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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때의 사회면] 연탄가스 중독/손성진 논설실장

    [그때의 사회면] 연탄가스 중독/손성진 논설실장

    “방방이 군불을 때고, 풍로에 따로 숯불을 피워 반찬을 하던 주부들에게 부엌에서 온종일 물이 끓고, 필요할 때면 언제나 불을 쓸 수 있는 연탄아궁이는 나일론 양말 못지않은 복음이었다.” 작가 고 박완서씨는 연탄의 고마움에 대해 이렇게 썼다. 추위를 견디게 해 주고 밥을 끓여 준 연탄은 너무나 소중한 존재였다.연탄은 구공탄이라고도 했는데 구멍이 19개인 19공탄의 줄임말이다. 1961년에 연료 비중은 땔나무가 57.8%, 연탄이 31.9%였으나 1965년에 연탄이 1위가 됐다. 1960년대 초에는 아파트에서도 연탄을 썼다. 연탄을 태울 때 나오는 여러 가지 유해가스 가운데 특히 일산화탄소에 중독되면 목숨까지 잃을 정도로 치명적이다. 일산화탄소는 인체에 들어가면 혈액 속의 헤모글로빈과 즉시 결합해 산소 공급을 정지시킨다. 두통과 근육 경련, 의식장애를 일으키고 심하면 사망에 이르게 한다. 연탄가스는 구들장을 통과하여 굴뚝으로 나가는데 이 과정에서 장판 틈새나 벽틈, 문틈으로 스며든다. 겨울이면 연탄가스 중독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일가족 네댓 명이 한꺼번에 목숨을 잃는 것은 다반사였고 같은 집에서 하숙하던 학생들이 떼죽음을 당하기도 했다. 심지어 부엌문을 잠그고 밥을 먹던 아이나 부엌에서 목욕하던 어른이 연탄가스에 중독돼 사망한 사건도 일어났다. 서울에 갓 올라온 열세 살 먹은 ‘식모’가 구공탄 불꽃이 신기해 얼굴을 가까이 대고 구경하다 숨지기도 했다. 연탄가스 사고 사망자는 전염병에 의한 사망자의 열배가 넘었다. 1968년 한 해에 350여명이 연탄가스로 숨졌다. 1973년에는 580명으로 늘었고 1976년에는 절정에 이르러 1013명이 사망했다. 사망자가 급증하자 전국 규모의 대책기구를 설립하고 1980년부터는 연탄가스주의보를 매일 밤 방송뉴스로 내보냈다. 아궁이 시공자나 미장공이 구속되기도 했다. 셋방에서 사고가 나면 집주인을 처벌했다. 김현옥 서울시장이 상금 1000만원을 건 제독제 공모에 2000건이 넘게 접수되기도 했고 연탄가스에는 비타민C가 특효라는 유명 여대 교수의 실험성공 사례가 신문에 실리기도 했으며 ‘호박산소다’ 주사로 간단히 깨어난다는 국립공업연구소장의 연구도 있었다. 그러나 모두 근본적인 예방과 치료에는 도움이 되지 못했다. 그런 상황에서 엄청난 뉴스가 신문의 1면 머리를 장식했다. 식초로 가스중독을 치료할 수 있다는 발표였다. 하지만 식초요법은 해롭다는 반론이 제기되고 결국에는 효과가 없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뉴스가 해프닝으로 끝난 것이다. 고압산소치료기가 효과가 있었지만 1973년 당시 전국에 6대밖에 없었다. 사진은 1963년 우마차로 연탄을 배달하는 모습(사진 출처: 국가기록원). 손성진 논설실장 sonsj@seoul.co.kr
  • 온 가족 모인 황금연휴, 손잡고 공연 나들이 가요

    온 가족 모인 황금연휴, 손잡고 공연 나들이 가요

    어린이 연극, 사랑·모성 깨우쳐 학습·재미 모두 안기는 무용극 ‘감수성 풍성’ 클래식·동요 음악회 공룡 아빠 이야기 국악극 표현 ‘변강쇠 창극’ 부부·부모 즐거워만발한 꽃처럼 가족의 사랑과 행복도 화사하게 피어나는 봄날이다. 더욱이 오랜만에 여유로운 시간을 만끽할 수 있는 징검다리 황금연휴다. 연극, 무용, 발레, 클래식, 국악 등 가정의 달을 맞아 풍성한 공연이 기다리고 있다. 자녀와 함께 사랑과 삶의 가치를 되새겨 볼 수 있는 연극을 보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 보자. 어린이 연극 ‘엄마 이야기’가 수도권의 유일한 어린이 전용극장인 ‘아이들극장’ 개관 1주년을 기념해 공연 중이다. 안데르센의 동화 ‘어머니 이야기’를 각색한 이 작품은 어느 추운 겨울밤 아홉 살 태오에게 ‘죽음’이 찾아오면서 생기는 일을 담았다. ‘죽음’이 데려간 아들을 찾아 긴 여행을 떠난 어머니의 모성과 더불어 삶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깊은 울림을 전달한다. 국립극단 ‘록산느를 위한 발라드’는 낭만적이고 경쾌한 사랑 이야기를 다룬 청소년극이다. 프랑스 극작가 에드몽 로스탕의 희곡 ‘시라노 드 베르주라크’를 각색한 작품으로 원작이 시라노의 안타까운 사랑 이야기를 중심으로 했다면 이번 작품은 발랄한 성격과 아름다운 미모의 ‘록산느’를 둘러싼 세 남자 젊은 장교 ‘드 기슈’, 귀공자 ‘크리스티앙’, 어릴 적부터 그녀를 남몰래 사랑한 ‘시라노’ 등 다양한 사랑의 스펙트럼을 담아낸다. 아이들의 호기심을 유발하고 상상력을 자극하는 경쾌한 무용극과 발레극도 주목할 만하다. 서울시무용단 ‘춤추는 허수아비’는 신명나는 타악 연주와 아름다운 춤사위에 코미디 요소를 가미한 넌버벌 퍼포먼스다. 순박한 시골 사람들을 이용해 헐값에 땅을 사들여 개발하려는 부동산 업자에게 맞서는 정의의 허수아비 이야기다. 환경보호라는 교육적인 내용을 포함하고 있어 재미와 학습 효과를 동시에 얻을 수 있다. 서울발레시어터는 세계 명화와 발레를 결합한 가족 발레극 ‘들썩들썩 춤추는 미술관’을 무대에 올린다. 상상 속 미술관에서 함께 사는 주인 ‘마스터’와 그의 조수 ‘토토’의 좌충우돌기를 발레, 연극, 클래식, 미디어 아트로 풀어낸다. 와이즈발레단은 동화 발레 ‘춤추는 팬더’를 준비했다. 팬더가 엄마를 찾기 위해 원숭이, 사자, 피에로와 서커스단을 탈출해 겪게 되는 모험을 그린 동화 발레극으로 발레, 비보이 댄스, 마임을 결합한 화려한 무대를 만날 수 있다.어린이부터 어른까지 음악 감수성을 일깨워 줄 수 있는 클래식 콘서트와 동요 음악회도 마련돼 있다. 서울시유스오케스트라단은 클래식 콘서트 ‘와우! 클래식 앙상블’에서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의 ‘피터와 늑대’, 카미유 생상스의 ‘동물의 사육제’를 선보인다. 아이들의 집중력과 상상력을 자극하기 위해 음악과 어울리는 애니메이션 영상을 활용하는 게 특징이다. 서울시소년소녀합창단은 기존의 동요 노랫말에 새롭게 합창 선율을 덧입힌 동요합창음악회 ‘동시의 재발견’을 무대에 올린다. 예술의전당은 신세계스퀘어 야외무대에서 무료로 ‘동요콘서트’를 진행한다. 어린이 합창단·중창단과 가수 양현경, 작은별가족 등이 출연해 주옥같은 동요들을 들려준다. 롯데콘서트홀도 해설을 곁들인 어린이날 콘서트를 연다. 디토(DITTO) 오케스트라가 최영선의 지휘로 로시니의 윌리엄텔 서곡, 프로코피예프의 ‘피터와 늑대’ 등을 연주한다. 이번 기회에 평소 쉽게 접하지 못했던 국악을 재미있게 감상해 보자. 아이들이 좋아하는 공룡을 소재로 한 국립국악관현악단의 ‘아빠 사우루스’는 다섯 살 지우와 갑자기 공룡으로 변한 아빠의 이야기를 국악기의 다양한 앙상블 연주로 표현한다. 국립국악원은 독일 동화 작가 프란치스카 비어만의 베스트셀러 동화에 국악적 색채를 더한 국악극 ‘책 먹는 여우’를 선보인다. 평소 자주 찾아뵙지 못한 부모님과, 혹은 바쁘다는 핑계로 데이트가 뜸했던 부부가 함께 즐기기 좋은 작품도 많다. 국립창극단 ‘변강쇠 점 찍고 옹녀’는 사설만 남고 소리가 사라진 판소리 일곱 바탕 중 하나인 ‘변강쇠타령’을 생명력 넘치는 이야기로 재해석한 작품으로 2014년 초연 후 4년째 무대에 오른 국립창극단의 인기 레퍼토리다. 신나는 무대를 원한다면 팝의 거장 닐 세다카의 히트곡들로 꾸민 주크박스 뮤지컬 ‘오! 캐롤’과 1960년대 미국 여성 그룹 ‘슈프림스’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한 뮤지컬 ‘드림걸즈’가 제격이다. 올해 10주년을 맞은 스테디셀러 연극 ‘친정엄마와 2박3일’은 늘 그 자리에 있어 몰랐던 어머니의 소중한 사랑을 깊이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배우 강부자가 친정엄마 ‘최여사’를, 전미선이 딸 ‘미영’ 역을 맡아 다시 한번 뜨거운 감동을 선사한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성장 보는 눈 바꿔야 국가경제 산다] 용은커녕 개천도 말랐다

