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60년
    2026-07-03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8,544
  • 423억짜리 24.78캐럿 ‘핑크 다이아’ 경매에

    423억짜리 24.78캐럿 ‘핑크 다이아’ 경매에

    영화 ‘핑크 팬더’에 나왔던 동명의 다이아몬드 반지처럼 세상에서 가장 큰 핑크 다이아 반지가 공개돼 화제다. 25일(현지시간) 영국 데일리 메일은 “다음달 16일 스위스 제네바에 열리는 소더비 경매에 2400만 파운드(한화 약 423억 원)짜리 희귀 핑크 다이아몬드 반지가 나온다.”고 전했다. 이 매체에 따르면 이 핑크 다이아 반지는 24.78캐럿에 이르는 지금까지 발견된 핑크 다이아몬드 중 가장 큰 다이아가 박혀있으며 지금까지 미국 보석상인 해리 윈스턴이 60년 전 경매에서 구입한 개인 소장품이라고. 이 반지의 다이아몬드는 미국 보석감정 연구소에서 가장 완벽한 색상인 ‘팬시 인텐스(fancy intense)’ 핑크로 분류됐으며 반지는 방패 모양의 다이아 숄더와 은으로 세공됐다. 소더비의 보석담당 사장 데이비드 버넷은 “35년 동안 일하면서 지켜봤던 보석 경매 중 이번 핑크 다이아몬드 경매가 가장 흥미로울 것이다.”고 전했다. 소더비에 따르면 이번 경매의 낙찰가는 우리 돈으로 최저 약 302억 원에서 최고 425억 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고. 특히 이 반지의 다이아몬드는 매우 드문 강렬한 색상을 지니고 있는데 핑크 다이아는 전 세계 다이아 가운데 2%에 불과해 보석 수집가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다고 이 매체는 전했다. 사진=데일리 메일 서울신문 나우뉴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F1 코리아 그랑프리 스타트] F1, 굉음… 스피드… 탄성! 24명 상상 그 이상의 질주

    [F1 코리아 그랑프리 스타트] F1, 굉음… 스피드… 탄성! 24명 상상 그 이상의 질주

    ‘부웅 부웅, 쌔~앵’ 포뮬러원(F1) 코리아 그랑프리가 22일 전남 영암 코리아 인터내셔널 서킷(KIC)에서 머신들의 우렁찬 굉음과 함께 막이 올랐다. 오전 10시 24명의 선수들이 서서히 애마에 시동을 걸었다. 드라이버들은 처음 만나는 서킷에 다소 긴장하는 모습이었지만 금세 트랙 상태와 머신 점검을 마치고 질주 본능을 보여줬다. 한 대당 100억원이 넘는 머신이 국내 경기장에서 첫 주행하는 순간이었다. 2만여명의 관람객들은 탄성을 그칠 줄 몰랐다. ●영암서킷서 연습주행 시작 머신의 움직임은 전광석화(電光石火)와 같았다. 트랙 1바퀴를 통과하는 데 걸린 시간은 1분 40초대. 선수들은 직선 코스는 물론 웬만큼 굽은 코스에서도 속도를 줄이지 않고 질주했다. 빨강·노랑·파랑 등으로 칠해진 머신은 속도가 워낙 빨라 색이 겹쳐 보일 정도였다. 노면을 점검한 머신들이 본격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선수들은 시속 300㎞로 내달리며 불꽃 스파크가 나는 등 자동차로 낼 수 있는 최대한의 속도를 자랑했다. 굽은 도로에서 순간 속도를 줄일 때는 타이어 타는 냄새와 흰 연기가 피어 올랐고 관람객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대학생 신순원(20)·권오혁(20)씨는 “직접 F1머신이 달리는 것을 보니 상상했던 것보다 엄청나게 빨라 눈으로 머신을 따라 가기도 힘들다.”며 F1머신이 눈앞에서 순식간에 사라지는 모습과 굉음을 들으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트랙 한바퀴 1분 40초대… 마크 웨버 종합1위 질주 연습주행을 마친 선수들은 서킷에 대해 대체로 만족해하면서도 “미끄럽다.”고 평가했다. ‘F1 황제’ 미하엘 슈마허(독일·메르세데스)는 “놀라울 정도로 만족스럽다. 스피드를 낼 수 있도록 잘 구성된 서킷”이라고 칭찬했다. 해밀턴은 “지금까지 달려본 서킷 가운데 가장 이물질이 많았다.”고 불만을 나타냈다. 연습 주행에서는 종합 1위를 달리고 있는 마크 웨버(호주·레드불)가 가장 빠른 스피드를 기록했다. 웨버는 연습 2차 주행에서 5.621㎞의 서킷 한 바퀴를 도는 데 1분 37초 942를 기록했다. ●예선전 오늘 오후2시 결승전 내일 오후3시 예선전은 23일 오후 2시에, 결승전은 24일 오후 3시에 열린다. 제네시스 쿠페 25대가 출전하는 ‘현대시리즈’도 23~24일 서포트 레이스로 펼쳐진다. F1대회를 유치한 박준영 전남지사는 “반세기가 넘는 60년 역사를 가진 F1대회를 전남에서 개최한 것을 영광스럽게 생각한다.”며 “한국이 1988년 올림픽과 2002년 월드컵 축구대회에 이어 세계 3대 스포츠 행사를 모두 열게 된 뜻깊은 날”이라고 말했다. 영암 최종필기자 choijp@seoul.co.kr
  • 군산 ‘미군 출입제한 구역’ 역사 속으로

    군산 ‘미군 출입제한 구역’ 역사 속으로

    전국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군산 미공군부대 앞 ‘미군 출입 제한 구역’이 50년 만에 풀린다. 전북 군산시는 1960년에 설정된 옥서면 선연리 일대 ‘미군 3마일 출입 제한 구역’을 오는 27일 오후 4시 30분을 기해 해제한다고 22일 밝혔다. 미군 출입 제한 구역은 미공군부대가 들어설 당시 인접 지역 주민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부대 정문 입구로부터 3마일(4.8㎞) 이내에는 미군들이 출입을 하지 못하도록 부대 내 규칙으로 정한 것이다. 당시 미군과 보수적인 주민들 사이에 생길 수 있는 갈등이나 성폭행 등 사건·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미군이 자체적으로 설정한 구역으로 도시계획상 정확한 경계선은 아니다. 이번 조치로 옥서면 전체와 미성동, 개사동, 옥구읍 일부 지역도 미군들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게 됐다. 출입 제한 해제는 옥서면 주민들의 요구로 추진됐다. 2005년 12월 옥서면 주민들의 건의로 군산시가 미군과 협의, 5년 만에 출입금지가 해제됐다. 옥서면 주민들은 군부대 바로 앞인데도 불구하고 미군들의 출입이 금지돼 상대적으로 지역개발이 더디고 경제발전에도 걸림돌이 된다는 이유에서였다. 군산시와 주민들은 미군 출입금지 해제를 계기로 미공군부대 앞 일대가 새롭게 개발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군부대 정문 앞이라는 지리적 이점이 커 미군들을 위한 숙소, 위락시설, 학교 등 다양한 외국인 시설이 들어설 수 있게 됐다. 또 새만금지구, 군산공항 등과 연계해 관광산업이 발전할 것으로 기대된다. 시는 “군산 미공군부대 앞만 유일하게 미군들의 3마일 출입제한 구역으로 남아 있어 지역발전 저해요인으로 지적돼 왔다.”면서 “해제 조치와 함께 상대적으로 개발이 뒤떨어진 출입제한 구역을 중심으로 민자유치가 활발히 이뤄질 수 있게 도시관리계획을 정비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일부 시민단체들은 미군의 출입제한 해제를 반대했다. 군산미군기지 우리땅 찾기 시민모임은 “3마일 출입 제한 구역은 미군 범죄와 성폭력 등으로부터 주민을 보호하기 위해 설정된 것”이라며 “출입 제한 해제로 인한 미군 범죄와 지역 주민들과의 마찰은 시가 책임져야 하며 대책 없는 3마일 해제는 즉각 중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시는 공여구역 주변 지원사업예산으로 추진하는 미군지원사업을 당장 중단하고 실질적으로 지역민들의 경제적 발전을 가져올 수 있는 사업으로 전환하라.”고 촉구했다. 군산 임송학기자 shlim@seoul.co.kr
  • [주말 데이트] MBC라디오 ‘고전열전’ 진행 배한성

