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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연스님 어머니 낙랑군부인묘 발견

    ◎영남대 김재원교수팀 경북군위 야산서 확인/자연석 2층 축대에 봉분높이 3m/고려양민 무덤등 연구에 귀중한 자료 【군위=남윤호기자】 고려후기의 고승으로 삼국유사를 쓴 일연스님의 어머니 낙랑군부인 이씨의 묘소가 발견됐다. 영남대 김재원불교미술사연구소장(46)과 경북 군위군 향토사학자 송문현씨(55·경북도의회의원)는 서지학자 박영순씨(57)의 사료고증을 받아 29일 경북 군위군 고로면 화북3리 해발 4백여m의 능등산 정상에서 낙랑군부인 이씨의 묘소를 확인했다. 2년전부터 매달 「이달의 문화인물」을 선정해 그 인물의 업적과 사상을 기리고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오늘에 재조명하는 사업을 펼치고 있는 문화부는 일연스님을 「7월의 문화인물」로 선정했는데 김소장 등은 일연스님의 달을 맞아 화북3리에 전해져 내려오는 전설에 따라 낙랑군부인 이씨의 묘소찾기에 나서 여러차례의 답사끝에 묘소를 확인하게 됐다. 이 묘소는 자연석으로 50∼60㎝ 높이의 축대를 2층으로 쌓았으며 묘역의 직경이 30m에 이를 정도로 큰 규모이다. 또 봉분의 규모도 높이 3m,너비 6∼7m정도로 보통묘의 3∼4배 정도나 커 이곳 주민들은 막연히 「능」이라고만 불러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봉분위에는 잔디가 전혀 없기때문에 그동안 상당량의 흙이 빗물에 씻겨 나갔을 것으로 보여 처음의 규모는 지금보다 훨씬 컸을 것으로 추정됐다. 현장을 확인한 김소장은 『군위군의 전설·신화·역사 등을 모아 지난 50년대에 편찬한 군위 군지(군지)에 「낙랑군부인묘소 맞은편 화산 문필봉 아래 인각사에 일연스님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보각국사 정조탑에서 아침마다 이상한 광채가 일어 어머니 무덤으로 날아가 문안을 올렸다」는 기록이 적혀 있는 점으로 미루어 이 무덤이 일연스님 어머니 묘소가 확실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 지역이 우리나라 최초로 국가형태를 이룬 성읍(성읍)국가시대의 도읍지가 아닌데도 산꼭대기에 이 정도 규모의 묘지를 조성한 것으로 보아 왕사(왕사)였던 일연스님과 깊은 관계가 있는 것이 분명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이 무덤은 자연석을 이용해 쌓은 석축과 유구흔적이 그대로 남아있어 현재까지 거의 알려지지 않은 고려시대 양민들의 무덤과 생활상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될 것으로 보여 보호대책이 시급한 실정이다. 낙랑군부인에 대한 기록은 거의 전해오고 있지 않으나 보각국사 탑 비명에 그 일부가 남아있다. 이 기록에는 일연스님의 어머니 이씨는 장산군(현 경산)의 김언필과 결혼,17세때에 해가 사흘동안이나 자신의 배를 비추는 꿈을 꾸고 일연스님을 낳았으며 96세에 숨졌다고 적혀있다. 낙랑군부인 이씨의 묘소가 발견되자 역사학계와 불교계는 일연연구의 귀중한 자료가 될 것으로 보고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 조선 청화백자가마터 발견/불창기둥 갖춘 상단구조 첫 확인/광주

    【광주=이동구기자】 경기도 광주군 우산리 272의2 밭에서 우리나라에서는 최초로 가마 상단구조를 갖춘 조선조 초기시대의 청화백자 가마터가 발견돼 학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28일 이화여대 발굴조사단(단장 최숙경 박물관장)이 발견한 조선시대 중앙요지로 추정되는 백자 가마터는 5.1m 간격의 연실식 등요로 구성됐으며 봉통(일명 화통)길이 4m,전체 길이 24.5m에 가마폭 1.6∼1.7m 규모이다. 최초로 확인된 가마 상단에는 7개의 연기배출구와 불창기둥이 설치돼있고 연기와 열이 돌려나가도록 배출시설이 갖춰져 있어 공기의 역류현상을 막고 폐열을 이용해 초벌구이를 한 시설로 추정되고 있다. 가마터에서는 천·지·현·황이 새겨진 어용지기와 칠보문·운문·용문의 청화백자가 발견돼 조선초 15세기후반 또는 16세기초의 어용지기를 제작하던 관요임이 확인됐으며 봉통위에는 자기를 굽기전에 행해지는 고사를 지낸 흔적도 발견됐다. 발굴 조사단은 지난달 9일부터 오는 30일까지 이 가마터에 대한 지하유구 여부 탐색과 학술자료를 수집하기 위해 조사를 벌이고 있다.
  • 몬트리올 총영사 김영섭씨/이공사 김왕희씨

    정부는 21일 주몬트리올 총영사에 김영섭본부대사를,주이탈리아 공사에 김왕희외교안보연구원 연구관을 각각 임명했다. ◇김총영사 ▲서울·61세 ▲해사졸 ▲주레바논대사 ▲외교안보연구원교수부장 ▲주리비아대사 ▲주인도네시아대사 ◇김공사 ▲대전·56세 ▲서울법대 ▲수단·벨기에·베네수엘라 참사관 ▲벨기에 공사 ▲외교안보연구원 연구관
  • 노름빚 안갚아 주는 계모에 앙심/이복동생 묶고 방화 살해

    ◎LPG가스통에 【청주=한만교기자】 18일 하오9시30분쯤 충북 청주시 서문동 99의1 나이트클럽 「롯데회관」건물 4층 차성렬씨(56·여·건물주)집 안방에서 차씨의 의붓아들 박용국씨(34·무직·대전시 중구 옥계6동 165)가 노름빚을 갚아주지 않는데 앙심을 품고 차씨가 낳은 이복동생 용항군(13·운호중 2년)을 LPG통에 묶고 불을 질러 숨지게하고 자신은 중화상을 입었다. 경찰 조사결과 박씨는 4년전부터 많은 노름빚을 지게되자 차씨에게 빚을 갚아줄 것을 요구해 왔으며 특히 아버지 박원희씨(당시 66세)가 지난4월5일 작고한 뒤엔 『빚을 갚아주지 않으면 가족을 모두 죽이겠다』고 위협해 온 것으로 밝혀졌다.
  • 공사·총영사 인사

