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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월 항쟁 20주년 ‘그날의 함성’ 그 이후] (12)끝 좌담 “절차적 민주 진전에 안주말고 더많은 ‘운동’ 필요”

    [6월 항쟁 20주년 ‘그날의 함성’ 그 이후] (12)끝 좌담 “절차적 민주 진전에 안주말고 더많은 ‘운동’ 필요”

    “6월 항쟁의 성과로 이룩한 최소한의 민주화가 지체되고 악화되고 있습니다. 국민들의 일상 생활부터 변화시킬 수 있는 다양한 범주의 운동이 필요합니다.” 서울신문이 6월 항쟁 20주년을 맞아 기획 연재한 ‘6월 항쟁 20주년 그날의 함성 그 이후’ 시리즈를 마치면서 마련한 좌담회에서 참석자들은 6월 항쟁의 평가와 우리 사회가 6월 항쟁을 어떻게 계승·발전시킬 것인가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지난 20일 서울신문 4층 편집국에서 열린 좌담회는 지역 ‘풀뿌리운동’을 활발히 벌이고 있는 하승수(39·변호사) 제주대 법학부 교수의 사회로 정해구(53)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인권운동가인 오창익(39) 인권실천시민연대 사무국장, 노동문제 전문가인 은수미(44·노동사회학 박사)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이 참석했다. -하승수 교수 많은 언론 매체와 시민·사회단체들이 6월 항쟁과 관련해 다양한 평가를 했다. 물론 올해가 6월 항쟁 20주년이 되는 해라는 의미도 있겠지만 한국 사회를 돌아본다는 의미도 있다. -정해구 교수 절차적 민주주의 측면에서는 성공적이었다. 국가보안법이 여전히 살아 있고 인권보장이 안 되는 면이 분명히 있지만 전체적으로 자유라는 면에서는 상당한 진전이 있었다. 참여라는 틀로 보면 형식적 참여는 늘었지만 실질적 참여는 미흡하다.1997년 외환 위기를 계기로 평등은 지체됐고 악화되는 측면도 있다. -은수미 연구원 많게는 800만명, 적게는 240만명이 비정규직이다. 그들이 느끼는 6월 항쟁 20년이 바로 민주화의 현재 모습을 보여 주는 단면이다.6월 항쟁은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수준까지 나아가지 못했고 구(舊)질서에 정당성을 쥐어 줬다.6월 항쟁 이전에 권위를 가졌던 사람들은 형식적인 정당성에 입각해서 지금도 여전히 그런 권위를 누린다. ●‘박제가 돼 버린’ 6월 항쟁 기념 -오창익 사무국장 각종 기념행사들이 별 감흥을 못준다. 올해부터 국가기념일이 되면서 6월 항쟁도 이제 ‘박제(剝製)’가 돼버린다는 느낌도 받는다.‘절차적 민주화는 많이 이뤘지만 실질적 민주화는 미흡했다.’는 평가에 반대한다.6월 항쟁을 계기로 우리는 야만에서 벗어났다. 그걸 ‘상당한 진전’으로 평가할 수 있을까.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저지범국민운동본부에 연속으로 집회 금지 통보를 한 것에서 보듯 국민들은 여전히 실질적인 집회시위 자유를 누리지 못한다. 이제 고문은 없어졌다고 하지만 20년 전 박종철 열사가 고문을 받다 숨졌던 남영동 보안분실을 빼고는 지금도 보안분실은 그대로 남아 있다. -하 교수 그 부분은 나도 고민이 있다. 자유권(시민적·정치적 권리)이 확고하게 뿌리내린 것도 아니고 사회권(경제·사회·문화적 권리)은 더 열악해졌다. 최근 사회경제적 문제가 한국 민주주의를 지체시키는 근본 문제라는 지적이 많다. 어떻게 보나. -정 교수 정치적 민주화가 사회경제적 민주화로 연결돼야 하는데 한국은 정치적 민주주의 진전이 실생활로 제대로 이어지지 못했다. 그 결과 민주주의가 ‘형해(形骸·내용없는 뼈대)화’되고 사람들은 민주주의에 일정한 회의를 가진다.‘민주주의가 밥 먹여 주느냐.’는 말은 굉장히 중요하게 고민해야 할 말이다. 그것이 바로 민주화 20년이라는 지금 시점에서 새롭게 일어나는 문제다. -오 사무국장 ‘자유는 진전, 평등은 부족’이라는 이분법으로 평가하는 경우를 자주 본다. 이미 구질서에 편입됐고 집회나 시위를 할 필요가 없어진 ‘전직 민주화 운동가’들은 후일담 소설을 쓰듯이 굉장히 편하게 말한다.6월 항쟁을 정당하게 평가하고 남은 과제를 제대로 보려면 ‘빵과 장미’를 분리해서 보면 안 된다. -은 연구원 80년대와 똑같은 풍경을 지금도 본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그들의 이해를 대변할 어떤 장치도 없다. 곧바로 크레인으로 올라가는 식으로 ‘불법저항’을 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더 심한 경우 분신 자살을 한다. 더 슬픈 건 사람들이 그런 문제에 별 관심을 안 둔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다같이 고생했으니까 공감이라는 게 있었다. 지금은 먹고 사는 수준이 양극화되듯 자유나 권리도 양극화되고 있다. ●‘기억과 계승’인가 ‘단절’인가 -정 교수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서 6월 항쟁 20년 기업사업을 하면서 사람들이 6월 항쟁을 잊어가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고민이 많았다. 새로운 세대에게 역사적 사실을 기억시키고 그걸 통해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가르쳐야 한다. 기억과 기념을 민주시민교육과 연결시켜야 한다. 현재 문제도 중요하지만 과거 기억과 단절되면 안 된다. 과거의 중요한 역사적 사건들은 기억하고 의미를 새기고 문화나 교육으로 남겨야 한다. -오 사무국장 지금 필요한 건 공공성과 연대성을 회복하는 민주화운동이다. 그런데 양극화의 원인인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소위 ‘전직 민주세력’이 주도한다는 게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든다. 그들이 대중에게 민주주의와 운동에 대한 염증과 피로감을 불러 일으킨다. 한때 민주화운동세력이었지만 지금은 요직을 차지하거나 운동 기득권층이 된 사람들과 지금 민주화운동세력을 명확하게 구별해야 한다. 기념과 계승이 아니라 단절이 더 급하다. -하 교수 경험을 공유하고 의미도 되새겨야 하지만 현재 부딪치는 문제와 연결되지 않으면 6월 항쟁의 의미가 퇴색해지고 박제화된 기억으로만 남게 된다. 제주에선 해군기지 문제와 6월 항쟁을 연결시킨 행사를 했다. 현재와 과거를 연결시켜 고민하게 하는 기획이었다. 그럼 지금까지 했던 평가를 바탕으로 이제 우리 사회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논의해 보자. -은 연구원 87년 민주화 이후 10년 만에 외환 위기가 있었다. 그로 인한 구조조정은 대규모 실업 사태를 뜻했다. 당시 실업을 경험한 사람과 그걸 지켜본 사람의 경험은 지금도 깊은 상처로 남아 있다. 그 상처가 지금의 모든 걸 설명해 준다. 노동시간과 급여를 줄이려는 논의도 있었지만 결국 노동계조차 ‘같이 죽고 같이 살자.’를 택하지 않고 ‘누구는 죽고 누구는 살자.’를 택했다. 밀려난 사람은 비정규직이 되거나 노숙자가 됐고 남은 사람들은 ‘나도 저렇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 속에서 눈 앞에 있는 임금만 신경 쓰게 된 10년이었다.87년에 함께 길거리에 모이면서 작게나마 형성됐던 연대의식은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정 교수 누적된 모순이 6월 항쟁으로 폭발했듯이 97년 체제가 만들어낸 양극화 압력도 언젠가 폭발할 수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운동보다 오히려 정치가 더 중요하다. 과거 운동이 맡았던 역할을 이제는 정당이 해야 한다. 민주세력의 연장선에 있는 중도개혁 정당들이 서구의 사회민주당 같은 구실을 해야 하는데 실제로는 서구의 보수당 구실을 하면서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 구별이 없어졌다. 특히 민주세력의 연장선에 있는 중도개혁세력이 혼란에 빠져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정치권을 재정립해야 한다. -오 사무국장 중도개혁세력이라는 말에 의문을 제기한다. 지금 정권이 무슨 개혁 성과가 있는가. 과거사정리를 예로 들어 보자. 피해자를 위한 진상규명이나 명예회복, 책임자 처벌 같은 과거사정리도 중요하지만 앞으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게 더 중요하다. 보안분실에서 인권을 유린당한 피해자들을 구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보안분실을 없애고 보안경찰을 민생경찰로 바꾸는 게 더 중요하다.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은 ‘나는 민주 대통령이니까 오용하지 않는다.’는 말로 실질적인 조치를 전혀 취하지 않는다. 2004년엔 20만명이 현행법상 불법인데도 야간에 아무 제약 없이 탄핵반대집회를 했다. 참석 인원이 5000명도 안 되는 한·미 FTA 반대집회는 계속 금지당한다. 대통령지지 집회는 되고 대통령 반대 집회는 못하게 한다. 그런 기본적인 것도 안 되는데 뭐가 개혁인가. 개혁이 아니라 ‘개혁 이미지’가 있을 뿐이다. 지금 정권 핵심부가 민주화운동을 계승하는 세력인가? 범여권에서 이른바 운동을 했던 사람이 얼마나 되나. 실제로는 구체제 관료들, 전문 집단들, 상공인들이 주도한다. -정 교수 큰 흐름을 봐야 한다. 