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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래고기맛 못잊는 일본, 고래 잡기 위해 국제기구 탈퇴

    고래고기맛 못잊는 일본, 고래 잡기 위해 국제기구 탈퇴

    일본이 30년 만에 상업 포경(판매용 고래잡이) 재개를 위해 국제포경위원회(IWC)를 탈퇴하기로 했다. 일본 정부가 식용 고래를 포획할 목적으로 고래 남획 방지를 위한 국제기구에서 탈퇴하기로 결정함에 따라 국제사회의 비판의 목소리가 거세질 전망이다. 교도통신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25일 각의(국무회의)에서 IWC 탈퇴안을 의결했다. 일본의 국제기구 탈퇴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일본은 IWC 탈퇴 이후 일본 근해나 일본의 배타적경제수역(EEZ)에서 고래잡이에 나설 방침이다. IWC 탈퇴는 과거 상업포경을 활발히 해 오던 홋카이도와 아오모리, 미야기현 등을 지역구로 둔 여당 의원들의 상업포경 재개 압박을 일본 정부가 수용해서 이뤄지게 됐다. IWC의 규정에 따라 일본 정부가 내달 1일까지 탈퇴 의사를 통보하면 내년 6월 30일에 발효된다. 탈퇴가 확정되면 상업 포경은 가능해지지만, 남극해에서 연구 조사를 위한 고래잡이는 할 수 없게 된다. 일본은 그동안 IWC에 상업 포경을 허용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지난 9월 브라질 총회에서 해당 안건이 회부됐지만 반대가 많아 부결됐다. 이 때문에 일본 정부는 IWC 회원국으로 남은 채 고래잡이에 나서는 것은 곤란하다고 보고 탈퇴를 결정한 것이다. 일본인들은 고래고기를 즐겨 먹는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 등에 따르면 일본의 고래 소비량은 1960년대에는 연간 23만t을 넘었다. 이후 고래잡이 과정의 잔혹성 및 식용에 대한 국제적인 비판과 포경 제한으로 소비가 줄었지만 여전히 연간 5000t 가량이 유통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
  • [이기철의 노답 인터뷰]“예멘 난민 뉴스 보면서 한국 사회가 우리 잊었나 해서 서운했습니다”

    [이기철의 노답 인터뷰]“예멘 난민 뉴스 보면서 한국 사회가 우리 잊었나 해서 서운했습니다”

    노송달 초대 대한고려인협회장이 말하는 ‘한국과 난민’“한국에서 최근 난민 문제가 사회적 이슈가 되었을 때 우리들은 기분이 묘했습니다. 한편으론 잊혔다는 억울함도 들고, 난민 문제를 이슈화시킨 단체들이 우리 문제는 고개를 돌려 외면하는 것이 아니냐는 복잡한 심경입니다. 우리들 문제도 신경을 많이 써줬으면 합니다.” 지난 12일 발족한 ‘대한고려인협회’의 초대 회장으로 취임한 노 알렉산드르(46·한국 이름 노송달)는 지난 20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제주도에서 예멘인 수백 명의 난민 문제를 뉴스로 볼 때 우리 입장은 착잡하다”고 말했다. 그가 대한고려인협회의 사무실로 사용하는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에 있는 시민단체 ‘너머’로 찾아갔다. 고려인협회는 러시아를 비롯해 구소련에서 떨어져 나온 우즈베키스탄·카자흐스탄 등의 나라에서 한국으로 들어온 동포 8만여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 대다수는 한국에서 소위 ‘3D업종’에 종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를 만나러 지하철을 타고 가면서 그가 ‘우리’와 약간 다르게 생겼을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만나보니 길거리에서 마주친다면 그가 ‘고려인’이라고 알아챌 방도가 없었다. 한국말로도 인터뷰에 잘 응했다. 너무나 똑같은 ‘우리의 모습’에 놀랐다.“우리 할아버지들, 타국서 독립운동한 애국자우리는 그런 난민의 후손, 푸대접 착잡한 심경” “우리 할아버지들, 구한말 정치적·경제적 이유로 소련이나 중국에 난민이 되었습니다. 우리 조상은 그곳에 직접적으로 항일 독립운동에 헌신하시거나, 그렇지 못하면 생업에 종사하면서 적은 돈이지만 몰래몰래 독립자금을 지원했던 애국자들입니다. 나라를 잃은 서러움을 이중으로 경험한 것이지요. 우리는 그런 분들의 후손입니다. 말 그대로 할아버지의 나라 조국(祖國)에서는 우리들은 제쳐놓고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나라 사람을 ‘받아들여야 하네’, ‘마네’ 하는 뉴스를 보면 좀 억울한 심정, 착잡한 심경이 드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들을 받아들이지 말자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가까이 있었던 우리 동포 문제가 더 시급한 것이 아니냐는 겁니다.” 노 회장은 비자 문제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우리 고려인들에게 나오는 F4비자(외국 국적 재외동포 비자)가 차별적이라고 느낍니다. 예컨대 러시아 국적의 동포는 F4비자는 신청만 하면 발급돼 나오는데, 중앙아시아 같은 경우 F4비자 신청 조건이 대졸입니다. 러시아나 중앙아시아나 구소련 국가로 다 같잖아요. 또 있습니다. H2비자(취업비자)는 중국 동포에겐 5세대까지 나오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만, 고려인들에겐 3세대까지밖에 안 나옵니다. 고려인 3세대의 자녀들은 만 19세가 되면 외국인으로 분류되어서 출국해야 합니다. 생이별이지요. 이것도 차별이고, 조국이 우리를 서운하게 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전해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고려인동포 합법적 체류자격 취득 및 정착 지원을 위한 특별법’이 빨리 처리되어 이런 차별이 사라지길 바랄 뿐입니다.” ‘영주권은 어떠냐’ 하고 물었더니 노 회장은 영주권(F5비자)에는 ‘외국인 등록증’의 글귀도 거슬린다고 한다. “F4비자는 ‘외국국적 재외동포’라는 핏줄 인연이 있지만 영주권은 그냥 우리를 외국인 취급합니다. 지금 제주도에서 이슈화되고 있는 예멘 난민과 우리가 똑같은 거죠. 우리 대우를 잘 해달라는 것이 아니라 신분상 안정적으로 살게 해달라는 겁니다” 그는 불만을 우회해서 토로했다.“고려인 비자 차별하는 조국에 서운특별 대우 아냐…안정적 생활 바람” 대한고려인협회 초대 회장으로서의 각오를 물었다. “한국에서 활동이 주요 목적입니다. 여기 안산의 고려인문화센터와 같이 고려인의 정착과 교육을 지원하는 센터를 청주와 화성 등에 세우도록 하겠습니다. 또 하나는 ‘고려인 독립운동 기념비 건립’을 추진할 작정입니다. 전해철 의원이 낸 특별법 처리에 힘을 보태겠다는 것, 이 세 가지가 제 목표입니다.” 그에게 한국 이름을 물으니 “노송달”이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가슴 찡한 사연을 들려줬다. “제가 원래 태어날 때 성이 뭐로 기록됐느냐 하면 ‘노가이’였습니다. 성명은 ‘노가이 알렉산드르’. 옛날에 할아버지가 러시아 당국에 등록할 때 성을 물어보니 ‘노가입니다’로 답했는데, 러시아 직원이 ‘노가이’로 기록한 것이 성이 된거죠. 러시아 말을 몰랐던 할아버지는 알렉산드르가 발음하기 어려워 ‘송달이, 송달아’하고 불렀던 게 제 한국 이름이 된 거죠. 그때는 송달이 웃긴 이름인 줄 모르고 쓰게 된 것입니다.”가족은 다국적…한국 생활 노 회장은 러시아 국적모친은 우즈베키스탄, 부인·딸은 카자흐스탄 국적 그의 가족은 ‘다국적’이다. 한국에서 생활하는 노 회장은 러시아 국적, 어머니는 우즈베키스탄, 부인과 딸(7)은 카자흐스탄 국적이란다. 부인과 딸은 비행기로 7000km 카자흐스탄에 살고 있다. 독립유공자 계봉우(1880~1959) 선생의 후손인 부인은 카자흐스탄에서 독립유공자 후손회 부회장으로 일하고 있단다. 1년에 한두 번 그가 카자흐스탄에 가거나, 부인이 한국에 와야 가족의 생이별을 달랠 수 있다. “민요 아라랑만 들어도 콧잔등이 시큰하다”는 노 회장은 한국 생활을 하면서도 뿌리를 찾을 생각을 하지 못했단다. “1937년 강제이주를 당하면서 서류나 짐, 족보 같은 것은 아예 챙겨가지 못해 없어져 버렸습니다. 할아버지 정확한 고향은 모릅니다.” 그는 자신을 ‘장연 노씨’라고 이야기했다. 할아버지 함자를 알고 문중에 가면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고 하자 그는 “할아버지 함자가 노.태.경입니다. 그런데 문중이 북한에 있어서….”라며 말끝을 흐렸다. 노 회장의 한국 생활은 20년이 넘었다. “1997년 한국에 들어와 막노동을 많이 했습니다. 지금은 고층건물 외벽 도장을 하는 작은 사업체를 꾸려가고 있습니다. 직원은 30~40명 됩니다.” 돈을 잘 버느냐는 물음에 그는 “돈을 못 벌면 이런 조직을 맡을 수가 없겠죠”라며 대답을 대신했다. 그러면서 ‘고려인문화센터’를 지원하는 시민단체 너머에 대해서는 “그저 고마울 따름이죠”라고 몇 차례 말했다. “그동안 느낀 바로는 한국 사람들이 고려인에 대해 대체로 ‘모르겠다’는 입장인 것같았습니다. 러시아와 중앙아시아에 남아 있는 조상들의 독립운동을 알려주고 싶은데…, 한국 사람들이 역사에 별로 관심이 없고, ‘지금 내 가족만 잘 살면 된다’는 생각이 심한 것같더라고요.” 자신들을 왜 ‘고려인’이라고 부르는지 물어봤다. “원래는 중국처럼 조선인으로 부르다가 1988년 6월 ‘전소련고려인협회’가 결성되면서부터입니다. 그때 우리는 조선 사람도, 한국 사람도 아닌 러시아 사람이고, 남한이나 북한의 그 어디도 아니고 해서 고려인이라 한 것입니다. 고려인(Korean)은 러시아 어로 ‘카레이츠’라 합니다. 러시아와 우즈베키스타·카자흐스탄 등등해서 50만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고구려나 발해시대를 제외한다면 구한말인 1860년대에 한인들이 러시아에 연해주 일대에 가서 살던 게 고려인의 시초이다.“우즈베크는 고향이지만 이질감한국은 ‘여기가 우리 땅’ 자신감” 그에게 한국과 고향 우즈베키스탄을 비교해 달라고 했다. “우즈베크는 제가 나서 자란 곳입니다. 친구들도 많고, 말도 잘 되고 문화도 잘 알고 그렇지만 코리안은 주류가 되지 않습니다. 간혹 밖에서 ‘니들 나라, 코리아로 돌아가라’는 말도 들립니다. 그럴 땐 기분이 매우 안 좋지요. 자신감도 없어졌습니다. 같은 문화 속에서 이질감을 느낍니다. 그런데 한국에선 그런 말을 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얼굴이나 외모가 똑같아서인지 …. 여기서 누군가가 ‘니들 나라로 돌아가라’라고 하면 제가 자신감이 있습니다. ‘여기가 우리 땅’이라고.” 글·사진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하춘화 “대중가요 전문 학교 만들어 가수 꿈꾸는 후배들 키울 것”

