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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윤석 “탁 치니 억…대사가 입에 안 붙더라”

    김윤석 “탁 치니 억…대사가 입에 안 붙더라”

    영화 ‘1987’(감독 장준환)은 한 사람 한 사람의 힘이 모여 우리 현대사의 물줄기를 바꾼 1987년을 조명한 작품이다. 그해 1월 고문으로 유명을 달리한 박종철 열사에서부터 6월 항쟁 당시 시청광장에 운집한 100만명의 시민까지 모두가 주인공이다. 힘이 하나하나 모이는 과정 자체가 극적이기도 했지만 영화적으로는 주인공들에게 맞선 악역들이 빛나야 하는 작품이다.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명단에 올라 피해를 입었던 문성근이 간첩 사건을 조작해 국면을 뒤집으려는 안기부 장부장을, 1987년 당시 연세대 총학생회 간부로 이한열 열사 장례 집회를 주도했던 우현이 치안본부장 역을 맡아 역사의 흐름을 거스르려는 연기를 한 점도 흥미롭다. 박희순을 비롯한 많은 배우들이 남영동 대공분실 고문 수사관으로 명멸한다. 이러한 악역들 중심에는 단연 대공수사처 박처장이 있다. 김윤석(49)이 연기했다. 이미 ‘타짜’의 아귀, ‘황해’의 면가로 우리 영화사의 악역 열전을 새로 썼던 그였지만 박처장은 전혀 다른 무게로 다가왔다. “실존 인물에다가 시대의 어둠을 상징하는 악역이라 부담스러웠죠. 하지만 이 영화는 악당이 강력해야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이 더 빛날 수 있어요. 박 열사 유족들을 만났을 때 가장 나쁜 역을 맡았는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씀드렸더니 누님은 흔쾌히 허락하셨고 형님은 마음의 짐을 지게 될 것 같다며 걱정해 주셨죠. 어둠 쪽 역할을 한 배우들 모두 망설임 없이 동참했어요. 영화를 함께한 모든 동료들이 고맙지만, 악역을 연기한 배우들이 0.1% 정도는 더 고맙죠.”“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라는 희대의 발언이 그를 통해 재현된다. 중간에 대사를 한 템포 쉬어가는 연기가 인상적이다. “30년이 지나 반추해 봐도 넌센스고 기가 찰 소리죠. 그래서인지 대사를 칠 때 문장이 매끄럽게 연결이 안 되는 거예요. 스스로도 말이 안 되는 것 같으니 자기 말이 맞지 않냐고 기자들에게 동의를 구하는 어색한 톤은 그렇게 나온 것 같습니다.” 그는 박 열사의 고교 2년 후배이기도 하다. “학교 때는 박 열사를 몰랐어요. 3학년 교실은 후배들이 올라가지 못하는 무서운 층이었거든요. 열사가 가시고 나서야 동문회에 소식이 퍼지며 알게 됐죠. 이제 와서 동문이라는 이유로 사명감이나 책임감을 운운하는 건 시건방진 이야기 같아요. 다만 영화를 만들기로 했을 때 정말 최선을 다해 진정성을 담고 완성도를 높여야 한다는 부담감은 있었어요. 열사의 유족은 물론, 그 시대를 직접 겪은 분들이 너무나 많으니까요.” 김윤석은 무엇보다 영화가 유족들에게 합격점을 받아 다행이라고 했다. “30년을 버텨 온 단단한 분들이에요. 잘 봤다고 고맙다고 하시더라고요. 영화가 완성될 때까지 유족들과 박종철기념사업회, 이한열기념사업회로부터 아낌없는 지원을 받았습니다. 박 열사를 연기한 (여)진구가 영정 속에서 쓰고 있는 안경은 실제 박 열사의 것이에요. 엔딩에 나오는 ‘그날이 오면’은 이한열합창단이 불러 줬지요.” 김윤석은 ‘1987’이 한국의 ‘레미제라블’ 같은 작품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제작기 영상을 보면 시청광장 군중 신을 찍기 전에 감독님이 보조 출연자분들을 모아 놓고 이런 이야기를 해요. ‘여러분, 제가 이 영화를 만든 이유가 바로 이 장면 때문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주인공이라고 생각하며 연기해 주세요’라고요. 저도 그 장면을 보며 그런 느낌을 받았지요. 저는 다른 촬영 일정 때문에 가지 못했지만 악역을 연기했던 몇몇 배우들은 얼굴을 가리고 시청광장 장면에 참여하기도 했죠. 거기에 구호를 외치는 여성 목소리가 나오잖아요. 바로 (감독의 부인인) 문소리씨예요. 이 영화를 통해 우리 모두가 희망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모두 고맙지만 악역 배우들이 0.1% 더 고마워” 김윤석

    “모두 고맙지만 악역 배우들이 0.1% 더 고마워” 김윤석

    27일 개봉 ‘1987’서 시대의 어둠 상징 대공수사처장 연기 영화 ‘1987’(감독 장준환)은 한 사람 한 사람의 힘이 모여 우리 현대사의 물줄기를 바꾼 1987년을 다룬 작품이다. 그해 1월 고문으로 유명을 달리한 박종철 열사에서부터 6월 항쟁 당시 시청광장에 운집한 100만 명의 시민까지 모두가 주인공이다. 힘이 하나하나 모이는 과정 자체가 극적이기도 했지만 영화적으로는 악역들이 빛나야 하는 작품이다.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명단에 올라 피해를 입었던 문성근이 간첩 사건을 조작해 국면을 뒤집으려는 안기부 장부장을, 1987년 당시 연세대 총학생회 간부로 이한열 열사 장례 집회를 주도했던 우현이 치안본부장 역을 맡아 역사의 흐름을 거스르려는 연기를 한 점도 흥미롭다. 박희순을 비롯한 많은 배우들이 남영동 대공분실 고문 수사관으로 명멸한다. 이러한 악역들 중심에는 단연 박처장이 있다. 김윤석(49)이 연기했다. 이미 ‘타짜’의 아귀, ‘황해’의 면가로 우리 영화사의 악역 열전을 새로 썼던 김윤석은 박처장은 전혀 다른 무게로 다가왔다. “실존 인물에다가 시대의 어둠을 상징하는 악역이라 부담스러웠죠. 하지만 이 영화는 악당이 강력해야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이 더 빛날 수 있었어요. 박 열사 유족들을 만났을 때 가장 나쁜 역을 맡았는데 최선을 다해 연기하겠다고 말씀드렸더니 누님은 흔쾌히 허락하셨고 형님은 마음의 짐을 지게 된다며 걱정해주셨죠. 어둠 쪽 역할을 한 배우들 모두 망설임 없이 동참했어요. 영화를 함께한 모든 동료들이 고맙지만, 악역을 연기한 배우들이 0.1% 정도는 더 고맙죠.” 사명감을 떠나 배우로서 당연히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작품이라고 돌이키기도 했다. “처음엔 자기만의 특이한 이야기를 만드는 감독님인데 다른 성격의 다큐멘터리 같은 작품을 하려하는 지 의아했어요. 완성된 시나리오가 너무 빼어났어요. 대개 광장히 정의로운 주인공을 내세우는 법인데. 이 작품은 안타고니스트를 중심에 놓고 모이는 구조였죠. 또 그 구조 자체가 계란이 깨지고 부딪히고 부딪혀 바위가 무너지는 이야기로 귀결되니까 실화가 아니라고 해도 굉장히 좋았고, 또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니 더욱 더 울림이 있는 것이었죠. 2년 전 작품이 처음 기획됐을 당시만 해도 외부 여건을 신경쓰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감독님과 인연이 있던 저와 하정우, 강동원까지 합류하니 동력이 좀 되겠구나 싶었어요.”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습니다”라는 희대의 발언이 그를 통해 재현된다. 중간에 대사를 한 템포 쉬어가는 연기가 인상적이다. “30년이 지나 반추해봐도 넌센스고 기가 찰 소리죠. 그래서인지 대사할 때 문장이 매끄럽게 연결이 안되는 거에요. 스스로도 말이 안되는 것 같으니 내 말이 맞지 않냐고 기자들에게 동의를 구하는 어색한 톤은 그렇게 나온 것 같습니다.” 이북 출신인 박처장의 가족사가 언급되고 부하를 지키려는 모습 등 다소 인간적으로 비칠 수 있는 대목이 등장하기도 한다. “실제 인물이 가족사를 이야기하고 눈물을 흘리며 회유를 많이 했다고 해요. 그의 이야기가 진짜일지 가짜일지는 모르는 것이지만, 감독님은 진짜처럼 연기해달라고 주문했어요. 부하를 위하는 것처럼 보이는 장면도 저는 권력 싸움 속에서 조직을 무너지지 않게 하려는 행동이었다고 봐요. 양심 선언을 하겠다는 부하에게 가족을 들먹이며 회유하고 나와서는 복도를 걷는 장면에서 감독님은 무너져 내리는 것을 억지로 붙들고 있는 것처럼 연기해달라고 했어요. 신기루처럼 권력을 쫓다가 버림을 받아가는 인상적인 장면이었다고 봅니다.”그는 박 열사의 고교 2년 후배이기도 하다. “학교 때는 박 열사를 몰랐어요. 3학년 교실은 후배들이 올라가지 못하는 무서운 층이었거든요. 열사가 돌아가시고 나서야 소식이 퍼지며 동문이라는 걸 알게 됐죠. 이제와서 동문이라는 이유로 사명감이나 책임감을 운운하는 건 시건방진 이야기 같아요. 다만 영화를 만들기로 했을 때 정말 최선을 다해 완성도를 높여야 한다는 부담감은 있었어요. 역사의 유족 분들은 물론, 그 시대를 직접 겪은 분들이 너무나 많으니까요.” 김윤석은 무엇보다 영화가 유족들에게 합격점을 받아 다행이라고 했다. “30년을 버텨온 단단한 분들이에요. 잘 봤다고 고맙다고 하시더라고요. 영화가 완성될 때까지 유족분들과 박종철기념사업회, 이한열기념사업회로부터 아낌 없는 지원을 받았어요. 박 열사를 연기한 (여)진구가 영정 속에서 쓰고 있는 안경이 실제 박 열사의 안경이에요. 엔딩에 나오는 ‘그날이 오면’은 이한열합창단이 불러줬지요.” 김윤석은 ‘1987’이 한국의 ‘레미제라블’ 같은 영화라고 힘주어 말했다. “제작기 영상을 보면 시청광장 군중 신을 찍기 전에 감독님이 보조 출연자 분들을 모아 놓고 이런 이야기를 해요. ‘여러분, 제가 이 영화를 만든 이유가 바로 이 장면 때문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주인공이라 생각하며 연기해주세요’라고요. 저도 그 장면에서 똑같은 느낌을 받았어요. 저는 다른 작품 촬영 때문에 가지 못했지만 악역을 연기했던 몇 몇 배우들은 얼굴을 가리고 그 장면에 참여하기도 했어요. 거기에 구호를 외치는 여성 목소리가 나오잖아요. 바로 (감독의 부인인) 문소리씨에요. 구호와 손짓하는 연기(웃음). 이 영화를 통해 우리 모두가 희망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핵’공감할까…神 통할까…史 퍼즐 맞출까