민주화 이후 흐름을 볼 때 나는 그들이 중도개혁세력이라고 본다. 중도개혁세력은 자유, 인권, 더 나아가 평화를 정착시키는데 이바지했다. 특히 평화라는 측면에선 헤게모니를 갖게 됐다. 문제는 그런 측면과 경제적 측면이 다르다는 것이다. 중도개혁세력이 경제적으로는 보수적이다. 신자유주의 성향이 강한 것도 사실이다. -오 사무국장 인권 상황이 좋아졌다는 건 착시 효과다. 그 착시를 ‘전직 민주화운동가’들이 부추긴다. 평화정착과 인권·개혁을 위해 중도개혁세력이 중요하고, 그러니까 한나라당 집권을 반대한다? 그건 난센스다.6월 항쟁 이후 문제는 민주화운동세력이 정책을 견인하거나 통제하지 못하고 스스로 무장해제하고 투항하면서 전선이 무너졌다는 데 있다. 그들이 말하는 민주화 진전은 박제화된 민주화일 뿐이다. 가령 보안경찰은 이제 아무나 잡아들이지 않는다. 교보문고에서 ‘태백산맥’을 사는 사람은 건드리지 않는다. 이 책을 헌책방에서 사고 파는 사람들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조사한다. 사실 내가 일하는 인권연대만 해도 집회·시위 때문에 스트레스받는 일이 별로 없다. 하지만 뉴코아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집회를 하려 하면 집회 신고조차 안 받아 준다. -하 교수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현재 우리 모습을 명확히 평가해야 한다. 앞으로 우리 사회가 민주주의와 인권 진전을 위해 어떻게 할 것인가를 얘기하면서 마무리해 보자. ●“더 많은 민주화운동이 필요하다” -은 연구원 비정규직 관련 입법이라는 정치 과정을 보면 2.8%밖에 안 되는 비정규직 조직률을 그대로 반영한다.‘비정규직이 스스로 자기 목소리를 내지 않는 한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게 내가 내린 결론이다. 87년 이후 20년간 운동에서 정치로 너무 많이 간 게 아닐까 싶다. 이제는 운동과 정치가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전직 민주화세력’은 ‘국가와 민족’ 같은 정치적 문제만 생각했다. 나도 예외가 아니다. 생활에서 묻어난 고민들을 모으지 못하고 추상적인 고민만 했던 게 아닐까 싶다. 중도개혁이든 아니든 사람들의 인권을 보호하고 경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운동 영역을 회복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회를 개방해야 한다. 국가도 집회시위를 다 보장해 줘야 하고 시민들도 눈 앞의 불편을 참아 줘야 한다. -오 사무국장 운동이 종횡(縱橫)으로 훨씬 더 활성화돼야 한다. 이제는 절박하게 밑바닥부터 다지는 ‘진지전’을 해야 한다. 자녀들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학교 통학로에 인도와 차도를 나누는 운동도 학부모와 주민들이 스스로 조직하면 가능하다.‘현실적인 힘’이 되도록 하는 게 가장 시급하다. 아파트 주민이건, 비정규직이건, 학부형이건 자기에게 필요한 운동을 개발하고 적극적으로 조직하는 것이다. 조금 더 이기적이어도 좋다. 우리에겐 훨씬 더 많은 운동이 필요하다. 운동은 그걸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하게 돼있다. 시위를 해야 할 절박한 필요를 못 느끼는 사람은 시위를 안 한다. 나이에 따른 세대가 아니라 지금 시점에서 운동이 필요한 사람들이 새로운 운동 주체가 된다. 운동은 계속 이어진다. -정 교수 운동도 중요하고 공론장도 중요하지만 정치도 중요하다. 운동이나 공론장에서 나온 얘기를 정치가 정책으로 다듬고 그걸 다시 토론하는 연결고리가 끊어졌다. 정당이 사회와 단절돼 있다. 운동과 공론장, 정치가 다 단절돼 있다는 건 민주주의 시스템이 고장나 있다는 걸 뜻한다. 무너진 시스템을 어떻게 재구축할 것인가. 그것이 한국사회의 과제다. 과거에는 독재만 아니면 된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형식적으로는 민주정부가 됐다. 그런데 자기 지지 기반에 반하는 정책을 편다. 그래서야 어떻게 민주정부라고 하겠나. 한·미 FTA가 대표적이다. ●“노동·시민운동 등 분야별 힘 모아야” -은 연구원 운동을 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을 사회가 양산하고 있다. 지원은 안할지언정 그들을 막지는 말아야 한다. 그게 정치가 해야 할 역할이다. 운동간 소통은 정말 심각한 문제다. 시민단체들이 비정규직 문제를 주제로 개최한 토론회에서 발표를 한 적이 있다. 참석자들이 내 발표에 다들 생소하다는 반응을 보이는 것에 많이 놀랐다. 그 정도일 줄은 정말 몰랐다. 사회적 양극화는 시민·노동운동 모두에게 중요한 과제인데도 시민운동과 노동운동이 다른 길을 너무 오랫동안 걸어 왔다. -하 교수 동시에 변하면 더 좋겠지만 나는 운동이 더 중요하다는 데 방점을 둔다. 요즘은 시민운동은 시민운동의 논리만 있고, 노동운동은 노동운동의 논리만 있고, 정치는 정치논리만 있다. 다양한 목소리가 서로 오고 가면서 하나로 모여야 하는데 그게 부족하다. 다양한 운동이 서로 힘을 모으지 못하면 정치로 이어지지 않는다. 정리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6월항쟁 세력 평가’ 엇갈린 시각 서울신문이 마련한 ‘6월 항쟁 20주년 그날의 함성 그 이후’ 시리즈를 마무리하는 좌담회에서는 과거 민주화운동 세력과 단절하자는 주장이 뜨거운 논쟁거리로 부각됐다. 좌담회에서는 오창익 인권실천시민연대 사무국장이 먼저 이 문제에 대한 포문을 열었다. 오 사무국장은 “한때 민주화운동 세력이었던 사람들이 지금은 요직을 차지한 채 ‘과거운동’을 회고하고 찬양하지만 현재의 운동에 대해서는 경제발전 저해와 시민불편, 교통체증, 사회불안이란 이유로 폄하하고 있다.”면서 “6월 항쟁 정신을 계승하고 지체된 민주주의를 진전시키기 위해서는 과거 민주화운동 세력과 단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해구 성공회대 교수는 “87년 이후 국민의 의지로 정부를 구성할 수 있게 됐다는 측면에서 절차적 민주주의는 성공했다고 본다.”면서 “중도 개혁세력은 평등이란 관점에서는 부족했지만 국가인권위원회 설립과 6·15회담 등 자유와 인권, 평화 정착에는 적지 않은 기여를 했다.”고 다소 엇갈린 평가를 내렸다. 이에 대해 오 국장은 “자유가 진전됐다는 데 결코 동의할 수 없다.”며 현재 집회·시위에 대한 중도 개혁세력이라 불리는 과거 민주화운동 세력들의 행태를 꼬집었다. 오 국장은 “2004년 탄핵 반대집회를 야간에 20만명이 했는데도 경찰은 제지하지 않았지만 현재 2000명도 안 되는 사람들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 집회를 하면 사전에 봉쇄하고 있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정 교수는 “민주화 흐름 속에서 한국 민주화 세력이 다 진보 세력은 아니지만 중도 개혁 세력으로는 볼 수 있다.”면서 “이들의 역할을 인정해야 할 부분이 분명히 있다.”고 재반박했다. 오 국장도 “운동 진영에서 전직 민주화운동가들이 과잉 대표성을 띠면서 정권에 정당성을 부여했다.”고 날을 세웠다. 그는 “더 이상 집회·시위를 할 필요가 없는 ‘전직 민주화운동가들’과 단절을 명확히 하지 않는 한 6월 항쟁의 정신은 기억과 계승이 아닌 박제화에 불과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 좌담 참석자 하승수 제주대 교수(사회자) 정해구 성공회 교수 오창익 인권실천시민연대 사무국장 은수미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 중앙선관위 발표문 전문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오늘 제9차 전체위원회의에서, 최근 대통령의 선거관련 발언의 공직선거법 위반여부에 대하여 심도있는 논의를 거쳐 다음과 같이 결정하였습니다.대통령은 국정의 최고책임자이자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로서 선거에서의 중립을 유지하며 공정한 선거가 실시되도록 해야 할 의무가 있음에도,6월8일 원광대학교 강연과 6월10일 6·10 민주항쟁 기념사 및 6월13일 한겨레신문 인터뷰에서 특정 정당 및 후보자가 되고자 하는 자를 폄하하고 특정 정당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고 여권의 대선 전략에 대해서 언급한 것은 공무원의 선거에서의 중립 의무를 규정한 공직선거법 제9조를 위반하였다고 결정하였습니다.다만, 대통령의 이런 발언이 사전선거운동에 해당하는지의 여부에 관하여는 앞으로의 상황을 지켜본 뒤 결론을 내리기로 하였습니다.우리 위원회는 지난 6월7일 참여정부평가포럼에서의 대통령의 발언이 선거중립의무에 위반됨을 결정하고 대통령에게 선거중립의무 준수를 요청하였음에도, 재차 이러한 사태가 발생한 데 대해 깊은 유감을 표명하고 다시 한번 선거법 준수를 촉구하는 공문을 발송하기로 하였습니다.우리 위원회에서는 다가오는 대통령선거가 공명정대하게 치러질 수 있도록 엄정한 법집행을 재삼 다짐함과 아울러 선거관리위원회의 독립성과 중립성을 훼손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단호히 대처해 나가기로 결의하였습니다.2007년6월18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 “신뢰 떨어질라” 연금공단 속앓이

