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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청년 문재인의 시간은 - 해남 대흥사(大興寺)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청년 문재인의 시간은 - 해남 대흥사(大興寺)

    “아버지 49재를 치른 바로 다음 날, 전남 해남의 대흥사로 떠났습니다. 대흥사 내 대광명전이라는 고즈넉한 암자에서 참 열심히 고시공부를 했습니다.” <문재인이 드립니다. 리더스북, 2012> 전라남도 해남에 위치한 대흥사는 대통령의 절집으로 유명하다. 청년 시절 절망적인 시간 속에서도 암자 끝 귀퉁이 방에서 꿈을 놓치지 않던 젊은이는 지금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 우뚝 서 있다. 그가 머물던 초라한 암자 귀퉁이 방에는 지금도 누군가 꿈을 찾아 삶의 한 조각을 담아두고 있다. 방의 숫자가 공교롭게도 7번이다. 7번방의 기적이 이루어진 해남 대흥사로 가 보자.해남 대흥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3명을 알아야 한다. 임진왜란 초기 의승군(義僧軍) 총대장 서산대사, 우리나라 차문화(茶文化)의 뿌리인 13 대종사 가운데 한 분인 초의선사 그리고 대한민국 제 19대 대통령 문재인. 대흥사(大興寺)는 우리 국토의 최남단에 위치한 두륜산(頭崙山. 지역명은 대둔산)의 빼어난 풍광을 배경으로 자리한 사찰로서, 대한불교 조계종 22교구의 본사인 큰 절이다. 현재 해남, 목포, 영암, 무안, 신안, 진도, 완도, 강진, 광주 등 9개 시군의 말사를 관할하며, 서·남해 지역 사찰을 주도할 정도의 절집이니 규모나 연혁이 그리 만만한 절이 아님은 증명된다.우선 대흥사가 본격적으로 중흥된 연유는 바로 서산대사에 기인한다. 1592년(선조 25) 7월 1일자 ‘선조수정실록’에 따르면 선조는 옛 승관(僧官)인 휴정(休靜, 서산대사)을 불러 승군을 만들도록 하였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이후 서산대사가 “전쟁을 비롯한 삼재가 미치지 못할 곳(三災不入之處)으로 만년동안 훼손되지 않는 땅(萬年不毁之地)”이라 하여 그의 의발(衣鉢)을 이곳에 두었고 이후 대흥사는 본격적인 중흥의 시기를 맞이한다.또한 초의선사(1786~1866)가 대흥사에 머물며 차(茶)와 선(禪)을 하나로 보아 「동다송」에서 ‘다선일미(茶禪一味)’를 주장하며 스스로도 차 한잔을 마시는 데서도 법희선열(法喜禪悅)을 맛본다고 하였다. 이후 호남 지역에서 우리나라 전통의 차문화가 발전하는 데 대흥사는 그 중심에 들어서 있었다. 마지막으로 청년 문재인이 1978년에 대흥사 대광명전 암자 끝방에서 사법고시를 준비하여 1차 시험에 합격한 사연이 대흥사에는 지금도 남아있다.대흥사는 이러한 인물들과 아울러 사찰 내 당우나 암자, 선방 등의 독특한 가람배치도 유명하다. 절을 가로지르는 개천을 기준으로 대웅전과 명부전 등이 있는 북원(北院), 천불전을 중심으로 가허루, 동국선원 등이 있는 남원(南院)으로 크게 구분된다. 이외에도 서산대사와 선조, 정조의 흔적이 남아 있는 표충사 구역, 스님들이 머무는 공간인 대광명전 구역 등이 있다. 이외에도 경내 당우들에 남아 있는 현판 글씨들은 조선 시대 서예의 진면목을 드러낸다. 표충사는 정조대왕, 대웅보전, 천불전, 침계루는 원교 이광사, 백설당 지붕밑 무량수각은 추사 김정희, 가허루는 전주에서 활약하던 호남의 명필가 창암 이삼만의 글씨가 현재도 남아 있다. <해남 대흥사에 대한 여행 10문답> 1. 꼭 가봐야 할 정도로 중요한 여행지야? - 해남을 방문한다면 적극 추천. 대흥사는 6.25전쟁 중에서도 훼손되지 않아 사찰의 원형이 잘 남아 있다. 2. 누구와 함께? - 누구라도. 해남 대흥사를 둘러싸고 있는 두류산의 풍광은 빼어나다. 3. 가는 방법은? - 전남 해남군 삼산면 대흥사길 400(구림리 799) 534-5502~3(061) - 해남터미널 (061-534-0881) → 대흥사(대둔사) - 군내버스 : 06:30 ~ 19:40 (30분 간격 / 25분 소요) 절 입구 매표소 아래 종점까지 운행 (종점에서 절까지 걸어서 30분 소요) 4. 감탄하는 점은? - 생각보다 원형이 잘 보조된 큰 절 집. 유서 깊은 호남 전통 사찰의 맥을 제대로 담고 있다. 5. 명성과 내실 관계는? - 명성에 비해 방문객들이 많지 않다. 교통편이 수월하지는 않다. 6. 꼭 봐야할 장소는? - 대웅보전, 가허루, 표충사, 절집 아래에 있는 여관인 유선관 7. 토박이들이 추천하는 먹거리는? - 100년 전통의 최초의 여관인 ‘유선관’의 식사, 떡갈비 ‘천일식당’, ‘소망식당’, 남도 한정식 ‘진일관’ 8. 홈페이지 주소는? - http://www.daeheungsa.co.kr/home/main.asp 9. 주변에 더 볼거리는? - 고산 윤선도 기념관, 다산초당, 해남우항리공룡화석지, 땅끝마을 10. 총평 및 당부사항 - 해남 대흥사는 절집 자체의 규모가 크고 풍광이 아름다운 곳이다. 굳이 대통령의 흔적을 찾으려 하지 말고 호국불교의 원형인 서산대사와 우리나라 차문화의 원류였던 초의선사의 시간을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방문 가치가 있다. 적극 추천! 글·사진 윤경민 여행전문 프리랜서 기자 vieniame2017@gmail.com
  •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우리의 소원은 통일 - 파주 임진각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우리의 소원은 통일 - 파주 임진각