    ‘핵’공감할까…神 통할까…史 퍼즐 맞출까

    제작비 100억원 이상을 쏟아부은 대작들이 올해 마지막 출사표를 던진다. 14일 양우석 감독의 ‘강철비’를 시작으로 20일 김용화 감독의 ‘신과 함께’, 27일 장준환 감독의 ‘1987’이 개봉한다. 세 편의 제작비를 합치면 500억원에 달한다. 손익분기점이 관객 500만명을 오르내릴 정도다. 세 편 모두 주인공 외에도 조연과 카메오까지 초호화 캐스팅을 자랑한다. 세 편을 모두 보면 웬만한 한국 배우들을 모두 볼 수 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지난여름 ‘택시운전사’에 이어 올해 두 번째 천만 영화가 나올지 관심이다.■강철비 ‘강철비’는 잘 알려진 대로 한반도 핵전쟁 시나리오를 스크린으로 옮긴 작품이다. 톰 클랜시의 밀리터리 스릴러 소설과 이를 영화화한 ‘붉은 시월’, ‘패트리어트 게임’, ‘긴급 명령’ 등 잭 라이언 시리즈를 좋아하는 영화 팬이라면 이번 겨울 최상의 선택지가 될 것으로 보인다. ●南北 두 철우의 감칠맛 나는 케미 핵 전면전이라는 일촉즉발 상황의 이면에서 이를 막으려는 두 남자, 북의 엄철우(정우성)와 남의 곽철우(곽도원)를 축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남쪽은 대통령 선거 직후 정권 이양을 앞둔 크리스마스 즈음. 남으로 침투한 북한군은 미군의 다연장 로켓 탄두를 탈취해 국제 행사가 열리는 개성공단을 향해 발사한다. 북한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킨 것. 쿠데타 세력을 제거하라는 은밀한 임무를 부여받고 개성공단을 찾았던 전직 특수부대 요원 엄철우는 큰 부상을 당한 ‘북한 1호’를 구출해, 남으로 긴급 피난하는 중국 관료와 기업인 행렬에 몸을 숨긴다. 쿠데타 세력은 북한 1호의 행방을 쫓으며 세계를 상대로 선전포고를 하고, 엄철우는 청와대 외교안보수석 곽철우와 운명적으로 공조하게 된다. ●서로를 향한 가감 없는 시선 전달 정우성이 액션 장면의 중심이기는 하지만 원맨쇼를 벌이지 않는다는 점이 작품에 현실감을 부여한다. 북과 남의 이질감에서 비롯되는 코미디는 정우성과 곽도원이 일궈내는 케미가 또 다른 감칠맛을 관객에게 선사하다. 군사적 전문 용어와 지식이 등장하기는 하는데 감상을 방해할 정도는 아니다. ●주변국 행보까지 생각할거리 가득 ‘강철비’를 전형적인 오락물로만 즐길 수 없는 것은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북한의 도발이 현재진행형인 상황에서 영화는 이 땅에서 벌어질 수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시뮬레이션한다. 장르 문법에 충실하게 이야기를 진행하는 사이사이 전쟁 위기에도 무덤덤한 남한 사회의 분위기를 우회적으로 꼬집거나 북한을 바라보는 남쪽의 두 가지 시선을 가감 없이 전달한다. 북을 섬멸해야 할 대상으로 보는 입장과 독일 통일의 초석을 놓은 빌리 브란트의 말처럼 원래 하나였기 때문에 다시 하나가 되어야 하는 대상으로 바라보는 입장이 충돌하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전쟁의 초침이 긴박하게 째깍거리는 순간 우방, 혈맹을 자처하던 미국을 비롯해 일본, 중국 등이 저마다 계산기를 두드리는 모습 등 곱씹어볼 대목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전작 ‘변호인’으로 데뷔작에서 천만 감독으로 등극한 양우석 감독은 “지난 역사와 각종 기밀문서, 자료, 전문가 의견을 통해 객관적이고 개연성이 높은 시나리오를 그리려 했다”고 말했다. 15세 관람가.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신과 함께 20일 개봉하는 영화 ‘신과 함께: 죄와 벌’은 원작의 만화적 상상력이 스크린에 안정적으로 안착된 한국형 판타지 블록버스터다. 총제작비 400억원(1·2편 합산)이 투입됐다. ●전통신화 세계관 등 원작과 차별화 영화는 원작과는 꽤 거리가 있다. 주호민 작가의 웹툰이 그리고 있는 한국 전통 신화의 세계관을 차용하면서도 주요 캐릭터들이 영화적 시점으로 변주되고 재창조됐다. 원작에서 과로사로 숨진 회사원 김자홍(차태현)은 아이를 구하다 사망하는 살인성인의 소방관으로 바뀐다. 원귀인 유성연 병장은 자홍의 동생 수홍(김동욱)으로 등장해,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중심축은 자홍의 가족사가 된다. 액션 판타지에 머물지 않고 공감도를 높일 수 있는 가족이라는 드라마적 요소를 강력하게 결합한 건 전 세대로 관객층을 확대하고 싶은 야심으로 보인다. 원작에 없는 ‘귀인’이라는 영화적 장치를 만들고, 세 명의 저승차사(하정우·주지훈·김향기)의 활동 무대를 캐릭터의 변화에 맞춰 저승과 이승으로 확장한다. ●권선징악·가족애 과도한 신파 우려도 러닝타임 139분 내내 스크린에 펼쳐지는 살인, 나태, 거짓, 불의, 배신, 폭력, 천륜 지옥까지 칠지옥을 구현하는 시각적 특수효과(VFX)와 컴퓨터그래픽(CG)의 완성도는 합격점을 줄 만하다. 화면 질감도 뛰어나고, CG가 몰입감을 방해하지 않는다. 각 지옥마다 세련되고 차별화된 비주얼을 구사하고 있는 데다 칼이 숲을 이루고 있는 검수림이나 수직낙하 액션 장면, 지옥 괴물들과의 전투 장면 등은 역동적이고 스펙터클한 영상미를 과시한다. 나름 ‘지옥 모험물’이라는 한국형 어드벤처 장르에 기대 이상으로 충실하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흠이라면 권선징악적인 주제 의식과 가족애가 감정 과잉으로 치달으면서 빚는 과도한 ‘신파’가 아닐까. 켜켜이 쌓인 자홍의 이야기는 후반부에 다 털어진다. 특히 막판 20~30분은 소시오패스(반사회적 인격장애)가 아닌 이상 눈물을 참기 어려운 최루성 장면들이 파노라마처럼 이어진다. ●쟁쟁한 배우들 카메오 출연도 볼만해 출연 배우로 보면 한국 영화의 잔치판이다. 특별 출연이라고 하기엔 비중이 큰 염라대왕 역의 이정재부터 코믹 조합인 두 판관 역을 맡은 오달수, 임원희 등 조연뿐 아니라 김해숙, 이경영, 김하늘, 김민종, 유준상, 장광, 마동석 등 쟁쟁한 배우들이 카메오로 힘을 보탰다. 전작 ‘미스터 고’(2013) 이후 절치부심해 온 김용화 감독의 한국형 판타지 도전이 관객들에게 어떤 평가를 받게 될지 관심이 모아진다. 아울러 천만 영화를 단 한 편도 내지 못한 롯데엔터테인먼트가 이 작품으로 숙원을 해소할지 기대된다. 12세 관람가.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1987 오는 27일 개봉하는 ‘1987’은 이 겨울에 야외 상영을 해도 관객들로 하여금 전혀 추위를 느끼지 못하게 만들 영화다. 그만큼 관람 내내 가슴속에서 뜨거운 그 무엇인가가 꿈틀거린다. 영화의 제목처럼 한 사람, 한 사람의 선택과 용기가 모여 우리 현대사의 물줄기를 바꾼 1987년, 그해를 조명한다. 1월 14일 박종철 열사의 죽음으로부터 대통령 직선제를 이끌어내는 6월 항쟁까지다. ●박종철 열사부터 6월항쟁까지 ‘1987’은 웃음과 반전, 향수와 서스펜스 등 상업적인 요소를 적극 활용하면서도 진정성을 끝까지 견지해 나가는 보기 드문 작품이다. ‘책상을 탁 치니 억하고 죽었다’는 황당한 기자회견이 상징하는 은폐와 조작, 꼬리 자르기의 중심에 대공수사처 박처장(김윤석)이 서서 영화를 관통한다. 이에 맞서 최검사(하정우), 윤기자(이희준), 교도관 한병용(유해진), 이부영(김의성), 대학 신입생 연희(김태리), 재야인사 김정남(설경구) 등이 차례차례 바통을 이어 가는 과정에서 진실의 퍼즐 조각이 하나둘씩 꿰맞춰지고, 결국 거대한 물줄기로 이어지게 된다. ●그 시절 노래, 건물 등 고스란히 자칫 캐릭터별로 파편화할 수 있는 이야기는 주요 등장인물 중 유일한 허구 캐릭터인 연희의 투입으로 짜임새를 갖춘다. “데모한다고 세상이 바뀌냐”고 말하던 연희는 관객을 1987년의 한복판으로 이끌어 심리적인 간격을 좁히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연희가 마이마이 카세트로 즐겨 듣는 노래가 ‘보일듯 말듯 가물거리는 안개 속에 쌓인 길’이라는 노랫말로 시작하는 유재하의 ‘가리워진 길’이며, 연희가 거리를 내달려 올라간 버스 위에서 시청광장의 거대한 함성과 마주하는 엔딩 장면을 장식하는 노래가 민중가요 ‘그날이 오면’이라는 점도 의미심장하다. 악명 높았던 남영동 대공분실과 백골단이 활개치던 시위 현장, 불심검문이 판을 치던 그 시절의 종로 거리와 명동거리, 유네스코 빌딩 코리아 극장, 연세대 정문 앞, 그리고 인기 운동화였던 타이거까지 1987년을 고스란히 만날 수 있는 것도 ‘1987’을 보는 즐거움이다. ●30년 넘어 지난해 촛불 떠올려 영화는 과거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관객들에게는 30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지난겨울 광화문 광장과 겹쳐지는 느낌이다. ‘화이: 괴물을 삼킨 아이’ 이후 4년 만에 복귀한 장준환 감독은 “두려움 속에서도 온기와 양심을 저버릴 수 없어 한마디라도 내뱉어야 했던 우리 모두가 주인공이었던 그해를 담고 싶었다”며 “지난해 겨울 우리가 촛불을 들고 나올 수 있었던 것도 1987년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15세 관람가.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영화 1987’ 김윤석 “박종철 열사, 실제 고교 선배..인물 고증에 최선 다했다”

    ‘영화 1987’ 김윤석 “박종철 열사, 실제 고교 선배..인물 고증에 최선 다했다”

    ‘영화 1987’ 김윤석이 박종철 열사가 자신의 고교 선배임을 언급해 눈길을 끌었다.13일 오후 서울 용산구 CGV 용산에서는 영화 ‘1987’(감독 장준환)의 언론배급시사회 및 기자간담회가 진행됐다. 이날 현장에 참석한 김윤석은 자신이 맡은 ‘박처장’ 역할에 대해 “굉장히 갈등을 많이 했다. ‘탁 치니까 억’이라는 대사를 내가 치게 될 줄이야. 상상도 못했다”고 말문을 열었다. 오는 27일 개봉하는 영화 ‘1987’은 ‘6월 항쟁’을 배경으로 한 실화 영화다. 1987년 1월 경찰 조사를 받던 22살 대학생 박종철이 사망한 후 그의 죽음을 둘러싼 진실을 밝히기 위해 애썼던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주된 내용이다. 김윤석이 박종철 고문사건 은폐를 지시하는 대공수사처 박처장 역을, 하정우는 故박종철의 화장 동의를 거부하고 부검을 밀어붙이는 서울지검 최검사 역을, 유해진은 사건의 진실을 담은 옥중서신을 전달하는 교도관 한병용 역을 맡았다. 김윤석은 “‘탁 치니까 억’이라는 말을 일간지 신문의 헤드라인으로 도배되는 것을 본 세대다. 정말 이것을 가지고 이런 일이 있다는 것에 대해 30년 뒤에 내가 이 말을 하게 될 줄 생각도 못했다”며 역할을 맡게 된 소감을 전했다. 또한 “박종철 열사가 고등학교 2회 선배다. 이 배역을 누군가 해야 영화가 만들어지고, 기왕 할 거 최선을 다해서 그 시대 고증, 인물 고증에 최선을 다해보자 해서 맡게 됐다”고 덧붙였다. 사진=뉴스1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분권광장] 지방분권, 새로운 대한민국으로 가는 길/안희정 충청남도지사

