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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미은행 파업 타결 13일부터 정상영업

    한미은행 노조의 파업사태가 12일 파업 18일만에 타결됐다.이에 따라 13일부터 한미은행 전국 전 지점에서 영업이 정상적으로 재개된다.또 한미은행과 씨티은행 서울지점과의 통합작업도 가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한미은행 노조는 이날 노사합의안에 대한 찬반 투표를 실시한 결과 74.8%의 찬성으로 합의안이 통과돼 파업철회와 함께 조합원들의 업무복귀를 선언했다. 이번 합의안에서 노조는 그동안 쟁점이 됐던 한미은행 상장폐지 철회 요구안은 이미 주총 결의가 끝난 상태라는 점을 인정해 철회했다.임금 8.7% 인상안은 금융노조 산별교섭을 지켜본 뒤 이를 상회하는 수준에서 결정키로 했다.또 사무직을 내년 말까지 단계적으로 폐지하고,자동호봉승급제를 도입하며,통합보로금 400%를 전 직원에게 지급하기로 합의했다. ●파업결산 이번 파업은 사측이 노조측에 일방적으로 끌려다니지 않고 원칙대로 대응했다는 점에서 국내 은행권에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이란 관측이다.명분을 떠나 파업만 하면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는 종전의 노조 파업 방식도 더 이상 통용되기 어렵다는 점을 인식시켰다.제3자 개입(공권력 투입) 없이 당사자간의 협상을 통해 합의를 이룬 것도 긍정적인 평가다. 다만 최장기(18일) 파업으로 은행 이미지는 물론 여수신에도 타격을 입었다.지난 10일 현재 파업 전인 6월25일에 비해 수신은 2조 5051억원,여신은 1조 514억원 줄었다. ●PB 선점 불붙는다. 이번 사태 해결로 한미은행은 씨티은행 서울지점과의 통합작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할 수 있게 돼 국내 금융시장에서 국민,우리,하나,신한 등 주요은행들과 프라이빗 뱅킹(PB) 시장의 선점을 놓고 격전을 벌일 것으로 예상된다. 국민·우리은행은 그동안 씨티은행의 독주를 견제할 만한 전략을 세워온 것으로 알려졌다. 김유영기자 carilips@seoul.co.kr˝
  • [세상에 이런일이]고래고래 헛소리

    “돌고래라고요?진짜 북한 잠수함이라니까요.” 조업 중이던 어부가 돌고래 떼를 북한 잠수함으로 오인,경찰에 신고하는 바람에 해군에 비상이 걸렸던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지난 6월25일 오후 2시54분쯤 강원도 양양군 현남면 북분리 앞바다.가자미 잡이를 하던 김모(31)씨는 기다란 ‘와류(渦流)’를 보고 경찰에 신고했다. 물이 소용돌이치는 현상인 ‘와류’는 물 속에서 커다란 물체가 빠르게 지나가지 않으면 흔히 볼 수 없는 것이다.‘큰 건’ 이라고 짐작한 김씨는 ‘북한 잠수함’을 떠올렸고,곧바로 경찰에 신고했다.김씨는 “긴 와류가 이어진 것을 보고 ‘잠수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북한잠수함’ 신고에 해경과 해군에는 비상이 걸렸고 곧바로 함정과 정찰헬기 등이 긴급 출동했다.하지만 현장에서 확인한 것은 이동 중인 고래떼였다.하지만 정작 김씨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그는 “어부생활 10여년에 와류와 고래떼를 구별하지 못하겠느냐.”고 반문했다.˝
  • [세상에 이런일이]고래고래 헛소리

    “돌고래라고요?진짜 북한 잠수함이라니까요.” 조업 중이던 어부가 돌고래 떼를 북한 잠수함으로 오인,경찰에 신고하는 바람에 해군에 비상이 걸렸던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지난 6월25일 오후 2시54분쯤 강원도 양양군 현남면 북분리 앞바다.가자미 잡이를 하던 김모(31)씨는 기다란 ‘와류(渦流)’를 보고 경찰에 신고했다. 물이 소용돌이치는 현상인 ‘와류’는 물 속에서 커다란 물체가 빠르게 지나가지 않으면 흔히 볼 수 없는 것이다.‘큰 건’ 이라고 짐작한 김씨는 ‘북한 잠수함’을 떠올렸고,곧바로 경찰에 신고했다.김씨는 “긴 와류가 이어진 것을 보고 ‘잠수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북한잠수함’ 신고에 해경과 해군에는 비상이 걸렸고 곧바로 함정과 정찰헬기 등이 긴급 출동했다.하지만 현장에서 확인한 것은 이동 중인 고래떼였다.하지만 정작 김씨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그는 “어부생활 10여년에 와류와 고래떼를 구별하지 못하겠느냐.”고 반문했다.
  • [꼬불꼬불 뒷골목] 대구 ‘뽕나무 골목’

    [꼬불꼬불 뒷골목] 대구 ‘뽕나무 골목’

    뽕나무만큼 사람에게 유용한 나무도 드물다.잎은 누에의 먹이가 되고 열매는 ‘오디’라 하여 한약재로 쓰이며,뿌리는 ‘상두’라 해서 기침을 그치게 하는 진해제나 이뇨제로 쓰인다. ‘집터에 뽕나무를 심으면 50살 먹은 사람이 명주 옷을 입을 수 있다.’는 맹자의 말도 있다.조상들은 뽕나무가 잘자라야 나라의 태평성대가 이뤄진다고 믿고 곳곳에 뽕나무를 심곤 했다.뽕나무 골목은 대구시 중구 계산성당에서 동아쇼핑 사이의 좁은 골목이다. 이 골목의 역사는 조선 선조 때로 올라간다.임진왜란 원군으로 조선에 왔다가 귀화한 명나라 무장 두사충에게 선조는 이 일대 4000여평의 땅을 주었다.두사충은 이 땅에 뽕나무를 심어 누에를 치며 살았다. 그때 다니던 길이 세월이 흘러 골목으로 변하게 되었고,사람들은 이 골목을 뽕나무 골목으로 부르게 된 것이다.그러나 지금은 “옛날 이 일대가 뽕나무 밭이었을까?” 의심이 갈 정도로 뽕나무 한 그루 없다. 인근 한약방 직원에게 “뽕나무 골목을 아느냐?”고 물었다.자신은 이곳에 온 지 얼마되지 않아 “모른다.”고 말했다.40여년 이 동네에서 살았다는 효성슈퍼 주인(72)은 “젊은 사람들 중 뽕나무 골목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고 말했다.“이상화 시인이 이곳에 살아서인지 몰라도 주민 중에 문인들이 많았다.”며 “지금은 이웃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른다.”며 삭막해진 세태를 원망했다. 민족시인 이상화 고택은 뽕나무 골목 끝자락에 자리잡고 있다.그가 타계한 1943년까지 2년6개월 정도 이곳에서 살았다.이 집에서 시조 ‘기미년’과 수필 ‘나의 어머니’,시 ‘서러운 해조’ 등의 작품을 발표했다.1970년대 들어 서울 문인들이 찾아오면서 이상화 고택임이 알려졌다.지금까지 옛 모습이 거의 그대로 간직돼 있다. 그러나 최근 대구 중구청이 이곳을 관통하는 도로를 개설키로 해 헐릴 위기에 처했다.이 때문에 문화관련 인사들을 중심으로 ‘민족시인 이상화 고택보존운동본부’가 출범해 시민 50여만명의 서명을 받는 등 보존운동을 펼치고 있다. 이상화의 형인 이상정 장군의 옛집도 뽕나무 골목을 지키고 있다.이상정 장군은 1921년부터 23년까지 평안북도 정주에 있는 오산학교 교사로 근무하면서 지하조직을 결성해 항일투쟁을 전개하다가 만주로 망명한 독립운동가다. 뽕나무 골목 입구에는 중장비 소리로 어수선하다.옛 고려예식장 자리에 대규모 주상복합건물이 건립되고 있다.고려예식장은 이곳에서 결혼식을 올리면 아들을 낳는다는 풍문으로 한때 지역 예식업계를 평정했으나 대형예식장이 잇따라 등장하면서 경쟁에서 밀려 결국 문을 닫았다. 고려예식장 부지에는 서병조 대륜재단 초대이사장의 집이 있었다.집이 운치가 있어 6·25직후 지역 요인들과 미군장교들의 가든파티장소로 이용되었다.고려예식장 업주 우씨는 예식장 건축과정에서 나온 홍송과 돌,목재 등이 너무 좋아 현재 달서구 월곡공원 옆 단양 우씨 재실인 ‘낙동서원’ 부속재로 사용했다. 주상복합건물 건립으로 서상돈 선생의 옛집이 사라졌다.민족운동가인 서상돈선생은 1907년 국채 1300만환을 보상하자는 ‘국채보상운동’을 주장해서 전국운동으로 승화시켰다. 건설업체는 건물 건립과정에 파손 등이 우려돼 불가피하게 서상돈 선생의 집을 철거했다고 밝혔다. 철거된 집의 자재는 현재 컨테이너 2개에 넣어져 공사장 한쪽에 보관돼 있다.건물이 준공된 후 서상돈 선생의 집을 원형 그대로 복원한다는 것이 건설업체의 구상이다.최근 주상복합건물 시행사가 이상화 고택을 매입,대구시에 기부채납할 뜻을 비쳤다.기부채납이 이뤄지면 대구를 상징하는 문화공간으로 활용한다는 것이 대구시의 입장이다. 이상화,이상정,서상돈 고택이 있는 뽕나무 골목이 대구의 근·현대 역사공간으로 다시 태어날 날이 멀지 않았다. 대구 한찬규기자 cghan@seoul.co.kr
  • [꼬불꼬불 뒷골목] 대구 ‘뽕나무 골목’

    뽕나무만큼 사람에게 유용한 나무도 드물다.잎은 누에의 먹이가 되고 열매는 ‘오디’라 하여 한약재로 쓰이며,뿌리는 ‘상두’라 해서 기침을 그치게 하는 진해제나 이뇨제로 쓰인다. ‘집터에 뽕나무를 심으면 50살 먹은 사람이 명주 옷을 입을 수 있다.’는 맹자의 말도 있다.조상들은 뽕나무가 잘자라야 나라의 태평성대가 이뤄진다고 믿고 곳곳에 뽕나무를 심곤 했다.뽕나무 골목은 대구시 중구 계산성당에서 동아쇼핑 사이의 좁은 골목이다. 이 골목의 역사는 조선 선조 때로 올라간다.임진왜란 원군으로 조선에 왔다가 귀화한 명나라 무장 두사충에게 선조는 이 일대 4000여평의 땅을 주었다.두사충은 이 땅에 뽕나무를 심어 누에를 치며 살았다. 그때 다니던 길이 세월이 흘러 골목으로 변하게 되었고,사람들은 이 골목을 뽕나무 골목으로 부르게 된 것이다.그러나 지금은 “옛날 이 일대가 뽕나무 밭이었을까?” 의심이 갈 정도로 뽕나무 한 그루 없다. 인근 한약방 직원에게 “뽕나무 골목을 아느냐?”고 물었다.자신은 이곳에 온 지 얼마되지 않아 “모른다.”고 말했다.40여년 이 동네에서 살았다는 효성슈퍼 주인(72)은 “젊은 사람들 중 뽕나무 골목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고 말했다.“이상화 시인이 이곳에 살아서인지 몰라도 주민 중에 문인들이 많았다.”며 “지금은 이웃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른다.”며 삭막해진 세태를 원망했다. 민족시인 이상화 고택은 뽕나무 골목 끝자락에 자리잡고 있다.그가 타계한 1943년까지 2년6개월 정도 이곳에서 살았다.이 집에서 시조 ‘기미년’과 수필 ‘나의 어머니’,시 ‘서러운 해조’ 등의 작품을 발표했다.1970년대 들어 서울 문인들이 찾아오면서 이상화 고택임이 알려졌다.지금까지 옛 모습이 거의 그대로 간직돼 있다. 그러나 최근 대구 중구청이 이곳을 관통하는 도로를 개설키로 해 헐릴 위기에 처했다.이 때문에 문화관련 인사들을 중심으로 ‘민족시인 이상화 고택보존운동본부’가 출범해 시민 50여만명의 서명을 받는 등 보존운동을 펼치고 있다. 이상화의 형인 이상정 장군의 옛집도 뽕나무 골목을 지키고 있다.이상정 장군은 1921년부터 23년까지 평안북도 정주에 있는 오산학교 교사로 근무하면서 지하조직을 결성해 항일투쟁을 전개하다가 만주로 망명한 독립운동가다. 뽕나무 골목 입구에는 중장비 소리로 어수선하다.옛 고려예식장 자리에 대규모 주상복합건물이 건립되고 있다.고려예식장은 이곳에서 결혼식을 올리면 아들을 낳는다는 풍문으로 한때 지역 예식업계를 평정했으나 대형예식장이 잇따라 등장하면서 경쟁에서 밀려 결국 문을 닫았다. 고려예식장 부지에는 서병조 대륜재단 초대이사장의 집이 있었다.집이 운치가 있어 6·25직후 지역 요인들과 미군장교들의 가든파티장소로 이용되었다.고려예식장 업주 우씨는 예식장 건축과정에서 나온 홍송과 돌,목재 등이 너무 좋아 현재 달서구 월곡공원 옆 단양 우씨 재실인 ‘낙동서원’ 부속재로 사용했다. 주상복합건물 건립으로 서상돈 선생의 옛집이 사라졌다.민족운동가인 서상돈선생은 1907년 국채 1300만환을 보상하자는 ‘국채보상운동’을 주장해서 전국운동으로 승화시켰다. 건설업체는 건물 건립과정에 파손 등이 우려돼 불가피하게 서상돈 선생의 집을 철거했다고 밝혔다. 철거된 집의 자재는 현재 컨테이너 2개에 넣어져 공사장 한쪽에 보관돼 있다.건물이 준공된 후 서상돈 선생의 집을 원형 그대로 복원한다는 것이 건설업체의 구상이다.최근 주상복합건물 시행사가 이상화 고택을 매입,대구시에 기부채납할 뜻을 비쳤다.기부채납이 이뤄지면 대구를 상징하는 문화공간으로 활용한다는 것이 대구시의 입장이다. 이상화,이상정,서상돈 고택이 있는 뽕나무 골목이 대구의 근·현대 역사공간으로 다시 태어날 날이 멀지 않았다. 대구 한찬규기자 cghan@seoul.co.kr˝
  • 여름의 맛 냉면 골라먹자