    “야,야,야.... 구림자 넘어왔어. 조심하라”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박찬욱 감독, 2000)에 나오는 장면이다. 북측을 바라보는 이수혁 병장(이병헌 분)에게 오경필 중사(송강호 분)가 농반진반으로 내뱉는다. 이처럼 그림자도 남북을 넘지 못하던 불신의 시절을 넘어 새로이 평화와 공존의 시간이 다가 오고 있다. 민족 분단의 상징과 더불어 이산가족의 한을 달래주던 파주 임진각으로 가보자.경기도 파주시 문산읍에 위치한 임진각(臨津閣). 길이 244Km에 달하는 한강의 제 1지류인 임진강변에 1972년 ‘임진강에 세운 누각’이라는 뜻을 담아 정부 주도로 세워진 편의시설이다. 지상 3층과 지하 1층 대지 6,000평, 총 연건평 2,442㎡ 규모로 조성된 임진각에는 6·25전쟁 이후 사람의 내음이 그대로 남아 있다. 판문점이나 도라산역, 오두산 통일전망대와 같은 행정적인 지명과는 달리 이곳 임진각에는 북녘에 가족을 남겨둔 실향민들의 아픔의 흔적이 짙게 남아있기 때문이다. 남측 군사분계선으로부터 7Km 떨어진 임진각에는 북한 실향민들이 북녘 고향을 향해 제사나 차례를 지낼 수 있도록 1985년 9월 26일에 ‘망배단’이 설치되었다. 이 곳에서 매년 연초에는 연시제, 추석에는 망향제를 합동재배하여 북녘 땅에 대한 그리움을 실향민들 가족들은 지금도 매만지고 있다. 주로 임진각을 찾는 실향민들은 황해도와 평안도 출신 들이 많다. 또한 임진각 3층 전망대에서는 날씨가 좋은 날이면 개성까지도 볼 수 있어 많은 관람객들이 망원경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풍경을 종종 목격할 수 있다. 임진각에서는 아직도 6·25전쟁의 상흔을 확인할 수 있다.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이 바로 ‘자유의 다리’다. 1953년에 폭 4.5~7m, 높이 8m 내외의 목조 다리로 건설된 이 다리를 통해 북한에 잡혀 있던 포로 12,773 명의 한국군과 유엔군이 남한으로 넘어왔다. 지금도 판문점에 위치한 ‘돌아오지 않는 다리’와 더불어 전쟁의 상처를 상징하는 교량으로 역사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자유의 다리 너머에는 북한 땅이 아니라 남측의 민간인 통제 구역으로 지금도 출입은 통제되고 있다. 현재 이 다리는 경기도 기념물 제162호로 지정되어 있다.또한 임진각 자유의 다리 오른편에는 '경의선 장단역 증기기관차 화통'도 볼 수 있다. 6·25전쟁 시기에 연합군의 군수 물자를 수송하던 이 기관차는 연합군이 후퇴하는 도중 열차가 북한군에 넘어갈 것을 우려, 인위적으로 파괴되었다. 반세기 가량 장단역 터 50M 지점에 방치되어 있다가 2007년 11월에 화학처리를 거쳐 현재 임진각에서 등록문화재 제78호로 전시 중이다.이 외에도 임진각 주변에는 국립 6.25전쟁납북자기념관, 통일공원, 망향의 노래비 등이 주변에 있다. 특히 2005년 세계평화축전을 위해 조성한 99만㎡의 넓은 잔디언덕으로 조성한 평화누리공원이 자리 잡고 있어 공연·전시·영화 등 다양한 문화예술프로그램과 행사가 연중 운영되고 있다. <파주 임진각에 대한 여행 10문답> 1. 꼭 가봐야 할 정도로 중요한 여행지야? - 반드시 가 보라고 권하고 싶다. 도라산역과 제 3땅굴을 함께 보는 DMZ안보 관광을 적극 추천. 2. 누구와 함께? - 가족 단위. 특히 전쟁을 기억하는 나이드신 부모님과 함께 3. 가는 방법은? - 경기도 파주시 문산읍 사목리 494-1 - 경의선 전철로는 문산역에서 하차, 문산-도라산 열차로 갈아탄 후 임진강역에서 하차 - 서울에서 9710, 909번 버스 탑승후 문산 버스터미널에서 058번 버스. 임진각하차. 4. 감탄하는 점은? - 실향민들의 아픔이 고스란히 남겨져 있다. 규모가 크고 역사가 만들어진 장소다. 5. 명성과 내실 관계는? - 주중, 주말 많은 방문객이 찾는 곳이다. 6. 꼭 봐야할 것은? - 평화누리 공원, 자유의 다리 7. 토박이들이 추천하는 먹거리는? - 메기매운탕 ‘반구정 나루터집’, 부대찌개 ‘삼거리부대찌게’, ‘석이네 부대찌개’, 한우 ‘조재벌생고기’, 8. 홈페이지 주소는? - http://imjingak.co.kr/xe/imjingak 9. 주변에 더 볼거리는? - 도라산역, 제 3땅굴, 파주 헤이리 마을, 파주 출판단지. 10. 총평 및 당부사항 - 임진각의 정체성은 바로 실향민들의 한에 있다. 고향을 잃은 실향민들의 아픔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곳. 규모가 크고 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어 의미있는 방문지임에는 틀림없다. 글·사진 윤경민 여행전문 프리랜서 기자 vieniame2017@gmail.com
  • 성북구, 문인사기획전4 ‘지금 여기 박완서’ 개최

    성북구, 문인사기획전4 ‘지금 여기 박완서’ 개최

    서울 성북구는 성북문화재단과 함께 성북예술창작터에서 내년 1월 22일까지 문인사기획전4 ‘지금 여기 박완서’를 개최한다고 14일 밝혔다. 문인사기획전은 성북의 문인 중 기념비적인 작가를 매년 한 명씩 선정해 집중 조명하는 문학과 예술간 융합프로젝트다. 2015년 시인 신경림, 2016년 시인 조지훈, 2017년 문학평론가 황현산에 이어 올해는 소설가 박완서(1931~2011)가 선정됐다. 전시장 1층은 프롤로그 개념의 개괄적인 내용들을 담고 있다. 2층은 ‘기억, 상상, 복제’를 주제로 구성됐다. ‘부재의 고고학’, ‘소박한 개인주의자’, ‘사늘한 낮꿈’의 소주제를 통해 박완서 문학에 나타나는 여성과 6.25전쟁, 한국 근현대 사회의 풍속과 부조리, 그리고 영원한 현역으로서의 박완서 등을 다루고 있다. 장·단편 소설과 에세이 등의 초판본·해외번역본·동화, 주요 저작들의 서문, 박완서 작고 1년 전의 카톨릭대 강연과 결혼식 영상, 호원숙(수필가, 박완서 장녀)·박철수(시립대 건축학부 교수)·이근혜(문학과 지성사 편집장) 등과 진행한 6편의 인터뷰 영상도 볼 수 있다. 18일 오후 7시 30분 성북예술창작터에선 박완서의 마지막 장편 ‘그 남자네 집’을 낭독극으로 연출, 선보인다. 성우 윤소라가 읽고, 가야금 연주자 정민아가 연주한다. 20일 오후 7시 30분엔 라파엘센터에서 ‘복원되지 못한 것들을 위하여’라는 주제로 박완서 문학의 현재적 의미를 짚어보는 좌담회가 열린다. 국문학자 이선미, 여성학자 임옥희, 문학평론가 고명철, 수필가이자 박완서의 장녀 호원숙이 참석한다. 구 관계자는 “박완서를 균형감 있게 조명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며 “이번 기획전이 박완서 문학의 가치를 새롭게 되새기고 가슴 따뜻해지는 자리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서울포토] 6.25 국군전사자 유해 365위 합동 봉안식

    [서울포토] 6.25 국군전사자 유해 365위 합동 봉안식

    6.25전쟁 국군전사자 유해 365위에 대한 합동 봉안식이 12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거행되고 있다. 이날 봉안식은 유해발굴 추진경과 보고와 종교의식, 헌화와 분향, 영현봉송 순으로 진행됐으며, 이낙연 국무총리를 비롯해 정경두 국방부 장관, 보훈단체대표 등 350여명이 참석했다. 이종원 선임기자 jongwon@seoul.co.kr
  • 해군이 손원일 제독의 빛바랜 사진을 꺼낸 이유는

