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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名士의 귀향별곡] 임진혁 울산과기대 교수 “고향 공장 불빛 보며 학자 꿈 키워”

    [名士의 귀향별곡] 임진혁 울산과기대 교수 “고향 공장 불빛 보며 학자 꿈 키워”

    우리나라의 산업근대화를 이끌었던 울산. 1960년대 울산 석유화학공단의 꺼지지 않는 불빛을 보면서 학자의 꿈을 키웠던 한 소년이 30여년 만에 예순을 앞둔 백발의 교수로 고향에 돌아왔다. 25년간 미국에서 배우고 가르쳤던 선진 학문을 후배들에게 전하기 위해서다. 23일 울산 울주군 언양읍 반연리 울산과학기술대학교를 찾았다. 지난해 개교한 울산과기대 캠퍼스는 성큼 찾아온 봄만큼이나 활기로 넘쳤다. 캠퍼스 중앙에 자리한 학술정보처에는 25년간의 미국 생활을 접고 2008년 고향 울산으로 돌아온 임진혁(58·경영학) 교수가 처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임 처장은 “초등학교 시절 정유공장(석유화학공단)의 불빛을 보면서 ‘나도 뭔가 해야겠다.’는 꿈을 키웠다.”면서 “미국 생활 내내 초등학교 때 봤던 산업의 불빛을 잊을 수 없었고, 공장의 불빛과 함께 급속도로 성장한 고향에 대한 애정도 고스란히 간직했다.”고 말했다. 그런 그에게 2007년 고향을 위해 열정을 불사를 기회가 찾아왔다. 울산과기대가 개교(2009년)를 앞두고 그를 교수로 초빙했기 때문이다. “뉴올리언스대학의 안식년을 이용해 2007년 서울시립대에서 잠시 초빙교수로 근무할 때 울산과기대 측에서 영입 제의가 들어왔습니다. 1년만 있다가 미국으로 돌아갈 생각을 했기 때문에 처음에는 다소 망설였는데, 지금 생각하면 잘한 선택이죠.” 그는 울산과기대 임용 이후 학술정보처장으로 근무하면서 대학 혁신을 이끌고 있다. 최근 울산과기대가 국내 대학 가운데 처음으로 최첨단 모바일 캠퍼스를 구축한 것도 그의 공으로 평가된다. 앞으로는 행정업무와 교육학습 시스템을 효과적으로 연계할 계획까지 세우고 있다. “울산은 우리나라 산업의 근대화를 이끈 데 이어 생태와 문화가 공존하는 도시로 성장했습니다. 그러나 아직 교육부문에서는 미진한 점이 많습니다. 울산 교육의 발전을 위해서는 ‘명품대학’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연구중심의 대학인 울산과기대는 산업도시 울산에 꼭 필요한 대학이 될 것으로 믿습니다.” 그는 울산과기대에서 추구하고 있는 연구중심대학은 차세대 신성장동력을 찾고 있는 울산에 맞춤형 대학이라고 평가했다. 요즘 그에게는 새로운 과제가 하나 더 늘었다. 젊은 학생들에게 행복한 삶을 찾아주는 ‘행복 전도사’ 역이다. “요즘 학생들은 공부도 잘하고, 각종 혜택을 많이 누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학생들의 얼굴을 보면 행복해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틈만 나면 학생들에게 (저의) 경험을 토대로 ‘행복한 삶’을 만들어 가는 방법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교수와 학생, 시민들까지 참여하는 ‘사람답게 사는 모임’을 만들어 행복한 삶을 전파하고 있다. 그는 젊은 시절 한국을 떠나 우리나라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느끼지 못했다고 한다. 그래서 주말과 휴일 시간이 나면 소중한 자연을 돌아보는 데 투자하고 있다. ‘한국 재발견’이라는 투어 계획까지 세워 놓고 가까운 곳부터 전국 곳곳을 누비고 있다. 연구실 밖 캠퍼스를 내려다보던 그는 “고향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인 만큼 제가 배운 모든 것을 학생들에게 전하고, 그들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글 사진 울산 박정훈기자 jhp@seoul.co.kr >>약 력<< ▲1952년 2월15일 울산 출생 ▲울산 병영초교 졸업(1965년) ▲서울대 상과대학 경영학과 학사(1975년) ▲미국 하와이주립대 MBA 석사(1983년) ▲미국 네브래스카주립대 경영정보학 박사(1986년) ▲뉴올리언스대 교수(1986~1990년) ▲Sacred Heart University 교수(2000년) ▲서울시립대 초빙교수(2007년) ▲울산과학기술대학교 학술정보처장(2008년)
  • 영화 ‘포화 속으로’ 막바지 촬영 현장속으로

    영화 ‘포화 속으로’ 막바지 촬영 현장속으로

    “회색 선이 1번이고 까만 선이 2번이야. 헷갈리면 안돼.” 스태프들이 전선을 들고 이리저리 뛰어다닌다. 폭탄이 터지는 효과, 총알이 쏟아지는 효과를 내기 위해 분주한 모습이다. 저 멀리 ‘자유를 빼앗는 괴뢰도당을 물리치자’, ‘조국을 팔아먹는 북한괴뢰도당’이라는 플래카드가 펄럭인다. 어떤 이는 허물어진 벽에다 빨간색 페인트를 뿌린다. “자, 잘 들으세요. 오른손 검지를 방아쇠 울에 갖다대고 왼손은 총열을 가볍게 잡습니다. 당장 달려갈 수 있게 왼발은 앞굽이, 뒷발은 쭈욱 펴고 총구는 위로 하세요.” 한 스태프는 북한군 복장을 한 보조 연기자들에게 연기 지도를 하고 있다. 북한군 장교 옷차림의 차승원이 뒤를 돌아다본다. “내가 빵~ 쏘면 그때 공격이야. 와~ 하고 뛰어가면 돼.” 보조 연기자들이 한껏 입을 모은다. “네!” 반대편에서는 전문식 무술감독이 국군 장교 차림새의 김승우에게 말을 건네고 있다. “개머리판을 어깨에 바짝 대고 쏘다가 총알이 안나오면 버리고 권총을 꺼내서 쏘는 겁니다. 안전장치 풀어주시고, 오른팔은 더 들어주세요.” 한 스태프의 목소리가 높아진다. “아까 시체 역할 했던 분들 다시 앞으로 나오세요. 아까처럼 누우세요. 자, 나머지 인민군들은 뒤로 갑니다. 카메라까지 뒤로 뒤로~” “스태프들 빠져주세요. 올 스탠바이, 감독님 슛 갈게요.” 마침내 이재한 감독이 힘껏 소리친다. “레디, 액션!” ‘두두두두두’ 국군 진지에 있던 M-1919 라이트머신건 2정이 불을 뿜는다. 여기저기서 총알이 튀는 효과와 폭탄이 터지는 효과가 잇따른다. 잠시 반격하던 국군이 부상병을 데리고 슬금슬금 물러났다. 차승원이 하늘을 향해 권총을 들고 발사하자, 대기하고 있던 북한군이 퇴각하는 국군을 쫓아 돌격한다. 이재한 감독의 목소리가 울린다. “컷!” 지난 19일 경남 합천군 용주면에 위치한 합천영상테마파크에서는 한국전쟁을 소재로 한 영화 ‘포화 속으로’의 막바지 촬영이 한창이었다. 1950년 8월 낙동강과 포항 일대에서는 한국전쟁의 명운을 건 국군과 북한군의 처절한 전투가 펼쳐졌다. 영화는 당시 교복을 입은 채 포화 속으로 뛰어들어 북한군과 하룻밤 새 12시간을 맞섰던 학도병 71명의 실화를 다룬다. 지난해 12월 촬영을 시작(크랭크인)해 이달 말 작업을 마친다(크랭크업). 한국전쟁 발발 60년을 맞아 전쟁 영화들이 여럿 제작되고 있는 가운데 오는 6월 가장 먼저 관객들과 만날 예정이다. “음악하는 모습을 많이 보여드렸는데 진지하고 깊은 메시지를 담은 작품이라 고민을 많이 했다. 한 번은 인터넷에 ‘탑 학도병’이라는 검색어가 올라와 있기에 클릭해 보니 ‘탑이 도대체 무슨 병이 걸렸냐.’는 글이 달린 것을 봤다. 아이돌 가수로서 어린 친구들에게 잊혀져 가는 60년 전 기억을 되새길 수 있는 기회를 전달하게 된 것 같아 열심히 하고 있다.”(탑) 권상우가 소년원 대신 전쟁터를 택한 문제아 갑조 역을, 빅뱅의 탑이 학도병을 이끌어야 했던 모범생 장범 역을, 김승우가 학도병들이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존재인 강석대 대위 역을, 차승원이 북한군 766유격부대 박무랑 대장 역을 맡아 화제를 모으고 있다. “실제 전쟁터에는 영웅이 없다고 하는데 우리 영화가 그렇다. 독보적인 영웅이 없다. 전쟁과는 이해 관계가 없고 이념도 없는데 희생당하는 모습들이 많다. 작은 희생이 모여 결국 오늘날 우리가 잘살고 있다는 점을 느꼈으면 한다. 탑 군의 학도병이 빨리 나았으면 한다. 하하하”(김승우) 순제작비만 113억원이 투입되는 블록버스터이기도 하다. 100여m에 이르는 포항 시가지 재현에는 실제 건축 자재를 써서 30여채의 건물을 짓는 등 12억원이 들어갔다. 최대 500명의 보조 연기자를 동원하기도 했다. 이날 주인공 네 명이 처음으로 한꺼번에 마주치는 전투 장면을 찍는 데만 폭약 200㎏, 촬영용 총알 1만여발이 사용됐다고 한다. “최근 들어 잘 안된 작품이 많았는데 그런 시기에는 시야가 좁아진다. 조급해하지 않고 넓은 시야로 보려고 할 때 만난 작품이다. 교복을 입고 나온 작품이 모두 잘됐다. 이번 영화도 (‘말죽거리 잔혹사’처럼) 엔딩 장면이 옥상이다. 감정의 높낮이가 큰 캐릭터이기 때문에 모든 것을 토해낸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찍고 있다.”(권상우) 전문식 무술감독에게 톱스타 4명 가운데 누가 액션 연기가 뛰어나냐고 물었더니, 권상우와 탑은 젊고 몸이 빠르기 때문에 치고 받는 격투 장면에서 돋보이고, 김승우와 차승원은 총을 사용하는 장면이 많은데 카리스마와 파워가 대단하다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남자 배우로서 규모가 큰 전쟁물을 해보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국경의 남쪽’에 이어) 다시 북한 사람 역을 하게 됐는데 독특한 뉘앙스에 카타르시스를 느낄 때도 있다. 같은 민족이지만 적으로 나오는 사람들에게 페이소스가 있다.”(차승원) 재미교포로 미국 뉴욕대에서 영화를 전공한 이재한 감독은 미국 사회의 한인 갱을 조명한 ‘컷 런스 딥’으로 데뷔했다. ‘내 머리 속의 지우개’와 ‘사요나라 이츠카’를 찍었고, 오우삼 감독의 ‘첩혈쌍웅’ 할리우드 리메이크판 연출자로 발탁돼 할리우드 입성을 앞두고 있다.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포화 속으로’의 전투 장면 같은 경우 3차원(3D) 입체영상 전환도 고려하고 있다고 이 감독은 귀띔했다. “학도병 71명의 캐릭터는 새롭게 각색했지만 전쟁 과정이나 경위는 사실 그대로다. 전작에 멜로 영화가 많았지만 전쟁 영화와 대작에 대한 로망을 가지고 있어서 전혀 생소하지 않다. 전쟁은 인간을 가장 적나라하고 솔직하게 보여줄 수 있는 소재다. 이념보다 인간에 초점을 맞춰 밀어붙이고 있다.”(이재한) 합천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줌인 아시아] 민주화 지도자 잃은 네팔 어디로

