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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빌딩숲 떠나 숲빌딩으로… 경남 휴양림서 ‘건강 쉼표’ 休!休!

    빌딩숲 떠나 숲빌딩으로… 경남 휴양림서 ‘건강 쉼표’ 休!休!

    코로나19로 지치고 갑갑한 도시민들에게 조용한 산속 자연휴양림의 인기가 치솟고 있다. 주말이나 휴일에는 예약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라고 한다. 자연휴양림은 심산유곡에 있어 새소리, 물소리, 바람소리를 들으며 몸과 마음을 힐링하기에 더없이 좋은 휴식처다. 시끄럽고 치열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가족들과 조용한 여가를 즐기고 싶은 사람들에게 일등급 호텔이 부럽지 않다. 숲속에 한 채씩 떨어져 별도 건물로 지어 놓은 ‘숲속의 집’은 코로나19로 안전이 강조되는 시대에 자연스럽게 거리두기도 유지된다. 숙박시설 하루 이용가격도 대체로 펜션보다 저렴하다. ●경남 지역 자연휴양림 16곳 운영+5곳 조성 중 경남도에는 자연휴양림이 국·공·사립 합쳐 모두 16곳이 있다. 남해 편백자연휴양림과 함양 지리산자연휴양림 등 2곳은 산림청 국립자연휴양림관리소에서 관리한다. 시군에서 운영하는 공립은 거제, 양산 대운산, 창녕 화왕산, 산청 한방, 하동 구재봉과 하동편백, 함양 대봉산과 산삼, 용추, 거창 금원산, 합천 오도산 등 모두 11곳이다. 하동 덕원자연휴양림, 양산 원동자연휴양림, 산청 지리산마더힐 등 3곳은 민간이 운영한다. 도는 지난해 지역 자연휴양림 시설 이용객이 50만명이 넘은 것으로 집계됐다고 3일 밝혔다. 휴양객이 늘어나자 5곳을 추가로 짓고 있다. 사천이 각산 케이블카 인근에 만드는 케이블카자연휴양림과 거창이 가조면 수월리 우두산에 조성하는 항노화자연휴양림은 올여름 휴가 성수기에 맞춰 7월 이전에 개장할 예정이다. 진주 월아산자연휴양림과 밀양 천왕산 자락에 들어서는 도래재자연휴양림은 연말 준공 예정이다. 고성 갈모봉자연휴양림은 내년 말 공사를 마칠 계획이다. 자연휴양림은 산림청으로부터 지정고시 승인을 받은 산림지역 안에서만 조성할 수 있다. 주동열 경남도 산림휴양과 주무관은 “산림청은 산세가 수려하고 숲이 우거진 지역을 자연휴양림 부지로 지정고시하기 때문에 주변 산림 경관이 탁월하다”고 설명했다. 자연휴양림 숙박 시설을 이용하려면 산림청에서 운영하는 통합예약시스템인 ‘숲나들e’에서 예약해야 한다. 야영장이 있는 곳도 있다. 숲 해설, 목공예 체험 등의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도 한다.●편백숲에서 삼림욕 즐기며 스트레스 훨~훨 남해편백자연휴양림과 편백숲휴양림은 울창한 편백숲 가운데에 있다. 숙박하는 동안 편백나무에서 나오는 천연 항균물질이 다량 함유한 피톤치드를 실컷 접촉하고 들이켜 건강에 도움이 된다. 남해편백자연휴양림은 한려해상국립공원 북쪽 지역인 삼동면 금암로 편백과 삼나무 숲속에 조성됐다. 1960년대 심은 편백과 삼나무가 울창하게 우거졌다. 가까운 곳에 금산과 보리암을 비롯해 상주해수욕장, 남해보물섬 전망대 스카이워크 등 유명 관광지가 많다. 하동편백자연휴양림은 하동 출신 재일교포 사업가 고 김지용씨가 1976년부터 틈틈이 심고 가꾼 옥종면 지역 20여만 그루 편백림 안에 있다. 김씨는 한국의 벌거숭이 산을 보고 일본에서 1년에 1만여 그루씩 편백을 들여와 80만㎡의 편백숲을 만들었다. 이 가운데 30만㎡를 하동군에 기증했고 군은 지난해 이곳을 휴양공원으로 조성했다.●지리산 자락에서 산 정기 흠뻑 지리산 자락 구재봉에 있는 구재봉자연휴양림은 지리산과 섬진강의 아름다운 경관을 즐기며 쉴 수 있다. 구재봉에 오르면 지리산 천왕봉을 비롯한 능선과 하동의 아름다운 농촌 경관이 한눈에 들어온다. 모노레일 등의 레저 시설이 있다. 지리산자연휴양림은 지리산 자락 해발 600~700m 지대 울창한 원시림과 벽소령 계곡 영호남 분기점에 자리잡았다. 휴양림에서 지리산 주능선으로 오르는 등산로도 여러 곳이 있다. 지리산의 거의 모든 물줄기가 모여드는 골짜기로 여름에는 깊은 계곡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넉넉하다. 봄철에는 벽소령 아래 산벚나무 꽃을 볼 수 있고 가을 지리산 계곡의 아름다운 단풍과 겨울철 설경도 환상적이다. 산청한방자연휴양림은 한방을 주제로 한 건강체험 관광지 산청 금서면 동의보감촌 안에 있다. 산세가 수려한 왕산과 필봉산 중턱에 있어 주변 자연경관과 전망이 좋다. ●집라인·삼림욕 체험하는 함양 대봉산 휴양림 지난달 개장한 대봉산휴양밸리 안 대봉산자연휴양림에서는 레포츠도 체험할 수 있다. 대봉산휴양밸리에는 대봉산 정상(천왕봉 1228m)을 순환하는 국내 최장 3.933㎞ 모노레일을 비롯해 집라인, 생태숲체험관, 삼림욕장, 자연휴양림 등 대봉스카이랜드와 가족 단위 숲속 힐링 숙박시설인 대봉캠핑랜드 등이 들어섰다. 대봉산은 지리산과 덕유산 중간에 있어 천왕봉에 오르면 두 산이 한눈에 조망된다. 남덕유산 자락의 산삼자연휴양림은 맑은 계곡물이 흘러내리는 깊은 산속에 고립돼 조용하게 쉬기에 최고다. 참나무류 등 활엽수가 우거진 심산유곡에서 숙박과 함께 등산, 산책을 즐길 수 있다. 기백산 군립공원 안 원시림에 용추계곡을 낀 용추자연휴양림은 주변에 볼거리가 많다. 황석산(1190m), 기백산(1331m)과 금원산(1353m) 등 높은 산이 둘러싸고 있다. 용추폭포와 삼국시대 축성된 것으로 전해지는 황석산성으로 오르는 등산로가 있다. 용추계곡을 따라가면 심원정, 매바위, 상사바위, 용소 등 명소와 절경이 이어진다. 우레 같은 소리와 함께 하얀 물보라를 날리며 쏟아져 내리는 용추폭포는 장관이다.●심산유곡 산중에서 휴식 금원산자연휴양림은 맑은 계곡물이 흐르는 금원산에 있다. 숲속음악회가 열리고 겨울엔 얼음축제를 개최한다. 휴양림 인근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지대에 위치한 금원산생태수목원이 있다. 희귀·특산식물 수집과 보존, 연구, 전시를 위해 조성한 생태수목원에는 다양한 주제원에 1500여종의 식물이 있다. 자연경관을 관찰할 수 있도록 데크길도 잘돼 있다.오도산자연휴양림은 오도산(1134m) 북쪽 자락 해발 700m 고산지대에 있다. 사계절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을 끼고 있어 물놀이장도 8곳이 있다. 산중호수 합천호가 내려다보이는 미녀봉과 오도산 정상까지 오르는 등산로를 비롯해 산책로와 쉼터 등이 있다. 화왕산자연휴양림은 실내 인테리어를 편백나무로 마감했다. 계곡물이 자연휴양림을 통과한다. 등산은 물론 주변에 우리나라 최대 자연늪인 우포늪과 전국 온천 가운데 수온이 78℃로 가장 높은 부곡온천 등 명소가 많다. 대운산자연휴양림은 양산시 탑골길(용당동) 대운산(742m) 숲속에 계곡을 끼고 있다. 휴양림 인근에 생태숲체험관, 자생초화원, 생태연못 등을 갖춘 25㏊ 규모의 생태숲이 조성돼 있다. ●거제 노자산에서 한려해상 구경 거제자연휴양림은 숲이 울창해 한낮에도 햇볕이 들지 않는다. 노자산 정상 전망대에 오르면 거제 전역과 한려해상 국립공원에 떠 있는 크고 작은 섬과 대마도까지 아름다운 바다 비경을 즐길 수 있다. 가까운 곳에 학동몽돌해변을 비롯해 바람의 언덕, 신선대, 해금강 등 유명 관광지가 있어 가족과 함께 여행하기에 좋다. 울산에 거주하는 이모(55)씨 부부는 “최근 주말을 이용해 부모님을 모시고 1박 2일 함양 산삼자연휴양림의 깊은 산중에서 번잡한 도시생활을 잊고 모처럼 평온한 여가를 보냈다”며 “기회가 되면 다시 찾고 싶다”고 말했다. 창원 강원식 기자 kws@seoul.co.kr
  • 고이 간직한 순천의 옛 사진 수집 공모합니다!

    고이 간직한 순천의 옛 사진 수집 공모합니다!

    전남 순천시 시정자료관이 오는 11일까지 장롱 속에 고이 간직하고 있는 순천의 옛 사진을 수집·공모한다. 대상은 1960년~1970년대 순천시 옛 건물 및 장소와 관련된 사진을 비롯 결혼식 등 관혼상제, 졸업앨범 등이다. 특히 1962년 8월 28일에 발생한 기록적인 수해 사진과 순천의 중심인 동천의 변모 사진, 옛 행정 사진 등 순천의 변화상을 보여주는 옛 사진을 집중 수집한다.원본 사진과 이미지 파일, 필름 등을 공모신청서 및 사진 자료를 첨부해 우편 또는 전자우편(jge0823@korea.kr)로 접수하면 된다. 수집된 자료는 오는 16일부터 다음달 6일까지 3주간 진행되는 ‘우리 삶의 배경은 순천입니다!’란 주제로 진행되는 옛 사진전에 전시된다. 시 관계자는 “이번 옛 사진 수집전은 순천의 변모와 사람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모습이면 모두 가능하다”며 “특별히 시골 부모님들이 장롱 속에 고이 간직하고 있는 빛바랜 사진들을 기증해 주시면 고맙겠다”고 말했다. 순천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 청춘맨숀 모던보이와 ‘삐-루 ’ 한 잔, 구상·이중섭과 노포 속 추억 한 잔

