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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상] “반가워요” 관광보트 곁으로 먼저 다가온 거대 귀신고래

    [영상] “반가워요” 관광보트 곁으로 먼저 다가온 거대 귀신고래

    거대한 고래가 사람에게 키스를 받는 동화 같은 장면이 카메라에 잡혔다.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은 15일(현지시간) 멕시코 마그달레나만에서 최근 귀신고래 한 마리가 한 관광 보트 곁으로 먼저 다가왔다고 전했다. 지난 1일 포착된 영상은 호기심 많은 귀신고래 한 마리가 보트 바로 옆에서 물 위로 머리를 들고 주변을 살피는 모습을 보여준다. 귀신고래는 몸집이 크지만, 성격은 온순하다.이날 귀신고래는 관광객들이 기념사진을 남기려 손으로 만지거나 키스를 해도 그저 가만히 헤엄칠 뿐이었다. 고래는 숨을 내쉬기 위해 종종 물을 뿜었고 사람들은 일생에 한 번 만나기 힘든 순간을 만끽했다. 관광객들은 귀신고래에게선 흥미롭게도 깨끗한 바다 냄새가 났다고 입을 모았다. 피부는 약간 고무 같았지만 부드럽다고 했다.영상을 공개한 미국의 관광객 알렉스 뱅키(36)는 인터뷰에서 “미 해병대 장교가 된 것을 축하하기 위해 보트 투어를 왔다. 귀신고래를 보트 바로 옆에서 보게 될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이어 “혹등고래를 본 적이 있지만, 이렇게 가깝진 않았다. 귀신고래를 만지거나 키스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고 덧붙였다. 귀신고래는 고래목 귀신고랫과의 포유류로, 몸길이 15m, 몸무게 36t까지 자라며, 수명은 평균 50~60년, 최대 70년이다. 몸은 얼룩진 회색빛을 띠며 등에는 등지느러미 대신 작은 혹이 나 있다. 현재는 약 3만 마리가 남아 있으며, 북동태평양군과 북서태평양군에서 무리지어 살고 있다. 대서양에서 살던 무리는 남획으로 이미 17~18세기에 멸종했다. 북동태평군에 속하는 캘리포니아계 귀신고래는 20세기부터 보호되기 시작해 2만 마리대의 안정적인 개체 수를 유지하고 있지만, 일본과 맞닿아 있으며 북서태평양군에 속하는 한국계 귀신고래는 대부분 일제강점기 시절 사멸해 찾아보기 어렵다. 한국에선 1962년 울산 앞바다에서 출현한 개체를 천연기념물로 지정했지만, 그 후로 발견된 적이 없다. 다만 소련 붕괴 뒤 그동안 접근하지 못했던 사할린 근처에서 한국계 귀신고래 130마리 정도가 살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다른 개체들은 오호츠크해와 동해를 오가고 있어 한국계로 불리기도 하지만, 유전적으로는 북동태평양군과 같다. 귀신고래는 귀신처럼 신출귀몰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사진=알렉스 뱅키/인스타그램
  • 성공 집착한 ‘답·정·연’ 한국… 실패·모험 없이 ‘최초의 기술’은 없다[대한민국은 선진국인가]

    성공 집착한 ‘답·정·연’ 한국… 실패·모험 없이 ‘최초의 기술’은 없다[대한민국은 선진국인가]

    대한민국 경제는 1960년대 산업화를 발판으로 비약적 발전을 이뤄 왔다. 1964년 국민소득이 100달러 남짓이었으니 지금의 3만 달러 시대는 가히 기적이라 할 수 있다. 한국전쟁의 폐허에서 경제 발전을 위해 우리가 행사할 수 있는 옵션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 선택한 선진국의 제도와 시스템, 기술을 모방하는 ‘빠른 추격자’ 전략이 주효했다. 세계 1위 노동시간을 감내하며 주머니 돈까지 탈탈 털어 후세 교육에 열정을 다한 국민들이 이 전략의 성공을 가능하게 했다.선진국 기술을 흡수해 제품을 싸게 만들어 파는 방식을 국가가 주도해 나갔다. 산업화 시대의 무용담에서 단골 소재는 해외 기술을 몰래 베껴 왔다거나 출장 온 선진국 기업 직원의 자료를 몰래 빼돌렸다는 등의 이야기다. 당연히 기술 개발의 독창성은 사라지고, ‘빨리빨리’ 매뉴얼대로 집행하는 것이 오히려 미덕으로 여겨졌다. 그렇게 얼마나 달렸을까.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막무가내로 뛰다 보니 어느덧 선두가 보이기 시작했다. 몇몇 산업은 가장 앞으로 추월해 나갈 정도로 가속도가 붙었다. 그쯤 되자 모방의 대상이던 선진국의 견제가 강화되기 시작했다. 그들 입장에선 한 수 아래로 여기던 우리가 경쟁 상대가 됐으니 당연한 변화다. 나비효과는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사태로도 번졌다. 2019년 여름 일본 정부가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수출 절차 우대국)에서 제외한다는 선언은 우리가 고수해 온 추격자 전략에 경종을 울렸다. 한계를 넘어 선도자로 살아남으려면 우리만이 가진 고유의 전략 기술을 반드시 확보해야 한다는 사실을 마주한 것이다.빠른 추격자에서 선도자로의 변신이 눈앞에 닥친 과제인데, 주변 환경은 숨가쁘게 돌아가고 있다. 중국의 급부상에 놀란 미국은 견제를 본격화했고, 이른바 미중 기술패권 경쟁 시대가 열렸다. 미국은 베이징동계올림픽이 개막하는 날 하원에서 미국경쟁력강화법(America COMPETES Act)을 통과시켰다. 이 법은 반도체 분야의 520억 달러를 포함, 총 2000억 달러를 투자해 미국의 산업 경쟁력을 강화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상원에서는 지난해 6월 2500억 달러 규모의 연구개발 투자를 골자로 하는 미국혁신경쟁법(USICA Act)이 통과된 바 있다. 두 법 모두 미국의 기술 경쟁력을 중국보다 우위에 두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중국의 대응 역시 만만치 않은 가운데 한국은 양대 강국의 기술패권 경쟁이 초래할 치열한 국가 간 경쟁 구도에서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더욱 커졌다. 진퇴양난의 상황을 헤쳐 나갈 방법은 한 가지뿐이다. 상대국이 필요로 하는 전략기술 분야의 기술력을 확보해 협상에서 주도권을 유지하는 것이다. 즉 기술 주권을 가져야 하며 ‘원천기술’을 확보하는 수밖에 없다. ●올 R&D 예산 30조 육박 ‘세계적 수준’ 다행인 것은 국민들의 연구개발 필요성에 대한 믿음이 확고하다는 것이다. 우리 정부의 올해 연구개발 투자 규모는 29조 8000억원으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세계 1위, 민간 투자까지 합치면 이스라엘에 이은 세계 2위다. 절대 액수로도 세계 5, 6위 수준이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연구개발은 추격자 전략에 충실한 선진 기술 도입과 모방에 집중돼 있었다. 다행히도 반도체 등의 분야가 세계 최고 수준에 이르렀지만 정작 한국산 원천기술은 찾기 어렵다. 연구비 투자에 걸맞은 원천기술을 확보하려면 과거 전략에서 과감히 벗어나 선도자 시스템으로 탈바꿈해야 한다. 원천기술 강국이 되기 위해서는 어떠한 변화가 있어야 할까. ●원천기술 산실 DARPA, 모험에 집중 선진국들은 적어도 100년 이상의 산업화 역사를 가지고 있어 과학기술 지식과 경험이 엄청나게 축적돼 있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의 연구개발 투자는 30여년에 불과하다. 남들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려면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축적의 시간이 쌓여야 하는데 아직 갈 길이 멀다. 정부가 지원하는 연구개발 과제의 성공률은 90%를 훨씬 넘는다. 하는 것마다 성공이라는 뜻인데, 남들이 해 놓은 연구를 따라 하지 않고서야 불가능한 수치다. 이는 결국 연구개발 성과 잣대가 양적인 면에 치우쳐 있고, 장롱 특허가 대부분이며 논문의 임팩트가 적은 이유이기도 하다. 1958년 창설된 미국 고등국방연구소(DARPA)는 원천기술의 산실로 알려져 있다. 이곳에서 인터넷, 드론부터 리보핵산(mRNA) 백신에 이르기까지 세상을 바꾼 수많은 세계 최초들이 탄생했다. 연구소의 모토는 ‘되든 안 되든 일단 우리가 최초로 하고 보자’다. 또 ‘우리가 시도한 사업이 3년 내에 실용화된다면 그것은 실패한 사업’이라는 얘기도 한다. 과제 성공률은 10%에도 못 미친다. 성공하면 대박이지만 그만큼 실패할 우려가 큰 모험적 과제에 집중하기 때문이다. 반면 우리의 연구 현장은 천편일률적이다. 실패할 것 같으면 애초에 지원조차 받기 어렵고, 매 과정마다 평가가 뒤따른다. 전형적인 빠른 추격자식 관리 방법이다. 세상에 없는 기술을 개발한다는 것은 그 과정이 어떠하리라는 것 자체를 예측하기 어렵다. 연구 목적이 포괄적으로 정해져 있더라도 목표에 이르는 경로가 무엇인지, 달성하기까지 얼마나 시간과 방법이 동원돼야 할지 아무도 모른다. 그런데 우리의 연구개발 관리 시스템은 시작 전부터 경로와 소요 시간 등 수많은 조건을 상세하게 적어 낼 것을 요구한다. 마치 길이 없는 아마존 정글을 탐험하면서 경부고속도로 주행 계획을 요구하는 식이다. 물론 이미 확립된 기술의 개량이나 응용은 이런 식의 관리가 적합하다. 하지만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가야 하는 원천기술 연구는 경우가 다르다. ●R&D 투자 70% 민간… 단기 성과 한계 연간 100조원이 넘는 국내 연구개발 투자의 약 70%는 민간의 몫이다. 이윤 추구가 최우선인 기업의 특성상 민간의 연구개발 투자는 기존 기술의 개량에 더 치우칠 수밖에 없다. 또 대부분 민간은 실패를 감당하기 어렵다. 예외적으로 반도체와 같이 경쟁사와의 기술 격차 유지를 위해 원천기술에 투자하는 경우가 있지만, 최근 기업의 경영 목표가 단기 성과에 집중되면서 장기적 성과를 위한 투자는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따라서 성공 가능성은 낮지만 성공할 경우 파급효과가 큰(High Risk, High Payoff) 기술 개발에서의 정부 역할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민간이 감당하기 어려운 모험적 기술이나 기후변화와 같은 공공 문제와 관련한 기술 개발은 정부가 나서야 한다. 그리고 이런 속성의 연구에 성공하려면 과제의 선정, 관리, 성과 평가가 지금까지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 이 방식의 핵심 키워드는 ‘자율성’이다. 모험적인 연구의 모든 불확실성을 수용하고, 연구자 판단을 최대한 존중해 자율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연구자 선정에서도 최고 수준의 전문가들이 적임자를 골라야 한다. 지금처럼 여러 요소를 고려해 안배하는 시스템으로는 최상의 결과를 기대할 수 없다. 평가도 논문이나 특허 숫자를 따지는 정량적 성과가 아닌 실질적 성과를 판단하도록 바뀌어야 한다. 이렇게 최선을 다한 실패로부터 배우고, 경험을 축적해 간다면 가고자 했던 목표에 가까워져 있을 것이다. 원천기술 개발의 뿌리가 될 생태계 조성은 정부의 몫이다. 개발된 원천기술의 보호, 기술 창업 진작, 인재 양성, 기초과학 육성 등은 지속적인 정책이 뒷받침돼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반도체, 2차전지, 5G 등을 제외하면 아직 원천기술이 많지 않은 실정이다. 대전환 시대라고 말한다. 대전환은 사회 모든 분야에 적용되는 화두다. 우리 과학기술도 이제는 원천기술 개발에 도전하는, 그래서 과학기술 선도 국가로 탈바꿈하는 체제로 대전환해야 할 시점이다. 이우일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회장 서울대 명예교수 ■ 이우일 과총회장은 서울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미시간대 기계공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7년부터 2019년까지 서울대 교수로 재직하며 공과대학장과 연구부총장을 역임했다. 한국공학한림원 부회장, 바른과학기술사회실현을위한국민연합(과실연) 상임대표를 지냈으며, 미국기계학회(ASME) 석학 회원이자 국제복합재료학회 회장을 맡고 있다.
  • 정치 풋내기 케네디, 당당한 모습으로 노련한 닉슨 압도

