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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국시대 제사유물 1백점 발굴/전주박물관,부안 격포리 유적지서

    삼국시대로 추정되는 제사유적이 우리 나라에서는 처음으로 발견됐다. 국립전주박물관 학술조사단은 1일 전북 부안군 변산면 격포리 죽막동 유적지에 대한 발굴조사결과 1백여점의 고대 제사용구를 수습하는 등 이곳이 5세기말 6세기초 백제시대의 제사유적임을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조사단은 이날 발굴조사현장과 함께 우리나라에서 처음 발견된 유공원판 70여점과 검형품 11점을 비롯,곡옥 5점,갑옷모제품 1점등 석제품과 말머리와 말몸통등 토제품,청동방울과 철제거울,토기조각등을 공개했다. 고대 제사유적은 지금까지 일본에서는 후쿠오카현의 오키노시마유적등지에서 발굴되었으나 국내에서 발굴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 청소년흡연과 담배자판기(사설)

    우리의 청소년 흡연율이 급격히 상승되고 있는것 같다.이번 한국금연운동협의회 조사자료에 의하면 고3 남학생의 흡연율이 44.8%에 이르렀다.고2 남학생은 38.2%이고 고3 여학생은 4.3%이다.이번 조사와 같이 전국규모 중·고생 흡연율 조사에서 가장 광범위했던 자료에 연세대 것이 있다.88년부터 90년까지 지속적으로 1만2천명 샘플을 점검해 본 일이 있는데 이때만해도 남고생의 경우 88년 23.9%,90년 32.4%였다.남중생들도 꾸준히 늘고 있다.88년 1.3%,90년 3.2%에서 이번에 3.8%가 되었다. 실은 적잖이 우리에게서도 금연운동은 계속되고 있다.최근에는 새마을열차에 전면 금연을 실시한다는 원칙까지 세워졌다.그럼에도 담배판매량은 실제로 줄어들지 않고 있다.오히려 늘고 있다.전체적으로 보아 성인남자들에게서만 금연운동이 먹혀들고 있고 청소년이나 여성들에게서는 급격히 늘고 있는 증상이 있기 때문이다.결국 우리의 금연운동은 좀 더 효율적인 방법을 찾아야 할것 같다. 담배를 줄이자는 사회적 분위기와 현실적으로 그 효과가 이루어지지 않는 괴리현상속에는 한쪽에서는 담배를 끊자고 하면서 또한쪽에서는 담배판매의 촉진을 할 수밖에 없는 담배판매제도의 문제가 있다.담배인삼공사는 외산담배들과 경쟁을 해야 하고 또 군단위에서는 담배판매량에 따라 재정의 규모가 확보된다는 조건을 갖고 있다.실질적으로는 더 팔아야 하는 쪽의 입장이 우세한 셈이다. 그렇다 해도 청소년의 흡연율 증가에 대한 대책은 좀 더 신중히 들여다 볼 필요가 있을것 같다.그 중 대표적 항목이 담배자판기이다.담배자판기가 청소년들의 흡연을 더 쉽게 해준다는 관점은 옳은 것이다.이미 여러나라에서 청소년 타락의 원흉은 자판기이다라는 지적이 나와 있다.일본과 독일에서는 자판기로 술까지 팔고 있어 이 자판기의 철거운동이 시작돼 있다. 우리에게서는 지난달부터 부천YMCA가 담배자판기의 철거문제를 제시하기 시작했다.그러나 담배인삼공사의 입장은 전혀 다르다.지난해까지 1만1천5백대의 담배자판기가 전국에 설치되었는데 이중 78%가 외국산담배자판기이다.따라서 국산담배자판기를 금년에는 2천5백대쯤 더 늘려야겠다는게 담배인삼공사의 계획이다.그리고 이미 이 계획중 1천대분을 더 늘렸다. 이 모순은 청소년을 더 중시하는 관점에서 재고해보는 것이 옳을것 같다.굳이 따질 것도 없이 미성년기부터의 흡연은 성년기부터의 흡연보다 더 건강에 나쁘기 때문이다.의학적 자료에 의하면 16세이하에서 담배를 피우기 시작한 사람의 폐암에 의한 사망률은 20세이상에서 시작한 사람보다 3배,비흡연자보다 10배이상 높다. 물론 담배자판기쯤을 줄여보는 것으로 청소년의 흡연율을 근본적으로 축소시킬 수는 없다.지금 이들이 왜 담배를 피우느냐에 스트레스해소라는 답을 가장 많이 하고 있기 때문이다.보다 청소년답게 발랄하고 즐겁게 지낼 수 있는 여러조건들이 있어야 한다.뿐만 아니라 담배가게에서 무심히 청소년에게 담배를 주는 일도 없애야 한다.우리에게서 금연운동은 이제 청소년건강운동을 먼저 해야만 하게 되었다.
  • 미 통계청이 밝힌 90년 인구센서스

    ◎히스패닉·아주계 급증… 빈부격차 심화/총인구 2억4천여만… 외국태생 8%/아주계이민 3배이상 늘어 730만/42%가 중산층미달… 사회적 갈등 요인으로 미국의 총인구 2억4천8백70만명 가운데 외국태생이 1천9백70만명으로 8%를 차지,미국역사상 가장 많은 숫자를 기록하고 있다.또 지난 10년사이 미국의 중산층은 줄어든 반면 부익부 빈익빈현상은 더 심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미인구통계청이 29일 발표한 90년3월기준 인구센서스 결과에 따르면 가정에서 영어이외의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은 3천2백만명에 달하며 이중 40%이상은 영어를 잘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10년만에 실시된 이번 센서스는 1천7백70만 전가구를 대상으로 임금수준도 조사,연간수입이 중산층의 하한기준인 2만5천달러 미만인 가구가 42%로 10년전의 31%에 비해 크게 늘어났다. 인종별 분포를 보면 유럽계의 백인이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것은 변함이 없으나 남미계인 히스패닉과 아시아계가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유럽계를 세분하면 독일계가 5천7백90만,아일랜드계가 3천8백70만,영국계가 3천2백60만명이며 다음으로 이탈리아계·폴란드계가 대종을 이루고 있다. 아프리카 후예인 흑인은 약 3천만명이며 히스패닉은 2천2백30만명으로 흑인 인구를 뒤쫓고 있다.아시아계는 7백30만명이며 아메리카 인디언과 에스키모는 1백90만명으로 집계됐다. 지난 10년사이 멕시코태생의 이민은 4백40만명으로 두배나 늘어났고 아시아계의 이민도 5백40만명이나 증가됐다. 특히 이민숫자가 급격히 늘어난 지역은 로스앤젤레스·마이애미·시카고·워싱턴 등 대도시지역이다.지난 10년사이 이민인구가 가장 많았던 주는 캘리포니아로 전체 주인구의 10.9%를 차지했고 다음이 뉴욕(6.6%),하와이(6.0%),플로리다(5.1%),뉴저지(4.8%)순이다. 인구학자들은 이민인구의 급격한 증가에 따른 문화적·경제적·사회적인 불균형 요소들이 지역공동체내에 긴장을 일으키게 된다고 지적,행정부나 의회가 이같은 인구학적인 차이를 해소하는데 보다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가구별 소득수준을 보면 연간 5천달러미만의 극빈자가 6.2%,5천이상 1만달러미만이9.3%,1만이상 1만5천달러미만이 8.8%이며 7만5천이상 10만달러미만은 5.1%,10만달러이상은 4.5%로 나타났다. 빈곤층으로 분류되는 4인가족기준 연간수입 1만3천3백59달러 미만인 사람은 13.1%인 것으로 나타났다.반면 고소득층은 20년전엔 전체인구의 10.9%였으나 이번 센서스에선 14.7%로 늘어나 빈부의 격차가 심화되고 있음을 나타내주고 있다. 미국민들의 주택비용도 크게 늘어 주택소유자들의 월평균상환액은 7백37달러로 10년전에 비해 27%가 올랐고 임대주택의 월세도 평균 4백47달러로 역시 16%가 상승했다.가구수입의 30%이상을 주택비용으로 지불하는 가구가 전체의 40%에 달하고 있다. 16세이상의 1억9천1백80만명 가운데 노동인구는 65.3%인 1억2천5백10만명이고 실업률은 6.3%로 나타났다.신체장애자는 1천2백80만명으로 10년전보다 50만명이 늘어났으며 이가운데 39%는 노동을 하고 있다. 10년만에 조사된 이번 센서스는 총체적으로 보아 미국사회의 경제사회적 계층구조가 급격히 변하고 있으며 인종적 다양성과 함께 연령·가족구조도 서서히 변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고 관계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 6월 문화인물에 유성룡선생/「징비록」국역등 기념사업 다채

