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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날 한시에 숨진 중국 ‘금실부부’의 사연

    죽더라도 한 날에… 지병을 앓던 남편이 세상을 떠나자, 10분 뒤 아내 또한 갑자기 숨져 함께 세상을 떠난 부부의 이야기가 중국을 놀라게 하고 있다. 중국 우한시 차이덴구에 사는 천(陳·81)씨는 지병을 앓다가 지난 27일 오후 2시경 세상을 떠났다. 동갑인 부인 위(餘·74)씨와 미리 소식을 듣고 모인 가족들은 천씨의 임종을 보자마자 울음을 터뜨리며 안타까워했다. 이때 위씨는 남편의 죽음을 지켜보고는 매우 힘들어하며 목 놓아 울다가 쓰러져 갑자기 숨을 거두고 말았다. 천씨가 사망한지 고작 10분 밖에 지나지 않은 시간이었다. 놀란 가족들은 곧장 구조대에 신고했지만 위씨는 더 이상 숨을 쉬지 않았다. 두 노인에게는 딸 4명과 아들 1명이 있으며, 당시 두 노인의 임종을 지켜본 큰 며느리는 “시아버님께서 세상을 떠나시고, 가족들은 시어머님에게 ‘진정하셔야 한다.’고 달랬지만 끝내 안타까운 마음을 감추지 못하셨다.”면서 “두 분의 식지 않은 애정을 다시 한 번 보게 됐다.”고 말했다. 결혼 전부터 지병을 앓아 온 천씨 부부는 60년이 넘도록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서로를 돌봐왔다. 비록 할머니의 건강은 눈에 띄게 호전됐지만 할아버지는 결국 병마를 이기지 못했다. 주민들은 “두 사람이 이렇게 한꺼번에 가신 것을 보니, 마냥 슬퍼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기뻐할 수도 없어 난감하다. 하지만 두 사람이 하늘에서도 평온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송혜민기자 huimin0217@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원전 수주 속도내는 日

    │도쿄 이종락특파원│일본이 세계적으로 일고 있는 ‘원자력 르네상스’에 발맞춰 해외 원자력발전소 건설 수주에 공격적으로 나섰다. 원전 핵심기술을 가진 기업들이 합작하는가 하면 정부도 외교라인을 풀 가동, 적극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도시바와 이시카와중공업(IHI)은 올가을 원자력발전소의 핵심부품을 공동생산하기 위한 공동 출자회사를 설립하기로 했다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이 26일 보도했다. 지난 1960년대부터 원전 사업에서 제휴관계를 유지했던 두 회사가 본격적인 공동생산에 들어갈 경우 원가절감에 따라 가격경쟁에서 우위에 설 가능성이 크다. 두 회사는 일단 증기터빈의 대형 부품을 시작으로 제조 품목을 늘려나갈 계획이다. 합자회사에는 도시바의 증기터빈 부품 생산라인과 IHI의 기술력이 투입된다. 두 회사의 원자력 사업 매출액은 도시바가 연간 5000억엔(약 6조원), IHI가 500억엔 정도다. 신문은 “두 회사의 최종 목적은 원전 사업의 합병”이라면서 “새로 설립될 합자회사가 가교역할을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일본 정부도 바삐 움직이고 있다. 올 하반기 원전 수주를 목표로 민·관 공동 출자의 전담회사를 세우기로 했다. 정부와 함께 원전의 노하우를 보유한 도쿄전력과 간사이전력이 출자하고 민간기업이 참여하는 새로운 회사다. 정부 주도로 해외 원전 수주는 물론 발전소 건설과 운영까지 종합적으로 다루겠다는 취지다. 지금껏 히타치제작소와 도시바, 미쓰비스중공업 등 3사 중심으로 원전 수주를 추진해 왔지만 상호 경쟁관계에서 벗어나지 못한 탓에 수주과정에서 결속력을 보이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정부는 또 오는 2013년 착공될 요르단의 아카바 원전 수주를 겨냥, 프랑스 정부와 손을 잡기로 했다. 미쓰비시중공업과 프랑스 원자력발전업체인 아레바는 요르단 측에 중형 원자로인 ATMEA1을 제공할 예정이다. 정부는 이달 초 요르단 국왕 압둘라 2세를 만나 일본과 프랑스 업체에 낙찰될 수 있도록 협조를 당부했다. 일본 정부는 적극적인 해외 수주와 함께 국내의 원전 발전에도 힘을 쏟고 있다. 2030년까지 원전 14기를 추가로 증설하고 현재 60%대인 원전 가동률을 90%대로 끌어올릴 계획이다. 현재 운영 중인 원전은 모두 54기로, 이 가운데 18기가 30년 이상된 노후 원전이다. jrlee@seoul.co.kr
  • [사설] 천안함 감사, 장병 사기는 꺾지 말라

    군의 위기대응체계가 수술대에 올랐다. 감사원은 천안함 침몰사고와 관련, 오는 29일 영결식이 끝나는 대로 대대적인 직무감사를 하기로 했다고 어제 밝혔다. 일상적인 행정업무 감사가 아니라 천안함 침몰과정에서 군이 취한 조치의 적절성을 따지는 감찰 차원의 감사란 점에서 비상한 관심을 끌 만하다. 감사원은 이미 국방부와 합참을 상대로 군의 작전예규와 초동 비상조치 예규 등 작전과 관련한 규정의 제출을 요청했다고 한다. 감사원은 피감기관인 합참 전비태세 검열단 등의 지원을 배제하고, 독자적으로 따져볼 요량이라고 한다. 우리는 그동안 사고원인과는 별개로 군의 지휘체계와 기강해이, 위기관리 체제의 문제점에 대해 입이 닳도록 지적해 왔다. 군은 사건발생 시점을 9시15분에서 45분까지 4차례나 수정하는 혼선을 빚어 불신을 자초했다. 군 수뇌부가 대통령보다 최대 20분이나 늦게 상황을 파악하는 등 최악의 지휘 공백이 빚어졌다. 해경이 생존자 58명을 구조하는 동안 보고만 있었던 해군의 초기 구조시스템의 이상 유무도 짚어봐야 한다. 사고발생 사흘이 지나도록 함체를 찾지 못해 민간어선의 도움을 받은 것은 그냥 넘길 수 없는 사안이다. 발표과정에서 숱한 군사 기밀이 누설된 것도 무겁다. 총체적 안보 난맥상이 빚어진 것은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국군통수권자인 이명박 대통령은 “기본적으로 군을 믿는다.”라고 애정을 표했다. 그러나 “남북이 분단된 지 60년이 되다 보니까 다소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라고 말했다. 엄중한 책임을 묻겠다는 의지의 표명으로 읽힌다. 천안함사고를 자성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매너리즘에 빠진 직업군인들의 기강을 똑바로 일으켜 세워야 한다. 다만 감사과정에서 불필요하게 장병의 사기를 꺾는 일은 없어야 한다. 감사대상은 위기대응시스템이지 장병이 아니다.
  • 퀘이크워즈, 30일 오픈베타 실시

