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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나미비아대사 송학원씨를 임명

    정부는 18일 송학원 외교안보연구원 서구ㆍ아ㆍ중동연구부장(사진)을 주나미비아대사로 임명했다. 정부는 또 현희강본부대사를 외교안보연구원 서구ㆍ아ㆍ중동연구부장에 임명했다. ◇송대사 약력 ▲강원 춘성출신 56세 ▲연세대졸 ▲주자카르타영사 ▲영사교민국장 ▲주애틀랜타총영사 ▲주라이베리아대사
  • 아파트 6세어린이/엘리베이터 추락사

    10일 상오11시50분쯤 서울 노원구 월계6동 436 동신아파트 2동 8층 엘리베이터 안에서 이 아파트 808호에 사는 김원연씨(35)의 장녀 아람양(6)이 20여m아래 지하엘리베이터실 바닥으로 떨어져 숨졌다. 동생 도철군은 누나와 함께 8층에서 내리려다 9층에서 내리기 위해 함께 엘리베이터에 타고있던 송동선씨(80ㆍ여) 등 어른 3명이 낚아채 화를 면했다.
  • 쿠웨이트 이라크 어떤 나라인가

    ◎전쟁외채 6백억달러… 1백만의 대군 ▷이라크◁ ▲영토=면적은 43만8천3백㎢로 북부 산악지대와 남부 습지로 구성. 이라크를 둘러싼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이 남동쪽에서 만나 전장 1백92㎞의 샤트 알 아랍 수로를 형성,걸프만으로 흐르고 있다. 이라크는 터키(북),이란(동),걸프만(동남쪽),사우디아라비아(남),요르단과 시리아(서)에 둘러싸여 있다. ▲군사=지난 79년 사담 후세인대통령 집권후 군사력 증강 추진. 현재 병력수는 1백만명 가량으로 의무병역제. 18세이상 남자 21∼24개월 복무. 육군 95만5천명(민병 48만명 포함),군단 7,기갑사단 7,기계화사단 7,주력전차 5천5백대,해군 5천명,프리깃함 5척,초계정 20척,공군 4만명,미그기 등 5백13대 작전기 보유. ▲인구=1천6백만명중 다수가 시아파 회교도이나 집권세력은 수니파. 그밖에 기독교마을과 북부지방에 3백50만명에 이르는 쿠르드 반군 거주지역이 존재. 공용어는 아랍어로 인구의 81%가 사용. 15%는 쿠르드어 사용. 수도는 바그다드로 4백60만명 거주. ▲경제=석유비축량은 1천억배럴. 80∼88년까지의 대이란전으로 석유수출 격감. 그러나 터키와 사우디 통해 파이프라인을 건설했으며 현재는 하루 3백만배럴 수준으로 회복. 대이란전으로 6백억∼7백억달러의 외채 부담. ▲역사=16세기이래 오스만 터키제국의 지배를 받아오다 1916년 영국의 지배하에 들어갔으며 21년 영국의 통제를 받는 왕국이 됨. 58년 7월14일 카셈중장이 군사쿠데타를 일으켜 독립. 63년 바트당의 압둘 살람 아레프가 카셈을 암살하고 대통령에 취임,이어 그의 동생 라만 아레프 참모총장이 대통령직 승계. 68년 바트당 온건파의 쿠데타로 바크르장군이 대통령에 취임. 바크르 정부하에서 69년부터 부통령을 지낸 사담 후세인이 79년 평화적 정권교체로 대통령에 취임. ◎석유,하루 백만배럴 생산… 병력 2만명 ▷쿠웨이트◁ ▲영토=1만7천8백19㎢의 영토를 갖고 있는 쿠웨이트는 북쪽과 서쪽으로는 이라크,남쪽과 서남쪽은 사우디아라비아,그리고 동쪽은 페르시아만과 접경을 이루고 있다. ▲군사력=병역제도는 2년 의무복무제를 유지하고 있으나 대학생에 대해서는 1년 복무를 인정하고 있다. 89년 현재 1만6천명의 군병력과 2백80대의 탱크를 보유하고 있다. 공군의 경우 2천2백명이 복무하고 있으며 미라주 F1­C전투기 25대,스카이호크공격기 30대,연습기 1대,헬기 40대,수송기 6대를 보유하고 있다. 또 호크 지대공미사일도 갖추고 있다. 해군의 경우 2천1백명이 복무하고 있으며 미사일 적재함정및 해안순찰선을 포함,약 1백척의 선박을 갖고 있다. ▲인구=1백70만 쿠웨이트 인구중 4분의1이 수도 쿠웨이트와 그 인근에 살고 있다. 인구의 절반이상을 외국인들이 차지하고 있으며 이들 대부분은 아랍인이며 팔레스타인인도 30만명이 있다. 대부분의 쿠웨이트인들은 수니파 회교도이지만 인구의 30%가량은 시아파를 믿고 있다. 이란 시아파의 후손들은 약 15만명 정도이다. 알사바 가문이 1756년 아라비아 오지에서 이곳에 이주,정착한 후 쿠웨이트를 계속 통치하고 있다. 인구의 70%이상이 공식어인 아랍어를 사용하고 있으며 10%는 쿠르드어,4%는 이란어를 사용하고 있다. 정치체제는 입헌군주제이다. ▲경제=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인 쿠웨이트에서 가장 중요한 자원은 석유이다. 국토의 1%만이 개간돼 있는 쿠웨이트의 지난 88년 개인소득은 1만3천6백80달러이며 89년 상반기(1∼6월) 석유생산량은 하루 1백3만7천배럴이었다. ▲역사=영국이 1899년 이 지역의 주도적인 세력이 되기 이전에는 몽고인,아랍 칼리프,그리고 터키 오토만제국이 번갈아가며 황량하고 사람이 거의 살지 않던 이 지역을 지배해 왔다.〈연합〉
  • “헌정사의 산 증인” 이재형 전 국회의장(안녕하십니까)

