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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북 추가 식량지원 미 국무부 주초 발표/1천만불 이상 계획

    【워싱턴 연합】 미국 국무부는 내주초 북한의 식량난을 지원하기 위한 인도적 차원의 추가 식량원조 계획을 발표할 예정이다. 니컬러스 번스 대변인은 11일 브리핑에서 “유엔 세계식량계획(WFP)의 지원호소에 따른 대북 식량원조 결정이 아직 내려지지 않았으나 상황의 긴박성을 감안,곧결정이 내려질 것”이라고 말했다. 국무부 관계자는 이와관련,올들어 세번째로 이뤄지는 대북원조 규모가 1천만달러 이상이 될 것이며,지원곡물은 WFP를 통해 영양실조가 심각한 북한의 6세미만 어린이들에게 직접 전달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은 올들어 두차례에 걸쳐 2천5백만달러를 지원한 것을 포함,지난 95년 이후 지금까지 모두 3천3백40만달러의 대북 식량원조를 제공한 바 있다.
  • 경선 고려 중립인사 발탁/조홍래 정무수석 임명 배경

    ◎경선 고려 중립인사 발탁/김광일 특보와 역할분담 이뤄질듯 김영삼 대통령이 조홍래 농어촌진흥공사사장을 정무수석으로 기용한 가장 큰 이유는 그가 정치적으로 ‘무색무취’하다는 점때문이다.신한국당 경선이 치열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특정후보에 쏠린 인사를 임명했을 경우 잡음이 일수 있다. 청와대측은 또 최근 여러 이유로 사기가 떨어진 민주계 분위기를 고려,민주계 출신중 정무수석을 물색했다.민주계로서 경선에 중립적인 인사를 고르자니 인선범위가 지극히 좁았다.조 신임수석이 문민정부들어 정치권에서 멀어져 있었던게 ‘뜻밖의 발탁’을 가져왔다고 여겨진다. 조수석은 이날 하오 임명장을 받은뒤 “정치권에서 벗어난지 3년만에 정무수석에 임명돼,앞으로 정무수석 역할을 어찌해야할지 숙고해보겠다”고 말했다.그는 “정치분야 개선,특히 선거풍토에 변화가 있어야겠다는 김대통령의 뜻이 잘 실천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조수석은 이어 신한국당 경선과 관련,“대통령의 중립적 입장을 받들겠으며 특정주자에 대한 개인적 호불호가 없다”고 강조했다. 조수석은 김광일 정치특보와 경남고 12회 동기다.앞으로 신한국당 경선 및 정치개혁 추진에 두사람이 어떻게 호흡을 맞추느냐가 주목된다.정치력이 필요한 부분은 김특보가 맡고,신한국당 및 국회와의 연락업무 등 일반 정무업무는 조수석이 담당하는 ‘역할분담’이 이뤄질 것 같다. 조수석은 6·3세대로 10대때 유정회 의원으로 잠시 ‘외도’를 한 것을 제외하곤 정치초년생때부터 김대통령의 측근으로 활약했었다.김대통령은 ‘정책 브레인’으로서 그의 능력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조수석은 특히 농정에 남달리 많은 관심을 보여 ‘민주화시대의 농업정책’이라는 저서를 펴내기도 했다.문민정부들어 민자당 지구당위원장을 포기하면서 ‘정치 대신 농업정책 추진에 전념하겠다’고 선언했었다. 큰 키와 높은 코 때문에 만나는 사람에게 강력한 인상을 심어준다.정연한 논리와 정열적인 언변이 설득력이 있게 들린다.부인 태영남씨(46세)와의 사이에 3녀. ◇조정무 약력=▲경남 함안(57) ▲경남고 ▲서울대 정치학과 ▲8대(신민) 10대(유정회) 12대의원(신민) ▲민주당 총재특보,정책심의회의장 ▲민자당정책위부의장 ▲민자당 의령·함안지구당위원장 ▲농어촌진흥공사 사장
  • 자동차보험 개선안 문답풀이

    ◎사망사고때 유족위자료 대상­형제 자매 시부모 장인 장모 포함/차팔때 책임보험 승계 여부­구매자에 승계안돼 잔여분 되받아 자동차보험제도 개선안을 문답으로 알아본다. ­자동차 사고 사망시 보험금은. ▲지금은 1인당 기준이 본인 8백만원,배우자 4백만원,부모 3백만원,자녀 2백만원이다.따라서 부모가 살아있고 부인과 2명의 자녀를 둔 A라는 사람이 사망했을 경우 유족들이 받는 보험금은 2천2백만원이다.그러나 앞으로 사망자의 형제·자매와 동거중인 시부모와 장인·장모에 대해서도 각 1인당 1백만원씩을 더 지급하도록 해 A라는 사람의 형제·자매가 4명이고 장인·장모가 살아있다면 유족들은 총 6백만원을 더 받을수 있다. ­책임보험료의 할인·할증체계는. ▲지금은 종합보험 할인·할증의 절반만 적용하고 있다.예컨대 처음 보험에 가입하는 사람은 종합보험의 경우 80%의 할증을 받지만 책임보험은 40%만 할증된다.또 사고가 적은 사람은 종합보험의 경우 최고 60%까지 할인되지만 책임보험은 30%만 할인된다.그러나 8월부터는 100% 할인·할증율이 적용된다.예컨대 보험가입이 4년이 돼 할증적용을 받지않는 사람 가운데 자동차 배기량이 2000㏄이고 할인율이 60%인 26세 이상의 경우현행 책임보험료는 할증율 30%만 적용돼 17만8천560원이나 8월부터는 13만3천920원으로 4만4천640원이 준다. ­자동차를 사고 팔때 책임보험료를 돌려받을수 있나. ▲책임보험에 대한 권리·의무가 사는 사람에게 승계되지 않아 파는 사람은 보험료를 돌려 받고 사는 사람은 책임보험에 새로 가입해야 한다.이전등록기간(15일)이 지나도록 책임보험에 가입하지 않다가 사고를 내면 무보험자로 처리돼 과태료를 내야한다.피해자에 대한 보상은 유지된다. ­개호비 규정이란. ▲교통사고로 식물인간이 되거나 사지가 마비돼 100% 노동력을 잃어 간호를 받아야 하는 경우,여자도시 일용노임 3만4천947원을 적용,살아있을 때까지 달마다 지급된다. ­대물배상의 보상한도는. ▲개인용 차량의 경우만 2천만원,3천만원에서 5천만원 1억원으로 다양화됐다.1500㏄ 승용차의 경우 대물배상한도가 5천만원일때 보험료는 13만250원,1억원이면 13만3천160원이다. ­신규 보험가입자에만 적용되는가. ▲그렇지 않다.사고분부터 적용키로 해 기존 가입자에게도 달라지는 보험금 체계가 적용된다. ­보험료는 올리지 않는 것인가. ▲보험금을 현실화해도 보험료 인상은 없다.다만 지난해 8월 책임보험료가 39.8% 인상되고 종합보험은 인상분만큼 내렸기 때문에 책임보험에 새로 가입하는 사람만 인상된 책임보험료를 적용받게 된다.
  • 계단 난간 무너져 6세 어린이 추락사

    8일 하오 5시30분쯤 서울 송파구 마천동 124 김모씨(33·여)의 다세대주택 2층 출입구 계단에서 김씨의 딸(6)과 함께 놀던 최고은양(6·서울 송파구 거여동)이 계단 난간이 무너지면서 1.5m아래 콘크리트 바닥으로 떨어져 숨졌다.
  • 경선무대 출사표 ‘7룡7색’/여 경선후보 벽보·홍보팸플릿 선보여