    [주말 데이트] MBC라디오 ‘고전열전’ 진행 배한성

    “요즘 배춧값의 폭등으로 서민경제가 말이 아닙니다. 폐하” “그럼 백성들에게 깍두기를 담그라 하시오. 단무지에 고춧가루 뿌려 먹든가…” “폐하, 전셋값이 심상치 않사옵니다.” “대출받아 그냥 사면 될 거 아닌가. 미분양된 아파트도 많은데, 집을 작은 데로 옮기든가…” 살아서 전설을 남긴다. 고독이 몸부림치는 듯 비음 섞인 목소리로 계속 전설을 만들어 나간다. 그러기에 열정이 특별하다. 형사 콜롬보, 가시나무새, 대부, 파피용, 맥가이버, 가제트 형사…. 성우로 출발해 DJ도 했고 MC도 했다. 각종 단체의 홍보대사를 맡아 강연도 하고 대외활동 또한 활발하다. 얼마 전에는 TV드라마에서 ‘사랑과 야망’의 차화연과 열연했다. 요새는 ‘라디오 드라마’의 부흥을 위해 또 다른 열정을 토해내고 있다. 성대 모사의 달인 배칠수와 함께 MBC 표준FM(95.9MHz) ‘고전열전’에서 새로운 장르 개척에 여념이 없다. 앞서 소개한 대화 내용처럼 세태 풍자와 함께 고전을 ‘삼국지 버전’으로 흥미롭게 풀어내고 있다. 성우 배한성(64)씨는 올해로 데뷔 44년째.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남녀노소를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을 넘나들며 열정적인 목소리로 이리저리 뛴다. 하여, 별명이 ‘배돌이’다. 배씨처럼 다양한 계층의 팬을 확보한 사람도 드물 터. 데이트를 요청하는 전화에 그는 바쁜 일정을 잠시 쪼갠다. ‘고전열전’ 첫 방송이 나가던 지난 18일에 서울 여의도공원에서 만났다. 청바지에 편한 남방셔츠 차림이다. 따사로운 가을햇살을 맞으며 나무 아래 의자에 앉았다. “(기자 명함을 보자) 중학교 때 신문팔이를 했습니다. 그때(1960년대 초) 서울신문 위력이 대단했지요.” “집안 형편이 어려웠나요.” “아버지는 경기중학을 나오고 어머니는 서울여상을 나왔습니다. 나름대로 엘리트였지요. 그런데 제가 세 살 무렵에 아버지가 월북을 했습니다. 6·25전쟁 직전이지요. 갔다가 월남하신다는 게 아마 전쟁 때문에 못 내려온 것 같습니다. 그 이후에는 계속 북한에…” 자연스럽게 슬픈 가족사 얘기가 오고 갔다. “그 이후 아버지 소식은 들었습니까.” “1977년에 간접적으로 아버지가 김일성 대학 교수로 있다는 얘길 전해들었습니다. 명절 때 차례상에 사진 올려놓고 아버지한테 절을 하지요. 몇 차례 이산가족 상봉 때 신청을 했지만 연락이 오지 않았습니다. 살아 계시는지, 돌아가셨는지 알 길이 없지요. 어렸을 적에 솔직히 아버지 원망도 많이 했습니다.” “소년가장이 되셨던 까닭을 알 것 같습니다.” “신문 배달할 때 시계가 없어 집에서 새벽 일찍 나서다가 도둑으로 몰려 뭇매를 맞은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웃음) 오늘 주제는 이게 아닌데….” 배씨는 서울 돈암동에서 태어났다. 중학생 때 안암동 주변에서 신문 배달을 하며 탤런트를 꿈꿨다. 그래서 서라벌예술대 영화과에 진학했다. “40년 넘게 목소리 하나로 장수하는 비결이 무엇인가요.” “아버지 얼굴은 모르지만 아버지한테 물려받은 게 목소리인 것 같아요. 사람이 살면서 10가지 경쟁력이 있다면, 아마 끊임없이 배우려는 호학 정신과 호기심이 아닌가 싶어요. 배우려고 했고 또 이미지를 어떻게 제고할까 고민하면서 살아왔습니다. 아마 성우만 했다면 1990년대 중반에 그만두었을지도 모르죠. 성우할 때 DJ도 했고, MC도 했고, 신문에 교통칼럼도 쓰고…. 그러다 보니 지금까지 이렇게 활동을 해나가는 것 같아요.” “삶의 철학이 있다면요.” “후배들을 만나면 이런 얘기를 자주 합니다. 우리는 밭 가는 농사꾼이나 똑같다. 사과나무 열릴 때 그걸 기다리지 말고 옆 땅을 개간하라고 하지요. 한 군데 농사만 계속 지으면 지력(地力)이 떨어집니다. 옆 땅, 그 옆 땅에 묘목을 심고 가꾸고 열매를 기다려야 합니다. 또 사과나무의 인기가 떨어지면 다른 과실수를 심어야 하지요. 강의할 때도 그렇습니다. 죽어서 전설을 남기면 뭐하느냐, 살아서 전설을 남겨야 한다고 늘 강조하지요.” 화제를 바꿨다. 라디오 드라마 부흥을 위해 또 한번 열정을 쏟는 얘기를 꺼냈다. “오디오 드라마로 표현하는 것이 어울립니다. ‘고전열풍’의 흐름은, 예를 들어 김치인 경우 ‘삼국지식’으로 접근합니다. 고전과 현대, 그리고 미래를 버무리는 것이지요. 세태 풍자도 곁들여 마치 만화를 드라마로 옮긴 것처럼 유쾌한 내용입니다. 주위 많은 동료분들이 최선을 다해서 새 장을 열라고 주문합니다.” 사실 라디오 드라마는 1980년대까지만 해도 국민과 희로애락을 함께할 정도로 인기가 좋았다. 하지만 요즘에는 인터넷과 스마트폰에 3차원(3D) 영화까지 등장하는 추세에 밀려 과거의 추억이 돼 버렸다. 배씨는 이제 새로운 접근 방식으로 라디오 드라마의 르네상스를 만들겠다는 사명감으로 충만해 있다. 700여명의 후배 성우들도 과거의 낭만을 되살려주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지금까지 수많은 작품에 출연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을 꼽는다면 어떤 것일까요.” “아마데우스에서 모차르트 역할을 세 번씩이나 했습니다. 아마 적임자가 저밖에 없었나 보죠(웃음). 그리고 파피용에서 드가(더스틴 호프만), 대부에서 알파치노, 사랑의 로망으로 유명한 가시나무새에서 랄프 신부 역할을 한 것도 기억에 남습니다. 그러다 보니 지금의 20대에서 80대까지 기억할 수 있는 작품들을 모두 한 셈이죠.” 배씨는 딸 둘과 고3 아들을 두었다. 큰딸 지인씨는 이탈리아 유명브랜드 한국회사의 홍보부장으로 있고 작은딸 우리씨는 소설 ‘에펠탑의 빨간 리본’을 쓴 작가이다. 배씨의 취미는 자동차를 타고 훌쩍 떠나는 것이다. 1년에 한번쯤은 반드시 시간을 내 자동차와 함께 어디론가 사라진다. 1992년에는 티코와 다마스를 타고 영국 그리니치 천문대에서 지구를 반 바퀴 도는 일정을 소화하기도 했다. 올해도 그럴 작정이다. 김문 편집위원 km@seoul.co.kr ●배한성씨는 1946년 10월 3일 서울 돈암동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경북 김천 출신으로 배씨가 세 살 때 월북, 아직 생사 확인이 안 되고 있다. 배씨는 명절 때마다 아버지 사진을 걸어놓고 절을 하면서 어버지를 그리워한다. 어릴 적에는 아버지를 원망했지만 지금은 아버지한테 천의 목소리를 물려받았다고 감사해한다. 현재 한국성우협회 자문위원이다. 서라벌예술대학을 나와 1966년 TBC 2기 성우로 데뷔한 뒤 형사 콜롬보, 대부, 파피용, 가제트 형사 등의 프로그램에서 남녀노소를 넘나드는 활약을 펼쳐 국민 성우로 인정받는다.
  • 흥남철수작전 60주년 기념행사

    흥남철수작전기념사업회(회장 황덕호)는 속초시와 함께 다음달 3~5일 ‘흥남철수작전 60년의 기억과 감사의 행사’를 갖는다. 국가보훈처와 해군본부가 후원하는 행사는 3일 오전 10시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 광장에서 열리는 국토뱃길순례단 발대식을 시작으로, 같은 날 오후 4시 30분 순례단 출항식(속초 국제항), 4일 해군1사단 방문 및 학도병 추모비 참배, 5일 거제포로수용소 유적공원에서 열리는 기념식으로 마무리된다.
  • 브리지트 바르도 “차기 대선 출마할 수도”

    브리지트 바르도 “차기 대선 출마할 수도”

    1960년대 섹시 스타이자 야생동물보호 운동가인 프랑스 영화배우 브리지트 바르도(76)가 차기 대선에 출마할 수도 있다는 뜻을 밝혔다. 17일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에 따르면 바르도는 환경을 내세우는 생태동맹당으로부터 오는 2012년 대선 출마 제의를 받았다. 생태동맹당 앙트완 베처 의장은 “바르도가 대선에서 우리를 대표할 수 있는 최고의 적임자”라면서 “그가 (제의를) 수용하면 내년에 최종 결정이 내려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바르도는 1970년대 영화계를 은퇴한 뒤 동물보호에 앞장서고 있다. 바르도는 최근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에게 보낸 서한에서 “우파와 좌파 모두 관심 갖지 않는 동물 보호를 위해 누군가의 목소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AP와의 인터뷰에서도 “사르코지가 나를 바보로 생각하고 지키지도 않을 공약을 했다.”고 비판했다. 바르도는 이슬람 교리에 따라 동물의 목을 베는 도축법에 반대, 먼저 기절시키도록 해야 한다고 외치고 있다.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돌아온 탐욕의 화신 양심을 묻다

