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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故도금봉, 여성영화인 공로상 수상

    故도금봉, 여성영화인 공로상 수상

    지난 6월 타계한 원로 여배우 고(故) 도금봉이 오는 15일 제10회 여성영화인축제의 ‘2009 올해의 여성영화인상’ 시상식에서 공로상을 받는다. 여성영화인축제를 주관하는 여성영화인모임은 8일 “도금봉의 열정적인 인생과 관능적인 연기를 회고하며 그녀의 영전에 공로상을 바친다.”고 밝혔다. 올해 공로상 수상자인 도금봉은 ‘은막의 스타’로서 1950~60년대 한국영화계를 풍미했던 배우다. 1957년 조긍하 감독의 ‘황진이’로 스크린 데뷔식을 치른 도금봉은 농염한 요부의 이미지로 당시 남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후 도금봉은 ‘유관순’ ‘새댁’ ‘월하의 공동묘지’ ‘또순이’ 등 200여 편의 영화에 출연하며 요염함과 순박함, 사악함과 청순함, 처절함과 유쾌함을 동시에 표현했다. 한편 10회째를 맞이하는 여성영화인축제는 14일과 15일 양일 간 서울 광화문 씨네큐브에서 진행된다. ‘2009 올해의 여성영화인상’ 시상식은 15일 오후 7시 30분에 열릴 예정이다. 배우 예지원과 엄지원의 사회로 진행되는 이날 시상식에는 올해의 여성영화인상과 연기상, 제작 프로듀서·연출 시나리오·독립 다큐멘터리·기술홍보마케팅 부문의 시상이 이뤄진다. 사진 = 여성영화인모임 서울신문NTN 박민경 기자 minkyung@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열린세상]가곡은 사람의 영혼을 울리고 싶다/최창일 시인

    [열린세상]가곡은 사람의 영혼을 울리고 싶다/최창일 시인

    가을비가 지나간 화창한 날에 산들바람과 함께 귓가에서 한 편의 가곡이 살랑거리는 것을 듣는 사람이라면 저절로 몸이나 마음이 치유될 것이다. 가곡은 사람의 심장을 조용하고 깊게 박동시키면서 평온의 잔향을 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곡이 대중에 다가설 기회가 되는 공중파 방송이나 무대는 좁기만 하다. 독일 슈베르트에 의해 시작된 가곡(리트)은 낭만파 음악으로 피아노 반주가 붙는 성악이다. 시에 선율을 붙인, 문학과 음악이 공존하는 것이 특징이다. 가곡은 19세기 말 서양 문화가 들어오면서 한국에서 일본의 역할이 커져가는 시기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약 100년을 지나는 동안 한국의 정치변화와 함께 가곡분야도 큰 변화를 가져왔다. 한국 가곡은 19세기 말 시작된 ‘창가’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이 음악이론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창가는 악보화되기보다는 민속 음악처럼 구전되는 경우가 많았다. 작시자도 시인이 아닌 일반 지식인이나 민중의 지도자들이었다. 창가의 선율은 대체로 기독교 배경음악인 찬송가의 선율을 차용해 만든 경우가 많았다. 이 찬송가 선율들은 창가뿐 아니라 애국가, 독립투쟁가, 항일 투쟁가에 차용돼 불려지기도 했다. 한국의 가곡은 1920년 홍난파, 박태준, 안기영, 현제명의 작품들로 시작된다. 초기에 작곡된 주요 작품들로는 홍난파의 ‘봉선화’, 박태준의 ‘동무생각’ ‘님과 함께’ ‘미풍’ ‘소낙비’ 등이 있다. 안기영은 ‘그리운 강남’ ‘마의 태자’를, 현제명은 ‘조선의 노래’ ‘니나’ ‘오라’ ‘나물 캐는 처녀’ 등을 만들었다. 한국 최초의 가곡은 43년의 짧은 생을 살다간 홍난파의 ‘봉선화’로 알려져 있다. 이 가곡은 1920년 기악곡으로 발표된 뒤에 김형준이 가사를 붙여 다시 태어났다. 1925년 발행된 ‘세계명작곡집’에 수록돼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초기의 가곡은 서구의 형태를 따르고 있으나 가사에서 풍겨지는 내용은 민족주의적이며 계몽주의적인 것이 많았다. 요즘 신작 가곡은 부드럽고 서정적인 풍을 가지고 사람을 향해 다가가고 있다. 이런 변모가 있기까지 1932년 이흥렬의 공이 컸다. 그의 가곡 ‘바위고개’ ‘자장가’ ‘코스모스를 노래함’ ‘부끄러움’ ‘봄이 오면’ ‘고향 그리워’ 등이 우리 가곡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다. 이흥렬은 서양 음악을 답습하는 수준이었던 초기의 가곡을 우리 정서에 바탕을 둔 명랑하고 아름다운 가곡으로 끌어올렸다는 평가와 역사성을 지니고 있다. 최근에 타계한 김동진은 ‘뱃노래’ ‘가고파’ ‘파초’ 등을 작곡, 오늘의 가곡이 발전하기까지의 자유분방하고 서정적인 분위기가 중심이 되는 데에 보탬이 되었다.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 한국의 가곡은 일종의 전환기를 맞게 된다. 한국가곡사랑회, 한국예술가곡사랑회, 한국예술가곡진흥회, 작곡21, 한국가곡학회, 작곡신세대, 한국가곡작사가협회, 우리시우리포럼, 한겨레작곡가협회 등이 모임을 갖게 된다. 이 모임들은 전문적인 연구형태를 갖추고 꾸준하게 신작을 발표하고 있다. 이미 100곡이 넘는 작시와 작곡을 내놓았다. 임승천, 박수진, 이순희, 이소연 작시가나 김진우, 한성훈, 정덕기, 박이제, 김광자 등 수많은 작곡가는 매년 한두 번의 단독 발표회를 갖기도 한다. 아쉬운 것은 늘어나고 있는 채널과 달리 방송의 관심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KBS FM이 유일하게 ‘신작가곡’을 위촉 연주하고 있고, ‘정다운 가곡’을 편성해 놓은 정도다. 몇 해 전만 해도 MBC가 콩쿠르를 통해 창작 가곡을 활성화하는 모습을 보였으나 지금은 멈춘 상태다. 작곡, 작시가는 이런 국내의 현실을 극복하고자 ‘내 마음의 노래’ ‘가곡 사랑’ 등의 인터넷사이트를 통해 대중 속으로 다가서고 있다. 가곡을 통해 국민들은 정서순화와 우리글과 말을 사랑하게 된다. 가곡은 오늘도 우리의 영혼을 고요하게 치유하고 아름다움을 주고자 다가서려 한다. 최창일 시인
  • UFO조사 英비밀조직 60년 만에 해체

    UFO조사 英비밀조직 60년 만에 해체

    반세기 넘는 시간 동안 미확인비행물체(UFO)를 조사해온 영국 국방부 산하 비밀 조직이 폐지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간 텔레그래프 등은 “1950년 개설된 뒤 UFO를 조사해온 비밀 조직 모드(MoD)가 문을 닫은 것으로 보인다.”고 지난 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 기관은 지난해 신고된 135건을 포함해 그동안 1만 2000건이 넘는 사건을 담당했다. 그러나 폐지로 그동안 UFO 목격 사실을 신고한 핫라인도 끊기게 됐다. 지금까지 받은 신고 중 단 5% 정도만 UFO일 가능성이 있는 등 성과가 낮았으며 UFO 출현과 관련해 영국에 실질적인 위협이 될 수 있는 근거를 찾지 못한 점이 폐지의 주요 원인이 된 것으로 보인다. 한편 영국 국방부에서 21년 간 일해온 UFO 전문가 닉 포프는 “UFO 목격담이 자주 신고되는 판에 아무 발표 없이, 공식 논의도 없이 이 기관을 폐지하는 건 말이 안된다.”고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사진=텔레그래프 서울신문 나우뉴스 강경윤기자 newsluv@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부고] 정치학자 이극찬 연대 명예교수