    해군이 손원일 제독의 빛바랜 사진을 꺼낸 이유는

    11월 9일은 대한민국 해군의 창설기념일이었다. 해군은 손원일 제독의 빛바랜 사진 한 장을 처음으로 꺼내 들었다. 인천상륙작전 직후 미 해군의 스트러블(Arthur D. Struble) 제독과 악수하는 장면이다.(사진) 지난 3월 미국 워싱턴 DC에 위치한 미 해군 역사·유물사령부에서 이 사진을 입수해왔다고 전했다. 또 진해지역 부대는 이날 손 제독의 동상에 참배했다. 손 제독은 해군의 아버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장 위태로울 때 대한민국을 지켜낸 최초의 해군 제독이기 때문이다.해군 관계자는 10일 “인천상륙작전을 말할 때 흔히 맥아더 장군은 기억하지만 거기엔 손 제독의 숨은 공도 있었다”며 “그는 6·25 전쟁에서 벌어진 최초의 해전에서 승리한 영웅이었다”고 설명했다. 1945년 11월 11일 서울 관훈동에서 해군의 모체인 해방병단이 생겼다. 육·해·공군 중 첫 창설이었다. 임시정부 임시의정원 의장으로 독립운동에 헌신했던 손정도 목사의 아들 손원일이 해방병단 총사령관에 올랐다. 그는 이후 해군 제독, 국군 최고지휘관, 5대 국방부장관 등을 역임했다. 손 제독은 젊은 시절 민족 번영의 방법이 바다에 있다고 봤다. 중국 상하이에 위치한 대학에서 항해과를 나왔고 중국 및 독일 해운회사에서 승선 생활을 하며 항해술을 습득했다. 이후 그는 1946년 해군사관학교의 전신인 해군병학교를 창설해 초대교장이 됐고 미국과 협상해 37척의 비전투 함정을 인수했다. 이후 전투함 보유를 위해 모금운동을 벌였고 이 돈으로 미국에서 4척의 전투함을 구입했다. 이중 하나가 우리나라의 첫 전투함인 ‘백두산함’이다. 백두산함은 6.25전쟁 발발 당일 동해로 긴급히 출동하다 부산 동북방 해상에서 무장병력 600여 명이 탑승하고 남하하는 함정을 발견하고 격침했다. 6·25 전쟁에서 벌어진 최초의 해전이었고 첫 승리였다. 또 맥아더 장군이 이끈 인천상륙작전은 영흥도와 덕적도를 탈환해야 구사할 수 있는 전략이었다. 손 제독의 지휘 아래 한국 해군은 1950년 8월 두 섬을 탈환하는 데 성공했고, 손 제독은 인천상륙작전부터 9·28 서울 수복작전까지 전장에서 함정과 해병대를 진두지휘했다. 서울 수복 작전 후 “국군과 유엔군은 수도 서울을 탈환했다”는 포고문을 발표한 것도 그였다. 1980년 운명한 손 제독은 “나라 없는 서러움보다 더한 것은 없다는 것을 명심하고 다시는 내 조국을 남에게 빼앗기지 않도록 잘 지켜주기를 간절히 바란다”는 유언을 남겼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 ‘대화의 희열’ 송해, 92세 이별 이야기에 유희열 눈물 “마지막 소원은”

    ‘대화의 희열’ 송해, 92세 이별 이야기에 유희열 눈물 “마지막 소원은”

    ‘대화의 희열’ 92세 송해의 삶이 녹아든 이야기가 시청자의 마음을 울렸다. “대통령은 바뀌어도 이 분은 안 바뀐다”, “모든 MC들의 롤모델”로 소개되는 이 사람. 바로 대한민국 최장수 예능프로그램 ‘전국노래자랑’의 국민MC 송해다. 지난 11월 3일 방송된 KBS 2TV ‘대화의 희열’에는 송해가 9번째 게스트로 출연했다. 살아있는 역사 교과서, 인생 교과서와도 같은 그의 삶은 깊은 감동과 울림을 전했다. 이날 송해는 그의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전국노래자랑’의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30여년간 전국 방방곡곡을 유랑하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 송해. 그 사람들에게서 몰랐던 것을 배운다는 송해는 “’전국노래자랑’은 나에겐 교과서”라고 말하며 애정을 드러냈다. 그러나 송해는 자신은 단 한 번도 ‘전국노래자랑’의 주인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고 했다. 송해는 “‘전국노래자랑’의 주인은 여러분”이라고 강조했다. 즐거움을 만드는 것은 여러분들이고, 자신은 그걸 받아서 전하는 사람일 뿐이라는 것. 여전히 ‘전국노래자랑’이 사랑을 받는 이유, 그가 왜 국민MC로 불리는지를 알 수 있었다. 1927년생 송해의 삶은 살아있는 역사 교과서와도 같았다. 일제시대를 거쳐 해방을 맞고, 6.25전쟁과 분단을 겪는 등 근현대사를 온몸으로 살아낸 것. 어머니와의 생이별 후, 혈혈단신으로 피란 여정을 떠나고,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는 바다 위에서 어머니를 그리며 지은 이름 ‘송해’의 의미는 가슴을 찡하게 만들었다. 또 휴전 전보를 자신의 손으로 쳤다는 송해의 얄궂은 운명은 놀라움을 자아냈다. 아직까지 고향인 황해도 재령 땅을 밟아보지 못한 송해의 한은 모두를 먹먹하게 했다. 송해는 어머니 이름만 불러도 눈시울을 붉혔다. 그러면서 최근 급진전하는 남북 관계에 다시 희망을 꿈꾼다고 말했다. 그의 마지막 소원은 고향 땅 재령에서 ‘전국노래자랑’을 여는 것. 송해는 “고향에 계신 여러분. 복희가 왔습니다. 전국노래자랑”을 외치며 보는 이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92년의 삶에는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야 하는 송해의 아픔도 있었다. 생이별한 어머니, 교통사고로 갑작스레 떠난 아들, 동료들, 그리고 올해 또 한 번 예고 없이 이별을 한 아내까지. 이러한 송해의 이야기를 듣던 중, 유희열은 아픈 어머니 생각에 울컥 눈물을 터뜨리고 말았다. 유희열의 손을 꼭 잡아주며 “괜찮아”라고 말해주는 송해의 모습은 따뜻한 위로로 다가와, 시청자들을 감동시켰다. 송해의 굴곡 많은 삶의 길을 함께 따라가며 울고 웃던 시간이었다. 살아온 세월만큼이나 깊고, 그 어느 때보다 진솔했던 송해와의 대화였다. 송해는 국민들의 변함없는 경청과 진심 어린 격려에 “하늘로 뜨는 기분이 난다”고 말했다. 92세라는 나이에도 여전히 현역으로 활동하는 그의 힘의 원천은 바로 여러분이었다. 방송 후 시청자들은 “TV에 더 많이 나오셨으면 좋겠어요”, “오래오래 있어주세요”라고, 한 마음으로 반응을 쏟아냈다. 한편 ‘대화의 희열’ 10번째 마지막 게스트로는 외상외과 의사 이국종이 출연할 예정. 사선을 넘나드는 중증외상센터 속 그와의 대화가 어떤 울림을 전할지 관심이 모아진다. 10일 토요일 밤 10시 45분 방송.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대화의 희열’ 송해 앞 오열하는 유희열 포착 “영광+눈물 가득한 삶”

    ‘대화의 희열’ 송해 앞 오열하는 유희열 포착 “영광+눈물 가득한 삶”

    ‘대화의 희열’ 송해 편에서 눈물의 대화가 펼쳐진다. KBS 2TV ‘대화의 희열’은 시대를 움직이는 ‘한 사람’과 사석에서 만나 대화를 나누는 콘셉트의 토크쇼다. MC 유희열을 필두로 前 청와대 연설비서관 강원국, 소설가 김중혁, 방송인 다니엘 린데만 등 감성과 지성을 두루 갖춘 패널들이 출연해 1인 게스트와 넓고 깊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이런 가운데 오늘(3일) 방송되는 ‘대화의 희열’ 9번째 대화의 주인공으로 국민MC 송해가 초대됐다. 송해는 옆집 할아버지 같은 푸근함과 친근함으로, 세대를 아우르는 사랑을 받고 있는 국민MC다. 현재까지도 여전히 현역에서 전성기를 달리며 왕성하게 활동을 펼치는, 한국 연예계의 살아있는 역사로 불리는 인물이다. 이날 송해는 영광과 눈물이 가득했던 삶의 이야기를 꺼냈다. 송해의 삶에 새겨진 가슴 아픈 역사가 생생히 그려질 예정. 송해는 고향인 황해도 재령을 떠나 아직까지 만나지 못한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드러냈다. 어머니의 얼굴이 가물가물 떠오르지 않는다고 말하던 송해는 끝내 눈물을 흘려 모두를 울컥하게 만들었다. 이어지는 송해의 가족 이야기를 듣고 있던 유희열은 자신의 어머니가 생각나, 참았던 눈물을 터뜨리고 말았다. 송해는 유희열의 손을 가만히 잡아주었다고. 소중한 사람을 떠올리는 두 사람의 가슴 찡한 사연이 이날 ‘대화의 희열’을 뭉클하게 물들였다는 전언이다. 송해, 유희열이 눈물 흘릴 수 밖에 없었던 이야기는 무엇일까. 이 밖에도 송해는 대한민국 최장수 예능프로그램 ‘전국노래자랑’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부터, 자신의 이름을 딴 ‘송해길’에 대한 이야기까지, 대중의 사랑을 받은 국민MC 송해의 모든 것을 풀어놓았다. 또한 송해는 일제시대, 광복, 6.25전쟁으로 이어지는 한국사를 온몸으로 겪은 이야기도 펼쳐냈다. 영광과 눈물이 가득했던, 송해의 삶의 길을 따라가는 대화에 관심이 모아진다. 하루의 끝에서 만난 대화의 마법, 국민MC 송해와의 원나잇 딥토크 ‘대화의 희열’ 9회는 11월 3일 토요일 밤 10시 50분 KBS 2TV에서 방송된다. 미방송분까지 더해진 오리지널 버전의 ‘대화의 희열’은 ‘네이버 오디오클립’에서 들을 수 있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나눔 코리아 210회째 무연고자 장례식

