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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깔 고이 접어 나빌레라… 극락 이끄는 스님 춤사위

    고깔 고이 접어 나빌레라… 극락 이끄는 스님 춤사위

    목탁과 함께 스님들의 손에는 징, 북채, 태평소, 바라 등이 들려 있다. 망자의 혼을 달래는 구슬픈 가락을 따라 스님들의 승무가 펼쳐졌고, 이를 지켜보는 불자들은 향을 피우고 합장을 했다. 살아 있는 동안 전생에 쌓은 업을 참회해 소멸시키고 공덕을 올리고자 하는 이들은 현생에 있되 마음은 저 멀리 사후 세계를 향했다. 한국불교태고종이 4일 경기 양주 청련사에서 생전예수시왕생칠재(생전예수재)를 거행했다. 생전예수재란 사후 정토왕생을 위해 미리 복을 짓는다는 의미로 봉행되는 한국불교 전통 의식으로, 살아 있을 때 자신의 칠칠재(49일재)를 미리 지내는 행사다. 전생에 지은 업에 의해 다음 생이 결정된다는 윤회의 세계관에서 생전예수재를 통해 살아 있을 때 자신이 주인공이 돼 업을 씻고 다음 생의 복을 기원한다.이날 행사가 열린 청련사는 신라 흥덕왕 2년(827년) 창건됐고, 조선 태조 4년(1395년) 무학대사가 중창했다. 1960년대 중반부터 스님들이 직접 범패(재를 올릴 때 쓰는 음악)와 작법(재를 올릴 때 추는 춤), 장엄(향이나 꽃 등을 불전에 올리는 것)으로 생전예수재를 봉행하며 의식을 이어 왔다. 청련사 생전예수재는 지난 5월 경기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되기도 했다. 조계종 봉은사 생전예수재(2019년 서울시 무형문화재 지정) 이후 광역단체 지정문화재로는 불교계에서 두 번째다. 이날 흐릿한 날씨 속에 오전 일찍부터 청련사에 200명이 넘는 사부대중이 모였다. 목탁 소리와 함께 징이 울렸고, 태평소와 북소리가 들리며 예수재 사전 행사가 본격 시작됐다. 지홍 스님의 목탁을 선두로 취타대, 어산단, 깃발, 사부대중이 따르는 시련 행렬을 시작으로 혼령을 대면하는 대령 의식, 번뇌와 업을 지우는 관욕 의식, 괘불을 중정으로 이운하는 괘불이운, 지전을 명부 세계에 통용되는 금은전으로 전환하는 조전점안, 경전을 담은 경함을 옮기는 경함이운 등이 이어졌다. 본행사인 생전예수재 의식이 진행될 때는 전생과 현생, 내생을 생각하는 마음이 절정에 달했다. 태고종 총무원장 호명 스님은 “예수재의 목적은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함으로써 더 나은 삶을 살게 하며, 생을 마친 후에는 윤회를 단절하고 영원한 정토 세계로 가는 데 있다”면서 “모든 사부대중께서 예수재를 통해 진실한 몸과 마음으로 영원한 삶을 성취하기를 발원한다”고 말했다. 청련사 주지 상진 스님은 “우리보다도 바깥에서 더 신경 써 주는 것 같아 감사하다. 불교 의식이 단절돼 가고 있기 때문에 최대한 단절되지 않게 노력하는 것을 목표로 생전예수재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태고종은 이후 청련사 생전예수재가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될 수 있도록 준비할 계획이다.
  • 문래동 철공 기술, 예술을 입다…영등포구, 2022 소공인특별전 개최

    문래동 철공 기술, 예술을 입다…영등포구, 2022 소공인특별전 개최

    서울 영등포구가 오는 15일까지 문래동의 철공 기술과 문화예술을 결합한 소공인특별전 ‘ASSEMBLE’을 개최한다고 4일 밝혔다. 문래동 일대는 1960년대부터 철공소가 모여있던 곳이다. 쇠를 두드리고 깎는 소리가 익숙하던 문래동 골목에 2000년대 이후 젊은 예술가들이 모여들기 시작하면서, 최근에는 철과 예술이 공존하는 이색 지역으로 변모하고 있다. 구는 이러한 문래동의 특색 있는 인프라를 적극 활용하여 문화도시 사업 추진에 힘쓰고 있다. 올해로 2회째를 맞는 소공인특별전 역시 문화도시 사업의 일환이다. 이번 소공인특별전은 문래동 기계·금속 제조산업의 생생한 현장을 예술 전시로 표현하여 지역적 의미와 가치를 알리고자 한다. ‘모이다, 조립하다’라는 뜻인 ‘ASSEMBLE’은 문래동 철공소 장인들의 기술과 재료들이 서로 유기적인 관계를 통해 이곳에 터를 잡아, 기술을 습득하고 발전시켜 왔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전시는 문래동의 기술력, 장인 정신을 엿볼 수 있는 다양한 기계·금속 제품들과 공간 디스플레이, 초기 철공 단지를 일군 기술장인 7명의 이야기를 지역 청년 예술가의 시선으로 담아낸 영상 콘텐츠 등으로 구성됐다. 구는 이번 전시가 기술과 예술의 협력의 장인 문래동의 기술인과 예술인, 방문객 모두 공감하고 소통할 수 있는 자리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소공인특별전 ‘ASSEMBLE’은 15일까지 예술·기술 융복합 문화공간인 문래예술종합지원센터(술술센터)에서 열린다. 평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8시까지, 토요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6시까지 만나볼 수 있다. 전시와 관련된 자세한 사항은 영등포문화재단 또는 구청 문화체육과로 문의하면 된다. 최호권 영등포구청장은 “전시를 통해 오랜 세월 변화와 발전을 거듭해온 문래동 철공 기술의 위상을 널리 알려 소공인들의 자부심을 높이고, 문화예술과 기술이 공존하는 문래동의 긍정적 이미지를 제고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영등포구는 지난해 말 서울시 자치구 최초 문화도시로 지정됐으며, 구민 모두가 함께하는 명품 문화도시 조성을 위해 다각도로 노력하고 있다.
  • 재정준칙 도입되면 2060년 국민 1인당 나랏빚 ‘1.3억→5000만원’

    재정준칙 도입되면 2060년 국민 1인당 나랏빚 ‘1.3억→5000만원’

    정부의 재정 지출을 엄격하게 관리하는 재정준칙이 도입되면 2060년 국민 1인당 국가채무가 1억원에서 5000만원으로 줄어들 것이란 분석이 나왔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김상훈 국민의힘 의원은 국회예산정책처에서 받은 ‘2022~2070 국가채무 장기전망’을 추계한 결과 재정준칙 도입 없이 기존 재정정책과 제도가 지속되면 1인당 국가채무액이 2060년 1억 3197만원, 2070년 1억 8953만원으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됐다고 4일 밝혔다. 총 국가채무액은 2040년 2939조원으로 연간 국내총생산(GDP) 규모를 넘어서고, 2050년 4215조원, 2060년 5625조원, 2070년 7138조원으로 연평균 4.0%씩 증가할 것으로 추계됐다. 실제 경제활동에 종사하는 생산연령인구(15~64세)의 빚 부담은 더욱 커졌다. 생산연령인구 1인당 국가채무는 2040년 1억 305만원, 2060년 2억 7225만원, 2070년 4억 1092만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됐다. 국가채무는 불어나는데 생산연령인구는 점점 감소하면서 국민의 세금, 연금, 보험료 등 각종 세금 부담은 점점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반면 정부가 추진하는 재정준칙을 적용하면 국가채무 증가율은 연평균 1.5%에 그칠 것으로 전망됐다. 총 국가채무액은 20여년 늦은 2060년에서야 2000조원대에 올라설 것으로 예측됐다. 국민 1인당 국가채무는 2060년 4917만원, 2070년 5903만원으로 추산됐다. 재정준칙이 도입되면 국민 한 명이 부담해야 할 나랏빚이 2060년 1억 3197만원에서 4917만원으로, 2070년 1억 8953만원에서 5903만원으로 약 3분의 1 수준까지 줄어든다는 의미다. 생산연령인구 1인당 국가채무 역시 2060년에야 1억원대에 진입할 것으로 전망됐다. 김 의원은 “지난 5년간 방만한 국정으로 재정건전성이 심각하게 악화한 가운데 인구 감소 추세가 맞물리면 1인당 나랏빚 1억원이 더 빨리 다가올 수 있어 시급히 재정준칙을 법제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서 정부는 관리재정수지 적자 폭을 우리나라 경제 규모(GDP)의 3% 이내로 관리하고, 국가채무가 GDP 대비 60%를 넘어서면 GDP 대비 재정적자 비율을 2% 이내로 축소하는 내용의 재정준칙을 발표했다. 이는 직전 문재인 정부가 제시한 재정준칙[{(국가채무 비율/60%)×(통합재정수지 비율/-3%)}≤1.0]보다 강력한 수준이다. 재정준칙의 법적 근거도 기존 안인 시행령에서 격상한 국가재정법(법률)에 담기로 했다.
  • [씨줄날줄] 항공기 좌석 논쟁/임창용 논설위원

