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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고] 좌수영 어방놀이 명예보유자 이성기씨

    [부고] 좌수영 어방놀이 명예보유자 이성기씨

    중요 무형 문화재 제62호 ‘좌수영 어방(左水營 漁坊)놀이’ 명예보유자인 이성기씨가 9일 오전 11시 30분 노환으로 별세했다. 86세. 좌수영 어방놀이는 지금의 부산 수영 지역에 전승되고 있는 놀이로 어업의 작업 과정과 노동요를 놀이로 만든 것이다. 풍어를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고인은 1973년 좌수영 어방놀이에 입문해 40년 이상 수영민속보존회에서 활동했다. 전승과 보급에 힘쓴 점을 인정받아 2002년 좌수영 어방놀이의 예능보유자로 인정받았고, 2008년에는 명예보유자가 됐다. 빈소는 부산 수영나라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발인은 11일 오전 7시. (051)752-2947.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프로야구] 꼴찌 반란

    [프로야구] 꼴찌 반란

    선두 삼성이 꼴찌 한화에 믿기지 않는 일격을 맞았다. 삼성은 9일 대구구장에서 열린 한화와의 프로야구 경기에서 2-14로 무릎 꿇으며 지난 5월 31일 롯데에 당한 0-10 패배를 넘어 시즌 최다 점수차 패배 수모를 당했다. 삼성은 이날 롯데를 7-2로 따돌린 2위 LG에 2경기 차로 쫓기게 됐다. 삼성 타선은 상대 선발 바티스타에게 5회 2사까지 안타를 4개만 빼앗고 2점밖에 얻지 못했다. 3경기 만에 국내 무대 첫 선발 등판한 카리대는 1과3분의1이닝 동안 5피안타 4볼넷으로 6실점하는 등 다섯 투수가 무려 18안타를 내줘 속절없는 패배를 맛봤다. 한화 송광민은 9-0으로 앞선 3회 시즌 3호를 스리런으로 날려 승부를 결정지었다. 최진행이 6타수 4안타 4타점, 이양기가 6타수 5안타 5타점으로 힘을 보탰다. 한화는 지난해 6월부터 이어온 대구구장 9연패에서 벗어나며 기쁨은 곱절이 됐다. KIA는 창원 마산구장에서 선발 서재응의 7이닝 5피안타 1실점 호투와 안치홍의 2점 홈런 등 3타수 3안타 3타점 활약을 묶어 NC를 5-2로 누르고 3연패에서 탈출했다. 서재응이 승리를 맛본 것은 지난 5월 18일 잠실 LG전 이후 무려 83일 만이다. 윤석민은 마무리 전환 이후 첫 세이브를 기록했다. LG는 잠실에서 전날 4-5로 무릎을 꿇었던 롯데에 재역전승으로 설욕했다. 봉중근은 8회 마운드에 올라 26세이브(7승)째를 거둬 선두 손승락(넥센)과의 격차를 3개로 좁혔다. SK는 목동에서 넥센과 연장 12회 접전 끝에 4-4로 승부를 가리지 못했다. SK는 0-1로 뒤진 6회초 김상현의 투런 홈런 등으로 3-1로 앞섰지만 6회말 강정호에게 재역전 스리런 홈런을 얻어맞았다. 하지만 7회초 박정권이 동점 적시타를 날려 연장으로 끌고 갔다. 두 팀 모두 연장에서 좋은 기회를 잡았지만 SK는 박희수(10회)와 이재명(11회)이, 넥센은 손승락(10회)과 마정길(12회)이 틀어막아 시즌 여덟 번째 무승부를 기록했다. 넥센은 5위 롯데와의 승차를 한 경기로 벌렸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노주석 선임기자의 서울택리지] ⑧ 1950~60년대 : 파괴와 재건