    ◎김덕룡­“문민개혁 계승할 50대 지도자”/박찬종­“국민이 원하는 깨끗한 정치인”/이한동­국민대통합 기치 차별화 시도/최병렬­국정경험 풍부한 ‘일꾼론’ 강조/이회창­원칙·상식 존중하는 ‘대쪽’ 부각/이수성­서민풍 화합형 지도자상 강조/이인제­“민심은 당심” 40대 세대교체론 신한국당 경선후보 7명은 후보등록이 끝나자 3일 당선관위에 대의원들에게 배포할 홍보팜플렛을 제출했다.또 공식 선거벽보도 제작,이날 당사건물에 처음으로 부착했다.기호순으로 후보들의 홍보팜플렛 주요 내용을 소개한다. ▷김덕룡 후보◁ 문민정부의 시련과 아픔까지 끌어안고 위대한 한민족시대의 밑거름이 되겠다면서 자신의 당선은 ‘일석삼조’라고 주장한다.‘지역화합의 최적임자,세대교체를 이룰 50대 지도자,문민개혁의 정통성 계승’이 그것이다.1천여명의 각계 전문가로 구성된 ‘DR 신국가경영군단’이 마침내 힘찬 전진을 시작한다고 선언한 김후보는 “기업이 어렵다고 경영을 학자나 법조인에게 맡길수 없듯이 정치개혁은 ‘정치에서 커온 사람’”이라고 맺고 있다. ▷박찬종 후보◁ ‘온 국민이 원하는 후보 박찬종’이라는 표제로 대선에서 당선가능성 부각에 초점을 맞췄다.각종 여론조사결과를 제시,두터운 대중지지 기반을 강조했다.“TV토론을 압도하지 못하는 후보는 김대중을 이길 수 없다”는 논리도 눈길을 끈다.13대 대선때 후보단일화를 촉구하며 삭발했던 사진과 함께 “정치엔 신데렐라가 없다”는 말로 이회창·이수성 후보를 견제했다.‘깨끗한 정치인’이라는 이미지도 강조했다. ▷이한동 후보◁ ‘동지의 현명한 선택,당과 나라의 운명을 좌우합니다.지역갈등을 해소할 국민대통합의 기수’를 기치로 내세웠다.청와대는 대통령의 연수원이 결코 아니며,3부와 당3역을 거친 경륜의 정치인만이 큰 일을 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예의 적자론과 지도자 검증론을 제시하며 ‘이한동의 검증된 17년에는 떡값 시비가 없었다’고 역설,타후보와의 차별화를 시도했다.깨끗한 정치,활기찬 경제,튼튼한 안보,신나는 사회의 재강조도 빼놓지 않고 있다. ▷최병렬 후보◁ ‘국가혁신 위기극복’이 캐치프레이즈.“승천해 버리는 용이 되기보다 위기의 언덕을 힘차게 넘어가는 황소이고자 한다”는 ‘일꾼론’으로 일관했다.공보처장관 노동부장관 서울시장 등 국정경험을 내세워 관리능력과 추진력을 갖춘 인물임을 강조했다.개화기의 도산 안창호와 자신의 사진을 나란히 세워 전환기시대의 개척자임을 집중 부각시켰다.정부조직 절반 축소 등 국가혁신 10대 과제도 제시했다. ▷이회창 후보◁ ‘21세기 선진대국 실현’이 기치다.앞부분 부터 ‘원칙과 상식을 존중하는 이회창,올곧게 살아왔습니다’라며 자신의 참신한 이미지를 강조했다.눈길을 끄는 부분은 ‘왜 이회창이어야 하는가’는 물음에 답하는 방식으로 제시한 경선압승의 7대 당위성이다.야당이 두려워하는 후보,문민정부의 정통성을 이어갈 개혁적 후보‥.끝부분에 지난 5월 당대표로 중국방문때 강택민 국가주석과 찍은 사진을 실었다. ▷이수성 후보◁ 야당이 가장 두려워 하는 정권재창출의 필승후보임을 강조했다.특히 어린이,환경미화원,장애인 등과 함께 있는 사진들을 수록,서민적인 이미지를 부각시켰다.또 총리직을 물러날 때 여야의원과 전체 공직자로부터 아낌없는 박수를 받은 유일한 총리임을 내세워 동서와 남북과 상하를 화합하고 통합할 수 있는 지도자라는 점을 부각시켜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이인제 후보◁ 7명의 후보 가운데 가장 젊은 점을 부각시키기 위해 46세에 미국 대통령이 된 빌 클린턴,43세에 영국 총리가 된 토니 블레어의 사진 사이에 ‘이들과 당당히 맞설 한국의 대통령,누가 어울리겠습니까’라는 문구를 넣어 세대교체를 호소하고 있다.또 높은 국민지지도를 반영,민심은 곧 당심이고,대선에서도 승리를 거둘수 있는 후보임을 강조했다.
  • 은총과 신비/요한 바오로 2세 지음(화제의 책)

    ◎문학청년서 교황되기까지 여정 고백 사제 서품 50주년을 맞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직접 쓴 자서전적 에세이.교황이라는 외경스런 이름 뒤에 숨겨진 한 인간으로서의 고뇌와 기쁨을 진솔하게 고백한다.1920년 폴란드 크라쿠프에서 태어난 요한 바오로 2세는 지난 78년 제264대 교황에 선임됐다.그는 역대 교황중 1522년 하드리아노 6세 이후 456년만에 비이탈리아 출신이 교황직에 올랐다는 점에서 가톨릭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교회 행정관료 출신이 아닌 사목자 출신의 교황이라는 점도 특이하다. 문학과 연극을 사랑하던 가난한 예술청년이 2차세계대전과 아버지의 죽음을 맞이하면서 인생의 행로를 바꿔 사제의 길을 갈 것을 결심하는 과정,사제 성소에 영향을 준 여러 사람들과 사건에 대한 회상,시골성당의 신부에서 추기경·교황에 이르기까지 사제로서의 여정이 담겼다.현대는 세속화의 물결이 날로 거세지는 ‘종교 부재’의 시대다.이와 관련,교황은 개인적 영성뿐 아니라 사회적 영성을 유달리 강조한다.그는 “지난 50년 사제로서의 여정은하느님의 은총과 신비를 깨닫는 과정이었다”고 말한다.심종혁 옮김,김영사,6천500원.
  • 삼풍참사 2주기 추모식/유가족 등 500여명 참석

    502명의 생명을 앗아간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2주년 추모식이 29일 상오 서울 서초동 옛 삼풍백화점 옥외주차장에서 유가족과 시민단체 회원 등 5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추모식은 희생자에 대한 묵념을 시작으로 유족대표인 고 신수정씨(사고 당시 26세·여)의 어머니 정명숙씨(52)의 조사,불교계 대표의 종교의식,헌화 및 분향 등의 순으로 엄수됐다.
  • 「입술 사과」는 앙금을 못지운다(박갑천 칼럼)

    미국이 흑인노예 후손들에게 공식 사과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하원의원들은 6월중순께 그 결의안을 의회에 제출해놨다.하나 통과여부에 관계없이 화해를 위한 이조처는 미국 인종정책의 전환점이 되리라는 평가도 나온다. 『남북전쟁을 일으킨 사람은 톰아저씨다』라고들 말한다.대단한 인물같지만 다만 남부흑인노예일 뿐이다.그는 스토부인 소설 「엉클 톰스 캐빈」(1852년)의 주인공.그 작품에는 흑인노예의 비참한 생활상이 묘사된다.포스터의 「올드 블랙조」는 음악에서의 「엉클 톰」.그 감동의 충격파가 노예해방운동을 일으키면서 남북전쟁으로까지 발전한다. 아메리카대륙을 콜럼버스가 「발견」했다고 하는 말부터가 백인위주의 역사관에 바탕한다.그 콜럼버스가 벌써 1495년 검은 원주민 5백명을 노예로서 스페인으로 보내고 있다.그후 아메리카대륙에 유럽식민지가 넓혀지면서 노예무역도 번창해간다.아프리카 서해안은 노예상인들의 노예사냥터로 되고.아무튼 16세기로부터 18세기말까지의 약3백년사이 아프리카에서 아메리카로 실려간 흑인노예는 1천5백만에 이른다고 한다. 조상들이 받은 핍박을 생각할때 후손들의 한은 오죽하랴.하지만 지난일에 매달려 오늘을 망그지르는 것도 현명한 일일수는 없다.가해자의 사과는 그래서 중요하다.화해의 문을 두드리는 신호이기 때문이다.그러나 여기서 더욱 중요한 것은 화해의 진실성이다.그 진실성은 사과이후의 언행에 나타나게 돼 있는 법.바로 그 점에서 이번 미국의 사과는 우리로 하여금 일본의 사과를 한번더 떠올리게 한다.건성으로 한것 아니었나 싶어지면서.독도문제하며 이른바 위안부문제 등 우리울화를 버릊고 있는게 현실아닌가. 음회세위라 했다.재를 마시고 창자속 오물을 씻어낸 착한 마음으로 언행할때라야 비로소 진실성은 나타나는 것.공자가 『자기자신을 엄하게 꾸짖고 남 꾸짖는 것을 가볍게 하면 남의 원망이 멀어지리라』(「논어」 위영공편)고 했던 말뜻은 깊다.진실을 담은 사과는 그 『자기자신을 엄하게 꾸짖는』 자세에서 출발된다고 할것이다. 입술에 머무르는 사과는 끝내 앙금을 지우진 못한다.과연 미국의 사과는 어떻게 현실로 이어질 것인지.또 정작 우리가 지켜봐야 할것은 일본의 괴상한 사과말 「통석」이 끌고가는 방향.문득 「훈」할머니 눈물이 가슴으로 전달돼 오누나.〈칼럼니스트〉
  • 인도 함피:하(세계 문화유산 순례:35)