    퀘이크워즈, 30일 오픈베타 실시

    드래곤플라이는 액티비전과 공동 개발중인 ‘퀘이크워즈 온라인(이하 QWO)’의 공개 서비스를 오는 30일 부터 실시한다고 26일 밝혔다.QWO는‘퀘이크’ 시리즈의 최신작 ‘에너미 테러토리: 퀘이크워즈’의 기본 컨셉을 계승 발전시킨 전략 FPS 게임이다. 2060년 황폐해진 지구를 배경으로 외계생명체 스트로그(STROGG)와 지구방위군(GDF)이 격돌하는 세기말적 미래 전쟁을 사실감있게 그리고 있는 작품이다.이번 공개 서비스에서는 ‘아크’, ‘리파이너리’ 등 총 5개의 맵과 각 맵별로 공격자와 방어자로 나뉘어 고유의 미션을 수행하는 ‘임무모드’를 비롯해 ‘팀 데스매치’, ‘타임어택’, ‘도전과제’ 등 4개의 모드를 선보인다. 이를 통해 기존 FPS 게임에서는 체험하지 못했던 팀 기반의 전략 플레이를 추구하고, 안정적인 게임 서비스와 풍성한 게임 콘텐츠로 보다 진화된 FPS게임의 재미를 느낄 수 있다.한편, QWO 홈페이지에는 게이머들의 사전 학습효과를 높이기 위해 기존에 서비스중인 게임 맵 5종의 가이드 동영상을 소개하고 있으며, 향후 게임 내 탈것, 무기 등의 상세한 가이드 동영상을 추가로 선보일 예정이다.더불어, 본격적인 공개 서비스 실시에 앞서 게이머들의 참여를 유도하는 ‘퀘이커들의 발도장’ 이벤트가 금일부터 4월 29일까지 4일간 진행된다. 이번 이벤트는 홈페이지 접속 후 발도장 받기 버튼을 클릭하면 응모가 완료되며, 추첨을 통해 지포스 최신형 그래픽카드, 문화상품권을 증정할 예정이다.드래곤플라이 게임사업부문 김범훈 실장은 “성공적인 ‘퀘이크워즈 온라인’ 공개 서비스를 위해 초심의 마음가짐으로 게임 개발에 총력을 기울여왔다” 며 “단순히 쏘고 피하는 획일화된 FPS 게임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게이머들에게 ‘퀘이크워즈 온라인’ 만의 차별화된 재미를 선사할 것으로 확신하며, 많은 참여와 관심을 부탁드린다”고 전했다.사진=드래곤플라이서울신문NTN 차정석 기자 cjs@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서울의 지붕밑’ 이형표 감독 별세 “향년88세”

    1960년대 전성기를 누렸던 이형표 감독이 지병으로 26일 별세했다. 향년 88세. 이 감독은 1961년 영화 ‘서울의 지붕밑’으로 데뷔했다. 이후 1963년 배우 신성일·엄앵란 주연의 ‘말띠 여대생’, 1969년 김진규·김지미 주연의 ‘너의 이름은 여자’, 1972년 박노식·여운계 주연의 ‘방자와 향단이’, 1976년 임예진·이덕화 주연의 ‘이런 마음 처음이야’ 등 작품성이 우수한 영화를 연출해 유명세를 탔다. 영화 ‘먼 여행 긴 터널’(1986)을 끝으로 작품 활동을 그만뒀다. 이 감독의 빈소는 서울 아산병원 지하1층 6호실에 마련됐다. 서울신문NTN 김경미 기자 84rornfl@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전쟁·경제위기·총·범죄… 붕괴, 미국도 소련처럼?

    미국의 변화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긍정, 부정 어느 방향이든 한반도의 상황과 운명에 가장 영향을 미치는 나라임에 틀림없다. 버락 오바마가 대통령으로 들어선 뒤 변화와 개혁의 움직임이 꿈틀대고 있지만 미국의 몰락을 예고하는 학자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글 뒤주에 머물지 않고 철저히 현실에 기반해 미국을 파헤치는 목소리까지 가세했다. 과연 ‘미국 없는 세상’, ‘포스트 미국의 시대’는 일부 진보주의자들의 급진적 전망일 뿐인가. 아니면 냉엄한 현실로 다가오게 될 것인가. 1991년 소련은 거짓말처럼 무너졌다. 아프가니스탄 전쟁 패배의 충격, 각 민족국가의 독립 요구 등 조짐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미국과 함께 냉전시대의 한 축을 이뤘던 소비에트연방의 붕괴는 세계사적인 충격이었다. 오로지 소련만 쳐다보고 의지했던 범 소련권 국가들이 겪은 경제적 혼란, 대량 실업, 정치적 위기 등은 필연적 후과(後果)였다. 그렇다면 미국의 상황은? 만약에 미국이 소련처럼 붕괴한다면, 우리는? 상상만으로도 끔찍한 일이다. 하지만 이런 주장이 나올 때마다, 미국 이후 시대에 대비하는 것이 아니라 더욱 절박하게 미국에 매달리게 되곤 한다. 1960년대 베트남전쟁, 최근 두 차례의 이라크전쟁의 패배 혹은 서브프라임 모기지론(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등 금융자본 전횡의 후폭풍 등은 심상치 않은 위기감을 보여준다. ‘예고된 붕괴’(드미트리 오를로프 지음, 이희재 옮김, 궁리 펴냄)는 19세기 이후 최대 제국, 미국이 구 소련과 비슷한 양상으로 붕괴될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을 내놓고 있다. 학술적 측면의 접근이 아닌, 현장 중심의 근거들을 갖고 실증적 접근을 통해 이를 예견한다. 1962년 구 소련 레닌그라드에서 태어난 저자는 스스로 “전문가도, 학자도, 운동가도 아닌 목격자일 뿐”이라고 말한다. 그는 냉전시대임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와 미국을 오가며 고에너지 물리학에서 인터넷 보안 등까지 다양한 분야의 엔지니어로 활동한, 드문 이력을 갖고 있다. 이는 소비에트연방의 붕괴를 직접 목격했음은 물론 미국 자본주의 현장을 구석구석 체험했음을 의미한다. 그에 따르면 파산하기 전 소련과 현재의 미국은 상당 부분 닮아 있다. 소련이 외채에 시달렸던 만큼, 미국 역시 재정 적자와 달러 가치 하락에 시달리고 있다. 냉전 뒤에도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을 이유로 감내할 수 있는 수준 이상으로 국방비 지출을 늘려 왔다. 이는 고스란히 지나친 석유 의존도로 이어졌다. 1980년대 중반, 석유 부족으로 경제 위기를 맞았던 소련과 비슷한 상황이라는 설명이다. 미국의 상황이 더욱 우울한 근거로 저자는 “세계 최고의 범죄율과 민간인에게 풀린 수억 자루의 총”을 든다. 책 뒷부분에서는 아예 붕괴를 기정사실화한 뒤 각자의 대처법을 제시한다. 3단계로 나뉜 일종의 ‘생존 가이드라인’이다. 일단 마음의 준비를 하고 공동체의 힘을 믿고 따르며(완화), 붕괴 이후 석기시대에 준한 세상에 맞춰 불편하게 살 수 있도록 자신을 변화시켜야 하며(적응),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 수 있다는 희망을 갖는 것(기회)이다. 암울한 디스토피아를 쉽게 읽히도록 풀어냈다. 1만 3000원.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젊을수록 사회신뢰도↓

    젊을수록 한국 사회를 신뢰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직장인들은 ‘한국사회 신뢰도’를 100점 만점에 45.6점(조사대상의 평균)으로 평가했다. 22일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직장인 1625명을 대상으로 한 ‘한국사회 신뢰도’ 조사 결과에 따르면 세대별로 사회 불신의 차이도 적지 않았다. 전후세대(1940~50년대 초반생)는 신뢰도 점수로 63.3점을 줘 가장 높았다. 고속성장과 경제개발의 주역인 베이비붐 세대(1955~60년생)도 50.0점으로 다른 세대보다 신뢰도 점수가 높았다. 그러나 연령이 젊어질수록 사회에 대한 불신이 점차 깊어지는 추세를 보였다. 1980년대 학생운동 주역인 386세대(1960년대생)는 47.0점,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첫 세대인 X세대(1970년대생) 46.0점, 경제적 풍요를 누린 Y세대(1980년대생)가 평가하는 신뢰도는 44.8점으로 가장 낮았다. 안동환기자 ipsofacto@seoul.co.kr
  • 고소영 반지..300만~500만원선 ‘해피 다이아몬즈’

