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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찬호 6승 ‘신바람’

    박찬호(LA 다저스)의 시즌 20승 전망이 한층 밝아졌다.박찬호는 4일 캘리포니아 에디슨필드에서 벌어진 미국 프로야구 애너하임 에인절스와의 경기에서선발 등판, 삼진 7개를 솎아내며 5와 3분의 2이닝동안 8안타 5사사구 3실점하며 8-3 승리를 이끌었다.이로써 박찬호는 2연승으로 시즌 6승째(4패)를 따냈고 방어율은 4.50을 마크했다. 97년 풀타임 메이저리거로 발돋움한 박찬호는 14승을 챙긴 그 해 7월11일에야 시즌 6승째를 올렸다.또 15승을 따낸 98년에는 6월27일,12승을 올린 지난해에는 7월18일에야 각 6승 고지를 밟았다.이처럼 박찬호는 시즌 초반 부진하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6월부터 강세를 보여 ‘여름의 사나이’로 불리웠다.그러나 올 시즌에는 예년보다 한달 또는 한달 보름을 앞당겨 6승째를낚아 시즌 20승에 청신호를 드리우고 있다.박찬호는 이날도 제구력 불안을드러냈지만 빼어난 위기관리능력과 타선의 도움으로 승수를 보탰다. 다저스는 1회초 무사 1·3루에서 셰필드가 좌월 3점포를 뿜어 박찬호의 어깨를 가볍게 했다.박찬호는 1회말곧바로 1사 1·3루의 위기를 맞았으나 무실점으로 넘겼고 2회에는 3자 범퇴로 막아 승리를 예감케 했다.3회 1사2루에서 모 본에게 적시타를 맞아 1점을 내준 박찬호는 4회와 5회 연속안타로 각각 1사 1·2루,무사 1·2루의 위기에 몰렸으나 후속 타자를 병살타와 삼진등으로 요리,애너하임의 추격에 찬물을 끼얹었다.그러나 박찬호는 6회 구위가 떨어지면서 1사후 볼넷에 이은 케네디의 2루타로 1점,계속된 2사2루에서얼스테드의 적시타로 1점을 더 내준 뒤 다시 스토커에게 볼넷을 허용하자 테리 애덤스에게 마운드를 넘겼다.애덤스는 2사 1·2루에서 강타자 본을 유격수 땅볼로 잡아 불을 껐고 다저스는 8회 2점을 추가했다. 박찬호는 오는 9일 휴스턴 애스트로스와의 홈경기에서 등판,3연승과 시즌 7승에 도전한다. 김민수기자 kimms@
  • ‘허준’ 종반부로… 예진의 운명은

    폭발적 인기를 얻고 있는 MBC ‘허준’(월·화 밤9시55분)이 29일부터 8년을 훌쩍 건너뛴다. 6월27일 종방을 앞두고 한달간 방영될 후반부는 임진왜란 전후를 배경으로허준이 정치적 역경에 굴하지 않고 진정한 심의(心醫)가 되는 과정이 그려진다.29·30일 방송에서는 허준이 인빈의 아들 신성군을 치료하면서 겪는 인빈과의 갈등,선조에 의해 정3품 당상관으로 임명되지만 임진왜란이 터져 피난가는 과정 등이 펼쳐진다.이어 허준이 광해군의 정적이었던 영창대군을 치료해 광해군의 미움을 사 귀양을 가고 유배지에서 ‘동의보감’을 쓰는 과정,유도지와 화해 등이 방송되고 역병에 걸린 환자들을 치료하다 자신도 병에걸려 숨지면서 끝을 맺는다. 제작진이 가장 고민하는 부분은 예진과 허준의 사랑을 어떻게 결말짓느냐다.연출을 맡고 있는 이병훈PD는 “허준이 70대에 죽을 때까지 예진이 옆에 있게 되면 예진의 나이도 65세 정도가 되고 그러면 예진의 모습이 보기 좋지않기 때문에 허준이 유배를 떠날 때 예진이도 어떤 방식으로든 드라마에서사라지게 할 생각”이라면서 “처음에는 예진이가 불치병으로 죽고 예진을치료하는 허준의 간절한 모습을 그릴 예정이었지만 너무 많은 사람이 죽는다는 비난이 있어 고민 중”이라고 밝혔다. 방영횟수가 40회에서 64회로 늘어나면서 드라마가 지루해지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 이PD는 “예정보다 방영기간이 늘어나기는 했지만 임진왜란 등 극적요소가 많고 내용을 압축적으로 표현했기 때문에 긴장감이 떨어지지 않을것”이라고 장담했다. 제작진은 허준의 말년 생활을 섬세하게 표현하기 위해 각별한 노력을 쏟고있다.노인 허준의 모습을 표현하기 위해 일종의 인조 피부를 얼굴에 씌우는특수분장을 쓰고 유배지인 남해안의 경치를 살리기 위해 땅끝마을 해남에 세트도 장만했다. 출연진 역시 상당히 ‘물갈이’돼 신선감을 유지한다는 것이 제작진의 설명이다.광해군 역에는 ‘나쁜 친구들’에서 송윤아의 오빠로 나왔던 김승수,언년이 역에는 ‘사랑밖에 난 몰라’에 막내딸로 나왔던 최은주가 등장한다.허준의 맏아들 겸이는 ‘육남매’에서 장남을 연기한 오태경이 맡았고 의녀에도 이승아,고정민 등이 새로 등장한다.한편 MBC는 7월3일과 4일,두차례에 걸쳐 ‘허준’ 연출자와 연기자 등이 촬영에 얽힌 에피소드 등을 들려주는 특집을 마련한다. 장택동기자 taecks@
  • ‘프로 올스타’새달 바스켓볼 쟁탈전

    2000 아시아프로농구리그(ABA)가 새달 8일 막을 올린다. 7월 13일까지 5주동안 계속될 이번 대회에는 한국을 비롯해 중국 타이완 일본 홍콩의 프로올스타팀과 미국프로농구(NBA) 신인선발팀 등 6개팀이 출전해 홈 앤드 어웨이 방식으로 팀당 20경기씩을 치른 뒤 상위 2개팀이 3전2선승제의 챔피언전을 갖는다.우승팀에게는 8만달러,준우승 4만달러,3위 2만달러의 상금이 주어진다. 오는 6월 8일 홍콩과 원정 첫 경기를 갖는 한국은 24일 강동희 허재 오성식 전희철 서장훈 현주엽 등 프로스타 21명을 소집해 본격적인 전열 정비에 들어갔다.출전이 허용된 용병도 톰 케니(208㎝)로 확정했다.이번 대회 출전팀가운데 한국 일본 타이완은 1명,홍콩은 2명의 용병을 기용할 수 있으며 중국은 용병을 투입하지 않는다. 최종규감독(삼보)-김동광(삼성)·최인선(SK)코치가 사령탑을 맡은 한국은일단 우승을 목표로 하고 있으나 객관적인 전력상 중국과 NBA팀에 뒤져 힘든 행보가 예상된다.아시아 최강인 중국은 시드니올림픽에 출전하는 대표팀을출전시킬 예정이어서 NBA루키팀과 정상을 다툴 가능성이 높다. 한편 한국의 홈경기 가운데 대 NBA팀(6월14일),대 타이완(6월20일),대 중국(6월27일)전은 ESPN을 통해 아시아 전역에 생중계된다. 오병남기자 obnbkt@
  • [기고] 납·월북문제 새롭게 조명할 때 됐다

