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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외로움에 시달리는 귀순자(탈북 그 이후:3)

    ◎평범한 시민으로 살고 싶어요/초등학생 자녀 따돌림 심해 기죽어/냉대·소외감 못견뎌 술로 허송세월/“결혼은 귀순보다 큰 모험” 하소연도 96년 중풍에 걸린 남편 金慶鎬씨(63)와 만삭인 막내딸 명순씨(28)등 일가족 16명을 이끌고 북한을 탈출,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던 崔현실씨(59·여). 일요일인 지난 9일 서울의 한 교회에 간증차 나온 崔씨에게서는 ‘북한 출신’의 티가 거의 나지 않았다. 약간 남아 있는 북쪽 특유의 억양만이 崔씨가 1년9개월전 사선을 넘어왔다는 사실을 일깨워주었다. “가족이 다 와서 그런지 탈북자들이 흔히 느끼는 외로움이나 죄책감은 덜한 편입니다. 이웃 주민들과도 허물 없이 지내지요. 시장에 가면 아주머니들이 야채를 더 얹어주거나 옷을 그냥 가져가라고 해 오히려 난처할 때가 많아요” 누구보다 빠르게 남한생활에 적응한 崔씨이지만 한동안은 초등학교에 다니는 손자들 때문에 속이 많이 상했다. 평소에는 잘 어울려 놀던 같은 반 아이들이 싸움이 벌어지면 ‘북한에서 온 주제에…’라면서 따돌리는 바람에 손자들이기가 죽어 학교에 가기 싫어했다는 것. 崔씨는 “딸과 함께 선생님을 찾아뵙고,몇차례 학교에서 강연을 하고 난 이후에는 그런 일이 많이 줄었다”면서 “철모르는 아이들끼리의 일이지만 섭섭한 감정은 어쩔 수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700여명이 넘는 탈북자 가운데 崔씨처럼 일가족이 함께 내려와 의지하며 사는 사람은 드물다. 대다수 탈북자들은 부모 형제를 등지고 혈혈단신 귀순한 탓에 극심한 죄책감과 외로움에 시달리며 지낸다. 탈북자 후원단체인 북한인권시민연합의 尹玄 대표는 “가족을 버렸다는 자책감에서 벗어나도록 하기 위해 결혼을 적극 권유하지만 쉽지 않다”고 말했다. 북한 출신이라는데 대한 거부감과 선입견이 심한데다 일부는 정착금을 노려 계획적으로 접근하기도 해 자칫 돈 잃고 마음만 상하기 쉽다는 것이다. 성공한 탈북자로 알려진 金勇씨(38·연예인)도 “열렬한 연애가 아닌 바에야 귀순자에게 결혼은 귀순보다 더 큰 모험”이라고 토로했다. 주변의 냉대와 소외감을 견디다 못해 술로 허송세월하거나 잘못된 길로 빠지는 탈북자들도 상당수에 이른다. 지난해 5월 6개월된 딸과 함께 자살한 탈북자 아내 崔율리아씨(당시 26세)가 그런 예. 러시아교포 3세인 그녀는 러시아 벌목공으로 일하다 94년 5월 귀순한 남편 崔모씨(40)를 따라 이듬해 한국에 왔으나 주위와 어울리지 못한데 따른 우울증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러시아 벌목공 출신인 K씨는 “남한 사람들은 북한 사람들에 대해 판에 박힌 시각을 갖고 있다”면서 “그들은 귀순자들을 저개발 국가에서 온 사람들이라고 생각할 뿐 동족으로서의 애정은 없다”고 비판했다. 남한사회에 대한 좌절과 열등감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도 많다. 죽을 고비를 몇번이나 넘기면서 찾아온 남한 땅에서 자신이 할 일이 막노동밖에 없다는 현실이 자포자기상태로 몰아가는 것이다. 탈북동기나 경로는 서로 다르지만 탈북자들의 목표는 똑같다. 자유의 땅 대한민국에서 평범한 시민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 테러 용의자 라덴/회교 과격파 이끄는 사우디 反政 인사

    케냐와 탄자니아의 미국 대사관 폭탄테러사건의 유력한 배후로 지목되고 있는 오사마 빈 라덴(41). 사우디 아라비아 부호 출신의 회교 근본주의 반체제 인사로 현재 아프가니스탄에 망명해 있다. 이슬람 테러조직인 ‘국제이슬람 전선’을 이끌며 미국과의 ‘성전(聖戰)’을 공언해 반미 테러가 발생할 때마다 이름이 오르내렸다. 몇주전에는 미국과의 ‘지하드(성전)’ 각오를 새롭게 다지는 회교교령을 발표,미국 정부의 경계를 샀었다. 57년 리야드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으며 제다에서 수학하던 16세때부터 몇몇 회교단체와 긴밀한 관계를 맺기 시작했다. 상속받은 건설회사를 운영하며 막대한 재산을 과격 회교단체들의 지원에 써온 것으로 전해진다.
  • 양심수 석방/임수경 통일운동가(굄돌)

    탤런트 김혜수 박광정,그리고 영화배우 명계남이 푸른빛 죄수복을 입고 감옥에 갇혔다. 화면에서 보는 극중 상황이 아니라 실제상황이다. 이들은 단 몇시간의 체험이지만 무척 힘이 들었다고 입을 모았다. 지난달 6∼8일 양심수의 전원석방을 촉구하는 캠페인 행사의 하나로 명동성당 입구에서 열린 ‘하루 감옥 체험’에는 양심수의 고난에 동참하고자 하는 각계 인사 21명이 참가했다. 이들이 갇힌 모형감옥은 실제 교도소의 독거 수용방과 같은 크기인 0.75평의 공간으로 지었다. 민가협에서 집계한 양심수의 숫자는 7월말 현재 455명이다. 이 중에는 41년째 구금 중인 초장기수 17명,박정희 정권 때 구속된 3명,5·6공화국 당시 구속된 42명의 양심수가 포함돼 있다. 내란·부정축재 등의 혐의로 수감되어 2년만에 석방된 두 전직 대통령은 청와대에 초청되었지만 이들에 의해 갇힌 사람들은 10여년의 세월동안 여전히 감옥에 있다. 정부수립 50년,세계인권선언 50주년을 맞으며 ‘올해의 인권상’을 수상한 대통령이 있는 나라에서 양심수가 계속 존재하는 것은부끄러운 일이다. 태어난 지 4일만에 구속된 아빠와 놀이동산에 가보고 싶다는 일곱살 짜리 명지,세상에 나오기도 전에 구속되어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아빠를 기다리는 명완이(13세),일하러 나간 엄마 대신 두 동생들을 씻기고,밥을 차리고,살림을 해야 하는 하나(10세),공부하러 가신 아빠가 8월에는 꼭 오실 거라며 동네방네 자랑을 하고 다니는 준홍이(6세). 감옥에 있는 엄마·아빠를 기다리는 수많은 아이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희망을 안겨주는 일은 그렇게도 어려운 일일까. 사면의 의미는 단순히 시혜나 은전이 아니라 과거 분단과 독재의 역사가 만들어 낸 상처를 근본적으로 치유하는 데 있다. 이번 사면이 진정한 국민 대화합과 인권개선의 계기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 청동기 건축지 첫 발굴/선문대 조사단 진주 대평리서

    ◎산업단지 형태의 공방 추정 대전 선문대 발굴조사단이 경남 진주시 대평면 대평리 옥방마을 부근에서 국내서는 최초로 청동기시대 지상건축지를 발굴해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발굴조사단(단장 李亨求)은 지난해부터 계속된 이 지역 일대 5∼6세기때의 청동기시대 유적발굴 현장에서 주춧돌이 놓인 지상건축지(址)와 집단공방지로 보이는 말각방형(抹角方形) 집터 24기,석관묘 3기 등을 발굴했다고 5일 밝혔다. 지상건축지는 길이 13.6m,너비 7.7m의 장방형 집터를 닦아 놓은 자리에 길이 25∼35㎝ 크기의 주춧돌 각 5개를 2줄로 대칭으로 놓아 전면 4칸(9m),측면 1칸(5m)크기의 지상건축물이 당시에 건립됐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곳에서 발굴된 24기의 공방집터에서는 옥을 가공하는 옥공방과 석기를 가공하는 석기공방이 구분돼 있어 오늘날의 산업단지 같은 집단공방을 형성,이 시대에 이미 전문장인이 출현했음을 추정할 수 있다.
  • 선관위장 李容勳씨/대법관 趙武濟씨/尹 대법원장 지명·제청

