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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팔로어 100만’ 교황 첫 트위트 “축복을 빕니다”

    지난 3일 트위터 계정을 개설한 교황 베네딕토 16세(85)가 12일(현지시간) 드디어 첫 트위트를 날렸다. 교황은 트위터에 “친애하는 여러분, 트위터를 통해 여러분과 소통할 수 있게 돼 기쁩니다. 여러분의 호응에 감사합니다. 진심으로 모두의 축복을 빕니다.”라는 글을 올렸다. 교황은 이날 미사가 끝난 뒤 태블릿PC를 이용해 첫 트위터 메시지를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주 교황이 트위터 계정을 개설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영어 계정 팔로어만 65만명을 넘어섰다. 또 독일어, 이탈리아어, 아랍어 등 다른 7개 언어로 된 트위터 계정도 수만 명씩 팔로우해 팔로어수가 총 100만 명을 넘어섰다. 교황청은 앞서 “교황의 트위터 이용은 교회가 디지털 영역에도 존재해야 한다는 신념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교황이 팔로어들의 질문에 대한 대답도 올릴 것이라고 밝혔다. 조희선기자 hsncho@seoul.co.kr
  • 마추픽추 너머의 페루… 사막·호수·섬

    마추픽추 너머의 페루… 사막·호수·섬

    마추픽추 없는 페루를 상상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한데 역설적으로 페루에서 마추픽추를 지워야 또 다른 페루의 모습과 만나게 됩니다. 잉카 제국이 남긴 수많은 유산들에 앞서 페루의 자연을 먼저 이야기하려 하는 것도 그런 까닭입니다. 척박함과 아름다움의 상반된 이미지를 가진 사막과 100만 마리 바닷새들이 살아가는 절해고도, 그리고 하늘이라도 능히 담아낼 것 같은 넓고 아름다운 호수를 먼저 알아야 그 안에 깃든 문화와 역사를 보다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지구 반대편에 나와 비슷한 키에 나보다 다소 검은 얼굴을 한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는 것도 그제야 새삼 깨닫게 되지요. ■ 개성 넘치는 자연, 천의 얼굴을 가진 사막 페루에는 독특한 기후를 가진 세 지역이 공존한다. 칠레까지 길게 이어진 태평양 연안의 해안지역과 안데스 산맥의 고원 지대, 그리고 아마존의 정글 등이다. 독특한 기후는 독특한 풍경을 낳는다. 마추픽추로 상징되는 오래된 풍경들 말고도 페루가 보여줄 수 있는 건 많다. 다만 잉카의 유산들에 가려져 있었을 뿐이다. 수도 리마를 통해 입국한 여행자들이 가장 먼저 만나는 건 1800마일(약 3000㎞)에 달하는 사막지대다. 비행기에서 내려다 본 태평양 연안의 적갈색 땅은 그 전조였던 셈. 잉카의 제국에서 사막과 만날 수 있으리라고는 누구도 상상하기 쉽지 않다. 유려한 곡선과 음영을 가진 전형적인 사막에서부터, 영화 ‘황혼에서 새벽까지’(1996년)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하는 그로테스크한 마을 풍경까지, 척박하고 단조로운 풍경이 주는 감동은 넓고 또 깊다. 사막으로 가는 첫 관문은 팬 아메리칸 하이웨이다. 북쪽 알래스카에서 남쪽의 아르헨티나까지, 남북아메리카를 잇는 2만 6000㎞ 길이의 고속도로다. 리마에서 고속도로를 타고 300㎞쯤 남쪽으로 달리면 이카(Ica)다. 건조한 사막 도시지만, 관개농업 덕에 아스파라거스 생산량 세계 1위에 오를 만큼 농업 도시로 성장했다. 이카 외곽에 와카치나 오아시스가 있다. 오래전엔 인근에 7개의 오아시스가 있었으나, 농업용수로 끌어다 쓰는 통에 지금은 2개만 남았다. ‘아름다운 여인’이란 뜻의 와카치나에는 전해오는 설화가 있다. 오래전 한 여인이 한 달에 한 번씩 이 오아시스에 와서 목욕을 했더란다. 그러던 어느날 여인은 자신의 알몸을 훔쳐보던 한 남자를 거울을 통해 보게 됐고, 수치심에 달아나다가 오아시스의 인어가 되었다는 것이다. 어딘가 우리 ‘선녀와 나무꾼’의 데자뷔처럼 느껴진다. 현지 가이드에 따르면 건조한 기후 탓에 오아시스가 계속 말라가고 있다. 급기야 지방 정부에서 인위적으로 물을 채워야 하는 상황까지 왔다. 현재는 50%만 자연적으로 용출되는 물이고, 나머지는 공급된 물이다. 와카치나 오아시스 주변으로는 300m 높이의 모래언덕이 에둘러 펼쳐져 있다. 발이 푹푹 빠지는 모래산을 힘겹게 오르면 놀라운 풍경이 펼쳐진다. 움푹 파인 오아시스 마을 너머 수없이 중첩된 모래산들이 황톳빛 마루금을 펼쳐낸다. 모래 언덕 위엔 샌드 보드와 버기카, 지프 등을 타며 스릴을 만끽하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파라카스 국립자연보호구역 내 캘리포니아 사막도 가볼 만하다. 와카치나 오아시스에 견주자면 전형적인 사막의 모습을 하고 있다. 모래가 바람을 만나 칼날 같은 경계선을 그리고, 그 위로 햇살이 깃들며 깊은 음영을 그려낸다. 몽환적인 풍경이다. 와카치나와 달리 캘리포니아 사막은 찾는 사람들이 드물다. 대중교통은 없고, 여행사에서 운용하는 어드벤처 프로그램 등에 참여해야 한다. 수없이 많은 모래언덕을 지프를 타고 돌아보는데, 짜릿하고 스릴 넘친다. ■ ■ 남미의 작은 갈라파고스… 바예스타스 섬 사막도시 이카와 위도상 비슷한 위치에 파라카스 반도가 있다. ‘모래바람’이란 뜻의 반도는 퍽 인상적인 풍경을 지녔다. 나무 한 그루 없는 산자락들이 여인의 허리를 연상시키는 곡선을 그리며 바다로 줄달음친다. 파라카스 반도의 끝자락에서 한발짝 내디디면 바예스타스 섬이다. 100만 마리가 넘는 바닷새들이 모여 사는 곳이다. 바예스타스 섬으로 가는 들머리는 파라카스항이다. 페루의 주요 어항 가운데 한 곳이라는데, 우리의 항·포구에 견줘 한적하기 짝이 없다. 반면 항구 앞바다는 부산하다. 돌고래들이 물고기를 쫓고, 페루비안 부비새들은 수면 가까이 떠오른 물고기떼를 공격하기 위해 날개를 접은 채 화살처럼 내리꽂힌다. 펠리컨들도 경쟁하듯 자맥질에 한창이다. 바예스타스 섬까지는 19㎞, 배로 30분 정도 걸린다. 오가는 길에 만나는 풍경이 장관이다. 저 유명한 ‘칸델라브로’(Candelabro), 이른바 ‘촛대 그림’도 바로 이 길에서 만난다. ‘촛대 그림’은 파라카스 반도 위에 그려져 있는 문양으로 나스카 라인에 빗대 ‘작은 나스카’라 불린다. 세로 길이는 180m, 가로는 70m다. 폭은 4m, 선의 깊이는 30㎝ 정도다. 현지 가이드 호세는 “주변에 유기물이 없어 탄소연대 측정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언제 만들어졌는지 과학적으로 측정하기 어렵다.”며 “다만 나스카 라인이 있는 남쪽을 가리키고 있어 이와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전했다. 바예스타스 섬은 새들의 낙원이다. 남미 바다사자 등 포유류도 눈에 띄지만, 절대 다수는 새들이다. ‘남미의 작은 갈라파고스’라는 별명도 그래서 생겼다. 섬에 서식하는 바닷새는 모두 60여종. 페루비안 부비새와 가마우지 등이 우점종이고, 훔볼트 펭귄 등 진귀한 새들도 세들어 살고 있다. 100만 마리의 새가 한 자리에 모여 재잘대는 소리를 들어본 적 있는지, 혹은 수 만 마리 바닷새가 동시에 섬 주변을 나는 장면을 본 적이 있는지. 단언컨대, 그 순간 만큼은 배멀미를 하거나, 새똥 냄새에 역겨워하는 당신은 없다. 섬에서 가장 귀한 대접을 받는 새는 과나이 가마우지다. 인산질 비료로 이용되는 새똥, 구아노를 가장 많이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섬에서 최초로 구아노를 채취한 이들은 16세기 잉카인들인 것으로 전해진다. 보통 7년에 한 번씩 채취하는데, 대개 5월에 시작해 6개월쯤 소요된다. 한번에 채취하는 양은 6000t 정도. 1㎏ 당 1.25 유로(약 1750원)의 고가에 팔린다. 재정이 취약한 페루로서는 새들에게 톡톡히 신세를 지고 있는 셈이다. 바예스타스 섬은 모두 3개의 작은 섬으로 이뤄졌다. 자세히 보면 섬 곳곳에 구아노가 굴러떨어지지 않도록 돌담을 쌓아 뒀는데, 19세기 초반 그리스인들이 조성한 것이다. 잉카의 후예들에게 마음의 고향과 같은 곳이 티티카카 호수다. 잉카의 창조신인 비라코차 또한 호수 남쪽 ‘태양의 섬’에서 태어났다고 페루 사람들은 굳게 믿고 있다. 높이는 해발 3800m. 지구를 통틀어 배가 오갈 수 있는 호수 가운데 하늘과 가장 가깝다. 우리 백두산(2744m)도 티티카카 호수보다 낮다. 타원형으로 생긴 호수는 가장 긴 곳이 165㎞, 짧은 곳도 60㎞에 이른다. 이쯤되면 호수라기보다 바다에 가깝다. 최고 수심은 284m. 페루 북쪽의 아마존강과는 형제나 다름 없다. 같은 산에서 발원한 뒤 흘러 가는 방향만 달리한다. 호수는 페루 남쪽에서 볼리비아와 경계를 이룬다. 호수의 60%는 페루에, 40%는 볼리비아에 속한다. 티티카카에서 티티는 푸마, 카카는 회색(아이마라어), 또는 바위(케추아어)라는 뜻이다. ■ ■ ■ 잉카 후예들에게 마음의 고향… 티티카카 호수엔 건기와 우기만 존재한다. 11~4월이 우기에 속하는데, 밤이 되면 비가 쏟아지고, 낮에는 흐리거나 맑은 날씨가 반복된다. 기온 또한 낮엔 30도 가까이 치솟고 밤이면 영하로 떨어지는 등 변덕스럽기 짝이 없다. 호수 내 섬 가운데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것은 ‘우로스 섬’이다. 갈대섬과 갈대배로 유명하다. 현지 관광청 직원인 훌리오 세자르에 따르면 페루 지역에만 모두 73개의 갈대섬이 물에 떠 있다. 주민수는 800여 가구에 2900여명. 유치원 2개, 초등학교 5개, 고등학교 1개가 있다. 각각의 섬에는 5~10가구가 산다. 모든 가구는 혈연으로 연결돼 있다. 주민들은 갈대섬에서 태어나 갈대섬에서 인연을 만나고, 생을 마감한단다. 믿기지 않지만 엄연한 현실이다. 갈대섬 문화는 기원전 1000년쯤 볼리비아에서 먼저 시작됐다. 갈대섬 조성 방법은 간단하다. 호수 바닥에 뿌리를 내리고 자란 갈대가 일정 기간이 지나면 호수 바닥과 함께 물 위로 떠오른다. 뿌리 안에 많은 양의 공기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호수 바닥과 연결된 부분을 자른 뒤, 이 블록을 다른 블록과 연결하면 섬의 기반이 완성된다. 처음에는 밧줄로 블록들을 연결하지만, 5년 정도 묶어 두면 갈대 뿌리들이 서로 뒤엉켜 자라면서 자연스레 튼튼하게 연결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기반 위에 싱싱한 갈대를 한 층은 가로로, 그 위층은 세로로 얹고 단단히 밟아 바닥을 완성한다. 이 위에 갈대집 ‘우타’를 짓고 생활한다. 갈대섬은 모계 중심 사회다. 낚시로 물고기를 잡거나 물새알 채집, 새 사냥 등으로 끼니를 장만한다. 갈대는 집 짓는 자재이자 식량이다. 옥수수대처럼 뿌리 쪽 하얀 부분을 먹는데, 치아에 좋은 성분이 많아 섬 주민들이 평생 치과에 가지 않는다고 한다. 유명세에서는 밀릴지언정 풍경의 깊이로는 몇 곱절 빼어난 곳이 타킬레 섬이다. 섬 내 가장 높은 곳은 4050m에 이른다. 섬에 들면 먼저 유칼립투스 나무가 진한 향기로 이방인을 맞는다. 섬은 전남 완도의 청산도를 닮았다. 섬 전체에 이리저리 돌담길이 나 있는 모양새가 영락없이 당리의 보리밭길이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건 섬 주민들이 착용한 현란한 색상의 모자와 허리띠 등의 직물이다. 특히 남자들의 뜨개질 솜씨가 일품이다. 거기엔 까닭이 있다. 섬 총각이 장가를 들기 위해선 모자를 견고하게 잘 만들어야 한다. 혼인을 허락받기 위해 장인 앞에서 자신이 만든 모자로 시험을 치르는데, 모자에 물을 담아 물이 샌다거나, 모자를 세워 조금이라도 옆으로 쓰러지면 가차없이 퇴짜를 맞는다. 이렇게 튼튼한 모자를 만들기 위해선 꼬박 8개월~1년의 시간을 쏟아부어야 한다. 섬에서 모자는 신분의 상징이다. 결혼 유무와 섬 내 지위, 심지어 기분의 좋고 나쁨까지 모자로 표현한다. 글 사진 이카·푸노(페루) 손원천 여행전문기자 angler@seoul.co.kr >>페루의 화폐 단위는 솔(Sole)이다. 국내에서 미국 달러로 환전한 뒤, 현지에서 다시 솔로 바꾼다. 1달러에 2.5솔 정도다. 현지에서 ‘프라피노’(팁)를 줘야 하는 상황이 자주 생기므로 잔돈을 여유있게 바꿔 가는 게 좋다. >>관광지마다 전통 복장을 하고 ‘모델’로 나서는 현지인들이 많다. 특히 프라피노를 요구하며 달려드는 어린이들의 ‘습격’에는 버틸 재간이 없다. 사진을 찍을 때마다 누구나 프라피노를 요구하는데, 2~3솔 정도가 일반적이다. 어린이를 위해 초콜릿 등 과자나 연필 등 학용품을 선물로 준비하는 것도 방법이다. >>사계절 옷을 전부 준비하는 게 좋다. 리마 등에서는 가벼운 복장으로도 충분하지만, 안데스 등 고산 지역과 사막에선 아침 저녁으로 제법 쌀쌀하다. 한낮에도 덥긴 하지만 그늘에 들어가면 곧 서늘해진다. >>입국할 때 반드시 비행기 왼쪽 좌석에 앉을 것. 태평양 연안을 따라 리마까지 가는 동안 웅장한 안데스 산맥의 ‘백만불짜리’ 풍경과 줄곧 동행할 수 있다. >>개별적으로 택시를 탈 땐 흥정을 잘 해야 한다. 우리처럼 계기판 요금제가 아니기 때문에 차 타기 전 목적지까지의 요금을 정하는데, 특히 화폐 단위를 분명히 해야 한다. 무심코 숫자만 불렀다간 솔이 아닌 달러로 계산해야 하는 봉변을 당하기 십상이다.
  • 2000년전 비단 국내생산 확인