    ◎“통일,「바람잡는 식」으론 안돼요”/국민의 합의도출 꾸준히 추진해야/헌법 “고무줄 해석” 곤란… 총선은 무리/“힘센 사람이 좌지우지할 땐 지나… 참정 확대엔 내각제가 바람직” 【대담:권기진정치부장】 남북한관계가 급변할 조짐을 보이고 있고 안으로는 여야대치 정국이 지루하게 계속되고 있는 때에 우리 헌정사의 산 증인이랄 수 있는 운경 이재형 전국회의장을 서울 사직동 그의 자택에서 만나보았다. 고풍이 감도는 한옥 자택을 들어서는 순간 깔끔하게 정돈된 정원에서 운경의 정갈하고 깐깐한 성품이 물씬 느껴졌다. 제헌의원으로 출발,7선의 경력을 쌓으면서 상공장관·정당대표·국회의장 등 여야를 오가며 당정의 요직을 두루 거친 이 전의장. 고희를 훨씬 넘긴 나이(76세)임에도 얼굴에 홍조를 띤 건강한 모습이었으며 『바둑에 있어서도 훈수꾼이 8수를 더 본다는데…』라고 말했으나 『훈수 잘 한다고 그 사람을 직접 대국에 세우면 잘못하는 경우가 많아요』라면서 대답 하나하나에 신중한 자세를 흐트러뜨리지 않았다. ­건강해 보이십니다. 근황은 어떠십니까. 『오래 살아야지. 올해 백내장 수술을 했어요. 안경을 쓰고 신문을 봐야되는 데 피로가 쉬 와서 주로 라디오를 많이 들어요. 듣는 것이 보는 것보다 진도가 빨라 좋더구먼』(이 전의장은 남북 접촉관계를 비롯,시사성 있는 뉴스를 시간대별로 알고 있어 88년 국회의장을 마지막으로 정계를 은퇴한 뒤에도 시국에 대한 관심이 대단함을 보여줬다) ○우리 자신이 주체돼야 ­최근 남북한 관계에 대한 국민 일반의 관심이 대단한 듯 합니다. 특히 실향민들의 관심이 지대한 것 같습니다. 남북한 관계의 전망을 어찌 보십니까. 『기대를 가지는 것이 어찌 실향민뿐이겠습니까. 모두가 잘 됐으면 하고 바라고 있지요. 되풀이되는 경험으로 보아 아무 것도 안될거라고 예단할 필요도 없고 그렇다고 될 거라고 미리부터 기대에 부풀 것도 없다고 봅니다. 우리나라의 속초 오색약수터나 이탈리아 로마의 분수 등에 동전을 집어 던져 넣으면 아들낳는다,재수좋다는 얘기가 있지 않습니까. 무얼 소망하는 사람들은 하염없이 그걸 시도하게 되는 것이지요』 ­일각에서는 마치 통일이 다 된 듯이 얘기들을 하기도 하고 너도 나도 나서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지 않습니까. 『통일을 진정 이룩하려면 들떠서 바람을 일으켜선 안됩니다. 항상 변치않는 집념과 의지를 갖고 언동을 절제해야 합니다. 우리의 분단역사를 볼 때 우리 의사와 요만큼도 관계없이 분단이 이루어졌어요. 지난 60년대 당시 아데나워 서독수상이 유엔에 갔을 때 유엔이 독일의 분단을 애처롭게 생각해서 동서독 통합을 논의하는 것을 독일은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역정을 낸 적이 있지요. 분단은 너희들이 다 만들어 놓은 건데 거기서 무슨 통합을 운위하느냐는 얘기지요. 통일의 그날이 오도록 자나깨나 노력하는 주체는 우리 자신이 되어야 합니다. 괜히 마음만 싱숭생숭하지 말고 우리가 반드시 한다는 의지를 다져야 해요. 그런데 우리가 이제까지 할 일을 다해오지 못한 것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정치 단일민족으로 수천년을 이어온 우리의 의지를 실현하고 민주적 정치제도로의 점진적 성숙을 이뤄나가야 합니다. 남북한을 통틀어 경제적빈곤에서 벗어나는 것도 중요하다고 할 수 있지요. 이런 것들은 독일수준에 안가더라도 가능하다고 봅니다. 예멘이 통일된 예도 있지 않습니까』 ­정부가 요즘 혁신적이랄 수 있는 대북조치들을 잇따라 발표했습니다. 정부의 이런 조치가 남북관계에 얼마나 도움을 줄 것으로 생각하십니까. ○일단 현행법은 지켜야 『모든 문제가 그렇지만 남북문제는 특히 상대가 안받을 경우에 대해서도 완벽한 대비가 있었으면 해요. 노태우대통령이 남북 대교류에 대한 담화를 발표할 때 이미 북한측이 안 받으리란 예상이 있었지 않았습니까. 일각에서는 김일성이 거절할 것을 뻔히 알면서 이런 조치들을 발표했다는 얘기도 나와서 참 서운했습니다. 가령 판문점에 세관설치를 제의했다 저쪽이 안 받으면 또 어떻게 하겠다는 식으로 문제를 접근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또 남북관계가 아무리 변화되더라도 일단 현행법은 지키겠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남북 교류특별법도 제정됐고 대통령은 내우외환죄 이외에는 처벌을 안받게 되어 있긴 하지만 기존법이 엄연히 있는 데도 불구하고 대통령의 말 한마디로 처벌 유무가 판정되어선 곤란하다고 봅니다. 국회도 문제입니다. 김일성을 만나고 돌아온 서경원의원 처리를 법원에 맡기고 자기들의 손에는 피를 안 묻히려드니 한심합니다. 분노를 느꼈으면 그에 따른 응분의 처리를 해야될 것 아닙니까. 3당이 합당해서 원내에서 3분의2 이상이란 숫자는 뭐하라고 만들었습니까. 능력을 구비했으면 할 것은 하고 하지않을 것은 하지 말아야지요』(이 전의장은 이 대목에서 최근 여야정치인의 행태에 대한 분노까지 새삼 일어나는 듯 「너절한」 「내시 상투치레」 등의 용어를 쓰며 언성을 높이기도 했다) ­12대때 의장으로 계시면서도 국회운영과 관련해 어려움을 많이 겪으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요즘 야당측이 지난 임시국회에서 소위 날치기 통과를 이유로 들어 의원직사퇴서를 제출하는등 정국이 경색일변도로 흐르고 있습니다. 밖에서 이를 지켜보신 소회가 어떠신지요. 『광섬유가 발명되어 머리카락만한 전선으로 세계 어디하고나 다량의 통화가 가능하다는 데 이번 임시국회에서의 법안처리 속도도 그에 못지 않았어요. 놀라운 능률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재광부의장이 역할을 했던 모양인데 마음이 아플거요. 60년대 한일 회담반대당시 야당이 통합해 만든 민중당의원중 7∼8명이 탈당했는데 초선의 소장의원으로 김재광의원이 끼였어요. 그때는 무소속제도가 없어 정당을 탈당하면 자동적으로 국회의원의 자격이 상실됐어요. 이처럼 상당히 직언도 잘하고 목소리도 큰 사람이었는데 안됐어요』 ­민자당이 합당후 아무것도 이뤄낸 게 없다는 비난여론에 초조해진 김영삼대표최고위원이 김재광부의장에게 통사정을 한 것 같습니다. 앞으로 야당측이 제출한 사퇴서는 어떻게 처리될 것으로 보십니까. 『사퇴서야 수리되지 않겠지. 구 공화당정권 시절 김영삼대표가 제명됐을 때인가 공화당이 주도하는 국회에서 야당의원이 제출했던 의원직사퇴서를 선별 처리하려 한 적이 있었어요. 김대표는 그때 당하는 입장이었는데 이번엔 이런 경우가 생겼으니 세월이 성능 나쁜 자동차처럼 한없이 느린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세월이 느린 것같아 ­제헌이래 정치인들의 행태가 조금도 안달라졌다는 얘기도 많습니다. 『제헌선거가 훨씬 도덕률이 잘 지켜졌고 그때 사람들이 국가를 생각하는 근본신념에 있어 지금보다 나았어요. 초대 제헌의원이 모두 2백6명인데 지난 17일 제헌절행사에 가보니 생존자가 20명이예요. 그중 3명은 병석에 누워있어 행사에도 불참했어요』 ­야당측은 현 국회를 해산하고 총선을 실시하자고 주장하고 있고 여당은 이를 일축하고 있는데 이에대한 견해는 어떠십니까. 『여야가 얘기하는 것이 모두 정확하게 보도되고 있지 않는 것 같아요. 12대때는 개헌특위를 만들어 헌법을 개정함으로써 의원임기를 근1년 단축시켰어요. 마찬가지로 헌법을 고치지 않으면 총선을 앞당겨서 할 수 없는 것이지요. 헌법을 고치려면 국민투표를 거쳐야 하므로 국민의 동의까지 얻어야 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따라서 야당은 헌법을 고치는데 여당이 동의해달라 하고,여당은 그것을 못하겠다고 하는 것이 양측 입장을 올바르게 표현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야당은 헌법 개정없이도 모든 의원이 사퇴하면 전국적 보궐선거가 실시돼 실질적으로 총선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지 않습니까. 『여당사람들이야 자기들을 또 뽑아준다는 보장이 없는 한 사표를 내겠어요. 형법같은 것은 그 시행에 있어 정상참작의 여지가 있지만 그래도 해석은 협의로 하는 것이 기본원칙입니다. 그렇지만 헌법은 글자 그대로 해석해야지 늘리고 줄여선 안됩니다. 여당까지 전부 사표냈다고 해도 개헌이란 절차를 밟지 않으면 결국 보궐선거밖에 안되고 1년8개월후 14대 총선은 다시 치러야돼요. 14대 총선은 하든지 말든지 이번에 총선을 하자는 것은 당당한 설명을 할 수 없는 주장이라고 봅니다. 정치가지고 갈비뼈다귀에 침칠하듯 하는 행위는 이제 그만하라 그래요』 ­야권은 지자제실시등과 함께 내각제 포기를 여권에 강력히 요구하고 있습니다. 내각제에 대한 소신은 어떠하신지요. 『한마디로 내각제 할 때가 왔다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4천2백만 국민이 모두 참여해 국가를 경영해야지 힘센 사람 혼자 좌지우지해선 안됩니다. 그 구체적 방법이 의원내각제라고 보며 지방자치제도 해야겠지요. 세종같은 성군이 나타난다면 왕도정치도 좋고 대통령중심제도 좋으나 정치는 평균적 가능성에 입각한 제도에 의한 것이라 볼 때 내각제가 바람직하며 대통령중심제는 지나간 제도라고 생각됩니다. 일부에서 내각제를 정권연장 음모라고 주장하는 데 그렇게 해선 얘기가 진전되지 않습니다』 ○정치는,평균적 가능성 ­여야관계가 결국 정상화되리라고 보십니까. 『장내로 들어와서 하는 것이 바람직하지요. 그것이 빠르건 늦건 제 궤도로 가는 길입니다』 ­평민·민주당 등 야권도 통합작업을 활발히 진행시키고 있습니다.우리 정치에서 양당제도의 확립이 바람직하다고 보십니까. 『국민의 기대가 양당정치를 지향한다면 모르되 법률적으로 양당에만 우선권을 줄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무소속을 출마할 때 돈도 더 내고 자유강연도 못하게 한다면 기본민권에 대한 차별이 생길 수도 있으며 너무 편의주의로 흐른다는 비난을 받을 우려도 있습니다』 이 전의장은 끝으로 의원폭력사태등 최근의 정치세태에 대한 질문에 『그사람들이 제발로 걸어 의사당에 왔나. 밀어줘서 온 것 아니냐』면서 『다음 선거에서는 국민들이 입을 꽉 다물고 정신차려 찍으라고 말좀 해주시오』라고 재삼 당부하며 말을 맺었다.〈정리=이목희기자〉
  • 외언내언

    『꿈속에서 술을 마시며 즐기던 사람이 아침에는 슬픈 일이 생겨서 통곡하는 수가 있다. 또 꿈속에서 통곡하던 사람이 아침에는 사냥을 하면서 즐기는 수도 있다. 그런데 꿈을 꾸고 있는 동안에는 그것이 꿈임을 의식하지 못한다. 깨어나서야 그것이 꿈이었음을 알게 된다.…』 ◆장오자라는 사람의 입을 빌려서 말한 「장자」의 말이다. 인생자체를 「큰 꿈」이라고 보는 것이 장주의 생각. 그래서 어느 날 나비가 된 꿈을 꾼 그는 『장주가 나비된 꿈을 꾼 것일까 나비가 장주된 꿈을 꾼 것일까』고도 말한다. 어쨌든 꿈을 꾸고 있는 동안에는 그것이 꿈임을 모르는 것이 인생사. 사람들은 그런 꿈을 자면서만 꾸는 게 아니라 눈을 뜨고도 꾼다. 그러다가 깨어나 헛된 꿈이었음을 깨닫기도 하고. ◆소련의 이학박사 장학수씨. 그가 42년만에 고국 땅을 밟았다. 16세 어린 나이에 「좌익­좋은 사회」의 꿈을 꾸며 자진 월북해 갔던 사람. 재능이 있었던 그는 「술을 마시며 즐기는」 처지로 모스크바 유학도 한다. 그러나 꿈은 깨게 되어 있는 것. 어느날 꿈에서 깨어났을 때 그는 자기가 꾼 꿈이 현실에서는 헛된 꿈이었음을 깨닫는다. 그래서 두만강을 헤엄쳐 아예 소련땅으로. 거기서 인생을 꽃피운다. ◆그의 집안 그의 생애에는 우리 현대사의 아픔이 그대로 투영된다. 독립투사의 집안. 그러나 한 형제사이에서 좌우의 대립을 보였던 미묘함. 그것을 지켜보면서 사회주의자인 넷째형을 찾아 북으로 갔던 소년. 희망의 꿈은 좌절감과 실의를 안김으로써 망명을 해야 했던 서글픔. 그는 이제 영구귀국을 희망하고 있다. 그의 「붉은 별아래 청춘을 묻고」가 출판되면 헛된 꿈속의 오늘의 젊은이들에게 많은 시사를 줄 것 같다. ◆카를 부세의 시나 한번 다시 읊어보자. 『저 산 저 너머 하늘 저 멀리/행복이 산다고들 말을 했지/아,남들과 얼려 찾아갔다가/울고 남은 눈으로 되돌아왔네/저 산 저 너머 하늘 저 멀리/행복이 산다고들 말은 하건만…』
  • 「유아용 컴퓨터」개발/키보드 별ㆍ달등 그림으로 만들어

