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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15 회담장 들어가는 남편의 등이 그렇게 쓸쓸”

    “6·15 회담장 들어가는 남편의 등이 그렇게 쓸쓸”

    “6·15 정상회담 선언문을 쓰려고 밤늦게 회담장으로 돌아가는 남편의 등, 그렇게 쓸쓸할 수 없었다.” 이희호 여사가 평생 잊지 못하는 남편 김대중 전 대통령의 모습이다.9일 발간한 자서전 ‘동행’에서다. 이 여사는 자신의 87년 생애와 김 전 대통령과 살아온 47년의 세월을 자서전에 고스란히 담았다. ●고난과 영광의 87년 세월 고스란히 적어도 한국 정치사에서 ‘이희호’라는 이름은 고학력에 여성운동가라는 자기 정체성을 가진 퍼스트레이디로 통했다. 이 여사의 삶을 돌아보면 국가 최고 통치권자의 내조자에 머무르지 않았던 영부인이었음을 알 수 있다. 본인 스스로가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지만 당시 청와대 제2부속실 직원 가운데 호남사람과 기독교 신자는 단 한사람도 없었다고 한다. 한 측근은 ‘조용한 기독교인’이었다고 전했다. 삶의 원칙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40년대 해방의 역사부터 유신체제,6월 민주항쟁, 민주세력의 집권까지 이 여사가 써내려간 질곡의 세월은 한국 현대 정치사의 또 다른 기록으로 평가되고 있다. 자서전에는 ‘김대중 납치 사건’, ‘3·1 민주구국선언문 사건’, ‘김대중 내란 음모 사건’의 뒷얘기도 담겨 있다. 암울했던 현대사 한 자락 한 자락마다 김 전 대통령의 평생 동지이자 동반자로서 애환을 느낄 수 있다. 부제 ‘고난과 영광의 회전무대’는 김 전 대통령이 손수 붙였다고 한다. 부부의 일상적인 내면을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이 여사는 김 전 대통령에 대해 “대식가로 오해받는 건 군것질을 좋아하는 탓이다. 떡과 사탕을 즐겨 먹고, 여름에는 아이스바를 자주 먹는다. 청와대에서도 직원들이 사오는 붕어빵을 아주 좋아했다.”고 소개했다. 퇴임 후 김 전 대통령의 변화에 대해선 “미국 망명 시절에는 자동차 옆자리에 내가 없어도 모른 채 떠나버릴 정도였는데, 퇴임 이후엔 내가 어딜 가면 사고를 당할까 하루에도 몇 번씩 전화를 걸어서 안부를 확인한다.”고 밝혔다. 이 여사가 고집이 세고 드세다는 항간의 평가를 뒤돌아보게 하는 구절도 있다.‘정적(政敵)’이었던 박정희 전 대통령의 사망 이후 홀로 남겨진 3남매를 보며 “한번 안아주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 마음 아프다.”고 밝힌 대목에선 모성애가 느껴진다. ●계훈제·육영수·전두환과의 일화도 이 여사는 자서전을 통해 계훈제 선생과 김활란 박사, 육영수 여사, 전두환 전 대통령, 김정일 국방위원장, 힐러리 클린턴 미 상원의원 등에 대한 일화도 소개했다. 특히 힐러리 의원을 만났을 때 “첫 만남에서 단순히 퍼스트레이디로 머물 사람이 아니라는 느낌을 받았다. 대단한 카리스마가 느껴졌다.”고 이 여사는 회고했다. 이 여사의 자서전 출판기념회는 11일 오후 4시 서울 동교동 김대중도서관에서 열린다. 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 [서울광장] 촛불, 보약이냐 독약이냐/임태순 논설위원

    [서울광장] 촛불, 보약이냐 독약이냐/임태순 논설위원

    “출산하는 데 가장 어려운 때가 입덧인데 이제 입덧이 끝나가고 있다.” 대통령 부인 김윤옥 여사가 지난달 여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정권 출범 초기 촛불시위로 엄청난 홍역을 치른 것을 ‘입덧’에 비유해 우회적으로 표현했다. 그의 말대로 이명박 정부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촛불시위라는 역풍을 만나 국민과의 달콤한 시간을 갖지 못했다. 촛불시위는 청와대 입성의 일등공신이라 할 수 있는 청계광장에서 5월2일 처음 시작돼 6월 민주항쟁 21주년을 맞아 개최한 6월10일 100만 촛불대행진까지가 절정이었다. 먹거리에 불안을 느낀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광화문 일대에서 시위를 벌이는 바람에 이명박 대통령은 두 차례나 사과를 했다. 대통령선거에서 50%에 이르는 지지율을 받았던 후보로선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다.“더 낮은 자세로 국민께 다가가겠다.” “식탁안전에 대한 국민의 요구를 헤아리지 못한 것을 뼈저리게 반성한다.”며 국민들에게 깊이 머리를 수그렸다. 정부는 ‘쇠고기관보 게재’를 연기하고 ‘미국과 쇠고기수입 재협상은 있을 수 없다.’는 자세에서 물러나 추가협상에 나서 타오르는 촛불민심을 누그러뜨렸다. 또 ‘강부자’,‘고소영’으로 물의를 빚은 청와대 참모들도 개편해 민심수습에 나섰다.“여론으로부터 세게 훈련을 받았으니 그대로 쓰겠다.”던 그동안의 자세와는 확연히 다른 것이다. 대통령의 독주로 유명무실했던 국무총리에게도 힘을 실어주었다. 한반도 대운하도 국민이 반대하면 추진하지 않겠다고 해, 백지화선언을 했다. 촛불시위가 국정운영의 보약이 된 것이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촛불시위가 폭력화되고 과격화되면서 힘을 잃자 촛불의 교훈도 잊혀져 갔다. 폭력시위에 진절머리를 느낀 국민들이 공권력 확립과 법치와 준법을 강조하자 정부는 다시 일방독주하기 시작했다. 대신 국민을 섬기겠다는 다짐이나 소통, 통합이란 말은 멀어져 갔다. 인터넷에 대한 과도한 규제, 공기업 낙하산 인사 등에서 보듯 밀어붙일 것은 눈치 보지 않고 밀어붙이고 멜라민 사태가 나자 대통령이 식품의약품안전청을 전격 방문하는 등 다시 청와대의 독주가 시작됐다. 이뿐 아니다. 경제를 살리라는 국민들의 바람에 부담을 느꼈기 때문인지 모르겠으나 여전히 경기부양에 집착하고 있다. 수도권에서 미분양이 속출하는데도 신도시건설 발표 등 건설경기 부양에 나서고 한나라당 내에서조차 반대가 많았던 종합부동산세 개편안도 당초 안대로 밀어붙였다. 종부세가 흐지부지되면 강남 고가주택 소유자야 쾌재를 부르겠지만 그 부담이 국민들에게 전가되면 과연 누가 좋아하겠는가. 종부세 폐지는 선거공약이라고 말할지 모르겠지만 대통령이 국민을 위해 일해야지 강남 지지층만 보는 외눈박이 정치를 해선 안 된다. 이명박 대통령은 촛불 시위 때 “마음이 급하다 보니 국민들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다.”고 했다. 왜 다시 일방통행식이 되는지 알 수 없지만 지나치게 가시적인 업적이나 성과에 매달리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소통없이 유형적 결과물에만 집착할 경우 다시 촛불 역풍을 맞아 입덧만 하고 옥동자는 낳지 못할지도 모른다. 현명한 사람은 역사에서 배우고, 어리석은 사람은 경험에서 배운다고 한다. 그러나 경험이나 실수에서 배우기도 쉽지 않다. stslim@seoul.co.kr
  • [단독]“촛불 93만명이 들었다”

    [단독]“촛불 93만명이 들었다”

    5월부터 100여일간 정국을 흔들었던 촛불집회에 93만여명이 참석했고 집회도중 501명의 경찰이 부상당한 것으로 집계됐다. 경찰청이 9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한나라당 이범래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촛불집회가 시작된 5월2일부터 8월15일까지 106일간 전국에서 2398회의 촛불집회가 열렸으며, 총 93만 2680명이 집회에 참석한 것으로 나타났다. 촛불집회에 동원된 경찰 병력은 7606중대 68만 4540명에 이르렀다. 촛불집회가 가장 격렬했던 서울에서는 이 기간 동안 총 105회의 집회가 열려 58만 900명이 집회에 참석한 것으로 나타났다. 6·10항쟁과 겹쳐 최대규모의 집회가 열린 6월10일에는 전국적으로 15만 7785명, 서울에서만 8만명이 참석했다고 경찰은 집계했다. 하지만 박원석 광우병 국민대책회의 공동상황실장은 경찰이 밝힌 촛불집회 참석자수에 대해 “6월10일에만 서울에서 60만∼70만, 전국에서 총 100만여명이 촛불을 들었다.”면서 “이는 촛불집회가 극소수의 국민들의 참여에 의해 이뤄졌다고 여론을 몰아가고 싶은 경찰과 정부의 의중이 노골적으로 드러난 것이다.”라고 반발했다. 촛불집회가 격렬해지면서 경찰측의 피해도 컸던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청은 총 부상자 501명 중 경찰관 59명과 전·의경 442명이 중경상을 입었다고 주장했다. 구동회 김정은기자 kugija@seoul.co.kr
  • [상임위 초점] 與 “폭력시위 방어” 野 “초법적인 발상”