    청춘맨숀 모던보이와 ‘삐-루 ’ 한 잔, 구상·이중섭과 노포 속 추억 한 잔

    지난주에 대구를 찾았다. 광역시인 대구에는 많은 명소가 있지만 오로지 ‘힙성로’를 둘러보기 위함이다. 서울에 힙지로(을지로)가 있다면 대구에는 힙성로(북성로)가 있다. 요즘 대구 시민과 관광객에게 인기몰이 중인 북성로 일대를 부르는 별칭이다. 철가루 휘날리던 공구 상가와 토끼굴 같은 한옥 골목이 있던 낡은 원도심이 젊은 셰프와 바리스타, 예술가들이 모여드는 트렌드 중심 거리로 탈바꿈했다.●북성로 공업사 골목… 기술·예술 복합창작 공간으로 탈바꿈 망치나 너트, 혹은 십자와 일자 드라이버에다 드릴까지 갈아 낄 수 있는 근사한 전동공구를 사려고 간 것은 물론 아니다. 쓸 일도 없거니와 무척 화가 났을 때 외엔 이런 걸 찾지도 않는다. 북성로를 찾은 이유는 ‘이곳에 오면 뭔가 기분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느낌’ 때문이었다. 귀에 낯선 이들이 많을 테니 우선 북성로(北城路)가 뭔지 알아보자. 북성로는 대구 한복판의 옛 대구읍성 북쪽 거리를 이른다. 일제강점기에는 일본 상인들이 많이 들어와 상권을 형성하며 순식간에 커졌다. 이 지역을 모토마치(元町)라 불렀다. 혼마치(本町)로 경계를 이룬 길 건너 포정동에도 일본인 거류민이 몰려왔다. 옛 대구읍성이 허물어진 자리에 새로운 중심가 모토마치가 조성되면서 일본인들에 의해 꽤 분주한 상권이 생겨났다. 근대식 극장, 식당, 다방 등 최신 상업 시설이 들어와 거리를 채웠다. 일본 미나카이(三中井) 백화점 조선 1호점도 이곳에 들어섰다. 백화점엔 조선 팔도에 보기 드문 엘리베이터도 있었다.조선인도 그 사이를 비집고 점포를 냈다. 고 이병철 삼성 회장도 이곳에 국수 등 식료품을 팔던 삼성상회를 열며 창업했다. 지금도 그 자리가 보존돼 있다. 늘 돈이 돌던 곳이라 신기한 현대 물품들이 선을 보인 곳이기도 하다. 각지에서 ‘모던보이’와 ‘신여성’이 모여들며 커피와 ‘삐-루’, 댄스 등 신문물을 즐겼다. 요즘으로 따지자면 스타필드 1호점에다 현대명품아울렛, 홍대 클럽가, 이태원 먹자골목이 동시에 한곳에 생긴 것이다. 우현서루 같은 민족교육기관도 들어섰다. 당시 대구에서 활동하던 시인, 소설가 등 문인과 화가, 음악가 등 예술인들도 향촌동과 북성로 일대에 모여 전시회나 발표회를 여는 등 문예의 요람이 되기도 했다. 신문 기사도 쓰고 자기 글도 쓰는 언론인도 모였다. 마치 19세기 프랑스 파리 생제르맹 거리 같았다. 국내 최초 음악감상실인 ‘녹향’(현 대구문학관 지하1층)도 광복 직후인 1946년 이곳에 자리를 틀었다. 구하기 힘든 음반을 들여다 놓고 고급 축음기로 들려줬다. 1950년대 북성로에 공구와 소재, 기계부품 가게가 생겨난 것은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물자를 팔던 거리에서 유래됐다. 이후 대구에 섬유와 식품산업이 발전하며 관련 부품과 소재를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기지창 역할을 담당했다. 자본과 기술이 서울을 넘볼 정도였다. 북성로는 대한민국 산업을 대표하는 공업 거리가 됐고, 한때 “마음만 먹으면 탱크도 만들어 낸다”는 말이 돌았다. 그 기술이 지금은 예술이 됐다. 공구골목 사이로 들어가면 북성로기술예술융합소 ‘모루’가 있다. 장인의 경지에 오른 기술인과 예술인들의 컬래버레이션(이종협업)과 기술 전승을 목적으로 세운 공간이다. 원래 ‘달방’(월세방)을 하던 쪽방여관 건물을 ‘기술×예술’ 복합창작 공간으로 바꿔 놓았다. 북성로의 정체성을 여실히 내보이는 곳이다. 현재는 북성로 1가와 바로 붙은 향촌동이나 교동, 서성로 일대까지 뭉뚱그려 ‘힙성로’라 부른다. MZ세대에겐 좁은 골목길과 낮은 건물, 그리고 그 사이사이에 세련된 카페와 갤러리, 공방, 베이커리, 바(Bar)가 기존 노포와 함께 공존하는 모습이 무척이나 ‘힙’(hip)했던 덕이다. 세련되고 유행에 민감하다는 ‘힙’이다. ●철물점 옆 모퉁이 카페 … 젊은 작가 모이는 문화놀이터 옛 북성로는 ‘아재들’의 거리였다. 평균연령이 마흔을 족히 넘었고 성비는 8대2 정도로 중년 남성 비율이 높았다. 서울로 따지면 영등포구 문래동 일대와 닮아 있었다. 1980년대 초반, 길거리에서 눈만 마주쳐도 싸우자고 덤벼들던 ‘춘추전국’의 시대엔 아마 발걸음조차 딛기 꺼리던 곳이었을 게 분명하다. 대구은행 북성로 지점을 끼고 돌면 온통 철물점이다. 가게마다 트럭들이 ‘스뎅’(스테인리스) 봉과 파이프를 내리고 모터를 싣는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풍경이지만 수창초등학교로 향한 좁은 골목을 들어서니 작은 카메라를 든 젊은 남녀가 셀피를 찍고 있다. 벽면에는 알록달록 벽화가 그려졌고 얼핏 봐도 관광객으로 보이는 여성들도 두셋 돌아다니고 있다. 달달한 블루베리 요거트를 마실 수 있는 모퉁이 카페도 있다. 북성로엔 이처럼 구(舊)와 신(新)이 공존한다. 영신(迎新)하긴 했어도 아직 송구(送舊)하진 않았다. 북성로의 수십년 역사 중 아주 생경한 풍경일 테지만 언젠가부터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있다.갑자기 ‘물’이 바뀐 것은 아니다. 1976년부터 전매청 연초제조창 직원 관사로 사용됐던 수창청춘맨숀은 2016년 문체부 도심 재생 사업에 선정되며 환골탈태했다. 낡은 아파트 숙소의 외벽은 그대로 살리면서 내부를 ‘문화 놀이터’로 만들었다. ‘수창청춘맨숀’으로 명명한 뒤 젊은 작가들이 입주하고 저마다 자신의 창의력을 뽐내는 무대이자 갤러리가 됐다. 얼마 전 유엔이 발표한 연령 구분에 따르면 65세(그것도 만으로)까지 청년이니, 누구든 청춘맨숀에 들러 쉬어 간대도 어색하지 않을 선택이다. 수창청춘맨숀에서 8월 26일까지 ‘미래는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상상하는 것이다’를 전시한다. 이달 매주 토요일 오후 4시에 거리극, 창작국악, 낭독뮤지컬, 다원예술 등을 소재로 수창청춘극장도 열린다. 일본인 상권이 장악한 북성로였지만, 항일애국지사 150명을 배출한 사학 우현서루(友弦書樓)도 있었다. 현재 북성로 대구은행 자리가 바로 우현서루다. 우현서루는 을사늑약 체결 직전인 1904년 이상화 시인의 조부 이동진 선생이 창설한 사학이다. 큰아들 소남 이일우 선생은 1만여권의 서적을 수입해 들여 놓고 매년 젊은 지식인을 뽑아 먹이고 재워 가며 가르쳤다. 1911년 일제에 의해 강제 폐쇄될 때까지 구국 운동의 요람 역할을 했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이상화 시인은 소남의 조카다. 이곳을 거쳐 간 독립지사들의 이름만 들어도 놀란다. 박은식(상해 임시정부 대통령), 이동휘(임시정부 국무총리), 장지연(황성신문 주필), 여운형(조선건국동맹), 김지섭(이중교 폭탄투척 지사) 등이다. 폐쇄 이후엔 훗날 대륜고등학교의 뿌리가 된 교남학원이 들어섰는데 교사가 이상화, 학생이 이육사였다. 건물 밖에 우현서루 이미지를 형상화해 놓았고. 내부에는 유물과 관련자료를 전시하고 있다.●이중섭 드나들던 백록다방 재현한 향촌문화관 북성로에서 중앙로 쪽으로 길을 건너면 오른쪽으로는 포정동, 왼쪽으로는 향촌동이 나온다. 서울에서 충무로나 종로 일부까지 ‘힙지로’라 부르듯, 보통은 포정동, 향촌동, 교동 일부까지 묶어서 ‘힙성로’라 지칭한다. 북성로에 큼직큼직한 산업시설이 많았다면 향촌동 쪽에는 일제강점기부터 자잘한 상업시설이 즐비했다. 꽃자리 다방 등 다방과 술집, 여인숙과 골목 사이엔 주택도 많은 데다 늘 대구역을 오가는 이들이 많아 향촌동 좁은 골목이 인산인해를 이뤘다.현재 힙성로의 힙한 매력은 어쩌면 70여년 전부터 시작된 것일지도 모른다. 동성로와 수성못 주변에 ‘빼앗긴 상권에도 봄은 다시 왔으니까’ 말이다. 향촌문화관에 가면 그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다. 당시 ‘리즈’ 시절을 보냈던 향촌동 풍경이 여러 전시물 형태로 있다. 대구 최초 대중교통 부영버스가 거리에 서 있고 오랜 대폿집과 막걸리집이 있다. 피란을 온 이중섭이 매일같이 드나들며 담배 쌈지에 그림을 그렸던 백록다방(현 갤러리모델 자리), 호수다방, 화월여관(현재 판코리아 성인 콜라텍) 등도 디오라마와 포토존으로 현실 속에 재현해 놓았다. 3, 4층은 대구문학관이다. 시인 구상을 비롯해 현진건, 조지훈, 박두진 등이 대구 향촌동에서 서로 교분을 쌓으며 지냈다. 신상옥, 최은희 등 영화인도 이곳에 있었다. 향촌동 술집 대지바(현재 공사 중)에서 만나 술잔을 기울이며 시구를 나누고, 르네상스 음악감상실(현 판코리아 식당)에서 예술혼을 양육했다. 식민침탈 중에도, 동족상잔의 전쟁 중에도 향촌동은 너른 가슴으로 문학을 잉태하고 예술을 생산했다. “함께 읽고 더불어 크게 웃어주게나.” 향촌동에 살던 시인 구상은 이윤수에게 보낸 편지에 이렇게 썼다. 현재 대구문학관은 대구에서 활동하던 문인들의 육필 원고를 전시 중이다.●‘초토의 시’ 출판기념회 열렸던 꽃자리 다방 1930년대부터 대구 원도심 역할을 톡톡히 해 온 것이 현대에 들어선 오히려 개발을 더디게 했다. 너른 부지가 필요했던 개발 세력은 고불고불한 골목에 낡은 왜식 한옥과 초라한 저층 건물 투성이였던 향촌동과 북성로를 외면했던 것이다. 경상감영 공원이 위치한 포정동부터 향촌문화관까지 향촌동 골목을 둘러보면 화려했던 당시의 영화가 낡은 건물 사이로 투영돼 보인다. 대보백화점, 무궁화백화점 등 당시로선 으리으리한 중대형 유통 시설에다 양화점, 양장점 골목까지 이어지며 ‘대구 멋쟁이’들의 아지트가 되었다.맛 좋은 식당도 즐비했다. 그 유명한 뭉티기(생고기 육회)도 이곳에서 시작했다. 생고기며 불고기, 국숫집, 찌짐(전)집, 만두집, 냉면집, 곰탕집, 돼지국밥집 등이 향촌동 나들이를 나온 손님들로 긴 줄을 드리웠다. 저렴한 여인숙과 여관, 호텔 등도 곳곳을 채우며 영남 중심도시 대구의 숙박 기능을 담당했다. 극장 만경관 옆 사보이호텔은 1980년대 이 지역 랜드마크 역할을 했다. 한때 목욕탕이 딸린 여관으로 바뀌었다가 지금은 새 단장을 하고 다시 그 이름을 지켜 오고 있다. 덕분에 당시 향촌동 식당가의 불빛은 늦은 밤까지 이어져 대구의 뜨거운 밤을 밝히기도 했으나 1980년대 이후 동성로와 반월당, 수성못 인근으로 대구 중심 상권이 옮겨 가면서 ‘구 시내’로 몰락하는 듯했다.향촌동의 이미지는 2010년에 들어 비로소 재해석됐다. 골목 사이로 젊은 예술가들이 들어왔고 노회한 도시를 지키던 터주들은 이를 반겼다. 수제화 골목에는 달달한 디저트를 즐길 수 있는 베이커리와 향긋한 커피를 내리는 커피숍, 북카페 등이 들어왔다. 20·30대 시민과 관광객이 너도나도 향촌동을 찾기 시작했다.공구거리 북성로의 정체성을 재해석해 너트와 스패너 모양 마들렌을 구워 파는 북성로 공구빵(베이커리09)도, 예스러운 분위기를 고스란히 간직한 한옥 카페 퍼센트(%) 14-3, 직접 볶아 내린 커피가 맛있는 카페 향촌도 명소다. 예전 구상의 ‘초토의 시’ 출판기념회가 열렸던 자리를 루프톱 카페로 바꾼 꽃자리 다방, 골목 안 여인숙을 개조한 카페 ‘대화의 장’ 등은 금세 인스타그램 성지로 떠올랐다. 좋은 공간이 하도 많아 힙성로 카페 투어를 다니려면 시애틀 못잖게 ‘잠 못 드는 밤’을 각오해야 한다. 사람들이 몰리다 보니 저렴한 가격에 세련되고 단단한 솜씨의 수제 구두를 살 수 있다는 것이 알려지며 반세기 골목을 지켜 온 구둣방도 덩달아 매출이 올랐다. 공방이 인기를 끌며 그야말로 명실상부한 ‘한국의 밀라노’로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한밤에 북적이는 노포… 3000원에 맛보는 석쇠 불고기 원래 여름에 뜨거운 대구라지만 요즘 대구의 밤도 뜨겁다. 힙성로에 한옥이나 옛 여인숙을 개조한 게스트하우스와 부티크 호텔이 들어서며 맛난 음식에 술 한 잔 걸치는 나이트 라이프를 즐기고 가는 이들이 부쩍 늘었다. 같은 힙성로 구역 내에도 권역은 조금 다르다. 교동 쪽에는 새로 생겨난 현대식 바나 카페가 많고 중앙로를 건너오면 오래된 식당과 주점이 많다.원래부터 유명했던 ‘북성로 돼지불고기’와 ‘북성로 우동’을 필두로, 50년 이상 자리를 지켜 온 노포들에 젊은이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60년 전부터 생고기를 팔던 대폿집 ‘너구리’는 ‘옛날국수’와 합치며 낮엔 국수, 밤에는 술 손님을 받는데 가격이 아주 저렴하다. 넉넉한 양은 냄비 국수(현지에선 국시) 한 그릇에 단돈 2000원. 오리지널 경상도식 진한 멸치육수 국수를 맛볼 수 있다. 3000원을 더 내면 돼지고기를 얇게 저며 간장 양념에 재워 구워 낸 ‘석쇠 불고기’를 ‘반 인분’ 시켜 먹을 수 있다. 반 인분이라니, 얼마나 합리적인가. 무조건 2인분을 시켜야 되는 집이 수두룩한데 말이다. 게다가 소주 반 병도 팔면서 싫은 기색이 없다. 이것만으로도 힙성로의 경쟁력은 충분하지 않은가. 이 일대는 죄다 노포다. 모두가 상상 이상으로 저렴하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한성식당을 찾았다. 한 입 크기로 얇게 저며 내 불맛에 충실한 석쇠갈비와 쿰쿰한 된장찌개와 함께 마지막 금복주 한 잔의 얼큰함을 즐긴 후 숙소로 돌아오는 길. 70여년 전 어느 밤 이 변함없는 골목길을, 화가 이중섭도 시인 구상도 역시 비틀대며 걷고 있었을 것이라 가만 상상해 보니, 무척이나 영광이며 감회가 새롭다. 왜 낡아빠진 원도심 따위가 내게 이토록 확고한 여행 동기를 부여했는지 이제서야 이해할 것 같다. 글 사진 놀고먹기연구소장 demory@naver.com ■힙성로 여행 체크리스트 (지역번호 053) 어떻게 가지? 대구 지하철 1호선 중앙로 역에서 내리면 된다. 2, 3호선 청라언덕 역이나 1, 2호선 반월당 역에서 내려도 그리 멀지 않다. 버스는 대구콘서트하우스 앞이나 경상감영 앞 등의 노선을 타면 된다. 동대구역에선 401번, 909번, 708번, 급행1번 등이 경상감영공원 앞까지 간다. 뭘 먹지? 이 지역에는 노포들이 많다. 국수와 만두는 꼭 챙겨 먹어야 한다. 뭉티기(생고기)를 즐겨 보는 것도 좋다. 대구식 양념장이 색다르다. 좀더 새로운 스타일을 원한다면 동성로로 넘어가면 된다. 다락방만두는 찐교스, 군만두 등이 맛있고 저렴하다. 마산식당은 씨락육국수(시레기 육개장국수)와 돼지국밥이 유명하다. 한성식당은 석쇠갈비와 오뎅탕으로 술안주하기 좋은 곳. 된장찌개도 일품이다. 옛날국수(너구리 본점)는 2000원이란 황송한 가격에 멸치육수 국수를 맛볼 수 있다. 저녁에는 생고기와 간처녑을 먹으러 많이 찾는다. 상주식당은 추어탕으로 유명한 70년 동성로 노포다. 배추를 넣고 시원하게 끓여 낸다. 어디서 잘까? 여인숙을 개조한 게스트하우스가 많다. 모텔도 많지만 조금 낙후된 편. 도보로 이동하기 좋은 리버틴호텔도 있다. 간단한 조식도 준다. 헤븐스토리호텔은 대구역과 가깝다. 중앙로 역과 가까운 2월호텔(동성로점)은 진골목, 약령시 등에 접근하기 편리하다.
  • 추억의 영화관, 시민 품까지 험난한 길