    하춘화 “대중가요 전문 학교 만들어 가수 꿈꾸는 후배들 키울 것”

    “60주년 앨범을 부모님께 보여드렸어요. 옛날 같았으면 아버지께서 굉장히 흥분하시면서 좋아하셨을 텐데 ‘그랬냐’라고 말씀하시는 정도시죠. 부모님의 모습을 보면서 인생에 대해 생각하게 돼요.”최근 데뷔 60주년 앨범을 발매한 하춘화(63)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만났다. 그는 1961년 6세 때 ‘효녀 심청 되오리다’로 데뷔했다. 1970~80년대 ‘물새 한 마리’, ‘영암 아리랑’, ‘날 버린 남자’ 등 히트곡을 다수 발표하며 전성기를 누렸다. 60년 가까이 가수 생활 하는 것을 부모님이 누구보다 자랑스럽게 지켜봤을 터다. 그가 어렸을 때만 해도 집안에서 대중예술인이 나오는 것을 꺼리는 사회적 분위기가 있었다. 어린 하춘화는 라디오에서 노래가 나오면 한 번만 듣고 그대로 따라했고 그렇게 부른 곡이 300곡에 달했는데 동네에서는 ‘노래 잘하는 천재’가 아니라 ‘이상한 아이’로 통했다. 훗날 “그렇게 따가운 시선 속에서 어떻게 저를 키우셨냐”고 묻는 하춘화에게 아버지는 “그때는 뭐가 씌었던 모양”이라며 웃었다고 한다. 하춘화는 “웬만한 집안에서는 가수가 된다고 하면 반대했지만 제 부모님은 ‘자식은 부모 의지로 키우는 게 아니라 타고난 재능을 살려줘야 한다’며 적극적으로 밀어주셨다”면서 인터뷰 동안 몇 번이나 부모님에 대한 고마움을 드러냈다. 그의 아버지는 올해 100세를 맞았다.트로트 가수 외길 인생을 걸어 온 하춘화는 “그게 저의 역사”라며 “전통가요 가수 스타일을 유지하면서 제 목소리가 팬들을 실망시키지 않을 때까지 노래하겠다”고 말했다. 60주년에 앞서 발매한 앨범 타이틀곡으로 트로트인 ‘마산항엔 비가 내린다’를 선택한 것은 당연한 결정이었다. 경남대에서 공부했던 시절의 기억을 바탕으로 창원으로 통합된 옛 마산에 대한 그리움과 향수를 담아 직접 가사를 붙였다. 가벼운 스윙템포 스타일의 ‘여자 여자 여자예요’와 발라드곡 ‘침블락에서’ 등 신곡을 넣어 다채로움을 더했다. 나머지 16개 트랙은 기존 히트곡들로 알차게 채웠다. 60주년은 2년여 남았지만 앨범을 미리 발매한 것은 관객들이 노래를 미리 듣고 공연을 더 즐길 수 있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지금까지 5년 단위로 공연을 준비했어요. 마치 올림픽 선수가 올림픽에 출전하듯이 준비를 해왔어요. 5년마다 보러 오시는 분들이 올해 공연은 더 좋아졌다고 해주시는 말에 힘을 얻죠.” 2021년 초로 예정된 콘서트에서는 히트곡 무대는 물론이고 아이돌 음악을 춤과 메들리로 선보이는 깜짝 무대도 구상 중이다. 1년쯤 전부터는 어릴 때 중단했던 피아노를 다시 배우고 있다. 하춘화는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에서 프레디 머큐리가 연주하는 모습이 너무나 인상적이었다”며 “영화만큼 감동적인 무대를 보여 주고 싶다”고 말했다. ‘보헤미안 랩소디’를 세 번이나 봤다는 그는 “잘 아는 분야의 이야기라 공감이 많이 됐다. 매니저를 잘못 만나서 나쁜 길로 빠졌다가 나중에 극적으로 재기하는 장면들이 한국 연예계 현실과 비슷했다”고 말했다. 그는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때는 누구나 잘할 수 있다”면서 “예전 히트곡으로 유지하던 90년대를 슬럼프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한 적이 없다”고 했다. 스케줄이 없을 때도 끊임없이 공부하면서 새로운 것에 도전했기 때문이다. 논문을 위해 하루 4시간씩 자면서 공부해 동국대 공연예술학에서 석사학위를, 성균관대 동양철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기도 했다. 하춘화는 “얼마 전 어머니께서 ‘네가 공부할 나이에 노래를 불러서 걱정을 많이 했는데 반듯하게 커줘서 고맙다’는 말씀을 처음 하셨다”며 “내가 나쁘게 살지는 않았구나 생각했다”며 웃었다. “노래하면서 사랑도 많이 받았고 돈도 많이 벌었어요. 인기와 부를 얻으려고 할 때는 이제 지났다고 생각해요. 가수가 되길 꿈꾸는 후배들에게 좋은 여건을 만들어 주는 게 제가 할 일이죠.” 내년 전남 영암에 트로트 가요센터가 들어설 예정이다. 하춘화 아트홀과 전시관, 아카데미 등이 갖춰진 시설이다. 하춘화는 “한국에도 세계적인 대중가요 전문학교를 만들고 싶다”며 후배들에게 “꿈을 크게 가져라, 선배 하춘화가 최선을 다해 여건을 만들겠다”고 전했다. 지금까지 공연수익을 통한 기부가 200억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진 그는 올해 크리스마스에도 여느 해처럼 부모님이 계신 실버타운을 찾아간다. 노인들 앞에서 노래도 하고 파티를 열면서 누구보다 따뜻한 연말을 보낼 계획이다. 이정수 기자 tintin@seoul.co.kr
  • 부처간 비공개 의견 조율… 2기 경제팀 키플레이어로

    23일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도로 최저임금법 시행령 개정안에 대한 수정 문제를 논의한 ‘녹실 회의’의 성격과 위상에 대해 관심이 쏠린다. 국무회의가 정부의 최종적인 ‘의사결정기구’라면 녹실 회의는 부처 간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의견조율기구’로 역할해 나갈지 주목된다. 녹실 회의는 1960년대 중반 당시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이었던 고(故) 장기영씨가 경제부처 장관들과 비공개로 현안을 논의하면서 시작됐다. 회의 장소의 카펫과 가구 색상이 녹색이어서 녹실 회의로 불렸다. 문재인 정부 들어 녹실 회의라는 명칭이 공개적으로 언급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앞서 홍 부총리가 취임 직전인 지난 11일 6개 부처 장관과 ‘2019년도 경제정책방향’을 조율한 비공식 회의의 연장선으로도 해석된다. 기재부 관계자는 “앞으로도 필요한 경우 홍 부총리가 주재하는 녹실 회의를 열어 경제팀 전체 의견을 모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녹실 회의가 문재인 정부 2기 경제팀 운용의 ‘키 플레이어’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녹실 회의는 박근혜 정부 당시의 ‘청와대 서별관 회의’와 비공식 협의 채널이라는 점에서는 같다. 녹실 회의 참석 대상은 부총리를 비롯한 관계부처 장관, 서별관 회의는 청와대 참모진까지 참석 대상을 넓혔다는 점에서 다르다. 서별관 회의가 법적 근거가 없는 밀실 회의라는 비판을 받았다는 점에서 녹실 회의가 차별화할 수 있느냐는 풀어야 할 숙제로 보인다. 김동현 기자 moses@seoul.co.kr
  • 최저임금 산정 ‘유급휴일 축소’ 긴급 논의