    [줌인 아시아] 민주화 지도자 잃은 네팔 어디로

    네팔의 정정(政情) 불안이 가중되고 있다. 가뜩이나 혼란스러운 정국 상황에서 지난 20일 네팔 민주화 지도자인 기리자 프라사드 코이랄라(89) 전 총리가 사망함에 따라 마감시한을 두 달여 앞둔 평화협상에도 먹구름이 끼고 있기 때문이다. 총리를 3명이나 배출한 정치 명문가 출신의 코이랄라는 네 차례나 총리를 지내며 네팔 왕정 철폐와 내전 종식을 이끌어낸 ‘네팔 민주화의 화신’이다. 1960년대 민주화 운동으로 7년을 차디찬 감옥에서 보내기도 한 그는 2006년 대규모 시위를 통해 갸넨드라 전 국왕이 의회에 권력을 이양하도록 하는 데 한몫했다. 이어 총리에 오른 코이랄라는 군 통수권을 포함한 갸넨드라 전 국왕의 모든 권력을 박탈했다. 2008년 5월 갸넨드라가 왕위에서 물러나면서 240년간의 네팔 왕정이 막을 내렸다. 이런 상황에서 네팔은 1996년 네팔 ‘마오쩌둥(毛澤東)주의’ 반군이 왕정 철폐와 공산국가 건설이라는 기치를 내세우고 무장 봉기하면서 정부군과 피비린내 나는 내전을 치렀고, 이 과정에서 1만 3000여명의 희생자를 냈다. 2006년 11월 정부와 마오 반군 측은 공화제 이행, 반군의 정부군 편입을 약속하는 등의 내용이 포함된 평화협정을 체결했다. 코이랄라는 이 평화협상을 통해 마오 반군이 제도권으로 들어오게 함으로써 10년에 걸친 내전을 끝내는데 ‘일등공신’ 역할을 했으나, 2008년 제헌의회가 구성되면서 총리직에서 물러났다. 제헌의회 구성 총선에서 제1당이 된 마오 반군 정치조직인 네팔공산당(M)이 야심차게 반군의 정부군 편입을 추진했으나 야당과의 갈등으로 실각했고, 네팔공산당 실각 후 출범한 새 정부의 주축인 마르크스-레닌주의자 연대 네팔공산당(UML)과 네팔국민회의당(NC)도 지금까지 반군 편입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묘안’을 찾아내지 못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평화협상의 마감시한도 오는 5월28일로 다가오고 있어 네팔은 최대 정치위기를 맞고 있는 셈이다. 현재 평화협상의 가장 큰 현안은 무엇보다 마오 반군이 정부군에 편성될 수 있느냐다. 그런데 이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는 바로 코이랄라 전 총리가 쥐고 있었다. 그는 평화협상을 위한 고위급 정치위원회 회장을 맡아 정부와 마오 반군 측을 오가며 중재하는 핵심 역할을 맡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사망으로 네팔 정국은 또다시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혼미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여왕 전도연은 ‘하녀’, 신데렐라 서우는 ‘안주인’?

    여왕 전도연은 ‘하녀’, 신데렐라 서우는 ‘안주인’?

    ‘칸의 여왕’ 전도연(37)이 ‘하녀’가 됐다. 충무로의 ‘신데렐라’ 서우(25)는 하녀 전도연의 어린 여주인으로 분해 도도하고 섬뜩한 표정을 드러냈다. 지난 17일 약 3개월간의 촬영을 마무리한 ‘하녀’는 전도연과 서우를 비롯, 이정재, 윤여정 등 등장인물들의 스틸이미지를 공개했다. 먼저 타이틀롤인 ‘하녀’로 변신한 전도연은 메이드복을 입은 채 위태로운 표정과 자세로 극중의 위험한 관계를 예고했다. 반면 서우는 음산한 카리스마를 발산하는 안주인으로 분해 이미지 변신을 예고했다. KBS 2TV 드라마 ‘신데렐라 언니’에서 순수하고 귀여운 이미지의 신데렐라 은조를 연기할 서우는 영화 ‘하녀’를 통해 상반된 매력을 드러낼 계획이다. ‘하녀’의 마지막 촬영을 마친 전도연은 “임상수 감독의 작품이었기에 새로운 도전과 변신을 감수했다.”며 “아직도 끝이라는 것이 실감이 안 난다.”고 아쉬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이어 “늘 한결 같은 모습으로 호흡을 맞춘 이정재와 윤여정, 힘든 역할을 잘 따라온 막내 서우에게 고맙다.”고 동료 배우들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드러냈다. ‘하녀’의 출연 배우들에게 희열을 느끼면서 작업했다는 임상수 감독은 “전에 알던 전도연과는 전혀 다른 여인의 모습을 담았다.”고 기대감을 감추지 않았다. 한편 ‘하녀’는 한국 스릴러 영화의 걸작으로 손꼽히는 고(故) 김기영 감독의 1960년 원작을 리메이크하는 작품이다. 상류층 가정의 하녀로 들어간 여인이 주인 남성과 육체적 관계를 맺으면서 평온했던 가정을 파국으로 몰아가는 파격적인 스토리를 담은 ‘하녀’는 오는 5월 개봉 예정이다. 사진 = 서울신문NTN DB, 미로비젼 서울신문NTN 박민경 기자 minkyung@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법정스님 출가 전 사진 공개

    법정스님 출가 전 사진 공개

    법정 스님의 출가 전 젊은 시절의 사진들이 공개돼 관심을 끌고 있다. 법정 스님과 고향 목포에서 12살 때 만나 60년 이상 우정을 나눠 왔던 박광순(78) 전남대 명예교수는 19일 자신이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던 법정스님의 대학 시절 모습 등을 공개했다. 이 가운데 1955년 11월25일 스님이 7명의 친구와 사진관에서 찍은 것으로 보이는 흑백사진에서는 스님이 당시 대학생들이 입던 검은색 학생복을 입고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띠고 있다. 이 사진은 스님이 서울의 선학원에서 당대 선승인 효봉 스님을 만나 불교에 귀의하기 1달여 전에 찍은 사진으로, 출가 전에 찍은 마지막 사진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스님은 친구들과 흑산도와 홍도를 여행하고 새벽녘 모래사장 위에서 여행의 추억을 사진으로 남기기도 했다. 어렸을 적부터 방학이 되면 산과 절을 찾아다녔다는 스님은 해남 대흥사로 나들이를 떠나 대흥사 탑과 경내 섬진교 앞에서 사진을 찍기도 했다. 이 밖에도 박 교수는 스님이 출가하고 나서 합천 해인사 등에서 찍어 보내온 사진과 친구 부부의 안부를 물으며 보냈던 엽서 등도 공개했다. 광주 연합뉴스
  • 예비군 훈련장 60년 된 카빈소총 직접 쏴보니…

