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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균관대 대동문화연구원 매주 금요일 학술 발표회

    고려말 성리학으로 이 땅에 처음 도입된 이래 유교는 통치이데올로기는 물론 전통사회의 대중규범이자 보편적인 삶의 원리로 자리매김돼 왔다. 성균관대 부설 대동문화연구원(원장 김시업 어문학부 교수)은 ‘유교와 한국사회’라는 주제로 지난 6월25일부터 연5주 계획으로 매주 금요일 학술발표회를 열어 오고 있다.주제 발표자만도 31명에 달하는 이번 행사는 기간이나 규모면에서 해방후 치러진 학술행사 가운데 최대 규모다. 지난 2일 제2차 학술발표회에서는 ‘유교적 전통과 현대 한국사회’라는 주제로 유교의 ‘현재적 의미’를 되짚어보았는데 발표자들은 현대 한국사회에 미친 유교의 영향에 대해 대체로 비판적인 태도를 보였다. 서중석 성균관대 교수는 초대 대통령 이승만을 통해 해방이후 정치엘리트의 의식구조·정치행태와 유교문화와의 함수관계를 따졌다.서 교수는 “그의학력,오랜 미국생활,여자·부부관계,기독교 관계 등을 감안하면 이승만처럼서양화된 사람도 없지만 실상은 그는 왕족이나 군주처럼 행세하고 군림했다”며 “이는 유교사회인 유년시절의 체질이 강인하게 남아 있었던 탓으로 1950년대 중반 이후부터 이승만 권력의 전제성(專制性) 강화가 더욱 두드러진형태로 나타났다”고 분석했다.당시 그의 생일을 군주의 생일 규모로 성대하게 치르거나,‘서울’의 명칭을 그의 아호 ‘우남’으로 바꾸려했던 사례 등도 모두 그의 유교·봉건적 잔재에서 비롯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는 ‘유교와 한국의 시민사회’라는 주제발표를 통해근대 사회발전의 핵심적 요소인 시민사회·시민의식에 유교가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를 살펴보았다.김 교수는 “현대 한국사회에 나타나고 있는 협조주의·비주체성·가족주의·연고주의에 입각한 배타주의 등은 한국의 민주화와 사회발전에 심각한 질곡이 돼 왔다”고 진단하고는 “국가에 대한 순응적자세,권리의식에 입각한 시민운동 참여 기피현상 등은 공공윤리,민본적 가치관 등을 강조해온 유교의 합리적 측면을 계승하지 못한 때문이다.이는 식민지적 경험과 파행적 근대화가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김성보 국사편찬위원회 연구원은북한사회의 유교적 전통의 실태와 관련,“사회주의적 발전을 지향하며 전통적 요소와의 단절을 추구했던 북한에서도유교적 전통은 여전히 잔존·강화·고착되고 있다”고 밝혔다.김 연구원은“북한의 체제·사상과 유교적 전통과의 관계는 단절·지속·동원이라는 세가지 측면을 복합적으로 가지고 있다”고 분석하고 “혁명과정에서 가족주의 등 유교적 전통이 상당부분 단절되었으나 80년대 후반이후 ‘충효’를 강조하는 등 내면적으로는 오히려 강화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밖에 이승희 성공회대 교수는 ‘남한과 북한에서의 여성의 지위와 유교문화’에서 “남북한 모두에서 여성들이 산업화와 체제유지에 중요한 역할을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낮은 지위와 전통적인 성역할을 맡고 있다”고 지적하고는 “북한은 표면적으로는 여성의 사회적 해방을 추구하면서도 실제로는 유교적 덕목에 기초한 성역할을 요구하고 있으며 전통적 유교질서에 길들여진 여성의 예속성·종속성을 교묘하게 활용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정운현기자 jwh59@
  • 제일은행 외국매각 의미

    제일은행 매각협상이 2일 타결됨으로써 1년간 지속된 은행권 구조조정이 사실상 막을 내리게 됐다.서울은행 매각협상이 남았지만 HSBC(홍콩상하이은행)는 제일은행 매각이 끝나는 대로 서울은행과 본격적인 협상을 벌이기로 해국내 은행의 해외매각은 7월 중 마무리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에 따라 우리 경제의 대외신인도가 개선되고 외국 은행의 선진기법도 도입돼 은행간 경쟁은 가속화할 전망이다. 특히 국내 토박이 은행과 외국계 은행과의 경쟁이 치열해져 대고객 서비스도 한층 나아질 것으로 보인다. 미국 뉴브리지캐피탈과 6개월을 끈 제일은행 매각협상이 급진전된 것은 정부가 6월25일 제일은행에 총 5조3,000억원의 공적자금을 지원키로 한 데 따른 것이다. 뉴브리지는 제일은행을 클린뱅크로 만들어 인수한 뒤 되팔아 자본이익을 챙길 요량이었다.HSBC가 동북아 영업전략 차원에서 서울은행을 인수하려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달랐다. 그러나 정부가 5조3,000억원을 투입해 제일은행을 국제결제은행(BIS) 기준자기자본비율 10% 이상의 우량 은행으로만들기로 하자 뉴브리지는 협상이늦어질수록 자본이익이 줄어들 것으로 판단했다. 정부가 지난달 11일 최종 수정안을 건넨 뒤 뉴브리지는 20일도 안돼 정부안에 근접한 안을 들고 협상테이블에 나섰다. 쟁점사항이었던 부실채권 인수와 관련,뉴브리지는 정상 및 요주의,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여신을 인수하되 고정 이하 여신은 성업공사가 인수하는 데합의했다.특히 대우그룹을 포함한 5대 그룹 여신을 조기에 회수하지 않고 정부가 부실채권을 되사주는 ‘풋백옵션’기간도 정부안대로 2년에 합의했다. 큰 이견을 보였던 제일은행 자산가치 평가는 뉴브리지측 요구대로 시가로 하되 장부가의 80∼90% 수준에 인수할 것으로 의견을 모았다.제일은행이 넘기는 자산 규모는 지난해 말 현재 14조9,600억원에 이른다. 풋백옵션이란 은행을 인수한 뒤 일정기간 내 자산이 부실화한 경우 이에따른 손실을 보전해주는 것을 말한다. 예컨대 1년 내 부실채권의 90%를 보전해 주기로 했을 경우 거래기업이 1,000억원의 부채를 안고 부도를 내면 정부가 900억원을 보상해주는것이다. 백문일기자 mip@
  • [발언대] 과거 비리 거울삼아 병무청 거듭나야

