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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애틀랜타올림픽 오늘 개막/한국선수단 4백28명 96번째 입장

    【애틀랜타=올림픽특별취재단】 근대올림픽 1백년을 맞는 제26회 애틀랜타올림픽이 20일 상오 9시30분(이하 한국시간)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의 센테니얼 올림픽스타디움에서 장엄한 개막 팡파르를 울린다. 역대 올림픽 사상 가장 많은 1백97개국에서 모인 1만5천여명의 선수와 임원들은 개막식이 전세계 2백20개국에 TV로 생중계돼 지구촌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지난 5월 개장한 올림픽 스타디움에서 올림픽 발상지인 그리스선수단을 첫머리로 화려한 입장퍼레이드를 벌인다. 25개 종목에 4백28명의 선수를 출전시킨 한국은 남자배구팀의 최천식을 기수로 앞장 세워 96번째로 입장하며 개최국 미국이 마지막 1백97번째로 입장. 지난 93년 5월 제1회 상해 동아시아대회 이후 3년여만에 국제스포츠무대에 나선 북한선수단은 9개종목 24명의 선수와 36명의 임원이 참가해 1백39번째로 입장한다. 이날 개회식은 빌 클린턴 미국대통령의 개회선언에 이어 미국 여자농구대표팀의 가드 테레사 에드워즈의 선수대표 선서가 있으며 20일 하오부터 사격,수영,농구,체조,유도,레슬링,펜싱 등 7개 종목 경기에 돌입,26개 종목에서 2백71개의 금메달을 다투는 메달레이스가 시작된다. 한국은 경기 첫날인 20일 하오 10시 김정미와 진순영이 여자 공기소총에 출전,대회 첫 금메달에 도전한다. 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여갑순이 대회 첫 금메달을 따낸 이 종목에서 한국은 대회 2연속 금메달을 따냄으로써 그 기세를 이어가 이번 대회 목표를 달성할 것을 기대하고 있다. 역대 최대규모 선수단을 파견한 한국은 이번에 양궁,사격,유도,레슬링,배드민턴 등에서 금메달 12개 이상을 획득,종합 5위 진입을 목표로 하고 있다.
  • 차보험료/분납 유예기간 30일로/16일부터

    ◎보험사 미납 서면통보 의무화 오는 16일부터 자동차 종합 보험료의 분할 납입유예 기간이 현행 14일에서 30일로 늘어난다.가입자가 약정한 납입일까지 보험료를 내지 않을 경우 30일간의 유예기간 동안 보험료를 내도록 보험사가 가입자에게 알려주는 「최고제도」도 도입된다. 재정경제원은 4일 이같은 내용을 골자로 하는 자동차 보험료 분납제도 개선 방안을 마련,자동차 보험약관 및 요율서를 개정한 뒤 16일부터 시행키로 했다고 발표했다. 재경원은 보험료 납입 유예기간을 두고 유예기간까지 보험료를 내지 않을 경우 보험계약을 자동 실효토록 돼있는 자동차 보험 약관조항이 상법 위반으로 무효라는 대법원의 판결을 반영,약관을 고쳐 최고제를 실시키로 했다.보험사는 보험가입자에게 유예기간 동안에 보험료를 내도록 반드시 서면으로 알려줘야 한다.유예기간 중 낸 사고는 보험처리된다. 납입 약정일을 넘겨 보험료를 낸 가입자의 경우 이자비용은 보험사가 부담하나 납입유예기간 중 보험료를 내도록 알리는데 드는 우편료 등의 비용(6천5백원 가량)은 가입자가 내야한다. 분납에 따른 보험사의 이자비용을 줄이기 위해 이용실적이 저조한 2회 연속납(1·2월 연속납)과 3회납(1·2·3월 연속납) 및 11회납(1∼11월 연속납)은 없앴다.따라서 2회납(1·6월)과 4회납(1·3·6·9월) 및 6회납(1·2·4·6·8·10월)만 가능하다.
  • 올림픽을 향해/황석현논설위원(외언내언)

    불암산을 넘어 불어오는 매서운 겨울바람이 유난히 을씨년스럽지만 선수들의 얼굴 얼굴에는 구슬땀이 맺혀있다.그리 높지않은 울타리 저편에 빽빽이 들어찬 상록수와 인적 드문 도로변에 끝없이 늘어선 나목들이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 태릉선수촌.국가대표선수들의 요람이다. 태릉선수촌이 문을 연것은 66년 6월.초기에는 합숙소 구실밖에 못했지만 지금은 10만평이 넘는 대지에 전문종목별 체육관과 축구장,테니스코트,옥외스케이트장,실내링크 등이 완벽하게 갖추어져 있다.얼핏 보아서는 한적하기 이를데 없지만 정문을 들어서면 우렁찬 함성과 함께 긴장감이 넘쳐 흐른다. 연말연시 휴가를 끝낸 각종목 대표선수들이 4일부터 일제히 애틀랜타올림픽에 대비한 강화훈련에 돌입한 것이다.2월까지 체력훈련을 갖고 3월부터는 종목별 실전훈련을 쌓는다.실전훈련때는 선수촌의 모든 실내경기장을 애틀랜타경기장과 똑같은 온도 및 습도를 유지토록 해 무더위와 에어컨에 대한 적응력도 높일 계획. 오는 7월20일부터 8월5일까지 열리는 제26회 올림픽은 여느 올림픽보다 두가지 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하나는 1896년 그리스 아테네에서 첫 근대올림픽이 열린 이후 꼭 백년만에 개최된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불참을 고집하던 북한이 참가를 통보해옴으로써 사상 처음으로 IOC(국제올림픽위원회) 1백97개 회원국 모두가 출전하는 올림픽이 될 것이란 점이다.그래서 우리 대표선수들의 결의는 어느때보다 비장하다. 우리 선수단이 겨냥하고 있는 애틀랜타올림픽의 목표는 84년(10위) 88년(4위) 92년(7위)에 이어 4회연속 종합10위권에 진입하는 것.양궁,유도,배드민턴,레슬링,핸드볼,마라톤,탁구 등에서 금메달을 노리고 있다. 목표달성을 위해서는 10개 이상의 금메달을 따내야 하지만 올림픽 금맥을 캐기란 쉽지 않다.그러나 굳은 결의로 최선을 다한다면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각종목 코칭스태프와 선수들의 분발을 당부한다.