    [노주석 선임기자의 서울택리지] ⑧ 1950~60년대 : 파괴와 재건

    “도시는 기억으로 살아간다”(The city lives by remembering)고 미국의 시인 랠프 왈도 에머슨은 읊었지만, 서울은 600년 고도의 기억이 별로 없다. 마치 신흥도시 같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통에 불타고 약탈당했으며, 일제강점기 도읍에 대한 자취는 강제적으로 지워졌다. 조선총독부-경성시청-남산 조선 신궁을 상징 축선으로 하는 식민 도시로 치장됐다. 한국 전쟁통에 그나마 남은 것 대부분이 파괴됐다. 1960년대 이후 개발독재시대의 무지막지한 개발 광풍을 타고 또 한 번 뭉개졌다. 역사의 향기는 흩어졌다. 한강 이남으로 영역을 확대한 서울은 사실상 한국전쟁 이후 새로 건설된 신도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대문 안에는 표지석만 어지럽게 남았을 뿐이다. 전쟁과 대사건은 도시를 재건한다. 한국전쟁 당시 서울 폭격을 앞둔 맥아더는 “원래 도시란 천재지변이나 전쟁을 겪고 나면 그전에 비해 몇 곱절 더 크고 좋은 새 도시로 부흥된다. 미국이 재건을 도울 것이니 서울은 앞으로 이상적인 현대 도시로 탈바꿈할 것”이라고 큰소리쳤다. 실제 1644년 대화재로 도시의 80%가 타 버린 영국 런던은 옥스퍼드대 건축가 크리스토퍼 렌 교수에 의해 오늘의 런던으로 재건됐다. 일본 도쿄도 1923년 관동대지진으로 잿더미가 됐지만 탁월한 도시계획가 고토 신페이(後藤新平) 도쿄시장의 주도로 세계 도시계획 사상 유례가 없는 시가지 개조를 통해 새로 태어났다. 런던과 도쿄는 세계대전으로 또 한 번 타격을 입었지만, 옛 도시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서울의 재건은 성공작일까? 서울을 역동적인 현대 도시로 평가할 수는 있지만, 역사 도시로 평가하기엔 머쓱하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서울이라는 도시의 정체성은 꽤 혼란스럽다. 서울은 네 번 결정적인 상처를 입었다. 16세기 일본과 중국 군대에 의해 약탈당했으며, 근대 일제강점기엔 성곽을 허물고, 상징 축을 강제로 바꾸는 방법으로 도시 형태가 조작됐다. 한국전쟁기 유엔군과 한국군의 청야(淸野)작전(적이 이용하지 못하도록 농작물이나 건물 등 지상에 있는 것들을 말끔히 없애는 작전)을 통해 철저하게 파괴됐다. 1960~70년대 우리 손으로 남은 문화재를 헐어서 치워 버렸다. 맥아더의 말처럼 기회는 있었다. 1952년 전후 복구 차원의 첫 도시계획안을 마련하면서 세종로 등 39개의 큰길을 확장하거나 신설하고, 광화문광장·서울시청광장·남대문광장 등 19개의 광장을 만드는 과감한 그림을 그렸다. 그러나 재정부족 등을 이유로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유럽의 오래된 도시처럼 구도심(사대문 안)을 그대로 보존하면서 사대문 밖이나 강남 신시가지를 개발하겠다는 코페르니쿠스적인 발상의 전환이 없었다. 한국전쟁 이후 ‘광적’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서울 집중이 기회를 날려 버렸다. 집중을 막으려고 온갖 정책을 동원했지만 약효가 듣지 않았다. 해방 전후 100만명대였던 서울 인구는 1966년 380만명, 1970년 540만명을 넘어서더니 1990년 1000만명을 돌파해 버렸다. 수도 서울 행정은 집 지을 땅을 확보하고, 도로를 넓히고, 교통수단을 늘리고, 수돗물을 공급하고, 쓰레기를 치우는 것에 매달렸다. 만약 그때 인구의 서울 집중을 막을 수 있었더라면 서울은 한가롭게 전차가 다니며, 꼬불꼬불한 골목길이 정겨운 기와집이 빼곡한 도시로 남았을 것이다. 한강과 북한산이 주는 자연의 세례를 맘껏 누리는, 풍광이 뛰어난 성곽 도시로 유지됐을 것이다. 1950년대 서울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손정목 전 시립대 교수의 ‘서울도시계획이야기’를 기본으로 사대문 밖 풍경을 상상해 보자. 동쪽으로 동대문을 나서면 신설동 큰 길가까지 집이 들어 차 있지만, 바깥은 논밭 천지다. 신당동에 집이 드문드문했을 뿐 금호동·옥수동 일대는 산이었다. 왕십리를 지나 한양대 일대는 미나리꽝이었고 성동교의 나무다리가 삐꺽거렸다. 남쪽 한강대교에 이르는 동빙고동과 서빙고동 주민은 1000명 안팎이었고, 원효로 일대는 대부분 논밭이었다. 노량진, 상도동, 대방동, 영등포는 큰 길가조차 목가적인 전원 풍경을 연출했다. 서쪽으로 신촌을 지나 마포 전차 종점을 벗어나면 벌거숭이 산과 논밭이 펼쳐졌다. 동북쪽은 미아리고개, 서북쪽은 독립문과 현저동이 경계였다. 지금의 강남·서초·송파·강동·강서·관악·구로·금천·도봉·노원·은평구 등은 모두 경기도였다. 서울의 고층 건물은 손으로 꼽을 정도였다. 최고층 건물은 지금의 롯데호텔 자리에 있던 8층짜리 반도호텔이었다. 이웃 조선호텔과 한국은행 모두 일제가 남긴 건물이었다. 1955년에 종로 사거리에 2층짜리 신신백화점이 신축됐고, 1957년 광화문 사거리와 을지로 1가에 3층짜리 국제극장과 5층짜리 개풍빌딩이 각각 들어섰다. 1958년 남대문에 7층짜리 그랜드호텔이 문을 열자 구경 인파가 몰렸다. 당시 서울 도심부의 평균 층 높이는 2층이 채 되지 않았다. 도심부를 고층화하려고 주요 간선도로변의 건물 높이를 3~5층 이상으로 정할 정도였다. ‘한강의 기적’은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시작된 1962년부터 약 20년간의 고도성장기를 일컫는다. 이 기간 서울은 경천동지할 변화를 겪는다. 서울의 공간 변화는 1966년부터 1980년까지 15년간 거의 이뤄졌다. 주택지·도로·상하수도·지하철 등 현대 서울의 하부구조가 이때 거의 갖춰졌다. 박정희 대통령이라는 절대권력자의 ‘분부’를 이행한 김현옥·양택식·구자춘이라는 3명의 ‘충복’ 서울시장이 재직한 기간과 일치한다. 서울의 얼개는 박 대통령의 구상과 지시에 의해 거의 결정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66년 서울도시기본계획안이 세워졌다. 서울의 균형 발전을 꾀하려고 사대문 안에 집중된 입법·사법·행정부의 기능을 분산시키려는 계획이 눈에 띈다. 입법부는 남서울(강남·서초구), 사법부는 영등포, 행정부는 용산 일대, 세종로 지역은 대통령 관저 및 직속기관 배치 지역으로 정했다. 지금 와서 보면 입법부와 사법부의 입지가 맞교환됐고, 서울시청이 용산으로 옮겨가지 못한 것을 알 수 있다. 교통계획을 보면 서울역~청량리(1호선), 서소문~을지로~성동(2호선), 갈현동~종로2가~을지로2가~퇴계로~천호동(3호선), 우이동~종로4가~퇴계로~말죽거리(4호선) 등의 지하철 4개 노선 건설계획이 잡혀 있다. 10년 뒤 구자춘 시장에 의해 2호선이 을지로와 영등포~영동을 잇는 순환선으로 변경되는 등 엄청난 노선 변화가 일어났지만, 지하철 4개 노선에 대한 기본 구상이었다. 이 밖에 4개 순환선과 14개 방사선을 간선도로망으로 7개의 고속도로를 건설한다는 계획과 노면 전차는 철거하고 광화문 사거리와 시청 앞 광장에는 지하차도를 만들고, 시청 앞 광장 지하는 지하도시화한다는 계획도 포함돼 있다. 도심 재개발과 강남·송파 등 남서울개발, 뚝섬·창동·망우 등 동서울개발, 불광·성산·김포·시흥지구의 서서울개발 등 신시가지개발 계획이 들어 있다. 1년 예산이 170억원에 불과한 서울시가 20년 앞을 내다보고 인구 500만명을 예상해 3235억원의 천문학적인 예산을 투입한다는 야심 찬 계획이었다. 언론으로부터 ‘즉흥계획’ ‘실현성 없는 독단’ ‘재무계획 없는 무지개’ 등등 융단폭격을 맞았다. 그러나 격변의 15년 중 7년을 서울시 도시계획국장, 기획관리실장 등을 지내며 계획을 수립하고 집행한 손정목 전 교수는 “꿈도 환상도 아니었다. 최초의 기본계획이었다는 점, 도심부 재개발이니 고도지구, 미관지구 개념이 도입돼 일반에 공개됐다는 점, 70~80년대 전국 모든 도시가 수립한 도시계획의 모델이 됐다는 점 등에서 의미가 있다”고 회고했다. 불완전하나마 서울시 장기계획의 틀이 된 것이 사실이다. 일제 말기인 1940년부터 1965년까지 서울은 잠자는 도시였다. 1937년 중·일 전쟁과 1941년 태평양전쟁이 터져 건축자재를 구할 수 없었고, 한국전쟁이 이어지면서 건축 행위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부분 건물이 목조건물 수명 30년을 다한 상태였다. 장충동, 신당동 일대와 남대문로, 충무로, 을지로 등 일본인 주거지에 정원이 딸린 일본식 저택과 주택이 밀집해 있었다. 가회동·명륜동·동숭동·북아현동 일대에는 한옥촌이 빼곡하게 형성돼 있었다. 마포, 왕십리, 동대문을 벗어난 지역은 논밭이었다. 사대문 안과 독립문, 신촌, 신설동, 돈암동, 신당동, 용산이 서울의 전부였다. 노면 전차 노선을 기준으로 보면 동쪽으로 청량리·왕십리, 남쪽으로 노량진·신길동·영등포, 서쪽으로 마포·신촌, 서북쪽으로 독립문, 동북쪽으로 돈암동 전차 종점까지가 서울이었다. 지방에서 무작정 상경한 사람들의 주거인 무허가 판잣집이 도심에서 가까운 하천변이나 산비탈을 차지했다. 1966년 당시 13만여채의 판잣집이 서울 곳곳에 달동네를 이루고 있었다. 서울은 개발행 특급 열차가 출발하기 직전의 폭풍전야였다. joo@seoul.co.kr
  • “문혁은 역사의 비극” 中 홍위병 공개 반성