    2000년전 비단 국내생산 확인

    광주 광산구 신창동 유적에서 기원전 1세기경 비단이 발견됐다. 이는 6세기 고분인 백제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최초의 비단조각보다 700년이나 앞선 최고(最古)의 비단으로 2000년 전 한반도에서의 비단 생산을 입증하는 자료로 높은 가치를 지닌다. 국립광주박물관은 신창동 유적에서 출토된 천조각을 과학적으로 조사한 결과 이 천조각이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비단인 곡(縠)임을 확인했다고 11일 밝혔다. 이 조사는 신창동 발굴 20주년을 기념하여 개최되는 특별전 준비과정에서 이뤄졌다. 조사된 천조각은 2점이며 직물1은 2㎝ x 3㎝, 직물2는 5㎝ x 6㎝ 정도이다. 직물1은 명주실로 짠 가볍고 얇은 견직물인 곡으로, 직물2는 마직물로 분석됐는데 견사(絹絲)와 마사(麻絲)를 합사했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이번 확인으로 출토된 비단과 마직물은 한반도에서 시기적으로 가장 빠른 것으로 판명됐다. 확인된 비단은 꼬임이 많은 강연사(强撚絲)를 사용하여 평직(平織)으로 직조한 뒤 후처리인 정련(精練)과정을 거쳐 직물의 표면을 미세하고 부드럽게 만든 것이다. 현재까지 이런 곡은 무령왕릉 출토품이 가장 빨랐다. 광주박물관 측은 “2000년 전 비단의 발견은 중국의 ‘후한서’와 ‘삼국지’ 동이전에 나오는 삼한의 양잠과 비단 생산을 증명할 유물로 가치가 높다.”면서 “마직물을 사용하는 계층과 다른 신분층이 존재하는 것으로, 마한 사회의 신분변화를 추정할 만한 자료”라고 설명했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네집 중 한 집 ‘나홀로 가구’ … 10년새 두 배↑

    네집 중 한 집 ‘나홀로 가구’ … 10년새 두 배↑

    우리나라의 1인 가구가 최근 10년 사이에 두 배 가까이 늘어나면서 전체 가구의 4분의1에 육박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44세 이하는 미혼이, 45~54세 사이에는 이혼이 ‘나홀로가구’의 주된 요인이었다. 이혼한 1인 가구도 10년 새 2.5배 늘었다. 통계청이 11일 발표한 ‘2010 인구주택총조사에서 나타난 1인 가구 현황과 특성’에 따르면 나홀로가구는 10년 전보다 191만 8000가구(86.2%) 늘어난 414만 2000가구다. 전체 가구의 23.9%다. 유형별로는 미혼이 184만 3000가구(44.5%)로 가장 많았다. 이어 ▲배우자 있음(별거, 주말부부, 기러기아빠 등) 53만 4000가구(12.9%) ▲사별 120만 8000가구(29.2%) ▲이혼 55만 6000가구(13.4%) 등의 순이었다. 연령대별로는 44세 이하는 미혼, 45~54세는 이혼, 55세 이상은 사별이 가장 많았다. 청장년층의 만혼 추세와 이혼 증가가 1인 가구 급증을 불러온 것으로 통계청은 분석했다. 1인 가구 증가분의 거의 절반(46.2%)이 미혼 가구(88만 7000가구)였다. 이혼한 1인 가구는 2000년 21만 9000가구에서 2010년 55만 6000가구로 33만 8000가구(154.4%)나 늘었다. 1인 가구 중 남자는 192만 4000가구, 여자는 221만 8000가구로 각각 97만 9000가구(103.6%), 93만 8000가구(73.3%)가 증가했다. 남자는 혼인 직전인 28세(17.3%)에 1인 가구 비율이 정점을 찍었다. 여자는 26세와 79세였다. 주거 형태는 더욱 열악해졌다. 1인 가구 중 보증금 있는 월세 비율이 34.4%로 10년 사이에 14.4% 포인트(97만 3000가구) 늘었다. 자기 집을 보유한 비율은 2000년 32.6%에서 2010년 31.9%로 소폭 하락했다.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700명 수용… 관악 ‘강감찬 스케이트장’ 개장

    관악구에 서울광장 스케이트장의 1.5배 규모인 스케이장이 문을 열었다. 관악구는 11일 낙성대동 서울시과학관 유휴공간 5510㎡ 부지에 ‘강감찬 스케이트장’을 개장했다. 이 지역에서 태어난 고려시대 명장 강감찬 장군의 이름을 딴 스케이트장은 가로 65m, 세로 35m 규모로 서울광장에 조성 중인 스케이트장의 1.5배 크기다. 한번에 600~700명을 수용할 수 있어 지역 주민들의 여가 활동장으로 각광받을 것으로 보인다. 스케이트장 주변에는 매점, 휴게실 등 이용객 편의를 위한 부대시설을 설치했고 안전요원도 곳곳에 배치했다. 대기실에는 이용객들이 쉬거나 일행을 기다리는 동안 책을 읽을 수 있도록 문고도 비치했다. 스케이트장은 이날부터 새해 2월 말까지 휴무일 없이 매일 개장한다. 운영 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10시까지다. 이용료는 입장료, 장비 대여료를 포함해 1시간 30분에 2000원이다. 평일에는 6세 이상 어린이와 청소년을 대상으로 별도의 스케이트 교실도 열린다. 또 헬멧 컬링대회, 아이 바구니 컬링대회, 얼음썰매 경주, 썰매 만들기 등 어린이들이 부모님과 함께 참가할 수 있는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도 마련됐다. 한편 강감찬 스케이트장은 지역 노인과 청소년을 위한 일자리 200개를 창출하는 효과도 가져왔다. 조성, 운영은 예비 사회적 기업인 SPC가 맡았다. 홍희영 일자리사업과장은 “주민들이 겨울 스포츠를 즐기며 여가를 보낼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가족 야외 활동 활성화는 물론 지역 일자리 창출 효과까지 얻게 됐다.”며 “강감찬 장군의 힘찬 기상을 본받아 올겨울 추위를 이겨내길 바란다.”고 전했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70대 노인, 새 밀수하면서 “신고할 새 없음” 신고

    바지 속에 희귀한 새를 숨겨 입국하려던 할아버지가 징역을 살게 됐다. 미국 마이애미에 살고 있는 히스패닉계 76세 노인 알베르토. 그는 지난 10월 쿠바를 여행하고 돌아오면서 바지에 이중 주머니를 만들었다. 바지 안쪽으로 주머니를 여러 개 만들어 단 그는 주머니마다 쿠바에서 구입한 희귀종 새를 넣었다. 꿈틀거리는 새를 넣고 불편한 자세로 비행기를 탄 그는 공항에 도착하면서 세관신고서에 ‘신고할 새나 동물이 없음’이라고 자신있게 적어넣었다. 하지만 세관 검색대를 지나면서 그는 바로 적발됐다. “신고할 동물이 없다.”고 적은 게 의심을 산 이유였다. 할아버지가 바지에 무언가 숨길 걸 바로 알아챈 세관직원들은 몇 차례나 “정말 신고할 새가 없는가.”라고 물었지만 할아버지는 “신고할 동물이 없다.”고 시치미를 떼다가 수갑을 찼다. 법원으로 넘겨진 할아버지는 최근 밀수혐의를 인정했다. 그는 “쿠바에 있으면서 새를 구입했다.”며 “미국에서 새를 팔 생각이었다.”고 했다. 현지 언론은 “법원에 내년에 할아버지에게 판결을 내릴 예정”이라며 “최고 징역 20년이 선고될 수 있다.”고 보도했다. 할아버지는 최고 25만 달러의 벌금까지 물어내야 할 판이다. 손영식 해외통신원 voniss@naver.com
  • 5급 기술공무원 공채 합격자 77명 발표