    지난 22일자 대한매일에 실린,중경임시정부 외교부장이자 삼균주의 이론가로 유명한 조소앙의 비서로 활동하다가 현재 북에서 평화통일촉진협의회 고문으로 있는 김흥곤씨의 인터뷰기사를 보니 감회가 새롭다.김씨는 1948년 남북협상,1950년 한국전쟁과 중도파 민족주의자들의 북행 등에 대하여 쟁점이될 수 있는 증언을 해주었다.중도파 민족주의자들은 남과 북에 미·소 양군이 들어와 있는 상황에서 좌우가 싸움만 벌이면 분단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최고의 이념을 민족통일국가 건설에 두고 좌우합작·남북협상운동을 전개하였다.극우와 극좌는 ‘북벌’과 ‘남정(南征)’을 주장하면서 전쟁에 의해민족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였다. 1948년 분단을 코앞에 두고 중도파 민족주의자들은 전쟁을 막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기울였고,그것의 일환으로 남북협상에 참가하였다.그럼에도 불구하고 2년 뒤 전쟁의 참화에 휩쓸렸고,만고풍상을 겪으며 평생을 조국을 위하여 헌신하였던 중도파 민족주의자들은 민족의 비극을 온몸에 안은 채 ‘납북’되고 말았다. 전쟁이 일어났을 때 김규식 조소앙 안재홍 등 중도파 민족주의자들이 미처피신하지 못한 것은 이승만정부가 승리하고 있다고 큰소리치면서 자기들만도피한 것이 주요 요인이었다.6월27일 새벽 2,3시경 이승만은 국회에도 국무회의에도 알리지 않고 특별열차에 몸을 실었다.그리고 다음날 새벽 2시반경에 한강교가 폭파되었다.중도파 민족주의자들은 나라 걱정,민족 걱정이 앞섰기 때문에도 재빠르게 피신을 하지 못했다.중도파 민족주의자들 전부가 납북이었느냐는 것은 논쟁의 여지가 있다.그러나 주요 지도자들은 강제로 끌려갔음에 틀림없다.안재홍은 피신해 있다가 끌려나왔다.김규식의 경우 피신 직전에 북의 요원들이 찾아왔다.김규식이 자진 북행하려고 했다면 그 자리에서부인 김순애 여사와 생이별을 했을 리가 만무다.이들은 압록강변에 있는 만포에 도착할 때까지 몇 번이고 북행을 거부했다는 증언도 있다.‘월북’중에도 어쩔 수 없는 경우가 많았다.국회프락치사건으로 재판받은 제헌국회의원들은 전쟁이 났을 때 서대문감옥소 등이 저절로 열려 걸어나왔다.그러나 이들은 이승만정부를 따라갈 수는 없었다.또 인민군 점령지역에 생겨난 여러좌익단체에 소극적으로 가담하였거나 어쩔 수 없이 끌려간 사람들도 ‘살기위해’ 산에 들어가거나 북행을 하였다. ‘남북협상’에 대해서도 곡해가 많다.극우반공세력은 김구·김규식 등의남북협상이 북에 이용만 당하였다고 주장하였고,북에서는 정통성과 결부시켜남북정당사회단체대표자연석회의를 유난히 강조하였다.1948년 4월 북에서는크게 성격을 달리하는 두 종류의 회의가 열렸다.하나는 연석회의이고 다른하나는 요인회담으로,세칭 남북협상은 주로 후자를 가리킨다.연석회의는 대규모 회의였지만,김일성 박헌영의 ‘미제국주의’와 단선·단정반대 주장에찬성일색의 발언만 하였다.그러나 김규식은 이 연석회의에 전혀 참석하지 않았고,김구도 단 하루 잠깐 나가 인사를 하였다. 그리고 김규식과 김구의 강력한 요구로 열린 요인회담에서는 단선·단정반대도 있었지만,북이 전쟁을 일으키지 않는다는 것,전조선정치회의를 소집하여신헌법을 제정,통일정부를 수립할 것 등을결의하였다.북으로서는 지킬 수없는 것이어서 회피하려고 하였지만,김구·김규식 등을 빈손으로 가게 할 수도 없었다.중도파 민족주의자들은 결코 이용당한 것이 아니었고,민족의 대의를 세우는데 일단은 성공했다고 볼 수도 있다. 남북정상회담을 맞아 ‘남북협상’의 의미를 새롭게 조명할 필요가 있다.그와 함께 월남한 사람,월북 또는 납북된 사람들의 문제가 민족 전체의 입장에서 다루어지기를 바란다. 서 중 석 성균관대 사학과 교수
  • [21세기 여성시대](8)우주비행사·탐험가

    “왜 에베레스트에 가는가(왜 도전하는가)?”“에베레스트가 거기 있기 때문에(미지 세계가 존재하니까).” 탐험가 조지 맬러리의 말을 굳이 인용하지않더라도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도전은 인류발전사에 적지 않은 부분을 차지해왔다. 그러나 여성이 절반의 제몫을 차지하게 된 것은 20세기 후반의 일.특히 인류에게 마지막까지 처녀지로 남아있는 우주에 대한 여성들의 도전은 남성 전유물이었던 미지의 세계에 대한 정복사를 새로 쓰게 만들었다. 지난 6월27일 밤 11시20분(한국시간 28일 낮 12시20분).우주왕복선 컬럼비아호가 5일간의 일정을 마치고 미국 플로리다주 케네디 우주센터로 귀환했다.사상 첫 여성 우주선장의 비행은 성공적으로 마무리됐고 세계의 이목은 여기에 집중됐다. 여선장 에일린 콜린스 미 공군대령(42)은 이날 고도 9,000m 상공부터 직접조종간을 잡았다. 그녀는 이렇게 소련의 유리 가가린 소령이 61년 4월 첫 우주비행에 성공한이래 사실상 남성의 역사로 점철된 38년간의 세계 우주비행역사에 한획을 그었다.우주에 대한 여성 도전사의20세기 완결편이자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순간이었다. 그러나 보다 큰 의미는 여성들의 도전사는 그 기간이 남성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지만 단기간에 성공적인 진전을 보았다는 대목이다.특히 다른 분야와는 달리 체력적인 뒷받침이 필수적인 이분야의 괄목한만한 성장은 남성들로하여금 주눅이 들게 했다. 다른 탐험 분야도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우주조종사는 무중력 공간에서 근육이 무기력해지고 체력소모가 지상보다 훨씬 커 강인한 체력이 필수. 우주선 탑승이 결정되면 무중력 상태에 대한 적응훈련과 함께 발사될 때 겪는 중력 가속도의 3배에 이르는 힘을 견디는 훈련을 받는다.이밖에 각종 장치를 완벽히 조작할 수 있도록 수천시간 가까운 교육을 이수해야 우주로 향할 수 있다. 남성이 유리할 수 밖에 없는 신체적 조건도 조건이지만 사회적 통념의 벽을 넘는 것도 힘든 일이었다.우주비행에서 미국항공우주국(NASA)이 부조종사나제3조종사를 여성으로 한 것도 극히 최근의 일이라는 점에서도 잘나타난다. NASA는 78년에야 비로소 여성에게 우주비행자격을 부여하기 시작했으며 83년 첫 여성 우주비행사를 탄생시켰다.여성 우주항공기 조종사가 탄생한 것은95년에서 와서야 실현된다. 우주선장까지 배출한 지금도 NASA 소속 우주비행사 119명중 여성은 29명이며 미국의 우주비행 경험자 278명 가운데 여성은 31명에 불과하다. 쌍발기 시절부터 하늘에 대해 끊임없는 도전을 시도해왔던 초기 여성비행사들의 노력과 희생은 탄탄한 밑거름이 되어 우주비행 분야에서 여성을 수적인열세에도 불구하고 남성과 같은 수준까지 올려놓는 견인차 역할을 했다. 1911년 세계최초로 여성비행사가 되어 이듬해 영불해협을 건넜던 해리엇 큄비.빨간색 록히드 엘렉트라를 타고 대서양 논스톱횡단 첫 여류비행사로 하와이∼미국본토 간을 최초로 비행했고,1936년 세계일주 시도하다 실종된 아멜리아 에어하트 등을 거쳐 83년에야 첫 여성 우주비행사 샐리 라이드를 배출한다.그녀는 그해 6월18일 우주를 난 첫여성이 되었다. 그후 94년 7월8일 우주왕복선 컬럼비아호에 탑승,14일간 우주생활을 체험한 동양최초의 여성 우주비행사 무카이 지아키 박사(46),프랑스 최초의 여성우주인 안드르 데세이(42)등도 일조를 했다.여성들은 하늘과 우주만 바라보지 않았다.높은 산,넓은 바다,깊은 해저 등에 대한 정복사를 들춰봐도 여성들은 남성들과 대등하게 혹은 앞서서 역사의 장을 넘겨나갔다. 인류사상 최초로 해저 381m에서 2시간30여분간 거닌 실비아 얼,3만2,000㎞를 걸어 지구를 일주한 피요나 캠벨,에베레스트에 두번 오른 인도 경찰관 산토시 야다브,산소통 없이 에베레스트에 혼자 오른 주부 앨리슨 하그리브스,도버해협 횡단 수영 최다(32회)기록을 세운 앨리슨 스트리더,혼자 짐썰매를끌고 남극점에 간 리브 아르네 센….그녀들도 20세기 신세계개척에 새장을열어온 여성 선구자들 이었다./김병헌기자 bh123@**舊蘇 테레슈코바 최초 여성우주인 인류 역사상 맨처음 우주를 여행한 최초의 여성은 누구였을까? 남성으로는 1961년 옛 소련이 쏘아올린 인공위성 스푸트니크호를 탔던 유린 가가린이 바로 최초의 우주인이다.최초의 여성 우주인 역시 옛 소련의 발렌티나 블라디미로브나 니콜라예바 테레슈코바로 기록돼 있다. 1963년 옛 소련 보스토크호에서 여성으로 우주선에 첫 승선한 그녀는 당시 26세로 몇몇 선택된 남성우주인과 함께 맨처음 지구밖 우주공간을 날아본 여성주인공이 됐다.1961년 소련 우주비행사 훈련 프로그램에 참가하기전까지테레슈코바는 취미로 낙하산을 즐기던 직물공장의 한 여성 노동자에 지나지않았다.그러나 2년간의 짧지만 혹독한 우주비행훈련을 마친 그녀는 마침내 1963년 6월16∼19일,보스토크6호의 정식 승무원으로 승선해 지구를 48바퀴도는 역사적인 임무에 동행하게 됐다.화려한 여성 우주인 경력을 바탕으로 이후 테레슈코바는 친선대사를 거쳐 정계에까지 진출하는 등 옛 소련의 대표적인 여류명사가 됐다. 그렇다면 우주공간 이전 하늘을 맨처음 날아본 여성은 누구였을까. 답은 미국의 50센트짜리 우표속에 들어있다.창공을 가르는 단엽비행기를 배경으로 우표속 인물로 아로새겨져 있는 해리엇 큄비(1875∼1912).그녀는 미역사상 최초로 비행면허증을 딴 여성이었으며 영국해협을 단독비행한 첫 여성으로 기록돼 있다. 어릴때 배우가 되고 싶어했던 큄비는 다재다능한 여성이었다.작가로 사진작가로 세계여행가로 활동했으며 후에 무대공연평으로 명성을 얻어 언론계에까지 진출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폈다.그러나 36세가 되던 1911년 그녀는 인생의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새롭게 눈뜬 비행에 대한 열정은 그녀로 하여금 주저함없이 비행과정을 이수토록해 마침내 비행면허증을 가진 최초의 여성이되도록 했다.그녀는 이후 자신이 디자인한 독창적인 비행복을 입고는 미국전역을 비롯해 멕시코까지 비행쇼가 열리는 곳이면 어디든 쫓아다니는 맹렬 비행사가 됐다.그리고 1912년 자신의 생애 최대의 모험인 영국해협 단독비행에성공,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된다. 그러나 큄비의 비행경력도 고작 7개월만에 끝나 버리고 만다.매사추세츠 퀸시 근방에서 개최된 비행쇼에서 곡예비행을 선보이다 결국 계곡아래로 추락,비극적인 죽음을 맞았던 것. 이경옥기자 ok@
  • [의열 독립투쟁] (10)田明雲·張仁煥 의사