    [분권광장] 지방분권, 새로운 대한민국으로 가는 길/안희정 충청남도지사

    헌법은 한 시대의 역량과 국민 지혜의 산물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1987년 헌법 이후 축적된 대한민국의 역량과 민주주의 발전에 걸맞은 새로운 헌법을 요구하고 있다. 촛불광장에서 국민은 적폐청산과 함께 더 좋은 민주주의가 실현되는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라고 명령했다. 나는 자치분권 개헌이야말로 국민의 명령에 따라 민주주의를 한 단계 발전시킬 정도(正道)라고 생각한다. 지방자치에 이르는 길은 멀고도 험했다. 5·16 쿠데타 세력과 신군부는 지방자치를 마치 국론 분열의 주범처럼 몰아붙여 폐지해 버렸다. 작은 마을까지 선거로 날이 새는 것은 혼란만 불러올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중앙정부가 강력한 리더십으로 나라를 이끌어야 한다는 논리였다. 87년 6월 항쟁의 결과로 국회는 1989년 지방자치법 개정안을 통과시켰지만 노태우 정부는 이를 거부했고 1990년 3당 합당 뒤 지방자치법은 무력화됐다. 당시 김대중 총재는 목숨을 건 단식으로 지방자치를 관철시켰고 결국 1991년 지방의회, 1995년 지방자치단체장 선거가 이뤄졌다. 민주주의 지도자들은 줄곧 지방자치를 강조해 왔다. 목숨을 걸고 지방자치를 지켰던 김대중 전 대통령과 균형발전과 자치분권을 주제로 국정을 운영한 노무현 전 대통령, 그리고 연방제 수준의 분권국가로 가자고 선언한 문재인 대통령까지…. 이들에게는 지방분권이 주권재민(主權在民)의 나라를 만드는 첩경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2015년 메르스 사태가 전 국민을 공포에 몰아넣었다. 이때 서울과 경기 그리고 충남 지방정부는 현장에서 효과적으로 대응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사태 초기 중앙정부의 대응이 부실해 환자가 급증하자 자치단체장들은 사태를 직접 수습하겠다고 선언했다. 지역에서 발생하는 환자들에 대한 확진 판결을 내렸고 신속하게 격리·치료 조치를 취했다. 지방자치단체장들은 자신을 선출한 주민들의 생명과 건강을 보호하고자 과감하게 결단을 내리고 상황을 수습했다. 과거 관선 단체장이라면 어려웠을 일이다. 현장에 답이 있다. 큰 기준이 정해져 있으면 그 기준에 따라 법령을 해석하고, 신속하게 현장에서 일하면 된다. 메르스 사태는 중앙의 지침을 기다리며 허송세월을 보내는 것보다는 지자체가 현장 지휘력을 발휘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라는 것을 보여 준 대표적 사례다. 지방분권이 제대로 돼 있어야 책임도 따져 물을 수 있다. 메르스처럼 큰 사건 이외에도 주민들은 지방정부에 소방도로 개설 문제와 쓰레기차 운행 문제, 등하교 안전 등 우리 생활 속 문제들을 해결해 달라고 요구할 수 있다. 반면 중앙정부는 생활의 문제와는 거리가 멀다. 동네에 쓰레기가 쌓여 있다고 해서 청와대에 찾아갈 수는 없는 것 아닌가. 하지만 단체장이 이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주민들이 달려가 항의할 수도, 선거를 통해 책임을 물을 수도 있다. 과거 민주화 투쟁을 통해 우리는 독재를 종식시켰다. 언론·집회·결사의 자유가 보장되고 각자의 기본권이 적극적으로 보장되는 나라를 만들었다. 심지어 국민이 직접 나서서 평화적 방법으로 대통령을 끌어내리기도 했다. 지금까지 민주화의 1단계 과제를 성공적으로 실천했다면 지방분권은 그다음 단계인 주권재민의 원칙을 제대로 실천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내년 6월 지방선거에 맞춰 헌법에 새로운 대한민국의 핵심 원칙으로 지방 분권을 새겨 넣자.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와 번영을 이끄는 나침반이 돼 줄 것이다.
  • 피하고 싶은 대작… 피 말리는 두 남자

    피하고 싶은 대작… 피 말리는 두 남자

    연말 극장전(劇場戰)이 후끈하다. 완성도를 떠나 대진운도 어느 정도 흥행을 좌우하기 때문에 개봉일을 놓고 막판까지 눈치싸움이 치열하게 펼쳐지곤 한다. 올해는 ‘신과 함께’가 넉 달이나 앞서 개봉일을 정하는 파격을 선보였다. ‘강철비’는 처음엔 ‘신과 함께’와 같은 날로 가닥을 잡았다가 일주일 앞당기며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와의 정면 대결을 택했다. 100억원 이상 투입된 한국 대작들의 대결 구도는 ‘정우성 대 하정우 대 하정우’, 또는 ‘웹툰 원작 대 웹툰 원작 대 현대사’로 요약된다.●정우성, 한반도 핵전쟁 다룬 강철비서 北요원 한반도 핵전쟁 시나리오를 정면으로 다룬 군사첩보 액션물 ‘강철비’는 오는 14일 개봉작. 연이은 북한의 도발로 한반도 긴장이 고조된 상황이라 비상한 관심을 받고 있는 작품이다. 북한에 쿠데타가 발생하고 이 과정에서 큰 부상을 당한 북한의 권력 서열 1호가 남한으로 몰래 피신한다. 북의 쿠데타 세력은 전 세계를 상대로 선전포고하고 남한엔 계엄령이 선포된다. 이러한 일촉즉발 상황에서 핵전쟁을 막으려는 남과 북의 사투를 그렸다. 정우성이 권력 서열 1호를 지키는 북한 최정예 요원 엄철우를, 곽도원이 전쟁을 막으려는 청와대 외교안보수석 곽철우를 연기한다. 데뷔작 ‘변호인’으로 천만 관객을 기록한 양우석 감독이 4년 만에 내놓는 신작이다. 2011년 양 감독이 스토리를 쓰고, 제피가루 작가가 그린 웹툰 ‘스틸레인’이 원작이다.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망했다는 가정이 연재 도중 현실화되며 화제가 집중됐던 웹툰이다. 영화는 현재 시점에 맞게 각색됐다. 양 감독은 “한반도에서 벌어질 수 있는 일들 중 가장 위험한 상황을 대입해 남북 관계를 좀 더 냉철하게 바라봐야 한다는 생각에서 영화를 만들었다”며 “문제 해결에 상상력을 보태는 작품”이라고 말했다.●하정우, 웹툰 원작 ‘신과 함께’서 저승사자로 ‘신과 함께-죄와 벌’은 오는 20일 스크린에 걸린다. 저승에 온 망자가 사후 49일 동안 저승차사들의 안내를 받으며 7개의 지옥을 거쳐 재판을 받는 과정을 그린 주호민 작가의 인기 웹툰이 원작이다. ‘국가대표’, ‘미스터 고’의 김용화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단행본 8권 분량이 2부작의 영화로 만들어졌고, 제작 효율성을 위해 두 편을 동시에 촬영해 순차 개봉한다. 국내에서는 처음 있는 시도다. 지옥 세계를 실감 나게 구현하기 위해 준비 기간 5년에 촬영 기간 11개월, 총제작비 400억원에 연인원 1000여명이 참여했다. 19년 만에 지옥에 온 의로운 망자 자홍은 차태현이, 저승 삼차사 강림, 해원맥, 덕춘은 각각 하정우, 주지훈, 김향기가, 염라대왕은 이정재가 연기하는 등 화려한 캐스팅을 뽐낸다. 이미 뮤지컬로도 인기를 끈 작품이어서 영화화 결과가 주목된다. 김 감독은 “불, 물, 철, 얼음, 거울, 중력, 모래 등의 이미지를 차용하거나 재해석하는 등 관객들이 최대한 자연스럽게 지옥 세계를 체험할 수 있게 했다”고 설명했다.●하정우 ‘1987’도 주연… 김윤석과 재회 27일 스크린에 걸리는 ‘1987’은 우리 현대사의 물줄기를 바꾼 격동의 시기를 담았다.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는 황당한 해명으로 온 국민의 분노를 자아낸 1987년 1월 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에서부터 독재 청산의 발판을 마련한 같은 해 6월 항쟁까지를 비춘다. 증거를 인멸해 사건을 덮으려는 경찰 대공수사처 박 처장(김윤석), 시신 화장을 거부하며 진실을 지키려는 서울지검 공안부장 최 검사(하정우), 스물두 살 청년의 죽음에 숨겨진 진실을 찾으려는 윤 기자(이희준), 사건의 책임을 지고 구속된 대공수사처 조 반장(박희순), 그를 통해 진상을 알게 된 교도관 한병용(유해진), 한병용의 조카로, 재야 인사에게 진실을 전하려는 대학 새내기 연희(김태리)의 이야기가 시대의 변화를 이끄는 거대한 물결로 모인다. 박종철 열사 31주기를 3주 앞두고 개봉해 그 의미를 더한다. 하정우와 김윤석이 ‘추격자’, ‘황해’에 이어 세 번째 연기 대결을 펼치는 것을 비롯해 여진구가 박종철 역으로 특별출연하고 설경구, 오달수, 김의성, 문성근이 카메오로 나서는 등 출연진 면면이 화려하다. ‘1987’ 제작 소식이 전해지자 출연을 자처하는 배우들이 줄을 이었다는 후문. ‘지구를 지켜라’, ‘화이: 괴물을 삼킨 아이’를 만든 장준환 감독이 연출했다. 장 감독은 “온 국민이 주인공이 되는, 나라의 주인이 누구인지 보여주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할리우드 대작도 당연히 있다. 만년 흥행 기대작인 SF 판타지 ‘스타워즈’ 시리즈의 8번째 이야기 ‘라스트 제다이’가 14일 개봉한다. 스타워즈 시리즈는 머나먼 우주를 배경으로 선과 악, 빛과 어둠의 대결을 그린다. 한국은 개봉할 때마다 전 세계적으로 흥행 광풍을 몰아치는 스타워즈 시리즈가 유독 약한 모습을 보이는 몇 안 되는 나라 중 하나다. 새로운 3부작의 시작을 알린 ‘깨어난 포스’(2015)가 세운 327만 명이 한국에서의 최고 성적. 데이지 리들리, 존 보예가 등 신세대들과 오리지널 3부작 주역들이 교차하고 있는데 중장년층에게는 추억인 루크 스카이워커(마크 해밀)가 ‘라스트 제다이’에서 본격적으로 얼굴을 비친다. 레아 공주를 연기한 캐리 피셔의 유작이기도 하다. ●휴 잭맨 ‘위대한 쇼맨’으로 뮤지컬 재도전 20일 개봉하는 ‘위대한 쇼맨’도 기대작이다. 591만명을 동원하며 뮤지컬 영화로는 국내 최고 흥행기록을 세운 ‘레미제라블’에서 장발장으로 열연했던 휴 잭맨이 5년 만에 다시 뮤지컬 영화에 도전한다. 미국 쇼 비즈니스계의 전설적인 인물인 P T 바넘(1810~1891)이 서커스를 현대적인 개념의 엔터테인먼트로 발전시키며 지상 최대 쇼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그린다. 화려하고 역동적인 군무와 노래가 벌써부터 입길에 오르내리고 있다. 최근 ‘라라랜드’, ‘미녀와 야수’ 등 뮤지컬 영화가 흥행하며 국내 관객들에게도 친숙한 장르가 됐다는 점이 고무적이다.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박종철은 살아있다!…남영동 박종철 기념관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박종철은 살아있다!…남영동 박종철 기념관

    “지금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묻고 계십니다. 너희 젊은이, 너희 국민의 한 사람인 박종철은 어디 있느냐? ‘그것은 고문 경찰관 두 사람이 한 일이니 모르는 일입니다’하면서 잡아떼고 있습니다. 바로 카인의 대답입니다.” (1987년 1월 26일, 김수환 추기경의 강론 중) 박종철 열사(1965~1987)는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언어학과 3학년에 재학 중이던 1987년 1월 14일 새벽 하숙집에서 치안본부 대공분실 수사관 6명에게 참고인 신분으로 연행된다. 이후 그는 1987년 1월 14일 치안본부 대공수사단 남영동 분실 509호 조사실에서 가로 123㎝, 세로 74㎝, 높이 57㎝의 욕조에서 물고문에 의해 목숨을 잃는다. 참고인 신분이라는 법적 지위는 그를 지켜내지 못했다. 헌법 위의 권력이었다. 부패한 독재 권력이 자행한 고문, 축소, 은폐, 조작이 모두 담겨있는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은 80년대 부조리의 종합판이자 닫힌 시대가 결국은 열리게 되는 민주주의의 신호탄이 된다. 남영동에 위치한 경찰청 인권센터 내의 박종철 기념관으로 가 보자. 서울 한복판에 위치한 남영동 대공분실은 그냥 우리 이웃에 있는 잘 지은 건물처럼 보인다. 남영역에서 내려 출구 오른편으로 50m 정도 걸은 후에 첫 번째 골목에서 다시 오른편 골목길로 100m정도 들어가면 현재 경찰청 인권센터로 사용되는 남영동 대공분실 건물이 있다. 이 건물은 1976년 유신 시대의 대표적인 상징으로 국민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역할, 나아가 독재 권력에 저항하는 민주인사나 학생을 연행하여 고문을 자행하던 곳이었다. 원래 건축가 김수근이 5층으로 만들었다가, 1983년에 2개 층이 증축되어 지금은 7층으로 남아 있다. 건물 자체는 오직 대공분실 기능에 집중하도록 만들었는 데, 우선 고문이 자행되던 5층 창문의 크기가 비정상으로 작고 길다. 이는 투신을 방지하는 목적도 있지만, 내부에서 외부로의 소통을 철저히 단절시킨다. 또한 연행자를 끌고 올라가던 나선형 계단은 철제로 만들어져 공포를 극대화시키면서도 방향 감각을 무력화시키는 역할을 하였다. 또한 고문이 자행되던 5층의 경우는 방이 모두 16개가 있는 데, 특이하게도 모든 문이 서로 지그재그로 열리게 설계되어 있다. 이는 연행자들이 서로 소통을 하지 못하도록 만든 것으로 박종철은 9번 방이라고 불린 509호에서 물고문으로 스러져갔다. 현재 방문객들을 위해 509호는 내부를 공개중이다. 514호와 515호는 주로 전기고문이 행해진 곳으로 연행자들의 비명소리는 늘상 5층 복도를 가득 메웠다. 남영동 대공분실 건물. 원래 5층 건물이었으나 나중에 2층을 더 증축하였다. 5층 창문이 비정상적일만큼 좁고 길다.6> 현재 4층에 박종철 기념관이 있다. 이 곳에는 박종철의 유품 뿐만 아니라 1980년대의 시대상황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 각종 사진과 신문자료 등을 전시하고 있다. 또한 80년 ‘서울의 봄’에서부터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이 발생하기까지의 전 과정이 펼쳐져 있어 관람객들이 당시의 상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박종철 기념관에 대한 여행 10문답> 1. 꼭 가봐야 할 정도로 중요한 여행지야? -꼭 가보길 권한다. 현재 우리가 서 있는 민주주의의 뒤안길이다. 2. 누구와 함께? -역사의식이 싹트기 시작한 젊은이라면, 80년대를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3. 가는 방법은? -1호선 남영역 1번 출구 경찰청 인권센터 내. -서울 용산구 갈월동 98-8 (한강대로71길 37) 4. 놀라는 점은? -5층 복도의 음산한 분위기, 나선형 철제 계단, 좁디좁은 고문실을 위해 만든 창문. 5. 명성과 내실 관계는? -관람객들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 6. 꼭 봐야할 장소는? -4층 전시실, 5층 7. 먹거리 추천? -‘제일어버이순대’(798-0480), 오므라이스 ‘선다래’(715-6963), 삼계탕 ‘강원정’(719-9978), 보쌈 ‘신들래보쌈’(796-6010), 화교 ‘구복만두’(797-8656) / 지역번호 ‘02’ 8. 홈페이지 주소는? -http://870114cheol-a.org/ 9. 주변에 더 볼거리는? -중앙박물관, 숙명여대 박물관, 전쟁기념관 10. 총평 및 당부사항 -1987년 6월 항쟁이 일어나게 된 가장 직접적인 이유이자, 현재 우리가 누리고 있는 민주주의의 뿌리가 되는 역사의 산 현장이다. 글·사진 윤경민 여행전문 프리랜서 기자 vieniame2017@gmail.com
  • 30년째 찾고 있는 딸, 그 날의 기록