    홍부총리 ‘녹실회의’ 뒤 이총리에 보고 고용부 “입장 달라진 것 없다” 재확인 원안과 달리 통과 땐 노동계 반발 예상 정부가 23일 최저임금을 산정할 때 근로시간에 포함하는 유급휴일의 범위를 당초 계획보다 축소하는 내용을 논의했다. 경영계의 반발을 감안해 ‘유급휴일 축소’를 강하게 주장하는 의견이 나왔지만, 고용노동부는 ‘원안 통과’를 고수했다. 원안과 달리 통과된다면 이 역시 노동계의 극심한 반발이 예상된다. 정부는 24일 국무회의를 앞두고 이날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고용노동부, 산업통상자원부, 국무조정실 등 관계부처 장관들이 참여해 ‘긴급 회의’(녹실 회의)를 열어 최저임금법 시행령 개정안에 대한 수정 여부를 논의했다. 최저임금 속도 조절을 시사했던 홍 부총리가 1960년대 ‘녹실 회의’를 부활시키며 첫 안건으로 올린 만큼 개정안이 수정될지 관심이 집중된다. 개정안이 그대로 시행되면 최저임금을 계산할 때 근로기준법에서 보장하는 유급휴일(일요일 주휴시간 8시간)은 물론 노사가 합의로 정한 유급휴일(토요일 주휴시간 8시간)도 포함시켜야 한다. 근로시간에 포함되는 유급휴일이 늘어날수록 근로자 입장에서는 더 많은 임금을 받을 수 있지만 기업으로서는 비용 부담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이날 회의에서는 ‘노사가 합의한 유급휴일’(토요일 주휴시간 8시간)은 제외하는 문제를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관계자는 이에 대해 “방향은 맞다”면서도 “다만 최종 확정된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홍 부총리는 회의 후 이낙연 국무총리를 만나 회의 내용을 보고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른 정부 관계자는 “이날 회의에서는 최종 결론을 안 냈고, 24일 국무회의에서 결정하는 것으로 했다”고 말했다. 주무부처인 고용부는 이날 ‘개정안이 수정되는 것이냐’는 질의에 “기존 입장에서 달라진 게 전혀 없다”고 밝혔다. 앞서 이재갑 고용부 장관은 지난 19일 서울 중구 서울지방고용노동청에서 가진 서울신문과의 단독 인터뷰에서 “(주휴시간 포함이) 사업주들에게 ‘없는 부담’을 새로 드린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장관은 “내년도 최저임금 산입 범위를 논의할 땐 월 209시간을 기준으로 계산한 것”이라면서 “최저임금 계산에서 주휴시간을 포함하지 않겠다는 것은 국회에서 심의한 내용을 행정부가 갑자기 빼겠다고 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강조했다. 경영계가 올 상반기 자신들에게 유리한 ‘산입 범위 확대’(최저임금에 상여금·복리후생비 포함)를 받아놓고 이미 논의가 끝난 주휴시간을 빼자고 주장하는 것은 최근 고용 악화 분위기를 틈 타 유리한 쪽으로 다 바꿔보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 장관은 “(주휴시간을 시급 계산에서 뺀다면) 근로자로서는 약 16%의 임금 감소가 이뤄진다”며 “사용자의 어려움을 충분히 이해하지만 저희가 움직일 수 있는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 이어 “이는 최저임금법을 처음 제정할 때부터 이어진 원칙”이라면서 “경영계가 빼줬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말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경영계는 이번 개정안이 대법원의 기존 판례와도 배치된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이 장관은 “법원에선 단순히 ‘소정근로시간’ 문구를 그대로 해석한 것 같다”면서 “그래서 정부가 시행령에서 그 부분을 일치시키려는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 시행령이 아닌 법률로 다뤄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선 “국회가 논의하고자 한다면 불가능한 사안은 아니다”라면서 “하지만 그렇게 하는 게 바람직한 것인지는 논외로 하겠다”고 답했다. 서울 오경진 기자 oh3@seoul.co.kr 세종 황비웅 기자 stylist@seoul.co.kr
  • 대선 앞두고 에볼라 창궐하는 콩고

    대선 앞두고 에볼라 창궐하는 콩고

    대통령 선거를 앞둔 아프리카 콩고민주공화국(민주콩고)에서 지난 8월 발병한 에볼라가 빠른 속도로 창궐하면서 당국의 근심이 커져가고 있다. 에볼라는 감염시 평균 8~10일의 잠복기를 거친 뒤 고열, 복통, 내부 장기 출혈 등을 일으켜 단기간에 사망에 이르게 하는 치명적인 질병이다. 2014년부터 2016년까지 3년동안 서아프리카에서 1만 1000여명이 이 병으로 목숨을 잃었다. 21일(현지시간) 미국 온라인매체 악시오스에 따르면 민주콩고 보건당국은 이날 현재까지 자국 내 에볼라 감염 확진 통보를 받은 환자 수가 512명이라고 밝혔다. 바이러스에 감염됐을 가능성이 매우 높은 48명까지 합하면 총 560명이다. 이 중 288명이 사망했다. 민주콩고에서 에볼라가 발병한 것은 1976년 이후 10번째다. 선거기간과 맞물려 에볼라 공포가 다시 고개를 든 것은 바이러스의 특성 탓이다. 에볼라 바이러스는 치사율이 60%가 넘는데다 감염된 동물 섭취와 체액 접촉, 환자 및 사망자와의 접촉으로도 전파된다. 특히 이번 선거에 처음 도입되는 터치스크린 방식의 전자투표시스템은 감염 확산 우려를 더 키우고 있다. 올리 일룬가 보건부 장관은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최악의 인명 피해가 우려되는 이번 에볼라 바이러스 퇴치까지는 3~4개월이 더 걸릴 것으로 본다”면서 “투표소에 마련될 터치스크린 시스템으로 인해 바이러스가 확산될 수 있다는 지역사회 우려가 활발히 제기되고 있다”고 밝혔다.200여개 종족에 240여개 언어를 쓰는 유권자 4600만명을 고려할 때 이 시스템은 투표 집계 시간과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는 대안으로 주목받았다. 그러나 에볼라 공포가 다시 고개를 들면서 보건당국의 골칫덩이가 됐다. 줄리 피셔 조지타운대 글로벌 건강과학 및 안보 센터 공동책임자는 “에볼라 바이러스가 선거 투표소 등을 통해 감염는지 여부에 대한 연구가 진행된 적은 없지만, 만일의 가능성을 대비해 현지에 제대로 된 예방책이 세워질 가능성은 낮다고 본다”며 지적했다. 지난 13일에는 수도 킨샤사 선거관리위원회 창고에서 불이 나 투표 집계기 1만개 중 약 8000개가 소실되는 등 유혈사태가 이어지면서 긴장감이 더 고조되고 있다. 지난 19일 민주콩고 선거관리위원회의 한 고위 간부는 대통령 선거와 총선이 연기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이 간부는 선거를 일주일 연기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스티브 모리슨 국제전략연구소(CSIS) 부소장은 “선거를 앞두고 유혈사태가 계속 벌어진다면 이미 안전하지 않은 현지 상황을 더 악화시키고, 에볼라 감염 확산을 통제하기 위해 쏟고 있는 노력을 소용없도록 만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의료진과 자원봉사자를 향한 폭력 사태가 발생할 경우 이들을 모두 미 대사관으로 대피 조치할 것”이라면서 “(에볼라 감염 확산이 심각한)지금 같은 상황에선 재앙적”이라고 경고했다. 1960년 벨기에로부터 독립한 민주콩고는 그동안 평화적인 정권 교체를 한차례도 이뤄내지 못했다. 현 조셉 카빌라(47) 대통령은 2001년 초 부친인 로랑 카빌라 전 대통령이 암살되고 나서 대통령직을 이어받아 민주콩고를 17년 동안 통치했다. 카빌라 대통령은 헌법상 임기가 2016년 12월 끝났지만 권좌에서 물러나지 않아 논란을 샀다가 올 8월 대선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이번 대선에는 21명이 출마했고 야권 후보 마르탱 파율루(61) 의원과 펠릭스 치세케디(55) 민주사회진보연합(UDPS) 대표, 범여권연합 후보 에마뉘엘 라마자니 샤다리(57) 전 내무장관 등의 경쟁이 예상된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신한은행장에 진옥동 부사장...신한금융 ‘조직 쇄신’ 인사

    신한은행장에 진옥동 부사장...신한금융 ‘조직 쇄신’ 인사

    신임 신한은행장에 진옥동(57) 신한금융지주 부사장이 내정됐다. 신한금융은 21일 임시 이사회와 자회사경영관리위원회(자경위)를 열고 계열사 사장단과 임원 후보를 추천했다. 자경위는 “신한은행장으로 내정된 진 후보자는 신한 문화에 대한 열정과 이해를 바탕으로 조직 분위기를 쇄신하고 안정시킬 최적의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진 후보자는 1980년 기업은행에 입행해 1986년 신한은행으로 옮겼고 이후 오사카지점장, SBJ은행 법인장, 신한은행 부행장 등을 거쳤다. 당초 금융권에서는 위성호 신한은행장이 연임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왔지만 내년 3월까지 2년의 임기를 채운 채 물러나게 됐다. 신한금융투자 사장에는 김병철 신한금융투자 부사장, 신한생명 사장에는 정문국 오렌지라이프 사장이 각각 내정됐다. 동양증권 출신인 김 후보자는 2012년 영입된 이후 지속적인 사업성과 창출을 인정받아 신한금융 경영진에 오르게 됐다. 정 후보자는 외국계 생명보험사 CEO 경력 10년차로 차별화된 영업전략과 안정적 자산운용 역량을 인정받았다. 신한BNP파리바자산운용 사장에는 이창구 신한은행 부행장, 신한캐피탈 사장에는 허영택 신한은행 부행장, 신한아이타스 사장에는 최병화 신한은행 부행장, 신한신용정보 사장에는 이기준 신한은행 부행장이 각각 내정됐다. 이번 인사는 조용병 신한금융 회장의 조직 쇄신 의지를 담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내년 3월 임기가 만료되는 11명의 자회사 CEO 후보 중 7명을 교체했다. 또 ‘세대교체’ 의지도 표현했다. 신한생명 정 후보자를 제외하면 모두 1960년대생으로 50대 CEO들 위주로 그룹 경영진을 이루게 됐다. 그룹사 CEO의 평균 연령은 기존 60.3세에서 57세로 낮아졌다. 여성 리더의 약진도 눈에 띈다. 왕미화 신한은행 일산영업본부장은 지주 WM사업부문장으로, 조경선 신한은행 스마트컨택 본부장은 부행장보로 추천됐다. 신한금융은 “두 사람 모두 그룹의 여성인재를 육성하는 ‘신한 쉬어로즈’ 프로그램을 거쳤다”고 설명했다. 최선을 기자 csunell@seoul.co.kr
  • 문학 속 서울공화국… 욕망으로 지은 도시

