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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치환 6집앨범, 모던 포크 서정성·폭발력 되살려

    ‘내가 만일’‘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로 민중가수에서 대중가수로 변모한 안치환(33)은 얼마전 뜻깊은 공연을 가졌다.지난 15일 연세대 노천극장에서 열린 민중노래모임 ‘꽃다지’와의 합동공연. 같은 운동권에서 출발했지만 90년대 중반들어 각기 다른 길을 걸어가는 것처럼 보였던 안치환과 꽃다지가 처음으로 함께 한 무대였다. “내가 항상 ‘솔아 푸르른 솔아’의 안치환으로 남아있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압니다.하지만 난 내 노래가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될 때더 큰 생명력을 지닌다고 생각합니다”.노천극장을 가득 메운 관객들은 이런 그의 고민을 이해했고,열띤 호응을 보냈다. 그가 곧 발표할 6집 앨범도 이런 맥락과 일치한다.녹음작업을 마치고 마무리 손질만 남겨놓은 새앨범의 타이틀은 ‘아이 스틸 빌리브(I still belive)’.여전히 무엇을 믿는다는 걸까.“세상은 진보한다는 믿음,휴머니즘에 대한 믿음이죠.외형은 변했을지 몰라도 제 나름의 세계관은 변함없이 지켜가겠다는,스스로에 대한 믿음이기도 합니다”.무엇보다 노래가 단순히 유희의 차원을 넘어 그 이상의 의미를 삶에 줄 수 있다는 것에 대한 믿음이다. 록의 요소를 가미했던 5집에 비해 이번 앨범은 포크적인 성향을 강조했다.70·80년대 청년문화와 대학문화의 주축이었던 모던 포크의 서정성과 폭발력을 되살려내고자 한 것.신곡의 면면도 개인사와 무관하지 않는 사회사를 노래하는 이 시대의 노래꾼이라는 명성에 걸맞다. ‘숨이 막히고 가슴 미어지던 날/친구와 난 둑길을 걸으며/돌멩이 하나 되고자 했네 돌멩이 하나/그때 나 묻지않았네 친구여/돌에 실릴 역사의 무게가/그 얼마일 거냐고 그 얼마일 거냐고…’.김남주시인의 시에 곡을 붙인 ‘돌멩이 하나’는 이 시대를 외면하지 않되,강물위에 작은 파문을 일으키고 사라지는 돌멩이처럼 살고싶은 세계관을 투영시켰다.연인에 대한 그리움일 수도,동지에 대한 그리움일 수도 있는 슬픈 연가곡 ‘강변역에서’,386세대의서정을 노래한 ‘만남’,홀로 계신 어머니에 대한 죄송함을 전하는 ‘어머님 전상서’등 12곡을 담았다. 앨범은 6월중순 나올 예정이지만 오랫동안신곡을 기다려온 팬을 위해 6월4·5일 이틀간 서울 정동A&C(구 정동문화예술회관)에서 신곡발표회를 겸한 콘서트를 갖는다.(02)325-2561
  • 국보급 6세기 고구려불상,문화재소장가 국가 기증

    6세기 고구려 금동여래좌상 기증식이 14일 오전 11시 국립 중앙박물관(관장 鄭良謨) 1층 회의실에서 열렸다.높이 8.8㎝인 이 불상은 문화재 소장가 남궁련(南宮鍊·84)옹이 기증한 것으로 한국미술 2000년전,한국미술 5000년전등 해외전시에서 높은 관심을 끌었던 국보급 문화재. 남옹은 서운하지 않느냐며 정관장이 위로의 말을 건네자 “용산 새 국립박물관의 개관을 앞두고 국민들이 새로운 박물관에서 명품을 관람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기증하게 됐다”고 말했다. 기증한 불상은 1946년 경기도 벽제에서 미군들이 실시한 도로공사 중 발견돼 남옹이 입수하게 됐다.불상을 거는 광배는 없지만 불신은 거의 완전한 상태로 남아 있다. 한편 중앙박물관은 이 불상을 최상급 유물(국보급)로 분류하고 기증자의 뜻을 기려 곧 일반에 공개할 예정이다. 임태순기자 stslim@
  • 일본축구의 저력은 어디서 나오나

    일본축구의 저력은 어디서 오는가-.일본청소년축구대표팀이 99나이지리아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에서 아시아국가로는 처음으로 결승에 진출,예선탈락한 한국과 대조를 보이고 있다. 일본청소년축구의 결승 진출은 지난해 프랑스 월드컵출전과 함께 일본이 10여년 전부터 끊임없이 노력해 온 결실인데다 2002년 한·일월드컵축구대회를 불과 3년 앞두고 이룬 성과여서 그 의미가 크다. 세계정상을 바라보는 일본축구의 근저는 끊임없는 투자.일본은 프로축구 1부리그(J리그) 16개팀과 2부리그까지 경쟁적으로 유소년클럽을 운영하는가하면 5∼6세부터 ‘꿈나무’를 발굴하는 등 다음 세대를 위한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이미 10여년전부터 유소년선수들을 남미 등에 유학시켜 왔고 여기서 돌아온 10대 스타들이 J리그에 진출,수준높은 경기를 하고 있다.대표적인 선수들이 이번 대회에서 기량을 발휘하고 있는 오노 신지,나카하라 나오히로,나가이 류이치로 등. 특히 일본축구의 강점은 결과보다는 과정을 중시,기초가 튼튼하다는 것.이를 바탕으로 정확한 패스워크와 작전전개 능력을 키워왔고 어느 팀과 상대해서도 제 기량을 발휘할 수 있는 전술을 충분히 습득하고 있다.세계적인 외국인 감독을 과감하게 영입,세계 축구의 흐름을 파악하는데도 게으르지 않았다.비록 아시아예선에서 한국에 2차례나 연거푸 패하긴 했지만 정작 본선에서한국이 상대에 따라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한데 비해 일본이 실력을 십분 발휘한 것도 이같은 기초와 세계축구의 흐름에 정통했기 때문이다. 신문선 MBC해설위원은 “축구에서는 기술과 전술 체력 정신력 등 4가지 요소가 고루 필요하다”며 “일본은 이 4가지를 모두 지니도록 노력하고 있지만 한국은 체력과 정신력만을 요구해 왔기 때문에 세계 무대에서 큰 차이가나게 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총사령탑 트루시에 감독 중도 하차 위기의 ‘하얀 마녀’가 일본축구를 세계 정상권으로 이끌었다.99나이지리아 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에서 일본이 사상 최초의 4강을 넘어 세계 정상을 넘볼 수 있게 되기까지는 무엇보다 필립 트루시에(44) 감독의 역할이 컸다. 지난 98프랑스월드컵 직후 오카다 감독의 뒤를 이어 지난해 9월 청소년 및대표팀 감독을 겸임하는 일본축구 총사령탑에 오른 트루시에 감독은 프랑스출신으로 프랑스월드컵 당시 남아프리카공화국 감독을 역임하는 등 10년간아프리카에서 활동하며 뛰어난 성적을 올려 ‘하얀 마녀(White Witch)’란별명을 지니게 된 세계적인 감독이다.프랑스월드컵 지역 예선 때는 나이지리아팀을 맡아 본선에 올려놓았고 본선에서는 남아공을 이끌고 2무1패의 호성적을 거뒀다.이 때문에 변방에 머물던 아프리카 축구가 세계 축구의 한축으로 굳어지는데 일익을 담당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그만큼 세계축구의 흐름에도 정통하다. 무엇보다 트루시에감독은 상대의 전력을 면밀히 분석,전술에 철저히 반영하는 지장으로 선수들에게도 사전에 전술 숙지를 요구,경기 결과와 상관없이내용면에서의 향상을 강조하는 지도 스타일을 갖고 있다.이번 세계 대회 예선전으로 벌어진 지난해 아시아대회에서는 한국에 2차례나 연거푸 패했지만당시 경기를 지켜본 전문가들은 경기 내용면에서는 일본이 앞섰다고 평가했을 정도.결국 이같은 일관된 지도스타일이 일본을 결승에 올려놓는 밑거름이 됐지만 때로는 곤욕을 겪기도 했다. 지난달 브라질과의 친선경기 이후 터진 사퇴설이 대표적인 사례로 당시 한국에 0-1로 패한뒤 곧 바로 일본으로 이동해 온 브라질과의 경기에서 0-2로완패,사퇴하라는 비판여론에 시달려왔다. 그러나 그는 결국 이번 대회에서 청소년팀을 결승으로 이끌어 진가를 다시한번 확인시켰다. 곽영완기자
  • 66년 전통 마스터스골프 명승부 대기록들

    8일 밤 미국 조지아주 오거스타내셔널GC에서 개막된 마스터스골프대회는 4대 메이저 가운데 가장 짧은 66년의 역사를 지녔지만 가장 먼저 열리는데다이를 분기점으로 그 해 시즌이 본격화된다는 점에서 세계 골프팬들의 이목이집중된다. 또 하나의 진가는 올해로 128회를 맞을 가장 역사 깊은 브리티시오픈을 포함,모든 메이저대회가 해마다 장소를 변경하며 치러지는데 비해 첫해인 34년 이후 오거스타내셔녈GC만을 고집해 왔다는 점이다.특히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메이저 중의 메이저’로 명성을 얻은데는 ‘우승자는 신만이 알 수있다’고 할만큼 예측을 불허하는 매년 명승부를 연출하고 있게 때문이다. 가장 유명한 승부는 아직도 골프팬들의 뇌리에 남아있는 지난 96년 대회.당시 세계 랭킹 1위 그레그 노먼은 1라운드 63타의 코스레코드를 세우는 등 우승이 확실시됐다가 마지막라운드에서 78타란 자신의 프로골프 생애 최악의스코어를 기록하면서 닉 팔도에게 그린재킷을 넘겨주었다. 마스터스는 지난해까지 65회를 치러오면서 숱한 기록도 양산했다.최다우승자는 잭 니클로스.그는 63년을 시작으로 65∼66년 2연패,72·75·86년 등 6차례나 그린재킷을 입었다.4회 우승의 아놀드 파머가 그 뒤를 잇고 있고 지미 데마렛,샘 스니드,게리 플레이어,닉 팔도가 3차례 정상에 올랐다.2회 우승자는 호튼 스미스,브라이언 넬슨,톰 왓슨,벤 호건,시브 발레스토어스,베른하르트 랑거,벤 크렌쇼 등 7명. 최고령 우승자는 86년 46세의 나이로 정상에 오른 잭 니클로스이며 최연소자는 97년 21년 3개월 14일만에 그린재킷을 입은 타이거 우즈다.그는 특히최초의 유색인종으로 기록됐으며 2위와의 최다격차(12타) 우승자이기도 했다. 한라운드 최저타 기록은 9언더파 63타로 86년 닉 팔도가 3라운드에서,96년그레그 노먼이 1라운드에서 각각 기록했다. 이 대회에서는 기록된 홀인원은 모두 14차례.16번홀에서 7번,12번홀과 6번홀에서 각각 3번,4번홀에서 1번이 기록됐으며 두번 이상 기록한 선수는 한명도 없다.
  • [정직한 역사 되찾기]친일의 군상(29)

