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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0년전 아이 2명 강간한 86세 男, ‘고령’ 이유로 실형 면했다

    60년전 아이 2명 강간한 86세 男, ‘고령’ 이유로 실형 면했다

    60여 년 전 미성년자 2명을 성폭행 한 80대 남성이 구금형을 면했다. 나이가 많고 질병이 있다는 이유에서다. 영국 메트로 등 해외 언론의 25일 보도에 따르면 아일랜드 카운티 카반에 사는 존 조 키에르낸(86)은 60여 년 전인 1950년대 후반부터 1960년대 초반까지 자신이 일하던 농장 인근에 살던 4~5세 남매를 수년에 걸쳐 여러 차례 성폭행했다. 그는 남매의 부모가 일하러 간 사이에 주로 범행을 저질렀고, 성폭행 사실을 털어놓으면 살해하겠다는 협박으로 어린 남매의 입을 막았다. 60대가 된 남매는 오랜 시간 상처를 안고 살다가, 지난해가 되어서야 키에르낸을 성폭행범으로 고소했다. 남매 중 한 명은 현지 언론과 한 인터뷰에서 “당시를 떠올리는 것이 두려워 그저 평범한 삶을 살고자 했다”면서 “아내에게 과거의 사건을 털어놓는 것이 무서웠지만, 이제는 당시 일이 내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다”며 뒤늦게 성폭행 사실을 털어놓은 이유를 밝혔다. 1963~1973년 3명의 아이들을 성추행 한 혐의로 2005년 징역형을 선고 받은 전과가 있던 그는 60여 년 전에 벌인 자신의 또 다른 범죄에 대해 일부 부인했다. 키에르낸은 “아이들에게 손을 댄 것은 인정하지만 추행과 성폭행은 아니었다”면서 “당시 머리로는 (아이들에게 손을 대는 것이) 옳지 않다는 것을 알았지만 어떻게 멈춰야 할지 몰랐었다”고 해명했다. 최근 열린 재판에서 더블린 법원은 그의 혐의를 유죄로 인정했지만 실형이 아닌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심장질환과 폐색성 폐질환 및 당뇨병 등 만성 질환을 앓고 있는데다 고령이기 때문에 구금형이 적합하지 않으며, 법원의 기능은 가해자에 대한 복수가 아닌, 사회를 보호하고 피해자와 사회 복귀에 관심을 두는 것이라는게 그 이유였다. 이와 관련해 피해자 측은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송현서 기자 huimin0217@seoul.co.kr
  • 400억 전 재산 기부하는 자수성가 부부

    400억 전 재산 기부하는 자수성가 부부

    과일 장사로 시작해 임대업 등으로 400억원을 모은 자수성가 부부가 고려대에 전 재산을 기부한다.25일 고려대에서는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동 주민 김영석(왼쪽·91)·양영애(오른쪽·83)씨 부부의 기부식이 열렸다. 부부는 이날 시가 200억원 상당의 청량리 소재 토지 5필지, 건물 4동을 기부했다. 이어 남은 200억원 상당의 토지 6필지, 건물 4동의 재산도 마저 기부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강원 평강군 출신 실향민인 김씨는 월남 이후 양평에서 머슴살이를 하다 6·25 전쟁 때 국군으로 참전한 국가유공자다. 전쟁 이후 경북 상주에서 상경한 양씨를 만나 결혼한 후 함께 장사를 시작했다. 부부는 1960년대 초 종로5가에서 리어카로 노점 과일 장사를 시작해 한 푼 두 푼 돈을 모았다. 이후 1976년 청량리 상가 건물을 사들인 것을 시작으로 과일 장사로 모은 돈으로 인근 건물을 하나씩 샀다. 특히 임대료를 될 수 있으면 올리지 않는다는 방침으로 건물을 운영했다. 부부는 “인촌 김성수 선생이 거액의 사재를 털어 안암동에 고대 부지를 마련하고 학교를 경영하면서 인재를 키워냈다는 이야기를 듣고 육영사업에 재산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고 전했다. 또한 “두 아들은 이미 미국에서 자리잡고 있어 좋은 곳에 써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양씨는 “나같이 초등학교도 나오지 못한 사람이 학교에 기부할 수 있어 기쁘다”면서 “어려운 학생들이 공부하는 데 힘이 되길 바란다”고 소감을 전했다. 이하영 기자 hiyoung@seoul.co.kr
  • [2018 서울미래유산 그랜드 투어] 월드컵 4강처럼 환경재생 신화… ‘쓰레기산’에 자연이 돌아왔다

    [2018 서울미래유산 그랜드 투어] 월드컵 4강처럼 환경재생 신화… ‘쓰레기산’에 자연이 돌아왔다

    서울신문이 서울시, 사단법인 서울도시문화연구원과 함께하는 ‘2018 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 제25회 상암동(문화비축기지) 편이 지난 20일 마포구 상암동 월드컵경기장과 문화비축기지 일대에서 진행됐다. 서울미래유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난초와 지초가 지천으로 피고 지던 난지 모래섬에서 두 개의 쓰레기 산으로 버려졌다가 또다시 하늘공원과 노을공원이라는 생태공원으로 기적처럼 돌아온 상암동의 변신을 온몸으로 실감했다. 하늘공원은 분홍색 억새가 춤을 추는 천국이었다.이날 코스의 하이라이트는 서울월드컵경기장 내부 관람과 문화비축기지 톺아보기였다. 오전 10시 지하철 6호선 월드컵경기장역 2번 출구에서 집결한 투어단은 서울월드컵 축구전용 경기장에 들어가서 경기장 내부는 물론 선수대기실, 감독실, 워밍업실까지 찬찬히 둘러봤다. 운 좋게 홈구단 서울FC의 경기가 없어서 입장이 가능했다. 대부분 경기장 입장은 처음이라고 했다. 월드컵 4강 신화를 일군 히딩크 감독과 선수들의 땀 냄새가 밴 대기실을 떠나지 못했다. 경기장 입장료는 서울도시문화연구원이 부담했다. 지난해 석유비축기지에서 화려하게 옷을 바꿔 입은 문화비축기지에서는 산업시대에서 문화시대로의 문명 대전환을 목격했다. 6개의 크고 작은 탱크를 차례로 탐방한 뒤 월드컵공원에서 일정을 마무리했다. 본래 맹꽁이열차를 타고 하늘공원에 올라갈 계획을 세웠지만 시간관계상 포기해야 했다. 핑크뮬리와 댑싸리, 코스모스가 장관을 이루는 하늘공원은 자유 관람했다. 해설을 맡은 김미선 서울도시문화지도사는 야무진 준비와 알찬 코스 구성으로 참가자들을 만족시켰다. “월드컵경기장과 문화비축기지 두 곳에 집중한 게 좋았어요”, “알찬 해설을 들으며 가을을 만끽했어요”, “월드컵경기장에 들어가 볼 엄두를 못 냈는데 덕분에 구경 잘했어요” 같은 투어 후기가 남았다.상암동은 지구상에서 가장 극적으로 변신에 변신을 거듭한 전무후무한 공간이다. 프랑스의 역사철학자 앙리 르페브르(1901~1991)는 공간의 물리적 특성에 대해 “장소와 경험 두 가지 요인이 변증법적으로 상호작용한다”고 갈파했지만 21세기 서울에서 상암동이라는 경천동지할 공간이 등장할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못 했을 것이다. 조선시대 난지도는 장마철이면 물에 잠기는 모래섬이었다. 1960년대 도시 빈민들의 정착촌을 거쳐 80~90년대 쓰레기매립장, 2000년대 이후 생태공원으로 탈바꿈했다. 월드컵경기장과 월드컵공원, 석유비축기지를 활용한 문화비축기지, 최첨단 디지털미디어시티까지 들어서면서 기적 같은 변화가 이어지고 있다. 장소는 기억을 지배하고 기억은 의식을 지배한다. 상암동은 오물과 악취가 진동하던 천형의 땅에서 첨단 생태도시로 다시 태어났다. 지금 상암동 면적의 절반가량이 옛 난지도였으니 난지도가 상암동의 모태라고 할 수 있다. 그 난지도는 서울의 서쪽을 관통하는 모래내(사천)가 한강과 만나 서해로 진출하는 출구에 쌓인 거대한 모래밭이었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조선시대 한양 성 밖 십리(성저십리)의 서쪽 경계선이 모래내였고, 동쪽 경계선은 중랑천이었다. ‘동국여지비고’에서는 “사천은 (북한산) 문수봉에서 나와 남쪽으로 흘러 탕춘대(세검정)와 홍제원을 지나 무악(안산)을 돌면서 서남쪽으로 흘러 한강으로 들어간다”고 적었다. ‘대동지지’에서도 “문수봉에서 서남쪽으로 흘러 탕춘대를 경유해 한북문(홍지문) 수구를 나와 무악의 북쪽을 두른 뒤 서쪽으로 흘러 한강으로 들어간다”고 모래내의 흐름을 기록하고 있다.고산자 김정호는 ‘수선전도’에서 한강의 지류인 모래내와 중랑천, 개천(청계천)을 본류 수준으로 다소 과장되게 그렸다. 서울의 땅 밑을 흐르는 35개 지류 중 3개의 지류를 유독 돋보이게 처리한 것이다. 한양의 서쪽 경계 모래내는 세월과 장소를 따라 사천, 세검천, 홍제천, 불광천이라는 각기 다른 이름으로 변천하다가 사라졌다. 모래내라는 지명이 쇠하고, 지류의 흔적을 느낄 수 없는 것은 70년대 복개됐기 때문이다. 모래내와 한강이 만나는 지점에 형성된 모래섬이 난지도였다. 청계천과 중랑천이 한강과 만나는 지점에 저자도와 잠실, 만초천과 마포천이 만나는 지점에 여의도와 밤섬이 형성된 것과 같은 이치다. 난지도는 김정호의 ‘경조오부도’에 ‘중초’(中草)라는 지명으로 남아 있다.겸재 정선의 경교명승첩에 수록된 1740년 작 ‘금성평사’(錦城平沙)는 양천현감으로 재직 중이던 겸재가 지금의 가양대교 남단에서 난지도를 바라보고 그렸다. 강물에 반쯤 잠긴 난지 모래섬을 중심으로 수색(수생리), 망원정과 잠두봉이 들어앉은 구도다. 제목의 금성은 오늘의 성산동이고, 평사는 성산동 아래 평평한 모래벌이라는 뜻이다. 금성이라는 지명은 조선 중종 때 ‘금성당’이라는 불당이 세워진 데서 유래했다고 하고, 성산 혹은 성미산이란 지명은 성(城)처럼 생긴 산의 생김새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그림에서 난지도 뒤로 와우산과 무악이 펼쳐진 앞에 모래벌이 길게 누운 곳이 모래내가 한강과 만나는 바로 그 지점이다. 겸재는 금성평사 이외에도 ‘소악후월’, ‘종해청조’에서도 난지도를 배경으로 그렸다. 난지도는 꽃과 풀이 지천인 중초도(中草島), 오리가 떠 있는 모양이라고 해서 압도(鴨島) 또는 오리섬이라고도 불렸다. ‘천지개벽’이란 말이 이렇게 잘 어울리는 공간이 또 있을까. 70년대 공유수면 개발 사업과 송파나루 쪽 물막이 공사로 하루아침에 강남 땅이 돼버린 잠실을 ‘상전벽해’에 비유한다면 난지도는 황금모래로 반짝이던 모래섬에서 쓰레기 산으로 버려졌다가 다시 황금알을 낳는 오리의 도시로 개벽했다고 할 수 있다.상암동은 옛 수상리(水上里)의 ‘상’ 자와 옛 휴암리(休岩里)의 ‘암’ 자를 합성한 지명이다. 1914년 경기 고양군 연희면 상암리는 1949년 서울에 편입돼 은평구 상암리가 됐다가 1955년 성산동과 중동을 병합한 뒤 현재의 마포구 상암동이 됐다. 본래 쓰레기 매립장이 아니라 1977년 제방을 완공한 뒤 관광공원을 만들 계획이었으나 당시 공원보다 매립지 조성이 시급했다. 김포가도를 통해 서울로 진입하는 외국인들에게 악취를 풍겨 서울 이미지를 망친다는 비난이 쏟아지자 김포수도권매립장으로 옮겼다. 1993년 2월까지 15년간 서울시민이 버린 오물과 쓰레기 9200만t이 쌓인 90m 높이의 거대한 두 개 쓰레기 산으로 둔갑했다. 이집트 기자의 피라미드보다 33배나 큰 거대한 쓰레기 산이 버티고 있던 시절 난지도를 먼지와 악취와 파리가 들끓는 ‘삼다도’라고 불렀다. 환경 친화적인 첨단 정보미디어도시의 이면에는 상상하기 어려운 추악한 과거가 묻혀 있다. 월드컵 4강 신화와 함께 환경재생의 비화가 살아 숨 쉰다. 글 노주석 서울도시문화연구원장 사진 문희일 연구위원
  •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 서울 지키는 고철 ‘지포라이터’ 전차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 서울 지키는 고철 ‘지포라이터’ 전차