    5급 기술공무원 공개경쟁채용시험에서 올해 여성의 합격률이 19.5%로 예년에 비해 감소했다. 행정안전부는 2012년도 5급 기술공무원 공개경쟁채용시험 최종 합격자 77명의 명단을 확정해 인터넷 사이버국가고시센터(www.gosi.kr)를 통해 10일 발표했다. 올해 5급 기술공무원 공채시험에는 1157명이 응시해 총 77명(전국모집 68명, 지역모집 9명)이 최종 합격했다. 최종 합격자의 평균 연령은 27.7세이고 연령대별로는 20~23세가 9.1%(7명), 24~27세가 45.4%(35명)로 가장 많았으며 28~32세가 31.2%(24명), 33세 이상이 14.3%(11명)로 나타났다. 지난해 합격자 평균 연령은 27.6세였다. 여성 합격자는 총 15명으로 전체 합격자의 19.5%를 차지했다. 여성 합격률은 지난해 23.6%, 2010년 22.1% 등에 비해 감소하는 추세를 나타냈다. 여성 합격자 수는 지난해 17명에서 올해 15명으로 줄어들었다. ☞<정책·고시·취업>최신 뉴스 보러가기 최고 득점자는 공업(일반기계) 김태우(86.19점), 공업(전기) 하석봉(91.80점), 공업(화공) 유의택(84.19점), 시설(일반토목-전국) 김창기(88.19점), 방송통신(통신기술) 장완익(87.23점)씨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선택! 역사를 갈랐다] 시리즈를 끝내며…기획·필자 5인 좌담