    장마철이라곤 하지만 언뜻언뜻 내비치는 뙤약볕 폭염이 버겁다.몸도 마음도 지치고,입맛도 저만치 달아났다.이럴 때 생각나는 먹을거리 가운데 하나가 냉면이다.살얼음이 앉은 육수를 들이켜면 다소나마 열기를 가라앉힐 수 있다.툭툭 끊어 먹는 면발에 식욕도 살아나게 마련이다.우리의 대표적인 여름 음식인 냉면은 북부지방이 본고장이지만 전국민의 입맛을 사로잡았다.냉면의 주재료인 국수류가 우리나라에 들어 온 것은 고려시대.하지만 냉면에 대한 기록은 ‘동국세시기’ 등 조선 말엽부터 보인다.‘고종황제도 냉면을 즐겼다.’고 하는 기록으로 미뤄 냉면이 남하한 지는 꽤 오래됐다. 글 이기철·나길회기자 chuli@seoul.co.kr 사진 김명국·이호정기자 daunso@seoul.co.kr 냉면이 전국적으로 퍼지면서 대중화된 것은 6·25이후.월남한 이북사람들이 정착하면서 어엿하게 뿌리를 내리게 됐다.이전에는 냉면의 주재료인 메밀을 한 겨울 먹었단다.그래서 냉면은 세번 떨면서 먹는다는 말이 생겨났다.“먹으러 가면서 떨고,먹으면서 떨고,돌아가면서 떤다.”고. 냉면은 크게 평양식과 함흥식으로 나뉜다.보통 ‘물냉면’으로 부르는 평양식의 면발은 메밀과 전분을 섞어 면을 뽑는데 메밀이 70∼80%를 차지한다.서울 장충동 평양면옥의 김대성(59)사장은 “옥쌀(메밀)은 끈기가 없는 탓에 전분을 섞어야 점성이 유지된다.”며 “전분을 최소한으로 쓰면서 메밀 특유의 구수한 맛을 유지하는 것이 냉면의 비결”이라고 말했다.소고기의 사태와 양지머리 등을 고아낸 육수를 얼렸다가 면과 함께 띄워낸다.무슨 맛인지 모를 정도로 밍밍하면서 시원하고 담백한 맛을 제일로 친다. 반면 ‘비빔면’으로 불리는 함흥식의 면은 쇠심줄처럼 질긴 듯 쫄깃하다.고구마 전분이 많이 들어간 까닭이다.양념장에다 동해에서 나는 가자미나 홍어 등을 얹어 먹는다.매서운 겨울 삭풍을 이기려는 듯 맛이 강하다.고기나 뼈를 곤 뜨거운 국물인 장국이 곁들여 나온다.대체로 면발은 평양식보다 가늘고 색깔이 진하다.남한이 원산지인 진주냉면도 아스라히 맥을 잇고 있다.진주냉면은 메밀을 많이 쓰고 전분을 조금 섞어 만든 것으로 고기를 쓰지 않는다.평양냉면이 무를 얇게 저며 올리는 반면,진주냉면은 1년 삭힌 배추김치를 다져 넣는다.육수도 바지락·마른 홍합·마른 명태·표고버섯 등으로 만든다.진주냉면의 신은자(39)씨는 “옛 기록에는 평양냉면에 버금가는 것이 진주냉면”이었다고 자랑했다. 전통 냉면집은 찾는 곳만 찾게된다.왜 그럴까?이에 대한 해답으로 서울 입정동 을지면옥의 이성민(45)씨는 주방을 보여줬다.주방이 손님을 받는 1층 홀보다 더 넓다.주방에선 메밀을 빻아 가루로 만들어 면발을 뽑고 삶고 건져낸다.메밀이 쌓인 한쪽에선 육수를 삶아 식혔다가 냉동한다.간단히 말하면 냉면 공장이 들어선 셈이다.이씨는 “냉면을 제대로 만들려면 주방은 20∼30평은 돼야 한다.”고 말했다.이러니 금싸라기같은 도심에선 ‘돈안되는 주방이 크게 차지하는’ 냉면집을 차리기가 쉽지 않을 수밖에. 또 한가지.메밀을 빻아 냉면을 뽑아 내는 일이 너무 힘들고,미리 해둘 수 없다는 것이다.주방이 넓은 만큼 일하는 사람들의 절반 이상이 주방에 있다.이씨는 “평양식 냉면의 경우 면을 미리 뽑아 두면 10분만 지나면 불어서 못먹게 된다.”고 설명했다. 냉면을 어떻게 먹으면 맛있을까?평양식의 경우 고명으로 얹어 나오는 삶은 계란을 먼저 먹어야 맛있다는 주장도 있다.하지만 을지면옥에서 소주를 따르던 한 할아버지는 “선주후면(先酒後麵)이야.”라며 끼어들었다.주문한 냉면이 나오는 동안 반주를 곁들여야 한다는 설명이다. 이씨는 “냉면을 고기와 메밀김치(무김치)를 싸서 먹어면 더 맛있다.”고 소개했다.냉면이 나오면 사발째 육수를 들이켜는 사람도 있다.면이 길고 질기다고 자르지 말라고도 한다.하지만 김씨는 “냉면 먹는 법이 어딨어.식성대로 먹으면 되지.”라고 잘랐다. 평양식 냉면에 식초와 겨자를 넣는 것도 이유가 있다.식초는 살균작용을 하면서 시원한 맛을 더욱 강조해준다.홀리데이인서울의 한식당 이원의 김창수(57) 조리장은 “겨자는 입맛을 상큼하게 하고 메밀의 찬 기운을 중화하는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이런 냉면도 젊은 세대들의 다양한 입맛에 맞춰 진화하고 있다.컬러냉면,과일냉면,야콘냉면,녹차냉면 등이 대표적이다.요즘에는 냉면 제품도 많이 나와 집에서도 만들어 먹을 수 있게 됐다.김 조리장은 “마른 면을 삶을 때는 살짝 끓여서 곧바로 꺼내 얼음물에 헹궈야 면이 엉키지 않고 쫄깃해진다.”고 말했다. ■김창수의 육수 요리조리 김창수 조리장은 35년째 한식만 외길로 걷고 있다.홀리데이인서울의 한식당 이원(02-7107-167)의 입맛을 책임진 그는 “가족이 먹는다는 심정으로 음식을 만든다.”고 말했다. ●물냉면 육수(4인분) 재료 물 2ℓ,양지머리 125g,닭고기 100g,대파 50g,무 (A)개,건고추 2개,마늘 1통,통후추·월계수·감초 약간씩 만드는 법 (1)큰 냄비에 재료를 모두 넣고 2시간 정도 끓여낸다.(2)양지머리는 1시간 30분정도 지나면 건져낸다.얇게 썰어 편육으로 먹거나 냉면 고명으로 쓰면 된다.(3)(1)이 끓으면 체로 걸러 식힌 다음 소금·설탕으로 간을 해서 식힌다.냉동칸에 넣어 살강살강 얼려도 좋다. 다대기 (설탕 20g,식초·고춧가루·겨자·소금 10g씩) 비빔냉면 양념장(설탕 10g,간장·참기름 20g씩,다진 마늘 5g,깨 2g,육수 약간을 넣어 걸쭉하게 섞는다.) ■새콤달콤 냉면 좀 하는집 서울 을지로3가에서 청계3가로 가는 길목의 오른쪽 중간쯤에 있는 을지면옥(2266-7052)은 실향민들의 사랑방 역할을 하는 평양식 냉면 전문점이다.자리에 앉으면 냉면을 삶은 온수를 내온다.뭐라고 꼬집을 수 없는 알듯 말듯한 맛이다.그러나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메밀 향이 전해온다.온수에 간장 몇방울을 타서 마시면 냉면 마니아처럼 보일 것이다.넓은 주방에서 매일 직접 메밀을 빻아 즉석에서 면발을 뽑아 삶아낸다.메밀 특유의 향이 더욱 살아있다. 을지면옥의 특징은 면발이 가늘면서 길다.부드러운 면발이 뚝뚝 끊긴다.말끔한 육수에 파를 송송 썰어 넣고,고춧가루·깨를 솔솔 뿌렸다.삶은 계란 반개와 잘 익은 소고기 수육도 몇 점보인다.자극이 전혀 없으면서 개운한 맛이 난다.냉면은 6500원이다.적잖은 양이지만 사리(3500원)도 추가할 수 있다. 서울 마포구 염리동사무소 옆의 을밀대(717-1922)는 굵은 면발과 살얼음 육수로 유명한 냉면 전문점이다.을밀대의 면발은 다른 집보다 배 정도 굵다.얼핏보면 불은 것처럼 보이지만 한입 가득 먹어보면 졸깃하면서 툭툭 끊어지는 게 별미다. 육수를 만들 때 소고기 양지와 사골을 함께 고아낸다.색깔이 짙고 맛이 깊으면서도 감칠 맛이 난다.육수를 얼려 살얼음이 동동 떠 여름 더위를 식히기에 딱 좋다.비빔냉면도 면발이 굵은 것이 특징.냉면용 무김치 대신 배추김치를 낸다.상호는 평양 최고의 누정인 ‘을밀대’에서 땄다.물·비빔·회냉면이 모두 6000원이고,사리는 2000원이다. 장충동 1가 경동교회 맞은편의 평양면옥(2263-7784)은 정통 평양식 맛을 추구하는 냉면집이다.평양에서 대동면옥이란 냉면집을 하다가 월남한 변정숙 할머니의 아들 김대성(59)씨가 운영한다.얼려낸 육수는 맛이 밍밍하면서 담백하다.기름기가 모두 제거된 육수는 담백하다.1층 방앗간에서 직접 빻아 쓰는 면발이 구수하면서도 약간 거칠다.드물게도 꿩냉면(7500원)도 한다.안세병원 뒤쪽에 분점(549-5500)도 냈다.냉면·비빔냉면 6500원,사리 4000원. 평양식 냉면만큼이나 유명세를 타는 것이 함흥식 냉면이다.질긴 면발,매콤·새콤·달콤한 양념,뜨거운 육수.이런 삼박자를 갖춘 함흥 냉면은 오장동에 몰려있다.대표적인 함흥냉면(2267-9500)은 가느다란 면발이 부드러우면서도 고무줄처럼 질기다.맛은 여성스럽고 양이 좀 적다.간재미 회를 쓰는 회냉면(5500원)이 달콤하면서 매운 맛이 일품이다.물냉면·비빔냉면 모두 5500원,사리는 2500원.인근의 흥남집(2266-0735)은 면발이 덜 세련된 느낌이다.투박하면서 거칠어 남성스럽다.기호에 따라 참기름과 양념장을 넣고 비벼 먹는 것이 제 맛이다.회냉면·비빔냉면이 5500원씩이다. 이밖에 강원도 속초시의 함흥냉면옥(033-633-2256)은 정통 함흥식 냉면 한 가지만을 고집하고 있다.부산 창신동1가의 원산면옥(051-245-2310),대구의 강산면옥(053-425-0840),대전의 사리원면옥(042-256-6506)과 숯골원냉면(042-861-3287),경남 진주냉면의 맥을 잇는 진주 평거동의 진주냉면(055-747-7428),사천시 재건냉면(055-852-0723)과 평택시의고박사냉면집(031-655-4252) 등도 지역을 대표하는 냉면 명가다.또 동인천역에서 중앙시장쪽으로 나오면 이른바 ‘세숫대야 냉면집’ 20여곳이 집중해 있다.큰 그릇에 냉면을 가득 담아준다. ■색다른 맛 냉면 진화된 맛 ●비취냉면 냉면에 과일 고명이 과연 어울릴까.이런 의문점의 해답을 찾고 싶다면 서울 압구정동의 온더락(544-1840)을 찾아보자.고급 중국요리 전문점인 이곳에서는 포도,산딸기,귤,키위,복숭아,체리 등 10가지 과일을 고명으로 올린 냉면을 선보이고 있다.면에는 시금치를 넣어 ‘비취냉면’으로 불린다. 5년전 이곳에서 직접 개발해 선보이고 있는 이 냉면은 여름철뿐만 아니라 1년내내 꾸준히 인기있는 메뉴 중 하나다. 일반 냉면 육수에 고추를 넣어 더해진 가벼운 매운 맛에 지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과일의 새콤달콤함이 조화를 이룬다.과일 외에도 오징어,새우,해파리,해삼 등이 들어있어 겨자를 곁들여 먹으면 양장피를 먹는 듯한 느낌도 난다.가격은 냉면값으로는 다소 부담스러운 1만 2000원. ●명태회냉면 새콤달콤한 비빔냉면에 씹는 맛이 더해진 회냉면.하지만 고명으로 올리는 홍어회나 가자미회가 입에 맞지 않아 외면하는 사람들도 있다.서울 신사동의 순(純)함흥냉면(540-0002)에서는 명태회를 올려 누구나 부담없이 회냉면을 즐길 수 있다.반건조 명태로 만든 회는 꾸둘꾸둘한 질감에 씹을수록 고소하다.새콤달콤한 비빔장과 어울려 자꾸 손이 간다.함흥 위쪽에 자리잡은 단천 지방이 바로 이 명태회냉면으로 유명하다.이곳에서 남쪽으로 내려온 사람들이 마침 명태로 유명한 속초에 정착,속초에 명태회냉면의 맛을 심어줬다. 사장 김용덕(44)씨가 속초의 유명한 ‘단천면옥’에서 직접 만드는 법을 배워 지난 5월에 문을 열었다.면발도 이 집의 자랑거리.흔히 면에 들어가는 재료배합까지만 사람손이 가고 반죽부터는 기계힘을 빌리지만 이곳은 다르다.100% 손반죽을 고집하고 있다.또 무형문화재 22호인 김선익씨의 방짜그릇을 사용하고 있다.속초 현지 직송 재료,손반죽 거기에다 최고급 그릇에 비해 가격은 놀랄 만큼 저렴하다.일반 냉면은 3900원,회냉면은 5000원. ●컬러 냉면 냉면 한 그릇으로 입은 물론 눈까지 즐겁길 바란다면 지나친 욕심일까. 서울 잠실의 냉면짱!용면가(414-5460)에서는 당연한 권리(?)다.냉면발이 빨강,초록,노랑 등 5가지나 돼 기존면의 밋밋한 색을 벗어던졌다.석류,딸기,검은콩,신선초,쑥,녹차,율무,팥 등 몸에 좋은 재료로 색을 내 건강에도 좋다. 맛은 기본.부산에서 20년간 ‘용수면옥’을 운영해온 냉면 대가 손용섭(57)씨의 솜씨이기 때문이다.면이 쫄깃하면서도 부드러워 비빔냉면(4000원)으로 먹어도 좋고 사골과 닭으로 낸 육수 맛이 그만인 물냉면(4500원)은 더 맛있다.손사장은 97년 냉면에 색을 내는 기술에 대해 특허등록을 마쳤다. 서울에 컬러냉면 전문점을 선보인 지 이제 4개월째지만 이색적인 면발에 끌려 들렀다 맛에 반해 이곳을 계속 찾는 손님들이 많다. ●청량리 할머니 냉면 자장과 짬뽕 사이에서 고민하는 ‘중국집 딜레마’는 냉면집에도 존재한다.비빔냉면을 먹자니 국물과 함께 후루룩 넘어가는 물냉면이 아쉽고 물냉면을 먹자니 새콤한 비빔냉면이 유혹한다.서울 제기동 청량리역 인근 시장에 자리잡은 할머니냉면(963-5362)에서는 두가지를 동시에 맛볼 수 있다.평범한 냉면에 올라오는 고명은 오이,무,찐계란으로 단촐하다.여기에 8가지 재료를 넣어 만든 ‘할머니표 다대기’를 얹어주고 육수를 주전자째 내준다.비빔냉면을 원하면 취향에 따라 설탕을 조금 넣어 비벼먹으면 된다.물론 육수를 부어먹으면 물냉면으로 변신!이곳을 일반 분식집 냉면과 차별화 시켜주는 양념은 다소 맵다.반쯤 비빔냉면으로 먹다 육수를 부어먹으면 좋다.김정숙(59)사장은 28년 이곳에 분식집을 열었고 15년전부터는 가장 인기 있는 메뉴인 냉면만을 판매하기 시작했다.가게에 들어서면 일반 냉면(3000원)인지 곱빼기(4000원)인지만 얘기하면 된다. 글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사진 이종원·안주영기자 jongwon@seoul.co.kr ˝
  • 여름의 맛 냉면 골라먹자

