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60년
    2026-06-20
    검색기록 지우기
  • 70대
    2026-06-20
    검색기록 지우기
  • 2026-06-20
    검색기록 지우기
  • 2026-06-20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8,528
  • [부희령의 다초점 렌즈] 차별은 있다/소설가

    [부희령의 다초점 렌즈] 차별은 있다/소설가

    우리나라에서만 100만부가 넘게 팔린 ‘82년생 김지영’을 읽으면서 놀란 것은 60년대에 태어난 여성인 나의 경험이나 80년대에 태어난 여성의 경험에 그다지 큰 차이가 없다는 사실이었다. 약 20년의 세월 동안 경제 발전과 정치적 민주화가 상당히 이루어졌음에도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소설 속 여성들은 큰 맥락에서는 여전히 비슷한 차별을 경험하고 있었다. 물론 소설의 내용을 모두 사실로 간주할 수는 없으나, 그렇다고 완전한 허구로 볼 수도 없다. 소설의 기능은 징후를 읽어 내는 것이기도 하니까. 한 가지 희망적인 부분이 있었다. 경험한 내용에서는 큰 차이가 없었으나 그것을 바라보는 시선과 대응은 달랐다. 60년대생들 대부분은 남성 중심의 가치를 내면화하고 있어서 차별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울분을 느껴도 ‘여자로 태어난 죄’로 체념하곤 했다. 성희롱을 ‘지나친 농담’ 정도로 넘기거나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기도 했다. 하지만 80년대생은 차별에 대해 사회적으로, 그리고 여성이라는 보편적 정체성을 가진 집단의 차원에서 대응하기 시작했다. 2016년 강남역 여성 혐오 살인사건에 대한 폭발적인 반응이나 2018년에 정점을 이룬 미투 운동은 마치 없는 일인 양 숨겨져 있던 여성에 대한 차별과 폭력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효과를 가져왔다. 페미니즘 리부트라 불리는 이 시기에 남녀를 불문하고 지나간 언행과 현재의 언행 속에 여성 혐오의 기미가 있는지 점검하기 시작했다. 어떤 사건을 접하고 이해할 때 당사자들의 성별과 자신의 성별을 예민하게 의식하게 됐다. 물론 이런 식의 긴장이 오래 지속되기는 힘들다. 갈등과 반발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우호적 중립지대’가 사라졌고, 서로에 대한 ‘혐오만 만연하고’ 있다는 우려가 고개를 든다. 그러나 ‘우호적 중립’이란 기득권자인 남성들 입장에서 불편하지 않은 태도일 뿐이다. 지금 ‘불편’이라고 느끼는 것이 누구에게나 당연한 일상이 돼야 비로소 성평등이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유력한 대선후보가 얼마 전 여성가족부 폐지를 공약으로 내걸면서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 차별은 개인적 문제”라는 발언으로 논란을 빚었다. 다시 “차별이 없다는 게 아니라 개인적 불평등에 더 집중해야 한다는 뜻”이라고 해명했다. 이렇듯 혼란스러운 말들이 오고 가는 이유는 개인적 불평등과 구조적 차별이 긴밀히 연관돼 있음을 외면하기 때문이다. 단순하게 보면 성매매나 유흥업소 종사자의 대다수가 여성이라는 현실, 여성은 누구나 쉽게 성폭력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 아직 구조적 차별이 견고하다는 증거다. 여가부는 성폭력, 가정폭력, 성매매에 관련된 문제를 다룰 뿐 아니라 결혼이주여성이나 다문화가족의 사회통합을 지원하면서 오랜 기간 현장을 모니터링하는 연구를 지속하고 있다. 이런 중요한 역할이 다른 부처로 이관될 수는 있는지, 굳이 그렇게 하겠다는 공약을 내건 진짜 의도가 무엇인지 알고 싶다. 2022년은 82년생 세대보다 약 20년 뒤에 태어난 여성들이 20대 청년으로 접어드는 시기다. 가정에서 딸보다 아들을 선호하거나 학교에서 남학생과 여학생을 다르게 대하는 경험을 상대적으로 적게 한 세대일 것이다. 앞선 사람들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기에 세상이 나아졌다고 믿고 싶다. 걱정스러운 건 정치적 주체로서의 20대 여성들을 보이지 않게 하려는 시도가 계속되는 상황이다. 유의미한 변화를 얻기 위해 갈등은 피할 수 없다. 여성들이 두려움 없이 서로의 자리를 지켜 주면서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길 바란다. 청년 여성들을 지지하고 응원한다.
  • “우크라와 함께” “전쟁 멈춰”… 드넓은 축구장에 러시아 발 디딜 곳은 없었다

    “우크라와 함께” “전쟁 멈춰”… 드넓은 축구장에 러시아 발 디딜 곳은 없었다

    1960년대 영국 록 그룹 ‘더 홀리스’의 ‘무겁지 않아요. 제 형제인걸요’(He ain’t heavy, he‘s my brother)라는 노래가 축구장에 울려 퍼지자 맨체스터 시티(맨시티)의 수비수 올렉산드르 진첸코의 눈시울은 벌겋게 달아올랐다. 27일(한국시간) 맨시티와 에버턴의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경기가 열린 영국 리버풀의 구디슨 파크 곳곳에는 ‘우리는 우크라이나와 함께한다’는 대형 걸개 격문이 우크라이나 대표팀 동료 비탈리 미콜렌코(에버턴) 사진과 함께 펄럭였다. 노래가 끝나자 진첸코는 참았던 눈물을 쏟아 냈다. 그라운드에는 ‘노 워’(NO WAR·전쟁 반대)라는 문구와 우크라이나 국기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은 팀 동료들, 아예 커다란 국기를 어깨에 두른 에버턴 선수들이 도열해 있었다. 이들은 경기장을 꽉 메운 관중들과 하나 된 박수로 우크라이나를 위로하고 응원했다. 세계 스포츠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에 등을 돌리고 있다. 베이징동계올림픽에서 ‘발리예바 파문’으로 받았던 따가운 눈총이 비난과 규탄, 거부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이날 EPL과 스페인 라리가, 독일 분데스리가, 프랑스 리그앙 등 유럽의 4대 ‘빅리그’는 우크라이나를 지지하고 연대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뮌헨-프랑크푸르트전에 앞서 선수들이 1분간 침묵했고, 경기장 전광판에는 ‘멈춰, 푸틴’이라는 문구가 등장했다. 스페인과 프랑스 축구장에도 ‘전쟁 반대’, ‘모두를 위한 평화’ 등의 현수막이 줄을 이었다. 첼시 구단주인 러시아 재벌 로만 아브라모비치(56)는 “난 항상 구단의 이익을 염두에 둔 결정을 해 왔다”며 구단 관리권을 재단에 넘겼다. 영국의 러시아 제재 대상에 푸틴의 측근인 자신을 올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지 몸을 뺀 것이다. 러시아와 국경을 마주한 폴란드는 지난 24일 모스크바에서 열릴 예정이던 카타르 월드컵 유럽예선 플레이오프(PO)를 보이콧했다. 2차 PO에 나설 수 있는 스웨덴 역시 “상대가 러시아라면 29일 경기를 거부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유럽축구연맹은 오는 5월 28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릴 예정이던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장소를 프랑스 파리 생드니 경기장으로 즉각 변경했다. 축구 외의 종목도 ‘반(反)러시아’에 동참했다. 국제배구연맹과 국제체조연맹, 국제유도연맹은 국제올림픽위원회 요청에 따라 올해 러시아에서 열기로 한 대회를 모두 취소했다. 앞서 포뮬러원(F1)을 주관하는 세계자동차연맹도 지난 25일 올 시즌 F1 월드챔피언십 대회인 러시아 그랑프리를 열지 않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 안미생 선생에게 뒤늦게 건국포장 추서

