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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고] 한국 첫 장편 애니 ‘홍길동’ 신동헌 감독 별세

    [부고] 한국 첫 장편 애니 ‘홍길동’ 신동헌 감독 별세

    한국 애니메이션계의 대부 신동헌 감독이 6일 오전 숙환으로 별세했다. 90세.고인은 한국 애니메이션 역사의 산증인이다. 1967년 국내 최초의 장편 애니메이션인 ‘홍길동’과 이듬해 그 속편 격인 ‘호피와 차돌바위’를 만들어 한국 극장판 애니메이션 시대의 개막을 알렸다. 당시 열악한 제작 환경에서 선(先) 녹음 기법으로 인물의 소리와 동작을 일치시키는 자연스러운 연출로 큰 호응을 얻었다. 1995년에는 현대적인 감각의 ‘돌아온 홍길동’을 만들기도 했다. 함경북도 회령 출신인 고인은 서울대 건축학과 재학 중 아르바이트로 초상화를 그리다가 ‘코주부’로 유명한 만화가 김용환을 만나 만화계에 입문했다. 데뷔작은 1947년 ‘스티브의 모험’이다. 서울신문에 ‘너털주사’를 연재하는 등 여러 일간지를 통해 시사 만화가로 활동하기도 했다. 1960년대 중반에는 프러덕션을 만들어 친동생인 신동우(1936~94) 화백이 어린이 일간지에 연재한 ‘풍운아 홍길동’을 극장판 애니메이션으로 옮겼다. 유족으로는 경섭(애니메이션 사업)·인섭(전 광고제작자)·양섭(영화학자) 3남이 있다. 장례는 한국애니메이션예술인장으로 치러진다.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 발인은 9일 오전 7시, 장지는 대전공원묘원. (02)2258-5940.
  • ‘아리랑’서 ‘비와 당신’까지’ 영화·가요의 화려한 어울림

    ‘아리랑’서 ‘비와 당신’까지’ 영화·가요의 화려한 어울림

    “자 떠나자 동해 바다로 신화처럼 숨을 쉬는 고래 잡으러”(‘고래사냥’), “왜 불러 왜 불러 돌아서서 가는 사람을 왜 불러 왜 불러 토라질 땐 무정하더니 왜 왜 왜 자꾸자꾸 불러 설레게 해.”(‘왜 불러’)●영화주제가 100선 청취 가능 요즘엔 TV 드라마 주제가로 사용되어 인기를 끄는 대중가요가 흔하지만 과거에는 영화 주제가가 그랬다. 이선영의 영화음악실, 김세원의 영화음악실 등 영화음악 프로그램이 라디오 최고 인기 프로그램이던 시절도 있었다. 1970년대 암울한 시대를 배경으로 청춘의 비애와 상실감을 그려 당대 젊은 세대의 지지를 받았던 ‘바보들의 행진’(1975)의 경우, 송창식이 부른 ‘고래사냥’, ‘왜 불러’, ‘날이 갈수록’이 한꺼번에 인기를 끌기도 했다. ‘한국영화와 대중가요, 그 100년의 만남’ 전시회가 서울 마포구 상암동 한국영상자료원 내 한국영화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다. 오는 12월 17일까지다. 영화 ‘아리랑’(1926)의 주제가 ‘아리랑’에서부터 ‘라디오스타’(2006)의 주제가 ‘비와 당신’까지 한국 영화주제가 100선을 직접 들어볼 수 있다는 점이 돋보인다. 한국대중음악학회 회원과 옛가요사랑모임 회원 등 대중가요 연구자와 애호가 50여명이 대중성, 작품성, 역사성을 고려해 선정했다. 195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까지의 비중이 70%에 육박한다. 한국 영화의 황금기와 영화 주제가의 전성기가 겹친 시기로 풀이된다. 100선 청취를 위해 청음기(CD플레이어) 5대가 설치됐다. 시간이 부담스럽다면 10선을 추려 담은 사운드박스를 이용할 수도 있다.●노래·은막 스타 진화史까지 전시회는 영화와 대중가요의 다채로운 만남을 역사, 인물, 공간 세 가지 주제로 조명한다. ‘아리랑’을 통해 영화와 대중가요의 첫 만남을 보여 주는 등 한국 음악영화의 기원을 탐색해 보는 한편, 일제강점기 조선악극단에서부터 1950~60년대 손시향, 박재란 등을 거쳐 최근 연기돌까지 노래와 은막을 넘나들었던 스타들의 진화사(史)를 두루 살핀다. 악극 무대, 록밴드 경연대회, 방송국, 음악카페 등 한국 영화에서 묘사된 대중음악 풍경들도 만날 수 있다. 축음기(SP음반), 전축(LP음반) 청음 행사와 각종 강연도 곁들여진다. 무료.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부산 사람 살살 녹이는 ‘食食한 녀석’… 고갈비 뜯으러 오이소

    부산 사람 살살 녹이는 ‘食食한 녀석’… 고갈비 뜯으러 오이소

    “추억의 고갈비 드시러 오세요.” 부산에는 돼지국밥, 밀면, 꼼장어 구이, 고갈비 등 독특한 음식이 여럿 있다. 이 가운데 고등어구이를 지칭하는 ‘고갈비’는 요즘 젊은 세대와 외지인들에게는 다소 생소하게 들릴지 모른다. 고갈비는 단순한 고등어구이가 아니다. 산업화 과정에서 힘들고 어려웠던 서민들은 물론 식자층과 대학생이 당시 암울했던 시절의 울분을 막걸리 한 잔과 함께 토해내던 추억과 애환을 고스란히 담은 음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먹거리가 풍성해지면서 사라져 갔던 고갈비가 최근 부산 서구 충무동골목시장에 ‘고갈비(고등어)거리’가 생기면서 ‘추억의 맛’을 찾는 이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갓 지은, 김이 모락모락 나는 하얀 쌀밥 한 숟가락에 노릇노릇하게 구운 여린 고등어구이 속살 한 점은 여름철 잃어버린 입맛을 살리기에 충분하다. 또 술안주와 궁합이 잘 맞아 그저 그만이다.바다를 낀 대부분 지역이 그러하듯 부산도 생선문화가 발달했다. 고등어는 기름기가 많아 생선회보다는 생선구이나 찌개 등으로 많이 먹었다. 불과 40여년 전만 하더라도 우리 앞바다는 지금과는 달리 많은 것을 내줬다. 지금은 ‘금갈치’로 불리는 갈치와 국내에서 사라진 명태를 비롯해 고등어, 꽁치 등은 흔하디 흔한 생선이어서 서민들의 밥상을 풍성하게 했다. 특히 농어목 고등엇과의 연안성 물고기인 고등어는 대표적인 등푸른생선으로 당시 한번 잡힐 때 대량으로 잡히는 데다 값이 싸고 맛이 좋아 서민들에게 인기 있는 어종이었다. 최근에는 어획량이 줄어들어 노르웨이산 등 수입도 많이 되고 있다. 부산 공동어시장에서는 현재 국내산 고등어의 84%가 거래되고 있다.●고갈비라 부르게 된 說…說…說 부산사람은 고등어구이를 다른 말로 ‘고갈비’라 부른다. 고갈비라는 이름은 퍽 회화적이다. 마치 돼지갈비를 뜯을 때처럼 묵직함이 느껴진다. 고갈비라는 이름을 언제 누가 붙였는지 정확하지는 않다. 여러 가지 설이 전해져 내려온다. 1960년대 돈이 궁하던 서민과 대학생들이 저렴한 안주인 고등어구이를 즐겨 먹었고, 고등어에 기름기가 많아 구울 때 연기가 많이 나는 게 ‘마치 돼지갈비를 굽는 것을 연상하게 한다’ 해서 고갈비라고 불렀다는 설이 유력하다. 또 고등어를 갈비처럼 구워서 먹는다고 해서 붙여졌다고도 하고, 고갈비집 주인들은 주로 학생들이 먹는다고 해서 한자인 ‘높을 고(高)’ 자를 붙여 고갈비라 부르기도 했다고 한다. 결국 육고기를 뜯는 느낌이라도 느껴 보려고 누군가 고등어구이를 고갈비로 불렀을 것이다.고갈비에는 지금의 장년층에게는 30~40년 전의 추억이 오롯이 담겨 있다. 즐거워서, 괴로워서. 슬퍼서, 힘들어서 소주잔을 기울일 때 실과 바늘처럼 빼놓을 수 없는 안줏거리가 바로 고갈비였다. 1960~80년대 고등어가 흔하던 시절 고갈비는 가성비가 뛰어나 주머니 가벼운 대학생과 젊은이에게는 밥반찬과 술안주로 인기가 높았다.  홍완준(66)씨는 “돈도 없고 먹거리가 귀하던 시절 소갈비나 돼지갈비는 아니지만, 그래도 갈비를 뜯었다는 기분을 낼 수 있는 음식이 바로 고갈비였다”며 “지금도 고등어구이를 먹을 때면 그때의 추억이 또렷하게 떠오른다”고 입맛을 다셨다.●연탄불 석쇠에 노릇노릇… 추억도 노릇노릇  부산 중구 광복동 ABC마트(옛 미화당백화점) 뒤편 골목길은 1980년대까지만 해도 12개의 고갈비 전문 식당이 앞다퉈 손님을 맞아 ‘고갈비 골목’으로 불렸다. 이후 1990년대부터 하나둘 문을 닫고 지금은 ‘고갈비 할매집’과 ‘남마담’ 두 곳만이 남아 겨우 명맥을 이어 가고 있다.  당시 이들 고갈비식당에서는 자갈치시장에서 막 들여온 고등어에 소금간을 하고 숙성을 한 다음 석쇠를 연탄불에 올려서 바싹하게 구워 손님상에 내놨다. 요즘에는 연탄 대신 가스불이, 석쇠 대신 철판으로 바뀌었다.  해 질 녘 땅거미가 내려앉으면 출출한 배를 채우기 위해 삼삼오오, 끼리끼리 이곳에 찾아들었다. 10여평 남짓한 가게에 좁은 탁상 대여섯 개가 전부이지만 이곳에는 낭만이 있고 나름 멋이 있었다. 연탄불 석쇠에서 기름이 뚝뚝 떨어지며 노릇노릇 굽힌 고갈비가 한 접시 올라오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젓가락이 살점에 내리꽂혔다.  소주 한 잔 입에 털어놓고 한 젓가락 집어 간장에 찍어 입에 넣으면 고소하고 입에 착 달라붙는 그 맛은 일품이었다. 수십여년 세월이 흐른 지금에도 생각하면 입에 군침이 가득 돈다고 한다. 냉동고등어와는 그 맛이 비교가 되지 않는다. 고등어에는 불포화지방산인 EPA와 DHA가 풍부해 두뇌 발달에 좋고, 오메가3 지방산이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춰 동맥경화와 같은 성인병 예방에 도움을 준다. 노화 예방과 원기 회복에도 효과가 있다.  자갈치 시장에서 건어물 가게를 하는 윤재웅(61)씨는 “주머니가 가벼운 젋은이들에게는 출출한 배를 채우고 술안주로 고갈비만 한 게 없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파전 골목, 꼬등어 캐릭터 달고 고갈비 거리로  비록 같은 장소는 아니지만 최근 서구 충무동골목시장에 고갈비 특성화거리가 조성돼 반가움을 전해 주고 있다. ‘충무동골목시장 고갈비거리’ 입구에 들어서면 고갈비골목임을 알리는 대형 입간판과 부산시 시어(市魚)인 ‘꼬등어’ 캐릭터가 반긴다. 200여m 정도 걸어가면 골목시장 사거리가 나온다. 이곳 오른쪽이 고갈비 거리이다. 원래 ‘파전골목’이었으나 서구청 등의 도움으로 고갈비골목으로 변신했다. 현재 10개 업소 가운데 7곳에서 고갈비를 메뉴에 적어 놓고 손님을 맞이하고 있다.  금강고갈비 주인 최옥화(69)씨는 “원래 파전과 각종 생선구이를 팔았는데 고갈비특화거리로 조성되면서 고갈비를 대표음식으로 내놓고 있다”고 말했다. 최씨는 “매일 새벽 길 건너 충무동 새벽시장에서 싱싱한 국산고등어를 가져와 굽기 때문에 살이 부드럽고 고소한 맛이 뛰어나다”며 “최근 입소문이 나면서 손님들의 발길이 점차 늘고 있다”고 귀띔했다.이곳 식당 주인들은 지난 2월 22일 고갈비거리 선포식을 열고 영업에 들어가 현재 성업 중이다. 요즘에는 입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사람들로 저녁이면 발 디딜 틈이 없다. 중간치 크기 고갈비 한 마리의 가격은 7000원으로 비교적 저렴해 주머니가 가벼운 사람들에게도 큰 부담이 없다.  충무동골목시장은 지난해 중소기업청의 ‘골목형시장 육성사업’ 대상지로 뽑혔다. 정동하 서구 국장은 “국내 고등어의 대부분을 유통하는 부산공동어시장이 지역에 위치한 데 착안해 이곳에다 고갈비특화거리를 만들게 됐다”고 말했다. 서구는 5억 2000여만원을 들여 고갈비거리의 특성에 맞게 기존 건물의 파사드와 간판을 모두 철거·정비하는 등 새 단장을 했다. 가게 앞쪽에는 테이블과 의자, 파라솔을 설치해 노천카페와 같은 분위기를 조성했다. 또 독자적인 상징 디자인을 담았다. 한때 인기 먹거리였던 ‘고갈비’를 재탄생시킨다는 의미를 담은 캘리그래피 ‘그때 그 시절’과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부산을 대표하는 마스코트로 선정한 ‘꼬등어’ 캐릭터를 접목해 만들었다. 서구는 상징 디자인을 골목시장 입구 안내판과 아치, 점포의 전면과 간판, 각종 집기류와 물품 등에 사용해 브랜드 이미지를 높이고 있다. 충무골목시장 상인회 권용달(69) 회장은 “고갈비거리가 활성화되면서 침체됐던 골목상권이 되살아나고 있다”고 반겼다.  서구는 매년 10월 송도해수욕장 일원에서 고등어축제를 열고 고등어선어회, 고갈비 등 고등어를 재료로 한 다양한 요리와 음식을 선보이고 있다. 특히 올해로 10회를 맞는 부산고등어축제는 서구 개청 60주년을 맞아 오는 10월 18일부터 22일까지, 예년보다 이틀 늘어난 5일간 송도해수욕장과 부산공동어시장 일원에서 성대하게 개최된다.  박극제 서구청장은 “고등어를 활용한 다양한 레시피와 공동기획상품 개발, 고갈비 요리경진대회 등 축제를 통해 관광객들이 찾을 수 있는 특색 있는 시장으로 만들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글·사진 부산 김정한 기자 jhkim@seoul.co.kr
  • 강경화 후보자 부친 강찬선 아나운서, 김종필이 건넨 5·16포고문 낭독