  • 여형구 건교부 신공항건설기획단 개발과장(폴리시 메이커)

    ◎“10조원 투자 신공항 대역사에 최선”/예산증액·고속도 건설협상 타결로 홀가분 영종도 신공항 건설공사는 단군이래 최대규모 공사로 불리는 국가적 대역사이다.오는 20 20년까지 4단계로 나눠 추진될 이 공사는 투자비가 10조원이 훨씬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건설교통부 신국제공항건설기획단의 여형구 개발과장(36)은 이 대역사를 책임지고 완수해야 하는 실무주역이다.그는 이 일을 맡은 데 대해 『한마디로 중압감을 느낀다』고 했다.『일본이 오사카 앞바다를 메워 간사이 공항을 건설할 때 세계의 시선이 일본에 모아졌습니다.이제 그 시선이 인천 앞바다를 향하고 있습니다』 영종도 국제공항은 일본이 자랑하는 간사이 공항의 2배 규모이다.국제적인 관심은 과연 한국이 국내 기술과 경험만으로 이런 대규모 공사를 제대로 치러낼 수 있을지에 모아지고 있다.여과장이 중압감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이 일을 맡고부터 하루 하루가 긴장의 연속이라고 털어놓았다. 지난해 5월부터 밤낮없이 신공항건설계획에만 매달려 온 그에게 어깨를 한결 가볍게 해주는 일이 최근 잇따라 생겼다.지난달 30일 국무총리가 중심이 된 신공항건설 추진위원회에서 3년간 끌어 온 기본계획 변경안이 확정됐기 때문이다.국내 최초로 민간자본으로 건설되는 수도권 신공항고속도로도 우여곡절 끝에 민간업체와 합의,오는 7일 기공식을 갖는다. 『99년까지의 1단계 건설비가 93년 8월에 잠정 결정한 규모보다 1조4천억원이 늘어 5조4천억원으로 최종 결정됐습니다.활주로 증설 등 사업량이 증가하고 가격 현실화로 사업비가 대폭 늘었습니다.동북아의 진정한 중심 국제공항이 되기 위해서는 예산증액이 불가피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 변경안을 확정하기 위해 적지않은 어려움을 겪었다.그러나 공항연계 고속도로 건설문제로 민간업체와 합의를 이끌어 내야 하는 협상과정은 더욱 피를 말렸다.『민자유치법 시행 이후 정부와 민간업체가 대등한 입장에서 벌인 첫 협상이라는 점에서 참고할만한 선례가 없어 난감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습니다.사업비·할인료·운영비 등 난제가 산적했지만 최근 타결을 지어 얼마나 홀가분한 지 모릅니다』 그러나 성취감도 잠시다.이제는 신공항을 짓고 있는 홍콩(첵렉콕공항),중국(상해),말레이시아(세팡),태국(농노하우) 등 이웃 나라의 새 공항들을 앞질러야 하는 부담이 다가서고 있다.대학(한양대)에서 토목을 전공하고 80년 기술고시(16회)에 합격,항공분야에서만 14년간 근무한 그의 새로운 「도전」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 한국의 안보리 진출 의미와 전망

    ◎“안보이사국 코리아”… 외교 새 지평 열다/남북 대결 청산… 아주이익 대변자로/미·일 편중 대외정책 탈피의 시험대 올라 한국이 유엔총회에서 안보리 비상임이사국에 피선된 것은 한국외교사의 새 지평을 연 사건으로 기록될 만하다.이로써 우리나라는 유엔무대에서 보다 적극적 발언권행사를 통해 주요 국제문제에 대해 우리의 「독자적」 시각을 제시하고 해결책을 모색,국가의 위상을 한단계 높이는 결과를 가져올 것으로 에상된다. 우리나라가 안보리 진출로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수확은 한반도의 평화유지확보다.이는 남북대결외교에 종지부를 찍을 수도 있다는 의미를 갖는다.북한이 분단국이란 이유로 우리의 안보리 진출을 끈질기게 방해한 것을 생각하면 이를 극복한 것 자체가 남북외교에서 사실상 최종 승리를 거둔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미·소중심의 냉전구도하에서 기능이 마비됐던 시절과는 달리 근래에 들어 국지적 분쟁 중재자로서의 역량을 발휘하고 있는 안보리이기 때문에 한국의 활발한 안보리 활동은 한반도의 안정에 주도적 역할을 기약하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나라는 거부권이 행사되지 않는 일반안건에서는 아시아 대표로서 아시아권의 공동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대부역할」도 수행하게 된다.우리나라는 아시아 대표로서뿐아니라 선진국과 개도국을 연결하는 중간자적 위상을 지니고 있다.따라서 이같은 위상을 활용,서방국들과 비동맹권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균형자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보인다.이에따라 외교정책의 방향전환을 요구하는 사례도 많아질 것으로 보인다.안보리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특별히 우리나라 입장을 내세울 필요가 없었지만 각종 안건에 입장을 공개해야 하기 때문이다.유엔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지닌 미국과 사안에 따라 입장이 배치될 가능성도 예견되고 있다.