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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동네 女兒 잇따라 피살

    3개월 사이에 한 동네에서 여자 어린이 2명이 잇따라 살해돼 주민들이 불안에 떨고 있다. 지난 5일 오후 8시15분쯤 인천시 계양구 작전2동 S아파트 놀이터에서 안모양(9)이 30대 괴한이 휘두른 흉기에 찔려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숨졌다. 안양과 함께 놀던 김모양(7)은“현대백화점이 어디냐고 묻는 아저씨에게 언니와 함께 길을 가르쳐 주려고 놀이터 밖으로 가던 도중 아저씨가 갑자기 돌아서 언니를 찌르고 달아났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지난 5월31일 오후 6시25분쯤 안양이 살해된 곳에서 불과 300여m떨어진 작전2동 H아파트2동 앞에서 박모양(4)이 괴한에게 등과 겨드랑이 등3곳을 흉기에 찔려 숨졌다. 박양은 엄마와 함께 화단에 물을 주다 엄마가 물을 길러 집으로 잠시 들어간 사이 변을 당했다. 인천 김학준기자
  • [굄돌] ‘조운 시조집’의 재출판

    어느 분야에서나 탐구 없고 새로운 창조 없는 작업처럼 초라한 일은 없다. 하물며 일종 예술인 문학에서야 두 말할 필요가 없으리라.해방 직후 간행된적이 있는 조운시조집(曺雲時調集,작가,2000.7)의 재출판을 보면서,나는 문학적 탐구와 새로운 창조의 매운 힘을 다시 한 번 절감해야 했다. 나는 그 조운이라는 이가 내게 “형식은 속박이 아니라 자유”라고 말하고있다는 환청에 빠졌던 것이다.3장6구라는 것이 시조의 형식임을 모르는 이가얼마나 있겠는가. 그러나,우리는 시조의 형식이라는 것을 정녕, 제대로는 알지 못하였던 것이니,3장6구라는 ‘속박’ 속에서 그가 누린 자유의 질과 양이 어떠했던가를 보여주는 ‘고매(古梅)’시조 한 수를 먼저 소개해 본다. 梅花 늙은 등걸 성글고 거친 가지 꽃도 드문드문 여기 하나 저기 둘씩 허울 다 털어버리고 남을 것만 남은 듯 그에게 오면 3장6구는 매너리즘을 허용하지 않는 새로운 자유의 공간이 된다.참으로 훌륭한 공간이다. 그러나,이 조운이라는 존재와 그의 시조의 비범성은 우리 사회에서 오랫동안비밀에 부쳐졌으니,그 이유는 월북이라는 단순,명백한 사실에 있다.격동의 해방기에 그는 고향인 전남 영광을 떠나 북쪽에서의 새로운 삶을 꿈꾸었던 것이다.1949년의 일이다. 며칠 전,그의 고향에서 시비 제막식이 있을 예정이었으나 예기치 못한 사태로 무산되어 다시 한 번 제막식을 가져야 하는 사태가 발생했다.해방공간에서 6·25전쟁으로 이어지는 시기에 각각의 집안이 좌우익으로 갈려 극한적으로 대립했던 영광의 ‘오래된 비극’이 이 시비 훼손 사건의 깊은 연원을 이루었다고 한다. 참으로,우리는 이 ‘오래된 비극’으로부터 벗어나기 어려운 시대를 살고있는 듯하다.그러나,기억은 하되 벗어버리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그 ‘오래된 비극’이다.이념을 빌미로 훌륭한 문학에 맹목이 되는 어리석음을 더 이상 연장해서는 안 될 것이다. 방민호 문학평론가
  • 南北 軍특수인력 동원 ‘해체’

    서울과 신의주를 연결하는 경의선을 복구할 경우 철도가 통과하는 지역에매설된 지뢰제거가 복구공사의 최대 관건으로 떠오르고 있다. 경의선 구간 20km중 남측 미연결구간은 문산∼장단간 12km이며 북측은 장단∼봉동간 8km이다. ■어디에 얼마나 매설됐나 경의선은 남·북한간 군사분계선을 관통한다.이지역에는 대인지뢰,대전차지뢰 등 모두 100만발이상의 지뢰가 묻혀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국방부가 지난해 국회 국방위원회에 제출한 국감자료 등에 따르면 한국전쟁이후 민간인통제선 북방에서 비무장지대에 걸쳐 매설된 지뢰는 모두 105만발.후방지역의 경우 주요기지 경계용으로 대인지뢰 7만5,000발이 매설된 것으로 알려졌다. 비무장지대의 지뢰매설지역은 2억9,760만평으로 여의도면적의 334배에 이른다.이를 제거하는 데 드는 비용만 10억달러가 소요된다. 합참관계자는 “전방지역 매설지뢰의 90%이상이 한국전쟁 당시 매설된 것으로 알고있다”면서 “6.25전쟁중 공중투하된 불발탄 및 미확인지뢰지대에 묻힌 지뢰는 제외된 것”이라고 말했다. 휴전후 우리 군이 북한군의 남침이나 공작원의 남파 등을 막기 위해 매설한 지뢰의 경우 ‘매설지뢰보고서’ 등에 기록돼 있기 때문에 매설지점과 매설규모 등을 파악하는 것은 가능하다.매설때 철거를 염두에 두고 기록을 유지하기 때문이다. ■매설지뢰 어떻게 제거하나 경의선 복구는 ‘선 지뢰제거,후 공사착공’의수순을 밟을 것으로 보인다.북한측이 경의선 북측구간 공사에 인민군을 대거 동원할 것으로 알려진만큼 우리도 군 특수인력을 동원한다는 복안이다.이는 비무장지대의 경우 지뢰제거작업때 군사분계선을 월선할 수 밖에 없는 특수한 사항을 고려한 조치로 보인다. 합참은 오는 8일 문산지역 주둔부대와 합동으로 경의선구간이 지나는 지역에 묻혀있는 지뢰제거 및 지원문제 등을 논의할 계획이다. 군 고위관계자는 “1차 장관급회담에서 경의선복구에 합의한 만큼 향후 2차 장관급회담에서는 구체적인 협력방안 등이 논의될 것”이라면서 “남북한군이 지뢰제거작업을 시발로 군사적 신뢰를 구축할 수 있게 되길 바란다”고말했다. 노주석기자 joo@
  • 데이 트레이딩 ‘대박’ 지름길인가

    하루에도 수십번씩 주식을 샀다가 되파는 ‘데이 트레이딩’(초단타 매매)의 열풍이 거세다. 특히 올들어 데이트레이딩이 급격히 증가하면서 7월에는 데이트레이더들이전체거래량의 절반 가량(46.26%)을 차지할 정도로 주식시장을 좌지우지하고있다. 이들에 대한 시장참여자들의 평가는 거래구조를 왜곡하는 ‘시장 파괴자’와 ‘필요악’이란 반응으로 엇갈린다.선의의 피해자가 없도록 데이트레이딩에 대한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데에는 목소리가 일치한다. ◆거세지는 데이트레이딩 열풍=증권거래소가 2일 데이트레이딩 현황을 조사한 결과,지난달 전체거래량의 46.25%를 차지했다.1년전에는 20.43%에 그쳤다. 특히 개인투자자들이 전체 데이트레이딩의 94.24%를 차지,기관(5.29%)과 외국인(0.47%)을 압도했다.주가별로는 5,000원미만이 30.3%,3만원이상 종목은17.18%로 저가 금융주를 중심으로 한 데이트레이딩이 성행한 것으로 분석됐다.종목별로는 한빛은행이 57.31%의 거래비중을 차지,가장 높았으며 조흥은행(52.14%),대우(46.77%),현대건설,대우증권,삼성물산,광주은행,광동제약,한솔전자 등 중·저가 종목이 대부분이었다. ◆급증하는 이유는=전문가들은 사이버거래가 활성화되면서 일반인들의 거래여건이 나아지는데다 사이버거래 수수료가 대폭 인하된 때문으로 분석했다.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국내 시장에 대한 투자자의 불신에서 비롯됐다고 입을 모은다. 즉 장기투자에 대한 개인투자자들의 수익률이 보장되지 않는 등 시장여건이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다는 지적이다. 특히 개인투자자들은 올초 주가가 1,000포인트선에서 4월 600선으로 곤두박질치면서 또한번 큰 손해를 봤다. 회사원 박모씨(38)는 “장기투자하라는 말을 믿었다가 과거에 수천만원을날렸다”면서 “수없이 팔고 사더라도 반드시 장이 끝나기 전에 현금화하는것이 투자의 철칙”이라고 밝혔다. ◆‘대박 신화’는 가능한가=한마디로 전문가들의 대답은 ‘NO(아니다)’이다. 데이트레이딩은 장기투자보다 더 철저한 분석이 필요하며,거래량과 시세 등을 꾸준히 관찰해야 하기 때문에 시간에 쫓기는 직장인이나 일반투자자들에게는적합하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주장이다.또 알려진 ‘1,000% 신화’는 극소수에 불과할뿐 대부분이 큰 손해를 보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개인투자자는 증권사가 주최한 강연회에 참석,1∼2시간 강의를 듣거나 책 한권을 읽고 데이트레이딩에 나서고 있다”면서 “철저한 준비없이 데이트레이딩에 나설 경우 수수료와 세금 등으로 더 큰 손해를 볼 수있다”고 지적했다. 조현석기자 hyun68@
  • MBC스페셜‘떠나는 자와 남는 자’