    “신뢰 떨어질라” 연금공단 속앓이

    지난 4월2일 오후 국회 본회의장. 국민연금법 개정안이 부결되자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긴 한숨과 함께 고개를 파묻었다. 이어진 기초노령연금법 제정안 찬반투표. 노령연금 단독 통과를 우려한 유 전 장관은 반대표를 던졌지만 254대 9(기권 2표)라는 압도적인 표 차이로 통과됐다.80여명의 대한노인회 회원들이 방청석에서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노인표를 의식한 일부 의원석에선 ‘찬성표를 던지자.’는 쪽지가 돌았다.‘쓴약’인 연금법 개정안만 남겨둔 채 ‘사탕’인 기초노령연금법만 통과되는 어처구니없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국민연금법 개정이 정당간 이해관계에 얽혀 다시 국회에 표류하면서 국민연금관리공단과 국민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최근 공단 노조가 나서 “국민연금 개혁을 위한 제2의 6월 시민항쟁이 벌어질 것”이라 경고했지만 개혁방안에 대한 진솔한 논의는 여전히 감감 무소식이다. ●신뢰상실을 걱정하는 연금공단 여야는 지난 4월 현행 9% 보험료율은 유지하면서 급여를 40년 가입 기준으로 평균소득의 60%에서 40%로 낮추는 국민연금 개정안에 잠정합의했다. 이는 여당의 12.9% 보험료율,50% 급여수준에선 훨씬 후퇴한 것이다. 공단은 최소 50% 급여수준을 마지노선으로 지목했지만 여야협상 과정에서 물거품이 됐다. 실제 연금수령액의 3분의1이 삭감된 셈이다. 지난 15일에는 재논의를 위해 국회 보건복지위 내 법안소위가 재소집됐지만 정치권이 온통 대권향방에 관심이 쏠린 때문인지 별 소득이 없었다. 오건호 민노당 정책전문위원은 “연금법은 5년마다 한차례 재개정하도록 규정돼 이번에 합의가 불가능하다면 요율과 급여수준만 다음 개정으로 넘기면 된다.”며 “가입자 동의를 이끄는 신뢰구축이 가장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공단 기조실 직원도 “연금은 ‘신뢰’가 생명인데 고갈문제만 부각된 채 개혁안 얘기는 쏙 들어가 버렸다.”며 “이대로 어정쩡하게 통과되면 일선 직원들이 앞으로 어떻게 가입자들의 불만을 감내할지 막막하다.”고 하소연했다. 국민연금 보완을 위해 도입한 기초노령연금도 논란이 분분하다. 공단노조 박병만 수석부위원장은 “조세를 재원으로 하고 있고, 국민연금을 받는 사람은 중복수령할 수 없다는 점에서 월 8만 9000원씩 받는 수당에 가깝다.”며 “진정한 기초연금이 도입돼 국민연금 틀 안에서 상호조절 기능을 갖고 뒷받침해줘야 합산한 급여수준도 50%선을 유지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운영주체를 놓고도 말이 많다. 정부는 지자체에서 일부 재원을 조달하는 것을 전제로 지자체가 노령연금 지급대상 선정과 운영을 맡도록 했지만 공단측 입장은 상반된다. 한 공단 고위인사는 “지자체의 열악한 재정상황을 고려할 때 무리이며 지자체는 신규 인력을 5000여명 충원해야 한다.”면서 “하지만 공단은 이미 시스템과 인력을 구축하고 있어 1000여명만 충원하면 공정하게 시행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현행 기초노령연금은 가입자 평균소득의 5%에서 시작해 2028년까지 10%로 인상, 전체 노인의 60%에게 지급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정치인’ 유 전 장관과 여당을 탓하기도 한다.“기초노령연금을 전면에 내세워 생색내기에만 바빴다. 지방 노인정에 뿌린 홍보전단지만 수십만장에 달할 것”이란 지적이다. 결국 당리당략을 초월한 극적 여야합의가 이뤄질 때 연금 집행기관인 공단이 뜬금없이 비난받는 사태를 벗어날 수 있다는 얘기다. ●국민은 목마르다 이 같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공단측은 6월 임시국회에서 연금 개혁안이 통과돼야 한다는 입장이다.“우선 산적한 문제점을 보완한 뒤 보험료율과 지급수준은 차후 다시 개정해도 된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경기도 의정부에 사는 김모(여·67)씨는 구직급여수령으로 현재 월 43만 3000원의 노령연금과 남편 사망에 따른 유족연금 37만 6000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법안이 통과되면 ‘중복급여의 조정기준 완화’로 유족연금의 20%와 노령연금을 합한 월 50만 9000원을 추가로 받는다. 김씨와 같은 사례는 전국적으로 5000여건에 달한다. 인천시 남구의 박모(여·61)씨도 지난 1월에 재혼하면서 전 남편과 분할해 받는 월 35만원의 연금 지급이 거부됐다. 하지만 법안이 통과되면 연간 423만원의 연금을 지급받게 된다. 아울러 서울 강남의 이모(67)씨는 법안 통과와 함께 현재 월 97만 5000원씩 받는 연금이 2만 5000원 인상된다. 이씨와 같은 경우는 무려 23만명에 달한다. 이렇게 연금법 개정안은 해마다 25만여명이 550억원의 ‘감춰진’ 연금을 찾게 해줄 전망이다. 이밖에 개정안은 저출산 해소를 위해 자녀를 2명 이상 낳은 가정에 12개월 이상, 군복무자에게 6개월 가량 연금가입기간을 늘려주는 ‘크레딧’제도도 포함하고 있다. 오상도기자 sdoh@seoul.co.kr
  • [서울광장] 아직도 ‘타는 목마름’ 인가/구본영 논설위원

    [서울광장] 아직도 ‘타는 목마름’ 인가/구본영 논설위원

    삼전도의 치욕을 앞둔 산성에서도 ‘말의 성찬(盛饌)’은 일상사였나 보다. 작가 김훈은 소설 ‘남한산성’에서 이를 “말(言)들이 창궐해서 주린 성에 넘쳤다.”고 표현했다. 백성들은 배를 곯고 있는데, 왕과 중신들은 척화론이니, 주화론이니 끝없는 설전만 벌이지 않았던가. 청 태종 앞에서 인조가 세번 절하고 머리를 땅에 아홉번 찧는 수모를 당하기 직전까지도 말이다. 연말 대선을 앞두고 정치판의 험구(險口)싸움이 점입가경이다. 청와대, 여야가 뒤엉켜 피아조차 가리기 어렵다. 오죽하면 고은 시인이 “입만 있고, 귀는 없다.”고 대선정국을 개탄했을까.‘말 먼지’ 자욱한 난전의 최전선에 노무현 대통령이 서 있다. 노 대통령은 하루가 멀다 하고 이명박 박근혜 등 야권 주자뿐만 아니라 범여권 주자들도 겨냥해 직격탄을 날리고 있다. 그 서슬에 놀란 듯 고건 정운찬 김근태는 벌써 ‘낙마’했다. 100년 정당이 될 거라고 큰소리 치던 열린우리당이 헤쳐모여 방식을 놓고 해체파와 사수파로 나뉘어 막가는 설전을 이어가고 있다. 참모들끼리 ‘살생부 공방’을 벌였던 한나라당 이명박 박근혜, 두 대선주자 진영간 설전도 가관이다. 한쪽이 후보검증문제로 여권과의 내통 의혹을 제기하면 다른 쪽에서 “미쳐 날뛴다.”고 치받는다. 정치는 본시 말로 이뤄지는 게 본질적 속성이긴 하다. 문제는 독설과 야유만 난무할 뿐 책임지려는 정치 주체는 없다는 사실이다. 노 대통령은 지난주 원광대에서 명예박사학위를 받은 자리에서 “참여정부 실패론은 중상모략”이라고 규정했다. 그러면서 “언론이 민중을 속이는 데 앞장서고 있다.”며 언론에 화살을 돌렸다. 참여정부와 국정 책임을 공유해야 할 열린우리당이 여권 지지도가 바닥에 이르자 통합신당을 명분으로 간판을 내리겠단다. 하지만 책임을 피하려는 위장폐업임은 국민들이 모를 리 없다. 헌신과 희생이 없이 ‘네탓’만 하는 정치에 누가 감동하겠는가. 이명박 박근혜 두 주자도 ‘좌파 정권 10년 종식’을 외치지만, 그것만으로 유권자들을 사로잡기엔 역부족일 것이다. 왜 야권이 두 차례나 패배했는지에 대한 성찰, 부패했던 보수에 대한 책임 의식을 갖지 않는 한 현 지지율도 거품일 수 있다. 두 주자 모두 지지율이 범여권 주자들의 그것을 합친 것보다 높은 데도 정작 후보캠프에선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는 게 그 방증이다. 혹자는 말한다. 할 말·안 할 말이 마구 분출되는 것, 그 자체가 권위주의가 퇴조한 증좌라고. 그 연장선상에서 일부 학자들은 “이제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가 안착 단계”라고 주장한다. 제도로서 민주주의는 이미 정착됐고, 문제가 있다면 일부 정치 주체들의 빗나간 정치 행위일 뿐이란 얘기다. 과연 그럴까. 정치무대의 주역들이 책임없는, 비타협적 자기 주장만 하는 한 교과서적 민주주의의 갈 길은 멀다는 생각이다.6월 항쟁의 주역은 누가 뭐래도 ‘넥타이 부대’를 비롯한 시민이었다. 그 수혜를 입고 기득권자가 된 일부 386세력이 작금의 국정난맥에 대해 언제 ‘내탓이오’를 외쳤던가. 70년대, 시인 김지하는 민주화를 향한 애끓는 갈망을 ‘타는 목마름으로’ 절규했다. 그의 시구에서처럼 “끌려가던 벗들의 피묻은 얼굴”도, 돌을 던지면 최루탄으로 막는 독재정권도 이젠 없다. 하지만, 책임정치와 타협의 문화가 뿌리내리지 않는 한 이 땅에서 민주화는 여전히 진행형일 뿐이다. 구본영 논설위원 kby7@seoul.co.kr
  • “언론서 손학규 범여권 표기 대통령에 대한 의도적 모욕”

    “언론서 손학규 범여권 표기 대통령에 대한 의도적 모욕”

