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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인이 1주일 먼저 사망, 해크먼은 몰랐을 것”…비극적 전말

    “부인이 1주일 먼저 사망, 해크먼은 몰랐을 것”…비극적 전말

    미 수사당국이 유명 배우 진 해크먼 부부의 사망 시점과 원인을 뱕혀냈다. 7일(현지시간) 미 뉴멕시코주 수사당국은 해크먼과 해크먼의 부인이 1주일 간격으로 숨졌으며, 해크먼의 부인이 먼저 사망한 후, 뒤이어 해크먼이 숨을 거둔 것으로 추정된다고 발표했다. 앞서 해크먼과 부인인 벳시 아라카와는 지난달 26일 뉴멕시코주 샌타페이의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아라카와의 시신은 욕실 바닥에서 발견됐고, 욕실 옆 부엌 조리대 위에는 처방 약병과 약들이 흩어져 있었다. 두 사람의 시신에는 모두 외상 흔적이 없었으며 유서도 발견되지 않았다. 이후 1000억원대 재산을 보유한 부부의 죽음을 둘러싼 온갖 추측이 번졌다. 하지만 수사당국은 시신 검시 결과 및 이메일 등 활동 기록을 토대로, 부인 아라카와가 지난달 11일 이후 숨진 뒤 일주일가량 지난 18일쯤 해크먼이 숨진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또 부인 아라카와와 해크먼의 사망 원인은 각각 한타바이러스 감염과 심장질환이라고 당국은 설명했다. 뉴멕시코주 법의학실 수석 검시관 헤더 재럴은 “95세였던 진 해크먼의 사인은 고혈압과 죽상경화성 심혈관 질환이며, 알츠하이머병이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다”라고 말했다. 또 “65세였던 벳시 (아라카와) 해크먼의 사인은 한타바이러스, 폐 증후군”이라고 밝혔다. 한타바이러스는 쥐의 배설물을 통해 옮겨지는 바이러스로, 사람이 감염되면 독감과 비슷한 발열, 근육통, 기침, 구토, 호흡 곤란을 일으키며 심하면 심부전이나 폐부전으로 이어질 수 있다. 결국 부인 아라카와가 한타바이러스에 감염돼 관련 증상을 앓다 숨졌고, 해크먼은 이 사실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다가 일주일가량 지난 뒤 심장질환으로 사망했다는 것이 수사당국의 결론이다. 지역 보안관 애던 멘도사는 해크먼이 집안에 부인의 시신을 그대로 둔 채 있었던 것이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그럴 것으로 추정한다”라고 답했다. 재럴 검시관 역시 해크먼이 알츠하이머병을 앓고 있었기 때문에 부인이 사망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라고 설명했다. 알츠하이머병은 치매를 일으키는 가장 흔한 퇴행성 뇌 질환으로 알려져 있다. 배우 해크먼, 치매앓다 심장병에 숨져부인 아라카와는 한타바이러스 감염 해크먼과 아라카와는 지난달 26일 뉴멕시코주 샌타페이의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수사 초기에는 사망 원인으로 일산화탄소 중독 가능성이 의심됐다가 독성 검사 결과가 음성으로 나오면서 일산화탄소 중독은 아닌 것으로 판명됐다. 해크먼은 1960년대부터 2000년대 초까지 40여년간 할리우드에서 활동하며 액션, 스릴러, 역사물, 코미디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80여편의 영화에 출연한 명배우다. 특히 ‘슈퍼맨’ 시리즈를 비롯해 ‘컨버세이션’, ‘퀵 앤 데드’,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 ‘로열 테넌바움’ 등으로 인기를 끌었으며, ‘프렌치 커넥션’(1971)으로 오스카 남우주연상을, ‘용서받지 못한 자’(1992)로 오스카 남우조연상을 받았다.
  • 오석규 의원, 의정부시 문화예술인 활동 장려를 위한 경기문화재단 지역문화사업본부와 간담회 주최

    오석규 의원, 의정부시 문화예술인 활동 장려를 위한 경기문화재단 지역문화사업본부와 간담회 주최

    의정부시 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산하 9개 단체와 관내 문화예술인 활동 장려를 위한 경기문화재단과 정담회 개최경기도의회 오석규 의원(더불어민주당, 의정부4)은 5일 경기문화재단 지역문화사업본부 회의실에서 의정부시 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약칭 예총) 이미숙 회장 및 경기문화재단 지역문화사업본부 김유임 본부장 등 관계자들과 ‘의정부시 문화예술인 활동 장려를 위한 간담회’를 개최했다. 이번 간담회는 경기문화재단의 지역 문화 활성화 지원 사업 중 특히 지역 문화예술인의 활동을 지원하는 ‘지역문화사업본부’ 및 의정부시 문화예술인을 대표하는 단체인 ‘의정부시 예총’ 관계자들과 지역 문화예술인 대상으로 하는 지원·공모사업에 대해 논의하는 자리로 오석규 의원의 요청으로 성사되었다. 오석규 의원은 모두 발언에서 “경기문화재단의 다양한 문화·예술 지원 사업 중 우리 의정부시에서 활동하고 있는 우수하고 훌륭한 문화예술인들에 대한 지원방안 모색을 위해 이 간담회 자리를 마련했다”고 밝혔다. 오석규 의원은 “의정부시 예총 산하 9개 문화예술단체의 의정부시 지원 규모가 연 200만 원에 불과해 예술단체들이 최소한의 작품 활동 및 공연·전시·대관도 못하는 예산으로 의정부시는 지난 2022년 ‘법정 문화도시’로 선정되었지만, 관내 문화예술인을 지원하는 사업과 활동 장려는 극히 미미하다고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경기북부 최고의 문화·예술 도시로서의 위상과 명성은 잊혀진지 오래이며 시 승격 60년 이상의 경기북부 최고 명문 도시의 문화예술 사업은 그 지역이 가지고 있는 오랜 역사와 문화·예술적 가치에 역행하고 있는 상황이라 매우 안타깝다”고 했다. 김유임 경기문화재단 지역문화사업본부장은 “경기북부의 지역문화 특성화 사업을 기획하여 경기 남·북부 간 문화 격차 해소에 노력하고 있다”며, 경기문화재단의 다양한 사업에 의정부시 문화·예술인들의 적극적인 신청을 기대하고 지원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의정부시 문화·예술인을 대표하는 ‘의정부시 예총’ 이미숙 회장은 “간담회 자리가 마련되어 매우 감사하고 앞으로도 의정부시 문화·예술인들의 다양하고 지속적인 활동을 할 수 있도록 경기문화재단의 많은 지원을 요청한다”고 말했다. 오석규 의원은 최근 의정부 소재 지식산업센터 입주사들의 고충을 청취하며 지식산업센터 입주사들의 주 사업분야와 업종과 연계성이 높은 ‘경기콘텐츠진흥원’과 ‘경기대진테크노파크’의 지원, 공모 사업설명회를 개최하여 지역사회의 큰 호응을 얻었고, 이어 의정부시 문화·예술인들의 활동 장려를 위해 ‘의정부시 예총’과 ‘경기문화재단’과의 간담회를 주최하며, “향후에도 경기도에서 진행하는 사업이 의정부시에 실질적인 지원과 도움이 될 수 있는 사업, 단체들에 대해 지속적으로 자리를 마련”하겠다고 전했다.
  • 상속세 23년 만의 개편 논의… 중산층·기업 만족하는 묘수 찾나[홍희경의 탐구]

    상속세 23년 만의 개편 논의… 중산층·기업 만족하는 묘수 찾나[홍희경의 탐구]

