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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대영의 무기 인사이드] 육군·해병대 포병 최악의 보직 155mm 견인포 ‘KH-179’

    [김대영의 무기 인사이드] 육군·해병대 포병 최악의 보직 155mm 견인포 ‘KH-179’

    견인포는 자주포와 달리 차량이나 동물과 같은 다른 기동수단에 끌려서 이동하는 포를 뜻한다. 이러한 견인포는 우리 육군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야전포병의 기본이 되는 무기이며 가장 많은 수량을 자랑한다. 우리 육군은 105mm 및 155mm 견인포를 운용하고 있다. 이 가운데 ‘KH-179’는 우리나라가 독자 개발한 155mm 견인포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는 6.25 전쟁이 한창이던 지난 1951년 5월에 미군으로부터 M114 155mm 견인포를 군사원조로 300여문을 지원받아 처음으로 155mm급 화포를 운용하게 된다. 6.25 전쟁 이전까지만 해도 육군의 주력 화포는 105mm 이었다. 이 역시 미군에게 군사원조로 지원받은 것으로 M3 105mm 견인포 91문을 받아, 6개 포병대대를 창설해 15문씩 각각 배치했고 남는 1문은 병기학교에 두고 예비로 사용되었다. 6.25 전쟁 이후에는 미군에게 군사원조로 받은 M101 105mm 견인포와 M114 155mm 견인포로 육군 포병전력을 업그레이드 한다.하지만 M114 155mm 견인포는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2년에 개발돼 사거리가 짧다는 단점이 있었다. 이 때문에 미군은 M114 155mm 견인포를 대체하기 위해 M198 155mm 견인포를 새로 개발해 1978년부터 일선에 배치했다. 우리 군도 미군에 이런 움직임을 파악하고 운용중인 M114 155mm 견인포의 성능개량을 미국과 진행하려고 했다. 하지만 당시 미국은 막대한 기술료를 제시했고, 시제 제작과 시험평가를 미국 내에서 해야 한다고 강하게 요구했다. 그 결과 우리 군은 155mm 견인포를 독자 개발하기로 결정한다.이렇게 개발된 최초의 국산 155mm 견인포에는 KH-179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KH-179의 K는 ‘Korean’, H는 ‘Howitzer’, 1은 최초, 79는 개발 시작 연도를 각각 뜻한다. 험난한 과정 끝에 KH-179는 1982년에 개발을 완료하게 된다. 이후 1984년부터 육군의 야전포병에 배치가 시작되었고 점차 M114 155mm 견인포를 대체하게 된다. 155mm 38구경장 포신을 사용하는 KH-179 견인포는 사거리 연장탄인 RAP(Rocket Assisted Projectile) 즉 로켓보조추진탄을 사용할 경우 30㎞에 달하는 사거리를 자랑한다.이밖에 경량화에도 초점을 맞춰 CH-47 대형수송헬기로도 공수가 가능하고 C-130 수송기에도 실을 수 있다. 그러나 비슷한 시기 개발된 외국산 155mm 견인포에 비해 자동화가 덜 되어 방렬 즉 포병 진지에서 화포를 사격 대형으로 정렬하는데 많은 인원을 필요로 한다. 이밖에 방렬 시 사고의 위험성도 높아 군대를 갔다 온 예비역들 사이에서는 81mm 박격포, 90mm 무반동총, 장간교 조립과 함께 KH-179 155mm 견인포는 우리 군 최악(?)의 4대 보직으로 손꼽힌다. 김대영 군사평론가 kodefkim@naver.com
  • DMZ 유해발굴, 화살머리고지에서 백마고지로 확대 재개

    DMZ 유해발굴, 화살머리고지에서 백마고지로 확대 재개

    군이 오는 5일부터 비무장지대(DMZ) 유해발굴 작업을 재개한다. 9·19 군사합의에 명시된 남북공동유해발굴을 위한 사전 준비 작업 차원이다. 남측은 올해 3년째 사전 준비를 하며 북측에 공동유해발굴 합의 이행을 촉구하고 있지만, 북측은 호응하지 않고 있다. 국방부는 5일부터 DMZ 화살머리고지 일대 남측 지역 유해발굴 작업을 재개할 예정이라고 1일 밝혔다. 올해도 지난해와 같이 제5보병사단장을 태스크포스(TF)장으로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과 지작사 특수기동지원여단, 제5보병사단 등이 유해발굴 작업에 참여한다. 국방부는 올해 작업 공간을 백마고지 지역으로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화살머리고지의 발굴 공간을 고려하면 남측 주요 전투지역의 유해 수습은 올해 전반기 내 마무리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국방부는 설명했다. 백마고지는 화살머리고지의 동쪽 지역에 인접하고 으며, 화살머리고지와 동일 전투지역이다. 6·25전쟁 당시 가장 많은 전사자가 발생한 지역 중 한 곳으로, 약 960여명의 국군 전사자와 실종자가 발생했다. 이에 국방부는 백마고지에서 많은 유해를 수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또 백마고지는 6·25전쟁 동안 우리 국군을 비롯하여 미국, 벨기에, 룩셈부르크 등 3개국이 참전한 전장으로서, 유엔군의 유해 수습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국방부는 백마고지 유해발굴 준비를 위해 이동로 정비와 해당 지역 지뢰 제거를 실시하고, 후반기에 화살머리고지에 투입된 유해발굴TF를 백마고지로 파견해 작업을 개시할 예정이다. 화살머리고지 일대의 유해발굴 작업은 2019년 9·19 군사합의 이후 2019년부터 이뤄졌다. 지난 2년간 남측 일대에서만 총 2335점(잠정 유해 404구)의 유해와 8만 5074점의 유품이 발굴됐고, 국군 전사자 유해 중 9구의 신원이 확인됐다. 남북은 9·19 군사합의에 따라 화살머리고지 일대에서 공동유해발굴 작업을 하기로 했으나, 북측은 2019년 2월 하노이 2차 북미정상회담 결렬 이후 북미·남북 관계가 교착되면서 합의를 이행하지 않고 있다. 국방부는 백마고지를 포함한 올해 유해발굴 작업 재개 관련 내용을 북측에 통보했다.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 [국제라이온스협회 소식] 최중열 국제회장과 국내 총재단 UN기념공원 헌화

    [국제라이온스협회 소식] 최중열 국제회장과 국내 총재단 UN기념공원 헌화

    “매년 한 번 정도는 유엔기념공원을 방문해 오늘날 대한민국을 있게 한 6.25 참전 영령들에게 참배를 바랍니다.” 국제라이온스협회 최중열 국제회장과 김종석·최규동 국제이사, 오인교 국제재단이사, 국내 21개 지구 총재 등 50여명이 31일 부산에 있는 유엔기념공원에 헌화하고 기념식수를 했다. 국내 라이온스 60여년 역사상 두번째 국제회장을 엮임하고 있는 최중열 회장은 기념사에서 “1945년 유엔이 창설될 때 라이온스는 이미 국제연합 봉사단체로서 활발하게 봉사활동을 할 때 였다”면서 “라이온스를 창립한 멜빈 죤스가 유엔창립 자문역을 맡은 계기로 유엔이 매년 3월 두 번째 화요일을 ‘라이온스의 날’로 제정했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그런 인연으로 한국전쟁 중 전사한 유엔군들이 잠든 부산 유엔기념공원으로 현직 대한민국 대표 라이온들을 극히 제한적으로 초청해 전몰장병 영령 추모식과 기념식수를 하게 됐다”며 이날 행사 배경을 밝혔다. 최 회장은 “국제라이온스협회와 유엔은 오랜세월 협동적 관계에 있다”며 “매년 유엔의 라이온스 데이(day)에 맞춰 각 지구 총재·총장·의장 등 모든 지도자들이 유엔기념공원 호국영령들을 참배하여 유엔과의 관계를 돈독하게 이어가자“고 당부했다. 유엔묘지는 세계적으로 부산에 있는 재한유엔기념공원이 유일하다.한상봉 기자 hsb@seoul.co.kr
  • ‘한국의 엘리자베스 테일러’ 김지미, 美참전기념비에 ‘통큰’ 기부

