵심 역할을 했을 것”이라며 “두 분이 따로 기록을 남기지 않아 구체적인 업적을 확인하지 못하는 게 안타까운 현실”이라고 말했다. 해방 후 국내로 돌아온 조성환은 한국독립당이 주도한 여러 활동에 참여하다가 1948년 10월 7일 사망해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 대한민국임시정부 요인 묘역에 묻혔다. 남편을 따라 한국으로 건너온 이숙진은 분단과 전쟁을 홀로 겪으며 지내다 1964년 세상을 떠났다. 2017년 독립운동 공로를 인정받아 국가유공자(애족장)로 인정받았다. 독립유공자 공훈록에는 “임시정부 이동 시기에 임정 요인들과 함께 갖은 고초를 겪으며 독립운동의 명맥을 유지해 나갔다”고 적혀 있다. 조씨는 이숙진의 양손녀다. 후사를 보기 위해 조성환이 양자로 들인 조카 조규택의 첫째 딸이다. 조씨는 초등학교 3학년까지 이숙진과 한방에서 살아 추억이 많다. 이숙진은 엄항섭이나 조소앙, 안재홍 같은 임시정부 인사의 부인들과 친했다고 한다. 조씨는 “그분들이 나를 예뻐해서 먹을 것도 주고 용돈도 주곤 했다”고 기억했다. 또 “동네 사람들이 우리 집을 ‘중국 할머니네 집’이라고 불렀는데 나는 어린 마음에 ‘왜 중국 할머니냐, 한국 할머니’라고 소리치곤 했다”고 회상했다.조씨 부부는 오는 9월 말 이숙진의 묘를 남편 곁으로 옮긴다. 최근 국가보훈부와 국가유산청, 도봉구청으로부터 관련 허가를 받았다. 효창공원에 안장되는 첫 외국인이다. 이숙진의 손녀사위인 권영복(75)씨는 “이제라도 청사 선생과 함께 모실 수 있어 다행”이라고 말했다.
  • 제주해녀의 삶 톺아보기… 해녀박물관 관람객수 상반기 5만명 돌파

    제주해녀의 삶 톺아보기… 해녀박물관 관람객수 상반기 5만명 돌파

    해녀문화 국제적 관심 여파전년동기 대비 23.5% 증가외국인 1만 2027명 107% 쑥방학 맞아 물소중이 만들기체험도 해녀문화의 가치를 알리는 제주해녀박물관 관람객수가 올해 상반기 5만명을 돌파했다. 15일 제주도에 따르면 제주의 독특한 문화유산인 해녀문화를 전시하는 제주해녀박물관의 국내외 관람객 수가 지난 6월 30일 기준 전년 동기 4만 6739명 대비 23.5% 증가한 5만 7733명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내국인은 4만 5706명(78.2%)이며, 외국인이 1만 2027명(20.8%)이다. 특히 외국인 관람객은 전년 동기(5787명) 대비 107.8% 증가한 1만 2027명을 기록하며 해녀문화에 대한 국제적인 관심이 높아지고 있음을 보여줬다. 국가별 방문객 현황을 살펴보면 미국(3765명), 대만(2349명), 싱가포르(1301명), 중국(1274명), 말레이시아(215명) 순이었다. 해외 관람객 증가 원인으로는 대만 등 해외 직항노선 증가와 크루즈 관광객의 증가, 세계 각국 한국문화원과의 협업을 통한 해녀 공연과 전시 등 해외 홍보 강화의 결과로 분석된다. 국내 관람객도 전년 동기(4만 952명) 대비 11.6% 증가한 4만 5706명이 해녀박물관을 찾았다. 현장학습, 수학여행 등 어린이 및 청소년 단체 관람객이 눈에 띄게 증가했다. 제주해녀박물관은 제주 해녀의 삶과 문화를 소개하는 주요문화 시설로 관람객들에게 제주의 해녀들이 이어온 어업활동과 해녀문화를 체계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관람객들은 다양한 전시와 프로그램을 통해 제주 해녀의 역사와 생활을 깊이 있게 체험할 수 있다. 여름방학을 맞아 오는 17일부터 8월 14일까지 어린이와 가족이 함께 참여하는 해녀문화 교육 ‘해녀옷 이야기’ 프로그램도 운영해 눈길을 끈다. 상설전시실의 ‘제주해녀의 물옷과 물질도구’ 전시를 관람한 후, 가족이 함께 한지로 ‘물소중이’를 만들어 입어보는 체험의 시간이다. ‘물소중이’는 고무옷이 나오기 전 1960년대까지 해녀가 착용했던 전통 해녀옷. 해녀박물관 전시실에는 유엔(UN) 원조 밀가루 포대로 만든 물소중이, 물살이 센 지역에서 입었던 원피스형 물소중이 등 해녀들이 직접 만들어 입었던 다양한 유물이 전시돼 있다. 정재철 제주도 해양수산국장은 “해녀박물관을 찾는 국내외 관람객이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것은 해녀문화의 가치와 역사적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앞으로 외국어 콘텐츠 보강과 전시 개선, 국내외 홍보활동 강화로 해녀문화를 전 세계에 알리는데 주력하겠다”고 말했다.
  • 가톨릭중앙의료원, 지난해 자선진료 등 사회공헌활동 200억원 돌파

    가톨릭중앙의료원, 지난해 자선진료 등 사회공헌활동 200억원 돌파

    2023년 220억 원 규모 역대 최고전년대비 36.1% 증가 가톨릭대 가톨릭중앙의료원(의무부총장 겸 의료원장 이화성 교수)이 지난해 한 해 동안 소외되고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펼친 사회공헌활동 규모가 사회공헌활동 집계 이후 처음으로 200억원을 돌파했다. 8일 의료원에 따르면 가톨릭중앙의료원과 산하 8개 병원(서울성모병원·여의도성모병원·의정부성모병원·부천성모병원·은평성모병원·인천성모병원·성빈센트병원·대전성모병원)의 지난해 사회공헌활동 총규모는 220억원으로, 전년 대비 36.1% 증가했다. 2021년과 비교하면 77.4% 증가한 수치다. 수혜 인원은 10만 6000명으로 2022년(7만 9000명)보다 33% 증가했으며, 코로나19 이전 수혜 인원 13만 6000명에 가까운 수준이었다. 가톨릭중앙의료원 사회공헌활동 규모 증가는 자선진료뿐만 아니라 코로나19로 인해 어려웠던 이주민 대상 직접 진료, 국내 및 해외 의료봉사 등을 본격화한데 따른 것이다. 가톨릭중앙의료원의 사회공헌활동은 ▲기부 ▲자선진료 ▲국내 및 해외 의료봉사 ▲상설진료소 운영 ▲초청연수 및 교육 등 총 7개 부문으로 진행된다. 이 중 자선진료(177억 5000만원), 기부금(10억 5000만원), 국내 및 해외 의료봉사(6억 2000만원) 순으로 지원 금액이 높았다. 가톨릭중앙의료원의 사회공헌활동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부분이 바로 자선진료 사업이다. 지난 11년간(2013년~2022년) 가톨릭중앙의료원 산하 8개 병원의 자선진료 실적은 코로나19 팬데믹 발생 초기인 2019년을 제외하고 꾸준히 증가해 왔다. 2013년 약 90억 원 가량의 자선진료 사업을 시행한 가톨릭중앙의료원은 다음 해인 2014년 103억 4000만원으로 100억원대를 돌파한 뒤 지속적으로 성장해 2022년 145억 6000만원, 지난해 177억 5000만원으로 역대 가장 많은 지원을 기록했다. 특히, 11년간 가톨릭중앙의료원의 자선진료 사업을 통해 수혜를 받은 인원은 39만명이며, 총 규모는 1326억 5000만원에 이른다. 자선진료는 암을 비롯한 혈액암, 심혈관 질환, 뇌혈관 질환과 같은 중증 질환을 중심으로 이뤄졌고, 안질환, 만성신부전, 폐렴 등과 같은 다빈도 발생 질환도 사업에 포함됐다. 또 고령화 지역사회 특성을 반영한 무릎 퇴행성 관절염, 노인성 안질환 의료비 지원, 자선 건강검진 등의 사업도 진행하고 있다. 이밖에 미혼모, 다문화가정, 외국인 근로자 가정 등 사회취약계층의 고위험 산모 및 신생아 지원, 자살 예방 사업에도 적극 나서는 등 가톨릭 기관으로서 사회문제 해결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다.가톨릭중앙의료원은 국내 자선진료뿐만 아니라 해외의 어려운 이웃들에게도 따뜻한 손길을 건네고 있다. 대표적으로 2018년 가톨릭중앙의료원 및 산하병원 사회공헌활동의 컨트롤타워인 ‘가톨릭메디컬엔젤스’(Catholic Medical Angles)을 설립해 국내뿐 아니라 해외의료 지원 등 다양한 분야에서 체계적인 실행과 지원, 병원별 연계를 통한 시너지를 창출하고 있다. 해외 현지의 의료지원과 더불어 수술이 어려운 환자를 국내로 초청해 수술을 해주는 사업도 하고 있으며, 몽골, 캄보디아, 동티모르, 필리핀, 부르키나파소 같은 다양한 나라들에 대한 다양한 지원을 지속하고 있다. 이화성 가톨릭대 의무부총장겸 의료원장은 “가톨릭중앙의료원은 가톨릭 영성을 기반으로 다양한 사회공헌활동을 통한 가치 구현을 이어오며 의학 발전을 선도해 왔다”며 “앞으로도 다양한 사회공헌활동을 통해 의료사각지대에 놓인 환자들에게 꼭 필요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물론, 사회공헌의 지속적인 증가를 위해 활동 범위와 형태의 다각화를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가톨릭중앙의료원의 사회공헌활동은 성모병원이 1936년 조선교구 설정 10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서울 중구 명동에 설립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진행됐다. 성모병원은 과거 한국 가톨릭교회의 자선진료 전통을 계승해 무료 진료소 운영 및 이동 진료사업도 함께 진행했고, 한국전쟁 기간에도 ‘가톨릭의료봉사단’을 편성해 활동해 왔다. 이후 1954년 가톨릭중앙의료원의 제2 부속병원인 성요셉자선병원 개원과 더불어 무의촌 무료 이동진료 활동 또한 활발히 펼쳐왔다. 이후 1960년대 무료진료소를 거쳐 80년대의 자선진료소까지 가톨릭교회의 자선 진료 전통을 계승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지속적인 노력을 해왔다.
  • 뛰는 놈 위 나는 놈… 교묘해지는 도핑, 진화하는 ‘AI 수사관’[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함께하는 과학 다이브]