    원로 정치학자 이극찬 연세대 명예교수가 4일 오후 노환으로 별세했다. 85세.고인은 신의주 고등보통학교와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1960년부터 연세대에서 1989년 정년 퇴임 때까지 정치사상과 외교사 등을 가르쳤다.학계에 드문 학사 출신 교수로 저술·연구 활동이 왕성해 정치학의 기초 이론을 망라한 책 ‘정치학’을 스테디셀러 반열에 올렸고, 이외에도 ‘권력과 자유’, ‘프롬의 정치사상’, ‘민주주의와 한국정치’ 등의 저서를 남겼다.유족으로는 부인 정영애(79)씨와 아들 기진(사업)씨가 있다. 빈소는 연세대 강남세브란스병원, 발인은 8일. (02)2019-4001.
  • 아톰·에바, 올 겨울 대작 애니 열풍 이끌어

    아톰·에바, 올 겨울 대작 애니 열풍 이끌어

    애니메이션(애니)의 정교함과 거대한 스케일이 블록버스터 영화를 뛰어넘고 있다. 올 겨울을 강타할 2편의 블록버스터급 대작 애니메이션 ‘에반게리온:파(破)’와 ‘아스트로 보이: 아톰의 귀환’이 12월과 내년 1월에 각각 개봉된다. ◆ ‘에반게리온:파’, ‘메카닉 애니’의 진수 ‘우주전함 야마토’ ‘기동전사 건담’과 더불어 일본 메카닉 애니메이션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에반게리온’ 극장판 2탄 ‘에반게리온:파’가 지난 3일 국내 개봉했다. 지난해 개봉한 ‘에반게리온:서(序)’에 이은 두 번째 이야기다. 1995년부터 TV시리즈로 시작한 ‘신세기 에반게리온’은 가까운 미래의 일본을 배경으로 살아남은 인류를 위해 신무기인 에바를 조종해야 하는 소년, 소녀들의 정체성 혼란을 그려낸 애니메이션이다. 다양한 철학과 종교, 신화, 세계관 코드를 녹여낸 성숙한 작품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 ‘에반게리온:파’는 기본기를 갖춘 원작 위에 메카닉 애니메이션이 구현할 수 있는 최상의 역동성을 펼쳤다. 특히 적인 제7사도를 물리치기 위해 3대의 에바가 도쿄 시내를 질주하는 장면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트랜스포머’ 시리즈를 떠올릴 만큼 속도감이 느껴진다는 평이다. ‘에반게리온:파’의 수입사 아인스S&M 측은 “‘에반게리온’의 스케일을 담아낼 수 있는 크기의 스크린을 확보하는 데 애썼다.”고 전했다. 또한 기존 ‘에반게리온’ 팬들이 보낸 열광적인 반응의 결과, 한정된 규모로 개봉하는 애니메이션임에도 불구하고 세계 최대 규모 스크린의 CGV 영등포 스타리움관에 저녁 프라임 시간인 19시의 추가 편성이 이루어졌다. ◆ 추억의 아톰, 3D 영웅으로 부활 내년 1월에는 전 세계의 사랑을 받아온 추억 속의 영웅 ‘아톰’이 돌아온다. ‘아톰’과 할리우드의 기술력과 만나 3D 애니메이션으로 부활한 ‘아스트로 보이: 아톰의 귀환’이다. 1960년대 TV 애니메이션으로 첫 선을 보인 이후 지금까지도 문화 아이콘으로 자리 잡은 ‘아톰’은 할리우드에서 더욱 강력하고 새롭게 태어났다. 원작 만화에 현대적 감각이 더해진 ‘아스트로 보이’는 인간보다 더 따뜻한 심장을 지닌 슈퍼 로봇 아스트로 보이가 어둠의 세력과 맞서 싸우는 애니메이션 블록버스터다. ‘아스트로 보이’는 심혈을 기울여 제작된 영상 못지않게 목소리 출연진도 화려하다. 프레디 하이모어, 니콜라스 케이지 등 할리우드 최고 스타들이 참여한 데 이어 국내 더빙판에서는 유승호·조민기·남지현·유세윤 등이 나서 우리말 녹음을 마쳤다. ‘아스트로 보이’의 수입·배급하는 케이디미디어 측은 “새롭게 돌아온 ‘아톰’은 1020세대에게는 새로운 영웅과 거대한 스케일을, 3040세대에게는 ‘아톰’에 대한 향수를 전달해 모든 연령대의 관객을 극장가로 불러들일 것”이라고 자신했다. 2010년 1월 14일 개봉 예정. 사진 = 각 영화 포스터 및 스틸이미지 서울신문NTN 박민경 기자 minkyung@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양구 DMZ평화벨트 연계 계획도 탄력

    강원 양구군이 생태 관광의 메카로 거듭날 전망이다. 양구군은 정부의 비무장지대(DMZ) 일대 생태평화벨트 계획과 맞물려 그동안 추진해온 생태관광산업이 더 탄력을 받게 됐다고 3일 밝혔다.최근 정부가 추진하는 495㎞의 자전거길 조성 등 DMZ 생태관광벨트 육성, 동서 녹색평화도로 등 교통 인프라 구축, 세계적인 생태평화벨트 조성, 교류 협력지구 및 저탄소 녹색성장지역 조성 등에 대한 계획이 용늪을 연계로 한 대암산 생태탐방로 등 그동안 활발히 추진해온 군의 생태관광산업과 연계된다.올 들어 양구지역에 개설한 광치자연휴양림~대암산~도솔산전투위령비 생태탐방로는 원시림이 빼곡한 자연생태의 보고로 최근 여행업체 등 전문가들이 직접 트레킹한 후 관광상품의 매력이 높다는 평가를 받았다. 민통선 북방 DMZ 일원의 두타연은 지난 60년간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전국 제일의 청정지역으로 강원도와 양구군 등이 마련한 웰빙 산소길로 뜨고 있다. 군은 두타연, 대암산 생태탐방로 등을 연계하면 이 일대가 생태관광의 메카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전창범 양구군수는 “생태관광산업을 양구 발전의 한 축으로 삼아 그동안 다양한 사업을 활발하게 추진해 왔다.”며 “정부의 계획에 맞춰 양구가 생태관광의 메카가 될 수 있도록 새로운 청사진을 만들어 갈 것이다.”고 말했다.양구 조한종기자 bell21@seoul.co.kr
  • 외환보유액 사상 첫 2700억弗 돌파

    외환보유액 사상 첫 2700억弗 돌파

    지난달 외환보유액이 9개월 연속 증가하면서 사상 처음으로 2700억달러를 돌파했다. 이로써 보유액은 한국은행이 집계를 시작한 1950년말의 2680만달러에서 60년간 무려 1만배 증가했다. 2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11월 말 외환보유액은 2708억 9000만달러로 전월말보다 67억달러 증가했다. 외환보유액은 유가증권 2421억7000만달러(89.4%), 예치금 237억8000만달러(8.8%) 등으로 구성돼 있다. 한은은 달러 약세에 따른 기타 통화 표시자산의 달러 환산액 증가와 운용수익 등으로 외환보유액이 늘었다고 설명했다. 외국환평형기금의 수출입금융 공급자금 중 만기도래분 5억 달러가량이 회수되고, 국민연금의 통화스와프 만기도래분 7억 달러가 상환된 것도 외환보유액 증가에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한다. 한은 국제국 문한근 차장은 “외환보유액이 2700억달러를 돌파해 국가비상금으로서 안전판 역할이 강화됐다.”며 “리먼브라더스나 두바이 사태 같은 국제금융시장의 충격이 재발하더라도 정책 당국의 대응력이 크게 높아졌다.”고 말했다. 한편 10월 말 기준으로 한국의 외환보유액 규모는 ▲중국 2조 2726억달러(9월 말 기준) ▲일본 1조 568억달러 ▲러시아 4344억달러 ▲대만 3412억달러 ▲인도 2844억달러에 이어 세계 6위를 유지했다. 이종락기자 jrlee@seoul.co.kr
  • 中 6세대 지도부 라인업

