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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 장애아 위해 헌신…말리 홀트 홀트아동복지회 이사장 별세

    홀트 설립한 부모 이어 결혼도 안 한 채 60여년간 봉사 말리 홀트(Molly Holt) 홀트아동복지회 이사장이 17일 오전 6시30분께 숙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83세. 홀트 이사장은 2012년 골수암 판정을 받은 뒤 투병해왔다. 1935년 미국 사우스다코타주 화이어스틸에서 태어난 그는 오레곤대 간호학과를 졸업한 뒤 1956년 홀트아동복지회 간호사로 근무한 것을 시작으로 60년 이상 한국에서 고아와 장애아동을 위해 헌신했다. 홀트아동복지회를 설립한 아버지 해리 홀트, 어머니 버다 홀트의 뜻을 잇기 위해서였다. 결혼도 하지 않은 채 홀트복지타운의 장애아동을 돌보는데 평생 헌신했다. 특히 한국전쟁 이후 피폐한 한국에서 영아원·보육원 간호사로 일했고, 경남과 전남북을 돌며 무의촌 주민의 질병 예방에도 힘을 쏟았다. 뇌성마비 등 특수재활의학에 큰 관심을 가지고 미국에서 연구를 하기도 했다. 2000년부터는 홀트아동복지회 이사장으로 일했다. 국민훈장 석류장, 대한적십자사 인도장 등을 받았다. 빈소는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특1호실에 차려졌고, 발인은 21일 오전 7시. 장례는 홀트아동복지회장으로 치를 예정이다. 02-2227-7500.김태곤 객원기자 kim@seoul.co.kr
  • ‘루브르 유리 피라미드’ 만든 이오 밍 페이 102세 나이로 사망

    ‘루브르 유리 피라미드’ 만든 이오 밍 페이 102세 나이로 사망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 앞 유리 피라미드의 설계자로 알려진 건축가 이오 밍 페이(I.M.페이)가 세상을 떠났다. 102세. 뉴욕타임스(NYT)는 16일(현지시간) 세상에서 가장 존경받는 건축가 중 한 명인 중국계 미국인 건축가 페이가 숨을 거뒀다고 그의 아들을 인용해 보도했다. 그는 돌과 콘크리트, 유리, 강철 등을 이용해 추상적인 형태의 건축을 즐겨 만드는 모더니즘 건축의 마지막 건축가로 알려져 있다. 1917년 4월 중국 광저우에서 유명 은행가의 아들로 태어난 페이는 1935년 미국으로 건너가 MIT와 하버드 대학에서 건축학을 공부했다. 하버드대에서 건축학 석사학위를 받은 그는 1948년 뉴욕의 부동산업자 윌리엄 제켄도르프에게 고용돼 빌딩 설계의 감리를 맡았다. 1954년 미국 국적을 취득한 그는 이듬해 자신의 회사를 차렸다. 1960년대 들어 뉴욕 킵스 베이 플라자(1963), 필라델피아 소사이어티 힐 타워(1964), 뉴욕 실버 타워(1967) 등의 설계를 맡으며 1983년 건축계의 노벨상인 프리츠커상을 수상했다.가장 유명한 작품 중 하나인 루브르 유리 피라미드를 비롯해 미국 워싱턴 국립미술관 동관, 클리블랜드 로큰롤 명예의 전당, 홍콩 중국은행 타워 등은 지역의 랜드마크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페이는 건축에 있어 “시간의 시험에 맞서는 것”을 가장 중요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NYT는 그가 남긴 빌딩은 어느 것도 “촌스럽다”거나 “전통적이다”는 평을 받은 적이 없었다고 평가했다. 생전 그는 대한제국 황실과도 인연을 맺을 것으로 전해진다. 영친왕과 이방자 여사의 아들 이구는 1953년 미국으로 유학을 가 MIT에서 건축학을 전공한 후 페이의 회사에 취직했다. 이구는 이곳에서 독일계 미국인인 줄리아 리를 만나 결혼했다. 민나리 기자 mnin1082@seoul.co.kr
  • [사진들] 루브르 피라미드 설계한 이오 밍 페이 타계, 대한제국과도 인연

    [사진들] 루브르 피라미드 설계한 이오 밍 페이 타계, 대한제국과도 인연

    프랑스 파리의 자랑인 루브르 박물관 앞 유리 피라미드를 설계한 중국 출신 건축가 이오 밍 페이(貝聿銘)가 102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미국 일간 USA투데이는 16일(현지시간) 세상에서 가장 존경받는 건축가 가운데 한 명인 고인이 간밤에 숨을 거뒀다고 보도했다. 뉴욕 타임스(NYT)에 건축 비평을 기고하는 폴 골드버거가 고인 아들 리 청 페이에게 문의했고, 리 청이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사실을 확인했다고 고인의 회사 공보 담당이 USA투데이에게 밝혔다. 영면한 장소와 사인은 알려지지 않았다. 대한제국 황실과의 인연이 눈길을 끈다. 영친왕과 이방자 여사의 아들 이구 씨가 1953년 미국으로 유학을 가 MIT에서 건축학을 전공한 후 페이의 회사에 취직한 것이다. 이구 씨가 배우자인 독일계 미국인인 줄리아 리를 만나 결혼한 것도 페이의 회사에서였다. 대학 동문들은 이구 씨와 페이를 헷갈려 했고 이구 씨가 대한제국 황손이라고 말했을 때 농담하는 줄로만 알고 있었으며 처음에는 줄리아도 페이도 마찬가지였다. 나중에 페이는 이구 씨가 정말로 황손이란 사실을 확인하고 정말 깜짝 놀랐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본명보다 이니셜이 들어간 ‘I M 페이’로 더 잘 알려진 그는 1917년 중국 광저우에서 유명 은행가의 아들로 태어나 1935년 미국으로 건너가 매사추세츠 공과대학(MIT)와 하버드 대학에서 건축학을 공부했다. 하버드대에서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2차 세계대전 때는 미국 정부의 연구자로 활동했다. 1948년 뉴욕 부동산업자 윌리엄 제켄도르프에게 고용돼 빌딩 설계의 감리를 맡았다. 1955년 자신의 회사를 차린 페이는 1960년대 들어 뉴욕 킵스 베이 플라자, 필라델피아 소사이어티 힐 타워, 뉴욕 실버 타워 등의 설계를 맡으며 이름을 드날렸다. 1983년에는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상도 받았다. 심사 평은 “가장 아름다운 내부 공간과 외부 형태를 금세기에 제공했다”는 것이었다. 그가 설계한 대표적인 건축물이 루브르 유리 피라미드와 미국 워싱턴 국립미술관 동관, 클리블랜드 로큰롤 명예의 전당, 홍콩 중국은행 타워, 미국 댈러스 시청, 일본 미호 뮤지엄 등이다. 말년에도 최고의 걸작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카타르 도하의 이슬람 뮤지엄을 설계했는데 그는 특히 이슬람 건축 양식을 매우 좋아했고 아이디어의 원천으로 삼았던 것으로 유명하다. ‘모더니즘 최후의 건축가‘로 불리는 페이는 자신이 설계한 박물관, 호텔, 학교 등에서 ‘빛에 대한 경외’를 바탕으로 정밀한 기하학적 구조와 추상미를 보여줬다고 로이터 통신은 평가했다. 그는 생전에 “건축은 실용적인 예술이라고 믿는다. 예술이 되려면 필요성에 근거해 지어져야만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는 미국에서 건축학을 공부하는 중국인 유학생들을 위한 장학기금을 만들어 일인당 10만 달러씩 나눠주고 있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바다를 한 입에… 더위 싹, 기운 쑥