    ◎주미공사 번기문/주러시아공사 김창근/주 애틀랜타 총영사 권령민/주라스팔마스 장세돈/주니가타 배태수 외무부는 16일 주미공사에 번기문 장관특별보좌관,주러시아공사에 김창근 주코스타리카대사를 각각 임명했다. 또 주애틀랜타 총영사에 권령민구주국장,주라스팔마스 총영사에 장세돈문화협력국 문화홍보심의관,주니가타총영사에 배태수장관보좌관을 임명했다. ◇번공사 ▲충북 충주·48세▲서울대 외교학과졸▲미주국장▲장관특별보좌관▲핵통제공동위 부위원장 ◇김공사 ▲경남 진해·56세▲연세대 정외과졸▲주멕시코 공사▲외교안보연구원연구관 ▲주코스타리카 대사 ◇권총영사 ▲충남 아산·46세▲서울대 독문과졸▲주독대사관 참사관▲외무부 구주국장 ◇장총영사 ▲광주·52세▲주보스턴영사▲외무부 문화협력국 문화홍보심의관 ◇배총영사 ▲경남 마산·52세▲경희대 법대▲주토론토영사▲외무부장관 보좌관
  • 북한 개방파의 뉴리더/김달현부총리 누구인가

    ◎김일성 5촌 조카… 30대부터 요직에/영어 유창… 대외경협등 경제 총괄 최각규부총리겸 경제기획원장관의 초청으로 오는 19일 일행 10명과 함께 서울을 방문하는 김달현부총리겸 대외경제위원회위원장(53)은 당·정·의회 등 각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50대 북한 「신진세력」의 대표 주자 가운데 하나다. 지난 65년 김일성종합대학을 졸업한 뒤 북한에서도 매우 드물게 알바니아국제관계대학을 졸업한 김부총리는 특히 김일성주석의 5촌조카라는 「선택된 신분」 덕으로 일찍부터 요직을 두루 역임,출세가도를 달려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그가 불과 36세의 젊은 나이에 사회과학원부원장을 역임했으며 87년 화학및 경공업위원장,88년에는 국가계획위원회위원장으로 선출된데서 잘 드러나고 있다. 지난 88년 제6기 13차 전원회의서 당중앙위원회위원에 선출돼 북한의 최고 권력조직인 노동당 안에 교두보를 마련하는데 성공한 김부총리는 현재 부총리겸 대외경제위원회위원장,무역부장,경공업위원장,최고인민회의 대의원,국제합영총회사이사장등의 직책을 맡고 있다. 지난 90년 5월 정무원부총리 자리에 오른 김부총리는 북한의 당·정 간부들에게 배어 있는 관료주의나 권력의식이 거의 풍기지 않는 학자풍의 인물로 대외인사들과 만나는 자리에서는 「주체사상」이나 「혁명」이란 어휘사용도 자제하는 개방파의 리더로 소문나 있다. 키 1백70cm의 김부총리는 특히 영어에 능통,뉴스위크나 타임지를 사전없이 읽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그의 유창한 영어회화 실력이 대외인사 접촉이 빈번할 수밖에 없는 경제관련 요직을 독차지하게 하고 있다는 얘기도 있다. 김부총리는 현재 북한이 당면하고 있는 경제난을 해결하기 위한 외국과의 경협업무를 거의 도맡다시피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는데 외국과의 합작이나 각종 의정서 조인시 또는 김일성주석이 주요 외국인사를 접견할 때마다 그가 배석하고 있는 사실이 이를 입증해주고 있다. 지난 88년 6월 김일성주석의 몽골방문시 경제각료로 수행하기도 했던 김부총리는 북한정부 대표단을 직접 인솔하며 구소련 니카라과 쿠바 페루 필리핀 등을 방문,경제외교를펼친 바 있으며 바로 지난 4월에는 중남미와 리비아를 방문하기도. 김부총리는 또 김정일의 이복동생으로 현재 불가리아주재대사로 있는 김평일과도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관측통들은 그가 김일성주석에 이어 김정일시대의 개막에 즈음 김정일의 친위세력 또는 핵심세력의 자리를 굳힐 경우 그의 행보의 폭은 지금보다 훨씬 더 넓어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 삼국시대의 배/역사속 바뀌어온 모습을 좇는다(배:7)

    ◎신라등 고분서 배모양토기 6점 출토/길이 7m 폭 2.6m… 13∼19명 승선 추정 삼국시대에 해상활동이 활발했다는 것은 문헌과 유물로 잘 알려져있다.그러나 배의 모습을 추정할 수 있는 자료는 가야나 경주지역의 고분에서 나온 토기들 밖에 없다.지금까지 대략 6점이 나왔는데 고무신이나 바가지처럼 생긴 것도 있고,완전한 배의 모습을 갖춘 것도 있다.이들은 하부구조만 서로 다를뿐 상부구조의 기본형태는 모두 비슷하다.그리고 이러한 배토기가 요동반도나 일본의 고분에서도 몇점 출토된 바가 있다.사진에서 보는,노를 12개 가진 호림박물관소장의 배토기를 실물크기로 복원한다면,노걸이의 간격을 80㎝로 잡았을때,배의 길이는 약7m이고,배의 최대폭은 약2·6m가량되며,승조원은 최소한 13명이 된다.또한 항양선(항양선)으로 썼을 때는 예비노군이 필요하므로 최소한 19명이 승선하게 된다.당시로서는 작지않은 배라고 볼수있다.배토기는 이 처럼 당시의 배에 관한 많은 정보를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 그러나 배토기가 삼국시대 배의 모습을 온전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은 아니다.그것은 당시 고분속의 하나의 부장품에 불과하기 때문이다.문헌에서도 보듯이 백제는 서기372년이 되면 중국남부의 동진(동진)에 최초로 사신을 파견하고 있는데,당시의 육지연안을 따라가는 그 항해거리는 2천㎞가 넘는 원거리이었다.수개월분의 식량과 적어도 10일 이상의 식수를 적재해야하고,파도나 비바람으로부터 물품과 몸을 보호할 수 있는 간막이 구조가 있어야 한다는 것은 원거리 항해선에게는 필수적이다.그런데 배토기들에서는 이러한 구조를 볼수가 없다.이것은 다시 말해서 이들 배토기들보다는 훨씬 잘만든 배가 이미 4세기 무렵 또는 그 이전에는 있었음을 말해준다. 이 당시는 나침반이 사용되기 훨씬 이전으로서,항해술은 바다가 잔잔한 낮에만 연안에 바짝붙어서 육지나 섬을 눈으로 보며 항해하다가,밤이 되거나 날씨가 안좋으면 인근 해안포구에 정박하는 것이었다.물론 6세기초가 되면 황해도와 산동반도간의 횡단항로가 이용되기 시작하였고,9세기에는 장보고가 해양을 제패하기도 하였다.
  • 수로왕비가 타고온 범선/역사속 바뀌어온 모습을 쫓는다(배:6)