    여름의 맛 냉면 골라먹자

    장마철이라곤 하지만 언뜻언뜻 내비치는 뙤약볕 폭염이 버겁다.몸도 마음도 지치고,입맛도 저만치 달아났다.이럴 때 생각나는 먹을거리 가운데 하나가 냉면이다.살얼음이 앉은 육수를 들이켜면 다소나마 열기를 가라앉힐 수 있다.툭툭 끊어 먹는 면발에 식욕도 살아나게 마련이다.우리의 대표적인 여름 음식인 냉면은 북부지방이 본고장이지만 전국민의 입맛을 사로잡았다.냉면의 주재료인 국수류가 우리나라에 들어 온 것은 고려시대.하지만 냉면에 대한 기록은 ‘동국세시기’ 등 조선 말엽부터 보인다.‘고종황제도 냉면을 즐겼다.’고 하는 기록으로 미뤄 냉면이 남하한 지는 꽤 오래됐다. 글 이기철·나길회기자 chuli@seoul.co.kr 사진 김명국·이호정기자 daunso@seoul.co.kr 냉면이 전국적으로 퍼지면서 대중화된 것은 6·25이후.월남한 이북사람들이 정착하면서 어엿하게 뿌리를 내리게 됐다.이전에는 냉면의 주재료인 메밀을 한 겨울 먹었단다.그래서 냉면은 세번 떨면서 먹는다는 말이 생겨났다.“먹으러 가면서 떨고,먹으면서 떨고,돌아가면서 떤다.”고. 냉면은 크게 평양식과 함흥식으로 나뉜다.보통 ‘물냉면’으로 부르는 평양식의 면발은 메밀과 전분을 섞어 면을 뽑는데 메밀이 70∼80%를 차지한다.서울 장충동 평양면옥의 김대성(59)사장은 “옥쌀(메밀)은 끈기가 없는 탓에 전분을 섞어야 점성이 유지된다.”며 “전분을 최소한으로 쓰면서 메밀 특유의 구수한 맛을 유지하는 것이 냉면의 비결”이라고 말했다.소고기의 사태와 양지머리 등을 고아낸 육수를 얼렸다가 면과 함께 띄워낸다.무슨 맛인지 모를 정도로 밍밍하면서 시원하고 담백한 맛을 제일로 친다. 반면 ‘비빔면’으로 불리는 함흥식의 면은 쇠심줄처럼 질긴 듯 쫄깃하다.고구마 전분이 많이 들어간 까닭이다.양념장에다 동해에서 나는 가자미나 홍어 등을 얹어 먹는다.매서운 겨울 삭풍을 이기려는 듯 맛이 강하다.고기나 뼈를 곤 뜨거운 국물인 장국이 곁들여 나온다.대체로 면발은 평양식보다 가늘고 색깔이 진하다.남한이 원산지인 진주냉면도 아스라히 맥을 잇고 있다.진주냉면은 메밀을 많이 쓰고 전분을 조금 섞어 만든 것으로 고기를 쓰지 않는다.평양냉면이 무를 얇게 저며 올리는 반면,진주냉면은 1년 삭힌 배추김치를 다져 넣는다.육수도 바지락·마른 홍합·마른 명태·표고버섯 등으로 만든다.진주냉면의 신은자(39)씨는 “옛 기록에는 평양냉면에 버금가는 것이 진주냉면”이었다고 자랑했다. 전통 냉면집은 찾는 곳만 찾게된다.왜 그럴까?이에 대한 해답으로 서울 입정동 을지면옥의 이성민(45)씨는 주방을 보여줬다.주방이 손님을 받는 1층 홀보다 더 넓다.주방에선 메밀을 빻아 가루로 만들어 면발을 뽑고 삶고 건져낸다.메밀이 쌓인 한쪽에선 육수를 삶아 식혔다가 냉동한다.간단히 말하면 냉면 공장이 들어선 셈이다.이씨는 “냉면을 제대로 만들려면 주방은 20∼30평은 돼야 한다.”고 말했다.이러니 금싸라기같은 도심에선 ‘돈안되는 주방이 크게 차지하는’ 냉면집을 차리기가 쉽지 않을 수밖에. 또 한가지.메밀을 빻아 냉면을 뽑아 내는 일이 너무 힘들고,미리 해둘 수 없다는 것이다.주방이 넓은 만큼 일하는 사람들의 절반 이상이 주방에 있다.이씨는 “평양식 냉면의 경우 면을 미리 뽑아 두면 10분만 지나면 불어서 못먹게 된다.”고 설명했다. 냉면을 어떻게 먹으면 맛있을까?평양식의 경우 고명으로 얹어 나오는 삶은 계란을 먼저 먹어야 맛있다는 주장도 있다.하지만 을지면옥에서 소주를 따르던 한 할아버지는 “선주후면(先酒後麵)이야.”라며 끼어들었다.주문한 냉면이 나오는 동안 반주를 곁들여야 한다는 설명이다. 이씨는 “냉면을 고기와 메밀김치(무김치)를 싸서 먹어면 더 맛있다.”고 소개했다.냉면이 나오면 사발째 육수를 들이켜는 사람도 있다.면이 길고 질기다고 자르지 말라고도 한다.하지만 김씨는 “냉면 먹는 법이 어딨어.식성대로 먹으면 되지.”라고 잘랐다. 평양식 냉면에 식초와 겨자를 넣는 것도 이유가 있다.식초는 살균작용을 하면서 시원한 맛을 더욱 강조해준다.홀리데이인서울의 한식당 이원의 김창수(57) 조리장은 “겨자는 입맛을 상큼하게 하고 메밀의 찬 기운을 중화하는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이런 냉면도 젊은 세대들의 다양한 입맛에 맞춰 진화하고 있다.컬러냉면,과일냉면,야콘냉면,녹차냉면 등이 대표적이다.요즘에는 냉면 제품도 많이 나와 집에서도 만들어 먹을 수 있게 됐다.김 조리장은 “마른 면을 삶을 때는 살짝 끓여서 곧바로 꺼내 얼음물에 헹궈야 면이 엉키지 않고 쫄깃해진다.”고 말했다. ■김창수의 육수 요리조리 김창수 조리장은 35년째 한식만 외길로 걷고 있다.홀리데이인서울의 한식당 이원(02-7107-167)의 입맛을 책임진 그는 “가족이 먹는다는 심정으로 음식을 만든다.”고 말했다. ●물냉면 육수(4인분) 재료 물 2ℓ,양지머리 125g,닭고기 100g,대파 50g,무 (A)개,건고추 2개,마늘 1통,통후추·월계수·감초 약간씩 만드는 법 (1)큰 냄비에 재료를 모두 넣고 2시간 정도 끓여낸다.(2)양지머리는 1시간 30분정도 지나면 건져낸다.얇게 썰어 편육으로 먹거나 냉면 고명으로 쓰면 된다.(3)(1)이 끓으면 체로 걸러 식힌 다음 소금·설탕으로 간을 해서 식힌다.냉동칸에 넣어 살강살강 얼려도 좋다. 다대기 (설탕 20g,식초·고춧가루·겨자·소금 10g씩) 비빔냉면 양념장(설탕 10g,간장·참기름 20g씩,다진 마늘 5g,깨 2g,육수 약간을 넣어 걸쭉하게 섞는다.) ■새콤달콤 냉면 좀 하는집 서울 을지로3가에서 청계3가로 가는 길목의 오른쪽 중간쯤에 있는 을지면옥(2266-7052)은 실향민들의 사랑방 역할을 하는 평양식 냉면 전문점이다.자리에 앉으면 냉면을 삶은 온수를 내온다.뭐라고 꼬집을 수 없는 알듯 말듯한 맛이다.그러나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메밀 향이 전해온다.온수에 간장 몇방울을 타서 마시면 냉면 마니아처럼 보일 것이다.넓은 주방에서 매일 직접 메밀을 빻아 즉석에서 면발을 뽑아 삶아낸다.메밀 특유의 향이 더욱 살아있다. 을지면옥의 특징은 면발이 가늘면서 길다.부드러운 면발이 뚝뚝 끊긴다.말끔한 육수에 파를 송송 썰어 넣고,고춧가루·깨를 솔솔 뿌렸다.삶은 계란 반개와 잘 익은 소고기 수육도 몇 점보인다.자극이 전혀 없으면서 개운한 맛이 난다.냉면은 6500원이다.적잖은 양이지만 사리(3500원)도 추가할 수 있다. 서울 마포구 염리동사무소 옆의 을밀대(717-1922)는 굵은 면발과 살얼음 육수로 유명한 냉면 전문점이다.을밀대의 면발은 다른 집보다 배 정도 굵다.얼핏보면 불은 것처럼 보이지만 한입 가득 먹어보면 졸깃하면서 툭툭 끊어지는 게 별미다. 육수를 만들 때 소고기 양지와 사골을 함께 고아낸다.색깔이 짙고 맛이 깊으면서도 감칠 맛이 난다.육수를 얼려 살얼음이 동동 떠 여름 더위를 식히기에 딱 좋다.비빔냉면도 면발이 굵은 것이 특징.냉면용 무김치 대신 배추김치를 낸다.상호는 평양 최고의 누정인 ‘을밀대’에서 땄다.물·비빔·회냉면이 모두 6000원이고,사리는 2000원이다. 장충동 1가 경동교회 맞은편의 평양면옥(2263-7784)은 정통 평양식 맛을 추구하는 냉면집이다.평양에서 대동면옥이란 냉면집을 하다가 월남한 변정숙 할머니의 아들 김대성(59)씨가 운영한다.얼려낸 육수는 맛이 밍밍하면서 담백하다.기름기가 모두 제거된 육수는 담백하다.1층 방앗간에서 직접 빻아 쓰는 면발이 구수하면서도 약간 거칠다.드물게도 꿩냉면(7500원)도 한다.안세병원 뒤쪽에 분점(549-5500)도 냈다.냉면·비빔냉면 6500원,사리 4000원. 평양식 냉면만큼이나 유명세를 타는 것이 함흥식 냉면이다.질긴 면발,매콤·새콤·달콤한 양념,뜨거운 육수.이런 삼박자를 갖춘 함흥 냉면은 오장동에 몰려있다.대표적인 함흥냉면(2267-9500)은 가느다란 면발이 부드러우면서도 고무줄처럼 질기다.맛은 여성스럽고 양이 좀 적다.간재미 회를 쓰는 회냉면(5500원)이 달콤하면서 매운 맛이 일품이다.물냉면·비빔냉면 모두 5500원,사리는 2500원.인근의 흥남집(2266-0735)은 면발이 덜 세련된 느낌이다.투박하면서 거칠어 남성스럽다.기호에 따라 참기름과 양념장을 넣고 비벼 먹는 것이 제 맛이다.회냉면·비빔냉면이 5500원씩이다. 이밖에 강원도 속초시의 함흥냉면옥(033-633-2256)은 정통 함흥식 냉면 한 가지만을 고집하고 있다.부산 창신동1가의 원산면옥(051-245-2310),대구의 강산면옥(053-425-0840),대전의 사리원면옥(042-256-6506)과 숯골원냉면(042-861-3287),경남 진주냉면의 맥을 잇는 진주 평거동의 진주냉면(055-747-7428),사천시 재건냉면(055-852-0723)과 평택시의고박사냉면집(031-655-4252) 등도 지역을 대표하는 냉면 명가다.