    고소영 반지..300만~500만원선 ‘해피 다이아몬즈’

    내달 2일 5월의 신부가 되는 고소영이 결혼예물 반지를 쇼파드 제품으로 결정했다. 23일 장동건의 소속사 AM엔터테인먼트에 따르면 고소영은 예물반지로 쇼파드 제품인 큐브 다이아몬드를 택했으며 가격은 300만~500만원에 이른다. 고소영이 구입한 것으로 알려진 반지는 ‘해피 다이아몬즈(Happy Diamonds)’ 라는 이름이 붙어 있으며 간결한 디자인의 링과 사각의 틀의 조화가 특징. 특히 틀 속에는 자유롭게 움직이는 ‘무빙 다이아몬드’ 가 들어 있다. 장동건이 낄 반지는 ‘아이스 큐브(Ice Cube)’ 로 직육면체 얼음조각들이 칸칸이 나눠 있는 듯한 심플한 디자인이 특징이다. 한편 쇼파드는 명품 주얼리 시계 액세서리를 만드는 스위스업체로 1860년 루이 율리스 쇼파드에 의해 설립됐다. 최근 한국의 롯데 에비뉴엘에 단독매장을 열기도 했다.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디자인을 선보이는 것과 동시에 대부분의 제품을 하청업체가 아닌 자사에서 직접 생산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사진 = AM엔터테인먼트 서울신문NTN 백영미 기자 positive@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연안부두’ 작곡가 안치행, 천안함 추모곡 발표

    ‘연안부두’ 작곡가 안치행, 천안함 추모곡 발표

    김트리오의 히트곡 ‘연안부두’를 만든 작곡가 안치행(69)씨가 천안함 추모곡을 발표했다. 안 씨 측은 “천안함 희생 장병들의 숭고한 죽음과 유족들의 슬픔을 잊지 말아야 겠다는 생각으로 고인들의 명복을 비는 노래를 만들게 됐다.”고 밝혔다. 안 씨는 최근 천안함 함미 인양과 실종 장병들의 시신 수습에 따른 국민적 애도 분위기에 맞춰 유족들을 위한 두 곡 ‘빛이 되어’와 ‘그리움은 저 하늘에’를 만들었다. ‘빛이 되어’는 천안함 실종자들을 수색하다 숨진 故 한주호 준위를 위한 곡이고, ‘그리움은 저 하늘에’는 유족들을 위한 노래. 두 곡 모두 안 씨의 오랜 벗인 1960년대 그룹 사운드 1세대인 가수 김선이 보컬로 참여했다. ‘조국 위해 빛이되어 남으리 / 그대 뜨거운 가슴 영혼을 기리며 늘 함께 하며 살아가리라 / 거친 파도 거센 물결 힘들어도 천안함 전우야 편히 잠드소서’ 등의 노랫말이 애절함을 더하고 있다. 한편, 안 씨는 지난 1972년 그룹 영사운드 멤버로 가요계에 입문한 뒤 1975년 안타음반을 설립, 윤수일, 주현미, 박남정 등 인기 가수들에 곡을 주며 이름을 알렸다. 대표곡으로는 ‘연안부두’를 비롯해 ‘오동잎’ ‘영동부르스’ ‘아, 바람이여’ 등이 있다. 서울신문NTN 박영웅 기자 hero@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이준익, 홍상수, 이창동...감독들 대결 ‘볼만’

    이준익, 홍상수, 이창동...감독들 대결 ‘볼만’

    4월 29일을 시작으로 3주동안 한국과 세계의 명감독들이 같은 날 개봉을 앞두고 있어 자존심을 건 대결이 펼쳐질 예정이다. 첫 테이프는 한국의 이준익 감독과 할리우드의 재주꾼 존 파브로 감독이 끊는다. 이준익 감독은 영화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이라는 서사 대작으로 ‘왕의 남자’의 천만관객 신화를 꿈꾼다. 영화는 임진왜란 직전 왕이 되려는 반란군과 그에 맞서는 맹인검객의 운명적 대결을 그린다. 같은 날 상반기 최고의 블록버스터로 기대를 모으는 존 파브로 감독의 ‘아이언맨2’도 개봉한다. 1편보다 한층 업그레이드된 액션과 화려한 캐스팅으로 개봉 전부터 꾸준한 관심을 받고 있는 ‘아이언맨2’에는 감독이 직접 극중 토니 스타크의 비서로 출연하기도 한다. 두 편 모두 4월 29일 개봉. 5월 5일에는 칸영화제 진출작인 홍상수 감독의 ‘하하하’와 거장 짐 쉐리단 감독의 ‘브라더스’가 동시에 개봉한다. 홍상수 감독의 ‘하하하’는 두 남자가 통영 여행 중 서로 다른 사람을 만난 줄 알았지만, 결국 비슷한 인연들이 엮였던 이야기를 담아낸 작품이다. 감독의 작품 중 6번째로 올해 칸영화제 비경쟁 부문에 초청되면서 최다 초청 기록을 세웠다. 사소한 일상까지도 놓치지 않고 인간의 삶을 리얼하게 그려내는 감독 특유의 섬세한 시선을 선보일 예정이다. ’나의 왼발’, ‘아버지의 이름으로’ 등의 역작을 만든 짐 쉐리단 감독의 ‘브라더스’는 죽은 줄로만 알았다가 돌아온 형(토비 맥과이어 분), 그 사이 서로를 인정하게 된 동생(제이크 질렌할 분)과 형의 부인(나탈리 포트만 분), 잃어버린 시간 동안 변해버린 그들의 관계에서 비롯된 의심과 깊은 비밀을 다룬 휴먼 멜로 영화다. 토비 맥과이어, 제이크 질렌할, 나탈리 포트만 등 쟁쟁한 주연 배우들과 짐 쉐리단 감독의 안정된 연출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5월 13일에는 이창동 감독과 임상수 감독 그리고 리들리 스콧 감독의 신작이 나란히 공개된다. 이창동 감독의 신작 ‘시’는 경기도의 어느 작은 도시에서 손자와 함께 살고 있는 여인이 난생 처음 시 쓰기에 도전하는 이야기를 담았다. 60년대 스타 윤정희의 스크린 컴백은 물론 역시 같은 날 개봉하는 ‘하녀’와 함께 올해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해 화제를 모았다. 매 작품마다 놀라운 영상 혁명을 이뤄낸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리들리 스콧 감독은 영웅 로빈후드를 그린 서사 액션대작 ‘로빈후드’로 관객을 찾는다. 뛰어난 영상미를 자랑하는 감독답게 화려한 볼거리와 10년 만에 다시 만난 러셀 크로우와의 완벽환 호흡을 예고한다. 사진=각 영화 포스터 서울신문NTN 이재훈 기자 kino@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김수환·법정 소설로 다시 태어나다

