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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씨줄날줄] 종자전쟁/박정현 논설위원

    세계는 종자전쟁 중이다. 우리나라는 팥, 밀, 콩 등의 식물종자 900여종을 독일로부터 돌려받는 작업을 추진 중이다. 1960년대 동독이 북한에서 채취해 간 한반도 토종 자원이다. 북한 종자는 추위에 잘 견디는 내한성을 갖고 있으며 병충해에도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독일뿐 아니라 러시아와 중국에도 퍼져 있을 한반도 토종 종자 반환도 추진 중이다. 우리가 생산하는 옥수수·양파·감자·딸기·감귤 등의 종자 대부분이 외국산이다. 외환위기 이후 국내 토종 종자업체들이 전멸하다시피 했다. 우리가 외국산 종자를 키우면서 내는 로열티는 2002년 13억여원에서 작년 135억여원으로 10배 증가했다. 국내 종자 시장 규모는 5800억원가량이지만 세계 종자시장은 48조원으로 엄청나다. 미스킴라일락은 미국 적십자사 직원 메도가 1947년 북한산 백운대에서 가져가 싹을 키운 수수꽃다리다. 한국에 있을 때 같은 사무실 여직원을 생각하면서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미스킴라일락은 고유종 식물이 외국으로 나가 특허출원돼 국내로 역수입되고 있다. 1363년 원나라에서 붓대롱에 숨겨 목화씨를 국내로 들여온 문익점 선생이 들으면 통탄할 일이다. 국제식물신품종보호동맹 가입 10주년을 맞는 2012년부터는 지정된 모든 작물에 로열티를 내야 하기 때문에 종자시장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종자가 산업으로 인식되면서 종자전쟁이 벌어지는 것이다. 다행스럽게 우리도 늦게나마 종자산업 육성을 선언했다. 농림식품수산부는 우량 종자를 채종하는 일을 맡을 종자과를 신설하기로 했다. 돌연변이 발생을 유도하는 방사능 처리 등의 연구 사업도 맡는다. 그제는 농림부가 새만금 간척지에 종자산업을 연구·개발하는 ‘시드 밸리(종자산업단지)’를 내년에 세우는 등 10년 계획을 내놓았다. 150억원을 들여 방사선 돌연변이 육종센터도 세우겠다고 한다.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떠오르는 종자산업 육성에 성공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기를 기대해 본다. 목화씨가 단순한 농작물에 그치지 않고 의류혁명과 산업의 패러다임 변화를 가져왔듯 종자산업은 우리 경제의 새로운 성장동력이 될지 모른다. 박정현 논설위원 jhpark@seoul.co.kr
  • [씨줄날줄] 위구르족/함혜리 논설위원

    위구르인의 조상은 몽골에서 시베리아까지 넓은 지역에 산재해 있던 고대 튀르크계 유목민이다. 중국인들은 이들을 가오처(高車)라 불렀다. 천막을 옮기기 위해 소가 끄는 수레에서 유래했다. 철 수레를 만들어 사용했을 정도로 금속문화가 발달했던 이들의 역사는 744년 바스밀, 카를룩 등의 부족과 함께 후돌궐 제국을 멸망시키고 위구르 제국을 세우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몽고와 중앙아시아의 광대한 영토를 지배하며 유목문화를 버리고 점차 정착 농경사회로 탈바꿈했으나 840년 다른 튀르크계 민족인 키르기스에 의해 멸망한다. 위구르의 난민들은 중앙아시아 각지로 흩어졌다. 위구르 제국의 동쪽 지역에 살던 사람들이 세운 간수 왕국은 870년부터 1036년까지 지속됐다. 이들의 후손이 중국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 거주하는 위구르인이다. 실크로드의 요충지인 우루무치, 고대 무역의 중심지인 카슈가르 등을 중심으로 무역과 목축업, 농업이 발달했으며 중국과 대체로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던 신장지역은 1760년 청의 지배를 받게 되면서 피의 역사가 시작된다. 위구르족은 42차례나 반란을 일으킨 끝에 1864년 동투르키스탄이라는 독립 왕국을 세웠지만 청나라는 1884년 ‘새로운 영토’라는 뜻의 신장성을 설치했다. 1944년 재봉기해 동투르키스탄을 세웠지만 중국은 1949년 공산당 정권 수립 후 이곳을 다시 병합했다. 1955년 10월 신장 위구르 자치구가 됐지만 분리독립 요구는 옛 소련 붕괴 이후 한층 거세졌다. 위구르 문화는 튀르크 문화와 한문화, 아리아계 문화가 혼합된 형태로 문학과 예술, 특히 음악 분야에서 분명한 역사적 정체성을 자랑하고 있다. 우루무치를 둘러싼 신장의 면적은 164만 7000㎢. 중국 전체 면적의 6분의1, 한국의 16배나 되는 광활한 지역에는 엄청난 석유, 천연가스가 매장돼 있다. 그러나 위구르인들은 한족의 이주와 중국 정부의 지배로 전통 문화가 사라지고 삶의 터전을 빼앗기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현재 신장 위구르의 전체인구 1900만명 가운데 위구르족은 800만명에 이른다. 뿌리 깊은 종족 갈등이 다시 유혈사태로 번져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불행한 역사가 언제쯤 끝날지 걱정이다.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호날두 “레알! 내가 왔다”

    “프리미어리그에서 뛴 6시즌은 내게 너무 버거웠다. 지금 난 너무 잘 먹고, 잘 자고, 잘 마시고 있다. 스페인어도 문제없다. 준비는 끝났다.” ‘윙크 보이’로 불리는 ‘특급 윙어’ 크리스티아누 호날두(24·포르투갈)가 스페인 프로축구 프리메라리가의 ‘호화군단’ 레알 마드리드에 공식 입단한 뒤 입을 뗐다. 레알과 6년 계약한 호날두는 7일 마드리드 산티아고 베르나베우 경기장에서 열린 입단식에서 8만여명의 팬들로부터 열광적인 환영을 받았다고 외신들이 일제히 보도했다. 지난주 ‘하얀 펠레’ 카카(27·브라질)가 레알 입단식을 할 때 모였던 5만명보다 3만명이나 더 많은 관중이 몰렸다. 호날두는 등번호 9번을 새긴 레알의 흰색 유니폼을 입고 나타났다. 9번은 1956~60년 레알의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5연패를 이끈 ‘레알의 전설’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87·아르헨티나)가 달았던 등번호. 호날두는 “레알에 오겠다는 어릴 적 꿈이 이뤄졌다.”면서 “오늘은 나에게 특별한 순간”이라고 말했다. 이날 여성 팬들이 장벽을 넘어 경호원의 제지까지 뚫고 경기장으로 난입해 호날두를 대피시키기도 했다. 호날두는 “알렉스 퍼거슨 감독 등 맨유 전 동료와 팬들은 내 결정을 존중했다.”면서 “내게 큰 도전인 새 클럽을 위해 100% 전력을 쏟겠다.”고 강조했다. 호날두는 역대 최고의 이적료인 8000만파운드(1650억원)에 레알로 이적해 입단 전부터 화제가 됐다. 이적료 1650억원은 레알이 카카를 AC 밀란에서 데려오면서 낸 6800만유로(1200억원)는 물론, 2001년 월드스타 지네딘 지단(37·레알 고문)이 유벤투스에서 레알로 옮길 때 지급한 7300만유로(당시 환율 1271억원)을 넘어선 사상 최고액이다. 호날두는 26일부터 다음달 3일까지 열리는 피스컵 안달루시아에서 데뷔할 가능성이 높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중·위구르 갈등 왜?