    34년간 병무행정에 종사하다가 얼마전 퇴직한 전직 병무청 직원이다.비록현역에서 물러나 있지만 병무청은 지나온 세월 나의 정열과 땀이 밴 곳이라병무행정과 관련된 그 무엇 하나도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나에게 작은 바람이 있다면 내 삶의 터전이었고 보람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 병무청이 국민에게 신뢰받고 사랑받는 기관이 돼주었으면 하는 것이다.따라서 신문이나 방송에서 병무행정과 관련된 불미스런 보도만 봐도 마치 그것이 나의 실수이고 부끄러움인 것 같아 마음이 무겁다. 일부 후배들의 잘못 때문에 대다수 정직하고 성실한 직원들이 피해를 본다고 생각하면 씁쓸하기만 하다. 한 예로 며칠 전 모 일간지에서 6·25전쟁때 전사한 국가 유공자들의 전사사실확인과 보상이 당국의 행정편의주의적인 발상때문에 제대로 되지 않고있다는 기사를 보았다. 기사의 제목은 ‘전사자 확인 보상 엉망,병무행정 고발’이라고 돼 있었다. 제목만 본다면 병무청이 또 무슨 잘못을 한 것이구나 하고 오해를 받을 소지가 충분히 있는 것이었다. 이제 모든 병무청직원들은 지난 병무비리 사건을 계기로 뼈를 깎는 비장한 각오와 결의로 병무행정을 쇄신·발전시켜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되찾도록노력해야 할 것이다. 잘못된 일 처리,국민을 주인으로 여기지 않는 행정편의주의 식의 행정에 대해서는 질타와 채찍을 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한다.비단 병무청뿐만 아니라 각 행정기관에서는 이를 겸허히 수용해 업무발전을 위한 귀중한 자료로 삼아야 한다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아울러 이를 선도하는 것이 언론의 막중한 역할이라고 생각한다.제목 하나라도 신중하게 선정하고 정확성을 견지해야 할 것이며 행정에 대한 깊은 관심과 애정을 갖기를 바란다. 배인한[서울 은평구 신사동]
  • 減資 제일銀 주식매수 청구가 907원

    제일은행은 지난 26일 확대 이사회를 열어 자본금을 줄이는 감자(減資)자)를 결의하고,소액주주 주식매수 청구가격을 주당 907원으로 결정했다. 이에따라 제일은행 주식 6.25%(2,000만주)를 보유한 소액주주들은 지난 24일 종가(2,645원)와 비교할때 348억원의 손실을 입게 돼 강하게 반발할 것으로 예상된다. 제일은행은 주식매수 청구가격은 은행과 회계전문가가 금융감독위원회의 감자명령을 받을 당시의 은행의 재산가치와 수익가치 등을 고려해 산정했다고밝혔다.또 정부주식은 소액주주와의 형평성을 감안,주식매수 청구권자에게제시한 매수가격을 기준으로 5.5127 대 1의 비율로 병합키로 했다.제일은행은 지난 3월 말 현재 자기자본이 1조9,570억원 잠식된 상태다. 한편 참여연대는 정부지분은 병합해 향후 주가상승시 이익을 기대할 수 있다고 지적,소액주주 지분만 완전 소각하는 것은 주주평등의 원칙에 위배된다며 이번주 중 금감위를 상대로 감자명령취소 청구소송 등 법적대응을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오승호기자 osh@
  • [외언내언] 어느 學兵의 편지

    “어머니.제가 사람을 죽였습니다.돌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아마 열명은 될것입니다.네명의 특공대원들과 함께 수류탄을 던져 일순간에 죽이고 말았습니다. 어머니.제가 사람을 죽이다니요.어머니.무섭습니다.지금 내 옆에는 여러 전우들이 죽음을 기다리듯이 적들이 덤벼들 것을 기다리며 뜨거운 햇볕 아래엎드려 있습니다. 어머니.오늘 제가 죽을지도 모릅니다.저 많은 공산군이 그냥 물러갈것 같지 않습니다.어머니도 동생들도 다시 못만나게 될지 모른다고 생각하니 더 무서워집니다. 어머니.살고 싶습니다.천주님은 우리 어린 학병들을 불쌍하게 생각하실 것입니다.어머니.꼭 살아서 어머니와 동생들이 있는 집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이 편지는 1950년 8월 육군 제3사단에 편입되어 포항전투에 투입됐던 학병이우근(李佑根)군이 쓴것이다.그는 당시 18세로 서울 동성중 5학년때 ‘6·25’를 맞았고 곧 군을 따라 피난가다 대구에서 학병으로 참전하게 됐었다. 꼭 살아서 어머니 앞으로 돌아가고 싶다던 이군은 편지를 쓰던 날 전사했다.이군은 이 편지를부치지 못한채 주머니 속에 넣고 전투에 나섰던 모양이다.전우들이 총에 맞은 이군을 업고 대대본부로 돌아왔을때 이군은 마지막 숨을 몰아쉬며 이 편지를 어머니에게 보내 달라는 말을 남기고 숨을 거뒀다. 전우들이 상의 주머니에서 꺼낸 편지는 피에 흥건히 젖어 있었다고 한다.군번도 계급도 없이 교복을 입은채 총을 잡았던 소년 이군이 “어머니”를 부르며 전사한지 올해로 49주년이 됐다.‘6·25’가 없었다면 이군은 지금 67세의 정정한 노인으로 여생을 즐기고 있을 것이다. 시인 김지하(金芝河)씨가 회고하는 ‘6·25’도 참으로 비극적이다.그때 겨우 열살이었던 어린 소년은 숙부가 좌익에 의해 총살장으로 끌려가던 날 밤,백부는 월출산에 빨치산으로 입산하기 위해 할머니를 찾아 인사온것을 보았었다고 한다. 그는 또 영산강 변두리에 있던 작은마을로 피난가 있었을때 좌익동네 사람들이 대낮에 옆의 우익동네 마을로 몰려가 우익동네 전직 경찰관의 어린 아기를 몽둥이로 마치 개를 잡듯이 때려죽이는 광경을 보고야 말았다고 회고한다. ‘6·25’를 직접 겪어보지 못한 세대는 남북문제가 왜 이렇게 복잡하고 엉뚱한지 이해하기 힘들것이다.서해 교전이나 금강산 관광객 억류 사건이 다이처럼 참혹했던 ‘6·25’의 깊은 상처와 연관돼 있는 것이다. 임춘웅 논설위원
  • [사설] 끝나지 않은 6·25