    김수환·법정 소설로 다시 태어나다

    김수환 추기경과 법정 스님. 많은 가르침을 남기고 세상을 떠난 두 삶이 각각 소설로 다시 태어났다. 한수산(64) 장편소설 ‘용서를 위하여’(해냄 펴냄)와, 불교와 역사 분야 소설을 주로 써온 백금남(63)의 ‘맑고 향기로운 사람 법정’(은행나무 펴냄)이다. 공교롭게 두 작품 모두 실명과 실제 사건이 주로 등장하는 논픽션에 가까운 소설인데다, 작가가 모두 해당 종교에 신심(信心)이 두텁다. ‘용서를’은 한수산이 ‘까마귀’ 이후 7년 만에 내놓은 장편소설이다. 한수산 개인에 새겨진 시대의 상흔(傷痕)과 청년 김수환이 사제가 되기까지의 영적 형성기 이야기가 씨줄날줄로 교직한다. 한수산은 1981년 5월 영문도 모른 채 군 보안사에 끌려가 모진 고문을 당한 뒤 심신이 망가지고 한동안 펜까지 꺾은 아픈 기억을 갖고 있다. 당시 중앙일보에 연재 중이던 ‘욕망의 거리’가 최고 권력자를 모독했다는 이유로 겪었던, 이른바 ‘한수산 필화사건’이다. 소설 속에 실명으로 등장하는 한수산은 “용서는 먼저 피해자가 해야 한다.”는 김 추기경의 말씀을 붙잡고, 끝없이 성찰하고 회의하면서 ‘용서와 사랑’의 가치를 찾아 나간다. 한 작가는 20일 서울 태평로의 한 식당에서 기자들과 만나 “3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필화사건을 이렇게 상세히 쓰지 못했다.”면서 “상처는 여전했고 해낼 수 있을까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상처를 완전히 치유하고 극복했다고 장담하기는 여전히 쉽지 않다. 그는 “쓸 때는 담담히 썼지만 고문에 대한 세세한 묘사만큼은 교정 과정에서도 다시 보고 싶지 않았다.”면서 “얼마 전 (필화사건 당시 대통령인) 전두환씨의 친척이 술 먹자고 하는데 자리에 안 나가게 되더라.”고 덧붙였다. 천주교 신자인 그에게 ‘서로 사랑하라.’는 김 추기경의 화두는 커다란 울림을 안겨주었다. 그는 “처음 그 말을 대하면서 추기경께서도 나와 같이 영문도 모른 채 그런 일을 겪었다면 과연 사랑이라는 말을 할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면서 “가해자의 사죄 없이 용서가 가능할까, 그것이 이 소설의 출발”이라고 털어놓았다. 소설은 자신이 평안 속에 살기 위해서라도 가해자의 사죄가 없더라도 용서하자고 결론을 짓는다. 소설 ‘…법정’은 법정 스님이 온 생애에 걸쳐 몸으로 실천했던 철학을 더욱 입체적으로 접할 수 있게 해 준다. 또한 그가 1960년대에 쓴 시 네 편을 발굴 공개하는 등 ‘글쟁이 법정’의 면모 역시 유감없이 확인시켜 준다. 성철 스님에게도 매서운 비판을 거두지 않던 법정, 함석헌·장준하 등과 함께 군부독재정권 시절 민주화운동을 하던 법정, 시인으로서 사숙(私淑)했던 백석을 추억하는 법정, 백석의 연인 자야로부터 대원각 터를 받아 길상사를 창건한 법정 등 여러 사연이 손에 잡힐 듯 그려진다. ‘소설 탄허’, ‘탄드라’ 등을 쓴 백 작가는 “선승인 성철 스님과 함께 법정은 한국 불교의 양대 산맥이라고 할 수 있다.”면서 “그는 무소유의 삶을 실천했음은 물론, 부처의 말씀을 오늘의 언어로 그려내 널리 접할 수 있도록 한 수필가였고 시인이었다.”고 말했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4·19혁명 50주년] 두 세대가 보는 4·19

    [4·19혁명 50주년] 두 세대가 보는 4·19

    <신세대가 보는 4·19> -직장인 박양일씨(26세)- 근현대사 제대로 안배워 말하기 조심스러워 내 또래가 그러하듯 4·19혁명에 대해 안다고 말하기가 조심스럽다. 민주주의, 자유, 저항 이런 단어들이 막연하게 떠오르지만 구체적으로 말하려면 막막하다. 고등학교 때 근현대사를 제대로 배운 기억이 없다. 국사 시간에 들어보긴 했지만 대부분 구체적으로 가르쳐주지 않는다. 대학을 다니다 ‘장준하기념사업회’가 주관하는 동북아역사장정을 다녀오면서 4·19혁명에 관심을 갖게 됐다. 해마다 4월이면 신문, 텔레비전 방송을 보면서 알게 되는 것이 책으로 접하는 것보다 더 현실감 있게 와 닿았다. 1960년 4·19 혁명이 일어나기 전에 발생한 사건들도 그러면서 알게 됐다. 요즘 세대는 의식도 없고 실천력이 떨어진다고 한다. 민주화와 함께 태어난 세대라 대부분 정치·사회 제도 등에 큰 불편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일 거다. 4·19혁명이 민주주의의 도화선이 됐고, 그로 인해 조금이나마 민주화된 세상에서 살 수 있음이 고맙게 느껴진다. 이민영기자 min@seoul.co.kr -김호빈 강원대 2학년(20세)- 독재정권 항거 희생정신 잊혀져가 안타까워 솔직히 4·19혁명을 잘 몰라 포털사이트에서 찾아봤다. 1960년 3월15일의 부정선거가 발단이 돼 일어난 혁명이라는 것을 알았다. 이일로 나보다도 어린 학생들이 거리로 뛰쳐 나갔고 이에 시민들도 합류했다는 사실도 알게됐다. 나는 일단 4·19 혁명이 학생들의 주도하에 이루어졌다는 사실에 큰 의미를 두고 있다. 50년 전인 1960년 4월19일, 그 시절 학생들은 아무런 대가도 없이 독재정권에 맞서 싸웠다. 그 후로 5·18민주화운동, 6월 민주항쟁 등에도 기꺼이 거리고 나섰다. 지금의 자유나 편리한 사회제도 등은 50년 전 수많은 학생 및 시민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누릴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지금 우리가 누리는 것들을 당연하게 여기며 ‘의무가 아닌 권리니까 하지 않아도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선조들의 희생을 어쩌면 헛되게 하고 있다. 4·19는 대학생 사이에서 점차 잊혀지고 있다. 안타까운 현실이다. 김양진기자 ky0295@seoul.co.kr <4·19세대의 메시지> -신복룡 건국대 석좌교수(68세)- 민족 등 서사적 고민에 괴로워할 줄 알아야 독재 정권 물러나라고 외치던 학생들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고 경무대 앞에 낭자하던 선혈의 모습이 선연한데 벌써 50년의 세월이 지났다니 세월의 빠름이 무상하다. 국민적 애도의 기간에 기념일을 맞고 보니 마음이 더욱 스산하다. 4·19혁명은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는가? 역사에 수많은 혁명이 있었지만, 4·19혁명이야말로 주역들이 권력을 탐내지 않은 유일한 혁명이었다. 프랑스 혁명가 조르주 당통의 고백에 따르면, ‘혁명은 어차피 혁명가를 타도한다.’고 하는데, 4·19혁명은 혁명에 성공한 주역이 본연의 자세로 돌아간 ‘무욕의 혁명’ 그 자체였다. 반세기가 지난 지금, 이 시대의 젊은이들은 4·19혁명에서 무엇을 배워야 하나? 요즘 젊은이들이 사랑·취업·돈·학점 등 서정적 자아에 몰두하는 엄지족이라고 불리울지 모르지만, 그들도 가끔은 50년 전의 선배들이 그랬던 것처럼 민족·역사·정의와 같은 서사적 고민에 괴로워 할 줄 알아야 한다. 백민경기자 white@seoul.co.kr -노정선 YMCA 통일위원장(65세)- 부정·부패에 저항하는 또다른 혁명 이뤄내야 아침 수업시간에 유리창이 두 장 깨졌다. ‘누군가 엄청나게 멀리 던지기를 잘하는구나.’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유리창을 깨고 들어온 것은 돌이 아니라 총알이었다. 당시 경무대(청와대)와 2㎞ 정도 떨어져 있던 우리 학교에 유탄이 날아온 것이었다. 경무대 앞길에서 경기고등학교 학생 둘이 경찰사격으로 사망했다. 오늘의 청년들도 정의와 통일 앞에 용감하다. 그러나 선배들은 피를 부르는 상황에서도 민주주의를 이루려고 노력했다. 통일을 외쳤다. 나는 지금 청년들이 정의를 실천하고, 민주를 위해 부정·부패에 저항하길 바란다. 일본이 독도를 자기 땅이라고 하고, 남북이 서로 적대적인 이 현실을 바꿔 놓아야 한다. 남북 경제 통일을 이뤄내고, 민족이 단결해 외부의 책략으로 대리전쟁을 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 4·19정신 그대로 이어 받아 부패하고 부정한 것에 저항하는 또 다른 혁명을 이뤄내야 민족이 살아 남게 될 것이다. 백민경기자 white@seoul.co.kr
  • [4·19혁명 50주년] “시위때 경찰이 쏜 총 피해 치마 뒤집어쓰고 엎드려…”