    윤관 대법원장은 4일 오는 12일 임기가 끝나는 崔鍾泳 대법관 후임에 趙武濟 부산지법 원장을 임명 제청했다. 또 崔대법관이 겸임했던 중앙선거관리위원장에는 李容勳 대법관을 지명했다. 趙법원장은 국회동의 절차를 거쳐 대통령에 의해 임명되며 13일부터 6년 임기의 대법관 업무를 시작한다.李대법관은 관례에 따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위원들에 의해 제12대 위원장으로 선출될 예정이다. ◎李容勳 선관위장 내정자/민사법계 권위자… 사법개혁 크게 기여 민사법계의 권위자로 명망이 높다. 깊이 있는 심리와 깔끔한 판결문 작성 등으로 후배 법관들이 배석이 되기를 희망할 정도로 신망도 두텁다. 윤관 대법원장 취임 초기 법원행정처 차장으로 발탁돼 사법제도발전위원회의 주무위원을 맡아 사법 개혁에 크게 이바지했다. 독실한 기독교 장로로 현재 기독법조인들의 모임인 애중회의 회장을 맡고 있다.부인 高殷淑 여사(56)와 2남1녀. ▲전남 보성·56세 ▲광주일고·서울법대 ▲고시 15회 ▲대전지법 판사 ▲법원행정처조사국장 ▲광주고법 부장판사 ▲서울지법 서부지원장 ▲법원행정처 차장 ◎趙武濟 대법관 내정자/판공비 일절 안받는 ‘청빈 법관’/재산 7,200만원… 사법부 꼴찌/‘예산 축난다’ 비서관도 안둬 ‘향토법관’ ‘꼴찌법관’이 대법관에 올랐다. 4일 신임 대법관으로 임명제청된 趙武濟 부산지법원장은 64년 사시 4회에 합격한 이래 부산·대구·마산·진주 등 영남지역에서만 근무했다. 趙대법원장은 사법부 고위 법관 103명 가운데 재산 순위가 꼴찌이다. 93년 재산공개 당시 25평짜리 아파트 한 채와 부인 金淵美씨(50) 명의의 예금 1,075만원등 6,434만원을 신고했었다. 지금의 재산도 7,200만원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업무와 생활 곳곳에서는 청빈의 정신이 배어 있다. 부산지법원장 비서실은 비서관 없이 여직원 한 명만이 지키고 있다. “국가예산을 절감해야 한다”면서 아예 비서관을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판공비나 전별금을 지금껏 단 한차례도 받지 않았다. 매달 290만원과 120만원씩 나오는 판공비와 재판연구 활동비는 총무과장이 관리한다.직원들의 경조사나 어려운 일에 사용토록 하기 위해서다. ▲경남 진주·57세 ▲진주사범·동아대 ▲사시 4회 ▲부산지법판사 ▲대구고법·부산고법 부장판사 ▲창원지법원장
  • 충무공·반 고흐는 어떻게 살았나/‘춤으로 푸는 고전’

    ◎문예회관소극장 11∼12일 충무공,빈센트 반 고흐,카르멘,돈키호테 등 삶과 예술에서 어느덧 고전이 된 인물들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춤판,‘춤으로 푸는 고전’이 대한무용학회 주최로 11∼12일 하오 7시30분 문예회관 소극장에서 열린다. 포스트 모더니즘 무용이 홍수를 이루는 세태에 오히려 고전의 의미를 되새겨 보자는게 두번째 열리는 이번 춤마당의 취지.여섯명의 안무자가 이틀에 나눠 작품을 발표한다. 11일 무대에 오를 ‘독백’은 요즘같은 혼란기에 16세기 충신의 대명사 충무공을 되불러본 작품. 전 국립무용단 단원이자 춤다솜 무용단 부회장 양승호씨가 안무했다. 조승미발레단 김길용씨 작품인 ‘엇갈린 균형’은 때론 지고지순하다 때론 열정적으로 불타오르는 카르멘의 양면성을 그려본 작품. 조선대 강사 김남식씨는 빈센트 반 고흐의 ‘자화상’에서 영감받은 ‘새벽에 찾아온 죽음’을 발표한다. 12일 테이프를 끊는 현대무용단 ‘탐’ 멤버 성미연씨의 ‘돈키호테’는 안전한 일상의 길을 던져버리고 치열한 광기의 삶을 살아간 돈키호테 찬가. 이어 경희대 강사 유경희씨가 빌헬름 호프의 동화 ‘유령선’을 테마로 ‘유이(流離)’를 발표한다. 유니버설 발레단 수석무용수 박재홍씨가 내놓는 ‘대홍수의 전설’은 성서속 노아의 방주 이야기에서 모티브를 따왔다. 290­1332
  • 오사카총영사 尹逈奎씨/뭄바이총영사 都在承씨/니가타총영사 洪性和씨

    정부는 3일 주 오사카(大阪)총영사에 尹逈奎 국민회의 총재특보를 임명했다. 또 주 뭄바이(옛 봄베이)총영사에는 都在承 주 젯다 총영사를,주 니가타(新潟)총영사에는 洪性和 여권관리관을 각각 임명했다. ◇尹총영사=▲54세·서울 ▲고려대 정치학과 ▲대통령 비서실 비서관 ▲해외공보관 외보분석관 ▲주 일본 공사 ◇都총영사=▲56세·경북 달성 ▲서울대 행정학과 ▲주 애틀랜타 영사 ▲주함부르크 영사 ▲주 튀니지 참사관 ◇洪총영사=▲52세·서울 ▲육사 ▲주 삿포로 영사 ▲주 오사카 영사 ▲주 대만 참사관
  • 1,400년만에 다시보는 가야문화/국립김해박물관 개관

    ◎출토유물 마을·무덤모형 전시/시대·물질별 문화흐름 한눈에 국립김해박물관(경남 김해시 구산동)이 지난 29일 문을 열었다. 이 박물관은 4∼6세기 낙동강 중심으로 형성됐던 가야제국의 유물들을 전시하는 동시에 가야사를 연구하고 복원하는 기능을 맡은 고고학 전문박물관이라는 점에서 학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93년부터 5년여동안 2백6억원 가량을 들여 완공한 이 박물관은 1만5천여평의 부지에 지상 3층,지하 1층에 연건평 3천평의 현대식 건물. 박물관은 외양부터 철기문화의 이미지를 풍긴다. 건물외벽 윗부분은 ‘철의 왕국­가야’를 상징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강판을 사용했다. 또 고분의 봉분을 상징하는 몸체는 검은 벽돌로 쌓아 철광석과 숯의 이미지를 나타냈다. 이와함께 가야문화의 발전과정을 체계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전시실의 입구와 출구를 별개 구조로 설계하는 한편 유물을 안전하게 보존하기 위해 수장고에 오동나무로 만든 특수시설을 설치했다. 900평 가량의 전시장은 상설전시실과 2개의 기획전시실로 구성했으며 신석기시대부터 가야시대까지 시대별,물질별 문화흐름을 일목요연하게 파악할 수 있도록 전시물을 배치했다. 또 관람객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선사시대의 마을모형,무덤모형 등을 만들어 놓았고 컴퓨터 안내시스템과 가야유적의 문화권별,종류별 유적분포 전광판도 설치했다. 상설전시실인 제1 전시실의 ‘신석기시대’ 코너는 김해 수가리,부산 영선동,통영 연대도,통영 욕지도 등의 유적에서 출토된 돌도끼와 흑요석,조개팔찌,골각기 등을 전시한다. ‘청동기시대’는 삶의 공간과 죽음의 공간으로 나눠 ‘삶의 공간’에는 울산 검단리,산청 묵곡리 등의 유적에서 출토된 민무늬 토기와 방추자,갈돌을,‘죽음의 공간’에는 산청 강루리에서 옮겨온 고인돌을 전시해 놓았다. 또 ‘초기 철기시대’코너는 철이 등장했던 당시 생활문화를 엿볼 수 있도록 했다. ‘가야성립기’는 창원 다호리 1호묘에서 출토된 통나무관과 출토유물을 실물크기로 재현,김해 양동유적에서 출토된 칠조동검과 와질토기,칠기 등을 전시해 놓았고 ‘금관가야’ 코너에는 김해 대성동 고분군,김해 회현리 조개더미 등에서 발굴한 다양한철기 및 토기와 외래계 유물을 전시한다. 제2 전시실에 있는 ‘아라가야’ 코너에는 함안 마갑총 출토 말갑옷과 함안 말이산고분군에서 출토된 금입사고리자루칼,차륜식 토기,마늘쇠 등을 시대별로 배치해놓고 있다.‘대가야’는 고령을 중심으로 한 대가야문화권의 결속을 화려한 금세공품과 통형기대 등 제사토기를 통해 보여준다. 고령 지산동고분군,합천 옥전고분군,남원 월산리고분군의 유물과 자료도 있다. 이밖에 ‘소가야’는 고성 연당리고분군과 고성 동의동 조개더미 등을 중심으로 독자적인 문화상을 알려준다. 김해국립박물관은 개관 이후 한달동안 관람객들에게 무료로 개방한다.
  • 부모 모시는 자녀 상속 더 받는다/법무부 민법 개정안