    오는 2012년 차기 지도부 선출을 앞둔 중국 공산당이 5개 지방정부 당서기와 충칭(重慶)직할시장 인사를 단행했다. 특히 랴오닝성과 네이멍구자치구에서는 1960년대에 출생한 40대 당서기가 2명이나 탄생하면서 이들이 6세대 지도부의 선두주자로 부상했다. 중국 신문들은 1일 공산당이 지린(吉林)·랴오닝(遼寧)·허난(河南)·푸젠(福建)성과 네이멍구(內夢古·내몽골)자치구 당서기를 결정했다고 보도했다.가장 주목할 사람은 지린성 당서기로 발탁된 쑨정차이(孫政才·46) 국무원 농업부장이다. 그는 2006년 12월 최연소 장관 기록을 세운 데 이어 이번에 최연소 당서기 기록까지 세웠다. 2012년에는 공산당 정치국 진입이 확실해 보인다. 후춘화(胡春華·46) 신임 네이멍구자치구 당서기도 눈길을 끈다. 그 역시 지난 1월 허베이(河北)성 성장이 되면서 최연소 성장 기록을 세운 차세대 선두주자로 2012년 정치국원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 출신인 그는 1987년 9월 공청단 시짱(西藏·티베트)위원회 부서기에 취임했으며 이후 3년 가까이 당시 시짱 당서기로 일하던 후진타오 주석을 잘 보좌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2012년에 열리는 중국 공산당 제18기 당 대회에서는 시진핑(習近平) 국가부주석과 리커창(李克强) 상임 부총리 등 5세대 지도부가 공식 출범할 것으로 예상된다. 리 부총리가 공청단 출신이라는 점에서 공청단 계열 인사들이 요직에 발탁됐다는 것은 리 부총리의 힘을 실어주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이 많다.한편 쑨춘란(孫春蘭·59) 중화전국총공회(總工會) 부주석 겸 당서기는 푸젠성 당서기로 임명됐다. 그는 중국 정계에서는 유일한 여성 당서기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간달프’ 맥켈런 “부모에 동성애자 못밝힌 것 후회”

    ‘간달프’ 맥켈런 “부모에 동성애자 못밝힌 것 후회”

    ’반지의 제왕’의 마법사 ‘간달프’로 잘 알려진 이안 맥켈런이 자신의 생애 중 가장 큰 후회는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부모님께 밝히지 못한 것”이라고 영국 텔레그래프가 보도했다. 이안 맥켈런은 영국 글로스터에 위치한 세번 베일 학교 학생들이 제작하는 한 드라마 워크숍에 초대 받았다. 이 학교 학생들은 ‘동성애자 왕따’를 다룬 드라마를 제작 중이다. 이안 맥켈런은 학생들에게 “내가 학교 다니던 시절에는 동성애자에 대한 인식이 없어 대화를 나눌 상대조차 없었다.” 며 “학교를 떠난지 50여 년만에 이런 주제의 드라마 워크숍에 초대받아 감회가 새롭다.”고 말했다. 맥켈런은 이어 “어머니는 내 나이 12살에, 아버지는 24살에 돌아가셨다.” 며 “ 내 생애 가장 큰 후회는 부모님 생전에 동성애자임을 밝히지 못한 것” 이라고 밝혔다. 이후 이안 맥켈런은 49세 때 의붓 어머니에게 ‘커밍 아웃’ 했다. 올해 70세가 된 이안 맥켈렌은 60년대 이후부터 연극과 영화를 넘나들며 훌륭한 연기력을 펼쳐 토니상 수상과 아카데미 후보에 올랐으며, 1991년에는 예술분야에 이룬 그의 공적을 기려 기사 작위를 받았다. 사진=텔레그래프 서울신문 나우뉴스 해외통신원 김형태 tvbodaga@hanmail.net@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中 20년뒤 총각들 ‘결혼대란’

    中 20년뒤 총각들 ‘결혼대란’

    │베이징 박홍환특파원│중국의 20세 미만 저연령층의 남녀 성비 불균형이 심각한 수준으로 드러났다. 반관영 통신인 중국신문사는 1980년부터 2000년까지 출생한 인구 가운데 남자가 여자보다 3331만명이나 많다고 27일 보도했다. 국가인구계획생육위원회의 전문가 위원인 위안신(原新) 난카이(南開)대학 경제학원 인구발전연구소장은 전날 열린 ‘신중국 인구 60년’ 학술토론회에서 이 같은 수치를 밝힌 뒤 “현재 중국의 출생 남녀 성비 불균형은 세계의 인구 대국 역사상 유례없는 규모”라고 말했다. 중국의 출생 남녀 성비 불균형은 1980년대부터 본격화됐다. 2005년 조사에서 0~4세의 남녀 성비는 무려 122.66(여아 100명당 남아 숫자)으로 국제평균인 107을 크게 초과했다. 여자 아이 100명이 출생할 때 남자 아이는 123명이 태어났다는 얘기다. 하이난(海南)성의 경우 무려 135로 조사됐다. 이런 추세는 연령이 높아질수록 차츰 줄어들어 15~19세 연령대의 경우 107.8로 평균치를 약간 상회했다. 전통적으로 남아선호 사상이 뚜렷한 중국의 출생 남녀 성비의 불균형은 ‘한자녀 정책’과 무관치 않다. 결혼 후 자녀 한 명만 낳을 수 있기 때문에 성 감별을 통해 낙태가 빈번하게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위안신 소장은 “남아의 사망률이 여아보다 크게 낮은 것도 한 원인”이라며 “성비 불균형은 이들이 성인이 됐을 때 결혼에도 심각한 어려움을 야기해 미래의 사회 문제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한편 중국의 지난해 인구는 13억 2802만명으로 집계됐고, 이 가운데 남성은 6억8357만명, 여성은 6억 4445만명이었다. stinger@seoul.co.kr
  • [부고] 성령운동 1세대 나운몽목사

    [부고] 성령운동 1세대 나운몽목사

    기독교 성령운동 1세대인 나운몽 목사가 26일 오전 노환으로 소천했다. 96세. 1914년 평북 박천군에서 태어난 고인은 1940년 경북 김천에 용문산기도원을 세우면서 기도원 운동을 시작, 이후 평신도 장로로 1950~60년대 각종 부흥회를 이끌며 성령운동을 일으켰다. 한때 불교에 귀의했다가 목사가 된 고인은 전통 신앙에 토대를 둔 교리 해석이나 통성기도 등 낯선 기도방식으로 이단시되기도 했다. 저서로 ‘기독교도리학 해설본’ ‘성경정통교리강론’ ‘동방의 한나라’ 등이 있다. 유족으로는 부인 김선혜씨, 아들 서영(목사), 혜영(목사) 등 5남이 있다. 빈소는 경북 김천 용문산기도원, 발인은 30일 오전. (054)435-5802.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거장 故유현목, 그가 본 한국사회의 뒷면