    신중국을 건립한 마오쩌둥(毛澤東) 탄생 120주년을 앞두고 마오의 최대 과오로 꼽히는 문혁(문화대혁명)에 참여한 홍위병 출신들이 잇따라 공개 반성 운동에 나서고 있어 주목된다. 변호사 장훙빙(張紅兵)이 과거 홍위병으로 활동하며 어머니를 총살당하게 만든 과오를 회고하고 문혁의 잘못된 역사를 후대에 알릴 것을 제안했다고 7일 신경보가 보도했다. 문혁의 광풍이 불던 1970년 8월 안후(安徽)성 벙부(蚌阜)의 한 시골 마을. 당시 16세의 홍위병이었던 장은 어머니 방중머우(方忠謀)가 가족 모임에서 마오를 비판하고 주자파(走資派·자본주의 노선을 걷는 세력)의 수괴로 몰린 류사오치(劉少奇)를 지지하는 발언을 했다고 당국에 고발했다. 어머니는 그후 2개월 만에 반혁명 분자로 몰려 총살당해 생을 마감했다. 장이 공개 참회에 나선 것은 문혁 시대로 회귀할 것을 주장하는 좌파들의 최근 움직임에 맞서기 위해서라고 신문은 소개했다. 그는 “나의 이야기를 널리 알려 이 땅에 같은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면서 “문혁으로의 회귀는 역사의 후퇴로 문혁 박물관을 건립해 잘못된 역사를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고 제안했다. 앞서 지난 6월에는 산둥(山東)성 지난(濟南)시 문화국 출신의 류보친(劉伯勤)이 한 잡지에 자신이 홍위병 당시 박해했던 교장·교사·급우들의 이름을 일일이 거론하며 사과하는 내용의 광고를 게재하기도 했다. 언급 자체가 금기시됐던 문혁 관련 증언이 속속 나오는 것은 좌우 이데올로기 갈등 속에 반좌파 움직임이 확산되는 것과 관련이 있다는 분석이다. 반면 마오를 추종하는 좌파들은 오는 12월 마오 탄생 120주년을 맞아 문혁 당시 필독서였던 ‘마오쩌둥 어록’ 신판을 출시할 계획이다. 베이징 주현진 특파원 jhj@seoul.co.kr
  • [씨줄날줄] ‘백제인의 얼굴’ 발굴한 일본인/서동철 논설위원

    군수리(軍守里) 절터는 부여 시가지에서는 조금 떨어진 궁남지 서남쪽에 있다. 지금도 절 이름을 알 수 없는 이곳에서는 1935년부터 이듬해까지 발굴조사가 벌어졌다. 중문과 목탑, 금당, 강당이 같은 축에 나란히 서 있는 1탑 1금당 구조가 확인됐는데, 이후 백제의 전형적인 가람 배치로 알려지게 된다. 군수리 절터가 유명해진 것은 무엇보다 보물로 지정된 석조여래좌상과 금동보살입상이 출토됐기 때문이다. 특히 높이가 13.5㎝에 불과한 석조여래좌상은 ‘백제인의 얼굴’로 알려지며 백제인의 미의식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존재로 떠오르게 된다. 곱돌 특유의 부드러운 질감에 방금 완성한 듯 조각칼 자국이 선명한 석조여래좌상은 6세기 백제 문화 전성기의 모습을 가감 없이 과시하고 있다. 석조여래좌상을 수습한 사람은 일본인 고고학자 사이토 다다시였다. 도쿄제국대학 출신으로 1934년 조선에 건너온 그는 총독부박물관 산하 조선고적연구회 연구원이었다. 석조여래좌상은 1936년 제2차 조사에서 나왔다. 사이토는 2005년 부여박물관에서 열린 강연에서 “절터 한가운데서 주변과는 종류가 다른 뻘흙을 발견했는데, 꽃삽으로 표면의 흙을 제거하고 손으로 파 내려가는 과정에서 손끝에 불상이 걸렸다”고 회상했다. 당시에는 부여고적보존회라는 동호인 단체가 지역 고적 보존에 매우 열성적이었다고 한다. 백제 와당이 흩어져 있고 건물 초석이 노출된 군수리를 조사해 달라는 회원들의 요청에 따라 발굴이 이뤄졌다는 것이다. 부여박물관 강연에서 사이토는 97세 나이에도 기억이 또렷했고, 부소산 답사에서도 뒤처지지 않았다. 그랬던 그의 부음이 뒤늦게 전해졌다. 지난달 21일 105세로 별세했다는 소식이다. 사이토는 1940년 한국을 떠나기까지 총독부박물관 소속 경주박물관장을 맡으며 신라고분을 중심으로 발굴 조사에 주력해 적지 않은 성과를 거둔 인물로 기록된다. 북한 관련 고고학 정보가 거의 없던 1996년에는 평양을 찾아 ‘북조선 고고학의 신발견’을 펴냈고, 2003년에는 두 차례 답사 여행 끝에 한국의 독특한 불교 유적 당간을 다룬 ‘당간지주의 연구’를 내놓았다. 모두 연구 일선에서 한참은 멀어졌을 나이의 성과로 학계에 놀라움을 안겨주었다. 사이토는 “목숨이 붙어 있는 한 한국의 옛문화 연구에 노력할 것”이라고 다짐했던 대표적인 지한파(知韓派)였다. 하지만 총독부 관변학자로 그가 거둔 성과의 한계 또한 너무나도 명확하다. 그의 죽음이 우리 학계에 식민사관을 떨쳐내는 하나의 계기로 작용했으면 한다.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아들 친구들과 ‘몹쓸짓’…막장 엄마 ‘쇠고랑’