    신념과 사상 때문에 반평생을 감옥에서 보낸 비전향 장기수들.그토록 학수고대했던 고향길이 열린 뒤 이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MBC스페셜 ‘떠나는 자와 남는 자’(금 밤9시55분)에서는 남북정상의 6·15공동선언과 남북적십자회담을 통해 북한으로 돌아가기를 원하는 비전향 장기수들의 송환이 합의된 뒤 가슴을 설레고 있는 이들의 모습을 담았다. 20여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비전향장기수송환추진위원회’가 파악한 비전향 장기수는 모두 102명.이 가운데 59명은 북한으로 돌아가기를 원하고 있다.특히 6·25전쟁에서 포로로 잡힌 김인서(75) 김영태(71) 함세환(69)씨는 북한에 가족이 생존해 있는 것으로 공식 확인됐다. 평북 정주가 고향인 김영태씨는 34년의 옥살이를 끝내고 지난 89년 출감된뒤 광주 빛고을탕제원에서 침을 놓아주며 생활하고 있다.북한에는 아들과 며느리,손자가 김씨를 기다리고 있다.빨치산 활동을 하던 중 총에 맞아 왼쪽눈을 잃었고 나이가 들어가면서 오른쪽 눈의 시력도 점점 떨어지고 있다는김씨는 “남은 한 쪽 눈이 멀기전에 아들 얼굴 한 번이라도 봤으면…”하고 바란다.김씨는 북쪽 가족에게서 받은 편지,일본의 장기수송환추진위원회가촬영해 보내준 가족들의 비디오테이프 등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자료들을공개한다. 함세환씨는 12발의 총알을 맞고도 살아남은 빨치산 출신.황해도 함촌이 고향인 함씨는 출감뒤 대학생들과 강연회를 다니고 자신이 빨치산 활동을 했던 대전 천태산에 올라 전쟁의 비극을 증언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펼쳐왔다.함씨는 “떠날 때까지 정들었던 이들과 인사하고 고구마밭 풀도 매줘야지”라며 담담하게 말하지만 북한 조카의 목소리가 담긴 카세트테이프를 늘어질 정도로 반복해서 듣고 있다. 김인서씨는 겨우 돌을 넘긴 것을 보고 떠난 딸이 어느새 쉰의 나이가 돼 아버지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다.또 신인영씨(71)는 93세의 어머니를 남겨두고 북한의 가족에게 돌아가기로 했다.“이젠 처와 자식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야지 붙잡을 수 있나”라는 노모의 말에서 깊고 깊은 분단의 한이 느껴진다. 한편 지난달 1일 30살 연하의 부인과 결혼식을 올려 화제가 됐던 안학섭씨(70)는 남한에 남기로 했다.생사를 함께 했던 다른 동료들이 북으로 떠나는모습을 바라보는 심정과 남한에 남을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함께 들어본다. 장택동기자 taecks@
  • [외언내언]‘이산가족 특별법’

    6·25전쟁때 월남해 자수성가한 8순 노인이 북에 남긴 처자식 몫으로 떼어놓은 부동산을 남에서 얻은 아들이 가로챘다며 소유권이전등기 말소청구 소송을 내 화제가 되고 있다.북에는 노인의 부인과 자식이 모두 생존해 있는것으로 확인됐다.노인은 지난달 사망했지만 그전에 친동생을 특별대리인으로지정,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이다.노인측 변호사는 “북에서 이미 결혼을 했으므로 남한에서의 재혼은 민법상 금지된 중혼(重婚)이다.혼인무효 소송도 내겠다”고 밝혔다. 사회가 이 송사에 주목하는 까닭은 수십억원에 이르는 재산 규모 때문이 아니라 ‘북에 두고온 가족’을 우리 법 체계 안에서 어떻게 수용하느냐는 화두를 처음 던졌기 때문이다.현재 남은 이산 1세대가 123만명이니 이곳에서새 가정을 꾸민 이들이 수십만명에 달할 것이다.그 중에는 남한에서 재혼한부부가 자녀를 갖지 않기로 한 이들도 상당수 있겠지만 대부분은 새로운 가족을 형성했고 그것은 또 지극히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지난 수십년 동안 ‘북에 두고온 가족’은 개인에게만 가슴앓이로 남았을뿐 사회문제로 떠오른 적이 없었다.그러나 앞의 송사 건에서 드러났듯이 이문제는 더 이상 ‘강건너 불 보듯’할 사안이 아니게 되었다.소유권을 어느쪽에 인정해주느냐는 둘째 치고 노인측 변호사가 중혼문제를 본격 제기하면법원은 당장 심각한 고민에 빠져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혼인관계를 다루려면먼저 북한 당국의 혼인확인서가 있어야 하는데 그쪽에서 이를 발부해 줄지도 관심거리다. 심각하고 어려운 문제지만 송사를 제기한 노인쪽을 탓할 일은 아니다.자신이 피땀 흘려 모은 재산의 일부를 피붙이,그것도 사정이 상당히 어려우리라고 짐작되는 자식에게 나눠주겠다는 생각은 인지상정이 아니겠는가. 남북 교류가 활발해지면 이산가족이 만나거나 소식을 접할 기회가 더욱 늘어날 터이고 남북 양쪽 가족 사이에 갈등이 벌어질 가능성은 더욱 높아지게된다.어차피 지금의 법 체계로는 남북에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두 가족을 모두 받아들일 수 없다.법학자들 사이에서는 이 상황을 두고 “분단이라는 어쩔 수 없는 상태에서 생겨난 일인 만큼 어느쪽에도 일방적인 피해를 주어서는 안된다”는 의견이 주류라고 한다.그렇다면 ‘이산가족특별법’이라도 마련해 남북에서의 두차례 결혼,그 결과로 생겨난 가족관계와 재산문제 등을해결하는 길을 터주어야 하지 않을까.성급한 제안으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분단 극복을 위한 법 제도 정비를 차근차근 준비해야 할 때인 듯싶다.
  • 北386-南6·25세대 즉석토론

    30일 저녁 고건(高建) 서울시장 주최로 서울 인터콘티넨탈 호텔에서 열린남북 대표단 초청만찬에서 북측의 전후 386세대와 남측의 6·25세대간에 통일을 주제로 공방이 벌어졌다.만찬이 끝나고 축하공연을 기다리는 10여분간이뤄진 즉석토론이었다. 먼저 이양한(李亮漢) 서울시의회 부의장이 “지구상에 분단된 나라는 우리밖에 없다”며 통일에 대한 의지를 내비쳤다.이에 북의 386세대인 량태현 과장은 정색하면서 “우리나라는 민족끼리 싸워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외부세력에 의해 갈라진 것입니다.이번 공동선언을 통해 우리 민족끼리 자주적으로 문제를 해결하자고 했으니…”라며 자주 통일을 강조하고 나섰다. 이에 이 부의장은 “합치고 싶어도 못하게 만드는 장애가 많이 있습니다”라고 남북관계의 국제적 역학관계를 제기했다.곁에 있던 김순규(金順圭) 문화관광부차관은 량 과장에게 “통일되면 당신들은 잘 살거요.나이든 우리 세대는 앞으로 길을 열어주는 것이고…”라며 386세대의 역할을 강조했다. 그러나 량 과장은 “선생님들 세대에서 해결해야죠.왜 그렇게 힘들게 보십니까”라고 반박했다.북측 대표단의 이명철 수행원도 “선생님 세대에서 조국이 갈라졌는데 자기들이 갈라진 책임을 지지 않고 젊은 세대에게 부탁하시는 것은 안됩니다.젊은 세대들도 존경할 수 있도록 지금이라도 이렇게(통일에 대한 노력을) 하면 되지 않겠습니까”라고 강한 통일의지를 내보였다. 진경호기자
  • “내 핏줄 있나요” 문의전화 빗발