    지난 10월 초, 국군의 날 행사를 통해 '아미 타이거 4.0'과 '워리어 플랫폼' 등 최첨단 무기체계들을 대거 선보인 육군이 지난주 국정감사에서는 부끄러운 민낯을 드러내며 여론의 융단폭격을 맞았다. 전체 전차 전력의 1/3에 달하는 약 680여대의 전차가 전투는 고사하고 주행조차 어렵다는 충격적인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문제의 전차는 K1 계열 전차가 대량 도입되기 전까지 우리 육군의 주력 전차로 운용되던 M48 계열 전차다. 국정감사를 통해 알려진 M48 계열 전차의 대수는 약 600여대였지만, 육군본부 자료를 통해 확인된 M48 계열 전차의 수량은 M48A3K 200여대, M48A5K 480여대로 거의 700여대에 달하는 엄청난 수량이다. 세계 10대 경제대국이라는 한국이 21세기에 들어선 지 20여년 가까이 된 오늘날까지 700여대나 운용하고 있는 M48 전차는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미국이 1950년대 전장에서 운용하기 위해 개발된 1세대 전차로 차체 연령만 보자면 북한군의 구형 전차들보다 더 나이가 많다. 200여대가 남아있는 M48A3K 전차는 1950년대 중반까지 미군이 운용하다가 1960년부터 순차적으로 우리나라에 제공된 M48A1을 1977년부터 1981년 사이에 디젤엔진 탑재 버전인 A3K 형식으로 개조한 차량들이다. 즉, 최초 생산된 지 65년 가까이 된 극도로 낡은 차량들이다. 그나마 신형은 M48A5K 전차는 미국이 1959년부터 생산해 1975년 잉여물자로 넘겨준 M48A2C 전차 가운데 195대의 주포와 엔진, 사격통제장비 등을 교체한 차량으로 차체 연령이 60년 가까이 된 차량들이며, 나머지 280여대는 미국이 1960년부터 생산한 M48A3 전차를 주방위군 보급용으로 1974년부터 1976년까지 A5 형식으로 개조한 차량들을 염가에 구입해 개조한 차량들로 이들 역시 차체 연령이 60세에 달하는 고철들이다. 북한군이 대량으로 보유한 T-55 계열과 T-62 계열 전차들 상당수가 1960~1970년대 생산된 차량들이라는 점을 감안해보면, 우리나라가 700여대나 보유한 M48 계열이 훨씬 더 낡았다는 충격적인 결론에 다다른다. 세계 10대 경제대국이라는 대한민국 육군 전차 전력의 1/3이 세계 최극빈국 북한의 전차들보다 낡았다는 것이다. 지난주 언론 보도를 통해 드러난 M48 전차의 실태는 그야말로 충격 그 자체였다. 자력으로 강을 건널 수 없고, 기동 중에는 주포 사격이 불가능하며, 엔진과 구동계통의 노후화로 최대 속도는 사람이 보통 사람이 뛰는 속도인 10km/h에 불과했다. 심지어 경사가 20도 정도에 불과한 구릉지는 올라가지도 못했다. 하지만 M48 전차의 문제점은 방송 등 언론보도를 통해 드러난 것이 전부가 아니다. 야간에 적 전차를 조준해도 조준선만 보일뿐 적 전차는 식별할 수 없어 사실상 야간 전투가 불가능하며, 장갑 방어력이 취약해 북한이 보유한 거의 모든 전차포와 대전차화기에 손쉽게 격파된다. M48A5K 전차의 전면 장갑은 178mm, 측면 장갑은 76mm에 불과해 북한군이 보유한 모든 전차가 어느 방향에서 주포를 쏘더라도 단발에 격파되는 수준이다. RPG-7 대전차 로켓이나 구형 RPG-2 로켓에도 매우 손쉽게 격파되는데, 이는 사실상 전투에 나가면 생존성 자체를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 큰 문제는 M48A5K 전차의 구조다. 이 전차는 포탑 회전을 위해 유압식 구동장치를 채택했는데, 이 장치가 비교적 취약한 부위에 노출되어 있어 적 포탄에 피격되는 족족 화재와 유폭을 일으킨다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포탄이든 RPG든 일단 맞으면 전차 내부가 불바다가 되어 승무원들이 끔찍하게 타죽는다는 의미다. 이 때문에 중동전에서 이 전차를 운용했던 이스라엘 전차병들은 M48 전차를 ‘시신 운반차량'(Móvil Gviyot Charukhot) 또는 지포라이터라고 부르며 탑승을 기피했다. 취약한 방호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때 폭발반응장갑을 추가로 설치하는 방안이 거론되었지만, 예산 부족으로 인해 결국 좌절됐다. 뭐든 맞으면 불이 붙고 폭발하는 전차가 육군에 무려 700여대나 남아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는 육군 자신이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었고, 육군은 이 노후 전차를 K2 흑표전차로 대체하는 사업을 추진했다. 당초 흑표 전차는 참여정부의 국방개혁 2020 원안에 따라 780여대가 생산되어 모든 M48 계열 전차를 대체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국방개혁계획이 수정되면서 그 생산 수량이 390여대로 반 토막 났고, 전력화 초기 단계에서 드러난 파워팩 문제로 인해 양산이 지연되면서 결국 이 수량은 다시 206대로 줄어들었다. 다행히 지난 정부 말기에 100대 추가 생산이 결정되면서 300여대 정도를 도입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지만, 이 계획대로 사업이 추진되더라도 당초 계획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량이다. 배치 수량 감소보다 더 큰 문제는 무리한 국산화 요구였다. 당초 K2흑표전차는 독일제 파워팩(엔진+변속기)을 장착할 예정이었으나, 국산화가 가능하다는 일부 주장에 따라 국산 파워팩 장착으로 계획을 선회했다. 그러나 국산화 가능하다는 국산 파워팩, 특히 변속기는 시험평가 과정에서 실린더 파손 등 치명적인 결함을 여러 차례 노출했고, 수차례의 개발 완료 시한 연장이 반복되며 K2 전차의 배치는 차일피일 미뤄지기 시작했다. 국산 변속기가 결국 군의 작전요구성능(ROC)을 충족하지 못하자 방위사업청은 합동참모본부를 압박해 ROC 하향 조정이라는 전례 없는 특혜까지 베풀었지만 국산 변속기는 이마저도 달성하지 못했다. 변속기 문제로 K2 전차 대량 배치가 7년 이상 지연되자 방위사업추진위원회는 지난 2월, 국산 변속기 대신 외국산 변속기를 수입해 사용한다는 결정을 내렸지만, 이미 시간은 7년이나 흘러버린 뒤였다. 당국의 정책 오류와 일부 국산화 우선론자들의 ‘몽니’ 때문에 우리 육군은 60년 넘은 고철 M48A3K 전차를 앞으로 3년 더 써야 할 처지가 됐다. K2 전차 양산 수량이 당초 계획의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기 때문에 K2 도입 사업이 끝나더라도 M48A5K 전차를 모두 대체할 수 없어 육군은 기계화부대의 숫자를 크게 줄여야 할 판이다. 이라크·아프가니스탄 전쟁 이후 미래전 환경에서 지상군의 중요성은 더 커졌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지만, 첨단 공군력만이 미래전의 승패를 가를 것이라는 걸프전이 망상이 아직도 팽배해 있는 한국에서 지상군 증강 주장은 ‘밥그릇 타령’이나 구시대적 발상 정도로 비난받곤 한다. 물론 전투기나 미사일이 전투의 승패를 결정짓는 절대적 요소이기는 하지만, 첨단 장비로 무장한 미군이 민병대 수준의 탈레반과 저항세력에게 패한 최근의 전쟁 사례에서 볼 수 있듯, 결국 미래 전쟁의 승패를 가르는 것은 지상군이다. 당장 눈앞의 북한이 100만 이상의 지상군, 700만 이상의 지상군 예비병력을 가지고 있고, 호시탐탐 한반도를 노리는 중국 역시 첨단장비로 무장한 대규모 지상군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이러한 적들에 맞서야 할 지상군, 그것도 누군가의 아들이나 남편, 아버지인 동원예비군 전차병들에게 60년 넘은 ‘고철 지포라이터’를 무기랍시고 쥐어주는 것이 과연 어쩔 수 없는 일일까? 이일우 군사 전문 칼럼니스트(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 finmil@nate.com
  • 전국 최초, 미군 연계 할로윈 축제 대구 남구에서 열린다

