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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남도청 내포시대’ 널리 알린다

    ‘충남도청 내포시대’ 널리 알린다

    올해 말 내포신도시(홍성·예산)로 이전하는 충남도청 이전 기념사업 로드맵이 나왔다. 충남도는 이전 전후로 각종 기념 사업을 벌여 ‘내포시대’를 알릴 계획이다. 도는 16일 도청에서 자문위원회 회의를 연 뒤 대전시대 80년을 마감하고 새로운 내포시대 문을 여는 것에 맞춰 3개 주제, 21개 세부 사업의 도청 이전 기념사업을 추진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먼저 올해 ‘석별의 장’이란 주제로 충남도청 대전 80년 사진집과 DVD 발간 및 사진전, 대전시민과의 석별의 밤, 이청식, 도청 이사 행렬 퍼레이드 등을 벌인다. 오는 10월 대전·충남 예술단체 합동 공연을 하면서 대전시민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석별의 정을 나눈다. 이청식은 11월 20일쯤 도청에서 열린다. 이청식 뒤 도청~대전역 1.6㎞ 구간에서 이사 행렬 퍼레이드를 펼친다. 1932년 공주에서 대전으로, 다시 내포로 이전하는 도청의 이삿짐은 5만 5354점에 5t 트럭 279대 분량이다. 내년 내포에서 시무식 이후 잇따를 ‘개막의 장’은 내포시대 충남비전 수립 및 선포, ‘뉴충남CI’(상징마크, 슬로건, 캐릭터) 선포, 타임캡슐 매립, 상징수 이식, 종합기준점 설치, 축하음악회 등으로 꾸며진다. 타임캡슐에는 대전시대 80년과 내포시대 충남의 모습을 알 수 있는 자료가 담긴다. 상징수는 도청의 역사를 잇는다는 의미로 현 청사의 70년 수령 소나무와 60년 된 배롱나무 두 그루를 심는다. 종합기준점은 행정 중심과 도민 화합의 상징물로 활용된다. 세 번째 주제인 ‘축제의 장’은 내년 내내 펼쳐진다. 내포신도시 개발전략 심포지엄, 이전기념 전국마라톤대회(5월), 전국연극제·도민체전·도민합창제(6월), 내포문화 대제전·대한민국온천대축제·충남예술제(10월) 등이다. 3월 심포지엄에서는 전문가들이 행정, 도시계획, 경제, 문화 등 내포신도시 발전 방안을 놓고 토론을 벌인다. 전국연극제 기간에 만화, 게임, 영화 등 캐릭터로 옷을 만들어 놀이를 즐기는 코스튬플레이도 벌어진다. 도 공무원 1300여명은 오는 11~12월 차례로 내포로 이전한다. 신청사 공정률은 72%다. 같은 시기 충남교육청도 내포로 옮긴다. 이전 교육공무원은 400여명이다. 충남경찰청은 내년 10월 이전할 계획이다. 대전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이용철의 영화만화경]도랑

    [이용철의 영화만화경]도랑

    지난 7일부터 한국영상자료원에선 신도 가네토와 야마모토 사쓰오의 회고전이 열리고 있다. 26일까지 계속되는 회고전은 한국영상자료원과 일본국제교류기금 서울문화센터가 공동 주최하는 ‘일본영화 거장 시리즈’의 네 번째 프로그램이다. 두 사람은 한국에서 널리 알려진 감독은 아니다. 그들의 영화를 보아야 하는 이유는 ‘일본 독립영화의 힘’을 목격하는 데 있다. 우리에게 익숙한 일본 감독들, 즉 구로사와 아키라, 오즈 야스지로, 미조구치 겐지 등의 발자취는 대개 도호, 쇼치쿠 같은 스튜디오의 성쇠와 연결된다. 그들에 비해, 독립영화의 리더로 활약한 신도와 야마모토의 영화는 일본 영화의 또 다른 역사를 발견하도록 돕는다. 특히 신도는 일본 독립영화의 역사를 쓴 인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스튜디오 작업을 병행한 야마모토와 달리, 신도는 독립 제작사 ‘근대영화협회’를 세우고 지금껏 이끌어 왔다. 대표작들은 물론, 지난해 99살의 나이에 발표한 ‘한 장의 엽서’도 같은 제작사의 작품이다. 더욱이 1912년생으로 현역 최고령 감독인 신도가 발표한 영화들이 하나같이 수준 이상을 유지하고 있어 놀랍다. 1990년대 이후 작품들인 ‘오후의 유언장’, ‘한 장의 엽서’는 저명한 영화지인 ‘키네마준보’가 그해 일본 영화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선정한 바 있다. 독립영화라고 해서 지루하고 딱딱한 영화를 상상했다면 오산이다. 생명력이 넘치는 신도의 영화는 여느 장르의 영화 못지않게 재미있다. 신도의 대표작은 1960년대 발표된 ‘오니바바’와 ‘벌거벗은 섬’이다. ‘오니바바’는 1960년대 일본 영화에 기대하는 모든 것을 집대성해 놓은 작품이다. 시대극과 괴기 드라마의 외피 아래로 사회정치적인 메시지를 전하며, 인간의 욕망이 초래한 끔찍한 상황이 잊지 못할 충격을 안겨준다. 모스크바영화제 그랑프리 수상작인 ‘벌거벗은 섬’에서 신도는 실험적인 양식과 사실주의를 결합한다. 외딴 불모의 섬을 일구는 일가족의 이야기인데, 영화는 몇 마디 자막 외에 어떤 대사도 없이 진행된다. 단순한 일상을 미적 차원으로 승화시킨 걸작이다. 두 영화만큼 유명하진 않으나 ‘도랑’(원제:どぶ)은 한국관객의 기호에 더 맞을 작품이다. 신도의 초기작으로 전후 궁핍한 일본사회를 배경으로 한다. 더러운 개천 옆에 형성된 판자촌으로 한 백치 여인이 흘러들어온다. 일본의 패전 후 만주에서 귀국한 그녀는 가는 곳마다 착취당한 끝에 굶어 죽기 직전이다. 끔찍한 건, 밑바닥 삶을 사는 판자촌 사람들조차 그녀의 희생을 요구한다는 점이다. 당장 현실이 아쉬운 그들은 그녀에게 손을 벌리고, 그때마다 그녀는 몸을 팔아 번 돈을 아끼지 않고 나눈다. 온갖 험한 꼴을 당하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백치 여인을 보면 당장 떠오르는 인물이 하나 있다. 페데리코 펠리니의 ‘길’에서 젤소미나라는 여인도 비슷한 삶을 살다 죽는다. 여인을 착취한 인물이 오열한다는 설정도 같다. 흥미롭게도 두 영화는 1954년에 대륙의 양끝에서 나란히 공개됐다. 어수룩한 얼굴의 천사가 패전한 두 나라의 하층민 앞으로 도착했던 셈이다. 비록 두 나라가 전쟁을 일으키긴 했지만, 삶을 모조리 빼앗긴 민중에게 죄를 물을 수는 없는 일. 신도와 펠리니는 영화를 통해 자기 나라의 민중이 선한 모습으로 살아남기를 기도했다. 지금으로부터 58년 전, 그런 감독들이 사는 세상이 있었다. 영화평론가
  • “브라질리언만큼…한국 관객들 리액션 화끈”

    “브라질리언만큼…한국 관객들 리액션 화끈”

