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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로 간 순이’ 1960년대 여성의 삶 조명 전시회

    1960년대 가족들의 생활비와 학비를 벌기 위해 서울로 떠났던 여성들의 삶을 조명한 전시회가 열린다. 여성가족부는 16일부터 한달간 서울 대방동 소재 여성사전시관에서 ‘서울로 간 순이’ 전시회를 연다. 전시회에는 적게 낳기를 장려했던 ‘가족계획 포스터’, ‘오라이’를 외치던 버스 차장의 ‘돈가방’ 등 당시의 생활상을 담고 있는 물품 등이 전시된다. 여가부는 전시 시작을 기념해 오픈일에 ‘서울로 온 순이들에 대한 기억’을 주제로 포럼을 연다. 보리 혼식을 장려하던 60년대를 기념, 쌀·보리 혼식 주먹밥도 준비될 예정이다. 전경하기자 lark3@seoul.co.kr
  • 백석 미공개 동시 3편 ‘햇빛’

    백석 미공개 동시 3편 ‘햇빛’

    월북 시인 백석(1912~95)의 국내 미공개 동시(童詩) 세 편이 발굴, 공개됐다. 백석이 북한에서 구현한 작품 세계의 변화에 대한 빈틈을 메워줄 수 있는 중요한 자료라는 평가다. 서울 서초동 국립중앙도서관 통일부 북한자료센터는 최근 북한에서 발간된 1950~60년대 조선작가동맹 중앙위원회 기관지인 ‘아동문학’의 복사본을 확보했다. 이중 1960년 5월호에 남쪽에 공개되지 않았던 백석의 미공개 우화시(寓話詩) ‘오리들이 운다’, ‘송아지들은 이렇게 잡니다’, ‘앞산 꿩, 뒤산 꿩’ 등 세 편이 실려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백석이 1958년 1월 함경북도 삼수군 관평리 국영협동조합으로 내려간 뒤 1962년 10월까지 5년 가까운 기간동안 ‘사회주의 바다’ 등 노골적으로 북한 체제를 찬양하는 시 4편만 남긴 것으로 알려졌으나, 우화시도 여전히 썼음을 처음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백석 문학 전문 연구자인 김재용 원광대 국문학과 교수는 “백석의 문학 세계 변화와 북한 문학계에서 살아남기 위한 그의 노력을 정확히 보여주는 동시들”이라면서 “작품의 수준을 떠나 백석의 문학과 생애에 대한 연구의 중요한 설명이 담겨있다.”고 높이 평가했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원로가수 백설희씨 투병

    가수 전영록의 어머니인 원로가수 백설희(본명 김희숙·83)씨가 고혈압에 따른 합병증으로 투병 중이라고 전영록 측이 14일 전했다. 백씨는 지난해 12월 분당의 한 요양병원에 입원해 가족과 의료진의 보살핌을 받았으며, 조용히 치료를 받고 싶다는 본인의 뜻에 따라 13일 병원을 옮겼다. 1950~1960년대를 풍미한 백씨는 1943년 조선악극단에서 운영하던 음악무용연구소에 들어갔고 이후 조선악극단원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히트곡으로는 ‘봄날은 간다’, ‘물새 우는 강언덕’, ‘청포도 피는 밤’, ‘코리아 룸바’ 등이 있다. 전영록의 딸인 보람도 그룹 티아라의 멤버여서 3대째 가수 집안의 명맥을 잇고 있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박신양, ‘사랑의 리퀘스트’로 TV 컴백

    박신양, ‘사랑의 리퀘스트’로 TV 컴백

    배우 박신양이 TV 컴백작을 결정해 관심을 끌고 있다. 박신양이 선택한 컴백 프로그램은 영화나 드라마가 아닌 KBS 1TV ‘사랑의 리퀘스트’. 박신양은 지난 8일부터 아프리카 시에라리온에 머물며 봉사활동을 펼쳤으며 오는 19일 귀국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박신양이 참여한 프로젝트는 ‘2010 희망로드 대장정’의 일환으로 한국전쟁 60년을 맞아 우리나라를 도와줬던 나라들을 방문해 학교 및 병원 등을 짓는 사업이다. 배우 전광렬은 이미 이 프로젝트를 위해 라이베리아에서 봉사활동을 했으며 내달초 배우 유승호는 인도로 떠날 예정이다. 이 프로젝트는 6월 말부터 전파를 탈 예정이다. 박신양은 지난해 1월 종영한 드라마 ‘바람의 화원’ 이후 TV 출연을 하지 않았다. 사진=서울신문NTN DB 서울신문NTN 이재훈 기자 kino@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국민음료’ 칠성사이다 어느덧 환갑

    ‘국민음료’ 칠성사이다 어느덧 환갑

    코카콜라와 함께 국내 탄산음료 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칠성사이다’가 어느덧 환갑을 맞는다. 롯데칠성음료는 칠성사이다 발매 60주년(다음달 9일)을 기념해 350㎖ 페트병 제품을 새로 출시한다고 13일 밝혔다. 또 신제품 1병이 팔릴 때마다 15원씩 적립, 칠성사이다 브랜드 사이트(chilsungcider.co.kr)를 통해 어려운 이웃에게 후원금을 지급하는 행사도 갖는다고 덧붙였다. 1950년 서울 갈월동에서 태어난 칠성사이다는 지금의 롯데칠성을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국민 브랜드’로 함께했다. 롯데칠성은 칠성사이다 발매일을 회사 창립기념일로 삼고 있다. 롯데칠성에 따르면 칠성사이다는 지난 60년간 총 150억병가량 판매된 것으로 추산된다. 최근 10년간 60억병이 팔렸는데, 이는 한 사람이 매월 1병씩 마신 꼴이다. 현재 중장년층은 학창시절 소풍을 갈 때 꼭 챙겼던 추억을 갖고 있다. 국내 사이다 시장에서 시장점유율은 78%에 이르고, 지난해에만 단일품목으로 2800억원의 매출을 거뒀다. 칠성사이다의 브랜드는 사이다 발매 당시 공장을 운영했던 동료 7명의 성씨가 모두 다른 점에 착안, ‘칠성(七姓)’이라는 이름을 붙인데서 유래했다. 나중에 한자 표기를 ‘칠성(七星)’으로 바꾸었다. 광고도 한 시대를 풍미하며 일화를 남겼다. 1980년대에는 윤시내, 구창모, 이선희 등 당대 톱가수들이 ‘슈비 슈바 칠성사이다’로 끝나는 CM송을 불러 회자되곤 했다. 90년대부터는 ‘맑고 깨끗한’ 제품 이미지를 자연과 연결시켜 제품 특성을 극대화하는 마케팅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롯데칠성 관계자는 “2000년대 들어 다양한 기능성 음료가 등장하면서 탄산음료의 위상이 약해졌지만, 카페인과 색소가 없는데다 콜라와 달리 토종 브랜드라는 장점 덕분에 지금도 꾸준한 매출을 올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류지영기자 superryu@seoul.co.kr
  • 6·25전사 호주군 부인 60년만에 남편곁으로