    우리 민족사에서 일찍이 없었던 6·25 동족상잔의 비극이 일어난지 마흔아홉돌이 됐다.남과 북이 155마일의 철책선을 사이에 두고 대립과 긴장속에 살아온 세월이었다.잠시 갔다 다시 돌아오겠다며 떠나온 이산가족들이 고향산천과 부모형제를 그리워하며 살아온 단장의 세월이기도 했다.이처럼 6·25동족상잔은 우리민족에게 너무 깊은 상처와 손실을 안겨 주었다.민족 자존에치욕만 남긴 무모한 전쟁이었다.장구한 민족의 정통성이 무너지고 남북간 심각한 불신을 야기시켜 통일에 결정적 장애의 벽을 만들어 놓았다. 이 모든 전쟁의 상흔들은 반세기가 흘렀지만 아직도 가시지 않은 안타까운현실이다.따라서 6.25 마흔아홉해를 맞으며 우리가 깊게 되새겨야할 교훈은앞으로 어떤 상황에서도 두번 다시 동족간의 상잔은 결코 있어선 안된다는것이다.만약 앞으로 한반도에서 또다시 6·25와 같은 전쟁을 치른다면 민족자체의 파멸을 초래하는 무서운 결과를 가져올 것이 자명하다.특히 현재 남북한이 보유하고 있는 화력(火力)을 6·25당시와 비교해보면 무기는 15배로늘어났고 위력은 8배,파괴력은 무려 120배에 달하고 있다.이같은 무기들이앞으로 전쟁에 동원된다면 그 결과는 민족구성원 50%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하고 국토의 90%가 파괴되는 그야말로 ‘회복불능의 상처’를 남겨 놓게 될 것이 틀림없다.무슨일이 있더라도 전쟁만은 없어야한다. 통일은 조금 지연되는 경우가 있어도 평화를 유지하며 단계적으로 달성해야 할 것이다.더욱이 한반도의 안보환경은 조그마한 충격에도 붕괴될 수 있는위험성과 불확실성을 지니고 있다.최근 서해교전사태에서 보는 바와 같이 북한의 무력도발 야욕은 변하지 않았기 때문에 한반도 평화는 북한에 의해서언제라도 파괴될 수 있다.아직도 6·25는 끝나지 않았다는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는 것이다.따라서 당면한 최우선 민족적 과제는 6·25동족상잔의 상처를 하루빨리 치유하고 체제와 이념을 초월하여 남북이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평화체제를 구축하는 일이다. 6·25전쟁으로 인한 남북간의 상호불신을 해소하고 이질화현상을 극복하여민족의 정통성을 회복해야 한다.이같은 과제가해결돼야 진정한 의미에서 6·25를 종식시킬 수 있다.이와관련,우리 정부의 대북 포용정책 기조는 6·25의 상흔을 제거하는 현실적 대안으로 평가된다. 남북화해와 협력을 증대하고 남북관계를 발전시켜 나간다는 것이 대북 포용정책의 기본 목표다.때문에 북한은 무모한 군사적 패권주의를 포기하고 민족공존공영의 기틀을 마련하는 민족화합 대열에 적극 동참토록 촉구한다.
  • [기고] 6·25 유일의 海戰이야기

    “1950년 7월2일 새벽 미국 군함들이 주문진 앞바다에서 10척의 소형 운반선을 호위하는 북한 어뢰정 네척과 조우했다.어뢰정들은 어뢰 한발 발사할 시간 여유도 없이 모두 격침되었다” 이것은,1997년 미국에서 출간된 6·25전쟁 백과사전이 전쟁기간의 유일한해상교전이라고 서술한 대목이다. 한편 북한 신문들은 그해 7월10일 미 순양함 한척을 격침한 어뢰정 분대의위훈을 칭송하는 김일성(金日成)사령관의 방송내용을 보도했다.18일자 보도는,7월5일 주문진 앞 약 10마일 해상에 나타난 미 해군 순양함 두척과 구축함 한척 가운데 순양함 한척을 격침한 반면 제 21·22·23·24호 어뢰정 가운데 두척을 잃은 것으로 서술했다.이 해전을 지휘한 김군옥 제2정대장은 생환하여 ‘공화국 영웅’칭호를 받고 북쪽 해군의 전설적인 영웅이 됐다. 미국측 백과사전의 기술이 옳은가,북한측 보도가 옳은가? 사실은 둘 다 잘못이 있다.특히 ‘미 순양함 격침’이란 아예 없었다.군함들의 항해일지를보면 안다. 주문진 앞바다를 순찰한 군함은 북한 보도대로 순양함 두척과 구축함 한척이었다.즉 미 순양함 ‘주노’와 영국 순양함 ‘자메이카’,영국 구축함 ‘블랙 스완’이다.‘주노’의 항해일지를 보면 아침 6시17분 해안선 가까이에서 선단을 호위하는 어뢰정 네척을 발견했다.포격을 가해 먼저 한척을 격침하고 해안으로 피신한 두척마저 격파했다.김군옥 정대장이 지휘하는 어뢰정은 교묘하게 지그재그 운항을 해 외해(外海)로 달아났다. 영국측 기록에는 어뢰정들이 “지극히 용감하게 돌격했다”고 칭찬했다.다음날인 7월3일 오후 북한 공군기 두대가 이 해역에 날아와 기총소사를 퍼부었다고도 기록했다. 이상이 내가 조사한 주문진 해전의 내용이다.6·25전쟁에서 미 군함 66척이 피격되고 6척이 침몰했지만 육지에서의 포격과 기뢰에 의한 것일뿐이지 북한 해군과의 해상전투는 주문진 해전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라는 것이다. 결국 6·25때 바다에서 북한 해군에게 격침된 미 함정은 한척도 없었다.그런데도 주문진 해전에서 북쪽이 미 순양함을 격침하였다는 전과는 시간이 갈수록 부동(不動)의 사실로 굳어지는 듯하다.김일성수상이 사망한 뒤 북쪽에서 출판한 ‘김일성전집’은 그가 조선인민군 해군사령관에게 주었다는 ‘미제침략군 전투함선 집단을 소멸할 데 대하여’라는 장문의 지시문을 수록했다. 1950년 6월30일에 시달하였다는 지시문에는 “적의 순양함은 뱃머리가 높기 때문에 어뢰정이 가까이 접근하면 함포사격을 할 수 없다”“이번 해상전투에서 주타격대상은 적의 순양함 ‘빨찌모르’호이다.해군사령관 동무는 속초항에 가 7월2일 새벽3시에 공격을 개시해야 하겠다”등의 구절이 들어 있다. 나는 2,000자가 넘는 이 지령문의 진위를 논하고 싶지는 않다.아마도 전후세대인 ‘김일성전집’의 편집자들이 역사적인 사실로 교육을 받아 스스로확신하고 있을 미 순양함 ‘빨찌모르’호 격침 사건,그 쾌거의 영광을 전적으로 수상에게 돌리려고 한 결과일 것이다.이 ‘우물 안 개구리’식 공작은오히려 고인이 된 수령을 모독하는 것임을 알게 되면 좋겠다. 내가 알기에는 미국 전사관(戰史官)들은 북한 전사관들과 무릎을 맞대고 6·25전쟁의 실상을 진지하고 화기애애하게 토론하고 싶어한다.가령 그 대상은,미 24사단이 북한군과 맞붙어 딘 사단장이 포로가 되는 등 대패했던 50년7월의 대전(大田)지구 전투가 된다 해도 무방할 것이다. 미국 공문서관은 이 제2어뢰정대에 관한 북한측 문서도 대량 보존하고 있다.인민군 전사관들이 미국 수도를 방문하여 허심탄회하게 6·25전사(戰史)를추구하는 기회가 생기면 얼마나 좋을까.6·25를 맞이하여 하나의 감상을 적는다. [方善柱 在美 사학자 한림대 객원교수]
  • [김삼웅 칼럼] 주화 척화논쟁과 신북풍 논쟁