    거장 故유현목, 그가 본 한국사회의 뒷면

    한국 리얼리즘의 거장 고(故) 유현목 감독의 특별전이 열린다. 새달 1일부터 9일 동안 서울아트시네마에서다. 지난 6월 세상을 뜬 유 감독은 사회 현실에 대한 비판적인 묘사와 이념적 갈등에 대한 깊은 성찰, 신과 인간에 대한 실존적인 문제를 파고들며 신상옥·김기영·이만희 감독과 함께 1960년대 한국 영화계를 대표했다. 이번 특별전에서는 한국전쟁 뒤 어두운 사회 현실에 대한 사람들의 절망을 기록해 한국 리얼리즘 영화의 정점으로 꼽히는 ‘오발탄’(1961)을 비롯, 고(故) 박경리 작가의 소설을 영화로 옮긴 ‘김약국의 딸들’(1963), 광복 뒤 북녘 농촌에서 일어난 참상을 다룬 ‘카인의 후예’(1968), 중산층 지식인들의 공허한 내면과 부조리를 다룬 ‘막차로 온 손님들’(1967), 분단의 아픔을 한국적 정서로 해결하는 과정을 그린 ‘장마’(1970) 등 주요 작품 8편이 하루 두 차례씩 번갈아가며 상영된다. 4일 ‘김약국의 딸들’ 상영 뒤에는 김영진 명지대 교수가 ‘유현목 작가론’ 강좌를, 6일 ‘장마’ 상영 뒤에는 정재형 동국대 교수가 ‘유현목의 영화미학’ 강좌를, 9일 ‘오발탄’ 상영 뒤에는 변재란 순천향대 교수가 ‘유현목의 영화와 서울 도시의 공간’ 강좌를 각각 연다. 자세한 상영 일정은 홈페이지 (www.cinematheque.seoul.kr) 참고. 4000~6000원. (02)741-9782.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자서전 ‘언론 의병장의 꿈’ 펴낸 조상호 나남출판 대표

    자서전 ‘언론 의병장의 꿈’ 펴낸 조상호 나남출판 대표

    경기도 파주시 교하읍 출판단지로 접어들자 희뿌연 안개가 스멀스멀 기어다녔다. 서울은 물론 자유로를 지나올 때까지만 해도 비가 흩뿌리는 구름들 사이로 언뜻언뜻 부신 햇살이 들락거렸건만 이곳에 들어서자마자 햇살도, 구름도 없이 오로지 안개다. 국내 내로라하는 130여개의 출판사가 모여있는 곳. 서울에서 불과 30~40분 거리인데도 불구하고 마치 배를 타고 강을 건넌 듯 외딴섬에 들어선 느낌이다.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는 곳이라서겠지만, 책과 사람들 사이에 놓인 간극의 세태만큼 아득히 느껴진다. 25일 오후 물 입자 가득한 파주의 침잠된 분위기는 건물 한쪽 벽에 커다랗게 소설가 고(故) 박경리의 얼굴을 그려넣은 나남출판사에 이르며 조금씩 걷혀갔다. 벽을 덮고 있는 담쟁이가 안개를 빨아들임에 틀림없다. 조상호(59) 나남출판사 대표가 호탕한 웃음으로 맞는다. 최근 펴낸 자신의 저서 ‘언론 의병장의 꿈’을 내놓은 뒤 쏟아지는 주위 반응에 짐짓 쑥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도 한껏 들떠 있다. ●기자하고 싶었지만 신분조회에서 탈락 “사람들 앞에 ‘깨벗고(벌거벗고)’ 서 있는 심정이네. 아무튼 출판 30년, 인생 60년을 정리하는 기회가 된 것 같아 요즘 기분이 좋아요.” 초면의 인터뷰어에게 대뜸 반말이 섞인다. 한데 묘하다. 불쾌하지 않다. 김형국 전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조 대표의 이런 화법을 두고 “눅진눅진 또는 건들건들하는 남도 판소리의 ‘아니리’를 닮은 말솜씨”라 평하기도 했다. 나남출판사 하면 신문방송학과 사회과학 등에 관심있던 사람이라면 피하려야 피할 수 없이 들춰봐야 하는 책들을 오랜 시간 펴내온 곳이다. 이후 문학·창작 분야까지 영역을 넓혀 이제껏 3000여권의 책을 발간했다. 특히 조 대표는 미셸 푸코와 위르겐 하버마스를 중역(重譯), 발췌역이 아닌 원문 완역으로 국내에 소개한 것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그는 왜 자신을 ‘언론 의병장’이라고 칭했을까. “기자를 하고 싶었지만 한 신문사 신분조회에서 떨어졌어. 나는 시대의 산물이었지. 개인적 선택의 여지가 없는 상황에서 자존을 지키기 위해 택한 일이 출판이었고, 출판으로 언론 활동을 한다는 생각으로 책을 펴왔어요. 차선이었어.” 나남의 책들이 언론학·사회학으로 시작되고, 또 집중된 배경이었다. ‘지금, 이곳’의 문제를 풀어나가기 위한 무기였고, ‘내일의 이곳’을 만들기 위한 차근차근한 준비였다. 3년 전부터는 국가기관인 한국연구재단(옛 한국학술진흥재단)과 함께 100권의 시리즈를 목표로 명저번역사업을 진행하며 80권의 책을 내고 있다. 출판비도 60%를 나남이 부담하고 있으니 명실상부한 ‘관군을 돕는’ 의병장이 된 셈이다. 박경리의 ‘토지’와 ‘김약국의 딸들’이 베스트셀러이자 스테디셀러가 되며 숨통을 틔워준 것도 한몫 했다. ●박경리 ‘토지’ 세 차례 완독 후 출간 하지만 이것이 그저 출판 마케팅의 결과물은 아니다. 30년간 굳게 뿌리박은 심지가 있어 가능한 것이었다. 그를 읽는 두 개의 키워드는 ‘진심’과 ‘뚝심’이다. 조 대표는 시인 조지훈을 고등학교 때 먼 발치에서 본 뒤 사숙(私淑·간접적으로 배움)했다. 조지훈 선집을 펴내고, ‘지훈상’을 10년째 운영했다. 또 박경리는 조 대표가 사사(師事·스승으로 삼고 가르침을 받음)한 이다. 자신이 발행인이자, 주간, 편집인, 디자이너로 혼을 쏟아부어 ‘토지’를 세 차례나 완독한 뒤 품격있는 작품으로 만들어냈다. 그는 “돈을 생각하면 할 수 없었던 일”이라고 강조했다. 인터뷰 끄트머리에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 보니 대의명분 하나만 붙들고 있는 형형한 눈빛의 의병장 느낌도 있지만, 민초들에게 가없는 애정을 품고 우직함과 호방함을 갖춘 임꺽정의 느낌도 풍긴다. 하기야 의병장이나 의적 우두머리나 ‘의’(義) 하나로 충분히 연대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사이 안개는 걷혔다. 낯설었던 파주 출판도시가 녹두벌 또는 양산박처럼 호젓하고 아늑해졌다. 글ㆍ사진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최동호 오솔길 산책] 명품 막걸리의 탄생