    전국 봉사활동단체 나눔코리아가 대구 수성구 만촌동 수성메트로병원 장례식장에서 210회째 무연고자 사랑의 무료장례식을 최근 진행했다. 6.25전쟁때 남쪽으로 피난 내려온 고인은 자식을 두지못했으며 친인척하나없이 병든 몸을 의탁할곳이 없어 요양병원 입소 두달만에 세상을 떠났다. 죽는 그 순간까지 세상에 혼자라는 외로움과 싸우며 북쪽의 형제들을 그리워 한 고인을 위해 나눔코리아는 빈소차림과 염습, 입관은 물론 고급리무진까지 정성껏 고인의 장례절차를 진행했다. 나눔코리아는 지난 21년간 한평생을 가족하나없이 쓸쓸히 홀로 살아가다 삶의 마지막 죽음을 외롭게 맞이하는 무연고자 어르신분들에게 마지막 그 순간만큼이나마 따뜻한 가족이되어 가시는 길에 외롭지 않도록 무연고자 사랑의 무료장례를 진행하고 있다. 또한 가족이 있지만 경제적 어려움으로 사체인수 포기를 할 수밖에 없는 이들에게 든든한 가족이되어 무연고자 사랑의 장례식을 함께 진행한다. 나눔코리아 조현두 중앙회장은 “삶의 마지막 순간에 혼자라는 외로움은 가장 쓸쓸하고 안타까운 고통이다”며 “무연고자 사랑의 장례식을 통해 함께 위로해줄수 있다는 것만으로 감사하다”고 말했다. 대구 한찬규 기자 cghan@seoul.co.kr
  •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우리나라 최초 해수욕장은? - 부산 송도 해수욕장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우리나라 최초 해수욕장은? - 부산 송도 해수욕장

    “거대한 파도들이 깊은 물이랑을 뒤로 끌면서 말 위에 높이 앉듯 흉흉하게 솟구치고 있었다.” <서정인, 물결이 높던 날. 1963> 소설 속 주인공 ‘현수’는 다방 아가씨 ‘명자’를 사랑한다. 거북섬이 어렴풋하게 보이는 송도해변의 높은 파고와 모래밭을 넘어야만 닿을 수 있는 다방과 문 앞만을 맴도는 서툰 염정(艶情). 자신도 어찌할 줄 모르게 솟아오르는 연민과 증오, 욕정의 어지러움을 달래기 위해 송도 해변을 현수는 한없이 걷고 또 걷는다. 소설은 송도해수욕장 주변을 배경으로 한 젊은 청년이 느끼는 복잡한 감정을 쉼없이 드러내고 뱉어낸다. 처음이자 최초로 다가 온 사랑의 감정앞에 현수는 결국 좌절한다. 어찌되었던 간에, 어느 쪽에서나 ‘최초’라는 타이틀을 거머쥔다는 것은 용한 일이 분명하다. 더구나 사람이나 물건이 아니라 붙박여있는 지역이나 건물이 그런 이름표를 걸게 되면 마을 하나가 살아갈 요량은 더더욱 확실해진다. 그러하다보니 제각기 서로가 원조이자 처음이고, 시작임을 내세우고 싶지만 세상일이 그리 간단하지는 않은 터. 우리나라 최초 해수욕장이라는 명찰 확실히 붙이고 있는 부산 송도해수욕장으로 가보자. 부산에는 현재 해운대, 광안리, 송정, 일광, 임랑, 송도, 다대포 해수욕장까지 총 7곳의 대표적인 해수욕장이 있다. 이중에서 송도와 다대포 해수욕장은 부산의 서남권을 대표하는 해수욕장이자 부산의 구도심과 연결되어 있어 역사가 만만치가 않다. 특히 송도해수욕장의 경우 부산역과 부산항에 인접하여 접근성이 뛰어나 예로부터 해수욕장 자리로는 제대로였다. 부산 서구 암남동에 위치한 송도(松島)해수욕장은 1913년 7월에 개장한 우리나라 제1호 공설 해수욕장이자 최초의 근대 해수욕장이다. 1910년대 일제 강점기 시절 일본 거류민을 중심으로 송도 해변가 주변이 조금씩 해수욕장으로 탈바꿈하다가, 1913년에 이르러 본격적으로 송도(지금의 거북섬)에 ‘수정(水亭)’이라는 휴게소가 들어서면서 해수욕장이라는 공식 명칭이 붙게 되었다. 이후 송도해수욕장은 일제강점기를 거쳐, 광복과 6.25전쟁 이후에도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해수욕장으로 이름값을 날린다. 1964년에는 길이 420m의 케이블카가 들어서고 거북섬을 잇는 구름다리가 만들어지면서 해수욕장의 인기는 지금의 해운대와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1970년대에는 신혼부부들이 꼭 가봐야하는 신혼여행지로 명성을 날려 구름다리와 거북섬은 하루 종일 연인들의 사진 배경이 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몰려드는 인파에 비하여 해수욕장 주변 환경 개선 사업은 전무하였는데 각종 생선 부산물 및 음식찌꺼기와 생활 하수가 그대로 바다로 흘러 내려갔다. 또한 부산 남항에서 배출된 각종 선박들의 오염물질 등으로 인하여 2000년에 들어서서는 송도는 해수욕장 기능을 잃어가기 시작한다. 여기에 더해 2003년 태풍 매미로 인하여 해안도로 200여 미터가 파손되어 송도 해수욕장은 제 역할을 하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다. 이에 부산시는 해수욕장 앞쪽 300m에는 너비 40m, 길이 300m에 이르는 수중방파제인 잠제(潛堤)를 설치하여 모래유실을 막는 공사를 하였고 이에 더해 27만m³의 모래를 백사장에 더해 지금의 송도해수욕장 모래사장을 만들기도 하였다. 현재는 송도해수욕장의 백사장 길이가 800m, 폭은 공식적으로는 50m이며 바로 옆에 위치한 수변공원의 넓이는 30,000m2에 이른다. 이 외에도 바다 위를 강화유리로 밟아보는 길이 104m, 폭2.3m의 ‘구름산책로’가 있어 바다 위를 걸어 거북섬에 닿을 수도 있으며, 케이블카가 설치되어 1.6Km 길이를 둘러 해수욕장을 가로지르는 짜릿함도 느낄 수 있다. 2018년 여름. 하루 종일 머리 위 불덩이 하나씩 얹고 보낸 올 여름의 중순. 송도해수욕장에서 여름과의 시원한 작별을 고하는 것도 괜찮지는 않을까. <송도해수욕장에 대한 여행 10문답> 1. 꼭 가봐야 할 정도로 중요한 여행지야? - 부산 해운대 지구가 아닌 부산 서구쪽 여행을 계획한다면. 부산 구도심과 가까운 해수욕장이서 가벼운 산책길로 괜찮다. 2. 누구와 함께? - 수심이 깊지 않다. 어린 자녀들과 함께. 3. 가는 방법은? - 서면역(1호선 승차) -> 자갈치역(하차) -> 96번 버스(환승) -> 송도해수욕장 정류장(하차) -> 송도해수욕장(도착) - 부산역에서 26번 버스(승차) -> 송도해수욕장 정류장(하차) -> 송도해수욕장(도착) 4. 감탄하는 점은? - 구름다리의 야경. 송림 공원의 시원한 바람. 5. 명성과 내실 관계는? - 이름에 비하여 피서객은 많지 않은 편이다. 최근에 다시금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6. 꼭 봐야할 공간은? - 거북섬. 케이블카. 구름다리. 7. 토박이들이 추천하는 먹거리는? - 예전부터 송도해수욕장은 장어구이가 유명하다. 해안가 주변 횟집들의 수준은 비슷한 수준. 8. 홈페이지 주소는? - http://songdo.bsseogu.go.kr/ 9. 주변에 더 볼거리는? - 국제시장, 이바구 거리, 산복도로, 자갈치시장. 10. 총평 및 당부사항 - 예전의 바가지는 완전히 사라졌다. 정찰제로 운영이 되며 인근 식당의 경우도 주거공간과 아울러 있는 송도해수욕장 특유의 입지 조건으로 인해 도심 여느 식당과 가격 차이가 없을 정도로 준수한 수준이다. 글·사진 윤경민 여행전문 프리랜서 기자 vieniame2017@gmail.com
  • [김대영의 무기 인사이드] 연안방위의 핵심 전투함정 참수리 고속정