    노무현(얼굴) 대통령의 정치 발언 수위가 예사롭지 않다. 당적을 버린 임기말 대통령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거리낌없이 대선 가도에 직설 화법을 쏟아내고 있다. 지난 13일 한겨레신문과 가진 6월항쟁 20주년 기념 특별 인터뷰에서도 ‘비토 발언’의 강도는 높았다. 손학규 전 경기지사와 정동영·김근태 전 열린우리당 의장, 같은 당 탈당파 의원들이 노 대통령의 직격탄에 그대로 노출됐다. 노 대통령은 이날 인터뷰에서 손 전 지사를 겨냥,“언론이 내가 몇번이나 이의를 제기했는데 ‘범여권’이라는 용어를 그냥 쓴다.”면서 “그건 대통령과 정부에 대한 의도적 모욕”이라고 밝혔다. 손 전 지사가 ‘범여권’의 대안으로 거론되고 있는 현실에 강력한 불만을 피력한 셈이다. 노 대통령의 ‘손학규 비토’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노 대통령은 지난 3월20일 국무회의에서 이른바 ‘보따리 장수론’을 들어 손 전 지사의 한나라당 탈당을 강력 비판했다. 노 대통령의 핵심 측근도 최근 기자에게 “그럼 우리가 손학규와 함께 하란 말이냐.”며 거부감을 보였다.“손 전 지사는 한나라당에서 주요 당직을 맡고 경기지사를 지내는 등 한나라당의 단물을 다 빼먹은 정치인인데 이제 와서 진보진영과 같이 하잔 말이냐.”는 비판적인 시각이 노 대통령과 그 참모들에게 깊이 각인돼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 청와대 핵심 관계자들의 전언을 종합하면 이번 대선에서 노심(盧心)의 범주에 손 전 지사가 포함되지 않은 것은 분명해 보인다. 오히려 노 대통령의 정체성을 이어받을 후보로 친노(親盧)인사가 거론되고 있다. 노 대통령은 이날 인터뷰에서 김 전 의장의 불출마 선언과 탈당을 평가해 달라는 질문에 “정치적 상황에 흔들리지 않는 뚝심과 배짱을 가진 지도자가 필요하다. 옳은 가치면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가치를 붙들고 나갈 생각을 해야 한다.”고 말해 정·김 두 전직 의장을 함께 비판했다. 박찬구기자 ckpark@seoul.co.kr
  • [6월 항쟁 20주년 ‘그날의 함성’ 그 이후] (11) 대학문화의 변천

    ‘6월 민주항쟁’은 젊은 세대들의 문화에도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군사문화가 해체된 캠퍼스에는 그 전에는 허용되지 않았던 다양한 문화가 자리를 채웠다. 당시 자신의 삶보다는 사회 문제에 더 고민이 컸던 ‘386세대’들은 민중 가요와 사회과학 서적, 공동체 문화에 관심이 많았다. 서클(동아리) 활동과 총학생회, 전대협 등으로 조직된 공동체 문화에 익숙했다. 그러나 20년이 지난 지금 젊은 세대들의 문화는 지나치게 개인적이라고, 기성 세대가 된 ‘386세대’의 눈총을 받을 만큼 다양해졌다. 학문·창작의 자유가 꽃을 피우면서 신세대 문화는 ‘한류(韓流)’를 만들어 내는 토대가 됐다.6월 항쟁 이후 변화를 겪어 온 젊은 세대의 삶과 문화에 대해 재조명해 보았다. ●80년대 대학 ‘개인´ 없는 ‘공동체´ 지향 “학생운동 열심히 했던 사람이 회사에 취직하면 적응을 잘 못할 것 같지만 오히려 그렇지도 않습니다. 조직 생활에 익숙하고 조직의 결정을 자신의 일로 받아들이죠. 인적 네트워크도 강하고요.”(대기업 간부 A씨) “싸우면서 닮아간다고나 할까요. 당시에는 대학 문화도 군사주의가 아주 강했지요. 학번에 따라 선배와 후배를 엄격하게 구분하고 선배는 ‘아버지’가 되고 후배는 ‘아들 딸’이 되는 가부장적인 문화였지요. 성차별도 심했습니다.”(회사원 김모씨) 6월 항쟁을 겪은 ‘386세대’의 공동체 문화에 대한 현재의 평가는 다소 엇갈린다. 군사문화의 지배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던 당시에 비해 현재 젊은 세대의 문화에 많은 변화와 발전이 있었지만 오히려 뜨거웠던 열정이 넘쳐나던 공동체 문화를 그리워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현재 젊은 세대들의 개인주의적인 문화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높다. ●90년대 이후 공동체 무너지기 시작 1980년대 대학 문화는 저항문화이자 대안문화로서 공동체를 지향했다. 하지만 공동체 속에 ‘개인’은 없었다. 황모(39)씨는 “여러 가지 판단을 내릴 때 개인은 항상 맨 뒤였다.”면서 “제일 앞자리는 언제나 통일이나 민중 같은 거대 담론이었다.”고 말했다. 전국적인 학생회 조직을 만든 것은 6월 항쟁의 성과였지만 그런 조직구축이 대학 문화가 역동성을 잃게 된 원인으로 작용했다는 것은 역설적이다. 6월 항쟁에서 얻은 자신감을 바탕으로 학과, 단과대, 대학으로 이어지는 학생회 조직, 그리고 각 학교 총학생회를 연결한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가 생겨났다. 전국적이고 체계적인 위계 구조가 탄생하면서 전대협과 그 후신인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은 학생운동을 대표하는 이름이 됐고 그와 다른 목소리는 소수의 메아리로 전락했다. “전대협이라는 정형화된 틀이 없을 때가 오히려 훨씬 많은 토론과 논쟁이 있었습니다. 위계 조직의 구심력이 강해질수록 학우들을 효과적으로 동원하긴 쉬워졌지만 지적인 다양성은 사라졌지요.” 공무원 정모(38)씨는 “80년대 이후 학생운동 주류가 된 민족해방계(NL)가 ‘공부를 안 한다.’는 비판은 그런 맥락에서 나온 말이었다.”고 꼬집는다. 개인을 우선시하는 후배들이 대학에 들어오면서 80년대식 대학 문화는 한계에 부닥쳤다. 새롭게 대학에 입학한 후배들은 선배들의 문화를 낯설게 바라보기 시작했다.90년대 후반을 지나면서 한총련은 사실상 해체됐고 학과 학생회조차 집행부를 구성하지 못하게 됐다. 2000년대 들어서는 ‘학생 없는 학생회’로 전락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이제 대학생들은 학생회가 아니라 시민사회단체 회원 활동이나 제도권 정당 당원 활동 등을 통해 사회참여 욕구를 발산한다. ●지금 대학생들 “하고 싶은 일 즐겨” “80년대는 대학 문화라는 게 존재했지만 지금은 그런 게 아예 없습니다. 세상에 무관심하지요. 신문도 안 보고 인터넷 포털에 있는 단편적인 뉴스만 봅니다.” 대학 강사 강모씨는 “예전엔 숫자는 많아도 고민은 단순했고 다양한 고민과 생각을 담지 못했다.”면서 “이제는 소명감과 의무감 때문이 아니라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즐길 줄 안다.”고 평가했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6월 민주항쟁’은 젊은 세대들의 문화에도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군사문화가 해체된 캠퍼스에는 그 전에는 허용되지 않았던 다양한 문화가 자리를 채웠다. 당시 자신의 삶보다는 사회 문제에 더 고민이 컸던 ‘386세대’들은 민중 가요와 사회과학 서적, 공동체 문화에 관심이 많았다. 서클(동아리) 활동과 총학생회, 전대협 등으로 조직된 공동체 문화에 익숙했다. 그러나 20년이 지난 지금 젊은 세대들의 문화는 지나치게 개인적이라고, 기성 세대가 된 ‘386세대’의 눈총을 받을 만큼 다양해졌다. 학문·창작의 자유가 꽃을 피우면서 신세대 문화는 ‘한류(韓流)’를 만들어 내는 토대가 됐다.6월 항쟁 이후 변화를 겪어 온 젊은 세대의 삶과 문화에 대해 재조명해 보았다.
  • [6월 항쟁 20주년 ‘그날의 함성’ 그 이후] (11) 대학문화의 변천