    [씨줄날줄] 항공기 좌석 논쟁/임창용 논설위원

    오래전 남미 출장 때 비행기 좌석 때문에 겪었던 고통을 잊지 못한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칠레 산티아고까지 가는 비행기였는데 옆 승객의 체구가 엄청 비대했다. 팔걸이가 내게 밀려 들어오는 통에 숨쉬기조차 힘들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100㎏을 훌쩍 넘길 듯한 거구의 그는 몹시 미안했는지 가는 내내 미동도 않고 허리를 숙이고 있었다. 그가 몸을 세워 어깨를 등받이에 대면 양옆의 두 사람은 꼼짝없이 눌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비행기를 자주 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와 비슷한 경험을 했을 것이다. 대다수 승객이 이용하는 이코노미클래스 좌석의 경우 앞뒤 공간과 폭이 좁아 성인들은 대개 답답함을 호소한다. 옆이나 앞뒤 승객과 작은 공간이라도 확보하고자 무언의 신경전을 벌이기도 한다. 항공사에 따라 정책적으로 몸집이 비대한 승객에게 팔걸이를 들어올릴 수 있는 통로쪽 좌석을 먼저 배정하기도 한다. 좌석 잡기 노하우도 많이 공유된다. 비상구 앞이나 맨앞 좌석이 특히 인기다. 다리 뻗을 공간이 넓어 운신하기 편해서다. 하지만 일부 저가항공은 이런 좌석에 별도 요금을 매기기도 한다. 만석이 아닐 경우 옆 좌석이 비는 행운을 누리기 위해 맨 뒷좌석을 선호하는 승객도 적지 않다. 어쩌면 비행기 승객들의 이런 고통과 수고가 조금은 줄어들 수도 있을 것 같다. 미국 연방항공청(FAA)이 항공기 승객의 안전과 건강을 고려해 좌석에 관한 새로운 기준 마련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좌석의 최저 기준을 정하겠다는 것이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에 따르면 미국인 남성의 평균 체중은 90㎏으로 1960년대보다 13.6㎏ 증가했다. 여성도 77㎏으로 13.6㎏ 늘었다. 같은 기간 비행기 좌석의 폭은 외려 평균 47㎝에서 43.2㎝로 좁아졌고, 앞뒤 거리도 89㎝에서 78.7㎝로 줄었다. 좌석 크기에 대한 강제 기준이 없다 보니 항공사들이 이익 극대화를 위해 점점 더 많은 승객을 좁은 공간에 욱여넣은 셈이다. FAA의 조사에 따르면 대다수 응답자들은 좌석 크기 규제가 안전을 위해 필요하다고 답했다. 좌석이 줄어 항공료 인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긴 하다. 하지만 커진 체구를 억지로 작은 좌석에 계속 맞출 수는 없는 것 아닌가.
  • ‘한파와 폭염’이 동시에?…중국 이상기후 현재 상황 보니 [지구를 보다]

    ‘한파와 폭염’이 동시에?…중국 이상기후 현재 상황 보니 [지구를 보다]

    중국 중북부와 남부에 각각 한파 경보와 폭염 경보가 발령되는 극단적인 이상기후가 포착됐다. 중국 중앙기상대는 3일(이하 현지시간) 오전 6시, 중부와 북부 지역에 한파 경보를 발령했다. 기상대는 이날 차 공기의 영향으로 강풍이 불며, 최저 기온이 지난달 말보다 8~12도 떨어질 것으로 예보했다. 특히 지린성(省)과 허난성, 안후이성, 장쑤성, 후난성, 후베이성 등 6개 지역의 기온 하강 폭은 18도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중북부 지역에 한파 경보가 발령된 것은 2일에 이어 이틀 연속이며, 오는 6일과 7일에는 기온이 더 떨어져 일부지역 최저 기온은 0도 안팎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반면 상하이와 푸젠, 충칭, 광둥 등 남부 지역에는 동일한 기간 폭염 경보가 발령됐다. 중앙기상대는 이 일대 지역의 낮 최고 기온이 37~39도에 이르고, 장시성 북부와 푸젠성 서부 일부 지역은 40도를 웃돌 것이라고 예보했다. 실제로 3일 상하이 기준 관측소인 쉬자후이 지역의 최고 기온은 34.7도를 기록했다. 이는 1984년 10월 2일 기록한 10월 역대 최고 기온이 34도를 훌쩍 넘은 것이다. 150년 만에 가뭄으로 600년 전 불상 모습 드러내 현지에서는 이번 폭염으로 지난 6월부터 계속된 폭염과 가뭄이 더욱 심각해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지속된 가뭄과 폭염은 중국 최대 벼 생산기지인 중남부 지역의 쌀농사에도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양쯔강(창장) 중·하류 농경지에 용수를 공급하는 중국 최대 담수호인 포양호 수위는 지난달 18일 7.39m까지 떨어졌다. 앞서 지난달 6일 포양호 수위는 1951년 관측 이래 최저치인 7.99m를 기록했지만, 이대로라면 이달 말 7m를 밑돌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온 상황이다. 양쯔강에서는 가뭄으로 수위가 낮아지면서 600년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불상 3개가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  중국 당국은 “관측 이래 60년 만의 가장 긴 폭염”이라고 밝혔다.
  • 예순살 넘은 탐라문화제 3년만에 대면행사로 ‘와릉와릉 또시 글라~’

    예순살 넘은 탐라문화제 3년만에 대면행사로 ‘와릉와릉 또시 글라~’

    제주인의 최대축제인 탐라문화제가 3년 만에 대면행사로 펼쳐진다. 제주특별자치도와 한국예총 제주특별자치도연합회는 오는 6일부터 10일까지 탑동해변공연장, 탐라문화광장 일원에서 제61회 탐라문화제를 공동 개최한다고 3일 밝혔다. 올해로 어느덧 61회째를 맞는 탐라문화제는 지난 2년간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비대면 중심으로 열렸으나 올해 다시 현장에서 축제의 장을 펼치게 됐다. 이번 축제는 사실상 60년을 지나 다시 시작점을 맞이하는 첫 해의 의미를 되새기며, ‘와릉와릉 또시 글라, 제라헌 탐라의 얼!(힘차게 다시 가자, 진정한 탐라정신으로!)’을 슬로건으로 내걸었다. 1962년 제주예술제로 시작한 탐라문화제는 제주의 민속·신화·역사·생활 등 탐라문화원형을 활용해 전통과 역사를 알리는 제주의 대표 축제로 자리잡았다. 올해 탐라문화제를 내실 있게 운영하기 위해 준비 전담팀(TF)을 구성·운영하고, 여러 차례 회의를 거쳐 성과와 보완점을 진단한 뒤 개선할 점을 반영했다. 이에 따라 ▲공동체 참여를 통해 제주인의 삶의 원형을 발현할 수 있도록 과정에 중심을 두는 축제 ▲민속·신화·역사·생활사 등 제주 고유 콘텐츠의 브랜드화 ▲탐라문화제 전담조직 추진을 위한 총감독 선임 ▲지역의 상징성과 도민 참여가 가능한 장소에서 개최하도록 했다. 특히 탐라문화의 기원(起源)에서 시작해 도민 무사안녕을 기원(祈願)하는 메시지를 담아낸다. 코로나19로 피해를 입은 도민의 건강, 경제적으로 타격받은 도민들의 풍요와 번영을 기원하며 도민이 함께 참여하는 축제로 승화시키는데 방점을 찍는다. 거리 퍼레이드는 물론 걸궁, 민속예술경연, 제주어 경연대회, 어린이 그림 그리기대회, 해외교류단체 공연·전시 등 남녀노소 모두가 참여할 수 있는 17개 프로그램을 준비했다. 오성율 제주도 문화체육대외협력국장은 “올해 축제는 기존 공연 위주의 축제에서 벗어나 탐라문화제의 본질인 탐라문화원형을 통해 제주의 전통과 역사를 알리고, 도민이 참여할 수 있는 축제로 거듭나는 데 초점을 뒀다”고 말했다.
  • 월남전 상흔… “1960년 금마초 졸업생 찾습니다”

    월남전 상흔… “1960년 금마초 졸업생 찾습니다”

