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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월민주상 대상에 스쿨미투 해결 촉구 ‘정치하는 엄마들’

    6월민주상 대상에 스쿨미투 해결 촉구 ‘정치하는 엄마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는 9일 서울 용산구 민주인권기념관(옛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제3회 6월민주상 시상식을 열고 ‘정치하는 엄마들’, ‘상지대학교’, ‘추적단 불꽃’ 등 3개 단체에 상을 수여했다. 6월민주상은 2017년 6·10민주항쟁 30주년을 기념해 제정됐다. 정치하는 엄마들은 스쿨미투 해결을 위한 법률지원 및 전국지도 제작, 어린이 생명안전법안 촉구, 사립유치원 비리 대응 등에 힘써 대상을 받았다. 본상을 받은 상지대는 구성원들이 8년간의 투쟁으로 비리 사학을 퇴출하는 등 학원 민주화를 이룬 사례로 선정됐다. 대학생 취재팀 추적단 불꽃은 불법 성착취 영상 제작과 유통 사건을 처음 폭로하고 수사에 적극 지원한 활동을 격려받는 의미로 특별상을 받았다. 한편 상지대는 본상 수상 상금 1000만원 중 500만원을 정의기억연대에 기부한다고 밝혔다. 김정화 기자 clean@seoul.co.kr
  • “39년 전 고문 트라우마 극복… 민주주의 기념 공간 ‘문지기’ 꿈 이뤄”

    “39년 전 고문 트라우마 극복… 민주주의 기념 공간 ‘문지기’ 꿈 이뤄”

    [논설위원의 사람 이슈 다보기] 박록삼 논설위원이 만났습니다1976년 지어진 치안본부(현 경찰청) ‘남영동 대공분실’은 1987년 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이 벌어졌던 공간이다. 갓 스물을 넘긴 청년의 죽음은 지독한 비극이었다. 그 비극으로 한국 현대사의 물꼬는 새로 트였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라고 있었다. 남영동 대공분실은 건축가 김수근(1931~1986)의 1976년 작품이다. 김수근은 한국 현대 건축의 아버지로 꼽히지만, 남영동 대공분실을 둘러보면 일제와 독재정권에 부역한 시인 서정주(1915~2000)나, 나치 당원으로 활동했던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1908~1989)이 연상된다. 지난 26일 옛 남영동 대공분실을 찾았다. 남영역 바로 곁에 있어 전철을 타면 늘 무심히 지나치는 곳이다. 대공분실 건물 곳곳에서 실용적 목적과 예술적 감성이 접목됐음을 확인할 수 있다. 육중한 철문을 지나면 무표정한 검은색 벽돌로 지어진 7층 건물(김수근 건축 당시에는 5층)이 나오고 그 뒤편에 부드러운 곡선을 활용해 사람들 눈에 뜨이지 않게 만든 뒷문이 있다. 거기에서 시작된 나선형 계단은 2~4층을 거치지 않은 채 5층만을 연결한다. ●남영동 대공분실은 건축가 김수근 작품 층수를 짐작조차 할 수 없이 규칙적으로 빙글빙글 돌며 오르게 했다. 중세의 원형 감옥을 떠올리게 한다. 유신 시절은 중세 못지않은 야만의 시대였다. 눈이 가려진 채 어딘지도 모르는 공간으로 끌려온 이들에게 세상의 끝에 홀로 내몰린 듯한 극도의 공포를 갖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5층에 있는 15곳의 취조실(고문실) 역시 복도를 사이에 두고 서로 지그재그로 만들어졌다. 5층의 창문 또한 나머지 층과 다르게 좁게 만들어졌다. 자살 방지 목적이었다. 취조실 문을 열어 놓아도 다른 방에서 고문받는 또 다른 동료와 눈빛조차 나눌 수 없도록 절묘히 만들어졌다. 또한 15개 모두 똑같은 고문의 목적을 위해 만들어진 방들이지만 크기와 구조, 색깔을 각기 달리했다. 예술가로서 김수근은 개성 없음과 단조로움은 용납할 수 없었으리라. 그 실용과 예술이 어우러진 공간에서 무수히 많은 ‘무고한 간첩’들이 만들어졌고, 누군가는 주검으로 실려 나가 의문사로 처리됐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김수근은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 나기 한 해 전 간암으로 세상을 떴다. 속죄의 기회도, 변명의 시간도 갖지 못했으니 영원한 논란의 대상으로만 남게 됐다. 공포와 불안을 극대화하도록 만들어진 공간. 그곳에서 많은 이들은 세상에 신이 없음을 원망하며 비명을 내질렀고, 살이 찢기고 뼈가 비틀리며 피범벅이 돼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존엄마저 포기한 채 짐승처럼 바닥을 기어야 했다. ●2022년 민주인권기념관으로 정식 개관 유동우(71)씨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40년이 흐른 지금 유씨는 이곳의 ‘보안관리소장’이다. 유 소장의 설명을 들으며 공간을 둘러봤다. 2018년 12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는 경찰청으로부터 남영동 대공분실 부지와 건물을 넘겨받았고 민주인권기념관으로 탈바꿈시켰다. 민주인권기념관은 2022년 정식 개관할 예정이다. “그냥 직함이 그렇고, 그냥 문지기입니다. 백범 선생이 독립된 정부의 문지기를 하고 싶다 하셨잖아요? 저는 한국 민주주의를 기념하는 공간의 문지기가 됐으니 백범 선생의 꿈을 대신 이룬 것이나 마찬가지네요.” 그는 1980년대 노동자 기록문학의 고전인 ‘어느 돌멩이의 외침’의 작가다. 노동운동, 학생운동 하는 이들의 필독서였고, 금서 목록에 들어 있었다. 또한 그는 1980년대 한국노동운동, 민주화운동의 핵심 활동가였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노동 현장의 밑바닥을 전전하며 노동자들의 처참한 현실을 온몸으로 접하고 스스로 노동자로서 정체성을 깨쳤다. 이른바 ‘학출’(대학생 출신 노동운동가)의 도움 없이 홀로 근로기준법 등 노동 관련 법을 공부했다. 이어 인천의 삼원섬유에서 민주노조를 만들었다. 당연히 해고됐고 구속됐다. 1980년 5월 결성된 전국민주노동자연맹(전민노련)의 핵심 지도부인 중앙위원으로서 전국을 돌며 노동자를 교육하고 조직화시켰다. 그는 1981년 8월 예비군 훈련을 받다 남영동으로 끌려왔다. 전두환 신군부는 전민노련과 전국민주학생연맹(전민학련) 등 처음 전국적으로 체계를 갖추고 진행된 노학연대 조직에 용공을 덮어 씌워 와해하고자 했다. 이른바 ‘학림사건’이다. 유 소장은 자신이 끌려왔던 5층 10호실로 데리고 들어가 39년 전 처참했던 기억을 생생히, 하지만 덤덤히 떠올렸다. “벽과 천장 모두 짙은 붉은색으로 칠해진 방이었는데 팬티만 남기고 옷을 다 벗기더라고요. 그리고 풍채 좋고 잘생긴 사람이 들어오더니 다짜고짜 ‘너 공산주의자지?’라고 묻고 ‘아니다’라고 했더니 다시 ‘그럼 사회주의자야?’라고 묻더라고요. 역시 ‘아니다’라고 하자마자 주먹과 발이 마구 날아왔습니다.” 조사관들은 그를 “사장님”이라고 불렀다 한다. 유 소장은 한참 뒤에야 그가 누군지 알게 됐다. 일제 고등계 형사로 ‘고문왕’이었던 노덕술의 부하였으며, 고문기술자 이근안의 상사였고, 훗날 김근태 고문, 박종철 고문치사까지 모두 깊숙이 개입한 박처원 전 치안감이었다. 그때부터 유 소장에게 시작된 집단구타, 물고문 등은 꼬박 37일 동안 이어졌다. 광주의 피 위에서 집권한 신군부에게는 ‘용공 반국가단체 사건’이 필요했다. 갈비뼈 세 대와 치아 네 개가 부러졌다. 발바닥부터 머리까지 온통 피멍이 들고 퉁퉁 부었다. 경찰병원 응급실로 세 번이나 이송돼야 할 정도였다. 유 소장은 “자살하기 위해 창에 머리를 밀어넣어 봤지만 15㎝쯤 되는 좁은 창폭으로 몸이 들어가지 않았다”면서 “욕조 옆 콘크리트에 머리를 두어 차례 찍어 피가 줄줄 흘렀지만 죽지는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두꺼운 철문 밑을 가리키며 “빨갱이가 되길 원하면 빨갱이가 돼야 했고, 국가 전복 음모를 원하면 그렇게 돼야만 이 문턱을 넘을 수 있었다. 아니면…”이라고 말끝을 흐렸다. “용공 조작을 시인하면 무조건 사형당할 것 같아 이를 악물고 버텼어요. 아내와 당시 갓 한 돌 지난 딸, 그리고 어머니, 아버지를 생각하며 굴복하지 않았죠. 저들의 의도대로 자백하는 건 동료들에게도 또한 못할 짓이라 판단했죠. 물론 끝내는 항복했지만요.” 고문 후유증은 컸다. 전민노련 사건 구속 이후 1987년 6월 항쟁 당시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의 노동계 상임공동대표로 참여하는 등 활발히 활동했지만, 87년 13대 대선 때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한 ‘구로구청 사건’으로 다시 구속됐다. 오랜 시간에 걸쳐 몸과 가슴속에 깊숙하게 새겨진 폭력의 트라우마는 곪고 곪아 결국 터지고 말았다. “집에 혼자 있으면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일이 많아졌고, 자꾸 총 들고 누가 잡으러 올 것 같은 두려움이 들어 집을 나가야만 했습니다. 노숙도 하고, 구걸도 하다 뒤늦게 연락받은 가족들이 찾아와서 데려가는 생활이 10년 가까이 반복되곤 했습니다.” ●2012년 재심 전민노련사건 무죄 판결 국가가 개인에 남긴 폭력은 깊고 뚜렷했다. 사단법인 인권의학연구소(소장 이화영)의 도움을 받아 집단심리상담을 받는 등 여러 프로그램을 통해 자신의 상황을 좀더 정확히 깨달았다. 허리, 머리, 다리 등 곳곳에 여전히 남아 있는 국가폭력의 흔적에 대한 치료는 물론 잊을 만하면 찾아오는 불안과 두려움, 공포의 정체 또한 분명히 알게 됐다. 2012년 재심을 통해 전민노련 사건도 무죄 판결을 받았다. 힘겨웠지만 고문 후유증 또한 극복해 냈다. 자신의 책 제목처럼 단단한 돌멩이처럼 옛 노동운동가로서의 정연한 논리와 기억력 또한 완전히 복원됐다. 당시 정치 조직 사이 운동 방향을 둘러싼 갈등 및 이론 논쟁 등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그의 40여년 전 책이 이달 초 다시 복간됐다. 많이 팔릴 것 같으냐는 물음에 그는 “한 글자도 고치지 않은 채 다시 책을 냈는데, 그때도 그랬지만 지금도 부끄럽기만 하다. 누가 보겠느냐”고 짐짓 손사래를 쳤다. 하지만 그 이후 활동을 통해 직접 겪고 느꼈던 부분을 다시 책으로 써내면 어떻겠냐고 묻자 이번에는 정색하며 대답했다. “저야 지금은 아무런 활동도 하지 않지만, 당시 민주화운동 내부에서 있었던 미세하거나 분명한 차이가 지금도 현실 정치 등에 그대로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 민주주의가 한 걸음이나마 진전하도록 하기 위해 조금씩 정리하고 있습니다.” 성직자가 되고 싶었지만, 민주화운동가가 될 수밖에 없었던 시대의 복판을 살아온 유 소장의 ‘또 다른 외침’이 기대된다. youngtan@seoul.co.kr
  • 역사는 기억과 투쟁과정, 교육은 매개체… 교육 살아야 나라가 산다