    국가보훈처는 제103주년 3·1절을 맞이해 대한민국임시정부 비서로 활약한 김구 선생의 맏며느리 안미생 선생에게 건국포장을 추서하는 등 총 219명을 독립유공자로 포상한다고 27일 밝혔다. 안중근 의사의 동생인 안정근 선생의 딸인 안미생 선생은 1940년대 중국 충칭에서 한국독립당 당원, 대한민국 임시정부 비서로 활동했다. 외국어에 능통하고 국제 정세에 밝았던 그는 광복 직후인 1945년 11월 임시정부 요인들이 비행기를 타고 귀국할 때 경유지인 상하이 공항에서 밝고 자신감 있는 표정으로 사진 촬영에 임했다. 안정근 선생과 오빠 안원생, 남편 김인 선생 등은 앞서 독립유공자로 서훈됐다. 1960년대 미국 이주 후 행적이 알려지지 않다가 신분을 드러내지 않은 채 2008년 쓸쓸히 사망한 사실이 최근에야 확인됐다. 포상 대상에는 호주인 마거릿 샌더먼 데이비스(건국훈장 애족장) 등 부산 일신여학교 3·11 만세시위를 이끈 호주인 3명도 포함됐다. 이번에 포상되는 독립유공자는 건국훈장 84명(애국장 20명, 애족장 64명), 건국포장 30명, 대통령표창 105명이며 포상자 중 생존 애국지사는 없다.
  • 항암 포기한 채… “머릿속 마지막 한 자까지 글로 남기고 떠나련다”

    항암 포기한 채… “머릿속 마지막 한 자까지 글로 남기고 떠나련다”

    지난 26일 타계한 이어령 초대 문화부 장관은 약 1년 전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죽음은 누구에게나 두렵고 불안한 것”이라며 “죽음을 앞둔 사람은 그 어느 때보다 진실한 하루하루를 보내게 될 거다”라고 말했다. 또 “건강이 다할 때까지 머릿속에 들어간 모든 것을 마지막 한 자까지 글로 남기고 떠나려 한다”고 했다. 장녀 이민아 목사의 9주기 즈음이었다. 2015년 발간한 추모집 ‘딸에게 보내는 굿나잇 키스’ 개정판을 이때 내놓는 까닭에 대해 이 장관은 “딸의 10주기까지 살 수 있을지 불투명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 장관은 자신의 말처럼 죽음을 앞둔 순간까지 부인과 설립한 영인문학관에서 집필을 거듭하다 딸의 10주기를 열이레 앞두고 하늘로 향했다. 89세. 결코 한 단어나, 한 문장으로 설명될 수 없는 ‘시대의 지성’이 우리 곁을 떠났다. 2017년 암 진단을 받고 2년 뒤 이를 공개했으나 항암 치료 대신 글쓰기를 선택한 고인이었다. 한국 지성사에 한 획을 그은 그는 문학평론가이자 언론인, 관료, 교수, 시인, 소설가, 칼럼니스트 등 다양한 직함으로 자신의 생애를 큰 산으로 쌓아 올렸다. 1933년 충남 아산에서 태어나 서울대 문리대와 대학원을 나온 고인은 1956년 문단 원로들의 권위 의식을 질타하며 세대 논쟁을 부른 ‘우상의 파괴’를 신문 지면에 발표하며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1960년 서울신문 논설위원을 시작으로 ‘삼각주’(서울신문), ‘여적’(경향신문), ‘분수대’(중앙일보), ‘만물상’(조선일보) 등에 칼럼을 쓰며 당대 최고 논객으로 활약했다. 1960년대부터는 학계에 몸을 뒀다. 1966년 이화여대 강단에 선 뒤 문리대 교수, 국문과 석좌교수를 거쳐 2011년 명예교수가 됐다. 50대인 1988년 서울올림픽 때는 개·폐회식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문화 기획자의 면모도 과시했다. 개회식의 ‘굴렁쇠 소년’도 고인의 아이디어였다. 노태우 정부 때는 문화공보부에서 분리돼 신설된 문화부 초대 장관(1990~1991)을 지냈다. 문화예술인으로는 처음 문화 정책을 지휘하며 한국예술종합학교와 국립국어원을 설립했고, 조선총독부 청사를 철거하는 경복궁 복원 계획을 수립했다. 이후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유네스코 세계문화예술교육대회 조직위원장, 동아시아 문화도시 조직위원회 명예위원장 등으로 활동했다. 고인은 날카로운 통찰력으로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문화, 시대 정신과 그 흐름을 읽어 내며 ‘흙 속에 저 바람 속에’(1963), ‘축소지향의 일본인’ (1982), ‘세계 지성과의 대화’(1987), ‘생각을 바꾸면 미래가 달라진다’(1997), ‘디지로그’(2006), ‘지성에서 영성으로’(2010), ‘생명이 자본이다’(2013) 등 수많은 저서를 펴냈다. 특히 ‘디지로그’에서는 디지털 기반과 아날로그 정서가 융합하는 세상을 언급하며 비빔밥과 같은 우리 문화와 정서에 조화의 힘이 있다고 강조했다. 숱한 상과 훈장을 받았던 고인은 지난해 10월 문화계 최고 영예인 금관 문화훈장을 수훈했다.유족으로 부인 강인숙 영인문학관장, 장남 이승무 한예종 교수, 차남 이강무 백석대 교수가 있다. 장녀 이민아 목사는 2012년 암으로 별세했다. 빈소는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1호실에 마련됐다. 장례는 5일간 문화체육관광부장으로 치러진다. 전임 장관을 부처장으로 치르는 건 처음이다. 영결식은 새달 2일 오전 10시 서초구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열린다. 장지는 충남 천안의 공원묘지로 알려졌다.
  • 떠나기 사흘 전 “세상에 평안한 인사 전해 달라”

    떠나기 사흘 전 “세상에 평안한 인사 전해 달라”

    “세상 사람들에게 평안한 인사를 전해 줘요.”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은 임종 사흘 전 이런 말을 남겼다. 고인이 이사장으로 있던 한중일비교문화연구소에서 사무국장을 지내며 오랜 기간 고인을 보필했던 윤재환 작가는 지난 26일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사흘 전 장관님을 뵀던 날, 제가 별세 소식을 알려도 좋겠냐고 여쭸더니 세상 사람들에게 평안한 인사를 전해 달라고 하셨다”고 말했다. ●“물음표와 느낌표에 생애 바친 인물 ” 윤 작가는 고인을 “물음표와 느낌표에 생애를 바친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세상 모든 것에 끊임없이 호기심을 가졌고, 이를 해결하며 세상 사람들에게 ‘유레카’를 안겨 줘 ‘우리 시대의 지성’으로 불렸기 때문이다. ‘21세기의 패관’(稗官), 이야기꾼을 자처한 고인은 말년에 한국인의 문화 유전자를 탐구하는 ‘한국인 이야기’ 시리즈 집필에 몰두해 2020년 2월 첫 권 ‘너 어디에서 왔니’를 내놓기도 했다. 이 책에서 고인은 “생과 죽음이 등을 마주 댄 부조리한 삶. 이것이 내 평생의 화두였으며, 생의 막바지에 이르러 죽음 아닌 탄생의 이야기를 쓰는 이유이기도 하다”라고 했다. ‘죽음을 기억하라’는 의미의 라틴어 ‘메멘토 모리’에 이 전 장관은 생의 마지막을 불태웠다. 지난해 10월 발간한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에 등장하는 이 말은 지난달 대화록 시리즈 첫 권의 제목이 되기도 했다. 윤 작가는 “장관님께서는 자아에 대한 인식이 형성되던 6세 때부터 죽음에 대해 생각해 왔다”며 고인이 어린 나이 때부터 죽음에 호기심을 갖고 연구해 왔다고 이야기했다. ●“문명에 관해 늘 시대 앞서가신 분” 고인과 60년 지기인 시인 이근배 전 대한민국예술원 회장은 “그저께 자택에서 임종처럼 뵈었는데, 제가 쓴 병풍을 눈앞에 두고 계셔서 많이 울었다”면서 고인과의 마지막 순간을 떠올렸다. 이 전 회장은 “장관님은 마치 발명가처럼 ‘디지로그’란 새로운 용어를 쓰셨고, 문명과 관련해 늘 시대보다 앞서가셨다”며 “모든 사물뿐 아니라 한국의 문화, 전통, 역사, 예술에 대해 다르게 해석하셨고 이 어른만큼 모든 걸 통섭할 수 있는 분은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유럽에서 태어났으면 노벨문학상을 타고 세계의 지성이 됐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역시 60년 가까이 인연을 맺은 김종규 문화유산신탁 이사장 겸 삼성출판박물관장은 “우리 문화가 세계화하는 데 업적을 쌓은 분”이라고 평가했다. 또 “문인, 학자, 교수, 문화행정가의 종합 세트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시대 한류가 부흥하는 데 촉매 역할을 한 인물”이라고 강조했다. ●“마지막까지 인문학적 화두로 대화” 20여년 인연을 쌓은 화가인 김병종 가천대 석좌교수는 이틀 뒤 고인을 뵙기로 했었다며 황망한 마음을 드러냈다. 김 교수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세속적인 언급 없이 책에 대한 말씀이나 인문학적 화두를 얘기하신 철저한 인문학자”라고 회상했다. 이어 “야심한 밤에도 잠이 안 오시면 전화로 예술, 인문학, 기독교 세 개 주제를 갖고 굉장히 길게 말씀하셨다”고 일화를 소개하기도 했다.
  • 우크라 출신 진첸코(맨시티)-미콜렌코(에버턴) 포옹 때 경기장 울린 음악은?