    바다를 한 입에… 더위 싹, 기운 쑥

    2003년 여름이 지날 무렵 충남 서천군 판교면 행사장에 동물보호단체 등이 쳐들어와 솥을 엎고 천막을 걷어냈다. 면내 개고기 음식점 주인들이 첫 ‘보신탕 축제’를 열 참이었다. 축제는 결국 무산됐고, 쌍방 간에 고소·고발이 오갔다. 전통적인 여름철 보신 음식의 쇠락(?)을 알리는 사건이었다. 이종림 판교면 부면장은 16일 “당시 7~8곳에 이르던 보신탕 집이 지금은 두 곳밖에 남지 않았다”고 했다. 판교는 조선시대인 1770년대 백중장에서 처음 판매가 이뤄진 보신탕의 원조로 알려졌다. 힘든 농사일을 거의 끝낸 머슴에게 휴식을 주는 ‘백중’(음력 7월 15일)에 열린 장에 머슴들이 몰려와 개장국을 사 먹은 데서 유래했다는 것이다. 이후 콜레라 등이 번창해 돼지고기 등을 기피하게 되면서 십수년 전까지 판교를 중심으로 한 서천군과 인근 부여군에서는 더위에도 잘 상하지 않는 보신탕을 상가에서 문상객에게 대접하는 풍습이 있었다. 이 부면장은 “애견 인구가 늘고 동물보호 관련 단체들이 반발하기도 했지만 이곳에서 보신탕이 줄어든 결정적인 이유는 상을 치르는 장소가 집에서 장례식장으로 바뀌었다는 점”이라며 “요즘은 풀베기 등 마을 공동작업 때만 개를 잡는다”고 전했다. 보신탕이 아니라도 여름철 건강 음식은 지천이다. 특히 푸른 바다가 그리워지는 계절에 ‘갯것’으로 만든 전통 해산물 음식은 뜨거운 날에 더할 나위 없이 반갑다. 여름이 성큼 다가오면서 더위를 식히고, 기운을 돋우고, 떨어진 입맛을 살릴 해산물 음식을 찾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속 시원한 맛, 태안 박속밀국낙지탕 겨울에 주로 먹는 토속음식 게국지와 우럭젓국으로 유명한 충남 태안은 여름이 오면 박속밀국낙지탕과 붕장어(일본명 아나고)구이가 미식가를 유혹한다. 박속밀국낙지탕은 조선시대 낙향한 선비들이 즐겨 먹었다고 하나 널리 알려진 것은 수십년 전이다. 정지수(47) 태안문화원 사무국장은 “1989년 서산에서 태안이 분리되기 전 역사적으로 서산에 속했다 떨어지길 반복해 태안이 원조여도 서산 것으로 대표되는 게 많다. 박속낙지탕만 해도 낙지를 잡는 가로림만 갯벌은 태안에 많고 이원·원북면이 이 음식으로 유명하다”고 했다. 박속과 낙지는 궁합이 맞고 수확 시기도 엇비슷하다. 바가지를 만드는 박이 완전히 익기 전인 7~8월 속을 긁어내고 산란기 때 태어난 세발낙지도 이맘때 살이 부드럽고 맛이 좋다. 박속을 넣고 물을 끓이면서 낙지를 데쳐 샤부샤부로 먹은 뒤 수제비나 칼국수를 넣어 요리한 것이다. 정 사무국장은 “예전부터 서해안 일대에서 많이 쓰던 ‘밀국’이라는 말이 붙은 걸 보면 애초 수제비를 넣어 먹는 게 맞는 것 같다”고 풀이했다. 시어머니에 이어 2대째 운영 중인 이원면 이원식당 주인 안국화(59)씨는 “내가 어릴 때는 박속과 낙지를 가마솥에 넣어 찌개를 만들어 먹었는데 요즘은 샤부샤부가 대부분”이라며 “박속을 넣으면 무보다 훨씬 시원하고 담백하다. 국물이 바로 식지 않아 낙지 고유의 맛을 더 오래 유지한다”고 밝혔다. 그는 “한여름 주말 하루에 300명이 오는데 날이 더워지며 벌써 손님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소금 톡톡, 담백한 태안 붕장어구이 태안 붕장어구이는 주로 소금에 구워 먹는 게 특징이다. 소금은 충남에서 태안이 주산지다. 정 사무국장은 “태안은 조선시대 이름난 조정의 자염(바닷물을 끓여 만든 소금) 생산지였다. 공주 부동산 갑부 김갑순이 등장하기 전에 태안 이희열(1831~1918)이 구한말 충남 최고 갑부가 됐던 게 소금”이라며 “지금도 태안은 충남에서 천일염 염전이 가장 많이 남아 소금이 흔한 곳으로 구이에 주로 쓰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을 것”이라고 했다. 소금으로 구우면 담백하고 붕장어 고유의 맛이 잘 산다. 조석시장에 아예 붕장어구이 골목이 있다. 문기석 상인회장은 “붕장어 맛이 가장 좋은 여름철이 되면 손님이 점점 늘어난다”고 전했다.갯벌의 소고기, 순천만 짱뚱어탕 요즘 전남 순천만 갯벌에 가면 짱뚱어들이 마구 뛰어다닌다. 짱뚱어는 청정 갯벌에 사는 물고기로 순천만이 천국이다. 간척 등 갯벌이 훼손된 해안에서는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개체수가 줄고 양식도 안 돼 귀한 대접을 받아 ‘갯벌의 소고기’로 불린다. 잡기도 쉽지 않다. 갯벌의 짱뚱어에 낚싯줄을 정확히 던져서 맞혀 잡는 ‘달인’이 TV 등에 나오기도 하지만 이 물고기는 매우 민첩하다. 귀가 어둡지만 영리하고, 예민하고, 볼록 솟은 큰 눈이 주변을 전방위적으로 둘러볼 수 있어 상황감지 능력이 탁월하다. 갯벌의 게와 갯지렁이 등을 먹고 산다. 거무튀튀한 색깔과 생김새는 메기나 미꾸라지 같고, 팔딱팔딱 뛰고 잽싸게 기는 모습은 도마뱀을 닮았다. 솜씨 좋은 낚시꾼도 널배로 갯벌을 미끄럼 타며 홀치기낚시나 맨손으로 한 마리씩 잡아 망태를 채울 뿐이다. 짱뚱어 100마리를 먹으면 감기에 걸리지 않는다고 해서 일찍부터 순천에선 보양 음식으로 알려져 있다. 고도의 인내심과 체력, 숙련된 기술로 잡는 걸 보면 절이라도 하고 수저를 들어야 할 판이다. 아무것도 안 먹고 한 달을 사는 특징 때문에 스태미나 음식으로도 꼽힌다. 전골, 구이, 탕으로 요리한다. 된장을 풀고 시래기, 우거지 등을 넣어 추어탕처럼 끓인 탕은 시원한 국물이 일품이다. 1980년대부터 언론에 자주 소개돼 순천만을 상징하는 ‘전국구’ 음식이 됐지만 여름철 건강식으로 빼놓을 수 없다.여름 별미 물회 본고장, 포항 동해안으로 눈을 돌리면 제주에서 강원까지 여름철에는 물회가 제일이다. 이 중 경북 포항은 물회 대중화의 본고장으로 유명하다. 고 허복수씨가 1960년대 ‘영남물회’를 열고 최초로 물회를 팔기 시작했다. 지금은 영일대해수욕장 인근 ‘설머리물회지구’에만 물회 전문 식당이 20여곳에 이른다. 죽도시장, 바닷가길, 북부해수욕장, 환여동 및 두호동 회타운 등에도 많다. 바쁜 어부들이 큰 그릇에 막 잡은 생선과 채소를 썰어 넣고 고추장을 푼 뒤 시원한 물을 부어 후루룩 마신 데서 유래한다. 종류는 다양하다. 도다리물회, 세꼬시물회, 해삼과 전복을 넣은 특미물회, 꽁치물회 등이 있다. 먹는 방식도 다채롭고 맛 또한 다르다. 고추장에 배·상추·잔 파와 깨소금·참기름을 넣어 비비는 전통 물회와 멸치·다시마·버섯 등을 우려낸 얼음 육수로 만든 2000년대 유행 물회는 맛 차이가 크다.뼈째 썰어 막된장에, 제주 자리물회 반면 제주에는 토박이들이 즐기는 자리물회가 있다. 갓 잡은 싱싱한 자리돔을 뼈째 썰어 채소와 함께 막된장으로 양념한 뒤 시원한 물을 부어 먹는다. ‘여름철 자리물회 다섯 번만 먹으면 따로 보약이 필요 없다’고 할 만큼 제주 사람들의 대표 여름 특식이다. 자리물회는 식초를 뿌려 만들지만 제주토박이들은 여기에 더 톡 쏘는 빙초산을 한 방울 떨어뜨려 먹는다. 제피나무 잎을 약간 넣으면 향도 좋고 비린내도 가신다. 섶섬 바다 절경으로 유명한 서귀포 보목포구 앞바다가 주산지로 마침 오는 31일부터 다음달 2일까지 이 일대에서 활자리돔 즉석 시식, 자리돔 맨손으로 잡기, 대나무 고망낚시, 통통배 타고 보목바당 유람 등 자리돔 축제가 열린다. 물회는 불포화지방산과 칼슘 등 영양이 풍부하고 시원하고 고소해서 더위를 떨치는 음식으로 딱 맞다. 태안 이천열 기자 sky@seoul.co.kr 포항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제주 황경근 기자 kkhwang@seoul.co.kr 순천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 새 옷 입는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 ‘노원 백사마을’