    남한의 이산가족 상봉 신청자 200명 가운데 북쪽의 가족의 생사가 확인된 138명의 명단이 발표된 27일 서울 중구 남산동 대한적십자사는 실향민들의 문의 전화가 빗발쳤다. 7명의 자원봉사자들은 생사가 확인된 북쪽 가족 명단을 일일이 대조하며 알려주느라 눈코 뜰 새 없었다. 전화를 통해 북한에 아내 오상연씨(77)와 아들 김희종씨(54)가 생존해 있는 것을 확인한 평양 출신 김일선씨(80·부산시 사하구 당리)는 “지난 47년아내와 아들과 함께 월남,서울 상도동에서 살았으나 6·25때 토목기사라는이유로 다시 북쪽으로 끌려갔다가 탈출했다”면서 “내가 북에 있다는 사실을 안 아내가 아들과 함께 북으로 찾아 왔으나 다시 만나지 못하고 지금까지헤어져 살게 됐다”고 말했다. 김씨는 “혼자 아들을 키우느라 고생했을 아내를 생각하면 억장이 무너진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명단이 발표됐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 온 송성수씨(70·경기도 고양시 화정동)는 “6·25가 터지기 전 육군 1사단에 근무하고 있었는데 전쟁이 터지는바람에 고향 경기도 개풍군 토성면에 있던 부모,동생들과 헤어지게 됐다”면서 “남동생 셋과 여동생이 모두 살아 있어 만날 수 있다니 실감이 나지 않는다”고 감격스러워 했다. 고향 평안도 대동군 시족면에 20대의 꽃다운 아내와 3살과 젖먹이였던 아들,딸을 남기고 온 최경일씨(76·경기도 평택시 팽성읍 안정리)는 “아내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얌전하고 요리 솜씨가 좋았다”면서 “아들과 딸도 벌써50대 중년이 됐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명단이 발표되자 항의전화도 많이 걸려왔다. 자원봉사자 김윤미씨(25·여)는 “‘60대나 70대 이산가족들은 북의 가족을만나게 되는데 80대인 나는 왜 안되느냐’는 고령 이산가족들이 눈물 어린전화가 계속되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나치용씨(80·강원도 춘천시 석사동)는 적십자사에 전화를 걸어 “북에 아내와 아들·딸이 있는데 나이가 많아 이번 기회가 아니면 가족을 만날 수 없을 지도 모른다”면서 “60,70대들도 많이 선정됐는데 80세인 내가 왜 빠진것이냐”고 거칠게 항의했다. 전영우기자 ywchun@
  • 특별기고/ 남북이 함께 변하지 않고서는

    분단 55년 만의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이 있은 지 40여일이 지났다.6·15공동선언은 7·4공동성명이나 남북기본합의서 발표 때와는 달리 후속적인 실천이 뒤따르고 있어 실효성이 가시화되고 있다.상대방에 대한 호칭의 변화,상호 비방 중단,6·25행사 취소,8·15상봉 이산가족 명단 교환,남북한 각료회담 북한측 대표의 서울 방문 등 매우 전향적인 진전이 잇따르고 있다. 지난번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평양 순안 비행장에서부터 보여준 파격적 언동을 두고 남한 내에는‘감동’과‘경계’의 두 흐름이 있고,이른바 진보와 수구세력 간에 논쟁도 있지만 반세기 동안의 대결을 접는 일대 전환기에 그만한 갈등은 있을 법도 하다. 분명해진 것은 김정일 위원장 내지 북한에 대해 부정 일변도의 언론만 접해온 남한도 이제는 균형감각을 갖고 대북 인식을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는 중론이다.종래의 냉전적 사고에 입각한 편견과 적개심을 그냥 두고서는 민족화합의 새 시대를 불러들일 수 없다.북측이 변화되기를 우리가 바라듯이 우리도 스스로 변해야 한다.남북한 어느쪽도 상대방을‘적’ 또는‘반국가단체’로 본다는 것은 피차 간의 공존,교류·협력,평화 정착,나아가서 궁극적인통일을 저해하는 사고방식이다. 국가보안법 개폐문제도 이런 시각에서 다루어야 한다.남한은 이미 평화애호국가만을 회원국 자격으로 규정한 유엔에 북한과 동시 가입했으며, 남북기본합의서에서 양측은 각기 상대방의 관할구역을 인정했고 서로 체제를 존중하고 내정에 간섭하지 않기로 했다.그리고 마침내는 양측 정상이 직접 만나서6·15 남북공동선언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이와 같은 일련의 변화는 북한을더이상 반국가단체로 보지 않는다는 입장 변화를 거듭 공식화한 것으로 보아야 옳다.따라서 국가보안법상(또는 그 해석상)으로만 북한을 여전히 반국가단체로 보는 것은 논리적으로나 현실적으로 맞지 않으며,지금까지의 대북정책과 남북교류를 스스로 반국가적 범죄라고 자인하는 모순에 빠지게 된다. 그렇다면 그런 법률을 정리함으로써 국가정책과 실정규범 사이의 모순을 입법적으로 해소하는 것이 국가의 책무가 아니겠는가. 세상에는남한식 체제와 북한식 체제만 있는 것도 아니고,제3의 체제도 얼마든지 있다.어차피‘평화통일’은 남과 북의 합의를 전제로 하는 만큼 합의접근이 가능한 모든 길을 모색하고 넓혀 나가야 하며,어느 한쪽의 체제를 일방적으로 강요할 수는 없지 않은가. 분단국가에서 어느 한쪽의 완승은 다른 한쪽의 항복을 의미하므로 합의에의한 평화통일과는 상치되는 욕심이다. 분단 55년 동안에 악화된 대결상황과 불신감정을 남북정상의 첫 만남에서모두 해결할 수야 없지 않은가.6·15 남북공동선언만큼의 합의도 놀라운 성과임을 온 세계가 공인하고 있는 터이며 남북간의 전쟁억지와 평화보장의 발판을 마련한 것만도 대단한 성과임에랴. 남북문제를 놓고 정치권에서는‘초당적 협력’이라는 명분과는 달리 차별성부각에 집념한 탓인지 정쟁적 의도가 밴 언사들이 더러 부침하고 있다. 물론남북문제를 놓고 여야 각계에서 한 목소리만 나올 수는 없다. 하지만 민족 대화합이라는 역사적 과제 앞에 그릇된 자기 계산에만 끌리는협량(狹量)은 다같이 경계해야 하며,더구나감정적 대결을 부추기는 언동은피차 삼가야 마땅하다.진정 민족의 화합과 번영 그리고 이 땅의 평화를 염원하는 사람이라면…. 한 승 헌 변호사·전 감사원장
  • [기고] 상생발전 하는 세상 만들자

    요즈음 우리 사회가 어수선하고 중심을 잡지 못하고 있다.병원이 문을 닫아 국민의 생명이 위협받고 나니,은행이 금융개혁을 두고 정부와 첨예하게 대립하여 국가적으로 큰 어려움을 맞을 뻔했다.이 과정에서 정부 정책은 국민의 신뢰를 잃어 버렸고,대통령 임기가 절반을 목전에 둔 시점에서 공권력 누수현상을 보이고 있구나 하는 우려마저 들게 하였다.또한 국회는 종전과 달라짐이 없이 정책대결보다는 당리당략에만 집착하고 있고,IMF사태 이후 상승세를 탔던 경제도 정점을 찍고 하강국면으로 접어드는 등 정치,사회,경제를망라한 총체적인 혼란과 갈등에 직면하고 있다.이러다가 또다시 IMF사태와같은 제2의 위기가 오지 않을까 걱정된다. 이러한 사회적 혼란과 위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영국의 저명 잡지인 이코노미스트의 주장을 빌리면 “한국의 모든 국민들은 개혁을 요구하고 있으나 이 개혁이 자신이 아닌 타인의 희생으로 이루어지길 바란다”고 지적한다.이런 이기적 사고들이 시장논리와 공익성을 기초로 추진되어야 할 개혁을변질시키며 다양한형태의 사회적 갈등을 초래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우리 사회에서 이익단체의 정당한 권익주장은 민주시민으로서 당연한권리이다.정부 또한 이것을 무시하거나 외면해서는 안된다.다만 염려스러운것은 나만 잘 살면 된다는 사고(思考)가 너무 지나치면 정말로 큰 사고(事故)가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우리 민족이 광복후 억눌렸던 자유를 한꺼번에 만끽하려다가 남에게 많은 피해를 입혔던 것과 4·19의거 후에 정치민주화가 왔는가 싶더니 데모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잘못된 관행이 사회의 혼란을 야기해 5·16 쿠데타의 빌미를 주었던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이것은 10·26사태에서 5·18의거로 이어지는 과정에서도 그 맥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으며,결국 그러한 원인으로 또다시 군사정권의 통치를 경험하였다.우리는 이러한 역사적 교훈을거울 삼아야 한다. 지금 우리가 민주화의 꿈을 달성했다고는 하지만,아직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기 위한 메커니즘이 제대로 성숙되지 못한 단계에서 무분별한 각계의 이익 요구는 오히려 부작용을 초래할 위험이 크다.요사이 연쇄적으로 나타나고있는 힘에 의지한 불법적 집단행동도 이 범주 내에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한편,지난 반세기의 역사를 큰 흐름으로 볼 때 우리 민족은 세계에 유례가없을 정도로 놀라운 성과를 이룩했다.6·25전란 후 어려운 역경 속에서도 정치민주화를 달성했으며,세기말에 닥친 IMF사태라는 사상 초유의 경제위기를모범적으로 극복하는 놀라운 저력을 보여주기도 했다.더욱이 새천년 초입에들어 그동안 우리의 정치,경제,사회,문화를 짓눌러 왔던 남북관계가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해빙기에 접어들며 민족사적 일대 전기를 맞고있다.따라서우리 민족에겐 지금이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한 시기이다.이러한 상승무드를 지속하느냐 못하느냐에 따라 새천년 우리 민족의 미래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새천년에 우리가 꿈꾸는 글로벌 강국이 되기 위해서는,우선 정부와 여당이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고 흔들리고 있는 정치,경제,사회 전반의 총제적인 중심을 잡아주어야 한다.그리고 국민들도 소탐대실(小貪大失)의 우를 범하지말고 대승적 견지에서 현안을 슬기롭게 해결하는 지혜를 모아야 한다.나만이 잘 살 수 있는 사회는 지구촌 어디에도 없다.주변과 공리공존하는 것이 나도 더불어 잘 될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실천할 때 비로소 우리 모두가 원하는 상생발전(相生發展)하는 세상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吳上鉉 화재보험협
  • 국제 ‘도메인大戰’ 불붙었다