    우크라 출신 진첸코(맨시티)-미콜렌코(에버턴) 포옹 때 경기장 울린 음악은?

    60년대 영국의 록그룹 ‘더 홀리스’의 노래가 축구장에 울려퍼지자 맨체스터시티의 수비수 올렉산드르 진첸코의 눈시울은 벌겋게 달아올랐다.27일 맨시티와 에버턴의 잉글랜드 프리미어 경기가 열린 영국 리버풀의 구디슨파크. 경기장 곳곳에는 ‘우리는 우크라이나와 함께 한다’는 대형 걸개 격문과 함께  우크라이나 대표팀 동료 비탈리 미콜렌코(에버턴)의 사진이 펄럭였다. ‘구불구불한 길은 멀기만 해. 하지만 버틸 수 있어. 그는 내 형제니까’라는 노랫말로 음악이 끝나자 진첸코는 참았던 눈물을 쏟아냈다.그라운드에는 ‘노 워(전쟁 반대)’라는 문구와 우크라이나 국기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은 팀 동료들과 아예 커다란 국기를 어깨에 두른 에버턴 선수들이 도열해 있었다. 이들은 경기장을 꽉 메운 관중들과 하나된 박수로 우크라이나를 위로하고 응원했다. 전 세계 스포츠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에 등을 돌리고 있다. 중국 베이징에서 ‘발리예바 파문’으로 받았던 따가운 눈총이 본격적인 비난과 규탄, 거부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모양새다. 이날 EPL과, 스페인 라리가, 독일 분데스리가, 프랑스 리그 앙(1) 등 유럽의 4대 ‘빅리그’는 우크라이나를 지지하고 연대하겠다는 뜻을 공개로 밝혔다. 뮌헨-프랑크푸르트전에 앞서 선수들이 1분간 침묵했고, 경기장 전광판에는 ‘멈춰, 푸틴’이라는 문구가 등장했다. 스페인과 프랑스 축구장에도 ‘전쟁 반대’, ‘모두를 위한 평화’ 등의 현수막들이 줄을 이었다.첼시 구단주인 러시아 재벌 로만 아브라모비치(56)는 전날 “난 항상 구단의 이익을 염두에 둔 결정을 해 왔다”며 구단 관리권을 재단에 넘겼다. 영국의 러시아 제재 대상에 푸틴의 측근인 자신을 올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지 몸을 뺀 것이다. 러시아와 국경을 마주한 폴란드는 지난 24일 모스크바에서 열릴 예정이던 카타르월드컵 유럽예선 플레이오프(PO)를 보이콧했다. 2차 PO에 나설 수 있는 스웨덴 역시 “상대가 러시아라면 29일 경기를 거부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유럽축구연맹(UEFA)은 오는 5월 28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릴 예정이던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장소를 프랑스 파리 생드니 경기장으로 즉각 변경했다. 축구 외의 종목에도 ‘반러시아’ 열풍이다. 국제배구연맹(FIVB)과 국제체조연맹(FIG), 국제유도연맹(IJF)은 IOC의 요청에 따라 올해 러시아에서 열기로 한 대회를 모두 취소했다. 앞서 포뮬러원(F1)을 주관하는 세계자동차연맹(FIA)도 지난 25일 성명을 통해 올 시즌 F1 월드챔피언십 대회인 러시아 그랑프리를 열지 않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 “세상 사람들에게 평안한 인사를 전해줘요”

    “세상 사람들에게 평안한 인사를 전해줘요”

    “세상 사람들에게 평안한 인사를 전해줘요.”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이 임종 사흘 전에 남긴 말이다. 오랜 시간 가까운 거리에서 이어령 선생을 보필했던 윤재환 전 한중일비교문화연구소 사무국장이 문안 인사 차 고인을 찾았다가 마지막으로 들었던 말이다. 결코 한 단어나, 한 문장으로 설명될 수 없는 이, 이어령 전 장관이 26일 별세했다. 89세. 지난 2017년 암 투병 사실을 처음 밝인 이 전 장관은 이후 항암치료 대신 글쓰기를 선택한 뒤 마지막까지 글쓰기 작업을 벌이다 이날 세상을 떴다. 고인은 한국 지성사에 한 획을 그은 큰 산이었다. 문학 평론가, 언론인, 관료, 교수, 시인, 소설가 등 다양한 직함으로 생애를 보냈다. 고인은 1933년 충남 아산에서 태어나 서울대 문리대학과 같은 대학 대학원을 졸업했다. 20대 약관의 나이에 서울신문 논설위원으로 세상에 이름을 알린 고인은 ‘삼각주’(서울신문), ‘여적’(경향신문), ‘분수대’(중앙일보), ‘만물상’(조선일보) 등에 칼럼을 쓰며 당대 최고의 논객으로 활약했다.1960년대부터는 학계에 몸을 뒀다. 1966년 이화여대 강단에 선 이후 1989년까지 문리대학 교수, 1995∼2001년 국어국문학과 석좌교수를 지냈고, 2011년 명예교수가 됐다. 1988년 서울올림픽에선 개·폐회식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문화 기획자로서의 면모도 선보였다. 개회식에 등장한 ‘굴렁쇠 소년’도 고인의 아이디어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노태우 정부 때는 신설된 문화부의 초대 장관(1990~1991)을 역임했다. 당시 한국예술종합학교와 국립국어연구원(현 국립국어원)을 설립했고, 조선총독부 청사를 철거하는 경복궁 복원계획을 수립했다. 이후로도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유네스코 세계문화예술교육대회 조직위원장, 동아시아 문화도시 조직위원회 명예위원장 등으로도 활동했다. ‘신부여팔경’의 저자 윤재환 작가는 고인을 “물음표와 느낌표에 생애를 바친 인물”이라고 했다. 세상 모든 것에 끊임없이 호기심을 가졌고, 이를 해결해 세상 사람들에게 ‘유레카’를 안겨줬던 고인의 생애를 함축하는 말이다. 윤 작가는 고인이 이사장으로 있던 한중일비교문화연구소에서 사무국장을 역임하며 오랜 기간 가까운 거리에서 고인을 보필했던 이다. 그는 26일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사흘 전 이 전 장관님을 뵀던 날, 제가 별세 소식을 알려도 좋겠냐고 여쭸더니 세상 사람들에게 평안한 인사를 전해달라고 하셨다”며 이같이 밝혔다.‘메멘토 모리’도 이 전 장관의 생애를 설명하는 말 중 하나다. 고인의 마지막 저서가 된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에 나오는 말로, ‘자신의 죽음을 기억하라’는 의미다. 윤 작가는 “이 전 장관님께서는 자아에 대한 인식이 형성되던 6세 때부터 죽음에 대해 생각해 왔다”고 했다. 어린 나이 때부터 죽음에 호기심을 갖고 연구해 왔다는 것이다. 고인은 이제 그 물음에 대한 답을 얻었을까.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오후 7시께 빈소를 방문해 고인을 추모하고 유족들을 위로했다. 문 대통령이 직접 빈소를 찾은 것은 지난달 9일 이한열 열사의 모친인 고 배은심 여사를 조문한 이후 48일 만이다. 문 대통령은 “우리 세대는 자라면서 선생님 책을 많이 보았고 감화도 많이 받았다”며 “우리나라의 큰 스승이신데 황망하게 가셔서 안타깝다”고 유족을 위로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강인숙 영인문학관 관장, 장남 이승무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차남 이강무 천안대학교 애니메이션과 교수가 있다. 고인의 장녀 이민아 목사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LA) 지역 검사를 지내던 2012년 위암 투병 끝에 별세했다. 빈소는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1호실에 마련됐다. 5일간 문화체육관광부장으로 치러진다. 부처의 전임 장관을 부처장으로 치르는 건 처음이다. 이날 장례식장을 지킨 황희 문체부 장관은 “이 전 장관의 영결식이 새달 2일 오전 10시 서울 서초구 국립중앙도서관 국제회의장에서 진행된다”고 밝혔다. 황 장관이 장례위원장, 김현환·오영우 차관이 부위원장을 맡는다. 장지는 충남 천안의 한 공원묘지로 알려졌다. 손원천 기자
  • “세상 사람들에게 평안한 인사를 전해달라”