    뛰는 놈 위 나는 놈… 교묘해지는 도핑, 진화하는 ‘AI 수사관’[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함께하는 과학 다이브]

    벤 존슨·마라도나·암스트롱 추락러는 ‘올림픽 출전금지’ 불명예금지약물 100개→800여개로 늘어뇌 자극·유전자 조작 수법도 등장 인공지능 활용 첨단 디지털 검사섭취 식품 도핑물질 여부도 분석모든 생체 표지 인자 분석 기술 전 세계서 한·미·브라질만 보유 1988년 서울올림픽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 올림픽 역사에서도 길이 남을 기념비적인 대회였다. 앞서 1980년 모스크바와 1984년 로스앤젤레스에서 연거푸 반쪽짜리 대회가 열릴 만큼 대립과 갈등이 심했던 동서 진영의 냉전 시대를 지나 여러 국가가 모처럼 모두 참가하며 냉전 종식과 인류 화합에 크게 기여한 올림픽으로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여러모로 더 큰 세계적 화제는 따로 있었다. 바로 36년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사상 최악의 도핑 스캔들 중 하나로 회자되고 있는 100m 육상스타 벤 존슨의 금메달 박탈 사건이다. 캐나다 국적의 벤 존슨 선수는 동갑내기인 미국의 칼 루이스 선수와 세기의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며 당대를 호령했던 스프린터다. 국제대회에서 번번이 루이스에게 밀려 아쉬움을 삼켰던 존슨은 1987년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 비로소 루이스의 벽을 넘어서며 9초 83의 세계신기록으로 우승했다. 그리고 이듬해 서울올림픽에서 9초 79로 다시 한번 세계신기록을 경신하며 루이스를 제치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하지만 영광은 3일 천하로 끝났다. 존슨의 도핑 검사 결과 대표적인 금지 약물인 아나볼릭 스테로이드가 검출된 것이다. 서울발 속보 경쟁이 전 세계로 뜨겁게 펼쳐졌고 결국 그의 올림픽 금메달은 박탈됐다. 세계기록도 무효 처리됐다. 세계를 놀라게 한 이 희대의 사건은 그간 암암리에 금지 약물을 사용하는 것으로 의심받아 온 동구권 공산주의 국가들뿐만 아니라 서방 자유세계까지 지구촌 스포츠계 전반에 걸쳐 도핑 문제가 만연해 있다는 사실을 알리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 고된 훈련을 하지 않고도 단기간에 운동 능력을 끌어올릴 수 있는 약물 복용은 사실 매우 오랜 역사가 있다. 고대 그리스에서 열린 올림픽에서도 운동선수들은 경기를 앞두고 무화과나 버섯, 지금은 성분을 알 수 없는 모종의 가루약 등을 먹으며 성적 향상을 꾀했다고 한다. 근대에는 술과 아편도 동원됐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약물 복용의 심각성에 대해 경각심을 갖게 된 것은 1960년 로마올림픽에서 덴마크의 사이클 선수가 각성제인 암페타민 과다 복용으로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지면서부터다. 이를 계기로 IOC와 각 경기 연맹은 약물 복용을 금지하기 시작했고 1968년 동계올림픽부터 도핑 테스트가 공식화됐다. 하지만 메달을 박탈당하고 국제대회 출전이 금지되는 사례들은 끊임없이 등장했다. 독일 통일 전 1970~80년대의 동독은 체제의 우수성을 보여 주기 위해 정부 차원에서 운동선수들에게 강제로 금지 약물을 투여하고 이를 은폐했다. 결국 통일 후 발각돼 일부 가해자들이 재판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지만 심장질환, 암, 불임 등의 더 큰 후유증은 선수들이 고스란히 떠안게 됐다. 아르헨티나 축구 영웅 마라도나가 1994년 미국 월드컵에서 선수 생활의 마침표를 찍게 된 것도 금지 약물 때문이다. 조별 예선 경기 후 치른 도핑 검사에서 그는 금지 약물인 에페드린에 양성 반응을 보였다. 많은 나이에도 여전히 전성기 때의 실력을 과시해 1986년 멕시코 월드컵 우승에 이어 다시 한번 월드컵을 품에 안을 것이라 기대했던 전 세계 축구 팬들은 큰 충격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인간 승리의 표상으로 전 세계의 추앙을 받아 온 미국의 사이클 황제 랜스 암스트롱의 추락은 더 충격적이었다. 암스트롱은 투르 드 프랑스 7연패라는 전무후무한 대기록을 쌓았다. 특히 고환암을 딛고 이뤄 낸 위업이라 더 큰 찬사를 받았다. 하지만 팀 동료로부터 금지 약물에 관한 소문이 흘러나왔고 남성성을 촉진하는 테스토스테론과 적혈구 생성을 촉진하는 에리트로포에틴을 투입해 왔던 게 사실로 밝혀졌다. 국제사이클연맹은 “스포츠 역사상 가장 정교하고 전문적인 도핑 기획”이었다며 그의 우승 기록 박탈과 영구 제명을 결정했다. 2014년 소치동계올림픽에서는 러시아 정부가 자국 선수들의 금지 약물 복용 사실을 숨기기 위해 도핑 검사에서 조작된 결과를 발표한 것을 눈치챈 세계반도핑기구가 한동안 러시아의 올림픽과 세계선수권대회 출전을 금지했다. 이 때문에 2022년 베이징동계올림픽에 출전한 러시아 선수들은 정식 국호 대신 러시아올림픽위원회(ROC)라는 명칭을 달고 나왔는데 그 와중에도 도핑 파문은 계속됐다. 러시아의 강력한 피겨 금메달 후보 카밀라 발리예바가 심장 보호 작용을 하는 트리메타지딘을 복용한 것으로 알려져 결국 메달의 꿈을 접었고, 근육강화제 클로스테볼 등의 검출로 스페인·이란·우크라이나 선수들이 줄줄이 퇴출당했다. 도핑 검사는 통상적으로 선수의 소변과 혈액을 분석하는 방법으로 진행된다. 규모가 큰 대회의 경우 약 10%의 선수들을 무작위로 뽑아 약물 검사를 시행한다. 대표적인 검출 방법은 크로마토그래피 질량분석기를 사용하는 것이다. 스테로이드계 약물은 방사성동위원소 분석 장비로도 잡아낼 수 있다. 근육강화제 등에 포함된 탄소를 분석해 체내에서 자연스럽게 분비된 것인지 아니면 외부에서 주입된 것인지를 알아낼 수 있는 것이다. 자신이나 타인의 피를 수혈해 적혈구 수와 헤모글로빈 농도를 끌어올리는 혈액도핑은 여러 가지 혈액 파라미터를 분석해 재주입 여부를 확인한다. 올림픽과 세계선수권대회 같은 대규모 국제대회가 열리면 전 세계의 많은 도핑 전문가도 검사를 돕기 위해 개최지에 집결한다. 우리나라에서는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도핑컨트롤센터의 전문가들이 파견되는데 2020년 도쿄올림픽에서는 성장호르몬 및 유사 금지 약물, 적혈구 생성촉진인자 분석기술과 도핑 시료 분석 등의 첨단 노하우를 일본 현지 전문가들에게 전수하고 돌아왔다. 올해 설립 40주년을 맞는 센터는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처음 문을 열었다. 존슨의 금지 약물 복용 사실을 적발한 것도 이곳이다. 시대를 막론하고 금지 약물의 유혹은 쉽사리 뿌리치기 힘든 것이다. 당시 100여종이었던 금지 약물 수는 현재 800여개까지 늘어났다. 발각되지 않기 위한 방법도 더욱 교묘해지고 있다. 최근에는 체내 적혈구 생성을 촉진해 지구력을 극대화하는 적혈구 생성 촉진인자 호르몬제나 성장호르몬제를 넘어 브레인·유전자 도핑까지, 기존의 방법으로는 좀처럼 분석과 검출이 쉽지 않은 기술도 등장하고 있다. 브레인 도핑은 특수 장비를 통해 약한 전류로 뇌의 특정 부위를 자극해 균형감각과 운동기능을 극적으로 끌어올리는 방법이다.(그림①) 유전자 도핑은 스포츠 활동과 관련된 유전자의 결함과 결핍을 보완해 빠른 근육 강화와 근섬유 재생, 염증 감소, 회복력 향상 등을 도모하는 유전자 조작 기술이다. 과거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최신 도핑 수법을 찾아내기 위한 과학기술의 진화도 그에 못지않게 빠르다. 방대한 도핑 데이터를 학습한 인공지능이 패턴을 인식해 도핑 가능성이 높은 사례를 신속하게 식별하는 iD²(intelligent Doping Diagnosis) 등의 첨단 디지털 도핑 기술이 대표적이다. 기존의 혈액 시료 분석법과 달리 운송과 보관이 자유로운 건조혈반 기술, 선수 생체 여권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금지 약물 복용을 선제적으로 예측하는 분석시스템 등도 연구가 활발하다. 적혈구 생성 촉진인자 호르몬제나 성장호르몬제 정밀 분석기술은 이미 확보된 상태이다.(그림②) 한편에서는 스포츠의 생명인 공정성과 선수들의 건강을 함께 지킬 수 있는 기술 개발도 활발하다. 무심코 감기약이나 보충제 등을 먹었다가 뜻하지 않게 도핑에 적발되는 선의의 피해자들을 구제하기 위해 선수들이 섭취하는 식품과 약물에 도핑 물질이 포함됐는지를 미리 확인하는 식품 도핑 기술(VFD)이 개발되고 있다. 최근에는 체대 입시생을 대상으로 한 정기 검사와 교육 프로그램도 주요 관심사다. 경쟁이 워낙 치열하다 보니 일부 학생들의 금지 약물 사용 가능성까지 대두되고 있기 때문이다.(그림③)이처럼 공정하고 건강한 스포츠 환경을 만들기 위한 노력에 힘입어 우리나라는 까다로운 조건 때문에 아직 전 세계 30여개소밖에 없는 세계반도핑기구(WADA) 인증 공식 분석기관 중 한 곳이다. WADA의 ‘전 세계 도핑센터별 고위험 종목 특수분석 기술’ 자료에 따르면 모든 종류의 생체 표지 인자 분석 기술을 갖고 있는 나라는 전 세계적으로 한국, 미국, 브라질 등 3곳뿐이다. 오는 26일 전 세계가 하나 되는 축제, 파리올림픽이 4년 만에 다시 개최된다. 이미 한 해 전부터 각국 대표 선수들을 대상으로 사전검사와 도핑 방지 대책에 분주했던 국내외 반도핑 전문가들은 개막이 한 달도 남지 않은 지금 더욱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을 게 분명하다. 130년 전 근대 올림픽의 창시자인 쿠베르탱 남작은 “건강한 몸에 건전한 정신이 깃든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더불어 “올림픽의 정신은 이기는 것이 아니라 잘 싸우는 것”이라는 말도 전하고 있다. 그가 남긴 진정한 올림픽 정신의 수호를 위해, 또 스포츠라는 순수한 열정을 향한 선수들의 도전과 헌신이 공명정대한 결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오늘도 무대 뒤에서 동분서주 굵은 땀을 흘리고 있을 그들 모두에게 뜨거운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손정현 센터장은 대한민국 최고의 반도핑 과학자로서 지난 20여년간 직간접적으로 반도핑 과학에 헌신하고 있다. 그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도핑컨트롤센터를 세계 최고의 자리로 이끌었으며 혁신적인 기술 개발, 끊임없는 아이디어와 도전으로 공정한 스포츠 정신을 지키는 데 기여하고 있다. 손정현 KIST 도핑컨트롤센터장
  • 미중경쟁시대 주목받는 베트남 ‘대나무외교’…그 뿌리가 궁금하다면 [세책길]