    [상임위 초점] 與 “폭력시위 방어” 野 “초법적인 발상”

    4일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는 불법시위 피해자들의 집단소송제도를 의미하는 이른바 ‘떼법방지법’을 둘러싼 논란이 벌어졌다. 이날 회의에서 김경한 법무부장관은 한나라당이 당론으로 채택해 적극 추진하고 있는 떼법방지법 도입과 관련,“상당히 바람직한 법”이라는 견해를 밝혀 논란을 촉발했다. 한나라당 주성영 의원은 이날 회의에서 “우리 시위대가 홍콩·뉴욕에서는 법을 잘지키는데 한국에서 시위하면 꼭 문제가 된다.”면서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에서 찾아볼 수 없는 일”이라며 떼법방지법 도입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민주당 이춘석 의원은 “집단소송제 등 정부에 유리한 법을 추진하겠다는 태도는 국민의 오해살 수 있다.”면서 김 장관의 발언에 우려를 표시했다. 3일 문제가 된 김 장관의 ‘경찰 면책 강화’ 발언을 둘러싼 여야간의 공방도 계속됐다. 민주당 박영선 의원은 “장관이 정당 행위 여부를 판단하거나 면책을 결정할 권한이 있느냐.”면서 “최근 발언들을 보면 법무장관으로서 부적당한 것들이 많다.”고 따져 물었다. 같은 당 박지원 의원도 “국민의 인권을 책임지는 법무장관으로서 대단히 잘못된 것이며 초법적인 발언”이라면서 “일선에서 자칫 장관의 발언을 듣고 과잉진압을 해도 된다고 판단한다면 자칫 제2의 6월항쟁으로 발전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한나라당 손범규 의원은 김 장관의 ‘경찰 면책 특권’발언을 적극 옹호하고 나섰다.“제가 보기엔 정당한 공무집행을 하면 당연히 면책되어야 한다.”면서 “정당한 공무집행이 비난을 받거나 외부의 변수에 따라서 죄를 짓는 것으로 되고, 불법 폭력의 행위자가 영웅이 되는 억울한 사태가 발생해 공무원들의 사기가 떨어지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같은 당 최병국 의원도 “법질서 문란행위가 반복되다 보니 우리 사회도 이에 무감각해지는 경향이 있다.”면서 김 장관의 발언에 힘을 실었다. 이에 대해 김 장관은 “어제 발언은 공권력을 정당하게 사용한 일부 경찰들의 고충을 말씀드린 것”이라며 한발 물러섰다. 한편 한나라당 홍일표 의원이 질문도중 ‘법무부는 경찰과 다른 엘리트집단’이라는 표현을 써 ‘경찰비하’ 논란이 일어났다. 구동회기자 kugija@seoul.co.kr
  • [李대통령 취임 6개월] ‘6월항쟁’ 미경험 세대 개헌 찬성률 높아

    [李대통령 취임 6개월] ‘6월항쟁’ 미경험 세대 개헌 찬성률 높아

    ■개헌 찬반여부 물어보니 대학·대학원생 84% “헌법 바꿔야” 서울신문이 이명박 대통령 취임 6개월을 맞아 한국리서치에 의뢰,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국민 대다수가 개헌을 찬성한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자 중 73.3%가 ‘일부 헌법 조항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답해 개헌에 대한 열망이 높게 나타났다. 현행 헌법을 유지하자는 의견은 15.8%에 그쳤다.‘87년 체제’인 현행 헌법이 20년이 넘어 수명을 다했음을 지적하는 대목이다. 개헌에 대한 찬성 입장은 연령·지역·종교·정당 등을 떠나 모든 계층에서 높게 조사됐다. 눈에 띄는 것은 남성(77.2%)이 여성(69.6%)보다 높았고 지역별로 서울(73.8%)과 인천·경기(74.0%) 거주자의 응답 비율이 높았다. 흥미로운 점은 87년 6월항쟁을 경험하지 않은 세대와 계층에서 개헌에 대한 욕구가 강하다는 점이다. 자신의 직업을 학생(대학·대학원)이라고 밝힌 응답자 중 84.0%가 개헌에 찬성한다고 답해 직업군 중 가장 높은 비율을 보였다. 또 연령별로 보더라도 6월 항쟁이 일어난 87년 이후 대학을 다닌 20대(80.7%),30대(84.1%)가 6월 항쟁을 이끌었던 ‘386세대’인 40대(74.2%)보다 개헌 찬성 의견이 높았다. 하지만 개헌 시기에 대해서는 ‘시간을 두고 추진해야 한다.’(77.4%)는 응답이 ‘시기를 늦출 필요가 없다.’(17.8%)는 응답보다 월등히 높았다. 개헌에 대한 공감대는 형성돼 있지만 점진적으로 여유를 가지고 추진해야 한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이는 정치권에서는 18대 국회 개원과 함께 개헌에 대한 활발한 논의가 이뤄지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김지훈기자 kjh@seoul.co.kr ■선호하는 정부 형태는 대통령제 38%·내각제 28% 順 국민들은 우리나라에 가장 적합한 정부 형태로 대통령 중심제를 꼽았다. 응답자의 38.5%가 그같이 답변했고, 뒤를 이어 의원내각제(27.9%), 이원집정부제(23.4%)의 순서였다. 대통령이 국방과 외교를 담당하고 총리가 내치(內治)를 담당하는 이원집정부제를 변형된 대통령제라고 본다면 61.9%가 대통령제를 선호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제2공화국에서 1년도 안 되는 짧은 기간 동안만 의원내각제를 경험한 탓에 이 제도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또 남북 대치 상황에서 대통령을 중심으로 하는 강력한 정치체제를 바라는 국민 인식에 따른 것으로도 해석된다. 이와 함께 정치에 대한 불신이 팽배한 가운데 국민들이 의회의 권력을 강화하는 내각제를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대통령 중심제를 선호한 응답은 학력이 높을수록 많았다. 남성(47.9%), 서울 거주자(47.5%), 국정운영 긍정평가자(47.4%), 한나라당 지지자(47.7%)일수록 대통령 중심제에 대한 선호가 높았다. 반면 의원내각제는 광주·전라(32.6%), 국정운영 부정평가자(30.9%), 민주당 지지자(34.8%)일수록 선호했다. 대통령 중심제 중에서는 4년 중임제(57.0%)가 5년 단임제(40.8%)보다 많은 지지를 받았다.1인 장기 독재를 예방하기 위해 5년 단임제를 택한 현행 헌법의 손질이 필요한 대목이다.5년 단임제는 87년 6월항쟁 당시 여당인 민정당의 6년 단임제와 후보단일화를 염두에 둔 야당의 4년 중임제를 절충해 마련된 것이다. 구동회기자 kugija@seoul.co.kr ■대통령 권한 어떻게 “현 권한 유지” “축소해야” 38% 팽팽 우리 국민은 대통령의 권한을 현 수준으로 유지하거나 축소하는 것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 수준이 좋다고 답한 응답이 37.8%, 대통령의 권한을 축소해야 한다는 응답이 37.3%였다. 대통령의 권한을 지금보다 더욱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은 22.1%에 머물렀다. 대통령제를 택한 국가 중 우리나라 대통령의 권한이 상대적으로 강한 점을 반영한 결과로 보인다. 대통령의 권한을 축소해야 한다는 의견은 이명박 정부의 비판층에서 많이 나왔다. 민주당(48.1%), 민주노동당(56.6%), 진보신당(65.3%) 등 야당 지지자들과 광주·전라(48.3%) 거주자들 사이에서는 대통령 권한을 축소하자는 의견이 우세했다. 반대로 한나라당 지지자(36.6%)와 대구·경북(31.7%) 거주자들은 상대적으로 대통령의 권한을 강화하자는 의견이 많았다. 선거에서 정·부통령을 함께 선출하는 러닝메이트 제도에 대해서는 별다른 차이가 나타나지 않았다. 정·부통령을 함께 선출하자는 응답은 49.5%, 현재처럼 대통령만 선출하자는 의견은 45.5%였다. 이런 결과는 우리 국민들이 러닝메이트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선진국 중 정·부통령제를 운영하는 곳은 미국이 유일해 마땅한 비교 대상이 없다는 것도 한 요인으로 꼽힌다. 이 문항에 대해서도 여야 지지층에 따라 의견이 갈렸다. 대구·경북(50.2%), 부산·울산·경남(50.4%)은 지금처럼 대통령 한 명만 선출하는 제도를 선호하는 의견이 많았다. 김지훈기자 kjh@seoul.co.kr
  • [창간 104주년 특집] “MB 국정운영 잘못하고 있다” 69%