    역사는 기억과 투쟁과정, 교육은 매개체… 교육 살아야 나라가 산다

    “카테리니행 기차는 8시에 떠나가네. 11월은 내게 영원히 기억 속에 남으리. 함께 나눈 시간은 밀물처럼 멀어지고 이제는 밤이 되어도 당신은 오지 못하리. 기차는 멀리 떠나고 당신 역에 홀로 남았네. 가슴속의 이 아픔을 남긴 채 앉아만 있네.” ‘기차는 8시에 떠나네’ 노랫말 일부다. 그리스 독립을 위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난 연인을 생각하는 이 노래는 그리스가 낳은 세계적인 음악가이자 나치에 저항한 레지스탕스로서 그리스 민주화 운동의 상징인 데오도라키스의 작품인데 아그네스 발차가 불러 그리스 국민가요가 됐다. 광주항쟁이 벌써 40년을 넘겼다. 그에 앞서 4월혁명이 60년을 넘겼고 제주4·3항쟁은 70년을 넘겼다. 모두가 우리의 역사가 됐다. 광주항쟁은 폭도들의 난동으로 왜곡됐다가 민주화운동으로 제자리를 잡았다. 초기에는 실패한 항쟁으로 간주됐지만 7년 후 6월항쟁의 씨앗이 되고 원동력이 됨으로써 성공한 항쟁으로 역사 속에서 부활했다. ●한국 민주주의는 광주항쟁에 크게 빚져 1970년대 이후 우리의 민주화 과정은 유신군사독재에 대한 반대로 시작돼 부마항쟁, 10·26사태, ‘서울의 봄’으로 전개되다가 광주항쟁의 실패로 좌절되는 듯했지만 오히려 그 실패를 딛고 6월항쟁으로 되살아나 드디어 민주화를 이루는 고단한 과정을 거쳤다. 이런 점에서 한국 민주주의는 광주항쟁에 크게 빚지고 있으며 우리 모두 광주에 빚지고 있는 셈이다. 이 빚을 어떻게 갚아야 할까? 가장 중요한 과제는 진상규명이다. 광주항쟁을 대규모 학살로 물들인 신군부의 발포에 대한 진상규명은 아직도 미흡하다. 발포자는 있는데 명령자가 없다. 무고한 다수의 비무장 시민을 대상으로 발포를 명령한 자가 누구인지 밝혀내야 한다. 금남로의 발포와 헬기 사격이 우발적으로 이루어졌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마지막 날 전남도청에 대한 유혈진압작전은 국민을 살육한 천인공노할 만행이다. 다시 진상규명위원회가 발족됐다니 다행인데 40년이 지나도록 감추어져 있는 진상이 조속히 밝혀지도록 모두가 함께 노력해야 할 것이다. 또한 광주항쟁의 정신을 왜곡하고 피해자들을 능멸하고 유가족들을 아프게 하는 일체의 망언과 망동을 중단해야 한다. 회고록에서 거짓말로 일관하는 전두환은 광주학살에 가장 큰 책임을 져야 할 인물인데 여전히 반성하지 않고 있다. 전두환은 광주항쟁을 ‘폭동’이라고 했고 이순자는 ‘전두환을 민주주의의 아버지’라고 했다. 지만원은 시민들의 저항을 북한군의 개입이라고 주장하면서 수많은 ‘광수’를 양산하고 있다. 광주항쟁 유공자를 괴물집단에 비유한 의원이나 광주항쟁을 폭동이라고 주장한 의원이 소속돼 있는 미래통합당은 무책임한 정당이다. 이러한 거짓과 망언이 활개치지 않도록 역사왜곡처벌법이 조속히 제정돼야 할 것이다. 더구나 우리는 아직도 광주항쟁의 피해자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알지 못한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시민이 죽고 다쳤는지 정확하지 않다. 그 시기에 행방불명된 사람도 있고 행방불명과 사망 사이의 인과관계도 명확하지 않다. 더구나 진상이 드러나지 않은 많은 사망자가 어딘가에 암매장돼 있을 것이라는 짐작을 거두기 어렵다. 이 모든 상황을 조사 활동만으로 파악하기도 어렵다. 그래서 당시 가해자의 편에 섰던 사람들의 역할이 필요하다. 40주년 기념식에서 대통령이 ‘용기 있는 고백’을 요청한 것도 이런 이유일 것이다. 최근 우리나라와 일본을 비교하는 이야기가 많다. 일본 경제의 장기 침체와 ‘아베노믹스’의 실패로 일본의 경제적 우위가 흔들린다는 주장이 있는데 일본 젊은이들의 무기력증에서 그 이유를 찾기도 한다. 코로나19에 대한 대응방식에서도 차이를 보였다. 우리 사회의 역동성이 발전의 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에서는 근대 이후 치열한 체제 논쟁이 드물었지만 우리는 동학혁명 이후 100년 동안 무수히 많은 변동을 거쳤고, 특히 해방 이후 험난했던 민주화의 격동 과정은 역사 발전의 큰 동력이 되고 있다.●해방 후 민주화 과정은 역사발전의 동력 이런 점에서 나라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경제 발전, 산업 발전, 기업 발전, 기술 발전이 뒷받침돼야 하겠지만 역사가 잘 정리되고 그것이 교육으로 뒷받침되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한 요건임을 알 수 있다. 역사가 바로 서야 하는 이유는 너무나도 자명하다. 역사가 바로 서지 않고서는 사회가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찾을 수 없거니와 그 동력을 발견할 수도 없다. 교육이 바로 서야 하는 이유는 제대로 된 교육 없이는 나라가 바로 설 수 없기 때문이다. 최근 사회적 논란을 야기한 ‘갓갓’과 ‘박사’가 대학 재학생이라는 사실을 교육의 관점에서 심각하게 바라보아야 한다. 일전에 원로 학자 도정일 선생이 교양교육과 전인교육이 교육의 본질이라고 설파한 적이 있다. 사람이 되는 교육, 사람을 만드는 교육이 필요하다는 지적이자 반성이다. 기술을 가르치려고 해도 사람이 된 다음에 가르쳐야 한다. 아무에게나 무술과 총기 사용법을 가르치면 흉악범이 된다. 칼이 의사에게는 사람을 살리는 도구지만 강도에게는 흉기가 된다는 사실과 같은 이치다. 특히 교육은 그 본령에 충실해야 하는데 불법과 비리가 만연된 학교에서 오로지 지식과 기술만 강조하는 풍조는 위험하기 짝이 없다. 이 풍조 아래서 수많은 ‘갓갓’과 ‘박사’가 양산되는 것이다. 적어도 교육자라면 갓갓과 박사가 한국 근대화의 산물이자 경쟁주의적 근대교육의 부산물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그러니 다시 사립학교법을 바라보아야 한다. 사립학교육성법의 모양을 띠고 있는 이 법이 기실 사립학교방치법이자 사학비리은폐법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사립학교건전육성법으로 바꾸어야 한다. 이 깨달음이 없으니 국회에서 사립학교법이 개정되지 않는 것이다. 학교 현장도 자세히 들여다보아야 한다. 과연 학생들이 자유롭게 뛰놀고 공부하면서 미래의 꿈을 키우는 환경인지, 교수와 교사들이 사명감을 가지고 교육과 연구에 종사하는 환경인지 판단해야 한다. 학교가 학원과 구별되는 교육기관인 것은 철학과 근본이 있기 때문이다.●文정부 사학비리·대학 서열화 개혁 사라져 정부가 출범 초기에 사학비리, 대학 서열화, 사교육의 문제점을 인식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인식이 많이 희미해진 모양이다. 대학 문제의 본질은 실종되고 프로젝트만 강조되고 사학 문제는 여전히 그대로인데 ‘공영형 사립대학’ 이야기는 어딘가에 묻혀서 사라져버렸다. 도탄에 빠진 사학을 살리자는데 기획재정부의 예비타당성조사는 무슨 잠꼬대 같은 말인가? 인성교육과 전인교육이 돈으로 환산된다는 말인가?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다하자던 뜨거운 맹세. 동지는 간 데 없고 깃발만 나부껴. 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그리스에 발차의 노래가 있다면 우리에게는 ‘임을 위한 행진곡’이 있다. 백기완의 장편시 묏비나리에 김종률이 곡을 붙여 광주항쟁에서 산화한 영원한 대변인 윤상원과 먼저 간 노동운동가 박기순의 영혼결혼식에 바쳐진 노래다. 이 노래가 광주항쟁의 중심 무대였던 옛 전남도청 광장에서 울려 퍼졌다. 대통령과 여야 대표들을 포함해서 기념식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이 함께 부르는 광경을 보면서 역사가 기억과의 투쟁 과정이고 교육이 그 매개체라는 사실을 다시금 재확인했다. 교육이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는 말이다. 나라를 위해서 일하는 사람들은 이 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상지대 총장
  • 어둑한 근대사에 돋보기…행간 속 민족을 사색하다