    미중경쟁시대 주목받는 베트남 ‘대나무외교’…그 뿌리가 궁금하다면 [세책길]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지는 새로운 소식들, 흐름을 놓치지 않으려 노력하는 게 오히려 길을 잃게 만들거나 눈을 가릴 때도 있습니다. 한 발 떨어져서 느리게 세상을 살피는 길, 책만한 게 없지요. <세책길(세상만사, 책에서 길어올린 이야기)>을 통해 통찰력과 상상력을 함께 나눠 보겠습니다.(편집자 주)전세계에서 한국과 가장 ‘닮은’ 나라를 찾는다면 어느 나라라고 대답하는 사람이 가장 많을까. 물론 북한은 빼놓고. 외국인들이라면 십중팔구 일본을 떠올릴 듯 싶다. 거기다 하나를 더 꼽는다면 단연 베트남을 꼽을 수 있지 않을까. 일단 한국과 베트남은 유교적 가치관을 공유한다. 사실 천년 넘게 과거시험으로 관료를 선발하는 제도를 운영한 게 전세계에서 한국, 중국, 베트남 세 나라 뿐이다. 전통시대에는 둘 다 한자문화권에 속해 있었고, 그러면서도 불교도 발달했다. 쌀농사문화에서 오는 공동체 중심, 마을문화도 그렇다. 대외관계에서 보면, 중국과 국경을 맞댄 역사적 경험에서 오는 애증을 공유하고, 반도라는 지정학적 위치, 거기다 식민지와 분단을 경험했다는 점도 닮았다. 최근 국제무대에서 베트남이 주목받고 있다. 지난해 9월 조 바이든, 지난해 12월 시진핑에 이어 지난달에는 블라디미르 푸틴이 베트남을 방문해 정상회담을 했다. 특정한 국가와 척지지 않고 더 많은 친구를 만들려 하는 ‘대나무 외교’의 힘이 아닐 수 없다. 베트남 외침과 식민지배, 분단과 전쟁이라는 수백년에 걸친 고난의 역사를 거치며 체화한 실용적 처세술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고 마냥 고개를 숙이는 것도 아니다. 베트남은 세계 최강대국인 몽골, 중국, 일본, 프랑스, 미국과 전쟁을 했고 이겼던 흔치 않은 기록을 갖고 있다. 베트남의 첫인상을 결정지은 건 대학 시절 읽었던 책 두 권이었다. 학과 책꽂이에 꽂혀 있길래 별 생각 없이 읽었던 <불멸의 불꽃으로 살아>(챤딘반, 도서출판 친구, 1988)와 <사이공의 흰 옷>(구엔 반 봉, 도서출판 친구, 1986)이었다. 모두 미국과 맞서 싸우던 전쟁을 배경으로 한 책이었는데 소싯적에 읽은 책이 그 후 수십년간 베트남에 대한 이미지로 각인된 셈이다. <불멸의 불꽃으로 살아>는 원래 제목이 <당신처럼 살리라>라고 하는데, 베트남전쟁 당시 남베트남 정권에 ‘시국사건’으로 체포돼 1964년 총살당했던 우옌 반 쵸이 이야기를 담았다. 당시 미국 국방장관이었던 맥나마라가 통과할 예정이었던 다리를 폭파하려 했다는 혐의였다. 아내 판 티 쿠옌이 진술한 우옌 반 쵸이 이야기를 작가 챤딘반이 글로 정리했다고 한다. 우옌 반 쵸이가 총살당하기 직전 눈가리개를 벗어던지며 “우리들의 영원한 사랑, 이 땅을 보게 하라”고 외쳤다는 장면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다.<사이공의 흰 옷> 역시 남베트남, 그 중에서도 수도였던 사이공에서 학생운동에 참여했던 고등학생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이다. 제목에서 흰 옷은 당시 남베트남 여학생들의 교복이라고도 할 수 있는 흰 아오자이를 상징한다.(사이공은 전쟁이 끝난 뒤 호찌민으로 이름을 바꿨다). 따뜻한 시선과 서늘한 비판으로 관찰한 베트남 이때까지만 해도 베트남이라고 하면 베트남전쟁부터 떠올렸다. 베트남 수천년 역사에서 기억하는 건 고작 20세기 초반부터 전쟁이 끝난 1975년까지 대략 50여년에 불과했던 셈이다. 그런 면에서 소설가 유재현이 쓴 인도차이나 여행기 <메콩의 슬픈 그림자, 인도차이나>(유재현, 창비, 2003)는 베트남과 그 이웃나라들을 이해하는 길라잡이가 됐다. 당시 여러 매체에 연재하던 여행기에서 상당한 통찰력을 보여줬던 유재현은 이 책에서 베트남을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한 이야기를 맛깔나게 들려준다. 베트남전쟁을 상징하는 유산 가운데 하나가 땅굴이다. 유재현은 멋모르고 땅굴에 들어갔던 체험을 통해 베트남 사람들이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에서 겪었던 고통과 승리를 들려준다.“우리는 베트남전쟁에서 그들이 승리했다는 사실만을 기억하고 싶을 뿐이지 꾸찌의 인민들이 전쟁에서 겪어야 했던 끔찍한 고통과 비극에 대해서는 눈을 감고 있는지도 모른다. 미군 폭격기들이 네이팜탄을 쏟아붓던 이 지역은 풀 한포기 제대로 자라지 못하는 황무지로 변했다. 그 폭격에서 살아남아 미국과 싸우기 위해 그들은 터널을 파고 어둡고 습한 땅 밑으로 숨어들어야 했다(67쪽).”베트남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놓치 않으면서도 베트남이 캄보디아나 라오스를 대하는 ‘갑질’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것도 미덕이다. 가령 ‘외세의 침략에 맞선 베트남’이라는 이미지와 달리 “그러나 동시에 베트남의 역사는 남진(南進)을 시작했던 11세기 이후 줄곧 침략의 역사이다. 지금의 영토는 그 침략과정에서 얻어진 것이다(20쪽)”고 꼬집는다. 그는 베트남이 “미국이 패퇴한 인도차이나에서 스스로 패권주의자가 되고자 했다”면서 “통일베트남의 군사엘리트들은 라오스에 병력을 주둔시켰고 형제국인 캄보디아를 무력으로 침공하는 길을 택했다. 스탈린주의의 망령이 깃든 인도차이나에 동서냉전과 중소분쟁의 모순이 가세했다(7~8쪽).” 오늘날 베트남을 이해하려면 반드시 알아야 할 사람이 말 그대로 베트남의 국부라고 할 수 있는 호찌민이다. 수도 하노이에는 호찌민 시신을 방부처리한 기념관이 있고 남부 최대도시 사이공은 이름을 호찌민으로 바꿨을 정도다. 유재현은 호찌민에 대해 냉정한 시선을 유지하려 한다. “호찌민이 남긴 최악의 유산은 인도차이나에서 베트남 패권주의의 기틀을 다진 것이다…후일 베트남이 라오스와 캄보디아에 군사적으로 개입하고 결과적으로 이 두 나라를 자국의 영향력 아래 두려 했던 것은 호찌민이 생전에 견지했던 노선의 자연스런 계승이자 귀결이었다(40~41쪽).”베트남을 이해하는 열쇳말, 호찌민 호찌민을 제대로 다룬 평전으로 기억에 남는 건 미국인 외교관 출신 역사학자인 윌리엄 J. 듀이커가 쓴 <호치민 평전>(푸른숲, 2003)이다. 1960년대 해외 파견 장교로 사이공에서 미국대사관 근무를 했던 경험이 있는 저자는 1000쪽 가까이 두툼한 책을 통해 호찌민과 베트남 근현대사를 조망한다. 이 책에서 저자가 호찌민을 “반은 레닌이고 반은 간디였다(839쪽)”며 ‘총을 든 간디’로 묘사하는 게 인상적이다.하노이에서 만난 ‘의지의 베트남 아줌마’ 격동의 베트남 현대사로 머리가 아프기 시작할 때 가벼운 마음으로 읽을 수 있는 베트남 여행기로 찾은 게 <사바이 인도차이나>(정숙영. 부키, 2011)였다. 사실 이 책에서 베트남 부분은 65쪽 정도로 큰 비중을 차지하진 않는다. 여행지도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버스로 호찌민에 간 뒤 달랏에서 열흘 가량 머문 게 전부다. 호찌민에선 시내 중심가에서 친구와 놀고 쇼핑하고 먹으며 보냈고 달랏에선 열흘 동안 인터넷 잘 되는 카페에서 일하다 산책하다 쌀국수 먹는 일상이었다. 그럼에도 이 책은 여성작가 글에서 느낄 수 있는 생생한 묘사와 생동감 넘치는 표현으로 베트남을 함께 여행하는 듯 눈을 즐겁게 한다. 가령 이런 식이다.“언니!” “복숭아!” “맛있어요!” 이 세 마디를 옴마니 반메훔처럼 외치시던 아줌마는 절대 안 산다는 우리의 손사래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주문을 외우시더니 결국은 복숭아 하나를 우리에게 주고 가셨다. 우리는 잠시 아줌마에 대한 토론을 했다. 세 번이나 마주쳤으니 이것도 인연 아니겠느냐고. 그러니까 네 번째 마주치면 그건 진짜 인연이니 사 주는 게 맞는 거 같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그 진짜 인연은 금세도 찾아왔다. 토론 마치고 내가 잠시 화장실 간 새 아줌마가 또 나타나 “맛있어요!”를 외친 것이다. 결국 B양은 약간의 실랑이 끝에 복숭아 500그램을 사고 말았고, 하나 먹고는 다 버렸다. 아아. 아줌마. 십 년 만에 만난 조카한테도 기어이 복숭아를 다 팔 것 같은, 당신은 의지의 베트남 아줌마(331~333쪽).
  • “손모양 이상해” 두골 넣고도 위기…‘수상한 세리머니’에 발칵