    140명의 사망자를 낳은 이번 신장위구르자치구 유혈사태는 수백년간 이어져 내려온 위구르인들의 분리주의 운동이 곪아 터진 결과였다. 위구르는 몽골 고원과 중앙아시아 일대에서 활약한 튀르크계 민족으로 중앙아시아 및 서아시아 각국과 밀접한 관계를 맺어왔다. 하지만 1760년 청의 건륭제가 위구르가 많이 머물던 지금의 신장 지역을 중국 영토로 편입시키면서 ‘피의 역사’는 시작됐다. 이들은 1930년대에 들어서면서 중국에서 독립, 동투르키스탄 공화국을 건설하려는 민족운동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특히 1990년대 옛 소련이 해체, 카자흐스탄과 키르기스스탄 등 튀르크계 이슬람 민족들이 독립하자 위구르족도 분리 독립 운동을 시작했다. 하지만 중국 당국의 탄압은 더욱 거세졌고 1997년 굴자 지역에서 유혈사태가 발생, 수십명이 사망하기도 했다. 이 지역은 중국 입장에서 상당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 신장 자치구에는 석유와 천연가스가 풍부하며 특히 석유는 중국 생산량 가운데 40%를 차지할 정도로 ‘자원의 보고’로 알려져 있다. 2000년 중국 정부가 이 지역을 필두로 서부대개발을 발표하며 본격적인 자원개발에 나서기도 했다. 또 러시아와 몽골,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파키스탄, 인도 등 주요 국가들과 접경해 있는 탓에 중국의 중앙아시아 진출의 교두보 역할을 하고 있는 지리적 요충지다. 중국이 지배를 멈출 수 없는 이유다. 하지만 위구르는 티베트에 비해 상대적으로 주목을 받지 못했다. 위구르 독립 운동을 펼치고 있는 동투르키스탄이슬람운동(ETIM)이 2002년 미국과 유엔으로부터 테러집단으로 규정된 까닭이다. 로이터 통신은 “중국 당국이 9·11테러 이후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을 지지하는 이유는 이들이 알 카에다와 연계돼 있다는 점을 들어 탄압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경원기자 leekw@seoul.co.kr
  • 한국 의료비 증가율 OECD 1위

    우리나라의 의료비 지출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개 회원국 가운데 가장 빠르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 기대수명도 한국이 회원국 중 가장 많이 늘었다. 3일 OECD의 ‘2009 세계 의료현황-한국편’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의료비 지출 증가 속도는 1990년대 OECD 평균의 두 배가 넘었으며 이런 추세가 2000년대에도 이어지고 있다. 2000~2007년 한국의 의료비 지출은 매년 평균 9.2% 늘어 선진국 평균 3.7%를 크게 앞지르면서 OECD 회원국 중 최고의 증가율을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료비 지출액 자체는 2007년 기준 국내총생산(GDP) 대비 6.8%로 터키(5.7%), 멕시코(5.9%), 폴란드(6.4%)에 이어 밑에서 4번째였다. OECD 평균 8.9%보다 2.1% 포인트 낮다. 1인당 개인 및 공공 의료비 지출(구매력 지수 기준)은 1688달러로 OECD 평균 2964달러의 60% 수준에 그쳤다. OECD는 “한국의 의료비 지출이 아직 OECD 평균에 비해 미흡한 편이지만 증가세만큼은 회원국 중 최고”라면서 “한국에서 최근 10년간 의료지출 비용이 급증한 것은 공공부문의 의료 지출이 늘었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우리나라의 의료비 국가 부담률은 1995년 전체 의료비의 36%에 불과했지만 2007년 55%까지 올라갔다. 2007년 한국의 인구 1000명당 의사 수는 1.7명으로 터키에 이어 두번째로 적었다. OECD 평균은 3.1명이다. 간호사 수도 한국은 인구 1000명당 4.2명으로 OECD 평균 9.6명의 절반을 밑돌았다. 반면 응급 병상 수는 인구 1000명당 7.1개로 OECD 평균 3.8개의 두배에 육박하며 일본(8.2개) 다음으로 많았다. 한국인의 기대 수명은 1960~2007년 사이에 27년이 늘었다. 60년에는 한국인의 기대 수명이 OECD 평균보다 16년 낮았으나 2007년에는 79.4세로 OECD 평균(79.0세)보다 더 높았다. 한국의 흡연율(2005년)은 남성은 46.6%로 OECD 회원국 중 두번째로 높았고 여성은 4.6%로 가장 낮았다. 김태균기자 windsea@seoul.co.kr
  • [열린세상] 광장민주주의에서 대의민주주의로/성낙인 서울대 헌법학 교수·한국법학교수회장