    [4·19혁명 50주년] “시위때 경찰이 쏜 총 피해 치마 뒤집어쓰고 엎드려…”

    “총칼의 탄압에도 굴하지 않고 감행해야 할 이 항쟁은 우리 후손에 민주주의를 말살하려는 광적인 장기집권이 가져다 준 부정과 부패의 무서운 해독을 오염시키지 않으려 함에 있다.” ●플래카드 들고 맨앞줄에 서서 시위 1960년 4월19일 오전 서울 흑석동 중앙대 캠퍼스. 굳게 닫힌 교문이 열리자 스크럼을 짠 학생 수천명이 일제히 거리로 달려 나갔다. 순식간에 흑석동 고개를 넘어 한강대교 저지선을 뚫고, 삼각지와 서울역을 지나 시청 앞으로 진격했다. 그런데 전속력으로 시위대의 뒤를 쫓는 한 무리의 여학생들이 있었다. 강의실에서 학생들의 모습을 지켜보다 급히 뒤따라 나온 문리과대 여학생들이었다. 행렬을 놓치지 않으려 버스까지 갈아타며 걸음을 재촉한 이들은 서울역에 와서야 시위대와 합류해 함께 경무대(현재 청와대)로 향했다. 당시 국어국문학과 2학년으로 여학생들을 이끌고 나왔던 홍관옥(70·여·종교교육학) 박사는 18일 “전날 4·18 고려대생 피습사건을 듣고 굉장히 자극을 받았다. 이런 불의는 피할 수 없는 일, 두려워할 수 없단 생각이 들어 부모님이 말리는 데도 시위대를 따라 나섰다.”고 회고했다. 경무대 앞에서 군의 발포로 부상자가 속출하자 시위대는 내무부 앞에 다시 집결했다. 홍 박사를 비롯, 여나믄명에 불과한 여학생들이 맨 앞줄에 서서 플래카드를 들었다. 평화 연좌시위가 이어지는가 하더니 곧 경찰이 시위대를 향해 총을 쏘기 시작했다. 홍 박사는 치마를 뒤집어 쓰고 납작 엎드렸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고개를 들고 자리를 피하려는 순간 누군가 머리채를 움켜 쥐고 개머리판으로 온몸을 사정없이 때렸다. 지프차에 실려 중부경찰서 지하실로 끌려가 이틀 동안 취조를 당했다. 경찰은 “잘못했다고 사과하겠느냐, 아니면 이름에 빨간줄이 가겠느냐.”고 윽박질렀다. “또 맞을까봐 너무 무서웠어요. 하지만 나라와 민족을 위해 그런 건데, 잘못한 게 없는데…. 맞더라도 비겁할 순 없잖아요.” 잘못을 빌지 않겠다고 버티던 홍 박사는 때마침 학생들을 구하기 위해 경찰서를 찾은 교수들 덕분에 집에 올 수 있었다. 홍 박사는 공로를 인정받아 건국포장을 받았지만, 4·19 혁명에 참여한 여성들에 대한 평가는 적극적으로 이뤄지지 않았다. 현재까지 생존해 국내에 거주하고 있는 4·19 혁명 공로자 152명 가운데 여성은 홍 박사를 포함해 5명뿐이다. 곧 5·16 쿠데타가 일어나 4·19 혁명에 대한 평가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데다 가부장적인 사회 분위기도 한몫을 했다. ●“맞을까 무서웠지만 끝까지 버텨” 하지만 홍 박사는 ‘서현무’라는 이름 석자를 똑똑히 기억했다. 함께 플래카드를 들었다가 경찰에게 폭행당하고 실신해 사지가 들려 내동댕이쳐졌던 이 법대 여학생은 후유증으로 끝내 숨을 거두고 국립 4·19 민주묘지에서 영면에 들었다. 또 다른 여학생은 머리를 심하게 얻어 맞고 실명 직전까지 돼 1년이 넘도록 햇빛을 보지 못했다. 홍 박사는 4·19혁명을 민족적·총체적 권리의 행사라고 정의했다. 그는 “민주주의를 이루려는 것은 인간의 욕망이자 본능적인 소망”이라면서 “우리는 그저 속에서 터져나오는, 인간 본연의 자세를 찾고 싶은 것이었다.”고 힘주어 말했다. 하지만 대한민국 민주화의 기틀을 마련한 4·19세대로서 지켜보는 현 시국은 아쉬운 점이 많다. 그는 “민주주의를 쟁취하는 것은 좋았지만, 아직 민주주의 자체를 누리지는 못하는 것 같다.”고 걱정했다. 유지혜기자 wisepen@seoul.co.kr
  • [4·19혁명 50주년] 김주열열사 추모·재조명 열기

    [4·19혁명 50주년] 김주열열사 추모·재조명 열기

    4·19 혁명에 불을 지핀 김주열 열사를 추모하고 재조명하는 활동이 활발하다. 김 열사의 희생이 오늘날 이 땅에 민주주의 꽃을 활짝 피게 한 밑거름이 됐다는 새로운 평가가 이뤄지고 있다. 혁명 이후 군부 집권으로 고향인 전북 남원시 금지면 옹정리 묘역에 자리한 비석에조차 ‘열사(烈士)’라는 두 글자를 새길 수 없었다. 혁명 반세기를 맞은 19일, 누나 김경자(69)씨를 비롯한 유족 등이 참석한 가운데 남원시와 남원김주열열사추모사업회 주관으로 열리는 새 묘비석 제막식에서, 떠돌던 ‘열사’ 두 글자를 넣고 ‘민주화에 기여했다.’는 내용도 추가한다. 김 열사는 마산상고 입학을 앞둔 1960년 마산에서 3·15부정선거 규탄시위에 참여했다가 행방불명됐다. 경찰은 단순 행불로 처리했으나 27일 뒤인 4월11일 눈에 최루탄이 박힌 시신 상태로 마산 앞바다에 떠올랐다. 그의 죽음은 마산 시민들을 움직여 4·11 마산민주항쟁으로 번졌고, 결국 전국 항쟁의 불을 지펴 4·19 혁명으로 이어졌다. 당황한 경찰은 주검을 마산도립병원에 안치했다가 4월13일 밤 몰래 고향 남원으로 빼돌려 인양된 상태 그대로 선산에 안장했다. 숭고한 희생을 널리 알리기는커녕 장례식도 치르지 못했다. 가족들은 경찰이 무서워 입을 다문 채 모진 세월을 살아와야 했고, 민주항쟁의 진원지인 마산을 찾는 것은 꿈도 꾸지 못했다. 국가나 사회도 그의 희생을 기리는 사업을 적극 나서지 않고 뒷전으로 미뤘다. 그의 희생은 그러나 결코 헛되이 버릴 수 없었다. 해가 갈수록 보석처럼 빛났다. 크고 작은 민주항쟁을 치르면서 정통성과 역사성을 따지다 보니 김 열사의 희생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를 깨닫게 됐다. 이 땅의 학생들이 민주화 운동에 나설 때마다 늘 그의 희생정신을 앞세웠다. 1960~70년대 학생운동부터 1980년대 광주 민주화운동, 개헌운동 등으로 이어진 민주화 운동의 정신적 뿌리로 자리를 잡았다. 지난 11일 치러진 범국민 장례식에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함세웅 이사장은 “50년 전 바다에서 참혹한 주검으로 떠오른 김주열 청년은 새롭게 부상한 선구자로 우리 앞에 다가왔으며 김 열사의 희생을 통해 이룩한 4·19 혁명으로 한국 민주주의의 꽃이 활짝 피었다.”고 추모했다. 4·11 50주년 행사준비위는 국민들의 머릿속에서 희미해져 가는 자랑스러운 민주역사를 되새기고 민주열사의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김 열사의 범국민장을 추진하게 됐다고 밝혔다. 4·11 민주항쟁은 한 청년의 죽음으로부터 시작됐지만, 4·11이 없었다면 4·19 혁명도 없었을 것이라는 점에서 김 열사의 죽음은 이 땅의 민주주의 초석임이 분명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마산 강원식기자 kws@seoul.co.kr
  • [도시와 길] (11) 서울 압구정·문정동 로데오거리