    돌아온 탐욕의 화신 양심을 묻다

    농담을 보태자면 올리버 스톤(64) 감독이 1987년에 만든 ‘월스트리트’는 2008년에 터진 세계 금융 위기에 어느 정도 책임이 있는 작품이다. “돈은 잠들지 않는다.”, “탐욕은 좋은 것”이라는 유행어를 탄생시켰던 영화 속 캐릭터 고든 게코(마이클 더글러스)는 가공의 인물임에도 미국 금융계의 아이콘이 됐다. 당시 재능 있는 젊은이들은 현실 속의 게코가 되기 위해 월가(街)에 몰려 들었다고 한다. 세월이 흘렀다. 전 세계가 금융 위기로 무너지자, 게코가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 묻는다. “탐욕은 좋은 것인가?” 부산국제영화제 참석차 내한한 스톤 감독을 지난 15일 부산에서 직접 만나 23년 만에 꺼내놓은 속편 ‘월스트리트-머니 네버 슬립스’(21일 개봉)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플래툰’(1986) ‘7월4일생’(1989) ‘하늘과 땅’(1993)의 베트남 3부작, ‘JFK’(1991) ‘닉슨’(1995) ‘W’(2008)의 대통령 3부작…. 한 번 손대면 3부작은 돼야 직성이 풀렸으나 월가 이야기는 이번으로 끝낼 것 같다며 스톤 감독은 활짝 웃었다. 전편에서 버드 폭스(찰리 신)와 물고 물리는 배신을 거듭하던 게코는 8년 동안 감옥살이를 하다가 세상에 나온다. 유일한 혈육인 위니 게코(캐리 멀리건)와는 연이 끊긴 지 오래다. 위니의 약혼자 제이콥 무어(샤이아 라보프)는 정의감에 불타는 주식 중개인. 하지만 자신의 스승 격이었던 루이스 제이블(프랭크 란젤라)이 월가의 거물 브레튼 제임스(조쉬 브로린)의 작전에 휘말려 파산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자 게코의 노하우를 빌리게 된다. ●속편 제작에 23년이나 걸린 까닭 “통상 6~7년 안에 속편을 만드는데, 23년이 지난 뒤에야 속편을 만든 까닭은 1편에서 다뤘던 월스트리트의 상황들이 여전히 존재해 왔다는 사실이, 2008년에 일어난 상황이 믿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파생금융상품의 파산 위험성을 알고도 숨긴 채 계속 팔아 수익만 챙기고 빠진 월가의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를 통렬하게 비틀고 싶었을 게다. 그래서인지 모럴 해저드라는 말은 영화에 여러 번 등장한다. 게코는 단순명료하게 정의한다. “누군가 당신의 돈을 가져가서 쓰고는 책임지지 않을 때 쓰는 말 ”이라고. ‘탐욕의 화신’이었던 게코가 달라진 변모를 드러내며 세상을 향해 외치는 쓴소리를 듣다보면 스톤 감독이 반자본주의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자본주의를 믿는다. 시장의 수요, 공급을 통해 경제가 돌아가는 자본주의 메커니즘은 분명 필요하다. 하지만 돈으로 돈을 버는 경제 활동은 좋지 않다. 미국을 보면 전체 국내총생산(GDP) 가운데 40% 이상이 머니 게임에서 나왔다. 금융산업에 있는 사람들은 마치 카지노에 있는 것 같다. 보다 나은 사회를 위해 어느 정도 통제와 제어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아버지가 주식중개인… 스톤 자신은 주식 손도 안대 스톤 감독이 월가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오랫동안 주식중개인으로 일한 아버지(루이스 스톤)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1편 개봉 전에 세상을 떠 아들이 만든 월가 영화는 보지 못했다. 스톤 감독 자신은 주식을 전혀 하지 않는다. “전문적으로 투자하는 사람들을 따라잡기에는 머리가 따라가지 못해서”라는 게 이유다. 흥미로운 사실은 1편의 루 만하임(할 홀브룩)과, 2편의 루이스 제이블 캐릭터에서 스톤 감독의 아버지 모습이 비친다는 점. 극중에서 모두 ´루´라고 불리는 두 캐릭터는 긍정적인 금융가로서의 모습을 보인다. 특히 루 만하임은 젊은 혈기에 불타는 후배에게 “이것만 알아두게, 지름길은 없다는 것, 규칙을 무시한 중개인은 살아남을 수 없다네. 여기서 도는 돈은 사회 발전에 쓰이는 거야, 돈에 현혹되지마.”라고 충고한다. 두 캐릭터에 아버지 모습을 투영했느냐는 질문에 스톤 감독은 “아버지는 평생 정직한 중개인이었다.”며 절반만 맞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루는 아버지를 마음에 두고 만든 캐릭터다. 그러나 루이스는 다르다. 지나치게 정직하게 보이기도 하지만 새로운 시대에 뒤떨어진 채 감각 잃은 금융가이기도 하다. 착한 모습은 자신이 아끼는 제이콥에게만 보여주는 것이고 증권가에서 실제 모습은 리만 브라더스의 주범과 비슷할 수도 있다.” ●1편보다 무뎌진 비판 칼날? 영화 마지막에 숨겨진 스톤의 의미심장한 메시지 1편에서 화려한 월가의 추악한 이면을 냉정하게 까발렸던 스톤 감독은 2편에서는 도덕교과서에 나올 법한 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어 놓는다. 비판의 칼날이 다소 무뎌진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 제이콥과 위니는 행복의 키스를 나눈다. 게코도 딸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등 미래를 낙관하며 해피엔딩으로 작품을 마무리하는 분위기다. 다른 의견도 나온다. 영화 내내 통렬한 참회록을 써가는 것처럼 보이던 게코가 다시 ‘머니 게임’의 쳇바퀴로 뛰어들기 때문이다. 버블이 터질 때마다 누군가 책임을 지는 것 같지만 “내가 안 해도 누군가가 한다.”는 말처럼 세상은 계속해서 또 다른 폭탄 돌리기를 시작하는 것이다. 그래서 스톤 감독은 마지막 장면에 의미심장한 여운을 남긴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1960년대 경기 침체, 1980년대 레이건 시대의 소비·탐욕주의,1990년대 말 정보기술(IT), 2000년대 부동산으로 인한 네 가지 버블 경제를 겪었다. 아이러니하게 버블이 터지는 주기도 짧아지고 또 자주 일어나니 화도 나지 않는다. 어쨌든 시간은 흐르고, 아이들은 태어나고, 또 자라날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버블이 생길 것이다. 중요한 것은 사람 사이의 신뢰, 은행에 대한 신뢰이지만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아무도 모른다. 그러한 불확실성을 표현하기 위해 마지막 장면을 버블로 물들였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中 ‘포스트 후진타오’ 시진핑] 정부·행정 초점 맞춰 개혁 나설듯

    [中 ‘포스트 후진타오’ 시진핑] 정부·행정 초점 맞춰 개혁 나설듯

    중국 공산당 제17기 중앙위 제5차 전체회의(17기 5중전회) 종료 직후 관영 언론이 공개한 공보에서는 예상대로 경제, 사회, 문화체제 개혁이 비중 있게 다뤄졌다. 그러나 내부적으로는 정치개혁 문제가 중요하게 논의됐다. 중국 공산당의 중앙위원과 후보중앙위원들은 경제체제 개혁 못지않게 정치체제 개혁도 부단히 추진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문제는 방식이다. 주권재민과 법치의 유기적인 조화를 강조하면서도 사회주의 민주정치 발전과 사회주의 법치국가 건설을 가속화해야 한다고 못을 박았다. 후진타오 주석이 지난 달 초 광둥성 선전에서 열린 경제특구건설 30주년 기념대회 때 한 연설의 틀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런 점에서 향후 중국의 정치개혁은 통치체제보다는 정부와 행정개혁에 초점이 맞춰질 것으로 보인다. 이번 5중전회에서도 선전과 충칭(重慶) 등에서 시범적으로 실시되고 있는 각종 사회주의 민주정치 실험을 집중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층조직의 직접선거, ‘행정3분제’ 등이다. 특히 선전에서 시행되고 있는 행정3분제는 행정권한 집중에 따른 부정부패를 막기 위한 제도로 서구의 삼권분립과는 다르지만 행정권한을 정책결정, 집행, 감독 등 세 부분으로 나눠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작동되도록 하고 있다. 이 실험은 2012년 제18기 당대표대회에서 성과가 보고돼 전국 확대 실시 여부가 결정된다. 중국의 관영 매체들은 5중전회 이전부터 서구식 민주주의를 ‘달러 민주주의’로 혹평하면서 중국 특색 사회주의의 우월성을 강조해 왔다. 다당제와 삼권분립 등 서구식 민주주의는 여전히 중국 지도부의 눈 밖에 있다는 얘기다. 이제 남은 관심은 2012년 당대표대회까지의 중국 권력구조 개편이다. 후 주석 등 중국 최고지도부를 구성하고 있는 9명의 정치국 상무위원 가운데 시 부주석과 리커창 부총리만 남고 나머지 7명은 2012년 당대회에서 모두 퇴진하게 된다. 후임 정치국 상무위원에는 왕치산(王岐山) 부총리, 왕양(汪洋) 광둥성 당서기, 리위안차오(李源朝) 중앙조직부장, 류윈산(劉雲山) 중앙선전부장, 류옌둥(劉延東) 국무위원, 보시라이(薄熙來) 충칭시 당서기 등이 유력한 가운데 류링허우(60後·1960년대 출생자)의 선두주자 가운데 1~2명이 입성할 가능성이 점쳐진다. 일부 중국정치 분석가들은 중국이 위기관리를 위해 집단지도체제를 더욱 강화할 것이라는 점에서 정치국 상무위원 9명을 포함, 25명의 정치국원 구성으로 권력구도 관전 포인트를 확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베이징 박홍환특파원 stinger@seoul.co.kr
  • [열린세상] 우리나라 대학진학률은 너무 높은가? /이영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

    [열린세상] 우리나라 대학진학률은 너무 높은가? /이영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