    ‘한국의 엘리자베스 테일러’ 김지미, 美참전기념비에 ‘통큰’ 기부

    원로 영화배우 김지미(81)씨가 미국 캘리포니아주 오렌지카운티에 세우는 6.25 참전용사 기념비 건립을 위해 2만 달러(약 2270만원)를 기부했다. 31일 건립위위회 측에 따르면 김씨는 지난 26일 기념비 건립 부지를 방문해 기금을 전달했다. 김씨는 6·25전쟁 당시 자신의 경험을 회고하면서 참전용사들에 대한 감사의 뜻을 밝혔다고 건립위 측은 전했다. 김씨는 “전쟁 중 부모님들이 정미소를 해서 집 앞에서 밥을 지어 지나가는 미군 병사에게 줬는데 그때 많은 미군 병사들이 포로로 손이 묶여서 끌려가면서도 밥을 먹으며 고마워했다”며 “(전쟁) 당시 대전에 살았는데 길거리에는 전쟁에서 사망한 미군 병사 시체가 많이 쓰러져 있던 것을 봤던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생면부지의 대한민국 자유를 지키기 위해 젊은 군인들이 목숨을 바쳐서 우리나라를 지켜준 감사의 뜻을 조금이라도 전하는 마음으로 참전용사비 건립에 동참하고 싶었다”고 기부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오렌지카운티 풀러튼의 힐크레스트 공원에 조성되는 한국전 참전용사 기념비는 작년 8월 착공식을 했고, 오는 9월 완공 예정이다. 별 모양의 조형물 5개로 구성되는 이 기념비에는 한국전쟁 당시 전사한 미군 3만 6000여명의 모든 이름이 새겨진다. 한편 1960∼70년대 ‘한국의 엘리자베스 테일러’로 불린 김지미는 한국 영화계의 대표적인 여배우이자 산 증인이다. 2000년 한국영화인협회 이사장을 끝으로 영화계를 떠나 2002년 미국에 정착했고 현재 캘리포니아주 패서디나에 살고 있다. 김채현 기자 chkim@seoul.co.kr
  • [근대광고 엿보기] 온양온천 ‘신정관’ 개관 광고/손성진 논설고문

    [근대광고 엿보기] 온양온천 ‘신정관’ 개관 광고/손성진 논설고문

    경주, 해운대와 함께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신혼여행지로 각광을 받았던 온양온천의 역사는 약 1300여년 전 삼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충남 온양은 백제시대에는 탕정(湯井), 고려시대에는 온수(溫水), 조선시대에는 온창(溫昌), 온천(溫泉)으로 불렸다. 조선 태조는 승려들을 시켜 원(院·임시 행궁)을 지었고 세종도 1433년 행궁을 짓고 안질과 피부병을 치료했다. 지명이 온양으로 바뀐 것은 세종이 이곳을 찾은 1442년이다. 그 후 세조, 현종, 숙종, 영조 등의 임금이 이곳을 찾아 목욕과 치료를 했다는 기록이 조선왕조실록에 남아 있다. 악성 피부병을 앓던 세조가 이곳을 찾은 1464년 행궁 뜰에서 차고 맑은 샘물을 발견하고 신정(神井)이라 명명했고 성종은 신정비(神井碑)를 세웠다. 정유재란 때 왜군에게 소실된 행궁은 현종 때 재건됐다. 처음에는 흙으로 계단을 만들 정도로 소박하게 지었다가 효험을 본 후 둘레 533m나 되는 큰 규모로 다시 지었다. 내정전이 16칸, 외정전이 12칸, 탕실이 12칸이었다. 왕을 수행한 인원이 900~7500명이나 됐으니 부대시설도 클 수밖에 없었다. 구한말 일제는 다시 행궁에 손을 댄다. 1904년 예종석이라는 인물과 결탁한 일본인들은 불량배들을 동원해 행궁을 탈취, 관광지로 개발했다. 아미토 도쿠야 등 일본인들은 온양관이라는 일본식 목욕탕을 지으며 행궁 전각을 철거했고 그 자재들을 건축에 썼다고 한다. 1926년 사설 철도회사인 조선경남철도주식회사가 온양관을 인수해 유원지로 개발했다. ‘겨울 모르는 온양온천…’이라는 제목의 광고에 나오듯이 조선경남철도는 1928년 11월 새 건물을 지어 개관하면서 ‘신정관’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광고에는 경성에서 부산행 열차를 타고 환승 없이 온양온천역에 도착할 수 있다고 선전하고 있다. 경성에서 온양온천역까지 3시간 40분이 걸리는 것으로 돼 있다. 광고를 보면 당시 신정관은 가운데에 3층 건물이 있고 주변에 일본식 건물들이 늘어서 있다. 광복 이후 온양온천과 신정관의 소유권은 우리 정부로 넘어왔다. 당시 교통부 육운국은 신정관을 온양철도호텔로 바꾸어 운영했다. 그러나 6·25전쟁으로 호텔은 파괴됐고 1953년 민간으로 이양돼 1956년 양식 건물로 다시 지어졌다. 그 뒤 여러 차례 개축을 한 뒤 오늘날의 특2급 온양관광호텔이 됐다. 신정비는 충남 문화재자료 제229호로 지정돼 호텔 안에 지금도 남아 있다. 온양관광호텔 앞에는 80년 역사를 자랑한다는 신정관 온천탕이 있다. 오래전 목욕탕 모습을 간직하고 있지만 일제강점기의 신정관과는 관련이 없어 보인다. sonsj@seoul.co.kr
  • 美 “중국 공존 못해” 中 “세계속 위치 탈환”…양국 속내 엿볼 신간 잇따라

    美 “중국 공존 못해” 中 “세계속 위치 탈환”…양국 속내 엿볼 신간 잇따라

    “중국이 미국의 243년 역사에서 다뤄야 했던 경쟁자 중 가장 큰 경쟁자라고 확신 있게 말할 수 있다.(중략) 미국인들이 믿는 자유와 법치의 미래에 치명적 위협이 되는 것은 이 중국 특색의 레닌주의 전체주의다.”(‘전체주의 중국의 도전과 미국’ 22~23쪽) “중화인민공화국은 16개 국가의 연합군을 이웃 나라(한국)의 대지에서 일거에 격파해, 이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마땅히 차지해야 할 위치를 철저하게 탈환했다.(중략) 오늘날 중국인은 마침내 민족 진흥의 황금시대를 맞이했다.”(‘항미원조’ 하권 916쪽) 도널드 트럼프 정부에 이어 조 바이든 대통령 취임 이후에도 미국과 중국 간 ‘신냉전’이 격화하면서 한미동맹과 중국 시장을 모두 포기할 수 없는 한국도 전략적 선택의 압박을 받게 됐다. 미중 양국이 한국을 외교안보 전략의 ‘린치핀’(핵심축)으로 여기는 상황에서 양국의 다양한 속내를 엿볼 수 있는 번역서가 잇달아 나와 주목된다.김앤김북스는 최근 뉴트 깅리치 전 미 하원의장이 쓴 ‘전체주의 중국의 도전과 미국’을 출간했다. 저자는 “언제나 자신이 세계의 중심이라는 인식을 한 중국은 자유·법치·인권에 기초한 미국과 공존할 수 없다”고 단언한다. 그럼에도 미국 사회는 아직 중국을 상대로 효과적으로 싸울 준비가 돼 있지 않고, 중국에서 돈을 벌려는 기업이 적지 않다. 그래서 중국은 시간이 자신의 편이라고 믿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은 미국 기업의 지적재산을 훔치고 군사기밀을 해킹하는 등 모든 부문에서 미국의 취약성을 잠식해 간다고 그는 주장한다. 저자는 오늘날 중국과의 경쟁은 ‘체스’가 아닌 ‘바둑’의 전략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바둑은 끝까지 가 봐야 승패를 알 정도로 형세가 유동적이라 전체 판을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중국을 상대하려면 모든 전선에서 하나하나 봉쇄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지난달 출간된 미국 안보 전문가 피터 자이한의 ‘각자도생의 세계와 지정학’(김앤김북스)은 냉전시대의 유산인 미국 주도 동맹체제가 해체되고, 바이든 시대에도 미국이 세계 질서에서 손을 떼게 돼 미국이 책임져 온 세계 질서가 무너질 것이란 예측을 담았다. 다만 저자는 중국의 번영은 미국이 제공한 세계 질서 기반 위에서 이룩된 것이라 그 질서가 무너지면 중국도 무너지게 될 것으로 전망했다. 반면 중국인의 시각에서 미국을 바라본 ‘항미원조’(다른생각)는 6·25전쟁을 다뤘으나 미국의 개입은 중국을 노린 것이라는 중국 지도부의 인식도 엿볼 수 있다. 중국 작가 리펑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동북아 정세부터 소개하는 이 책에서 6·25는 민족 간의 내전이므로 미국의 개입과 미국 주도의 한반도 통일이 부당하다고 주장한다. 100여년간 서구 열강에 능욕을 당한 중국이 이 전쟁에서 ‘승리’함으로써 치욕을 씻고 자신감을 되찾았다며 ‘중국몽’을 이뤄야 한다는 간절함도 묻어난다. 다만 6·25의 책임 소재에 대해선 “누가 전투를 시작했는지는 아무도 정확히 알지 못한다. 남측과 북측이 모두 전쟁을 하고 싶어 했다”(상권 117쪽)고 해 우리 국민감정에는 배치될 수 있다.교보문고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지난 25일까지 3개월간 미중 관계를 다룬 책 판매 부수는 지난해 동기 대비 135% 늘었다. 현재까지 미중 관계에 대한 책 중 가장 많이 팔린 것은 ‘앞으로 5년 미중전쟁 시나리오’(지식노마드), ‘중국의 밀어내기 미국의 버티기’(퓨리탄) 등이다. 미중 갈등에 대한 국내 독자의 관심도 늘어난 것으로 분석된다. 김흥규 아주대 미중정책연구소장은 “최근 미국이 북한 핵·미사일에 대한 방어 역량을 확충한다고 밝혀 사드 사태 때처럼 한국을 향한 중국의 압박도 거세질 것”이라며 “안보는 미국에, 경제는 중국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우리로선 최근 반중 정서와 맞물려 양측 감정을 예의 주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국제라이온스협회 소식] 신생클럽 서울강남위너스 ‘캠페인 100’ 달성

