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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포토] 제28회 공초문학상 수상하는 오탁번 시인

    [서울포토] 제28회 공초문학상 수상하는 오탁번 시인

    25일 서울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제28회 공초문학상에서 고광헌 서울신문사장이 오탁번 시인에게 시상하고 있다. 2020. 6. 25 박윤슬 기자 seul@seoul.co.kr
  • 6.25전쟁 70주년 맞아 추모기도회로 의미 되새겨

    6.25전쟁 발발 70주년을 맞이해 계명대가 호국영령을 추모하기 위해 추모기도회를 가졌다. 25일 오전 11시부터 계명대 성서캠퍼스 아담스채플에서 열린 추모기도회는 정순모 학교법인 계명대학교 이사장, 신일희 계명대 총장을 비롯해 교직원 100여 명이 참석했다. 이들은 6.25전쟁 70주년을 맞아 6.25 참전 용사에 대한 감사와 의미를 되새기며, 추모의 시간을 가졌다. 기도회와 함께 계명대 김춘해 교수가 아담스채플의 파이프오르간으로 진혼곡인 ‘모차르트 레퀴엠 K.626’을 연주하며 다같이 호국선열의 얼을 기리고, 계명대 성악과 이화영, 하석배 교수가 피아노과 이성원 교수의 피아노 연주에 맞추어 추모곡을 전하며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계명대는 6.25전쟁 70주년을 맞아 민간 차원에서 다양한 행사를 이어오고 있다. 지난 동계 방학기간 중에는 6.25전쟁 70주년을 맞아 참전국과 지원국에서 봉사활동을 펼치며, 우리나라를 도와준 국가들을 위해 감사의 뜻을 전하고 보답하는 시간을 가졌다. 에티오피아 봉사활동 기간 중에는 봉사단원들은‘한국전 참전용사 기념공원’을 방문하기도 했다. 이곳에서 아직 생존해 있는 참전용사들과의 만남의 시간을 가지고 감사의 뜻을 전하며 의미 있는 시간을 보냈다. 생존자들은 생생한 당시 이야기를 학생들에게 전했다. 특히, 타국을 위해 목숨을 바쳐 전장을 누비고 돌아왔을 때 에티오피아에 공산주의 정권이 들어서 자본주의 국가를 도왔다는 이유로 핍박 받으며 어려운 생활을 이어 갔다는 안타까운 사연으로 학생들은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임경수 교목실장은 추도사를 통해 “6.25전쟁이 발발한지 올해로 꼭 70년이 됐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안타까운 젊은 피를 많이 흘렸고, 그들의 목숨과 바꿔 오늘의 우리가 있다”며, “그들의 희생을 절대 잊어선 안 될 것이며, 다시는 이 땅에 이런 비극적인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대구 한찬규 기자 cghan@seoul.co.kr
  • 선명하게 기록된 ‘미군이 촬영한 6·25 피란민’

    선명하게 기록된 ‘미군이 촬영한 6·25 피란민’

    6·25전쟁 70주년을 맞아 부경근대사료연구소가 보유하고 있던 6·25 피란민 모습이 담긴 사진이 공개됐다. 컬러로 촬영된 사진들은 미군이 촬영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사진은 1951년 남쪽으로 향하는 경북 지역 피란민들의 모습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사진을 통해 어수선한 당시 지역의 상황과 고향을 등지고 떠날 수 밖에 없었던 피란민들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한편 6·25전쟁 70주년을 하루 앞둔 지난 24일 국군 전사자 유해 147구가 조국의 품으로 돌아왔다. 25일 조국의 품으로 귀환한 국군 전사자 유해 147구를 최고의 예우로 맞이하는 행사가 진행된다. 국가보훈처에 따르면 6·25전쟁 당시 나라를 지키고자 헌신한 분들에 대한 경의를 담아 ‘영웅에게 경례’라는 주제로 참전유공자와 유족, 정부 주요인사 등 3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6·25전쟁 70주년 행사가 열릴 예정이다.이날 행사에서는 신원이 확인된 고(故) 하진호 일병 등 국군 유해 7구와 미국으로 송환되는 미군 유해 6구에는 참전기장을 수여한다. 또 70년 만에 6․25전쟁 당시 공적이 확인된 생존 참전용사 2명과 유족 12명 등에게는 무공훈장을 수여한다. 각군 대표와 참전용사가 함께하는 헌정 군가와 ‘6․25의 노래’를 제창하고, 국군 유해 147구와 미군 유해 6구를 봉송 차량에 운구하면서 행사는 마무리될 예정이다. 강경민 콘텐츠 에디터 maryann425@seoul.co.kr
  • [서울포토] ‘부치지 못한 편지’