또 동인천역에서 중앙시장쪽으로 나오면 이른바 ‘세숫대야 냉면집’ 20여곳이 집중해 있다.큰 그릇에 냉면을 가득 담아준다. ■색다른 맛 냉면 진화된 맛 ●비취냉면 냉면에 과일 고명이 과연 어울릴까.이런 의문점의 해답을 찾고 싶다면 서울 압구정동의 온더락(544-1840)을 찾아보자.고급 중국요리 전문점인 이곳에서는 포도,산딸기,귤,키위,복숭아,체리 등 10가지 과일을 고명으로 올린 냉면을 선보이고 있다.면에는 시금치를 넣어 ‘비취냉면’으로 불린다. 5년전 이곳에서 직접 개발해 선보이고 있는 이 냉면은 여름철뿐만 아니라 1년내내 꾸준히 인기있는 메뉴 중 하나다. 일반 냉면 육수에 고추를 넣어 더해진 가벼운 매운 맛에 지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과일의 새콤달콤함이 조화를 이룬다.과일 외에도 오징어,새우,해파리,해삼 등이 들어있어 겨자를 곁들여 먹으면 양장피를 먹는 듯한 느낌도 난다.가격은 냉면값으로는 다소 부담스러운 1만 2000원. ●명태회냉면 새콤달콤한 비빔냉면에 씹는 맛이 더해진 회냉면.하지만 고명으로 올리는 홍어회나 가자미회가 입에 맞지 않아 외면하는 사람들도 있다.서울 신사동의 순(純)함흥냉면(540-0002)에서는 명태회를 올려 누구나 부담없이 회냉면을 즐길 수 있다.반건조 명태로 만든 회는 꾸둘꾸둘한 질감에 씹을수록 고소하다.새콤달콤한 비빔장과 어울려 자꾸 손이 간다.함흥 위쪽에 자리잡은 단천 지방이 바로 이 명태회냉면으로 유명하다.이곳에서 남쪽으로 내려온 사람들이 마침 명태로 유명한 속초에 정착,속초에 명태회냉면의 맛을 심어줬다. 사장 김용덕(44)씨가 속초의 유명한 ‘단천면옥’에서 직접 만드는 법을 배워 지난 5월에 문을 열었다.면발도 이 집의 자랑거리.흔히 면에 들어가는 재료배합까지만 사람손이 가고 반죽부터는 기계힘을 빌리지만 이곳은 다르다.100% 손반죽을 고집하고 있다.또 무형문화재 22호인 김선익씨의 방짜그릇을 사용하고 있다.속초 현지 직송 재료,손반죽 거기에다 최고급 그릇에 비해 가격은 놀랄 만큼 저렴하다.일반 냉면은 3900원,회냉면은 5000원. ●컬러 냉면 냉면 한 그릇으로 입은 물론 눈까지 즐겁길 바란다면 지나친 욕심일까. 서울 잠실의 냉면짱!용면가(414-5460)에서는 당연한 권리(?)다.냉면발이 빨강,초록,노랑 등 5가지나 돼 기존면의 밋밋한 색을 벗어던졌다.석류,딸기,검은콩,신선초,쑥,녹차,율무,팥 등 몸에 좋은 재료로 색을 내 건강에도 좋다. 맛은 기본.부산에서 20년간 ‘용수면옥’을 운영해온 냉면 대가 손용섭(57)씨의 솜씨이기 때문이다.면이 쫄깃하면서도 부드러워 비빔냉면(4000원)으로 먹어도 좋고 사골과 닭으로 낸 육수 맛이 그만인 물냉면(4500원)은 더 맛있다.손사장은 97년 냉면에 색을 내는 기술에 대해 특허등록을 마쳤다. 서울에 컬러냉면 전문점을 선보인 지 이제 4개월째지만 이색적인 면발에 끌려 들렀다 맛에 반해 이곳을 계속 찾는 손님들이 많다. ●청량리 할머니 냉면 자장과 짬뽕 사이에서 고민하는 ‘중국집 딜레마’는 냉면집에도 존재한다.비빔냉면을 먹자니 국물과 함께 후루룩 넘어가는 물냉면이 아쉽고 물냉면을 먹자니 새콤한 비빔냉면이 유혹한다.서울 제기동 청량리역 인근 시장에 자리잡은 할머니냉면(963-5362)에서는 두가지를 동시에 맛볼 수 있다.평범한 냉면에 올라오는 고명은 오이,무,찐계란으로 단촐하다.여기에 8가지 재료를 넣어 만든 ‘할머니표 다대기’를 얹어주고 육수를 주전자째 내준다.비빔냉면을 원하면 취향에 따라 설탕을 조금 넣어 비벼먹으면 된다.물론 육수를 부어먹으면 물냉면으로 변신!이곳을 일반 분식집 냉면과 차별화 시켜주는 양념은 다소 맵다.반쯤 비빔냉면으로 먹다 육수를 부어먹으면 좋다.김정숙(59)사장은 28년 이곳에 분식집을 열었고 15년전부터는 가장 인기 있는 메뉴인 냉면만을 판매하기 시작했다.가게에 들어서면 일반 냉면(3000원)인지 곱빼기(4000원)인지만 얘기하면 된다. 글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사진 이종원·안주영기자 jongwon@seoul.co.kr
  • [박완서의 살아가는 이야기] 잘 가라,슬픈 6월

    한주 걸러씩이긴 하지만 꼬박 6개월 동안 이 난을 차지해 왔다.이 귀한 지면에 신변잡기식 잡담이나 하면 안 되는 줄 알지만 정치 경제에는 워낙 아는 게 적고,내 생각도 이랬다 저랬다 종잡을 수 없을 때가 많은지라 내가 잘 아는 얘기밖에 못썼다.생활반경이 협소해 밑천이 달리다 보니 자연히 우리 동네 이야기를 많이 썼다.그래도 읽어주고 논평해준 독자가 적지 않았다는 걸 행복하게 생각한다.멀리서 우리 동네를 찾아와준 분도 있었다.중년을 넘은 분이 워커힐 앞서부터 우리 동네까지 물어물어 걸어왔다고 해서 놀라고 민망한 적도 있다. 내가 너무 우리 동네를 미화시킨 게 아닌지 반성도 되었다.동네 선전할 마음이 있었던 게 아니라 도심에서 떨어져 나오면서 새롭게 눈뜬 사계절의 변화,숲의 아름다움,작은 꽃들의 신비는 아무리 찬탄해도 내 글재주가 모자라면 모자랐지 넘치진 않았다고 생각한다.그러나 이런 것들을 소유하게 되어 아름답게 보인 게 아니고 가까이 있으니까 관찰하게 되고,관찰하다 보니 발견하게 되었을 뿐 어디에나 널린 것들이다.우리 강산 어디고 아름답지 않은 곳은 없고,서울은 특히 복 받은 고장이다.내 글만 보고 내가 사는 데를 부러워하는 소리를 들으면 혹시 우리 동네를 위해 일조를 한 게 아닌가 으쓱할 적도 있다. 가끔은 내가 마치 분에 넘치는 호화 생활을 하고 있는 것처럼 악의적으로 비꼬는 소리를 듣기도 했는데 만일 이 정도가 호화생활이라 해도 나는 이 나이까지 가사노동과 글쓰기를 하루도 쉬지 않고 열심히 해왔으니까 이 정도는 부끄러움 없이 누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그리고 또 하나 일러두고 싶은 건 서울에서 웬만한 아파트 한 채 쓰고 사는 사람이라면 마음만 먹으면 이 정도는 쉽게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아파트 팔아 땅집 사는 것은 돼지 팔아 닭 사는 것처럼 힘 안 드는 일이다.아파트를 판다는 건 아파트의 모든 편리도 함께 파는 것이다. 대형마트,교통편,근접한 통학거리,좋은 학군,학원과 스포츠 센터 그런 것들이 제공하는 다양한 편리를 희생할 각오를 해야 한다.그 무엇보다도 각오해야할 큰 희생은 집이 보장하는 신속한 환금성과 재테크의 달콤한 맛이다.아파트 값이 얼마 올랐다고 계산하는 재미를 모르고 일가단란의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주부가 과연 몇이나 될까.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창밖에선 살구나무가 누렇게 익은 살구를 뚝뚝 떨구고 있고 숲은 시퍼렇게 번들대며 마치 한 마리의 거대한 공룡처럼 괴롭게 몸을 뒤채고 있다.자연에는 이렇게 위로와 공포가 함께 있다.온갖 편의를 희생하고 얻은 것이 고작 이런 것들이다. 뭐니뭐니 해도 진정한 위안은 사람으로부터 온다.대개 큰 저택이 많은 이름난 동네에는 나이든 사람이 많이 살아 아이들 보기가 어렵다는데 우리 동네엔 초등학생부터 청소년까지 아이들이 많다.초등학생도 동구 밖까지 걸어 나가 버스를 타야 한다.아침저녁 창 밖으로 아이들이 등하교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게 큰 낙이다.날씨가 더워진 날 휴일 온종일 시냇물에서 첨벙대는 아이들의 희희낙락하는 소리를 듣고 있으면 그 아이들 부모의 어려운 선택이 얼마나 예쁜지 박수라도 쳐주고 싶어진다. 끝으로 아무리 세상일에 참견하고 싶지 않아도 김선일씨 가족에게 심심한 애도를 표하고 싶은 마음을 비켜가서는 안될 것 같다.고인이 죽을 때 얼마나 무섭고 아팠을 것이며 남은 가족의 심정은 어떠할까.그 가슴 에이는 비탄과 원한을 어이할 것인가.나는 6월달이 싫다.헤일 수 없이 많은 사람의 가슴을 쥐어뜯게 한 달이기 때문이다. 아직도 6월달만 되면 몸살 끼를 느끼면서 이놈의 달이 언제 가나,두들겨 보내는 심정이 되곤 했는데 기어코 그놈의 6월이 또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죽음이 죽음을 부르고 앙갚음이 앙갚음을 부르는 그 끝없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칼을 쥔 자는 강자일까,약자일까,아니면 시간일까.6·25가 난 지 50여년도 길지만 긴긴 구약(舊約)의 역사를 생각할 때 세월이 지나면 잊혀지겠지,망각의 작용에만 맡긴다는 건 인간으로서의 책임회피밖에 안 된다는 생각이 든다.내가 6월달 탓이나 하는 것처럼…. 쓰라린 마음으로 김선일씨의 명복을 빈다.˝
  • 6월의 노래 ‘비목’ 작사가 한명희 교수