    6·25전사 호주군 부인 60년만에 남편곁으로

    6·25전쟁 때 전사해 부산 대연동 유엔기념공원에 잠든 남편의 묘지에 자신의 유해를 함께 묻어 달라고 유언한 호주 참전용사 부인의 순애보가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부산 유엔기념공원관리처는 14일 오후 유엔기념공원에서 영연방국가(영국,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의 6·25 참전용사와 유가족 200여명 등이 참석한 가운데 헌화 참배행사와 유골 합장식을 연다고 13일 밝혔다. 유골 합장식의 주인공은 1950년 10월3일 당시 34세의 나이로 전사해 이곳에 안장된 호주군 대위 케네스 존 휴머스톤과 그의 아내 낸시 휴머스톤. 남편과 사별 이후 독신으로 지낸 낸시는 지난해 10월 91세의 나이로 숨졌으며, 생전 유엔기념공원에 잠든 남편과 함께 있고 싶다는 유언을 유족들에게 남겼다. 유족들은 유엔기념공원에 이 같은 뜻을 전했고 공원 측은 참전용사의 숭고한 뜻을 받들어 이를 수용했다. 유엔기념공원은 “6·25전쟁 호주군 참전용사로 영연방국가 추모식에 참가하는 휴머스톤의 친구가 낸시의 유해가 담긴 유골함을 가져와 묘지 옆에 합장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박은정 유엔기념공원 홍보과장은 “대부분 나이가 어린 상태에서 참전해 전사했고 결혼을 한 전사자는 부인이 재혼하는 경우도 있어 부부가 합장하는 사례는 드물다.”고 말했다. 부산 김정한기자 jhkim@seoul.co.kr
  • “한경직 목사 청빈·나눔의 삶 계승을”

    “한경직 목사 청빈·나눔의 삶 계승을”

    한경직(1902~2000) 목사가 ‘노벨 종교상’이라 불리는 템플턴 상을 받았을 때의 일이다. 그는 100만달러 상금을 받자마자 옆에 있던 후배 목사에게 “북한 선교에 쓰라.”고 건네며 “잠깐 동안 백만장자 노릇 잘했다.”며 웃었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장, 숭실대·월드비전 이사장 등을 맡으며 종교·교육·복지 등 각계에서 이름을 날린 그였지만 그는 유품의 지팡이와 털모자, 옷가지 몇 점이 전부일 정도로 청빈한 삶을 살았다. 한 목사가 떠난 지 올해로 10년이 됐다. 서울 저동 영락교회와 한경직목사기념사업회는 10주기를 맞아 대규모 추모예배를 여는 한편 다양한 추모행사를 진행한다. 추모예배는 기일 전날인 18일 영락교회에서 열린다. 현역 최고령 목사인 방지일(100) 목사가 설교할 예정이다. 평남 평원군에서 태어난 한 목사는 1933년 신의주 제2교회 전도사로 부임하면서 목회자의 길로 들어선다. 광복 직후 월남한 그는 1945년, 지금의 영락교회 전신인 베다니전도교회를 세우고 고아원·학교 등을 설립해 6·25전쟁의 상처를 보듬는 일을 전개한다. 이어 1960년대에 전국복음화 운동을 펼치고, 1981년부터는 한국기독교100주년기념사업협의회 총재 및 이사장을 맡는 등 교단 화합에 힘쓰면서 한국 개신교계의 상징적인 인물이 된다. 기념사업회는 한 목사 생존 때인 1970년대 꾸려졌다. 그를 기린다는 목적보다는 그가 추진해온 장학사업 및 농어촌·해외 목회자 연수를 체계적으로 벌이기 위해서였다. 그러다 2000년 한 목사의 소천(召天) 이후 유작 출판, 학술 세미나 등 그의 뜻을 기리기 위한 사업을 이어오고 있다. 올해는 10주기를 맞아 안에서만 진행하던 추모 사업을 확장할 예정이다. 기존 학술 세미나는 28일 ‘한경직 목사와 선교’를 주제로 숭실대에서 열고, 10월31일부터 5일간 영락교회에서 국제평화·화해 콘퍼런스를 열 예정이다. 고인의 전집도 국문·영문으로 출판하고 다큐멘터리, 인터뷰 DVD 등도 제작한다. 숭실대 기독교박물관에서는 21일부터 다음달 22일까지 유품전시회가 열린다. 한경직목사기념사업회 사무총장 한진유 장로는 “고인은 존경받는 종교인일 뿐 아니라 사회복지 및 교육, 나라 사랑에도 앞장섰던 분”이라면서 “꾸준한 추모사업을 통해 그분의 뜻을 널리 알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윤정희·전도연·강수연, 칸 레드카펫 여왕은 누구?

    윤정희·전도연·강수연, 칸 레드카펫 여왕은 누구?

    제63회 칸 국제영화제가 내달 12일 개막을 앞두고 오는 15일께 공식 초청작을 발표할 전망이다. 이에 올해는 어떤 한국배우들이 칸 영화제의 레드카펫을 밟게 될지 관심이 모이고 있다. 지난해는 영화 ‘박쥐’의 김옥빈과 김해숙, ‘마더’의 김혜자, 일본영화 ‘공기인형’의 배두나 등이 제62회 칸 영화제를 찾아 전 세계 영화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올해는 ‘시’와 ‘하녀’, ‘달빛 길어올리기’ 등이 경쟁부문 진출에 가능성을 보여 각 영화의 주연을 맡은 윤정희, 전도연, 강수연 등이 ‘칸의 여인’이 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 美 버라이어티 “윤정희의 ‘시’, 경쟁부문 유력” 한국 여배우의 ‘전설’이자 1960년대 한국영화의 황금기를 이끈 ‘은막의 여왕’ 윤정희는 이창동 감독의 ‘시’를 통해 16년 만에 스크린으로 돌아왔다. 극중 어린 시절의 꿈이던 문학에 도전하는 60대 여성 미자로 분한 윤정희는 과거 ‘여배우 트로이카’ 시절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노년 여인의 캐릭터를 선보일 예정이다. 미국의 주간지 ‘버라이어티’는 12일(현지시각) 윤정희 주연의 ‘시’를 “63회 칸 영화제에 진출이 유력한 아시아 영화”로 언급해 시선을 모으고 있다. 또 윤정희는 프랑스에서 주로 활동한 피아니스트 백건우의 아내로도 잘 알려져 있어 그가 주연한 영화에 대한 칸 영화제의 시선도 남다를 것으로 기대된다. ◆ ‘칸의 여인’ 전도연, ‘하녀’로 한 번 더 전도연은 2007년 ‘밀양’으로 이미 칸 영화제의 여우주연상을 차지한 바 있는 전도연은 고(故) 김기영 감독의 동명원작을 리메이크한 ‘하녀’로 칸의 문을 한 번 더 두드린다. 전도연은 출산 후 첫 스크린 복귀작인 ‘하녀’에서 순수와 도발을 오가는 파격적인 하녀로 분한다. 국내는 물론, 해외 무대에서 연기력을 인정받은 전도연과 영화 ‘바람난 가족’으로 프랑스 평단의 호평을 받은 임상수 감독이 호흡을 맞춘 ‘하녀’는 칸 영화제에서도 좋은 소식을 기대할 수 있을 전망이다. ◆ 강수연, 임권택 감독과 ‘달빛 길어올리기’ 임권택 감독의 101번째 영화인 ‘달빛 길어올리기’의 강수연도 또 다른 ‘칸의 여인’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강수연과 박중훈이 주연을 맡은 이 작품은 한국 고유의 한지를 복원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는다. 임권택 감독은 2002년 영화 ‘취화선’으로 칸 영화제의 감독상을 수상하며 한국 최고의 감독으로 인정받은 바 있다. 또 강수연은 임권택 감독의 ‘씨받이’(1986)와 ‘아제아제 바라아제’(1989)로 각각 베니스국제영화제와 모스크바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약 20년 만에 다시 만난 두 사람의 ‘달빛 길어올리기’가 칸 영화제에서 거둘 수확에 시선이 집중된다. 사진 = 서울신문NTN DB, 영화 ‘하녀’·‘시’ 스틸이미지 서울신문NTN 박민경 기자 minkyung@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40대 남성들, 빈티지 ‘낭만’을 입는다