    추억의 영화관, 시민 품까지 험난한 길

    인천시, 첫 실내극장 애관극장 매입 검토건물주는 역사적 가치 고려 비싼 값 불러시민단체, 미림극장도 도시재생 활용 제안 제주·강원도 오래된 극장 매입·보존 추진구도심이 침체하고 대형복합상영관 등에 밀리면서 경영난을 겪는 오래된 영화관을 매입해 지역문화예술 관련 중심 시설로 활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건물주는 역사성 등을 고려해 비싼 값을 불러 매입 과정이 순탄치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인천시는 국내 최초 실내극장으로 알려진 애관극장을 사들이는 방안을 검토한다고 2일 밝혔다. 시 관계자는 “시민사회단체들이 126년 된 애관극장의 보존 필요성을 제기해 이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애관극장이 1890년대 활동사진 상설관 ‘협률사’를 계승한 것인지 등을 따져보고 매입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인천시 관계자는 “현재 건물이 1960년대 이후 지어진 것이어서 근현대문화유산으로 보긴 어렵다”고 설명했다.이런 가운데 인천 미림극장도 시가 매입해 원도심 도시문화재생의 앵커(중심) 시설로 활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스페이스빔 등 지역 시민사회단체들은 지난 1일 낸 성명에서 “인천시나 인천도시공사가 미림극장을 매입하고 2030동인천 역전프로젝트의 앵커 문화시설로 활용하는 방안을 모색해 달라”고 했다. 미림극장은 1957년 11월 동구 송현동에 천막을 세워 무성영화를 상영한 것을 시작으로 이후 인천을 대표하는 영화관으로 사랑받았다. 대형 영화관에 밀려 2004년 7월 폐관했다가 2013년 10월 ‘인천시사회적기업협의회’가 노인을 위한 ‘추억극장 미림’으로 재개관해 운영하고 있다. 제주시는 2014년부터 도시재생 취지로 현대극장 건물 매입에 나섰지만 땅 주인이 2명인데다, 거래 가격이 맞지 않아 실현되지 않았다. 2018년에는 동문로 여관 등을 사들여 미술관으로 만든 아라리오 기업이 매입을 시도했으나 불발됐다. 1948년 개관한 제주극장이 있던 곳에 자리잡은 현대극장은 제주 정치·문화사의 기억을 고스란히 품었다. 해방 후엔 정치 집회장소로 활용됐고 1987년 폐업 때까지 공연장, 영화관 등으로 쓰였다. 강원 원주시는 50년 가까이 시민들의 희로애락이 깃든 아카데미극장 매입을 추진하고 있다. 1963년 8월 개관한 이후 원형이 잘 보존된 단관극장이다. 원창묵 원주시장은 지난달 17일 “시민사회 의견을 수렴한 뒤 매입해 문화재생사업의 하나로 상영관·공연장·전시실 등 시민 커뮤니티 공간으로 재현하겠다”고 밝혔다. 성급한 매입으로 예산을 낭비하기도 한다. 경북 경주시는 2011년 1월 고분정비사업구역인 노동동 37번지에 있는 명보극장 토지와 건물을 매입했다. 관광정보센터와 갤러리로 조성한다며 2013년 손질했으나, 특정 작가의 작품 판매 및 전시공간이라는 특혜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문화재청장 허가 없이 개축 및 용도 변경한 사실이 감사원에 적발돼 지난해 철거됐다. 민운기(57) 스페이스빔 대표는 “원도심 주민들의 추억이 깃든 옛 영화관이나 상징물들을 매입해 문화재생사업의 중심시설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종합적인 계획과 ‘감정평가’라는 현실 법의 한계를 넘어서고 보완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글 사진 한상봉 기자 hsb@seoul.co.kr
  • 「서울시의회 부활 30주년」 타임캡슐 수장품 공모전 접수기간 연장