    “세상 사람들에게 평안한 인사를 전해달라”

    “세상 사람들에게 평안한 인사를 전해달라.”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이 사흘 전 남긴 말이다. 결코 한 단어나, 한 문장으로 설명될 수 없는 이, 이어령 전 장관이 26일 별세했다. 89세. 지난 2017년 암 투병 사실을 처음 밝인 이 전 장관은 이후 항암치료 대신 글쓰기를 선택한 뒤 마지막까지 글쓰기 작업을 벌이다 이날 세상을 떴다. 고인은 한국 지성사에 한 획을 그은 큰 산이었다. 문학 평론가, 언론인, 관료, 교수, 시인, 소설가 등 다채로운 직함으로 생애를 보냈다. 고인은 1933년 충남 아산에서 태어나 서울대 문리대학과 같은 대학 대학원을 졸업했다. 20대 약관의 나이에 서울신문 논설위원으로 세상에 이름을 알린 고인은 ‘삼각주’(서울신문), ‘여적’(경향신문), ‘분수대’(중앙일보), ‘만물상’(조선일보) 등에 칼럼을 쓰며 당대 최고의 논객으로 활약했다.1960년대부터는 학계에 몸을 뒀다. 1966년 이화여대 강단에 선 이후 1989년까지 문리대학 교수, 1995∼2001년 국어국문학과 석좌교수를 지냈고, 2011년 명예교수가 됐다. 50대 때인 1988년 서울올림픽 때는 개·폐회식을 성공적으로 이끌며 문화 기획자로서의 면모도 선보였다. 개회식에 등장한 ‘굴렁쇠 소년’도 고인의 아이디어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노태우 정부 때는 신설된 문화부의 초대 장관(1990~1991)을 역임했다. 이때 한국예술종합학교와 국립국어연구원(현 국립국어원)을 설립했고, 조선총독부 청사를 철거하는 경복궁 복원계획을 수립했다. 이후로도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유네스코 세계문화예술교육대회 조직위원장, 동아시아 문화도시 조직위원회 명예위원장 등으로도 활동했다. ‘신부여팔경’의 저자 윤재환 작가는 고인을 “물음표와 느낌표에 생애를 바친 분”이라고 했다. 세상 모든 것에 끊임없이 호기심을 가졌고, 이를 해결해 세상 사람들에게 ‘유레카’를 안겨줬던 고인의 생애를 함축하는 말이다. 윤 작가는 고인이 이사장으로 있던 한중일비교문화연구소에서 사무국장을 역임하며 오랜 기간 가까운 거리에서 고인을 보필했던 이다. 그는 26일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사흘 전 이 전 장관님을 뵀던 날, 제가 별세 소식을 알려도 좋겠냐고 여쭸더니 세상 사람들에게 평안한 인사를 전해달라고 하셨다”며 이같이 밝혔다.‘메멘토 모리’도 이 전 장관의 생애를 설명하는 말 중 하나다. 고인의 마지막 저서가 된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에 나오는 말로, ‘자신의 죽음을 기억하라’는 의미다. 윤 작가는 “이 전 장관님께서는 자아에 대한 인식이 형성되던 6세 때부터 죽음에 대해 생각해 왔다”고 했다. 어린 나이 때부터 죽음에 호기심을 갖고 연구해 왔다는 것이다. 고인은 이제 그 물음에 대한 답을 얻었을까. 유족으로는 부인 강인숙 영인문학관 관장, 장남 이승무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차남 이강무 천안대학교 애니메이션과 교수가 있다. 고인의 장녀 이민아 목사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LA) 지역 검사를 역임하던 2012년 위암 투병 끝에 별세했다. 빈소는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다. 유족 측은 5일간 가족장으로 치를 계획이라고 밝혔다. 장지는 충남 천안의 한 공원묘지로 알려졌다. 손원천 기자
  • ‘한국의 이야기꾼’ 떠나다…이어령 초대 문화부 장관 별세