    반민특위 ‘검거 제1호’ 박흥식(朴興植)이 특위로 잡혀온 것은 1949년 1월8일 오후 4시30분.특위 부위원장 김상돈(金相敦)의 지시를 받은 조사관 김용희(金容熙)와 서기관 박희상(朴喜祥)은 특경대원 7명을 데리고 서울 종로 네거리 화신백화점 사장실을 급습하였다.당시 특위가 박흥식을 첫 검거대상자로 지목한 것은 그가 미국도피를 비밀리에 추진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해놓고 있었기 때문이다.특위 조사관 일행이 화신 사장실을 급습할 당시 박흥식은 외무부 관계자들과 미국여행권(여권번호 00130호)관계로 대화를 나누고있었다.신분을 밝히고 동행을 요구하자 박흥식은 영국제 고급담배를 꺼내 조사관들에게 권하며 “정리할 서류가 좀 있으니 5분만 시간을 주시오”라며지연작전을 폈다.‘독안에 든 쥐’라고 판단한 조사관들이 이를 허락하자 박흥식은 옆방으로 들어가더니 10분이 지나도 나오지 않았다.그새 비밀문을 통해 박흥식은 다른 방으로 가서는 모처와 연락을 취하고 있었다.그의 구원요청은 허사로 돌아가고 그의 양손에는 마침내 수갑이 채워졌다. 한 때 ‘조선 제일의 부자’로 불리던 박흥식(1903∼1994)은 평남 용강군에서 소농의 자식으로 태어났다.그곳에서 소학교를 졸업한 그는 가족 부양을위해 진남포에서 미곡상을 시작으로 사업에 첫 발을 내디뎠다.천부적인 상술과 뛰어난 친화력으로 그는 1924년 고향에서 불입자본금 10만원으로 선광당인쇄소를 시작하였다. 2년 뒤 그는 사업무대를 서울로 옮겨 선일지물을 창립하였다.그때 그의 나이 26세였다.자본금 25만원인 이 회사에 그는 6만5,000원을 불입하였는데 이 돈은 토지를 담보로 식산은행에서 대출받은 5만원과 나머지 일부를 그가 부담한 것이었다.그는 주로 총독부 당국과의 친교를 바탕으로 식산은행·한성은행 등의 은행돈을 최고 수 천만원까지 끌어다가 사업자금으로 활용하였다. 당시 금융가에서 그는 최고대우를 받고 있었다. 한편 종로 네거리에서 공동경영하던 금은방·잡화상을 매수,1931년 화신백화점을 설립하였는데 이 회사가 그의 모기업이 되었다.화신백화점은 당시로서는 획기적으로 사은경품판매,연쇄점 운영 등의 경영기법을 도입,승승장구하였다.이어 1936년에 설립한 화신연쇄점은 최고 번성기를 구가하던 37년경에는 전국에 연쇄점 수만 350개가 넘었다. 당시 그는 총독부의 도움으로 식산은행에서 3,000만원을 대부받았는데 그로서는 자본과 신용만 중요할 뿐 자본의 성격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화신의 자본을 두고 ‘매판적 상업자본’으로 규정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자본의 성격과 함께 사업방식도 그렇다.화신백화점과 함께 화신연쇄점은 일본 오사카(大阪)의 영업소를 통해 일본상품을 다량 수입,국내에 살포함으로써 국내시장을 일제상품의 소비처로 전락시켰는데 이는 당시 일제의 대표적인 식민지 지배정책이었다.이 때문에 그는 총독부로부터 은행대출과 관련,하등의 통제도 받지 않았었다. 한편 반민특위에 검거된 그는 제3조사부의 예비조사를 마치고 특별검찰부로 송치되었다.검거된지 47일만인 3월22일 기소되었는데 검찰측 조사기록은 무려 6,000 페이지에 달했다.그의 기소장에 나타난 죄명은 반민법 제4조 7항(비행기·병기·탄약 등 군수공업을 책임경영한 자)·제7조(범죄자 옹호·도피 협조자)위반이었다. 반민특위에서 지목한 그의 대표적인 반민족행위는 일제말기 비행기공장을만들어 일제의 침략전쟁에 협조한 점과 각종 친일단체에서 활동한 점이었다. 태평양전쟁이 결정적인 단계에 이르렀을 때인 1944년 2월 그는 일본의 항공전력 증대를 목적으로 조선비행기공업(주) 설립허가를 총독부와 일본내각에제출하였다. 수차례 일본을 다녀온 끝에 자본금 5,000만원으로 회사 설립허가를 받은 그는 그 해 10월 자신이 대표가 되어 주식을 공모하였다.그는 총독부의 힘을빌어 조선직물회사와 동양방적 안양공장을 접수하였고 인근 토지를 몰수하여비행기공장을 건설하였다.비행기 생산시설은 조선군사령부 병참부의 중개로관동군의 지원을 받았는데 대가로 조선의 해산물·직물 등을 송출하였다. 공장의 노무인력은 전적으로 징용자였다.44년 11월부터 총4회에 걸쳐 1,717명을 선발한 후 1개월간 경기도 광주에서 조선군의 지도로 기본훈련을 시킨후 다시 일본 나고야(名古屋)나 만주로 보내 실습을 시킨 다음 안양공장이나만주비행기공장으로 보내 비행기 제조에 종사시켰다. 흔히 박흥식의 조선비행기(주)는 비행기를 만들려다 일제 패망으로 그만둔것으로만 알려져 있다.그러나 특위의 조사내용에 따르면,45년 5월 당시 제1호기의 주익(主翼)·동체를 위시하여 대부분의 작업을 마치고 8월에 시험비행을 하였으며 2·3호기도 부분품 제작중에 있었으며 9월말 작업을 완료할계획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박흥식은 자신이 경영하던 광신상업학교를 조선비행기공업학교로 개편,비행기 기술공을 양성하려 했던 사실도 조사과정에서 새로 밝혀졌다.실제로 전장에 투입하지는 못했지만 그의 비행기제조계획은 거의 완성된 단계였다. 일제패망후 그는 조선군사령부로부터 조선비행기에 투자한 금액과 격려금까지 받았으나 이중 일부를 주주들에게 나눠주고는 대부분 착복하였다. 한편 그의 친일은 각종 친일단체 활동에서도 두드러졌다.30년대 후반 그는조선총독부 주최 산업경제조사회와 시국대책조사회에 조선대표로 참여하여일제의 시국대응책에 대해 자문역할을 하였다.또 각종 전쟁협력행위에 가담하였는데 국민정신총동원연맹 이사·배영동지회 상담역을 비롯해 임전대책협의회·조선임전보국단의 간부로 활동하였다. 특히 임전대책협의회 발족시 민규식(閔奎植) 김연수(金秊洙) 등과 함께 각각 20만원씩을 기부하였으며 전시채권 가두판매에 나서기도 했다.징병제 찬양이나 학병 권유에 나선 것은 물론이다.총독부 고관을 비롯해 군부 경찰 금융계 등 광범위한 권력층과 사귀면서 이들의 비호를 받던 그는 제6대 조선총독 우가키(宇垣一成)와 각별한 사이였는데 특위 조사과정에서 우가키를 ‘숭배’하였다고 실토한 바 있다. 바로 우가키가 총독으로 재임하던 시절 화신백화점·화신연쇄점이 최고의전성기를 누린 점은 두 사람의 친분관계와 무관치 않다.미나미(南次郞)총독과도 유착관계가 남달라 그가 조선총독에서 이임,귀국하자 ‘영원히 못잊을자부(慈父)’라는 담화를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에 발표하기도 했다. 한편 특위가 그를 ‘검거대상 1호’로 지목한 것은 그의 미국 도피음모 이외에도 그가 반민특위의 활동을 방해하려 했기때문이었다.특위의 활동개시가 예견되자 그는 반민특위의 활동을 방해할 목적으로 장직상(張稷相) 등과만나 모종의 음모를 꾀하였다.그는 당시 수도청 수사과장으로 있던 친일경찰 최란수(崔蘭洙)에게 수사비 명목으로 10만원을 지원한 사실이 특위 조사과정에서 밝혀졌다. 기소 1주일만인 3월 28일 반민특위의 첫 공판이 서울지방법원 대법정에서열렸다.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그의 재판은 구속 103일만인 4월20일 그의 병보석으로 다시 한번 세상을 놀라게 했다.특별재판부가 병보석으로 그를풀어주자 당시 특별검찰부 검찰관 9명은 전원 사표로 이에 맞섰고 사회·정당단체에서도 격렬한 성명으로 특별재판부를 비난하였다. 그러나 결국 그해 9월26일 그는 ‘공민권정지 2년’이라는 가벼운 구형에이어 당일로 무죄판결을 받고 풀려났다.이유는 그가 군수공장을 경영하였지만 실질적으로 비행기를 제작,일제에 지원하지는 않았고,또 각종 친일단체에서 활동한 것은 피동적으로 했을 뿐이라는 것이었다.특별재판부가 이같은 어처구니없는 판결을 내린 데는 속사정이 있었다.친일경찰의 반민특위습격사건(일명 ‘6·6사건’)에 이어 ‘국회프락치사건’으로 특위의 중심인물이었던 소장파 의원들이 대거 제거된데다 6월29일 백범 김구선생의 피살로 친일파척결의 정신적 기둥마저 상실한 상태였다.법적으로 그는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역사의 법정에서 그는 여전히 ‘유죄’로 남아있다. 해방후 그는 사업재기를 노렸지만 80년 화신산업의 부도로 마침내 막을 내렸다.부채청산을 위해 자신이 수십년간 살아오던 집까지 내놓았지만 ‘물길’을 되돌릴 수는 없었다.종로 네거리 옛 화신백화점 자리에는 어느새 새 임자가 나타나 그의 부(富)를 되살리려는듯 현재 빌딩공사가 한창이다. 정운현
  • 영화계 복고·인종주의로 틈새시장 공략

    세기말의 불안감을 대변하는 것일까.최근 영화계에는 복고풍이거나,역사적고통의 시대를 배경으로 한 것들이 많다.이달초 개봉한 ‘셰익스피어 인 러브’ ‘레미제라블’ 등에 이어 이번주말 ‘엘리자베스’가 관객을 찾아간다.이들은 옛 것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영화.또 이미 상영중인 ‘인생은 아름다워’와 주말개봉하는 ‘아메리칸 히스토리X’는 나치와 백인우월주의 등서양의 어두운 부분을 드러낸다. ▒엘리자베스 16세기 중반 파란만장한 삶을 지낸 한 독신여왕의 집권전후 이야기.그러나 엄숙한 시대극이 아니라 사랑 이야기가 중심을 이룬다. 엘리자베스는 헨리8세의 두번째 부인에게서 태어났으나 질투심많은 언니인메리여왕에 의해 감금된다.미처 엘리자베스의 운명을 결정짓지 못하고 메리여왕이 숨지자 1558년 25세의 처녀로 왕위에 오른다.끝없는 암살의 위협과주변 강대국의 압박,반역 등의 고난을 극복해냈으나 마지막 난제가 도사리고 있다.연인의 배신이 그 것.실망한 그녀는 마침내 ‘조국 잉글랜드와의 결혼’을 선포한다.그녀 치하에서 잉글랜드는 황금기를 맞았다고 역사는 전한다. 이 영화는 미국 아카데미 최우수 작품상,여우주연상 등 7개부문 후보에 올랐다.제작진은 현대적 감각을 살리기 위해 ‘대부’를 참고삼았다고 밝혔다.시사회를 본 팬들은 국내사극 ‘용의 눈물’과 비슷한 느낌이라고 했다. 호주여배우인 여주연 케이트 블랑슈 뿐 아니라 조연인 제프리 러시와 조셉파인즈 등 다른 배우들의 연기도 인상적이다.영화는 16세기의 풍경이 그대로 남아있는 잉글랜드의 앨른윅 성,뱀버러 성,칠링엄 성 등에서 촬영했다. 94년 칸영화제에서 ‘밴디트 퀸’으로 이름을 날린 인도감독 세카르 카푸르의 첫 해외연출작이다.그는 70년 잉글랜드로 건너간지 20여년만에 대작을 감독하는 영광을 안았다. ▒아메리칸 히스토리X 일그러진 가치관이 남긴 상처를 그린다.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에드워드 노튼은 혼돈과 상실감,증오와 저항을 화면 가득히 펼친다.그러나 이 영화는 인간이 만든 각종 편견을 가족들이 사랑으로극복해낼 수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에게 지역감정이 있다면 미국에는 더욱 큰 편견이 있다.인종차별주의. 주인공 데릭은 나치의 백인우월주의에 푹 빠져있다. 어느날 흑인 좀도둑들이 자신의 차를 훔치려 하자 무참하게 이들을 살해한다.감옥에 들어간 그는 그러나 나치주의자인 백인이 아닌 흑인친구에 의해보호받으면서 인간애에 눈을 뜬다.출감한 그를 과거의 친구들은 영웅으로 치켜세운다.그는 그러나 이미 그들의 허상을 간파했다.세상은 증오와 편견이아니라 사랑과 화해가 중요하다고. 에드워드 노튼은 스킨헤드에서 인생의 의미를 깨달은 현자의 눈빛에 이르기까지,뛰어난 연기력을 보여준다. 朴宰範
  • 패션업체 ‘신원’이 되살아난다

    패션업체 신원(대표 朴成喆)이 살아나고 있다. 11개 브랜드를 5개로,한때 25개나 됐던 계열사를 3개사로 줄이며 ‘패션’이라는 한 우물만 판 결과다. 73년에 설립된 (주)신원을 모기업으로 성장해 온 신원그룹은 90년 이후 건설업과 민방사업,골프장 등으로 사업영역을 넓히면서 자금난 끝에 위기를 맞았다.결국 지난해 2월11일 채권단에서 2,000억원 협조융자를 받으면서 회생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기독교 대한성결교회 장로인 朴회장은 서울 북아현동의 자택과 시흥동 임야 9만평 등 전 재산을 담보로 내놓고 회장·기조실을 없애버렸다.(주)신원의대표이사를 직접 맡아 책임경영에 착수했다.문어발식으로 확장하던 때와 달리 그룹의 특화분야인 의류업에 사력(社力)을 집중하면서 경영실적이 좋아졌다. 신원은 지난 한해 동안 7억∼50억원 적자를 낸 모두스비벤디 쎄스띠 루이레이 예거 제킨 등 5대 브랜드를 정리했다.남아있는 브랜드는 베스띠벨리 씨비키 INVU SIEG 보스 등 6개다. 李건상 영업관리팀 과장은 “타깃 연령층을 18∼38세에서 18∼26세로 좁혔다”며 “원단과 디자인을 젊은 층 기호에 맞추고 백화점에 입점할 때도 젊은이들이 즐겨찾는 2층으로 잡는 등 영업집중력을 강화한 것이 주효했다”고 말했다. 젊은 층을 상대로 하는 상품은 경기를 덜 탄다.이들은 노세일(No Sale)을해도 사고 싶은 것을 산다.지난 1월 중순 모든 백화점이 세일에 들어갔을 때 신원의 베스띠벨리는 다른 업체와 달리 노세일을 고집했다.그런데도 판매가 늘었다. 신원은 패션에 민감한 세대를 공략하면서 ‘QR(Quick Response,근접기획)’를 도입했다.전에는 제품이 팔리기 몇달 전에 기획,디자인,생산을 했지만 최근에는 짧게는 일주일 만에 3단계가 끝난다.계열사를 줄이면서 사원도 줄였지만 디자인 부문만은 오히려 강화했다. 그러다보니 사원들에게 떨어지는 업무량은 배가 됐다.그러나 직원들은 이제 시작이라며 채권단이 제시한 것 이상의 목표를 달성하겠다며 뛰고 있다. 지난 1월 한달 동안 베스띠벨리가 매출 25억원,영업이익 5억원을 기록하고6개 브랜드가 총 매출 94억원,영업이익 11억원을 내는 등 채권단이 제시한 1월 목표치를 13%나 초과 달성했다.2월 목표액도 11일 현재 51%가 달성돼 초과달성이 무난할 것으로 자신한다. 全京夏 lark3@
  • 덩샤오핑 死後 2년