    대우전자는 16일 3∼6세의 유아들이 사용할 수 있는 유아용 컴퓨터(사진)를 개발,이달말부터 시판에 들어갈 예정이다. 대우전자에 따르면 서울대 인간공학연구소와 공동개발에 성공한 이 유아용 컴퓨터는 문자나 기호대신 별이나 달 등 11개의 그림형 버튼으로 컴퓨터작동이 가능하도록 고안됐고 글자를 몰라도 음성설명기능에 따라 혼자서 배울 수 있도록 설계돼 있는 것. 이 유아용컴퓨터는 유아의 신체와 인지능력을 고려,장난감 모양으로 디자인을 꾸몄고 입력속도도 기존 컴퓨터보다 20%나 빠르게 만들었으며 손목근육의 피로도 70%이상 줄일 수 있도록 했다. 대우전자는 이와 함께 유아교육전문가 만화영화제작소 등 13개 관련집단과 협력,어린이 정서와 언어특성에 맞는 「같은 모양찾기」 「고개넘기」등 30여종의 유아용소프트웨어도 이미 개발,유아용컴퓨터와 함께 공급할 계획이다.
  • 수십억대 보물급 문화재 밀매/한패 3명 영장

    ◎백제시대 토기등 1백70점 팔아 【부산연합】 보물급 문화재가 포함된 삼국시대 문화재 1백70여점을 팔아넘긴 골동품 밀매상 등 4명이 경찰에 적발됐다. 부산 남부경찰서는 5일 손진섭(38ㆍ부산시 동래구 명륜1동 643의4),김면관(29ㆍ경남 울주군 언양면 구수리 29),박영창씨(29ㆍ부산시 동래구 온천2동 145의49) 등 3명에 대해 문화재보호법 위반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하고 이들로부터 문화재를 사들인 부산시 남구 광안2동 골동품판매업소 문화당 주인 김종선씨(34)를 같은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에 따르면 부산시 동래구 명륜1동 643의4 무허가 골동품 판매업소인 동래화랑 주인 손씨는 지난 5월8일 하오7시쯤 평소 거래해오던 문화재 전문밀매꾼인 김씨와 박씨가 대구에서 가져온 6세기 백제시대 유개삼족토기,6세기 신라시대 장경곤 등 골동품 1백70여점을 2천8백50만원에 매입해 문화당 주인 김씨에게 3천1백50만원에 팔아넘겼다는 것. 경찰은 부산시립박물관 송계현학술연구관(45)의 1차감정 결과 이들이 밀매한 문화재중 유개삼족토기 등 10여점은 보물급이상의 가치를 지닌 것으로 판명돼 골동품 1백70여점이 시중에 유통될 경우 시가는 수십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 여대생 행세… 부유한 가정 막내딸/6세 여아 유괴한 홍양 주변

    ◎“졸업후 방송국 출근”부모에도 속여/5월에도 여아 유괴했다 돌려보내 ▷범행경위◁ 비가 내리던 지난25일 상오9시쯤 홍양은 부천집을 나서 부유층이 많은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선수촌아파트로 향했다. 누구를 유괴하겠다고 대상을 구체적으로 정해 놓은 것도 아니었다. 아파트단지에 도착해 1시간 남짓 맴돌던 홍양은 단지안 올림픽유치원을 기웃거리다 유치원현관 우산꽂이에 적혀있는 「난초반 곽재은」이라는 이름이 눈에 띄었다. 유괴의 대상이 정해진 것이다. 홍양은 이어 유치원 간판에 적혀있는 전화번호를 확인 김순옥부원장(39)에게 전화를 걸어 재은양의 어머니를 가장해 공부시간 도중에 불러내 유괴했다. 어머니 김수정(36)는 재은양이 집에 올 시간이 지났는데도 돌아오지 않자 유치원에 전화를 걸어 유괴된것을 알고 하오5시쯤 강동경찰서 오륜파출소에 신고했다. 경찰은 김부원장 등을 불러 사고경위를 들은뒤 재은양의 신변을 염려한 가족들의 요청에 따라 비공개수사에 착수했다. 첫 협박전화가 걸려온 것은 이날 26일 하오5시쯤이었다.가족들은 그후 계속해서 전화가 걸려오자 경찰과 상의하지 않고 27일 5백만원을 입금한데 이어 28일에는 2천5백만원을 추가로 입금했다. 범인은 5천만원을 요구했으나 가계저축예금 구좌의 입금한도는 3천만원이 상한선이었다. ▷범행동기◁ 홍양은 1년6개월동안 사귀어온 김모씨(27ㆍ회사원)가 최근 자신에게는 관심을 덜보이고 회사동료인 박모양(24)과 가까이 지내자 큰돈이 있으면 김씨의 환심을 살 수 있을 것같아 범행한 것으로 진술했다. 홍양은 최근 김씨의 어머니를 만나 「결혼불가」통보를 받고 충격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자백◁ 홍양은 경찰에 붙잡힌뒤 자신의 단독범행이라고 주장하면서 재은양의 신변에 대해서는 계속 묵비권을 행사,재은양이 살해된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을 불러일으켰다. 홍양은 경찰과 재은양 가족들의 계속된 추궁에 30일 상오 처음 입원했던 백병원에서 수사본부인 강동경찰서앞 영암병원으로 옮겨지는 동안 심경의 변화를 일으켜 『재은이는 숙명여대 음악대학 7층에 있다』고 털어놓았다. ▷범인주변◁ 홍양은 지난85년 서울 J여고를 졸업한뒤 재수를 해 S여대에 응시했으나 떨어졌다. 그러나 가족들에게는 S여대 정치외교학과에 합격했다고 속이고 4년동안 학기마다 부모로부터 등록금을 받아내 대학생활을 하는 것처럼 행동해 왔다. 또 이학교 정외과 우편꽂이에는 「홍순영」이라는 이름으로 편지가 자주 배달됐다. 지난2월 S여대 졸업식때에는 교정에서 가족과 함께 졸업기념사진을 찍기도 했다. 이어 4월초에는 『방송국에 취직됐다』면서 매일 출근하는 것처럼 행세했다. 홍양은 붙잡혔을때 숙명여대 M모양(22)의 학생증에 자신의 사진을 붙인 가짜신분증을 갖고 있었다. 홍양의 아버지(53)는 경기도 부천시 남구 심곡본동 678의 20에 대지 70평ㆍ지하1층 지상4층의 시가 6억원상당의 건물과 심곡1동 자유시장안에 시가 3천만원정도의 점포를 갖고있다. 홍양은 1남3녀의 세째딸로 부유한 생활을 해왔다. ○가족들 넋잃고 실신 ▷재은양가족◁ 가족들은 재은양이 무사히 돌아오기만을 애태워오다 30일하오 살해소식을 전해들은뒤 모두 넋을 잃고 울부짖었다. 어머니 김씨는 이날 하오1시쯤 소식을 듣자마자 정신을 잃고 쓰러져 이웃 아산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 분단 45년… 북한의 생활상 어떻게 이질화됐나