    「6월의 문화인물」에 조선시대의 뛰어난 정치가이자 학자인 서애 유성용선생(1542∼1607)이 선정됐다. 문화부는 임진왜란 발발 4백주년이 되는 6월을 맞아 뛰어난 정치역량으로 전쟁을 승리로 이끈 선생의 업적과 사상을 오늘에 재조명하기위해 그를 「이달의 문화인물」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호국보훈의 달이기도 한 6월을 맞아 문화부는 서애선생을 기리며 호국선열에 대한 추모와 자주국방의식을 새롭게 하는 다양한 사업을 국가보훈처,경상북도와 공동으로 추진한다. 서애선생은 21세부터 이퇴계문하에서 성리에 관한 실천적 학문을 탐구하면서 26세에 문과에 급제,중요관직을 두루역임한 뒤 임란중에는 영의정으로 관서도체찰사와 삼남도체찰사를 겸하며 외교·군무·민정 등에서 뛰어난 정치역량을 발휘했다. 그는 임란직전에는 외교와 통상을 통해 일본을 회유하는 한편 이순신·권률 등의 명장을 천거하고 성곽의 축조등 군비확충을 통해 대비했으며 임란이 일어나자 국민을 결집시켜 민관합동으로 나라를 위기에서 구해냈다. 그가 전쟁중에 겪은 승패의 자취를 반성·고찰해 집필한 「징▦록」은 임란에 관한 가장 가치있는 문헌으로 평가되고 있으며 그외에 「신종록」「영모록」「관화록」등과 문집 10여권이 있다. 주요 기념행사는 다음과 같다. ▲특별전시회 16일∼7월5일 국립중앙박물관 ▲서애사상강연회 국립중앙박물관 ▲유적지답사 27,28일 안동하회마을·영주 병산서원 한국문화재보호협회 ▲서애선생 임란당시 활동 특강 14일 안동 하회별신굿전수회관 ▲세미나 20일 프레스센터 ▲징비록국역사업 93년발간 서애선생 기념사업회등
  • “항일영웅” 김좌진장군 생가 복원/홍성 행산2천5백평 말끔히 단장

    ◎사당 세워 성역화… 국민교육장 활용 만주 청산리전투에서 일본군 3천여명을 궤멸시킨 백야 김좌진장군의 생가가 충남 홍성군 갈산면 행산리 생가터에 복원돼 26일 준공됐다. 김장군의 생가는 홍성군이 4억6백만원의 사업비를 들여 2천5백여평의 부지에 지난해 5월부터 본채·문간채·행랑채·외양간 등은 물론 담장·도로·조경까지 말끔히 단장,옛 모습대로 복원한 것이다. 군은 민족의 영웅이며 구국운동의 선구자인 김장군의 생가복원에 이어 사당건립등 성역화사업을 벌여 김장군의 독립정신을 계승할수 있는 국민교육장으로 활용할 방침이다. 김장군의 생가는 그동안 돌보는 사람이 없어 허물어져가 충남도에서 지난 89년12월 도 기념물 제76호로 지정하기에 이르렀고 이어 홍성군도 김장군의 애국심과 남아의 기개를 기리기 위해 생가복원에 나섰다. 특히 군은 이 지역성역화사업비로 지난3월 정부에 40억원의 국비지원을 요청내놓고 있다. 이날 생가복원준공식에는 장군의 손자인 김경민·김을동씨등 유족과 이강훈광복회장등 독립유공단체 관계자등 2천여명이 참석했다. 백야 김좌진장군은 1889년 이곳에서 태어나 3세때 아버지를 잃고 편모슬하에서 성장했다. 16세때인 1905년에 대한제국 무관학교를 졸업,고향에 돌아와 50여가구의 노비들에게 당시 2천석을 추수하던 전답을 나눠주고 그들을 해방시켜줘 민주개화의 선구적 역할을 다했다. 20세때인 1909년에는 이봉창과 경성고아원을 경영하면서 서울 관철동에 이창양행과 신의주에 염직회사를 설립해 국내외의 연락기관으로 이용하는등 항일운동과 육영사업에 힘을 쏟았다. 29세때인 1918년에는 애국지사 윤치성·신현대등과 광복단을 조직,단장직을 맡은 뒤 중국 길림성으로 가 김동삼·조소앙등 만주지역 독립운동가 39인의 이름으로 독립선언문을 국내외에 선포하고 사관양성소를 설립,보병 1개연대를 양성했다. 김장군은 1920년에 대한독립군 총사령관으로 이범석·홍범도장군 등과 같이 만주 청산리에서 일본군 3천여명을 궤멸시켜 독립운동사상 최대의 전과를 올렸다. 김장군은 1962년 3월1일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받았다.
  • 6세여아 실종 닷새째/혼자 집보던중… 저금통 찢겨

    ◎유괴 가능성 수사 【청주=김동진기자】 여섯살짜리여자 어린이가 실종된지 5일이 지나도록 아무 소식이 없어 경찰이 공개수사에 나섰다. 경찰에 따르면 지난 18일 하오5시쯤 청주시 복대동 78의1 정현희씨(40·목공)집에서 혼자집을 보던 정씨의 딸 하나양(6)이 없어진 뒤 지금까지 아무런 소식이 없다는 것이다. 하나양의 어머니 김점식씨(31)는 『외출한 뒤 5시쯤 돌아와 보니 장롱속에 넣어둔 돼지저금통이 칼로 찢겨진 채 안에든 15만원 정도의 동전이 없어졌고 방바닥위에는 깎은배가 먹지 않은 상태로 있었으며 하나양도 없었다』고 말했다. 경찰은 단순 미아사건일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으나 정씨 부부가 평소 집을 자주 비워 왔다는 점을 들어 이들이 집을 비운 사이 돈을 훔치기 위해 들어온 범인이 마침 인근 어린이놀이터에서 놀다 들어온 하나양에게 발각되자 유괴했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 수사를 펴고 있다.
  • 대사 3명 이동/베네수엘라 윤태현/몽골 김교식/파라과이 경창헌

    정부는 23일 베네수엘라대사에 윤태현외무부관리관,몽골대사에 김교식 수리남대사,파라과이대사에 경창헌 외교안보연구원연구관을 각각 발령했다. 김재훈 베네수엘라대사와 권영순 몽골대사는 본부에 근무토록 했다. ◇윤베네수엘라대사=▲서울·56세▲외대 서반아어과졸▲스페인 마드리드국립대 정치학 석·박사▲외대 부교수▲에콰도르·페루대사 ◇김몽골 대사=서울·58세▲외대 독어과졸▲스웨덴공사▲함부르크총령사▲서울올림픽조직위 의전국장▲수리남대사 ◇경파라과이대사=▲충북단양·53세▲서울대 중문과졸▲뉴욕부총령사▲중국공사▲외교안보연구원 연구관
  • 민자 당3역 경질

    ◎사무총장 김영구/정책의장 황인성/원내총무 김용태씨/정무 1엔 김용채씨… 주내 소폭 개각 민자당총재인 노태우대통령은 23일 사무총장에 김영구의원,정책위의장에 황인성14대당선자,원내총무에 김용태의원,정무제1장관에 김용채의원을 각각 임명하는등 당정개편을 단행했다. 노대통령은 이와함께 다음주에는 소폭의 개각을 단행할 것으로 알려졌다. 여권의 고위관계자는 『민자당경선의 종료에 따라 당정쇄신 노력의 일환으로 다음주에는 보각수준의 개각이 있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14대국회에서 민자당 전국구의원으로 활동하는 최병렬장관의 교체여부와 관련,『최장관이 총액임금제추진등에 대한 확고한 자세로 높이 평가받고 있는데다 앞으로 예상되는 노사문제의 심각성을 고려해 교체대상에서 제외된 것으로 알고있다』고 말했다. 이날 단행된 당정개편은 민자당이 경선을 통해 대통령후보를 선출함에 따라 김영삼대통령후보 체제로 당을 정비,14대대통령선거및 개원국회에 대비하기 위한 것으로 분석된다. 노대통령은또 민자당이 경선을 통해 대통령후보를 선출한 만큼 당내계파는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차원에서 범계파적으로 다선위주의 인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대통령은 이날 상오 김영삼후보로부터 당정인선에 대한 전화건의를 받고 이를 재가,이날 하오 신임 당4역을 임명했다. 민자당은 노대통령의 당4역 임명에 따라 내주중 의원총회를 열어 신임 김원내총무를 인준하고 뒤이어 사무부총장및 원내부총무 대변인등 중하위직 후속인사를 단행할 예정이다. 신임 당4역의 약력은 다음과 같다. ◇김사무총장 ▲서울·51세▲동국대▲민정당총재비서실장▲11·12·13·14대의원▲국회 재무위원장 ◇황정책위의장 ▲전북 무주·66세▲육사4기▲육본 경리감▲조달청장▲국무총리비서실장▲교통·농림수산부장관▲아시아나항공회장 ◇김원내총무 ▲대구·55세▲서울법대▲조선일보정치부장·편집국장▲11·12·13·14대의원▲국회 재무·예결위원장▲민자당 정책위의장 ◇김정무제1장관 ▲경기 포천·59세▲조선대▲대한태권도협회장▲7·9·12·13·14대의원▲국회 건설위원장
  • 공장절반 “스톱”… 북한경제 붕괴 위기/NYT기자가 본「92평야」