    레이건, 특유의 유머로 카터 제압듀카키스, 기계적 답변으로 패배 TV토론이 대통령 선거에 처음 등장한 것은 1960년 미국에서다. 공화당의 리처드 닉슨과 민주당의 존 F 케네디 상원의원이 격돌했다. 현직 부통령인 노련한 닉슨과 만 43세의 정치 풋내기 케네디의 대결은 결과가 뻔한 승부였다. 하지만 TV토론을 시작하면서 이변이 벌어졌다. 잘생긴 외모에다 시종일관 당당하고 활기찬 모습을 보인 케네디는 어딘가 불안하고 초조한 모습의 닉슨과 대비되며 시청자들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았고 대권을 거머쥔다. 대선 TV토론은 1964~1972년 열리지 않다가 1976년 지미 카터 민주당 후보와 제럴드 포드 대통령의 토론회로 재개됐다. 포드 대통령은 토론회에서 “동유럽에 (구)소련의 지배력이 미치지 못한다”고 말해 사실관계도 잘 모르며 군 통수권자로서의 자격이 의심된다는 질타를 받게 되고 선거에서 진다. 1980년 TV토론에선 영화배우 출신 로널드 레이건 공화당 후보가 특유의 유머와 여유를 앞세워 카터 대통령을 압도하고 승리를 거머쥔다. 1984년 대선에서 레이건은 월터 먼데일 민주당 후보와 붙었는데 TV토론에서 만 73세인 나이에 대한 질문을 받자 “나는 상대방 후보가 대통령을 하기에 너무 젊다든가 경험이 부족하다는 것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싶지 않다”고 재치 있게 받아치며 유권자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재선에 성공한다. 1988년 공화당 조지 H W 부시와 맞붙은 민주당 마이클 듀카키스는 “만약 아내가 성폭행당하고 살해당하면 사형제를 찬성하겠느냐”는 질문을 받고는 “사형제에 반대한다”는 기계적인 답변을 반복하다 ‘아이스맨’이라는 별명을 얻고 선거에서 패배한다. 2000년 TV토론에서 조지 W 부시 텍사스 주지사와 붙은 앨 고어 부통령은 부시의 발언 때 계속 한숨을 내쉬었고 거만하고 참을성이 없다는 지적을 받으며 지지율 우세를 지키지 못하고 패배한다. 2016년 9월 29일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와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의 첫 TV토론은 사상 최고치인 무려 8400만명이 시청한다. 토론 직후 CNN이 여론조사를 한 결과 힐러리가 잘했다는 의견이 57%대34%로 압도적으로 많았다. 하지만 선거에서는 트럼프가 이겼다.
  • 87세 단색화 거장 “내 평생 그림 못 쉬겠다”

    87세 단색화 거장 “내 평생 그림 못 쉬겠다”

    국내 첫 공개 ‘이후 접합’ 등 주목“제각각 물감 형태, 자연의 얼굴예전엔 창고에 쌓였던 현대 미술흔적 모아 후세에도 볼 수 있길”“사람도 똑같은 얼굴이 없듯이 마대를 뚫고 나오는 물감의 형태도 제각각 달라요. 그런 자연의 얼굴을 작품에 도입하고 싶었습니다.”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단색화의 거장’ 하종현(87) 화백은 자신의 작품 세계를 한마디로 이렇게 설명했다. 대규모 개인전을 앞두고 15일 서울 삼청동 국제갤러리에 만난 그는 구순을 앞둔 나이에도 창작에 대한 식지 않는 열정을 드러냈다. “내 나이에 붓을 들고 있는 사람이 별로 없어요. 처음에는 이해하기 어렵고 안 팔리는 현대 미술을 해서 창고가 가득 찼는데, 한동안은 또 불같이 그림이 나갔죠. 팔릴 만하면 또 새로운 시도를 했고요. 그런데 이제는 작품을 가져갈까 봐 겁이 나요. 내 흔적과 작품을 모아서 후세에도 볼 수 있는 미술관이 꼭 있었으면 좋겠어요.” 다음달 13일까지 국제갤러리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회는 하 화백의 대표작인 ‘접합’ 연작과 ‘이후 접합’ 연작 등 1990년대 이후 진화해 온 그의 작품 세계를 총망라한다. 1970년대 시작된 ‘접합’ 연작은 올이 굵은 마포 뒷면에 두꺼운 물감을 바르고 천의 앞면으로 물감을 밀어 넣는 배압법(背押法)이라는 독창적인 기법으로 국내외에서 주목받았다. “1950~60년대 제가 학교 다닐 때는 캔버스나 물감을 사기 힘들었어요. 텐트 천이나 철사로 해 보다가 마대로 작업을 시작했는데, 마대는 구멍이 뚫려 있어서 어쩔 수 없이 뒤에서 물감을 밀어붙일 수밖에 없었죠. 그런데 물감이 마대 형태에 따라 꼬부라지거나 굵은 것도 있고, 가는 형태의 것도 있더라고요. 평소 엉뚱한 짓을 많이 한 것이 도움이 됐죠.” 새 기법의 최신작인 ‘이후 접합’ 연작은 나무 조각 자체의 물성으로 새로운 의미의 표면을 형성하고, 조각적인 요소를 통해 평면에 입체성을 부여해 ‘접합’의 범주를 확장시켰다. “뭐든지 좀 끈질기게 하는 편이에요. 마대와 물감과의 전쟁도 마찬가지죠. 마대 뒤에서 물감을 밀고, 앞에서 또 한 번 밀어 중성화하면서 작업을 발전시키죠. 저만의 캔버스와 이론을 만들어 가면서 새로운 작품이 탄생합니다.” 평생 회화의 무한한 가능성에 대한 연구와 물성에 대한 실험을 거듭해 한국적 모더니즘의 개척자라고 불리는 화백은 오는 4월 개막하는 세계 최대 미술 축제 베네치아비엔날레에서 자신의 60년 화업을 정리하는 회고전을 개최할 예정이다. “아직까지 작품을 할 수 있는 여력이 있는 만큼 열심히 해서 앞으로 국내 전시회도 더 많이 열고 싶습니다. 평생 그림을 쉬지 못할 것 같아요.”
  • 베트남 평화협상, 남부 선벨트 부상… 美 정치판도 바꾼 ‘1968년 대선’

    베트남 평화협상, 남부 선벨트 부상… 美 정치판도 바꾼 ‘1968년 대선’

    험프리와 박빙 접전 벌이던 닉슨양다리 걸쳤던 키신저와 손잡고대선 전에 베트남 평화협상 막아 민주당, 텃밭 남부서 쓰라린 참패변화 원했던 젊은층에 외면받아‘보수 공화당’의 장기 집권 길 터1968년 대선을 앞두고 민주당과 공화당은 치열한 당내 경선을 치렀다. 민주당은 로버트 케네디가 암살되고 연초에 돌풍을 일으킨 유진 매카시가 동력을 상실함에 따라 뒤늦게 뛰어든 휴버트 험프리(1911~1978) 부통령이 유력한 대선 후보로 떠올랐다. 미니애폴리스 시장과 상원의원을 역임한 험프리는 린든 존슨 대통령의 러닝메이트로 부통령이 됐는데, 민권법에 찬성하는 등 중도적 진보 성향이었다. 시카고에서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는 대의원 자격을 두고 혼선을 빚는 등 소란스러웠다. 로버트 케네디를 지지했던 대의원들이 조지 맥거번(1922~2012) 상원의원을 지지함에 따라 진보 성향 대의원 표가 매카시와 맥거번으로 갈려서 존슨 대통령이 지지하는 험프리의 승리가 확실해 보였다. 대회장 밖엔 베트남 전쟁에 항의하는 젊은이 수천 명이 모여들었고 무장한 시카고 경찰이 시위대를 폭력적으로 제압하는 장면이 TV로 생중계돼 큰 충격을 주었다. 대선 후보로 선출된 험프리는 메인주 출신인 에드먼드 머스키(1914~1996) 상원의원을 러닝메이트로 지명했다. 중서부 출신을 대통령 후보, 그리고 동북부 출신을 부통령 후보로 선출함으로써 민주당은 남부와 남서부를 소외시켰다. 케네디, 매카시, 그리고 맥거번을 지지했던 젊은 지지자들은 대선후보 지명이 대의원 투표로 결정되는 전당대회와 기성 정치에 절망했다.●험프리·닉슨·월리스가 벌인 3파전 마이애미비치에서 열린 공화당 전당대회에선 리처드 닉슨(1913~1994)이 무난하게 후보로 선출됐다. 넬슨 록펠러(1908~1979) 뉴욕 주지사, 조지 롬니(1907~1995) 미시간 주지사 등이 후보 지명전에 나섰으나 닉슨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캘리포니아 출신인 닉슨은 젊은 나이에 부통령이 됐으나 1960년 대선에서 케네디에게 근소한 차이로 패배했는데, 8년 만에 다시 도전하게 됐다. 닉슨은 동부의 지지를 얻기 위해 스피로 애그뉴(1918~1996) 메릴랜드 주지사를 러닝메이트로 지명했다. 1968년 대선은 흑인들의 참정권을 보장한 투표권법(The Voting Rights Act)이 제정된 후 치러진 첫 대선이었다. 마틴 루서 킹 목사가 암살되자 의회는 미뤄 두었던 공정주택법(The Fair Housing Act)을 통과시켰는데, 주택시장에서 흑인 차별을 금지하는 이 법에 대해 남부 백인들은 격렬하게 반발했다. 이런 분위기에 편승해 앨라배마 주지사를 지낸 조지 월리스(1919~1998)가 제3당 후보로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인종주의자인 월리스는 자기가 남부에서 승리하면 어느 누구도 선거인단 과반수 득표를 하지 못하며, 그렇게 되면 대통령 선출은 하원으로 넘어가고 이 경우 각 주가 1표씩 행사하기 때문에 자기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큰소리를 쳤다.●베트남 평화 협상과 헨리 키신저 현직 부통령이던 험프리는 베트남 전쟁에 대해 모호한 자세를 취했으나 나중에는 전쟁을 끝내야 한다는 입장으로 선회했다. 9월까지만 해도 닉슨은 험프리를 오차범위 밖에서 앞섰으나 선거일이 다가오자 그 차이는 급속하게 줄어들었다. 닉슨은 자기가 당선되면 임기 중 베트남전쟁을 ‘명예로운 평화’로 끝내겠다고 약속했다. 닉슨은 존슨 행정부가 대선을 앞두고 북베트남과의 협상을 급진전시킬 가능성에 촉각을 세웠다. 투표일을 앞두고 존슨 대통령이 그 같은 발표를 하면 전쟁 종식을 원하는 유권자들이 험프리를 지지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었다. 닉슨은 존슨과 험프리가 평화협상을 ‘10월의 깜짝쇼’(October Surprise) 카드로 사용해서 막판에 선거 국면을 바꿀 가능성을 우려한 것이다. 존슨 행정부와 북베트남 정부 사이에서 진행되고 있는 평화협상에 대한 은밀한 정보를 닉슨에게 전달해 준 사람이 있었는데 헨리 키신저(1923~)였다. 독일 태생의 유대인으로 하버드에서 공부하고 하버드 교수가 된 키신저는 넬슨 록펠러에게 외교정책을 조언했다. 정부의 대외관계에 대한 자문 역할도 해 온 키신저는 북베트남과의 평화협상을 진행하는 존슨 행정부의 협상팀에 참여했다. 진보적 성향의 공화당 정치인인 록펠러는 존슨 대통령과도 사이가 좋았는데, 록펠러가 공화당 후보가 될 가능성은 없었기 때문에 존슨 행정부는 북베트남 정부와의 협상에도 키신저 교수를 참여시켰던 것이다. 1968년 대선에서 누가 당선되더라도 그 정부에 들어가고 싶어 했던 키신저는 민주당 정부와 닉슨 캠프에 양다리를 걸치고 있다가 닉슨의 당선이 유력해지자 닉슨 쪽으로 기울었다. 키신저는 닉슨의 고위참모와 비밀리에 접촉했기 때문에 존슨과 험프리는 그런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해 9월 말 파리회의에 참석하고 돌아온 키신저는 닉슨의 선대본부장 존 미첼(1913~1989)에게 대선을 일주일 앞두고 북베트남은 남베트남 정부의 평화협상 참가를 허용할 것이며, 존슨 대통령은 북베트남에 대한 폭격을 중단하고 평화협상을 궤도에 올릴 것이라는 정보를 전달했다. 닉슨은 급류를 타기 시작한 베트남 평화협상이 자칫 근소한 차이로 좁혀진 자신의 우세를 뒤집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닉슨은 곧바로 남베트남 사이공 정부의 티우 대통령에게 비밀리에 연락해 11월 2일로 예정돼 있는 평화협상 회의를 거부하도록 종용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집권하면 남베트남에 더욱 유리한 조건으로 협상을 진행하겠다고 약속했다. 티우 대통령은 평화회담 참석 거부 의사를 발표했고, 선거 전에 평화회담을 진전시키려던 존슨 대통령의 노력은 실패했다. 사정을 전해들은 존슨 대통령은 닉슨이 반역죄를 범했다고 불같이 화를 냈다. 험프리 측은 닉슨이 선거를 위해 평화협상 회의를 사보타주했다고 발표하려고 했다. 심각한 상황임을 느낀 닉슨은 존슨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자신은 결코 평화협상을 저해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험프리는 이런 사실을 폭로하면 미국의 대외적 신인도가 추락할 것을 우려해 없던 일로 하기로 했고, 이 소식을 전해들은 닉슨 측은 환호하면서 축배를 들었다. 키신저는 닉슨 당선의 일동 공신이 됐고 대통령에 당선된 닉슨은 키신저를 안보보좌관으로 지명했다.●공화당, 남부의 중요성을 인식하다 1968년 11월 선거에서 닉슨은 서부와 중서부, 버지니아·플로리다 등에서 승리해서 선거인단 301표를, 험프리는 동북부와 텍사스에서 승리해서 191표를, 그리고 월리스는 남부 5개 주(루이지애나, 앨라배마, 미시시피, 조지아, 아칸소)에서 승리해서 46표를 획득했다. 월리스가 몇 개 주에서 더 승리했으면 대통령 선출이 하원 결선투표로 넘어갈 수 있었다. 급격한 인종통합 정책에 반대하는 남부 백인들은 민주, 공화 양당을 거부하고 인종차별주의자인 월리스를 지지함으로써 그들의 존재를 과시했다. 공화당은 자신들이 동북부에서 지지 기반을 상실해 가고 있으며 그들의 미래가 남부에 달려 있음을 알게 됐다. 남북전쟁 후 민주당의 텃밭이었던 남부에서 험프리는 존슨의 고향인 텍사스에서만 승리했고 인종차별주의자인 월리스가 남부 5개 주에서 승리했으니 일대 사건이 아닐 수 없었다. 평화와 개혁을 희구했던 젊은이들의 요구를 반영하는 데 실패한 민주당은 더욱 보수적인 공화당 정권을 초래하고 말았다. 1970년대 들어 인구 유입이 크게 늘면서 선벨트(Sun Belt)로 불리게 된 남부는 이후 미국 정치를 좌우하게 됐다. 이처럼 1968년 대선은 미국의 정치지형을 크게 바꾸어 놓은 선거다. 이후 오랫동안 백악관은 남부를 장악한 공화당 대통령(레이건, 부시 부자)과 남부 출신 민주당 대통령(카터, 클린턴)이 차지했다. 중앙대 명예교수
  • “베트남 의상도 중국 것”…세계로 뻗는 中 ‘욕심’