    ◎다른 길로 달린 「남과 북」… “한핏줄의 이방인”/서울신문 6ㆍ25 40주 특집 한핏줄의 남북한은 하나의 역사,하나의 언어,그리고 공통된 생활관습 등을 지켜왔다. 그러나 1945년 해방과 더불어 분단의 길로 들어선 남과 북은 6ㆍ25전쟁이라는 민족최대의 비극을 겪으면서 분단이 고착화됐고 이 결과 전쟁후 40년이 지난 오늘까지 삶의 모든면에서 이질화가 심화되어 왔다. 최근 동서독이 통독의 길로 나아가는등 세계의 냉전구조가 타파되면서 세계유일의 분단국이 되고만 한반도에도 냉전의 장벽을 허물어 뜨릴 수 있는 변혁의 물결이 밀려들고 있다. 분단 45년,전쟁발발 40년이 지난 오늘 제각기 달려온 남과 북의 삶의 모습이 어떻게 변화됐고 이질화됐는가를 살펴봄으로써 언젠가는 맞이할 통일에 대비해 서로가 극복해야 할 과제로 삼고자 한다. ◎문화ㆍ예술/인간개조의 도구화… 순수예술 명맥 끊겨 지난해 우리는 두개의 서로 다른 경험을 했다. 그 하나는 비록 결렬되고 말았지만 북경아시안게임 출전을 위한 남북단일팀 구성논의에서 「아리랑」을 단가로 하자는데 양측이 비교적 손쉽게 합의,문화적 민족정서의 공유가능성을 확인한 일이다. 또 하나는 남북이산가족의 재회를 무산시킨 이른바 북한의 혁명가극 「꽃파는 처녀」와 「피바다」 공연여부를 둘러싼 논쟁에서 실감했던 남과 북의 현저한 문화ㆍ예술관의 차이다. 이렇듯 남과 북의 문화ㆍ예술은 공감대를 같이하는 한 뿌리에서 출발했으나 분단이후 45년간 서로다른 이념과 사회체제 속에서 이질화의 과정을 밟아옴으로써 오늘의 남과 북사이에는 엄청난 높이의 문화적 장벽이 가로놓이게 됐다. 한국의 문화정책이 이어령 문화부장관의 구상처럼 『후기산업사회로의 급격한 전환에 따른 세대간ㆍ계층간ㆍ지역간ㆍ성별간의 이질화와 갈등현상을 문화의 힘으로 치유』하는데 놓여져 있다면 북한의 문화ㆍ예술은 주체사상과 3대혁명에 입각한 공산주의적 정치사회화의 수단적 목적만을 강조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북한의 문화예술은 「사회주의적 사실주의」의 기초하에 체제보위 및 최고통치자에 대한 우상화 및 공산주의적 인간개조를 위한철저한 도구로 기능함으로써 전통적 순수예술의 성격은 물론 대중예술과도 거리가 먼 주체예술ㆍ혁명예술ㆍ이데올로기예술로 변모돼 있다. 가령 북한가요 45년사에서 3대명곡으로 꼽히고 있는 「조선의 별」,「김일성장군의 노래」「동지애의 노래」 등이나 최고의 명작으로 꼽히는 시작 「묘향산의 가을날에」,80년대 최고의 미술작품이라는 「강선의 저녁노을」 등은 모두가 김일성과 관련된 내용을 담고 있는 것으로 북한의 문화ㆍ예술의 성격을 대변해 주고 있다. ▲사상성이 좋고 ▲가사가 좋으며 ▲선율이 부드럽고 지루하지 않다는 점에서 불후의 「혁명송가」라는 「조선의 별」은 김일성이 항일빨치산 투쟁을 할때 그의 추종자들이 김일성을 흠모해 지었다는 노래이며,「동지애의 노래」는 김일성에게 충성을 다할 것을 촉구한 노래이다. 「강선의 저녁노을」은 남포시 강선제강소를 소재로 김일성을 찬양한 조선화이며 주체예술의 상징인 5대혁명가극의 하나인 「피바다」는 항일혁명투쟁을 주제로 김일성의 주체사상을 앞세운 목적극이다. 특히 6ㆍ25전쟁 전까지 순수예술과 목적예술간의 대립속에서 독자적인 영역을 개척하지 못한채 주로 소련에 의존해왔던 북한의 문화ㆍ예술은 전쟁중 전쟁의식을 고취하는 내용의 전쟁영웅 형상화에 몰두,목적예술적 경향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후 전후복구와 「주체」의 슬로건 등장등 상황적 요청에 따라 문예정책은 사회주의 건설에 역점을 두는 새로운 전형을 형상화하는 한편 소련식 문화활동에서 탈피,김일성체제를 뒷받침하는 혁명전통확립과 주민들에 대한 공산주의 교양을 주제로 한 창작활동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또한 자연만을 노래하거나 예술지상주의 태도는 반혁명적이고 형식주의적인 문화예술이라는 인식하에 ▲사회주의적 사실주의와 ▲당성ㆍ계급성ㆍ인민성의 구현이 모든 창작활동중에서 반드시 지켜야할 원칙으로 대두됐다. 현재 북한에서는 이러한 문화예술의 원칙과 과제의 이행을 지원하기 위해 작가 미술가 영화인 연극인 무용가 사진가 등 모든 예술인들을 망라한 조선문학예술총동맹이란 조직이 결성돼 있으며 당은 이 조직을 통해 각 분야 종사자들에게 창작 및 공연활동계획서의 제출을 강요,▲혁명전통(30%) ▲전쟁(30%) ▲사회주의건설(20%) ▲조국통일(20%) 등 4개 주제별로 창작활동을 하도록 하고 있다.◎의식구조/어휘마다 정치색… 전투ㆍ파괴적 성격 강조 『서울말은 남존여비사상과 썩어빠진 부르주아적 생활이 지배하는 말로서 오늘 남조선방송에서는 여자들이 남자에게 아양을 떠는데 쓰이는 코맹맹이 소리를 그대로 쓰고 있으며,그것마저 고유한 우리말은 얼마 없고 영어 일본말 한자어가 반절이나 섞인 잡탕말이다. 우리는 혁명의 수도이며 요람지인 평양말을 기준으로 해야한다. 오늘 평양말은 서울말보다 비할 바 없이 우월하다』 김일성이 1969년 평양말을 「문화어」로 삼은 이유를 설명한 교시의 내용으로 북한의 언어정책을 잘 보여준다. 김일성은 또 「표준말」이란 용어 대신 「문화어」를 쓰는 이유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표준어라고 하면 마치도 서울말을 표준하는 것으로 그릇되게 이해될 수 있으므로 그대로 쓸 필요가 없다. 「문화어」란 말도 그리 좋은 것은 못되지만그래도 그렇게 고쳐쓰는 것이 낫다』 특히 북한은 「언어를 혁명투쟁과 건설사업의 힘있는 무기」로 보는 언어관을 토대로 일찍부터 용의주도하고 치밀한 언어정책을 펴옴으로써 분단 45년이 지난 현재 남북한간에 벌어지고 있는 언어의 이질화는 단순한 언어 자체의 문제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남북한간의 사고와 행동양식 및 의식구조의 이질화에까지 파급되고 있다. 실제 북한에서는 언어를 씩씩하고 힘있는 무기로 다듬는다는 명분하에 『미제의 각을 뜨자』『돌탕을 쳐 죽이자』는 등의 살벌하고 소름끼치는 말들이 공공연히 사용되고 있다. 언어가 인간의 사고와 성격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않음을 감안할때,북한의 이같은 극단적인 언어관과 언어정책은 결과적으로 이러한 언어를 쓸 수 밖에 없는 북한주민자신을 공격적이고 전투적이며 파괴적인 성격으로 만드는 잠재요인이 된다는 점에서 남북한간의 언어이질화에서 빚어지는 문제의 심각성이 있는 것이다. 북한의 언어정책은 1949년에 단행된 한자폐지와 이에 따른 한글전용정책에서 시작된다. 문맹퇴치와 인민대중의 조속한 사상교육을 목표로 추진된 한자폐지는 결과적으로 한글전용화로 이어졌고 이결과 북한의 각급학교 교과서 문예작품 신문 및 대중매체에서 한자는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 다만 한자교육은 통일후 남한문헌을 읽기 위해 또한 고전연구를 위해 하나의 외국어처럼 전공과목으로서만 남게됐다. 한글전용에 이어 가로쓰기도 시행되었으나 한자어의 어원을 가진 낱말을 한글로만 표기,잘못 사용하는 경우가 속출하면서 「말다듬기운동」이 새로 일어났다. 이에 따라 1954년 일제하 조선어학회에서 제정한 「한글맞춤법 통일안」을 수정한 「조선어철자법」이 생겨났고 1966년에는 「조선말규범집」과 함께 「문화어」라는 새로운 개념의 어휘까지 등장했다. 문화어의 등장은 남북한간 언어이질화의 본격적인 시발점이 되고 말았는데 그 성격은 서울말을 배격하고 평양말을 토대로 다듬은 그들의 공용어를 표준어로 삼는 데 있다. 한편 한자폐지와 한글전용,말다듬기운동의 결과 새로운 사전의 편찬이 불가피하게 됐는데 1968년 나온 「현대 조선말사전」의 경우 18만어휘가 수록됐던 「조선말사전」(61년)에 비해 어휘가 5만으로 크게 줄었다. 그 이유는 한자가 하나도 없고 옛말 사투리 고유명사 및 이른바 「퇴폐적 사상표현」등을 완전히 제외했기 때문. 또 어휘마다 정치성이 담겨져 있어 김일성의 인용구는 굵은 활자에 별표까지 달아놓았다. 현재 남북한의 언어는 발음의 차이,리듬의 차이,억양의 차이 등과 같은 음성학적인 차이를 비롯해 어휘ㆍ문법ㆍ의미ㆍ문체 및 맞춤범 등 언어전반에 걸쳐서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는데 가장 심각한 차이는 어휘부문에서 나타난다. 예를들면 산책길→유보도 채소→남새 화장실→위생실 고기잡이→추어전 개고기→단고기 도시락→곽밥 레코드→소리판 대중가요→군중가요 투피스→동강옷 커튼→창문보 그룹→그루빠 소년단→삐오네르 주제→쩨마 등이다. ◎경제생활/「남농북공」무너져 GNP 남한의 12%/생필품 부족… 암시장 쌀값 배급의 18배 8ㆍ15해방 당시 남북한의 산업배치는 「남농북공」으로 일컬을 만큼 지역적 보완관계가 가능한 상태였다. 그러나 뜻하지 않은 남북분단으로 이같은 보완관계는 무너졌으며 설상가상으로 6ㆍ25가 남과 북 모두의 각종 산업시설을 파괴,경제활동의 토대조차 송두리째 무너뜨리고 말았다. 이후 남과 북은 40여년간 천연자원 및 산업구조의 불균형이라는 악조건속에서 통합적 발전이 아니라 개별적이고 분리적인 발전을 계속해왔다. 서로 다른 이념과 체제로 굳어진 한국과 북한은 각기 다른 경제질서를 형성ㆍ유지하면서 치열한 체제경쟁을 벌여왔고 이 결과 88년을 기준으로 국민총생산액(GNP)의 차이는 한국이 북한에 비해 8배나 앞서는 비교우위로 나타났다. 한국은 62년 제1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에 착수한 이래 고도의 경제성장을 거듭,개발도상국에서 일약 중진국의 일원으로 도약했다. 1960년 1백달러 미만이었던 1인당 국민소득은 89년말 현재 5천달러에 육박해 있다. 반면 6ㆍ25로 인해 공업생산 수준이 1949년에 비해 3분의 2 수준으로 떨어진 상태에서 출발했던 북한경제는 전후복구 3개년계획(1954∼56년)과 뒤이은 5개년계획(1957∼61년)에서는 이례적으로 높은 성장을 기록했으나 그후 침체의 늪에 빠져들었다. 이에 따라 북한은 70년대전까지만 해도 한국에 비해 부분적인 비교우위내지는 형평을 유지해 왔으나 이후부터는 전분야에서 큰 격차를 보이고 있다. 체제가 다른 북한의 국민총생산액등 각종 경제지표의 개념은 우리와 크게 다를 수 있지만 국토통일원이 북한의 각종 선전자료를 검토ㆍ분석해 추정한 수치는 다음과 같다. 국민총생산액은 88년을 기준으로 2백6억달러로 우리의 1천6백92억달러에 비해 8분의 1 수준이며 1인당 GNP는 9백80달러(한국 4천40달러),자동차 생산능력은 연간 2만대(한국 1백70만대),TV보유율은 10%(한국 1백%),전화는 7%(한국 67%),냉장고는 6.5%(한국 79%) 등이다. 