    강경화 후보자 부친 강찬선 아나운서, 김종필이 건넨 5·16포고문 낭독

    강경화 외교부 장관 후보자의 부친인 고 강찬선 전 KBS 아나운서실장은 1961년 5·16 당일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건넨 계엄포고문을 낭독했던 것으로 알려졌다.김종필 전 총리는 2015년 중앙일보에 연재한 회고록 ‘소이부답’에서 ‘5·16 D데이의 24시간’이라는 꼭지를 통해 당시의 상황을 회고했다. 당시 김 전 총리는 남산에 있는 KBS 라디오방송국에 갔다가 강찬선 전 아나운서를 만나게 된다. 장도영 당시 육군참모총장이 계엄령 선포에 대해 거부하고 버티는 상황에서 ‘일을 저질러야 했다’는 판단에서다. 김 전 총리는 강 전 아나운서에게 계엄군의 포고문을 읽으라고 말했다. 강 전 아나운서는 “군사혁명위원회는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하기 위하여 단기 4294년 5월 16일 오전 9시를 기해 대한민국 전역에 비상계엄을 실시하며 일체의 옥내외 집회는 금지한다”, “군사혁명위원회는 5월 16일 오전 7시 장면 정부로부터 모든 정권을 인수했다. 민의원·참의원 및 지방의회를 16일 오후 8시를 기해 해산한다” 등의 포고문을 읽었다. 김 전 총리는 당시 포고문의 명의가 ‘군사혁명위원회 의장 겸 계엄사령관 장도영 중장’이라고 밝히며, “장 총장의 허가는 없었지만 상황을 기정사실화 하기 위해 부득이 하게 일방적으로 발표했다”고 말했다. 5·16을 처음 알린 궐기문은 야간 근무중이던 박종세 아나운서가 이날 새벽에 읽었다. 날이 밝아서 KBS를 다시 방문한 김 전 총리가 포고문을 강찬선 아나운서에게 읽게 한 것이다. 김 전 총리는 “국민들은 (방송 후) 장 총장이 혁명을 주도하는 것으로 받아들였다”면서 “방송 포고문의 위력”이라고 덧붙였다.강경화 후보자의 부친인 강찬선 전 아나운서는 1950~60년대의 대표 아나운서 중 한 명이었다. 그는 1947년 평양방송국 아나운서로 들어갔으나 평양방송국 분위기가 살벌해져 국립예술국장으로 옮겨 일하다 6·25를 맞아 월남해 1951년 KBS에 아나운서를 들어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그 시절 공직 한 컷] 담배까지 물고 취조중?… 철도청 직원 면접 중!

    [그 시절 공직 한 컷] 담배까지 물고 취조중?… 철도청 직원 면접 중!

    1960년 철도청에서 사무관을 선발하기 위해 구두시험을 보고 있다. 면접관 가운데 한 사람은 담배를 피우면서 대화를 나누고 있어 격세지감을 실감한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면서 일자리 정책과 맞물린 공무원 채용인원 증가로 공무원시험에 대한 관심도 폭발적으로 늘었다. 면접도 필기시험만큼 중요해지면서 5급 이상 관리자급을 선발하는 개방형직위 채용에서는 면접만으로 적합한 사람을 뽑기도 한다. 60여년 전이나 현재나 면접시험장에서 공통적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은 면접관의 날카로움과 면접 대상자의 긴장감이다. 국가기록원 제공
  • [그때의 사회면] 버스 차장과 삥땅/손성진 논설실장