    ◎자연과 어우러진 거대한 「조각도시」 함피의 비자야나가르 유적군은 독특한 대자연과 인공이 어우러진 한 무더기의 거대한 예술품이었다.눈에 보이는 것은 벌거벗은 바위산 골짜기와 훼손된 사원 뿐이다.그러나 그것이 이뤄내는 조화는 함피를 차라리 섬세하게 계획된 「조각도시」로 여겨도 좋을 만큼 절묘했다. 함피 유적지는 워낙 넓은 지역에 걸쳐 있어 대충 둘러 보는데도 적잖은 품이 든다.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인도산 택시 「앰배서더」를 한대 빌렸다.1950년대 영국의 「모리슨 옥스퍼드」를 모방해 만든 이 차는 비록 구식이었지만 오토 릭샤보다는 한결 널찍하고 빨랐다. 비탈라 사원으로 먼저 차를 돌렸다.16세기 비자야나가르 왕조가 남긴 최고 걸작품으로 꼽히는 유적이다.유장하게 흐르는 퉁가바드라강을 따라 남쪽으로 한참을 달렸다.멀리 희미한 물상이 망막에 잡혔다.대지의 복사열 때문일까.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비탈라 사원의 모습은 마치 사막의 신기루처럼 가물가물했다. ○곳곳에 훼손된 사원/벌거벗은 바위산과 절묘한 조화 마침내 비탈라 사원.장엄한 건축미에 압도된 채 사원안으로 들어섰다.사원 정면의 한 건물 주위에 사람들이 모여 웅성거리고 있었다.무얼까.사원 관리인에게 물으니 함피의 명소 「뮤직 템플」의 돌기둥에서 나는 소리를 듣기 위해 모여든 것이라고 했다.관리인은 제 나라의 문화를 자랑이라도 하려는듯 안내를 자청했다.『자,여기를 두드려 볼테니 무슨 소리가 나는지 한번 귀 기울여 보세요』 그는 돌기둥 하나를 손가락으로 가볍게 두드렸다.순간 더할나위 없이 청아한 음악소리가 기둥에서 흘러 나왔다.『사,레,가,마,파,다,니,사』(인도의 도,레,미,파,솔,라,시,도)….제국시절 이곳에서 궁중연회가 열리면 악사들은 아무런 악기도 없이 이 기둥을 두드려 음악을 연주하고,무대에서는 무희들이 음악에 맞춰 춤을 추었다고 한다.「뮤직 템플」은 단지 청각만을 자극하지 않는다.그 기둥에 새겨진 조각상의 정교함과 시각적인 아름다움은 비자야나가르 건축예술의 전범을 보여준다. 높이가 3.6m에 이르는 56개의 돌기둥 마다에 새겨진 사람과 동물의 모습은 살아 숨쉬는듯생동감이 넘쳤다.돌기둥에 삐죽 나온 선반격의 받침돌 초엽은 제비처럼 날렵했다.게다가 이 사원 기둥은 하나의 커다란 돌을 깎아 만든 것이어서 신묘함을 더했다. ○비탈라사원 56개 돌기둥은 손가락으로 때려도 청아한 소리 비탈라 사원의 또 다른 주목거리는 앞마당에 있는 돌수레다.이것은 원래 남인도에서 제단에 모셔진 신상이 바깥 나들이를 할때 사용하던 나무수레를 본따 만든 것이다.화강암으로 된 이 돌수레는 비시누신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비시누신은 피부색이 검고 노란색의 옷을 입었다고 한다.그리고 네 손에는 각각 곤봉과 소라고둥·원반·연꽃을 들고,「가루다」라는 커다란 독수리를 타고 다니는 것으로 묘사되는 신이다.비탈라 사원의 돌수레는 그 「가루다」의 이미지를 고스란히 안고 있었다.한때는 실제로 굴러 갔다는 이 돌수레는 지금은 멈춰서서 움직이지 않는다. 함피의 유적을 답사하는 것은 곧 성지를 순례하는 것과 같았다.끝없이 이어지는 힌두사원과 종교적 우상들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생각이 불현듯 일었다.신에 멀미가 나서 아뜩한 정신을 추스리며 꽤 먼 길을 갔다.폐허가 된 옛 왕궁터를 끼고 남동쪽으로 돌자 지금까지 보던 것과는 색다른 양식의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지도를 펼쳐 보았다.이곳이 바로 「로터스 마할(연꽃 궁전)」이었다.「제나나」라고 불리는 작은 성벽 안에 있는 이 2층 건물은 왕이나 군사령관이 묵었던 숙소다.종교적 색채가 그다지 느껴지지 않아 우선 신선했다. 「로터스 마할」은 함피에서 가장 잘 보존되어 있는 유적 가운데 하나다.이 궁전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건축학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로터스 마할」은 인도­사라세닉 양식의 대표적인 건축물로 매우 복합적인 형태를 띠고 있다.궁전을 떠받치고 있는 24개의 사각 기둥들은 화려한 잎사귀 모양의 아치로 연결돼 있어 더없이 위풍당당했다.또 인접한 두 아치 사이의 삼각공간인 스팬드럴(spandrel)에는 원형 돋을새김 흔적이 역력해 환상적인 여운이 감돌았다. 「로터스 마할」에서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곳이 8각형 구조의 천장이다.천장은 둥근 지붕과 평지붕이 엇섞여 이뤄졌다.그 한 가운데에는 고딕 양식의 대사원에서나 볼 수 있는 고창층이 있어 시선을 끌었다.이곳은 치장벽토로 장식한 아치와 띠조각,굵은 동살,까치발,커다란 닫집인 벽감 등이 정교하게 어우러져 있어 비자야나가르 제국의 뛰어난 건축술이 그대로 엿보였다.기둥과 아치는 회교양식을,바닥·천장·배내기·치장벽토 장식 등은 힌두양식을 따랐다.그토록 상극이던 힌두교와 회교가 비록 건축물에서나마 행복한 결합을 하다니….아이러니와 허무로 가득찬 역사를 「로터스 마할」에서 읽었다. 인도­사라센 양식의 진수를 보았다는 뿌듯한 감흥을 안고 「로터스 마할」을 나왔다.먼 발치에서 다시 돌아보았다.건물 동쪽 모퉁이에 결딴난 채 방치돼 있는 돌기둥같은 물체가 눈에 띄었다.여인상 기둥인 카리아티드(caryatid)의 잔해임에 틀림없었다.그곳에는 뒷발로 일어선 「얄리」의 자취도 남아 있었다.「얄리」는 인도의 건축물에 흔히 등장하는 사자 비슷한 가상의 동물이다.비탈라 사원 돌기둥에서도 「얄리」를 만났다. ○왕이 머물던 「로터스 마할」굴은 인도­사라센 건축양식의 진수 함피에 또다시 아쉬운 어둠이 내리기 시작했다.일모도궁이라 했던가.마음을 함피 유적에 묶어두고 차에 올랐다.차창밖으로 보이는 진귀한 풍경이 이국정서를 자극했다.네루가 생전에 즐겨 썼다는 네루모에 허리를 감싸는 치렁치렁한 천 룽기를 걸쳐 입은 남자,바느질 없는 원색의 옷감 사리를 휘휘감고 짓붉은 이마점 빈디를 찍은 여인의 모습이 이채로웠다.또 십자 장대목위에 사탕수숫단을 싣고 가는 소며 더위에 지쳐 혀를 한뼘이나 빼어 물은 개,거무튀튀한 맨발에 발가락지까지 낀 낙타몰이꾼….함피는 언제 보아도 넉넉하고 평화롭고 정겨운 「생명의 도시」였다.
  • 영 보수당 새당수 윌리엄 헤이그(뉴스의 인물)

    ◎옥스퍼드대 출신 36세… 유럽통합 회의적 지난 5월 총선에서 침몰한 영국 보수당호의 새 선장으로 윌리엄 헤이그가 선출됐다.보수당의 분열을 치료하고 개혁추진을 떠안는 중책을 맡은 그는 61년생으로 36세.그는 19일 3차 결선투표에서 케네스 클라크 전 재무장관을 누르고 존 메이저 전총리의 후임 당수로 뽑혔다. 44세의 노동당출신 총리 토니 블레어와 함께 「젊은 영국」의 한축을 이룬 그는 1783년 윌리엄 피트가 24세에 당수로 선출된 이후의 200여년 영국 보수당사에서 가장 젊은 당수로 기록되게 됐다. 북부 요크셔의 부유한 사업가 집안 출신.13세때부터 자기 방에 대처의 사진을 걸어 뒀고,15세엔 보수당 정식당원이 될 정도로 어려서부터 정치적 포부를 키워왔다.옥스퍼드 재학시 정치학,철학,경제학에서 최고성적을 받았으며 졸업후 경영컨설턴트회사인 매킨지사 등에서 잠시 근무했다.87년 하원의원 선거에 출마,낙선했으나 27세 때인 89년 리치몬드에서 재기,초선의원이 됐다.94년에는 존 메이저 총리 내각에서 웨일스 지역담당장관으로 일했다.유럽통합및 유럽단일통화에 회의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으며 사회·경제정책에서는 온건한 보수파로,법·질서 문제에서는 사형 부활을 찬성하는 극우파로 분류된다.그러나 그는 동성간 결혼에 반대하지 않는다.트레킹,운동,여행,술을 즐기고 여성편력이 화려한 편.미혼으로 현재 웨일스장관 재직시 만난 공무원 피온 젠킨스와 약혼한 상태다.
  • 주 네팔대사 황부홍씨

    정부는 19일 주네팔대사에 황부홍 외무부 본부대사를 임명했다. ▲서울·56세 ▲서울대 행정학과졸 ▲외무고시 4회합격 ▲아주총괄과장 ▲주이탈리아공사 ▲문화홍보심의관 ▲주가나대사.
  • 인도 함피:상(세계 문화유산 순례:34)