    “베트남 의상도 중국 것”…세계로 뻗는 中 ‘욕심’

    올림픽 계기로 재조명된 중국의 ‘문화 공정’문화 공정 ‘뿔난’ 건 한국뿐 아냐베트남, 아오자이 관련 민감 반응중국의 ‘문화 공정’에 화가난 건 한국만이 아니다. 국내 언론들은 13일 현재에도 중국의 한복 공정 관련 소식을 쏟아내고 있다. 그렇다면 외국의 중국 문화 공정 관련 반응은 어땠을까. 베트남 역시 자국 의복인 아오자이에 대한 중국의 문화 공정에 민감한 반응을 보여왔다. 중국 전통 복장인 치파오가 아오자이에 하의를 입지 않은 형태로 보이는 경우가 많아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 것이다. 아오자이는 베트남 전통 의복이다. 바지를 꼭 입어야 하고 과다 노출은 허용하지 않는다. 긴 상의의 하의 밑으로 내려오는 부분의 옆이 트였다. 속바지를 입어야 하며 소매도 길다.  반면 중국 치파오는 서구화의 영향을 받았다. 아오자이와 닮은 긴 상의에 하의는 입지 않는 경우가 많다. 또한 살을 좀 더 드러내고 곡선화돼 있다.● 다 중국 문화? 아오자이 건드린 중국 문제는 중국에서 치파오의 변형된 형태라며 베트남 전통 모자 논라까지 차용해 소개하는 일이 빈번했다는 것이다. 전부 중국의 문화라고 소개하는 셈이다. 베트남 언론 보도에 따르면, 중국 차이나데일리는 2019 춘하 패션위크 중 모 브랜드가 혁신적인 중국 의상이라면서 무대에 올린 의상 사진 몇 장을 포토 기사 형식으로 올렸다. 그러나 베트남 네티즌들은 상의가 아오자이만큼 길고 베트남 모자를 착용했다는 점에 분개했다. 아오자이란 이름 자체가 롱 드레스, 즉 긴 치마란 얘기다. 청나라 복식인 치파오랑은 다른 의미를 가진다.  보도에 따르면, 매체가 옷을 소개하며 베트남식이라는 문구는 없었고 되레 중국식 혁신적 디자인이라고 했다는 점에 자극받은 것이다. 해당 기사는 포토 형식의 패션쇼 전달 기사로 전체 공개 홈페이지에선 현재는 찾아볼 수 없다. 다만 베트남 언론의 보도로 남아 있다. 베트남을 자극한 건 또 있다. 2020년 온라인으로 열렸던 미스어스(Miss Earth)2020 대회에서 중국 참가자가 전통 의상으로 아오자이를 입고 나온 것도 공분을 샀다. 이 참가자는 아오자이로 보이는 흰 복장을 입고 있다. 긴 상의와 바지를 입었는데, 이는 치파오와 다른 디자인이다. 이 참가자와 조직위는 논란을 두고 별도의 발언을 하진 않았다.● 아오자이 공정에 ‘민감’ 베트남 여론은 자국 아오자이를 입거나 논라를 착용하고 단정하지 않은 행동을 하는 것에 대해 자극받는 경향이 짙다. 아오자이를 착용할 경우 노출은 절대 허용하지 않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일부 연예인들도 노출이 있는 아오자이 변형 의상을 입어 베트남 내에서 논란이 됐었다. 다만 베트남 네티즌들이 유독 중국의 아오자이 공정에 민감한 이유는 따로 있다. 중국은 남방공정 프로젝트로 베트남 역사를 자국의 것으로 편입시키려 노력 중이기 때문이다. 조공구이었으니 중국 땅이라는 주장인데, 남비엣은 기원전 196년 중국에 대한 조공관계를 인정했다가 기원전 112년에 이를 철회했었다. 또한 베트남은 남비엣을 자주독립 국가로 강조하고 있다. 반면 중국은 베트남이 지방정권이었다고 자신들의 역사책에 쓰고 있다. 미국 지식 공유사이트 쿠오라(Quora)에 게재된 “왜 중국 치파오는 베트남 아오자이에 바지를 안 입은 것처럼 생겼나요?” 질문에 대해 한 네티즌은 “둘이 같은 원류를 가졌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자신이 뉴욕 브루클린 기술 고등학교에 다녔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작성자는 “치파오는 본래 청나라 시대 중국 상류층 만주족이 입었다”며 “청나라 시대 옷인 이 드레스는 바지와 치마를 아래에 입었다. 하지만 긴 두루마기에 가려져서 보기 힘들었다”고 주장했다. 이는 베트남의 전통 의상 아오자이 복식에 대한 설명과 상이한 개인의 주장이다. 또한 “1920년대 들어 이 드레스는 중국 한족 여성이 입기 시작했다”며 “여성적인 곡선을 더하고 서양화시켰다. 이게 치파오다. 치파오는 이 때부터 바지를 포함하는 등 다양한 스타일을 보인다”고 주장했다. 그는 “아오자이는 청나라 복식을 닮은 옷”이라며 “치파오처럼 같은 기간 내에 현대화됐다. 서양식 복식들과 같은 기간에 존재했다. 베트남에서 아오자이는 치파오처럼 더 날씬한 디자인이 됐다. 그러나 바지는 입었다. 허벅지까지 비워둔 치파오와 달리 아오자이는 허리까지 트인 디자인”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베트남 언론에 따르면, 아오자이는 17세기부터 존재했던 옷이다. 서로 다른 옷감 네 장을 꿰매 몸을 감싼 형태다. 이어 18~20세기 들어 지위를 반영해 디자인을 덧대기도 했다. 현재 우리에게 익숙한 형태의 아오자이는 1960년대 들어 시작됐다. 허리 곡선을 넣고 옆트임을 더했다.
  • 길 잃었나? 병 걸렸나?…프랑스 해안에 떠밀려온 혹등고래 결국 숨져

    길 잃었나? 병 걸렸나?…프랑스 해안에 떠밀려온 혹등고래 결국 숨져

    프랑스 북부 해변에서 거대한 혹등고래가 죽은 채 발견됐다. 10일(현지시간) AFP통신 등에 따르면, 프랑스 포유류 보호협회 ‘CMNF’는 이날 노르파드칼레주 칼레 인근 해변에서 몸길이가 10m에 육박하는 암컷 혹등고래 한 마리가 떠밀려와 죽었다고 밝혔다. 몸무게 최소 20t에서 최대 25t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지만 죽은 고래는 아직 어린 개체였다. 구조대가 출동하긴 했지만, 가진 장비로는 거구의 고래를 다시 바다로 돌려보낼 수 없었다. 결국 고래는 해변에 떠밀려 온 지 불과 몇 시간 만에 질식사했다. 바다와 달리 뭍에서는 무거운 몸을 지탱할 수 없어 폐 등의 장기가 눌려 숨을 제대로 쉴 수 없다.전문가들은 고래가 길을 잘못 들어 해변으로 떠밀려 왔다고 보고 있다. 다만 병에 걸려 방향 감각을 상실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CMNF 측은 “칼레 인근 해변에서 혹등고래가 떠밀려 와 죽은 사례는 거의 없다. 매우 이례적인 사건”이라면서 “해부를 통해 폐사 원인을 밝힐 계획”이라고 밝혔다. 프랑스 동물보호연맹(LPA) 측도 “프랑스 해안으로 혹등고래가 떠밀려 오는 사례는 극히 드물다. 혹등고래 이동 경로는 보통 영국 북부 쪽에 있다”고 설명했다. 당국은 곧 트랙터를 동원해 죽은 고래를 해안선 바깥쪽으로 끌어낼 계획이다. 죽은 고래가 밀물에 휩쓸려 나가면 바다 위를 둥둥 떠다니게 되고 주변을 오가는 선박과 충돌할 가능성이 있다. 한편 혹등고래는 고래목 긴수염고랫과 동물로, 몸길이가 최대 16m에 달하고 몸무게는 30~40t에 이른다. 태평양과 대서양에 주로 분포하며 수명은 60년 정도로 알려졌다.
  • “납치유괴, 제발 멈춰 달라” 범죄단체에 호소한 콜롬비아 정부