    ‘한국의 이야기꾼’ 떠나다…이어령 초대 문화부 장관 별세

    한국 지성의 대들보인 이어령 이화여자대학교 명예석좌교수가 암 투병 끝에 26일 별세했다. 향년 89세. 유족 측은 이어령 전 장관이 숙환으로 별세했다고 이날 밝혔다. 빈소는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되며 유족 측은 5일간 가족장으로 치를 계획이다. 1933년 충남 아산에서 출생(호적상 1934년생)한 고인은 문학평론가, 언론인, 교수 등으로 활동하며 우리 시대 최고 지성으로 불렸다. 서울대와 동(同) 대학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한 고인은 20대 초반에 문단 원로들의 권위 의식을 질타한 ‘우상의 파괴’를 1956년 한국일보 지면을 통해 발표하며 평단에 데뷔했다.  1960년 서울신문을 시작으로 1972년까지 한국일보, 경향신문, 중앙일보, 조선일보 등의 논설위원을 역임하면서 당대 최고의 논객으로 활약했다.  1966년부터 이화여대 강단에 선 이후 1989년까지 문리대학 교수를, 1995∼2001년 국어국문학과 석좌교수를 지냈으며 2011년 이화여대 명예교수가 됐다. 고인은 노태우 정부 때 문화공보부를 공보처와 문화부로 분리하면서 1990년 출범한 문화부의 초대 장관에 임명됐다. 문화부 장관 재임 시절 중요한 업적 중 하나는 세계적인 예술인을 길러내는 집합소로 자리잡은 한국예술종합학교(1992년 개교)를 만든 것이다. 국립국어연구원(현 국립국어원) 설립, 조선총독부 청사를 철거하는 경복궁 복원 계획 등도 고인이 문화부 초대 장관으로 이뤄졌다. 고인은 1988년 서울올림픽 개폐막식 식전행사 기획자로도 활약했다. ‘화합과 전진’이라는 주제의식과 역동성을 모두 표현해낸 명문으로 평가받는 ‘벽을 넘어서’ 구호와 개막식에 등장한 굴렁쇠 소년 기획 모두 고인의 아이디어였다. 저술 활동도 쉬지 않았다. 1984년 발표한 ‘축소지향의 일본인’은 고인의 대표작 중 하나다. 고인은 ‘축소지향의 일본인’을 통해 하이쿠, 분재, 트랜지스터, 쥘부채 등 일본 문화가 가진 독창적인 특징이 바로 ‘축소지향’이라는 주장을 펼쳐 화제가 됐다. 2006년엔 ‘디지로그’를 통해 후기 정보화 사회는 디지털과 아날로그가 공존 상생하는 ‘디지로그’ 사회가 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이밖에도 고인은 ‘이것이 한국이다’(1986), ‘세계 지성과의 대화’(1987), ‘생각을 바꾸면 미래가 달라진다’(1997), ‘지성에서 영성으로’(2010), ‘생명이 자본이다’(2013) 등 60여년 동안 약 130여 종의 저서를 펴냈다. 고인은 2017년 암이 발견돼 두 차례 큰 수술을 받았지만, 항암치료를 받는 대신 저서 집필에 마지막 힘을 쏟았다. 고인은 자신을 ‘이야기꾼’이라 칭하며 한국인의 문화 유전자를 탐구하는 마지막 저작 시리즈 ‘한국인 이야기’ 집필에 몰두해왔다. 12권으로 계획한 시리즈 중 지난해 2월 첫 권인 ‘너 어디에서 왔니’를 출간했다. 이 책에서 고인은 “생과 죽음이 등을 마주 댄 부조리한 삶. 이것이 내 평생의 화두였으며, 생의 막바지에 이르러 죽음 아닌 탄생의 이야기를 쓰는 이유이기도 하다”고 전했다. 고인은 지난해 10월 한국 문학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금관 문화훈장을 받았다.
  • [속보] 이어령 초대 문화부 장관 별세…향년 89세

    [속보] 이어령 초대 문화부 장관 별세…향년 89세

    한국 문학의 거장이자 우리나라 대표 지성인으로 평가받는 이어령 이화여자대학교 명예석좌교수가 26일 암 투병 끝에 별세했다. 향년 89세. 호적상 1934년 충남 아산에서 태어난 고인은 서울대 문리대 국문과에 들어가 1956년 졸업했다. 이후 1960년 같은 대학 대학원 문학석사, 1987년에는 단국대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 교수는 1956년 한국일보에 ‘우상의 파괴’를 발표했고, 같은 해 잡지 ‘문학예술’에 ‘현대시의 환위와 한계’와 ‘비유법논고(攷)’가 추천돼 정식으로 등단했다. 노태우 정부 때 신설된 문화부 초대 장관(1990~1991)을 맡아 기반을 닦는 등 한국 대표 석학이자 우리 시대 최고 지성으로 불렸다.
  • 文 “신한울 조속히 정상가동…원전, 향후 60년 주력 전원”(종합)

    文 “신한울 조속히 정상가동…원전, 향후 60년 주력 전원”(종합)

    “적절한 가동률 유지하면서 안전성 확보”신한울 1·2호기, 신고리 5·6호기 언급“가능하면 이른 시간 내에 정상 가동”문재인 대통령은 25일 “원전이 지속 운영되는 향후 60여년 동안 원전을 주력 기저전원으로 충분히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건설이 지연되고 있는 신한울 1·2호기와 신고리 5·6호기를 언급하며 “가능하면 이른 시간 내에 단계적으로 정상가동을 할 수 있도록 점검해달라”고 주문했다. 대선을 앞둔 시점에 국민의힘을 중심으로 정부의 ‘탈원전’ 기조에 대한 비판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이런 발언이 나와 배경에 관심이 집중될 전망이다. 문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글로벌 에너지 공급망 현안 점검회의’를 열고 이같이 밝혔다고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이 서면브리핑에서 전했다. 이번 회의는 우크라이나 사태로 글로벌 에너지 공급망 불안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안정적인 전력 공급 기반 확충을 위해 국내 원전의 실태를 점검하는 취지에서 열린 것이라고 박 대변인은 설명했다. 문 대통령은 “적절한 가동률을 유지하면서 원전의 안전성 확보에 만전을 기해 달라”면서도 원전을 충분히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다만 “에너지원으로서 원전이 지닌 장점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경우 원전 밀집도가 세계 최고인데다 특정 지역에 밀집돼 있어 사고가 나면 그 피해를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에 에너지믹스 전환은 불가피하다”고 진단했다.그러면서 “우리 정부의 에너지전환 정책은 신규 원전 건설 중단, 수명이 다한 노후 원전의 수명 연장 금지 등을 2084년까지 장기에 걸쳐 단계적으로 추진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원전 비중을 줄이는 60년 동안에는 이를 충분히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신한울 1·2호기와 신고리 5·6호기에 대해 “(이 원전들은) 포항과 경주의 지진, 공극 발생, 국내자립기술 적용 등에 따라 건설이 지연됐다”며 “(그러나) 그간 안전성을 높이기 위한 기준 강화와 선제적 투자가 충분하게 이뤄졌다”면서 준공을 앞당겨달라고 당부했다. 문 대통령은 원전기술에 대해서도 “세계적인 선도 기술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원전의 안전성을 높이기 위한 기술, 원전해체 기술, SMR (소형모듈원자로) 연구, 핵융합 연구에 속도를 내고 사용후핵연료 처리 방침도 조기에 검토해 결론을 내달라”고 지시했다. 문 대통령은 “각국은 자국의 사정에 따라 에너지믹스를 선택하고 있다. 원전이 필요한 국가들은 한국의 기술과 경험을 높이 사서 우리 원전의 수입을 희망하고 있다”며 “원전을 수출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고 말했다.
  • “소청심사 증가, 권리에 민감해지는 시대 변화 반영”

    “소청심사 증가, 권리에 민감해지는 시대 변화 반영”

    “소청심사와 고충처리 청구 모두 꾸준히 늘어나고 있습니다. 권리에 민감해지는 시대 변화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최재용 소청심사위원장은 23일 인터뷰에서 “예전엔 억울해도 참자 하는 분위기였다면 지금은 부당하다 싶으면 적극적으로 문제 제기를 한다”면서 “권리 의식이 높은 젊은 공무원들이 많아진 영향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지난해 11월 임기를 시작해 지난 20일로 취임 100일을 맞은 그는 “요즘 소청심사장에선 읍소하기보다는 적극적으로 자기 권리와 절차적 정당성을 강조한다”며 변화상을 전했다. 소청심사위원회는 징계 처분을 받은 공무원이 이의를 제기했을 때 이를 심사하고 결정하는 행정심판제도를 담당한다. 인사혁신처 소속기관이긴 하지만 별도 지시나 감독을 받지 않는 독립된 합의제 행정기관으로 상임위원 5명과 비상임위원 7명으로 구성돼 있다. 1963년 국가공무원법을 제정할 때 소청심사위원회가 생겼으니 내년이면 설립 60년이 된다. 최 위원장은 “국가공무원법 제정 당시 이름에 조직 구성 관련 조항까지 그대로인 건 소청심사위원회가 유일하다”고 밝혔다. 2017년부터 2021년까지 소청심사위원회가 처리한 소청심사청구는 연평균 821건이었다. 1985년부터 2015년까지 30년간 연평균 747건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10%가량 증가했다. 2020년 765건에서 2021년 847건으로 늘어난 데 대해 최 위원장은 “2020년 4월에 소방직 국가직화로 국가공무원이 한꺼번에 6만명가량 늘어난 영향도 있다”고 설명했다. 소청심사위원회는 근로 조건이나 인사 관리 등에서 발생하는 어려움을 상담하는 중앙고충심사위원회 역할도 한다. 그는 “고충처리를 요청하는 사안도 1년에 100건 이상 들어와 소청과 고충을 별도 부서로 분리하는 방안을 고민 중”이라면서 “자체 변호사 채용과 비상임위원 구성 다양화, 특정직 관련 부처 전문인력 파견 등을 통해 바뀐 환경에 대응하려 한다”고 말했다. 최근 5년간 소청심사 결과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한 비율은 10.4%, 승소율은 11.2%였다. 최 위원장은 이를 두고 “소청심사가 공정하게 이뤄지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지표”라면서 “소청은 기본적으로 공무원 권익을 구제하는 보루 역할을 하는 곳이기 때문에 억울하게 부당한 징계를 받은 건 적극적으로 구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 [열린세상] 걸어온 60년, 나아갈 30년/양동신 건설인프라엔지니어