    [서울포토] ‘부치지 못한 편지’

    이산가족 상봉 신청자 중 올해 현재까지 1천300여명이 세상을 떠났다. 6.25 전쟁 70주년이며 이산가족 대면상봉 20주년을 맞은 해지만 남북관계가 최악의 상황으로 변하면서 북에 있는 그리운 가족을 다시 만날 수 있는 희망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사진은 25일 서울적십자사 서울사무소에 보관된 북측으로 보내지 못한 남측 이산가족의 영상편지 보관 자료. 2020.6.25 오장환 기자 5zzang@seoul.co.kr
  • [서울포토] 불꺼진 이산가족 화상상봉장

    [서울포토] 불꺼진 이산가족 화상상봉장

    이산가족 상봉 신청자 중 올해 현재까지 1천300여명이 세상을 떠났다. 6.25 전쟁 70주년이며 이산가족 대면상봉 20주년을 맞은 해지만 남북관계가 최악의 상황으로 변하면서 북에 있는 그리운 가족을 다시 만날 수 있는 희망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사진은 25일 서울적십자사 서울사무소에 마련된 이산가족 화상상봉장에 불이 꺼져 있다. 정부는 지난 2019년 4월 서울 5곳, 그밖에 인천, 수원, 춘천, 대전, 광주, 대구, 부산, 제주 등 총 13곳에 설치된 화상상봉장을 개,보수 작업을 통해 새단장했다. 2020.6.25 오장환 기자 5zzang@seoul.co.kr
  • [서울포토] 용산 전쟁기념관 한국전쟁 전시내용 변화 촉구 및 정책 제안 기자회견

    [서울포토] 용산 전쟁기념관 한국전쟁 전시내용 변화 촉구 및 정책 제안 기자회견

    25일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6.25 전쟁조형물 앞에서 군대를 위한 시민연대 회원들이 용산 전쟁기념관 한국전쟁 관련 전시내용 변화 촉구 및 정책 제안 시민사회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0.6.25 오장환 기자 5zzang@seoul.co.kr
  • 공수처 준비 공청회

    공수처 준비 공청회

    25일 대한상의에서 열린 공수처설립준비 공청회에서 남기명 공수처준비단장과 추미애 법무부장관, 이찬희 대한볍호사 협회장 및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20.6.25. 이종원 선임기자 jongwon@seoul.co.kr
  • [서울포토] 미래통합당 주호영 원내대표 복귀

    [서울포토] 미래통합당 주호영 원내대표 복귀

    미래통합당 주호영 원내대표가 2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긴급 비상의원총회에서 재신임을 추인받은 후 의총에 참석하고 있다. 2020.6.25 김명국선임기자 daunso@seoul.co.kr
  • 김상돈 의왕시장, 6·25전쟁 참전자 3명 자녀에 화랑무공훈장 전수

    김상돈 의왕시장, 6·25전쟁 참전자 3명 자녀에 화랑무공훈장 전수

    경기도 의왕시는 6.25전쟁 참전 유공자 무공훈장을 자녀에게 전달하는 전수식을 가졌다고 25일 밝혔다. 이는 ‘6.25전쟁 참전자에 대한 무공훈장 찾아주기’ 사업의 하나다. 6·25전쟁 당시 국방부, 육군에서 구국의 일념으로 헌신하였던 선배 전우의 명예선양을 위한 사업으로 이번에 전수한 훈장은 화랑무공훈장 훈격이다. 전수대상자는 5사단 소위 조도형, 9사단 병장 김학근, 3사단 하사 이병선 3명이다. 김상돈 시장은 화랑무공훈장을 참전자 유족인 김덕순 전몰군경유족회장과 유족 2명(조선훈, 이창례)에게 전수했다. 김덕순 전몰군경유족회장은 “아버지의 훈장을 이렇게 대신 받게 돼 참전자 후손으로 자부심과 긍지를 느끼게 되었다”고 소감을 전했다 김 시장은 “구국의 일념으로 나라를 위해 헌신한 세분의 전공을 오늘에서야 화랑무공훈장으로 전해 드리게 됐다”고 “6.25전쟁 70주년을 맞아 조국의 운명 앞에서 기꺼이 젊음을 바친 참전용사들의 숭고한 정신과 공로를 시민과 함께 기릴 것”이라고 말했다. 남상인 기자 sanginn@seoul.co.kr
  • [서울포토] 우린 사돈지간, 정진석 박덕흠 의원