    서울에 남아 있는 마지막 달동네였던 노원구 중계동 104 일대 일명 백사마을이 본격적인 재개발에 들어갈 길이 열렸다. 노원구는 지난 15일 열린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에서 백사마을에 대한 재개발 계획이 수정 가결됐다고 16일 밝혔다. 20층 7개 동 중 지형이 높은 동의 층수를 하향하는 조건이다. 노원구는 수정 보완을 거쳐 30일간 재열람 공고 뒤 서울시 고시를 받는다. 백사마을은 총부지 면적 18만 6965㎡에 건립 가구수는 분양이 2000가구, 주거지 보전사업으로 698가구 등 총 2698가구로 탈바꿈할 예정이다. 백사마을은 1960년대 후반 용산, 청계천, 안암동 철거민들이 모이면서 생겼다. 2008년 1월 개발제한구역이 해제되면서 재개발이 추진됐다. 서울시는 이곳을 2009년 정비구역으로 지정하고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사업시행자로 참여했지만 주거지 보전사업으로 인한 사업성 저하 논란 끝에 LH가 2016년 시행자 자격을 포기했다. 이후 SH공사를 새로운 사업시행자로 지정하면서 다시 추진하게 됐다. 오승록 노원구청장은 “노후화가 심각해 거주민의 안전사고가 우려되는 만큼 서울시 건축위원회 심의를 통과해 사업이 조속히 추진될 수 있도록 서울시, SH공사 등과 적극 협의하겠다”고 말했다. 강국진 기자 betulo@seoul.co.kr
  • 연평도 등대 45년 만에 재점등… 오늘 오후 7시 20분 불 밝혀요

    남북 간 군사 대치로 불이 꺼졌던 ‘연평도 등대’가 45년 만에 다시 불을 밝힌다. 해양수산부는 17일 오후 7시 20분부터 연평도 등대를 재점등한다고 16일 밝혔다. 매일 일몰 시간부터 다음날 일출 시간까지 15초에 1회 주기로 연평 해역에 빛을 비춘다. 연평도 등대는 인천 옹진군 연평면 해발 105m 지점에 세워진 높이 9.5m짜리 콘크리트 구조물이다. 1960년 3월 연평 해역 조기잡이 어선의 안전한 항해를 위해 첫 불을 밝혔다. 그러나 1970년대 들어 남북 간 군사 대치가 심화하면서남침 간첩에게 지리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는 이유 등으로 1974년 운영을 전면 중단했다. 이어 1987년에는 시설물을 완전히 폐쇄했다. 하지만 연평도 등대는 지난해 4·27 판문점선언, 9월 평양공동선언, 9·19 군사합의 등을 거치며 복원이 논의됐다. 지난 3월 정부가 서해 5도 어업인의 숙원이던 어장 확대 및 야간 조업시간 연장을 결정하면서 등대 복원도 본격적으로 추진됐다. 해수부는 국방부 등과 협의를 거쳐 등대 불빛이 발사되는 각도는 군사분계선 남쪽으로, 도달 거리는 연평어장(37㎞)으로 각각 제한했다. 또 유사시 군이 원격으로 등대를 끌 수 있도록 안전장치도 마련했다. 세종 황비웅 기자 stylist@seoul.co.kr
  • [문소영 칼럼] 독재란 무엇인가

    [문소영 칼럼] 독재란 무엇인가

    ‘독재’의 사전적 의미는 헌법상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지 않으며 행정·입법·사법의 삼권분립을 부인한 채 한 개인이나 그의 측근이 통치하는 전제정치를 말한다. 고대 로마가 내란이나 외침 등 위급한 상황에서 원로원이 집정관에게 법을 초월한 독재권을 행사하도록 한 데서 유래한다. 그렇다면 독재에서 시민의 삶은 어떠한가. 한국의 대표적인 독재인 ‘박정희 개발독재’와 ‘전두환 군부독재’ 시절을 살펴보면 되겠다. 박정희 시대 독재는 ‘긴급조치’로 대변된다. 긴급조치는 유신헌법 제53조항으로, 대통령이 국가의 안전보장 또는 공공의 안녕질서가 중대한 위협을 받거나 받을 우려가 있다고 판단했을 때, 헌법에 규정된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일시 정지하는 것이다. 고대 로마의 의도와 비슷하다. 그러나 실제 적용은 완전히 달랐다. ‘긴급조치 1호’를 보면 “유신헌법을 부정, 반대, 왜곡, 비방하는 일체의 행위, 유신헌법 개정이나 폐지를 주장, 발의, 청원하는 일체의 행위를 금지”하고 “이를 위반한 사람과 긴급조치를 비방한 사람”은 “법관의 영장 없이 체포, 구속하여 비상군법회의에서 재판하여 1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했다. 즉 대통령에게 반하는 정치적 소신을 밝힌다는 이유로 대학생과 지식인들을 탄압했던 것이다. 더 나아가 정치적 반대자들을 날조된 반국가단체 조직 활동으로 엮어 재판하고 사형하는 등 ‘사법살인’이 횡행했다. ‘인혁당 사건’이나 ‘민청학련 사건’ 등이 대표적이다. 막걸리에 취한 김에 대통령 욕을 했다고 불잡혀 가던 엄혹한 시절이다. ‘없으면 나라님 욕도 한다’는 상식이 통하지 않는 시대였다. 전두환 군사독재의 일부는 체험담으로 증언할 수 있다. 12·12 군사반란 이후 1980년 서울의 봄을 짓밟고 5·18 광주시민 학살로 정권의 토대를 잡은 전두환 정부는 직선제 개헌을 요구하는 대학생과 시민들을 ‘호헌’으로 응수하며 탄압했다. 자의적으로 거동이 수상하다며 불심검문하고 가방에 혹여 ‘해방전후사의 인식’ 같은 교양서적이 들어 있으면 불온서적 소지죄로 경찰의 “함께 가시죠”에 응해야 했던 시절이다. 1986년 부천경찰서의 문귀동 경사는 여대생을 잡아다가 성고문을 했는가 하면, 1987년 1월에는 ‘턱 치니 억하고 죽었다’고 발뺌한 박종철 물고문 사망사건이, 6월에는 직격탄을 맞고 사망한 이한열 사건이 발생했다. 학생운동권들을 ‘녹화사업’하는 중에 의문사가 늘어나던 시절은 노태우 정권 때로도 이어졌는데, 1989년 이철규 조선대 학생의 의문사가 대표적이다. 문재인 대통령을 두고 야당의 정치인들이 자유롭게 “독재자”라고 저격하며 어떤 위협도 느끼지 않는다면, ‘막걸리 긴급조치’라던 박정희 시대와 비교해 과연 독재라고 할 수 있는가 하고 묻지 않을 수 없다. 표현의 자유가 넘쳐 흐르다 보니 ‘달창’과 같은 여성 비하적인 혐오 발언이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 입에서 나오고, ‘태극기 집회’ 등에서 대법원이 부인한 ‘5·18 북한군 침투설’과 같은 가짜뉴스를 유포하며 시민사회를 교란하는 지경이 됐다. 386세대의 대표곡인 ‘님을 위한 행진곡’이 집회에서 흘러나올 때에는 실소를 금하지 않을 수가 없다. 다소 부조리해 보이는 이런 풍경 탓에 지난 50~60년 동안 민주주의를 열망한 세력들이 군부독재를 극복하고 민주주의 사회를 바꿔 놓았더니 ‘죽 쑤어서 개 줬다’며 분개하는 이들도 있지만, 이런 수준은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감내할 만하다. 문제는 한국당이 극우인 태극기 집회 세력과 거리를 두지 않고, 이들과 연대하거나 오류적 행태를 방치할 때다. 한국당은 지난 2월 전당대회에서 투표권을 행사한 극우들의 준동을 정치적 이해관계 탓에 내버려두었다. 대단히 우려할 만한 상황이다. 독일 나치의 등장은 제도권 정당들이 극우들을 정치권 진입을 어리석게도 막지 못한 탓에 발생했다고 책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에서 레비츠키와 지블랫은 밝히고 있다. 책임 있는 정당이라면 극단적인 세력을 배제하며 억제할 만한 힘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좌파 포퓰리즘에 대해 지적질하면서 한국당이 지지율을 올리려고 극단적 세력과 거리 두기에 실패한다면, 수십년 동안 공들여 쌓아 온 민주주의를 무너뜨릴 수 있다. 독재정권의 여당이던 공화당·민정당·민자당의 후신인 한국당이 정권만 잡는다면 극우세력이 끼어들어도 크게 손해 볼 것이 없다는 식의 착각을 하지 않길 바란다.
  • [美 싱크탱크 브레인 4] 김두연 “美, 北 회색지대 전략에 맞설 필요”