    지금부터 꼭 40년 전의 일이다.강원도 화천군 백암산의 비무장지대에 한 낭만주의자 초급장교가 배속됐다.초가을 오후 최전방 순찰에 나선 그는 잡초 우거진 양지 바른 산모퉁이에 멈춰섰다.이끼 낀 돌무더기가 군홧발에 툭 걸렸기 때문이다. 그는 무심코 돌무더기를 슬쩍 밀쳐냈다.뭔가 삐죽이 나왔다.막대기로 흙을 파헤쳤다.녹슨 철모가 손에 잡혔다.천천히 끄집어올렸다.해골 하나가 철모에 끼여 있었다.해골은 자신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또 다른 돌무더기를 밀쳐냈다.역시 비슷한 광경이 연이어 벌어졌다. ●군대서 무명용사 유골 보고 ‘비목’ 작사 아,이게 무명용사들의 주검이구나.나처럼 젊었을 나이에 6·25를 만나 싸우다 죽어간 그대들이 아닌가.그는 힘없이 풀썩 주저앉았다.가슴을 쥐어짜는 슬픔에 펑펑 소리내어 울었다. 그렇게 한참을 멍하니 있다가 달빛에 의지해 겨우 일어섰다.이때였다.바로 옆 산모퉁이에 소복 차림의 여인이 나타났다.움찔 놀랐다.눈을 여러번 비벼가며 자세히 쳐다봤다.새하얀 산목련이 달빛을 받아 슬픈 여인의 모습으로 서 있었다.그 여인은 화약냄새를 온몸으로 맡으며 무명용사의 넋을 말없이 달래고 있었다. 국민가곡 ‘비목’은 이렇게 탄생했다.그 초급장교 한명희(65)씨는 서울시립대 음악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한 교수는 요즘 ‘비목’과 같이 영원히 기억될 ‘아주 특별한 일’을 준비한다.6·25전쟁을 테마로 한 ‘한국전쟁 추념 문화단지’ 조성을 위해 백방으로 뛰고 있다.이 단지는 전쟁박물관·평화의 종탑·칼토피아(Cultur+Utopia) 등을 갖춘 문화와 예술적 성지(聖地)를 지향한다.워싱턴의 ‘메모리얼 파크’를 연상하면 비슷하다고 했다. 경기도 남양주시 와부읍 도곡리 ‘이미시문화원’에서 그를 만났다.‘ㅇ·ㅁ·ㅅ’을 의미하는 ‘이미시’는 그가 만든 말이다.30년전 이 근처에 처음 등산왔을 때 산과 계곡,한강이 그럴 듯하게 어우러진 모습에 반해 집 한 채를 계약,곧바로 삶의 터전을 삼았다.이후 농부처럼 하루하루 벽돌 쌓으며 집을 꾸미기 시작한 것이 지금의 ‘문화공간’으로 변모했다. ●한국판 ‘메모리얼 파크’ 꿈꾸다 최근 그는 이곳에서 문화단지 조성을 위한 설명회를 가져 주목을 끌었다.강영훈 전 국무총리·조성태 전 국방장관·권태준 전 유네스코 사무총장·김형국 서울대 교수·김후란 시인·서경석 예비역 중장·서지문 고려대 교수·이애주 서울대 교수·최정호 전 연세대 교수·표재순 연출가 등 30여명의 인사가 참석했다.이들은 문화추념단지 건립을 위한 입법청원을 추진하는 데 적극 동참하기로 했다. 추념단지 조성 규모는 남양주시가 자체적으로 그린벨트를 해제할 수 있는 남양주 일대의 12만여평 정도가 우선 거론된다.이를 바탕으로 6·25전쟁 60주년이 되는 2010년에 완공한다는 목표를 세웠다.그는 여기에 한국을 도운 16개국뿐만 아니라 적군이던 북한·중국 등 참가국가별로 희생자를 추모하는 조형물을 갖추게 될 것이라고 했다.가칭 ‘화해의 비(碑)’로 정했다. 추진배경은 이렇다.1996부터 강원도 화천에서 열리는 ‘비목문화제’에 꼭 참석해온 그는 해마다 여름이면 젊은 장교 시절처럼 이름없는 유골들의 넋을 기려왔다.그러면서 이들을 위한 문화예술 마당이 없다는 현실을 안타깝게 생각했다.또 학자들이 전쟁사를 연구하거나 국제적 평화회담을 언제든 개최할 수 있는 장소가 필요하다는 판단에서 오랫동안 ‘추념 문화단지’를 구상해 왔다고 덧붙였다. ●이름없이 사라진 넋 기릴 문화마당 그는 1939년 충북 충주에서 가난한 농가의 외아들로 태어났다.어릴 때부터 공상하기를 좋아했다.‘인생이 뭐냐.’는 물음에 자꾸 빠져 제때의 공부시간을 놓치기가 일쑤였다.서울대 철학과에 진학하려고 시험을 봤으나 두번 고배를 마셨다.삼수 끝에 그는 친구의 권유로 서울대 국악과(2회)에 지원,합격했다. 대학 1학년때 그는 서울대 음대 학장인 현제명 박사의 장례식을 보고 장차 큰 사람이 되어야 하겠다고 다짐했다.장례식때 ‘해는 져서 어두운데 찾아오는 사람없어‘라는 노래가 울려퍼지는 광경에 가슴 뭉클하는 감동을 느꼈다. 64년 대학 졸업과 동시에 ROTC 2기 소위로 임관,전방부대인 7사단에 배치받았다.이때 비무장지대를 순찰하면서 무명용사 수백구의 해골을 접했다.배추 심으려고 흙을 파면 해골이 무더기로 발굴되는 광경을 보고 밤잠을 설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휴가요? 울고 나왔다가 울고 들어갔지요.친구들과 술을 마실 적마다 그 해골들이 자꾸 떠올라 저를 슬프게 만들었습니다.” ●PD에서 교수까지… 가곡보급에 힘써 66년 제대후 그는 TBC 프로듀서 공채3기로 입사했다.이듬해에는 ‘가곡의 언덕’이라는 주간 라디오 프로그램을 맡았다.이때 ‘일출봉’과 ‘기다리는 마음’을 자주 내보냈다.예상 밖으로 인기를 끌었다.그러자 이번에는 ‘가곡의 오솔길’이라는 일일 프로를 맡았다.하루는 고교 교사로 있는 군대 친구한테서 새노래 ‘얼굴’을 받아 방송에 내보냈다.‘동그라미 그리려다 무심코 그린 얼굴‘,또 한번 히트쳤다. 그러던 어느날.같은 PD이자 가곡운동을 함께 벌이던 장일남씨가 갑자기 시 한수 지어달라고 했다.그는 이날 서울 무교동 일대에서 술 마시며 돌아다니다가 밤늦게 방송국으로 발길을 돌렸다.숙직하던 동료를 집에 보내고 대신 숙직을 했다.잠깐 상념에 잠겼다.백암산 산모퉁이가 저절로 떠올랐다.펜을 들었다.느낌을 그대로 원고지에 옮겼다.‘초연이 쓸고 간 깊은 계곡….’ 제목을 ‘비목’이라고 했다. 이튿날 장일남씨에게 원고를 주면서 창피하니까 본명이 아니라 일무(一無)라는 예명으로 대신해 달라고 했다.방송이 나가자 반응이 무척 좋았다.작사가 ‘한일무’에서 ‘한명희’로 바뀐 것은 5년 후였다.이 무렵 가곡 ‘산목련’을 썼지만 방송 도중 원판이 지워져 영영 미아가 돼 버렸다. 이후 성균관대에서 예술철학 박사학위를 취득하면서 10년 PD생활을 접고 75년부터 학자의 길로 들어섰다. 오는 8월 정년을 맞는 그는 “요즘 우리 사회는 전체적으로 피곤한 것 같다.”면서 “산업사회에 풍류문화와 선비정신을 접목시키는 진정한 자세가 필요한 때”라고 강조했다. 김문기자 km@seoul.co.kr˝
  • [박완서의 살아가는 이야기] 잘 가라,슬픈 6월

    한주 걸러씩이긴 하지만 꼬박 6개월 동안 이 난을 차지해 왔다.이 귀한 지면에 신변잡기식 잡담이나 하면 안 되는 줄 알지만 정치 경제에는 워낙 아는 게 적고,내 생각도 이랬다 저랬다 종잡을 수 없을 때가 많은지라 내가 잘 아는 얘기밖에 못썼다.생활반경이 협소해 밑천이 달리다 보니 자연히 우리 동네 이야기를 많이 썼다.그래도 읽어주고 논평해준 독자가 적지 않았다는 걸 행복하게 생각한다.멀리서 우리 동네를 찾아와준 분도 있었다.중년을 넘은 분이 워커힐 앞서부터 우리 동네까지 물어물어 걸어왔다고 해서 놀라고 민망한 적도 있다. 내가 너무 우리 동네를 미화시킨 게 아닌지 반성도 되었다.동네 선전할 마음이 있었던 게 아니라 도심에서 떨어져 나오면서 새롭게 눈뜬 사계절의 변화,숲의 아름다움,작은 꽃들의 신비는 아무리 찬탄해도 내 글재주가 모자라면 모자랐지 넘치진 않았다고 생각한다.그러나 이런 것들을 소유하게 되어 아름답게 보인 게 아니고 가까이 있으니까 관찰하게 되고,관찰하다 보니 발견하게 되었을 뿐 어디에나 널린 것들이다.우리 강산 어디고 아름답지 않은 곳은 없고,서울은 특히 복 받은 고장이다.내 글만 보고 내가 사는 데를 부러워하는 소리를 들으면 혹시 우리 동네를 위해 일조를 한 게 아닌가 으쓱할 적도 있다. 가끔은 내가 마치 분에 넘치는 호화 생활을 하고 있는 것처럼 악의적으로 비꼬는 소리를 듣기도 했는데 만일 이 정도가 호화생활이라 해도 나는 이 나이까지 가사노동과 글쓰기를 하루도 쉬지 않고 열심히 해왔으니까 이 정도는 부끄러움 없이 누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그리고 또 하나 일러두고 싶은 건 서울에서 웬만한 아파트 한 채 쓰고 사는 사람이라면 마음만 먹으면 이 정도는 쉽게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아파트 팔아 땅집 사는 것은 돼지 팔아 닭 사는 것처럼 힘 안 드는 일이다.아파트를 판다는 건 아파트의 모든 편리도 함께 파는 것이다. 대형마트,교통편,근접한 통학거리,좋은 학군,학원과 스포츠 센터 그런 것들이 제공하는 다양한 편리를 희생할 각오를 해야 한다.그 무엇보다도 각오해야할 큰 희생은 집이 보장하는 신속한 환금성과 재테크의 달콤한 맛이다.아파트 값이 얼마 올랐다고 계산하는 재미를 모르고 일가단란의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주부가 과연 몇이나 될까.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창밖에선 살구나무가 누렇게 익은 살구를 뚝뚝 떨구고 있고 숲은 시퍼렇게 번들대며 마치 한 마리의 거대한 공룡처럼 괴롭게 몸을 뒤채고 있다.자연에는 이렇게 위로와 공포가 함께 있다.온갖 편의를 희생하고 얻은 것이 고작 이런 것들이다. 뭐니뭐니 해도 진정한 위안은 사람으로부터 온다.대개 큰 저택이 많은 이름난 동네에는 나이든 사람이 많이 살아 아이들 보기가 어렵다는데 우리 동네엔 초등학생부터 청소년까지 아이들이 많다.초등학생도 동구 밖까지 걸어 나가 버스를 타야 한다.아침저녁 창 밖으로 아이들이 등하교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게 큰 낙이다.날씨가 더워진 날 휴일 온종일 시냇물에서 첨벙대는 아이들의 희희낙락하는 소리를 듣고 있으면 그 아이들 부모의 어려운 선택이 얼마나 예쁜지 박수라도 쳐주고 싶어진다. 끝으로 아무리 세상일에 참견하고 싶지 않아도 김선일씨 가족에게 심심한 애도를 표하고 싶은 마음을 비켜가서는 안될 것 같다.고인이 죽을 때 얼마나 무섭고 아팠을 것이며 남은 가족의 심정은 어떠할까.그 가슴 에이는 비탄과 원한을 어이할 것인가.나는 6월달이 싫다.헤일 수 없이 많은 사람의 가슴을 쥐어뜯게 한 달이기 때문이다. 아직도 6월달만 되면 몸살 끼를 느끼면서 이놈의 달이 언제 가나,두들겨 보내는 심정이 되곤 했는데 기어코 그놈의 6월이 또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죽음이 죽음을 부르고 앙갚음이 앙갚음을 부르는 그 끝없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칼을 쥔 자는 강자일까,약자일까,아니면 시간일까.6·25가 난 지 50여년도 길지만 긴긴 구약(舊約)의 역사를 생각할 때 세월이 지나면 잊혀지겠지,망각의 작용에만 맡긴다는 건 인간으로서의 책임회피밖에 안 된다는 생각이 든다.내가 6월달 탓이나 하는 것처럼…. 쓰라린 마음으로 김선일씨의 명복을 빈다.
  • [씨줄날줄] 참전용사/손성진 논설위원