    ◎육류배급 중단… 대중·소 교역열차도 격감/생존위해 시장경제 도입·외자유치 애써 뉴욕 타임스지는 21일 극심한 연료와 식량난으로 북한경제는 붕괴직전에 직면해 있으며 이를 타개하기 위해 김일성은 그가 몰아냈던 일본인들이 다시 돌아오기를 고대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북한을 직접 돌아보고 쓴 1쪽 전면에 걸친 르포기사에서 데이비드 생거기자는 북한이 새로운 경제시대를 인식하기 시작했으며 이웃 독립국가연합과 중국의 남부지방에서 실험되고 있는 폭넓은 시장경제체제도입을 고려하고 있는 듯하면서도 그렇다고 그들의 철권통치체제를 바꾸려는 의도는 조금도 엿보이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생거기자는 북한이 이번달 1백45명의 일본 중국 미국 한국의 학자 경제계인사들의 입국을 허용한것이 바로 북한이 더이상 홀로 살수없다고 판단한 명백한 증거라고 말하고 그가 만난 북한관리들은 김일성정권이 6·25이후 40년래에 가장 어려운 시련에 처해 있음을 솔직히 시인했다고 전했다. 김달현 부총리는 「왜 서방자본을 유치하려 하느냐」는 질문을 받고 『이제 지구상에는 불과 몇개의 사회주의 국가가 남아있을 뿐이다.우리는 그중의 하나다.그러나 우리는 기술개발을 원한다』면서 『그것은 우리의 생존을 위해 불가피한 일』이라고 답변했다. 슬쩍 슬쩍 지나가는 여행자의 눈으로도 평양이외의 북한경제는 크게 휘청거리고 있음이 분명했고 농촌지역 공장굴뚝에서 연기가 나는 경우가 매우 드물었는데 대체로 50∼60%의 공장만이 가동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고 보도했다. 1인당 GNP 1천달러 미만의 북한이 언제라고 풍족했던것은 아니지만 지금의 위기는 옛 소련이 지난 89년 무역대금의 경화결제를 요구한 이래 결정적으로 심화됐다면서 한 외교관의 말을 인용,한달에 배급받기로 된 2.2파운드의 육류공급마저 받기가 어려운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생거기자는 북한에서는 북한의 실정을 파악할 어떤자료도 구할수 없었다고 밝히고 그러나 중국 독립국가연합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동북부 한 두만강 철교의 경우 수년전까지만 해도 하루 5∼6대의 기차가 화물과 근로자를 실어 날랐었으나 지금은 하루1대가 될까말까하다는 한 철도원의 말을 인용했다. 북한의 고위관리들은 누구나 외국의 투자 유치를 강조했는데 특히 동북아경제포럼의장인 조리재씨는 『일본사람들이 잠시 관망하고 있으나 그들이 곧 북한에 오는것은 불가피하다』고 역설했다.그는 그 이유로 『그들은 전에도 여기 있었다』고 답변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생거기자는 그와 동행한 한 일본인 실업인(그는 16세때까지 북한에서 살았었다)은 『북한을 다시 보게 돼 매우기쁘다.그러나 한번이면 족하다.다시 올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고 기사의 끝을 맺었다.
  • 외국인 지문날인 폐지법안/일 참원통과… 내년 시행

    【도쿄=이창순특파원】 재일 한인 등 영주자에 한해 지문날인제도를 폐기하는 것을 골자로 한 외국인등록법 개정안이 19일 일본 참의원 법무위원회에서 만장일치로 가결됐다. 이 법안은 20일 참의원 본회의에서도 가결,성립돼 내년 1월부터 시행될 전망이나 구체적인 시행일은 앞으로 정령에 의해 명시될 예정이다. 외국인등록법 개정안의 골자는 ▲재일 한국인·북한인·대만 출신자들을 중심으로한 영주자(64만명)에 대해 지문날인을 폐지한다 ▲대신 사진과 서명 이외에 배우자의 인적사항 등 가족 관계를 등록한다 ▲영주 자격이 없는 1년 이하의 장기체류자(약 32만명)는 지문날인을 계속한다는 것 등이다. 중의원은 법안 부칙을 ▲주거지나 근무처 등에 대한 변경사항의 신고를 태만히할 경우 벌칙을 「징역,금고」에서 20만엔 이하의 벌금으로 완화한다 ▲경과조치로서 시행 때까지 사이에 16세가 돼 지문날인 의무가 생긴 영주자의 날인을 면제한다는 내용으로 수정을 가한 바 있다.
  • 뚝심과 결단의 역정40년… “정치거산”/김영삼후보가 걸어온 길