    [성장 보는 눈 바꿔야 국가경제 산다] 용은커녕 개천도 말랐다

    100억 자산가 40%가 상속, “노력해도 성공 못 해” 풍조…교육 부익부 빈익빈 심화“출신과 가정환경에 따라 출발선부터 다른 꿈을 꾸는 거죠.” 국내 한 대기업에 과장으로 재직 중인 이종석(40·가명)씨는 고등학교 시절 반에서 1등을 놓치지 않았다. 서울 소재 명문 사립대에 진학한 뒤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장에 취직하며 어느 정도 성공한 삶을 살고 있다. 이씨는 그러나 최근 신문을 보다가 씁쓸한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고교 동창이 한 재벌그룹의 임원을 맡아 지배구조 개편의 일등 공신 역할을 했다는 뉴스를 접했기 때문이다. 학창 시절 뒤에서 1~2등을 다툴 정도로 학업이 부진했던 동창은 다름 아닌 이 그룹 총수의 아들이다. 이씨는 “나 역시 중산층 가정에서 자라 크게 부족하지 않은 환경이었지만 나이 마흔에 수천억원의 재산을 갖는 건 꿔 보지도 못한 꿈이었다”며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동창과는 처음부터 계층과 신분이 달랐다는 걸 느꼈다”고 허탈해했다.●신흥국도 자수성가 우세… 말레이시아 66.7% 인도 65% 서울신문이 블룸버그의 ‘세계 500대 자산가’ 자산 축적 방식을 분석한 결과에서 ‘자수성가형’ 비중(16.7%)이 세계 최저 수준으로 나타난 것은 출발선부터 달랐던 환경이 결승선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걸 단적으로 보여 준다. 체제 전환 과정에서 다수의 신흥 부호가 출현한 러시아는 28명 모두, 중국은 35명 중 34명(97.1%)이 자수성가형이었다. 유서 깊은 자본주의 역사를 가진 영국(75%)과 미국(68.4%)도 자수성가형 비중이 상속형보다 월등히 높아 ‘열린 사회’임을 보여 줬다. 태국(100%)과 말레이시아(66.7%), 인도(65.0%) 등 아시아 신흥국도 스스로의 힘으로 부를 일궈 세계 최고 자산가 반열에 오른 인물이 여럿 있다. 미국의 경우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와 제프 베저스 아마존 최고경영자(CEO), 워런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 에너지 기업 코치인더스트리의 찰스 코치 회장과 데이비드 코치 부회장, 래리 엘리슨 오라클 CEO, 구글의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 공동창업자까지 상위 자산가 9명이 모두 자수성가형이었다. 상속형 중 가장 재산이 많은 롭슨 월튼 월마트 회장은 10위에 자리했다. 중국도 온라인 유통업체 알리바바의 마윈 회장과 미디어 기업 완다의 왕젠린 회장, ‘중국판 카카오톡’ 위챗을 운영하는 텐센트의 마화텅 회장, 중국 최대 택배업체 순펑의 왕웨이 회장, 게임기업 넷이즈의 딩레이 회장 등 ‘맨손 신화’가 즐비하다. 부동산 회사 컨트리 가든의 창업자 양궈치앙의 딸인 양후이안만이 유일한 상속 부호(중국 8위)였다. 일본은 의류업체 유니클로로 유명한 야나이 다다시 패스트리테일링 회장, 손 마사요시(한국명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 전기기기 업체 키엔스의 다키자키 다케미쓰 명예회장, 온라인 쇼핑업체 라쿠텐의 미키타니 히로시 회장, 편의점 세븐일레븐의 이토 마사토시 세븐앤드아이 홀딩스 회장, 전자부품업체 일본전산의 나가모리 시게노부 회장 등 6명 모두가 자수성가형이다. ●한국 100억 이상 자산가 40%, 상속·증여로 富 축적 한국의 부호가 유독 ‘금수저’ 비율이 높다는 건 다른 연구 결과에서도 나타난다. 미국 싱크탱그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가 1996년부터 2015년까지 자산 10억 달러(약 1조 1300억원) 이상 보유자 1826명을 분석한 결과 한국(30명)은 74.1%가 상속형 부자였다. 회사 설립(18.5%)과 기업 운영(3.7%), 금융투자(3.7%) 등을 통해 스스로 부를 일군 비율은 25.9%에 불과하다. 조사대상 78개국 중 여섯 번째로 높고 전체 평균(30.4%)을 두 배 이상 웃돈다. 우리나라보다 상속형 비중이 높은 나라는 쿠웨이트·핀란드(100%), 덴마크(83.3%), 아르헨티나(80%), 아랍에미리트(75%)인데 이들 국가는 5명 이하가 분석 대상이라 통계적 의미가 약하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가 지난해 10억원 이상 자산가 4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에선 상속·증여로 부를 쌓았다는 응답이 26.3%로 집계됐다. 2011년 같은 조사 때의 13.7%에 비해 2배 가까이 증가했다. 특히 100억원 이상 부호의 자산 축적 방식은 상속·증여가 40%에 달해 ‘사업체 운영’(32.5%), ‘부동산 투자’(17.5%) 등을 제치고 가장 높았다. ‘큰 부자’일수록 ‘금수저’가 많다는 것이다. ‘성공은 쉽게 만족하지 않고 계속 전진할 때 온다’(게이츠), ‘가장 큰 위험은 어떤 위험도 취하지 않는 것이다’(저커버그), ‘가난한 사람들은 공통적인 한 가지 특징이 있다. 기다리다 끝이 난다’(마윈), ‘새우잠을 자더라도 고래 꿈을 꿔라’(손정의). 자신의 힘으로 부를 일궜다는 자신감에 찬 미·중·일의 부자들은 자신의 성공 비결을 한마디로 요약한 명언으로 젊은이들의 가슴을 뜨겁게 한다. 그러나 한국에선 도전정신을 자극할 이런 말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다. 기업경영성과 평가사이트 CEO스코어가 지난해 말 기준 국내 50대 주식 부호를 파악한 결과 자수성가형은 19명(38%)이다. 이 중 8명은 이미 예순을 훌쩍 넘겨 2세에게 상당한 경영권을 넘겼다. 1960년 이후 출생한 신흥 부호 중 ‘개천에서 용 났다’고 표현할 만한 인물은 김범수(51) 카카오 의장, 김택진(50) 엔씨소프트 대표, 김범석(39) 쿠팡 대표 정도만이 꼽힌다. ●망하지 않을 사업만 지원…‘창업 생태계’ 위축시켜 왜 한국에선 신흥 부호를 보기 힘든 것일까. 노력해도 성공할 수 없다는 ‘패배 의식’이 사회 전반에 만연해 있다는 지적이다. 핀테크(금융+IT) 기업을 창업하려다 포기했다는 송재석(37·가명)씨는 “창업을 위해선 초기 자본과 획기적인 아이디어 못지않게 생사고락을 함께할 수 있는 동지가 최소한 2명은 필요하다”며 “그러나 지인들에게 아무리 창업하자고 독려해도 ‘허황된 꿈 꾸지 말라’며 비웃었다”고 회상했다. 게이츠나 스티브 잡스가 세계적인 기업을 일굴 수 있었던 건 폴 앨런(MS 공동창업자), 스티브 워즈니악(애플 공동창업자) 같은 든든한 조력자가 함께했기에 가능했다. 창업지원 프로그램도 ‘용’을 탄생시키기에는 역부족이다. 김태완(35·가명)씨는 최근 IT 스타트업을 창업하기 위해 한 지방자치단체 프로그램에 지원했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 프로그램은 매달 200만원의 자금과 업무공간, 사업 멘토를 제공하는 등 창업 희망자에게 상당히 매력적인 지원 제도였다. 하지만 선발된 지원자를 보니 도시락 배달 등 평범한 자영업이 대부분이었다. 김씨는 “공무원들이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사업보다는 망하지 않을 사업에 더 높은 점수를 줬다는 느낌을 받았다”며 “창업에서의 실패는 너무나 당연한 과정이지만 우리나라에선 용납되지 않았다”고 한숨을 쉬었다. 조명현 한국기업지배구조원장은 “우리나라는 외국에 비해 유독 자녀에게 재산을 물려주는 경향이 강하기도 하지만 창업가를 양성하는 시스템 자체가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갈수록 심화되는 교육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은 ‘용’이 자랄 개천마저 감소시킨다. 교육부와 통계청의 지난해 사교육비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월평균 소득 700만원 이상 가구의 학생 1인당 사교육비는 44만 3000원으로 100만원 미만 가구 5만원에 비해 8.9배나 많았다. 부모의 재력에 따라 자식이 습득할 수 있는 지식 수준이 크게 차이 날 수밖에 없다. ●“부의 세습 고리 끊어 사회 불균형 완화시켜야” 입시업체 종로학원하늘교육 분석에 따르면 올해 서울에서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와 양천구 일반고 출신 서울대 합격자 비율은 50.9%로 10년 전인 2007년 43.5%에 비해 7.4% 포인트 증가했다. 이들 4개 구에서 배출된 서울대 합격자가 나머지 21개 구보다 많은 것이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부의 세습 심화는 우리 사회의 역동성과 지속가능 발전 가능성을 떨어뜨리는 요인”이라며 “부와 함께 공공재원의 합리적인 재분배를 통해 이런 불균형을 완화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주형 기자 hermes@seoul.co.kr
  • [김형준의 정치비평] ‘중대(重大) 선거’의 관점에서 본 대선