    아들 친구들과 ‘몹쓸짓’…막장 엄마 ‘쇠고랑’

    미성년인 아들 친구들과 ‘몹쓸짓’을 한 막장 엄마가 결국 쇠고랑을 차게됐다. 지난 30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 오렌지카운티 법원은 미성년자들과 불법 성관계를 가진 혐의로 기소된 캐시아 마리아 데이비스(46)에게 징역 16개월과 평생 성범죄자 등록을 선고했다.   재판과정에서 공개된 데이비스의 행각은 막장 드라마에서도 보기 힘든 수준이었다. 지난 2006년 부터 하키팀에 소속된 아들 친구들을 집으로 불러 소위 ‘파자마 파티’를 연 엄마는 이때부터 은밀히 자신의 ‘욕심’을 채웠다. 그러나 데이비스의 행각은 피해 소년 중 한 명이 자신의 엄마에게 사건을 털어 놓으면서 꼬리가 잡혔다.  이중 검찰에 기소된 건은 14세와 16세 소년과 성관계를 가진 사건으로 특히 데이비스는 아이들에게 술까지 먹인 것으로 드러났다.   현지언론에 따르면 데이비스 사건은 지난 2006년 부터 2011년 까지 4차례에 걸쳐 이뤄졌으나 배심원단의 의견불일치에 의한 미결정 심리로 재판이 반복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존 F. 케네디, 마릴린 먼로와 불륜…영부인 될 뻔

    존 F. 케네디, 마릴린 먼로와 불륜…영부인 될 뻔

    미국의 35대 대통령 존 F. 케네디가 과거 마릴린 먼로와 불륜 관계였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특히 이같은 남편의 외도를 영부인 재클린도 모두 알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최근 故다이애나비의 일대기를 집필한 바 있는 유명작가 크리스토퍼 앤더슨이 영부인 재클린 케네디의 전기 ‘소중한 날들’(These Few Precious Days: The Final Year of Jack with Jackie)을 펴내 관심을 끌고있다. 그간 당대 최고의 섹시 배우로 활약한 먼로와 케네디 대통령의 염문 관계는 암암리에 퍼져 있었다. 또한 지난해에는 미국 작가 다윈 포터가 “먼로가 케네디의 아이를 임신한 채 킬러에 의해 살해 당했다”는 책을 펴내 논란이 인 바 있다. 이번에 앤더슨이 펴낸 책을 보면 당시 남편의 불륜을 인지한 재클린의 심경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특히 먼로가 백악관에 전화를 걸어 재클린과 직접 통화했다는 대목이 눈길을 끈다. 이 전화에서 먼로는 재클린에게 “당신 남편(케네디)이 나와 잠자리를 가졌으며 가족을 떠나기로 약속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재클린은 “당신이 잭(케네디)과 결혼한다면 대단하겠군. 백악관에 들어온다면 퍼스트레이디로서의 책임을 다해야 할 것이고 모든 문제를 떠안게 될 것”이라고 응수했다. 또한 앤더슨 작가는 당시 재클린은 남편의 복잡한 여자관계를 모두 알고 있었으며 그중 먼로와의 관계를 가장 두려워했다고 전했다. 작가의 이 전기는 케네디 부부의 친구와 측근들을 대상으로 한 인터뷰를 토대로 작성됐으며 불륜 이외에도 부부가 많은 약물에 의지한 사실이 추가로 언급되어 있다. 한편 존 F. 케네디는 지난 1963년 11월 46세 나이에 총격으로 사망했으며 먼로는 이에앞선 1962년 8월 자살로 생을 마감했으나 숱한 타살 논란이 일었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美 ‘한반도 결의안’ 만장일치 뒤에 초당적 협력 이끈 한국계 있었다

    美 ‘한반도 결의안’ 만장일치 뒤에 초당적 협력 이끈 한국계 있었다

    한국전쟁 정전협정 체결 60주년을 맞아 미국 의회가 최근 ‘한반도 평화·통일 합동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킨 데는 한 한국계 의원 보좌관의 노력이 있었다. 1일(현지시간) 주미 한국대사관 등에 따르면 주인공은 한국전 참전 용사 출신인 찰스 랭걸(민주·뉴욕) 하원의원의 보좌관인 한나 김(30)씨다. 그는 랭걸 의원을 도와 결의안을 작성, 지난 6월 25일 하원 외교위원회에 제출했다. 김 보좌관은 의원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결의안 취지를 설명해 상당수의 서명을 받아냈다. 김 보좌관은 “결의안이 이렇게 짧은 기간에 상·하원에서 모두 처리된 것은 기적에 가깝다”며 “한반도 평화와 통일이 촉진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그는 6세 때 부모와 함께 미국으로 간 이민 1.5세대로, 미평화연구소에서 한국전 자료를 정리하는 일을 하면서 한국전쟁에 관심을 갖게 됐다. 김미경 기자 chaplin7@seoul.co.kr
  • 째깍째깍…시계가 돌자 유럽은 근대로 갔다