    중산층 상속세 문제점부동산 급등, 중산층까지 과세 확대같은 액수 상속, 인원수에 세액 격차뜻밖의 사망 땐 증여세보다 큰 부담세 부담 가중에 우는 기업최대주주 주식상속 때 과세액 할증비상장사 활용 등 절세 컨설팅 필요수사 우려해 가업 승계 포기하기도여야의 ‘상속세 정치학’정부 법안 野 반대에 막혀 작년 부결민주, 중산층 부동산 상속세에 집중세수 감소 불 보듯, 기업 부담은 여전 #1. 상속세는 사회적 세금 상속세가 부자의 세금이란 인식은 더이상 현실과 맞지 않는다. 국세청 통계에서 2005년 전체 사망자의 2% 미만이던 상속자 과세 대상은 2022년 5%를 넘어섰다. 2000년 이후 과세표준과 세율 구조는 변하지 않았지만 부동산 가격과 자산 가치 급등으로 중산층까지 과세 대상이 확대됐다. 정부는 지난해 상속세 최고세율을 50%에서 40%로 낮추고 자녀 공제를 대폭 확대하는 법 개정을 추진했으나 여소야대 국회에서 부결됐다. 이후 더불어민주당이 현행 세율 구조는 유지하되 배우자 상속공제와 일괄공제를 대폭 상향하는 대안을 내놓아 논의 중이다. 해방 후 80년 역사에서 50%가 높은 수치는 아니었다. 한국전쟁 직후엔 상속세의 최고 한계세율이 90%에 달했는데, 부자들이 주로 일본인 적산(敵産·적국 재산)을 기반으로 부를 일궜다고 보고, 이들의 특혜를 회수해 빈 재정을 채워야 한다는 인식이 작동한 여파다. 이후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초입인 1960년대 민간의 경제 참여가 절실해지면서 최고 세율이 30%로 낮아졌다가 석유파동 시기에 다시 75%까지 치솟았다. 이후 세계화나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로 민간 주도 성장이 필요해질 때 상속세율은 낮아졌다. 주로 가족 간 돈의 흐름에서 발생하는 세금. 가장 사적인 세금일 것 같지만 상속세엔 이처럼 한 사회의 성장 전략과 부의 재분배 철학, 국제화 지표가 때마다 녹아 들어 있었다. #2. 해외 상속세? 없는데 있습니다 23년 만의 개편 논의. 재계는 지난해 시작된 상속세 개편 논의를 반기는 분위기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한국의 최고 상속세율(50%)이 일본(55%) 다음으로 높다는 주장을 이어 온 터다. 이 통계는 진실이지만 주의해서 읽어야 한다. 세율이 낮거나 없는 국가들도 다른 방식으로 소득세나 자본취득세 등을 통해 상속에 과세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미국 연방유산세의 기본공제액은 1290만 달러(약 170억원)에 달해 미국인 대부분은 과세 대상에서 제외된다. 대신 상속 자산을 매각할 때 발생하는 차익에 최대 20%의 자본이득세를 부과한다. 캐나다는 사망자가 사망 직전에 모든 자산을 시장가격으로 매각했다고 간주, 취득가액과의 차액에 소득세를 부과한다. 호주는 사망 시점에 바로 과세하지 않는 대신 상속인이 나중에 자산을 매각할 때 원래 소유자의 취득가액을 기준으로 자본이득세를 부과한다. 이런 점들을 감안하면 해외와 비교되는 한국 상속세의 특이점은 높은 세율이 아니라 사망 시점에 과세를 집중시키는 방식에서 찾아야 한다. 한국은 OECD 국가 중 유산세 방식을 고수하는 몇 안 되는 국가 중 하나다. 유산세는 상속받을 인원이나 개인 상황과 무관하게 고인의 재산 총액에 세금을 매겨 부과하는 방식이다. 이와 다르게 유산취득세 방식이라고 상속자 입장에서 실제로 받는 금액에 개별적으로 과세하는 방식이 있다. 유산세 방식으로 세금을 부과하면 같은 액수를 상속받게 되더라도 사람마다 내는 세금에 격차가 발생하는 문제가 생긴다. 즉 100억원의 상속재산을 남겼을 때 현행 제도의 각종 공제를 제하고 정해진 세율대로 계산하면 약 38억원의 세금이 부과된다. 그런데 누군가 남긴 100억원을 100명이 균등하게 상속받는다면 1인당 3800만원씩을 세금으로 내고 6200만원을 세후 받게 된다. 반면 고인이 1억원을 남겼고 이것을 총 1명이 상속받는 경우라면 기본공제(5억원)보다 적은 1억원에 과세가 되지 않기 때문에 상속세 납부 의무는 사라진다. 이때 상속인은 1억원 전액을 받는다. #3. ‘갑작스러운 죽음’ 페널티가 되다 유산세는 부의 재분배 기능이 강하지만, 유산취득세는 상속인의 경제적 상황을 고려한 더 정교한 과세가 가능하다. 유산세 체계로는 같은 금액을 상속받아도 고인이 남긴 재산 규모와 상속 여건에 따라 큰 세금 격차가 발생한다. 이 밖에도 현실에선 많은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서울에 15억원 하는 아파트를 남편 단독명의로 보유한 부부를 생각해 보자. 남편이 갑자기 사망하면 가족들은 배우자 공제 5억원과 일괄공제 5억원 등을 적용받는다. 그러나 15억원 아파트를 부부가 공동명의로 보유했다면 남편 사망 시 상속분은 7억 5000만원으로, 배우자 공제와 일괄공제로 모두 커버돼 상속세가 발생하지 않는다. 부부가 함께 모은 돈으로 집을 샀더라도 명의에 따라 세금 격차가 생기는 불합리가 있다. 생전 소득세나 취득세를 납부한 재산에 다시 과세한다는 이중과세 논란도 지속된다. 부모가 수십 년간 소득세를 내고 모은 자산에 최대 50%의 상속세가 다시 부과되기 때문이다. 상속세 지지자들은 이를 상속인의 ‘불로소득’에 대한 과세로 이중과세가 아니라고 반박한다. 그러나 상속세와 다르게 우리나라 증여세는 유산취득세 방식을 취한다. 부모가 생전에 자산을 증여하면 상속으로 잔여 재산을 물려받아도 증여세 공제 혜택을 받을 수 있지만,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이를 계획하지 못했다면 더 큰 세금을 내야 하는 상황이 생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금융권에서는 이를 활용한 상속·증여 상담 마케팅을 펴고 있다. 애초에 ‘상속받은 만큼 세금 낸다’는 식으로 제도가 설계됐다면 불필요한 마케팅이다. 더욱이 고인이 갑작스럽게 사망했을 경우 증여 등 준비가 덜 돼 있을 여지가 큰데, 가족이 갑자기 사망한 것도 한스러운데 여기에 더해 마치 ‘사망 범칙금’을 받은 듯한 억울함이 생기는 게 현행 체계다. #4. 상속세 대응=범행? 수사당국의 시선 기업 얘기로 하면 문제는 좀더 복잡해진다. 중산층이 자산 대부분을 부동산으로 쥐었다면, 기업을 일궈 낸 큰 부자들은 주식 자산 비중이 높다. 그런데 현행 상속세는 최대주주가 기업 주식을 상속받을 때 경영권 프리미엄을 반영해 과세가액을 할증한다. 지분을 팔거나 주식담보 대출을 받지 않고선 세금 납부가 어려운 지경이 되다 보니 기업들은 상속세를 낮출 수 있는 지주회사 설립, 비상장사 주식 활용, 계열사 간 합병 등의 경영 컨설팅을 받아야 한다. 나아가 수사당국은 최대주주가 연루된 횡령, 배임 사건 등을 수사할 때 상속세를 줄이거나 세금 재원을 마련하는 데에서 범행 동기를 찾는 경우가 많다. 일반인이 보기에도 기업 경영을 이어 가기 위한 상속세 부담이 워낙 크니 범행동기가 될 것 같다는 상식적 동의에 기댄 수사다. 항소심까지 무죄가 나온 삼성바이오로직스 사건이 대표적인 사례다. 중소·중견 기업에선 창업주 사망 시 현금 유동성 부족으로 주식 매각이나 회사와의 금전거래에 의존하거나 아예 기업승계를 포기하는 일도 드물지 않게 벌어지고 있다. 사망자 재산을 결산하듯 거액을 단기간에 부과하는 유산세 방식 상속세가 기업 가치를 하락시키는 악순환은 이렇게 만들어졌다. 상속세 개편이 단순히 세수의 문제를 넘어 기업 지배구조와 경영 투명성, 나아가 국가 경제 전체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우려는 이런 과정을 거쳐 나오게 됐다. #5. 종부세 표심, 상속세 표심에선 바뀔까 최근 들어 한국의 상속세는 이처럼 두 가지 면에서 한계를 드러냈다. 하나는 중산층의 부동산 상속, 다른 하나는 기업의 지분 상속에서 발생하는 모순과 부담이다. 지난해 당정은 이 두 문제 모두를 해결하자며 상속세법 개정안을 추진했으나 국회에서 부결됐다. 민주당은 두 가지 해결법 중 기업 지분 상속에 대한 부담 완화를 ‘초부자 감세’로 규정하고 중산층의 부동산 상속 문제에 집중하고 있다. 조기 대선 가능성 속에서 민주당이 표를 셈하는 정치공학적 계산에 기반해 이 같은 입장을 취한다는 설명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지난 대선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대표 간 표 차이가 24만여표였고, 종합부동산세 등의 영향력 안에 든 중산층에서 석패했다는 분석 때문이다. 상속세 공제 혜택이 예상되는 수도권 아파트 밀집 지역 표심을 잡는 것은 민주당이 표심을 잡아야 할 이른바 ‘산토끼’들이 모여 있는 뒷산 어딘가를 공략하는 전략처럼 보인다. 그러나 중산층에만 주력하는 ‘상속세 정치학’은 치명적인 한계를 갖고 있다. 이 전략만으로는 상속세에서 덜 걷힐 세금을 충당해서 걷을 세원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단순히 공제액을 늘리는 방식은 세수 감소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반면 기업 지분 상속에 대한 부담을 줄이거나 유산취득세 방식으로 상속세제를 개편한다면 기업들이 ‘상속세와 승계에 발목이 잡힌 경영’에서 빠져나올 여지가 생긴다. 장기적으로 법인세, 소득세 등 다른 세원이 확충될 수 있다는 뜻이다. 지역의 정치인가, 국가의 정치인가. 중산층 세 부담이라는 나무부터 봐야 하나, 상속세 변화에 따른 경제효과라는 숲까지 봐야 하나. 적산 기업가를 표적 삼을 때는 90%였다가 경제개발을 위해선 30%로 낮아졌던 역사처럼 이번 상속세 개편의 결론 역시 한국 경제 방향을 보여 주는 나침반이 될 것이다. 홍희경 논설위원
  • “해크먼 심장박동기, 9일 전 멈췄다”…유산 1000억원 이상

    “해크먼 심장박동기, 9일 전 멈췄다”…유산 1000억원 이상

    부인과 함께 숨진 채 발견된 할리우드 명배우 진 해크먼(95)이 사후 9일간 방치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현지 수사당국이 밝혔다. AP통신에 따르면 28일(현지시간) 미국 뉴멕시코주 샌타페이 카운티 수사당국은 “검시관의 초기 조사 결과, 해크먼의 심장박동 조정기가 지난 17일 작동을 멈춘 것으로 확인됐다”라고 밝혔다. 이는 해크먼이 17일 사망했을 수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며, 사실이라면 그의 시신은 26일까지 9일간 방치된 셈이다. 앞서 해크먼은 지난 26일 샌타페이 자택에서 부인 벳시 아라카와(65)와 함께 숨진 채 발견됐다. 부인 아라카와의 시신은 욕실 바닥에서 발견됐고, 욕실 옆 부엌 조리대 위에는 처방 약병과 약들이 흩어져 있었다. 수사당국은 애초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인한 사망 가능성을 의심했으나, 시신의 독성 검사 결과 일산화탄소 중독은 아닌 것으로 판단한다고 전했다. 당국은 타살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았으나, 집에 강제로 침입했거나 물건을 뒤진 흔적은 발견하지 못했다. 시신에는 외상 흔적이 없었으며 유서도 발견되지 않았다. 최종 부검 결과도 아직 나오지 않았다. 수사관들은 해크먼 부부의 휴대전화와 수첩 등을 뒤지고, 가족과 이웃, 주택 단지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탐문해 이들을 마지막으로 보거나 대화한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내려고 했다. 하지만 담당 보안관은 해크먼 부부가 “매우 사적인 가족”이어서, 그동안 이들 주변에 있었던 일을 파악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해크먼 자택 관리 업무를 하는 인부는 이들 부부와 약 2주 전 마지막으로 접촉했다고 진술했다. 그의 자택에는 감시 카메라도 설치돼 있지 않았다고 한다. 1960년대~2000년대 초까지 40여년간 할리우드에서 배우로 활동한 해크먼은 액션, 스릴러, 역사물, 코미디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80여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특히 ‘슈퍼맨’ 시리즈를 비롯해 ‘미시시피 버닝’, 컨버세이션‘, ’퀵 앤 데드‘, ’크림슨 타이드‘,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 ’로열 테넌바움‘ 등으로 인기를 끌었으며, ’프렌치 커넥션‘(1971)으로 오스카 남우주연상을, ’용서받지 못한 자‘(1992)로 오스카 남우조연상을 받았다. 폭스뉴스는 유명 배우들의 출연작 흥행 수입 등을 통해 보유 재산을 추산하는 웹사이트 ‘셀러브리티 넷 워스’(Celebrity Net Worth) 데이터를 인용해 해크먼이 40여년간 배우로 활동하며 벌어들인 재산이 8000만 달러(약 117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고 전했다. 해크먼은 토지와 주택 등 다수의 부동산도 보유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전처와의 사이에서 3명의 자녀를 뒀다. 할리우드에서는 애도 물결이 일고 있다. 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를 연출한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은 버라이어티와 인터뷰에서 “진보다 더 훌륭한 배우는 없었다. 강렬하고 본능적이었으며 결코 거짓된 연기가 없었다. 그는 또한 내가 매우 그리워하는 소중한 친구였다”라고 말했다.
  • 광주시, 대구서 2·28정신 계승·민주역사 ‘연대’

    광주시, 대구서 2·28정신 계승·민주역사 ‘연대’

    광주광역시 대표단은 28일 대구를 방문, 4·19 혁명의 도화선이 된 대구2·28민주운동의 정신 계승과 민주역사 연대·협력을 이어갔다. 광주시 대표단은 이날 대구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린 ‘제65주년 대구2·28민주운동 국가기념식’에 참석, 2·28운동이 갖는 역사적 의미를 되새겼다. 대표단은 고광완 행정부시장을 단장으로 신수정 광주시의회 의장, 5·18행사위원 등 20여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기념식에 앞서 대구 두류공원 2·28민주운동기념탑을 찾아 헌화·참배했다. 2·28민주운동은 1960년 경북고 등 대구지역 8개교 학생들이 독재정권에 맞서 자발적으로 일으킨 광복 이후 최초의 학생 민주운동으로, 3·8민주의거와 3·15의거 그리고 4·19혁명의 도화선이 됐다. 특히 정의와 인권,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이뤄졌던 숭고한 희생정신이 담긴 5·18민주화운동과 대구 2·28민주운동의 동질감은 영호남 화합의 가장 모범적인 협력관계로 불리는 달빛동맹의 정신적 원천이 되고 있다. 달구벌(대구)과 빛고을(광주)에서 따온 ‘달빛동맹’의 시작은 지난 2009년 7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광주시와 대구시가 의료산업 공동 발전을 위한 업무협약을 맺으면서 ‘달빛동맹’이라는 용어가 처음 사용됐다. 이후 2013년 3월 ‘달빛동맹 공동협력 협약’을 통해 교류가 본격화됐다. ‘대구 2·28 민주운동 기념식’과 ‘광주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시장 등 대표단이 교차 참석하며 상호 역사적 사건의 가치를 인정하고 존중하며 연대와 우의를 다지고 있다. 광주시는 지난해부터 대구 민주운동(2·28), 부마항쟁(10·16), 제주항쟁(4·3) 등 민주역사를 보유한 도시들과 민주정신 계승문화 확산을 위해 상호 협력관계를 구축하고 있다. 고광완 행정부시장은 “앞으로도 두 지역이 상호 이해와 존중을 바탕으로 함께 미래를 준비하는 진정한 의미의 형제도시로 발전할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 ‘우리나라 민주화운동 시초’ 2·28민주운동 65주년 기념식 거행