    남한산성의 상황은 절박했다.나라의 명운이 걸린 1636년 12월,청국군 13만명이 산성을 겹겹이 포위한 가운데 우리 장졸은 기껏 1만3,000명,그나마 40여일 동안의 봉쇄로 식량이 바닥나고 혹한까지 겹친 극한상황이었다. 이런 상태에서 청태종은 투항 아니면 결전을 택일하라는 최후통첩을 보내왔다.인조는 다시 중신회의를 열었다.최명길 등은 일단 항복했다가 후일을 도모하자는 주화론을 주장하고 김상헌 등은 군신이 최후 결전으로 항전하자는척화론을 전개했다. 논쟁은 이어지고 최명길이 쓴 국서를 김상헌이 찢고 찢은 국서를 다시 잇기가 계속됐다.“대감의 나라 위한 충정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나 역시 나라와 백성의 안전을 위해 이러는 것이다.대감이 또 국서를 찢으면 다시 붙이겠다.”(최명길) “그대의 선친은 도덕과 의리로 명망이 높은 분이셨는데,그대는 어찌 이처럼 서슴없이 군부(君父)를 욕되게 하는가.”(김상헌) 최명길은 김상헌이 국서를 찢고 통곡할 때 이를 주워모으면서 “조정에 이문서를 찢는 사람이 반드시 있어야 하고,또한 나같은 자도 없어서는 안된다. ”라면서 강화를 주도했다.이를 두고 후세 사가는 “결지자(結紙者)도 충(忠)이요 열지자(裂紙者)도 충”이라 썼다.두사람은 후일 청나라 수도 심양에붙잡혀가 옥중에서 껴안고 통곡하면서 서로 충심을 이해하였다고 역사는 전한다. 미증유의 국난을 맞은 조선조 중신들의 의연한 모습이 눈에 선하다.임진왜란과 6·25전란 때에 선조와 이승만대통령의 야반도주에 비하면 비록 민족만대의 국치를 겪을 망정 중신들의 용기와 나라사랑 정신이 찬연히 빛난다. 6월15일의 서해안 사태는 6·25전쟁 이후 최초의 남북정규군이 교전한 국지전이다.휴전 이래 여러차례 충돌사태가 벌어졌지만 대부분 북한의 일방적인공격이거나 기습적인 테러 행위였다.쌍방 수십척의 전함이 동원되어 수십명의 사상자를 낸 ‘전투’가 해상에서 벌어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우리 해군 장병들의 용감한 작전과 월등한 병기로 북한군을 격퇴시킨 것은천만다행이다.철통같은 방위태세에 든든함을 느낀다. 그런데 문제는 후방이다.온세계가 지켜보는 북한의 침략도발을‘신북풍’운운하면서 국군을 모독하고 국론분열에 열을 올리는 사람들의 언행은 지탄받아 마땅하다.국난이 닥치면 힘을 모으는 것이 상식인 터에 일부 정치인들은 해도 너무한다. 과거 ‘총격유도사건’의 혐의를 받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경험법칙’에따라 이번 사태도 그랬을 것으로 생각할지 모른다.‘돼지의 눈에는 돼지만보인다’는 무학대사의 논법을 빌리자면 말이다. 적전분열처럼 용서받기 어려운 죄목도 흔치 않다.남한산성의 주화파와 척화파에게는 방법론상의 차이는 있었을 망정 나라의 안위를 걱정하는 애국심에는 차이가 없었다. 정치를 제로섬게임으로 생각하거나 공작과 음모 수준으로 인식하는 국회의원들이 정치를 하는 나라의 국민은 불행하다.장병들이 목숨을 걸고 전투를벌이는 ‘실제상황’을 지켜보면서도 정치적 이해 때문에 국군을 모독하고국론 분열의 언행을 서슴지 않는 국회의원들을 국민은 오래 기억해둬야 한다. 서해안 교전사태로 정부의 햇볕정책이 도마 위에 올랐다.대북 포용정책으로 북한에 상당한 수준의 물적 지원이,또그런 기대 때문에 북측이 더이상의확전을 기도하지 않았을 것으로 분석하는 전문가가 적지 않다. 그렇다면 햇볕정책은 한반도의 전쟁을 중지시킨 결정적 요인이 되고,포용정책을 주변 4강이 지지하고 다수 국민도 동의한다.그런데 일부 정치인과 보수 언론의 주장대로 ‘이에는 이’식의 탈리오의 법칙을 따랐을 때 우리에게무슨 도움이 될까.지난날 원칙없이 냉온탕을 반복하면서 추진한 대북정책의결과를 지켜보지 않았는가. 국회는 신북풍론의 소모적,적전분열적 논쟁을 지양하고 북한미사일 재발사문제, 남북한의 공동 어로수역설정과 공동조업을 비롯한 평화공존의 방법을찾는 데 힘을 모아야 한다.그리고 또 언제 벌어질지 모르는 저들의 기습에대비해야 한다.지금은 무책임한 신북풍론 따위로 허송할 때가 아니다. [주필 kimsu@]
  • [특별기고] 동족상잔 代를 이을 것인가