    소녀가 태어난 곳은 1962년 브라질 상파울루.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부터 라틴 리듬에 심박동을 맞췄다. 한때 음악가를 꿈꿨던 아버지가 위대한 브라질 기타리스트 바든 포웰의 에이전트인 동시에 라이브 클럽을 운영했던 덕분이다. 소녀가 열 살이 됐을 때 가족은 일본으로 이주했다. 이후에도 소녀는 아버지를 따라 1년의 절반은 리우데자네이루에서 보냈다. ●“브라질·日 제외하면 韓 가장 편한 곳” 시간이 흘러 소녀의 아버지는 일본에서 브라질 식당을 개업했다. 소녀가 15세가 됐을 때 그곳 라이브 무대에 서기 시작했다. 1989년 첫 앨범 ‘카투피리’(Catupiry)를 발표하면서 보사노바란 낯선 음악을 일본에 퍼뜨린다. 중저음의 남성 가수들이 툭툭 던지던 기존의 보사노바 창법과 달리 그의 노래는 구름 위를 사뿐사뿐 걸어다녔다. 1990년대 중반 보사노바의 전설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1927~1994), 삼바의 거장 주앙 도나투(78)와 앨범 작업을 함께하면서 비로소 보사노바 흉내를 내는 동양인이 아닌, 브라질 정서를 담아내는 보사노바 뮤지션으로 우뚝 섰다. 새달 3~4일 내한 공연을 앞둔 리사 오노(50)를 15일 일본 교토의 오쿠라 호텔에서 만났다. 전날 이곳에서 밸런타인데이 공연을 마친 뒤라 이른 아침 인터뷰가 부담스러울 법도 한데 노래할 때처럼 산들바람 같은 목소리로 기자를 맞이했다. 오노는 2005년과 2006년 내한 이후 6년 만에 한국에서 공연한다. 오노는 “일본이나 중국, 타이완 팬과 달리 한국 관객은 열정적인 브라질 사람들처럼 리액션이 화끈하다. 첫 내한공연 때 맨 앞자리에 앉아 있던 관객이 벌떡 일어나 주먹을 불끈 쥐며 고함을 지르던 기억이 생생하다.”며 애틋함을 드러냈다. 오노는 개인적으로도 한국과 남달리 인연이 깊다. 일본군 장군이던 오노의 할아버지는 유독 아끼던 한국 병사가 있었다고 한다. 전장에서 중상을 입은 그를 살리려고 장군 군복을 입혀 일본으로 후송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종전 이후 그 장병은 고마움을 표현하려고 일본으로 찾아왔단다. 지난해 여름에는 부모와 언니 내외, 가족과 함께 한국에서 휴가를 보낼 만큼 일본과 브라질을 제외하면 가장 편안한 곳이다. 오노에게는 보사노바의 전도사란 별명이 따라다닌다. 삼바가 쿨 재즈(1950년대 유행한 백인 재즈)와 화학작용을 일으킨 보사노바는 1960년대 이후 재즈의 한 축으로 음악팬의 사랑을 받았다. 조빔에 의해 보사노바가 탄생했고, 스탄 게츠(1927~1991)에 의해 세상에 알려졌다면, 오노를 통해 생활 속으로 들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보사노바는 공기… 듣는 이를 편하게 만들어” 오노는 “보사노바는 공기와 같다. 듣는 이를 릴렉스하게 만드는 게 가장 큰 매력”이라고 잘라 말했다. 이어 “일본으로 이주한 뒤에도 브라질의 공기가 너무 그리웠고, 어떻게 표현할지 고민하다가 보사노바를 선택했다. 한 번도 (브라질인이 아닌) 외국인이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그 정서를 표현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다.”고 말했다. “브라질에서 자라지 않았다면 일본에서 엔카(일본 전통가요) 가수라도 되지 않았을까.”라며 웃었다. 새달 공연의 레퍼토리와 관련, “나와 함께 브라질 감성을 입힌 세계 음악 여행을 떠난다고 생각하면 좋을 것”이라며 미소를 지었다. 조빔의 ‘가로타 데 이파네마’(Garota de ipanema), 스티비 원더의 ‘마이 셰리 아모르’(My cherie amour), 카펜터스의 ‘잠발라야’(Jambalaya), 에디트 피아프의 ‘라비앙 로즈’(La Vie en rose) 등은 물론 한국 민요 ‘아리랑’도 선물한다. 3일 용인시 여성회관, 4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다. 4만~15만원. (02)599-5743. 글 사진 교토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기고] 백두혈통이 아니라 백수혈통이다/림일 탈북작가· ‘소설 김정일’ 저자

    [기고] 백두혈통이 아니라 백수혈통이다/림일 탈북작가· ‘소설 김정일’ 저자

    16일은 고 김정일의 70번째 생일이다. 필자가 평양에서 해마다 2월이면 집중적으로 받았던 김정일 우상화 교육의 한 대목이다. “항일의 영웅 김일성 동지께서 험산 준령의 백두산에서 강도 일제와 맞서 싸우시던 1942년 2월 16일, 조선혁명의 광명한 미래로 친애하는 김정일 동지께서 탄생하시었다.” 소가 웃다 꾸러미 터질 소리다. 평양 태생의 김일성은 대부분 만주와 연해주 부근에서 활동했다. 북한에서의 활동은 1937년 6월 4일 보천보 전투(함경남도 갑산군 보천면 보전리를 90명의 빨치산 대원이 습격한 사건)가 유일한데 이것도 전설 속의 김일성(동북 항일연군 제2군6사 백두산지구장으로 당시 나이가 60대 정도인 노장군)과 엇갈리는 황당한 부분이다. 김일성이 이끄는 항일빨치산 소부대가 만주에서 일제 공격을 피해 1941년 초 연해주로 이동했고 그곳에서 2월 16일 김정일(당시 이름 김유라)이 태어났다. 당시 소련 극동군정찰부대 88여단이 주둔하기도 했던 이곳에서 김정일은 5살까지 살았고, 해방이 된 1945년 11월 생모 김정숙의 손을 잡고 함경북도 웅기로 배를 타고 북한에 들어왔다. 1960년 8월 평양 남산 고급중학교 졸업과 동시에 ‘김정일’로 개명하고 ‘수령의 아들’이라는 절대 특권을 누렸다. 1987년 2월 그가 실제 수장인 조선노동당의 결정으로 백두산을 혁명성지로 꾸렸고 그곳이 곧 자기 고향이 되었다. 인민이 우러르는 수령의 고향이 외국이면, 우상화 교육에 걸림돌이 되었기에 엄청난 거짓말도 뻔뻔하게 했던 김정일이다. 북한의 초대 수령 김일성과 2대 수령 김정일에 이어 3대 수령 김정은에 대한 노동당 선전도 기가 막히다. 출생지와 생일이 불분명한 김정은을 “백두혈통을 이어받으신 또 한 분의 위대한 수령, 인민의 자애로운 어버이, 강철의 영장”이라고 역설하는 노동당이다. 정말 강철판을 얼굴에 깔았다. 백두산에서 한 번도 항일운동을 한 사실이 없는 할아버지 김일성과, 절대군주가 되어 백두산으로 한가한 산행을 자주 갔던 아버지 김정일이 백두산과의 인연이 전부라면 전부이다. 그런데 어떻게 김정은을 백두혈통이라고 하겠는가? 김정은 일가가 할아버지부터 지금껏 북한에 어떤 공적을 쌓았는가? 전국 곳곳에 자신들의 동상과 기념비를 수천개 세웠고, 생가를 비롯한 혁명사적지를 수백개 건립했다. 모든 가정에 저들의 사진과 어록패를 걸었고, 죽어서도 호화궁전에 들어가 있는 그들이다. 인민이 노동당과 정부를 비판하면 쥐도 새도 모르게 체포돼 갇히는 비밀수용소가 20여개 있으며 그 속에 30만명의 정치범이 갇혀 있다. 자칭 인민의 어버이라는 그들이 과연 그 인민을 위해서 무엇을 했단 말인가? 시장에서 쓰레기를 뒤지는 아이들과 굶어 죽는 노인들은 어느 나라 사람들인가? 배고픈 창자를 끌어안고 살벌한 압록강을 넘는 인민들의 기막힌 참상은 과연 뭐란 말인가? 북한에서는 김정일의 생일인 2월 16일에는 출생신고가 안 된다. 그의 사진만 구겨도 정치범이 되는 잔인한 정권이다. 오로지 자신들의 대대손손 독재와 부귀영화를 위해 살아온 그들은 인민들의 삶과 인권을 위해서 아무 일도 하지 않은 백수들이었다. 김씨 일가는 백두혈통이 아니라 백수혈통이다.
  • “다시 태어나도 가수 패티김 되고 싶어”

    “다시 태어나도 가수 패티김 되고 싶어”

    “노래 잘하고 자신감 넘치는 모습으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한국 가요계의 대모 패티김(74)은 은퇴하는 모습도 당당했다. 깃털 달린 갈색 중절모와 검정 벨벳 재킷, 새빨간 앵클부츠를 신고 15일 서울 중구 태평로 프레스센터 기자회견장에 들어선 그는 여전히 건강하고 자신감 넘쳤다. 하지만 은퇴 기자회견을 앞둔 소감을 묻자 “설레고 흥분되는 한편 밥이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긴장했다. 막이 오르기 직전 무대 뒤에 서서 기다리는 기분”이라며 아쉬운 심정을 내비쳤다. 이날 많은 이들의 관심은 돌연 그가 은퇴를 선언한 배경에 쏠렸다. ●내년 노래인생 55주년… “10년 전부터 은퇴 생각” “건강하고 노래 잘하는, 자신감이 넘치고 당당한 모습으로 남고 싶기 때문입니다. 정상에 오르기는 어렵지만 내리막길을 걷는 것은 순식간입니다. 그런 모습을 보이기 전에 정상에서 떠나려는 것이죠. 태양이 떠오를 때 참 밝고 희망이 넘치죠. 노을빛이 온 세상을 붉게 물들일 때도 참으로 화려합니다. 그 기억으로 남고 싶다는 바람입니다.” 1958년 8월 미 8군 무대에서 노래를 시작한 패티김은 유려한 창법, 카리스마와 세련된 무대 매너를 무기로 ‘서울의 찬가’ ‘가시나무새’ ‘못잊어’ ‘가을을 남기고 간 사랑’ 등 수많은 히트곡을 냈다. ‘해방 이후 일본 정부가 공식 초청한 최초의 한국 가수’(1960년), ‘대중 가수 최초로 리사이틀 표현 사용’(1962년) 등 늘 ‘최초’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녔다. 또한 1978년 대중가수로는 처음으로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을 했고 세계적인 공연장인 미국 뉴욕 카네기홀과 호주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무대에도 올랐다. 내년에 노래 인생 55주년을 맞는 패티김은 “사실 10여년 전부터 은퇴를 생각했고, 50주년 기념공연에서 은퇴 선언을 고려했었다. 하지만 막상 기념공연을 하면서 노래가 굉장히 잘되고 성량이 풍부하게 느껴지면서 조금 더 노래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다시 돌아가고 싶은 순간을 30대로 꼽은 그는 “30대에는 자신감이 넘쳤지만, 점점 노래가 무섭고 무대가 긴장됐다. 공연 시작을 알리는 전주가 흘러나오면 심장이 두근거리다 못해 폭발할 지경이었다.”면서 “공연을 찾은 관객들에게는 조금 미안한 말이지만 공연을 못할 정도만이라도 지진 같은 일이 일어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도 많았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건강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묻자 패티김은 벌떡 일어서며 “제가 건강해 보이지 않나요?”라고 되묻는 여유도 보였다. 그는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생각은 여전하다. 정신연령과 신체연령은 40대라고 생각한다. 여전히 수영을 하고 4~5㎞를 걷는다.”고 답했다. ●“가장 아름다운 목소리 냈던 때는 50대” 그는 “가수로서 가장 아름다운 목소리를 냈던 때는 50대이고, 지금도 만족스러운 상태”라고 말했다. 패티김은 오는 6월 2일 서울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을 시작으로 미주, 호주 등을 도는 월드투어 ‘이별’을 개최한다. 그는 은퇴를 재고할 생각이 있는지 묻자 “번복은 없다.”면서 “단순한 자선공연이 아닌 큰 자연재해와 같은 엄청난 일을 겪었을 때, 모든 가수들이 동참해 아픔을 위로하는 무대가 있다면 설 것”이라고 말했다. 패티김이 꿈꾸는 은퇴 이후의 삶은 뭘까. “꼬마들, 딸과 시간을 보내는 평범한 할머니이자, 인간 김혜자로 살겁니다. 만약 노래부르고 싶을 때가 생기면 거울을 보면서 부르겠죠. 만일 제가 20대로 돌아간다면 음악 공부를 하고 30대가 되면 노래를 시작할 겁니다. 다시 태어나도 ‘가수 패티김’이 되고 싶어요.” 최여경·이은주기자 kid@seoul.co.kr
  • 올해 전기영화 봇물… 삶을 그린다, 닮은 얼굴로