    대구 남구청이 26일과 27일 이틀간 대명공연거리 및 앞산 3대 맛길 일원에서 지역의 독특한 자원과 역사적 배경을 재해석한 ‘2018 대구 할로윈 축제’를 개최한다고 밝혔다. 2018 대구 할로윈 축제는 ‘Crazy Day & Crazy Night’을 주제로 남구에서만 볼 수 있는 다양한 문화공연과 투어 및 체험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남구는 축제 분위기 조성을 위해 지난 4월에 열린 ‘대구 앞산빨래터 축제’에서 씨앗을 주민들에게 나누어주고 직접 재배한 자이언트 호박을 활용하여 행사장 곳곳에 포토존을 구성했다. 26일 오후 5시부터 안지랑 곱창골목에서 열리는 전야제에서는 국내외 남녀노소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워킹데드 서바이벌과 멕시코 죽은자들의 날을 주제로 한 할로윈 영화 ‘코코’를 상영한다. 27일 오후 4시에는 공식행사로 앞산카페거리 공영주차장에서 개막식을 개최하며 문 DJ와 함께하는 EDM 파티 와 고등학교 댄스공연팀 6명, 버스킹 1팀이 참여하는 남구 프린지 콘서트가 펼쳐진다. 또 올해 미육군 대구기지의 참여와 AFN 라디오 생방송을 통해 한·미 친선 문화교류 행사의 장으로 개최될 예정이다. 이와 함께 가을여행주간과 음식주간에 참여하는 86개소의 맛집들은 할로윈 특선메뉴와 각종 할인혜택을 제공하고, YWCA 별별마켓 및 체험부스를 운영하며 관광객들에게 볼거리, 먹거리, 체험거리를 제공할 예정이다. 조재구 남구청장은 “남구는 1960년대 대명동 인근이 공동묘지였고 앞산과 미군부대로 타 도시에 비해 낙후된 면이 없지 않으나, 이를 자원으로 활용하여 이번 축제를 개최하게 되었다”며 “전국에서 최초로 지방자치단체에서 할로윈을 개최하는 만큼 대구시민, 남구민, 미육군 대구기지, 연극인, 예술인 등이 참여하여 누구나 즐길 수 있도록 준비했다”고 말했다. 대구 한찬규 기자 cghan@seoul.co.kr
  • [인터뷰 플러스] “태양광 에너지로 녹색과 협동의 공존 시대 열어가겠다”

    [인터뷰 플러스] “태양광 에너지로 녹색과 협동의 공존 시대 열어가겠다”

    태양광산업의 블루오션 개척자가 있다. 허인회가 주인공이다. 그는 고려대학교 총학생회장, 학생운동 민주투사로 더 유명하다. 그런 그가 녹색드림협동조합 이사장 명함을 들고 ‘녹색태양’을 슬로건을 앞세우며 우리 앞에서 섰다. 허 이사장은 ‘의미 있는 삶’, 21세기 공유와 공존의 시대에 맞는 ‘먹거리 사업’은 무엇일까를 고민했다고 했다. 10년 전 ‘녹색과 협동의 공존 시대를 국민과 함께 열어가겠다’는 생각으로 녹색사업, 도시농업, 생태복원, 재생에너지 사업에 투신하게 되었다고도 했다. “미세먼지를 없애기 위해 무한한 에너지를 주는 태양광을 이용하는 기술이 이미 발전하여 원자력과 석탄을 이용하는 것보다 비용이 저렴해 졌다”면서 “우리나라는 3년 내 가능하다”고 말하는 허인회 이사장. 본지는 태양광 에너지로 새로운 대한민국의 삶의 길을 열어가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편집자 주→먼저, 허인회 이사장님은 민주투사에서 정치인으로, 녹색 기업 CEO로 변신을 하셨는데 이 사업을 하게 된 동기를 간단하게 소개해 주시겠어요. -삶, 의미 있는 삶을 위해 시작했습니다. 과거 민주화를 위해 학생운동과 진보운동을 했습니다. 그 연장선에 21세기 공유와 공존의 시대에 맞는 ‘먹거리 사업’은 무엇일까, 그런 고민이랄까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 10년 전 ‘녹색과 협동의 공존 시대를 국민과 함께 열어가겠다’는 생각으로 녹색사업, 도시농업, 생태복원, 재생에너지 사업에 투신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식량과 에너지는 인간 삶의 기본이잖습니까. 그런데 모두 다국적 기업에 장악되었습니다. 200년 동안 이어져 왔는데요.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다국적 기업과 유착된 각국의 대기업, 대재벌, 대자본이 독과점을 형성하면서 무분별한 자연훼손으로 지구온난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 결과는 곧 인류와 지구의 뭇 생명의 생존을 위협하는 상황이라고 보았습니다. 지금 되돌리지 않으면 안 된다고 판단했습니다. 처음부터 식량과 에너지를 가지고 지구온난화를 막아내기 위한 녹색사업을 계획했습니다. →태양광산업에 대해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지구 생명은 태양이 주는 햇볕 에너지를 받아 살아갑니다. 태양은 차별이 없습니다. 지구 생명에 모두에게 평등하고 공평합니다. 조력, 풍력, 탄수화물 등 모양은 달라도 모두 태양에너지로부터 왔습니다. 석탄과 석유, 가스 등 모든 에너지와 식량까지 태양으로부터 왔습니다. 그것이 태양광 에너지입니다. 그래서 ‘광의의 태양에너지는 지구의 모든 삶에 관계되어 있는 에너지다’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거죠. 그래서 식량문제나 태양광 문제가 다른 문제가 아니라 근원에서는 동일하게 태양으로부터 지구에 오는 에너지입니다. →그러면은 왜 이 시기에 태양광을 해야 하는지. -태양광연구는 1960년대 미국에서 태양광전지사업으로 시작됐습니다. 반도체기술이 발전하면서 태양광기술은 급속한 발전을 하게 됩니다. 그 결과 태양광 전지가격이 80%가 떨어졌습니다. 최근에 원자력이나 석탄발전으로 만드는 전기가격보다 싸졌습니다. 미국, 중국, 인도, 독일, 영국 등 5개 나라가 대표적입니다. 앞으로 3년 후면 전 세계 모든 국가에서 태양광과 풍력으로 만드는 에너지 생산단가가 원자력과 석탄보다 싸지게 됩니다. 전 세계는 지금 급속한 에너지전환 시대를 맞이한 거예요. 지난해 에너지 생산시설에 ‘전기 생산 시설투자비율’을 보면, 태양광과 풍력 등 재생에너지 설비투자가 350조원, 원자력설비투자는 18조원에 불과했습니다. 향후에는 이 격차가 더 커질 겁니다. 태양광이 원자력보다 훨씬 싸집니다. 경제 가치에서 태양광이 원자력보다 월등히 우수한 경쟁력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이에 한국도 세계적인 흐름에 맞춰가야 합니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사업의 적기입니다.→국내 태양광산업 상황은 어떤가요. -지난 50년간 한국은 석탄과 석유, 원자력 에너지를 중심으로 운영되어 왔어요. 전통에너지 시장은 200조원으로 독과점으로 유지되어 온 시장입니다. 이에 종사하는 대기업, 관료, 광고비로 운영되는 언론과의 관계가 굉장히 긴밀합니다. 이분들의 주장은 전환은 맞는데, 급격히 전환하면 위험하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전 세계는 급격하게 변하고 있습니다. 에너지전환시대에 대응하기 위해서죠. 한국은 ‘컵 속의 개구리가 물이 서서히 더워지는데 따뜻하게 즐기고 있다가 결국은 탈출하지 못하고 죽는다’는 우화에서 배워야 합니다. →세계시장에서의 한국 수준은 어느 정도인가요. -OECD 국가들 중 통계자료가 제출된 국가 26개국 중에 한국은 24위입니다. 정부 계획은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비율을 20%까지 확장하겠다는 겁니다. 10년 뒤에 그렇게 20%까지 늘리면 10년 뒤에도 여전히 OECD 26개국 중 24위일 것이라 게 제 생각입니다. 23위 또는 19위 가는 것은 현재의 2030 계획으로는 불가능합니다. 1인당 한국 GDP의 15분의1 규모 나라인 인도가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비율을 56%까지 늘리겠다는 계획입니다. 우리나라의 2.5배인 거죠. 기술 분야에서 우리나라는 세계적인 기술과 기업이 있습니다. 신재생에너지 기술이 한화큐셀과 연료를 제공하는 동양OCI가 세계 1위 기업이고 에너지저장장치를 공급하는 기업이 삼성SDI와 LG화학입니다. 세계 으뜸의 기술을 가지고 있는 발판을 만들 수 있다는 거죠. 지금 바로 시작해야 합니다.→태양광사업이 일자리 창출과 공유경제에는 어느 정도 기여할 것으로 보십니까. -최근 통계를 보면 10년간 재생에너지 일자리가 미국 270만개, 독일 100만개, 중국 420만개, 일본 50만개 생겼습니다. 한국은 불과 8100개입니다. 매우 부끄러운 수치이지만 역으로 이것은 희망의 메시지입니다. 한국은 늦었기에 기회가 왔고 100만개의 일자리가 대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20조 투자로 20만개 일자리가 생기고, 100조를 투자하면 일자리가 50만개에서 100만개가 생깁니다. 마을 단위로 설비와 운영, 유지보수과정이 일자리로 생기면 우리나라도 독일, 덴마크 농민처럼 친환경 에너지를 생산하고 수익을 내는 것이 가능합니다. 지역마다 협동조합이 만들어지고 수익으로 복지와 교육사업 등 마을발전을 위해 사용하게 되는 거죠. 이를 통해 마을공동체 복원이 될 수 있습니다. →시대 담론을 가진 조직이 녹색드림협동조합인 듯합니다. 녹색을 드린다는 뜻인가요. -녹색도 드리고 녹색의 꿈(DREAM) 등 여러 가지로 쓰여 집니다. 7년 전에 지구환경에 관심이 있는 지역주민과 제가 운영하던 녹색건강나눔 임직원들이 출자해서 30여명으로 출발했어요. 지금은 조합원이 300여명이고 연관되는 협동조합들과 사업들이 많아졌습니다. 병원도 운영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로부터 파생되어진 협동조합이 운영하고 있는 녹색드림의원이 남양주에 있고요. 국민들에게 신재생에너지를 공급하는 교육과 훈련을 시키는 프로메테우스협동조합이 있습니다. 또한 에너지를 생산뿐만 아니라 공유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래서 전 세계는 에너지 공유를 기본으로 하는 스마트시티 4차 산업혁명 시대로 이전하고 있어요. 이 일을 위해 스마트시티 기획단을 구성했어요. 기획단은 4차 산업혁명 기술을 기반으로 에너지 공유, 물 공유, 교통 공유, 폐기물의 재활용을 연구하고 실행을 위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2000여명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서울 동대문구 홍릉동부센트레빌아파트 전 세대(371세대)에 미니태양광을 설치하면서부터 조합이 사회적으로 알려지게 된 것 같아요. -당시 홍릉동부센트레빌아파트 주민들이 서울시 등록업체 6개를 대상으로 제안입찰을 한 거예요. 주민들의 요구가 서울시 지원금 외에 자기 부담금을 더 낼 터이니 3층 이하 햇빛이 안 비치는 세대도 해달라는 거예요. 이것에 응답한 회사가 유일하게 저희 조합이었고 옥상에 1~3층의 태양광설비를 하겠다는 기술을 가지고 도전을 했어요. 아파트 전 세대가 태양광을 설치하니 아파트 디자인도 좋아졌습니다. 아파트 전 세대 설치는 대한민국 처음이고 이것이 입소문이 많이 났어요. 거의 모든 언론에서 취재하고 보도했어요. 가장 중요한 것은 주민들의 만족도가 높았어요. 환경상 받고, 서울시장상도 받고 부상으로 상금도 받잖아요. 자기들이 투자한 돈 이상으로 상금도 받고 TV도 많이 나오고 집값도 올라가고 자부심도 생겼습니다. 나아가 ‘에너지자립마을’ 현수막도 내걸고, 상 받은 아파트로 집값도 올라가고 그게 대대적으로 홍보됐어요. 지난해에는 신났습니다. →국정감사에 출석하시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지난해와 올해 국감 출석해서 ‘특혜받았다’라는 지적인데요. 조금 억울해요. 지난해 서울시가 공모를 해서 6개 업체가 일을 했습니다. 그중에 3개가 협동조합입니다. 초기에 1등은 30%를 차지한 저희가 했고, 20%의 해드림협동조합이 2등, 15% 정도의 해피발전소협동조합 3등을 하고 총 60%가 넘었던 거죠. 사실 6개 회사가 경쟁해서 상위 1·2·3등이 60% 했습니다. 50% 업체 수가 60% 시장점유를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저희가 30%를 한 것은 운 좋게 홍릉동부센트레빌아파트가 입소문이 나고 언론에 나오면서 우리가 아주 유명해졌기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총 5개 업체가 참여한 임의배정시장에서는 저희가 4등을 했어요. 배정기준이었던 시공실적 기준을 SH공사가 기준과 제도를 바꾸면서 우리 같은 협동조합이 불이익을 받았죠. 경쟁 시장에서 1등을 했던 저희가 4등을 했고, 2등을 했던 해피발전협동조합이 5등을 했어요. 언론 보도와 전혀 다른 사실입니다. 이게 팩트입니다. →경영철학과 꿈은 무엇인가요. -공존과 공유의 가치를 실현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협동조합으로 실천하는 거예요. ‘지속가능한 지구와 대한민국을 위하여 일을 실현하는 녹색의 가치를 담은 상품과 서비스를 개발 생산해 고객들에게 성심껏 전달한다’가 우리 회사의 사명입니다. 우리는 재생에너지협동조합들의 플랫폼이 되고 싶습니다. 우리 조합은 6개월 동안 상근을 하면서 바른 정신과 바른 기술을 배워서 우리와 같은 복제협동조합을 만드는 것을 원칙으로 합니다. 지방에서 올라오는 분들에게 기숙사도 제공합니다. 재생에너지 분야의 오투오 플랫폼으로 녹색드림협동조합이 아마존처럼 성장하고 싶습니다. 김병식 객원기자 kbs@seoul.co.kr
  • [그때의 사회면] “염색과 파마 강력 규제함”/손성진 논설고문