    북쪽의 경비정이 며칠을 두고 북방한계선을 넘나든다고 하더니 기어이 총격전이 벌어졌고,남북 양쪽을 합쳐서 100명 이상의 사상자가 났다고 한다.비록 짧은 시간의 총격전이었다 해도 그 결과가 앞으로 어떻게 번져갈지 걱정되지 않을 수 없다.세계대전으로 불리는 큰 전쟁들도 극히 사소한 일에서 발단된 역사를 우리는 알고 있지 않은가.전쟁 치고 처참하지 않은 전쟁이 있을까만,동족상잔이야말로 처절하고도 비참하기 짝이 없는 전쟁이다. 남북을 막론하고 한반도에 사는 사람중 6·25전쟁을 겪은 사람은 한마디로말해 불쌍한 사람들이다.그들은 동족의 다른 한쪽을 적으로 삼아 총부리를겨누고 싸운 사람들이다.그 뿐만이 아니다.그 전쟁이 끝난지 반세기가 지난후까지도 그들에게는 아직 북쪽은 적이요,전쟁때 도와준 미국은 혈맹의 우방으로 인식돼 있다.반세기가 지난 지금까지 그들 대부분은 동족의 한쪽을 적으로 간주하는 민족인식 및 역사인식에 한정되어 있는 것이다.동족상잔이란그렇게 무서운 것이다. 6·25를 겪은 세대의 불행은 그것으로 끝나지않는다.전쟁이 끝난지 50년이나 된 지금까지도 전쟁을 경험하지 않은 그들의 아들딸과 손자 손녀들에게자기와 같이 북쪽을 적으로,그리고 미국을 혈맹의 우방으로 인식할 것을 강요하고 있다.그들은 그렇게 강요하지 않고는,자손들의 민족인식 및 역사인식에서 그것을 확인하지 않고는 불안해서 견딜 수 없는 것이다.동족상잔의 상처란 그렇게 깊은 것이다. 그런데 민족분단의 과정에 하등의 책임이 없을 뿐만 아니라 6·25 동족상잔때 태어나지도 않았던 남북의 젊은이들이 이제 군인이 돼 남북 기성세대의적대의식 및 대결의식에 따라 서로 총격전을 벌여 순식간에 100명 이상의 사상자를 냈다.그러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지만,언제 또 더 큰 총격전이 벌어지고 그것이 전쟁으로 확대될는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다.참으로 처참하고부끄러운 민족상잔이 대를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6·25 동족상잔이 끝난지 반세기가 되면서 남쪽 4,000만 인구 중에는 그 전쟁을 직접 경험하지 않은 사람들이 훨씬 많아졌고,세월이 약이 되어 북쪽을적이 아닌 동족으로 인식하고미국을 혈맹의 우방이라기보다는 하나의 타국일 뿐이라 인식하는 젊은이들이 훨씬 많아졌다.그것이 21세기를 내다보며 전쟁통일도,흡수통일도 아닌 평화통일을 전망하게 된 가장 중요한 원인이기도하다. 그런데 다시 남북의 젊은이들이 총부리를 맞대고 싸워서 사상자가 나고 서로 적개심을 높이는 언설이 오가고 있으며,미국 핵잠수함 등이 다시 이 땅에 증파된다고 한다.6·25전쟁 50년이 지난 지금 이 땅에 남북 젊은이들이 서로 피를 흘리고,미국이 또 혈맹의 우방 자리를 더욱 굳혀가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간다면 언제쯤에나 남쪽 젊은이들에게 북쪽의 젊은이가 다시 동족으로 인식되고 미국이 혈맹의 우방이 아닌 타국이 될 것인지,그리하여 언제쯤에나 전쟁통일도,흡수통일도 아닌 진정한 의미의 평화통일이 전망될 수 있을지 답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흰옷 입고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대대로 살았다는 이 한반도가 어쩌다가 남의 힘까지 빌리면서 대를 이어가며 동족상잔이나 하는 한심하고도 창피한 땅이 되었는지.민족의 다른 한쪽이 적으로만 보이는 민족인식 및 역사인식이 청산되지 않는 한,대를 잇는 동족상잔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이번 총격전에 희생된 젊은이들은 남북 기성세대의 ‘동족상잔적 역사인식’의 희생물이다.삼가 명복을 빌고 쾌유를 빈다. [姜萬吉 고려대 명예교수]
  • [발언대] 병역기피 말고 명예로운 제대를

    우리는 아랍과 이스라엘 간에 벌어졌던 6일전쟁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315만 이스라엘인이 1억8,000만 아랍인을 상대로 한 전쟁을 승리로 이끈 역사적 사건이다.당시 전쟁터로 나가기 위해 귀국한 이스라엘의 유학생과 본국소환을 두려워해 결석한 아랍인 유학생들간의 의식이 극명하게 비교되기도했다. 우리도 조국수호정신을 말할 때 흔히 임진왜란 당시 의병을 일으켜 왜적과싸운 곽재우나 서산대사,사명당 등을 자랑스럽게 꼽는다.그 뿐인가.일본의방해로 세계만국평화회의 참석을 거절당해 자결한 이준열사나 독립선언서를발표한 33인의 민족대표,3·1독립운동 당시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다 순국한유관순열사 등 우리는 사록(史錄)을 통해 호국정신이 얼마나 위대한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러나 6·25전쟁때 일부 부모들이 자식의 군입대를 기피하기 위해 외국으로 피신시킨 사례는 그 반대다.이들이 귀국해 교단에서 활동하다가 가짜학위가 들통나 교육계에 일대 소동이 벌어진 일도 있다.지금까지도 어떤 부모는입대한 자식을 후방이나 편안한 보직으로 전출시키기에 혈안이 돼 있다. 국립묘지에는 조국수호를 위해 초개와 같이 목숨을 버리고 산화한 호국영령들이 16만명 이상 잠들어 있다.그런데도 병역비리가 끊이지를 않고 오히려눈덩이처럼 커가는 것이 참으로 부끄럽고 한심스럽다.신체가 온전한 자식을비리를 저지르면서까지 환자로 둔갑시키는 일에 몰두할 게 아니라 사랑하는자식이 명예롭게 병역을 마치는 것을 자랑으로 여겨야 할 것이다. 프랑스 국민들은 지금도 프랑스 파리를 위해 죽어간 시민이 없었다면 오늘날 파리시가 존재할 수 있었는가를 생각한다고 한다.드골장군은 “우방이 우리를 도와줄 수는 있어도 우리와 운명을 같이 할 수는 없다”고 했다. 진정한 조국수호의 뜻을 기리면서 더이상 이 땅에서 병역비리가 재발하지않도록 다함께 노력하자. 박준순 [서울 중랑구 면목4동]
  • 행자부, 잭슨 공연“6월25일은 문제 있다”

    오는 25일 서울 잠실올림픽경기장에서 열릴 마이클 잭슨 내한 공연 일정에대해 김흥래(金興來)행정자치부 차관이 “공연날짜에 문제가 있다”며 18일문화관광부에‘시중의 여론’을 전달,공연 관련자들이 아연 긴장상태에 돌입했다. 김차관은 이날 6·25의 상징성과 최근 서해 해상에서의 충돌 사태 등을 감안할 때 공연날짜가 적절치 못하다는 여론을 문화관광부에 전달했다고 김완기(金完基) 행자부공보관이 전했다.행자부의 조치는 대한민국전몰군경유족회 등 보훈단체들이 “수많은 전몰자와 피해자를 냈던 6·25날은 호국정신을기려 온 국민이 엄숙해야 한다”며 잭슨 공연을 다른 날로 옮겨달라는 요지의 진정서를 당국에 제출한 데서 비롯됐다. 하지만 문화관광부는 이 공연이 지난 10일자로 이미 한국영상물등급위원회에서 허가를 받은 데다 북한어린이돕기를 비롯한 자선공연이며,한국만의 단독행사가 아니라 29일로 예정된 독일 뮌헨 공연과 연계된 국제적인 행사라는점 등을 들어 연기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문화계에서도 행자부의 이번지적에 대해서는 뜻밖이라는 분위기다.애초 마이클 잭슨이 한국 공연 날짜를 25일로 정한 의도 자체가 금세기 마지막 분단국가라는 점을 고려한 것이고 공연취지도 북한어린이돕기를 비롯한 자선공연임을 밝힌 만큼 이 공연을 호국정신 훼손과 연결하는 것은 지나친 반응이라는 설명이다.국내 공연기획사인 제일기획측도 보훈단체를 일일이 찾아다니며이 공연이 자선돕기 성격이란 점을 설득하고 있지만 모처럼 순조로운 잭슨행사진행에 차질이 빚어질까 긴장을 풀지 못하고 있다. 이순녀·서동철기자 coral@
  • 철통경계속 꽃게잡이 분주-연평·백령도 주민 표정