너무 친미일변도로 나갈 경우 득보다는 실이 많을 것이 분명하다.결과적으로 한국의 안보리 진출은 우리 외교의 역량을 새롭게 평가받는 시험대가 될 것이다.외무부에서는 이미 이에대해 모든 사안에 있어 항상 미국과 같을 수 없다는 입장을 정리한 것으로 알려졌다.특히 안보리 진출이 외교다변화를촉진시키고 있는 이상 지금까지의 미·일중심의 시각에서 탈피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분석하고 있다. 물론 이사국으로 선출된다 하더라도 비상임이사국이어서 거부권을 갖는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등 5대강국처럼 막강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그러나 안보리의 결정은 1백85개 회원국들에 구속력을 갖고 있으므로 우리가 그 구속력있는 결정에 이사국의 일원으로서 참여한다는 것 자체가 세계평화와 안전유지에 상당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내년 1월1일부터 2년동안 안보리 이사국으로 활동하면서 국제평화 유지과정에서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게 되면 총체적 국가이미지가 그만큼 제고되는 효과가 있다.이는 정치뿐아니라 경제·통상등 여러 분야에서 보이지않는 효과를 가져올 전망이다.벌써부터 「유엔총회의장」을 배출할 기회를 보고 있는 것도 국가위상이 상당히 변화할 것이라는 판단때문이다. 우리의 안보리 진출을 계기로 한반도안보에 대한 후속대비책,국제사회에 봉사하는 이미지구축,범세계적 이슈에 대한 지식개발,외교전문가 양성등이 시급한 과제로 떠오른다.안보리 이사국이 됨으로써 우리나라는 유엔의 재정부담도 어느정도 안게 됐다.한국은 올해 전체 유엔분담금중 0.8%(17위 수준)를 부담하고 있으나 내년에는 0.81%,97년에는 0.82%수준으로 그 비율을 높여 나가면서 유엔이 역점을 두고 있는 분야인 PKO에도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할 계획이다. ◎안전보장이사회 구성과 운영 어떻게/상임 5국·비상임 10국으로 구성/비상임국 임기 2년… 해마다 5개국씩 선출 유엔안전보장이사회는 국제평화및 안전유지에 대한 1차적 책임을 지며 유엔회원국에 대해 구속력을 갖는 결정을 할 수 있는 유일한 기구이다.거부권을 가진 5개 상임이사국과 10개 비상임이사국을 포함,모두 15개국으로 구성된다.이 가운데 임기 2년의 비상임이사국은 아프리카(3개국),아시아(2개국),서유럽(2개국),동유럽(1개국),중남미(2개국)등 5개 지역그룹에 할당돼 있으며 총회에서 3분의2이상의 다수결로 매년 5개국씩 선출되나 연속해서 재선될 수는 없다. 안보리는 지난 45년창설된 이래 지금까지 모두 1천17개의 결의를 채택했는데 창설후부터 89년까지 6백46개 결의안을 채택한데 비해 90년들어서는 5년동안 그 반이 넘는 3백71개를 채택했다. 안보리는 시급한 사태발생시에는 월례일정에 추가하여 수시로 공식,비공식회의를 개최하는데 비공식 협의위주로 운영되고 있다.의제마다 결의,의장성명 또는 기타방식등 의제처리방식 결정도 비공식협의에서 이뤄진다.처리방식이 결정된후 결의 또는 의장성명 초안에 대한 제의,협의등 모든 실질적 논의도 비공식으로 진행된다.이에따라 투명성이 부족하다는 여론도 있으나 비공식협의과정에서는 통상 미국·영국·프랑스등 핵심상임이사국이 주도한다.비동맹국들은 나름대로 매월 자신들의 입장을 반영하는 집단노력을 하고 있다.안보리는 결의·의장성명·공개토의·안보리 연례보고서채택을 위해 본회의를 개최한다.본회의에서 결의 또는 의장성명채택은 절차적 조치에 불과하다.결의채택시 이사국들은 표결과 관련된 각국입장을 발언할 수 있으며 의장성명은 비공개협의시 합의로 작성된 것이므로 발언이 생략된다. 올해로 임기가 끝나는 5개이사국은 오만·나이제리아·체코·아르헨티나·르완다인데 이중 아시아몫인 오만의 후임국에 한국이 선출된 것이다.아시아권에 속한 유엔회원국들은 모두 47개국,이들 국가 가운데 지금까지 모두 19개국만이 안보리에 진출했다.그러나 일본이 7회,인도 6회,파키스탄이 5회나 역임했을 정도로 일부 국가가 독점해왔었다.사우디·싱가포르 등은 아직 한번도 진출하지 못했다.내년에는 인도와 일본,97년에는 바레인,98년에는 말레이시아,99년에는 싱가포르가 출마할 예정이다. ◎박수길 주유엔대사 일문일답/“한반도 평화유지에 큰 기여”/우리 발언권­예우 상당한 변화/세계적 안목의 일관정책 필요 박수길 주유엔대사는 8일 한국의 유엔안보리진출과 관련,『우리나라로서는 좋은 기회요 도전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안보리에서의 활동은 우리의 국가위신·경제적 실익·미국과의 안보관계·대북한관계등을 고려,국익증진을 위하는 방향으로 해나가야겠다』고 말했다. 안보리 진출 첫 유엔대사로서 개인적 감회가 깊다는 박대사는 『우리의 안보리진출은 한반도의 평화유지에도 크게 기여할 것이며 궁극적으로는 남북통일에도 긍정적 도움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말하고 『즉각적 안보리의 반응을 일으킬 수 있는 안보리이사국을 누가 무력침공을 생각할 수 있겠느냐』면서 안보리이사국진출이 비록 한시적일지라도 한반도의 평화와 안전에 심리적 억지력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먼저 우리나라의 안보리 진출에 대한 평가는. ▲우선 비상임이사국으로서의 충분한 자격에 대한 국제사회의 평가를 들 수 있다.91년 9월 우리의 유엔가입이후 4년만에 비상임이사국 피선은 이례적이다.