    ◎삼국유사에 「아유타국 공주와 결혼」기록/“쌀150석 적재”… 1세기에 대형선 존재한듯 1세기경의 가야는 철기문명을 소유한 부족연맹의 국가였다.여러 부족의 맹주격인 수로왕은 김해지역을 중심으로 해상무역과 철기문명을 이용한 농업으로 풍요를 구가하고 있었다.신민으로부터 존경을 받던 수로왕의 결혼 모습이 「삼국유사」에는 경이롭게 기록되어 있다. 수로왕의 부인이 될 허왕후가 붉은 돛단 배를 타고 왔으며,신하들의 안내를 매몰차게 거절하고,애타게 그리던 님을 만나기전에 산신령에게 폐백을 드렸다.또한 화려한 궁궐을 마다하고 임시로 마련한 장막의 궁전에서 신혼의 첫밤을 지냈다는 점에서 이국적인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허왕후의 결혼 기사에서 해상교역이 활발히 행해지고 있음이 주목된다.즉 허왕후가 김해에 배를 타고 도착했을 때 갖고 온 예물에는 「비단옷·천·금은·주옥·유리그릇」등이 헤아릴 수 없었다는 기록과 결혼후 왕비가 타고 온 배를 돌려보낼 때 뱃사공 15명에게 각각 쌀 10석과 베 30필을 주어 돌려보냈다는 기록에서 가야국은 사치품을 수입하고 생필품을 수출하였음을 알 수 있다.또한 당시 해상교역에 동원된 배는 최소한 쌀 1백50석과 베 3백필 이상 적재할 수 있는 범선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허왕후가 5월에 아유타국을 출발하여 7월22일에 김해에 도착하였다는 기록을 상기해 볼때 2개월 정도 풍랑을 헤치고 항해할 수 있는 견고한 범선이 아유타국과 가야국을 왕래하고 있었다.당시 범선의 왕래는 단순한 물물교역만이 행해진 것이 아니었다.첫 만남에서 수로왕은 『신하들이 왕비를 맞으라는 청이 있었지만 듣지 않았더니 이렇게 현숙한 부인을 맞이하게 되었구려』라고 말하자 왕비는 조용히 『소녀는 아유타국 공주인데 성은 허씨요 이름은 황옥이며 나이는 16세입니다』라고 낭낭하게 말했다는 사실은 가야의 상인들이 아유타국에 많이 왕래하였기 때문에 그들로부터 16세의 어린 소녀가 결혼전에 가야의 말을 배워 님과의 첫 만남에서 사랑의 밀어를 불편없이 나눌 수 있었던 것이다.수로왕의 국제결혼 기사가 말해주고 있는 것은 당시 해상교역이 단순한 물물교환의범위를 넘어 언어와 제도 같은 보이지 않는 문화의 교류가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1세기에 있었던 수로왕의 국제결혼은 중요한 역사적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 세계적 음악가·자유주의 신봉정치인/파데레프스키유해 조국 파품에

    ◎미서 사망,사후 51년만에 “국민영웅” 추대/5일 바르샤바대성당서 성대한 봉안식 폴란드가 낳은 세계적 음악가이자 자유주의 신봉 정치가인 이그나시 장 파데레프스키(Ignacy Jan Paderewsky)가 폴란드 국민영웅으로 추대되고 5일 그 유해가 사후 51년만에 미국에서 자유 폴란드에 이송돼 바르샤바 대성당에서 성대한 봉안식이 열린다. 폴란드는 일요일인 이날 전국성당에서 동시에 파데레프스키 영결미사를 올리며 바르샤바 대성당의 안장행사에는 바웬사대통령을 비롯,독일 뮌헨서 열리는 선진공업7개국 정상회담(G7)길의 부시미국대통령등 정치지도자들과 세계적 음악가들이 대거 참석한다. 피아니스트이며 작곡가인 그는 폴란드가 1백년이상 프러시아(독일)·러시아·오스트리아 3개국에 의해 분할통치를 받고 있을 18 91년 미국 첫 순회공연에서 미국민을 열광케 해 가장 사랑받는 음악가가 된 이후 폴란드 자유투쟁의 영웅으로 추앙받게 되었다.파데레프스키는 이후 여러차례 미국 순회연주회를 가졌으며 그와 친교를 맺었던 우드로우 윌슨미국대통령은 1918년 그의 요청에 따라 의회에서 폴란드독립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해 줄 것을 요청하는 연설을 하기도 했다. 그는 1차 세계대전 결과 19 19년 새로 탄생한 폴란드 첫 수상이자 외무장관이 되었으며 베르사이유평화회담에 폴란드대표로 활약했다.그는 수상직을 그만둔 뒤 20년부터 3년간 국민연합의장으로 이웃 독일의 팽창주의로부터 폴란드 자유를 수호하는 활동을 벌이다 후에 스위스에 정주했다. 39년 나치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자 그는 스위스에서 미국으로 이주,폴란드 자유쟁취를 위해 투쟁했으나 이미 고령인데다 병마에 시달리고 있었다.그는 폴란드가 16세기 야젤로왕조이후 이웃 독일과 러시아등 열강들에 의해 계속 유린당하는 역사적운명을 극복하는데 헌신했다.파데레프스키는 40년 폴란드 망명정부 대통령으로 활동하다 41년 7월29일 뉴욕서 사망했다.
  • 한·일문화 동질­이질성 열띤 토론