    서해의 남북 대치가 진정 국면에 들어선 17일 백령도와 연평도 주민들의 표정은 한결 밝아졌다.새벽부터 어선들은 어장으로 나갔고 부두에서 갓 잡아온 꽃게를 운반하는 주민들의 얼굴에는 웃음이 넘쳤다. 군 장병들은 추가 도발가능성에 대비,긴장을 늦추지 않은 채 북쪽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연평도 동이 트지 않은 새벽.당섬과 내항,소연평도 부두에서 출어준비를하는 선원들의 표정은 밝았다.전날 잡은 꽃게 26t이 무사히 인천항에 도착했다는 소식도 들려왔다.때마침 폭풍주의보도 해제돼 바다는 잔잔했다. 아침 7시.하늘 높이 구름이 걸린 연평도에 ‘풍어의 노래’가 메아리쳤다. 연화3호 기관장 김동수(金東壽·46)씨는 “앞으로 계속 출어한다면 손해를어느 정도 보충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힘차게 닻을 올렸다.인천 연안부두를 아침 8시에 떠난 페리여객선 ‘실버스타’호는 제시각인 12시 정각 연평도에 도착했다.그러나 배에서 내린 사람은 52명뿐이었다.아직도 전운이 가시지 않았음을 느끼게 했다. 해질 무렵 돌아온 배마다 싱싱한 꽃게가 가득 실려 있었다.재성1호 선주 박재복(朴在福·32)씨는 “바다도 잔잔해 작업이 순조로웠다”며 모처럼 환하게 웃었다. 백령도“백령도는 우리가 지킵니다”북한군의 기습 도발을 여러차례 경험했던 서해 최북단 백령도 주민들은 사태가 진정되고 있다는 소식에도 경계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백령예비군 김정현(金定顯·38)면대장은 “예비군들은 유사시 전투에 투입할 수 있도록 연락체계를 유지하고 있다”면서 “주민들에게 대피호 정비와 비치물 확인작업등을 독려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50여명의 여자예비군도 출동태세를 수시로 점검하고 있다.89년 4월 자발적으로 조직된 백령도 여자예비군은 주민들과 장교 및 하사관 부인들로 짜여져 있다.20·30대 젊은이들이 주축이지만 50·60대도 있다. 여자예비군은 매년 사격 등의 훈련을 한다.여자예비군 소대장 윤연옥(尹蓮玉·48·백령면 진촌2리)씨는“북측의 어떠한 도발에도 적극 대응할 준비가돼 있다”고 말했다. 백령종고 학생자치회도 매일 조직을 점검하고 있다.131명의 학생들은 매년두 차례흑룡부대에 입소,실탄사격훈련,화생방,기초 유격 등을 받아왔다. 6·25때 서해 5도를 지키며 용맹을 떨쳤던 유격대 ‘동키부대’와 평양 침투조원으로 활약했던 ‘켈로부대’ 출신 노인들도 결의를 다졌다. 백령도 이종락·연평도 전영우기자 jrlee@
  • 돌아온 풍악호 관광객이 전한 北표정

    서해의 초긴장 상태와는 달리 금강산은 평온했다. 3박4일 일정의 금강산 관광을 마치고 16일 오전 6시25분 동해항으로 무사히 돌아온 현대풍악호 관광객 585명은 남북한 함정이 포격전을 벌인 15일 오전의 긴박한 시간에도 평상시처럼 관광을 즐겼다고 밝혔다.관광객들에 따르면15일 오후에야 일부 관광객들이 버스 안에서 우리측 라디오방송을 통해 교전 사실을 알았지만 별다른 동요는 없었다.북측 안내원들은 신변을 걱정하는관광객들에게 금강산 관광의 신변보장을 재확인해주기도 했다. 한 관광객은 “15일 오후 조선족 버스기사로부터 서해안사태를 전해 듣고혹시 돌아가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걱정했으나 북측 사람들의 태도에는 변화가 없었다”고 말했다. 관광객들은 ‘서해 대치’ 7일째인 지난 13일 금강산으로 떠나면서 풍악호선상에서 우리측 안내원들로부터 “서해사태로 북한측이 종전보다 까다롭게군다”는 주의를 받은 터였다.14일 오전 장전항 북한 출입국관리소를 통과할 때 다소 지체되기는 했지만 북한 직원은 “서해안 등 이념문제는 이야기하지 말자”면서 오히려 유연한 태도를 보였다. 관광지에서 만난 북한 안내원들도 서해사태를 모르는 듯 친절하게 안내를했다.한 여자 안내원은 ‘통일의 날 금강산에서 다시 만납시다’라는 쪽지를 건네기도 했다. 김명승기자 mskim@
  • 방송3사 특집 ‘전쟁 아픔’ 고발

    한국전쟁 발발 49주년을 맞아 방송 3사는 다큐멘터리와 생방송 등 다양한한국전쟁 특집을 방송한다.방송사들은 17일부터 25일까지 1주일가량 이들 프로를 통해 전쟁의 참상과 상처 등을 보여준다. 우선 KBS는 17일 밤 10시부터 2시간 동안 1TV와 위성1TV,사회교육방송을 통해 특별생방송으로 ‘남과 북,이산가족을 찾습니다’를 생방송한다.북한에가족을 둔 남쪽 이산가족이 KBS 스튜디오에 나와 ‘남에서 북으로 띄우는 사연’을 발표하고 연락을 기다리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KBS2 ‘추적 60분’은 17일 밤 9시50분 특별기획으로 ‘사라진 6.25전사자4만명’을 방송한다.전쟁이 일어난지 49년이 지났음에도 당국의 무책임한 전사자 처리로 인해 아직까지 아픔을 안고 있는 유가족의 모습을 살펴보고 보훈행정의 현주소를 고발한다. KBS1은 또 23일 밤 10시 ‘6·25 특집’으로 ‘임시수도 부산,1000일의 기록’를 내보낸다.자갈치 아지매,국제시장 또순이,부산부두의 얌생이로 통칭되는 피난민들의 고달픈 삶과 희망을 임시수도 부산을 무대로 그려본다.또전쟁과가난을 못이겨 고국을 등진 한 전쟁고아의 삶을 다룬 ‘군용백 속의아이’(25일 밤 10시)도 방송한다.지난 53년 콜롬비아로 돌아가는 참전국 병사의 군용백에 숨어 해외로 건너간 전쟁고아 윤우철씨(당시 9세,현 55세)의이야기이다. MBC는 ‘특별기획 남북이산가족찾기-이제는 만나야한다’를 23일밤 9시55분부터 3시간 동안 생방송으로 진행한다.지난 한해 동안 MBC에 출연해 헤어진가족을 만난 사람들을 스튜디오로 초청한다.아울러 남쪽 가족을 찾는 북한주민과 남한에 살면서 북한의 가족을 찾는 남한이산가족의 애달픈 사연을 소개한다. MBC는 이어 남파간첩으로 붙잡혀 모두 31년 5개월동안 수감된 정순택씨의 삶을 다룬 특선 다큐멘터리 ‘보호관찰 대상자 정순택의 꿈’(21일 오전 11시)을 내보내 분단의 고통을 조명한다. SBS는 19일 ‘문성근의 다큐세상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베트남전의 끝나지않은 고통-고엽제’를 방송한다.한국전쟁은 아니지만 전쟁의 아픔은 같다는 점에서 이 프로를 마련했다.이 프로는 30년전 한미간에 체결된 브라운 각서를 공개한다.이 각서에는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한국군전사상자의 보상금지급문제가 포함돼 있다. 허남주기자 yukyung@
  • 철원군, DMZ 체험열차 운행