    [최동호 오솔길 산책] 명품 막걸리의 탄생

    한국인의 술 막걸리가 우리들의 품으로 되돌아왔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우리 주변의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던 막걸리는 한동안 종적을 찾기가 힘들었다. 산업화 시대에는 맥주에 밀리고 탈산업화 시대에는 와인에 밀리던 막걸리가 디지털시대와 더불어 한국인의 맛으로 새롭게 부상한 것이다. 농경시대의 한국인들은 막걸리를 통해 풍요를 느꼈고 막걸리를 통해 민심을 알았다. 한국인들의 희로애락이 모두 막걸리에 담겨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경제가 눈부시게 발전하면서 한류 열풍이 동남아로, 세계로 뻗어나갔고 이로 인해 막걸리의 우수성은 오히려 밖에서 안으로 되돌아와 우리 자신을 돌이켜 보게 만든 것이다. 김치나 된장, 고추장이 혐오식품으로 분류되던 시절에 비하면 상전벽해라고 할 정도의 커다란 전환이 일어난 것이다. 최근 문인들이 모이는 자리에서 몇몇 사람들이 막걸리의 재탄생을 위해서는 막걸리에 대한 의미 부여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모으고 현재 가장 유명하다는 막걸리 세 종류를 놓고 그 맛을 감별하고 이에 대한 감상을 말해 본 적이 있다. 그 중에는 이미 맥주에서 막걸리로, 와인에서 막걸리로 주종을 전환했다는 문인들도 있었다. 한동안 천덕꾸러기 대접을 받았던 막걸리가 새로운 입맛으로 변신하여 그들을 사로잡은 것이다. 와인이 세계적인 브랜드가 된 것은 그 맛에 대한 예민한 감별과 제품의 표준화가 수백 년의 역사를 통해서 점진적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약간 신맛, 조금 단맛, 가볍고 상큼한 맛 등 맛에 대한 품평은 그날의 유쾌한 쟁론의 대상이 되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막걸리가 한국인 고유의 입맛으로 자리잡을 때 막걸리는 자신의 위치를 제대로 차지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더불어 막걸리 제조업자들이 해야 할 일은 제품의 표준화를 통해 세계적인 명품 막걸리를 탄생시키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다. 막걸리의 장점은 발효식품이라는 것인데 막걸리의 약점은 바로 그러한 이유로 인해 보존 기간이 짧다는 것이다. 앞으로 어떻게 그 맛을 오래 보존할 것인가 그리고 여러 사람들의 기호에 호응하는 다양한 맛을 어떻게 심화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들일 것이다. 막걸리의 재탄생과 더불어 한국음식문화의 세계화 문제도 생각해 보아야 한다. 불고기나 김치 이상의 인기 식품을 개발하고 이를 세계인의 식탁에 올려놓아야 하는데 그 중의 하나가 막걸리이다. 발효식품에 있어서 한국인들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음식문화를 고려할 때 우리는 충분히 세계적인 브랜드를 만들어낼 수 있는 역량을 갖고 있다. 고추장, 된장, 젓갈 등 여러 종류의 발효 식품들이 그러한 것처럼 한국음식이 가진 고유한 장점을 살린다면 뛰어난 대외경쟁력을 가진 웰빙 막걸리를 생산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말한다면 막걸리를 서민 대중들이 즐기는 저가 발효술에 그치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최고 명품 막걸리를 어떤 그릇에 담아 즐기느냐 하는 것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이때 대안으로 일본에 건너가 국보가 되었다는 막사발을 떠올려 볼 필요가 있다. 막사발과 막걸리는 이름도 유사하지만 서로 통하는 풋풋한 인간적 정서가 있다. 최고의 막걸리에 명품 막사발을 결합시킨다면 막걸리의 재탄생은 세계가 축복할 만한 일이 될 것이다. 최근 햅쌀로 담은 막걸리 누보가 탄생하여 세계적인 상표 보졸레 누보의 인기를 앞섰다는 보도가 있었다. 아직은 시작 단계의 저가 경쟁에 불과하다. 잉여의 쌀로 농민들의 고통을 가중시킬 것인가 아니면 새로 탄생한 막걸리의 명품을 만들어 새로운 식품산업의 탈출구를 만들 것인가 하는 것은 눈앞에 닥친 국가적 과제이다. 당리당략의 정치적 쟁론을 넘어서서 국민적 힘과 지혜를 모아 새로운 명품 막걸리를 탄생시켜야 한다. 최동호 고려대 국문학과 교수
  • [뉴스다큐 시선] 연탄을 담은 풍경들[동영상]