    [서울포토] 우린 사돈지간, 정진석 박덕흠 의원

    자녀들의 결혼으로 사돈관계가 된 미래통합당 정진석(오른쪽), 박덕흠 의원이 2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긴급 비상의원총회에서 환한 웃음을 짓고 있다. 2020.6.25 김명국선임기자 daunso@seoul.co.kr
  • 박원순 “北에 방역협력 대화제안…방북 용의 있다”

    박원순 “北에 방역협력 대화제안…방북 용의 있다”

    “남북소통, 지방정부가 뚫어낼 수 있다”“북미대화, 좀 더 적극적으로 추진하길”박원순 서울시장은 6.25전쟁 70주년을 맞은 25일 “북한이 응한다면 언제든지 북한을 방문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박 시장은 이날 주한 북한 평양 주재 공관장을 겸임하는 20개국 대사들의 모임인 ‘한반도클럽’ 대사들을 초청,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물품 대북지원과 관련해 유엔제재 면제 승인을 받은 사실을 알리면서 “이 제재면제 조치를 계기로 북한당국에 신종감염병 문제 등과 관련한 방역협력을 위해 대화를 제안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남북의 대화와 소통이 꽉 막혀있을 때는 지방정부가 이를 뚫어낼 수도 있다고 본다”고도 했다. 또 “서울시는 그동안 방역물품과 방역의 노하우를 서울시의 자매도시뿐만 아니라 전세계 도시들과 함께 나눠 왔다”며 “우리의 형제국가인 북한과 그것을 나누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강조했다. 박 시장은 2032년 서울·평양 하계올림픽 공동 유치도 적극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2032년 서울·평양 하계올림픽 공동유치과정에서 서울시의 방역 시스템을 공유한다면 남과 북의 공동방역체계도 자연스럽게 구축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북측의 대남적대정책 전환에 큰 빌미를 제공한 것은 일부 탈북민 단체의 대북전단 살포행위였다”며 “이런 파괴행위는 즉각 중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북측의 언행에 대해서도 유감스럽다고 밝힌 뒤 “북측이 2000년 ‘6.15 선언’부터 2018년 ‘9.19 선언’까지 남북 정상간 맺어진 합의 정신을 정면으로 위반하는 행동을 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박 시장은 미국에 대해서는 “비핵화협상을 위한 북미대화를 좀 더 적극적으로 추진하기를 희망한다”며 “북측의 비핵화를 추동하는 방법으로 대북제재의 예외부분인 인도적 분야를 보다 넓게 해석해 적용할 수 있게 하는 등 대북제재 틀 완화의 전향적인 검토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서울포토] 국회 복귀한 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내대표

    [서울포토] 국회 복귀한 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내대표

    더불어민주당의 국회 법사위원장 선출 강행에 반발하며 사찰에 칩거하던 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내대표가 25일 9일만에 국회 복귀후 김종인 비대위원장과 차담회를 갖고 있다.2020.6.25 김명국선임기자 daunso@seoul.co.kr
  • [서울포토] 비맞으며 묘비에 앉아있는 까치 한마리

    [서울포토] 비맞으며 묘비에 앉아있는 까치 한마리

    6.25전쟁 70주년인 25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전사자 묘역에서 까치가 서성이고 있다. 2020. 6. 25 박윤슬 기자 seul@seoul.co.kr
  • [서울포토] 투명칸막이 치고 하는 회의

    [서울포토] 투명칸막이 치고 하는 회의

    성윤모 산업통상부 장관이 25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자리에 개별 투명 아크릴 칸막이를 설치한 채 열린 열린 ‘2020년도 제2차 산업융합 규제특례심의위원회’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2020.06.25. 이종원 선임기자 jongwon@seoul.co.kr
  • [서울포토] 6·25 70주년, 국방부 현충원 참배

    [서울포토] 6·25 70주년, 국방부 현충원 참배

    6·25 전쟁 70주년인 25일 정경두 국방부 장관이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현충탑 참배 후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2020. 6. 25 박윤슬 기자 seul@seoul.co.kr
  • 6.25전쟁 70주년, 한미 국방장관 “피를 나눈 혈맹…평화 지키자”