    올해 전기영화 봇물… 삶을 그린다, 닮은 얼굴로

    전기 영화가 몰려온다. 정치인, 연예인, 기업인, 예술가들의 일생을 다룬 작품이 줄줄이 개봉을 앞두고 있다. 특정 인물의 생애를 드라마틱하게 구성한 전기 영화는 미화 논란에 부딪히기도 하지만, 최근에는 실화 영화 붐을 타고 할리우드는 물론 국내에서도 제작 바람을 타고 있다. ●메릴 스트립,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유력후보로 특히 올해 상반기에는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전기 영화들이 많다. 오는 23일과 29일 국내 개봉을 앞둔 영화 ‘철의 여인’과 ‘마릴린 먼로와 함께한 일주일’은 세계 정치계와 문화계를 흔들었던 두 여성 스타들의 일생을 다루고 있다. ‘철의 여인’은 영국 최초의 여성 총리이자 타임지 선정 20세기를 대표하는 20대 정치인에 꼽힌 마거릿 대처의 삶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영화는 잉글랜드 시골 출신의 식료품집 둘째 딸로 태어나 남성 의원과 유권자들의 냉대에 굴하지 않고 1959년 하원 의원으로 정계에 진출해 총리가 되기까지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대처와 외모도 흡사할 뿐만 아니라 완벽한 연기를 선보인 메릴 스트립은 제84회 아카데미 시상식의 유력한 여우주연상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마릴린 먼로와 함께한 일주일’은 사망 50주기를 맞은 세기의 섹시 스타 마릴린 먼로의 비밀 로맨스를 그린 영화다. 영화 ‘왕자와 무희’에서 조감독으로 만난 콜린 클락과의 은밀한 로맨스를 중심으로 전성기 때 마릴린 먼로의 삶과 사랑을 조명한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마릴린 먼로 역에 캐스팅된 미셸 윌리엄스는 말투, 걸음걸이, 내면 연기 등 먼로의 모든 것을 재현해 ‘마릴린 먼로의 환생’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미얀마 민주화 운동의 상징인 아웅산 수치 여사의 일대기를 그린 ‘더 레이디’도 상반기 국내 개봉을 앞두고 있다. 영화 ‘레옹’ ‘제5원소’ 등 액션 영화로 유명한 뤼크 베송 감독이 연출을 맡아 일찌감치 화제를 모았다. 주부였던 수치 여사의 민주화를 위한 평화적 투쟁 기록과 남편과의 애절한 사랑이 주요 소재로, 실제 인터뷰 등을 토대로 제작됐다. 수치 여사 역은 중화권 스타 양쯔충이 맡아 열연을 펼쳤다. 그는 수치 여사의 영국식 영어와 미얀마어를 익혀 100만명 군중 앞에서의 연설 장면을 실감나게 재현했다. ●前 FBI 국장 에드거 후버 일대기도 영화화 현재 제작 중이거나 논의가 활발한 전기 영화도 많다. 배우 출신 감독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할리우드 톱스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만남으로 화제를 모았던 ‘J. 에드거’는 48년간 FBI 국장으로 재임했던 존 에드거 후버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다. 제81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밀크’로 각본상을 받은 더스틴 랜스 블랙이 각본을 맡았으며 나오미 와츠와 주디 덴치 등 스타들이 대거 합류했다. 나오미 와츠는 최근 다이애나 전 영국 왕세자비를 다룬 전기 영화 ‘코트 인 플라이트’의 여주인공으로도 발탁됐다. 미국과 영국에서 다이애나비를 소재로 한 TV 드라마가 제작된 적은 몇 차례 있었지만, 영화로 선보이는 것은 처음이다. 올해 말이나 내년 초 본격적인 촬영에 들어갈 예정이다. 지난해 10월 세상을 떠난 ‘IT계의 천재’ 스티브 잡스의 전기 영화도 만들어진다. 제작은 페이스북 창시자 마크 저커버그의 청년기를 다룬 ‘소셜 네트워크’를 제작한 소니 픽처스가 맡았다. 현재 잡스 역을 맡을 배우 캐스팅이 한창으로 조지 클루니, 노아 와일, 애슈턴 커처, 크리스천 베일 등이 물망에 오르고 있다. 메가폰은 ‘오션스’ 시리즈의 스티븐 소더버그가 잡을 예정이다. 이 밖에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의 전기 영화 제작도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국내에서도 한국 패션계의 거목 앙드레김의 전기 영화가 제작된다. 주연 배우는 충무로의 블루칩 하정우가 맡아 기대를 모으고 있다. 1960년대 한국 패션계와 연예계의 에피소드는 물론 한국 최초의 남성 디자이너로서 청년 앙드레김의 고뇌와 도전을 다룰 예정이다. 평소 수차례 개인전을 열 정도로 미술에 조예가 깊은 하정우는 이 프로젝트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국내외에서 전기 영화가 봇물을 이루는 이유는 실화 영화 붐과 무관치 않다. 때문에 영화 홍보사들은 단순한 전기 영화가 아닌 ‘실화 마케팅’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영화계 관계자는 “실화 영화는 잊혀진 사건을 환기시키는 효과가 있고, 화제성은 물론 공감대를 끌어내기도 쉽다.”면서 “실화 마케팅을 통해 사람과 사건에 관심을 불러일으키면 기존의 영화 마니아층뿐만 아니라 대중적으로도 인기를 끌 수 있다.”고 말했다.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日 도시 노후화 해결 경험 서울 공공임대주택에 활용”

    집 자체는 상당히 좁았다. 전용면적이 43㎡(13평) 정도다. 하지만 주택 사이 작은 숲과 옥상 정원, 벽을 뚫어 만든 바람길 덕분에 여름에도 에어컨이 필요 없을 정도로 쾌적하고 볕이 잘 든다. 주민 대부분이 노인과 장애인인 점을 고려해 턱을 없애고 복지사가 날마다 건강검진을 한다. 이런 곳이 공공임대주택이라고 하면 믿기지 않겠지만 일본 도쿄 세타가야구의 후카사와 환경공생주택 주민들에겐 15년 전부터 누려 온 일상일 뿐이다. ●“집은 자연과 공생할 수 있어야” 2박3일에 걸친 일본 출장 마지막 날인 지난 10일 이곳을 찾은 박원순 서울시장은 친환경 주거단지를 통한 도시 노후화·슬럼화 해결과 원주민 수용방안 등 서울시가 목표로 하는 공공임대주택 정책에 후카사와 환경공생주택 경험을 적극 활용하겠다고 밝혔다. 박 시장은 “15년 전에 지은 이곳을 보면서 30년 뒤 서울의 주택을 생각한다.”면서 “집은 단순히 몸을 누이고 밥만 먹는 곳이 아니라 이렇게 이웃, 자연과 공생할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며 감탄을 감추지 못했다. 일본 도쿄 동남쪽에 있는 후카사와 단지는 원래 1952년에 도쿄도가 목조 단층 임대주택으로 건설한 도영(都營)임대주택단지를 세타가야구가 구영임대주택단지로 재개발한 곳으로 일본을 대표하는 친환경 주거 단지다. 호사카 노부토 세타가야구청장은 ▲에너지 절약, 자원절약, 폐기물 감소 ▲주변 자연환경과 지역사회와의 조화 ▲건강하고 쾌적한 거주 공간과 사람들과의 교류공간 창출 등 세 가지를 임대주택단지를 건설하면서 핵심으로 삼았다고 밝혔다. 60년간 거주한 주민대표 다구치 고우하치(87)는 “마을을 다시 만들 때 주민 희망이 거의 다 반영됐다.”면서 “쾌적하다, 아주 만족한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주민의견 반영·토론할 것” 견학을 마친 박 시장은 ‘논의력’(議力)이란 표현을 통해 “2년 3개월에 걸쳐 주민 의견을 듣고 토론하는 과정을 거쳐 합리적 결론에 이르는 것이야말로 삶 속에서 구현되는 민주주의”라고 강조했다. 그는 뉴타운 갈등에 대해서도 “합리적 토론 없이 밀어붙이기만 하다가 지금 같은 재앙이 생겼다.”면서 “우리 사회가 발전에서 중요한 게 바로 그런 소통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도쿄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한은 부총재 KDI 출신 유력… 혁신? 독선?