    중국이 19일로 덩샤오핑(鄧小平)사망 2주년을 맞는다.덩 사후 정치불안과 분열 예측을 일축하면서 덩에 의해 선택된 ‘장쩌민(江澤民) 체제’는 안정속에 개혁 행보를 더하고 있다. 덩 사후 장쩌민은 정적들을 은퇴시키면서 홀로서기에 성공했다.정치안정을바탕으로 덩샤오핑의 ‘시장 사회주의’이론과 프로그램에 따라 개혁 강도를 높이고 있다. 장쩌민 중심의 통치구도는 2002년 가을 16차 당대회때까진 흔들림없을 전망이다.당·정·군 요직에 널리 포진해 있는 그의 ‘직계’들의 위세도 강화추세다.3년후인 2002년 76세가 되는 장쩌민을 이을 권력승계가 문제로 남아있을 뿐이다. 2002년까지 계획경제의 잔재를 줄이고 경쟁과 시장원리의 폭을 넓히겠다는것이 장쩌민 개혁의 요체다.3월초 개최될 정기국회인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선헌법개정을 통해 사유재산을 공인할 예정이다. 현재까지 장쩌민의 시도는 성공적이다.아시아 금융위기를 이겨냈고 8%가까운 경제성장률을 유지하고 있다.외환보유고도 1,400억달러로 일본에 버금간다. 국제적 위상도 상승중이다.그러나 복병도 없지 않다.무너지는 복지체제속에 실업자 급증은 민족분규와 함께 사회안정을 흔들어대고 있다.정치 자유화 요구와 인권문제는 현 체제의 아킬레스건.개혁과 함께 사회 각분야에서 심화되는 참여와 인권신장 요구를 어떻게 다룰지가 지도부의 부담이다. 정치와 사상은 움켜쥔채 경제분야의 개혁에 박차를 가하는 장쩌민 체제는 덩샤오핑 이론을 높이 들고 중국식 개혁개방의 행진을 거듭하고 있다. 李錫遇 swl@
  • “가격 낮추고 품질은 높게”/부동산­분양정보 하이라이트

    ◎분당구 구미동 신영 ‘시그마Ⅱ 아케이드’/주변 상가보다 최고 50% 저렴 (주)신영은 경기도 분당구 구미동 오리역 역세권에 위치한 하우스텔 ‘시그마Ⅱ’ 단지내에 ‘시그마Ⅱ 아케이드’를 신축,분양중이다. 신영은 IMF시대에 맞춰 분양가격을 주변 상가에 비해 40∼50% 저렴한 지하 1층 400만원대,지상 1층 900만원대의 파격적인 분양가격으로 분양한다. 또한 점포별로 3,000만∼5,000만원의 중도금 대출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시그마Ⅱ 아케이드는 현재 60% 정도 공정을 보이고 있으며,최소 1,000세대가 넘는 독립상권을 확보,왠만한 중대형 아파트단지내 상가를 능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지하철 분당선 종착역인 오리역 역세권은 용인·신갈개발지구 및 수도권 이남을 연계하는 지역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어 높은 신장세가 예상된다. 99년 9월 입주예정. 분양상담은 (0342)716­3456. ◎김포 신안 ‘실크밸리’/서울 출퇴근 용이 전원형 아파트 신안건설산업은 경기도 김포시 감정동에 총 4,000여세대의 대단위 아파트단지를 신축,올 하반기부터 분양한다. ‘실크벨리’로 이름붙여진 이 단지는 주변이 산자락으로 둘러쌓여 있는 전원형 아파트이면서도 김포시내와도 가깝다는 장점이 있다. 여의도까지 승용차로 20분밖에 걸리지 않아 서울 출퇴근도 용이하다. 김포공항과 일산까지는 각각 10분도 채 걸리지 않는다. 양도세 면제,취득세 등록세 감면 등 각종 세제 혜택이 적용되며 당첨권 전전매도 가능하다. 올 하반기 1차로 분양하는 1,786세대는 23∼71평까지 다양한 평형을 적용해 선택의 폭을 넓혔다. 평당 분양가는 340만∼360만원선이다. 이같은 가격은 올 상반기 김포지역에서 분양한 아파트 평당가가 400만원선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매우 낮은 수준이다. 계약자들에게는 주택은행 융자에 9.95%의 확정금리를 적용하도록 알선하고 있으며,계약자가 계약 해지를 요구하면 분양대금은 물론 9%의 이자까지 돌려주는 ‘이자환불보장제’도 도입했다. 문의 (0341)985­1188. ◎일산 현대 ‘밀레니엄 빌리지’/스포츠센터 평생 이용권 선물 현대산업개발이 경기도 일산 장항동 정발산 산책로 입구에 세우고 있는 ‘밀레니엄 빌리지’는 지하 4층,지상 15층의 초대형 건축물이다. 지하에는 주차장이,지상 1∼2층에는 생활시설이 들어서고 3층부터 15층까지가 오피스텔이다. 기존 오피스텔 보다 주거부분을 대폭 강화했다. 수영장과 에어로빅 스쿼시클럽 사우나 건강클리닉 등이 건물내에 들어선다. 나아가 계약자 전원에게 스포츠센터 평생이용권을 준다. 분양면적은 비교적 여유있는 주거 및 업무를 위해 대형화했다. 56.33평부터 94.95평까지 4종류. 분양가는 평형과 층별에 따라 평당 415만원에서 435만원까지로 책정돼 있다. 주차시설은 지상 104대,지하 601대 등 모두 705대 규모로 가구당 2.5대꼴의 여유로운 공간을 자랑한다. 분양문의 (0344)908­0044. ◎광명 철산지구 주공아파트/2000년 지하철 7호선과 연결 주공이 광명시 철산·하안동과 수원시 조원·매탄동 일대에 각각 2,351가구와 2,400가구 규모의 아파트단지를 공급한다. 오는 12월부터 분양을 시작하는 철산지구는 공공분양 1,117가구,5년 임대 1,234가구이며 17평 580가구,22평 654가구,24평 462가구,34평 541가구,45평 114가구이다. 지구 철거민들에게 우선 청약권이 있고,나머지는 일반 청약저축 가입자들이 분양받을 수 있다. 광명시청 경찰서 병원 체육공원이 인접해 있고 서쪽으로는 도덕산이 쾌적한 환경을 제공한다. 2000년초 지하철 7호선(철산역)이 연장개통된다. 조원지구는 공공분양 1,936가구,근로복지 400가구,5년 임대 18가구이며 현재 분양이 진행 중이다. 경수산업도로와 인접해 서울과 수원 진입이 쉽고 4호선 사당역까지 20분이면 닿는다. 단지안에 동사무소,초등학교가 들어서고 인근에 삼림욕장 만석공원 종합운동장 등이 있다. 문의 (0331)250­8380∼4 ◎미아동 ‘북한산 SK시티’/국내최대 1만평 자연공원 조성 SK건설은 이달 말 서울 미아동 1­1지구의 재개발아파트 단지인 ‘북한산 SK시티’를 분양한다. 재개발 아파트단지로는 최대규모다. 전체 5,327가구 가운데 조합원분을 뺀 1,750가구가 분양 대상이며 43평형 425가구, 33∼34평형 200가구,25평형 1,125가구. 2001년 10월 준공된다. 단지안에 관공서 학교 상점 레저시설 등을 갖춰모든 생활을 그 안에서 해결하는 ‘원스톱 라이프’개념을 도입했다. 지하철 4호선 미아삼거리역,도시순환고속도로 진입램프가 인접해 교통이 편리하다. 북한국립공원을 천연 상태로 활용,국내 최대규모인 1만평의 자연공원을 단지안에 조성한다. 북한산 등산로와 바로 연결된다. 25평에도 부부전용욕실을 설치하는 등 공간이용을 극대화했으며 자연색조의 고급 마감재 사용은 물론, 분양때 선택한 인테리어와 입주시점의 유행에 맞춘 인테리어 가운데 입주자가 고르는 ‘패션 센스’제도를 도입했다. 문의 (02)982­1030 ◎수원 권선지구 삼성 아파트/독자개발 인테리어 시스템 적용 삼성물산 주택개발부문은 수원 권선지구와 대구 진천지구에서 각각 442가구와 767가구 규모의 아파트 단지를 분양중이다. 수원 곡반정동에 신축중인 권선지구 단지는 32평형(분양가 1억1,980만원)382가구,43평형(〃1억5,600만원) 60가구로 2000년 10월 준공된다. 두 곳 모두 삼성이 전통미를 살려 개발한 한국형 아파트 인테리어시스템이 적용되며 PC통신,화상전화,원격교육,원격진료서비스가 가능한 첨단 멀티미디어 정보화 배선시스템과 무인경비시스템,첨단엘리베이터,원격가스검침장치 등 각종 생활 편의시설이 도입된다. 문의 수원 (0331)222­3303 대구 (053)639­3302 ◎목동 부영 ‘W그린타운 Ⅰ·Ⅱ·Ⅲ’/철골조 시공… 최고 20% 할인 부영은 서울 목동 ‘W그린타운Ⅰ·Ⅱ·Ⅲ’(609가구)과 경기도 남양주시 ‘E그린타운’(2,042가구)을 각각 20%,12% 할인된 파격적인 금액으로 분양중이다. 목동 W그린타운 Ⅰ·Ⅱ·Ⅲ은 반영구적 철골조로 시공된 주상복합빌딩으로 내부구조변경이 용이하고 지하주차장 면적을 최대한 확보했다는 장점이 있다. 수영장 볼링장 등 대형스포츠센터를 갖추고 원스톱 쇼핑이 가능한 황금상권을 갖추고 있다. 남양주 E그린타운은 전체면적 중 40%의 녹지에 테마공원과 조깅코스 등 쾌적한 공간을 조성하고 단지내 광케이블을 설치,미래형 멀티미디어 통신 이용및 재택근무가 가능하다. 평당 가격은 448만∼750만원이며 입주시기는 W그린타운Ⅰ·Ⅱ·Ⅲ이 1999년 10월부터 2000년 9월까지,E그린타운은 2001년4월이다. 분양문의 목동 (02)647­8170∼3,남양주 (0346)555­2411∼4 ◎광주 태전지구 ‘성원타운’/첨단 정보통신 서비스망 구축 성원건설이 경기도 광주 태전지구에 32∼51평의 다양한 평형을 갖춘 ‘성원타운’ 862가구(2,3단지)를 분양 중이다. 성원타운은 전체 2,600여가구의 대규모 단지내에 첨단 정보통신 서비스망을 구축해 홈쇼핑,홈뱅킹,인터넷 이용이 쉽게 설계됐다. 중부고속도로,분당∼청담대교 고속화도로,수서∼수지간 고속화도로 등 쾌속 교통권내에 위치해 있다. 전 세대에 언더씽크형 정수기를 설치하고,안방황토방(1층 전세대),원목마루판(51평형)과 샤워부스(38.51평형) 등이 별도 비용없이 제공된다. 분양가는 1억2,800여만원에서 2억 1,3000여만원 까지이며 입주시기는 2000년 10월이다. 분양문의 (0342)722­0400 ◎광주 곤지암 쌍용아파트/분양가 자율화 이전 가격 판매 쌍용건설이 경기 광주군 곤지암 21가구,서울 성북구 이문동 145가구를 선착순 분양한다. 경기도 광주군 곤지암은 인근 중부고속도로 곤지암 IC와 43번 국도를 통해성남·하남과는 30분,서울의 강남·송파와는 40분 거리다. 1차 분양을 포함, 총 849세대로 금융기관 의료시설 등이 갖춰져 있으며 초·중·고교 단지가 옆에 있다. 30평형 10가구(9,970만원) 39평형 9가구(1억3,718만원) 46평형 2가구(1억5,983만원) 등이다. 분양가 자율화 이전 가격으로 분양된다. 문의 0347­61­9073. 서울 이문동은 분양당시 90% 계약률을 기록했던 곳. 총 1,563가구 중 145가구가 남아있다. 24평형 96가구(9,990만원) 32평형 13가구(1억5,300만원) 42평형 36가구(2억1,900만원)다. 신이문역에서 1분 거리이며 동부간선로 신이문로 한천로 등이 가까워 여의도 시청에서 30분 거리다. 원목온돌마루 식기세척기가 무료 시공된다. 문의 790­5552 ◎청주 고속버스터미널 대우 ‘메가폴리스’/임대 안될 경우 잔금 1년간 유예 대우건설이 청주시 고속·시외버스터미널 상권에 1만6,500여평 규모의 초대형 상가인 ‘대우 메가폴리스’를 소유권과 임대 분양방식으로 동시에 분양한다. 소유권 분양이 된 점포는 대우가 임차인을 보장하며 임대가 안될 경우 대우가 잔금을 1년간 유예하는 등 임대보장분을 맡는 방식이다. 대우메가폴리스는 전문상가 쇼핑몰 복합상가 3개동으로 구성된다. 점포당 분양가는 국제의류 도매센터가 1,000만∼5,000만원대 일반상가가 1억∼3억원 정도다. 입점은 내년 3월이다. 문의 (0431)257­0857
  • 다시 조명해본 원인들(IMF체제 1년:1­2)