한편 북한주민의 의ㆍ식ㆍ주는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소비하는」 평등한 방식에 의해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직종과 직급에 따라 차등적으로 지급되는 임금과 그 임금에 따른 불균형한 소비형태로 이뤄지고 있다. 임금은 당간부 및 고위직 군인의 급료가 상대적으로 높으며 사무직보다는 기술직이 높다. 또 경노동 보다중노동이,중노동 가운데도 위해노동종사자들이 더 많은 임금을 받으며 85년부터는 「사회주의적 노동보수제」가 도입돼 동일직종이라도 숙련도나 생산성 등 노동의 질에 따라 급수를 달리하는 「차등임금제」가 실시되고 있다. 북한은 이같은 화폐소득의 차이를 완화하기 위해 보건ㆍ교육분야를 국가예산으로 충당하는 한편 대중소비물자의 가격을 낮게 책정하고 사치품의 가격을 높게 매기고 있다. 이에 따라 쌀ㆍ채소ㆍ옷감ㆍ비누ㆍ치약 등 생필품의 경우 아주 싼값으로 공급되는데 가족수와 연령,직업에 따라 품목과 수량,종류가 정해진 구입카드에 의해 국영상점에서 구입한다. 그러나 최근 몇년간 「먹는 문제」의 해결이 최우선 과제이듯이 국가에서 싼 값으로 공급하는 생필품의 배급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에 일반주민들은 부족분을 구하기 위해 1㎏당 8전에 불과한 쌀을 「장마당」이라고 부르는 암시장에서 이 가격의 18배가 넘는 1㎏당 15원에 구입하려해도 어려운 실정이다. 주택은 협동적 소유로 행정당국에 의해 직업과 직급에 따라 차등적으로배분되며 그 보급율은 70% 안팎. 북한은 주택건축률이 경제발전을 대변하는 전시적 기능이 크고 남북한 사회비교의 중요한 징표가 된다는 점에서 70년대 이후 평양ㆍ남포ㆍ원산ㆍ함흥 등 대도시를 중심으로 현대식 고층아파트를 신축하는 한편 농촌의 문화주택을 2층 3가구용,3층 5가구용으로 다양화하고 문화적으로 보이도록 하는 등 주거양식에 상당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또한 북한은 지난 40년간 중공업위주의 경제정책을 펼친 결과 주민들의 소비생활이 크게 압박을 받아 불만의 소리가 높아지고 있다는 판단에 따라 지난해를 「경공업의 해」로 지정하는 등 최근 경공업발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생활풍습/“봉건잔재 없앤다” 관혼상제도 통제ㆍ규격화 북한은 우리민족의 전통적 예의범절에 대해 『봉건지배계급이 착취하는데 편리하게 만들어 놓은 규칙』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우리민족 고유의 예절이나 유교적 도덕관은 북한의 사회주의체제와 당의 이익에 맞도록 변형되어 있다. 또 관혼상제를 포함한 전통적인 민속과 세시풍속 등도사회주의적 내용으로 변질됐다. 북한에서의 결혼은 『철저히 동지적이고 혁명적인 관계에 의해 이뤄지며 일생을 동지로서 당과 수령께 충성할 수 있는 정신적 풍모가 조건이 된다』고 정의되고 있다. 따라서 결혼연령도 노동과 생산력을 높이기 위해 남자 29세 여자 26세로 제한해 놓고 있으나 불만이 많아 80년대 이후에는 조혼추세가 묵인되고 있다. 배우자선택은 중매(60%)와 연애(40%)가 병행되고 있으나 최근 북한의 남녀대학생들은 서로 손을 잡기도하고 데이트를 즐기는 등 연애결혼 풍조가 확산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일반 노동자계층의 남녀가 만나는 채널은 연애보다는 부모 친척 등을 통한 중매가 지배적이다. 신랑감으로는 직업에 관계없이 평양거주총각이 최고의 배우자로 꼽히고 있으며 길흉을 가리는 결혼의 택일 풍습은 사라져 대개 일요일이나 공휴일에 치러진다. 회갑이나 생일,돌잔치는 50년대에는 경제적 여유가 없다는 이유와 식량절약이라는 명분으로 일체 금지되었으나 60년대 후반기부터 묵인되고 있다. 그러나 「60청춘 90회갑」이라는 구호아래 공식적인 회갑잔치는 거의 치르지 못하고 있으며 고위간부의 경우에만 김일성이 하사하는 일정한 규격의 회갑상을 받는다. 장지는 지정된 공동묘지만을 쓰도록 돼있다. 상복은 따로 만들어 입는 것이 없고 머리에 건을 쓰고 팔에는 검은 천을 두른다. 장례식과 매장은 도시의 경우 녹화사업소,편의협동조합 등이 맡아서 처리해 주며 직계존속이 사망했을 경우 상주에게는 3일간의 공식휴가와 장례보조금 10원,쌀 1말이 배급된다. 제사도 다른 풍습과 같이 6ㆍ25전까지는 별다른 통제를 받지 않았으나 휴전후부터 단속대상이 되었었다. 그러나 60년대 후반기부터 추석에 성묘하는 것과 직계존속에 대한 탈상까지의 제사는 묵인하고 있다. 또한 북한은 60년대 중반까지 「봉건잔재를 뿌리 뽑아야 한다」는 김일성 교시에 따라 추석등 고유의 세시풍속을 공식명절에서 제외하고 김일성의 생일,김정일 생일,북한정권 창건일,노동당 창건일,사회주의 헌법제정일 등을 「사회주의 명절」로 지정,공휴일로 해왔으나 지난 88년부터 추석 음력설 단오 한식 등을명절로 부활시켰다. 또한 70년대까지만 해도 인민복,검은 통치마 차림이었던 주민들의 옷차림이 두드러지게 바뀌기 시작해 80년대 중반이후부터는 남자는 양복이나 잠바,여자는 양장이나 짧은 치마차림이 보편화됐으며 머리모양이 다양해지고 화장을 한 여자들도 눈에 띄기 시작했다. 그러나 올해초부터 시행될 것으로 보이던 주민들의 부분적 여행자유화 조치가 전면 보류됨으로써 일반 주민들의 북한내 여행 및 휴가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으며 이에 따라 금강산ㆍ묘향산 등 유명관광지의 이용자는 주로 외국인 관광객이며 주민들의 경우 공장ㆍ직장별 단체관광 정도일 뿐 가족단위의 여행은 거의 없다. 따라서 북한주민들의 주요한 오락수단은 TV와 라디오이다. 또 최근 바둑협회가 새로 결성되고 실내 골프장이 생기는 등 부분적인 변화가 있으나 대중이용은 상상조차 할 수 없으며 주민들이 가장 많이 즐기는 놀이는 주패놀이로 불리는 서양식 카드놀이와 장기이다. 가정생활은 지난 80년 『셋은 양심이 없습니다. 둘은 많습니다. 하나가 좋습니다』라는 김정일의 지시이후 가족계획이 보편화되기 시작해 점차 대가족에서 핵가족 형태로 옮아가고 있다. 남녀평등권에 관한 법령이 제정되는 등 남녀평등이 제도적으로 보장돼 있으나 실제로는 가부장적 사회가 유지되고 있으며 여자들이 가정경제의 주도권을 쥐고 있다. 남편들이 봉급을 타서 여자들에게 넘겨 주기는 우리와 마찬가지다. ◎언론ㆍ교육/비판기능은 무시… 선전ㆍ선동의 매체로 활용 최근 북한은 소련언론들의 잇따른 대북한 비난보도에 대응,소련의 평양주재 기자들에 대한 취재봉쇄조치를 취한데 이어 타스통신기자 1명을 추방함으로써 내외의 관심을 끌었었다. 특히 북한은 『우리 혁명을 지지하는 기사를 쓰라,그러면 당신들의 요청이 충족될 것』이라고 주장한데 반해 소련언론들은 북한언론들의 보도태도와 관련,「목적지향성」보도에만 집착할뿐 진실을 숨기고 있다고 비난해 같은 사회주의 국가이면서도 북한과 소련의 언론관이 상이하다는 사실을 일깨워줬다. 현재 북한에서 발행되는 신문은 노동당기관지인 「로동신문」과 정무원기관지인 「민주조선」을 비롯해 도단위 일간지 등 모두 30여종. 방송은 TV의 경우 「조선중앙TV」(평양TV)「만수대TV」「개성TV」 등 3개가 있고 라디오는 「조선중앙방송」「평양방송」「구국의 소리방송」「평양인민 FM방송」 등이 있다. 북한에 있어 언론이란 「김일성의 교시와 당의 정책을 해설ㆍ선전하며 그것을 철저히 비호ㆍ관철하고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가일층 강화하여 인민들을 수령의 두리에 튼튼히 묶어세우는데 복무해야 한다」는 정치사전(73년도판)의 규정처럼 정치선전도구의 성격을 강하게 띠고 있다. 또한 부정적이고 비판적인 기사가 아닌 모범적이고 감동적인 이야기로써 사람들을 교양해야 한다는 김일성의 교시(1960년 11월)에 따라 우리의 사회면 기사에 해당되는 범죄나 비행ㆍ사고 등의 기사는 신문ㆍ방송 등 언론매체에 일체 실리지 않는다. 우리의 언론들이 사회의 비리ㆍ부조리 등을 파헤침으로써 비판적인 기능을 하고 있는데 반해 북한은 긍정적ㆍ모범적인 기사를 통해 사회를 계도하겠다는 언론관을 고집하고 있다. 또 북한의 언론은 자본주의언론이 중시하는 속보성보다는 매스미디어의 이념적 이용,즉 당의 정책적 선전에 중점을 두고 있다. 특히 「정론성」과 「당성」이 강조되고 있는데 정론성이란 어떤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도하는 것이 아니라 선전ㆍ선동ㆍ조직ㆍ교육ㆍ동원에 필요한 요소들을 가미하여 「사실」을 각색하는 것을 말한다. 한편 북한의 방송은 정무원직속 조선중앙방송위원회의 지도아래 운영되고 있는데 이 기구는 조직ㆍ편제상 정무원에 속해 있지만 당중앙위 선전선동부의 지시와 통제를 받고 있어 사실상 2원화 되어 있다. 북한의 새 학기는 우리와 달리 9월에 시작된다. 북한은 지난 75년부터 유치원 1년,인민학교 4년,고등중학교 6년과정으로 된 「11년제 의무교육」을 실시하고 있으며 우리의 국민학교에 해당하는 인민학교의 취학연령은 만6세. 그러나 만4세부터 시작되는 2년과정의 유치원교육중 「높은반」부터 의무교육기간에 포함되므로 실질적인 의무교육은 만5세부터 시작되는 셈이다. 11년제 의무교육기간에는 수업료는 물론 면제이며 교과서ㆍ교복ㆍ학용품이 무상 또는 일부 부담으로 지급된다. 16세부터 시작되는 고등교육단계로는 2∼3년 과정의 고등전문학교와 교원대학(3년),종합ㆍ단과ㆍ사범ㆍ공장대학(4∼6년) 등이 있다. 현재 북한에는 인민학교 5천여개,고등중학교 4천2백여개,전문학교 5백여개,대학 2백70여개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북한은 80년중반부터 낙후된 과학기술을 진흥하기 위해 각 시도별로 「제1고등중학교」를 세우는 한편 기술계 대학의 수를 크게 늘리고 있다. 학생들은 또 「한가지 이상의 기술과 기능을 소유해야 한다」는 당의 방침에 따라 예능 또는 실업 등의 실기과목을 배우고 있으며 소년단이나 사로청 등의 조직에 의무적으로 가입,단체활동을 한다. 특히 의무노동이 중시돼 인민학교는 연간 2∼4주,고등중학교는 4∼8주,대학교는 12주정도씩 생산현장노동에 참여한다. 한편 북한은 마르크스­레닌주의와 이것을 주체적,창조적으로 적용했다는 「주체사상」을 교육이념으로 삼고있다. 또 계급투쟁을 위해서는 「공산주의적 인간」이,경제발전을 위해서는 「생산기술적 인간」이,전쟁승리를 위해서는 「체력이 튼튼한 인간」이 바람직하다는 「이상주의적인 인간상」때문에 정치사상교양 및 과학기술교육,그리고 국방체육이 북한교육내용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
  • 대한유화 회장 이정림씨