    [김형준의 정치비평] ‘중대(重大) 선거’의 관점에서 본 대선

    대통령 선거가 종반으로 치닫고 있다. 이번 대선은 역대 대선과 사뭇 달랐다. 헌정 사상 최초로 대통령이 탄핵당해 치러지는 보궐 선거여서 전통적인 여야(與野) 대결 구도가 사라졌다. 더불어 보수와 진보의 양자 대결 구도도 깨졌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과정에서 보수층이 찬성과 반대로 사분오열되면서 진보와 중도 성향 후보가 야야(野野) 대결 구도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선거 때마다 되풀이됐던 지역 몰표 현상이 크게 줄면서 영·호남 지역주의 대결 양상도 달라졌다. 최근 리얼미터 조사(4월 24~26일)에 따르면 보수의 아성이라고 할 수 있는 대구·경북에서 문재인 후보(29.4%)가 오차 범위 내에서 안철수(25.5%)·홍준표(22.9%) 후보와 접전을 벌였다. 호남에서조차 문 후보(55.3%)가 이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안 후보(31.1%)를 크게 앞섰다. ‘우리가 남이가’, ‘미워도 다시 한번’과 같은 감성적 지역주의 투표가 사라지고 있다는 방증이다. 여하튼 1987년 이후 한국 대선에서 처음으로 영·호남에서 1위를 차지하는 대통령이 나올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이번 대선에서 드러난 이런 특징들이 갖는 정치적 함의는 자못 크다. 무엇보다 ‘중대 선거’로의 전환이 기대된다. 미국의 키이 교수는 “정당 간에 입장을 달리하는 중요한 쟁점의 등장으로 이념적인 분극화가 초래되고 이에 따라 중요 정당의 지지 기반에 커다란 변화가 발생할 때 정당 재편성이 일어난다”고 주장했다. 이런 변화를 가져온 선거를 중대 선거라고 했다. 미국에서는 30여년을 주기로 정당 재편성을 초래한 중대 선거가 여러 차례 있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1932년 미국 대선이다. 현직인 공화당 후버 대통령은 모든 것을 시장의 자율적 조정에 맡기고 어떤 경우에도 정부는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작은 정부론’을 주장했다. 하지만 도전자인 민주당 루스벨트는 대공황을 극복하기 위해 정부가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결국 루스벨트의 승리로 뉴딜 민주당 시대가 열렸고 새로운 정당 체제는 1960년대까지 지속됐다. 지난해 총선부터 우리 사회에서도 정당 체제의 변화, 새로운 사회 분열, 유권자 재편성 등 중대 선거가 이뤄질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고 있다. 국민의당이 38석을 획득함으로써 1990년대 이후 20년 이상 지속됐던 양당 체제가 깨지고 3당 체제가 만들어졌다. 더구나 1987년 이후 형성된 지역주의에 균열이 생기고, 촛불 집회에서 보았듯이 젊은 세대들이 정치에 관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정치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은 멀다. 이번 선거가 대한민국의 미래를 바꿀 중대 선거가 되려면 대선 이후가 더 중요하다. 차기 정부가 실패하면 중대 선거도 존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역대 대통령들은 예외 없이 승리에 도취해 치명적인 혼동과 착각으로 시작은 화려했지만 끝은 초라한 ‘시화종빈’(始華終貧)의 길을 걸었다. 이런 실패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새 대통령은 무엇보다 통치와 정치를 혼동해서는 안 된다. 통치가 힘에만 의존하는 것이라면 정치는 설득에 바탕을 둔다. 차기 정부는 국회와 야당을 존중하고 국민을 끊임없이 가르치고 끌고 가려는 ‘계도 민주주의’의 망령에서 벗어나야 한다. 정치로 풀어야 할 일은 정치로 풀고, 지역, 세대, 이념을 뛰어넘는 국민통합 정부를 만들어야 한다. 또한 개혁과 파괴를 혼동해서는 안 된다. 역대 정부들은 집권 초기 자신은 개혁의 주체이고 나머지는 적폐 청산의 대상으로 취급했다. 자신도 개혁의 대상이 될 수 있어야 개혁이 용두사미로 끝나지 않고 파괴와 분열을 막을 수 있다. 권위와 권위주의를 혼동해서도 안 된다. 권위는 국민이 민주적 절차를 통해 선출된 대통령에게 부여하는 특권이다. 그런데 권위주의를 청산한다고 이런 권위를 잘못된 말과 행동으로 훼손해서는 안 된다. 가령 “대통령직 못해 먹겠다”, “행정수도 이전 공약으로 재미를 봤다”는 식의 발언은 대통령 스스로 권위를 떨어뜨리는 것이다. 끝으로 선거 치르듯이 통치를 해서는 안 된다. 선거 때는 편을 갈라 승리할 수 있다. 하지만 통치에서는 ‘100% 대한민국’을 위한 길을 걸어야 한다. 대선 후보들은 남은 선거 기간에 표가 아니라 이런 혼동과 착각의 실패 DNA를 끊어 낼 수 있는 지혜를 얻어야 한다.
  • 뚜벅뚜벅, 제주를 기억하다

    뚜벅뚜벅, 제주를 기억하다

    봄 여행주간이 오는 29일부터 시작된다. 문화체육관광부가 한국관광공사, 지방자치단체 등과 함께 국내여행 수요 창출을 위해 벌이는 대형 이벤트다. 새달 14일까지 이어진다. 올해 봄 여행주간에도 여러 프로그램들이 마련됐다. 제주에서는 ‘제주시 원도심의 재발견’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도시 재생 전문가와 함께 제주 재생 현장을 돌아보는 투어 프로그램이다. 그런데 의아하다. 제주에 원도심이 있다고? 보통 원도심이라고 하면 대도시가 외연을 확대해 가는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되고 낙후되어 가는 도심 지역을 일컫는다. 그런데 이를 지방 소도시 정도로 인식되는 제주에 적용하니 어딘가 생경하게 느껴진다. 사실 따지고 보면 나라 안에서 가장 극심하게 변화가 일어나는 곳이 제주다. 개발로 인한 상전벽해가 하루아침에 생겨난다. 그러니 원도심을 기억이 축적되는 장소라고 전제한다면 제주야말로 숱한 원도심을 둔 곳이라 할 수 있겠다. 글로컬제주연구원의 도움을 받아 제주 원도심을 돌아봤다. 오롯하다고는 할 수 없어도, 제주인 듯 아닌 듯한 풍경들이 제법 많았다.원도심은 제주 사람들의 기억과 추억이 축적된 장소다. 제주의 지리, 역사적 근원이 되는 곳이기도 하다. 지리적으로는 제주목관아와 제주성(城)이 있었던 구도심을 일컫는다. 제주공항을 기준으로 보면 제주시 동쪽에 해당된다. 제주성을 중심으로 일도 1동, 이도 1동, 삼도 2동과 건입동, 중앙로, 칠성동 등이 포함된다. 삼도동은 제주 삼성신화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제주를 일군 삼형제가 활을 쏴 정한 각각의 거주지가 그대로 이름이 됐다. 맏이가 일도, 둘째가 이도, 막내가 삼도를 중심으로 거주지를 형성했다고 한다. 원도심이다 보니 제주에서 가장 먼저 생긴 간선도로, 극장 등 기록으로서 최초가 된 것들이 꽤 많다. 제주 최초의 제빙공장 터, 거울공장 터, 발전소 터, 1920년대 목욕탕 터 등도 이 일대에 있다. 1950년대 가장 먼저 양복점과 양장점이 들어선 패션의 거리이기도 했다. 미용실, 다방 등의 간판도 줄줄이 달리기 시작했다. 일부는 지금까지 영업을 하고 있다. 가장 번화한 곳은 칠성로다. 지금껏 ‘제주의 명동’ 역할을 하는 곳이다. 고·양·부 삼성 시조가 세 지역의 땅을 나눠 차지할 때 북두칠성 모양으로 대를 쌓았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이다. 각각의 대는 일제강점기 무렵까지 보존됐으나 이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지금은 칠성로란 이름으로만 남았다. 198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칠성로 일대는 제주의 중심이었다. 그러다 1990년대 들어 연동 등 이른바 ‘신제주’에 자리를 내줬고, 새 천년이 되면서 화려함도 잃었다.원도심 투어의 출발지는 동문로터리다. 이어 산지천 일대-건입동 동자복-금산수원지(김만덕 기념관)-탑동광장-북초등학교-관덕정-삼도동 문화의 거리-오현단 등을 돌아본 뒤 동문시장에서 마무리한다. 동문로터리와 동문시장이 도로를 사이에 두고 마주하고 있어 사실상 출발과 종착지가 같은 원형의 코스로 이뤄졌다. 동문로터리 건너편의 ‘동문시장’ 간판을 내건 옛 건물이 눈길을 끈다. 1965년 세워진 옛 동양극장 건물이다. 건물엔 제주 바다의 이미지가 배어 있다. 외벽의 원형 창문은 여객선을 떠올리게 하고 지붕은 물결치는 파도 모양이다. 예나 지금이나 원도심의 랜드 마크로 삼을 만한 자태다. 원도심 한복판엔 산지천이 흐른다. 한라산에서 발원해 원도심 중심부를 관통한 뒤 산지포구에서 바다와 몸을 섞는 하천이다. 한때 최고의 상권을 자랑했던 동문로, 칠성로, 중앙로, 탑동, 동문시장 등이 이 하천 양쪽에 매달려 있다. 서울의 청계천처럼 오염이 심해지면서 1960년대 복개됐다가 2002년 옛 모습을 되찾았다.사람이 사는 마을은 물길 주변에 형성되기 마련이다. 산지천도 마찬가지. 기원전 1세기쯤부터 제주와 육지를 잇는 뱃길의 중심지 노릇을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산지천 끝자락의 산지포는 제주의 관문이자 최고의 상업지역이었다. 오늘날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전범으로 회자되는 의녀 김만덕(1739~1812)의 객주터가 있던 곳도 산지포였다. 객주를 통해 재산을 모은 만덕은 조선 정조 때 나라에서 보낸 구휼미가 풍랑으로 전복되자 평생 모은 재산을 내놓아 관덕정에 가마솥을 걸고 죽을 쑤어 굶주리는 백성을 먹였다. 이를 기리는 기념관이 산지천 아래쪽에 있다. 김만덕 객주터는 최근 옛 모습대로 재현돼 주막집으로 다시 문을 열었다. 객주터 바로 위에는 복신미륵이 떡하니 서 있다. 복신미륵은 행운과 복을 가져다 주는 미륵보살을 뜻하는 말이다. 제주성 동쪽에 있는 자복이라 해서 동자복이라 불린다. 용담동의 서자복과 함께 제주성을 향해 마주 보고 서 있다. 동자복은 입상이다. 신장이 286㎝, 얼굴이 161㎝이다. 눈 위에는 눈썹을, 앞가슴에는 맞잡은 팔의 소맷자락을 표현했다. 예전 제주에도 성이 있었다. 제주성은 사람들의 생활공간을 갈랐다. 서울의 이른바 ‘4대문 안’을 떠올리면 알기 쉽겠다. 성 밖에는 초네따이(시골아이)가, 성 안에는 시에따이(도시아이)가 살았다. 지금도 제주목관아 뒤편의 ‘묵은성’(지나간 옛 성을 뜻하는 사투리) 지역에는 평수 너른 옛집들이 남아 있다. 제주성벽은 일제강점기에 산지포구와 오현단 등의 조성 공사에 쓰이느라 산산이 해체됐다. 몽돌해변을 매립해 조성한 탑동광장, 설립 연도가 올해로 꼬박 110년이나 된 북초등학교를 휘휘 돌아가면 관덕정(보물 제322호)에 이른다. 제주목관아 앞에 있는 관덕정은 제주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물로 꼽힌다. 조선 세종 때인 1448년 처음 지어진 뒤 여러 차례 중수를 거쳐 오늘에 이른다. 관덕정 앞 뜨락엔 돌하르방 2기가 서 있다. 문화재로 지정된 도 내 40여기의 돌하르방 중 하나다. 근래에 조각된 돌하르방에 견줘 단연 비범한 자태다.도로를 건너면 삼도동 문화의 거리다. 미술, 공예 등 작가들의 공방이 밀집돼 있다. 제주도 한량들의 회합 장소였던 향사당 등 볼거리가 은근히 많다. 이 골목에 제주 고유의 초가집이 남아 있다. 초가는 안거리와 밖거리 2채로 이뤄져 있다. 단단한 돌담과 새(띠), 집줄로 바둑판처럼 얽어 맨 초가지붕은 태풍도 견딜 만큼 견고하다. 오현단은 제주 발전에 공헌한 송시열 등 다섯 명의 현인을 배향하는 옛 터다. 유적지 둘레를 제주성지가 둘러치고 있다. 오현단에서 남수각을 거쳐 내려오면 동문시장이다. 제주에서 가장 오래된 재래시장이다. (주)동문시장, 동문재래시장, 동문공설시장 등으로 나뉠 만큼 규모가 크다. 오메기떡 하나 사들고 천천히 돌아보기 딱 좋다.이제 화북포구를 말할 차례다. 원도심의 ‘연관검색어’쯤 되는 곳이다. 다소 떨어져 있긴 해도, 원도심의 형성과 관련이 깊고 정서 역시 맞닿아 있어 함께 둘러보는 게 좋다. 화북포구는 고전소설 ‘배비장전’의 고사가 얽힌 곳이다. 풍경만큼이나 담긴 이야기들도 곱다. 예전 화북포구는 제주에서 뭍과 연결되는 두 곳의 관문 중 하나였다. 수많은 비바리(갯마을 처녀의 사투리)들이 뭍에서 군역 등을 마치고 돌아오는 연인을 마중하던 곳이자, 눈물로 배웅하던 곳이다. 그렇게 쌓인 비바리들의 애환의 두께가 ‘배비장전’을 낳은 것일 터다. 포구는 억척스러운 삶의 역사가 담긴 공간이다. 섬인 탓에 포구가 필요했지만 화산섬의 거친 자연은 이를 쉬 허락하지 않았다. 바닥이 얕고, 바위는 뾰족해 배를 부수기 일쑤였다. 제주 사람들은 노고에 지혜를 얹어 이를 해결했다. 수중 암초인 ‘여’나 그보다 높은 ‘코지’를 중심으로 돌을 쌓아 파도의 위력을 줄이고, 내부를 ‘안캐’, ‘중캐’, ‘밧캐’의 세 칸으로 나눴다. 아직 원형을 잃지 않은 제주의 몇몇 포구들이 일직선으로 뻗은 뭍의 나룻터와 사뭇 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글 사진 제주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 여행수첩 -동문로터리 인근 대동호텔(064-722-3070)은 1971년 세워진 유서 깊은 곳이다. 지금도 재일교포나 일본인 등 수십년 인연을 가진 이들이 찾아온다고 한다. -동문시장 안에 먹거리들이 즐비하다. 오메기떡이 특히 알려졌다. 횟집도 있다. 1층에서 생선을 고르고 2층에서 먹는 형태다. 기념품으로 인기인 말린 옥돔 등도 싸게 살 수 있다.
  • 安, CT업계 찾아 “미래 대통령”