    [창간 104주년 특집] “MB 국정운영 잘못하고 있다” 69%

    ■국정운영 평가·정당 지지도 지지정당 한나라 33% - 민주 15% - 민노 7%順 우리 국민 10명 중 7명 정도는 이명박 대통령이 국정 운영을 잘못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조사에서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대해 ‘잘 하고 있다.’는 긍정적 응답은 26.9%에 그친 반면 ‘못 하고 있다.’는 부정적 응답이 68.9%를 차지했다. 이같은 수치는 지난달 2일 YTN과 한국리서치가 조사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보다는 9.8%포인트 상승한 것이다. 이는 쇠고기 파동으로 인해 곤두박질했던 국정 운영 지지도가 쇠고기 추가 협상 이후 서서히 회복되고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어서 주목된다. 이 대통령의 국정 운영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응답자를 구체적으로 살펴 보면 보수 성향의 40%, 한나라당 지지자의 55.7%, 지난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를 지지했던 응답자의 45.6% 등으로 조사됐다. 특히 국가경제와 개인의 살림살이에 대해 비관적으로 전망할수록 이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대해 부정적으로 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정운영 방식에 대한 세부적 평가에서는 ‘국정을 이끄는 리더십’,‘국민의 심정을 이해하고 대변하는 정도’,‘대통령으로서 신뢰가 가는 정도’ 세 항목 모두 ‘취임 초기보다 나빠졌다.’는 응답이 많았다. 이 대통령의 최근 청와대 비서진과 일부 장관 교체 등 인사에 대해서는 ‘충분하지 않다.’는 부정적 응답이 63.6%를 차지데 비해 ‘충분하다.’는 긍정적 응답 28.1%보다 2배 이상 높았다. 계층, 성향별로는 보수 성향의 36.8%, 한나라당 지지자의 49.9%,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를 지지했던 응답자의 40.8%가 이 대통령의 최근 인사에 대해 충분하다고 응답했다. 이 대통령의 국정 운영 지지도 상승에 따라 한나라당의 정당지지율도 서서히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이번 여론조사에서는 한나라당 지지율이 32.6%를 기록해 지난달 2일 YTN과 한국리서치가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보다 5.1%포인트 상승했다. 지난달 조사 때와 비교할 때 ‘친박 복당’이 진행되면서 친박연대 지지자들이 대거 한나라당 지지자로 돌아선데다 무응답층이 크게 줄어든 것도 한나라당 지지율 상승의 요인으로 분석된다. 이에 비해 민주당은 14.7%, 친박연대 5.6%, 민주노동당 6.8%, 자유선진당 2.8%, 진보신당 2.1%, 창조한국당 2.0% 순이었다. 그러나 ‘지지하는 정당이 없다.’고 답한 응답자가 전체 응답자의 31.6%를 차지해 기성 정당에 대한 불신이 큰 것으로 조사됐다. 전광삼기자 hisam@seoul.co.kr ■靑 기록물 유출 “위법” 45% “열람권 행사” 41% 노무현 전 대통령의 청와대 기록물 유출 논란에 대해 진보와 보수층의 의견 차이가 극명한 것으로 조사결과 나타났다. 이념 성향이 보수적일수록 ‘위법’이라는 정부측 주장에 동의한 반면, 진보적 성향일수록 ‘열람권 행사’라는 노 전 대통령측 주장에 동조하는 경향이 뚜렷했다. 기록물 유출 사건의 본질을 묻는 질문에 ‘위법성’을 지적한 의견은 45.4%였다. 그러나 ‘열람권 행사’라고 답변한 국민도 40.9%나 됐다. ‘위법’이라는 응답은 저학력·고연령자, 이념 성향이 보수적일수록 높은 경향을 보였다. 구체적으로 ▲50∼59세(59.9%) ▲대구·경북(52.0%) ▲국정운영 긍정 평가(71.6%) ▲한나라당 지지자(68.7%) ▲이명박 대통령 지지자(65.4%) 등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동조세를 보였다. 그러나 저연령·고학력자, 이념 성향이 진보적일수록 ‘열람권 행사’로 받아들였다.▲학생(60.0%) ▲광주·전라(57.1%) ▲국정운영 부정 평가(50.5%) ▲민주노동당 지지자(80.2%) ▲정동영 후보 지지자(62.8%) 등에서 상대적으로 많았다. 기록물 반환 문제에 대한 답변에서도 유사한 경향이 드러났다. 응답자의 48.9%가 ‘열람권이 보장되면 반환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이는 ‘즉각 반환해야 한다.’(44.7%)’는 응답에 비해 4.2%p 높았다. 저연령·고학력자, 진보적일수록 ‘열람권이 보장되면 반환해야 한다.’는 응답이 높았다. 이와 관련,▲학생(70.5%) ▲광주·전라(65.1%) ▲국정운영 부정 평가(58.5%) ▲민주노동당 지지자(78.8%) ▲정동영 후보 지지자(72.1%) 등에서 우호적 반응을 보였다. 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헌법개정 “민생 우선… 개헌 서두를 필요 없다” 72% 최근 정치권에서 현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헌법 개정에 대해 다수의 국민이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의견을 밝혔다. 응답자의 72.4%가 ‘민생 문제 등 해결해야 할 현안이 많으므로 헌법 개정 논의를 서두를 필요가 없다.’고 답변했다. 18대 국회가 개원된 후 국회의원 167명으로 구성된 미래한국헌법연구회가 출범하는 등 정치권이 그 어느 때보다 개헌 논의를 서두르고 있는 것과 대비돼 눈길을 끈다. ‘지금이 헌법을 개정할 좋은 시점이므로 헌법 개정 논의를 하여야 한다. ’는 답은 21.1%에 그쳤다. 개헌 논의를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응답은 학력이 높을수록 높은 경향을 보였다. 지역적으로는 부산·울산·경남(75.9%)과 서울(75.8%), 강원·제주(74.0%)에서 높게 나타났다. 반면 지금 개헌을 논의해야 한다는 응답은 학력이 낮을수록 높은 경향을 보였고 지역별로는 광주·전라(27.4%)에서 상대적으로 높았다. 만일 개헌을 할 경우 우리 국민들은 우리나라 현실에 적합한 권력구조 형태로 ‘4년 중임 대통령제’(41.6%)를 가장 선호했다. 뒤를 이어 현행 ‘5년 단임제’(32.3%), 대통령이 외치를 맡고 총리가 내치를 맡는 ‘이원집정부제’(11.5%) 순이었다.‘내각책임제’를 선호하는 국민은 7.3%였다. ‘4년 중임제’와 ‘5년 단임제’를 답한 응답 비율을 합하면 73.9%로 우리 국민의 다수가 대통령제를 선호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87년 6월 항쟁으로 국민들이 성취한 ‘대통령 직선제’에 열망이 아직도 강한 것으로 풀이된다. ‘4년 중임제’를 선호하는 응답은 학력이 높을수록, 이념 성향이 보수적일수록 높은 경향을 보였다.‘5년 단임제’는 학력이 낮을수록 응답이 높았다. 이원집정부제를 답한 응답은 학력이 높을수록, 이념 성향이 진보적일수록 높은 경향을 보였다. 눈길을 끄는 것은 자유선진당(27.5%)과 창조한국당(23.7%) 지지자들이 이원집정부제에 대한 선호가 높다는 점이다. 김지훈기자 kjh@seoul.co.kr ■촛불집회 “이젠 촛불 끌 때” 67% “원천봉쇄 반대” 57% 국민의 대다수가 ‘이제는 촛불을 꺼도 될 때’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자의 67.1%가 ‘촛불집회를 그만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계속하는 것이 좋다.’는 의견은 29.2%에 그쳤다. 지난달 30일 문화일보와 디오피니언의 조사에서는 34.8%가, 지난 5일 한겨레와 리서치플러스의 조사에서는 30.7%가 촛불집회가 지속돼야 한다고 응답했다. 따라서 촛불집회 강행 의견이 갈수록 힘을 잃고 있음이 추세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어려운 경제 현실 속에서 국민들이 정치적 이슈보다는 고유가·고물가 등 서민경제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문제에 더 큰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 원인으로 분석된다. 또 금강산 관광객 피살사건이나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 등 굵직한 새 이슈의 등장도 ‘촛불’에 대한 국민의 관심을 점차 떨어뜨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촛불집회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의견이 55.2%로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는 의견 43.4%보다 11.8% 높았다. 최근 발표되는 각종 경제지표들이 금년 하반기에 더욱 악화될 것이라는 전망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국민의 ‘촛불의지’를 더욱 약화시키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촛불 집회 원천봉쇄에 대한 질문에는 응답자의 57.1%가 ‘반대’ 의사를 피력했다.‘찬성’은 39.2%에 머물렀다. 이는 촛불집회가 새로운 방식의 국민의사 표현으로 국민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구동회기자 kugija@seoul.co.kr
  • [서울신문 창간 104주년 특집-세대를 말하다] 민주투쟁의 장 → 축제·소통의 마당