    40대 남성들, 빈티지 ‘낭만’을 입는다

    삶의 여유와 낭만을 찾는 중년 남성들이 늘고 있다.국내 한 경제연구소에서 발표한 트렌드 중 하나가 바로 ‘브라보 시니어 라이프’다. ‘브라보 시니어 라이프’란 중년들이 각종 취미 활동과 패션 스타일을 통해서 새로운 자아를 찾아 나선다는 의미.최근 중년들은 가치관 변화와 더불어 소비 트렌드 또한 변화하고 있다. 취미활동과 자아 개발을 하며 여유를 즐기듯 패션도 여유와 낭만이 동시에 느낄 수 있는 빈티지를 찾고 있는 추세다.경제적 여유를 찾기 시작하는 40대의 중년 남성들. 그들의 빈티지는 10대와 20대의 빈티지보다 고급스럽고 편안한 것이 특징이다. ◆자연스러운 구김의 미학럭셔리함이 느껴지는 빈티지 재킷은 어디에서나 편하게 입을 수 있는 웨어러블한 아이템이다. 자연스러운 구김은 편안함을 주지만 특유의 베이직한 컬러감이 무게감을 더해 준다.특히 빈티지의 자연스러운 구김은 그 동안의 반듯한 수트로 대표되는 인위적인 수트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남성들의 심리가 담겨 있다.◆럭셔리 빈티지에는 바랜 듯한 컬러가 제격 올해는 세월이 묻어 나는 듯 바랜듯한 컬러가 주목을 받고 있다. 네이비 컬러를 비롯해 브라운와 베이지 등의 컬러로 구성된 재킷은 오래되어 보이지만 그래서 더 멋스러운 럭셔리 빈티지를 완성한다.특히 네이비 컬러의 빈티지 재킷은 교복을 연상하게 하며 자연스러운 구김과 함께 어린 시절의 향수를 불러일으킨다.LG패션 마에스트로의 최혜경 디자인 실장은 “네이비 재킷에 베이지 팬츠를 매치해주거나 컬러감 있는 니트를 활용해 재킷 안에 이너로 입거나 어깨에 걸치면 여유로운 ‘낭만 룩’을 연출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60년대 패셔니스타처럼 포인트를 60년대에는 많은 남성들이 모더니즘에 사로잡혀 슬림한 수트를 선호했다. 여기에 감각적인 스카프와 행커치프를 매치해 포인트를 줬다.특히 60년대 패셔니스타들의 필수 아이템이었던 스카프나 행커치프는 그 시절의 향수와 함께 멋스러움을 느낄 수 있는 아이템으로 감각적인 럭셔리 빈티지 스타일을 완성하기에 제격이다.또한 이런 남성 액세서리는 베이지와 네이비 위주의 빈티지룩에 포인트가 될 수 있다. 특히 비교적 크기가 작아 과감한 컬러로 자신만의 개성을 표현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최혜경 디자인 실장은 “베이지 컬러의 재킷에는 레드, 그린 등의 원색 컬러로 과감하게 포인트를 주면 경쾌함을 살릴 수 있다. 컬러 선택이 어렵다면 이너와 같은 컬러로 매치해 주면 안전하고 센스 있는 스타일 연출이 가능하다.”라고 전했다.◆ 새 옷 같지 않은 자연스러운 착용감은 필수 새 옷이지만 가먼트 워싱을 거친 빈티지 재킷에서는 자연스러운 착용감을 느낄 수 있다. 가먼트 워싱이란 완제품을 기계에 통째로 넣어 워싱하는 기법으로 내추럴한 분위기와 함께 내 옷 같은 편안함과 새 옷의 신선함을 동시에 준다.최혜경 실장은 “바쁜 일상 속 취미 활동과 패션으로 여유를 찾는 남성들이 늘고 있다. 최근 노타이의 비즈니스 캐주얼이 바로 이러한 트렌드를 반영한 것”이라며 “특히 입었을 때의 편안함과 옷에서 느껴지는 분위기마저 여유로운 빈티지 스타일은 주목 할 만하다.”라고 말했다.사진 = LG패션 마에스트로서울신문NTN 채현주 기자 chj@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백록담 깊이 아시나요

    최근 한라산 백록담이 계속되는 비로 봄철에는 보기 드물게 만수위를 이뤄 탐방객들의 탄성을 자아내게 하고 있다. 그렇다면 백록담의 깊이는 얼마나 될까? 백록담은 분화구 둘레가 1720m, 깊이는 108m이다. 분화구의 동서 길이는 약 600m, 남북 약 400m로 면적은 21만 230㎡에 이른다. 백록담의 담수면적은 평균 1만 1460㎡로, 최대 만수시에는 2만 912㎡에 이르러 장관을 이루게 된다. 여름 장마철 백록담의 최고 만수위는 4m 정도며 요즘 백록담은 계속되는 봄비로 만수위에 가까운 3m 정도의 수위를 보이고 있다. 백록담의 깊이는 예로부터 한라산 정상을 찾는 등반객들의 큰 관심의 대상이었다. 1601년 안무어사로 제주에 온 김상헌은 ‘남사록’에서 “한라산 정상은 함몰되어 솥과 같고 얕은 곳은 종아리가 빠지고 깊은 곳은 무릎까지 빠진다.”고 했다. 제주 세계자연유산관리본부 관계자는 “예전의 기록으로 볼 때 백록담의 담수량은 줄어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이는 1960년대 이후 등반객이 크게 늘면서 답압에 의한 사면의 붕괴가 가속화되면서 백록담 물그릇에 토사가 많아 담겨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백록담 수위는 2003년 한라산연구소가 처음으로 담수 조사를 실시, 백록담의 최대 만수위는 4.05m라는 기준점을 확보했다. 제주 황경근기자 kkhwang@seoul.co.kr
  • “박사님 가르침은 내 인생의 나침반”