    [그때의 사회면] 버스 차장과 삥땅/손성진 논설실장

    버스 차장, 즉 안내양이 있던 시절에 요금을 빼돌리는 행위를 뜻하던 은어 ‘삥땅’이 국정농단 사건에서 다시 등장했다. 이 말은 화투에서 나왔다고 한다. ‘삥’은 1, ‘땅’은 두 장이 똑같다는 뜻이니 곧 1땅(땡)으로 작은 이득을 뜻한다. 차장의 ‘장’은 한자로 ‘長’이 아니라 ‘掌’인데 ‘맡다’는 의미다.군사정권이 들어선 1961년부터 버스 차장은 남성에서 대부분 여성으로 교체됐다. 차장이 여성스럽고 존중하는 느낌을 주는 안내양으로 바뀐 것은 고속도로가 놓인 뒤 고속버스 차장을 안내양이라고 부른 데서 영향을 받은 듯하다. 가난에 찌들어서 무슨 일이든 몸이 바스러지도록 하지 않을 수 없었던 1960, 70년대 젊은 여성들이 선택한 직업이 안내양이었다. 안내양들의 생활은 어떤 직업보다도 고달팠다.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종점과 종점을 일고여덟 번은 돌아야 했다. 적은 임금 탓이 컸겠지만 ‘견물생심’이라고 현금을 만지는 안내양들의 ‘삥땅’이 본격적으로 문제가 된 것은 1960년대 말부터였다. ‘삥땅’을 막으려고 차주들은 갖은 방법을 동원했다. 종점에 도착하면 돈을 숨겼는지 확인하려고 감독들은 높이 1m의 줄을 쳐 놓고 뛰어넘을 것을 강요했다. 또 안내양들의 몸을 샅샅이 수색했다. 알몸 조사 같은 비인간적인 인권 침해도 더러 있었다. 한 달에도 대여섯 번씩 몸을 수색당하는 수모를 견디다 못한 안내양이 자살을 기도하는 사건도 생겼다. 속칭 ‘암행’이라고 불렸던 감시원이 버스에 탑승하기도 했다. 일부 안내양들이 삥땅을 한 것은 사실이었다. 월급보다 많은 요금을 빼돌리고 그 돈으로 계를 만들기도 했다고 한다. 삥땅은 어쩌면 공공연한 비밀이었고 운전사와 안내양이 짜지 않으면 불가능했다. 감독들에게 상납도 했다. 1970년 4월 28일 서울 YMCA 대강당에서는 ‘버스 여차장의 삥땅에 관한 심포지엄’이 열리기도 했다. 당시 안내양의 한 달 월급은 1만원가량 됐으나 식비를 떼고 나면 당시 월급으로도 매우 적은 4000원 정도 받았다. 삥땅으로 한 달에 2만원을 빼돌리는 일도 있었으니 사업주로서도 손실이 컸다. 삥땅 문제가 커지자 서울에서는 1977년 12월 1일 버스 토큰제를 시행했다. 그러나 완전히 막지는 못했다. 암거래돼 현금으로 바꿀 수 있었기 때문이다. 버스 토큰 60만개를 1년 동안 빼내 판 안내양 20명이 적발되기도 했다. 승하차 문을 따로 만들어 요금을 선불로 받는 자율버스제도가 도입된 것은 1982년 무렵이다. 안내양이 필요 없어진 것이다. 안내양은 그 뒤에도 일부 명맥을 유지해 왔지만 마지막으로 없어진 것은 김포에서 서울 광화문까지 운행하던 김포교통 소속 안내양 38명이 사표를 낸 1989년 4월이었다. 사진은 1963년 11월 27일 서울 어느 버스 정류장 풍경.
  • [주말 영화]

    ■가을의 전설(EBS1 토요일 밤 10시 55분) 지금은 영화계 거물이 된 브래드 피트가 ‘제2의 로버트 레드퍼드’라는 별명을 얻었던 초창기 주연작이다. 어린 시절 곰 사냥에서 목숨을 잃을 뻔하지만 이를 계기로 야성을 일깨운 트리스탄의 파란만장한 일대기를 그렸다. 트리스탄은 사랑하는 막내동생을 1차 세계대전 전쟁터에서 잃고 돌아온 뒤 동생의 연인과 사랑을 나누게 되지만 동생에 대한 죄책감과 가슴에 움튼 야성 때문에 방랑의 길을 택하게 된다. 삼형제의 아버지로 앤서니 홉킨스가, 맏형으로 에이단 퀸이, 막내로 헨리 토머스가 함께한다. 영어 제목 ‘Legend of The Fall’에서 Fall은 가을이 아닌 몰락과 추락을 의미하는데 국내 개봉 당시 ‘가을’로 오역됐다고 한다. 장대한 서사물을 곧잘 연출하는 에드워드 즈윅 감독의 작품이다. 최근에는 ‘잭 리처: 네버 고 백’을 만들었다. 1994년작. ■헬프(EBS1 일요일 오후 1시 55분) 지난해 숨막히는 미스터리 스릴러 ‘걸 온 더 트레인’을 선보였던 테이트 테일러 감독의 출세작이다. 남성 감독임에도 여성 이야기를 자주 다루는 게 특징. 이 작품은 아카데미 4개 부문 후보에 올라 옥타비아 스펜서가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 인종차별이 여전했던 1960년대 미국 남부 미시시피주를 배경으로 작가를 꿈꾸는 신출내기 기자이자 백인 여성인 스키터(에마 스톤)가 부당한 처우를 받던 흑인 가정부들을 인터뷰해 그 이야기를 책으로 묶어내는 과정을 그렸다. 2011년작.
  • 서울시 마지막 농사꾼

    서울시 마지막 농사꾼

    세계적 수준의 대도시인 서울에도 아직 농지가 남아 있다. 물론 여의도 면적(2.9㎢)의 2배가 채 안 되는 4.8㎢에 불과하지만 강서구의 논, 서초구의 분재 농원, 강남구의 특용작물밭, 중랑구의 배밭 등 다양한 농지가 힘겹게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최근 이 마지막 농지들에 대해 보존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환경보전과 생태계 보호 차원에서 농지 이상의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물론 1000만명이 사는 대도시에서 개발에 따라 농지가 사라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는 주장도 많다. 전문가들은 현 추세대로라면 10년 뒤엔 서울에서 농지가 완전히 사라질 것으로 예상했다. ‘전멸이냐 보존이냐’ 기로에 선 서울의 농지들을 둘러봤다.“한창때는 김포공항이나 오정산업단지도 전부 논이었죠. 지난 수십년간 공항을 건설한다, 도시를 개발한다 그러면서 농지를 대거 수용했고, 지금은 10집만 남아 논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우리도 곧 떠나겠지만요.” 2일 서울 강서구 오곡동의 논에서 만난 농부 유명종(79)씨는 자신이 오곡동 바로 옆인 경기 부천시 대장동에서 태어났다며 해당 지역은 150년 이상 농사를 짓던 곳이라고 설명했다. “여기가 원래 숲이었어요. 일제강점기 때인 1923년 부평수리조합이 설립된 이후 굴포천을 정비하면서 물이 확보됐고 점차 논으로 바뀌어 갔습니다. 저도 어릴 때 이곳으로 건너와 농사를 짓기 시작했는데 벌써 60년이 지났습니다.” 논은 모내기를 막 마친 상태였다. 논 위로 김포공항을 오가는 항공기가 쉼 없이 뜨고 내렸고 이 소음으로 인해 큰 소리로 말을 해야 소통이 됐다. 서울 안에서 이 땅이 유일하게 ‘논’으로 남아 있는 이유로 보였다. 유씨는 이제 농사를 그만둘 생각이라고 했다. “이웃 사람들이 하나둘씩 땅을 팔고 떠났지만 평생 살아온 고향을 등질 수 없어 남았습니다. 할 줄 아는 게 농사밖에 없어 계속했는데 이제 수익도 안 나고 힘도 달립니다.” ●개발 소식 들리면 쫓겨날까 전전긍긍 마지막 남은 농지지역에 대한 개발 소식도 들려온다. 이곳에서 농지를 임차해 35년간 농사를 지은 A씨는 “8년 전 근처에 있는 부천시 오정동에 산업단지가 들어섰는데 이제 여기에도 산업단지가 들어선다는 소문이 무성하다”며 “이미 땅값이 크게 올랐는데 땅 주인이 논을 판다고 할까 봐 걱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곳에 이모가 살아서 35년 전에 이주해 농사를 지어 왔는데, 다시 낯선 타지에 가서 텃세를 견디며 농사를 지을 생각을 하면 이주할 엄두가 안 난다”고 덧붙였다. 주거, 산업, 교통, 문화시설 등 1000만명의 인구를 위해 각종 인프라가 들어서면서 서울의 농지면적은 1975년 6922ha에서 2015년 476ha(4.76㎢)로 93.1% 줄었다. 같은 기간 전국의 농지면적은 223만 9692ha에서 167만 9032ha로 25.0% 감소했다. 서울의 농지가 가장 크게 감소한 시기는 ‘강남 개발 시대’(1975~1985년)다. 도시 개발이 본격화되면서 농지의 57%가 사라졌다. 이후 서울의 농지는 꾸준히 줄다가 ‘뉴타운 개발 시대’(2005~2014년)에 강서구, 중랑구를 중심으로 또 한번 크게 감소했다. 당시 150여개의 과수원이 있었던 중랑구는 배 주산지로 유명했는데, 지금은 20여곳만이 명맥을 잇는 상태다.●조상 대대로 농사지은 곳… 포기할 수 없어 서울의 대표적 부촌으로 알려진 강남구와 서초구에도 농지가 있다. 강남구의 농지에서는 오이, 호박 등 특용작물이 주로 재배되고 서초구의 농지는 분재 농장으로 특화돼 있다. 강남구 일원동 삼성서울병원 안에는 3000여평의 밭이 있다. 이 밭에 들어가려면 병원 장례식장 옆에 있는 철제문을 통과해야 한다. 밭 주인인 이흥표(60)씨는 “조상 대대로 이곳에서 살며 농사를 지었고, 나도 40여년간 농사를 짓고 있다”며 “농사 외에도 전국을 다니면서 조경 일을 하고 친척들이 사는 해외도 오갔지만, 한 해도 농사를 거른 적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일원동의 경우 다른 강남 지역에 비해 개발 시기가 늦었다고 설명했다. “1982년에야 개발이 시작됐는데 그전만 해도 일원동 전체가 밭이었습니다. 갑자기 도시개발공사가 일원동을 개발한다며 농지를 대거 수용했고, 대부분의 주민이 땅을 팔고 이주하거나 농사를 포기했죠.” 그는 일원동에 선산이 있어 동네를 떠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도시가 개발되면서 밭은 점차 줄었고 그 역시 농사를 줄여 가는 중이라고 했다. “30~40년 전에는 밭 1만평에서 가지, 토마토, 오이, 배추, 수박 등을 재배해 판매했습니다. 지금은 이웃들에게 나눠줄 정도로 소량만 재배합니다. 땅도 줄고 판매처도 마땅치 않아 작물을 따로 판매하지는 않죠. 그래도 삼성병원에 들른 시민들이 서울 한복판에 있는 밭이 신기하다며 농작물이 얼마냐고 물어 옵니다. 농사지어 이웃과 나눠 먹는 재미에 아직 손을 못 놓지만 몇 년 후에 체력이 안 되면 농장을 넘겨야겠죠.” 애초 농사가 목적이 아니었지만 개발제한구역이 풀리지 않아 농사를 짓는 경우도 있었다. 강남구 수서동에서 밭농사를 짓는 홍태의(84)씨는 “20년 전 수서동 일대가 개발제한구역에서 해제된다는 소문을 듣고 이곳에 집을 짓기 위해 땅을 샀다”며 “땅을 놀리기 아까워 농사를 지었는데 아직도 해제가 안 돼 20년째 농사를 짓고 있다”고 설명했다. ●10년 내 모든 농지 없어질 위기… 지원 절실 서울 농부들은 지방 농부와 달리 홀로 농사를 지어야 하기 때문에 불이익을 겪는 경우도 많다. 오곡동에서 만났던 농부 유명종씨는 지난해까지 수확한 쌀을 부천 오정농협에 판매했는데 올해부터 농협 측이 서울산(産) 쌀은 받지 않겠다고 해서 걱정이라고 말했다. 오정농협 측은 “쌀 수요가 줄면서 부천에서 수확된 쌀도 처리하기 힘든 상황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밝혔다. 유씨는 “예전엔 서울에서 재배한 쌀의 경우 운송비용이 싸서 수요도 많았지만 지방에서 쌀을 운송하는 게 쉬워지고 지방 쌀이 서울 쌀보다 더 저렴해지면서 서울 쌀은 외면받는 상황”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일원동 농부 이흥표씨는 “서울에는 농사짓는 사람이 적으니 관개시설과 같이 농사를 위한 시설이 턱없이 부족하다”며 “특히 물을 공급받기가 어려워 인근 삼성서울병원의 조경수를 끌어오기도 한다”고 말했다. 수서동의 홍태의씨는 “나를 비롯해 이곳에서 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송파농협 소속인데 워낙 인원이 적다 보니 퇴비를 주문해도 배달을 해 주지 않는다”며 “대부분 나이가 많은 농부라서 운전을 해 퇴비를 가져올 수도 없어 결국 상대적으로 비싼 사설 업체에 퇴비를 주문한다”고 말했다. 또 서울 농부들은 소규모 농지에서 농사를 짓는 임차농이 대부분이라 정부의 소득보전 대상에 해당되지 않는다. 진정규 서울연구원 안전환경연구실 연구원은 “지금 같은 추세라면 서울시내 농지의 약 30%가 수년 내에 사라지고, 10년 안에 모든 농지가 사라질 수 있다”며 “생태계 보호와 환경보전 차원에서 농지를 보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도시에는 다양한 기능이 갖춰져야 하는데 현재 서울은 주거와 산업 기능에만 치중돼 있다”며 “도시의 생산 기능을 유지하려면 농지 보전과 더불어 농업인들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 SNJ Korea 10주년…홀리스타몰 티트리 오일 이벤트 실시