    시장, 감자밭, 방앗간 등 시내 곳곳을 돌아다니며 월남전에 참전한 군인을 찾아다니는 연구자들이 있다. 올해 한국·베트남 수교 30주년을 맞아 ‘월남으로 간 동창생들’ 구술 연구를 진행 중인 평화활동가 석미화(48)씨와 참전 군인 양정석(75)씨가 그 주인공이다. 10년간 월남전 진상 규명 활동을 하던 석씨는 참전 군인 개인의 삶을 통해 월남전을 바라보고자 했다. 이런 그에게 양씨가 전북 익산 금마초등학교 동창생 가운데 월남전에 간 친구들 명단이라며 노란 포스트잇을 건넸다. 손바닥만 한 포스트잇에는 전화기 너머로 고향 친구들이 읊어 준 참전 동창생 12명의 이름과 소속 부대, 계급 등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양씨는 1960년 2월 금마초를 졸업하고 1969년과 1971년 두 차례 월남전에 참전했다. 석씨와 양씨는 인근 대안학교 청소년들과 연구팀을 꾸리고 지난 6월부터 익산 금마면 일대에서 이들을 만나 전쟁이 개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듣기 시작했다. 석씨는 2일 “지금까지 월남전은 국가적 기억으로만 해석될 뿐 참전 군인 개인이나 마을 공동체의 관점에서는 다뤄지지 않았다”며 “참전 군인 개인의 기억을 듣고 사회적으로 확장해야 전쟁을 평화 교육으로 연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방앗간에서 만나 얘기를 듣기로 했다가 “마음이 바뀌었다”며 바람을 맞거나 “뭐 좋은 일이라고 얘기를 하냐”며 거절을 당하는 일도 있었다. 그래도 “평생 월남전 경험을 입 밖으로 꺼낸 적이 없는데 이번엔 이야기하고 싶다”며 마음을 연 동창생 덕분에 연구를 이어 갈 수 있었다. 지금까지 만난 5명의 참전 동창생들은 각자 자신만의 전쟁을 회고했다. 청룡부대에서 전투병으로 복무했던 김모(76)씨는 지금도 부대의 단체 사진을 보면 폭탄 사고가 일어난 날 누가 전사했는지 손으로 짚는다. 김씨는 그날 훈련장을 돌며 흩어진 시신의 살점을 주웠다고 했다. 백마부대에 있었던 임모(77)씨는 월남전 참전 후 사진관을 운영하다 9년 전 뇌출혈과 고혈압으로 갑작스럽게 쓰러졌다고 했다. 고엽제 후유증이었다. 양씨도 월남전 당시 ‘아버지’를 부르며 울부짖던 아이들의 목소리가 지금도 귓전에 맴돈다고 했다. 실수로 작전 구역에 들어왔다가 사망한 한 베트남인의 집에서 새어 나오던 울음소리였다. 부산항에서 배를 타고 월남에 가는 꿈을 꾸다가 식은땀에 젖은 채 손발을 구르고 소리를 지르다 잠에서 깨어난 적도 있다. 양씨는 괴로운 기억이지만 “그래도 말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양씨는 “전쟁의 참혹함을 직접 겪었던 참전 군인들이 계속 증언을 해야 지금 세대와 ‘전쟁은 미친 짓’이라는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다”면서 “힘의 논리로 일어나는 전쟁으로 결국 피해를 보는 건 약자와 자연, 후손이라는 걸 간절한 마음으로 털어놓고 싶다”고 말했다.
  • “금마초 졸업생 ‘김상사’를 찾습니다”…월남 간 금마초 동창들이 말하는 ‘진짜 전쟁’

    “금마초 졸업생 ‘김상사’를 찾습니다”…월남 간 금마초 동창들이 말하는 ‘진짜 전쟁’

    석미화 평화활동가·양정석 참전군인,동창생 찾아 월남전 얘기 듣는 연구 진행참전 군인 개인의 삶으로 전쟁에 접근“힘겨워도 말해야” 평화 활동으로 연결시장, 감자밭, 방앗간 등 시내 곳곳을 돌아다니며 월남전에 참전한 군인을 찾아다니는 연구자들이 있다. 올해 한·베트남 수교 30주년을 맞아 ‘월남으로 간 동창생들’ 구술 연구를 진행 중인 평화활동가 석미화(48)씨와 참전 군인 양정석(75)씨가 그 주인공이다. 10년간 월남전 진상규명 활동을 하던 석씨는 월남전을 참전 군인 개인의 삶을 통해 바라보고자 했다. 석씨는 2일 “지금까지 월남전은 국가적 기억으로만 해석될 뿐 참전 군인 개인이나 마을 공동체의 관점에서는 다뤄지지 않았다”며 “참전 군인 개인의 기억을 듣고 사회적으로 확장해야 전쟁을 평화 교육으로 연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런 그에게 양씨가 자신이 졸업한 전북 익산 금마초등학교 동창생 중 월남전에 간 친구들 명단이라며 ‘노란 포스트잇’을 건넸다. 손바닥만 한 포스트잇에는 전화기 너머로 고향 친구들이 읊어준 참전 동창생 12명의 이름과 소속 부대, 계급 등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양씨는 1960년 2월 금마초를 졸업하고 1969년과 1971년 두 차례 월남전에 참전했다.양씨는 “그해 졸업한 남자 동창생 10명 중 1명꼴로 많은 친구들이 월남을 갔다는 사실에 놀랐고 전쟁 이후에 어떻게 살았는지 속마음을 터놓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고 말했다. 석씨와 양씨는 인근 대안학교 청소년들과 연구팀을 꾸리고 지난 6월부터 익산 금마면 일대에서 이들을 만나 참전을 하게 된 배경과 전쟁 이후의 삶 등 전쟁이 개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듣기 시작했다. 방앗간에서 만나 얘기를 듣기로 했다가 “마음이 바뀌었다”며 바람을 맞거나 “뭐 좋은 일이라고 얘기를 하냐”며 거절을 당하는 일도 있었다. 그래도 “평생 월남전 경험을 입 밖으로 꺼낸 적이 없는데 이번엔 이야기하고 싶다”며 마음을 연 동창생 덕분에 연구를 이어갈 수 있었다. 지금까지 만난 5명의 참전 동창생들은 저마다 다른 5개의 전쟁을 지니고 있었다. 청룡부대에서 전투병으로 복무했던 김모(76)씨는 지금도 부대의 단체 사진을 보면 폭탄 사고가 일어난 날 누가 전사했는지 손으로 짚는다. 파편이 전방향에 연쇄적으로 터지는 ‘크레모아’(KM-18A1·클레이모어) 폭탄이 훈련 도중 갑작스럽게 터진 사고였다. 김씨는 그날 훈련장을 돌며 흩어진 시신의 살점을 주웠다고 했다. 백마부대에 있었던 임모(77)씨는 월남전 참전 후 사진관을 운영하다 9년 전 뇌출혈과 고혈압으로 갑작스럽게 쓰러졌다고 했다. 고엽제 후유증이었다. 전쟁이 40년 만에 다시 임씨의 삶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것이다.양씨도 월남전 당시 ‘아버지’를 부르며 울부짖던 현지 아이들의 목소리가 지금도 귓전에 맴돈다고 했다. 실수로 작전 구역에 들어왔다가 사망한 한 베트남인의 집에서 새어나오던 울음소리였다. 부산항에서 배를 타고 월남전에 가는 꿈을 꾸다가 식은땀에 젖은 채 손발을 구르고 소리를 지르다 잠에서 깨어난 적도 있다. 양씨는 괴로운 기억이지만 “그래도 말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양씨는 “전쟁의 참혹함을 직접 겪었던 참전 군인들이 계속 증언을 해야 지금 세대와 ‘전쟁은 미친 짓’이라는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다”면서 “힘의 논리로 일어나는 전쟁으로 결국 피해를 보는 건 약자와 자연, 후손이라는 걸 간절한 마음으로 털어놓고 싶다”고 말했다.
  •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김일과 명승부, 알리와 싸우던 안토니오 이노키 79세에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김일과 명승부, 알리와 싸우던 안토니오 이노키 79세에

    일본 프로 레슬링의 대부인 안토니오 이노키(본명 이노키 간지·猪木寬至)가 1일 오전 심부전으로 별세했다고 교도통신이 보도했다. 향년 79. 북한 지역 출신으로 일본인들의 국민적 영웅이었던 역도산(본명 김신락)의 3대 제자로 김일, 이노키, 자이언트 바비가 꼽혔는데 특히 2006년 세상을 떠난 김일과 여러 차례 대결하며 우리의 기억 속에 각인되고 북한을 30여 차례 방문해 북한과 일본의 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한 인물로도 족적을 남겼다. 자이언트 바바도 지난 1999년 세상을 등졌다. 고인은 아밀로이드종(amyloidosis)이란 희귀질환 때문에 고생했다. 아밀로이드라는 단백질이 한 곳 이상의 조직이나 장기에 지나치게 쌓여 기능 장애를 일으키는 질환이다. 하지만 투병 의지가 대단해 늘 트레이드마크인 붉은색 스카프를 목에 두른 채 나타나곤 했다. 지난 8월 한 텔레비전 쇼에 휠체어에 앉은 채로 등장한 것이 마지막이었다. 그는 “여러분이 보는 대로 난 스스로를 한계까지 밀어붙이고 있다. 힘이 넘쳐 여러분에게 보여드릴 수 있다”고 말했다. 1943년 일본 가나가와현에서 태어난 이노키는 중학교 때 가족과 브라질로 이주해 커피 농장에서 일했다. 1960년 원정을 위해 브라질을 찾은 역도산에게 스카우트됐는데 투포환 선수로 명성을 떨친 뒤 프로 레슬러로 데뷔해 있었다. 이노키는 신일본 프로레슬링연맹을 창립했는데 그의 일본 프로 레슬링 데뷔전 상대가 박치기로 유명한 김일이었다. 안토니오 이노키란 이름은 데뷔 2년 뒤에 스스로 붙였다. 일본 프로 레슬링을 이끈 인물이 고인이었다. 데뷔전에서는 김일에게 졌으나 그 뒤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김일과 명승부를 펼치며 우리 국민에게도 강한 인상을 남겼다. 역도산의 최후를 지켜본 제자로 알려졌다. 또 일본 언론들에는 의도적으로 김일과의 라이벌 관계가 다뤄지지 않은 점이 특이하다. 고인은 김일이 말년에 외롭게 투병할 때 치료비를 보낸 적이 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1976년 도쿄 부도칸에서 당시 프로 복싱 세계 헤비급 챔피언인 무하마드 알리와 이종 대결을 펼쳐 세계적인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사실 일본인들은 세기의 대결이라 했지만 미국 등에서는 이노키가 시종 링 위에 드러누워 뱅뱅 도는 알리의 다리를 걷어차려 애쓰는, 말도 안되는 대결로 업신여겨졌다. 고인은 이 경기를 통해 당시만 해도 생소했던 종합격투기(MMA)를 일본에 도입했다는 평가를 받는다.이노키는 1989년 스포츠평화당을 만들어 같은 해 참의원(상원) 선거에서 당선됐다. 1990년 걸프전 당시에는 이라크에 인질로 잡혀 있던 일본인들을 석방하는 데도 기여했다. 하지만 1995년 선거에서 낙선했고, 1998년에는 레슬링과 정치 양쪽에서 모두 은퇴했다가 2013년 정계에 복귀해 참의원 재선에 성공했다. 이노키는 스승인 역도산이 북한 출신이라는 배경 등을 이유로 북한을 무려 30여 차례 방문해 고위층과 회담하는 등 북일관계 개선에도 의욕을 보였다. 그는 1995년 4월 북한에서 처음으로 프로 레슬링 행사를 열었는데 이틀 동안 38만명이 관람할 정도로 큰 관심을 모았다. 참의원 의원이던 2013년 11월에는 스포츠 교류 행사 참석차 북한을 방문해 김영일 노동당 비서와 회담하고 북일 관계에 대한 의견을 교환했다. 이노키는 2016년부터 2018년까지 3년 연속 방북해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를 논의하기도 했다고 NHK 방송이 전했다.
  • ‘녹색’·‘평화’·‘저비용’… 원자력에 붙는 모순된 수사