    ‘우리나라 민주화운동 시초’ 2·28민주운동 65주년 기념식 거행

    국내 민주화운동의 효시로 평가받는 2·28민주운동 기념식이 28일 오전 대구문화예술회관 팔공홀에서 거행됐다. 국가보훈부 주재로 거행된 이날 기념식에는 각계 기관·단체 대표, 2·28민주운동 유공자와 유족, 8개 고교 학생 등 800여 명이 참석했다. 강정애 국가보훈부 장관을 비롯해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 홍준표 대구시장, 지역 국회의원, 우동기 지방시대위원회 위원장 등이 주요 인사로 모습을 보였다. 기념식은 ‘봄을 향한 첫걸음’을 주제로 해 학생 밴드 공연, 각 학교의 참여 이야기 소개, 기념사 낭독 등 순으로 진행됐다. 주요 인사들은 기념식 참석에 앞서 대구두류공원 2·28민주운동기념탑 앞에서 참배하기도 했다. 강 장관은 기념사를 통해 “2·28민주운동은 단순한 학생운동이 아닌 대한민국 헌법 정신을 수호하고 민주주의를 되살린 역사적 전환점이었다”며 “대구에서 시작된 이 위대한 움직임은 우리 사회가 정의와 자유를 위해 함께 나아가야 한다는 교훈을 남겼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는 2·28민주운동의 정신을 계승하며 모든 학생이 보훈의 의미를 되새기고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한 꿈과 희망을 자유롭게 펼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며 “민주 유공자를 포함한 국가유공자분들의 희생과 헌신이 오늘날 대한민국을 만든 원동력임을 기억하며, 이를 미래 세대에 전하기 위해 보훈 정책을 더욱 발전시키겠다”고 덧붙였다. 2·28민주운동은 1960년 2월 28일 자유당 정권의 독재와 부정부패에 항거해 경북고를 비롯한 대구 8개 고등학교 학생이 자발적으로 일으킨 저항 운동이다. 이는 학생뿐만 아니라 시민들 지지를 받으며 전국적으로 퍼져나가 3·15의거, 4·19혁명의 도화선이 돼 국내 첫 민주화 운동으로 평가되고 있다. 2·28민주운동 기념일이 2018년 국가기념일로 지정됨에 따라 이후 기념식은 매년 정부가 주관해 국가 행사로 개최해오고 있다.
  • 평범한 사람은 있지만 평범한 악은 절대 없다

    평범한 사람은 있지만 평범한 악은 절대 없다

    나치 친위대 아돌프 아이히만무능한 관료 아닌 학살자 입증아렌트 ‘악의 평범성’ 정면 반박악을 쉽게 용인하는 사회 비판 독일의 철학자 해나 아렌트는 나치 친위대 간부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을 취재하면서 쓴 책 ‘예루살렘의 아이히만’(1963)에서 그가 사악한 인물이 아니라 아돌프 히틀러의 명령에 따라 행동한 전형적인 관료였다는 점을 들어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하지만 독일 철학자이자 역사학자 베티나 슈탕네트는 2011년 출간한 저서를 통해 아렌트의 이런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14년 만에 국내에 번역 출간된 이 책에서 저자는 아렌트가 미처 살펴보지 못한 방대한 자료와 녹취록을 통해 아이히만이 단순히 명령을 수행한 ‘악의 평범성’의 상징이 아니라 적극적이고 체계적으로 학살을 주도한 인물이었다는 점을 밝혀냈다. 슈탕네트는 아이히만이 망명지인 아르헨티나에서 남긴 녹취록과 자필 원고, 예루살렘 법정에서의 심문 기록 등 총 8000쪽에 달하는 자료를 꼼꼼하게 분석했다. 저자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아이히만의 모습과 전후의 도주 생활을 조명하며 그가 단순히 사유 능력이 모자란 무능한 관료가 아니라 무자비한 학살자였음을 입증한다. 나치 친위대 슈츠슈타펠 장교였던 아이히만은 1942년 이후 독일 내 유대인 말살 정책을 구체적으로 실행했고 헝가리 유대인 40만명을 강제수용소로 이송하는 작전을 지휘했다. 하지만 유대인 대학살을 주도했던 그는 전쟁이 끝난 후 15년간 자유로운 삶을 누렸다. 아이히만은 여러 개의 가명을 사용하고 신분증을 위조하는 등 도피 계획을 치밀하게 세웠다. 그는 전 나치 조직의 도움을 받아 오스트리아로 이주해 오토 헤닝거라는 이름의 집토끼 사육사로 일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전후 나치 인사들이 공동체를 이루며 살았던 나라 중 하나인 아르헨티나에 정착한 뒤에는 자신의 존재를 숨기지 않았다. 아이히만은 아르헨티나 언론인과 나눈 1300쪽 분량의 인터뷰에서 “유대인 학살은 독일의 이익을 위해 역사적으로 필요한 정책이었다”면서 나치의 ‘유대인 말살 정책’을 적극 옹호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마누엘 칸트의 광적인 옹호자였던 그는 프리드리히 니체, 플라톤,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등을 인용해 자기 변론을 펼쳤다. 전후에도 나치 잔당들과의 관계를 유지하며 홀로코스트를 정당화했던 아이히만은 1960년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에 체포됐고, 이듬해 예루살렘에서 약 8개월간 전범 재판을 받은 끝에 1962년 사형에 처해졌다. 저자는 “아이히만은 나치의 패배 이후 가면을 쓰고 예루살렘 법정에 서기 전까지 15년간 모두를 속였다”면서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은 책임을 은폐하기에 매우 유용한 용어”라고 비판했다. 의식적으로 범죄자가 되려 하지 않더라도 ‘생각 없음’만으로도 공범이 될 수 있다는 아렌트의 주장이 많은 범죄자에게 좋은 변명거리가 됐다는 것이다. 12년에 걸쳐 과거사를 파헤친 저자의 역작을 통해 우리 사회가 신중하지 못했다거나 성찰이 덜 됐다는 이유로 결코 평범하지 않은 악을 너무 쉽게 용인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 떠나간 최애 생선 ‘명태’… 너의 모든 것 기억하리

    떠나간 최애 생선 ‘명태’… 너의 모든 것 기억하리

    “어떤 외롭고 가난한 시인이 밤늦게 시를 쓰다가/쐬주를 마실 때(크하!)/그의 시가 되어도 좋다/그의 안주가 되어도 좋다/짝짝 찢어지어 내 몸은 없어질지라도/내 이름만 남아 있으리라/명태(허허허) 명태라고(음하하하)” 학창 시절 음악 시간에 바리톤 오현명(1924~2009) 선생이 부른 가곡 ‘명태’를 처음 들었을 때 느낌이 아직도 생생하다. 우선 기괴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가곡이 초연됐을 때가 1952년 6·25전쟁 당시였다는 배경을 듣고는 ‘흔해 빠진 생선에 관해 가곡을 만들다니 정말 이상하네’라는 생각이 더해졌다. 그런데 희한한 것은 한 번 듣고 나니 가끔 다시 듣고 싶어진다는 점이었다. 노래처럼 명태는 중독성 있는 생선이다. 먹태, 노가리로 술자리를 지켜 주는가 하면, 생태탕은 숙취에 힘겨워하는 애주가들의 아침을 달래 준다. 명천의 태씨 성을 가진 어부가 처음 잡았다는 속설을 가진 명태는 오랫동안 저렴한 가격으로 서민의 밥상을 지켜 왔다. 명태 알인 명태자(명란)가 일본 음식 문화에 깊게 자리잡으면서 19세기 말부터는 일본에서도 귀한 몸이 됐다. 요즘은 지구온난화로 인한 해수 온도 상승으로 한류성 어종인 명태는 이제 동해 앞바다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 대표 해양 문명사가인 주강현 박사는 오래전부터 명태 덕장이 있었던 강원도 고성, 양양, 속초 등의 어민과 함경도 월남인 현지 조사를 통한 구술 녹취에 북한 민속학연구실에서 1950~60년대에 채록한 미출간 자료까지 묶어 명태의 파란만장한 역사를 재미있게 풀어낸다. 이 책을 쓰게 된 계기에 대해 주 박사는 “명태는 우리 국민의 최애 생선이었지만, 이제 동해에서 명태는 사라졌고 원양태만이 밥상에 오른다. 기후·인간·어종의 여러 관계에서 빚어지는 명태 멸종에 관한 ‘최후의 기록’을 남겨야 할 의무를 느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 책은 주 박사의 ‘어보’ 시리즈 두 번째 책이다. 책을 읽고 나면 전작인 ‘조기 평전’을 읽어 보고 싶다는 생각과 다음은 어떤 물고기에 관한 이야기가 나올까 기대감을 갖게 한다.
  • 부산 초량 ‘이바구길’의 변신...경사형 엘리베이터 내달 가동

    부산 초량 ‘이바구길’의 변신...경사형 엘리베이터 내달 가동

    부산의 역사와 문화를 담고 있는 테마 거리로 알려진 부산시 동구의 초량 이바구길 일대가 새롭게 변신한다. 이바구길은 해방 후 피난민의 생활터였던 1950~60년대와 산업 부흥기였던 1970~80년대 부산의 모습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곳으로 길이 1.5㎞에 부산항을 조망하기 좋은 아름다운 경치로 유명하다. 우선 그동안 잦은 고장으로 문제가 됐던 초량 168계단 모노레일 대신 경사형 엘리베이터가 설치 가동된다. 부산 동구청은 초량168계단 옆 경사형 엘리베이터를 다음 달 11일부터 가동한다고 27일 밝혔다. 계단 옆 약 60m를 오갈 엘리베이터 건립엔 특별교부금과 구비 등 예산 23억 2800만 원이 투입됐다. 주민 공모로 ‘초량168하늘길’이란 이름이 붙은 이 엘리베이터는 약 12명을 태울 수 있어 8명이 정원인 모노레일보다 효율성이 좋은데다 소음이 적어 야간운행도 가능해 주민들과 관광객들의 불편을 덜어줄 것으로 기대된다. 엘리베이터 가동과 함께 청년 창업 공간인 ‘이바구플랫폼’도 문을 열 예정이다. 초량168계단 주변에 비어 있던 도시재생 거점시설을 리모델링하고, 20~30세대 청년 등에게 저렴하게 임대한 공간이다. 동구청은 시비 9억 원으로 정비를 마쳤고, 구비 3억 원은 3년 동안 1억 원씩 운영비로 투입할 예정이다. 청년들은 8개 공간으로 나눠진 이바구플랫폼에서 각각 색다른 카페, 식당, 공방 등을 운영할 예정이어서 이바구길의 새로운 명소가 될 지 주목된다. 동구청 관계자는 “코로나19 전에도 하루 1300~1500명 정도 모노레일을 이용한 것으로 집계됐다”며 “엘리베이터는 더 많은 주민과 관광객이 이용할 것이라 본다”고 밝혔다.
  • 부산 영화숙·재생원서 인권유린 확인…진화위, 국가 사과 권고