    ‘6월 민주항쟁’은 젊은 세대들의 문화에도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군사문화가 해체된 캠퍼스에는 그 전에는 허용되지 않았던 다양한 문화가 자리를 채웠다. 당시 자신의 삶보다는 사회 문제에 더 고민이 컸던 ‘386세대’들은 민중 가요와 사회과학 서적, 공동체 문화에 관심이 많았다. 서클(동아리) 활동과 총학생회, 전대협 등으로 조직된 공동체 문화에 익숙했다. 그러나 20년이 지난 지금 젊은 세대들의 문화는 지나치게 개인적이라고, 기성 세대가 된 ‘386세대’의 눈총을 받을 만큼 다양해졌다. 학문·창작의 자유가 꽃을 피우면서 신세대 문화는 ‘한류(韓流)’를 만들어 내는 토대가 됐다.6월 항쟁 이후 변화를 겪어 온 젊은 세대의 삶과 문화에 대해 재조명해 보았다. ●80년대 대학 ‘개인´ 없는 ‘공동체´ 지향 “학생운동 열심히 했던 사람이 회사에 취직하면 적응을 잘 못할 것 같지만 오히려 그렇지도 않습니다. 조직 생활에 익숙하고 조직의 결정을 자신의 일로 받아들이죠. 인적 네트워크도 강하고요.”(대기업 간부 A씨) “싸우면서 닮아간다고나 할까요. 당시에는 대학 문화도 군사주의가 아주 강했지요. 학번에 따라 선배와 후배를 엄격하게 구분하고 선배는 ‘아버지’가 되고 후배는 ‘아들 딸’이 되는 가부장적인 문화였지요. 성차별도 심했습니다.”(회사원 김모씨) 6월 항쟁을 겪은 ‘386세대’의 공동체 문화에 대한 현재의 평가는 다소 엇갈린다. 군사문화의 지배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던 당시에 비해 현재 젊은 세대의 문화에 많은 변화와 발전이 있었지만 오히려 뜨거웠던 열정이 넘쳐나던 공동체 문화를 그리워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현재 젊은 세대들의 개인주의적인 문화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높다. ●90년대 이후 공동체 무너지기 시작 1980년대 대학 문화는 저항문화이자 대안문화로서 공동체를 지향했다. 하지만 공동체 속에 ‘개인’은 없었다. 황모(39)씨는 “여러 가지 판단을 내릴 때 개인은 항상 맨 뒤였다.”면서 “제일 앞자리는 언제나 통일이나 민중 같은 거대 담론이었다.”고 말했다. 전국적인 학생회 조직을 만든 것은 6월 항쟁의 성과였지만 그런 조직구축이 대학 문화가 역동성을 잃게 된 원인으로 작용했다는 것은 역설적이다. 6월 항쟁에서 얻은 자신감을 바탕으로 학과, 단과대, 대학으로 이어지는 학생회 조직, 그리고 각 학교 총학생회를 연결한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가 생겨났다. 전국적이고 체계적인 위계 구조가 탄생하면서 전대협과 그 후신인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은 학생운동을 대표하는 이름이 됐고 그와 다른 목소리는 소수의 메아리로 전락했다. “전대협이라는 정형화된 틀이 없을 때가 오히려 훨씬 많은 토론과 논쟁이 있었습니다. 위계 조직의 구심력이 강해질수록 학우들을 효과적으로 동원하긴 쉬워졌지만 지적인 다양성은 사라졌지요.” 공무원 정모(38)씨는 “80년대 이후 학생운동 주류가 된 민족해방계(NL)가 ‘공부를 안 한다.’는 비판은 그런 맥락에서 나온 말이었다.”고 꼬집는다. 개인을 우선시하는 후배들이 대학에 들어오면서 80년대식 대학 문화는 한계에 부닥쳤다. 새롭게 대학에 입학한 후배들은 선배들의 문화를 낯설게 바라보기 시작했다.90년대 후반을 지나면서 한총련은 사실상 해체됐고 학과 학생회조차 집행부를 구성하지 못하게 됐다. 2000년대 들어서는 ‘학생 없는 학생회’로 전락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이제 대학생들은 학생회가 아니라 시민사회단체 회원 활동이나 제도권 정당 당원 활동 등을 통해 사회참여 욕구를 발산한다. ●지금 대학생들 “하고 싶은 일 즐겨” “80년대는 대학 문화라는 게 존재했지만 지금은 그런 게 아예 없습니다. 세상에 무관심하지요. 신문도 안 보고 인터넷 포털에 있는 단편적인 뉴스만 봅니다.” 대학 강사 강모씨는 “예전엔 숫자는 많아도 고민은 단순했고 다양한 고민과 생각을 담지 못했다.”면서 “이제는 소명감과 의무감 때문이 아니라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즐길 줄 안다.”고 평가했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대학·지식사회 위기… 답이 안보여” “1980년대 진보적 학문공동체 활동을 했던 이들이 90년대 들어 제도권에 진입하면서 대학의 비민주적 관행과 불합리한 체제를 부분적으로라도 변화시키는 노력을 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자기 목소리를 잃어 버렸습니다.” 김원 서강대 사회과학연구소 연구교수는 14일 “지식인 사회가 지식이 생산되고 유통되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지배적 권력과 투쟁해야 하는 자신의 존재 기반을 제대로 고민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런 원인으로 “87년 이후 지식담론은 화폐와 이윤을 중심으로 재구성되고 있으며, 지식담론 생산자들도 이를 중심으로 포섭되거나 배제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진보적 학문공동체가 대학 사회와 기존 학회 등 제도권 지식사회 자체의 구조적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했다.”면서 “더 나아가 진보적 학문공동체조차 제도화된 학회와 유사해지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꼬집었다. 김 교수는 학생운동과 문화운동에 대한 정치·인류학적 현장 조사로 학계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는 신진학자다.‘잊혀진 것들에 대한 기억(1999)’,‘여공 1970, 그녀들의 반(反)역사(2006)’ 등에서 엘리트가 아닌 언저리에 있던 이들을 통해 작은 역사를 추적하고 있다. 그는 “솔직히 말해 답이 잘 안보인다.”면서 “한 가지 분명한 건 ‘6월 항쟁 계승’이나 ‘미완의 87년 체제’라는 말에 동의할 수 없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다시 87년 직후 운동으로 돌아가자는 말은 98년 이후 근본적으로 달라진 한국 지식사회의 지형을 이해하는 데 장애물이 될 뿐”이라고 비판하고 “젊은 지식 생산자들이 끊임없이 자기 존재 찾기에 나서야 한다.”고 말을 맺었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6월 민주항쟁 20년’ 세미나

    관훈클럽(총무 이재호)은 오는 19일 오전 9시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19층 기자회견장에서 ‘6월 민주항쟁 20년, 한국 민주주의 성장과 과제’를 주제로 세미나를 개최한다.
  • 노대통령 ‘孫’ 치고 김근태는 ‘孫’ 잡고

    노대통령 ‘孫’ 치고 김근태는 ‘孫’ 잡고

    “김근태는 ‘손(孫)’잡고, 노무현은 ‘손’(孫)차고” 노무현 대통령이 또다시 “손씨는 빼라.”며 손학규 전 경기지사에게 강한 거부감을 드러냈다. 반면 열린우리당 김근태 의장은 14일 ‘대통합 밀알’행보를 손학규 전 경기지사와의 조찬 회동으로 시작했다. 노 대통령의 ‘손학규 때리기’는 점점 강도를 더해가고 있다. 고건 전 총리,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 김근태 전 열린우리당 의장에 이어 ‘제4의 낙마’대상으로 정조준한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노 대통령은 13일 한겨레신문과 가진 6월항쟁 20주년 기념 특별 인터뷰에서 “‘범여권’이란 용어는 대통령과 정부에 대한 의도적 모욕”이라면서 “손학규씨는 (‘범여권’에서)빼달라고 신문에 좀 크게 써달라.”고 말했다. 그는 “옛날에 (나와)관계있던 사람이라고 해서 (‘범여권’에서 빼는 게)정 안되면, 다 빼고 손학규씨라도 ‘범여권’에 넣지 말아 달라.”면서 “그 양반이 나중에 가서 경선을 하고 안 하고는 내가 관여할 바가 아니지만 왜 ‘범여권’이냐,‘반(反)한나라당’이지.”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손 전 지사는 “남녀가 사랑을 해도 애정표현은 갖가지”라면서 “국민들은 대통령이 임기를 마무리하면서 좀더 편안하게 사랑받는 대통령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열린우리당 김근태·정동영 전 의장에 대해서는 “회사가 부도나서 어렵다고 나가서 떠들고 다니고, 사장을 흔들고 그러면, 안날 부도도 진짜 나는 것”이라면서 “제발 그런 어리석은 짓, 자충수 같은 일을 하지 말라.”고 ‘무소신’행보를 비판했다. 노 대통령은 열린우리당 탈당파에 대해서도 “차별화도 어지간히 해야지, 당을 해체시킴으로써 대통령을 고립시키겠다는 그런 차별화까지 하는 것은 정도가 아니다.”고 꼬집었다. 노 대통령의 견제에도 불구하고 손 전 지사는 범여권 대통합에 합류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열린우리당 비노(非盧)그룹이 15일 집단 탈당키로 하는 등 대통합 흐름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김근태, 손 전지사와 회동…범여권 통합 본격 행보 손 전 지사와 김 전 의장은 14일 여의도의 한 호텔에서 조찬회동을 갖고 범여권 통합을 위해 노력하기로 합의했다. 김 전 의장은 이 자리에서 “한복판에 손학규가 있다는 걸 잊지 말라. 손 전 지사가 대통합에 앞장서고 이제 시간이 없는 국민경선의 선두에 서서 이끌어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손 전 지사는 “뜨거운 가슴 같이 불타오르고 있고 꽃 피울거다.”고 화답했다. 하지만 손 전 지사가 당장 합류할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오는 17일 선진평화연대 발족 후에도 일정 기간 독자세력화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김 전 의장은 오후에는 천정배 의원을 만나 대선주자 연석회의 참여를 요청했다. 박찬구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길섶에서] 6월 불볕 /최태환 수석논설위원

    6월 ‘불볕’이다. 시청앞 잔디광장이 고요하다. 서울시 의회앞 시위대 확성기만 이따금 정적을 깬다. 오랜만에 CD가게에 들렀다. 미키스 테오도라키스를 골랐다. 그리스의 국민작곡가다. 민주화운동의 상징이다. 그리스의 영혼이다. 하루라도 그의 음악을 듣지 않는 국민이 없다고 할 정도다.‘기차는 8시에 떠나네’가 눈에 들어온다. 이별 노래다. 민주화운동가를 사랑한 여인의 아픔이 담겼다.‘카테리나행 열차는 8시에 떠나네/…함께 나눈 시간들/밀물처럼 멀어지고/이제 당신은 오지 못하리’ 1967년 군사정권 시절의 곡이다. 이후 7년간 망명생활을 했다. 민주화 투쟁은 멈춤이 없었다.1000여회의 콘서트를 가졌다. 며칠 전 6월항쟁 20주년이었다. 젊은이들은 감흥이 있을까. 신문을 뒤적이다 보니, 가수 한대수가 첫 딸을 봤단다.59세다. 암울했던 시절 민주화를 갈구하다, 미국에서 집시처럼 지내다 5년 전 귀국했다. 물 좀 주소, 행복의 나라로 등. 그의 노래는 당시 한 줌의 생명수였다. 그는 “조국이 품어준 결과”라고 감사했다. 문득 불볕이 살갑다. 삶은 언제나 감동인 것을. 최태환 수석논설위원 yunjae@seoul.co.kr
  • 민교협 “진보정책 싱크탱크로 탈바꿈”

    민교협 “진보정책 싱크탱크로 탈바꿈”