    “박사님 가르침은 내 인생의 나침반”

    “박사님 가르침은 오늘의 저를 만든 인생의 나침반이었습니다.” 정운찬 국무총리가 12일 자신의 은인인 고(故) 프랭크 윌리엄 스코필드 박사의 서거 40주기 추모 행사에 참석해 고인의 넋을 기렸다. 정 총리는 이날 오전 국회 대정부질문 출석에 앞서 30여분간 국립서울현충원 스코필드 박사의 묘지를 찾아 헌화했다. 스코필드 박사는 정 총리가 평소 ‘자신을 키운 4명의 아버지’ 가운데 1명으로 꼽아 온 인물이다. 정 총리는 추도사에서 “스코필드 박사는 제암리 마을과 수촌리 마을의 학살사건 현장을 사진으로 찍어 일제의 만행을 세계에 알리신 선구자”라면서 “스코필드 박사야말로 우리 민족의 자유와 권리를 신장하고 온몸으로 정의를 실천한 박애정신의 표상이자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은인”이라고 말했다. 정 총리는 “저는 박사님의 분에 넘치는 은총을 받았던 수혜 학생의 한 명”이라면서 “중학교에도 진학할 형편이 못 됐던 저는 ‘입학금을 마련해 주겠다.’는 박사님을 만나 학업에 뜻을 둘 수 있었다.”고 일화를 소개하기도 했다. 정 총리는 1960년 중학교 때 처음 스코필드 박사를 만났다. 스코필드 박사는 아버지를 여읜 정 총리를 수양아들로 삼았고 등록금과 생활비 등을 지원해 줬다. 이날 참배에는 정 총리가 명예회장을 맡고 있는 ‘호랑이 스코필드 동우회’ 회원들이 함께했다. 정 총리는 이날 저녁에는 서울대에서 열린 스코필드 박사 추모 40주년 기념행사에도 참석했다. 1916년 캐나다 의료 선교자 자격으로 한국에 온 스코필드 박사는 한국에 대한 각별한 애정으로 ‘석호필(石虎弼)’이라는 한국 이름을 짓고, 해방 이후 교육·의료 활동을 했다. 강주리기자 jurik@seoul.co.kr
  • [도시와 길] 서울 미아리고갯길

    [도시와 길] 서울 미아리고갯길

    “미아리 눈물 고개~ 님이 떠난 이별 고개~ 화약연기 앞을 가려 눈 못 뜨고 헤매일 때…” 미아리 하면 떠오르는 것은 바로 ‘단장의 미아리고개’란 옛노래다. 첫 음절만 들어도 노래에 한(恨)이 가득 서려 있다. 철사로 손을 묶이고 맨발로 다리를 절면서 뒤를 자꾸만 돌아보며 북쪽으로 끌려가는 남편과 십년이 가도 백년이 가도 살아서 돌아오기만을 바라는 부인의 애틋한 마음이 절절하게 묻어 있다. 이 노랫말을 지은 반야월(93)선생은 실제로 피란 중 맏딸이 공포에 질려 숨져 고갯길에 자신의 손으로 묻을 수밖에 없었던 슬픈 사연이 있다고 한다. 미아리고개는 성북구 동선동과 돈암동 사이에 있는 고개로 되넘이고개(되너미고개)라고도 불렸다. 병자호란 때 오랑캐, 즉 ‘되놈’이 한양을 침범할 때 고개를 넘었기 때문에 되너미고개라고 불렀다고 한다. 남쪽인 돈암동에서 길음동을 지나 의정부 방면으로 가는 길목에 이 고개가 마지막 고개여서 되너미고개라고 했다는 설도 있고, 미아7동에 있는 불당골 자리에 있던 ‘미아사’라는 절 이름에서 유래되었다는 설 등 유래가 분분하다. ●한국전쟁 땐 최후의 방어지 역할 미아리고개는 한국전쟁 당시 서울 북쪽의 유일한 외곽도로였기 때문에 최후의 방어지로 치열한 교전이 벌어진 곳이다. 경사가 어찌나 가파르던지 길음시장과 부근 주거지역보다 도로의 높이가 높아 4·19혁명 때에는 미아로 옆 길가로 버스가 굴러떨어지는 사고도 있었다 한다. 미아로는 돈암동로터리를 기점으로 돈암동, 길음동을 동북방향으로 뻗어 미아삼거리까지 폭 25m, 길이 1.5㎞에 달한다. 도성의 북쪽 방향에 위치해 의정부, 포천, 철원 등지에서 서울로 입성하는 유일한 관문이자 교통의 요충지 역할을 한 탓에 교통정체와 사고가 잦았다. 1964~1966년 대대적인 도로확장공사로 미아로 도로의 폭은 8m에서 구간에 따라 23~35m의 4차선도로로 확장되었다. 경사도 10도나 낮아졌다. 그러나 대대적인 확장공사에도 불구하고 미아로의 교통정체는 계속됐다. 결국 2007년 4월 603억여원(보상비 78.6% 차지)을 들여 성북우체국에서 창문여고에 이르는 구간을 폭 35m, 왕복 7~8차선으로 확장하는 공사에 들어가 1년 10개월만인 지난해 2월 개통해 숨통이 트였다. ●시각장애인들의 점성촌 고갯길이 시작되는 태극당 빵집 맞은편에 점성촌이 들어선 것도 미아로 확장공사를 벌이며 경사를 완만하게 만들기 위해 옹벽을 세우면서부터다. 남북 방향으로 옹벽을 만들면서 동서로 횡단하는 길을 그 밑으로 뚫어 자연스레 굴다리가 생겨났다. 중구에서 이주해온 시각장애 역술인들이 옹벽과 굴다리를 의지하며 하나 둘 점판을 깔면서 터를 잡았다. 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100여곳이 성업하면서 외국인들도 찾는 관광코스가 될 정도였으나, 지금은 간신히 10여곳만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미아리고개에 점집이 번성하게 된 이유는 고개 너머에 조성된 한국인 전용묘지 덕분이라고 한다. 예로부터 영혼은 북으로 드나든다고 믿었는데, 미아리고개가 바로 영혼이 다니는 길목이었던 셈이다. ●‘미아리 텍사스촌’도 사라지고… 단장의 미아리고개와 더불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미아리 텍사스촌’이다. 이곳은 고갯길을 넘자마자 시작된다. 예전에 월곡동은 미아로를 중심으로 길음동과 마주하고 있는 곳으로 미아시장이 형성되어 길음동 사람들이 자주 왕래했다. 지대가 모래땅이어서 물이 잘 나와 콩나물공장들이 즐비했다. 일제 강점기부터 해방 이후까지 그 모습을 찾아볼 수 있었지만 1960년 이후 염색공장, 피혁공장들이 들어서면서 쇠락했다. 이 지역이 성매매 집결지로 유명해진 것은 1968년 ‘종삼(종로3가 사창가)소탕작전’이 실시된 이후 포주와 성매매 여성들이 미아시장 근처 월곡동 88일대에 터를 잡으면서부터이다. 구 관계자는 “미아리 텍사스라는 지명이 어떻게 유래되었는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성매매 집결지 안에 있는 술집이 서부영화에 등장하는 술집의 모습과 흡사했기 때문이라는 설이 유력하다.”고 했다. 그는 “서부영화 속에 등장하는 술집이 1층은 술 마시며 포커를 치고 2층에서 잠을 자는 장면이 많이 나오는 탓에 붙여졌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창 호황을 누릴 적엔 400군데서 1000명이 넘는 여성들이 일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황량할 정도로 을씨년스러운 모습을 하고 있다. 흉물스럽게 남겨진 몇몇 건물의 먼지 쌓인 유리문과 너덜너덜해진 커튼, 굳게 잠긴 오래된 문에선 호시절이 언제였는지 가늠하기조차 힘들다. 이들이 이른바 ‘9·23 사태’라고 부르는 2004년 9월 성매매특별법 실시 이후 여성들이 하나둘 떠났기 때문이다. ●39층 주상복합 아파트로 탈바꿈 성매매 집결지라는 오명을 싫어하는 사람들에게 더욱 반가운 것은 이곳이 신월곡 1·2·3구역으로 나뉘어 2003년 미아균형발전촉진지구로 지정된 것. 구 관계자는 “올해 토지보상문제가 해결되면 내년 5월쯤에는 본격적인 공사에 착수하지 않겠느냐.”면서 “그래도 여전히 골목 업소들에선 간간이 영업을 하는 것으로 안다.”고 귀띔했다. 특히 이 일대는 39층 높이의 주상복합 아파트 등 랜드마크 건물들이 들어설 예정이어서 강북의 새로운 중심지로 부상하고 있다. 실제 이 길을 지나가다 보면 곳곳에 초고층 빌딩과 아파트가 잔뜩 들어서고 있다. 얼핏 보아도 금세 대기업이 참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뉴타운사업과 관계자는 “성매매집결지에 달라붙은 미아시장 역시 역사 속으로 사라져 내년 6월이면 지하 6층, 지상 23층 198가구 규모의 주상복합 아파트로 재탄생한다.”면서“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옛 추억이 서린 곳이 하나 둘 사라지는 것이 한편으론 안타깝지만 주민들 대부분은 윤락가 동네라는 어두운 이미지를 벗을 수 있어 반기고 있다.”고 말했다. 글ㆍ사진 강동삼기자 kangtong@seoul.co.kr
  • [글로벌 시대] 하룻밤의 기적은 없다/박현정 크레디트스위스 기업커뮤니케이션 이사