    부산 영화숙·재생원서 인권유린 확인…진화위, 국가 사과 권고

    1960년대 부산에 있던 최대 규모 부랑인 집단 수용시설인 영화숙·재생원에서 강제노역과 구타, 성폭행 등 인권 유린이 발생했으며, 심지어 시신 암매장 일어났다는 공식 조사 결과가 나왔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화위)는 26일 부산시의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영화숙·재생원 사건을 조사한 결과 수용자 181명이 중대한 인권침해를 당한 것으로 판단했다”며 진상규명 결정을 내렸다. 영화숙·재생원은 재단법인 영화숙이 부산시와 부랑인 선도 위탁계약을 체결하고 1962년부터 1971년까지 운영한 지역 최대 부랑인 집단 수용시설로 나타났다. 조사 결과 이곳에 강제로 수용된 사람들은 노역에 동원됐으며 구타와 가혹행위, 성폭력 등에 시달렸고 교육받을 권리도 침해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인권 침해 사례를 보면 경찰은 부모 등 연고자를 확인하는 과정 없이 거리에서 어린이 등을 단속해 영화숙과 재생원에 강제로 수용하는 등 위법하게 공권력을 행사했다. 영화숙과 재생원도 법적 근거가 없이 자체 단속반 설치해 운영하면서 부모가 있는 아이까지 강제 수용하고 감금했다. 영화숙은 18세 미만, 재생원은 18세 이상을 강제 수용하고 낙동강 하구 개간지 매립, 축사 관리, 농작물 재배 등 작업에 무임금으로 동원했다. 대규모 공사가 있던 시기에는 10세 전후 아동까지 강제 노역에 동원됐다. 특히, 이들은 원생, 반장, 소대장, 지도장, 총무, 원장으로 이어지는 군대식 편제와 규율을 갖추고 일부 원생을 중간관리자로 임명해 특혜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원생들을 통제했는데, 이런 환경 때문에 구타와 성폭력 등 각종 가혹행위가 일상적으로 일어난 것으로 진화위는 판단했다. 원생들은 비좁고 비위생적인 공간에서 생활하면서 꽁보리밥, 수제비, 옥수수죽 등으로 식사하는 등 열악한 환경에 시달렸다. 이 때문에 눈병과 피부병 등 각종 질병에 걸렸지만 제대로 치료받지 못했고 사망 사고도 자주 일어난 것으로 확인됐다. 영화숙 내에 1966년부터 1975년까지 장림국민학교 영화숙 분교를 설치해 운영했지만, 취학 대상인 원생을 모두 학교에 보낸 것은 아니었다. 학교에 다닌 아이들의 출결도 강제노역 동원, 학교의 부실한 관리 등이 제대로 통제되지 않았다. 진화위는 이들 수용시설에서 구타와 가혹행위, 질병 등으로 사망한 원생들의 시신이 부산 사하구 신평동 야산에 암매장됐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진화위는 이런 조사 결과를 토대로 국가에 피해자에게 공식 사과하고, 위로금, 생활지원금, 의료비를 지원하는 등 실제적인 피해 회복 조치를 하라고 권고했다. 또 피해자의 후유증과 트라우마를 치유할 수 있는 장기적 계획 수립과 시행, 암매장 추정 유해 발굴 추진 등을 권고했다. 진화위는 영화숙·재생원 사건이 가지는 역사적 중요성, 부산시의 직권조사 요청 등을 고려해 2023년 8월 이 사건을 직권조사하기로 결정했다. 이는 집단수용시설 인권침해 사건에 대한 최초의 직권조사 결정이었다. 이후 진화위는 진실규명 신청인 10명에 더해 직권조사 대상자 171명을 확인하고, 조사를 실시했다.
  • 격변 시대 담은 밥 딜런의 데뷔 5년, 완벽하게 담아낸 샬라메[영화 프리뷰]

    격변 시대 담은 밥 딜런의 데뷔 5년, 완벽하게 담아낸 샬라메[영화 프리뷰]

    “아름답든 추하든 평범한 건 안 돼. 눈길을 사로잡는 존재가 돼야지.” 영화 속 대사처럼 그는 비범한 인물이었다. 1960년대 전쟁 위기에서 노래로 반전을 외치고 스타가 됐지만 안주하지 않은 채 장르의 속박을 깨뜨린 시대의 반항아였다. 오는 26일 개봉하는 ‘컴플리트 언노운’은 살아 있는 전설, 가수 밥 딜런(본명 로버트 앨런 짐머맨·84)의 삶을 다룬 전기 영화다. 그가 데뷔한 1961년부터 1965년까지 5년간을 따라간다. 영화는 딜런(티모테 샬라메)이 기타 하나만 들고 포크 가수 우디 거스리(스쿠트 맥네리)를 만나러 뉴욕에 오면서 시작한다. 딜런은 거스리의 친구인 포크 가수 피트 시거(에드워드 노턴)의 도움으로 무대에 오르고 1963년 두 번째 음반 ‘더 프리휠링 밥 딜런’으로 슈퍼스타가 된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포크의 틀에 갇혀 있다는 생각에 방황을 거듭하고 급기야 1965년 뉴포트 포크 페스티벌에서 전자기타를 연주하는 록밴드와 함께 ‘라이크 어 롤링 스톤’을 불러 큰 야유를 받는다. 전기 영화에서 보여 주는 주인공의 독백이나 내면을 표현한 환상 장면 등은 나오지 않는다. 영화는 철저히 딜런과 주변 인물들로 그의 면모를 그린다. 예컨대 딜런이 사랑했던 실비 루소(엘 패닝)와 존 바에즈(모니카 바바로)를 통해 그의 연애관을 보여 주는 식이다. 포크를 고집스레 지키려는 이들과의 갈등도 이렇게 그린다. 딜런이 첫 음반 녹음에서 남의 노래를 부르며 불평한다든가, 스타가 된 뒤에도 끊임없이 노래를 만드는 모습으로 그의 열정을 표현한다. 정통 포크를 지키려 했던 시거와의 갈등에서는 새로운 음악을 추구하는 그의 성격을 읽을 수 있다. 딜런이 데뷔한 이후 5년은 격변의 시기였다. 1960년 베트남전 시작, 1962년 미국과 소련을 핵전쟁 직전까지 이끈 쿠바 미사일 위기 등이 있었다. 이 과정에서 어떻게 딜런이 반전을 주장하면서 시대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했는지 확인할 수 있다. 제임스 맨골드 감독이 당시에 대해 “딜런의 삶과 포크 음악의 역사에서 아주 중요한 시기”라고 밝힌 이유다. 2016년 그에게 노벨문학상을 안긴 시보다 더 아름다운 노래의 탄생 과정을 지켜보는 것도 큰 재미다. 무엇보다 딜런으로 분한 티모테 샬라메의 흠잡을 곳 없는 연기가 돋보인다.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고, 하모니카까지 불어 대는 등 모든 곡을 직접 라이브로 소화하는 모습에서는 전율이 느껴질 정도다. 고개를 살짝 숙인 채 눈을 치켜뜨고 말을 툭툭 던지는 모습, 공허한 시선으로 거리를 배회하거나, 새로운 음악을 갈망하는 눈빛 연기도 압권이다. 그는 딜런을 5년 6개월 정도 탐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딜런의 세계에 완전히 빠져들었다”는 그는 영락없는 ‘청년 딜런’을 그려 낸다. 올해 오스카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르고, 최연소 수상까지 기대하는 건 너무나도 당연해 보인다. 141분. 12세 이상 관람가.
  • “소년·소녀 최소 70여명 성학대” 소아성애 신부, 90세로 호주 감옥서 사망

    “소년·소녀 최소 70여명 성학대” 소아성애 신부, 90세로 호주 감옥서 사망

    호주 역사상 가장 악명높은 소아성애 성직자로 꼽히는 전직 신부 제럴드 리즈데일이 수감 중 90세의 나이로 사망했다고 18일(현지시간) 호주 ABC 등 현지 매체가 전했다. 리즈데일은 호주 빅토리아주 중부와 남서부 등에서 지금까지 밝혀진 것만 70명 이상의 어린이를 성적으로 학대했다는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고 감옥에 갇혀 있었다. 리즈데일이 처음 수감된 건 1994년이었다. 당시 그는 9명의 소년을 성적 학대한 혐의로 12개월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수십명의 추가 피해자가 나타나면서 2006년까지 4건의 별도 사건에서 54명의 아동을 학대했다는 혐의가 유죄로 인정됐고 형량이 늘어났다. 여기에는 6세 여자 아이에 대한 강간 및 음란 폭행 혐의도 포함됐다. 피해자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1987~1988년 당시 13세였던 72번째 피해자가 또 나왔고 리즈데일은 아동 성범죄 혐의로 8번째 형을 선고받고, 이로써 총 형기는 2034년 9월까지로 늘었다. 지난해에는 62건의 새로운 혐의가 또 제기됐다. 생존자 단체는 피해자가 최대 수백명에 이를 수 있다고 보고 있다. 1934년생인 리즈데일은 빅토리아주 서부 위메라 지역에서 태어났다. 미성년자를 상대로 한 그의 범행은 1961년 빅토리아주 밸러랫 교구에서 가톨릭 사제로 서품된 직후부터 시작된 것으로 파악됐다. 아동 성학대에 대한 제도적 대응을 위한 왕립위원회의 보고서에 따르면 밸러랫 교구는 리즈데일이 1960년대부터 위법 행위를 해왔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 그는 사제라는 특권적 지위를 이용해 피해자 가족의 신뢰를 얻기도 하면서 범행을 자행했다. 리즈데일은 생애 마지막 몇 년간 건강이 급속히 악화했다고 ABC는 전했다. 2022년 11월 교도소 감방에서 넘어져 몇 시간 동안 바닥에 쓰러져 있던 상태로 발견됐으며 이후 만성 통증, 근육 위측, 사지 약화에 시달렸다.
  • “한일 우정 반짝반짝” 파랑·빨강 동시에 빛난 N서울타워·도쿄타워

    “한일 우정 반짝반짝” 파랑·빨강 동시에 빛난 N서울타워·도쿄타워

    한일 국교정상화 60주년을 맞아 15일 서울 남산의 랜드마크인 N서울타워와 일본 도쿄타워가 양국의 국기를 뜻하는 파란색과 빨간색 등으로 물들었다. 이날 오후 6시 30분쯤 서울타워 상단부에는 빨간색과 파란색 등이 교차로 켜졌다. 하단부에는 대국민 공모를 통해 선정된 60주년 공식 로고 이미지가 투사됐다. 같은 날 도쿄타워에도 마찬가지로 파란색과 빨간색 조명이 점등됐다. ‘JAPAN KOREA’(재팬 코리아)라는 문구도 LED 조명으로 빛을 냈다. 한일 외교당국은 수교 60주년을 기념해 양국이 걸어온 우정과 협력의 발자취를 돌아보고 새로운 미래를 향해 함께 나아가자는 의미를 담아 이같은 점등식을 각각 개최했다. 김홍균 외교부 1차관은 서울타워 점등 행사에서 “60주년을 상징하는 빛이 서울 중심을 환히 비추는 모습을 보며 두 손을 맞잡고 한일 양국의 더 나은 미래를 함께 그려나가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미즈시마 고이치 주한 일본대사는 “60년 전 큰 발걸음을 내디딘 양국관계는 많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분야에서 깊은 발전을 이뤄냈다”며 “앞으로도 한일 간 우호와 신뢰의 등불을 계속 밝혀나가고자 한다”고 했다. 이날 행사에는 2001년 선로에 떨어진 일본인을 구하려다 목숨을 잃은 의인 이수현씨 모친 신윤찬 LSH아시아장학회 명예회장 등도 참석했다. 도쿄타워 점등식에 참석한 박철희 주일 한국대사는 “올해는 지난 60년 역사를 돌아보면서 흔들리거나 후퇴하지 않는 한일관계를 구축하고, 양국 미래 세대에 희망찬 청사진을 제시하는 해가 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후나코시 다케히로 일본 외무성 사무차관은 “1965년 국교정상화 이후 일본과 한국 간에는 많은 분의 노력으로 폭넓은 교류, 협력이 이뤄져 왔다”며 양국 국민이 서로 조금씩 사회와 문화를 알고 관계를 소중히 한 것이 한일관계를 지탱해 왔다고 말했다.
  • ‘세계 4위 규모’ 봉사자들 한뜻… 국내 넘어 해외 곳곳 나눔 전파