    [美 싱크탱크 브레인 4] 김두연 “美, 北 회색지대 전략에 맞설 필요”

    북한이 연일 무력시위로 대미·대남 압박 수위를 높이는 가운데 미국이 북한의 ‘회색지대’ 전략에 맞서는 전략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김두연 신미국안보센터(CNAS) 연구원은 14일(현지시간) 같은 센터의 니콜라스 D 라이트, 크리스틴 리와 함께 ‘미국은 북한에 맞선 회색지대 전략이 필요하다’는 제목의 외교매체 포린폴리시 기고문을 통해 최근의 북한 미사일 도발은 “2011년 집권한 이후 김정은 정권이 전쟁과 평화 사이의 회색지대를 교묘하게 이용하는 법을 잘 알고 있음을 상기시켜준다”면서 김 위원장의 대외 정책 성공은 이런 ‘회색지대’ 전략을 노련하게 이용한 덕분이었다고 평가했다. 한국과 미국, 일본을 상대로 보복을 불러오지 않을 만큼의 도발을 통해 이득 및 영향력 확보를 추구해 온 것이 어느 정도 성과를 거뒀다는 것이다. 김 연구원은 미국 역시 북한의 전략에 대응해 회색지대 전략을 구사해야 하며 북한의 저강도 도발에 대한 징벌적 대응으로 외교적·경제적 지렛대 등을 활용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북한과 상업 거래를 하는 제삼자에 대한 제재 부과나 한국과의 협력을 통한 해상 불법행위 차단 강화를 예로 들었다. 그녀는 또 대북 확성기 방송과 전단 등의 재개 및 강화로 북한과의 협상이 중단되는 일 없이 북한의 도발에 대한 불쾌감을 전달할 수 있으며 북한의 사이버전에 대한 한미일의 공조 지속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나아가 북한이 고강도 도발에 나설 경우 미국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를 통해 규탄 성명 이상의 강력한 대응에 나서야 한다고 김 연구원은 주장했다. 또 B-1B나 B-2 같은 전략폭격기 등의 참여를 보류한 수준에서 동맹들의 연합훈련, 예를 들어 을지프리덤가디언이나 비질런트 에이스 같은 대규모 한미연합훈련 재개를 검토할 필요성이 있다고 강조혔다. 아울러 북한이 핵실험이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에 나서면 전략자산도 훈련에 합류시켜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 연구원은 “‘화염과 분노’가 나쁜 행위를 징벌하는 유일한 방법은 아니지만 북한의 회색지대 전술을 모른 척하는 것은 북한을 대담하게 만들 뿐”이라며 “(대북) 경제·외교·군사적 압박을 점진적으로 늘리고 줄이는 신중하고 전술적인 유연성이 필요하다. 지난 60년 동안 북한과 평화와 전쟁 사이의 모호함을 경험했는데 이제 미국은 회색 지대를 마찬가지로 잘 조종해야 한다”고 기고문을 맺었다. 한편 포린폴리시의 필자 안내에 따르면 김 연구원은 ‘불레틴 오브 아토믹 사이언티스트’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며 비핵화와 무기통제, 남북한, 동아시아 관계를 전공으로 삼고 있다. 라이트는 조금 특이한 경력을 갖고 있다. 옥스퍼드와 런던에서 내과와 신경의학을 전공했고 인텔리전트 바이올로지, 조지타운 대학 병원,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과 함께 공동 연구를 진행하며 국제 대치 국면에서의 정책 결정에 신경과학, 행동과학, 기술적 성찰이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연구한다. 크리스틴 리는 CNAS의 아시아태평양 보안프로그램에서 연구하고 있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英판사가 읽었던 ‘채털리 부인의 사랑’ 해외반출 제동

    英판사가 읽었던 ‘채털리 부인의 사랑’ 해외반출 제동

    영국 정부가 역사적 재판의 대상이 됐던 영국 작가 D H 로런스의 소설 ‘채털리 부인의 사랑’의 페이퍼백(책 표지를 종이 한 장으로 장정한 포켓판 도서)이 해외로 반출될 위기에 놓이자 반출 금지 결정을 내렸다고 BBC방송이 1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귀족 여성과 사냥터지기의 열정적인 사랑을 다룬 이 책은 1928년 이탈리아·프랑스 등에서 출간됐으나 특유의 외설성으로 인해 정작 작가의 모국인 영국에서는 1960년까지 발간되지 못했다. 발간된 후에는 출판을 담당했던 펭귄 출판사가 기소돼 재판을 받았다. 1960년 당시 판사 로렌스 번 경은 ‘채털리 부인의 사랑’ 페이퍼백을 구입해 읽은 뒤 재판을 진행했고 출판사는 결국 무죄를 선고받았다. 판사 번 경이 읽었던 이 페이퍼백은 지난해 10월 런던 소더비 경매에서 익명을 요구한 해외 응찰자가 5만 6250파운드(약 8700만원)에 낙찰받았다. 중요한 문화적 가치가 있는 서적이 해외로 반출될 위기에 처하자 제동을 건 영국 정부는 일단 해외 응찰자가 제시한 금액을 지불할 수 있는 구매자를 수개월 동안 기다린다는 방침이다. 마이클 엘리스 문화부 정무차관은 이날 “영국 역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 이 책을 지키기 위해 구매자가 나타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골든글로브만 3번 받아…할리우드 여배우 도리스 데이 97세 별세

    골든글로브만 3번 받아…할리우드 여배우 도리스 데이 97세 별세

    세계적인 히트곡 ‘케 세라 세라’로 유명한 가수이자 할리우드 배우 도리스 데이가 13일(현지시간) 별세했다. 97세. AP통신 등에 따르면 도리스 데이 동물재단은 데이가 이날 아침 미 캘리포니아주 카멜벨리 자택에서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숨을 거뒀다고 전했다. 재단은 그가 최근 심한 폐렴에 걸리기 전까지 비교적 건강한 상태를 유지했다고 전했다. 미 오하이오주 신시내티에서 1922년 태어난 데이는 1945년 빅 밴드 ‘레스 브라운 앤 히즈 밴드 오브 리나운’의 보컬로 활동을 시작했다. 당시 발표한 ‘센티멘탈 저니’는 100만장 이상이 판매되며 데뷔 초창기부터 큰 성공을 거뒀다. 그와 함께 오랜 시간 함께한 밴드 리더 레스 브라운은 “가수로서 데이는 빙 크로스비와 프랑크 시나트라의 동료였다”고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2년 뒤 솔로로 전향한 데이는 10여년간 650곡을 불렀으며 수많은 히트곡을 남겼다.데이가 두각을 드러낸 건 음악 뿐이 아니었다. 1948년 영화 ‘로맨스 온 더 하이 시즈’를 시작으로 20여년간 40여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1950년대 옆집에 사는 활기찬 소녀 이미지로 각광받았다면 1960년대에는 매력적인 여성으로서 많은 관객들에게 사랑받으며 ‘박스오피스의 연인’으로 큰 인기를 누렸다. 최고 흥행작으로는 ‘필로우 토크’, ‘무브 오버 달링’ 등이 있다. 1956년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나는 비밀을 알고 있다’에서 ‘케 세라 세라’로 유명한 ‘왓에버 윌비 윌비’를 불러 세계는 물론 한국에서도 큰 인기를 얻었다. 데이는 골든 글로브를 3회 수상했으며 1989년 그래미 평생공로상을 받았다. 2004년에는 문화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미국 최고의 훈장인 자유 메달의 수상자 명단에 올랐다. 재단에 따르면 데이는 생전에 장례식을 치르지 말고 묘비도 새기지 말아 달라고 부탁한 것으로 전해졌다. 민나리 기자 mnin1082@seoul.co.kr
  • [안녕? 자연] 인류가 처음 도달한 1만m 마리아나 해구서 ‘쓰레기’ 발견