    “납치유괴, 제발 멈춰 달라” 범죄단체에 호소한 콜롬비아 정부

    정부가 범죄단체에 납치와 유괴를 중단해달라고 하소연하는 초유의 일이 콜롬비아에서 발생했다. 콜롬비아의 옴부즈맨(국민의 권리가 보호되고 있는지 감시하는 입법부의 위원) 카를로스 카마르고는 7일(현지시간) "납치와 유괴는 인간의 자유와 존엄성을 짓밟는 범죄"라며 "납치와 유괴를 중단하길 무장단체와 범죄조직에 당부한다"고 말했다.  옴부즈맨의 공개 하소연은 영상으로 제작돼 각 언론을 통해 공개됐다. 옴부즈맨이 게릴라 무장단체나 범죄카르텔에 납치와 유괴를 중단해달라고 하소연하긴 이번이 처음이다. 60년 내전에 시달린 콜롬비아에서 납치와 유괴는 2016년 평화협정 이후 최근 최고조에 달하고 있다.  옴부즈맨에 따르면 2월 현재 콜롬비아에서 납치된 사람은 최소한 34명에 이른다. 옴부즈맨은 "보복이 두려워서 또는 납치된 피해자의 생명을 걱정해 신고하지 못한 사건은 더 있을 것"이라며 실제론 납치유괴 피해자가 34명을 훌쩍 웃돌 수 있다고 했다. 관계자는 "납치유괴가 발생하면 가족은 피해자 목숨부터 걱정하게 된다"며 "자칫 불행한 일이 발생할까 신고하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라고 말했다.  그는 "북동부 아라우카 등 아직 국가의 공권력이 확실하게 존재감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지방에선 이런 현상이 더욱 심하다"며 "피해자 목숨이 위험해지는 건 물론 보복을 당할 수도 있어 신고를 포기하는 사람이 많다"고 덧붙였다.   콜롬비아는 유독 납치와 유괴로 인한 역사적 아픔이 큰 나라다. 반세기 넘게 이어진 내전기간 중 무장 게릴라 단체들에게 납치와 유괴는 일명 '투쟁 자금'을 확보하기 위한 주요 수단이었다.  콜롬비아의 반군 게릴라단체 '무장혁명군(FARC)'이 정부와 평화협정을 맺은 2016년 전의 공식 통계를 보면 하루 최대 9건 납치유괴 사건이 발생했다.   평화협정 후 FARC가 무장을 해제하자 콜롬비아는 특별 재판부를 설치, FARC의 인권범죄를 심판하고 있다. 전직 FARC 지휘부가 법정에 선 가운데 재판이 진행 중인 납치사건은 2만1000건에 달한다.   FARC는 무장해제 후 준엄한 법의 심판대에 올랐지만 콜롬비아의 내전은 아직도 사실상 현재진행형이다. 무장해제를 거부한 FARC의 일부 잔존 세력, 무장권력의 공백을 틈 타 태동한 또 다른 게릴라단체, 범죄카르텔 등이 각축을 벌이고 있다. 마약사업과 납치유괴는 이들 조직의 주요 수입원이다.
  • 인천 노포와 손잡은 40대 유학파… 멋 내고 맛 살려 도심재생 총지휘

    인천 노포와 손잡은 40대 유학파… 멋 내고 맛 살려 도심재생 총지휘

    인천 중구 일대는 1883년 개항과 함께 한국 최초의 교회, 초등학교 등 여러 신문물이 처음 도입된 곳이다. 송도, 영종, 검단 등 신도심이 발전하면서 사람 발길이 드문 곳이 돼 버린 오래된 항구도시 인천을 미국 뉴욕이나 영국 리버풀, 일본 요코하마처럼 되살리겠다며 나선 청년이 있다. ‘개항로 프로젝트’라 이름 붙인 구도심 재생 사업을 이끈 이창길씨를 만났다. 수십 년 된 노포와 젊은 감성의 공간을 잇는 ‘개항로 프로젝트’에는 해외에서 박사 학위까지 받은 이창길(44)씨의 경험과 사유가 담겼다. 영국에서 관광을 전공한 이씨는 유학 생활 당시 침대에서 벽에 붙여 놓은 영국 지도를 보다가 대한민국 지도와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도시가 발달하는 과정은 어디나 똑같아요. 인천처럼 항구도시인 뉴욕을 보면 옛날 공장들이 지금은 갤러리, 카페 등으로 다 바뀌었잖아요. 런던에서 화력발전소가 테이트 모던 미술관으로 바뀌고, 요코하마도 변하는 걸 보니까 다음은 인천 차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인천 개항로에서 걸어서 10분이면 바다에 닿지만, 국가시설이다 보니 철조망이 쳐지고 컨테이너가 쌓여 있어 바다라는 느낌을 받기 어렵다. 이씨는 한국 경제의 고도화에 따른 구조 변화로 인천항의 국가 산업시설이 조만간 시민에게 개방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인천시도 인천내항의 1부두와 8부두 재개발 사업으로 해양문화 공간을 조성해 철책에 가로막혔던 바다를 시민에게 돌려준다는 계획을 밝혔다. 학계에 자리잡는 것보다 사업에 재미를 느낀 이씨는 전공을 살려 제주도에 독채 펜션을 설립해 인기를 끄는 등 전국서 경영자문, 숙박업과 같은 다양한 일을 했다. 인천 토박이인 그가 고향으로 눈을 돌려 ‘개항로 프로젝트’를 시작한 것은 지난 2017년이다. 시작은 40년 이상 오로지 한길을 파 온 노포를 소개하는 일이었다. 개항로 프로젝트 사무실 건물에서 걸어서 20분 거리에 있는 노포만도 60곳이 넘었다. 노포는 박제된 공간이 아니라 현재진행형 역사이자 문화유산이라고 생각한 이씨는 노포를 분석하고 직접 어르신들을 찾아 인터뷰했다. 도가니탕, 냉면, 우동 등을 파는 식당부터 목간판 가게, 헌책방, 술집, 재즈 카페까지 노포의 업종은 다양했다. 노포 어르신들과의 협업에 어려움은 없었느냐고 묻자 “처음에는 젊은 애가 찾아와서 가게를 알리고 경쟁력을 높인다는 등의 뜬금없는 말을 하니 사기꾼 취급에 문전박대를 당했다”면서 “노포 어르신들과의 신뢰는 매출 향상으로 쌓았다”고 털어놓았다. 그가 노포에 관심을 두게 된 것은 수십 년 세월이 쌓인 공간과 대대로 내려오는 단골손님, 50년이 넘은 레시피, 주인장과 손님의 추억 등은 대체 불가능하고 흉내 낼 수 없다고 봤기 때문이다. ‘개항로 프로젝트’란 이름으로 만들어진 새로운 15개 공간의 매력도 노포와 함께라면 더 상승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식당, 카페, 술집, 갤러리 등 다양하고도 개성적인 공간이 이씨와 동료들의 협업으로 개항로에 둥지를 틀었다. 임대료가 상승하면 다른 지역으로 쫓겨나는 ‘젠트리피케이션’을 막으려고 건물을 직접 사들였다. 인천시가 계속 매립으로 신도시를 만들어 구도심의 땅값이 쌌기 때문에 가능했다며, 서울시가 부러워할 부분이라고 이씨는 강조했다. 개항로 프로젝트의 대표적인 장소로는 폐업한 산부인과를 카페로 개조한 ‘라이트하우스’와 옛날 방식으로 조리한 통닭을 파는 ‘개항로 통닭’ 등이 있다. 개항로 프로젝트 가운데 최고의 인기와 매출을 자랑하는 곳은 ‘인천맥주’다. 원래 ‘칼리가리’라는 이름으로 시작한 인천 최초의 수제 맥주는 이름을 인천맥주로 바꾼 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맛의 ‘개항로 맥주’를 만들고 있다. 수제 맥주는 향이 진한 에일이 대부분이지만 개항로 맥주는 한국인에게 친숙한 라거다. 또 공급과 유통망 확대를 위해 고군분투했던 그동안의 수제 맥주와 달리 판매를 제한해 인천에서만 살 수 있다. 인천 슈퍼마켓에서는 500㎖ 한 병에 5000원이지만 인천 특급호텔에서는 병당 1만 5000원에 팔린다. 맥아더 장군의 동상이 있는 자유공원으로 오르는 길 초입에 위치한 인천맥주에서는 여름이면 하루 수백 병의 맥주가 나간다. 주말에는 제조시설 바로 위층에서 맥주를 마실 수도 있다. 이씨는 “독일에는 수제 맥주 종류만 8000개가 넘기 때문에 인천맥주를 정의하는 데 가장 많은 시간을 쏟았다”면서 “수제 맥주를 하는 분들은 최고로 멋진 술을 만들려고 하는데, 역발상으로 ‘보편적인 술’을 만들어 지역성을 담았다”고 설명했다. 맥주의 지역성은 노포 어르신들이 살렸다. 개항로 맥주 상표의 글씨는 60년간 목간판을 만든 장인이 쓰고, 광고 포스터 사진 속 모델은 극장 간판을 그리다 은퇴한 화가가 맡았다. 처음에는 이씨를 경계했던 노포 어르신들은 이제 길거리에서 만나면 사업 고민과 계획을 털어놓고 자연스럽게 자문을 구하는 사이가 됐다. 개항로 프로젝트가 진행된 지난 5년 동안 그가 모르는 사이 새롭게 문을 연 가게도 50곳 이상이다. 이 가운데는 식당뿐 아니라 공방이나 지역색을 담은 카페, 갤러리, 문화예술 공간도 많아 개항로를 찾는 재미를 더하고 있다. 유동 인구가 거의 없던 우범 지역이 장사하기 좋은 곳으로 재탄생한 것이다.
  • 푸틴엔 5m 테이블 굴욕, 우크라엔 해법 퇴짜… 체면 구긴 마크롱

    푸틴엔 5m 테이블 굴욕, 우크라엔 해법 퇴짜… 체면 구긴 마크롱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동시다발적으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협상 진전’ 발언을 부인했다. 우크라이나의 전쟁 위기가 장기적 교착 상태로 갈 수 있다는 전망도 제기됐다. 영국 가디언은 8일(현지시간) 마크롱 대통령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으로부터 우크라이나 위기를 고조시키지 않겠다는 개인적인 확답을 받았다고 밝혔지만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모두 회의적이라고 전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 대변인은 마크롱 대통령과의 5시간 넘게 이뤄진 회담 결과와 관련해 “프랑스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며 “현 상황에서 모스크바와 파리는 어떤 합의에도 도달할 수 없다”고 분명한 시각차를 드러냈다. 이어 벨라루스에 파병된 러시아군 3만명의 철군 방침에 대해서도 “아무 약속도 하지 않았다”고 부인했다. 뉴욕타임스(NYT)와 AFP통신 등에 따르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도 마크롱 대통령과의 양자회담 이후 열린 공동 기자회견에서 “(그의) 말을 믿지 않는다”고 발표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와 접촉하며 푸틴, 젤렌스키 대통령 간의 ‘해결사’를 자처한 마크롱 외교가 타격을 받았다는 평가도 나온다. 마크롱 대통령이 언론에 슬쩍 꺼낸 우크라이나의 ‘핀란드화’ 해법은 우크라이나의 반발과 미국의 회의론에 휩싸였다. 이는 1960년대 냉전 시대에 중립을 선언한 핀란드를 모델로, 우크라이나의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가입을 차단하고 러시아의 영향력을 서방이 용인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우크라이나의 강한 반발과 미국의 회의적인 입장으로 마크롱의 입지만 좁아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마크롱 대통령과 푸틴 대통령의 회담 장면은 전 세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패러디가 됐다. 5m 길이의 백색 테이블 양쪽 끝에 앉은 두 정상의 회담 구도가 과거 냉전 시대의 대치를 재현한 듯해 화제가 됐다. 가디언은 이를 상대에게 모욕감을 줄 수 있는 물리적인 구도로 푸틴식 권위의 과시라고 풀이했다. NYT는 “푸틴 대통령이 ‘지속적인 대화’를 약속했지만 앞으로 몇 주 안에 우크라이나를 침공할지 아니면 일부 군대를 철수할지는 (그가) 결정해야 할 것”이라며 “올해 내내 우크라이나 위기와 위협이 지속되는 교착 상태가 이어질 수도 있다”고 장기전 가능성도 제시했다.
  • UN사무총장, 이-팔 평화 공존 강조…“예루살렘 서로의 수도”

    UN사무총장, 이-팔 평화 공존 강조…“예루살렘 서로의 수도”