    [도시와 길] (11) 서울 압구정·문정동 로데오거리

    10년을 넘지 못하는 것은 권력만이 아니다. 상권도 마찬가지다.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과 송파구 문정동의 ‘로데오 거리’는 90년대 전국구 상권을 형성했던 양대 산맥이다. 하지만 지금은 수많은 아류에 밀려 주눅 든 느낌이다. 썩어도 준치라 했다. 변화의 기운이 다시금 꿈틀거리고 있다. ●압구정엔 보세의류·개인브랜드점 속속 들어서 압구정동에 로데오 거리가 형성되기 시작한 것은 80년대 중반부터다. 압구정로 한양1차아파트 맞은편 ‘ㄴ’자형 거리 440m(압구정로 남35길, 선릉로 서14길) 구간에 고급 의류·잡화매장이 들어서면서 패션의 중심가로 자리매김했다. 외국계 브랜드가 국내에서 성공 여부를 가늠하기 위한 파일럿(시험) 매장이 잇따라 들어섰다. 이어 80년대 후반~90년대 중반 ‘오렌지족’이라고 불리는 부유층 자녀들이 이 거리를 활보하면서 신세대 문화를 주도하는 젊은이들의 주요 활동무대가 됐다. 이른바 ‘잘나가는’ 상점의 바로미터가 되는 권리금은 66㎡(20평) 남짓한 게 3억~4억원까지 치솟았다. 연예인 등 유명 인사가 거리에 자주 나타나자, 이런 사람을 구경하기 위한 또 다른 사람들이 몰리면서 인산인해를 이뤘다. 다른 지역보다 3~5배 비싼 커피값을 투정하는 건 촌스러운 행동으로 치부됐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수난은 시작됐다. 명품 거리의 이미지는 바로 이웃해 있는 청담동에 내줬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주상복합촌인 경기 성남시 분당구 정자동을 가로지르는 ‘노천 카페거리’가 ‘청자동’(청담동+정자동)으로 불리는 데도 쓴 입맛만 다셔야 했다. 이국적인 거리 풍경 역시 신사동 가로수길에 뒤처졌고, 문전성시를 이뤘던 젊은이들도 신촌 등지의 대학가로 빠져나갔다. 전국구 상권이 지역 상권으로 뒤바뀐 것이다. 임성진 압구정 로데오거리 상인연합회장은 “현재 1000여개 상점이 있지만, 메인 거리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권리금이 한푼도 없는 곳도 수두룩하다.”면서 “하지만 대중성 확보를 통해 다시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최근 들어 명품점을 보세 옷가게와 개인 브랜드 숍들이 대체하는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다. 다음달부터는 주말에 차 없는 거리로 만들고 장터를 정기적으로 여는 ‘선데이 뷰티 마켓’ 이벤트를 준비하고 있다. 강남구도 측면 지원에 나섰다. 2008년 이 일대를 정부로부터 ‘패션 특구’로 지정받아 대대적인 거리 개선 사업을 벌였다. 임 회장은 “옛 로데오 거리의 황금기를 다시 맞이할 수 있도록 대대적인 마케팅과 홍보 활동도 펼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문정동 인근에 법조단지 조성… 복합상권 도약꿈 로데오 거리가 압구정동처럼 고급 이미지로만 덧칠된 것은 아니다. 명품점 대신 상설 할인매장이 거리를 채우기 시작한 것은 90년대 초반 서울 송파구 문정동 로데오 거리가 계기가 됐다. 900여m 구간 거리 양쪽에 유명 브랜드의 재고품을 모아 파는 할인매장이 빼곡히 들어차면서 주머니가 가벼운 10대 등이 즐겨 찾는 곳이 됐다. 때문에 문정동 로데오 거리는 압구정동이 아닌 ‘뒷구정동’이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다. 하지만 로데오 거리라는 이름을 국내에서 가장 먼저 쓴 원조가 압구정동이라면, 90년대 중반 이후 로데오 거리 조성 바람을 일으킨 원조는 문정동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곳 할인매장에서 올리던 매출 규모는 웬만한 중소기업보다 나았다. 90년대 중·후반 100여개 매장에서 올린 월매출이 300억원을 웃돌 정도였다. 당시만 해도 끊임없이 밀려드는 손님 때문에 점포 문을 잠그고 입장을 통제하는 일도 빚어졌다. 이에 따라 2002년에는 거리 정식 명칭이 아예 로데오 거리로 바뀌었고, 로데오 거리에서 곁가지처럼 뻗어나온 문정동길 400여m 구간에도 상점들이 들어서 지금은 이곳에서 팔려나가는 유명 브랜드만 250여개에 이른다. 이종덕 문정동로데오진흥사업협동조합 회장은 “90년대까지만 해도 주말이면 10만명 정도가 몰렸지만, 지금은 여러 지역에 유사 거리가 생기면서 방문객이 절반 수준으로 떨어진 상황”이라면서 “최고 30억원까지 뛰었던 상점 권리금도 현재 10억원 수준으로 내려갔다.”며 씁쓸해 했다. 문정동 로데오 거리는 이제 위기와 기회를 동시에 맞고 있다. 다음달 말이면 지하철로 한 정거장 떨어진 장지동 가든파이브에 뉴코아 아웃렛이 입주할 예정이다. 경쟁은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반면 송파대로를 사이에 두고 맞은편에 위치한 비닐하우스촌 54만 8000㎡ 일대가 2012년까지 법조·업무단지로 탈바꿈한다. 이 경우 기존 주말 상권이라는 제약에서 벗어나 복합 상권으로 거듭날 수 있다. 이 회장은 “주변 환경 변화에 맞춰 지역 상권으로 변모할 수 있도록 준비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로데오거리 몇 군데? 서울만 10여곳·전국엔 100여곳 우후죽순 ‘로데오 거리’라는 명칭이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온 지 채 30년도 지나지 않았지만, 초등학교 국어교과서에 등장하는 철수와 영희처럼 흔한 이름으로 자리매김했다. 서울에만 10여곳, 전국적으로 100곳에 육박하는 거리가 이 이름을 내걸고 있다. 이처럼 전국 방방곳곳에 우후죽순처럼 생긴 로데오 거리가 대한민국 거리 문화의 현주소를 대변하고 있다. 로데오는 길들여지지 않은 말이나 소를 타고 굴복시키거나 버티는 경기를 일컫는다. 미국 서부시대 카우보이들이 솜씨를 겨룬 데서 유래했다. 로데오 경기가 시작된 시기는 명확하지 않다. 다만 1887년 미국 콜로라도주 덴버에서 처음 입장료를 받고 경기가 이뤄졌다. 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젊은층 사이에서도 로데오가 인기를 끌었고, 때문에 경기장 주변에는 이들을 겨냥한 상설 할인매장도 등장해 거리를 형성했다. 또 50~60년대까지만 해도 말이 지나던 길에 불과했던 미국 LA 서쪽 베벌리힐스의 ‘로데오 드라이브’는 70년대부터 최고급 명품점이 즐비한 세계적인 패션거리로 우뚝 섰다. 우리나라에는 로데오의 ‘경기’는 빠지고 ‘거리’만 유입됐다. 80년대 중반 명품 이미지를 내세운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90년대 초반 저렴함을 강조한 송파구 문정동이 대표적이다. 이어 문정동을 본뜬 은평구 갈현·대조동 연신내 로데오, 양천구 목동 로데오, 도봉구 창동 로데오 등이 줄줄이 생겨났다. 이때부터 로데오 거리는 보통명사처럼 통용되기 시작했다. 1997년 IMF 외환위기로 잠시 주춤하던 로데오 바람은 2000년대 들어 다시 들불처럼 번져나갔다. 이렇듯 서울에서 시작된 로데오 거리 문화는 일산·분당·인천·안산·수원·부천 등 수도권을 넘어 부산·대구·대전·춘천 등 전국으로 확산됐다.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로데오거리 열풍 왜? 소비자·의류업체·지자체·부동산업자 윈윈 로데오 거리 열풍이 전국적으로 확산된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부동산 개발업자와 상점 주인, 의류업체, 소비자, 지방자치단체 등의 이해관계가 절묘하게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구조다. 초기 자생적으로 생겨난 로데오 거리와 달리 부동산 개발업자는 새로운 로데오 거리, 즉 상권을 만들면 개발 이익을 챙길 수 있다. 기존 로데오 거리에서 재미를 본 상인들도 새로운 로데오 거리에 발빠르게 투자하면 권리금이라는 부대 수익을 얻을 수 있다. 의류업체 입장에서는 애물단지 재고품을 효과적으로 정리할 수 있는 수단이 된다. 로데오 거리의 한 상인은 “여러 로데오 거리에 다수의 상점이나 건물을 갖고 있는 이른바 ‘로데오 재벌’도 적지 않다.”면서 “일정 수준 이상의 이익이 발생하면 점포를 정리한 뒤 다른 곳으로 떠나는 구조”라고 귀띔했다. 소비자들은 유명 브랜드 제품을 20~80%의 할인가격에 살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매력이다. 한 거리에서 다양한 브랜드 제품을 둘러볼 수 있다는 점도 장점이다. 지자체는 로데오 거리를 유치하면 세수를 추가로 확보할 수 있다. 때문에 일부 지자체는 로데오 거리를 ‘걷고 싶은 거리’로 지정하거나 거리 축제를 지원하는 등 배려를 아끼지 않는다. 전국적으로 획일화된 로데오 거리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도 제기된다. 또 다른 상인은 “로데오 거리가 지나치게 상업적으로만 발달하고 소비를 부추기는 경향이 커 지역 고유의 특색을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면서 “상권이 체계적으로 개발되지 않아 새로운 거리 문화를 만들어 내는 데도 한계가 있다.”고 꼬집었다.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칸이 선택한 ‘하녀’, 본포스터와 본예고편 공개