    예비군 훈련장 60년 된 카빈소총 직접 쏴보니…

    18일 서울 북부의 북한산 자락에 위치한 예비군 훈련장. 아직은 차가운 산바람 사이로 수십 발의 총성이 연달아 울렸다. 5.56x45㎜소총탄의 사격음과 사뭇 다른 7.62x33㎜, 일명 ‘카빈탄’의 사격음이었다. 이 날 훈련을 받은 기자도 ‘M-16A1’ 소총을 썼던 이전과는 달리 ‘M-1 카빈’(Carbine) 소총을 지급받았다. 총을 들어보니 가장 먼저 ‘가볍다.’란 생각이 들었다. 탄창 없이 2.4㎏에 불과한 카빈의 특징을 몸으로 알 수 있었다. 살펴보니 목재로 된 개머리판과 총열 덮개가 눈에 들어왔다. 단순하지만 견고하게 만들어진 장전손잡이와 노리쇠 뭉치도 보였다. 전시에 생산된 만큼 빨리 만들기 위해 부품을 최대한 단순하게 만든 총다웠다. 노리쇠 뭉치 한켠에는 ‘U.S.A’라는 각인도 보였다. 미국에서 생산됐다는 뜻이다. 군용 카빈소총이 1945년까지만 생산된 것을 고려하면 이 총의 나이는 최소 65세였다. 실제로 기자의 총은 별다른 이상이 없었으나 다른 예비군이 지급받은 총은 노리쇠의 왕복운동이 원활치 않거나 아예 가늠자가 떨어져 있는 등 세월의 흔적이 느껴졌다. 이윽고 사격 시간. 60년이 넘은 총이 잘 발사될까 싶었지만 사격장에 비치된 카빈소총은 이미 수백발의 총알을 별다른 이상없이 토해내고 있었다. 기자도 순서를 기다려 5발을 지급받아 연습사격을 해 표적지를 확인한 후 다시 5발의 기록사격을 실시했다. 결과는 예상 밖이었다. 10발 중 9발이 표적지에 명중했다. 빗나간 한 발도 표적지 주변에 맞은 것으로 추측됐다. 연습사격때 영점을 모르는 상태에서 사격해 표적지의 모서리에 구멍 4개가 뚫려 있었기 때문이다. 연습사격의 결과를 바탕으로 오조준해 실시된 기록사격의 결과 지름 4㎝의 원 안에 5발이 모두 명중했다. ‘안맞을 것’이란 선입견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카빈소총을 처음 쏴본다는 예비군 정모씨(28세, 회사원)는 “총이 워낙 오래된 것 같아 불안한 마음도 있었지만 실제로 사격을 해보니 이전에 써본 M-16보다 반동이 적었고 명중률도 생각보다 높게 나온 것 같다.”고 말했다. ◆ M-1 카빈의 유래 ‘단축형 총기’라는 뜻의 ‘카빈’에서 알 수 있 듯이 이 총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의 주력소총이던 ‘M-1 개런드’(Garand) 소총의 구조를 간략화해 단축시킨 총이다. 개런드 소총의 경우 무게가 4.3㎏, 길이가 1107㎜에 달해 공병이나 의무병, 박격포병 등이 사용하기엔 무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카빈소총은 이들에게 지급되기 위해 무게와 크기를 줄이고 반동이 약한 30-06탄을 쓰는 총으로 개발돼 일선에 보급됐다. 이후 카빈소총을 사용해본 일선부대의 반응이 뜨겁자 개런드 소총을 보조하는 역할이었던 애초의 계획을 바꿔 지급범위를 더 확대했다. 덕분에 카빈소총은 개런드 소총과 비슷한 600만 정 이상 생산돼 전 세계에서 널리 사용됐다. 우리나라는 6·25전쟁 전 미군에게 4만 7000여정을 지원받은 것을 시작으로 전쟁을 치루며 21만 9000여정을 추가로 지원받았다. 이후 베트남전을 치루며 M-16A1 소총으로 교체되기 까지 약 20년간 개런드 소총과 함께 국군의 주력을 차지했으며 현재는 예비군용으로 돌려졌다. 서울신문 M&M 최영진 군사전문기자 zerojin2@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선택 2010 지방선거 D-75] 지자체 아이디어+주민참여 합작

    ‘참신한 아이디어와 주민의 참여’ 성공한 해외 지방자치단체의 공통점은 두 가지 키워드로 요약된다. 지방 정부의 참신한 발상과 주민의 참여가 더해진 민·관 협력을 통해 재정 건전성을 높이고 지역을 발전시킨 사례가 많다. ●효고현 ‘지산지소’ 운동 일본 혼슈 서쪽에 위치한 효고현은 지역에서 생산된 먹거리를 그 지역에서 먼저 소비하는 ‘지산지소(地産地消)’ 운동으로 유명하다. 각종 식품 파동으로 안전한 먹거리를 찾으려는 주민 욕구를 바탕으로 ‘직판소’라는 시스템을 운영해 주민이 적극 참여할 수 있도록 이끈 게 성공의 요인이었다. 나아가 효고현은 지역 먹거리를 지역 주민이 안심하고 소비할 수 있도록 2004년부터 ‘효고현 식품 인증제’를 도입했다. ●슈퍼 식용유 회수… 정부 재활용 1960년대 일본의 대표 공업도시로 통하던 기타큐슈가 자타가 공인하는 환경도시로 변신할 수 있었던 것도 민·관 협력으로 가능했다. 1970년대 들어 주부를 중심으로 시민운동이 시작됐고, 여기에 지방 정부와 기업이 동참하면서 효과를 낸 것이다. 지금도 기타큐슈내 40여곳의 동네 슈퍼마켓에는 다른 지역에서 보기 힘든 폐식용유 수거통이 있다. 폐식용유를 자동차연료로 재활용하기 위해 시가 2008년 9월부터 수거하고 있는 것이다. 도입 당시 월 600ℓ였던 수거량이 지금은 4300ℓ에 이를 만큼 주민 참여도가 높다. ●철물공장을 레저단지로 개조 독일의 에슬링겐은 인구 9만명의 소도시이지만 ‘디자인 도시’를 표방하며 외화벌이로 유명해졌다. ‘자동차 도시’ 슈투트가르트로부터 10㎞ 거리에 위치한 지리적 특성 때문에 자동차 부품과 각종 철물 제품을 생산하는 공업도시로 성장했지만 철물공장을 개조한 문화·레저 복합단지인 ‘다스 딕’의 활약으로 연 100만명이 넘는 관광객을 끌어모으고 있다. 권경득 선문대 교수는 18일 “지방자치의 주요 목적은 지역 주민의 생활 수준 향상과 지역의 경제발전이므로, 민·관의 협조는 지방자치 성공의 필수 요건”이라면서 “민·관의 협조 체제를 구축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지역 주민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주현진기자 jhj@seoul.co.kr
  • 문성근 “영화로 유족들 위로하고 싶다”

    문성근 “영화로 유족들 위로하고 싶다”

    한국전쟁 당시 발생한 ‘노근리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 ‘작은 연못’이 8년 만에 완성작을 선보였다. 고인이 된 박광정을 포함해 김뢰하, 이대연, 문소리, 송강호, 박노식, 유해진 등과 함께 배우 문성근, 강신일, 김승욱, 전혜진 등이 노개런티로 출연했다. 18일 오후 4시 왕십리CGV에 열린 영화 ‘작은 연못’의 언론시사 및 기자간담회 자리에 참석한 문성근은 “이 영화가 노근리 사건 유족들에게 위로가 될 수 있으면 좋겠다.”라고 출연소감을 밝혔다. 문성근은 “88년 이상우 감독과 인혁당 사건을 다룬 연극을 했다. 흥행은 참담하게 실패했지만 간혹 유족들이 공연을 보러 온 적 있었다. 그들 앞에서 연기하기가 힘들었다.”며 20여 년 전 이상우 감독과의 작업을 회상했다. 그는 이어 “그후 재심 결과 무죄로 판명 난 이후에 유족분들이 찾아와 ‘연극해 준 것 고마웠다. 그 연극으로 힘을 많이 받았다.’고 말해줬다. 그 말 들으니 기분이 좋았다. 이 영화도 유족들에게 위로가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사건 발생 60년 만에 영화로 완성된 ‘작은 연못’은 노근리 사건을 경험한 생존자들과 유가족들이 60년 동안 가슴 속에 간직해온 이야기를 통해 한국전쟁을 재조명하는 한편 평화의 메시지를 전달하고자하는 의도를 담고 있다. 개봉은 4월 15일. 서울신문NTN 이재훈 기자 kino@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월드 뉴스라인] 독일 軍 복무기간 6개월로 단축