    ◎92문화통신사 「한일문화포럼」 중계/“일 차도스타일 고려다원서 본받은것”/예술·생활·종교등 주제놓고 비교분석 「한일문화의 동질성과 이질성」을 주제로 한 「한일문화포럼」애 30일 도쿄 한국문화원에서 개막되어 1일까지 주제발표와 토론을 모두 마쳤다. 「92한국문화통신사」행사의 하나인 「한일문화포럼」은 5개의 소주제로 나뉘어져 양국에서 각각 1명씩의 학자가 나서 주제발표에 이은 참석자들의 토론으로 진행됐으며 마지막에는 총괄토론으로 마무리됐다. 발표자는 제1주제인 「생활문화」에서 이광규서울대교수(인류학)와 구마쿠다 이사오 민족학박물관조교수,제2주제인 「선비사회와 무가사회」에서 김용운한양대교수(운명비평가)와 카사야 가즈히코 국제일본문화연구센터조교수였다. 제3주제인 「종교적 에로스와 사회적 배경」에서는 최길성 나고야중부대학교수와 야마오리 데쓰오 국제일본문화연구센터교수가,제4주제인 「한일문화교류」에서는 김태준동국대교수(국문학)와 하카 도루 국제일본문화연구센터교수가 주제발표를 맡았다. 5번째 주제인 「예술의 상상력­한국과 일본」에서는 조동일서울대교수(국문학)와 마쓰오카 신페이 도쿄대조교수가 각각 발표자로 나섰으며 총괄토론에는 지명관도쿄여대교수와 하카 도오루 교수가 좌장이 되어 단상토론이 벌어졌다. 이번 「한일문화포럼」에서 발표된 내용 가운데 특히 청중들의 주목을 끈 대목을 소개한다. ▲이광규교수 「한일양국의 생활문화 비교」=한국은 집을 긴 시간의 연속체로 파악했고 일본은 집단적 표상으로 파악했다.따라서 한국에서는 혈연이 중요했고 일본에서는 의리가 중요시됐다.더 나아가 한국은 충보다 효가 중요하고 일본은 효보다 충이 중요한 것이다. 이러한 것이 물질세계에 상징적으로 반영되어 한국은 곡선미,일본은 각선미를 추구하며 한국은 조화를 강조하고 일본은 정돈된 상태를 중요시한다.이런 세계관이 의식주에 모두 반영되고 있다. 이처럼 유사하면서도 특이한 문화적 창조능력을 발휘한 두 나라는 앞으로 문화가 경쟁의 중요한 내용이 되는 시기에 큰 힘을 발휘할 것이다. ▲구마쿠다교수 「다도의 색과 형」=일본다도의 도구에 있어 스타일을 완성시키는데 필수불가결한 것이 고려다완이었다.한국에서는 평가되지 못하는 삐뚜러짐의 미가 일본에서는 가장 존중되어 일본문화를 풍부하게 한 것은 현대의 국제문화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 ▲최길성교수 「한국기독교와 샤머니즘」=한국에서 기독교는 크게 번성하고 있지만 신비주의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한국기독교는 샤머니즘적 풍토위에서 불가피하게 한국교회의 성격을 나타내고 있다. ▲야마오리교수 「기독교는 왜 일본에 정착하지 못했는가」=일본의 기독교는 16세기 중엽에서 17세기초에 걸쳐 전성기를 맞았으나 곧 기독교 금제의 시대를 맞아 급격히 쇠퇴해갔으며 절과 시주의 관계가 확립되어갔다.따라서 전파의 숨통이 끊겼다.불교는 일본인의 고유신앙을 적극적으로 인정해 토착화했으나 기독교는 실패했다.이밖에 일본 종교의 정수라고 해야할 조상숭배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다루는데 태만했다. ▲조동일교수 「한일문학 특질론 비교」=일본에서는 문학사 서술을 통해 일본문학의 특질을밝히는 것을 지속적인 과제로 삼은 반면 우리측에서는 문학사 전개과정에 어떤 보편성이 있는가를 찾는데 힘썼다.이런 학풍의 차이가 고려되어야 한다. 이제 양국은 동아시아문학사의 공동 전개라는 차원에서 서양의 문학이론과 경쟁해 나가야 한다.이를 위해 연구성과의 상호교환과 직접 교류의 활성화가 필요하다. ▲마쓰오카교수 「능(노)의 상상력」=농악이나 사물놀이에서 보듯이 한국의 민중예능은 매우 다이내믹한 신체동작을 요하나 능(노)은 정태적 신체에 바탕을 둔다.그러나 일본은 중세의 전락에서처럼 다이내믹한 율동이 있었다.그러나 살아있는 육체의 빛을 부정하고 신체의 움직임을 붙잡아 매어놓음으로써 또다른 신체의 빛남을 획득한다는 능(노)의 정신적 기반이 확립됨으로써 일대전환이 이루어졌다.
  • 「임나일본부설」 뒤엎은 가야전/도쿄 서동철기자(객석에서)

    『또 임나일본부입니까』 지난달 29일부터 「가야문화전」이 열리고 있는 도쿄국립박물관의 한일 두 나라 박물관 관계자들은 가야와 임나일본부설의 관계를 묻는 한국인 관람객의 질문에 답변을 하느라 몸살을 앓고 있다. 국내에서는 이 전시회가 오로지 가야가 일본보다 앞선 유물을 그들에게 소개함으로써 임나일본부설이 당치도 않다는 것만을 보여주려 마련된 것으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그러나 일본에서는 사정이 다르다. 일본에서도 가장 권위있는 국립도쿄박물관의 전시내용이나 도록은 곧 교과서만큼의 무게를 갖는다고 한다. 도쿄박물관에서 만든 「가야문화전」도록에는 도쿄대 다케오 유키오교수의 「문헌으로 본 가야」라는 글이 실려있다. 다케오교수는 이 글의 제5장 「임나일본부로의 허실」에서 분명히 임나일본부의 존재를 부인하고 있다.「일본」이란 이름이 가야가 망하고도 1백년 이상이나 뒤에 처음 나타나는데 임나일본부가 그 이전에 있을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이처럼 임나일본부설이 교과서에서도 사라진 것이나 마찬가지인상황에서 가야와의 관계를 묻는 것 자체가 어리석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유념해야 할 것은 우리측에서 「매우 양심적인」학자로 대접받고 있는 다케오교수도 임나일본부설만을 부인했지 일본의 가야지역 지배가능성 자체를 부인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임나일본부라는 명칭은 아니었지만 그에 해당하는 지배체계가 확립되어 있지 않았겠느냐는 식이다. 이번 전시회에는 모두 4백37점의 국내 출토품이 출품됐고 비교를 위해 40여점의 일본 유물도 함께 전시되고 있다.대부분 연대가 우리것이 일본보다 앞서고 있으나 개중에는 파형동기처럼 우리것은 4세기이나 일본것은 1∼2세기,그것도 주형이 전시된 것에 개운치 않음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부류의 일본인이라도 첫번째 전시실을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기원전 1세기의 대형 철제 창날들에서부터 마지막 전시실을 가득 메운 5∼6세기의 철제마구와 갑옷·투구까지 모두 돌아보면 그들의 선조가 그들보다 청동기와 철기문화가 크게 발달한 가야를 지배했으리라는 망상은 쉽게 가질 수 없을것이 분명하다.이것이 이번 전시회의 가장 큰 의의인 것 같다.
  • 여의도 살인질주범 가톨릭에 귀의(조약돌)