    [선택! 역사를 갈랐다] 시리즈를 끝내며…기획·필자 5인 좌담

    ‘선택! 역사를 갈랐다’ 연중시리즈가 2월 20일자 제1회 ‘선덕여왕과 김춘추’를 시작해 고대국가와 고려, 조선, 일제강점기 등을 거쳐 제37회 ‘이승만과 박용만’을 마지막으로 12월 3일자로 막을 내렸다. 역사의 라이벌을 내세워 당시 이들의 주장과 선택이 이후 한반도 역사에 미친 영향들을 평가하는 기획으로, 인물비교라는 신선한 접근으로 화제를 모았다. 이번 시리즈의 공동기획에 참여한 박혜숙 푸른역사 대표와 집필자로 참여한 주진오(55) 상명대 역사콘텐츠학과 교수, 임기환(54) 서울교대 교수, 계승범(52) 서강대 사학과 교수, 한명기(50) 명지대 사학과 교수는 지난 6일 서울신문에서 문소영 문화부 차장 사회로 시리즈의 의미와 성과, 오는 19일 제18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사회적 발전에 도움이 되는 올바른 선택은 무엇인지 등에 대해 좌담을 가졌다. 사회자 임기환 교수가 ‘선덕여왕과 김춘추’를 써주셨고, 주진오 교수가 마지막회에 실렸던 ‘이승만과 박용만’을 비롯해 4회 집필을 맡아주셨다. 계승범 교수는 정조 때의 ‘김종수와 채제공’, 한명기 교수는 인조 때의 ‘최명길과 김상헌’을 써주셨다. 참여한 학자로 이 시리즈를 평가해 달라. 임기환(이하 임) 올 2월 약간 쌀쌀할 때 글을 쓴 기억이 나는데 벌써 12월 대선을 코앞에 두고 있다. 이 시리즈는 애초에 한국사회에 굉장히 중요한 선택을 앞두고 기획된 것이었다. 유권자들이 다음 주 대선 후보를 선택할 때 조금이나마 기여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한명기(이하 한) 무거운 주제를 갖고 장기간 독자들과 호흡하는 게 사실 어려운데, 잘 마무리된 것 같다. 독자들을 생각하게 만드는 글들이었다. 신문사에서 좀처럼 하기 힘든 기획이었다고 본다. 기획의 성패를 떠나 사람들이 잘 몰랐던 지식을 자세히 전달했고, 자연스럽게 역사적 선택이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 생각하게 만들었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었다. 계승범(이하 계) 그동안 단편적으로 알고 있던 얘기들을 특정 주제로 엮어냈다. 단순히 과거에 일어난 일이 아니라 현재 한국의 역사와 관련지어 대중이 반면교사 할 수 있게 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본다. 주진오(이하 주) 사람은 늘 선택을 하며 사는데, 어떤 선택이 어떤 결과를 나을지 알고 선택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런데 이런 걸 역사 속에서 알아봄으로써 독자들이 내 인생에서 어떤 선택을 할 때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예상해 볼 수 있다. 시리즈를 읽은 독자라면 앞으로 선택해야 할 때 도움을 얻지 않았을까 싶다. 계 이 기획시리즈에 영감을 얻어서, 한국 근현대사 과목을 듣는 학생들에게 과제를 냈다. 학생들의 부모나 조부모의 개인적 선택을 당시 역사환경 등을 연결시켜서 인터뷰하고 리포트를 쓰라는 것이었는데 반응이 굉장히 좋았다. 박혜숙 대선이라는 가장 큰 정치적 선택이 화두가 될 것이고, 역사학자의 발언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공동기획을 하게 됐다. 사회적 이슈에서 역사학계 목소리가 약해지고 있는데, 이런 방식의 작업이 그 대안이 되지 않겠나. 여성 대통령이 나올지도 모르니까, 선덕여왕을 1번으로 하자고 했다. 사회자 역사라고 하면, 사람들이 고리타분하게 생각한다. 왜 그런 현상이 벌어지고 있나. 역사는 왜 중요한가. 주 세상 살기 힘들고 바쁠 때 ‘500년 전, 1000년 전에 있었던 이야기를 굳이 알아서 뭐할까?’하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역사를 공부하고 안다는 것이 결코 과거의 역사적 사실을 아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미래를 위해서 어떤 삶을 살 것인가를 결정하는 근거를 마련하는 것이다. 계 과거에 일어난 어떤 현상이나 사건이 현재의 나와는 무관하고, 그 사건을 나의 삶과 연관시키지 못하니 재미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역사는 과거사가 아니라 ‘현재 완료 진행형’으로서의 역사이고 개인의 삶과 모두 연결돼 있다. 20세기는 세계사적으로 볼 때 파란만장한 시대다. 그런데 20세기 역사학이라는 것이 ‘이념의 시녀’로 전략해 버린 것이 아닌가 싶다. 한 신입사원에게 역사의식의 중요성을 묻는 설문조사를 하면, 25%는 대학 교양강의 듣는 걸로 충분하다고 하고, 25%는 사극 보는 걸로 공부를 대신한다, 25%는 책을 사볼 정도로 관심 있고, 나머지 25%는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이다라고 답한다. 고리타분한 교과서 중심의 역사교육은 우리에게 책임이 있다. 이걸 반성해야 할 시점이다. 역사교육이 문제다. 또 한국 근현대사는 성공하지 못한 역사이기 때문에 역사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낮을 수 있다. ‘역사가 정치에 복무했다.’라는 비판도 있다. 임 해방 이후 1960~1980년대 역사 얘기할 때, 평가하기 이르다고 미룬다. 그런데 불과 10년 전의 노무현 정권에 대한 평가는 신랄하게 이뤄지고 있다. 말이 안 된다. 역사라는 것은 언제나 지금의 맥락 속에서 평가가 가능하다. 꼭 시간이 지나야 평가 가능하다고 보는 것은 옳지 않다. 가까운 시대에 대한 평가를 역사의 범주에서 제외시키는 게 지금까지 우리의 역사 교육이었다. 시간 속 단절, 즉 화석화시키다 보니 고리타분한 것으로 인식되어온 거다. 입맛대로 역사적 진실을 사용하기도 한다. 주 이념이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될 땐 곤란하지만, 현실에서 역사인식이 넘칠 땐 학자들이 이런 세태를 올바른 역사 접근 방식을 통해 풀어주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1980년대와 비교해 요즘은 아무래도 정치적 인식, 소명의식 이런 게 사라지지 않았나 싶다. 임 요즘 고등학생 등의 역사의식이나 각성은 국민교육 시스템 때문에 불가능하다. 교과서대로 가르치고 있는 것이 국민교육 시스템이다. 국가에서 용인한 교과서대로 가르쳤는지 감시하고, 시험을 통해 평가하려는 상황에서는 불가능하다. 교육의 목표나 시험제도나 교과서의 발간 방향이 바뀌어야 한다. 주 이를테면, 국사편찬위원회가 천재교육에서 나온 중등교과서 검정심사를 한 뒤 ‘이한열 사망 사진’을 저자(주진오 등)의 허락도 받지 않고 삭제할 것을 요구해 올 가을에 파동이 일었다. 사실 내년부터 교과서가 바뀌기 때문에 검정심사를 내년에 해야 하는 것인데 정부가 조급하게 앞당긴 것이다. 계 미국은 교과서라는 것이 아예 없다. 텍스트북이라 부르지만 교과서가 단순히 읽을 자료일 뿐이다. 사회자 한반도 역사에서 여러 차례 중요한 선택이 있었다.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고, 왜 그렇게 생각하나. 임 고대를 다룬 4편 중 2편이 7세기를 다뤘다. 초점은 신라는 어떻게 생존하고 살아남았느냐. 백제와 고구려는 왜 패망했는가가 중요했다. 한 삼국통일 이후 대륙 쪽으로 나아가는 것을 포기했거나 봉쇄됐다. 연암 박지원(1737~1805)은 “우리 민족이 한반도에서 중앙으로 진출하는 것을 포기하면서 진취적 기상이 사라졌지만, 덕분에 그나마 정체성을 갖고 살아남았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중국 조선족 교수에게 배운 한족 학생들이 “왜 중국이 한반도를 삼키지 않았느냐.”고 질문해 곤혹스러웠다고 한다. 청나라, 몽골, 만주, 여진, 거란 등이 중원을 차지했다가 소수민족으로 전락하거나 사라져버린 걸 보면 한국민족이 살아남을 수 있는 계기가 뭐였는지 찾는 게 중요하다. 임 그것은 고려시대 때로 돌아가서 찾아야 하지 않을까요? 신라가 삼국통일 했을 때 당나라 중심의 질서를 수용하겠단 의미였다. 한 허목(1595~1682)은 조선인들이 기국(器局)이 작다고 말했다. 영토의 크기는 생각의 크기를 결정한다는 측면에서 중요하다. 계 제국의 질서를 수용하는 대신 왕조의 안녕을 인정받았다. 조선은 16세기 말 왜란과 17세기 초 호란을 겪고서도 자구책을 만들었다기보다 오히려 과거의 기억에 묶여 있었다. 18세기 실학자나 양반 어느 누구도 그러지 않았다. 아무리 청나라가 싫어도 몽골제국 때부터 중화질서에 너무 익숙해져 버린 거다. 국가 경영자로서 중요한 기로인데 자구책조차 마련하지 않고, 자기 기득권에 매달렸던 선택이 한국 문명사 차원에서 볼 때 잘못되지 않았나. 결국 근대라는 쓰나미가 밀려올 때 쓸려 갔다. 주 우리 역사에서 식민지 역사는 아주 중요한 갈림길이다. 후발국가가 살아남으려면 끊임없는 내부 개혁과 열강 사이에서 살아남도록 적극적인 외교 정책이 필요했다. 고종의 책임이 크지만 동시에 근대개혁론자들의 태도에도 책임을 물어야 한다. 너무 쉽게 일본의 프레임에 갇혀 일본의 눈으로 세계를 보고 조선 문제를 봤다. 일본의 모델을 통해 근대화를 앞당길 수 있다고 생각했겠지만 군사, 정치, 그리고 사상적으로까지 무장해제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무저항적으로 쉽게 일본 식민통치를 받아들였다. 이런 것들이 일제 하 독립운동이 구심점 없이 많은 조직과 방식으로 흩어질 수밖에 없었던 원인일 것이다. 임 개화 이후 지식인들은 사실 일본의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겉으로는 식민사관과 민족사관이 대비적으로 보이지만, 사실 변형일 뿐이다. 우리만의 시각, 프레임을 갖지 못한 게 아쉽다. 해방 이후 이게 더 큰 문제가 된 게 아닌가. 계 개화파들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고 바꾸자 했던 건 사실인데, 이 사람들 중엔 정말 주권이 위기에 닥쳤을때 총칼 들고 저항한 사람이 없다. 주된 핑계는 이미 늦었다는 것인데, 위정척사파들 때문이었다. 그런데 비판받아야 할 사람들이 애국자로 칭송돼 왔다. 여기서부터 한국 근대사가 꼬이기 시작했다. 주 사실 위정척사파들 중 의병활동한 사람도 별로 없다고 한다. 당시 유학자들의 대응은 크게 세 가지였다. 첫째가 자결이다. 둘째가 의병인데 얼마 안 된다. 세 번째는 더러운 땅 떠나서 자기 뜻 지키기 위해 섬으로 들어가는 것을 저항인 것처럼 여겼다. 우리 역사에서 의병들의 모습 을 볼 때마다 울컥한다. 의병 사진을 보면 하나같이 좀 그렇다. 안타깝고 초라하기 그지없다. 저 사람들은 도대체 조선왕조로부터 받은 게 뭐가 있다고 저러고 있었을까. 양반과 지식인 등은 의병을 화적떼라고 손가락질하는데 말이다. 사회자 최근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유튜브에 ‘백년전쟁’이란 동영상을 무료로 공개했다. 이승만이 미국에서 한 독립운동의 실상과 무장독립운동가인 박용만을 음해한 내용, 박정희 정권의 경제발전 배경에 미국이 있었다는 내용이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것을 보고 ‘멘붕’이라는 사람들도 있다. 주 이승만이 어떻게 임시정부의 대통령이 될 수 있었나 싶다. 특정 논리, 지역적 기반에 입각한 사람들 덕분이었다. 외세를 등에 없고 실질적 지도자가 되다 보니까. 지도력에 대한 인정 여부가 약화되는 거다. 또한 이승만은 일제 말기에 VOA(미국의 소리) 전파를 탔고, 미국의 전폭적 지지를 받았다. 이승만은 프로파간다의 귀재로, 한국 최초의 마키아벨리적 정치 인물로 볼 수 있다. 계 중요한 자료들이 공개된 것 같은데, 지금껏 공개하지 못한 것이 문제다. 역사를 볼 때 국내 시각에서만 보지 말고 미국이 깔아놓은 동아시아 무대 위의 이승만·박정희의 위상을 보는 것이 중요하다. 대학교 수업 자료로 써야겠다. 한 현대사뿐 아니라 교과서도 자료가 굉장히 제한돼 있다. 역사적 평가는 사실만 알려줘도 바뀐다. 알려져 있는 제한된 사실 자체를 넘어서려는 노력도 필요하다. 예컨대 대통령기념관 만들 때 잘한 일, 잘못한 일을 모두 포함하면 문제는 없다. 근데 나쁜 건 다 빼버리니까 문제다. 사회자 대선 후보들의 역사인식에 대해 논란이 많았는데 이게 정책에 어떻게 반영될까. 임 유신시대가 자기가 살아온 시대였기 때문에, “그 시대가 문제가 없다.” 라고 한다면 그가 집권한 뒤에 언제든 그 시대가 재현될 가능성이 있는 것 아닌가. 그 시대의 공과를 얘기해줘야 하는데, 역사적 평가로 미뤄버리는 것은 과거의 과실도 재현될 수 있는 여지를 남긴다. 계 최고통수권자의 철학에 유동적인 역사인식, 즉 현재진행형으로서의 역사인식이 없고, 내 생각만 옳고 다른 생각은 틀렸다고 한다면 문제가 있다. 이것은 “내가 해봐서 아는데….”라는 의식에 매몰되는 것이다. 한 최고 권력자의 역사인식을 본인이 아니면 누가 교정할 수 있겠나. 조선시대처럼 경연을 통해 국왕을 계속 개혁시키고 그렇다면 모를까 어렵다. 무엇보다 겸손이 중요하다. 인간의 삶 자체가 굉장히 다양한데 하나의 틀 안에서 다른 삶의 형태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은 겸손이 없는 것이다. 한 의사가 “불치병을 고치려면 7년 묵은 쑥을 먹어야 한다.”고 했다고 치자. 그 환자는 언제 죽을지 모르지만 일단 쑥을 뜯어 말리고 묵혀야 1년이 되고 7년도 되는 거 아니냐.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르다. 나로호 문제만 봐도 그렇다. 러시아에 돈을 지불하고 의존할 텐가. 지금 좀 늦었더라도 독자적으로 로켓 개발을 해야 할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주 과거에 대한 인식이 곧 현재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사람의 역사인식이 중요한 거다. 아버지를 부정하는 것은, 본인의 정치적 자산인데 어려울 거다. 아버지를 잃었을 때 박근혜 나이 스물여덟이었다. 소녀가장이라는 식으로 변호하면 안 된다. 아무리 아버지더라도 반성할 일은 반성해야 새로운 정치적 비전이 생긴다. 한 겸허의 문제다. 정권의 수준이 국민의 수준이 아닌가 싶다. 5년 전 한 대통령 후보가 “부자됩시다.”라는 슬로건을 내세웠는데 얼마나 천박했나. 사회의식이 두텁고 겸허해야 하는데 한국사회가 아직 그렇지 못하다. 주 박정희가 언제나 선거에서 이겼고, 분명 그 시대에 박정희를 지지했던 사람들이 있었다. 대한민국의 정치적 선택이 이런 지도자를 정치적 지도자로 뽑을 만큼의 수준밖에 안 되는가 싶다. 계 1960, 1970년대를 절대진리로 생각하고, 시대와 역사적 환경의 변화와 무관하게 절대진리를 적용하면 안된다. 사회자 역사는 반복된다고 한다. 우리가 역사 속에서 반복하면서 실수했다면 무엇이 있을까. 계 역사교육의 부재, 기록 문헌을 남기지 않고 비공개했던 건 문제다. 해외 파병을 놓고 찬반이 갈렸다면 토론하고 그 결과를 남겨야 그 다음번에 파병문제를 논의할 때 한 단계 높아진 단계에서 토론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이 안 되기 때문에 반면교사의 기회를 제공받지 못한다. 한 망각이다. 오랜 기간 동안 험악한 역사를 겪다보니까 빨리 잊어버리는 게 좋다고 생각하는지 모른다. 일본인이 한국인들에게 “옛날보다 냄비가 두꺼워졌다.”고 비아냥거리고 있다. 정권에 불리한 어떤 이슈도 두 달만 되면 덮여진다. 음모론이 나오는 이유다. 박경리 작가는 사망 후 유고집에 ‘해방 직후 일제에 강제 징용됐다가 고생한 사람들이 집 근처에 서서 천진난만하게 웃고 있는 모습을 보고는 이해가 안 된다.’고 했다. 이어 말하길 ‘저렇게 안 웃으면 어떻게 남은 인생을 살 것인가’. 어떤 화두를 잡았을 때 진지하게 이끌고 나가야 하는데 언론, 지식인들의 이런 역할이 부족하다. 제주 강정마을이 논란인데 해군기지를 세우자 말자는 논의만 있고, 기지에 과연 배치할 군함은 있는 것인지는 논의하지 않는다. 제대로 된 주제를 선정하고, 망각의 속도를 늦추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임 부정적인 것, 바뀌어야 하는 것들이 살아 있다. 반복된다는 건 개선이 안 됐다는 얘기다. 왜 그럴까 생각해보면 결국엔 개선의 의지나, 무엇을 개선해야 하는지 목표 등이 없어서다. 대선이나 뭔가 이슈화되는 과정에서 누구의 정책이 옳은가 하고 소극적인 선택들을 하는데, 바꿔야 될 것들을 바꾸는 데 유권자들이 적극적으로 움직여야 하지 않나. 주 시대적 환경에 따라 비슷한 형태로 드러나지만, 완전한 반복은 아니다. 오늘날 한반도의 국제정세가 19세기와 비슷하다고 한다. 그런데 100년 전 국제정세와 어떻게 비슷한지 구체적으로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단편적이고 주먹구구식이다. 반복적 현상에 대한 치열한 비판과 탐구가 필요하다. 이 정부 들어 역사 교육 비중을 약화시키고, 수업 시수도 형편없이 줄었다. 이 상태에서 어떻게 올바른 방향을 찾아나갈 수 있을지 답답하다. 사회자 오는 19일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다. 유권자들에게 역사적으로 올바른 선택이 있다면. 임 선거 목표중 하나는 민주주의와 시민사회로의 이행이다. 사실 모든 선거에서 그랬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선거들이 있다. 민주적 사회 질서를 확장해가는 그런 기준을 가진 후보를 선택해야 하지 않을까. 한 통시대적 관점에서 얘기하자면 훌륭한 나라라는 개념은 일반 국민들이 정치를 걱정할 필요가 없는 나라다. 의병이 될 필요가 없는 나라를 만들어주고, 정치를 술자리의 안주로 안 올릴 수 있게끔 만들어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계 유권자가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고 본다. 한국 역사가 어떻게 굴러왔고 지금 어디에 있고,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지 고민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대선 후보에 대해 정확하고 적극적으로 인식해야 한다. 또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니까, 민주공화국은 어떤 사람이 어떻게 운영하는지에 대한 공부도 필요하다. 우린 그 총수를 뽑는 것이다. 주 최근 정치인들 모습을 보면서 구시대가 부활할 위기에 서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시대에 다양한 변화와 그 변화와 발전이 확대되는 정치적 리더십이 필요하다. 한국은 산업화는 뒤늦었지만, 정보화 시대는 앞서갔다. 이 흐름이 민주정치 리더십과 맞물린다고 생각한다. 재벌 위주의 경제 틀이 아니라 중소기업들이 공존하는 사회, 민주정치가 기민하게 작동해 상상력을 가질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또다시 재벌, 기득권 위주에 갇히면, 5년 후 어떻게 될지 모른다. 계 올해 제대로 선택을 못하면 5년 뒤에 대통령 선거 못할지도 모른다(웃음). 정리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작년 귀농 1만가구 넘었다