    [열린세상] 걸어온 60년, 나아갈 30년/양동신 건설인프라엔지니어

    예전같이 왁자지껄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설 연휴 기간 3대가 모여 얘기할 기회가 생겼다. 1960년대 중학생 시절을 보낸 할아버지, 1990년대 중학생 시절을 보낸 아빠, 그리고 2020년대 중학생 시절을 보낼 아이. 얼핏 생각해 보면 지난 30년, 60년간 큰 변화가 없었던 것 같지만 대화 중에 아이의 눈동자에서 느껴지는 변화의 폭은 상당했다. 먼저 1990년대 초. 그때만 하더라도 휴대폰은 존재하지 않았다. ‘삐삐’라 하는 일방향 무선호출기 정도만 존재했고, 훗날 ‘시티폰’이라고 하는 설명하기도 어려운 진화의 중간단계격 기계도 존재했다. 그때 사람들에게 이제 곧 손바닥만 한 컴퓨터가 등장해 화상 통화를 할 수 있고, 실시간 송금을 할 수 있으며, 서울에서 부산까지 2시간 반이면 갈 수 있는 고속철도의 시대가 열린다고 한다면 믿을 사람이 거의 없었을 것이다. 1960년대로 가자면 전 국민이 전기를 사용할 수 있고, 일반 가정집에 자동차가 두 대씩 있을 것이란 생각은 하기 힘들었다. 한국의 경제 수준이 일본과 비등해질 것이란 생각은 하기 어려웠으며, 외국과 24시간 전화를 해도 통화료가 부과되지 않는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중산층도 해외여행을 할 수 있고, TV나 냉장고 등 가전기기를 누구나 가지고 있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중 앞으로 30년 뒤엔 어떠할까 생각해 봤다. 이미 인공지능(AI)이 사람보다 더 빠르고 정확하게 사물을 파악하고 다양한 언어를 인식하는 현재 상황에서 30년이라는 시간이 변화했을 때의 미래는 어떠할까. 정부의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를 보면 30년 후에는 화석연료를 통해 전기를 만드는 게 역사 속으로 사라질 확률이 높다. 아울러 오랜 기간 우리 곁에 있어 왔던 퍼스널 컴퓨터의 형태 역시 큰 변화를 맞이할 확률이 높다. 현재 미국의 빅테크 기업들을 필두로 ARㆍVR로의 전환이 가속화되고 있는데, 30년 안에 우리는 VR 기기를 통해 AI와 문서 작업을 같이 하고, AR 글라스를 통해 AI 비서와 같이 일상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최근 외국 기업들과 각종 화상회의 앱을 통해 수많은 회의를 진행하는데, 실시간으로 대화를 문자화하여 표시해 주는 라이브 캡선 기능과 자동 회의록을 보면 이 또한 멀지 않았음을 체감하게 된다. 자동차 영역은 향후 30년간 가장 많이 변화할 산업이다. 아마도 30년 뒤엔 휘발유나 경유로 굴러가는 차량은 존재하기 어려울 것이다. 운전면허를 따서 스스로 운전을 했다는 이야기 역시 전설 따라 삼천리의 영역으로 갈 확률이 높다. 지난해 4분기 테슬라의 사고 통계를 보면 오토파일럿을 탑재한 차량은 693만㎞당 1회 사고가 나지만, 일반 차량은 78만㎞당 1회 사고가 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이미 자율주행이 인간의 운전에 비해 통계적으로 9배가량 안전한 상황이다. 90년대 정보기술(IT) 시스템을 선도해 왔던 트로이카 IBM, 인텔, MS 가운데 지금까지 빅테크의 바운더리 안에서 그 위상을 이어 나가는 기업은 MS에 불과하다. 이것도 MS가 클라우드 및 구독 경제 기업으로의 성공적인 변화를 이끌어 냈으니 가능했던 것이지 과거와 같이 윈도 및 오피스 독점 공급에 안주했다면 불가능했을 상황이다. 클라우드 시장에서 아마존과 빅2 체제를 공고히 만들어 나가고 있는 MS는 앞으로의 30년 역시 산업을 리딩해 나갈 확률이 높다.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 걱정이 앞서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과거 20세기 말에 잘해 왔듯이 충분히 준비하고 대처해 나간다면 우리에게 기회가 될 수도 있는 양면성은 존재한다. 밝은 미래를 기대해 보자.
  • [글로벌 In&Out] 대선 후보 TV토론, 미국 경험이 주는 시사점은/서정건 경희대 교수