    ◎손자잃은 할머니 인도에 장기기증 ○…지난해 10월 서울 여의도 광장에서 훔친 차로 질주,2명을 죽이고 20여명에게 부상을 입혔던 사형수 김용제씨(22)가 그의 범행으로 손자(윤신재·당시6세)를 잃은 할머니 서윤범씨(59)의 인도로 카톨릭에 귀의,사후 장기기증을 약속했다. 김씨는 지난 19일하오 경기도 의왕시 소재 서울구치소에서 김수환추기경이 주례한 미사를 통해 영세와 견진성사를 받고 카톨릭신자로 다시 태어났는데 이 자리엔 서할머니도 참석,김씨에게 묵주를 선물하며 함께 눈물을 흘려 눈길을 끌었다. 손자를 죽인 가해자에 대한 원한과 분노를 용서와 사랑으로 승화시킨 서할머니는 지난해 11월말부터 구치소의 김씨를 방문,시력이 나쁜 그에게 안경을 맞춰주고 겨울엔 솜이불도 넣어주며 신앙을 가질것을 권했다.또한 재판부에 편지를 보내 피해자 가족인 자신이 김씨를 용서하고 있으니 관대한 처분을 해달라는 탄원도 했다.
  • 외언내언

    타면이란 글자 그대로 남의 얼굴에다 침을 뱉는 일.사람을 모욕하면서 싸움을 각오하고 하는 짓이다.타면자건은 모욕을 참아내는 경우를 두고 쓰이는 말.얼굴에 뱉은 침이 스스로 마른다는 것이니 말이다.◆이 타면이라는 말은 여러 전적에 나온다.그중 「전국책」(조책)의 내용은 이렇다.조나라 태후(효성왕의 어머니)가 정사를 펴자 진이 쳐들어왔다.조는 재에 구원을 청한다.그러자 재왕은 장안군(효성왕의 아우)을 인질로 보낸다면 원군을 내겠다고 했다.태후는 승낙 안한다.대신들은 강경하게 보내자고 했다.이때 태후가 하는 말­『누구든 다시 또 장안군을 인질로 내놓자는 자가 있으면 그 얼굴에 침을 뱉으리라』◆미국 LA 딸네 집에 간 66세의 한 한국 할머니가 모욕 당한 소식이 전해진다.모녀가 버스로 라스베이가스 관광을 떠났다.도중 휴게소에 들렀다가 와보니 할머니 자리에 흑인이 앉아 있다.자리를 내놓으라 하자 흑인은 할머니 얼굴에 가래침을 뱉었다.LA폭동을 생각한 모녀는 참았다.그야말로 타면자건.귀로에는 화장실에서 담배 한대 피웠다가 도중에 강제하차 당했다.역시 흑인 운전사에 의해서.◆있을 수 있는 하나의 사건을 가지고 이러쿵 저러쿵하는 것이 우스울 수도 있다.또 상황이 잘못 알려질 수도 있는 것이고.특히 모녀의 태도 같은데서.이는 이쪽에서 반감을 유발했을 수도 있는 가능성을 말한다.설사 그렇다 해도 전해 듣는 기분이 썩 좋은 건 아니다.노인한테 가래침을 뱉다니.손님인데 외딴 밤길에 팽개쳐 버리다니.폭동때의 불쾌감까지 고개 들면서 불쾌감은 증폭된다.◆이 흑인들은 아마도 지난날 백인들에게 당한 수모를 그대로 모방,힘없어 보이는 할머니에게 행패를 부린듯.그렇다면 「짓눌린 못난이」의 못난 행패.그런데 더더욱 괘씸한 것은『규칙을 어기면 그럴수도 있다』는 버스회사측의 해명.이 사람들,좀 심해 보이는군.
  • 가야문화/영­정조전/한국문화재 해외전 전문화