    ‘세계 4위 규모’ 봉사자들 한뜻… 국내 넘어 해외 곳곳 나눔 전파

    1917년 시작된 ‘라이온스’ 역사사익보다 지역 봉사 독려 위해 창립 미국서 시작해 세계 평화 위해 헌신유엔서 최초로 공인한 NGO로 성장1959년 서울 상륙한 뒤 전국에 확산현존하는 최고의 국제 봉사단체 강남 지역 210개 클럽·6720명 회원수십 년 동안 청각·시각장애인 지원저소득층·우수 청소년 등 돌봄 활동태국·베트남서 학교·취업센터 설립 라이온스클럽은 미국의 보험회사 사장이었던 멜빈 존스(1879~1961)가 1917년 창립한 대표적 민간 국제봉사단체다. 215개국에서 약 140만명의 회원이 활동한다. 정식 명칭은 ‘국제라이온스협회’이다. 존스는 33세 때인 1913년 보험회사 사장이 되면서 당시 시카고 사업가들의 모임인 비즈니스 서클의 일원이 됐다. 그러나 당시 서클은 사업가 개인의 이익만 추구하며 분열의 조짐을 보였다. 이에 존스는 개인의 이익보다 지역 봉사를 하자는 취지에서 라이온스클럽 창립을 주도하게 됐다. 존스는 자신이 운영하는 보험회사를 포기하면서까지 라이온스클럽을 설계하고 키우는 데 집중했다. 그 결과 1920년 캐나다에서 첫 모임을 가졌으며 1921년 특유의 사자 로고를 만들었다. ‘라이온스’(사자들)는 용기·의지·활동력·성실을 상징한다. ‘우리는 봉사한다’는 이념과 ‘자유·지성·우리 국가의 안전’을 표어로 삼고 인도주의적 봉사와 세계 평화를 위한 활동에 자발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했다. 이후 점점 세를 늘려 가더니 1945년 샌프란시스코에 유엔의 컨설턴트를 담당하는 건물이 만들어지고 유엔이 공인하는 최초의 비정부기구(NGO)로 성장했다. 현재 라이온스클럽은 유엔의 식량농업기구(FAO)·국제아동구호기금(UNICEF) 및 여러 전문 기구와 함께 봉사활동을 한다. 6.25전쟁 때 라이온스의 도움을 받았던 우리나라 회원들도 국제본부에 세계 4위 규모의 국제봉사기금을 기탁하고 있으며, 이 기금은 재난 긴급구호활동과 장기적인 상설의료센터 설립 등에 사용되고 있다. ●국내 라이온스클럽의 등장 우리나라에서는 1959년 2월 최초로 서울라이온스클럽이 조직됐다. 뒤를 이어 1960년 4월 인천클럽, 6월 부산클럽, 9월 마산클럽 등이 만들어지면서 전국적으로 확산됐다. 1965년 7월 클럽 수 30개, 회원 1151명이 되자 국제본부의 승인을 받아 국제라이온스협회 309지구로 승격했다. 이후 산업화와 88서울올림픽 개최를 계기로 초고속 확장세를 이어 가 세계 4위 규모의 ‘라이온스 지도국’이 됐다. 한국지구는 1997년 7월 1일부터 전국을 354복합지구와 355복합지구로 분리 독립해 조직을 관리하고 있다. 354복합지구는 서울·경기·강원·인천·제주를 관할하고 355복합지구는 충청·전라·경상과 지역 내 광역시 등을 관할한다. 1998년 7월 1일부터는 복합지구 산하에 권역별로 19개 지구를 뒀다. ●사회적 약자 위한 국내 중점 봉사활동 국제본부는 회원국별로 중점 봉사사업을 설정해 실행하도록 권장한다. 국내에서는 시력·청력 보존 및 맹·농아자 복지, 환경, 보건, 교육, 일반 사회복지, 당뇨병 예방, 마약 퇴치, 청소년선도사업 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1980년 서울대병원에 상설 기구로 한국라이온스 히어링센터를 개설해 1998년까지 18년간 700여명의 저소득층 청력장애인을 치료해 왔고, 경희대 경희의료원과 대구동산병원 및 여러 지구에서는 지역 전문의료기관에 한국라이온스 안구은행을 설치해 시력 약자를 지원하고 있다. 이 밖에 나환자 치료와 정착촌 지원, 사회복귀 능력 향상 등을 돕고 있으며 매년 지구별·클럽별 불우이웃돕기·장학사업·장병 위문·원호사업 등을 전국 곳곳에서 해 오고 있다. 1997년에는 북한 주민의 식량난을 돕기 위해 한국라이온스가 제안한 ‘북한 어린이 돕기 성금 모금’ 창구가 시카고에 있는 국제라이온스협회 국제본부에 개설됐다. ●국내 최대 클럽·회원 수 둔 354-D지구 서울 한강 남쪽(강남) 지역에 지구본부와 클럽을 둔 국제라이온스협회 354-D지구는 아시아권에서는 최대, 전 세계적으로는 네 번째 규모로 알려졌다. 13일 현재 210개 클럽에서 6720여명의 회원이 1989년부터 36년째 매년 10월 시각장애인 단체에 3000만원 상당의 흰지팡이 1000개를 기증하며 수재민 돕기, 달동네 연료비 지원, 성적 우수 청소년 장학금 지급 등의 봉사활동을 매년 정기적으로 하고 있다. 태국, 베트남, 캄보디아 등 해외에도 학교 및 취업훈련센터 등을 지어 주고 있다. 지훈(69) 총재 취임 직후인 지난해 8월 강원 모나용평에서 열린 클럽 4역 연수회에서 임충래 전 한국라이온스연수원장은 354-D지구를 “전액 봉사활동 지원에만 쓰는 국제봉사기금’(LCIF)을 매년 100만 달러 이상 모금하는 명실공히 세계 최고의 선두 모금 지구”라고 극찬했다. 김진태 강원지사도 이날 개회식 축사를 통해 “세계에서 가장 많은 봉사 기금을 기탁하며 가장 활발한 활동을 펼치는 현존 최고의 국제 봉사단체”라고 했다. 그러면서 김 지사는 “앞으로도 더 나은 세상과 사회를 위해 앞장서 달라”고 당부했다.
  • 옥재은 서울시의원, 서울시의회-서울시 족구협회 간담회 개최

    옥재은 서울시의원, 서울시의회-서울시 족구협회 간담회 개최

    서울시의회 주택공간위원회 옥재은 의원(중구2, 국민의힘)은 지난 7일 서울시의회 의장실에서 서울시 족구협회와 간담회를 개최, 협회 현황 및 애로사항을 경청하고 지원사항 등에 관해 논의하는 시간을 가졌다. 옥 의원은 평소 주민들의 화합과 건강증진에 많은 기여를 하는 생활체육에 관심을 가져왔으며, 특히 중구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족구에 많은 관심을 갖고 올해에는 4억원의 예산을 확보해, 남산공원 내 필동족구장의 지반정비 및 노후된 인조잔디를 교체하고 주변 운동시설 교체 및 정원조성 등을 추진하고 있다. 족구는 삼국시대부터 유사한 형태의 운동을 했다는 기록이 있는 등 그 역사가 매우 오래된 것으로 추정되며, 현재 모습의 족구는 1960년대 후반 공군에서 시작하여 1990년대 급속하게 확산됐고, 현재 서울시 족구협회에는 총 239개 클럽에 1만 5000여명의 동호인이 활발하게 활동을 하고 있다. 이날 간담회에는 홍성동 서울시 족구협회장을 비롯한 임원들과 중구, 종로구, 용산구, 관악구, 서초구, 중랑구 협회장들이 참석했고 서울시의회에서는 최호정 의장과 옥 의원이 자리했다. 협회측에서는 서울시 족구협회의 현황 및 애로사항에 대해 간략히 소개하고 ▲2019년 제2회 대회 이후 중단된 서울시의회 의장기 족구대회 부활 ▲주요 족구대회시 서울시 공공체육시설 대관 ▲시·도교류전 및 해외교류전 지원 등을 요청했다. 이에 대해 최 의장과 옥 의원은 협회에서 요청한 사항들을 검토해 가능한 범위에서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며, 앞으로도 족구를 비롯해 시민의 건강증진과 여가활동에 기여하는 생활체육의 활성화에 보다 많은 관심을 갖겠다고 밝혔다.
  • 자식에 물려줄래? 사회 환원할래? 난 하고 싶은 거! 새로운 거 할래![월요인터뷰]

    자식에 물려줄래? 사회 환원할래? 난 하고 싶은 거! 새로운 거 할래![월요인터뷰]