이는 그동안 우리가 PKO(평화유지활동)에 활발히 참여하는등 세계평화와 안전유지에 직접 기여해왔다는 국가라는 인식과 선발개도국으로서 남남협력에 적극적이었다는 국제사회의 평가를 반영하는 것이다. ­안보리진출에따라 달라질게 있다면. ▲외교다변화에 크게 기여할 것이 틀림없다.국제여론 형성과정에 직접 참여하게됐으며 따라서 지금까지의 미국과 일본중심의 시야 탈피가불가피하다.국제무대에서 우리의 발언권,대우및 예우에도 상당한 변화가 올 것이다. ­우리나라의 위상에는 어떤 변화가 오나. ▲안보리는 세계평화와 안전유지를 하는 주된 기구다.안보리의 결정은 다른 회원국에 구속력을 갖고 있다.1백85개국의 회원국을 구속하는 결정에 우리가 안보리 이사국의 하나로 15분의1 몫을 하거나 그 이상을 하게 된다.또 내년에는 유엔사무총장선거가 있는데 유엔사무총장은 안보리이사국들의 추천에 의해 총회에서 선출된다.우리나라가 유엔사무총장선거에도 본격 관련될 만큼 위상이 제고되는 것이다. ­한반도의 평화유지에는 어떤 효과가 있는가. ▲일부에서는 우리의 안보리이사국진출은 남북간의 격차를 더 크게 해 긴장을 고조시킨다고 우려하는데 이는 설득력이 약하다. ­특히 미국과의 관계에서 우리나라의 안보리에서의 활동방향에 관심이 많은데. ▲미국이 하자고 할 때 경우에 따라서는 할 수도 없고 안할 수도 없고,어려움이 예상된다.유엔대사에게 어느 정도의 권한을 주느냐는 것도 문제다.미국과 모든 문제에있어 같이 행동할 수는 없으며 그것이 미국에도 이롭다는 사실을 미국에게 이야기하고 있다.한반도안보와 관계되지 않은 부분까지도 미국과 똑같이 할 수는 없다고 본다.전세계적인 이해관계와 지역적 이해관계를 모두 고려해야 한다.정부가 일관된 정책을 추구하지 않을 경우 자칫 오해받기가 쉬워진다. □안보리 진출 일지 ▲93.4.13=스리랑카,아주그룹에 안보리비상임 입후보 공식통보 ▲93.5.4=정부 안보리 진출 추진방침안 확정 ▲93.9.2=안보리 진출 추진방침 김영삼대통령 재가 ▲93.9.29=외무장관,유엔총회 기조연설때 안보리 진출희망 피력 ▲94.2.22=스리랑카 외무장관,한국 입후보 재고요청 서한 발송 ▲94.3.19=전재외공관 통해 안보리 입후보 통보및 지지교섭 개시 ▲94.5∼95.6=아주·유럽·중남미등 43개국에 대통령 특사 파견 ▲95.3.11=김대통령,한·스리랑카 정상회담(덴마크 코펜하겐) ▲95.5.19=유엔 아주그룹회의에서 추천 획득(스리랑카 사퇴발표) ▲95.10.21∼25=김대통령,유엔특별정상회의때 각국원수에 지지요청 ▲95.11.8(현지시간)=유엔총회에서 안보리 비상임 이사국 피선 ◎79년 1개 이사국 선출에 투표 1백55번 “진기록” 유엔안보리 비상임이사국선거도 다른 선거양상만큼이나 치열하고 2차투표에서는 역전극이 벌어지는 양상도 많다.간혹 득표수가 예상보다 적어 망신을 당해 국가체면을 손상하는 경우도 없지 않다. 가장 치열하고 지루했던 선거는 79년 쿠바와 콜롬비아가 나선 중남미 몫의 비상임이사국 선거였다.지역그룹의 추천에 의해 총회에서 단1번의 투표로 선출되는 경우가 81%로 나타나고 있지만 이때는 무려 1백55번의 투표끝에 제3국 멕시코가 선출되는 진풍경이 연출됐다.당시 총회 1백54번째까지의 투표에서도 양측이 한발도 물러서지 않아 어느 쪽도 총유효투표의 3분의2이상을 득표하지 못했다.결국 양측이 사퇴하고 멕시코가 단일「대타」로 나와 1백55번째 투표에서야 당선됐다.80년에는 코스타리카가 입후보했으나 비동맹국이 아니라는 쿠바의 반대로 가이아나등에서 산표가 나와 당선표에서 1표가 모자라는 89표만을 얻어 10차 투표까지 갔으나 허사였다.11차 투표부터 파나마가 입후보했는데 결국 23차 투표에서 코스타리카가 사퇴,비동맹국가의 지지를 받은 파나마가 당선됐다. 일본은 86년 선거에서 아시아그룹의 지지를 받았으나 입후보하지 않은 인도의 표가 36표나 무더기로 나오면서 당선표 1백3표보다 4표가 많은 1백7표를 얻어 간신히 당선된 적도 있었다. 아시아에서는 비상임이사국 7회로 최다진출국인 일본은 78년 방글라데시에 져 망신을 당하기도 했다.
  • 전위무용가 홍신자(이세기의 인물탐구:70)

    ◎거침없이 도전하는 성격… 독창적 춤사위 창출/“어릴때 죽은 언니 추모”… 73년 「제례」로 무대 데뷔/40세 넘어 연하 미술학도와 결혼… 2년전 안성에 캠프 차리고 정착 홍신자 뉴욕 타임스의 전속춤 비평가 제니퍼 더닝은 홍신자를 향해 『조각가의 조형감각을 지닌 안무가이며 인간심리의 예리한 실험자』라고 말한다.84년 「나선형의 자세」를 세번째로 공연했을때 공연평에 인색한 잭 앤더슨은 『시각예술가로서의 홍신자는 또 한사람의 시인』임을 지적했고 『몇가지 작은 동작만으로 죽음의 사자로 변신할 수 있을 만큼 그의 춤은 참으로 거대한 카리스마의 모습』이라고 호평했다.1주일에 평균 7백∼8백편 이상의 엄청난 양이 공연되는 뉴욕에서 중요 신문의 평을 얻기란 하늘의 별따기다.그러나 홍신자는 새로움을 추구하는 뉴욕인들에게 그때마다 신선한 혁명을 보였고 그곳 매스컴들로부터 밀착되고 호의적인 평을 받는 몇안되는 예술가중의 한 사람이다. 