    安, CT업계 찾아 “미래 대통령”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는 26일 강원 지역 유세 첫 방문지로 문화기술(CT) 업계를 택하는 등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인 ‘미래 리더십’을 부각시키는 데 주력했다. ‘안철수다움’을 부각하는 정공법으로 돌아가 지지율 부진을 극복하고 반전의 계기를 만들겠다는 생각이다.안 후보는 이날 강원 춘천 애니메이션박물관을 찾아 첨단기술을 바탕으로 애니메이션 등 문화 콘텐츠를 생산하는 CT 산업 기업 관계자들을 만났다. 안 후보는 이 자리에서 “저는 4차 산업혁명을 단순히 기술로만 보지 않는다는 점에서 다른 후보들과 다르다”면서 “기술뿐만 아니라 콘텐츠와 인문학 분야에도 투자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춘천시장과 원주 문화의 거리 유세에서 “이번 대선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선택하는 선거”라며 “대한민국의 미래를 여는 첫 번째 대통령이 되겠다”고 강조했다. 안 후보는 프랑스 대선 1차 투표에서 돌풍을 일으키며 1위로 결선에 진출한 에마뉘엘 마크롱 후보를 거론하면서 “마크롱은 원내 의석 하나도 없는 신생 중도정당의 후보인데도 프랑스의 60년 양당 체제를 무너뜨렸다. 우리 대선에서도 국민께서 그런 대변혁을 만들어 주실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39석의 ‘미니 정당’으로 제대로 된 국정운영이 가능한지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키려는 의도로 읽힌다. 안 후보 측은 최근 지지율 하락의 원인을 네거티브 공세와 안보 이슈에 휘말리면서 안 후보가 자신만의 색깔을 보여주지 못한 데서 찾고 있다. 특히 지난 2차 대선 후보 TV 토론회에서 ‘갑철수’ 논란 등 자신과 관련한 네거티브에 반격을 취하다가 오히려 역풍을 맞았다고 보고, 다시 미래와 통합을 부각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러나 5·9 대선까지 2주도 남지 않은 시점에 획기적인 반전의 승부수를 찾지 못해 부심하는 모양새다. 안 후보가 단일화는 없다고 거듭 선을 그었는데도 보수 후보들과의 단일화 대상으로 계속 거론되는 것도 마이너스 요인이 될 것으로 보인다. 안 후보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후보 단일화 같은 것은 하지 않고 국민만 보고 가겠다”면서 “그런데도 후보 단일화를 할 것이라고 음해하는 후보가 있다”고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겨냥했다. 한편 민주당을 떠나 무소속으로 있던 최명길 의원은 이날 “국민을 더 편안하게 해줄 수 있는 정권교체, 미래의 희망을 제시하는 정권교체를 위해 국민의당에 입당한다”고 밝혔다. 최 의원은 김종인 전 민주당 비대위 대표의 최측근이다. 안 후보와 박지원 대표는 최근 김 전 대표를 잇달아 만나 지원 요청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대표는 입당하기보다 외곽에서 힘을 보탤 가능성이 큰 것으로 관측된다. 국민의당 이용주 의원은 이날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문 후보 아들 준용씨 등의 ‘낙하산 인사’로 부당 해고된 한국고용정보원 직원들이 이를 공론화하려고 하자, 고용정보원이 해고자들과 ‘비밀계약’을 맺어 재입사하게 해 논란을 무마하려 했다”고 주장했다. 서울 송수연 기자 songsy@seoul.co.kr 춘천·원주·강릉 최선을 기자 csunell@seoul.co.kr
  • [정서린 기자의 잡식주의자] ‘어쩌다 어른’이 되었을 때

    [정서린 기자의 잡식주의자] ‘어쩌다 어른’이 되었을 때

    어느새 나이를 밝힐라치면 적지 않은 숫자에 놀라는 사람들이 늘어납니다. 하지만 나이를 먹었다고, 아이를 키운다고 완연한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님은 매순간 실감하고 허덕입니다. ‘어쩌다 어른’이 됐지만 ‘어떤 어른’이 돼야 할지에 대해선 성찰이 부족했기 때문이겠죠.출입처 지인이 한 학자에 대해 하던 얘기도 생각납니다. “이 바닥에 존경할 만한 어른이 없잖아. 그런데 ○선생님은 권위라곤 하나도 없어. 사고가 열려 있으니 젊은 애들이랑도 격의 없이 다 통하지.” 대체 그런 어른이란 어떤 어른일까, 신선함을 넘어 의구심마저 일던 기억이 납니다. ‘어쩌다 어른’이 되지 않으려면, 어떤 태도와 자격을 갖춰야 하는 걸까. 이 물음에 길을 내주는 이야기들을 최근 만났습니다. 10여년간 ‘성공한 인생’이라 인정받는 유명인 200여명을 만나 만화로 옮긴 일본 만화가 야마다 레이지가 쓴 ‘어른의 의무’입니다. 세대 갈등은 새삼 환기할 필요도 없겠죠. 야마다 레이지는 이런 현실이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어른’이 사라지는 것과 궤를 같이한다고 지적합니다. 1979년 제작된 ‘기동전사 건담’ 속 상관 람바 랄은 ‘참어른’의 전형입니다. 약자를 보호하고, 후배의 성장을 따뜻하게 지켜봐 주고, 몸소 모범을 보이며 ‘책임은 내가 진다’는 각오가 내재돼 있습니다. 하지만 이후 일본 만화나 애니메이션에서 어른은 ‘없는 존재’로 전락합니다. 저자는 이를 어른들이 ‘어른의 의무’를 다하지 않고 권리만 강조해 젊은이들을 실망시켰기 때문이라고 지적하죠. 그가 이들에게서 도출해 낸 어른의 의무는 간명합니다. 자신이 움켜쥐어 온 기득권이 젊은 세대에게 피해를 주지 않나 돌아보라고, 기성세대의 정치가 낳은 경제, 환경 등 갖가지 문제를 떠넘기고 도망가지 말라고, 청년들이 마음껏 도전하고 즐거이 생활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라고요. 지난달 개봉한 영화 ‘히든 피겨스’에선 ‘어른의 자격’을 수행하는 어른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1960년대 미 항공우주국(나사) 최초의 여성 엔지니어를 꿈꾸지만 지레 발을 빼려는 메리 잭슨에게 상사는 “폴란드계 유대인인 나도 여기서 일하고 있다. 지금은 상상도 못한 일이 일어나는 시대”라며 꿈을 독려하고요. 천재 수학자 캐서린 잭슨이 유색인종 화장실을 이용하느라 화장실 한 번 갈 때마다 800m, 왕복 40분을 달음박질치고, 백인 직원들이 손대기도 싫어하는 ‘유색인종용 커피포트’만 써 왔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된 상사 알 해리슨은 폭발합니다. 유색인종 화장실 팻말을 사정없이 때려 부수고 그는 외치죠. “이제 유색인종 화장실은 없어. 나사에선 다 같은 색 오줌을 눈다고!” 영화의 방점은 물론 인종차별이 극심했던 1960년대 나사에서 겹겹의 장벽을 뚫어낸 흑인 여성들의 고군분투에 찍혀 있습니다. 하지만 세대 간 대립각이 유독 뾰족한 현실 때문일까요. 주인공들이 포기에 가까워지려는 순간 응원의 손길을 내밀며 엄혹한 시절을 건너는 징검다리가 돼 주는, 번번이 진로를 가로막는 장벽에 문을 내는 ‘어른’들은 유독 찬란해 보였습니다. 조직을 넘어 시대 전체를 지배하는 부당한 관성을 깨부술 줄 아는 용기는 단지 나이만 먹는다고 주어지는 게 아니니까요.
  • 故강선영 태평무 명예보유자 1주기 맞아 안성서 동상 제막식