    SNJ Korea 10주년…홀리스타몰 티트리 오일 이벤트 실시

    캐나다 건강기능식품 브랜드 홀리스타를 운영하는 ㈜에스엔제이코리아(SNJKorea)가 10주년을 맞아 특별한 이벤트를 마련했다. 에스엔제이코리아 관계자는 10주년을 맞이해 홀리스타몰에서 티트리 오일 50ml 구매 시 에탄올 250ml 와 건스프레이 200ml를 사은품으로 증정하며, 티트리 오일 25ml 구매 시 티트리 스프레이 60ml를 증정한다고 밝혔다. 해당 이벤트는 오는 6월 1일부터 30일까지 한 달간 진행된다. 천연 성분의 홀리스타 티트리 오일은 티트리잎에서 추출해 희석하지 않은 천연순도 100% 제품으로, 다양한 피부 고민을 위한 화장품 원료로 사용되고 있다. 뜨거운 여름 햇빛에 손상된 피부를 빠르게 진정시켜줄 뿐 아니라 항균작용이 뛰어나 여드름 피부나 비듬 억제, 무좀 예방 등에도 효과적이다. 사용방법은 간단하다. 오일을 면봉에 가볍게 묻힌 뒤 피부진정이 필요한 부위에 가볍게 두드려 주거나 세안 시 티트리 오일을 3~5방울 떨어뜨려 사용하면 된다. 피부가 건조해 고민인 경우라면 스킨이나 로션, 크림 등에 1~2방울 섞어 발라 피부관리용으로도 사용할 수 있다. 특히 지난 4월 30일 방송된 TV 조선 ‘주부 9단의 만물상’에서 다양한 티트리 사용방법에 대해 방영되면서 최근 티트리 오일이 주목받고 있다. 분무기에 티트리 오일과 소독용 에탄올을 1대 9의 비율로 섞어 가볍게 뿌려주면 살균과 소독에 효과가 있어 집먼지 진드기를 쉽게 퇴치할 수 있고, 인체에 무해한 천연의 탁월한 소독, 살균효과로 자동차 및 에어컨 냄세 제거나 욕실 청소 시에도 큰 효과를 볼 수 있다. 에스엔제이코리아는 올 여름철 필수품으로 각광받는 티트리 오일 구매 이벤트 외에도 홀리스타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등 SNS을 통해 고객들을 위한 다양한 이벤트 진행중이다. 뿐만 아니라 홀리스타몰 홈페이지 신규회원 가입자에게는 쇼핑지원 적립금을 제공하고 있으며 생일을 맞은 회원에게는 3,000원 할인쿠폰을 증정하고 있다. 또한 세트 제품을 구매한 경우에는 무료 선물 포장까지 지원하고 있다. 에스엔제이코리아 성낙주 대표이사는 “홀리스타는 캐나다 대표 건강기능식품 제조업체인 팩터스그룹의 브랜드로 60년의 유구한 전통과 그에 걸맞은 까다로운 품질관리시스템으로 높은 신뢰도를 지니고 있다”며 “에스엔제이코리아 10주년을 맞아 티트리오일을 홀리스타몰에서 저렴한 가격에 만나 보길 바란다”고 전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경매 나온 세계서 가장 작은 차 ‘필 트라이덴트’ 의 가격은?

    경매 나온 세계서 가장 작은 차 ‘필 트라이덴트’ 의 가격은?

    1960년대 애니메이션 ‘제트선’(Jetsons)의 에어로카(aerocar)와 유사한 ‘필 트라이덴트’(Peel Trident)가 경매에 나올 예정이다. 31일(현지시간) 영국 매체 ‘더 선’은 1963년 애니메이션 ‘제트선’의 첫 번째 에피소드가 끝난 2년 뒤인 1965년에 생산된 ‘필 트라이덴트’에 대해 보도했다. ‘필 트라이덴트’은 영국의 필 엔지니어링(Peel Engineering)사가 만든 길이 185cm, 폭 99cm, 무게 59.8kg, 49cc, 4.2마력 엔진의 세계에서 가장 작은 마이크로카다. 최고 시속 61km까지 달릴 수 있으며 에어로카처럼 유리 버블돔의 형태를 지녀 운전자는 타고 내릴 때 유리 버블돔을 들어 올려야 하며 후진은 할 수 없다. ‘필 트라이덴트’모델은 제작 당시 단지 45대 만이 생산됐다. 매년 모나코에서 열리는 클래식카 경매 업체 ‘알엠 소더비’(RM Sothebys)의 제이크 아우어바흐(Jake Auerbach)는 “심지어 몇 백만 불짜리 차가 자신에 차고에 주차돼 있어도 모든 것을 가진 사람에게 마이크로카는 새롭고 신기한 물건을 대표한다”며 “(필 트라이덴트는) 거의 어디든 보관 가능하게 크기가 작고 수집할 만큼 특별한 물건이며 우수한 대화 토픽이 보장될 것”이라고 전했다. ‘알엠 소더비’에 나올 ‘필 트라이덴트’의 경매 시작가는 8만 파운드(한화 1억 1460만 원)로 알려졌다. 사진·영상= RM Sothebys, Moviestore Collection / Jalopnik youtube 손진호 기자 nasturu@seoul.co.kr
  • [2017 서울미래유산 그랜드투어] 북촌, 시간의 향기… 도시는 기억으로 산다