    ◎지분 50% 가산… 부양비 부담때도 혜택 앞으로 부모를 직접 모시거나 부모와 함께 살지는 않더라도 부양비의 50% 이상을 부담하는 자녀는 다른 형제들보다 많은 유산을 상속받게 된다. 또 동성동본 금혼제도와 일정 기간동안 여성의 재혼을 금지하는 규정이 폐지되는 대신 근친혼 금지제도가 신설된다. 법무부는 27일 이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민법(친족·상속편)개정안’을 확정했다.이 법안은 올 가을 정기국회에서 통과되면 내년 1월1일부터 시행된다. 개정안에 따르면 피상속인(부모)과 함께 살면서 부양했거나 부양비의 50% 이상을 부담해온 상속인(자녀)은 그렇지 않은 상속인보다 50%의 유산을 더 받는다.이에 따라 유산배분과 관련한 유언이 없을 경우 부양 자녀와 비부양자녀는 각각 1.5:1의 비율로 유산을 차등 상속받게 된다. 현행 민법은 유언이 없을 경우 2명 이상의 상속인에 대해 부양 및 장·차남,출가한 딸 등에 관계없이 유산을 똑같이 분할토록 하고 피상속인의 배우자에 대해서만 50%를 더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으로 사문화된 동성동본 금혼제를 폐지하는 대신 △8촌 이내의 부계혈족과 모계혈족 △6촌 이내 혈족의 배우자와 배우자의 6촌 이내 혈족 △배우자의 4촌 이내 혈족의 배우자인 인척 △6촌 이내 양부모계의 혈족과 4촌이내 양부모계의 인척 간에는 혼인을 금지하는 근친혼 금지제도를 신설했다. 이혼한 뒤 6개월동안 여성의 재혼을 금지했던 규정이 폐지되고 남편에게만 인정했던 친생자 부인(否認)소송 제기권을 아내에게도 부여했다. 6세 미만의 아이를 입양할 경우 친부모 및 혈족과의 친족관계를 청산하고 양친과의 친족관계만을 맺도록 하는 친양자제도를 신설,양자(養子)의 신분을 노출시키는 현행 입양제도의 단점을 보완했다. 이밖에 상속 채무가 상속 재산보다 많을 때 상속을 거부할 수 있는 기간도 ‘상속개시가 있음을 안 날로부터 3개월 이내’에서 ‘상속 채무가 상속 재산보다 많다는 사실을 안 날로부터 3개월 이내’로 조정했다. 법무부 관계자는 “노부모를 모시지 않으려는 풍조를 다소나마 개선하고 개인의 존엄성과 남녀평등 원칙을 실현하는방향으로 개정안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 용감한 美 의원들/崔弘運 논설위원(外言內言)

    동맹군을 이끌고 나폴레옹의 프랑스군을 무찔러 워털루 전투에서 최후 승리를 거둔 웰즐리 웰링턴(1769.5.1∼1852.9.14)은 런던에서 있은 개선식에서 오늘까지 전하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워털루의 승리는 이튼교정에서 이루어졌다”라고. 헨리 6세가 1440년 나라의 핵심 지도자로 키울 우수한 학생 70명을 위해 만든 학교가 바로 이튼 칼리지다. 전교생 1,200명이 넘는 오늘까지도 왕실 장학생 70명은 오피단(Oppidan)으로 불리는 일반학생과 달리 연간 1,000여만원이나 되는 기숙사비와 학비일체를 면제받는다. 설립목적대로 영국을 이끈 기라성 같은 인물들이 대부분 이학교 출신이다. 이들의 대부분은 귀족이나 상류층의 반열에 들어 있으나 나라가 위급할 때 제일 먼저 달려나가 자신을 바친다. ‘왕과 국민의 영원한 공복(公僕)’이라는 이 학교의 변함없는 가르침이 이들을 이렇게 책임감 강한 지도자로 길러낸 것이다. 이는 서양 선진국 사회의 지도자들이 갖고 있는 일반적인 신념이며 생활자세이기도 하다. 바로 ‘노블레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다. 사회지도층 인사로서 지켜야 할 의무와 도덕률을 어김없이 지키기에 항상 존경을 받는다. 지난 24일 총기 난사사건이 일어났던 미국 의사당에서 보여준 미국 국회의원과 경찰관들의 희생적이며 의연한 자세도 바로 이 정신의 실천임을 깨닫게 한다. 사건 현장 사무실의 주인인 공화당 수석부총무 톰 들레이 의원은 한바탕 난동을 부리다 총상을 입은 범인 러셀 유진 웨스턴 2세가 총을 계속 겨누고 있는 위급한 상황에서도 공포에 떨고 있던 관광객들과 직원들을 안전하게 대피시켰다. 의사출신인 공화당의 빌 프리스트 상원의원은 연설을 마치고 지역구로 가던 길에 총격전 소식을 듣고 의사당으로 되돌아가 쓰러진 경찰관 2명과 범인을 응급조치했다. 그는 또 나중에 범인 웨스턴을 후송하는 응급차에 함께 타고 가며 인공호흡을 계속 해 주기도 했다. 의회경찰을 관장하는 빌 토머스 위원장도 총성이나자 몸을 숨기기는 커녕 곧바로 현장으로 달려가 관광객과 직원들을 진정시키고 사후 수습을 주도했다. 2명의 희생자를 낸 경찰도 살신성인(殺身成仁)의 모범을보여주었다. 의회는 이런 아수라장이 됐던 의사당을 계속 개방하겠다고 밝혀 또 한번 국민들의 신뢰를 쌓았고. 바로 이들이 한 사회를 이끌고 나라 전체를 지탱하고 있는 것이다. ‘유전면제(有錢免除) 무전현역(無錢現役)’풍토의 우리 사회와 너무 대조적이다.
  • 색채로망 3부작/시오노 나나미 지음(화제의 책)