    [서울신문 창간 104주년 특집-세대를 말하다] 민주투쟁의 장 → 축제·소통의 마당

    ■ 광장 “인간은 광장을 나서지 않고는 살지 못한다.(중략)사람들이 자기의 밀실로부터 광장으로 나오는 골목은 저마다 다르다. 광장에 이르는 골목은 무수히 많다.” -최인훈의 ‘광장’ 중에서 우리 민족과 사회를 가장 잘 상징할 수 있는 공간을 고르라면 단연 ‘광장’을 꼽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함께 어울려 놀기 좋아하고, 기쁜 일이든 슬픈 일이든 어깨를 맞대고 푸는 것이 사람 살아가는 섭리라고 믿는 우리에게 광장은 곧 삶이 진행되는 ‘무대’였다. 이에 일찍이 작가 최인훈은 그의 대표작 ‘광장’에서 “나에게 한 뼘의 광장과 한 마리의 벗을 달라.”고 했다. 하지만 광장에 대한 기억은 세대별로 확연히 차이가 난다. 많은 이들의 가슴 속에 20세기는 실로 ‘광장의 세기’로 남아 있다.20세기의 광장에는 독립을 위한, 민주화를 위한 결사항쟁의 외침이 하늘을 찌를 듯했다. ●20세기는 독립·민주화의 광장 “라디오에서 해방됐다는 이야기가 들리자마자 그야말로 난리가 났지. 죄다 뛰어나가서 목이 터져라 만세를 불렀어. 왜정 때 군인으로 끌려간 영감 기다리던 나도 영등포역 앞에 나갔는데 좋아서 어쩔 줄을 몰라 했지.” 80살 김부식 할머니는 1945년 광복을 맞으면서 민족과 함께 다시 살아난 광장을 기억했다. 그는 “모르는 사람들과 얼싸안고 거리 곳곳을 누비는데도 실감이 안 났을 정도였다.”고 회고했다. 김기영(43)씨는 광장이라는 말을 들으면 왠지 모르게 가슴이 벅차 오른다.1987년의 민주항쟁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김씨는 “그해 6월 우리는 모두가 동지였고, 가는 곳은 모두 민주화의 광장이었고, 우리가 치른 것은 성전이었다.”라면서 “고 이한열 열사의 장례식이 치러지던 날 광장에 모였던 백만 군중은 항쟁을 마무리하는 동시에 새로운 민주화 사회를 열었다.”고 말했다. 새천년 들어 광장에는 자긍심이 깃든 우렁찬 함성소리가 넘쳐났다.“지금도 2002년 월드컵을 생각하면 심장이 뛰어요. 취업준비에 한창이던 대학교 4학년 때인데 우리와 이탈리아전이 기말고사 전날이었어요. 짜릿한 역전승에 밤새 놀다가 다음날 오전 전공시험에 지각했는데, 저처럼 늦는 친구들이 한둘이 아니더라고요. 함께 그곳에 있었다는 묘한 동질감을 느꼈죠.” 28살 이지영씨가 광장과 함께 떠올린 기억이다. 이씨는 “함께했던 기성세대에게는 ‘레드 콤플렉스’ 없이 마음껏 붉은 광장을 바라본 첫 기억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해 12월 광장은 깊은 슬픔에 잠겼다. 미군 장갑차에 희생된 두 여중생을 추모하기 위해 수많은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광장으로 나왔다. ●2002년 붉은악마… 2008년 촛불 당시 추모집회에 참석했던 김지은(37·여)씨는 “동생 같은 아이들이 처참하게 숨졌는데 공식적으로 항의도 못하는 현실에 자존심이 상했고,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 거리로 나갔다.”면서 “‘진혼 촛불’로 가득찬 광장은 지금까지 본 것 중 가장 엄숙하고도 아름다운 것이었다.”고 말했다. 이듬해 광장은 다시금 촛불로 가득 찼다.2004년 3월 노무현 당시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이 가결되면서 촉발된 촛불집회였다. 2008년의 광장은 온·오프라인을 넘나드는 개념으로 ‘진화’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을 계기로 온라인 광장에서 시작된 논의는 그대로 컴퓨터 화면 밖으로 뛰쳐나와 현실 세계의 광장으로 이어졌다. 박민서(15)양은 “이전에도 크고 중요한 일이 있으면 많은 사람들이 촛불을 들고 광장으로 가는 것을 봤었기 때문에 별 고민 없이 나도 시청 앞 광장에 나갔다.”고 말했다. 유지혜기자 wisepen@seoul.co.kr
  • 사제단 재협상 촉구 대규모 미사

    사제단 재협상 촉구 대규모 미사

    미국산 쇠고기 재협상을 촉구하는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시국미사가 30일 오후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사제단 신부 198명과 수녀, 신도, 시민 등 8000여명(경찰추산·주최측 추산 10만명)이 참가한 가운데 열렸다. 사제단이 도심 한가운데에서 대규모 시국 미사를 연 것은 1987년 6월 민주항쟁 이후 처음이다. 정부가 촛불집회를 원천봉쇄했지만 종교단체의 시국집회는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적용 대상이 아니다. 시국 미사는 당초 오후 6시 열릴 예정이었으나 경찰이 음향 설비를 실은 차량을 막아 1시간30분 늦은 오후 7시30분쯤 시작됐다. 이날 미사에서 사제단은 “촛불을 지키는 힘은 비폭력이다. 비폭력 시위가 복원되길 바라고, 정부가 먼저 시민들의 분노를 이해해야 한다.”며 비폭력 원칙을 강조했다. 이어 “미국 쇠고기 수입 재협상으로 국민들이 안전하게 살게 되기를 바란다.”고 기도했다. 이들은 오후 9시쯤 미사를 마친 뒤 오후 10시까지 서울광장∼남대문∼명동∼서울광장 구간을 평화적으로 행진한 후 참석자들에게 “내일을 위해 오늘은 이만 집에 돌아가자.”며 귀가를 종용했다. 사제단 관계자는 “사제단 상임위 신부단 10여명은 오는 4일까지 서울광장에서 단식농성을 할 예정이며 같은 기간 매일 저녁 평화적 촛불시위를 열 계획”이라고 말했다. 천주교 시국미사에 이어 불교와 개신교도 시국법회와 시국예배에 나설 계획이다. 화계사 주지인 수경 스님과 불교환경연대, 실천불교전국승가회 등 불교계 사찰 대표들과 단체들도 29일과 30일 잇따라 연석회의를 열고 오는 4일 서울광장에서 시국법회를 열기로 했다.YMCA와 NCC정의평화위원회 등 기독교계에서도 오는 3일 시국기도회를 열 예정이다. 서울경찰청 관계자는 “시국미사 등 종교행위는 막을 수 없다.”고 말했다. 앞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어청수 경찰청장, 한진희 서울경찰청장 등을 직권남용 등으로 고발했다.▲집회 음향 차의 운행을 강제로 막고 ▲서울광장 천막을 영장 없이 철거하고 ▲집회를 원천 봉쇄했다는 등의 이유에서다. 광우병 국민대책회의도 기자회견을 열고 “오는 5일을 ‘국민승리 선언을 위한 촛불문화제’로 정한다고 밝혔다. 정은주 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 사후 20년만에 5·18유공자로 인정

    사후 20년만에 5·18유공자로 인정

    1980년 5월 ‘시민수습대책위원’으로 활동했던 고 김천배(전 광주YMCA이사·당시 64세)씨가 28년 만에 5·18민주화운동 유공자(상이후 사망자)로 인정됐다. 광주시는 30일 최근 5·18민주화운동 관련자 보상심의위원회를 열어 당시 고문과 투옥 등의 후유증으로 8년 후인 1988년 숨진 김씨를 유공자로 의결했다고 밝혔다. 그동안 수차례의 유공자 신청에도 불구, 김씨에 대한 유공자 인정이 늦어진 것은 가족들이 신청 여부를 놓고 고심을 거듭했기 때문이다. 그의 딸 은경(66·경기 광명시)씨는 “아버지가 공적을 내세우려 하는 성품이 아닌 데다 생존시에도 ‘5·18 참여는 당연한 일’로 말씀하셨기 때문에 가족간에도 이견이 많았다.”며 “그러나 고인이 겪었던 일을 가족사로만 묻어 둬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어 신청했다.”고 말했다. 5·18 당시 시민단체 활동에 전념하던 김씨는 5월21일 계엄군에 맞선 시민들이 경찰서 무기고 등을 습격하자 다음 날인 22일 고 홍남순 변호사, 고 이성학 장로, 김성용 신부, 이기홍 변호사 등 광주지역 원로들과 함께 ‘시민수습대책위’를 결성, 항쟁 지도부와 계엄군 사이를 오가며 사태의 평화적 해결에 앞장섰다. 미국 예일대 신학부에서 수학했던 그는 유창한 외국어 실력을 바탕으로 광주 현장을 취재하던 외신기자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광주의 실상을 알렸다. 이후 그의 행보는 수배와 도피, 고문과 투옥으로 점철됐다.‘항쟁지도부 쪽을 대변했다.’는 이유 등으로 내란부화수행 및 계엄법 위반 혐의로 수배됐다. 그는 도피생활을 하다 81년 9월 경찰에 체포됐다. 재판과정에서 징역 1년6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뒤 병보석으로 석방됐다. 그러나 88년 3월 광주 기독병원에서 민주화의 새벽을 보지 못한 채 숨을 거뒀다. 가족들은 당시 김씨의 유해를 망월동 구 묘역에 안장했다.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대책회의 “압수수색해도 촛불 끄떡없다”