    [김대영의 무기 인사이드] 연안방위의 핵심 전투함정 참수리 고속정

    고속정은 연안 경비임무를 수행하는 작지만 빠른 전투함정이다. 우리 해군의 대표적인 고속정으로는 '참수리'가 손꼽힌다. 참수리는 40~50여 척이 여전히 해군에서 운용되고 있으며, 제일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는 전투함이다. 1978년부터 작전 배치된 참수리는 동, 서해의 북방한계선을 사수하는데 앞장서고 있으며, 도서지역의 응급환자 수송 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 우리 해군 최초의 고속정 PT 보트 우리 해군 최초의 고속정은 PT 보트였다. 영어로 Patrol Torpedo Boat 즉 초계 어뢰정이란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태평양전쟁에서 맹활약한 PT 보트는 선체는 목재로 되어 있고 길이는 24미터, 배수량은 55톤 정도의 매우 작은 함정이었다. 그러나 1,500마력 엔진 3기를 장착해 8노트 속도에서 40노트로 가속하는 데 11초가 걸렸고 최고속도는 시속 48노트(약 90㎞)의 빠른 속도를 낼 수 있었다. 기관포와 기관총 그리고 어뢰로 무장한 PT 보트는 빠른 속도를 이용해 일본군을 상대로 치고 빠지는 전술을 구사해 큰 전과를 올렸다. 6.25전쟁이 한창이던 지난 1952년 1월 24일 우리 해군은 일본 사세보에서 미 해군으로부터 PT보트 4척을 인수한다. 갈매기, 기러기, 올빼미, 제비로 명명된 4척의 PT보트들은 동, 서해에 배치되어 맹활약을 한다. 참수리 고속정의 등장 6.25전쟁이 끝나고 북한은 호시탐탐 간첩선을 이용해 수많은 간첩들을 남쪽으로 내려 보냈다. 특히 1960년대 들어서면서 북한의 간첩선들은 대형화되기 시작했고, 각종 무장과 고성능 엔진을 장착해 화력이 강화되고 항해속도가 빨라졌다. 북한해군이 다수의 고속정을 운용하면서, 이에 맞대응 하기 위해 우리 해군도 많은 수의 고속정이 필요했다. 1972년 우리 군은 국산 고속정 시대를 개막하며 고속정 전력을 급성장시켰다. 특히 백구급 유도탄고속정을 국내에서 건조하면서 고속정 건조 기술이 대폭 향상되었다. 오늘날 해군의 주력 고속정이라고 할 수 있는 참수리 고속정은 지난 1976년부터 1993년까지 100여 척이 건조되었다. 참수리 고속정은 최초에는 기러기로 불렸다. 그러나 이후 해군에서 용맹성을 과시하고 속력이 빠르고 신속한 특성을 고려하여 참수리로 개명하였다. 참수리의 뒤를 잇는 참수리-211호정 지난 2017년 11월 1일 우리 영해를 지키게 될, 해군의 210톤(t)급 신형 고속정 참수리-211호정의 취역식이 진해군항에서 열렸다. 취역식은 군함이 건조와 인수과정을 거쳐 정식으로 해군 함정이 됐음을 선포하는 행사로, 참수리-211호정은 지난해 7월 부산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에서 진수식을 갖고 지난 16개월간 엄격한 인수평가를 거쳐 이날 오전 취역했다. 참수리를 대체하게 될 신형 고속정인 참수리-211호정은 130mm 유도로켓과 76mm 함포 및 12.7mm 원격사격통제체계를 장착해, 40mm와 20mm 함포만을 장착한 참수리 고속정에 비해 화력이 월등히 강화되었다. 추진체계는 윤영하급 유도탄 고속함과 같은 워터제트 방식으로 어망이 있는 낮은 수심의 해역에서도 작전을 수행할 수 있다. 또한 전자전장비와 대유도탄기만체계를 탑재함으로써, 적 대함미사일 공격에 대한 방어능력도 갖추고 있다. 참수리-211정은 해군 8전단에서 강도 높은 전력화 훈련을 받은 뒤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비롯한 최전방 해역에서 적 해상도발 억제 임무 등을 수행할 예정이다. 참수리 고속정 제원 (출처 해군) 톤수 130t / 길이 37m / 최대속력 38kts (70km/h) / 항속거리 약 1,100km / 승조원 30여명 / 무장40mm / 20mm 함포 김대영 군사평론가 kodefkim@naver.com
  • 판문점 북측지역의 관광객들

    판문점 북측지역의 관광객들

    정전협정 체결 65주년을 맞은 27일 오후 경기도 파주 판문점 북측 판문각에서 관광객들이 관광을 하고 있다. 2018.7.27 사진공동취재단6.25전쟁 정전협정 65주년을 맞은 27일 경기 파주 비무장지대 내 판문점 자유의집에서 판문각을 찾은 북측 관광객들의 모습이 보이고 있다. 2018.7.27 사진공동취재단 정전협정 체결 65주년을 맞은 27일 오후 경기도 파주 판문점에서 북한 시민들이 관광을 하고 있다. 2018.7.27 사진공동취재단 정전협정 체결 65주년을 맞은 27일 오후 경기도 파주 판문점에서 북한 병사들이 이동하고 있다. 2018.7.27 사진공동취재단
  • 용사의 눈물

    용사의 눈물

    25일 서울 송파구 잠실실내체육관에서 6.25전쟁 제68주년 기념식이 열렸다. 이낙연 국무총리를 비롯한 정부 주요인사들이 자리를 했고 국내외의 6.25 참전유공자들도 참석했다. 70여년 전 전장을 누비던 참전용사들은 이제 주름진 피부와 흰 백발을 가진 모습이었지만 표정만큼은 전쟁 당시의 모습처럼 자신감과 용맹함이 옅보였다. 하지만 당시 모습을 재연하는 공연이 펼쳐지자 그 때의 아픈 기억이 떠올랐는지 곳곳에서 눈물을 훔치는 용사들의 모습이 보였다. 70여년이이란 긴 세월이 흘렀지만 그들에게는 전쟁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남북 정상회담 , 북미정상회담으로 한반도에 평화의 훈풍이 불고 있다. 지금 이 평화를 누릴 수 있었던 것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내놓고 싸우던 그들이 있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다. 2018. 6. 25 정연호 기자 tpgod@seoul.co.kr
  • [김대영의 무기 인사이드] ‘서울 불바다’ 핵심무기 北장사정포