    전경련 2ㆍ3대 회장을 역임한 이정림대한유화회장이 20일 상오5시 서울 종로구 가회동1 자택서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77세. 고 이회장은 개성출신으로 16세때 가게점원으로 출발,50년대에는 개풍상사ㆍ대한양회ㆍ호양산업ㆍ대한탄광ㆍ동방화재 등을 거느린 당대의 대그룹을 이루었다. 발인은 22일 상오10시. 장지 경기도 안성군 삼죽면 내강리 가족묘지. 연락처 763­1079
  • 오한구 내무(국회 새 부의장ㆍ상위장의 얼굴)

    ◎군시절 전ㆍ현대통령 핵심참모 육사 13기 출신으로 군시절 전두환 전대통령과 노태우대통령의 측근참모로 지냈다. 정호용씨 지지서명주도로 한때 민정당 주류와 소원한 관계였으나 일관된 소신과 의리로 인해 후일 높은 점수를 받는 계기가 됐다. 서명파무마용으로 지난 2월 내무위원장에 발탁. ▲경북 봉산ㆍ56세 ▲서울대 상대 ▲포항제철 이사 ▲민정당 경북도지부장 산악연맹회장 ▲11ㆍ12ㆍ13대의원 ▲국회 경과ㆍ내무위원장
  • “식물인간 남은생명 정상인 기준은 잘못”/대법원

    ◎“일반인 취급 윤화보상 지급” 원심 파기 교통사고로 식물인간이 된 사람의 여명은 정상인과 똑같이 볼수 없으므로 그에 대한 손해배상액을 달리해야한다는 대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민사3부(주심 박우동대법관)는 10일 교통사고로 식물인간이 된 최준군(사고당시 6세)등 일가족 4명(대전시 중구 신성동 5의1)이 김진곤씨(경북 영일군 동해면 도구리 683)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이같이 판시,최군의 여명을 일반평균인과 같이 59ㆍ38세로 보아 모두 7천1백여만원의 배상금을 지급토록 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되돌려 보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원심은 최군이 교통사고로 노동능력의 90%를 상실하기는 했으나 뇌ㆍ간기능 등이 정상적이어서 여명단축에 영향을 줄 요인은 없다는 이유로 최군의 여명기간을 평균인과 같은 59ㆍ38세로 인정하고 있다』고 밝히고 『그러나 심하게 뇌를 손상당한 최군의 경우와 같은 건강상태하에서 최군이 평균인과 같은 여명을 누릴수 있다고 하는 것은 경험칙상 납득키 어려운 점이있다고 밝혔다.
  • 승용차 트렁크에 어린 형제 변시/어제 과천서

    ◎6ㆍ4세 집 나간지 사흘만에/질식사ㆍ타살여부 수사 【과천=오승호기자】 5일 하오5시15분쯤 경기도 과천시 별양동 7의1 과천낚시가게(주인 김태규ㆍ35)에서 20m쯤 떨어진 빈터에서 세워져 있던 서울1모 5575호 프레스토승용차 트렁크에서 이 가게 주인 김씨의 장남 성환군(6)과 차남 성진군(4)이 함께 숨져 있는 것을 승용차 주인 김찬우씨(26ㆍ회사원)가 발견했다. 김씨는 지난2일 낚시가게와 같은 건물에 있는 신흥카센터(주인 김학식ㆍ52)에 승용차를 맡겨두었다가 이날 차를 찾기위해 카센터 종업원 고모씨(26)와 함께 차가 세워져 있는 곳으로 가 트렁크를 열어보니 어린이 2명이 두팔을 벌이고 입주위에 거품과 함께 오물을 토한채 숨져 있었다고 말했다. 당시 성환군은 러닝셔츠와 팬티만을 걸쳐입은 상태였고 반바지와 운동화는 벗겨져 트렁크속에 놓여 있었다. 성진군은 청바지 차림에 윗옷은 벗겨져 있었고 두 어린이 모두 특별한 외상은 없었다. 아버지 김씨는 『지난3일 하오2시쯤 아이들이 집 뒤편 주공아파트 4단지 놀이터에 놀러간다며 집을 나간뒤 밤이 되도록 돌아오지 않아 같은날 하오9시쯤 이웃 안양경찰서 과천파출소에 미아신고를 했다』고 말했다. 한편 두 어린이의 사체를 검안한 안양시 대양병원의사 김치항씨는 일단 이들이 승용차 트렁크안에서 질식사한 것으로 추정했다. 경찰은 아버지 김씨가 평소 주위사람들로 부터 원한을 살만한 일이 없었다고 진술함에 따라 두 어린이가 사고가 난 승용차를 만지다가 트렁크문이 열리자 이 안에 들어가 놀다 다시 닫힌 문을 열지 못하고 질식해 숨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트렁크 문을 닫았었다는 주인 김씨와 종업원의 진술과 4ㆍ6세의 어린이로서는 닫혀있는 트렁크 문을 열기가 어렵다는 점 등으로 미루어 타살의 가능성에 대해서도 수사를 펴고 있다. 경찰은 정확한 사인을 가리기 위해 승용차 트렁크 외부와 내부의 지문을 채취하는 한편 목격자를 찾는 등 탐문수사를 계속하고 있다.
  • 단거리 이착륙기등 개발협력 추진/오늘 임시각의

    ◎「방일」 성과 극대화,후속조치 논의/6개 한ㆍ일 공동사업 예산확보/양국 각료회담 3년만에 올 가을 개최/복수사증발급 7월부터 시행 정부는 노태우대통령의 방일성과를 극대화하고 한일간의 새로운 협력관계 발전을 위해 1차로 신소재특성평가센터 건립등 6개 공동협력사업에 따른 부지확보등 필요한 예산조치를 취하기로 하고 첨단기술분야 협력에서는 저소음 연료절약형 단거리 이착륙기(STOL)및 과학위성개발,4천m급 유인잠수정 개발,인체유전자 연구등에 중점을 둘 방침이다. 정부는 또 무역역조 시정의 일환으로 일본이 파견할 대규모 구매사절단의 방한에 대비,경제단체등과 협의하여 한일수출 가능품목을 업체별로 정밀파악하고 소련ㆍ동구ㆍ중국 및 동남아지역에 일본과 공동진출할 수 있는 분야와 업체를 집중검토,금융ㆍ세제면에서 최대한의 지원을 뒷받침할 예정이다. 정부는 이와관련,28일 상오 청와대에서 노대통령 주재로 임시국무회의를 열어 노대통령의 방일성과분석및 정부차원에서의 후속조치를 논의할 예정이다. ◎내일 4부 장관 회견 이 자리에는 노대통령의 방일을 수행한 최호중외무,이종남법무,박필수상공,정근모과기처장관이 각각 일본측과 실무차원에서 협상한 결과를 보고하며 이들 4부장관은 29일 합동기자회견을 통해 후속조치등을 밝힐 예정이다. 노대통령은 이에앞서 김영삼대표최고위원,김종필ㆍ박태준최고위원 등 민자당수뇌부와 강영훈국무총리ㆍ최외무장관이 참석한 가운데 조찬을 겸한 고위당정회의를 갖고 대일관계개선 후속방안,민자당이 29일 단독소집한 임시국회대책,일단 연기된 여야영수회담,6월 임시국회 운영방안 등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다. 외무부는 한일 양국간 입국사증 수수료면제및 복수사증 발급에 관한 서한교환의 후속조치로 오는 7월1일부터 이를 시행키로 했다. 이에따라 지금까지 단수비자만 주던 ▲단기종합비자와 유학및 숙련노동자 비자는 1년 복수로 ▲상사주재원ㆍ특파원ㆍ예술종사자ㆍ교수ㆍ연구자ㆍ선교사ㆍ특수기술공여자는 3년 복수비자를 받게된다. 외무부는 재일교포 법적지위 개선과 관련,16세이하의 재일한국인 청소년에 대한 지문날인배제 그리고 원폭피해자 지원기금 사용문제등을 위해 곧 양국 아주국장회의를 가질 방침이며 지난 87년이래 중단되었던 제15차 한일 각료회의를 금년 가을에 서울에서 개최한다는 방침을 정하고 이를 적극 추진키로 했다. 외무부는 또 국제경제에 관한 의견교환및 양국간 긴밀한 협력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양국 외무부경제담당차관보를 수석대표로 하는 「한일 경제협의회」도 금년 하반기에 구성,조기가동할 방침이다. 상공부는 무역역조 개선을 위한 한일 산업구조조정위의 운영방향을 산업기술이전ㆍ수평적 분업에 맞추기로 하고 첨단고급기술이전에 대비,국공립연구기관에 대해 필요한 자금을 배정하고 인적 자원을 보강할 예정이다.
  • 재일교포 지방공무원ㆍ교원채용 노력/사안별 한일협력 추진사업