    고지로 돌진하다 총탄에 맞고 쓰러지는 국군 용사.혹한 속에 부상당한 전우를 업고 걸어서 후퇴하는 병사.6·25 기록 필름에서 본 장면이다.6·25가 난 지도 어언 54년.점점 기억 속에서 사라져 간다.꽃다운 스무살에 참전한 용사들.벌써 고희를 넘긴 노병이 됐다. 참전 용사들은 우리의 아버지요,할아버지들이다.조국을 지켜낸 그들은 산업의 역군으로 나라를 살리는 데 다시 온몸을 던졌다.그런데도 노년이 행복하지는 않다.생존한 6·25 참전용사는 47만여명.13만 7899명은 전장에서 산화했고 살아남은 사람도 하나둘 세상을 떠났다.생존 용사들중에는 생활고로 만년을 힘들게 보내는 용사들도 많다.그들을 위해 국가가 보훈정책을 편 것은 종전 40년이 지나서다.지난 1993년에야 참전군인지원법이 제정됐다.그것도 처음에는 병원진료비 감면 정도였다.그뒤에 경북 영천과 전북 임실에 참전용사들을 위해 국립묘지를 조성했고 경기도 이천에도 묘역을 만들고 있는 것은 다행이다.장례보조비로 15만원을 주고 월 6만원의 참전수당도 지급하고 있다.그러나 이미 많은 참전용사들이 유명을 달리한 뒤다. 우방을 위해 머나먼 타국에서 젊음을 희생한 미군은 3만 6940명,유엔군은 3730명에 이른다.부산 대연동 유엔기념공원에는 11개국 2293명의 이방인 참전용사들이 잠들어 있다.에티오피아에는 한국전 참전용사들이 모여사는 코리안 빌리지가 있다.이들은 한국전에 참여했다는 이유만으로 공산정권의 핍박을 받아 궁핍한 삶을 살고 있다.외국의 참전용사들은 아직도 한국을 잊지 못하고 있다.이들을 위해 국가가 초청행사를 갖는 등 조그만 성의라도 보인 것은 겨우 수년전이다. 참전용사 지원은 아직 미흡하다.지하철 무료 탑승 등 실생활에서의 혜택은 없다.미국에는 1차 세계대전부터 이라크전쟁까지 참전한 470여만명의 베테랑이 생존해 있다.이들을 위해 미국 정부는 장례비,묘비,의료보험 혜택과 병원왕래 교통비를 준다.취업 우대,대부 지원 등의 혜택도 있고 연금은 전액 국가가 부담한다.캐나다에서는 베테랑을 위해 토지도 분양해 준다고 한다. 참전용사들은 말한다.조국을 위해 이 한 목숨 바쳤노라고.그들이 후세들에게 바라는 것은 물질적 혜택보다 고귀한 희생을 기억해주는 것이다. 손성진 논설위원 sonsj@seoul.co.kr˝
  • 첫 좌·우합동 6·25 위령제

    한국전쟁이 발발한 지 50여년이 지나 좌·우익과 피·가해자를 구분하지 않은 희생자 합동위령제가 경남 함안에서 처음으로 시도됐다. 한국전쟁 민간인희생자 전국유족회 함안지부와 전몰군경유족회 함안지회 등은 23일 오전 함안중학교 강당에서 관련단체 관계자와 유족 200여명,진석규 군수 등이 참석한 가운데 군내 불교사암연합회 주최로 ‘6·25 격전 전몰희생자 및 민간인 희생자 합동위령대제’를 열었다. 삼귀의례 등 불교식 추모의식 속에 열린 이날 행사는 민간인 희생자 유족회와 군경유족회 등이 처음으로 함께 치렀다.전국적으로도 60여곳에 유족단체가 있지만 합동으로 위령제를 연 것은 아직 전례가 없었다. 최근 미군이나 군·경에 의한 민간인 학살이나 보도연맹사건 등에 대한 진상이 드러나고 유족들도 발언에 나서면서 유족회를 결성했지만 여전히 이들은 매년 7월7일에,군경 유족회측은 6월6일 현충일에 맞춰 각각 위령제를 지내왔다. 민간인 희생자 전국유족회 이태준 상임대표는 “전국에서 이런 합동위령제는 처음이며 포용과 어울림,더불어 살기를 위한 계기를 제공했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창원 이정규기자 jeong@seoul.co.kr˝
  • [수능레이더] 외국어린이와 어울려 견문 넓히세요

    ●국제교육진흥원(www.ied.go.kr)은 오는 9월5일부터 12월5일까지 3달 동안 진행될 ‘2004 제2회 일요지구촌 학교’ 학생을 모집한다. 영어·일어·중국어반에서 각 15∼20명씩,모두 4∼5개반 80명을 선발한다.교육경비는 일체 무상,점심을 제공한다.수업은 매주 일요일 오전 10시∼오후 2시까지 이뤄진다. 지원 자격은 국내에 사는 외국인 자녀로 자국어 및 한국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한 초등학생과,해외에서 살다 귀국한 내국인 자녀로 체류 국가의 언어와 한국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한 초등학생이다.학년에 상관없이 지원할 수 있으며,지원서는 7월20일(화)까지 내면 된다.(02)3668-1326,1328. ●주니어 영어전문 브랜드 YBMCC(www.ybmecc.com)는 오는 8월22일(일) 서울 하얏트 호텔에서 열리는 ‘제1회 ECC 뉴스앵커대회’ 참가자를 모집한다.분야는 유아부(국내)와 초등A부(국내 초등 1∼3학년),초등B부(국내 초등 4∼6학년),해외거주 경험자부(유·초등부) 등 4개 부문.3∼5분 안에 자신의 학교나 주변에서 일어난 일 가운데 자신이 직접 뉴스를 만들어 발표하면 된다. 국내부에 참가하려면 해외 체류 경험이 없거나 최근 3년 동안 해외 체류 경험이 6개월 미만이어야 한다.국외부는 최근 3년 동안 6개월 이상 해외에 머무른 경험이 있거나 연속 해외체류자,해외 교포면 참가할 수 있다. 원서는 7월2일(금)까지 가까운 전국 ECC 지점에서 교부·접수한다.참가자들은 원서 접수시 자신이 직접 취재한 뉴스 원고와 테이프를 내야 한다. 1차 예선은 7월2일까지 접수된 원고와 테이프로 심사하며,이를 통과하면 지역별로 심사위원 앞에서 원고를 발표하는 2차 예선을 실시,최종 본선 진출자를 선발한다. 각 부문 대상과 1등 각 4명,2등 8명,장려상 12명 등 28명의 수상자는 오는 9월26∼29일(일∼수) 추석 연휴기간에 CNN 아시아지역 홍콩 본사를 견학한다.1688-0509. ●한국쓰리엠(www.3m.co.kr)은 8월7∼10일(토∼화) 3박4일 동안 경기도 이천 그린화재 연수원에서 열릴 예정인 제3회 ‘3M 사이언스 캠프’에 참가할 학생·교사를 모집한다. 학생 지원자격은 전국 중학교 1·2학년생 가운데 각종 과학경진대회 수상자로,지원서와 학교장 확인 및 추천서,수상경력 증명서 및 기타 서류 등을 내야 한다.80명 모집.참가비는 없다. 교사 지원자격은 일선 학교 과학교사 및 교수,연구소 연구원,과학 관련 단체 임직원 및 이와 동등한 자격 소유자로 지원서와 A4용지 2장 분량의 수업안을 내야 한다. 모집 분야는 실험실습과 발명교육,생물·화석·환경,창의성 교육,첨단과학 등 학생 탐구활동 중심과제 등이다.강의 시간과 강사료는 1교시 90분 수업에 실습기자재와 재료비 포함해 60만원.캠프가 끝나면 우수 강사 포상을 한다. 참가신청은 학생 7월12일(월)까지,교사는 6월25일(금)까지 홈페이지에서 할 수 있으며,학생 지원서류는 우편으로만 받는다.080-033-4114. ˝
  • 한국전쟁 사진 130여장 햇빛

    한국전쟁 당시 치열했던 항공전의 실상을 보여주는 사진 130여장이 반세기 만에 공개됐다.사진 제공자는 미 제5공군 1993대대 관제사로 참전한 앤슬리 플라르드 레오(73·워싱턴주 거주)씨.당시 일병이던 그는 우리 공군의 최전방 작전기지인 강릉기지 전경과 항공기들을 직접 찍거나 전우들로부터 건네받은 사진들을 보관해 왔다. 지난해 7월 미국 위스콘신주에서 열린 한 에어쇼에서 한국인 자원봉사자 이원복(78·예비역 공군 대령)씨를 만나 사진이 담긴 CD를 건네줬고,이씨는 최근 공군측에 전달,6·25전쟁 54주년 기념일을 앞두고 햇빛을 볼 수 있게 됐다.. CD에는 격납고가 없어 20여대의 F-51 무스탕이 야외 주기장에 나란히 정렬돼 있는 모습의 강릉기지 전경과 태극마크가 선명하게 찍힌 F-51 전투기,미군 수송기,트럭 등의 임무준비 광경이 담겨져 있다. 또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에 선보인 미 해군의 F-4U 전투기의 활주 장면과 일본 미 8공군 기지에서 옮겨온 B-17 폭격기,미 F-9F 전투기의 야간 출격 모습도 있다.지상의 대공포 공격으로 날개에 구멍이 뚫린 채 활주로에 비상 착륙한 F-4U 전투기와 랜딩기어 이상과 연료부족으로 비상착륙을 시도하다 반파된 F-51의 사진은 전쟁의 참상을 보여주는 기록물이다. 김경록 공군사관학교 역사학 교수는 “당시 기상과 항공기 운영현황,활주로 상태 등의 정보도 보여줘 역사적 가치가 높다.”고 평가했다.공군은 이들 사진을 군사자료실에 별도로 보관하는 한편 모든 현역 장병들이 쉽게 찾아볼 수 있도록 전산화해 6·25전쟁 항공사 연구에 활용토록 할 계획이다. 조승진기자 redtrain@seoul.co.kr˝
  • [수능레이더] 외국어린이와 어울려 견문 넓히세요