    [열린세상] 광장민주주의에서 대의민주주의로/성낙인 서울대 헌법학 교수·한국법학교수회장

    싱가포르는 네덜란드, 영국, 일본, 말레이시아의 지배 속에 영욕이 교차된 적도의 섬이다. 1965년 말레이시아연방으로부터 추방당한 독립은 고난의 시작이었다. 하지만 리콴유 총리는 싱가포르를 오늘날 세계적인 허브 도시국가로 우뚝 서게 했다. 32년에 이르는 리콴유의 장기집권에도 불구하고 경제적·사회적 안정을 구축한 것이다. 14년간 고촉통 총리의 과도기적 집권과정을 거쳐서, 2004년부터는 리셴룽 총리 시대가 계속된다. 부자세습이라는 비난을 모면하기 위해 중간과정을 거친 셈이다. 리콴유는 지금도 실질적인 국부(國父)로서 총리의 최고 멘토다. 한반도 북쪽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는 김일성, 김정일의 부자세습에 그치지 않고 최근에는 김정운으로 이어지는 3대 세습이 노골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유례가 없다. 그 세습이 몽매한 인민들의 굶주린 배라도 채워 줬더라면 그래도 최소한의 양해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인민들은 ‘이밥에 고깃국’은 고사하고 초근목피로 연명 중이다. 여기에 미사일과 핵무기로 중무장한 선군(先軍) 정치의 한계가 드러난다. 정치가들이 갖추어야 할 최소한의 덕목이 무엇인지를 두 사례에서 잘 보여준다. 세습통치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을 편하게 모시려는 지도자의 의지는 경제대국의 길로 인도한다. 법과 질서를 중시하는 안정된 사회를 구축한다. 국민들도 지도자를 신뢰한다. 하지만 백성들을 헐벗고 굶주리게 하는 한 그는 더 이상 지도자로서의 자격이 없다. 억지로 이끌어 내는 위장된 환호성은 도탄에 빠진 인민들을 기만하는 술책에 불과하다. 인간은 물질적 풍요로만 만족할 수 없는 영혼을 가진 사회적 존재다. 풍요로운 경제적 삶의 이면에 드리운 장기집권과 부자세습의 염증은 싱가포르가 해결해야 할 이 시대의 과제다. 리콴유 치적의 최대 수혜자임에도 불구하고 신세대는 새로운 정치적 사회적 요구를 분출시킨다. 정치적 참여의 보장과 행정의 투명성 확보도 관건이다. 행정의 투명성과 거버넌스 도구로서의 정보공개법에 관한 한 싱가포르는 동남아에서조차도 최하위 수준임이다. 격동의 60년을 거치면서 우리는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룩한 세계적인 모범국가로 일어섰다. 국민의 정치 참여와 행정의 투명성도 세계적인 수준이다. 세계에서 열두 번째로, 아시아에서 최초로 정보공개법을 제정하여 국정의 투명성을 제고했다. 통제된 도시국가 싱가포르의 한계를 극복한 셈이다. 하지만 외견적 민주화는 새로운 도전을 기다린다. 싱가포르는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북쪽에서조차도 강요된 안정성을 구가하고 있는 법과 질서는 혼돈상태다. 민주화과정에서 뿌려진 법과 질서에 대한 잿빛 추억을 벗어나지 못한다. 절차적 정의를 외면하고 실체적 정의만 추구하는 한 카오스적 상태를 벗어나기 어렵다. 광장민주주의는 아직도 그 긴 터널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 세기적 경제위기에 내몰린 경제적 약자와 소외계층의 목소리는 광장에 함몰된 채 탈출구를 찾지 못하고 허공을 맴돈다. 광장의 목소리가 잦아져야만 대의민주주의가 제자리를 찾을 수 있다. 국회의 존재이유는 광장을 통해 표출되는 직접민주주의의 요구를 수렴하여 민의의 장으로 끌어들이는 데 있다. 그런데 서울 시청 앞에서 울려 퍼지는 광장의 소리와 민의의 대변자여야 할 여의도 국회의사당 사이에는 벌어진 틈을 좁히기는커녕 멀어져 가기만 한다. 여의도 정치는 청산의 대상이 아니라 추적해야 할 이정표여야 한다. 경제성장의 그늘에 감춰진 어두운 그림자를 여의도 불빛이 밝게 비춰줘야 한다. 답답한 민초들의 마음을 헤아리기 위해 가슴을 열고 긴 호흡을 하는 정치의 복원이 필요하다. 이 난국을 돌파해 줄 선지자(先知者)는 진정 없단 말인가. 가수 한영애의 ‘여보세요 거기 누구 없소’라는 노래가사라도 한번 외쳐보고 싶은 심정이다. 성낙인 서울대 헌법학 교수·한국법학교수회장
  • [부고] ‘욕망이라는 이름의’ 명우 칼 말든 하늘로

    미국의 원로배우 칼 말든이 1일(현지시간) 로스앤젤레스 자택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고 AP통신이 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97세.‘워터프론트’, ‘패튼 대전차군단’ 등 50여편이 넘는 작품에서 개성있는 연기를 펼쳤던 말든은 할리우드 배우로 1950~60년대를 풍미했다. 1951년 영화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로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다. 1989년부터 4년간 미 영화아카데미 회장직을 맡았으며, 20 04년에는 미국 배우조합으로부터 공로상을 받았다. 말든은 연기 외에도 우표 수집가들에게 인기를 끌었던 ‘할리우드의 전설’ 우표 시리즈 기획에 참여하기도 했다.안석기자 ccto@seoul.co.kr
  • 미법원 “‘호밀밭의 파수꾼’ 속편 출간 금지”

    미법원 “‘호밀밭의 파수꾼’ 속편 출간 금지”

    미국 법원이 현대 미국문학의 결실 가운데 하나로 손꼽히는 J D 샐린저(90)의 소설 ‘호밀밭의 파수꾼’에서 주인공 캐릭터를 빌려와 다른 작가가 쓴 소설의 출판을 금지시켰다.  영국 BBC가 2일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뉴욕 맨해튼 지방법원의 데보라 뱃츠 판사는 스웨덴 작가 프레드릭 콜팅이 J D 캘리포니아란 필명으로 쓴 새 소설 ‘60년 뒤-호밀밭을 지나며’가 샐린저의 1951년 작품과 너무 비슷하다며 미국내 출판과 광고,유통을 무기한 금지한다고 판결했다.뱃츠 판사는 지난달 1일 샐린저가 법원에 소장을 제출해 요구한 것을 지난달 18일 받아들여 열흘 동안의 출판 금지 명령을 임시로 내린 바 있다.  당초 미국에서 9월 출간될 예정이었던 이 소설은 이미 영국에서는 시중 서점에 깔려 있다.  스웨덴 출판사 측은 이 작품이 원작자와 주인공에 대한 패러디라고 할 수 있어 문제될 게 없다고 주장한 반면,뱃츠 판사는 37쪽에 달하는 방대한 판결문을 통해 신작에 등장하는 주인공 ‘미스터 C’의 캐릭터가 ‘호밀밭의 파수꾼’ 주인공 홀든 콜필드와 너무 비슷해 원작에 성공에 기대려는 상업주의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또 콜필드의 캐릭터를 비판적으로 재해석하려 했다는 콜팅의 주장도 “문제가 많으며 신뢰성이 결여된” 주장이라고 일축했다.  오랜 은둔생활 끝에 최근 건강이 많이 나빠진 것으로 알려진 샐린저는 지난달 법정에서 진행된 청문회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콜필드가 기숙학교에서 쫓겨난 뒤 기존 제도에 항의하기 위해 뉴욕 일대를 배회하는 원작의 설정과 달리 이 작품에선 76세의 미스터 C가 요양원을 빠져나와 뉴욕으로 향하는 여정을 담고 있다.두 작품 모두 주인공들의 방황이 뉴욕 센트럴파크에서 마무리되는 것까지 똑닮았다. 인터넷서울신문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19세기 여자의 삶·사랑은 어땠을까

    19세기 여자의 삶·사랑은 어땠을까

    쥘 미슐레(1798~1874)는 30년에 걸쳐 저술한 17권 분량의 ‘프랑스사’를 비롯해 ‘프랑스 대혁명사’, ‘19세기사’ 등 방대한 저작을 남긴 프랑스 역사학계의 거장이다. 16세기 유럽의 문화부흥기를 지칭하는 ‘르네상스’라는 말을 처음 만들어낸 학자로도 유명하다. 하지만 지금까지 국내에 번역된 그의 책은 단 한 권도 없었다. 주요 저작의 분량이 만만치 않은 데다 인간본성의 메시지에 천착하지만 새로운 관점이나 해석을 제시하는 데는 부족하고, 당대엔 진보적 역사학자였으나 현대의 시각에선 프티부르주아적으로 분류되는 그의 이론적 한계 등이 원인으로 꼽힌다. 역사와 문학의 경계를 오가며 ‘문필가이자 역사가’의 이미지를 각인시킨 쥘 미슐레가 후기에 남긴 서정적인 저작 가운데 사랑과 여성을 주제로 한 2권의 책이 처음으로 번역됐다. 1859년과 1860년 잇달아 내놓은 ‘여자의 사랑’과 ‘여자의 삶’(이상 정진국 옮김, 글항아리 펴냄)이다. 저자는 여자의 생리학적 특성과 정서적인 요소들에 대한 섬세한 이해를 바탕으로 여자만의 고유한 특징이 무엇이고, 왜 그것이 위대한 사랑의 원천이 되는지를 다각도로 살핀다. 처음 구상부터 완성까지 25년이 걸린 이 책들은 당시 소설에 빠져 지내던 여성 독자들을 매료시키며 역사 교양서에 대한 붐을 일으켰다. 요즘 시각으로 보면 고리타분한 내용들이 적지 않다. ‘여자는 출산을 하니까 일을 하지 말고 남자가 두 사람 몫을 벌어야 한다.’거나 ‘여자는 정착과 사랑을 원한다.’ 또는 ‘여자에게 가장 고약한 운명은 혼자 사는 것이다.’ 등 여성을 가정과 모성의 틀에 가두려는 한계가 어쩔 수 없이 드러난다. 그럼에도 여성을 역사적, 사회적으로 분석하려는 시도가 거의 없었던 당대 현실을 감안하면 이 책들에선 역사속에서 이해받지 못하고 존중받지 못했던 여인들에 대한 남다른 연민이 느껴진다. ‘이 세계는 여자의 힘으로 살아갑니다. 여자는 모든 문명을 만드는 두 가지 요소를 내놓습니다. 아름다움과 섬세함을 말입니다.’(‘여자의 삶’ 중에서) 각권 1만 6500원.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63년 만에 고스란히 돌아온 지갑