    6.25전쟁 70주년, 한미 국방장관 “피를 나눈 혈맹…평화 지키자”

    “북, 싱가포르 성명·남북합의 준수해야”“비핵화 외교 노력 계속 지원”“한미 연합연습 등으로 평화 증진할 것” 한미 국방장관이 6·25전쟁 발발 70주년을 기념해 정전협정 이후 지금까지 한반도를 지켜온 장병들에게 경의를 표하면서 한반도의 항구적인 평화와 번영을 보장하기 위한 연합방위태세 유지 공약을 재확인했다. 정경두 국방장관과 마크 에스퍼(Mark T. Esper) 미국 국방장관은 6·25전쟁 개전 시점인 이날 오전 4시에 공개한 공동발표문에서 “북한이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 공동성명과 남북 9·19군사합의 등에 따른 약속을 준수하기를 요구한다”고 밝혔다. 양 장관은 “한미 양국을 대표해 자유와 민주, 번영의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 장병들의 희생과 용기에 깊이 감사를 드리며, 그분들의 발자취를 기리고자 한다. 또한 1953년 정전협정 이후 지금까지 한반도를 지켜온 모든 장병들에게 경의를 표한다”고 말했다. 6.25전쟁 발발 70년이 지난 이후에도 한미동맹이 한반도와 동북아 지역의 안보, 안정, 번영의 핵심축(린치핀) 역할을 변함없이 수행하고 있다고 자평했다. 양 장관은 북한을 향해선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 공동성명과 9·19 남북군사합의 등에 따른 약속을 준수하기를 요구한다”며 “현재와 미래의 도전들에 대응하면서 한미동맹을 강화하고 진화시켜 나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에스퍼 장관은 6·25전쟁에서 보여준 희생정신을 바탕으로 대한민국 방위에 대한 미국의 철통같은 공약을 확인했다고 강조했다. 한미 국방부는 정보공유·고위급 정책협의· 연합연습 등을 통해 역내 평화와 안정을 지속 증진해 나가는 한편, 유엔안보리 결의에 따라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추구하는 외교적 노력을 계속 지원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또 양 장관은 한미 안보 관계를 강화하고 먼 미래까지 한미 연합군의 전통을 계승해 나갈 수 있도록 양자 협력의 폭과 깊이를 확대해 나가기로 약속했다. 다음은 한미 공동발표문 전문. 오늘 한미는 6·25전쟁 발발 70주년을 함께 기념하고자 합니다. 1950년 오늘, 서로 멀리 떨어져 있던 용맹스러운 한미 장병들이 공동의 가치와 목적 아래 함께 뭉침으로써 한미 군사동맹은 피를 나눈 혈맹으로 탄생하였습니다. 그리고 곧이어 새로이 출범한 유엔군사령부의 지원 아래, 16개 파트너국 장병들이 자유와 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부름에 응답함으로써 더욱 강력하게 되었습니다. 70년이 지난 이후에도 한미동맹은 한반도와 동북아 지역의 안보, 안정, 그리고 번영의 핵심축(linchpin) 역할을 변함없이 수행하고 있습니다. 정경두 대한민국 국방부 장관과 마크 에스퍼 미국 국방부 장관은 한미 양국을 대표하여, 자유와 민주, 번영의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 장병들의 희생과 용기에 깊이 감사를 드리며, 그분들의 발자취를 기리고자 합니다. 양 장관은 또한 1953년 정전협정 이후, 지금까지 한반도를 지켜온 모든 장병들에게 경의를 표하면서, 한반도의 항구적인 평화와 번영을 보장하기 위한 연합방위태세 유지 공약을 재확인합니다. 한미 국방부는 힘들게 이룩한 한반도 평화를 지키려는 확고한 의지를 견지하고 있으며, 유엔안보리 결의에 따라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추구하는 현행 외교적 노력을 계속 지원해 나가고자 합니다. 양 장관은 북한이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 공동성명과 남북 9·19 군사합의 등에 따른 약속을 준수하기를 요구합니다. 6·25전쟁에서 보여준 희생정신을 바탕으로, 에스퍼 장관은 대한민국 방위에 대한 미국의 철통같은 공약을 확인하였으며, 양 장관은 현재와 미래의 도전들에 대응하면서 한미동맹을 강화하고 진화시켜 나가기로 하였습니다. 또한, 양 장관은 규칙에 기반한 국제질서, 그리고 항행과 비행의 자유를 포함한 국제 규칙과 규범 준수의 중요성을 확인하였습니다. 양 장관은 복잡한 범세계 및 역내 안보 변화 속에서 공조의 증진 필요성에 동의하고 다양한 분야의 현안에 대한 협조와 협력을 강화해 나가기로 하였습니다. 양 장관은 또한, 한미일 및 다자 안보협력을 통해 동북아의 평화와 안보를 유지하기 위한 한미 역내 전략의 시너지 창출을 지속 모색해 나갈 것입니다. 한미 국방부는 정보공유, 고위급 정책협의, 연합연습 등을 통해 역내 평화와 안정을 지속 증진시켜 나갈 것입니다. 에스퍼 장관은 한측의 코로나19 대응이 효과성과 투명성에 있어 모범이 되고 있음을 강조하였습니다. 한미 국방부는 범세계적인 전염병 대유행에 대처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긴밀히 협력해 나갈 것입니다. 한미동맹은 상호 신뢰와 자유, 민주주의, 인권, 법치주의라는 공동의 가치에 기반합니다. 이러한 정신에 따라, 양 장관은 양측의 안보 관계를 강화하고 먼 미래까지 한미 연합군의 전통을 계승해 나갈 수 있도록 양자 협력의 폭과 깊이를 확대해 나가기로 공약하였습니다. 한미동맹이 구호로 외치는 바와 같이, “같이 갑시다! We go together!” 김채현 기자 chkim@seoul.co.kr
  • 화살머리고지·백마고지 전투기록, 6·25 관련 기록물 등록문화재 됐다