    [수능레이더] 외국어린이와 어울려 견문 넓히세요

    ●국제교육진흥원(www.ied.go.kr)은 오는 9월5일부터 12월5일까지 3달 동안 진행될 ‘2004 제2회 일요지구촌 학교’ 학생을 모집한다. 영어·일어·중국어반에서 각 15∼20명씩,모두 4∼5개반 80명을 선발한다.교육경비는 일체 무상,점심을 제공한다.수업은 매주 일요일 오전 10시∼오후 2시까지 이뤄진다. 지원 자격은 국내에 사는 외국인 자녀로 자국어 및 한국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한 초등학생과,해외에서 살다 귀국한 내국인 자녀로 체류 국가의 언어와 한국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한 초등학생이다.학년에 상관없이 지원할 수 있으며,지원서는 7월20일(화)까지 내면 된다.(02)3668-1326,1328. ●주니어 영어전문 브랜드 YBMCC(www.ybmecc.com)는 오는 8월22일(일) 서울 하얏트 호텔에서 열리는 ‘제1회 ECC 뉴스앵커대회’ 참가자를 모집한다.분야는 유아부(국내)와 초등A부(국내 초등 1∼3학년),초등B부(국내 초등 4∼6학년),해외거주 경험자부(유·초등부) 등 4개 부문.3∼5분 안에 자신의 학교나 주변에서 일어난 일 가운데 자신이 직접 뉴스를 만들어 발표하면 된다. 국내부에 참가하려면 해외 체류 경험이 없거나 최근 3년 동안 해외 체류 경험이 6개월 미만이어야 한다.국외부는 최근 3년 동안 6개월 이상 해외에 머무른 경험이 있거나 연속 해외체류자,해외 교포면 참가할 수 있다. 원서는 7월2일(금)까지 가까운 전국 ECC 지점에서 교부·접수한다.참가자들은 원서 접수시 자신이 직접 취재한 뉴스 원고와 테이프를 내야 한다. 1차 예선은 7월2일까지 접수된 원고와 테이프로 심사하며,이를 통과하면 지역별로 심사위원 앞에서 원고를 발표하는 2차 예선을 실시,최종 본선 진출자를 선발한다. 각 부문 대상과 1등 각 4명,2등 8명,장려상 12명 등 28명의 수상자는 오는 9월26∼29일(일∼수) 추석 연휴기간에 CNN 아시아지역 홍콩 본사를 견학한다.1688-0509. ●한국쓰리엠(www.3m.co.kr)은 8월7∼10일(토∼화) 3박4일 동안 경기도 이천 그린화재 연수원에서 열릴 예정인 제3회 ‘3M 사이언스 캠프’에 참가할 학생·교사를 모집한다. 학생 지원자격은 전국 중학교 1·2학년생 가운데 각종 과학경진대회 수상자로,지원서와 학교장 확인 및 추천서,수상경력 증명서 및 기타 서류 등을 내야 한다.80명 모집.참가비는 없다. 교사 지원자격은 일선 학교 과학교사 및 교수,연구소 연구원,과학 관련 단체 임직원 및 이와 동등한 자격 소유자로 지원서와 A4용지 2장 분량의 수업안을 내야 한다. 모집 분야는 실험실습과 발명교육,생물·화석·환경,창의성 교육,첨단과학 등 학생 탐구활동 중심과제 등이다.강의 시간과 강사료는 1교시 90분 수업에 실습기자재와 재료비 포함해 60만원.캠프가 끝나면 우수 강사 포상을 한다. 참가신청은 학생 7월12일(월)까지,교사는 6월25일(금)까지 홈페이지에서 할 수 있으며,학생 지원서류는 우편으로만 받는다.080-033-4114.
  • [이사람] 최초 파월 한국군 사령관 채명신 예비역 중장

    “한국정부는 월남정부의 요청에 의해서 전투부대를 파병하게 됐고,본관이 주월한국군 부대를 지휘하게 되었음을 영광으로 생각하는 바입니다.앞으로 우리는 자유와 평화를 수호하는 훌륭한 자유 월남국민과 군인들에게 최상의 경의를 표하면서 상호의 이해와 유대친선을 위한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며,여하한 희생이라도 무릅쓰고 끝까지 싸울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 1965년 8월21일.건군이후 최초의 파월 한국군 사령관인 채명신 소장은 베트남 사이공의 탄손누트공항에 첫발을 내디뎠다.40살의 채 사령관은 떨리는 목소리로 도착성명을 낭독했다.동시에 영어로 번역돼 세계 각국에 타전됐다.우리나라에도 시골 구석구석까지 생생하게 전달됐다. 이 역사적인 도착성명으로 파병논란은 가라앉는 분위기였다.전장으로 나간 ‘한국의 아들들’의 안전이 최우선 관심사였다.대부분 농촌의 아들이었기에 부모들은 논밭에 나갈 때마다 고물 라디오라도 꼭 챙겼다.땡볕에서 김을 매다가도 뉴스시간만 되면 나무 그늘로 잠시 옮겨 행여나 정글의 소식이 나올까봐 귀를 기울였다.그뿐이랴.밤마다 그 어머니들은 정한수를 떠놓고 아들의 안전과 무사귀국을 빌었다. 이후 4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오는 8월 초 자이툰부대장인 황의돈 소장이 이라크의 북부 아르빌 현지에서 떨리는 목소리로 도착성명서를 낭독할 것이다.채 전 사령관이 그랬던 것처럼…. 백전노장 채 전 사령관은 최근 자이툰부대를 몇차례 방문,아들 손자뻘의 파병 장병들에게 애정어린 주문을 했다.그는 베트남과 동티모르 등에 파견됐던 여러 선배들을 예로 들면서 자긍심을 갖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이라크에 가면 현지 어린이들을 친절하게 대해줘야 한다는 충고까지 했다.축구공과 캔디 등의 과자,노트와 볼펜 등을 선물하면서 아이들과 가까이 지내라고 했다.또 시간이 날 때마다 축구경기도 함께 하고 태권도를 가르켜주면 자연스럽게 어른들과도 친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라크 파병은 한·미동맹의 약속” 지난 17일 비가 오는 날이었다.채 전 사령관이 살고 있는 서울 동부이촌동의 자택을 찾았다.작년 여름 40년 동안 정들었던 후암동 자택을 처분하고 이곳으로 이사왔단다. 그의 나이가 팔순에 가까웠지만 우리나라의 군사(軍史)를 훤히 꿸 정도로 기억력이 넘쳐났다.요즘에는 스스로가 젊어지려고 가끔씩 면바지와 남방 등 캐주얼차림으로 외출한다.그는 ‘대한민국 6·25참전유공자회 회장’과 ‘베트남참전전우회 회장’을 맡아 일주일에 3,4일은 재향군인회관으로 출근한다. 그는 ‘이라크파병’과 ‘주한미군철수’ 등 최근 안보상황의 변화와 관련,“모든 것을 ‘전쟁억지’라는 대전제를 밑바탕에 깔고 나머지 일들을 결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미동맹이 깨져서는 결코 안 됩니다.전현직 미군 장성들을 만날 때마다 신뢰성이 그전보다 떨어진다는 느낌을 자주 접합니다.동맹을 지키는 약속 때문에 이라크에 파병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신의에 금이 가지 시작하면 동맹관계도 소원해집니다.” ●“6·25 전야 군 지휘부의 댄스파티” 채 전 사령관은 “최근 일부 젊은이들 사이에 6·25는 미군의 북침으로 시작됐다는 터무니없는 주장을 하는 경우가 있다.”면서 “참으로 한심하다.미군은 이미 1년전에 장비 하나 남기지 않고 다들 철수해버린 상황이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그러면서 6.25전야에 있었던 우리 군 지휘부의 댄스파티 상황을 잠시 전했다. (…서울 용산의 육본 장교클럽.토요일 저녁을 맞아 서울 지역 각군 사령부의 고급장교들이 속속 모여들었다.전방의 연대장과 사단장도 초청됐다.댄스파티가 시작되고 다들 거나하게 술을 마셨다.파티는 25일 새벽 2시까지 계속됐다.다들 곯아 떨어졌다.전선은 추풍낙엽으로 계속 무너졌으나 명령을 받고 내릴 지휘관이 없었다.채병덕 육군총장의 공관에도 북한의 남침을 보고하려는 벨이 울렸지만 부관은 ‘총장 각하가 술에 많이 취해 깨울 수가 없다.’는 대답만 반복했다.신성모 국방장관 공관도 마찬가지였다.보좌관은 ‘일요일에는 어떤 전화도 받지 못한다.’는 대답만 되풀이했다.적 탱크가 25일 아침 11시 포천까지 들어와서야 다들 실감했을 정도였다.) 6.25때 그는 한국군 최초의 유격대 대장을 맡았다.인민군복을 입고 적 후방에 투입,고급 정보를 캐는 일이었다.그가 이끈 요원은 363명으로 80년대 후반 공개된 이른바 ‘백골병단’을 말한다.그는 이때 빨치산의 거물 길원팔 중장과 육박전 끝에 생포하기도 했다.길원팔은 김일성이 허리춤에 찼던 ‘떼떼권총’까지 직접 선물을 줄 정도의 인물이었다.길원팔은 채 전 사령관이 건네준 권총으로 자결했다. ●“박정희이어 박근혜도 정치유혹” ‘채명신 장군’하면 영원한 무인으로 평가받는다.6.25와 월남전에서의 활약상이 우선 그렇다.특히 그는 5·16때 이른바 혁명주체세력으로 급부상했다.5사단장 시절 휘하 병력을 이끌고 동대문 근처까지 진출,박정희 소장을 도왔다. 이때 그는 박정희 소장에게 “개인의 군대가 아니다.국가를 구한다는 일념으로 다들 뭉쳐 이렇게 출동했다.”고 말했다.이후 박정희 대통령은 그에게 3차례에 걸쳐 자신을 도와 정치를 같이 하자고 했지만 군복이 더 좋다면서 과감히 돌아섰다.주월사령관으로 떠난 것도 그런 연유에서다.세월이 지난 뒤인 얼마전 박근혜씨가 찾아와 당의 주요 직책을 맡아달라고 했을 때에도 그는 무인으로 남고 싶다며 거절했다. 그는 황해도 곡산에서 태어났다.평양사범을 나와 보통학교 교사로 근무하다 1947년 월남했다.48년 육사를 졸업한 뒤 5·16때 잠시 외도한 것 외에는 평생 군인의 길을 걸었다.그는 예편과 동시 외교관의 길을 걷다가 미국 하버드대와 버클리대,일본의 게이오대(慶應大) 등에서 연구원으로도 활동했다.“6월이면 기억조차 하기 힘든 일들이 무척 많습니다.” 김문기자 km@seoul.co.kr˝
  • [조정래의 세상보기] 미군감축, 자연스러운 일

    미국은 한반도 남쪽에 주둔해온 미군을 감축하겠다고 공식화했다.이 문제를 놓고 우리들끼리 이런저런 말들이 무성하다.그러나 우리가 무슨 소리를 하든 그건 다 부질없는 소리일 뿐이다.지금으로부터 59년 전 이땅이 광복된 그 순간 미군이 점령군으로 이땅을 점령할 때 우리의 의사는 철저하게 묵살되었던 것처럼 감축할 때도 우리의 의사는 전혀 고려되지 않은 것이다.자기들 하고 싶은 일을 자기네 마음대로 하는 것,그것이 힘센 자들의 논리고,힘센 자들의 논리니까 진리다.그 앞에서 ‘혈맹의 우의’ 운운해가며 자세 낮추기에 급급한 일부 지식인들의 모습은 볼 만한 연극이 아닐 수 없다. “미군은 자국민이 원하지 않는 곳에는 주둔하지 않는다.” 미 국방장관 럼스펠드의 자신만만한 말이다.그 말은 시대 변화를 전혀 의식하지 못하는 냉전시대의 오만 그대로다.그런데,우리나라의 보수적이고 친미적인 일부 지식인들은 그 말에서 엉뚱하게 우리의 잘못을 찾아내고 읍하기에 바쁜 것이다.미군이 감축되는 것은 그동안 우리 사회 일각에서 혈맹의 관계가 손상될 정도로 미국을 비판하고 불경스럽게 했기 때문이라는 식이다.그것 또한 냉전시대에 뿌리박은 반공주의 사고방식의 표본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한반도 휴전선 남쪽에서 미군이 감축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다.왜냐하면 이미 13년 전에 소련을 위시한 사회주의권이 몰락하며 냉전시대는 끝났고,한반도에서는 6·15남북공동선언이 채택되면서 갈등과 대결의 분단시대에서 화해와 협력의 평화통일시대로 대전환을 했기 때문이다.소련 공산주의 세력의 팽창을 막기 위한 냉전시대의 소산인 주한 미군은 그 시대의 종식과 더불어 변화되어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고,더구나 이념전쟁의 당사자인 남과 북이 이제 그만 대결과 분열의 시대를 끝내고 서로를 이해하고 인정하는 화합과 평화의 시대를 열겠다고 전세계를 향해 약속했으면 주한 미군도 달라져야 하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여론조사에서,‘미군이 철수하면 당장 전쟁이 날 위험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3%에 지나지 않는다.군부독재시대에 70%를 넘었던 것에 비하면 상상하기 어려운 변화다.미국은 이 변화를 유심히 지켜볼 줄 알아야 할 것이다.이제 한국과 한국인들은 6·25 전쟁시대의 참화 속에 빠진 한국과 한국인이 아니라는 것을 직시해야 한다.과거의 주인은 훗날 종의 출세를 속편히 보아넘기지 못하며,부자는 옛 가난뱅이의 입신을 사실대로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 법이다.행여 미국도 그런 식의 우를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미군의 감축이 곧 미국과의 관계가 나빠지거나,미국과 사이가 멀어지는 것처럼 수선을 떠는 부류들이 있다.그건 문제의 본질을 왜곡시키는 과장이고 거짓말이다.미국은 그런 비이성적이며 비논리적인 가짜 친미주의자들을 경계해야 한다.우리는 미국의 고마움과 미국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다.6·25때는 더 말할 것 없고,우리가 자랑하고 싶어하는 경제발전의 과정에서 미국이라는 시장의 도움이 얼마나 컸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다.그리고 친구는 옛친구가 좋더라고,힘있는 옛친구와 사이가 나빠지면 그 손해는 누가 보는지도 우리는 잘 알고 있다.다만 우리가 바라는 것은 친구로서 대등한 관계의 정립과 유지다.그 토대 위에서 어깨동무할 때 우정은 더욱 돈독해질 것이다. 지금,평화통일을 향한 남과 북의 발전적 변화는 우리 스스로가 믿기 어려울 정도로 다방면에서 빠르고 구체적으로 이루어져 나아가고 있다.그리고,그 가속도는 앞으로 더욱 거세질 것이다.미국에서 볼 때는 너무 어리둥절할지도 모른다.그러나,그 눈부실 지경으로 빠른 변화는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우리 남과 북은 저 5000년 전부터 함께 살아온 같은 민족이며,그 민족동질성에 뿌리내린 평화통일 염원이 그 많은 변화의 꽃을 피워내고 있는 것이다.미국은,이 아름다운 변화를 아름답게 볼 줄 알아야 하며,그것이 우리의 참된 친구로서 갖추어야 할 덕목이다.
  • [부고]