    지갑을 잃어버린 사실도 까마득히 잊었다.그도 그럴 것이 무려 63년 전 일이었다.  미 오레곤주 베이커 시티에 사는 78세 노인 빌 풀턴에게 지난 18일(이하 현지시간) 낯선 여인이 찾아왔다.그녀는 베이커 중학교에서 비서로 일하는 멜라니 트린들이었다.트린들의 손에는 지갑 하나가 들려 있었는데 전날 학교 리노베이션 공사 중이던 인부 네이선 오스번이 체육관에 딸린 지붕없는 스탠드에서 주운 것이었다.  가죽은 부드러웠고 카우보이 장식도 선명했다.지퍼도 쉽게 열렸다.  정말 신기한 것은 풀턴이 10대 시절을 보냈던 주소들이 명기된 사회보장카드와 자전거 면허증 등이 고이 꽂혀 있었다는 것.  이러구러 풀턴의 현주소를 알아내 찾아간 트린들은 “그는 정말 놀라워 했다.”며 “’감사합니다.정말 감사합니다’만 연발하더군요.”라고 말했다.  ”세상에나! 그리 긴 세월에도 지갑은 그대로더군요.”라고 풀턴은 현지 일간 베이커 시티 헤럴드와의 인터뷰에서 밝혔다고 AP통신이 29일 전했다.  풀턴은 언제 어떤 경위로 지갑을 잃어버렸는지도 기억해내지 못했다.다만 1936년 문을 연 이 학교에서 베이커 고교 농구팀이 경기할 때 친구들과 어울려 응원다녔는데 이때 잃어버린 것으로 짐작할 따름이다.  하지만 지갑을 더 빨리 찾을 수 있는 기회는 많았던 듯하다.한국전쟁을 거쳐 독일 주둔 미군으로 지낸 그가 1960년대 이곳에 돌아와 이 체육관에서 경기를 봤던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그 때 이 지갑은 그의 발치에서 몇십m 안쪽에 있었을지도 모른다.또 두 자녀가 이 학교를 다녔으므로 이 지갑을 우연히 주웠을 가능성도 있었다.그런데도 이 지갑은 그 긴 세월을 건너 이제야 풀턴의 손에 돌아온 것.  자전거 면허증은 2차대전 중에 약품 배달을 위해 꼭 요구됐던 것이라 발급받았던 것이다.하지만 지갑에서 사라진 게 딱 하나 있었다.자신의 학생증이었다.하지만 그 사실이 풀턴으로 하여금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가로막을 순 없었다.독일에서 돌아온 그는 1964년부터 1994년까지 엘링슨 목재회사에서 30년간 일한 뒤 은퇴해 지금은 11살짜리 개 스모키와 근처 산에 놀러다니는 것으로 소일하고 있다.  풀턴은 한숨을 푹 내쉬며 “그 많은 세월이 다 어디로 간 거지? 시간이 그렇게 빨리 흘렀다는 게 믿기지 않아.”라고 내뱉었다.    인터넷서울신문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씨줄날줄] 오발탄/김종면 논설위원

    시대를 고민하지 않는 작가란 없다. 시대의 아픔을 온전히 제 것으로 삼아 예술로 승화시킬 수 있다는 것, 그것은 분명 작가의 특권이다. 그러나 천형과도 같은 고통이기도 하다. 소설이 됐든 영화가 됐든 창작의 괴로움보다 더한 게 어디 있으랴. 엊그제 타계한 유현목 감독의 파리한 얼굴이 자꾸 떠오른다. 웃고 있어도 눈물이 그렁그렁한 듯한 눈, 세월의 무게에 짓눌린 팔자 주름, 반듯하게 꽉 다문 단호한 입매는 예술가의 고통과 환희가 어떤 것인지 그대로 웅변한다. 평소 진지한 표정만큼이나 그의 작품은 무겁고 어둡다. 대표작 ‘오발탄’은 가히 어둠의 절창(絶唱)이라 할 만하다. 작가 이범선의 동명소설로도 잘 알려진 ‘오발탄’은 전후세대의 암울한 현실을 다룬 리얼리즘 영화로 1960년대 한국영화사에서 가장 중요한 작품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하지만 한때 상영이 중단되기도 했다. “가자, 가자” 외쳐대는 영화 속 정신이상 노모의 대사가 “북으로 가자는 것이냐.”라는 의심을 샀기 때문이다. 웃지 못할 분단시대의 비극이다. 유 감독의 작품에는 다양하지만 일관된 맥이 있다. 방황하는 지식인의 실존적 고민, 좌·우 이념대립, 고향 상실, 산업사회의 인간 소외와 죽음의 문제 같은 것이다. 유 감독은 신상옥·김기영 감독 등과 함께 1960년대 한국영화 황금기를 대표하는 전후 1세대 감독 아닌가. 그런데 그가 추구한 영화적 문제의식이 ‘지금, 여기’ 우리의 당면 과제들과 어떻게 그리 같은 지점에서 만날 수 있을까. 이념 갈등, 지식인의 정체성 등 60년대 영화 주제들이 그대로 현실로 재연되고 있지 않은가. 수양산 그늘이 강동 팔십리를 간다더니, 거장의 그림자가 더욱 길게 느껴진다. 40여편의 작품을 남긴 유 감독은 작가주의 감독의 최고봉으로 평가 받는다. 그를 생각하면 요즘 양산되는 작가주의 영화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대중의 공감을 전혀 의식하지 않는 ‘아니면 말고’식의 무책임한 자칭 작가주의 영화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좋다고 만든 영화를 애써 봐주면 고맙고 그러지 않으면 그만이라는 설익은 ‘고삐 풀린’ 감독도 있다. 영화 하나 뜨면 곧바로 ‘거장’의 반열로 직행하는 우리 사회의 경조부박함을 탓해야 할까. 씁쓸하다. 김종면 논설위원 jmkim@seoul.co.kr
  • 양재역에 가면 서초역사 한눈에