    ◎前 정권 ‘환상속 외환관리’가 주범/물적·정치적 요구 충족에 골몰 시스템 붕괴/기술개발 없는 量팽창위주 재벌정책 탓도 우리 경제가 IMF(국제통화기금)의 구제금융을 받게 된 근본적 이유는 무엇일까. IMF체제 1년을 맞아 위기의 본질을 새롭게 조명해보고 이를 바탕으로 위기에서의 탈출 방안을 모색한다. ■국민의 물질적·정치적 요구를 충족시키는 데만 급급했다=洪尙和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는 지난 6월 펴낸 ‘IMF의 경제식민지를 경계한다’라는 저서에서 “盧泰愚 정권은 ‘한번 믿어주세요’를 앞세운 유화정책으로 물질적 욕구를,金泳三 정권은 ‘중단없는 사정’을 외치며 정치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데 급급해 경제기반의 붕괴와 사회 위계질서의 파탄을 초래했다”고 주장했다. ■기업들이 ‘인플레이션 중독’에 빠졌다=尹源培 금융감독위원회 부위원장(숙명여대 경제학과 교수)은 최근 발간한 ‘우리 경제의 내일을 위해’라는 책에서 “문민정부 초기의 잘못된 수요확대 정책으로 기업들이 ‘인플레이션 중독’에 빠져 기술개발 대신 자산가치의 확대에만 주력했다”고 지적했다. 기업들은 고(高)부가가치 산업으로의 구조조정에 실패했고 금융기관 돈으로 부동산 투기 등을 일삼아 결국 국내·외 경제 여건의 변화에 신축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다. ■金泳三 전 대통령이 부잣집 아들이었기 때문이다=한 언론인은 모 월간지에서 “金전대통령이 부잣집 아들로 태어나 26세에 국회의원으로 선출됨으로써 밑바닥 삶을 일찍 졸업했다”며 “대통령이 된 뒤에도 돈의 소중함을 몰라 IMF를 초래한 장본인”이라고 주장했다. 튼튼한 남산 외인아파트를 1,500억원을 들여 폭파한 것이나 2조원을 더 투입해 경부고속철도 대전·대구역을 지하로 내린 점,쌀시장 개방을 막지 못하고 5년간 50조원을 농어촌 개선에 허비한 것은 경제를 망친 대표적 사례라고 했다. ■해외차입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다=裵善永 청와대 경제수석실 서기관은 자신이 펴낸 경제전문서 ‘화폐·이자·주가에 관한 새로운 패러다임’에서 “해외차입이 급격히 늘고 경상수지가 3년 연속 적자를 기록했음에도 외환 당국은 환율 인상을 억제,수출신장과 외채를 줄일 기회를 원천 봉쇄했다”고 분석했다. 결국 지난해 10월 해외차입액이 한국의 대외신인도가 허락하는 차입한도액을 넘었고 외국 금융기관들이 신규 자금 지원을 일거에 중단,위기가 발생했다고 말했다. ■종합금융사는 금융시장의 ‘블랙 홀’이었다=李鎬澈 재정경제부 지역경제과장은 ‘IMF 시대에도 한국은 있다’라는 저서에서 “종금사가 돈을 흡수하지만 배출하지는 못하는 ‘블랙 홀’이 된 게 문제”라고 주장했다. 종금사들은 해외에서 단기자금을 빌려 중·장기로 운용하다 대외신인도 급락으로 해외 채권금융기관이 상환을 재촉했다. 은행에서 빌린 급전으로 달러화를 사자 외환시장은 마비됐고 당국은 외환보유고로 환율 방어에 나섰으나 보유고만 탕진한 채 환율은 치솟았다. ■금융감독 당국은 ‘눈 뜬 장님’이었다=姜玎鎬 재경부 국세심판소 상임심판관은 지난 2월 펴낸 ‘캉드쉬 총재의 웃음’에서 금융감독 당국의 책임론을 제기했다. 종금사 투신사 리스사 등이 해외에서 ‘만기에 관계없이 상환을 요청할 수 있다’는 조건으로 돈을 빌리고 있었다. 그러나 당국은 이 조건으로 말미암아 1개 국내 금융기관의 채무불이행이 국가 전체의 신용도 하락으로 확산할 위험을 내포하고 있었음에도 팔짱만 끼고 있었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의 재벌 지원이 화근이었다=스티브 마빈 자딘플레민증권 이사는 지난 5월 발간한 ‘죽음의 고통’에서 “정부는 재벌 죽이기와 은행 죽이기의 귀로에서 재벌의 손을 들어줬다”고 지적했다. 재벌들은 기업제국의 확대를 위해 은행돈을 마구 썼고 지난해 동남아지역에서의 통화 혼란으로 수출 증가에 급브레이크가 걸리자 한꺼번에 무너졌다. ◎또다른 원인 ‘국제금융 음모설’/‘달러 패권주의’ 美國 속셈 없었나 “우리 경제가 IMF(국제통화기금)체제로 전락한 배후에 국제 금융시장의 ‘음모(陰謀)’가 있었다” 李贊根 인천시립대 교수는 지난 3월 펴낸 ‘IMF시대의 투기자본과 미국의 패권’이라는 저서에서 “경제위기의 이면(裏面)에는 국제금융의 본질인 국제적 투기자본과 미국의 패권주의가 자리잡고 있다”고 주장했다. 李교수는 투기자본은 실물경제와 동떨어져 움직이며 국제금융의 글로벌한 통합(자본시장 개방)에 따라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들고 있다고 밝혔다. 이같은 자본은 ‘기러기떼’가 선두만 좇는 ‘군집(群集)심리’를 갖고 있어 불확실한 속성을 지녔다고 덧붙였다. 게다가 통신기술의 발전으로 투기자본의 이동속도는 광속화(光速化),한국은 부수이익을 노리는 투기자본의 ‘희생물’이 됐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미국은 냉전체제가 종식되자 새로운 ‘힘의 행사’를 바랐고 달러화와 자본자유화에서 그 길을 찾았다. 달러화는 더 이상 안정적 통화가 아님에도 미국은 지난 50년간 국제관계를 움직이는 ‘정치적 화폐’로 활용했다. 미국은 IMF 등을 앞세워 자본자유화를 무차별적으로 확산시켰고 투기자본은 이를 틈타 순식간에 개도국을 휩쓸었다. 미국의 ‘전략’은 외환위기 이후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달러화가 국제 상거래를 지배하는 한 개도국은 미국에 지원을 요청할 수밖에 없고 미국은 그 대가로 시장개방 등 자국 산업에 이익이 되는 ‘전리품’을 챙긴다는 것이 그의 논지이다. 李교수는 “미국은 국가 전략적 측면에서 국제금융시장을 교묘히 이용하고 있다”며 “IMF 위기의 단초가 투기자본에 있는 만큼 국제금융도 책임을 분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親日의 군상:6/‘친일파 1호’ 金麟昇(정직한 역사 되찾기)

    ◎日帝 침략선 타고와 모국 침탈 앞장/1875년 ‘운양호사건’ 전후 日에 침략정보 제공/日 통역으로 강화도조약 체결에 결정적 역할/日本식 두발·복장에 ‘皇國 절대 충성” 다짐/한때는 선비정신 소유자/日 속셈 모르고 매국 행위/背族 대가는 日의 멸시뿐 1876년 2월4일 강화도 초지진(草芝鎭) 앞바다에 일본 군함 한 척이 출현했다.1월6일 일본 시나가와만(品川灣)을 출발,부산을 거쳐 온 이 배에는 일본 정부의 특명전권변리공사(特命全權辨理公使) 구로다 기요타카(黑田淸隆)일행이 타고 있었다.구로다 일행은 6개월 전에 발생한 ‘운양호(雲揚號)사건’을 빌미로 조선과 강제로 수교조약을 맺으러 오는 길이었다. 구로다를 포함해 무려 800여 명에 달하는 일행 가운데 일본인 복장을 한 조선인 한 명이 끼어 있었다. 그의 이름은 金麟昇(생몰연대 미상). 그는‘운양호사건’ 이전부터 일본측과 내통하면서 일본을 도와오다가 이제 그 마무리 작업인 조약(강화도조약)체결을 돕기 위해 동행한 통역이었다. 임진왜란 때도 일본에 협력한 ‘친일파’는 있었지만근대적 의미에서 金麟昇보다 앞서는 친일파는 없다.친일파 연구가 고(故) 林鍾國씨 역시 그를 ‘친일파 1호’로 꼽았다.조선조 말기 양반계층의 지식인이었던 그가 친일의 길을 걷게되는 과정은 이후에 등장하는 친일파들의 행태와 유사한 점이 없지 않다.그의 친일행적 연구는 일제하 친일파 연구의 첫걸음이라고 할 수 있다. 金麟昇의 친일행적이 구체적으로 드러난 것은 그리 오래지 않다.그는 해외에서 일제의 외국인 고문(顧問)으로 고용돼 비밀리에 활동한 까닭에 국내에는 흔적이 남아있지 않다.林鍾國씨 조차도 그의 글에서 ‘김인승’이라는 이름 석자만을 기록했을 뿐이다.몇몇 역사학자 역시 논문에서 그를 언급한 바는 있으나 친일활동의 전모를 밝히지는 못했다. 金麟昇의 친일행적은 지난 96년 2월 성신여대 具良根 교수(당시 도쿄대 외국인 연구원)가 발표한 한 논문을 통해서 그 전모가 드러났다.具교수는 일본 외무성 사료관에서 입수한 3건의 자료를 토대로 ‘일본외무성 7등출사(七等出仕·일본의 구식 관직명) 세와키 히사토(瀨脇壽人)와 외국인고문(顧問)金麟昇’이라는 논문을 발표한 바 있다.친일파의 ‘선구자’격인 金麟昇의 친일행적을 추적해 보자. 金麟昇은 함경북도 경흥(慶興)태생으로 본관은 김해(金海).7대조 때 경흥으로 이사한 뒤로 그의 집안은 토반(土班,지방의 양반)으로 전락하였다.그는 16세 때부터 경흥부(慶興府)에 근무하면서 상당한 직책을 맡기도 했다.그러나 이 지역에 대홍수와 기근이 몰아치던 1869년 그는 모종의 일로 이 지역 수령과의 의견충돌 끝에 관직을 그만두고 두만강을 건너 러시아땅 니콜리스크(당시 한국명 吹風,블라디보스토크 북방 50리)로 탈주하였다. 이곳에는 그 뒤 식량을 찾아 월경(越境)한 조선인 유랑민이 대거 몰려들었는데 한학실력이 출중했던 그는 여기서 학교를 열고 생도들을 가르쳤다.그러던중 여기서 다케후지 헤이가쿠(武藤平學)라는 한 일본인과 사귀게 된다.다케후지는 원래 양학(洋學,서양의 신학문)을 공부하려고 집을 나왔다가 블라디보스토크까지 흘러오게 된 사람이었다.바로 이 다케후지가 나중에 그를 친일의 길로 이끈 첫 안내자가 된다.한편 이무렵 러시아가 부동항(不凍港)을 찾아 남진(南進)정책을 강행하자 1875년(明治 8년) 4월 일본정부는 외무성 7등출사 세와키 히사토(1822∼78)를 블라디보스토크와 포셋 지방에 파견,러시아와 교섭을 갖게 하였다. 세와키는 공식적으로는 일본 외무성이 블라디보스토크에 무역사무소를 개설키 위해 파견한 외교관이었지만 사실상 정탐꾼이었다. 일본 외무성이 그에게 준 ‘출장명령서’(1875년 4월4일)의 임무 부분은 ‘탐색’,‘정탐’인데 이 중의 절반은 의외로 조선에 대한 것이었다.명령서에는 구체적으로 ‘조선인을 고용하여 조선땅으로 들어가서 토지·풍속 등을 탐색하고 올 것’ 등이 명기돼 있다.그러나 어떤 연유에서인지 세와키는 조선에 들어가지 못했다.대안을 모색하고 있던 세와키는 여기서 일본인 다케후지를 만나 문제의 金麟昇을 소개받는다.金麟昇의 학식과 경험을 높이 산 세와키는 귀국길에 그를 일본으로 데리고 갔다. 이무렵 일제는 다수의 외국인 고문을 고용하고 있었는데 1874∼75년에는 그수가 약 2,000명에 달했다.운양호사건(1875년 9월20일),강화도조약(1876년)이 체결되기 바로 직전의 일이다.당시 일제는 조선에 ‘황국(皇國)의 군현(郡縣)’을 설치하여 이를 근거로 대륙을 침공할 계획을 세워놓고 있었다.외국인 고문 채용은 이를 대비하기 위한 사전포석이었다.그리고 그 첫 군사행동이 바로 ‘운양호사건’이었다. 1875년 7월 세와키를 따라 일본으로 건너간 金麟昇은 운양호사건 발생직전 1차로 3개월간(8월1일∼10월30일) 일본정부와 외국인 고문 고용계약(日給 1원)을 맺었다.당시 일본 외무성이 그를 고용한 목적은 ▲만주지방 지도작성 ▲북방사정 탐색 ▲조선 침략용 지도작성 ▲기타 필요한 사항에 대한 자문 등.이중에서 金麟昇이 일본측에 크게 도움을 준 부분은 조선에 관한 사항이었다. 1875년 일본 육군참모국이 조선 침략용으로 작성한 ‘조선전도(朝鮮全圖)’는 金麟昇의 자문을 받아 작성된 것이다.지도 하단부에 적힌 ‘조선 함경도인 모(某)씨에게 친히 그 지리를 자문받고…’의 모씨는 바로 金麟昇을 지칭한 것이다.지도 외에도 당시 조선사정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계림사략(鷄林事略)’ 역시 그의 자문을 받아 출간됐다. 한편 1차 계약기간중인 10월부터 金麟昇의 급료가 월급제로 바뀌면서 금액수 두 배로 늘어났다.당시 일본 외무경(현 외상) 데라시마(寺島宗則)는 태정 대신(太政大臣,총리)에게 보낸 편지에서 ‘…조선어는 물론 한학,시문(詩文)이 능통하여 아주 유용한 인물로…한지(韓地,조선)에서도 쉽게 구할 수 없는 인물입니다…’라고 그를 평가하였다.일제는 강화도조약 체결을 앞두고 그를 적절히 활용할 계획이었던 것으로 보인다.실지로 그는 강화도조약 체결(1876년 2월27일) 이후까지 거의 1년동안 도쿄에 머물면서 조선침략을 위한 갖가지 정보와 조언을 일본측에 제공했는데 결정적인 공헌은 역시 강화도조약 체결 과정에서 이루어졌다. 1876년초 강화도조약 체결을 앞두고 일본정부의 대표 구로다 특명전권공사가 그에게 동행을 요구하자 그는 ‘이번 수행에서도 만약 머리를 깎지않고 의복을 바꾸지 않으면 이는 제가 조선인을 자처하는 일이며 일본인의 입장에 처하는 것이 아니니 어찌 황국(皇國,일본)의 신임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라며 황송해 했다.심지어 ‘끓는 물,타는 불 속이라도 어찌 고사하겠는가’라며 일제에 충성을 맹세하였다. 1876년 2월4일 강화도에 도착한 구로다 일행은 1주일만인 2월10일 강화부(江華府)에 상륙하여 다음날 11일부터 담판에 들어갔다.조약이 체결되기까지는 보름 이상이 걸렸다.이 기간동안 그는 강화도 앞바다에 정박한 일본군함에 머무르면서 공문의 한문번역과 수정책임을 맡았던 것으로 보인다.그는 조약체결 과정에서 수시로 일본측에 조언을 해주었는데 구로다에게는 조선관리설득방책 18개항을 서면으로 제출하기도 했다.여기에는 전신기(電信機)사용을 권장하는 내용에서부터 ‘여러 말 할 필요없다.청국(淸國,청나라)은 그처럼 인구가 많고 땅이 넓은데도 먼저 일본에 강화조약을 청하여 맺었다.두루살펴 깊이 생각하라’(18항)는 등 공갈·협박성 문귀도 들어 있다. ‘직량(直亮)’한 성격에 동포애도 강한,조선의 전통적 선비정신의 소유자였던 金麟昇.당시 그는 일본의 속셈을 헤아리지 못한 채 ‘일본과 조선은상맹상통(相盟相通)의 나라’로 보고 일본의 강화도조약 체결 추진에 협조를 아끼지 않았다.조약 체결후 일본으로 돌아간 그는 얼마후 러시아로 되돌아갔는데 도쿄에서 남긴 한 편지에서 ‘거리에서 듣기 불편한 말들이 들리고 길을 걸으면 조심스럽고 두려운 마음이 든다’고 적었다.‘친일파 1호’가 배족(背族)의 대가로 일본인들로부터 받은 보상은 멸시와 증오였다.그 이후 대개의 친일파들이 그러했듯이. ◎강화도 조약/日,운양호사건 고의 유발뒤 강제 체결/총 12조… 韓日간 맺어진 첫 불평등조약 ‘강화도조약(江華島條約)’은 병자년에 체결됐다고 해서 일명 ‘병자수호조약(丙子修好條約)’으로도 불리는데 정식명칭은 ‘조일수호조규(朝日修好條規)’다. 메이지유신(明治維新) 이후 조선과의 국교를 줄기차게 추진해온 일본은 조선정부의 쇄국정책으로 교섭이 난항에 빠지자 1875년 9월 20일 해안측량을 빙자하여 ‘운양호사건’을 고의로 유발했다.이를 빌미로 일본은 군함과 함께 구로다를 전권대사로 파견,1876년 2월 27일 조선측 대표 판중추부사 申櫶을 상대로 수교조약을 강제로 체결하였다. 총 12조로 구성된 이 조약은 ▲부산 이외에 원산·인천 추가 개항 ▲조선연해 측량권 허용 ▲개항장 내 조계(租界)설정·일본인의 치외법권 인정 등 일본측에 유리한 내용들 뿐이다.이 조약은 국제법적 토대 위에서 양국간에 이뤄진 최초의 외교행위이자 최초의 불평등 조약이기도 하다.
  • 아키타縣 지자제/崔弘運 논설위원(外言內言)