    「서울시의회 부활 30주년」 타임캡슐 수장품 공모전 접수기간 연장

    서울시의회는 더 많은 시민참여를 위해 부활 30주년 기념 타임캡슐 수장품 공모전 접수 신청기간을 당초 5월 31일에서 6월 10일까지 연장한다고 밝혔다.타임캡슐 수장품 공모전은 서울시의회 부활 30주년을 기념하는 타임캡슐에 수장할 서울시의회와 관련된 물품을 공모·접수 받으며, 심사를 거쳐 선정된 30개의 수장품은 오는 7월 8일 서울시의회 부활 30주년 기념식에서 타임캡슐에 봉인되어, 2051년에 개봉될 예정이다. 공모신청은 서울시의회 홈페이지에서 참가양식을 다운로드해서 신청할 수 있으며, 공모전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은 서울시의회 홈페이지(smc.seoul.kr), 서울시의회 부활 30주년 홈페이지(30thsmc.modoo.at), 서울시의회 블로그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타임캡슐 수장품 공모 외에도 그림 및 슬로건 공모를 접수받고 있으며, 그림/슬로건 수상작 작품은 7월 8일 유튜브 온라인생중계로 진행하는 ‘서울시의회 부활 30주년 기념식’ 진행 도중 자막으로 발표할 예정이다. 서노원 서울시의회 사무처장은 “더 많은 시민참여를 위해 공모전접수기간이 연장된 만큼, 서울시의회 추억이 담긴 다양한 수장품이 접수될 수 있도록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바란다”고 전했다. 한편, 서울시의회는 1956년 초대, 1960년에 2대 의회가 개원하였으나, 1961년에 5·16 군사정변으로 인해 지방의회가 강제 해산되면서 긴 공백기를 겪게 되었다. 이후 1987년 전국적 반독재 민주화운동인 6·10 민주항쟁을 통해 시민이 주인 된 풀뿌리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지방선거가 재개돼 1991년 3대 의회가 출범하며 부활하였다. 서울시의회가 중단된 지 30년 그 후, 30주년을 맞이한 역사적 사실 앞에 서울시의회는 시민과 함께 달려온 그동안의 역사를 기념하고, 시민이 함께 참여하는 서울시의회를 만들어 나가기 위한 다양한 기념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애니멀플릭스] 똘망똘망 검은 눈동자…英 희귀 ‘블랙 재규어’ 탄생

    [애니멀플릭스] 똘망똘망 검은 눈동자…英 희귀 ‘블랙 재규어’ 탄생

    영국 잉글랜드에서 보기 드문 ‘블랙 재규어’가 탄생했다. 24일 데일리메일은 잉글랜드 켄트주의 ‘빅캣생츄어리’에서 멸종위기 재규어가 태어났다고 전했다. 아직 이름이 없는 새끼 재규어는 지난달 6일 암컷 ‘키이라’와 수컷 ‘네론’ 사이에서 태어났다. 성별은 암컷이다. 블랙 재규어인 수컷 영향으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까만 게 특징이다. 블랙 재규어는 재규어 전체의 약 10%를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빅캣생츄어리 관계자는 “직간접 관찰을 통해 '키이라' 임신을 확인했다. 우리는 흥분 속에 몇 주간 출산일만을 기다렸다. 지난달 6일 아침 심상찮은 움직임을 보인 '키이라'는 곧 까만 새끼 한 마리를 낳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다른 고양이과 동물과 비교해 새끼 재규어 성장 속도가 매우 빠르다. 태어난 지 2주 만에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재규어에게는 일반적인 것”이라고 덧붙였다. 재규어(학명 Panthera onca)는 멕시코에서 아르헨티나에 이르기까지 아메리카대륙 18개국에 서식한다. 표범(학명 Panthera pardus)과는 미세한 무늬 차이로 구별이 가능하다. 서식지도 표범은 아프리카와 중앙아시아, 인도, 동남아, 시베리아 등으로 재규어와 차이가 있다. 한때 정글을 누볐던 재규어는 1960년대 모피 사냥으로 개체 수가 급감했다. 1973년 ‘멸종 위기에 처한 야생 동식물의 국제 거래에 관한 협약'(CITES)이 제정되기 전까지 매년 1만8000마리가 희생됐다. 엘살바도르와 우루과이 2개국에서는 완전 멸종 상태다. CITES 제정 이후에는 산림 벌채와 같은 서식지 파괴에 내몰렸다. 현재 재규어 개체 수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미국과학저널 ‘PLOS ONE’에는 서식에 적합한 아마존분지에 재규어가 밀집, 전 세계에 약 17만3000마리가 사는 것으로 추정된다는 연구 결과가 실린 바 있다. 하지만 환경보호단체들은 전 세계 야생에 서식하는 재규어가 1만5000마리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일단 재규어는 2016년 기준 위기근접종(NT)으로 세계자연보전연맹(IUCN) 멸종위기 적색목록에 등록됐다. 위기 단계는 곧 취약종(VU)으로 격상될 전망이다. 이처럼 재규어 전체가 멸종의 기로에 놓인 가운데 전해진 희귀 블랙 재규어의 탄생 소식은 큰 의미가 있다. 빅캣생츄어리에 따르면 블랙 재규어는 유럽멸종위기종보전프로그램(EEP) 계획 번식을 통해 태어났다. 재규어 보전에 중요한 돌파구가 마련된 셈이다. 빅캣생츄어리 측은 새끼 재규어 공개와 동시에 멸종위기 고양잇과 동물 보호를 위한 모금운동을 시작했다면서, 후원자들에게 새끼 재규어의 이름도 받아볼 예정이라고 밝혔다. 권윤희 기자 heeya@seoul.co.kr
  • 마지막 황제 푸이와 다섯 여인

    마지막 황제 푸이와 다섯 여인

    중국에서 황제는 진시황 이래 2100여년간 약 500명에 이른다. ‘마지막 황제 푸이’라는 영화로 잘 알려진 청나라 선통제는 청나라 뿐 아니라 중국 역사의 마지막 황제다. 푸이에 관한 책은 국내에도 여러 종 나와 있다. 다만 그가 세 살에 황제에 오르기 전부터 그의 사후 현재 허베이성 이현의 공원묘지에 잠들기까지를 소개하는 것은 눈에 띄지 않는다. 더욱이 푸이 자신의 자서전 그리고 황제에서 죄수, 평민으로 바뀐 굴곡의 주요 고비를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본 가족과 측근, 태감(환관) 등의 눈을 통해 본 푸이의 인간적인 모습을 담은 것은 없다.푸이는 전범으로 수감되어 있을 때부터 특사를 받아 나온 직후 자신의 과거 행적을 정리한 자서전 ‘나의 전반생’을 남겼다. 그의 황후와 비, 귀인 그리고 평민으로 만난 부인 등 다섯 여인 중 네 번째와 다섯 번째 부인은 푸이와의 궁정 및 결혼 생활, 이혼 등의 경험을 상세히 기록했다. 여기에 가장 오랫동안 푸이를 그림자처럼 동행했던 동생 푸제, 창춘 위만황궁 시절 들어가 푸이와 함께 해 전쟁 포로로 잡혀갔고 소련 극동 옥중에서 ‘황태자’ 책봉까지 받은 조카 위옌, 푸이의 숙부와 황후 완룽의 동생 룬치, 청이 망한 뒤 푸이의 자금성 소조정 시절 푸이를 정신적 물질적으로 ‘서구화’시킨 영국인 스승 레지널드 존스턴 등이 가까이에서 본 푸이의 진면목을 전한다. 특히 푸이가 자금성에서 쫓겨나기 직전 궁에 들어간 뒤 푸이 곁에서 33년간을 있었던 환관(태감) 리궈슝의 증언은 ‘난폭한 황제질을 했던 푸이’를 고발한다. 저자는 문헌 자료를 바탕으로 푸이가 태어난 순친왕부, 황제로 살았던 자금성, 톈진으로 가기 전 머물렀던 베이징의 외교단지 거리 둥자오민샹, 톈진에서 7년을 보냈던 청나라 고관들의 별장 장위안과 징위안, 창춘의 위만황궁, 그의 3번째 황제 퇴위 발표 장소인 지린성 압록강변 마을 다리즈거우, 베이징 혁명공원묘지에서 푸이의 유골이 이장 안치된 허베이성의 화룽능원묘지 등을 둘러보며 지금 중국 땅 곳곳에 남아있는 푸이의 흔적을 전한다. 1967년 ‘마지막 황제’ 푸이가 사망했으나 중국에서 황제의 잔영이 사라지지 않는다. 2012년 11월 시진핑 총서기가 집권한 뒤 2년 뒤 시사주간 타임은 ‘Emperor Xi(시 황제)’라는 커버스토리 기사를 실었다. 미국의 중국 전문가 해리슨 솔즈베리는 1993년 ‘새로운 황제들’이라는 책에서 마오쩌둥과 덩샤오핑이 평등을 이념으로 한 신중국에서 사실상 새로운 황제로 부활했다고 전했다. 중국에서 ‘황제의 시대’는 끝났을까. 이 책은 이런 생각을 떨치지 못한 저자가 ‘먼저 마지막 황제가 어떻게 왔다 갔는지 보자’하고 찾아 나선 기록이다. 푸이가 살았던 시기 중국 대륙은 왕조와 체제가 완전히 바뀐 격변기였다. 청이 신해혁명으로 망하고 중화민국이 들어섰지만 항일 전쟁과 국공 내전이 동시에 전개됐다. 동북에는 10여 년간 일본 괴뢰 만주국이 세워졌다. 장제스를 몰아내고 마오쩌둥의 사회주의 신중국이 들어섰다. 중국에 문화대혁명의 광풍이 불기 시작할 때 푸이는 숨졌다. 시대의 격랑이 푸이 60년 굴곡의 역사에 겹겹이 투영되어 있다. 1부 ‘황혼의 제국’은 청말의 여걸 실세 권력자 자희 태후가 왜 세 살배기 푸이를 황제에 올렸는지, 청나라가 망했는데도 자금성 울타리 안에서 황제 노릇을 했던 푸이 그리고 결국 군벌 전쟁 과정에서 쫓겨나는 과정까지를 다룬다. 2부 ‘괴뢰 황제’는 푸이가 자신을 대륙 침략을 도구로 삼은 일본 제국주의 검은 속내를 꿰뚫지 못하고 미망에 빠져 괴뢰 황제 노릇을 했던 죄악의 기록이다. 그리고 일본이 2차 대전에서 패한 뒤 소련 극동과 신중국의 감옥에서 14년간 죄수 생활을 하며 황제 물을 빼고 개조되는 모습을 전한다. 제3부 ‘베이징 시민 푸이’는 1급 전범 푸이가 베이징 시민으로 돌아와 평민으로 살다간 8년 및 그가 떠난 후 마지막 부인의 삶을 전한다. 푸이는 ‘황제도 포용한 체제’라는 마오쩌둥의 구상에 따라 특사를 받아 석방된 뒤 전국정협 위원까지 지냈다. 문화대혁명의 광풍 속에서 반혁명 분자로 몰렸지만 마오와 저우언라이 총리의 보호 덕에 험한 꼴은 당하지 않았다. 푸이는 일찍이 황제에서 퇴위하고 평범한 시민으로 사망해 그의 유골은 청나라 황제들의 무덤이 모여있는 청서릉에 들어가지 못하고 그 담장 밖 공원묘지에 머물게 된 사연을 전한다. 부록의 푸이 ‘나의 자서전’ 서문에 대해 저자는 ‘죽을죄를 지었다 살아난 퇴임 황제의 반성문’은 이 정도는 되어야 하나 하는 마음으로 읽어 볼 만하다’고 권한다. 반성문은 특사를 받아서 나온 것에 대한 감사와 괴뢰 황제로서의 죄악 등을 반성하고, 자신을 개조시켜 포용한 사회주의 중국에 대한 찬양 등을 담았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시골마을에 왜 도서관 열었냐고? 여기서 머스크 나올 수도 있잖아”

    “시골마을에 왜 도서관 열었냐고? 여기서 머스크 나올 수도 있잖아”