    한은 부총재 KDI 출신 유력… 혁신? 독선?

    오는 4월 7일 임기가 끝나는 이주열 한국은행 부총재의 후임에 한국개발연구원(KDI) 출신의 김준일(55) 한은 경제연구원장(부총재보급)이 유력한 것으로 전해졌다. 같은 달 임기가 끝나는 세 명의 부총재보 후임도 윤곽이 정해졌다. 사실상 외부 인사가 부총재로 승진하기는 한은 설립 이래 처음이어서 엄청난 후폭풍이 예상된다. 취임 이후 거침 없는 파격 인사를 거듭해온 김중수 총재가 한은의 순혈주의를 정조준했다는 반응과 60년 조직 뿌리를 송두리째 흔드는 독선이라는 반응이 엇갈린다. 12일 청와대와 한국은행 등에 따르면 김 총재는 이 부총재 후임으로 김 원장과 박원식 부총재보를 지난 달 말 각각 1, 2순위로 청와대에 추천했다. 한은 부총재는 총재가 추천하고 대통령이 임명한다. 2순위 후보가 낙점을 받은 전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극히 드물다. 따라서 ‘이변’이 없는 한 김 원장이 승진할 것으로 보인다. 서울대 경제학과와 미국 브라운대 경제학 박사 출신인 김 원장은 KDI 거시경제팀장과 국제통화기금(IMF) 부과장 등을 지냈다. KDI 원장을 지낸 김 총재가 한은에 입성한 해인 2010년 12월 한은 경제연구원장으로 전격 영입됐다. 이듬해 3월에는 김 총재가 야심차게 신설한 ‘수석 이코노미스트’ 자리도 함께 꿰찼다. KDI 시절부터 김 총재의 신임이 각별했다고 한다. 4월 26일 임기가 끝나는 김재천·장병화·이광준 부총재보 후임에는 강준오 기획국장, 강태수 금융안정분석국장, 김종화 국제국장이 사실상 내정됐다. 부총재보는 청와대의 인사검증 과정에서 특별한 문제점이 발견되지 않으면 총재의 의중이 그대로 관철된다. 임명권자가 총재이기 때문이다. 두 강 국장은 지난해 ‘한은법’ 개정을 관철시킨 일등공신으로 꼽힌다. 김 국장은 김 총재가 취임 후 직접 발탁한 인사로 미국 미시간대 경제학 박사 출신이다. 익명을 요구한 소식통은 “한은이 예년보다 일찍 (승진 후보자) 명단을 전달해 와 청와대가 이미 인사 검증에 들어갔다.”고 전했다. 김 총재의 구상대로 ‘판’이 짜여지면 한은은 엄청난 충격에 휩싸일 것으로 보인다. 기존 틀을 완전히 깬 인사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한은 부총재는 임기 만료를 앞두고 있거나 임기를 마치고 나간 부총재보 가운데 발탁하는 게 관례였다. 이번에도 임기 만료를 앞둔 부총재보가 3명이나 있지만 김 총재는 이들을 모두 제치고 외부 인사나 다름없는 김 원장을 선택했다. 아직 임기가 1년 넘게 남아 있는 부총재보 한 명마저 민간으로의 이직(離職)을 유도하고 있다는 얘기가 있다. 후임 부총재보도 국장으로 승진한 지 1년여밖에 안 된 사람을 파격 발탁해 메가톤급 인사 태풍이 불가피해졌다. “이대로는 안 된다.”를 외쳐온 김 총재가 순혈주의와 연공서열을 과감히 깸으로써 대대적인 혁신을 시도하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다른 해석도 있다. 김 총재가 정권 교체에 대비해 공고한 친정체제 구축에 나섰다는 해석이다. 벌써부터 ‘KDI가 한은을 접수했다.’는 냉소가 나온다. 한 인사는 “파격도 어느 정도 원칙이 지켜지는 범위에서 이뤄져야 (조직의) 지지를 받는 법”이라면서 “총재가 바뀔 때마다 인사의 근본 원칙이 무너지면 누가 묵묵히 통화정책을 수행하겠느냐.”고 우려했다. KS(경기고-서울대) 출신인 김 총재는 자타가 공인하는 ‘영어 잘하는 박사’다. 공교롭게도 이번 임원 승진 후보자 4명 가운데 3명이 박사다. 영어에도 능통하다. 한 명을 빼고는 모두 서울대를 나왔다. 안미현기자 hyun@seoul.co.kr
  • [열린세상] 우리 모두의 딸들을 위해/허동현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

    [열린세상] 우리 모두의 딸들을 위해/허동현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

    “이목구비와 사지오관 육체에 남녀가 다름이 있는가. 어찌하여 사나이가 벌어주는 것만 앉아서 먹고, 평생을 깊은 골방에 갇혀 남의 절제만 받으리오!” 1898년 9월 1일 서울 북촌의 양반집 부인 300여명이 뜻을 모아 만든 최초의 여권선언문인 ‘여권통문’의 첫머리다. 남녀동권의 외침은 한 세기도 더 전에 터져 나왔다. “내가 인형을 가지고 놀 때/기뻐하듯/아버지의 딸인 인형으로/남편의 아내인 인형으로/그들을 기쁘게 하는/위안물이 되도다/남편과 자식들에게 대한/의무같이/내게는 신성한 의무 있네/나를 사람으로 만드는/사명의 길을 밟아서/사람이 되고저.”(나혜석, ‘인형의 家’, 1921) 일제 식민지시대 이 땅의 여성들은 국민이 아니었다. “일등 국민”인 남성들을 낳고 기르고 돌보는 종속적 존재인 비(非)국민이었다. 그때 신여성 나혜석은 현모양처의 족쇄를 풀고 당당히 남성과 동등한 사람임을 선언했다. “지금 저의 모든 친구들 그리고 대한민국 모든 학생들은 우리나라 민주주의를 위하여 피를 흘립니다. 저는 아직 철없는 줄 압니다. 그러나 국가와 민족을 위하는 길이 어떻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저와 모든 학우들은 죽음을 각오하고 나간 것입니다. 저는 생명을 바쳐 싸우려고 합니다. 죽어도 원이 없습니다. 온 겨레의 앞날과 민족의 해방을 위하여 기뻐해 주세요. 이미 저의 마음은 거리에 나가 있습니다.”(경향신문 60년 4월 30일자) 1960년 4월 19일 한성여중 2학년 진영숙은 민주주의를 위한 제단에 한 송이 꽃으로 졌다. “강산은 좋은데/이쁜 다리들은/털 난 딸라들이/다 자셔놔서 없다.”(신동엽, ‘발’1966) 1960년대 군사독재에 맞서 반외세·민족자주를 꿈꾼 저항시인 신동엽은 “털 난 딸라”들에게 몸을 파는 이 땅의 여성들에게서 민족의 종속을 보았다. “역사의 그늘을 뜨개질하며” 희망의 “그날”이 오길 바란 시인도 한 시대의 지배적 정신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민족이란 거대 담론에 함몰된 시인의 눈에 여성은 종속적인 존재로 비칠 뿐이었다. “제국주의 성기가/누이들의 속살 팍팍 헤집는 신음이/황홀한 창으로 나와 호수에 빠지는 불빛 보며/호변 가로등 밑을/다리 이쁜 여자와 서정시로 껌 씹으며 걸어가다/이 여자(장차 내 마누라가 될 여자)를/당당한 중진국 애국 지식인 양심으로서/외화수입을 위해 옷 벗겨 관광기생으로/나라에 바쳐볼까 하지만/글쎄/그럴 때마다 이화여자대학교 총학생회에서/지역 어느 대학 남자 총학생회장에게 보냈다던/썩은 고구마(어떤 놈은 고추 또는 쏘세지라고도 한다)와 면도칼(어떤 놈은 가위라고도 하고)을 생각하며/섬뜩섬뜩 가운데 다리를 움켜쥔다/누이들의 몸값으로/GNP 계산하는 나라에/세 개의 다리로 서 있는/불쌍한 나여/내 나라의 여자도 못 지키는.”(공광규, ‘대학일기4’, 1987) 반독재·반외세 투쟁의 구호가 거리에 울려 퍼지던 1980년대에도 여성들은 국가가 외화 수입을 위해 “제국주의 성기”들의 성 노리개로 팔 수 있는 종속물이었다. 자신의 위축된 남성성을 자조하며 시대의 아픔을 풍자한 시인도 여전히 마초의 시각을 버리지 못했다. 4·19혁명 때도, 신군부의 독재에 맞선 1980년대의 민주화 운동 때도 여성들은 시민으로서의 의무를 다했다. 그러나 최근 “비키니 시위”를 둘러싼 “삼국(쌍화차 코코아·소울드레서·화장∼발)카페”와 “미권스(정봉주와 미래 권력들)”의 공방을 보노라면, 다원화된 풀뿌리 시민사회를 사는 오늘도 남녀동권·양성평등 사회는 아직 도래하지 않은, 여전히 소망하는 꿈에 지나지 않는다. “사건의 본질은 ‘비키니’를 통한 시위형식이나 표현의 자유에 관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문제의 본질을 ‘가슴사진 대박, 코피 조심’이라는 말에서 드러난 여성관의 한계라고 판단한다. ‘코피’ 발언은 그들이 남성 위주의 사회적 시선으로 여성을 바라보며, 여성을 성적 즐거움을 가져다 주는 한낱 눈요깃거리로 삼고 남성의 정치적 활동의 사기 진작을 위한 대상 정도로 전락시킨 것이다.”(‘삼국카페 공동선언문’ 2012. 2.6) “우리의 딸들이 이런 일들을 또 겪게 할 수 없다.”는 작지만 큰 외침에 귀를 막기 어렵다.
  • [데스크 시각] 검사 엄상섭 그리고 검찰개혁/이기철 사회부 차장