    지난주 일본 혼슈(本州) 북부 아키다켄(秋田縣)을 방문할 수 있었다.한·일 합작 건설회사인 공영그룹 鄭秉勳 회장이 후원하는 ‘아키다성지순례지원본부’(본부장 鄭東柱)의 초청으로 아키다시(秋田市)의 작은 천주교 수녀원인 성체봉사회를 방문하기 위해서였다.그 수녀원에는 지난 75년 1월 4일부터 81년 9월 15일까지 6년 8개월동안 101차례나 눈물을 흘린 높이 68㎝의 조그마한 목각 성모 마리아상이 있어 더욱 유명한 곳이다. 눈물을 흘리는 마리아상을 목격한 사람만도 2,000여명에 이르며 아키다대학 법의학부는 이 눈물을 사람의 체액성분과 똑같다는 분석결과를 내놓기도 했다.니가타 교구와 로마 교황청도 다각적인 조사활동을 벌인 끝에 1984년 5월 이 성모상에 관련된 일들을 ‘초자연적인 것’,즉 기적(奇蹟)으로 결론내렸다. 이쯤 되면 프랑스의 루르드나 포르투갈의 파티마처럼 전 세계에서 천주교 신자들이 구름처럼 몰려드는 성지(聖地)로 명성을 떨칠 법도 하지만 지금까지 한적한 시골지방으로 남아 있다.천주교가 전파된지 500년이나 되는 일본이지만 신자 수는 아직 30만명정도밖에 되지 못하는 신사(神社)의 나라,일본만의 뿌리깊은 토속신앙 때문이다.천주교 전래 200년만에 신자 수가 300만명이 넘고 개신교는 100년 역사에 1,000만 신자를 확보한 우리와 사뭇 다른 풍토다. 독실한 불교신자이며 한국인인 칠순(七旬)의 鄭회장이 이 곳에 순례객들을 위한 호텔을 짓고 서울∼아키다 직항로 개설추진 등 아키다 성지 개발사업에 발벗고 나선 데는 남다른 사연이 있다.각막장애로 시력을 잃게 될 위기에 처했던 지난 96년 서울강남성모병원에서 모두 천주교 신자인 26세의 청년과 19세된 소녀의 안구를 기증받아 시력을 회복했기 때문이다.빛을 다시찾게 된 보은의 뜻을 나타낼 사업을 찾던 중 우연히 이 지방을 지나다 초라한 성모상에 관한 얘기를 듣고 전 재산과 남은 생을 바치기로 한 것이다. 이같은 사실들을 확인하는 우리 일행 22명을 더욱 놀라게 한 것은 아키다켄과 시,그리고 그 지역 상공인들이 보여준 ‘고장 사랑’정신과 실천이었다.언론계 인사들로 구성된 우리 일행을 그들은 놓치지 않고이틀동안이나 식사 대접을 하며 관광명소와 특산품,미인과 인심좋은 지역사람들에 관해 열성적으로 설명했다.반도 구미코(板東久美子) 부지사와 이시카와 렌지로우(石川鍊沿郞) 아키다시장,中田건설 나카다 사장 등을 통해 지방자치제는 민·관이 힘을 하나로 뭉쳐야 성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깊이 깨달을 수 있었다.
  • 외로움에 시달리는 귀순자(탈북 그 이후:3)

    ◎평범한 시민으로 살고 싶어요/초등학생 자녀 따돌림 심해 기죽어/냉대·소외감 못견뎌 술로 허송세월/“결혼은 귀순보다 큰 모험” 하소연도 96년 중풍에 걸린 남편 金慶鎬씨(63)와 만삭인 막내딸 명순씨(28)등 일가족 16명을 이끌고 북한을 탈출,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던 崔현실씨(59·여). 일요일인 지난 9일 서울의 한 교회에 간증차 나온 崔씨에게서는 ‘북한 출신’의 티가 거의 나지 않았다. 약간 남아 있는 북쪽 특유의 억양만이 崔씨가 1년9개월전 사선을 넘어왔다는 사실을 일깨워주었다. “가족이 다 와서 그런지 탈북자들이 흔히 느끼는 외로움이나 죄책감은 덜한 편입니다. 이웃 주민들과도 허물 없이 지내지요. 시장에 가면 아주머니들이 야채를 더 얹어주거나 옷을 그냥 가져가라고 해 오히려 난처할 때가 많아요” 누구보다 빠르게 남한생활에 적응한 崔씨이지만 한동안은 초등학교에 다니는 손자들 때문에 속이 많이 상했다. 평소에는 잘 어울려 놀던 같은 반 아이들이 싸움이 벌어지면 ‘북한에서 온 주제에…’라면서 따돌리는 바람에 손자들이기가 죽어 학교에 가기 싫어했다는 것. 崔씨는 “딸과 함께 선생님을 찾아뵙고,몇차례 학교에서 강연을 하고 난 이후에는 그런 일이 많이 줄었다”면서 “철모르는 아이들끼리의 일이지만 섭섭한 감정은 어쩔 수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700여명이 넘는 탈북자 가운데 崔씨처럼 일가족이 함께 내려와 의지하며 사는 사람은 드물다. 대다수 탈북자들은 부모 형제를 등지고 혈혈단신 귀순한 탓에 극심한 죄책감과 외로움에 시달리며 지낸다. 탈북자 후원단체인 북한인권시민연합의 尹玄 대표는 “가족을 버렸다는 자책감에서 벗어나도록 하기 위해 결혼을 적극 권유하지만 쉽지 않다”고 말했다. 북한 출신이라는데 대한 거부감과 선입견이 심한데다 일부는 정착금을 노려 계획적으로 접근하기도 해 자칫 돈 잃고 마음만 상하기 쉽다는 것이다. 성공한 탈북자로 알려진 金勇씨(38·연예인)도 “열렬한 연애가 아닌 바에야 귀순자에게 결혼은 귀순보다 더 큰 모험”이라고 토로했다. 주변의 냉대와 소외감을 견디다 못해 술로 허송세월하거나 잘못된 길로 빠지는 탈북자들도 상당수에 이른다. 지난해 5월 6개월된 딸과 함께 자살한 탈북자 아내 崔율리아씨(당시 26세)가 그런 예. 러시아교포 3세인 그녀는 러시아 벌목공으로 일하다 94년 5월 귀순한 남편 崔모씨(40)를 따라 이듬해 한국에 왔으나 주위와 어울리지 못한데 따른 우울증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러시아 벌목공 출신인 K씨는 “남한 사람들은 북한 사람들에 대해 판에 박힌 시각을 갖고 있다”면서 “그들은 귀순자들을 저개발 국가에서 온 사람들이라고 생각할 뿐 동족으로서의 애정은 없다”고 비판했다. 남한사회에 대한 좌절과 열등감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도 많다. 죽을 고비를 몇번이나 넘기면서 찾아온 남한 땅에서 자신이 할 일이 막노동밖에 없다는 현실이 자포자기상태로 몰아가는 것이다. 탈북동기나 경로는 서로 다르지만 탈북자들의 목표는 똑같다. 자유의 땅 대한민국에서 평범한 시민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 한국인 세계 평균보다 7.9년 더 산다/통계로 본 자화상