    ◎정부간 원자력 협력협의회 연내 설치/범인 인도조약ㆍ형사사법 공조협정 추진 노태우대통령의 방일을 계기로 두차례에 걸친 한일 양국 정상회담과 외무ㆍ법무ㆍ상공ㆍ과학기술처 등 양국 관계장관간의 회담을 통해 양국은 실질적인 동반협력의 기틀을 다진 것으로 평가된다. 이번 방일을 통해 나타난 구체적 협의사항을 살펴본다. ▷재일한국인 법적지위개선◁ 지난달 30일 양국 외무장관회담에서 타결된 3세이하 후손의 법적 지위개선과 관련,양국은 이를 뒷받침하는 입법조치를 조속히 취하기로 합의했다. 우리측은 또 3세이하뿐만 아니라 68만명의 1ㆍ2세들에게도 고루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협조를 요청했는데 특히 3세와 동시에 출생하는 2세의 경우 3세와의 구별이 사실상 어렵고 구별해야 할 합리적 근거도 명확치 않다는 점에서 3세이하에 대한 합의사항이 이들에게도 자동적용되어야 함을 강조했다. 우리측은 이와함께 방일의 가시적인 성과로서 현재 16세이하의 재일한국인 청소년들에 대해서도 지문날인제도의 적용배제를 특별 요청했다. 일본측은 우리측 의견을 최대한 수용하겠다는 뜻과 함께 지자제 공무원및 교원채용문제등에 있어서도 상호 만족할 만한 수준의 합의에 도달하도록 힘쓰겠다고 밝혔다. 한편 양국 법무장관회담에서 우리측은 실생활에 가장 큰 불편을 주는 외국인등록증 상시휴대의무 면제와 강제퇴거제도 철폐의 우선처리를 특별 요청했다. ▷재한 원폭피해자 지원문제◁ 일본측은 재한 원폭피해자들의 치료 및 요양 등 실질적 혜택부여를 위해 40억엔(2백억원)을 보조키로 했다. 우리측은 이에 정부보조금을 합쳐 양국 공동기금을 마련,대한적십자사를 통해 사용할 예정이다. 또 사할린교포의 모국방문이 양국 적십자사에 의해 원활히 추진되고 있음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양국정부는 이들의 자유로운 모국방문이 실현될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키로 합의했다. ▷산업기술 및 과학기술협력◁ 양국간 산업구조의 조정촉진및 무역확대 균형을 위해 산업기술ㆍ과학기술 협력확대가 필요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하면서 양국은 ▲중소기업 자동화 기술협력 ▲공공기관간 공동연구 및 개발 ▲신소재 특성평가센터 설립 ▲근로자 직업병 예방을 위한 기술협력 ▲원자력 협정체결 ▲양국 기초과 공동위원회 설치등 6개의 미래지향적 협력사업을 공동시행해 나가기로 했다. ▷경제협력◁ 한국의 대일무역 역조개선을 위해 일본은 대규모 구매사절단을 조만간 파한키로 하고 그 시기와 규모는 일 정부와 업계가 협의키로 했다. 또 무역마찰 사전방지를 위해 민관합동 정책협의기구를 신설하는 한편 일 정부가 민간기업이 보유한 첨단기술을 한국측에 이전토록 최대한 영향력을 발휘키로 했다. ▷사증 확대발급◁ 양국은 외무장관회담을 통해 사증수수료 면제및 복수사증 발급에 관한 서한을 체결,양국 민간인적 교류를 활성화키로 했다. 이번 합의는 오는 7월1일부터 시행된다. 이에따라 지금까지 사증을 ▲단기여행자,유학,상용,문화,숙련노동자 등은 1년기간의 복수로 ▲외교관및 관용,상사주재원 및 특파원,예술종사자,교수,특수기술 공예자등은 3년기간의 복수로 발급받게 된다. ▷해난구조에 관한 협정◁ 양국은 협정체결을 통해 양국주변 수역에서의 해난사고시 인명구조 협력과 선박의 긴급피난시 보호를 제공키로 합의했다. ▷조선 궁중유물 반환◁ 양국간 문화교류를 확대,선린우호관계를 증진시키기 위해 일본측은 도쿄국립박물관에 소장중인 영친왕 및 왕비유물등 조선 궁중유물을 우리 정부측에 반환키로 했다. 우리측은 이같은 일본측의 조치를 환영한다는 의사를 피력하고 앞으로도 많은 수의 한국문화재가 반환될 수 있도록 일본정부의 적극적인 협력을 요청했다. ▷일­북한관계◁ 한반도 정세를 논의하는 자리에서 일본측은 현재까지 구체적 진전은 없으나 앞으로 대북한 관계개선에 힘써 나가겠다고 밝히고 이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한국측과 상호 긴밀한 연락을 취하겠다고 말했다. 우리측은 이에대해 일­북한 관계개선이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추진돼야 한다는 점과 실질적인 진전은 북한이 대남 적화통일노선을 포기할 때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분명히했다. ▷기타◁ 양국은 원자력 협력협정을 체결,핵시설 안전및 방사선 보호ㆍ방사선 폐기물 처리등을 위해 정부간 원자력 협력협의회를 연내 설치키로 했다. 양국은 특히 북한의 핵안전조치 협정조인을 위해 공동노력키로 하고 차세대 원자로 기술개발에 협력키로 합의했다. 이밖에 양국은 법인의 인도조약및 형사사법 공조협정의 체결을 추진키로 했으며 필요할 경우 협정체결 이전이라도 본질적인 협력이 가능하도록 의견을 모았다.
  • 원로시인 박양균씨

    예술원회원이자 원로시인인 박양균씨가 17일 상오4시 경북의대 부속병원에서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66세. 1950년 「문예」지 추천으로 등단,대구여상 경북대 등에서 교편생활을 한 박시인은 6ㆍ25때는 종군작가로 활동하기도 했다.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을 거쳐 83년이래 대한민국예술원회원을 역임해 왔으며 89년부터 영남일보 논설주간겸 전무이사로도 일해왔다. 발인은 19일 상오8시. 장지는 대구시 칠곡동 현대공원묘지. (053)422­1141
  • 내한한 84년 미 부통령후보 페라로여사(인터뷰)

    ◎“적극적 정치참여로 여성지위 향상을”/환경ㆍ인권문제 등에 관심 돌려야 지난 84년 민주당 먼데일 대통령후보의 러닝메이트로 미국 최초의 여성 부통령후보가 돼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바 있는 미국의 여성 정치지도자 제럴딘 A 페라로여사(55)가 15일 내한했다. 페라로여사의 이번 한국방문은 평민당초청에 의한 것으로 16일 하오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여성의 정치참여와 선거제도를 주제로 강연을 갖고 한국 여성정치인들을 만나 여성의 정계진출확대방안에 대해 의견을 교환한 후 판문점을 둘러보고 18일 출국할 계획이다. 『지금 이 시대는 여성들이 한국과 미국으로 구분하거나 국한할 것이 아니라 지구촌의 여성은 하나라는 기본생각을 갖고 공동으로 처한 문제를 함께 연구하고 풀어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 이를 위해서는 정계의 여성진출 확대와 함께 정계에서의 여성지위 향상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35년 뉴욕에서 태어난 페라로여사는 메리마운트맨해턴 야간대학에서 법학을 전공,변호사가 되고 하원의원에 당선(3선)된투철한 신념의 여성. 지금은 내일을 염려하는 미국인(ACT)을 통해 정계에서 활약중이다. 『미국은 노동력의 44%를 여성들이 맡고 있습니다. 이는 16세이상 여성의 54%,25∼44세 여성의 70%이며 1세미만의 아기를 둔 주부중 절반이 집밖에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페라로여사는 여성들이 직업을 갖고 일을 하는 것은 반드시 경제적인 문제만이 아니고 자기성취라는 긍정적 요소가 더 중요하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여성들은 안타깝게도 같은 일을 하면서도 남성보다 낮은 보수에 보조적 역할만 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현재 미국여성들은 환경ㆍ군축ㆍ인권문제에 많은 관심을 갖고 걱정을 합니다. 그렇지만 이렇다할 움직임을 못보이고 있는데 여성들이 힘을 결집한다면 좋은 미래사회도 가능하다고 믿습니다』 미국에서는 1백21명의 여성이 주요도시의 시장으로 재직하고 있으며 이밖에도 많은 여성들이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정계진출을 희망한다고. 남편 존 자카로씨(부동산업)와의 사이에 1남2녀를 두고 행복한 가정을 위해 알뜰주부로서의 노력도 잊지 않는 페라로여사는 92년 상원의원에 출마,본격적인 정치활동을 다시해 볼 계획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 12살 자녀ㆍ86살 노부모 명의로 투기/누가 어떻게… 수법과 사례

    ◎임야 2만평 미등기전매… 11억 차익/기업자금 35억 변태유출,토지 매입/7일만에 되팔아 1억7천만원 챙기기도 국세청이 11일 부동산 상습투기자 명단을 발표한 것은 투기근절 의지를 분명하게 보여준 조치라고 할 수 있다. 그 동안 여론의 거센 압력에도 불구하고 국세청은 사생활보호라는 차원에서 법규위반자를 제외한 일반투기자 명단공개를 자제해 왔다. 그러나 이번 발표를 계기로 국세청은 앞으로도 투기자명단을 계속 공개할 방침을 세웠다. 부동산 투기자에 관한한 더이상 개인의 인격을 보호해줄 가치가 없다는 공식선언인 셈이다. 이와 함께 이날의 발표는 「투기병」이 우리사회에 어느정도 만연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줬다. 목영자산부인과 병원장,장상철 동국산업고문,서미숙 우성관광부사장,이가헌 효성중공업전무 등의 예에서 보듯이 고소득층이나 사회지도층인사 및 친인척이 버젓이 상습투기에 나서는가 하면 중소기업인도 54명이 포함됐다. 또 투기를 위해서는 12살된 어린 자녀나 86세된 노부모의 명의도 사용하는 등 반윤리의 사례도 적지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조사진행과정에서 고위공직자나 재벌 친인척들이 다수 포함됐다는 후문에 비해 이번 발표대상중에는 이들이 거의 포함돼 있지 않아 일부에서는 선정기준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이에 대해 국세청측은 일부인사가 조사대상에 들어 있음을 시인하고 다만 상습투기자 기준에 미달,공개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날 발표된 주요 투기사례는 다음과 같다. ▲중개업자의 미등기전매=부동산중개업자인 마윤식씨는 지난 88년 12월 전주시 평화동일대 임야등 2만1천3백33평을 27명으로부터 사들여 코오롱건설에 미등기전매하는등 여러차례에 걸쳐 단기전매해 11억5천6백만원의 차익을 얻었다. 마씨는 양도소득세등 11억3백만원을 추징당하고 검찰에 고발됐다. ▲연불로 양도해 양도소득세회피=김석웅씨(72ㆍ서울 마포구 망원동 성도빌라 1의B동 2호)는 지난해 5월 서울 역삼동소재 대지를 성지건설에 팔면서 91년 4월까지 대금을 나누어 받기로 계약,잔금일이 남았다는 이유로 양도소득세를 신고하지 않았다가 5억3천4백만원을 추징당했다.▲기업자금 변태유출=삼신건재상사등 3개 사업체를 경영하는 한봉길씨(34)는 사업수입금 35억2천8백만원으로 일산주변 토지 8만여평을 구입한 사실이 드러나 법인세등 9억1천3백만원을 추징당했다. 국세청은 한씨가 경영하는 기업체 및 거래처에 대해서도 조사를 벌여 부가가치세등 16억2천4백만원을 추징했다. ▲지가급등지역 단기전매=은행지점장인 설명수씨는 서울 양재동 소재 대지를 10개월만에 되팔아 1억5천7백만원의 차익을 남기는 등 여러차례 투기에 나섰다. 1억1천백만원 추징. ▲자경농지 위장=조창순씨(41ㆍ여ㆍ직물도매업ㆍ서울서초구 방배동 880)는 서울 송파구 거여동의 논 3백45평을 사들인뒤 자신이 8년이상 경작한 사실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양도소득세를 내지 않았다. ▲초단기 전매=김종국씨(43ㆍ농업ㆍ충남 당진군 송악면 중흥리 484)는 당진일대 땅값이 오르자 지난해 9월 임야 2만여평을 산뒤 7일만에 팔아 1억7천8백만원을 취득했다. 양도소득세등 1억6천5백만원을 추징당한 동시에 검찰에 고발됐다. ▲미성년자 취득=경규성씨(서울 강서구 화곡동 346)는 지난 85년부터 아들(19ㆍ학생)명의로 김포등지에 8천여평의 부동산을 사들였다가 증여세등 1억1천만원을 추징당했다. ▲가등기로 양도소득세 탈루=제주해양개발대표 백형수씨(40)는 북제주군 초전읍 일대 임야 20여만평을 환매조건부(골프장건설조건)로 광주고속에 판뒤 환매기간이 지나자 광주고속 임직원명의로 가등기만 설정,양도소득세를 탈루했다. 본인이 양도소득세등 2억6천6백만원을 추징당했으며 기업과 거래처도 조사를 받아 법인세등 1억7천5백만원을 추징당했다.
  • 일,지급협상 양보 기미/오늘 일외상 내한