    우리나라의 2009년도 대학진학률은 81.9%로 세계에서 가장 높다. 유럽 국가들은 30~40%에 불과하며, 미국과 일본은 2년 과정들을 모두 합쳐야 68% 정도를 보이고 있다. 우리나라의 높은 대학진학률은 물론 교육을 중시하는 전통과 교육열에 기인한 것이다. 우리나라 부모들은 자식의 교육에 대해서는 아낌이 없었다. 1980년대 이후 이루어진 대학 공급의 대폭적인 증가는 우리나라 대학진학률이 높아진 또 다른 이유이다. 1980년대 초 도입되었던 졸업정원제는 대학정원을 늘리는 결과를 가져왔고, 1990년대 중반 도입된 대학설립 준칙주의는 대학의 신규 설립을 촉발시켜 학생 수를 대폭 증가시켰다. 이러한 정부정책에 힘입어 1980년대 초 27%에 불과하였던 대학진학률은 1990년대 50%로, 그리고 2000년대에는 80%대로 증가하였다. 우리나라의 대학진학률이 적정한 수준인가에 대해 두 가지 방법으로 평가해 봤다. 첫째로 우리나라의 대학진학률 수준이 우리나라 경제·사회 발전 수준에 들어맞는가를 살펴보는 것이고, 둘째로 고졸자 대비 대졸자 임금을 국제적으로 비교함으로써 대졸자의 과잉공급 여부를 살펴보는 것이 그것이다. 국가의 대학진학률은 그 나라 경제·사회의 발전 여건에 따라 점차 높아지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경향을 이용하면, 한 국가의 실제 진학률을 그 나라의 경제·사회 여건에서 예측되는 진학률과 비교해 파악할 수 있다. 세계은행에서 매년 발표하는 통계자료를 가지고 분석해 보면, 우리나라의 실제 대학진학률과 예측된 진학률 간의 차이는 1980년대 초에는 거의 없었으나 그 이후 커지기 시작하여 1990년 초 10%포인트가량, 2000년대 이후에는 무려 45%포인트로 확대되었음을 알 수 있다. 여건과 비교하면 대학진학률이 높다는 것은 선행투자 또는 과잉투자로 해석될 수 있다. 그렇지만 얼마만큼이 선행투자이고 얼마만큼이 과잉투자인가를 구분하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이를 구분해 내기 위한 한 가지 방법은 과거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에 있어서 실제 진학률과 예측 진학률 간의 차이를 과잉투자가 아닌 선행투자로 해석하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은 우리나라가 초·중등교육에 대해 우리 여건에 비해 높게 투자했던 것이 이후 우리나라 발전을 이끌었다는 긍정적인 평가에 기반을 둔 것이다. 1960년부터 1980년까지 초등학교 실제 취학률은 예측된 취학률보다 10%포인트 정도 높았고, 중학교와 고등학교는 1980년부터 2000년까지 최고 20%포인트 높았다. 초·중등교육에서 관찰된 수치에 비하여 대학교육에서 관찰된 수치는 지나치게 높으며, 이는 현재 우리가 대학교육에 과잉투자하고 있을 가능성이 큼을 의미한다. 과잉투자 여부를 살펴보는 또 다른 방식은 고졸자 임금 대비 대졸자 임금을 국제 비교해 보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고졸자 임금에 대한 일반대학 졸업자의 임금은 1980년대 2.4배 수준에서 1990년대 1.5배 수준으로 낮아져 현재까지 이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매우 높은 것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이러한 임금격차는 다른 국가에 비하여 다소 낮은 수준이다. 미국의 경우 1990년대 이후 지속적으로 증가하여 현재 1.9배 정도를 보이고 있다. 우리나라의 수치가 다른 국가에 비해 작다는 것은 대학졸업자가 다른 나라에 비하여 보다 많이 공급되고 있으며, 이는 우리나라가 대학교육에 과잉투자하고 있을 가능성이 큼을 의미한다. 지금까지의 논의는 우리가 대학교육에 과잉투자하고 있을 가능성이 큼을 의미한다. 과잉투자임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대학교육을 투자가 아닌 소비로 보는 순간 높은 대학진학률은 합리화될 수 있다. 대학교육이 좋은 투자이든 좋은 소비이든 이를 위해 공통으로 필요한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대학교육의 품질이 높아야 한다는 것이다. 앞으로 정부의 고등교육 정책의 초점은 대학교육의 질을 높이는 것에 두어야 한다.
  • [고전 톡톡 다시 읽기] 미시마 유키오와 천황

    [고전 톡톡 다시 읽기] 미시마 유키오와 천황

    1970년 11월 25일 미시마 유키오는 자신의 사병대인 ‘방패의 모임’을 이끌고 일본 자위대 옥상을 점거한다. 그곳에서 그는 평화헌법 반대와 천황제 회귀에 대한 연설을 한다. 1000명이 넘는 자위대 군인들이 그의 연설에 비웃음으로 보답하자, 그는 “천황폐하 만세”를 외치며 그 자리에서 사무라이식 할복자살로 마흔 다섯 삶을 마감한다. 이 사건을 계기로 사그라졌던 일본 극우파들의 불꽃이 피어나기 시작한다. 패전 이후, 발을 디밀 틈이 없었던 군국주의자들에게 미시마의 할복 사건은 그들을 하나로 뭉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던 것이다. 그러나 군국주의자들은 미시마를 오해하고 있었다. 미시마가 처음 천황을 보았던 것은 초등학교 졸업식에서였다. 졸업식장의 맨 앞에 앉은 천황은 길고 긴 졸업 예식 중에 아무런 미동도 없이 앉아 있었다고 한다. 무력할 만큼 움직임이 없는 천황의 모습이 그 어떤 카리스마 있는 존재보다 훨씬 강하게 그의 머릿속에 각인된 것이다. 당시 미시마에게 천황은 확실히 비인격적이고 신성하며 절대적인 존재에 가까웠을 것이다. 그러니 패전 이후 스스로가 신이 아니라고 자처했던 천황의 ‘인간선언’은 미시마뿐 아니라 일본국민에게 충격적이었던 것은 당연하다. 절대적 존재로서의 천황과 인간선언을 해버린 천황 사이의 모순 속에서 미시마는 자신이 소망하는 천황의 이미지를 발전시킨다. 미시마가 발전시킨 천황의 이미지는 훗날 전공투(1960년대 일본 학생운동단체)에 불려나간 도쿄대 강단에서 했던 말에서 확인할 수 있다. “내 천황관은 소위 우익의 천황관과는 전혀 다릅니다.…내가 말하는 천황이란 통치하는 인간 천황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나는 폐하가 ‘만요슈’ 시대의 폐하와 같이 자유롭게 프리섹스를 하는 폐하였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인간 천황이라고 할 때에는 통치자로서의 천황, 권력 형태로서의 천황을 의미하고 있는 거죠. 나는 옛날의 신과 같은 천황이라는 하나의 흐름을 재현시키고 싶은 겁니다.” 미시마는 전 세계를 통치하고 지배하는 데 힘을 쏟는 군국주의적 천황과는 다른 천황을 꿈꾸었다. 미시마의 천황은 정치라는 인간적 상황에 침범당하지 않는 신성한 영역, 즉 삶과 괴리된 예술작품 같은 이미지로 제시되었던 것이다. 그의 할복자살이 예술과 삶을 하나로 연결해 보겠다는 시도로 읽히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의 죽음은 그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극우파들에게 좋은 기회를 마련해준 것은 틀림없다. 미시마는 죽고 없으니 그는 이제 천황제에 대한 그의 가치관을 제대로 피력할 기회조차 없다. ‘금각사’에서 미조구치의 다짐처럼 사람은 역시 살고 봐야 한다.
  • [루브르박물관 복원연구소를 가다] “복원기술 발전 힘은 투자 KIST 연구자 수준 높아”

    [루브르박물관 복원연구소를 가다] “복원기술 발전 힘은 투자 KIST 연구자 수준 높아”

    “연구소의 장비를 단순히 유지하는 데에만 매년 200만유로(약 32억원)가 넘는 금액이 투자됩니다. 실제 복원에 들어가는 비용은 모두 복원을 의뢰한 각 박물관에서 지원하죠. 끊임없이 복원기술을 개발하는 것이 프랑스가 최고의 박물관을 가질 수 있는 이유입니다.” C2RMF 소장인 필리페 월터는 루브르의 힘을 ‘투자’라고 강조했다. 루브르 안에는 복원 및 보존 연구소뿐 아니라 작품과 관련된 자료를 수집하고 보관하는 도서관과 데이터베이스, 작품을 돋보이도록 하는 전시기술만 연구하는 파트가 각각 따로 운영되고 있다. 이 모두가 대대적인 투자가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월터 소장은 “연간 1000만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루브르를 찾는 것은 최고 수준의 작품을 최고의 환경에서 볼 수 있기 때문”이라며 “1920년 루브르에서 처음으로 엑스레이를 이용해 그림을 촬영한 뒤로 복원기술은 시시각각 발전하고 있다.”고 말했다. C2RMF에서 일하는 보람에 대해 월터 소장은 “매일매일 세계 최고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그를 비롯한 C2RMF 연구원들은 모나리자를 비롯해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밀로의 비너스’ 등 수많은 걸작들을 분석하고 연구하고 있다. 모나리자의 경우 1930년, 1960년, 2004년에 복원실로 옮겨져 보존상태에 대한 분석작업이 진행됐고, 2008년에는 연구원들이 직접 장비를 들고 박물관 내에서 연구를 진행했다고 월터 소장은 설명했다. 월터 소장은 루브르가 갖고 있는 복원 노하우에 대해 “단순한 기술로만 복원을 시도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200명의 C2RMF 연구진의 전공을 살펴보면 미술, 고고학, 역사, 동양학, 아프리카학, 디자인, 물리, 화학, 원자력 등 사실상 모든 학문이 총망라돼 있다.”면서 “세계 각국에 기원을 갖고 있는 수많은 작품을 연구하는 데 이 같은 다양성이 큰 무기가 된다.”고 밝혔다. C2RMF는 지난해부터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과 함께 공동연구를 진행 중이다. 기초기술연구회가 지원하는 KIST 문화재 보존과학기술사업단 이정인·이연희 박사팀이 C2RMF와 함께 전통염료 분석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월터 소장은 “공동연구를 하면서 KIST 연구자들의 수준이 의외로 높다는 점에 놀랐다.”면서 “KIST에서 가속기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는데, 루브르에서 선형입자가속기(AGLAE)를 통해 얻은 성과를 생각하면 한국의 문화재 연구가 크게 도약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파리 박건형 순회특파원 kitsch@seoul.co.kr
  • 추상 vs 구상… 두 작가 철조각전 나란히