    ◎한번 만나면 “내사람”… 뛰어난 친화력/반독재투쟁 선봉… 숱한 박해 받기도/요즘도 아침조깅으로 건강다지고 경제공부에 열중 김영삼대표는 이제 출발점에 섰다. 「불굴」과 「좌절」이 교차됐던 기나긴 영욕의 정치터널을 지나 이제 명실상부한 집권여당의 대통령후보로 우뚝 선것이다. 긴세월,대권을 향한 「김영삼집념」은 이제 실현됐다. 그가 집권여당의 대권후보로 거듭나리라고 믿었던 사람은 없었다. 이것은 역사는 끊임없이 전진한다는 사실,또 내부적으로 극적인 반전효과를 지닌다는 속성을 여실히 보여준 것이다. 「미래의 대통령 김영삼」­중학시절 하숙방에 써 붙였다는 대망대로 그는 꾸준히 걸어왔다.특유의 뚝심으로 목표를 향해 밀어붙였다. 따라서 그는 격변하는 정치 소용돌이 속에서 항상 출발점에 서 있는 것처럼 보여졌다.목표와 그를 분리해 생각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기지 않았다. 물론 집권당의 대통령후보가 됐다고 해서 곧바로 대통령이 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가장 유리한 고지에서 목표를 향하고 있다는 사실은 어느 누구도 부인하기 어렵다. 그가 이자리에 이르기까지는 핍박과 고통의 연속이었다. 이 과정에서 그는 단단해졌고 또 그의 표현대로 『결과에 승리가 있을뿐 패배를 생각해본적 없다』는 자기 암시가 가능해진 것인지도 모른다. 「40대기수 김영삼」「독재타도 김영삼」「군정종식 김영삼」「문민정치 김영삼」「큰정치 김영삼」. 그의 40년 정치역정을 대표하는 수사들이다. 「40대 기수론」도 그가 제창했던 구호였다. 또 반독재투쟁을 벌이면서 여러차례의 가택연금,23일간의 단식,국회의원직 제명,야당총재 직무정지등 숱한 고난을 겪었다.심지어는 가택연금중 자신의 장남 결혼식에 참석하지 못하는 등 인간적인 비애도 감수해야 했었다. 집권여당 대표로 변신한 이후에도 끊임없이 내부의 경쟁자들과 싸워왔고 이제 승리자로 남겨졌다. 그의 정치적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현재로서는 「타고난 감(감)의 정치인」「뛰어난 결단의 승부사」라는 그의 별칭에 그 기원을 둘수 있다. 또 40년 정치역정중 남달랐던 친화력을 꼽을수 있다. 여야로 나뉘어상대방 헐뜯기에 열중하던 시절,야당총재이던 YS를 남보다 앞서 비난했던 한 여권인사는 『가까이에서 보니 인간적인 매력을 느꼈다』『그의 정치적 투쟁과 소신이 새삼 돋보였다』고 지지로 돌아선 배경을 밝혔다. 무엇보다도 그의 화려했던 정치경력은 그가 정치 거목이었음을 입증한다. 의정사상 최연소인 26세로 3대국회의원 당선(54년 경남 거제)이후 5·6·7·8·9·10·13·14대 당선 기록은 현존하는 정치인중 최다선이다. 그의 정당생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화려하다.의정단상에 오른뒤 원내총무 5회,대변인 2회,4차례의 야당당수,13대대통령후보,여권의 2인자 등을 거치면서 「최연소 의원」「최장수 원내총무」「최연소 당수」등 거듭 신기록을 경신했다. 야당시절 투쟁경력도 그의 무게를 뒷받침하고 있다. 유신반대,80년이후 두차례에 걸쳐 2년간 가택연금,83년 5월18일부터 6월9일까지 민주화를 요구하며 23일간 단식,87년 6월항쟁의 선두에 나섰던 것이 대표적인 투쟁이다. 그가 당시 인용했던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는말은 암울했던 시대적 상황과 함께 지식인들의 유행어가 되기도 했다. 그는 그러나 화려했던 야당시절,70년 신민당 대통령후보 경선전과 87년 대통령선거 낙선,88년 4월총선 패배등 뼈아픈 좌절의 시기를 맞기도 했다. 신민당 대통령후보 선거에서 승리를 장담했던 그는 후보경선 전날밤 승리를 낙관,후보수락 연설문을 다듬다가 마지막까지 대의원 포섭을 벌였던 김대중씨에게 2차결선투표에서 역전패하는 쓰라림을 맛보았다. 또 87년 대선에서 후보단일화 실패후 대통령선거에서도 낙선했고 뒤이은 총선에서도 제1야당의 자리마저 평민당에 넘겨주는 시련을 겪어야 했다. 그는 결국 민정·평민·민주·공화등 4당구조의 불안정을 극복하기 위해 「구국의 결단」이라는 명분아래 3당통합을 결행,집권당 2인자 자리를 확보했다. 지난 89년 6월 당시 민주당총재 자격으로 소련을 방문한데 이어 90년 3당통합후 민자당대표자격으로 미수교국이었던 소련을 다시찾아 고르바초프대통령을 면담,한소수교의 물꼬를 트는등 정당외교사에 새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듣기도했다. 그는 여당으로 변신한후 「감각과 이론」을 겸비한 정치인으로 거듭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으며 특히 경제전문가들로부터 거의 매일 경제강의를 받는등 국가의 경제활력제고에 남다른 관심을 쏟고 있다. 27년 12월20일생으로 금년 65세인 그는 요즘도 새벽 5시30분부터 6시30분까지 상도동자택 인근 야산에 올라 4㎞씩 조깅을 하며 건강을 다지고 있는데 조깅을 시작한지 25년동안 비가오나 눈이오나 해외출장중일때도 하루도 빠짐없이 계속하고 있어 그의 끈질긴 승부근성의 일면을 엿보게 한다. 늘웃는 얼굴로 사람을 대하지만 그는 유신직후 가택연금을 당하자 양주 두병의 주량과 하루 서너갑씩이나 피우던 담배를 하루아침에 끊을만큼 「독기」도 있다. 김대표는 6남매중 외아들로 부인 손명순여사와의 사이에 2남3녀를 두고 있으며 마산에 거주하는 부친 김홍조옹(81세)에게 매일 아침저녁 문안전화를 드리는등 극진한 효자로도 알려져 있다. 아무튼 김대표는 『세상을 살아가는데 과거도 현재도 중요하다.그러나 어제보다 오늘,오늘보다는내일이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제 더 중요한 내일을 위한 출발인 것이다. ○김영삼후보 연보 ▲54∼58년 제3대 민의원 ▲60∼61년 제5대 민의원 ▲63년 신민당 부산시 당위원장 ▲63∼67년 제6대 국회의원,민정당 선전부장,민중당 원내총무겸 대변인 ▲67∼72년 제7대 국회의원,신민당 원내총무,정무위원 ▲71∼72년 제8대 국회의원,한국문제연구소 소장 ▲73∼79년 제9대 국회의원,신민당 부총재,정무회의 부의장,총재겸 지도위원회 의장,정무회의 의장 ▲74년 미타우슨 주립대 명예문학박사학위 수여 ▲76년 신민당고문 ▲79∼80년 제10대 국회의원,신민당총재 ▲79년 총재직무집행 가처분,의원직제명 ▲80년 정치활동규제 ▲81년 민주산악회 결성 고문 ▲82∼83년 2년동안 가택연금 ▲83년 단식투쟁(23일간) ▲84∼87년 민추협 공동의장 ▲85년 민족문제연구소 고문 ▲86∼87년 신민당 상임고문 ▲87년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 고문 ▲87년 통일민주당 창당준비위원장 ▲87∼88년 통일민주당 총재,대통령후보 ▲88년 제13대국회의원 ▲88∼90년 통일민주당 총재 ▲90년 민자당 대표최고위원 ▲91년 윤봉길의사 의거 제6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장 ▲92년 제14대 국회의원 ­40대 기수론(71년) ­정직과 진실이 승리하는 사회(87년) ­민주화 구국의 길(87년) ­나의 결단(87년) ­지도자의 길(몽고메리저) ­생을 뜻있게 보내려면(윌리엄 J 래이리 저)
  • 「6시간 축제」 민자전당대회 이모저모