    도서관은 시골 마을 산 중턱에 있었다. 지난달 5일 어린이날 이 조그만 도서관을 문 연 사람은 ‘한국 원자력의 대부’로 불리는 장인순(81) 전 한국원자력연구원장이다. 사람이 접근하기도 쉽지 않은 오지 마을에 장 전 원장은 왜 도서관을 만들었을까. 문 연 지 20일이 지난 25일 1호선 국도를 타다 좁은 시골길과 산길을 거쳐 세종시 전의면 유천리 ‘전의 마을 도서관’에 도착해 장 전 원장을 서울신문이 만났다. “시골에 도서관을 왜 만들었느냐”고 묻자 그는 대뜸 “여기서 일론 머스크나 빌 게이츠가 나오지 말란 법이 있느냐”며 “신도시에만 도서관이 많고 여기에는 없어 ‘아이들하고 뭔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마침 10년 전부터 대전 자택 이웃으로 인연을 맺어 수양딸이 된 라연희 ㈜고려전통기술 사장이 회사 2층 150㎡ 정도의 공간을 내줬다. 도검을 만드는 회사로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칼도 이곳 것이라고 장 전 원장은 홍보했다. 장 전 원장은 지난해 팔순을 맞아 쓴 책 ‘여든의 서재’에 적은 ‘책은 세상이며 삶이며 우주이다’, ‘이 하루는 왜 이렇게 소중한가’, ‘나는 내가 모른다는 사실을 안다’는 조선시대 실학자 이덕무와 소크라테스 등이 말한 세 문장을 들면서 “젊었을 때는 못 느꼈던 것들인데 나이 80이 되니까 소중하게 다가온 말들”이라며 “도서관을 만든 것도 아이들에게 이런 생각을 일찍 깨닫도록 해 주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그는 “‘여든의 서재’ 인세 5000만원으로 도서관 책을 구입하고 인테리어 비용을 댔다”고 말했다. 그는 “내가 어릴 적엔 학교에도 도서관이 없었고, 몽당연필에 침 묻혀 가며 글씨를 쓸 정도로 어렵게 공부했기 때문에 이곳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다”면서 “내 고향 마을이 아니어도 노년에 아이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어 날마다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그는 ‘갓김치’로 유명한 전남 여수 돌산 섬마을이 고향이다. ●“책·필기도구 든 가방이 진짜 명품이지” 아치형 도서관 출입구 두 기둥에 ‘2021 왜?’, ‘2121 WHY?’라고 적혀 있다. 장 전 원장은 “‘왜’라는 질문이 인류 역사를 끌어왔다”며 “이 근원적 질문이 바탕인 교육이 백년(2021~2121년)대계여서 그리 썼다”고 설명했다. 벽에 ‘공부는 머리가 아니라 엉덩이로 하는 거야’라는 글도 있다. 그는 “박경리 선생이 소설 ‘토지’ 20권을 쓰는 데도 얼마나 책상에 앉아 있었겠나”라고 웃었다. 도서관에 들어서자 5~6칸 나란히 세워진 책장에 책들이 빼곡히 꽂혀 있고, 그 앞에 모양이 제각각인 책상이 놓여 있다. 삼각형, 사각형, 오각형, 태극 모형, 초승달 모형 등 모양이 다 다르다. 모두 30여명이 앉을 수 있다. 장 전 원장은 “학생들에게 다양성을 보여 주고 심어 주기 위한 것”이라며 “우리 사회가 다양성이 부족하고 존중하지도 않지 않느냐”고 꼬집었다. 의자 색깔도 가지각색이다. 언제든 와서 책을 볼 수 있도록 연중 내내 24시간 개방한다. 장 전 원장은 “맘대로 책을 가져가고 낙서해도 된다. 그래서 대여기록도 하지 않는다”며 “정직성과 자율성을 가르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책 분리도 하지 않았다. 그는 “책을 찾는 노력이 필요하고 서점처럼 책장 넘기며 책을 찾는 재미도 있을 것 같아서”라고 말했다.시골 마을에 도서관이 생기자 학생들이 자주 찾는다. 270여명이 다니는 인근 전의초·중학생이 주요 고객(?)이다. 다만 버스정류장이 1㎞도 넘게 있어 찾아오는 길이 편하지는 않다. 장 전 원장은 “버스정류장에서 택시 타고 오면 돌아가는 택시비까지 내가 다 대준다”며 “문을 연 지 얼마 되지 않고 소문이 덜 나서인지 지불한 택시비는 아직 10만원이 넘지 않는다”고 귀띔했다. 조만간 도서관에서 수학과 물리도 가르치겠다는 장 전원장은 “사람들이 가장 안정적이라고 생각하는 네 다리 달린 책상보다 세 개짜리 책상이 비탈이든 어디든 세울 수 있는지 등 과학 및 수학의 원리를 알려주면 무척 재미있어 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어 그는 “코로나19 시대에도 학생이 부모 손잡고 오면 그렇게 예쁘고 반가울 수가 없다”고 했다. 한번은 자녀와 함께 도서관을 찾아온 어머니에게 “명품 가방이 뭔지 아느냐. 안에 책과 필기도구가 들어 있으면 그게 진짜 명품 가방이다”고 얘기하자 어머니는 “어머, 그런 말은 원장님한테서 처음 들었다”며 웃더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장 전 원장은 “우리 어머니는 내가 우라늄 농축과 관련된 불소학을 배우러 미국으로 유학을 떠날 때 가방에 태극기를 넣어줘 외국 생활 내내 힘이 됐다”면서 “그 어머니를 평생 한번 안아 드린 기억이 없어 지금도 가슴이 아프다”고 했다. 도서관에는 책 9000권이 있다. 인세 5000만원을 초등 필독서 2000권과 중고생 1000권 등 3000권을 구입하는 데 털어넣었다. 국립도서관에서 추천받은 것으로 소설, 수필, 위인전, 만화 등 다양하다. 2005년 원자력연구원장으로 퇴임한 뒤 구입해 읽은 책 4500권을 보탰다. 장 전 원장은 “그 기간이 가장 독서량이 많았을 때로 내가 좋아하는 로버트 프로스트 등 시집 1000여권도 있지만 인문학, 원자력 등 주로 어른 책”이라고 했다. 동네 한 아주머니가 200권을 기증했고, 교수들 여럿도 보내 줬다. 장 전 원장은 2004년 1월 자신이 원자력연구원장(당시는 연구소)으로 있을 때 만든 1호 연구소기업 한국콜마 공장이 전의면에도 있다고 인연을 강조하며 이곳에 도서관을 만들게 됐다고 했다. 원자력 개척 연구진답게 이번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서운함을 드러냈다. 그는 “요즘 문맹은 공부하지 않는 권력자와 공무원”이라며 “산유국도 원전을 만드는데 우리 정치인은 공부를 안 하니까 세상을 못 읽는다”고 꼬집었다. 장 전 원장은 “태양광은 하루의 절반은 빛이 없는 밤이고, 사막 모래바람 불으면 망가지기 때문에 중동 국왕이 ‘할아버지는 낙타 타고, 아버지는 자동차 타고, 나는 비행기 탔으니 아들은 우주선을 타야 하는데 다시 낙타 타게 생겼다’며 원전을 수입한다”고 했다. 장 전 원장은 “도대체 자기 나라는 탈원전하면서 수출이라니, 그 나라 원전을 사려는 국가가 얼마나 되겠나”라고 반문했다. 이어 그는 “원전은 수명이 60년이어서 그동안 핵연료를 팔고, 거액 받고 수리해 주고, 기술자 1000명이 일자리를 얻는 등 부가가치가 어마어마하다”면서 “그런데 탈원전하면 우수 학생이 원자력공학과를 가지 않아 원전 기술이 퇴보한다”고 했다. 2009년 아랍에미리트에 처음 20조원짜리 대용량 원자력을 수출한 뒤 요르단에 연구용 원자로, 사우디아라비아에 스마트원자로 등 세 가지 원자로를 수출한 유일한 국가가 됐다고 장 전 원장은 설명했다. 그는 “과학은 퇴보하는 법이 없고 더 안전해진다. 탈원전은 미스터리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도서관 옆에 화랑·劍박물관 열어 명소로” 장 전 원장은 매일 대전 집에서 직접 차를 몰아 오전 7시 도서관으로 출근한다. 왕복 100㎞ 거리다. 장 전 원장은 “아침 일찍 도서관에 오면 동네 등 하루 6㎞를 천천히 달리고 집에서 아령도 하며 건강을 관리해 먼 거리 차를 모는 것도 크게 힘들지 않다”고 했다. 도서관에 머물면서 회사 기술연구에 기술 조언도 한다. 도서관보다 더 넓은 옆 공간 벽에는 자신이 소장하던 것과 기증받은 미술품 30여점이 걸려 있다. 장 전 원장은 “손님을 기다리는 식당 주인처럼 어린 학생들을 기다리고 찾아오는 아이들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다만 식당 손님과 반대로 여기에 더 오래 머물면서 자신의 꿈을 키워 갔으면 좋겠다”며 “도서관 옆에 구상화·추상화가 섞였다고 이름 붙일 ‘비빔밥 화랑’과 전통 검 제작 회사의 특성을 살린 ‘검박물관’도 추가로 열어 명소로 만들자고 사장과 의기투합했다”고 웃었다. 글 사진 세종 이천열 기자 sky@seoul.co.kr
  • [안녕? 자연] 사람 처음 들어간 1만540m 심해서 처음 본 것은 ‘플라스틱’

    [안녕? 자연] 사람 처음 들어간 1만540m 심해서 처음 본 것은 ‘플라스틱’