    독일 정부가 올해 안으로 현행 9개월인 의무복무기간을 6개월로 단축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징집기준은 완화해 입영대상자를 늘릴 계획이다. 이 경우 독일의 군 복무는 기초 군사훈련 3개월, 병과 훈련 2개월, 부대 근무 1개월로 이뤄지게 된다. 군 복무를 원하지 않을 경우 지금처럼 병원, 요양시설, 민간단체 등에서 대체 복무를 할 수 있다. 독일은 1956년 18세 이상 모든 남성을 대상으로 징병제를 도입했다. 복무기간은 1960년대에는 18개월이었지만 2002년부터 9개월로 줄었다.
  • ‘산수유 1번지’ 전남 구례

    ‘산수유 1번지’ 전남 구례

    꽃을 보면 눈이 즐겁고 마음이 화사해집니다. 입가에는 보일 듯 말 듯 미소가 번집니다. 어떤 꽃인들 그렇지 않겠습니까마는, 차디찬 겨울을 이겨내고 피어나는 봄꽃의 유혹은 도저히 뿌리칠 수가 없지요. 얼마 전 입적한 법정 스님은 ‘한 사람은 모두를 모두는 한 사람을’이란 저서를 통해 “우리가 꽃을 보고 좋아하는 것은 우리들 마음에 꽃다운 요소가 깃들어 있기 때문”이라며 “일이 바쁜 사람들은 한가해서 꽃구경이나 다닌다고 하겠지만, 어딘가에 꽃이 피었다고 일부러 친구와 함께 꽃구경을 떠난다는 것은 진정 꽃다운 일”이라 했습니다. “산에 살면 산을 닮고 강에 살면 강을 닮는다. 꽃을 가까이하면 꽃 같은 삶이 된다.”고도 했지요. 봄꽃들이 흐드러지게 피고 있습니다. 특히 산수유가 그렇습니다. 매화에 내줬던 봄의 전령 자리를 올해 단단히 꿰찬 듯합니다. 섬진강 자락에 기댄 전남 구례군의 마을마다 노란 산수유가 다투어 피었습니다. 산수유 앞에 서서 고민도 털어 놓고, 세상 사는 이야기도 나눠보는 게 어떻겠습니까. 꽃으로부터 많은 위로와 가르침을 받게 되지 않을까요. ●앞마당·돌담길·논두렁 온통 꽃구름 산수유는 세 번 꽃을 틔운다. 먼저 꽃망울이 벌어지고, 20여개의 샛노란 꽃잎이 돋아난다. 이후 4∼5㎜ 크기의 꽃잎이 다시 터지면서 하얀 꽃술이 드러나 왕관 모양을 만든다. 열흘 붉은 꽃 없다지만, 산수유가 한 달 가까이 노란 꽃구름을 피워 내는 것도 이 때문이다. 봄물에 방게 기어 나오듯, 고샅길과 개울가 곳곳에서 조금씩 얼굴을 내밀던 산수유가 산동면 반곡마을께 이르자 노란빛 선연한 군락을 이루기 시작한다. 3월로 들어서자마자 꽃망울을 터뜨린 산수유 덕에 농가 앞마당과 돌담길, 논두렁이며 산기슭이 온통 꽃구름이다. 게다가 철없이 내린 폭설이 하얀 모자까지 덧씌우며 좀처럼 보기 힘든 빼어난 풍경을 펼쳐 놓았다. 한 관광객은 “흐미, 꽃멀미 나겄소.”라며 벌어진 입을 쉬 다물지 못했다. 반곡마을 위쪽은 국내 최대의 산수유 군락지인 상위마을이다. 꽃망울이 눈과 꽃샘추위 때문에 잔뜩 웅크린 상태. 하지만 따뜻한 훈풍이 보듬기만 하면 금방이라도 팝콘처럼 터질 기세다. 주민들에 따르면 아래 반곡마을과 고도차이는 크지 않지만, 기온차는 제법 커, 이처럼 피는 시기가 다르다는 것. 상위마을 위에 있는 정자 ‘산유정’에 오르면 산수유마을 전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만복대 자락에서 부드럽게 곡선을 그리며 흘러내린 다랑논과 마을 한가운데를 흐르는 개울, 그리고 대숲과 산수유 군락이 어우러져 영락없는 풍경화를 그려낸다. ●마을마다 같고도 다른 풍경 박미연 구례군 문화관광해설사는 마을의 형상에 따라 산수유를 감상하는 맛이 다르다고 했다. “상위마을 산수유가 산 아래 옴팍하니 넓게 들어서 있다면, 현천마을은 제주도의 밭처럼 돌담 안에 빼곡히 들어서 있지요. 달전마을은 길게 옆으로 펼쳐져 있고요.” 계천리의 현천마을은 산수유마을 포스터의 배경이 된 곳이다. 그만큼 ‘사진발’을 잘 받는다. 마을 뒤 견두산은 모양새가 ‘현(玄)’자형이다. 또 마을 뒤로 옥녀봉의 옥녀가 매일 빨래를 했다는 내(川)가 흐르고 있어 현천(玄川)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마을입구의 현계정을 지나면 돌담을 두른 밭고랑마다 산수유꽃이 내려와 외지인을 반긴다. 돌담길은 미로처럼 구불구불 이어지며 시골정취를 한껏 뿜어낸다. 현천마을 산수유의 밑동은 나이가 300년을 넘겼지만, 꽃을 피운 가지의 나이는 60년이 채 안 된다. 1948년 여수·순천사건 때 토벌대가 산수유를 모두 베어버렸기 때문. 그러나 산수유는 다시 가지를 뻗고 꽃을 피우며 생을 이어왔다. 마을 최고의 풍경 포인트는 마을 공동작업장 오른쪽의 산자락. 개울 위 다리를 건너 10여분 올라야 한다. 산수유와 고즈넉한 산골 풍취가 어우러져 선경을 펼쳐낸다. 근동의 사진작가들이 즐겨 찾는 곳이기도 하다. 현천마을에서 19번 국도를 타고 남원 쪽으로 5분 남짓 가다 보면 산수유 시목지(始木地)가 있는 계척마을에 닿는다. 근거는 박약하지만, ‘산동’(山洞)이란 지명은 1000년 전 중국 산둥(山東)성의 처녀가 지리산 산골로 시집오면서 가져온 산수유 묘목을 심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계척마을의 산수유 시목(始木)의 수령도 1000년쯤 됐다는 것. ‘할머니 나무’로 불리는 산수유 시목은 세월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 지지대에 의지하고 있지만, 여느 젊은 나무 못지않게 해마다 꽃을 활짝 피운다. ‘할아버지 나무’가 있는 달전마을도 잊지 말고 둘러보시라. 고즈넉한 시골 풍경에 더해 아름드리 산수유들이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한껏 드러내고 있다. ●오늘부터 구례 산수유 꽃축제 구례군은 18~21일 산동면 지리산온천지구 일대에서 ‘제12회 구례산수유꽃축제’를 연다. 축제추진위원회는 지난 겨울 유난히 춥고 눈이 많이 내려 꽃봉오리가 예년에 비해 훨씬 화려하고, 선명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산수유꽃길 소달구지·마차타기, 홍염염색 장인과 함께하는 염색체험, 산수유 대형 족욕탕, 산수유꽃길 트레킹 등 산수유와 관련된 건강체험 프로그램이 대폭 확대됐다. 상금 1000만원이 걸린 산수유꽃 디카사진 콘테스트와 전국어린이 사생대회, 산수유 건강 학술세미나 등 다양한 부대행사도 곁들여진다. 디카사진 콘테스트 응모는 축제 홈페이지(www.sansuyu.go.kr)에서 받는다. 전남 영암에서 열릴 예정인 ‘2010년 F1대회’ 홍보관도 마련된다. F1대회에 출전하는 경주용 자동차, 이른바 ‘머신’(Machine)도 실제 전시될 예정이다. (061)780-2727. 글 사진 구례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여행수첩(지역번호 061) →가는 길:서울에서 자가용을 타고 갈 경우 호남고속도로 전주나들목→17번 국도(남원 방향)→춘향터널→19번 국도(구례 방향)→밤재터널→지리산온천랜드 이정표→좌회전→2㎞ 직진→상위마을 순으로 간다. 대전통영간고속도로를 이용할 경우 함양분기점→88고속도로 남원나들목→19번 국도→상위마을. 구례행 직행버스(4시간 소요)가 서울 남부터미널에서 하루 6회 운행한다. 기차는 하루 14회. 구례구역에서 내린다. 상위마을까지는 구례공용터미널에서 1시간 간격으로 버스가 다닌다. 구례군청 문화관광과 780-2450. →맛집:구례읍내 영실봉은 갈치조림만 40년 넘게 해 온 집이다. 1인분 8000원. 782-2833. 동아식당은 구례 주민들뿐 아니라 외지 식객들도 알음알음 찾아가는 선술집. 가오리찜과 족발탕이 유명하다. 1만원. 구례터미널 인근에 있다. 782-5474. 3·8장이 서는 날이라면 장터에서 팥칼국수 한그릇 먹어도 좋겠다. 3500원. 010-6861-0639. →잘 곳:읍내에서는 새단장한 온천각이 깔끔하다. 3만~4만원. 782-0021. 화엄사 초입의 한화리조트(1588-2299), 마산면의 전통 한옥 쌍산재(www.ssangsanje.com, 011-635-7115) 등도 ‘강추’할 만하다.
  • 재미 정치학자 박한식교수 간디·킹·이케다 평화상