    ◎가야문화전… 30일부터 일 4곳 순회/영·정조전… 새해 뉴욕·워싱턴·LA서/국립박물관,종합전시 형식 지양/한시대 집중소개… 외국인 이해도와 오는 30일부터 일본에서 「가야문화전」이 열리는데 이어 내년에는 미국에서 「조선시대 영·정조전」이 예정되어 있는등 한국문화재의 해외전시가 점차 전문성을 띠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의 한국문화재 해외기획전은 지난 76년 일본을 시작으로 79년부터 81년까지 미국,84년 영국과 서독에서 열린 「한국미술 5천년전」등 한국사를 망라하는 종합전시회가 주류를 이루었다. 당시만해도 한국문화에 대한 서구인들의 시각은 「중국과 일본문화의 아류」정도로 인식되어있던 상황이어서 무엇보다도 전시회를 통해 한국이 뿌리깊고도 독창적인 문화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먼저 알려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한국이 경제적으로 크게 성장,국제사회에서 주목의 대상이 되고 있는데다 서울올림픽등을 통해 한국문화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어느 정도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시대별전시회 혹은 테마전시회가 가능해졌다는 것이다. 특히 「92 한국문화통신사」의 일원으로 일본에서 열리는 「가야문화전」은 단순히 한국문화를 일본에 소개한다는 차원을 넘어 한 시대를 떼어내어 보여줌으로써 왜곡되어 왔던 역사를 바로잡아 준다는 적극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이 전시회는 8월8일까지 도쿄 국립박물관에서 열리는데 이어 8월25일부터 9월20일까지는 교토국립박물관,10월2일부터 11월3일까지는 후쿠오카현립박물관에서 열리는등 4개월여동안 일본의 3개도시를 순회한다. 가야전에는 가야의 모체가 되는 기원전 1세기의 원삼국시대부터 서기 6세기까지 가야지역에서 출토된 금동관등 각종 장신구와 무구·마구·토기류등 3백3건,4백37점이 출품된다. 이 전시회에는 특히 일본에서도 출토되는 형태의 철제갑주등 40여점의 철제품에 비중을 두어 가야의 철제무기와 이의 제조기술·인력등이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의 고대국가형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음을 눈으로 확인시켜 주도록 했다. 매년 가을부터 1년여동안 미국에서 열리는 「영·정조전」은 국립박물관이 마련한 해외전시의 특이한 사례로 기록될 것같다. 이 전시회는 미국의 아시아소사이어티가 계획하고 있는 한국페스티벌의 하나로 뉴욕과 워싱턴 로스앤젤레스의 3개도시를 순회한다.이 전시회는 지난달 중순 이단체서 로버트 옥스난회장과 마셜 버튼부회장이 한국을 방문해 개회를 확정했다. 아시아소사이어티는 당초 이 전시회도 「한국미술5천년전」같은 한국문화재의 정수로 꾸며줄 것을 국립중앙박물관측에 요청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에대해 한병삼박물관장은 『일반적인 한국문화가 특히 미국의 경우에는 소상히 소개되어온 만큼 한국미술 5천년전같은 전시회는 의미가 퇴색할 수 있다』면서 『대신 한국이 근대사로 접어드는 징검다리에 해당하고 문화적으로 조선시대의 르네상스라고 할 수 있는 영·정조시대전을 열자』고 설득했다고 한다. 이 전시회의 내용은 아직 확정되지는 않았으나 「왕실의 생활」 「양반의 생활」 「서민의 생활」등의 테마를 정해 당시의 생활양식과 당시인의 사고를 표현하는 방식이 될 것으로 알려져있다. 이러한 형태의 전시회는 또국보급 문화재만으로 전시회를 가질 때 만일의 경우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크게 줄인다는 점에서도 바람직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 독일/범죄는 느는데 시민신고정신 퇴색(특파원코너)

    ◎범인검거율 하락… 독정부 대책마련 부심/도시거대화로 정의감 실종·무관심팽배/눈앞의 사건·사고 “모른척”… 증언도 기피 독일사회는 8천만국민이 사회감시원이라고 불릴 만큼 전통적으로 신고정신이 철저한 것이 특징이었다.이를테면 경미한 차량접촉사고만 나도 뒤따른 운전사들이 저마다 경찰에 신고하고 가던 길을 멈춰 증인으로 나서 진술한다. 경찰은 목격자 진술을 가장 중요시하며 사고 당사자들이 자신이 피해자라고 아무리 목청을 높여도 억지주장은 통하지 않는다.아무도 안보이는 숲속에 무성히 자란 고사리를 나물로 뜯던 한국노인들이 적발돼 벌금을 무는 것도,새로 이사해 보름안으로 규정된 전입신고라도 깜박 잊는 경우 경찰관이 찾아와 그 경위를 묻는 것도 모두 시민과 주민들의 철저한 신고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이같은 독일인들의 신고정신이 퇴색되고 있는데다 범죄나 사고로 인해 길에 쓰러져 신음을 하고 있는 사람을 못본체 지나치는 사람들이 늘어나 이에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가고 있다. 이같은 변화는 최근 독일의 시사주간지 슈테른지가 실험한 결과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국도에 방금 차량 2대가 충돌,피투성이가 된 부상자가 신음을 하는 장면을 꾸며 놓고 이를 본 시민들의 반응을 조사해 보았더니 현장을 목격한 차량의 3분의2가 그대로 지나쳤으며 부상자를 도우려고 차를 세운 사람은 5분의1정도였다. 부모로부터 학대를 받거나 체벌로 부상하는 14세미만 어린이가 독일서 한해 40여만명이 발생하고 있으나 경찰에 신고되는 사례는 지난해 2만8천건밖에 안됐다. 최근 서베를린 6번 지하철에서는 15명의 승객이 지켜보는 가운데 한 남자가 26세의 청년을 칼로 찌르고 다음번 정류장에서 내려 도망했으나 아무도 범행을 제지하거나 신고를 하지 않은 사건이 발생했다.또 동베를린 번화가에선 미케(21세)라는 스킨헤드족이 담배가게 문을 열려는 베트남인 누엔 반 투(29)씨의 목을 졸라 죽이는 사건이 발생했지만 아무도 구급차를 부르지 않았다. 독일 범죄전담국 차헤르트국장은 독일인의 신고정신이 퇴색되고 소극적인 행동을 보이는데 대해 여론조사결과와 일치하는 현상이라고 우려했다. 전문가들은 독일사회의 이같은 변화에 대해 도시가 커지면서 시민 정의감이 사라지고 다른 사람에게 무관심해졌으며 신고로 인한 불이익을 꺼려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때문에 지난해 은행강도에서 자동차도둑에 이르기까지 독일에서 4백30만건의 범죄가 발생했으나 검거율은 40%밖에 안돼 수사관계자들은 보상제도의 신설등 최근 시민신고정신을 살리기 위한 대책에 고심하고 있다.
  • 고려청자 비색/굽는 온도·유약 때문