    [글로벌 시대] 하룻밤의 기적은 없다/박현정 크레디트스위스 기업커뮤니케이션 이사

    일요일마다 홍콩의 공원과 시내 곳곳에는 진풍경이 펼쳐진다. 길바닥에 삼삼오오 자리를 깔고 앉아 그야말로 인산인해를 이룬 필리핀 가정부들의 모습이 그것이다. 휴일을 맞아 딱히 갈 곳도, 다른 방법으로 여가를 즐길 경제적 여유도 없는 이들은 이런 식으로 모국인들과 모여 휴식과 사교를 겸한 시간을 보낸다. 현재 홍콩에는 약 14만명의 필리핀인이 월 50만~60만원 정도의 임금을 받으며 가정부로 일하고 있다고 한다. 필리핀은 해외에서 일하는 약 1000만명의 자국민이 모국으로 송금하는 외화가 GNP의 14%를 차지하는 국가다. 홍콩에서 만나는 이 같은 풍경은 노동력 수출이 경제의 버팀목인 나라의 적나라한 초상이다. 상당수가 대졸학력임에도 불구하고 타국에서 남의 아이를 키우며 돈을 버는 여성노동자들의 가슴 아픈 현실이기도 하다. 이들은 요즘 많은 젊은이들이 동경하는, 세계를 무대로 일하는 글로벌 노마드와는 정확히 반대지점에 위치해 있다. 저임금 노동력을 밑천으로 어쩔 수 없이 타국으로 내몰려 이 나라 저 나라를 떠돌며 일하는 완전히 다른 형태의 글로벌 노마드인 것이다. 지금 이들이 속한 시간대가 필리핀이 아시아의 촉망받는 부자나라였던 1950, 60년대였다면 어땠을까 상상해 본다. 이들의 모습은 그리 멀지 않은 과거, 중동의 건설현장에서 땀 흘렸던 우리네 아버지들과 고학력임에도 불구하고 단순노동이나 영세자영업에 종사했던 초기 한국이민자들을 떠올리게 한다. 또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조선족 가사도우미들이나, 차별을 견디며 산업현장의 그늘에서 묵묵히 일하는 국내 외국인 노동자들의 모습과도 자연스럽게 겹쳐진다. 홍콩의 일요일 풍경 속에서 내가 태어난 나라가 어딘지에 따라 현재 내 삶의 지형 또한 많이 달라져 있었을 거라는 생각에 닿게 된다. 직업인으로서 나의 여정도 많은 부분 시대적 특수성을 반영한 수혜의 결과물이라는 걸 깨닫게 된다. 꾸준한 경제성장을 구가하던 한국의 경제상황과 지금보다 나았던 청년취업환경, 세계화의 열망 속에 국내에서도 급속히 글로벌화가 진행되던 비즈니스 환경, 여성인력의 활약이 두드러진 유망 분야에서 경력을 쌓았던 점, 영어능력이라는 한국에서의 특별한 자산으로 인해 누릴 수 있었던 직업적 기회 등 내가 속한 시대의 변화와 운이 잘 맞아떨어졌던 것이다. 능력주의를 신봉하는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개인의 성공과 안위를 그 사람의 능력과 직결시키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개인의 삶이란 태생적 조건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자신의 의지에 반해 자신이 속한 시대적 배경의 수혜자가 될 수도, 희생자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말콤 글래드웰은 그의 베스트셀러 ‘아웃라이어’에서 성공의 비밀에 대한 기존의 통념을 뒤집은 바 있다. 성공이란 개인적 차원의 성취만으로 볼 수 없으며, 사회적 지원과 환경적 요인을 토대로 한 환경과 기회의 강력한 조합의 결과라고 주장했다. 한국은 전쟁의 상흔만 남은, 아시아의 세 번째로 가난한 농업국가에서 세계역사상 유례없는 눈부신 경제성장을 통해 세계은행이 꼽는 ‘고소득 경제국’이 된 나라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기성세대의 땀과 노력에 진정으로 존경을 보낼 필요가 있다. 이젠 경제를 넘어 ‘국격’을 논하는 시대의 한국인으로 산다는 것은 어찌 보면 축복이 아닐 수 없다. 많은 이들이 세상의 중심축이 아시아로 이동하고 있다고 말한다. 중국의 기세와 위상은 날이 갈수록 무서울 정도로 달라지고 있다. 앞으로 우리가 맞이하게 될 이런 변화가 우리 삶에 어떤 변화를 가져오게 될지는 정확히 점칠 수 없다. 분명한 건 하룻밤의 기적은 없다는 점이다. 10년 후 홍콩의 일요일 풍경이 어떤 모습으로 바뀔지는 아무도 모른다. 시대의 변화에 얼마나 열린 사고로 슬기롭게 대처하는가가 모두의 과제인 이유다. 찰스 다윈은 이렇게 말했다. “살아남는 것은 제일 강한 종도 아니고, 제일 똑똑한 종도 아니다. 살아남는 것은 변화에 가장 잘 대응하는 종이다.”
  • [新 차이나 리포트] 中외교 60년 현주소