    미국의 문명 비평가 루이스 멈퍼드는 “증기기관이 아니라 시계가 근대산업의 핵심 기계”라고 단언했다. 13세기 후반 유럽에 최초의 기계식 시계가 등장했다. 그 이전에도 해시계나 물시계와 같이 시간을 측정하는 기구가 있었지만 동력 시계가 만들어진 것은 유럽이 처음이었다. 그러면 왜 아시아가 아닌 유럽이었을까. 전문가들은 그 까닭을 흑사병이라는 거대 재앙으로 인한 노동력 급감으로 유럽 문명이 더욱 기계지향적으로 변해갔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인간의 힘을 기계의 힘으로 대체하고자 하는 경제적인 토양에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대포와 범선, 제국’의 탄생을 통해 세계를 지배한 것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 책은 이와 연관된 인간의 현실을 깊이 있게 탐구한다. 1338년 여름 갤리선 한 척이 베네치아를 떠나 동방으로 향했으며, 이 배에 실린 여러 물건들 중 기계식 시계가 하나 실려 있었다는 사실, 그리고 유럽이 기계를 아시아로 수출하기 시작했다는 내용 등 그동안 아무도 집중하지 않았던 운명적인 사건 등을 상세히 다루고 있다. 또한 기술사를 들여다보는 것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경제와 사회의 역사에 대한 탐구이며 사람들과 그들의 성향, 사회적 가치체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기계 시계의 탄생이 과학 혁명과 산업혁명에 미친 영향을 평가하면서 언뜻 무관해 보이는 시계와 대포가 역사적으로는 커다란 연관이 있었으며, 놀랍게도 유럽 최초로 시계를 제작했던 사람들이 다름 아닌 대포 장인이었다는 등의 흥미로운 사실들을 펼쳐 보인다. 기계식 시계의 발전사도 언급하고 있다. 초창기 거대한 공공 시계였던 기계식 시계는 15세기 태엽이 동력으로 등장해 크기가 작아지면서 가내용 시계와 회중 시계로 발전했고, 16세기에 들어서면 유럽 신흥 부유층의 사치품으로 인기를 누린다는 사실 등이다. 이때부터 시계 장인은 대포 장인보다 보석 세공인에 가깝게 개념이 바뀌었으며 시장이 확대되면서 시계 제조업 중심지가 생겨났다고 설명한다. 김문 선임기자 km@seoul.co.kr
  • 남편에 수장 살해당한 ‘20대 보모女’ 6년만에…

    보모 구인광고를 보고 찾아온 여성을 아내로 맞아 보험금을 노리고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30대 남성이 결국 유죄를 선고받았다. 광주고법 형사 1부(김대웅 부장판사)는 2일 살인·사기·사기미수로 기소된 박모(32)씨에 대한 파기환송심에서 징역 10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징역 15년을 선고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살인 혐의를 무죄로 판단한 원심과 달리 살인죄도 인정했다. 재판부는 “여러 정황상 자살 가능성은 희박하다”면서 “운전을 시작한 지 8일밖에 안된 피해자가 밤늦게 인적이 드문 강가에 갈 가능성도 매우 낮고 강물에 빠진 차량의 모든 창문이 열린 점 등으로 미뤄 누군가가 피해자를 차에 태운 채 강물에 빠뜨린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또 “휴대전화 통화기록 등을 근거로 박씨는 사고 현장에 있었고 피해자의 차량이 강에 빠졌다는 사실을 지인에게 신고하도록 한 뒤 목소리를 바꾸는 성대 성형까지 강권한 점 등을 볼 때 살인 등의 범행을 인정할 간접증거가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박씨는 2007년 6월 6일 밤부터 7일 새벽 사이에 전남 나주시 드들강변에서 아내 김모(당시 26세)가 탄 승용차를 강에 빠뜨려 익사하게 한 혐의로 기소됐다. 박씨는 인터넷에 보모 구인광고를 올리고 당시 다른 남성의 아이를 임신한 김씨와 동거를 시작해 한 달 만에 혼인신고를 했다. 박씨는 피해자 앞으로 수억원대 보험에 가입해 이 사고 후 2억원 가량의 보험금을 받고 또 2억 4000여만원을 다른 보험사에 추가로 청구했다가 거절당했다. 이 사건은 당시 교통사고로 내사 종결됐지만 4년 만에 이뤄진 재수사를 통해 기소돼 1심에서 징역 15년을 선고받고 항소심에서는 사기죄만 인정돼 징역 10년으로 감형됐다. 하지만 대법원은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았다”면서 유죄 취지로 사건을 광주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맹수열 기자 guns@seoul.co.kr ☞<관련기사> [사건 Inside] (34) 범인은 전화기 속에…‘광주 임신부 살해사건’
  • [공연단신]

    英 킹스컬리지 합창단 영국 국왕 헨리 6세가 창설한 600년 전통의 킹스컬리지 합창단이 8일 성남아트센터 콘서트홀을 찾는다. 모차르트의 ‘신자들의 아침기도’, 슈베르트의 ‘시편 23’ 등 다양한 종교 합창 음악을 들려준다. 국내 바로크 전문연주단체 카메라타 안티콰 서울과 소프라노 석현수도 함께 무대에 선다. 4만~14만원. (031)783-8000. 콜렉티브 콜라보레이션 여성 안무가 3명이 만든 프로젝트 그룹 ‘콜렉티브 콜라보레이션’이 치마를 소재로 한 인터렉티브 무용극을 선보인다. 사회 속에 매몰됐던 나를 찾아가듯, 치마 속 감춰져 있던 몸을 바라보고 자각하면서 여성성과 인간성을 찾는 과정을 3명의 여성 이야기를 통해 보여준다. 5~6일 강동아트센터 소극장. 2만원. (02)440-0500. 일렉트로닉 듀오 캐스커 오는 31일 오후 7시 마포아트센터 아트홀맥에서 데뷔 10주년 기념 단독콘서트 ‘10(TEN·텐)’을 연다. 팬들의 신청곡으로 채운 리퀘스트 무대와 캐스커가 그간 선보인 음악 공연 등이 마련된다. 데뷔 10주년 기념 사진전과 음반·포스터 전시도 함께 열린다. 5만 5000원. 1544-1555.
  • 16세 제자와 아이까지 낳은 28세 女교사 결국…