    경찰이 촛불집회를 주도해 온 ‘광우병 국민대책회의’에 대한 압수수색을 실시하고 지도부에 대한 사전 체포영장을 발부하는 등 전방위적 압박이 가해지고 있음에도 불구,‘대책회의’측에서는 촛불집회를 계속 할 것이라고 밝혔다. 대책회의 임태훈 인권법률의료지원단 팀장은 30일 오전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출연 “서울광장을 원천 봉쇄했는데 국민들의 큰 저항을 불러올 것”이라며 “촛불은 절대 꺼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임 팀장은 이어 한나라당의 “촛불집회 참가자들 중 일반 시민은 일부이고,대부분은 단체나 조직된 대중”이라는 주장에 대해 “집회에 참여한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움직이는 시민들”이라며 “집행부와 시민들을 분리시키려는 아주 악의적인 허위 사실”이라고 맞받아쳤다. 그는 압수수색과 지도부 수배로 촛불집회 동력이 약해지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대해 “탄압이 강해질수록 많은 시민·사회단체에서 상근자를 파견해 보낼 것”이라며 “동력은 전혀 떨어지지 않는다.”고 답했다. 임 팀장은 “(한나라당의 생각과는 반대로)간부들을 잡아들일수록 정국은 점점 꼬일 것”이라며 “4·19도,6월 항쟁도 독재정권이 잘못 때문에 벌어진 것으로 이번에도 그들의 후예인 여당이 실수를 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이어 통합민주당측이 ‘30개월 이상 소’ 수입을 금하는 내용의 ‘가축전염병 예방법안’ 처리를 주장하는 것에 대해서는 “한나라당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한 그 법안은 통과되지 않을 것”이라며 “야당 의원들은 장외로 나와 투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이어 야당의원들에 대해 “밖으로 나와서 국민들에 귀를 기울이고 헌신하는 모습을 보여달라.”며 “집회에 앞장서서 물대포도 맞고 군홧발에도 밟히며 투쟁해야 된다.”고 주장했다. 한편 임 팀장은 이날 “경찰의 무차별 폭행으로 인해 미국인까지 다쳤다.”고 주장해 눈길을 끌었다.그는 “25세의 미국 국적을 가진 청년이 집회에 자발적으로 참가했다가 다쳐 백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며 “경찰이 휘두른 방패에 안면이 찢어지고 팔이 빠졌다.”고 말하기도 했다. 인터넷서울신문 최영훈기자 taiji@seoul.co.kr
  • [지방시대] 어떻게 만들어낸 민주주의인가/김준태 조선대 교수·시인

    [지방시대] 어떻게 만들어낸 민주주의인가/김준태 조선대 교수·시인

    정말, 정말 어떻게 만들어낸 민주주의인가. 얼마나 많은 사람의 피와 땀과 눈물을 흘려서 일구어낸 민주주의인가. 얼마 동안 민족적 자존과 긍지, 통일의 그날에 대비코자 쑥물만을 삼키는 듯한 고통의 나날을 보냈던가. 아, 그래서 우리는 기억한다. 할머니가 켜 둔 등잔불 혹은 촛불 밑에서 제발 이 나라가 평화스럽기를, 사람살기 좋은 나라가 되기를 빌고 빌지 않았던가. 일제 강점기에 징용으로 끌려가 돌아오지 않은 할아버지,‘히로히토 천황군’ 징병으로 태평양 전쟁터에까지 끌려가서 돌아오지 않은 아버지들의 쓰라린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기를 빌면서, 우리는 어느덧 이렇게도, 키가 훌쩍 커버리지 않았던가. 국군과 공산군의 몸이 무더기로 묻혀, 함께 썩어간 이 땅 삼천리 한반도…. 한국전쟁 직후, 무밥과 해초밥만을 먹고 자란 어린 시절부터 나는 이 땅 삼천리 한반도가 제발 폭력과 총소리가 없는 날이 계속되기를 천지신명께 빌지 않았던가. 너무나 빠른 나이에 목숨을 잃은 고향사람들의 무덤 위에서 철없이 뛰놀던 우리들의 유년시대(the Age of Korean Boys), 전후 반공시대의 흑막 속에서 수많은 정치가들이 암살됐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에미애비도 없던 우리들의 슬픈 유년’은 코밑 수염이 시커먼 청년기로 바뀌어 갔다. 그리고 우리들은 부산항에서 배를 타고 떠났던 것이다. “아아 잘있거라 부산 항구야/미스 김도 잘 있거라 미스 리도 안녕히….” 그렇게 목이 터져라 노래를 부르면서 베트남으로 떠나갔던 10년 동안 연병력 55만여명의 따이한 병사들, 이들이 바로 우리들이 아니었던가. 베트남전쟁에 참전한 대가로 250억달러를 벌어와 1960,70년대의 한국근대화의 밑거름이 된 아아 그 시절의 안타까운 젊은 영혼들! 그리고 살아서 돌아온 병사들의 두 손에 묻은 붉은 피의 냄새들! 그랬다. 베트남전쟁에서 별을 달고 돌아온 일부 장군들은 1980년 5월, 자신들의 조국―한반도의 남녘땅 광주에서 선량한 시민들을 총소리, 총소리 속으로 몰아넣었다. 잿밥(정치)에 눈이 어두워 지키라는 최전방(DMZ)을 뒤로하고 후방인 ‘빛고을 광주’를 타깃으로 삼은 것이 아니었던가. 그러나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의 끈을 결코 놓을 수 없었던 광주시민들과 전체 국민들의 함성이 모아진 1987년 6월항쟁 등을 통해 대한민국은 비로소 ‘정치민주주의’의 길로 들어섰던 것 아닌가. 신군부 출신 전두환·노태우를 ‘세기의 재판’을 통해 단죄코자 한 김영삼의 문민의 정부→6·15남북공동선언을 이끌어낸 김대중의 국민의 정부→권위주의를 불식시키려 했지만 ‘경제민주주의’의 코드를 찾아내지 못한 가운데서 연약한 생명을 유지하다가 CEO 출신으로 ‘경제를 살리겠다’는 이명박에게 대권의 바통을 넘긴 참여정부의 노무현-. 아 그런데 2008년 6월, 이른바 ‘이명박호(號)’는 어떤가. 과연 항해가 순조로운가. 우리가 볼 때는 아직 출항 직전인 것 같다. 아직 항로가 불투명하고 안개 속인 것 같다. 아니 어둠보다 더 걱정스러운 안개 속에서 좌초 직전에 놓인 듯이 보인다.“이래서는, 저래서는 안되는데….” 그래서 지금 대한민국 국민들은 거리로 쏟아져 나와 ‘촛불’을 켜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 나라의 정체성을 비하하고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려고 하다니! 그 발상부터가 틀리다는 것을 어서 빨리 알아차리고 애당초 잘못 끼운 첫 단추를 다시 끼운 다음, 새로운 출항의 자세로 ‘민주주의의 항로’를 계속하길 바란다. 민주정치와 민주경제는 동전의 앞뒤처럼 같다는 것을, 달리는 열차로 말하면 두 레일이라는 것을 빨리 깨닫길 바란다. 이명박 대통령! 님께서도 세종로에 나와, 촛불 앞에 앉아 ‘하늘을 우러러’ 자신을 돌이켜보길 부탁드린다. 이 땅의 구성원들 모두를 ‘ 끝끝내 보낼 수 없는 님’으로 손잡아주면서 함께 일어서주길 바란다. 김준태 조선대 교수·시인
  • [14일 TV 하이라이트]

    ●걸어서 세계 속으로(KBS1 오전 10시) 이란은 과거 미국 대사관 인질사건과 핵개발로 미국과의 관계가 악화돼 그동안 우리에게도 여행하기 위험한 나라로 인식되어 왔다. 그러나 이런 선입관과는 달리 치안이 매우 양호하며 국민들도 친절해 여행하기에 별 어려움이 없는 나라다. 항상 멀고도 어려운 나라로 인식된 이란, 페르시아 제국으로 떠나 본다. ●다큐멘터리 3일(KBS1 오후 10시10분) 우리나라 3대 사찰의 하나로 손꼽히는 경남 양산 통도사. 어느 날 이곳으로 특별한 손님들이 찾아 왔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1000여명의 체육인들. 이들이 산사를 찾은 까닭은? 수행을 하는 스님과 승리를 위해 뛰는 체육인들이 만났다. 그들이 함께 한 사흘간의 수행 이야기를 담았다. ●엄마가 뿔났다(KBS2 오후 7시55분) 영수와 종원은 결혼 후 한자네 집으로 인사를 오고 가족들은 분주하다. 충복은 영수와 종원의 방문에도 불구하고 영수가 일석에게 선물로 준 차로 드라이브를 가겠다며 키를 달라고 떼를 쓴다. 가족들은 위험하다고 반대하지만 충복의 고집은 꺾이지 않고, 결국 충복은 안 여사와 드라이브를 즐긴다. ●달콤한 인생(MBC 오후 10시35분) 성구는 일본 북해도 눈밭에서 싸늘한 시체로 발견되고, 준수는 강 회장에게 친구를 돌봐 주지 못한 데 대해 용서를 구한다. 혜진은 동원과 더 이상 함께 살 자신이 없어 집을 따로 구하러 돌아 다닌다. 준수는 괴한들에게 폭행을 당하고 혜진을 찾아 온다. 한편, 다애는 혜진을 한번 만나려는 생각을 굳히는데…. ●조강지처클럽(SBS 오후 10시) 용희를 만난 나미는 기적이 예전에 자신과 바람을 피워 교수 임용에서 탈락됐었으며 뱃속에 있는 아이가 기적의 아이라고 말한다. 한편, 원수는 철이 핑계를 대고 화신에게 놀러가자고 한다. 원수는 지란에게 가족모임을 가려고 하니 도시락을 싸달라고 하고 지란은 자신도 함께 가는 줄 알고 기쁜 마음으로 도시락을 싼다. ●그것이 알고 싶다(SBS 오후 11시20분) 수십만의 촛불이 한달 넘게 대한민국을 밝히게 될 줄을 누가 알았을까. 교복 입은 여학생, 유모차를 끌고 나온 젊은 엄마, 온가족이 촛불을 들고 나와 취임 100일도 안 된 대통령에게 “물러나라.”란 구호를 외칠 줄은 아무도 몰랐다.6월 항쟁 21주년을 맞아, 촛불 집회에서 보여준 현재 시민사회의 역량을 진단한다. ●내 사랑 아프리카(EBS 오후 5시) 동물병원에 밀반입된 남아프리카산 원숭이 ‘밸런타인’이 들어오자 대니는 지극 정성으로 치료해 집으로 데려 온다. 그리고 재혼한 아내 사라의 간청으로 원숭이를 고향으로 돌려보낼 겸 아프리카로 가족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대니의 딸 로지는 새엄마 사라가 들어온 집에 정을 붙이지 못하고 밖으로 나돈다. ●토마토(YTN 오전 8시25분) 지난 4월, 조류 인플루엔자가 또다시 발생했다. 전북 김제에서 처음 확인된 지 불과 한 달 만에 호남과 영남, 경기, 충청을 거쳐 서울까지 조류인플루엔자가 빠른 속도로 확산됐다. 조류인플루엔자의 원인과 예방에 대한 의학적이고 올바른 정보를 제공한다.
  • 촛불, 여의도로 방향 틀다