    양재역에 가면 서초역사 한눈에

    지하철 3호선 양재역에 가면 1950년대 말죽거리 풍경과 1960년대 경부고속도로 건설현장 등 과거 서초의 모습을 담은 진귀한 사진과 자료를 감상할 수 있다. 서초구는 선사시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토지와 주택의 변천사는 물론 서초의 과거와 최근의 모습을 소개한 ‘토지·주택 역사자료 전시회’를 다음달 2일까지 연다고 29일 밝혔다. 전시회에서는 고문서나 고지도, 옛 사진, 항공사진 등 총 60여점의 작품이 전시된다. 5개 테마로 나뉜 이번 전시회에서는 ▲선사시대~현대주택 전경 ▲1580~1920년대 고문서에 남겨진 토지의 역사 ▲17세기~현재의 모습을 지도로 본 변천사 ▲1972년~현재 풍경을 항공사진으로 본 서초 ▲사진으로 본 과거의 모습 등이 선을 보인다. 특히 ‘사진으로 본 과거 서초의 모습전’을 통해 1950년대 서래마을 풍경과 1960년대 잠원동 나루터 모습, 1970년대 서초동과 방배동 일대 모습, 1980년대초 강남고속터미널 주변 풍경, 1990년대 법조단지 전경 등이 고스란히 담긴 다양한 사진들을 만나볼 수 있다. 박성중 구청장은 “많은 시민들이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도록 전시회 무대를 유동인구가 많은 지하철 역사에 꾸몄다.”면서 “고문서나 사진, 지도, 항공사진 등을 통해 우리 고장의 역사와 선조들이 남긴 귀중한 삶의 흔적, 문화의 자취를 살펴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백민경기자 white@seoul.co.kr
  • “산학협력·전인교육에 힘 싣겠다”

    “산학체제를 강화해 대학의 새로운 모델을 만들겠다.” 이종욱(63) 서강대 신임 총장은 28일 서강대 본관 회의실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대학은 도약을 위해 기존 체제를 파괴하는 것을 주저해선 안 된다.”면서 “산학부총장직을 신설하는 등 산학협력체제를 도입하겠다.”고 말했다. 동문 출신 첫 총장으로 화제를 모은 이 총장이 밝힌 취임 일성이다. 이 총장은 지난 27일부터 임기를 시작했다. ●새달 4개 회사 설립… 재정체계 개선 간담회에 배석한 유기풍 대외부총장이 첫 산학부총장으로 낙점됐다. 산학협력체제를 강화하는 방안으로 대학의 연구성과를 이용해 수익을 창출하는 기술지주회사를 설립하거나 외부 기업체와 연구·개발 협력을 강화할 예정이다. 이같은 구상은 산학 연계도 고려한 방안이지만 현재처럼 등록금 의존도가 높은 대학 재정체계를 개선하겠다는 의지이기도 하다. 다음달이면 서강 기술지주회사의 초음파 유방암 진단기술과 서강미래기술원이 개발한 초기 암·알츠하이머·파킨슨씨병 진단 기술을 토대로 4개 회사를 창업한다고 한다. 유 부총장은 “수익이 창출되면 대학 재정 체계에도 일대 혁신을 가져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총장은 간담회에서 시종일관 ‘특별한 서강’을 언급했다. 1960년 개교 이래 서강대가 비교우위에 있다고 자부해온 자율성, 수월성, 국제화 등의 목표를 되살린다는 취지다. 이 총장은 “학과에 자율성을 부여하고 아트 테크놀러지 등 융합·통섭 전공을 신설해 학생들에게 전공선택의 폭을 넓히는 기회를 주겠다.”고 말했다. ●교양학부를 전인교육학부로 변경 검토 이와 더불어 이 총장은 전인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양질의 직업훈련도 강화할 예정이지만 학생들이 시대의 변화에 당황하지 않고 창조적으로 대처할 수 있도록 전인교육에 힘을 싣겠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교양학부를 전인교육학부라는 명칭으로 바꾸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설명했다. 오달란기자 dallan@seoul.co.kr
  • 소나무숲 23% 감소… 활엽수림 26%로 영토확장

    소나무숲 23% 감소… 활엽수림 26%로 영토확장

    각종 녹화사업으로 우리나라 삼림은 무성해졌지만 지구온난화와 관리 소홀로 수종(樹種)이 바뀌어 가고 있다. 특히 1970년대 전체 삼림의 50%(323만㏊)를 차지했던 소나무 숲은 2007년 말 기준으로 23%(150만㏊)로 줄어들었다. 대신 같은 기간 활엽수림은 10%대에서 26%까지 넓어졌다. 세계 유일의 구상나무 군락지인 한라산에도 말라죽은 구상나무들이 즐비하다. 추운 곳에 사는 구상나무가 지구온난화로 살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한라산 구상나무 숲은 30년새 30%가 사라졌다. 기후변화에 따른 삼림의 변화와 춘양목 마을 현장르포, 소나무 보존대책 등을 취재했다. 한대 수종인 구상나무의 주요 서식지인 한라산 해발 1600m 지역. 온대지방에서 자라는 나무들이 구상나무 자생지 공간을 차지한 지 오래다. 지구온난화로 농작물 재배지도 대구사과가 영월과 봉화로, 제주 한라봉이 거제도까지 올라왔다. 소나무 등 침엽수들이 이상 생장하고 양서류 종의 다양성이 감소하는 등 생태계 교란도 심각하다. 환경부는 올해 발표한 국가장기생태연구 중간 조사결과를 통해 봄에 나오는 소나무 새순이 가을에 나오는 이상현상이 서울도심 소나무 72%에서 발견되는 등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추세라고 밝혔다. 또 최근 3년간 연평균 기온이 1도가량 높아진 충북 월악산의 무당개구리 등 양서류 10종의 종 다양성 지수가 1.84에서 1.46으로 감소했다. 종 다양성 지수는 지수가 높을수록 생물의 종류가 많고 종류별 개체 수가 고르게 분포돼 있음을 뜻한다. 국가장기생태연구는 국립환경과학원이 국내 300여명의 전문가들과 함께 2004년부터 2013년까지 10년간 기후변화에 따른 국내 생태계 변화상을 관찰, 연구하는 사업이다. 전문가들은 지구 온난화가 지속된다면 앞으로 소나무는 점점 사라져 습기가 많고 상대적으로 기온이 낮은 지리산과 강원도 등 고산지역에서만 볼 수 있는 희귀종으로 변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정연숙 강원대 생물학과 교수는 “우리 고유종인 주목과 구상나무 등은 온도에 민감하다 보니 고산지대로 서식지가 바뀌고 있다.”면서 “앞으로 온난화가 지속된다면 더이상 도망갈 데가 없어져 이땅에서 사라질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2060년이면 소나무도 사라질판 소나무는 제주도 한라산에서 함경북도 증산에 이르는 우리나라 전역에서 자라는 수종이다. 그러나 지구온난화로 21세기 후반 적정 생육지역이 일부 고산지대와 강원 산간에 국한될 것이란 충격적인 연구결과도 나왔다. 국립산림과학원이 기후변화시나리오(A2)에 따른 소나무림 생육분포 변화를 분석한 결과 2060년대 남한에서는 경북 북부와 지리산·덕유산 등 고산지대와 강원도에서만 소나무를 볼 수 있다는 것. 2020년대부터 제주도와 남부 해안에서 소나무가 사라지고, 대신 소나무가 없는 개마고원과 백두산까지 생육범위가 북상할 것으로 전망했다. 소나무는 양수(陽樹)로 즉 햇빛이 있어야 자란다. 숲이 우거져 활엽수 잎들이 바닥에 쌓여 소나무의 자연발아를 차단하면 다음 세대의 자연적 갱신이 어렵게 되는 등 자연히 경쟁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다. 신준환 국립산림과학원 산림보전부장은 “지구온난화와 식생 천이로 소나무림은 더욱 감소할 것”이라며 “숲이 삶의 대상에서 즐기는 대상으로 변화하면서 변화를 가속화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체계적인 간벌 등 숲 가꾸기 노력 필요 소나무림은 대부분 천연림이다. 현실적으로 소나무림의 감소를 막을 수는 없다. 1960~70년대 소나무를 포함한 침엽수림은 산림 전체의 50%를 넘었다. 그러나 1994년 44.6%로 감소하더니 2007년에는 42%로 떨어졌다. 반면 활엽수림은 10%에서 80~90년대 20%대에 진입한 후 2007년 현재 26%로 급속히 늘어나는 추세다. 앞으로도 기온이 계속 상승할 경우 침엽수림은 줄어드는 대신 활엽수림이 더욱 확산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명수 산림청 산림병해충과장은 “바닥이 보이지 않는 숲은 울창한 것이 아니라 방치됐다는 표현이 맞다.”면서 “높은 기온으로 스트레스를 받는 데다 활엽수와의 생존경쟁에서도 밀려나고 있는 소나무를 살릴 수 있는 방법은 사람의 손길뿐이다.”고 강조했다. 유진상·정부대전청사 박승기기자 skpark@seoul.co.kr
  • ‘팝 황제’ 영욕의 50년 삶 접다