    ◎16세기 이탈리아 배경 추리소설 역사와 문학을 넘나들며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발표해온 일본 작가 시오노 나나미의 새 역사소설. ‘주홍빛 베네치아’‘은빛 피렌체’‘황금빛 로마’ 등 3부로 되어 있다. 르네상스가 쇠퇴기에 접어든 16세기 전반의 세 도시 베네치아,피렌체,로마가 소설의 무대. 그곳에서 벌어진 사건들을 추리기법으로 엮어냈다. 산 마르코 살인사건을 소재로 한 ‘…베네치아’는 한 경관의 투신사건으로 시작해 존망의 기로에 선 베네치아의 퇴락한 모습과 인간의 운명적 사랑을 그린다. ‘…피렌체’는 실제로 있었던 알렉산드로 암살사건을 다룬다. 또 ‘…로마’에는 교황청 살인사건이 등장한다. 르네상스 최후의 교황인 바오로 3세 시대를 배경으로 음모와 비밀,분노와 사랑이 뒤얽힌 로마의 어두운 그림자를 추적한다. 김석희 옮김 한길사 전3권 각권 7,500원.
  • 한국인 세계 평균보다 7.9년 더 산다/통계로 본 자화상

    ◎여자 100명당 남아비율 111.7명… 2위/GNP대비 총교육비 가·미·불보다 낮아/원유소비량은 세계 평균의 3.2배나 우리 국민들은 오래 산다. 남자들은 담배를 많이 피운다. 기름 한방울 나지 않지만 원유는 세계평균보다 3.2배나 많이 소비한다. 일하는 시간은 줄어들었지만 임금은 해마다 올려 받았다. 통계청이 24일 펴낸 ‘통계로 본 세계속의 한국’에 나타난 한국과 한국민의 자화상이다. 한국인의 평균수명은 73.5세. 세계평균(65.6세)보다 7.9세나 높다. 특히 여자는 77.4세로 남자보다 평균 7.9년을 더 산다. 일본이 80.0세로 평균수명이 가장 높다. 남아선호는 유별나다. 출생 여자아이 100명당 남자아이의 비율을 나타내는 성비가 96년 111.7명이다. 중국(113.9명)을 빼면 세계 최고다. 일하는 시간은 많이 줄었다. 87년 주당 평균 54시간이었으나 96년에는 48.4시간으로 줄었다. 싱가포르(49시간)와 비슷하다. 그러나 임금은 해마다 올랐다. 91∼96년 사이에 제조업 평균임금은 매년 13.5%씩 증가했다. 싱가포르(8.3%)나 중국(8.1%) 대만(6.7%),일본(-4.4%)과 비교가 안될 정도다. 남성 흡연율은 95년 73%로 세계 최고수준이다. 여성흡연율은 6.0%로 선진국보다 매우 낮다. 그러나 교육비 지출은 선진국보다 낮다. GNP대비 총교육비 지출은 97년 5.0%로 캐나다(7.3% 93년) 미국(5.3% 93년) 프랑스(5.9%) 스위스(5.5%)보다 낮다. 경상수지적자는 97년 230억달러로 미국(1,487억달러)에 이어 세계 2위다.
  • 오늘 日 자민당 총재선거… 3후보 프로필

    ◎오부치­26세 정계입문 12선의원… 87년 입각/가지야마­舊육사 출신 9선의원… 비주류 선봉장/고이즈미­정치인 명문가 3세의원… 이단아 별명 【도쿄=姜錫珍 특파원】 일본 자민당 총재 선거가 24일 다가오면서 후보들의 인간적인 면면에 관심이 쏠린다.개인적인 갖가지 비젼들이 대내외 정책 결정에 알게 모르게 반영될 것이기 때문이다. 당선이 유력한 후보인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외상은 올해 61세로 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郞) 총리와 동갑내기.와세다대 대학원 재학중인 26세때 아버지 고헤이(光平)의 뒤를 정계 입문한 이래 선거 때마다 당선된 12선 의원.87년에 관방장관으로 입각한 이후 오키나와 개발청장관,외상 등을 역임했다. 가지야마 세이로쿠(梶山靜六) 전 관방장관의 별명은 무투파(武鬪派) 혹은 강완(剛腕).72세로 구 육군사관학교 출신이다.43세 때 처음으로 의회에 진출했던 9선 의원.87년 다케시타 내각에서는 자치상을 비롯해 통산상,법무상,관방장관 등을 거쳤다.관방장관 이후에는 오부치파에 속해 있으면서도 비주류의 선봉장이됐다. 고이즈미 쥰이치로(小泉純一郞) 후생상은 조부와 부친이 의원 및 각료직을 역임한 정치인 명문가의 3세 의원.올해 56세로 게이오대를 졸업했고 72년 의원에 첫 당선됐다.후생상을 3번째 맡고 있으며 우정상도 거쳤다. 돌출성 주장과 발언으로 이단아라는 별명을 얻고 있지만 개혁에는 적합한 인물처럼 비추어지고 있다.
  • 고대한일관계사/日 고대사 전공자 연민수씨 펴내

    ◎왜곡된 한일고대史 바로잡기/日의 한반도 남부 지배설 허구 반박/칠지도 銘文연호는 백제의 것 규명 우리 역사상 고대 한일관계사 만큼 편견과 왜곡으로 점철된 분야도 드물 것이다.이러한 왜곡은 일본과의 관계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백제와 가야사에까지 이어진다.최근 출간된 ‘고대한일관계사’(연민수 지음,혜안)는 객관적인 시각의 연구가 부족했던 고대 한일관계사 분야를 새롭게 조명한 연구서로 관심을 모은다. 지금까지 고대 한일관계사에 대한 연구는 일본 사학계가 주도해 왔다.한국의 경우 그 연구는 한국사 전공자가 주로 맡아왔다.그러나 이 책의 지은이는 일본 큐슈대학에서 일본 고대국가 형성기의 대외관계 등을 연구한 고대일본사 전공자란 점이 이채롭다. 이 책은 먼저 기존의 쟁점이 되어온 사료,즉 ‘일본서기’,광개토왕 비문, 칠지도(七支刀) 명문(銘文),‘삼국사기’,‘송서’ 왜국전 등의 성격을 밝혀 고대일본의 한반도남부 지배설을 비판한다. 기존의 설에 의하면 광개토왕 비문에 등장하는 왜는 야마토정권이고 4세기말 일본열도를 통합한 통일정권으로 이해돼 왔다.이것은 일본열도의 내부적인 발전과정을 충분히 검토한 뒤에 도출된 것이라기보다는 광개토왕비문의 신묘년조(辛卯年條)의 한 대목을 근거로 한 것이다. 이 책에서는 김석형의 ‘분국론(分國論)’,천관우의 친백제적인 북큐슈세력설 등 이에 대한 본격적인 반론을 소개한다.또한 광개토왕 비문과 관련,19세기 말의 사카와본에서부터 최근의 탁본까지 비교·분석,일본의 비문변조설을 반박한다. 이른바 ‘임나일본부’ 문제는 고대 한일관계에서 주요한 쟁점이 되어 왔다.또 양국의 정치적 관계를 논할 때 빠짐없이 등장하는 테마다.그동안 ‘임나일본부’ 연구를 주도해온 일본의 학자들은 이 문제를 야마토 정권의 해외 진출의 산물로 간주해 왔다.‘일본서기’에 나오는 신공황후의 삼한정벌기사의 허구성은 인정하면서도 광개토왕 비문이나 칠지도 명문 등을 들어 ‘임나일본부’의 실재를 주장해 온 것이다. 이 책에서 지은이는 ‘임나일본부’의 이러한 근거가 들어설 자리를 지워 버린다.6세기 전반 존망의 위기에 빠진 가야제국의 생존을 위한 대(對)백제·신라 국제외교전,가야를 적극적으로 도운 서일본 세력이 보낸 사자와 가야계 일본인의 합동작전 등 일시적인 활동이 ‘임나일본부’라는 왜곡된 형태로 전해지게 된 과정을 파헤친다. 한편 이 책은 칠지도의 실체를 분석,명문의 연호가 중국 것이 아니라 백제 연호임을 밝힌다.또 그것을 보낸 주체도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듯이 근초고왕이 아니라 무령왕이며,백제의 강대함을 과시하기 위해 왕세자를 통해 하사 형식으로 일본에 전해준 것이라는 점도 분명히 한다.
  • 국회 50돌 진기록들