    ◎여자 100명당 남아비율 111.7명… 2위/GNP대비 총교육비 가·미·불보다 낮아/원유소비량은 세계 평균의 3.2배나 우리 국민들은 오래 산다. 남자들은 담배를 많이 피운다. 기름 한방울 나지 않지만 원유는 세계평균보다 3.2배나 많이 소비한다. 일하는 시간은 줄어들었지만 임금은 해마다 올려 받았다. 통계청이 24일 펴낸 ‘통계로 본 세계속의 한국’에 나타난 한국과 한국민의 자화상이다. 한국인의 평균수명은 73.5세. 세계평균(65.6세)보다 7.9세나 높다. 특히 여자는 77.4세로 남자보다 평균 7.9년을 더 산다. 일본이 80.0세로 평균수명이 가장 높다. 남아선호는 유별나다. 출생 여자아이 100명당 남자아이의 비율을 나타내는 성비가 96년 111.7명이다. 중국(113.9명)을 빼면 세계 최고다. 일하는 시간은 많이 줄었다. 87년 주당 평균 54시간이었으나 96년에는 48.4시간으로 줄었다. 싱가포르(49시간)와 비슷하다. 그러나 임금은 해마다 올랐다. 91∼96년 사이에 제조업 평균임금은 매년 13.5%씩 증가했다. 싱가포르(8.3%)나 중국(8.1%) 대만(6.7%),일본(-4.4%)과 비교가 안될 정도다. 남성 흡연율은 95년 73%로 세계 최고수준이다. 여성흡연율은 6.0%로 선진국보다 매우 낮다. 그러나 교육비 지출은 선진국보다 낮다. GNP대비 총교육비 지출은 97년 5.0%로 캐나다(7.3% 93년) 미국(5.3% 93년) 프랑스(5.9%) 스위스(5.5%)보다 낮다. 경상수지적자는 97년 230억달러로 미국(1,487억달러)에 이어 세계 2위다.
  • 참소리축음기박물관(생활속의 박물관·미술관:6)

    ◎영혼을 두드렸던 ‘소리틀’ 오롯이/뮤직박스·축음기·첨단오디오/세월 들려주는 3,000점 망라/소리의 역사 따라 관람 가능/에디슨관 美보다 앞선 소장품 “십년 감수했다”라는 말이 있다.흔히 쓰면서도 이 말이 축음기와 관련됐음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구한말 축음기가 이 땅에 들어온지 얼마 안됐을 때의 일이었다.일반인들은 대부분 소문으로만 그 신기한 ‘소리단지’를 들어 알고 있을 뿐이었다.황실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고종이 당대의 유명한 광대 朴春載를 궁 안으로 불러 들였다. 박씨가 노래 한마디를 끝내고 축음기를 틀자 박씨의 노래소리가 그대로 흘러나왔다.축음기 소리에 놀란 고종이 불쑥 꺼낸 말 한마디.“춘재,네 명이 10년은 감했구나”.축음기가 사람의 정기를 빼앗아 간다고 생각한데서 유래한 말이다. 시대의 한과 삶의 고달픔을 달래주던 추억의 축음기부터 첨단 오디오 시스템까지­.시공을 초월해 소리의 세계에 흠뻑 빠져들 수 있는 이색 박물관이 있다.강원도 강릉시 송정동 216의 4 ‘참소리축음기오디오박물관’(관장 孫成木·55).1877년 에디슨이 발명한 세계 최초의 축음기부터 최신 음향기기까지 소리세계의 모든 것을 보여준다.아파트 숲 속에 덩그마니 자리잡아 조금은 삭막한 분위기지만 알맹이로는 세계 최고다. 200년전의 뮤직박스부터 축음기를 거쳐 최첨단 오디오세트로 안내하는 이 박물관의 소리여행은 흥미진진하다.규모는 비록 3층짜리 본 건물과 에디슨관·뮤직박스관 등 단층 건물 2동이 전부지만 담겨진 내용은 상상을 초월한다. 축음기만 해도 1877년∼1990년대 초기 왁스 실린더 300점,1890년∼1915년 원반 축음기 800점,1920년∼1940년대 중반의 포터블 축음기 200점 등 1,300점. 여기에 에디슨 발명품 500점과 라디오·텔레비전·전축·현대 오디오·음반·서적과 자료들이 곳곳에 진열돼 있어 전문가들도 쉽게 발길을 옮기지 못한다. 1901년 스페인에서 제작된 수공예 캐비넷형 축음기부터 1925년 영국산 최초의 리모트콘트롤형 축음기인 오토매틱 그래머혼,1930년대 미국산 웨스턴 일렉트릭 보이스 등 모두 내노라는 명품들.1800년도 외장형 나팔 축음기부터 1924년∼1940년 내장형 축음기,1925년형 최초의 텔레비전,1930년∼1940년대의 텔레비전·라디오를 샅샅히 보고나면 축음기 역사의 윤곽이 잡힌다. 에디슨관은 40여종 400점에 달하는 에디슨 발명품만 모아놓은 곳.최초의 벽부착용 스탠드형 전구와 주식시세표시기·영사기 등이 서로 최고를 자랑하듯 자리잡고 있다.최초의 축음기인 틴 호일과 클래스엠,엠베롤라,치펀데일은 금방이라도 에디슨의 탄성을 쏟아낼 것만 같다.현재 미국내에 에디슨 관련 전시관이 세 곳 있지만 에디슨의 명성에 비하면 부실한 편.워싱턴 스미소니언 박물관내 에디슨관과 디트로이트 포드자동차사내 에디슨관,뉴저지주 멜로파크 에디슨연구소의 소장품을 모두 합해도 여기에 비하면 턱도 없다는게 손관장의 귀띔이다. 뮤직박스는 1796년부터 1800년대까지 사람들의 귀와 혼을 자극하던 소리기기.에디슨이 축음기를 발명하면서부터 사라져 갔지만 옛 사람들의 음악세계에선 빼놓을 수 없는 환상적인 소리단지다.이처럼 축음기에 앞서 명성을 떨치던 갖가지 뮤직박스들도 이곳의 자랑거리다.원통형과 원반형,플레이어 피아노,오케스트리온,노래하는 새,움직이는 인형이 있는 뮤직박스,의자 뮤직박스들이 200년전 소리의 세계로 시계추를 돌리고 있다. 박물관 소장품중엔 세계적인 희귀품이 상당수.이 가운데 아메리칸 포노그래프(1900년 미국산)는 아르헨티나의 한 경매에서 구입한 것.수제품으로 만들어진 6대중 유일하게 남아 있는 것이다.또 축음기의 여왕으로 불리는 멀티폰(1908년 미국산)도 미국 샌프란시스코 경매장에서 구입한 것으로 현존하는 2대중 한대다. 그런가 하면 1층에 놓여있는 웨스턴 일렉트릭 보이스도 1928년∼35년 당시 음악 애호가들이 소리를 듣는 것은 물론 눈으로 한 번 보는 것이 소원일만큼 귀중한 것이라고 한다. ◎孫成木 관장/‘세계 유일’ 많지만 ‘내것’이란 집착 없어/남극 포함 60개국 찾아 강도 납치 사기 수난도/“공간 넓혔으면” 아쉬움 孫成木 관장(55)은 중학교 2년때 작은 아버지의 망가진 축음기를 고친 것을 계기로 축음기를 모으기 시작,박물관까지 만들어낸 명실상부한 세계 최고의 축음기 전문가다.축음기를 찾아 돌아다닌 나라만도 60개국.남·북극까지도 다녀왔다고 한다. “한 해 평균 7∼9회,매년 7∼8개월 정도씩 외국에 살면서 소문난 축음기 경매나 소장가들은 빼놓지 않고 찾아 다녔습니다.” 수집 초기엔 가짜를 진품처럼 속은 적도 많고 오지의 소장자를 만나러 가던중 강도를 만나거나 납치당하기도 수십번.이렇게 우여곡절 끝에 손에 넣은 것이 모두 3,000점.이중엔 강남의 아파트 한 채 값을 훨씬 웃도는 축음기도 들어 있다. “세계에서 하나 뿐인 축음기 등 희귀품이 많지만 제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적은 없습니다.저는 단지 관리·보관 책임을 질 뿐입니다”.초등학생부터 노인들까지 찾아드는 손님들이 끊이지 않지만 가장 반가운 손님은 역시 학생들.단체 학생 방문객들이 찾아올 때면 직접 강의도 한다.이젠 국제적으로도 조금은 알려져 학위논문 자료수집차 찾는 외국인 방문객이 있을 정도다.지난 해 방문했던 張庭延 주한 중국대사는 에디슨 발명품과 중국 문화재 교환전시를 제안하기도 했다고 한다. 최근 孫씨의가장 큰 걱정은 시설확대문제.찾아드는 손님이 늘고 있고 무엇보다도 귀한 소장품을 모두 보여주지 못하는 점이 안타깝다고 한다. “세계적인 박물관으로 후세에 전해주는 게 제 소망입니다.부지만 확보되면 건물과 전시 등은 쉽게 해결될 수 있을텐데…” ◎참소리박물관 가는 길 강릉시내에서 20분∼25분 정도 소요된다.시내에서 송정·안목 방면 버스편을 이용하면 20분∼25분 정도 거리.터미널에서 48번·21번·19­1번 노선버스가 운행하고 있고 터미널과 강릉공항·오죽헌·경포에서 택시로 각각 20분 정도면 충분하다. 연중무휴로 문을 열고 있고 개관시간은 상오 9시부터 하오 5시까지.관람시간은 1시간30분 정도.관람료는 어른 3,500원,중·고교생 2,500원,초등학생 1,500원,6세 미만은 무료,30인이상 단체는 어른이 2,500원,중·고교생 1,500원. 0391)652­2500.
  • 대관령 박물관(생활속의 박물관·미술관:2)

    ◎굽이굽이 ‘옛길’따라 질박한 삶의 흔적/사임당의 旅路 정취 그대로/나선형 이어진 6개 전시실/통일신라 미륵불상부터 연자방아·돌대야·우물까지 99개의 굽이 굽이마다 옛 사람들의 숱한 애환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영동의 관문 대관령.이 대관령 아래 첫 마을인 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어흘리에는 신사임당이 넘나들며 어머니를 그리는 시를 지었다는 ‘대관령 옛길’이 그대로 남아 있다. 정취로 가득한 이 옛길 왼편에 단아한 자태를 드리우고 있는 대관령박물관(관장 洪貴淑)은 영동지방의 명소로 새롭게 부각되고 있다.울창한 소나무 숲에 둘러싸인채 대관령 계곡이 교차해 가로지르는 가운데 들어앉아 마치 대관령에서 굴러 내린 돌 한점이 오똑 앉아 있는 모양이다. 이 박물관이 들어선 것은 지난 93년 5월.30여년간 전국을 다니며 옛 것을 고집스럽게 모아온 한 여성 수집가의 집념으로 어렵사리 만들어진 결실이다.대지 3천평에 건평 220평의 이 박물관은 소나무 숲에 둘러싸인 야외 전시장과 백호방 현무방 토기방 청룡방 우리방 주작방 등 특색 있는유물 1천200점을 갖춘 6개의 전시실이 나선형으로 이어져 관람객들을 맞는다. 영동고속도로를 뒤로 하고 계곡 위에 장난감처럼 얹혀 있는 아담한 목조 난간 다리를 건너면 나타나는 고인돌 모양의 붉은 벽돌 건물.건물 좌우에 석등과 장승들이 마치 문지기처럼 들어서 있어 처음부터 흔치 않은 옛풍광을 전해준다.고인돌을 들어서는 느낌으로 네개의 큰 기둥을 지나치다보면 원형 공간을 앞에 둔 전시관이 우뚝 서 있다.전시관 입구 왼쪽엔 삼신할머니상 2개,오른쪽엔 ‘머슴과 낭자상’이 친숙한 한국인의 얼굴로 다가선다. 전시관 중앙은 불교미술을 보여주는 공간인 백호방.원형 홀 가운데에 2.5m 높이의 통일신라시대 미륵불상이 천정에서 쏟아져 내리는 자연채광을 받으며 온화한 미소를 던지고 서 있다.벽면엔 전통악기인 장구줄을 늘어뜨리고 흰색기둥 위아래를 오방색 띠로 장식해 옛 것과 현대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분위기다.전시장엔 궁중유물 3점이 놓여 있는데 16세기 가마장식끈인 가마수술과 병학서적 등 규장각 고서,그리고 보물급 고려시대 목불(木佛)이 그것.이 가운데 가마수술은 통도사 소장품을 빼놓곤 유일한 것이다. 백호방 오른쪽은 청동기 유물을 모아놓은 현무방.광목천을 사용해 거북이 현상으로 덮은 천정이 인상적이다.천정아래 청동에 금입사한 대구(帶具)부터 구리거울,약물을 끓였다가 덥히는 초두,우물물을 정화시키는 정병들이 색다른 감흥을 전해준다.그 다음은 토기방.진흙과 밀집으로 구석기시대 움막집을 연상시키는 방을 꾸며 구석기부터 고려시대에 걸친 토기들을 보여주고 있다.가야시대 고리장군칼,신라 토우·쇠뿔잔,통일신라시대 토기장군,청동기 무문토기들이 역사의 맥을 짚어준다. 토기방을 보고나면 햇빛을 스며들게 하는 무지개색 기둥들이 청룡방으로 이끈다.온통 녹색으로 칠한 방엔 청자·분청·백자들이 자연스럽게 발길을 모으는데 물고기무늬가 새겨진 어문병과 철사백자인형·분청사기철화문병 등 보물급 자기가 백미다. 다음은 조상들이 사용하던 민속품을 모은 우리방과 고서화를 보여주는 주작방이 차례로 기다리고 있다.마치 한옥을 들어간 것처럼 꾸민 우리방에는 ‘만우정’이란 대원군 친필 현판이 걸려있고 주작방에서는 호렵도·벽사도·설화도 등 조선시대 민화·병풍이 친근감을 더해준다. 전시관을 보고나면 온갖 석물(石物)들이 군상처럼 들어서 있는 야외 전시장이 기다리고 있다.잔디위에 배치된 문관석·동자석 17개와 신라시대 석등 사리탑 부품,고려시대 향료석,조선시대 연자방아·돌대야,남근석 등이 푸근한 느낌을 전하며 은은한 빛을 발산하고 있다.조선시대 우물을 옛모습 그대로 재현해 놓은 것도 잠시나마 옛생활의 여운을 감상해볼 수 있는 볼거리다. 여기에다 박물관 북쪽에 병풍처럼 전개되는 푸른 소나무 숲과 계곡도 박물관의 멋을 더해주는 천연 소품.오염된 생활을 잊고 탁족이라도 하고 싶은 자연심을 진하게 자극하는 고즈넉한 풍경이다. ◎洪貴淑 관장 인터뷰/30년 모은 토기·고서화 한자리에/자연미 최대한 살려 소품 일일이 배치/정신적 쉼터 됐으면 대관령박물관 설립자인 洪貴淑 관장은 ‘천의 얼굴’을 가진 개성있는 인물.음대 기악과를 졸업한뒤 서양화와 사진작가로 활동하면서 토기와 고서화에 빠져들어 30년간을 골동품 수집에 바친 이색적인 경력의 소유자다. “골동품 하나하나를 모을 때마다 ‘왜’라는 의문을 갖고 찾아다녔지요.옛토기나 자기 하나하나에 독특한 아름다움이 담겨 있다고 생각할때 귀하고 값비싼 것에만 집착할 수 없게 됩니다” 처음엔 취미로 남들의 눈길을 별로 끌지 않는 토기를 모으기 시작,어느정도 안목도 생기게 됐고 결국은 하루일과를 골동품 가게를 찾는 것으로 마감하게까지 됐다.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줄곧 살아온 만큼 ‘고향’을 느끼게 해주는 넉넉한 시골풍경이 항상 그리웠다는 洪씨.자연과 관련된 그림에 유달리 관심이 많았던 그는 지난 80년대엔 서울 장안평에서 화랑을 경영하기도 했다.지금의 자리에 대관령박물관을 건립하게 된 것도 평소 알고 지내던 한 동양화가의 소개에 따른 것. “박물관 부지를 소개받고 지난 90년 이곳에 왔을때는 화전민 4가구가 살고 있는 삭막한 땅이었어요.돌 하나 나무하나 모두 제가 일일이 배치한 것입니다.자연 그대로를 살릴 수 있는 박물관을 원했지요.프랑스 파리의 오르세박물관이 철도역사의 내부구조를 그대로 살려 만든 것을 보고 크게 감명받았습니다.”그래서 이 박물관 내부도 자연스럽게 땅의 구조를 살려 관람객들이 오르내리도록 만들었다는게 그의 설명이다.洪씨는 “인근 관광지를 찾는 이들이 오가는 길에 들러 잠시나마 조상의 숨결이 담긴 유물을 둘러보는 정신적인 쉼터가 됐으면 합니다”라며 이 박물관이 해수욕장과 스키장 등 주변 관광자원과 연계를 희망했다. ◎대관령박물관 가는 길/강릉 시내버스 운행/공항서 승용차 20분 대관령 한 기슭에 자리잡아 인근 강릉 경포대와 오죽헌,용평스키장 등과 더불어 방문해볼 수 있는 박물관이다.현장까지 운행하는 노선버스가 많지 않아 다소 불편하지만 강릉시내에서 가깝고 고속도로 바로 옆에 위치해 쉽게 찾아가 볼 수 있다.영동고속도로를 타고 강릉시내에 이르기전 어흘리 마을에서 우회전하면 된다.강릉시내에선 25번 가마골행 노선버스를 타고 25분 쯤 가다가 왼편 어흘리 마을에서 내리면 된다.강릉공항에서 승용차로 20분정도 거리. 연중무휴로 문을 열고 있으며 관람시간은 상오 10시부터 하오 6시까지.관람소요시간은 1시간 정도.관람료는 일반 2천500원,청소년 1천500원,노인·어린이 500원.0391)41­9801.
  • 포항제철 卞盛福 技聖(세계 최고에 도전한다:18)