    [데스크 시각] 검사 엄상섭 그리고 검찰개혁/이기철 사회부 차장

    검찰이 위기다. 국가의 중추적 법집행 기관으로서 신뢰의 위기는 국가적 문제다. 공정한 법집행과 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이 국민적 신뢰 회복의 지름길이다. 위기의 검찰에는 개혁이 절대적이다. 검찰 개혁 하면 효당 엄상섭이 생각난다. 효당은 일반인에게는 다소 생소하지만 법조계, 특히 검찰에서는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대쪽 검사’ 김익진과 함께 한국 검찰의 두 기둥으로 꼽힌다. 효당은 검사와 정치인을 지내면서 오늘의 형법과 형사소송법, 검찰의 뼈대를 만드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 효당은 1907년 전남 광양에서 태어나 32세 때 고등시험 사법과에 합격했다. 일제강점기에 검사를 지냈다. 광복을 맞아 일제시대에 검사를 지낸 다른 7명과 함께 사직했다. “검사생활, 이것이야말로 왜정 압력하에서 독립운동에 신명을 바치시던 애국지사들에 대하여는 지금도 면목 없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왜정하에서 검사를 지냈다는 것은 한없이 후회되는 일입니다. 굴절했고 왜제 통치에 협력을 하였다는 것만은 아무리 사과를 해도 오히려 모자랄 것입니다.” 그가 단행본 ‘권력과 자유’에서 밝힌 친일 반성문은 가장 통절한 반성문 가운데 하나로 평가받는다. 이후 지조 없는 행동을 하지 않겠다는 듯 ‘고집불통’으로 변했다. 재야에 있던 그를 미군정은 검사로 발령냈다. 신생국의 검사로서 법령을 정비하다 1949년 9월 검찰을 떠났다. 1950년 5월 30일 치러진 제2대 민의원 선거를 통해 정치인으로 변신했다. 한국전쟁의 피란길에서 세 아들을 잃었다. 1960년 5월 3일 효당은 헌법기초위원회 회의를 주재하다 뇌내출혈로 53세로 세상을 떠났다. 효당은 대한민국 건국시대에 국가권력의 핵심이 되는 형법과 형사소송법 제정의 중심에 섰다. 제정 헌법 정신에 맞게 형사재판의 민주화와 형사소송의 정치도구화 방지에 초점을 맞췄다. 효당은 이를 실현하는 도구로서 현재의 검찰조직 큰 얼개인 검찰청법을 마련했다. 검찰청법을 입안할 때 그가 가장 고심했던 부분은 검찰의 ‘독립과 견제’였다. 검사의 신분보장과 법무부 장관의 개별 사건에 관한 지휘권 배제를 주장해 관철했다. 흥미로운 부분은 고등검찰청 폐지론이다. 범죄수사에서 기민성을 발휘하고, 수사 및 형사정책의 통일성을 유지하기 위해 명령계통의 간명화가 필수적이기 때문에 고등검찰청 같은 중간단계는 필요없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검찰이 법원에 대응하는 조직이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말한 부분은 60여년이 흐른 지금으로서도 상당히 독창적이다. 여기에 그쳤다면 효당은 검사의 관점과 이익을 대변한 인물에 불과했을 것이다. 그가 평가받아야 할 부분은 검찰에 대한 외부의 견제장치 도입을 제안한 점이다. 물론 사법경찰의 검찰전속화가 전제돼 있다. 효당은 검찰의 ‘권력 강대화와 독선의 폐단을 예방하기’ 위해 검찰위원회를 설치, 검찰권을 감시하자고 강조했다. 검찰위원회는 외부인을 포함해 10~11명으로 구성된다. 그의 의견이 다소 설익은 느낌이지만 외부 통제를 과감히 도입해 검찰의 강대화와 독선을 견제해야 한다는 생각은 그 이전 누구에게서도 찾아볼 수 없는 아이디어였다. 시민의 참여로 검찰의 공정성과 독립성, 책임성을 강화시키자는 요즘의 주장과 맥락이 같다. 그의 발상이 아직까지도 생명력을 유지하는 이유를 검찰은 곰곰이 되새겨 봐야 한다. 최근 검찰은 법원과 경찰의 협공을 받는 형국이다. 스스로 개혁하는 데 실패한 탓이다. 법률가인 검사는 수사전문가도 겸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비전과 전략을 갖고 수사를 전문화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또 거악과 맞서는 ‘고독한 전사’ 이미지에서 벗어나야 한다. 우리 사회의 참다운 공익의 대표자로 거듭나야 한다. 효당이 제안했던 검찰위원회의 참뜻이다. 검찰은 효당처럼 과거 잘못을 절절하게 반성하고, 시민의 통제를 받는 개혁의 길을 스스로 모색해야 한다. 실기하면 중수부가 아니라 대검찰청 자체가 존폐 문제에 내몰릴 수 있다. chuli@seoul.co.kr
  • 울산 산업기술박물관 유치 나서

    울산지역 시민·사회단체, 경제·문화·교육계 등 각계각층이 국립 산업기술박물관 유치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8일 울산시에 따르면 지식경제부가 대한민국 산업기술 60년사를 정리·보존·전시하고, 첨단 신기술 홍보·체험 등을 통해 산업기술의 미래 비전을 제시하기 위해 산업기술박물관 건립(2015~2020년)을 추진하고 있다. 10만여㎡ 부지에 4500억원을 들인다. 울산에서는 13일 울산상공회의소 대강당에서 지역의 각계각층이 모여 국립 산업기술박물관 울산유치 범시민운동본부(위원장 최일학 울산상의회장) 출범식을 갖는다. 울산대 자전거 원정대(학생 5명)는 산업기술박물관 유치 기원 국토종단의 대장정을 시작한다. 박물관 유치전에는 경북, 전남, 경남 창원, 경기 수원 등도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시는 울산이 국가기간산업 발전과 관련한 각종 현장과 실물자료 및 문서자료를 국내에서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고, 국내 자치단체 가운데 연간 수출 1000억 달러를 올해 최초로 돌파하는 등 우리나라가 세계 아홉 번째로 무역 1조 달러를 달성하는 데 가장 크게 기여했다는 점을 부각시킬 계획이다. 울산 박정훈기자 jhp@seoul.co.kr
  • 금천 “마을공동체 모범 모델을 찾아라”

    금천구 공무원 14명과 주민자치위원 29명이 지난 6일 전북 완주군으로 내려갔다. 주민 주도의 마을 공동체 활성화 방안을 찾기 위해서다. 구는 2010년 차성수 구청장 취임 이후 통·반장과 부녀회, 노인회와 아파트, 공동주택 주민 등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커뮤니티를 조직해 마을 공동체 회복 운동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지난달에는 아파트 등의 공동주택을 대상으로 자동차를 함께 이용하는 ‘카 셰어링’, 이웃과 함께 채소를 기르는 ‘옥상 텃밭 가꾸기’ 등 커뮤니티 활성화 사업을 공모하기도 했다. 사업 규모에 따라 1000만원까지 지원한다. 이번에는 전국의 대표 마을 공동체 및 마을 기업 사례를 돌아보고 장점을 벤치마킹하기 위해 나섰다. 구 관계자들은 완주 커뮤니티비즈니스(CB)센터를 방문해 관련 워크숍을 가졌다. 완주군은 마을 공동체 사업에 역량을 집중하는 모범 지방자치단체다. 2008년부터 희망제작소와 연계해 마을 공동체 살리기 프로젝트를 마련했다. CB센터는 마을의 특성을 분석해 마을기업을 육성하고 주민 자발 참여로 수익과 일자리를 창출하도록 돕는 곳이다. 국내 마을기업의 시초인 완주 ‘안덕마을 파워빌리지’가 CB센터를 통해 탄생했다. 외진 곳에 위치한 전형적인 농촌이었던 안덕마을은 지역 농산물을 활용한 ‘웰빙 레스토랑’과 ‘건강 힐링 테마시설’을 갖춰 2010년 5억원, 지난해 1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마을 공동체 활성화는 박원순 서울시장이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시절부터 적극 추진하던 분야이기도 하다. 지난해 이 사업에 예산 190억원을 책정했던 서울시는 올해 3배인 570억원으로 늘렸다. 특히 뉴타운 출구전략과 더불어 도시개발사업의 중심축이 마을 공동체 살리기로 전환되면서 주목받고 있다. 일본에서는 이미 1960년대부터 마을 공동체 회복 운동이 시작됐다. 금천구 자치행정과 박은숙 팀장은 “워크숍을 기회로 주민들 스스로 지역특성에 맞는 사업을 발굴하고 문제를 해결하도록 해 지역공동체 회복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현용기자 junghy77@seoul.co.kr
  • 무려 358억…세계서 가장 비싼 페라리 화제