    ‘녹색’·‘평화’·‘저비용’… 원자력에 붙는 모순된 수사

    미국 주도 원자력 계획 과정 담아자국 패권 유지 위해 ‘평화’ 이용에너지 제공 빌미로 핵기술 이전방사능 위험·핵무기 확산 부추겨최근 정부가 탈원전 기조를 폐기했음에도 저비용·청정 에너지로 규정된 원자력을 둘러싼 논쟁은 그치지 않고 있다. 깨끗하고 안전하며 풍요로운 미래를 약속한 원자력에 대한 전 세계적 신념이 어디서 비롯됐는지 역사의 궤적을 살펴보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제이컵 햄블린 미국 오리건주립대 역사학과 교수의 저서 ‘저주받은 원자’는 1950년대 이후 70여년간 미국 주도의 ‘평화를 위한 원자력’ 계획이 세계에서 어떻게 전개됐는가를 종합적으로 다룬 국제사 기록이다. 미국이 패권을 유지하려고 평화적 핵기술을 이용해 온 역사를 통해 원자력을 다층적으로 볼 실마리를 제공한다.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은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를 파괴한 원자폭탄과는 다른 ‘새로운 원자’를 세상에 내놓았다. 아이젠하워 정부는 원자력이 질병을 치료하고 새로운 먹거리를 만들고 모두에게 풍족한 에너지를 제공해 과거 식민지였던 개발도상국의 발전을 가속할 것이라고 선전했다. 하지만 이는 자국 수소폭탄 실험 계획에 쏟아질 세상의 주의를 분산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이후 미국 역대 정부는 각국의 핵 프로그램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세계 우라늄·토륨 시장을 장악했다. 핵무기 확산의 위험에도 산유국들에까지 원자력 기반 시설 설치를 독려한 이면에는 석유를 확보하려는 목적이 있었다. 미국이 집중적으로 원자력의 긍정적 측면을 부각시키자 원자력은 공포의 대상에서 욕망의 대상으로 전환됐다.각국 지도자들은 핵기술 이전을 최대화하고자 미국의 수사를 받아들이면서도 핵무기 비확산 문제에는 다양한 방식으로 대응한다. 일본은 핵무기를 개발할 수 있는 조건을 갖췄음에도 철저히 미국의 하위 파트너를 자처했고, 이스라엘은 미국의 비호하에 핵무기를 개발했다. 반면 이라크는 핵무기 개발을 철저히 숨기려고 했다. 평화적 핵기술은 잠재적인 핵무기 개발 기술이었다는 점에서 원자력은 결코 평화로운 적이 없었고 핵무기의 확산을 부추겼을 뿐이다. 기술 종속에 따른 신식민주의는 원자력 분야에서도 예외가 없었다. 수많은 개도국들이 핵기술을 채택했지만 전문성, 장비, 연료 측면에서 미국과 서유럽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1960년 프랑스는 첫 원폭 실험을 할 때 자국이 지배하는 알제리를 실험장으로 썼다.핵무기 보유 감시와 평화적 핵 사용을 위한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대한 비판도 눈길을 끈다. IAEA는 개도국에서 수많은 프로그램에 착수했는데, 1960년대 들어 세계보건기구(WHO), 유엔식량농업기구(FAO)와 격렬하게 충돌했다. WHO 과학자들이 방사성 낙진의 위험에 대해 언급하자 IAEA는 WHO를 밀어내려 했다. IAEA는 방사선을 오염 물질로 묘사하는 어떠한 서사에도 단호하게 대항했고 방사선을 활용해 곡물 내 단백질량을 늘리는 등 원자력이 세상의 질병, 기근, 인구 과잉 문제를 해결할 준비가 돼 있음을 다양하게 홍보했다. 광범위한 회원국을 보유한 IAEA는 원자력이 가져올 ‘녹색 혁명’의 청사진을 과장해 미국의 영향력 확대에 기여했다.저자는 탈원전에 대해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다. 다만 ‘평화적 원자력’이라는 약속이 수십년간 세계인의 공포와 야심을 유리하게 이용해 패권을 유지하려는 미국의 도구였다는 점에 주목한다. 결론적으로 원자력 발전을 단순히 에너지 수요와 기후 변화를 해결하는 기술적 선택지로만 여기는 것은 지구적 핵 질서의 불신을 가리는 프레임이라고 저자는 단언한다. 마찬가지로 우리 사회에서 원전 개발로 누가 이득을 볼지, 그에 따른 비용은 누가 어떻게 치를지에 대해 생각해 볼 만한 시사점을 제공하는 책이다.
  • [박상익의 사진으로 세상읽기] 찰스와 밀턴/우석대 명예교수

    [박상익의 사진으로 세상읽기] 찰스와 밀턴/우석대 명예교수

    찰스 3세가 영국 왕으로 즉위했다. 같은 이름으로 400년 전 영국을 통치했던 찰스 1세와 찰스 2세를 떠올린다. 두 사람 모두 시인 존 밀턴(1608~74)과 인연이 깊다. 찰스 1세는 독재 권력을 휘두르다가 의회군에 패해 재판을 받고 1649년 1월 참수형을 당한다. 그러나 비록 폭군일지언정 사형장에서 국왕다운 품격을 잃지 않아 구경꾼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신민이 국왕을 처형한다는 걸 상상하기 힘든 절대왕정 시대였다. 프랑스 등 유럽 군주국에서 반발 여론이 들끓었다. 이를 잠재우기 위해 공화국의 대의를 설득하는 여론전을 펼칠 필요가 있었다. 혁명정부를 대변해 군주제의 해악과 공화제의 정당성을 전 유럽을 상대로 선포하는 임무를 맡은 인물이 밀턴이다. 혁명정부의 외교부 장관직을 맡고 있던 그는 1650년 국가대표 단일 논객으로 국제무대에 섰다. 밀턴은 녹내장으로 1644년부터 왼쪽 눈 시력을 서서히 잃었고, 공화국 논객을 맡으라는 명을 받았을 때는 남은 오른쪽 눈도 상태가 매우 좋지 않았다. 의사들은 밀턴이 그 막중한 임무를 맡으면 스트레스로 두 눈의 시력을 완전히 잃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하지만 밀턴은 자신의 소명으로 여기고 임무를 떠맡았고, 그 결과 1652년 두 눈의 시력을 완전히 상실한다. 1649년에 시작한 공화정은 프랑스로 망명한 찰스 2세(사형당한 찰스 1세의 장남)가 복귀하면서 1660년 끝났다. 11년간의 공화정 실험은 끝났다. 세상은 뒤집혔다. 앞 못 보는 혁명가 밀턴은 은둔한 채 ‘실낙원’ 등 서사시 집필에 전념한다. 1663년 어느 날 밀턴 집에 뜻밖의 손님이 찾아온다. 사형당한 찰스 1세의 둘째 아들이며, 찰스 2세의 동생이자 왕위 계승권자인 제임스 2세였다. 부왕 처형을 정당화해 전 유럽에 필명을 떨친 공화주의자 밀턴이 얼마나 미웠을까. 그는 장애인 밀턴을 한껏 조롱했다. 하지만 왕세제 앞에서도 밀턴은 꼿꼿한 기개를 잃지 않았다. 불쾌해진 제임스 2세는 왕궁에 돌아가 밀턴을 교수형시키지 않은 건 큰 실수라고 투덜댔다. 그러나 찰스 2세는 늙고 가난한 장애인을 뭐하러 죽이느냐고 타이른다. 정치보복을 삼가는 절제와 품위다. 결과적으로 찰스 2세의 품격이 ‘영문학의 보석’을 살렸다고나 할까.
  • 39년 전 어제는 핵 참화에서 운좋게 살아남은 날, 페트로프 덕분에!