    촛불, 여의도로 방향 틀다

    촛불이 처음으로 이명박 정부의 주요정책 반대 투쟁의 길을 열었다.2만개에 가까운 촛불이 13일 ‘공영방송 사수’를 외치며 한국방송(KBS)이 있는 여의도로 행진해 쇠고기 수입 전면 재협상 기조를 넘어섰다. 광우병 국민대책회의가 이날 오후 7시 서울광장에서 연 ‘전면 재협상 실시, 이명박 정부 심판 37차 집중 촛불집회’에는 시민 1만 5000여명(경찰 추산·주최측 추산 3만여명)이 모였다. ●광화문 벗어나 처음 한강 건너 지난 10일 ‘100만 촛불대행진’이후 대책회의 차원에선 처음 열린 이날 집회에선 참가자들이 8시50분쯤부터 감사원으로부터 ‘표적 감사’를 받고 있다는 논란이 빚어진 KBS와 보수단체로부터 집중 비난을 받고 있는 문화방송(MBC)이 있는 여의도로 거리 행진을 했다. 촛불이 광화문을 벗어나 한강을 건넌 건 40여일 만에 처음이다. 백두현(39·서울 방화동)씨는 “쇠고기 협상을 정부가 계속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니 점점 정부의 정책 전반에 대한 불신이 팽배하고 있는 것”이라면서 “공영방송과 정론지를 지켜 내자는데 시민들이 동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집회에선 미군 장갑차에 희생된 효순·미선양 6주기 추모제도 함께 열렸다. 하지만 효순·미선양 가족은 참여하지 않았다. 부산에서도 화물연대 조합원 등 3000여명이 촛불을 들었으며 대전과 전주 등에서도 수천명이 모였다. 앞서 대책회의는 이제까지의 쇠고기 반대 투쟁 일변도에서 벗어나 현 정부 주요 정책에 대한 일괄 반대 투쟁으로 논의의 폭을 확대키로 했다. 대책회의는 주간 활동제안을 통해 “광우병이 중심 쟁점이지만 의료 및 공기업 민영화, 물 사유화, 교육, 대운하, 공영방송 사수 등 5대 의제를 결합해 14일과 15일,18일,21일에 ‘집중 촛불시위’를 열 예정”이라고 밝혔다. ●보수단체, 방송사 앞 가스통 난동 한편 촛불집회에 반대하는 보수단체 회원들이 청계천과 여의도 MBC,KBS 앞 등에서 난동을 부리면서 소동이 빚어졌다. 대한민국고엽제전우회, 자유시민연대 등 소속 회원 7000여명은 이날 오후 3시 서울역 광장과 청계광장에서 집회를 열고 “촛불집회를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일부 회원들은 청계광장에서 열리고 있던 ‘6월항쟁 기념 사진전’에 전시된 사진을 부수며 주최측과 몸싸움을 벌였다. 또 200여명의 고엽제전우회 소속 회원들이 오후 6시쯤 MBC로 이동해 “PD수첩 박살내자.”고 외치며 가정용 LP가스통 밸브를 열어 놓고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전경들과 승강이가 벌어졌고 사진기자들과도 몸싸움을 벌였다. 이를 바라본 안승찬(52·무직)씨는 “쇠고기 집회 참여 시민들은 보수단체 사람들이 무엇을 주장하든 상관없이 존중하는데, 그들은 왜 시민들의 의견을 짓밟으려 하는지 모르겠다.”며 고개를 내저었다. 김승훈 김정은기자 hunnam@seoul.co.kr
  • 6·10촛불집회 뭘 남겼나

    6·10촛불집회 뭘 남겼나

    6·10 항쟁 21주년을 밝힌 사상 최대의 ‘100만 촛불대행진’은 참여민주주의를 열망하는 시민의 힘이 당당하게 분출된 장(場)이었다. 거리에서 촛불행렬을 이룬 시민들이나 인터넷으로 이를 지켜본 네티즌들, 집회를 안내한 광우병 국민대책회의 모두 “제2의 6·10항쟁이었다.”며 의미를 되짚었다. 촛불대행진에 참여한 시민들은 “이번 촛불집회가 1987년 6월 항쟁을 계승한 민주주의 항거로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역사 속에 큰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들은 고(故) 이한열·박종철 열사를 한 뜻으로 추모했고,87년의 주역이었던 넥타이 부대도 촛불행진에 가세했다. 주하나(21·여·덕성여대 아동가족학과 4학년)씨는 “6월 항쟁 이후 절차적 민주주의는 어느 정도 확립됐지만 실질적 민주주의는 아직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면서 “2008년 6월10일을 기점으로 민주주의의 질적인 발전을 기대할 수 있게 됐다.”고 평가했다. 시나리오 작가 이창희(48·용인시 수지구 죽전동)씨는 “87년 6월처럼 모든 지역, 연령, 계층이 하나된 감동의 무대였다.”고 소회를 밝혔다. 시민들은 이번 촛불집회가 국민 대다수의 ‘심정적 지지’를 확인했다는 점에서 이전 집회보다 진일보했다고 지적했다. 네티즌 수십만명은 광장에 나서지는 않았지만, 청와대와 한나라당 홈페이지를 다운시킬 정도로 ‘온라인 시위’를 벌이며 힘을 보탰다. 이수현(38·인천시 남동구 만수동)씨는 “다양한 계층, 여러 성향의 사람들이 한마음 한뜻이 돼 촛불을 밝힌 역사적인 자리에 함께 했다는 것을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것”이라면서 “전국에서 모인 70만명은 국민의 힘을 보여주기에 충분했고, 그 몇 배의 국민이 마음으로 응원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시민들이 스스로 폭력시위를 거부함으로써 ‘성숙한 시민운동’의 발판을 마련했다는 점도 큰 성과라는 지적이다. 김가영(22·여·이화여대 사회학과 3학년)씨는 “폭력에 대한 자정능력은 시민의식의 성숙을 의미한다.”면서 “기말고사 때문에 촛불집회에 나오지 못한 친구들도 비폭력 시위를 지켜내는 시민들을 보면서 도서관에 켜놓은 평화의 촛불을 사진으로 보내주었다.”고 소개했다. 이경주기자 kdlrudwn@seoul.co.kr
  • 촛불집회 전문가 진단