    “친구가 세상에 널리 퍼져 있다.” 중국 외교의 수장인 양제츠 외교부장은 2009년 10월1일 신중국 성립 60주년을 앞두고 중국 외교의 현주소를 이렇게 평가했다. 건국 초기 18개 국가에 불과했던 수교국이 60년 만에 10배인 171개국으로 늘었다는 사실을 강조한 표현이다. 하지만 내면적으로 중국은 양적인 팽창보다는 질적인 발전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실제 중국은 지금 ‘아세안+1’ ‘상하이협력기구’ ‘중국·아프리카 협력 포럼’ ‘중국·유럽연합 정상회의’ 등 거의 모든 대륙과 1대다(多) 협력체제를 구축해 놓고 있다. 외교강국 미국도 이렇게까지 외교전선을 확대하지는 못했다. 중국 외교의 뿌리는 1953년말 저우언라이(周恩來) 당시 총리가 주창한 ‘평화·공존 5원칙’ 외교노선이다. 미국과 소련 두 슈퍼파워가 지구를 반분하던 시기, 중국이 선택한 외교노선은 적절했다. 철저히 비동맹을 천명하면서 비동맹국가들을 규합해 나갔다. 그때부터 공들인 아프리카 국가들은 지금 절대적인 우호세력이 돼 있다. 양제츠 부장은 1991년부터의 관례대로 올해도 아프리카를 가장 처음 방문했다. 2006년 11월 베이징에서 열린 중국·아프리카 협력포럼에는 아프리카 48개국 정상이 참석했다. 한 대륙의 정상 수십명을 동시에 불러모을 수 있는 힘을 중국은 갖고 있다.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은 2010년 중국외교의 역점사항으로 영향력(정치), 경쟁력(경제), 친화력(이미지), 호소력(도의)을 주문했다. 정치적 영향력을 최우선순위에 올려놓은 점이 특히 눈에 띈다. stinger@seoul.co.kr ●도움주신 분들 ▲정정길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중국사무소 소장 ▲양평섭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베이징대표처 수석대표 ▲박한진 코트라 베이징KBC 부장 ▲김명신 코트라 중국통상전략연구센터 연구위원 ▲박인성 저장대 토지관리학과 교수 ▲류칭 중국국제문제연구소 미국연구부 부주임 ▲팡징윈 베이징대 도시환경학원 교수 ▲류진허 중국삼성경제연구원 수석연구원 ▲류시양 중국삼성경제연구원 수석연구원 ▲취우강 중국삼성경제연구원 수석연구원
  • 78세 리즈 테일러 9번째 결혼?

    78세 리즈 테일러 9번째 결혼?

    올해 78세인 할리우드의 전설적인 배우인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9번째 결혼설에 휩싸였다. 10일 영국 데일리메일 등에 따르면 테일러는 최근 29살 연하인 제이슨 윈터스(49)와 약혼했다. 테일러는 9번째 결혼을 앞둔 셈이다. 윈터스는 최근 숨진 팝스타 마이클 잭슨의 여동생인 재닛 잭슨의 매니저로 활동하는 연예 매니지먼트사인 스텔링 원터스사에 소속돼 있다. 테일러와 윈터스를 잘 아는 한 연예계 관계자는 “이들이 사랑에 빠진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당장 결혼식을 올린다 해도 이상할 것이 없다.”고 말했다. 테일러도 칼럼니스트인 리즈 스미스 등 주변 사람들에게 “내가 평생 만나본 사람들 가운데 가장 멋진 남자였다. 그렇기 때문에 그와 사랑에 빠졌다.”며 윈터스를 자랑한 것으로 알려졌다. 1932년 영국에서 태어난 테일러는 10살때인 1942년 영화 ‘귀로’로 데뷔한 이후 완벽한 미모로 할리우드를 매료시켰다. 실제 ‘미의 상징’으로 통했다. 영화 ‘자이언트’, ‘클레오파트라’, ‘뜨거운 양철지붕 위의 고양이’ 등에 출연, 관객을 사로잡았다. 1960년 ‘버터필드8’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18세 때인 1950년 호텔 재벌인 콘라드 힐튼 2세와 처음 결혼한 이후 배우 마이클 와일딩, 영화제작자 마이클 토드, 가수 에디 피셔, 공화당 상원의원 존 워너 등과 가정을 꾸렸다. 배우 리처드 버튼과는 두차례나 결혼했다. 1991년 20년 연하인 공사장 노동자 래리 포텐스키와 마이클 잭슨의 목장에서 결혼식을 치러 화제를 낳았다. 포텐스키와는 5년만인 1996년 파경을 맞았다. 1999년 영국에서 데임 작위를 받은 테일러는 자선재단을 설립하는 등 고령에도 불구, 적극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UFO 추격하는 英전투용 제트기 포착

    UFO 추격하는 英전투용 제트기 포착

    영국 전투기가 미확인 비행물체(UFO)를 추격하는 것으로 보이는 장면이 포착됐다. 대중지 더 선에 따르면 최근 미들랜드의 고속도로 상공에서 원반형 UFO가 몇 초 간 정지한 채 떠있는 모습이 목격됐다. M5 고속도로 근처에 있는 주차장에서 찍은 30초의 영상에는 검은색으로 보이는 비행물체가 등장하고 곧이어 이 UFO에 근접하는 전투용 제트기 2대의 모습이 담겼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이 영상 촬영가는 “제트기가 근접하자 한동안 제자리에 있던 UFO는 ‘믿을 수 없을 정도’의 빠른 속도로 제트기가 접근하는 반대편으로 사라졌다.”고 설명했다. 영국 국방부에서 20여 년간 몸담은 UFO 연구가 닉 포프는 “이 영상은 그동안 본 UFO 영상 중 최고”라면서 “UFO에 접근하는 건 군용 제트기로 보인다.”고 추측했다. 보통 비행 테스트는 낮에 하지 않기 때문에 UFO가 레이더에 포착되자 전투용 제트기가 확인 차 UFO 근처에 접근한 것으로 보인다고 그는 설명했다. 60년 만에 사실상 해체된 국방부 산하 UFO 조사 비밀 조직 모드(MoD)의 관계자는 답변을 거부했으며 웨스트미들랜드 경찰은 “해당 고속도로 상공에서 UFO가 발견됐다는 그 어떤 신고도 받지 않았다.”고 밝혔다. 한편 지난해 9월 스페인 북서부 갈리시아 해안에서도 UFO 한 대가 전투기 두 대에게 추격을 당하는 모습을 조업을 하던 한 어부가 직접 촬영해 화제를 모은 바 있다. 당시 이 영상에는 추격을 받던 UFO가 바다 표면 위 허공에 정지해 있다가 바다 밑으로 급전직하 하며 자취를 감추는 모습이 담겨 영상의 진위 여부를 놓고 인터넷에서 열띤 논쟁이 일기도 했다. 사진=더 선 서울신문 나우뉴스 강경윤기자 newsluv@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시론] 한·일 역사화해 작업을 기대하며/최영호 영산대 국제관계학 교수