    재미 정치학자 박한식교수 간디·킹·이케다 평화상

    재미 정치학자인 미국 조지아대 박한식(70) 교수가 15일(현지시간) 한반도 평화 등에 기여한 공로로 세계평화에 공헌한 인물에게 수여하는 ‘간디·킹·이케다 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모교인 미 애틀랜타 모어하우스 대학이 2001년 제정한 이 상은 세계 평화와 비폭력운동에 기여한 인사에게 수여된다. 역대 수상자 중 8명이 노벨 평화상 수상자와 겹칠 정도로 권위와 명예를 인정받고 있다. 모어하우스 대학은 성명을 통해 “박 교수가 한반도에서 평화와 비폭력 환경 조성을 위해 헌신해온 점을 높이 평가해 올해의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재미한인 정치학자 1세대인 박 교수는 1960년대 유학을 온 뒤 미 대학에서 한국정치와 남북관계에 대한 연구를 주도해 왔다. 특히 1990년부터 지금까지 북한을 50차례 이상 방문, 북한체제에 대한 객관적인 실상을 파악하고 이를 토대로 남북관계 연구는 물론 정책제안까지 발표해 온 북한문제 전문가다. 애틀랜타 연합뉴스
  • [글로벌 나눔 바이러스 2010] 받은 만큼 갚을 때

    [글로벌 나눔 바이러스 2010] 받은 만큼 갚을 때

    우리나라 해외원조 역사는 경제성장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 우리나라는 1950~60년대까지 주로 선진국의 ‘무상원조’에 의존했다. 당시 우리나라 연평균 성장률은 4~5%, 연평균 투자율은 10%를 넘었다. 무상원조가 대부분을 차지했던 해외저축률은 8%에 달했다. 당시 우리 경제는 외국이 대가 없이 지원하는 원조물자에 크게 의지했다. 하지만 60년대부터 무상원조가 점차 감소해 유상원조로 대체됐고, 70년대 말에는 해외원조 대부분이 중단됐다. 이후 90년대까지는 소규모 지원만 받았다. 이른바 ‘한강의 기적’을 이룬 90년대 중반 이후 우리나라는 원조를 ‘받는 국가’에서 ‘주는 국가’로 완전히 바뀌었다. 1995년까지 45년간 우리나라가 해외에서 지원받은 유·무상 원조액은 약 330억달러에 이른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12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24번째로 개발원조위원회(DAC)에 가입했다. DAC는 OECD 산하 위원회의 하나로, 개발도상국의 경제·사회 발전을 지원하기 위해 원조를 제공하는 나라들이 모여 정책을 조정하는 ‘선진 공여국’ 단체다. 국가 경제를 주로 원조에 의존한 최빈국에서 ‘원조 선진국’으로 전환한 사례는 우리나라가 유일할 정도로 의미가 컸다. 우리나라의 해외원조 시작은 1963년 미국 국제개발청(USAID) 원조자금에 의한 개발도상국 연수생의 위탁훈련에서 비롯됐다. 1965년부터는 정부 자금으로 개도국 훈련생 초청사업을 시작했다. 1970년대 중반까지는 주로 유엔기구 등의 자금을 받아 지원했지만, 원조규모가 확대되면서 1977년에는 110만달러 규모의 우리나라 물자를 개도국에 지원하는 대규모 원조사업이 시작됐다. 1982년부터는 한국개발연구원(KDI)이 개발도상국 주요 인사를 초청, 우리의 개발경험에 대한 교육을 하는 국제개발연찬사업(IDEP)을 시작했다. 1987년 한국수출입은행을 통해 300억원을 출연, 대외경제협력기금(EDCF)을 조성했다. 1991년 한국국제협력단(KOICA)을 설립해 각 부처에 흩어져 있던 기술원조, 인적교류사업 등을 통합했다. 지난해 기준으로 국가 차원의 유상원조를 뜻하는 ‘공적개발원조(ODA)’ 총 지출규모는 1조 860억원으로, 2008년 9328억원보다 16.4% 증가했다. 경제위기에도 불구하고 해외원조를 적극적으로 늘린 것이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다. 해외원조를 바탕으로 경제성장을 이룬 만큼 진정한 선진국 반열에 합류하려면 원조액을 더욱 적극적으로 늘려야 한다는 지적이었다. 한국해외원조단체협의회 관계자는 “지난해 ODA 지출규모는 국내 총소득(GNI)의 0.11%였다.”며 “정부의 원조액이 계속 증가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세계적인 추세와 비교하면 아직 저조하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우리나라 원조규모는 DAC 24개 회원국 가운데 19위였다. 민간단체를 통한 지원에도 국민들이 적극적인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정부 조사에 따르면 2007년 기준으로 기부에 참여한 우리나라 국민은 전체의 55%에 달한다. 1인당 평균 기부액은 10만 9000원이다. 하지만 이 기부금 가운데 해외구호에 사용된 것은 9.3%에 그쳤다. 원조단체 세이브더칠드런 관계자는 “개발도상국 생산자들이 만든 물건을 구입해 국가의 구조적 빈곤을 해결하는 방법 등 빈곤국 원조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현용기자 junghy77@seoul.co.kr
  • 가수 데뷔 50주년 윤항기 동생 윤복희와 기념공연

    ‘장밋빛 스카프’로 유명한 가수 윤항기(67)가 데뷔 50주년을 맞아 여동생 윤복희(64)와 함께 기념 콘서트를 연다. 윤항기는 내달 30일 오후 7시30분 서울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윤항기·윤복희의 여러분’이라는 제목으로 50주년 무대를 마련한다. 1958년 미8군 무대에서 데뷔한 윤항기는 1960년대 그룹사운드 키보이스, 1970년대 키브라더스 활동과 솔로 활동을 통해 ‘별이 빛나는 밤에’, ‘나는 어떡하라구’, ‘해변으로 가요’ 등의 히트곡을 남겼다. 윤복희가 빅히트시킨 ‘여러분’은 윤항기가 작사·작곡했다. 음악인생의 동반자인 남매는 3년 만에 다시 갖는 합동무대에서 팬들에게 추억과 감동을 선물할 예정이다. 2007년 30여년 만에 무대에 함께 섰던 두 사람은 “윤복희가 없었으면 대중스타, 목사란 자리도 없었다. 동생이기 이전에 스승이자 대선배”(윤항기), “오빠가 노래를 더 잘한다.”(윤복희)며 서로에 대한 각별한 애정과 신뢰를 내보였다. 5만 5000~11만원. (02)529-1929. 이경원기자 leekw@seoul.co.kr
  • [도시와 길] 청주 성안길