    어둑한 근대사에 돋보기…행간 속 민족을 사색하다

    민족문제연구소 소장이자 원로 비평가인 임헌영(79) 선생의 이미지는 불가피하게 한국 근현대사와 함께 선명하게 각인된다. 이른바 ‘남민전 사건’으로 인한 투옥과 시련 그리고 민족문제연구소로 상징되는 사회운동에의 투신이 한 축의 면모라면, 다른 한 축은 치밀한 자료 섭렵을 통해 한국 근현대문학의 실증적·사상적 연구를 축적해 온 면모로 귀납된다. 그 가운데 연구소에서 오랜 열정과 공력을 다해 펴낸 ‘친일인명사전’(2009)의 성과는 우리 근대사의 어둑한 순간들을 현재로 소환해 반성적 자료를 구축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세 권 분량에 4300여명을 수록한 이 책의 성과는 두고두고 임헌영 선생의 생애를 집약하는 표지가 돼 줄 것이다.●알리고 밝히고 세워 가야 할 역사 친일 행적을 밝히는 게 쉬울 리 없다. 당시 작업에 대한 폄하와 공격도 상당했다. 선생이 연구자들에게 강조한 점은 이것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을 당신 조상 다루듯 하라.’ “많이 넣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도저히 뺄 수 없을 경우에만 넣도록 하자는 거였습니다. 그래서 창의적 교육관이 아니라 단순히 수동적 집행에 머물렀던 교육자 같은 이들은 모두 빠졌죠.” 민족사적 관점에서 반성적 자료가 되기에 족한 이들, 제국주의 협력의 자의식을 가진 이들만 추린 모종의 정예화 결과인 셈이다. 반발이 만만치 않았지만, 한쪽에서는 당사자인데도 이러한 과정을 흔연하게 받아들인 이들도 있었다고 한다. 그분들이 준 힘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컸다.“파인 김동환의 자제 김영식 선생은 전집에 아버지가 쓴 친일 문건을 다 실었어요. 아버지가 사죄할 기회가 없었는데 자신이 대신 사죄한다면서 역사적 사실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는 데 큰 힘을 줬습니다.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어쨌든 인명사전 출간 후 친일 청산에 대한 긍정적 지지자는 많이 늘어났고, 다수 여론조사에서 친일 청산 여론이 70%가 넘는다고 했다. “우리 연구소는 시민단체 가운데 가장 역사의식이 투철한 구성원들로 이뤄진 것 같아요. 이제 저희 과제는 오늘도 여전히 일본이 옳았다고 하면서 학문이나 예술이나 경제 논리로 포장하는 이들과의 싸움에 있습니다. 대외적으로도 일본의 새로운 파시스트들과의 싸움이 중요하지요.” 최근 연구소는 각고의 노력으로 서울 청파동에 새 건물을 마련했다. 미디어 환경의 변화에 따라 스튜디오를 만들어 팟캐스트를 찍고 그걸 유튜브에 공개해 일반 시민들과 연구소 성과를 공유하고 있다. 일본 파시즘 지지 세력과 우리 쪽 일부 세력이 보여 주는 정치적 화음에 주목할 때 아직도 연구소가 알리고 밝히고 세워 가야 할 역사의 흐름이 만만치 않은 듯했다. 물론 일본에도 식민지배에 대한 사과와 우경화 반대를 외치는 이들이 있고, 우리 쪽에도 민족 경험을 훼손하려는 이들이 있다. 이러한 복합적인 현재형을 돌파해 제대로 된 민족사를 쓰기 위해 선생의 헌신과 노력은 지속될 것이다.친일 문제 연구에 평생을 바친 임종국 선생의 유지를 이어 1991년 설립된 연구소가 펼치는 한국 근현대사 연구와 과거사 청산 작업 역시 한동안 지속될 것이다. ●국내외를 망라한 작가들의 정치의식 탐색 사실 인터뷰를 촉발한 직접적 계기는 선생이 오랜만에 두 권의 역저를 잇달아 낸 데 있었다. ‘임헌영의 유럽문학기행’(역사비평사, 2019), ‘한국소설, 정치를 통매하다’(소명출판, 2020)가 그것이다. 두 책은 대조적 속성을 띠고 있다. 앞의 것이 광폭의 발품과 해박한 독서력을 기반으로 해외에 눈을 돌렸다면, 뒤의 것은 한국소설의 맹장들에 대한 정치적 관점에서의 독법이 담겼다. 먼저 유럽문학 기행은 어떤 의미였을까? “감옥에서 나와 여행을 못 다닌 게 원통했어요. 문화센터 같은 데서 강의하다가 외국 문인들의 박물관 방문 프로그램을 계획했는데 모집이 잘돼 제 뜻대로 계획도 짜고 진행도 했어요. 성공적이었지요. 이 책에서 다룬 분들은 모두 평화, 반전, 반제국주의의 작가들이에요. 민중적 정치의식을 가진 분들의 문학을 테마로 한 결과이지요.” 책은 영독불러의 황금분할을 이루고 있다. 푸시킨, 톨스토이, 고리키, 스탕달, 위고, 괴테, 횔덜린, 헤세, 바이런, 로런스 등이 선생의 열정적인 답파(踏破)와 재구성에 의해 선명하게 되살아난다. 에세이풍으로 써 가는 선생의 친절하고도 에두름 없는 문장들이 책의 가독성을 한결 높여 준다. 위대한 작가들의 사생활, 특별히 외도 경험 같은 어둑 한 측면까지 훤칠하게 재현했다. ‘한국소설, 정치를 통매하다’는 어떠할까? “우리가 위대한 시민혁명을 했는데도 여전히 발전된 정치의식이 빈곤하다는 것을 최근 절감했어요. 늘 흔들리고 위태하기만 합니다. 그래서 소설가들을 통해 역사를 올바로 보는 눈, 정치를 제대로 하는 힘을 빌리자고 생각했지요. 이왕이면 독자가 많은 작가들을 골랐어요. 되도록 각주를 빼고 연애소설 읽듯이 쉽게 풀어 갔습니다.” 책에는 장용학, 이호철, 최인훈, 박완서, 이병주, 남정현, 황석영, 손석춘, 조정래, 박화성, 한무숙 등이 담겼는데, 문학에 친숙하지 않은 독자들에게는 이병주가 다가올 것 같고, 문학의 자의식이 큰 분들에게는 최인훈과 남정현이 매우 유의미하게 다가올 것 같다. “정치사 비판의 현장 중계는 이병주 선생이 최고봉이에요. 어떤 정치평론가도 못 따라가요. 최인훈 선생은 우리 문단의 고질병인 파벌을 넘어선 범례로 다루면 좋겠고요. 그 지성의 날카로움과 처연함이 단연 빛나지요.” 아직도 우리에게는 ‘정치’라는 말을 향한 기대와 혐오의 엇갈림이 있다. 그러나 정치야말로 가장 첨예한 예술이 아니던가. 책 서문에 인용된 나폴레옹의 말처럼 모든 공동체에서는 “정치가 운명”이 아니겠는가. 그 점에서 이 책은 선생의 사회적 실천의 연장선상에서, ‘비평가 임헌영’의 두께를 한 뼘 늘려 줄 것이다.●고단하고도 외로운 길 선생은 1966년 ‘현대문학’을 통해 비평가로 등단했다. 그 후 카프(KAPF)나 해방기에 대한 자료를 누구보다도 선구적으로 모았고 자료집을 냈으며 그 논리와 역사를 재구성하는 데 진력했다. 선생은 1980년대 이후 우리 지성사의 한 축을 담당했던 ‘해방 전후사의 인식’ 시리즈에서도 단골 필자였다. 이쪽을 연구하는 사람이 거의 없던 시절이었다. “등단하기 전부터 카프에 대한 애정을 가졌어요. 해금 전부터 납월북 작가에게 관심이 많았고요. 그때는 대학 도서관에서 자료를 카메라로 직접 찍었어요. 해독이 잘 안 되면 살아 계신 분들께 전화로 직접 확인하기도 했습니다. 당시로서는 최첨단을 걸었지요.” 임헌영 비평은 참여문학, 민족문학, 리얼리즘, 민중문학에 이르는 패러다임을 모두 품고 있다. 안으로는 동학농민혁명, 4·19혁명, 광주민중항쟁, 6월항쟁과 관련한 문학에 대해 꾸준한 비평을 해 왔고, 밖으로는 글로벌 시대의 해외동포문학에 대한 탐구도 줄기차게 수행함으로써 한국문학의 외연을 넓혀 갔다. 이처럼 선생은 근현대 민족 수난사와 함께하면서 디아스포라 문제에도 눈을 떴다. 물론 선생은 서정적이고 예술적인 언어도 세상에 많이 내놓았다. 이 점, 선생을 설명하는 데 퍽 중요한 균형추가 아닐 수 없다. 마침 연구소 곁 숙명여대에서 재직하는 권성우 교수가 동석을 해 줬는데, 권 교수가 선생께 ‘앞으로 어떤 책을 내고 싶으냐’는 질문을 던졌다. “북한문학 한번 정리해야 하고요. 해외동포문학도 중요합니다. 해외동포 쪽은 제가 제일 먼저 손대지 않았나 싶어요. 문학사회사, 특별히 필화사에 애정이 가요. 아마도 필화사가 제일 먼저 나오지 않을까 합니다.” 이후로 두 분의 치열한 대화가 오갔다. 재일조선인문학, 특히 김석범과 김시종과 서경식에 대한 경험적 대화는, 비록 즉각적이었지만 임헌영 선생의 경험과 사유가 어디까지 뻗어 나가 있는지를 실물적으로 알려 줬다. “젊은 작가들의 세계를 평하기에는 이제 제 비평의 틀이 안 맞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변해도 문학의 원칙은 그대로라고 생각해요. 그걸 훼손하면 안 됩니다. 원래 문학은 문학 하는 이들의 전유물이 아니었어요. 교양의 정점에서 문사철을 모두 이끌어 갔습니다. 손끝으로 하는 문학 말고 가슴으로 생각하고 실천하는 문학을 지금도 옹호하고 또 대망하고자 합니다.” 굵직한 의제들을 버리고 쇄말주의에 빠진 우리 문학에 대한 원로다운 문제 제기인 셈이다. 선생의 말씀처럼 근본적 문학의 위의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변하되 변하지 않을 문학을 위해, 여전히 현재형 의제인 민족사 복원을 위해, 선생이 걷는 고단하고도 외로운 길은 아직도 가파르게만 보였다. 하지만 그 길은 누군가는 걸어 우리에게 비춰야 했던 오랜 지남(指南)으로 남을 것이다. 문학평론가·한양대 교수
  • 1987년 최루탄에 사망한 노동자, 국가 상대 손배 소송 패소