    [2017 서울미래유산 그랜드투어] 북촌, 시간의 향기… 도시는 기억으로 산다

    서울신문이 지난 27일부터 매주 토요일 서울시 및 서울도시문화연구원 등과 함께하는 ‘2017 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를 시작했다. 미래유산이란 아직 문화재로 등록되진 않았지만 미래 세대에 물려줄 가치가 있는 유·무형의 서울 근현대 문화유산이다. 총 25회에 걸쳐 진행되는 투어는 서울미래유산 사이트에 접수한 30명의 참가자들과 함께 426개의 미래보물을 둘러보는 프로그램으로 구성했다. 참가자들은 역사책에서는 읽을 수 없지만 100년 후에는 역사책에 기록될 미래가치를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족적을 남기게 된다. 첫 테마는 ‘사방팔방’(四方八方)이다. 서울의 사대문 안을 사방으로, 사대문 밖을 팔방으로 각각 구분해 13회로 구성했으며 첫 회는 그중에서도 북촌 일대를 둘러봤다. 3일은 동촌, 10일은 서촌을 찾아간다. 참가신청은 서울미래유산(futureheritage.seoul.go.kr) 사이트에서 한다. 매주 월요일 오전 9시부터 당회차 신청을 선착순으로 받는다. 무료다.‘서울미래유산-2017 그랜드투어’의 첫 회는 북촌이다. ‘북촌에 부는 변화의 바람’이라는 주제를 통해 서울의 과거와 미래가 어떻게 교차하는지 들여다봤다. ‘호모 나랜스’(Homo Narrans)들이 모여 ‘드림 소사이어티’를 꿈꾸는 나들이다. 답사단은 지난 27일 오전 10시 집결지인 정독도서관을 출발해 김옥균 집터와 조선어학회 터를 거쳐 북촌 한옥밀집지역을 돈 뒤 만해 한용운의 유심사 터를 찾았다. 인촌 김성수 가옥과 중앙고등학교를 둘러보고 개화파 박규수의 집터였던 헌법재판소에서 ‘짧지만 긴’ 여정을 마무리했다. 2시간여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여행을 다녀왔다. 답사단의 발길이 닿은 모두 9곳의 코스 중 서울미래유산은 북촌한옥밀집지역과 김성수 가옥, 헌법재판소 등 3곳이고 사적(중앙고)과 등록문화재(정독도서관)가 2곳이며 나머지 4곳은 옛터이다. 오래된 도시, 서울의 심장부 북촌의 정체성을 실감케 한다.●호모나랜스들 모여 2시간 짧고 긴 여정 그렇다면 북촌은 어떤 곳인가. 서울을 알아야 북촌을 알고, 북촌을 알아야 북촌에서 부는 바람의 성격을 알 수 있다. 미국의 시인 랠프 월도 에머슨은 “도시는 기억으로 살아간다”라고 읊었지만 서울은 2000년 기원전의 도시, 600년 도읍지의 기억이 별반 없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통에 불타고 약탈당했으며 일제강점기에는 강제로 민족 자산을 말살당했고 한국전쟁 때 파괴됐다. 1960년대 이후 무지막지한 개발 광풍을 타고 또 한번 뭉개졌다. 역사의 향기는 흩어졌다. 한강 이남으로 영역을 확대한 서울은 사실상 한국전쟁 이후 재건된 신생 도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역사도시라고 하기엔 씁쓸한 서울 서울의 재건은 성공적일까. 서울은 역동적인 현대적 도시로 발전했지만 역사도시라고 자평하기엔 머쓱하다. 솔직하게 말해 서울이라는 도시의 정체성은 꽤 혼란스럽다. 유럽의 오래된 도시들처럼 강북 구도심을 올드타운으로 남겨두고 강남 뉴타운을 만들지 못한 게 패착이다. 발상의 전환도 없었고, 한국전쟁 이후 광적인 서울집중이 오래된 것들은 걷어내고, 나머지는 땅속에 묻는 데 정당성의 논리를 제공했다.북촌의 기원은 조선시대 한성부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성부는 ‘경조 5부’라고 하여 동부, 서부, 남부, 북부, 중부 등 5개의 행정구역으로 나눠 다스렸는데 오늘날의 자치구라고 보면 된다. 경복궁과 사대문을 축으로 해서 구분하면 북부는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이고 동부는 창덕궁과 흥인지문 사이, 서부는 경복궁에서 돈의문 사이, 남부는 숭례문에서 청계천 사이 어림이다. 중부는 청계천을 중심으로 양쪽에 형성됐다. 5부가 곧 5촌이다.청계천을 경계로 북쪽은 권문세가와 현역 벼슬아치, 그들을 모시는 아전 및 겸인 족속의 주거지였다. 청계천부터 남산 아래까지인 남촌에는 지체 낮은 관리나 퇴락한 양반, 무반들이 모여 살았다. 다동·무교동·수표동·입정동·주교동·관수동 등 중촌에는 의관, 역관, 율사, 화원, 시전상인, 군인군속이 살았다. 황현은 매천야록(1864~1887년 기록)에서 “서울의 대로인 종각 이북을 북촌이라고 부르며 노론이 살고 있고 종각 남쪽을 남촌이라고 하는데 소론 이하 삼색(소론, 남인, 북인)이 섞여 살았다”고 기록했고 황성신문 1900년 10월 9일자에는 “북촌 사람들의 말투는 매우 부드럽고 조심스러우며, 남촌 사람들의 말투는 빠르다”고 말씨에 따라 지역별 기질을 분석하는 기사를 실었다. 서울은 신분과 지위, 직업에 따라 사는 곳이 달랐다. 거주 지역에 신분과 지위, 직업의 정보가 새겨져 지역색을 형성했다. 지역색이 차별의식과 적대감, 사색당파로 이어졌다. 서울의 심장부인 북촌은 왜, 어떻게 달라졌을까. 북촌은 주거지로서 최상의 입지적 조건 때문에 조선 중기까지 왕족과 벼슬아치들이 모여 사는 집단거주지였으며 후기 들어 안동 김씨와 여흥 민씨 같은 세도가와 경화사족들이 똬리를 틀었다. 한말에는 교육과 의료의 중심지로 개화사상과 갑신정변의 발상지였으며 이후 신분 상승을 위해 상경한 신흥 지방부호와 지주, 사회지도층이 몰려들어 삼일운동을 비롯한 민족운동의 진앙지가 되었다. 그러나 외세에 의존하면서 기층 민중과는 유리된 기득권 세력의 개혁이라는 태생적 한계가 뚜렷했다. ●그래도 서울의 심장부 북촌은… 북촌에서 잉태, 발화한 삼일운동이 비록 실패로 돌아갔지만 북촌의 영향력은 줄어들지 않았다. 300만 신도를 자랑하던 천도교가 경운동 중앙대교당을 중심으로 1920~1930년대 민족운동을 주도했고 일제 패망이후 몽양 여운형의 계동 집과 건국준비위원회 사무실에서 다양한 정치실험이 시도됐다.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된 헌법재판소는 개화파 박규수와 홍영식의 집이었으며 제중원을 거쳐 경기여고와 창덕여고를 거쳐 오늘에 이르렀다. 해방 직후 당시 경기여고 강당에서 여운형과 박헌영이 전국인민대표자대회를 열어 조선인민공화국 수립이 선포된 곳이기도 하다. 역사는 돌고 돈다지만 북촌만큼 역사가 켜켜이 겹치는 곳도 흔치 않다. 글 노주석 서울도시문화연구원장 사진 김학영 연구위원
  • “집에 가고 싶어”…뇌종양 4세 아이가 남긴 마지막 말

    “집에 가고 싶어”…뇌종양 4세 아이가 남긴 마지막 말

    희소 질환을 진단받고 5일 만에 세상을 떠난 한 어린 소녀가 남긴 마지막 말은 “엄마, 집에 가고 싶어요”였던 것으로 전해져 사람들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은 30일(이하 현지시간) 지난해 8월 29일 미국 텍사스 아동병원에서 4세의 나이에 희소 뇌종양으로 숨진 제이드 브리더의 사연을 소개했다. 제이드는 사고 당시 가족과 함께 멕시코로 여행을 갔다가 넘어져 뒷머리를 조금 다쳤다. 이후 미국 텍사스주(州) 브라이언에 있는 집으로 돌아온 아이는 어머니 비키에게 사물이 두 개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리고 얼마 있어 아이의 눈은 사팔눈처럼 변했다. 이에 비키와 그녀의 남편 트로이는 아이를 데리고 응급실로 향했다. 의료진은 아이에게 CT와 MRI 검사를 했다. 그 결과, 현재 의료 수준에서 불치병으로 불리는 소아 뇌종양인 ‘산재성 내재성 뇌교종’(DIPG·diffuse intrinsic pontine glioma)이라는 진단이 나온 것이었다. 이후 제이드의 상태는 빠르게 나빠졌다. 아이는 소아 집중치료실에 입원한 지 이틀 만에 걸을 수 없고 머리를 제대로 가누지 못했으며 먹거나 말할 수도, 대소변을 볼 수도 없었다. 아이가 이렇게 변하기 전에 남긴 마지막 말은 “엄마, 집에 가고 싶어요”였다고 한다. 이후 제이드는 진단을 받은 지 불과 5일밖에 지나지 않은 그달 29일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녀는 딸이 세상을 떠난 뒤 몸과 마음을 추스르고 딸의 목숨을 빼앗은 DIPG의 치료법을 찾는 데 필요한 연구 비용을 마련하기 위한 모금 사이트 트루퍼스 엔젤 제이드(Troopers Angel Jade)를 시작했다. 비키는 제이드의 암은 의사들이 지금까지 봤던 두 번째로 공격적인 DIPG 사례였다고 말했다. 그녀는 데일리메일과의 인터뷰에서 “제이드가 DIPG를 진단받았을 때 그런 질환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렇지만 난 딸이 오래 살지 못하리라는 것은 짐작했다”면서 “딸은 모든 신체 기능과 능력을 너무 빨리 잃어가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난 왜 내 딸에게 DIPG가 생겼는지 알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또한 비키는 지난 20일 남편 트로이의 동료인 경찰관들을 초대해 그들의 딸과 함께 춤출 수 있는 자리를 마련했다. 제이드가 살아 있었다면 다섯 번째 생일을 맞는 날이었다. 비키와 트로이에게는 슬프면서도 의미있는 파티였다. 비키는 “딸 제이드는 항상 아빠와 함께 춤추는 자리에 가길 원했지만, 난 아이에게 5세가 됐을 때만 참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면서 “그때가 바로 이번 달이었다”고 말했다. 이 자리에는 제이드의 여동생인 밀라(2)도 참석했다. 밀라는 언니 대신 아빠 트로이와 함께 춤을 췄다. 이번 행사에는 약 7만 달러가 모금됐다. 하지만 비키는 이번이 마지막이 아니라고 말했다. 그녀는 “지난 60년 동안 DIPG에 관한 연구에서 진전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우리는 변화가 필요하다”면서 “난 치료법을 찾는 데 도움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한편 DIPG는 매우 공격적인 뇌 질환으로 종양이 뇌의 기저 부분에 생겨 치료하기가 매우 어렵다. 주로 4~11세 아동에게서 발병하며, 심장 박동과 호흡, 삼킴, 시력, 그리고 균형 감각을 조절하는 뇌 부분에 영향을 준다. 결국 이 종양은 환자의 운동 및 언어 능력을 제한한다. 그리고 환자는 진단 시기부터 보통 1년 더 살 수 있다. 이 말은 지난해 1월 이 병을 진단받은 아이 중에서 지금까지 살아남은 아이는 없다는 것이다. 매년 약 300명의 어린이가 DIPG를 진단받고 있다. 그리고 이 병은 성장이 빨라 증상 역시 빠르게 진행한다. 그 증상으로는 균형 감각과 걷기 능력은 물론 이중 시력과 눈꺼풀 처짐, 안구 운동 조절 불가, 시각 흐림 등의 시력 문제가 있으며 안면 마비나 메스꺼움, 또는 식이 문제도 발생한다. 사진=비키 브리더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이사람 e향기] “세종기지 30주년, 이젠 극지실용화 전략이다”

    [이사람 e향기] “세종기지 30주년, 이젠 극지실용화 전략이다”