    39년 전 어제는 핵 참화에서 운좋게 살아남은 날, 페트로프 덕분에!

    1983년 9월 26일(이하 현지시간) 스타니슬라프 페트로프(당시 44) 중령은 옛소련이 핵공격을 감지해 조기 경보를 발령하는 일급 비밀시설 세르푸코프-15 벙커에서 밤샘 당직 근무를 하고 있었다. 어쩌면 이날 지구와 인류에 핵 참화가 일어날 수도 있었다. 그런데 페트로프가 당직 사령이어서 참화를 모면할 수 있었다고 말할 수도 있다. 당시 누구도 이를 알지 못한 채 하루를 그냥 넘겼다. 이 사실이 처음 알려진 것은 16년이 지난 1999년 미국 일간 워싱턴 포스트(WP) 보도를 통해서였다. 워낙 널리 알려진 일인데 미국 일간 마이애미 헤럴드가 다시 상세히 소개해 옮긴다. “경보가 울렸다. 위성들은 미국 핵미사일이 날아온다고 파악했던 것이다. 하나 더, 하나 더, 모두 다섯 발의 미사일이 날아오는 것으로 표시됐다.” 즉각 보복 공격을 해야 한다고 상관에게 보고하는 것이 그의 임무였다. 그는 2013년 영국 BBC 뉴스에 “내가 할 일은 전화를 거는 것이었다. 하지만 난 움직일 수조차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미국과 옛소련 모두 냉전시대에는 날아오는 핵미사일을 감지하는 즉시 보복 공격을 가할 수 있도록 조기 경보 네트워크를 운용했다. 요즘 흔히 말하는 상호 확증 파괴(mutually assured destruction) 독트린이다. 보복으로 핵무력을 절멸시키겠다고 약속함으로써 적이 도발하지 못하게 막는 장치란 뜻이다.물론 조기 경보 시스템은 지금도 이용된다. 핵무기 발사를 탐지하고 반응할 수 있도록 레이더와 위성, 컴퓨터와 정교화된 커뮤니케이션을 포함한 조기 경보 시스템은 여전히 작동한다. 예를 들어 북극 일대에는 미국에서 발사된 핵미사일 정보를 수집하는 레이더 망이 조기 경보 회선들과 함께 깔려 있다고 캐나다 CBC 뉴스는 보도했다. 이 망 이름이 캐나다 록그룹 러시의 1984년 앨범 타이틀 곡 제목으로 쓰인 ‘Grace Under Pressure’였다. 지금은 진부한 느낌의 북부 경보 시스템으로 대체됐다. 첨단기술이 동원되긴 했지만 시스템은 늘 실수를 완벽히 거르지 못했다. 페트로프가 근무하던 1983년 가을은 미국과 옛소련의 긴장이 한층 고조됐을 때였다. 같은 달 옛소련 전투기가 대한항공 007편이 영공에 진입했다는 이유로 격추시켰다. 269명의 탑승객과 승무원 전원이 희생됐는데 래리 맥도널드(민주 조지아주) 하원의원 등 미국인 63명이 포함됐다고 AP 통신이 전했다.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다음으로 냉전 위기가 고조됐던 해라고 미국 CNN은나중에 돌아봤다. 그런 판국에 페트로프의 모니터에 미국 핵미사일이 날아온다고 신호가 뜬 것이다. 그는 믿을 수가 없었다. 미국이 고작 다섯 발의 핵미사일로 싸움을 걸어온다고? 자살 행위라고 그는 생각했다. “사이렌이 울렸다. 몇초 가만히 앉아 있었다. 붉은 빛의 커다란 스크린에 빛이 깜박이며 ‘발사’란 단어가 깜박였다.” 1960년 10월 5일 미군이 주둔하던 그린란드 툴레 기지의 레이더 장비들도 비슷한 오작동이 있었다. 옛소련이 대규모 핵공격에 나섰다고 경보가 울린 것이라고 걱정 많은 과학자 연맹(Union of Concerned Scientists)이 2015년 보고했다. 당시 니키타 흐루쇼프가 유엔 총회 참석차 미국 뉴욕에 머무르고 있었는데 미국에 핵공격을 퍼붓는다는 것은 말이 안 됐다.그 공격이란 달이 뜨면서 레이더가 오작동을 일으켜 하늘에 온통 미사일인 것으로 보이게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그것이 마지막 실수도 아니었다.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때 미군 군함들이 쿠바로 가는 길을 봉쇄하자 옛소련 잠수함 함장은 전쟁이 시작됐다고 확신해 잠수하면서 핵 어뢰를 거의 발사할 뻔했다고 PBS 방송이 보도했다. 함께 탑승했던 세 장교 가운데 한 명은 찬성했는데 다른 한 명이 완강히 반대해 발사 명령을 철회했는데 만약 쐈더라면 미군 항공기가 격추돼 교전으로 이어질 뻔했다. 1979년에도 미군 사령부 여러 곳의 컴퓨터가 고장을 일으켜 2200기의 소련 탄도미사일이 날아와 몇 분 안에 명중될 것이라고 잘못 경고한 일이 있었다고 국립안보문서보관소가 보고했다. 미국은 레이더와 위성이 잘못된 경보임을 확인하기 전까지 핵무장 전폭기들을 준비했다. 다른 자그마한 결함도 3주 뒤에 눈에 띄었다. 그런데 이제 페트로프가 비슷한 딜레마에 직면했다. “뜨겁게 달궈진 팬 위에 앉아 있는 것 같았다.” 상관들에게 보고하면 “누구도 (보복 공격에) 반대하는 말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해서 그는 전화기와 인터콤을 괜히 만지작거리고 전자지도와 콘솔을 껐다켰다 했다. 나중에 다른 장교가 얌전히 앉아 할 일이나 하라고 소리를 질렀다. 결국 그는 자신이 잘못된 경보라고 확신하는 이 일을 상관들에게 보고하지 않기로 마음 먹었다. “난 강단 있게 즐거운 마음으로 지켜봤다. 사람들이 전쟁을 시작한다면 달랑 다섯 발로 시작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23분을 흘려 보냈고, 미사일은 날아와 때리지 않았다. 그제야 페트로프는 안도할 수 있었다. 그 해 11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는 소련의 침공을 막기 위해 핵공격 시뮬레이션을 포함해 대규모 합동 훈련인 에이블 아처(Able Archer) 작전을 실행했다고 스미소니언 매거진이 보도했다. 소련 지도자들은 이 훈련이 미국의 핵공격 빌미를 만들기 위한 것이라고 두려워했다. 해서 활주로에 핵무장한 항공기들에 연료를 주입한 채 대기시켰다. 아무 일 없이 훈련이 끝나자 소련 군도 긴장을 풀었다. NATO는 에이블 아처 훈련이 정말로 전면적인 핵전쟁을 시작할 때와 얼마나 비슷한지 알아내지 못했다. 소련이 붕괴한 뒤에도 1995년 러시아는 레이더에서 이상 징후가 포착돼 고도의 경계에 들어간 일이 있는데 나중에 북극광(Northern Lights)을 연구하기 위한 노르웨이의 로켓이 발사된 것을 감지한 것으로 판명됐다고 프론트라인은 전했다. 페트로프는 무사히 전역해 모스크바 근교에서 여생을 즐기다 2017년 사망했다. 핵 참화를 피하게 만든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채였다고 미국 NPR은 전했다. 소련군 안에서도 그는 처음에는 잘했다고 칭찬받았지만 나중에 반복 적으로 불려가 추궁 당했다. 경보를 알리지 않았다는 이유가 아니라 당직일지에 잘못 기재했다는 이유로 공식 소환장을 받기도 했다. 나중에 경보가 잘못 뜬 이유로 태양이 구름 위로 솟아오를 때 생긴 빛이 반사돼 미사일 발사로 혼동했다는 것이 조사 결과였다. 30년 뒤 페트로프는 BBC 뉴스에 동료들이라면 그저 임무란 이유만으로 잘못된 경보를 그대로 보고했을 수도 있다고 믿는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면서도 스스로를 영웅으로 여기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그게 내 일이었다. 내가 그날 밤 당직이어서 사람들은 운이 좋았다.” 오늘 우리는 또 기가 막히게 운 좋은 하루를 보내고 있다. 누군가 공언한 선제타격론도 기가 막히게 운 좋은 일들이 쌓이고 쌓여야 기적처럼 성공하는 전략 개념이란 점은 두 말할 나위 없다.
  • 尹 “기존 정책 출산율에만 초점, 포퓰리즘…철저히 반성”

    尹 “기존 정책 출산율에만 초점, 포퓰리즘…철저히 반성”