    [김대영의 무기 인사이드] ‘서울 불바다’ 핵심무기 北장사정포

    지난 14일 열린 남북 장성급 군사회담에서 비무장지대 부근에 집중 배치된 장사정포를 후방으로 빼는 문제가 언급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와 관련해 국방부는 논의된 바가 없다고 부인했지만 적지 않은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장사정포는 북한이 가지고 있는 사거리 40㎞ 이상의 화포로, 170㎜ 자주포와 240㎜ 방사포가 대표적인 무기로 손꼽힌다. 북 1970년대부터 장사정포 개발 집중해 6.25전쟁이 끝나고 북한군은 포병에 집중적인 투자를 시작한다. 지난 1960년대부터 이후부터 자주포와 견인포 그리고 북한에서는 방사포라 불리는 다연장 로켓포를 독자적으로 생산하기 시작했으며, 1970년대 말에는 사거리가 40km 이상인 장사정포 개발에 집중한다. 이러한 장사정포가 위협으로 급부상한 것은 지난 1994년이었다. 판문점에서 개최된 남북 특사교환을 위한 실무접촉회담에서, 북한의 박영수 대표는 “여기서 서울이 멀지 않다. 전쟁이 나면 불바다가 되고 만다.”고 위협했다. 결국 이날 회담은 파행으로 끝났고 언론을 통해 “불바다 발언”이 알려지면서, 놀란 시민들은 전쟁이 금방 일어날 것처럼 겁에 질려 사재기에 나섰다. 북측의 이러한 발언은 북한군이 보유한 장사정포는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대부분의 지역을 사거리에 두고 있으며, 명령만 떨어지면 언제든지 공격할 태세를 갖추고 있다는 자신감을 표출한 것이었다. 서울과 수도권 노리는 330여문의 장사정포 북한은 비무장지대 인근 북측지역에 약 1,000문의 각종 화포를 배치해 놓았다. 이 가운데 사거리 54㎞의 170㎜ 자주포 6개 대대와 사거리 60㎞의 240㎜ 방사포 10여 개 대대 소속 330여 문이 서울과 수도권을 직접 겨냥하고 있다. 170mm 자주포는 북한이 소련의 170mm 해안포를 개조해 자체 개발한 자주포로 북한군은 M1978과 M1989 두 종류의 자주포를 운용 중에 있다. 또한 240mm 방사포 역시 M1985와 M1992 두 종류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170mm 자주포와 240mm 방사포는 갱도진지에서 주로 운용된다. 170mm 자주포의 경우 산의 앞부분과 도로 주변에, 240mm 방사포는 뒷부분에 갱도진지가 배치되어 있다. 330여문의 북한군 장사정포가 사격을 한다면 최대 시간당 1만 6천여발의 포탄을 발사할 수 있고, 서울 도심에 떨어질 경우 10만명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밖에 장사정포는 고폭탄외에도 대량살상무기인 화학무기도 운용할 수 있다. 북 장사정포 후방 철수 시 군사적 긴장 대폭완화 우리 군은 북한군의 장사정포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155㎜ K-9 자주포와 차기 다연장로켓포인 '천무'를 배치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국방과학연구소는 갱도진지에 숨겨진 북한 장사정포를 타격할 수 있는 전술지대지유도무기 개발을 끝낸 상태다. 전술지대지유도무기는 열압력탄두를 장착하고 있어, 단 한발로도 북한군 장사정포 진지에 큰 피해를 줄 수 있다. 이밖에 경기 동두천에 있는 주한 미 2사단 예하 210 화력여단도 중요임무 가운데 하나가 유사시 북한 장사정포를 조기 제거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서울과 수도권을 위협하는 강력한 무기인 북한군의 장사정포가 후방으로 철수할 경우 군사적 긴장 완화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넘어야 할 산도 적지 않다. 우선 남북간의 군사적 신뢰관계를 지금보다 높은 수준으로 쌓아야 한다. 또한 남북 정상 즉 최고위급의 결단도 필요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김대영 군사평론가 kodefkim@naver.com
  • 성유리, 현충일 맞아 목소리로 유해발굴감식단 알린다

    성유리, 현충일 맞아 목소리로 유해발굴감식단 알린다

    배우 성유리가 6월 호국보훈의 달이자 6일 현충일을 맞아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의 홍보 영상에 재능기부를 했다. ‘10년, 약속의 시간’이라는 제목의 영상에는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의 지난 노력과 앞으로의 계획이 담겨 있다. 내레이션을 담당한 성유리는 “이런 국가적인 중요 사업에 함께할 수 있어서 영광이다. 전사자 유해가 하루빨리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이 영상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홍보 영상은 한국어와 영어 버전으로 각각 제작됐다. 특히 영어로 제작된 영상은 미국, 호주 등 6.25전쟁에 참전한 21개 국가를 포함한 전 세계 주요 50개국의 한인회 커뮤니티등에 올려 외국인 참전용사의 참여를 이끌어낼 예정이다. 유해발굴감식단 홍보대사인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는 “지금 이 순간에도 6.25전사자 유해가 차가운 땅속에서 우리의 손길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이런 사실조차 우리가 잊고 지내는 것이 안타까워 영상을 제작하게 됐다”고 전했다. 유해발굴감식단 단장인 이학기 대령은 “유해발굴사업의 성과를 높이려면 무엇보다 6.25전사자 유해소재에 대한 제보 및 유가족들의 유전자 시료채취가 매우 중요하다”며 “국민들의 적극적인 동참을 호소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은 지금까지 혜리·진구·박하선 등 배우들과 함께 영상을 제작했으며, 앞으로 더욱 다양한 영상 캠페인을 통해 국민의 지속적인 관심을 유도할 예정이다. 문성호 기자 sungho@seoul.co.kr
  • [최병규 기자의 스포츠 잡스] 144명의 월드컵 전사, 한국축구의 역사