    故강선영 태평무 명예보유자 1주기 맞아 안성서 동상 제막식

    태평무(중요무형문화재 제92호) 명예보유자였던 강선영씨의 1주기를 맞아 ‘강선영 동상 제막식’이 25일 경기 안성시 태평무전수관에서 열렸다. 동상은 전국의 태평무 이수·전수자들이 1년 동안 기금을 모아 만들었다.강씨는 태평무를 비롯해 한량무, 승무 등 스승이 만든 한국 전통춤의 백미들을 배워 전승한 인물이다. 태평무는 왕과 왕비가 나라의 태평을 기원하는 춤을 재현한 것으로, 한성준 선생이 왕십리 당굿에 독특한 무속장단을 바탕으로 창안해 손녀 한영숙과 제자 강선영에게 가르쳤다. 강씨에 의해 전승돼 중요무형문화재 제92호로 지정됐다. 경쾌하고 절도 있어 한국 민속춤의 정중동의 흥과 멋을 지니고 있다. 강씨는 1960년 강선영무용단을 창단해 한국 무용인으로서는 최초로 참가한 파리 국제민속예술제를 시작으로 400여 차례에 걸쳐 한국무용을 세계 각국에 선보였다. 2006년에는 한국 전통무용으로선 처음으로 미국 뉴욕 링컨센터에서 공연하기도 했다. 170개국을 돌며 1000회 이상의 공연을 해 한국 무용가 중 가장 많은 나라에서 가장 많은 공연을 한 기록을 세웠다. 개인 재산을 털어 고향인 안성에 태평무전수관을 개관, 전통문화 전승과 춤꾼 발굴·양성에 힘썼다. 2013년 태평무 명예보유자가 됐으며 한국무용협회장, 예총 회장, 국회의원 등을 지냈다. 태평무보존회 조흥동 위원장은 “한국 예술계의 큰 자랑이었던 스승님의 업적을 상징물로 남겨 후세들에게 전통예술의 숭고함을 현장 교육으로 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병철 기자 kbchul@seoul.co.kr
  • 태평무 명예보유자 고 강선영 선생 동상 제막식

    태평무 명예보유자 고 강선영 선생 동상 제막식

    중요무형문화재 제92호 태평무 명예보유자였던 강선영씨의 1주기를 맞아 ‘강선영 동상 제막식’이 25일 경기 안성시 태평무전수관에서 열렸다. 동상은 전국의 태평무 이수·전수자들이 1년 동안 기금을 모아 만들었다.강씨는 태평무를 비롯해 한량무, 승무 등 스승이 만든 한국 전통춤의 백미들을 배워 전승한 인물이다. 태평무는 왕과 왕비가 나라의 태평을 기원하는 춤을 재현한 것으로, 한성준 선생이 왕십리 당굿에 독특한 무속장단을 바탕으로 창안해 손녀 한영숙과 제자 강선영에게 가르쳤다. 강씨에 의해 전승돼 중요무형문화재 제92호로 지정됐다. 경쾌하고 절도 있어 한국 민속춤의 정중동의 흥과 멋을 지니고 있다. 강씨는 1960년 강선영무용단을 창단해 한국 무용인으로서는 최초로 참가한 파리 국제민속예술제를 시작으로 400여 차례에 걸쳐 한국무용을 세계 각국에 선보였다. 2006년에는 한국 전통무용으로선 처음으로 미국 뉴욕 링컨센터에서 공연하기도 했다. 170개국을 돌며 1000회 이상의 공연을 해 한국 무용가 중 가장 많은 나라에서 가장 많은 공연을 한 기록을 세웠다.개인 재산을 털어 고향인 안성에 태평무전수관을 개관, 전통문화 전승과 춤꾼 발굴·양성에 힘썼다. 2013년 태평무 명예보유자가 됐으며 한국무용협회장, 예총 회장, 국회의원 등을 지냈다. 태평무보존회 조흥동 위원장은 “한국 예술계의 큰 자랑이었던 스승님의 업적을 상징물로 남겨 후세들에게 전통예술의 숭고함을 현장 교육으로 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병철 기자 kbchul@seoul.co.kr
  • [씨줄날줄] 서울 길거리 농구 대회/서동철 논설위원

    [씨줄날줄] 서울 길거리 농구 대회/서동철 논설위원

    농구는 1891년 미국 매사추세츠 스프링필드의 YMCA 체육학교에서 캐나다 출신 교사 제임스 네이스미스가 창안한 것으로 스포츠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야구는 13세기 영국에서 시작된 크리켓을 바탕으로 18세기 미국에서 이민자를 중심으로 발전했다. 오늘날과 같은 경기장 규격과 경기 규칙은 19세기 중엽 완성되어 미국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고 한다.농구 코트의 규격은 15m×28m이다. 반면 야구 경기장은 훨씬 넓어야 한다. 잠실운동장 야구장이 홈에서 중앙 펜스까지 120m, 양측면까지가 각 100m이니 농구와는 비교할 수 없는 크기다. 도시 외곽으로 나가면 어느 나라보다 활용 가능한 땅이 많은 미국이지만, 대도시는 어느 나라보다 땅값이 비싼 것이 또한 미국이다. 농구와 야구가 미국에서 인기를 끄는 것도 이런 환경적 특성을 반영한다. 왕년의 명(名)야구해설가가 이런 말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야구하러 가자”고 하면 미국 어린이들은 배트와 공을 들고 나서지만, 한국과 일본에서는 글러브와 공을 들고 나선다고?. 어린 시절 동네에서 야구 배트를 휘두르다 남의 집 유리창을 깬 적도 있으니 수긍할 만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미국 어린이라도 뉴욕 맨해튼 한복판에 살고 있다면 배트를 마음대로 휘두를 수 있는 공간은 많지 않다. 그런 점에서 도심형 스포츠, 그것도 단체 스포츠로 농구만 한 것이 없는 것 같다. 특히 정규 규격 코트의 절반만 활용하는 길거리 농구라면 공간은 훨씬 작아진다. 서구에서 쓰인 농구의 역사는 길거리 농구 역시 1960년대 미국이 발상지인 것처럼 기술하고 있다. 하지만 농구를 받아들인 나라에서는 길거리 농구라는 용어를 몰랐을 뿐 길거리 농구를 일찍부터 즐겼고, 그것은 한국도 마찬가지다. 최근에는 도시 근교에 조명 시설을 갖춘 아마추어 야구 경기장도 심심치 않게 생겨나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야구는 휴일을 기다려 하는 낮의 스포츠인 반면 농구는 도심 공원 불빛만으로도 즐길 수 있는 전천후 스포츠다. 길거리 농구 애호가 가운데는 퇴근 이후 집 근처 학교나 공원에 모여 흠뻑 땀을 흘리는 이 스포츠의 매력을 말하는 사람이 많다. 지난 주말 서울 한복판 세종대로의 서울신문사 서울마당에서는 ‘제1회 서울 길거리 농구 대회’의 결선 토너먼트가 열렸다. 52개 팀 242명 선수들은 비록 모두가 트로피를 받지는 못했더라도 하나같이 즐겁기만 한 표정이었다. 그동안 우리 사회의 스포츠에 대한 개념이 ‘구경하는 스포츠’에서 ‘직접 뛰는 스포츠’로 얼마나 크게 바뀌었는지 실감할 수 있었다. 서동철 논설위원
  • 50년대 복무 주한 미군, 희귀사진 1300점 기증

    50년대 복무 주한 미군, 희귀사진 1300점 기증

    행정자치부 국가기록원은 24일 1950~60년대 주한미군으로 복무했던 닐 미셜로프(74)와 폴 블랙(82)으로부터 희귀사진 1300여점을 기증받았다고 밝혔다. 미셜로프는 경기 안양 미8군 제83병기대대에서, 블랙은 서울 용산 미8군 사령부에서 복무했다.‘우편병’으로 복무한 미셜로프는 안양과 용산 미8군 사령부를 오가며 1960년대 주한미군과 한국의 다양한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사진 중 6·25전쟁 당시 미군의 요청과 이승만 대통령의 승인으로 만들어진 미8군 산하 노무사단인 한국노무단(Korean Service Corps) 일명 ‘지게부대’의 모습 등이 흥미롭다. 또 옛 서울시청과 보수 중인 서울역과 영등포역, 장충체육관, 한강 나루터, 기계·부품 가게들이 늘어선 청계천의 모습과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반도호텔의 모습도 눈여겨볼 만하다. 블랙은 1958년 한국으로 파병돼 미8군 사령부 인사과에서 행정병으로 근무하면서 용산 일대와 초창기 용산기지의 모습을 찍었다. 미군을 위한 복지·오락서비스를 제공했던 미군위문협회(USO)의 희귀사진과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용산기지 내 일제강점기 극장 건물(SAC)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블랙은 주한미군 복무 시절 매주 부대에 놀러 와 친하게 지냈던 당시 중학생이던 김정섭씨의 소식을 무척 궁금해했다. 김씨에 대해 알고 있다면 국가기록원 수집기획과 담당자(042-481-1778)에게 연락하면 된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그때의 사회면] 명동 이야기(하)