중국의 저명한 춤비평가이자 중국 국립예술아카데미의 우장핑은 「세계 무용사를 만든 인물들」로 홍신자를 선정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기라성같은 이사도라 던컨·마사 그레이엄·머스 커닝햄·폴 테일러·알윈 니콜라이속에 홍신자는 「동양 전통미학에 뿌리를 둔 서양 전위무용의 꽃」으로 다뤄지고 있다.한국의 홍신자 이전에 세계적 예술가의 반열에 오른 그는 86년 K­1TV가 마련한 신년특집 다큐멘터리에서 「세계정상의 한국인 홍신자편」으로 방영된바 있다. 그의 명성과 활동을 재론할 필요는 없다. ○동양 전통미학에 뿌리 영문학도에서 춤을 추기엔 너무나 뒤늦은 나이인 27세에 무용학도로 변신했고 호텔 접수일과 고양이 먹이를 주는 아르바이트로 명문 알윈 니콜라이무용학교와 컬럼비아대 대학원을 졸업,33세 되던해인 73년에 「댄스 시어터 워크숍」에서 어릴때 죽은 언니를 추모한 「제례」를 추어 당당하게 신인 안무가로 변신했다.그때도 뉴욕 타임스와 댄스매거진은 『아무도 홍신자의 앞날을 의심할 사람은 없다』고 못박았다.「제례」는 전통적인 한국의 「곡」으로 시작되어 촛불에 만장을 사르고 모호한 탄식을 허공에 퍼뜨리는 것으로 끝난다.이 작품은 한국서도 국제현대음악협회(ISCM)가 초청하여 같은 해 명동국립극장 무대에 올려졌고 전위무용에 생소한 한국무용계에 아연한 긴장과 충격,찬반양론의 시비를 빚기도 했다. 그의 춤은 형식과 기교에 얽매이지 않는다.「무용의 힘을 아는 자는 신과 함께 있는 자」라고 한 쿠르트 작스의 명언대로 육체와 영혼이 조화된 「우주적 감각」이 특징이다.그의 극미한 거동조차도 춤의 흐름이며 그의 운기는 객석에까지도 고뇌의 현란한 열기를 흩뿌린다. 그러나 모든 사람의 시선과 관심의 대상이 됐을때 그는 돌연 인도로 가버렸다.76년부터 3년간 춤에 대한 회의와 삶의 근본적인 의미에 파고들었으나 「나만이 진리를 찾는 것이 아니라 진리쪽에서도 나를 찾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는 다시 뉴욕에 복귀했다.결혼 같은 건 하지 않고 원도 한도 없이 하고싶은 것을 마음껏 하다가 「40세가 되기전에 자살」하겠다고 공언했던 그는 나이 사십이 넘어 열두살 연하의 젊은 미술학도와 결혼했고 딸 희야를 임신하자 「여자의 몸매는 바로 이렇게완성된다」는 메시지를 내걸고 만삭의 몸으로 무대에 올라 「입에서 꼬리까지」를 초연,하나의 덩어리(매스)로 무대를 구르면서 「돌도 웃는다」는 경이의 경지를 다시 한번 보여줬다. 결코 「평범 무미건조한 사람이 되지 않을것」이라는 패기와 인내심으로 그는 예술이 할 수 있는 모든 행위에 거침없이 도전해 왔다.그리고 「홍신자만의 독창적 세계」를 창출해 내었고 그만의 독특한 무용언어인 적멸로써 작품들을 형상화 시키고 있다.따라서 「깨어 있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자유로움의 깨달음을 주고 창작정신의 퇴적화 현상을 일시에 휩쓸어버린 회오리바람」으로 부상되었다. ○뉴욕 빈민가서도 생활 아무도 홍신자의 삶을 흉내 낼 수는 없다.주변의 시선에 아랑곳 없이 가장 자유로운 행보를 펼쳤고 아마 앞으로도 그는 그럴 것이다.물론 하루 아침에 오늘을 이룩한 것은 아니다.혹은 기적적 행운이 뒤따른 것도 아니다.쥐들이 득실거리는 뉴욕의 빈민가 스탠턴에서 더 이상 어린 딸을 키울 수가 없어 고국의 시댁에 아이를 맡겨야 했고 토큰 하나와 말라빠진 샌드위치로 연명하면서 불과 10년전까지만 해도 그의 장래에 대한 희망은 검은 연기에 휩싸인 검탄(검탄)과도 같았다.그 무렵 하와이 볼캐노 정글에 틀어박혀 그는 스스로에게 「나는 누구인가」「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를 묻기를 멈추지 않았고 그 자신은 무용가 명상자 아내 어머니 그 모든 것이며 그 모든 것에서 완전히 해방된 자유로운 생명의 불꽃임을 재확인 할 수 있었다. 그의 무용에 영향을 준 것은 인도에서의 스승인 라즈니쉬였다.그는 「완전히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라.나 자신이 춤추기전에 삶의 펄펄 끓는 에너지가 나를 통해서 춤으로 흘러나오게 하라」고 가르쳤다.「춤은 무엇을 증명하거나 제시하거나 등의 아름다움과 팔다리의 기교를 과시해선 안된다.무엇인가를 보여주겠다는 의지가 강하면 춤은 보이지 않고 춤추는 자의 몸매만 보이게된다」그래서 광대한 우주공간인 우라노스에 날아오른 신비의 피닉스(영조)처럼 불에 타죽고 나서도 다시 탄생하기 위해 그는 수십번씩 낭떠러지에 떨어지는 고통을 감수해야 했다. 그가 추구하는자유로운 삶이란 허례나 가식이 배제된 명징의 세계이며 그의 맨 끝은 결국 자연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것이다.「자연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절로 겸허해지고 솔직해진다.나의 비천함을 다 알고 있는 스승에게 무엇을 더 감출 것이 있겠는가」.그러나 자유를 찾아 떠나고 또 떠났지만 가족이라는 굴레와 고향에 다시 돌아오기 위해 어둡고 긴 갱도를 혼자서 방황하고 있었다고 그는 고백한다. ○딸 희야는 중학교 1년 그는 지금 안성에 있다.2년전 고국정착을 선언하고 경기도 안성군 죽산면 용설리,저수지를 끼고 올라간 척박한 야산에 토담으로 된 무용캠프를 치고 그에게 명상과 내면의 춤을 배우려는 사람들에게 「움직임속의 정지」를 전수하고 있다.