    ◎찬란한 힌두문명의 잔해가 숨쉰다/50만 인구 북적이던 제국의 영화 간곳없고 황량한 폐허… 부서진 사원…/성소 비루팍샤 사원 줄잇는 참배객은 맨발로 해탈의 고행/사자머리에 인간의 몸체 흉몰스런 나라심하상에 머리7개 뱀신 「나가」가… 인도 남부의 거대한 유적도시 함피.14세기 중반 힌두문화가 절정을 이루었던 비자야나가르제국의 수도가 함피다.그 도시의 옛 영화를 찾아가는 길은 힌두교의 방랑승려 사두의 고행만큼이나 험난했다. ○비자야나가르제국의 수도 남인도 카르나타카주 호스펫에서 북동쪽으로 13㎞ 거리다.소형 3륜차 뒷부분에 2인용 좌석을 단 오토 릭샤를 타고 어둑 새벽길을 40분 남짓 달렸다.탈탈거리는 오토 릭샤의 운전사 어깨 너머로 황토빛 바위마을이 시야에 들어왔다.1336년 텔루구 부족의 두 왕자 하리하라와 북카가 세운 힌두왕국 비자야나가르가 남긴 「환상의 도시」 함피다.한때 르네상스기의 로마 인구에 버금가는 50만명의 사람들이 살았던 함피는 중세 델리의 전성기에 필적할만큼 번성했다는 것이다.그러나 역사상 유례없는 평화와 번영을 누리던 비자야나가르제국은 1565년 이슬람세력의 침공으로 멸망하고,함피의 영광은 역사의 어둠속에 묻히고 말았다. ○16세기 이슬람침공에 멸망 함피는 지금은 고작 800여명의 사람들이 모여 사는 한적한 시골마을로 변했다.그 전경을 보기 위해 함피에서 제일 높은 마탕가 언덕에 올랐다.비자야나가르제국의 젖줄인 퉁가바드라강이 한가운데로 흘렀다.강 유역에 점점이 흩어져 있는 40여개의 부서진 사원과 바위무더기들이 한데 어우러져 더없이 황량한 느낌을 주었다.무려 26㎢에 걸쳐 있는 이 유적군은 지난 86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기 전까지만 해도 일반에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함피의 폐허」를 더듬는 기자의 발걸음은 역사의 무게 만큼이나 경건했다. 먼저 함피에서 가장 중요하고 성스러운 사원으로 꼽히는 비루팍샤 사원으로 향했다.제국시절 화려하게 장식한 마차들이 달렸던 함피의 옛시장 바자르 길을 따라 한동안 걷자 높이가 52m나 되는 거대한 9층 고푸람(gopuram)이 나그네를 반겼다.고푸람은 도시나 궁궐 또는 사원의 입구에 세우는 층이 있는 힌두교식 탑이다.온갖 형상의 조각들로 뒤덮힌 고푸람을 뒤로 하고 비루팍샤 사원 안으로 들어갔다.사원 안에서는 모두 맨발로 다녀야 했다.발을 내디딜 때마다 인두로 지지듯 뜨거운 땅기운이 온몸에 스며들었다. 팜파파티 사원으로도 불리는 비루팍샤 사원은 비자야나가르 왕조 이전 호이살라 시대 말기에 처음 세워졌다.그리고 나서 1510년 툴루바 왕조의 크리슈나 데바 라야에 의해 지금의 모습으로 개조됐다.비루팍샤 사원은 전형적인 비자야나가르 건축양식에 따라 널찍한 안뜰을 뒀다.장방형의 경내에는 현란한 만다파(mandapa,홀)와 묘당들이 즐비했다.그중에서 창조의 신인 브라마의 딸 팜파의 결혼을 선포하는 만다파가 가장 눈길을 끌었다.퉁가바드라강의 가느다란 물줄기가 사원의 노천 베란다를 타고 흘러 들어 부엌을 통해 안마당으로 새나가도록 한 설계솜씨는 신기에 가까웠다. ○비루팍샤 경내엔 묘당 즐비 「비루팍샤」는 파괴의 신인 시바신의 또 다른 이름이다.시바는 브라만교의 경전 「리그 베다」에서는폭풍의 신 루드라의 존칭으로,길상을 뜻하는 형용사였다.그러나 시바는 훗날 토착적 요소와 결합해 대중적 신앙의 대상으로 바뀌었다. 지금도 예배장소로 사용되고 있는 비루팍샤 사원 안의 지성소에는 시바 링가(Shiva linga)라는 시바신의 남근상을 신주처럼 모셨다.그 주위는 신상에 예배하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로 북적댔다.그들은 저마다 준비해온 야자를 그 자리에서 내리쳐 쪼갠뒤 야자 물을 머리에 바르거나 입술에 슬쩍 댔다가 신상앞에 흘렸다.그리고 무언가 간절히 빌고 있었다.윤회의 사슬에서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일까.그들을 보니 문득 『해탈의 길은 맨발로 면도날 위를 걷는 것과 같다』는 우파니샤드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수직으로 솟은 시바 링가와 신의 불꽃을 담은 신성한 불판,버터기름 타는듯한 누릿한 냄새….남인도 어느 힌두사원에서나 볼 수 있는 물신숭배 의식이다.하지만 마지막 힌두왕조의 옛 터전에서 베풀고 있는 그 의식은 보는 이들을 한껏 주술적인 신비감의 늪으로 빠뜨렸다. 길가에 나뒹구는 돌멩이 하나에서도 신의 현현을느낄수 있는 영혼의 나라 인도.인도는 정녕 신들의 고향이다.인도의 모든 마을에는 사원이 적어도 하나씩은 있다.10억 인도 인구의 80% 이상이 힌두교를 믿는다.아니 믿는다기 보다는 힌두신에 취해 산다고 하는 것이 옳을지도 모른다.3억이 넘는다는 힌두신들의 어지러운 형상을 머리속에 그리며 햇볕 쏟아지는 광야를 끝없이 걸었다. 광야를 지나 물살 빠르기로 소문난 투루투 수로를 만났다.수로를 지나서 바나나밭을 끼고 돌자 사자 머리에 인간 몸통을 한 흉물스런 나라심하상이 유령처럼 나타났다.나라심하는 보존의 신인 비시누의 네번째 화신이다.1528년 크리슈나 데바 라야의 통치 후반기에 세워진 나라심하상은 높이가 6.7m로 함피에서 가장 큰 조각상이라 했다.마치 연화좌에 올라 요가를 수행하는 요기(yogi)처럼 앉아있는 나라심하의 꼭대기에는 머리가 7개 달린 뱀신 나가(naga)가 버티고 있다.기괴하기 짝이 없었다.나라심하의 왼쪽 무릎위에는 원래 비시누신의 배우자이자 행운과 미의 여신인 락슈미상이 있었다.그러나 무슬림의 약탈로 지금은 여신의 오른쪽 팔 흔적만 남아 있다. □여행 가이드 함피 유적지를 방문하기 위해서는 「교통의 요충지」 호스펫을 기점으로 삼는 것이 제일 편하다.호스펫에서 함피의 중심지인 함피 바자르까지 가는 버스가 상오 6시30분부터 하오 8시까지 1시간 간격으로 운행된다.요금은 2.50루피(1루피는 우리 돈으로 30원 정도). 오토 릭샤를 이용하려면 50루피의 요금을 지불해야 한다.자전거를 빌리는 것도 경제적이다.호스펫,카말라푸람 등에 있는 자전거 대여점에서 10루피를 주면 하루동안 사용할 수 있다. 함피의 숙소 사정은 여의찮다.세면시설 정도를 갖춘 게스트하우스가 고작이다.그러나 호스펫에는 냉방장치가 된 초보적 단계의 호텔들이 몇군데 있다.호스펫의 숙소들은 모두 24시간제다.
  • 국악인 묵계월(이세기의 인물탐구:134)