    국권이 이미 기울 대로 기운 1908년 3월23일 이른 아침.미국 샌프란시스코페어몬트호텔 앞에서 한 한국 청년이 몸을 숨기고 호텔 안의 동정을 살피고있었다.이 시각 한 대의 승용차가 호텔 정문에 정차하자 일본인 관리로 보이는,실크 모자를 쓴 두 사나이가 호텔 안으로 들어가더니 트렁크 몇개를 들고나와 승용차에 싣는 모습이 보였다. 순간 무언가를 직감한 이 한국인 청년은 급히 인근 페리 정거장으로 향하였다.그는 오전 9시30분 정각에 발차하는 미국 대륙횡단열차와 관련해 ‘볼 일’이 있는 듯했다.이윽고 9시 15분경 열차가 기적을 울리며 플랫폼으로 들어서자 역 구내 한 쪽에 모인 일본인 무리에서 ‘반자이(만세)’ ‘반자이’하는 함성소리가 터져나왔다.그들은 한 미국인의 전송차 나온 일행들이었다. 함성소리에 싸여 한 미국인이 탄 승용차가 정거장 앞에 멈추어서자 샌프란시스토 주재 일본총영사 고이게 조소(小池張造)가 먼저 차에서 내렸다.뒤따라 내린 미국인은 얼굴에 상처투성이였다.9시20분 개찰이 시작되자 승객들이역사를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그 미국인도 열차를 타기 위해 플랫폼으로 나서자 이때 철탑 뒤에 몸을 숨기고 있던 한국인 청년이 품에서 권총을 빼들고 그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그러나 첫 발은 불발이었다.다시 두번째 방아쇠를 당겼으나 이 역시 ‘찰칵’소리만 날 뿐 불발이었다.자신의 권총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한 한국인 청년은 권총을 거꾸로 고쳐잡고 차에 오르려는 미국인을 맹타하기 시작했다. 급습을 당한 미국인이 몸을 피해 도망가려는 순간 어디선가 세 발의 총성이 울렸다.첫 발은 한국인 청년의 오른쪽 어깨를 빗맞고 지나갔고 두번째,세번째 탄환은 미국인의 등과 허리에 명중했다.두 사람은 땅바닥에 쓰러졌다.쓰러진 미국인은 친일파 스티븐스과 한국 청년 전명운(田明雲·1884∼1947)의사였다.총을 쏜 사람은 또다른 한국 청년 장인환(張仁煥·1876∼1930)의사였다.이른바 ‘스티븐스 처단의거’로 불리는 이 사건은 한국의 애국청년들이이국 땅에서 이룩한 쾌거였다. 전명운 의사는 서울 출신으로 일찍 양친을 여의고 불운한 청소년기를 보냈다.가업인 포목전을경영하던 장형의 도움을 받아 성장한 전 의사는 약관 20세인 1904년 2년제 신식학교인 한성학원을 수료하면서 시국과 개화에 눈뜨기 시작했다.어릴 때부터 의협심이 강하고 용맹투사로 소문나 있던 전 의사는노상에서 한국인 부녀자를 희롱·모욕하는 일본인들을 응징한 뒤 신변에 위협을 느껴 천주교 신부의 도움을 받아 상하이로 망명하였다. 상하이에서 다시 신부의 주선으로 미국 화물선 스타피시호의 취사장 인부로 고용된 전 의사는 대만·일본 등을 거쳐 그해 9월 하와이에 도착했다.이곳에서 1년간 농장 인부로 일하던 전 의사는 이듬해 1906년 샌프란시스코로 이주하여 부두노동자,철로공사장 노동자,채소 행상 등을 하면서 생계를 꾸려갔다.당시 샌프란시스코에서는 이민노동자와 몇몇 유학생,우국 망명가들이 모여 1905년 4월 공립협회(共立協會)를 창립,기관지 ‘공립신보’를 통해 교민들의 세력을 규합하는 등 항일활동을 전개하고 있었다.전 의사 역시 공립협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한편 1908년 3월 한국통감부의 외교고문이자 친일파인 미국인 스티븐스가워싱턴을 방문하는 길에 샌프란시스코를 경유한다는 정보가 교민사회에 입수되었다.스티븐스의 귀국은 대외적으로는 일제가 다년간의 공로를 인정,특별휴가를 준 것으로 돼 있었지만 내면적으로는 일본 외무성과 한국통감부의 밀명을 띤 귀국이었다.당시 미국 내에서 일본인 노동자들에 대한 배격운동이격화돼 미 의회에서 관련 법 제정을 추진하자 일제가 그를 긴급 파견,미 국회의원과 유력자들을 만나 법안 제출·통과를 저지하기 위한 것이었다. 3월3일 요코하마를 출발해 귀국 길에 오른 스티븐스는 선상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항구적인 동양 평화를 위하여 한국은 독립을 포기하고 일본의 보호 아래 그 일부로 편입되는 것이 당연하다”고 주장했으며 3월20일 샌프란시스코 도착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는 “일본의 한국 지배는 한국에 유리하다”는 등 친일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이같은 내용은 미국 신문에 보도돼 재미교포 독립운동가들의 격분을 샀다. 공립협회 회원들은 스티븐스가 머문 페어몬트호텔로 찾아가 발언내용 취소를 요구하며항의했으나 거절당하자 그를 응징했다.이날 저녁 샌프란시스코 교민들은 스티븐스 구타 경과보고를 겸한 모임을 갖고 대책을 숙의했는데 이자리에서 전 의사는 자신이 스티븐스를 처단하겠다고 선언하였다. 그 자리에 있던 장인환 의사는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전·장 두 의사는 23일 아침 일찍 워싱턴으로 가는 대륙철도를 타려던 스티븐스에게 세 발의 탄환을 날렸다.피격 후 스티븐스는 병원으로 이송되어 긴급 치료를 받았으나이틀 뒤인 25일 복부 탄환 제거 수술을 받다가 사망하였다. 3월27일 전 의사는 병상에 누운 채 살인미수 혐의로,장 의사는 계획에 의한 일급 모살 혐의로 각각 샌프란시스코 경찰법원에 기소되었다.교민사회에서는 두 의사의 무죄 석방을 위해 백방으로 호소하는 한편 변호사 비용 등 경비 모금에 나섰다.공립협회 회원이자 두 의사 후원회 임시서기인 송종익(宋鍾翊)은 현지 신문인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지에 두 의사의 스티븐스 처단은 한국의 독립 쟁취를 위한 투쟁이라고 밝히고 재판 과정을 독립전쟁의과정으로 인식해줄 것을재판부에 호소하였다. 3차에 걸친 예심을 마치고 6월27일 전 의사는 증거 부족으로 석방되었으나장 의사는 8개월 동안의 재판 끝에 12월23일 ‘애국적인 발광(發狂) 환상에의한 2급 살인죄’로 판정,극형은 면하고 이듬해 1월2일 열린 언도공판에서금고 25년형을 선고받았다.장 의사는 1919년 1월17일 가출옥으로 석방됐으며1924년에는 자유의 몸이 됐다. 전 의사보다 8세 연상인 장인환 의사는 1876년 평양 출신으로 장 의사 역시 조실부모하고 청소년기를 불우하게 보냈다.각지를 전전하며 상점점원 노릇을 하기도 하고 잡화상을 경영하기도 했던 그는 평양에 살면서 청일전쟁을직접 체험하였다.1904년 하와이로 이민,사탕수수 농장에서 2년간 일하다 1906년 캘리포니아로 옮겨 노동자생활을 하던 장 의사는 일제가 ‘을사조약’을 강제로 체결,국권을 박탈하자 ‘대동보국회’ 가입을 계기로 항일 대열에동참하였다. 한편 전·장 두 의사의 의거는 항일독립운동사에서 특별한 의미의 성과로기록되고 있다.우선 두 의사의 ‘스티븐스 처단’은 국내 민족진영에활기를 불어넣어 일시 수세에 있던 의병투쟁을 공세로 전환시켰다.또 두 의사의 의거·재판을 모두 독립전쟁의 일환으로 국내외에 인식시켰다는 점이다. 의거 이후 전 의사는 러시아령 연해주로 망명,현지에서 안중근(安重根)의사와 교유한 적이 있는데 전 의사의 의거 이듬해인 1909년 안 의사의 이토(伊藤博文) 처단은 전 의사의 영향을 받은 결과라는 주장도 있다. 이역만리 미국 땅에서 미국인 친일파를 처단,한국 청년의 기개를 세계 만방에 드날린 두 의사는 모두 불행한 말년을 보냈다.의거 후 재판에서 무죄 석방된 전 의사는 일제의 감시와 암살 위협 등의 압박감에서 이름마저 ‘맥 필드’로 바꾸고 9월 연해주로 일시 망명했다가 1919년 다시 미국으로 돌아왔다.그때 부인과 양자로 입양한 조카를 만났으나 두 사람 모두 1927년 사망해 두 딸을 어렵게 길렀다.태평양전쟁이 일어난 후 한인국방군 편성계획을 미육군사령부에 제출,노년까지 항일활동을 하던 전 의사는 해방 이듬해인 1947년 11월18일 63세로 LA 노인아파트에서 타계해 갤버리 천주교묘지에묻혔다. 94년 전 의사의 유해는 봉환돼 국립묘지에 안장됐다. 장 의사는 전 의사보다 비극적인 노년을 보냈다.1919년 1월 가석방된 후 실의와 병고를 이기지 못한 장 의사는 1930년 5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샌프란시스코 공동묘지에 묻혔던 장 의사의 유해는 75년 국립묘지로 이장돼 사후 45년 만에 영원한 안식처를 갖게 됐다.두 의사는 모두 지난 62년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대통령장(2등급)을 추서받았다. 정운현기자 jwh59@ *田·張의사가 처단 스티븐스는... 전명운·장인환 두 한국 청년이 처단한 미국인 스티븐스는 어떤 인물인가. 처단될 당시 일제 한국통감부의 외교고문으로 있던 미국인 스티븐스는 1852년 미국 오하이오 태생으로 19세때 오버린학교를 졸업하고 뉴욕 컬럼비아대학 법리과·외교학과를 졸업했다.처음 미 국무부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한 그는 1882년 주일 미국공사관에서 1년간 근무한 것이 인연이 돼 일본과 인연을맺게 됐다. 이듬해 이곳을 사직한 그는 주미 일본영사관의 서기관으로 변신하였고 이듬해 다시 일본 외무성고문으로 채용되어 본격적인 일제의 침략외교를 자문하기 시작했다.그가 한·일 외교무대에 처음 등장한 것은 1882년에 일어난 갑신정변의 결과로 체결된 ‘한성조약’ 체결때이다.일본측 전권대사인 이노우에 가오루(井上馨)를 따라 내한한 그는 이노우에를 뒤에서 자문한 공로로 욱일장(旭日章)을 받았다. 스티븐스는 이후에도 영·일동맹과 뒤이은 포츠머드 강화조약에서 일본이한국을 ‘병합’할 수 있는 길을 트는 데 크게 기여했다.이같은 공로로 그는 1904년 한·일간 체결된 ‘외국인 고문에 관한 규정’에 근거,대한제국 정부의 외교고문(1905년 ‘을사조약’ 체결 이후에는 한국통감부 외교고문)으로 초빙됐다. 그는 ‘몸’은 미국인이었지만 ‘마음’은 일본을 위하는 자였다.일제가 대한제국의 국권을 침탈한 1905년 ‘을사조약’ 체결시는 물론 1907년 ‘헤이그 밀사사건’ 이후 고종의 강제 퇴위와 ‘정미 7조약’ 체결때도 그는 배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이후 그는 한국의 민족진영으로부터 처단 대상으로 지목됐고 전·장 두 의사에게 처단될당시 그의 나이 55세였다. 샌프란시스코 성프란시스병원에서 수술 도중 사망한 그의 사체는 4월2일 이 병원을 출발,6일 워싱턴에 도착됐다.장례는 8일 교회에서 기독교식으로 치러졌으며 워싱턴 온비루묘지에 묻혔다.이튿날 거행된 추도식은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의 조화와 일황의 조전 및 조화,그리고 200여명의 조문객이 참여한가운데 거행됐다. 일본 정부는 장례식에서 스티븐스에게 훈1등 훈장을 추서했으며 유족에게조의금으로 15만원을 전달했다.사후 발견된 그의 예금통장에는 2만6,000여원의 거금이 입금돼 있었는데 이 돈은 그가 일본 정부로부터 친일 대가로 받은것이었다. [정운현기자]
  • ‘태양’’삼손’’바람’ 3총사 저팬시리즈 우승 이끈다