    도메인은 자체가 ‘돈’이다. 지난해 말 ‘Business.com’은 80억원에 팔렸다.‘닷컴’도메인이 만원사례가 되고 ‘닷숍’ 등 새로운 도메인 시대가 예고되면서 국제도메인 전쟁에도불이 붙고 있다. 국제 도메인을 등록·관리해주는 이 전쟁에 국내 업체들도가세했다. ■기존 도메인은 포화 국제 도메인 등록건수는 지난 4월 현재 1,000만건을넘어섰다.‘.com’‘.org’‘.net’등 7개로 국한된 도메인으로는 한계를 맞게 됐다. 새로운 이름들이 쏟아지고 있다.shop(쇼핑),firm(기업),web(웹사업),info(정보사업),arts(예술),sports(스포츠),music(음악),travel(여행) 등 다양하다.비정부기구는 .ngo를,EU는 .eu를 대안으로 내놓고 있다. ■독점에서 경쟁으로 국제 도메인 등록은 그동안 미국의 네트워크솔루션(NSI)사가 독점해왔다.그러나 98년 미국 상무부가 주도해 만든 ICANN(국제도메인관리기구)의 공식승인을 받으면 이제 누구라도 등록업무를 할 수 있게 됐다. 현재까지 전 세계에서 119개 업체가 승인받았다. 한강시스템(www.doregi.com),넷피아(www.netpia.com),예스닉(www.yesnic.com) 등 국내 업체들도 지난 2월부터 등록업무를 시작했다.7DC(www.7dc.com),DEXT(www.domainote.com)도 최근 승인을 받아 서비스에 들어간다. ■새는 달러 줄이기 미국의 NSI에 직접 도메인을 등록하면 35달러가 든다.반면 국내 등록서비스 업체에 등록하면 1만9,800∼2만2,000원 정도면 된다.이미 등록된 도메인을 국내 등록기관으로 옮겨도 유리하다.미국의 35달러보다훨씬 싼 9,900∼1만5,000원 정도의 유지비만 내면 된다.국내 공인등록기관이국내에서 등록·변경 서비스를 할 경우 NSI사에 6달러,ICANN에 25센트를 각각 내게 된다. 따라서 35달러를 고스란히 해외에 지불하던 것을 이제는 6.25달러만 내면되므로 건당 28.75달러가 절약되는 셈이다.100만건을 기준으로 하면 2,875만달러를 절감할 수 있다.우리나라의 도메인 등록건수가 미국에 이어 세계 2위란 점을 고려하면 외화절감 효과가 크다. ■미국과 EU간 갈등 지난 13∼17일 일본 요코하마에서 제6차 ICANN이 열렸다.6개 이상의 국제 도메인을 새로 만든다는 원칙에 합의가이뤄졌다.그러나어떤 도메인으로 할 것이냐의 구체적 합의는 무산됐다.미국과 EU간의 갈등때문이었다. EU로서는 미국의 NSI가 못마땅하다.등록업무가 경쟁체제로 바뀌었다고 하지만 ICAN와 NSI가 주도하는 이상,나머지 등록기관들은 서비스 대행기관에 불과하다.그래서 NSI와 같은 기구를 연말까지 자체적으로 만들겠다고 선언했다.미국과 EU간 양대 진영으로 갈라질 조짐이다. 박대출기자 dcpark@
  • [新 김정일 연구](13.끝)정상회담 이후의 자세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 이후 북한이 눈에 띄게 달라지고 있다.북한이 달라지고 있다는 것은 바로 김정일 국방위원장 자신이 약속을 지키면서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자세로 변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남북정상회담이 끝난 지 35일이 지난 20일 현재까지 북측의 변화는 매우 고무적이다.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북한 언론매체와 휴전선에서 대남비방이 없어진 점이다.서해상에선 기관고장으로 월경한 우리의 까나리잡이 어선을 되돌려보냈고 6·25행사도 치르지 않았다. 공동선언 이행도 아직까지는 순조롭다.우선 8월15일부터 4일간 남과 북 100명씩의 이산가족이 상봉하고 9월에 이산가족면회소 설치문제를 논의하기로합의한 데 이어 지난 16일 양측이 방문단 후보명단을 교환함으로써 이젠 상봉을 눈앞에 두고 있다. 김 위원장은 지난달 30일 재미 언론인 문명자씨와 가진 인터뷰에서 주한미군문제에 대해서도 유연한 자세를 보였다.이는 그동안 북측이 민감한 반응을보여온 미군문제에 대해 김 위원장이 현실적인 인식을 하고 있음을 보여주는대목이어서 주목된다.김위원장은 또 언론사 사장단을 내달 5일 방북토록 함으로써 구두약속을 이행하고 있다. 이와같은 대남 유화자세와 이산가족상봉 성사 등은 모두 김 위원장의 지시와 지침을 받아 이행되고 있다.김 위원장은 지난번 정상회담에서 부정적인태도를 보여온 일부 사안에 대해 김대중 대통령으로부터 끈질긴 설득이 있자‘통크게 하자’며 합의에 이르렀고 ‘내가 서명했으니 반드시 지키겠다’는 말을 여러번 반복한 것으로 알려졌다.이로 미루어 그의 서울 답방도 시기가 문제이지 성사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그러나 북측은 다른 한편으로는 공동선언에서 언급된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에 대해선 침묵을 지키면서 언론매체를 통해 고려연방제 통일방안이 가장 현실적인 방안이라고 주장하는 등 자기들 통일노선의 정당성만을 계속 부각시키고 있다.또 김영삼 전대통령과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에 대해 인신공격성 비방을 퍼붓고 일부 언론을 매도함으로써 남측을 어려운 상황으로 몰아넣고 있다.이는 양측의 정치제도를 인정하고 평화공존의 바탕위에 화해와 통일을이뤄나가기로 한 6·15선언의 기본정신과도 어긋난다.또 남측의 이념갈등과 정쟁을 부추겨 김 대통령의 입장을 난처하게 만드는 것이다.그런만큼 김위원장은 김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했을 때 김대통령에 대해 자상한 배려를하면서 통크게 협상에 임했던 것처럼 남북관계를 크게 해치는 이같은 비방을즉각 중지토록 해야 한다. 앞으로 김 위원장의 움직임 가운데 지켜볼 것은 그의 서울 답방 등 공동선언 이행 여부와 김 위원장이 은밀히 약속했다는 노동당규약 개정 여부,그리고 특정인사와 언론에 대한 비방중단 여부 등이다. 김 위원장은 서울 방문을 그의 이미지를 재격상시키기 위한 절호의 기회로활용할 공산이 크다.이와 함께 김 대통령을 정상회담의 한 파트너로 상대하면서 한반도문제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려 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으로분석되고 있다.그의 서울 방문과 앞으로의 행보는 평양에서 보인 그의 언행이 얼마나 진실된 것이었는지,그가 진정으로 남북화해와 통일을 추구하고 있는지,김 위원장이 정말로 ‘통큰 지도자’인지,김 위원장의 신뢰도가 어느정도인지,그리고 앞으로 공동선언문의 이행이 어떻게 이루어질 것인지를 가늠케 해줄 것이다. 유은걸기자 eky73002@
  • 金대통령 LA타임스 인터뷰서 개정촉구 배경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미국 LA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 개정을 강도높게 촉구한 이유는 무엇일까.남북정상회담에서 통일후에도 주한미군 주둔 필요성을 역설,서로 의견접근을 보았던 김 대통령의생각이 바뀐 것일까. 매향리·노근리 사건으로 우리 사회에 미국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아질 때마다 미국의 역할을 애써 강조해온 김 대통령은 실제 이례적으로 비쳐질 만큼 강한 어조였다.LA 타임스가 인터뷰 내용을 19일자에 보도한 뒤 SOFA 관련언급만은 따로 분리해 20일자에 다시 보도한 데서도 그 이례성을 짐작할 수있다. 그러나 관계자들은 김 대통령의 기본 시각이 바뀐 게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6·25 전쟁 때 목숨을 걸고 도와주고 경제재건에 지원을 아끼지 않았으며,IMF위기때 제일 먼저 지원해준 점 등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는 것이다.다만 SOFA에 문제가 있으므로 고쳐야 한다는 점을 미국 정부에 촉구한 것이라는 것이다. 김 대통령은 LA 타임스와 회견에서 “한국 국민들은 반미(反美)를 주장하는것이 아니라 미국의 태도에 대한 불만과 비판을 표출하고 있다”고 언급했다.즉 SOFA의 차별적 조항으로 인한 비판이 반미감정으로 흐르는 것을 우려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실제 최근 일어난 미군 병사의 한국 술집여종업원 살해 사건,독극물의 한강무단방류, 경실련의 SOFA규정 헌법소원 제기 등은 매향리·노근리 사건과 맞물려 비판기류가 위험수위에 도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김 대통령은 지난달매들린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이 방한했을 때도 이같은 국내의 비판기류를전하면서 SOFA 개정의 필요성을 언급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렇게 볼 때 국내언론이 아닌 미국신문에 먼저 운을 띄운 것 자체가 계산된 행보로 볼 수 있다.한국내 비판기류를 감안,이를 다독거리기 위해서는 SOFA 개정에 대한 미국측의 성의있는 자세가 우선되어야 한다는 강력한 주문인셈이다. 양승현기자
  • [외언내언] 連坐制의 어제 오늘