    윤석열 대통령은 27일 인구 감소 문제 해결을 위해 “포퓰리즘이 아닌 과학과 데이터에 기반한 실효성 있는 정책 추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 모두발언에서 “출산율을 높이는 데만 초점을 맞췄던 기존 정책에 대한 철저한 반성이 시작”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 16년간 인구 문제 해결을 위해 280조 원의 예산을 쏟아부었지만, 올해 2분기 출산율은 0.75명까지 급락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를 인구 감소와 100세 시대 해법을 찾는 컨트롤타워 역할을 수행하도록 전면 개편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저출산·고령화 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위해선 “지역이 스스로 동력을 찾고 발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2020년 기준 한국의 출생아 수는 27만2300명으로 사상 최초로 20만명대까지 내려앉았고 합계출산율은 OECD 꼴찌인 0.84명이었다. 합계출산율은 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출생아 수 평균을 가리킨다.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1960년 6.0명에서 1976년 3.0명, 1983년 2.06명, 2017년 1.05명을 기록했고 2018년 1.0명 선을 깬 뒤 지난해에는 0.81명까지 내려왔다. 한국의 올해 2분기 합계출산율은 0.75명으로 동일분기 기준 역대 최저를 기록하는 등 저출산 문제는 계속 심화하는 추세다.
  • ‘검정고무신’ 극장판, 저작권 논란…“원작자 동의 구했다”

    ‘검정고무신’ 극장판, 저작권 논란…“원작자 동의 구했다”

    영화 ‘극장판 검정고무신: 즐거운 나의 집’ 측이 원작자 동의를 구하지 않고 작품을 제작했다는 주장에 대해 “명백한 허위사실”이라며 반박했다. 제작사 형설앤은 26일 입장문을 통해 “원작자의 동의를 구하지 않았다는 이우영 작가의 말은 허위 주장이다”라며 “원작자와의 사업권 계약에 따라 파생 저작물 및 그에 따른 모든 이차적 사업권에 대한 권리를 위임받아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극장판 검정고무신’의 원작인 애니메이션 ‘검정고무신’은 이 작가가 그림을 그린 동명의 만화를 기반으로 제작됐다. 형설앤 측은 애니메이션 ‘검정고무신’ 사업 권리는 애니메이션 투자조합에 있으며, 제작 당시 이 작가는 원작 사용만 동의하고 직접 참여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또 원작 만화의 줄거리·등장인물·작품 배경·대사 등을 구성한 글 작가 도래미(이영일)가 애니메이션을 포함해 ‘극장판 검정고무신’ 제작에 직접 참여했다고 설명했다. 형설앤은 “해당 작가가 ‘극장판 검정고무신’이 더이상 ‘원작자 동의도 없이 만들어진 작품’이라는 오명을 쓰지 않길 바란다고 전해왔다. 불필요한 오해를 하지 말아 달라”고 선을 그었다. 앞서 애니메이션 ‘검정고무신’은 원작 만화를 그린 이 작가가 ‘캐릭터 대행사가 자신의 허락 없이 극장판 등 2차 저작물을 만들었다’고 문제를 제기해 저작권 논란이 일었다. 영화는 1960년 서울을 배경으로 초등학생 기영이, 중학생 기철이, 가족 이야기를 담은 작품으로 새달 6일 개봉한다. 한편 도래미 작가를 포함한 원작 만화 공동 저작권자들은 2019년 이 작가를 상대로 수익 배분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이 작가가 ‘검정고무신’ 캐릭터, 작품 활동을 통해 발생한 수입을 배분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이 작가는 ‘캐릭터 대행사의 허락 없이 캐릭터를 등장시킨 만화를 그렸다는 이유로 피소됐다’고 주장해왔으나 형설앤은 “터무니없는 거짓”이라고 반박했다.
  • 중기중앙회, 60주년 포럼 개최

    중기중앙회, 60주년 포럼 개최

    중소기업중앙회가 창립 60주년을 맞아 중소기업이 나아갈 새로운 100년을 설계하는 포럼을 연다. 중기중앙회는 27~30일 롯데호텔 제주에서 전국 업종·지역별 중소기업 대표 400여명이 참가하는 ‘2022 중소기업 리더스포럼’(엠블럼)을 연다고 25일 밝혔다. ‘60년의 발걸음, 100년의 희망’이란 주제로 열리는 이번 포럼에서는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특별 강연을 시작으로 각 분야 주요 인사들의 강연이 다채롭게 펼쳐진다.
  • 남미 성당에서 일어난 기적, 피눈물 흘리는 성모상 [나우뉴스]

    남미 성당에서 일어난 기적, 피눈물 흘리는 성모상 [나우뉴스]

    콜롬비아 지방의 한 성당에 신자들의 몰려들고 있다. 연이어 일어나고 있다는 기적을 직접 보기 위해서다. 기적의 현장을 본 신자들은 “성모님이 세상을 불쌍히 보시고 기적을 베푸시고 계시다”고 입을 모은다. 콜롬비아 부카라망가에 있는 에르마니타스 성당. 이곳에 있는 성모상은 최근 피눈물을 흘리고 있다. 처음 기적을 목격한 사람은 성당 청소를 하는 한 여성이었다. 이 여성은 “성당을 청소하다가 우연히 성모상을 보니 얼굴에 빨간 무언가가 묻어 있었다”면서 “닦으려고 다가가 보니 더러운 게 묻은 것이 아니라 성모상이 흘리는 눈물이었다”고 말했다. 지난 3일(이하 현지시간) 일어난 일이다. 이 여성은 성당 측에 자신이 본 기적을 알렸다. 이 성당에서 이런 기적은 이번이 처음이었지만 마지막은 아니었다. 닷새 후인 8일 성모상은 또 다시 피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당시 성당이 촬영한 영상을 보면 성모상 왼쪽 뺨엔 피눈물이 흐른 자국이 선명하고, 오른쪽 눈엔 피눈물이 고여 있다. 기적이 또 일어났다는 말을 듣고 가장 먼저 달려가 성모상을 봤다는 한 여성신자는 “기적의 현장을 직접 보니 가슴마저 떨렸다”면서 “태어나서 처음으로 본 확실한 기적”이라고 말했다. 성당의 신부는 “성모상이 눈물을 흘린 건 우리의 영혼을 불쌍히 여기셨기 때문이라고 본다”면서 “미련한 사람들을 위해 눈에 보이는 기적을 일으키신 것”이라고 말했다. 피눈물을 흘리는 성모상이 이 성당에 들어선 건 지난 2012년이다. 이탈리아 로마에서 건너온 성모상이었다. 성당 측은 성모상의 눈에서 흐른 액체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전문가들에게 성분분석을 의뢰했다고 밝혔다. 한편 남미에서 성모상 눈물의 기적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1년 아르헨티나 미시오네스에 있는 한 성당에서 매일 성모상이 눈물을 흘리는 기적이 일어나 뜨거운 화제가 됐다. 60년 된 성모상은 매일 1회 투명한 눈물을 흘렸다. 시간은 저녁 7시, 밤 9시45분 등 매번 달랐지만 기적은 항상 신자들이 보는 앞에서 일어나곤 했다. 처음으로 기적을 목격한 사람들도 성모상 앞에서 기도를 올리던 신자들이었다. 기적을 직접 보기 위해 신자들로 북새통을 이루자 성당은 오픈시간을 조정하고 심지어 미사시간까지 바꿔야 했다. 당시 성당은 “성모께서 무언가 우리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는 것 같다”며 “어쩌면 지금 세상에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보시면서 탄식의 눈물을 흘리시고 자성하라는 말씀을 하고 싶은 것인지 모른다”고 했었다. 임석훈 남미 통신원 juanlimmx@naver.com
  •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뻐둥새‘에서 잭 니콜슨 괴롭힌 수간호사 플레처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뻐둥새‘에서 잭 니콜슨 괴롭힌 수간호사 플레처

    잭 니콜슨의 미친 연기로 인상 깊은 영화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One Flew Over the Cuckoo‘s Nest)에는 속내를 도무지 알 수 없는 수간호사 밀드레드 랫치드가 나온다. 노역을 피하려고 정신병자인 것처럼 굴었던 맥머피(니콜슨)는 사사건건 잔인하고 계산적인 랫치드와 대립하다가 결국은 굴복하고 만다. 기성사회의 논리와 시스템에 저항하거나 따지는 젊은이들을 기성사회가 어떻게 다루고 굴복시키는지 폐쇄적인 정신병동에 은유했다. 기존 질서에 대드는 환자들에게 뇌 절제 시술 등으로 응징하는 수간호사는 체제의 수호자를 상징했다. 그 역으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배우 루이스 플레처가 88세를 일기로 23일(현지시간) 세상을 떠났다. 고인은 프랑스 남부 몽두로스에 있는 자택에서 가족에 둘러싸인 채 잠을 자다 숨을 거뒀다고 AP 통신이 전했다. 플레처는 앨라배마주 버밍햄 출신이었는데 배우가 되려고 로스앤젤레스(LA)로 이주한 뒤 TV 시리즈에서 단역으로 출연하다가 1960대 초 결혼해 두 아들을 낳으면서 11년 동안 연기를 중단했던 ‘경단녀’였다.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는 켄 키지(1935~2001)의 1962년 베스트셀러가 원작이다. 밀로스 포먼 감독이 영화화를 결심하고 배우들을 캐스팅했는데 랫치드 캐릭터가 워낙 강렬해 맡으려 하지 않았다. 안젤라 랜스베리와 엘린 버스틴 같은 당대 최고의 스타들에게 퇴짜를 맞자 포먼 감독이 떠올린 것이 로버트 올트먼 감독의 영화 ‘우리같은 도둑들’(Thieves like us)을 통해 복귀했던 플레처였다. 당시 그녀의 이름은 캐스팅 명단에서 맨아래에 있었지만 배역을 따냈고, 그야말로 인생 역전을 이뤘다. 미국영화연구소는 수간호사 랫치드를 영화 사상 최악의 악당 순위 가운데 , 서쪽의 사악한 마녀(오즈의 마법사), 다스 베이더(스타워즈), 노먼 베이츠(사이코), 한니발 렉터 (양들의 침묵)다음에 매김할 정도다. 부모가 청각장애인이었던 그는 수상 소감을 수어로 전달하는, 당시로는 파격을 선보였는데 “여러분 모두가 나를 미워하는 것 같다”고 밝혀 큰 화제가 됐다. 불혹의 나이에 오스카상을 탄 뒤 여러 영화와 드라마에 출연했다. 드라마 ‘조안 오브 아카디아’와 ‘피켓 펜스’에 출연해 에미상 후보에 올랐고, ‘스타 트렉-딥 스페이스 나인’에서는 바조란의 종교 지도자 카이 윈 아다미 역을 맡았다. 그는 1960년대 프로듀서 제리 빅과 결혼해 1977년 이혼했는데 두 아들 존과 앤드루가 유족으로 남았다. 친구들과 팬들은 소셜미디어에 추모의 글을 나누고 있다. 고인과 피켓 펜스에서 호흡을 맞춘 청각장애 배우 마를리 매틀린은 트위터에 “영민한 여배우”라고 고인을 돌아본 뒤 오스카 수상 연설에 수어를 처음 사용한 배우라는 점을 강조했다. 스타 트렉: 딥스페이스 나인의 작가 휴잇 울프는 “루이스 플레처를 위해 대본을 쓴 것은 영예이자 즐거움이었다”고 애도했다.
  • 중러 “달러 패권 맞서 독자 결제망 개발”