    [뉴스다큐 시선] 연탄을 담은 풍경들[동영상]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그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안도현 詩, ‘너에게 묻는다’ 중에서> 시인은 말합니다, 조선팔도 거리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바득바득 힘쓰며 언덕길 오르는 연탄차라고. 불이 붙으면 그대로 재가 될 때까지 뜨겁게 더 뜨겁게 자신을 태우는 연탄. 세상을 얼릴 듯했던 겨울 새벽 추위를 모두 몸으로 견딘 것처럼 연탄은 회색빛 재로 변해 버렸습니다. 연탄보일러가 데운 한 칸 방의 온기, 연탄불에 구운 노릇노릇한 고구마의 달콤함…. 젊은 세대에게는 낯설기만 한 연탄에 대한 기억을 아직도 간직한 이들이 있습니다. 연탄재처럼 부서져 가는 기억의 마지막 끝을 일상인 양 잡고 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글 사진 안석기자 ccto@seoul.co.kr 제가 태어난 곳은 서울 시흥동의 연탄공장입니다. 오늘(21일)은 날씨가 좀 풀려서 그런지 공장 너머 지하철역에는 많은 사람들이 여유로운 표정으로 지나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공장은 아침부터 트럭 행렬이 이어지면서 휴일인데도 평일보다 더 시끌시끌합니다. 저는 지금 25t짜리 대형 트럭을 타고 어딘가로 떠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누가 그러는데 저와 제 친구들이 가는 곳이 부자 동네인 강남이라네요. 저도 이제 ‘강남물’ 좀 먹는 게 아닌가 싶어요. 자! 제가 어디로 가는지 함께 따라오시죠. ●서울 시흥동 연탄공장 이야기 제 고향 ‘고명산업’은 서울에 2개뿐인 연탄공장 중 하나입니다. 날씨가 추워지는 11월은 일년 중 가장 바쁜 시기지요. 하루 연탄 생산량은 30만장 수준입니다. ‘얼마 안 되네.’라고 생각하시나요? 무려 100대가 넘는 차량이 온종일 눈코 뜰 새 없이 오가는 모습을 보면 생각이 바뀌실 겁니다. 직원분들은 누가 오가는지도 신경도 안 쓰고 일만 하십니다. 제 아버지(?)는 1978년부터 이 공장에서 근무한 신희철 전무입니다. 아버지가 일을 시작했던 1970~80년대만 해도 서울에 연탄공장이 무려 19개나 있었답니다. 그때는 서울의 하루 연탄 소비량이 2000만장이나 됐다고 합니다. 당시 이 공장의 하루 연탄 생산량도 지금의 두 배가 넘는 60만~70만개 수준이었죠. 1970년대 석유파동 때는 하루 100만장까지 찍어내기도 했습니다. 현재 서울 지역 하루 연탄 소비량은 얼마나 될까요. 아버지 말로는 70만장 정도에 불과하다네요. 이 공장은 1990년대만 해도 과거 삼천리연탄(현 삼천리E&E)의 시흥 공장이었습니다. 연탄산업이 사양길을 걷던 1997년, 본사가 시흥 공장을 폐쇄하기로 하자 아예 당시 직원들이 공장을 인수한 것이 지금에 이르렀답니다. 공장을 새로 열 당시만 해도 10명에 불과했던 직원 수는 한때 60명이 넘을 정도로 호황을 누리기도 했습니다. 외환위기로 석유 대신 연탄을 찾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경기가 회복되자 직원 수는 자연스럽게 줄어 현재는 27명이 공장에 몸담고 있습니다. 직원 평균 연령이 60살이 넘을 정도로 평생을 연탄과 함께 한 이들이 대부분입니다. 새 직원을 고용하면 되지 않냐고요? 모르시는 말씀. 요즘 젊은이들은 연탄공장에서 일하는 것을 매우 꺼려합니다. 올 들어 경제가 어렵다 보니 사무실에 석유난로 대신 연탄난로 놓는 분들도 많지요. 그런데 아마 이런 인기도 그리 오래가지는 않을 것 같네요. 정부 아저씨들이 무연탄 수급 불균형 해소라는, 한번 들으면 도대체 무슨 말인지 모를 정책을 하고 계시기 때문이랍니다. 쉽게 말해 공장에 지급하던 보조금도 줄이고 가격을 자율화한다는 얘기입니다. 벌써 1일부터는 연탄의 공장도 가격이 개당 403원에서 483원으로 올랐답니다. 시설농가 등에는 그리 좋은 소식이 아니지요. 여하튼 저는 이제 강남으로 갑니다. 트럭에서 잠깐 잠이나 자야겠네요. ●거여동의 연탄 이야기 “47, 48, 49, 50…. 아니다, 49개까지 옮겼지. 다시 합니다, 49, 50, 51….” 어, 이게 무슨 소리야. 벌써 도착했나. 밖을 보니 20대 청년들과 10대 학생, 50대 아저씨가 함께 나란히 줄을 지어 연탄을 옮기고 있습니다. “연탄 200개를 옮기려면 아직도 멀었다.”면서 일행을 재촉하는 소리도 들립니다. 언뜻 아버지와 아들로 보이는 두 남자가 함께 연탄을 들고 좁은 골목길로 들어가는 모습도 눈에 띕니다. 부자(父子) 사이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데 어린 친구가 아저씨라고 부르는 걸 보니 부자 사이는 아니군요. 분명히 강남으로 간다고 했는데 여기는 강남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아무튼 연탄 특유의 냄새가 아침이 채 지나지도 않았는데 벌써 마을 전체로 번졌습니다. 아! 이제 알았습니다. 여기는 송파구 거여동. 서울에서 가장 연탄을 많이 때는 동네입니다. 그리고 저 사람들은 ‘따뜻한 한반도사랑의 연탄나눔운동(한반도연탄나눔운동)’의 무료연탄배달 행사에 온 분들이라는군요. 법무법인 지평지성, 대학생 동아리 단체 ‘케피터즈’ 등이 참가했다고 합니다. 허허, 저렇게 연탄 나르면 안 되는데, 몇 명은 처음 연탄배달을 하는 분들이 분명합니다. 그래도 연탄 몇 번 나르다 보면 땀이 저절로 흐를 겁니다. 자, 이제 제 차례가 됐습니다. 저는 어디로 갈까요. 저의 새로운 안식처는 홀로 사는 김융래(71) 할아버지의 집입니다. 김 할아버지는 자신의 단칸방 옆에 차곡차곡 쌓이는 연탄에서 눈을 떼지 못하시는군요. 아마 5월까지 연탄을 써야 한다며 머릿속으로 연탄 수를 세고 계신 듯합니다. 김 할아버지를 비롯해 한 가구당 들어가는 연탄은 200~300장 수준입니다. 추울 때는 하루 3~4개, 날이 풀리면 1~2개의 연탄을 쓰지만 대부분 어르신들은 날이 조금이라도 풀릴 때에는 한 장이라도 아끼신답니다. 그래야 봄 사이 예고도 없이 갑자기 찾아오는 추위를 대비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이웃 주민인 안귀래(80) 할머니도 연탄을 쓰십니다. 안 할머니의 얼굴에는 반가움과 안타까움이 교차하는데요. 몇몇 분들이 연탄을 받지 못하신다고 한숨을 쉬시네요. “지난번에는 연탄 없는 집에 우리 집 연탄을 나눠주기도 했는데 이번에는 그런 집이 생기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시는 안 할머니의 고운 마음에 저도 갑자기 뭉클해집니다. 올해 한반도연탄나눔운동과 함께한 단체는 지난해 300여개에서 500여개로 늘었다고 합니다. 참가자도 3만 2000명에서 5만명으로 늘었다는 것이 원기준 사무총장의 설명입니다. 기업체 등의 후원금이 줄어들고 있지만, 봉사활동 참가자가 많아지니 그래도 힘이 되는 소식 아닙니까? 한반도연탄나눔운동은 봄·여름 사이 전국을 대상으로 저소득층 연탄사용가구 실태조사를 한 뒤 9월부터 본격적으로 연탄 배달을 시작합니다. 원 사무총장의 표현을 빌리면, 연탄봉사활동은 ‘사회적 효도’입니다.. ●노원구 월계2동 연탄가게 이야기 아 참, 말이 나온 김에 얘기 하나 더 할게요. 동네 연탄가게 혹시 보신 적 있으세요? 요즘에는 공장에서 직접 배달을 해 연탄가게 찾기가 하늘에 별따기입니다. 물론 여러분이 연탄을 살 일도 거의 없을 테구요. 제 친구 가운데 재개발이 예정된 노원구 월계2동의 연탄가게로 간 애들이 있습니다. 가격이 530원 정도에 팔린다니 저보다는 비싸게 팔리는 친구들이죠. 주인 김문국(53)씨가 구멍가게와 연탄가게를 함께 운영한다고 하는데요, 평생을 그곳에서 사셨다고 합니다. 김씨 연탄 창고에는 지금도 1000장 남짓한 연탄이 쌓여있습니다. 많다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200장씩 나눠 갖는다고 계산하면 다섯 사람 정도 분량밖에는 되지 않는 양입니다. 제가 호황을 누리던 1960~70년대에는 하루에 수 백 장이 팔리는 것도 예사였다고 합니다. 당시에는 주문이 너무 많이 들어오면 오히려 짜증을 낼 정도였다고 합니다. 경사가 가파른 동네까지 배달을 나가다 보면 웬만한 공사판 노동일보다도 고됐기 때문이지요. 김씨가 연탄배달 나갈 일이 크게 줄기 시작한 것은 1995년 인근에 주공상계19단지 아파트가 들어선 때부터였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일대의 연탄 판매량은 갈수록 급감했고 지금은 단골 빼고는 찾는 이가 거의 없는 실정입니다. 제가 김씨의 연탄가게에 갔으면 어땠을까요. 어쩌면 봄이 될 때까지 새 주인도 못 만나는 신세가 됐을지도 모르겠어요. 여하튼 저는 이제 담담히 재가 되기를 기다릴 뿐입니다. 모두 따뜻한 겨울 보내십시오. 그래픽 김선영기자 ksy@seoul.co.kr ■ 연탄의 역사 1966년 석유에 밀려 하향기 1990년대 초 폐광시대 맞아 탄광매몰 사건이나 연탄가스 중독사고는 1970~80년대 일간지의 사회면을 장식한 단골메뉴 가운데 하나였다. 하지만 지금은 연탄무료배달 소식 정도만 간간이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연탄전성시대는 갔다. 우리나라 연탄공장의 효시는 대한제국 시기에 일본인이 평양에 설치한 공장이다. 광복 후에는 대성산업이 연탄공장의 맹아(萌芽)였고, 삼표·삼천리연탄 등 3대 메이저사가 1960년대를 대표했다. 이후 연탄수요가 폭발적으로 늘면서 1963년 말 전국의 연탄공장 수는 400여개에 달했다. 그러나 업체 간 과열경쟁은 여러 부작용을 낳았고 불과 2년 뒤인 1965년에는 3분의1 수준인 130여개로 공장 수가 줄었다. 정부도 1966년부터는 에너지 정책 중심을 석탄에서 석유로 옮기기 시작했다. 1969년에는 석유가 전체 에너지 소비의 37.4%를 차지해 처음으로 석탄을 추월했다. 1973년 석유파동으로 연탄 소비량이 잠시 늘기도 했지만 내리막길을 걷는 연탄의 소비감소 추세를 막지 못했다. 1980년대 후반 도시가스의 보급으로 연탄의 자리는 더욱 좁아졌다. 1990년대 초 ‘석탄산업 합리화 정책’으로 폐광시대를 맞았다. 현재 에너지 소비에서 연탄·무연탄이 차지하는 비중은 2.1% 수준이다. 난방보다는 고깃집 등 음식점 연료로 사용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 日 “美와 핵밀약 사실”… 양국 또 냉각