    창립 스무 돌을 맞는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공동의장 김세균)가 정책위원회 체제로 거듭난다.1987년 6월항쟁의 열기 속에서 탄생한 민교협이 전문성과 대안생산력을 강화해 ‘사회운동진영 싱크탱크’로서 시대의 요구에 적극 부응하겠다는 것이다. 민교협은 22일 개최되는 21기 총회에서 이 같은 내용을 결의할 예정이다.87년 7월 21일 ‘사회와 교육의 민주화’를 기치로 출범한 민교협은 학문·출판의 자유쟁취 및 대학개혁운동을 넘어 사회운동 전반에 관여하며 한국 민주화운동의 한 축으로 자리매김해 왔다. ‘민주화 이후’의 민교협은 그러나 만만치 않은 도전에 직면해 있는 게 사실이다. 회원수 부터 정체 혹은 감소하고 있다. 출범 당시 30개 대학 523명의 교수가 참여했던 민교협은 77개 대학 1650명에 이른 1990년 1월을 정점으로 회원수가 점차 줄어,2007년 5월말 현재 1444명이 가입해 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출범을 ‘민주화’로 간주한 다수 ‘자유주의적’ 회원들의 이탈과 대학사회 내 운동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 약화, 진보 지식인 재생산의 어려움 등이 원인으로 지적된다. 김세균(서울대 정치학) 공동의장은 “민교협이 진보적 교수들을 충원하고 결집해 나가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진보적 연구자들이 점점 줄고 있는 데다, 이들이 대학교수로 진입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교수노조의 등장으로 교수운동단체의 ‘독점적 지위’도 상실했다. 교수노조 출범 당시 민교협의 발전적 해체와 교수노조로의 전환을 놓고 벌어진 논쟁은 민교협의 시급한 자기변신을 강제했다. 손호철(서강대 정치외교학) 공동의장은 “‘지식인운동’ 단체 민교협은 사회민주화운동에,‘노동운동’ 단체 교수노조는 교육민주화운동에 우선순위를 두면서 상호보완적인 역할을 수행해 나가는 건설적인 분업체계를 만들어 나가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정책위원회 체제로의 전환은 이런 고민의 결과다. 의장과 사무총장이 전 영역을 관장하던 민교협이 일종의 집단지도체제로 바뀐다. 노동·교육·공공·인권·소수자·빈곤복지·환경과학 등 14개 분과별 정책위원회를 중심으로 전문성 있는 대안생산에 집중한다는 것이 민교협 체제전환의 골자다. 민교협의 모색은 6월항쟁 20주년을 맞아 사회 전 영역에서 활발하게 진행되는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에 대한 반성적 평가와도 맞닿아 있다. 민교협의 이전 활동이 정부정책 반대운동에 치중해 온 여타 사회운동단체들의 수세적 대응과 차별성이 크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민교협은 견제받지 않는 자본주의와 세계화에 맞서 뾰족한 대안을 내놓지 못하는 진보개혁진영의 현실을 감안해, 앞으로는 명실상부한 정책집단으로서의 역할을 자임할 계획이다. 최영찬(서울대 농경제사회학) 사무총장은 “반독재 투쟁하던 민교협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 투쟁을 하는 민교협은 다를 수밖에 없다.”면서 “지식과 지식이 대결하고 전문성과 전문성으로 맞서야 하는 지금, 교수단체 민교협은 사회 각 분야에 대한 전문성 강화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창립 20주년을 맞는 민교협은 오는 22일 ‘민교협 회원의 밤’과 26일 심포지엄 ‘연대의 밤’ 등 다양한 기념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 [옴부즈맨 칼럼] 6월항쟁 시대정신 살려가길/전혜영 고려대 국문과 4년

    “한열이를 살려내라.” 민주화를 위해 거리로 쏟아져 나왔던 시민들의 발자취가 곳곳에 새겨진 지 20년이 되는 지난주. 서울신문을 비롯한 언론에서는 6월 항쟁을 다각도에서 조명한 기사들을 다채롭게 보도했다. 서울신문은 7일자 8면에 ‘한열이를 살려냈다’라는 제목으로 이한열 열사의 모습을 담은 대형 걸개그림을 사진으로 크게 실어 6월 항쟁에 자칫 무관심할 수 있는 독자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걸개그림에 대한 사연을 기사로 다룬 것도 6월 항쟁을 미시적인 관점으로 다뤘다는 점에서 흥미로웠다. 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최근의 대학생들은 6월 항쟁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고려대 학보사에서 설문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고려대 학생의 15.2%가 6월 민주항쟁에 대해 ‘들어본 적도 없다.’고 답했다. 또한 선배들처럼 민주화에 목숨을 바칠 용의가 있느냐는 질문에는 57.4%의 학생들이 ‘아니요.’라고 대답했다. 대학생의 시대정신 부재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같은 대학생으로서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의 뒤에는 6월 항쟁에 대한 무지가 한몫하고 있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런 측면에서 8일자 8면의 “한국은 피플파워로 민주화 이뤘다.”는 기사는 외신기자의 눈으로 본 당시의 모습을 다뤄 6월 항쟁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독자도 공감하며 읽을 수 있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었다. 6월 항쟁 기사 외에 지난주 신문을 장식한 뜨거운 감자는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평가포럼 발언이었다.4일자 1면 “노 대통령 ‘선거법 위반’ 논란” 기사는 보도기사로 사건의 요지를 사실적으로 전달했다.3면에서는 다소 우스꽝스러운 노 대통령의 사진과 ‘과대망상’,‘제발 조용히 계시는 게’라는 제목과 함께 관련기사를 보도했다. 하지만 제목 위에 부제목을 달아 기사내용이 ‘정치권 반응’에 대한 것이라는 것을 알렸지만 제목 자체가 너무 강렬해 대통령을 조소한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사이드 기사로 실린 연설문 요지 역시 강연 당시의 대통령 육성에 가깝게 재현해 이러한 느낌을 더욱 강하게 들게 했다. 정치권 이야기를 기사로 다룰 때 종종 쓰이는 수법이 상황을 비꼬는 수법이다. 이는 비판의 날을 날카롭게 세워 효과를 거두기도 하지만 잘못 쓸 경우 기사의 의도를 의심하게 만든다. 기사의 객관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연설문의 내용을 8일자 3면의 표처럼 가능한 한 육성의 거친 표현을 제거하고 소개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싶다. 5일자 3면의 ‘탄핵해야 vs 공식후보없어 위법 아니다’ 기사의 경우 노 대통령 발언에 대한 각계의 반응을 담아 사건을 다각도로 볼 수 있게 해주었다. 관련 공방을 표로 정리해 사건을 일목요연하게 파악할 수 있게 만들어 준 것도 좋았다.6일자 3면에도 공방전을 도표로 정리했는데 크기가 너무 작아 알아보기가 힘든 것이 아쉬웠다. 기사를 조금 줄이더라도 도표를 키우고 대화내용을 더 실었다면 사건의 공방이 한눈에 들어왔을 것이다.7일자 1면에서는 선거관리위원회의 선거법 위반여부 결정에 따른 세가지 시나리오를 소개해 독자들이 사건의 향방을 한눈에 전망해볼 수 있게 했다. 도장을 찍은 듯 붉은 글씨로 각각의 경우를 부각시킨 것도 시선을 끌었다. 지난주는 현충일을 비롯해 6월 항쟁 20주년 기념일이 있었던 뜻 깊은 일주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의 헐뜯기 공방이 한주 내내 대서특필된 것은 독자로서 안타까웠다. 독자들의 알권리를 위해 언론은 공정하고 사실적인 보도로 정치권의 모습을 비춰야 하겠지만 그렇다고 옐로 저널리즘으로 흘러서도 안 될 것이다.10일자 사설에서 밝혔듯이 서울신문이 ‘잊혀져 가는 6월 항쟁의 정신을 되살려 성숙한 민주사회로 나아가는 데 선두에 서기’를 기대한다. 전혜영 고려대 국문과 4년
  • 한나라 ‘盧 말폭탄’ 대응 골머리

    한나라당과 당내 유력 대선주자들이 노무현 대통령의 ‘거침없는 말세례’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노 대통령이 선관위의 선거중립의무 위반 결정에도 아랑곳없이 연일 한나라당과 유력 대선주자들을 비판하고 있지만 적극적으로 대응하자니 노 대통령의 그물에 걸려들 것 같고, 무대응 전략으로 가자니 야당답지 못하다는 비판이 쏟아질 게 뻔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나라당은 나경원 대변인의 입을 통해 노 대통령의 발언을 강도높게 비판하면서도 선관위 추가 고발 등의 적극적인 대응은 자제하는 분위기다. 나 대변인은 10일 노 대통령의 6월 항쟁 20주년 기념사에 대해 “특유의 현란한 언변과 사실과 다른 궤변을 섞어 쓰며 현실을 호도하고 있다.”고 지적한 뒤 “새로운 기득권세력인 좌파정권의 연장을 위한 시나리오의 서곡이 울렸다.”고 비판했다. 한나라당은 그러나 노 대통령의 원광대 강연과 6·10 기념사 가운데 선거법상 문제 소지가 있는 발언에 대해 선관위에 추가로 고발하는 식의 적극적인 대응에는 다소 머뭇거리는 모습이다. 핵심 당직자는 “현재로서는 ‘말싸움’밖에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노 대통령의 발언을 이미 ‘외압’에 주눅든 선관위에 추가로 고발하는 것은 실효성이 없는 만큼 때를 기다려 국민과 함께 저항하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당내 일각에서는 “당 지도부가 지나치게 신중하게 대응하고 있다.”면서 “노 대통령의 독선과 아집에 사로잡힌 ‘광기의 정치’를 국민도 더이상 원하지 않는 만큼 더이상 움츠리고 있어서는 안 될 것”이라며 적극적인 대응을 주문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전광삼기자 hisam@seoul.co.kr
  • [6월 항쟁 20주년 ‘그날의 함성’ 그 이후-(10) 대안정당 가능성] “정치변화 노력부족”vs“생활정치 정당 필요”