    ‘주니치에 45년만에 챔피언 트로피를 안기겠다’-.11년만에 주니치 드래곤즈를 일본 프로야구 센트럴리그 정상으로 끌어올린 ‘코리아 삼총사’가 오는 23일 후쿠오카돔에서 개막되는 퍼시픽리그 우승팀 다이에 호크스와의 일본시리즈(7전4선승제) 선봉에 서 주니치의 오랜 ‘한’을 풀겠다는 각오를다지고 있다.주니치가 일본시리즈를 제패한 것은 54년 단 한차례.이후 줄곧정상을 두드렸지만 리그 우승 4차례에 그쳤다. 주니치가 왕전즈감독이 이끄는 다이에를 꺾겠다고 자신감을 불태우는 원동력은 ‘나고야의 태양’선동열(36)과 ‘삼손’이상훈(28) ‘바람의 아들’이종범(29) 등 ‘코리아 삼총사’에 대한 믿음 때문.주니치 코칭스태프는 이들이 한국시리즈 우승 등 큰 경기 경험이 많아 ‘승부사’ 역할을 해낼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 특히 선동열과 이상훈은 주니치의 최대 강점인 투수력의 핵이다.선동열은지난달 30일 현재 28세이브포인트로 구원 2위를 달리고 있다.개막이후 10세이브를 올리며 팀의 개막 8연승의 주역을 담당했다.6월들어 3연속 구원실패로 위기를 맞았으나 후반기들어 9연속 세이브를 다시 쌓으며 ‘주니치의 수호신’임을 과시했다.이상훈은 선발로 나섰다가 중반 심한 기복을 보여 중간과 마무리를 오가며 궂은 일을 도맡아 왔다.특히 6월27일부터 중간계투로 투입되며 25이닝동안 단 3실점에 방어율 1.08로 호시노감독의 믿음을 샀다. 이종범은 올시즌 확고한 주전자리를 꿰차지 못하고 타율 .239에 그쳤지만빠른 발(도루2위·24개)로 야구의 또 다른 진수를 일본열도에 선보인데다 결승득점 11차례,결승타 4차례 등에서 보듯 찬스에 강해 여전히 기대를 모으고 있다. 김민수기자 kimms@
  • 박찬호 11승 낚았다

    박찬호(LA 다저스)가 파죽의 5연승으로 시즌 11승째를 낚았다.박찬호는 19일 덴버 쿠어스필드에서 열린 미국 프로야구 콜로라도 로키스와의 원정경기에 선발등판,6이닝 동안 삼진 4개를 곁들이며 4안타 4볼넷으로 1실점,승리투수가 됐다. 이로써 박찬호는 시즌 11승10패를 마크했고 방어율도 5.69에서 5.54로 낮췄다.박찬호는 지난달 19일 ‘삭발’을 단행한 뒤 23일 필라델피아전에서 승리한 이후 자신의 연승 최다 타이인 5연승을 구가했다.그의 5연승은 ‘여름의사나이’로 불리던 97년(7월11일∼8월1일)과 98년(6월27일∼7월31일)에 이어3번째이며 3년 연속이다. 박찬호는 오는 24일 등판 예정인 샌프란시스코전에서 승리하면 자신의 연승 신기록을 작성하게 된다.박찬호는 앞으로 2경기 더등판할 예정이다. 박찬호는 이날 볼넷 4개를 내줬지만 비교적 안정된 제구력과 뛰어난 위기관리 능력으로 상대 강타선을 요리했다.특히 ‘투수들의 무덤’으로 불리는 쿠어스필드에서 우려됐던 홈런을 맞지 않아 ‘코리아특급’의 위용을 되찾는모습이었다. 다저스는 1회초 선두타자 에릭 영의 2루타,개리 셰필드와 라울 몬데시의 2루타와 3루타로 손쉽게 2득점,박찬호의 어깨를 가볍게 했다. 박찬호는 1회말2사 후 1루수 실책으로 제프 배리를 진루시킨 뒤 흔들려 볼넷 2개로 만루를자초했지만 다음 타자를 파울플라이로 잡아 위기를 넘겼다. 이후 박찬호는 2회와 5회를 삼자범퇴로 막는 등 안정된 투구 내용을 보였고 3회 셰필드는 1점홈런을 날려 이날도 박찬호에게 힘이 됐다. 무실점 행진을 하던 박찬호는 6회 선두타자 커트 애보트에게 3루타와 배리의 적시타로 1점을 내줬고 1사 1·3루의 역전 위기까지 몰렸지만 비니 카스틸라를 병살타로 유도,고비를 넘겼다. 박찬호는 3-1로 앞서던 7회 무사 1·2루의 찬스에서 대타 데이브 한센과 교체됐고 다저스는 영의 적시타와 마크 그루질라넥의 희생타로 2점을 추가,5-1로 달아나 박찬호의 승리를 굳혔다.로키스는 8회 카스틸라의 2점포 등으로 5-4까지 추격하는데 그쳤다. 김민수기자 kimms@
  • 공익근무요원‘紀’빠졌다