    “이·팔 문제 단편적으로 접근해선 안돼”이, 팔 영토 불법 점령·정착촌 건설 ‘불법’“두 국가 해법 빠르게 진행…플랜B 없어”하루빨리 ‘두 국가 해법’을 통해 다시 예루살렘을 서로의 수도로 인정하고 평화 공존이 가능한 상태로 나아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유엔(UN)에서 나왔다. 8일(현지시간) 안토니우 구테흐스 UN사무총장은 이날 팔레스타인 민족의 양도할 수 없는 권리(Inalienable Rights) 행사 위원회 개회식에서 “단편적인 접근”으로 팔레스타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며 “오히려 근본적인 해결 없이 갈등을 지속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양측의 갈등만 유발하는 (이스라엘의) 일방적이고 불법적인 행동은 멈춰야 한다”며 “폭력을 유발하는 행동은 아무런 효과도 없을 뿐아니라 전 인류로부터 거부당할 것이다”라고 연설했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오래된 분쟁 상황은 국제 평화와 안보에 중대한 도전이라고 주장했다. 구테흐스 사무총장은 “팔레스타인이 높은 수준의 추방과 폭력, 불안을 경험하고 있다”면서 “팔레스타인 점령지 전체가 전반적으로 정치·경제·안보적 상황이 악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구테흐스 사무총장은 국제사회가 유엔 결의안과 국제법 그리고 양자 합의에 따라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분쟁을 해결하고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을 종식시키기 위한 노력을 “긴급히” 강화할 것을 촉구했다. 그는 지금 계속 진행되고 있는 이스라엘의 정착촌 건설과 팔레스타인 주민들에 대한 철거 및 추방 조치는 모두 불법적인 행위라고 경고했다. 구테흐스 사무총장은 가자지구의 적대행위를 끝내고 경제성장을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직면한 심각한 재정 상황에 대해 우려하며 국가의 제도적 안정성 등이 훼손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유엔팔레스타인난민구호기구(UNRWA)도 팔레스타인이 재정위기를 겪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해 말 마무드 아바스 팔레스타인 수장과 베니 간츠 이스라엘 국방부 장관은 경제·민간 분야 신뢰 구축을 위한 조치를 약속했다. 이에 따라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 물품 등을 지원해주고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이동권을 일부 확대했다. 구테흐스 사무총장은 이러한 결정을 환영하면서도 1860년 안보리 결의안에 따라 전면적으로 가자지구의 폐쇄 문제를 해제할 것을 요구했다. 특히 구테흐스 사무총장은 ‘두 국가 해법’을 언급하며 “1967년 (제3차 중동전쟁) 이전의 국경선을 기준으로 두 나라를 인정하고 예루살렘을 두 국가의 공동 수도로 인정해 평화롭게 나란히 살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외 다른 플랜B는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앞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2017년에 취임하면서 두 국가 해법을 전면 거부하고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인정하는 등 비평화적 행보를 보여왔다. 윤연정 기자
  • 우크라이나 사태 ‘핀란드화’ 논의되는데 의미와 한계

    우크라이나 사태 ‘핀란드화’ 논의되는데 의미와 한계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취재진에게 ‘핀란드화’를 언급했다가 나중에 번복한 것으로 보도돼 눈길을 끌고 있다. 유럽과 러시아 사이에 낀 핀란드처럼 미국과 일본-중국과 러시아 사이에 낄 수 밖에 없는 통일한국이 이런 외교적 태도를 강요받을 수도 있어 관심이 갈 수밖에 없다. 보통 이 표현은 큰 나라들 사이에 낀 작은 나라가 생존하고 주권을 유지하기 위해 취하는 중립적인 외교를 가리킨다. 중립을 표방해 애매모호한 태도를 취하는 행태를 깎아내리는 표현이기도 하다. 1960년대 냉전 시기 핀란드가 소련을 상대로 취했던 외교적 중립을 의미하며, 1871년부터 1940년까지 덴마크와 독일 사이에 있었던 일들을 가리키기도 한다. 독일 정치인들은 미군이 철수한 뒤를 두려워하며 중립을 표방한답시고 애매한 태도를 취하곤 하는 상대를 깎아내릴 때 이 표현을 썼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나토) 국가 정상들이 빌리 브란트의 동방정책을 비판할 때나, 독일이 나토의 상호주의 전략을 의심할 때도 써먹었다. 소련이 해체된 뒤에 1968년 이후 대(對) 소련 정책을 가리킬 때도 마찬가지였다. 1917년 블라디미르 일리치 레닌이 망명했던 핀란드에서 귀국할 때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핀란드역에 도착했을 정도로 국경을 맞댄 두 나라는 문화적으로도 가까웠다. 핀란드가 공산화될지 모른다는 공포가 일상을 짓눌렀다. 가까울수록 공포는 배가돼 지금의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이 공유하는 사회적 대타협을 이뤄내기도 했다. 이런 작은 나라는 생존하기 위해 끊임없이 타협해야 했다. 그 때마다 외교 정책은 표변했다. 1917년 독일 제국의 힘을 빌려 러시아로부터 독립했고, 1918년부터 1920년까지 삼국 협상과 함께 러시아 내전에 선전 포고도 하지 않고 참여했다. 1922년 폴란드와 동맹을 맺었으며, 그 뒤 1939년까지 중립이었던 스칸디나비아 국가와 노선을 공유한 뒤 1940년 소련에 유일하게 대항할 수 있었던 나치 독일과 손잡고 이듬해 ‘계속 전쟁’을 벌였다. 1940년대 후반 이오시프 스탈린과도 협상을 해야 했다. 1991년 소련이 붕괴될 때까지 핀란드의 여러 정당들은 이를 운명처럼 받아들였다. 다른 나라의 모욕도 견뎌내야 했다. 자기들 딴에는 ‘서방 세계를 자극하지 않으면서 동구권과 친하게 지내기 위한 예속’으로 표현했지만 ‘예속은 예속이었다.’ 소련의 압박에도 핀란드는 1947년 파리 조약을 통해 민주주의와 의회주의를 유지할 수 있게 됐다. 이 때부터 소련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유호 쿠스티 파시키비의 정책을 따라 이듬해 협정을 체결했다. 핀란드는 독일 및 동맹국의 핀란드 및 소련을 향한 공격에 저항할 의무가 있고, 필요하면 소련의 힘을 빌릴 수 있었다. 이 협정에 의거해 마샬 계획에 참가하지 않았고, 소련의 대외 정책에 대해서도 중립을 취했다. 나토에 가입하지 않고도 좋은 관계를 유지했기에 바르샤바 조약에 참가하지 않아도 됐다. 소련에 반대하는 대중매체를 검열했고, 정치인과 기자들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소련의 행동이나 정치범 억압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소련에 반대하는 책은 유통도 안되고 금서 목록이 관리됐다. 소련에 반대하는 영화도 상영할 수 없어 1962년 존 프랑켄하이머가 연출한 ‘더 만추리안 캔디데이트’, 1970년 카스파 뢰데가 연출한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1986년 레니 하를린이 감독한 ‘본 아모리칸’ 등이 상영되지 못했다. 유엔 인권선언이 보장한 정치인 망명도 러시아인에 대해 허용하지 않아 망명을 원하는 러시아인을 돌려보냈다. 1985년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집권한 뒤에야 핀란드의 대중매체는 소련을 비판하기 시작했다. 고르바초프는 중부유럽에 비(非) 공산주의 정권이 들어서는 것을 용납할 수 있다면서 핀란드를 하나의 예로 들었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가 8일(이하 현지시간) 보도한 데 따르면 마크롱 대통령은 전날 푸틴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참석 차 모스크바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기자들에게 “우크라이나를 ‘핀란드화’하는 것이 긴장 해소 방안 중 하나로 검토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마크롱 대통령은 다음날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만나서는 이런 발언을 한 사실이 없다고 부인했다. 그러나 핀란드화는 이미 우크라이나 위기를 풀 해법으로 외교가에서 논의되고 있다고 NYT는 전했다. 소련의 일원이었던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영향력을 거부한 채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점점 더 서방에 기울고 있고, 나토에 가입하는 것을 궁극적인 목표로 삼고 있다. 나토의 동진에 민감한 러시아로서는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등의 나토 가입을 배제하고, 인근 국가에 공격 무기를 배치하지 않는다는 약속을 담은 안전보장 협정을 최근 미국과 나토 측에 요구하고, 우크라 접경 지대에 13만명에 이르는 병력을 배치해 전쟁 위기를 고조시키고 있다.NYT는 이런 상황에서 핀란드화는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가능성을 차단하는 카드가 될 수 있다고 봤다. 싱크탱크 대서양위원회의 안나 비슬란더 대서양국장은 “이 모든 것이 우크라이나가 열망해 온 것과는 어긋나는 것”이라며 “(핀란드화는) 나토와 유럽연합(EU)에 가입하려는 장기적인 정치적 목표에서 크게 선회하는 일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영국 싱크탱크 왕립국제문제연구소(채텀하우스)의 리처드 휘트먼 연구원도 마크롱 대통령이 제기한 방안은 “우크라이나인들이 이해할 수 없는 결정에 따라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라며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런데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크림반도를 침공했던 2014년에 이미 해결 방안 중 하나로 핀란드화를 제안한 바 있다. 키신저 전 장관은 당시 언론 기고문에서 “우크라이나가 살아남으려면 어느 쪽에 붙어서 상대를 향한 교두보가 되기보다 양측을 연결하는 다리가 돼야 한다”고 주장하며, 확실한 독립국가로 서방과 협력하면서도 러시아에 대한 적대 관계는 조심스럽게 피하고 있는 핀란드를 본뜨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마크롱 대통령이 “러시아의 안전이 없다면 유럽의 안전도 없다”고 말하면서 러시아의 우려를 인정할 필요가 있음을 내비쳤다고 밝혔다. 또 “러시아는 유럽이다. 유럽을 믿는 사람이라면 러시아와 협력하는 방법을 알고 유럽의 미래를 건설하는 방안을 찾아내야 한다”고 말했다고 지적했다. 가디언은 우크라이나는 핀란드와 달리 사실상 외부 강대국들에게서 중립국 지위를 취하라고 요구받게 되는 것이라며 러시아와의 험난한 관계, 동부 돈바스의 무력분쟁을 고려하면 우크라이나가 제2의 핀란드가 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고 비판했다. 이 매체는 또 협정 이행을 위해서는 2014~2015년 러시아에서 분리를 주장하는 공화국들을 통합하기 위해 마련된 우크라이나 법과 헌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우크라이나 관리들은 러시아에 국내외 정책을 컨트롤할 수 있는 지렛대를 줌으로써 자국 주권을 심각히 침해할 수 있으며 이 협정은 인기가 없어 그것을 이행하려고 하는 어떤 정부도 붕괴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푸틴 대통령은 “그나마 현실적인 해결책”이라고 반겼다. 그것만으로도 미국과 유럽이 선뜻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가 될 것 같다.
  • 사람 발길 끊겼던 인천 구도심, 장사 잘되는 곳으로 되살리다