    ‘정직이 힘이다’. 이는 윤호일(56) 소장이 실패를 통해 온몸의 세포로 체득한 인생철학이자, 삶의 좌우명이다. 인생을 살다 보면 누구나 피치 못할 사정에 처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때 사람은 잘못을 인정해 수용하느냐, 아니면 부정해 회피하느냐의 두 갈래 길을 만나게 된다. 그러면 보통 사람은 지위와 논리로 자신의 책임을 면피하려고 한다. 그 렇지만 이것은 정직이 아니다. 제3자의 입장에서 누가 봐도 ‘내 잘못이다’고 지적받았을 때 이를 인정하고 수용할 수 있는 ‘용기’가 정직이다. 이 같은 윤 소장의 인생 철학은 2003년 15명의 대원과 함께 세종기지 대장으로 남극을 찾았을 때의 쓰라린 아픔이 만들어 준 교훈에서 비롯됐다. 사람이 혹한의 폐쇄 환경에 놓여 살면 인간 본성의 밑바닥이 드러난다. 바로 그때 균형을 잡아주는 힘이 정직이다. 그래서 정직은 공평보다 공정해야 한다는 것이 윤 소장의 지론이다. ‘세종기지 30주년, 이제는 극지실용화 전략이다’. 우리나라 극지과학은 내년 2월 17일이면 30주년을 맞이한다. 성년을 지나 중년을 향해 나가고 있다. 인생에서 중년은 도전과 성취이다. 윤 소장이 ‘극지실용화 전략’을 슬로건으로 내세운 데는 ‘남극에서 북극으로 30년’, 도전 그 다음의 비전을 성취하기 위함이다. 그래서 극지실용화 전략은 천연자원 개발 등 미래자원 확보와 에너지 안보를 목표로 한다. 기후변화와 같은 글로벌 이슈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함도 담고 있다. 극지 생물 유전체와 대사체의 특성을 규명하기 위한 연구도 물론이다. 모두 극지연구를 한 단계 더 높이 성장시키기 위함이다. 최근 캐나다와 함께 쇄빙선 아라온호를 이용해 벌이는 ‘북극해 캐나다 연안 수역에 담겨 있는 자원에 대한 기초조사’ 활동이 대표적이다. 2년째 진행되면서 R&D(연구·개발)로 발전하고 있다. 두 번째가 ‘북극해 루트’ 개척이다. 북극해 공해상으로 나가는 루트다. ‘북극해 탈러시아 전략’인 셈이다. 제2 쇄빙선이 필요한 이유다. 닻은 이미 올려졌다. 미래 후손들에게 활동무대를 넓혀주는 영토확장, 그 웅장한 고동소리가 양극해를 진동시키고 있다. 특히 남극에서 북극으로 나가는 최근 추세에 맞춰 북극해 공략을 위한 제2, 제3의 쇄빙선 위로 태극기 휘날리는 미래는 밝다. 편집자 주“극지연구, 후손에 물려줄 과학유산” 얼음 덮인 북극 바다가 녹고 있다. 온난화로 지구 해수면이 높아지고 있다. 이상 한파가 몰아치기도 한다. 극지가 9~11년 전부터 인류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 “인류의 미래가 극지 연구에 달렸다”는 윤 소장의 주장이 웅변인 이유다. 극지는 그래서 “우리의 미래를 좌우할 장소”이고 “미래를 현실로 앞당기는 견인력”이며 “미래 후손에 물려줄 우리의 소중한 과학유산”이다. 여기에 극지 과학인들의 희생과 피땀이 스며있음은 물론이다. 1988년 우리나라는 처음으로 남극에 세종과학기지를 건설하며 극지 연구의 첫발을 내디뎠다. 그해 1차 월동대원을 시작으로 29년 동안 매년 마다 월동대원들이 남극을 찾았다. 윤 소장은 1991년부터 1년 대장을 포함해 짧게는 3개월, 길게는 1년씩 25년 동안 혹한의 남극을 오갔다. 월동대원들은 1년이라는 기간 동안 문명 세계와 철저히 단절된 채 연평균 온도가 영하 23도, 여름 기온은 0~5도지만 겨울엔 영하 40도의 혹한을 견뎌야 한다. 남극은 특히 얼음사막이라고 부른다. 그렇다 보니 3차 남극 장보고과학기지 월동대원까지 더하면 100여명이 넘는 극지인들이 대한민국 극지과학연구에 헌신과 희생의 피땀을 받쳐왔다. 윤 소장이 “극지인들의 피땀”을 강조하는 것은 자기애적 동료애를 넘어선 진심 어린 존경을 에둘러 표현한 언어목록이다. 혹한의 폐쇄공간인 극지 생활을 잘도 견디어 온 극지인들에 대한 무한사랑의 표현이다. 말하자면 불립문자(不立文字)인 셈이다. 눈물 젖은 빵을 함께 나눈 사이, 그 이상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30년 세월, 한 세대를 말이다. ‘눈물샘 마른 극지인, 윤호일’ 윤 소장의 눈물샘은 말랐다. 울고 울지만 눈물은 흐르지 않는다. 부하의 얼어붙은 시신을 마주한 사건 때문이다. 윤 소장의 가슴 깊은 곳에는 그래서 ‘영원한 영웅, 고(故) 전재규 대원’이 함께 산다. 그때가 국민이 기억하는 바로 ‘2003년 남극 세종기지 실종사건’이다. 윤 소장이 당시 대장의 책임을 맡아 고(故) 전재규 대원을 포함해 15명의 대원과 함께 남극에 도착한 지 10여일 만의 참사였다. 윤 소장은 또 짝발이다. 오른발이 왼발보다 짧아서다. 1993년 남극 월동대원으로 1년을 머물면서 당한 사고가 원인이다. 연구활동 중 얼음에 깔려 허리를 다쳤지만, 어찌 치료해 볼 도리가 없었다. 귀국해 요추 3개를 철심으로 교체하는 수술로 몸을 다시 세울 수 있게 된 것이 천운으로 다행이었다. 하지만, 발에는 그 흔적을 남겼다. 그 후유증으로 윤 소장은 오른쪽 눈가와 입꼬리 떨림을 안고 산다. 분명 윤 소장은 극지과학 재해 장애인이지만, 장애인 등록은 하지 않았다. 과학자의 운명으로 받아들인 때문이다.“제2 쇄빙선은 미래 성장동력” 윤 소장은 오는 8월이면 제5대 극지연구소 소장으로 취임한 지 1년이 된다. 1986년 한국해양연구소에 입소한 윤 소장은 지난 30년 동안 극지연구소, 한국극지연구의 눈부신 성장과 함께했다. 그렇다 보니 윤 소장은 “극지연구는 이제 질적 성장을 해야 할 시점”이라며 “극지실용화 전략을 통해 새로운 사회적 가치창출로써 국민의 성원에 화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 소장이 취임 후 “국민이 공감하는 사회문제해결형 사업단을 구성”한 이유다. 또 전통적인 학문분야별 연구와 별도로 “임무(이슈) 중심형 사업단을 운영”하는 배경이다. 윤 소장은 이를 위해 북극해빙예측사업단, 해수면 변동 예측사업단, 극지 유전체 사업단, K-루트 사업단을 신설했다. ▲글로벌 기후변화에 대한 남극의 역할 규명 ▲콜드러시 시대를 주도하는 전략적 북극진출 발판 마련 ▲미답지 도전과 극지자원 활용기술을 바탕으로 한 미래가치창출이라는 3대 연구전략목표를 위해서다. 이에 따라 윤 소장은 “극지연구는 범부처 정책 사업으로 확대돼야 한다”며 “극지활동진흥법 제정과 제2 쇄빙연구선 건조”를 주문했다. 북극권 진출이 목표다.“북극권도 대한민국이 관할할 또 하나의 영역” 윤 소장에 따르면 현재 일본 정부는 한국과 같은 비 북극권 국가이면서도 일본 홋카이도를 중심으로 ‘북극해가 남의 땅이 아니다’는 논리로 일본국민을 설득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다. 일본 정부는 아예 선단을 구성해 북극해 러시아 연안에서 나오는 LNG가스와 유전자원을 일본열도에 공급한다는 ‘에너지 안보개념’을 운용하고 있다. 내친김에 러시아산 LNG가스와 원유를 북극해 항로를 이용해 유럽까지 운송하는 역할을 독점하겠다는 전략까지 구사하고 있다. 또 일본은 북극에서 일어나는 미국과 러시아 간의 냉전에도 대비하고 있다. 인공위성을 이용해 북극해에서 일어나는 모든 자연현상, 재해, 선박이동, 유전활동에 대한 고급정보를 촘촘히 수집해 관리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물론 항공우주연구원이 중심이 돼서 인공위성이 있지만 개수와 질, 궤도의 문제를 안고 있다. 그렇다 보니 윤 소장은 “10대 강국인 대한민국도 북극권이 우리가 관할해야 하는 하나의 영역이란 원칙이 필요하다”며 “북극권이 이후 분쟁지역이 됐을 때 우리 몫을 차지할 영역이라는 관점에서 정부는 극지정책을 좀 더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제5대 극지연구소 소장으로 취임한 지 오는 8월이면 1년이 된다. 그간의 소회는. -취임 후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일정을 소화하며 열심히 달려왔다. 극지연구의 질적 성장과 극지인력 양성을 목표로 기존 연구 과제를 전면적으로 개편했다. 신성장 동력을 창출할 수 있는 새로운 과제 발굴에 힘써왔다. 당장 눈앞을 위한 선택이 아니라 10년, 20년 앞을 바라볼 수 있는 혜안을 가지고 경영에 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극지연구소를 간략히 소개한다면. -1987년 작은 연구실에서 시작, 2004년 부설화를 거쳐 올해 개소 13주년을 맞이했다. 1988년 남극 세종과학기지 준공 이래 본격적인 극지연구에 착수, 현재 남극과 북극에 3개 과학기지를 건설하고 아라온호를 건조해 활발한 연구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또한 극지활동에 대한 국가적 비전과 정책 방향을 제시하는 남극연구활동 진흥기본계획, 북극정책 기본계획, 극지활동진흥법 등 국가 극지정책의 전략적 수립과 추진을 지원하고 있다. →한국극지연구 발전의 중심에 극지연구소가 있다. 어떤 연구인가. -극지연구는 기초과학연구다. 인류의 탄생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지구 과거 역사부터 미래자원 확보의 열쇠를 쥐고 있는 중요한 분야이다. 기후변화와 같은 글로벌 이슈 대응에 있어 극지연구의 중요성이 날로 커지고 있다. 얼음으로 덮여있던 북극 바다가 녹으면서 북극의 막대한 천연자원 개발 가능성에 전 세계가 주목하고 더불어 북극의 지정학적 의미와 안보가 중요한 현안이 되고 있다. 특히, 아라온호 탐사를 통해 동시베리아해에서 처음으로 가스하이드레이트를 발견하고 향후 북극 해저자원과 북극항로 개발이 이루어질 북극 지역의 해저 자원 환경을 파악할 수 있는 기초 자료 획득하는 등 미래 에너지자원 확보에 기여할 발판을 마련하고 있다. 또한 극지 실용화연구 중장기 전략의 수립을 통해 극지생물 유전체 및 대사체 특성 규명과 이를 통한 극지 유용 자원발굴 등을 추진하고 있다.→신정부 국정과제와 연계해 어떤 기여가 예상되는가. -사회 문제해결형 연구체제 수립으로 글로벌 이슈에 대응하고 극지연구의 미래 신성장동력 발굴을 기관 전략 목표 중 하나로 삼고 있는 만큼 정부의 실용적 극지 정책 수립·추진과 국가 이익, 일자리 창출에 적극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산·연 극지공동연구프로그램(PIP) 등을 통해 극지연구에 필요한 장비·로봇 및 관련 융·복합 기술개발을 활성화, 사업화를 촉진하고 극지유전체 및 대사체 활용기술 개발을 산업계와 연계하는 실용화 전략을 통해 새로운 사회적 가치창출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극지연구소뿐만 아니라 과학기술계가 4차 산업혁명의 주역으로 새로운 사회적 가치창출의 주역이 되길 희망한다. →앞으로의 포부와 목표가 있다면 -내년 2월 17일이면 우리나라의 첫 남극 진출의 상징인 세종과학기지가 준공된 지 30주년이 되는 해이다. 세종기지는 현재 노후된 인프라 개선 및 대규모 증축공사를 하고 있다. 공사가 마무리되면 세종기지는 기후변화 연구와 국제협력의 중심으로 부상할 것이다. 또 남극 반대편에서는 남극 내륙으로 독자적으로 진출하는 ‘코리안 루트’ 프로젝트 등 새로운 연구영역을 개척해 나갈 것이다. 극지연구는 이제 질적 성장을 해야 할 시점이다. 극지 연구가 한 단계 더 성장할 수 있도록 극지활동진흥법 제정과 제2 쇄빙연구선 건조 등 주요 과제들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극지연구는 해양과학, 지질학, 생명과학, 기후학 등 다학제적 학문 분야의 협력 및 국제적 협력이 필수적이다. 앞으로의 10년은 타 분야, 타 연구 기관과 협업 체계를 이루어나가는 그랜드 컨소시엄 형태로 극지 연구 사업이 진행돼야 한다. 극지연구소가 그 중심 기능을 충실히 수행하며 극지연구 외연 확대에도 힘쓰겠다. 서원호 객원기자 guil@seoul.co.kr 윤호일 소장은 현재 한국해양연구원 부설 극지연구소 소장 2015년 한국해양연구원 부설 극지연구소 부소장 2014년 한국해양연구원 부설 극지연구소 선임연구본부장 2013년 한국해양연구원 부설 극지연구소 기후변화연구부 부장 2003년 제17차 남극세종과학기지 월동연구대 대장 1995년 인하대학교 대학원 해양지질학 박사 1986년 한국해양연구소 입소 1960년 12월 12일 출생
  • 1980년대 파나마 독재자 노리에가 사망