    ◎박준규 고문 9선으로 현역 최다선/이효상씨 7년3개월간 의장역임/이범이 위원 62년부터 국회서 근무/이광규씨 신상우 의원 보좌 17년/성천영씨 63년부터 속기사 외길/김순천씨 31년간 의사당 방호 영욕의 ‘헌정 50년사’는 각종 기록들을 배출했다. 최다선 의장·의원부터 최장수 속기사까지 다양한 ‘국회인생’과 진기록들이 50년 역사와 함께 숨쉬고 있다. 현역 최다선 의원은 자민련 朴浚圭 고문(73). 4·19 직후인 5대 총선에서 민주당으로 정치계에 입문,무려 9선을 달리고 있다. 93년 YS정권에서 강제로 의장직(14대)을 사퇴하는 수모를 겪었으나 자민련 金鍾泌 총재와 손잡고 15대 총선에서 복귀했다. 최장수 국회의장은 6·7대 7년3개월간 국회 의사봉을 잡았던 李孝詳 전 의원(공화당·작고). 자유당 정권의 2인자였던 李起鵬 전 부통령(작고)이 5년 10개월(3∼4대)로 2위를 기록했다. 현역 국회 직원으로 최장수 근무자는 李範伊 전문위원(60·1급상당). 5·16 다음해인 62년 최고회의 총무처 9급 직원으로 출발,농수산 위원회 법제관을 거쳐 여성특별위원회 수석 전문위원으로 재직 중이다. 최장수 속기사는 成千永씨(56).63년 의사국 속기사로 국회와 인연을 맺은 이후 외길을 달려왔다. 대한 속기협회 이사장을 겸임하고 있다. 국회 ‘방위’를 책임진 방호원(防護員) 가운데 최장수 직원은 金淳天씨(58). 67년 7대 국회 때 화부로 국회에 발을 디딘 후 난방수와 수위를 거쳐 현재 국회 외각 경호팀을 이끌고 있다. 반면 의원들의 의정활동을 돕는 보좌진 가운데 최장수는 한나라당 辛相佑 의원 보좌관인 李光奎씨(56세). 지난 81년부터 17년간 한결같이 ‘주군’과 운명을 같이했다. 최장 임기의 국회는 유신으로 6년의 수명(?)을 누린 9대 국회(73년 3월∼79년 3월). 반면 최단 국회는 4·19 직후에 출범한 5대다. 5·16쿠데타로 9개월 18일간의 수명에 그쳤다.
  • 참소리축음기박물관(생활속의 박물관·미술관:6)

    ◎영혼을 두드렸던 ‘소리틀’ 오롯이/뮤직박스·축음기·첨단오디오/세월 들려주는 3,000점 망라/소리의 역사 따라 관람 가능/에디슨관 美보다 앞선 소장품 “십년 감수했다”라는 말이 있다.흔히 쓰면서도 이 말이 축음기와 관련됐음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구한말 축음기가 이 땅에 들어온지 얼마 안됐을 때의 일이었다.일반인들은 대부분 소문으로만 그 신기한 ‘소리단지’를 들어 알고 있을 뿐이었다.황실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고종이 당대의 유명한 광대 朴春載를 궁 안으로 불러 들였다. 박씨가 노래 한마디를 끝내고 축음기를 틀자 박씨의 노래소리가 그대로 흘러나왔다.축음기 소리에 놀란 고종이 불쑥 꺼낸 말 한마디.“춘재,네 명이 10년은 감했구나”.축음기가 사람의 정기를 빼앗아 간다고 생각한데서 유래한 말이다. 시대의 한과 삶의 고달픔을 달래주던 추억의 축음기부터 첨단 오디오 시스템까지­.시공을 초월해 소리의 세계에 흠뻑 빠져들 수 있는 이색 박물관이 있다.강원도 강릉시 송정동 216의 4 ‘참소리축음기오디오박물관’(관장 孫成木·55).1877년 에디슨이 발명한 세계 최초의 축음기부터 최신 음향기기까지 소리세계의 모든 것을 보여준다.아파트 숲 속에 덩그마니 자리잡아 조금은 삭막한 분위기지만 알맹이로는 세계 최고다. 200년전의 뮤직박스부터 축음기를 거쳐 최첨단 오디오세트로 안내하는 이 박물관의 소리여행은 흥미진진하다.규모는 비록 3층짜리 본 건물과 에디슨관·뮤직박스관 등 단층 건물 2동이 전부지만 담겨진 내용은 상상을 초월한다. 축음기만 해도 1877년∼1990년대 초기 왁스 실린더 300점,1890년∼1915년 원반 축음기 800점,1920년∼1940년대 중반의 포터블 축음기 200점 등 1,300점. 여기에 에디슨 발명품 500점과 라디오·텔레비전·전축·현대 오디오·음반·서적과 자료들이 곳곳에 진열돼 있어 전문가들도 쉽게 발길을 옮기지 못한다. 1901년 스페인에서 제작된 수공예 캐비넷형 축음기부터 1925년 영국산 최초의 리모트콘트롤형 축음기인 오토매틱 그래머혼,1930년대 미국산 웨스턴 일렉트릭 보이스 등 모두 내노라는 명품들.1800년도 외장형 나팔 축음기부터 1924년∼1940년 내장형 축음기,1925년형 최초의 텔레비전,1930년∼1940년대의 텔레비전·라디오를 샅샅히 보고나면 축음기 역사의 윤곽이 잡힌다. 에디슨관은 40여종 400점에 달하는 에디슨 발명품만 모아놓은 곳.최초의 벽부착용 스탠드형 전구와 주식시세표시기·영사기 등이 서로 최고를 자랑하듯 자리잡고 있다.최초의 축음기인 틴 호일과 클래스엠,엠베롤라,치펀데일은 금방이라도 에디슨의 탄성을 쏟아낼 것만 같다.현재 미국내에 에디슨 관련 전시관이 세 곳 있지만 에디슨의 명성에 비하면 부실한 편.워싱턴 스미소니언 박물관내 에디슨관과 디트로이트 포드자동차사내 에디슨관,뉴저지주 멜로파크 에디슨연구소의 소장품을 모두 합해도 여기에 비하면 턱도 없다는게 손관장의 귀띔이다. 뮤직박스는 1796년부터 1800년대까지 사람들의 귀와 혼을 자극하던 소리기기.에디슨이 축음기를 발명하면서부터 사라져 갔지만 옛 사람들의 음악세계에선 빼놓을 수 없는 환상적인 소리단지다.이처럼 축음기에 앞서 명성을 떨치던 갖가지 뮤직박스들도 이곳의 자랑거리다.원통형과 원반형,플레이어 피아노,오케스트리온,노래하는 새,움직이는 인형이 있는 뮤직박스,의자 뮤직박스들이 200년전 소리의 세계로 시계추를 돌리고 있다. 박물관 소장품중엔 세계적인 희귀품이 상당수.이 가운데 아메리칸 포노그래프(1900년 미국산)는 아르헨티나의 한 경매에서 구입한 것.수제품으로 만들어진 6대중 유일하게 남아 있는 것이다.또 축음기의 여왕으로 불리는 멀티폰(1908년 미국산)도 미국 샌프란시스코 경매장에서 구입한 것으로 현존하는 2대중 한대다. 그런가 하면 1층에 놓여있는 웨스턴 일렉트릭 보이스도 1928년∼35년 당시 음악 애호가들이 소리를 듣는 것은 물론 눈으로 한 번 보는 것이 소원일만큼 귀중한 것이라고 한다. ◎孫成木 관장/‘세계 유일’ 많지만 ‘내것’이란 집착 없어/남극 포함 60개국 찾아 강도 납치 사기 수난도/“공간 넓혔으면” 아쉬움 孫成木 관장(55)은 중학교 2년때 작은 아버지의 망가진 축음기를 고친 것을 계기로 축음기를 모으기 시작,박물관까지 만들어낸 명실상부한 세계 최고의 축음기 전문가다.축음기를 찾아 돌아다닌 나라만도 60개국.남·북극까지도 다녀왔다고 한다. “한 해 평균 7∼9회,매년 7∼8개월 정도씩 외국에 살면서 소문난 축음기 경매나 소장가들은 빼놓지 않고 찾아 다녔습니다.” 수집 초기엔 가짜를 진품처럼 속은 적도 많고 오지의 소장자를 만나러 가던중 강도를 만나거나 납치당하기도 수십번.이렇게 우여곡절 끝에 손에 넣은 것이 모두 3,000점.이중엔 강남의 아파트 한 채 값을 훨씬 웃도는 축음기도 들어 있다. “세계에서 하나 뿐인 축음기 등 희귀품이 많지만 제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적은 없습니다.저는 단지 관리·보관 책임을 질 뿐입니다”.초등학생부터 노인들까지 찾아드는 손님들이 끊이지 않지만 가장 반가운 손님은 역시 학생들.단체 학생 방문객들이 찾아올 때면 직접 강의도 한다.이젠 국제적으로도 조금은 알려져 학위논문 자료수집차 찾는 외국인 방문객이 있을 정도다.지난 해 방문했던 張庭延 주한 중국대사는 에디슨 발명품과 중국 문화재 교환전시를 제안하기도 했다고 한다. 최근 孫씨의가장 큰 걱정은 시설확대문제.찾아드는 손님이 늘고 있고 무엇보다도 귀한 소장품을 모두 보여주지 못하는 점이 안타깝다고 한다. “세계적인 박물관으로 후세에 전해주는 게 제 소망입니다.부지만 확보되면 건물과 전시 등은 쉽게 해결될 수 있을텐데…” ◎참소리박물관 가는 길 강릉시내에서 20분∼25분 정도 소요된다.시내에서 송정·안목 방면 버스편을 이용하면 20분∼25분 정도 거리.터미널에서 48번·21번·19­1번 노선버스가 운행하고 있고 터미널과 강릉공항·오죽헌·경포에서 택시로 각각 20분 정도면 충분하다. 연중무휴로 문을 열고 있고 개관시간은 상오 9시부터 하오 5시까지.관람시간은 1시간30분 정도.관람료는 어른 3,500원,중·고교생 2,500원,초등학생 1,500원,6세 미만은 무료,30인이상 단체는 어른이 2,500원,중·고교생 1,500원. 0391)652­2500.
  • ‘라니냐’ 징표 사진 찍었다/日 우주개발硏 공개