    작년 귀농 1만가구 넘었다

    지난해 귀농 가구가 전년 대비 90% 가까이 급증하면서 1만 가구를 넘어섰다. 은퇴한 뒤 농촌에서 ‘인생 2모작’을 준비하려는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생)가 많아진 결과로 풀이된다. 7일 통계청이 발표한 ‘2011년 귀농인 통계’에 따르면 귀농 가구는 1만 75가구로 전년(5405가구)보다 86.4% 증가했다. 가구주의 평균 연령은 52.4세로 전년(51.6세)에 비해 0.8세 높아졌다. 연령대별로는 50대가 37.4%(3764명)로 가장 많았고 40대는 25.4%(2555명)를 차지했다. 50대 이상 비율이 62.7%로 전년(58.5%)보다 4.2% 포인트 올랐다. 강종환 통계청 행정통계과장은 “베이비붐 세대가 퇴직 뒤 노후 생활을 위해 농촌으로 회귀하는 현상이 나타나면서 귀농 인구가 늘어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귀농 가구가 주로 정착하는 곳은 경북이 1840가구로 전년에 이어 가장 많았다. 이어 ▲전남 1600가구 ▲경남 1291가구 ▲충남 1110가구 등의 순이었다. 귀농 전 거주 지역은 경기(2190가구, 21.7%), 서울(2014가구, 20.0%) 등 수도권이 4756가구로 전체의 47.2%를 차지했다. 귀농 가구주의 성별은 남자가 70.1%(7063명)로 여자(29.9%·3012명)보다 두 배 이상 많았다. 가구원 수는 가구주 홀로 귀농하는 1인 전입 가구가 전체의 절반 이상(58.8%)을 차지했다. 1인 전입 가구 비율은 연령대가 높을수록 증가했다. 초기 정착 위험을 줄이기 위해 가구주가 먼저 귀농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고 통계청은 설명했다. 귀농 가구는 재배 작물로 채소(54.1%)와 과수(32.5%) 등을 선호했다. 논벼를 재배하는 가구는 24.5%에 그쳤다. 가축은 한우(57.7%)가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탈북자 돕던 선교사 의문死’ 北공작원 소행… 독극물 동일

    지난해 중국 단둥에서 의문사한 선교사 김모씨(당시 46세)의 사망 원인이 북한 공작원들이 주로 사용하는 독극물 때문인 것으로 뒤늦게 확인됐다. 6일 법원 등에 따르면 검찰은 탈북자로 위장해 국내에 잠입한 북한 국가안전보위부 소속 공작원 A씨에 대한 심리를 맡은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부장 이원범)에 김씨의 사망과 관련한 수사보고서를 제출했다. 국가정보원이 A씨의 행적 관련 증거자료로 만든 이 보고서에는 김씨가 피살된 사실 및 독극물이 북한 공작기관에서 사용중인 독극물과 동일하다는 사실 등이 담겨 있다. 재판부는 이를 토대로 ‘김씨는 2011년 8월 북한 공작원이 사용하는 브롬화스티그민 중독으로 사망’이라는 내용을 판결문에 적시했다. 김씨는 당시 단둥 시내의 백화점 앞에서 갑자기 쓰러져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결국 숨졌다. 브롬화스티그민은 청산가리(시안화칼륨)보다 다섯 배나 독성이 강한 화학물질로 소량만 인체에 투여해도 호흡정지나 심장마비로 숨질 수 있다. 홍인기기자 ikik@seoul.co.kr
  • 마약중독자 ‘비포앤애프터’ 공개 “충격 그 자체”

    마약중독자 ‘비포앤애프터’ 공개 “충격 그 자체”

    “이보다 더 무서운 ‘반전’이 있을까? 최근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이 마약에 중독된 수감자들의 ‘비포 앤 애프터’ 사진을 공개해 충격을 주고 있다. 마약근절을 위한 캠페인의 일환으로 제작한 이 사진들은 마약사범들이 체포된 당시와 수년 후의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체포 당시 27세였던 한 여성은 불과 3년 뒤 피부 형태가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상해서 전혀 다른 사람이 돼 있다. 체포 당시 48세였던 또 다른 중년 여성은 4년 후인 52세에는 70대로 보이는 듯한 충격적인 외모로 변신해 있었다. 36세에 체포된 한 남성은 3년 뒤 얼굴 곳곳에 크고 작은 상처로 가득해 괴물을 연상케 하고, 체포 당시 31세로서 곱상한 외모를 가졌던 여성은 불과 2년 뒤 눈 밑이 푹 파이고 얼굴 전체가 심하게 쳐진 60대의 할머니가 돼 있다. 사진 대부분은 2004년 12월부터 미국 오리건주 내에서 입건된 마약범죄자들의 머그샷 (범인 식별용 얼굴사진)이며, 이번 캠페인은 그간 지속적으로 마약경고캠페인을 해왔던 리건 주 포틀랜드 시 치안 담당소인 멀트노머 카운티 셰리프 사무소(Multnomah County Sheriff’s Office)가 진행했다. 멀트노머 카운티 셰리프 사무소의 한 관계자는 “필로폰이나 헤로인, 코카인 등을 포함한 모든 마약에 손을 대면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를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면서 “기존의 사진 캠페인에서 나아가 영상물을 함께 제작해 더 많은 사람들이 이를 볼 수 있도록 했다.”고 전했다. 송혜민기자 huimin0217@seoul.co.kr
  • 반기문 총장 세계 영향력 30위

    반기문 총장 세계 영향력 30위

    흑인으로는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재선에 성공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지난해에 이어 또다시 미 경제전문지 포브스에 의해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위로 뽑혔다. 포브스는 5일(현지시간) 71억명의 전 세계인 가운데 올해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71명을 선정한 결과 오바마 대통령이 1위를 차지했다고 밝혔다. 포브스는 오바마가 앞으로 4년간 자신의 정책을 더 밀고나갈 수 있게 된 점이 1위 수성의 주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인 가운데는 반기문(왼쪽) 유엔 사무총장이 30위로 가장 높은 순위를 기록했다. 반총장은 2년 전 41위, 지난해 38위에서 순위가 더 올랐다. 김용(가운데) 세계은행 총재는 45위를 차지했다. 이 밖에 김정은(오른쪽)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44위, 한국계 일본인인 손정의 소프프뱅크 회장은 53위를 차지했다. 2위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로 지난해 4위에서 두 계단 올라섰다. 유럽연합(EU) 핵심국가인 독일의 수장으로 최근 유럽 재정위기 국면에서 강력한 지도력을 발휘,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의 운명을 쥐고 있다는 게 선정 이유다. 지난해 2위를 차지했던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3위로 떨어졌다. 이어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인 빌 게이츠, 교황 베네딕토 16세, 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 의장이 각각 4~6위에 이름을 올렸다.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에 이어 최근 중국의 5세대 최고 지도자로 선출된 시진핑(習近平) 공산당 총서기는 9위, 총리에 내정된 리커창(李克强) 부총리는 13위에 올라 주요 2개국(G2) 반열에 오른 중국의 위상이 반영됐다. 한편 지난해 10위권에 들었던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최고경영자(CEO)는 올해 기업공개 이후 주가가 추락하면서 순위도 25위로 곤두박질쳤다. 최재헌기자 goseoul@seoul.co.kr
  • ‘살신성인’ 실천한 한국인 13명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다른 사람을 구하려다 사망한 10대 청소년 등 5명이 의사자로 인정됐다. 보건복지부는 6일 제5차 의사상자 심사위원회를 열어 살신성인의 용기를 실천한 13명을 의사상자로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의사자로 인정받은 5명 중 고(故) 김성호(사망 당시 16세, 이하 모두 사망 당시 나이) 군은 지난 8월 한강 잠실대교 난간에서 투신하는 친구를 구조하려다 함께 물에 빠져 목숨을 잃었다. 같은 달 송일기(42)씨는 인천 강화군 동검 선착장에서 물놀이하던 아이를 구하려다 숨졌고, 이영준(16)군은 전북 완주군 솔뫼농원 앞 하천에서 역시 물에 빠진 아이를 구하려다 사망했다. 이영덕(51)씨는 지난 6월, 고덕인(23)씨는 지난 8월 물놀이 하던 일행을 구하려다 익사했다. 위원회는 이와 함께 지난해 10월 지하철역에서 칼을 휘두르는 승객을 제지한 이창섭(62)씨, 시외버스에서 흉기를 휘두르는 정신착란자를 제압한 김의식(54)씨 등 8명을 의상자로 인정했다. 의사상자로 선정되면 증서와 함께 법률이 정한 보상금, 의료급여, 교육·취업보호 등의 예우를 받는다. 김소라기자 sora@seoul.co.kr
  • FRANCE 메독 와인과 사랑에 빠지다