    [도시와 길] 청주 성안길

    2006년 지방선거 한나라당 합동유세. 2009년 청주·청원 상생발전위원회 주민서명운동 발대식. 2010년 2월 중학생들의 졸업식 뒤풀이 스트리킹. 성격이 전혀 다르지만 이들에게도 공통점이 있다. 모두 청주시 상당구에 위치한 성안길에서 이뤄졌다는 것. 정치인이나 시민단체, 청소년 등 계층을 불문하고 청주시민들이 가장 즐겨 찾는 곳이 바로 성안길이다. 유동인구가 청주지역에서 가장 많은 곳으로, 청주지역 최대 상권, 최대 번화가 등이 성안길을 따라다니는 수식어다. 지금은 젊은이들의 문화·패션1번지가 됐지만 주변에는 청주의 유일한 국보인 용두사지 철당간 등 많은 문화유적이 자리잡고 있어 역사와 문화가 공존하는 곳으로 불러도 될 듯싶다. 문화와 삶의 치열함이 함께 숨쉬는 청주의 심장이기도 하다. ●일제 이후 한동안 ‘본정통’으로 불려 성안길은 지금은 해체되고 없어진 옛 청주읍성의 북문자리에서 남문 자리에 이르는 큰 길을 말한다. 이 때문에 청주읍성의 역사가 곧 성안길의 역사가 된다. 청주읍성은 예로부터 청주의 사회, 경제, 문화, 행정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그런 청주읍성 안쪽에 있던 길이었으니 당시에도 많은 사람들이 이 길과 함께 호흡하며 살았을 것이다. 청주문화사랑방을 운영하는 이철희(50) 청주시 문화관광과장은 “성안길은 천년 전에도 사람들로 붐볐을 것”이라고 말했다. 청주읍성은 임진왜란시 최초로 승전고를 울린 곳으로 유명하다. 우리에게 자랑스러운 곳이지만 일본에는 치욕적인 곳이다. 이 때문에 일제 침략기인 1920년대 도시계획이라는 미명 아래 청주읍성은 완전히 파괴됐다. 당시 청주읍성 안에는 청주목과 충청병영 등 수많은 집무청과 객사가 있었는데 대부분 헐렸다. 이때부터 청주읍성의 가운데 큰길을 일본식 지명인 ‘본정통(本町通)’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광복이 됐지만 1990년대 초까지 많은 사람들이 ‘본정통’이라는 명칭에 숨겨진 아픈 역사를 모른 채 지금의 성안길을 ‘본정통’으로 불렀다. 본정통은 ‘한 도시의 중앙에 있어 중심이 되는 거리’라는 뜻으로 지금의 ‘중심가’ 정도로 해석하면 된다. 다행히도 1993년 청주문화사랑모임이 청주시민을 대상으로 좋은 이름을 공모해 ‘청주읍성 안쪽길’ 이라는 뜻의 성안길을 채택, 1994년부터 공식 이름이 됐다. ●유동인구 시간당 2000여명 달해 성안길은 ‘본정통’이라는 옛 이름답게 현재 청주의 중앙에 위치하면서 지역을 대표하는 거리다. 시간당 2000여명이 유동하면서 청주 최대 상권을 형성하고 있다. 서울 명동, 대구 동성로와 함께 우리나라 3대 가두 상권으로 불린다. 핵심부에 해당하는 로드상권 거리만 600m에 달한다. 은행, 우체국, 패션전문점, 백화점, 극장, 분식점, 고급레스토랑, 커피숍, 보석가게, 미용실, 병원, 헌혈의 집 등 없는 게 없다. 상권 점포수는 대략 2200여개다. 종사자만 6000여명에 달한다. 이 때문에 성안길에 오면 화려함과 함께 삶의 치열함을 동시에 느낄수 있다. 성안길 상가는 청주 경제의 뿌리이기도 하다. 올해 창립 91주년을 맞는 청주상공회의소의 시발점이 바로 일본자본에 대항하기 위해 1919년 성안길 상인들이 구성한 청주상무연구회였다. 성안길은 1960년대 말 청주시가 도시정비사업을 하면서 차량이 다니던 도로에 보도블록을 깔아 차없는 거리를 조성하면서 상권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로드상권이 좌우로 흩어지지 않고 한줄로 길게 이어지기 때문에 동선이 끊기지 않는 상권의 이상적인 조건을 갖춰 최대 상권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이다. 성안길이 젊은이들에게 열정을 토해내는 용광로와 같은 곳이라면 중·장년층들에게는 추억이 숨쉬는 곳이다. 장현석(62) 청주문화원장은 “청주인구가 15만명에 불과했던 1970년대 젊은이들이 갈 만한 다방, 극장, 제과점 등이 모두 성안길에 있었다.”며 “당시 성안길 뒷골목에 있던 돌체다방에는 청주지역 유지들이 많이 모여 있었다.”고 회상했다. 당시에 있었던 현대극장과 청주극장은 서점과 백화점으로 변했고, 순두부와 우동으로 유명한 그집식당과 공원제과는 지금도 성안길에서 맛과 추억을 함께 판다. 약속장소 1순위였던 중앙공원도 그자리에 그대로 남아있다. 장 원장은 “성안길은 청주를 상징하는 길”이라며 “성안길에 속해 있는 가구점골목 같은 특색있는 거리를 문화의 거리로 조성하는 방안이 추진되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글 사진 청주 남인우기자 niw7263@seoul.co.kr ■ 문화유적 즐비한 성안길 國寶 용두사지 철당간… 700년된 망선루… 성안길 곳곳에는 많은 문화유적이 자리잡고 있다. 상점들의 화려한 네온사인 속에 역사가 함께 살아숨쉬는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문화유적은 청주의 유일한 국보(41호)인 용두사지 철당간이다. 962년에 만들어진 용두사지 철당간은 신라말 고려초 사찰로 추정되는 용두사라는 절 앞에 있던 불기(佛旗) 게양대다. 당시 절들은 부처의 위신과 공덕을 나타내기 위해 ‘당’이라는 깃발을 걸었다고 한다. 번화가의 높은 콘크리트 건물들이 즐비한 가운데 고고하게 하늘을 향하고 있는 철당간의 원래 높이는 18m였다고 한다. 고층건물이 흔하지 않던 당대 사람들이 보기에는 대단한 위용이었을 것이다. 요즘 7층빌딩 높이 정도 되니 청주로 오는 사람들이 이 당간이 보이면 ‘청주에 다 왔구나’ 하고 생각할 정도로 등대와 같은 구실을 했다고 한다. 철당간은 쇳물을 틀에 부어 찍어낸 원기둥을 쌓아올려 만들었다. 다행히도 세번째 원기둥에 ‘준풍(峻豊) 3년에 용두사에 철당간을 지었다.’는 내용이 적혀 있어 오랜 역사성을 알 수 있다. ‘준풍’은 고려 광종이 임금의 자리에 오른 시기를 스스로 만들어 쓴 연호다. 성안길 인근에 위치한 중앙공원에 들어서면 지방유형문화재 110호인 망선루를 볼 수 있다. 망선루는 고려시대 청주목 관아의 부속 누정이다. 정면 5칸, 측면 3칸의 2층 누각으로 700년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충북도가 발간한 문화재지에 따르면 이 건물은 한때 ‘취경루’로 불렸다. 공민왕 10년(1361년) 홍건적의 난으로 개성이 함락되자 왕은 공주와 더불어 남으로 피천해 안동으로 옮겼다가 같은 해 11월 청주에서 문과와 감시를 행하고 방(榜)을 취경루상에 게재했다고 한다. 전란 중에도 청주에 머물며 과거를 행했으니 교육의 도시인 청주의 역사적 정체성에 일조를 한 건축물이라고 할까. 성안길에 있는 청원군청 내에는 고을수령이 공무를 집행하던 관아의 중심건물인 동헌이 있다. 이 건물의 처마 끝에 장식된 암막새기와에는 ‘조선 순주25년(1825)에 관아를 전면적으로 개축했다.’고 적혀있다. 정면 7칸, 측면 4칸에 겹처마 팔작지붕 목조구조로 1982년 충북도 유형문화재 109호로 지정됐다. 이 밖에도 충청도 전체 방어를 맡았던 병마절도사의 출입문인 충청도병마절도사영문(충북도유형문화재51호), 고려말 충신 목은 이색 등이 ‘이초의 난’에 연루돼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혔다가 대홍수가 나서 옥이 파손되자 이 나무위로 올라가 목숨을 구했다는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는 압각수(충북도 기념물 제5호), 임진왜란 때 청주성 탈환에 앞장선 조헌선생, 박춘무선생, 영규대사의 추모비 등도 성안길에 오면 만날 수 있다. 청주 남인우기자 niw7263@seoul.co.kr ■ 이평주 성안길 번영회장 - 한복·영화 특화거리로 260m 인공수로 추진 “상인들이 똘똘 뭉쳐 성안길의 옛 명성을 되찾겠습니다.” 성안길은 아직도 청주 최대의 번화가이자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상업지역이다. 하지만 청주 외곽지역에 대규모 아파트단지들이 들어서면서 신흥 상권이 형성돼 경기가 예전같지 않다. 성안길 번영회 이평주회장은 올해 지자체 도움 등을 받아 다양한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우선 6000만원을 들여 성안길 활성화 연구용역을 의뢰할 예정이다. 시민들을 성안길로 끌어들일 수 있는 구체적이고 확실한 해법을 찾기 위해서다. 또 20억원을 들여 성안길 상점들을 찾는 소비자들을 위해 주차장을 조성할 예정이다. 현재 부지를 물색중이다. 지난해 신종인플루엔자 때문에 열지 못했던 성안길 페스티벌을 오는 10월 초에 3일 일정으로 개최할 계획이다. 성안길 곳곳에서 펼쳐지는 페스티벌은 패션쇼, 인기가수 축하공연, 노래자랑 , 무료시식행사 등 다양한 행사로 꾸며질 예정이다. 성안길 페스티벌은 올해로 13회째다. 성안길 상점들의 도난을 방지하기 위해 성안길 곳곳에 CCTV 40대도 설치하기로 했다. 이 회장과 상인들은 성안길만의 특색을 살린 문화의 거리 조성 계획도 갖고 있다. 성안길 내 남문로의 한복전문점 밀집지역에 한복의 아름다움과 전통문화를 적극 알릴 수 있는 한복 문화의 거리를 조성하고, 대형 멀티플렉스 영화관 4곳이 자리잡고 있는 산업은행 주변에는 한류스타들의 동상을 세워 영화의 거리를 만든다는 구상이다. 이 회장은 “성안길은 전국 모든 상권에서 접근이 용이한 충북의 중심상권”이라면서 “청주를 대표하는 곳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성안길을 건강하고 유익한 곳으로 만들어 나가겠다.”고 말했다. 청주시는 올해 30억원을 들여 성안길 260m에 인공수로를 설치할 예정이다. 도심물길창조사업의 일환으로 차없는 거리와 연계해 휴식공간과 특화거리를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청주 남인우기자 niw7263@seoul.co.kr
  • ‘추노’ 이다해 ‘미스터월드 2010’ MC 발탁