    칸이 선택한 ‘하녀’, 본포스터와 본예고편 공개

    칸의 초대를 받은 임상수 감독의 영화 ‘하녀’의 본포스터와 본예고편이 드디어 공개됐다. 이번에 공개된 포스터는 전도연과 이정재, 윤여정, 서우 등 네 명의 주인공이 엇갈린 구도와 시선으로 강렬한 서스펜스를 전하고 있다. 가장 앞쪽에 위치한 전도연은 원망스런 눈빛과 무언가를 호소하는 듯한 표정으로 시선을 끈다. 전도연의 모습은 “줬다가 뺏는 건 나쁜 거잖아요”라는 한 줄 문구와도 절묘하게 어우러져 호기심을 증폭시킨다. 이정재와 서우는 손을 맞잡고 있지만 서로 다른 곳을 응시하고 있다. 이 장면은 두 남녀의 엇갈린 욕망을 보여주며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있다. 윤여정은 문 밖에 서서 모든 사실을 지켜보는 듯한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다. 포스터와 함께 공개된 본예고편에서는 “나 복수할거에요.”라는 전도연의 대사가 이목을 집중시킨다. 본포스터와 본예고편을 공개한 ‘하녀’는 제63회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되며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이 영화는 故 김기영 감독의 1960년작 ‘하녀’를 임상수 감독이 현대적 의미로 재해석해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개봉은 5월 13일. 사진=영화 ‘하녀’ 포스터 서울신문NTN 이재훈 기자 kino@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美 “2030년대 화성에 인류 보낸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15일(현지시간) 2030년대 중반까지 우주인을 화성에 착륙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 ‘화성 유인탐사계획’을 공식 발표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플로리다주 케이프 커내베럴 케네디 우주센터에서 미국 항공우주국(NASA) 관계자 200여명이 모인 가운데 연설을 통해 “2025년까지 장기 우주여행을 위한 신형 우주선을 만들어 달을 넘어서 더 먼 우주를 향해 우주인들의 새로운 임무를 시작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2030년대 중반까지 우주인을 화성궤도에 진입시키고 지구로 안전하게 돌아올 수 있도록 할 수 있을 것이며, 화성 착륙도 가능하도록 할 것” 이라고 말했다. 1960년대부터 미국과 옛 소련, 일본 등에서 궤도 위성, 탐사선 등 수십 개의 무인 우주선을 화성 탐사에 활용하기는 했으나 구체적인 화성 유인탐사계획을 발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달 탐사 계획 중단에 대한 반대 여론을 진정시키면서 미국의 우주 개발 수준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대안으로 화성 탐사 계획이라는 카드를 꺼내 든 것으로 풀이된다. 오바마 행정부는 올해 초 2011년 예산안을 발표하면서 2004년 조지 W 부시 행정부에서 추진한 2020년 달 재착륙 계획인 ‘컨스텔레이션(별자리)’을 중단시켰고, 이는 항공우주국과 우주과학계의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1969년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달에 착륙한 우주인 닐 암스트롱은 지난 13일 오바마 대통령에게 정책 결정을 번복해 줄 것을 촉구하는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달 재착륙을 추진해야한다는 여론에 대해서는 “물론 우선 달에 다시 가는 것을 추진해야겠지만, 달 착륙은 과거에 했던 일이며 앞으로 탐사하고 배워야 할 우주가 훨씬 더 많이 있다.”는 것을 이유로 화성 유인 탐사를 새로운 우주 개발 목표로 제시했다. 당초 달 재착륙 계획 취소 방침으로 미래를 불안해했던 항공우주국 관계자들에게는 “우주 탐사는 미국에 사치품이 아니라 필수품”이라면서 “그 미래를 100% 보장한다.”고 약속했다. 향후 5년 동안 항공우주국 예산으로 60억달러(약 6조 7000억원) 이상을 지원하며, 컨스텔레이션 계획의 하나인 우주캡슐 개발계획도 계속 추진하기로 했다. 또 유인 우주선을 달보다 더 먼 우주로 보낼 수 있는 차세대 로켓 연구 개발비로 30억달러를 투자하며 향후 2년 동안 케네디 우주센터 인근 지역에 2500여개의 일자리를 창출해 이 지역의 높은 실업률을 해소하겠다고 강조했다. 박성국기자 psk@seoul.co.kr
  • 영화 ‘작은 연못’ 그리고 ‘2010년 4월’의 진실은