    1987년 여름 노동자 대투쟁 당시 경찰이 쏜 최루탄에 맞아 숨진 이석규씨의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청구권 소멸시효가 이미 지났다는 이유에서다. 24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4부(부장 김병철)는 이씨의 아버지와 형제들이 국가에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이씨는 1987년 6월 항쟁 이후 벌어진 노동자 대투쟁 당시 대우조선 노조의 파업에 참여했다. 평화행진 도중 경찰이 쏜 최루탄을 가슴에 직격으로 맞고 쓰러져 사망했다. 당시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던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사인 규명을 요구하는 활동에 나섰다가 제3자 개입 혐의로 구속되기도 했다. 재판부는 “이씨가 사망한 1987년 8월 22일에는 유족들이 손해와 가해자를 알았을 것임에도 그로부터 3년이 넘어 소송을 제기해 소멸시효가 지났다”며 유족들의 청구를 기각했다.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의 청구권은 손해와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 이내, 불법행위가 있었던 날로부터 10년 이내 행사해야 한다. 민나리 기자 mnin1028@seoul.co.kr
  • 경찰이 쏜 최루탄 맞고 숨진 노동자…법원 “국가배상 불가”

    경찰이 쏜 최루탄 맞고 숨진 노동자…법원 “국가배상 불가”

    1987년 여름 노동자 대투쟁 당시 경찰이 쏜 최루탄에 맞아 숨진 고 이석규씨의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긴급조치 위반 등 국가배상이 이뤄진 다른 과거사 사건들과 달리 따로 재심 절차가 없었기 때문에 청구권 소멸시효가 이미 지났다고 법원은 판단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4부(김병철 부장판사)는 이씨 유족들이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고 24일 밝혔다. 이씨는 1987년 6월 항쟁에 이어 여름에 벌어진 노동자 대투쟁 당시 대우조선 노조의 파업에 참여했다. 그러다 8월 22일 거제도에서 대우조선 노사 간 마지막 협상이 결렬되자, 노조원들이 평화 행진을 벌이던 중 이를 포위한 경찰이 최루탄을 쐈다. 이씨는 흉부에 최루탄을 직격으로 맞고 병원으로 이송되던 중 사망했다. 당시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던 노 전 대통령이 이씨의 사인 규명 활동에 나섰다가 제3자 개입 혐의로 구속되기도 했다. 이후 2003년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는 이씨를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했다. 지난해 유족들은 “경찰 공무원들의 과잉 진압 과정에서 이씨가 사망했으므로 국가가 이로 인한 정신적 피해를 보상해야 한다”며 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이씨가 경찰 등에 의해 자행된 기본권 침해행위에 의해 희생된 사실은 분명하다”면서도 “이씨가 사망한 1987년 8월 22일에는 유족들이 손해와 가해자를 알았을 것이므로, 그로부터 3년이 넘어 소송을 제기해 소멸시효가 지났다”고 판단했다. 이씨가 명백한 불법에 희생됐다는 사실을 유족이 알았으면서도 사망 직후 손해배상을 요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의 청구권은 피해자나 법정대리인이 그 손해와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 이내, 불법행위가 있었던 날로부터 10년 이내에 행사해야 한다. 하지만 법원은 1987년 여름 노동자 대투쟁보다 앞서 발생한 박정희 정권 시절 긴급조치 위반 사건 피해자에게도 국가의 배상책임을 인정한 바 있다. 또 헌법재판소는 2018년 8월 중대한 인권침해 사건 등에 대해서는 일반 사건에서처럼 민법상 소멸시효 제도를 적용하는 것이 위헌이라고 결정하기도 했다. 이씨의 유족 측도 이러한 사례를 들어 소멸시효를 적용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긴급조치 사건 등은 모두 유죄 확정판결에 대해 재심 판결이 확정된 사안”이라며 이씨의 경우와 다르다고 판단했다. 이어서 “긴급조치 사건 등은 과거 유죄판결이 고문 등으로 조작된 증거에 의해 잘못 내려졌다는 사실이 재심으로 확정되기 전까지는 유족들이 공무원의 불법행위를 이유로 국가 배상을 청구할 것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이씨의 사건과 구분된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또 헌재의 위헌결정 전까지 이씨의 유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것이 불가능했다고 볼 수도 없다고 덧붙였다. 곽혜진 기자 demian@seoul.co.kr
  • 전두환 동상 철거 소식에 불이 난 청남대 전화

    전두환 동상 철거 소식에 불이 난 청남대 전화

    충북도가 청남대에 설치한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동상 등을 철거키로 하자 동상을 활용해 아픈 과거를 알려 역사의 교훈으로 삼자는 전화가 빗발치고 있다. 22일 충북도 청남대관리사업소에 따르면 충북 5.18민중항쟁기념행사위원회의 철거요구에 따른 법률 검토와 각계 의견수렴을 통해 지난 14일 두 전직 대통령의 동상과 기록화, 이름이 붙여진 산책로의 철거가 결정됐다. 진보단체 등의 계속된 철거요청을 외면했던 도의 입장변화에 가장 크게 작용한 것 ‘전직 대통령의 예우에 관한 법률’이다. 이 법에 따르면 금고 이상의 형이 확정된 전직 대통령은 경호 및 경비를 제외한 다른 예우를 받지 못하고 기념사업도 할 수 없다. 철거하지 않으면 법률위반에 해당될수 있는 것이다. 전 전 대통령은 내란 및 내란 목적 살인죄로 무기징역을, 노 전 대통령은 같은 혐의로 징역 17년을 선고받았다.수년간의 우여곡절 끝에 철거가 결정되면서 ‘죄인 미화’ 등 청남대를 둘러싼 논란이 말끔히 해소될 것으로 기대됐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철거결정 소식이 전해지자 시민들의 전화가 매일 10여통 가까이 청남대에 쇄도하고 있다. 청남대 관계자는 “동상을 그대로 두고 5공비리와 5.18 광주시민 학살 등을 기록해 진실과 정의를 바로세우는 교육현장으로 활용하자는 전화가 많이 걸려오고 있다”며 “동상을 없애려면 청남대에 있는 모든 대통령 동상을 다 철거하라며 목소리를 높이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또 다른 청남대 관계자는 “공감대 형성을 위해 도내 경제, 보훈단체 대표 등을 만나고 있는데 ‘동상을 없앤다고 과거가 사라지는 것 아니다’라며 철거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충북도는 철거를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5.18단체도 반드시 철거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충북 5.18민중항쟁기념행사위원회 정지성 공동대표는 “그들의 잘못을 함께 기록해도 동상이 있으면 우상화라는 부작용이 우려된다”며 “동상을 철거한 뒤 그 자리에 철거된 이유 등을 기록하는 게 가장 좋은 선택이 될 것”이라고 충고했다. 철거가 결정된 동상은 도가 2015년 1월 제작했다. 도는 청남대를 사용했거나 방문했던 전두환·노태우·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 전 대통령의 이름을 붙여 둘레길도 만들었다. 2015년 6월 준공된 청남대 대통령기념관에는 전직 대통령들의 생애를 담은 기록화가 전시돼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 동상은 그가 불명예 퇴진하면서 아직 만들지 않았다. 청남대는 1983년 12월 당시 전두환 대통령이 청주시 상당구 문의면에 세운 대통령 전용별장이다. 2003년 노무현 대통령이 충북도로 소유권을 넘기면서 민간에 개방됐다. 청주 남인우 기자 niw7263@seoul.co.kr
  • “일제 문서에 ‘도주’ ‘납치’ 등 표현이 조선인 강제동원 근거”

    “일제 문서에 ‘도주’ ‘납치’ 등 표현이 조선인 강제동원 근거”

    정의기억연대의 부실 회계 의혹과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 당선자의 기부금 횡령 의혹이 불거지면서 과거 일본군의 반인도적 전쟁범죄를 부정하는 극우 세력의 주장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이에 대해 일제강점기 역사 전공자인 정혜경 박사는 “피해자의 아픔에 공감하지 못하고 사실을 외면하는 불성실한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일제강제동원 평화연구회’ 대표연구위원인 정 박사는 21일 서울 중구 서울시NPO지원센터에서 ‘그들이 부정하는 역사’라는 제목의 강연을 진행했다. 정 박사는 국무총리 소속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 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위원회에서 2005년부터 11년 동안 조사과장을 지내면서 3000여명의 강제동원 피해자를 만났다. 이날 강연은 법인권사회연구소가 마련했다. 정 박사는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 김낙년 동국대 교수 등이 책 ‘반일 종족주의’, ‘반일 종족주의와의 투쟁’에서 주장한 내용을 일본 정부와 일본 기업 자료를 근거로 조목조목 비판했다. 먼저 ‘노무 동원은 자발적이었지 강제가 아니었다’는 주장에 대해 정 박사는 “일본 미쓰비시광업이 니가타현에서 운영한 사도광업소의 ‘조선인 광부 현황’(1943년 6월 기준)을 보면 ‘도주’(달아남) 항목이 나온다”면서 “‘퇴사’ 대신 ‘도주’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노무에 동원된 조선인들은 2년 후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자발적이었다면 이런 일이 있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강제동원 방법 중 하나인) 강제 연행은 명백한 역사 왜곡’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일본 내무성 관리국의 1944년 7월 출장복명서를 인용하면서 ‘출동은 납치와 같은 상태. 사전에 동원 사실을 알리면 모두 도망쳐 버리기 때문’이라고 적힌 대목이 있었다고 반박했다. 정 박사는 “조선총독부 전직 재무국장은 ‘트럭을 몰고 순사를 동반해 시골에서 잡아채 오는 일’이라고 증언한 적이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2015년 7월 독일 본에서 열린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당시 주유네스코 일본 대사가 ‘본인의 의사에 반해 동원되어 가혹한 조건 아래서 강제로 노역한 수많은 한국인들이 있었다’고 발언한 적이 있다”고 설명했다. 정 박사는 또 “30년 가까이 ‘수요집회’가 열리며 우리가 ‘위안부’ 문제 해결을 외치는 동안 정부와 학계에서 ‘위안부’ 피해 문제의 진상을 규명하려는 노력은 없었다. 이것은 사회 전체의 책임”이라면서 “고령의 피해자가 대신 정부가 진상 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글·사진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택시운전사’ ‘1987’ 보고 왜곡 사례 찾고… 올해는 랜선 교육