    ▶원문 및 사진 보러가기 가장 아름다운 페라리란 별명을 가졌던 ‘페라리 250 GTO’가 우리 돈으로 약 358억원에 거래되면서 세계에서 가장 비싼 페라리에 이름을 올렸다. 6일(현지시각)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 등 외신에 따르면 영국 재벌 사업가 존 헌트(58)가 소유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차체번호 5095번이 적힌 1963년형 페라리 250 GTO 차량이 지난 2주 전 2020만파운드(약 358억원)에 극비 거래됐다. 이 차량은 지난 2008년 클래식카 수집가이기도 한 존 헌트가 1570만파운드(당시 환율 약 300억원 이상)에 구매한 것으로, 당시 세계 자동차 경매 최고 기록을 경신한 적이 있다. 존 헌트는 영국의 대표 부동산 중계업체인 ‘폭스턴스’(Foxtons)를 창업한 인물로, 주택 경기침체 이전 회사를 3억7000만파운드(약 6565억원)에 매각해 단 3년만에 450만파운드(약 79억원)의 이익을 얻은 바 있다. 이번 판매는 최근 비밀리에 거래가 성사됐지만 곧 빈티지 자동차 업계에 소문이 돌기 시작하면서 알려졌다. 클래식 페라리 전문업체 탈라크레스트 소유주인 존 콜린스는 최근 250 GTO 모델 판매를 확인했지만 존 헌트가 소유했던 모델인지 여부는 밝히지 않았다. 하지만 기록에 따르면 5095번의 현 소유주는 존 헌트로 나타나 있으며 이제 이 차량은 스페인으로 향하고 있을 것이라고 텔레그래프는 전했다. 이날(6일) 존 헌트는 250 GTO 매각에 대한 언급을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페라리 250 GTO는 지난 1960년대 페라리 설립자인 엔조 페라리가 만든 페라리 슈퍼카 계보의 첫 번째 모델이다. 지난 1962년 첫 공개된 250 GTO는 당시 6000파운드에 판매됐다. 이는 당시 고급 주택을 구매할 수 있는 거금이라고 한다. 250 GTO는 3리터 12기통(V12) 2953cc 엔진을 장착해 302마력를 내며, 제로백 6.1초, 최고 속력 280km/h를 자랑한다. 250 GTO 차량은 출시 첫해부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해 1963년 프랑스 대회를 우승하는 등 3년간 각종 레이스 대회를 휩쓸다시피 했다. 특히 지난 1963년 9월 생산됐던 5095번 차량은 실제로 1964년 프랑스 피카르디와 리무쟁에서 열린 랠리와 레 장드리에서 열린 힐크라임에서 3회의 우승을 차지해 그 가치가 높이 평가되고 있다. 페라리 250 GTO는 지난 1962년부터 64년 사이 총 39대 밖에 생산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클래식카 수집가들 사이에서 드림카로 손꼽힌다. 30년 경력의 팔라크레스트 역시 클래식 페라리 판매 중계로 큰 이익을 내고 있으며 지난해에는 기록적인 판매를 기록했다. 콜린스는 “클래식 페라리는 다른 차량보다 더 많은 이득을 보여줘 왔는데 이는 마치 자동차 업계의 피카소 작품 같다.”면서 “페라리 250 GTO를 원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내게 보여 달라”고 말했다. 전설적인 록밴드 핑크 플로이드의 드러머 닉 메이슨(68) 역시 지난 1975년 이 차량을 구매해 소유하고 있다고 한다. 한편 현재 세계에서 가장 비싼 자동차는 미국 캘리포니아 주 멀린자동차박물관에 전시된 부가티 타입 57SC 애틀랜틱로, 지난 2010년 우리돈으로 약 481억원에 거래된 것으로 알려졌다. 윤태희기자 th20022@seoul.co.kr
  • 엘리자베스 2세 英여왕 즉위 60돌… 6월 2~5일 임시공휴일

    영국의 엘리자베스 2세(85) 여왕이 6일(현지시간) 즉위 60년을 맞았다. 영국 군주로는 빅토리아 여왕의 64년(1837~1901)에 이어 두 번째 기록이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남편인 필립공과 케냐를 여행하던 중 아버지인 조지 6세가 숨지면서 1952년 2월 6일 즉위했다. ●빅토리아 여왕 이어 두번째 기록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이날 오전 성명을 통해 “즉위 60주년을 축하하는 메시지에 큰 감명을 받았으며, 그동안 여러분이 보내준 열렬한 지지와 격려에 감사한다.”고 전했다. 이어 “여왕으로서 국가를 위한 소명의식을 새롭게 다지며, 우리 모두 공동체의 힘을 되새기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60년간 영국을 이끌고 통합해 온 지혜와 영속의 근원”이라며 여왕의 위엄과 권위를 칭송했다. 여왕 부부는 이날 특별한 행사 없이 오전에는 조지 6세가 마지막으로 머물렀던 잉글랜드 동부 노퍽의 가족별장에서 시간을 보냈으며, 오후에는 근처 학교를 방문해 학생들의 즉위 60주년 기념 연극을 관람했다. 여왕은 어려운 경제상황을 감안해 불필요한 지출을 줄이고, 간소하게 행사를 치를 것을 주문했다. ●시민단체 “행사 과열 부추기지 말아야” 연중 진행될 즉위 60주년 행사의 하이라이트는 임시 공휴일인 6월 2~5일에 집중된다. 런던 시민 수백만명에게 점심을 무료로 제공하는 파티와 왕실의 배와 호위선 1000여척이 템스강을 항해하는 수상 퍼레이드 등을 열 계획이다. 군주제를 반대하는 시민단체인 ‘리퍼블릭’은 이 기간 중 평화 시위를 벌일 것이라며, “교육기관과 BBC는 여왕 즉위 60주년 행사의 과열을 부추기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부 경제학자는 6월 임시 공휴일로 기업이 문을 닫으면서 2분기 국내총생산이 0.5%가량 하락할 수 있다면서도 기념품 판매와 식음료 판매, 관광객 수입 등으로 손해를 만회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은 전했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美서 흑인 부를땐 “Black American”

    미국에서 흑인을 부를 때 인종차별 비난을 피하려면 ‘아프리카계 미국인’(African American)이라고 부르는 게 안전하다는 통념이 있다. 그런데 젊은층을 중심으로 아프리카계 미국인보다는 차라리 그냥 ‘흑인’(Black American)으로 불리는 게 낫다는 흑인들이 갈수록 많아지고 있다고 AP가 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텍사스에 사는 회계사 숀 스미스는 “나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이라는 말이 싫다.”며 “그 호칭은 실제 나의 정체성을 반영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부모가 미시시피와 노스캐롤라이나 출신인 그는 “부모님으로부터 아프리카에 대한 어떤 얘기도 듣지 못하고 자랐는데 왜 내가 아프리카계냐.”고 반문했다. 중미 자메이카 출생으로 어릴 때 뉴욕으로 이민 온 작가 호안 모건은 “나는 카리브해 출신 흑인인데 피부가 검다고 한 묶음으로 아프리카계라고 부르면 당혹스럽고 불쾌하다.”고 밝혔다. 미국의 흑인들은 노예 시절부터 ‘니그로’(스페인어로 ‘검다’는 뜻)라는 경멸적 호칭으로 불렸다. 그러다 1960년대 오랜 투쟁 끝에 ‘흑인’이라는 호칭을 쟁취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흑인’이라는 말은 나름대로 자랑스러운 호칭이었던 셈이다. 그러던 것이 1980년대 후반 흑인 지식인 사이에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더 정당한 호칭이라는 주장이 지배하면서 일순간에 ‘흑인’이라는 호칭이 경계의 대상이 됐다. 그러나 지난해 1월 NBC 여론조사에서 흑인의 42%가 ‘흑인’이라는 호칭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아프리카계 미국인’을 선호하는 응답은 35%였다. 워싱턴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 [CEO 칼럼] 화합의 여의주를 잡아라/김창범 한화L&C 대표