    16세 제자와 아이까지 낳은 28세 女교사 결국…

    자신이 가르치던 미성년 제자와 ‘사랑’에 빠져 아이까지 낳은 엽기적인 여교사가 결국 법의 심판을 받았다. 지난 31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州) 샌버너디노 법원은 서든 캘리포니아 지역 고등학교 교사 로라 엘리자베스 화이트허스트(28)에게 징역 1년 및 5년 간의 보호 관찰, 평생 성범죄자 등록을 선고했다.    황당한 사건의 시작은 지난해 여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영어를 가르친 화이트허스트 교사는 신원이 공개되지 않은 16세 제자와 눈이 맞아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고 말았다. 이후 1년 간이나 둘 간의 관계가 지속됐고 지난 6월 아들까지 낳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같은 사실은 소년의 엄마가 둘 간의 관계를 눈치채 경찰에 신고하면서 알려졌다. 특히 이번 수사과정에서 화이트허스트 교사가 이 제자 이외에도 2명의 미성년 제자와 성적 접촉을 가진 것이 추가도 드러났다. 그러나 현지 법원은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은 점과 피해자의 아이를 낳아 키우고 있다는 점을 고려, 예상보다 적은 형량을 선고했다. 화이트허스트의 변호인은 “피고인이 법정에서 자신의 실수와 잘못을 충분히 고백했다” 면서 “1년 간 수감돼 힘든 시간을 보내겠지만 어느정도 만족스러운 판결”이라고 밝혔다.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미국 엽기 감금사건 피고인에 ‘종신형+징역 1000년’

    미국 오하이오주(州) 클리블랜드에서 발생한 엽기적인 감금사건의 피고인 아리엘 카스트로(53)가 살아서는 다시는 세상 구경을 할 수 없게 됐다. 오하이오주 쿠야호가 카운티 법원의 마이클 루소 판사는 1일(현지시간) 살인과 강간, 납치 등 329건의 혐의로 기소된 카스트로에 대한 선고공판에서 ‘가석방 없는 종신형’과 함께 ‘1000년 연속 징역형’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극단적인 자아도취에 빠져 있다”며 “너무나 끔찍한 범죄를 저질렀기 때문에 영원히 감옥에서 나와서는 안된다”며 천문학적 형량을 선고한 이유를 밝혔다. 이어 “이 도시와 카운티, 나아가 이 세상 어디에도 타인을 노예로 만들어 성폭력과 같은 잔혹 행위를 한 사람을 위한 공간은 없다”며 “그런 사람이 딱 한번 죽을 수 있는 유일한 곳은 감옥”이라고 덧붙였다. 카스트로는 최후 진술에서 구타 또는 강간 당했다는 피해자들의 진술이 거짓이라며 “나는 폭력적인 사람이 아니며 대부분의 성관계는 합의에 의한 것이었고 집에는 화합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내 딸에게 물으면 나를 세상에서 최고의 아빠라고 대답할 것”, “피해자들은 숫처녀가 아니었고 나에 앞서 수차례 성경험이 있었다”, “나는 괴물이 아니고 환자다” 등의 억지 주장을 늘어놨다. 피해자 중 유일하게 법정에 모습을 드러낸 미셸 나이트(32)는 판결에 앞서 울먹이는 목소리로 “나는 11년을 지옥에서 보냈는데 이제 당신의 지옥이 시작됐다”며 카스트로에게 최고형을 선고할 것을 호소했다. 종신형이 선고된데 대해서는 “사형은 너무 쉬운 형벌이었을 것”이라며 만족감을 표시했다. 전직 통학버스 운전사인 카스트로는 나이트와 어맨다 베리(27), 지나 디지저스(23) 등을 납치해 약 10년간 자택에 감금·성폭행한 혐의로 지난 5월 체포됐다. 지난 2002~2004년 사이 각각 21세, 14세, 16세의 나이로 실종된 피해자들은 그동안 수차례 임신과 강제 유산을 반복하며 지내온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이 가운데 1명은 카스트로의 딸과 절친한 친구 사이였던 것으로 확인돼 미국 사회에 큰 충격을 줬다. 카스트로의 악질적인 범행은 그의 집에 갇혀 있던 베리가 지난 5월 6일 가까스로 탈출에 성공, 이웃 주민에게 도움을 구해 경찰에 신고하면서 만천하에 드러났다. 검찰은 카스트로를 조사한 끝에 지난 6월7일 악질적인 살인 2건과 강간 139건, 납치 177건, 성적학대 7건, 폭행 3건, 범죄도구 소지 1건 등을 포함해 총 329건의 혐의로 그를 기소했다. 카스트로는 지난주 검찰과의 협상에서 사형을 피하는 조건으로 유죄를 인정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56세영국女 동거남 때려죽이고도 방면,왜?

    56세영국女 동거남 때려죽이고도 방면,왜?

    한 영국 여성이 동거남을 살해했음에도 11년간 그로부터 학대받았다는 점을 인정받아 감옥에 가지 않게 됐다고 영국의 헤럴드 선이 31일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클레이톤에 사는 데브라 찰스라는 56세 여성은 로이 니콜이라는 58세 남성을 살해(비고의적)한 혐의에 대해 대법원이 유죄를 인정했지만 집행이 유예된 징역 3년을 선고받고 집으로 돌아왔다.  사건은 2002년으로 거슬로 올라간다. 동거남 니콜은 사건 직전까지 동거녀인 찰스를 발로 차거나 머리로 들이받고, 발목을 부러뜨리는 등 지속적으로 학대행위를 일삼았다.  참다 못한 여자는 그의 아들과 함께 남자를 티볼 배트로 때려 쓰러뜨린 뒤 묶어서 집 주차장에 1주일 이상 방치했다. 니콜은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결국 사건 7주 후에 사망했다.  처음에 찰스는 혐의를 부인했지만 2008년 니콜의 죽음에 관여했다고 고백했다. 그녀는 니콜의 얼굴을 담배불로 지졌으며, 몸에 석유를 끼얹고 불을 지르겠다고 위협한 사실도 경찰에게 자백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헤럴드선 캡쳐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16세 소녀 레데키 ‘세계新 물살’

    16세 소녀 레데키 ‘세계新 물살’