    수심 1만540m, 사람이 처음 들어간 깊은 바다에서 플라스틱이 발견됐다. 해저기술업체 캘러던 오쉬애닉에 따르면 지난 3월 필리핀국립대학교 해양과학연구소 소속 미생물해양학자 데오 플로렌스 온다(33) 박사는 해저탐험가로 널리 알려진 퇴역 미해군 장교 빅터 베스코보(55)와 함께 사상 최초로 엠덴 해연 탐사에 성공했다. 지구에서 세 번째로 깊은 필리핀 해구 엠덴 해연은 태평양 마리아나 해구에 있는 챌린저 해연이 발견되기 전까지 지구에서 가장 깊은 바다로 꼽혔다. 1927년 독일 순양함 엠덴호가 발견했으며, 1951년 덴마크 선박 갈라테아호가 첫 탐사를 진행했다. 이 때문에 ‘갈라테아 해연’이라고도 불린다. 하지만 지구상 그 어느 누구도 엠덴 해연의 속을 들여다본 일은 없다. 그야말로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미지의 영역, 최후의 개척지였다. 지난 3월 필리핀 온다 박사가 바다로 뛰어들기 전까지는 말이다.온다 박사는 미국 해저탐사전문가 베스코보와 함께 잠수정을 타고 엠덴 해연의 바닥까지 내려갔다. 해양생태계와 플랑크톤 등 미생물 관련 연구자로서 탐사에 대한 온다 박사의 기대는 매우 컸다. 박사는 “해양학자이자 교수인 내가 가르치는 것들은 대부분 서양 학자들에게서 가져온 것이었다. 책에서만 보던 것을 내 두 눈으로 직접 본다는 건 동화같은 일”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인류에게 처음으로 그 속살을 드러낸 바다는 이미 오염돼 있었다. 박사가 깊은 바다에서 마주친 건 각종 플라스틱 쓰레기였다. 온다 박사는 “탐사 도중 물속을 둥둥 떠다니는 흰색 물체를 발견했다. 베스코보에게 ‘저건 해파리’라고 말했는데, 가까이 가보니 플라스틱이었다. 심해에는 많은 쓰레기가 있었다. 바지, 셔츠, 곰인형 같은 생활 쓰레기부터 포장지, 비닐봉지 같은 플라스틱류가 있었다”고 설명했다.사람이 처음 들어간 1만540m 심해에 플라스틱이라니 사실상 지구 모든 곳이 오염됐다고 보는 것이 타당했다. 온다 박사는 “1억6000만 필리핀 국민과 전 세계 수십억 명을 대표해 엠댄 해연을 들여다본 건 분명 특권이었다. 하지만 심해까지 오염시킨 플라스틱 쓰레기의 심각성을 목격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라고 절망감을 드러냈다. 온다 박사는 “우리는 아직 심해의 생물 다양성에 대해 알지 못한다. 심해 생물이 생물지화학적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또 기후변화에 어떻게 반응하는지도 알지 못한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기후를, 바다를 바꿔 놓았다”고 지적했다. 사실 온다 박사와 함께 바다로 들어간 미국 해저탐험가 베스코보에게는 그렇게 놀라운 발견도 아니다. 2019년 탐사팀과 잠수정을 타고 지구에서 가장 깊은 바다 챌린저 해연에 들어갔을 때 이미 심해에 도달한 플라스틱 쓰레기를 목격했기 때문이다.베스코보는 2019년 태평양 마리아나 해구에 있는 챌린저 해연 1만928m 지점까지 도달하는 신기록을 세웠다. 챌린저 해연 탐험에 성공한 3번째 사람이자, 가장 깊은 바다까지 내려간 인류다. 1951년 영국 측량선 챌린저호가 처음 발견한 챌린저 해연(비티아즈 해연)은 1957년 구소련 비티아즈호가 1만1034m까지 측정했다. 1960년 미해군 심해 잠수정이 사상 처음으로 탐사를 시도, 1만912m까지 내려갔으며, 2012년 영화 ‘타이타닉’, ‘아바타’를 제작한 제임스 캐머런 감독이 1만908m 지점까지 하강했다.3주 동안 여러 차례에 걸쳐 잠수하며 미발견종 해양 생물과 암석 샘플 등을 채취한 베스코보는 비닐봉지, 금속조각, 글씨가 새겨진 플라스틱 물체도 발견했다. 당시 베스코보는 “가장 깊은 대양의 밑바닥마저 인간에 의해 오염된 것을 보게 돼 매우 실망스러웠다”고 말한 바 있다. 인간이 버린 쓰레기가 어떤 방식으로 먼 거리를 이동, 서로 다른 수밀도를 거쳐 심해까지 도달하는지에 대한 연구는 아직 진행 중이다. 온다 박사는 “우리가 버린 쓰레기가 계속 그 자리에 있는 건 아니라는 것, 이리저리 흩어지고 깊은 바다까지 가라앉을 거라는 사실을 세상에 알리는 건 이제 내 책임”이라며 관심을 호소했다. 권윤희 기자 heeya@seoul.co.kr  
  • 중국, 저출산에 “자녀 3명까지 허용”…산아제한 추가 완화

    중국, 저출산에 “자녀 3명까지 허용”…산아제한 추가 완화

    중국이 저출산에 산아제한을 추가 완화시켰다. 부부당 자녀를 3명까지 낳을 수 있도록 허용하는 조치다. 수십년간 ‘한 자녀 정책’을 고수한 중국은 2016년 ‘2자녀 정책’을 시행한데 이어 추가로 산아제한을 완화했다. 31일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은 당 총서기인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주재로 회의를 열어 ‘가족계획 정책 개선과 장기적인 인구 균형 발전에 관한 결정’을 심의했다. 회의에서는 부부 한쌍이 3명의 자녀를 낳을 수 있도록 하는 정책을 실시할 것을 결정했다. 이는 인구 구조를 개선하고 인구 노령화에 적극 대응하는 국가 전략을 펼쳐 인력 자원의 이점을 지키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중국의 2020년 출생 인구는 1200만명으로 떨어져 전년의 1465만명보다 감소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11일 중국 국가통계국이 발표한 중국 인구는 지난해 11월 기준 14억 1178만명으로 증가 추세를 이어갔지만, 지난 10년간의 인구 증가율은 0.53%로 1960년대 이후 가장 낮았다. 한편 중국이 인구 정점에 도달하는 것이 몇년 남지 않았다는 전망 속에 저출산과 노령화로 ‘인구 절벽’이 가까워진다는 우려가 나오는 상황이다. 김채현 기자 chkim@seoul.co.kr
  • [근대광고 엿보기] 1930년대 뱀술(양명주) 광고/손성진 논설고문

    [근대광고 엿보기] 1930년대 뱀술(양명주) 광고/손성진 논설고문

    아는 사람이 드물지만 일본에 가면 양명주(養命酒)라는 술을 볼 수 있다. 양명주는 일본의 대표적인 약술이다. 일설에는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정권을 잡은 17세기 초 정권의 최고 실세인 막부에 바치던 약용 술이었고 계피, 지황, 작약, 인삼, 방풍, 울금 등을 넣었다고 한다. 일본의 양명주 병에는 약용(藥用)이라고 적혀 있고 제2종 의약품이라고 명시돼 있다. 양명주가 술의 외관을 갖추고 있지만 술이 아닌 약인 셈이다. 경옥고에 술을 탄 맛이라는 평가도 있는데, 알코올 도수는 14도 정도라고 한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술이 아니라 약이기 때문에 미성년자도 양명주를 마실 수 있다. 이런 이유 등으로 점차 사라져 가는 술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양명주라는 같은 이름의 술을 대선주조에서 1960년대와 1970년대에 발매한 적이 있다. 그 전에도 삼진양조장에서 양명주를 만들었고, 삼미양조에서도 제조한 것으로 확인된다. 이 술들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에서 양명주가 국내로 들어와서 광복 후에도 없어지지 않고 잠시 보약주로 남아 있었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 양명주는 각종 약재를 첨가한 약술이며 일본과 달리 약이 아닌 주류로 판매됐다. 양명주 광고는 1930년대부터 등장한다. 이때의 양명주는 뱀이 주요 성분으로 들어간 일종의 뱀술이었다. 중국에서 1년 만에 병을 땄더니 독사가 죽지 않고 튀어나와 사람을 물었다는 그 뱀술이다. 혐오감을 주는 붉은 살모사(赤?蛇·적복사) 그림을 넣어 생동감을 돋우었다. 국내에서는 뱀술 제조와 유통이 금지돼 있다. 그러나 여전히 뱀을 사육해 보약으로 만들어 파는 사람들이 있다. 뱀술은 미국 포브스 온라인이 꼽은 세계 10대 혐오 식품 가운데 3위에 이름이 올랐다. 의외로 1위는 몽골인이 즐겨 마시는, 말젖을 원료로 만든 술의 한 종류인 ‘마유주’이며, 2위는 아이슬란드의 홍어 요리인 ‘하칼’이다. 일본에서는 뱀술 판매가 여전히 합법적인 모양이다. 뱀이 많은 오키나와에서는 뱀술이 양명주가 아닌 ‘하브주’라는 이름의 관광상품으로 버젓이 팔리고 있다. 광고에선 정력 결핍, 빈혈 허약자, 병으로 쇠약한 자 등에게 이보다 더 좋은 것이 없다고 양명주를 선전하고 있다. 또 시험을 앞둔 학생, 운동 선수에게도 필승의 비결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알코올양이 적어 고급 포도주보다 맛있다고도 했다. 붉은 살모사의 활즙(活汁)에 고산 약초 7종을 배합했고, 의학박사 3인이 추천했으며, 박람회에서 금패(金牌)를 받았다고 소개했다. 가격은 큰 병이 3~4원으로 돼 있는데, 쌀값으로 환산한 현재 가치로는 5만~6만원 정도다.
  • “자연유산, 문화재와 대등하게 다뤄야”

    “자연유산, 문화재와 대등하게 다뤄야”

    “‘문화재’는 문화의 자산(Cultural Property), 즉 인간의 손으로 만들어진 문화적인 산물을 의미하는 용어여서 문화재의 한 축인 자연물에 그대로 적용할 수 없는 모순이 있다. 자연유산을 문화유산과 대등한 차원으로 다루기 위해선 문화재청 명칭을 국가유산청으로 개편하고, 나아가 국가유산처나 국가유산부로 승격시키는 획기적인 조처가 이뤄져야 한다.” 이인규 서울대 명예교수(전 문화재위원회 위원장)는 지난 27일 서울 국립고궁박물관 강당에서 열린 문화재청 주최 ‘제1회 문화재 행정 60년 미래전략 토론회’ 기조 강연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그는 “2008년 숭례문 화재 때 전문가들이 문화재 분류 체계에 대한 논의를 거듭해 문화재를 국가유산이라는 용어로 재정리하기로 의견을 모았는데 아직도 실행되지 못하고 있어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문화재청은 1999년 출범했지만 문화재 행정은 1961년 문화재관리국 설립을 기점으로 올해로 60년을 맞았다. 그동안 문화재 1만 4500건이 지정·등록됐고, 해외 문화재 1만여건이 환수되는 등 괄목할 만한 성과를 이뤘다. 문화재 예산도 지난해 1조원을 넘었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를 비롯해 기후 위기, 디지털 혁명, 인구 감소 같은 급변하는 환경은 문화재 행정에도 새로운 역할을 요구하고 있다. 이번 토론회는 지금까지 문화재 정책의 성과와 한계를 짚어 보고, 미래 사회 변화에 대비한 중장기 발전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됐다. 최현선 명지대 교수는 ‘문화재와 사회적 가치’ 주제 발표에서 “문화재 보존, 문화유산 세계화, 문화재 활용 등 문화재청이 제시한 성과들이 국민의 시각에서 어떤 사회적 가치를 창출했는지 구체적인 분석이 있어야 한다”면서 “문화재와 관련한 정책은 투명성과 참여가 있어야 하고, 공동체성과 공익성이 발현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조두원 국제성곽군사유산학술위원회 사무총장은 ‘문화유산 보존 원칙 검토’ 주제 발표를 통해 국내 문화유산 보존 원칙의 방향성과 적용 방안 등을 제시했다. 문화재의 영역을 넓히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미래지향적인 조직이 문화재청에 신설돼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서동철 서울신문 논설위원은 종합 토론에서 “근대문화유산 등록 제도가 있지만 앞으로 20세기, 21세기 문화재는 과연 무엇일까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면서 “보존과 활용 이외에 가치를 다루는 부서, 일테면 ‘문화가치증진국’을 만들어 사회적 가치를 높이고, 국민에게 다가가는 조직이 될 때 외부에서 먼저 위상 승격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화재청은 9월까지 매달 한 차례씩 자연유산, 디지털 문화유산 전환, 다문화사회 대응 등을 주제로 총 5회의 토론회를 진행한다. 이를 토대로 10월 중 ‘문화재 행정 60년 미래전략’(가칭)을 발표할 계획이다. 김현모 문화재청장은 “문화재가 사회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고, 다양한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기제로 거듭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순녀 선임기자 coral@seoul.co.kr
  • 또 판사 출신? 도로 검찰 출신?… 다음 법무차관은 누구