    군대에 가지 않는 대신 구청 등 지방자치단체에 배속돼 주차단속을 하거나버스전용차선제의 이행 실태 등을 감시하는 공익(公益)근무요원들의 탈선이잇따르고 있다. 국민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대민업무를 뒤로한 채 시민들에게 피해를끼치는 공익근무요원들이 부지기수다.이들에 대한 엄격한 근무관리와 교육이뒷받침되지 않고 있는 것도 이들의 탈선을 부추기는 데 한몫하고 있다. ?범죄 서울 도봉경찰서는 23일 경기도 과천 서울대공원에서 근무하는 공익근무요원 김광섭(金光燮·21)씨를 특수절도미수 혐의로 구속했다. 김씨는 지난 4월부터 서울 강남의 한 술집에서 종업원으로 일해왔으며 지난7월10일에는 근무지를 이탈했다. 김씨는 용돈이 떨어지자 지난 21일 오후 11시35분쯤 택시운전사인 장모(49·도봉구 방학동)씨 집에 들어가 돈을 훔치려다 장씨와의 격투 끝에 붙잡혔다. 서울 마포구청 교통지도과에 근무하는 공익근무요원 서정현(徐晸炫·21)씨도 강간 혐의로 서울 용산경찰서에 구속됐다.서씨는 지난 21일 새벽 5시쯤술이 취한 상태에서 보광동 김모(20·여)씨 집에 들어가 혼자 잠자던 김씨를흉기로 위협,성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서울 양천경찰서는 지난 20일 일산구청 과적단속 공익근무요원 차인환(車仁煥·22)씨를 여신전문금융업법 위반 혐의로 구속했다. 차씨는 지난 6월27일 같은 구청 동료 공익요원인 이모(26)씨의 신용카드가든 서류가방을 훔친 뒤 경기도 일산구 주엽동 N자전거 상회에서 24만원짜리자전거를 사는 등 훔친 신용카드를 6차례나 사용했다가 붙잡혔다. ?관리실태 공익근무요원제는 지난 95년 1월 도입됐다.군부대에서 4주동안기본군사훈련을 받은 뒤 지방자치단체에서 근무하며 근무기간은 28개월이다. 이들에 대한 교육은 기본군사훈련 외에 병무청에서 각 지자체로 넘겨줄 때공익근무요원 행동수첩을 나눠준 뒤 2시간동안 정신교육을 하는 것이 전부다. 서울시 서양원(徐良源)비상계획팀장은 “공무원 교육원 등에서 소양교육 등을 시키지만 퇴근한 뒤 범죄를 저지르는 것은 어쩔 도리가 없다”고 토로했다.지난 3월말 현재 서울시와 각 구청에서 근무하는 공익근무요원은 6,920명이다. 이창구 김재천기자 window2@
  • 고정운-하은철-안정환 득점왕 ‘3두체제’

    ‘골 폭풍’이 몰아치는 가운데 득점왕 싸움이 한층 볼만해졌다. 18일 후반기 첫 발을 내디딘 바이코리아컵 프로축구 정규리그 득점선두는나란히 7골을 넣은 고정운(33·포항 스틸러스) 하은철(24·전북 현대) 안정환(23·부산 대우) 등 3명.최용수(26·안양 LG)와 이동국(20·포항)이 6골로 뒤를 쫓고 있다. 올시즌 득점왕 경쟁이 특히 재미를 더하는 것은 신·구세대의 다툼이라는점.‘고참’ 고정운과 최용수는 그 동안의 불운을 딛고 옛 기량을 완전히 되찾은 모습이다.지난해 11월 경찰청과의 FA컵 16강전에서 왼쪽 무릎을 다쳐병원신세를 져야만 했던 고정운은 하루가 다르게 경기감각을 회복하고 있다. 6월27일 그라운드로 돌아와 8경기만인 18일 프로생활 10년만에 처음으로 해트트릭을 터뜨는 기염을 토했다.최용수도 시즌 초반 영국리그 진출 실패로겪었던 ‘상처’에서 벗어나 팬들로부터 반가움을 사고 있다.아디다스컵에서 2경기 연속 골을 쏘아올려 자신감을 회복한 그는 전북과의 경기에서 94년데뷔한 이래 역시 첫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6연패로 꼴찌를 걷던 팀을 수렁에서 건져냈다. ‘신예’로 득점포 싸움에 끼어든 하은철 안정환 이동국은 똑같이 프로 2년차.하은철과 안정환은 고정운이 혼자 3골을 낚아 눈 깜짝할 새 득점선두에오른 날 뒤질세라 각각 2골,1골씩을 보태 공동선두를 이뤘다.이동국도 ‘2년생 징크스는 없다’면서 13경기에서 6골을 작렬시키며 선두 도약을 벼르고있다. 송한수기자 onekor@
  • 고정운 최용수등 부상서 컴백 ‘그명성 그대로’

    “나,이제 다 나았어요”-.부상에 시달리다 복귀한 스타들이 예전의 기량을 뽐내며 프로축구 그라운드를 후끈 달구고 있다.올 시즌 개막을 앞두거나 시즌 중에 부상을 입어 모습을 드러내지 못하다 최근 팀에 복귀,그라운드를 누비고 있는 선수는 포항 스틸러스의 고정운 백승철,안양 LG의 최용수,부산 대우의 안정환,울산 현대의 정정수 등. 가장 화려하게 부상 회복을 알린 선수는 고정운.지난해 10월말 울산 현대와의 정규리그 플레이오프에서 왼쪽 무릎인대에 부상을 당해 지난 6월27일 복귀할 때까지 8개월여를 쉰 그는 7월4일 천안 일화전에서 시즌 첫 골맛을 보며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이후 18일 부산 대우전,21일 대전 시티즌전에서 연속골을 터뜨리며 팀을 연승으로 이끄는 등 완전히 부상에서 회복한모습. 최용수도 25일 울산전에서 오랜만에 2골을 성공시키며 국내 최고의 골게터라는 명성을 입증했다.지난 2월말 일본 프로축구팀 시미즈 S펄스와의 친선경기에서 왼쪽무릎인대 부상을 당했던 그의 복귀무대는 지난 5월 1일 대한화재컵 전북 다이노스전.그러나 영국 프레미어리그 진출 좌절로 인한 정신적인방황이 겹쳐 슬럼프에서 헤어나지 못했던 그는 17일 전남전에서의 시즌 첫골에 이어 이날 2골을 잡아내는 등 단숨에 부진을 만회하고 있다. 결장기간은 짧지만 안정환도 지난 6월30일 전남전 이후 왼쪽 발목 통증과허리디스크로 출장치 못하다 지난 24일 수원 삼성전에서 결승골을 터뜨리며복귀를 자축했다.특히 그는 5득점으로 득점랭킹 2위로 치고 올라가 선두 이동국(포항 6골)을 위협하고 있다. 이밖에 고정운과 같은 시기에 각각 오른쪽 발목에 부상과 오른쪽 허벅지 인대가 파열돼 그라운드를 떠났던 포항의 백승철과 울산의 정정수도 4월초 부상에서 회복된 이후 나란히 3골을 터뜨리며 팀의 버팀목으로 큰 활약을 펼치고 있다. 곽영완기자 kwyoung@
  • 박찬호 ‘상처뿐인 5승’…7실점불구 타선 도움