    문학 속 서울공화국… 욕망으로 지은 도시

    정부가 19일 발표한 3기 신도시 조성 계획은 ‘서울로의 접근성’에 방점이 찍혀 있다. 정부는 신도시에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를 새로 깔고 지하철을 연장하며 간선급행버스체계(BRT)를 신설해 “30분 내 서울에 도달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역설적이게도 이번 계획은 서울의 위상을 다시금 보여 준다. 서울 쏠림 현상을 막기 위한 유인책으로 서울에 가기 쉽다는 점을 강조하니 말이다. 누가 뭐래도 대한민국은 ‘서울공화국’이다. 도대체 서울은 언제부터, 어떻게 이런 위상을 갖게 된 것일까.신간 ‘서울 탄생기’는 1960~70년대 서울의 변화상을 추적하며 해답을 내놓는다. 다만 이를 바라보는 도구가 문학작품인 점이 독특하다. 저자인 송은영 성공회대 동아시아연구소 학술연구교수는 이호철 ‘서울은 만원이다’, 김승옥 ‘무진기행’, 최일남 ‘서울의 초상’, 최인훈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박태순 ‘정든 땅 언덕 위’, 박완서 ‘낙토의 아이들’, 조세희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등 작가 16명의 작품 110편으로 서울의 변화를 분석한다. 저자는 1960년대 초반 이후 경제성장과 도시개발이 본격화하면서 과거와의 ‘단절’과 ‘망각’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한 빠른 변화가 지금 서울을 만들었다고 설명한다. 우선 1960년대 초반은 혼란을 거쳐 현대 도시 서울을 형성한 법적·행정적 토대가 마련된 시기였다. ‘무진기행’에서 하인숙은 당시 젊은이들의 서울 열망을 보여 준다. 그러나 이호철의 ‘서울은 만원이다’에서 여주인공이 보여 주는 서울 생활은 혼란 그 자체다. 사기꾼이 득실거리고, 내 몸 하나 제대로 누일 곳도 없다.1962년 1월 도시계획법과 건축법에 이어 서울은 1966년 현대 도시로 나아간다.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1961~1966년)의 효과가 슬슬 나타난 지점이기도 했다. 1965년 한·일회담 결과로 한국에 돈이 풀리며 경기가 살아났고, 같은 해 베트남 전투부대 파병과 건설사업 참여 등으로 서울은 고도성장의 기반을 마련한다. 이를 진두지휘한 이는 1966년 4월 부임한 ‘불도저’ 김현옥 서울시장이다. 군인 출신인 그는 서울을 현대 도시로 만들기 위해 도시개발을 무자비하게 밀어붙인다. ‘서울은 만원이다’는 그를 가리켜 ‘부산 거리를 의욕적으로 밀어버리고 계속 두 눈을 부릅뜨고 서울로 전임해 온 젊은 시장’으로 묘사한다. 그는 400여동의 시민아파트를 짓고, 봉천·신림·상계동 등지에 거대한 불량지구를 만든다. 판자촌을 쓸어버리려 서울 외곽 변두리 지역인 경기도 광주로 철거민을 강제 이주한다. 결과적으로 사대문 안에 머물러 있던 서울의 실질적 경계는 확장됐고, 현재 서울 전체의 모습도 이때쯤 형성된다. 그러나 이런 급작스런 도시 개발은 부작용을 부른다. 1970년 서울 마포구 와우아파트 붕괴사고, 1971년 광주 대단지 소요 사건이 대표적인 사례다. 당시 사건에 관해 박태순은 ‘정든 땅 언덕 위’의 ‘외촌동’이라는 가상 마을에서 이를 구체적으로 묘사한다.김 시장은 물러났지만, 서울 개발은 강남으로 이어진다. 포화 상태에 이른 강북 인구를 분산시킬 신시가지인 강남은 전쟁이 나면 또다시 한강을 건너지 못하는 시민들이 생길까 하는 걱정에서 출발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부동산 투기를 통해 개발자금과 정치자금 등을 마련해야 했던 권력층의 탐욕이 있었다. 특히나 1972년과 1973년은 강남과 강북을 가르는 중요한 지점이다. 1972년 4월 서울시가 강남을 발전시키고자 강북을 특정시설 제한구역으로 설정하며 강남은 뜨고 강북은 쇠락한다. 당시 서울시는 도심부 인구 분산계획의 일환으로 종로구와 중구 전역은 물론 용산구와 마포구의 기존 시가지 전역 등에 백화점, 도매시장, 공장 등 신규 시설을 불허했다. 이듬해에는 강남 지역을 개발촉진지구로 지정한다. 수많은 상업시설이 규제도 받지 않고 특별법 혜택으로 취득세, 재산세 등을 면제해 주는 강남으로 옮겨갔다. 와우아파트 사고 이후 침체했던 아파트 붐이 살아났고, 명문 고교들이 강남에 터를 잡으며 명실상부한 서울의 또 다른 중심으로 자리잡는다. 박완서의 ‘낙토의 아이들’에서는 강을 경계로 생겨나는 강남과 강북의 거리감을 탁월하게 짚어낸다. 1960~70년대 서울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결국 ‘욕망’이라 할 수 있다. 서울을 향한 사람들의 거대한 욕망은 수많은 부작용에도 불구, 지금의 서울을 만든 근원적인 힘이다. 서울은 주택, 교육, 취업, 여성의 권리 등 현재의 문제가 집약된 곳이자, 제대로 된 자기성찰 없이 근대화에 매진해 온 한국 현대사 현장 자체이기도 하다. 꿈틀거리는 욕망으로 가득한 서울에서 우리는 이렇게 또 하루를 살아간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그 책속 이미지] 디자인 가구, 기능을 넘어 아이콘으로

    [그 책속 이미지] 디자인 가구, 기능을 넘어 아이콘으로

    전구를 감싼 72장의 전등갓이 눈부심을 가리고 빛을 부드럽게 만든다. 덴마크 디자이너 포울 헤닝센이 1958년 선보인 ‘아티초크 램프’다. 전등갓 크기와 모양은 물론 소재와 색깔을 수도 없이 바꿔 보며 실험한 끝에 탄생했다. 조화로운 조명의 대표적인 디자인으로 꼽히며, 그의 작품 100여개 가운데 가장 유명하다. 책 제목이기도 한 ‘미드센추리 모던’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인 1940~60년대의 새로운 생활 디자인이 유행했던 시기를 가리킨다.찰스&레이 임스, 포울 헤닝센, 알바르 알토, 한스 베그네르, 마르셀 브로이어, 조지 넬슨, 장 프루베, 에로 샤리넨 등 이 시기에 활약한 디자이너들이 내놓은 디자인은 ‘세기의 아이콘’이라고 불릴 정도였다. 책에는 의자, 탁자, 조명 등 실내 가구부터 스쿠터, 스피커, 타자기, 다기 세트 등 당시 인기를 끌었던 90여개 제품 디자인을 수록했다. 단순한 선으로 그려낸 일러스트와 함께 물건들의 탄생 배경을 읽다 보면 왜 오늘날까지 인기가 이어지는지 알 수 있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미 일리노이 검찰, 아동성학대로 기소된 성직자 700명 가까이 돼

    미 일리노이 검찰, 아동성학대로 기소된 성직자 700명 가까이 돼

    미국 일리노이주 검찰이 아동 성학대 혐의로 기소된 가톨릭 사제 수가 일리노이 6개 대교구 자체 조사로 알려진 185명보다 훨씬 많은 690명으로 집계됐다고 19일(현지시간) 발표했다. 세계 각국에서 성직자 아동 성학대 의혹이 불거져 프란치스코 교황 퇴위 요구까지 나오는 상황에서 일리노이주 대교구가 지역의 아동 성학대 사건을 끝까지 은폐하려 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온라인매체 악시오스 등은 이날 사이트에 일리노이 검찰이 낸 가톨릭 사제의 아동 성학대 의혹 사건 예비 보고서 원문을 공개했다. 리사 매디건 일리노이 검찰총장은 “가톨릭 교회가 일리노이주 사제들의 성적 부적절한 행동에 대해 밝혀야 하는 도덕적 의무를 저버렸다”면서 “일리노이 교구는 의혹이 제기된 사건을 면밀히 조사하지 않았고 일부는 아예 들춰보지도 않았다”고 비판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일리노이 교구는 아동 성학대 가해자가 사망했거나 교구를 떠난 경우, 또 교회 지도층에 속해 있는 경우에 아예 사건을 수사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일리노이 대교구는 펜실베이니아를 비롯한 미 전역과 세계 각국에서 성직자들의 아동 성학대 의혹이 쏟아지자 조사에 착수해 185명의 사제가 아동을 대상으로 성폭행을 저질렀다고 밝혔었다. 가톨릭 사제들의 아동 성학대 사건이 수면 위로 떠올라 겉잡을 수 없이 확대되면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내년 2월 각국 사제 대표들을 바티칸으로 소집하는 등 직접 상황 타개에 나선 상태다. 앞서 펜실베이니아주 대배심은 8월 14일 지난 70년 간 300명의 성직자들이 아동 1000여명을 성적으로 학대했고 교단이 이를 의도적이고 조직적으로 은폐했다는 보고서를 내 큰 파장을 불렀다. 독일주교회는 독일 내 27개 교구에서 1946~2014년 3600명 이상 아동이 사제들로부터 성학대를 당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칠레 검찰은 현재 아동 성학대 등 성추문에 연루된 사제 158명에 대한 수사를 진행 중이다. 이들은 1960년 이후 아동 178명을 포함한 총 266명을 성적으로 학대한 혐의를 받고 있다. 필립 윌슨 호주 애들레이드 대교구 대주교는 5월 아동 성학대 은폐 혐의로 유죄선고를 받았다. 교황 측근으로 교황청 재무원장을 맡았던 조지 펠 추기경도 아동 성학대 혐의로 호주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증권업계 최초 여성 CEO 탄생 ‘유리천장’ 깨졌다