    ◎“힘모아 대선승리” 다짐과 환호와…/“후보선출” 선언에 전원 기립축하/수락연설 도중 16차례 박수받아/노 대통령,“당대회 용광로삼아 무쇠결속 이루자” 14대 대통령후보 선출을 위한 민자당의 제2차전당대회가 19일 상오 전체대의원 6천8백82명중 6천7백13명이 참석한 가운데 서울 올림픽체조경기장에서 열려 시종 차분한 분위기속에 6시간동안 진행됐다. 이날 대회의 하이라이트는 대통령후보 선출 행사.이종찬후보의 경선거부로 사실상 단독후보가 된 김영삼후보가 유효표 66.3%의 높은 지지율로 민자당 대통령후보로 결정됐다. ○의장 만장일치 선출 ▷대의원입장◁ 이날 대회는 당총재인 노태우대통령이 김대표와 김종필·박태준 최고위원및 당3역등 지도부와 함께 대회장에 입장하면서 시작. 이날 대회장에는 「6·29는 민주마당,5·19는 화합마당」 「뜻모아 후보선출 힘모아 정권창출」등의 대형 현수막이 나붙어 분위기를 진작. 이날 공식행사는 상오10시 사회자의 성원보고로부터 투표직전까지 1시간동안 당기입장,당약사 보고,의장단선출,총재·최고위원선출,총재치사순으로 예정된 순서에 따라 일사천리로 진행. ▷의장단선출◁ 김종필최고위원의 개회선언에 이어 임시의장으로 선임된 정석모의원은 곧바로 전당대회의장단 구성안건을 상정,대의원들의 만장일치 박수속에 박준규국회의장을 전당대회의장으로,구용상 전남 화순지구당위원장과 김장숙전국구의원을 부의장으로 하는 의장단을 선출. 박의장은 인사말에서 『2백만 당원들이 마시는 우물속에 돌을 던지거나 침을 뱉는 일이 없도록 협조해달라』며 경선을 거부한 이후보 지지대의원들의 돌출행동을 사전 경계하며 김후보에 대한 압도적 지지를 유도. 대의원들은 또 노총재를 비롯,김대표와 김·박최고위원등 현수뇌부의 재선출을 결의. ▷총재연설◁ 노대통령은 총재연설을 통해 『후보의 자유경선은 당원동지 모두의 뜻이며 국민의 바람』이라고 강조하고 『바로 이것이 6·29선언의 정신을 한차원 더 높게 승화시키는 일이라 믿고 공정한 경선이 이뤄지도록 최선을 다했다』고 언급. 노대통령은 그러나 『후보경선에 나섰던 동지가 대회를 불과 이틀 앞두고 납득할 수 없는 이유를 들어 경선을 거부했다』고 이후보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표출한뒤 『지금 이순간 나의 심정은 침통하기 이를데 없다』며 참된 경선이 되지못한 아쉬움을 표시. ○“경선거부 납득못해” 노대통령은 또 『부동산투기를 제거하고 2백만호 주택건설을 과감히 추진,땅값과 집값을 잡은 것은 국가장래를 위해 가장 보람있는 일』이라고 회고하면서 『이번 대회를 거대한 용광로로 삼아 우리 동지들은 무쇠와 같은 결속을 이뤄 다가오는 대선에서 반드시 승리하자』고 역설,장내는 우렁찬 박수. ▷투표진행◁ 상오11시쯤 이원경선관위원장의 투표개시선언과 함께 시작된 6천7백13명의 참석대의원들의 투표권행사는 점심시간과 겹쳐 하오1시 이후까지 진행. 노태우총재는 이선관위원장과 이춘구사무총장 등의 안내를 받으며 김영삼후보·김종필·박태준최고위원등과 함께 제1기표소에서 가장 먼저 투표. 이에 앞서 이선관위원장은 후보자등록결과보고와 함께 후보자 약력 및 투표절차 등을 소개. 이선관위원장은 먼저 ▲26세로 최연소 국회의원 당선 이후 9선의 관록 ▲3선개헌반대투쟁 및 야당총재4선▲집권당 대표 경력등 화려한 김후보의 정치이력을 상세하게 소개했으나 경선거부를 선언한 이후보에 대해선 『이후보 약력이 아직까지 선관위에 도착하지 않았다』면서 『배포된 유인물을 참조해 주기 바란다』고 약력소개를 생략. 한편 이날 참석대의원 6천7백13명중 6천6백60명이 투표에 참가,99.2%의 높은 투표참가율을 기록했으며 나머지 53명은 일괄적으로 기권처리. 한편 이후보 선거대책본부인사들은 이날 상오 대회장부근 탄천주차장에서 이후보의 기자회견문을 비롯한 홍보유인물을 나눠줘 눈길. ▷김후보선출선언◁ 이날 하오 1시5분쯤부터 20개 투표함을 모두 개봉하고 개표에 들어간 당선관위는 개표시작 1시간 45분만인 2시50분쯤 작업을 모두 완료. 참석대의원 6천7백13명중 53명이 기권,6천6백60명이 참가한 이날 투표결과는 김후보 4천4백18표,이후보 2천2백14표,무효 28표로 공식집계. 이어 이원경선관위원장으로부터 선거개표결과를 서면으로 보고받은 박준규의장이 하오3시15분 『김영삼후보가 민자당의 14대 대통령후보로 선출되었음을 선언한다』고 발표했고 팡파르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참석자전원이 일제히 기립,박수와 환호를 보내며 당선을 축하. ○일부선 “이종찬” 연호 노총재와 김후보가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맞잡고 대의원들의 환호에 답례하자 풍선5백여개를 엮어만든 대형 당기 2개가 공중으로 떠오르면서 노총재와 김후보의 대형초상화를 병풍처럼 펼쳐 분위기를 한껏 고조. 김후보가 이어 수락연설을 하는동안 대의원들은 「대선승리」등을 강조한 대목에 이르러서는 모두 16차례의 힘찬 박수로화답하며 「김영삼」을 연호했으나 일부 대의원들은 간간이 「이종찬」을 연호하기도. ▷후보수락연설◁ 개표결과가 공식발표된뒤 김후보는 수락연설을 통해 『오늘 여러분께서 저를 민자당대통령후보로 선출해 주신데 대해 기쁨에 앞서 무거운 책임감과 사명감을 느낀다』고 일성. 김후보는 이후보의 경선거부를 의식,『이 뜻깊은 자리에 우리당의 몇몇 동지가 함께 자리하지못한 것을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우리모두 겸허한 자기반성으로 당의 단결과 화합을 더욱 굳건히 다지는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 나가야 할것』이라고 강조. 김후보는 또 『이번 대선은 21세기 길목에서 우리민족의 장래를 결정짓는 중대한 분기점』이라고 규정짓고 『통일을 앞당기고 민주화를 완성시키며 제2의 경제도약을 이룩하느냐 못하느냐가 결판날 것』이라고 그 중요성을 거듭 역설. ▷노대통령 축하연설◁ 노대통령은 개표가 끝난 이날 하오 3시15분쯤 다시 대회장에 입장,김후보가 대통령후보로 선출되었다는 개표결과가 발표되자 김후보의 손을 들어주AU 단상앞으로 나가 환호하는 당원들에게 인사. 이순간 여성당원 2명이 노대통령과 김후보에게 축하꽃다발을 각각 증정. 노대통령은 김후보의 수락연설이 끝난뒤 짤막한 축하인사말을 통해 『2년전 김후보의 구국적 결단이 있었기에 민자당이 창당될 수 있었으며 그동안 당운영에서도 김후보는 3당통합정신을 구현하는데 앞장서 왔다』면서 『기필코 대통령선거를 승리로 이끌어 당원의 기대에 보답해 달라』고 당부. 노대통령은 이어 『나는 당헌 제23조에 의거 대표최고위원에 김영삼최고위원을 지명한다』고 선언. ▷이후보측반응◁ 이날 대회는 이후보의 경선거부로 비교적 분위기가 가라앉았으며 이후보측 인사들의 참석여부가 주된 관심으로 부각. 이후보 선거대책위원장인 채문식고문과 윤길중고문을 포함,박철언·김용환·장경우·오유방·김현욱·조영장의원과 박범진·박명환·박주천당선자등 대책위원들은 불참. 그러나 이후보의 경선거부에 반대한 이한동·박준병의원을 비롯,심명보선거대책본부장과 김중위·최재욱·강우혁·이진우의원 및 양창식·남재두·구천서당선자 등은 참석해 한표를 행사. ▷식전행사◁ 공식 행사에 들어가기 앞서 열린 식전행사는 연예인 박상규씨의 사회로 상오9시부터 50분간 진행. 식전행사에서는 풍물패의 풍물놀이에 이어 가수 조영남·주현미씨가 「우리는」「짝사랑」등을 열창,흥을 돋우었으며 민자당의 여성당원으로 구성된 21세기 합창단이 「선구자」를 합창. 이어 북방외교,보통사람의 시대,지방자치제 실시,3당합당등을 내용으로한 「6공화국이걸어온 길」을 멀티비전을 통해 상영.
  • “최대한의 관용으로 당하나되게 노력”/김영삼후보 일문일답

    ◎압승아닌 66%득표에 크게 만족/이종찬의원과도 만날 용의 있다. 40여년간의 파란만장한 정치역정을 거쳐 19일 민자당전당대회에서 대통령후보로 선출된 김영삼후보는 『12일 대선에 승리해야 한다는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며 반드시 승리할 수 있다고 확실히 믿는다』며 집권여당의 정권재창출을 위한 결의를 다졌다. 이날 후보로 선출된 직후 대회장인 잠실체조경기장에서 기자회견을 가진 김후보는 시종 자신이 넘치는 어조로 대선에 임하는 각오와 비전을 피력했다. 그러나 김후보는 26세로 최연소 국회의원 당선 이후 9선,야당총재 4선,집권당 대표 등 화려한 경력에도 불구,특유의 동안에 상기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김후보와의 일문일답 내용은 다음과 같다. ­3당 합당 이후 과연 차기 대통령후보로 지명될 수 있을지 항간에 의문이 끊이지 않았는데 소감을 말해달라.그리고 후보 경선과정에서 생긴 당내갈등 치유방안은 무엇인가. ▲우리 민자당대의원은 현명하게 판단했다는 대답으로 그같은 의문에 답하겠다.대의원들은 역사의 순리에 따라 그같은결정을 내렸다고 생각한다.그리고 다가오는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는 후보를 선출하는 것이 당면 목표이었기 때문에 그러한 선택을 했으리라고 본다. 나는 정치적 견해를 달리하는 분들에 대해서도 최대한의 관용을 통해서 앞으로 우리 민자당이 하나가 되는데 최대한 노력하겠다.의견을 달리하는 분들도 당과 정권재창출을 위해 반드시 함께 해주리라 믿는다. ­당내 소계파에서 대통령후보가 나왔는데 계파정치를 불식하기 위한 복안은 무엇인가. ▲전당대회 과정에서 보았듯이 이번 후보선출전당대회는 법적으로 완벽한 절차를 거쳤다.상대후보가 법적 사퇴를 안했으므로 전체 경선절차를 다 밟았다. 이 순간부터 우리 당의 계파는 모두 없어졌다.이제 민자당밖에 없다.똘똘뭉쳐 정권재창출을 위해 총진군하는 일만 남았다.나자신 계파차원에서는 어떠한 생각도 하지 않겠다.단지 우리 당과 나라를 위해 무엇이 가장 중요한 선택인지를 생각할 따름이다. ­지지율이 66%를 조금 넘기는 수준인데 만족하는지,그리고 후보로 선출된 소감을 다시 말해달라. ▲대단히 만족한다.민주주의 체제에서는 그 정도만 되어도 대단히 큰 표차이다.나는 이번 대선에서도 민자당후보로서 51%나 52% 득표를 얻기를 바란다.민주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과반수 지지를 확보하는 일이다.압도적 승리는 바람직하지 않다. ­국회개원을 앞두고 야당측과 지자제연기문제등 개원협상에 임하는 복안과 현당3역을 유임시킬 것인지 여부를 밝혀달라. ▲이 자리에서 모든 것을 다 얘기할 수는 없다.대선이 앞으로 6개월이나 남아 있고 대선에 임하는 몇가지 방안을 내부적으로 정해 놓은 것도 있고 앞으로 더 추가할 것도 있다. 다만 당장 해야할 몇가지 일이 있고 그중 무엇보다 중요한 일은 우리 정치와 정국의 안정이다.정치안정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는 지난 13대국회의 결과를 보고 이미 체험했다.정국안정이야말로 우리 국민이 현시점에서 가장 바라는 바다. 정국안정을 위해 당무는 물론 국정전반에 걸쳐 우리당 총재이신 노태우대통령과 충분히 협의하겠다.그리고 민생문제 해결,경제도약 및 국회개원과 관련한 모든 문제에 혼신의 정력을 쏟겠다.특히 국회운영을 위해서는 야당 대표들과 만나는 것도 검토하겠다. ­당내 단합을 강조했는데 경선후보였던 이종찬의원을 만날 의향이 있는지,있다면 그 시기를 말해달라. ▲조금 전에도 말씀했듯이 나는 의견을 달리하는 분들을 포함해 누구와도 만날 용의가 있다.당외의 인사들도 만날 것이다. 민자당은 이제 가는 길이 하나다.승리를 위해 단합하는 길밖에 없다.우리 당원은 물론 국민이 바라는 것도 그것이다. 다만 만나는 시기와 방법 등에 대해서 지금 얘기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 정치태풍 몰고온 「철의 여인」 산티아고