    [CEO 칼럼] 화합의 여의주를 잡아라/김창범 한화L&C 대표

    ‘화이능취’(和以能就) 2012년은 우리에게 정치, 경제적으로 매우 중요하고 민감한 시기다. 때문에 ‘화합을 통해 능동적이고 진취적으로 목표를 달성하자.’는 뜻을 담은 이 사자성어만큼 의미심장하게 다가오는 말은 없을 듯하다. 올해는 용의 해 중에서도 ‘60년 만에 찾아온다는 흑룡의 해’다. 근거 없는 속설이라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회자되는 까닭은 새해에 거는 우리들의 희망과 기대가 각별하기 때문일 터다. 용은 12지신 가운데 유일한 상상 속 동물이다. 용은 사슴의 뿔, 소의 귀, 낙타의 머리, 토끼의 눈, 뱀의 목덜미, 대합의 배, 매의 발톱, 호랑이의 발바닥, 그리고 잉어의 비늘 81개를 가졌다. 용맹, 존귀, 총명 등 용이 상징하는 특징 중 가장 으뜸은 ‘화합’(和合)이다. 다양한 동물들의 신체 일부가 조화를 이뤄 탄생한 신성한 존재이니, 화합을 대표하기에 더할 나위 없다. 우리나라엔 올 한해 대내외 환경변화와 맞물려 많은 격랑이 예고돼 있다. 안으론 먼저 20년에 한 번씩 돌아온다는 양대 선거(4월 총선과 12월 대선)가 있다. 지난해부터 달아오른 선거 열풍이 금년 내내 휘몰아칠 것이다.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 이후 불안해진 한반도 정세는 여전하다. 유럽발 재정위기로 인해 추락한 각종 글로벌 경기지표도 암울하긴 마찬가지다. 안팎으로 자칫하면 혼돈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는 처지인 것이다. 이처럼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 상황이 우려되는 ‘블랙스완’이 날개를 펴는 지금, 화합만이 지역·계층·정파 간 갈등과 분열을 뛰어넘을 수 있는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사회 각계각층의 책임 있는 인사들은 희생과 솔선수범을 통해 국론을 한데 모으는 데 앞장서야 한다. 화합이야말로 행복한 가정, 건강한 사회,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드는 원천이기 때문이다. 지속적인 경제 침체도 미래를 불안하게 만드는 요인이 된 지 오래다. 불황은 그 뿌리가 점점 깊어지고 구조화되면서 단기적인 처방으로 해결할 수 없는 난제가 되고 있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경제 살리기는 정부나 기업의 힘만으로는 부족하다. 사회 전체의 기본틀을 다시 짜야 할 때다. 창의력이 존중되는 가치관을 키울 수 있도록 교육체계도 개편하고, 모든 제도와 관행을 합리화해야 한다. 과학·기술·정보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는 동시에 창의적이고 자유로운 사고가 증진되는 사회 분위기를 조성해 경제의 활력을 되찾아야 한다. 정보기술(IT) 발달로 기술과 지식은 무한대로 융합되며 유·무형의 재화와 상품으로 거듭나 국경을 넘나드는 무역전쟁이 한창이다. 한 나라의 문화·과학·기술의 바탕이 되는 창의력과 인식 수준이 그 나라의 경쟁력을 판가름하는 세상인 것이다. 이러한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화합이다. 진정한 선진사회로의 도약은 나보다는 우리를 생각할 줄 아는, 화합이 기반된 성숙된 시민의식이 전제조건이기 때문이다. 극단적인 대치와 반목을 해소하고 대안 없는 무조건적인 반대는 지양해야 한다고 본다. 상대방의 성과에 기꺼이 박수를 쳐주는 대범함을 갖추면서 과오에 대해서는 과감히 지적해 개선을 이끌어 내는 상호보완과 균형감각이 요구된다. 이런 태도가 국민적 갈등을 해소하고 화합을 도모하는 단초가 되고, 나아가 국가의 위상을 대외적으로 한 단계 끌어올리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우리민족은 역사적으로 많은 외세의 침략을 받아왔다. 그러나 그때마다 화합과 일치로 위기를 지혜롭게 극복해 왔다. 화합의 상징인 용의 해 2012년을 대한민국의 국운(國運)이 일어나는 대망의 해로 만들어야 한다. 갈등과 분열을 극복하고 신뢰와 정의가 살아 있는 사회, 건강한 민주국가로서 세계 속에서 대한민국이 자리잡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우리나라가 ‘화합의 여의주’를 물고 글로벌 무대에서 힘차게 날아오르는 용이 되길 기원한다.
  • 나꼼수 성희롱 논란 2R

    ‘나는 꼼수다’의 이른바 ‘비키니 시위’ 논란이 산으로 가고 있다. 나꼼수 측이 지난 4일 공개석상에서 ‘성희롱 의도가 없었다.’며 진화에 나섰지만, 한쪽에서는 “(나꼼수가) 여전히 뭐가 문제인지를 모르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특히 나꼼수 진행자인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가 사진을 올린 비키니 여성을 두고 ‘생물학적 완성도에 감탄했다.’는 발언이 전해지면서 네티즌들은 ‘성희롱 논란 2라운드’에 돌입했다. ●나꼼수측 “성희롱 의도 없었다” 김 총수는 이날 오후 서울 마포아트센터에서 시사주간지 시사인(IN) 주최로 열린 ‘시사인 토크 콘서트’에서 “우리는 성희롱할 의도가 없었고 사진을 올린 여성도 성희롱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밝혔다. 김 총수는 “여성이 성적 약자로서, 이런 이슈에 예민할 수 있다.”면서도 “자신의 몸을 이용해 정치적 표현을 할 자유가 있으며, 자신이 불쾌하다고 그 권리를 제약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일부 네티즌들은 나꼼수 측이 여전히 논란의 실체를 잘못 이해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문제는 여성의 비키니 사진 릴레이 시위 자체가 아니라 이에 대한 나꼼수 측의 성적 농담이라는 것이다. 조이여울 여성주의저널 일다 기자는 “여성들은 비키니 시위가 아닌 나꼼수의 농담에 항의하는데도 나꼼수는 여전히 ‘비키니 시위는 표현의 자유’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시위 아닌 나꼼수 발언이 문제” 설상가상으로 나꼼수 측이 또 한번 성적 발언을 하면서 논란은 더 커졌다. 김 총수가 이날 콘서트에서 “(비키니 여성의) 생물학적 완성도에 감탄한 것도 사실이고, 신선한 시위 방법에도 감탄했다.”고 한 말이 인터넷 커뮤니티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타고 퍼진 것이다. 일부는 “속 시원하다.”는 반응을 보였지만, SNS를 중심으로는 비판이 쏟아졌다. “초딩도 아는 성희롱을 김어준은 모른다.”, “키큰 남자가 생물학적 완성도가 뛰어나다고 해도 농담으로 넘어가야 하느냐.” 등의 글이 이어졌다. 논쟁은 진보세력의 여성주의에 대한 관점으로도 번지고 있다. 나꼼수를 옹호하는 네티즌들은 “진보에게 과도한 엄숙주의를 요구하지 말라.”, “1960년대인가. 여성들은 피해의식을 버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한국여성민우회 관계자는 “진보적이라면 성평등 의식도 높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어 ‘마초 진보’라는 말이 나온다.”면서 “지금 제기되는 문제들을 성찰해야 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김소라기자 sora@seoul.co.kr
  • [책꽂이]

    ●자본주의적 인간, 중국 남부인(정재용 지음, 리더스 북 펴냄) 중국 성장의 근원을 좇다 중국 남부인들을 만났다. 돈을 신앙처럼 여기다 보니 부와 길운을 뜻하는 숫자에 열광하고 오직 현금만을 받아들이며 풍수를 진지하게 믿는다. 사회주의니 자본주의니 하는 체제 이전에 이들은 이미 자본주의적 인간이었다는 진단이다. 1만 5000원. ●언론이 말해주지 않는 불편한 진실(박종성 지음, 북스코프 펴냄) 미디어 발달에 따라 국제 뉴스는 넘쳐나지만 정작 그 사안의 속살에 대해 조명해 주는 뉴스는 드물다. 익숙지 않은 맥락에서 발생한 일에 대해 단편적으로 던져놓기만 한다면 이해할 수 있는 길은 요원하다. 양극화, 분쟁, 종교, 민족, 환경, 질병 등 6가지 키워드를 가지고 지구촌 곳곳에서 일어나는 사건의 배경을 설명한다. 1만 5000원. ●유로의 미래를 말하다(조지 소로스 지음, 하창희 옮김, 지식트리 펴냄) 유럽 경제통합은 어정쩡한 수준이다. 경제를 통합하면서 정치 통합은 미루는 방식이어서다. 해서 단일통화경제권을 만들어두긴 했는데 이를 엄격히 관리·감독할 시스템이 없다. 해서 언제든 위기에 봉착할 것이라는 점은 누누히 지적되어 왔다. 지난 금융위기 때 정확히 드러났다. 헤지펀드의 제왕 조지 소로스는 USA처럼 USE(United States of Europe)를 꿈꾼다면 좀 더 강력한 통합을 이뤄야 한다고 주장한다. 1만 3000원. ●보수 시대의 종언과 새로운 권력의 탄생, 정치의 몰락(박성민 지음, 강양구 인터뷰, 민음사 펴냄) 정치컨설팅 업체를 운영하면서 수년간 선거를 치러본 저자와 인터넷 매체 프레시안 기자의 대화록이다. 정치에 대한 여러 평이나 말은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결론은 투표이고 정당이고 정치인일 수 밖에 없는지에 대해 얘기한다. 1만 4000원. ●문제해결력을 기르는 힘 경제고전(다케나카 헤이조 지음, 김소운 옮김, 북하이브 펴냄) 애덤 스미스에서 케인즈, 슘페터를 거쳐 하이에크와 뷰캐넌에 이르기까지 경제고전에 대한 짧은 평을 달아뒀다. 저자는 고이즈미 내각의 경제개혁을 지휘한 게이오대 경제학과 교수다. 그 개혁으로 말미암아 신자유주의자라 강하게 비판받았다. 해서 경제사상으로 경제현실을 매도해서는 안 된다는 강한 분노가 밑바탕에 깔려 있다. 1만 5000원. ●만화가 정현웅의 재발견(정현웅 지음, 백정숙·최석태 해설, 정현웅기념사업회 엮음, 현실문화 펴냄) 고등학생 시절 조선미술전람회 입선을 비롯해 장정, 삽화, 미술평론 등 다방면에 걸쳐 재능을 펼친 일제강점기 조선의 대표적 예술가 정현웅. 월북 이후 역사 속으로 사라진 그의 작품과 예술세계를 60년 만에 조명한다. 초창기 한국만화를 들여다보고 당시 문화상을 엿보는 즐거움이 쏠쏠하다. 1만 8000원.
  • [저자와 차 한 잔] ‘바다의 편지’ 기획 오인영 교수