    ◎컴퓨터보다 정확한 ‘鐵의 약제사’/다양한 종류의 철강성분 눈으로 파악 척척 제련 철강재 품질 결정적 좌우/슬래그코팅 등 특허 5개 끊임없는 연구개발 귀감 원가경쟁 美­日 추월 주도 흔히 강(鋼)은 카멜레온같은 금속으로 불린다.가열온도와 함유된 성분에 따라 그 얼굴이 천태만상이어서 붙여진 별명이다.순수한 철에 탄소의 함량을 달리해서 넣거나 망간,니켈,규소,텅스텐 등 합금철을 적당하게 혼합하면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다양한 종류의 강이 비로소 탄생하게 된다.그래서 제철소에서는 이런 임무를 맡은 사람을 ‘철의 약제사’라고 일컫는다.약을 만들듯 철의 성분을 조절,필요한 강을 만드는 데서 생긴 말이다.제강부(製鋼部)의 숙련 기술자들이 바로 그들이다. 제강부는 용광로로 잘 알려진 고로(高爐)에서 철광석과 코크스를 이용해서 만들어진 쇳물(熔銑)을 전로(轉爐)에 넣어 불순물을 제거한 뒤 수요가의 요구에 따라 필요한 강을 만드는 일을 하는 부서다. 포항제철 제2제강 공장 卞盛福 技聖(57).30여년의 제강공장 일로 그는 철의 약제사를뛰어 넘어 제강에 관한 한 ‘도사’가 됐다.포항제철소에서 생산하는 모든 제품은 그의 민감하고 노련한 손끝과 눈을 거쳐서 생산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통상 용광로에서 나온 쇳물을 전로에서 강으로 만드는 시간은 32분이지만 산소를 불어넣어 불순물을 태우는 취련(吹鍊)시간이 16분 정도여서 나머지 시간에 각종 성분의 함량조절을 마쳐야 합니다.철강제품의 품질이 바로 여기서 좌우되기 때문에 그만큼 고도의 노하우가 필요합니다” 卞기성은 16분 동안에 탄소량,온도,산소량,합금철 함량 등 28가지 요소를 감안,컴퓨터보다 정확하게 계산해서 수요가들의 구미에 맞는 강제품을 생산한다.요즘은 컴퓨터가 모든 일처리를 하지만 10여년전까지만 해도 전부 계산자를 이용,직접 계산해 냈다. ○16분동안 28개 요소 파악 요즘도 최종적인 점검은 컴퓨터보다는 기성들의 감각에 의존한다.어떤 의미에서 컴퓨터보다 더 정확하다는 얘기다.기성이란 2만명의 포철 직원중 단 16명밖에 선발되지 않은 사람들이니 이 말이 결코 과장된 표현은 아니다. 卞기성은72년 포철 입사 이후 지금까지 35년 이상을 강을 만드는 일에만 쏟았다.그의 기술력은 포철 안에서 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도 독보적일 만큼 탄탄하다는 평을 듣고 있다.국내에서 몇 안되는 제강 1급 자격증이나 포철의 경쟁회사인 일본강관이 발급하는 일본제강기능증 등 다수의 자격증과 5건의 특허가 이를 입증한다.전로(轉爐)배(排)가스 후드 폭발장치,고속취련(吹鍊)기술,신(新)슬라그 코팅기술,슬라그 체크볼(slag check ball) 투입기 개발 기술등은 포철의 생산성 향상과 품질향상에 밑거름이 된 기술들이다. 전로 배가스 후드 폭발장치는 개발하는데 4년이나 걸렸다.그만큼 애착이 간다.전로에서 불순물을 태울 때 생산되는 일산화탄소 따위의 폐가스는 산소와 결합하면 폭발할 위험이 대단히 높다.폭발 위험을 줄여 연속 작업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바로 생산성 향상의 지름길이다.卞기성은 “폐가스에 질소를 투입해서 폭발 위험성을 제거하는 게 핵심”이라고 특허 내용을 설명했다.이 특허를 받은 것이 82년이었다.그 다음해에는 슬래그 체크볼 투입기를개발,또 특허를 취득했다. 그는 꼭 10년 뒤 완전히 용해되지 않은 생석회 속의 칼슘을 산화마그네슘으로 용해시켜 전로 내화벽돌에 골고루 퍼지게 하는 ‘슬래그 코팅 기술’로 또 특허를 따냈다.전로의 수명 연장과 직결된 기술이자 생석회 재활용으로 원료비도 절감하는 기술로 꼽히고 있다.이 기술 덕택에 그는 연간 50만원 정도의 기술료를 지급받고 있다. ○1인당 부가가치 2억원 그 전에는 포철의 전로 노체(爐體) 수명이 3천회 정도에 불과했다.卞기성으로 포철은 기술 향상의 전환점을 맞았다.전로 노체 수명이 4천300∼4천500회로 일약 선진국 수준으로 뛰어 올랐다.세계 최고를 자랑하는 일본은 6천회 정도.卞기성은 “일본은 우리와 전로 활용방법이 다릅니다.일본은 전로 주입전에 탈탄(脫炭)작업을 미리하기 때문에 전로의 수명이 그만큼 길어지지만 우리는 그렇지가 못합니다.더욱이 생산성 향상을 위해 일본만큼 자주 보수를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역으로 보수를 적게 하면서도 이 정도면 세계 최고라해도 크게 어긋나지는 않는다고 봅니다”.卞기성의 자평이다. 이밖에 전로신속보수기술을 개발,내화벽돌 소모량을 대폭 줄였다.강 1t당 필요한 내화벽돌 비용은 1천193원인데 일본보다 9∼10원정도 낮다. 卞기성과 같은 기술자들의 숨은 노력은 여러가지 지표에서 가치를 입증해 보이고 있다.설비가동률 113%,인당(人當) 부가가치 2억원,인당 조강(粗鋼)생산량 944t,제품 t당 생산시간 2.70 등은 포철의 경쟁력 지표들이다.卞기성 같은 숨은 기술자들의 노력은 포철의 원가경쟁력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올려놨다.냉연강판의 경우 포철은 t당 479달러의 원가를 들이지만 일본은 550달러,미국은 511달러다. 홍콩에서 발행되는 경제주간지 ‘아시아 비즈니스’는 최근 아시아에서 활동하고 있는 유럽 및 북미의 다국적 기업과 아시아 주요 9개국 기업 249개사중 포철을 ‘위기 대처 능력’이 가장 뛰어난 기업이자 중공업 부문에서도 가장 우수한 기업으로 평가했다. ○“완전무결한 匠人 없다” “저는 평소 완전무결한 장인(匠人)은 없다고 후배들에게 강조합니다.저자신도 항상 연구하고 배우는 자세로 일을 합니다” 卞기성은 금요일인 8일 그는 새벽 3시 40분에 나와서 하오 5시에야 작업을 끝낼 만큼 지금도 열의는 대단하다.1년에 한차례는 일본의 강관업계를 방문,주제 발표도 하고 필요한 서적도 구입한다. 그는 요즘 전로예비처리 기술 개발에 한창이다.일본과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용선(쇳물)을 실어나르는 토피도카(어뢰차량)에서 탄소,유황 등 불순물을 처리하지만 극히 일부에 그치고 있다. 따라서 이 기술만 완벽하게 개발되면 전로의 수명 연장은 물론 산소 등 부원료의 소비도 줄여 생산성 향상에 기여할 것으로 보고 있다.卞기성은 “이 기술만 정상궤도에 이르면 포철이 명실공히 세계 최고의 제강기술을 확보하게 될 것”이라고 장담했다.포철이 휴렛 패커드,싱가포르 항공,소니 등과 함께 아시아에서 가장 존경받을 만한 기업으로 평가받은 근본적인 이유가 바로 卞기성이 있기 때문이다.그의 앞에는 불가능이란 없어 보인다. ◎포철의 技聖제도/기능숙달 정진 풍토 겨냥 까다로운 심사절차 유명/대우 格上… 이사대우도 정년 연장 장학금 혜택 포철은 지난 75년 기성(技聖) 및 기성보(技聖補)제도를 도입,운영해 오고 있다.기술직 사원의 가치관을 정립하고 기능숙달에 정진하는 기풍을 조성,그들의 기술수준 향상을 통해 포철의 품질수준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높이기 위해서였다.독일의 마이스터제도와 일본의 숙로(宿老)를 본떴다. 지난 76년 12월 제1차 기성보 선발을 시작으로 95년 10월까지 기성보는 7차,기성은 4차에 걸쳐 선발됐다.기성 4명,기성보 12명 등 총 16명이 고로,코크스,제강,연주,열연,선재,냉연,전기강판 등 11개 분야에서 선발됐다.5명이 퇴직해서 현재 남아 있는 기성과 기성보는 11명. 기성은 45세 이상의 직원으로 근속기간이 16년이상이면서 기성보 경력이 5년 이상이어야 선발될 수 있다.기성보는 40세 이상으로서 근속경력 10년을 채워야 한다.해당분야 최고 기능보유자로 공장의 핵심요원이며 기술개발 능력이 탁월해 생산성 향상에 구체적 공적이 있는 직원이라는 객관적 평가를 받아야만 된다. 선발과정은 까다롭다.부서장이 자격보유자를 추천하고 인사담당 부서가 4∼5명의 공적심사 위원회를 구성,업무실적 및 기본자료를 상세히 조사한 다음,상벌위원회와 인사위원회를 열어 최종 확정한다.기능수준이 최고에 달하면서도 가정생활에서도 모범이 되는,기능과 인격을 겸비한 기능인을 선발한다. 선발되면 대우가 달라진다.기성은 부장대우인 1급,기성보는 과장대우인 2급이 부여된다.기성 1명은 이사대우를 받는다.월급여 등이 간부급 대우로 상향조정된다.정년 연장과 자녀 장학금지급 등의 혜택도 따른다.정년이 일반직원은 56세지만 기성은 65세,기성보는 60세로 각각 연장된다.입사를 희망하는 자녀는 특별채용되며 모든 자녀에게 대학까지 장학금이 지급된다. 포철 관계자는 “기성과 기성보들은 새로운 조업기술을 개발하고 적용해 생산성 향상 및 작업조건의 개선,노후설비 개조,설비 국산화 제작을 통한 설비의 신예화,산 경험에 의한 지식 전파,작업표준 보완으로 작업원의 기능도 향상,제안 및 자주관리 활동 활성화에도 주도적인 역할을 해왔다”고 평가하고 있다. □卞盛福 기성 약력 △61년 부산 해동고등학교 졸업 △65년동국제강 입사 △72년 포항제철 입사 △82년 전로 배(排)가스 후드 폭발장치 특허 취득.전로신속보수기술 개발 △83년 슬래그 체크볼 투입기 개발 특허 취득 △84년 기성보 선발됨 △92년 고속취련기술 개발 △93년 신(新)슬래그 코팅 기술 특허 취득 △93년 10월 기성 선발됨
  • 그리스 사모스섬(세계 문화유산 순례:68)