    30년째 찾고 있는 딸, 그 날의 기록

    소설 6월10일/김형진 지음/씽크스마트/312쪽/1만 2200원한 노인이 1986년 미국대사관에 일하러 갔다가 실종된 딸을 30여년째 찾고 있다. 민주화운동의 희생자임에도 자신의 딸이 ‘빨갱이 운동’을 하다 사라졌을 리 없다고 믿는 노인의 모습은 지금도 아물지 못한 시대의 상흔을 보여 준다. 제목이 암시하듯 이 책은 6·10 항쟁이 있었던 1987년을 기억하는 이야기다. 표지에 소설이라는 단서를 달았을 뿐 허구적 상상력보다는 투쟁할 수밖에 없었던 시간의 기록이다. 소설 속에서 사라진 김영철, 이정훈, 최지혜는 1980년대 학생운동에 나섰던 수많은 이들의 이름을 대신할 뿐이다. 신융아 기자 yashin@seoul.co.kr
  • “YS, 역사 바로세우기로 군사독재 청산”

    “YS, 역사 바로세우기로 군사독재 청산”

    “한국, 미래로 나가게 하는 힘은 통합·화합이란 걸 잊지 않겠다” MB·朴정부 적폐청산 계속 시사 문재인 대통령은 22일 김영삼 전 대통령 2주기 추도식에서 “대한민국을 새로운 미래로 나아가게 하는 힘은 국민의 화합과 통합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겠다”고 밝혔다.그러면서도 민주화의 노정에서 김영삼 정부 시절 이뤄진 ‘역사 바로 세우기’의 의미를 높게 평가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누적된 ‘적폐청산’ 작업에 대한 야권의 반발이 거세지는 가운데 뒤틀린 역사를 바로잡는 과정은 불가피하며, 이는 정치보복이 아닌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통합과 화합의 밑거름이란 점을 강조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김 전 대통령의 2주기 추도식에서 “문민정부가 연 민주주의의 지평 속에서 대통령님이 남기신 ‘통합’과 ‘화합’이라는 마지막 유훈을 되새긴다”며 이렇게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오늘 우리는 민주주의 역사에 우뚝 솟은 거대한 산 아래에 함께 모였다”고 입을 뗐다. 이어 “문민정부가 민주주의 역사에 남긴 가치와 의미는 결코 폄하되거나 축소될 수 없다”며 “우리가 자랑스러워하는 4·19혁명, 부마민주항쟁, 광주민주항쟁, 6월항쟁이 역사에서 제자리를 찾았던 때가 바로 문민정부”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취임 후 3개월이 채 지나지 않은 5월 13일 담화문에서 ‘문민정부의 출범과 그 개혁은 ‘광주민주화운동의 역사적 의미를 실현해 나가는 과정’이라고 했다. 이 땅의 민주주의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신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법과 정의에 기초한 역사 바로 세우기를 통해 군사독재시대에 대한 역사적 청산이 이뤄졌고, 군의 사조직을 척결하고, 광주 학살의 책임자를 법정에 세웠다”면서 “금융실명제와 부동산실명제는 경제정의의 출발이었다”고 평가했다. 아울러 “신속했던 개혁의 원동력은 민주화와 함께 커진 국민의 역량과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믿음이었다”며 “문민시대는 민주주의를 상식으로 여기는 세대를 길러냈고, 권력의 부당한 강요와 명령에 맞서고 정의롭지 못한 정치를 거부하는 깨어 있는 시민이 늘어났다. 문민정부 이후 더 나은 민주주의를 생각할 수 있게 됐다”고 언급했다. 문 대통령은 추도식에 앞서 김 전 대통령 묘역에 헌화·분향했다. 추도식에는 김덕룡 김영삼민주센터 이사장,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유승민 바른정당 대표, 이정미 정의당 대표, 김 전 대통령의 차남 현철씨, 김대중 전 대통령의 삼남 홍걸씨 등이 참석했다. 자유한국당에서는 베트남을 방문 중인 홍준표 대표 대신 정우택 원내대표가 참석했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문 대통령, 고 김영삼 전 대통령 추도식 참석…“통합과 화합 되새겨”

    문 대통령, 고 김영삼 전 대통령 추도식 참석…“통합과 화합 되새겨”

    문재인 대통령이 22일 서울 국립현충원에서 열린 고 김영삼 전 대통령 2주기 추도식에 참석했다. 문 대통령은 추도식에서 “문민정부가 연 민주주의의 지평 속에서 김 전 대통령이 남긴 통합과 화합이라는 마지막 유훈을 되새긴다”고 말했다.최근 자유한국당이 보수우파 진영의 정체성을 계승하겠다면서 고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 사진과 함께 김 전 대통령의 사진을 당사에 나란히 걸었다. 독재정부를 수립했던 이·박 전 대통령과 문민정부를 세운 김 전 대통령을 같은 선상에 세울 수 있는지에 대한 논란이 제기되는 상황에서 문 대통령은 추도사를 통해 “이 땅의 민주주의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했다”면서 김 전 대통령의 여러 업적들을 언급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서울 동작구 국립현충원에서 열린 김 전 대통령 추도식에 참석해 추도사를 통해 “오늘 우리는 민주주의 역사에 우뚝 솟은 거대한 산 아래에 함께 모였다”면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독재와 불의에 맞서 민주주의의 길을 열어온 정치지도자들이 많이 계시지만 김영삼이라는 이름은 그 가운데서도 높이 솟아 빛나고 있다. 김 대통령과 함께 민주화의 고난을 헤쳐오신 손명순 여사와 유족들께 깊은 존경과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문 대통령은 “김영삼 대통령은 1950년대에서 1990년대까지 독재 권력과 맞서 온몸으로 민주화의 길을 열었다”면서 “거제도의 젊은 초선의원은 ‘바른 길에는 거칠 것이 없다’는 ‘대도무문’을 가슴에 새겼고, 40여년의 민주화 여정을 거쳐 도달한 곳은 군사독재의 끝, 문민정부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문민정부가 우리 민주주의 역사에 남긴 가치와 의미는 결코 폄하되거나 축소될 수 없다”면서 “우리가 자랑스러워하는 4.19혁명·부마민주항쟁·광주민주항쟁·6월항쟁이 역사에서 제 자리를 찾았던 때가 바로 문민정부”라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또 “김 대통령은 취임 후 3개월이 채 지나지 않은 (1993년) 5월 13일 담화문에서 ‘문민정부의 출범과 그 개혁은 광주민주화운동의 역사적 의미를 실현해 나가는 과정‘이라고 했다. 문민정부를 넘어 이 땅의 민주주의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신 것”이라면서 “법과 정의에 기초한 역사 바로 세우기를 통해 군사독재시대에 대한 역사적 청산이 이뤄졌고, 군의 사조직을 척결하고, 광주학살의 책임자를 법정에 세웠다. 금융실명제와 부동산실명제는 경제정의의 출발이었다”고 덧붙였다. “문민정부가 연 민주주의의 지평 속에서 김 대통령이 남긴 통합과 화합이라는 마지막 유훈을 되새긴다”는 발언에 대해 연합뉴스는 “자신이 호남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민주당 소속으로 ’김대중 정부‘의 유지를 이어 정권을 재창출한 만큼 부산·경남 지역의 민주화 세력을 상징하는 김 전 대통령의 유훈도 받아 안아 민주주의의 장애물인 지역 구도를 타파하겠다는 것”이라고 해석했다.최근 자유한국당은 민주화를 이룬 업적을 이어받겠다면서 김 전 대통령의 사진을 당사에 걸었다. 이런 상황에서 문 대통령이 나서서 김 전 대통령의 민주화 업적을 강조한 것은 현 정권이 민주주의의 정통성을 잇겠다는 뜻과 함께 과거 하나였던 민주 세력을 다시 하나로 묶어내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고 연합뉴스는 덧붙였다. 김 전 대통령과 같은 경남 거제 출신에 경남중·고 후배이기도 한 문 대통령은 실제로 1990년 ‘3당 합당’을 하기 전까지 부산을 기반으로 김 전 대통령과 민주화 운동을 함께한 인연이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서울 구청장 6인의 시국토론] “나라다운 나라 꿈꾼 촛불정신… 정치는 아직도 구태 머물러”

    [서울 구청장 6인의 시국토론] “나라다운 나라 꿈꾼 촛불정신… 정치는 아직도 구태 머물러”