    [국제라이온스협회 소식] 신생클럽 서울강남위너스 ‘캠페인 100’ 달성

    지난 해 10월 창립한 서울강남위너스 라이온스클럽이 LCIF기금 ‘캠페인100’을 달성하며 활발한 봉사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27일 국제라이온스협회 354-D(서울 한강남쪽)지구에 따르면 LCIF기금은 국제라이온스협회에서 만든 재단법인으로 전 세계 143만 회원들이 모은 봉사금을 말한다. 회원들은 1구좌당 미화 1000불 단위로 LCIF에 봉사금을 기탁하는 MJF(멜빈존스펠로우) 운동을 전개하고 있으며, ‘캠페인100’은 354-D지구 산하 단위조직인 클럽의 모든 회원이 100불씩 기탁하는 캠페인을 말한다. 재단법인 LCIF는 전 세계 회원들이 기탁한 기금을 관리하며, 오지마을에 병원 및 학교를 건립해 주거나 굶주리는 저소득 국가에 식량 등을 지원한다. 6.25 전쟁 발발 후 우리나라 국민들이 한 동안 미국으로 부터 받은 구호물자 중 밀가루와 우유가루 등이 국제라이온스협회에서 LCIF기금으로 보낸 것이다.서울강남위너스라이온스클럽 초대회장인 이은정 라이온과 제1부회장인 인동철 라이온 등의 모든 회원들은 창립 4개월 만에 ‘캠페인 100’을 달성한 것은 물론, 지난 16일에는 경기 이천에 있는 보육원인 ‘성애원’을 방문해 장학금 등을 전달하는 등 봉사활동의 폭을 넓히고 있다. 이 클럽은 지난 해 10월31일 조직총회로 창립했으나, 정식클럽을 인정하는 헌장전수식은 올 1월 12일 치른 ‘신생클럽’이다. 이 회장은 “‘남을 위해 어떤 훌륭한 일을 시작할 때 까지는 성공했다고 할 수 없다’는 좌우명으로 한 평생을 봉사활동에 전념한 국제라이온스협회 창시자 멜빈 존스(1879~1961)의 뜻을 언제까지나 잊지 않고 낮은 자세로 늘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국제라이온스협회 354-D지구 양주환 총재는 “코로나19로 경제가 어려워 LCIF기금 기탁 실적이 매우 저조한 상황에서 정식 클럽으로 활동을 시작한지 얼마 안된 신생클럽이 ‘캠페인 100’을 달성하고 봉사활동에 열정을 보이는 모습을 보니 흐뭇하고 마음이 따듯해지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한상봉 기자 hsb@seoul.co.kr
  • 헌재 “6·25전몰군경 자녀 수당, 첫째만 주는 것은 평등권 침해”

    헌재 “6·25전몰군경 자녀 수당, 첫째만 주는 것은 평등권 침해”

    6·25 전몰군경 자녀 수당을 연장자인 1명에게만 지급하도록 한 법률은 헌법에 어긋난다는 헌법재판소 판단이 나왔다. 헌재는 국가유공자 보상금 지급 기준을 정한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국가유공자법)이 평등권을 침해한다는 내용의 위헌법률 심판에서 재판관 전원 일치 의견으로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렸다고 25일 밝혔다. 관련 법 조항은 법 개정 시한인 내년 12월 31일까지만 효력이 유지된다. 1962년 형과 함께 순직군경 유족으로 등록한 엄모씨는 2001년부터 수당이 장남인 형에게만 지급되자 자신도 수급권이 있다며 2017년 소송을 냈다. 그러면서 자녀가 2명인 경우 나이가 많은 자녀 1명에만 보상금을 지급하도록 한 법률 조항인 국가유공자법 13조 2항 1호 등에 대해 위헌법률 심판 제청을 신청했다. 헌재는 “나이가 많은 자를 선순위 수급권자로 정하는 것은 수당이 가지는 사회보장적 성격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나이가 적은 6·25 전몰군경 자녀의 평등권을 침해한다”고 판시했다. 헌재는 앞서 수급권자를 1명에 한정하고, 그 중 나이 많은 자가 우선하도록 한 보훈보상 대상자 지원에 관한 법률 조항에 대해서도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으며 이번 판단도 그와 같은 취지라고 설명했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한국문학 중심 표방하는 ‘목포문학박람회’ 깜깜이 추진 논란

    전남 목포시는 문학도시라 불러도 손색 없는 거장들을 배출했다. 한국 근대극의 선구자 김우진(1897~1926), 한국여류 소설의 대모 박화성(1904~1988), 국내 수필 문학의 선구자 김진섭(1903~6.25납북), 차범석(1924~2006) 등이 목포가 낳은 대표적 문학인(작고작가)들이다. 김현(1942~1990), 최하림(1939~2010), 황현산(1945~2018), 천승세(1939~2020) 등도 고향이다. 최하림 시인과 황현산 평론가를 제외한 문학인들 대부분은 북교동(원도심)이 생가와 문학 활동의 근거지였다. 이러한 문학적 자원을 근거로 한국문학 중심지를 표방하고자 목포는 15억원을 들여 전국 최초로 오는 10월 7일부터 10일까지 ‘2021 목포 문학박람회’를 개최한다. 하지만 지역 예술인들은 불편함을 보이고 있다. 목포문학박람회가 깜깜이로 추진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 간담회가 한차례 개최되고, 지난 1월 홍보용 보도자료 등을 배포한게 고작이다. 목포문화연대는 “시민들과 문학인들은 박람회의 추진 상황과 방향성, 구체적인 프로그램 등을 전혀 알지 못하고 공개되지도 않고 있다”며 “막대한 예산이 들어가는데도 다양한 여론 수렴을 전혀 거치지 않는 밀실 박람회로 추진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전국 유능한 문학인들의 다양한 장르별 여론 수렴과 참여 등이 공개적으로 확보돼야 하는데도 몇몇 목포문학인들에 의해 우물 안 개구리식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했다. 문화연대는 “조직위원회와 박람회를 총괄할 감독도 선임하지 않는 허술한 형태를 보이고 있다”며 “전국단위의 ‘목포 문학박람회 조직위원회’(가칭)를 즉각 구성해 투명하고 조직적인 시스템으로 추진해야한다”고 밝혔다. 정태관 목포문화연대 공동대표는 “6개월 밖에 남지 않아 졸속 박람회가 우려된다”면서 “목포시가 박람회를 주도하려는 발상에서 벗어나 전국단위의 문학인들과 목포시민이 추진하고, 시는 행정적 지원 역할에 충실해야 성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목포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 브루나 ‘흥국의 불운아’ 되나

    브루나 ‘흥국의 불운아’ 되나

    프로배구 여자부 흥국생명의 챔피언 결정전 진출 티켓은 롤러코스터 기량의 브라질 출신 공격수 브루나(21)가 쥐고 있다. 24일 인천 계양체육관에서 치러지는 플레이오프(PO) 3차전에서 브루나가 살아나면 흥국생명이 챔프전에 진출할 수 있지만 침묵하면 챔프전행 티켓은 IBK기업은행이 가져간다. 브루나의 기량은 들쭉날쭉하다. 그는 기업은행과의 PO 2차전 첫 세트에서 1점도 올리지 못하고 범실 2개를 기록했다. 브라질 1부 리그에서 뛴 공격수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였다. 흥국생명은 1세트를 17분만에 6-25로 기업은행에 내줬다. 한 세트 기준 2005~06시즌 도로공사와 흥국생명의 챔피언 결정전 4차전 3세트 13분 다음으로 짧았다. 브루나가 2세트에서 공격 2점과 블로킹 1점을 따냈지만 흥국생명은 14-25라는 큰 점수차로 패했다. 흥국생명이 반전의 기회를 잡은 3세트에서 브루나는 공격과 블로킹에서 6점을 만들었다. 범실도 하나 있었지만 김연경과 브루나의 활약 덕에 흥국생명이 25-20으로 3세트를 가져왔다. 4세트에서도 브루나가 6점을 뽑았다. 이날 브루나의 공격 성공률은 33.3%로 김연경, 김미연에 이어 3번째였다. 3,4세트에 컨디션이 올라오긴 했지만 여전히 범실은 많다. 이 때문에 박미희 감독도 고심하고 있다. 당장 4세트 승부의 행방을 결정하던 25-25 듀스 상황에서 브루나의 서브 차례가 되자 박 감독은 주저 없이 프로 2년차 박현주를 투입했다. 브루나가 중요한 순간 서브를 제대도 넣지 못했기 때문이다. 박 감독은 “브루나가 중요한 순간 서브를 잘 넣지 못해 교체했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정작 박 감독의 기대와는 달리 박현주의 서브도 밖으로 나가면서 전세가 기울어 그대로 주저앉았다. 브루나의 범실을 의식해 선수 교체를 한 것이 도움이 되지 않은 것이다. 사실 지난 20일 PO 1차전도 김연경의 활약으로 승리하긴 했지만 브루나는 이날 팀 전체 범실 26개 중 절반인 13개를 저지를 만큼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이 때문에 흥국생명으로서는 챔프전 진출을 위해 김연경의 활약 외에 브루나가 얼마나 범실을 줄이느냐가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1세트부터 압도적 점수 차… 기업은행의 반격이 시작됐다