    화살머리고지·백마고지 전투기록, 6·25 관련 기록물 등록문화재 됐다

    화살머리고지와 백마고지 전투 등 6·25전쟁 당시 치열했던 격전 현장에 관한 기록물이 등록문화재가 됐다. 당시 국군의 전투 상황을 짐작해 볼 수 있는 기록물 400여건도 복원해 처음 공개됐다. 문화재청은 1950년 6월 25일부터 1953년 7월 27일까지 육군본부·군단·사단·후방부대 등에서 작성한 ‘6·25전쟁 군사 기록물’을 문화재로 등록했다고 24일 밝혔다. 전투 수행 계획·명령·지시 기록과 전투상보, 작전일지 등 총 15종 7521건이다. 유물은 25일부터 국립중앙도서관, 국회도서관 등에서 검색해 볼 수 있다. 국가기록원은 국방부 육군본부가 1950∼1952년 작성한 주요 전투 작전명령서와 작전지도 등 401건을 5년 6개월에 걸쳐 복원해 이날 홈페이지(www.archives.go.kr)에 공개했다. 6·25전쟁 발발 직전 국군 방어계획부터 북한군 남침 당일 전개된 춘천전투, 낙동강 방어선을 지키고 반격한 다부동 전투와 장사상륙작전 등이 포함됐다. 이순녀 선임기자 coral@seoul.co.kr 이범수 기자 bulse46@seoul.co.kr
  • 올바른 역사교육 위해 6·25 역사서 1000만부 나눠준 부영

    올바른 역사교육 위해 6·25 역사서 1000만부 나눠준 부영

    6·25전쟁 발발 70주년을 맞아 부영그룹과 6·25의 ‘남다른 인연’이 재조명받고 있다. 부영은 각국 젊은 세대들이 6·25전쟁 역사의 실상을 바르게 이해할 수 있도록 현재까지 역사서 1000만부 이상을 무료로 나눠 줬다. 또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 설치된 유엔참전국 기념비 마련 때에도 힘을 보탰다. 6·25전쟁 당시 목숨 바쳐 우리를 도와준 참전 용사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고자 2015년 부영은 2.7m 높이의 국가별 상징작품에 승리의 상징 월계관과 참전사항, 참전 부대 마크, 참전 규모 및 전투 기록, 참전 용사에게 바치는 글 등을 담아 기념관 측에 기증했다. 전후세대에 올바른 역사교육의 필요성을 일깨우기 위한 마음에서 출간과 기념비 지원을 시작한 것으로 알려진다. 또 이중근 부영 회장의 편저서 ‘6·25전쟁 1129일’은 학교·전쟁기념관·공공기관 등에 현재까지 1000만부 이상 무상보급됐다. 영문판도 제작해 110개국에 약 25만권을 배포했다. 이 책은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이 무방비 상태의 남한에 전면 남침을 개시한 시점부터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까지 1129일의 날씨, 전황, 국내외 정치상황 등을 일지 형식으로 정리한 것이다. 특히 지도, 통계 도표, 미공개 자료를 포함해 전쟁과 관련한 다양한 사진 200여장을 수록한 데다 날짜별, 일지 형태로 집필한 우정체(宇庭體) 기술 방식으로 필자의 주관적인 의견을 배제한 채 객관적인 사실만을 담았다는 점에서 평가를 받고 있다. 역사서 발간을 위해 이 회장이 사재를 들여 2013년 우정문고를 설립해 이 책을 발간했다. 이 회장은 우정문고를 통해 ‘광복 1775일’, ‘미명 36년 12,768일’, ‘여명 135년 48,701일’, ‘우정체로 쓴 조선개국 385년’ 등의 책들도 직접 편저했다. 백민경 기자 white@seoul.co.kr
  • 147구 참전용사 北·하와이 거쳐 70년 만에 귀환