    [그때의 사회면] “염색과 파마 강력 규제함”/손성진 논설고문

    학생의 머리 염색과 파마 허용을 놓고 논란이 뜨겁다. 권위주의 시대에는 상상도 못했을 문제다. “외출시에도 항상 학교 배지를 달고 제복과 모자를 착용할 것이며 다방과 당구장, 기타 유흥장에 출입을 금한다.”(동아일보 1961년 6월 1일자) 이 기사의 대상은 중고생이 아니라 성인인 대학생이다. 5·16 직후에 대학생을 포함해 학생의 규율을 바로잡겠다는 군사정부의 의도였다. 교복이 없는 여대생에게는 간소한 옷차림을 예시해 그대로 입으라고 했다. 중고생이야 말할 것도 없었다. 스님처럼 머리를 빡빡 깎고 군복 같은 교복과 모자를 착용해야 했다. 4·19혁명이 일어나 각계의 요구가 분출했던 1960년에는 두발 규제에 불만을 품은 중고생들이 동맹휴학을 하겠다고 나섰다. 그러나 이듬해 군사정부는 초·중·고생의 교복, 두발, 모자, 운동화, 이름표와 심지어 양말색까지 기준을 세세하게 정해 지키도록 했다. 1980년대 초 교복과 두발 자율화가 시행될 때까지 이 규정은 20년 동안 지켜졌다. 가령, 여자 중고생의 경우 양말은 학교 단위로 통일하고 검은색 운동화를 신어야 하며 한글로 쓴 이름표를 달도록 했다. 파마를 금지한 것은 물론이고 머리에 머플러를 쓰지 못하고 겨울 외투는 검수한 국산품을 쓰라고 했다. 여기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었고 할 수도 없었다. 중고생 교복과 두발 자율화는 1979년 12·12 직후 정국 혼란기에 최초의 여성 교육수장이 된 김옥길 당시 문교부장관의 지시에서 시작됐다. 환영하는 의견도 많았으나 학부모 부담을 늘리고 탈선을 조장한다는 이유로 반대하는 의견도 만만치 않았다. 1981년에 서울의 고교 15% 정도가 변형된 교복을 채택했다(경향신문 1981년 2월 25일자). S고교는 교복을 검은색 신사복으로 바꾸었다. 머리는 스포츠형을 허용했다. D고는 상의를 군대 예복처럼 바꾸고 모자를 없앴다. 그러나 교복과 두발을 바꾸었다가 반발에 부딪혀 원래대로 돌아간 학교도 있었다. 전면적인 교복 자율화는 1982년 새해 벽두의 당시 전두환 대통령의 지시로 그다음 해부터 시행하게 됐다. 자유로운 조발도 허용하나 염색이나 파마는 강력히 규제한다는 단서가 달렸다. 막상 시행하고 보니 학생들의 행동이 거칠어졌다. 두발 검사에 반발한 고교생들이 수업 중에 학교를 이탈하는 일도 벌어졌다. 청소년 강력사건이 나왔다 하면 자율화를 범인으로 지목했다. 경찰은 탈선을 막는다며 유해업소에 경찰관을 배치하기도 했다. 이후 자율화를 재검토해야 한다는 말이 정치권이나 교육계에서 툭 하면 나왔다. 손성진 논설고문 sonsj@seoul.co.kr
  • 노인진료비 9년새 30.8%에서 39.9%로 급증

    노인진료비 9년새 30.8%에서 39.9%로 급증

    유래 없는 고령화에 노인의료비도 덩달아 급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제출한 ‘노인진료비 비중 추이’에 따르면 건강보험 총 진료비 대비 노인진료비 비중은 2008년 30.8%에서 지난해 39.9%로 9.1%포인트나 증가했다.같은 기간 총 진료비는 34조 8690억원에서 69조 3382억원으로 98% 증가했으나, 노인진료비는 10조 7371억원에서 27조 6533억원으로 157.5% 증가했다. ‘연령별 진료비 추이’ 자료에 따르면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진료비 연평균 증가율은 70세 이상 연령층이 13.2%로 가장 높았다. 연령대별로 60대 이하가 8.2%, 50대 7.7%, 40대 4.7%, 30대 4.8%, 20대 4.5%, 10대 4.4%, 9세 이하 3.9%로 연령대가 높을수록 진료비 증가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건강보험 적용인구 1인당 연간 진료비는 136만 3000원이지만, 65세 이상에선 1인당 415만 4000원으로 전체의 3배나 됐다. 남 의원은 “‘노인의료비 전망’에 따르면 65세 노인 인구가 20%를 넘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할 것으로 예상되는 2025년 노인의료비는 57조 9000억원으로 증가하고, 2040년엔 163조 8000억, 2060년엔 337조 1000억원이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면서 “노인성 질환과 만성 질환을 예방하고 건강하고 품위?는 노후를 보장하는 한편 건강보험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하려면 보건의료정책의 패러다임을 사후 질병치료에서 사전 질병예방·건강증진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나리 기자 mnin1082@seoul.co.kr
  • [와우! 과학] 피라냐 조상뻘…1억 5000만년 전 육식어 화석 발견

    [와우! 과학] 피라냐 조상뻘…1억 5000만년 전 육식어 화석 발견

    오늘날 피라냐처럼 다른 물고기들의 지느러미나 살을 뜯어먹고 사는 육식어 가운데 가장 오래된 종이 독일 남부에서 거의 완벽한 형태로 발견됐다. 독일과 호주 등 국제 연구팀은 약 1억5000만 년 전인 쥐라기 후기에 살았던 한 육식어종에 관한 화석 연구 결과를 국제학술지 ‘커런트 바이올로지’ 최신호(18일자)에 발표했다. 연구 논문에 따르면, 몸길이 평균 7.1㎝, 최대 9㎝로 오늘날 피라냐의 3분의 1 정도 크기인 이 육식어의 거의 온전한 화석은 1860년 세계 최초의 시조새가 발굴된 곳으로 유명한 퇴적층에서 2016년 처음 발견됐다. 그리고 근처에는 이 육식어의 먹이가 돼 지느러미나 몸이 손상된 것으로 추정되는 다른 어종의 화석도 발견됐다.이에 따라 새로운 육식어 화석은 지느러미를 뜯어먹는 피라냐라는 뜻으로 ‘피라냐메소돈 핀나토무스’(Piranhamesodon pinnatomus·이하 피라냐메소돈)로 명명됐다.특히 이번 화석은 보존 상태가 매우 좋다. 입천장과 아래턱에 늘어선 길고 날카로운 이빨과 입 주변 골격이 거의 그대로 남아 있었다. 아래턱 끝부분에는 가위 역할을 한 것으로 추정되는 삼각형의 이빨도 확인됐다. 연구팀의 분석결과 피라냐메소돈은 턱의 길이가 짧지만 그 힘은 매우 강했다는 것이 확인됐다. 이는 이들이 커다란 먹잇감을 통째로 삼키지 못하고 오늘날 피라냐처럼 지느러미나 살을 뜯어먹었다는 것을 시사한다. 또한 피라냐메소돈은 평평한 체형 탓에 다소 느리게 움직였지만 이들이 살았던 열대의 얕은 바다에서는 커다란 지느러미가 있어 비교적 잘 움직일 수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이에 대해 연구팀은 피라냐메소돈은 자신을 경계하지 않는 물고기에 접근해 비늘이나 지느러미, 또는 살을 뜯어먹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같은 퇴적층에서 발견된 다른 물고기들의 화석에서는 이런 유형의 공격과 일치하는 손상 흔적이 확인됐다. 연구팀에 따르면, 지금까지 알려진 경골어는 당시 다른 물고기의 지느러미나 살을 뜯지 않았지만 피라냐메소돈 만큼은 달랐다. 상어와 같은 연골어가 살을 물어뜯을 수 있었지만 역사적으로 경골어는 무척추동물을 먹거나 먹이를 통째로 삼켰다. 연구에 참여한 호주 제임스쿡대학의 데이비드 벨우드 교수는 “공룡들이 땅 위를 걷고 작은 공룡들이 익룡처럼 하늘을 날려고 했을 때 이들 물고기는 서로의 살이나 지느러미를 뜯으며 그들의 발밑을 헤엄치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사진=커런트 바이올로지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강호축이 바로 서야 치우친 대한민국이 똑바로 선다”