    │도쿄 박홍기특파원│미·일 간의 이른바 ‘핵 밀약설’을 뒷받침해 주는 새로운 문서가 발견되면서 양국 관계의 새로운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현재 오키나와현 후텐마 미군기지 비행장의 이전을 둘러싼 미·일 간 신경전도 계속되고 있기 때문에 핵 밀약설의 진상 규명 결과에 따라 미·일 관계는 한층 냉랭해질 가능성이 크다. 22일 일본 외무성에 따르면 지난 9월 민주당 정권 출범과 함께 오카다 가쓰야 외무상의 지시로 구성된 ‘핵 밀약설’ 조사 특별팀은 지난 1960년 1월 미·일 안보조약 개정 직전 핵무기 반입과 관련한 사전 협의 등의 내용을 정리한 ‘비밀 회의록’을 찾아냈다. 오카다 외무상은 24일 외부 전문가들로 제3자 위원회를 구성, 해당 문서의 정밀 검증을 요청하기로 했다. 또 내년 1월 ‘핵 밀약설’의 조사결과를 발표할 방침도 분명히 했다. 현 상황에서는 핵 밀약을 굳힐 만한 문서에다 관련 증언을 이미 확보한 만큼 “핵 밀약은 있었다.”는 쪽으로 결론이 내려질 것이 확실하다. 핵 밀약설은 1960년 미·일 안보조약 개정 때 핵무기를 탑재한 미 함정의 기항 및 영해 통과, 항공기의 영공 비행 등에 대해 사전 협의를 거치지 않아도 되도록 비밀리 합의했다는 주장이다. 자민당 정권에서는 “핵 밀약설은 존재하지 않는다.”며 자체를 부인해 왔다. 또 “핵은 반입되지 않았다.”고 거듭 강조해 왔다. 인정할 경우 1968년 1월 정부가 발표한 ‘핵 무기를 제조하지도, 보유하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비핵 3원칙과 배치되기 때문이다. 나아가 비핵 3원칙의 논란이 확산되면 일본에 대한 미국의 핵 우산 제공이 도마에 오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서다. 로버트 게이츠 미 국방장관은 지난달 20일 방일 때 일본의 핵 밀약설 조사와 관련, “미·일 관계에 악영향을 주지 않길 바란다.”고 주문했다. 미국 정부안에서도 “(조사는) 실익이 없다.”는 부정적인 입장을 일본 측에 전달한 상태다. 특별팀은 핵 밀약설을 비롯해 ▲한반도 유사시의 전투작전행동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 핵 반입 ▲오키나와 반환 때의 복귀 보상비 등의 ‘밀약’에 대해서도 미·일 안보관계 문서 3600건 정도를 통해 검증하고 있다. hkpark@seoul.co.kr
  • [기고] 새마을운동, 아프리카에 수출하자/박영호 대외경제정책연구원·아프리카·중동 팀장

    [기고] 새마을운동, 아프리카에 수출하자/박영호 대외경제정책연구원·아프리카·중동 팀장

    새마을운동은 자타가 공인하는 우리 고유의 농촌개발 모델이자 소중한 국가적 자산이다. 새마을운동이 정치적 목적으로 활용되었다는 지적도 많지만 우리 농촌사회의 근대화를 이끈 일등공신이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1960년 당시 6만원도 채 안 되던 농가소득이 1970년대 새마을운동을 거치면서 1980년에 270만원에 달했는데 이는 분명 성공적 경험이다. 이런 이유로 새마을운동을 배워 보겠다고 한국을 찾는 아프리카 공무원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새마을운동에 대한 국내 평가는 차치하더라도 우리 해외개발원조에 있어 새마을운동이 소중한 협력수단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가치가 지나치게 평가 절하되어서는 곤란하다. 새마을운동을 통해 농촌개발에 성공한 우리는 오늘날 아프리카 국가들이 직면하고 있는 농촌문제를 잘 이해하고, 실질적 해답을 줄 수 있는 위치에 있다. 오늘날 아프리카에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물적 자본’보다는 자생적·내재적 발전의 원천이 되는 근면, 자조, 협동 등과 같은 새마을운동의 기본이념이다. 국민들에게 어떻게 열심히 일할 동기를 불어넣었는지, 농촌을 어떻게 근대화시켰는지에 대한 ‘경험적 요소’가 더 필요하다. 우리 정부는 새마을운동 전수를 다른 공여국의 원조와 차별화할 수 있는 ‘한국형’ 개발원조의 핵심적 내용으로 인식하고 있으나 추진력은 아직 미약하다. 새마을운동 전수는 우리의 원조역량 제고에도 부합한다. 작은 원조규모로 높은 원조효과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다른 공여국과 차별화할 수 있는 우리 고유의 원조모델이 필요한데, 새마을운동 전수가 여기에 잘 부합한다. 또 새마을운동 전수는 우리 개발경험을 브랜드화할 수 있는 ‘소프트 파워’로 이해될 수 있다. 새마을운동은 농촌사회의 발전 잠재력을 총동원하여 성공적으로 이룩한 한국형 농촌개발 모델이라는 점에서 국제사회에 내세울 만하다. 그렇다고 새마을운동을 지나치게 확대해서는 안 된다. 1970년대 우리 농촌사회와 현재 아프리카 국가들의 상황이 크게 다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새마을운동을 아프리카에 전수할 때는 다음과 같은 점이 고려돼야 성공 확률을 높일 수 있다. 첫째, 상대방 실정을 충분히 감안하여 유연하게 접근해야 한다. 새마을운동은 우리의 독특한 역사적 경험이기에 원형 그대로 전수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도 않고 가능하지도 않다. 둘째, 아프리카의 농촌 현실을 감안할 때 현대적 농촌발전의 초기 조건을 갖추도록 ‘소프트웨어적’ 지원에 역점을 둬야 한다. 셋째, 전수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는 국가 전체 차원이 아닌 ‘동질적 사회집단(homogeneous society)’ 단위로 접근해야 한다. 아프리카 사회는 부족중심의 공동운명체적 특성이 강하기 때문이다. 새마을운동이 성공한 원천이 강한 지역적 유대감과 결속력, 그리고 전통적 리더십에 있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조건은 매우 중요한 요인이다. 넷째, 새마을운동 전수는 주민의 자발적 참여를 촉진하여 이들의 주인의식을 증진하는 방향으로 추진돼야 한다. 지역주민 참여 문제는 새마을운동의 성공과 직결되기에 현지 지역주민들의 적극적인 호응과 참여가 필수적이다. 마지막으로 원조예산이 소규모라는 한계를 감안하여 ‘선택’과 ‘집중’ 방식으로 지원해야 한다. 새마을운동 전수가 실질적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소수의 거점 국가들을 선택하여 집중 지원해야 한다. 24일 외교통상부가 개최하는 ‘제2차 한·아프리카 포럼’에서 새마을운동이 핵심 주제로 다뤄진다. 서로의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토론의 장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박영호 대외경제정책연구원·아프리카·중동 팀장
  • [토요 포커스] 이북5도청 60년史

    [토요 포커스] 이북5도청 60년史

    이북5도청의 발자취는 우리 근대사의 아픔을 그대로 닮았다.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고 6개월쯤 지난 1949년 2월15일자로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이북5도 지사를 임명했다. 또 5월23일에는 이북5도청을 서울 북창동 당시 서울시경찰국 청사 4층에서 개청했다. 행정구역과 주민에 대한 행정력이 전혀 미치지 못하는 조직이지만 이북 5도가 헌법이 규정하는 대한민국 영토임을 선언한 것이다. 이후 이북5도청은 6·25때 부산으로 이동한 후 1953년 다시 서울로 옮겨졌지만 변변한 청사를 배정받지 못해 충무로의 한 보육원 2층에서 전세살이를 해야만 했다. 현재의 서울 구기동 청사를 마련할 때까지 44년 동안 무려 14번의 이사를 했다. 한 곳에서 자리잡은 후 거의 옮기지 않았던 남한지역 다른 도청들과는 대조적이다. 1993년에 신축된 구기동 청사는 1만 3833㎡ 규모의 5층짜리 건물로 전시실과 민원실, 도민회 사무실 등으로 구성됐다. 이 가운데 전시실은 이북5도민들에겐 고향과 같은 곳이다. 전시실 1관에는 이북 5도에 대한 전체적인 현황을 소개하는 자료들로 꾸며졌고, 2관에는 5도가 별도의 부스를 갖추고 있다. 부스에는 출신지별 유명인사들과 주요 시설물 모형, 사진 등이 비치돼 있다. 평양고보 출신이라는 한 할아버지는 “이곳에서 종종 동창회 모임도 열어 고향과 친구들을 떠올린다.”고 말했다. 부스별로 투명한 병에 ‘고향의 흙’을 담아 놓아 실향민들의 애틋함을 느끼게 했다. 이북5도청의 행정은 ‘이북5도위원회’가 맡고 있다. 위원장은 5도지사 가운데 1명이 1년씩 윤번제로 맡는다. 현재는 민봉기(73) 황해도지사가 위원장을 겸하고 있다. 5명의 지사는 대통령이 임명하는 정무직 공무원으로 차관급 예우를 받는다. 주로 해당지역 출신자 가운데 경륜과 덕망을 갖춘 전직 고위관료가 임명돼 왔다. 이북5도민의 행정적·정신적 지주역할을 한다. 지사 아래에는 각각 1명씩의 사무국장과 6~7명의 행정직원이 있다. 현재 모두 37명으로 행정안전부 소속 공무원이다. 이곳을 거쳐 간 공무원 가운데는 5명의 차관과 민선지사(이의근 전 경북지사)도 있다. 아래 시장·군수 97명과 읍·면·동장 911명은 전부 무보수 명예직이다. 예산은 기초자치단체의 마을안길 포장사업비 정도에 불과한 한해 70억원 수준으로 도민들을 위한 각종 지원사업에 사용된다. 이 같은 도정 발자취는 530쪽 분량의 ‘이북5도정 60년사’로 기록된다. 이동구기자 yidonggu@seoul.co.kr
  • [시론] 국적법 개정에 거는 기대/이혜경 배재대 교수·한국이민학회장