    ◎BC 2000년 미케네문명 유적 곳곳에/헤라여신 성전 흔적/6,400m 동굴터널 헬레니즘시대 빌라/계단식 노천극장에 고고박물관도 볼만 고대 그리스 영역은(기원전 6세기∼3세기경 기준) 그리스 본토를 중심으로 좌우, 아드리아해와 에게해를 사이에 끼고 이탈리아반도의 남쪽 시칠리아와 소아시아반도 그리고 지중해 곳곳에 펼쳐진 크고 작은 많은 섬들로 이루어졌었다.기원전 6세기경 즉 아카익시대에 전성기를 이루었던 사모스는 소아시아반도쪽에 편재된 큰 섬중 하나로 도착하면 먼저 해발 1천440m에 이르는 케리키스산이 시야에 차오면서 그 봉우리 아래 크고 작은 산들이 많은 섬이다. 그리스의 땅들은 대체적으로 찬란히 햇살받아 빛나는 푸른 옥빛 바다와는 무관하게 그 바다를 바라다보며 목마른 갈증으로 메말라가는 척박한 대지,그리고 그 갈라진 땅 깊숙이 뿌리를 내리고 서있는 올리브나무 숲을 연상하게 된다.하지만 사모스섬에 도착하는 순간 한 눈에 이런 예상은 빗나가고 만다.울창한 숲의 푸르름,풍성히 피어있는 꽃들의 향연,기름진 옥토….그래서고대로부터 떡갈나무가 풍성한 땅이라는 뜻의 드루사,사프러스나무가 많은 땅이라 해서 키파라이시아,꽃으로 장식된 곳이라는 안데무사등으로 불렸다.또한 흙내음나는 그리스 특유의 포도주산지로도 유명하다. 사모스섬에서 하얀,푸르름이 함께 눈부신 에게해를 향해 포도주 한 잔을 건네면,먼 태고적 사모스의 전령이였던 헤라여신이 나타날 것만 같은 환영에 사로잡히는 듯하다. 사모스는 고대수도였던 피타고리안지역과 헤라이온지역,그리고 해안선 주변의 바티지역으로 구분되어져 있다.이 세 지역엔 그리스 선사시대부터 근세까지 다양한 유물과 유적이 존재했던 곳이라 고고학적 가치를 높이 평가받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사모스엔 기원전 3000년경부터 사람들이 살기 시작하였으며,그리스문화가 시작되면서 헤라여신을 수호신으로 모셨다.(그리스의 각 고대도시들은 저마다 각기 수호신을 섬기었다) 때문에 헤라이온지역에 가면 기원전 2000년경 미케네인들에 의해 세워진 거대한 헤라여신의 성전흔적을 만날 수 있다.그러나 이 성전은 헤로도루스의 기록에의해 전하여질뿐,지금은 기원전 522년,아카익시대때 전성기를 누렸던 폴리크레아트 전제군주가 세운 신전의 거대한 밑 기단들만이 몇몇 포개져 흩어져 있을 뿐이다.그리고 이 기단들 사이로 기원전 7세기경의 신전 입구문 흔적이 있을 뿐이다. 헤라이온지역의 고대유적은 크게 선사시(기원전 2000년경),아카익시대(기원전 1000∼580년경),로이코스시대(기원전 580∼540년경),그리고 폴리크레아트(기원전 538∼522년경),기원전 1세기경의 유적으로 구분되어져 있다.지금은 신전과 회랑등이 부분적 파편으로만 남아있다.그러나 헤라여신의 성전앞에 기원전 50년경 로마의 유명했던 웅변가 마큐스 툴리우스 시세옹과 그의 동생인 킨티우스의 조각상이 세워져 있어 사모스의 역사적 변천을 엿볼 수도 있다. 고대수도였던 피타고리안지역은 1955년까지 티가니로 불리다 피타고라스를 추앙하는 의미에서 피타고리안으로 이름이 바뀌었다.그래서 이 작은 항구에는 그 옛날 수도임을 상징하는 폴리크레아트 신전이 서있고,옛 사모스의 유물이 전시돼 있는 고고학박물관도 있다.또한 고고학적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 곳으로는 바티해안선을 타고 300m정도 섬 중앙쪽으로 들어오면 폴리크레아트시대에 만들어진 6천400m의 우팔리노스 동굴터널을 빼놓을 수가 없다.물론 지금은 몇몇 둘러친 벽의 조각들만 남아있다. 그리고 그 근처에 있는 계단식 노천극장과 헬레니즘시대의 빌라들이 보존상태는 양호하지 않지만 주의깊게 관찰하면 그 잔해들을 육안으로 확인할 수있다.사모스의 현재 수도이기도 한 바티지역은 아카익시대의 유명한 남자조각상인 쿠루스와 여자조각상인 코레,기하학시대와 아카익시대의 청동유물 및 작은 오브제들이 소장된 박물관도 명소중 하나이다. 이렇듯 사모스는 그리스역사를 골고루 담고있는 곳이기에 각 시대별 특징적 변화를 느낄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하여 누구라도 저토록 빛나는 지중해를 바라다보고 서 있노라면 옛 그리스 신들의 향연이 들려오는 듯,자신들의 귀를 의심할 터이다. ◎여행가이드/아테네서 비행기편 1시간/관광호텔 등 숙박시설 완비 사모스까지는 아테네에서 국내선 비행기편으로 1시간이걸린다.여유를 갖고 지중해와 에게해를 함께 즐기려면 아테네에서 에페소스나 로도스섬까지가서 배편을 이용하는 방법도 있다.이들 섬에서 사모스로 가는 일반선박과 페리호는 매일 뜬다.사모스는 물론 관광호텔과 같은 고급숙박시설도 잘 갖추어졌으나,그리스인 인심을 맛보려면 민박을 하는 것도 좋다.그리스 본토는 멀기만 하고 터키는 지척이어서 국경 분위기도 느낄 수 있다.
  • 백제 ‘卍’ 각인접시 공개/복암리 3호 고분서 출토

    ◎6∼7세기 것으로 추정 국립문화재연구소와 전남대박물관은 전남 나주시 복암리 3호분에 대한 발굴조사를 벌여 만(卍)자가 새겨진 뚜껑접시와 규두대도(圭頭大刀·5각형의 각진 머리를 가진 큰 칼)·삼각형 관모·은제관식 등 6세기 후반∼7세기 초의 백제시대 유물 10여점을 추가발굴,3일 공개했다. 이들 유물중 뚜껑접시는 호남지역에선 처음 발견된 것으로 뚜껑의 윗면과 접시의 바닥면에 선명하게 만(卍)자가 새겨져 있어 백제의 불교관계를 보여주는 희귀한 자료다.우리나라에선 처음 발견된 금동제 규두대도는 금박이 많이 떨어져 나갔으나 철제칼몸 위에는 목제칼집의 흔적이 남아 있다.또 얇은 은판을 접어 인동문(忍冬文)을 그려 오려내 만든 은제관식은 모두 2점이 출토됐다.
  • 남을 살리는 청소년으로/석지명 청계사주지(시론)

    ○잘못된 교육이 일탈 불러 살인할 것을 세상에 널리 알리고 연쇄적으로 사람을 참혹하게 죽이는 사건이 일본을 떠들썩하게 했었다.더욱 놀라운 일은 그 범인이 중학생이었다는 것이다. 우리 나라에서도 어이없는 사건들이 있었다.14세와 16세의 두 소년은 11세 된 초등학생을 화장실로 끌고 가 폭행해서 죽게 만들었다.특별한 이유는 없었다.단지 힘을 자랑해 보이기 위해서 였다.전자오락실에서 운전게임 놀이를 하던 한 초등학생은 실제로 운전을 하고 싶었다.남의차를 훔쳐서 몰고 다니면서 차량 4대를 들이 받았고 경찰을 피해서 곡예운전을 하며 도망치다가는 마침내는 경찰차까지 파손시켰다.또 있다.경춘선 열차의 탈선 사고는 중학교를 다니는 소년들이 철로에 돌을 올려놓아서 발생했다고 한다.그 이유 역시 기가 막힌다.오직 열차가 어찌 되는지 보고 싶은 호기심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왜 저 같은 청소년들이 생겨날까.부모들이 아이들을 지나치게 감싸고 기)를 살려주고,잘못된 가치관을 심어 주는데 주된 원인이 있는 것은 아닐까.부모들의 한결같은소망은 아이들이 공부 잘해서 좋은 대학에 들어가는 것이다.그래야 출세할 수 있기 때문이다.그리고 출세한 사람들을 보니겁 없이 덤비는 기백이 있다.내 자식도 남보다 더 높은 자리에 오르려면 기가 살아 있어야 할 것 같다.애들을 자세히 보살피기도 귀찮고,또 애들이 제멋대로 자라다 보면 남을 이기는 강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공부 잘해서 출세 길로 가게만 된다면 애들에게 파괴적인 면이 있더라고좋을 것 같다. 음악가,화가,시인이 각기 작품을 만들 때,당초 구상했던 대로만 되지 않는다.창작하다 보면 의외로 좋은 작품이 태어나기도 하고 그렇지 못할 수도 있다.기가 강해야 좋은 영감이 떠오르고 그래야 좋은 작품이 나온다.처음에는 실패작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세상으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는 일도 많다. ○그들은 로봇이 아니다 공상 과학영화 가운데는 강대국의 정보기관에서 특수한 목적으로 스파이용의 강한 인조인간이나 전투용 로봇을 만들기 위해서 연구하는 장면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있다.그 분야 전문 박사들이 실험하던중에 당초계획과 달리 잘못된 작품이 생겨난다.개발자의 통제를 받지 않는 불량 로봇은 사람을 죽이는 등 갖가지 사고를 일으킨다. 예술과 문학에서는 잘못된 작품과 과학연구에서의 잘못 만들어진 로봇이불량 창작품이라는 점에서는 같을 수 있지만 세상에 내어놓았을 때그 효과는 하늘과 땅처럼 다르다.예술 작품은 최소한 사람을 죽이거나 다치게 하지 않는다.그러나 통제가 안되는 로봇은 사람을 죽이고 세상을 파괴할수가 있다. 우리의 청소년 자녀들은 로봇이 아니다.우리는 군사용 로봇을 만드는 과학자도 아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라.공부 잘하고 남을 이기고 출세하기만 하면 된다고 교육받으며 살아온 아이들이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저 영화의 잘못된 로봇보다도 더 아무런 죄의식 없이 사람을 다치게 할 수 있지 않겠는가. 보도에 의하면 서울의 강남,신촌,돈암동 등지에는 중고등학생인 청소년들만 전용으로 드나들 수 있는 나이트 클럽이 있다고 한다.그곳에서는 하룻밤술값으로 거액이 든다고 한다.나는 저 청소년들을 탓하고 싶지 않다.그들의기를꺾고 싶지도 않다.학생들이 남김없이 모범생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지도 않는다.노래하거나 춤추거나 놀거나 아무래도 좋다.단지 그들이 남을 살상하게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방생하는 사람으로 키워야 지금 세계는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대단히 발전되었다.그래도 아직 원시적인 것이 있다.상대를 이기려는 마음이다.이 승부심은 영원히 미숙한 상태로 남아 있을 것이다.그러나 청소년들이 경쟁심을 갖지 못하게 할수는 없다.하지만 그들에게 상대를 살상하지말고 이기라고 가르칠 수는 있다. 개인이나 사회의 평화를 위해 가장 필요한 사람은 누구든지 꺽을 수 있는힘을 가진 불량품 로봇이 아니다.남을 살리는 사람이다.방생하는 사람이다.우리는 저들을 방생인으로 키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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