    [안녕? 자연] 인류가 처음 도달한 1만m 마리아나 해구서 ‘쓰레기’ 발견

    미국의 한 억만장자가 인류 역사상 가장 깊은 바닷속에 도달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그는 기쁨도 잠시 이미 그곳에도 인간이 버린 쓰레기가 가라앉아 있다는 안타까운 사실을 확인해야 했다.미국 CNN을 비롯한 외신은 14일(이하 현지시간) 미국의 해저탐험가 빅터 베스코보(53)가 지난달 28일 심해용 유인 잠수정을 타고 세계에서 가장 깊은 마리아나 해구의 챌린저 해연 수심 약 1만 928m(3만5853ft) 지점 탐사에 성공했다고 전했다. 이는 제임스 캐머런 감독이 2012년 세운 1만908m 지점 기록보다 약 20m 더 깊고 1960년 미 해군의 심해 유인 잠수정이 세운 1만912m보다도 16m 더 깊은 것이다.보도에 따르면, 이날 베스코보는 최장 4시간 동안 해저에 머물렀다. 그는 심해에서 몇몇 신종 생물을 발견했지만, 비닐봉지와 포장지 등 전혀 예상하지 못한 쓰레기들마저 발견할 수 있었다. 3일 뒤인 이달 1일 다시 심해 탐사에 나선 베스코보는 이때 역시 반갑지 않은 쓰레기와 마주쳤다. 이때 잠수정이 내려간 수심은 약 1만 927m 지점이며 이날은 최장 3시간 동안 해저에 머물렀다. 이후 3일과 5일에는 탐사팀의 전문가 등 다른 팀원들이 조사에 나섰고 마지막 날인 7일에 베스코보는 수석 과학자와 함께 탐사에 들어가 3시간 동안 암석 표본 등을 채집했다.이번 탐사 동안 곳곳에서 쓰레기를 발견해 적잖히 놀란 그는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가장 깊은 대양의 해저마저 인간 탓에 오염돼 있는 것을 보게 돼 매우 실망했다”면서 “마리아나 해구는 쓰레기를 버리는 곳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세계에서 가장 깊은 마리아나 해구에서 쓰레기가 발견됐다는 이야기가 믿기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이미 여러 연구를 통해 플라스틱 쓰레기는 심해 곳곳에 도달한 것으로 밝혀졌다. 지난해 5월에는 마리아나 해구의 깊이 1만898m 심해에서 플라스틱 비닐봉지가 발견됐다는 연구 결과가 나와 세계에 큰 충격을 던진 바 있다. 이 비닐봉지는 지금까지 발견된 해양 쓰레기 중 가장 깊은 곳에서 찾은 것으로 버려진 지 30년 정도가 흐른 것으로 추정됐다. 당시 연구진은 이를 통해 전 세계 바다에서 플라스틱 쓰레기 오염이 얼마나 심각한 지 알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연구에서 발견된 쓰레기 잔해 3000개 이상 중 33% 이상은 대형 플라스틱 쓰레기였으며 89%는 일회용 제품이었다. 또 금속 쓰레기가 26%, 고무 쓰레기가 2.8%, 낚시도구가 1.4%, 섬유나 종이 등이 1.3%, 기타 쓰레기가 35%를 차지했다. 또한 2017년 연구에서는 마리아나 해구의 심해에 사는 갑각류의 위 등 소화기관에서 나일론뿐만 아니라 레이온, 리오셀 등 합성섬유 등이 나오기도 했다. 이런 결과는 전세계 바다의 플라스틱 오염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널리 퍼져있다는 것을 입증한다. 특히 바다에 버려지는 쓰레기는 갈수록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유엔에 따르면 지금까지 바다에 버려진 인간의 쓰레기는 무려 1억t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가 흔히 쓰는 생수병부터 의류, 각종 일회용품들이 이렇게 바다로 흘러들어가 거대한 쓰레기장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해안가로 떠밀려온 죽은 고래의 뱃속에서 이런 쓰레기가 대량으로 발견되기도 한다.한편 베스코보는 미국 사모펀드 인사이트 에퀴티 홀딩스의 창립자이자 투자자지만 이미 세계 7개 대륙의 최고봉을 정복하고 남극과 북극까지 여행해 이른바 ‘산악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베테랑 탐험가로 알려졌다. 현재 그는 오대양의 심해 중에서도 가장 깊은 지점만 골라 탐사하는 ‘파이브 딥스 엑스퍼디션’이라는 프로젝트팀을 이끌고 있는 데 총 4800만 달러(약 540억 원)를 들여 만든 무게 11.2t, 두께 9㎝의 유인 잠수정 ‘DSV 리미팅 팩터’(트리톤 36000/2 모델)를 사용해 심해 탐사를 진행하고 있다. 그는 지금까지 대서양의 푸에르토리코 해구(해저 8648m)부터 남극해의 사우스샌드위치 해구(해저 7235m), 인도양의 자바 해구(해저 7290m)에 이어 이번 마리아나 해구 탐사까지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다. 그리고 이제 오는 8월 북극해의 몰로이 해연(해저 5670m)의 탐사만을 남겨놓고 있는 상황이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월드피플+] 81세 여성, 난생 처음으로 103세 모친 만난 사연

    [월드피플+] 81세 여성, 난생 처음으로 103세 모친 만난 사연

    81세의 여성이 난생 처음으로 자신의 친모를 만난 믿기힘든 사연이 전해졌다. 지난 10일(현지시간) 영국 BBC등 현지언론은 아일랜드 출신의 에일린 맥킨(81)이 처음으로 103세 친모를 만났다고 보도했다. 무려 82년의 세월 끝에 친모의 얼굴을 보게 된 에일린은 지난 1937년 8월 더블린에서 태어났지만 몇개월 후 인근 고아원에 맡겨졌다. 당시 결혼 전 아기를 낳은 경우 입양을 보내던 사회적 풍토 탓에 아기 때 모친과 생이별을 한 것이다. 부모에 대한 아무런 정보도 없이 성장했던 에일린이 본격적으로 부모 찾기에 나선 것은 그의 나이 19세 때였다. 많은 입양아들처럼 자신을 낳아준 부모에 대한 그리움이 커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시 사회에서 에일린이 부모를 찾는 것은 쉽지 않았고 이렇게 60년의 세월이 무정하게 훌쩍 지났다. 부모를 찾을 것이라는 작은 희망이 보인 것은 지난해 아일랜드 방송협회의 프로그램에 에일린이 자신의 사연을 털어놓으면서다. 이후 계보학자가 추적에 나섰지만 에일린은 모친이 살아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믿었다. 그러나 기적은 찾아왔다. 모친인 엘리자베스가 스코틀랜드에서 103세 나이로 살아있다는 사실을 알게됐기 때문이다. 에일린은 "엄마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내가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고 털어놨다. 이에 그녀는 지난달 11일 딸과 사위 등을 대동하고 초대도 없이 무작정 모친을 만나러갔다. 에일린은 "엄마를 만나면 무슨 행동을 해야할 지 무슨 말을 해야할 지 몰랐지만 무조건 만나야 된다고 생각했다"면서 "엄마를 처음 만난 순간 '내가 당신 딸이다'라고 말하니 지긋히 내 손을 잡았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어 "엄마는 나를 팔로 안았고 그저 행복했다. 우리 둘은 특별한 유대감이 있었고 너무나 멋진 대화를 나눴다"며 감격해했다. 보도에 따르면 최근 104세 생일을 맞은 엘리자베스는 슬하에 70대의 두 아들을 두고 함께 살고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동영상] 전설의 여배우 도리스 데이 97세로 타계 “장례도 묘비명도 세우지 말라”

    [동영상] 전설의 여배우 도리스 데이 97세로 타계 “장례도 묘비명도 세우지 말라”