    [시론] 국적법 개정에 거는 기대/이혜경 배재대 교수·한국이민학회장

    정부는 5월 입법예고했던 국적법 개정안을 대폭 수정, 지난 13일 새로운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기존 개정안은 과거 엄격한 단일 국적주의를 우수 외국 인재와 해외 입양인에 한해 복수국적을 용인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새 개정안은 복수국적 용인의 대상에 결혼이민자, 화교, 65세 이상의 영주귀국 동포 등을 포함시켰다. 이는 지난 5월 이후 복수국적 용인 대상을 더욱 확대하라는 의견을 대폭 수용한 것으로 크게 환영한다. 그러나 정부는 대상 확대의 이유를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배려와 사회통합 차원이라고 밝혔다. 이는 타당한 이유이기는 하나 마치 복수국적 용인의 대상을 우수인력과 사회적 소수자로 나눠 결혼이민자와 화교 등은 사회적 소수자라는 고정관념을 유포시킬 가능성이 있다. 법무부가 우수인력 이외의 집단에 복수국적을 용인하는 이유는 사회적 소수자라는 이유보다는 세계적인 추세에 발맞춰 우리도 적극적으로 국적정책을 펼쳐야 하기 때문이다. 최근 세계적으로 복수국적 용인 문제는 불가피해 묵인하던 단계를 넘어 재외교포 및 해외 우수인재 유치를 위한 국가의 적극적 전략으로 나아가는 추세다. 국가간 고급 전문인력 유치경쟁이 치열해진 까닭이기도 하지만, 더 근본적인 이유는 세계화 현상으로 국민의 해외이동이 크게 증가해 해외 국민과의 관계를 적극적으로 모색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욥 등 학자들은 이런 현상을 ‘탈국가’ 현상이 아니라 국가의 폭을 넓히려는 ‘재영토화’ 또는 ‘재민족화’ 현상이라고 부른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어서 복수국적 용인의 필요성이 일찍부터 대두됐다. 그러나 복수국적 문제는 그동안 병역의무 회피수단이거나, 원정출산이라는 일부 부유층의 과욕으로 이해되면서 여론의 부정적 시선을 받았다. 그러나 병역의무 회피 문제는 소위 ‘홍준표 법안’으로 불리는 2005년 국적법 개정안으로 어느 정도 해소됐다. 갈수록 국민들의 해외 유학·연수·취업 등 국가간 이동이 더욱 크게 증가하고 있다. 결혼이주자를 포함한 외국인의 국내 유입도 큰 폭으로 늘었다. 이러한 급속한 사회 환경의 변화로 과거의 부정적인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선진국가형 국적정책을 모색하게 된 것이다. 외국에서 우리의 전자제품이 과거와 달리 소니를 누르고 가장 우수한 제품으로 소개되고 있다. 또 우리나라가 1950~60년대 원조를 받던 국가에서 곧 주요 선진국 22개국이 가입돼 있는 개발원조위원회(DAC)의 정식 멤버로 가입될 것이라고 한다. 한국은 국제 원조를 받다가 주는 나라로 변신을 꾀하는 유일한 국가라고 한다. 아울러 노동 송출국에서 노동 유입국으로 변모한 나라다. 아직 국제 원조는 물론 외국인 체류자에 대한 법과 제도 그리고 국민의 의식과 태도 등에서 이러한 빠른 변화를 채 따라가지 못하는 지체현상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가 선진국 문턱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무엇이 진정한 선진국의 모습인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고민을 바탕으로 법과 제도 그리고 국민의식도 진정한 선진국형으로 거듭나야 할 것이다. 복수국적 용인 문제는 이러한 선진국형 국적법 마련을 위한 초석이다. 나아가 전세계에 흩어져 있는 300만 재외국민과 400만 외국국적 동포, 그리고 100만명의 국내 체류 외국인을 고려하는 국적법 논의가 더욱 활발해져야 할 것이다. 이혜경 배재대 교수·한국이민학회장
  • 한·미 “북핵 그랜드 바겐 공동추진”

    한·미 “북핵 그랜드 바겐 공동추진”

    이명박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19일 청와대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북핵관련 ‘그랜드 바겐(Grand Bargain·일괄타결)’을 공동추진한다는 데 합의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다음달 8일엔 스티븐 보즈워스 미국 대북정책 특별대표를 미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북한에 파견해 북·미 양자 대화에 나서기로 했다. 또 양국 정상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양국에 경제적·전략적으로 중요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하고 FTA의 진전을 위해 노력하기로 합의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정상회담을 마친 뒤 공동 기자회견을 통해 “보즈워스 대표를 12월8일 북한에 보내 양자대화를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오바마 대통령은 “우리의 메시지는 분명하다.”면서 “북한이 구체적이고 되돌릴 수 없는 조치를 통해 의무를 준수하고 핵무기 프로그램을 포기한다면 미국은 경제적 지원을 제공하고 북한이 국제사회와 완전히 통합될 수 있게 도와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대표가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방북하는 것은 지난 2002년 10월 제임스 켈리 당시 미 국무부 차관보가 평양을 방문해 강석주 북한 외무성 제1부상과 담판을 벌인 이후 7년여 만에 처음이다. 보즈워스 대표가 방북하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만나 오바마 미 대통령의 친서를 전달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도 나온다. 오바마 대통령은 또 북핵 문제와 관련,“이 대통령과 저는 우리 모두 (북한의) 과거의 패턴은 중단시키고, 종식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고 밝혀 북한의 이른바 살라미정책(단계별로 목표를 성취하는 방법)을 용인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이 대통령은 “우리 두 정상은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본인이 ‘그랜드 바겐’으로 제시한 일괄타결이 필요하다는 데 전적으로 공감했으며, 그 구체적인 내용과 추진방안에 대해 긴밀히 협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오바마 대통령은 한·미 FTA와 관련, “미국이 우려하는 부분은 엄청난 무역 불균형”이라면서 자동차 산업 등 일부에서 보완할 부분이 있다는 점을 시사했다. 이에 대해 이 대통령은 “자동차가 미국에 문제가 있다면 다시 이야기할 자세가 돼 있다.”고 밝혀 추가협의의 가능성을 남겼다. 이에 대해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은 “우리의 경우 대표적으로 농업, 미국은 자동차가 어려움이 많다고 하는데 이야기를 한번 해 보라는 것”이라면서 “재협상 가능성은 없다.”고 잘라말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도 “텍스트(협의문)는 고칠 수 없다고 밝힌 만큼, 낮은 단계의 추가협의는 가능하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한편 6·25 전쟁 발발 60년인 내년 양국 외교·국방장관이 만나 미래지향적인 동맹 발전의 구체적 방안에 대해 논의하기로 합의했다.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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