    [그때의 사회면] 명동 이야기(하)

    명동은 1950, 60년대 문인들의 낭만과 애환이 골목골목 어려 있는 곳이다. ‘목마와 숙녀’의 박인환(1926~1956)은 ‘너무나 명동적인’ 시인이다. 박인환은 1956년 2월 어느 날 ‘경상도집’에서 ‘세월이 가면’을 즉석에서 쓰고 한 달 뒤 ‘바카스’, ‘신신바’에서 술을 마시고 집으로 돌아가 “가슴이 답답하다. 생명수(약)를 다오”라고 말하고는 세상을 떠났다. 명동이 문화 예술인들의 본거지가 된 이유는 국립극장이 장충단으로 옮겨 가기 전 명동에 있었기 때문이다. 옛 국립극장은 1935년에 영화관으로 세워진 객석 1180석의 3층 건물이었다. 광복 후 서울시가 시공관으로 이름을 바꾸어 공연장으로 활용했으며 1959년 국립극장 전용극장이 됐다. 그 후 금융회사 건물로 사용되다가 현재는 명동예술회관으로 거듭났다. 명동은 다방과 주점의 천국이었다. ‘청동’, ‘돌체’, ‘서라벌’, ‘갈채’, ‘휘가로’, ‘모나리자’, ‘동방싸롱’, ‘은성’ 같은 다방 또는 주점에서 문인들은 시와 인생을 논했다. 명동을 가장 사랑했고 명동 뒷골목의 역사를 몇 권의 책으로 남겨 ‘명동백작’ 또는 ‘명동시장’으로 불리는 인물이 소설가 이봉구(1916~1983)다. 문인들의 명동 시절, 연배가 가장 높았던 명동의 터줏대감은 공초 오상순(1894∼1963)이다. ‘폐허’의 동인으로 한국 시단의 1세대인 공초는 평생을 고독과 방랑, 담배를 친구 삼아 일생을 독신으로 보냈다. 그는 집이 없었으며 전쟁이 끝난 뒤에는 주로 조계사에서 잠을 자고 낮에는 청동다방에 나와 하루를 보냈다. 청동다방은 명동 사보이호텔 뒤 좁은 골목 네거리에 있었다. 문인들은 대부분 가난했고, 술을 좋아했다. 정치적인 억압과 경제적인 궁핍 속에서 문인들의 눈에 비친 세상은 암울했다. 술은 세상을 잊게 하는 망각제요, 세상에서 벗어나게 하는 탈출구였다. 박인환처럼 술과 가난으로 건강을 해친 문인, 예술가들은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는 경우가 많았다. 그중 한 사람이 ‘보리밭’, ‘나뭇잎배’, ‘광복절 노래’를 작곡한 윤용하(1922~1965)다. 명동에서는 이들 외에도 조병화, 김수영, 조지훈, 유치진, 김환기, 변영로, 이중섭, 박계주, 노천명 등 수많은 문인과 예술가들이 논쟁을 하고 취하곤 했다. 그러나 문인들의 명동 시대도 막을 내리게 됐다. 무엇보다 명동이 개발된 탓이다. 1960년대 말이 되면서 명동은 금융과 상권의 중심지로 바뀌었다. 문인들의 사랑방이었던 값싼 술집과 다방들은 서린동이나 무교동, 청진동으로 옮겨 갔으며 대신 명동에는 은행의 본점과 백화점, 고급 의상실 등이 들어서 금융·쇼핑가로 변모했다. 명동 거리는 미니와 청바지를 입은 젊은이들이 밀고 들어와 유행의 1번지로 탈바꿈했다. 사진은 1964년 11월 명동의 밤 풍경(사진 출처: 국가기록원). 손성진 논설실장
  • 열두 폭의 목소리…눈으로 본 사운드

    열두 폭의 목소리…눈으로 본 사운드

    형태도 없고, 비물질적이며, 비가시적인, 그러나 인간의 내면을 드러내는, 신체를 통해 나오지만 결코 신체에 속하지 않은…목소리. 목소리는 언제부터인가 다양한 형식으로 시각예술 영역에 개입하기 시작했다. 1960년대의 전위예술 운동인 플럭서스, 1970년대의 개념미술, 1980~90년대의 포스트모더니즘을 거쳐 최근 들어 영상 위주의 전시들에서 그 역할과 중요성이 확대되고 있다.서울 강남구 신사동 코리아나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더 보이스’(The Voice)전은 동시대 미술의 중요한 예술적 매체이자 장치로 등장해 시각예술 영역에 침투한 목소리를 1960년대부터 최근까지 작품들을 통해 다각도로 조명한다. 지난 10여년간 신체라는 주제를 지속적으로 탐구해 온 미술관이 1년 만에 마련한 기획 전시로 국내외 작가 12명이 참여한다.1999년 베니스비엔날레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브루스 나우만의 초기 실험영상인 ‘립 싱크’(1969)는 음악에서처럼 예술가 자신의 목소리를 기본적인 예술적 표현의 도구로 사용한 작품이다. 발상과 방법이 독특하다. 작가 본인의 모습이 거꾸로 뒤집힌 채 ‘립싱크’라는 단어를 반복적으로 내뱉는 행위를 통해 입의 움직임과 실제 소리 사이의 물리적 시간 차, 언어적 의미와 실제 상황의 차이를 고조시키며 묘한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전위적인 작곡가 존 케이지(1912~1992)는 우연히 발생하거나 의도되지 않은 소리가 모두 음악이라고 생각했다. 피아노 앞에서 4분 33초 동안 아무런 연주도 하지 않는 ‘4분 33초’(1952)를 발표해 예술계에 큰 파장을 일으킨 케이지가 1958년 작곡한 ‘아리아’의 비정형적인 악보가 이번 전시에 소개되고 있다. 악보는 일반적인 음표나 음악적 부호 대신 높낮이를 표시하는 선과 색 등의 시각적 요소로 이뤄져 있으며 연주자가 악보를 보고 해석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있다. 뉴욕국립도서관이 소장한 작품을 존케이지재단과 협의해 재제작한 형태로 선보인다. 보이스퍼포먼스 작가 미카일 카리키스의 2채널 비디오 ‘프로미스 미’에서는 작가 자신이 등장해 정치적 맥락에서 목소리를 내고자 하는 의지와 목소리를 낼 수 없게 된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건넨다. 한쪽 화면에서는 말을 하려고 하지만 입이 열리지 않아 애쓰는 모습이, 다른 화면에서는 입을 다물고자 하지만 다물어지지 않아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 나온다. 미국에서 활동했던 영상예술가 차학경(1951~1982)의 1975년 작품 ‘입에서 입으로’는 모음을 발음하는 여성의 입을 초근접 촬영한 것으로 목소리는 제스처로만 존재한다. 제대로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한국계 미국인 여성으로서 자신의 경험을 병치시킨 작품이다. 아티스트그룹 ‘슬라브스와 타타스’는 유라시아 지역 소수민족의 언어처럼 서구문화권에서 사용되지 않는 발음기호들을 토대로 문화와 언어의 차이를 고찰한다. 미국의 비디오아티스트 주디스 배리의 1999년 작품 ‘보이스 오프’는 양면에 동시상영되는 다른 이미지 속 일상의 소리와 다양한 목소리들(대화, 독백, 흥얼거림)의 혼재를 보여준다. 아이슬란드 출신의 작가 라그나 키아르탄슨의 6시간짜리 퍼포먼스 영상 ‘노래’는 작가의 여자 조카 3명이 알랜 긴스버그의 시 구절을 반복적인 멜로디로 부른다. 서사 구조가 배제된 연극적인 연출이 기묘한 효과를 낸다. 김가람 작가의 사운드 프로젝트 ‘4로즈’는 기계가 만들어 내는 목소리가 인터넷 댓글로 대변되는 사회의 목소리를 들려준다. 작가는 메르스에 대한 정부의 늦장대응, 최순실 국정농단, 블랙리스트 파문 등 파장을 일으킨 뉴스에 따라붙은 인터넷 댓글들을 가사로 만든 음원들을 소개한다. 이세옥은 독일 여성이 능숙한 한국어로 무대에서 낭독하는 모습을 담은 영상 ‘안나의 공연’ 연작으로 언어와 목소리의 상관관계를 탐구하고 김온은 ‘기억과 기록 사이의 목소리 사용법’에서 카프카의 작품 ‘꿈’ 중 마침표 앞의 단어들을 발췌해 낭독하는 새로운 경험을 제안한다. 시각예술의 하위개념이나 부차적 요소로 다뤄져 온 목소리를 주인공으로 한 전시는 다소 낯선 감이 있지만 찬찬히 의미를 새겨 가며 볼 만하다. 전시는 7월 1일까지.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심상정, 호남 유세…“광주의 선택, 민주당·국민의당 머물러선 안돼”

    심상정, 호남 유세…“광주의 선택, 민주당·국민의당 머물러선 안돼”