    1980년대 파나마에서 독재자로 군림하던 마누엘 안토니오 노리에가가 사망했다고 AFP통신 등이 30일 전했다. 파나마 정부 관계자는 노리에가가 뇌종양 수술을 받은 뒤 병원에서 회복하던 중 지난 29일 83세의 나이로 숨을 거뒀다고 밝혔다. 노리에가는 1983년 집권했다가 1989년 미국의 침공으로 권좌에서 축출된 뒤 오랜 시간 감방에서 지냈다. 그는 미국 마이애미로 이송된 뒤 마약 거래, 돈세탁 등의 혐의가 유죄로 인정돼 20년간 복역했다. 이후 프랑스로 인도돼 마약 카르텔 자금을 세탁해 준 혐의로 6년형을 선고받고 2년여를 복역하다가 2011년 12월 본국으로 추방됐다. 그는 파나마 법원의 궐석재판에서 살인과 횡령, 부패 등의 혐의로 60년의 징역형을 선고받고 엘 레나세르 교도소에서 복역했다. 그는 지난 3월 수도 파나마시티에 있는 산토 토마스 병원에서 양성 뇌종양 수술을 받은 후 출혈로 상태가 위중해지자 긴급 수술을 받았다. 김미경 기자 chaplin7@seoul.co.kr
  • 해양수산부 김영춘, 개혁성향 ‘86그룹’… “세월호 진상 규명에 최선”

    해양수산부 김영춘, 개혁성향 ‘86그룹’… “세월호 진상 규명에 최선”

    문재인 정부 초대 해양수산부 장관으로 지명된 김영춘 의원은 부드러운 스타일의 3선 국회의원(부산진구갑)으로 정치권 ‘86그룹’(80년대 학번·60년대생)의 핵심 중 한 명이다. 문재인 대선 캠프에서 농림해양정책위원장을 맡으며 일찌감치 해수부 장관 후보로 부각됐다.전두환 정권 때 고려대 총학생회장으로서 민주화 운동을 주도했던 김 후보자는 1987년 김영삼 전 대통령(당시 통일민주당 총재)의 비서로 정계에 입문했다. 서울 지역구(광진구갑)에서 재선을 한 뒤 야인 시절을 거쳐 고향인 부산에서 3선 고지에 올랐다. 초선 때 한나라당 의원으로서 국가보안법 개정을 주장했고 2003년 김부겸 의원 등과 한나라당을 탈당한 뒤 열린우리당 창당을 주도했다. 2007년 대선 때 창조한국당에 입당했지만, 2010년 민주당에 복당했다. 2014년 부산시장 선거에서 새정치민주연합 후보로 선출되기도 했으나 무소속 오거돈 후보와 단일화를 하면서 양보했다. 이번 20대 국회에서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세월호와 한진해운 사태 등 굵직굵직한 현안들을 다뤘다. 지역구가 부산인 만큼 해운·항만·수산업에 대한 이해도와 전문성이 높다는 평이다. 지난 3월 국회에서 부산해운거래소 신설을 담은 해운법 개정안이 통과됐는데, 법안을 김 후보자가 대표 발의했다. 김 후보자는 30일 “해운, 수산 모두 어려운 시기에 장관에 내정돼 기쁨보다 책임감이 앞선다”며 “위기에 처한 해운·항만·수산업을 재건하고 지속가능한 해양 자원의 이용과 보전, 해양 국가들과의 협력 강화를 통해 해양 강국을 실현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세월호 수습의 마무리와 진상 규명에도 만전을 기하겠다”고 덧붙였다. ▲부산(55) ▲부산동고 ▲고려대 영문학과 ▲고려대 총학생회장 ▲16·17·20대 국회의원 ▲통일민주당 총재비서 ▲한나라당 대외협력위원장 ▲열린우리당 최고위원·사무총장 ▲민주당 최고위원 ▲민주당 부산시당 위원장 세종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의원 4명’ 장관 발탁… 인사 암초 정면 돌파

    ‘의원 4명’ 장관 발탁… 인사 암초 정면 돌파

    행자 김부겸·문체 도종환 국토 김현미·해수 김영춘 ‘5대 비리 관련자 고위공직 배제 원칙’ 위반 논란에 봉착했던 문재인 대통령이 30일 더불어민주당 소속 의원 4명을 한 묶음으로 장관 후보자로 지명했다.지난 21일 김동연 경제부총리 후보자와 강경화 외교부 장관 후보자를 지명한 뒤 중단됐던 ‘조각’(組閣)을 9일 만에 재개한 것이다. 이낙연 국무총리 후보자 등의 위장전입 논란에 대해 전날 “양해해 달라”고 밝힌 데 이어 내각 인선을 서둘러 취임 후 처음 만난 ‘암초’를 정면 돌파하겠다는 의도다.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은 춘추관 브리핑에서 문 대통령이 행정자치부 장관 후보자로 김부겸(59) 의원,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로 도종환(63) 의원,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로 김현미(55) 의원, 해양수산부 장관 후보자로 김영춘(55) 의원을 지명했다고 발표했다. 경북 상주 출신인 김 행자부 장관 후보자는 대구의 4선 의원으로, 국민통합 메시지는 물론 대구·경북(TK) 출신 진보 진영 정치인을 키운다는 의미에서 중용될 것이란 관측이 우세했다. 박 대변인은 “기득권을 포기하면서까지 사회개혁과 지역주의 타파, 국민통합에 헌신했다”며 “지방분권, 균형발전, 국민통합 목표를 실현할 적임자”라고 말했다. 충북 청주 출신 재선인 도 후보자는 4·13총선 당시 노영민 전 의원의 지역구에서 재선에 성공한 ‘친문’(친문재인) 인사로 분류된다. 시집 ‘접시꽃 당신’으로 유명하며 19대 대선에서 선거대책위원회 문화예술정책위원장을 맡아 문체부 장관 0순위로 거론됐다. 박 대변인은 “문화적 통찰력과 의정 경험이 시급한 숙제가 많은 문체부 장관직에 적합하다는 판단”이라고 설명했다. 전북 정읍 출신인 김 국토부 장관 후보자는 ‘남초’ 현상이 유독 심한 국토부의 첫 번째 여성 수장을 예약했다. 지난해에는 ‘유리천장’을 깨고 첫 여성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장을 역임한 바 있다. 다른 후보자들이 하마평에 오르내린 것과 달리 그는 국토부와 ‘연결’되지 않았으며 관련 상임위원회 경험이 없어 파격으로 받아들여진다. 김 해수부 장관 후보자는 고려대 총학생회장 출신으로, 86그룹(80년대 학번·60년대 출생)의 맏형이다. 2003년 김부겸 의원과 한나라당을 탈당해 ‘독수리 5형제’라는 별명을 얻었고, 당내에선 비주류로 꼽힌다. 부산 출신 3선으로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박 대변인은 “위기의 해운 산업을 살리고 세월호 진상 규명 등을 해결할 최고 적임자”라고 밝혔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신중현 THE ORIGIN 헌정 앨범 “젊은이들의 음악성 엄청나”