    북한이 보내온 8·15 이산가족 방문단 신청자 200명이 찾고 있는 친족들은대부분 월북자 가족으로 드러났다.그들은 냉전시대 남한에서 월북자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유형무형의 고통을 겪어야 했던 연좌제(連坐制) 피해자들이다.지난 반세기 동안 연좌제라는 족쇄에 묶여 우리 사회에서 남모르게 인고의 세월을 보냈던 계층이다.연좌제는 한 사람의 죄에 대하여 특정범위의 사람이 연대책임을 지고 처벌을 받는 제도로서 일찍이 조선시대에도 대명률(大明律)에 의거한 연좌형이 존재했었다.그러다가 1894년 형사책임개별화원칙이선언되면서 폐지되었고, 1905년(광무 9년) 제정·공포된 형법대전(刑法大典)에도 연좌제는 규정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북분단과 6·25전쟁이라는 특수한 시대적 배경에서 사상범,부역자,월북인사 친족에게 사실상 불이익처우를 하는 것이 일반적인 관행이었다.예컨대 ‘인민군' 얼굴 한번 못본 친척들까지 해외여행이나 공무원임용에서의 불이익은 물론,사회 진출에서 결정적 제약을 받은 것이다.1970년대 후반까지 이어진 연좌제에 의해 피해를 본 국민의 숫자가 무려 전체 국민의 5%나 됐던 점을 감안하면 사회적 갈등이 얼마나 심각했는가를 짐작할 수있다. 연좌제 피해 당사자들은 국가가 교육·납세·국방의 의무는 강요하면서 연좌를 빌미로 개인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은 형법상 자기책임의 원칙에도 반한다면서 연좌제 폐지를 강하게 요구했다.만약 정부가 연좌제를 지속할 경우그 피해자들을 모두 대한민국 국민에서 제외시켜 달라는 주장까지 하며 인권유린에 대한 강력한 반발을 보였다.이러한 문제점이 인식되어 1980년 개정헌법은 제12조 3항에서 ‘모든 국민은 자기의 행위가 아닌 친족의 행위로 인하여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아니한다’는 연좌제 폐지를 명문으로 규정했다. 물론 그 후에도 월북자 가족들은 알게 모르게 사회로부터 소외를 당했으며사회적 편견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또 이같은 사회적 연좌의식때문에 북한에 있는 가족들을 걱정해서 이번에 가족상봉 신청을 포기한 사람도 있다고 한다.그런 면에서 북측이 보내 온 월북자들의 이산가족 상봉 신청명단이 남한내 가족들에게 큰 위안이 되고 오랜 멍에를 푸는 계기가 되기를바란다.또 남북정상회담의 첫 가시적 성과가 사회적 연좌제를 푸는 실질적인 계기가 된 것은 퍽 다행한 일이다. 앞으로는 어떤 경우에도 개인의 기본권이 국가권력에 침해당하는 굴절된 역사가 되풀이돼서는 안되겠다. △ 張淸洙 논설위원 csj@
  • [대한시론] 개혁과 남북통일

    최근 우리사회에서 개혁이라는 단어만큼 자주 사용되는 용어는 없다.정치개혁,사회개혁,의료개혁,금융개혁…등 용어가 매일 매스컴에 오르내리고 있다. 개혁의 사전적 의미는 ‘새롭게 뜯어고침’이다.뜯어고쳐야 하기 때문에 고통이 수반되는 것이 개혁의 특징이다. 오늘의 유럽인들은 그리스·로마의 합리정신을 이어받은 라틴족에 게르만이라는 야만족의 고통스런 수혈을 통해,터키 등 중동은 투르크라는 스텝 종족과의 혼혈을 통해,중국 역시 몽골·여진이라는 비문명 종족과의 융합을 통해존속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민족 융합과정 역시 큰 개혁의 하나라고 해야할 것이다. 또한 15세기 이후에 유럽인들이 역사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데 그것은 유라시아대륙을 몽골·투르크 등 아시아의 스텝인들이 장악하는 것에반발하여 대양에 진출하는 고통을 감내한 결과이다.이것 역시 유럽인들의 개혁의 성과다. 우리나라도 개혁이라는 도전에 직면하여 성공과 좌절을 거듭해왔다.1,000여년전 삼국통일이라는 개혁의 고통을 감당하였기에 한민족의 정체성(identity)을유지할 수 있었으나 구한말에는 산업혁명이라는 개혁의 고통을 피하려하였기에 일제의 통치를 받지 않을 수 없었다.또한 독립을 스스로 쟁취하지못하였기 때문에 남북 분단의 비극을 겪지 않을 수 없었으며 합의와 융합의개혁을 통하지 아니하고 단칼에 쉽게 통일하려 하였기 때문에 6·25사변이라는 전란을 당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후 남북의 전개과정에서 남은 민주화라는 고통스런 개혁에 성공하였기 때문에 이 정도의 발전을 이룩하였고,북은 그 개혁에 실패하였기 때문에 현재의 난국에 처한 것이다. 이제 우리에게는 통일이라는 개혁의 과제가 주어지고 있다.50년 이상 분단된 상태에서 상이한 체제로 생활하여온 한민족이 다시 재결합하려면 말할 수없는 고통을 감당하여야 할 것이다. 얼마가 될지 모르는 막대한 통일비용을부담하기 위하여 조세의 폭증을 용인하여야 하고 그로 인한 경제의 후퇴를감수하여야 한다.우리는 50년 동안 민주화와 자율화의 훈련을 받아 자기의운명은 자기가 개척하여야 한다는 정도는 인식하고 있으나 북은 국가나 어떤절대자에게 의존하여 생활을 영위하여 왔기 때문에 타율적 생활에 안주하여왔다. 우리는 자기의 생각을 다른 사람과, 자기 국가를 다른 국가와. 자기의생활을 다른 생활과 비교하는 상대주의적 세계에서 보낸 데 대하여 북은 자기생각은 언제나 다른 사람보다 절대적으로 옳으며,자기국가는 다른 나라보다 언제나 우수하며,자기생활은 다른 생활보다도 언제나 행복하다는 절대주의적 세계만을 경험하여 왔다. 이러한 상이한 체제하의 남북이 실질적으로 통일하기 위해서는 균열의 봉합,모순의 극복 그리고 갈등의 해소 등 수많은 난관을 타파하여야 한다.거기에는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단칼에 푸는 것과 같은 방법은 있을 수 없고 많은고통을 수반하는 시행착오를 반복하여야 할 것이다.그러므로 통일은 실로 모든 개혁의 완성이 된다. 지금까지 우리는 동과 서의 균열조차 봉합하지 못하고 있다.빈과 부의 격차를 좁히는 것마저 주저하고 있다.남녀의 차등 등 봉건의식의 잔재도 청산하지 못하고 있다.그러나 이러한 모든 요소들은 통일이라는 개혁을 통해 해소될수 있는 것이다.남과 북의 큰 균열을 봉합한다면 아마도 동과 서의 작은균열은 바로 소멸될 것이며 현재의 빈부차이를 내버려두고 북과의 통일을 논할 수는 없을 것이다.아마도 현재 우리 사회에서 제기되는 모든 문제점은 통일과정에서 해소되고, 해소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가 5,000년 역사를 통하여 신고를 거듭하는 것은 세계역사의 주변국가로서 만 존재하였을 뿐 한번도 세계국가가 된 일이 없기 때문이다.세계국가는 영토가 넓고 인구가 많음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도시국가로마·포르투갈·홀랜드·영국 등이 세계국가를 이루었지만 그들의 강역은우리나라와 비슷하거나 오히려 작기도 하였다.그러면서도 세계국가의 공통성으로서 포용력과 냉정함을 모두 갖추었다.우리가 통일을 이룸에 있어서는 통일의 문제점을 진솔하게 드러내는 솔직함을 가져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제시된 문제점에 대한 대책을 포용력과 냉정함으로 해결할 수 있을때에 비로소 진정한 통일을 이룰 수 있다. 그 과정을 거쳐야 현재 제기된 모든 문제점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며 이를 통해 세계국가의 자질을 연마할 것이다.통일이야말로 모든 개혁의 완성이 된다. 姜 玹 中 국민대교수·부정방지대책위원장
  • 이산가족 상봉 확인 사연들