    기차를 타고 DMZ를 찾아가는 테마관광열차가 운행된다.강원도 철원군은 철도청과의 협의를 거쳐 오는 25일 당일 코스로 ‘DMZ 체험열차’를 시범 운행한다고 14일 밝혔다. 통일호 임시열차 7∼8량으로 운행될 이번 ‘DMZ체험열차’는 오전 9시30분에 서울역을 출발,오후 6시쯤 되돌아 온다.체험열차 시범운행이 성공하면 오는 10월1일부터 본격적으로 정기 운행할 예정이다. 철도 운행지역은 DMZ지역 중에서도 6·25때 전투가 가장 치열했던 곳으로경원선과 금강산선의 종착역인 철원지역을 주 관광코스로 한다. 열차는 서울역∼청량리역∼덕정역∼동두천역∼소요산역∼초석리역∼연천역∼신탄리역으로 이어지며 2시간 20분이 소요된다.신탄리역에서의 버스투어는 신탄리역∼고석정∼제2땅굴∼월정리역 전망대∼노동당사∼백마고지를 거쳐출발지인 신탄리역으로 돌아오는데 시간은 5시간 40분이 걸린다. 경비는 기차운임 왕복 5,200원,입장료 1,400원,중식대 5,000원,버스투어비5,400원 등 모두 1만7,000원이다. 10월부터 ‘DMZ 체험열차’가 정기 운행되면 이 지역의 평화무드 조성과 함께 전국 철새도래지의 메카로 자리잡고 있는 철원평야의 두루미·기러기 등에 대한 철새 탐조객과 실향민들에게도 호평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철원 조한종기자 hancho@kdaeily.com
  • 6·25특집 이산가족 상봉 주선

    이달말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열릴 남북 차관급회담 결과에 따라 이산가족 상봉문제가 급진전될 가능성이 높아진 가운데 방송사들이 6.25 특집으로 속속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특집프로를 기획하고 있다. KBS는 오는 17일과 24일 밤 10시부터 2시간 동안 ‘KBS 특별생방송 남과 북,이산가족을 찾습니다’를 방송한다.국제전화까지 연결하고 1TV,위성1TV,라디오 사회교육방송으로 동시 방송한다. 북한에 가족을 둔 남한의 한 사람이 스튜디오에 나와 사연을 밝히는 ‘남에서 북으로 띄우는 사연’으로 프로는 시작된다.북한에서 연락이 올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중국,일본 등지에서 연락은 올 것으로 제작진은 기대한다. 또 ‘북에서 온 편지’ 코너도 있다.여기서는 북한의 이산가족이 남한의 혈육을 찾는 사연을 소개한다.KBS 사회교육국에는 올들어 130통의 북한 주민편지가 날아들었다.북한을 방문해 가족을 만났던 재미동포들의 상봉기를 미국 LA로부터 위성중계하는 ‘LA에서 생방송으로 보내오는 상봉체험기’도 마련된다. MBC는 ‘MBC 특별기획,남북이산가족 찾기,이제는 만나야 한다’를 24일 밤9시 55분부터 3시간 동안 생방송한다.이 프로는 제3국에서 헤어진 혈육을 만난 가족들의 상봉장면과,상봉하지는 못했지만 생사확인이 이뤄지거나 편지가 오고가는 30여 가족의 이야기가 공개된다. 허남주기자
  • 주가 사상최대 폭등…44P올라 840선 돌파

    주가가 폭등하면서 종합주가지수 840선을 훌쩍 넘어 연중최고치(842.32)를기록했다. 7일 주식시장에서는 투신권의 공격적인 ‘사자’에다 선물과 연계된 매수세가 가세,열흘째 상승세 속에 지수가 지난주말보다 무려 44.82포인트나 폭등했다.종전의 상승 폭 최고치(지난 4월19일,41.45포인트)를 경신했다.주가지수도 96년 7월11일(847.39) 이후 가장 높았다. 개장 초부터 금리와 엔-달러 환율 안정세 등에 힘입어 초강세로 출발한 증시는 선물강세와 기관투자가들의 매수세로 폭등세가 이어졌다.거래량과 거래대금은 각각 2억6,039만주와 3조9,512억원이었다.선물도 초강세로 돌아서 상승 폭이 7.50포인트에 달해 지난해 12월21일의 사상 최대치(6.25포인트)를경신했다. 한편 3년 만기 회사채는 이날 연 7.96%로 지난주말보다 0.08%포인트가 떨어지며 지난달 6일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3년 만기 국고채는 0.10%포인트 떨어진 6.35%,기업어음(CP)은 0.03%포인트 떨어진 6.40%였다.서울 외환시장에서 미 달러화에 대한 원화 환율은 지난 4일보다 60전 내린 달러당 1,183원20전으로 마감했다. 오승호 김균미기자 osh@
  • 7일 증시에 쏟아진 진기록

    7일 증시에서는 각종 진기록이 쏟아졌다. 이날 종합주가지수의 상승 폭은 무려 44.82포인트로 증시 사상 최고치다.종전 기록(4월19일,41.45포인트)을 가볍게 넘었다. 종합주가지수도 지난달 10일의 연중최고기록(814.24)을 무려 30포인트 가까이 뛰어넘은 것이며 96년 7월11일(847.39)이후 2년10개월여만에 가장 높은수치다. 현물지수가 치솟자 주가지수 선물지수도 신기록 행진에 동참,선물가격 상승폭이 이날 7.50으로 종전의 사상 최고기록(6.25)를 넘어섰다.선물지수도 96년 5월27일(101.40)이후 처음 100을 돌파했다.주가가 앞으로도 계속 오를 것으로 보는 투자자들이 그만큼 많다는 얘기다. 코스닥시장도 대부분 종목들이 오르며 신기록을 쏟아냈다. 코스닥지수가 150선을 돌파,사상최고치를 경신했다.전산시스템의 처리용량이 종전보다 4배 이상 늘면서 거래가 급증,지수비중이 높은 대형주들이 상한가를 기록한 데 힘입어 코스닥지수가 지난주 금요일보다 무려 11.81포인트오른 150.45로 마감됐다.지금까지의 최고 기록은 지난 5월31일 145.48이었다.코스닥지수의 상승폭(11.81포인트)과 상승률(8.52%)도 모두 시장개설 이후최고였다.거래대금도 2,195억5,000만원으로 시장 개설이후 가장 많았으며 거래량은 1,153만주로 지난 5월10일(1,402만주)이후 두번째였다. 김균미기자 kmkim@
  • 상흔 달래며 가족처럼 30년