    증권업계 최초 여성 CEO 탄생 ‘유리천장’ 깨졌다

    금융 사장단 1960년대생 발탁 세대교체 JB금융지주 차기 회장 후보 김기홍씨국내 증권사 최초로 여성 최고경영자(CEO)가 탄생했다. 금융권 중에서도 특히 여성 임원이 적은 증권업계의 ‘유리천장’을 깬 것으로 평가된다.KB금융지주는 19일 계열사 대표이사후보추천위원회를 열어 신임 KB증권 각자 대표로 박정림(55·여) KB증권 부사장 겸 KB국민은행 부행장과 김성현(55) KB증권 부사장을 선정했다. 증권업계 첫 여성 CEO가 된 박 신임 사장은 자산관리(WM) 전문가다. 서울 영동여고와 서울대 경영학과·대학원을 졸업했다. 조흥경제연구소 책임연구원, 삼성화재 자산리스크관리부장 등을 거친 뒤 2004년 국민은행으로 옮겨 WM본부 전무, 여신그룹 부행장 등을 지냈다. 지난해 1월부터 KB금융에서 지주, 은행, 증권 등 3개 법인의 임원을 겸직하며 은행·증권 복합점포를 정착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 신임 사장은 업계에서 손꼽히는 투자은행(IB) 전문가다. 연세대 경제학과를 졸업했고 KB투자증권에서 기업금융본부 전무, IB총괄 부사장 등을 지냈다. 검증된 리더십을 갖춘 것으로 평가받는 김 신임 사장은 동갑내기인 박 신임 사장과 각자 대표 체제에서 좋은 호흡을 발휘할 것으로 기대된다. KB금융은 이날 1960년대생을 대거 발탁하며 사장단 ‘세대 교체’를 이뤘다. KB캐피탈에는 황수남(54) KB캐피탈 전무, KB부동산신탁에는 김청겸(56) 국민은행 영등포 지역영업그룹대표가 각각 선정됐다. 양종희 KB손해보험 대표, 조재민·이현승 KB자산운용 대표, 김해경 KB신용정보 대표는 연임에 성공했다. 신임 대표는 20~21일 계열사 대표이사후보추천위원회의 최종 심사와 추천을 거쳐 주주총회에서 확정된다. 한편 이날 JB금융지주 임원후보추천위원회는 김기홍 JB자산운용 대표를 차기 회장 후보로 선정했다. JB금융 임추위는 “김 후보자는 20년 이상 금융산업에 종사한 경험을 바탕으로 전문적인 식견뿐 아니라 리더십과 소통능력이 탁월하다”고 평가했다. 김 후보자는 내년 3월 주주총회와 이사회를 거쳐 선임될 예정이다. 최선을 기자 csunell@seoul.co.kr
  • 슬리먼의 ‘셀린느’ 드디어 국내 상륙... 19SS 핸드백 출시

    슬리먼의 ‘셀린느’ 드디어 국내 상륙... 19SS 핸드백 출시

    수석 디자이너 교체로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셀린느의 신규 핸드백 콜렉션이 국내에 공개됐다. 18일 패션업계에 따르면 신세계인터내셔날이 수입하는 프랑스 명품 브랜드 셀린느가 이달 중순 신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에디 슬리먼의 첫 작품인 2019년 봄·여름(SS) 핸드백 콜렉션을 국내에 출시했다.앞서 셀린느는 올해 초에 지난 10년 동안 브랜드의 영광을 이끌었던 피비 파일로가 수장직을 내려놓고 스타 디자이너 에디 슬리먼이 그 자리를 대신하면서 큰 화제를 모았다. 에디 슬리먼은 부임 직후 브랜드 로고를 교체하고, 디자인 전반에 자신의 색깔을 불어넣으며 대대적인 변화를 예고했다. 이번 19SS 핸드백 콜렉션은 내년 2월 출시될 의류에 앞서 선보이는 에디 슬리먼의 첫 제품이다. 에디 슬리먼이 셀린느 부임 첫날 이미 스케치를 완성했다고 알려진 ‘16백’(세즈백)을 비롯해 ‘C백’, ‘트리옹프백’ 등이 대표적이다.16백은 프랑스 파리에 위치한 공방 주소에서 이름을 따왔으며, 1960년대 셀린느의 가방 디자인에서 영감을 얻어 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셀린느의 전통적인 가죽 가공 공법인 ‘파이핑 기법’(얇은 가죽 튜브를 두 조각의 가죽 사이에 삽입하는 가죽 가공 방식으로, 제품의 모서리를 유연하게 만들고 견고함을 더해주는 것이 장점)과 ‘쏜백 기법’(가죽의 뒷면을 함께 꿰맨 뒤 겉면이 보이게 뒤집어 완성하는 기술)을 사용해 제작됐다.C백은 셀린느를 상징하는 알파벳 C를 강조한 가방으로, 1970년대에 사용했던 브랜드의 잠금장식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됐다. 또 트리옹프백은 1972년 브랜드의 창립자 셀린 비피아나가 파리의 개선문을 둘러싸고 있던 체인에서 영감을 받아 디자인 한 트리옹프 로고를 담은 가방이다. 김희리 기자 hitit@seoul.co.kr
  • [오늘의 눈] 국민연금 현 세대가 더 내고 더 받게 개혁해야/정현용 정책뉴스부 기자

    [오늘의 눈] 국민연금 현 세대가 더 내고 더 받게 개혁해야/정현용 정책뉴스부 기자

    지난해 12월 정부가 출범시킨 ‘국민연금제도발전위원회’는 ‘국민께 신뢰받는 국민연금제도 개혁’을 내세웠다. 5년마다 시행하는 ‘국민연금 재정계산’을 앞뒀기 때문이다.‘개혁’의 사전적 의미는 ‘제도나 기구를 새롭게 뜯어고침’이다. 그런데 정확히 1년이 지난 지금, 개혁이라는 단어는 온데간데없고 ‘노후 소득보장’이라는 거창한 구호만 남았다. 누구나 자신이 낸 보험료보다 훨씬 많은 연금을 받길 바란다. 그렇지만 국민연금은 돈을 쏟아내는 ‘마법의 항아리’가 아니다. 특히 지난 10년간 저출산 고령화 현상이 심각해지면서 돈을 내는 사람은 줄고 받는 사람은 많아져 지출구조가 크게 악화됐다. 정부와 정치권은 불편한 국민들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지금껏 개혁을 외면해왔다. 그러다보니 국민연금 재정고갈 시점은 2013년 3차 재정계산 당시 2060년이었다가 올해 4차 재정계산에서는 2057년으로 당겨졌다. 현재 40대 이상인 중·장년층은 당장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문제는 자녀 세대다. 계속 버티면 이들의 미래가 점점 더 불투명해질 수밖에 없다. 비판이 거세지자 아예 적립금 650조원을 다 써버리고 해마다 보험료를 걷어 노인에게 주자는 극단적 주장까지 나왔다. 그러나 노인이 급증하는 상황에서 이런 ‘부과식’ 제도를 갑자기 도입하면 보험료가 두 배로 껑충 뛴다. 가능한 방법은 보험료를 낼 여력이 있는 현 세대가 책임을 피하지 않는 것뿐이다. 가급적 빨리 더 많은 보험료를 내고 더 많은 연금을 받는 방향으로 제도를 손질하는 것이다. 현재도 수익률이 1.7배이기 때문에 가입자에게 손해가 아니다. 그런데 정부와 정치권의 누구도 ‘바른말’을 하지 않는다. 정부는 최근 ‘4지선다형’ 개편안을 내 국회와 국민들에게 결정을 떠넘겼다. 대통령의 질책에 미래에 ‘세금 폭탄’이 될 수 있는 기초연금 강화 방안도 슬쩍 끼워넣었다. 국민들의 귀가 솔깃할 제안만 했을 뿐 미래에 대한 고민은 흐릿해졌다. 정치권에선 벌써부터 국민연금 개혁은 두고 기초연금만 높이는 방안을 눈여겨 보고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자녀에게 빚을 떠넘기는 걸 반길 부모는 없다. 정부는 손을 털어버렸고 국민만 남았다. 지금 당장 부담을 덜자고 자녀에게 부담을 안길 것인가. 우리 스스로 매듭을 풀어내는 결자해지의 지혜가 필요하다. junghy77@seoul.co.kr
  • [글로벌 인사이트] 아베 개헌·푸틴 경제 맞물린 ‘쿠릴’ 반환… 양국 새달 담판 짓나