    할리우드 레전드이며 역대 최고의 여배우 가운데 한 명인 도리스 데이가 9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도리스 데이 동물 재단은 성명을 내 데이가 13일 캘리포니아주 카르멜 밸리에 있는 자택에서 눈을 감았다고 밝혔다고 영국 BBC가 전했다. 재단은 “그녀의 나이에도 완벽한 신체적 건강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최근 폐렴에 걸려 심각한 상황이 됐다”며 “몇몇 친한 친구들이 그녀의 마지막 곁을 지켰다”고 전했다. 매리 앤 본 카펠호프가 본명인 데이는 1922년 4월생으로 처음에는 발레리나가 되고 싶었으나 자동차 사고로 오른 다리가 부러져 꿈을 접어야 했다. 하지만 열다섯 살 때 가수로 출발해 첫 번째 히트곡 ‘센티멘털 저니’를 내놓았는데 그녀의 대표곡이 됐다.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너무 많이 안 남자’와 ‘터치 오브 밍크’에 출연하며 자신의 이름을 세계에 알렸다. 1953년 ‘캘러미티 제인’, 1956년 케세라세라(왓에버 윌 비, 윌 비)로 명성을 더한 뒤 1959년 ‘필로우 토크’를 시작으로 록 허드슨과 함께 호흡을 맞춘 로맨틱 3부작이 줄줄이 히트해 두 배우의 조합은 1950년대와 1960년대 최고의 박스오피스 카드였다. 필로우 토크로 아카데미 주연상 후보에 노미네이트됐을 뿐 수상의 영예는 누리지 못했다. 2004년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이 수여하는 대통령 자유메달을 받았고 2008년 그래미상 시상식에서 평생공로상을 수상했다. 그녀의 마지막 앨범인 컴필레이션 앨범 ‘마이 하트’가 2011년 영국 차트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가수로서나 은막에서의 성공만큼 인생은 밝지 못했다. 결혼만 네 차례를 했고, 이혼은 세 차례, 남편을 먼저 저세상으로 보낸 적도 한 번 있었다. 한 남편이 돈을 갈취해 신경쇠약에 걸리기도 했고 재정적 어려움도 겪었다. 1970년대 연기를 접고 동물 재단 일에 열중했다. 재단에 따르면 그녀는 장례식도 추모식도 묘비명도 세우지 말라고 평소에 관계자들에게 당부했다고 한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무인도 둘러싼 주일미군 훈련장 ‘3각 대립’

    부동산업체 “헐값 못 판다” 재협상 요구 소음·폭발·군사기지화 이유 지역민 원성 일본에는 전국적으로 미군기지가 113곳이나 있다. 독일에 이어 두 번째로 미군이 많이 주둔해 있는 나라다. 상당수 기지들이 소음, 폭발, 불안감 조성 등으로 지역주민들의 원성을 사고 있다. 전체 미군기지의 74%가 몰려 있는 오키나와현의 사정은 특히 심각하다. 오키나와에서는 현재 헤노코 지역의 비행장 건설을 놓고 중앙정부와 주민들 사이에 극한 대립이 이어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규슈 남단의 작은 섬 하나가 미군 훈련시설 건설을 둘러싸고 갈등의 중심에 놓여 있다고 12일 현지 언론이 전했다. 가고시마현 다네가시마에서 서쪽으로 약 12㎞ 떨어진 마게시마다. 면적 8㎢로 여의도(2.9㎢)의 3배가 약간 안 되는 무인도다. 마게시마에는 미군의 요청에 따라 항공모함 탑재기들의 이착륙 훈련장이 지어질 예정이었다. 미군은 오랫동안 항모 이착륙 훈련을 탑재기들의 격납고가 있는 수도권의 가나가와현 아쓰기 기지에서 실시해 왔다. 그러나 워낙 소음이 커서 기지 주민들의 원성이 커지자 1991년부터 아쓰기에서 남쪽으로 1200㎞ 떨어진 오가사와라 제도 이오지마에 훈련장을 만들었다. 그러나 편제개편에 따라 항모 탑재기들이 아쓰기 기지에서 야마구치현 이와쿠니 기지로 옮겨 가면서 미군에서 훈련장 이전을 요구해 왔다. 가뜩이나 아쓰기에서 이오지마까지 왕복 2400㎞를 날아서 이착륙 훈련을 하느라 조종사들의 피로도가 높아 불만이 많았는데, 이와쿠니에서 이오지마까지 가려면 왕복 3000㎞ 가까운 거리를 비행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미군은 이와쿠니로부터 400㎞ 정도밖에 안 떨어진 마게시마를 점찍고 이곳에 이오지마를 대신할 훈련장을 만들어 달라고 일본 정부에 요청했다. 마게시마는 1960년대까지만 해도 500여명의 주민이 살고 있었지만 차츰 인구가 줄면서 1980년에 무인도가 됐다. 그러는 사이 도쿄의 한 부동산 회사가 섬을 사들였다. 방위성과 부동산업체는 지난 1월 160억엔(약 1600억원)에 임시 매매계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2월에 부동산업체 대표가 바뀌면서 갑자기 “이런 헐값에는 팔수 없다”고 방위성에 재협상을 요구했다. 방위성이 거부하자 부동산업체는 지난 7일 매매협상 결렬을 선언했다. 방위성은 당초 예정대로 훈련장 건설을 진행한다는 입장이지만, 부동산업체는 방위성의 무성의한 태도를 지적하며 재협상 요구에 꿈쩍도 하지 않을 태세다. 하지만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마게시마가 속한 가고시마현 니시노오모테시의 주민들이 훈련에 따른 소음과 사고 위험, 지역전체의 군사기지화 등을 이유로 강하게 반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 고대 로마 네로 황제 황금궁전 복원 작업 중 ‘비밀의 방’ 발견

    고대 로마 네로 황제 황금궁전 복원 작업 중 ‘비밀의 방’ 발견

    약 2000년 전 로마 황제 네로가 황금궁전 안에 만든 것으로 보이는 ‘비밀의 방’이 발견됐다고 AFP통신 등이 10일(이하 현지시간) 전했다. 서기 64년 로마 대화재 직후 궁지에 몰린 네로 황제(기원후 37~68)가 같은 해부터 68년까지 세운 황금궁전(도무스 아우레아)의 터를 복원하던 고고학자들이 지난 8일 정교한 프레스코 벽화로 장식된 비밀의 방을 발견했다고 복원 작업을 감독하는 콜로세움 고고유적공원 측이 밝혔다.보도에 따르면, 이들 고고학자는 우연히 찾은 한 구멍을 통해 이번 비밀의 방을 발견했으며 그 안이 반인반마 괴물 켄타우루스들과 반인반양 모습을 한 목축의 신 판 등 그리스 신화 속 인물들을 정교하게 그린 프레스코 양식의 벽화로 장식돼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에 대해 고고학자들은 “아직 그 내부가 완전히 드러나지 않은 이 방에 ‘스핑크스의 방’(살라 델라 스핑제)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는 매우 중요한 발견”이라면서 “왜냐하면 서기 60년대의 로마 양식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방 내부는 매우 화려하며 보존 상태도 매우 양호하다”고 덧붙였다.네로 황제의 황금궁전은 황궁과 정원 그리고 인공호수 등으로 이뤄진 일종의 거대한 복합 시설이지만, 후대 황제들은 네로 황제의 흔적을 없애기 위해 이를 없앴다. 서기 68년 반란이 일어나 네로 황제가 자살한 뒤 권력을 장악한 황제 베스파시아누스는 궁전 앞 인공호수 자리에 원형 경기장 콜로세움을 세웠다. 그 후 트라야누스 등 황제들은 궁전 건물을 허물고 목욕탕 등을 세우면서 황금궁전은 완전히 땅속에 묻히고 말았다. 한편 황금궁전의 복원은 2000년대 들어 본격화하고 있지만, 지금까지 발굴된 부분은 여전히 극히 일부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사진=AFP 연합뉴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안동 하회마을 전통 섶다리 50년 만에 재현