    1978년 신혼집을 팔아 마련한 돈으로 서울 송파구 거여동에 직원 5명을 둔 작은 단추공장을 세웠다. 국내 1위를 넘어 프라다, 질샌더 같은 명품 브랜드도 쓴다는 ‘두양’의 첫걸음이다. 광장시장 단추 장사로 시작해 세계시장을 누비는 기업을 일군 사업가는 2015년 서울 북촌에 ‘세상에 없던 미래 인재 육성’을 표방한 인문 고등교육 기관 건명원(建明苑)을 세웠다. 1년 과정으로 19~29세 청년들을 30~40명 정도 뽑아 철학과 역사, 건축, 종교를 가르쳤다. 수업료가 없다고 하지만 먹고사는 일에 급한 청춘들이 건명원에 들어가려 할까. 웬걸, 뽑을 때마다 10대1 경쟁률이라고 한다. 괴짜 사업가는 2022년 경기 양평에 이함(以函)캠퍼스를 열었다. 1만평 대지에 미술관과 정원이 펼쳐진 복합문화공간이다. ‘빛을 세우는’ 건명원과 ‘(무엇으로든 채울 수 있는) 빈 상자로서’란 뜻의 이함캠퍼스에 오황택(77) 두양문화재단 이사장은 전 재산의 80%가량인 600억원을 쏟았다. 그는 왜 인문·예술에 빠져든 걸까. 세계 그래픽 디자인계의 전환점이 된 1950~60년대 폴란드 포스터에 푹 빠져 8000여점을 수집해 온 오 이사장의 컬렉션 ‘침묵, 그 고요한 외침_폴란드 포스터’ 전시회(~6월 22일)가 한창이던 지난달 23일 경기 양평군 강하면 이함캠퍼스를 찾아간 까닭이다. 지금도 익숙함보단 새로움을 추구한다는 오 이사장은 ‘Today is a day, I’ve never been before’(오늘은 한 번도 경험한 적이 없는 날)이란 영어 문장을 가장 좋아한다고 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새로운 게 재밌잖아요(웃음).” 다음은 일문일답. 세계적인 단추 회사 일군 사업가프라다 등 글로벌 명품에서도 사용기본 안 됐는데 새로운 시도는 망해경쟁사 의식… 이기려고 해야 성공-왜 단추공장을 시작했는가. “밥벌이였다. 생계를 위해 택했다. 대학은 점수 맞춰 국문과에 갔지만 사업할 궁리만 했다. 교직을 이수하고도 월급쟁이가 될까 봐 교사 자격증을 받지 않았다. 수박을 팔더라도 장사를 해야겠다 싶었다. 제대 후 복학하지 않고 친구 아버지가 운영하는 단추공장에 입사했다가 1년 6개월 만에 그만두고 창업을 했다. ” 두양은 현재 국내 단추기업 1위다. 한 달에 약 2000만~3000만개, 1년이면 약 2억 4000만개의 단추를 생산한다. 매년 새로 개발하는 단추 디자인만 100가지 이상이다. 보라카이·바이엘·빌리브·말리부·둥그니·뽀드득·보리수 등 단추 이름도 흥미롭다. -두양 단추에는 저마다 이름이 있다던데. “종류가 워낙 많아 식별하려면 이름을 지어야 한다. 연관성이 있어 보이는 이름을 그때그때 붙인다. 소뿔 단추가 아프리카풍이니까 ‘잠비아’라고 짓는 식이다.” -경영 철학이라면. “공장 벽에 사훈 ‘가장 큰 혁신이 기본을 지키는 것이다’라고 써 붙여 놓았다. 평소 아무리 잘해도 불량품이 한 개라도 나오면 실패다. 항상 기본을 지키는 회사, 납품 기한 잘 지키고, 품질이 똑같고, 신뢰할 수 있는 회사가 되려고 했다. 기발한 아이디어는 요구하지 않았다. 기본을 잘 지키면 안정된 상태에서 새 아이디어가 나온다. 기본도 안 돼 있는데 새로운 걸 시도하면 망한다.” -창업하려는 청년들에게 조언한다면. “우리 매출에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 대신 경쟁자 사정을 늘 파악했다. 내가 100억원어치를 팔았는데 남들이 150억원어치를 팔았으면 실패한 것이다. 내가 1억원만 팔아도 경쟁사가 직원 월급을 못 주는 수준이라면 난 잘한 거다. 동종 업계는 절대 ‘우리 함께’가 될 수 없다. 경쟁에서 이긴다는 생각으로 임해야 성공할 수 있다. 그리고 법이 허용하는 한도에서 최선을 다했다.” -경영 논리로는 개인 재산을 털어 건명원과 이함캠퍼스를 만든 게 이해가 안 되는데. “단추공장이 밥벌이 수준을 넘어섰다. 돈을 다 못 쓰는 상황이 됐다. 다 쓸 자신이 없어서 재단을 세웠다. 쓸 돈을 다 쓰고 남은 돈을 쓰는 거라서 (사회를 위해) 희생했다는 식으론 생각하지 않는다. ‘자식한테 물려줄래’, ‘사회에 환원할래’, ‘너 하고 싶은 거 할래’ 중에 세 번째를 택했을 뿐이다. 나는 뇌 구조가 효율 지향적으로 조직된 사람이다. 전깃불 하나로 두 사람이 같이 책을 보면 전기가 절약된다. 내 재산도 나 혼자가 아닌 여러 사람이 함께 쓰면 효율이 높다.” 재산 80% 털어… 인문·예술에 빠지다당대 최고의 장인이 예술품 만들면 1000년이 가도 가치 있고 공감 얻어디자인 중점… 국가 이미지 올릴 것-단추회사 사장님이 왜 문화·예술에 관심을 갖게 됐나. “1980년대 일본 출장을 처음 갔을 때 예쁘고 사치스럽게 만든 모찌 상자를 봤다. 소비자가 원해서 그렇게 만들었다고 들었다. 소비자 수준이 높아야 제품의 격도 높아진다는 생각을 굳혔다. 옷에 구멍만 뚫으면 달 수 있는 게 단추가 아니란 의미다. 때론 단추가 악센트이자 화룡점정이 될 수도 있다. 소비자가 높은 안목으로 더 좋은 단추를 원하면 공급자도 거기에 걸맞은 단추를 공급하게 된다. 대중의 안목을 키우는 건 문화·예술이고, 문화가 결국 국가의 힘이란 걸 깨달았다.” -인문·예술의 힘을 느낀 다른 계기도 있었을 것 같은데. “1980년대 초부터 단추공장 기계를 사러 유럽에 자주 다녔다. 특히 이탈리아 로마는 2000년이 넘도록 관광객이 끊임없이 구경 오는 게 신기했다. 당대 최고의 장인이 최고 기술로 예술품을 만들면 1000년이 지나도 가치가 있고 공감을 얻으며 레퍼런스가 된다고 생각했다. 어설프게 대충 만들면 한 번은 가도 두 번은 안 간다. 태국 방콕에 높은 건물이 있어도 큰 감동은 없다. 아무 데나 다 있으니까.” -이함은 무슨 뜻인가. “‘빈 상자로서’란 의미다. 예술 작품을 전시하는 공간에 어울리는 이름이다. 캠퍼스라고 지은 건 전시된 작품을 보면서 안목을 높이는 교육 공간이라 생각해서다. (이름부터) 남들과 똑같으면 재미없다.” -이함의 방향성은. “최종 방향은 디자인이다. 이승에선 이 정도 하고 끝낼 것 같다. 보통 재단을 만들어 사회에 공헌하고 싶다고들 하는데 난 결이 좀 다르다. 내가 가진 자원을 디자인 분야에서 대중들의 안목을 높이는 데 쓰고 싶다. 빵 하나 사 주고, 장학금을 내주면 그걸로 끝일 수 있지만 대중의 문화적 소양을 높이는 데 쓰면 국가 브랜드 이미지가 올라간다고 믿는다. 일본 제품은 디자인이 훌륭하고 예쁘다. 독일 제품 하면 튼튼하다고 인식한다. 10% 더 비싸도 산다. 국가의 축적된 이미지는 국부로 연결된다.” -‘새로움’은 왜 중요한가. “사람들은 자기가 배우고 겪은 걸 진리라고 착각한다. 그런데 배운 건 계속 변한다. 20살 때 공부한 건 40살이 됐을 때 써먹기 어렵다. 과거에 익힌 것을 기본으로 20년 뒤 사회가 어떻게 바뀔지 생각하고 대비해야 한다. 요즘 세상이 급변한다고 하는데 옛날에도 세상은 급변했다. 새로운 것을 꾸준히 접하고 변화에 대비하지 않으면 도태된다. 물론 온고지신은 기본이다. 옛날에도 적용됐고, 지금도 적용되고, 미래에도 적용될 이론은 새로운 것을 익히는 기본이 된다.” -교육은 어떻게 바뀌어야 하나. “암기라는 건 지나간 지식을 배우고 익히는 것이다. 나름대로 효용이 있다. 무시하면 안 된다. 다만 암기를 통해 옛날에 어떻게 했다는 걸 익힌 다음 사회에 나갈 때 ‘난 다른 걸 생각해야지’라고 전향적인 자세를 가져야 한다.” “변화에 대비 안 하면 도태된다”자기 일에 충실한 사람 뽑는 ‘건명원’“올 한 해 이기적으로 살아라” 말해그래야 나이 들어서 남을 위해 살아-건명원 입시 요강에 ‘인생계획서’가 있던데 어떤 인재를 선발하나. “자기 일에 충실한 사람을 뽑으려 한다. 건명원 학생들에게 ‘올해만이라도 이기적으로 살아라’고 말했다. 우리 사회엔 이타적인 사람이 너무 많다. 항상 남을 의식하고, 남을 걱정한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이기적인데 이타적으로 살아야 한다고 교육 받아서다. 당장 내가 죽겠는데 무슨 이타적인 삶이냐. 우선 나부터 바로 서야 한다. 내가 안정적이지 않은데 이타적으로 산다는 건 모래 위에 지은 성과 같다.” -이기적인 삶의 의미가 다르게 느껴지는데. “그렇다. 영원히 이기적으로 살라는 게 아니라 올해, 한 해만이라도 자신을 소중히 여기란 의미다. 남에게 해를 끼치거나 남을 깎아내리란 건 아니다. 인생은 타이밍이다. 젊었을 땐 조금 이기적으로 사는 것이 효율적이다. 그래야 나이 들어서 남을 위해 살 수 있다. 보통 인생에 세 번의 기회가 온다고 한다. 난 그 말이 틀렸다고 생각한다. 기회는 수시로 무수히 내 옆을 지나간다. 준비가 안 돼 있으면 다 놓친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관세 폭탄으로 먹구름이 드리웠는데. “트럼프가 당선되지 않았어도 ‘아메리카 퍼스트’(미국 우선주의)는 똑같았을 거다. 관세 폭탄은 기본적으로 중국을 견제하는 수단이다. (민주당 후보였던) 카멀라 해리스가 당선됐다면 걱정이 없었을까. 방법이 온건한가, 과격한가의 차이다. 한국이 살아남으려면 미국에 필요한 존재가 돼야 한다. 그러려면 경제력이 중요하다. 미국도 약점이 있다. 한국 기업을 등한시하면 미국이 힘들어진다. 그들도 정보가 많으니까 계산을 잘할 거라 생각한다.” ●오황택 이사장 1948년 서울 출생. 보성고 졸업. 1978년 단추회사 두양을 설립했다. 2013년 재산의 80%인 약 600억원을 기부해 두양문화재단을 설립한 뒤 2015년 서울 종로구 가회동에 건명원을, 2022년 경기 양평군 강하면에 이함캠퍼스를 열었다.
  • [열린세상] 독립운동 기본노선 이탈한 두 세대

    [열린세상] 독립운동 기본노선 이탈한 두 세대

    나는 지난 40년 동안 지루하게도 긴 세월, 이른바 ‘86세대’에 대하여 ‘무식하고 건방지다’고 비판해 왔다. 지금에 와서 생각하면 어리석은 행동이었다. 내가 아무리 목청 높여 “민족주의는 지성을 마비시키는 독약”이라고 말했지만, 효과는 없었다. 쓸데없는 잔소리로 나만 손해 본 것이다. ‘86세대’가 20대 청년기를 보낸 1980년대는 민주화운동을 하면 모든 것이 용서가 되던 시절이었다. 보드카(마르크스 레닌주의)든 고량주(마오쩌둥 사상)든 마시고 비틀거려도 다 용서가 되었다. 심지어 싸구려 북한 술(주체사상)에 찌들어도 다들 모른 척했다. 당시의 청년들은 흔히 공권력을 우습게 보고 돌을 던지고 폭력을 휘둘러도 크게 비난받지 않았다. 심지어 감옥에 가도 독립운동가 대접을 받았다. 이렇게 탄생한 공부 안 한 학생들, 무식한 영웅들의 영향력이 자기 세대 내에서 무척 클 뿐만 아니라 심지어 다음 세대, 70년대생들에게까지도 미친다. 이런 세대는 우리나라 역사에서 처음 나타난 것인가? 아니다. 이들보다 60년 전에, 1920년대를 20대로 산 청년들 가운데도 그런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이 독립운동에 쏟아져 들어오면서 독립운동은 크게 성장했지만, 동시에 기본노선을 이탈했다. 이들의 활동으로 민족운동에 사회운동을 결합하고 노동자와 농민, 여성을 독립운동에 가담시키는 성과도 있었다. 하지만 우리나라 독립운동의 기본노선을 이탈한 것은 이들 세대의 치명적인 문제였다. 1920년대, 일제의 다이쇼(大正) 데모크라시와 조선총독부의 이른바 ‘문화통치’라는 의외로 느슨한 분위기 속에서 ‘주의자’를 자처하는 일은 모든 지식 청년들의 멋이고 유행이었다. 해방 당시 이들이 40대 장년으로 전국 방방곡곡의 지도자가 되었기 때문에 대한민국 건국은 큰 어려움을 겪었다. 이들이 독립운동에 뛰어든 계기는 3ㆍ1운동이었다. 그래서 그들을 쉽게 ‘3ㆍ1운동의 아이들’이라고 부를 수 있으니, 86세대를 ‘5ㆍ18의 아이들’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두 세대는 60년을 서로 떨어진 시대를 살았으나 공통점이 많았으니, 무엇보다 자신들이야말로 ‘과학적이며 혁명적이고’ 진정한 역사는 자신들이 처음 쓰기 시작한다고 믿었다는 것이다. 이들은 시건방진 어린 왕자들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개인의 자유와 독립이라는 가치, 근대 해양문명과 민주주의를 이해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그들은 ‘조선책략’을 읽지 않았다. 김홍집과 유길준의 고민에 대해 알려고 하지 않았다. 이상재와 서재필, 이승만, 안창호 등이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를 통해서 정립한 우리나라 독립운동의 기본노선, 친미의 민주공화국을 세워서 중ㆍ러ㆍ일로부터 독립하자는 노선을 이탈했다. 바로 이 해양문명 지향의 독립운동의 기본노선을 이탈하는 순간 그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영남만인소’와 위정척사파의 입장에 서게 된다. 왜 그런가? 그것은 우리나라의 지정학적 위치로 인한 숙명이다. 우리나라는 지구상에서 가장 큰 나라 중국에 가장 가까이 위치하고 있다. 조선왕국이 스스로 번속국(藩屬國)을 자처한 것이 어찌 즐거운 일이었겠나? 불과 130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한반도에 사는 우리 조상들은 중화제국, 명나라와 청나라의 번속국의 하나인 조선왕국의 신민이었다. 천년의 숙명을 벗어날 길을 알려준 ‘조선책략’의 저자가 중국 사람 황준헌이라는 사실도 역설적이지만, 우리 조상들은 이 책에서 영감을 얻어 중화(中華)의 천하를 넘어선 세계를 보기 시작했다. 우리 조상들은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모든 국민이 주인인 나라, 미국을 모델로 한, 국민개병제(國民皆兵制)의 민주공화국을 독립운동의 목표로 정립했다. 가장 명쾌한 표현은 안창호 선생이 1920년 1월 3일 상하이 교포들의 신년 축하회에서 행한 연설, ‘나라 사랑의 6대 사업’에서 읽을 수 있다. 주대환 민주화운동동지회 의장
  • 맑은 성북천엔 낭만 흐르고 힙한 카페들엔 감성 흐른다[서울펀! 동네힙!]