    “강호축이 바로 서야 치우친 대한민국이 똑바로 선다”

    ‘철저히 흙수저’로 태어났다. 어려움을 꺾고 행정고시(10회)로 공직에 입문했다. 1995년 정치인으로 변신해 충주시장 세 번, 국회의원 두 번, 충북지사 세 번까지 8전승을 뽐냈다. 불패 신화 주인공 이시종(71) 충북지사를 18일 집무실에서 만났다. 대형 모니터가 각종 정보를 제공하며 반짝였다. “실업률, 투자유치 실적 같은 지표 16개를 가리키는 충북경제 상황판입니다. 수시로 점검하며 일자리 전략 등을 짜기 위해 설치했어요”. 자리에 앉자 이 지사는 국가균형발전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정부가 소외지역인 강원, 충청, 호남을 연결해 적극 개발해야 한다는 얘기다. 요즘 그가 강조하는 ‘강호축’의 골자다. ‘총리 맡아야 한다’는 얘기를 들었냐고 묻자 “말도 말라”며 손사래를 쳤다. “임기를 마치면 텃밭을 가꿀 것”이라고 덧붙였다. 대담:송한수 부국장·사회2부장→‘강호축’ 얼마나 낙후했나. -1960년대 이후 서울과 부산을 잇는 경부축은 고속도로와 고속철도 건설 등으로 눈부시게 발전했다. 경부축 산업단지 수는 559개인 반면 강호축엔 285개다. 경제활동인구, 학교 수, 예산, 공장등록, 지방세 수입 등 모든 면에서 경부축이 크게 앞선다. 정부 개발정책에 편중이 심각하다는 증거다. 강호축은 열악한 교통여건 탓에 강원과 호남 사이엔 심지어 친구도, 동창도, 사돈도 많지 않다. 교통 단절로 생긴 인적·물적·문화적 불통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국정정책 반영이다. 더불어민주당 지방선거 공약으로 채택돼 중앙 차원의 추진 동력은 이미 확보됐다. 4차 국가균형발전 5개년 계획과 5차 국토종합계획에 포함되도록 하겠다. →‘강호축’은 어떻게 개발돼야 하나. -우선 충북선 고속철도 사업이 진행돼야 한다. 번번이 경제논리에 막혔지만 문재인 정부의 균형발전 어젠다로 선정돼 예비타당성조사 절차를 빼고 추진돼야 한다. 예타를 면제해준 사례가 있다. 수요가 공급을 창출한다는 논리에서 벗어나 공급이 수요를 창출한다는 역발상을 가져야 한다. 충북선 철도가 고속화되면 호남·충청·강원을 고속철도로 잇는다. 향후 함경남도 원산을 거쳐 시베리아 철도로 연결되는 ‘실크레일’ 전진기지 역할을 할 것이다. 또한 경부축의 중후장대(重厚長大) 산업과 대비되는 반도체 같은 경박단소(輕薄短小) 첨단산업이 강호축에 육성돼야 한다. 오송 생명과학국가산업단지와 충주 당뇨바이오특화단지에 4차 산업혁명과 과학기술이 집적된 기업들을 유치하겠다. →일등경제 충북의 기적을 과제로 삼았다. -우선 국내총생산(GDP)에서 지역내총생산(GRDP)이 차지하는 비중을 2020년 4%대로 끌어올리겠다. 2009년 전국 대비 충북경제 비중은 3.07%였다. 이후 바이오, 태양광, 신재생에너지, 화장품·뷰티, 유기농 등 신성장동력 산업을 육성한 결과 올해 3.77% 기록을 내다본다. 이를 위해 투자유치가 절실하다. 자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해 경제를 살리는 열쇠다. 민선 7기 목표는 40조원이다. 4년간 분양 가능한 산업시설용지 48곳을 개발 공급하고, 신규 외국인투자단지를 지정해 기업을 유치하는 등 공격적인 투자유치 활동을 펼 생각이다. 현재 28개 업체 8303억원 투자유치를 기록 중이다. →남북관계 회복으로 지방자치단체들도 교류-협력 사업에 적극 나서고 있다. 2019년 충주 세계무예마스터십에 북한 선수단 초청을 꾀하려고 한다. 무예학자들도 초대해 공동학술대회를 마련하겠다. 묘목산업 특구인 옥천의 나무를 북한에 보내고, 대통령 공약 사업인 제천 천연물산업종합단지와 연계해 북한에 천연물재배 시범단지 조성을 구상하고 있다. 충북 출신인 단재 신채호(1880~1936) 선생 자료가 북한에 많다고 알려져 자료교환과 학술교류도 추진하겠다. 청주국제공항을 통일 대비 북한 관문공항으로 육성하겠다는 꿈도 갖고 있다. 북한주민 결핵 퇴치 사업, 한돈산업 발전교류 등도 구상하고 있다. 북한 관련 태스크포스(TF)팀을 구성하라고 지시했다. →지방선거 때 상대 후보들이 이 지사 역점사업인 세계무예마스터십 폐지를 촉구했다. -시작 단계는 힘든 과정을 겪기 마련이다. 올림픽도 그랬다. 국내에 무예를 바라보는 인식이 부족해 나온 측면도 있다. 세계무예계는 공공외교, 문화외교의 수범사례라며 극찬을 보낸다. 최근 통일부 남북교류협력국장은 무예가 남북 교류의 대표적인 사업이라고 말했다. 내년 충주 세계무예마스터십을 성공 개최하면 걱정이 희망으로 바뀔 것이다. 서울올림픽을 통해 한국이 성장했듯 무예마스터십을 계기로 충북이 도약할 것으로 확신한다. 가성비 최고 행사다. 2조 8000억원을 투입한 평창동계올림픽엔 92개국 2925명이 참가했다. 지난해 무예마스터십엔 행사비 81억원에 선수단 규모는 81개국 1940명이었다. →KTX 오송역이 세종시 관문 격인데 한쪽에선 세종역 신설을 주장한다. -세종역 신설은 불가능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때 충청권 합의에 따르겠다고 약속했다. 지난해 철도시설공단이 진행한 타당성조사 연구용역엔 타당성이 없는 것으로 니왔다. 세종역이 생기면 역간거리 기준을 위배한다. 자주 정차하다보면 고속철의 저속화가 불가피하다. 중복투자로 인한 혈세 낭비도 초래한다. 지자체들의 역 신설 요구가 빗발칠텐데, 전국이 불필요한 논란을 자제하고 오송역 접근성 강화를 위해 힘을 모아야 한다. 이춘희 세종시장 등 일부 정치인들의 역 신설 발언은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밝힌 것에 불과하다. 정리 청주 남인우 기자 niw7263@seoul.co.kr
  • 나사르 수사 관련 증거 빼돌린 美체조협회장 체포

    나사르 수사 관련 증거 빼돌린 美체조협회장 체포

    미국체조협회(USAG) 회장들이 잇따라 낙마하는 가운데 지난해 초 퇴임했던 스티브 페니 전 회장이 래리 나사르 추문에 관한 증거들을 빼돌린 혐의로 체포됐다. 페니는 여러 법원으로부터 200년 이상 징역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인 나사르에 관한 수사가 한창일 때 나사르가 대표팀 주치의로 일하던 훈련센터의 문서를 빼돌린 혐의로 텍사스주 대배심에 기소됐는데 헌츠빌에 있는 워커 카운티 검찰청은 17일(현지시간) 그를 체포하라고 명령해 테네시주 개틀린버그에서 체포했다. 공소장에 따르면 페니는 워커 카운티의 카롤이 랜치에서 나사르가 벌인 행태들에 관한 문서들을 “파괴하거나 숨길 의도를 갖고 진행 중인 수사를 방해하려는 목적을 갖고 있었다”고 적시했다. 이들 문서는 인디애나폴리스의 USAG 본부에 있는 페니에게 전달됐다가 그 뒤 지금까지 당국은 이 문서의 소재를 파악하고 있지 못하다고 ESPN은 전했다. 테네시주에서 체포된 페니는 사건 관할인 텍사스주로 이감될 예정이며 그곳에서 유죄 판결이 이뤄지면 2~10년의 징역형과 함께 최고 1만달러 벌금이 부과될 것이라고 영국 BBC가 전했다. 한편 앞서 지난 12일(이하 현지시간) 나사르 파문에 초토화된 협회를 재건할 회장 대행 겸 최고경영자(CEO)로 임명됐던 매리 보노(56) 전 공화당 하원의원은 리우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시몬 바일스(21)와 앨리 라이스먼(24)의 잇단 문제 제기에 나흘 만인 16일 물러났다. 보노의 전임자인 케리 페리 역시 취임 9개월 만인 지난해 9월 사임했는데 나사르 추문의 후유증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다는 비난을 견디지 못했다. 페리의 전임자가 바로 페니였다. 나사르는 지난해 12월 아동 포르노 소지 혐의로 60년형을 선고받고 지난 1월 성추행 혐의로 175년형을 언도받았으며 다음달에는 어린 체조선수들을 농락한 혐의로 40~125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그로부터 농락 당했다고 주장한 미국 체조 대표팀 선수들과 미시간주립대 재학생 등은 300명이 넘었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50년 동안 세서미 스트리트 빅버드 연기한 스피니 84세에 은퇴