    [글로벌 In&Out] 대선 후보 TV토론, 미국 경험이 주는 시사점은/서정건 경희대 교수

    미국 정치의 오래된 딜레마 중 하나는 과연 대통령이 소통자로 성공할 것인가, 혹은 선동가로 전락할 것인가 여부다. 세계 최초로 대통령제를 도입했던 미국의 제헌가들은 대통령이 국민을 선동해 다수의 횡포를 초래할 가능성을 두고 근본적인 우려를 품었다. 건국 헌법에서 연방 의회를 국정 운영의 중심체로 자세하게 규정하고 대통령 권력에 관해서는 짧은 서술에 그쳤던 이유다. 그런데 20세기 초반 산업화 시대의 폐해로 인해 미국이 경험해 보지 않았던 계급 투쟁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새로운 우려 와중에 대통령의 설득 권력은 새로운 조명을 받게 된다.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이 1906년 열차 운임을 규제하는 법안의 통과를 위해 전국을 돌며 국민 지지를 구하는 방식으로 의회를 압박한 것이 계기였다. 이후 대통령의 적극적인 정책 리더십은 미국 정치의 관례가 된다. 하지만 트럼프의 등장은 21세기에도 여전히 선동가 대통령을 막지 못하는 미국 정치 시스템의 민낯을 드러내기도 했다. 대통령이 위대한 소통자가 될 것인지 위험한 선동가가 될 것인지 미리 알 수 있을까. 유권자가 이를 직접 유추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대선 후보 TV토론이다. 1960년 아이젠하워의 퇴임으로 공석이 된 대통령 자리를 놓고 젊은 상원 의원 케네디와 부통령 닉슨이 격돌했고 최초의 TV토론이 이루어졌다. 라디오로 토론을 들었던 사람들은 닉슨이 선전했다고 평가한 반면 TV를 시청한 대다수 유권자들은 케네디에게 후한 점수를 주었다. 8년 후 다시 대권에 도전해 기어이 백악관 입성에 성공했던 닉슨은 다음 TV토론을 잘했을까. ‘알 수 없다’가 정답이다. 1976년에 이르러서야 대선 후보 TV토론이 다시 성사됐기 때문이다. 미국의 대선 TV토론회는 법률에 근거가 없을 뿐만 아니라 비영리 사립기관에서 주관하고 있다. 미국 대통령 선거 결과는 TV토론에 의해 영향을 받을까. 미국 사례는 토론을 망쳐서 표를 손해 본 후보들이 훨씬 많음을 보여 준다. 동유럽은 소련의 지배 아래 있지 않다는 실언으로 냉전 시대 군 통수권자 이미지에 스스로 먹칠을 했던 1976년 제럴드 포드 대통령, 토론 중간에 손목시계만 바라보다가 결국 동문서답을 해 버린 1992년 아버지 부시 대통령, 상대 후보가 무식한 발언을 한다며 한숨만 내쉬다가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던 2000년 앨 고어 부통령 등이 예다. 한편 1984년 재선에 나선 당시 최고령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상대 당 후보의 젊은 나이와 경험 부족을 굳이 문제 삼지 않겠다는 유머 발언으로 경쟁자마저 웃게 만든 명장면은 지금도 회자된다. 토론 중에 나온 “딱 걸렸어”(gotcha) 질문에 제대로 답을 하지 못해 선거에서 진 적은 없다. 대부분 후보 자신의 실언이나 태도 문제로 토론을 망치고 선거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을 뿐이다. 대선 후보 TV토론에서 미국이 우리와 다른 점은 무엇일까.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사회자의 역할이다. 공평성에 치중한 나머지 우리나라 토론 진행자는 시간만 재고 개입은 삼간다. 미국의 경우 각 방송사의 신뢰받는 베테랑 뉴스 진행자들이 토론 사회자로 나서서 후보들에게 이슈별로 질문을 던진다. 주도권 토론이라는 허울 아래 사회자 대신 후보들이 서로 곤란한 질문을 준비해서 약점만 캐묻는 것이 한국 규칙이다. 문제는 상대방이 대통령이 되는 전제 자체를 거부하느라 국민들의 궁금증을 풀지 못하는 데 있다. 미국과 중국을 다 잡을 복안은 무엇인가. 거대 야당을 설득할 자신과 전략이 있는가. 후보의 소통 능력과 정책 입장을 알아보는 TV토론이 제 기능을 발휘하도록 우리 실정에 맞는 개선책부터 토론해야 할 때다.
  • 부광약품 최대주주 오른 OCI…“글로벌 바이오·케미칼 회사 도약”

    부광약품 최대주주 오른 OCI…“글로벌 바이오·케미칼 회사 도약”

    에너지·화학 전문기업 OCI가 부광약품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OCI는 1461억원을 투자해 부광약품의 주식 773만주를 취득하는 매매계약을 맺었다고 22일 공시했다. 이 계약으로 OCI는 부광약품 지분 11%를 보유한 최대주주가 된다. 양사는 앞으로 신제품 개발이나 대규모 투자, 차입 등 중요한 경영상 판단을 함께 내리기로 했다. OCI와 부광약품은 앞서 2018년 합작사 ‘BNO바이오’를 통해 파트너십을 키워온 바 있다. 부광약품은 1960년에 설립된 제약회사다. 최근 외부 기업과의 협력을 통해 신약을 개발하는 ‘오픈 이노베이션’(개방형 혁신)을 통해 뇌질환 치료제와 항암제를 중심으로 의약품 개발 파이프라인을 확대해왔다. 현재 30여개 해외사들과 다양한 파트너십을 구축하고 있다. 2008년 국내 최초로 폴리실리콘 개발에 성공한 OCI는 이 외에도 농약, 시약사업을 하면서 화학 기반 유관 사업을 축적한 바 있다. 최근 반도체, 이차전지 등 고부가가치 첨단소재사업과 친환경소재 사업 등으로 포트폴리오를 확대하고 있다. OCI의 글로벌 케미칼 사업 역량과 노하우, 자금력과 부광약품의 바이오 분야 전문성을 결합해 시너지를 내겠다는 게 OCI의 계획이다. 이우현 OCI 부회장은 “부광약품 지분 투자를 통해 제약, 바이오 분야의 성장 기반을 마련하게 돼 뜻깊다”면서 “앞으로 다양한 시너지 영역을 발굴해 부광약품을 세계적인 제약, 바이오 회사로 성장시킬 것”이라고 했다.
  • ‘1세대 국민 성우’ 오승룡 별세

    ‘1세대 국민 성우’ 오승룡 별세

    ‘국민 성우’라 불렸던 오승룡 한국성우협회 고문이 21일 지병으로 별세했다. 87세. 만성신부전을 앓던 고인은 최근 병원에 입원했다가 회복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것으로 전해졌다. 1935년 충남 보령에서 태어난 고인은 1954년 KBS 전신인 서울중앙방송국 성우 1기로 본격적인 성우의 길을 걸었다. 대표작은 군사정권 시절 부정부패를 고발했던 MBC 라디오 ‘오발탄’이다. KBS ‘세월 60년, 노래 60년’, 서울교통방송(TBS) ‘서울이야기’ 등 수많은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영화 ‘코리안 커넥션’(1990) 등 영화, 드라마에도 출연했다. 2011년엔 대중문화예술상 문화훈장을 받았다. KBS연기대상 성우부문 등 상도 받았다. 빈소는 서울 여의도성모병원에 차려질 예정이다. 발인은 24일이다.
  • ‘국민 성우‘ 오승룡 성우협회 고문 별세

    ‘국민 성우‘ 오승룡 성우협회 고문 별세

    1950∼1960년대 라디오 전성시대를 이끌어온 ‘국민 성우’ 오승룡 한국성우협회 고문이 21일 지병으로 별세했다. 87세. 만성신부전을 오래 앓던 고인은 최근 건강이 나빠져 병원에 입원했다가 회복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것으로 전해졌다. 1935년 충남 보령에서 태어난 고인은 중학교 시절인 1949년 라디오 어린이극 ‘똘똘이의 모험’으로 연기를 시작했다가 1954년 KBS 전신인 서울중앙방송국 성우 1기로 선발되면서 성우의 길을 걸었다. 대표작은 MBC 라디오 시사 풍자극 ‘오발탄’이다. 군사정권 시절의 부정부패와 사회 부조리를 고발했던 프로그램이다. 고인은 생전의 한 인터뷰에서 “외압때문에 (프로그램이) 없어질 뻔한 적도 있었는데, 도망 다니면서 (방송을) 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고인은 KBS에서 ‘퀴즈 올림픽’, ‘세월 60년, 노래 60년’ 등의 진행자를 맡았고, 서울교통방송(TBS)에서 ‘서울이야기’, 전국교통방송(TBN)에서 ‘세월 100년, 노래 100년’, ‘서울야곡’ 등을 진행했다. 또 영화 ‘코리안 커넥션’(1990)의 허장춘 역 등을 비롯해, 드라마 ‘조선왕조 500년 뿌리깊은나무’(1983), ‘어사 박문수’(2002∼2003), ‘상도’(2001∼2002) 등 여러 영화와 드라마에 출연하며 연기 기량도 선보였다. 고인은 2011년에 대한민국대중문화예술상 문화훈장을 받았다. KBS연기대상 성우부문, 대한민국방송대상 라디오연기대상, KBS연기대상 공로상 등 다양한 상도 받았다. 빈소는 서울 여의도성모병원에 차려질 예정이다. 발인은 24일로 예정됐다. 김지예 기자
  • 사쿠라는 가라… 제주산 왕벚나무 독립만세 외친다