    경북 안동 하회마을 앞 낙동강 ‘전통 섶다리’가 50년 만에 임시 복원된다. 안동시는 오는 10일 하회마을 부용대 앞에 설치된 섶다리를 일반에 공개한다고 10일 밝혔다. 시는 오는 14일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안동 방문 20주년을 맞아 차남 앤드루 왕자의 하회마을 방문을 앞두고 만송정에서 강 건너 옥연정사 앞 모래밭까지 길이 123m, 너비 1.5m, 수면에서 약 60cm 높이로 임시 섶다리를 만들고 있다. 섶다리는 통나무와 솔가지, 흙, 모래 등 자연 재료를 활용해 소박하게 짓는 전통방식의 다리로, 관광객들에게 아름다운 풍경을 선사하기 위해 만들어진다. 이 다리는 이달 26일까지 한시적으로 운영(오전 10시~오후 6시)된다. 섶다리가 생기면서 만송정에서 섶다리를 건너 옥연정사를 지나 바로 부용대 정상까지 걸어서 관람하고 다시 돌아올 수 있다. 또 하회마을 관광코스를 다니는 시간이 이전보다 약 30분 줄어든다. 시는 강물 수위는 높지 않으나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섶다리에 안전조치를 철저히 할 계획이다. 하회마을 보존회는 1960년대까지만 해도 마을 사람들이 해마다 강수량이 적은 10월 말에 섶다리를 설치해 이듬해 장마철 무렵 거두어 들였다고 설명했다. 옛날 섶다리를 놓을 때 물에 강한 물푸레나무를 Y자형으로 해 지지대를 세우고 그 위에 굵은 소나무와 참나무를 얹어 다리 골격을 만들었다. 이어 솔가지로 상판을 덮고 그 위에 다시 흙을 얹었는데, 그 모양이 마치 지네가 기어가는 형상이라고 했다. 안동시 관계자는 “하회마을 섶다리는 옛 문헌에도 상세히 등장한다”면서 “새로 놓일 섶다리는 전통 한옥, 낙동강변길, 휘돌아나가는 물길, 드넓은 모래사장 등 하회마을 고즈넉한 정취와 함께 예스러운 풍광을 자아낼 것”이라고 말했다. 안동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자치광장] 추억과 꿈을 담은 경춘선 숲길 공원/오승록 서울 노원구청장

    [자치광장] 추억과 꿈을 담은 경춘선 숲길 공원/오승록 서울 노원구청장

    7080세대에게 서울 청량리역과 강원도 춘천을 오가던 경춘선 열차는 아련한 추억이다. 단골 MT 장소로 가는 수단이면서 연인과의 데이트 코스이기도 한 젊음의 상징이었다. 2010년 12월 경춘선 복선구간을 개통할 때, 상봉역으로 노선이 바뀌면서 기능을 다한 옛 경춘선 구간이 노원구에 있다. 월계동 광운대역부터 삼육대 앞 서울시 경계까지 6.3㎞나 된다. 과거에는 담장으로 인해 위아래 동네로의 자유로운 왕래조차 힘들었던 단절의 공간이 이제 일명 ‘공트럴 파크’로 불릴 정도로 소통과 만남의 장소가 되었다. 특히 서울의 마지막 간이역인 옛 화랑대역은 고즈넉한 풍경과 저녁노을 지는 모습이 아름다워 사진동호회원들이 즐겨 찾는 촬영 명소이기도 하다. 80년이나 된 목조건축물로 서울시 등록문화재 300호이기도 한 이 건물은 경춘선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전시관으로 활용하고 있다. 한쪽에는 열차 내부처럼 꾸며 놓기도 했다. 그리고 역 주변은 조만간 철도박물관으로 재탄생할 예정이다. 철도 역사와 체험을 위한 공간이 드물다는 데 착안했다. 잠시 쉬어갈 수 있는 기차 카페는 물론 실제 운행하던 기차들을 리모델링해 시간의 역사부터 해시계, 연소시계 등 다양한 볼거리로 채우고 우리나라와 세계 철도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교육 장소로 활용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구한말 고종이 탔던 황실열차, 1950년대 일본에서 수입해 경부선을 오갔던 미카형 증기기관차와 수인선 협궤열차를 옮겨 놓았다. 그중 1960년대 서울 도심을 다니던 당시 모델과 같은 노면전차는 일본 나가사키시가 한일 문화교류 차원에서 무상으로 기증해 의미가 남다르다. 이외에도 체코에서 트램 열차도 구입해 전시해 놓았다. 한 발 더 나아가 낮과 달리 밤에는 별다른 볼거리가 없는 이곳을 불빛정원으로 꾸민다. 아침고요수목원과 같이 주변의 울창한 나무와 식물들에 다양한 형태의 경관조명을 입혀 계절별로 조화를 이루는 도심의 쉼터다. 1939년 일제강점기 당시 뜻있는 사람들이 십시일반으로 모은 우리 민족자본으로 건설된 최초의 철도였던 경춘선. 어른과 아이 모두의 추억과 꿈을 담은 서울의 대표 명소다.
  • ‘열아홉 순정’처럼 변함없는 소리…‘엘리지 여왕’의 더 깊어진 울림

    ‘열아홉 순정’처럼 변함없는 소리…‘엘리지 여왕’의 더 깊어진 울림

    세종문화회관서 2시간 공연 나이 무색한 무대…박수갈채 무대 위 ‘여왕’은 건재했다.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힘과 울림이 여든을 앞둔 나이를 무색하게 했다. “정말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무대에) 섰다”는 말은 괜한 걱정에서 보탠 것 아니었을까. 작은 체구에서 뿜어내는 애절함과 에너지는 2시간 동안 관객들을 사로잡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가수 이미자(78)가 지난 8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노래 인생 60년 기념 콘서트를 열었다. ‘순수예술인’들의 전유물이었던 이 무대에 대중가수로는 최초로 섰던 30년 전 공연 이후 데뷔 40주년, 45주년, 50주년, 그리고 이날 60주년을 그는 이곳에서 기념했다. 반짝이는 은색 드레스를 입고 나타난 이미자는 첫 곡으로 30주년 기념곡 ‘노래는 나의 인생’을 부르며 60년 세월을 반추했다. 5년마다 열리는 이미자의 공연에 35년째 사회를 맡고 있는 김동건 아나운서가 이날도 마이크를 잡았다. 그는 “이미자는 태어날 때 조물주에게서 ‘노래를 100년 해라. 그러면 변하지 않는 목소리를 주겠다’는 말을 듣고 약속을 했다”는 우스갯소리를 한 뒤 “약속을 지키기 위해 앞으로도 계속해서 노래를 부를 것”이라며 이미자를 소개했다. 이미자는 ‘여로’, ‘아씨’, ‘울어라 열풍아’, ‘황포돛대’, ‘흑산도 아가씨’ 등 히트곡 다섯 곡을 내리 불렀다. 세월에 녹슬기는커녕 오래 담금질한 쇠처럼 단단하고 잘 익은 술처럼 깊은 맛을 내는 그의 노래에 2500여 관객의 박수갈채는 커져만 갔다. 이미자는 ‘5년 전과 변한 게 없다’는 사회자의 말에 “성량이나 가창력이 전보다 힘이 없다”고 겸손해하며 “그래도 열심히 하고 있다는 걸 느끼신다면 다행으로 생각하겠다. 긴 세월 동안 너무 큰 사랑을 받았다. 그런 은혜로 오늘날까지 공연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2500곡의 발표곡, 히트곡만 해도 400곡을 아우르는 그의 공연은 다채롭게 구성됐다. 한때는 경쟁자였지만 지금은 그리운 동료로 남은 현미, 패티김, 고 최희준의 노래를 한 곡씩 불렀다. 한국 가요사의 원류 격인 ‘황성옛터’ 등을 메들리로 부르기도 했다. ‘꽃마차’를 부를 때는 어깨춤을 곁들였다. ‘섬마을 선생님’에서는 힘차게 무대 양 끝을 오가며 객석을 향해 손짓하며 눈을 맞췄다. 관객들은 박자에 맞춰 흥겨운 박수를 쳤다. 바리톤 고성현과 듀엣 무대를 선보였고, 독일 출신 전통가요 가수 로미나가 ‘삼백리 한려수도’를 불러 특별함을 더했다. 이미자는 35주간 레코드 차트 1위를 했던 국민가요 ‘동백아가씨’와 60주년 기념곡 ‘내 노래 내 사랑 그대에게’를 본 공연 마지막 곡으로 부른 뒤 끝내 눈물을 보였다. 사회자가 ‘관객분들이 100주년에도 오시기로 약속했다’고 농담 섞인 말을 건네자 이미자는 ‘열아홉 순정’의 소녀가 된 듯 수줍게 웃으며 “대단히 감사합니다”라고 답했다.이미자는 10일 서울 콘서트 사흘째 공연을 마무리한다. 이어 다음달까지 군산, 광주, 천안, 광양, 성남, 울산 등에서 차례로 팬들을 만난다. 이정수 기자 tintin@seoul.co.kr
  •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우리네 인생이 비벼져 있는 ‘인천 짜장면 박물관’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우리네 인생이 비벼져 있는 ‘인천 짜장면 박물관’