    “손모양 이상해” 두골 넣고도 위기…‘수상한 세리머니’에 발칵

    2024 유럽축구선수대회(유로2024)에서 튀르키예 선수가 골을 넣은 뒤 선보인 ‘늑대 경례’ 세리머니가 외교 갈등으로 번지고 있다. 늑대 경례는 엄지와 약지·중지를 모으고 나머지 두 손가락은 곧게 펴 늑대 옆모습처럼 만드는 손동작이다. 독일을 비롯한 유럽에서는 튀르키예 우익 극단주의 단체 ‘회색 늑대’의 인사법으로 통한다. AFP통신 등에 따르면 문제의 세리머니는 2일(현지시간) 독일 라이프치히에서 열린 튀르키예와 오스트리아의 16강전에서 나왔다. 튀르키예 센터백 메리흐 데미랄(26·알아흘리)은 후반 14분 자신의 두 번째 골을 넣은 뒤 양손으로 늑대 경례 세리머니를 했다. 우익 단체 회색 늑대는 튀르키예 주류인 튀르크족을 제외한 쿠르드족과 유대인 등 다른 민족을 적으로 규정한다. 회색 늑대의 정치집단 격인 민족주의행동당(MHP)은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의 집권 정의개발당(AKP)과 동맹을 맺고 있다. 오스트리아 ‘늑대 경례’ 금지…독일도 감시 중 MHP는 1960년대 창당 이후 수십년 동안 좌파 단체를 상대로 한 폭력 행위에 연루된 혐의를 받아 왔다. 이에 프랑스는 회색 늑대의 활동을 법적으로 금지했고, 오스트리아는 데미랄이 선보인 회색 늑대 경례법을 금지했다. 독일에서는 아직 해당 손동작이 금지되어 있지 않지만, 독일 헌법수호청은 자국에 1만명 넘는 회원을 보유한 이 단체를 우익 극단주의로 분류해 감시한다. 다만 튀르키예인 입장에서는 늑대 경례가 반드시 우익 극단주의의 상징은 아니라는 반론도 있다. 튀르크족은 과거 중앙아시아에서 고난을 겪을 당시 늑대가 나타나 안전한 장소를 알려줬다고 해서 늑대를 신성하게 여긴다.데미랄 “정체성과 관련된 문제”…UEFA 조사 데미랄은 자신의 손동작이 국가적 자부심을 순수하게 표현한 것이라는 입장이다. 그는 경기 이후 기자회견에서 “세리머니는 튀르키예인으로서 나의 정체성과 관련된 문제”라며 “이 세리머니를 보여줄 기회가 더 있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유로2024 개최국 독일의 내무장관인 낸시 페저는 “튀르키예 우익 극단주의자들의 상징은 우리 경기장에 설 자리가 없다. 유럽축구선수권대회를 인종주의의 장으로 삼는 건 절대로 용납할 수 없다”며 유럽축구연맹(UEFA)에 조사를 촉구했다. UEFA은 3일 데미랄의 ‘부적절한 행동’에 대한 조사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이에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의 대변인 오메르 셀릭은 “UEFA의 조사는 용납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튀르키예 외무부는 튀르키예 주재 독일대사를 청사로 불러 자국 선수의 세리머니에 대한 독일 정치인들의 비난에 항의했다. 외무부는 “역사적, 문화적 상징을 사용한 것을 정치적 동기로 조사하고 있다”며 “독일 당국이 데미랄에게 보인 반응에는 외국인 혐오가 포함되어 있다”고 했다. 독일 MDR방송의 튀르키예 전문가 툰자의 외즈다마르는 “에르도안 대통령도 몇 년 전 늑대 경례를 한 적이 있을 정도로 튀르키예에서는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면서도 “데미랄은 자신의 행동이 어떤 의미인지 알았을 것이다. 늑대 경례는 터키 사회와 팬들, 팀을 분열시킨다”고 말했다. 한편 데미랄은 이날 16강 경기에서 2골을 넣으며 팀의 2대1 승리를 이끌었다. 그는 경기 후 최우수 선수로 선정되기도 했다.
  • [기고] 철도 중심 교통체계 대전환, 운임비용 인상 없인 안 된다

    [기고] 철도 중심 교통체계 대전환, 운임비용 인상 없인 안 된다

    K패스의 인기가 뜨겁다. 지난 5월 서비스를 시작한 이래 이용자가 100만명을 넘어서며 고물가 시대 대중교통의 중요성을 실감케 한다. 철도의 대중교통 수송 분담률은 30%대에 머물고 있다. 도로 중심 교통정책에 기인한다. 1960년대 후반 정부는 교통 투자를 철도에서 도로 중심으로 전환했다. 전국에 일일생활권을 실현하고 국가와 지역경제 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 하지만 자동차 수요가 폭증하면서 2000년대 들어 혼잡 비용이 연간 65조원에 이르는 등 후유증이 심각하다. ‘루이스·모그리지 명제’라는 이론이 있다. 교통 체증 해소를 위해 도로를 신설해도 효과가 없다는 것이다. 건설 초기엔 차량 흐름이 빨라지지만 새로운 자동차 이용 수요로 체증이 반복된다. 일정 규모 이상이 되면 도로 확대보다 대중교통을 늘려 교통 수요를 분산시키는 것이 혼잡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다. 지구온난화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전 세계가 친환경 교통수단인 철도에 대한 투자를 대폭 늘리고 있다. 우리도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2050 국토교통 탄소중립 로드맵’은 대중교통 활성화, 철도 중심 교통체계 구축을 통한 전국 2시간 생활권을 목표로 제시했다. 철도의 여객 수송 분담률을 15%로 높이고 지방 중소도시에까지 고속철도가 운행되면 대중교통의 서비스 격차도 해소될 것으로 기대된다. 철도 수송 분담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낡은 시설에 대한 선제적 관리와 개량이 필요하다. 2023년 인프라 조사를 보면 철도 시설 중 20년 이상 경과율은 38.5%에 이른다. 차량과 노후 역사에 대한 재투자 시기도 도래하고 있다. 시설 투자 감소는 안전·서비스 경쟁력 저하로 이어지고 다시 시설 투자가 줄어드는 악순환이 반복될 수 있다. 문제는 재원이다. 만성 적자인 철도 운영사들로서는 대규모 투자금을 조달하는 것이 쉽지 않다. 원가에 못 미치는 수익구조 때문이다. 철도 운임은 2011년 이후 13년간 동결됐다. 코로나로 막대한 손실까지 떠안아 투자 여력이 녹록지 않다. 재무 건전성 확보와 투자 확대가 이뤄지는 선순환 구조 복원을 위해서는 물가 상승률을 고려한 운임 인상이 필요하다. 운임 인상이 대중교통 활성화에 역행한다는 반론이 있지만 이는 고령자 무임승차나 K패스 같은 할인정책을 유지하기 위한 전제 조건이다. 운임 현실화는 안전과 서비스 질을 높이고 저소득층에게 복지 혜택을 제공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김현 한국교통대 교통에너지융합학과 교수
  • ‘860년 역사’ 노트르담 대성당, 손안의 AR로 만난다

    ‘860년 역사’ 노트르담 대성당, 손안의 AR로 만난다

    2019년 4월 15일 프랑스 파리의 상징인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화재가 발생해 첨탑과 지붕이 훼손됐다. 중세 고딕건축 최고 걸작이자 나폴레옹 황제의 대관식 장소, 빅토르 위고의 소설 무대가 된 유서 깊은 명소가 불타는 장면은 전 세계를 충격에 몰아넣었다. 프랑스 정부는 즉각 재건 계획을 세워 복원과 보강 작업을 진행했고 5년 8개월 만인 올해 12월 재개관을 앞두고 있다. 프랑스 왕국의 역사가 깃든 왕실 유산이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노트르담 대성당의 과거와 현재를 증강현실(AR)로 만날 수 있는 전시가 서울에서 열린다. 국립고궁박물관과 프랑스 기업 히스토버리가 협업한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 증강현실 특별전: 내 손으로 만나는 860년의 역사’가 2일 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개막한다. 이번 전시는 증강현실 스타트업 히스토버리가 노트르담 대성당 재건자문위원회와 함께 기획·제작해 2021년 11월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서 처음 소개됐다. 지난 2월 영국 런던 웨스트민스터 사원 등 지금까지 전 세계 15개 도시에서 순회 전시했다. 전시는 1163년 노트르담 대성당의 주춧돌을 놓는 순간부터 화재 이후 복원 과정까지 860여년의 역사를 증강현실로 구현했다. 관람객은 히스토버리가 개발한 프로그램이 담긴 태블릿 컴퓨터를 활용해 총 21개로 구성된 역사적 순간을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다. 전시는 2019년 화재 현장과 소방대원의 진압 과정 등을 소개하는 장면으로 문을 연다. 소방차의 긴박한 사이렌 소리와 연기가 파리 상공을 뒤덮는 영상 등을 통해 당시 상황을 입체적으로 되돌아보게 한다. 1180년 고딕 양식의 성가대석을 짓던 모습, 1804년 교황 비오 7세가 참석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대관식 장면, 1859년 첨탑이 건설되는 현장 등은 노트르담 대성당의 역사와 문화적 가치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전시장에는 대성당을 촬영한 사진 패널과 실물 크기로 제작한 석상도 만날 수 있다. 관람객이 태블릿을 들고 이동해야 하는 전시 특성상 전시장(400㎡) 규모를 감안해 동시 입장 인원을 100명 이하로 조절한다. 전시는 오는 9월 1일까지.
  • “사이비 역사학 다시 확산 위험… 역사학계, 대중과 소통 늘려야”