지난 5월에는 예술의 전당서 「돌도 웃는다」는 뜻의 그의 래핑스톤 무용단을 이끌고 「풀루토(명왕성)」를 공연,11월 뉴욕 공연에서는 「미니멀리스트이자 맥시멀리스트로서의 홍신자 건재」를 과시했다. 지난 2월부터 본격적으로 무용캠프 강좌에 들어간 그는 그가 바라던대로 자연속에 묻혀 신에게 다가가기 위한 정신의 춤을 추구하게 되었다.그의 예술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남편 이상남씨(재미화가)는 그의 공연을 도맡아 판타스틱한 무대를 만들어주고 딸 희야(중1)도 부모의 자유와 자연스러운 삶을 자랑스럽게 이어가고 있다. 물론 그는 또 어떻게 변할지 어디로 흘러갈지 모르는 유성이며 소용돌이 치는 회오리 바람이다.다만 춤이 빠진 홍신자란 상상 할 수 없을 뿐이다.그는 춤추기 위해 태어났고 무대에서 춤추다가 쓰러질지도 모른다.그리하여 그의 육신이 사라질때도 그의 푸른 영혼은 폭풍속의 나무처럼 끝없이 흔들리면서 아마 그때도 「나선형의 자세」로 춤추게 될것에 틀림없다. □연보 ▲1940년 충남 연기출생 ▲1963년 숙명여대 영문과 졸업 ▲1966년 도미,뉴욕정착 ▲1970∼71년 알빈 니콜라이 무용연구소 입소 ▲1972년 미국 컬럼비아대 대학원졸업 ▲1973년 뉴욕대 입학,케이 다케이와 그룹활동, 뉴욕 댄스시어터 워크숍서 「제례」로 안무가및 무용수 데 뷔 ▲1975년 홍콩 아트페스티벌 초청공연,공간 1백호기념 초청 「이사도라 던컨의 춤」및황병기 작곡 「미궁」발표 ▲1976∼79년 인도정부 장학생으로 인도체류 ▲1981년 래핑스톤무용단 창단기념 「입에서 꼬리까지」 뉴욕 초연 ▲1982년 오하이오 더 유니언 인스티튜트 무용학 박사학위 ▲1985년 호암아트홀 개관 초청공연 ▲1986년 미국 샌디에이고 패시픽 링아트 페스티벌 「ISLE(섬)」참가 ▲1988년 미국 웨슬리언대 개최 국제음악제 존 케이지와 「네개의 벽」참가 ▲1989년 독일 베를린예술원초청 「붉은 노을」,중국문화부초청「섬0공연 ▲1990년 제16회 중앙문화대상 수상,북경 아시안 게임 서울시립무용단 「2001년」안무 공연 ▲1992년 스페인 세비야 EXPO참가 ▲1993년 플럭서스 서울 공연 백남준 비디오작업출연,사단법인 래핑스톤(웃는 돌)설립 0▲1994년 「풀루토」서울및 뉴욕공연
  • 조각가 유영교씨(이세기의 인물탐구:39)

    ◎돌로 빚어내는 생명력… 인간미 “물씬”/풍만한 인체·단순화된 형태의 구상 즐겨 표출/연속 국전특선… 완벽한 조형술로 정상의 명성/요즘은 고난·번뇌 초월한 「평화의 표정」 형상화에 집착 「인생은 석재다.그것으로 신의 모습을 조각하든가 악마의 모습을 새기든가 모든것은 자유다.그러나 다만 생명이 깃든 조각인가?」이는 영국철학자 허버트 스펜서의 말이다. 유영교는 강한 석재로 생명이 깃든,살아있는 사람의 표정을 만드는 작가다. 알찬 마스(양괴)와 신선한 정감표출의 단아한 나부상,예술가가 품은 그 어떤 상념도 돌이라는 재료에 의해서 표현되지 않는것은 없다는 것이 그의 신조다. 그는 작품화하고자 하는 대상에 대해 끊임없이 데생하고 데생한다.또는 수채화로 그리거나 유화나 파스텔로 그린다.그리고 하나의 회화로서 만족할만한 결과를 보였을때 이번엔 점토로 이를 빚는다. ○실패확률 거의 없어 형태의 완성과 완벽성을 석고 모형으로 경험한다음 비로소 돌작업에 들어가기 때문에 실패의 확률은 거의 없다.표정조차도 이미 모형에서 이미지를 또렷하게 살려내고 있다. 그러나 그가 그린 그림이 조각에 닮아있으면 그것은 대부분 성공적인 것이지만 만일 조각이 그림에 닮아있을땐 이건 낭패일수밖에 없을 것이다.작품에 관한한 완벽추구자이며 영원히 만족을 모를수도 있다. 작품에서 그가 중점적으로 파고드는 테마는 언제나 인간의 이야기다.인간의 고뇌하고 슬퍼하고 기뻐하는 여러형태의 모습을 어디서 찾느냐는 것과 이런 이야기들을 어떻게 조각으로 표현하느냐는 것이 과제다. 같은 고뇌라도 성자의 고뇌인가 범상한 인간의 가족애적인 것인가.사랑도 신의 사랑과 남녀의 사랑,자비는 베풀때와 베풀음을 받은 은총일때가 다르듯이. 한때는 구도자나 수도자의 얼굴을 만들기도 했다.또는 어둡고 그늘진 어부나 농부의 삶에 찌든 표정이 그의 작품의 한 구릉을 이루기도 한다.그러나 「삶의 이야기」시리즈에서 십자가에 못박힌 아들을 보고 기절한 어머니의 모습,가톨릭의 고통과 고난과 수난은 끝이 없음을 그는 새삼 느낄수밖에 없었나보다. 이에비해 경주 불상에서 온화한 평정의 모습을 발견했다.미술이론을 모르는 이름모를 석공이 원만함과 무심과 풍요를 그려낸 것이다. 이때부터 헤르만 헤세의 「싯달타」를 다시 읽고 노자·장자에 심취하면서 초탈·초월의 경지를 갈구하기에 이르렀다. 그는 풍만감이 넘치는 인체에다 반가사유상의 양식을 적용한 극기와 무상,번뇌를 떨쳐버린 초월적 명상,마음의 갈등씻긴 평화로운 표정을 작품마다에 햇살처럼 아로새겨 나갔다. 유영교는 데뷔때부터 지금까지 비교적 순탄하게 일류작가의 대열에서 한치도 뒤처진 적없이 자신의 위치를 지키고 있는 예술가의 한 사람이다. ○첫 개인전 찬사 일색 아직 대학2학년때인 66년 국전 3회 연속 입선,이어서 목우회 공모전서 문공부장관상 국전 국무총리상 국회의장상 국전 연속특선으로 삼십을 갓넘긴 나이에 국전추천작가·초대작가등 남보다 배나 빠른 정상가도를 똑바로만 달려왔다. 