    [시론] 한·일 역사화해 작업을 기대하며/최영호 영산대 국제관계학 교수

    최근 일본정부는 법무성이 보관해 오던 일제강점기 한국인 노무자 공탁자료를 한국에 전달했다. 지난 2007년 12월에 군인과 군속의 공탁 자료를 제공한 이후 2년 3개월 만에 노무자 공탁 자료가 넘어오게 된 것이다. 이 자료들은 패전 직후 일본정부와 점령당국의 명령에 따라 각 사업장이 지역별로 미불금을 공탁한 기록들이다. 여기에는 17만명이 넘는 강제동원 한국인 노무자에 대해 각 작업장이 지급해야 할 급여, 수당, 부조금 등을 지급하지 않은 것이 기록되어 있다. 일제강점기 일본정부와 기업은 자금 조달과 작업장 이탈 방지를 목적으로 하여 전국적으로 한국인 노무자에 대해 강제저축을 실시했다. 그러면서도 대부분의 기업들이 강제저축 금액을 노무자에게 되돌려 주지 않았고 심지어 공탁조차 하지 않은 기업도 많았다. 작업장에서 사망한 노무자의 밀린 임금이나 부조금 등을 떼어먹은 기업도 많다. 과거 일본의 자민당 정부는 한국정부나 시민단체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노무자 공탁자료를 내놓지 않았다. 노무자 명부가 일본 전국의 사업장에 흩어져 있어서 전체 규모를 파악하기 어렵고 통합적인 확인 작업이 불가능하다는 이유에서였다. 일본의 중앙정부나 지방정부가 개별적인 공탁 확인 요청에는 응하면서도 전국적인 공탁금 실태에 관한 통합 작업에는 적극 나서지 않았던 것은 자국 기업들을 감싸고자 하는 의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작년에 민주당이 집권하면서 보다 전향적인 태도를 보이기 시작했다. 지난 1990년대부터 일본에서 일본정부와 기업을 상대로 하는 징용피해 관련 소송이 제기되었고 2000년대에 들어서는 한국에서도 재판이 열렸다. 만약 노무자 공탁자료 내용이 한국인 피해자나 시민단체에 구체적으로 알려지게 되면 소송은 더욱 봇물 터지듯 제기될 것이 분명했다. 이러한 사태를 예견하면서까지 일본정부가 공탁자료를 내놓은 것을 보면 어쩌면 더 이상 전쟁책임에 관하여 일본기업에 대한 보호만이 능사가 아니라고 판단한 듯하다. 결과적으로 미쓰비시, 미쓰이, 스미토모 등 전쟁 말기 한국인 노무자 강제동원에 앞장섰던 일본 기업은 종래의 책임회피 자세를 바꾸어 뒤늦게라도 도의적 견지에서 역사 화해 작업에 적극 동참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독일 정부와 기업이 2000년에 들어 전시기 강제 징용된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보상기금을 조성하고 과거사 정리에 나선 것은 일본에 귀감이 될 것이다. 소위 ‘기억, 책임 그리고 미래’ 재단은 독일 정부와 기업이 약 50억유로의 기금을 제공하여 설립되었다. 그리고 7년간에 걸쳐 약 100개의 국가에 산재해 있는 강제노역 피해자 167만명에게 인도적인 차원에서 모두 약 44억유로를 지급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뿐 아니라 오늘날에도 기금 운영을 통해 발생하는 이익금으로 유럽과 이스라엘, 미국 등지에서 전개되는 국제평화 프로그램과 프로젝트를 후원하고 있다. 때마침 대일청구권 자금을 기반으로 하여 성장한 포스코도 이 문제에 대해 긍정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그간 일본정부와 기업을 상대로 하여 소송을 제기하다 패소한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포스코를 상대로 하여 법정 투쟁과 항의를 계속해 왔다. 최근에 이들 피해자에 대한 지원을 목적으로 정부가 재단 설립에 나선다면 포스코도 이에 협력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정부가 나서서 진두지휘를 해야 기업과 시민단체가 뒤따라 나서게 된다. 우리 정부는 국무총리실 산하 위원회를 통하여 2008년부터 인적 피해와 미수금 피해에 대해 지원을 해오고 있다. 과거 60년대 일본으로부터 청구권 자금을 받았지만 국내 피해자에 대해 충분한 보상을 실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부는 강제동원 희생자들을 추도하고 관련 역사자료를 전시할 수 있는 기념관을 건립하겠다고 한다. 이러한 기존 업무에 머무르지 말고 일본정부와 한·일 양국 기업을 끌어들여 역사 화해를 이끌어낼 수 있도록 우리 정부가 주도권을 행사하기를 기대한다.
  • 문성근 “‘작은 연못’은 관객에게 헌정하는 영화”

    문성근 “‘작은 연못’은 관객에게 헌정하는 영화”