    147구 참전용사 北·하와이 거쳐 70년 만에 귀환

    6·25전쟁 70주년 행사가 고국으로 돌아온 147구의 국군전사자 유해와 함께 개최된다. 국가보훈처는 24일 “6·25 참전유공자들의 희생과 헌신을 국민과 함께 기억하고, 유엔참전국의 공헌에 감사하는 70주년 행사를 25일 서울공항에서 개최한다”고 밝혔다. 행사는 참전유공자에 대한 경의를 담아 ‘영웅에게, Salute to the Heroes(영웅에 대한 경례)’라는 주제로 3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된다. 70년 만에 조국의 품으로 돌아온 국군 유해 147구를 맞이하는 행사가 먼저 열린다. 147구는 2018년 북미 정상회담 합의로 북한에서 발굴돼 미국 하와이로 옮겨졌다가 국군전사자로 판명됐다. 정부는 그동안 미 국방부 전쟁포로 및 실종자 확인국(DPAA)과 송환을 협의했고, 이날 하와이에서 공군 다목적 공중급유기(KC330)를 이용해 성남공항으로 봉환했다. 행사는 배우 최수종과 국방홍보원 정동미 대위의 사회로 진행된다. 147구 중 신원이 확인된 하진호 일병 등 7구와 국내에서 발굴돼 미국으로 송환되는 미군 유해 6구가 가수 윤도현이 부르는 ‘늙은 군인의 노래’가 흐르는 가운데 입장한다. 헌화·분향 후 정경두 국방부 장관과 로버트 에이브럼스 유엔군사령관 등이 유해에 참전기장을 수여한다. 이어 147구의 귀환 여정이 담긴 영상을 KC330 동체에 비춰 상영하고 배우 유승호가 장진호 참전용사 이야기를 낭독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등 22개국 유엔참전국 정상들이 처음으로 보내온 메시지도 상영된다. 6·25 당시 공적이 70년 만에 확인된 생존 참전용사 공호영 하사 등 2명과 유족 12명에게 무공훈장이 수여된다. 비무장지대(DMZ) 철조망과 6·25 당시 유엔참전국이 사용했던 수통, 탄피, 철모 등을 녹여 만든 ‘평화의 패’를 참전국 대표로 주한 네덜란드 대사에게 전달한다. 보훈처는 “아직 돌아오지 못한 12만 2609명의 전사자를 마지막 한 분까지 찾겠다는 국가의 약속을 담은 ‘122609 태극기’ 배지를 참석자 모두가 착용해 경의를 표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주원 기자 starjuwon@seoul.co.kr
  • “빨갱이 가족이란 낙인 두려워…금정굴 쪽은 쳐다도 안 봤어요”

    “빨갱이 가족이란 낙인 두려워…금정굴 쪽은 쳐다도 안 봤어요”