    ◎폐루근해 4∼5℃ 낮은 띠모양 해역 포착/지구촌 기상이변 파급 효과에 깊은 관심 【도쿄 교도 연합】 일본 우주개발연구소(NASDA)는 올해 페루 근해의 해수온도가 정상기온 보다 낮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인공위성 사진을 6일 공개했다. 우주개발연구소는 ‘엘 니뇨’가 물러나면서 나타난 ‘라 니냐’현상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지구촌 곳곳에서 기상이변과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 또 앞으로의 기상이변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깊은 관심을 모으고 있다. 공개된 사진은 지난해 11월 미 항공우주국(NASA)과 함께 가고시마(鹿兒島)현 다네가시마(種子島)에서 발사한 기상관측 위성으로부터 수신한 자료를 이용한 것이다. 올들어 고온 해역이 점차 축소되면서 지난 6월초에는 평균 해수온도 보다 섭씨 4∼5도가 낮은 좁은 띠 모양의 해역이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관계자들은 밝혔다. 한편 지구촌에서는 기상이변으로 큰 고통을 당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혹서로 8명이 숨지고 수백명이 일사병으로 입원 치료를 받고 있다. 중국에서는 양쯔강 유역을 중심으로 사상유례없는 폭우가 쏟아져 46명이 숨지고 37만명의 이재민을 냈다. 더구나 범람위기를 맞고 수백만명이 홍수방지 작업에 나섰다. 이밖에 지중해 연안 국가에서는 연일 계속된 혹서로 인명피해가 속출하고 있고 미국에서는 고온 건조한 날씨로 산불이 5주이상 계속돼 큰 피해를 냈다. ▷라니냐◁ 남미 페루 부근의 태평양 해수면 온도가 급격히 식으면서 평소의 23∼27도 밑으로 낮아지는 현상. 반면 서쪽인 인도네시아 부근의 태평양 수온은 상대적으로 올라가 불균형을 이루며 가뭄과 폭우,혹서 등 갖가지 기상이변을 낳는다. 페루 부근 태평양의 수온이 크게 올라가면서 역시 기상이변을 가져오는 ‘엘 니뇨’현상의 상대 개념이다. ‘라 니냐’는 스페인어로 ‘여자아이’라는 뜻이고 ‘엘 니뇨’는 ‘아기예수’ 또는 ‘사내아이’라는 뜻. 16세기부터 페루 어민들 사이에서 사용돼 왔다.
  • 중세의 미와 예술/움베르토 에코 지음(화제의 책)

    ◎종교에 가려졌던 美學의 전통 ‘장미의 이름’이란 추리소설로 중세 유럽 문화에 대한 박식을 인정받은 이탈리아의 기호학자 에코(1932∼)가 26세 때 쓴 중세미학 연구서. 에코는 이책에서 종교라는 검은 커튼으로 가려진 중세의 방을 활짝 열어젖힌다. 그리고 고전시대와 르네상스시대의 가교 역할을 훌륭히 해낸 중세인들의 미적 감수성을 낱낱이 밝혀낸다. 중세의 미학적 전통은 비례의 미학,빛의 형이상학,통찰력의 심리학 등과 같은 수많은 이론들을 낳았다. 한 예로 피타고라스를 비롯한 비례 미학자들은 미를 수학적으로 분석했다. 그들은 어떤 비례를 이루고 있는 신체가 아름다우며 몇개의 협화음을 가진 음악이 아름다운가를 연구했다. 또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그의 저서 ‘영혼의 위대성’에서 기하학적 규칙성에 입각한 미이론을 제시했다. 그에 따르면 정삼각형은 균형성 때문에 부등변삼각형보다 더 아름답고,사각형은 이보다 더 아름다우며,가장 아름다운 것은 원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중세의 예술개념은 인간의 ‘제작행위’에 관한 고전적이고주지주의적인 이론에 근거한다. 카롤링 왕조시대에서 둔스 스코투스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자신들의 예술개념을 아리스토텔레스와 희랍 전체의 전통 즉 키케로,스토아 학파,마리우스 빅토리누스,이시도루스,카시오도루스 등에게서 빌려왔다. 이 책은 비전문적인 중세 연구가,특히 뾰족한 교회탑만으로 중세를 이해하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중세의 ‘미(美)’에 대한 신선한 통찰력을 안겨준다. 손효주 옮김 열린책들 9,800원.
  • 이온화씨 번역 ‘누가 역사의 진실을 말했는가’