    ‘추노’ 이다해 ‘미스터월드 2010’ MC 발탁

    탤런트 이다해가 10억 세계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세계 대회 MC로 나선다.이다해는 오는 27일 인천 송도컨벤시아에서 열리는 세계 최고의 훈남을 가리는 ‘미스터월드 2010’의 파이널 무대에서 영국 출신 인기가수 겸 슈퍼모델 앨리샤 딕슨(Alesha Dixon)과 공동 MC를 맡게 됐다.’미스터 월드대회’는 세계 최고의 미인대회인 미스월드를 주최하는 미스월드조직위원회(MWO)에서 격년제로 개최하는 세계 대회로, 60년 가까이 명맥을 이어온 권위 있는 대회다. 이번’미스터 월드대회’는 전 세계 80여 개국의 훈남들이 모일 것으로 알려졌다.이다해는 미스터월드 선발대회를 통해 해외 진출에 날개를 달 것으로 보인다. 해외 영화 관계자들뿐만 아니라 전세계 일반 시청자들에게 단박에 눈도장을 찍을 수 있는 기회를 얻었기 때문이다. 이다해는 KBS 2TV 퓨전사극 ‘추노’ 촬영 틈틈이 대회 진행을 연습하고 있다.특히 이다해는 동양적인 외모와 도시적인 매력을 두루 갖춘 데다 영어와 중국어에 능통하다. 호주에서 학창 시절을 보내 글로벌 문화에 익숙하다는 것도 그녀의 장점이다.또 이다해는 170cm가 넘는 큰 키에 늘씬한 몸매, 동양의 신비로운 매력을 지닌 외모로 주최 측의 적극적인 러브콜을 받았다는 후문이다.최근 세계적인 엔터테인먼트 워너브라더스의 초청으로 할리우드 배우들과 함께 캐릭터 론칭 파티에 참석한 바 있는 이다해는 워너브라더스 글로벌의 브래드 글로브 대표와 개별만남을 갖고 작품에 출연해달라는 러브콜을 받아 주목받은 바 있다. 이에 해외 활동의 본격적 시동을 걸게 될지 관심이 집중된다.오는 12일 개막을 앞두고 있는 미스터월드 세계대회는 16박17일 일정으로 진행되며, 이다해는 대회 마지막 날인 27일 파이널 무대를 통해 전 세계 140여 국의 세계 유수 방송사를 통해 전파를 탈 예정이다.사진 = 서울신문NTN DB서울신문NTN 채현주 기자 chj@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법정스님 입적] 사리도 찾지 말고… 탑도 세우지 마라… ‘무소유’ 가르침

    [법정스님 입적] 사리도 찾지 말고… 탑도 세우지 마라… ‘무소유’ 가르침

    “사리를 찾으려 하지 말며, 탑도 세우지 말라. 번거롭고, 부질없으며, 많은 사람들에게 수고만 끼치는 일체의 장례의식도 행하지 말라. 내가 죽을 때는 가진 것이 없으므로 무엇을 누구에게 전한다는 번거로운 일도 없을 것이다.” 11일 입적한 법정 스님이 오래전 써놓은 ‘미리 쓰는 유서’의 한 토막이다. 그가 평생 지녀온 무소유 행보는 사람들에게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큰 가르침을 남겼다. 스님은 스스로 깨친 가르침을 평생 어기지 않으려 했던 단정한 구도자의 표본이자 그 정신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려 했던 위대한 스승이었다. ●대학 때 삶의 본질 의문에 출가 결심 1932년 전남 해남에서 태어난 스님은 전남대 상과대를 다니던 1954년 홀연히 출가를 결심한다. 한국전쟁의 비극을 몸소 경험하면서 인간의 삶과 죽음, 존재의 본질에 대한 근원적인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스님은 경남 통영 미래사로 입산, 다음해인 1956년 전남 순천 송광사에서 대한불교조계종 초대 종정 효봉 스님 문하로 출가한다. 28세에 경남 양산 통도사에서 구족계(具足戒·정식 승려가 지켜야 할 계율)를 받고 송광사, 해인사, 쌍계사 등에서 안거 수행을 한다. 1960년부터는 서울 삼성동 봉은사에서 동국역경원 초대원장인 운허(1892~1980) 스님과 더불어 ‘불교사전’ 편찬 작업을 시작한다. 이후 ‘한글대장경’ 역경(譯經)위원, 동국역경원 역경위원, 불교신문 역경국장을 거치며 경전 한글화 분야에서도 뚜렷한 족적을 남기게 된다. 그가 번역한 서산대사의 불교개론인 ‘선가귀감(禪家鑑)’(‘깨달음의 거울’로 번역)을 비롯, ‘숫타니파타‘, ‘불타 석가모니’, ‘진리의 말씀(법구경)’, ‘신역 화엄경’ 등은 지금도 국내 역경 사업의 주요 업적으로 평가된다. ●스님들이 뽑은 ‘닮고 싶은 생존스님’ 1위 스님이 본격적으로 ‘세상과 소통하는 수행자의 길’을 걷게 된 것은 함석헌, 장준하, 김동길 등 1970년대 당시 민주화 인사들을 만나면서부터다. 스님은 이들과 함께 잡지 ‘씨알의 소리’를 발행하고 민주수호국민협의회를 결성하며 민주화 운동에 참여했다. 그러다 1975년 송광사 뒷산에 불일암이라는 이름의 작은 암자를 짓고 홀연히 수행승의 자리로 다시 돌아간다. 세상에 허명(虛名)이 너무 많이 알려졌다는 이유에서였다. 그후 스님은 글쓰기에 매진하는 한편 조금씩 써왔던 글들을 책으로 묶어내게 된다. 스님의 대표작 ‘무소유’(1976년)도 이때 출간됐으며, 이후 나오는 책마다 베스트셀러 반열에 오르며 문명(文名)을 떨치게 된다. 한동안 스님의 보금자리 및 대중들과 만나는 광장이 됐던 서울 성북동 길상사와의 인연은 1996년부터다. 스님은 서울 도심의 요정이었던 대원각을 시주받아 이듬해 이곳에 길상사를 창건하고 회주(會主) 자리를 맡았다. 그 뒤 해마다 개원일(12월14일)에 가까운 일요일이 되면 기념법회를 열어 대중 법문을 해왔다. ●환경보호·생명사랑 운동 실천도 2003년 스님은 “내 스스로가 말이 너무 많았다.”면서 길상사 회주 자리마저도 내놓고 강원도 산골 오두막으로 들어가 스스로 땔감을 구하고 밥을 짓는 무소유의 삶을 실천했다. 그러나 최근 건강이 악화돼 병상에 눕기 직전까지도 길상사 대중법문만은 멈추지 않으면서 ‘세상과 소통하는 수행자의 길’을 꿋꿋이 걸었다. ☞ [포토] “큰 욕심 부리지 말고” 법정 스님 생전 활동 모습 그런 모습에 일반 대중들뿐 아니라 수행자들도 존경심을 나타냈다. 지난해 10월 조계종 불학연구소가 실시한 설문에서 스님은 원효, 성철, 달라이 라마 등에 이어 ‘스님들이 가장 닮고 싶은 스님’ 6위에 뽑혔다. 설문조사 당시 생존해 있던 스님 중에는 1위였다. 그렇다고 스님의 삶이 무소유의 실천과 법문, 글쓰기에만 그친 것은 아니다. 그는 1994년 사단법인 ‘맑고 향기롭게’를 발족, 환경보호와 생명사랑 운동도 꾸준히 실천했다. 세상을 향한 쓴소리는 입적 직전까지 이어졌다. 1970년대 반독재·민주화 운동은 물론 최근 대운하 사업을 두고는 “생명을 파괴하는 대재앙이자 국토에 대한 무례”라며 강도 높은 비판을 했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씨줄날줄] 열반과 상실의 사이, 무소유/김성호 논설위원