    재기 무대의 막바지 준비에 한창이던 마이클 잭슨(50)이 25일 오후(현지시간) 돌연 숨졌다. 50년의 생애 동안 40년을 무대에 서온 ‘팝의 황제’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전 세계 팬들은 충격에 휩싸였다. CNN 등 외신은 잭슨이 이날 정오 미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LA) 홈비힐즈의 자택에서 쓰러져 심장박동 정지 증세를 일으킨 뒤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LA 소방국 응급구조팀은 오전 12시30분쯤 잭슨 측의 구조 요청을 받고 그의 자택에 도착해 30여분간 심폐 소생술을 시도했다. 이후 혼수 상태로 UCLA 메디컬센터로 후송된 그는 끝내 눈을 뜨지 못했다. LA카운티 검시관 사무소는 잭슨이 오후 2시26분 사망했다고 공식 확인했다. 정확한 사인은 26일 부검 뒤 밝혀질 전망이다. 1960년대 후반 6살의 나이에 ‘잭슨 파이브’로 데뷔한 그는 1982년 발표한 앨범 ‘스릴러’ 등으로 80~90년대 세계 팝시장을 제패했다. 그러나 무대 밖에서는 아동 성추행 혐의로 인한 법정 공방, 두번의 이혼, 성형수술 부작용, 경제적 파산 등 비운이 잇따랐다.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美언론 “원더걸스, 60년대 돌아보게 해”

    美언론 “원더걸스, 60년대 돌아보게 해”

    원더걸스가 특유의 레트로(복고) 스타일로 미국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미국 시애틀타임스는 지난 26일 게재한 원더걸스 인터뷰에서 ‘아시아의 슈퍼스타’ ‘아시아 센세이션’ 등의 수식어로 소개한 뒤 “이들은 미국에서 1960년대를 풍미했던 사운드로 과거를 돌아보게 한다.”고 평가했다. 또 “푸시캣돌스와 같은 미국 걸그룹들과 달리 원더걸스는 60년대 복장과 머리 스타일로 무대에 오른다.”고 현지 아이돌 그룹과 비교했다. 이 인터뷰에서 유빈은 “우리 음악은 과거와 현재를 섞은 것”이라면서 “나이와 관계없이 따라하기 쉽다.”고 설명했다. 이어 예은은 “미국인들은 레이디 가가와 같은 섹시하고 펑키한 스타일을 더 좋아하지만 아시아인들은 보수적이고 귀여운 소녀들을 더 좋아한다.”고 문화 차이를 비교했다. 시애틀타임스는 선미와 소희의 고등학교 자퇴 소식도 언급했다. 선미는 “이 기회가 다시 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기회를 잡는 쪽을 선택했다.”면서 “그러나 나중에라도 공부는 더 하고 싶다. 지금 당장의 순서 문제”라고 입장을 밝혔다. 이 신문은 원더걸스가 이미 연예 블로그 ‘페레즈힐튼닷컴’이나 유튜브에 소개된 뮤직비디오와 네티즌 동영상으로 미국에 널리 알려져 있다는 점을 들어 이들의 미국 진출을 밝게 전망했다. 이 인터뷰는 원더걸스가 미국 밴드 조나스 브라더스의 공연 오프닝 무대에 오르는 것과 관련해 진행된 것으로 원더걸스는 이 공연에서 ‘노바디’와 ‘텔미’ 영어버전을 선보일 계획이다. 한편 원더걸스는 공연에 앞서 ‘노바디’ 영어버전 싱글을 아이튠스(26일)와 아마존닷컴(27일) 등 미국 주요 음원 서비스 사이트에 공개한다. 사진=JYP엔터테인먼트 서울신문 나우뉴스 박성조기자 voicechord@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카뮈·지드… 사르트르와 교감 나눈 사람들