    ◎76세 고령에도 녹슬지 않는 절창/「훌륭한 가장」 「엄한 스승」 「만년 무대인」으로/「삼설기」 「긴아리랑」 유일하게 맥이어 전수 명창 묵계월의 공연무대를 한번이라도 지켜본 사람이라면 그가 왜 이 시대의 절창인지를 설명할 필요가 없게 된다.지난 95년 가을,74세의 나이로 무대에 선 그는 「청춘홍안은 네자랑 말어라,덧없는 세월에 백발이 되누나」로 시작되는 「청춘가」를 무색하게 만들었다.소리 한평생을 정리하는 「묵계월,끝없는 소리의 길」공연에서 그의 모습은 여전히 씩씩했고 세월의 파란만장속에서 갈고 닦은 소리의 관록을 유감없이 과시해 보였다.특히 양반댁 마님이 낭랑한 소리로 이야기책을 읽어내려가는 듯한 「삼설기」는 그만의 독보적 「발군」을 새삼스럽게 확인시켰다. 책상 하나에 등촉을 밝히고 단정하게 앉아 책장을 넘기면서 어느때는 높이고 어느때는 낮추면서 운치와 시취로 경기민요의 진수를 펼친다. ○75년 인간문화재로 「백이숙제 착한이와 도척같은 몹쓸 놈도 죽어지면 허사로다/역려건곤에 부생이 약몽하니 즐거움도 얼만고/병촉야유하며 독서담론 자락하니 한가하기 측량없다…」 그의 음색은 중하청부에서 곱고 섬세하게 꺾어 올려치는 끝막음 소리가 일품이다.더구나 경기지역에서 전수되어온 긴 잡가는 유장하고 은근한 가락에 후렴이 붙는 짧은 장절형식이 흥겨움을 더하여 지루감이 전혀 없다.십이잡가중에서도 그는 적벽가·출인가·선유가·방물가로 75년 인간문화재가 되었고 「삼설기」와 「긴 아리랑」은 그가 유일하게 맥을 잇는 명곡들이다. 늘 깨끗한 한복에 남에게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지 않는 그는 항상 소리만을 하면서 시름없이 살아온것 같지만 국악의 정상에 우뚝 서기까지 그의 인생 뒤안길은 만단 파란과 희비가 엇갈린다.물론 그가 살아온 한평생이란 우리 국악인 1세대들이 한결같이 겪은 공동의 운명이랄 수가 있다. 눈물없이 돌이킬 수 없는 지난 세월속에서 그가 그리는 어머니의 이야기는 이를 구구절절 전해준다.「내 나이 11살때 나는 어머니품을 떠나 남의집 양녀로 가야했다」로 시작되는 사연은 이렇게 이어진다. 그는 서울 광희동에서 이윤기씨와 조성여여사 사이의 다섯딸중 넷째로 태어났다.부친은 노리개의 매듭을 만드는 장인이었으나 매듭으로는 돈벌이가 될수 없어 어머니는 잦은 친정 나들이로 쌀이며 돈을 꾸어다 가족의 생계를 이어 주었다.그런 집안의 넷째딸로서 제대로 귀여움을 받으며 자랄 처지가 아닌데다가 이화자의 민요나 황금심을 좋아하면서 「노래하는 사람」이 되고싶은 꿈을 미처 펼쳐보일 여유도 없었다.그때 어머니가 「제대로 먹이지도 못하며 키우느니 잘먹고 잘입히는 집에 가서 제가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할수 있도록」 남의 집에 양녀로 보낸 것이다. 그때부터 본명 이경옥을 버리고 그 집의 성을 따서 「묵계월」이란 이름을 갖게 되었고 분홍치마에 꽃신을 신고 조선권번에 다니면서 주수봉 최정식 스승으로부터 경기민요 십이잡가를 사사,권번학습이 끝난 다음에도 독선생인 김윤태 스승을 모셔다가 가곡 가사 시조를 거쳐 상중하성을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을때까지 철저하게 모든 것을 배워 나갔다.자그마한 몸매에서 터져나오는 경기민요 특유의 담백한 노래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애틋함이 스며있었고 가락마다에 「어머니 보고싶은 길고 긴 그리움이 담겨」「부르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온통 눈물바다를 이루었다」고 했다.16세가 되었을때는 어디 내놔도 손색이 없는 노래실력으로 이팔청춘에 「절창」칭호를 들으면서 과장이나 선비들의 모임에 불려나가 만인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다. ○제자 가르치는데 정성 허스키한 탁성이 중후한 가운데로 명주고름같은 선이 절로 흘러나오고 마딧소리에 방울목을 얹어 겹창으로 접목시킨 오관청음은 「들을수록 맛이 나고 멋이 난다」는 평을 듣는다.18세가 되자 인력거를 타고 명월관 국일관 천향각을 주름잡았으나 21살에 광산업을 하던 김영배씨를 만나 결혼,그러나 그가 노래를 쉰것은 단란한 생활을 누리던 신혼기와 6·25때 뿐이다.1남2녀를 낳고 살림에 재미를 붙이기도 전에 부군의 사업실패로 이번에는 가족부양을 위해 회갑잔치며 화수회등 여러 모임에 나가 노래를 부르게 되었다. 당시로서는 권번을 거치지 않고는 소리를 배울수 없었고 요정에 나가지 않고는 제아무리 명창이라도 명성을 떨칠수 없었다.따라서 부군의 사업실패는 불행한 일이지만 그 사업이 계속 융성했다면 오늘의 묵계월은 기대할 수 없었을 것이다.그는 부군 타계후 혼자서 삼남매를 키워 대학까지 공부시켰고 한편으로는 제자를 가르치면서 「훌륭한 가장」「엄한 스승」「만년 무대인」의 자리를 반듯하게 지켜왔다.오죽하면 소설가 박경수는 한 수필에서 「세상에 이름 날리는 여류 명창치고 일부종사한 사람은 남도 경서 명창을 막론하고 묵계월뿐으로 소리만이 아니라 가정생활에서도 가장 모범적인 행실녀」라 쓰고 있다. ○내년 데뷔60년 공연준비 평소에는 말수가 적고 상대방에게 부담을 주지않는 결벽증이며 어려운 문제가 있어도 순리에 거슬리는 일은 애써 하지 않는다.요즘은 10년전부터 살고있는 성산동 성산아파트에 혼자 살면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제자들을 가르치는 데만 온정성을 쏟고있다.이웃에 방해될 것을 걱정하여 장구대신 북에다 천을 대어 소리를 죽이고 그가 엄한 스승밑에서 무서운 학습기간을 거친 것처럼 추호의 빈틈이나 용서없이 혹독하게 가르친다. 홍익대 이재흥 교수는 「노랫가락(경기민요)·송서 삼설기·초한가와 긴잡가 장구장단인 도드리 6박·12박은 서울소리 고유의 전통문화로서 묵계월의 존재는 특별히 예술보호차원의 의미마저 갖는것」으로 평가한다.「내가 만약 백살까지 산다면 나는 백살에도 무대에 설것」이라는 그는 내년에는 18세때 처음 무대에 선지 만60년을 맞는 기념공연을 가질 예정이다.지금도 40년대,50년대를 고스란히 거슬러 오를만큼 기억력이 뛰어난 그는 지난해 경기민요에서 한평생 동도를 걸어왔던 안비취를 잃은 것에 못내 상심을 금치 못한다. 서울사람들의 경위 바르고 단정한 성격을 가리켜 경중미인이라고 했던가.「고희를 훌쩍 넘긴 지금도 녹슬지 않은 청음에다 서울 십이잡가를 능란하게 소화하여 지킨다는 것은 소리꾼에서는 100년에 한두명 나올까 말까한 독보적 소리보물」이라는 원로 성경린씨의 말은 일세를 풍미한 명창에 대한 최상의 「치하」와 「경의」표시가 아닐수 없다. □연보 ▲1921년 서울 출생(본명 이경옥) ▲31∼34년 이광식 주수봉사사 ▲34∼37년 경성방송국 출연 ▲36년부터 최정식·김윤태 사사 ▲38년 부민관 명창대회출연 입상 ▲39년 빅터레코드 음반취입 ▲49년 제일극장 명창대회에 스승 최정식 선생과 공연 ▲62년 국악협회 민요분과위원장,재일동포위문 일본순회공연 ▲68년 문공부주최 제1회 명인명창대회,국악대공연출연(장충체육관) ▲69년 「묵계월경기민요」 출반(성음) ▲71년 「한국민요연구회」 설립. ▲75년 중요무형문화재 57호 경기민요 예능보유자지정,「경기12잡가 묵계월전수소」 개설,동아일보주최 국악경연대회심사위원. ▲76∼79년 동아방송 개국기념 공연 ▲83년 한국민속가무예술단 일본공연 ▲87년 LA교민위문 공연. ▲87∼90년 조선일보 주최 「명인명창대회」 출연 ▲90년 「묵계월 인생70­소리 60」 주제의 제1회 개인발표회(호암아트홀),국립국악관현악단(이상규 지휘)과 「십이잡가」 협연,한국민요연구회주최 신춘국악대잔치 특별출연 ▲92년 대한민국국악제 특별출연 ▲94년 경기국악축제(연강홀) ▲95년 「묵계월,끝없는 소리의 길」주제의 제2회 개인발표회(호암아트홀)공연,KTV 「묵계월소리의 세계」특집방송,「묵계월 경기민요」CD출반(오아시스) ▲97년 삼성그룹복지재단주관「효행상 시상식」 축하공연 〈현재〉 국악협회 고문,민요연구회 고문 〈수상〉 세종상(68년) 국악대상(92년)
  • 북에 식량 150만불 원조/캐나다

    【오타와 AFP 연합】 캐나다 정부는 5일 북한에 2백만 캐나다 달러(미화 1백50만 달러)의 식량원조를 제공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캐나다 정부는 「캐나다 국제개발청」이 유엔산하 세계식량계획(WFP)을 통해 이 원조를 북한에 전달할 예정이며 WFP는 『6세 미만의 어린이와 가장 취약한 상태에 처해 있는 사람들이 우선 수혜자가 되도록 보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 강릉 무장공비 소탕작전서 전사/고 이병희 상사 동상세운다

    ◎“아들 다시 살아난듯”… 부모들 눈시울 적셔 『나라를 지키다 목숨을 바친 아들이 다시 살아난 느낌입니다』 지난해 9월 강릉 무장공비 소탕작전 도중 적탄에 숨진 고 이병희 상사(당시 26세)의 동상이 부대안에 세워진다는 소식을 들은 아버지 이범식씨(59)와 어머니 유화순씨(55)의 눈가에는 이슬이 맺혔다. 현충일을 하루 앞둔 5일 이상사가 근무했던 특전사 비호부대를 찾은 이씨 내외는 병사들이 함성을 터뜨리며 훈련하는 모습을 보고 아들을 떠올렸다. 특전사령부는 오는 9월21일 이병희 상사 산화 1주기에 맞춰 이곳에 「비호동산」을 만들면서 이상사 동상과 대침투작전 대통령 부대표창 기념탑,전승비 등을 세우기로 했다. 이상사는 9개월 전 부대원들과 함께 헬기로 이동,칠성산 자락에 낙하한 뒤 수색작전을 펴다가 공비 2명이 쏜 총격에 쓰러진 첫 희생자였다. 이상사의 죽음에 「죽음을 함께 하겠다」고 약속했던 동료부대원들은 잔당 9명 가운데 8명을 사살하는 전과를 거두며 보답했다.이상사의 전사일이 대침투작전 승전일로 승화된 이유다. 이상사는 박봉에도 불구,어려운 집안살림을 돕기위해 적금을 들고 부모님을 아파트에 모시겠다며 주택부금도 부었다.죽음을 예견한 듯 1억원짜리 생명보험에도 가입,가족들을 더욱 마음 아프게 했다. 아버지 이씨는 『어려서부터 군인이 되고 싶어했는데 정예부대에서 군인답게 싸우다가 전사해 조국의 별이 된 것이 오히려 자랑스럽다』며 말했다.
  • 언제까지 그대로 둘것인가/한총련 폭력살인 특단의 조치 필요