    맑은 성북천엔 낭만 흐르고 힙한 카페들엔 감성 흐른다[서울펀! 동네힙!]

    한적한 천변, 오리 가족들 반기고조용한 골목길 다양한 카페 손짓불상·한옥 인테리어… 日 스타일도 한성대역 가다 보면 전집과 포차밤엔 화려한 ‘미디어아트 라이츠’“안감내(성북천의 옛 이름)는 수량이 풍부하고 맑아서 동네 사람들은 큰 빨래만 생기면 그리로 들고 나갔다.… 개천 쪽으로는 수양버들이 늘어져 있어 차가 많지 않은 당시에는 타동네 사람들까지 일부러 산책을 올 정도로 한적하고 낭만적인 길이었다.” 박완서 작가의 ‘그 남자네 집’에 등장한 서울 성북구 성북천에는 한적한 낭만이 흐른다. 1960년대 서울을 그린 소설 속 동네는 서민이 사는 한옥 골목길이었다. 30일 찾아간 성북천은 고층 아파트 사이에 남은 근대 개량한옥과 빌라들로 그때의 ‘낭만적인 길’을 떠올릴 만했다. 최근 1~2년 사이엔 힙한 카페가 눈에 띄게 늘어났다. 조용한 골목길에 감성을 가득 담은 공간이 모인 ‘성북천 카페거리’다. 주변 한성대, 성신여대, 고려대 인근 상권의 분주함과는 한발 떨어져 있고 성북동 베이커리거리, 누들로드보다는 독특하다. 무엇보다 2010년 하천 복원 공사를 마친 맑은 성북천이 흐른다. 한때 콘크리트로 덮였다가 자연 생태화를 마친 성북천에선 오리 가족들이 누구나 반겨 준다. 안암교 앞 카페 ‘유스리스 어덜트’는 야외 중정에 놓인 불상과 한옥 인테리어가 어우러지는 독특한 공간이다. 칼루아 베이스의 유스리스 커피와 일본식 팥빙수 안미쓰를 재해석한 디저트가 이국적인 분위기를 완성한다. 소품 하나하나 예사롭지 않다. 유스리스 어덜트의 정문석(31)씨는 “성북천 변에 한옥과 양옥이 섞여 있는 건물의 구조가 눈길을 끌었다”며 “마음의 편안함을 찾는 불교 교리에 관심이 있어 불상을 주제로 인테리어를 꾸몄다”고 했다. 이어 “4년 전 처음 개업했을 때는 주변에 카페가 손에 꼽을 정도였는데 최근에 많이 늘었다”고 했다. 건너편 골목의 카페 ‘공유’는 서울 속 작은 도쿄다. 일본 워킹홀리데이를 다녀온 친구들이 의기투합해 일본 ‘시티보이’ 라이프 스타일로 꽉 채웠다. 가게 앞 빨간색 ‘정지’ 표지판을 돌아 걸으면 도쿄로 온 듯한 느낌도 든다. 재즈 음악과 함께 즐기는 고양이 모양 버터샌드도 위트 있다. 봄과 가을에는 일본 지인들과 함께 시티보이 스타일 의류와 소품을 파는 동네 플리마켓을 연다. 공유를 운영하는 이연석(32)씨는 “도쿄 요요기 공원 주변 카페를 꿈꾸며 서울의 이곳저곳을 물색하다 보니 한적하면서도 따뜻한 성북천 카페 거리가 마음에 들었다”며 “교통도 좋아 홍제천, 망원 분위기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여기까지 찾아온다”고 했다. 파란 문이 인상적인 ‘언더워터 커피 로스터스’에서는 2층 통창으로 성북천의 사계절을 즐길 수 있다. 봄이면 흩날리는 벚꽃을 감상하는 가장 좋은 장소다. 로스터가 매일 선정하는 7종류의 수준급 원두가 준비돼 있다. 손님들과 취향 공유 노트를 작성하는 카페 ‘콜렉트마이페이보릿’, 하루 마감을 하는 법으로 손님들과 이야기하는 카페 ‘마가밀’ 등은 사람 사이의 온기를 전한다. 레몬 그라니타가 청량한 ‘페페이즈굿’, 국내외 작가들의 소품과 커피를 파는 ‘51히비’도 있다. ‘르쿠에르’는 생토노레 등 눈이 즐거운 디저트 맛집이다. 성북천을 따라 지하철 4호선 한성대입구역 방향으로 걷다 보면 음식거리인 성북천 골목형 상점가가 나온다. 가성비도 맛도 좋은 전집과 포차가 모여 있다. 혜화동과 가까운 동네에는 극단의 연습실이 있어 연극인들이 뒤풀이하러 찾기도 한다. 미림전집의 김정자(65)씨는 “우리 집은 허정도 배우나 오대수 배우 등 연극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온다”며 “고소한 모둠전과 매일 배달받은 신선한 막걸리 맛의 궁합이 잘 맞는다”고 했다. 겨울밤의 성북천은 돈암동성당의 ‘성북 겨울 미디어아트 라이츠’로 따뜻하다. 성북구청 건너편의 천주교 돈암동 성당은 1955년 건립된 고딕양식의 석조건물로 완성도가 높아 한국의 아름다운 성당 중 한 곳으로 꼽힌다. 빛으로 만든 크리스마스 영상을 화강암 벽면에 비춰 성북천을 산책하는 이들에게 빛의 향연을 선사한다. 지난 연말 크리스마스이브부터 지난 5일까지 운영됐다. 주민들의 호응이 높아 오는 25일부터 6일간 오후 8시 30분부터 9시까지 다시 찾아올 예정이다. 성북구 관계자는 “산책로 정도로만 여겨지던 성북천에 바람마당에 이어 별빛마당, 미디어아트 등으로 예술적 감성을 입혀 가고 있다”며 “역사문화예술 자원, 인근 대학의 청년인재가 어우러질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 나가겠다”고 했다. 성북천 일대에 식당 및 카페는 130여곳에 이른다. 지난해 4월에는 성북천 골목형 상점가 상인회와 함께 장터, 벼룩시장을 준비한 ‘블라썸 성북천 페스티벌’도 열었다.
  • 아득한 한탄강, 발끝에 멈춘 아늑함… 새콤한 메밀꽃, 혀끝에 맴도는 겨울[박상준의 여행 서간(書簡)]

    아득한 한탄강, 발끝에 멈춘 아늑함… 새콤한 메밀꽃, 혀끝에 맴도는 겨울[박상준의 여행 서간(書簡)]