    ●‘빨간 구두 아가씨’ 작사 하중희씨 원로 작사가 하중희(河中熙)씨가 18일 오후 6시25분 경기도 일산 자택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71세. 전북 전주 출신인 고인은 ‘빨간 구두 아가씨’,‘코스모스 피어 있는 길’,‘그리운 얼굴’,‘조약돌’ 등 60,70년대 히트 가요와 동요 ‘아빠의 얼굴’,‘산마을’ 등의 노래말을 지었다.유족은 KBS 성우인 부인 방유성(62)씨와 1남 윤경(35·두산건설 과장)씨.장례 미사는 21일 오전 10시 서울 한강성당에서 치러지며,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종로성당 묘지에 안장된다.강남 성모병원 10호실 (02)590-2638. ●李賢求(대광고 교사)씨 부친상 19일 오후 5시50분 서울아산병원,발인 21일 오전 7시 (02)3010-2265 ●金基宅(전 국방대학원장)富吉(윈앤윈우드 본부장)씨 모친상 朴容卨(내외빌딩관리㈜ 대표)씨 빙모상 19일 오후 8시35분 서울아산병원,발인 22일 오전 7시 (02)3010-2238 ●金尙泰(전 동양물산 대표)씨 별세 承泰(문화일보 골프칼럼리스트)씨 형님상 榮俊(경원통상 차장)씨 부친상 19일 서울아산병원,발인 21일 오전 4시30분 (02)3010-2268 ●宋萬德(한양대 배구부장·한국대학배구연맹 부회장)씨 별세 19일 오후 7시30분 한양대부속병원,발인 23일 오전 8시 (02)2290-9457 ●金泰河(으뜸길약국 대표)龍河(두산건설 상무)鍾河(LA타임즈 기자)씨 부친상 19일 오전 4시45분 삼성서울병원,발인 22일 오전 8시 (02)3410-6916 ●河明熙(전북언론문화연구원장)씨 형님상 18일 오후 6시30분 강남성모병원,발인 21일 오전 9시30분 (02)590-2538 ●이강업(SK㈜ 부장)씨 부친상 김기섭(우리증권 〃)은희장(자영업)윤두호(한진P&C 차장)마영훈(신라철강㈜ 부장)씨 빙부상 19일 오전 3시 신촌세브란스병원,발인 21일 오전 7시 (02)392-3299 ●張哲浩(단국대 이사장 비서실장)勝和(체육관 경영)景皓(중앙대 교수)씨 부친상 20일 제주의료원,발인 24일 오전 7시30분 (064)720-2192 ●崔在成(최재성치과의원 원장)在明(누하공간 대표이사)씨 부친상 金尙燮(국민대 교수)梁翔植(아주대 〃)李昇雨(공무원)씨 빙부상 19일 삼성서울병원,발인 22일 오전 8시 (02)3410-6914 ●채진(청주차량등록사업소 검사부과담당)씨 별세 19일 청주병원,발인 22일 오전 9시 (043)224-9172 ●曺唱鉉(국민은행 서초동 지점장)正鉉(보람제약 부장)忠鉉(기업은행 안산중앙지점 부지점장)씨 부친상 19일 삼성서울병원,발인 22일 오전 3시 (02)3410-6915 ●崔炳(시인)씨 별세 賀敬(현대통신 대표이사)再敬(트라이베스트 대표이사)昊敬(현대자동차 상용연구소 부장)씨 부친상 20일 오후 4시 서울아산병원,발인 23일 오전 6시 (02)3010-2295 ●朴勝得(알파에셋자산운용 사장)씨 모친상 20일 오후 8시 대구노인전문병원 모래아장례식장,발인 22일 오전 8시 (053)801-9999
  • [조정래의 세상보기] 미군감축, 자연스러운 일

    미국은 한반도 남쪽에 주둔해온 미군을 감축하겠다고 공식화했다.이 문제를 놓고 우리들끼리 이런저런 말들이 무성하다.그러나 우리가 무슨 소리를 하든 그건 다 부질없는 소리일 뿐이다.지금으로부터 59년 전 이땅이 광복된 그 순간 미군이 점령군으로 이땅을 점령할 때 우리의 의사는 철저하게 묵살되었던 것처럼 감축할 때도 우리의 의사는 전혀 고려되지 않은 것이다.자기들 하고 싶은 일을 자기네 마음대로 하는 것,그것이 힘센 자들의 논리고,힘센 자들의 논리니까 진리다.그 앞에서 ‘혈맹의 우의’ 운운해가며 자세 낮추기에 급급한 일부 지식인들의 모습은 볼 만한 연극이 아닐 수 없다. “미군은 자국민이 원하지 않는 곳에는 주둔하지 않는다.” 미 국방장관 럼스펠드의 자신만만한 말이다.그 말은 시대 변화를 전혀 의식하지 못하는 냉전시대의 오만 그대로다.그런데,우리나라의 보수적이고 친미적인 일부 지식인들은 그 말에서 엉뚱하게 우리의 잘못을 찾아내고 읍하기에 바쁜 것이다.미군이 감축되는 것은 그동안 우리 사회 일각에서 혈맹의 관계가 손상될 정도로 미국을 비판하고 불경스럽게 했기 때문이라는 식이다.그것 또한 냉전시대에 뿌리박은 반공주의 사고방식의 표본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한반도 휴전선 남쪽에서 미군이 감축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다.왜냐하면 이미 13년 전에 소련을 위시한 사회주의권이 몰락하며 냉전시대는 끝났고,한반도에서는 6·15남북공동선언이 채택되면서 갈등과 대결의 분단시대에서 화해와 협력의 평화통일시대로 대전환을 했기 때문이다.소련 공산주의 세력의 팽창을 막기 위한 냉전시대의 소산인 주한 미군은 그 시대의 종식과 더불어 변화되어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고,더구나 이념전쟁의 당사자인 남과 북이 이제 그만 대결과 분열의 시대를 끝내고 서로를 이해하고 인정하는 화합과 평화의 시대를 열겠다고 전세계를 향해 약속했으면 주한 미군도 달라져야 하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여론조사에서,‘미군이 철수하면 당장 전쟁이 날 위험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3%에 지나지 않는다.군부독재시대에 70%를 넘었던 것에 비하면 상상하기 어려운 변화다.미국은 이 변화를 유심히 지켜볼 줄 알아야 할 것이다.이제 한국과 한국인들은 6·25 전쟁시대의 참화 속에 빠진 한국과 한국인이 아니라는 것을 직시해야 한다.과거의 주인은 훗날 종의 출세를 속편히 보아넘기지 못하며,부자는 옛 가난뱅이의 입신을 사실대로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 법이다.행여 미국도 그런 식의 우를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미군의 감축이 곧 미국과의 관계가 나빠지거나,미국과 사이가 멀어지는 것처럼 수선을 떠는 부류들이 있다.그건 문제의 본질을 왜곡시키는 과장이고 거짓말이다.미국은 그런 비이성적이며 비논리적인 가짜 친미주의자들을 경계해야 한다.우리는 미국의 고마움과 미국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다.6·25때는 더 말할 것 없고,우리가 자랑하고 싶어하는 경제발전의 과정에서 미국이라는 시장의 도움이 얼마나 컸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다.그리고 친구는 옛친구가 좋더라고,힘있는 옛친구와 사이가 나빠지면 그 손해는 누가 보는지도 우리는 잘 알고 있다.다만 우리가 바라는 것은 친구로서 대등한 관계의 정립과 유지다.그 토대 위에서 어깨동무할 때 우정은 더욱 돈독해질 것이다. 지금,평화통일을 향한 남과 북의 발전적 변화는 우리 스스로가 믿기 어려울 정도로 다방면에서 빠르고 구체적으로 이루어져 나아가고 있다.그리고,그 가속도는 앞으로 더욱 거세질 것이다.미국에서 볼 때는 너무 어리둥절할지도 모른다.그러나,그 눈부실 지경으로 빠른 변화는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우리 남과 북은 저 5000년 전부터 함께 살아온 같은 민족이며,그 민족동질성에 뿌리내린 평화통일 염원이 그 많은 변화의 꽃을 피워내고 있는 것이다.미국은,이 아름다운 변화를 아름답게 볼 줄 알아야 하며,그것이 우리의 참된 친구로서 갖추어야 할 덕목이다.˝
  • [부고]

    ●‘빨간 구두 아가씨’ 작사 하중희씨 원로 작사가 하중희(河中熙)씨가 18일 오후 6시25분 경기도 일산 자택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71세. 전북 전주 출신인 고인은 ‘빨간 구두 아가씨’,‘코스모스 피어 있는 길’,‘그리운 얼굴’,‘조약돌’ 등 60,70년대 히트 가요와 동요 ‘아빠의 얼굴’,‘산마을’ 등의 노래말을 지었다.유족은 KBS 성우인 부인 방유성(62)씨와 1남 윤경(35·두산건설 과장)씨.장례 미사는 21일 오전 10시 서울 한강성당에서 치러지며,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종로성당 묘지에 안장된다.강남 성모병원 10호실 (02)590-2638. ●李賢求(대광고 교사)씨 부친상 19일 오후 5시50분 서울아산병원,발인 21일 오전 7시 (02)3010-2265 ●金基宅(전 국방대학원장)富吉(윈앤윈우드 본부장)씨 모친상 朴容卨(내외빌딩관리㈜ 대표)씨 빙모상 19일 오후 8시35분 서울아산병원,발인 22일 오전 7시 (02)3010-2238 ●金尙泰(전 동양물산 대표)씨 별세 承泰(문화일보 골프칼럼리스트)씨 형님상 榮俊(경원통상 차장)씨 부친상 19일 서울아산병원,발인 21일 오전 4시30분 (02)3010-2268 ●宋萬德(한양대 배구부장·한국대학배구연맹 부회장)씨 별세 19일 오후 7시30분 한양대부속병원,발인 23일 오전 8시 (02)2290-9457 ●金泰河(으뜸길약국 대표)龍河(두산건설 상무)鍾河(LA타임즈 기자)씨 부친상 19일 오전 4시45분 삼성서울병원,발인 22일 오전 8시 (02)3410-6916 ●河明熙(전북언론문화연구원장)씨 형님상 18일 오후 6시30분 강남성모병원,발인 21일 오전 9시30분 (02)590-2538 ●이강업(SK㈜ 부장)씨 부친상 김기섭(우리증권 〃)은희장(자영업)윤두호(한진P&C 차장)마영훈(신라철강㈜ 부장)씨 빙부상 19일 오전 3시 신촌세브란스병원,발인 21일 오전 7시 (02)392-3299 ●張哲浩(단국대 이사장 비서실장)勝和(체육관 경영)景皓(중앙대 교수)씨 부친상 20일 제주의료원,발인 24일 오전 7시30분 (064)720-2192 ●崔在成(최재성치과의원 원장)在明(누하공간 대표이사)씨 부친상 金尙燮(국민대 교수)梁翔植(아주대 〃)李昇雨(공무원)씨 빙부상 19일 삼성서울병원,발인 22일 오전 8시 (02)3410-6914 ●채진(청주차량등록사업소 검사부과담당)씨 별세 19일 청주병원,발인 22일 오전 9시 (043)224-9172 ●曺唱鉉(국민은행 서초동 지점장)正鉉(보람제약 부장)忠鉉(기업은행 안산중앙지점 부지점장)씨 부친상 19일 삼성서울병원,발인 22일 오전 3시 (02)3410-6915 ●崔炳(시인)씨 별세 賀敬(현대통신 대표이사)再敬(트라이베스트 대표이사)昊敬(현대자동차 상용연구소 부장)씨 부친상 20일 오후 4시 서울아산병원,발인 23일 오전 6시 (02)3010-2295 ●朴勝得(알파에셋자산운용 사장)씨 모친상 20일 오후 8시 대구노인전문병원 모래아장례식장,발인 22일 오전 8시 (053)801-9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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