    [글로벌 인사이트] 아베 개헌·푸틴 경제 맞물린 ‘쿠릴’ 반환… 양국 새달 담판 짓나

    일본은 대부분의 주변국들과 영토 갈등을 빚고 있는 나라다. 한국에 대해서는 독도의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고, 중국과는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를 놓고 대립하고 있다. 북쪽 홋카이도 바로 위 ‘쿠릴열도 4개 섬’을 놓고도 러시아와 70년 이상 분쟁을 지속하고 있다. 최근 쿠릴 4개 섬을 둘러싼 양국 간 대화가 급진전될 조짐을 보이면서 국제적인 관심을 받고 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4개 섬 영유권 협상 타결과 이를 통한 평화조약 체결에 어느 때보다 강한 의욕을 보이고 있다. 쿠릴 4개 섬을 둘러싼 양국 갈등의 역사와 협상 전망, 과제 등을 문답으로 알아본다.→일본과 러시아 간 쿠릴열도 4개 섬 분쟁은 언제 시작됐나.-쿠릴열도는 홋카이도~캄차카반도 사이 1300㎞ 바다 위에 줄줄이 이어진 56개의 섬과 바위섬들을 말한다. 이 가운데 문제가 되는 것은 에토로후, 구나시리, 하보마이, 시코탄 등 열도 최남단의 4개 섬이다. 이곳을 실효지배하고 있는 러시아는 ‘남쿠릴열도’(사할린주)라고 부르고, 일본은 ‘북방영토’라고 부른다. 2016년 기준 4개 섬에 1만 6700명의 러시아인이 살고 있다. 일본이 러시아에 섬들을 돌려달라고 요구하는 데는 나름의 역사적 근거가 있다. 4개 섬은 메이지유신 이전인 1855년 일본 막부와 러시아 사이에 맺어진 통상조약에 의해 일본에 편입됐다. 일본의 영유권과 실효지배는 1905년 러·일 전쟁 승리로 더욱 공고해졌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중 미국을 비롯한 연합국 진영은 1943년 카이로선언과 1945년 얄타협정을 통해 쿠릴열도 전체에 대해 소련(현재의 러시아)의 영유권을 인정했다. 이에 따라 소련은 일본 패망 직후인 1945년 8월 28일~9월 5일 4개 섬을 점령하고 일본인 주민 1만 7300명을 추방했다.→4개 섬은 홋카이도에 바짝 붙어 있는데, 러시아에 중요한 이유는. -러시아는 4개 섬 면적 합계의 93%를 차지하는 에토로후(63%)·구나시리(30%)에 군인 3500명을 주둔시켰다. 2016년에는 미국·중국을 의식해 지대함 미사일을 배치했다. 이 지역이 동부 최대 항구도시이자 군항인 블라디보스토크와 북극해 항로를 연결하는 군사적 요충지이기 때문이다. 최근 10년간 러시아 정부는 에토로후·구나시리를 중심으로 도로, 항만 등 사회기반시설을 대폭 확충했다. →지금까지 양국 간에 4개 섬 반환협상은 꾸준히 이어져 왔는데. -일본은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9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연합국과 강화조약을 체결했다. 이를 통해 주권국가로서 지위를 회복했다. 그러나 당시 소련은 일본의 재무장 가능성 등을 이유로 조약 서명에 불참했다. 이 때문에 두 나라는 법적으로는 계속 전쟁 상태에 있게 됐는데, 1953년 소련의 철권통치자 스탈린이 사망하고 흐루쇼프가 집권하면서 국교 정상화 협상이 시작됐다. 협상에서 소련은 “쿠릴 4개 섬은 제2차 세계대전의 결과로 정당하게 얻은 것”이라고 주장했으나 최종 단계에서는 ‘하보마이, 시코탄 등 2개 섬은 돌려줄 수 있다’는 타협안을 제시했다. 당장 전쟁 상태를 종식하는 게 급했던 일본은 소련의 제시안을 토대로 1956년 10월 일·소 공동선언에 합의했다. 러시아가 2개 섬을 일본에 넘겨주는 것을 전제로 평화조약 협상을 계속하되 2개 섬의 인도는 조약 체결 후에 하는 것으로 정리됐다. →그런데도 2개 섬의 반환이 이뤄지지 않은 이유는. -일·소 공동선언이 1956년 12월 발효됐지만, 공교롭게도 그 이후 동서 냉전이 심해졌다. 소련은 1960년 미·일 안전보장조약이 새롭게 체결되자 “주일미군이 철수하지 않으면 하보마이·시코탄의 인도는 불가능하다”며 반발했다. 이에 일본도 ‘4개 섬 전체 일괄반환’을 주장하며 강경 모드로 돌아섰다. 이후 고르바초프의 등장과 소련의 붕괴 등 거대한 세계사적 변화를 거치며 협상은 진전의 기회를 맞기도 했으나 최종 타결은 번번이 무산됐다. →앞으로 양국 협상은 어떻게 전개되나. -아베 총리와 푸틴 대통령은 1956년 일·소 공동선언을 바탕으로 한 협상 추진에 합의했다. 일본으로서는 강하게 주장해 온 ‘4개 섬 일괄반환’에서 후퇴해 ‘2개 섬 반환’으로 요구 수위를 낮춘 셈이다. 협상은 각각 고노 다로 외무상과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무장관을 책임자로 하는 양국 실무협상단이 담당한다. 여기에서 나온 결과를 토대로 내년 1월 아베 총리가 러시아를 방문해 대강의 합의를 도출하고 이후 6월 오사카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뭔가를 결정짓는다는 게 양국의 구상이다. →일본이 ‘4개 섬 일괄반환’에서 ‘2개 섬 반환’으로 입장을 완화한 이유는. -러시아가 구나시리와 에토로후를 돌려줄 가능성이 없다는 현실적인 판단이 결정적이다. 그러나 2개 섬 반환으로 수위를 낮춘 데 대해 벌써부터 일본 내부에서 부정적인 평가가 나오고 있다. 이를 의식하고 있는 일본 정부는 ‘우선 2개 섬 반환+알파(α)’를 표방하고 있다. 여기에서 α는 돌려받지 못하는 구나시리·에토로후에 대해 특별한 권리를 확보한다는 것인데 현실성은 없다는 관측이 많다. →아베 총리와 푸틴 대통령은 왜 협상을 서두르나. -역대 일본의 정치 지도자들은 ‘북한과 국교 정상화’와 ‘러시아와 평화조약 체결’을 가장 중대한 외교적 과제로 인식해 왔다. 내년 11월이면 일본 역사상 최장수 총리 기록을 세우는 아베 총리는 2021년 9월 말까지인 자신의 임기 내에 적어도 일·러 평화조약만큼은 이뤄낸다는 강한 의지를 갖고 있다. 스스로 쿠릴 반환을 ‘일본 전후(戰後) 외교의 총결산’이라고 표현할 정도다. 외교적 성과를 바탕으로 내년 참의원 선거에서 대승을 거둔다는 계산도 깔려 있다. 최근 도쿄신문은 아베 총리가 대러시아 외교를 자신의 숙원인 개헌의 지렛대로 활용하려 한다고 분석했다. 푸틴 대통령이 노리는 것은 일본의 돈이다. 자국 내 경기침체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일본의 경제협력과 직접투자를 갈망하고 있다. 러시아는 틈만 나면 일본 측에 “일본 기업인들에게 대러시아 투자 확대를 독려해 달라”고 요청해왔다. →협상을 서두르기에는 러시아의 부담이 클 것 같은데. -아무리 경제적 이득을 위한 것이라지만, 당장 갖고 있는 영토를 포기하는 방향의 협상이 되다 보니 러시아는 대외적으로 지극히 신중한 자세를 보이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달 기자회견에서 “1956년 공동선언에는 단순히 소련이 2개 섬을 양도할 준비가 돼 있다고 언급돼 있을 뿐 어떤 근거로 누구의 영유권하로 들어갈지는 언급돼 있지 않다”고 말해 기대에 부풀어 있는 일본 측을 당혹스럽게 만들기도 했다. 그럼에도 일본은 영토를 돌려받으려는 입장이다 보니 러시아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고노 외상은 지난 11일 쿠릴 반환과 관련한 기자들의 질문을 대놓고 무시해 구설수에 올랐다. 특히 일본에 돌려준 섬들이 자국을 겨냥한 미군의 기지로 활용될 가능성도 러시아로서는 우려하는 부분이다. 아베 총리가 직접 푸틴 대통령에게 미군이 들어오는 일은 절대로 없을 것이라고 밝히고 있지만, 기본적인 미·일 관계를 감안할 때 100% 장담하기는 어려운 부분이다. →최종 협상타결 가능성은 어느 정도나 될까. -양국 정상이 저마다 노리는 목표가 분명해 협상타결 가능성을 높게 보는 전문가도 있지만, 그동안에도 잘나가다 무산된 적이 몇 차례 있었기 때문에 예단하기는 어렵다. 특히 러시아는 자국민의 반발을 크게 우려하고 있다. 경기침체로 푸틴 대통령의 지지율이 낮아져 있는 상태라는 점도 과감한 협상에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다. 지난 15일 사할린주 유즈노사할린스크에서는 2개 섬 반환을 중지할 것을 요구하는 주민 집회가 열리기도 했다.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 “北 김정은 위원장 모친 고용희, 일본 아닌 목포서 태어났다”

    “北 김정은 위원장 모친 고용희, 일본 아닌 목포서 태어났다”