    1세트부터 압도적 점수 차… 기업은행의 반격이 시작됐다

    프로배구 IBK기업은행이 안방에서 기사회생했다. 기업은행은 22일 경기 화성종합경기타운 실내체육관에서 열린 2020~21 V리그 여자부 플레이오프(PO·3전 2승제) 2차전 홈 경기에서 흥국생명을 3-1(25-6 25-14 20-25 27-25)로 제압하며 1차전 패배를 설욕했다. 두 팀은 1승1패가 되면서 챔피언결정전 진출을 위한 승부를 24일 3차전으로 미뤘다. 이날 승부는 사실상 1세트에서 갈렸다. 기업은행은 불과 17분 만에 PO 역대급 점수차인 25-6로 흥국생명을 압도했다. 한 세트 6점은 25점 세트 기준 V리그 역대 최저 득점이다. 1, 2세트를 큰 점수 차로 빼앗은 기업은행은 3세트 10-6으로 앞선 상황에서 방심했다. 흥국생명은 김연경의 연속 득점으로 10-10 동점을 만들었다. 이후 김미연과 브루나의 반격이 살아나면서 3세트를 따냈다. 그러나 4세트에서 23-24로 끌려간 기업은행은 육서영의 강스파이크로 24-24 듀스를 만들었고 이후 25-25 접전에서 흥국생명이 교체 투입한 박현주가 서브 범실을 범했다. 기업은행이 김주향의 마무리 득점으로 회생 드라마를 완성했다. 이날 라자레바가 해결사로 양팀 최다 31점을 올렸다. 1차전에서 상대로부터 집중 공략당하며 5점으로 부진했던 기업은행 표승주는 16점을 올렸다. 김주향(13점)과 김희진(11점)도 고루 활약했다.흥국생명은 이날 김연경이 20점, 브루나 15점, 김미연 13점으로 분전했지만 서브 2-9, 블로킹 6-10으로 흐름을 내줬다. 공격 성공률도 34.8%로, 기업은행의 44.0%에 크게 밀리는 등 졸전을 펼쳤다. 박미희 감독은 경기 뒤 “첫 두 세트 리듬이 너무 안 좋았다. 이제 1승1패이니 다시 시작이라 생각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남자부 KB손해보험은 이날 현대캐피탈과의 방문 경기에서 3-1(25-20 25-23 19-25 25-22)로 이기며 승점 3점을 보태 3위를 지켰다.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安 “저를 찍어야 중도와 함께 대권 승리” 단일화 지지 호소(종합)

    安 “저를 찍어야 중도와 함께 대권 승리” 단일화 지지 호소(종합)

    22~23일 吳와 野 단일화 위한 여론조사 돌입安 기자회견 “2030도 野 지지하게 할 후보” 안철수 국민의당 서울시장 후보는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와 야권 후보 단일화 여론조사에 앞서 지지 호소에 나섰다. 안 후보는 “제가 (더불어민주당)박영선 후보와 대결에서 이기고 야권이 대선에서 승리하게 할 유일한 후보”라고 강조했다. 안 후보는 22일 오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이같이 밝혔다. 안 후보는 “늦었지만 국민 앞에 부끄럽지 않은 결과를 내놓는데 협조해주신 오세훈 후보님,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님, 감사하다”라며 “저는 이제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하고 서울시민의 평가를 기다리겠다”고 말했다. 안 후보는 그러면서 “제대로 된 문재인 정권의 심판을 바란다면, 정권교체를 바란다면, 서울시장만 할 사람과 정권교체의 교두보도 함께 놓을 사람을 구분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안 후보는 “수많은 여론조사에서 증명되었듯이 박영선 후보와 1:1 대결에서 더 크게 이기는 제가 대선에서도 야권이 승리할 수 있게 해줄 유일한 후보”라고 강조했다. 이어 “저는 야권 지지층을 20, 30대, 중도층, 무당층까지 확장시켜 대선에서도 야당 후보를 찍게 해서 정권교체를 가능하게 할 유일한 후보라는 점을 말씀드린다”고 말했다. 서울시장 후보 단일화를 위한 여론조사의 결과와 관계없이 야권 대통합에 기여하겠다는 약속도 했다. 안 후보는 “비 온 뒤 땅이 저절로 굳어지지 않는다”며 “서로의 손을 맞잡아 패인 곳을 덮고, 갈라진 틈을 메워야 진정한 하나가 되고 더 단단한 하나가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저는 야권의 진정한 대통합을 위해 확실한 정권교체를 위해 제 한 몸을 바칠 각오다”라고 말했다. 안 후보는 “의사로서 임기 첫날부터 코로나19로부터 서울시민을 안전하게 보호하고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을 챙길 후보, 벤처 기업가로서 일자리를 만들고 미래의 성장동력을 만들 후보, 내년 정권교체를 위해 야권의 지지층을 넓히고 여러분과 함께 정권교체에 헌신할 후보, 어떤 공격에도 흔들릴 일 없는 무결점 후보 안철수가 서울을 서울시민의 손에, 대한민국을 대한민국 국민의 품으로 반드시 돌려드리겠다”고 강조했다. 안철수 서울시장 후보 기자회견문 <민심의 바다로 나아가면서> 야권후보 단일화 협상이 마무리됐습니다. 늦었지만, 국민 앞에 부끄럽지 않은 결과를 내놓는데 협조해 주신 오세훈 후보님, 김종인 위원장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보궐선거 승리와 정권교체의 염원으로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해 주신 국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저는 이제,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하고 서울시민의 평가를 기다리겠습니다. 저는 석달전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하면서 곧바로 야권후보 단일화와 서울시 야권 연립정부를 제안하며 후보 단일화의 물꼬를 텄습니다. 또한 야권 단일후보 선출, 선거 후 국민의힘과의 통합, 그리고 정권 심판과 정권교체에 뜻을 같이 하는 모든 분들이 함께 하는 범야권 대통합으로 이어지는 3단계 통합 구상도 밝혔습니다. 단일화 협상에 진척이 없자, 다시 저는 국민의힘에서 원하는 방안 모두를 수용하겠다고 결심하고 꼬인 실타래도 풀어냈습니다. 문제를 풀어내는 정치는 제가 정치를 처음 시작할 때부터 국민께 약속하고 지향하는 정치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할 때만이 서울시장 선거 승리는 물론 정권교체의 교두보를 확실하게 놓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대로 된 문재인 정권 심판을 바란다면, 정권교체를 바란다면, 서울시장만 할 사람과 정권교체의 교두보도 함께 놓을 사람을 구분해야 합니다. 판단 기준은 간단합니다. 수많은 여론조사에서 증명되었듯이, 박영선 후보와 1:1 대결에서 더 크게 이기는 제가 대선에서도 야권이 승리할 수 있게 해줄 유일한 후보입니다. 저는 야권 지지층을 20, 30대, 중도층, 무당층까지 확장시켜 대선에서도 야당 후보를 찍게 해서 정권교체를 가능하게 할 유일한 후보라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간 단일화 과정을 돌아보면 많은 소회가 남습니다. 적을 이기기보다 동지를 설득하기가 더 어렵다는 것도 배웠습니다. 내전이 비극적인 것은 함께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 사이의 전쟁이기 때문입니다. 세계 내전사를 보면 서로를 잘 알기에 상대를 더욱 잔혹하게 대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역사를 보면 이 비극, 이 진통을 잘 넘긴 나라들은 도약의 발판을 마련했고, 그 갈등을 끝내 봉합하지 못한 나라들은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었습니다. 미국은 남북전쟁 이후 세계 초강대국으로 성장했고, 우리 역시 6.25 전쟁을 딛고 세계 속에 우뚝 섰습니다. 반면 중동, 아프리카 여러 나라들은 전쟁 후 통합에 실패하면서 끝없는 나락으로 추락했습니다. 이번 야권 단일화도 마찬가지입니다. 비 온 뒤 땅이 저절로 굳어지지 않습니다. 서로의 손을 맞잡아 패인 곳을 덮고, 갈라진 틈을 메워야 진정한 하나가 되고, 더 단단한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저는 야권의 진정한 대통합을 위해, 확실한 정권교체를 위해 제 한 몸을 바칠 각오입니다. 국민의힘 동지들에게 부탁드립니다. 2번이든, 4번이든 모두 더 큰 2번일 뿐입니다. 선거후 더 큰 2번을 만들어야 정권교체의 길로 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번 보궐선거에서 한 배를 탄 식구이고, 내년 대선을 향해 함께 대장정에 나서야 할 동지입니다. 여러분께서 마음을 여셔야 야권의 영역을 중도로까지 획기적으로 확장하고 한국 정치의 대전환을 주도적으로 이끌어 낼 수 있습니다. 이제 야권은 거짓과 위선의 세력들이 쳐 놓은 덫에서 빠져나와 변화를 능동적으로 주도해 나가야 합니다. 시대의 변화에 끌려 다니는 야권으로는 미래가 없습니다. 역사와 국민만 보고 앞으로 갑시다. 서로 연대해, 민주주의와 법치를 말살하고 공정과 정의를 파괴한 거대한 세력을 함께 무너뜨립시다. 그것이 국민과 역사 앞에 진정 당당하고 올바른 자세입니다. 야권을 지지하는 국민 여러분에게 부탁드립니다. 우리는 황영조 선수의 올림픽 금메달을 생생히 기억합니다. 그러나 이봉주 선수가 평생 18만 km를 뛰며 공식경기에서 41번의 완주를 했다는 걸 기억하는 분은 많지 않습니다. 누가 단일후보가 되든, 역사상 최초의 중도와 보수 단일화를 이뤄낸 두 주인공을 똑같이 기억하고, 똑같이 응원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오늘과 내일은 이번 선거의 승패를 사실상 결정하는 날입니다. 이것 하나만 생각해 주십시오, 민주당 후보와의 대결에서 가장 크게 이기는 후보가 가장 경쟁력 있고, 야권 단일후보로 가장 적합한 후보입니다. 민주당 후보와의 대결에서 더 크게 이기는 후보가 야권의 지지층을 넓혀 대선에서 정권교체를 가능하게 할 후보라는 점을 기억해 주십시오. 저는 야권단일화를 위한 충정으로 불리함도 모두 수용하겠다고 했지만, 국민들께서는 서울에서 야권의 8연패가 더 이상 이어지는 것을 수용해서는 안 됩니다. 야권진영이 서울시장 선거에 이긴 후 다시 과거의 모습 그대로 돌아가 변화하고 혁신하지 않는다면, 서울시장 선거는 이기고 대선에서는 패배하는 참담한 결과를 낳을 것입니다. 내곡동 문제가 확산되고 있습니다. 새로운 사실이 더 밝혀지고 당시 일을 증언하는 사람이 나타나면, 야권 후보가 사퇴한 상태에서 선거를 치룰 수도 있습니다. 민주당 박영선 후보가 제일 두려워하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후보, 오히려 문제를 해결하는 안철수 후보를 선택해 주십시오. 지난 12월부터 야권이 불리할 때도 늘 이겨왔던 후보, 과거 5년간 시정의 여러 가지 문제로 발목 잡히지 않을 후보, 선거기간 내내 추궁당하고 변명하는 것이 아니라 선거기간 내내 상대를 추궁할 수 있는 후보, 의사로서 임기 첫날부터 코로나19로부터 서울시민을 안전하게 보호하고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을 챙길 후보, 벤처 기업가로서 일자리를 만들고 미래의 성장동력을 만들 후보, 내년 정권교체를 위해 야권의 지지층을 넓히고 여러분과 함께 정권교체에 헌신할 후보, 어떤 공격에도 흔들릴 일 없는 무결점 후보 안철수가, 서울을 서울시민의 손에, 대한민국을 대한민국 국민의 품으로 반드시 돌려 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의 선택을 믿습니다. 믿음에 반드시 보답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김채현 기자 chkim@seoul.co.kr
  • 칼 빼든 박범계, ‘한명숙 모해위증사건’ 수사지휘권 발동…현 정부 3번째