    [최병규 기자의 스포츠 잡스] 144명의 월드컵 전사, 한국축구의 역사

    지난 14일 마침내 2018 러시아월드컵에 나설 23명과 예비 전력을 포함한 28명의 태극전사 명단이이 발표됐다. 1954년 스위스대회 이후 지난 2014 브라질대회까지 총 아홉 차례 월드컵에 참가한 대표팀의 명단은 대한민국 축구 역사에 다름 아니다. ◆‘바늘 구멍’ 에 들어간 선수는 총 144명 수 천명의 동시대 선수 중에서 국가대표 선수로 발탁되는 것만 해도 ‘하늘의 별따기’라고 한다. 더구나 4년에 한번씩 열리는 월드컵 본선에 참가하는 것은 ‘가문의 영광’으로도 불린다. 1954년 스위스대회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월드컵 본선 참가의 영예를 맛본 한국 선수는 모두 144명이다(2회 이상 참가 선수는 1명으로 계산) ◆최다 참가 선수는 홍명보, 황선홍, 이운재 한번 참가하기도 힘든 월드컵에 네 차례나 나간 선수들도 있었다. 홍명보(현 대한축구협회 전무)와 황선홍(전 FC서울 감독), 이운재(수원 삼성 코치) 등 셋이다.홍명보와 황선홍은 1990년 이탈리아대회부터 2002 한·일월드컵까지 4회 연속 엔트리에 이름을 올렸고, 이운재는 1994, 2002, 2006, 2010년 대회에 참가했다. 3회 출전한 선수도 6명이나 된다. 김주성(1986, 90, 94년), 박지성, 이영표, 김남일, 안정환(이상 2002,06,10년), 박주영(2006,10,14년) 등이 세 번이나 월드컵 그라운드를 밟았다. ◆최연소 출전은 이동국 역대 월드컵 참가 선수중에서 가장 어린 나이에 월드컵 무대를 밟은 선수는 이동국(전북 현대)이다. 이동국은 만19세 2개월이던 1998 프랑스월드컵 네덜란드전에 출전했다. 고교 졸업후 포항스틸러스에 입단한지 불과 4개월 밖에 안될 때였다. 2위는 같은 프랑스월드컵에 참가한 고종수의 19세 8개월이고, 3위는 1986 멕시코월드컵에서 뛰었던 김주성의 20세 5개월이다. ◆최고령 선수는 박규정 역대 최고령 선수도 있다. 1954년 스위스월드컵에 참가했던 박규정이다. 1915년에 태어난 수비수 박규정은 당시 39세 2개월의 나이에 첫 경기 헝가리전에 출전했다. 2위와 3위도 1954년 대회에 나선 정국진(37세 6개월)과 정남식(37세 5개월)이다. 스위스월드컵에 참가한 한국 선수들은 유독 노장들이 많았다. 6.25전쟁으로 인해 선수 육성의 맥이 끊겨 일제 강점기와 해방 직후에 활약하던 선수들이 다수 참가했기 때문이다. 1986 멕시코 월드컵 이후로만 한정하면 이운재(37세 2개월, 2010년), 최진철(35세 3개월, 2006년), 안정환(34세 5개월, 2010년) 순이다.◆평균 나이는 27.3세 역대 월드컵에 참가한 한국 선수들의 평균 나이를 보면 1954년 대회가 30세 8개월로 가장 많았다. 반면 1986년 멕시코대회 때는 26세 3개월로 가장 어렸다. 지금까지 참가한 9개 월드컵 대회의 평균을 계산하면 27.3세다. 4강 신화를 쓴 2002년 한·일월드컵의 태극전사들 나이는 정확히 평균에 해당하는 27세 3개월이었다. 축구 선수의 기량이 최고조에 이르는 시기가 27살 ~ 28살이라는 전문가들의 주장이 어느 정도 들어맞는 셈이다. ◆최다 출신팀은 부평고 - 고려대 - 울산현대 144명의 역대 참가 선수들을 출신 학교별로 보면 고등학교는 부평고가 12명으로 가장 많았다. 노정윤, 이임생, 김남일, 이근호 등을 배출했다. 출신 대학은 고려대(보성전문 포함)가 26명으로 최다였다. 대회 참가 당시 소속팀으로는 울산현대가 24명으로 제일 많았다. 최다 배출 고교-대학-프로팀에 모두 해당하는 선수는 이천수(현 Jtbc 해설위원) 한 명이다. 최병규 전문기자 cbk91065@seoul.co.kr
  • [김대영의 무기 인사이드] 해적들 벌벌 떨게 만든 한국형 구축함(DDH-Ⅱ)

    [김대영의 무기 인사이드] 해적들 벌벌 떨게 만든 한국형 구축함(DDH-Ⅱ)

    지난 4월 27일 아프리카 가나 해역에서 해적에게 피랍된 한국 선원 3명이 32일 만에 석방됐다. 풀려난 선원들은 한국형 구축함(DDH-Ⅱ)인 문무대왕함을 타고 가나 테마항으로 안전하게 호송됐다. 앞서 청해부대의 문무대왕함은 문재인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3월 28일 오전 9시 아프리카 기니만 해역으로 전격 출동했다. 피랍됐던 선원들에 따르면 협상과정에서 해적들은 문무대왕함이 와있다는 자체만으로 상당한 심리적 압박을 느꼈다고 한다. 이렇듯 우리 정부의 발 빠른 행동 덕에 선원들은 무사하게 석방될 수 있었다. 구축함의 구축은 무슨 뜻? 구축함은 대잠전과 대함전뿐만 아니라 대공전 능력을 갖춘 전투함으로, 우리 해군 해상기동부대의 주력함이다. 빠른 항해 속력과 높은 기동력 그리고 장거리 항해능력을 갖춘 구축함은, 나라마다 기준에 차이가 있지만 배수량 즉 배가 물에 떠 있을 때 배제된 물의 중량을 기준으로 3000t에서 8000t 사이의 전투함을 뜻한다. 구축함의 구축은 무슨 의미를 지닐까? 구축함의 한자 구축(驅逐)은 ‘몰아서 내쫓는다’는 의미를 지닌다. 또 다른 의미의 구축(構築) 즉 ‘쌓아 올려 만듦’과는 완전히 다른 뜻이라고 할 수 있다. 영어로 구축함은 디스트로이어(Destroyer)로 불린다. 구축함의 탄생은 어뢰와 깊은 연관이 있다. 어뢰는 구약성서에서 골리앗이라는 거인을 쓰러뜨린 다윗의 돌팔매처럼, 단 한방으로 대형 군함에 큰 피해를 줄 수 있었다. 이 때문에 어뢰를 주공격 무기로 하는 해군함정인 어뢰정이 개발됐고 이를 잡기 위한 함정으로 구축함이 만들어졌다. 우리 해군 최초의 구축함 충무함 창군 이후 전투함이 단 한 척도 없었던 우리 해군은 해군 장병과 부인회의 헌신적인 성금 마련으로 1949년 10월 17일 최초의 전투함인 백두산함을 미국으로부터 인수하게 된다. 하지만 구축함은 먼 꿈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6.25전쟁 이후 한미 상호방위조약 및 상호협정에 따라 새로운 함정을 미국으로부터 도입하게 됐고, 특히 1963년 5월 16일 숙원이었던 구축함을 도입하게 된다. 충무함이라 명명된 이 구축함은 미 해군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대량으로 건조했던 플레처급 구축함 중에 하나로 미 해군에서는 어빈함(Erben)으로 불렸다. 어빈함은 제2차 세계대전과 6.25전쟁에도 참전했다. 충무함은 우리 해군의 주력 전투함으로 해상경비작전과 영해 수호에 앞장섰으며, 1965년 3월에 거진 근해에 침투한 간첩선을 나포하고 간첩 8명을 생포했다. 대간첩작전에서 크고 작은 전공을 세운 충무함은 1993년 퇴역했다. 청해부대의 기함으로 활약 중인 한국형 구축함(DDH-Ⅱ) 미국에서 도입한 구형 구축함을 운용하던 우리 해군은 주변국과의 분쟁 발생 억제, 주변 해역에 대한 재해권 행사, 해양자원을 보호하며 국익을 수호할 수 있는 해상작전 헬기를 운용할 수 있는 ‘DDH’ 즉 헬기탑재형 구축함의 필요성을 인식했다. 지난 2003년 취역한 충무공 이순신함은 DDH-Ⅱ로 알려져 있으며, 최초의 한국형 구축함인 광개토대왕함(DDH-Ⅰ)에 비해 크기가 커지고, 대양에서의 임무 수행능력이 대폭 향상됐다. 2006년까지 총 6척이 건조된 DDH-Ⅱ는 2004년 환태평양 군사훈련인 림팩(RIMPAC)을 시작으로, 청해부대에 이르기까지 중요한 해외 훈련과 군사작전에 빠지지 않고 참가하고 있다. 특히 청해부대에 소속됐던 최영함의 경우 2010년 12월 29일 아덴만 여명 작전을 펼쳐, 소말리아 해적에 납치된 삼호주얼리호 선원들을 성공적으로 구출하기도 했다. 또한 2011년에는 리비아 반정부 시위로 인해 고립된, 리비아 교민들의 철수를 도왔다. 영상=해상기동훈련에서 5인치 함포를 발사 중인 한국형 구축함(DDH-Ⅱ) 대조영함 (출처 해군) 한국형 구축함(DDH-Ⅱ) 제원 톤수 4,400t / 길이 150m 최대속력 29kts (54km/h) 항속거리 약 10,200km 승조원 230여 명 / 5인치(127㎜) 함포, 장거리 대잠어뢰 함대함 / 함대공 유도탄 대함유도탄 방어유도탄 30mm 근접방어무기체계 (출처 해군) 김대영 군사평론가 kodefkim@naver.com
  • 황보, ‘친절한 기사단’ 출격…유창한 영어 실력 ‘반전 언니美’