    사람 발길 끊겼던 인천 구도심, 장사 잘되는 곳으로 되살리다

    인천 중구 일대는 1883년 개항과 함께 한국 최초의 교회, 초등학교 등 여러 신문물이 처음 도입된 곳이다. 송도, 영종, 검단 등 신도심이 발전하면서 사람 발길이 드문 곳이 되어버린 오래된 항구도시 인천을 미국 뉴욕이나 영국 리버풀, 일본 요코하마처럼 되살리겠다며 나선 청년이 있다. ‘개항로 프로젝트’라 이름 붙인 구도심 재생 사업을 이끈 이창길씨를 만났다.수십 년 된 노포와 젊은 감성의 공간을 잇는 ‘개항로 프로젝트’에는 해외에서 박사학위까지 받은 이창길(44)씨의 경험과 사유가 담겼다. 영국에서 관광을 전공한 이씨는 유학 생활 당시 침대에서 벽에 붙여놓은 영국 지도를 보다가 대한민국 지도와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도시가 발달하는 과정은 어디나 똑같아요. 인천처럼 항구도시인 뉴욕을 보면 옛날 공장들이 지금은 갤러리, 카페 등으로 다 바뀌었잖아요. 런던도 화력발전소가 테이트모던 미술관으로 바뀌고, 요코하마도 변하는 걸 보니까 다음은 인천 차례란 생각이 들었어요.” 인천 개항로에서 걸어서 10분이면 바다에 닿지만, 국가시설이다 보니 철조망이 쳐져 있고 컨테이너가 쌓여 있어 바다란 느낌을 받기 어렵다. 이씨는 인천항의 국가 산업시설이 한국 경제의 고도화에 따른 구조 변화로 조만간 시민에게 개방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인천시도 인천내항의 1부두와 8부두 재개발 사업을 통해 해양문화 공간을 조성하여 철책에 가로막혔던 바다를 시민에 돌려준다는 계획이다. 학계에 자리 잡는 것보다 사업에 재미를 느낀 이씨는 전공을 살려 제주도에 독채 팬션을 설립해 인기를 끄는 등 전국서 경영자문, 숙박업과 같은 다양한 일을 했다. 인천 토박이인 그가 고향인 인천에 눈을 돌려 ‘개항로 프로젝트’를 시작한 것은 지난 2017년이다.시작은 40년 이상 오로지 한 길을 파온 노포를 소개하는 것이었다. 개항로 프로젝트 사무실 건물에서 걸어서 20분 거리에 있는 노포만도 60군데가 넘었다. 노포는 박제된 공간이 아니라 현재진행형 역사이자 문화유산이라고 생각한 이씨는 노포를 분석하고 직접 어르신들을 찾아 인터뷰했다. 도가니탕, 냉면, 우동 등을 파는 식당부터 목간판가게, 헌책방, 술집, 재즈카페까지 노포의 업종은 다양했다. 노포 어른신들과의 협업에 어려움은 없었느냐고 묻자 “처음에는 젊은 애가 찾아와서 가게를 알리고 경쟁력을 높인다는 등의 뜬금없는 말을 하니 사기꾼 취급에 문전박대를 당했다”면서 “노포 어르신들과의 신뢰는 매출 향상으로 쌓았다”고 털어놓았다. 그가 노포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수십 년 세월이 쌓인 공간과 대대로 내려오는 단골손님, 50년이 넘은 레시피, 주인장과 손님의 추억 등은 대체 불가능하고 흉내 낼 수 없다고 봤기 때문이다. ‘개항로 프로젝트’란 이름으로 만들어진 새로운 15개 공간의 매력도 노포와 함께라면 더 상승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식당, 카페, 술집, 갤러리 등 다양하고도 개성적인 공간이 이씨와 동료들의 협업으로 개항로에 둥지를 틀었다. 임대료가 상승하면 다른 지역으로 쫓겨나는 ‘젠트리피케이션’을 막으려고 건물은 직접 사들였다. 인천이 계속 매립으로 신도시를 만들어 구도심의 땅값이 쌌기 때문에 가능했다며, 서울시가 부러워할 부분이라고 이씨는 강조했다. 개항로 프로젝트의 대표적인 곳은 폐업한 산부인과를 카페로 개조한 ‘라이트하우스’와 옛날 방식으로 조리한 통닭을 파는 ‘개항로 통닭’ 등이 있다. 개항로 프로젝트 가운데 최고의 인기와 매출을 자랑하는 곳은 인천맥주다.원래 ‘칼리가리’란 이름으로 시작한 인천 최초의 수제 맥주는 이름을 인천맥주로 바꾼 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맛의 ‘개항로 맥주’를 만들고 있다. 수제 맥주는 향이 진한 에일이 대부분이지만, 개항로 맥주는 한국인에게 친숙한 라거다. 또 공급과 유통망 확대를 위해 고군분투했던 그동안의 수제 맥주와 달리 판매를 제한해 인천에서만 살 수 있다. 인천 슈퍼마켓에서는 500㎖ 한 병에 5000원이지만, 인천 특급호텔에서는 병당 1만 5000원에 팔린다. 맥아더 장군의 동상이 있는 자유공원으로 오르는 길 초입에 위치한 인천맥주에서는 여름이면 하루 수백 병의 맥주가 나간다. 주말에는 제조시설 바로 위층에서 맥주를 마실 수도 있다. 이씨는 “독일에는 수제 맥주 종류만 8000개가 넘기 때문에 인천맥주의 정의를 정하는 데 제일 많은 시간을 쏟았다”면서 “수제 맥주를 하는 분들은 최고의 멋진 술을 만들려고 하는 데, 오히려 역발상으로 ‘보편적인 술’을 만들어 지역성을 담았다”고 설명했다. 맥주의 지역성은 노포 어르신들로 살렸다. 개항로 맥주 상표의 글씨는 60년간 목간판을 만든 장인이 썼고, 광고 포스터 사진 속 모델은 극장 간판을 그리다 은퇴한 화가다. 처음에는 이씨를 경계했던 노포의 어르신들은 이제 길거리에서 만나면 사업 고민과 계획을 털어놓고 자연스럽게 상담을 구하는 사이가 됐다. 개항로 프로젝트가 진행된 지난 5년 동안 그가 모르는 사이 새롭게 문을 연 가게도 50곳 이상이다. 이 가운데는 식당뿐 아니라 공방이나 지역색을 담은 카페, 갤러리, 문화예술 공간도 많아 개항로를 찾는 재미를 더하고 있다. 유동인구가 거의 없던 우범 지역이 장사하기 좋은 곳으로 재탄생한 것이다.
  • [마감 후] ‘세대’ 신화에 휘둘리는 국가정책/강국진 사회정책부 차장

    [마감 후] ‘세대’ 신화에 휘둘리는 국가정책/강국진 사회정책부 차장

    ‘응답하라 1988’이라는 드라마가 있었다. 이 드라마를 무척이나 좋아하는 아내 말로는 그 시절을 경험했던 수많은 40~50대가 이 드라마를 보면서 추억에 젖었다고 한다. 이 드라마를 사랑하는 많은 분들이 서운해할지 모르겠지만 솔직히 이 드라마에 공감 가는 부분이 별로 없었다. ‘그때는 그랬지’ 하는 감상에 빠진 적도 없고 뭔가 아련한 향수 비슷한 냄새가 난 적도 없다. ‘고증’으로 승부를 걸었다는 이 드라마의 첫인상을 떠올리자면 서울 도봉구 쌍문동에 산다는 등장인물들이 거의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게 참 기묘하다는 정도. 당시 정부 취향을 맞춘 건가 싶었다. 어린 시절 고무신을 신고 다니다 아궁이에 얹은 솥단지로 지은 밥을 먹고, 잠잘 때마다 천장에서 들리는 생쥐 소리 때문에 층간소음으로 고통받았던 촌놈으로선 1980년대 후반 도시생활 풍경에 공감대가 생길 리가 없다. 명색이 국가에서 관리·운영한다는 국도(國道)가 쌍팔년 즈음해서야 겨우 포장도로가 됐던 전라도 출신에겐 드라마에 자연스럽게 등장하는 포장도로조차 낯선 물건일 뿐이다. 물론 같은 시대를 살았다는 건 누구에게나 엄청나게 큰 의미를 갖는다. 강력한 공통 경험은 공감대를 넓혀 주고 비슷한 사고방식까지도 갖게 해 주는 힘이 있다. 가령 40대는 젊어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극적인 승리를 목격했고, 민주화라는 성과와 뒤이은 퇴행을 겪었다. 두 차례 거대한 촛불집회와 대통령 탄핵이라는 흔치 않은 경험 역시 빼놓을 수 없겠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세대 전체를 단일한 집단이나 되는 것처럼 한 묶음으로 처리하는 건 과연 얼마나 타당할까. 586세대나 MZ세대처럼 상식처럼 통용되는 각종 ‘세대 담론’은 허점이 너무 많다. ‘응답하라 1988’에 등장하는 고등학생 주인공들에 해당하는 ‘586세대’만 해도 그렇다. 1960년대에 태어나 고도성장기에 취직해 기득권을 누리고 있다는 게 ‘586세대론’의 핵심이지만 실제로는 20대와 함께 비정규직 비율이 가장 높은 연령대가 현재 50대다. 젊어서 대학에서 학생운동을 했다는 걸 586세대 특징인 양 얘기하는 것도 그렇다. 대학진학률은 1988년에 딱 35%였다. 50%를 처음 넘긴 것도 1995년이었다. 1980년대 대학에 가서 학생운동에 참여한 사람을 절반이라고 가정하더라도 50대 가운데 20%가 채 안 된다. 다르고 낯선 존재를 손쉽게 재단하고 싶은 욕망에 편승한 작명가들은 386세대, 신세대, X세대, Y세대, Z세대, 모래시계세대, 미생세대 등 각종 신제품으로 호객행위에 열심이다. 과연 요즘 한참 잘나가는 ‘MZ세대 담론’은 뭐가 얼마나 다를까. 호사가들은 새롭고 다르다는 걸 입증하려고 온갖 근거를 갖다 붙이지만 솔직히 ‘혈액형 성격론’만큼이나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다. ‘이대남’ 얘기가 많지만 역시나 이들을 거대한 동일집단으로 묶는 것도 말이 되지 않는다. 대학 등록금 마련을 위해 주유소에서 아르바이트하는 20대에게는 외제차를 몰고 다니는 동갑내기보다 오히려 주유소에서 함께 일하는 50~60대 계약직 아저씨들이 훨씬 동질적인 집단이 아닐까. 20대 내부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계급적 차이에 주목하는 정책이 아쉬운 이유다. 호사가들의 ‘자기 충족적 예언’에 휘둘려 정부조차 MZ세대 노래를 부르는 건 이제 그만 봤으면 좋겠다.
  • 이승만 양아들 부부, 이승만 저서 저작권 사기 혐의로 피소

    이승만 양아들 부부, 이승만 저서 저작권 사기 혐의로 피소

    이승만 양아들 부부 사기 혐의로 피소이승만 저서 ‘재팬 인사이드 아웃’ 관련고소인 “저작권 없는데 양도 계약”이승만 전 대통령의 양아들인 이인수(91) 박사 부부가 이 전 대통령의 저서와 관련한 저작권 사기 혐의로 피소됐다. 출판사 광창미디어 대표인 신우현(50)씨는 지난달 10일 이 박사와 아내 조혜자 여사를 사기 혐의로 서울 혜화경찰서에 고소했다고 7일 밝혔다. 이 박사의 장남인 이병구씨에 대해서도 신씨가 작성한 교감본을 온라인 사이트에 무단으로 게시했다며 저작권법 위반 혐의로 함께 고소장을 제출했다. 신 대표는 2017년 5월 이 박사로부터 이 전 대통령의 저서인 ‘재팬 인사이드 아웃’의 저작권을 2036년까지 300만원에 양도받는 저작권 양도 계약을 체결했다. 재팬 인사이드 아웃은 1941년 이 전 대통령이 국제 정세를 분석해 출간한 저서로 일본의 진주만 공격을 예측한 내용이 담겨 있다. 이 전 대통령은 1960년 미국 하와이에서 작성한 유언장에서 재팬 인사이드 아웃의 저작권을 아내 프란체스카 여사에게 상속하겠다고 밝혔다. 이후 1992년 프란체스카 여사가 별세하며 저작권은 양아들인 이 박사에게 넘어갔지만 이 박사가 재산 상속을 포기하면서 저작권은 애초부터 이 박사의 자녀가 소유하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신 대표는 이 박사가 책의 저작권을 갖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계약 체결 과정에서 알리지 않아 금전적 손해를 입었다고 소송 이유를 밝혔다. 지난해 법원은 신 대표가 제기한 민사소송에서 책의 저작권이 이 박사의 자녀에게 있어 저작권 양도 계약의 취소가 적법하다고 판단한 바 있다. 이날 경찰에 출석한 신씨는 “12년 동안 이 전 박사의 저서를 연구한 가치가 무용해졌고 그 성과물을 강탈 당했다”이라며 “이 전 박사가 재산 상속을 포기했다는 사실을 미리 고지했다면 저작권 양도 계약을 맺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 [중견기자 칼럼]‘세대’ 신화에 휘둘리는 국가정책