    미국 독립영화계의 거장인 로버트 알트만이 1993년 레이몬드 카버의 동명 소설 ‘숏컷’을 영화화 한다고 했을 때 할리우드의 내로라하는 스타들이 출연을 자청했다. 앤디 맥도웰, 줄리안 무어, 팀 로빈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외에도 이 영화의 주인공은 총 22명에 달했다. 이상우 감독이 한국전쟁 당시 일어났던 ‘노근리 사건’을 다룬 영화를 만든다고 했을 때 국내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문성근과 고인이 된 박광정, 김뢰하, 이대연, 강신일, 김승욱, 송강호, 문소리 등 한국의 연기파 배우들이 모두 모였다. 출연료는 문제가 아니었다. 이상우 감독은 충무로에서는 낯선 이름이다. 이번이 첫 영화다. 하지만 연기 좀 한다는 배우치고 그를 모를 순 없다. 그는 연극 ‘비언소’, ‘늙은 도둑 이야기’, ‘칠수와 만수’ 등을 연출한 대학로의 거장이다. 문성근을 배우로 만든 것도 바로 이상우 감독이다. 문성근은 1986년 이상우 감독이 연출한 연극 ‘칠수와 만수’에 출연해 비로소 배우라는 천직을 얻었다. 영화 ‘작은 연못’의 주인공은 ‘숏컷’보다도 많다. 문성근은 “출연진 모두가 주인공”이라고 말한다. 제작 초기에는 주인공을 3~4명 정도로 축약하자는 의견도 있었다. 다큐멘터리가 아닌 극영화로 만드는 만큼 드라마타이즈를 강화하자는 의견도 있었다. 하지만 둘 모두 포기했다. 노근리 사건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은 당시의 일을 있는 그대로 옮기는 것이 최선이라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문성근을 포함한 배우들도 이에 동의했다. 덕분에 영화에는 ‘갈등’이 없다. 그래서 좀 심심한 게 사실이다. 문성근도 “이 영화는 보통의 극영화에서 기대할 수 있는 재미는 없다.”고 말한다. 대신 그는 “이 영화는 다큐멘터리가 주는 정서적 충격이라는 측면의 재미가 있다. 이 부분을 미리 알고 영화를 관람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노근리 사건을 소재로 한 만큼 반미감정이 영화 속에 드러나지 않을까 예상했는데 영화는 전혀 그렇지 않다. 이에 문성근은 “총을 쏜 게 미군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미군을 중국군이나 북한군으로 대체한다하더라도 영화의 본질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이 영화는 어떠한 전쟁에도 반대한다는 메시지를 품고 있다.”고 말한다. 영화 ‘작은 연못’은 총 제작기간이 8년에 달하고, 크랭크업 한 지 3년 반 만에 개봉을 한다. 물론 개봉이 이렇게 늦어진 데는 제작비 문제가 가장 큰 원인이었지만 때마침 한국전쟁 발발 60년이 되는 올해 개봉을 하게 됐다. 문성근은 “할 만큼 했다. 개봉을 앞두고는 관객들에게 이 영화를 헌정하는 기분이다.”라는 말로 끝인사를 대신했다. 사진=서울신문NTN DB(사진 아래 이상우 감독과 문성근) 서울신문NTN 이재훈 기자 kino@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앙증맞은 BMW ‘미니’ 힘도 세졌다!

    앙증맞은 BMW ‘미니’ 힘도 세졌다!

    앙증맞은 디자인에 강력한 성능을 겸비한 미니(MINI)가 등장했다. BMW 코리아는 8일 미니의 고성능 모델인 ‘JCW’(John Cooper Works : 존 쿠퍼 웍스) 패밀리를 국내에 출시한다고 밝혔다. 이번에 출시된 미니 컨버터블 JCW, 미니 클럽맨 JCW, 미니 50 캠든 JCW 등 세 가지 JCW 패밀리는 기존 미니에 주행성능을 강화한 고성능 모델이다. 미니 JCW는 1960년대 몬테카를로 랠리에서 3회 우승을 차지한 미니 경주용차의 혈통을 이어받았으며, 성능이 향상된 JCW 엔진키트와 날렵한 디자인의 JCW 전용 차량 액세서리가 장착된 것이 특징이다. 미니 JCW에는 트윈스크롤 터보차저가 장착된 직분사 4기통 1.6ℓ 엔진이 탑재돼 192마력의 최고출력과 27.6kg.m(오버 부스트시)의 최대토크를 발휘한다.이 엔진은 미니 JCW 챌린지(Challenge) 경주용차와 동일한 엔진으로 지난해 ‘인터내셔널 엔진 오브 더 이어 어워드(International Engine of the Year Award)’를 수상한 바 있다. 이외에도 JCW 전용 초경량 알루미늄 휠과 JCW 스트럿바, 기어 쉬프트 인디케이터, 새로운 흡·배기 시스템 등이 적용됐다. 가격은 미니 50 캠든 JCW 4645만원, 미니 클럽맨 JCW 4780만원, 미니 컨버터블 JCW 5150만원이다. 서울신문 M&M 정치연 자동차전문기자 chiyeon@seoul.co.kr 영상=서울신문 나우뉴스TV 김상인VJ bowwow@seoul.co.kr
  • [씨줄날줄] 아랄사막/육철수 논설위원

    아랄해는 중앙아시아의 우즈베키스탄과 카자흐스탄 사이에 있는 내해(內海)다. 남한 면적의 3분의2쯤 되는 이 바다는 현재의 추세라면 10년 후에는 사막으로 완전히 바뀔 것 같다. 지도상에는 아랄해가 사라지고 대신 ‘아랄사막’이란 새로운 표기가 생길 것이다. 아랄해가 아랄사막으로 ‘벽해사막(碧海沙漠)’하기까지는 불과 60년밖에 걸리지 않은 셈이다. 자연현상에 의한 변모가 아니라 인간의 탐욕탓에 세계에서 네 번째로 큰 내해를 잃는다면 비통한 일이다. 아랄해에는 섬 1000개가 있어 과거엔 ‘섬들의 바다’란 이름값을 톡톡히 할 만큼 빼어난 경관을 자랑했다. 풍부한 어종 덕분에 인근 주민들은 생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풍요로웠다고 한다. 하지만 사막화가 90% 진행된 지금은 ‘죽음의 바다’나 다름없다. 생태계는 파괴되고 어업과 관광을 중심으로 한 주변 도시의 산업은 몰락했다. 인근 주민들은 극심한 환경병에 시달리고 있다. 지구촌 최악의 환경재앙으로 꼽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1990년대 중반부터 국제연합(UN)과 세계은행 등을 중심으로 ‘아랄해 살리기’에 주력하고 있으나 한번 망가진 바다는 잠시 반짝할 뿐 회생의 기미가 없다. 아랄해의 비극에는 옛소련의 책임이 크다. 소련은 1960년대 초 면화농업과 벼농사를 구실로 아랄해로 흘러가는 시르다리야강과 아무다리야강의 물길을 돌려 관개용수로 사용했다. 아랄해로 들어가던 물의 양은 1960년대 초당 3000~5000㎥였으나 지금은 15㎥란다. 50년이 흐른 현재 그 결과는 참담하다. 아랄해 바닥은 소금사막으로 변했다. 어종은 32종에서 6종으로 급감했다. 어획량은 연간 4만t에서 20t으로 줄었다. 주변 도시의 인구 급감과 함께 일자리 6만개가 사라졌다. 오염물질로 인해 주민들은 호흡기 질환과 결핵·빈혈을 앓고 20~30대 젊은이까지 관절에 소금이 끼여 류머티즘에 시달린다고 한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최근 현장을 둘러보고 충격이 대단했던 모양이다. ‘아랄사막’ 여기저기에 폐선들이 어지럽게 나뒹구는 사진은 끔찍한 재앙을 대변한다. 환경을 외면한 소련이 당시 면화제품을 동유럽에 내다팔아 얼마나 큰돈을 벌었는지 모르나, 소탐대실이란 바로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지구 전체면적 150억㏊ 가운데 51억㏊가 사막화했고 아시아가 16억㏊로 가장 심각하다고 한다. 게다가 해마다 600만㏊가 사막으로 바뀐다니 이젠 정말 강 건너 불 보듯 할 일이 아니다. 육철수 논설위원 yc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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