    ◎이씨 이외에도 시민폭행 두차례나 한총련 학생들의 살인 폭력에 국민들이 경악했다.그리고 분노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무모하고 야만적인 학생들은 물론, 이를 막지 못한 공권력도 함께 비난했다. 무고한 시민 이석씨(23)를 학생들이 경찰 정보원으로 몰아 마구 때려 숨지게 했다는 사실이 알려진 4일 시민들은 학생들의 유혈 폭력 행위에 치를 떨며 더 이상 이들을 좌시해서는 안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민주화와 통일을 명분으로 내걸면서 이율배반적으로 쇠파이프와 화염병을 들고 폭력혁명을 외치는 한총련이 더이상 이땅에 발을 못붙이도록 특단의 조치가 나와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며칠동안 서울 도심을 마비상태에 빠뜨리고 애꿎은 진압전경의 목숨을 앗아간데 이어 급기야 살인까지 저지를 때까지 경찰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느냐고 지적했다. 이같은 참사는 그동안 한총련이 유사한 폭력을 휘두른 전례로 미루어 일찌기 예견돼 왔다. 이씨의 사망 직전인 지난달 28일 하오 8시쯤 한양대 안을 배회하던 한모군(16·서울 광진구 자양동)이 대학생 3명에게 학교를 염탐한다는 이유로 붙잡혀 4시간동안 쇠파이프 등으로 폭행당했다. 이어 지난 1일 상오 10시30분쯤에는 양모씨(22·인천시 남구 주안 1동)가 같은 이유로 대학생들에게 붙잡혀 구타당한뒤 12시간만에 풀려났다. 운동권 학생들에 의한 시민 구타사망 사건은 87년 민주화운동 이후 이번이 세번째다. 89년 10월 동양공업전문대생 설인종군(당시 20·공업화학 2년)이 연세대에서 프락치로 지목돼 학생회관의 「만화사랑」 동아리방으로 끌려가 연세대·고려대생들에게 맞아 숨졌다. 94년 8월에는 고려대생들이 리어카 행상 전귀희씨(당시 38세)를 같은 이유로 마구 때려 사망케 했다. 지난해 7월30일에는 김형근씨(당시 26세·도배공)가 건국대 학생회관 3층 총학생회실에서 학생들의 가혹행위를 견디다 못해 창문밖 10여m 아래로 뛰어내려 양팔과 양다리가 모두 부러지는 중상을 입었다. 90년 4월21일에도 문영규씨(당시 32·노동·대구시 중동1가)가 경북대 총학생회실에서 기관원으로 몰려 손발이 묶인채 각목과 쇠파이프 등으로 폭행을 당한뒤풀려났고 같은해 5월9일 서울 종로구 명륜동 성균관대 경상대 건물 4층 화장실에서 역시 경찰 프락치로 오인돼 학생들에게 붙잡혔던 김태수씨(당시 29)가 15m 아래로 투신,척추에 금이 가고 다리가 부러지는 상처를 입었다.
  • 리처드 레빈 미 예일대 총장 졸업식사

    ◎졸업은 시작… 힘찬 발걸음 떼길 리처드 레빈 예일대 총장은 졸업식사를 통해 새로운 시작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갈 길을 분명히 정한 졸업생이나 그렇지 못한 졸업생을 나란히 격려했다.유명한 영문학자인 레빈 총장의 「다음 발걸음을 떼며」라는 제목의 졸업식사를 요약한다. 오늘 이 자리를 하나의 종결로 여기는 것은 당연합니다.내일 여러분들은 여러 감정이 뒤섞인 채 지난날을 되돌아 볼 것입니다.이루어낸 것엔 자부심을,놓쳐버린 기회엔 후회를 느낄 터이며 사귄 친구들에 대해선 가슴뿌듯함을,그리고 그들과 헤어진다는 것을 몹시 서운해 할 것입니다.여러분들은 뒤를 돌아보겠지만 저는 이 자리를 빌어 앞을 내다보고자 합니다.오늘의 이 종결,강렬하고 보람찬 4년의 대미를 출발·시작이라고 부르는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습니다.이 국가와 세계의 독립적이고 교육받은 시민으로서 여러분의 삶이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졸업한다는 것은 문자 뜻대로 다음 발걸음을 뗀다는 것입니다.여러분중의 일부는 어서 빨리 발을 떼 분명한 목적과 방향을 갖고곧장 앞으로 내달리고자 합니다.그러나 졸업생 여러분의 대부분은 다음 걸음이 어디로 향할 것인가를 아직도 걱정스럽게 자문하고 있습니다.같은 졸업생이면서 앞으로 갈 길에 대해 명확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으로 나뉜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자신의 진정한 직분에 대한 발견이 아주 일찍 이뤄질 수도 있습니다만 대개는 이 발견이 늦으며 일생중에 한번 이상 오기도 합니다. ○진정한 직분 발견하게 될것 다행스럽게도 많은 대작가들이 여러분 앞에 놓인 삶의 무대에 대한 성찰을 남겨 놓고 있습니다.위대한 두 영국시인의 경험을 비교해 보고자 합니다.그들의 경험은 여러가지를 가르쳐주고 또 가슴 든든하게 해줄 것입니다.윌리엄 워즈워드는 캠브리지 대학에 들어온지 고작 1년후인 1788년 여름 분명한 방향을 갖게 됐습니다.반면 3백여년후인 지금도 영시의 『샛별이자 저녁별』로 불리는 존 밀튼은 스스로 늦게 터지는 만성형으로 여겼습니다.1629년의 대학졸업 한참후에야 그의 천재성이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워즈워드는 자신의 천분에 대한명확한 인식과 기념비적인 작품들을 남기고자하는 큰 야망과 함께 대학문을 나섰습니다.저는 여려분들의 기를 죽이기 위해 이 예를 든 것은 아닙니다.여러분 가운데 이미 희망과 꿈이 구체적인 모습을 갖춘 졸업생들을 한층 분발시켰으면 하는 마음입니다.그런 졸업생에게 저는 말합니다.스스로가 생각한 것보다 더 잘 준비되어 있기 때문에 상상해온 대로 성취할 것이다. ○희망·꿈의 틀 착실히 짜야 아직도 자신의 희망과 꿈의 틀을 짜고있는 졸업생들에겐 밀튼이 보다 좋은 귀감이 될 것입니다.36세 생일 이전까지 그는 단 한편의 시만 발표했습니다.제가 방금 읊은 그의 첫 시에서 우리는 그가 앞시대 세익스피어 시의 위대함에 얼마나 부대꼈는가를 느낄수 있습니다.그러나 이 시행들의 비애감에도 불구하고 밀튼은 자신의 「늦게 터짐」을 실패로 여기지 않았습니다.남에게 내보일 꽃봉우리나 꽃송이가 없는 가운데서도 밀튼은 자신의 「내적 성숙함」을 자신하고 있었습니다. 삶의 구체적인 방향을 아직 결정하지 못한 졸업생을 향해 밀튼의 예를 들면서 저는 그런 여러분 역시 내적 성숙함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상기시키고자 합니다.이 대학 교육이 여러분에게 준 것이 바로 그것이기 때문입니다.풍만한 삶은 자기만족 이상의 어떤 것으로서 가족,공동사회,더 큰 사회에 대한 봉사의 마음을 요구한다고 이 대학은 가르쳐 왔습니다. 1997년 남녀 졸업생 여러분,일찍 꽃피울 가능성이 있거나 대기만성형이든 간에 여러분은 이제 졸업해야 할 때이며 다음 발걸음을 떼야 할 때입니다.지금 여러분의 길이 뚜렷하거나 아직도 불확실하든 간에 여러분들은 함께 지낸 지난 4년동안 나름대로 잘 준비하고 다져왔습니다.여러분은 여기에서 위대한 생각들과 훌륭한 선생님 그리고 특출난 동기생들과 만나고 맞부딪쳤습니다.이 대학이 여러분에게 준 선물들을 잘 활용해야 합니다. 최초의 집을 떠나는 아담과 이브를 묘사하는 밀튼의 말이 떠오릅니다.『세계가 몽땅 너희 앞에 있고,어디다 쉴 곳을 정하는 것도 너희 몫이다.신의 섭리가 함께 하기를.』〈정리=김재영 워싱턴 특파원〉
  •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과 신고전주의/이경식 지음(화제의 책)