    황보, ‘친절한 기사단’ 출격…유창한 영어 실력 ‘반전 언니美’

    오늘(28일) 저녁 8시 10분에 방송하는 tvN ‘친절한 기사단’ 9회에 원조 걸크러시 황보가 등장한다. 유창한 영어실력은 물론 때로는 다정한 ‘언니미’로 외국 손님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이날 방송에서 황보와 ‘친절한 기사단’ MC 이수근, 김영철, 윤소희, 마이크로닷은 외국 손님들과 함께 ‘타임슬립’ 여행에 나선다. 전쟁기념관을 방문해 6.25전쟁의 과정과 아픔을 마주하고, 서대문 형무소에서 일제 감정기 시대의 이야기를 함께 하는 것. 독일, 미국, 캐나다 등 각기 다른 나라에서 왔지만 과거의 아픔을 공감하며 뜻 깊은 시간을 이어갔다는 후문이다. 또한 역대 사상 최대 인원이 모인 만큼 한국을 방문한 외국 손님들의 다양한 이야기가 재미를 더 할 예정이다. 한국에서 입양한 아들과의 여행을 떠난 모자의 이야기, 한국을 사랑해 친구들과 함께 재방문한 독일 친구들의 이야기 등 다채로운 사연이 공개될 전망이다. 한편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과 마음의 이야기를 나누며 소통하는 ‘친절한 기사단’은 매주 수요일 저녁 8시 10분에 방송된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안양문화예술재단, 김중업 작고 30주기 기념 특별전 개최

    안양문화예술재단, 김중업 작고 30주기 기념 특별전 개최

    한국 현대건축을 가장 한국적으로 승화시킨 거장 김중업 작고 30주기를 기념하는 특별전시회가 개최된다. 안양문화예술재단은 오는 31일부터 안양예술공원 입구의 김중업건축박물관 특별전시관에서 ‘김중업, 르 코르뷔지에를 만나다. 파리 세브르가 35번지의 기억’을 개최한다고 26일 밝혔다.건축가 김중업은 6.25전쟁 당시 부산 피난 생활 중 1952년 유네스코 주최로 베니스에서 열린 제1회 국제예술가대회에 참석 현대거장 르 코르부지에를 만났다. 이를 계기로 파리 세브르가 35번지에 있던 ‘아틀리에 르 코르뷔지에‘의 일원이 되어 3년 2개월 동안 근무하면서 총 12개의 건축 작업에 참여해 320여장에 달하는 도면을 남겼다. 김중업은 르 코르뷔지에의 유일한 한국인 제자로 파리 르 코르뷔지에의 아틀리에에서 근무하며 모더니즘 건축의 최전선을 경험한 뒤 귀국해 우리 현대건축의 기반을 닦았다. 이번 전시에서는 김중업이 참여한 르 코르뷔지에의 작품 중 10개의 주요작품과 관련된 123점의 도면, 스케치, 모형을 대여해 전시한다. 출품작은 자울주택, 낭트 르제의 위니테 다비타시옹, 인도 아메다바드의 방직자협회 회관, 쇼단 저택, 사라바이 저택, 인도 샹디갈의 의사당, 행정청사, 고등법원, 주지사관저 등으로 르 코르뷔지에의 후기 대표작 대부분이 전시된다. 전시구성은 김중업이 르 코르뷔지에와의 만남을 시작으로 4개의 섹션으로 이루줬다. 김중업 건축의 시작점을 확인하는 동시에 한국 현대건축이 서구 모더니즘 건축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보여준다. 전시와 연계해 다음 달 21일에는 한국건축역사학회와 공동으로 ‘르 코르뷔지에와 김중업, 그리고 한국의 현대건축’을 주제로 심포지엄을 개최한다. 4월과 5월에는 특별강연 시리즈가 열린다. 안양문화예술재단 관계자는 “이번 전시를 통해 김중업과 르 코르뷔지에의 만남을 재조명하고 거장과의 만남이 한국 현대건축에 미친 영향을 알아보는 뜻깊은 전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남상인 기자 sanginn@seoul.co.kr
  • 서해수호의 날과 국가보훈 <서울남부보훈지청 보훈과장 김성민>

    서해수호의 날과 국가보훈 <서울남부보훈지청 보훈과장 김성민>

    모든 국가에는 그 공동체의 존립을 위해 헌신한 사람을 기억하고 기리는 기념일이 있다. 추모와 기념은 곧 국가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근간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일제로부터의 민족독립에 이어 6.25전쟁이란 참혹한 시련을 거쳐 자유 민주주의 체제를 유지해 왔다. 대한민국에 광복절과 6.25전쟁 기념일이 있는 이유이다. 6.25전쟁 이후에도 60여 년간 남북 간에 수많은 군사적 충돌이 있었다. 현재가 6.25전쟁의 종전이 아니라 휴전임을 상기한다면 이러한 군사적 충돌 역시 당연히 기억되어야 할 역사이다. 그러나 북한의 지속적이고 국지적인 도발과 남북한 충돌은 도리어 우리의 기억을 무디게 한다. 불안을 견디기 어려워 불안을 잊고 싶어 한다. 그럼에도 우리의 현실은 여전히 남북의 무장한 군인들이 마주보고 있는 상태이다. 남북한의 해상 경계를 가르는 NLL 중 도서로 이루어진 서해에서도 북한의 도발이 있었다. 함정을 이용한 전투와 일방적 공격, 민간지역에의 포격 등 도발의 양상도 다양하다. 이 과정에서 우리의 주권과 영해를 지키기 위해 55명의 군인들이 순국하였다. 정부는 제2연평해전과 천안함 피격, 연평도 포격 등 서해를 지키기 위한 우리 군의 활동과 희생을 기려 2016년 국가기념일로 서해수호의 날을 제정하였다. 천안함 피격일에 맞추어 매년 3월 넷째 금요일로 정하였으며 금년 제3회 기념일은 오는 3월 23일이다. 국가보훈처 주관으로 55명의 순국 장병들이 영면해있는 대전현충원에서 중앙기념식이 거행될 예정이다. 서울에서는 서울지방청과 남부‧북부보훈지청이 공동으로 광화문광장에서 별도의 기념식을 거행한다. 서해수호의 날은 비단 서해만이 아니라 6.25전쟁 이후 지속된, 북한의 도발과 무력충돌을 기억하자는 뜻을 담고 있다. 남북한의 무력충돌을 억제하고 평화공존으로 가는 미래지향적 관계는 국가수호에 헌신한 분들에 대한 예우에서 출발해야 한다. 국가보훈은 대한민국의 과거이자 현재이며, 미래를 비추는 거울인 것이다. 대한민국에 자유민주주의는 특정한 정권이나 시기를 초월하는 공통된 국가정체성이다.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 개인의 헌신과 희생을 강요하기는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이를 위한 공헌과 희생이 더욱 기억되어야 한다. 국가 존립을 위해 공헌, 희생한 이들을 기리는 것은 국가의 책무이지만, 국민의 도리이기도 할 것이다.
  • 2월의 6.25전쟁 영웅, 네덜란드 육군중령 마리우스 덴 오우덴

    국가보훈처는 마리누스 덴 오우덴(1909~1951) 네덜란드 육군 중령을 ‘2월의 6·25전쟁 영웅’으로 선정했다고 30일 밝혔다. 6·25전쟁 당시 유엔군 네덜란드 대대를 지휘한 오우덴 중령은 한국 도착 1주일 만인 1950년 12월 초 전선에 투입돼 혹한 속에서 미2사단 38연대와 함께 북한군과 중공군을 방어하는 작전을 수행했다. 1951년 2월 11일 홍천~횡성 간 도로에서 북한군과 중공군의 대대적인 반격을 방어하며 퇴각하는 국군을 엄호하다 전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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