    추상 vs 구상… 두 작가 철조각전 나란히

    한국 현대조각의 과거와 현재가 궁금하다면 이 전시들을 놓치지 마시길. 경기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이 기획한 ‘한국 추상 철조각의 선구자 송영수’전과 서울 평창동 김종영미술관에서 열리는 여성작가 배형경(55)의 ‘생각하다, 말하다’전이다. 송영수전은 작고 40주기 회고전으로, 배형경전은 조각전문미술관인 김종영미술관이 선정한 ‘오늘의 작가’전으로 마련됐다. 송영수(1930~1970)는 추상조각 1세대, 배형경은 구상조각 2세대 작가다. 송영수가 1950년대 사실적인 인체 석고 위주의 조각 풍토에서 벗어나 추상의 세계를 펼친 반면, 배형경은 지난 30년간 추상 조각에 밀려 비주류로 전락한 인체 조각을 고집하고 있다. 두 작가 모두 한국 현대조각의 태두 김종영에게 배우고, 철을 재료로 삼은 점은 흥미로운 대비와 조화를 보여준다. ■숨쉬는 용접의 美 ‘추상 철조각의 선구자 송영수’展 1950년 서울대 조각과에 입학한 송영수는 대학 3학년부터 내리 4년간 특선을 하며 27세 때 최연소 국전 추천작가가 됐다. 50년대 중반 무렵 해외 조각계로부터 철과 용접이라는 새로운 재료와 기법을 접한 그는 57년 국전에서 드럼통의 철판을 잘라서 용접한 작품 ‘부재의 나무’와 ‘효’를 선보이며 추상 철조의 영역을 개척했다. 이후 평생 용접 조각을 탐구하면서 자신만의 독자적인 조형언어로 발전시켰다. 전시는 마흔의 나이에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난 송영수의 짧지만 불꽃 같았던 예술 세계 전반을 돌아보는 자리다. 주제별로 세개의 공간으로 구성됐다. 첫번째 공간은 ‘십자고상’ ‘순교자’ 등 독실한 가톨릭 신앙을 바탕으로 제작한 작품들이 전시됐고, 두번째 공간은 ‘가족’ 등 초기의 인체 조각상과 다양한 형태로 시도했던 대표적인 용접 조각들을 모았다. 마지막 공간에선 1960년대 말 새롭게 시작한 테라코타 작품 ‘거위’ ‘새의 기명’ 등을 만날 수 있다. 제자인 강희덕 고려대 교수는 “송영수 작품의 특징은 유연성과 포용성으로, 차가운 쇠붙이도 인간적으로 느껴지게 하는 힘이 있다.”고 말했다. 이 밖에 작가의 아이디어가 어디서 싹트고 어떻게 가지를 뻗었는지를 보여주는 드로잉북, ‘사명대사’ ‘원효대사’상 등 기념 조형물 제작을 위한 각종 기록 및 사진, 영상 자료 등은 그의 작품 세계를 입체적으로 조망하는 데 도움을 준다. 12월 26일까지. 관람료 3000원. (02)2188-6000. ■실존적 인간 고뇌 배형경 ‘생각하다, 말하다’展 작고 가녀린 작가의 몸 어디에 이런 에너지가 숨어 있는 걸까. 배형경의 인체 조각들은 남성 작가들도 다루기 쉽지 않은 스케일과 무게감을 지녔다. 철과 청동으로 빚은 그의 작품들에는 거칠고 고된 작업의 흔적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사람 사이의 무수한 관계성이 흥미로워서 인체 조각에 매달려 왔다.”는 작가는 초기 민중미술계열의 사회저항적인 메시지를 담은 작업에서 점차 인간 존재의 근원을 탐구하는 방향으로 변화해 왔다. 전시에는 미발표 신작 30여점이 선보인다. ‘떠돌아 다니는 것들’은 철로 만든 인체 군상이다. 녹슨 표면으로 인해 테라코타 같은 질감이 난다. 고개를 숙인 채 양팔을 축 늘어뜨린 사람의 형상을 표현한 것으로 삶과 죽음 등 실존적 고뇌에서 뿜어져 나오는 우울과 고독의 정서가 전해진다. “왜 철인가.”란 질문에 작가는 “철이 본질에 가까운 느낌이 들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청동으로 만든 작은 인체 조각상 수십개를 차곡차곡 쌓아올린 ‘생각하다2’는 불교 석굴 사원의 감실을 연상시키는 종교성이 강한 작품이다. 최근 작품들에선 여러 사람의 머리가 붙어 있거나 다른 사람의 등 위에 포개져 있는 형상 등 개별적 인간이 아닌 사회적 관계를 강조하려는 경향이 눈에 띈다. 미술평론가 조은정씨는 “작가로서 동시대를 바라보는 사유의 폭이 넓고 치열한 작가”라고 말했다. 11월 11일까지. 무료 관람. (02)3217-6484.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육군 2군단 ‘쌍용 축제’

    육군 2군단 ‘쌍용 축제’

    육군 2군단(군단장 오정석)은 16~17일 강원도 춘천시 삼천동 야외 수변공원에서 ‘시민과 함께하는 쌍용 페스티벌’ 행사를 한다고 14일 밝혔다. 한국전쟁 60년을 맞아 춘천시민과 함께하는 한마당 축제를 통한 민과 군이 화합을 도모하고자 마련됐다. 행사에는 군 의장대 시범과 고공강하 등이 펼쳐진다. 2군단 장병의 열병과 분열, 축하비행으로 본격 막이 오르는 쌍용 페스티벌은 춘천대첩 재현행사로 분위기가 한층 고조된다. 한국전쟁 초기 국군이 거둔 첫 대승인 춘천대첩의 재현행사에는 540여명의 장병과 화포 6문, 전차 2대 등이 동원될 예정이다. 또 고(故) 심일 소령(당시 중위)과 육탄 5 용사가 적 전차를 맨주먹으로 막아내는 전투도 함께 재현한다. 전차와 자주포, 자주 발칸 등 군의 주요 장비를 동원해 시가행진도 벌인다. 전차와 헬기 등 전투 장비를 관람하고 탑승하는 기회도 제공하며, 전투식량 시식 및 서바이벌 사격 등 다양한 체험 행사도 마련한다. 춘천 조한종기자 bell21@seoul.co.kr
  • “재정지표 분류법 국제기준 따라야”

    국가채무의 정확한 규모를 두고 논란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우리나라의 재정지표가 일반회계·특별회계·기금 등 자금(펀드)단위로 규정돼 있어 국제기준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13일 한국경제학회 주최로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열린 정책세미나에서 옥동석 인천대 교수는 “한국의 정부부채 논란은 국제기준과 다른 잣대로 지표를 산출하는 것에서 출발한다.”고 밝혔다. 실제 국제통화기금(IMF), 유엔 등 국제기준은 재정범위를 펀드단위와는 무관하게 제도 단위에 따라 설정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재정은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펀드단위를 기준으로 책정됐다. 문제는 일반회계와 특별회계만으로 구성됐던 우리나라의 재정 범위가 80년대 들어 각종 기금이 만들어지면서 복잡해지고 그만큼 애매해진다는 점이다. 실제 국내 기금의 개수는 60년대 10개, 70년대 30여개, 80년대 90여개 등으로 급증해 93년 이후엔 113개까지 늘어났다. 따라서 옥 교수는 정확한 통계를 위해 재정통계 산출의 대상이 되는 일반정부의 범위를 재설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옥 교수는 “현재의 특별회계, 기금, 공공기관 등을 일반정부에 포함되는 기관과 포함되지 않는 공기업으로 구분해야 한다.”면서 “기준을 바꾸면 국가부채 비율 역시 크게 달라지는 만큼 정부의 잰걸음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 [씨줄날줄] 임계전(臨界前) 핵실험/이춘규 논설위원