추천작가가 되던해인 77년 첫개인전과 함께 수많은 찬사·호평에 둘러싸여 다음해 이탈리아로 유학,국립로마미술아카데미와 르네상스 조각의 본고장으로 일컬어지는 카라라에서도 거장 에밀리오 그레코와 페레클레 파시니를 사사하는 행운을 누렸다. 그때 「지중해」 「일드 프랑스」의 작가인 마욜과 아르프,오슬로의 후로그넬 공원에 있는 비게란드의 화강암으로 된 「조각군」을 보고 그는 자신의 구상조각에 대한 집착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부조에서 환조에 다다른 아르프의 아르 콩쿨레(구체예술)를 수용하면서 구상·추상 사이를 넘나들다가 차츰 추상의 경지를 뛰어넘어 그만의 구상인체에 망설이지 않고 정착할수 있었다.진위를 가릴수없는 모호한 추상의 세계보다 손으로 만져지는 구상세계가 그의 투명한 성격에도 거부감이 일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그가 아끼는 재질인 대리석도 인체의 아름다움과 당당함,사유와 풍요를 표현하는데 어떤 부족감도 없었다. 2년전 선보인 성숙·풍요·동반 시리즈에 이어 최근에는 점점 더 불교적으로 된 작품의 표정들이 무심을 지나 열반의 경지를 보이는 것이 그 좋은 예다. 더구나 밑그림이 철저하게 뒷받침된 표정들은 하나하나가 서로 다르고 하나하나마다에 생동감이 담긴다.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텅빈 무심이 아니라 청순이라든가 순백·환희가 눈부신 것도 특징이다. 고흐의 해바라기 같은 이미 다른 작가가 그려온 소재를 그는 그 나름대로의 천진무구를 강조하여 행복의 꽃다발로 재창조한 경우도 있다. 미술평론가 김복영은 이를 「회고」와 「번안」의 시각으로 바라보기도 하지만 유홍준은 『살아숨쉬는 듯한 생명체의 덩어리』라든가 자신의 작품을 되물으며 의식을 심화시켜 나가는 자세는 『예술의 성실성』내지 『예술의 진지함』이라 평하고 있다. 그의 작업장은 금강 남쪽,충남 연기군 금남면 석교리에 자리잡고 있다.그가 살고 있는 대전시내에서 버스로 20분거리.많은 조각가들이 교외별장과도 같은 아기자기한 건물을 지닌 것과는 달리 야산을 깎아 만든 2천평 대지에 세운 이 간이작업장은 거대한 석물공장을 방불케한다. 10t의 무게를 들어올릴수 있는 빔설치,돌을 썰거나 마광할수 있는 전기모터와 체인 블록,바이트와 드릴과 리머와 탭 등 수백가지의 절삭공구들과 마당구석구석에 사람의 키만한 대리석 화강암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그는 이리나 문경,여수를 돌며 자연석을 직접 사오기도 하고 이탈리아 대리석을 현지에서 주문해다 쓰기도 한다. 남들이 직장에 출근하는 것처럼 아침8시에 도시락을 싸들고 출근,데생에서 흙반죽,석고 뜨고 돌자르고 드릴로 뚫고 다듬고 깎고 하루종일 돌가루와 흙먼지를 뽀얗게 뒤집어쓴채 중노동에 시달리다 밤9시가 넘어서야 귀가한다. 사방이 청명한 가을인 요즘,드넓은 벌판엔 외딴 작업실에서 내는 그의 기계소리 돌을 다듬는 소리외엔 주변은 온통 적막강산이다. 간간이 브론즈나 나무를 다루기도 하지만 돌만이 갖는 차갑고 강한 느낌,정발 하나하나로 확실하게 작가의 손에서 작업이 끝나는 확인은 돌이 아니고서는 맛볼수 없는 희열의 하나다. 유영교의 가장 특징적인 점은 그 어떤 경우에도 세속에 물들거나 부당함에 타협하지 않는 결벽증이다. 일찍이 그가 국전추천작가가 됐을때 화단에서 까다롭기로 유명한 평론가 원동석씨는 「평론가 10인이 추천하는 신예작가」의 한 사람으로 유영교를 추천하면서 「아집이나 고집때문이 아니라 그의 천성적인 순결과 자신감은 세파에 쉽사리 물들거나 외세에 섣불리 휩쓸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대로다. 스승·선배들에게 예의 바르지만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은 끝까지 관철하고 자신의 작품에 대해 엉뚱한 말을 들으면 그의 의도를 명료히 제시하여 시정을 요구한다. 또 대학의 전임강사가 되기를 원치 않는다.가르치는데 시간을 뺏기다보면 그의 예술을 할수 없기 때문이다. ○세속의 욕망을 거부 돈이 될수 있는 모뉴망이나 설치미술등의 주문에도 응하지 않는다.건물주의 몰취미에 억지로 맞추기도 싫고 번거로운 계약과정이나 브로커들이 중간에 끼는 것도 마땅치 않다. 그는 언제라도 자신이 하고 싶은 작품,온 몸과 마음으로 몰두할수 있는 대상에만 철저하게 파고든다. 그는 충북 제천군 청풍면장이던 유상종씨와 정효옥여사의 5남매중 장남으로 태어났다.면소재지이긴 하지만 국민학교 3학년때 마을에 들어온 버스를 처음 볼만큼 산골동네에서 투박하게 자라났다. 국민학교때부터 그림그리기를 좋아하고 충주고 2학년때 홍대가주최한 전국고교미술실기대회에서 1등상 수상.그날 조각실에서 작업복을 입고 흙을 만지는 선배들의 모습을 그린 것이 계기가 되어 후에 조각과를 지망하게 됐다. 이탈리아 유학중 그곳의 조각가들이 야외작업장을 가진 것을 부러워한 나머지 고향청풍에다 작업장을 짓는 것이 소원이었으나 충주댐 건설로 고향이 수몰되어 목원대교수인 부인 이은기씨(서양미술사)를 따라 86년 대전에 정착했다.슬하엔 3남매. 유영교조각은 양감의 풍요에서는 마욜,극도의 단순한 형태추구면에서는 때때로 아르프에 비유되기도 하지만 그가 다다르고 싶은 것은 순연한 조각이다. 