    “숙의 민주주의 과정 긍정적…대통령 리더십 의존은 문제” ‘촛불 혁명’이 일어난 지 1주년,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지 6개월이 됐다. 나라다운 나라를 외쳤던 ‘촛불 정신’은 과연 제대로 구현되고 있을까. 서울신문은 가장 일선에서 국민을 접하는 풀뿌리 지방자치단체장들로부터 민심의 현주소를 들어보고 문재인 정부 6개월을 평가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김영배 성북구청장, 김우영 은평구청장, 이성 구로구청장, 이창우 동작구청장, 정원오 성동구청장, 차성수 금천구청장 등 서울의 6개 자치구 구청장이 특별 좌담에 참여했다. 자치단체장 6명이 한자리에 모여 시국에 대해 토론한 것은 1995년 지방자치가 시작된 이후 처음이다. 좌담은 지난 14일 서울 시내 한 식당에서 김상연 서울신문 사회2부장의 사회로 2시간 동안 진행됐다. 촛불과 문재인 정부 6개월 평가, 적폐 청산, 북핵과 한반도 국제정세 등의 주제로 두 차례에 걸쳐 보도한다.구청장들은 지난해 광화문 광장을 뜨겁게 달궜던 ‘촛불정신’은 국민이 주인인 진정한 의미의 민주주의와 나라다운 나라를 구현해달라는 요구로 정의했다. 부도덕하고 탐욕스러운 기득권층에 대한 분노와 공공성 강화라는 염원이 촛불에 녹아 있다는 분석도 곁들여졌다. 촛불시위 당시 성숙하고 자제력 있는 시민의식을 보여준 국민은 이제 자치의 역량을 의심받지 않는 단계에 이르렀다는 평가도 나왔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이후 6개월간 사회 각 분야에서 민주주의가 회복되고 진전되는 효과가 나타났다는 평가가 많았다. 반면 정치 분야에서는 여전히 촛불민심을 따라가지 못하고 구태에 머물러 있다는 비판도 내놨다. 문재인 정부의 국정수행에 대해서는 숙의·참여 민주주의를 통한 갈등 해결 사례 등 긍정적 평가가 많았지만 너무 대통령 한 사람의 리더십에만 의존하는 것은 문제라는 쓴소리도 제기했다.→광화문광장에서 촛불을 밝힌 지 1년이 됐고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지 6개월이 됐다. 당시의 촛불민심이 정치권에서 제대로 구현되고 있다고 보나.-이성: 국민들이 광화문광장에서 가장 많이 불렀던 노랫말이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였다. 이를 토대로 촛불민심을 총체적으로 요약한다면 민주주의에 대한 갈망이라고 생각한다. 그동안 지극히 민주주의적이지 않았던 사례, 요즘 말하는 적폐들에 대한 분노와 법률주의에 대한 갈망이 있었다고 본다. 그런 점에서 전방위적으로 민주주의를 회복해 가는 과정에서는 상당히 많은 진전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다만 정치권을 보면 ‘아직도’라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이창우: 1년 전 광화문에서 온 국민이 요구했던 목소리는 딱 하나였던 것 같다. ‘이게 나라냐’다. 우리는 나라다운 나라의 주인이자 국민이고 싶다는 주권의식이 바로 촛불민심이다. 국민의 힘으로, 가장 민주적인 방식으로 국가권력까지 교체하는 힘을 보여줬는데 국회에서는 여전히 권력 투쟁을 일삼고 있다. 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 청문 결과 보고서와 관련해 야당에서 장관을 임명하면 예산안이 순탄치 않을 것이라고 했는데, 이 자체가 국민들에게 국회는 과거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장관 후보자 검증과 예산안 처리는 별도 사안이다. 국회에서 사안마다 타당성 조사를 거쳐 확정하는데, 장관과 예산안이 무슨 연관이 있나.-김영배: 삶의 문제가 나아지지 않는 문제에 대해서는 여전히 사람들이 고민이 있는 것 같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10년이 지나는 과정에서 자기 삶이 더 피폐해지는 현실에 절망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점에서는 새 정부가 그만큼 기대도 받고 있고 무거운 짐도 지고 있다. 최근 한 행사에서 제주 올레 서명숙 이사장을 만났다. 올레길이 10년이 됐다고 하더라. 외환위기 10년 후인 2007년 올레가 시작됐고 이후 10년 만에 720만명이 걸었다고 한다. 왜 올레가 그렇게 각광을 받을까. 이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까 우리나라 사람들이 예전에는 ‘빨리빨리’ 속도를 중시했다면 이제는 ‘느림의 미학’을 추구하며 자기 삶에 대해 원천적으로 고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이 뭘까, 어떤 게 행복한 삶일까, 이런 것들을 스스로에게 묻고 답을 찾으려 하는 거다. 이것이 지난해 촛불에 녹아 있는 것 같다. 큰 틀의 방향성에 대해 사람들이 묻고 있다고 생각한다. 정치권은 이제 그런 사람들의 삶과 생활, 인생의 방향, 이런 것에 대해 천착해야 되는데, 아직은 전혀 그렇지 않은 것 같다.-차성수: 광화문광장에서 터져 나온 ‘이게 나라냐’는 말 속에는 박근혜 정권에 대한 불만, 민주주의 복원에 대한 염원 등이 전반적으로 담겨 있는 것 같은데, 나는 ‘공공성 쇠퇴’를 지적하는 의미가 더 크다고 생각한다. 공공영역이라고 하는 것이 외환위기 이후 거의 작동을 하지 않고 있다. 민주정부 시절에는 작동하려고 애는 썼는데 제대로 작동이 되지 않은 상황이었다면 이명박 정부 이후부터는 작동 자체가 아예 되지 않고 있다. 공공성이 완전히 붕괴되면서 각자의 삶이 황폐해진 게 ‘이게 나라냐’는 외침으로 터져 나왔다. 즉, 그 말 속에는 공공성을 복원해 달라는 요구가 들어 있는 것이다. 내 삶을 바꾸는 걸로 공공성을 복원해 달라, 이명박 정부 이후 신자유주의나 시장에 의해 압도당했던, 또는 대기업에 의해 압도당했던 것들을 회복시켜 달라는 게 촛불민심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2010년 민선 5기부터 지방정부에서 공공성 복원을 위해 다양한 사업들을 해오고 있다. 무상급식, 마을공동체 사업, 사회적경제 사업 등을 이끌어 왔다. 문재인 정부도 공공성 복원을 짊어져야 할 가장 큰 짐이라고 여기고 있는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대통령께서 돌봄 문제, 건강 문제, 주거개선 문제 등 삶을 바꾸는 것들을 화두로 제시하고, 국정 100대 과제에 포함시켰다고 본다. 공공성 복원은 나라다운 나라를 만드는 데 꼭 필요한데, 문제는 이것을 구현하는 방법이 교과서처럼 딱 정해져 있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때문에 굉장히 복잡한 사회적 세력과 정치적 세력 간에 협치 등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중앙정부 공무원들과 관료들, 정치인들이 지난 9년 동안 솔직히 공공성 복원 기능을 전부 상실한 상황이기 때문에 공공성을 복원하는 게 더더욱 어렵다. 그런 면에서 문재인 정부에 대한 기대가 굉장히 높고, 현 정부의 책임도 막중하지만 현실적으로 풀어나가기에는 쉽지 않다. -이성: 촛불혁명 당시 광화문에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인 건 박근혜 정부의 실정이 제일 큰 원인이긴 하지만 또 다른 요인도 작용한 것 같다. 바로 오랫동안 쌓였던 분노다. 권력이든 돈이든 가진 자들이 ‘그들만의 리그’를 형성해 그들 중심으로 사회를 바꿔가는 행태, 국민을 개돼지로 아는 관료, 갑질, 양극화 등 여러 분노가 오랫동안 국민들 가슴에 누적돼 있었다. 이런 분노가 우리 사회가 보다 정의롭고 온정적이고 배려하는 공동체로 나아가기를 바라는 갈망으로 표출됐다고 본다.-정원오: 아주 뜻깊게 보고 있는 게 있다. 바로 숙의민주주의 전형을 보여준 신고리 원전 5·6호기에 대한 공론화위원회의 결정 방식이다. ‘숙의’(熟議), 말 그대로 깊이 생각하고 충분한 의논을 통해 결정하는 방식, 즉 숙의가 의사결정 중심이 되는 민주주의를 보게 돼 인상적이었다. 촛불은 연령별, 세대별 등 사회 구성원의 위치에 따라 다양한 정신을 담고 있다. 그중에는 국민을 무시하는, 불통과 아집으로 똘똘 뭉친 정권에 대한 저항 정신도 내포돼 있다. 이것은 참여민주주의에 대한 문제다. 신고리 원전 5·6호기와 관련해 촛불을 지지했던 사람들 중에는 원전 반대가 훨씬 많았다. 하지만 결론은 원전을 계속 짓는 방향으로 났다. 결정 과정에 국민들이 주인이 돼 참여했기에 그 결과에 대해 아무도 저항하지 않고 받아들였다. 이것이 바로 촛불정신이 반영된 결정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87년 6월 항쟁 이후 수많은 노동자들이 끊임없이 ‘참여’에 대한 갈망을, 말 그대로 ‘타는 목마름’으로 분출했지만 그걸 담을 수 있는 제도적 그릇이 없었다. 지금 필요한 건 다른 게 아니다. 촛불정신을 제도적으로 담을 수 있는 그릇을 마련해야 한다. 그 단초는 참여민주주의를 보여준 공론화위원회에서 찾을 수 있다. 공론화위원회는 촛불정신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이 될 수 있다고 본다. 개헌을 통해 국민들이 불만을 갖고 있는 대의제에 대한 보완책을 담아내야 한다.-김우영: 광화문 촛불 당시 전경차를 부수거나 폭력을 행사하려는 사람들을 시민들 스스로 제지했다. 차벽에 붙은 스티커도 직접 다 뜯어내고 의경·전경들까지 자식처럼 포용하는 모습을 보였다. 집단의 지혜를 발휘하며 평화적 시위의 전범을 보여줬다. 위대한 대중만큼 뛰어난 지도자는 없다는 점, 그리고 시민들이 직접 자치의 기술로 나라를 이끌어갈 때가 왔다는 것을 여실히 확인한 게 지난번 촛불이었다고 생각한다. 그 연장선상에서 새 정부가 자치분권 개헌을 중요 국정과제로 제시한 건 아주 바람직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다. 자치의 기술 핵심은 의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여러 변화를 겪어 왔다. 하지만 그 변화 이후 대부분 우리 삶의 문제를 정치 세력에게 위탁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실망이 커지고 기대가 무너지면서 우리 사회는 계속 답보 상태였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상황이 달라졌다. 답보 상태를 벗어날 수 있게 됐다. 이제는 우리가 누구에게 기대거나 의지하지 않고, 마을 단위에서 우리의 삶의 문제를 직접 토론하고 결정하면 정부는 그 결정 내용에 대해 지원해 주는 진정한 의미의 마을자치, 분권시대로의 진입을 목전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여야 간 협상, 사회 대타협을 통해 개헌을 이끌어내 자치의 기술에 기반을 둔 마을민주주의가 제대로 뿌리내렸으면 한다. →문재인 정부 6개월을 평가해 달라. 대통령에게 직언한다는 자세로 말씀해 주셨으면 한다. -이창우: 문재인 정부 6개월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이게 나라다’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국가 최고지도자가 국민들에게 스스럼없이 다가가 국가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을 치유했기 때문이다. 국가와 국민의 상호 신뢰, 이것이 국가 최고지도자로부터 구현됐다고 평가하고 싶다. -차성수: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고 있고, 국민 지지도도 높다. 국민들에게 비전을 제시하고 소통을 몸소 실천하는 등 총론적인 측면에서 굉장히 성공적이었다고 생각한다. 인수위원회도 없이 집권한 뒤 바로 국정 운영에 들어간 짧은 기간을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다. 다만 앞으로 국민들 삶을 바꾸는 각론적 정책 과제를 해결해야 되는데, 너무 대통령만 바라보고 있는 건 아닌지 우려스럽다. 기대가 크기에 당연한 듯한데 걱정되는 부분이다. 앞서 얘기한 공론화위원회는 굉장히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참여와 결과의 투명성, 모든 것을 보여줬다. 앞으로도 형식은 다를지라도 이런 과정을 거친다면 국민들에게 신뢰를 주는 나라를 만들어갈 수 있을 것 같다. -김우영: ‘퍼펙트 스톰’이라는 말이 있다. 원래는 둘 이상의 태풍이 충돌해 그 영향력이 폭발적으로 커지는 자연현상을 의미하지만 여러 개의 크고 작은 악재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 최악의 상황이 닥쳤을 때를 비유적으로 표현하는 데도 사용된다. 문재인 정부 6개월은 그야말로 퍼펙트 스톰이었다. 북핵, 트럼프발 위기 국면,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로 인한 중국과의 갈등 등 여러 악조건이 겹쳤는데, 인사라든가 정권을 운영하기 위한 준비를 하는 가운데서도 상당히 슬기롭게 대처하고 안정감 있게 해결하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문재인 정부가 위기에 강한 정부라는 인상을 국민들에게 심어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성: 대통령도 국민 속 한 사람이라는 걸 확실하게 부각시키고 있는 것이 문재인 정부의 가장 큰 성과라고 생각한다. 대통령이 청와대 구내식당에서 식판 들고 직원들과 함께 밥 먹는 모습에, 대통령과 나란히 사진 찍을 때, 대통령이 아이들을 만나 무릎 꿇고 앉아서 이야기하는 모습에 국민들이 환호했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평범하고 당연한 일인데도 그동안 그렇게 하지 못했다. 대통령도 국민 속 한 사람이라는 것을 심어주고 있는 데서 진정한 의미의 민주주의로 향해 가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문재인 정부가 70%라는 높은 지지도를 견고하게 유지하는 것도 여기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김영배: 기본적으로 동의한다. 민주주의는 절차로서의 민주주의와 내용으로서의 민주주의, 양 측면이 있다. 사실 절차로서의 민주주의가 중요한 측면이 있다. 그런 면에서 조금 아쉬운 점이 있다. 그동안 여러 사안을 대통령 리더십을 중심으로 이끌어온 것 같다. 참모가 잘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특히 앞으로 민생과 관련된 여러 난제들이 닥칠 텐데, 상당히 걱정된다. 인수위가 없어 발생하는 한계인 듯하다. 인수위 기간이 있고 없고는 큰 차이가 있다. 대통령은 인수위 두 달 동안 모든 참모들과 함께 오롯이 국정을 준비할 수 있다. 조건이 다르기 때문에 분명히 한계는 있다. 그럼에도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는 아주 무겁다. 그런 점에서 대통령 리더십은 탁월한 반면 참모가 보이지 않는 아쉬움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정원오: 인수위 기간도 없이 온갖 어려운 국면에서 출범했지만 청와대 비서진과 함께 초창기를 성공적으로 보낸 것 같다. 북핵을 비롯한 여러 가지 외교적인 문제, 경제 문제 등과 관련, 총론을 잘 잡고 각론도 잘 맞춰 가면서 해결해 나가고 있다. 굉장히 긍정적으로 본다. 문 대통령은 지난 대선 기간 제 자치구인 성동구 마장동주민센터에 왔을 때 지방자치와 관련해 연방제에 준하는 분권을 하겠다고 최초로 선언했다. 국정과제로도 채택되고 신뢰 있게 진행돼 기대가 크다. 김승훈·윤수경·송수연·이범수·최훈진 기자 hunnam@seoul.co.kr
  • [분권광장] 30년 만에 돌아온 절호의 개헌 기회/최문순 강원도지사