    FRANCE 메독 와인과 사랑에 빠지다

    WINE FRANCE 메독 와인과 사랑에 빠지다 맑고 푸른 하늘 아래 끝없이 펼쳐진 포도밭, 그리고 붉은 빛 가득한 레드 와인의 향연. 메독의 가을은 마녀가 빚어낸 사랑의 묘약처럼 유혹적이고 향기로웠다. 메독의 8개 아뺄라씨옹으로 떠난 일주일의 여정 동안 매일 조금씩 다채로운 메독 와인의 매력 속으로 빠져들었다. 1 수확을 모두 마친 포도밭. 하나둘 낙엽이 지고 있다 2 중세시대 고성 분위기를 간직하고 있는 샤또 라스꽁브 3 전통과 현대 기술을 조화롭게 이어가는 샤또 씨싹 4 샤또 레오빌 뿌아페레의 숙성고. 오크통이 끝없이 이어져 있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고품격 스펙트럼을 지닌 와인 성지 프랑스 보르도Bordeaux의 북쪽, 지롱드Gironde 강 서쪽 하구에 형성된 메독 지역Medoc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와인 산지 가운데 하나다. 보르도 공항을 벗어나 처음 만난 메독의 첫인상은 평화로운 ‘시골 마을’ 이었다. 이미 수확을 마친 포도밭은 무척 한가로워 보였고 듬성듬성 낙엽마저 지고 있었다. 포도밭 너머로 드문드문 서 있는 고성古城들이 그나마 심심한 풍경에 포인트가 되어 주었다. 메독은 원래 중세시대 귀족들의 사냥터로 숲과 늪지대, 거칠고 메마른 황야가 펼쳐진 별 볼일 없는 땅이었다. 하지만 이 같은 토양은 포도를 재배하기엔 더없이 좋은 조건이었고 16세기에 들어서 비로소 그 가치를 알아본 귀족과 상인들이 하나둘씩 포도원을 세우기 시작했다. 이후 포도 재배가 성공적으로 이뤄지면서 점차 고품질 와인들이 생산되었고 1855년 등급 제정과 해외 무역이 활성화되면서 메독 와인은 단번에 전세계 와인 애호가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샤또 마고, 무똥 로칠드 같은 스타급 와이너리들이 이 지역에 속해 있으며 아직 발견되지 않은 숨겨진 보석 같은 와이너리도 수없이 많다. 수세기가 지난 지금까지 메독 와인이 월드 클래스 와인으로 변함없는 인기를 누리고 있는 비결이 궁금했다. 메독와인협회의 까뜨린 블리망Catherine Vlimant은 무엇보다 ‘포도 재배에 적합한 모래와 자갈, 점토질이 고루 섞인 특별한 떼루아’를 그 비결로 꼽았다. 이곳에서 가장 많이 경작하는 품종은 까베르네 쇼비뇽Cabernet Sayvignon으로 메독의 척박한 토질에 완벽히 적응해 그 어느 곳보다 수확량이 높고 품질 좋은 열매를 생산해 낸다고. 진한 색상과 약간 떫은 맛이 특징인 까베르네 쇼비뇽은 메독 와인의 특징 중 하나인 풍부한 타닌과 꽉 짜인 구조감을 만드는 데 주효하게 쓰인다. 특히 숙성 잠재력이 뛰어나 빈티지(생산년도) 높은 와인을 만드는 데도 큰 역할을 한다. 다음으로 많이 재배되는 품종은 메를로Merlot로 부드럽고 풍부한 과일향이 까베르네 쇼비뇽과 조화를 이루며 강한 타닌 맛을 좀더 편안하고 온화하게 순화시켜 준다. 두 품종을 주원료로 와이너리마다 까베르네 프랑Cabernet Franc, 쁘띠 베르도Petit Verdot, 까르므네르Carmenere 등을 소량 블렌딩하는데 그 비율과 양조 방식에 따라 각기 다른 와인이 탄생된다. 몇몇 와이너리에서 쇼비뇽 블랑Sauvignon Blanc을 이용해 화이트 와인을 만들기도 하지만 이는 극히 일부로 메독에서는 100% 레드 와인을 빚어내고 있다. 메독 와인이 오랜 세월 명성을 유지해 올 수 있었던 건 물론 ‘떼루아Terroir, 포도 재배의 모든 조건’ 덕이 크지만 그 뒤에 감춰진 1%는 바로 ‘사람’이다. 몇 세대에 걸쳐 대물림되어 온 숙련된 양조 기술과 최상급 와인을 얻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은 메독 와인을 지금의 위치에 올려놓은 또 다른 공신이다. 까다로운 규제에도 불구하고 철저히 지켜 나가고 있는 AOC원산지 통제 명칭를 토대로 메독의 와인은 와이너리마다 서로 다른 스펙트럼으로 다양성을 추구한다. 메독의 8개의 AOC가 닮은 듯 다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1, 2, 3 와인 시음을 통해 각 와이너리 특유의 향취와 매력을 가늠할 수 있다. 시음을 위해 준비되어 있는 와인과 와인잔 4 샤또 오브르똥 라리고디에르에서는 시음 후 바로 구매가 가능하다 5 뽀이약 마을의 포도밭 전경 6 포도밭을 누비며 가는 기계차 7 포도밭 토양에 따라 재배되는 포도 품종이 달라진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메독을 대표하는 와인 마을 마고 Margaux 뽀이약 Pauillac 언젠가 한껏 분위기를 낸다고 고급 레스토랑에서 와인을 주문한 적이 있다. 와인 이름도 빈티지도 기억나지 않지만 어렴풋이 떠오르는 단어 하나가 ‘마고Margaux’다. 와인에 대해선 생초짜였던 시절, 그래도 유명한 와인 한번 마셔 보자고 고른 게 바로 마고 와인이었던 거다. 마고는 메독에서 가장 유명한 AOC이다. 최상급 와인에 주어진 그랑크뤼 끌라쎄 등급을 획득한 와이너리가 21개로 가장 많다 보니 자연히 메독을 대표하는 와인 마을이 될 수밖에 없다. 사실 마고 하면 많은 이들이 샤또 마고Chateau Margaux만을 떠올리는데 이곳에는 약 74개의 와이너리가 운영되고 있다. 샤또 마고가 톱클래스 와이너리이긴 하지만 이 이외에도 가볼 만한 와이너리가 많다는 이야기다. 특히 샤또 라스꽁브Chateau Lascombes는 중세시대 지어진 아름다운 고성에서 숙박하며 그랑크뤼 끌라쎄 2등급에 빛나는 고품격 와인을 시음할 수 있는 특별한 와이너리다. 마고에서는 드물게 메를로 비율이 까베르네 쇼비뇽보다 더 높은 와인을 선보이는데 그래서인지 우아하고 여성스러운 느낌이 강하다. 매년 가을 100~150명 정도 인부들이 일일이 손으로 포도알을 따는데 방문했을 때엔 이미 수확을 마친 터라 그 장관을 놓친 게 못내 아쉬웠다. 대신 성에서 보낸 하룻밤은 그야말로 특별했다. 새벽녘 창문을 열고 내려다본 이슬에 촉촉이 젖은 포도밭 전경이 지금까지도 눈에 선하니 말이다. 합리적 가격대의 마고 와인으로 샤또 오브르똥 라리고디에르Chateau Haut-Breton Larigaudiere도 가볼 만하다. 다만 지갑 단속은 단단히 해야 한다. 와인 테이스팅 후 바로 구매가 가능해 몇 번 시음하다 보면 자꾸만 지갑이 열린다. 일행 중 4명이나 지갑을 연 것이 비단 분위기 탓만은 아니었을 거다. 메독 중앙부에 있는 뽀이약에도 마고와 견줄 만한 걸출한 와이너리들이 많다. 그중 샤또 랭츠 바즈Chateau Lynch-Bages는 1855년 등급 제정 당시 그랑크뤼 끌라쎄 5등급을 받았지만 2등급에 비견할 만한 품질을 갖춘 와인으로 명성이 자자하다. 미리 예약하면 가이드가 동행해 와이너리 구석구석을 안내해 주고 시음도 준비해 준다. 연간 48만병의 와인을 생산하는 대규모 와인 양조장과 저장고도 볼 만하지만 옛 양조 도구들을 빠짐없이 전시해 놓은 박물관 같은 공간도 무척이나 흥미롭다. 와이너리 투어 후 주변 바즈 마을Village de Bages을 산책하는 즐거움도 꽤나 쏠쏠하다. 예쁜 카페에서 식사하고 앙증맞은 소품들이 가득한 기념품 숍에서 쇼핑하는 동안 여행의 기분을 충분히 만끽할 수 있다. 1 샤또 퐁레오에서 생산된 와인들 2 비밀 창고처럼 꾸며진 양조장 입구 3 닭고기 요리와 궁합이 잘 맞는 레드 와인 4 신식 스테인레스 큐브를 이용하는 샤또 레오빌 뿌아페레 5 나폴레옹 3세 시대 양식으로 지어진 멋진 샤또 건물 반짝반짝 빛나는 메독의 보물 리스트락 Listrac 물리스 Moulis 생줄리엥 Saint-Julien 리스트락에 있는 샤또 퐁로Chateau Fonreaud와 레스따즈Lestage는 와인도 와인이지만 나폴레옹 3세 시대 양식으로 지어진 건축물로도 유명한 곳이다. 아름다운 고성에서 빚어낸 와인은 어떨까. 자신을 ‘포도 농사꾼’이라 소개하는 오너는 정말 평범한 시골 아저씨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가 만드는 와인은 결단코 평범하지 않았다. 입 안 가득 상큼함이 퍼지면서 남아 있던 아침잠을 한달음에 모두 날려 버렸다. 이런 와인이라면 아침부터 마셔도 좋을 것 같았다. 이날 점심은 물리스 AOC에 속한 두 명의 여성 와이너리 오너와 함께했다. 샤또 라 갸릭Chateau La Garricq의 마르띤느 까즈뇌브Martine Cazeneuve와 샤또 뒤쁠레스Chateau Duplessis의 마리로르 뤼르똥Marie-Laure Lurton 두 사람은 몇 명 되지 않는 여성 와이너리 오너 가운데서도 여러모로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이른바 ‘메독의 여인들’이다. 음식에 곁들여 나온 두 종류의 샤또 와인은 부드럽고 향긋한 풍미에 갖가지 아로마를 쏟아내는 것이, 식사 내내 끊임없이 수다를 풀어내는 두 여인과 꼭 닮았다. “물리스 와인은 구조감이 강해 양조 과정이 좀 까다롭죠. 와인이 너무 무겁지 않도록 발효부터 숙성, 블렌딩 비율까지 늘 신경써야 하거든요. 대신 나이가 들수록 마시기 좋은 와인이랍니다. 안타까운 건 와이너리 규모가 작아 브랜드화 시키는 게 늘 어려운 숙제죠.” 마르띤느 까즈뇌브 오너의 설명에 마리로르 뤼르똥씨는 작은 끄덕임으로 동조했다. 아닌게아니라 물리스는 메독에서도 가장 작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다. 아직 한국에 제대로 소개된 없는 물리스의 와인은 알고 보면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고품질을 자랑하는 메독의 숨은 보석이다. 사실 이번 와인 여행에서 큰 수확을 꼽자면 물리스 와인의 발견이다. 샤또 브라나스 그랑 뿌조Chateau Branas Grand Poujeaux에서 맛본 와인은 물리스 와인의 매력을 확실히 느끼게 했다. 소박한 여주인처럼 어떤 꾸밈이나 장식도 하지 않은 단아한 여인네 같은 느낌이었다. 반면 깔끔하게 떨어지는 뒷맛에는 마치 포인트를 준 듯 작은 반짝거림이 느껴졌다. 이곳은 포도를 발효시킬 때 뭉쳐진 껍질을 위에서 눌러 으깨 주는 전통적인 방법을 쓴다는데 이런 양조 기술의 차이가 모두 맛으로 연결되는 게 아닐까. 물리스 와인의 여운이 다 가시기도 전에 생줄리엥에 있는 샤또 레오빌 뿌아페레에 닿았다. 샤또 레오빌 뿌아페레Chateau Leoville Poyferre는 루이 13세부터 이어져 내려온 유서 깊은 와이너리다. “포도알을 알콜 발효시키기 전 일정 기간 저온 상태에서 유지시켜 둡니다. 이 과정을 통해 진한 색과 풍부한 과일향을 얻을 수 있지요.” 오너인 디디에 꾸블리에Didier Cuvelier씨가 자신있게 설명했다. 직접 시음을 해보니 과연 자랑할 만했다. 와인에서 품격이 느껴진다고나 할까. 와이너리를 방문했을 때 안쪽에서 공사가 한창이었다. 여행자들을 위한 공간을 별도로 만든다고 하니 앞으로 더 재미난 와이너리 투어가 기대된다. 1 크뤼 브루주아인 샤또 뚜르 까스띠용의 2009년산 와인. 맛이 아주 부드럽다 2 음식을 곁들인 특별한 시음회 3 오크통에서 햇 와인을 뽑아내고 있다 4 먼 옛날 역사를 되짚어 보게 만드는 허물어진 망루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전원 풍경에 담긴 뜻밖의 선물 생떼스떼프 Saint-Esteph 메독 Medoc 오메독 Haut-Medoc 크뤼 아르띠장은 메독에서만 볼 수 있는 특별한 와인 명칭이다. 소유주가 와인의 전 과정을 모두 책임지고 있기 때문에 자신이 만든 와인에 대한 자부심이 크다. 운 좋게도 여정의 마지막 즈음 생떼스떼프에 있는 크뤼 아르띠장 와이너리인 샤또 라 뻬르Chateau La Peyre를 방문할 수 있었다. 대부분의 크뤼 아르띠장이 그렇듯 이곳도 가족이 경영하는 소규모 와이너리다. 와이너리를 방문했을 때 마침 바람결에 실려 시큼한 향이 코끝으로 전해져 왔다. 햇와인이었다. 이제 막 발효를 마친 2012년 산 와인이 아담한 저장고 안에 꽉꽉 채워져 익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규모가 큰 와이너리에는 없는 아늑한 분위기 속에서 시음을 마쳤다. 와인은 산도가 좀 높은 편이었다. 신기한 건 같은 와인임에도 불구하고 빈티지에 따라 신맛의 정도가 달랐다. 와인 애호가들이 왜 그토록 빈티지에 열을 올리는지 직접 체험해 보니 그 차이가 느껴졌다. 메독 와인은 장기 숙성이 가능한 덕에 오래 둘수록 더 깊은 맛이 난다. 알수록 더 매혹적인 와인이다. 메독과 오메독은 서로 반대쪽 끝에 자리해 있다. 지롱드강 상류 지역에 펼쳐진 광활한 오메독에는 다양하고 개성 있는 와이너리들이 많다. 샤또 씨싹Chateau Cissac도 그중 하나. 전통적인 방법과 현대식 양조 기술을 적접히 배합한 이곳의 운영 철학은 와인에서도 그대로 배어난다. 입 안을 꽉 채우는 구조감과 그 위에 덧입혀진 다양한 향미가 메독 와인의 진수를 느끼게 한다. 옛 정취를 그대로 담고 있는 오래된 건축물도 멋스럽다. 메독에 있는 샤또 뚜르 까스띠용Chateau Tour Castillon은 이번 여행길에 방문한 마지막 와이너리. 가이드인 송현주 선생이 “지금까지 본 풍경보다 훨씬 시골 같을 거예요” 하고 미리 귀띔했다. 정말 그러했다. 시골스럽다 못해 야생의 언저리에 와 있는 기분이었다. 거칠 것 없는 시야, 거리감 없는 강가, 언덕 위로 넘어가는 포도밭…. 시골집 식탁에서 이뤄진 와인 시음은 오히려 만찬(?)에 가까웠다. 와인은 음식과 궁합을 맞춰 봐야 한다며 몇 가지 음식이 푸짐히도 차려졌다. 와인에 취한 건지 화기애애한 분위기에 취한 건지, 이제껏 쥐고 있던 긴장감이 스르르 풀려 나갔다. 와인을 테마로 피크닉, 산책, 콘서트 등 여러 가지 투어 프로그램도 준비하고 있다니 이를 어쩐다. 여행의 마지막에 메독을 다시 와야 할 분명한 이유를 만들어 버리고 말았다. 에디터 트래비 글·사진 Travie writer 정은주 취재협조 프랑스농식품진흥공사 www.sopexa.co.kr ▶Travel to Medoc 항공 에어 프랑스(www.airfrance.co.kr)를 이용해 파리를 거쳐 보르도 공항까지 이동할 수 있다. 인천에서 파리까지는 약 11시간, 파리에서 보르도까지는 1시간 남짓 걸린다. 또는 파리에서 보르도까지 기차(www.raileurope-korea.com)도 운행된다. 약 3시간 30분 소요. 보르도에서 메독까지는 택시를 이용한다. 숙소 메독에서 묵어 갈 만한 숙소로는 골프 뒤 삐앙 메독Golf du Pian Medoc과 를레 드 마고Relais de Margaux, 꼬르데이양 바즈Cordeillan Bages를 추천한다. 골프 뒤 삐앙 메독과 를레 드 마고 두 곳은 골프 코스 안에 자리한 호텔로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 샤또 랭츠 바즈에서 멀지 않은 꼬르데이양 바즈는 외관은 오래된 고성 느낌이지만 심플하면서도 세련미 넘치는 인테리어가 특히 인상적이다. 외부에 야외 풀장과 사우나, 피트니스 센터를 갖추고 있다. spot 또넬르리 나달리에 Tonnellerie Nadalie 메독에서 가장 규모가 큰 오크통 제조회사로 1902년 설립돼 5대째 가업을 이어오고 있다. 매년 가을이면 프랑스 산림청 나무 경매를 통해 참나무를 공수해 오며 미국산 참나무도 소량 사용한다. 오크통에 사용되는 나무는 오랜 기간 젖고 마르고를 반복하게 되는데 이 작업만 2년 넘게 걸린다. 또넬르리 나달리에는 메독 지역을 비롯해 보르도 등 프랑스 전역과 해외 유명 와이너리에 오크통을 공급하고 있다. 인터넷을 통해 미리 예약하면 일반인 방문도 가능하며 가이드 안내에 따라 오크통 제작 과정을 둘러볼 수 있다. www.nadalie.fr spot 라 와이너리 La Winery 프랑스 와인은 물론 전세계 와인을 취급하는 숍과 전문 시음 공간, 레스토랑, 피크닉과 공연장 등을 갖춘 와인 예술의 메카다. 와인셀러에는 보르도 지역이 50%, 프랑스산이 40%, 세계 와인이 10% 비율로 진열되어 있다. 1년에 5만5,000명 정도 방문하는데 그중 절반이 외국인일 정도로 메독의 관광 명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와인을 사거나 레스토랑을 이용하지 않아도 야외 피크닉 공간을 이용할 수 있어 메독에 가면 한 번쯤 들러볼 만하다. www.winery.fr 와인 등급 그랑크뤼 끌라쎄 메독 와인은 기준에 따라 여러 가지 카테고리로 나뉜다. 메독을 포함해 보르도 최고급 와인에게 주어지는 그랑크뤼 끌라쎄(1등급부터 5등급까지 나뉜다)는 1855년 파리 만국박람회를 계기로 만들어졌다. 메독에는 60개의 그랑크뤼 끌라쎄 와이너리가 있으며 이 등급 순서는 지금까지 변함이 없다(딱 한 번 1973년 샤또 무똥 로칠드가 2등급에서 1등급으로 바뀐 적이 있다). 이에 반해 크뤼 부르주아는 매년 심사를 통해 품질 좋은 와인들을 선별해 등급을 매긴다. 가장 독특한 카테고리는 크뤼 아르띠장. 아르띠장Artisan이란 우리로 치면 ‘장인匠人 정도 되는데 이 명칭을 단 곳은 소유주가 포도 재배부터 양조, 판매까지 직접 맡아서 해야 한다. 크뤼 아르띠장 와이너리는 메독에서도 44곳밖에 없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위 기사는 기사콘텐츠 교류 제휴매체인 여행신문의 기사입니다. 이 기사에 관한 모든 법적인 권한과 책임은 여행신문에 있습니다.
  • 조선후기 남녀차별 상속문 공개