    ◎중앙대 고경신교수,광학현미경·X레이 이용 분석/고온처리시간 짧아 유약에 불순물·기포 남아/빛을 흡수·산란… 그윽한 색조 유지/발색제로 철을 사용,푸른색 띠어 고려청자의 비색과 은은한 자태의 과학적 비밀이 한 여성 화학자의 손에 의해 벗겨지고 있다. 중앙대 화학과 고경신(46)교수는 전국에서 수집한 전통과 현대 도자기편 81편에 대해 재료들의 화학과 광물성분,미세구조 분석을 수행,그 결과를 지난 5월 미국에서 열린 미국재료공학학회와 국내 역사학대회에서 잇따라 발표했다. 한국전통도자기는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일본 도자기산업의 원류이자 뛰어난 예술성으로 세계 도자기사에 독자적 위치를 확보하고 있으나 과학기술적인 분석이 한국인의 손에 의해 체계적으로 수행돼 국내학회 및 세계학회에 발표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고교수에 따르면 중국과 한국의 도자기는 똑같이 점토 규석 장석의 삼각좌표조성의 범위에서 발달했지만 중국은 30종류이상의 화려하고 다양한 색조의 제품을 만든데 비해 한국은 청자 분청사기 백자 청화백자등 색채가 거의 없는 가라앉은 색의 도자기를 전개한다.또 같은 청자의 경우도 중국은 비색이라 해 「있는 것 모두를 보는 듯한 투명한 느낌」을 주는 반면 한국은 비색이라 해 「도자기의 태토가 보일 듯 말 듯」그윽함과 깊이를 느끼게 하는 차이가 있다. 고교수는 이와같은 차이를 우선 도자기를 굽는 온도와 유약의 차이로 밝혀낸다.그에 따르면 중국에서는 유약아래와 유약위의 여러 장식방법에 따라 철 구리 코발트 망간 등의 색유발물질들을 여러범위의 온도에서 소성시킬 수 있는 여러 종류의 유약들과 같이 사용함으로써 현란한 작품들을 만들어냈다.하지만 한국에서는 높은 온도에서 소성할 수 있는 석회질(CaO)유약이 거의 유일하게 사용되었고 또 여기에 사용된 발색제도 거의 철 뿐이었다. 중국과 한국도자기의 색조차이는 도자기의 반사도 측정으로도 증명된다.고려청자와 백자는 다함께 중국청자나 백자보다 반사도가 낮게 나타난다.이는 유약 속의 기포,녹지 않는 원료입자들과 새로 형성된 결정체에 의한 미세구조에서 결정되는 것으로 우리 도자기의 경우 소성온도 곡선이 산모양의 포물선을 그리기 때문으로 생각된다.즉 1천2백℃이상의 최고온도 유지시간이 짧기 때문에 재료속의 불순물이 녹지 않고 남게 되고 이 결정체들에 의해 입사된 빛이 일부 흡수되고 일부 산란돼 그윽한 빛을 내게 된다는 것이다.또한 청자의 푸른 색은 철의 환원된 상태에 기인하는 것으로 청자의 반투명상태는 어떤 종류의 입자들과 기포가 얼마만큼 어떤 형태로 존재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고 고교수는 설명했다. 고교수는 이같은 사실들을 광학현미경과 전자현미경,X레이 회절분석법등을 이용,방대하게 분석해냈다. 그 결과 모든 도편의 유약에서 기포와 녹지않은 규석이 발견됐으며 결정들도 확인했다.또 도편의 산화알미늄 성분은 16∼21%범위에 있었고,유약의 칼슘함량이 최고 21.8%로 중국에 비해 높았으며 고려청자의 회색빛을 내는 망간이 거의 모든 도편에서 0.1∼0.8% 검출되는 것등도 확인되었다. 고교수는 『이번 연구가 아주 작은 규모로 이제 시작일 뿐』이라고 말한다.『프랑스의 동양도자기박물관인 기메박물관에한국도자기가 30여점밖에 없는 것을 보고 우물안 개구리를 실감했다』고 말한 고교수는 『세계에 자랑하는 고려청자가 왜 그와 같은 모습을 갖게 되었는가와 나아가 그같이 훌륭한 과학전통이 왜 민족사에서 단절되고 말았는가를 밝혀내는게 연구관심사』라고 밝혔다.고교수는 미국 레드클리프대를 거쳐 MIT에서 26세에 최연소 이학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이번 연구에 앞서 한국의 염색화학을 체계화한 바 있다.
  • 90년 발견된 영일 신라고분/국내최대 횡혈식분묘 판명

    【포항=최암기자】 국내에서 지금까지 발굴조사된 신라고분중 최대규모의 횡혈식 석실고분이 경북 영일군 신광면 냉수리에서 발굴돼 신라묘제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10일 국립경주박물관(관장 이란영)과 경주문화재연구소(소장 고수길)발굴조사단은 고분발굴현장에서 한병삼국립박물관장,조유전문화연구소 유적조사연구실장등 문화재관계자 16명이 참석한 가운데 3차 발굴지도위원회를 열고 『이 고분의 축조연대는 신라6세기초로 추정하고 지금까지 발굴된 경주지역의 7,8세기초 고분보다 축조연대가 1백년이상 빠른 것으로 확인했다』고 밝혔다.조사단은 『이 고분의 봉분높이가 7m에 밑지름이 25m인 원형봉토분으로 고분입구에서 시체를 안치한 방까지 연도(연도)를 갖춘 특이한 고분』이라고 말했다. 이 고분은 지난 90년 10월부터 지난 3월25일까지 3차에 걸쳐 발굴조사를 실시했는데 발굴기간동안 장경호,고배등 각종토기류 1백56점과 금속류 93점,기타유물 7점등 모두 2백56점의 각종 유물이 출토됐다.
  • 조선 16세기 풍경화 26만불에 낙찰

    ◎미 소더비 한국미술품경매 42점 팔려/김창렬씨 물방울그림 만불에 사가/나머지 현대작가작품 6점은 유찰 소더비 한국미술품 단독경매가 5일 하오3시(미동부시간)미국 뉴욕의 소더비 본사에서 실시됐다. 지난해에 이어 두번째로 열린 이날 경매에는 고미술품과 도상봉 김환기 김창렬등의 한국현대작품 등 85점이 경매에 부쳐져 그중 42점이 팔렸다. 이날 경매에서 최고가를 기록한 작품은 16세기초 안견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조선조 풍경화로 내정가 12만달러의 두배가 넘는 26만4천달러(한화 1억9천8백만원)에 팔렸으며,다음으로 고려청자의 술주전자가 내정가 10배수준인 15만4천달러(한화 1억5백80만원)에 낙찰됐다. 이날 소더비사상 최초로 경매에 오른 현대작품 7점은 김창렬작품 단 한점만 낙찰되고 나머지 6점은 모두 유찰됐다. 김창렬작품은 1973년작 물방울그림으로 내정가(8천∼1만2천달러)의 중간선인 1만1천달러(한화 8백25만원)에 팔렸고,내정가 12만∼14만달러가 붙은 도사봉그림과 2만5천달러에서 6만달러까지 매겨진 김환기의 과슈 5점은 출품자의 과다한 가격요구로 유찰됐다/
  • 치아 부정교합/6살전후 예방교정 바람직