    50년 동안 세서미 스트리트 빅버드 연기한 스피니 84세에 은퇴

    남녀노소 누구나 좋아하는 세서미 스트리트의 인형 틀 ‘빅버드’를 50년 동안 뒤집어쓰고 연기했던 캐롤 스피니가 84세에 은퇴한다. 스피니는 1969년 이 쇼가 시작됐을 때부터 빅버드와 ‘오스카 더 그라우치‘ 틀을 쓰고 목소리까지 내며 캐릭터를 소화해냈다. 그의 대변인은 17일(현지시간) 세서미 스트리트의 공식 트위터 계정을 트윗해 은퇴의 변을 전했다. “세서미 스트리트에 오기 전에도 내 역할이 이렇게 중요해질줄 전혀 감도 잡지 못했다. 빅버드가 내 소명을 찾아내는 데 도움을 줬다. 내 역할에서 물러날 때조차 난 늘 빅버드일 것이라고 느낀다. 그리고 한동안은 오스카로”라고 밝혔다. 스피니는 ‘스리 리틀 키튼스’에서의 연기를 보고 난 뒤 다섯 살 감수성으로 틀 캐릭터를 개발했다. 어렸을 적부터 10대 때까지 인형 틀 놀이를 즐겼고 대학 등록금을 벌기 위해 틀을 뒤집어썼다. 공군 복무를 마친 뒤 1950년대와 1960년대 라스베이거스와 보스턴 등에서 프로 인형틀 연기를 펼쳤고 1962년 인형 캐릭터 제작자인 짐 헨슨과 처음 만났다. 그는 1969년 세서미 스트리트가 처음 시작했을 때부터 기용됐다. 두 차례 그래미상, 여섯 차례 에미상을 비롯해 2006년 에미 평생공로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1994년 할리우드 워크 오브 페임 스타와 2000년 의회도서관의 살아있는 레전드 상을 받았다. 2014년에는 자신의 인생과 커리어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내가 빅버드’가 제작돼 널리 사랑받았다. 그리고 아마도 그가 이룬 최고의 성취는 1973년 세서미 스트리트 제작 현장에 45년을 함께 한 아내와 나란히 섰던 순간이었을 것이라고 영국 BBC는 전했다. 조앤 갠즈 쿠니 세서미 스트리트 워크숍의 공동창업자는 “그의 천재성과 재능은 빅버드를 전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노랑털 친구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앞으로 빅버드 틀은 현재 퍼핏 캡틴 역할을 하고 있는 매트 보겔이, 오스카 더 그라우치 틀은 에미상 후보 명단에 올랐던 에릭 제이콥슨이 대신 뒤집어쓰게 된다.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홍석경의 문화읽기] 방탄소년단이 가는 길

    [홍석경의 문화읽기] 방탄소년단이 가는 길

    방탄소년단에 대한 기사가 넘치는 이 시절, 기명 칼럼을 또 ‘방탄’으로 할까 잠깐 고민했다. 신문의 글은 뜨거운 주제를 따르는 법. 하고 싶은 말들이 웅얼거리는 방탄을 주제로 또 쓰자.티켓의 판매 속도나 공연장 안팎의 열기, 방탄이 만들어 내는 여러 가지 ‘최초’ 타이틀에 세계의 미디어는 놀라고 있지만, 온라인으로 형성된 방탄의 세계 팬들에게 이런 양적 성과는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닌 듯하다. 팬들은 이들의 성취를 보며 단지 “대견하다”, “자랑스럽다”고 반응한다. 오랜 시간 무언가를 공유한 가까운 존재의 성취에 대한 감정이입이다. 그만큼 힙합 아이돌이라는 모순적인 두 가지 정체성을 동시에 지니고 출발한 방탄의 행보는 남다른 것이었고, 세계의 팬들에게는 독보적인 것이다. 2013년 데뷔 때 16~20세, 학교 생활의 명암을 거칠게 그려 내던 소년들은 그들의 팬덤 아미(ARMY)와의 상호작용 속에서 앞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나갔고, 청춘의 고뇌와 기쁨을 담은 ‘화양연화’ 연작을 거쳐 드디어 4부작 ‘러브 유어셀프’에 이르렀다. 방탄 팬덤의 핵심을 이루는 Z세대(15~29세). 이들은 유튜브로 공유하고 트위터로 소통하며, 더이상 텔레비전을 보지 않고 모바일로 모든 문화 소비를 수행하고 매개하는 세대다. 이들은 또한 신자유주의의 세계화가 가져온 초유의 전지구적인 경제사회 조건, 즉 부모 세대보다 자식 세대 삶의 조건이 후퇴했거나 후퇴할 위험에 처한 세대에 속한다. 방탄은 이 세대가 공유하는 불안, 자괴감, 기성세대에 대한 비판, 소박한 희망을 내용으로 하는 음악과 이야기로 소통을 했다. 케이팝 속에서 주변부적 위치를 차지했던 이들과 같은 상황에 속했던 작은 소속사의 평범해 보이던 청소년들의 노력과 연대를 통한 성공은 전 세계의 Z세대에게 위안과 출구를 마련해 주고 있다고 보인다. 적어도 현장에서 만난 팬들의 말과 온라인에서 방탄의 노래에 울고 웃는 팬들의 방탄 경험은 이러하다. 내가 가장 어두운 곳에 있을 때 방탄의 음악이 나를 구했다고. ‘러브 유어셀프’의 타이틀 곡 ‘아이돌’을 통해서 방탄 또한 힙합 아티스트와 아이돌 사이 정체성의 고민을 끝낸 듯싶다. 이들은 “우리를 뭐라고 부르든 나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한다”고 노래하고, 유엔 연설을 통해서는 “세계의 젊은이여, 스스로를 사랑하는 데 우리를 이용하라”는 감동적인 메시지를 전달했다. 9월 초 로스앤젤레스에서 월드투어를 시작한 지 5주가 지난 지금 이들은 모든 영웅담이 그랬듯이 길 위에서 스스로의 서사와 운명을 만들어 가고 있다. 갈수록 커지는 기대 속에 미국 언론은 이들을 비틀스에 비교했고, 시사주간지 타임은 신세대의 리더로 방탄을 지목했다. 미국 언론이 방탄을 과거와 현재의 영미 팝보이 밴드들이 아니라 비틀스와 비교한 것은 여러 가지로 의미 있는 일이다. 1960년대 팝문화 속에서 노동자 계급 청년문화를 대변하던 록그룹 비틀스의 부상과 인기가 신자유주의 무한경쟁 속에 짓눌려 있던 청년 세대에게 선한 영향을 주는 힙합 아이돌 방탄과 상동적으로 보이는 부분이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홍대 앞이나 대학 캠퍼스를 메우는 한국의 젊은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이제 21~25세 사이의 이 청년들은 어깨에 쏟아지는 세계의 시선과 기대를 어떻게 소화하고 있을까. 그 걱정이 기우임을 16일 베를린 공연에서 방탄의 리더 RM이 보여 주었다. 공연을 끝내면서 RM은 젊은이과 저먼(독일인)의 발음 유사성을 이용해 “우리는 젊은이이고 여러분도 젊은이다. 우리는 모두 저먼이다”라고 말했다. 동서로 나뉜 베를린을 방문한 케네디 대통령의 1963년 연설 속 “이히 빈 아인 베를리너”(나는 베를린 사람이다)를 연상시키는 이 말놀이는 단순한 말놀이가 아닌 것으로 보인다. 베를린 공연장의 열렬한 독일 팬들에 대한 존경과 공감을 드러내는 동시에 한때 “초통령”으로 불리던 방탄이 이제 세계의 젊은이들을 이끄는 리더가 되겠다는 포부가 느껴진다. 공연 현장에서 만난 방탄의 세계 팬들도 방탄이 세대를 대표하고 있다고 말한다. 공연 현장에서 느끼는 관객 연령대의 확장은 이러한 ‘방탄소년단 세대’의 팝문화 속 전진을 말해 주고 있었다.
  • 할머니·딸·손녀, 나란히 같은 대학 다니는 사연

    할머니·딸·손녀, 나란히 같은 대학 다니는 사연

    할머니, 딸, 그리고 손녀딸까지 가족 3대가 같은 대학 동급생으로 함께 공부하게 된 사연이 화제다. 16일(현지시간) 미국 CBS는 아일랜드 출신의 할머니 메리 험블과 딸 데어드레이 허치슨, 손녀 조지나가 나란히 미 매사추세츠 로웰 대학(UML)에 재학 중이라고 전했다. 거의 60년 전, 당시 15살이었던 메리 할머니는 가족 사업을 돕느라 학교를 중퇴해야했다. 잡화점, 게스트 하우스, 라이브 음악 술집을 운영하는 아버지는 학교 교육을 믿지 않았고, 결국 메리 할머니에게 교육의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세월이 흘러 가정주부가 된 메리 할머니는 비호지킨림프종(non-Hodgkin’s lymphoma) 4기 진단을 받았다. 살날이 3년도 채 남지 않은 그때 할머니는 학교로 돌아가고 싶은 깊은 열망을 느꼈다. 그리고 검정고시를 쳐서 고등학교 졸업증서(GED)를 받았고, 전문학사학위도 취득했다. 암 투병 후 현재 해당 대학에서 자유 예술학을 공부 중이다. 딸 데어드레이가 로웰 대학에 들어온 건 엄마의 권유 덕분이었다. 딸 역시 고등학교 2학년 때 심각한 톡소플라스마증(toxoplasmosis) 감염으로 한쪽 눈이 일시적으로 멀었고 심한 두통으로 학업을 이어가지 못했다. 다음해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학업에 더 뒤쳐졌다. 그러나 엄마가 다시 공부하는 것을 보고 ‘엄마가 할 수 있으면 나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됐다. 그녀도 검정고시로 고교졸업증을 받았고, 대학수능 시험에 통과했다. 지난 봄 엄마가 다니는 학교 캠퍼스에서 한 역사 수업을 청강한 후 입학을 결심하게 됐다. 데어드레이는 “대학은 나와 먼 꿈이었는데 엄마를 통해 다시 학교에 다닐 용기를 갖게 됐다”며 기뻐했다. 이후 메리의 손녀딸 조지나가 마지막으로 로웰 대학에 들어왔다. 1년 전 고등학교를 졸업한 조지나는 같은 시기 타 대학에서 법 과학을 공부 중이었지만 그녀는 화학이나 생물 수업보다 형사 사법 제도를 공부하는 게 좋았다. 무엇보다 가족이 있는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 한 학기만 마친 후 할머니와 엄마가 있는 대학에 편입했다. 조지나는 “형사 사법 수업을 수강할 수 있는 동시에 캠퍼스에서 이제 엄마와 할머니를 만날 수 있게 됐다”며 즐거워했다. 손녀와 한 과목정도를 같이 들을 예정인 메리 할머니도 “학습의 즐거움은 나를 살아있게 한다. 학교는 내 인생에서 가장 큰 부분”이라며 “수차례 못할 것 같다고 생각하다가도 주변에 나를 도와주는 사람들이 있기에 힘이 난다”고 밝혔다. 사진=매사추세츠 로웰대학교 안정은 기자 netineri@seoul.co.kr
  • 美체조협회장 임명 나흘 만에 사임, 계속되는 나사르 쇼크