    박찬호(LA 다저스)가 천신만고 끝에 5승째를 챙겨 후반기 명예회복의 디딤돌을 놓았다. 박찬호는 9일 덴버 쿠어스필드구장에서 열린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 콜로라도 로키스와의 원정경기에 전반기 마지막 선발등판,5이닝동안 홈런 3개를 포함해 10안타(3사사구 3탈삼진) 7실점했으나 오랜만에 폭발한 타선의 도움으로 승리투수가 됐다.다저스는 10-7로 앞선 6회 박찬호로부터 마운드를넘겨받은 불펜투수들이 1실점으로 막고 9회 에릭 캐로스가 1점 쐐기포를 터뜨려 11-8로 승리,3연패를 벗었다.박찬호는 타격에서도 2타점을 올렸다. 지난 5월27일 신시내티전에서 4승째를 올린 이후 4연패를 끊는 귀중한 1승을 보탠 박찬호는 이로써 17경기에서 5승7패,방어율 6.52의 실망스런 성적으로 전반기를 마감했다. 박찬호는 이날도 고질적인 제구력 난조로 고전을 면치 못했다.빠른 볼과 낙차 큰 변화구 등 구위는 살아 있었지만 볼이 가운데로 쏠려 홈런 3발 등 장타를 허용했고 장타를 피하려다 볼넷을 내주는 악순환이 계속된 것.박찬호의 부진이 이어짐에 따라 후반기 대대적인 팀 체질 개선을 단행키로 한 다저스는 박찬호를 놓고 부심하고 있다. 그러나 박찬호의 도약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우선 이날 승리가 슬럼프의한 요인으로 지적된 자신감을 회복시켜 후반기 분위기 반전의 계기가 됐다는 분석이다. 또 14승을 따낸 97년에는 7월11일 샌프란시스코전부터,15승을 거둔 지난해에는 6월27일 피츠버그전부터 각각 5연승을 질주,‘여름의 사나이’임을 과시해 기대를 모으고 있다. 여기에 올스타전(14일 보스턴)을 전후한 1주일 정도의 ‘꿀맛’휴식도 재도약을 부추기는 대목이다. 박찬호는 “투구내용은 불만스럽지만 승리는 대단히 중요하다.자신감을 갖고 후반기를 맞게 된 것이 기쁘다”며 “승리에 집착한만큼 낙담도 컸다.후반기에는 투구 패턴을 바꿔 예전의 모습을 되찾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김민수기자 kimms@
  • 구속 3人 누구인가

    ◎吳靜恩­朴寬用 의원 생질… 한때 청와대행정관 선무/張錫重­대북교역가 자처… 옥수수 박사와 함께 방북/韓成基­YS 주치의 알게된 후 의료사업전문가 행세 ‘총격 공작’을 시도한 것으로 알려진 吳靜恩(46)·張錫重(48)·韓成基(39)씨는 친분 관계를 이용,치밀한 계획을 세워 북한측과 접촉한 것으로 드러났다. ◇吳靜恩씨=80년 연세대 대학원 법학과를 졸업한 뒤 프랑스로 유학했다. 청와대 비서실장이었던 한나라당 朴寬用 의원의 생질로 93년부터 청와대 행정관으로 근무해왔다. 韓씨와는 지난해 고려대 언론·정책대학원에 입학하면서 만났다. 동기생 50명중 두 사람은 두드러진 활동을 하지 않았고 특별한 친분도 없었으나 대선 캠프에 가담하면서 가깝게 지낸 것으로 알려졌다. 경기도 S대 화학과 교수로 재직중인 부인 金모씨는 “그런 엄청난 일을 모의했을 리 없으며 진실은 언젠가는 밝혀질 것”이라고 말했다. ◇張錫重씨=대북교역사업가로 자처했지만 생활고에 시달려온 것으로 알려졌다. 지병으로 1년 전부터 입원중인 부인 鄭모씨(48)의 병원비 마련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이웃들의 얘기다. ‘옥수수 박사’로 유명한 金順權 경북대 석좌교수와 함께 지난 1월 북한을 방문,슈퍼옥수수 재배를 위한 의향서를 체결했던 인물. 명지대 무역학과를 졸업,93년 서울 제기동에 ‘대호물산’을 설립해 대북교역사업을 해오다 폐업했다. 서울지법 동부지원에서 공갈죄로 징역 1년을 선고받은 경력도 있다. ◇韓成基씨=95년 1월 당시 金泳三 전 대통령의 주치의 高모 박사를 우연히 알게 된 것을 계기로 의료사업 분야의 전문가로 행세하며 (주)포스데이터 비상임 고문으로 고용되기도 했다. J사 고문,모방송사 PD 등도 사칭하고 다녔다. 포스데이터에서는 96년 1월부터 12월까지 의료분야 소프트웨어 개발의 자문역을 맡았다는 회사측의 설명. 지난해 초에는 진로그룹 회장을 만나 동문 운운하며 포철 상임고문으로 일하고 있다”며 취업을 청탁하기도 했다는 진로측의 설명. 96년 정보통신업체인 P사 등을 상대로 5,400만원을 사취한 혐의로 지난 8월 경찰청에 구속됐다. ◎李會晟씨 누구인가/정세분석팀이끈 대선캠프 ‘실력자’ ‘총격요청 사건’에 연루된 의혹을 받고 있는 李會晟 전 에너지경제연구원장은 李會昌 한나라당총재의 친동생으로 지난해 대선 당시 李후보의 선거캠프에서 돋보이는 활약을 했다. 96년 정·관계의 30∼40대 젊은 인사들로 ‘정세분석팀’을 구성해 ‘李會昌 대통령 만들기’에 발벗고 나섰으며,정기적으로 보고서를 만들어 李후보에게 전달했다.당시 李후보는 이 보고서를 상당히 신뢰했다는 것. 때문에 李씨는 대선 캠프에서 ‘실력자’로 통했다. 정치자금 모금 창구역할을 맡았다는 소문도 나돌았다. 특히 신한국당과 민주당의 합당과정에서 민주당 趙淳 총재의 장남 기송씨와 합당원칙을 논의하는 등 ‘산파역’을 맡았다는 후문이다. 경기고와 서울대 상대를 졸업하고 미국 럿거스 주립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86년부터 95년까지 에너지경제연구원장을 세차례나 역임하는 등 에너지 분야의 국내 선구자로 꼽힌다. □80년이후 각종선거와 북풍의혹◆13대 대선 ·선거일:87년 12월16일 ·사건일:87년 11월29일 ·의혹사건:대한항공기폭파사건 ·주요내용: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항공기 폭파 사건이 일어나 온 국민이 경악, 초대형 북풍에 당시 김대중 대통령 후보 타격 ◆14대 대선 ·선거일:92년 12월18일 ·사건일:92년 10월 ·의혹사건:남파간첩 이선실 사건 ·주요내용:대선을 2개월을 앞두고 남파간첩 이선실 사건이 터져 김대중 후보 용공시비에 휘말림 ◆6·27지방선거 ·선거일:95년 6월27일 ·사건일:지방선거전 ·의혹사건:대북 쌀지원 ·주요내용:선거를 앞두고 북한 동포를 돕는다는 취지에서 쌀을 지원, 그러나 북한 쌀지원을 선거용으로 무리하게 서둘러 결과적으로 대북정책 실패 ◆15대 총선 ·선거일:96년 4월11일 ·사건일:총선직전 ·의혹사건 ­판문점무력시위:총선직전 여러차례에 걸쳐 판문점 공동경비구역내 중무장 북한군 무력시위 ­8월 남파된 김동식의 체포로 정치인 접촉:95년 10월 체포된 남파간첩 김동식의 야당 정치인 접촉으로 또 한차례 용공시비 ◆15대 대선·선거일:97년 12월18일 ·사건일:대선기간중 ·의혹사건 ­오익제 편지사건:안기부 11월20일 도착한 편지를 12월5일 압수수색, 11월25일 2차 편지공개 ­김병식 편지사건:12월13일 도쿄에서 공개된 북한사민당 위원장이 김대중 후보에게 보낸 편지. ­김장수 편지사건:11월20일 북한인사 김장수가 국민회의 김원길 정책위의장에게 편지를 보내 김대중 후보에게 전달하라고 한 내용 ­윤홍준 기자회견:12월11일 재미실업가 윤이 베이징에서 가진 기자회견. 김정일이 김대중 후보에게 정치자금을 제공했다는 내용 ­판문점총격유도공작설:12월12일 이회창 후보 비선조직이 북측과 접촉, 북한측에 총격유도를 제의했다는 내용. 검찰수사
  • ‘과학기술정책연구회’를 아십니까/과기부 정책 연구모임

    ◎매월 1회 담당업무 관련 대안 등 제시 과학기술부의 정책 연구모임 ‘과학기술정책연구회’가 최근 부내의 화제가 되고 있다. 과기부 직원이나 소속 연구원이면 누구나 참가할 수 있는 이 모임은 6월27일 첫 회의를 가진 이후 매월 마지막주 토요일 오후 1시면 어김없이 진지한 토론의 시간을 갖는다. 주제는 새로운 과학기술의 개념을 소개하는 내용.토론을 통해 담당업무와 관련된 사항을 비판하고 대안을 제시한다.국제기구 및 해외 선진국의 과학기술정책도 토론의 도마위에 오른다. 지난 26일 열린 4번째 모임의 주제는 ‘OECD 동향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과학기술정책형성과 집행’이었다.OECD 전문가인 朴恒植 기초과학지원과장이 주제발표를 했다. 현재 회원은 1급 이상 간부 2명을 포함 27명. 국장급 이상 4명,서기관 8명,사무관 12명,6급주사가 1명으로 서기관 이하가 멤버의 주류를 이룬다. 모임의 간사를 맡고 있는 盧煥珍 연구개발1담당관실 서기관은 “3번의 임을 통해 업무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고 과학기술의 새로운 개념에 대처할 수 있어 매우 유익했다”고 말했다.
  • 68년 한국기계 등 11개 기업 첫 실시/공기업 민영화 역사