    ‘택시운전사’ ‘1987’ 보고 왜곡 사례 찾고… 올해는 랜선 교육

    지난 16일 강원 원주시 북원중 교사 이희정씨는 5·18민주화운동 40주년을 앞두고 유튜브에 8분 길이의 영상을 올렸다. 영화 ‘택시운전사’와 ‘1987’을 통해 1980년 광주의 민주화운동이 어떻게 1987년 6월 민주항쟁으로 이어졌는지 설명하는 내용이다. ●영상·자료 수집과 판단용 학습지 제공 코로나19 여파로 전국 초·중·고교 학생들이 여전히 등교 개학을 하지 못하면서 올해 5·18민주화운동 40주년 관련 수업도 예년과는 다르게 진행됐다. 교사들은 현장 체험학습이나 대면 교육이 아닌 온라인 강의와 학습 자료로 수업을 하고 있다. 이씨는 영상에서 5·18의 중요성을 언급하며 “민주화운동을 했던 사람들을 깎아내리고 ‘빨갱이’라고 하는 등 공격이 계속되고 있다”고 학생의 눈높이에 맞춰 설명한다. 전남 순천시 별량중 교사 박래훈씨는 지난 14일 ‘5·18 왜곡 사례 찾기’, ‘헬기 사격 진실은’, ‘역사 왜곡 어떻게 대응할까’ 등을 주제로 온라인 수업을 진행했다. 극우 인사 지만원씨의 글과 전두환 전 대통령 회고록에 나온 주장을 제시하고, 학생이 스스로 사실인지 거짓인지 자료를 수집해 판단할 수 있는 학습지를 제공하는 식이다. ●계기수업 토론에 온·오프라인 80여명 참석 박씨는 전남 지역 교사들과 함께 수업을 점검하고, 어떻게 하면 더 효과적으로 온라인을 활용해 계기수업을 할 수 있을지 토론하는 자리도 마련했다. 박씨는 “5·18민주화운동 인정교과서 집필 작업을 같이한 동료 교사가 교과서 내용을 바탕으로 학습지를 만들고, 교사들을 대상으로 온라인 공개수업을 진행했다”며 “현장에 30명, 온라인으로 50여명의 교사가 참석했다”고 전했다. 김정화 기자 clean@seoul.co.kr
  • 코로나가 바꾼 교실…5·18 수업도 유튜브로

    코로나가 바꾼 교실…5·18 수업도 유튜브로

    지난 16일 강원 원주시 북원중 교사 이희정(34)씨는 5·18민주화운동 40주년을 앞두고 유튜브에 8분 길이의 영상을 올렸다. 영화 ‘택시운전사’와 ‘1987’을 통해 1980년 광주의 민주화운동이 어떻게 1987년 6월 민주항쟁으로 이어졌는지 설명하는 내용이다. 코로나19 여파로 전국 초·중·고교 학생들이 여전히 등교 개학을 하지 못하면서 올해 5·18민주화운동 40주년 관련 수업도 예년과는 다르게 진행됐다. 교사들은 현장 체험학습이나 대면 교육이 아닌 온라인 강의와 학습 자료로 수업을 하고 있다. 이씨는 영상에서 5·18의 중요성을 언급하며 “민주화운동을 했던 사람들을 깎아내리고 ‘빨갱이’라고 하는 등 공격이 계속되고 있다”고 학생의 눈높이에 맞춰 설명한다. 전남 순천시 별량중 교사 박래훈(42)씨는 지난 14일 ‘5·18 왜곡 사례 찾기’, ‘헬기 사격 진실은’, ‘역사 왜곡 어떻게 대응할까’ 등을 주제로 온라인 수업을 진행했다. 극우 인사 지만원씨의 글과 전두환 전 대통령 회고록에 나온 주장을 제시하고, 학생이 스스로 사실인지 거짓인지 자료를 수집해 판단할 수 있는 학습지를 제공하는 식이다.박씨는 전남 지역 교사들과 함께 수업을 점검하고, 어떻게 하면 더 효과적으로 온라인을 활용해 계기수업을 할 수 있을지 토론하는 자리도 마련했다. 박씨는 “5·18민주화운동 인정교과서 집필 작업을 같이한 동료 교사가 교과서 내용을 바탕으로 학습지를 만들고, 교사들을 대상으로 온라인 공개수업을 진행했다”며 “현장에 30명, 온라인으로 50여명의 교사가 참석했다”고 전했다. 김정화 기자 clean@seoul.co.kr
  • 국민 10명 중 6명 “‘5·18 정신’ 헌법 전문에 싣는 데 공감”

    국민 10명 중 6명 “‘5·18 정신’ 헌법 전문에 싣는 데 공감”

    리얼미터-YTN 여론조사 결과국민 10명 중 6명은 문재인 대통령이 개헌 헌법에서 추진하겠다고 밝힌 헌법 전문에 ‘5·18 정신’을 싣는 데 공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문재인 대통령은 18일 개헌이 이뤄질 경우 헌법 전문에 5·18민주화운동을 명시할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18일 리얼미터에 따르면 지난 15일 YTN 의뢰로 전국 18세 이상 남녀 500명을 대상으로 헌법 전문에 5·18 정신을 담는 데 대한 공감 여부를 조사(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4.4%포인트)한 결과, 응답자의 58.6%가 ‘공감한다’고 응답했다. ‘공감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35.5%, ‘잘 모른다’는 5.9%로 집계됐다. 공감한다는 응답은 호남, 70세 이상을 제외한 모든 연령대, 진보층, 더불어민주당·열린민주당 지지층에서 많았다.문 대통령은 이날 광주 5·18민주광장(옛 전남도청 앞)에서 열린 40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해 “헌법 전문에 5·18민주화운동을 새기는 것은 5·18을 누구도 훼손하거나 부정할 수 없는 대한민국의 위대한 역사로 자리매김하는 일”이라면서 “2018년 5·18민주이념의 계승을 담은 개헌안을 발의했었다. 언젠가 개헌이 이뤄진다면 그 뜻을 살려가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 14일 공개된 광주MBC와의 인터뷰에서도 “다시 개헌이 논의된다면 (헌법 전문에) 5·18 민주화운동과 6월 항쟁이 담겨야 우리 민주화운동의 역사가 제대로 표현되는 것이고 국민적 통합도 이뤄질 수 있다고 믿는다”고 밝혔었다.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경기도의회 더불어민주당, 5·18 민주화운동 영상 추모제

    경기도의회 더불어민주당, 5·18 민주화운동 영상 추모제

    경기도의회 더불어민주당(대표의원 염종현·부천1)은 5·18 민주화 운동 40주년을 맞아 ‘기억하라 오월 정신! 꽃피어라 대동세상!’이란 주제로 영상 추모제를 18일부터 31일까지 진행한다. 이번 영상추모제는 5·18 민주화운동 40주년을 맞아 교섭단체 차원에서 오월 광주의 숭고한 정신을 계승하고, 민주주의의 현재적인 의미를 되새기기 위해 마련됐다. 당초 더불어민주당은 대표단 중심으로 국립 5·18 민주묘지를 방문하여 추념행사를 진행할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가 최근 이태원 클럽을 기점으로 재확산되면서 현장방문 대신 영상추모제로 대신했다.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5·18 숭고한 정신을 잊지 않겠습니다’ 등의 문구가 적힌 푯말을 들고 있는 사진들이 슬라이드 형식으로 경기도의회 홈페이지 5·18 추모배너에 게시된다. 염종현 대표는 홈페이지에 게시된 영상 기념사를 통해 “오월 광주는 1987년 6월 항쟁으로, 노동자 대투쟁으로, 위대한 촛불 혁명으로 되살났다”면서 “민생과 정의, 평화와 번영의 한반도, 화해와 협력의 대동세상이 앞으로 우리가 이루어야 할 오월 광주의 정신”이라고 의미를 되새겼다. 한편 더불어민주당은 오는 23일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1주년을 맞아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영상 추모제도 경기도의회 홈페이지에서 함께 진행할 예정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박승원 광명시장 “5·18 민주화 희생으로 지켜온 민주주의 가치 소중히 이어나갈 것”

    박승원 광명시장 “5·18 민주화 희생으로 지켜온 민주주의 가치 소중히 이어나갈 것”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역사적 진실입니다. 수없이 많은 청년학생들의 희생으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자라왔고, 숭고하게 지켜온 민주주의의 가치를 우리 삶에서 더 소중히 지켜나가야 합니다.” 박승원 경기 광명시장은 철산동 상업지구 중앙광장에서 5·18민주화운동 40주년 기념 문화행사 ‘민주시민-365-민주생활’을 개최하고 이렇게 말했다. 지난 16일 치러진 행사는 5·18 민주화 운동 40주년과 곧 다가올 6·10 민주항쟁을 맞이해 민주주의의 가치와 더 나은 세상을 꿈꾸었던 수많은 분들의 헌신을 광명시민과 함께 되새겨보기 위해 마련됐다. 기념식에는 박승원 광명시장을 비롯해 조미수 광명시의장, 지역내외 주요인사, 청소년·예술가·시민 등 150여명이 참석했다. 광명시 청년 최찬희군의 5·18 민주화 운동 추모 자작곡 ‘무색의 향기’로 시작된 이날 행사는 5·18이 단순히 지나간 일이 아닌 살아있는 역사로 제대로 알고 기억해 나가겠다고 다짐하는 시간이었다. 박 시장은 기념사를 통해 “5·18 민주항쟁 희생자들과 오랜 시간 민주주의의 씨앗을 가꾸어 오신 우리 시대의 수많은 영웅들을 기억해 주시길 바란다”며 “앞으로 광명시는 5·18 민주화 운동에서 보여준 평범한 시민들의 용기를 잊지 않을 것이며 광주의 시민정신으로 민주주의를 지켜주신 모든 분들에게 위로와 감사를 전한다”고 말했다. 조미수 의장은 “40년 전 민주주의를 위해 목숨 바쳐 희생했던 시민의 힘은 위기를 극복하고 이겨내는 사회적 연대의 마음과 행동으로 이어져 오고 있다고 생각된다”며, “모든 광명시민이 함께 민주시민으로서 즐겁고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힘을 다하겠다”고 전했다. 이어 5·18의 실제 아픔과 한을 간직한 5·18 민중항쟁 김범태 시민협상대표는 “당시 광주의 현장과 억울하게 희생된 시민들의 목소리를 전달해 큰 감동과 울림을 주고 시대적 아픔을 공감하는 시간이 됐다”면서, “5·18 40주년을 기념하는 오늘 이 자리가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해 보는 자리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특히, 이번 행사에는 ‘임을 위한 행진곡’을 만든 김종률 작곡가가 참석했다. 그는 “임을 위한 행진곡을 작곡하게 된 배경과 함께 현재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삶 중에 문화예술이 가지는 전달력과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5·18민주항쟁이 교과서에서만 다룰 것이 아니라 문화예술로 꽃 피워야 5·18의 역사가 흔들리지 않는다”며, “5·18의 의미와 뜻이 문화예술로 승화돼 민주시민-365-민주생활로 자리 잡기를 기원한다”고 말했다. 마지막 순서로 최찬희군의 두 번째 자작곡 ‘거두어 주오’와 광명시청소년재단 오름청소년활동센터 청소년연합팀 강현아 디렉터 외 15명이 준비한 ‘5·18 민주화 운동 뮤지컬’ 공연이 이어졌다. ‘임을 위한 행진곡’을 참석자 전원이 제창하면서 헌화로 행사를 마무리했다. 광명시와 광명문화재단은 오는 6월 14일까지 철산 상업지구 광장 및 소하 아비뉴프랑 앞 광장 2곳에서 전시 및 지역예술가와 함께하는 5·18시민참여 프로젝트를 열어 ‘민주시민-365-민주생활’ 기념 문화행사를 이어갈 예정이다. 이명선 기자 mslee@seoul.co.kr
  • 문 대통령 “5·18 진실 고백해야…역사 올바로 기록하는 일” [전문]