    사쿠라는 가라… 제주산 왕벚나무 독립만세 외친다

    3·1절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이제 벚꽃도 독립만세를 외친다. 그러나 ‘불편한 진실’은 여의도, 진해, 경주, 제주 등 전국 유명 벚꽃길에 심어져 있는 벚나무들이 안타깝게도 거의 대부분 일본산 벚나무인 ‘소메이요시노’라는 점이다. 이에 사단법인 왕벚프로젝트 2050 창립준비위원회(초대회장 신준환 전 국립수목원 원장)가 지난 18일 창립총회를 열고 “제주에서만 자생하는 왕벚나무를 전국에 보급·확산시키는 국민운동을 펼치겠다”고 선언했다. 현진오(동북아생물다양성연구소 대표) 사무총장은 21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진해 군항제, 국회의사당 벚꽃길, 현충원, 경주 등 벚꽃축제가 펼쳐지는 유명장소의 벚나무들은 95%가 일본산 벚나무인 소메이요시노이고, 나머지 5%는 대목으로 썼던 벚나무인 것으로 알고 있다”며 “올해 안에 실제로 어떤 수종이 심어져 있는지 조사·발표해 우리의 자생 벚나무 심기운동에 관심을 유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제주 왕벚나무는 한라산을 중심으로 도내 173곳에 194그루가 야생에서 자생하고 있다. 유전적으로 모두가 다른 DNA를 지니고 있는 서로 다른 종(種)이다. 현 사무총장은 “일본산 벚나무는 도쿄의 한 식물원(우네노공원)에서 나온 단 한그루 나무에서 접목 또 접목해 번식시켰기 때문에 동일한 클론(복제)”이라며 “반면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제주 관음사~봉개동 일대 왕벚나무 등은 다 엄마, 아빠가 서로 다른 종이어서 품종 개량이나 기후변화 대응에도 일본산보다 더 유리하다”고 설명했다. 자생 왕벚나무 보급·확산에 가장 큰 걸림돌은 아무래도 버젓이 살아있는 기존 벚나무를 교체하는 일. 하지만 다행스러운 점은 벚나무 수령이 60~70년 되는데, 우리나라에 심어진 대부분의 벚나무들은 1960년대 심어진 것들이어서 그 생명력을 다하고 있어 수명을 다한 나무부터 교체하면 된다. 제주도는 봉개동 왕벚나무에서 딴 겨울눈을 활용해 조직 배양한 묘목 9000여 그루를 확보했고, 한라생태숲 등에 식재했다.
  • 2·28민주운동 관련 미국정부 공식문서 최초 발견

    2·28민주운동 관련 미국정부 공식문서 최초 발견

    1960년 2·28민주운동과 관련된 미국정부의 공식문서가 발견됐다. (사)2·28민주운동기념사업회는 1960년 3월 초, 당시 매카나기 미국대사가 미 국무부에 보낸 전문 중 일부와 미8군 사령부가 작성한 일일정보보고 문서 중 일부에 2·28민주운동의 상황을 기술한 내용을 발견해 62주년 2·28민주운동기념일을 앞두고 공개했다. 2·28민주운동과 관련한 외국 정부의 공식문서가 발견된 것은 2·28민주운동 발생 62년 만에 처음이다. 김노주 교수는 “이번에 발견된 문서들은 1960년 당시 미 대사인 매커나기가 미 국무장관에게 보낸 전문 2개와 미 8군 사령부 일일정보보고서 3개, 그리고 1960년 4월 26일자 뉴욕헤럴드 트리뷴에 실린 이승만 대통령 하야 성명”이며 “미국 측 서류들은 그동안 국내에 알려진 2·28과 관련된 주된 내용들이 모두 사실이었음을 확인하였고 몇 가지 새로운 사실들이 발견된 것에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문서발견자인 백재호 2·28민주운동기념사업회 기획홍보국장은 “4·19혁명 관련 자료를 찾다가 작년 말 ‘4월 혁명 사료총집’(2010, 민주화운동 기념사업회 발간)에서 우연히 발견했다”고 말했다.
  • ‘셰이퍼 빈야드’ 손에 쥔 신세계, 최고급 와인명가 될 수 있을까 [심현희 기자의 술 이야기]

    ‘셰이퍼 빈야드’ 손에 쥔 신세계, 최고급 와인명가 될 수 있을까 [심현희 기자의 술 이야기]

    美 나파밸리 와이너리 인수이마트 유통라인 활용 기대최상급 품질 유지여부 관건국내 주류업계에 ‘핵폭탄’급 뉴스가 연초부터 터졌습니다. 지난 16일 신세계그룹이 미국 와인산업의 심장인 캘리포니아 ‘나파밸리’의 최고급 와이너리인 ‘셰이퍼 빈야드’를 약 3000억원에 공식 인수했다는 소식인데요. 셰이퍼는 나파 지역에서도 단 10~12곳 정도만 꼽히는 대표적인 컬트와인 브랜드입니다. 컬트와인은 병당 가격이 최소 400달러 이상이고, 세계적인 와인 평론가 로버트 파커가 지속적으로 100점 만점에 100점 가까운 점수를 준, ‘완벽에 가까운 와인’을 생산하는 와이너리만 얻을 수 있는 명예입니다. 프랑스 그랑크뤼처럼 공식 등급은 아니지만 ‘최고급’을 알아보는 시장으로부터 암묵적으로 인정을 받아야 합니다. 미국 와인의 우수성을 입증하는 자존심, 헤리티지가 곧 컬트와인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죠. 미국 와인 산업에서도 ‘그들만의 리그’로 분류되는 컬트와인 중 하나가 신세계의 품에 안긴 겁니다. 앞서 10여년 전 이희상 전 동아원 회장과 그의 맏사위 전재만(전두환 전 대통령의 3남)씨가 나파밸리에서 ‘다나 에스테이트’라는 와이너리를 운영한 사례가 있습니다. 다만 거의 명맥이 끊긴 오래된 와이너리를 사들여 새 회사를 설립한 것이고, 생산한 와인도 아시아 시장에 한정해 판매했기 때문에 비교하기엔 어렵죠. 돈이 아무리 많아도 쉽게 살 수 없는 ‘컬트 와이너리’를 신세계는 어떻게 손에 쥘 수 있었을까요? 나파 지역에 정통한 국내 와인업계의 한 관계자는 “최근 나파의 와이너리 2세들이 상속세 문제 등으로 와이너리를 시장에 내놓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말합니다. 나파에서 컬트의 기원인 프리미엄 와인이 생산된 건 1960년대부터니 창업주 세대는 퇴장하는 추세입니다. 이 관계자는 “와인 산업은 결국 농업인데, 나파 2세들 사이에선 힘들게 농업에 종사하면서 어마어마한 세금을 내느니 정리하는 게 낫다는 분위기가 있다”면서 “사모펀드, 글로벌 주류 대기업 등이 캘리포니아 와이너리를 줄줄이 사들이고 있는 것도 이러한 흐름”이라고 하더군요. 셰이퍼 빈야드 또한 1973년 출판업에 종사하다가 와이너리를 창업한 존 셰이퍼가 2019년 3월 세상을 떠나고, 고등학생 때부터 아버지를 도와 와인을 만들었던 아들 더그 셰이퍼가 매물로 내놓은 것을 신세계가 포착한 것입니다. 신세계는 이번 인수에 대해 “부동산 가치가 있어 투자를 한 것”이라곤 하지만 이미 국내 와인수입 규모 1위 계열사(신세계L&B)와 최대 오프라인 유통업체(이마트)까지 보유한 상황에서 컬트와인을 생산할 수 있는 ‘대어’까지 낚은 것이죠. ‘신세계의 컬트와인’에 관한 명성이나 판매를 당장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성공 방정식을 갖춘 나파만의 방식을 유지하기만 해도 무조건 팔리는 게 컬트와인이니까요. 다만 소규모로 최상급 와인을 생산해 명성을 유지하는 셰이퍼의 경영 철학을 신세계가 ‘매출’ 위주로 바꾼다면 갈등이 일어날 테고, 품질의 변화 역시 시장이 암묵적으로 알아챌 것입니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