    ◎「3세」 제외 명문화 모색 【도쿄=강수웅특파원】 나카야마 타로(중산태랑) 일본외상이 오는 30일 서울에서 개최되는 한일 정기외상회담에서 노태우대통령의 방일을 위한 사전준비와 이와 관련한 재일한국인의 법적지위 보장,처우개선 등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 29일 서울로 향발한다. 이번 회담에서 일본측은 현안 가운데 최대의 초점이 되고 있는 지문날인 문제에 대해 『3세에 대한 적용제외 방침을 명확한 표현으로 나타낸다』는 선에서 한국측과의 타협점을 모색할 방침이다. 이같은 일본측 구상은 지난 26ㆍ27일 서울에서 열렸던 국장급 비공식 협의에서 일본측이 제시했던 ▲3세에 대한 날인의무면제를 현 단계에서 명문화하는 것은 곤란하다 ▲지문날인에 대신할 수 있는 신원확인 방법을 3세가 날인의무를 지게되는 16세에 달하는 14년후까지는 검토한다는 내용보다는 한발 앞선 것이다. 이번 회담에서 나카야마 외상은 『3세에 대해서는 다른 일반 외국인보다 우대한다는 것을 명확히 함과 동시에 면제의 뉘앙스를 강하게 나타낸다』는 선에서 한국측의양해를 구할 것으로 보인다. 나카야마 외상은 서울로 출발하기에 앞서 27일 밤 가이후 도시키(해부준수) 총리와 최종협의,지문날인 의무의 적용제외를 명확한 표현으로 나타낼 필요가 있다는 것에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 “어정쩡한 위상” 재일동포 지위/한­일협상 추이와 전망

    ◎일 무성의로 근본해결 못봐 또 숙제로/지문날인제,「특별호적제」로 대체될듯 노태우대통령의 5월 하순 방일을 앞두고 한일 양국간 최대현안인 재일한국인 3세의 법적지위개선문제와 관련,양국정부가 실질적인 의견접근을 봄으로써 그동안 1년넘게 끌어왔던 이들 핵심현안에 대한 「매듭짓기」가 초읽기에 들어선 느낌이다. 한일 양국정부는 30일 서울에서 양국 정례외무장관회담을 갖고 재일한국인문제에 관한 구체적인 합의사항을 확정,발표할 예정이어서 양국간의 「줄다리기협상」은 일단락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럴 경우 재일한국인 법적지위 개선이라는 장애물에 걸려 실현 자체가 우려되고 있던 노대통령의 방일도 예정대로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양측은 26ㆍ27일 이틀간 서울에서 열린 외무부 아주국장간 비공식 고위실무회담을 통해 그간 협상을 벌여온 이른바 4대악제도의 철폐문제에 대해 상당한 의견접근을 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4대악제도중에서 강제퇴거및 재입국허가,외국인등록증 상시휴대의무등 3가지는 재일한국인에 대한 적용과 처벌규정을 완화하는 선에서 원칙적인 합의를 보았고 지문날인제는 협정3세에게 적용을 원칙적으로 배제하되 대체방안을 마련한다는 데 의견을 접근시킨 것으로 전해졌다. 일 정부는 지문날인의 대체방안으로 「특별호적제」,모발 또는 눈동자등록제 도입등을 고려하고 있으나 「특별호적제」가 가장 유력한 것으로 외무부측은 분석하고 있다. 「특별호적제」는 3세이후에게 일본인과 똑같은 호적을 만들어 동등한 대우를 해주겠다는 것으로서 우리측은 이를 상당히 반기고 있는 눈치다. 그렇더라도 이같은 협상내용을 적용받는 협정3세(현재 4명)는 이제 만 한살에 불과하므로 이들이 만 16세가 되는 2005년에나 적용 가능한 실정이다. 자칫 이 문제로 인해 양국간 불편한 관계마저도 초래될 수 있었던 상항에서 이같이 의견접근을 도출했다는 사실은 앞으로의 양국관계 발전방향과 연관지어 볼 때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양국간 불행했던 과거를 완전 청산한다는 차원에서 볼 때는 이번 양국간의 의견접근은 당사자인 재일한국인들의 기대치에는 훨씬 못미치는 것이어서 국내에 일고 있는 반일감정과 함께 우리정부는 새로운 짐을 떠맡은 것으로 해석된다. 실제로 이번 협상을 보고 우리측이 너무 저자세로 타협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많다. 바로 이 점은 협정1,2세에 대한 차별철폐등 재일한국인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양국간에 또다른 협상이 새롭게 시작되어야 한다는 필연성을 강조하고 있다. 물론 외무부 당국자들은 『국가간의 협상에서 우리측의 요구를 1백% 관철시킬 수는 없다』는 현실론을 전개하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재일한국인문제는 여러가지 측면에서 한일 양국간 「아킬레스건」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 신중을 요한다고 하겠다. 당초 우리측은 재일한국인 후손의 법적지위개선문제와 관련,민단측의 요구를 대폭 수용한 9개항을 일본측에 제시했었다. 9개 항목은 3세이후의 자자손손에 대한 영주권 자동부여를 비롯,이른바 재일한국인 차별의 상징인 ▲지문날인제 폐지 ▲외국인등록증 상시휴대의무 철폐 ▲재입국허가제 폐지 ▲강제퇴거조항 철폐 등 4대악제도의 개선과▲국ㆍ공립학교의 교사채용 허용 ▲지방자치제 공무원 임용확대 ▲지방자치제 참정권허용 ▲민족교육보장 등이다. 우리측은 이중에서도 특히 4대악제도의 철폐에 온갖 외교적인 노력을 기울여 왔다. 그러나 일본측은 법무성,경찰성 등 관계성ㆍ청간의 이견과 「다른 재일외국인과의 형평」등을 구실로 문제해결에 미온적이고 비타협적인 자세를 견지함에 따라 그동안 8차례에 걸친 양국 외무부 실무진간의 공식ㆍ비공식회담은 계속해서 난항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급기야 우리측은 지난 2월 외무부의 대통령 연두보고때 재일한국인문제 해결과 노대통령의 방일을 연계시킨다는 강력한 방침을 정해 일본측에 다시한번 사태해결의 성의있는 자세를 촉구한 바 있다. 우리측의 이같은 강경한 자세에도 불구하도 일본측의 태도변화가 나타나지 않자 우리측은 이원경주일대사를 본국소환하고 박태준민자당최고위원대행을 일본에 급파,일본측 주요 정계인사들과 정치적 절충을 벌이도록 하는 등 「비상카드」를 사용했다. 그러나 「일본측의 성의 있는 자세로의 전환」이라는 소망스러운 결과 대신 오히려 「국내의 대일비판여론이 악화」되는 심각한 국면만을 초래했다. 일본측도 사태의 심각성을 어느정도 인식,다케시타 노보루(죽하등) 전총리를 방한시켜 정치권의 지원을 약속했으나 막강한 영향력을 보유한 일 행정부는 그때까지도 요지부동이었다. 그렇지만 일본측도 노대통령 방일을 불과 두달여 앞둔 4월초부터 태도변화를 보이기 시작했다. 물론 전폭적인 자세전환은 아니지만 일본측이 이같이 방향타를 바꾼 이유는 노대통령의 방일이 무기연기되거나 취소될 경우 양국관계에 미칠 엄청난 파문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일 정부로서도 가이후(해부)정권의 안정을 위해서는 대한관계를 원만하게 유지해야만 되는데 이를 가능케 하는 사안이 바로 노대통령의 방일과 이에따른 아키히토(명인) 일왕의 조만간 방한실현이라는 것이다. 때맞춰 우리측도 4대악제도의 완전철폐에서 두가지 문제를 축소한 지문날인 및 외국인등록증 상시휴대의무 철폐라는 최종 양보선을 제시,한발짝 물러섰다. 따라서 이들 두가지 현안이 핵심현안으로 압축됐고 양국정부는 외무부아주국장간 비공식 고위회담을 통해 이같은 절충을 벌였다고 볼 수 있다. 여하튼 양측은 노대통령의 방일이후에도 재일한국인문제의 원만한 타결을 위해 계속 협의해 나간다는 방침은 서 있다. 그러나 일본측이 대사를 치른이후에 얼마만큼의 성의를 보일지는 미지수다. 결국 우리정부는 이 문제의 협상시한인 내년 1월16일까지 일측을 협상테이블로 유도,완전한 해결을 이끌어내야 하는 역사적인 짐을 안게 된 셈이다. 이 문제에 관한 협상은 어디까지나 과거사에 대한 지나친 집착에서가 아니라 21세기를 앞둔 미래지향적인 양국관계 발전의 차원에서 성실하게 추진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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