    문 대통령 “5·18 진실 고백해야…역사 올바로 기록하는 일” [전문]

    “국가폭력의 진상 반드시 밝혀내야이제라도 용기내면 용서의 길 열려왜곡과 폄훼는 설 길이 없어질 것” 문재인 대통령이 18일 5·18민주화운동 40주년을 맞아 “발포 명령자 규명과 계엄군이 자행한 민간인 학살, 헬기 사격의 진실과 은폐·조작 의혹과 같은 국가폭력의 진상은 반드시 밝혀내야 할 것들”이라면서 “처벌이 목적이 아닌, 역사를 올바로 기록하는 일”이라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이날 광주 5·18민주광장에서 열린 제40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해 “정부는 5·18의 진상규명에 최선을 다하겠다. 지난 5월 12일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한 5·18진상규명조사위원회가 남겨진 진실을 낱낱이 밝힐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라며 이렇게 말했다. 문 대통령은 기념사에서 “광주시민들은 아픔을 넘어서는 긍지로 5·18의 명예를 소중히 지켜왔다. 광주 밖에서도 수많은 이들이 광주의 고통에 눈감지 않고 광주의 진실을 세상에 알렸다”고 했다. 이어 “진실이 하나씩 세상에 드러날수록 마음속 응어리가 하나씩 풀리고, 우리는 그만큼 더 용서와 화해의 길로 가까이 갈 수 있을 것”이라면서 “왜곡과 폄훼는 더 이상 설 길이 없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제라도 용기를 내어 진실을 고백한다면 오히려 용서와 화해의 길이 열릴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문 대통령은 “5·18 행방불명자 소재를 파악하고, 추가 희생자의 명예회복과 배·보상에 있어서도 단 한 명도 억울함이 없도록 하겠다”면서 경찰관뿐만 아니라 군인, 해직기자 등 다양한 희생자들의 명예회복을 위해서도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어 “5·18의 완전한 진실을 향한 국민의 발걸음도 결코 되돌리거나 멈춰 세울 수 없다. 국민이 함께 밝혀내고 함께 기억하는 진실은 우리 사회를 더욱 정의롭게 만드는 힘이 되고, 국민 화합과 통합의 기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문 대통령은 “헌법 전문에 ‘5·18민주화운동’을 새기는 것은 5·18을 누구도 훼손하거나 부정할 수 없는 대한민국의 위대한 역사로 자리매김하는 일”이라면서 “2018년, 저는 ‘5·18민주이념의 계승’을 담은 개헌안을 발의한 바 있다. 언젠가 개헌이 이루어진다면 그 뜻을 살려가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5·18민주화운동 기념일을 지방 공휴일로 지정한 광주시의 결정이 매우 뜻깊다”고도 했다. 문 대통령이 5·18 기념식에 참석한 것은 2017년과 2019년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다. 이번 기념식은 처음으로 1980년 항쟁 당시 본부였던 5·18민주광장에서 열렸다. 민주광장이 항쟁 당시 본부였고, 광장 분수대를 연단으로 삼아 각종 집회를 열며 항쟁 의지를 불태웠던 역사적인 현장이라는 점이 고려됐다.문 대통령 5·18민주화운동 기념사 전문 아래는 문 대통령의 제40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 기념사 전문.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광주·전남 시·도민 여러분, 오월 광주로부터 40년이 되었습니다. 시민들과 함께 하는 5·18, 생활 속에서 되살아나는 5·18을 바라며, 정부는 처음으로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을 망월동 묘역이 아닌, 이곳 전남도청 앞 광장에서 거행합니다. 5·18 항쟁 기간 동안 광장은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는 사랑방이었고, 용기를 나누는 항쟁의 지도부였습니다. 우리는 광장에서 결코 잊을 수 없는 대동세상을 보았습니다. 직접 시위에 참가하지 않은 시민들과 어린 학생들도 주먹밥을 나누고, 부상자들을 돌보며, 피가 부족하면 기꺼이 헌혈에 나섰습니다. 우리는 독재권력과 다른 우리의 이웃들을 만났고, 목숨마저 바칠 수 있는 민주주의의 참모습을 보았습니다. 도청 앞 광장에 흩뿌려진 우리의 민주주의는 지난 40년, 전국의 광장으로 퍼져나가 서로의 손을 맞잡게 했습니다. 드디어 5월 광주는 전국으로 확장되었고, 열사들이 꿈꾸었던 내일이 우리의 오늘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함께 잘 살 수 있는 세상은 아직도 갈 길이 멉니다. 오늘 우리에게는 서로를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더 많은 광장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오늘 5·18 광장에서 여전히 식지 않은 오월 영령들의 뜨거운 가슴과 만납니다. 언제나 나눔과 연대, 공동체 정신으로 되살아나는 오월 영령들을 기리며, 그들의 정신을 민주주의의 약속으로 지켜온 유공자, 유가족들께 깊은 위로와 존경의 마음을 바칩니다. ‘오월 정신’을 키우고 나눠오신 광주시민과 전남도민들, 광주를 기억하고, 민주주의를 지켜주신 국민들께도 각별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국민 여러분, ‘오월 정신’은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한 희망이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며 만들어진 것입니다. 가족을 사랑하고, 이웃을 걱정하는 마음이 모여 정의로운 정신이 되었습니다. 광주시민들의 서로를 격려하는 마음과 나눔이, 계엄군의 압도적 무력에 맞설 수 있었던 힘이었습니다. 광주는 철저히 고립되었지만, 단 한 건의 약탈이나 절도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주인 없는 가게에 돈을 놓고 물건을 가져갔습니다. 그 정신은 지금도 우리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에 깃들어 있습니다. ‘코로나’ 극복에서 세계의 모범이 되는 저력이 되었습니다. 병상이 부족해 애태우던 대구를 위해 광주가 가장 먼저 병상을 마련했고, 대구 확진자들은 건강을 되찾아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오월 어머니’들은 대구 의료진의 헌신에 정성으로 마련한 주먹밥 도시락으로 어려움을 나눴습니다. ‘오월 정신’은 역사의 부름에 응답하며 지금도 살아있는 숭고한 희생정신이 되었습니다. 1980년 5월27일 새벽, 계엄군의 총칼에 이곳 전남도청에서 쓰러져간 시민들은 남은 이들이 더 나은 세상을 열어갈 것이라 믿었습니다. 오늘의 패배가 내일의 승리가 될 것이라 확신했습니다. 산 자들은 죽은 자들의 부름에 응답하며, 민주주의를 실천했습니다. 광주의 진실을 알리는 것이 민주화 운동이 되었고, 5·18은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위대한 역사가 되었습니다. “나라면 그날 도청에 남을 수 있었을까?” 그 대답이 무엇이든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시간을 가졌다면, 우리는 그날의 희생자들에게 응답한 것입니다. 사람이 사람끼리 서로 공감하며 아픔을 나누고 희망을 만들어내듯, 우리는 진실한 역사와 공감하며, 더 강한 용기를 얻고, 더 큰 희망을 만들어냈습니다. 그것이 오늘의 우리 국민입니다. ‘오월 정신’은 더 널리 공감되어야 하고 세대와 세대를 이어 거듭 새롭게 태어나야 합니다. 한 청년이 말했습니다. “5·18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자격이 따로 있다면, 그것은 아직 5·18정신이 만개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5·18을 겪지 않은 세대가 태어나고 자라 한 가정의 부모가 되고, 우리 사회의 주축이 되었습니다. 그날 광주에 있지 않았던 사람들도 나름의 방식으로 함께 광주를 겪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오월 정신’은 누구의 것도 아닌 우리 모두의 것입니다. ‘오월 정신’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과 미래를 열어가는 청년들에게 용기의 원천으로 끊임없이 재발견될 때 비로소 살아있는 정신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오월 정신’이 우리 마음에 살아 있을 때 5·18의 진실도 끊임없이 발굴될 것입니다. ‘오월 정신’을 나누는 행사들이 5·18민주화운동 40년을 맞아 전국에서 펼쳐지고 있습니다. 어려운 시기, 의미 있는 행사를 진행하고 계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저와 정부도 ‘오월 정신’이 우리 모두의 자부심이 되고, 미래세대의 마음과 삶을 더 풍요롭게 할 수 있도록 언제나 함께할 것입니다. 서로 돕고 나눌 수 있을 때, 위기는 기회가 됩니다. 위기는 언제나 약한 사람들에게 더욱 가혹합니다. 우리의 연대가 우리 사회 가장 약한 사람들에게까지 미치고, 그들이 일어날 수 있을 때, 위기를 극복하는 우리의 힘도 더 강해질 것입니다. 오늘 ‘경과보고’와 ‘다짐’을 낭독해준 차경태, 김륜이 님과 같은 미래세대가 정의롭고 공정한 세상에서 자신의 꿈을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 우리 사회의 연대의 힘을 더 키워 가겠습니다. 국민 여러분, 광주시민들은 아픔을 넘어서는 긍지로 5·18의 명예를 소중히 지켜왔습니다. 광주 밖에서도 수많은 이들이 광주의 고통에 눈감지 않고 광주의 진실을 세상에 알렸습니다. 정부도 5·18의 진상 규명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지난 5월12일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한 ‘5·18진상규명조사위원회’가 남겨진 진실을 낱낱이 밝힐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겠습니다. 진실이 하나씩 세상에 드러날수록 마음속 응어리가 하나씩 풀리고, 우리는 그만큼 더 용서와 화해의 길로 가까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왜곡과 폄훼는 더이상 설 길이 없어질 것입니다. 발포 명령자 규명과 계엄군이 자행한 민간인 학살, 헬기 사격의 진실과 은폐·조작 의혹과 같은 국가폭력의 진상은 반드시 밝혀내야 할 것들입니다. 처벌이 목적이 아닙니다. 역사를 올바로 기록하는 일입니다. 이제라도 용기를 내어 진실을 고백한다면 오히려 용서와 화해의 길이 열릴 것입니다. 5·18 행방불명자 소재를 파악하고, 추가 희생자의 명예회복과 배·보상에 있어서도 단 한 명도 억울함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지난해 이준규 총경에 대한 파면 취소에 이어, 어제 5·18민주화운동으로 징계받았던 퇴직 경찰관 21명에 대한 징계처분 직권취소가 이뤄졌습니다. 경찰관뿐만 아니라 군인, 해직 기자 같은 다양한 희생자들의 명예회복을 위해서도 노력하겠습니다. 진상규명의 가장 큰 동력은 광주의 아픔에 공감하는 국민들입니다. 우리 국민들은 민주공화국의 주권자로서 4·19혁명과 부마민주항쟁, 5·18민주화운동, 6월항쟁과 촛불혁명까지 민주주의의 거대한 물줄기를 헤쳐왔습니다. 5·18의 완전한 진실을 향한 국민의 발걸음도 결코 되돌리거나 멈춰 세울 수 없습니다. 국민이 함께 밝혀내고 함께 기억하는 진실은 우리 사회를 더욱 정의롭게 만드는 힘이 되고, 국민 화합과 통합의 기반이 될 것입니다. 헌법 전문에 ‘5·18민주화운동’을 새기는 것은 5·18을 누구도 훼손하거나 부정할 수 없는 대한민국의 위대한 역사로 자리매김하는 일입니다. 2018년, 저는 ‘5·18민주이념의 계승’을 담은 개헌안을 발의한 바 있습니다. 언젠가 개헌이 이루어진다면 그 뜻을 살려가기를 희망합니다. 5·18민주화운동 기념일을 지방 공휴일로 지정한 광주시의 결정이 매우 뜻깊습니다. ‘오월 정신’은 도청과 광장에서 끊임없이 되살아날 것입니다. 전남도청의 충실한 복원을 통해 광주의 아픔과 정의로운 항쟁의 가치를 역사에 길이 남길 수 있도록 정부도 적극 지원하겠습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광주·전남 시·도민 여러분, 40년 전 광주는 숭고한 용기와 헌신으로 이 나라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보여주었습니다. 우리는 광주를 떠올리며 스스로 정의로운지를 되물었고 그 물음으로 서로의 손을 잡으며, 민주주의를 향한 용기를 잃지 않았습니다. 세상을 바꾸는 힘은 언제나 국민에게 있습니다. 광주를 통해 우리는 서로의 마음을 더 많이 모으고, 더 많이 나누고, 더 깊이 소통하는 것이 민주주의라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우리에게 각인된 그 경험은 어떤 어려움 앞에서도 언제나 가장 큰 힘이 되어줄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정치·사회에서의 민주주의를 넘어 가정, 직장, 경제에서의 민주주의를 실현해야 하고, 나누고 협력하는 세계질서를 위해 다시 오월의 전남도청 앞 광장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것이 그날, 도청을 사수하며 죽은 자들의 부름에 산 자들이 진정으로 응답하는 길입니다. 감사합니다.최선을 기자 csunell@seoul.co.kr
  • 문 대통령 “5·18 발포 명령자 누군지, 진실 은폐·왜곡 규명돼야”