    칼 빼든 박범계, ‘한명숙 모해위증사건’ 수사지휘권 발동…현 정부 3번째

    “한명숙 수사 당시 위법 수사관행 합동 감찰”추미애, 작년 윤석열 상대로 2차례 발동역대 4번째…6개월 만에 또다시 檢 제동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한명숙 전 국무총리 사건 수사팀의 모해위증교사 의혹과 관련해 17일 오후 검찰에 수사지휘권을 발동했다. 지난 1월 28일 장관에 취임한 지 49일 만이자 모해위증교사 의혹에 대한 공소시효 만료를 5일 남긴 시점이다. 박 장관이 수사지휘권을 발동한 것은 현 정권 들어 3번째, 역대 4번째다. 앞서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은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상대로 두 차례 수사지휘권을 발동해 대검찰청의 지휘권을 박탈했었다. 박 장관은 “한명숙 사건 수사 당시 위법한 수사 관행에 대해서는 합동 감찰을 벌이겠다”면서 “대검 부장회의에서 혐의와 기소 여부를 심의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례적으로, 같은 사건을 두고 전임자인 추 전 장관에 이어 박 장관까지 수사지휘권을 행사한 셈이 됐다. “대검 부장회의서 혐의·기소여부 심의” 이정수 법무부 검찰국장은 이날 오후 서울고검 의정관에서 브리핑을 열고 “법무부 장관은 검찰총장 직무대행에 모든 부장이 참여하는 대검 부장회의를 개최해 재소자 김모씨에 대한 기소 가능성을 심의하라고 지휘한다”고 밝혔다. 또 박 장관은 “대검 감찰부장과 감찰3과장, 임은정 검사로부터 사안 설명 및 의견을 청취하고 충분한 토론과정을 거치라”고 지시했다. 이어 “회의 심의결과를 토대로 공소시효 만료일인 오는 22일까지 김모씨의 입건 및 기소 여부를 결정하라”면서 “이 사건 관련 위법하고 부당한 수사관행이 있었다고 판단, 법무부와 대검 합동 감찰하라”고 강조했다. 앞서 박 장관은 이날 오전 법무부 과천청사 출근길에 취재진을 만나 “기록을 자세히 살펴봤고 오랫동안 심사숙고했다. 오늘 중엔 결정을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수사지휘권 발동을 시사했었다.대검 “수사팀, 모해위증·교사 혐의 합리적 의사결정, 증거 부족” 무혐의 처리 이번 모해위증교사 의혹은 한 전 총리 사건과 관련해 고(故) 한만호 전 한신건영 대표가 법정에서 증언을 번복하자, 당시 검찰 수사팀이 동료 재소자들에게 증언을 연습시켜 위증을 하도록 했다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검찰의 모해위증교사 의혹은 지난해 4월 한 재소자의 폭로에서 불거졌다. 그는 당시 수사팀이 금품 공여자인 한만호 전 한신건영 대표의 구치소 동료 재소자들을 사주해 한 전 총리에 불리한 증언을 하도록 압박했다는 진정을 법무부에 냈다. 진정 사건을 넘겨받은 대검은 “한 전 총리의 재판과 관련해 증인 2명과 전현직 검찰공무원 수사팀의 모해위증·교사 사건은 합리적인 의사결정 과정을 거쳐 혐의를 인정할 증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했다”며 사실상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이에 대검 감찰부에 소속돼 사건을 검토해온 임은정 감찰정책연구관은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자신을 이 사건에서 배제한 뒤 미리 정해진 결론을 내린 것이라며 반발했다. 이후 박 장관은 사건 기록을 직접 가져가 불기소 처분 과정 및 사건 배당, 실체관계를 검토하는 등 수사지휘권 행사 가능성을 예고해왔다.법무부-검찰 관계 다시 갈등 국면으로 박 장관이 수사지휘권을 발동하면서 법무부와 검찰 관계가 급랭하면서 또다시 갈등 국면으로 접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박 장관 직전 추미애 전 장관은 지난해 7월 이동재 전 채널A 기자의 ‘강요미수’ 사건 당시 윤석열 전 검찰총장에게 전문수사자문단 소집을 중단하고 수사의 독립성을 보장하라며 임기 중 첫 수사지휘권을 발동했다. 이후 지난해 10월 라임자산운용의 로비 의혹과 윤 전 총장 가족 의혹 사건의 수사 지휘에서 빠지라는 수사지휘권을 추가로 발동했다. 추 전 장관 이전에는 2005년 당시 천정배 장관이 ‘6·25는 통일전쟁’ 발언으로 고발된 강정구 동국대 교수를 불구속 수사하라며 수사지휘권을 행사했다. 김종빈 당시 검찰총장은 지휘를 수용하고 사직했다.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지방의회 부활 30주년…서울시의회, ‘시민의 삶을 바꾼 조례30선’ 선정