    ◎역사속 법과 정의의 관계는?/소크라테스∼나치 30가지 재판 연대순 정리/단순한 사실 나열 탈피 사회·정치적 의미 고찰 법은 어쩌면 만능의 신인지 모른다. 로마제국의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카이사르 암살범들에게 복수할 때 원로원을 억압했던 수단은 바로 법이었다. 250년동안 유럽을 휩쓴 ‘마녀재판’에서처럼 수십만 명의 인간을 몰살할 수도 있다. 그런가하면 1963년부터 65년까지 계속된 ‘아우슈비츠 재판’은 수백만명을 학살한 나치범죄의 전모를 밝혀냈다. 법은 정말 정의로운 것일까. 정의는 과연 재판을 통해 실현될 수 있을까. 인류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법과 정의 사이에는 숨막히는 긴장관계가 적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지난 주 출간된 ‘누가 역사의 진실을 말했는가’(푸른역사)는 한 시대를 대변하는 재판 사례들을 통해 ‘역사 속의 법과 정의’ 문제를 조명한 법정(法庭)세계사다. 지은이는 독일 뮌헨대학 고대사 교수인 크리스티안 마이어 등 30명. 독문학자 이온화씨(이화여대 강사)가 우리말로 옮겼다. 이 책에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소크라테스 재판에서부터 테러리스트들간의 전쟁이라 불리는 바아더­마인호프 재판에 이르기까지 서른 가지의 역사적 재판들이 연대순으로 정리돼 있다. 우리는 흔히 소크라테스 재판을 잘못된 판결로 간주한다. 하지만 이 책은 그 재판이 당시의 정황으로 볼 때 나름대로 타당했음을 강조한다. 소크라테스의 자유분방한 사고는 당시 아테네의 민주적인 개혁사회에서조차 지나치게 진보적인 것이었다는 것이다. 로마제국에 대항한 예수에 대한 재판도 주목되는 사건. 지금까지 예수 재판은 성경에 나오는 복음서의 재판을 기준으로 해석돼 왔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나자렛 예수의 재판을 로마인의 속주국 통치사의 관점에서 다룬다. 당시 로마의 지배자들은 속주국인 팔레스티나 지방 하층민의 폭동을 막아야 했다. 그래서 하찮은 사건도 아주 엄하게 다스렸으며,무장한 반란군과 종교가를 구분하지도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추종자를 이끌고 다니는 예수와 같은 시골 사람은 당연히 반란군 대장 쯤으로 보였을 것이다. 즉 예수는 사회안정이라는 지배세력의 정치적 요구에 이용당한 희생양이었던 셈이다. “이기면 충신 지면 역적”이라는 우리 속담이 있다. 이처럼 권력싸움에 졌기 때문에 죄인이 돼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 역사인물들은 수없이 많다. 프랑스혁명의 희생자 루이 16세가 그랬고,크롬웰의 재판으로 ‘사법살인’을 당한 영국왕 찰스 1세가 그랬다. 앙시앵 레짐의 마지막 왕인 루이 16세는 국회의원으로 구성된 특별법정에서 단 한 표의 차이로 사형선고를 받았다. 판결은 물론 정치적 테두리 안에서 내려졌다. 결국 루이 16세는 단두대에 세워졌고,프랑스 사회에는 정치재판이라는 불행한 전통이 남았다. 엘리자베스 여왕도 자신의 권좌를 넘보는 친척 메리 스튜어트를 20년 동안이나 감금한 뒤 반역혐의로 사형시켰다. 또 프랑스 혁명 이후 ‘조국의 구원자’라고 칭송받던 당통도 국민공회의 극좌파 지도자 로베스피에르에 의해 제거당했다. 사회여론이 판결을 지배한 예도 꽤 많다. 프랑스의 유태계 육군장교 드레퓌스의 반역혐의에 관한 재판은 그 대표적인 경우다. 드레퓌스는 유태주의적 적개심에 의해 유죄판결을 받았다. 당시 군 수뇌부는 드레퓌스가 무죄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군의 존립을 위해 그를 귀아나 해변의 감옥으로 보냈다. 작가 에밀 졸라의 공개 고발로 드레퓌스는 결국 사면됐지만 정의가 완전히 바로세워진 것은 아니었다. 드레퓌스 사건은 12년 동안이나 논란을 불러 일으키며 프랑스 제3공화정에 오점을 남겼다. 이 책에서는 소크라테스에서 나치까지 2,000년 역사를 뒤흔든 법정사례들을 다룬다. 하지만 단순히 역사적 사실만을 나열하거나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이야기들을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개별 사건들이 세계역사에서 차지하는 사회적·정치적·역사적 의미에 관한 새로운 시각을 보여준다. 그런 만큼 독자들은 스스로 역사의 법정에 선 피고 또는 법관이 돼 역사를 해석해 볼 수 있다.
  • 制憲 50돌을 돌아본다:1­2(정직한 역사 되찾기)