    1945년 8월 미국이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인류 최초의 원자폭탄을 투하, 2차대전을 종식시키며 전세계에서 핵무기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원폭의 무시무시한 위력을 실감한 강대국들은 다투어 핵무기 개발, 개량 실험을 했다. 실험 장소는 지표면과 공중, 대기권 밖, 바닷속, 지하 등이다. 어느 곳에서 핵실험을 하든 방사능 오염을 유발하지만 지하 핵실험이 상대적으로 안전하다. 따라서 1963년 핵실험을 지하에서만 하도록 하는 부분적핵실험중지조약이 맺어지기도 했다. 핵실험은 미국이 선두다. 옛 소련이 두 번째로 1949년 8월 첫 원폭 실험을 했다. 1952년 10월 영국이 뒤따랐다. 프랑스는 1960년, 중국은 1964년 원폭 실험을 했다. 인도가 1973년, 파키스탄이 1998년 각각 핵실험에 성공하며 핵클럽에 가입했다. 이스라엘도 핵무기 보유국으로 분류된다.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CTBT)이 유엔에서 채택된 1996년까지 전세계적으로 실시된 핵실험은 2000여회에 달한다. 최다는 미국. 1996년까지 총 1030회의 핵실험을 했다. 그 중 지하 핵실험이 815회다. 옛 소련은 1996년까지 모두 715회의 핵실험을 실시했다. 프랑스가 210회, 영국과 중국도 각각 45회 실험했다. 북한은 두 차례 지하 핵실험을 했다. 핵실험에 대한 비난이 거세지자 핵실험 양상이 변했다. 보유 핵무기의 신뢰성 검증이라는 명분의 임계전(臨界前) 핵실험이다. 핵탄두에 실려 있는 기폭장치와 핵물질의 열화(劣化) 여부를 확인, 안전성과 신뢰성을 제고하겠다는 것. 지하에서 핵폭발의 원료인 플루토늄이 연쇄핵분열반응을 일으키는 임계상태에 이르기 전에 폭발을 중지시키는 핵실험이다. 핵무기 개발이나 핵관리를 노린다. 핵폭발에 이르지 않는 실험은 CTBT도 금지하지 않아 계속되고 있다. 미국이 지난달 15일 네바다주 지하 300m에서 임계전(미임계) 핵실험을 실시했다고 미국 에너지부가 어제 밝혔다. 오바마 미 행정부 들어 처음으로 2006년 8월 이후 4년여 만이다. 미국의 전체 임계전 핵실험으론 24번째다. 러시아(15회), 영국을 포함해 임계전 핵실험을 실시한 나라는 현재까지는 3개국뿐이다. 전세계 반핵단체들은 오바마 대통령이 ‘핵 없는 세상’을 주창한 점을 들며 임계전 핵실험이 CTBT를 정면으로 위배하는 것으로, 미국이 핵무기 개발을 가속화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일부는 “오바마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은 대체 무엇이었나.”라며 반발하고 있다. 이춘규 논설위원 taein@seoul.co.kr
  • 板 국악한마당

    板 국악한마당

    여기 음반쟁이 세 명이 있다. 서울 인사동과 청계천 음반가게, 장안평 골동품 상가에서 발품을 팔며 우리 소리가 담긴 음반을 ‘미친 듯’ 모으러 다녔다. 처음에는 취미였는데 어느덧 본업이 돼 버렸다. 이제 세상에 내보이기 부끄럽지 않다. 신개념 국악 공연 ‘반락(盤), 3인 3색 음반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됐다. 양정환(55), 정창관(58), 배연형(53). 1988년 4월19일 대학로였다. ‘옛 음반을 사랑하는 사람들, 한 번 모입시다.’ 호기 있게 외쳤건만 약속 장소에 나타난 사람은 달랑 3명이었다. 지금부터 22년 전이니 인생에서 한창 바쁠 나이인 30대였다. 그것도 다들 음반에는 문외한이었다. 파투(破鬪)는 시간문제였다. ●22년간 미친듯 사모은 SP·LP·CD 하지만 세 사람의 강단은 주위 예상을 뛰어넘었다. 파투는커녕 서로 도원결의를 다지며 ‘한국고음반연구회’를 만들었다. 일이 점점 커져갔다. 해마다 고음반 전시회를 열고, 자료집을 냈다. 내친 김에 학술지까지 창간했다. 지금은 음반 문헌 분야에서 나름대로 알아주는 학술단체로 꼽힌다. “나랏일 해보겠다고 몇 년을 법률 서적과 씨름도 했고 사진에도 빠져 봤다. 하지만 결국 귀착점은 음반이었다. 틈나면 인사동과 청계천을 휘젓고 다니며 음반을 모았던 취미가 본업이 됐다. 마치 신선놀음하듯.”(양정환 탑예술기획 대표) ●발품팔아 찾아낸 희귀본에 얽힌 사연 13일부터 격주 수요일 오후 8시 서울 대치동 ‘한국문화의집’에서는 한마당 판이 세 차례 벌어진다. 세 사람이 직접 무대에 올라 제 스스로 깊어진 소리와의 인연을 털어놓는 자리다. 단순한 렉처 콘서트(해설이 있는 콘서트)도, 레코드 감상회도 아니다. 역사 속에 묻힐 뻔했던, 그러나 세 사람이 악착같이 찾아냈던 음반 한 장 한 장의 향연이다. 음반에 얽힌 구구절절한 사연은 희귀본만큼이나 소중하다. “‘판소리 한 번 들어볼까’하고 음반을 찾다가 국악 음반이 없는 것에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남의 음악(클래식)은 몇 천장이나 되는데 왜 우리 음반은 없을까. 그렇게 시작한 게 지구 상에서 국악 CD를 가장 많이 가진 사람이 돼 버렸다.”(정창관 전통예술경연대회 평가위원장) 첫 테이프는 LP가 끊는다. 양 대표가 주도하는 ‘옵바는 음반쟁이야’는 1960년대 만담가 고(故) 장소팔·고춘자의 ‘사랑의 잡화상’ 등 오래된 LP와 그에 얽힌 이야기들로 꾸며진다. 27일은 정 위원장이 희귀 CD 위주로 ‘잽이 홀린 음반서생’ 무대를 선사한다. 고종이 원각사에서 전화선을 대고 들었을 정도로 좋아했다는 이동백 명창의 ‘새타령’ 등이 준비돼 있다. ●公有物은 세상과 나누는 게 이치 “세월이 흐르면 이 판때기들은 나를 떠날 게다. 음악은 소리나는 것인지라 숨겨놓고 들을 수 없으니 공유물(共有物)일 수밖에 없고, 음반은 대량으로 찍은 것이니 공유물(公有物)일 수밖에 없다. 애초에 만인의 것이니 만인과 향유함이 세상 이치 아니겠나.”(배연형 동국대 문화학술원 교수) 배 교수가 준비한 ‘류성긔판 소리 왓소’의 출발점이다. LP 전(前) 세대인 SP는 ‘78회전 레코드’로 옛 축음기를 통해서 재생된다. 이 공연 날짜는 새달 10일이다. 관람료는 각각 5000원. 하지만 무료나 마찬가지다. 음반에 미친 세 쟁이들이 각각의 공연 특성에 맞춰 선곡, 세 종류의 음반을 직접 제작해 관객에게 나눠줄 요량이기 때문이다. 구하기 힘든 희귀 음원을 거저 소장할 기회다. “공연은 발품으로 명품을 찾는 격정에 찬 여행담이며, 잃어버린 소리의 역사를 복원해가는 노정기(程記)다.” ‘반락’을 연출한 진옥섭 한국문화의집 예술감독의 말이다. 이경원기자 leekw@seoul.co.kr
  • [시론]지방교육자치제도 새로 태어나야/육동일 충남대 교수·지방분권촉진위원회 위원

    [시론]지방교육자치제도 새로 태어나야/육동일 충남대 교수·지방분권촉진위원회 위원

    2010년은 조선왕조 멸망 100년, 6·25전쟁 발발 60년, 4·19혁명 50주년이 되는 뜻깊은 해다. 1910년 망국으로 우리 민족은 처절하게 유린당했고, 1950년 동족상쟁은 처참한 비극을 낳았으며, 1960년 민주혁명은 젊은 학생들의 고귀한 희생을 남겼다. 참으로 애달픈 역사가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우리 민족은 망국과 전쟁과 혁명의 소용돌이를 슬기롭게 극복하고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성공시킨 세계 유일 국가로 각국의 찬사와 부러움을 받고 있다. 우리 민족의 저력이 자랑스럽기만 하다. 그 성공의 신화는 역시 교육을 통한 인재 양성에서 비롯되었음을 세계가 인정하고 있다. 이제 대한민국이 선진 민주국가로 발돋움하고, 민족통일의 대과업을 이루기 위해서는 획기적인 교육개혁을 통해 우리 국민의 지적(知的) 역량을 다시 한번 업그레이드시키는 일 이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작은 국토, 적은 인구’의 여건은 크게 달라진 것이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국민 대다수가 자녀의 교육을 위해 짊어진 고통을 과감히 덜어주고, 날로 추락하고 있는 교육경쟁력의 하락과 지역 간 격차 문제를 해결해야만, 대한민국이 미래를 향해 새로운 도전을 시작할 수 있다. 지금 우리의 교육은 개개인의 꿈과 가정의 행복을 막고 있는 동시에 국가와 지역의 발전에 희망을 주지 못하고 있다. 학교 교실의 붕괴, 공교육 실패와 사교육 확대, 입시지옥, 인성 피폐, 지방교육 탈출, 기러기 아빠 등으로 인한 고통이 더 이상 인내할 수 없는 한계상황에 이르게 되었다. 세계화, 지방화, 정보화, 인구 감소와 고령화 등으로 표현되는 미래 교육환경의 변화는 지방교육 전반에도 예외 없이 새로운 개혁을 요구하고 있다. 지역이 필요로 하는 다양한 인재를 차별없이 양성하고 활용해서 지역발전의 주역이 되도록 하는 일은 지역민의 삶의 질을 증진시키고 삶의 기회를 확대하기 위한 전제 조건이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지방교육은 국내·외적 환경변화에 부합하지 못한 채, 집권화된 교육의 틀 그리고 획일적인 교육 내용과 방법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교육자치는 지방교육의 다양한 발전을 도모하고, 나아가 주민들에게 자신들의 교육문제를 스스로 결정하고 통제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는 제도다. 따라서 교육자 자치 내지 교육관료 자치로 잘못 이해·운영되고 있는 현 교육자치제를 과감히 청산해야 한다. 이제는 지방교육이 ‘학교자치’의 기본틀로 완전히 새로 태어나야 할 때다. 문제해결의 출발은 지방교육의 토대가 되는 현 지방교육자치의 제도를 근본적으로 개선하는 것이다. 교육행정의 의사결정기구는 지방의회로 통합되었지만, 집행기구는 시·도지사와 별도로 주민 직선으로 선출된 교육감이 담당하는 현 제도로는 지방교육에 대한 주민의 책임성 확보도, 지방교육재정의 자주성 달성도, 그리고 일반행정과 교육행정 간의 협력을 통한 교육서비스의 향상도 기대하기가 어렵다. 게다가 중앙정치의 대리전으로 전락한 지방선거를 통해 선출하는 교육감 직선제는 정치의 개입, 막대한 선거비용, 유권자들의 낮은 관심도 등 심각한 문제점들이 이미 드러난 바 있다. 지방자치가 실시된 지 20년째가 되어가는 시점에서, 지방자치와 교육자치의 제도적 연계와 조화를 모색하는 것을 비롯해서 교육자치의 틀을 재정비하는 일은 지방자치에 대한 지역민들의 관심과 신뢰를 회복하는 한편, 실질적인 교육분권을 통해 다양하고 창의적인 지방교육의 목표를 달성하는 차원에서도 중요하고 시급한 과제가 되었다. 대통령소속 지방분권촉진위원회에서는 그동안 ‘교육자치제도의 개선’을 주요 분권과제로 설정하고 심도 있는 연구를 계속해 왔다. 앞으로 또 다른 100년을 향해 미래 세대들 모두가 꿈과 희망을 갖고 마음껏 달려나갈 수 있도록 적정한 ‘지방교육자치의 모델’을 개발해서 제시하는 것이 위원회가 해야 할 중요한 역할이다.
  • [뉴 시티노믹스 시대-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② 재개발로 부활한 獨 드레스덴