    서울시의회는 2021년 지방의회 부활 30주년을 맞이하여 다양한 조례에 담긴 지난 30년의 주요 성과를 공유하고, 자치분권 2.0시대의 의회 역할을 모색하기 위해 ‘서울시민의 삶을 바꾼 서울특별시의회 조례30선(이하 서울시의회 조례30선)’을 선정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12월 9일 32년 만에 국회에서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안 등이 통과하며 지방자치의 새로운 시대가 열리게 됐다. 이에 서울시의회는 지방의회 부활 30주년 기념과 함께, 지난 30년을 돌아보며 전국 지방의회의 맏형 역할을 해온 서울시의회 성과를 조례30선을 통해 집중 조명할 계획이다. 그동안 서울시의회는 조례30선 선정을 위해 곽노현 前서울시 교육감(위원장)을 비롯한 지방자치 관련기관, 학계, 언론인 등 외부전문가와 시의원 등 총 12명으로 구성된 조례선정위원회를 운영해 총 14차례의 회의를 거쳐 조례30선을 최종 선정했다. 조례선정위원회는 1948년부터 현재까지(2020년 5월 기준) 제정된 총 805건의 조례에 대해 조례 30선 선정을 위한 심의와 검토를 진행하였으며, 조례 30선 책자 구성(안) 의견수렴, 기타 발간과 관련된 필요사항에 대해 논의했다. 조례 30선 선정 기준은 크게 3가지로 ▲법 제정 이전이거나 전국 최초 제정 등 ‘선도성(창의성, 독창성)’ ▲동 조례 제정으로 예산절감 등 경제효과 혹은 영향 받은 시민의 수를 반영한 ‘효과성(파급효과)’ ▲서울시의회 30년의 역사적인 변화와 시대상 반영 등 ‘역사성(시대적 중요성)’을 중점적으로 검토했다. 서울시의회 조례 30선은 단독으로 의미가 깊은 ‘단독조례 10선’과 단독으로는 어렵지만 시민이 체감하는 일자리, 주거, 청년 등 각 분야별 관련 조례를 그룹별로 묶어 의미가 커진 ‘그룹 조례군 20선(142개)’으로 나누어 조례 30선을 최종 선정했다. 단독조례를 보면 서울시민의 수요와 사회환경의 변화에 따라 시민참여(광장, 학생인권, 찾동, 혁신학교), 보행친화도시(자전거, 시내버스, 교통약자), 기후변화(미세먼지), 보편복지(친환경급식, 온마을돌봄) 등 시대 흐름에 맞춰 제정된 것을 볼 수 있다. 오는 5월에는 ‘시민의 삶을 바꾼 서울시의회 조례30선’ 책자 발간과 배포를 통해 서울시 조례가 개별시민의 삶에 얼마나 깊고, 다양하게 영향을 미치는지 등 구체적인 내용을 공유할 예정이다. 조례별로 발의 의원에 대한 취재를 통해 제정 배경을 기술하고, 수혜 시민 인터뷰와 현장을 담은 사진, 조례의 취지를 상징할 수 있는 통계와 인포그래픽 등을 활용하여 시민의 입장에서 쉽게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도록 책자를 발간한다. 조례 30선을 시민과 확대․공유하고자 E-BOOK 및 카드뉴스로도 제작하여 홈페이지와 SNS, 유튜브 등을 통해서도 알릴 계획이다. 그 외 서울시민을 대상으로 조례30선 가운데 단독조례 10선에 대한 온라인 여론투표를 실시하여 ‘시민이 뽑은 대표조례’도 선정한다. 서울시민이라면 누구나 각 조례의 수혜자 시민인터뷰 영상을 감상한 뒤, 대표조례 선정 투표에 참여할 수 있다. 자세한 사항은 오는 5월 서울시의회 홈페이지 및 SNS(페이스북, 블로그 등) 등에 안내할 계획이다. 곽노현 조례선정위원회 위원장(前서울시 교육감)은 “조례30선 작업은 고난도 일이었지만, 위원회의 집단지성으로 선별과 압축을 거듭해 단독조례 10개와 조례군 20개를 선정한 끝에 비로소 서울시의회의 지난30년 조례입법의 금자탑과 중점 분야가 한눈에 들어올 수 있었다”며 “입법기관으로서 서울시의회의 발전상과 지향점이 잘 드러났고, 모든 법이 그렇듯이 조례입법 또한 시대변화의 산물이라는 사실이 확인됐다”고 덧붙였다. 또한, 김인호 서울시의회 의장은 “‘시민의 삶을 바꾼 서울시의회 조례30선’을 통해 시민 개개인의 행복을 고려하려 했던 의회의 굵직한 발자취와 지난 30년 간 서울에 있었던 감동적인 변화를 모두 확인하실 수 있다”며 “자치분권의 새로운 시대가 열리는 만큼 이번 조례 30선을 디딤돌로 삼아 더욱 훌륭한 조례를 마련해나가며, 진정 시민을 향한 지방의회로 나아가겠다”고 강조했다. 한편, 서울시의회는 1991년 6월 20일 지방선거를 통해 132명의 의원이 선출됐고, 이들로 구성된 제3대 서울시의회가 출범함으로써 현재 제10대 의회에 이르기까지 풀뿌리 민주주의의 여정은 지속되고 있다. 미군정 시기에는 민선 참사회가 있었지만 참사회원이 실제로는 관선으로 임명됨으로써 실질적 지방자치는 이루어지지 않았고, 정부 수립 후인 1949년에는 지방자치법이 제정․ 공포되었으나 6․25 한국전쟁 등의 이유로 계속 연기됐다. 따라서 제1대 서울시의회가 구성된 것은 1956년부터라고 할 수 있다. 이어 1960년 12월에는 제2대 서울시의회가 출범했다. 그러나 1961년 5월 16일 발표된 포고령에 의해 강제 해산됐으며, 이후 30여년 동안 지방자치를 실시하지 못하고 중앙집권제를 유지해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박범계 법무부, ‘한명숙 사건’ 오늘 수사지휘권 발동할 듯

    박범계 법무부, ‘한명숙 사건’ 오늘 수사지휘권 발동할 듯

    추미애, 작년 윤석열 상대로 2차례 발동2005년 천정배 첫 사용…김종빈 사직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한명숙 전 국무총리 사건 수사팀의 모해위증교사 의혹과 관련해 17일 오후 검찰에 수사지휘권을 발동할 것으로 전해졌다. 박 장관이 수사지휘권을 발동하면 역대 4번째다. 앞서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은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상대로 두 차례 수사지휘권을 발동해 대검찰청의 지휘권을 박탈했었다. 법무부는 이날 오후 브리핑을 열고 박 장관의 수사 지휘 내용을 공개한다. 박 장관은 이날 아침 법무부 과천청사 출근길에 취재진을 만나 “기록을 자세히 살펴봤고 오랫동안 심사숙고했다. 오늘 중엔 결정을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수사지휘권 발동을 시사했다. 법조계에서는 한 전 총리 사건 재판에서 위증한 의혹을 받는 재소자 A씨의 공소시효가 22일 끝나는 만큼 박 장관이 직접 기소를 지시하는 수사 지휘를 할 거란 전망이 나온다.박 장관이 수사지휘권을 발동할 경우 법무부와 검찰 관계가 급랭하면서 또다시 갈등 국면으로 접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박 장관 직전 추미애 전 장관은 지난해 7월 이동재 전 채널A 기자의 ‘강요미수’ 사건 당시 윤석열 전 검찰총장에게 전문수사자문단 소집을 중단하고 수사의 독립성을 보장하라며 임기 중 첫 수사지휘권을 발동했다. 이후 지난해 10월 라임자산운용의 로비 의혹과 윤 전 총장 가족 의혹 사건의 수사 지휘에서 빠지라는 수사지휘권을 추가로 발동했다. 추 전 장관 이전에는 2005년 당시 천정배 장관이 ‘6·25는 통일전쟁’ 발언으로 고발된 강정구 동국대 교수를 불구속 수사하라며 수사지휘권을 행사했다. 김종빈 당시 검찰총장은 지휘를 수용하고 사직했다.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땅속 60m까지 내려가 보고 듣고… 노원, GTX보다 빠른 현장 챙기기

    땅속 60m까지 내려가 보고 듣고… 노원, GTX보다 빠른 현장 챙기기

    내년 6월 C노선 착공 앞두고 현장 방문통근시간 단축·민원이 변수 등 설명 들어“관계기관 조율통해 요금 등 편익 높일 것”“윙~. 지하 60m 구간까지 내려갑니다. 지하에서는 180m 길이 본선 터널 굴착 현장을 보시겠습니다.” 지난 5일 서울 중구 서울역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A노선 민간투자사업 제5공구 현장. 터널 굴착 공사 현장으로 내려가는 간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땅속 60m까지 내려갔다. 공사 현장에는 발파한 흙더미를 나르는 덤프트럭이 지하에서 지상까지 전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분주히 움직였다. 오승록 노원구청장과 구청 관계자들은 안전모와 전용 신발을 신고 본선 터널에 도착했다. 현장 관계자는 “이곳은 서울역 정거장으로 총 180m짜리 구간”이라면서 “이곳부터 열차는 가장 빠른 직선화 구간을 지나 용산구 후암동을 거쳐 남산 하얏트호텔까지 이어지며 도심 한복판을 가로지르게 된다”고 설명했다. 오 구청장은 “GTX 사업이 처음 시행되는 것인데 공사를 직접 맡아 긴장도 되시겠지만 보람도 있으시겠다”고 격려했다. 이날 오 구청장은 노원구를 관통하는 GTX C노선 진행 절차에 참고하기 위해 A노선 공사현장을 특별히 방문했다. GTX A노선 관계자에 따르면 A노선은 운정 신도시에서 강남 삼성역까지 총 82.123㎞ 구간(정거장 5곳, 차량기지 1곳)으로 2019년 6월 30일부터 착공해 2023년 말 개통을 목표로 하고 있다. 현장 관계자는 “개통되면 운정 신도시에서 서울역까지 20.25분, 서울역에서 강남 삼성역까지 26.25분이 소요될 것”이라면서 “통근시간이 획기적으로 단축되기 때문에 도심 외곽에서 중심부로 접근성이 확실히 개선된다”고 설명했다. 오 구청장이 “공사 일정에 변수는 없나”라고 묻자 이 관계자는 “민원이 가장 큰 변수로, 강남구 청담동 민원 때문에 공사 일정이 11개월 지연됐다”고 전했다. 오 구청장은 이날 공사현장 방문을 계기로 양주 덕정과 수원을 잇는 GTX C노선 사업과 관련한 내용을 관계기관과 협의할 계획이다. 국토부에 따르면 GTX C노선은 수익형민자사업(BTO)으로 추진되며 10개 정거장으로 구성된다. 오는 5월까지 민간사업자 공모를 추진하고 이후 평가를 거쳐 6월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한다. 사업비는 약 4조 3857억원으로 추산된다. GTX C노선이 개통되면 덕정∼삼성 구간은 82분에서 27분으로, 수원∼삼성 구간은 71분에서 26분으로 이동시간이 단축될 전망이다. 오 구청장은 “GTX C노선이 내년 6월 착공 예정인데 A노선 공사현장을 실제로 보니 실감이 난다”면서 “다만 요금이 일반 지하철 요금보다는 비쌀 것 같은데 관계기관과의 조율을 통해 주민들의 편익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황비웅 기자 stylist@seoul.co.kr
  • ‘지프가 제단’ 아군도 적군도 돌본 에밀 카폰 신부의 유해 70년 만에 확인