    “어려서는 내가 금정굴을 하루이틀 걸러 다니면서 무섭지도 않은지 거길(굴 위를) 건너뛰고 그랬지요. 그런데 아버지 죽고 나서 한 20여년 동안 한 번도 가지를 않았어요. 그쪽은 쳐다도 안 보고 얼씬도 안 하고 싶더라고요.”(이병순 금정굴유족회 고문) 경기 고양시 일산서구 일산동 황룡산 자락에 있는 18m 깊이의 수직 폐광 ‘금정굴’. 한때 ‘금구뎅이’라고 불렸던 영광의 기억도, 동네 꼬마들이 폴짝폴짝 뛰놀던 추억도 온데간데없다. 금정굴은 이제 ‘무덤’이다. 1950년 10월 9일부터 25일까지 고양·파주 지역의 민간인 160여명이 ‘빨갱이’로 낙인찍혀 재판 한 번 받지 못하고 학살당한 채 금정굴에 버려졌다. 70년이 지났지만 희생자들은 한 몸 온전히 누일 곳 없이 떠돌이 신세다. 1995년 유족들이 발굴 작업을 벌여 153구 이상의 유해가 세상에 나왔다. 신원이 확인된 희생자만 76명이다. 유해를 모실 곳이 마땅치 않아 지금까지 납골당만 세 차례 옮겼다. 2007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금정굴 민간인 학살 사건을 “경찰에 의한 불법적인 집단학살”로 결론 내렸지만, 희생자들의 넋은 위로받지 못했다. 진실화해위원회가 권고했던 평화공원 설립도, 영구적인 유해 안치소 설치도 아직 이뤄지지 못했다. 유족들은 애가 끓는다. 부역 혐의자 가족이라는 낙인이 두려워 문민정부가 들어서기 전까지 금정굴 쪽은 애써 외면했다. 억울한 죽음을 애도할 권리마저 박탈당한 채 살아온 세월이 수십 년이다. 서울신문은 24일 채봉화(74) 금정굴유족회장과 이병순(87) 고문을 만났다. 1950년 10월 9일. 당시 열일곱 소년이었던 이 고문의 뇌리에는 70년 전 모습이 스틸사진처럼 남아 있다. 집 앞에서 두 사람씩 삐삐선(군용통신선)에 묶인 채 이동하는 행렬을 목격했다. 맨 뒤에 아버지 이봉린이 있었다.보리밭 갈다 끌려간 아버지… 유해안치소도 없이 ‘떠돌이 신세’ 한국전쟁이 터지고 3일 만에 수도를 빼앗긴 국군이 9월 28일 서울을 수복한 무렵 이봉린은 능곡국민학교에서 열린 유엔군 환영대회에 나갔다가 치안대에 끌려갔다. 인민군이 마을을 점령한 시기 ‘농촌위원장’을 맡아 공출량을 계산하는 부역을 했다는 이유였다. “우리 아버지가 일산리 구장(區長)을 했었거든. 동네에서 추켜세우는 사람이잖아. 주변에서 ‘형님이 일 봐야지’ 하니까 맡게 된 건데….” 어머니와 7남매는 잡혀간 아비의 끼니 걱정에 매일 번갈아 수십 킬로 걸어 밥을 날랐다. 그러던 어느 날 고양경찰서에서 “(부역 혐의자들이) 문산으로 좌익 심사를 받으러 가서 오늘은 밥을 안 받는다”고 했다. 이 고문은 “문산을 가는 줄 알았지 금정굴로 가는 줄 누가 알았겠느냐”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행렬을 몰래 뒤따랐던 다른 희생자 유족을 통해 이 고문 가족은 진실을 알게 됐다. “아이고, 심사가 뭡니까. 그 구뎅이로 가서 다 쏴죽였어요!” 장남이었던 이 고문은 그 길로 작은아버지, 마을 어른들과 함께 사다리와 밧줄을 챙겨 금정굴로 향했다. 시신이라도 수습하자는 마음이었다. 그러나 시신은 찾지 못했고 피투성이가 된 채 금정굴에 떨어져 “살려 달라”고 외치는 한 사람을 구했다. 총알을 빗맞은 덕에 목숨을 건진 동네 주민 이경선이었다. 금정굴 사건의 유일한 생존자인 이씨는 이후 죽을 때까지 고향 땅을 밟지 않았다. 금정굴에서 학살이 처음 벌어진 이날 이봉린을 포함해 46명이 희생됐다.희생자 가족은 공포에 사로잡혀 침묵해야 했다. 그날 밤 이 고문의 집에 들이닥친 경찰은 “시체 가져왔느냐”, “빨갱이 찾으려고 금정굴에 갔다 왔느냐”고 화를 내며 장작 더미며 아궁이 구멍이며 죄다 창으로 쑤셔 댔다. “그날 금정굴에서 집으로 돌아오는데 누가 고발을 했는지 자전거를 탄 태극단 놈들이 서넛 올라오고 있더라고. 길이 엇갈려서 망정이지 거기서 마주쳤다면 우리도 다 죽는 거야. 일곱 사람이 갔었는데…. 