    일체의 마음과 몸이 얽히고 엮였다는 불교의 인다라망 세계일화(世界一華). 내 한몸 치중해 살다 보면 어찌 남 생각이 앞설까. 나도 살고 남도 살리자는 연기와 인연의 궁극적 가치는 영원히 바래지 않는 형형한 빛인 것을. 현실의 아둔하고 미련한 인생은 그래서 초월과 초탈을 어려워하기 마련이다. 고승대덕들의 ‘버리고 놓으라.’는 방하착(放下着)의 일갈이 아니더라도 말이다. 하물며 세속의 티끌과 터럭에 매달리고 쏠려 사는 미물 중생의 삿된 욕심에서랴. 그래서 현실을 뛰어넘어 치달았던 선승과 대덕들의 죽음은 두고두고 아쉬움을 남긴다.어제 열반에 든 법정 스님처럼. 무소유(無所有). 스님의 법신에 따라 속인들에게 남겨진 대명사 격의 유명한 명제. 마지막 찰나에 스님이 몸을 맡긴 길상사도 무소유의 산물이다. 권번 출신 소유주 김영한이 운영하던 고급요정 대원각을 무보상, 무조건으로 스님에게 기부해 태어난 길상사이니. 스님의 베스트셀러 ‘무소유’가 전한 울림의 현현한 증거다. 무소유의 증거가 길상사뿐일까. 감화의 물결은 수녀, 목사들의 개종과 천선으로 숱하게 이어졌고. ‘버리고 놓으라.’는 방하와, ‘나누고 전하자.’는 무소유가 어디 서로 다른 것일까. 불이(不二)의 두 가치들은 그래서 스님의 열린 행적으로 고스란히 남아 있다. 암울하고 답답했던 시절, 이웃종교와의 교감과 열린 소통이 어디 우연한 것일까. 세속에 휘말리겠다 싶으면 홀연히 벗어던지고 떠나곤 했던 스님의 삶이다. 출가본사 송광사 뒷산 불일암의 은둔수행이며, ‘무소유’의 유명세를 피해 강원도 산골 오두막에서의 두문불출…. 나를 다스리고 속된 도취에 젖지 않겠다는 극한의 경계였지만 어렵고 소외된 이웃을 향한 목소리는 아끼지 않았으니. 1960년대 말 함석헌, 장준하와 함께했던 민주수호국민협의회와 유신철폐 운동. 고 김수환 추기경과의 동행이 모두 다 우연이 아닌 것이다. 이판사판의 그 어떤 가름에도 헛되이 놓이지 않으려던 스님은 이제 속세의 육신을 벗고 해탈에 들었다. 스님이 생전 지극하게 말, 행동으로 보여줬던 무소유의 실천은 이제 누구의 몫일까. 스님들의 다비(茶毘)장에선 웃고 우는 감정의 엇갈림이 흔히 있게 마련. 스님이 열반의 경지에 들었으니 웃고 환영해야 하겠고. 한편으론 속세의 인연이 다한 상실의 아쉬움이 겹친다. 그래서 두 마음이 겹치는 스님의 입적은 유난히 더 사무친가 보다. 언제까지 죽음의 상실과 열반의 가치에 휘둘릴 수만은 없을 터인데…. 김성호 논설위원 kimus@seoul.co.kr
  • 전주 -대구 슈퍼섬유 개발 손잡았다

    전주 -대구 슈퍼섬유 개발 손잡았다

    국내 섬유산업을 대표해 온 전북 전주시와 대구시가 최첨단 신소재 섬유인 슈퍼섬유 공동 개발에 나선다. 전주기계탄소기술원과 한국염색기술연구소는 10일 대구 엑스코에서 ‘슈퍼 소재 공동연구 및 협력을 위한 업무협약’을 맺었다. 두 기관은 올해부터 2013년 2월까지 3년 동안 선진국에서 독점하고 있는 산업용 슈퍼섬유 관련 연구개발사업에 공동 참여하기로 했다. 고부가가치 산업용 섬유 생산의 전반적인 분야에 걸쳐 필요한 전문인력과 첨단장비를 상호 지원해 상생발전하는 기반을 구축한다는 전략이다. 주력 연구·개발 분야는 전주기계탄소기술원은 ‘탄소섬유’, 한국염색기술연구소는 ‘아라미드’와 ‘메디컬 섬유’다. 특히 전주와 대구가 국내 섬유산업을 양분해 온 지역인 만큼 산업용 슈퍼소재 융·복합제품 산업화에 공동노력함으로써 지역경제를 활성화시키고 세계 시장도 선점한다는 복안이다. 두 기관이 보유한 나노기술을 활용할 경우 메디컬섬유 등 융·복합형사업을 발굴할 것으로 기대된다. 또 품질시험 인증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의견을 교환해 윈윈 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전주기계탄소기술원은 대구·경북지역 200~300여개의 섬유업체에 탄소섬유를 제공해 슈퍼섬유산업을 활성화시킬 계획이다. 전주시 관계자는 “이번 슈퍼섬유 공동개발 협약으로 사양길에 들어선 전주와 대구지역 섬유업체들의 활성화는 물론 미래 신성장 동력이 마련돼 국제경쟁력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편 전주기계탄소기술원이 개발하고 있는 탄소섬유는 강도가 강철보다 10배 강하고 무게는 알루미늄의 4분의1에 불과한 신소재다. 1960년대 일본에서 개발에 성공, 비행기와 자동차, 풍력발전기 등에 널리 사용되지만 국내에서는 생산되지 못하고 있다. 전주시는 2005년부터 효성과 함께 탄소분야에 대한 공동연구에 들어가 지난해 초 탄소섬유의 원사가 되는 PAN 섬유의 연구개발에 성공, 국내 탄소섬유시장을 선점한 상태다. 한국염색기술연구소가 연구개발에 주력하고 있는 아라미드섬유는 강철보다 5배 강하고 500도의 열을 견딜 수 있어 일반 폴리에스테르보다 가격이 15배 이상 비싼 신소재 슈퍼섬유다. 대구시는 올해부터 한국섬유개발연구원, 염색기술연구소 등과 함께 슈퍼섬유, 메디컬섬유, 융·복합제품 연구개발과 기반구축에 나섰다. 앞으로 5년간 1400억원을 투입할 방침이다. 전주 임송학기자 shlim@seoul.co.kr
  • 김주열열사 50년만에 장례식 치른다

    김주열 열사 장례식이 그가 세상을 떠난 지 50년 만에 치러진다. 김주열 열사 추모사업회(대표 백남해 신부)는 11일 “다음달 11일 경남 마산과 전북 남원에서 4·19혁명의 도화선이 됐던 김주열(1943~1960) 열사의 장례식을 치른다.”고 밝혔다. 장례식은 50년 전에 김 열사의 시신을 인양했던 마산 중앙부두에서 발인과 시신 운구, 초혼제 등으로 시작된다. 이어 옛 마산도립병원, 3·15탑, 남성동파출소 등 당시 시위 현장을 돌며 노제를 지낸다. 또 김 열사의 묘소가 있는 전북 남원으로 이동한 뒤 제를 지내는 등 추모 행사를 개최한다. 장례식은 김 열사 유가족 10여명과 전국의 민주 인사, 시민 등 1000여명이 참석할 예정이다. 김 열사는 1960년 3월15일 자유당 독재정권과 부정선거에 항거하는 시위를 벌이던 중 실종됐다가 27일 만인 4월11일 마산 중앙부두에서 경찰이 쏜 최루탄이 눈에 박힌 채 시신으로 떠올랐다. 추모사업회는 “3·15의거 50주년을 맞아 개최하는 장례식은 범국민장으로 진행한다.”며 “많은 시민들의 동참을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50년 전 마산도립병원에 안치된 김 열사의 시신은 경찰이 몰래 빼돌려 장례를 제대로 치르지 못한 채 남원에 안장돼 이번에 장례 행사를 계획했다.”고 말했다. 창원 강원식기자 kws@seoul.co.kr
  • 하토야마 “비핵 3원칙 견지”

    하토야마 “비핵 3원칙 견지”

    │도쿄 이종락특파원│하토야마 유키오(얼굴) 일본 총리가 과거 정부의 미국 핵 반입 허용 ‘밀약’에도 불구하고 비핵 3원칙을 계속 견지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토야마 총리는 10일 외무성 전문가위원회가 과거 정권의 미·일 핵 밀약 사실을 확인했다고 발표한 이후 기자들에게 “비핵 3원칙은 계속 견지하겠다.”면서 “재검토할 필요가 없다.”고 밝혔다. 비핵 3원칙은 일본 정부가 ‘핵무기를 제조하지 않고, 보유하지 않으며, 반입하지도 않는다.’고 선언한 것으로 1968년 이후 사실상의 국시다. 하토야마 총리는 미·일 핵 밀약 확인이 미국과의 외교관계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는 “결코 미국과의 외교 관계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지 않는다.”면서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대처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정권을 바꾼 민주당 정부가 과거의 밀약에 대해 자료까지 포함해 공개한 것은 매우 잘한 것”이라면서 “핵을 포함한 억지력이 미·일 안보를 포함해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일본의 외무성 산하 전문가위원회는 9일 의혹이 제기된 네 가지 미·일 밀약설 가운데 1960년 미·일 안보조약 개정 당시 미국의 핵 반입을 사전협의 대상으로 하고도 비밀 의사록에서 핵 탑재 함정과 항공기의 기항·통과·비행 등을 허용한 것 등 3가지 밀약을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이에 미국 국무부의 필립 크롤리 수석대변인도 이날 “미·일 간 협력관계에 큰 영향을 주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크롤리 대변인은 이어 “일본 국민들이 핵무기에 대해 특별한 감정이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있다.”면서 “미국은 미·일 안전보장조약상의 (일본방위) 의무를 충실히 이행했고 앞으로도 계속 이행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발언은 일본의 밀약 공개가 미·일 안전보장조약 개정론으로 번지는 것을 우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jrlee@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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