    ■ ‘386 정치인’ 우상호 의원 민주화가 낳은 정치세력의 한가운데에는 ‘386’이라는 이름이 있다. 제도정치권의 변신 과정에서 ‘젊은 피’ 수혈로 일컬어지던 이들. 제도정치의 이념적 분화를 넓혔다는 평가도 받지만 기존 정치 권력의 틀에 안주해 정치 불신만 가중시켰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386 대표주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6월 항쟁 당시 연세대 총학생회장이던 우상호(8일 열린우리당 탈당 선언) 의원을 통해 이들의 자화상을 들여다봤다. ▶386정치인의 공과를 평한다면. -“반대만 했지 사회적 책임을 져본 적 있냐.” 정치 시작하며 많이 들은 비판이다. 그래서 정치 활동보다 상임위 활동에 주력했다. 실제 386 정치인들은 해당 상임위에서 우수 의원으로 인정받았다. 대안 제시 능력도 인정받았다. 그러나 정치를 변화시키려는 노력은 부족했다. ▶개혁성과 도덕성만으로 정당체제를 바꿔내기엔 한계가 있었을 텐데. -국가보안법 문제만 해도 우리가 책임질 수 있는 범위에서는 노력했지만 정당끼리의 경쟁 국면이 됐을 때 우리는 ‘여럿 중 하나’에 불과했다. 정치적 실천의 계기에 섰을 때 단일 대오를 이루지 못한 책임도 크다. 노선과 정책보다 친소 관계나 정치 입문 계기 등이 잣대가 된 점도 마찬가지다. ▶대안 세력으로서 386의 역할은. -386은 정치에 입문한 지 얼마 안 됐다. 아직도 주어진 시대적 과제가 많이 남았다. 실질적 민주화를 완성하고 민족문제를 해결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 양극화와 사회적 불평등 문제와 같은 개혁 의제도 쌓여 있다. 구혜영 박창규기자 koohy@seoul.co.kr ■ ‘정치세력화 앞장’ 정대화 교수 6월 항쟁은 ‘시민사회’의 탄생을 가져왔다.90년대 들어 폭발적으로 성장한 시민사회는 16대 총선 낙천·낙선운동과 17대 총선에서 물갈이연대를 통해 의회를 감시하는 정치 활동에 주력했다. 국민 생활과 밀접한 현안을 정치 의제로 쟁점화한 주역이기도 했다. 시민사회의 ‘수혈 정치’를 뛰어넘어 주도적인 정치세력화에 앞장서고 있는 정대화 상지대 교수를 만나 민주화가 남긴 정치의 과제와 대안을 들어봤다. ▶민주화 이후 정치상을 평한다면. -보스정치와 지역주의, 패거리정치 등 정치권의 고질적인 병폐를 민주화 이전엔 따질 겨를이 없었지만 더 이상 국민이 용납하지 않게 되면서 점차 개선되고 있다. 민주화 이전엔 부패정치가, 이후에는 무능정치가 가장 큰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개혁인사 영입과 진보정당 원내 진입을 민주화의 정치적 성과로 꼽는데. -정치민주화의 공과다. 영입된 인사들이 새로운 정치 토대를 닦아야 하는데 ‘초대받은 정치’에 머물렀다. 준비없는 상태에서 편입됐기 때문이다. 스스로 대안적 정치 리더십을 형성하지 못했고 보스·패거리정치에 휘말려 우왕좌왕했다. 우리 정치가 민주노동당을 갖게 된 것은 근본적 발전이다. ▶바람직한 대안정치의 방향은. -좋은 정당과 좋은 정치시스템이 함께 나와야 한다. 사회의 흐름을 대변하는 정당이 나오고, 국민 의식을 대변하는 사회적 세력이 등장해야 한다. 민주화 이후 다양화된 각 분야의 계층적 이익을 대변하는 ‘생활정치’가 완성될 때 6월 항쟁은 소임을 다하게 될 것이다. 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 [6월 항쟁 20주년 ‘그날의 함성’ 그 이후-(10) 대안정당 가능성] 제도권 정치에 ‘진보’ 수혈…이념 지평 확대

    87년 6월 항쟁은 30여년에 걸친 권위주의적 군사문화를 청산하고 민주주의 정부 수립을 가능케 했다. 김영삼 정부는 하나회를 해체했고 금융실명제를 실시했다. 김대중 정부는 남북 정상회담을 비롯, 인권제도를 정비했다. 노무현 정부는 부패정치 청산을 실현했다.17대 국회에서는 진보정당이 원내에 진출하게 됐다. 그러나 민주화의 세례를 받고도 우리 정치는 후한 점수를 받지 못하고 있다. 민주화 이후 정치권의 현주소와 미래상을 정리해 보았다. 6월 항쟁은 정치의 이념적 지평을 넓힌 계기가 됐다. 특히 진보진영의 정치세력화는 정치 체제의 이념적 분화를 상징하는 사례로 평가되고 있다. 민주노동당의 원내 진입과 시민사회 진영의 정치세력화를 들 수 있다. 본격 진보정당으로 헌정 사상 최초의 원내 진출을 실현한 민주노동당은 기성 보수정치와 달리 뚜렷한 자기 정체성과 계급·계층 지향, 정책 중심으로 새로운 정치 환경을 만들어냈다. 진성당원에 기반한 운영으로 정당 민주주의의 골격을 갖췄다. 특히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비정규직·장애인·소수자 문제 등 그동안 제도권 정치에서 소외됐던 주제가 의회 무대에 올려지면서 보수독과점 중심의 정당정치를 이념과 정책 경쟁의 장으로 유인하는 계기가 됐다. 김상곤 한신대 교수는 “기존 보수정당의 개혁을 명분으로 편입된 개별 재야 인사들은 보스정치와 인맥 정치의 폐해에 눌려 보조재 역할에 그친 측면이 크다.”면서 “민노당의 출범은 제도권 정치에서 진보 대 보수의 축을 형성하는 전기가 됐다.”고 평가했다. 민주화 이후 시민운동 진영도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정치세력화의 한 축을 이뤘다. 여성단체 출신 인사들과 환경운동 활동가들의 의회 진출이 단적인 예다. 이들은 지역 중심의 정당 구조를 해체하는 데도 일정 부분 기여했다. 그러나 아직은 ‘가능성’에 머물러 있다. 보수 양당 체제가 확고하기 때문이다. 양극화 심화와 공공부문 축소, 고용의 불안정화 등 신자유주의가 심화되는 것도 민노당과 진보 진영의 운신을 좁게 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민노당이 정치적 리더십을 확보하는 데 실패한 측면도 크다. 정당과 운동단체 사이에서 우왕좌왕하고 있다는 평가가 그것이다. 정대화 상지대 교수는 “민노당은 지난 대선에서 100만표를 얻었다. 민주노총 조합원 가족이 최소 300만이라고 할 때 이 정도 지지로는 정상적인 노동 정치를 했다고 할 수 없다.”면서 “과거 김종필(JP) 전 자민련 총재는 10석으로 정권을 흔들었다. 정치 리더십 확보를 고민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 “언론 더이상 특권주장·권력화 안돼”

    “언론 더이상 특권주장·권력화 안돼”

    노무현 대통령의 강성 발언이 10일 6월 항쟁 기념사에서도 계속됐다. 정치권과 언론, 지역주의, 선거법을 비롯한 단골 메뉴가 또 등장했다. 여권 관계자는 “노 대통령에게 참여정부의 정책 성과나 도덕적 우월성에 대해 말을 못하게 하고, 재갈을 물리는 순간 이 정부의 레임덕이 시작될 것”이라면서 “노 대통령으로서는 생존권적 위기 차원에서 계속 입을 열고 있다고 봐야 한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노 대통령과 열린우리당 내 친노(親盧)세력, 참여정부 평가포럼이 ‘삼위일체’가 되어 대통합의 주도권을 잡기 위한 포석으로 노 대통령이 의도적으로 이슈를 선점해 가고 있다는 해석도 제기된다. 노 대통령은 이날 오전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6·10 민주항쟁 20주년 기념식에서 열린우리당 탈당파를 겨냥,“우리는 6월 항쟁의 승리를 보고 일시적인 좌절을 두려워하지 않는 지혜, 당장의 성공에 급급하여 대의를 저버리지 않는 지혜를 배워야 한다.”며 지역주의와 기회주의 청산을 촉구했다. 노 대통령은 이어 “6월 항쟁은 가치와 목표를 더욱 뚜렷하게 제시하여 국민을 통합하고 잘 조직하면 더 큰 역사의 진보를 이뤄낼 수 있다는 믿음의 근거가 될 것”이라고 말해 참여정부의 가치를 잇는 정치세력이 대통합의 주도권을 쥐어야 한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그는 “민주세력 무능론은 양심 없는 사람들의 염치 없는 중상모략”이라며 참여정부 실패론을 반박했다. 노 대통령은 “그 중에서도 가장 뼈아픈 상실은 군사독재와 결탁했던 수구언론이 그들 세력을 대변하는 막강한 권력으로 다시 등장할 수 있는 기회를 허용한 것”이라면서 “언론도 달라져야 한다. 더 이상 특권을 주장하고 스스로 정치권력이 되려고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박찬구기자 ckpark@seoul.co.kr
  • [6월 항쟁 20주년 ‘그날의 함성’ 그 이후] 민주화를 향한 그 몸짓…20년만에 첫 정부행사로