    더팩트 “金 외조부 친척 할머니에게서 증언 확보”“목포 유달산 근처서 태어나…일본 갔다가 북한行”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친모 고용희(2004년 작고)가 기존에 알려진 일본 오사카가 아니라 전남 목포에서 태어났다는 보도가 나왔다. 더 팩트는 17일 고용희 어머니의 조카며느리인 현모(92)씨로부터 “고용희 엄마가 우리 시고모인데, 영희는 일본이 아니고 목포 유달산 근처에서 태어났다니까”라는 증언을 확보했다고 단독 보도했다. 그러나 더팩트는 이같은 증언을 확보했다면서도 증언을 한 할머니의 이름과 얼굴을 밝히지 않았다. 더 팩트는 이같은 증언의 확보 과정에 대해서도 밝혔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서울 답방고 한라산 방문 가능성이 제기되던 즈음인 지난 11일부터 친모 고용희와 외조부의 친인척들을 수소문했다고 전했다. 그러던 중 11일 오후 김 위원장의 외할아버지와 친척인 고모(80) 씨를 제주시 조천읍에서 만날 수 있었다. 고씨를 통해 또 다른 친인척을 수소문했고, 다음 날인 12일 고용희의 어머니 조카며느리 현모(92) 할머니를 만날 수 있었다.이날 오후 제주시 조천읍 모 경로당에서 만난 현 할머니는 그동안 고용희의 부친 고경택은 1929년 일본으로 건너간 것으로 알려졌다. 언론에서도 “고용희의 아버지 고경택은 1913년 태어나 16세 때인 1929년 일본으로 건너갔고, 1999년 사망했다. 고용희는 1952년 6월 오사카에서 태어났고, 이 가족은 1962년 ‘북송선’을 타고 북한으로 간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보도해 왔다. 이런 사실은 제주도 조천읍에 있었던 고경택의 묘비(허묘·시신 없이 묘비만 만든 묘)에 ‘1913년 태어나 1929년 일본으로 건너갔다. 1999년 귀천하시어 봉아름에 영면하시다. 사정에 따라 허총을 만들다’라고 적힌 내용과도 거의 같다. 그러나 현 할머니는 “고용희의 아버지 고경택의 형 고경찬이 조천읍(면) 면장을 했었다. 일제 당시 공출 등으로 해방 후 인근 지역에서 괴롭힘을 당해 참지 못하고 목포 유달산 인근으로 떠났다”며 “그때 고경택도 목포에서 형인 고경찬의 집에 같이 살았다”고 말했다. 다른 친인척과 마을 노인들 역시 현 할머니의 말이 맞다고 했다. 더팩트 취재진이 조천읍사무소에 확인한 결과 “고경찬 씨는 1940년 4월부터 45년 8월까지 면장을 지낸 것이 맞다”고 확인했다.현 할머니는 고경택이 목포에 살았고, 거기에서 고용희가 태어났다고 했다. 할머니가 이처럼 고용희의 태생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이유는 고용희의 어머니가 시고모였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고용희의 어머니의 성(姓)은 한 씨로, 목포에서 용희를 낳고 살다 일본으로 갔다”고 정확히 말했다. 취재진은 그동안 언론에 알려진 고용희의 출생과 방북 등을 거듭 설명했지만, 현 할머니는 “그게 아니다”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특히 고경택이 목포에서 우유공장을 하다가 일본으로 부인과 용희를 데리고 갔다고 한다. 현 할머니의 말에 따르면 김 위원장의 외할아버지 고경택 씨는 1957년에서 1960년 사이 아내 한 씨와 고용희를 데리고 일본으로 갔다. 이후 고경택은 일본에서 한국으로 우유 장사를 했다고 한다. 또 다른 할머니는 “고경택은 한국으로 우유를 가져오는 도중 시고모와 용희 등이 일본에 있다가 조총련을 통해 북한으로 갔다고 들었다. 그래서 자신도 한국이 아닌 북한으로 갔지만, 시고모는 일본에 남아있었고 거기서 돌아가셨다”고 말한 것으로 더팩트가 보도했다.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그때의 사회면] 외상값 시비

    [그때의 사회면] 외상값 시비

    몇십 년 전 동네 구멍가게, 음식점, 싸전 등 대부분의 상점엔 외상 장부가 꼭 있었다. 외상값 시비는 흔했고 폭력과 살인극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단골 술집에 외상을 긋지 않는 샐러리맨은 거의 없었다. 월급날만 되면 술집 주인들이 외상값을 받으러 몰려와 사무실이 왁자지껄해졌다.대학가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학림다방과 같은 다방에도 꼭 외상 장부가 있었다. 문방구의 태반이 아이들의 외상 장부를 만들어 놓고 외상으로 팔았다가 돈을 받지 못하자 졸업식장에서 학부모들과 싸움을 벌인 일도 있었다(경향신문 1976년 3월 6일자). 서울 중심가에 있던 ‘특별재판소’ 심판관이 요정 외상 빚을 계속 갚지 않자 마담 둘이 재판소에 찾아가 외상값을 갚으라고 소란을 피우는 바람에 전체회의장이 아수라장이 됐다(경향신문 1961년 3월 15일자). 어느 제지 공장의 30m 높이 굴뚝에 공장 식당 주인이 올라가 ‘고공 시위’를 벌였다. 직원들이 외상값을 갚지 않는다는 이유였다(경향신문 1970년 9월 29일자). 베트남에서도 파견된 한국군들이 외상을 이용했는데 철수를 앞두고 부대장이 이미지를 구기지 않기 위해 ‘외상값 갚기 작전’을 벌였다고 한다(경향신문 1971년 12월 3일자). 정부가 운영하던 서울 반도호텔(현 롯데호텔 자리)의 전후 7년간 누적된 외상값이 14만 달러나 됐다고 한다(동아일보 1960년 9월 6일자). 1963년부터 10년간 서울역 그릴에 쌓인 외상값이 650만원이었는데, 그중 450만원이 교통부와 철도청 고위 간부의 외상이었다(경향신문 1973년 8월 24일자). 어느 지역 요식업자 10여명이 군수실로 찾아가 외상값 300여만원을 해결해 달라고 요구했다. 이에 군수는 자신이 재임할 때 밀린 외상값이 아니라고 거부했다고 한다(경향신문 1976년 2월 10일자). 월부 판매도 외상과 같다. 텔레비전과 같은 값비싼 전자제품은 거의 월부 판매였다. 월부는 원래 생산자들의 판매 촉진책으로 생긴 것이다. ‘외상이면 소도 잡아 먹는다’는 말이 있듯이 1970년대부터 소비자들의 월부 구입은 폭발적으로 불어났다. 월부로 물건을 많이 사들이는 사람을 일컫는 ‘차관 인생’이라는 신조어도 생겼다(매일경제 1969년 5월 8일자). 할부판매법도 제정되지 않아 소비자들의 피해가 컸다. 월부금을 완납하기 전까지는 물건의 소유권이 판매자에게 있어 상환이 지체되면 물건을 판매자에게 빼앗기게 돼 있었다. 손글씨로 장부에 적던 외상과 월부는 1980년대 초 신용카드가 도입되면서 합법화·제도화됐다. 손성진 논설고문 sonsj@seoul.co.kr
  • [In&Out] 글로벌 관광 콘텐츠, 케이뮤지컬

    [In&Out] 글로벌 관광 콘텐츠, 케이뮤지컬

    뮤지컬산업의 주력 시장은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다. 브로드웨이 42번가를 중심으로 하룻밤에 약 40억원의 공연 관람 매출액을 발생시킨다. 관객은 대부분 전 세계의 관광객이다. 그러니 그들이 브로드웨이에서 먹고 마시고 자고 구입하는 비용을 합하면 브로드웨이의 뮤지컬산업이 뉴욕시에 기여하는 관광 수입이 상당한 것이다. 타임스스퀘어에 삼성전자 등 세계적인 기업들의 광고 전광판이 경쟁하듯 걸린 것도 브로드웨이가 미국에서도 가장 붐비는 관광지이기 때문이다.뮤지컬산업은 160년 남짓 짧은 역사를 지녔다. 산업혁명 이후 기술력으로 신흥 권력층이 된 유럽의 신중산층이 지루하고 난해한 오페라를 대신할 파생 장르를 예술가들에게 요구하면서 생긴 버라이어티쇼 형태의 공연이 뮤지컬이다. 이 공연이 무엇이든 상업적 가치로 재가공하는 미국으로 건너가면서 뮤지컬이란 대중종합예술로 정착됐다. 한국 뮤지컬산업의 역사는 더 짧다. 1961년 12월 31일 우리나라 최초의 TV 방송국이 개국되면서 관현악단 40명, 합창단 35명에 연극인들까지 뭉친 대규모의 종합예술단체인 ‘예그린악단’이 창단됐다. 그리고 1966년 한국 최초의 창작 뮤지컬 ‘살짜기옵소예’가 만들어졌으므로 현대적 의미에서의 한국 뮤지컬산업의 역사는 불과 60년이 채 되지 않는다. 영화나 음악 산업보다 역사가 짧은 새로운 문화산업 장르라고도 볼 수 있다. 지금 한국 뮤지컬산업은 우리나라 공연 시장의 60%를 차지하고 공연 종사자 고용 비중으로는 80%의 역할을 하고 있다. 공연 분야 중 창작뮤지컬의 해외 수출과 뮤지컬 관람 해외 관광객 유입도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는 유일한 장르다. 또 세계 3대 뮤지컬 시장인 일본을 제치고 뮤지컬의 아시아 최강국으로 부상하고 있다. 한국뮤지컬이 산업화되기 시작한 지 불과 10년 만에 이뤄낸 이 기적들은 뮤지컬 전문 프로듀서들의 절박한 생존력이 만든 결실이다. 정부에서 글로벌 콘텐츠로 주목하고 육성해 온 타 문화산업 장르와 달리 순전히 민간 차원의 자구책으로 급성장해 온 것이다. 그러다 보니 야누스의 두 얼굴처럼 한계에 봉착했다는 위기의식도 동시에 종사자들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는 실정이기도 하다. 민간 차원의 고군분투가 황무지에 잡초로라도 싹을 틔웠으나 풍요로운 결실을 위해서는 영화진흥위원회처럼, 게임산업진흥원처럼, 음악산업진흥재단처럼 한국뮤지컬산업을 한국의 미래 먹거리로 육성하는 정부의 관심이 절실한 시점이다. 공연장 기반의 현장예술이고 비싼 관람료로 진입장벽이 높다는 특성 때문에 한국 뮤지컬산업은 여태 4000억원 규모의 작은 시장에 머물고 있다. 하지만 한국 뮤지컬 배우들의 아우라에 매료된 아시아인들이 우리의 잠재 시장이 되고 있어 케이팝에 이은 케이뮤지컬의 미래가 어둡지만은 않다. 한국 뮤지컬산업을 글로벌 관광 콘텐츠로 재발견하기를 열망해 본다.
  • “고려인 한 서린 땅… 정부는 왜 연해주 유적 방치하나”