    ◆지난 83년 온 국민에게 큰 감동을 주었던 한국방송공사(KBS)의 이산가족찾기 생방송을 진행했던 아나운서 이지연(李知娟·52)씨도 이날 북한에 있던 오빠의 생존을 확인한 뒤 “이산가족찾기 방송 당시 남한에서도 헤어져 있는다른 분들의 사연이 너무 급해 이산가족이라는 말도 못 꺼냈다” 며 “죽은 줄 알았던 오빠가 살아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며 기뻐했다. ◆똑같이 친형,친오빠를 북에 두고 있는 부부중 남편은 형으로부터 상봉희망 연락이 왔지만,아내는 오빠의 생사도 확인하지 못해 희비가 엇갈렸다.8·15 이산가족 상봉을 앞두고 북측 이산가족 방문단 후보 명단이 발표되면서한가족이면서도 기쁨과 슬픔이 교차한 사람은 양문열(64·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이매동),정인혜씨(60·여) 부부.남편 양씨는 17일 북측 명단에서 6.25때 헤어진 둘째형 원렬씨(70)를 확인,기쁨을 감추지 못했지만,아내 정씨는오빠 용준씨(71)로부터 아무런 기별을 받지 못해 침통해 했다. 김경운 전영우 전주 조승진기자
  • 월북자가족 ‘차별의 굴레’벗나

    *이산상봉 계기 의식변화. 분단과 전쟁의 상처를 안은 채 50년을 숨죽이고 지내온 남북의 월남자·월북자 가족들이 남북화해의 변화속에서 보다 홀가분하게 공개 자리에 서게 됐다.남북 정상회담이후 양측의 신뢰 회복노력에 따라 이들도 그간의 불이익과편견에서 벗어나게 된 것이다.특히 8·15 남북 이산가족 교환방문이 그런 계기가 되고 있다. ■교환방문과 월북·월남자/ 정부는 16일 북측 이산가족 상봉희망자 200명을공개하면서 모두를 월북자로 분류했다.물론 이들중에는 6·25때 강제징집된의용군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어 전부를 ‘자진 월북자’로 볼 수는 없다.광의의 개념에서 이른바 월북자로 분류한 셈이다. 북측도 대부분 월남자로 구성된 남측의 상봉 희망자 200명의 북측내 가족찾기에 들어갔다.양측 정부가 이념을 떠나 인도적 차원에서 문제 해결에 나선것이다. 이에따라 오는 8월 15일 서울과 평양에선 각각 월북·월남자들이 고향의 가족들을 만나게 된다.6·15공동선언과 그에 따른 이산가족 상봉을 계기로 남북 양측이 냉전의 상처와 잔재에서 벗어나 보다 전향적인 민족 화해를 시도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월북·월남자에 대한 인식변화/ 사회적으로도 월북자에 대한 인식 변화와각종 차별 대우도 줄어드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연좌제는 지난 80년 폐지됐지만 지금까지도 월북자 가족들은 사찰대상이 되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에 떨어왔다.특수한 공직 취임 등에서는 알게모르게차별을 받아왔다. 그러나 이번 북측이 보내온 방문후보자들의 가족을 공개적으로 찾으면서 이같은 사회적 편견과 불이익이 사라질것으로 예상된다.실제로 과거 ‘월북자’가족임을 숨기던 사례가 많았던 반면 이번에는 대부분 떳떳하게 가족임을밝히고 나서고 있다. 정부의 한 당국자는 “북한에서도 차별대우를 받아온 월남자 가족들이 경협활성화 등 남북관계발전에 따라 우대받는 사례가 최근들어 나타나기 시작했다”면서 ”이는 월북·월남자에 대한 편견으로 상징되는 냉전체제의 변화를뜻한다”고 말했다. 이석우기자 swlee@. *離散 교환방문 문답풀이. 8·15 이산가족 교환방문 북측 후보자 200명 가족들의 생사 확인이 잇따르고 있다.궁금증을 문답으로 풀어본다. ■명단에서 북의 가족을 확인한 사람은 8·15 때 전부 만날 수 있나. 아니다.200명 중 100명이 넘게 확인되더라도 실제 만날 수 있는 사람은 딱100명이다.지난달 30일 남북적십자회담에서 양측이 교환방문 규모를 각 100명씩으로 합의했기 때문이다.따라서 명단에서 북의 가족 이름을 확인했다 하더라도 8·15때 못만날 수 있다. 정부는 오는 22일까지 명단 확인상황을 최종 집계, 확인된 인원이 100명을넘을 경우 인선기준을 새로 정해 최종 100명을 선발할 계획이다. 인선기준은아무래도 고령자,직계가족 등을 우선적으로 배려할 것으로 보인다. 100명에들지 못하는 사람들은 북의 가족에 생사여부만 통보된다.정부는 이들에게 향후 면회소 상봉때 우선권을 주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16일 교환한 남북 양측의 명단이 겹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북측은 월북자 위주로,남측은 월남자 위주로 200명의 후보자를구성했기 때문이다.우리의 경우 월북자 가족들은 평소 정부에 이산가족 상봉신청을 거의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명단에서 북의 가족을 확인했지만 만나기 싫다면. 부부간 이산의 경우 남쪽에서 이미 가정을 꾸리고 있다면 북의 배우자 상봉을 꺼릴 수도 있다.그럴 경우 정부에 상봉 거부의사를 밝히면 된다.그러면정부는 북한당국을 통해 북의 가족에 ‘살아있긴 하지만,만나길 원치 않는다’는 통보를 한다. ■8·15상봉에 대비,목돈을 미리 준비해야 하나. 최종 100명에 선정되더라도 실제 상봉 때 큰 돈은 필요없을 것 같다.단,북의 가족이 서울 워커힐호텔 등에서 묵지만,같이 잠을 잘 수는 없기 때문에지방 거주자의 경우 3박4일간의 숙식비는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최종 상봉 대상자 100명의 명단은 언제쯤 알 수 있나. 26일 남북 양측은 최종 100명의 명단을 서로 교환하는데 이때를 전후해 알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김상연기자 carlos@
  • 구국의 뜻 되새기자/ 독립유공 이젠 이념의 굴레 벗어야