    미국의 16세 소녀 케이티 레데키가 6년 묵은 여자 수영 자유형 1500m 세계기록을 무려 6초나 단축했다. 레데키는 31일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팔라우 산트 호르디 경기장에서 열린 국제수영연맹(FINA) 세계선수권대회 여자 자유형 1500m 결승에서 15분36초53의 세계 신기록을 세우고 금메달을 차지했다. 2007년 6월 케이트 지글러(미국)가 세운 종전 세계기록(15분42초54)을 6년 남짓 만에 6초01이나 줄였다. 2위 로테 프리스(덴마크)도 15분38초88에 터치패드를 찍었다.  지난해 런던올림픽 자유형 800m에서 금메달을 딴 레데키는 지난 28일 이번 대회 자유형 400m 우승에 이어 1500m에서도 금메달을 수확해 바르셀로나 세계선수권 2관왕에 올랐다. 여자 배영 100m에서는 58초42를 기록한 미시 프랭클린이 우승해 이틀 전 여자 계영 400m에서 미국의 금메달을 합작한 데 이어 대회 2관왕이 됐다.  전날 여자 평영 100m 준결승에서 1분04초35의 세계 신기록을 세운 치운 루타 메일루타이트(16·리투아니아)는 결승에서 1분04초42로 우승해 금메달을 챙겼다.  남자 자유형 200m에서는 런던올림픽에서 박태환(인천시청)과 쑨양(중국)을 밀어내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던 야니크 아녤(프랑스)이 1분44초20을 기록해 세계 최강임을 다시 확인했다. 남자 배영 100m 금메달의 주인공은 52초93을 기록한 맷 그리버스(미국)가 됐다.  최병규 기자 cbk91065@seoul.co.kr
  • [미주통신]고등학교 교장이 색마일 줄이야…

    [미주통신]고등학교 교장이 색마일 줄이야…

    고교 교장이 성도착증 환자일줄이야… 뉴욕 맨해튼에 있는 한 고등학교의 교장이 네 명 이상의 여학생들과 성관계를 가진 것은 물론 성도착증 환자와 비슷한 나쁜 짓을 계속해오다 결국 들통이 났다고 뉴욕데일리뉴스가 30일(현지 시각) 보도했다. 뉴욕시 교육 당국의 특별 조사 결과, 맨해튼 미드타운에 소재한 스포츠 비즈니스 학교의 교장인 메릭 테일러(31)는 자신의 학교에 다니는 여학생들을 유혹하여 이들과 학교 교실이나 자신의 차 혹은 모텔 등에서 성관계를 맺은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테일러는 주로 16세에서 19세 사이로 알려진 이들 여학생들과 관계를 맺을 시 콘돔을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고 조사 보고서는 밝혔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테일러는 자신의 고등학교에 다니는 여학생들에게 다가가 “가슴이 크다”는 등 여러 차례 입에 담지 못할 성희롱을 일삼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테일러는 심지어 성관계를 거부하는 여학생에게는 “그냥 만져보면 안 되겠느냐”라는 등 성도착증 환자 이상의 행동을 해왔으며 다른 한 여학생에게는 자신을 위해 마리화나를 사오라고까지 유혹했다고 조사 보고서는 밝혔다. 테일러의 이러한 파렴치한 행위는 이를 알아차린 한 교사가 교감에게 알려 교감이 교육 당국에 신고함으로써 조사에 착수하게 되었다고 언론은 전했다. 현재 자신의 행위를 인정하고 있는 테일러는 즉각 정직 조치되었으며 교육 당국은 해당 조사 결과를 검찰 등 관련 기관으로 통보했다고 뉴욕데일리뉴스는 전했다. 사진= 테일러가 교장으로 근무한 뉴욕 맨해튼에 있는 고등학교 (구글맵) 다니엘 김 미국 통신원 danielkim.ok@gmail.com
  • [씨줄날줄] 노예무역 소송/문소영 논설위원

    동양과 서양의 힘의 균형은 1840년 아편전쟁에서 깨졌다는 것이 정설이다. 서구 지배의 원인으로 최근까지도 유럽의 문화가 동양보다 우월했다는 해석이 지배적이었다. 2500여년 전 고대 그리스의 이성과 창의성, 자유 등에서 원인을 찾기도 했다. 일본이 1853년 서구로부터 강제 개항을 당한 뒤 서양과 똑같아지고자 애쓴 것은 그런 연유에서였다. 그러나 1960~1970년대에 들어 학자들 사이에서 색다른 해석이 나왔다. 이들은 19~20세기 초 유럽 등 서구의 세계 지배 배경으로 16세기 포르투갈·스페인이 남아메리카를 식민지로 개척한 뒤 남미의 풍부한 은을 착취한 것을 비롯, 17~19세기에 영국·프랑스·네덜란드가 주도한 반인륜적인 노예무역과 북아메리카 식민지 개척을 손꼽았다. 중국과 비교해 조잡한 유럽의 상품들은 아프리카인과 교환됐고, 그 아프리카인은 ‘노예’라는 새로운 상품이 돼 아메리카로 팔려나간 것이다. 특히 서인도제도인 카리브해로 팔려간 아프리카 노예들은 그곳 원주민들과 함께 대단위 농장인 플랜테이션에서 노동집약적 작물인 사탕수수와 커피, 면화 등을 재배하는 강제노동에 투입됐다. 플랜테이션은 이후 남북 아메리카로 확산됐다. 아프리카 노예는 더 많이 필요해졌고 18세기에 최고조를 이뤘다. 또 아메리카의 면화는 영국에서 면직물로 대량생산돼 남북 아메리카에서 대량으로 소비됐다. 이것이 유럽을 살찌운 ‘대서양 삼각 무역’이자 서양 지배 시대의 비결이었다. 18세기 후반 영국이 면방직 산업을 중심으로 산업혁명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도 묵묵히 강제노동을 해야 했던 아프리카 노예와 아메리카에서의 면화 재배, 그리고 면직물 소비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300여년의 역사를 지닌 노예무역이라는 유럽의 어두운 과거와 아시아·아프리카·아메리카를 총칼로 점령한 부끄러운 역사가 서구 지배의 ‘비결’인 셈이다. 자메이카, 수리남 등 카리브해 14개 섬나라가 수세기에 걸친 노예무역과 원주민 대량학살에 대한 책임을 영국·프랑스·네덜란드 3개국에 묻고 보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진행한다고 한다. 17세기 말부터 프랑스의 식민지배를 받다 1804년 독립한 세계 첫 흑인공화국 아이티(옛 프랑스령 생도밍그)는 과거 플랜테이션이 가져다준 폐해로 지금도 고질적인 가난에 시달리고 있다. 일제강점기 일본군 위안부와 강제징용자 문제 등 한·일 간에도 여전히 해결을 기다리는 역사적 과제가 가로놓여 있다. 300년 만에 법대(法臺)에 오른 ‘대서양 노예무역’의 심판 결과가 주목된다. 문소영 논설위원 symun@seoul.co.kr
  • 美법원, 여고생 성폭행 40대에 징역 87년 중형