    어제는 책 한 권을 읽다가 ‘따뜻한 얼음’이라는 문구를 떠올렸습니다. 온몸이 찌릿하도록 시렸지만 심장을 두드리는 글의 결정이 온기라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당신의 겨울은 따뜻하신가요? 한탄강의 얼음장 옆 물윗길을 걷다가, 반세기 넘은 노포의 막국수를 후루룩 비벼 삼키다가 저는 박준 시인이 말한 여름밤 철원의 ‘화기’(火氣)를 떠올립니다. 어떤 그리움은 늘 지구 반대편의 시간에 속한 듯합니다. ●철원에서 보내는 편지 철원에서 보내는 편지 강원도 철원에 있습니다. 내륙 깊은 분지라 겨울 추위가 매섭습니다. 산지의 찬 공기는 그 무게를 이기지 못해 평지로 흘러내립니다. 해발고도가 낮을수록 추워지는 기온의 역전 현상이 일어나지요. 그런 이유로 이곳의 여름은 ‘밤이 되어도 화기火氣가 가시지 않’겠습니다. 박준 시인은 시 ‘메밀국수’를 쓴 그해 더운 여름을 철원에서 보냈나 봅니다. 이 시에는 ‘철원에서 보내는 편지’라는 부제가 붙어 있습니다. 그 때문이 아니더라도 편지처럼 읽힙니다. 아니 시처럼 쓴 편지입니다. ‘분지의 여름밤에는 바람이 없습니다’ 시인이 첫인사를 건넵니다. 그러고는 여름밤 더위를 피해 밥 대신 메밀국수를 사 먹고 돌아왔다고 말합니다. 동송의 30년 된 막국숫집과 갈말의 60년 된 막국숫집을 두고 그 시차를 생각하다 혼자 즐거워하기도 하고요. 또 막국수를 먹고 돌아오는 길, 철원 사람들은 시인에게 자꾸 저녁 안부를 묻습니다. 밥은 먹었는지, 저녁밥은 꼭 챙겨 먹어야 한다든지. 그가 그린 귀갓길은 ‘철(鐵)’원이란 글자의 차가운 이미지를 따뜻하게 녹여 냅니다. 저는 지금 막국수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네, 맞습니다. 박준 시인의 시 한 편에 끌려 이곳에 왔습니다. 늦은 점심이라 군침이 넘어갑니다. 철원에는 막국수 맛집이 여럿입니다. 철원막국수, 내대막국수, 풍전면옥 등이 소문났지요. 시인처럼 동송과 갈말을 두고 고민하다 갈말로 왔습니다. 동송의 30년 된 막국숫집이 몇 해 전 문을 닫은 탓이기도 하고요. 60년 넘은 갈말의 노포는 네모난 마당을 가진 옛집입니다. 다른 계절에는 마당과 입구에 크고 작은 화분들이 옹기종기하죠. 막국수를 먹으며 하얀 메밀꽃이 이는 장면을 떠올린 기억이 납니다. 꽃에 기울인 정성이 메밀면인들 다를까요. 그런 까닭으로 이곳의 주인장은 막국수라는 단어가 못내 섭섭할지 모르겠습니다. ●메밀·배추의 시차, 한겨울 막국수의 맛 메밀과 배추의 시차 막국수는 메밀국수를 부르는 또 다른 이름이지요. 어원에는 여러 가지 주장이 있습니다. 막 만들어 냈다 해 그리 부른다는 설도 있지요. 이때 막은 ‘마구’와 ‘금방’의 의미가 있어요. 아무렇게 금방 만들어 먹는 국수라고 할까요. 그런 음식이 30년, 60년씩 사랑받는다는 사실은 참 놀라운 일입니다. 마구 만든다고 불러도 시차는 거짓이 없습니다. 먹음직스러운 비빔막국수 한 그릇이 식탁 위에 놓입니다. 육수만 담은 양은그릇 하나도 무심히 건네집니다. 비빔과 물을 두고 갈등하던 제 말소리를 들었나 봅니다. 시인에게 저녁을 먹었냐 묻던 그해 여름 철원 사람들의 모습이 겹칩니다. 하지만 막국수의 제철은 역시 겨울입니다. 먹을 것이 많지 않던 과거에는 가을 메밀을 수확해 겨울에 국수로 빚어 먹었지요. 이곳의 메밀면은 통메밀과 속메밀을 섞어 거뭇한데 그럼에도 면이 푸석하지 않습니다. 한입 덜어 씹으니 메밀 특유의 식감이 입안에서 헤엄칩니다. 과일로 단맛을 낸 양념장은 매운맛이 불편하지 않아 좋습니다. 겨울 한기가 매콤하게 잊힙니다. 박준 시인은 ‘메밀국수’의 말미에 배추 파종 이야기를 꺼냅니다. 겨울에는 그 배추로 만두소를 만들 것이라 말하지요. 갈말에서 막국수를 드셨다면 동송에서 만두를 맛봐도 좋겠습니다. 동송에는 이북 만두를 맛있게 내는 어랑손만두국과 손만두버섯전골을 잘하는 솔향기가 있습니다. 어랑은 함경도 도시의 지명입니다. 배추가 씩씩하게 씹히지 않아도 맑은 탕을 떠올리게 하는 국물이 좋습니다. 솔향기는 전골에 끓인 김치만두가 맛있지요. 만두피는 옥수숫가루를 넣어 노란색이고요. 시인은 겨울 만두까지는 맛보지 못하고 철원을 떠난 듯합니다. 대신 ‘요즘은 먼 시간을 헤아리고 생각해 보는 것이 좋습니다’라며 편지를 갈무리합니다. ●꽁꽁 언 겨울에만 걷는 ‘한탄강 물윗길’ 언 강 위를 걷는 물윗길 철원에는 ‘먼 시간을 헤아려 생각해 보기 좋은’ 여행지가 있습니다. 한탄강 물윗길입니다. 철원과 경기도 연천, 포천에 걸쳐 흐르는 한탄강은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지질공원입니다. 철원용암대지는 약 54~12만년 전 여러 차례 화산 폭발로 생겨났고요. 까마득한 시간이 타임랩스처럼 흐릅니다. 하지만 물윗길을 완주하는 데는 3시간 정도가 걸립니다. 저는 수십만년과 3시간의 시차를 생각하다 시인처럼 혼자 피식 웃고 맙니다. 한탄강 물윗길은 일 년 내내 개방하지는 않습니다. 10월부터 3월까지만 열립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이 겨울을 고집해요. 강 한가운데 부교를 놓아 만든 물 위 구간 때문일 겁니다. 저는 순담계곡 쪽에서 출발합니다. 다른 계절이었다면 드르니까지 한탄강 주상절리길을 따라 걸었을 테지요. 절벽에 기댄 잔도의 짜릿함을 누리면서요. 하지만 겨울은 강변의 물윗길을 향합니다. 곧장 협곡 사이 부교가 펼쳐집니다. 첫발을 디디자 아득함 속 아늑함으로 인해 안도합니다. 켜켜이 쌓인 좌우의 지층은 세월의 주름처럼 우리를 안위하지요. 부교는 플라스틱 부표들이 모여 다리 길을 만듭니다. 주상절리와 현무암 계곡 사이로 퉁퉁대는 울림을 딛고 나아가죠. 발끝이 닿는 부교 곁에는 ‘얼음’하고 굳은 강입니다. 마치 작은 기적이 일어난 듯 고요히 멈춰 선 시간입니다. ●송대소, 높이 30~40m 주상절리 명소 주어진 시간이 길지 않다면 고석정까지 걸으세요. 거북이처럼 느리게 움직여도 한 시간이면 족하지요. 고석정은 높이 약 15m의 외로운 바위와 정자를 이릅니다. 임꺽정이 은신한 곳으로 알려졌지만 화강암층과 현무암층이 마주하는 지질이 흥미롭습니다. 고석정을 지나 조금 더 걷겠다면 승일교가 다음 목적지입니다. 6·25전쟁 전에 북한이 절반을, 전쟁의 끝 무렵에 미군과 노무단이 나머지 절반을 지어 완성한 다리입니다. 이‘승’만과 김‘일’성의 두 글자를 딴 콘크리트 아치교는 왠지 악수하는 다리 같아 뭉클합니다. 부교 구간의 아름다움은 마당바위 지나 은하수교~태동대교 구간도 뒤지지 않습니다. 때로는 은하수교 위에서 송대소를 내려다보는 것만으로 그 위용을 짐작할 수 있어요. 송대소는 물윗길 주상절리 명소입니다. 높이가 30~40m에 이르러요. 다각형의 기둥은 절벽에 기대 기이한 형성을 연출해 시선을 끕니다. 물론 물윗길을 걸을 때는 은하수교에서 보던 것과는 달리 거대한 스케일을 선보입니다. 한탄강의 진짜 주인공은 그들이고 우리는 그저 그 물길을 빌려 잠시 다녀갈 뿐이라는 걸 깨닫습니다. 주말과 공휴일엔 태봉대교 매표소에서 순담계곡 매표소까지 셔틀버스가 오갑니다. 은하수교와 고속정 등을 경유하지요. 참, 물윗길을 걸을 때는 물이나 따뜻한 음료를 꼭 챙겨 가길 권해요. ●소설가 이태준의 편지 쓰는 법 철원의 편지는 박준 시인 이전에 소설가 이태준이 있다는 걸 아시나요? 그는 ‘한국의 체호프’라 불린 철원 태생의 작가입니다. ‘운문은 정지용, 산문은 이태준’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어요. 영화나 드라마 촬영지로 유명한 서울 수연산방이 그의 집터입니다. 1933년부터 머물며 정지용, 이효석, 이상 등과 구인회 활동을 한 곳이고요. 그는 1943년 다시 철원으로 돌아와 몇 해를 삽니다. ‘서간문강화’(깊은샘)는 그때쯤 출간한 책입니다. 편지 쓰는 법에 관한 책이라고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저는 ‘여행 중에 흔히 쓸 편지들’이란 장을 꼼꼼히 읽었습니다. 그는 ‘여행맛을 여러 사람에 보이는 미덕’이라며 ‘감흥이 솟는 만치는 표현되는 것이 오히려 자연’이라고 덧붙입니다. 몇 해 전만 해도 그의 소설 ‘촌띄기’를 따라 걷는 촌뜨기길이 철원에 있었지요. 소설의 배경이 되는 철원읍 관전리 철원경찰서(터) 등을 엮은 길이었습니다. 옛 철원경찰서는 노동당사 옆입니다. 그의 고향마을 용담이 멀지 않아요. 지금은 소이산 옆 철원역사문화공원에서 촌뜨기길의 아쉬움을 달랩니다. 철원역사문화공원은 1930년대 옛 철원읍 시가지를 재현한 공원입니다. 철원금융조합, 철원공립보통학교, 관동여관, 철원극장, 철원역 등이 도열합니다. 김남길 주연의 넷플릭스 드라마 ‘도적: 칼의 소리’를 촬영하기도 했다지요. 철원양장점에서는 옛 옷을 입고 무료로 기념사진을 찍을 수 있습니다. 철원극장에서는 주말 무성영화를 상영하기도 하고요. 철원역에서는 모노레일을 타고 소이산 전망대까지 다녀올 수 있습니다. 해발 362m의 야트막한 산은 철원평야와 비무장지대(DMZ)를 조망할 수 있는 명소입니다. 점점이 사라진 옛 철원 시가지의 흔적이 그곳에 있겠지요. 서울과 원산을 잇던 경원선도, 금강산을 향하던 철길도 그곳에 있었겠지요. 궁예가 세운 태봉국의 도성 터도, 6·25전쟁에서 산화한 백마고지의 선령들도 그곳에 잠들었겠습니다. ●느린 편지에 담긴 겨울의 철원 철원군은 6·25전쟁을 거치며 남과 북으로 갈라졌습니다. 보통 군의 지명은 제일 큰 읍의 지명을 따르지만 철원읍은 민통선 안에 있지요. 그래서 철원군은 동송읍과 갈말읍이 제일 큽니다. 박준 시인이 동송과 갈말 사이 막국숫집을 두고 고민한 것도 그런 연유겠습니다. 아직은 갈 수 없는 먼 북녘의 겨울을 한참 동안 바라보다 소이산을 내려옵니다. 철원역사문화공원을 떠나기 전에는 옛 철원우체국을 발견합니다. 반가운 마음에 문을 열고 들어갑니다. 옛 집배원 제복과 우편배달용 빨강 자전거와 그 시절 누군가 썼던 엽서가 눈길을 끕니다. 우체국에 왔으니 편지를 써야겠습니다. 우편 접수대 앞에는 발송용 엽서와 보관용 엽서가 보입니다. 발송용 엽서는 3개월 후 수신인에게 보내고, 보관용 엽서는 철원우체국이 보관했다 일부를 선정해 ‘느린 우편’ 책자로 제작한다네요. 발송용 엽서를 받아서는 ‘철원에서 보내는 편지’에 답장합니다. 여름에 쓴 철원의 편지(시)를 받고 겨울에 쓰는 편지겠습니다. 첫 문장을 어떻게 시작할지 고민하다 그의 고향이라서 이태준의 ‘무서록’(청색종이)을 떠올립니다. ‘두서없이 쓴 글’이라는 제목이 좋기도 하고요. 그 가운데 ‘매화’의 한 문장을 빌립니다. ‘겨울이 차다는 것은 우리의 체온이 너무 뜨거운 때문’ 이 편지가 다다를 때쯤은 봄일 테고, 그때의 저는 또 겨울의 철원을 그리워하고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 60년 중구 역사 산증인 24명에 ‘토박이패’

    60년 중구 역사 산증인 24명에 ‘토박이패’

    서울 중구는 지역에서 60년 이상 거주한 ‘토박이’ 24명을 신규 발굴해 토박이 패를 증정했다고 23일 밝혔다. 이로써 지역 토박이는 총 264명으로 늘어났다. 지난 22일 구청 기획상황실에서 열린 ‘2025 구 토박이 패 수여식’ 행사에는 지역에서 80년 이상 살고 있는 최고령 토박이와 두 쌍의 토박이 부부 등이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앞서 구는 1999년부터 토박이를 발굴하고 있다. 명동과 남산, 청계천과 남대문시장 등 서울의 중심지를 품고 있는 구의 입장에서 토박이는 수십년 이상 지역의 변화를 직접 겪은 살아 있는 문화유산이기 때문이다. 이에 구는 지난해 ‘토박이 예우 및 지원에 관한 조례’를 만들면서 토박이에 대한 지원도 강화했다. 실제 토박이로 선정된 주민은 종량제 봉투(60ℓ)를 무상으로 받을 수 있다. 증명서 6종에 대한 발급 수수료와 공영주차장 주차 요금 50% 감면 등의 혜택도 있다. 지역 내 전통문화 보존을 위해 활동하는 ‘구 토박이회’에 가입할 수 있는 자격도 주어진다. 이날 행사에는 구 토박이회 임원들도 참석해 신규 토박이를 환영했다. 정동기 토박이회 회장은 “우리 지역이 좋아서 살았는데, 이렇게 대접해 주니 감사하다”며 “구를 떠나 산다는 건 생각도 할 수 없다. 모든 인생이 여기에 녹아 있다”고 말했다. 김길성 중구청장은 “구 토박이들의 이야기가 곧 서울의 역사다. 지역 전통 및 문화가 현재와 미래의 구민에게 생생하게 이어지길 바란다”며 “토박이가 지역을 지켜왔다는 보람을 느낄 수 있도록 앞으로도 정성껏 예우하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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