    문 대통령 “5·18 발포 명령자 누군지, 진실 은폐·왜곡 규명돼야”

    “규명 목적은 책임자 법적 처벌 아닌 진실 위해 진정한 화해와 통합의 길 가야”문재인 대통령이 5·18 민주화운동 40주년을 하루 앞둔 17일 “발포 명령자가 누구였는지, 발포에 대한 법적인 최종 책임이 어디에 있는지 이런 부분들은 밝혀지지 않았다”며 5·18 당시 발포 명령자에 대한 진상 규명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문 대통령은 “5·18을 폄훼하고 왜곡하는 데 대해 단호히 대응할 것”이라면서 “5·18 민주화운동과 6월 항쟁을 우리 헌법에 담아야 민주화운동의 역사가 제대로 표현되는 것”이라며 의지를 보였다. 문 대통령은 이날 광주MBC의 특별기획 ‘문재인 대통령의 오일팔’에 출연해 “집단 학살 피해자들을 찾아내는 일, 헬기 사격까지 하게 된 경위, 대대적으로 이뤄진 진실 은폐·왜곡 공작의 실상까지 모두 규명돼야 한다”며 이렇게 밝혔다. 문 대통령은 “진상을 제대로 규명하는 것도 (5·18에 대한) 폄훼나 왜곡을 더이상 없게 만드는 하나의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2017년 5월 취임 직후 열린 제37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헬기 사격을 포함해 발포의 진상과 책임을 반드시 밝히겠다”고 한 데 이어 해마다 5월 진상 규명을 강조해 왔다.문 대통령은 “그 규명의 목적은 책임자를 가려내 꼭 법적인 처벌을 하자는 차원이 아니라 진실의 토대 위에서 진정으로 화해하고 통합의 길로 나가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이 5·18 당시 발포 명령자 등에 대한 진상 규명 의지를 거듭 밝힘에 따라 5·18 진상조사위원회의 활동에 힘이 실릴 전망이다. 진상조사위는 지난 12일 활동을 시작했다. 문 대통령은 “진상조사위 활동에 많은 기대를 걸고 있고, 정부도 적극적으로 뒷받침할 작정”이라고 했다.文 “5·18과 6월 항쟁, 헌법 전문에 담아야” 문 대통령은 향후 개헌 시 헌법 전문에 5·18이 담겨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5·18 민주화운동과 6월 항쟁의 이념만큼은 우리가 지향하고 계승해야 할 하나의 민주 이념으로, 우리 헌법에 담아야 민주화운동의 역사가 제대로 표현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개헌이 논의된다면 헌법 전문에서 그 취지가 반드시 되살아나야 한다”고 말했다. 앞서 문 대통령이 2018년 3월 발의한 개헌안의 전문에는 부마민주항쟁과 5·18 민주화운동, 6·10 항쟁이 담겼다. 이 개헌안은 같은 해 5월 국회에서 ‘투표 불성립’이 됐다.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속보] 문 대통령 “광주시민에 죄책감…노무현 제일 생각”

    [속보] 문 대통령 “광주시민에 죄책감…노무현 제일 생각”

    문재인 대통령이 40주년을 맞은 5·18 광주 민주화 운동과 관련해 “광주 시민들이 겪는 엄청난 고통을 들으면서 굉장히 큰 죄책감을 느꼈다”며 깊은 죄책감을 드러냈다. 문 대통령은 또 “5·18 하면 노무현 전 대통령, 당시 노무현 변호사가 제일 먼저 생각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17일 오전 8시 광주MBC 5·18 민주화운동 특별 프로그램 ‘문재인 대통령의 오일팔’에 출연해 이렇게 말했다. 이번 인터뷰는 지난 12일 청와대 상춘재에서 진행됐다. 문 대통령은 부산에서 노 전 대통령과 광주 비디오 영상 관람회를 연 점을 언급하며 6월 항쟁의 동력이 됐다고 전했다. 문 대통령은 “당시 민주화운동 세력들 모두가 광주에 대한 어떤 부채의식을 늘 가지고 있었고 그 부채의식이 그 이후 민주화 운동을 더욱 더 확산시키고 촉진시키는 그런 계기가 됐다”면서 “당시 광주 오월 영령들을 비롯한 광주 시민들은 1980년대 이후 대한민국 민주화운동의 상징과 같은 그런 존재가 됐다”고 평가했다. 문 대통령은 “87년에는 노무현 변호사와 제가 주동이 돼 5·18 광주 비디오 관람회를 가졌다”면서 “그런 것이 부산 지역 6월 항쟁의 큰 동력이 됐다고 생각한다. 그런 일을 함께 한 노무현 변호사를 광주를 확장한 분으로 기억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5·18 40주년 文 “광주시민에 큰 죄책감…노무현 제일 생각나”

    5·18 40주년 文 “광주시민에 큰 죄책감…노무현 제일 생각나”