    ◎헌법 반세기/9차례 개헌… 민의 철저히 외면/52년 의원들 납치 직선제 채택/54년 부결안 사사오입 억지통과/박 대통령 집권연장 3차례 칼질/12·12 탈취자 헌전파괴로 ‘심판’/10번째 개헌 국민의 뜻 반영돼야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민국은….’헌법전문은 이렇게 시작되어 326자의 긴 한 문장으로 되어 있다.많은 사람들은 학창시절 헌법전문을 의미도 잘 모른 채 달달 외었던 기억을 갖고 있다.개헌의 역사도 교과서를 통해 배웠다.그러나 교과서 뒤에는 권력자들의 정치적 음모가 숨어있었다. 그들의 정략적 개헌은 많은 어용 학자와 지식인들에 의해 ‘정당화’ 되어왔다.헌법은 이러한 굴절된 개헌의 역사로 오염됐다. 헌법은 지난 50년 전쟁 와중의 1차 개헌 이후 9차례에 걸쳐 바뀌었다.지금까지 개헌은 집권세력이 자기의 편의대로 헌법을 뜯어고친 정치적 상처의 흔적을 남겼다. 1차개헌의 핵심은 대통령 선출을 국회가 아닌 국민직선으로 바꾸는 것이었다.50년 총선에서 참패한 李承晩은 국회에서 대통령 재선이 어려워지자 52년 7월7일 국회의원을 강제로 납치해 대통령직선제 개헌안을 통과시켰다.그는 대통령 중임제한 규정을 초대 대통령에게는 적용하지 않도록 하는 개헌을 다시 강행했다.그러나 그 개헌안은 당초 부결된 것으로 선포됐다.하지만 54년 11월29일 사사오입(四捨五入)이라는 기상천외한 수학적 원리를 끌어들여 억지로 통과시겼다. 4·19혁명은 헌법에서 보장받지 못한 민중 스스로의 저항권 행사였다.그러나 혁명주체가 정치적 힘으로 결집되지 못해 직업 정치인들에게 공을 가로채이고,그들에 의해 의원내각제 정부형태를 채택한 3차개헌이 단행됐다.그러나 혁명주체세력들은 4·19정신의 반영이 부족하다고 판단했다.그들은 국회에 압력을 가해 4차개헌이 이루어지도록 했다.4차개헌은 3·15부정선거 주동자에 대한 공민권 정지 등을 포함하고 있었다. 민의에 의한 헌법질서 수립은 그러나 5·16쿠데타로 6개월만에 수포로 돌아가고 30여년의 기나긴 군사독재의 장이 열렸다.朴正熙대통령은 3번이나 헌법을 개악했다.개헌의 핵심은 대통령권한의 강화였다.그는 4년 임기 대통령의 중임제한규정을 없애기 위해 69년 대통령 재임을 3번까지 인정하는 6차개헌안을 여당의원들만 모인 가운데 날치기 통과시켰다.72년에는 아예 영구집권을 담보할 수 있는 유신헌법을 공포했다.유신헌법체제는 거센 국민의 저항에 부닥쳤고,이를 제압하기 위한 수단으로 암울한 긴급조치의 시대가 열리게 됐다. 김재규의 朴正熙 살해는 유신체제를 끝나게 했다.하지만 군사정권의 종말로 이어지지는 않았다.신군부세력이 12·12군사반란으로 정권을 탈취했다.그들은 80년 10월27일 선거인단에 의한 대통령선출을 골자로한 제8차 개헌을 단행했다.그러나 결국 이들은 헌정파괴사범으로 법의 심판을 받았다.신군부의 공포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저항은 거세졌고,이는 직선제 개헌의 요구로 이어졌다.박종철군 고문치사사건,이한열군 최루탄 사망사건이 도화선이 되면서 국민들의 분노가 폭발하자 위기를 느낀 집권세력은 6·29선언을 통한 직선제 개헌 수용으로 국민들을 회유한다. 87년 개정된 현행 헌법은 여전히 비민주적 요소를 갖고 있다.대통령에 지나치게 권력이 집중돼 있고 긴급권에 대한 통제장치도 부족하다. 새 정부도 내각제로의 개헌을 약속하고 있다.그러나 10번째 개헌이 이루어진다면 단순한 정부형태의 변경에 머물러서는 안될 것이다.지난 50여년간 왜곡돼온 것들을 바로잡지 않으면 안된다고 학자들은 입을 모은다.개헌때에는 특히 그동안 소외돼온 국민들의 뜻이 충분히 반영될 수 있는 절차가 필요하다고 그들은 지적한다. □대한민국헌법 연혁 ▲1948.7.17 헌법제정 ▲1952.7.7 제1차 개정(제2대 국회) △양원제 △대통령·부통령의 직접선거 ▲1954.11.29 제2차 개정(제3대 국회) △주권의 제약,영토의 변경 등 중대사항에 관한 국민투표제 △국무총리제 폐지 ▲1960.6.15 제3차 개정(제4대 국회)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의 절대적 기본권화 △의원내각제 △중앙선거위원회 설치 △헌법재판소의 설치 ▲1960.11.29 제4차 개정(제5대 국회) △4·19에 관련된 부정선거관련자 및 반민주행위자의 공민권 제한과 부정축재자의 처벌에 관한 소급입법권의 부여 △특별재판부및 특별검찰부의 설치 ▲1962.12.26 제5차 개정(국회재건최고회의)전문개정 △국가안전을 위해 기본권 보장 다소 약화 △단원제환원 △대통령제 △헌법재판소를 폐지하고 위헌법률심사권을 법원에 부여 △헌법개정엔 국회의결을 거쳐 국민투표 ▲1969.10.21 제6차 개정(제7대 국회)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는 국회의원 50명 이상의 발의와 재적.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얻도록 함 △대통령의 계속 재임 3번까지 가능 ▲1972.12.27 제7차 개정(유신헌법) 전문개정 △통일주체국민회의 신설 △임기의 연장과 긴급조치권,국회해산 등 대통령의 지위와 권한 강화 △국회의 권한과 지위를 제한 내지 축소 △헌법위원회 신설 ▲1980.10.27 제8차 개정(국민투표) △비례대표제 채택 △국정조사권 신설 △행정심판제도 신설 △대통령 7년 단임제 △대통령 비상조치권 부여 △전직대통령의 예우조항 신설 ▲1987.10.29 제9차 개정(국민투표) △대통령의 직접선거(5년 단임제) ◎누가 참여했나/권력에 들러리 선 학자들 반성없는 ‘법기술자’ 활보/5·16후 법조인 등 21명 개헌작업 참여/신군부 입법회의에 총장 등 이름 내걸어/실제 입법활동 청와대·권력기관이 주도/김철수 교수 등은 양심 지켜 좋은 본보기 쿠데타에 의한 정권찬탈과 독재정치에 합법성을 부여해 주는 역할은 학자들이 주로 맡았다.이들은 개헌안 입안과 각종 악법 제정에 참여해 부실한 통치 이념을 보완하고,양심세력을 잡아넣는데 정당성을 부여했다.그리고 이들은 대개 출세가도를 달렸고,지금도 반성의 말 한마디 없다. 5·16쿠데타 세력이 추진한 5차개헌안 마련에는 兪鎭午·韓泰淵·葛奉根·尹天柱·李英燮 등 21명의 학자와 법조인이 전문위원으로 참여했다.兪鎭午는 5·16세력의 개헌에 협력했을 뿐만 아니라 관제 단체인 재건국민운동 초대본부장을 맡음으로써 제헌헌법 기초자로서의 명예를 스스로 낮추었다. 72년 유신 선포후 개헌작업은 申稙秀 법무 李坰鎬 보사 徐壹敎 총무처장관과 劉敏相 법제처장,그리고 헌법학자 韓泰淵·葛奉根교수로 구성된 법무부 헌법심의위원회가 맡았다.韓泰淵과 葛奉根은 3선 개헌에 이어 유신개헌까지 참여해 독재헌법 제정의 ‘단골’이라는 불명예를 얻었다. 80년 신군부의 개헌을 위한 헌법심의위원회에는 文鴻柱 부산대 尹謹植 성균관대 尹世昌 고려대 朴承載 한양대 교수 등이 참여했다.그리고 5·6공을 정당화하기 위한 각종 악법을 양산한 입법회의에는 金相浹 고려대(5공 초대 국무총리) 權彛赫 서울대 鄭義淑 이화여대 安世熙 연세대 총장,朴奉植 서울대 羅昌柱 건국대 韓基春 외국어대 교수 등이 들어갔다.이들중 朴承載 羅昌柱 등은 특히 신군부 집권의 당위성을 강변하는 각종 기고문을 많이 써서 곡학 아세(曲學阿世)의 본보기가 됐으며,두사람 모두 5공에서 국회의원을 지냈다. 韓己植 고대 교수는 ‘광주폭도의 실상’이란 주제로 각 대학을 돌며 교수들을 상대로 슬라이드 상영과 강연을 해 비웃음을 사기도 했다. 헌법심의위나 전문위원,입법회의 등은 들러리에 불과하고 실제 입법은 청와대나 정보기관이 관리하는 비밀모임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이 다수 의견이다. 그러나 비록 극소수지만 金哲洙 서울대 명예교수 韓相範 동국대 교수 등 끝내 권력자의 협박과 회유를 물리치고 법의 본질적 역할인 정의를 지키는 일에 헌신한 양심적 학자들도 있다. ◎3선 개헌 반대 芮春浩 전 의원/“헌정 파괴 방관만 할수 있나 여 의원으로서 저항에 자부심” “헌정질서가 무너지는 것을 그대로 지켜볼 수만은 없었습니다.개인이나 당의 이익보다는 헌법과 민주주의 수호가 훨씬 더 중요했으니까요” 지난 69년 朴正熙정권이 3선개헌을 강행하자 여당인 공화당의원으로 끝까지 저항했던 芮春浩 전의원(71)은 지금도 그때의 결단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芮 전의원은 개악적 개헌 저지를 위한 반대투쟁의 대표적 인물로 평가받아 왔다.그는 여당의원의 신분이면서도 정권의 불의에 끝까지 저항했다.당시의 독재적 정치체제 속에서 여당의원이 개헌에 반대한다는 것은 정치생명의 끝이며 핍박의 시작이던 상황이었다.그러나 그는 온갖 협박과 회유를 거부하고 정의를 위해 세속적 의미의 고난의 길을 선택했다. 5·16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朴正熙대통령은 정권 연장을 위해 69년 6차개헌에 나섰다.그러나 여당내에서도 芮 전의원 등 40명이 반대 서명에 나서는 등 강한 반발이 나타났다. “숫자상으로 야당의원에 여당의원 5∼6명만 가세해도 개헌은 막을 수 있었는데….그러나 개헌의결 당일까지 당내에서 반대로 남았던 사람은 제명당했던 저와 鄭求瑛 전 공화당의장 등 2명뿐이었습니다.정권의 회유와 협박이 대단히 집요했어요.” “정권의 회유와 협박에 다른 사람들은 결국 굴복했습니다.그들중 많은 사람들은 엄청난 재산가로 변신했죠”라며 芮 전의원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군사정권에 몸담게된 계기에 대해,“5·16직후 벌어진 재건국민운동에 참여한 것이 인연이 됐다”고 밝혔다.“개혁의 필요성에 공감했고,재건운동의 취지가 훌륭했습니다.朴正熙의 소박한 생활과 일에 대한 열정에 마음이 끌리기도 했습니다.” 개헌과 관련해 남다른 경험이 있어서인지 그는 새정부의 개헌문제에 대해서도 깊은 관심을 보였다. “개인적 소신으로는 의원내각제가 좋다고 봅니다.그러나 중요한 것은 개헌의도와 그 과정의 순수성과 투명성이겠지요.국민들을 그과정에 얼마나 많이 참여시키느냐 하는 것도 과제입니다.” 그는 현정부에 대해서도 “열심히 하고는 있지만 아직 귄위주의적 통치문화를 벗지 못한 느낌이 든다”며 “한번 그 맛에 젖어들면 빠져나오기 힘든 것이 절대 권력의 속성”이라고 충고를 아끼지 않았다. 20여년간 서울 진관외동에 살다 지난해 분당으로 이사해 부인과 단둘이 살고 있다.주로 독서와 낚시로 시간을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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