    ‘지프가 제단’ 아군도 적군도 돌본 에밀 카폰 신부의 유해 70년 만에 확인

    한국전쟁 때 군용 지프 위에 제단을 차려 미사를 집전했고 아군과 적군을 가리지 않고 박애를 실천하다가 포로수용소에서 숨진 에밀 카폰 신부의 유해가 70년 만에 확인다. 미국 국방부 전쟁포로·실종자 확인국(DPAA)은 5일(현지시간) 캔자스주 출신의 군종 신부 카폰의 유해를 하와이주 호놀룰루의 국립태평양묘지의 신원 미상 장병(652구) 묘역에서 확인했다고 AFP 통신 등이 보도했다. 치과 기록과 유전자도 일치하는 것으로 확인했다. 조카 레이는 한국전쟁이 끝난 뒤 삼촌의 시신을 거의 온전한 상태로 찾아 화장해 하와이에 안장했다는 얘기만 전해 들었다고 털어놓았다고 일간 워싱턴 포스트(WP)는 전했다. 레이는 묘역에 안장된 것이 1956년쯤이라고 기억하지만 확실치 않다고 덧붙였다. 어떻게 삼촌의 시신을 찾았는지도 알지 못한다고 했다. 존 휘틀리 육군장관 대행은 성명을 내 세상을 떠난 지 70년 만에 그의 유해를 확인했다며 “카폰 신부의 영웅적인 행동과 불굴의 정신은 용기와 사심 없는 봉사라는 우리 군의 가치를 나타내는 본보기”라고 밝혔다. 캔자스주 필슨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나 1940년 사제 서품을 받은 카폰 신부는 1950년 7월 군종 신부로 한국에 파견됐다. 그가 소속된 제1기병사단 제8기병연대 제3대대는 인천상륙작전 이후 원산까지 진격했지만, 같은 해 11월 한국전에 참전한 중공군의 포위 공격을 받았다. 얼마 안돼 철수 명령이 떨어졌지만, 카폰 신부는 중공군 포위를 뚫고 탈출할 기회를 스스로 포기하고 전선에 남았다. 그는 통나무와 지푸라기로 참호를 만들어 부상병을 대피시켰고 이들을 헌신적으로 돌봤다. 중공군이 부상병을 사살하려 하자 목숨을 걸고 총구를 밀어내 부상병을 지켰고, 교전 중 다친 중공군 장교까지 돌봤다. 그는 지프 위에 담요를 덮어 제단을 만든 뒤 미사를 집전했고 고해성사를 받았다. 포탄이 빗발치는데도 주검들 사이에 숨어 마지막 숨을 내쉬는 병사들의 임종 기도를 올렸다. 결국 평안북도 벽동 수용소로 끌려간 카폰 신부는 그곳에서도 포로들을 위해 기도하고 봉사하는 삶을 실천했다. 거동이 불편한 부상병의 옷을 대신 빨았고, 추위와 굶주림에 지친 병사들을 구해내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음식과 약을 적군의 저장고에서 훔쳐 동료들에게 나눠줬다. 자신보다 병사들을 돌보는데 헌신했던 그는 이질과 폐렴에 걸려 서른다섯 살이던 1951년 5월 23일 세상을 떴다. 전장에서 피어난 카폰 신부의 박애 정신은 살아남은 병사들의 증언을 통해 알려졌고, 1954년 책 ‘종군 신부 카폰 이야기’가 발간됐다. 캔자스주 위치토 가톨릭 교구는 카폰 신부를 성인으로 추대하는 운동을 펼쳤고, 1993년 로마 교황청은 성인으로 추앙하는 시성 절차의 첫 단계로 카폰 신부를 ‘하느님의 종’으로 선언했지만 웬일인지 시성에는 이르지 못했다. 미국 정부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 시절인 2013년 4월 카폰 신부에게 ‘명예훈장’(Medal of Honor)을 추서해 조카 레이가 받았다. 레이는 “이런 날이 올지 상상도 못했다. 정말 믿기 힘들다. 삼촌과 함께 수용소에 있던 어르신 가운데 몇몇 분은 지금도 삼촌의 헌신을 기억하며 감사해 한다. 유해가 (고향인 캔자스주에) 돌아오면 장례식을 제대로 치를 생각인데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때문에 어찌 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정작 한국인들은 그의 생애를 모르다 1956년 신학생이었던 정진석 추기경이 ‘종군 신부 카폰’ 번역판을 내 알려졌다. ‘한국전의 예수’, ‘6·25 전쟁의 성인’이라는 별칭이 따라붙은 것은 물론이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서운하게 해 불 질렀다”...‘천년 고찰’ 내장사 대웅전 전소(종합)

    “서운하게 해 불 질렀다”...‘천년 고찰’ 내장사 대웅전 전소(종합)

    전날 오후 내장사 대웅전에 불을 지른 승려 A(53)씨에 대해 전북 정읍경찰서는 현주건조물 방화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할 예정이라고 6일 밝혔다. 이날 사건을 조사 중인 정읍경찰서에 따르면, A씨는 지난 5일 오후 6시 35분쯤 경찰에 전화를 걸어 “대웅전에 불을 질렀다”고 신고했다. A씨는 신고 이후 도주하지 않고 현장에 머물러있다 현행범으로 경찰에 체포돼 연행됐다. 화재 신고를 받고 출동한 소방당국은 대응 1단계를 발령하고 약 1시간 30분 만인 오후 7시 53분쯤 큰 불길을 잡았다. 소방서 추산 17억여원의 재산피해가 났지만, 인명피해는 없었다. 경찰에 따르면, A씨는 3개월 전 수행을 위해 내장사에 들어온 이후 다른 승려들과 마찰을 빚다 이 같은 범행을 한 것으로 조사됐다. 범행 당시 A씨는 술에 취한 상태였다. 경찰 관계자는 “동료 승려들에 불만을 품은 A 씨가 절에 있던 인화물질을 붓고 불을 낸 것으로 보고 있다”며 “조사를 마친 뒤 구속영장을 신청하겠다”고 말했다.내장사 스님들은 망연자실했다. 특히 승려가 불을 질렀다는 것에 대해 내장사 한 스님은 “더이상 드릴 말씀이 없다”며 말을 아꼈다. 내장사는 백제 무왕 37년인 636년 영은조사가 영은사라는 이름으로 창건한 천년 고찰이다. 1095년(고려 숙종 3년) 행안선사가 당우와 전각을 중수했으며, 1566년(조선 명종 22년) 희묵 대사가 법당과 요사를 중수했다. 이 때 이름이 내장사로 고쳐졌다. 내장사가 불에 탄 것은 이번이 네 번째다. 임진왜란이 일어난 1592년(선조 25년) 소실됐다가 인조 17년인 1639년 개축됐다. 이후 1938년 대웅전을 중수하고 명부전을 신축했지만 6.25 전쟁 때 전소됐다. 1958년 대웅전을 중건했지만 2012년 10월 원인 불명의 화재로 전소됐다. 정읍 시민들의 성금과 시 예산 등 총 25억원이 투입돼 2015년 7월 복원된 대웅전이 이번에는 승려의 방화로 허망하게 사라졌다.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내가 불냈다”…내장사 대웅전에 불 지른 승려 ‘검거’(종합)

    “내가 불냈다”…내장사 대웅전에 불 지른 승려 ‘검거’(종합)