    ◎인기조사때마다 수위… 대중기반 “탄탄” 필리핀의 대통령선거 투표함에서 여성후보인 「산티아고」태풍이 몰아치고 있다.7명의 출마자 가운데 가장 어리고 배경이 약한 미리암 산티아고후보가 6명의 쟁쟁한 기성 정치거물들을 제치고 선두에 나선 것이다. 국외는 물론 필리핀 경계에서조차 신인에 지나지 않는 미리암 산티아고가 초반 리드를 지켜 과연 필리핀대통령 자리에 오를 수 있을는지는 아직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수도 마닐라에서 일기 시작한 산티아고 태풍은 자칫하면 전근대적 봉건주의에 갇혀있는 필리핀 농촌지역의 배타적 지방색 앞에서 맥없이 사라져버릴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그렇더라도 산티아고후보의 부상은 현재의 필리핀과 필리핀정치에 관해 많은 것을 시사해주고 있다. 미리암 산티아고는 여러면에서 다른 출마자들과는 대조적인 후보로서,필리핀정치의 이종이자 개혁신품이라 할 수 있다.46세의 그녀는 판사,귀화청장및 농업개혁부장관의 손색없는 경력을 갖고 있으나 이는 다른 6명의 관록이나 지명도에 비하면 한참 떨어지고무엇보다 다른 후보들의 배경인 상류엘리트계층의 기반이 없다.필리핀대를 졸업하고 미 미시간대 박사학위를 취득한 산티아고는 지난 88년과 89년에 아키노 현대통령에 의해 앞의 각료직에 발탁됐지만 두차례 입각 모두 해당부서의 기존세력들에게 「미움」을 받아 단명에 그쳤다.부정부패 척결과 서정쇄신의 칼을 가차없이 휘두른 탓이었다. 이번 선거전에서도 그녀는 타협없는 「물갈이」개혁 공약을 줄기차게 내세워 그녀의 「신인」면모를 드높였다.선거전의 유혈사태로 가려지긴 했지만 지난 2월 출마표명이후 수차례 실시된 후보별 전국 인기도 조사에서 산티아고는 매번 1위를 차지해와 대중적인 지지가 아주 탄탄함을 보여주었다.직선적인 태도와 거침없는 독설로 「동양의 철의 여인」이라는 별칭이 붙는 산티아고는 당선여부와는 상관없이 동남아지역의 「슈퍼우먼」맥을 잇는 여걸이라 할 수 있다.
  • 사유화 길목의 독버섯(러시아에선 지금…:7)

    ◎부패 막연… “웃돈 없인 되는일 없다”/고위관사 돈 안주면 인터뷰 못해/“포포프시장 5대부호 됐다” 소문 평소 알고 지내는 러시아기자를 통해 얼마전 러시아의회의 한 고위인사에게 인터뷰를 신청한 적이 있다.며칠 뒤 그 기자에게서 전갈이 왔는데 『얼마를 준비했느냐』고 묻더라는 것이었다.인터뷰료를 내라는 말이었는데 요구하는 액수가 너무 많고 공직자가 인터뷰를 하면서 돈을 요구하는데 대한 거부감 때문에 결국 그 인터뷰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정부·의회관리들이 자리와 연관해 돈을 받고 뇌물을 받는 게 물론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고 러시아에서만 행해지는 일 또한 아닐 것이다.하지만 이 나라에서 지금 일어나는 부패·독직행위는 너무 광범위하고 뿌리가 깊어 자칫 개혁과정 전반을 위태롭게 할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2년 전부터 모스크바에서 신발·의류무역업을 하는 한국기업인 김모씨는 물건 구입에서부터 통관에 이르기까지 「웃돈」거래 없이는 한가지 일도 할 수 없는 곳이 러시아라고 말했다.금년초부터 기업·토지등의 사유화가 진행되면서 이곳 언론에서는 모스크바 시청이 부패의 온상이 되고 있다는 기사가 연일 보도되고 있다.특히 가브릴 포포프시장의 이름이 곳곳에서 거론되는데 최근에는 가가린광장 부근의 토지 60◎를 러시아­프랑스합작회사에 99년간 장기임대해주는 과정에서 포포프시장이 거액을 챙겼다는 보도가 있었다.포포프시장이 이렇게 챙긴 돈으로 러시아 5대부호에 들었다는 보도도 나왔다. 지난해 3월 모스크바에서 러시아회사와 스포츠용품 합작회사를 차린 한국기업가 정모씨는 회사 설립과정에서 서류를 제출할 때마다 웃돈을 내 총1만달러 상당의 교제비가 지출됐다고 말했다.물론 그뿐아니라 시청관리들을 만날 때마다 양주등 선물을 들고 갔고 회사설립 허가가 난 뒤에는 인사조로 달러식당에서 성대한 회식까지 열어주어야 했다고 털어놓았다. 달러를 받을 수 있다는 매력 때문에 부패관리들의 주표적은 외국기업가들이 된다.하지만 러시아인들 사이에 저질러지는 부패 또한 이에 못지 않다.예를들어 모스크바에는 관공사·기업체 혹은 각 직종·직능별로 운영되는 영빈관이 있는데 최근 재정난 때문에 이들을 외국합작호텔로 개조해 손님을 받는 경우가 많다.이 경우 호텔 설립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간부들이 자기들 몫을 빼돌리는 것이다.과학아카데미 산하 한 연구기관의 영빈관을 합작호텔로 개조하는 일을 추진한 발렌틴 시만스키(가명)박사는 『연구소 간부들 지분으로 40%를 빼돌리고 외국파트너 지분 40%,나머지 20%를 연구소 몫으로 했다』고 말했다.물론 이때도 해당 관청 관리들에게 뇌물이 건네졌는데 일단 뇌물이 건네진 다음에는 연구소 내부에서 간부들이 호텔의 지분을 어떻게 조작하든 눈감아주더라는 것이었다. 각 분야에 독버섯처럼 퍼져있는 마피아조직도 사회불안의 주범중 하나이다.첸트럴 리녹(중앙시장)의 한 간부는 『중앙아시아에는 농산물이 남아도는데 모스크바에 채소가 이같이 귀한 것도 마피아 때문』이라고 말했다.중앙시장 마피아들이 철도·도로등 수송망을 장악한 마피아들과 짜고 지방농산물의 시내반입을 막으며 모스크바시내 채소·과일값을 좌지우지한다는 것이다.모스크바근교 콜호즈(집단농장)들은 지난해부터 새법에 따라 생산몫중 일정분을 자체판매할수 있게 됐다.하지만 모스크바로 오는 도로 곳곳이 이들 마피아에 의해 체크되기 때문에 샛길을 돌아서 시내로 들어와 물건을 파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다 발각되면 테러를 당하기도 하고 누구의 입김인지 모르게 콜호즈책임자가 물러나기도 한다. 가족을 런던에 두고 혼자 이곳에 와 러시아인과 합작회사를 차린 한 영국기업가로부터 최근 이런 일화를 들었다. 합작 파트너인 러시아인으로부터 자기 부친이 유산으로 남긴 16세기 골동품 한점을 런던에 가져가서 팔아달라는 부탁을 받고 거절하다가 할수없이 가지고 나갔는데 그 러시아 친구가 어떻게 손을 썼는지 반출이 금지된 그 골동품을 가지고 나가는데 공항직원이 공항검색대에서부터 기내탑승까지 특별안내를 해주어 놀랐다는 것이었다. 러시아 당국에서 이런 부패행위에 대한 대책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신문지상에는 수시로 각종 부패방지 법안들이 1∼2페이지에 걸쳐 발표된다.지금까지 발표된 것만 해도 고위공직자 뇌물수수금지법을 비롯,사유화에 따른 부정방지법안등 다양하다.러시아 검찰청은 지난한해 뇌물수수·횡령혐의로 구속된 사람이 1천8백명에 이른다고 밝히고 있다.하지만 많은 시민들은 이같은 수치는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믿고있다. 얼마전에는 공산당정권 말기 수개월동안 구소련공산당·정부지도자들이 8백만∼1천5백만달러 상당의 미화·귀금속·금등 국유재산을 해외로 빼돌렸다는 보도가 나와 국민들을 아연케 하기도 했다.경제지인 주간 「코메르상트」지는 최근 1면 머릿기사로 지난 2월말 가이다르부총리가 한 서방합작기업에 90억∼1백70억에 달하는 루블을 달러로 바꿔주는 특혜를 주어 당시 달러화 폭락사태를 야기했다고 폭로했다.당시 1대1백50정도하던 달러의 대루블환율이 일시에 1대50까지 폭락하고 시중에 루블부족사태가 벌어지는등 소동이 난적이 있다. 많은 시민들은 이같은 사실에 대해 러시아정부의 환율조작 혐의와 함께 가이다르 개인의 청렴문제에도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위로는 정부관리에서부터 밑으로는 우체국 말단 직원에 이르기까지 웃돈이 들어가지 않으면 되는 일이 없고 그대신 돈만 들어가면 안되는 일도 없는 사회,이것이 바로 본격적인 개혁 첫해 러시아 사회 「청렴도」의 현주소이다.
  • 장애자 직업교육/대학 2년과정까지 확대