    “내 한 개 소독저로 부러질지라도/비 젖어 꺼진 등불 흔들리는 세상/슬픔을 섞어서 침묵보다 맛있는/짜장면을 먹으며 살아봐야겠다” <정호승, ‘짜장면을 먹으며’ 中에서> 짜장과 짬뽕, 실로 위대한 고민이다. 한국인들만이 느낄 수 있는, 그 본질적인 '흔들림'. 고민하는 순간은 비장함마저 감돌며 결정하는 순간은 급박하다. 짜장이든 짬뽕이든 선택한 후에는 어김없이, 그리고 반드시 찾아오는 또 한 번의 '흔들림'. 짜장과 짬뽕을 입맛에 따라 명확히 골라내는 일의 어려움은 우리네 인생살이와 맞닿아있다. 무엇을 선택하든 삶은, 가지 못한 길에 대한 '흔들림'을 남긴다. 인천의 짜장면 박물관이다.2011년 8월 31일, 중국집에는 짜장면 배달 주문 전화가 온종일 몰려들었다. 드디어 ‘자장면’을 ‘짜장면’이라고 부를 수 있게 된 것이다. 1986년 외래어 표기법 고시 이후 ‘짜장면’을 ‘자장면’이라 불러야 한다고 윗분들(?)이 말했다. 그래도 국민들은 ‘짜장면’이라 불렀다. 손톱만큼이나 작은 저항이었고 반감이었다. 그러다 25년의 시간이 흘러서, 국립국어원은 ‘짜장면’을 ‘짜장면’이라 불러도 된다고 발표하였다. 짜장의 봄은 이렇게 다시 찾아 왔다.원래 ‘짜장면’의 어원은 ‘작장면(炸醬麵)’이다. 말 그대로 중국식 발효 장류(醬類)인 두반장, 두시장 혹은 미옌장(甛麵醬)과 같은 ‘장(醬)’을 돼지 비계 기름 ‘라드(LARD)’를 듬뿍 두른 중국식 큰 냄비 ‘웍(WOK)’에 볶고 튀기는 ‘작(炸)’을 한 뒤 만들어진 소스를 ‘면(麵)’에 비벼 먹는 음식을 뜻한다. 그러나 현재 우리가 맛보는 ‘짜장면’은 중국식 작장면(炸醬麵)과 달리 달콤한 캐러멜을 첨가하고 물기를 적당히 유지하여 한국인의 입맛에 맞게 만든 새로운 ‘한국음식’으로 봐야 한다.짜장면의 역사는 이러하다. 1884년 조선과 청나라가 ‘인천구화상지계장정(仁川口華商地界章)’이라는 조약을 체결한 후 현재의 인천 중구 차이나타운이 ‘청관거리’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한다. 이때 청나라 사람들이 거주하는 조계지가 마련되면서 영사관과 각종 상업 시설, 창고, 군부대 등이 들어온다. 이곳에서 주로 부두 하역 노동을 담당하던 중국 산둥성 출신 인부들을 ‘쿨리(苦力)’라 불렀고 이들이 중국식 발효장에 국수를 비벼먹었다. 한국식 짜장면의 시초가 탄생한다.그런데 사실 짜장면을 팔기 시작한 정확한 시간은 알지 못한다. 당시 수많은 노포, 화상(華商) 점포에서 중국식 ‘작장면’을 팔았는데 이중 근대 역사에 제대로 자리매김을 한 중국집이 1908년에 문을 연 ‘공화춘(共和春)’으로 본다. 원래 이곳은 산둥성 출신 인부들을 위하여 ‘산동회관’(山東會館)‘이라는 이름으로 여관 및 식당 영업을 하였다. 그러는 와중 1911년 1월 15일 청나라가 중화민국이라는 ’공화‘국이 됐으니 매우 기쁜 일이고 ’봄(春)‘과 같이 모든 것이 새로이 시작한다는 의미의 ‘공화춘(共和春)’으로 점포명을 바꾸었다.이후 ‘공화춘(共和春)’은 많은 어려움을 겪는데, 당시 정부가 추진한 화교들의 재산권 행사 제한에 따라 결국 1983년에 폐업을 한다. 현재 ‘공화춘(共和春)’의 실질적 명맥은 설립자의 외손녀가 운영하는 ‘신승(新勝)반점’으로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현재 짜장면박물관으로 사용되는 건물은 예전 ‘공화춘’이 있던 자리로 2006년 4월 등록문화재 246호로 등록 지정된 곳이다. 1층에는 기획전시실, 주방 전시가 있고, 2층에는 짜장면의 탄생에서 1960년대 공화춘의 주방시설까지 제대로 된 한국 짜장면의 역사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관람객들의 발길을 이끌고 있다. <짜장면 박물관에 대한 여행 10문답> 1. 꼭 가봐야 할 정도로 중요한 여행지야? - 인천 차이나 타운에 간다면 한 번쯤은 가 볼만한다. 2. 누구와 함께? - 가정의 달을 맞아 가족 나들이로 3. 가는 방법은? - 인천광역시 중구 차이나타운로 56-14(북성동) 인천역(국철 1호선, 수인선) 하차 후 차이나타운 방향으로 도보이동 (버스) 15,28,307(중구청) / 2,10,15,23,28,45,307(인천역) 4. 감탄하는 점은? - 짜장면 박물관 주변의 오래된 차이나타운의 거리들. 5. 명성과 내실 관계는? - 주말이면 차이나타운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인산인해. 6. 꼭 봐야할 전시물은? - 초기 공화춘의 주방, 옛 쿨리들의 모습과 인천항의 역사. 7. 토박이들의 추천 식당은? - ‘용화반점’, ‘신승반점’, ‘만다복’, ‘태화원’, ‘진흥각’, 8. 홈페이지 주소는? - http://www.icjgss.or.kr/jajangmyeon/ 9. 주변에 더 볼거리는? - 한국근대문학관, 한국개항박물관 및 차이나타운. 10. 총평 및 당부사항 - 시간과 애정을 가지고 차이나타운 골목을 다닌다면 볼거리가 풍부하다. 특히 짜장면 박물관 주변의 근대 건축물들은 시간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글·사진 윤경민 여행전문 프리랜서 기자 vieniame2017@gmail.com
  • 민주당 새 원내대표 이인영, 오늘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 예방

    민주당 새 원내대표 이인영, 오늘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 예방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새 원내대표가 9일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를 만난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고 선거연령을 낮추는 내용의 선거법 개정안과 검찰개혁을 위한 형사소송법·검찰청법 개정안이 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패스트트랙)된 후 민주당·한국당의 원내대표가 만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원내대표는 이날 오후 3시 나 원내대표를 예방한다. 나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10시 울산에서 열리는 한국당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한 뒤 서울 국회로 복귀해 이 원내대표를 만날 예정이다. 원내대표 자격으로 첫 상견례를 하는 만큼 이 원내대표는 대화와 협상을 통해 조속히 국회 기능을 정상화하자는 메시지를 나 원내대표에게 전달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당도 전날 이 원내대표의 당선을 축하하며 “민주당은 책임 있는 여당으로 돌아와 야당과 함께 국회를 정상화시킬 수 있도록 노력해 주시길 바란다”고 밝힌 바 있다. 이 원내대표는 나 원내대표를 만난 뒤 김관영 바른미래당 원내대표와 윤소하 정의당 원내대표도 예방한다. 민주평화당도 방문할 계획이다. 오후 일정에 앞서 이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11시 국회에서 강기정 청와대 정무수석을 만난다. 그러나 문희상 국회의장 예방은 문 의장의 건강 문제를 고려해 일정을 연기했다. 이 원내대표는 ‘86 운동권’(80년대 학번·60년대생) 출신의 3선 의원이다.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초대 의장 출신로 1980년대 민주화 운동에 참여한 경력이 있다. 2000년 새천년민주당 창당 당시 김대중 대통령의 영입으로 정치권에 첫발을 들여 2004년 17대 총선에서 승리해 국회에 입성했다. 이후 18대 총선에서 낙마했으나 19대·20대 총선에서 내리 당선됐다. 이 원내대표는 전날 당선 수락 연설을 통해 “우리 당이 넓은 단결을 통해 강력한 통합을 이루고 (내년) 총선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열심히 헌신하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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