    ◎어린이 60∼70% 해당… 이 정확히 맞물리지 않아/이갈이시기 이상발육요인 없애/연2회 검진·부드러운 칫솔질 중요 치아가 정확하게 맞물리지 않아 음식을 씹는 기능을 떨어뜨리는 부정교합등의「예방교정」시기는 6살 전후가 알맞은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예방교정이란 만6세전후인 유년기에 치아의 정상적인 맞물림 상태를 보존하기 위해 치료하는 과정으로 맞물리지 않는 치아의 배열을 유발하는 환경요인을 찾아 없애거나 정상적인 치아의 발육을 저해하는 다른 부수적 요인까지 제거,정확한 치아의 맞물림 상태를 유지하는 처방. 연세대치대 치과교정과 유영규교수는『현재 부정교합상태의 어린이는 지난 60년대에 비하면 2배이상 늘어난 60∼70%』라면서『그 원인을 정확하게 한마디로 단정하기 어렵지만 우유의 경우 치아에 들러붙는 접착력이 강해 떨어지지 않고 여러가지 치아질환을 일으키는등 우유를 많이 이용하는 것에 기인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불정교합은 치아를 올바른 자리에 있도록 하는 악골 근육계통의 힘이 불균형을이뤄 발생하는 치아배열이 불규칙해지는 질환. 따라서 부정교합은 치아가 제대로 맞물리지 않아 음식씹는 기능을 떨어뜨릴 뿐만 아니라 치태나 치석을 쉽게 끼게 하며 충치나 잇몸질환의 발생빈도가 높아진다. 이 질환은 6∼10세때 치아가 새로 이갈이하는 시기에 치아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이 가장 큰 원인이다. 또 치아의 형태·크기·수,악궁의 형태 등이 부나 모로부터 개별적으로 유전되는,즉 아버지로부터 큰 악궁을 유전받고 어머니로부터 작은 치아를 물려받았을때 자연적으로 치아배열이 고르지 못하게 되는 경우나 6∼10세에 충치치료가 불완전했을 때,내분비계의 이상 등으로 성장이 늦어 치아의 교환시기를 넘겨 이갈이를 못했을 때,충치가 심해 치아가 일찍 빠졌을 때 등이다. 이밖에도 어린이들이 △혀를 내밀거나 손가락 빠는 습관 △입술이나 손톱을 깨무는 습관 △치아를 악물거나 밤에 이가는 습관 △코로 호흡하지 못하고 입으로 하는 경우 등도 원인이 되기도 한다. 진단은 대체로 가시적으로 드러나므로 쉽게 식별할수 있지만 그렇지못할 경우 악골의 발육상황을 측정하는 X­선촬영을 하거나 석고모형을 만들어 계측하는 방법을 쓴다. 대한치과의사협회 공보이사 양영태박사는『특히 요즈음 어린이들은 예전에 비해 치아병변을 많이 발병케 하는 초콜릿이나 콜라 등의 인공음료를 자주 마시는 경우가 많은데 이를 삼가게 하고 치아가 처음 나는 시기부터 부드러운 칫솔질을 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어린이들이 1년에 2회정도 치과의사의 정기검진을 받도록 하는 것이 최선의 예방책』이라고 강조한다.
  • 고대 한·일교섭사 밝힐 중요단서 제공

    ◎부안죽막동 제사유적 발굴의 의의/백제시대 해상교통 관련 제사지낸 곳/토기파괴의식 흔적… 토착신앙연구에 도움 삼국시대의 제사유적으로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확인된 부안 죽막동 해안유적에 학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국립전주박물관 조사단(관장 한영희)이 변산반도 최서단 채석강해수욕장과 이웃한 전북 부안군 변산면 격포리 죽막동 산35의17 일대에서 지난달 9일부터 벌이고 있는 5세기말∼6세기초의 백제 제사유적 발굴조사는 단순히 최초의 제사유적이란점 외에도 고대 한일교섭사와 동양인의 신앙체계를 해명할 중요한 단서를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학계는 이 유적이 고대의 왕실이나 해상통제가 가능한 토착세력에 의해 해상교통과 관련된 제사가 이루어진 곳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유적에서는 먼저 제사유적이라는 사실을 증명할 수 있는 유공원판과 검형품,흙으로 빚은 말의 몸통등 다수의 제구가 출토됐다.유공원판과 검형품등은 특히 우리나라에서 출토된 유례가 없어 일본에서 지은 이 이름을 당분간 그대로 쓸 수밖에 없는형편. 일본에서는 대마도와 본토사이의 후쿠오카현 오키노섬 등에서 같은 형태가 다량 발굴됐다. 문제는 죽막동 유적의 석제품은 일본의 유물이 대부분 활석으로 만들어진데 비해 점판암이나 사문암 계열인데다 일본의 제사유적에서는 출토사례가 없는 갑옷의 모형과 철제칼 등이 나왔다는 것이다. 조사단은 유적에서 중국 동진시대의 흑유와 네귀달린 청자파편 등도 찾아냈다. 이러한 사실은 당시 한·중·일 3국의 해상교통로와 함께 문물·의식의 전파경로를 암시하고 있는 셈이다. 죽막동 유적과 출토유물은 또 지금까지 외래종교인 불교이외에 알려진 것이 거의 없었던 삼국시대의 토착 신앙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죽막동유적은 해안에 돌출한 높은 언덕에 자리해 현재도 전북지방유형문화재 제58호인 수성당과 맞붙어 있다.이번 조사에서도 삼국시대유물 이외에 의식에 쓰인 고려청자와 조선백자가 다수 발굴되었으며 수성당은 지금도 민간 신앙의 장소로 널리 알려져 있다. 또 제사과정에서 잘려진 것으로 보이는 토레 말몸통과 말머리·모형갑옷등이 출토된 외에 수천 점의 토기파편이 규칙성 있게 흩어져 있어 토기 파괴의식의 흔적이 보이는등 고대인의 신앙세계와 의식과정의 일단을 설명해주고 있다. 죽막동유적의 연구는 궁극적으로 지금까지 해명이 되지 않았던 청동기시대와 초기 철기시대의 조개무지와 집터,산정상 등에서 출토된 성격불명의 유물에 대한 새로운 해석도 가능하게 해줄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이 지역이 백제멸망이후 백제유민들이 일본과의 관계를 유지하며 대당·대신라투쟁을 했던 산성이 있었던 곳으로 추정되고 있고 당의 장수 소정방의 일화가 얽혀있는 내소사가 인접해 있다는 점에서도 백제 부흥운동과 관련된 새로운 사실이 밝혀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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