    ◎전자·목공등 유형별 전공 신설/내년부터 2천여명 무상교육/무허가 유아강습소 84곳 양성화 방침 교육부는 농·맹자 등 장애학생의 직업교육을 강화하기 위해 지금까지 무료로 고등부 과정까지 운영해온 특수교육과정을 내년부터 대학 1·2학년 과정까지 확대,특수교육의 수업연한을 연장키로 했다. 교육부가 6일 확정한 특수교육 심화계획에 따르면 장애학생의 취업을 돕기 위해 고등부 과정을 운영하고 있는 전국 70곳의 국공립 및 사립특수학교에 1년 또는 2년까지의 전공과정을 신설,93학년도부터 운영토록 했다. 이에 따라 지금까지 초중등 과정 12년이던 특수교육 수업연한이 내년부터는 학교별로 13∼14년으로 연장 시행된다. 이같은 조치로 매년 고등부 과정을 졸업하는 2천여명의 장애자는 전자·목공·철공·양재·안마·산업디자인·인쇄 및 철공 등 장애유형별로 습득이 가능한 직종을 골라 직업교육 심화과정을 이수하게 됐다. 교육부는 전공과정에 입학하는 장애학생에 대해 장애자 복지증진차원에서 고등부 과정까지와 마찬가지로 수업료 등 학비를 전액 지원할 방침이다. 현재 초중등 또는 고등과정을 운영하고 있는 특수학교는 전국에 모두 1백4개교로 2만2백여명의 농·맹학생 및 지체·정신부자유 학생이 재학중이다. 교육부는 이와 함께 만6세 이하 장애유아를 대상으로 무허가로 운영되고 있는 전국 84곳의 사설강습소를 양성화한다는 방침에 따라 내년부터 특수학교 교원자격자를 확보한 사설강습소가 일정 기준의 교습시설을 갖춘 경우에는 정식교습소로 등록토록하거나 장애유아 전용유치원으로 인가해줄 방침이다.
  • 「세대교체」 바람부는 미하원/“재출마포기” 올들어 50명

    ◎의회개조론 대두속 일부 스캔들의원 “선수”/행정부와의 잦은 마찰로 의정활동 무력감 미국 하원의원들의 은퇴러시가 2차대전후 최고의 기록을 나타내고 있다.의회로부터의 「대탈출」로 비유되는 「탈의원」현상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어서 이같은 현상이 앞으로의 미의회의 위상정립과 관련하여 어떤 형태로든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금년들어 「탈의원」을 선언한 하원의원의 숫자는 윌리 엄 브룸필드의원(공화,미시건주)이 지난 21일 은퇴를 선언함으로써 모두 50명으로 집계돼 전후 최고기록이었던 지난 78년의 49명을 넘어서게 되었다. 아이젠하워대통령 행정부 시절이었던 지난 56년 하원에 첫 진출,현재 외교위원회 고참의원으로 있는 브룸필드의원은 차기 선거에 더이상 출마하지 않겠다고 은퇴를 밝히면서 『아무런 일도 못하게하는 지독한 당파주의에 환멸을 느낀다』고 말했다. 의회를 떠나면서 술회한 그의 발언은 민주당이 지배하고 있는 의회와 공화당인 부시행정부와의 대결로 「되는 일도 없고 안되는 일」도 없는 오늘날의 미국 의회정치의 한 단면을 시사하는 것처럼 보인다. 부시대통령도 미의회 불량수표 스캔들이후 최근 『의회는 반드시 개조되어야 한다』고 강조,그동안 민주당의 주도로 통과시킨 법안에 대해 무려 36번이나 거부권을 행사,불편한 심기의 일단을 들어냈다. 현재 하원은 총의석 4백35석 가운데 민주당이 2백68석으로 절대다수를 장악하고 있고 공화당은 1백66석이며 무소속이 1명이다.다음 선거에서 출마포기를 밝힌 은퇴선언의원 50명의 당소속별 분포는 민주당이 33명,공화당이 17명으로 나타나 있다. 이들 의원들의 「탈의원」의 변은 개인별로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크게 보아 의회의 대정부 무력감등에서 연유되는 정치적 좌절감,의회은행의 불량수표 스캔들의 부산물로 풀이될 수 있다. 올해 46세의 젊은 나이에 의원생활을 그만두기로한 브라이언 도넬리의원(민주·매사추세츠주)은 『중산층의 세금감면을 위해 청문회를 수없이 개최하는등 온갖 노력을 다했으나 대통령의 거부권행사로 일거에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며 의회의 대정부 무력감을 솔직히 털어놓았다. 물론 이들 의원들의 잇단 탈의원선언의 배경에는 수표스캔들에 관련된 사람이 많았다는 점에 비추어 차기선거에 출마할 경우 상대후보로부터 호된 비판을 받아 낙선할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도 관과될 수는 없을 것이다. 또 재출마포기의 배경가운데는 10년마다 인구증감에 따라 조정되는 선거구조정작업이 올해 이뤄짐으로써 득표에 자신이 없는 인사들이 일찌감치 적당한 명분을 찾아 은퇴를 선언한 경우도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탈의원」의 큰 흐름은 역시 의회의 위상과 의원의 역할에 관한 일종의 회의가 바탕을 이루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왜냐하면 미현직의원의 재당선 확률이 지금까지 거의 95%에 가까웠다는 사실을 미루어 볼때 요즘과 같은 재출마 포기현상은 대단한 정치적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것이다. 매 2년마다 실시되는 하원의원선거를 통해 이뤄지는 의원교체율은 통상 10%선에 머물러왔으나 올 11월에 있을 선거에서는 미증유의 잇단 재출마 포기선언으로 적어도 23%선인 1백명이상이 교체될 것으로 의회선거 전문가들은 전망하고 있다.
  • 원로학자 김재근씨,저서 「거북선」서 처음밝혀