    “사이비 역사학 다시 확산 위험… 역사학계, 대중과 소통 늘려야”

    1970년대 ‘국사 교과서 파동’ 이후 2010년대까지 한국 고대사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사이비 역사학이 최근 다시 기지개를 켜는 분위기다. 가야고분군 세계유산 등재를 반대하는 운동을 주도하거나 ‘전라도 천년사’ 같은 지방자치단체의 역사 편찬에 제동을 거는 것은 물론 대학에 과정을 개설하고 학술지를 만들어 KCI 등재까지 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역사 계간지 ‘역사비평’ 147호(여름호)는 ‘사이비 역사학 비판과 비판 너머의 역사 쓰기’라는 주제로 ‘사이비 역사학’ 또는 ‘유사 역사학’의 문제점을 짚고, 기존 역사학계가 간과한 것은 없는지 진단했다. 기경량 가톨릭대 국사학과 교수는 ‘한국 사이비 역사학의 계보와 학문 권력에의 욕망’이라는 글을 통해 유사 역사학이든 사이비 역사학이든 무엇으로 부르든 “역사학을 비슷하게 흉내 내지만 실제로는 역사학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기 교수는 “한국의 사이비 역사학자들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기존 학계로부터 학문적 권위를 탈취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이비 역사가들은 자기 생각과 어긋나는 증거를 무시하고 자신의 주장을 강화해 주는 것만 선별적으로 사용한다는 특징이 있다. 이들에게 제도권 역사학계의 견해를 조금이라도 인정하는 것은 불의에 대한 굴욕 내지는 윤리적 타락을 의미한다. 특히 이들이 주장하고 끊임없이 조장하는 ‘대륙설’은 반도의 역사에 대한 깊은 혐오감과 멸시가 자리잡고 있으며, 광복 이후 오랜 기간 민족주의에 우호적이었던 한국사 교육과 담론이 낳은 결과라고 기 교수는 강조했다. 기 교수는 “사이비 역사학은 최근 제도권 학문의 외피를 확보하는 데 어느 정도 성공하고, 보수와 진보를 가리지 않고 정치인들과 교감하고 있으며, 여론 장악력도 뛰어나다”며 “자금력도 제도권 역사학계보다 압도적으로 풍부한 만큼 그들의 영향력과 위험성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문영 작가는 ‘한국 대중 작품에 깃든 유사역사’라는 글에서 ‘규원사화’, ‘천부경’, ‘단기고사’를 거쳐 ‘환단고기’까지 사이비 역사학을 이끈 위서들이 대중들에게 실질적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 중반부터 등장한 각종 민족주의적 소설을 통해서라고 설명했다. 또 1980년대 후반 유사 역사학의 약진과 1990년대 ‘국뽕’ 작품의 등장은 결을 같이한다고도 말했다. 그는 “유사 역사학은 자민족을 우선시하는 과대망상적 국수주의로 무장돼 있다”며 “유사 역사학에 대한 경계를 소홀히 하고 예전처럼 방치한다면 문화 창작계가 다시 사이비 주장으로 물들 가능성이 큰 만큼 역사학계는 시민 대중과 소통을 어떻게 늘릴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저자들은 우리 사회가 사이비 역사학이라는 반지성의 덫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학계 내부에 갇혀 있지 말고, 정치권·사회단체·대중과의 더 많은 소통을 통해 전문가 집단으로서의 신뢰와 권위를 회복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 겸재 정선의 풍속 기록화 ‘북원수회도첩’ 보물 됐다

    겸재 정선의 풍속 기록화 ‘북원수회도첩’ 보물 됐다

    진경산수화 대가 겸재 정선(1676~1759)의 초기 풍속 기록화가 담긴 ‘북원수회도첩’(北園壽會圖帖)이 국가지정문화유산 보물이 됐다. 국가유산청은 28일 ‘정선 필 북원수회도첩’을 비롯해 ‘도은선생집’ 등 5건을 보물로 지정했다고 밝혔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한 북원수회도첩은 숙종 재위 42년 때인 1716년 노론 원로 정객 은암 이광적(1628~1717)이 과거 급제 60년을 기리는 ‘회방연’을 계기로 10월 22일 북악산 장의동의 집에서 동네 노인들을 모아 기로회(耆老會)를 연 것을 기념해 제작한 서화첩이다.총 20장 40면인 서화첩 맨 앞에는 잔치 풍경을 생생하게 그린 ‘북원수회도’가 있고, 이어 잔치에 참석한 인사들의 명단을 적은 좌목과 참석자들이 쓴 시문, 그리고 잔치를 주선했으나 병이 나 불참한 겸재의 외삼촌 박견성의 아들 박창언이 쓴 발문으로 구성돼 있다. 국가유산청 관계자는 “진경산수를 대표하는 정선의 초기 기록화이고, 숙종 후반기에 활동한 중요한 역사적 인물들과 관련된 시문들이 함께 담겨 있다는 점에서 예술적 가치뿐 아니라 역사적 가치도 높다”고 평가했다. 전남대도서관 소장 ‘도은선생집’은 고려 말 학자인 이숭인(1347~1392)의 시문집이다. 1406년 태종의 명령으로 변계량이 시집 3권과 문집 2권으로 엮고, 권근이 서문을 지어 금속활자로 간행했다. 이번에 보물로 지정된 것은 목판으로 판각해 인출한 것이다. 이미 보물로 지정된 다른 목판본과 달리 서문과 발문이 온전히 전하고, 이숭인의 시문뿐 아니라 ‘고려사’ 등 역사서에 확인되지 않은 내용도 포함돼 있어 학술적 가치가 높다. 국가유산청은 이 밖에 ‘영덕 장륙사 영산회상도’와 ‘영덕 장륙사 지장시왕도’, ‘무안 목우암 목조아미타여래삼존상’ 등 조선시대 불화와 불상도 보물로 지정했다.
  • 세월호에서 잃은 딸 만난 아버지…새를 따라 떠난 시간여행

    세월호에서 잃은 딸 만난 아버지…새를 따라 떠난 시간여행

    개인의 삶은 지극히 개인적이지만 때론 역사가 되곤 한다. 연극 ‘새들의 무덤’ 주인공인 오루의 삶이 그렇다. 1960년대 태어나 군사정권과 경제성장을 경험하고 광주민주화운동을 거쳐 서울올림픽과 IMF 외환위기를 겪더니 2014년 딸을 잃는 비극마저 경험한다. 그의 삶에는 굵직한 현대사가 지나왔고 지금도 지나가는 중이다. “새야, 너는 나를 어디로 데려가는 거야? 뭘 더 떠오르게 하려고?” 공연장에 용접 작업을 위해 극장을 찾아온 오루는 비행하는 한 무리의 새들 속에서 어린 새 한 마리를 발견한다. 아장아장 걸어다니며 오루에게 선뜻 곁을 내주던 새는 오루를 과거의 기억 속으로 이끌기 시작한다. 첫 도착지는 1968년의 고향 마을. 그가 훗날 겪을 죽음을 암시하듯 작품은 어린 오루가 부모를 잃고 장례를 치르는 날부터 과거 여행을 시작한다. 어른이 된 오루는 과거로 시간여행을 떠나면서 그때는 몰랐던 것들을 하나씩 보게 된다. 그때는 길었을 하루들을 빠르게 훑어 올라오면서 오루의 기억은 그 시대를 조명한다. 1976년 섬마을에서 ‘빨갱이’ 대학생을 만났던 일, 1980년에 벌어진 굿판, 1988년 서울올림픽이 열리던 때 창신동 봉제공장에서 일하던 청년 시절 등 개인의 삶이지만 현대사가 촘촘히 얽혀 있다. 작품의 비극성은 1997년과 2014년을 오가며 더 짙어진다. 기술자이자 자영업자로 열심히 살았으나 외환위기는 그의 가정을 불행의 수렁으로 빠뜨린다. 희망이라고는 도무지 찾기 어려운 삶이지만 오루는 그해 태어난 쌍둥이 덕분에 살아갈 힘을 얻는다.1997년생 딸은 2014년 수학여행을 떠났다가 죽는다. 인생에 비극이 찾아올 때 얻었던 희망이 다시 절망이 되는 순간이다. 세월호로 세상을 떠난 단원고 학생들이 실제로 1997년생이었다는 점에서 오루의 개인적인 이야기는 시대의 비극으로 다가온다. 2014년 시간여행을 앞두고 “안 돼 여기는 싫어”라고 거부했던 오루가 당시 조선소에서 일했다는 사실은 배의 침몰을 더 아프게 전하는 장치로 작용한다. 기억에서 사라지면 진짜 이별이 찾아오는 법. 딸은 늘 곁에 있을 테니 기억해달라는 당부를 남긴다. 딸이 아버지에게 하는 말이지만 관객들 나아가 전체 국민에게 전하는 메시지처럼 다가와 눈물샘을 자극한다. ‘새들의 무덤’은 과거를 정면으로 바라보게 된 오루가 이를 딛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희망을 찾아 나서면서 따뜻한 위로도 함께 전한다. 2024 서울연극제 공식 선정작인 ‘새들의 무덤’은 2016년 초고를 완성해 2018년 쇼케이스, 2020년 초연, 2021년 재공연 과정을 거쳐왔다. 토속적인 풍경을 밀도 있게 구사했고 곳곳에 시대상을 촘촘하게 담아 풍성하게 해석할 수 있는 재미를 준다. 과거부터 최근의 일까지 굵직굵직한 연대기를 보여줌으로써 여러 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이다. 서울 종로구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23일이 마지막 공연이다.
  • [자치광장] 모두가 부모, 모두가 자녀다