    경찰 “내부 다툼 있었던 것으로 추정”2012년 10월 이어 두 번째 화재2015년 시비 25억 들여 재건 전북 정읍시의 천년 고찰 내장사 대웅전이 다시 불탔다. 2012년 화마에 휩싸인 이후 두 번째다. 전북 정읍시의 천년 고찰 내장사 대웅전이 다시 불탔다. 2012년 화마에 휩싸인 이후 두 번째다. 전북경찰청은 5일 내장사 대웅전 방화 피의자인 승려 A(53)씨를 현주건조물방화 혐의로 현행범 체포해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A씨는 이날 오후 6시 30분쯤 장사 대웅전에 불을 지른 혐의를 받고 있다. 피의자는 방화 후 경찰에 직접 전화해 자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출동한 경찰은 현장에서 용의자를 검거했다. 그는 범행에 휘발유로 추정되는 인화물질을 사용한 것으로 파악됐다. 체포 당시 그는 술을 마신 상태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범행으로 대웅전 전체가 불길에 휩싸여 전소 가능성이 크다고 경찰은 전했다.소방당국은 관할 소방서 인력 전체가 출동하는 대응 1단계를 발령하고 진화에 나서 오후 7시 53분쯤 큰 불길을 잡았다. 인명피해는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조사 결과 A씨는 최근 사찰 관계자들과 갈등을 빚다가 다툼을 벌인 것으로 드러났다. 정읍경찰서 관계자는 “현장에 있던 피의자를 검거해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승려들과) 내부적 다툼 이후에 불만을 품고 대웅전에 불을 지른 것으로 추정된다”며 “구체적 범행 동기는 피의자 조사가 끝나봐야 파악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한편 내장사는 내장산에 있는 선운사의 말사로 전북도 기념물63호이다. 내장사 대웅전은 6.25 전쟁 때 소실되었다가 1958년 중건됐다. 내장사는 지난 2012년 10월 31일 오전 2시10분쯤 전기적 원인으로 화재가 발생, 대웅전이 모두 불에 탔었다. 당시 불화 3점과 불상 1점이 소실된 바 있다. 김채현 기자 chkim@seoul.co.kr
  • 임정의 놓지못한 꿈 공군 건설… K전투기 ‘기술 독립’ 이끌다

    임정의 놓지못한 꿈 공군 건설… K전투기 ‘기술 독립’ 이끌다

    안창호·김구, 독립운동 위한 공군 추진노백린 장군, 美서 한인 비행학교 설립열악한 재정 등으로 1년 만에 문 닫아 ‘백의종군’ 최용덕, 광복 후 공군 창설변변한 전투기 1대 없이 치른 6·25전쟁 조종사 4인의 희생 후 첫 전투부대 꾸려백범 김구와 도산 안창호. 그리고 최용덕 장군.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광복을 꿈꾸던 그들에겐 하나의 소망이 있었습니다. 바로 ‘공군 건설’이었습니다. 임정은 공군의 힘으로 독립을 앞당길 수 있을 것이라고 굳게 믿었습니다. 그러나 꿈을 이루진 못했습니다. 공군 창군은 독립 뒤인 1949년 10월 1일 이뤄졌습니다. 또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변변한 전투기 1대 없이 6·25전쟁을 겪었습니다. 그런 고난이 밑거름이 돼 한국은 직접 전투기를 생산하는 공군 강국이 됐습니다. 4일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학술연구팀장으로 활동했던 홍선표 박사의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공군 건설 계획과 추진’ 논문에 따르면 상하이 임정에서 공군을 가장 먼저 거론한 이는 안창호 선생이었습니다.●안창호 “비행기로 선전물 뿌려 독립운동” 1919년 3·1운동 직후 수립된 임정은 이듬해부터 ‘독립전쟁’을 선언하며 본격적인 군사정책을 수립하게 됩니다. 임정 내무총장이었던 안창호는 1920년 일제 치하에 있던 조국과 해외에 독립운동을 널리 알리기 위한 ‘선전대’를 꾸렸습니다. 그는 선전활동에 ‘비행기’가 유용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한반도 상공에서 선전물을 뿌려 독립운동의 기운이 들끓도록 하고 싶었습니다. 어렵게 중국 비행기계창에서 일하는 미국인 비행사도 확보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습니다. 상하이와 서울까지의 직선거리만 885㎞인데, 미국으로부터 구할 수 있는 비행기의 비행 가능 거리는 최대 240㎞였습니다. 임정의 재정도 좋지 않았습니다. 결국 안창호는 비행대 건설 꿈을 접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임정 군무총장이었던 노백린 장군은 1920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윌로스에 한인 비행학교를 설립했습니다. 그는 육군 무관 출신이었지만 한인 비행사를 적극 육성하면 독립전쟁에서 더 유리한 고지에 오를 수 있을 것으로 믿었습니다. 그래서 비행기 2대를 마련하고 레드우드 비행학교 교관을 초빙하는 등 훈련에 착수했습니다. 노 장군은 그해 7월 학교를 ‘대한인 비행가 양성소’로 이름 붙이고 성대한 개소식을 한 뒤 상하이 임정으로 복귀했습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난관이 닥칩니다. 같은 해 캘리포니아주 북부의 대홍수로 한인들의 쌀농사에 재앙이 닥칩니다. 후원자들은 더이상 비용을 지원할 수 없게 됐고, 안타깝게 비행학교도 1년 만에 문을 닫게 됩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공군 건설이 실패로 돌아가자 임정 주석이었던 김구 선생이 직접 나섰습니다. 그는 1930년대 초 중국 국민당 정부의 도움을 받아 비행사를 양성하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비록 실현하진 못했지만 이후 광복군 조직에 공군 편제를 마련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충칭에 자리잡은 임정은 일본의 패색이 짙어진 1943년 참모처장이었던 최용덕 장군의 건의를 받아들여 ‘공군설계위원회’를 구성합니다. 김 주석과 조소앙 외무부장은 1945년 충칭의 미군 총사령부를 방문, 한국의 완전 독립과 대일전 최종 승리 방안을 담은 제안서를 전달했습니다. 당시 광복군은 ‘독수리작전’으로 명명된 한미연합 한반도 진공작전을 추진하고 있었습니다. 여기엔 공군 창군과 관련한 내용이 포함돼 있었습니다. ●김구 “한국인들로 공군 조직해야 한다” 김 주석은 제안서에 “현재 미군이나 중국 공군에서 복무 중인 한국인들로 공군이 조직돼야 한다”고 썼습니다. 외세가 아닌 한국인 중심으로 공군 창군이 이뤄져야 한다는 의미였습니다. 그러나 앞당겨진 일본의 항복으로 공군 창군 계획은 다시 미뤄지게 됩니다. 결국 그들의 꿈은 최용덕 장군에 의해 이뤄졌습니다. 최 장군은 의열단 단원으로 김상옥 의사의 조선총독부 폭탄 투척 의거를 지원하는 등 무장독립운동을 주도했고 중국 국민당 정부의 공군 창설을 주도해 ‘상교’(대령)까지 오른 최고위급 무관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광복 후에는 공군 창군을 위해 ‘백의종군’했습니다. 미군정이 ‘장교가 되려면 조선경비대 보병학교에서 기본 군사훈련을 받아야 한다’고 하자, 실제로 훈련을 받고 ‘소위’로 임관한 겁니다. 1948년 초대 국방부 차관에 올라 당시 육군 소속이었던 공군 독립을 주도했고, 1949년 10월 1일 염원이었던 공군 창군이 이뤄집니다. 최 장군은 공군사관학교장, 공군참모총장, 체신부 장관을 지냈습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1950년 6·25전쟁이 발발했습니다. 제1전투비행단 창설 과정을 논문으로 쓴 이지원 공군사관학교 부교수에 따르면 당시 공군이 보유한 항공기는 연락기와 훈련기 22대뿐이었습니다. ‘바우트 원’으로 이름 붙여진 한국 전투비행단이 대구공항에 마련됐습니다. 그리고 7월에 10대의 ‘F51D 머스탱’ 전투기를 원조받아 바로 출격시켰지만 11일 만에 3대가 희생됐습니다. ●6·25전쟁 발발… 훈련 대신 ‘실전’으로 미 공군은 9명의 조종사를 훈련교관으로 지원했습니다. 한국인 조종사들이 편대기로 출격해 임무를 함께 수행하면서 훈련하는 방식이었습니다. 하지만 북한군의 남하로 전황이 워낙 급박해 훈련이라고 부를 수 없을 정도의 격한 임무가 계속됐습니다. 부대가 대구에서 사천으로, 다시 진해로 이동하면서 제대로 훈련받을 시간도 없었습니다. 60여시간이 필요한 기체 적응훈련은 불과 15~20시간 만에 끝냈습니다. 1950년 9월 머스탱 전투기 조종사는 8명이었습니다. 다음해 4월 새로 조종사 5명이 합류했습니다. 그러나 13명 가운데 4명이 희생돼 전체 조종사는 10명에도 미치지 못했습니다. 특히 순직자 중 2명은 극심한 훈련 부족에 합류 한 달 만에 안타깝게 산화했습니다. 1951년 10월 1일 이런 조종사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제1전투비행단이 꾸려졌습니다. 드디어 독립적으로 작전을 할 수 있는 한국인 전투부대가 마련된 것입니다. 12월 말까지 비행단은 708회나 출격해 적의 보급로 차단과 근접지원에 기여했습니다. 그로부터 7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한국형 전투기’(KFX) 시제기 1호기 출고를 눈앞에 뒀습니다. 파생형으로 스텔스기 개발을 염두에 둬 모양은 F35A를 닮았습니다. 능동형 전자주사식 위상배열(AESA), 적외선 탐색·추적장비(IRST) 등 미국이 전수하지 않은 기술을 독자 개발했습니다. 공군의 꿈은 현재 진행형입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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