    영화 ‘작은 연못’ 그리고 ‘2010년 4월’의 진실은

    천안함 침몰사고 이후 알 수 없는 분노와 눈물로 전국이 혼란스럽다. 사건과 관련해 군과 정부가 ‘사실’을 사실로 인정하지 않은 채 비밀에 부치려 한다는 비난의 목소리가 날로 높아진다. 찜찜한 냄새만 풍기는 군 당국을 향한 국민의 신뢰는 자꾸만 바닥을 친다. 천안함 침몰사고가 오버랩 되는 영화 한 편이 있다. 바로 최근 개봉한 ‘작은 연못’(이상우 감독·문성근 등 주연)이다. 한국전쟁 당시 미군이 양민 300여명을 학살한 ‘노근리 사건’을 다룬 영화 이 영화는 한마디로 ‘불편한 진실’을 그렸다. 반드시 알아야 하지만, 아는 순간부터 마음이 불편해져 오는 역사를 그렸기 때문이다. 60년 가까이 순진하기 짝이 없는 국민들을 속이고도 시치미를 뗀 한미 군과 정부의 태도는 극장을 나서는 관객들의 마음에 분노 이상의 무언가를 남긴다. 영화를 만든 이상우 감독은 ‘대놓고’ 이렇게 말했다. “일부 평론가들이 ‘너무 교육적인 것 아니냐’라고 지적하는데, 사실이다. 이 영화는 아무도 몰랐던 역사를 알게 해주는데 목적이 있다.”고. 감독의 의도처럼, 영화는 노근리 학살이 있던 당시의 상황을 보여주는데 충실한다. 어떤 이념도 없다. 60년 전 겪은 우리 민족의 아픈 상처만 고스란히 보여줄 뿐이다. 영문도 모른 채 아이와 남편과 아내, 부모를 잃어야 한 ‘남은자’들은 지금도 분노를 감추지 못한다. 진실을 밝히려고 고군분투 하는 그들의 모습은 영화가 끝난 뒤 흐르는 미니 다큐멘터리에서 볼 수 있다. “사실을 말해달라”며 울부짖는 남은 자들의 눈물은 하나의 외침이다. 도저히 맞설 수 없을것만 같은 한 나라의 군대와 정부를 향한 외침이다. 그리고 그 외침은 지금 이 시간, 천안함이 침몰한 어두운 바다에서도 들려오고 있다. ‘작은 연못’은 감춰져 온 역사를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려는 배우와 스태프, 시민의 힘으로 만들어진 영화다. 제작진은 총 50억원의 예상 제작비 중 40억원을 절감했다. 출연진과 스태프가 8년가량이나 사실상 노게런티로 일했고, 시민들의 참여도 꾸준히 이뤄졌다. 배우 문성근은 “지금까지 한국 영화 역사상, 이러한 방식으로 제작된 영화는 전무하다. 이 영화는 배우를 비롯한 한국 국민들의 십시일반으로 만들어졌고, 때문에 더욱 값지다.”며 개봉 소감을 밝혔다. 제작진의 이러한 노력은 아무도 기억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진실은 변하지 않고, 역사 또한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함이다. 또한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 없다.’는 명언을 되새기기 위함이기도 하다. 그래서 대한민국 전체가 천안함 침몰로 얼룩진 지금, 유독 이 영화가 가슴을 파고드는 것이 아닐까. 서울신문 나우뉴스 송혜민기자 huimin0217@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4·19혁명 유공자 272명 건국포장

    국가보훈처는 4·19혁명 50주년을 맞아 당시 주도적 역할을 한 공로자 등 272명에게 건국포장을 수여한다고 16일 밝혔다. 수훈자 가운데 생존자는 210명, 사망자는 62명, 여성은 11명이다. 이 가운데 77명은 보훈처의 전문사료 발굴·분석단이 4·19혁명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사실이 인정된 서울과 지방의 주요 고등학교와 대학 등을 직접 방문해 찾아냈다. 1960년 4월 25일 대학교수단 시위에 참여한 서울대 이희승·김증한·정범모 교수, 성균관대 변희용·임창순 교수, 건국대 한태수 교수, 고려대 정재각 교수 등이 포함됐다. 포상은 19일 국립 4·19 민주묘지에서 열리는 제50주년 4·19혁명 중앙기념식과 지방자치단체가 주관하는 기념식장 등에서 이뤄진다. 해외 거주자는 재외공관을 통해 전달된다. 포상자 가운데 주요 인사로는 박관용 전 국회의장, 김우석 전 건설교통부장관, 김유진·박희부·유인학 전 국회의원, 문정수 전 부산시장, 이청수 전 KBS 해설위원장, 고(故) 서석재 전 총무처장관 등이 있다. 오이석기자 hot@seoul.co.kr
  • ‘시’ 이창동·‘하녀’ 임상수 나란히 칸 경쟁 부문 초청

    ‘시’ 이창동·‘하녀’ 임상수 나란히 칸 경쟁 부문 초청

    이창동 감독의 ‘시’와 임상수 감독의 ‘하녀’가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나란히 초청됐다. 한국영화 2편이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오른 것은 2004년 ‘올드보이’와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2007년 ‘밀양’과 ‘숨’ 이후 세 번째다. 홍상수 감독의 ‘하하하’는 ‘주목할 만한 시선’에 이름을 올렸다. ●李감독 ‘밀양’ ‘숨’ 이어 세번째 칸영화제 조직위원회는 15일 ‘시’와 ‘하녀’를 포함, 경쟁부문 16작품과 ‘주목할 만한 시선’ 18편 등 주요부문 진출작을 발표했다. 올해로 63회째를 맞는 칸영화제는 새달 12일 개막해 23일 막을 내린다. ‘시’는 작은 도시에 손자와 함께 살고 있는 할머니가 난생 처음 시 쓰기에 도전, 세상에 대한 아름다움을 표현해 간다는 이야기다. 배우 윤정희가 영화 ‘만무방’ 이후 15년 만에 스크린에 복귀한 작품으로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티에리 프레모 영화제 집행위원장은 “세련된 단순성, 휴머니티, 그만의 형식, 그리고 시 자체가 있는 뛰어난 작품으로 보편적 예술이라 부를 수 있는 영화다.”고 평가했다. 배우 윤정희는 최근 제작 보고회에서 “드라마틱한 미자가 아닌, 보통 사람처럼 자연스럽게 연기하려 했다.”면서 “영화를 통해 관객들이 좋은 꿈을 꿨으면 좋겠다.”고 주문하기도 했다. 이 감독은 5편의 연출작 가운데 3편이 칸에 초청, 올해 트로피를 안을지도 관심거리다. 임상수 감독의 ‘하녀’는 고(故) 김기영 감독의 60년대 작품을 리메이크한 작품으로 평온했던 가정에 묘한 하녀가 들어와 그 집 남자와 관계를 맺는다는 내용이다. 이미 칸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바 있는 전도연이 하녀 ‘은이’ 역을 맡았다. 전도연은 “듣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 수상 여부와 상관없이 너무 기쁘고 영광스럽다. 좋은 작품 만들어 주신 감독님과 배우, 스태프 모두에게 고맙고 함께 기쁨을 나누고 싶다.”고 흥분을 감추지 않았다. 임 감독은 2005년 ‘그때 그 사람들’이 감독 주간에 초청된 데 이어 칸과는 두 번째 인연을 맺었다. ●홍상수, 한국감독 중 최다초청 홍상수 감독은 칸으로부터 여섯 번째 초청장을 받아들어 한국 감독 가운데 칸영화제 최다 초청 기록을 세웠다. 앞서 1998년 ‘강원도의 힘’이 주목할 만한 시선에 이름은 올린 뒤 ‘오! 수정’이 같은 부문에,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극장전’이 경쟁 부문에, ‘잘 알지도 못하면서’가 감독주간에 진출한 바 있다. 한편 같은 날 AP와 AFP, 로이터 등 세계 3대 통신사와 게티TV는 영화제 주최측이 영화제 주요 행사의 TV 취재를 제한하려 하자 칸영화제 출품작 언론발표회 취재를 보이콧하겠다고 발표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경원기자 leekw@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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