    [자치광장] 모두가 부모, 모두가 자녀다

    1960년대 베이비붐 세대가 몰려온다. 전쟁 뒤 매년 90만명씩 태어났던 그 세대가 이제 65세 노인층이 됐다. 대한민국을 1인당 국내총생산(GDP) 3만 달러의 경제 대국 반열에 올려놓고, 못 입고 못 먹어도 자식 교육에 열을 올렸던 부모 세대다. 이제 좀 살 만한가 했더니 초고령사회를 이끄는 선두 그룹이 돼 버렸다. 더 안타깝게도 60대 이상 가계 자산 중 83%가 부동산이다. 재산이 집 한 채뿐이니 퇴직 후엔 생계를 걱정하며 20~30년을 버텨야 한다. 질병도 문제다. 눈부신 의료 기술의 수혜도 그만한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이들에게나 국한된 얘기다. 행복한 노년을 위해서는 ‘잘 먹고 잘 자는’ 일상 돌봄이 필수인데, ‘효’에 대한 인식은 많이 변했다. 19~34세 청년 20.6%만 가족이 부모 노후를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핵가족화 영향도 있겠으나, 형제자매가 줄어 부모 봉양에 대한 부담이 커진 탓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당장 내년이면 1000만명이 되는 노인 돌봄을 언제까지 가족 책임으로만 둘 것인가. 마포구는 ‘모두가 부모, 모두가 자녀’라는 새 패러다임을 한발 앞서 제시하며 효를 가족 내 영역에서 사회적 책임 영역으로 전환하고 있다. 지난 3월 윤석열 대통령이 제22회 민생토론회 노인 급식 확대 해법으로 거론한 ‘효도밥상’이 대표적인 예다. 이미 지난해부터 마포구는 돌봄이 필요한 75세 이상 어르신 1000여명에게 주 6일 따듯한 효도밥상을 차려드리고 있다. 고립 위기 노인을 집 밖으로 이끌어 같이 하는 식사로 소속감을 주면서 혈압, 당뇨 등 건강도 체크한다. 오지 않은 어르신은 안부를 확인해 고독사를 예방한다. 지난 4월에는 대량 조리·배송이 가능한 ‘반찬공장’까지 만들어 하반기 2000명까지 대상자를 확대할 계획이다. 효도밥상이 쏘아 올린 노인 복지 혁신은 저소득 독거노인의 열악한 주거와 고립 해결을 위한 공동숙식 주거모델 ‘효도숙식경로당’으로 이어졌다. 월 7만원 선의 낮은 임대료로 개인 침실과 쾌적한 공용 공간을 누릴 수 있으며 긴급상황에 대비해 방마다 비상벨이 설치됐다. 효도창구도 빠질 수 없다. 키오스크나 무인민원발급기 사용이 어려운 75세 이상 어르신이 민원 창구에 설치된 ‘효도벨’을 누르면 직원이 바로 민원 처리를 돕는다. ‘효도학교’도 6월 개학을 앞두고 있다. 부모와 병원에 동행하거나 여행하는 구청 직원에게 주는 ‘효도휴가’도 생겼다. 마포구 어르신 정책은 ‘효 시리즈’로 불리기 시작했다. 덕분에 ‘효도 구청장’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그러나 바라는 것은 칭찬받는 구청장이 아니라 구민 모두가, 국민 전체가 효라는 이름의 돌봄을 행하고 받는 게 당연한 사회다. 과거엔 철저히 자녀와 배우자의 몫이었다면 이제는 지역사회 구성원 전체가 든든한 효자, 효녀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누구나 노인이 된다’라는 피할 수 없는 진실이 우리나라에서만큼은 두렵거나 불안한 일이 아니라 반길 수 있는 일이 되기를 바란다. 박강수 서울 마포구청장
  • 반도체 강제 헌납, 모바일 전격 철수… 아픔 딛고 ABC로 나는 LG[2024 재계 인맥 대탐구]

    반도체 강제 헌납, 모바일 전격 철수… 아픔 딛고 ABC로 나는 LG[2024 재계 인맥 대탐구]

    정부 강권에 1999년 반도체 포기훗날 사사에 ‘인위적’ ‘강제’ 기록2021년엔 적자 모바일 사업 종료차체 빼고 다 만드는 ‘전장’ 확대연매출 10조원 시대 캐시카우로P2P·카메라·배터리 ‘풀 라인업’ 구광모 “작은 씨앗도 꺾임 없이”미래 먹거리 AI·바이오 등 독려2030년 신약 5개 상용화 목표도#사례1 1999년 1월 6일 오후 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 동관 30층 회장실. 청와대에서 ‘반도체 빅딜’과 관련해 당시 김대중 대통령과 면담을 하고 돌아온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낯빛이 어두웠다. 구인회 창업회장 생전인 1969년 5월 금성전자로 출발해 30년간 일군 사업체인 LG반도체를 내놓는다는 건 전자 사업이 주력인 LG로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구 회장의 뜻과는 다르게 상황이 흘러갔고 결국 선친으로부터 물려받은 반도체 사업을 포기해야 했다. 강유식(76) 당시 LG구조조정본부장은 기자회견을 열고 “대승적 차원에서 LG가 보유하고 있는 LG반도체의 지분을 현대전자에 100% 양도하기로 결정했다”며 LG반도체 매각을 전격 발표했다. 대승적 차원이라고 했지만 그 아픔의 순간을 잊을 수 없었던 LG는 8년 뒤인 2007년 그룹 60년의 역사를 담은 사사에 빅딜 과정을 서술하며 당시의 억울함을 행간에 담았다. 사사에는 “인위적인 반도체 빅딜의 강제”, “한계 사업 정리, 핵심 역량 집중이라는 당초의 취지와 어긋나는 결과 초래” 등 다소 강한 표현도 등장한다. “재무구조, 기술력, 전문성 등 모든 면에서 객관적으로 LG반도체가 앞선다는 점을 들어 경영권 확보를 강력히 주장했고 구본무 회장도 이 같은 의지를 강도 높게 피력했다”는 내용에선 현대전자 중심의 빅딜에 대한 서운함이 드러났다. LG반도체를 품은 현대전자는 늘어난 차입금 등을 감당하지 못했고 채권단을 거쳐 우여곡절 끝에 SK에 인수돼 지금의 SK하이닉스가 됐다. #사례2 2021년 4월 5일 LG트윈타워 서관 30층 이노베이션룸. 이곳에 모인 권봉석(61·㈜LG 부회장) 당시 LG전자 대표, 권영수(67·퇴직) LG전자 이사회 의장 등 7명의 이사는 적자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던 모바일 사업 종료 건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1995년 LG가 모바일 사업을 시작한 지 26년 만에 철수 결정을 내린 것이다. 당시 이사회 의사록에는 “모바일 사업 종료가 회사의 최선의 이익에 부합하는 의사결정인 점에 대해 공감한다”는 내용이 나온다. 모바일에 투입된 인력과 자본을 가전, TV, 전장(자동차 전기·전자 장치) 등 다른 사업으로 돌려 잘할 수 있는 것에 투자하는 게 중장기 관점에서 이득이라고 판단한 건데 3년이 지난 지금도 LG는 “잘한 결정”이라고 본다. 반도체 매각과 모바일 철수는 70년 넘는 LG 역사의 한 획을 긋는 사건으로 당시에는 혹독한 시련을 안겼지만 더 강한 LG로 발돋움하는 계기가 됐다. ‘동동구리무’로 불린 럭키크림, 럭키치약을 만들어 팔던 조그만 회사에서 전기차 배터리,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등 첨단 제품을 만드는 그룹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대형 위기를 극복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전장서 승부… 벤츠와 협력 논의 모바일을 떼어낸 LG전자의 외형은 외려 커졌다. 매출은 모바일 사업 철수 직전 해인 2020년 63조 2620억원에서 지난해 84조 2278억원으로 3년 새 20조원 넘게 늘었다. 영업이익도 같은 기간 3조 1950억원에서 3조 5491억원으로 개선됐다. 그사이 새로운 ‘캐시카우’(현금창출원)로 키운 전장 사업은 연 매출 10조원 시대를 열며 LG전자 주력 사업 반열에 올랐다. 차체 빼고 다 만든다는 LG의 전장 사업은 계열사별로 역할이 나뉜다. 차량용 인포테인먼트 분야에서 20년 이상 노하우를 축적한 LG전자는 인수합병(M&A), 합작법인 설립을 통해 조명, 전기차 파워트레인(동력전달장치)까지 영역을 넓혔다. 최근에는 차량에 특화된 웹(web)OS 콘텐츠 플랫폼으로 미래 자동차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앞으로 자동차가 이동 수단을 넘어 ‘바퀴 달린 생활공간’으로 바뀔 것으로 보고 차 안에서 즐길 수 있는 콘텐츠 플랫폼으로 승부를 걸겠다는 전략이다. 적용 차종도 내연기관(제네시스 GV80 등) 차에서 전기차(기아 EV3)로 확대된다. LG디스플레이의 차량용 디스플레이, LG이노텍의 차량용 카메라·통신·조명 모듈도 대표적인 전장 부품으로 꼽힌다. LG디스플레이는 2024년형 GV80에 차량용 27인치 OLED 패널을 공급한 데 이어 최근에는 운전석 계기판부터 조수석 앞까지 대시보드 전체를 덮는 대형 액정표시장치(LCD)로 차별화를 꾀하고 있다. 전면부 양쪽 기둥(필러)까지 디스플레이가 이어진다고 해서 ‘필러투필러’(P2P)로 불리는 이 패널은 LG디스플레이의 향후 수익원으로 꼽힌다. LG이노텍은 차량용 카메라를 포함한 전장 관련 매출을 현재 2조원대에서 5년 내 5조원대로 끌어올리겠다는 구체적 목표를 제시했다. 전기차 시장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으로 숨고르기를 하며 연구개발(R&D)에 힘을 쏟고 있는 LG에너지솔루션의 전기차 배터리까지 전장 분야 ‘풀 라인업’을 확보한 LG는 글로벌 완성차 업체와도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지난 3월에는 LG그룹의 자동차 부품 사업을 하는 주요 계열사 최고경영진이 독일 메르세데스벤츠 본사를 찾아 전장 사업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미국의 유력 자동차 전문지 모터트렌드는 구광모(46) LG그룹 회장을 자동차 업계의 영향력 있는 인사 10위에 선정했다. ●구광모 ‘LG의 역사는 도전의 역사’ LG가 2003년 LS그룹 계열 분리, 2005년 GS그룹 계열 분리에도 4대 그룹 위상을 유지할 수 있었던 건 전자, 통신, 화학 등 3대 핵심 사업에 집중하면서도 배터리, OLED, 전장 등 새 성장 동력에 대한 투자를 계속 해 왔기 때문이다. 배터리, OLED에 이어 전장에서도 결실을 거두기 시작하자 LG는 또 다른 미래 먹거리로 인공지능(AI), 바이오, 클린테크 등 일명 ‘ABC’ 분야를 꼽고 이에 맞춰 사업 구조를 재편하고 있다. 지난해 8월 구 회장은 북미 출장 중 현지 직원과 만난 자리에서 “지금 LG의 주력 사업 중 하나인 배터리도 30년 넘는 기술 개발과 투자가 뒷받침되고 수많은 시행착오 속에서도 끊임없는 실행을 이어 간 도전의 역사였다”며 “AI와 바이오 사업이 지금은 비록 작은 씨앗이라도 꺾임 없이 노력하고 도전해 가면 LG를 대표하는 미래 거목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LG생명과학, FDA 신약 5개 목표 AI와 바이오 사업의 중심에는 LG AI연구원과 LG화학 생명과학사업본부가 있다. AI연구원은 탄탄한 연구진을 바탕으로 출범 이듬해인 2021년 초거대 AI ‘엑사원’을 선보였고, 지난해 멀티모달(언어와 이미지 양방향 생성) 모델로 진화한 ‘엑사원 2.0’을 공개했다. 계열사와 협업해 난제를 해결하는 등 AI 기술 활용도를 높이면서 ‘AI 윤리’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다. 2017년 LG화학에 흡수 합병된 LG생명과학(현 생명과학사업본부)은 “숨겨 둔 것”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그룹 내 성장 가능성이 높은 사업본부 중 하나로 꼽힌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승인한 신약(신장암 치료제·포티브다)을 보유한 아베오 파마슈티컬스를 인수하면서 미국 시장에 자체 개발 신약을 출시할 수 있는 발판도 마련해 뒀다. 지난해 연 매출 1조원을 넘긴 생명과학사업본부는 항암 분야 등에서 혁신 신약을 개발해 2030년까지 FDA 승인 신약 5개(포티브다 포함)를 상용화한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 NBA 로고 속 ‘전설의 그 선수’…제리 웨스트 별세