    러시아·중국 주도의 ‘반미연합체’로 평가되는 상하이협력기구(SCO) 회의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달러 패권에 맞설 SCO 회원국 간의 독자적 국제 결제망 개발을 제안했다. 지난 16일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에서 열린 SCO 정상회의에서 시 주석은 “지역 통화(회원국의 화폐) 화폐를 이용한 국제 지불과 결제 시스템 개발을 강화하고 SCO 개발은행 창립을 추진, 지역경제 통합을 촉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착수한 대러 금융 제재는 물론 향후 중국에 가해질 금융 제재에 대비, 달러·유로화가 아닌 위안화·루블 등의 통화로 SCO 회원국 간에 결제를 할 수 있게 하자는 제안이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서방의 금융 제재로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에서 퇴출되자 자국 최대 국책은행인 스베르방크를 통해 SWIFT를 대체할 독자적 결제 시스템을 만들고 있다. 또 중국의 독자적 국제 위안화 결제 시스템인 국경간위안화지급시스템(CIPS)도 허용했다. 이미 중러가 독자적 결제 시스템을 바탕으로 양국 통화를 활용한 결제 비중을 높이는 가운데 이에 동참할 국가를 확대하겠다는 구상이다. 2001년 출범한 정치·경제·안보 협의체인 SCO의 회원국은 중국, 러시아,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우즈베키스탄, 인도, 파키스탄 등 8개국이었으나 ‘옵서버’ 이란이 이번 회의를 통해 사실상 정회원으로 추가됐다. 중러 주도의 국제 결제망을 전 세계 인구의 41%,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24%를 차지하는 SCO 회원국으로 확대시켜 ‘달러 패권’에 맞서겠다는 전략이다. SCO 정상회의는 시 주석의 제안을 받아들여 공동성명인 ‘사마르칸트 선언’을 통해 “SCO 국가들의 통화를 상호 교역 결제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을 점진적으로 늘린다”고 공식화했다. 미중러 삼각 경쟁은 어제오늘의 이야기는 아니다. 2차 세계대전 후 미소 냉전이 한창이던 1960년대 후반부터 공산 진영인 중러는 국경 전쟁을 벌이며 갈등을 증폭시켰다. 이 틈을 타 미국은 1979년 중국과 전격적인 수교를 단행하면서 중국을 끌어들여 소련을 견제하는 ‘세력 균형 전략’을 펼쳐 냉전을 승리로 이끌었다. 냉전 이후 미국이 일극 패권국이 되면서 중국과 러시아가 손을 잡고 미국에 맞서는 새로운 패권 구도가 형성된 것이다. 승리에 도취한 미국은 어느 날 문득 중국과 러시아의 달라진 모습을 알아챘다. 중국은 더이상 미국이 주도하는 글로벌 경제체제에서 저임금으로 지탱하는 ‘세계의 공장’이 아니라 미래 산업의 기술 표준과 통상 규칙을 제시할 정도의 기술 강국으로 거듭나 있었다. 러시아도 구소련 해체 뒤 만신창이 국가가 더이상 아니다. 체첸 전쟁, 조지아(그루지야) 전쟁을 거쳐 크림반도 합병과 시리아 개입에서 보여 준 대국으로서의 군사력을 자랑했고, 가스·석유 등 자원 강국으로서의 외교적 역량 등을 보이면서 유라시아의 또 다른 거인으로 재등장했다. 이런 중국과 러시아는 전략적 협력을 강화하면서 더이상 미국의 압력(제재)과 요구에 개의치 않고 있다. 2011년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였던 두 나라 관계를 ‘전면적인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로 격상시킴으로써 최고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 “바이든도 시진핑도 모두 우리 편”...인도 모디 총리의 ‘마이웨이’ 전술