    ◎16∼18C 유럽 극비평계에 미친 영향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과 신고전주의가 16∼18세기 유럽의 극비평계에 미친 영향을 깊이있게 고찰한 연구서.지은이는 신고전주의 비평가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을 잘못 풀이하거나,그것을 호러스의 「시론」과 혼동했다고 주장한다.한 예로 신고전주의자들이 비극의 기능으로 중시한 기쁨과 교훈은 아리스토텔레스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호러스가 「시론」에서 밝힌 「dulce(즐거움)」와 「utile(교훈)」에 기원을 두고 있다는 것.대표적인 신고전주의 비평가로는 16세기 이탈리아의 스칼링거·로베르텔로·카스텔베트로,16∼17세기 영국의 시드니·존슨·밀튼·드라이든·라이머,17세기 프랑스의 코르네유·브왈로,보쉬,라팽 등을 들 수 있다.이 책은 아리스토텔레스의 극작법이나 원칙과는 동떨어진 독특한 비평기준을 지닌 신고전주의자들의 극비평세계를 중점 소개한다. 신고전주의자들은 17세기 중반에 이르러서는 고대 그리스 작가들보다 로마 작가들에게 한층 큰 관심을 보였다.그들은 호러스나 버질의 문체를 모방하려 했으며,롱기너스의 비평을 받들었다.찰스 2세의 왕정복고 시대의 영국문학을 「네오­오거스터니즘(Neo­Augustanism)」이라고 부르는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라는게 지은이의 지적이다.서울대출판부 2만4천원.
  • 박상범 보훈처장에 듣는다(국정 어떻게 돼갑니까)

    ◎“6월은 보훈의 달… 유공자에 따뜻한 손길을”/제대군인 지원 확대·국외안장 선열유해 5위 봉환/전립선암·버거씨병 고엽제후유증 추가인정 추진 박상범 보훈처장(54)은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사무총장에서 자리를 옮긴지 불과 석달 남짓 됐다.하지만 보훈처 업무를 누구보다 정확히 꿰뚫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국가관이 뚜렷하기 때문이다. 보훈의 달 6월을 맞는 박처장의 감회는 그래서 남다르다.박처장은 보훈대상자들에 대한 국민들의 따스한 손길이 물질적인 대우만큼이나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박처장은 31일 서울신문 김만오 사회부장과의 인터뷰에서 『휴일이면 장미 한송이를 들고 묘지를 찾는 외국사람들의 모습을 TV를 통해 볼때면 부러움이 앞선다』며 『특히 요즘같은 상황에서는 나라를 위해 헌신한 이들이 국민들로부터 사랑받고 존경받을수 있는 「보훈풍토」정착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외모가 날카로운데다 대통령 경호실장까지 역임해 딱딱한 느낌을 줄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박처장은 부드럽고 차분한 어조로 이야기를 했으며 논리적이고 설득력이 있었다. ­지난 3월 보훈처장으로 자리를 옮겼는데 어떻습니까. ▲생소한 분야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제가 국가유공자들을 위해 뭔가 보람된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로 보고 있습니다.얼핏 보면 보훈업무는 간단한 것 같지만 실제로는 할 일이 너무 많습니다. ○자치단체 관심 높아져 ­보훈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이 달라지고 있다고 보는지요. ▲전에 비해 관심을 많이 갖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그러나 아직도 상당수 국민들은 현충일이 진정 나라를 위해 숨져간 이들을 위한 추모식이 아닌 휴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이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지방자치제가 실시된 뒤 보훈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는 얘기를 들었는데요. ▲지방자치단체들이 고향출신의 독립운동가 등 국가유공자들의 발굴과 함께 성역화작업 등에 적극 나서고 있어 고무적입니다.또 독립기념시설물을 건립하고 민간기념사업회 등에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습니다. 학교도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있습니다.지난 2월에는 휘문고가 애국지사 민필호 선생에게,군산고가 학도병 152명에게 명예졸업장을 수여했습니다.서울대·한양대도 6·25 참전용사들에게 명예졸업장을 수여했지요. ­이번 호국·보훈의 달에 특별히 준비한 행사는 어떤게 있습니까. ▲올해는 보훈 슬로건을 「국민과 함께 하는 호국·보훈의 달」로 정했습니다.행사도 추모의 기간(1∼10일),감사와 축제의 기간(11∼20일),화합과 단결의 기간(21∼30일) 등으로 정해 올바른 보훈문화조성을 적극 홍보한다는 계획을 세워두고 있습니다. ­올해 보훈처의 주요 역점 추진사업은 어떤 것 입니까. ▲한마디로 올바른 보훈문화의 정착입니다.국가발전의 이면에는 국가유공자들의 공헌과 희생이 있었다는 인식이 널리 확산되는게 중요하다고 봅니다.국민들이 국가유공자들에게 보내는 사랑은 「사회 정의」에 대한 신뢰의 일종일 것입니다.미국이 전사자의 유해를 꾸준히 찾고 보스니아 전쟁 헬기조종사 홀준위의 구출장면을 생생히 보도하는 등 국민적인 관심을 유도하는 사례를 잘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 좋은 사례들을 널리 알려보훈문화 정착에 혼신의 힘을 다할 것입니다.이 바탕위에 국외안장 선열 5위 유해봉환 등 민족정기선양사업과 제대군인지원체계 확충,참전군인 명예선양 등 구체적인 보훈사업들을 착실히 실천해 나갈 계획입니다.특히 제대군인 지원사업은 지난 1월 제대군인 인력정보실을 개설해 취업알선에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참전군인의 명예선양 방안을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시죠. ▲94년에 「참전군인지원법」을 제정한 이래 올해는 참전용사증을 교부해 국·공립공원,고궁·박물관을 무료로 이용하도록 하고 있으며 보훈병원의 진료비 감면을 확대하고 있습니다.또 올해부터 2000년까지 400억원을 투입해 국립묘지가 없는 영·호남에 향군묘역을 각각 10만평 규모로 조성하고 있습니다. ○영·호남에 국립묘지 조성 ­국가유공자와 유가족에 대한 지원이 인색하다는 지적도 있는데요. ▲가장 바람직한 지원은 국가적 보상과 사회적 예우를 통해 영예로운 생활이 보장되는 것입니다.그러나 충분한 예산확보가 되지 않아 부족한게 사실입니다.지난 4월 전몰군경유가족회에서 서울보훈청사를 점거할 때는 가슴이 답답했습니다.국가유공자가 아닌 모든 유가족들에게도 보훈연금을 지원해 달라는 것인데 우선 돈이 없습니다.정부의 예산을 늘려 국가유공자들이 제대로 보상받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노령화되고 있는 국가유공자의 노후대비책은 무엇입니까. ▲현재 국가유공자의 가구주 평균연령이 61세입니다.6·25 상이자는 평균 67세,미망인 67세,부모 86세 등입니다.노후복지에 국가적인 배려가 강화돼야 합니다.지난 해 수원에 실버타운 개념의 보훈복지타운을 건립,452세대가 거주할 수 있도록 했고 충주에 2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보훈휴양원」을 개원해 운영하고 있습니다.올해는 수원에 현대식 양로·양육시설을 신축이전하고 경기·전북지역에 상이군경 복지회관을 세울 예정입니다. 또 노령화에 따른 의료수요증가에 대처하기 위해 대전시 대덕구에 300병상 규모의 최첨단시설을 갖춘 대전보훈병원을 하반기에 개원하고 전국 56개 병원을 위탁가료 병원으로 지정하는 등 유가족 감면진료를 확대할 계획입니다. ­11월로 예정된 세계제대군인연맹(WVF) 서울총회는 준비가 잘 돼 갑니까. ▲세계제대군인연맹은 세계 74개국 200여개 단체로 구성된 국제적인 비정부 기구입니다.우리나라는 56년에 가입했습니다.상이군경회와 재향군인회 공동주관으로 11월9일부터 15일까지 일주일동안 열릴 이번 총회에서는 지역분쟁의 평화적 해결방안,한반도의 평화적 통일방안,동·서독통일의 교훈,남북한 통일정책 비교연구 등의 의제를 갖고 국내외 인사 3천여명이 참석합니다.준비단을 구성해 만반의 준비를 해 나가고 있습니다. ○유효기간 연장 법개정 ­고엽제 후유증 대책은 꾸준히 마련하고 있지요. ▲우선 한시법인 현행 고엽제법의 유효기간을 연장하기 위해 법개정을 추진할 생각입니다.지난 4월 발표한 1차 역학조사결과 전립선암과 버거씨병 등을 고엽제후유증으로,뇌경색증 건성습진 무혈괴사증 등을 고엽제 후유의증으로 추가하는 등 고엽제피해질병 인정범위를 확대해 1만3천800여명이 혜택을 볼수 있게 되었습니다.앞으로 추가 질병 구명을 위해 2차역학조사를 올 하반기부터 실시할 예정입니다. ­2세환자들의 유전문제도 심각하지 않습니까. ▲외국의 각종 의학연구에도 불구하고 유전여부 규명이 상당히 어려운 실정입니다.79년부터 역학조사를 실시한 미국조차 지난 해부터 낭종성 척추이분증만이 유전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발표,입법추진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우리도 낭종성척추이분증을 고엽제법에 반영해 보상여부를 검토할 생각입니다. ◎국가유공자 처우 실태/한사람 평균 연금 59만7,000원꼴/주택구입때 1,500만원 대출 혜택 국가보훈처가 연간 국가유공자(19만2천908명)에게 지급하는 각종 보훈연금 총액은 8천4백억원으로 보훈처 예산 1조37억원의 84%에 이른다.산술적으로 계산하면 한사람당 평균 59만7천원꼴이다. 이는 도시근로자 한달 평균 생활비가 1백만원이 웃도는 점을 감안하면 적은 금액이다. 올해 보상금은 매월 40만원이던 기본연금이 45만원으로 5만원이 올랐고 부가연금은 일률적으로 6%가량 인상됐다. 국가유공자의 보상금 대상은 애국지사(1∼5등급),애국지사 유족(처)1∼5등급,상이군경 1∼6급,그리고 상이군경 유족(미망인·부모·20세 미만의 자녀),재일학도의용군 등이다.유족의 보상권 수급권은 미망인에게 우선 승계되며 미망인이 사망하면 20세미만의 자녀에게,자녀가 성년이 되면 부모에게 승계된다.부모가 돌아가면 자동적으로 끝난다. 보상금은 45만원의 기본연금외에 공헌도와 희생도를 고려해 분류한 등급별 기준에 따라 많게는 1백52만원에서 적게는 9천원까지의 부가연금이 있다. 상이군경의 경우 60세 이상인 고령자는 5만3천원,전상은 9천원씩,그리고 간호수당 1급 대상자는 90만원,2급 대상자는 30만원을 더 받는다. 이밖에 생활이 어려운 국가유공자나 유족들은 생활조정수당으로 한달에 5만5천원(3인가족이하)∼7만5천원(4인가족이상)을 받는다. 또 주택구입때와 전세를 얻을 때는 1천500만원과 7백만원씩 대출을 받을수 있다.
  • 프랑스/몽생 미셸(세계 문화유산 순례:32)