    [분권광장] 30년 만에 돌아온 절호의 개헌 기회/최문순 강원도지사

    개헌은 ‘새판 짜기’다. 지금까지 커 버린 몸에 맞춰 새 옷을 입는 것과 같다. 못 입는 옷은 버려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개헌은 일종의 혁명이다. 인류의 역사가 곧 분권의 역사다. 중앙 집중하는 국가는 늘 쇠퇴했다. 분권을 빨리 이뤄 내는 국가가 패권국가가 됐다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1987년 민주화 항쟁으로 얻어 낸 지방자치에 기반한 자치분권 체제를 이제 재구성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 6월 항쟁 이후 대통령 선출 방식이 직선제로 바뀌었지만 오래된 중앙집권적 체제는 여전하다. 아직까지 충분한 자치분권이 확립되지 않았고 주민생활 속으로도 깊이 뿌리내리지 못했다. 공공기관이나 언론 등 시스템도 크게 바뀌지 않았다. 이 같은 중앙집권적 체제가 이제 한계에 이르렀다. 지금의 정치, 경제 위기는 새로운 판을 기다리고 있다. 지금 헌법은 6월 항쟁처럼 피흘리는 혁명을 통해 만들어졌지만 기능이 다했다. 1987년 헌법을 분권형 헌법 개정으로 재설계해 새 시대의 국가 발전을 견인하는 중심축으로 삼아야 한다. 중앙집권적 권력 질서로는 선진국으로 진입할 수 없다. 국민들의 창의성과 지역의 자발적 동력을 소화할 수 있는 체제가 필요하다. 돈과 권력을 최대한 국민에게 가깝게 줘야 한다. 답보 상태에 빠진 경제 활력을 위해서라도 연방제에 가까울 정도로 강력한 분권을 제공해야 한다. 선진국일수록 국가와 지역 경쟁력 강화를 위해, 국정 운영의 민주성과 효율성 실현을 위해, 그리고 국민의 기본권이 확립된 자치권의 보장을 위해 자신들의 헌법을 지방분권형 헌법으로 개정해 가고 있다. 이런 선진국의 추세와 우리나라의 국가 발전 단계, 그리고 국민 의식 수준을 볼 때 2018년 개헌은 반드시 지방자치와 분권이 담보된 지방분권형 개헌으로 가야 한다. 특히 양극화를 해소하고 안팎으로 갈라진 국가와 민족을 하나로 결집하려면 분권 개헌이 유일한 해법이다. 이제 통합의 그릇을 만들어 동서남북, 상하좌우로 갈라진 국가와 민족을 하나로 담아내야 한다. 우리가 처한 어려움을 넘고 새롭게 도약할 힘을 모을 수 있게 통합 대국을 향한 제7공화국을 열어야 한다. 빈부격차와 양극화를 해소하는 것이 우리 국민들의 요구이고 명령이다. 지금의 국가 체계는 돈과 권력이 소수에게 집중되는 구조다. 현재는 아무리 열심히 해도 중앙에서 내려오는 사업비가 지역 주민에게까지 직접 도달하지 않고 소수에게 몰려 지역에 사는 사람은 그것을 피부로 느낄 수 없는 체계로 돼 있다. 이것을 나눠주고 분권해야 한다. 돈과 권력을 나눠 도와 시·군, 읍·면·동으로 내려가도록 해야 한다. 대한민국에 30년 만에 펼쳐지는 두 가지 큰 행사가 있다. 하나는 1988년 이후 30년 만에 치러지는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이고 다른 하나는 개헌이다. 1987년 6월 민주화항쟁 당시 우리가 올림픽을 치를 수 있을까 의구심을 드러내는 보도가 많았다. 하지만 정치적 타협이 이뤄져 6·29선언이 이뤄지고 6공화국도 열었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을 앞두고 이와 똑같이 정치적 격동이 이어지고 있다. 제7공화국을 열기 위한 진통이라고 생각한다. 동계올림픽은 선진국만 치를 수 있는 올림픽이다. 2018평창동계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르는 동시에 진정한 자치분권이 실현되는 제7공화국도 제대로 열어야 한다. 동계올림픽과 함께 ‘30년 평행이론’으로 교차하며 도출된 지방분권형 개헌을 반드시 이뤄야 한다. 30년 만에 돌아온 이 절호의 개헌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 지방분권형 개헌을 통해 국민이 주인이 되는 진정한 국민주권시대를 반드시 열어야 한다.
  • [한 권의 청렴] 출판기념회에 직원도 안 부른 유덕열 동대문구청장의 ‘약속’

    [한 권의 청렴] 출판기념회에 직원도 안 부른 유덕열 동대문구청장의 ‘약속’

    유덕열 서울 동대문구청장이 책 ‘청렴한 구청장 유덕열의 약속’을 펴낸다. ‘동대문에는 대문이 없다’, ‘나의 꿈 나의 도전’, ‘더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 등에 이어 네 번째로 출간하는 책이다. 출판기념회는 오는 23일 구청 2층 강당에서 열린다.책은 ‘사람 섬기기를 하늘처럼 하라’(事人如天)는 좌우명으로 그동안 펼쳐 온 구정 및 구민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동분서주했던 일화들을 담았다. 경희대 김민웅 교수와의 대담 형식으로 엮어냈다. 전남 나주 출신인 유 구청장은 민주화 인사 출신이다. 1979년 10·17 부마항쟁 당시 동아대 시위를 주도했던 유 구청장은 수배령을 받고 도피 생활을 하던 중 이듬해 발발한 5·18 광주민주화운동으로 계엄이 확대되면서 검거돼 삼청교육대 등에서 모진 고문을 당했다. 야당 지도자인 김영삼·김대중을 의장으로 하는 민주화추진협의회(민추협)가 결성된 뒤 민추협 선전부장으로 일하며 1987년 6월 항쟁을 통해 6·29 항복 선언과 직선제 개헌을 이끌어 내는 데 기여했다. 1985년 최훈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동대문구와 인연을 맺었다. 제4대 서울시의원(운영위원장, 원내대표)을 거쳐 민선 2기 동대문구청장에 당선돼 ‘청렴 최우수구, 친절 최우수구, 행정서비스 최우수 자치단체’로 뽑혔다. 2010년 민선 5기에 이어 2014년 민선 6기 구청장으로 연임 중이다. 2015년과 지난해 전국기초자치단체장 매니페스토 우수사례 경진대회에서 2년 연속 최우수상을 받았다. 책은 이 같은 인생 역정과 경험을 바탕으로 했다. 유 구청장은 출판기념회를 치르기 위해 당일 오후 반차를 냈으며, 직원들에게도 참석하지 말아 달라고 당부했다. 유 구청장은 “출판기념회는 36만 동대문구민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미약하나마 최선을 다했던 경험을 나누는 자리가 될 것”이라면서 “남은 임기 동안에도 공약사업을 내실 있게 추진함으로써 약속을 잘 지키는 사람, 초심을 잃지 않는 구청장으로 일하겠다”고 말했다. 주현진 기자 jhj@seoul.co.kr
  • [커버스토리] 朴 복지 없는 증세→全 감세→盧 부동산 증세→YS 절약 강조

    [커버스토리] 朴 복지 없는 증세→全 감세→盧 부동산 증세→YS 절약 강조

    여야가 세금을 놓고 맞붙었다. 정부가 내놓은 세법개정안을 놓고 여당은 “성장의 밑거름”이라며 소득세·법인세 최고세율 인상을 지지하고 나섰다. 하지만 야당은 “글로벌 추세 역주행”이라며 결사 저지를 외치고 있다. 정부가 테이블 위에 올리지 않은 부동산 보유세를 둘러싸고도 공방이 치열하다. 새해 예산안과 세법개정안을 심사하는 이맘때쯤이면 해마다 벌어지는 풍경이지만 올해는 9년 만의 정권 교체에 성공한 문재인 정부의 첫해라서 외곽 훈수전도 뜨겁다.증세와 감세의 정치학은 1960년대 박정희 정부로 거슬러 올라간다. 3일 서울신문이 역대 대통령의 주요 연설문을 분석한 결과, 박정희·노태우·노무현 전 대통령은 제각기 다른 이유에서 증세를 주장했다. 특히 박 전 대통령은 열정적으로 세수 증대에 몰두했다. 국세청을 만들고 종합소득세와 부가가치세를 도입하는 등 조세행정 현대화도 추진했다. 하지만 박정희 정부가 추진했던 조세정책은 ‘복지 없는 증세’였다. 국민을 설득하는 노력도 소홀히 했다. 공감대를 얻지 못한 증세는 정권 폭압의 상징으로 변모했다. 1971년 대선에서 김대중 야당 후보는 감세를 약속했고, 1979년 부마항쟁 때는 세무서가 불탔다. 결국 박정희 정부는 감세로 방향을 틀었다. 전두환 정부도 감세 기조를 이어 갔다. 증세 국면이 다시 열린 것은 1987년 6월 항쟁이 일어나면서다. 민주화 열기와 부동산 거품 등에 대응하기 위해 노태우 정부는 부동산세제 등 증세를 여러 차례 언급했다. 하지만 ‘보통 사람들’의 저항이 큰 근로소득세는 여전히 감세 기조를 유지했다. ‘제한적인 증세’였던 셈이다. 윤홍식 인하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노태우 정부가 3당 합당 전까지는 복지 확대와 임금 인상, 주택 100만호 건설 등 내수 진작을 통한 성장과 소비의 선순환을 고민했다는 점에서 문재인 정부의 ‘소득 주도 성장’ 원형이라고 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증세를 가장 직설적으로 꺼내든 정권은 노무현 정부다. 출발은 외환위기 이후 갈수록 심화되는 양극화에 있었다. 하지만 ‘타이밍’이 안 좋았다. 동력이 떨어지는 집권 후반기에 대통령이 불쑥 화두를 던진 것이다. 김도균 경기연구원 연구위원은 “복지 증세 필요성을 인식했으면서도 증세 구상이 종합부동산세에 머물렀다”고 아쉬워했다. 문재인 정부는 ‘핀셋증세’로 돌아왔다. 재벌그룹과 슈퍼리치의 세금(법인세, 소득세)만 올리는 내용의 세법개정안을 국회에 내놓은 상태다. 보수 진영은 ‘부자 증세’라며, 진보 진영은 ‘보편 증세’ 논의를 시작하자며 쟁점화를 벼르고 있다. 윤 교수는 “무엇보다 지지 기반 확대와 사회적 합의 도출에 신경써야 한다”고 지적했다. 세종 강국진 기자 betulo@seoul.co.kr
  • 국제사회·반대파 포섭 없이… 고립 부른 ‘독립 무리수’

    국제사회·반대파 포섭 없이… 고립 부른 ‘독립 무리수’