    장 폴 사르트르(1905~1980)는 프랑스의 대표적인 실존주의 철학자이자 작가, 빼어난 평론가이자 강연자였다. 시몬 드 보부아르와 계약 결혼으로 세상을 놀라게 하기도 하고 1964년 ‘말’이라는 저작을 통해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결정됐으나 수상을 거부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그가 ‘세기의 지성’으로 추앙받는 까닭은 세상과 담을 쌓고 고고하게 지낸 게 아니라, 세상을 향해 자신을 던진 ‘행동하는 지성’이었기 때문이다. 지식인의 직접적인 사회참여, 즉 ‘앙가주망’을 강조했던 좌파 지식인이었다. 그는 종종 동시대를 살았던 또 다른 지식인들과 우정을 깨뜨릴 정도의 격렬한 논쟁을 벌였던 것으로 유명하다. 알베르 카뮈와의 논쟁이 대표적인 경우다. 사르트르와 카뮈는 실존주의의 길을 함께 걸으며 레지스탕스 공동전선에 서기도 했으나 1952년 공산주의와 소련의 역할에 대한 견해 차이로 갈라서게 됐다. 카뮈는 혁명에 대한 신중한 유보를 이야기했으나 사르트르는 반대 입장이었던 것. 사르트르는 1952년 8월 잡지 ‘현대’ 82호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어쨌거나 내가 생각하던 바를 당신에게 말할 수 있었던 것은 좋은 일이었습니다. 당신은 내 글에 답하고 싶다면 우리 잡지는 언제나 열려 있습니다. 하지만 난 더 이상 응수하지 않겠습니다. 나는 당신이 나에게 어떤 사람이었는지, 그리고 지금은 어떤 사람인지를 다 이야기했습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대답으로 당신이 어떤 말을 하건, 어떤 일을 하건 간에 당신과 싸우는 일은 거절하겠습니다. 우리의 침묵으로 이 논쟁이 잊혀지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그는 1960년 1월 주간지 ‘옵세르바퇴르’ 505호에 카뮈에 대한 글을 다시 써야 했다. 이번에는 추도사였다. 카뮈가 교통사고로 숨졌기 때문이다. “그와 나는 불화를 겪었다. 불화란 아무것도 아니고-설사 절대로 다시 만나지 않는다 해도-그저 우리에게 주어진 이 비좁은 작은 세상에서 서로 시선을 잃지 않은 채 함께 살아가는 또 다른 방식일 뿐이다… 그는 현 세기 안에서 ‘역사’에 반대하며 모럴리스트라는 기나긴 대열의 현재적 후예를 대표했고, 그의 작품은 프랑스 문단에서 가장 독창적인 어떤 것을 구성했다…그가 무엇을 하고 어떤 결정을 내리든 간에, 카뮈는 언제나 우리 문화영역의 중심세력으로 계속해서 남아 있을 것이며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프랑스와 금세기의 역사를 표현해 냈을 것이다.” 자신과 교감을 나눴던 작가와 예술가에 대한 사르트르의 성찰을 담은 ‘시대의 초상-사르트르가 만난 전환기의 사람들’(윤정임 옮김, 생각의 나무 펴냄)이 나왔다. 카뮈를 비롯해 누보로망의 대표적인 소설가 나탈리 사로트, 폴란드 출신의 음악가로 12음기법을 널리 전파했던 르네 라이보비치, 오스트리아 출신 사상가이자 언론인 앙드레 고르, 프랑스를 대표하는 문학가 앙드레 지드, ‘지각의 현상학’로 유명한 철학자 메를로퐁티, 중세 베네치아 시대의 화가 틴토레토, 스위스 화가이자 조각가 자코메티 등이 다뤄진다. 이 책은 2차 대전 직후부터 1976년까지 계속 발표된 ‘상황’ 시리즈 가운데 1964년 나온 네 번째 권이다. 원래 제목은 ‘상황Ⅳ-초상’. 이 시리즈에는 시사적인 주제들에 대한 사르트르의 즉각적인 반응을 담은 100여 편에 달하는 글과 10여개의 대담이 실려 있다. 사르트르는 1975년 미셀 콩타와 가졌던 대담에서 후세대가 다시 읽어 줬으면 하는 자신의 저작으로 ‘상황’ 시리즈를 꼽기도 했다. 철학에 가장 가까우면서도 철학적이 아닌 분야, 즉 비평과 정치를 다뤘다는 이유에서다. 국내에서는 이 시리즈 가운데 ‘상황Ⅱ-문학이란 무엇인가’와 ‘상황Ⅴ-식민주의와 신식민주의’가 완역됐고, ‘상황Ⅰ’, ‘상황Ⅲ’, ‘상황Ⅹ’ 등의 일부가 발췌 번역된 바 있다. 그런데 이번에 완역된 ‘시대의 초상’은 배경 지식이 없다면 읽기가 상당히 까다롭다. 책 뒤에 부치는 옮긴이의 말을 먼저 읽어보는 게 그나마 가깝게 다가가는 길이다. 2만 8000원.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55년만에 화랑무공훈장 파편박힌 가슴위서 반짝

    55년만에 화랑무공훈장 파편박힌 가슴위서 반짝

    “진작 전해 드렸어야 했는데 이렇게 늦어 국가를 대신해 제가 사죄드리겠습니다. 정말 자랑스럽니다.” 6·25전쟁 59주년인 25일 경기 용인 제3군사령부. 이상의(육군대장) 3군사령관이 여든을 바라보는 하사에게 화랑무공훈장을 수여하며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였다. 노인은 6·25 전쟁사에서 가장 치열했던 전투로 기록되는 백마고지 전투에 제9보병사단 하사로 참전했던 최영학(78·경기 구리시 인창동)씨. 19살 되던 해인 1950년 12월 덕수궁에 소집된 그는 이날 백마고지 전투 공적으로 수여됐던 화랑무공훈장을 55년 만에 되찾았다. 반세기를 훌쩍 넘어 주인의 품으로 돌아온 무공훈장은 당시 전투에서 맞은 포탄 파편이 아직 남아있는 왼쪽 가슴에서 반짝거렸다. 육군본부 기록에 남은 최씨의 훈장 수여일은 1954년 4월2일. 그러나 최씨는 당시 전시 상훈법에 따라 교부받은 약식 증서도 전투 중 전달받지 못했고 전후 혼란 상황에서 훈장 수여 사실을 알지 못한 채 반세기를 넘게 보냈다. 최씨에게 백마고지는 삶과 죽음이 무의미한 사선(死線)이었다. 그는 “중공군이 백마산으로 새까맣게 밀려왔지. 정말 살고 싶었어. 숱한 전우들이 죽고 나중에는 눈물도 나지 않더구먼.“이라고 회상했다. 이어 “덕수궁에서 함께 입대했던 고향친구 둘도 거기에서 잠들었어.” 라고 말했다. 백마고지는 1952년 10월6~15일 중공군 38군단 4만 4000여명과 국군 제9사단 병력 2만여명이 대접전을 벌인 곳이다. 9일 동안 12차례 전투가 벌어져 7차례 고지 주인이 바뀌었다. 국군 전사자 3500여명 중 상당수가 행방불명 상태이다. 그동안 유해 발굴 작업을 통해 1200여명의 전사자가 확인됐다. 포탄 파편은 당시 벙커에서 나오던 최씨의 왼쪽 다리를 관통했다. 최씨의 왼쪽 가슴에 파편이 박혔다. 최씨는 “당시 왼쪽 가슴 부위에 파편이 박힌 줄도 모른 채 서울 3육군병원으로 후송된 지 2주 만에 전투에 복귀했다.”고 말했다. 최씨는 무공훈장의 존재도, 반세기가 넘도록 가슴팍에 박힌 파편의 존재도 최근에야 알게 됐다. 최씨 가족들이 국가보훈처에 상이용사 판정을 신청하면서 찍은 엑스레이 사진에서 파편이 드러난 것이다. 최씨는 “백마고지 전투에서 다친 다리와 가슴의 통증을 파스와 진통제에 의지하면서 60년 가까이 살아왔다.”며 “전장에 나가 싸우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해 단 한번도 국가를 원망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한편 육군에 따르면 아직도 주인을 찾지 못한 무공훈장은 7만 8658개나 된다. 1955년부터 훈장 수여 대상자 16만 2950명 가운데 8만 4292명에게만 전달됐다. 육군 본부는 1000만건이나 되는 방대한 병적기록을 전산화해 마지막 한명까지 훈장을 되찾아줄 계획이다. 무공훈장자에게는 국립현충원 안장 자격과 함께 60세 이상은 영예수당 월 14만원이 지급된다. 보훈병원 진료비는 무료이거나 감면된다. 훈장을 찾지 못한 대상자나 유족은 육군본부 홈페이지(army.mil.kr)나 육본 인사처리과 유가족찾기 담당관(042-550-7333)에 문의하면 된다. 안동환기자 ipsofacto@seoul.co.kr
  • [테마 스토리 서울] (1) 한강 밤섬