    ◎천년세월이 만든 「섬아닌 섬」 바다 한가운데 고고히/바위위 축조된 성당 주변숲 침식당해 섬으로/불 혁명뒤 형무소로도… 영욕의 역사 간직 희한한 섬이 다 있다.멀리서 바라 보면 분명 바다 위에 떠있는 섬인데도 다가서면 섬이 아니다.배를 타고 가지 않고 승용차나 관광버스로,아니면 걸어서라도 섬까지 갈수 있다.부드러운 카망베레 치즈로 유명한 프랑스의 동북부 노르망디의 동쪽끝 몽셍 미셀(Mont saint Michel)은 그런 곳이다. 파리를 떠나 프랑스 대륙의 동쪽끝 대서양에 가까워지면 삼각형의 몽셍 미셀이 아스라한 자태를 드러냈다.대서양의 바다 안개에 휩싸여 신비감을 느끼게 하는 몽셍 미셀로 향하면 차에서 내려 기념사진을 찍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힌다.모습이 분명해질수록 몽셍 미셀은 우리의 시각과 함께 청각,후각을 골고루 자극했다.짠 바다 내음새와 몽셍 미셀 꼭대기에서 바다와 육지를 향해 울려 퍼지는 성당의 종소리때문인 것이다. 섬이면서도 섬이라고 부를수 없는 이유는 심한 조수 간만의 차이 탓이었다.최고 15m 간만의 차이는세계에서 간만의 차이가 가장 심한 곳중의 하나다.매분마다 62m의 속도로 드나 드는 바닷물은 바다와 뭍의 경계를 18㎞까지 바꾸었다.보름달이 뜨는 날이면 몽셍 미셀은 대서양의 바닷물에 완전히 잠겨 섬이 됐다. 몽셍 미셀에 다가서면서 되새기는 역사와 전설은 신비감을 더해준다.커다란 바위덩어리 몽셍 미셀은 옛날만 해도 시시(Scissy)라는 울창한 숲의 한가운데 있는 완전한 육지에 속했다.조용하고 외딴 지역이라 수도승들이 속세와 인연을 끊고 수도에 정진하기에는 적격이었다는 것이다.대서양 건너 아일랜드의 수도승들이 조용하고 풍요로운 이곳을 찾았다는 이야기다. 몽셍 미셀의 역사는 서기 70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몽셍 미셀의 부근 아브랑슈에 살던 오베르 대주교가 이 일대를 다스리고 있었다.그는 어느날 꿈속에서 대천사 미카엘을 만난다.미카엘 대천사는 커다란 돌이 있는 곳에 예배당을 세우라고 말한다.오베르주교는 바위에 예배당을 세우라는 미카엘 대천사의 말을 반신반의해 실행에 옮기지는 않았다.화가난 미카엘 대천사는 세번째 꿈에 나타나서는 손가락으로 오베르주교의 머리에 강한 빛을 쏘았다.믿음을 주기 위해서였다.전설같은 이야기이지만 오브랑슈의 박물관에 구멍난 오베르주교의 해골이 전시돼 있는 것을 보면 전설만은 아닌 듯했다.또 이웃 마을에서 잃어버린 소가 몽셍 미셀 바위 위에서 발견되는 이상한 사건이 벌어지자 사람들은 드디어 미카엘의 계시를 받아들이게 됐다.그리고 바위를 깍아 토대를 만들고 이탈리아의 몽테 가르가노에서 화강암을 가져와 미카엘을 기리기 위한 성당을 지었다.미카엘의 프랑스식 이름이 미셀.몽셍 미셀은 우리 말로 「성 미카엘 언덕」정도로 바꿀수 있다. 몽셍 미셀은 처음에는 예배당만 세웠으나 수도승들의 숙소를 추가로 짓는등 18세기까지 1천년동안 증축을 거쳐 지금의 모습을 드러냈다.시시 숲은 천년동안 바닷물에 침식당해 없어지고 말았다.그래서 검붉은 색깔의 몽셍 미셀만 1천년의 연륜을 자랑하면서 고고히 바다 한가운데 서있다.입구에 들어서 성당으로 올라가는 좁은 골목길을 따라 올라가노라면 기념품 판매가게나 식당들이 즐비했다.옛날에는 수도승들의 숙소와 250여명의 수도승이 포도주를 마시던 술집,잡화가게들이 들어 앉았던 자리다.언덕길의 돌바닥은 신비스러운 건축물과 희한한 섬 모습에 반한 중세시대 순례자들의 무수한 발길에 닳아 반들거렸다. 꼭대기의 성당 서쪽 테라스에서는 대서양과 노르망디지방의 육지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다.몽셍 미셀은 AD966년 노르망디를 지배하던 리차드 1세 공작이 베네딕트 교단의 수도원으로 지정됐다.그뒤 6세기동안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의 영적,지적,예술의 중심역할을 다 해냈다.1789년 프랑스 대혁명이 육각형형의 프랑스 영토를 휩쓸고 간뒤에는 형무소로도 쓰여 영욕의 역사가 함께 배어있다.사방을 둘러봐도 바다물과 진흙 모래만 보이는 몽셍 미셀은 이내 빠삐용이 연상됐다.하지만 이제는 대서양의 바닷바람에 쓸려 간듯 형무소의 자취는 별로 남아 있지 않았다. 몽셍 미셀의 성당은 얼핏 초라한 느낌이 들었다.때문에 화려하고 웅장한 유럽 성당을 이미 본 사람이면 몽셍 미셀에서 약간은 실망할 것이다.80m 바위위에 솟아 있는 성당 꼭대기까지의 높이는 157m.아래서 올려다보면 육안으로는 성당의 첨탑 꼭대기에 금빛 동상을 찾기가 어려웠다.성당 구경을 마치고 내려와 다시 기념품 가게에 들어가서 산 사진엽서에서 비로소 셍 미셀 동상 모습을 만났다. 오른 손에는 칼을 들고,왼손에는 방패를 들고 있는 성 미카엘,다시말하면 셍 미셀 동상의 유래도 흥미롭다.멀리 영국땅에 거대한 용이 나타나 마을 주민들을 잡아먹는 일이 일어나 주민들이 불안에 떨고 민심은 흉흉해졌다.왕이 용을 죽이기 위해 군대를 보냈지만 군인들이 도착했을때는 용은 이미 죽어있었다.용의 시체 주변에는 칼과 방패가 발견됐는데 사람들은 미카엘천사가 용을 죽였다고 믿었다.그런 전설을 반영하고 있고 동상의 발아래 부분에는 죽어 나자빠진 용이 놓여있다. □여행가이드 몽셍 미셀에 가는 길은 쉽지 않다.파리에서 동쪽으로 4백㎞정도 떨어진 몽셍 미셀까지는 승용차나 관광버스를 이용하는 편이 낫다.열차는 몇번씩 갈아타야 하는 번거로움이 뒤따르기 때문이다.프랑스에는 시외버스가 발달돼 있지 않으므로 주의를기울여야 한다.숙박시설이 많이 있으나 연휴기간에는 적어도 1주일 전에 예약을 하지 않으면 방 구하기가 어렵다. 몽셍 미셀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야경.은은한 간접조명은 신비함을 더해주고 바다물에 비친 야경은 환상적이다.여름철인 5월부터 8월사이가 관광의 최적기이며 5월에는 민속춤을 볼수 있다.7,8월말 금요일밤부터 토요일밤 사이의 주말에는 각종 콘서트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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