    그토록 염원하던 ‘독립 공화국’의 꿈은 손에 잡힐 듯 다가왔다 멀어져버렸다. 스페인의 카탈루냐와 이라크의 쿠르드 자치정부 두 세력은 모두 여기까지일까. 스페인 정부는 지난 27일 카탈루냐의 자치권을 박탈했다. 독립 선언을 둘러싼 줄다리기 한 달여 만이다. 쿠르드 자치정부의 마수드 바르자니 수반은 29일 사퇴하기에 이르렀다. 쿠르드 정부가 실효적으로 지배하던 키르쿠크 유전을 이라크 중앙정부가 점거하며 압박한 결과이다. 분리·독립이라는 ‘정치적 도박’을 감행한 두 지도자는 자기 민족을 더욱 궁지에 몰아넣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이들이 어떤 실패의 과정을 겪게 됐는지 짚어봤다.■궁지 몰린 카탈루냐 독립파 푸지데몬, 압도적 지지 없이 강행 EU 등 국제적 공감 얻는 데 실패 잔류파에 향후 주도권 빼앗길 듯 스페인 중앙정부가 지난 27일(현지시간) 독립 공화국을 선포한 카를레스 푸지데몬(54) 카탈루냐 자치정부 수반과 내각 관료를 모두 해임하고 오는 12월 21일 새 자치 의회를 구성하기 위한 조기 선거를 실시하기로 했지만 정국 혼란은 그치지 않고 있다.‘카탈루냐 유럽민주당’과 민중연합후보당 등으로 구성된 연립 정권의 수장으로 지난해 1월 취임한 푸지데몬 수반은 독립국 건립을 공약으로 내세운 ‘골수 독립파’로 통한다. 하지만 일간지 엘 문도가 29일 공개한 카탈루냐 주민 대상 여론조사 결과 현재 카탈루냐 유럽민주당 등 독립파 정당에 대한 지지율은 42.5%, 사민당 등 잔류파 정당에 대한 지지율은 43.4%를 기록했다. 이는 12월 21일 조기 선거에서 독립파가 스페인 잔류파에 정국 주도권을 뺏기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로, 애초에 푸지데몬 수반이 독립에 대한 압도적 지지를 확보하지 못한 상황에서 무리수를 뒀다는 점을 보여 준다. 지난 1일 90%의 찬성률을 보인 독립 주민 투표도 투표율 자체는 43%에 그쳐 잔류를 지지하는 다수의 여론이 침묵한 가운데 독립파의 의견만 과잉 부각됐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실제로 독립파만큼이나 잔류파의 저항도 거셌다. 카탈루냐의 독립을 반대하는 ‘카탈루냐 시민사회’ 등 잔류파들은 지난 8일에 이어 29일에도 바르셀로나에서 최소 30만명이 집결해 독립 반대 시위를 벌였다. 카탈루냐는 스페인 국내총생산(GDP)의 20%가량을 차지하는 부유한 지역이지만 주민 투표 이후 1700여개의 기업이 다른 지역으로 본사 이전을 결정하자 독립의 역효과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간 막강한 경제력을 믿고 독립을 추진했지만 분리될 경우 경제가 휘청거릴 수 있다는 우려다. 푸지데몬 수반의 가장 큰 패착은 카탈루냐가 스페인으로부터 억압받고 있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부각시키지 못했다는 점이다. 2008년 세르비아로부터 독립을 선언해 국제사회에서 인정받은 코스보의 사례를 보면 1990년대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정권으로부터 ‘인종청소’식의 대규모 학살을 경험해 유엔의 보호를 받은 바가 있다. 프랑스 국제법 전문가인 장 클로드 피리스 전 유럽연합(EU) 고문은 지난 28일 “주권, 영토, 국민을 갖춰도 국제적 승인이 없으면 주권 국가 기능을 할 수 없다”면서 “EU 국가들이 스페인 중앙정부를 지지하는 상황에서 카탈루냐의 독립은 공허한 선언에 불과하며 카탈루냐는 그동안 (코소보와 달리) 민주적 권리를 모두 누려 왔다”고 지적했다고 AFP통신이 전했다. 지난 1일 주민 투표 후 당장 독립을 추진할 것처럼 기세등등하던 푸지데몬 수반은 결국 지난 10일과 16일 스페인 정부에 두 달간의 독립 추진 유예 조건으로 대화를 제안했다. 이는 EU와 국제사회의 지지를 얻어내기 위해 중앙정부의 도발을 유도하고 협상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할 수 있다는 계산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스페인 정부는 카탈루냐에 19일 오전까지 독립 여부를 명확히 밝히라며 최후 통첩을 날렸고 사실상 이때부터 전세가 역전된 셈이다. 카탈루냐 유럽민주당 내에서도 오는 12월 선거를 명분 삼아 이제 독립에서 한발 물러나야 한다는 목소리가 제기돼 푸지데몬은 사면 초가에 몰리게 됐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바르자니 수반, 불명예 퇴진 IS격퇴 힘입은 바르자니 수반 임기 연장하며 주민투표 승부수 이라크, 미국 등에 업고 협상 외면 마수드 바르자니(71) 쿠르드자치정부(KRG) 수반이 29일(현지시간) 퇴임 의사를 밝혔다. 알자지라 등에 따르면 바르자니 수반은 이날 자치의회에 제출한 서한을 통해 내달 1일까지인 자신의 임기를 연장하지 않겠다면서 수반의 권한을 자치내각과 법원, 의회에 분산해 달라고 요구했다. 쿠르드 자치의회는 격론 끝에 이를 승인했다. 바르자니 수반은 국제사회의 흐름은 읽지 못한 채 자신의 영향력 강화를 위해 분리·독립 투표를 강행하다 역풍을 맞은 것이다. 2005년 6월부터 12년간 KRG를 이끌어 온 바르자니 수반은 이라크 쿠르드족의 독립 항쟁을 이끌어 온 집안 출신이다. KRG의 집권여당인 쿠르드민주당(KDP)에 3대째 몸담아 왔고 1979년부터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바르자니 수반이 당수를 맡았다. 그에게 쿠르드의 독립은 자신이 이루고픈 최대의 업적이었다. KRG는 2014년부터 이라크군을 대신해 이라크 서북부를 중심으로 확산되는 IS를 막아내고 있었다. 이런 분위기에 힘입어 그는 지난 6월 7일 분리독립 찬반 주민 투표 실시를 발표했다. 지난달 25일 찬성 92.7%(투표율 78%)라는 압도적인 결과를 바탕으로 바르자니 수반은 이라크 정부에 협상을 요구했다. 후폭풍은 거셌다. 이라크는 지난 16일부터 군사작전을 벌여 KRG가 실효 지배해 오던 키르쿠크주 유전지대를 장악했다. 국제사회도 KRG를 외면했다. 특히 1991년 걸프전과 2003년 이라크 침공 당시 KRG의 도움을 받은 미국이 나서지 않았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우리는 이 전투에서 어느 편도 들고 있지 않다”고 했다. 내심 의지했던 미국의 외면은 상당한 충격이었다. 터키와 이란도 자국 내 쿠르드족이 독립국가의 출현에 영향을 받을까 봐 반대 입장을 굳혔다. 유럽연합 역시 영국 스코틀랜드와 벨기에 플랑드르 등 다른 지역까지 분리독립 바람이 불 것을 걱정했다. 바르자니 수반의 결정적 패착은 독립국가의 탄생을 견제하는 국제사회의 흐름을 읽지 못한 것이었다. 실패의 또 다른 원인은 바르자니 수반이 석유가 생산되는 키르쿠크의 지배권이 불분명한 상황에서 섣불리 독립 카드를 꺼내 이라크의 심기를 건드린 것이다. 쿠르드 자치정부는 하루에 약 56만 배럴을 생산해 터키 방면 파이프라인을 통해 수출하는데 이 중 절반가량이 키르쿠크 일대에서 생산된다. 아랍에미리트(UAE) 매체 더 내셔널은 키르쿠크를 놓고 줄곧 이권다툼을 해 온 이라크로서는 KRG가 키르쿠크를 기반으로 독립국가가 되는 것을 그대로 두고 볼 수 없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결국 KRG는 지난 25일 “분리독립 찬반 투표 결과를 동결한다”며 백기투항했고, 바르자니 수반의 퇴임으로 이어졌다. 바르자니 수반은 이날 성명을 발표해 “현 상황은 독립투표 탓이 아니고 이라크 중앙정부가 예전부터 계획했던 일(KRG 흡수)의 핑계일 뿐”이라면서 “미국이 테러분자로 지정한 세력(시아파 민병대)이 미제 탱크로 우리를 공격하는 데 놀랐다”면서 미국에 불만을 표했다. 그러나 바르자니 수반은 정계를 완전히 떠나는 대신 2선으로 물러나 막후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것으로 보인다. 현지 언론은 바르자니 수반의 조카이자 KRG 총리인 네차르반 바르자니가 권력 공백기에 지배권을 잡을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김민희 기자 haru@seoul.co.kr
  • 文 “당 당합 든든… 당청 일체감 확대 노력”

    文 “당 당합 든든… 당청 일체감 확대 노력”

    “여야 협치틀 만들어 새 나라 만들자”‘동지들의 눈동자에’ 건배사도 눈길 문재인 대통령이 13일 청와대에서 더불어민주당 지도부와 만찬을 갖고 당·청 단합과 소통 의지를 다졌다. 문 대통령은 청와대 본관에서 추미애 대표와 이춘석 사무총장, 김태년 정책위의장 등 당 지도부는 물론 시도당위원장과 여성·쳥년 최고위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예정된 90분을 훌쩍 넘겨 2시간 가까이 만찬을 이어 갔다.문 대통령은 인사말에서 “취임 이후 정신없이 달려오느라 늦었지만 뜨겁게 환영한다”면서 “당의 단합을 넘어 당·청 간 일체감과 유대감으로 확대될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하자”고 말했다. 이어 “여소야대로 어려운 상황이지만 집권당의 책임감과 진정성으로 여야 협치의 틀을 만들어 새로운 나라를 만들기 위한 과제들을 풀어가도록 하자”면서 “때로 부족함이 있더라도 보듬고 뒷받침해 주시길 당부드린다”고 강조했다. 김우남 제주도당위원장이 내년 제주 4·3항쟁 70주년 기념식에 꼭 참석해 달라고 요청하자 문 대통령은 “5·18민주화운동과 4·3항쟁, 부마항쟁 등에는 매년 참석하도록 노력하겠지만 안 되면 격년이라도 참석하겠다”고 약속했다. 문 대통령과 여당 지도부 회동은 지난 6월 이후 4개월여 만이다. 8월에는 민주당 의원 전원을 초청해 오찬 회동을 갖기도 했다. 회동에서는 화합을 강조하는 제스처가 두드러졌다. 대선 당시 사무총장으로 공을 세웠지만, 선거 뒤 당직개편에서 물러난 탓에 추 대표와 껄끄러웠던 안규백(서울시당위원장) 의원은 추 대표의 제의로 만찬이 끝난 뒤 문 대통령과 함께 셋이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지방선거 경선룰을 둘러싸고 추 대표와 각을 세웠던 전해철(경기도당위원장) 의원은 “추 대표를 중심으로 물적·인적 토대가 단단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과 추 대표의 인사말이 끝난 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한반도 안보위기 상황을 브리핑했다. 정 안보실장은 “한반도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정착, 남북 문제의 주도적 해결, 압박과 대화의 병행, 북 도발에 단호한 대응 등 5가지 기본입장을 놓고 주변 4개국과의 공조를 강화하고 있다”면서 “미국과는 초강경 대북기조를 유지하면서 대화 가능성을 모색한다”고 설명했다. 만찬에는 단호박죽과 은대구 양념구이, 등심구이와 흑미영양밥, 배추된장국이 제공됐으며 와인도 1잔씩 곁들여졌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이런 날은, 흔치 않아’ ‘동지들의 눈동자에, 당신의 눈동자에’ 같은 건배사도 등장했다고 김현 대변인이 전했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김진아 기자 jin@seoul.co.kr
  • [부마항쟁 38주년] “38년 전 전기고문·옥고 아직도 생생… 민중항쟁 진상 밝혀야”

    [부마항쟁 38주년] “38년 전 전기고문·옥고 아직도 생생… 민중항쟁 진상 밝혀야”