    ◎한전은 87년·93년 이어 3번째 시도 우리나라 공기업 민영화의 역사는 60∼70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이때 최초로 항공·제조·운수분야 11개사가 민영화됐다. 한국기계 해운공사 조선공사(이상 68년) 등은 주식매각 등의 방법으로 민영화가 이뤄졌다.인천중공업(68년) 대한항공(69년) 광업제련(70년)은 다른 공기업에 현물 출자,민영화됐다. 70년대 말∼80년대 초에는 일반 공개경쟁 입찰방식의 주식매각으로 석유·은행 분야 7개사가 민영화됐다.한일은행(81년) 제일은행 서울신탁은행(이상 82년) 조흥은행(83년)이 대상이었다. 87년에는 국민주 방식이 동원됐다.87년 4월 공기업 민영화추진위원회는 한국전력 등 11개 기관 민영화계획을 발표했다.앞서 증권거래소가 정부주식 68.1%를 25개 증권회사에 매각했다.포항제철은 정부와 산업은행 보유 주식 69.1% 중 34.1%를 88년 4월 국민주로 매각한 뒤 같은해 6월 상장돼 우리나라 최초의 국민주가 됐다. 이어 한국전력이 89년 5월 정부 지분 중 21%를 매각,증시 사상 두번째 국민주로 보급했다. 마침내 93년12월 대대적인 공기업 민영화 계획이 발표됐다.58개 공기업 민영화 및 10개 공기업 통·폐합 추진 계획이었다.국민은행 기업은행 주택은행 등 3개 국책금융기관이 대상에 포함됐다.87년 민영화 계획에 포함됐으나 실시되지 못했던 국정교과서 담배인삼공사도 대상이었다. 그러나 당초 계획과 달리 지분 매각 22개사,통·폐합 5개사에 그쳐 실적은 미미했다. 공기업 민영화 계획은 97년 8월 ‘공기업의 경영구조개선 및 민영화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면서 가속화하기 시작했다.이 때부터 담배인삼공사 가스공사 한국통신 한국중공업 등 거대 공기업에 전문경영인에 의한 책임경영 체제 및 사외이사 중심의 이사회 제도가 도입됐다. 법률제정 후속 조치로 97년 10월 시행령 제정과 정관 정비가 완료됐고 2개월 뒤 사외이사 중심의 이사회 등 새 경영진이 선임됐다.오늘날 공기업 민영화를 위한 발판이었다. □공기업 민영화 일지 ▲2월28일:기획예산위 정부개혁실 발족 ▲4∼5월:부처별·공기업별 사전 검토 ▲4월17일:부처별 공기업 경영혁신 관련 자료 요청 ▲4월30일:공기업 경영혁신 관련 자료 제출 ▲6월9일:공기업 경영혁신 위한 공청회 ▲5월19일∼6월27일:행정개혁위원회 공기업분과 소위 개최 ▲4월14일∼6월말:공공부문 노조와 면담 ▲6월15∼29일:개별부처 협의,관계장관 간담회 개최,당정협의 ▲6월18일:감사원,공기업 특감결과 발표 ▲6월29일:기획예산위 의결 ▲7월3일:1차 공기업민영화 계획 발표 ▲7월 중순:2차 공기업민영화 및 경영혁신 대상 공기업 발표
  • 美 직배사/‘블록버스터’ 미끼 여름 극장가 싹쓸이

    ◎IMF사태로 영향력 커져/‘고질라’ 8주 상영 파격 요구/백지어음 미리 제공 강요도 영화계 최고 대목인 여름 시즌을 앞두고 할리우드영화 직배사들이 대작 배급을 미끼로 극장가를 독점하려 들고 있다. 해마다 6월말∼7월초면 직배사들이 블록버스터를 앞세워 상영관을 쓸어가다시피 한 것이 사실.그러나 올해는 IMF에 따른 전반적인 불황을 악용해 예년보다 훨씬 나쁜 조건으로 극장관계자들을 압박하는 것이다. 이번 여름에 개봉예정인 직배사 대형영화는 ‘고질라’(콜럼비아 배급),‘아마겟돈’‘뮬란’(이상 디즈니),‘X파일’(20세기폭스)‘리쎌 웨폰 4’(워너)등 5편.개봉 예정일은 오는 27일의 ‘고질라’에 이어 7월3일 ‘아마겟돈’,7월17일 ‘뮬란’,8월1일 ‘X파일’과 ‘리쎌 웨폰 4’등이다. 이 가운데 ‘고질라’의 배급사인 콜럼비아는 영화의 지명도가 높은 점을 내세워 장기상영 보장 등 영화관 측에 터무니없는 요구를 해 물의를 빚고 있다. 서울 C극장이 최근 콜럼비아와 맺은 계약서를 보면 ‘개봉 이후 최소한 연속 8주 이상의 상영을 배급자에게 보장한다’고 돼 있다.이는 영화 한편을 보통 2∼3주,길어야 4∼5주 상영하는 현실에 비춰 대단히 불리한 조건으로 영화계는 보고 있다. 특히 블록버스터가 6월27일부터 순서대로 개봉하는 올 여름 일정을 감안하면,8월14일까지 ‘고질라’외에 다른 대작을 상영하는 것은 포기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콜럼비아는 극장 측에 ‘30일 이내에 상영권의 대가를 지급하며…이를 확실하게 하기 위해 예상 금액을 지급 예정일 이틀 후로 표기한 약속어음(또는 백지어음)으로 미리 제공해야 한다’는 내용도 계약에 넣었다. 이같은 일방적인 계약조건과 함께 콜럼비아는 ‘고질라’를 서울시내 40∼45개 극장에서 일제 개봉할 계획을 세워 놓았다.이같은 극장 수는 서울 개봉관 72군데의 56∼63%에 달하는 것이어서 극장가를 독점하려는 의도가 명백히 드러나고 있다. 이에 대해 콜럼비아 측은 “‘고질라’가 중고교생에게 인기가 높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방학 이후에도 일정기간 상영하려면 8주를 보장받을 수밖에 없다”고 해명했다. 극장가에서는 콜럼비아 말고도 여러 직배사들이 대작영화 개봉을 조건삼아 흥행 가능성이 낮은 작품들을 끼워팔기로 떠넘기는 등 갖은 횡포가 벌어지는 실정이다. 한편 충무로에서는 IMF사태로 국내 영화사들의 외화 수입이 줄어드는 바람에 직배사들의 영향력이 더욱 커졌다고 분석하고 이처럼 극장을 빼앗기다 보면 한국영화는 만들어 봐야 개봉하기 힘들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 주가 400선 붕괴/14P 하락 393/환율·금리 동반상승

    종합주가지수 400선이 10년 5개월만에 무너졌다.12월 첫 장인 1일 주식시장은 정부와 국제통화기금(IMF)의 실무협상이 타결됐다는 소식에 힘입어 약보합권으로 출발한 뒤 대형 우량주를 중심으로 저가의 사자주문이 들어오면서 전장 한때 3포인트 오름세를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IMF 긴급자금신청에 따라 재정긴축,부실기업의 부도,금융기관의 파산유도 등 부정적인 측면들에 대한 우려감이 확산된데다 환율과 금리가 급등세를 보이면서 경계성 매물과 실망매물이 쏟아져나와 종합주가지수는 지난 주말보다 14.7포인트 떨어진 393.16으로 마감했다.이는 87년 6월27일의 387.42 이후 가장 낮은 수치이다. 거래량과 거래대금은 4천6백72만주와 3천4백30억원으로 부진했다.업종별로는 어업만이 소폭 올랐을 뿐 나머지 업종은 내렸으며 종금주와 일부 개별종목이 오름세를 보였다.값이 오른 종목은 상한가 15개 등 53개에 그쳤고 내린 종목은 하한가 634개 등 835개였다. ◎1달러 1천174원40전 IMF(국제통화기금) 자금지원 조건의 타결지연 등으로 환율과금리가 동반 상승했다. 1일 서울외환시장에서 환율은 달러당 이날 기준환율(1천163원80전)보다 낮은 1천160원에 거래가 시작되는 등 IMF 자금지원 조건의 완전 타결에 대한기대감과 11월 무역수지 흑자 소식이 전해지면서 환율이 떨어지는 분위기였다. 2일 고시될 기준환율은 1일보다 10원60전이 높은 달러당 1천174원40전이다. 시장금리의 경우 IMF 자금지원에 따른 관망세로 매수세가 약해 3년 만기회사채 유통수익률은 17.50%로 2.4% 포인트,CP(기업어음)는 19.40%로 1.65% 포인트가 각각 뛰었다.
  • 일 주요 70개 기업에 “돈 입금하라” 협박장