    조선후기 남녀차별 상속문 공개

    고려시대에 이어 조선 초·중기까지만 해도 양반 가문에서는 남녀 차별 없이 균등하게 재산을 분배했다. 제사도 남녀와 장차남을 가리지 않고 돌아가면서 지냈다. 하지만 사림이 전면에 나선 16세기를 지나 통치 철학으로 성리학이 굳건히 자리 잡게 되는 17세기 중엽이 되면 남녀 균등 상속 관습은 크게 흔들린다. ‘주자가례’(朱子家禮)를 신봉한 성리학은 예학으로 발달하면서 이른바 ‘상속제의 개혁’을 일으킨다. 재산 분배의 남녀 차별을 보여주는 분재기(分財記·재산상속문서)가 4일 공개됐다. 한국학중앙연구원(한중연) 장서각은 이날 한국학기초자료사업 워크숍에서 조선 후기 소론의 영수이자 대학자였던 명재(明齋) 윤증(尹拯·1629~1714)의 아버지 윤선거(尹宣擧·1610~1669) 남매의 분재기인 ‘윤선거 남매 화회문기’(尹宣擧 男妹 和會文記)를 공개했다. 가로 길이가 무려 6m가 넘는 이 분재기(가로 6m 15.6㎝, 세로 34㎝)는 1652년 윤선거 등 12남매가 재산을 분배한 내용을 담고 있다. 파평윤씨 윤증 가문은 호서 지방(충청도) 예학을 대표하는 명문가로 윤선거, 윤증 등 당대를 대표하는 뛰어난 학자를 배출했다. 이번에 공개된 분재기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대목은 자녀들이 돌아가면서 모시던 조상의 제사를 종손이 독점하고, 제사를 지내는 데 쓰기 위해 별도로 떼어두는 재산을 종손이 관리하도록 명시한 부분이다. 분재기에는 “가산(家産)의 20분의1을 봉사조(奉祀條·제사를 지내는 데 쓰기 위해 따로 떼어둔 재산 항목)로 제출(除出·따로 떼어놓는 것)한다. 제사와 봉사조 재산은 봉사 자손(종손)이 주관한다. 제사의 남녀 간, 장차자(장남과 차남) 간 윤회(輪回·돌아가면서 제사를 모시는 것)를 금지하고 종가에서 주관한다.”는 내용이 기재돼 있다. 안승준 한중연 장서각 책임연구원은 “여성이 제사에서 제외되면서 여성에게 나눠 주던 재산이 제사용 재산으로 설정됐다.”면서 “윤증 가문이 호서 지방의 예학 명문가였던 만큼 윤증 가문의 분재기는 다른 문중에서 참고하는 모델이 됐다.”고 말했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60세男 은퇴후 21년 더 산다

    ‘인생은 60부터’라는 말이 점점 더 실감난다. 정년을 다 채우고 은퇴해도 4년제 대학을 여섯 번은 더 다닐 만큼 살 수 있기 때문이다. 통계청이 4일 내놓은 ‘2011년 생명표’에 따르면 지난해 60세인 사람은 평균 84.2세까지 살 것으로 기대된다. 성별로 따지면 남성은 81.4세, 여성은 86.5세다. 앞으로 20여년은 더 산다는 얘기다. 10년 전보다 각각 3.3년, 3.7년 기대여명(餘命·남은 목숨)이 늘었다. 지역별로는 제주와 서울 지역의 기대여명이 가장 길었다. 제주에 사는 60세 여성은 88.7세까지, 서울에 사는 60세 남성은 82.6세까지 살 것으로 추산됐다. 지난해 갓 태어난 신생아는 평균 81.2세까지 살 것으로 예상됐다. 남자아이는 77.6세, 여자아이는 84.5세다. 전년보다 모두 0.4년씩 늘었다. 10년 전(76.5세)과 비교하면 5년, 40년 전(61.9세)보다는 20년 가까이 기대수명이 늘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 가운데 남아는 20번째, 여아는 6번째로 길다. 남아의 기대수명은 스위스가 80.3세로 가장 길었다. 여아는 일본(86.4세)이 1위였다. 신생아의 기대수명도 서울(82.7세)과 제주(82.2세)가 높았다. 충북(80.1세)·부산·울산·전남·경북(각 80.2세)은 기대수명이 짧았다. 김양진기자 ky0295@seoul.co.kr
  • [대선 첫 TV토론] “朴 떨어뜨리기 위해 나왔다” 이정희 독설 원맨쇼