    [중견기자 칼럼]‘세대’ 신화에 휘둘리는 국가정책

    ‘응답하라 1988’이라는 드라마가 있었다. 이 드라마를 무척이나 좋아하는 아내 말로는 그 시절을 경험했던 수많은 40~50대가 이 드라마를 보면서 추억에 젖었다고 한다. 이 드라마를 사랑하는 많은 분들이 서운해할지 모르겠지만 솔직히 이 드라마는 재미없었다. ‘그 때는 그랬지’ 하는 감상에 빠진 적도 없고 뭔가 아련한 향수 비슷한 냄새가 난 적도 없다. ‘고증’으로 승부를 건다고 홍보하면서도 박근혜 정부 시절 드라마 아니랄까봐 서울 도봉구 쌍문동에 산다는 등장인물들이 거의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게 참 기묘하다는게 첫인상이었다. 어린 시절 고무신을 신고 다니다 아궁이에 얹은 솥단지로 지은 밥을 먹고, 밤마다 천장에서 들리는 생쥐 소리 때문에 층간소음으로 고통받았던 촌놈으로선 80년대 후반 도시생활 풍경에 공감대가 생길 리가 없다. 명색이 국가에서 관리·운영한다는 국도(國道)가 쌍팔년 즈음해서야 겨우 포장도로가 됐던 전라도 출신에겐 드라마에 자연스럽게 등장하는 포장도로조차 낯선 물건일 뿐이다. 물론 같은 시대를 살았다는 건 누구에게나 엄청나게 큰 의미를 갖는다. 강력한 공통 경험은 공감대를 넓혀주고 비슷한 사고방식까지도 갖게 해주는 힘이 있다. 가령 40대는 젊어서 노무현 대통령의 극적인 승리를 목격했고, 민주화라는 성과와 뒤이은 퇴행을 겪었다. 두 차례 거대한 촛불집회와 대통령 탄핵이라는 흔치 않은 경험 역시 빼놓을 수 없겠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세대 전체를 단일한 집단이나 되는 것처럼 한 묶음으로 처리하는건 과연 얼마나 타당할까. 586새대나 MZ세대처럼 상식처럼 통용되는 각종 ‘세대 담론’은 헛점이 너무 많다. ‘응답하라 1988’에 등장하는 고등학생 주인공들에 해당하는 ‘586세대’만 해도 그렇다. 1960년대에 태어나 고도성장기에 취직해 기득권을 누리고 있다는게 ‘586세대론’의 핵심이지만 실제로는 20대와 함께 비정규직 비율이 가장 높은 연령대가 50대다. 젊어서 대학에서 학생운동을 했다는걸 586세대 특징인양 얘기하는 것도 그렇다. 대학진학률은 1988년에 딱 35%였다. 50%를 처음 넘긴 것도 1995년이었다. 1980년대 대학에 가서 학생운동에 참여한 사람을 절반이라고 가정하더라도 50대 가운데 20%가 채 안된다. 다르고 낯선 존재를 손쉽게 재단하고 싶은 욕망에 편승한 작명가들은 ‘386세대’ ‘신세대’ ‘X세대’ ‘Y세대’ ‘Z세대’ ‘모래시계 세대’ ‘미생 세대’ 등 각종 신제품으로 호객행위에 열심이다. 과연 요즘 한참 잘나가는 ‘MZ세대 담론’은 뭐가 얼마나 다를까. 호사가들은 새롭고 다르다는 걸 입증하려고 온갖 근거를 갖다 붙이지만 솔직히 ‘혈액형 성격론’ 만큼이나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다. 많게는 수백만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나이 하나로만 갈라치려다 보니 온갖 무리수가 안 나올 수가 없다. 1990년대엔 30대를 ‘감각적인 신세대와 옛 세대 사이에 낀, 활자와 비디오 사이에 낀 세대’로 규정하는 얘기를 자주 볼 수 있었는데 그들이 지금은 꼰대의 대표주자처럼 놀림받는 50대다. ‘민주화에 헌신적이었던 386(지금은 586)’과 구분되는 ‘이기적이고 타인과 현실정치에는 무관심한 신세대’라는 분석이 유행한 적도 있었다. 그 신세대가 지금은 정치참여에 가장 적극적이라는 40대다. 그러고보니 ‘탈정치화된 신세대’라는 레파토리는 요즘 유행하는 ‘이대남’ 담론과 꽤 닮았다. 애초에 20대를 거대한 동일집단으로 보는게 가능한지부터 따져볼 노릇이다. 오히려 20대 내부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계급적 차이에 주목하는 정책이 아쉽다. 대학 등록금을 마련하려고 주유소에서 아르바이트하는 20대에게는 외제차를 몰고 다니는 동갑내기보다 오히려 주유소에서 함께 일하는 50~60대 계약직 아저씨들이 훨씬 동질적인 집단이 아닐까. 호사가들의 ‘자기 충족적 예언’에 휘둘려 정부조차 MZ세대 노래를 부르는 건 이제 그만 봤으면 좋겠다.
  • 머리 복잡할 때 한 대, 두 대 피우는 담배가 바보 만든다

    머리 복잡할 때 한 대, 두 대 피우는 담배가 바보 만든다

    질병관리본부의 ‘국민건강영양조사’ 통계를 살펴보면 20년 전과 비교했을 때 전반적으로 흡연인구는 꾸준히 줄고 있는 추세이다. 최근에는 전통적인 담배보다는 전자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많다. 흡연자들은 머리가 복잡하거나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담배를 피워 긴장을 푼다고들 한다. 그렇지만 실제로는 한 대, 두 대 피우는 담배가 인지기능을 급격히 저하시키는 원인이라는 분석결과가 나왔다. 미국심장학회 연구진은 흡연자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인지기능이 절반 이하 수준을 보이며 특히 60세 이상 성인들에게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고 7일 밝혔다. 이 같은 연구결과는 오는 2월 8~11일 미국 뉴올리언스에서 열리는 ‘전미 뇌졸중협회 2022 컨퍼런스’에서 발표된다. 연구진은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1960년대 초부터 시작한 국가건강영양검사(NHANES) 데이터를 바탕으로 각종 질병과 인지능력의 상관관계를 분석했다. 그 다음 2011~2014년 검사에 참여한 사람 중 남녀 3244명을 무작위로 선정해 숫자-기호대체측정(DSST), 설문조사와 함께 건강지표를 비교했다. 연구팀은 특히 니코틴보다 혈액에 훨씬 오래 잔류해 있는 코티닌 농도와 인지능력에 주목했다. DSST는 단어기억력, 유창성, 처리속도, 주의력, 작업기억력 등 인지기능의 여러 측면을 조사하는데 유용하다. 그 결과 혈중 코티닌 수준이 높은 경우 DSST 점수가 비흡연자보다 현저하게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코티닌 수치가 높은 이들은 고혈압이나 성인당뇨로 인한 인지장애나 혈관성 치매 환자와 비슷한 수준으로 확인됐다. 더군다나 흡연은 고혈압과 성인당뇨의 원인이 되기도 하기 때문에 인지기능 장애와 함께 동시에 만성 성인질환의 직접적 원인이 되는 것이라고 연구팀은 설명했다. 이 같은 인지기능 장애는 흡연 시작과 함께 진행되며 특히 60대 이상에서 흡연자의 인지기능은 더 빠른 속도로 낮아지는 것으로 확인됐다. 닐 파리크 코넬대 의대 교수(신경과학)는 “성인당뇨나 고혈압 같은 기저질환이 없더라도 흡연을 하는 사람은 심혈관질환 뿐만 아니라 뇌건강에도 치명적이다”며 “모든 연령대에서 흡연은 백해무익한 만큼 의학적 상담과 치료를 받아서라도 금연을 시작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 [김승복의 책으로 만난 사람들] 책방지기로 사는 제2의 인생/일본 쿠온출판사 대표

    [김승복의 책으로 만난 사람들] 책방지기로 사는 제2의 인생/일본 쿠온출판사 대표

    출판사를 창업한 사람들 모임의 회원이 되었습니다. 40년이 다 된 모임이라 초창기 멤버는 70대, 80대도 있고 이미 2세 경영으로 30대, 40대 회원이 있는가 하면 저처럼 도중에 참가한 창업 연수가 짧은 멤버도 있습니다. 그림책을 주로 내는 출판사, 외국어 학습서를 내는 곳, 각종 데이터를 디지털화해 서비스하는 곳, 월급생활자를 대상으로 한 책만을 내는 곳, 가정문제 전문 출판사, 법률도서 전문 출판사를 비롯해 60년 이상 출판 에이전트를 하고 있는 베테랑 여성도 회원입니다. 두 달에 한 번씩 만나 각 사의 근황과 고민들을 이야기하는 동업자들의 고해소 같은 모임입니다. 오늘은 이 모임에서 만난 그림책 전문 출판사 사장이었던 요시이 야스후미와 역시 출판사 사장을 지낸 다마코시 나오토의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두 사람이 회사를 그만두고 어린이 책 전문 책방 ‘푸른 손가락’을 차렸습니다. 올해 1월 5일 일본 도쿄 기치조지에 오픈한 새내기 책방입니다. 기치조지는 도쿄 사람들이 가장 살고 싶은 곳이라고도 하지요. 공원도 많고 작은 셀렉트 숍들이 많은 곳입니다. 상점들이 쭉 늘어선 곳에 ‘푸른 손가락’이 문을 활짝 열고 사람들을 맞이합니다. 추운 겨울날이지만 코로나로 인해 도쿄도 어느 가게나 문을 활짝 열어놓고 있습니다. ‘푸른 손가락’은 레지스탕스였던 프랑스의 작가 모리스 드뤼옹이 1968년에 쓴 동화책입니다. 주인공 지토가 엄지손가락을 대면 싹이 나고 꽃이 피는 신기한 일들이 일어납니다. 심지어 대포 속에 씨앗을 넣어 두기도 합니다. 반전을 노래하는 유명한 책이지요. 70대 책방지기들이 책 제목을 빌려와 책방 이름으로 쓴 의도를 두루 짐작해 봅니다. 두 사람이 일흔 살이 된 것을 기념해 책방에서 책을 파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70년을 살다 보니 내가 해야 할 일이 아이들에게 책을 권하는 일”이라고 하시더군요. 이들은 모임에서 만났을 때도 자신들이 읽은 책 이야기를 늘 신나게 하셨던 분들이었습니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읽고 조세희 작가의 다른 작품을 읽고 싶다고도 하셨습니다. 한국 사람들도 조 작가의 작품을 기다리고 있다고 전해드렸지요. 8평짜리 책방은 진열대도 테이블도 아이들 키에 맞추어 참 낮습니다. 그러나 책장이나 테이블이 중후한 목재여서 어른들의 서재 같은 느낌도 주었습니다. 같은 책을 여러 권 쌓아 두거나 하지 않아 한 권 한 권 표지가 잘 보였습니다. 손님도 책도 존중을 받는 그런 책방이었습니다. 얼마 전 아홉 살 손님이 와서 “좋은 책 있어요?” 하고 물었는데 바로 대답을 못해 다음날부터는 두 시간 일찍 책방에 나와 ‘오늘의 추천도서’를 고르고 책 읽는 시간을 갖고 있다고 합니다. 여러분, 도쿄에 오시면 꼭 ‘푸른 손가락’에도 들러 보시기 바랍니다. “좋은 책 있나요” 하고 물어도 보시구요.
  • 모니터 166개 너머 콜라주… 빛의 거북, 동해를 홀리다