    【도쿄 교도 연합】 일본의 주요기업 약 70개사가 이달 주주총회를 앞두고 금품을 갈취하려는 세력으로부터 법적 소송을 제기하겠다는 협박장을 받았다고 경찰이 20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 기업은 지난달 하순부터 협박장을 받기 시작했는데,협박장에는 도쿄의 한 은행 특정구좌에 30만엔 등 일정한 금액을 입금하지 않을 경우 기업의 내부문건을 근거로 중역들을 고소하겠다고 협박했다는 것이다. 이같은 협박은 「총회꾼」들이 주총을 방해하지 않는 대가로 돈을 뜯어내는 수법과 일치하는 것으로,많은 기업들은 총회꾼들의 주총참석을 저지하기 위해 같은 날 주총을 여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이달에는 사상 최다인 2천6백8개사가 주총을 열 예정으로 있는데,이 가운데 2천3백8개사가 6월27일을 주총일로 결정한 상태다.
  • 12·12 상고심 선고­81년1월24일 내란종료 판결 의미

    ◎「5공 통치행위 무효」 대혼란 배제/자위권 보유 천명 발포명령 아니다/황영시·정호용씨 내란목적 살인죄/의사당 점거·국보위 국헌문란 규정 12·12사건은 「군사 쿠데타」,5·18사건은 「내란」으로 청사에 기록되게 됐다.대법원은 17일 이같은 확정판결과 함께 그동안 검찰과 변호인,1·2심 재판부 사이에 엇갈렸던 몇가지 쟁점에 관한 법리 논쟁을 마무리지었다. 먼저 내란죄의 종료시점에 관련,재판부는 유일하게 항소심 판결내용을 깼다.항소심은 국민적 저항에 밀려 87년 「6·29선언」으로 「항복」하기까지 폭동행위가 계속됐다고 보았었다. 하지만 재판부는 한 지방의 평온을 해칠 정도의 폭동행위가 끝난 것은 「비상계엄 해제일인 81년 1월24일」이라고 규정했다.내란죄가 「계속범」이 아닌 「상태범」이라는 판단에서다.이 점에서 변호인측의 주장을 일부 수용했지만 폭동행위의 종료시점이 80년 9월1일 전두환 피고인이 대통령에 취임한 날이라는 변호인측 주장은 기각했다. 대법원이 항소심대로 87년 6월29일로 규정할 경우 5공 정권자체가 불법정권으로 당시 이뤄졌던 모든 법률적·행정적 행위가 무효화돼 파문을 불러 올 것이라는 지적이 제기됐었다. 다음은 황영시·유학성 피고인에게 내란목적 살인죄를 적용한 부분이다.1심 무죄,항소심 유죄로 엇갈렸지만 항소심의 손을 들었다.이들 피고인이 육본과 국방부 회의 등에 참석,광주 재진입 작전지침을 작성해 계엄군으로 하여금 특정집단에 대해 「살인」 의도를 갖고 유혈·강경 진압케 했으므로 내란목적 살인죄를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위권 보유천명을 실질적인 발포명령으로 볼 것이냐는 문제에 대해서도 항소심의 판단을 따랐다.자위권 보유를 천명한 담화문이나 계엄훈령 등에 『계엄군이 무장시위대가 아닌 사람에게 발포해도 좋다』는 내용이 담겼다는 증거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이밖에 국회의사당 점거 및 폐쇄,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설치 등은 모두 국헌문란에 해당된다고 판시했다. 특히 12·12사건의 정승화 총장 연행과 관련,당시 최규하 대통령이 재가했다는 변호인측의 주장에 대해 『묵시적으로라도 이를 승낙했다고 볼 자료가 없고,오히려 이를 거절했다』며 일축했다. 한편 박만호 대법관은 군사반란 및 내란행위에 대해 『대통령과 국회 등 통치권의 담당자가 교체되는 등 국가 헌정질서의 변혁을 가져 온 고도의 정치적 행위이므로 사법적 심사대상이 아니다』며 유·무죄를 판단하지 말고 공소기각 판결을 선고해야 한다는 소수의견을 내놓았다. 박만호·신성택 대법관은 내란목적 살인죄의 공소시효 문제와 관련,『이 죄의 범죄행위가 80년 5월27일에 종료돼 특별법이 제정되기 전 공소시효가 끝났다』며 면소판결을 선고해야 한다는 소수의견을 내놓았다. □「12·12」 「5·18」 재판일지 ▲95년 10월19일=민주당 박계동 의원,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사건 폭로. ▲10월20일=대검 중수부 수사착수. ▲11월16일=노 전 대통령 구속수감. ▲11월24일=김영삼 대통령 5·18특별법 제정 발표. ▲12월3일=전두환 전 대통령 안양교도소 구속수감. ▲12월4일=조홍 전 수경사 헌병단장 등 관련자 본격소환. ▲12월15일=헌재,5·18헌법소원에 대해 사건종료 결정.▲12월18일=노 전 대통령 비자금 사건 첫공판. ▲12월21일=5·18민주화운동 등에 대한 특별법 제정,공포. ▲96년1월17일=장세동·최세창·유학성·황영시·이학봉 피고인 등 구속영장청구. ▲1월23일=전·노 전 대통령과 유학성·황영시·이학봉·이희성·주영복·차규헌 피고인 등 기소. ▲1월29일=노 전 대통령 비자금 관련 재벌총수 14명 구형. ▲1월30일=정호용·허삼수·허화평 피고인 구속영장 청구. ▲2월16일=헌재,5·18특별법 합헌결정. ▲2월22일=박준병 피고인 구속영장 청구,최세창·장세동 구속. ▲2월26일=전 전 대통령 비자금사건 첫공판. ▲2월28일=12·12 및 5·18사건 수사종결. ▲4월29일=전 전 대통령 비자금사건 관련,안현태 피고인 등 4명 구형. ▲6월27일(17차공판)=윤성민 전 육참총장 등 증인 신문시작. ▲7월4일(19차공판)=전·노 피고인측의 변호인단 집단불출석,재판부 국선변호인 선임. ▲7월8일(20차공판)=전·노 피고인측 이양우 변호사 등 변호인 8명 집단사퇴. ▲7월16일=유학성·황영시·이학봉 피고인 구속집행 정지. ▲7월29일(25차공판)=유학성·황영시 피고인측 정영일 변호사 등 변호인 6명 집단사퇴. ▲8월5일(27차공판)=김경일 12·12당시 1공수1대대장의 증언을 끝으로 사실심리종료.검찰전·노피고인 비자금 사건과 병행해 구형. ▲8월26일(28차공판)=12·12 및 5·18사건과 전·노 피고인의 비자금사건 피고인 34명에 대한 선고. ▲10월7일=12·12및 5·18사건 항소심 첫공판.최규하 전 대통령 등 증인 33명채택. ▲10월10일=전·노씨 비자금 사건 항소심 첫공판. ▲11월7일=노씨 비자금사건 2차공판. ▲11월14일=최 전 대통령 강제구인.항소심 결심 및 검찰구형. ▲12월16일=항소심 선고. ▲97년4월17일=대법원 선고.
  • 정보근 회장 구속영장

    피의자는 지난 90년 8월부터 96년 2월까지 한보그룹 부회장,96년 3월부터 현재까지 회장으로서 한보그룹의 실질적 경영에 종사해 온자이다. 피의자는 부친 정태수의 총괄 지휘 아래 그룹의 경영후계자로서 부회장·회장의 직책을 가지고 한보철강·한보·한보에너지·한보건설 등 주요 주력기업을 맡아 운영하여 오면서 자금의 집행,게열사 확장 등에 깊숙히 관여하는 등 실질적 경영권을 행사하여 한보철강의 자금집행에 있어 재정본부를 지휘하여 결정·지시를 하고 일일자금 수지실적 및 계획표 등 관련서류를 결재하는 등 업무상 회사의 자금을 실질적으로 보관·집행해왔다. 1.정태수와 공모하여 가.지난 95년 8월28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316 한보철강 사무실에서 동사가 발행한 전환사채 발행 액면가 2백72억8천만원 상당을 자신의 명의로 소위 리턴방식으로 인수하면서 그 대금 2백72억8천만원을 재정본부에 지시하여 동사의 공금으로 집행토록 하여 이를 횡령했다. 나.94년 7월18일 전항과 같은 장소에서 피의자가 부담해야 할 한보상호신용금고 증자자금7억2천만원 상당을 한보철강공업(주)의 자금으로 인출·납부하도록 지시,회계서류를 결재하고 담당 직원으로 하여금 이를 인출·집행토록 한 것을 비롯해 96년 6월27일까지 같은 방법으로 전후 5회에 걸쳐 납입해야 할 증자자금 63억6천48만7천766원을 한보철강공업(주)의 공금으로 인출,납부토록 해 이를 횡령했다. 2.위 정태수 사건의 김종국과 공모하여 94년 1월31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316 한보철강공업(주) 사무실에서 위 김종국이 한보철강공업(주)의 운영자금 중 5억1천3백41만7천150원을 인출한 다음 마치 한보상사에 대여한 것처럼 관련장부를 정리하고 이를 피의자에게 부과된 증여세를 납부하는데 사용한 것을 비롯해 그때부터 96년 4월30일까지 20회에 걸쳐 한보철강공업(주)의 운영자금 합계 34억3천7백54만8천340원을 인출하여 피의자의 개인세금 납부에 임의로 소비함으로써 이를 횡령한 자로서 구속치 않으면 도주 및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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