    촛불집회 전문가 진단

    1987년 6월은 뜨거웠고, 지난 10일 ‘촛불 민주주의’는 절정에 달했다.21년 전 국민의 힘으로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했지만 결국 군부의 수혈을 받은 대통령이 탄생했다. 추동력을 잃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촛불집회 이후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촛불 민주주의를 추켜세우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촛불을 이어가는 방법과 전망에 대한 해법을 다르게 제시하고 있다. ●경제적 어려움 속 촛불집회는 계속될 것 성공회대 한홍구 교수는 낙관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한 교수는 “이번 촛불시위는 1987년과는 달리 정당과 시민단체가 아닌 시민들이 시위의 틀을 만든 획기적 사건”이라면서 “1987년 6월과 2004년 4월 탄핵 반대 시위 뒤 허망하게 무너진 경험이 있기에 시민들은 더욱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사회적 조건이 시민들을 거리로 내몰게 할 것이란 분석도 있다.1987년 6·10항쟁 이후에는 민생 문제가 상당부분 해결돼 시민이 굳이 나설 필요가 없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는 것이다. 중앙대 박흥식 교수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뿐 아니라 국민들의 피부에 직접 와닿는 교육 자율화, 의료보험 민영화 등 정책과 ‘유가 상승’이라는 대외적 조건으로 국민들은 경제적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면서 “정치적 요구에서 경제적 요구로 파급되는 현실 속에서 촛불 민주주의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당과 시민단체가 아닌 시민 중심의 집회로 변한 지금의 촛불시위는 한계를 지녔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슈를 지속적으로 제기하는 중심 집단이 필요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시민단체는 집회 현장에서조차 외면받고 있고, 정부 정책을 정면으로 비판하는 진보정당의 지지율은 여전히 바닥이다. 촛불 민주주의가 동력을 갖고 계속 나가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2년마다 한번씩 국회의원 선거를” 조국 서울대 교수는 시민들의 정당과 시민단체에 대한 반감 문제를 지적한다. 조 교수는 “지금의 촛불 민주주의를 정치화하는 단계가 남아 있지만 정당과 시민단체에 대한 시민의 반감이 생각보다 강하다.”면서 “결국 ‘대의를 누가 수렴할 것인가.’하는 과제를 놓고 각계의 경쟁이 예상되지만 그 과정에서 시민의 외면을 받는다면 낙관적인 전망만을 내놓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는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한다. 정당과 시민단체가 ‘촛불 민주주의’를 끌어갈 역량과 시민의 호응이 부족하기 때문에 대의를 지속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87년의 한계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 정부의 실수를 시민들이 지속적으로 심판할 수 있는 제도가 구비돼야 한다.”면서 “지금의 대의제에서는 선거만이 이를 심판할 수 있지만 다음 선거까지 4∼5년의 시간을 더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평소 헌법 개정을 피력해왔던 박 교수는 이번 촛불 시위가 헌법 개정의 당위를 제시했다고 말한다. 박 교수는 “미국처럼 2년마다 한 번씩 선거를 통해 3분의1에 해당하는 국회의원을 교체하는 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면서 “단임제는 대통령의 장기적인 시야를 가리는 무책임한 제도이므로 미국산 쇠고기 협상이나 대운하처럼 대통령이 성급히 정책결정을 내리지 않도록 중임제로 헌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경원기자 leekw@seoul.co.kr
  • [6·10 촛불집회]6월 항쟁 그날에… 전국이 뜨겁게 타오르다

    [6·10 촛불집회]6월 항쟁 그날에… 전국이 뜨겁게 타오르다

    2008년 6월10일과 1987년 6월10일.21년이란 긴 간극만큼이나 시대는 변했지만 서울광장에 모여 ‘민주주의’를 외치는 함성과 열망은 변한 게 없었다. 생생한 역사의 현장을 화보와 함께 돌아본다.
  • [6·10 촛불집회] 숨죽인 한나라당

    미국산 쇠고기 파동 이후 가장 큰 규모의 촛불집회가 열린 10일 한나라당은 숨을 죽이고 민심이 어느 방향으로 흐를지를 지켜봤다. 당직자들은 비상 근무체제에 들어갔다. 이명박 대통령 지지도가 어떻게 될지, 촛불집회가 앞으로 얼마나 더 이어질지가 이날 집회 분위기에 달렸다는 판단 때문이다. 과격시위 모습이 나타나거나 집회가 정권퇴진 집회로 완전히 변하는 게 한나라당이 가장 우려하는 시나리오다. 홍준표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오늘은 우리 당에서 비상근무하는 날”이라면서 “오늘 밤늦도록 당직자들은 자리를 지키고 시위상황을 개별 점검하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그는 “화물연대 파업이 개시되면 물류대란이 온다.7월 초부터 비정규직법이 중소기업에 확대 적용되기 때문에 비정규직 대란도 떠오를 수 있다.”며 정국 변수에 촉각을 기울였다. 홍 원내대표는 이어 “야당이 시위 정국을 이용해 국민적 갈등을 증폭시키는 데 일조해서는 안 된다.”면서 “야당은 6월 국회를 정상화해 고물가·고유가에 허덕이는 서민들에게 조속히 혜택이 갈 수 있도록 관련 법안을 정리해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스스로는 “열린 마음으로 야당을 대하고, 야당과 모든 가능성을 열고 대화를 나누겠다.”고 다짐했다. 조윤선 대변인은 6·10항쟁 21주년 논평에서 “6·10 그날의 민주화 함성과 열망으로 이 땅의 민주주의가 뿌리를 내리는 계기가 됐다.”면서 “단순히 당시 권위주의 체제를 무너뜨린 국민적 저항을 넘어 민주주의를 위한,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한 역사였다.”고 평가했다. 조 대변인은 “하지만 민생고로 피폐해져 가는 서민의 삶마저 무시하고 있는 야당의 길거리 정치는 6·10 정신을 거부하는 것”이라면서 “민주주의 수호와 발전을 위했던 6·10항쟁 정신은 절대로 야당의 명분 없는 장외투쟁이 아니다.”라고 일갈했다. 한편으로 한나라당은 대규모 집회 등에 관심이 집중된 이 시기 동안 국정쇄신 방향을 완성하겠다는 각오를 보였다. 화물연대 등과의 조율을 계속 시도하고, 친박(친 박근혜) 인사들의 복당 심사를 서두르는 것도 이런 각오의 표현으로 풀이됐다. 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 [6·10 촛불집회] 주한 외국 특파원들의 시각

    [6·10 촛불집회] 주한 외국 특파원들의 시각

    ■커트 애신 미국의소리 특파원 “지속되는 응집력 놀라워 문화제형식 시위 인상적” 커트 애신 미국의소리(VOA) 서울특파원은 10일 촛불집회에 대해 “이렇게 오랫동안 지속될 줄 몰랐다.”면서 “매우 놀랍고, 인상적이다.”라고 말했다. ▶촛불집회가 한달이 넘었다. 취재하면서 무엇을 느꼈나. -한국에 온 지 3년반이 됐는데 이번처럼 오래 지속되고, 응집력이 강한 시위는 처음이라는 점에서 우선 놀랍다. 비폭력을 지향하며, 평화적으로 시위를 진행하는 성숙한 시민의식도 인상적이다. 지난 6일 수많은 인파가 시청에서 광화문까지 도로를 꽉 메웠는데도 질서있게 행진하는 모습이 놀라웠다. 노래와 춤이 있는 문화제 형식의 시위 방식도 새롭다. 물대포가 쏟아지자 시위대가 ‘세탁비 물어내.’라고 응수하는 장면처럼 여유와 유머가 깃든 독특한 문화적 현상들을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다. ▶촛불집회가 열리게 된 원인은 무엇이라고 보나. -식품의 안전성은 어느 나라나 매우 민감한 문제다. 건강에 대한 한국 국민들의 우려가 촛불집회의 배경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면에는 또 다른 문제의식이 담겨 있는 것 같다. 한국인 친구와 취재원에게 들은 얘기를 종합해 보면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하나는 이명박 대통령이 국민들의 의견을 수렴하지 않고 미국산 쇠고기 협상안에 서명했다는 사실이 국민들을 분노하게 했다. 둘째는 한국이 일본, 중국 등 이웃 국가와 비교해 쇠고기 협상을 더 불리하게 했다는 인식이 자존심에 상처를 입혀 국민 감정을 더욱 자극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 정부의 대응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국민의 의견을 듣지 않고 서둘러 일을 처리했던 이명박 정부가 촛불 시위로 국민들의 저항이 거세지자 이제 국민의 뜻에 부응하려는 태도를 보이는 것 같다. ▶촛불집회의 발단이 된 미국산 쇠고기수입 협상에 대한 의견은. -그 문제에 관해선 개인적인 의견을 얘기하지 않겠다. 다만 과학적으로 광우병의 위험이 이미 널리 알려진 상황에서 한국민들이 그 위험도에 비해 다소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는 것이 외신 기자들의 대체적인 의견이다. ▶사태 해결 방안은 무엇이라고 보나. -민주주의국가에서 국민들이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표출하는 것은 정당한 권리이다. 한국 정부가 이 상황을 어떻게 조화롭게 해결하느냐가 관건이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후쿠다 가나메 도쿄신문 특파원 “시위 나선 중·고생 보니 일본과 비교돼 부럽기도” 후쿠다 가나메 도쿄신문 서울특파원은 6·10 민주항쟁 21주년을 맞은 10일 한국은 지금 성숙하기 위한 시련 속에 있고 합의 시스템의 마련을 통해 사회 수준을 한 단계 높여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촛불 시위를 취재해 온 소감은. -처음 중·고생들이 촛불 시위에 나선 것을 보고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 일본 청소년들은 정치에 지나치게 무관심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지난달 24일부터 시위자들이 차도로 나가고 정치세력과 합쳐져 ‘전투적’이 되는 등 시위 성격이 바뀌면서 걱정스러운 마음이 더 커졌다. 어떻게 수습할지 어디가 끝인지 보이지 않는다는 느낌이다. ▶시위 성격을 어떻게 보나. -이명박 대통령 집권 뒤 두드러진 상위하달식(top-down)방식의 결정과 정책 집행, 공공기업 개혁, 몰입식 영어교육 및 우월반 운영 등에 대한 젊은이와 관련자들의 불만이 일거에 터진 것이다. 이 대통령의 통치 스타일에도 원인이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앞으로의 전망은. -시민들은 재협상을, 정부는 자율규제를 주장하면서 평행선을 긋고 있다. 엄밀한 의미에서 재협상은 어렵다고 본다. 무엇을 위한 재협상인지 숨을 가다듬고 생각해 보자. 이명박 정부의 모든 것을 부정해야 되는 상황인지 등도 잘 생각해 봐야 한다. ▶비슷한 상황이 일본에서 발생했더라면. -시민들이 거리로 뛰쳐나오기 전에 ‘국민의 대표’들이 이들의 불만과 문제점을 수렴해서 국회에서 논의의 장을 만들었을 것이다. 이 점에서 한국의 민주주의는 분명히 어떤 부분이 막혀 있다. 소통되지 못하고 있다. 정당이 기능하는가 하는 의문도 나온다. 여당 지지율이 추락했지만 야당이 지지율이 그리 높지 않은 것도 작동하지 못하는 한국 정치의 상황을 상징해 준다. ▶오늘은 6·10 시민운동 21주년이다. 서울광장은 지난 21년처럼 시위대로 가득 차 있다. -2008년 6월10일은 한국이 더 한 단계 성숙하기 위한 시련을 겪고 있음을 보여준다.21년 전에는 알기 쉽고 뚜렷한 전환의 방향, 나갈 방향이 확실했었다. 군사정권에서 민주화란 방향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복잡하고 진행될 방향이 어디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다. 그만큼 한국 사회도 다양해 졌다. 어떤 점에서 보나 이번 사건은 한국 민주주의와 사회 진전의 하나의 전환점으로 기록될 것으로 본다. 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 [6·10 촛불집회] “경제 독재 타도” 광화문 가득 메운 50만 함성