    4·11 총선 부정 경선과 종북 논란으로 정치적으로 몰락의 길을 걸었던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선 후보가 ‘박근혜 저격수’로 존재감을 각인시켰다. 이 후보는 4일 서울 여의도 MBC에서 열린 첫 대선 후보 TV토론에서 시종일관 맹공을 가하며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를 코너로 몰았다. 정치 공방에서는 사실상 이 후보의 ‘독무대’나 다름없었다. ‘독설’도 마다하지 않았다. 작심한 듯 토론 초반부터 박 후보를 향해 “유신 독재 퍼스트레이디가 청와대로 가면 여성 대통령이 아니라 여왕이 된다. 불통과 오만, 독설의 여왕은 안 된다.”고 강하게 선공을 가했다. “전태일 열사에게 헌화하겠다고 쌍용차 노동자의 멱살을 잡아끄는 게 불통이자 오만과 독선이다. 구시대 제왕적 리더십의 전형”이라고 쉴 새 없이 몰아붙였다. 박 후보가 반격하기 위해 통진당의 ‘애국가 논란’ 카드를 꺼내 들며 국가관을 문제 삼았지만 이석기, 김재연 통진당 의원의 이름을 “김석기, 이재연”이라고 잘못 말해 되레 이 후보로부터 “토론의 기본 예의와 준비를 갖춰 달라.”는 핀잔을 들었다. ●공격 당한 朴, 얼굴 붉혀 대형마트의 영업 시간 제한을 골자로 하는 유통산업진흥법을 두고도 ‘혈전’이 벌어졌다. “새누리당은 왜 골목시장을 지킨다는 약속을 안 지키나.”라는 이 후보의 공격에 박 후보가 “여야가 합의하면 이번 회기 내에 통과된다. 이런 사정을 알고 질문하는 건가.”라고 맞받아치자 이 후보는 “네, 됐습니다.”라고 말을 끊어버렸다. 이 후보는 또 “여성 차별 개선 의지는 없고 말로만 민중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다. ‘빵이 없으면 과자를 먹으면 되지.’ 하는 마리 앙투아네트(프랑스 루이 16세의 왕비)와 다를 게 없다.”고 박 후보의 ‘여성 대통령론’을 일축했다. 권력 비리 근절 방안 토론에서도 어김없이 각을 세웠다. 박 후보가 고위 공직자 비리 엄벌 등의 대책을 설명하자 “솔직히 말해 장물로 월급받고 지위를 유지하며 살아온 분이 권력형 비리를 말하니 잘 믿기지 않는다. 정수장학회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김지태씨를 협박해 뜯어낸 장물 아닌가.”라고 속사포 공격을 폈다. 이 후보는 “전두환 정권이 박정희 대통령이 쓰던 돈이라면서 박 후보에게 6억원을 주지 않았느냐. 6억원은 당시 은마아파트 30채에 해당하는 돈”이라고 공격했다. 이에 박 후보는 “당시 아버지가 흉탄에 돌아가시고 어린 동생들과 살 길이 막막한 상황에서 경황이 없어 받았다.”고 해명한 뒤 “6억원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밝혔다. 공격이 자신에게만 쏟아지자 박 후보는 얼굴을 붉히고 떨떠름한 표정을 짓다가 급기야 “이정희 후보는 아주 작정하고 네거티브를 해서 박근혜라는 사람을 내려앉히려고 온 사람 같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그러자 이 후보는 “박 후보를 떨어뜨리기 위해 (토론회에)나왔다. 박 후보를 반드시 떨어뜨릴 것이다.”라고 정면으로 맞받았다. ●“민주 의원은 기자에게 촌지” 박 후보가 꺼내 든 북방한계선(NLL) 공세에 대해 이 후보는 “유신 대결에 얽매인 사람이 한반도를 책임지겠다고 나설 수 없다.”고 일축했다. 또 “충성 혈서를 써서 일본군 장교가 된 다카키 마사오, 한국 이름 박정희다. 뿌리는 속일 수 없다. 애국가 부를 자격도 없다.”며 박 후보의 ‘아킬레스건’을 매섭게 파고들었다. 문 후보도 ‘독설’을 피해 가진 못했다. 이 후보는 “4대강 예산안에 반대하며 민주당과 민주노동당이 점거 농성할 때 민주당의 한 의원이 우연히 보수 언론 기자를 만나 촌지 10만원이 든 책을 건네는 걸 봤다. 역겨웠다.”고 비난했다. 이 후보가 야성을 강하게 드러내면서 야권의 문 후보도 존재감이 작아졌고 박 후보는 토론회 내내 굳은 얼굴을 풀지 못했다. 이현정기자 hjlee@seoul.co.kr
  • 청소년 선수들에게 맞아 네덜란드 축구심판 사망

    네덜란드 유소년 축구 심판이 15~16세 어린 선수들의 집단 폭행에 목숨을 잃어 세계 체육계를 큰 충격에 빠뜨렸다. 4일 AP통신에 따르면 리하르트 뤼벤휘젠(41) 심판은 지난 2일 네덜란드 알메레에서 열린 알메레 뷔텐보이스와 암스테르담이 연고인 클럽 니우 슬로텐 경기의 선심을 본 뒤 니우 슬로텐 선수 3명에게 폭행을 당해 병원으로 후송된 뒤 이튿날 숨졌다. 현지 언론은 피의자들이 경기가 끝난 뒤 뤼벤휘젠의 판정에 불만을 품고 항의하다 그의 머리를 발로 차기도 했다고 전했다. 뤼벤휘젠은 뷔텐보이스 소속인 아들의 경기 선심을 직접 보겠다고 나섰다가 이런 참변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폭행에 가담한 선수들을 모두 체포해 정확한 경위를 파악하고 있다. 에디스 시퍼스 네덜란드 체육부 장관은 “극도로 끔찍하다.”며 “용납할 수 없는 이런 사태가 스포츠에서 재발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네덜란드 축구협회는 구단의 요청을 받아들여 이 팀의 올 시즌 남은 경기를 모두 취소했다. 프로축구계도 큰 충격을 받았다. 프랑크 데 부어 아약스 감독은 레알 마드리드와의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경기 전날 기자회견 도중 “어떻게 어린 소년들이 이런 일을 저질렀는지 상상하기 힘들다.”며 혀를 찼다. 강동삼기자 kangtong@seoul.co.kr
  • [열린세상] 맹목적 지지자들/박상익 우석대 역사교육과 교수

    [열린세상] 맹목적 지지자들/박상익 우석대 역사교육과 교수

    19세기 일본은 서양 문물을 도입하면서 어마어마한 열정으로 서양 학술 용어를 번역했다. 우리가 널리 쓰는 민주주의, 자유, 평등, 권리, 철학 등은 모두 이 시기 일본 지식인들이 서양 개념을 한자어로 옮긴 것들이다. 하지만 일본 지식인들은 몇몇 서양 개념을 번역하는 데 커다란 어려움을 겪었다. ‘소사이어티’(society)의 번역어인 ‘사회’가 대표적 사례다. 일본에는 ‘society’에 대응하는 ‘현실’이 없었기 때문이다. 영어권 최고 권위의 옥스퍼드 영어사전은 ‘society’를 ‘개인들(individuals)의 집합체’로 정의하고 있다. 그런데 19세기 일본에는 ‘개인’에 기반을 둔 인간관계가 없었다. 개인이 없으니 사회도 없었고, 따라서 그 뜻을 표현할 번역어도 없었다. 일본 지식인들은 실체가 없는 ‘society’를 일본어로 번역하기 위해 고심해야만 했다. 우여곡절 끝에 ‘사회’가 번역어로 자리 잡게 되었지만, 번역어가 등장했다고 해서 그에 대응할 현실까지 일본에 존재하게 됐음을 의미한 것은 아니다. 단지 기계적으로 ‘society’를 ‘사회’로 옮겼을 뿐이다. 존재하지 않는 실체에 대해 완전히 새로운 조어(造語)를 만들어 사용한 것이다. 역사상 ‘개인’이 처음 등장하게 된 계기는 16세기 루터의 종교개혁이었다. 종교개혁의 주요 원리인 만인사제주의는 신과 개인 사이에 성직자가 개입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영적인 지위에서 평신도는 성직자와 대등했다. 평신도 개인은 믿음을 통해 1대1로 신을 직접 대면할 수 있었으며, 양심에 입각해 성경을 해석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춘 존재였다. 개인의 양심과 이성을 강조한 루터의 만인사제주의는 훗날 개인주의의 성장을 크게 자극했다. 신의 음성을 듣고 영감을 얻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신의 뜻에 대한 자신의 이해가 다른 사람보다 정확하다고 주장할 수 있었고, 모두 다 제각기 성경을 독자적으로 해석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른바 ‘인식론적 개인주의’의 탄생이다. 양심과 이성에 입각한 ‘개인적 판단’을 중시하는 개인주의는 결코 이기주의와 동의어일 수 없다. 근대 자유주의 이념의 철학적 기반이 바로 개인주의다. 자유란 ‘개인의 자유’를 뜻하기 때문이다. 대선 정국이 절정으로 치달으면서 지역이나 성향별 쏠림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다. 매일같이 대선후보 지지율이 나오고 있으나 판세는 거의 굳어진 듯하다. 조사기관마다 편차가 있지만 대체로 박근혜·문재인 모두 45% 언저리에서 미미한 차이로 계속 혼전이다. 특정 후보에게 어떤 악재가 터져도 지지도에는 변함이 없다. 옳고 그름의 판단은 뒷전이다. 이런 식의 완강한 진영 구조에서 개인적 판단은 설 자리가 없다. 이성이나 양심이 끼어들 자리도 없다. 지역 정서와 집단이기주의만이 난무한다. 무엇보다 안타까운 것은, 사회적 약자임이 분명한 유권자들이 상대적으로 부자들의 권익을 옹호해온 정당의 후보에게 무차별적 지지표를 던지는 현상이다. 부유층이 부자 정당을 지지하는 것이야 수긍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계급 이익에 배치되는 선택을 하는 서민 유권자들의 선택은 비이성적이다. 개인적 판단의 포기이자 자유로부터의 도피다. 주군에게 맹목적 충성을 바치는 신민(臣民)들의 집단 자살이다. 특정 후보가 흔들어대는 깃발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전근대적 집단은 ‘사회’라고 부르기도 민망하다. 고도의 압축 성장을 해온 한국 사회는 경제적으로 근대화를 달성하는 데 성공했고, 몇몇 분야에서는 탈근대적 특징마저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정치의식의 측면에서는 여전히 전근대(중세)에 머물러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전형적인 문화 지체 현상이다. 가시적인 분야는 쉽게 성과를 올릴 수 있지만, 의식 수준의 향상은 오랜 시행착오와 투쟁을 거쳐 힘겹게 얻어진다. 물질 문화와 비물질 문화의 변화 속도 차이로 인한 사회적 부조화다. 전근대·근대·탈근대가 공존하는 한국 사회를 학자들은 ‘삼겹살 구조’라고 표현한다. 21세기에 끈질기게 살아남은 이 중세적 정치문화는 전통도 미덕도 아니다. 청산해야 할 역사의 쓰레기일 뿐이다.
  • 야생 여우가 훔친 스마트폰으로 문자메시지를?

    야생 여우가 훔친 스마트폰으로 문자메시지를?

    야생 여우가 스마트폰을 훔쳐가 문자를 보내는 믿기힘든 일이 알려졌다. 최근 노르웨이 언론은 “한 10대 소년의 스마트폰을 훔쳐간 여우가 그의 친구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며 황당한 사연을 소개했다. 동영상으로도 촬영된 이 사건의 주인공은 호기심 많은 16세 소년인 안드레아스 라스 비야커. 비야커는 지난주 친구와 함께 여우를 구경하기 위해 토끼 울음소리가 나는 앱이 설치된 스마트폰을 동네 야산에 놓아두었다. 장난으로 놓아둔 스마트폰에서 토끼 울음소리가 울려퍼지자 먹잇감으로 착각한 여우가 실제로 나타났다. 재미를 느낀 소년들은 이 장면을 몰래 동영상으로 촬영했으며 여우는 스마트폰을 이리저리 살펴보고는 곧 입으로 물고 사라졌다. 비야커는 “여우가 내 스마트폰을 물고가 바로 쫓아갔지만 찾을 수 없었다.” 면서 “친구가 내 휴대전화에 전화하자 여우가 실제로 받아 지지직 거리는 소음이 들렸다.”고 주장했다. 더 놀라운 일은 다음날 벌어졌다. 친구가 여우에게 문자메시지를 받은 것. 여우가 친구에게 남긴 문자메시지는 ‘I FRY o a0ab 34348tu åaugjoi zølbmosdji jsøg ijio sjiw,’라는 알 수 없는 글이었다. 한편 여우가 물고 간 스마트폰은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았다.   인터넷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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