    신중현 THE ORIGIN 헌정 앨범 “젊은이들의 음악성 엄청나”

    ‘록의 전설’ 신중현(79)의 헌정 앨범 ‘THE ORIGIN(디 오리진)’이 발매를 앞두고 있다. 신중현은 29일 오전 11시 서울 마포구 신정동 CJ아지트광흥창에서 열린 ‘튠업’ 헌정 앨범 ‘신중현 THE ORIGIN’ 발매 기자회견에 참석했다. 이날 행사는 CJ문화재단 대중음악 지원 프로그램인 튠업의 젊은 뮤지션들이 신중현에게 1974년 밴드 ‘신중현과 엽전들’ 1집을 재해석한 앨범을 헌정하는 자리였다. 신중현은 “지금 한국이 정책이 잘못돼 블랙리스트 등 여러 가지 일이 있는데 (후배들을 보면서) 이 시대의 바람직한 분위기가 형성될 것으로 생각한다”며 “헌정 앨범을 듣고 깜짝 놀란 것은 젊은이들의 음악성이 엄청나다는 것이다. 후배들이 노래의 기본 틀을 무너뜨리지 않고 각자의 음악성을 펼쳤다”고 칭찬했다. ‘신중현 THE ORIGIN’에는 정원영과 이이언이 각각 총괄 디렉터와 프로듀서로 참여했으며 ABTB가 ‘생각해’, 아시안체어샷이 ‘그 누가 있었나봐’, 블루파프리카가 ‘긴긴 밤’, 박소유가 ‘설레임’ 등을 각자의 색깔로 수록했다.타이틀곡 ‘미인’은 여러 가수가 함께 연주하고 불렀다. 역동적인 바이올린 선율로 시작해 3명의 드러머, 6명의 기타리스트, 모든 보컬의 합창으로 구성해 웅장한 사운드를 구현했다. 이 곡에는 튠업 뮤지션 외에도 신대철, 장기하, 크라잉넛의 박윤식 등이 참여했다. 신중현은 60년간 에너지를 갖고 음악 하는 원천에 대해 “난 아는 게 음악밖에 없다 보니 음악에 열중할 수밖에 없었다”며 “음악으로 인생을 보낸 건 내 운명이다. 하늘이 준 천직인 것 같아 최선을 다했다. 지금까지도 음악을 떠나선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신중현 THE ORIGIN’에 수록된 11곡은 순차적으로 공개된다. 오는 31일 3곡이 파트1, 6월 7일 3곡이 파트2로 음원사이트에 공개된 뒤 6월 14일 앨범이 출시된다. 6월 24일에는 CJ아지트광흥창에서 앨범 발매 기념 공연이 열린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날 잡아줘요”…스스로 솟구쳐 낚싯배 올라온 백상아리

    “날 잡아줘요”…스스로 솟구쳐 낚싯배 올라온 백상아리

    거대한 백상아리가 작은 낚싯배 위로 솟구쳐 올라온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지난 29일(이하 현지시간) 호주 ABC뉴스 등 현지언론은 뉴사우스웨일스(NSW)주 에반스헤드 인근 해상에서 잡힌 상어 소식을 일제히 전했다. 믿기 힘든 상어 소동은 지난 27일 오후 바다 위에 둥둥 떠있던 작은 보트 위에서 벌어졌다. 이날 노년의 낚싯꾼 테리 셀우드(73)는 평소처럼 낚싯줄을 바다에 드리우고 한가롭게 낚싯대 끝을 바라보고 있었다. 놀라운 사건이 벌어진 것은 바로 이때. 갑자기 수면 위로 거대한 백상아리 한 마리가 솟구쳐 올라 그대로 보트 위에 떨어진 것. 이 과정에서 노인은 상어의 지느러미와 부딪쳐 그대로 바닥에 넘어졌으며 팔과 무릎 등에 상처를 입었다. 더욱 황당한 것은 순간적으로 노인과 상어가 서로 눈이 마주치며 잠시 정적이 흘렀다는 사실. 셀우드는 "상어가 나를 노려봤고 나도 지지 않고 상어를 노려봤다"면서 "이후 상어가 춤추듯 몸을 격렬하게 움직여 보트가 심하게 요동쳤다"며 놀라워했다. 그러나 상어가 바다에서나 포식자일 뿐 육상에서는 한 마리 생선일 뿐이었다. 결국 보트 위에 있던 밧줄과 양동이, 낚시도구 등으로 무장한 노인에게 제압됐기 때문. 보도에 따르면 희한한 최후를 맞은 백상아리는 길이 2.7m, 몸무게 200kg으로 측정됐다. 셀우드는 "낚시인생 60년 만에 난생 처음 겪는 일"이라면서 "다음에는 악어와 레슬링을 한 일이 벌어질 지도 모르겠다"며 웃었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해수부 장관’ 김영춘은 누구? “YS 비서로 정계 입문”

    ‘해수부 장관’ 김영춘은 누구? “YS 비서로 정계 입문”

    문재인 정부의 초대 해양수산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김영춘 의원은 개혁성향의 86(80년대 학번·60년대생) 그룹 정치인이다.서울 광진갑 지역구에서 재선을 지낸 뒤 ‘야인’ 시절을 거쳐 지역주의 타파를 외치며 고향인 부산에서 3선 고지에 올랐다. 김 후보자는 고려대 총학생회장 출신이다. 1987년 고(故)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통일민주당 총재 시절 비서로 정계에 입문해 16대 총선에서 한나라당 소속으로 여의도에 진출했다. 김덕룡 전 한나라당 원내대표를 통해 1987년 YS가 이끄는 통일민주당 총재 비서실 비서로 일찌감치 정치권에 발을 들였다. 이후 김 전 대통령의 ‘셋째 아들’로 불리며 청와대 정무비서관까지 지냈다. 초선 시절 국가보안법 개정을 주장했고, 2002년 대선을 앞두고는 미래연대 소속의원들과 집단지도체제 도입을 주장하며 정풍 운동을 벌였다. 2003년 김부겸 의원 등과 한나라당을 탈당하며 ‘독수리 5형제’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후 열린우리당 창당을 주도했지만 줄곧 비노(非盧) 인사로 분류된 바 있다. 2007년 대선 때는 창조한국당에 입당, 문국현 후보를 지원했다가 당 운영방식을 문제 삼아 탈당했다. 2010년 민주당으로 복당, 19대 총선에서 부산진갑에 출마했지만 낙선했다. 20대 국회에서는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장을 맡으며 전통적으로 농어촌 출신이 위원장이 되는 관례를 깼다. 2015년부터 민주당 부산시당위원장을 지냈으며 비대위원으로도 활동했다. 이번 대선에서는 ‘문재인 캠프’에서 농림해양정책위원장을 맡았다. 부인 심연옥(53)씨와 1남. ▲부산(55) ▲고려대 총학생회장 ▲통일민주당 총재비서 ▲청와대 정무비서관 ▲한나라당 대외협력위원장 ▲열린우리당 최고위원·사무총장 ▲민주당 최고위원 ▲ 민주통합당 영남미래위원장 ▲더불어민주당 부산시당 위원장 ▲16·17·20대 의원 ▲ 국회 농해수위원장 ▲ 문재인 대선후보 선대위 농림해양정책위원장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3·1운동 알린 테일러 집 ‘딜쿠샤’ 문화재 된다

    3·1운동 알린 테일러 집 ‘딜쿠샤’ 문화재 된다

    3·1 운동과 제암리 사건 등을 세계에 알린 미국 AP통신 특파원 앨버트 테일러(1875∼1948)가 서울 종로구 행촌동에 세운 ‘딜쿠샤’가 등록문화재가 된다. 문화재청은 테일러가 1923년에 지어 1942년 일제의 협박으로 추방될 때까지 20여년간 살았던 건물 딜쿠샤를 문화재로 등록 예고했다고 29일 밝혔다. 힌디어로 ‘이상향’, ‘희망의 궁전’을 뜻하는 딜쿠샤는 붉은 벽돌로 지은 지하 1층, 지상 2층짜리 서양식 저택(연면적 624㎡)이다.딜쿠샤는 테일러가 죽은 뒤 한동안 비어 있었다가 한국전쟁이 끝난 뒤 피란민들이 모여 사는 쉼터가 됐다. 1960년대 국유화된 뒤에도 지난해까지 10여 가구가 살았으나 현재는 무단 점유 문제가 거의 해결된 상태다. 문화재청은 2016년 2월 기획재정부, 서울시, 종로구와 함께 딜쿠샤를 원형대로 복원하고 2019년 전면 개방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문화재청은 이날 경기도청사 구관, 경기도지사 구 관사, 김 골룸바와 아녜스 자매(석고상)도 문화재로 등록 예고했다. 경기도청사 구관과 경기도지사 구 관사는 1963년 경기도청을 서울에서 수원으로 이전하면서 지었던 건물이다. 김 골룸바와 아녜스 자매(석고상)는 1839년 기해박해 때 순교한 김효임(골룸바)·김효주(아녜스)의 모습을 담은 작품으로, 한국 현대 조각의 1세대 작가인 김세중의 1950년대 대표작이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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