    ◎“임란때 거북선길이는 21.5m”/너비 7.36m로 정조때것보다 작은 규모/“철장식을 붙인 목선… 철갑선 아니다” 임진위란 발발 4백주년을 맞아 당시 해전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거북선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성과가 칠순이 넘은 노학자에 의해 최근 단행본으로 발표됐다. 한선연구에 평생을 바쳐온 원로조선공학자 김재근서울대명예교수(72·학술원 부회장)가 30여년간의 연구결과를 정리한 책 「거북선」(정우사간)을 충무공 이순신 탄신 4백47주년(4월28일)에 즈음하여 펴낸 것. 김교수는 이 책에서 임란당시 거북선의 크기를 처음으로 밝혀내 눈길을 끈다.즉 임란당시 거북선은 선체의 길이가 21.5m,저판의 길이 15.3m,선체의 너비 7.36m,상장의 너비 9.2m,노의 수는 14자루로 정조대의 거북선 크기보다는 약간 작다는 주장이다.이는 광해군 당시 한선의 크기·치수가 나와있는 문헌들을 근거로 추정해낸 것이다. 김교수는 또 이 책에서 거북선은 철갑선이 아니라 소나무로 만들어진 철장식이 된 목선으로 임란 당시 주력 군선이었던 판옥선을 바탕으로 개량된특수전함이라고 밝히고 있다.「거북선철갑선설」을 뒷받침할 만한 근거는 오직 일본문헌뿐이며 정조때 충무공 관련자료들을 모아 편찬한 「이충무공전서」등 한국사료에는 한군데에도 언급된 곳이 없어 신빙성이 없다면서 대신 거북선은 상갑판에 왜구의 접근을 막기 위해 칼송곳을 꽂고 선수부와 상장의 요소요소를 철로 장식하고 보강한 특수전함으로 오히려 「장갑선」으로 봐야한다고 주장했다. 김교수는 또 「난중일기」「당포파왜병장」「이분의 행록」등을 들어 임란 당시 해전에서 활동한 거북선은 모두 세 척뿐이었다는 최영희전국사편찬위원장의 주장에 동의하고 있다.이밖에 「영귀선」「방답귀선」「순천귀선」이라는 이름이 붙은 거북선 세 척의 건조장소를 비교적 상세하게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다. 지난 57년 「대학신문」에 「구선고」라는 글을 발표한 뒤 줄곧 한선을 연구해온 김교수는 20년전부터 거북선은 판옥선을 개량해 만든 특수전선이라는 주장을 펴오고 있으며 학계에서도 이제는 이를 정설로 받아들이고 있다. 판옥선은 비전투원인 노군을 집안에 들여놓아 전사들이 상갑판에서 방해받지 않고 싸울 수 있도록 한 것으로 종전의 군선에 비해 몸집이 월등히 크며 16세기에 개발돼 임란때 거북선과 함께 맹활약을 했던 우리 수군사의 대표적인 군선이다. 김교수는 『거북선이 당대의 판옥선과 똑같은 방식으로 건조되었으나 상갑판을 없애고 그 대신 둥그런 개판을 덮어놓은 점이 다르다』고 말했다. 거북선은 튼튼한 송재를 써 구조부의 치수도 넉넉하게 잡는 한선구조법의 기본적인 특성에 따라 아주 강건하게 건조돼 이와 같은 강인한 선체구조로 적의 선단속에 뚫고 들어가 적선을 충파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반면 판옥선은 포의 발사 위치가 상갑판에 있어 명중률이 높아 적을 멀리 떼어놓고 발포할 수 있어 서로 상이한 역할을 담당했었다고 밝혔다. 김교수는 현재 거북선에 대한 개괄적인 연구는 어느 정도 완성된 단계에 이르렀지만 예를 들어 거북선에 비치됐던 비품목록등 세부적인 사항들에 대한 연구는 이제부터라고 말했다.그는 그러나 요즘 젊은 학자들이 한문을 잘 몰라 원문을 해석하는데 어려움이 있어 연구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72세라는 나이에 전문서를 펴내게 돼 무엇보다도 기쁘다』는 김교수는 그동안 「조선왕조군선연구」「거북선의 신화」「우리배의 역사」등 다수의 저서를 펴냈으며 앞으로도 세계의 희귀한 배들을 소개하는 「배이야기」등 책 2∼3권정도는 더 펴낼 계획이다. 『거북선은 우리겨레의 탁월한 창조물로 국난을 슬기롭게 극복하는데 앞장섰던 무적함인 만큼 긍지와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그러나 거북선에 대한 불필요한 신화나 수수께끼를 갖고 이를 자랑으로 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거북선과 같은 민족적 유산은 좀더 성의를 가지고 조심스럽게 다뤄야하며 일반국민들이 거북선의 실체를 이해하는데 이 책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교수는 마지막으로 『임란당시 해전에서의 승리가 단순히 이순신이라는 인물과 거북선에 의해서만 이루어진 것으로 이해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지적하고 『이보다는 우리 수군의 우수한 전통과 조직,판옥선과 같은 뛰어난 전선과 일본수군으로서는 도저히 이겨낼 수 없었던 우리 수군의 우수한 화포술이 합쳐져 이루어낸 결과』라고 강조했다.
  • 주차장철문 넘어져/6세 남아 사망

    19일 하오 3시40분쯤 서울 양천구 신월2동 480 「양약국」주차장 철문에 매달려 놀던 이응혁씨(37·회사원·양천구 신월2동 현대연립)의 둘째아들 동원군(6)이 철문이 넘어지는 바람에 머리를 다쳐 숨졌다. 이날 사고는 이군이 형 태원군(7)등과 함께 철문에 매달려 철문기둥이 이들의 무게를 못이겨 갑자기 무너지는 바람에 일어났다. 경찰은 주차장철문과 연결된 시멘트기둥에 금이 가 철문이 넘어질 위험이 많았다는 이웃주민의 말에 따라 이 건물주인 문홍균씨(38)를 불러 정확한 사고원인을 조사하고 있다.
  • “간염 알파인터페론이 탁효”/아태 간학술대회 참가 외국의사들 밝혀

    ◎6개월 투여 환자 50%가 증상 호전/한국인에 많은 「만성B형」에 잘들어/국내의학계서도 도입 계획… 치료비 비싼게 흠 한국인의 사망률1위 질환은 간암이라는 통계가 최근 보사부에서 발표되었다.즉 인구10만명당 간암사망률은 23.8명으로 일본의 13.9명,미국·영국의 1.4명과 비교할 수 없는 높은 수치라는 발표가 충격을 주고있는 가운데 간염바이러스의 퇴치에 알파인터페론의 규칙적 장기투여가 매우 효과적이라는 보고가 나왔다. 8일까지 서울 쉐라톤워커힐호텔에서 열린 제8차 아시아·태평양 간연구회 학술대회에서 미국립보건원 제이 H 후프나클 책임연구원은 『B형간염환자에게 알파인터페론을 매일 5백만단위씩 주사하거나 천만단위씩 하루걸러 투여,4개월간 치료한 결과,만성간염환자의 25∼40%가 질병의 증상이 크게 좋아졌다』고 밝혔다. 이와관련,가톨릭의대부속 여의도성모병원의 선희식교수는 『치료기간을 4개월에서 6개월로 늘리면 B형간염바이러스퇴치율이 50%까지 올라가는 연구결과도 보고되고 있다』고 말한다. 한국인에게 특히 많은 B형만성간염의 경우 알파인터페론에 좋은 반응을 보일 것으로 기대되는 임상소견들은 ▲간염치료전에 간세포내의 2가지 효소인 혈청GOT,GPT의 상승치 ▲치료전 B형간염바이러스DNA의 낮은 농도 ▲균성간염의 병력이 있으며 ▲만성간염의 병력이 짧을 때 ▲다른 합병증이 없는 만성간염 등이다. 후프나글연구원은 그러나 만성B형간염이 상당히 진행됐거나 간경변을 앓고 있는 환자에게 알파인터페론 치료를 할 경우 환자의 백혈구 및 혈소판이 감소하고 관절통이 발생하거나 심하면 정신이상이 되는등 부작용이 생기며 치료효과도 좋지않고 또 치료도중에 기존 간질환이 악화되는 수도 있어 환자선택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경고했다. 지금까지 국내에서 간염을 치료하는 방법은 간기능을 개선하는 약물복용이나 충분한 영양을 공급하고 높은 열을 진정시키는등 보조요법이 이용돼왔다. 알파인터페론은 만성C형 간염의 치료에도 탁월한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립보건원의 아드리안 M 디 비세글리박사는 『만성C형 간염환자를 알파인터페론으로 6개월간치료한 결과 50%가량의 환자에게서 혈청GPT수치가 정상화 됐다』고 밝히고 『그러나 인터페론치료과정이 끝난뒤 좋은 반응을 보였던 환자 가운데 반수정도는 나중에 간염이 재발됐다』고 보고했다. 가톨릭의대의 선희식교수는 『알파인터페론 치료를 시도할 경우 6개월간에 약물치료비만 5백만원에 이르는등 비싼 치료비의 해결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한다. 한편 서울대의대 김정용교수(내과)는 『한국인은 50세이전 간질환의 대부분이 B형에서 발생했으며 60세이후에는 C형으로 인한 간염발생이 더 많았고 간암환자의 경우 B형의 발생평균연령은 51.6세,C형은 60.4세로 나타났다』고 보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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