    미국 시카고에서 길 가던 10대 여고생을 납치·성폭행한 40대 남성에게 징역 87년이 선고됐다. 30일(현지시간) 시카고 abc방송 등에 따르면 시카고 쿡카운티 순회법원 스탠리 삭스 판사는 이날 성폭행 전과범인 전직 우편배달부 타미 네일러(45)에게 성폭력 및 성적학대 등 6개 혐의를 적용해 징역 87년을 선고했다. 네일러는 지난 2008년 또다른 성폭행 범죄를 저지른 혐의로 이미 징역 40년형을 선고받은 상태인 데다 이번에 87년이 추가되면서 사실상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검찰 기소장에 따르면 네일러는 2006년 5월 시카고 남부의 버스 정류장 인근에서 당시 16세이던 여고생을 납치해 성폭행했다. 검찰은 “네일러는 당시 스포츠유틸리티 차량을 운전하고 가던 중 버스를 기다리고 있던 소녀를 발견하고 차를 세웠다”면서 “경적을 울리면서 관심을 끌려했으나 소녀가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자 차에서 내려 드라이버로 위협하며 차에 태웠다”고 전했다. 네일러는 수 블럭 떨어진 골목길로 차를 몰고 가서 여고생을 성폭행한 뒤 놓아주었다. 피해 여고생은 인근 가정집으로 달려가 도움을 요청했으며 곧 병원으로 옮겨졌다. 병원 측은 성폭력 응급키트(rape kit)를 이용해 증거를 채취했다. 사건발생 3년 뒤 2009년 검찰은 응급키트가 추출해낸 DNA가 네일러의 것과 동일하다는 사실을 밝혀냈고 피해 여고생을 통해 네일러를 범인으로 확인했다. 그때는 이미 네일러가 다른 성폭행 혐의로 복역중인 상태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교황 “동성애자도 사회의 일부”

    교황 “동성애자도 사회의 일부”

    교황 프란치스코가 동성애에 유화적 태도를 보이는 발언을 했다. 동성애자는 사제가 될 수 없다고 명문화했던 베네딕토 16세 전임 교황과 달리 프란치스코 교황은 동성애자들을 달래는 듯한 언급을 한 것이다. 29일(현지시간) AP통신에 따르면 세계청년축제가 열렸던 브라질 방문을 마친 교황은 이탈리아 로마행 기내에서 기자들과 취임 후 첫 간담회를 갖고 “가톨릭이 동성애 행위를 죄악으로 가르치고 있지만 사회는 (통합을 위해) 동성애자들을 온전하게 받아들여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동성애 취향 자체는 죄가 되지 않지만 지속적인 동성애 행위는 죄악이라는 점을 명확히 한 것이다. 동성 간 결혼을 반대하는 바티칸의 기존 입장을 바꿀 생각이 없느냐는 질문에는 “가톨릭 교회의 입장을 잘 알고 있지 않느냐”고 말했다. 교황은 바티칸 은행의 부정부패 스캔들 조사와 금융 개혁 등의 임무를 맡은 고위 성직자가 10년 전 우루과이와 스위스에서 바티칸 대사로 재임하던 중 동성애를 했다는 주장에 대해 “혐의를 입증할 만한 아무런 증거도 찾아내지 못했다”고 답했다. 한편 교황은 여성 사제 허용 가능성에 대해 “요한 바오로 2세가 이미 답변을 한 바 있다”며 “그 문은 닫혀 있다”고 잘라 말했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리비아·이집트 공안기관 부활…대국민 감시·탄압 등 재연 우려

    ‘아랍의 봄’ 민주화 시위의 진원지였던 리비아, 이집트, 튀니지 등 북아프리카 국가들이 최근 또다시 정치적 격랑에 휩싸인 가운데 정부가 개각을 단행하는 등 민심 수습에 나섰다. 그러나 리비아, 이집트가 과거 공안기관의 부활을 예고하고 나서면서 독재 시대로 회귀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리비아 정부는 최근 잇따른 반정부 시위와 폭력 사태로 인한 정국 혼란을 수습하기 위해 국방장관을 새로 임명하고, 일부 장관을 교체하는 등의 개각을 단행하기로 했다. AFP통신에 따르면 알리 제이단 리비아 총리는 29일(현지시간) 기자회견에서 현재 공석인 국방장관을 새로 임명하고, 일부 장관을 교체하는 등의 내용이 담긴 개각안을 31일 의회에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특히 이번 개각안에는 무아마르 카다피 정권 시절 국민을 탄압하는 활동으로 악명을 떨친 국내안보부(ISA)를 재가동하겠다는 내용이 담겨 논란이 일고 있다. 이집트 과도정부 역시 이날 2011년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 축출 이후 폐지됐던 비밀 경찰조직인 국가안보조사국을 부활시키겠다고 밝혔다. 가디언에 따르면 ‘마바히스 암 아드 다울라’로 불리던 이 조직은 이슬람 단체와 야권 성향의 운동가에 대한 감시와 탄압을 일삼은 것으로 유명하다. 한편 지난 25일 야권의 유력 지도자가 또다시 암살되면서 혼란이 재연된 튀니지에서는 정부가 야권과 반정부 시위대의 퇴진 요구를 거부하는 대신 오는 12월 총선거를 치르겠다고 밝혔다. AP통신에 따르면 알리 라라예드 튀니지 총리는 29일 국영TV를 통해 오는 12월 17일 총선거를 치르겠다고 발표하면서 “정부는 권력에 매달리지는 않겠지만 끝까지 권한을 이행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선거일로 지정한 12월 17일은 공교롭게도 튀니지의 ‘재스민 혁명’을 촉발했던 무함마드 부아지지(당시 26세)가 2010년 시디부지드에서 분신, 자살한 날짜와 같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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