    NBA 로고 속 ‘전설의 그 선수’…제리 웨스트 별세

    미국프로농구(NBA)의 전설적 스타였던 제리 웨스트가 12일(현지시간) 별세했다고 로스앤젤레스(LA) 클리퍼스 구단이 발표했다. 86세. 1960년 웨스트버지니아 대학을 졸업한 웨스트는 1960년부터 1974년까지 LA레이커스에서 선수로 활약했다. 당대는 물론 역대 최고의 가드 중 한 명으로 꼽힌다. 경기당 평균 27득점을 올리며 NBA 역사상 3번째로 2만 5000득점에 도달했고 선수로 뛰는 동안 매년 올스타에 선발됐다. 소속팀 레이커스를 9차례 NBA 챔피언 결정전으로 이끌었고 1971~72시즌에는 우승을 거머쥐었다. 1969년에는 팀이 준우승에 그쳤음에도 파이널 최우수선수(MVP)로 뽑힐 정도로 압도적 활약을 펼치기도 했다.선수 시절 경기 후반에 빛나는 활약으로 ‘미스터 클러치’라는 별명을 얻은 웨스트는 1980년 선수로서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고, 2010년에는 1960년 로마올림픽에서 미국 대표팀 일원으로 다시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다. 올해는 ‘공로자’ 자격으로 또 한차례 헌액될 예정이었다. 웨스트는 농구를 잘 모르는 사람이더라도 한 번쯤 봤을 법한 NBA 로고에 영감을 준 모델로도 알려져 있다. 다만 웨스트가 실제 모델이라고 인정할 경우 막대한 초상권을 지불해야 해서 NBA 사무국은 공식 발표를 하지 않았다. 은퇴 후에는 레이커스 단장과 경영 부사장을 역임했고 멤피스 그리즐리스 단장 등을 거쳐 마지막으로 LA 클리퍼스 임원으로 재직했다. 1995년과 2004년 NBA 올해의 경영자상을 받았다. 한국계 미국인 골프 스타인 미셸 위의 시아버지이기도 하다.
  • 전남대 세계 각국 대학 ‘글로컬 전략적’ 협업

    전남대 세계 각국 대학 ‘글로컬 전략적’ 협업

    전남대학교가 전 세계 64개국, 608개 대학, 48개 연구기관과 맺고 있는 협정을 바탕으로, 글로벌 혁신 허브를 구축해 해외 대학과의 전략적 협업공간을 확대해 나간다. 또, 우수 유학생 3천명을 유치해 지역에 거주하도록 함으로써 구도심을 활성화하는 등 글로벌역량을 지역사회 활성화로 연결해 나가기로 했다. 우선 60년 넘게 교류해 온 콜롬비아 미주리대학에 혁신 허브를 구축한다. 북미지역부터 시작, 연구 주제에 따라 확대해 가며 공동연구·공동교과목 개설·학생 파견 등을 실행하기로 했다. 미주리대학과는 한류 관련 공동교과목도 개설할 예정이다 중국 온주의과대학 내 중외합작프로그램으로 ‘의과학자’ 전공 과정을 신설하는 등 해외캠퍼스 개설은 막바지 단계에 접어들었다. 베트남 협력 대학들의 교원과 학생을 바이오 분야 전문인력으로 양성하는 프로그램도 계획하고 있다. 지자체와 산업체·베트남 현지 대학·연구소와의 거버넌스 구축은 물론 베트남 교육부·보건부를 포함한 정부 기관과 지자체의 법적·제도적 지원도 이끌어 낼 방침이다. 우수 유학생 3000명을 유치, 지역에 거주하도록 함으로써 구도심을 활성화하는 등 글로벌역량을 지역사회 활성화로 연결해 나가기로 했다. 이와 함께 전남대는 광주시와 여수시 구도심의 노후화된 빈집을 개보수해, 우수 외국인 유학생들에게 제공함으로써 지방소멸에 대응함과 동시에 구도심을 활성화하는 ‘Residence(레지던스) 3000’ 프로젝트도 내놓았다. 광주시가 1400여 채에 이르는 빈집을 연간 약 17억원의 예산을 들여 정비하는 사업과의 연계 전략이다. 전남대 관계자는 “해외 대학들과의 풍부한 협정을 바탕으로 국제거버넌스를 강화하면서, 해외캠퍼스나 공동연구, 공동교과목 개설 등 실질적인 교육의 국제경쟁력을 강화해 나갈 것”이라며 “이를 위해 ‘글로컬대학 30 사업’이 꼭 필요하다”고 밝혔다.
  • “진주 촉석루 국보 재지정을” 커가는 지역사회 요구

    “진주 촉석루 국보 재지정을” 커가는 지역사회 요구

    경남 진주시에 있는 ‘촉석루’를 국가문화재로 재지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지역사회에서 커가고 있다. 박완수 경남지사는 10일 조선 3대 누각으로 꼽히는 진주 촉석루가 국가 지정 문화재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밝혔다.박 지사는 이날 도청 실국본부장 회의를 주재하며 “촉석루를 국가유산으로 신청해야 한다는 지역민 목소리가 굉장히 높다”며 이같이 말했다. 박 지사는 “3대 누각 중 밀양 영남루는 이번에 국보로 승격됐고, 평야 부벽루도 (북한이) 보물로 지정한 것으로 안다”며 “유독 촉석루만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는 등 형평성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과거 원형 복원이 되지 않아 국가유산이 되지 못했다고 하는데 원형대로 복원했다는 자료가 수집돼 있다고 하니 관련 부서는 촉석루가 국가유산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2월에는 경남도의회가 ‘촉석루를 국가문화재로 재지정해달라’는 내용의 대정부 건의안을 채택했다. 국민의힘 조현신(진주3) 도의원이 대표발의한 건의안에는 진주대첩 당시 김시민 장군이 전쟁을 지휘한 곳으로 활용됐다거나, 논개가 왜장을 안고 투신한 곳도 촉석루 바로 아래라는 점 등 촉석루 과거·역할을 조명하며 역사적 가치가 매우 높다는 설명이 담겼다. 또 1948년 국보로 지정된 이력이 있고 한국전쟁 폭격으로 소실돼 1960년 재건됐음에도 그 가치는 떨어지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보다 앞서 지난해 말 진주문화원은 촉석루 보물 승격·명승지 지정을 촉구하는 서명운동을 벌이기도 했다.남강이 내려다보이는 진주성 안에 있는 촉석루는 고려 고종 28년(1241년)에 세워졌다. 평상시에는 사신 접대처나 과거 시험장으로 이용됐고, 전시에는 진주성 지휘본부로 활용되기도 했다. 촉석루는 1948년 국보 제276호로 지정됐다. 하지만 한국전쟁 때 폭격으로 전소됐고, 1956년에는 국보에서 해제됐다. 1960년 시민들이 모은 성금을 바탕으로 진주 고적보존회가 재건해 오늘날까지 유지되고 있다. 촉석루는 2020년 경남도 유형문화제로 지정됐다. 다만 지역에서는 2014년 화재로 소실됐다가 복원된 서울숭례문이 국보 지위를 유지하고 있고, 밀양 영남루가 국보로 재지정됐다는 점 등을 들어 촉석루도 국보 재지정이 필요하다는 요구가 커가고 있다.
  • 한국 과학사학계의 거목 송상용 교수 타계