    일제하 항일독립운동을 벌인 애국지사 가운데는 명백한 독립운동 공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서훈을 받지못한 경우가 상당수 있다.그 이유는대개 두 가지로 압축된다.첫째,조선공산당 등에 가입해 좌익활동을 했거나또는 해방후 월북한 자 둘째,건국후 간첩죄 등의 죄명으로 실정법상 처벌을받은 자 등이 이에 속한다. 그러나 이들에 대한 당국의 미포상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시각도 적지 않다. 우선 독립유공자 포상은 일제하 독립운동 공적에 대한 포상인만큼 해방 이후의 행적을 이유로 포상에서 배제한 것은 온당치 못하다는 것이다.또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운동가인 경우 좌익활동이 독립운동의 방편이었을 경우 이를이념에 구애없이 포괄적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최근 남북한 관계개선을 계기로 ‘이념의 굴레’에 묶인 독립유공자에 대해 적극적인 포상정책으로 전환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3·1의거 10년 뒤인 1929년 11월 발생한 ‘광주학생의거’의 주역으로 의거 과정에서 주도적 역할을 해 그로 인해 최종선고에서 징역 4년의 최고형을받은 인물로 장재성(張載性)이란 인물이 있다.4·19후 민주당정부는 그의 독립운동 공적을 높이 평가하여 그에게 건국훈장을 주기로 결정했다.그러나 5·16후인 1962년 3월 1일 당시 독립유공자 공적심사 주무부처였던 내각사무처는 돌연 장씨에 대한 국민장(3등급·현 독립장)서훈를 취소한다고 발표했다.내각사무처는 서훈취소 이유로 신원조회 결과 장씨가 “해방후 조선공산당에 가입,활약하다가 1948년 2월 월북,공산당 대표자회의에 참석했다가 남파된 후 체포돼 7년형을 받고 복역중 6·25 후퇴시 피살된 사실이 밝혀졌다”고 발표했다.동일한 사안에 대해 정권마다 독립유공자 포상에 대한 잣대가달랐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라 하겠다. 장재성이 반공이데올로기의 희생자라면 죽산 조봉암(曺奉岩)은 정치적 희생자라고 할 수 있다.일제 당시 3·1의거 참가 등으로 3차례에 걸쳐 8년여동안 옥살이를 했고,해방후 초대 농림부장관과 국회 부의장을 지낸 조봉암은 독립유공 공적은 물론 대한민국 정부수립에도 공이 적지않은 인물이다.그러나그에 대한 독립유공 포상은 지금까지 이뤄지지 않고 있다.그는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유공자가 달고 있는 ‘빨갱이’ 꼬리표와는 또 다르다.죽산에게는‘간첩죄’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니고 있다.이승만정권 시절 진보당을 창당,급진적 정치노선을 표방했고 대통령선거에 출마해 이승만을 위협하기도 했던 죽산은 ‘국가변란’을 기도한 간첩혐의로 59년 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받고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그러나 그가 이승만의 정적으로 몰려 ‘정치재판’에서 억울하게 희생됐다는 사실은 여러가지 정황·증거를 통해 확인되고 있다. 한편 죽산 사후 그의 동지 및 유족들은 그의 명예회복을 위해 백방으로 노력해왔으나 아직까지 그에 대한 사면·복권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그에 대한독립유공 포상 역시 한 발자국도 진전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보훈당국은 ‘국가안전에 관한 죄를 범한 자로서 형을 받은 자는 그 서훈을 취소한다’는상훈법에 의거,그에 대한 포상을 거부하고 있다. 보훈당국으로선 실정법에 의해 사형집행을 받은 자가 사면·복권이 안된 상태에서 포상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일리가 있다.그러나 문제는 독립유공자 포상제도가 공적 자체보다는 이념의 굴레와 정치적 잣대에 휘둘려 왔다는 사실이다.현행 독립유공자 포상제도가 적잖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는 점은 보훈처 관계자들 역시 일부 수긍하고 있다.통일시대를 맞아 독립유공자포상과 관련,일대 정책전환이 요구되고 있는 시점이라고 하겠다.지난 95년광복 50주년을 맞아 그동안 이데올로기 문제로 포상에서 제외됐던 이동휘(李東輝)선생 등 사회주의계열 독립운동가에 대한 포상이 실시된 것이 그 첫걸음이었다고 할 수 있다. 지난달 분단후 첫 남북정상회담 개최를 계기로 남북관계가 급속도로 호전되면서 해방후 월북,북한정권에 참여한 독립운동가 출신 인사들에 대한 포상문제도 검토할 필요가 있는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임꺽정’의 저자이자 1927년 결성된 민족 단일조직인 신간회(新幹會) 부회장을 지낸 벽초 홍명희(洪命熹·내각 부수상 역임),국어학자 출신으로 1942년 ‘조선어학회사건’에 연루돼 징역 6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른 이극로(李克魯·조국전선 의장 역임)선생 등이 대표적 인물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한 정치학자는 “통일시대를 앞두고 민족사 차원에서 이들에 대한 독립유공포상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고 “이는 남북간 역사적 동질성을 모색하는 단초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운현기자 jwh59@. *23년 黃鈺사건 주도 金始顯의사. 생전에 무려 일곱 차례에 걸쳐 24년간 감옥살이를 한 초인적인 애국지사가있다.감옥생활 가운데 16년은 일제하에서 였으니 독립유공 공적이 결코 적지 않다.의열단원 출신으로 1923년 소위 ‘황옥(黃鈺)경부사건’의 주모자로체포된 김시현(金始顯)의사가 그 주인공이다. 김 의사는 거듭된 거사-투옥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변절하지 않고 해방을 맞은,몇 안되는 지사형 애국지사다.그러나 김 의사에 대한 독립유공 포상이 아직까지 이뤄지지 않고 있다.유족측은 “보훈처가 지나치게 신중을 기한 나머지 서훈이 지연되고 있다”며 보훈당국에 대해 아쉬움을 토로하고 있다. 김 의사에 대한 포상이 아직까지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은 김 의사의 공적에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다.해방후 김 의사와 관련된 정치사건의 ‘전과딱지’가 김 의사의 독립유공 포상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김 의사는 1954년 1월 이승만 대통령 암살미수사건에 연루돼 사형선고(나중에 무기로 감형됨)를 받고 복역중 4·19혁명으로 풀려났다.평소 의협심이 강했던 김 의사는 이승만 대통령이 헌정질서를 짓밟고 독재정치를 펴자 동지유시태(柳時泰)와 함께 그를 처단하려다 미수에 그쳤다.이 일로 구속된 김의사는 4·19의거로 이승만 정권이 무너진 후 석방되었으며,특별사면(1960.6.25)까지 받았다. 김 의사의 아들 김봉년(金峯年·78)씨는 “부친이 당국으로부터 특별사면을받은 만큼 그 사건과 관련해서는 원인무효가 됐다고 본다”고 말했다. 정운현기자
  • 北 후보자 명단…학자·예술인 다수 포함