    “바이든도 시진핑도 모두 우리 편”...인도 모디 총리의 ‘마이웨이’ 전술

    정치·경제 등 다양한 분야에서 영향력이 커지는 인도의 ‘마이웨이 외교’ 노선은 미중러의 삼각 패권 게임에서 진영을 뛰어넘으며 빛을 발하고 있다. 국익과 실용주의를 앞세운 인도가 과거 전통적 비동맹 노선이 아닌 다양한 진영과 손을 잡는 ‘다자동맹’ 외교를 펼친다는 평가가 나온다. 전문가들은 “다양한 국제 위기 속에서 인도는 균형을 잃지 않기 위해 우크라이나 전쟁을 일으킨 러시아와도 관계를 지속하고, 앙숙 중국과도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대표적인 사례로 인도는 반중(反中) 쿼드에선 미국·일본 정상과 악수하고, 상하이협력기구(SCO)에선 러시아·중국 정상과 손을 잡았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지난 몇 달간 보여 준 행보다. 최근 미국, 중국, 러시아 등 글로벌 강대국들이 치열한 패권 경쟁을 벌이는 가운데 14억명의 ‘인구 대국’ 인도는 진영을 넘나드는 독특한 외교안보 전략을 선보이고 있다. 경제 등 여러 부문에서 중국 대신 ‘세계의 엔진’이 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엔진의 연료는 다자동맹이 될 전망이다. 글로벌 경쟁은 일종의 위험 분산 게임이라는 시각도 있다. 인도는 전 세계 파트너 사이에서 특정 국가를 고르지 않고 국익이란 잣대로 다자동맹 또는 ‘전부 다 동맹’이란 개념으로 접근하고 있다. 인도 특유의 실용주의 국익 극대화 전략인 것이다. 인도는 전통적으로 비동맹 외교 노선을 걸어왔다. 미국과 구소련이 주도하던 냉전시대 어느 편도 지지하지 않고 제3세계 국가의 목소리를 대변했다. 1955년 반둥회의를 계기로 촉발된 비동맹운동의 좌장 노릇을 하며 국제정치의 한 축을 담당했다. 인도는 급변하는 글로벌 정세에 맞춰 새로운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1997년에는 벵골만기술경제협력체(BIMSTEC) 설립을 주도하며 남아시아 지역 영향력 확대에 나섰다. BIMSTEC는 인도, 태국, 방글라데시, 미얀마, 스리랑카, 네팔, 부탄 등 벵골만에 인접한 7개국이 회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인도는 중국, 러시아가 영향력 확대의 발판으로 삼고 있는 브릭스(BRICS), 상하이협력기구의 회원국이기도 하다. 동시에 ‘중국 견제’ 목적이 강한 안보 협의체 쿼드에도 미국, 일본, 호주와 함께 속했다. 지난 5월에는 미국이 주도한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 참여를 선언하기도 했다. 또 이스라엘, 미국, 아랍에미리트(UAE) 간 협의체인 I2U2의 멤버이자 주요 20개국(G20) 회원국이다. 인도가 가입한 국제 협의체의 성격을 보면 폭넓은 스펙트럼을 띠고 있다. 1962년 국경 문제로 중국과 전쟁을 치른 인도는 2020년 다시 중국과 군사적으로 충돌하면서 급격하게 관계가 악화되고 있는 상황이지만, 이달 초 러시아와 중국 등이 참여한 다국적 군사훈련 ‘보스토크(동방) 2022’ 훈련에 군병력을 파견했다. 안보와 국익을 위해서라면 앙숙이라도 언제든지 손을 잡을 수 있다는 인도식 실용주의의 단면을 보여 준 것이다. 인도는 미국이 주도한 쿼드 회원국과의 군사 협력을 강화하면서도 미국의 제재 위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러시아제 첨단 방공미사일 S400을 도입하기도 했다.1분기 GDP 세계 5위…7년 후 일본 추월 경제 분야에서도 인도의 독자 행보는 거침이 없다. 인도는 미국과 서방의 압박 속에서도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확대 중이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미국 등의 제재로 인해 판매에 어려움을 겪자 각국에 할인된 가격으로 원유 판매를 제안했고 인도가 흔쾌히 응한 것이다. 원유 수입의 80%를 수입에 의존하는 인도는 미국의 제재 동참이라는 ‘명분’보다는 국내 물가 안정이라는 ‘실리’를 택했다. 인도는 주요 7개국(G7)이 결정한 러시아산 원유가격 상한제 참여에도 신중한 태도를 보인다. 러시아는 과거부터 인도와 깊은 우호 관계를 이어온 데다 러시아산 무기에 대한 의존도가 매우 높다는 현실적인 이유가 크다. 미국의 요청으로 인도가 IPEF에 몸을 담고 있지만, 그렇다고 미국의 목소리를 일방적으로 수용하지는 않는다. 인도는 ‘세계 최대 FTA’로 불리는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의 경우 협상 초기에는 적극적으로 참여했지만, 2019년 11월 최종 타결 직전 불참을 선언했다. 조금이라도 국익이 침해될 경우 결코 좌시하지 않겠다는 인도의 강력한 의지를 보인 것이다. 이런 행보를 통해 인도는 정치·경제 영향력을 키우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의 자체 집계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인도의 GDP는 명목 기준으로 8547억 달러를 기록, 세계 5위 영국(8160억 달러)을 넘어섰다. 경제 전문가들은 인도의 GDP 규모가 2027년에는 4위 독일, 2029년에는 일본을 제치고 미국, 중국에 이은 세계 3위가 될 것으로 관측한다. 인도는 올해 2분기에 경제성장률 13.5%를 기록하며 무서운 질주를 이어 가고 있다. 인도는 주요 20개국에 속해 있지만, 이 중 가장 가난한 나라이며 주변 국가인 방글라데시(2362달러), 스리랑카(3699달러)보다도 1인당 소득이 낮다. 인도의 전체 가계소비 지출도 2조 달러로 세계 5위 소비시장이지만, 1인당 지출액은 1500달러에 불과하다. 비슷한 소비시장 규모를 가진 독일의 1인당 소비지출액이 2만 4000달러인 것을 감안하면 인도는 독일 구매력의 14분의1에 불과하다. 중러 “달러 패권 맞서 독자적 국제 결제망 개발하자”...반미 연합전선, 사마르칸트 선언러시아·중국 주도의 ‘반미 연합체’로 평가되는 상하이협력기구(SCO) 회의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달러 패권에 맞설 SCO 회원국 간의 독자적 국제 결제망 개발을 제안했다. 지난 16일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에서 열린 SCO 정상회의에서 시 주석은 “지역 통화(회원국의 화폐) 화폐를 이용한 국제 지불과 결제 시스템 개발을 강화하고 SCO 개발은행 창립을 추진, 지역경제 통합을 촉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착수한 대러 금융 제재는 물론 향후 중국에 가해질 금융 제재에 대비, 달러·유로화가 아닌 위안화·루블 등의 통화로 SCO 회원국 간에 결제를 할 수 있게 하자는 제안이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서방의 금융 제재로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에서 퇴출되자 자국 최대 국책은행인 스베르방크를 통해 SWIFT를 대체할 독자적 결제 시스템을 만들고 있다. 또 중국의 독자적 국제 위안화 결제 시스템인 국경간위안화지급시스템(CIPS)도 허용했다. 이미 중러가 독자적 결제 시스템을 바탕으로 양국 통화를 활용한 결제 비중을 높이는 가운데 이에 동참할 국가를 확대하겠다는 구상이다. 2001년 출범한 정치·경제·안보 협의체인 SCO의 회원국은 중국, 러시아,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우즈베키스탄, 인도, 파키스탄 등 8개국이었으나 ‘옵서버’ 이란이 이번 회의를 통해 사실상 정회원으로 추가됐다. 중러 주도의 국제 결제망을 전 세계 인구의 41%,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24%를 차지하는 SCO 회원국으로 확대시켜 ‘달러 패권’에 맞서겠다는 전략이다. SCO 정상회의는 시 주석의 제안을 받아들여 공동성명인 ‘사마르칸트 선언’을 통해 “SCO 국가들의 통화를 상호 교역 결제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을 점진적으로 늘린다”고 공식화했다.신냉전 빨려드는 미중러 삼각 경쟁 미중러 삼각 경쟁은 어제오늘의 이야기는 아니다. 2차 세계대전 후 미소 냉전이 한창이던 1960년대 후반부터 공산 진영인 중러는 국경 전쟁을 벌이며 갈등을 증폭시켰다. 이 틈을 타 미국은 1979년 중국과 전격적인 수교를 단행하면서 중국을 끌어들여 소련을 견제하는 ‘세력 균형 전략’을 펼쳐 냉전을 승리로 이끌었다. 냉전 이후 미국이 일극 패권국이 되면서 중국과 러시아가 손을 잡고 미국에 맞서는 새로운 패권 구도가 형성된 것이다. 승리에 도취한 미국은 어느 날 문득 중국과 러시아의 달라진 모습을 알아챘다. 중국은 더이상 미국이 주도하는 글로벌 경제체제에서 저임금으로 지탱하는 ‘세계의 공장’이 아니라 미래 산업의 기술 표준과 통상 규칙을 제시할 정도의 기술 강국으로 거듭나 있었다. 러시아도 구소련 해체 뒤 만신창이 국가가 더이상 아니다. 체첸 전쟁, 조지아(그루지야) 전쟁을 거쳐 크림반도 합병과 시리아 개입에서 보여 준 대국으로서의 군사력을 자랑했고, 가스·석유 등 자원 강국으로서의 외교적 역량 등을 보이면서 유라시아의 또 다른 거인으로 재등장했다. 이런 중국과 러시아는 전략적 협력을 강화하면서 더이상 미국의 압력(제재)과 요구에 개의치 않고 있다. 2011년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였던 두 나라 관계를 ‘전면적인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로 격상시킴으로써 최고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러시아가 크림반도 편입으로 경제제재를 받고 있던 2014년 5월엔 두 정상이 4000억 달러 규모의 러시아산 천연가스를 30년간 도입하는 계약을 체결했고, 2015년 5월엔 시진핑의 실크로드 경제벨트 건설과 푸틴의 유라시아 경제연합을 서로 연계하며 전면적 협력 관계가 됐다. 중러는 북핵과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시리아 문제 등 거의 모든 주요 현안에서 한목소리를 내며 미국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 [씨줄날줄] 한강의 기적/박홍환 논설위원

    [씨줄날줄] 한강의 기적/박홍환 논설위원

    지난 2월 24일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동부 국경지대에서 일제히 공격을 감행하면서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이 벌써 7개월째 이어지고 있다. 장기 소모전 양상으로 빠져들고 있는 이번 전쟁의 최대 피해국은 단연 우크라이나다. 지금까지 어린이 1000명을 포함해 민간인 희생자만 6000명에 이르고 있다. 4300만명의 인구 가운데 15%가 넘는 사람이 전쟁 난민으로 해외를 떠돌고 있다. 폐허로 변한 우크라이나 국토 곳곳은 마치 6·25전쟁 당시 한반도 남쪽을 보는 듯 처참하다. 국제통화기금이 예상하는 우크라이나의 올해 경제성장률은 무려 마이너스 35%. 지금 전쟁이 끝나더라도 인명 손실과 산업기반시설 대량 파괴, 국민 탈출 등으로 향후 몇 년간 제대로 된 경제활동을 이어 나가기 어렵다. 완전한 복구까지는 몇십 년이 걸릴 수도 있다. 우크라이나 정부의 고민이 깊은 이유다. 허나 우크라이나는 절망보다는 희망, 부정적 역사보다는 긍정적 역사의 흔적을 찾고 있는 듯하다. 나치 독일이 항복한 1945년 5월 9일 옛 서독은 전 국토가 황폐화한 상황이었다. 1948년부터 비로소 경제활동이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는데, 마셜플랜을 통해 지원받은 14억 4800만 달러의 종잣돈과 6·25전쟁 당시 연합군에 대한 보급품 지원 프로그램 참여, 광공업벨트의 재가동 등으로 1950년대 급속도의 경제성장을 이뤄 냈다. 이른바 ‘라인강의 기적’이다. 그야말로 무에서 유를 창조한 ‘한강의 기적’은 모든 개발도상국들의 롤모델로 꼽힌다. 박정희 정부는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통해 1960년대 경공업, 1970년대 중화학공업을 집중 육성했고, 정부와 국민이 힘써 노력한 결과 1953년 65달러에 불과했던 1인당 국민소득은 1977년 1000달러, 2000년 1만 달러를 돌파할 정도로 급속 성장했다. 저임금 노동 등 부작용도 컸지만 한국 경제는 전쟁 후 30년 동안 규모가 수백배 커졌다. 러시아의 침공으로 국토와 경제가 초토화된 우크라이나가 전쟁을 딛고 일어선 우리나라의 ‘한강의 기적’을 교과서에 싣는다고 한다. 한국의 발전상을 고교 지리와 역사 교육 과정에 포함시킨다는 것이다. 속히 전쟁이 끝나 우크라이나 또한 ‘드네프르의 기적’을 이뤄 내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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