    美체조협회장 임명 나흘 만에 사임, 계속되는 나사르 쇼크

    미국체조협회(USAG) 회장이 또 물러났다. 이번에는 임명된 지 나흘 만이다. 지난 12일(이하 현지시간) 래리 나사르 파문에 초토화된 협회를 재건할 회장 대행 겸 최고경영자(CEO)로 임명됐던 매리 보노(56) 전 공화당 하원의원이 리우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시몬 바일스(21)와 앨리 라이스먼의 잇단 문제 제기에 16일 물러나겠다고 발표했다. 그녀는 성명을 통해 “무방비 상태로 당한 개인적 공격의 와중에 취해진 내 사임이 USAG의 신뢰성을 높이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어린 체조선수 시절 한 코치가 괴롭히는 습관을 가진 것을 봤다고 털어놓은 보노는 “체조란 스포츠에 대한 깊은 사랑, 위대한 체조인이 되겠다는 열망을 품은 이들에 대한 존경과 함께 오늘날 내 사임을 발표하며 깊은 회한도 갖는다”며 “그 나이 때 선수들이 유린이냐 열망이냐, 적절하게 폭로하는 것과 개인의 성취를 향해 나아가는 것 사이의 선택을 강요받는 현실을 없애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USAG 회장 자리는 독이 든 성배가 되고 있다. 전임자 케리 페리 역시 취임 9개월 만인 지난해 9월 사임했는데 나사르 추문의 후유증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다는 비난을 견디지 못했다. 페리의 전임자 스티브 페니도 지난해 성추행 피해자들의 고발을 즉각 당국에 알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물러났다. 나사르는 지난해 12월 아동 포르노 소지 혐의로 60년형을 선고받고 지난 1월 성추행 혐의로 175년형을 언도받았으며 다음달에는 어린 체조선수들을 농락한 혐의로 40~125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그로부터 당했다고 주장한 이만 300명이 넘었다. 보노는 나사르 추문이 한참 터졌을 때 체조협회와 나스리를 변호했던 로펌 ‘패그리 베이커 대니얼스’에서 일했던 전력이 결정적으로 발목을 잡았다. 나사르의 희생자인 라이스먼은 일련의 트위터 글을 통해 보노가 직접 변호에 나선 것은 아니었지만 이 로펌과 USAG가 2015년에 이미 나스리의 추문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계속 대표팀 주치의로 일하게 해 어린 소녀들을 유린하는 데 일조했다고 주장했다. 바일스(21)는 한달 전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 나이키가 미국프로풋볼(NFL) 스타 콜린 캐퍼닉을 새로운 캠페인 광고의 간판 모델로 기용했을 때 보노가 나이키의 결정이 잘못됐다며 로고에 색깔을 덧칠하는 자신의 모습을 담은 사진을 트위터에 올린 것을 문제 삼았다. 보노는 뒤늦게 한달 만에 “그 글에 대해 사과드리며 모든 이의 견해와 그를 표현할 기본권을 존중한다”며 “미국체조협회에서 내가 할 일을 그 일로 짐작하면 안된다. 트위터를 당분간 접고 이 위대한 체조와 헌신하는 모두를 위해 이뤄내야 할 일에 집중하는 쪽으로 나아가려 한다”고 고개를 숙였지만 결국 사임하고 말았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성추문 나사르 변호하던 로펌 출신이 美체조협회 회장에

    성추문 나사르 변호하던 로펌 출신이 美체조협회 회장에

    성추행 의사 래리 나사르로부터 피해를 당했던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체조 금메달리스트 앨리 라이스먼(24)이 신임 미국체조협회 회장 임명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말 사임한 케리 페리를 대신해 지난 12일 회장 대행 겸 최고경영자(CEO)로 전 공화당 하원의원인 매리 보노(56)가 임명됐는데 그녀는 나사르 추문이 한참 터졌을 때 체조협회와 나스리를 변호했던 로펌 ‘패그리 베이커 대니얼스’에서 일하고 있었던 전력 때문이다. 라이스먼은 일련의 트위터 글을 통해 보노가 직접 변호에 나선 것은 아니었지만 이 로펌과 체조협회가 2015년에 이미 나스리의 추문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계속 대표팀 주치의로 일하게 해 어린 소녀들을 유린하는 데 일조했다고 주장했다. 라이스먼은 “생존자들, 현역 체조선수들, 가족들, 코치진, 체조계와 팬들은 더 나은 대접을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노는 임명 직후 “이처럼 어려운 시기에 안전하고 뒷받침이 되며 건강한 여건을 만들기 위해 모든 체조계 인사들과 함께 일하길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녀는 로펌에서 입법 전략과 정책을 수립하는 일만 했으며 나사르 사건에 개입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라이스먼과 함께 리우 금메달리스트인 시몬 바일스(21)도 보노 비판에 가세했다. 한달 전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 나이키가 미국프로풋볼(NFL) 스타 콜린 캐퍼닉을 새로운 캠페인 광고의 간판 모델로 기용해 논란이 뜨거웠을 때 보노가 나이키의 결정이 잘못됐다며 로고에 색깔을 덧칠하는 자신의 모습을 담은 사진을 트위터에 올린 것을 문제 삼았다. 보노는 뒤늦게 한달 만에 “그 글에 대해 사과드리며 모든 이의 견해와 그를 표현할 기본권을 존중한다”며 “미국체조협회에서 내가 할 일을 그 일로 짐작하면 안된다. 트위터를 당분간 접고 이 위대한 체조와 헌신하는 모두를 위해 이뤄내야 할 일에 집중하는 쪽으로 나아가려 한다”고 고개를 숙였다. 나사르는 지난해 12월 아동 포르노 소지 혐의로 60년형을 선고받고 지난 1월 성추행 혐의로 175년형을 언도받았으며 다음달에는 어린 체조선수들을 농락한 혐의로 40~125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그로부터 당했다고 주장한 이만 300명이 넘었다. 미국체조협회 회장 자리는 독이 든 성배가 되고 있다. 전임자 페리 역시 취임 9개월 만인 지난해 9월 사임했는데 나사르 추문의 후유증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다는 비난을 견디지 못했다. 그 전임자 스티브 페니도 지난해 성추행 피해자들의 고발을 즉각 당국에 알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물러났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낙농진흥회, ‘2018 국제낙농연맹(IDF) 연차총회’ 개최

    낙농진흥회, ‘2018 국제낙농연맹(IDF) 연차총회’ 개최

    낙농분야 세계 최대 국제행사인 2018 국제낙농연맹(이하 IDF, International Dairy Federation) 연차총회가 10월 15일 대한민국의 중심 대전컨벤션센터에서 개최됐다. “다음 세대를 위한 낙농”이라는 주제로 개막식이 있는 10월 15일부터 18일까지 나흘간 진행될 2018 IDF 연차총회에는 전세계 52개 회원국 500여 명과 국내 관계자 1,000여 명이 참석하여 성황을 이루었다. 본격적인 총회에 앞서 10월 11일부터 4일간은 IDF 관계자들의 IDF 비즈니스 미팅 등이 다양하게 펼쳐질 예정으로 세계 낙농 산업의 변화를 확인하는 중요한 시간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창범 2018 IDF 연차총회 조직위원장(낙농진흥회장)은 개회사를 통해 “9천년 역사의 낙농산업은 수세기 동안 지속적인 발전을 이뤄왔고 또한 발전을 거듭해 나가고 있다”며 “올해의 IDF 연차총회를 통해 낙농산업의 미래와 발전방향에 대해 논의하는 뜻깊은 자리가 되기 바란다”고 밝혔다. 개막식에 이어 기조연설에 나선 반기문 전UN사무총장은 “인류에게 보다 나은 환경을 만들어 가기 위한 낙농산업의 필요성과 산업의 지속가능성”에 대해 이야기 하고, “IDF 관계자 여러분들은 우리의 낙농산업이 인류의 건강을 책임지고 있다는 책임의식과 함께 자부심을 느껴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또한 “앞으로도 낙농산업관계자들이 인류의 환경을 지키고 영양, 환경, 동물복지 등 낙농산업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노력에 앞장서 주기 바란다“고 밝혔다. 이개호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축사를 통해 “IDF 연차총회가 전 세계 낙농산업이 도약하는 발판으로 역할하길 기대하며, “미래가 있는 낙농산업을 위해 깊이 고민하고 소통을 통해 우정을 나누는 뜻깊은 시간이 되기를” 당부하였다. 2018 IDF 연차총회는 120여 연사의 주제발표를 중심으로, 총 9개의 컨퍼런스 37개의 세션으로 구분, 운영될 예정이다. 10월 15일 개막식에서는 월드 리더스 포럼, IDF 포럼 등 2개의 포럼이 진행되며 이후 낙농정책경제, 목장경영, 낙농과학기술, 마케팅, 식품안전, 영양건강, 환경, 동물건강복지 등 8개 주제의 컨퍼런스와 학교우유, ICT 스마트팜, 발효유 3개 스페셜 컨퍼런스가 펼쳐진다. 전체 세션을 이끌어갈 연사는 120명으로 이중 눈에 띄는 연사로는 반기문 제8대 UN사무총장을 비롯하여 서울대 전경수 교수, 국제식품규격위원회(CODEX) 톰 하일런트 사무총장 등의 저명인사와 함께 다양한 사회 유명인사들이 대거 참석하게 된다. 낙농진흥회 관계자는 “내로라하는 낙농 선진국들을 제치고 2018 IDF 연차총회를 유치한 것은 1960년대 시작해 역사는 짧지만 한국 낙농업의 성장을 국제사회가 인정했기 때문”이라며 “이번 총회에서 전 세계 선진 낙농국들에게 한국의 낙농 및 가공의 우수한 수준을 알려 수출확대를 견인하는 자리로 만들겠다”고 덧붙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시민들과 함께 김수영 기리다

    시민들과 함께 김수영 기리다

    고(故) 김수영 시인 사후 50주기를 맞아 그의 문학적 업적을 기리는 다양한 기념사업이 펼쳐진다.한국작가회의·김수영50주기기념사업회는 15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50년 후의 시인’(포스터)이라는 주제로 학술대회, 문화제, 답사 기행 등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저항시 ‘풀’로 유명한 김수영 시인은 1968년 교통사고로 사망하기까지 해방 공간에서는 모더니스트로, 한국전쟁과 4·19혁명 등 한국 현대사의 비극을 체험한 후로는 리얼리스트로 활약했다. 번역가로서 해외 희곡·시 작품들과 문학 이론을 소개하기도 했다. 김수영 문학의 현재적 의미를 살피는 학술대회는 다음달 2일과 3일 각각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와 서대문구 연세대 상남경영원에서 개최된다. 다음달 10일 마포중앙도서관에서는 문학평론가 염무웅·임헌영의 강연과 시극 등으로 구성된 문화제가 펼쳐진다.시인의 발자취를 되짚어보는 문학 기행도 서울과 중국 지린성 일대에서 진행된다. 서울에서는 다음달 17일 생가터, 집, 창작 산실 등을 돌아보고 12월 6~9일 1944년 중국 지린으로 건너간 시인이 공연했던 연극 장소 등을 답사한다. ‘김수영 회고문집’도 내년 1월 창비에서 발간될 예정이다. 함께 활동했던 원로 문인들과 문단 후배 등의 글을 모았다. 특히 1960년대 후반 김수영과 ‘불온시 논쟁’을 벌인 이어령 문학평론가의 회고담이 실려 눈길을 끈다. 기념사업에 기획위원으로 참여한 최원식 인하대 명예교수는 “시인의 작품 중 ‘정본’, 즉 믿을 만한 텍스트를 확정하는 일을 탄생 100주년인 2021년을 목표로 추진하고 있다”며 “‘김수영론’에서 ‘김수영학’으로의 전환을 위한 기초를 놓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고 전했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길섶에서] ‘사회의 창’/황성기 논설위원