    한국 과학사학계의 거목 송상용 교수 타계

    1970년대부터 과학사를 강의하면서 한국 과학사의 한 획을 그은 ‘한국 과학사학계의 거목’ 송상용 전 한림대 사학과 명예교수가 타계했다. 유족은 송 전 교수가 지난 6일 오후 1시 50분께 세상을 떠났다고 전했다. 86세. 1937년 9월 서울생인 고인은 1955년 서울대 화학과에 입학한 뒤 과학사에 관심을 갖기 시작해 화학과 졸업 후 철학과에 학사 편입해 1962년 철학사 학위를 받았다. 철학과 학부생 시절인 1960년 서울대 의사학교실을 중심으로 한국과학사학회가 창립되자 창립회원으로 참여했고 1964년 미국과학사학회에 가입했다. 1965년부터 한국외국어대에서 철학을 가르치는 한편, 서울대 철학과 대학원에 진학해 1967년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1967~1969년 미국 인디애나대에서 과학사를 공부했다. 당시 미국은 베트남 전쟁 반전운동과 함께 반과학 운동이 거셌던 시절로 고인인 과학주의적 인식에서 벗어나 과학기술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갖게 됐다. 1970년 귀국한 고인은 서울대를 비롯해 여러 대학에서 과학사, 자연과학개론, 과학영어, 문화사를 강의했다. 1977년 성균관대 교수로 임명됐지만 1980년 정치교수라는 이유로 해직됐다. 1984년 한림대 사학과 교수로 복귀하면서 교무처장, 도서관장, 인문대학장을 지냈다. 고인의 활동 덕분에 1984년 서울대 대학원에는 과학학과의 전신인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이 개설됐다.1973년부터는 전파과학사에서 발행한 ‘현대과학신서’ 시리즈 발간에 참여했고, 1980년 고인이 내놓은 ‘과학사 중심 교양과학’은 국내 거의 유일한 과학사 책으로 인기를 끌었다. 1970~1982년 한국과학사학회 간사를 도맡아 금속활자, 첨성대, 아인슈타인 탄생 100주년, 산소 발견 200주년, 양자역학 50주년 등을 주제로 토론회와 발표회를 개최하고 과학사를 대중에 알렸다. 또 1979년에 창간된 ‘한국과학사학회지’ 초대 편집인을 맡아서 1990년까지 활동했다. 이 과정에서 북한 ‘비날론 박사’ 리승기(1905∼1996)의 생애와 업적을 한국에 소개하고 남북한 과학교류를 강조하기도 했다. 고인은 한국과학사학회 회장, 철학연구회 회장, 한국과학철학회 회장을 맡으며 과학과 인문학의 융합을 이끌었으며, 1998년 한국생명윤리학회를 만드는 데도 크게 기여했다. 1992년에는 사재 1500만원을 내놓고 ‘한국과학사학회논문상’을 만들었고, 1977년 한국과학저술인협회를 창립해 초대 간사장과 회장을 지내는 등 한국 과학학 분야에서는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는 ‘역사 그 자체’였다.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 7호실, 발인 9일. (02)2258-5963
  • 멕시코 첫 여성 대통령 탄생… 범죄도시 오명·전임 후광 뛰어넘을까

    멕시코 첫 여성 대통령 탄생… 범죄도시 오명·전임 후광 뛰어넘을까

    득표율 58~60%… 2배 넘게 리드“조국의 어머니·딸·손녀들과 승리”美 트럼프 재선 땐 국정운영 위기 살인·납치 범죄율 감소 등 과제로 사회운동에 적극 참여한 기후학자 클라우디아 셰인바움(61)이 멕시코의 66대 대통령에 올랐다. ‘마초(남성 우월주의) 문화권’으로 꼽히는 멕시코에서 초대 대통령을 배출한 지 꼬박 200년 만에 첫 여성 좌파 대통령이 탄생하면서 전 세계의 이목이 쏠렸다. 멕시코 국립선거관리원은 2일(현지시간) 전국 투표를 반영하는 표본 집계 결과 셰인바움 후보가 득표율 58.3 ~60.7%를 기록해 26.6~28.6%를 얻은 우파 중심 야당연합 소치틀 갈베스(61) 후보를 누르고 승리했다고 밝혔다. 1824년 연방정부 수립을 규정한 헌법 제정 후 첫 여성 대통령의 배출은 여당과 야당 유력 후보 두 명이 모두 여성이었기에 예견된 결과였다. 선거 당국의 당선 확정 발표 이후 셰인바움은 “멕시코의 첫 여성 대통령은 혼자 힘으로 이룰 수 없었다”면서 “우리에게 조국을 준 영웅들과 어머니, 딸, 손녀들과 함께 해냈다”며 미소 지었다. 이어 “우리는 평화로운 선거를 통해 멕시코가 민주주의 국가라는 것을 증명했다”고 강조했다. 셰인바움의 ‘정치적 멘토’로서 그의 승리로 좌파 정권을 연장하게 된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70·애칭 AMLO·암로) 대통령도 당선을 축하하는 메시지를 냈다. 이날 멕시코는 대통령뿐 아니라 상원 의원 128명과 하원 의원 500명을 뽑는 총선과 지방선거까지 함께 실시해 모두 2만여명의 공직자를 선출한 사상 최대 규모의 선거를 치렀다. 총선에서도 모레나가 이끈 여당 연합이 압도적 승리를 기록해 하원 500석 중 346~380석, 하원 120석 가운데 76~88석을 확보할 것으로 보인다. 여당은 헌법 개정에 필요한 3분의2 의석을 차지할 가능성이 높아 암로 대통령의 미완성 개혁안이 순조롭게 통과될 수도 있다. 리투아니아·불가리아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난 셰인바움은 중남미 최고 대학인 멕시코 국립 자치대에서 공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60년대 노동·학생운동에 가담하며 좌파 사상을 가진 부모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기후학자로서 활발한 활동을 하다 암로 대통령이 멕시코시티 환경부 장관으로 임명하면서 정치에 입문했다. 첫 여성 멕시코시티 시장에 오른 뒤에는 낙후 지역에 커뮤니티센터를 설치해 사회·문화·경제적 불평등을 줄이면서 살인율도 절반으로 낮추는 등 정책 능력을 발휘했다. 이번 선거기간에도 멕시코 전역의 살인, 납치 등의 범죄율을 떨어뜨리겠다는 공약을 펼쳤다. 마약·갱단 범죄로 악명 높은 멕시코는 이번 선거 기간에도 폭력으로 20여명이 숨졌고, 선거 당일엔 투표소에서 총격으로 2명이 사망했다. 현지 경찰은 이번 폭력 사건을 영향력 과시에 나선 갱단원들의 소행으로 추정하고 있다. 지난 1일 밤에는 지방의원 선거에 나선 여당 후보 이스라엘 델가도 베라(35)가 피살되는 사건도 발생했다. 현지 매체들은 셰인바움의 당선을 “역사적인 일”로 평가하면서 그가 공약을 어떻게 실현할지 주목하고 있다. 국경을 맞댄 미국의 언론은 전임 대통령들과 달리 영어에도 능한 셰인바움이 당선 연설에서 “우리는 항상 국경 반대편에 있는 멕시코인들을 보호하겠다”고 말한 데 집중했다. 군대를 동원해 멕시코 불법 이민자를 막았던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재선에 승리하면 셰인바움 임기에 가장 큰 도전이 될 수 있다. 일간 레포르마 등 일부 현지 언론은 셰인바움이 레임덕 없이 임기 말까지 60%대의 높은 지지율을 보인 암로의 후광으로 당선됐다고도 분석했다. 6년 전 53%의 득표율로 당선된 암로는 포퓰리즘 정책으로 지지를 얻었으며, 매일 아침 오전 7시에 기자회견을 열어 인기를 끌었다. 셰인바움은 “오브라도르의 유산을 보호할 것을 약속한다”고 말해 자신의 집권이 ‘오르라도르 집권 2기’임을 확실히 했다. 오는 10월 1일 취임해 2030년까지 6년 단임 임기를 맡게 된다.
  • 이집트의 가장 위대한 왕 ‘람세스 2세’ 석관, 3200년 만에 세상 밖으로 [핵잼 사이언스]

    이집트의 가장 위대한 왕 ‘람세스 2세’ 석관, 3200년 만에 세상 밖으로 [핵잼 사이언스]

    고대 이집트의 가장 강력하고 위대한 파라오로 평가되는 람세스 2세의 석관이 3000년 만에 발견됐다고 미국 라이브사이언스 등 과학 전문매체가 29일(이하 현지시간) 보도했다. 기원전 1279~1213년 이집트를 통치한 제19왕조 파라오 람세스 2세는 이집트 전성기의 군주로, 60년 넘기 이집트 왕국을 통치했다. 고고학자들은 2009년 당시 이집트 중동부 고대도시인 아비도스의 한 고대 사원 내부에서 화강암 유물을 발굴했다. 고고학자인 아이만 담라니 박사와 케빈 카하일 박사가 이끄는 연구진은 해당 화강암이 석관(돌로 만든 관)의 일부분이며 각기 다른 시대에 석관이 운반된 흔적을 찾았다고 밝혔다. 조각된 장식과 이집트 상형문자로 뒤덮인 석관 조각의 외관으로 보아 신분이 매우 높은 자의 석관 일부였을 것이라는 추측이 나왔다. 당시 연구진은 각기 다른 시대를 살았던 석관의 주인 중 한 명은 21대 왕조의 파라오였던 멘케페레(통치 기간 기원전 1045~992)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다만 멘케페레 이전에 해당 석관을 사용한 ‘최초의 주인’에 대해서는 추가적인 정보가 밝혀지지 않았다.이후 프랑스 소르본대학 이집트학 연구원인 프레데릭 파이라듀 박사가 해당 석관 조각을 재연구했고, 이 과정에서 멘케페레 이전에 해당 석관을 최초로 사용한 주인이 다름 아닌 람세스 2세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파이랴듀 교수 연구진의 공식 발표에 따르면, 석관 조각에는 람세스 2세의 이름을 나타나는 타원형 모양과 카르투슈(윤곽 안에 국왕 또는 신의 이름을 둘러싼 선이 이용된 무늬)가 발견됐다. 연구진은 고대 이집트인들이 파라오 또는 왕족이 사망했을 때 석관 등 일부 장례용품을 ‘재활용’하기 위해 파묘(옮기거나 고쳐 묻기 위해 무덤을 파냄)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번에 분석된 석관의 경우 람세스 2세가 세상을 떠나고 먼저 해당 석관에 묻혔다가, 이후 멘케페레가 사망하자 석관을 꺼내 람세스 2세의 시신을 다른 곳으로 옮기고 멘케레페의 시신을 해당 석관에 넣었다는 것.실제로 람세스 2세의 미라는 1881년 룩소르 외곽의 전 유적인 데이르 엘 바하리의 ‘비밀 은신처’에서 발견됐다. 당시 해당 유적지에는 람세스 2세의 아버지를 포함해 다른 왕족 50명의 유해도 함께 발견됐다. 전문가들은 람세스 2세의 시신은 현재 사라진 금관에 묻혔다가 이후 석관으로 옮겨졌고, 이후 멘케레펙 아비도스로 해당 석관을 옮겨 사용한 것으로 보고 있다. 연구진은 “이번 발견은 당시 ‘왕들의 계곡’이 약탈의 대상이었을 뿐만 아니라 후속 군주들이 (석관 등) 장례 물품을 재사용했다는 새로운 증거”라고 설명했다. 해당 연구결과는 프랑스의 이집트학회에서 매년 발생되는 학술지(Revue D‘Égyptologie) 최신호에 실렸다. 한편, 이집트 역사상 가장 위대하고 강력한 파라오 중 한 명으로 꼽히는 람세스 2세는 나이가 들어 관절염과 동맥경화 등 매우 많은 질병에 시달린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심각한 충치 때문에 입을 움직이기 힘들 정도로 심한 통증에 괴로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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