    북한이 통보해온 이산가족방문단 후보 명단에는 북한에서 이름난 유명 학자와 연예인들이 다수 끼여 있다.‘비날론’을 개발한 화학자 이승기박사(96년사망)의 부인 황의분씨(84)도 포함돼 눈길을 끌었다.이들의 신상과 활동상을알아본다. ■학계. [류렬] 일제 때 중학교만 졸업한 후 독학으로 공부해 고려대학교 강사로 근무하던 중 6·25전쟁이 발발하면서 의용군에 참가,북한으로 넘어갔다.경남산청군이 고향으로 현재 평양시 경림동에 거주하고 있으며 사회과학원언어학연구소에 근무하고 있다. 지난 83년 북한 국어학계의 ‘기념비’라고 일컬어지는 ‘세 나라 시기 리두에 대한 연구’(과학백과사전출판사)를 집필했다. [조주경] 김일성종합대학 교수이자 북한에서 최고의 과학자에게 주어지는 ‘인민과학자’ 칭호를 받은 유명 과학자이다.경북 영양군이 고향으로 서울대문리대를 중퇴한 뒤 지난 50년 6·25전쟁 당시 의용군으로 영천 전투에 참전,왼팔을 잃었다. 김일성종합대학을 졸업하고 23세부터 교단에 섰다.40여년간 8명의 박사,33명의 학사(석사),12명의 후보학사를 비롯해 수많은 과학자를 양성했다.지난91년 남한의 어머니로부터 사진과 편지를 받았다고 노동신문을 통해 밝히기도 했다. [김영황] 북한 어문학 계열에서 손꼽히는 권위자 중 한명이다.입북 경위는자세히 알려지지 않고 있지만 6·25전쟁이 계기가 된 것으로 추측된다.입북전 동국대학 문학부에 재학했던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북한에서도 어문학에꾸준히 매진했으며 지난 60년대 초반 언어학 학사로 되면서 김일성종합대학교원으로 근무했다. [조용관] 북한 방직부문 기술의 대가이자 공훈과학자이다.전북 장수군 출신으로 지난해 7월 21일 평양방송을 통해 근황을 전하기도 했다.경공업방직분원 방직연구소 소장을 역임했다.북한에서 교수,박사,공훈과학자의 칭호를 받았으며,‘조선지식인대회’를 비롯해 각종 과학부문 대회에 대표로 참석하는등 북한당국으로부터 과학적 업적을 인정받고 있다. [하재경] 평양시 김책종합공업대학에서 강좌장으로 있다.서울 중앙중학교에입학했다가 금전적인 이유로 학업을 포기해야만 하는 가슴아픈 경험을 갖고있다.충북 괴산군에 거주하다 6·25전쟁이 발발하면서 의용군에 입대해 참전,북한으로 넘어갔다.30여년동안 교편을 잡았으며,지난 3월 평양에서 열린 전국과학자·기술자대회에 참석하기도 했다. [김봉회] 한덕수 평양경공업대학 강좌장으로 일하고 있다.전북 고창군 고창면 도산리가 고향으로 고창중학교를 졸업한 뒤 고려대학교 입학을 기다리다의용군으로 소집돼 참전한 것으로 전해진다. ■예술계. [정창모] 만수대창작사 조선화창작단 화가로 일한다.인물화,풍경화,화조화,정물화 등 조선화의 각 장르에 걸쳐 자타가 공인하는 가장 뛰어난 화가이다. 6·25전쟁 때 의용군으로 입대해 월북했으며,평양미술대학 전문부와 조선화학부에서 공부했다.지난 76년 김일성 주석이 생전에 집무실로 사용했던 금수산의사당(현재 금수산기념궁전) 기념촬영대에 비치될 ‘비봉폭포의 가을’을성공적으로 완성해 김 주석과 김정일 노동당 총비서의 높은 평가를 받았다. 지난 77년 공훈예술가,88년 인민예술가 칭호를 받았다. [오영재] 조선작가동맹 중앙위원회 시분과위원회 소속으로 자타가 공인하는북한 최고의 시인이다.김 총비서의 각별한 신임을 받고 있다.지난 50년 의용군으로 월북,김형직사범대학 조선어문학부를 졸업했다.20대 중반부터 개성있고 형상성이 뛰어난 시를 창작해 두각을 나타냈다. 수백편의 시와 수십권의 시집을 출간했으며 대표작으로 시집 ‘대동강’과‘영원히 당과 함께’,노랫말 ‘인민은 우리 당에 영광 드리네’,서사시 ‘인민의 태양’등이 있다.평양에 있는 주체사상탑의 비문에 새겨진 시 ‘오,주체사상탑이여’를 짓기도 했다.89년 ‘김일성상’을 수상했다.지난 89년 3월 남북작가회담 예비회담 대표로 참가했다. [박 섭] 서울에서 극단 ‘신향’의 배우로 활동하다 월북,현재 북한 최고의영화더빙 전문 성우이자 인민배우로 활약하고 있다.외국영화를 전문적으로번역하는 조선번역영화제작소 소장직을 맡고 있다.‘우리에게도 조국이 있다’‘처녀리발사’ 등에 주역으로 출연했다.김 총비서에게 올라가는 외국영화치고 그가 출연하지 않은 작품이 거의 없을 정도로 북한 성우계의 거봉으로자리잡고 있다.[김점순] 북한의 국립민족예술단 성악지도원이자 고음독창가수로 활동하고있다.6살 때 가족을 따라 만주 땅으로 건너갔으며 8·15 광복 후 서울로 귀국했다.6·25전쟁이 발발하자 아버지와 함께 의용군에 편입됐다. 6·25 이후북한의 첫 가극인 ‘콩쥐팥쥐’를 비롯해 ‘온달과 공주’‘밝은 태양 아래서’ 등 수많은 가극에서 주인공 역을 훌륭히 소화,김일성 주석으로부터 신임을 얻었다.60년 ‘공훈배우’칭호를 받았다. 서울연합
  • 이산가족들 눈물겨운 사연

    북한적십자사가 16일 우리측 판문점 연락관을 통해 전달해온 8·15 이산가족 상봉 후보자 명단이 공개되자 6·25 때 의용군으로 끌려간 형제와 조카의이름을 발견한 남한의 형과 동생,그리고 삼촌 등 가족들은 감격에 겨워 만날날을 기다리며 밤새 눈물을 그치지 못했다. 대한적십자사 당직실로 전화를 걸어 맏형 전덕찬(全悳燦·72)씨의 이름을확인한 영찬(永燦·55·서울 성북구 장위1동·동양고속 전무)씨는 50년 전코흘리개 시절에 봤던 큰 형님의 어렴풋한 얼굴을 떠올리며 흥분을 감추지못했다. 영찬씨는 7남매 중 유독 큰 형님만 소식이 끊긴 것에 애를 태우다 돌아가신부모님이 평소에 “맏이 얼굴을 봐야만 두 눈을 고이 감을 수 있다”며 눈시울을 적셨다. 6·25 발발 직후인 50년 7월 의용군으로 끌려간 동생 주영훈씨(69)가 명단에 포함된 사실을 확인한 주영관씨(71·전 대한매일 논설워원·서울 마포구도화동)는 “죽기 전에 만나고 싶었는데 감개무량하다”면서 눈물을 글썽였다. 영관씨는 “아버지는 한국전쟁 발발 다음해인 51년 지병으로 돌아가셨지만,어머니는 하루도 빼놓지 않고 동생을 그리다 93년 93세의 나이로 돌아가셨다”면서 “다행히 형제 4명은 모두 서울에 살고 있어 동생이 서울에 오기만학수고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학생 때 의용군으로 징집됐던 동생 임재혁씨(66)의 이름을 발견한 형 창혁씨(71·서울 양천구 목동)도 “동생이 죽은 줄만 알았는데 다시 만나게 되다니 꿈만 같다”면서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창혁씨는 “인민군이 서울에 진입한 바로 그날 이웃들로부터 ‘중학생이던 재혁이가 의용군으로 끌려갔다’는 말을 듣고 의용군이 모여 있다는 회화국민학교로 찾아갔지만 끝내 동생을찾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왔다”면서 7남매 중 셋째였던 동생과 생이별한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창혁씨는 “전쟁이 끝난 뒤 동생의 생사가 확인되지 않아 정부의 호적 정리방침에 따라 아버지께서 동사무소에 사망신고를 냈다”면서 “병상에 계신 91세의 노부(老父)께서도 죽은 줄 알고 있던 아들이 살아 돌아온다는 사실을아신다면 당장에라도 자리에서 일어나실 것”이라고 덧붙였다. 동생 구재협씨(70)를 8·15 때 만날 수 있다는 소식을 접한 형 재락씨(충남서천군 시초면 초현리)는 “6·25 이듬해 여름 20살이었던 재협이가 동네에들어온 인민군으로부터 의용군 입대를 강요받아 전쟁터에 나간 뒤 소식이 끊겼다”면서 “10여년 전 사망신고를 했으며, 이번에도 동생이 죽은 줄 알고상봉 신청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재락씨는 “재협이와 헤어질 당시 부모님과 5남2녀가 모두 생존해 있었으나,지금은 차남인 나와 큰누나(85),막내(58)만 서울에 살고 있다”고 밝혔다. 의용군으로 징집됐던 박종섭씨(68)의 동생 종열씨(충북 청원군 강외면 서평리)는 “전쟁이 터지던 해 인민군들이 들이닥쳐 형님을 포함한 동네 청년 7명을 끌고 갔다”면서 “꿈을 꾸는 것만 같다”고 말했다. 종열씨는 “2년 전 돌아가신 어머니는 ‘전쟁터로 끌려가는 아들에게 저녁도지어 주지 못했다’며 평생 한을 품고 사셨다”면서 “어머니가 조금만 더사셨으면…”하며 눈물을 쏟았다. 김경운 송한수기자 kkwoon@. *북녘남편 5명의 애타는‘望婦歌’. 50여년 전헤어진 남쪽의 아내를 찾는 북쪽의 남편도 5명이나 됐다. 경기도 안양공업학교에서 음악교사를 지낸 신용대씨(81)는 서울 종로거리의여자옷 상점에서 일했던 아내 리숙인씨(79)와 아들 문제씨(50)를 찾고 있다. 전북 고창군 흥덕면 사천리 출신의 신씨는 헤어질 당시의 주소를 경기도 안양으로 써냈다.옛 지명으로 강원 울진군 원남면 매화리 661번지가 출생지이자 본적지인 최필순씨(77)는 아내 주정연씨(76)와 이름을 모르는 53세의 맏아들을 찾고 있다.아내와 헤어질 당시 최씨는 동국대에 다녔다. 전북 장수군 변암면 국포리 출생으로 전북 전주시 완산동이 본적지인 조용관씨(78)도 전주시 병원 간호사였던 아내 김부선씨(74)와 52살된 맏아들 경제씨를 찾고 있다.조씨는 헤어질 당시 전북 임실군 섬진강발전소 건설사업소노동자였다. 경북 안동군 풍산면 매곡동 미길리 출신의 리복연씨(일명 리승철·73)도 인천시 부평동에서 헤어진 아내 리춘자씨(72)와 장남 지걸(53)·차남 호걸씨(50)를 찾고 있다. 충북 중원군 양성면 능암리 출신 김희영(72)씨는 서울동대문구 이천상사에서 일하다 헤어진 아내 정춘자씨(72)와 아들 상교씨(53)를 애타게 찾고 있다. 김상연기자 carl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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