    [6월 항쟁 20주년 ‘그날의 함성’ 그 이후] 민주화를 향한 그 몸짓…20년만에 첫 정부행사로

    6월 항쟁은 정치적으로 ‘불완전한 승리’였다. 직선제 개헌으로 절차적 민주주의는 확보했지만, 군부독재 정권의 6·29선언과 타협하면서 20여년 동안 ‘위로부터의 정치민주화’에 머물렀다. 높아진 시민들의 정치 의식과 변화된 사회상을 정치가 반영하지 못하는 상황이 점점 고착화됐다.87년 대선 당시 양김의 분열이 이같은 현상의 전초전으로 지적되고 있다. 조희연 학술단체협의회 공동대표는 이를 ‘정치 지체’라 표현했다. 민주화의 세례를 받고도 정치 발전은 더디게 진행됐다. 특히 불안정한 정당체계는 정치 지체 현상의 대표적인 모습으로 꼽힌다. 정치권은 87년 민주화투쟁 이후 국민들의 높아진 정치의식과 사회변화 속도를 따라잡지 못했다. 조 대표는 “6월 항쟁으로 형식적 정치민주주의는 완성됐지만, 민주화 이후 한국 정당체제는 권위주의 시절과 유사했다.”고 지적한 뒤 “지배세력은 교체되지 않았고, 국가보안법 등 억압적 기제도 그대로 엄존한 상태에서 사회 변화와 괴리돼 왔다.”고 분석했다. 정치에 대한 무관심과 냉소가 확대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권위주의 시절 정당은 특정계층이나 세력을 대표하지 못한 채 사회적 기반을 갖지 못했다. 강력한 보스에 근거해 정당의 운명이 좌우됐다. 성공회대 조현연 교수는 “한국 정당은 냉전 반공주의와 성장제일주의를 중심으로 유지돼 왔다.”면서 “단지 국가 권력의 장악 여부만을 놓고 여야의 차이가 있어 왔다.”고 지적했다.6월 항쟁을 주도했던 반독재 민주화세력은 권위주의 시절의 정당 질서를 재편하지 못한 채, 사회의 다원성을 포괄하는 데도 실패했다. 노동과 평화 등 핵심 이슈를 책임지는 정당질서를 만들어내지도 못했다. 최근 범여권의 정계개편론, 유력 대선 주자의 탈당 등 취약한 정당정치는 여전하다. 정상적인 정당정치 부재는 지역주의와 ‘재야 엘리트 수혈’에 기반한 변형적인 정치 구조를 만들었다. 특히 지역주의는 민주화 이후 정당정치를 대표하는 말로 굳어졌다. 이는 민주 대 반민주, 진보 대 보수라는 정상적인 정치 경쟁을 부정하는 요인으로 작용해 왔다. 조 교수는 “이념적 스펙트럼이 협소한 조건에서 사회의 다양한 갈등과 이해관계를 대표하지 못할 때 정당체제는 지역대표의 성격만을 갖게 된다.”고 지적했다. 지역주의는 역으로 선거의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될 수 있는 여러 변수를 소외시키는 요인이 됐다. 군부정권은 87년 대선에서 김영삼·김대중씨의 분열을 계기로 저항세력을 지역주의 세력으로 격하시켰다. 더 큰 문제는 국민들이 서로를 지역적 관점에서 적대시하게 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불안한 정당정치를 뒷받침한 또 다른 축은 ‘외부인사 수혈’이다. 집권세력이 지배의 정당성을 획득하기 위해 제도권 밖 운동진영을 흡수해 온 것을 말한다. 민주화 이후 한국 정당정치가 변신하는 과정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단면이다. 그러나 수혈의 정치는 불행히도 실패했다. 보수정당을 개혁하는 데 견인차 역할을 해야 함에도 보수적 정당체제의 틀에 묶여 정체성을 상실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 [6월 항쟁 20주년 ‘그날의 함성’ 그 이후-(10) 대안정당 가능성] 전국 10만 “민주 쟁취” 외치며 그날 재현

    “독재 타도, 민주 쟁취!” 1987년 6월 민주주의를 갈망하는 시민들의 함성이 전국 방방곡곡에 울려 퍼진 지 꼭 20년째인 10일 전국 각지에서는 그날의 함성이 재현됐다. 6월 항쟁 20주년 계승 민간조직위원회 소속 회원 500여명은 이날 오후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6월 항쟁 20주년 계승 범국민 대행진’을 열어 6월 항쟁의 역사적 의미를 되새겼다. 이들은 기념식을 마치고 서울 명동으로 가두행진을 하면서 ‘호헌 철폐’ 등의 구호를 외치며 유인물을 뿌리는 등 당시 상황을 재현하는 퍼포먼스를 펼쳤다. 웃통을 벗고 태극기를 펼쳐들며 허리가 휘어지도록 민주화를 외치던 흑백사진 속의 청년과 6월 항쟁의 주역인 ‘넥타이 부대’ 모습도 재현됐다. 행사에는 고 박종철 열사의 아버지 박정기씨와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씨 등이 참석했다. 박씨는 “87년 6월 항쟁 뒤 20년이 지난 지금 시청앞 광장은 상전벽해란 말이 무색하리만큼 많이 변했지만 민주주의를 바라는 우리들의 뜻은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면서 “민족과 민중의 뜻이 이뤄지는 그날까지 행진을 멈춰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6월 민주항쟁 20년 사업 추진위원회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등은 이날 경기 파주시 임진각과 제주 서귀포시청 등 전국 곳곳에서 일제히 평화대행진 ‘대한민국 하나로 잇기’ 행사를 가졌다. 전국에서 참여한 10만여명은 걷거나 자전거·자동차 등을 타고 릴레이 방식으로 맡은 구간을 행진하면서 6월 민주항쟁 정신을 계승했다.광주 금남로 주변에서도 청소년들이 팀을 이뤄 참여한 ‘6.10m 김밥말기 경연대회’ 등 문화 체험, 공연 행사가 개최됐다. 부산에서는 시민 1000여명이 서면 전포초등학교에서 부산역까지 행진을 벌이며 ‘그날의 함성’을 재연했다. 부산역에서는 ‘그날이 오면’,‘님을 위한 행진곡’ 등 민중가요를 관현악으로 연주하는 콘서트가 열렸다.전국종합·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사설] 6월 항쟁 정신 실현했는가

    내일은 ‘6·10항쟁’ 20돌이 되는 날이다.6월 항쟁의 의미는 정치적 민주화에 그치지 않는다. 경제·사회 모든 분야에서 민주주의를 실천해야 한다는 국민들의 함성이었다.20년이 지난 지금,6월 항쟁의 정신은 진정으로 실현되고 있는가. 아쉽게도 답변은 부정적이다. 우선 정치지도자들이 반성하고, 사회의 각 주체도 6월 항쟁 정신을 되살려 나라가 옳은 방향으로 가도록 힘을 모아야 한다. 1987년 이래 우리 사회가 이룬 것은 절차적 민주주의였다. 대통령 직선제를 실시하고, 우여곡절을 겪긴 했지만 평화적 정권교체의 전통을 만들었다. 이제 한국에서 군부나 독재정권이 등장하는 일은 상상하기 어렵게 되었다. 권위주의, 정경유착, 정치부패도 줄어들었다. 하지만 민주주의는 대통령을 내 손으로 뽑고, 정치자금의 투명성을 높인다고 완성되는 게 아니다. 관용과 타협을 모르는 극한투쟁, 이념·지역으로 갈린 분열과 혼란상을 극복하지 못하고는 진정한 민주국가라고 할 수 없다. 또한 경제·사회적 양극화는 정치 민주화의 빛을 바래게 하는 요인이 되었다. 성장의 과실을 분배하는 통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음으로써 빈부격차가 커지고 있다. 중산층의 위축과 함께 노동계에서도 양극화 현상이 빚어졌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대기업과 중소기업 근로자는 처우가 더욱 벌어졌고, 상대적 박탈감은 사회불안 요인이 되고 있다. 직장인, 학생, 육체 노동자, 그리고 주부까지 거리로 몰려 나와 민주화를 외쳤던 20년 전을 생각해 보자. 그런 동질성, 순수성이 다시 가슴에 불붙는다면 현재의 사회 모순을 얼마든지 헤쳐나갈 수 있다. 이미 기득권 계층이 되어 순수성을 잃은 386 정치세력, 시민운동단체, 노동세력은 각성해야 한다. 그들이 도덕성을 회복해야 다른 정치인, 기업인에게 큰 희생을 떳떳하게 요구할 힘이 생긴다. 잊혀져 가는 6월 항쟁 정신의 회복에는 언론의 역할이 중요하다. 서울신문은 그때나 지금이나 본연의 임무를 다했는지를 반성하고, 각오를 다지고 있다.6월 항쟁 정신을 살려 성숙한 민주사회로 나아가는 데 앞장설 것임을 독자들께 약속 드린다.
  • [10일 TV 하이라이트]

    ●일요다큐 산(KBS1 오전 7시) ‘마나슬루 라운드 트레킹’에서 펼쳐지는 설산의 파노라마는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특히 마나슬루는 뾰족하게 솟은 두 봉우리가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마나슬루는 날카로운 봉우리의 생김새 때문에 ‘악마의 이빨’이라고도 불린다. 아름답지만 위험하고, 직접 보고 걸어보지 않으면 느낄 수 없다는 히말라야의 신비, 두 얼굴을 가진 마나슬루로 떠나본다.●빅마마(KBS2 오전 10시35분) 1998년 12월 결혼한 뒤 2개월 만에 아들 동현이를 가진 김구라. 무뚝뚝한 것 같지만 속정 깊은 개그맨 김구라의 부인과 아들 사랑, 그리고 독특한 육아 비법을 공개한다. 세번째 아이를 가져 임신 6개월에 접어들었음에도 여전히 날씬한 몸매로 나타난 개그우먼 김지선. 연년생인 개구쟁이 두 아들에게 안방을 내줬다는 김지선의 지극한 자식사랑을 엿본다.●문희(MBC 오후 7시55분) 진수자는 진이 할머니에게서 물려받았다며 금반지를 꺼내 문희에게 내밀지만, 마음이 무거운 문희는 나중에 달라고 한다. 유진이가 자신들에게 하나밖에 없는 귀한 며느리라 충분히 받을 자격이 있다는 유 원장의 말에 문희는 눈물이 핑 돈다. 하늘이가 자신의 아들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 영철은 문희에게 전화를 걸어 하늘이 일로 상의하자며 만나자고 한다.●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행(SBS 밤 12시5분) 선천성 안면기형인 은비는 집 밖을 나설 때면 항상 마스크를 챙긴다. 초등학교 6학년, 예쁜 옷이 걸려 있어야 할 은비의 옷걸이에는 여러 장의 마스크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은비의 유일한 외출은 버스를 타고 1시간 거리에 있는 학교에 가는 일이다. 친구들과 공부하고 뛰어노는 평범한 일상을 꿈꾸는 은비를 만나본다.●사랑의 공부방(EBS 오후 6시) 대전광역시 도마지역아동센터를 찾아간다. 세 차례 수술을 받았지만 여전히 완치되지 못한 아빠를 돌보며 이제는 의사되기를 소망하는 수정이. 아직도 한 차례의 수술을 더 받아야 하는 아빠를 직접 치료해 주고 싶다는 어린 딸의 간절한 소망이다. 이에 공부방 큰엄마 김혜영씨가 직접 나서 수정이의 기특한 꿈을 들어주기 위한 프로젝트를 펼친다.●그때 그 순간,87년 6월의 기록(YTN 오전 9시10분) 6월 항쟁의 뜨거운 현장을 누볐던 사진 기자들의 기억을 되짚어 ‘호헌철폐, 독재 타도’의 함성이 온 거리를 뒤덮었고 최루탄과 화염병이 난무했던 당시로 되돌아가 본다. 사진 기자들이 민주화 현장을 기록했기에 1987년 6월은 모두가 기억하는 역사적 장면이 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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