    심상정 정의당 대선후보가 22일 광주 등 호남 유세에 나섰다. 심 후보는 이날 오후 광주 동구 충장우체국 앞에서 유세하며 “광주의 선택이 더이상 민주당, 국민의당에 머물러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심 후보는 “두 야당이 요즘 서로 ‘적통’이라고 외치면서 광주와 호남에 대한 구애 경쟁을 하며 이전투구하는데 이는 광주정신을 훼손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광주정신의 적통은 변화와 혁신”이라며 “광주는 대한민국 정치사에서 역사의 고비마다 새로운 미래를 선택했다. 이제는 과감한 개혁으로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드는 일만 남았다”고 강조했다. 심 후보는 “광주의 정치를 정권교체를 위한 정치가 아니라 광주 청년, 여성, 시민을 위한 정치로 바꿔야 한다”며 “진정한 개혁을 원하면 거침없는 개혁을 책임질 저 심상정을 뽑아달라”고 호소했다.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해 각각 “한반도 평화의 역사적 전환점을 만들었고, 민주주의 운영에 있어 정치 개혁을 했다”고 평가한 심 후보는 “그러나 먹고사는 문제에 있어서는 지난 60년 동안 모두 ‘친재벌 정부’였다”고 주장했다. 그는 “청년들을 전부 비정규직 만들고, 골목시장까지 재벌이 침탈해 자영업자들을 거리에 나앉게 하는 재벌경제의 역사를 제가 끝내겠다”고 말했다. 심 후보는 “대선 후보들이 말로만 미래를 이야기할 뿐 대한민국의 미래인 청년을 위한 공약은 없다”며 “청년들이 정치에 주권자로 참여하도록 기반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광장에서 보았듯이 대학생은 물론, 중고생, 초등생까지 투표권을 줘도 어른들보다 훨씬 잘 행사할 것”이라며 “OECD 국가 중 만 18세 청년에게 투표권을 주지 않은 나라는 우리나라 뿐”이라고 지적했다. 또 “왜 대통령은 40세 이상만 되는가. 35세 이상도 할 수 있어야 한다. 국회의원도 23세로 낮추고 시의원·도의원도 18세부터 입후보하게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심 후보는 “청춘들에게 국방의 의무를 지게 했으면 엄마들 주머니 털어 군대 유지하게 하면 안 되고, 우리나라만큼 병사들에게 ‘열정 애국페이’를 강요하는 나라는 없다”며 병사 월급 인상 등의 공약을 설명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씨줄날줄] 북한이탈주민의 고뇌/황성기 논설위원

    [씨줄날줄] 북한이탈주민의 고뇌/황성기 논설위원

    지금은 북한이탈주민이 공식적인 명칭이지만 여전히 탈북자, 새터민 같은 과거의 용어가 우리 사회에 뒤섞여 쓰이고 있다. 북한이탈주민이란 북한을 벗어나 외국 국적을 취득하지 않고 있는 사람을 일컫는 법률 용어이기도 하다.통일부의 올해 3월 말 기준 자료를 보면 북한이탈주민은 남성 8848명, 여성 2만 1642명으로 총 3만 490명이 한국에 들어왔다. 2005년 이후 탈북이 지속적으로 증가 추세를 보이다가 2012년부터는 한 해 1500여명선으로 줄어들어 작년에는 1418명이 남한에 왔다. 북한이탈주민이란 명칭 변천은 남북 관계의 역사와 밀접하다. 1960년대 북에서 넘어온 사람들은 ‘월남 귀순자’란 이름으로 불렀다. 법으로 국가유공자와 동등한 지위를 부여하고 원호대상자로 우대하며 체계적인 지원도 시작했다. 동서 냉전과 남북 대치가 극에 이르렀던 1979년에는 월남귀순용사 특별보상법을 만들어 사선을 넘어 자유민주주의를 택한 ‘귀순용사’로 불렀다. 냉전이 끝난 1993년에는 귀순북한동포보호법을 제정했는데, 귀순자를 국가유공자에서 생활능력이 결여된 생활보호대상자로 격하했다. 정착금을 비롯한 지원도 크게 줄였다. 1997년 망명한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는 ‘탈북자’란 용어를 퍼뜨린 원조다. 자신을 김정일 정권의 학정을 피해 탈출한 ‘탈북자’로 지칭했다. 2005년 통일부가 탈북자란 용어에 거부감을 갖는 사람이 많다는 이유로 새로운 터전에서 삶의 희망을 갖고 사는 사람이란 ‘새터민’으로 바꿔 사용했다. 황씨가 위원장을 맡았던 북한민주화위원회는 2007년 “우리는 폭압과 독재의 나라에서 탈출한 탈북자”라면서 새터민 사용을 중단해 달라고 통일부에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다. 서울시가 지난 20일부터 북한이탈주민 대체 용어 공모에 들어갔다. “현재 용어에 북한이탈주민의 부정적 의견이 많고 남북하나재단 등 유관 단체에서도 개선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는 게 이유다. ‘북한’, ’이탈’ 등 어감이 좋지 않고 여섯 글자라는 점, 적극적 의지로 북한을 탈출했다는 자부심을 표현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견이 많다고 한다. 서울시는 좋은 용어를 발굴하면 통일부에 건의할 계획이다. 2000년 탈북해 2006년 한국에 입국한 한 탈북자는 서울시 공모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필자에게 귀띔한다. 그는 “한국 사회에 정착해 살고 있는 마당에 새 딱지를 붙여서 이질감을 느끼게 하는 것 자체가 차별 아니냐. 대한민국 국민이란 명칭으로 족하다”고 말한다. 서울시나 통일부가 귀담아들어야 할 대목인 것 같다. 황성기 논설위원 marry04@seoul.co.kr
  • 봄철 산불 빨라지고 길어졌다

    지구 온난화로 봄철 산불 시기가 빨라지고, 길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산불헬기 전진 배치 등 초동진화 체제가 구축되면서 대형산불 발생 및 피해면적은 감소했지만 잦은 산불 발생에 산림 당국의 긴장도가 훨씬 높아지고 있다. 21일 산림청에 따르면 올해 329건의 산불이 발생해 145.4㏊의 산림이 사라졌다. 전년동기(292건, 342.2㏊)와 비교해 발생건수는 12% 증가한 반면 피해면적은 58% 감소했다. 산불 1건당 피해면적도 지난해(1.2㏊)보다 67% 감소한 0.4㏊로 집계됐다. 3월에 전체 산불의 58.4%가 192건이 집중됐고 4월 들어 20일 현재 60건이 발생했다. 특히 3월 10~19일까지 128건이 발생했고 19일에는 하루 최다인 24건의 산불이 동시다발로 집중됐다. 최근 10년 통계를 분석한 결과 산불위험시기는 4월 4~13일로 평균 45건이 발생했는데 지난해는 3월 27~4월 5일까지 94건으로 빨라지고 있다. 지난해 하루 최다 산불 발생일도 4월 2일 21건이었다. 4월도 안심할 수는 없다. 최대 피해를 기록한 2000년 동해안 산불(2만 3794㏊)을 비롯해 삼척 산불(4053.4㏊), 2002년 충남 청양·예산 산불(3095㏊) 등 그동안 100㏊ 이상 피해가 발생한 대형산불 대부분이 4월에 집중됐다. 지역별로는 경기(104건), 강원(42건), 경북 (33건) 3곳이 전체의 54%를 차지했고 피해 면적은 강원(82.1㏊)와 경기(35.1㏊) 지역이 80%에 달했다. 3월 남쪽에서 시작해 5월 강원으로 점차 확산하던 산불 추세가 달라졌다. 박도환 산림청 산불방지과장은 “강원지역은 산림 비율이 높고 경기는 난개발 및 산림으로의 인구 침투가 늘고 있어 자칫 대형 피해를 일으킬 수 있는 화약고와 같다”고 우려했다. 산불 원인은 여전히 논·밭두렁과 쓰레기 등 소각행위다. 지난해 48%(141건)에서 올해 41%(134건)로 비율이 낮아졌지만 여전히 최다 산불 발생원인으로 분석됐다. 병해충 방제와 환경정리를 위해 지자체 주도의 마을 공동소각 필요성이 제기됐다. 다만 산불통계가 작성된 1960년대 이후 4년 연속 대형산불 제로화를 처음으로 달성했다. 대전 박승기 기자 skpark@seoul.co.kr
  • [부고] 장덕진 前농수산장관 별세

    [부고] 장덕진 前농수산장관 별세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에 국회의원과 농수산부(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등을 지낸 장덕진씨가 20일 별세했다. 82세. 장 전 장관은 강원 춘천 출신으로 1960년 고려대 법대를 졸업했다. 고등고시 사법·행정·외교과에 잇따라 합격해 이른바 ‘고시 3관왕’에 올랐다. 1968년 재무부 이재국장 겸 박정희 전 대통령 비서관으로 공직에 입문했다. 이후 대한축구협회장(1970년), 제8대 국회의원(서울 영등포 갑·민주공화당), 경제기획원 차관(1975년)을 거쳐 1977년 농수산부 장관 자리에 올랐다. 박정희 전 대통령과의 인연도 깊다. 장 전 장관은 고 육영수 여사의 언니 육인순씨의 사위다. 박정희 전 대통령 입장에서는 처조카 사위가 된다. 장남 원준씨가 현재 TV조선 국제부장이다.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 11호. 발인 22일 오전 10시.(02)2258-5940.
  • 김중업 산부인과 건물 문화재 된다