    누군가의 바지 지퍼가 내려왔을 때, 지적하는 사람이나 지적당하는 사람의 창피를 조금이라도 덜도록 ‘남대문이 열렸다’라는 말을 쓴다. 배려일 것이다. 이런 배려의 말이 세계 여러 나라에 존재한다. 미국에서는 직설적으로 ‘Your flies are open’이라고도 하지만 ‘Examine Your Zipper’를 에둘러 ‘XYZ’라고도 한다. 러시아에서는 ‘24시간 소시지 파는 건가’, 대만에서는 ‘스먼(石門) 댐이 열렸다’라고 표현한다. 일본 작가 이쓰키 히로유키의 에세이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그가 지방에 강연 갔을 때이다. 동행한 방송국의 여성 프로듀서가 “선생님, 사회의 창이…”라고 말을 잇지 못했다. 지퍼가 열린 것도 부끄러웠지만, 나이 어린 프로듀서가 ‘사회의 창이 열렸다’란, 지금은 잘 쓰지 않아 사어(死語)에 가까운 속어를 알고 있는 데 더 놀란 그였다. 1948년부터 1960년까지 방송된 NHK 라디오 프로그램 ‘사회의 창’은 일본의 어두운 면을 폭로하는 내용이었는데, 중요한 것을 감추는 장소라는 이미지로 변하면서 남자 바지의 지퍼라는 뜻도 갖게 됐다. 밖에 나서기 전 ‘남대문’을 체크하는 버릇이 몸에 배어 여간해서는 없지만, 경황이 없으면 가끔씩 문을 열고 다닌다. ‘사회의 창’, 댐 잘 닫읍시다. 황성기 논설위원 marry04@seoul.co.kr
  • [부마항쟁 39주년] “역사 앞에 부끄럽다…기억 않고 기록 않는 부마의 함성과 열정”

    [부마항쟁 39주년] “역사 앞에 부끄럽다…기억 않고 기록 않는 부마의 함성과 열정”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이정표는 1960년 4·19혁명에서 시작해 1979년 부마(부산+마산)항쟁, 1980년 5·18광주민주화운동, 1987년 6·10항쟁을 거쳐 촛불혁명으로 완결됐습니다. 이 가운데 부마항쟁만 제대로 조명되지 못했습니다. 이제라도 그 의미를 살릴 수 있도록 진상 조사와 재평가가 필요합니다.” 지방자치 4선인 유덕열 서울 동대문구청장은 16일 부마항쟁 39주년을 앞둔 지난 12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항쟁은 1979년 10월 16일부터 20일까지 유신 독재에 맞서 일어난 민주화운동이다. 학생들이 선도하고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박정희 정권의 몰락을 이끈 민중항쟁인데도 전두환 시대와 함께 독재의 사슬을 끊지 못해 진정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유 구청장은 4대 민주항쟁 중 유일하게 국가기념일로 지정되지 않는 등 관심과 평가가 미흡하다며 항쟁에 대한 진상 규명과 함께 정신을 계승하기 위한 제도적 과제도 함께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답을 통해 과제를 짚어 봤다.→항쟁 발발 계기는. -5·16 군사쿠데타로 최고 권력을 쥔 박정희 정권은 영구 집권을 위해 1972년 유신체제를 선포한 뒤 긴급조치를 수시로 발동해 민주 인사를 탄압하는 등 탄압 정치를 이어 갔다. 그러던 중 당시 야당인 신민당 김영삼 총재가 YH여성노동자 신민당사 농성 사건에 대해 외신과 인터뷰하면서 유신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1979년 10월 4일 국회에서 제명되자 ‘전제군주 시대에나 있을 법한 일’이라며 부산 지역 민심이 동요했다. 이를 기화로 10월 16일 부산대 학생 중심으로 독재 타도를 외치는 시위가 번지면서 10월 17일 부산 전역으로 번졌다. 물론 단순히 야당 총재 한 사람에 대한 국회의원 제명이나 야당 탄압에 대한 항거라기보다 오래 짓눌린 민주화에 대한 민중의 목마름이 분출된 것이다. →직접 시위대를 이끌었는데. -당시 동아대 정치외교학과 2학년 복학생이었다. 학교 후문 100m 인근에 있던 내 하숙집은 학우들 사랑방이었다. 그곳에서 유신 독재의 부당성에 대해 토론과 비판을 하던 중 16일 부산대 학생들이 시위를 벌였고 동아대 학생들도 17일 아침부터 삼삼오오 모여 분위기를 달궜다. 오후 법학과, 행정학과, 정외과 2학년 합동 교련 수업 시작 전에 제가 단상에 올라 “청년 학도를 탄압하고 민주 인사를 구속하는 참상 앞에서 교련 수업이나 받을 게 아니라 운동장으로 함께 나가 시국과 인권 문제에 대해 토론하자”고 외쳤다. 금세 500~600명 이상으로 늘어 유신 철폐, 독재 타도 등 구호를 외쳤다. 그러자 경찰 진압대가 들어와 최루탄을 발사해 저녁 6시 남포동에서 다시 만나자며 흩어졌다. 그리고 저녁에 시가에서 시민들과 함께 시위를 벌였다. 0시(10월 18일)를 기해 부산 지역에 계엄령이 선포됐고 1058명이 경찰에 끌려갔다. 20일엔 위수령이 발동됐다.→시위 주도로 어떤 불이익을 받았나. -주동자로 찍혀 피신 생활을 하던 중 ‘10·26’으로 유신독재에 종지부를 찍었다. 항쟁을 직접 보고 충격을 받은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손을 빌리긴 했지만, 철옹성 같던 유신체제를 무너뜨린 것은 사실상 부산과 마산의 시민, 그리고 우리 학생들이었다. 그러나 12·12사태가 발생했고 부산에서도 총 검거령이 내려져 다시 서울로 피신했으나 5·18민중항쟁으로 계엄이 확대됐다. 결국 도피 생활 7개월 만인 1980월 5월 28일 은신 중이던 서울 서대문구 아현동 친구 집에서 체포된 뒤 부산 망미동 보안대로 끌려가 36일간 각종 고문과 구타를 당했다. 7월 2일 구속영장 집행으로 부산 제15헌병대 삼청교육대에 끌려가 인간 이하의 참혹한 수감생활을 겪었다. 헌병대에서 다시 부산 사상구 학장교도소로 이감된 데 이어 군법회의를 통해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마침내 석방됐지만 대학에서 제적돼 졸업장을 받는 데 12년이 걸렸다. →당시 함께 항쟁을 주도한 이들은. -헌병대 영창 한 막사에 40~50명 수용됐는데, 원래 있던 군인 죄수와 부마항쟁을 주도한 대학생 8명 등 20여명, 그리고 얼마 후 사회 폭력배들이 잡혀 왔다. 대학생은 부산대 조태원, 신재식, 정광민, 김종세, 김영, 이상경과 진주 경상대 김문규와 동아대 유덕열 등 8명이다. 조태원은 긴급조치로 이미 두 번 투옥된 바 있고, 신재식은 부산에서 사업을 한다. 정광민은 부마항쟁연구소장이다. 김영은 7~8년 복역했는데 김하기란 이름으로 소설을 쓴다. 김종세는 올해 초까지 부산민주공원 관장을 지냈다. 우리는 아직도 가끔 서로 안부를 묻고 연락을 한다.→DJ(김대중 전 대통령)와 노무현 정부 때도 부마항쟁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이유는. -DJ가 1997년 정권교체를 이뤘지만 JP(김종필 전 국무총리)와의 연대라는 한계에 부딪혔고, 이어진 노무현 정부는 각종 개혁 작업으로 탄핵 등 집권 초반부터 계속 흔들리면서 부마항쟁 재평가를 논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지난해 10월 3년에 걸친 부마항쟁 진상조사 기간이 종료됐는데. -2010년 5월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가 국가 기관으로 처음 부마항쟁 기간 중 공권력에 의한 인권침해를 인정한 바 있지만 전체 진상 규명은 이뤄지지 못했다. 박근혜 정부 때인 2013년 부마항쟁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에 관한 법이 국회를 통과했으나 진상규명위가 형식적으로만 구성돼 제대로 활동하지 않았다. →잊지 말아야 할 부마항쟁의 의의는. -부마항쟁은 18년이나 이어진 군사독재정권을 끌어내린 민주화운동이다. 군부의 집권 야욕으로 곧장 민주화의 길로 나아가지 못하고 5·18항쟁이라는 참혹하면서도 위대한 시민항쟁으로 이어졌지만 개발도상국이었던 한국에서 군사정권을 축출하는 투쟁을 본격적으로 시도했다는 점에 의미를 둔다. 8년 뒤 이어진 6월 항쟁으로 신군부가 항복 선언을 하면서 군사독재는 더이상 우리나라에 발붙일 수 없게 됐다. 무엇보다 조국 근대화라는 명분 아래 철저히 짓밟혀 온 노동자와 농민의 기본권을 회복해야 한다는 요구를 전면에 내걸었다는 점에서도 주목할 만하다. →항쟁 정신 계승을 위한 제도적 과제가 있다면. -지난 3월 문재인 대통령이 발의한 개헌안 전문에 부마항쟁의 이념이 명시되는 등 역사적 의미를 올바로 각인할 수 있는 길이 열리고 있는 점은 고무적이다. 이에 더해 우선 항쟁 당시 자행된 인권 침해에 대한 진상 규명을 위해 진상규명위원회 조사 기간을 연장해야 한다. 국가로부터 인권을 침해받았음에도 숨죽이고 살았던 피해자들의 명예를 회복하고 국가유공자로 지정하는 등의 보상도 필요하다. 무엇보다 4대 민중항쟁으로서의 역사적 의의를 충분히 살릴 수 있도록 조치가 따라야 한다. 주현진 기자 jhj@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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