    부마민주항쟁은 1979년 10월 16일부터 20일까지 유신 체제에 항거하는 학생시위가 발단이 돼 부산과 마산 지역을 중심으로 일어난 항쟁이다. 당시 부산 동아대 2학년에 재학 중이던 유덕열 서울 동대문구청장은 이 시위를 주도하면서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올랐다. 항쟁 직후 10·26 사태로 박정희 시대가 끝났지만, 12·12 사태로 전두환 신군부가 정권을 잡은 뒤 이듬해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여파로 계엄이 확대되면서 유 구청장은 체포돼 고문과 옥고를 치렀다. 그로부터 강산이 네 번이나 변했지만 유 구청장에게 그때의 기억은 어제처럼 생생하다. 부마항쟁 38주년이 임박한 10일 이른 아침 유 구청장은 수서고속철도(SRT)를 타고 부산으로 향했다. 38년 전 독재 타도를 외치다가 구속·구타·고문을 당했던 항쟁의 흔적을 반추하기 위한 그의 ‘귀향길’을 동행 취재했다. 탑승 2시간여 만에 부산역에 내리니 당시 유 구청장과 함께 시위를 주도했던 부산대 출신 신재식·김종세씨 등이 기다리고 있었다.① 들불처럼 번진 민중궐기 부산대→동아대→남포동 부영극장 앞 “사람 몇 명이 모여서 이야기만 해도 잡아가던 시절이었어요. 유신 독재 시기입니다.” 유 구청장은 부마항쟁이 발발했던 당시의 시대 상황을 이렇게 회고했다. 1979년 10월 4일 당시 야당인 신민당 김영삼 총재에 대한 의원직 제명 사건은 유신 체제에 대한 민중 분노를 증폭시키는 계기가 됐다. 유 구청장은 “김 총재가 YH여성노동자 신민당사 농성 사건에 대해 외신과 인터뷰하면서 유신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제명되자 저항 분위기가 커졌다”고 떠올렸다. 16일 부산대 학생을 중심으로 시내에서 독재 타도를 외치는 시위가 들불처럼 번지면서 부마항쟁이 본격화됐다고 했다. 유 구청장은 다음날인 17일 2학년 사회계열 학생 100여명이 모인 강의실 연단으로 올라가 “운동장으로 나가자”고 외쳤다.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강의에 들어가려다 시위대와 마주쳐 합류하거나 수업 중에 들려오는 구호 소리에 썰물처럼 강의실을 빠져나온 학생 1000여명이 운동장을 메우고 ‘독재타도’를 외쳤다. 지금 부산국제영화제 홍보 플래카드로 축제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부산 부영극장 일대는 부마항쟁 당시 16~17일 이틀간 최대 5만명의 시민들이 차도를 메우며 독재 타도를 외쳤던 곳이다. 학생들은 학교에서 시위가 진압당하자 이곳 중심가로 몰려들었다고 한다. 유 구청장은 “시위는 학생들이 선도했을지 몰라도 4·19 때와 마찬가지로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호응으로 민중항쟁 성격을 띠면서 도심 전역으로 확산됐다”고 회고했다. 시위에는 노동자, 도시빈민 등이 대거 가세해 민중궐기로 발전했고 지역도 동구, 서구까지 확산했다. 18일 0시를 기해 부산 전역에 계엄령이 발동됐지만 항쟁의 불길은 인근 마산·창원 일대로 옮겨붙어 20일까지 이어졌다. 사단법인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에 따르면 부마항쟁으로 공식 체포된 사람은 1563명이다.② 각목·구둣발 매질… 쉼없이 당한 고문 부산지구 보안대(현 부산지방병무청)→부산 헌병대(현 송상현 장군 공원)→부산 학장교도소 “여기서 우리가 안 죽고 살아남았구나.” 부산지방병무청을 찾은 유 구청장 일행의 감회는 남달라 보였다. 지금은 입대를 앞둔 남성들이 찾는 곳이지만 과거에는 시위하던 사람들을 붙잡아 고문하던 부산지구 보안대 자리였다고 한다. 부마항쟁 이후 10·26 사태로 독재 권력이 막을 내리는 듯했지만 12·12사태로 역사의 시계가 거꾸로 돌려졌고, 전두환 신군부가 정권을 찬탈하면서 곳곳에서 일어나던 시위는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으로 정점을 찍었다. 그 여파로 부마항쟁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올랐던 유 구청장은 죄를 저지를 개연성이 있는 사람을 사전 구금하는 예비검속에 걸려 같은 달 28일 피신해 있던 서울 아현동 친구 집에서 체포돼 부산지구 보안대로 압송됐다. 유 구청장은 당시 영장도 없이 구속돼 피비린내 나는 부산지구 보안대에서 36일간 두들겨 맞았다고 말했다. 그는 “수사관들이 ‘너 임마 김대중한테 얼마 받고 데모했어? 사실대로 말하면 살려 주지만 거짓말하면 광주에서처럼 전라도 새끼들은 씨를 말려야 돼’라고 협박했다”고 회고했다. 유 구청장은 전남 나주 출신이다. 전기고문은 기본이고 수갑을 찬 채로 각목과 구둣발 매질을 쉼 없이 당하며 김대중과의 연관성을 자백하라는 강요를 당했다. 유 구청장 일행은 지금은 송상현 장군 공원이 들어선 부산 제15헌병대로 이첩돼 한 달여간 삼청교육을 받았다. 이곳은 신재식·김종세씨 등을 포함해 총 8명의 부마항쟁 시위 주도 학생이 함께 수감됐던 곳이다. 헌병대에서는 사회정화운동이라는 이름으로 전과가 있는 사람들을 잡아다가 감금한 뒤 삼청교육을 시켰다.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모래주머니를 차고 구보와 각개전투를 하고 전봇대만 한 기둥을 어깨에 메고 올렸다 내렸다를 수없이 반복하는 봉체조를 주로 했다. 유 구청장은 “30~40명을 수용하는 헌병대 영창에 100명 넘게 가뒀으니 짐승 우리와 다름없는 지옥이었다”며 당시의 참상을 회고했다. 유 구청장은 다시 부산 사상구 학장교도소로 이감된 뒤 계엄사령부 군법회의에서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4개월 만에 석방됐다.③ 부산 시민의 민주희생정신을 기리다 부산민주공원 유 구청장은 이날 마지막 코스로 부산 중앙공원 안에 조성된 ‘부산민주공원’을 찾았다. 1999년 부마항쟁 20주년을 맞아 4·19 혁명, 부마항쟁, 6월 항쟁으로 이어지는 부산 시민의 민주 희생 정신을 기리기 위해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 주도로 건립된 곳이다. 당시 공원 건립을 위해 송기인 신부가 재야 대표로 집행위원장을 맡았고, 문재인 대통령이 간사 역할을 했다. 유 구청장은 “부마항쟁은 유신정권의 몰락을 가져온 결정적인 사건이었지만 정작 그에 상응하는 대우를 받지 못한 점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실제로 당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은 항쟁이 난동이 아니라 시민들이 시국에 대한 반감으로 참여한 자발적인 시위로 파악해 보고한 것으로 알려진다. 항쟁은 박정희 정권의 몰락을 이끈 결정적인 계기였지만 전두환 시대로 이어지면서 독재 체제의 종결을 가져오지 못하는 바람에 제대로 된 평가가 이뤄지지 못했다는 것이다.부마항쟁 진상 규명도 과제로 남아 있다. 2010년 5월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가 국가기관으로는 처음 부마항쟁 기간 중 공권력에 의한 인권침해를 인정한 바 있지만 부마항쟁 전체의 진상 규명은 이뤄지지 못했다. 이어 2013년 5월 부마항쟁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에 관한 법이 우여곡절 끝에 국회를 통과했으나 법에 따라 구성된 진상규명위원회가 뉴라이트 계열과 친박 인사들로 채워지면서 객관적인 조사를 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서울로 돌아오는 열차에 몸을 실으면서 유 구청장은 힘주어 말했다. “부마항쟁은 유신 독재 체제를 붕괴시킨 민중항쟁입니다. 1960년 4·19 혁명에서 시작된 민주화 열기를 되살려 1980년대의 5·18 광주민주화운동과 6·10 민주항쟁을 이끌어 낸 대중 궐기인 만큼 제대로 평가해 주면 좋겠습니다. 피해를 감수하고도 앞장선 사람들이 있었기에 오늘날 민주주의가 뿌리내린 것 아니겠습니까.” 글 사진 부산 주현진 기자 jhj@seoul.co.kr
  • 80년대 노동운동 역사 다시보기

    80년대 노동운동 역사 다시보기

    민주노조, 노학연대 그리고 변혁/김원 외 지음/한국학중앙연구원/576쪽/3만원올해는 노동자대투쟁 30주년이다.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으로 촉발된 6월 항쟁은 직선제 개헌을 약속하는 6·29 선언으로 막을 내렸지만 7월부터 노동자들은 민주노조 건설, 임금 인상, 근로 조건 개선 등을 요구하며 전국적인 파업 투쟁을 펼쳤다. 이를 계기로 대한민국 노동자들의 연대가 급격하게 진행된다. 1987년에만 노조가 2675개에서 4103개로, 1989년에는 7883개까지 늘었다. 그러나 1991년 현실 사회주의가 붕괴하며 1980년대 노동운동이 지향했던 가치들이 낡은 것으로 치부됐고, 시대착오적이라는 비난도 받았다. 이 책은 1980년대 노동운동과 그 안에서 젊음을 불태우고, 죽음으로 항거하다 이름 없이 사라진 이들과 그 역사에 대해 재평가하고 있다.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서울 출마설’ 안희정, 노원구 찾은 까닭은

    ‘서울 출마설’ 안희정, 노원구 찾은 까닭은

    학생운동 인연 ‘金 지원’ 분석도 더불어민주당의 유력한 차기 대선 주자로 꼽히는 안희정 충남지사가 27일 돌연 서울 노원구를 찾았다. 내년 6·13 지방선거와 함께 치러지는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를 앞두고 안 지사의 서울 지역 출마설이 끊임없이 제기되는 가운데 이례적으로 서울 자치구 행사에 참석한 것이어서 관심이 집중됐다. 특히 노원병은 내년 보궐선거구다.안 지사는 이날 노원구청 대강당에서 구민 6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지방자치분권, 국민이 나라의 주인이 되는 길’이라는 주제의 특강에서 “내년에 개헌 이야기가 나오면 대한민국 헌법에 대한민국은 자치분권 국가라는 것을 명문화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행사에는 지난 대선 경선에서 안 지사를 도왔던 박영선(서울 구로을) 의원도 참석했다. 안 지사는 김성환 노원구청장과의 각별한 인연을 강조하기도 했다. 그는 “30여년 전 6월 항쟁 무렵 김 구청장과 함께 민주화운동을 했다”고 소개했다. 노원병은 지난 대선 때 당시 안철수 대선 후보가 국회의원직을 사퇴하면서 공석이 됐다. 다만 안 지사는 이날 서울신문 기자와 만나 ‘내년 보궐선거에서 김 구청장과 만날 가능성이 있느냐’는 질문에 “나는 그것에 대해 전혀(생각해 본 적 없다)”라고 답변했다. 김 구청장도 이날 안 지사의 강연에 대해 “우리가 초청한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구청장은 내년에 구청장 3선에 도전하지 않고 노원병 국회의원 보궐선거 출마를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이날 강연은 안 지사가 자신과 학생운동 인연이 있는 김 구청장의 국회의원 보궐선거 출마에 힘을 실어 주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김 구청장은 이날 인사말에서 “안 지사는 멋지고 훌륭한 동지이자 자신의 이익에 따라 일희일비하지 않는 의리 있는 사람”이라고 화답했다. 안 지사와 김 구청장은 이날 강연에 앞서 구청장실에서 차를 마시며 환담하기도 했다. 안 지사의 선택지가 노원병이 아니라면 또 다른 재·보선 선거구로 거론되는 서울 송파을을 겨냥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이에 대해 안 지사 측 관계자는 “아직 내년 선거까지는 시간이 많이 남아 있다”면서 “그때 정국이 어떻게 바뀌고 당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서 안 지사의 선택도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현재 행보를 예단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현재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의 송파을 출마설도 나오고 있어 안 지사와의 빅매치가 이뤄질 가능성도 회자된다. 송수연 기자 songsy@seoul.co.kr
  • 문 대통령, 세계시민상 수상…턱시도 입은 文 보니?

    문 대통령, 세계시민상 수상…턱시도 입은 文 보니?

    문재인 대통령은 19일(현지시간) 미국 대서양협의회(애틀랜틱 카운슬)가 시상하는 2017 세계시민상을 받고 “우리 국민은 ‘촛불혁명’으로 세계 민주주의 역사에 희망을 만들었다”고 밝혔다. 제72회 유엔총회 참석차 뉴욕을 방문 중인 문 대통령은 이날 뉴욕 인트레피드 해양·항공·우주박물관에서 열린 시상식에 참석해 “이 상을 지난 겨울 내내 추운 광장에서 촛불을 들었던 국민께 바치고 싶다”며 이같이 밝혔다. 세계시민상은 국제협력·분쟁해결 분야의 세계적 연구기관인 대서양협의회가 수여하는 것으로, 2010년 이래 세계 시민의식 구현과 민주주의 발전 등에 기여한 인사에게 주는 상이다. 문 대통령은 자신을 ‘촛불혁명으로 태어난 대통령’이라고 표현했다. 이어 “한국의 민주주의는 국민주권의 완전한 실현을 위해 진전하고 있다”며 “우리 국민은 촛불혁명을 통해, 헌법의 절차를 통해, 국민의 뜻을 배반한 대통령을 파면했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가장 평화롭고 아름다운 방법으로 국민의 뜻을 실현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문 대통령은 “대한민국 국민은 ‘민주공화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명제를 전 세계에 보여줬고 나에게는 대통령도 국민의 한 사람이란 사실을 말해줬다”며 “나는 이 사실이 자랑스럽고 자부심과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촛불혁명은 여러 달에 걸쳐 1700만 명이 참여한 대규모 시민행동이었지만 평화롭고 문화적으로 진행됐다”며 “평화의 힘을 보여주고 민주주의 위기에 희망을 제시한 ‘촛불시민’은 노벨평화상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이어 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우리 국민의 노력을 소개했다. 문 대통령은 “한국전쟁 후 대다수 국민이 절대 빈곤에 시달렸고 민주주의는 요원한 꿈처럼 느껴졌지만 세계가 한국 국민의 역량을 확인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4·19 혁명과 5·18 광주민주화운동, 1987년 6월 항쟁을 예로 들며 “국민의 마음속에 뿌리내린 민주주의가 광장을 열었고 그 광장에서 국민은 시대의 흐름을 독재에서 민주로 바꿔냈다”고 평가했다. 학생 시절 민주화운동에 참여하고 노동·인권 변호사로 활동했던 문 대통령은 자신의 이력을 언급하며 “나는 촛불정신을 계승하라는 국민의 열망을 담고 대통령이 됐다”고 말했다. 이어 “내가 받는 상에는 세계 평화를 위해 한반도의 평화를 만들라는 격려와 응원도 담겼을 것”이라며 “한반도 평화를 이루고 나서 대한민국 이룩한 평화의 역사를 말씀드릴 시간이 반드시 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이날 시상식에서는 문 대통령과 함께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와 중국 출신 피아니스트 랑랑도 수상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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