    김중업 산부인과 건물 문화재 된다

    조선요리제법·천로역정 등도 국가 지정 문화재 등록 예고 “둥근 면에 뚫린 구멍들이, 살짝 붙여 돌아가는 발코니들이, 삶에의 희열을 또는 태어나는 새 삶에의 찬가를 부른다.”국내 1세대 건축가 김중업(1922~1988)이 생전 남다른 애정을 쏟았던 ① 옛 서산부인과 건물(현 아리움 사옥)이 문화재가 된다. 문화재청은 1965년 김중업이 설계한 서울 중구의 옛 서산부인과 건물을 문화재로 등록 예고했다고 20일 밝혔다. ‘현대 건축의 아버지’로 불리는 르 코르뷔지에 문하에서 현대 건축의 문법을 익히고 귀국한 김중업은 1960년대 이 건물의 건축 의뢰를 받고 ‘파격’에 가까운 백색 건물을 지어올린다. 그는 아이가 탄생하는 공간임을 고려해 자궁과 남근을 모티브로, 생명이 태어나는 과정을 건물에 오롯이 재현했다. 이번 문화재 등록에는 독특한 조형미, 노출 콘트리트 구조, 설계·시공 당시의 초기 형태가 온전히 보존돼 있다는 점 등이 인정받았다. 건축 허가를 받을 당시 도면과 건축허가통지서, 공사 명세서 등이 그대로 남아 있다는 점도 건축사적 가치를 더했다.함께 등록 예고된 동산 문화재는 이화여대 가사과 교수였던 방신영(1890~1977)이 1917년 쓴 ② ‘조선요리제법’이다. 꼭 100년 전 쓰인 이 책은 구전으로 이어지던 우리 전통 음식의 조리법을 계량화해 체계적으로 정리했다. 때문에 우리 음식의 대중화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을 받으며, 조선을 지나 근대기로 넘어가면서 조리법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가늠해 볼 수 있는 사료적 가치도 지닌다. 영국 종교학자 존 버니언의 종교적 우의소설을 선교사 제임스 스카스 게일과 그의 부인 깁슨이 공동 번역한 ③ ‘천로역정’(합질본)도 문화재로 등록 예고됐다. 1895년 출간된 ‘천로역정’은 개화기 번역 문학의 첫발을 뗀 작품이다. 당시 한글 문체가 고스란히 드러나 있어 국문학사적으로도 중요한 책자로 평가된다. 당시 유명한 풍속화가 기산 김준근의 삽도(揷畵)에서 우리 토착 전통이 배어 있는 한국 개신교 미술의 초기 모습도 엿볼 수 있다. 문화재청은 이 밖에 1892년 그려진 고령 관음사 칠성도, 일제강점기에 세워진 옛 조선식산은행 충주지점, 신해박해의 발상지가 된 천주교 진산 성지성당도 문화재로 등록 예고했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백건우 “인생을 베토벤과 같이한다는 건 행운입니다”

    백건우 “인생을 베토벤과 같이한다는 건 행운입니다”

    10월까지 29회… 지방 20여회 9월 1~8일 서울 전곡 집중 완주 “32곡은 장편소설 접하는 느낌”“제가 지금까지 계속할 수 있었던 것은 제 연주에 만족 못했기 때문에 그랬을 수 있어요. 지금에 와서야 조금은 악기를 편하게 다룰 수 있고, 음악을 표현하는 데 좀 자유로워진 느낌이에요. 누군가는 저 보고 데뷔 60년이 넘었다고 하는데 사실 그때 연주는 생각하고 싶지도 않아요. 뉴욕에서 직접 프로그램을 구상했을 때인 20대 후반이 진정한 데뷔겠지요.” ‘건반 위의 구도자’ 백건우(71)가 베토벤 소나타 전곡 연주 프로젝트에 나섰다. 10년 만이다. 18일 서울 광화문 문호아트홀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그는 “지난 10년간 이 곡들을 계속 연주해왔는데 하면 할수록 좀 더 가까워지고 더 알게 된 느낌이라 새로운 모험과 경험이 될 것”이라며 “베토벤은 우리 음악인들의 삶을 좌우하는 거인이며 그의 훌륭한 작품들과 인생을 같이한다는 것은 정말 행운”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러 문을 열어야 어느 곳을 방문할 수 있는 것처럼 (베토벤을 향해) 문을 하나씩 열어가는 과정”이라면서 “전에는 보이지 않던 풍경이 보이고 소리가 들리고 드라마가 이해가 된다”고도 했다. 베토벤이 전 생애에 걸쳐 작곡한 피아노 소나타는 모두 32곡. 쉬지 않고 연속 연주해도 무려 8시간 가까이(백건우 녹음 기준) 걸린다. 베토벤의 일생은 물론, 시대정신이 집대성된 ‘피아노의 신약성서’라는 평가를 받는다.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에 애착이 깊은 백건우는 2005년 10월 영국 데카 레이블과 계약을 맺고 3년에 걸쳐 전곡을 녹음했다. 2007년 12월에는 일주일 만에 8회에 걸쳐 전곡을 완주하는 특별한 무대를 국내에 선보였다. ‘왜 베토벤이 특별하냐’는 물음에는 운명이라는 답을 했다. “얼마 전 지휘자 엘리아후 인발과도 이야기했는데 베토벤은 시간이 필요한 작곡가예요. 10년 전 왜 베토벤을 했는지 돌아보면 당시에 ‘지금 해야겠다’는 것을 피부로 느꼈기 때문이죠. 연주자와 작품이 만나는 시기가 있는 것 같아요.” 지난달 시작해 이미 다섯 차례 진행된 ‘베토벤 그리고 백건우, 끝없는 여정’의 규모는 전에 견줘 무척 커졌다. 10월까지 29회 공연이 예정됐는데 웬만하면 32회 공연을 채울 계획이다. 10년 전과 확연히 다른 점은 20회가 넘게 지역 공연을 한다는 것이다. 지역에서는 ‘월광’이나 ‘템페스트’ 등 제목이 붙여진 작품을 포함해 4곡 정도의 프로그램을 연주하는 독주회 형식으로 열린다. “지역 공연이 저한테는 중요한 의미가 있어요. 올해는 전국에서 베토벤과 함께할 수 있어 너무나 기쁘죠. 한국 클래식 저변이 넓어졌다는 의미도 있고요.따로 하는 공연이라기보다는 큰 그림 안에서 32곡을 함께한다는 게 새롭죠.” 10년 전처럼 전곡을 집중 완주하는 순서도 있다. 9월 1~8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다. “32곡을 하다 보면 베토벤의 생애가 보이는 것 같아요. 하나의 장편소설을 접하는 느낌이죠. 베토벤이 살았던 드라마를 청중과 함께 체험하고 싶은 욕심에서 그런 프로그램을 짰어요. 1년에 걸쳐 연주한다면 그럴 수 없겠지만 1주일을 베토벤과 생활한다는 느낌을 받을 거에요.” 전곡을 번호순으로 연주하는 것은 아니다. 출판 순서는 베토벤의 의도가 아니라는 판단에서다. 20번이 물꼬를 튼다. “19번과 20번은 1번에 앞서 스케치됐던 곡들이에요. 그만큼 순수한 곡들인데 장조인 20번이 시작으로 적당할 것 같았죠. 한 곡 한 곡이 모두 훌륭한 작품이라 순서가 크게 중요하지는 않지만 마지막 6곡은 하나의 프로그램으로도 완벽해 그 순서는 절대 바꿀 수 없어요.” 지난해 11월 뉴욕 필하모닉과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3번을 연주해 갈채를 받았던 백건우는 협주곡, 체임버곡 완주 프로젝트에 대한 관심도 드러냈다. “전에는 못 느꼈는데 요즘은 그런 프로젝트도 하고 싶어요. 2020년이 베토벤 탄생 250주년이라는데 그때까지는 할 수 있겠죠. 허허허.”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청소년 절반 “결혼은 선택”… 62% “혼전 동거 OK”

    청소년 절반 “결혼은 선택”… 62% “혼전 동거 OK”

    비혼 임신에는 30%만 긍정적 부모세대 66% “혼전동거 반대” 77% “국제결혼도 상관없다” “이혼 반대” 2010년 이후 급감우리나라 청소년의 절반 이상은 결혼을 ‘해도 좋고 하지 않아도 좋다’고 인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청소년 10명 중 6명 이상이 혼전 동거에 동의한 반면 결혼을 하지 않고 자녀를 갖는 데 대해서는 10명 중 3명만 긍정적으로 답했다. 18일 여성가족부와 통계청이 지난해 청소년을 대상으로 조사한 ‘2017년 청소년 통계’에 따르면 13~24세 청소년의 51.4%는 결혼을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이 아닌 선택 사항으로 바라봤다. 결혼을 ‘해도 좋고 하지 않아도 좋다’는 응답은 2010년 36.7%에서 해마다 늘어나 지난해 절반을 넘은 것이다. 2014년에는 결혼에 ‘찬성’하는 청소년의 비율이 48.1%로 ‘해도 좋고 하지 않아도 좋다’는 청소년(44.4%)을 앞섰다. 김기헌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최근 취업난과 높은 주거비용 등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으로 결혼에 대한 청소년 인식이 바뀌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 같은 인식 변화는 부모 세대(50~69세)에서도 나타났다. 2010년 결혼을 해도 좋고 안 해도 좋다는 부모 세대는 21.0%에 그쳤으나 지난해 32.9%로 상승했다. 10명 중 3명꼴이다. 청소년의 61.7%는 혼전 동거에 동의하는 반면 부모 세대는 65.5%가 반대해 인식 차를 보였다. 결혼하지 않고도 자녀를 가질 수 있다는 의견에 찬성하는 청소년은 30.0%였다. 2년 전에 비하면 3.7% 포인트 높아진 수치다. 부모 세대의 경우 82.5%가 이에 반대했다. 이혼을 반대하는 청소년의 비율은 2010년 이후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2010년 청소년의 69.2%가 이혼에 반대했으나 지난해 27.0%로 줄었다. 성별로 보면 이혼에 반대하는 남자 청소년이 35.7%로 여자 청소년(17.9%)보다 2배 정도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혼을 할 수도 있고 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응답한 청소년의 비율은 계속해서 증가해 지난해 48.0%를 차지했다. 청소년 10명 중 7명 이상은 국제결혼에 열린 태도를 드러냈다. 외국인과 결혼해도 상관없다는 청소년의 비율은 77.0%로 여자 청소년은 79.6%, 남자 청소년은 74.4%가 긍정적으로 응답했다. 올해 9~24세 청소년 인구는 총인구의 18.0%인 924만 9000명으로 집계됐다. 2060년에는 11.1%까지 떨어질 것으로 통계청은 전망했다. 학령(6~21세) 인구는 2027년까지 약 150만명이 줄어들 것으로 통계청은 내다봤다. 특히 초등학교(6~11세) 학령인구의 구성비는 1970년 17.7%에서 올해 5.3%로 12.4% 포인트 줄었다. 전체 학생수가 감소하는 상황 속에서 국제결혼 가정이나 외국인 가정 학생을 의미하는 다문화가정 학생수는 반대로 늘어났다. 지난해 다문화가정 학생수는 9만 9186명으로 2015년(8만 2536명)에 비해 20.2% 증가했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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