    또 판사 출신? 도로 검찰 출신?… 다음 법무차관은 누구

    이르면 이번 주 발표될 대검검사급(검사장) 인사에서 ‘대폭 물갈이’가 예고되면서 고위 간부들의 거취에 관심이 쏠린다. 최근 사표를 낸 이용구(57·사법연수원 23기) 법무부 차관의 후임 인선도 주목된다. 30일 법조계에 따르면 현재 비어 있는 검사장급 이상 보직은 모두 8석이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검찰 인사 적체를 문제 삼으면서 조상철(52·23기) 서울고검장은 지난 28일 “떠날 때가 됐다”며 고위간부 중 첫 사의 표명을 했다. 검사장·고검장 중에서 추가 사퇴가 이어진다면 인사 규모가 더 커질 수 있다. 검찰 안팎에선 “법무부가 검사장들에게 사퇴를 압박하고 있다”고 보는 분위기다. 택시기사 폭행 의혹으로 검·경 수사를 받고 있는 이 차관은 지난 28일 “법무·검찰의 혁신을 위해 새로운 일꾼이 필요하다”며 취임 5개월 만에 사표를 냈다. 강호성 법무부 범죄예방정책국장과 이영희 법무부 교정본부장도 명예퇴직을 신청했다. 특히 정무직인 법무 차관의 사퇴는 사실상 청와대 의중으로 풀이되면서, 검찰 인사를 목전에 둔 법무부의 조직 쇄신은 결국 검찰 조직 쇄신으로 이어질 것을 의미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법무부 검찰인사위원회도 최근 검사장·고검장 구분 없이 탄력적으로 인사를 하는 방안을 논의하면서 고검장들의 좌천성 인사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 차관의 후임으로는 이상갑(54·28기) 법무부 인권국장과 강성국(55·20기) 법무부 법무실장 등이 거론된다. 이 국장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출신으로 박 장관의 인사청문회 준비단장을 맡았다. 강 실장은 21년간 판사로 근무한 법관 출신이다. 고검장급에서 법무 차관을 발탁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청와대가 법무·검찰의 갈등을 봉합하는 취지에서 다시 검찰 출신으로 차관 자리를 채우는 것이다. 이 차관은 1960년 윤보선 정부 때 이후로 60년 만에 탄생한 비(非)검찰 출신 인사였다. 다만 현 정부에서 추진해 온 ‘법무부의 탈검찰화’ 기조와 상충된다는 점은 부담이다. 서울의 한 부장검사는 “친정부 성향 검사들의 대거 승진을 막기 위해서라도 현 고검장들이 자리를 지켜 외풍을 막아 줬으면 하는 것이 후배들의 바람”이라고 말했다. 진선민 기자 jsm@seoul.co.kr
  • 기후 선도국가 자리매김… 1000명 고용·1500억 경제효과 기대

    기후 선도국가 자리매김… 1000명 고용·1500억 경제효과 기대

    문재인 대통령이 30일 ‘2021 P4G 서울 녹색미래 정상회의’에서 2023년에 열리는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 유치전에 나설 것을 공표한 것은 기후변화 대응 선도국으로 자리매김하는 한편 경제적 측면에 대한 고려도 담긴 것으로 풀이된다.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는 1995년 이후 해마다 열리며 197개국 2만여명이 참석하는 기후환경 분야 최대 국제회의다. 인천, 부산, 전남 여수, 경기 고양, 제주 등이 1500억원 이상 경제유발 효과와 1000여명 안팎의 고용창출 등을 기대하고 유치전에 뛰어들었다. COP28 사무국은 내년에 개최지를 선정한다. 또한 문 대통령이 900만 달러(약 100억원) 규모의 글로벌녹색성장연구소(GGGI) 그린뉴딜 펀드 신탁기금 신설 및 P4G(녹색성장 및 글로벌목표 2030을 위한 연대) 기금 신규 공여를 약속한 것은 개발도상국의 기후변화 대응 지원에 초점을 둔 회의 취지에 맞춰 국제사회에 ‘그린리더십’을 다지겠다는 의도가 담긴 것으로 해석된다. 2010년 개도국의 녹색성장을 지원하고자 설립된 GGGI는 한국이 주도한 첫 번째 국제기구다. 참여국들의 공여자금으로 운영되는 협의체인 P4G에 한국은 그동안 분담금을 내지 않았다. 1회 정상회의를 주최한 덴마크는 2018~22년 3870만 달러(약 433억원)의 기여를 약속했었다. 문 대통령이 “한국이 국제사회 지원 속에서 산림 회복을 이룬 것처럼 개도국과 적극 협력하겠다”면서 “나라마다 경제발전 단계가 다르고 석탄화력 의존도에 큰 차이가 있기 때문에 저탄소 경제 전환을 위해서는 개도국에 대한 선진국들의 더 많은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한 것은 중견 국가의 책임을 다하겠다는 의미다. 녹색·기후 공적개발원조(ODA) 비중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이상으로 대폭 늘리는 계획을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이다. 2015~19년 OECD의 관련 ODA 비중 평균은 28.1%인 데 비해 한국은 19.6%에 머물렀다.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 대신 참여한 리커창 총리는 화상 연설에서 “지속가능한 녹색 발전을 위해서는 국제 협력이 필수적이며 코로나 종식을 위한 협력, 저탄소 전환을 위한 노력, 공통되지만 차별화된 책임하에 개도국의 고충 해결 지원이 특히 중요하다”면서 “중국은 세계 최대 개도국으로 2060년 이전 탄소중립 달성 공약 등 녹색회복 달성을 위해 기여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기후대응 등 글로벌 도전 과제 달성을 위해 한국의 해외 석탄발전 공적금융 지원 중단 선언과 같은 구체적 이행 정책을 각국이 발표하길 기대한다”면서 “개도국의 기후 적응을 위해 (한국처럼) 주요 7개국의 공여금 확대 등이 필요하다”고 요청했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린 개회식에서 문 대통령은 금강송 고사목으로 만든 연단에서 올라 눈길을 끌었다. 청와대는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강조하기 위해 재선충 피해목을 활용한 것”이라고 했다. 연설 중에는 멸종위기종 사향노루, 따오기, 왕은점표범나비 등의 모습이 증강현실(AR) 기술로 구현됐다. 한편 문 대통령은 덴마크 메테 프레데릭센 총리와의 화상 정상회담에서 양국 관계를 ‘포괄적 녹색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격상해 기후·환경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시리아 알아사드 대통령 4선…끔찍한 내전 속 60년 부자세습 달성

    시리아 알아사드 대통령 4선…끔찍한 내전 속 60년 부자세습 달성

    내전이 계속되고 있는 시리아의 바샤르 알아사드(57) 대통령이 지난 26일(현지시간)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 95%라는 비상식적인 득표율로 4연임에 성공했다. 새로 시작하는 7년 임기를 마치면 알아사드 대통령은 총 28년간을 재임하게 된다. 함무다 사바그 시리아 국회의장은 27일 “알아사드 대통령이 이번 대선에서 득표율 95.1%를 기록해 당선됐다”고 발표했다. 압달라 살룸 압달라 전 국무장관과 야권 지도자 마흐무드 마레이는 각각 1.5%와 3.3%의 득표율에 그쳤다. 투표율은 유권자 1800만명 중 1420만명이 참여, 78.7%로 집계됐다. 알아사드 대통령은 페이스북을 통해 “열렬한 애국심과 높은 참여율을 보여준 시리아 국민께 감사드린다”며 “내일부터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희망을 만들어나가겠다”고 당선 소감을 밝혔다. 수도 다마스쿠스의 주요 광장에는 지지자 수천명이 모여 “피와 영혼으로 알아사드 대통령을 지키겠다”, “우리는 신, 시리아, 알아사드 대통령 셋만 선택한다” 등 구호를 외치며 환호했다.철권통치를 이어가며 장기집권을 하고 있는 알아사드 대통령은 투표 전부터 당선을 사실상 확정하고 있었다. 야권 후보 2명은 구색 갖추기에 불과한 ‘어용 후보’들이었다. 지난 3일 대선 후보가 확정된 이후 알아사드 대통령이 선거운동을 거의 하지 않은 이유였다. 또 반군이 장악한 북부 지역 주민들과 600만명 이상으로 추정되는 난민들이 이번 대선에 참여하지 못했다. 알아사드 대통령의 득표율은 앞선 2014년 대선 때의 88%보다도 상승했다. 이번 선거는 많은 나라들로부터 제대로 된 선거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시리아 난민을 400만명가량 수용 중인 터키는 “이번 대선은 불법”이라고 비판했고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 5개국 외무장관도 불공정 선거가 될 것이 확실하다며 정당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알아사드 대통령은 부친 아페즈 알아사드 전 대통령의 뒤를 이어 2000년 정권을 잡았다. 아들이 이번에 임기를 7년 연장함에 따라 알아사드 부자는 약 60년간 시리아를 통치하게 됐다. 시리아는 2010년 ‘아랍의 봄’이 일어나고 이듬해 오랜 세습독재에 반발한 반군이 봉기한 이후 10년째 내전 상태에 있다. 알아사드 대통령은 2015년 러시아가 시리아 내전에 개입하면서 승기를 굳혔고, 현재 반군은 북서부 이들립 일대에서 저항하고 있다. 내전의 영향으로 38만 8000명이 사망하고 전체 인구의 절반이 난민이 됐다. 김태균 선임기자 windsea@seoul.co.kr
  • [김기중 기자의 책 골라주는 남자] 길거리 휘감은 우울함…코로나 시대의 자화상

    [김기중 기자의 책 골라주는 남자] 길거리 휘감은 우울함…코로나 시대의 자화상

    손님 하나 없는 텅 빈 당구장에서 담배 피우는 업주, ‘코로나19로 해고 금지’를 외치며 거리에 나선 노동자, 도시 속 사거리 횡단보도에서 마스크를 쓴 채 묵묵히 길을 건너는 시민들, 플라스틱 칸막이를 사이에 두고 따로 앉은 유치원생들. 코로나19를 겪는 풍경들을 기록한 ‘거리의 기술’(도서출판 풀씨)에 실린 사진들입니다. 사진작가 19명이 감염병으로 바뀌어 버린 시민들의 삶을 생생하게 담아낸 사진 130점을 수록했습니다.재단법인 숲과나눔이 “코로나19를 촬영하자”며 사진집의 기획을 시작했을 당시 사진가들은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를 어떻게 찍느냐”고 했다 합니다. 그러나 카메라는 사람을 향했고, 바이러스가 스며든 우리 사회, 위축된 우리 모습을 여러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물론 그 모습이 너무 선명해 우울해지긴 합니다만. 코로나19로 골목에 퍼지던 아이들의 웃음소리도 사라졌습니다. 사진집 ‘바깥은 천국’(HB PRESS)은 지금과 다른 거리 풍경을 보여 줍니다. 사진작가 셜리 베이커가 찍은 1960년대 영국 거리의 모습을 그립니다. ‘잃어버린 골목 놀이의 기술’이라는 부제처럼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주로 모았습니다. 세계 2차 대전 이후 당시 거리는 쇠락한 모습이 역력하지만, 사진 속 아이들은 그저 활기차기만 합니다. 줄넘기를 하고 축구를 하고 춤을 춥니다. 런던 타워 브리지 강변에서 물놀이하는 아이들, 돌을 던지고 장난감 총을 쏘는 꼬마들, 심지어 하수도를 열어 무언가를 꺼내는 아이의 모습이 재밌습니다. 커다란 아빠 구두를 신고 놀이용 유모차를 끌고 가는 꼬마의 진중한 표정도 웃음을 자아냅니다. 사진집을 보고 있으니 어린 시절 생각이 납니다. 별다른 놀잇감이 없었던 그때, 또래들과 함께 거리와 골목을 누비며 놀았습니다. “누군가에겐 밖이 어두워질 때까지 놀다가 지쳐 떨어져 행복한 기분으로 집에 돌아오는 것이 천국이었다”는 책 서문의 글귀가 가슴에 와 닿습니다. 코로나19는 여전히 진행 중입니다. ‘사라진 천국은 언제쯤 다시 올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gjkim@seoul.co.kr
  • [영상] 왼쪽 팔에 새겨진 수용번호 70072…허리 숙인 교황의 입맞춤