    [뉴 시티노믹스 시대-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② 재개발로 부활한 獨 드레스덴

    “이 도시의 아름다움을 어떻게 설명한단 말인가. 책에서 배우지 않아도,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아도, 이 도시에서 지내는 것만으로도 아름다움이 무엇인지에 대해 설명할 수 있다.”(에리히 캐스트너) 독일인 대부분은 ‘독일 동부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는?’이라는 질문에 대답하는 데 망설이지 않는다. ‘엘베 강의 피렌체 유럽의 발코니’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드레스덴이 있기 때문이다. 인구 50만명이 채 되지 않는 드레스덴을 찾은 관광객은 지난 5년간 350만명이 넘는다. 그러나 드레스덴이 갖고 있는 가장 큰 아름다움은 잘 지어진 건물과 교회, 박물관의 미술품 등이 아니다. 오늘날 드레스덴의 모습은 전쟁과 공산주의 체제하의 난개발 등 고난의 역사를 겪으면서 시민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수십년간 재개발과 복원을 통해 만들어낸 것이다. 1270년 작센주 마이센 지역의 행정관이었던 하인리히가 성을 세우며 본격적으로 번성하기 시작한 드레스덴은 17~18세기에 최전성기를 맞는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이 한창 막바지를 향해 치닫던 1945년 2월13일, 미·영 연합군은 드레스덴에 이틀간에 걸친 대폭격을 감행했다. 이 공습으로 드레스덴 시민 3만명이 목숨을 잃고 시가지의 90% 이상이 파괴됐다. 전쟁 직후 드레스덴 시민들은 시내 중심부의 츠빙거 궁을 비롯한 주요 건물들을 복원하기 시작했다. 젊은 남성들이 없어 가정주부부터 어린 아이들까지 하나하나 돌을 찾아 날랐다. 드레스덴의 주요 건물에서는 크고 작은 얼룩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드레스덴 박물관 직원인 볼프강은 “폭격으로 불에 타 버린 검은색 벽돌을 찾아 최대한 원형에 맞게 복원했기 때문”이라며 “깨끗하게 건물을 다시 세우는 것보다 원형 그대로를 보존하는 것이 우선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복원 작업은 오래 진행되지 못했다. 분단 이후 동독 정부가 폐허로 남아 있는 드레스덴 중심가에 현대식 건물을 집중적으로 짓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이후 1990년까지 드레스덴은 중세 건물과 현대 건물이 난잡하게 얽혀 있는 도시로 전락했다. 통일 직후 드레스덴은 ‘과거로의 회귀’를 선언했다. 드레스덴의 부활을 상징하는 ‘프라우엔 교회’가 대표적인 사례다. 통일 이후 복원 작업이 본격적으로 재개된 프라우엔 교회는 2005년 말 돔 공사를 마치면서 무려 60년 만에 제 모습을 되찾았다. 드레스덴 시청 관계자는 “동독 정부는 교회터에 주차장을 만들려고 했지만 시민들은 이를 용납하지 않았다.”면서 “누가 시키지 않아도 발견된 벽돌에 숫자를 붙여 보관하면서 복원 작업이 재개되기만을 기다렸다.”고 전했다. 현재 드레스덴에서 재건축이나 재개발의 가장 큰 키워드는 ‘보존’이다. 도시계획의 기준을 전쟁 이전으로 맞췄기 때문에 시내에서 최첨단 건물의 신축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건축 허가가 떨어진 이후에라도, 유적의 흔적이 발굴되면 공사는 전면 중단된다. 전문가들이 투입되고 복원과 공사 재개 여부에 대한 엄밀한 심사가 진행된다. 유적의 보존 가치가 크다고 판단되면 시는 공사 현장 이전을 권유하고, 대부분의 업체들은 이를 수용한다. 업체가 공사 강행 의사를 밝히면 시가 민간 기금과 협의해 아예 매입하는 경우도 있다. 여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드레스덴은 도시 전체를 새로 꾸미는 작업도 병행하고 있다. 드레스덴대 안나마리 솔 교수는 “궁극적인 목적은 동독 시절에 지어진 시내의 건물을 모두 철거하거나 리모델링해 과거의 드레스덴을 완벽히 재현하는 것”이라며 “신축건물이나 주요 시설 등을 외곽 지역으로 돌리는 방식으로 도시의 기능은 충분히 해낼 수 있다.”고 밝혔다. 이 계획은 10년이 채 지나지 않아 목표의 30%를 넘는 진척을 보이고 있다. 실제로 드레스덴 시내 곳곳에서 벌어지는 공사는 다른 도시와 달리 현대식 건물을 허물고 옛 건물을 복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시내 중심부와 달리 시 외곽에는 비교적 자유롭게 개발이 진행되고 있다. 다만, 도시 전체의 통일성을 해치는 건축이나 개발 계획은 엄격히 규제된다. 도시민의 삶의 질을 위해 도시 전체의 녹지 비중은 60%로 고정돼 있다. 건물 신축이나 재건축을 할 때에도 동일한 기준이 적용된다. 지난 10년간 드레스덴 도시개발 과정에서 가장 주목받은 건물은 폴크스바겐 공장이다. 2001년에 지어진 이 건물에서는 폴크스바겐의 최고급 차종인 페이톤이 수작업으로 생산된다. 특히 건물 자체가 투명한 유리로 지어져 공장 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밖에서도 볼 수 있고, 공장 건너편까지도 환하게 들여다볼 수 있다. 모든 공정이 공개되다 보니 폴크스바겐의 기업 이미지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폴크스바겐 관계자는 “공장이 도시 내에서 동떨어진 모습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녹지가 주를 이루는 주변 환경과 조화를 이루도록 설계된 것”이라며 “전 세계 도시와 기업에서 벤치마킹을 하기 위해 견학을 오는 사람들이 많다.”고 전했다. 드레스덴 박건형 순회특파원 kitsch@seoul.co.kr
  • [글로벌 시대] 여자가 군대간다/전경수 서울대 인류학 교수