    [6·10 촛불집회] “경제 독재 타도” 광화문 가득 메운 50만 함성

    1987년 6월10일 민주주의를 갈망하던 함성은 2008년 6월10일 ‘소통의 민주주의’를 염원하는 촛불로 이어졌다. 수십만명의 시민들은 21년 전의 그날을 추모한 뒤 함성과 함께 촛불을 치켜들고 여러 갈래로 나눠 광화문과 종로, 안국동과 서대문 일대를 ‘촛불의 강’으로 가득 메웠다. 전국에서 70만여명이 참여한 이날 촛불집회에서는 미국 쇠고기 수입 재협상, 민생안정, 대운하 반대, 정권 퇴진 등 다양한 구호가 터져 나왔다. 비폭력과 평화 시위를 지켜내자는 목소리도 높았다. ●세종로 네거리서 덕수궁 앞까지 가득 메워 이날 서울 세종로 네거리에서 서소문로 입구까지 태평로 12차선 도로는 이번 촛불집회에서 최대 인파인 50만명(경찰 추산 10만 5000명)이 넘는 시민들로 가득 찼다. 행렬이 남대문 삼거리까지 드문드문 이어졌고 일부 통신장애까지 발생할 정도였다. 유모차를 끌고온 가족부터 대학생, 비정규직 노동조합원, 여성단체, 교수단체, 민주화운동 단체 등 각계각층뿐만 아니라 젖먹이부터 70대까지 다양한 세대의 시민들이 모였다. 시민들은 오후 9시30분쯤부터 두 갈래로 나뉘어 한 갈래는 신문로∼독립문 방향으로 행진했고, 다른 갈래는 종로∼안국동 방향으로 나아갔다. 가수 안치환씨와 양희은씨, 영화배우 문소리씨가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송파구 가락동에서 온 정덕수(46)씨는 “21년 전 6·10때도 이 자리에 있었는데, 다시 여기 설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못했다.”면서 “군부독재 타도의 목표가 경제독재 타도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고려대 최장집 교수는 “나도 참여하러 왔다. 그야말로 뭐라 표현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감동스럽다.”고 말했다. 오후 7시45분쯤에는 정운천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이 방송차 앞으로 찾아와 광우병 국민대책회의에 자유발언을 요청했다가 거절당했다. 정 장관은 “제가 책임자이니 책임을 지고 국민들에게 설명하러 왔다. 현재 미국에서 협상이 진행중이니 자유발언할 기회를 달라.”고 했지만 주최측은 “기회를 줄 수 없다. 해명을 들을 필요도 없는 상황이다.”라고 답했다. 주변의 시민들은 일제히 야유를 보냈으며 심지어 “매국노”라는 소리도 일부에서 나왔다. ●정운천 장관, 집회 현장 찾았다 야유받아 각계각층의 시민들은 이날 오후 고(故) 이한열·박종철 열사 추모식 등 6·10항쟁을 기리는 행사에 참여한 뒤 오후 7시쯤 광화문 일대로 모였다. 연세대 이한열 열사 21주기 추모기획단 300여명은 이한열 열사 국민장을 재연한 뒤 촛불집회 현장에 합류했다. 박종철 기념사업회 회원 100여명도 용산구 남영동 경찰인권센터 내 509호 조사실에 마련된 ‘박종철기념관’의 개관식을 가진 뒤 광화문에 모였다. 지난달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를 외치며 분신한 고(故) 이병렬씨의 서울광장 분향소에는 조문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총파업을 예고한 공공운수연맹은 오후 5시 서울광장에서, 여성단체들은 광화문 파이낸스센터 앞에서 촛불집회를 지지하는 행사를 진행했다. 전교조는 오후 4시부터 종로 보신각에서 ‘6·10 교사 행동의 날’을 선포했고 전국교수모임도 행진하는 등 수많은 종교계·문화계·여성계·교육계 단체가 자체 행사를 갖고 촛불대행진에 가세했다. 대학생들도 학내에서 행사를 가진 뒤 촛불집회에 참여했다. 이들은 ‘평화시위 지킴이’를 자처하고 나섰다. 고려대를 비롯해 서울대·이화여대·연세대·한국외대·단국대 등 30여개 대학이 참여했다. ●촛불, 전국에 들불로 번져 이날 촛불은 전국 각지로 번져 서울을 포함, 모두 70만여명이 촛불집회에 참석했다. 부산에서는 오후 7시 서면 쥬디스태화 앞에서 3만여명이 촛불을 들었다. 광주·대구·울산·창원 시민들도 대거 촛불을 드는 등 전국 시·군·구에서 작지만 강렬한 촛불들이 밤을 밝혔다. 한편 뉴라이트전국연합 등 보수단체는 이날 오후 서울광장에서 3000여명이 참가한 국민대회를 열었지만 곧 빛을 잃었다. 김승훈 이경원 김정은 장형우기자 hunnam@seoul.co.kr
  • [6·10 촛불집회] 이한열 열사 어머니 배은심씨

    [6·10 촛불집회] 이한열 열사 어머니 배은심씨

    “만감이 교차합니다. 가슴이 벅차기도 하고 아프기도 하고….27일 동안 사경을 헤매던 한열이의 모습이 눈에서 떠나지 않아요.”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불씨가 된 고(故)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68)씨는 10일 서울광장에 운집한 시민들을 보며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한열이가 죽은 지 21년이 됐는데 이렇게 큰 외침이 필요한 걸 보면 아직도 갈 길이 멀어 보입니다.” 연세대 경영학과에 다니던 이한열(당시 21세) 열사는 87년 6월9일 ‘6·10대회 출정을 위한 연세인 결의대회’에서 경찰이 쏜 최루탄을 머리에 맞고 쓰러졌다. 평범한 어머니이자 가정주부였던 배씨의 인생은 이날부터 180도 달라졌다. 아들은 7월5일 끝내 세상을 떠나고 만다. 배씨는 하늘이 무너지는 느낌이었지만 아들의 죽음을 헛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아들이 죽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찾아 나섰다. 아들을 광주 망월동 묘지에 묻은 배씨는 대중 속으로 직접 들어가기로 결심했다. 이후 배씨는 민주화 과정에서 자식을 잃은 다른 부모들과 함께 시위현장이라면 어디든지 달려갔다. 배씨는 “군사정권 시절에는 매일 시위현장의 맨 앞에서 경찰과 대치하면서 최루탄도 직접 맞아보고 경찰의 방패 앞에 서서 대중들과 함께 싸웠다.”면서 “그렇게 듣고 보고 또 몸으로 느끼면서 한열이의 뜻도 차차 이해할 수 있었다.”고 돌아봤다. 배씨는 최근 촛불집회에도 빠짐없이 참가한다. 지난 5일부터 나흘간 계속된 72시간 릴레이 국민행동에서는 ‘이명박 정부 규탄, 쇠고기 재협상, 과거사위원회 통폐합 철회’를 위한 천막농성에 참여했다. 배씨는 “촛불집회에서 어린 학생들이 자유발언을 통해 할 말 다하는 걸 보면 민주주의가 어느 정도 정착된 느낌도 든다.”면서 “우리나라 국민들이 대단히 성숙하고 그 힘도 강하다는 걸 요즘 다시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배씨는 “군사정권은 국민의 눈과 귀를 막기 위해 최루탄을 쐈는데, 앞으로 다시 최루탄이 등장하지는 않을까 염려된다.”면서 “이명박 정부는 국민들이 성숙했다는 것을 빨리 깨닫고 경찰의 과잉진압을 자제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촛불시위가 평화적으로 진행돼야 제2, 제3의 한열이가 나오지 않을 텐데….” 배씨가 말끝을 흐렸다. 황비웅기자 stylist@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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