    문 대통령 “대한민국 민주화 운동의 상징”문재인 대통령이 40주년을 맞은 5·18 광주 민주화 운동과 관련해 “광주 시민들이 겪는 엄청난 고통을 들으면서 굉장히 큰 죄책감을 느꼈다”며 깊은 죄책감을 드러냈다. 문 대통령은 또 “5·18 하면 노무현 전 대통령, 당시 노무현 변호사가 제일 먼저 생각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17일 오전 8시 광주MBC 5·18 민주화운동 특별 프로그램 ‘문재인 대통령의 오일팔’에 출연해 “제가 광주 5·18 소식을 들었을 때 민주화의 아주 중요한 길목에 다시 군이 나와서 군사독재를 연장하려고 한다, 그 사실에 굉장히 비통한 그런 심정이었다”며 이렇게 밝혔다. 이번 인터뷰는 지난 12일 청와대 상춘재에서 진행됐다. 문 대통령은 당시 서울 지역 총학생 회장단의 시위 퇴각 결정에 반대했던 경희대 복학생이었다. 반(反)유신투쟁에 참가한 혐의로 구속돼 경희대에서 제적됐다가 군 복무를 마친 후 학교를 떠난 지 5년만인 1980년 복학했다. 이후에도 반독재 민주화 요구 시위에 가담했다가 그해 5월 17일 비상계엄령이 확대되자 계엄포고령 위반으로 구속됐다. 문 대통령은 1980년 5월 15일 서울지역 대학생들이 서울역에 모여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가 퇴각한 ‘서울역 회군’이 광주시민의 희생을 초래했다고 돌아봤다.문 대통령은 서울에서는 대학생들의 민주화 요구 시위가 사라지고, 광주 시민이 홀로 계엄군에 맞서는 상황이 됐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대학생들이 결정적 시기에 퇴각하면서 광주 시민이 외롭게 계엄군과 맞서야 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청량리 경찰서 유치장에 수감돼 있던 중 저를 조사하던 경찰관으로부터 광주 시민이 사상을 당한 사실을 들었다”면서 “그런 사실이 다 언론에 보도되는 것으로 알았는데 석방 후에 보니 오히려 폭도들의 폭도인 양 왜곡돼 알려졌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어떻게 보면 저는 광주 바깥에서 가장 먼저 광주의 진실을 접한 사람 중 하나”라고 언급했다. 문 대통령은 “당시 민주화운동 세력들 모두가 광주에 대한 어떤 부채의식을 늘 가지고 있었고 그 부채의식이 그 이후 민주화운동을 더욱 더 확산시키고 촉진시키는 그런 계기가 되었다”면서 “당시 광주 오월 영령들을 비롯한 광주 시민들은 1980년대 이후 대한민국 민주화운동의 상징과 같은 그런 존재가 되었다”고 평가했다.文 “노무현 변호사와 제가 주동돼 광주 비디오 관람회 가져” 문 대통령은 특히 노 전 대통령을 가장 생각나는 사람으로 꼽았다. 문 대통령은 ‘5·18과 관련해 떠오르는 인물’에 대해 “광주 항쟁의 주역은 아니지만 그러나 광주를 확장한 그런 분으로서 기억을 하고 싶다”면서 “80년대 이후의 부산 지역의 민주화운동은 광주를 알리는 것이었다”며 노 전 대통령을 언급했다. 1987년 5월 무렵, 문 대통령은 당시 변호사였던 노무현 전 대통령과 함께 처참한 광주의 실상을 담은 비디오를 부산 시민들에게 보여줬다. 노 전 대통령은 광주의 진실을 알려 또 다른 민주화 운동인 ‘6월 항쟁’의 불씨를 당기는 데 함께한 ‘동지’였다고 전했다. 문 대통령은 “당시의 광주의 상황을 촬영한 동영상들, 이른바 광주 비디오라고 부르던, 거의 한 시간 정도 되는 분량이었는데, 그 내용이 너무나 생생하고 정말로 참혹한 것이었다”고 회고했다.이어 “누구나 그에 대해서는 다른 해석을 할 수가 없는 그런 말하자면 확실한 증거가 되는 그런 비디오였다”면서 “6월 항쟁이 일어났던 87년 5월에는 당시의 노무현 변호사와 제가 주동이 돼서 부산 가톨릭센터에서 5·18 광주 비디오, 말하자면 관람회를 가졌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광주를 알게 될수록 시민들은 그 당시 광주가 외롭게 고립되어서 희생당했는데 거기에 동참하지 못하고 그냥 내버려두었던 그 사실에 대해서 큰 부채 의식을 가지게 됐고, 그것이 이제 민주화운동의 하나의 또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고 전했다. 문 대통령은 “그러면 부산 시민들이 줄을 서서 기다려서 광주 비디오를 보고, 그때 비로소 광주의 진실을 알게 된 그런 분들도 많았다”면서 “그런 것이 부산 지역 6월항쟁의 큰 동력이 되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그런 일을 함께했던 노무현 변호사를 광주를 확장한 분으로 기억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文대통령 “개헌 논의 된다면 헌법 전문에 5·18 정신 담아야”

    文대통령 “개헌 논의 된다면 헌법 전문에 5·18 정신 담아야”

    문재인 대통령이 앞으로 헌법 개정 논의가 이뤄질 경우 헌법 전문에 5·18광주민주화운동 정신이 반드시 담겨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문 대통령은 광주MBC의 5·18 40주년 특별기획 ‘문재인 대통령의 오일팔’에 출연해 이같이 언급했다고 광주MBC가 14일 밝혔다. 문 대통령은 인터뷰에서 현재의 헌법 전문에 대해 “4·19 이후 장기간 군사독재가 있었던 만큼 우리나라의 민주화운동을 설명하기에 부족한 면이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5·18민주화운동과 6월항쟁이 헌법에 담겨야 우리 민주화운동의 역사가 제대로 표현되는 것이고, 국민적 통합도 이뤄질 수 있다고 믿는다”고 강조했다. 지난 1987년 만들어진 현행 헌법 전문에는 3·1운동과 4·19혁명만을 담고 있다. 앞서 2018년 3월 26일 문 대통령이 국회에 제출한 개헌안 전문에는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혁명, 부마민주항쟁과 5·18민주화운동, 6·10항쟁의 민주이념을 계승하고’라는 대목이 포함됐다. 당시 개헌안은 같은 해 5월 24일 국회 본회의 표결에 부쳐졌으나, 투표수가 의결정족수 미달로 ‘투표 불성립’이 선언됐다. 약 50분 분량의 녹화 인터뷰는 오는 17일 광주MBC와 청와대 홈페이지 등을 통해 공개된다.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 ‘5·18 40주년’ 청남대 내 전두환·노태우 동상 철거된다

    ‘5·18 40주년’ 청남대 내 전두환·노태우 동상 철거된다

    5·18 광주 민주화운동 40주년을 앞두고 충북 청주에 위치한 옛 대통령 별장인 청남대 안에 세워진 전두환·노태우씨의 동상이 철거된다. 이시종 충북지사는 14일 오후 시민·여성 등 도내 시민단체 관계자 회의를 거쳐 청남대에 설치된 두 전직 대통령의 동상을 철거하기로 기본입장을 정했다. 전직 대통령의 이름을 딴 산책로 중 ‘전두환대통령길’과 ‘노태우대통령길’의 명칭도 폐지되며, 대통령기념관에 설치된 두 사람의 기록화 역시 철거된다. 청와대 본관 모습을 60% 크기로 본뜬 대통령기념관은 2015년 6월 준공됐다. 전직 대통령 예우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금고 이상의 형이 확정된 전직 대통령은 경호 및 경비를 제외한 다른 예우를 받지 못한다. 전두환씨는 내란 및 내란 목적 살인죄로 무기징역을 확정받았다. 노태우씨 역시 징역 17년을 선고받았다. 회의 참석자들은 “청남대가 무기징역과 징역 17년을 선고받은 두 전직 대통령을 예우하는 것은 위법의 소지가 있다”는 의견을 함께했다. ‘충북 5·18민중항쟁기념사업위원회’는 그 동안 “청남대 내에 설치된 전두환·노태우의 동상을 철거하고 그들의 이름을 딴 대통령길을 폐지하라”고 촉구해 왔다. 이 단체는 5·18 40주년인 이달 18일 이전에 동상을 철거해 달라는 입장을 충북도에 전달하기도 했다. 충북도 관계자는 “단순히 동상만 철거하는 게 아니라 기록화는 물론 관련 자료도 폐기해야 하는 만큼 철거 작업은 한두 달 뒤 시작될 것”이라고 말했다. ‘남쪽의 청와대’라는 뜻의 청남대는 제5공화국 시절인 1983년 건설됐다. 당시 대통령인 전두환씨가 대청댐 준공식에 참석해 “이런 곳에 별장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한 것이 계기가 됐다는 것이 정설이다. 이후 청남대는 역대 대통령의 여름 휴가 장소로 이용되다가 2003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일반에 개방하도록 하면서 관리권이 충북도로 넘어왔다. 충북도는 청남대에 역대 대통령의 동상·유품·사진·역사 기록화 등을 전시하고 있다. 전직 대통령들이 방문할 때 애용했던 산책길의 사연을 담아 이들의 이름을 따서 전두환(1.5㎞)·노태우(2㎞)·김영삼(1㎞)·김대중(2.5㎞)·노무현(1㎞)·이명박(3.1㎞) 대통령 길도 조성했다. 다만 박근혜 전 대통령의 경우 청남대를 방문한 적이 단 한 차례도 없거니와 탄핵 뒤 2017년 3월 파면 결정이 나면서 관련 산책길이 조성되지 않았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청남대서 전두환·노태우 동상 사라진다

    청남대서 전두환·노태우 동상 사라진다

    충북도가 청남대에 설치된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의 동상 등을 철거키로 했다. 도 강성환 청남대관리사업소장은 14일 “여성단체, 광복회, 도정자문단 등 각계 대표 13명을 소집해 의견을 수렴한 결과 참석자 만장일치로 철거가 결정됐다”며 “대상은 동상과 기록화, 이름이 붙여진 산책로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회의 참석자들이 철거로 의견을 모은 것은 관련법 위반 소지가 있어서다. 전직 대통령 예우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금고 이상의 형이 확정된 전직 대통령은 경호 및 경비를 제외한 다른 예우를 받지 못한다. 기념사업도 할 수 없다. 전 전 대통령은 내란 및 내란 목적 살인죄로 무기징역을 확정받았다. 노 전 대통령 역시 징역 17년을 선고받았다. 강 소장은 “공감대 형성 과정을 거친 뒤 한달여 후에 철거가 시작될 예정”이라며 “이들이 재임시 사용했던 물건을 전시하는 것은 기념사업이 아니라 그대로 유지될 것”이라고 했다. 도가 두 전직 대통령의 흔적지우기에 나선 것은 ‘충북 5·18민중항쟁기념사업위원회’의 철거요구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 단체는 지난 13일 “역사의 죄인을 기념하기위해 동상을 세우고 대통령 길을 만드는 것은 몰지각한 역사의식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철거요구 기자회견을 가진 뒤 이시종 지사를 항의방문했다. 이 자리에서 이 지사가 “여러분의 의견이 잘 전달되도록 노력하겠다”는 뜻을 전하면서 각계 대표 회의가 긴급 소집됐다.도는 청남대를 대통령 테마 관광지로 조성하면서 전직 대통령 10명의 동상을 곳곳에 설치했다. 청남대를 사용했거나 방문했던 전두환·노태우·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대통령의 이름을 붙여 산책로도 만들었다. 2015년 6월 준공된 청남대 대통령기념관에는 전직 대통령들의 생애를 담은 기록화를 전시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동상 등은 그가 불명예 퇴진하면서 아직 만들지 않았다. 청남대는 1983년 12월 당시 전두환 대통령이 청주시 상당구 문의면에 세운 대통령 전용별장이다. 2003년 노무현 대통령이 충북도로 소유권을 넘기면서 민간에 개방됐다. 청주 남인우 기자 niw7263@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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