그래서 잠자코 살았던 거지.” “이제는 시대가 달라져 말이라도 하지, 예전에는 아버지가 ‘빨갱이’로 돌아가셨다고 어디 가서 말도 못해….” 채 회장은 45년의 세월 동안 아버지의 죽음을 가슴에 묻고 살았다. 아버지 채기동은 보리밭을 갈다가 총을 멘 치안대 3명에게 끌려간 뒤 소식이 끊겼다. 그때 고작 네 살이었던 채 회장은 아버지와의 기억이 없다. 그는 졸지에 과부가 된 어머니와 금쪽같은 외아들을 잃은 할머니의 넋두리로 부친을 기억한다. “우리 엄마가 맨날 그러셨지. 봉화야, 네 아버지 금정구뎅이 가서 죽었다. 남들이 그런다.”채 회장은 금정굴과 가까운 파주에서 평생을 살았다. 그러나 아버지가 죽고 45년이 지난 1995년에서야 처음으로 금정굴을 찾았다. 뉴스로 유해 발굴 소식을 전해 듣고 동생과 함께 갔다. 채기동은 6년 동안 강제징용을 당했다가 해방 이후 돌아왔다. 채 회장은 “9척 장신에 원체 기운이 장사라 인근에서 아버지를 당해 낼 사람이 없었다더라”고 했다. “총을 멘 치안대가 당신을 찾으니 도망가라”는 말에도 채기동은 “잘못한 것이 없다”며 당당했다. ‘부역자 가족’의 삶은 매 순간 고통으로 점철돼 있었다. 채 회장은 “어머니가 생계를 위해 봇짐 장사를 하려면 도민증이 필요했는데 우리한테는 도민증 허가를 안 내줘서 어머니가 ‘꼼짝없이 죽겠다’며 우셨다”며 “핍박받으면서 세 딸을 키운 어머니를 생각하면 눈물부터 난다”고 했다. 채 회장이 끝까지 파주를 떠나지 않은 건 어머니의 유언 때문이다. 채 회장 가족은 시간이 흘러 아버지에게 부역 혐의자라는 누명을 씌운 마을 사람이 누군지 알게 됐다. 어머니는 “내가 죽어도 넌 반드시 이 동네에 살면서 남의 눈에 피눈물 흘리게 한 사람들이 어떻게 사나 두고 보라”는 말을 남겼다.“신도시 주민들은/발 밑이 저승인 사실은 모른 채/오래전 이 마을을 휩쓸고 간/역병보다도 더 고약한 숙청은 모른 채/두개골 정강뼈 쇄골 잘근잘근 밟으며/황솥밭 샛길을 오갈 뿐이다”(손세실리아, ‘뼈무덤’) 용기를 내 세상에 나온 유족들은 긴 싸움을 했다. 승리도 수차례 맛봤다. 2007년 진실화해위원회는 진실 규명을 결정하면서 “최종 책임은 국가에 있고 희생자 상당수는 도피한 부역 혐의자 가족이거나 이와 무관한 지역 주민이었다”고 했다. 2012년에는 국가 배상 소송에서 승소해 “희생자 2억원, 배우자 1억원, 부모·자식 각 5000만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이 확정됐다. 수차례 무산됐던 ‘6·25전쟁 민간인 희생자 위령사업 지원 조례안’도 2018년 고양시의회에서 통과됐다.그럼에도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희생자가 제대로 된 위령시설 없이 떠돌고 있고 유족이 겪는 고통도 여전하다. 일부 보훈단체 회원들은 아직도 희생자를 ‘토착 빨갱이’라고 부른다. 보수 정당 시의원은 조례 제정을 반대하며 “(희생자들은) 김일성 앞잡이 노릇을 했다”고 공공연하게 말했다. 금정굴 현장에 조성될 계획인 평화공원은 “납골시설이 들어오면 집값 떨어진다”는 일부 주민들의 반발에 부딪혔다. 채 회장은 “지금 희생자들을 임시 안치한 세종추모공원은 너무 멀다. 가까운 곳에 희생자들을 모시고 자주 왔다 갔다 하는 게 유족들의 소원”이라고 말했다. 이어 “죄도 없이 잡혀가 죽고, 설령 죄가 있다고 해도 재판 한 번 열지 않고 죽은 희생자들의 명예를 회복시켜 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 고문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게 한 전쟁이 다시는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진선민 기자 js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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