    [글로벌 시대] 여자가 군대간다/전경수 서울대 인류학 교수

    미샤와 실라는 폴란드와 루마니아계 후예의 유태인이다. 동유럽계 유태인 부모가 모로코계 유태인 남자와 결혼하려는 딸 실라를 구타하는 사태는 당연하였고, 그 결혼은 성사될 수 없었다. 30년 전 누나의 결혼과 관련된 미샤의 회상이다. 이스라엘 750만명의 인구는 유태인 79% , 무슬림 17%, 기독교도 4%로 구성된다. 북부의 갈릴리호 주변을 제외한 전 국토는 남부의 네게브 사막이다. 사막 한가운데의 ‘벤 구리온 유산연구소’는 건국 영웅 벤 구리온 총리 부부의 묘소를 중심으로 이스라엘 리더십의 상징으로 우뚝섰다. “누가 네게브 사막을 황무지라고 부르는가?” 벤 구리온의 생존 철학을 추종하는 사막 연구자는 외친다. ‘스피릿’이 사막의 이스라엘을 만들어 낸 것이라고 역설하는 동갑내기 교수 앞에서 숙연할 수밖에 없었다. 광산과 관광으로 살아 꿈틀거리는 사해(死海)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과 할머니의 대화는 러시아어. 페레스트로이카 이후 이주해 온 부자 유태인들이다. 요르단과의 국경을 따라서 건설된 키부츠는 대추야자 열매만 생산하는 곳이 아니다. 사막의 농장이 미래의 희망이다. 농민들은 그냥 농민들이 아니다. 키부츠 농민들은 둔전병 역할을 담당한다. ‘케렌 콜롯’ 키부츠는 미래를 향하여 변신하고 있다. 내부에 설립된 ‘아라바 연구소’는 아랍권을 포함하여 전 세계로부터 온 학생들을 상대로 교육과 연구를 한다. 사막을 배경으로 서스테이너블 에너지와 친환경을 지향하는 혁신적이고 창조적인 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나는 이스라엘의 정치적 리더십과 남녀공집(男女共集) 군대에 주목한다. 1930년대부터 유태인 국가 건국을 준비한 이스라엘은 벤 구리온의 리더십 아래 1948년 건국하였다. 미샤네 가족 결혼사건은 지난 60년 기간 동안의 절반에 해당되는 시점이었다. 그후 30년간 사회통합의 노력 결과, 현재는 미샤네 가족이 겪었던 사건은 더 이상 발생하지 않는다. 러시아로부터 온 100만명의 이주민은 또 다른 사회통합의 시험을 요구한다. 사회통합은 진화하고 있다. “모든 유태인들은 서로에 대해서 책임을 진다.” 시나고그에 걸린 슬로건이 지향하는 책임한계에 동의하진 않지만, 유태인 사회가 만들어 가는 통합의 진화라는 정체가 궁금하다. 아랍에 둘러싸인 지정학적 조건이 부여하는 필생(必生)의 명제를 기초로 한 책임한계를 설정하고, 통합의 저해 요인은 제거하는 방식의 과정과 결과가 현재 헤브론이 직면한 팔레스타인 문제의 관건인 것 같다. 필생을 전제로 한 사회통합의 근간이 이스라엘의 남녀공집 군사정책일 수 있다. 텔아비브의 해변가 호텔 프런트에서 기관단총을 거꾸로 멘 금발의 앳된 여군이 윙크한다. 나의 시선은 기관단총과 금발 사이를 오락가락하다가 흠칫 놀랄 수밖에. 이스라엘에서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남자는 3년, 여자는 2년간 군복무에 임한다. 군대에서 만나 결혼하는 경우가 적지 않고, 여자들의 활동이 여성이기 때문에 제한적이라는 거론은 원천적으로 봉쇄되어 있다. 국방과 군사는 상당 부분 겹치지만 경험세계의 차원으로 구분하면 별개의 현상이다. 국방에 대해서는 추체험(追體驗)이나 간접체험이 허용되지만, 군사는 직접체험만을 용인한다. 이런저런 애매한 구실로 군복무를 면제받은 남자들이 군대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하는 것은 불손을 넘어선 배은망덕이다. 분열과 갈등의 한가운데 군복무라는 문제가 존재한다는 것이 한국 사회의 고민거리다. 이스라엘이 만들어가는 통합의 진화라는 트랙을 바라보기에는 너무 거리가 먼 이 땅의 현실을 절감한다. 불신과 무관심의 팽배를 직시하고 행동하는 리더십이 허약한 현실을 안타깝게 바라보고만 있을 것인가. 이런 경우에는 제도개혁에 의존하는 수밖에. 이스라엘식 남녀공집에 의한 사회통합의 가능성을 생각해 본다. 군대가 사회통합의 기층조직일 수 있다. 통합을 지향하는 전방위적인 방안이자 진정한 의미에서 여성이 참여하는 공생사회의 청사진도 그려볼 수 있다.
  • [금융 CEO에게 묻다] (8) 정태영 현대카드 사장

    [금융 CEO에게 묻다] (8) 정태영 현대카드 사장

    정태영 현대카드 사장은 최고경영자(CEO) 이력으로만 보면 업계 최고참이다. 2003년 10월 취임해 현재 만으로 딱 7년이다. 하지만 가장 젊다. 1960년생으로 올해 50세다. 다른 카드사 사장들에 비해 적게는 6살, 많게는 11살이 적다. 한 경쟁업체 임원은 “현대카드의 힘은 ‘정태영’으로부터 나온다고 해도 전혀 과장된 말이 아니다.”고 평가했다.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의 둘째 사위로, 독특한 창의적 오너 경영의 카리스마를 발휘하며 비약적으로 회사를 성장시킨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실제로 현재 전업(專業)계 2위인 현대카드는 정 사장이 취임하던 당시만 해도 카드대란에 휘청대던 업계 꼴찌 회사였다. 취임 첫해 6300억원의 적자를 냈던 현대카드는 지난해 2128억원의 순이익을 달성했다. 실적도 실적이지만 정 사장은 듣도보도 못한 새로운 시도를 연달아 성공시키면서 현대카드를 아주 독특한 회사로 만들었다. 초우량 고객(VVIP)을 위한 서비스, 카드 디자인 혁신, 슈퍼시리즈 등이 모두 그의 머리 속에서 나왔다. “카드 비즈니스는 정말 버라이어티한(다양한) 분야입니다. 복잡한 숫자에서부터 화려한 마케팅까지 다 있고 음악, 문화, 여행 등 모든 것과 연결돼 있습니다. 홍콩, 싱가포르 등지에서 자금을 조달할 때에는 더 없이 금융적인 분야가 되기도 하지요.” 그래서일까. 현대카드는 카드회사가 한다고 믿기 어려운 일을 수시로 벌인다. 마리아 샤라포바, 김연아 등 최정상급 스포츠 스타를 초청하는 ‘슈퍼 매치’, 스티비 원더, 비욘세 등 유명 가수가 나오는 ‘슈퍼 콘서트’가 대표적이다. 미국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 한국인 인턴 자리를 정기적으로 확보하거나 세계적인 예술서적 전문출판사 타센과 제휴를 맺고 한국에 서점을 열기도 한다. 정 사장은 카드가 금융의 경계를 벗어나 다양한 정체성을 아우르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금은 전환과 융합의 시대입니다. 우리는 모든 분야에서 변화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현대카드에는 디자인, 정보기술(IT), 여행, 음악, 수학의 전문가들이 모여 일합니다. 다행히 저는 이 모든 분야를 조금씩이나마 두루 알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제가 갖고 있는 경쟁력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방면에 지식이 풍부하다는 것은 호기심이 왕성하다는 뜻이다. 정 사장은 “보고 듣고 경험하는 모든 것에서 아이디어를 얻는다.”고 했다. 신문을 꼼꼼히 읽는 것은 물론이고 분야를 가리지 않고 독서를 즐긴다. “신문 제목 한 줄에서 영감을 얻을 때도 있습니다. 해외에 나가서도 모든 것을 일과 연결시키고 어떻게 응용할 것인지 끊임없이 궁리합니다.” 지난해 4월 시작한 ‘마켓 플레이스’도 신문에서 얻은 아이디어다. 매월 둘째주 목요일 오후 1시부터 6시까지 실장급 이상 임원 50여명이 서울 여의도 본사 11층 강당에 모여 함께 근무한다. “일본 자동차기업 혼다에서 임원들이 한 방에 모여 일한다는 기사를 보고 우리 방식대로 응용해 봤습니다. 서로 얼굴 볼 일이 적은 임원들이 만나서 생각과 지식을 교류하는 시간을 만들어주는 것인데 반응이 좋습니다.” 지난 8월 본사 2관 건물 1층 로비에 설치한 ‘통곡의 벽’은 정 사장이 뉴욕타임스 본사 방문에서 독자 댓글 모니터를 보고 힌트를 얻었다. 8.2인치 LCD 모니터 60개에 민원으로 접수된 고객 불만을 여과 없이 띄우는 통곡의 벽은 직원들에게 고객 만족의 중요성을 일깨우기 위해 설치됐다. 정 사장과 현대카드도 벤치마킹 대상이 된 지 오래다. 지금까지 기업체, 공공기관 100여곳에서 현대카드를 견학하고 갔다. 금융권, 대기업, 외국계 기업을 비롯해 서울시, 국세청, 해외 대학 등이 망라돼 있다. 전사적 혁신을 이끌고 있는 이석채 KT 회장도 이곳을 다녀갔다. 어윤대 KB금융지주 회장도 정 사장의 창조적 리더십을 높이 평가하며 계열사 임원들을 이곳에 보냈다. 정 사장은 지난해와 올해를 고객만족 원년으로 선포했다. 이 분야는 현대카드의 취약점으로 지적됐던 부분이다. 금융감독원이 지난 5월 발표한 민원발생 평가 결과에서 현대카드는 1~5등급 가운데 3등급을 받아 최하위에 머물렀다. “고객만족이 2년으로 되겠습니까. 고객이 불편을 느낄 수밖에 없는 상품을 만들어놓고 상담 서비스만 개선하는 것은 문제 해결이 아닙니다. 상품 구조 자체를 다 바꿔야 합니다. 지금 그 작업을 하고 있는데 시간이 오래 걸릴 겁니다.” 정 사장은 당장 해외 진출은 고려대상이 아니라고 했다. “합작회사인 GE가 일본과 타이완의 카드사업을 맡아달라고 제안했지만 거절했습니다. 소비문화, 고객성향 등 환경이 전혀 다르기 때문에 국내에서 구축한 시스템이 해외에서는 안 통합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데 그건 또 하나의 인생을 걸어야 하는 일입니다.” 최근 통신사의 카드 시장 진출, 모바일 카드 등 급변하는 업계 환경에 대해 정 사장은 이렇게 말했다. “통신과 금융의 융합의 방향이 틀리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지금과 같은 방법(카드사와 통신사의 전략적 제휴 및 지분 인수 등)이 옳으냐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회의적입니다. 관심을 갖고 연구하고 있습니다.” 오달란기자 dallan@seoul.co.kr ●약력 ▲1960년 서울 출생 ▲서울대 불어불문학과, 미국 MIT 경영학대학원 졸업 ▲1987년 현대종합상사 이사 ▲1996년 현대정공 상무 ▲2000년 현대모비스 전무 ▲2003년 현대카드·현대캐피탈 사장 ▲2007년 현대커머셜 사장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