    [영상] 왼쪽 팔에 새겨진 수용번호 70072…허리 숙인 교황의 입맞춤

    프란치스코 교황이 ‘홀로코스트’(독일 나치의 유대인 대학살) 생존자에게 위로의 입맞춤을 건넸다. AFP통신에 따르면 교황은 26일(현지시간) 바티칸 사도궁 옆 ‘산 다마소’ 안뜰에서 열린 일반알현에서 홀로코스트 생존자를 만나 경의를 표했다. 홀로코스트 생존자인 리디아 막시모비치(81)는 이날 교황을 알현하기 위해 폴란드에서부터 먼 길을 달려갔다. 그런 막시모비치에게 교황은 입맞춤으로 위로와 존경을 전했다.막시모비치와 동행한 폴란드 신부의 설명에 귀를 기울이던 교황은 3살 때 아우슈비츠로 끌려갔다며 소매를 걷어 올린 막시모비치의 왼쪽 팔에 입을 맞췄다. 그녀의 팔에는 아우슈비츠 수용번호 70072가 새겨져 있었다. 막시모비치는 뜻밖의 입맞춤에 감격한 듯 교황을 끌어안았다. 막시모비치는 교황 알현 후 바티칸미디어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눈빛만으로 서로를 이해했다”며 감격스러워했다. 이어 나치 전범의사 멩겔레를 언급하며 “악행에 끝이 없고 양심의 가책도 없는 끔찍한 사람이었다. 그가 가한 고통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고 몸서리쳤다. 막시모비치는 만 3세 생일 직전인 1943년 12월 벨라루스 자택에서 가족과 함께 아우슈비츠로 끌려갔다. 그곳에서 ‘죽음의 천사’로 악명 높은 나치 전범의사 요제프 멩겔레의 생체 실험 대상이 됐다.1945년 종전 후 끔찍한 수용소 벗어난 막시모비치는 그러나 가족의 생사를 알지 못해 폴란드의 한 가톨릭 신자 가정으로 입양됐다. 18세가 된 1960년대 초 친모가 돌아가시기 직전 극적으로 재회했다. 이들 모녀는 아이러니하게도 비극의 상징인 수용번호 덕에 재회한 것으로 전해진다. 친모의 수용번호는 70071이었다. 막시모비치의 이야기는 다큐멘터리로도 제작됐다. 막시모비치의 팔에 입을 맞춘 교황은 그간 기회가 있을 때마다 홀로코스트의 비극을 언급하며 극단주의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2016년에는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직접 방문해 희생자 추모 미사를 집전했다. 올 2월에는 이탈리아 로마에 사는 헝가리계 유대인 작가 에디트 브루츠크(89)의 자택을 깜짝 방문했다. 독일 나치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유대인 100만 명을 비롯해 유럽 점령지역에서 600만 명의 유대인을 학살했다. 권윤희 기자 heeya@seoul.co.kr
  • 한국의과학연구원, 항바이러스평가센터 증설 완료… 처리 역량↑

    한국의과학연구원, 항바이러스평가센터 증설 완료… 처리 역량↑

    한국의과학연구원(원장 이상희)이 지난 21일 항바이러스평가센터의 확장공사를 완료했다고 밝혔다.금번 증설은 국제기준의 항바이러스평가가 가능한 항바이러스평가센터의 처리역량 개선을 목표로 실시됐다. 코로나19의 장기화 속 공공시설물의 항균·항바이러스 처리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는 가운데, 항바이러스평가 처리역량을 기존 대비 최대 7배까지 끌어올려 기업 및 기관의 의뢰 수요에 부응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1960년대 이후 유해 바이러스 발생빈도가 잦아지면서 ‘항바이러스 제품(Anti-viral product)’에 대한 산업 전반 및 소비자들의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불완전체인 바이러스의 특성상 측정 반복성의 부족 및 전문 인력/설비의 미비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항바이러스 평가에 대한 체계적인 기준 마련과 관리가 당면 과제로 대두된 바 있다. 앞서 한국의과학연구원 바이러스센터는 바이러스 팬데믹 시대를 선제적으로 대응하고자 지난 2016년 센터를 설립, 바이러스 평가 기준에 가장 많이 활용되는 ISO 기준과 ASTM 기준의 바이러스 평가법을 적용해 분석 수요에 대응해왔다. 그러나 최근 항바이러스 평가에 대한 의뢰 수요 급증으로 기업 및 기관의 의뢰 수요를 제때 처리하지 못하게 되면서 평가 처리역량 증대를 위한 대책 마련이 요구됐다. 이에 기존 항바이러스평가 처리 역량을 7배까지 끌어올릴 수 있는 항바이러스센터 LAB2의 확장 증설을 추진했다는 것이 연구원 측의 설명이다. 또한 한국화학연구원 등 전문 연구기관에서 관련 분야의 전문성을 확보해온 전문 바이러스 연구자를 영입, 항바이러스 평가 수요에 보다 안정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했다. 특히 액상 및 분말 형태의 시료에 한정되었던 국내 항바이러스평가 분야에서 자체 발전시킨 평가기술을 토대로 모든 재질 및 형태의 제품에 대한 항바이러스 능력을 평가하는 기술을 확보했다. 한국의과학연구원 바이러스센터 이종교 박사는 “항바이러스평가를 위한 기본 바이러스의 배양, 유지 및 국제기준의 평가라인 운영을 위해서는 전문 인력 확보와 지속적인 지원 투자가 가능한 연구기관 참여가 필수적”이라며, “금번 센터 증설을 계기로 한국의과학연구원 바이러스센터가 이 같은 역할을 담당할 수 있게 됐다”고 전했다. 한편 한국의과학연구원은 마이크로바이옴, 자원미생물분야에 꾸준한 연구를 해오는 전문 바이오연구소다. 향후 코로나팬데믹 시대에 산업 전반에서 시도되고 있는 항바이러스 관련 분석지원을 통해 국내 바이러스 예방분야 발전에 기여할 방침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신원식 태양연마 회장 10억 통 큰 기부… 한국형 기부자 맞춤기금 10호 가입자

    신원식 태양연마 회장 10억 통 큰 기부… 한국형 기부자 맞춤기금 10호 가입자

    80대 사업가가 거액의 기부금을 사회에 환원했다. 사랑의열매 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신원식(83) 태양연마 회장이 10억원을 기부했다고 26일 밝혔다. 1961년 고려연마공업사를 창립한 신 회장은 60년 동안 회사를 키워 연마포·연마지 등을 제조하는 중소기업 태양연마로 성장시켰다. 10억원을 일시 기부한 그는 한국형 기부자 맞춤기금 10호 가입자이자, 1억원 이상 고액기부자 모임인 아너 소사이어티 2616번째 회원이 됐다. 한국형 기부자 맞춤기금은 기부자의 의사를 반영해 기금을 관리하고 사업을 구성·운영하는 기금사업이다. 신 회장은 회사 성장에 보답하는 마음으로 최근 기부를 결심하고 기부 기관을 직접 찾기도 했다. 신 회장은 “회사를 운영하면서 많은 도움을 받았고 나 또한 어려운 이들을 위해 도움을 줘야겠다고 항상 생각해 왔다”면서 “다짐을 실천할 수 있게 돼 기쁘며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잘 전달될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사랑의열매는 “기부금은 코로나19 장기화로 의료 사각지대에 놓인 저소득 가정을 돕기 위한 의료비와 생계비, 아동과 청소년을 위한 교육비로 지원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주원 기자 starjuwon@seoul.co.kr
  • 크고 작은 사각형… 단색이지만 다색… 평면이지만 입체

    크고 작은 사각형… 단색이지만 다색… 평면이지만 입체

    “똑같은 것을 계속하는 건 용서 못해요. 변화해야 합니다.” 89세 노화가의 눈빛은 형형했고, 어조는 단호했다. 독창적인 격자 구조 화면으로 한국 단색조 추상의 한 획을 그은 정상화 화백은 남들이 넘보지 못하는 경지에 이른 대가임에도 여전히 새로운 예술에 목말라했다. “작품 속에 나의 핏줄이 있고, 심장 박동이 있다”는 그의 말은 지치지 않는 열정과 끊임없는 수행으로 한평생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걸어온 예술가만이 가질 수 있는 값진 자부심일 것이다.정 화백의 60년 화업을 돌아보는 대규모 전시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오는 9월 26일까지 펼쳐진다. 전시 제목은 ‘정상화’. 어떤 수식어도 필요 없을 정도로, 이름만으로 하나의 장르가 된 그의 예술 세계를 총체적으로 만나는 자리다. 서울대 미대 회화과 신입생이던 1953년에 그린 ‘자화상’을 시작으로 전위적인 표현주의적 추상 실험을 거쳐 1970년대 단색조 추상으로의 전환, 그리고 1990년대 격자화의 완성과 심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기법을 활용해 평면 작업의 지평을 넓혀 온 과정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학창 시절 정물화나 인물 크로키 같은 구상 회화를 주로 그렸던 정상화는 졸업 후 한국현대미술가협회, 악뛰엘 등의 단체에 참여하며 즉흥적이고 격정적인 표현주의 추상에 몰두했다. 전후 폐허가 된 현실에 대한 충격과 새로움에 대한 강박이 광기처럼 분출된 시기였다. 전시장에서 만난 정 화백은 “남이 못 하는 걸 하려고 했고, 누구에게도 지지 않겠다는 생각이 강했다”고 회고했다. 1967년 가족을 두고 홀로 프랑스 파리로 떠난 이유도 “내 눈으로 직접 바깥세상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해외 체류는 1992년 영구 귀국 때까지 일본 고베와 파리 등에서 25년간 이어졌다.격자형 화면 구조는 수많은 추상 실험 끝에 찾은 그만의 독창적인 조형 기법이다. 캔버스 윗면에 고령토를 3~5㎜ 두께로 발라 건조시킨 다음 뒷면에 미리 그어 둔 선에 맞춰 캔버스를 접으면 표면에 균열이 생기면서 크고 작은 사각형들이 드러난다. 사각형에서 고령토를 칼이나 조각 도구로 뜯어낸 뒤 물감을 입히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화면에 입체적인 공간을 구현한다. 정 화백은 “화가들이 붓으로 그렸다가 지우고 다시 그리는 것처럼 나는 드러내고, 메우고, 다시 드러내는 방법을 택한 것”이라며 “화면에 설득력 있는 공간이 만들어졌을 때 작업을 멈춘다”고 했다. 작품 하나를 완성하는 데 반년에서 1년이 걸리는 지난한 과정이지만 조수를 한 번도 두지 않고, 혼자서 작업하는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뜯어내고, 메우는 반복적인 행위를 예술적 완성도를 높이는 수행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평면이되 ‘입체적인 평면’이고, 단색이지만 ‘다색의 단색’이다. 그는 “백색 단색화라도 그 안에는 수많은 흰색이 담겨 있다”고 했다. 이번 전시에선 종이와 프로타주(탁본 기법) 등 기존에 잘 알려지지 않은 미발표 작품들도 소개된다. 이순녀 선임기자 cora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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