    모니터 166개 너머 콜라주… 빛의 거북, 동해를 홀리다

    울산시립미술관, 전용관 첫 설치대왕암공원서 백남준 ‘거북’ 소개 광주시립미술관, ZKM 95점 구성1988년 작품 ‘스크린 자전거’ 주목온통 깜깜한 사방에서 점 하나가 다가온다. 갈수록 커지는 점은 흰 별들을 흩뿌리더니 마침내 공간 전체를 잡아먹을 듯이 거대해진다. 검은색과 흰색으로 구성된 우주에서 크고 작은 먼지가 흩어졌다가 나타나고, 다시 커졌다가 사라진다. 관객은 92평 크기의 전시관을 벗어나 먼 우주를 떠다니는 느낌을 받는다. 울산시립미술관에서 펼쳐지는 알도 탐벨리니의 작품 ‘우리는 새로운 시대의 원주민들이다’의 일부다. 국내 곳곳에서 해외의 수준급 미디어아트를 볼 수 있는 전시가 열려 눈길을 끈다. 지역미술관들이 기존 미술품과 다른 미디어아트를 전시 주요 테마로 내걸면서 관람객의 오감을 만족시킨다. 특히 지난달 6일 개관한 울산시립미술관은 한 달 만에 관람객 4만 2000명을 돌파하며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미래형 미술관’을 표방한 이곳은 국내 공공미술관 최초로 미디어아트 전용관을 설치해 차별성을 뒀다. 오는 4월까지 총 5개 전시관에서 다양한 개관 기념 전시를 선보인다. 미술관은 탐벨리니 외에도 개관 특별기획전 ‘포스트 네이처: 친애하는 자연에게’를 통해 전 세계에서 중요한 화두인 자연과의 공생을 주제로 한 작품을 소개한다. 히토 슈타이얼의 ‘이것이 미래다’, 정보의 ‘양치류 식물’ 등 독특한 설치 작품이 눈길을 끈다.대왕암공원 옛 울산교육연수원에서 펼쳐지는 미술관 소장품전 ‘찬란한 날들’은 작품을 푸른 파도와 함께 한눈에 감상할 수 있도록 절묘하게 기획했다. 단연 눈길을 끄는 건 건물 강당에 떡하니 자리잡은 백남준의 대작 ‘거북’이다. 미술관 1호 소장품이기도 한 이 작품은 모니터 166개로 구성됐는데, 동해를 바라보는 거북의 위로 백남준 특유의 콜라주 영상이 반복적으로 지나가며 신비로움을 준다. 광주에서는 미디어아트의 60년 역사를 한눈에 살피는 전시가 진행 중이다. 광주시립미술관의 ‘미래의 역사쓰기: ZKM 베스트 컬렉션’ 전은 독일의 세계적 미디어아트센터 ZKM의 핵심 소장품을 선보인다. 1960년대부터 현재까지 미디어아트 역사에서 방점을 찍은 작품 95점으로 구성됐다.제프리 쇼의 ‘읽을 수 있는 도시’는 실내용 자전거에 대형 스크린을 연동시켜 페달을 밟거나 핸들을 돌릴 때마다 스크린 속 이미지가 움직인다. 오늘날 스크린골프의 원리와도 비슷한 이 작품이 만들어진 건 1988년. 관객의 움직임에 따라 이미지가 반응하는 인터랙티브 기술이 이때 이미 반영됐다는 뜻이다. 발터 지에르스의 1990년작 ‘더 하우스’는 건물 속 현대인의 일상을 표현했다. 작품 앞에 선 관객의 동작에 따라 방의 불이 하나둘 깜빡이고, 옆에 설치된 스피커에서는 코 고는 소리까지 들린다. 이 외에도 게리 힐, 스타이나, 우디 바슐카,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빌 비올라, 백남준, 브루스 나우만, 제니 홀저, 토니 오슬러 등 새로운 기술이 나타날 때마다 이를 예술에 접목한 선구자들의 작업이 펼쳐진다.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에 이어 확장현실(XR)과 메타버스까지 등장한 21세기 관객의 눈으로 보면 언뜻 엉성하고 촌스러워 보이기도 하지만, 이미 수십년 전에 ‘매체’에서 ‘미학’을 추구하려 했던 거장들의 실험 정신이 돋보인다. 4월 3일까지.
  • [단독] “팔 저항은 테러 아닌 평등권 찾기 ‘여정’… 韓이 일제에 맞선 것처럼”

    [단독] “팔 저항은 테러 아닌 평등권 찾기 ‘여정’… 韓이 일제에 맞선 것처럼”

    팔·이 전쟁 본질 ‘정착민 식민주의’영미 지원 ‘시온주의’가 팔 몰아내팔, 굴복 않고 저항 100년 전쟁 계속 평화협상 과정 정의·평등과 ‘거리’美·이, 팔 존재 자체를 인정안해 美, 중동 영향력 약화… 러·中 경쟁팔, 분열 봉합 민족운동 통일 필요“팔레스타인인의 저항은 테러가 아니고 평등권을 찾기 위한 본능적인 움직임입니다. 한국이 일제강점기 일본에 끝까지 맞서 싸운 것처럼요.” 세계적으로 저명한 중동 문제 전문가이자 역사학자인 라시드 할리디(73)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는 지난달 19일 서울신문과의 단독 화상 인터뷰에서 이렇게 비유했다. 팔레스타인계 미국인인 할리디 교수가 지난해 11월 한국에서 낸 저서 ‘팔레스타인 100년 전쟁’은 앞서 2020년 출간 후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오른 화제작이다. 그는 팔레스타인·이스라엘 전쟁의 본질은 ‘정착민 식민주의’라고 지적하며, 유럽인이 아메리카 원주민을 학살하고 미국을 건국했듯 영미 열강을 등에 업은 ‘시온주의’(유대인의 민족국가 건설을 위한 운동)가 팔레스타인 원주민을 몰아내고 있다고 분석한다. ●앰네스티“이, 팔 주민 인종차별” 지난해 5월 동예루살렘에서 일어난 시위를 계기로 양측이 무력 충돌하며 가자지구 내에서 7년 만에 대규모 유혈사태가 발생한 이후 마무드 아바스 팔레스타인 수장과 베니 간츠 이스라엘 국방부 장관은 경제·민간 분야 신뢰 구축을 위한 조치를 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라는 팔레스타인 내 비난이 고조되고 있다. 이달 초에는 세계 최대 인권단체 국제앰네스티가 4년 동안 정리한 300쪽에 이르는 보고서에서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주민에게 인종차별정책(아파르트헤이트)을 시행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할리디 교수는 “오랜 분쟁이 끝나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평등한 주체로 인정하고 공존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앞으로 중동 지역 민주화가 팔레스타인 해방의 핵심 열쇠가 되리라고 내다봤다. 할리디가 짚어 준 ‘팔·이 100년 전쟁’의 본질과 전망을 일문일답으로 정리한다. -팔레스타인을 종종 방문했는데 최근 현지 일상은 어떤가. “여전히 충격적인 것은 지역 내 이동권이 제한돼 있다는 점이다. 이스라엘 점령지에 거주하는 이들 대부분은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없거나 이동 시 검문소를 통과해야 한다. 무엇보다 친인척들이 모두 고향을 떠나 이집트, 레바논, 가자지구, 예루살렘 등에 흩어져 서로 만나지 못한 채 살고 있다. 1948년부터 1967년 사이 팔레스타인 인구 중 약 4분의3이 추방당했다. 유대인들이 이스라엘을 세운 동인 중 하나는 자신들이 핍박받고 흩어져 살아온 역사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스라엘 설립이 팔레스타인 인종청소로 이어진 건 비극적인 역설이다.” -팔·이 100년 전쟁의 본질은 무엇이고, 싸움은 왜 끝나지 않는가.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먼저 팔레스타인의 경우 기존 인구의 희생으로 새로운 인구가 유입되는 ‘정착민 식민주의’ 과정을 겪고 있다. 이것이 두 민족 간 갈등의 실체다. 이는 단순히 두 국가가 서로 싸우는 형태가 아니다. 과거 20세기 열강이던 일본이 한반도에 정착하지 않고 단순히 한국을 지배해 자원·노동력 착취를 했다면, 이스라엘은 열강 세력을 등에 업고 팔레스타인 거주지에 들어와 지금까지도 이들을 몰아내고 있다. 다른 하나는 이 과정에서 팔레스타인이 굴복하지 않고 끊임없이 저항하고 있기 때문이다.”●팔, 평화협상 내내 열등한 위치에 놓여 -지금까지 여러 평화협정이 나왔는데도 근본적인 해결이 요원한 이유는. “평화 협상 과정이 ‘정의와 평등’이라는 기본 원칙에 기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과거 스페인에서 열린 중동평화회의(1991년)에 팔레스타인 대표단 고문으로 참석하고 이후 오슬로협정(1993) 과정에 참여하며 느낀 점은 팔레스타인은 협상 내내 열등한 위치에 놓여 있었다는 것이다. 예컨대 이스라엘의 안전이 항상 최우선이었으며, 이들은 정착할 권리가 있지만 팔레스타인은 저항할 권리가 없다는 식이다. 미국이 이런 전제를 계속 수용해 주는 한 문제는 절대 해결될 수 없다. 1970년대 이후 팔레스타인의 평등권을 인정하지 않은 이스라엘 정부는 결국 2018년 이스라엘의 정체성을 유대인으로 한정하는 ‘유대인 민족국가법’을 통과시켰다. 이런 상황에서 평화 협상을 한다는 것은 팔레스타인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협상을 하라는 것과 똑같다.” -미국 바이든 정부가 들어서면서 팔레스타인 무장투쟁 포기, 독립 지원을 통한 평화로운 공존 등 ‘두 국가 해법’에 대한 논의가 재등장했다. “바이든 정부가 전임 도널드 트럼프 정부의 극단적 입장에선 물러났지만, 예루살렘을 이스라엘 수도로 선언한 트럼프식 결정을 되돌리거나 하는 근본적인 변화는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두 국가 해법’도 쉽지 않아 보인다. 결과적으로 두 나라로 분리될 수도 있고, 한 국가 안에서 두 민족이 함께 살 수도 있다. 하지만 이미 이스라엘이 점령지를 확장해 팔레스타인 영토를 회수한 시점에 불평등이 심화된 하나의 국가가 만들어지고 있는 형국이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팔레스타인인의 기본권이 박탈당하는 한 마찰이 끊임없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중동의 화약고’인 이 지역의 지정학적 정세 전망은. “현재 상황은 팔레스타인에 불리하다. ‘힘의 불균형 상태’가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60여년간 미국을 등에 업은 이스라엘은 중동 국가 8개 수도에 폭격을 가했고, 이제 핵무기도 보유하고 있다. 아랍에미리트, 모로코, 수단 등 몇몇 아랍국은 이미 이스라엘과 손을 잡았다. 중동 지역에서 절대적인 패권국이었던 미국은 향후 10~20년 내 다른 강대국들과 경쟁관계에 돌입할 것이다. 중동 지역 배후에는 항상 러시아가 존재했고, 중국·인도도 떠오르는 이해 당사자국이다. 이렇게 되면 이스라엘을 절대 지지하는 미국의 영향력이 과거와 같을 수는 없다.” ●국제사회·개인들 인식 변화 느껴져 -팔레스타인의 탈식민화를 위해 중요한 요소는 무엇인가. “그들이 내부 분열을 봉합하고 한층 통일된 민족운동을 할 때 더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나아가 상황 개선 여부는 아랍 국가들의 민주화 과정에도 달려 있다. 대다수 아랍 국가와 달리 아랍 국가의 일반 시민들은 팔레스타인을 지지한다. 이미 지난 50여년간 세계 곳곳에서 민주화가 이뤄졌다. 아랍권에서도 그런 변화가 이뤄지면 아랍 내 여론이 국가 정책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고, 이스라엘도 변화 요구에 응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국제사회를 비롯해 개인들의 관심이 중요하다. 이스라엘에 편향된 주류 미디어에서 소셜미디어로 의사소통의 통로가 다양해지면서 직접 현장의 목소리를 접할 수 있게 돼 사람들이 사태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됐다.” ■ 라시드 할리디는 누구 팔레스타인계 美역사학자 팔레스타인계 미국인 역사학자로 중동 문제 전문가다. 1948년 태어나 미 예일대에서 학사 학위를, 영 옥스퍼드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미 뉴욕 컬럼비아대 현대 아랍 연구담당 교수로 재직 중이다. ‘팔레스타인의 정체성’ 등 주요 저술들은 20세기 중동 사회를 다루는 민족주의·식민주의 연구 필독서로 꼽힌다. 노벨평화상을 받은 고(故)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초대 수반의 고문을 지냈고, 50년 넘게 팔레스타인 독립투쟁 현장을 지켰다. 1967년 중동 3차 전쟁 당시 휴전 교섭의 일원이던 부친을 따라 유엔 회의장을 드나들었고, 1982년 이스라엘 공군의 레바논 베이루트 공습 당시엔 현장 체류 중이었다. 1993년 체결된 오슬로협정에 팔레스타인 대표단 고문으로 참여하고, 이후 팔레스타인 미국대책본부(ATFP) 대표도 역임하는 등 관련 활동을 활발하게 했다. 그는 1960년대 초 유엔한국통일부흥위원회 수석총무를 맡은 아버지를 따라 3년간 한국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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