    [저자와 차 한 잔] ‘바다의 편지’ 기획 오인영 교수

    ‘광장’의 작가 최인훈은 한국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로 평가된다. 소설 ‘광장’은 현행 18종 고교 문학교과서에 가장 많이 수록된 작품이다. 국문학 전공자들이 석·박사 학위 논문에서 가장 많이 다룬 대상도 최인훈이다. 그는 지금도 소설, 수필, 평론 등 장르를 넘나들며 치열한 고뇌에 바탕한 실험적 글쓰기에 소홀함이 없다. 그럼에도 그는 1960년대를 대표하는 ‘광장’의 작가쯤으로 인식되기 일쑤다. ‘바다의 편지’(삼인 펴냄)는 최인훈의 역사관과 문명사론을 촘촘히 살펴 그를 ‘문학의 범주에 갇히지 않은 독창적인 사상가’로 자리매김하게 한 책이다. ‘바다의 편지’ 출간에 맞춰 책을 기획하고 서문, 해제를 쓴 고려대 오인영(50·사학) 교수를 3일 만났다. “최인훈의 작품 세계는 문학적 장르의 외피를 벗겨 사유의 속살을 보면 ‘지식인 문학’ 범주에 가장 적절한 전범입니다. ‘광장의 작가’라는 창고에 매몰돼 걸출한 사상가의 제 얼굴을 보지 못해 안타깝습니다.” 고려대에서 유럽지성사를 강의하던 중 서양의 거대 사상가를 다루면서 상대적으로 한국의 지적 왜소함을 느꼈다는 오 교수. 3년 전 인류 역사를 압축 개괄한 최인훈의 짧은 글 ‘길에 관한 명상’을 읽고 무릎을 쳤다. 곧바로 최인훈 전집 15권을 모두 읽어낸 뒤 학생들에게 역사, 문명사와 관련된 최인훈의 비평과 에세이를 추려 소개하면서 책을 기획하게 됐단다. “사학자의 입장에서 한국 현대문학의 거장을 평하기란 주제넘은 작업이지요. 하지만 작가 최인훈은 문학 밖의 영역인 인문·사회·종교에서도 문학을 넘는 긍정적인 영향을 충분히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문학·예술에 대한 비평과 역사·문명사에 관한 최인훈의 작품들을 분석해 ‘최인훈 뒤집어 보기’를 시도한 책. 여기서 그는 최인훈의 글쓰기 업적을 ‘사상의 문화재’라고 극찬한다. 그러면 오 교수가 천착한 최인훈의 본질은 어떤 것일까. “그가 역사와 문명을 설명한 모델은 철저하게 독자적이고 자생적입니다. 서구사회에 바탕한 외부 지식을 수입한 게 아니라 한국의 독자적 배경 속에서 사상을 구축했던 것이지요.” 한반도와 한반도가 속한 지구, 한반도와 근대를 다 아우르는 인류·역사의 관점이 도드라진단다. 그 바탕에는 여느 근대 사상가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치열한 사유가 있다는 분석이다. “인간은 다른 동물과 마찬가지로 자연의 생물학적 유전자(DNA)를 갖고 태어나지만 끊임없이 문명적 DNA를 진화시켜 나간다는 차이점을 갖습니다. 동서양의 모든 역사와 문명은 모두 혼합과 잡종의 궤적이라고 볼 때 흔히 서양인이 갖는 서구의 근대문화에 대한 자만심과 동양인의 열등감은 그저 일시적 관점일 뿐이라는 게 최인훈 사상의 키워드라고 볼 수 있지요.” 서구문명의 관점에서 볼 때 한국은 마이너리티로 분류되곤 한다. 최인훈의 사상은 모든 집단과 사회의 문명이 다 발전의 동력으로 작용했다고 볼 때 콤플렉스와 열등감을 극복할 논리와 사유는 충분하다는 것이다. 책 제목으로 택한 ‘바다의 편지’는 그 논리와 사유를 가장 잘 집약한 글(2003년 발표)이란다. “우리 사회가 가진 고유의 지적, 사상적 자양분을 우리 스스로가 재생산하려는 노력이 부족합니다. 사회와 여론을 형성하는 담론들이 다 외부에서 들어온 것처럼 치부되기 일쑤인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문화사나 역사 분야에서 우리 스스로가 일궜던 지적 역량이 충분하다는 인식을 확산시키는 게 우리 세대의 책임이 아닐까요.” 그래서 오 교수는 우리 문화의 키 높이에 대한 자부심을 키우기 위한 방편으로 제2의 최인훈 뒤집어 보기를 시도하고 있다. 최인훈의 사상을 역사의 동력 측면에서 집약한 책과 서양의 사상가들과 최인훈을 견주어 비교하는 비평서를 올해 안으로 낼 계획이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시론] 언론, 역사에서 길 찾는 지혜를/김성해 대구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시론] 언론, 역사에서 길 찾는 지혜를/김성해 대구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증오보다 더 무서운 것은 무관심이라고 했던가. 2012년 한국에서 언론은 더 이상 주목의 대상이 아니다. 페이스북과 트위터를 통해 대중과 직접 소통하는 시대에 언론은 거추장스러운 관문에 불과하다. 포털을 통해 온갖 뉴스를 무료로 이용하는 시대에 매체의 이름은 중요하지 않다. 진입 장벽이 사라지면서 ‘나꼼수’ ‘이털남’ ‘뉴스타파’ ‘저공비행’ 등 대안언론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사방에서 불통과 불신, 분노와 절망이 넘쳐난다. 소통에 실패한 정부를 국민은 외면한다. 정치권, 사법부와 대기업에 대한 신뢰는 바닥이다. 분노는 폭력을 낳았고 학교도 예외가 아니다. 절망한 영혼들은 죽음에서 위안을 찾는다. 언론의 부재가 반드시 도움이 되는 것 같지도 않다. 도대체 한국은 지금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 것일까? 예전에 볼 수 없었던 이 역동성의 끝은 어디일까? 그리고 무엇보다 언론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한 시인은 모두가 막히고 보고 싶은 것이 보이지 않을 때는“차라리 눈을 감자.”고 했다. 과거를 성찰함으로써 배움을 얻으라는 충고다. 1960년대 후반과 1970년대 중반, 미국에서도 대안언론이 대세였다. ‘The Rag’ ‘East Village Other’ ‘Berkeley Barb’ ‘Fifth Estate’와 같은 지하신문을 비롯해 KPFT와 같은 청취자 후원 FM 라디오 방송과 심지어 ‘Liberation News Service’와 같은 대안 통신사도 등장했다. 전주곡으로 비틀스의 ‘태양은 떠오르고 있어’가 흘러나오고, 대학교수와 인기 라디오 진행자가 신랄하게 정치풍자를 할 때 청취자들은 환호했다. 냉전의 틈바구니에서 억압되었던 소수자의 목소리가 민권운동으로 불붙은 이래 베트남전쟁은 본격적인 시민불복종 운동을 불러왔다. 모든 제도의 합법성이 도전받고 미국 사회를 지탱해 왔던 사실상 모든 가정(假定)이 논쟁의 대상이 되었다. 하지만 기득권은 견고했다. 국가안보를 핑계로 정부는 거짓말을 했다. 언론은 정부와 대기업을 비판하는 대신에 홍보 역할에 더 치중했다. 대중의 반역이 시작된 것은 당연했다. 대학생을 중심으로 한 대안언론이 꽃을 피울 수 있는 여건도 마련되어 있었다. 옵셋인쇄로 알려진 새로운 인쇄기술이 등장해 점심값 정도로 수천장의 타블로이드 신문을 찍는 게 가능해졌다. IBM의 볼타자기, 휴대용카세트라디오, 사진복사기와 같은 뉴미디어의 도움도 받았다. 언론이 명예훼손으로 고발당할 두려움 없이 공적 문제를 공격적으로 보도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던 대법원 판결도 큰 힘이 되었다. 저항도 만만치 않았다. 텍사스의 KPFT는 백인우월주의 집단인 KKK(Ku Klux Klan)로부터 두 번이나 폭탄 테러를 받았고, 정부와 기업은 정치공학에 더 몰두했다. 동일하지는 않지만 2012년 한국 상황과 유사한 점이 참 많다. 정부와 기업으로 자리를 옮긴 언론인을 통해 여론공학이 일상적으로 진행된 결과, 언론은 물론 기득권 전체가 양치기 목동 대접을 받는 것도 비슷하다. 그러나 대안언론의 황금기는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1970년대 중반 이후 대부분의 지하신문은 문을 닫았다. 한국 언론이 눈여겨봐야 할 부분은 여기에 있다. 1971년 뉴욕타임스는 베트남전쟁과 관련한 정부의 거짓말을 폭로하는 펜타곤페이퍼를 연재하기 시작했다. 1972년 시카고 트리뷴은 주정부의 대규모 투표 사기와 경찰의 만행을 고발했다. 그해 6월 17일 워싱턴포스트는 워터게이트 사건을 보도함으로써 닉슨 대통령의 탄핵을 이끌어냈다. 국민은 다시 언론을 믿기 시작했다. 언론인들은 보람을 느꼈다. 영향력도 증가했다. 뛰어난 인재들이 언론계로 몰렸고 언론사들은 그후 최근까지 전성기를 누렸다. 미국과 한국은 다르고 한국 언론이 직면한 위기의 원인도 다양하다. 그러나 ‘나는 가수다’의 열풍에서 보듯 언론이 언론다워질 때 국민의 관심은 회복될 수 있다. 너무 늦지 않게 언론다움을 위한 경쟁에 나서기를 바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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