그러나 연전에 그의 작품전을 보고 이탈리아 카라라 아카데미 교수이자 평론가인 피에르 카를로 산티니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형태면에서는 영혼의 영원과 가치에 대한 신념』,『작업의 전과정에서 보여주는 것은 투명한 영감의 세계』라고. 남보다 빨리 화단에 입문해서 일사천리로 예술의 정상에 이른 것처럼 그는 남보다 빠르게 그가 원하는 순정한 순연의 경지에 이미 이르고 있음을 산티니는 예고하고 있는것 같다. □연보 ▲1946년 충북 제천 출생 ▲1964년 충주 고교졸업 ▲1965년 홍대 미대조각과 입학 ▲1966∼68년 국전연속3회 입선(대학재학중) ▲1969년 홍대 미대졸업 ▲1975년 국전 특선 ▲1976년 국전 특선,홍대대학원 졸업 ▲1977년 국전 추천작가및 초대작가,전국조각가초대전 목우회초대전출품 ▲1977년 제1회 개인전(미술회관) ▲1978년 제2회 개인전(진화랑),이탈리아 로마 미술아카데미 유학 ▲1980년 제3회 개인전(로마) ▲1980년 제4회 개인전(진화랑) ▲1982년 제5회 개인전(미라노),국제청년작가 야외전(미라노) ▲1983년 제6회 개인전(현대화랑) ▲1984년 이탈리아 로마 미술아카데미 조소과졸업(거장 에밀리오 그레코 펠리클레 화시니 사사),한국조각가 13인전 한·이조각가교류전,재이한국조각가전출품 ▲1985년 재이한국조각가15인전,토스카넬로의조각전,국제청년조각가전 ▲1986년2월 귀국개인전(제7회·강남현대화랑) ▲1986년10월 제8회 개인전(현대화랑) ▲1987년 이탈리아 문화원개원기념 초대전,재이 한국조각가초대전(갤러리 현대및 이탈리아 뤼기 루소) ▲1988년 제9회 개인전(현대화랑),현대조각 초대전 ▲1991년 제10회 개인전(현대화랑) ▲1992년 제11회 개인전(갤러리 신현대)홍대및 목원대 서울교대강사 현재 충남대 예술대 출강 미술회관 개관기념초대전·한국 현대조각초대대전·목우회초대전·평론가10인이 추천한 신예작가초대전·한국구상조각회 로마전 주관·국제청년작가 야외전·한이조각가교류전·한국조각가협회전및 해마다 홍익조각회전·한국구상조각회전·국전초대작가전·현대미술초대전·원로중진조각초대전·MBC구상조각대전·대한민국 미술대전초대작가 국내외 그룹초대전에 수십차례 참가 목우회공모전 동아일보사장상·목우회공모전 문교부장관상·국전국무총리상·목우회공모전 최고상·국전 국회의장상 수상 국립현대미술관 호암미술관 어린이대공원 워커힐미술관 럭키·금성사옥 제천시청 한일은행본점 한흥증권본점 남해화학 대전교구장 아라리오미술관 신라호텔 야외조각 전시장
  • MBC제왕전 존폐 오늘까지 결정(바둑화제)

    ◎기원등,“바둑이해부족 때문… 계속 존속을”/장수영 8단,6년만에 9단으로 승단 ○…MBC가 주최하는 제왕전이 존폐의 갈림길에 서있다.MBC측은 현재 진행되고있는 제10기 제왕전 결승3번기가 막을 내리는 15일까지 존폐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MBC측은 방송3사가 경쟁적으로 프로기전을 주최하면서 비슷한 시간대에 방송을 내보내는등 시청률경쟁을 벌이고있어 프로그램차별화가 어렵고 편성상에도 애로가 많다는 점등을 이유로 내세우고 있다. 이에대해 한국기원및 바둑팬들은 『MBC 내부에서도 논란이 되고 있는 이번 폐지방침의 이면에는 방송국 최고위층의 바둑에 대한 이해부족 때문』이라면서 『TV바둑이 바둑보급에 지대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만큼 계속 존속시켜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제왕전은 우승상금 1천만원,준우승 5백만원,대국료 5천1백만원,주관료 2천2백만원등 총8천8백만원 예산규모로 현재 10기 제왕위를 놓고 이창호5단과 유창혁5단이 라이벌 대결을 벌이고 있다. ○고재희씨등 12명도 승단 ○…프로기사 장수영 8단이 9단으로 승단했다.또 양재호7단과 고재희·홍종현6단이 각각 8단과 7단으로 승단하는등 12명의 기사가 승단했다. 장9단은 제66회 상반기 승단대회에서 39국을 둬 총점2천6백35점,평균65점을 얻어 지난87년 8단이 된이래 6년만에 입신의 경지인 9단으로 승단하는 기쁨을 안았다.이로써 국내 프로바둑기사 가운데 9단은 모두 8명으로 늘어났다. 이밖에 까다로운 규정을 대폭 완화시킨 개정 승단규정이 처음 적용된 이번 승단대회결과 김봉선5단이 6단으로,김동엽4단이 5단,김원3단이 4단,이상훈2단이 3단으로,김종수·박승문·김종준·김성룡초단이 2단으로 각각 승단했다. ○지원호씨 「맥」 3연속 우승 ○…제3회 컴퓨터바둑대회에서 지원호씨(32·KAIST박사과정)의 프로그램 「맥」이 3년 연속 우승을 차지했다.이 대회에는 8개 프로그램이 최종출전,스위스룰에 따라 4라운드씩의 경기를 벌였다.경기결과 「맥」이 4전전승을 거뒀으며 김항주씨(세기컴퓨터대표)의 「렉스」는 3승1패로 준우승에 머물렀다. 한편 「맥」과 10급실력의 어린이 김요한군(8)과의 인간대 컴퓨터의 바둑대결에서는 김군이 흑을 쥐고 43집반승을 거뒀다.바둑관계자들은 「맥」이 아직 10급수준을 넙지 못하고 있다고 평가했다.지난해 세계컴퓨터바둑대회 우승프로그램인 네덜란드의 「골리앗」도 7급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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