    “30년 가까이 한 곳에 모여 살다보니 이젠 가족처럼 느껴집니다” 서울 강동구 천호동 십자성(十字星) 마을.월남전에 참전했다가 중상을 입은 1∼6급 상이용사 51명과 가족들이 전화(戰禍)의 상처를 서로 어루만지며 모여 살고 있는 곳이다. 이곳에 처음 마을이 들어선 것은 지난 74년.제대 후 성치 못한 몸을 이끌고 방황하던 상이용사들이 보상금으로 땅을 불하받아 허허벌판이었던 이곳에자립의 터전을 마련했다.‘십자성’이라는 이름은 고 박정희(朴正熙) 대통령이 지어주었다. 주민들은 경기도 안산시 반월공단에서 십자성 의재공업사를 공동운영,생활비를 마련하고 있다.붕대,가재,탈지면,1회용 주사기를 생산해 국방부와 조달청,국·공립병원에 납품한다. 여기서 나오는 수익금은 51개 상이용사 가정에 다달이 똑같이 배당된다.수익금을 쪼개 동사무소에서 추천을 받은 소년소녀 가장에게도 매월 30만원씩도와주고 있다. 마을은 2∼3층의 단독주택이 빽빽이 늘어선 게 여느 주택가와 다를 바 없다.다만 집집마다 ‘국가유공자 ○○○’이라고 쓰여진 문패가 걸려있고 한창일할 시간에 집에 있는 가장이 많은 것이 다른 점이다. 김윤근(金允根·50)씨는 31년 전 6월4일 월남 호이얀 전투에서 부비트랩이터져 두 다리를 잃었다.방황도 많이 했지만 이곳에 정착해 결혼하고 남매를낳은 뒤 자립기반을 닦았다.김씨는 “처음 와서 휠체어를 타고 밖에 나갔을때 느꼈던 옆 동네 주민들의 싸늘한 시선을 견디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부상이 심하지 않은 사람들은 직장생활을 하다가 이젠 나이가 들어 대부분퇴직했다.주택은행 지점장으로 일하다 퇴직한 최우식(崔祐植·58)씨는 지난65년 청룡부대 소대장으로 부대원들을 이끌고 월남 투이호와 전투에서 동굴을 수색하다 수류탄 파편을 맞고 부상했다.그는 당시 경험을 소재로 한 ‘정글 속의 소위들’이란 논픽션으로 신춘문예에 당선되기도 했다. 회원들은 현충일에는 바쁠 것 같아 2일 오전 부부동반으로 대전 국립묘지를 찾아 먼저 간 동지들을 만나고 왔다.회장 김홍섭(金洪燮·51)씨는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지 않는 것은 여러 고마운 분들이 도와주었기 때문”이라면서 “6·25나 현충일이 돼야 젊은 시절 목숨을 걸고 싸웠던 사람들에게‘반짝 관심’을 보이는 세태는 좀 서운하다”고 말했다. 김성수기자 sskim@
  • [특별기고] 6·25를 잊지말자?

    6·25와 현충일이 든 ‘잔인한 달’ 6월이 또 돌아왔다.우리는 6·25 전쟁후 반세기 동안 이 달이 돌아올 때마다 ‘6·25를 잊지 말자’고 외쳐 온 셈인데,김대중정부의 대북 화해정책이 어느 정도 정착돼 가는 시점에서 맞는이 6월도 북녘에 대한 경계심과 적개심을 높이기만 하는 한 달이 돼야 할 것인가 생각해볼 만하다.그보다는 이제 평화롭게 통일해갈 수 있는 지혜를 배우고 그 방법을 생각해 보는 한 달이 돼야 하지 않을까 한다. 6·25전쟁은 통일전쟁이었다.처음에는 북쪽에 의해 무력통일이 될 뻔했으나 미군을 주력으로 하는 유엔군의 참전으로 불가능했다.다음에는 인천상륙과유엔군의 38선 돌파로 남쪽에 의한 무력통일이 될 뻔했으나 이번에는 중국군의 참전으로 좌절됐다.결국 어느쪽도 무력으로 통일할 수 없었는데,그 원인은 한반도 지역이 처한 지정학적 위치가 중요한 원인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통일을 목적한 전쟁이 3년간이나 계속됐으나 200만명 이상의 목숨이 희생되고 전 국토가 황폐화했을 뿐 통일은 되지 않았다.여러번 말했지만 6·25전쟁은 한반도 지역이 지정학적 조건 때문에 전쟁의 방법으로는 통일될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가르쳐 준 전쟁이었으며,그 때문에 평화통일론이 정착돼 가고 있다.이 사실을 역사학은 정확하게 이해하고 가르쳐야 할 것이다. 얼마전 어느 국제학술회의에서 우리쪽 참가자가 중국 참가자에게 만약 한반도가 남쪽에 의해 흡수통일되면 중국은 어찌하겠느냐고 물었더니 중국으로서는 용납하기 어려울 것이라는,국제학술회의 참가자 치고는 비교적 솔직한 대답이 나왔다. 아마 러시아 참가자가 있었고 같은 질문을 받았다면 같은 답을 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봤다. 그리고 지금은 가능성이 희박해졌지만 만약 한반도가 북쪽에 의해 흡수통일되는 경우 어찌하겠느냐 하고 일본이나 미국 참가자에게 물었다면 비슷한 답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되기도 했다. 6·25때도 그랬지만 지금도 한반도 통일과 주변 세력의 이해관계를 생각해보면 대체로 보아 해양쪽의 미국과 일본이,그리고 내륙쪽의 중국과 러시아가 이해를 같이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런 상황 아래서 전쟁통일도,흡수통일도 아닌 ‘대등’통일을 어떻게 이루어낼 것인가 하는 것이 한반도 통일문제의 초점이라 할 수 있다. 6·25를 침략전쟁으로만 보고 누가 먼저 침략했는가를 따지는 역사인식에한정되는 한 6월은 계속 침략자에 대한 적개심과 재침에 대한 경계심을 높이는 달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적개심과 경계심을 높이는 일만으로 주변 열강의 대립된 이해관계속에서 평화통일을 이뤄내기는 어렵다.지난 50년간 남북 사이의 이 적개심과 경계심은 한반도 지역을 세계 무기상인들의 좋은 시장이 되게 했다. 중국에 예속됐다가 일본의 식민지가 됐고 남북으로 분단돼 싸웠던 한반도지역이 평화롭게 통일돼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제3의 독자적 위치를 확보할수 있을 때 한반도는 물론 동북아시아 전체의 항구적 평화가 올 수 있을 것이며,그것이 21세기 전체 동북아시아 주민의 과제이기도 하다.그리고 그것은 ‘6·25를 잊지 말자’는 구호가 없어질 때 가능하게 될 것이다. 언제쯤에나 ‘6·25를 잊지 말자’는 말이 나오지 않게 될까.언제쯤에나 ‘6·25를 잊지 말자’는 구호가 없어져야 한다는 말이 불온하게 취급되지 않게 될까. 그러나 분명한 것은 ‘6·25를 잊지 말자’는 구호가 없어질 때 옳은 의미의 평화통일이 가능하다는 사실일 것이다. 강만길/고려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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