    “고려인 한 서린 땅… 정부는 왜 연해주 유적 방치하나”

    박물관 사실상 버려져… 학계도 무관심 안중근·조명희 기념비 사후 관리 부실 “여행업계, 고증없이 사실화 안타까워… 한국 정부가 직접 유적 발굴·관리해야”“러시아 프리모르스키(연해주) 일대에는 아직도 고려인들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어요. 1937년 이오시프 비사리오노비치 스탈린(1878~1953)이 고려인 17만여 명을 중앙아시아로 이주시키며 크라스키노(연추) 한인마을을 탱크로 파괴했지만 지금도 이곳에 가면 우리 선조들이 쓰던 물건이 발굴됩니다. 올해 5월에도 연자방아와 무너진 초가집을 새로 찾았으니까요. 3·1 운동 발발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는 대한한국 정부에서 보다 많은 관심을 가져야죠.” 고려인 3세로 러시아 내 한인 독립운동사의 최고 권위자인 송지나(67) 러시아 극동연방대 한국어과 교수는 16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한국 정부가 연해주 고려인 유적에 대한 발굴과 관리에 더욱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1860년 제정 러시아는 청과 베이징 조약을 맺고 연해주 지역을 자신들의 영토로 편입시켰다. 매서운 추위로 사람이 거의 살지 않던 이곳에 1864년부터 조선인들이 경제적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하나둘 모여들었다. 이후 “연해주에 오면 배불리 먹을 수 있다”는 소문이 퍼져 한인의 수가 급격히 늘었다. 이렇게 러시아에 정착한 한인들을 ‘고려인’이라고 부른다. 고려인들은 대한민국 독립운동에도 공헌했지만 상대적으로 정부나 학계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고 송 교수는 아쉬워했다. 실제로 서울신문이 ‘임시정부 100주년 기획 취재’를 위해 찾아간 연해주 포시에트(목허우)에는 러시아 학자가 평생 발굴한 고려인 기와와 벽돌, 맷돌 등을 모아놓은 박물관이 있지만 관리가 되지 않아 사실상 버려져 있었다.그는 책임지지 않는 우리의 기념비 관리 문화에도 일침을 가했다. 송 교수는 “독립운동가 기념비는 개인이 임의로 세우게 해서는 안 된다. 사후 관리가 부실해지면 되레 위인을 욕되게 하기 때문”이라며 “우수리스크(쌍성자)에 있는 안중근(1879~1910) 의사 기념비나 지난 9월 문재인 대통령이 깜짝 방문해 화제가 된 조명희(894~1938) 작가의 블라디보스토크 기념비 모두 한동안 관리자가 없어 어려움을 겪었다. 안 의사가 손가락을 끊어 독립 의지를 다진 것을 기리는 단지동맹 기념비(크라스키노 소재)가 두 개나 세워져 있는 것도 기념비 관리가 제대로 되고 않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또 “한국 여행업계가 연해주 이곳저곳에 ‘OOO 선생이 살던 집’이라는 식의 유적 표지판을 설치한다. 여행 상품을 만들려고 역사적 고증도 거치지 않은 내용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다”며 “한국관광공사나 주블라디보스토크 한국 영사관도 이런 현실을 애써 모르는 척해 화가 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송 교수는 “가능하다면 내가 그들에게 고려인 독립운동에 대한 정확한 역사 지식을 강의해주고 싶다”고 전했다. 서울·포시에트(러시아)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가수 윤수일 22일 부산서 ‘황홀한 송년콘서트’ ....내년엔 평양서 공연 희망 .

    가수 윤수일 22일 부산서 ‘황홀한 송년콘서트’ ....내년엔 평양서 공연 희망 .

    “대중가요,퓨전악극, 국악,무용 등을 총망라한 매머드급 공연이 될겁니다”. 대중 가요계의 ‘살아있는 레전드’로 불리는 가수 윤수일이 오는 22일 오후 부산 시민회관 대극장에서 ‘윤수일 밴드 황홀한 콘서트’라는 주제로 송년 콘서트를 연다. 오후 3시, 7시 2회 공연. 이번 콘서트는 윤수일이 직접 기획했으며 ‘불후의 명곡 행렬’, ‘환상의 섬’, ‘통일의 노래 ’,‘아듀 ~2018 송년파티’ 등 모두 4부로 구성돼 있다.그는 “이번 공연은 국악, 무용 등 공연단 100여 명이 참여하는 매머드급으로 특히 다문화 가정 출신으로서의 겪었던 시대의 아픔과 통일을 희망하는 무대로 꾸몄다‘”고 기획 의도를 밝혔다. 1부 공연은 윤수일을 있게 한 ‘명곡 퍼레이드’ 시간. ‘사랑만은 않겠어요’, 갈대, 추억 유랑자 ‘떠나지마 ’ , ‘제2의 고향’ 등의 히트곡을 직접 연주하고 노래하며 분위기를 띄운다. 2부‘ 환상의 섬’은 퓨전 악극으로 다문화· 다인종이라는 단어조차 없었던 1960년대 혼혈로 태어나 심한 차별을 당했고 홀어머니 밑에서 어렵게 생활했던 그의 성장기를 음악극으로 펼쳐낸다.배경음악으로 도시의 천사, 아름다워 ,환상의 섬 등의 노래가 잔잔하게 흐른다. 그는 “ 혼혈아로 자란 자신의 눈물겨운 성장기를 후배 가수 등과 함께 퓨전 악극으로 꾸몄다”고 말했다.3부 ‘통일의 노래 는 내년 평양 공연과 어머니(고 지복희 여사)의 고향인 자강도 강계 공연 등을 염두에 두고 올리는 무대다. 신곡인 ‘강계여인’. ‘ 민락가’ 등 통일 노래를 처음 발표한다. 이번 공연을 위해 어머니가 평생 그리워했던 이북의 고향을 떠올리며 통일을 주제로 한 노래를 만들었다.강계 여인은 어머니의 억척스러운 삶과 애환을 노래했으며 어머니께 바치는 ‘헌정곡’이다. 그는 “ 어머니가 1950년 흥남철수 때 북한에서 내려와 울산에 정착해 저를 키우느라 많은 고생을 하셨다”며 “어머니로부터 강계 얘기를 많이 들어 북한 공연을 염두에 두고 이번 콘서트에 심혈을 기울였다”고 말했다. 4부 ‘아듀~2018 송년파티’는 자신이 대표로 있는 (주)누리마루 엔터테인먼트 소속 가수 장보윤, 위나,MC 허나영 등 후배들과 함께 무대에 오른다. ‘황홀한 고백’‘,아파트’,‘ 터미널’, ‘사랑만은 않겠어요’ 등 빅 히트송과 팝송,캐럴 등을 부른다.콘서트는 서울, 인천, 울산 등에서 연말까지 5차례 공연을 한다. 윤수일은 1977년 ‘사랑만은 않겠어요’로 데뷔해 ‘아파트’ ‘황홀한 고백’ ‘제2의 고향’ 등 수많은 히트곡을 양산하며 24장의 정규앨범을 발표했다. 2015년 부산에 내려와 후배양성과 함께 왕성한 창작활동을 펴고 있다. 부산김정한 기자 jhkim@seoul.co.kr
  • 이낙연 총리 “3·1운동을 3·1혁명으로 바꿔 부르자”

    이낙연 총리 “3·1운동을 3·1혁명으로 바꿔 부르자”

    이낙연 국무총리는 14일 ‘3·1운동’을 ‘3·1혁명’으로 바꿔 부르는 방안에 대한 논의를 제안했다. 이 총리는 이날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주재한 3·1운동 및 임정수립 100주년 위원회 전체회의에서 “3·1운동의 바른 이름 붙이기에 관해 학계에서 좀 더 깊은 논의가 전개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는 “일제는 3·1거사를 폭동, 소요, 난동으로 부르며 불온시했지만 대한민국임시정부 등 민족진영은 3·1혁명, 3·1대혁명이라 불렀다”며 “제헌국회의 헌법조문 축조심의에서 3·1거사에 대해 혁명, 항쟁, 운동 등의 명칭이 논의되다가 ‘3·1운동’으로 결정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외세에 대한 저항을 ‘혁명’으로 부르는 것은 맞지 않는다는 몇몇 의원의 주장이 받아들여 졌던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총리는 “3·1거사의 영향을 받아 두 달 뒤 중국에서 벌어진 5·4운동을 중국은 ‘5·4운동’ 또는 ‘5·4혁명’이라고 부르고, 1894년 농민 봉기도 ‘동학란’으로 불렸지만 1960년대 이후 ‘동학혁명’으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이 총리는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는 대한민국의 출발이라고 헌법이 선언하고 있다”며 “그 100주년에 우리는 대한민국의 과거 100년을 총괄하고, 현재를 조명하며, 미래 100년을 설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3·1운동의 역사를 훨씬 더 구체적으로 연구하는 것과 3·1운동의 바른 이름 붙이기에 관한 것, 두 가지 제안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얼마 전 3·1운동 관련 학술행사에서 ‘1919년 3월 1일 오후 5시까지 시위대를 진압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 �, ‘독립 만세라는 시위방식을 제안한 사람은 누구인� ?� 대한 흥미로운 질문이 나왔다”며 “3·1운동 연구나 기념사업도 이렇게 구체적으로 전개되면 좋겠다”고 했다. 오경진 기자 oh3@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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