    [테마 스토리 서울] (1) 한강 밤섬

    서울의 어제와 오늘을 조망하는 ‘테마 스토리 서울’을 매주 금요일자에 연재합니다. 누구나 알 만한 곳이지만 잠시 잊고 있었던 서울의 명소나 문화재, 거리 등을 찾아가 과거부터 현재까지의 변화상을 살펴 봅니다. 지척에 두고도 알지 못했던 서울의 숨은 역사나 사연도 알려 드립니다. 서울이 어떤 모습이었는지, 어떻게 발전할지 미래를 그려 보기 위해서입니다. 첫 회로 ‘도심속 무인도’ 한강의 밤섬을 소개합니다. “들어가면 후회하실 텐데요….” 밤섬으로 향하기에 앞서 들은 ‘농담성 경고’였다. 서울시 한강사업본부 직원의 만류를 뒤로하고 24일 오후 ‘도심속 무인도’인 한강 밤섬을 찾았다. 여의도 선착장에서 출발한 순찰선이 섬 주위를 한 바퀴 돈 뒤 마포 쪽 접안시설에 뱃머리를 붙였다. ●1968년 여의도 개발 때 폭파 후 복원 1m가량 되는 돌밭을 지나 10m쯤 갔을까. ‘아~’ 탄식이 절로 나왔다. 어른 키를 훌쩍 넘는 갈대와 갯버들 등 빽빽한 식물들에 포위당해 한 발짝 떼기도 버거웠다. 길이 애초에 없었다. 큰 키의 버드나무 사이로 하늘만 보였다. 1999년 서울시 최초의 생태계보전지역으로 지정된 이후 10년간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밤섬은 자연 그 자체였다. 여의도와 마포 당인동 사이 윗밤섬과 아랫밤섬으로 나뉘어 있는 이 섬은 원래 유인도였다. 1960년대까지 600여명의 주민이 살았다. 1968년 여의도 개발에 쓸 모래와 자갈을 채취하기 위해 폭파해 무인도가 됐다. 조각난 10개의 섬은 흘러온 퇴적물로 제 모습을 찾았다. 버드나무와 갈대숲이 자라고, 새들이 모여 들어 세계적인 도심 속 철새도래지가 됐다. 생태계보전지역 지정 후 10년이 지난 지금 밤섬의 가장 큰 변화는 무엇일까? 한강사업본부 직원은 뜻밖에 ‘면적의 증가’라고 대답했다. 1985년 17만 7300㎡였던 면적은 2005년 26만 3200㎡로 확대됐다. 해마다 4200㎡씩 증가한 셈. 퇴적물을 제외하면 면적 증가의 주된 원인은 버드나무다. 풀만 있으면 흙이 쌓이기 쉽지 않지만, 큰 나무가 있으면 이를 지지대 삼아 퇴적층이 더 잘 모인다. 동식물도 크게 늘었다. 현재 식물은 46과 194종, 어류는 28종이나 된다. 조류가 급증한 것도 눈에 띈다. 멸종위기종인 흰꼬리수리와 천연기념물 원앙 등 77종 9782개체가 서식하고 때가 되면 찾는다. ●도시 한가운데에 살아 숨쉬는 섬 이런 자연환경에 반한 ‘마니아’도 많다. 특히 구본무 LG 회장은 ‘밤섬 애호가’로 통한다. 한강사업본부 직원은 자신도 들은 말이라며, 구 회장은 여의도 LG 쌍둥이 빌딩 30층에 있는 집무실에서 망원경으로 철새들을 관찰하는 것이 취미라고 전했다. 그는 “1~2년 전에 흰꼬리수리 등 안 보이던 희귀종의 새가 나타났느냐고 기자들이 찾아와 물은 적이 있다. 어디서 들었냐고 물었더니 구 회장이 제보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밤섬 생태보호를 위해 하루 두 차례 수상순찰에 나선다. 떠내려온 쓰레기 등을 치우는 작업도 한다. 이때 위해식물과 외래식물도 제거한다. 대표적인 예가 손바닥 모양의 한삼덩굴로 물쑥 등 식생류를 휘감아 성장을 막기 때문에 7~8월엔 밤섬 전역에서 이 훼방꾼을 몰아 낸다. 또 여름에는 고유 생태계를 파괴하는 배스 등 외래어종을 없애고, 겨울철엔 철새를 위한 먹이를 공급해 지속적으로 생태환경을 관리한다. 이곳에서 촬영된 국내 영화 ‘김씨표류기’가 얼마 전 개봉했다. 밤섬에서의 무인도 체험기를 다룬 스토리다. 하지만 현실은 영화와 다르다. 일반인이 무단으로 밤섬을 방문하면 벌금을 내야 한다. 사람 자리를 새와 나무, 풀에게 내준 밤섬을 떠나며 사업본부 관계자가 말했다. “꼭 살아 숨쉬는 생명체 같지 않습니까? 여름엔 푸르렀다가 겨울엔 하얗게 변하고, 점점 자라요. 마치 도시 한가운데서 ‘나 살아 있다.’고 외치는 것 같아요.” 백민경기자 white@seoul.co.kr
  • 박지성, 맨유 메인 모델?

    박지성, 맨유 메인 모델?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24일 새 유니폼을 입은 박지성(28·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화보를 메인 기사로 올렸다. 맨유의 간판으로 인정한 셈. 텔레그래프는 제작사 나이키에서 이날 새벽 공개한 티저 이미지(최종 완성본이 나오기 전에 예고로 공개하는 이미지)를 선보였다. 새 유니폼 상의에는 검은 V자 무늬가 가슴쪽에 크게 들어가 있다. 상의의 목 둘레도 그에 맞춰 검게 처리됐다. 흰 반바지에는 붉은색 굵은 무늬가 옆줄에 들어가 있고 양말은 검은색이지만 뒤쪽에 붉은색으로 V자 무늬를 넣어 상의와 통일감을 줬다. 유니폼 상의에 새긴 로고는 여전히 미국 보험사 AIG로, 2009~10시즌까지 맨유의 유니폼 스폰서로 계약돼 있어서다. 이후 4년간 세계 최대 보험중개사인 에이온(Aon)과 8000만파운드(약 1620억원)에 계약을 맺었다. 텔레그래프는 “이번 유니폼은 맨유가 FA컵 결승에 올랐던 1908~1909 시즌에 입었던 것을 떠오르게 한다.”고 덧붙였다. 나이키는 “홈 경기 유니폼은 홈 스타디움인 올드 트래퍼드에서 맨유가 이룬 영광스러운 역사를 의식해서 만들었다.”는 설명을 곁들였다. 나이키는 “2년마다 새 유니폼을 제작하는데 시즌이 끝나기 전인 4~5월 화보 촬영을 한다.”고 설명했다. 최근 발간된 맨유 공식 잡지 ‘인사이드 맨유’ 7월 특대호는 “한국에서 박지성은 데이비드 베컴이나 1960년대의 비틀스와 비슷한 추앙의 대상”이라고 평가했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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